감수성의 간극을 데이터로 줄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떡볶이와 야구, 그리고 영화를 좋아합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여러분은 쿠팡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문자 받으셨나요? 개인정보 유출이 이젠 때마다 돌아오는 뉴스가 될 만큼 잦아진 게 씁쓸하긴 하지만 이번엔 유출 규모도 크고 쿠팡의 보안 시스템 자체에 구조적인 취약점이 있었다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낳고 있습니다. 다시금 개인정보의 소중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양한 기기를 통해 수집되는 오늘날의 내 개인 데이터가 AI 학습에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듭니다. 홈캠이 해킹되어서 영상이 유출되는 사고도 발생하고 있고 CCTV를 통해 군중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AI도 이미 있으니까요. 오늘 오그랲에서는 CCTV를 통해 군중을 감시하는 AI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안보 차원에서 군중 감시 AI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실상 감시 국가의 시작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죠. 군중 감시 AI가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 또 주요 국가들은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 위 그물'과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중국 안보를 위해 군중 감시가 필요하다는 입장의 대표주자는 단연 중국입니다. 중국은 다양한 시스템을 활용해 수많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AI까지 곁들여서요. 중국 중앙 정부가 발표한 AI+ 행동계획이라는 게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회, 교육, 의료, 엔터테인먼트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모든 분야에 AI를 적용하고 활용할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안보 영역 역시 AI 기술의 적용 대상이죠. 군중을 감시하는 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AI 기술은 안면 인식 알고리즘입니다. 미국의 국가기술표준연구소 NIST에서는 안면 인식 알고리즘 테스트를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FRVT라고 하는데, 2010년대부터 중국은 이 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대회에서는 1위부터 5위까지 모든 알고리즘이 중국의 것이기도 했죠. 이러한 경쟁력은 최근 테스트에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회는 크게 2개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두 얼굴 이미지가 동일인인지 판단하는 1:1 검증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주어진 얼굴 이미지를 수백만 명 규모의 데이터에서 찾아내는 1:N 검증이 있습니다. 출입국 심사 사진을 가지고 대규모 여권, 비자 사진 데이터베이스에 검증 작업을 진행한 최근 테스트 순위를 살펴보면 중국은 각각 2, 3개의 알고리즘을 TOP 10 안에 두었습니다. 중국은 이 강력한 안면 인식 알고리즘이 잘 작동될 인프라도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CCTV가 가장 많은 나라 역시 중국이거든요. 사실 전 세계 CCTV 설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도 보안 전문 기업들에서는 정부 보고서나 언론 보도자료, 경찰 자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하고 있어요. 현재 추정컨대 전 세계적으로 약 10억 대의 CCTV가 설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7억 대가 중국에 있고요. 인구 대비로 보면 인구 천 명당 494대의 카메라가 있는 셈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인구 천 명 당 CCTV가 70대 이상 설치된 도시는 인도의 하이데라바드와 인도르 이렇게 두 곳입니다. 뒤이어 인도 벵갈루루와 파키스탄 라호르 순이고요. 대한민국 서울도 인구 천 명 당 24.3대의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의 수치를 얹으면요? 다른 도시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중국은 강력한 알고리즘과 압도적인 인프라를 바탕으로 거대한 감시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하나는 하늘의 그물, 톈왕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매서운 눈 프로젝트' 쉐량공정이 있습니다. 베이징, 선전, 청두 같은 대도시에선 톈왕이 돌아가고, 후난성이나 쓰촨성 같은 농촌 지역에는 쉐량공정이 돌아갑니다. 톈왕은 수억 대의 CCTV를 활용해 사람들의 얼굴, 차량 번호, 보행 패턴 등을 인식하고 분석합니다. 수 만 명이 모인 대형 콘서트장에서 바로 특정 인물을 찾아낼 정도로 뛰어난 정확도를 갖고 있다고 하죠. 쉐량공정은 농촌 곳곳에 있는 CCTV에 더해 개인 가정용 카메라까지 중앙 감시 플랫폼에 통합해 운영되고 있어요.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감시 플랫폼에 접근하도록 해서 '참여형 감시' 모델을 구축하기도 했고요. 단순히 불특정 다수를 향한 감시가 아니라 반체제 인사들의 타깃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소수민족들이 모여있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모스크라던가 티벳 사찰에서도 시스템이 돌아가고요. 백악관과 팔란티어의 수상한 협력... 미국은 군중 감시에 자유롭나 중국의 강력한 감시 시스템에는 민간 기업들의 기술과 인프라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이들 기업들이 인권 탄압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규제를 하고 있죠. 하지만 정작 미국의 상황도 이런 감시 기술 활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한 행정 명령에 서명을 했습니다. '정보 사일로를 제거해서 낭비와 사기, 남용을 막자'는 건데요. 제목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부서 간의 칸막이를 없애고 분절되어 있던 정부 데이터를 서로 공유하도록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당시 문제가 되었던 건 일론 머스크의 정부효율부 DOGE 때문이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다양한 부처의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해고의 칼춤을 추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거든요. 지금은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 사이가 소원해지기도 했고, DOGE도 해체되었습니다. 그러면 뭐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은데 왜 이 행정명령 이야기를 했을까요? 트럼프가 이 행정명령에 사인을 한 이후 주요 부처들이 데이터 분석을 위한 기술적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유독 많이 등장하는 기업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팔란티어죠. 페이팔 마피아 편에서 다루었듯 일론 머스크가 DOGE를 만들고 팔란티어 출신 인사들을 많이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에선 올해 신규 사업을 진행할 때 팔란티어와 유독 계약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2025년 팔란티어가 연방 정부 업무를 받아 따낸 프로젝트 금액은 무려 9억 650만 달러입니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이죠. 팔란티어의 핵심 제품인 파운드리가 국토안보부, 보건복지부 같은 주요 연방 기관에 도입되고 있습니다. 팔란티어의 또 다른 제품 고담은 이미 정보기관과 국방부에서 활용하고 있고요.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팔란티어의 제품 도입으로 여러 기관의 정보를 쉽게 통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있어요. 다만 이러한 데이터 통합 작업이 자칫 광범위한 인권 침해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이민자를 감시하고 트럼프 행정부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세력을 견제하는 데 활용할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거죠. 이런 우려는 팔란티어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팔란티어 전직 직원 13명이 발표한 서한입니다. 이 서한에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거래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팔란티어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들이 윤리적 원칙을 저버리고 트럼프 행정부에 가담하고 있는 현 상황을 비판하는 겁니다. 팔란티어 전략 파트에서 일했던 직원은 올해 특히 이민세관단속국 ICE와의 업무가 확대되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던지기도 했죠. 이 ICE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업무 규모라든지 행동반경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단순히 이민자만 체포하고 감금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성향이 다른 민주당 소속의 정치인들도 막무가내로 체포하면서 정치 경찰화 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습니다. ICE의 이런 막무가내 행동에 불을 지피는 건 다름 아닌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최근엔 소말리아 이민자들을 향해 쓰레기라고 쏘아붙이는 등 노골적인 혐오 발언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미국 내 이민자 추방 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ICE에 의해 체포되어 구금된 사람 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5년 11월 기준으로 6만 5천 명 이상이 구금 중이죠. 단순히 구금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추방으로도 이어지고 있죠. 셧다운 기간 동안 추방된 5만 6천여 명을 포함하면 현재까지 29만 명이 추방됐어요. 이러한 상승세에는 AI 기술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팔란티어는 일찍이 2014년부터 ICE와 계약을 체결했었습니다. 당시 불법 이민자의 범죄 기록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었죠. 올해엔 추방 대상자를 실시간으로 식별, 추적하고 허가된 체류 기간을 넘어선 외국인을 표적화하는 기능까지 제공하는 감시 시스템 계약을 맺었습니다. 물론 ICE가 팔란티어하고만 협력을 하는 건 아닙니다. 안면 인식 쪽에서는 올해 9월에 Clearview AI라는 회사와 계약했는데요. 이 회사가 꽤나 문제가 많습니다. 2017년에 설립된 Clearview AI는 SNS에 공개된 이미지를 이용자 동의 없이 크롤링해서 500억 개 이상의 얼굴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유럽 가릴 것 없이 많은 국가에서 소송이 걸리고 제재를 받았던 기업인데 ICE는 이들로부터 얼굴 데이터베이스 제공 받고 얼굴 인식 시스템을 이용할 계획인 거죠. 민감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 인권 침해하는 AI? 이런 일들이 중국과 미국같은 기술 강대국이나 권위주의 국가에서만 발생할 것 같지만 사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도 군중 감시 AI 연구가 진행된 바 있으니까요. 지난 정부 시절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경호처장으로 재직할 당시 진행한 사업이 있습니다. 바로 'AI 기반 전영역 경비안전 기술개발 사업' 이었죠. 2024년부터 5년간 총예산 24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는데요. 사람들의 생체 신호를 토대로 긴장도를 측정해 위험인물을 인식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려고 했습니다. 위험인물을 AI를 통해 판단하겠다는 사업인데 따로 윤리 검토 없이 사업이 진행됐습니다. 지난 10월에 이 사실이 밝혀지자 지금 정부에서는 사업 중단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고 현재는 연구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개인의 민감 정보인 생체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고 추적하고 분석하는 AI는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게다가 여전히 알고리즘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정확히 우리가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AI가 왜 특정인을 위험인물로 지목했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블랙박스' 문제도 심각합니다. 그 사이에 학습 데이터에 내재된 인종과 성별에 따른 차별이 AI의 편향을 고착시킬 수 있죠.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행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불특정 군중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라 중국에서는 소수 민족을 대상으로, 또 미국에서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표적 추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흐름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유럽이 있습니다. AI 발전도 좋은데 조금은 신중히 접근하자는 입장인 EU에서는 AI 법을 통해 AI 기술의 인권 침해를 막고 있습니다. EU의 AI 법에서는 위험 수준에 따라 총 4가지 레벨로 나누어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AI 시스템이 인간의 존엄성이나 평등, 민주주의 같은 기본 가치를 위배하는 경우를 가장 심각한 Level 1로 설정하고 있죠. Level 1에 해당되는 AI 시스템은 공공과 민간을 불문하고 사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Level 1에 해당하는 영역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오늘 살펴본 군중 감시 AI가 커버하는 영역입니다. 물론 테러 대응과 인신매매 피해자 수색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는 허용하는 등 일부 예외 조항을 두긴 했습니다. AI 기술은 분명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겁니다.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고, 실종된 아이를 빠르게 찾아내고, 범죄자를 추적하는 데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죠. 하지만 기술이 권력과 결합하고 견제 장치가 사라진다면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경고했던 빅브라더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AI가 우리의 삶을 더 편리하게 해주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견고한 통제 체계가 갖춰져야 할 겁니다. 정부와 국제사회는 법적 규제를 통해, 기업들은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말이죠. 오늘 준비한 오그랲 군중감시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 Face Recognition Technology Evaluation 1:1 Verification & 1:N Identification | NIST - Surveillance camera statistics: which are the most surveilled cities? | comparitech - "Stopping Waste, Fraud, and Abuse by Eliminating Information Silos" | The White House - The Scouring of the Shire: a letter from concerned Palantir alumni to the tech workers of Silicon Valley - USA Spending.gov (U.S. Department of the Treasury) - Brianna Katherine Martin | LinkedIn. - ICE Enforcement and Removal Operation Statistics | ICE - By the numbers: the latest ICE and CBP data on arrests, detentions and deportations in the US | The Guardian - Limited-Sources Justification for Palantir Technologies | ICE - 2024년도 지능형 유무인 복합 경비안전 기술개발사업 신규과제 공모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 EU Artificial Intelligence Act - Connecting the dots in trustworthy Artificial Intelligence: From AI principles, ethics, and key requirements to responsible AI systems and regulation | Díaz-Rodríguez et al. (2023)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지난주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했습니다. 누리호도 성공적으로 발사됐고, 탑재한 13기의 위성들도 잘 사출 되어서 계획된 궤도에 안착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발사가 의미가 있었던 건 대한민국 최초로 민간이 주도하여 제작된 발사체였다는 거였죠. 이제 우리나라의 우주산업도 정부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막 발을 떼었지만 우주 강대국들은 더 먼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AI 기업들은 우주에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선언했고요, 미국과 중국은 달에 원전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오늘 오그랲에서는 다시금 경쟁 무대로 떠오른 우주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AI 기업들은 왜 우주 데이터센터를 말하는지, 또 달 개발이 실제로 가능한지 데이터와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주 궤도에 데이터센터 올린다는 일론 머스크 지난 11월 18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가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백악관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양자 회담도 했고 워싱턴 D.C. 투자 포럼에서는 미국의 빅테크 수장들을 만나 투자 협력을 논의했죠. 이 자리에서 일론 머스크와 젠슨 황이 대담을 나누었는데, 그들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어요. 두 사람은 앞으로 5년 안에는 우주에서 작동하는 데이터센터가 가장 저렴할 것이라 예측했어요. 우주 데이터센터는 말 그대로 우주에 떠 있는 데이터센터를 의미합니다. 기존엔 AI 모델을 학습하고 추론하는 과정에 지상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사용했다면 앞으로는 우주에 있는 인프라를 이용해 학습, 추론을 진행하겠다는 거죠. 고도 2,000km보다 낮은 저궤도에 있는 위성을 이용해서 AI 컴퓨팅이 이뤄지고 각각의 위성이 계산한 연산 결과는 레이저를 통해 서로 교환하는 식인 겁니다. 두 테크 리더들이 던진 이 우주 데이터센터는 사실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당장 이야기를 꺼낸 일론 머스크는 이미 실험을 진행하고 있거든요. 스페이스X가 현재 우주에 쏘아 올리는 위성은 2세대 위성인 V2입니다. 이 V2에는 위성간 레이저 통신이 가능한 장비가 탑재되어 있죠. 내년부터 사용할 3세대 위성 V3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업그레이드가 될 예정이라 더 빠른 속도로 위성간 통신이 가능해질 거고요. 일론 머스크는 차세대 위성인 V3를 기반으로 궤도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스페이스X뿐 아니라 다른 미국 기업들도 우주 궤도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자체 TPU 칩을 실은 위성 2기를 2027년까지 쏘아 올릴 예정이죠. 엔비디아의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 스타클라우드는 AI 컴퓨팅 기업인 크루소와 함께 지난 11월에 엔비디아의 H100을 탑재한 위성을 쏘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만 살펴보면 미국이 우주 산업에서 치고 나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중국은 우주 데이터센터 실험을 진행하고 그다음을 보고 있거든요. 지난 5월 14일에 중국 네이멍구 주취안 위성발사센터에서 창정-2D 로켓이 발사되었습니다. 이 로켓에는 중국의 위성 12기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의 임무가 바로 우주 데이터센터 구축이었죠. 우주로 올라간 각각의 위성 한 기는 초당 744조 회의 연산 처리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12기의 위성을 엮어서 계산하면 연산 처리 성능이 최대 초당 5,000조 회까지 가능해지죠. 이 위성들은 레이저를 활용해 최대 100Gbps의 속도로 서로 통신할 수 있고요. 이렇게 발사된 위성은 실제 업무에 바로 활용되었습니다. 광저우 파저우 지역의 도로망 분석을 위성에서 직접 수행했거든요. 과거라면 위성이 찍은 고해상도 이미지를 지상 데이터센터로 내려보내고, 지상에서 모델이 추론, 분석을 수행했다면 이번에는 위성이 찍은 이미지를 위성 내부에서 바로 추론을 수행해서 파저우의 도로망 구조를 추출했습니다. 요청부터 결과 도출까지 걸린 시간은 단 3분. 게다가 전송해야 할 데이터량도 고해상도 이미지에서 도로망 구조로 크게 줄여서 경제성도 챙겼습니다. 중국은 첫 번째 위성 발사 성공에 힘입어 지난 10월엔 두 번째 위성군 발사 계획도 발표했어요. 다음 발사에 사용될 초당 1경 회의 연산 능력을 갖고 있는 톈청-10 위성도 공개되었죠. 중국이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류츠신의 SF 소설 '삼체'에서 따와 '삼체 컴퓨팅 군집'으로 불립니다. 장기적으로 중국은 우주에 2,800개의 위성을 쏘아 올려서 우주 궤도에서 자체적으로 컴퓨팅 시스템을 갖출 계획입니다. 전기도, 냉각도 다 해결 가능한 우주... 데이터센터로 딱 도대체 왜 이렇게 기업뿐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우주로, 우주로 나서려는 걸까요? 그 이유는 데이터센터에 드는 에너지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엄청난 양의 전력이 골칫거리입니다. 거기에 더해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것도 문제죠. AI 컴퓨팅 과정에서 미친 듯이 발생하는 열을 낮춰야만 GPU들이 계속해서 계산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데이터센터 냉각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그려보면 1위는 컴퓨팅 및 서버 운영입니다. 전체 에너지의 40%를 차지하고 있죠. 2위가 바로 냉각 시스템인데 실상 1위랑 큰 차이 없는 39%를 기록하고 있어요. 냉각에 들어가는 물 문제도 있습니다. 데이터센터의 온도를 낮추는 방법은 크게 2가지, 공기를 통해서 하거나 혹은 물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공기 기반의 공랭식 설계가 주를 이루었죠. 하지만 최근 AI 데이터센터에서는 공랭 시스템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열이 많이 발생해서 수랭식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물론 공랭식 설계에서도 뜨거워진 공기를 냉각시키는 냉각탑에 들어가는 물의 양이 많았지만 수랭식이 늘어나면서 더 많아지는 거죠. 가령 2018년부터 액체 냉각 시스템을 개발해 현재는 데이터센터에 시스템을 구축해 둔 구글의 사례를 보면 점점 늘어나는 물의 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6년, 구글의 물 사용량은 94억 리터. 작년엔 그 규모가 416억 리터로 늘어납니다. 8년 사이에 4배 이상 증가한 겁니다. 2021년부터는 구글의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한 물만 따로 볼 수 있는데 그 비율 역시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년엔 거의 90%에 다다르기도 했어요. 그런데 우주에서는 이 골칫거리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겁니다. 데이터센터에 사용할 전기 마련하려고 SMR도 만들고 이것저것 다 해보고 있는데 우주에서는 태양광을 이용하면 됩니다. 특정 궤도에 위치한 태양광 패널은 1년 중 99% 이상 태양에 노출되어서 태양빛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항상 고민하던 탄소 배출 문제도 없고, 사실상 청정에너지의 끝판왕으로 활용될 수 있는 거죠. 게다가 우주의 평균 온도는 영하 270도입니다. 지구에서처럼 물을 쓰거나 공기를 써서 온도를 낮출 필요 없는 거죠. 사실 우주에서 태양광을 활용해 발전을 하겠다는 아이디어는 1960년대 말부터 등장했습니다. 상당히 오래된 제안이었지만 경제성이 낮아서 발전되지 못했죠. 하지만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재사용 로켓을 성공시키면서 위성 발사 비용이 크게 줄어들었고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건 우주에서 만든 전기를 지구로 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손실이었는데, 우주 데이터센터에서는 지구에 보낼 필요 없이 바로 사용하는 구조라 해결이 돼버리는 거죠. 물론 우주 태양광 발전에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건 아닙니다. 우주 궤도에 데이터센터 만들려면 일단 우주에 설비를 갖춰두어야 할 텐데 쏘아 올려야 할 인프라를 생각해 보면 돈이 상당히 들 거라는 지적이 많아요. 가령 스타클라우드가 제시하는 5GW급 우주 데이터센터에는 가로세로 4km의 태양광 패널과 방열 패널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발사비가 줄었어도 이 정도 대규모 설비를 갖추려면 수백 억 달러의 비용이 들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고요. 또한 우주 방사선이나 우주 쓰레기 같은 환경 영향으로 데이터센터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 신속하게 유지 보수를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해결해야 하죠. 지구 궤도를 넘어 달까지 확장된 우주 경쟁 강대국들은 태양광 에너지를 넘어서 앞으로 확장될 '우주 경제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위한 에너지 해결책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선을 지구 궤도를 넘어 달에도 돌리고 있죠. 달을 개발한다는 얘기가 막연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이미 많은 기업들과 국가들이 미래의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에 뛰어들고 있어요. 일단 달에서 경제 시스템이 돌아가려면 크게 3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합니다. 1. 달까지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2. 지구로 귀환하기 위한 연료 보급 수단이 있는가. 3. 마지막으로 달에서 운영될 수익성 있는 사업이 존재하는가. 앞에 2가지는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달에서 수익성 있는 사업은 쉽게 떠오르진 않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 최근 주목받는 헬륨3가 있습니다. 이 헬륨3는 단 1g만으로 석탄 40톤과 맞먹는 에너지를 낼 수 있어서 미래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죠. 문제는 헬륨3가 지구에서는 자연적으로 생성되지 않아서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는 겁니다. 마약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요. UN에서 집계하고 있는 주요 지역별 마약 시세입니다. 미국에서 코카인이 kg당 3만 달러인데, 헬륨3는 g당 3만 달러일 정도로 비쌉니다. 그런데 달에 이 헬륨3가 많다는 얘기가 들려옵니다. 그래서 사업성 얘기가 나오는 거죠. 각각의 영역을 따져보면 가장 앞서있는 건 역시나 중국입니다. 일단 중국은 2003년부터 달 탐사 프로젝트 창어를 가동하고 있죠. 2007년 창어 1호를 시작으로 연이어 발사를 성공시키고 있어요. 특히 2020년에 발사된 창어 5호는 달 앞면에서 확보한 샘플을 다시 지구로 갖고 귀환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죠. 게다가 올해는 세계 최초로 우주 궤도에서 위성에 연료 공급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사업성 역시 중국이 가장 앞서고 있어요. 창어 프로젝트 책임 과학자는 애초부터 프로젝트 목표 중 하나로 헬륨3를 꼽을 정도였죠. 중국은 지난 탐사에서 가져온 샘플에서 새로운 광물 '창어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헬륨3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2035년을 목표로 달에 원자로를 개발할 계획입니다. 달에서 원활한 경제 시스템이 돌아가려면 사용할 에너지가 필요하니까요. 중국이 앞서나가자 미국은 부랴부랴 대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실 미국은 지난 2020년에 달에 배치할 소형 원자로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NASA 예산 삭감을 발표하면서 계획이 우그러졌어요. 그러다가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달 원자로 건설 계획을 발표하자 맞대응한 겁니다. 두 국가보다 빠른 2030년까지 달에 원자로 건설하겠다고요. 미국은 국가 주도의 우주 산업의 비중은 점점 줄이고 민간으로 무게 추를 옮기고 있는 상황이라 그나마 기댈 곳은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 같은 우주업체들입니다. 일단 스페이스X에 이어 블루 오리진도 지난 11월에 로켓 회수에 성공했다는 건 긍정적입니다. 또한 사업화 영역에서는 블루 오리진 출신 멤버들이 헬륨3를 판매하겠다는 InterLune이라는 기업을 창업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사업 계획만 갖고 있지만 올해 미국 에너지부와 계약 체결이라는 성과를 얻기도 했고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달에서는 이렇게 자유롭게 개발을 해도 문제가 없는 걸까요? 1967년 발효된 '우주 조약'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조약에는 달을 비롯해서 우주를 탐색할 때 국가의 활동을 규율하는 원칙이 담겨 있죠. 여기에는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우주 공간은 국가가 점유할 수 없다" 당연히 달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도 특정 국가가 점령하거나 소유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달에서 자원을 채취하는 건 따로 막고 있지 않죠. 국가 주권을 주장하지 않고 달의 특정 지역을 활용하기만 한다면 이 우주 조약을 어기는 건 아닌 겁니다. 그래서 1979년에 또 다른 협정인 '달 조약'이 만들어져요. 여기엔 달의 자원을 어떠한 국가와 조직도 소유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죠. 하지만 이러한 규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미국과 영국, 당시 소련이 주도해서 만든 1967년의 우주조약입니다. 현재 117개 국가들이 가입해 있죠. 이번엔 1979년의 달 조약을 볼까요? 참여국은 단 17개국뿐입니다. 당연히 우주 강대국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미국은 오히려 우주 자원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먼저 탐사하는 기업이 소유할 권리를 갖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법안을 두고 국제 사회에서 반발이 있었지만 뒤이어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국내법들을 제정했어요. 과거 시대의 유물로만 여겨졌던 우주 경쟁은 데이터센터와 자원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민간 기업에 주도권을 맡겨 시장의 효율성과 속도를 극대화하고 있고 중국은 국가 주도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펼쳐지고 있는 우주 시대의 경쟁에서 우리나라도 신속하게 계획을 세워야 할 겁니다. 과거 미국-소련 시절의 우주 경쟁에서처럼 단지 구경꾼으로 남아있을 순 없을 테니까요. 그 사이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과 배터리 기술, 그리고 통신 기술이라는 새로운 카드들을 갖추었습니다. 우주 개발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만큼 우리의 강점을 살려서 혁신을 이뤄낼 수 있도록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 Elon Musk Says Solar-Powered AI in Space Will Outperform Earth-Based Computing Soon | DRM News - As generative AI asks for more power, data centers seek more reliable, cleaner energy solutions | Deloitte Insights - 2022~2025 Environmental Report | Google Sustainability - Power from the Sun: Its Future | Peter E. Glaser - Drug Trafficking & Cultivation | UNODC - Fly Me to the Moon: The Great Debate | Chinese Academy of Science - Россия и Китай подписали меморандум о создании электростанции на Луне | RIA Novosti - Nuclear reactor on the moon? Acting NASA chief explains | VideoFromSpace - The Outer Space Treaty | UNOOSA - Moon Aggrement | UNOOSA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SF 영화 속에서나 보던 휴머노이드 로봇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들이 공개한 로봇을 두고 사람이 연기하는 것 아니냐, CG로 조작한 거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날 정도죠. 오늘 오그랲에서는 급격히 발전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을 살펴보겠습니다. 중국과 미국의 치열한 경쟁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또 왜 테슬라 같은 자동차 회사들이 로봇 산업에 뛰어들고 있는지 다양한 그래프와 데이터로 풀어보겠습니다. "100% 사람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중국 로봇 지난 11월 5일에 중국의 전기차 업체인 샤오펑이 자체 컨퍼런스 행사인 AI 데이를 진행했습니다. 이 날 행사에서 샤오펑은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이언 2세대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키 178cm에 몸무게 70kg로 사람과 비슷한 체형도 눈길을 끌었지만 사람들이 깜짝 놀란 건 로봇의 움직임이었어요. 진짜 사람이 걷는 것처럼 부드러운 발걸음을 보였거든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머지 SNS에서는 사람이 연기하는 거라고, 중국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게시물도 많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샤오펑 측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맞다는 증거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샤오펑은 이번 행사를 통해 단순히 전기차 업체를 넘어서서 휴머노이드 로봇뿐 아니라 로보택시로도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샤오펑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개한 건 지난해 11월 8일로 불과 1년 전입니다. 당시에는 발표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고 영상으로만 공개되었죠. 하지만 1년 사이에 완성도가 이렇게나 높아진 겁니다. 샤오펑은 2014년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중국을 대표하는 전기차 업체로 성장했어요.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과 지원 정책에 힘입어 정말로 많은 회사들이 생기면서 과열 경쟁이 심했습니다. 그런 시장에서 샤오펑은 당당히 살아남아 기술력을 뽐내고 있는 거죠.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전기차 사업을 하는 기업 130곳 가운데 이익을 낸 곳은 딱 4곳뿐입니다. BYD, 리오토, 테슬라, 그리고 샤오펑 이렇게요. 샤오펑뿐 아니라 다른 중국 기업의 휴머노이드 영상에서도 비슷한 조작 논란이 있었습니다. 영상의 주인공은 유비테크의 2세대 모델 워커 S2인데요. 영상 속 워커 S2의 모습이 딱 떨어지게 정렬이 되어 있고 동시에 걸음 걷는 모습을 두고 CG로 만든 거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이 의혹을 던진 사람은 미국의 AI 로봇 기업 피겨 AI의 CEO였는데요 로봇 머리의 조명이 이상하다고 지적하며 앞의 로봇만 진짜고 뒤는 가짜라고 주장했어요. 그러자 유비테크에서는 비하인드 영상을 공개하면서 CG가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사실 중국은 로봇 산업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는 후발주자였지만 지금은 선두 자리에 있을 정도죠. 2024년에 전 세계에 신규 설치된 산업용 로봇은 모두 54만 2,000대입니다. 그중에 중국에서만 29만 5,000대가 설치되어서 전체의 54%를 기록했습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6%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설치규모가 늘어나면서 2024년엔 전 세계 산업용 로봇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 있을 정도로 확장되었죠. 산업용 로봇뿐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휴머노이드에서는 초기부터 빠르게 시장을 넓히고 있어요. 앞서 언급된 샤오펑과 유비테크뿐 아니라 다양한 중국의 기업들이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기준으로 휴머노이드 개발 기업의 국가를 살펴보면 중국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뒤 이어 미국이 20%, 일본이 10% 정도죠. 중국 로봇 산업 투자 건수 가운데 49%가 휴머노이드에 집중될 정도로 자본의 집중도 상당합니다. 중국의 휴머노이드 산업에서 자본뿐 아니라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신생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이 젊다는 겁니다. 앞서 살펴본 샤오펑과 유비테크 CEO는 둘 다 70년대 생으로 40대이긴 하지만 신생 스타트업을 이끄는 CEO들 중에선 90년 대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 CCTV 춘절 갈라쇼에서 칼군무를 선보인 유니트리 로봇. 유니트리의 CEO는 1990년생입니다. 즈위안로봇, 아지봇의 창업자도 1993년생이고요. 갤봇의 왕허 CEO도 1992년생이죠. 생성형 AI로 불쑥 다가온 휴머노이드...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은? 생성형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그다음 시대의 주인공이 될 피지컬 AI도 어느새 우리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컴퓨터 속 챗봇을 벗어나 실체가 있고, 현실 안으로 확장될 피지컬 AI는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직접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올해 초 CES 발표에서 젠슨 황은 피지컬 AI의 대표주자가 될 휴머노이드와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죠. 밑에 나와있는 14대의 휴머노이드 로봇. 이 중에 중국 기업이 6곳이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8곳 가운데 미국 기업을 살펴보면 4곳뿐입니다. 그중에서도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제외하면 3곳 밖에 남질 않죠. 중국의 약진도 약진이지만, 생각보다 미국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 같죠?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 양상이 맞지만 양쪽 진영의 상황을 살펴보면 강점과 약점이 명확히 차이가 납니다. 일단 가장 큰 차이는 집중하는 영역입니다. 미국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두뇌인 AI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휴머노이드의 몸, 하드웨어 제조의 경쟁력이 압도적이죠. 휴머노이드의 두뇌를 개발하는 기업 22개 가운데 미국계 기업은 13개인 반면 중국계는 2개뿐입니다. 하지만 하드웨어는 그 반대입니다. 로봇의 몸을 담당하는 기업은 중국계 기업이 24개로 북미 지역보다 훨씬 더 많죠. 중국은 압도적인 제조업 생태계를 기반으로 로봇을 빠르게 많이 찍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반복해서 실험에 사용하면서 로봇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어요. 로봇은 컴퓨터 속 AI와 달리 실제 물리 세계에서 넘어져보고, 부서지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쌓을 수 있으니까요. 대표적으로 지난 4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세계 최초의 로봇 마라톤 대회가 있습니다. 인간 12,000명과 함께 21대의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평지뿐 아니라 경사도 있는 하프 마라톤 코스를 달렸습니다. 물론 어떤 로봇은 출발도 못했고, 어떤 로봇은 레일에 처박기도 했지만 6대는 완주에 성공했습니다. 와장창 난리였던 상황을 두고 SNS에서는 비판도 있었지만 단순히 실패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실제로 MIT나 워싱턴대의 연구자들 사이에선 중국의 이 대회를 두고 "역사적 실험"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죠. 실험실이 아닌 실제 인간의 환경의 습도, 기온 속에서 과연 휴머노이드가 배터리의 한계를 딛고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지를 시도해 본 것이니까요. 이런 환경이 갖춰진 중국과 하드웨어로 경쟁하기는 미국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에 로봇의 두뇌인 AI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로봇에 사용될 범용 AI 모델을 먼저 완벽하게 만들어서 생태계를 휘어잡자는 전략인 셈인 거죠. 혹은 반복 실험을 현실에서 할 수 없으면 가상의 환경 속에서 진행하는 법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의 코스모스처럼 시뮬레이션을 통해 반복 학습할 수 있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식으로 말이죠. 물론 미국에도 하드웨어 경쟁력이 있는 로봇 기업이 있습니다. 테슬라가 대표적이죠. 테슬라는 자신들의 로봇인 옵티머스에 들어갈 자체 시스템 반도체와 모델도 있고, 하드웨어도 자체 설비를 통해 제작하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단순히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전기차 제조업체를 넘어서 AI와 로봇 기업으로 아예 체질을 바꿀 채비를 갖추고 있어요. 일론 머스크는 옵티머스가 향후 테슬라 가치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얘기할 정도니까요. 사실 옵티머스가 처음부터 이렇게 잘 나갔던 건 아닙니다. 2021년에는 로봇 공개 대신 로봇 분장을 한 댄서의 촐랑대는 춤을 선보이면서 SNS에서 비웃음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매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면서 이제는 이렇게 다양한 움직임을 선보일 정도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최근 테슬라 주주총회에서 통과된 일론 머스크에 대한 조건부 주식 보상안이 핫했었죠? 시총 8조 5,000억 달러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면 최대 1조 달러의 보너스를 주겠다는 거였는데, 여기에 포함된 목표치를 봐도 테슬라의 체질 변화 의지가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포함된 미션 가운데 상업 운행 로보택시 100만 대, 휴머노이드 로봇 배치 100만 대 같은 건 단순히 전기차 판매에 그치는 게 아니라 AI와 로봇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으니까요. 테슬라뿐 아니라 다른 미국의 빅테크들도 AI 모델을 넘어서 휴머노이드 시장에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메타는 신설 로봇 팀을 만들고 인재를 채용하고 있고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원래 주인이었던 구글은 앱트로닉과 함께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기업들이 로봇으로 갈아타는 이유 중국의 샤오펑, 미국의 테슬라 두 기업 모두 전기차를 만들던 기업인데 지금은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차도 비슷합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했고 최근엔 피지컬AI 개발에 진심 모드이죠. 내년부터 향후 5년간 125조 원 넘게 투자해 AI와 자율주행, 로보틱스 역량을 키울 계획입니다. 도대체 자동차 기업들이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 첫째로 자동차 생산 원가 절감을 이뤄낼 수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사실 이미 자동차 제작 공정에는 자동화 공정이 많이 적용되어 있어요. 일례로 상하이에 있는 테슬라 기가팩토리는 자동화율이 95%에 달한다는 얘기도 있죠. 나머지 5% 영역만 사람이 하고 있는데, 가령 차체 실내외의 부품을 장착하고 부품과 배선을 연결하는 세심한 작업들입니다. 이런 영역을 미래엔 휴머노이드 로봇이 대체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인력 없이도 100% 로봇만으로 자동 생산이 가능해지게 되겠죠. 또 하나의 이유는 자동차 제조 공정과 로봇 제조 공정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70~80% 정도 기술 영역이 겹친다고 얘기하죠. 사실 생각해 보면 자율주행차량은 거대한 로봇과 같습니다.사물을 보고, 인지하고, 판단하는 AI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로봇인데 그 로봇에 바퀴가 달려있고 우리가 타고 있을 뿐이죠. 주변 환경을 스캔하고 사물을 인지하는 센서와 AI 기술은 자율주행차량뿐 아니라 로봇에도 필요하고 배터리와 전력 시스템 역시 자동차와 로봇 양쪽에서 완벽히 호환됩니다. 시장 규모도 매력적인 이유입니다. 자동차 시장은 아무리 변주를 줘도 자동차를 벗어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휴머노이드 로봇은 자동차 시장에 비해 훨씬 확장성이 좋죠. 휴머노이드 로봇은 제조 공정 자동화에만 투입되지 않습니다. 제조업을 넘어서 다양한 서비스 시장으로 확장될 수 있죠. 노인 돌봄 같은 헬스케어 영역도 있고, 물류업에선 재고 관리 분야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고객을 대응하는 서비스업과 가정 속 개인 돌봄과 재난 대응까지… 휴머노이드 로봇의 확장성이 좋다 보니 관련 시장 전망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전략컨설팅업체 맥킨지에서는 휴머노이드 시장이 2040년에 최대 3,7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어요. 우리나라 돈으로 543조가 넘는 어마어마한 시장인거죠. 물론 이건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상정한 예측치긴 합니다. 휴머노이드 시장이 성장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이 있는 게 현실이고요.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를 좌우할 핵심 역량은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일단 판단할 수 있는 '지능' 그리고 물체를 보고 식별하는 '인식' 물체를 쥐고 다루는 '핸들링' 마지막 '배터리'까지. 각각의 영역은 발전 속도에 차이가 있고 특히 배터리 영역의 발전이 더딘 상황입니다. 생성형 AI와 레이저 탐지기의 발전으로 지능과 인식 영역은 향후 2~3년 안에는 인간 수준으로 고도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재를 취급하는 핸들링이나 배터리는 아직까지 갈 길이 멀죠. 로봇의 촉각 민감도와 정밀도는 여전히 우리 인간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고 현재 휴머노이드의 지속시간은 2시간 정도에 불과합니다. 배터리 영역은 길게 보면 10년, 혹은 그 이상 소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할 정도죠. 기술의 성숙도도 성숙도지만 향후 로봇과 인간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안전 규제는 어떻게 할지, 사회적으로 이들을 어떻게 수용할지도 풀어야 할 숙제죠. 새롭게 펼쳐질 휴머노이드 시장을 향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있죠. 우리나라 기업들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우리나라에게 휴머노이드가 각별하게 다가오는 건, 휴머노이드가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생존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75명.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이미 제조업 현장에서는 인력난이 심각하고 앞으로 이 문제는 더 커질 수 있어요. 노동력이 부족한 대한민국에 휴머노이드 산업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로봇과 협업하는 구조로 산업을 전환할 수 있다면 초고령사회를 맞는 대한민국의 미래 해법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 준비한 휴머노이드 편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World Robotics 2025 | IFR - 中国における人型ロボット産業の現状と将来展望 | 野村総合研究所(NRI) - NVIDIA CEO Jensen Huang Keynote at CES 2025 | NVIDIA YouTube - The Humanoid 100: Mapping the Humanoid Robot Value Chain | Morgan Stanley - Tesla claims a 95% automated production at Gigafactory Shanghai | electrek - Will embodied AI create robotic coworkers? | McKinsey & Company - Humanoid Robots: From Demos to Deployment | Bain & Company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하루에 SNS를 얼마나 하시나요? 자기 전에 잠깐만 봐야지 하고 켰다가 유튜브 쇼츠 '무한 지옥'에 빠져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간 경험 한 번쯤 있으실 텐데요. 이것만 보고 자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가 끝나면 비슷한 영상이 재생되고 쓱쓱 넘기다 보면 금방 또 재밌는 걸 찾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한참을 보고 있다 보면 정말 내 뇌가 썩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막연한 걱정만 하던 와중에 마침 해외에서 SNS에 대한 규제의 칼을 빼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그랲에서는 SNS와 숏폼 콘텐츠 중독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데이터와 그래프를 통해 SNS 중독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강력 규제 꺼내든 호주... 세계 최초로 청소년 SNS 이용 금지 지난해 11월, 호주에서 법안 하나가 통과됩니다. 이 법안에는 만 16세 미만의 아동, 청소년들은 아예 SNS 계정을 만들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규제 정책이 담겨 있었어요. 그리고 이 법은 올해 12월 10일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세계 최초로 청소년의 SNS 이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법이 호주에서 시행되는 거죠. 법이 시행되면 호주의 청소년들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레드, 엑스 등 SNS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SNS 뿐 아니라 유튜브, 틱톡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과 레딧 같은 커뮤니티도 이용할 수 없게 됩니다. 법 적용 대상이 되는 플랫폼 기업들은 청소년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엔 최대 4,950만 호주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470억 원의 벌금이 부여될 수 있죠. 꽤나 강력한 조치인데도 불구하고 호주 국민 여론은 이 법안을 대체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 이뤄진 여론조사 자료를 보니까 호주 국민의 77%가 해당 법안에 찬성하고 있더라고요. SNS 기업이 법을 어길 경우 더 강력한 처벌을 도입하는 데에도 87%가 찬성 의사를 밝혔고요. 물론 반대 의견도 존재합니다. 아동 복지 전문가, 기술 분야 전문가 140여 명은 SNS 전면 차단이 자칫 위험할 수 있다며 이런 서한을 호주 총리에게 보내기도 했거든요. 규제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동, 청소년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SNS를 원천 차단해 버리면 오히려 이용이 음지화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법안은 곧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당장 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던 호주의 청소년 인플루언서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대표적인 호주의 인플루언서 가족인 '엠파이어 패밀리'는 결국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하기로 했더라고요. SNS에 강력 규제 정책을 꺼내든 건 호주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0월엔 덴마크 정부가 15세 미만 아동의 SNS 사용을 막겠다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죠. 노르웨이도 SNS에 접근할 수 있는 연령을 현행 13세에서 15세로 올리겠다고 발표했고요. 북유럽 국가뿐 아니라 각국 여론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이제는 SNS 규제가 필요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주요 30개국을 대상으로 지난여름에 진행한 조사입니다. 응답자의 71%가 아동, 청소년의 SNS 이용을 제한하는 법안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87%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콜롬비아가 이었습니다. 호주보다 찬성 비율이 높은 국가가 5곳이나 있는 만큼, 앞으로 SNS 규제 정책이 다른 나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어요. 호주에서 이런 강력한 법안이 나온 배경에는 SNS를 통한 '온라인 괴롭힘' 문제가 있습니다. SNS 상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겪던 12살 소녀 두 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여론이 커졌던 겁니다. 다른 국가들의 입장도 비슷합니다. 메테 프레데릭센 | 덴마크 총리 (덴마크 의회 개원 연설) 우리는 괴물을 풀어놓았습니다 지금처럼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불안과 우울증으로 고통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보여주는 숏폼... SNS를 끊을 수 없어요 하지만 이 SNS를 단번에 끊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SNS가 우리 삶에 녹아든 게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싸이월드가 1999년에 나왔고, 페이스북이 2004년, 트위터가 2006년, 인스타그램이 2010년에 등장했습니다. 30년도 채 되지 않는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SNS는 전 세계를 장악했고, 이제는 SNS를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가 됐어요. 올해 10월 기준으로 SNS 이용자는 56억 6,000만 명. 전 세계 인구 82억 명 가운데 3명 중 2명이 SNS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간 이용 시간은 18시간 36분으로 전 세계 사람들은 하루 평균 약 2시간 40분가량 SNS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나 많은 시간을 SNS에 쏟아붓게 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일단 한 번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SNS는 우리가 접속할 때마다 뇌에 강력한 쾌락과 보상이 주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보상에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고, 또 켜게 되는 거죠.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알아서 골라 보여주는 '추천 알고리즘'이 대표적입니다. 일일이 찾지 않아도, 볼 만한 콘텐츠가 끊임없이 눈앞에 재생되죠 영상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가리지 않고 이용자가 더 빠르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끝도 없이 콘텐츠를 밀어 넣습니다. 우리가 잠깐이라도 멈추지 못하도록 말이죠. 차마스 팔라하티야 | 페이스북 전 사용자성장 담당 부사장 (2017년 11월) 우리는 심리적으로 여러분을 최대한 빨리 조종하는 방법을 알아내서, 그 도파민 쾌감을 다시 돌려주려 합니다. 페이스북은 이를 훌륭히 해냈고, 인스타그램도, 왓츠앱도, 스냅챗도, 트위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천 알고리즘이 마음에 안 든다? 그러면 한 번 쓱 넘겨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또 다른 콘텐츠가 바로 등장하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당연해진 '무한 스크롤' 기능은 알고리즘으로 걸러진 콘텐츠들을 끊임없이, 또 끝도 없이 이어 붙여 우리 뇌에 주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콘텐츠의 정점에는 숏폼 영상 콘텐츠가 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SNS는 무엇일까요? 유튜브? 아닙니다. 정답은 틱톡입니다. 틱톡의 1인당 평균 사용 시간은 1시간 37분으로, 유튜브보다 12분 더 깁니다. 하루 1시간 이상 사용 시간을 기록한 서비스는 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이렇게 4가지뿐이었는데요. 틱톡은 태생이 숏폼 플랫폼이고 유튜브엔 쇼츠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엔 릴스가 존재하죠. 우리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메신저까지 포함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SNS는 카카오톡이지만, 얼마나 오래 쓰는지로 보면 역시 틱톡 라이트가 1위를 차지하고 있죠. 틱톡 라이트를 포함해 TOP 3에는 인스타그램과 틱톡이 함께 올라 있을 정도로 숏폼 콘텐츠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어요. 정신 건강에 영향 주는 SNS... 이대로 괜찮을까? SNS와 숏폼 콘텐츠의 중독성은 이미 많은 이용자의 일상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는 충동성을 자극하고 정서적 불안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죠. SNS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허전함을 느끼는 등 일종의 금단 증상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SNS의 중독 징후는 전 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WHO의 유럽지역 사무소에서 총 40개 지역을 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11%의 청소년들이 중독 같은 '문제적 SNS 사용' 증상을 겪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건 성별 격차입니다. 성별, 연령별로 따져봤을 때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그 비율이 뚜렷하게 높았습니다. WHO의 조사 뿐 아니라 여러 연구에서도 SNS의 부정적 영향이 성별에 따라 격차를 보인다는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습니다. 가령 SNS를 많이 사용하면서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곤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요. 퓨 리서치 센터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10대 여학생들은 10대 남학생보다 SNS에서 부정적 경험을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비교에 따른 자신감 저하가 여학생은 20% 이지만 남학생은 10%에 불과합니다.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비율도 역시 25% 대 14%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죠. SNS의 부정적 영향이 계속 보고되자 이용자들과 우리 사회도 가만히 있지는 않고 있어요. 일단 미국에서는 뉴욕, 캘리포니아 등 33개 주 법무장관이 메타에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롭 본타 | 캘리포니아 법무장관 소셜 미디어 회사 메타는 현재 우리 아이들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근본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사는 심리적, 사회적 세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플로리다 주 역시 별도의 소송을 제기했고, 메타가 청소년의 정신 건강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메타는 두 소송을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메타뿐 아니라 틱톡도 13개 주로부터 비슷한 소송을 당했고, 미국 학부모와 학교들 또한 빅테크 기업들을 상대로 집단 소송에 나선 상태입니다. 메타가 특히 강하게 비판받는 이유는 굵직한 SNS를 보유한 측면도 있지만, 자사 서비스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내부 연구를 통해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숨겼다는 의혹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이 10대 여학생들의 신체 이미지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내부 연구 결과가 있었지만 메타는 약 2년간 이걸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죠. 소송과는 별개로 빅테크들도 이런 상황에 손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자체적으로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10대 전용 계정을 운영하는 등 SNS의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요. 지리적인 제약 없이 누구든지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SNS의 장점은 살릴 필요가 있다는 거죠. 지난해 옥스퍼드가 선택한 단어는 'Brain Rot', 뇌 썩음이었습니다. SNS를 가득 채운 의미 없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소비하면서 우리들의 정신은 점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정신 건강뿐만이 아닙니다. 집중력은 떨어지고, 깊이 있는 사고는 사라지고 복잡한 글을 읽는 건 점점 버거워지고 있습니다. 성인들도 이 정도인데,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어떨까요? 더 우려되는 건 여기에 AI라는 또 다른 Brain Rot 도구가 등장했다는 겁니다. 생각은 AI에 외주를 맡기고 판단은 알고리즘에 위임하면서 우리의 뇌는 점점 더 수동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호주는 이 상황에서 전면 금지를 선택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Online Safety Amendment (Social Media Minimum Age) Bill 2024 - Support for under-16 social media ban soars to 77% among Australians | YouGov - Open letter regarding proposed social media bans for children | Australian Child Rights Taskforce - Ipsos Education Monitor 2025 | Ipsos - Digital 2026 Global Overview Report | DataReportal - SNS 앱 사용자 및 1인당 평균 사용시간 순위 | 와이즈앱・리테일 - A focus on adolescent social media use and gaming in Europe, central Asia and Canada | WHO, hbsc - Teens, Social Media and Mental Health | Pew Research Center - Attorney General Bonita Files Lawsuit Against Meta Over Harms to Youth Mental Health | State of California Department of Justice Office of the Attorney General - TikTok is designed to be addictive to kids and causes them harm, US states’ lawsuits say | AP - School Sue Social-Media Platforms Over Alleged Harms to Students | WSJ - What Our Research Really Says About Teen Well-Being and Instagram | Meta - Oxford Word of the Year 2024 | Oxford University Press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정유민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지난 APEC 시기에 전해진 젠슨 황의 GPU 26만 장 공급의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도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AI 시대를 여는 첫 예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고요. 관련된 기사들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조금은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에피소드를 준비했습니다. 도대체 GPU 26만 장이 어느 정도인 건지 또 엔비디아는 왜 한국과 이런 거래를 선택했는지 엔비디아가 얻는 건 무엇이고, 한국이 풀어야 할 숙제는 무엇인지 그 이면의 이야기를 데이터와 그래프를 통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깐부 회동'과 GPU 26만 장이 남긴 것 우선 GPU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순 없겠죠? 엔비디아의 최신 GPU 26만 장이 국내에 공급될 예정입니다. 공공과 민간 양쪽의 AI 인프라에 투자되는데 각각 어떻게 사용될 예정인지 그림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민간에서는 4개 대기업들에게 총 21만 장이 풀릴 예정입니다. 네이버가 6만 장으로 가장 많고 삼성, SK, 현대차가 각각 5만 장 구매합니다. 네이버는 클라우드에 활용하고, 삼성과 SK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 AI를 적용할 계획이죠. 현대차는 자율주행과 로봇 등 모빌리티 고도화에 엔비디아의 GPU를 활용하게 됩니다. 공공 부문에는 5만 장이 투입되는데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에 활용될 예정입니다. 이 인프라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독자 AI 모델과 서비스를 개발할 계획이죠. 엔비디아의 GPU는 돈이 있더라도 워낙 사려는 사람이 많고 물량이 부족해서 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가 우선적으로 26만 장을 확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26만 장이라는 숫자도 대단한 겁니다. 물론 엔비디아의 GPU를 싹 쓸어가는 미국의 빅테크들의 규모는 차원이 다르긴 합니다. 가령 지난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엔비디아의 호퍼 GPU를 48만 장 넘게 구매할 정도였으니까요. 국가 단위로 보면 압도적 1위는 빅테크들이 몰려 있는 미국이고, 2위는 싱가포르 등의 경로를 통해 야금야금 사들인 중국으로 추정됩니다. 그다음 자리를 두고 여러 국가들이 경쟁하는 상황인데, 여기서 우리나라가 크게 치고 올라온 셈인 거죠. 물론 3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국가들의 상황이 쟁쟁하긴 합니다. 가령 영국은 지난 9월에 엔비디아로부터 6만 장의 GPU를 공급받기로 약속했고요, UAE는 미국 데이터센터에 투자하는 대가로 연 최대 50만 장의 GPU 공급 협약을 체결했다는 보도도 있죠. 26만 장의 이유? 젠슨 황은 깐부를 잊지 않는다 젠슨 황은 이번 깐부 회동에서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과의 인연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의례적인 발언일 수도 있지만 젠슨 황이 걸어온 길을 보면 이런 인연을 쉽게 여기는 건 아닌 게 확실해 보이죠. 엔비디아가 창업되던 1990년대 초로 시곗바늘을 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1993년 커티스 프리엠, 크리스 말라초스키, 그리고 젠슨 황까지 이 3명의 공대생들이 기업 하나를 만듭니다. 자신들의 프로젝트 명인 New Version의 NV와 라틴어로 질투라는 뜻을 가진 Invidia를 합친 Nvidia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게임 매니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던 세 사람은 더 뛰어난 그래픽으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그래픽 전용 칩을 개발하기로 의기투합합니다. 엔비디아는 3D 모델링에 사각형 폴리곤을 채택해 칩 설계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1995년 엔비디아 최초의 그래픽 칩셋, NV1을 출시하죠. 하지만 결과는 폭망이었습니다. 가격은 비쌌지만 그것에 비해 성능이 특출 나지 않아서 판매량이 형편없었거든요. 이때 한줄기 빛이 내려오니 게임제작사 세가의 미국지사가 엔비디아에 흥미를 보였다는 거였죠. 미국 세가와 그래픽 칩 계약을 따낸 엔비디아는 차세대 그래픽 칩셋 NV2 개발에 나섭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게이밍 그래픽 시장에 발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NV1이 출시되던 해에 빌 게이츠는 게임 그래픽을 처리할 Direct X를 발표했고, 이듬해엔 3차원 그래픽 렌더링에 특화된 Direct 3D를 출시합니다.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엔비디아와는 달리 삼각형 폴리곤을 선택했다는 거였죠. 그리고 이게 업계의 대세가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NV2는 개발을 완료해도 의미가 없어져버리자, 젠슨 황은 미국 세가 CEO였던 이리마지리 쇼이치로에게 이렇게 읍소를 합니다. "우리는 계약을 마칠 수 없으니, 세가는 다른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다만 계약 대금 500만 달러는 전액 지급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회사는 망한다. 꼭 부탁드린다."고 말이죠. 당당함에 반한 건지, 엔비디아의 잠재력을 믿은 건지 세가는 투자금으로 계약 대금 500만 달러를 제공합니다. 이 돈으로 엔비디아는 기사회생해서 그다음 칩인 NV3를 만드는데 이게 바로 대박이 난 RIVA 128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연이어 대박을 낸 엔비디아는 1999년 1월에 당당히 상장에 성공했고, 지금은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올랐죠. 이때의 인연을 젠슨 황은 잊지 않았습니다. 때는 2017년, 세가 CEO였던 이리마지리 쇼이치로가 젠슨 황에게 뜬금없이 부탁 하나를 합니다. 일본 재계 리더 행사가 하나 있는데, 혹시 가능하면 엔비디아 관계자 한 명 와서 강연해 줄 수 없냐는 거였죠. 쇼이치로는 큰 기대 없이 메일을 보냈지만 그 다음날 바로 젠슨 황으로부터 답장을 받게 됩니다.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라는 답장과 함께 젠슨 황은 직원이 아닌 본인이 직접 행사에 참여해 연사로 강연을 진행했어요. 쇼이치로뿐 아니라 세가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여전한 젠슨 황은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 30주년 기념 영상에도 깜짝 등장하기도 했죠. 젠슨 황의 인연은 우리나라와도 돈독합니다. 엔비디아가 상장하기 2달 전 출시된 게임이 있습니다. 바로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였죠.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우리나라엔 퇴직자들이 차렸던 PC방이 우후죽순 생겼고 이 스타크래프트가 대유행을 하면서 PC와 그래픽카드 수요가 크게 늘어났어요. 바로 여기, 대한민국 PC방 컴퓨터 속 그래픽 카드가 엔비디아의 첫 시장이었습니다. 젠슨 황은 당시 직접 용산 전자상가를 찾아 영업을 뛸 정도였고요. 젠슨 황은 이 인연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엔비디아에서는 마치 국뽕 채널에서 올릴법한 대한민국 헌정 영상을 올리기도 했죠. 젠슨 황의 진짜 노림수? 대체 불가한 K-제조 데이터 물론 한국과의 인연 때문에 GPU 26만 장을 선물한 건 아닐 겁니다. 기업가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를 할까요? 일단 당장 26만 장의 GPU를 팔아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겠죠? 적게 잡아도 장당 5,000만 원인데 그냥 단순 계산해도 13조가 나옵니다. 엔비디아의 전체 매출에 비하면 아주 큰 금액은 아니지만 엔비디아 입장에선 이 금액이 불투명한 중국 시장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엔비디아의 국가별 매출 현황을 살펴보면 압도적으로 미국이 많습니다. 하지만 중국도 일부 있죠. 작년에 번 1,300억 달러 가운데 171억 달러, 그러니까 약 25조 원은 중국 시장을 통해 벌어들였습니다. 미국이 중국과 AI 경쟁에 나서고 관련 칩이나 모델 수출에 제동을 건 상태라 엔비디아에게 중국 시장은 불확실성이 큽니다. 그런데 이번 26만 장 건으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된 거죠.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을지 모릅니다. 엔비디아가 이번 거래로 얻을 수 있는 바로 대한민국의 제조 데이터가 주인공이죠. 현재 AI는 단순히 챗봇을 넘어서 형태가 있는 피지컬 AI로의 도약을 앞두고 있습니다. 컴퓨터 안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자율주행차와 로봇 등 물리 세계로 확장되고 있는 거죠. 이미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는 AI를 접목해서 효율을 개선하고, 비용 절감을 이뤄내고 있기도 합니다. 엔비디아는 이렇게 새롭게 펼쳐질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APEC이 끝나고 미국에서 진행된 엔비디아의 개발자 컨퍼런스 GTC의 모습입니다. 엔비디아는 GPU 같은 하드웨어와 인프라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과 피지컬 AI 영역에서 활용될 월드 모델도 제공할 계획입니다. 점점 더 확장해 나갈 산업 AI에서 엔비디아가 가장 확보해야 하는 핵심 요소는 역시나 '데이터'입니다. 양질의 데이터를 쌓고, 그걸 바탕으로 모델에 학습시켜야만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산업 영역에서 활용할 모델에 쓸 데이터는 인터넷에 없다는 겁니다. 기존 챗봇에 사용된 모델들의 데이터인 언어, 이미지, 영상은 웹에서 긁어오면 해결됐어요. 하지만 산업 영역, 특히 제조 데이터는 기업들만이 갖고 있죠. 각각의 생산라인에서 생성되는 온도와 압력은 어떤지 기계의 상태에 따라 제품 품질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 다양한 제조 데이터는 제조업체만 갖고 있습니다. 제조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 엔비디아 입장에서 제조업 강국인 우리나라는 매우 좋은 파트너인 겁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로봇이 산업 곳곳에 자리 잡은 이미 자동화된 환경이라는 강점이 있어요. 국제로봇연맹에서 발표한 자료인데요, 한국의 로봇 밀도는 압도적 1위입니다. 직원 만 명당 로봇 1,012대로 전 세계 평균인 162대와 비교하면 6배가 넘습니다. 이런 대한민국 환경에 엔비디아 플랫폼이 얹어진다면요? 생산라인이 순식간에 AI 팩토리로 전환될 수 있는 겁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양질의 제조 데이터들은 엔비디아의 월드 모델 학습과 검증에 사용되겠죠. 특히나 이번에 협약을 맺은 삼성, SK, 현대차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구하기 힘든 고품질 데이터를 다루는 기업들입니다. 엔비디아가 이번에 이들과 함께 AI 팩토리를 구축하게 되면서 제조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거죠. 삼성, SK의 반도체 공정은 3나노, 2나노미터 단위에서 이뤄지고 있고요 현대차의 데이터에는 자동차 생산 공정뿐 아니라 자율주행 데이터와 로봇 데이터도 포함되어 있죠. 이렇게 양질의 데이터로 학습시켜서 엔비디아가 높은 성능의 모델을 만들게 되면 앞서 살펴본 그래프에서 우리나라 뒤로 있는 싱가포르, 독일, 일본, 스웨덴 등 제조업 강국들을 상대로 세일즈에 나설 수도 있겠죠. 3위에 위치한 중국은 압도적 제조업 강국이지만 지금의 통상 갈등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끼어들 틈은 없습니다. 게다가 이미 중국은 자체적으로 AI 소프트웨어와 제조업을 결합해 나가고 있죠. 바짝 뒤에 쫓아오는 중국을 견제하는 측면에서도 대한민국의 제조 데이터는 젠슨 황에게 매우 필요한 상황인 겁니다. 참고로 제조 데이터에 대한 관심은 엔비디아뿐만이 아닙니다. 올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AI 팩토리 사업에 구글과 AWS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무상으로 클라우드를 제공해 주겠다는 언론 보도가 있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그 과정에서 확보할 수 있는 한국의 제조 데이터를 호시탐탐 눈독 들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중한 제조 데이터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지키며 활용할 것인지도 매우 중요한 과제 중 하나죠. 도약할 판은 깔렸다...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여러 가지 판단을 거쳐서 어쨌든 우리나라에 곧 26만 장의 GPU가 들어오게 됩니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로 넘겨졌죠. 하지만 준비하고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지적 중 하나가 바로 전력 문제입니다. 최대 전력 소비량이 2,700W로 알려진 GB200 GPU 26만 장을 돌린다고 가정해 보면 702MW가 나오고, 여기에 냉각 등에 쓰이는 전력까지 추가하면 800MW까지 늘어날 수 있어요. 보통 원전 1기의 발전 용량이 1,000MW니까 이거 우리가 제대로 돌릴 수 있겠냐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당장 서울대와 숭실대에서 AI 데이터센터 지으려 했는데 변전소 설비 부족으로 못했거든요. 필요한 전력은 어디서 만들 것이며, 또 생산한 전력은 어떻게 끌고 올 건지 풀어야 할 게 많습니다. 또 다른 골칫거리 중 하나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패턴이 기존의 데이터센터와는 아예 다르다는 것도 있습니다. 기존의 데이터센터에선 다양한 워크로드를 동시에 처리합니다. 어떤 회사의 데이터베이스 처리도 하고, 또 어떤 학생이 클라우드 드라이브를 이용하면 처리해 주는 식으로 말이죠. 수많은 업무가 쏟아지지만 다양한 부하가 합쳐지다 보니 전력 패턴을 봤을 때 이렇게 평탄하게 나타납니다. 반면 AI 데이터센터는 다릅니다. AI 모델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GPU들은 거대한 데이터 중 일부를 받아서 학습을 진행합니다. 이 학습 단계에서 GPU들은 전력을 미친 듯이 사용하게 되고, 전체 전력 소비량이 크게 늘어나죠. 하지만 중간중간 각각의 GPU들이 학습한 결과물을 합치고 다시 나누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GPU는 대기하게 됩니다. 이때엔 전력 사용량이 급감합니다. 이런 널뛰기가 1초 사이에도 몇 번씩 발생할 수 있어서 데이터센터 전력 패턴의 폭이 이렇게나 큽니다. 즉 전력 인프라도 인프라인데, 전력망의 안정적 운영 역시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라는 거죠. GPU도 잘 들여오고, 전력 문제도 해결하더라도 이걸 돌릴 사람이 없다면 말짱 꽝이겠죠? 해외로 유출되는 이공계 인재 문제 역시 신속히 해결해야 하는 지점 중 하나입니다. 2000년부터 2024년까지 우리나라 이공계 인력의 유출 상황입니다.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해외로 나가고 있어요. 한국에 남아 있는 이공계 인재들조차도 향후 3년 내에 해외 이직을 고려한다고 답변한 경우가 42. 9%나 될 정도라 유출 규모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GPU 26만 장 공급은 단순한 거래가 아닌 우리나라의 AI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선택일 수 있습니다. 젠슨 황은 한국과의 오랜 인연을 기반으로, K-제조업의 고품질 데이터를 얻고 우리나라는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를 확보했죠. 하지만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입니다. 전력 인프라, 전력망 안정화, 그리고 인재 유출 방지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AI G3로 도약할지 여부는 우리가 얼마나 이 기회를 잘 활용하고 산적한 문제들을 잘 푸는지에 달려 있을 겁니다.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 정부, 엔비디아 및 국내 대표기업과 AI 생태계 역량 강화를 위한 협력 방안 논의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 NVIDIA, South Korea Government and Industrial Giants Build AI Infrastructure and Ecosystem to Fuel Korea Innovation, Industries and Jobs | Nvidia - Nvidia Financial Reports Form 10-K | Nvidia - Global Robot Density in Factories Doubled in Seven Years | IFR - 美도 노리는 韓 제조 데이터…국정과제서 빠져 | 한국경제 - Data Center Evolution Powering the AI Revolution Sustainably - presented by Google | 2025 OCP EMEA Summit - [BOK 이슈노트 제2025-31호] 이공계 인력의 해외유출 결정요인과 정책적 대응방향 | 한국은행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폭풍 같은 3분기 실적 발표가 지나고 AI 기업들을 필두로 타오르는 장은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AI 버블'이 대두되면서 일부 하락하는 종목들도 등장하고도 있죠. 그러다 보니 급등하는 주가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신고가를 하루가 멀다 하고 찍는 상황을 보면서 이게 적정 금액이 맞냐는 생각도 들고, 거품이 상당히 많이 꼈다는 의견도 월가를 중심으로 속속 들리고 있죠. 오늘 오그랲에서는 이 AI 버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현재 상황이 AI 버블이 맞다는 입장과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정리해 봤습니다. 버블 1. 기술주에 극단적으로 몰린 주식시장 우선 미국 주식 시장 상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증시의 3대 주가지수가 있죠? 다우지수와 나스닥 지수, 그리고 S&P 500.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S&P 500에 투자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은 S&P 500이 장기적으로는 우상향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S&P 500에는 미국 상장 기업 전체 시가총액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503개의 대기업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지수를 따져보면 AI와 기술주에 과도하게 많은 투자금이 몰려 있어요. 2000년 5월부터 2025년 9월까지 상위 10개 기업이 S&P 500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가장 최근인 2025년 9월의 숫자를 보면 상위 10개 회사의 비율은 무려 40.9%입니다. 상위 10개 기업들의 면면은 이렇습니다.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브로드컴, 알파벳(A), (C), 테슬라, 버크셔 헤서웨이까지. 기업들 로고를 보니 딱 보이죠? 빅테크 7인방,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세븐이 TOP 10을 다 휩쓸고 있습니다. M7만 따로 놓고 보면 10년 전엔 7개 기업이 S&P500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3%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2025년 10월 현재에는 36.6%로 급등했죠. 이렇게 특정 섹터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건 시장에 크나큰 리스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 소수 기업들에 만약 문제가 생길 경우 전체 시장에 연쇄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투자자들의 관심은 이들 대기업들만을 향하지 않고 있습니다. AI와 관련되어 있거나 미래 기술과 관련되어 있다면 중소, 벤처 기업들도 투자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문제는 아직까지 이들 기업들이 매출이 나오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전망에만 의존해 투자가 이뤄진다는 겁니다. 양자컴퓨터 관련주로 꼽히는 아이온큐와 리게티 컴퓨팅을 볼까요? 두 기업들의 매출 대비 주가 비율은 너무나 극단적입니다. 투자라는 것 자체가 미래의 전망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거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 극단적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대평가가 버블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지적하고 있고요. 심지어 오픈AI의 샘 올트먼 조차도 최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묻지 마 투자'를 두고 버블을 경고하기도 했죠. 버블 2. 과도한 AI 인프라 투자...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 돈이 몰리는 빅테크 기업들은 많은 돈을 AI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는 맨해튼 크기만 한 AI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했고요, 오픈AI와 오라클, 그리고 소프트뱅크는 미국 전역에 거대 AI 데이터센터 스타게이트를 짓고 있습니다. 미래에 늘어날 데이터센터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대규모 설비를 미리미리부터 준비하겠다는 건데, 일각에서는 이 인프라 투자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만약 이렇게 대규모로 데이터센터를 늘려놨는데 미래에 그 수요가 늘어난 양에 못 미친다면요? 과거 닷컴 버블 시절에 딱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바로 광케이블 투자였죠. 1990년대 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네트워크 용량을 감당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엄청나게 많은 광케이블을 설치했습니다. 당시에 어떤 전망까지 나왔냐면 통신 전송 데이터량이 향후 25년 동안 매년 3배씩 늘어날 거라는 보도가 있기도 했었죠. 일단 많은 광케이블을 생산해서 여기저기에 묻어두고 필요한 회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임대하려고 했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1990년대 설치된 광케이블 가운데 최대 95%는 사용되지 않았고 그냥 땅에 묻혀 있습니다. 이른바 '다크 파이버'라고 불리는 녀석들이죠. 당시 세계 최대 광케이블 생산업체였던 코닝의 주가는 2000년에 100달러를 찍기도 했지만 거품이 꺼지고 난 뒤엔 1달러로 폭락했습니다. 참고로 코닝은 지금 AI 붐에 힘입어 데이터센터 내 광케이블 수요가 늘어나자 다시금 상승세를 타고 있어요. 전문가들은 현재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AI 인프라를 감당하려면 근미래에 상당한 수익과 수요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의 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에서는 현재 늘어나는 데이터센터 규모라면 2030년엔 AI 영역에서 2조 달러의 수익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죠. 하지만 문제는 우리는 이만큼의 수익이 AI 영역에서 언제쯤 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어요. 버블 3. 기업 가치 부풀리는 순화나 투자, 위험하다 위험해 또 하나 지적받는 것 중 하나는 AI 빅테크 기업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얽혀있는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9월에 들려온 뉴스인데요. 엔비디아가 오픈AI에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해서 데이터센터 건설을 지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오픈AI는 이 데이터센터에 엔비디아 칩을 구매하기로 약속했고요. 최근 AI 기업들의 투자 소식들을 살펴보면 이렇게 서로서로 투자해서 리스크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포착됩니다. 실제 가치 창출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서로의 기업 가치를 부풀리는 '순환 투자'가 많아지면 혹 문제가 발생할 경우 기업 간에 위험이 전이될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와 오픈AI만 이런 관계에 있는 게 아닙니다. 오픈AI는 AMD와도 비슷한 계약을 체결했어요. AMD는 오픈AI의 지분 10%를 얻었고요.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와도 끈끈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의 주요 주주이고,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애저의 주요 고객입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는 AI 클라우드 기업인 코어위브의 최대 고객인데, 이 코어위브는 엔비디아가 지분 5%를 갖고 있죠. 그 외에도 다양한 AI 기업들이 이렇게나 복잡하게 엮여 있습니다. 코어위브는 새롭게 떠오르는 이른바 네오 클라우드기업 중 하나인데요. 이들 네오 클라우드기업들의 요상한 대출도 버블의 신호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요. 코어위브, 람다, 크루소 같은 클라우드 기업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GPU를 담보로 고액의 대출을 받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로부터 GPU를 사고, 그 GPU를 담보로 월가에게 자금을 빌리고, 그 자금으로 다시 또 엔비디아의 칩을 사고… 올해 7월까지 이런 형태로 빌린 자금이 2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어요. 미국뿐 아니라 영국의 AI 클라우드 기업에서도 GPU를 담보로 대출이 진행되기도 했고요. 기본적으로 컴퓨터 부품은 일단 사용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자산입니다. GPU도 마찬가지죠. 물론 지금은 품귀현상으로 AI GPU의 가치가 높은 건 맞지만 공급 과잉이나 새로운 혁신이 등장해서 GPU 가치가 급락하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어요. 공교롭게도 닷컴 버블 시절에도 서버를 담보로 대출이 이뤄진 바 있어서, 평행이론 마냥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모습이죠. 붐업 1. 지금은 돈 버는 AI 기업들이 이끄는 '기술 붐업' 시즌 지금까지는 AI 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정리해 봤습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AI 버블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이 과거 닷컴 버블 시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닷컴 버블 시절에는 수익을 내지도 않은 기업들에게 과도한 투자금이 들어가서 거품이 생긴 거지만 지금은 투자 대상이 되는 주요 AI 기업들이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는 거죠. 당장 이번 3분기 실적 발표만 보더라도 상승세를 이끄는 건 부실기업들이 아니라 성과가 대단한 빅테크 기업들이라는 겁니다. 월가 비관론자들이 때마다 소환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네트워크 장비회사 시스코죠. 닷컴 버블 당시 시스코의 주가는 이렇게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실제 수익을 그래프로 그리면 이렇게 그려집니다. 주가와 실제 이익과는 완전히 괴리가 되어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엔비디아의 상황은 어떨까요? 엔비디아의 최근 주가는 이렇게 흘러갔고, 수익 그래프는 이렇게 그려집니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수익과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AI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GPU를 판매하고 그만큼 실적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젠슨 황은 지금이 AI 버블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엔비디아뿐 아니라 AI 빅테크들은 AI 영역에서 실질적인 수익 창출을 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AI 클라우드 사업의 성장으로 사상 최초로 분기 매출액 1,000억 달러를 돌파했고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 클라우드, 아마존의 AWS의 성장도 비슷합니다. 클라우드 영역뿐 아니라 광고 파트에서도 빅테크들은 AI를 적용해 견고한 실적을 냈죠. 상황이 달라진 근본적 이유에는 2000년대와 지금 2025년의 기술과 환경의 변화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당시 인터넷 기술의 잠재력은 엄청나게 컸지만, 관련 인프라와 이용자 층이 충분하게 갖춰지지 않았어요. 수익화 모델도 시장 초기 단계다 보니 불완전했죠. 하지만 2025년 AI가 처한 상황은 다릅니다.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는 기술력과 시장을 기반으로 꽃을 피운 거죠. 클라우드 인프라는 이미 잘 돌아가고 있고요,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도, 또 학습에 필요한 고성능 반도체들도 시장이 성숙된 상태입니다. 그러다 보니 AI 기반의 수익화 모델도 안정적이고, AI를 바로 제품과 서비스에 적용하기 쉬운 환경인 거죠. 이커머스 시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닷컴 버블 당시의 전자상거래는 매우 전도가 유망한 서비스였습니다. 사람들도 많은 관심을 두었고, 관련 기술도 잠재력이 컸지만 시장 규모는 미미해서 바로 수익이 나질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요? AI가 적용된 이커머스는 바로 매출 증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5년 전과 비교해서 기술의 실체도 더 뚜렷하고 기술을 수용하는 속도도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 보니 이런 차이가 생겼다는 겁니다. 붐업 2. 부실한 기업들에게 몰렸던 '닷컴'때와 지금은 다르다 또한 빅테크에 돈이 몰리는 것 역시 한편으로는 버블 위험성을 줄여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지금 상승장을 주도하는 M7은 수십 년간 사업을 영위해 온 빅테크들입니다. AI 붐이 없었을 때에도 이들은 지속적으로 돈을 벌어온 건강한 기업들이라는 거죠. 하지만 닷컴 버블 때는 대부분의 투자금이 들어간 기업들이 아직 검증이 채 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시장에 뛰어든 신생 스타트업들이었어요. 1996년 한 해에만 무려 677개의 기업이 새롭게 상장할 정도로 당시 신생 기업의 바람은 대단했습니다. 버블이 터지기 직전엔 1999년에는 476개, 2000년에는 380개의 기업이 IPO를 했죠. 1999년 상장한 476개 기업 중 테크 기업은 모두 370개. 전체의 78%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때 당시 상장한 기업들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겁니다. 476개 기업 가운데 주당순이익이 적자인 상태로 상장한 기업은 전체의 76%나 됐거든요. 2000년에는 그 비율이 81%까지 치솟을 정도로 재정 상태가 메롱인 기업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투자자들은 일단 상장한 IT 벤처기업이라면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들 기업들이 상장 첫날 기록한 수익률을 보면 상당했거든요. 넣으면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니까 기업의 재정 상태는 크게 고려되지 않은 채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겁니다. 하지만 이후 닷컴 사이트들이 제대로 된 이익을 내지 못하게 되면서 결국 많은 기업들이 파산을 하고 말았죠. 붐업 3.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AI 인프라... 투자에 문제없다 데이터센터로 대표되는 AI 인프라 투자 역시 버블의 위험성이 있다고 단언하기엔 따져볼 지점들이 있습니다. 일단 과거 닷컴 버블 시절에 문제가 되었던 건 당시 닷컴 기업들이 외부 자금 가령 빚을 내서 사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AI 인프라에 투자를 해오고 있어요. 기업들이 벌어들인 금액에서 자신들이 운영하는 사업에 필요한 투자금을 뺀 진짜 남은 돈을 잉여현금흐름, FCF라고 합니다. 2025년 기준으로 M7 기업들의 진짜 남은 돈을 살펴보면 약 4,696억 달러로 집계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약 670조 원이 나오죠. 애플이 1,217억 달러로 가장 많고 엔비디아 991억, 구글 772억 등… 빅테크 기업들의 재무 상태는 상당히 건강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한국은행의 2024년 자산이 595조 원이니까 얼마나 많은지 감이 오실 겁니다. 또한 정말 현재 AI 인프라 투자가 과한 건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데이터센터 가동률은 압도적으로 높고 비어있는 데이터센터, 이른바 공실률을 따져보면 상당히 낮은 상황이거든요.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기업 CBRE가 올해 6월에 발표한 보고서 자료를 가져와봤습니다. 2025년 1분기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평균 공실률은 6.6%에 불과합니다. 가장 공실률이 낮은 지역은 북부 버지니아 지역인데 지난 1분기 공실률이 0.76%에 불과했습니다. 전 세계에 걸쳐서 데이터센터 수요가 공급을 계속 앞지르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지금 지어지고 있는 데이터센터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사전 임대가 이뤄질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인 상황입니다. 건설 중인 데이터센터 용량의 74.3%가 이미 클라우드 기업과 AI 업체들을 중심으로 임대가 완료된 상태죠. 기록적으로 데이터센터를 늘려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여전히 수요를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인데 과연 이걸 두고 버블이라고 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지금까지 AI 시장을 두고 버블이라는 쪽과 버블이 아니라는 쪽의 주장을 살펴봤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전문가들조차 이렇게 팽팽하게 나뉘어 있는 만큼 "정답이 무엇이다"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오히려 양쪽 주장 모두 일리가 있는 복합적인 상황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죠. 사실 우리가 AI 시장을 두고 단순히 버블이냐 아니냐 이렇게 이분법으로만 접근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부분은 과대평가되어 있고 또 어떤 부분은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더 중요하겠죠. 생각해 보면 2000년대 닷컴 버블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단기적으로는 기술을 과대평가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과소평가한다"는 로이 아마라의 이야기처럼 당시 주가는 분명 버블이었지만, 인터넷이라는 기술 자체는 버블이 아니었죠. 과도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거품이 꺼지면서 사람들은 기술의 장기적인 영향력을 간과했지만 인터넷은 실제로 세상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살아남아 성장한 아마존, 구글 같은 기업들은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죠. 어쩌면 AI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큽니다. 설령 거품이 있다면 그 거품은 꺼질 수 있지만, 기술은 남을 것이고, 진짜 실력 있는 기업들은 살아남아 미래를 설계하겠죠.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맹목적인 낙관도, 과도한 비판도 아닌 냉정한 판단력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 아닐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 AI 버블 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S&P 500 Top 10 Companies' Total Market Cap and Share | MacroMicro - The Magnificent Seven's Market Cap vs. the S&P 500 | The Motley Fool - Sam Altman says 'yes,' AI is in a bubble | The Verge - Fiber keeps its promise | Forbes - $2 trillion in new revenue needed to fund AI's scaling trend | Bain & Company - Corning Incorporated - Historical Data | Yahoo Finance - 6th annual Global Technology Report | Bain & Company - Nvidia plans to invest up to $100 billion in OpenAI as part of data center buildout | CNBC Television - Cisco - Historical Data | Yahoo Finance - Nvidia - Historical Data | Yahoo Finance - Nvidia's Huang Says He Doesn't Believe There's an AI Bubble | Bloomberg Television - IPO Statistics for 2024 and Earlier Years | Jay R. Ritter - Global Data Center Trends 2025 | CBRE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미국 기업들의 3분기 실적 발표 시즌이 왔습니다. 실적 발표 전부터 워낙 장이 뜨겁게 타오르는 상황인지라 계좌 확인하고 기분 좋은 분들 많을 것 같습니다. 오늘 오그랲에서는 수많은 기술 기업 가운데 구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다른 기업들과 달리 구글은 초반엔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최근 들어선 다시금 구글의 기술력을 뽐내고 있는 듯하죠. AI가 '검색의 시대'를 끝낼 거라는 대담한 전망까지 나오는 지금, 과연 검색 왕국 구글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요? 5가지 그래프를 통해 구글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쾌속 상승 이어가는 구글 주가... 반독점 문제도 이젠 끝? 빅테크 7인방, M7 가운데 지금 상승세만 보면 구글의 흐름이 가장 눈에 띕니다. 지난 메타 편에서 M7의 상황을 다룰 때만 하더라도 구글은 연초와 비교하면 주가가 마이너스였어요. 구글 나름대로 A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지만 엔비디아, 메타, MS와는 달리 주식 시장의 평가는 가혹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10월 23일 기준으로 M7 기업들의 주가 그래프를 다시 그려봤습니다. 빅테크 일곱 기업 가운데 연초와 비교해서 구글은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잘 나가는 엔비디아가 31.7% 상승했는데, 구글은 그보다 더 높은 33.6% 상승을 기록했죠. 구글 그래프를 보면 유독 9월에 급격한 상승이 있었는데요, 도대체 9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구글의 발목을 계속 잡던 반독점 판결의 결과가 바로 이때 나왔습니다. 2020년 이후 미국 정부가 구글을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 소송은 5개나 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게 검색 엔진 시장 독점 소송과 디지털 광고 산업 독점 소송이죠. 이번 9월에 결과가 나온 소송은 지난 2020년 10월에 시작되었던 검색 엔진 시장 건이었습니다. 구글의 검색엔진 크롬이 그 주인공인데, 크롬이 세상에 등장한 건 2008년 12월로 아직 채 20년이 되질 않았습니다. 후발주자였지만 크롬은 초창기의 웹 브라우저들을 다 꺾고 지금은 압도적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까지 웹 브라우저의 1인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모질라의 파이어폭스, 구글의 크롬이 성장하면서 웹 브라우저 점유율 3파전 흐름으로 흘러가죠. 승자는 아시다시피 구글이었습니다. 구글은 검색 엔진 경쟁력을 바탕으로 신뢰성을 쌓았고, 그걸 기반으로 크롬의 영향력을 높였습니다. 2025년 10월 현재, 크롬의 점유율은 71.9%로 압도적이죠. 미국 법무부는 구글이 검색과 검색 광고 시장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독점 상태를 유지해 왔다고 소송을 걸었어요. 그리고 지난해 8월에 법원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277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의 핵심 문장은 이겁니다. "구글은 독점 기업이며,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독점 기업처럼 행동해 왔다." 판결을 내린 판사는 구글이 배타적인 계약을 통해 독점적 지배력을 불법적으로 유지했다고 인정했죠. 남은 쟁점은 구글이 갖고 있는 검색 시장의 독점 지배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였습니다. 법무부는 크롬 분리를 포함한 강력한 조치를 주장했어요. 물론 당연히 구글은 반발했고요. 올해 4월부터는 그 방안을 두고 재판을 이어오고 있는데, 크롬의 강제 매각 가능성이 커지자 일부 AI 기업들은 노골적으로 크롬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어요. 오픈AI, 퍼플렉시티 등 AI 서비스 유통에 골머리를 갖고 있던 기업들이 크롬을 인수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거죠. 당연히 구글은 크롬을 팔 생각은 없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주가는 상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9월 2일에 법원의 판결이 나온 겁니다. 크롬을 강제로 매각할 필요 없다고요. 강제 매각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피하자 주식 시장은 반응했고 그 결과가 앞서 살펴본 그래프였습니다. 구글은 주가 상승에 힘입어 9월 15일에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에 이어 역대 4번째 기록입니다. 다만 법원은 검색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 구글이 경쟁사들에게 자신들의 검색 관련 데이터를 공유하라 지시했어요. 하지만 구글은 경쟁사와의 데이터 공유가 자신들의 지식재산권 침해라는 입장이라 항소 가능성도 남아 있어요. 법무부의 항소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어서 최종 결론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습니다. 바드로 체면 구긴 구글... 제미나이로 절치부심 구글의 발목을 잡던 사법 리스크 해소도 해소지만 이 것만으로 주가 상승을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결국 핵심에는 구글의 기술력이 있습니다. 사실 주변에서 AI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과거엔 구글 모델이 자주 언급되질 않았습니다. 이런 이미지가 돌 정도로 모델의 성능 차이가 나서 소비자 입장에선 오픈AI의 GPT나, 앤트로픽의 클로드가 우선이고 개발자 입장에서도 오픈소스인 메타의 라마나 중국 모델들이 먼저 나오는 게 현실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최근엔 구글의 기술력이 미친 거 같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중순에 뜬금없이 LM아레나*에 정체불명의 모델 하나가 등장합니다. 이름하여 '나노 바나나'. 나노 바나나는 기존 이미지 생성 모델들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품질을 보여줬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노 바나나로 피규어 이미지를 만드는 게 한 때 유행하기도 했죠. (LM아레나 : 비교를 통해 대형 언어 모델(LLM)을 평가하는 웹 기반 플랫폼) 이 모델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를 두고 관심이 많았는데, 일각에서는 중국의 이름 모를 기업이 딥시크 쇼크에 이어서 또 다른 대단한 모델을 만든 거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어요. 이 모델, 알고 보니 구글의 것이었습니다. 나노 바나나뿐 아니라 구글은 제미나이 모델의 성능을 끌어올리며 기술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음악, 영상, 음성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발전된 모델들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물론 구글 AI의 시작은 험난했습니다. 사실 성능이 형편없었죠.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진 바드 기억하시나요? 원래 AI 선두주자는 구글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AI라는 개념이 확 와닿았던 이벤트는 2016년에 있었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대결이었습니다. 이 알파고를 만든 게 구글의 딥마인드였죠. 하지만 AI 역사상, 과장을 보태서 기술 역사상 인류에게 유례없는 파급력을 가져왔던 건 오픈AI의 GPT-3.5였습니다. 2022년 11월 30일에 공개된 이후 출시 5일 만에 1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할 정도로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반응했어요. GPT의 기술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도 구글에서 만들었는데, 옆 집에서 계속 치고 나가니 구글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비상 상황이었죠. (트랜스포머 : 문장을 읽을 때 순서대로 보지 않고, 단어 간의 관계를 동시에 고려해 문장 전체의 맥락을 파악하는 인공신경망 구조) 그래서 구글은 2022년 12월, 베테랑 개발자인 시시 샤오에게 100일 안에 챗GPT와 경쟁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라는 특명을 내립니다. AI 기술을 꾸준히 연구해 온 구글이 언어 모델을 안 갖고 있을 리 없죠. 구글은 자체적으로 LaMDA라는 모델이 있었습니다. 2021년에 이미 공개했었지만, 대중들에게 서비스하진 않았어요. 당시까진 오류가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구글은 람다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신속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구글 전사에서 100명의 인재들을 차출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로 나온 게 바로 바드입니다. 바드 정식 출시에 앞서서 선공개한 영상에서 바드는 엉뚱한 대답을 뱉어냅니다. 이 대답 한 번으로 구글 주가는 7%가 빠졌고, 126조가 증발해 버렸어요. 그 시기 옆 집 오픈AI에서는 훨씬 더 뛰어난 성능을 가진 GPT-4를 공개했죠. 이대론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든 구글은 모델의 세대교체를 위해 개발, 연구 역량을 집중합니다. 구글의 AI 연구는 영국의 딥마인드, 미국의 구글 브레인 이렇게 이원화되어 있었는데, 두 조직을 구글 딥마인드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합치고 그 수장엔 데미스 허사비스를 앉혀 모델 개발을 맡겼어요. 그리고 2023년 12월에 드디어 제미나이 1.0이 공개되었죠. 공개 초창기에는 다른 모델과의 성능 차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델 버전이 올라가면서 사용자들이 성능 변화를 직접 느낄 정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어요. 그 결과는 점유율로 증명되고 있죠. 여전히 업계 1위는 오픈AI입니다. 하지만 시장이 성장하고, 최근으로 올수록 오픈AI의 점유율은 줄어들고 있어요. 그 자리를 대체하는 건 구글의 제미나이입니다. 1년 전 오픈AI가 87.1%, 제미나이가 6.4%였지만, 지금은 오픈AI는 74.1%로 줄어들었고, 제미나이는 12.9%로 2배 늘어났어요. 번 돈의 14%는 R&D에 투자... 노벨상이 굴러 들어오네? 올해 노벨 위원회가 주목한 물리학은 양자컴퓨터의 시대를 연 양자실험 영역이었습니다. 전자회로에서 양자역학의 터널링 현상을 실험으로 증명해 낸 3명의 과학자들이 노벨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되었죠. 구글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노벨물리학상 이야기를 하나 싶겠지만, 이번 수상자 3명 중 2명이 구글에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미셸 드보레는 현재 구글 퀀텀AI의 최고과학책임자로 일을 하고 있고요, 존 마니티스는 과거 구글 퀀텀AI의 하드웨어팀을 이끈 리더였어요. 작년에는 노벨화학상에서 구글 현직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단백질 구조 예측에 혁혁한 공을 세운 알파폴드를 만든 구글의 연구진인 데미스 허사비스와 존 점퍼가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어요. 거기에 노벨물리학상에서는 구글에서 AI 연구를 리드해 온 제프리 힌튼이 수상하면서 최근 2년 사이에만 구글 전현직자 5명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거죠. 구글 CEO인 순다르 피차이가 자신의 SNS에 구글의 위엄을 자랑할 만큼 대단한 성과를 보인 겁니다. 이런 흐름을 두고 구글이 제2의 벨 연구소가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더라고요. 민간기업 연구소 중 단연 독보적인 실적을 자랑하는 건 알렉산더 벨이 만든 AT&T 벨 연구소입니다. 벨 연구소 소속 연구진 가운데 무려 13명이 노벨상을 수상한 바가 있을 정도로 전설적인 실적을 자랑하죠. 제2의 벨 연구소라는 별칭이 나올 정도로 구글은 다양한 과학 영역에 걸쳐 연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나 AI를 활용한 연구로는 따라올 연구소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차세대 핵융합 에너지에 AI를 도입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고, 유체역학의 복잡한 방정식이자 밀레니엄 난제 중 하나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해법을 찾기 위해 AI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또 우주의 중력파를 AI와 연계해서 연구를 하고 있죠. 물론 구글의 연구진들이 순수 연구만 하는 건 아닙니다.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업화할 영역은 상업화하고 그걸로 기업에 이윤을 높이는 게 궁극적인 목표니까요. 그러다 보니 일부 연구자들은 제품 생산이나 상업화에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보도도 있죠.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 영역과 응용 파트를 잇는 R&D 전략이 구글의 경쟁력에 큰 도움을 준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 기반엔 상당한 규모의 R&D 투자가 자리하고 있고요. 2010년부터 2024년까지 구글의 R&D 투자 규모입니다. 2010년 38억 달러 수준이었던 투자액이 작년엔 494억 달러로 증가했어요. 2024년 기준으로 아마존에 이어 전 세계 2위 규모입니다. 지난 15년 간 13배 늘어났고, 전년 대비 평균적으로 21% 늘려오면서 꾸준히 R&D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지난 15년간 구글은 버는 매출의 14. 4%를 자신들의 기술 개발, 연구에 투자해 왔어요. AI로 검색 시대 종말? '검색 왕국' 구글이 꿈꾸는 미래는 열심히 R&D 투자해서 AI 개발 열심히 하는 구글. 구글은 자사의 다양한 서비스에 제미나이를 적용하여 AI 기반의 서비스 고도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구글의 제 살 깎아먹기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AI에 투자도 늘리고, 기술 개발하는 거 다 좋은데 과연 이게 구글에게 좋은 일일까 싶은 거죠. 올해 2분기 실적 발표 자료로 그려본 구글의 수익 구조입니다. 전체 수익 964억 달러 가운데 구글 검색 광고, 유튜브 광고, 광고 파트너스가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입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구글 수익 가운데 광고 파트가 전체 매출의 75% 이상을 차지해오고 있어요. 그중 절대다수가 검색 광고고요. 문제는 AI가 발전하면서 검색 시장을 점점 갉아먹고 있다는 겁니다. 구글이나 빙, 네이버 등 포털에서 검색을 하다 보면 AI가 종종 답변을 요약해 주곤 합니다. AI가 뱉어낸 대답이 만족스러우면 굳이 사이트에 들어갈 필요 없이 우리는 검색을 마치죠. 이른바 '제로 클릭 검색'입니다. 클릭 없이 검색하는 경험이 일상화되면 기존 사이트들 입장에선 트래픽이 감소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이 기업들이 단기적으로 트래픽을 높이기 위해 구글의 광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는 있을 겁니다. 실제로 지난 1, 2분기엔 AI를 적용한 검색 서비스의 영향으로 구글의 광고 실적이 오히려 늘어나기도 했죠.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트래픽이 줄어들고 더 이상 이용자들이 들어오지 않는 웹사이트들이 많아지면 굳 이 웹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구글이 노출할 사이트 자체가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생기는 거죠. 더 큰 문제는 이제 사람들이 검색을 할 때 구글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는 겁니다. 검색이 곧 구글이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겁니다. 2006년 6월에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검색한다는 의미로 '구글'이 등재될 정도였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최근 영미권 10대들은 검색한다는 단어를 사용할 때 굳이 구글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냥 search인 거죠. Z세대들은 식당을 검색할 땐 틱톡에, 물건을 살 땐 아마존에, 숙제를 할 땐 챗GPT를 사용하고 있어요. 한 설문조사에서 Z세대 사용자의 절반 이상이 구글 대신 틱톡, 레딧,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찾고 있다고 대답하기도 했죠. 어도비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미 4명 중 1명은 정보 검색 할 때 구글보다 챗GPT를 선호한다고 얘기했고요. 게다가 최근엔 챗GPT가 자체 웹 브라우저인 아틀라스를 출시한 만큼 검색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구글 입장에서 다행인 건 AI 수요가 늘어나면서 클라우드 매출이 급성장했다는 겁니다. 앞서 살펴본 이 그래프에서 광고 매출 비율 대신 늘어나는 이 영역이 바로 클라우드 파트입니다. 2017년엔 3. 7%에 불과했던 클라우드가 작년엔 12. 4%까지 늘어났어요. 앤트로픽이 구글과 대규모 클라우드 계약을 추가로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구글 입장에서는 이 클라우드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구글은 검색 광고라는 캐시카우를 스스로 잠식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클라우드나 온디바이스, AI 에이전트로 영역을 확장해 가며 포트폴리오를 재배치하고 있습니다. AI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기보다는 AI 맞춤형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죠. 구글은 시작부터 1등인 기업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검색 엔진은 따로 있었고, 웹 브라우저 역시 구글이 최초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 구글이 최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AI에서도 지금은 1등은 아니지만 그들과의 격차를 좁히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검색 왕국 구글은 어떤 답을 찾게 될까요? 그리고 앞으로 5년 뒤에는 구글은 어떤 기업이 되어 있을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 구글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Historical Data | Yahoo Finance - Browser Market Share Worldwide | statcounter - United States, et al. v. Google LLC, D.D.C., Case 1:20-cv-03010-APM, Document 1033, Filed 2024-08-05 - Generative AI Traffic Share | similarweb - Google DeepMind Shifts From Research Lab to AI Product Factory | Bloomberg - Alphabet Annual Report - Alphabet 2025 2Q 10Q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추운 극지방 북극이 지구상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북극권에 속해있는 미국, 러시아 같은 나라뿐 아니라,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도 북극에 대한 관심을 내비치고 있죠. 이번 정부에서는 북극항로 개척을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만큼 관련해서 내년 예산에 총 5,499억 원을 편성하기도 했어요. 오늘 오그랲에서는 도대체 북극이 왜 이렇게 핫해진 건지, 또 북극항로라는 게 정말 가능성이 있는지 데이터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게 북극항로가 중요한 이유 일단, 우리나라는 무얼 먹고사는 나라일까요? 바로 수출입니다. 우리나라의 작년 GDP는 1조 8,697억 달러로 전 세계 12위를 기록했죠.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 동안은 세계 10위 안에 위치하면서 10대 경제강국 타이틀을 달았지만 지금은 10위 밖에 속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수출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GDP 대비 수출 비중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G20 국가들 가운데 3위를 기록할 정도죠. 해외에 물건을 팔 수 있는 방법은 땅으로 가거나, 바다로 가거나, 하늘로 가거나 인데 사실상 우리나라는 섬과 같아서 바닷길과 하늘길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바닷길이 대한민국 물동량의 99%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한 번 유럽에 상품을 내다 판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닷길로 유럽 시장을 노리기 위해선 유럽 최대의 항만인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로테르담까지 갈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수에즈 운하를 통해 지중해를 거쳐 가는 게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 항로는 아시아-유럽 교역의 핵심 통로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그 길목에서 지속적으로 항로를 위협하는 후티 반군 때문에 문제가 많죠.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을 공격해 오고 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이렇게 위험한 항로를 이용할 순 없으니 대신 다른 우회로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바로 희망봉을 경유해서 대서양을 지나 네덜란드로 향하는 루트죠.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를 통해 두 항로의 이용 현황을 살펴보겠습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은 꾸준히 증가했어요.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2022년 12월엔 두 항로의 격차가 월간 986척까지 벌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엔 이렇게 역전되어 버립니다. 지난 7월엔 희망봉 경로를 이용하는 선박이 1,819척이나 더 많아질 정도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요. 문제는 희망봉 항로는 수에즈 운하보다 거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더 걸린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해 로테르담항까지 가면 거리는 약 2만 400km 시간은 30~34일 정도 걸립니다. 반면 희망봉을 경유하면 거리는 약 4,000km 늘어나고 시간은 6일 더 걸리죠. 원래 이용하던 경로는 위험해서 이용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대안책은 시간도, 거리도 더 길어진 상황인 거죠. 게다가 한국 기업들 입장에선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갈등도 신경이 쓰입니다. 남중국해에 있는 섬을 두고 중국, 타이완, 필리핀, 베트남 등 여섯 개국의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최근엔 중국 함정이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뿌리자 미국 국무부가 규탄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죠. 우리나라 해상 무역의 90% 이상이 바로 이 지역,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항로를 통과하다 보니 골치가 아픈 겁니다. 기존 항로의 불안전성이 점점 심화되면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기존 항로의 대체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게 바로 북극항로일 수 있는 거죠. 아래로 가는 게 아니라 더 위로, 북극으로 가는 거죠. 지구온난화가 준 기회? 북극의 바닷길이 열리고 있다 북극은 남극과 달리 대륙이 아니라 바다입니다. 북극에 보이는 하얀 건 땅이 아니라 북극해의 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이죠. 물론 북극권에 위치한 육지에서 만들어진 민물이 언 빙하도 있겠지만 북극해를 채우고 있는 건 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해빙이 대다수입니다. 이 해빙은 계절마다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추워지는 가을과 겨울철에는 발달했다가, 따뜻해지는 봄과 여름에는 수축하는 식으로요.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를 통해 북극 해빙의 크기를 살펴보겠습니다. 1978년부터 2025년까지 월별 북극 해빙 크기입니다. 북극의 해빙이 가장 작아지는 시기는 9월 초 무렵으로 최대 시점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죠. 북극 해빙의 크기가 가장 쪼그라드는 시점인 9월의 데이터만 가지고 그래프를 다시 그려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최근으로 오면 올수록 해빙 면적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1970년대 말에는 미국 본토 크기만 한 해빙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어요. 이렇게 된 건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지구온난화의 영향 때문입니다. 문제는 북극은 지구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1980년대 이후를 살펴보면 북극의 평균 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 상승률과 비교하면 세 배 가까이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어요. 그런데 왜 추운 북극이 이렇게나 더 빠르게 뜨거워지는 걸까요? 그 이유는 북극의 눈과 얼음들 때문입니다. 북극에 있는 해빙은 태양빛을 우주로 반사하는 거대한 거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녹아버린다면요? 얼음 밑에 있던 어두운 바다가 노출되고, 그러면 태양빛을 반사하는 양은 줄어들고 흡수하는 양이 늘어나게 됩니다. 게다가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온실효과가 강한 메탄 같은 기체가 배출되면서 상승세가 가속되고 있어요.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북극을 뒤덮고 있던 해빙이 더 많이 녹고 그 영향으로 북극의 바닷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유럽 시장과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 항로로 북극항로가 떠오르게 된 거죠. 만약 여름철 해빙이 많이 녹았을 때에 북극항로를 이용한다면 그 운송비용은 기존 항로 대비 크게 줄어듭니다. 수에즈 운하 항로를 이용할 경우 우리나라 선박의 운항 비용은 383만 달러 정도로 나옵니다. 거리가 더 먼 희망봉 항로는 418만 달러이고요. 반면 북극항로는 300만 달러 수준으로 운항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북극을 향한 강대국들의 야욕 북극항로의 경제성뿐 아니라 북극 내 에너지 자원도 상당하다는 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많은 국가들이 북극을 전략적 요충지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단 북극권 8개국이 가장 적극적입니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러시아까지 8개 국가들은 1996년에 북극에 관련된 각종 문제를 논의하는 북극이사회를 꾸렸습니다. 북극이사회에선 북극의 환경 보호와 과학적 연구, 또 개발을 하더라도 지속가능한 개발만 논의하기로 합의했어요. 과거 냉전 시기의 북극은 미국과 소련의 잠재적 공격 루트이자, 군사 작전 지역이었지만 냉전이 끝나고 꾸려진 북극이사회에선 북극을 인류를 위해서, 평화롭게 이용하자고 약속한 거죠.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북극이사회에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러시아를 제외한 7개 회원국이 러시아를 보이콧했고, 러시아는 이사회 참여 중단을 선언했거든요. 게다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안보가 불안해진 핀란드와 스웨덴이 연이어 NATO에 가입하면서 북극권이 다시금 절반으로 나뉘어 버렸습니다. 사실 그전부터 러시아는 북극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권을 점점 늘려오고 있었습니다. 과거 소련시절 사용한 북극의 군사기지를 재개하고 새로운 사령부를 세우며 인프라를 확장해 왔거든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가 닥친 이후엔 그 돌파구로 북극항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죠. 그래서 러시아의 북극항로 물동량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1년 311만 톤이었던 러시아 북극항로 물동량은 작년 3,789만 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앞으로 그 규모는 꾸준히 증가해 2028년엔 최대 8,510만 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요. 이렇게 점점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지만, 서방의 제재가 풀리지 않는다면 당장 국제 운송로로 활용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중국과의 교역이 북극항로 화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죠. 러시아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중국과의 접점을 더 늘리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북극항로 개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죠. 중국도 사실 나쁠 이유가 없습니다. 중국은 북극권에 속해 있지도 않지만 지난 2018년에 '극지 실크로드'라는 중국만의 북극 정책을 발표하면서 북극 운송로 개척을 추진해 왔어요. 그리고 지난 9월 22일 중국 닝보항을 떠난 선박이 10월 12일에 영국 펠리스토우 항구에 도착하면서 중국 최초로 북극항로 상업 운항을 성공시키기도 했죠. 중국은 단순히 북극항로에서만 러시아와의 접점을 늘리는 게 아니라 북극 내의 군사, 안보 협력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함께 북극해를 합동으로 순찰하기도 하고, 양국 폭격기가 합동으로 알래스카 근처에서 정찰 비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미국은 북극항로가 어느 한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항로가 아니라 모두가 이용가능한 국제 수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면서도 동시에 미국도 북극해 주도권을 확보할 목적에서 말이죠.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야욕도 북극권 내의 미국 영향력 확대로 해석할 수도 있고요. 문제는 미국의 인프라가 너무 달린다는 겁니다. 미국이 보유한 쇄빙선은 현재 3척뿐입니다. 반면 러시아는 41척, 중국은 5척이나 되죠. 최근에 핀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중형 쇄빙선 11척을 공동 건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완성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북극항로의 딜레마... 경제성과 환경 사이 많은 국가들이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 뛰어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북극항로에 마냥 장밋빛 미래만 보장된 건 아닙니다. 일단 기존 항로와 비교해서 비용이 적게 드는 건 맞지만 여러 가지 따져보면 경제성이 아주 높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컨테이너 선들은 최종 목적지까지 가면서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항구를 들르며 화물을 싣고 내리며 돈을 법니다. 하지만 현재 북극항로에서는 중간에 들를 항구가 러시아 외에는 없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또한 유빙 충돌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선 무겁고 단단한 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건조 비용도 많이 들고 연료 소모도 커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여전히 북극항로가 기존 항로보다 위험하다 보니 보험비가 많이 발생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북극항로는 여름과 초가을에만 열리고 겨울에는 운항이 제한될 수 있는 계절 항로라는 것도 걸림돌이 됩니다. 북극항로가 초래할 환경 파괴 역시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중유를 쓰는 대형 컨테이너선이 배출하는 그을음, 이른바 블랙 카본 문제입니다.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는 북극 지역에 배출된 블랙 카본 데이터를 가지고 그려봤습니다. 이 지도는 2021년 북극 지역에 배출된 블랙 카본을 시각화한 자료입니다. 2021년 북극에서 운항한 선박들이 배출한 블랙 카본은 모두 1,529톤입니다. 이렇게 배출된 블랙 카본이 북극의 눈과 얼음에 달라붙게 되면 얼음이 햇빛을 덜 반사하게 되면서 빛을 더 흡수하고, 더 빠르게 녹게 되죠.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스위스의 MSC는 이러한 환경 문제를 이유로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1위 기업뿐 아니라 2위, 3위 기업 모두 환경 파괴와 경제성을 이유로 북극항로 이용을 포기했죠. 일단 국제해사기구 IMO에서는 북극해를 통과하는 선박은 중유를 사용하지 못하고, 운반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극지의 환경오염을 최대한 낮추는 연료를 사용하도록 '극지 연료'라는 개념을 도입하려는 논의도 이어가면서 지속가능한 북극항로 이용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수에즈 운하 개통이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해운 허브로 만들었듯이, 북극항로 시대에는 새로운 싱가포르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 주인공이 대한민국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죠. 실제로 우리에겐 충분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부산항은 현재 세계 해운 연결성 지수 4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위에는 상하이, 닝보, 싱가포르 뿐이죠. 북극항로의 중간 기착지이자 물류 허브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이 이미 닝보에서 영국까지 첫 북극항로 상업 운항에 성공한 만큼, 우리도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북극의 얼음이 녹아 생긴 이 기회를 잡으면서도, 동시에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는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경제적 기회와 환경적 책임,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북극항로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 북극항로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Data&Law] 데이터로 보는 북극항로 | 국회도서관 - Arctic Report Card Update for 2024 | NOAA - Port Monitor - Suez Canal, Cape of Good Hope | PortWatch - U.S. Statement on Dangerous Chinese Actions in the South China Sea | U.S. Department of State Sea - Ice Index Daily and Monthly Image Viewer | NSIDC - GISS Surface Temperature Analysis (GISTEMP v4) | NASA - NSR Shipping activities in 2022 | CHNL - New record set for volume of cargo shipped along the Northern Sea Route | ROSATOM - Ледокольный флот России – самый мощный в мире | Министерство транспорта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 Polar Security Cutter | USCG - Coast Guard commissions newest polar icebreaker into operational service | USCG - China Deploys Five Icebreakers Near Alaska in Unprecedented Arctic Move | gCaptain - Black carbon and CO₂ emissions from EU-regulated shipping in the Arctic | ICCT - MSC Rules Out Arctic Exploration on Environmental Concerns | MSC - CMA CGM will not use the Northern Sea Route | Port of Hamburg - Further shipping GHG emission reduction measures adopted | IMO - Port liner shipping connectivity index, quarterly | UNCTADstat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일본 애니메이션 좋아하시나요? 예전엔 일본 애니메이션 좋아한다고 하면 썩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던 것 같은데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있는 듯합니다. 유행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극장과 OTT를 가리지 않고 '일본 애니 열풍'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극장가에서 흥행한 귀멸의 칼날, 체인소맨도 있고요, 곧 개봉할 주술회전, 그리고 그전에는 진격의 거인 바람이 크게 불기도 했죠. 오늘 오그랲에서는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이 어느 정도로 인기가 있는 것인지 또 그 인기의 비결은 무엇인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국 영화 시장 뒤흔든 일본 애니메이션 추석 연휴가 지나고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관객수가 532만 명을 돌파하면서 올해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개봉 영화 가운데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흥행 성적을 넘는 영화는 <좀비딸> 뿐입니다. 귀멸의 칼날뿐 아니라 체인소맨 극장판에는 15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몰리면서 일본 영화 관객 점유율(10월 10일 기준)은 14.4%까지 올라갔습니다. 이 일본 영화의 기록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통합전산망 시스템을 갖춘 2004년 이후 1위에 해당합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를 통해 한국 영화 시장의 국적별 점유율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2004년부터 2025년 현재까지 영화 국적별로 점유율을 나타내보면 단연 1, 2위는 한국영화, 미국영화입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일본 영화 상승세가 심상치 않아요. 처음으로 점유율이 반등했던 2017년에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 대흥행을 하면서 관객 점유율 4.0%를 기록했습니다. 당시까지 일본 영화 중 최다 관객을 기록한 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었는데 그 기록을 갈아치우고 신기록을 달성했죠. 그리고 4년 뒤인 2021년에는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더 큰 흥행 바람을 일으키면서 처음으로 관객 점유율 5.0%를 넘겼습니다. 2023년은 일본 영화가 국내 최초로 10%의 관객 점유율을 기록했던 해입니다. 흥행을 이끌었던 건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였죠. 두 영화는 2023년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각각 4위, 6위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했어요. <스즈메의 문단속>은 55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직전까지 흥행 1위였던 <너의 이름은.>을 꺾고 역대 일본 영화 한국 흥행 순위 1위로 올라섰죠. 그리고 올해는 현재까지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과 <체인소 맨: 레제편>의 흥행에 힘입어 역대 최고 관객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주술회전까지 흥행한다면 관객 점유율을 더 오를 수도 있고요. 영화라고 뭉뚱그려서 칭하고 있지만 실상 우리나라 영화 시장에서 힘쓰는 일본 영화는 실사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들입니다. 우리나라 영화 시장 역대를 통틀어서 박스 오피스 200위를 살펴보면 그중 일본 영화는 4편이 포함되는데 모두 애니메이션입니다. <스즈메의 문단속>,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더 퍼스트 슬램덩크>, <너의 이름은.>까지 말이죠. 일본 실사영화 중 국내 흥행 1위는 러브레터인데 재개봉 관객까지 포함해도 약 140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애니메이션과는 큰 흥행 차이를 보이죠.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은 한국에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2002년부터 2023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의 변화입니다. 2023년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3조 3,470억 엔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시장 규모 1조에서 2조로 돌파하는 데 16년이 걸렸는데, 2조에서 3조 돌파하는 데엔 불과 7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상승세가 빨라요. 2023년엔 해외 시장 수익이 일본 내수 수익을 초월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여태껏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해외 수익이 내수를 넘어선 건 2020년과 2023년뿐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해외 시장 성장세는 2013년 이후부터 11년 연속으로 플러스 성장할 정도로 순풍을 타고 있어요. 앞서 우리나라 박스 오피스 200위 안에 들었던 4편의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에서 3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올해 개봉한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역대 일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작품이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무려 6억 달러가 넘는 글로벌 수익을 벌어 들였죠. 그렇다면 왜 이렇게나 일본 애니메이션이 흥행하는 걸까요? 예전부터 애니메이션을 즐겨왔던 제 입장에서 느껴지는 건 애니메이션,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파이 자체가 커졌다는 인상이 듭니다. 실제 데이터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접근성의 힘... OTT로 친근해진 일본 애니메이션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은 찐 팬, 이른바 오타쿠만을 위한 틈새시장과 장르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OTT를 필두로 다양한 채널에서 스트리밍 되면서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장르로 자리매김했죠. 넷플릭스가 지난 7월 LA에서 열린 애니메 엑스포에서 구독자의 50% 이상이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1억 5천만 가구 이상, 약 3억 명의 시청자가 넷플릭스를 통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어요. 작년 한 해 동안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시청 횟수는 5년 사이 3배 증가해 10억 회를 넘길 정도죠. 우리나라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넷플릭스의 TOP10 랭킹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 강세가 이어지고 있어요. 2021년부터 2025년 9월까지 대한민국 상위 TOP10에 포함된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아직 3개월이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22편이 포함되어 있죠. 이렇게 많은 소비자들이 선택하고 있는 만큼 넷플릭스에선 애니메이션 영역의 투자 규모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넷플릭스가 분야별로 얼마나 투자했는지 밝히고 있진 않아서 정확하게 확인하긴 어렵지만 콘텐츠 투자액이 2025년에만 작년 대비 11% 증가한 180억 달러 규모인 만큼 애니메이션 영역도 그에 맞춰 확대된 것으로 유추할 수는 있습니다. 이 투자금은 넷플릭스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에도 들어가겠지만 외부 애니메이션 제작사로도 흘러가기 때문에 외부 제작사의 회계 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넷플릭스의 투자 규모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괴수 8호를 만든 Production I.G의 회계보고서입니다. 2024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판권 사업의 총매출액이 39.56억 엔인데, 그중에 15.32억 엔을 넷플릭스로부터 받았죠. 판권 수입의 38.7%에 해당하는 금액이죠. 여기에 영상 제작 부문에서도 20.4억을 받아서 전체 매출의 24.5%를 넷플릭스가 차지하고 있어요. 기존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른바 '제작위원회' 시스템을 통해 제작되어 왔습니다. 제작사뿐 아니라 광고주, 방송사 등 애니메이션에 관여하는 기업들이 모여서 공동 투자를 해서 위험을 분산하고 수익도 공유하는 식인 거죠. 소규모 스튜디오도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있고, 재정적 위험도 상대적으로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제작사 입장에선 제작비를 줄이라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함께라면 제작위원회 없이 제작비가 한 번에 지급되다 보니 그런 부담에서 사라집니다. 물론 넷플릭스가 2차 저작물 권한을 모두 가져가지만 그만큼 엄청난 투자금을 꽂아주죠. 이렇게 많은 돈이 투자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퀄리티 좋은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액션 씬도 화려하고, CG도 퀄리티가 높고… 소비자 입장에선 양질의 콘텐츠를 접할 기회가 더 많아진 겁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OTT 사용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전용 OTT의 성장이 그 증거죠. 글로벌 시장에서 애니메이션 스트리밍은 넷플릭스와 크런치롤이 양분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넷플릭스가 42%, 크런치롤이 40%를 차지하고 있죠. 크런치롤은 일본에서 방영되는 신작 애니메이션을 최대한 빠르게 제공하는 게 사업 모델입니다. 크런치롤 구독자는 2021년 500만 명에서 2024년엔 1,500만 명으로 3년 사이 3배나 늘어났죠. 우리나라에선 애니메이션 특화 라프텔이 있습니다. 웨이브나 티빙 같은 토종 OTT가 부진을 겪는 와중에도 라프텔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월간 활성이용자수 규모를 살펴보면 2021년 70만에서 2025년엔 어느새 100만을 돌파할 정도죠. 굿즈도 사고 알아서 영업까지... 코어 팬덤 '오시카츠'의 힘 넷플릭스를 필두로 애니메이션 투자가 늘어나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양질의 애니메이션이 제공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도 '충분히 볼만하다'는 인식을 가진 소비자들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영화표가 비싸졌지만, 볼만한 영화가 있으면 소비자들은 충분히 지갑을 열 의향이 있습니다. 그런 소비자 입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걸려 있으면? 충분히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접근성과 함께 또 하나 주목할만한 건 바로 애니메이션의 팬덤 문화입니다. 좋은 애니메이션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만들도록 영업하는 팬들 말이죠. 플랫폼이 애니메이션의 문턱을 낮췄다면 애니메이션의 팬덤은 애니메이션의 불씨를 불꽃으로 키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관련 굿즈도 열심히 소비하면서 시장 규모를 키워주고, 거기에 더해 새로운 소비층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위해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오시카츠'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예전엔 '오타쿠'로 지칭되던 애니메이션 팬들을 이제 일본에서는 '오시카츠'라고 부릅니다. 추진하다, 밀어주다라는 뜻을 가진 '오시'에 활동하다는 뜻의 '카츠'가 붙여진 단어인데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아이돌을 위해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트렌드를 의미합니다. 참고로 2023년 상반기에 인기를 끌었던 '최애의 아이'의 원 제목이 '오시노 코'입니다. '오시'를 최애로 의역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감이 오죠? 만화책을 시작으로 애니메이션도 보고, 애니메이션 OST도 듣고, 영화도 보고, 굿즈까지… 오시카츠는 내 최애 콘텐츠라면 산업군을 가리지 않고 소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일본 콘텐츠 시장은 기본 IP 하나를 가지고 주변 산업까지 확대해 나가는 전략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최애의 아이 만화책이 잘 나가면 그걸 바탕으로 퀄리티 좋은 애니메이션을 뽑아내고 애니메이션의 OST가 메가 히트를 치면서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거죠. 이러한 IP 확장 전략을 구동시키는 엔진 역할을 하는 게 오시카츠인 거죠. 오시카츠는 단순한 팬 활동을 넘어 거대한 경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일본중앙은행에서도 주목할 정도인데요, 지역경제 보고서 이른바 '사쿠라 보고서'의 지난 1분기, 2분기 내용에 오시카츠가 등장합니다. 오사카, 나고야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오시카츠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경향이 보고되고 있죠. 도대체 어느 정도 규모이길래 중앙은행에서도 언급할 정도인지, 일본 마케팅 기업 CDG의 실태조사 데이터를 가지고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를 그려봤습니다. 2025년 조사에서 파악된 오시카츠의 규모는 1,384만 명으로 일본 인구의 11% 수준입니다. 1인당 연평균 25만 엔을 쓰고 있고, 연 단위로 보면 3.5조 엔을 지출하고 있어요. 단순히 콘텐츠와 굿즈 소비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팬아트나 코스프레로 2차 창작물 시장을 형성하기도 하고, 나아가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는 곳을 성지순례하며 지역 관광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서로 교류하면서 커뮤니티를 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이미 우리는 케데헌을 통해 이런 적극적인 팬덤의 소비자들을 경험하고 있고요. 일본에서는 오시카츠의 행동력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픽트리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특정 지역의 전봇대를 촬영해서 업로드하고, 포인트를 받게 되는데요, 이 포인트를 현물로도 교환할 수 있어요. 촬영된 사진은 도쿄전력의 전봇대 유지 보수나 관리하는 데 활용되고요. 올해 초, 픽트리가 일본의 지방도시 누마즈 시와 새로운 시즌을 진행했습니다. 누마즈 시는 러브라이브라는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소도시인데요, 이곳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김에 강력한 팬덤을 가진 러브라이브와 콜라보를 했습니다. 팬들은 전봇대 사진을 찍으며 한정판 러브라이브 굿즈를 얻고, 픽트리와 도쿄전력은 전봇대의 유지 보수에 활용할 자료를 얻고, 누마즈 시는 각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을 얻으면서 지역 활성화까지 이뤄낸 겁니다. 접근성과 투자, 그리고 팬덤.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 3박자가 맞물리면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습니다. 한때 '오타쿠 문화'로 치부되던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제 메인스트림 콘텐츠로 완전히 자리매김했죠. 특히 주목할만한 건 하나의 핵심 IP를 중심으로 만화, 애니메이션, 음악, 영화, 굿즈, 그리고 관광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우리도 더 단단하고 지속가능한 콘텐츠 산업을 위해 일본의 이런 전략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 일본 애니메이션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국적별 점유율 | 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 Anime Industry Data | The Association of Japanese Animations - Anime for Every Fan: Fueling a New Era of Global Storytelling | Netflix - Top 10 shows in south Korea | Netflix Tudum - 2025年5月期 有価証券報告書 | IG Port,Inc. - With Anime Market Projected to Triple, Netflix and Crunchyroll Poised to Dominate It Together | Variety, Bernstein Report - 地域経済報告-さくらレポート-(2025年1月) | 日本銀行 - 推し活人口は1384万人、市場規模は3兆5千億円に! 第2回 推し活実態アンケート調査結果を公式noteで公開。 | CDG 推し活総研 - PicTrée Numazu Season: Introducing Collaboration Features with Love Live! Sunshine!! | PicTrée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대학교 중간고사 시즌이 다가왔습니다. 이 과목, 저 과목 가리지 않고 밀려드는 과제도 처리해야 하고 시험공부도 해야 하느라 정신없는 분들 많을 것 같은데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옆에 있는 AI가 큰 힘이 됩니다. AI에 질문만 넣으면 순식간에 결과물이 뚝딱 나오니까요. 혹시나 AI 모니터링에 걸릴 수 있으니 '인간스럽게 써달라'는 문구도 잊지 않고 넣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오늘 오그랲에서는 AI가 우리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5가지 그래프를 가지고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AI가 제 교육을 무너뜨리고 있어요." 1818년 미국에서 태어난 한 노예가 있습니다.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이름은 프레드릭 더글라스죠.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노예로 태어났지만 자유를 위해 농장에서 탈출했고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강연자로 활동합니다. 노예제를 폐지해야 하고, 여성들에게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위대한 미국인 100인 중 1명으로 꼽힐 정도로 미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프레드릭 더글라스 오늘 이야기는 노예 해방을 위해 노력한 프레드릭의 자서전을 읽고 토론하는 미국의 한 고등학교 수업에서 시작됩니다. 한 친구가 자서전의 내용을 복사해 챗GPT에 붙여 넣습니다. 자서전 내용을 받은 챗GPT는 이런저런 결과물을 주석으로 달아주죠. 이 친구는 챗GPT가 뱉어낸 내용을 가지고 토론에 참여를 합니다. 위인의 삶을 읽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보고, 또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토론이 되어야 할 수업이 복붙과 AI 생성물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어버린 겁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 잡지 디 애틀랜틱에 실린 한 고등학생의 고백입니다. 뉴욕 퀸즈의 뉴타운 고등학교 졸업반에 다니는 애샨티가 직접 경험한 교육 현장이죠. 우리나라라고 크게 다를까요? 학교에서 2,000자 에세이를 써내는 과제가 나와도 AI에게 맡기면 손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AI를 활용한 학습이 너무나 일상화된 나머지 지난 6월 UCLA 졸업식에서는 한 학생이 챗GPT와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어요. 열심히 공부한 결실을 축하하는 졸업식 행사에서 AI 사용을 당당하게 공개한 겁니다. 이미 교육 현장에서 AI는 더 이상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AI를 써본 경험이 없는 학생의 비율은 2024년 34%에서 2025년 8%로 감소했습니다. AI를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해 본 학생이 전체의 92%나 된다는 겁니다. 학생들이 AI를 사용하는 영역은 교육 전반에 걸쳐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개념 설명과 이해 영역이 63%로 가장 많았어요. 논문 자료 요약, 내 생각 정리, 연구 아이디어 얻기 비율도 50%를 넘길 정도로 일상화되었고요. 영국 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에브리타임을 통해 대학생 1천 명을 대상으로 비슷한 설문을 진행했는데 10명 중 7명이 AI를 이용하고 있었어요. 사용 분야로는 정보 검색이 66.7%로 가장 높았고, 글쓰기나 리포트 작성이 뒤를 이었습니다. AI 막으려는 학교 vs AI 쓰려는 학생들 처음 챗GPT가 세상에 공개됐을 때엔 일부 대학교에선 아예 원천적으로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님의 재량에 따라 사용 여부가 결정되고 있죠. 교수님들 입장에선 학생들이 AI만 활용하면 제대로 된 교육이 안되기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과제를 풀면서 스스로 고민도 해보고 그 과정에서 학생이 성장해야 할 텐데, AI는 그것을 원천 차단해 버립니다. 하지만 학생 입장에선 AI 챗봇에게 부탁하면 A급 에세이가 뚝딱 나오는 데 안 쓸 이유가 없고요. 일부 선생님들은 이런 모습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고 우려합니다. 그래서 AI를 활용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교수님들도 있습니다. 혹은 AI를 활용할 경우 페널티를 주는 경우도 있죠. 물론 그러려면 AI가 만든 결과물을 걸러내야 하는데, 이게 또 쉽지 않아요. 영국의 한 명문 대학교의 심리학과 학부 시험에 AI 답안지를 껴 넣어 테스트를 해봤습니다. 학생이 직접 쓴 답안 1,134건에 AI가 생성한 답안 63건을 섞어 넣었습니다. 채점자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실험을 진행했고요.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요? 실험 결과 AI 제출물을 정확히 탐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어요. AI가 써낸 답변 63건 가운데 4건만 탐지됐을 정도죠. 채점하는 사람이 '아 이건 AI가 만든 거다'라고 직접 표기한 경우는 단 2건에 불과했어요. 일부 선생님들 가운데에는 아예 교육 현장에서 AI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해내는 과정인데, 생성형 AI는 그 주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거죠. 교육의 본질에 위협을 가하는 생성형 AI를 교육 현장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서명에 현재까지 900명이 넘는 선생님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우려가 납득이 되는 건 실제 학생들이 AI와 대화한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주체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게 보이기 때문이에요. 앤트로픽에서 학생들의 AI 사용 패턴을 연구해 봤어요. 익명화된 학생 대화 100만 건 중에 학업과 관련된 57만 여개의 대화를 분석해 본 겁니다. 학생들의 대화 가운데 47%가 AI에게 개념적인 질문으로 정보를 찾는 대화였어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려줘.", "표절 감지를 피하기 위해 글을 다시 써줘"처럼 스스로 생각하기보단 AI에 외주화 하거나 부정행위를 걸리지 않기 위한 질문들이 가장 많았던 거죠. 인간의 사고 과정을 크게 6단계로 구분하면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기억하고, 이해하고, 적용하고, 분석하고, 문제를 평가하고, 새로운 걸 창조하고. 미국의 인지교육학자 벤자민 블룸이 만든 분류법인데, 대부분의 국가에선 이 6단계에 맞춰 교육 제도를 설계합니다. 앤트로픽의 질문들을 블룸의 구분법에 따라 나눠보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고차원 인지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 평가, 분석과 관련된 작업의 AI 처리 비율이 높은 상황입니다. 창조 영역이 전체 질문의 39.8%, 분석이 30.2%를 차지하고 있어서 전체 질문 10개 중 7개는 고차원 인지 능력을 부탁하는 질문에 해당했어요.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이렇게 학생들이 고차원 인지 능력을 AI에 맡긴다면 사고 발달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렵다고 경고하고 있는 거죠. 학생은 잠재적 평생 고객... 놓칠 수 없는 AI 기업들 물론 AI 기업들이 이런 우려 지점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노력 중 하나가 바로 '튜터 기능'입니다. 단순히 정답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마치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처럼 질문에 질문을 이어나가는 거죠. AI를 이용하는 학생의 사고 과정에 도움만 주고, 문제는 스스로 풀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앤트로픽에서는 클로드 포 에듀케이션을 공개했고요, 오픈AI의 챗GPT에는 공부 모드가 있습니다. 이런 학습 전용 모드에서는 중간중간 퀴즈나 플래시 카드를 이용해 학생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는 기능도 활용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AI가 사용자 맞춤으로 튜터링을 해준다면 교육생들은 더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될까요? 연구진들이 하버드 대학교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듣는 물리학 수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해 봤습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번갈아가며 AI 튜터링을 진행해 봤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AI 튜터링을 진행한 학생들의 시험 결과가 스스로 공부한 학생들보다 더 높게 나온 겁니다. 사전 점수 2.75점과 비교했을 때 일반적인 방법으로 공부한 집단은 3.5점, AI 튜터 그룹은 4.5점으로 나왔어요.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연구팀이 진행한 실험인데요, 이번엔 그룹을 3개로 나눠서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교과서와 필기로 공부했고, 두 번째 그룹은 챗GPT가 그냥 정답을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룹은 챗GPT와 튜터링을 진행했어요. 과제 수행 능력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공부를 한 그룹보다 GPT를 이용한 두 그룹 모두 점수가 높았습니다. 특히 튜터링의 경우 127% 향상할 정도로 크게 늘어났죠. 하지만 시험 성적을 살펴보면 어떨까요? GPT가 정답을 떠먹여 주는 그룹은 오히려 성적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GPT 튜터링 그룹도 점수가 낮게 나왔지만 이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어요. 즉 그냥 AI에게 정답을 받아서 쓰면 장기적으로 학습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AI 기업들은 튜터링 기능을 내세워 교육 효과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 시장에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죠. 지난 7월 8일에 오픈AI, MS, 앤트로픽 AI 3사는 미국의 최대 교사 노조 중 한 곳과 파트너십 체결했습니다. 파트너십 규모는 2,300만 달러로 우리나라 돈으로 320억 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을 자랑합니다. 이 파트너십의 결과로 미국엔 국립 AI 교육 아카데미가 출범했어요. 그리고 올 가을부터 아카데미에서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AI 활용 방법 교육 예정이죠. AI 기업들은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에게도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습니다. 구글은 대학생이라면 1년간 제미나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고요, 오픈AI는 2개월 무료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록도 학교 계정으로 가입하면 슈퍼그록을 2개월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선생님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또 앞으로 평생 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무료로 제공하면서 다양한 판촉행사를 하는 겁니다. AI 기업들이 교육 시장에 진출하는 건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교육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변화일 수 있습니다. 한편에선 교육 격차 해소의 기회로 해석하지만 동시에 AI 의존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게 현실인 만큼 대비가 필요하죠. AI 기술 발전으로 교육 현장은 대전환기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틀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 현장에서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AI 사용을 막으려는 교수님들과 적극 활용하려는 학생들 사이의 줄다리기. 또 직접 쓴 글조차 AI가 작성했다고 오해받는 억울한 상황들. 이런 갈등 속에서 AI 기업들은 이미 교사와 학생 양쪽 모두에게 깊숙이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AI를 교육에 도입하는 것 자체는 이제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떻게 AI를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 겁니다. 최근 출범한 국가AI전략위원회에 AI가 교육에 미칠 영향을 고민할 사회 분과 영역이 포함되어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위원회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AI와 교육에 대한 제대로 된 해답을 찾길 바라며 오그랲 교육 편은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