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의 간극을 데이터로 줄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떡볶이와 야구, 그리고 영화를 좋아합니다.
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마부뉴스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지난주 수능 때만 하더라도 따뜻해서 난리였는데, 단 며칠 사이에 온도가 뚝 떨어졌어요.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를 기록한 곳도 나오고 있을 정도로 말이죠. 장롱 속에 있던 패딩을 꺼내면서 정말로 겨울이 왔구나 싶어요. 추운 날씨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독자 여러분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길 바랄게요! 날씨도 겨울이 찾아왔지만, 또 '다른 곳'에도 겨울이 오는 것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로 반도체 분야이죠. 모건 스탠리에서 반도체 시장에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경고의 보고서를 계속 내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 반도체 상황이 좋지 않으면서 이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는데요, 일각에서는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방안으로 근무시간을 늘리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더라고요. 오늘 마부뉴스에서는 이 주제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반도체 위기는 야근을 덜 해서 왔을까요? 파운드리, 팹리스, HBM... 도대체 이게 다 뭐야? 본격적인 반도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본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부터 간단히 정리하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반도체에 대한 내용이 워낙 기술적인 이야기가 많다 보니까 용어도 많고, 생소한 개념들도 많거든요. 용어 내용을 미리 알고 들어가면 본문을 읽을 때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 도체, 부도체, 반도체 물질에 따라 어떤 물질은 전기가 잘 통하고, 어떤 물질은 전기가 잘 안 통하곤 하죠. 금이나 구리같이 물질의 전기전도도가 높아서 전기가 잘 흐르는 물체를 도체라고 하고, 고무와 나무처럼 전기전도도가 낮아서 전기가 흐르지 않으면 부도체라고 합니다. 반도체는 전기전도도가 도체와 부도체 사이에 있어서, 어떤 때는 전기가 통하고 또 어떤 때에는 전기가 안 통하는 녀석을 말합니다. 반도체는 보통 규소로 만드는데 순수한 규소는 부도체에 가까워요. 하지만 여기에 인(P)과 같은 불순물을 첨가하면 상황에 따라 전기가 흐를 수 있게 되죠. 오늘 이야기할 반도체는 조건에 따라 전기를 제어할 수 있는 성질을 이용해 만든 전자장치로 이해하면 좋아요. 📍 IDM, 팹리스, 파운드리 반도체는 크게 4단계를 거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①가장 먼저 반도체를 설계하고, ②설계대로 웨이퍼를 생산하고, ③웨이퍼에 있는 수백 개의 칩을 하나하나 잘라내서 실제 기판에 장착할 수 있도록 패키징 및 테스트하고, ④마지막으로 최종 판매까지. 생산 과정의 어떤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지에 따라 기업을 부루는 명칭이 달라집니다. 아, 참고로 웨이퍼는 반도체 하면 항상 나오는 라이스페이퍼처럼 생간 얇은 원형의 판을 말합니다. 4단계 과정을 하나의 기업에서 모두 다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기업을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종합 반도체 기업이라고 불러요. 우리나라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의 인텔이 대표적인 IDM이죠. 설계 단계에만 참여해 반도체 생산에 기여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이런 기업을 팹리스(Fabless)라고 부릅니다. 웨이퍼를 생산하는 설비 이름이 팹(FAB)이거든요. 이 팹 설비가 없으니까 팹리스라고 하는 거죠. 대만의 미디어텍 같은 기업이 대표적입니다. 팹리스와는 반대로 설계는 하지 않고 생산만 하는 기업도 있어요. 이런 기업을 파운드리(Foundry)라고 합니다. 대만의 TSMC가 파운드리의 대표 주자인데요,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칩리스(칩 없이 설계만 하는 회사), IP 기업 및 디자인하우스(팹리스 기업이 설계한 도면을 제조가 가능한 설계도로 디자인해 주는 기업), OSAT(반도체 패키징, 테스트 전문 업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메모리, 비메모리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로 나눌 수 있습니다. 메모리반도체는 이름에서 어느 정도 힌트가 되듯이 데이터를 기억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SSD, DRAM 같은 친구들이 대표적인 메모리반도체입니다. 최근 AI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DRAM을 병렬로 쌓아 올린 HBM도 관심을 끌고 있죠. 시스템반도체는 저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리, 연산, 제어 등을 처리하는 반도체를 말해요. 컴퓨터 안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CPU가 바로 시스템반도체죠. 중국에게 빼앗긴 메모리반도체 1위 자리 사실 반도체 하면 우리나라의 대표 먹거리 아니겠어요? 대한민국의 반도체, 그중에서도 메모리반도체는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 5년 연속 1위를 할 정도로 자랑스러운 한국의 '특산품'이었습니다.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닙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나라가 수출액 전 세계 1위를 차지했으니까요. UN에서 제공해 주는 COMTRADE라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이 자료를 보면 국가별로, 상품별로 무역이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알 수 있죠. COMTRADE 자료 기준으로 2018년 우리나라는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수출의 29.1%를 차지해서 전 세계 1위였습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는 중국에게 1위 자리를 넘기고, 2위로 밀려나 있죠. 가장 최근 자료인 2022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메모리반도체 전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은 18.9%입니다. 반면 중국은 2019년 27.2%로 1위를 차지한 후 계속 1위를 지키고 있죠. 2022년 중국의 점유율은 25.7%로 2등인 우리나라와 6.8%p차이가 납니다. 사실 반도체 시장의 여러 분야 중 메모리반도체의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아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시스템반도체죠. 2022년 UN 데이터 기준으로 전 세계 반도체 교역의 40.8%가 시스템반도체일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메모리반도체는 15.9%에 불과하죠. 우리나라가 강세였던 메모리반도체에서도 중국에게 밀리는 상황이고, 거기에 시장 규모가 큰 시스템반도체에서는 여전히 힘을 못쓰고 있으니 반도체 업계가 울상인 겁니다. 미국의 대표 IT 연구업체 가트너가 발간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2022년 시스템반도체의 54.5%를 미국이 점유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3.3%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상황이 좋지 않자, 지난 10월엔 국내 반도체의 대표 주자인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장이 반성문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3분기 잠정 실적이 좋지 않은 것에 대한 입장문이었는데요,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진이 실적 발표 후 별도의 메시지를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죠. 이런 반성문을 낸 기저에는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AI 시장에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최근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HBM 같은 AI 메모리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거든요. 특히 SK하이닉스는 일찍부터 HBM에 뛰어들면서 그 효과를 보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는 과거 HBM의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이제야 뒤늦게 개발에 뛰어든 상황입니다. 그 영향으로 주가는 주욱 떨어졌고, '4만 전자'를 찍기도 했죠. 삼성전자는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요. 현재 주력 상품에서도 국내 반도체 시장이 마냥 장밋빛 전망을 바라긴 어렵다면... 앞으로 차세대 반도체에선 반등할 수 있을까요?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주요국을 대상으로 차세대 반도체 기술 격차를 분석했습니다. AI 반도체, 영상시스템 반도체 등 새로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반도체에 대한 한국의 기술 수준은 86점이었습니다. 최고 기술국인 미국을 100점으로 두었을 때 14점 정도의 격차가 있는 겁니다. 유럽은 90.9점, 일본은 88.8점으로 다들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계에서는 '52시간' 제도에 예외를 두자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어요. 삼성전자 임원은 이미 주 6일 근무에 나서고 있고, 일부 조직에서는 주당 64시간 근무제를 운영 중이거든요. 우리나라와 경쟁하는 상대국들은 시간 제한 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도 후발 주자로서 따라가려면 더 일해야 한다는 거죠. 반면 노동계에서는 52시간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2편에서는 각자의 입장을 하나하나씩 살펴보도록 할게요. (2편에 계속)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마부뉴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6136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이수
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마부뉴스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1편에서는 독일이 발효한 '성별 자기결정법'을 살펴보았습니다. 성별을 본인의 선택으로 변경할 수 있게 되면서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인터섹스 등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물론 이 법안은 찬성과 반대의 강한 논쟁 속에서 통과되었고, 과제들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를테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성별 결정의 자유가 범죄를 증가시킬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번 2편에서는 성별 자기결정권이 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데이터를 살펴보고, 트랜스젠더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차별의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어 보려 합니다. 독일의 변화가 던진 질문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성별결정권을 보장해 주면 범죄가 늘어날까? 성별 자기결정권을 쉽게 부여하면, 화장실이나 탈의실 같은 공간에서 성폭력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을 거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1편의 독일과 영국의 사례도 이에 해당하죠. 그렇다면 정말로 성별결정권이 범죄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우선 성별결정권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는 트랜스젠더는 사실 시스젠더(육체적 성별과 성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보다 범죄 피해를 더 많이 보고 있습니다. UCLA 법학대학원의 연구 결과를 함께 봐 보겠습니다. 연구진은 2017년과 2018년 미국의 범죄 피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의 폭력범죄 피해율을 분석해 봤습니다. 분석해 보니 트랜스젠더는 시스젠더에 비해 폭력범죄 노출 가능성이 무려 4배나 높았죠. 트랜스젠더의 1,000명당 범죄 피해 건수는 86.2인 반면 시스젠더는 21.7에 불과했습니다.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트랜스젠더 남성의 범죄 피해 건수가 107.5건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시스젠더 남성(19.8)과는 5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트랜스젠더는 도리어 범죄 피해를 더 많이 보는 피해자라는 거죠. 하지만 여전히 우려할 지점은 있을 수 있습니다. 가령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성중립 화장실에서 성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은 해결된 게 아니니까 말이죠. 앞서 살펴봤듯 트랜스젠더가 시스젠더보다 더 범죄 피해를 보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에는 성폭력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걱정하는 건데요. 실제로 그런지 이것도 데이터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연구도 마찬가지로 UCLA 법학대학원의 연구 결과입니다. 연구진은 성중립 화장실과 범죄율의 연관성을 분석해 봤는데 그 대상 지역은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입니다. 매사추세츠 주에는 성중립 화장실을 조례로 의무화한 지자체와 그렇지 않은 지자체가 함께 존재하는데요. 성정체성 공공 편의시설 차별금지 조례, 이른바 GIPANDO(Gender Identity Public Accommodations NonDiscrimination Ordinances)가 보스턴에는 적용되었고 베벌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진들은 각 지자체별로 차별금지 조례가 도입된 전과 후의 범죄율을 비교해 봤습니다. 결과는 위 그래프와 같습니다. X축은 공중 화장실, 공중 탈의실 등에서 발생한 월평균 범죄 발생률입니다. 그중에서도 하늘색으로 표시된 건 차별금지 조례가 존재하는 지차제의 범죄 발생률 변화이고요. 그 주변의 영역은 신뢰구간(90%)을 의미합니다. 분홍색으로 표시된 건 차별금지 조례가 제한적으로 있는 지자체의 범죄 발생률인데,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면 조례와 범죄 사건의 수는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즉, 성중립 화장실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범죄율이 늘어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연구진들은 또한 성중립 화장실이나 탈의실에서 발생하는 강력 범죄율이 전체 강력 범죄율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1년에 200건 이상 성별 정정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나온 연구결과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운영한다고 해도, 범죄 발생률은 증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차별적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성정체성과 관련된 법과 제도를 연구하는 'SOGI법정책연구회'에서 발표한 <한국 LGBTI 인권현황> 보고서를 살펴보면 2022년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평등지수는 100% 만점에 10.56% 수준입니다. 대한민국보다 지수가 낮은 국가는 러시아, 아르메니아, 터키, 아제르바이잔 뿐이죠. 지난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는 국내에서 국가기관이 실시한 최초의 트랜스젠더 인권 실태조사입니다. 총 591명의 트랜스젠더가 참여했는데 이 중 성별정정을 완료한 사람은 단 47명, 8.0%에 불과했습니다. 성별을 바꾸지 못한 사람들 중 40.0%가 법적 성별 정정 절차가 너무 복잡해서 하지 못했다고 답변했고요. 우리나라는 지난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 이후 일정한 요건이 갖춰지면 성별 정정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요건이 너무 복잡하고 엄격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죠. 물론 최근엔 트랜스젠더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전향적 판결이 나오면서, 성소수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2011년의 2차 전원합의체, 2022년 3차 전원합의체의 결정을 거치면서 허가 기준이 완화되기도 했고요. 지난해 2월엔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에게도 성별정정을 허가해 준 적이 있습니다. 대법원에선 2022년 10월부터 재판 시스템에 성별 정정 사건을 별도로 분리해 관리하고 있는데요, 데이터를 살펴보면 지난해에만 203건이 접수되었고, 그중 159건이 허가되었죠. 적지 않은 트랜스젠더들이 성별 정정을 원하고 있지만 아직도 법률이 없는 탓에 재판부마다 들쭉날쭉 판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1대 국회 막바지에 관련 법률이 발의되었지만 임기가 만료되면서 폐기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여전히 많은 수의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과 제도가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 사이 혐오와 증오는 나날이 커지고 있고요. 오늘 준비한 마부뉴스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은 독일의 성별 자기결정권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의 현주소까지 살펴봤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성별 자기결정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오늘 마부뉴스를 읽고 든 생각을 아래 댓글창을 통해 남겨주세요. 의견 남겨주면 마부뉴스 제작진이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볼게요. 오늘도 끝까지 긴 글 읽어줘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마부뉴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6136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이수
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마부뉴스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어느새 수능날이 다가왔습니다. 매서운 수능 한파 대신 따뜻한 날씨가 찾아온 덕에, 오후엔 비가 내릴 수 있다니까 수험생 구독자들은 우산을 잘 챙겼길 바랄게요. 오늘 단 하루로 인생이 결정되지 않으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시험에 임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나의 인생을 결정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는 변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죠. 이름도 그렇고, 성별도 그렇죠. 물론 이름은 개명을 통해서 바꿀 수 있지만 내 성별을 바꾸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서 지난 11월 1일부터 본인의 성별을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법이 발효되었습니다. 자신의 성별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된 거죠. 왜 독일에서는 이런 선택을 한 걸까요? 오늘 마부뉴스에선 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독일이 '성별 자기결정법' 통과시킨 이유 독일이 이번에 적용한 법안의 정식 명칭은 '성별 입력과 관련된 자기결정권에 대한 법안(SBGG)'입니다. 이 법안이 발효되면서 18세 이상의 독일 시민은 스스로 성별을 변경할 수 있어요. 남성, 여성뿐 아니라 무기재도 가능합니다. 14세 미만의 어린이도 성별을 변경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보호자의 서류가 필요합니다. 14세부터 18세 미만까지의 청소년의 경우엔 부모나 법적 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하죠. 이 법안을 통해 실질적인 수혜를 받는 사람들은 바로 성소수자입니다. 우선 자신의 젠더 정체성이 육체적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들은 이번 법안을 통해 훨씬 자유롭게 자신의 성별을 변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자신의 성을 특별히 정의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역시 성별을 무기재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기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었죠. 예전 <'XY 염색체' 선수의 여성부 경기 출전, 어떻게 생각해?>에서 다루었던 남성과 여성 두 특성을 함께 갖고 있는 간성(인터섹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 법안이 적용되었다고 해서 하루는 여성, 또 그다음 날에는 남성으로 성별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성별 변경은 신청한 이후 3개월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 실제로 적용되거든요. 또 변경된 이후에도 1년 동안은 추가로 성별을 바꿀 수 없어요. 성별 자기결정법이 독일에서 나오게 된 이유는 기존의 성전환법이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성전환법은 1980년에 제정되었는데, 이 법에 따라 법적 성별을 바꾸러면 의사의 심리감정평가 보고서와 법원의 결정문이 필요했어요. 이러한 조건은 성소수자들에게 심리적, 사회적 부담을 안겨주었죠.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데 의학적 소견과 법적 소견이 필요한 것이 인권 침해라는 지적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서 따로 의사의 감정평가, 법원의 심리가 필요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법안이 순탄하게 통과된 건 아닙니다. 위의 그래프는 지난 4월 12일 독일 연방의회 표결 데이터를 나타낸 건데, 찬성이 372표였지만 반대도 251표로 상당했거든요. 성별 자기결정법은 현재 독일의 신호등 연합(사회민주당 + 자유민주당 + 녹색당)이 강력한 지지를 표하면서 통과되었습니다. 녹색당은 전체 118표 중 109표(92.4%)가 찬성표를 던졌고, 사회민주당은 207표 가운데 179표(86.5%)가 찬성을 했죠. 법안이 통과된 이후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성소수자들에게 존중을 표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독일의 가족부 장관도 법안이 통과된 날이 모든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논바이너리에게 매우 특별한 날이 될 것이라고 축하했고요. 녹색당 소속의 니케 슬라위크는 이 결정이 트랜스젠더의 자기결정권을 허용하는 사회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참고로 니케 슬라위크는 독일 의회 선출직으로는 최초의 트랜스젠더 의원입니다. 반면 보수정당 연합인 CDU/CSU(독일기독교민주연합/바이에른기독교사회연합)와 극우 정당(AfD, 독일을 위한 대안)은 반대 의사를 강력히 표시했어요.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 CDU/CSU연합은 87.2%가 법안에 반대할 정도죠. 연합의 도로시 베어 의원은 이번 안건에 대해 "완전히 선을 넘은 터무니없는 이념적 프로젝트"라고 비판했습니다. 보수 정당에서는 이번 법안으로 성별 전환이 자유로워진다면, 화장실이나 탈의실 같은 성별이 분리된 공간에서 성폭력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을 거라 우려하고 있어요. 또한 성별 단위로 이뤄지는 경쟁의 공간, 이를테면 스포츠 영역에서도 성별 변환이 악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Q. 신호등 연합은 왜 신호등 연합이라고 하는 거죠? 1949년 연방공화국 건국 이후 독일에선 현재까지 특정 정당이 단독 집권을 한 적이 없어요. 이는 다당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독일의 선거제도를 통해서 한 당이 절대 다수당이 되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그 결과 70년이 넘는 시간 독일에서는 항상 연립정부가 구성됐어요. 독일의 현 연립정부는 사회민주당, 녹색당, 그리고 자유민주당의 연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때 각 정당의 색상이 적색, 녹색, 황색이라서 신호등 연정이라고 부르죠. 신호등 연정을 구성하는 세 정당에 대해서도 간략히 살펴볼게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인 사회민주당은 노동운동 관련 정당의 모범으로 꼽힙니다. 그리고 녹색당은 세계 곳곳에서 녹색정치를 표방하는 정당 중 가장 성공한 정당으로 평가받죠. 마지막으로 자유민주당은 정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를 대변하고 있어요. 2021년 출범한 신호등 연립정부는 지난해 기준 공약 이행률 64%를 기록할 만큼, 앞서 언급한 '성별 자기결정법' 통과 외에도 정책적으로 많은 성과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최근 경제정책을 두고 갈등을 빚었고, 자유민주당이 현 정부에서 모든 장관직을 사퇴하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신호등 연정이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통과, 영국은 거부... 찬반 나뉘는 성별결정권 이번에 성별 자기결정법이 발효되면서 독일은 유럽에서 12번째로 성별결정권을 보장해 준 국가가 되었습니다. 독일보다 앞서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몰타,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페인, 스위스는 미리부터 성별결정권을 폭넓게 보장해주고 있었는데요. 물론 이러한 흐름이 유럽 전역으로 번지는 건 아닙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성소수자들을 위한 성별결정권 확대를 거부하고 있죠. 가장 대표적인 사레가 영국입니다. 지난 2022년 12월 23일, 스코틀랜드에선 성별 정정 절차 간소화 법안이 통과되었어요. 찬성은 86표였고, 반대는 39표. 기존에 성별을 정정하기 위해선 신체적 성과 성 정체성이 달라서 생기는 '성별 위화감'에 대한 의학적인 진단을 받아야 했고, 지난 2년 동안 선택한 성별로 살아왔음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규 법안이 통과된 이후부터는 의학적 소견 없이 본인의 선택만으로 성별 정정이 가능해졌어요. 성별 정정이 가능한 연령도 기존 18세에서 16세로 낮추었고요. 그런데 영국 정부가 스코틀랜드의 해당 법안을 두고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영국에는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자치의회가 존재합니다. 각각의 자치 의회는 자체적으로 의료나 교육, 환경 분야의 법안을 마련해 적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영국 정부가 궁극적인 사법권을 가진 영역에 한해선 영국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죠.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의 성별 정정 법안이 영국 전역의 평등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영국 정부가 스코틀랜드 자치의회에 거부권을 행사한 건 자치의회가 출범한 이후 이번이 처음입니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영국 정부가 트랜스젠더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했어요.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스페인에서도 성별 자기결정법을 두고 찬반 논쟁으로 뜨거웠습니다. 유럽에서는 찬반 논쟁이 뜨겁지만, 남미로 가면 성별 자기결정권은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권리입니다. 법적 증거, 의료 판단 없이 성별결정권을 보장해 주는 국가는 유럽 12개국을 포함해서 21개국 정도로 정리되는데, 그중 남미 국가는 6개국(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우루과이)이나 포함되어 있거든요. 특히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트랜스젠더에게 성별 자기결정권을 보장해 주었어요. 아르헨티나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12년에 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에 따라 성별 정정 절차에 별도의 요건이 필요치 않게 되었죠. 2023년 11월 기준으로 아르헨티나 국가인구국 데이터를 살펴보면, 현재까지 모두 1만 7,826건의 성별 변경이 이뤄졌어요. 성별 정체성 법안이 제정되었을 당시엔 선택가능한 성별이 남성과 여성 두 가지뿐이었는데, 2021년 새로운 시행령에 따라 성별 정체성을 나타내지 않을 때엔 X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온전한 개인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성정체성이 어떤지에 따라서 존중에 차이가 생겨선 안 되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별로, 또 국가별로 트랜스젠더 인권의 격차가 존재하죠. 그리고 트랜스젠더 인권이 더 보장된 국가에서는 그들의 성별 선택권을 더 폭넓게 보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로벌 리서치 기업, 입소스에서 진행한 성소수자 관련 여론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는데요. 입소스의 <LGBT+ PRIDE 2023>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주요 30개국을 대상으로 성소수자 인권 이슈를 조사했는데,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에 속한 국가들은 친 트랜스젠더 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높게 나왔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나 동유럽, 영국, 미국에서는 낮은 경향을 보였죠. 가령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식별하는 성별에 해당하는 공공화장실을 이용해도 될까?"라는 질문에 30개국 평균 55%가 동의했습니다. 칠레는 동의한다는 의견이 60%로 평균을 넘긴 반면, 우리나라는 46%였고 영국과 미국은 40%만 동의했습니다. (2편에 계속)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마부뉴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6136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이수
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마부뉴스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1편에서는 김천시의 김밥축제, 구미시의 라면축제 등 다양한 지역 축제들이 생활인구를 늘리고 지역의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이런 축제만으로 과연 지방이 안고 있는 지방 소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2편에서는 지방 소멸의 현실과 함께 그 해결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체류인구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소멸위험지수를 통해 우리나라 지방의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지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지자체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현실이 된 지방 소멸... 소멸을 막기 위한 노력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생긴 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입니다. 10년 사이에 대한민국의 현실이 되어버렸죠. 지방 소멸은 우리나라보다 일찍부터 고민을 시작한 일본에서 만들어졌어요. 일본의 전 총무상인 마스다 히로야는 2014년 5월, 당시 추세로라면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은 소멸한다는 '마스다 보고서'를 발표했는데요. 여기서 마스다가 처음으로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마스다 히로야는 지방 소멸과 함께 이른바 '소멸위험지수'를 제시했어요. 이 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와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를 비교하는데, 숫자가 크면 소멸 가능성이 떨어지고, 숫자가 작으면 소멸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볼 수 있죠. 마부뉴스는 이 소멸위험지수를 가지고 2024년 현재(10월)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을 비교해 봤습니다. 10년 전 대한민국의 소멸위험지수는 1.07로 계산됩니다. 등급으로 분류하면 소멸 위험이 없는 정상 지역이죠. 전국 17개 광역지자체로 비교해 보면 1이 넘는 정상 지역은 모두 7곳. 그중 울산은 1.5를 넘겨서 '소멸 저위험'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었어요. 더 잘게 쪼개서 시군구 단위로 보면 총 252개 시군구 중에 소멸 저위험 지역이 36곳, 정상 지역은 77곳으로 분석됐고요. 그렇다면 2024년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지도에서 하늘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10년 사이에 현저하게 줄어든 것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소멸위험지수는 0.59. 10년 사이에 절반 가까이 줄어들면서 소멸 주의 단계에 다다랐죠. 광역지자체별로 봐도 정상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은 세종특별자치시 딱 한 곳뿐입니다. 시군구 단위로 봐도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소멸 저위험 지역은 삼성 계열사 사업장이 모여 있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딱 한 곳뿐이죠. 소멸위험지수가 1 이상 1.5 미만인 정상 지역도 9곳에 불과합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지방 소멸이 광역시에도 번지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요. 10년 전에는 광역시 중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곳은 인천의 강화군과 옹진군 두 곳뿐이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엔 모두 21곳으로 늘어났어요. 그중에선 부산이 11곳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10년 전 소멸 저위험으로 분류되었던 울산도 지금은 2곳이나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합니다. 정부에서도 심각해지는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생활인구 데이터 집계 사업도 그중 한 가지일 테고요. 이뿐만 아니라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재정을 지원하는 사업도 있습니다. 이른바 지방소멸대응기금이라는 건데, 인구 감소 지역 지자체에 10년간 연 1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죠.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제대로 관리가 되어야 하지만, 정부는 관련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산 전문 연구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에선 일부 예산 집행 내역을 받아 분석해 봤더니, 지적할 지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어요. 일단 예산을 받았지만 제대로 집행하지 않는 지자체가 수두룩했죠. 뿐만 아니라 기금을 활용한 사업의 면면을 보면 과연 이걸로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잘 만든 축제나 행사가 꾸준히 이어진다면 생활인구가 늘어날 수 있겠지만, 일부 사업들은 지속가능한 사업이 아니라 한시적으로 일시적으로 끝나버릴 사업으로 보였거든요.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단기 사업이 아닌 체류인구를 늘릴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저출산 현실을 담지 못하는 소멸위험지수의 한계 소멸위험지수는 여성이 대체 수준의 출산을 할 거라고 가정한 후 계산한 지표입니다. 이때 대체 수준의 출산, 즉 대체출산율은 현재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출산율을 뜻하죠. 현재 세계 대체출산율은 약 2.2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독자 여러분도 알고 있듯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이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입니다. 출생아 수가 8년여 만에 증가한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도 0.71명에 불과하고요. 정리하자면, 소멸위험지수는 대한민국의 저출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수의 연구, 논문 등에서 소멸위험지수가 언급되는 이유는 해당 지표가 인구가 더 이상 늘지 않고 인구 구조가 매우 심각한 형태의 지역이 많다는 걸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이벤트'가 아닌 '관계성' 일본에서는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관계인구'라는 인구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생활인구의 시초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2018년 당시 일본은 자연적으로 인구 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사회적 인구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특정 지역과, 또는 지역 사람들과 다양하게 관계를 맺는 인구에 주목했죠. 한 번 독자 여러분과 특정 도시와의 관계를 상상해 볼게요. 안개가 유독 유명한 (가상의) 도시 이포시와 독자 여러분은 현재 아무런 관계가 없고, 다가올 미래에도 아무런 관계가 없을 거라면? 독자 여러분과 이포시는 그냥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독자 여러분 중에 과거 이포시에 살았고, 혹은 안개를 보러 이포시에 놀러 갔던 적이 있고, 이포시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을 했었다면? 이 경우에 해당하는 구독자는 이포시의 관계인구라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이포시에서의 기억이 좋아서 앞으로 미래에 이포시와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주민에 가까운 관계인구가 될 수도 있겠죠. 일본은 이러한 관계인구를 늘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2019년 당시 일본 정부의 목표는 "1,000개의 지자체가 관계인구를 만들어 내는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였는데,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지자체 중 83.1%가 관계인구 창출을 위한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답변했거든요. 긍정적으로 답변한 지자체가 당시의 목표치를 훌쩍 뛰어넘은 1,453곳이었어요. 일본뿐 아니라 유럽의 인구 정책을 살펴봐도 비슷한 고민 지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20년에 개최된 유럽 통계 전문가 회의에서, 기존의 인구 정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해당 회의에서 언급된 개념이 '계절인구'였죠. 계절인구는 해당 지역의 거주자는 아니지만 지역의 시설과 서비스를 사용할 관광객, 임시노동자, 방문객 등을 포함한 인구를 의미해요. 우리나라의 생활인구, 일본의 관계인구와 비슷한 개념이죠? 이름은 서로 다르지만 유럽과 일본 모두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핵심으로 주목한 건 체류인구가 더 자주 지방에 체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거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지역과 개인과의 연계성, 관계성을 늘리는 정책이 있는 것이고요. 단순히 이벤트로 끝나는 행사로 사람들을 모으는 게 아니라, 사람과 지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김천의 김밥축제와 구미의 라면축제가 앞으로도 체류인구를 잘 끌어모을 수 있을까요? 오늘 준비한 마부뉴스는 여기까지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혹시 기억에 남는 지역이 있나요? 좋은 추억 때문에 다시 또 찾아가고 싶은 지역이 있다면 아래 댓글을 통해 의견을 남겨주세요. 오늘도 끝까지 긴 글 읽어줘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마부뉴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6136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이수
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마부뉴스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뜨거웠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을 알리는 입동이 어느새 오늘입니다. 어제부터 날씨가 불쑥 추워지더니 오늘은 정말로 겨울이 성큼 다가온 듯합니다. 하루 사이에 기온이 10도 가까이 떨어진 만큼 독자 여러분 몸조리 잘하길 바랄게요. 환절기가 되면 때마다 유행하는 감기 걸리지 않게 따뜻한 물도 많이 마시고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겨울이 조금은 춥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찾아오는 눈꽃축제, 얼음축제를 하는 지자체 관계자들 말이죠. 그분들 입장에서는 따뜻한 겨울보다는 추운 겨울이 축제를 운영하기 편할 테니까요. 오늘 마부뉴스에서는 최근 핫했던 지역 축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김천의 김밥축제, 구미의 라면축제 등... 지자체들이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는데요, 왜 지자체들은 이렇게 행사를 유지하고 개최하고 있는지, 마부뉴스가 데이터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하루에만 10만 명 몰린 대박 지역 축제 우선 핫했던 김천시의 김밥축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독자 여러분도 익히 알고 있듯 경상북도 김천(김밥천국 아님)시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김밥축제를 개최했어요. 사실 김천시와 김밥은 관계성이 하나도 없습니다. 김천시의 특산품은 과일, 그중에서도 새콤달콤한 자두거든요. 국내 자두 생산량의 약 20%를 책임질 정도입니다. 2022년에 김천시에서 열린 자두축제에 3일간 3만 5,000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지역 특산물을 살린 축제가 잘 자리 잡고 있었어요. 김천시에선 새로운 축제인 김밥축제를 준비하면서, 자두축제 수준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궤도에 오른 자두축제에 3만 명 정도의 관람객이 참여했으니, 김밥축제는 한 1만 명에서 2만 명 정도 오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김밥 1만 줄을 준비하면서도 이거 너무 많이 만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현실은? 행사 첫날에만 10만 명이 몰리는 대박이 나버렸죠. 김천시 인구가 2024년 10월 기준으로 13만 5,685명인데, 말 그대로 시 인구 수준의 관람객이 축제에 운집해 버린 겁니다. 경상북도의 또 다른 지역축제 맛집인 구미시 얘기도 빼놓을 수 없죠. 구미시에서는 2022년부터 라면축제를 열고 있어요. 김천시와는 달리 구미시는 라면과 연관성이 깊습니다. 구미시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농심 라면 공장이 위치해 있거든요. 신라면의 국내 생산량 중 75%가 구미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죠. 구미시는 시의 라면 인프라를 활용해 '갓 튀긴 라면'을 축제에서 맛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 결과는 역시나 대박이었죠. 2022년 첫 행사에서 이틀 동안 1만 5,000여 명이 참여해 성황리에 종료됐고, 입소문을 탄 이듬해 축제에선 축제 기간 동안 10만 명이 운집했어요. 올해엔 그보다 더 늘어난 12만 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구미 라면축제를 찾았습니다. 두 축제뿐 아니라 전국 곳곳엔 다양한 지역 축제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봄이면 벚꽃 맞이 대표 축제인 진해 군항제가 있고, 겨울엔 대관령 눈꽃축제, 화천 산천어축제도 있죠.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매년 전국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를 관리하고 있는데, 올해는 전국 각지에서 총 1,170개의 지역 축제가 개최될 예정이더라고요. 경기도에서 열리는 축제가 144개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는 경상남도가 135개, 전라남도가 121개로 뒤를 이었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지역 축제 건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7년에 전국에서 개최된 지역 축제는 모두 733개. 하지만 어느새 1,000개가 넘는 축제가 전국에서 열리고 있어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2022년에 감소한 것 말고는 꾸준히 증가하는 흐름이 보이죠. 그렇다면 왜 지자체들은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지역 축제를 더 많이 열고 있는 걸까요? Mission : 지역의 생활인구를 늘려라 우리나라 인구는 2020년 5,183만 6,239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든 것도 문제이지만,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는 것 역시 큰 문제죠. 인구의 감소와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아요. 오히려 수도권 집중은 더 강해지면서 지방은 소멸 위기에 처해있죠. 인구가 쪼그라드는 지역 입장에서는 사실 매우 난감합니다. 일자리를 만들어서 지역의 인구가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도 쉽지 않지만, 설령 정책이 성공해서 인구를 늘리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 영향을 받는 다른 지역의 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요. 각 지자체별로 자신들의 인구를 양적으로 늘리는 데에만 집중하면 일종의 제로섬 게임인 인구 문제에서 지역 간의 불필요한 갈등과 경쟁만 부추기는 꼴이 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생활인구'입니다. 생활인구에는 실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상주인구만 포함되지 않아요. 학교나 직장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 관광으로 방문하는 사람들 등... 체류하는 사람들과 외국인까지 포함해서, 실제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실질적인 활력을 높이는 사람들까지 인구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통계청과 행정안전부에서는 2023년부터 생활인구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구감소지역법’을 통해 법적으로 생활인구의 개념과 기준을 딱 정의해 두고, 인구 감소 지역을 대상으로 월별 생활인구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계산해서 분기마다 공표하고 있죠.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 감소 지역은 모두 89곳. 2023년엔 시범 사업으로 89곳 중에 7곳만 선정해 진행을 했고, 올해부터는 모든 지역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어요. 마부뉴스가 공개된 자료 중 가장 최근 자료인 2024년 6월 데이터를 가지고 시각화를 해봤습니다. 인구 감소 지역 89곳의 생활인구 규모는 모두 2,847만 6,770명입니다. 그중 외국인을 포함한 등록인구는 490만 2,150명이고요, 근무하고 관광하면서 체류하는 인구는 2,357만 4,620명이죠. 체류인구가 등록인구의 약 4.81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군구 단위로 그려진 지도를 보면, 강원도 부근의 인구 감소 지역이 특히 체류인구(주황색)의 비율이 크다는 게 보일 겁니다. 단순히 체류인구 숫자만 비교하면 부산 서구, 동구, 영도구 같은 광역시 내의 인구 감소 지역이 가장 많아요. 하지만 체류인구와 등록인구를 비교해서 비율을 따져보면 강원도가 가장 높게 분석됩니다. 강원도의 체류인구 배수는 무려 7.9배로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높죠. 광역시를 포함한 광역권이 5.5배로 2위를 차지했고, 충청남도가 5.0배, 충청북도가 4.9배로 뒤를 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양양군이 등록인구 대비 17.4배의 체류인구를 기록하면서 배수가 가장 높게 분석됐어요. 물론 어떤 지역은 일자리 통근을 하는 사람이 많고, 또 학교 통학을 위해 체류하는 사람도 많을 수 있어요. 하지만 서핑 성지 양양의 수치에서 알 수 있듯 체류인구의 절대다수는 관광객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에서 줄어든 인구 1명의 소비를 상쇄하려면 연간 숙박 여행객 18명과 당일 여행객 55명의 소비가 필요한 것으로 나왔는데요. 여기에 딱 맞는 게 바로 앞서 살펴본 지역 축제인 거죠. 지역축제는 지역 홍보뿐 아니라 외부 관람객을 정기적으로 유치하면서 체류인구를 늘려 소비를 키울 수 있습니다. 지역 축제 하나 잘 키우면 열 공장 안 부러울 수 있다는 거죠. 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 방문하면 체류인구 체류인구는 통근, 통학, 관광 등의 목적으로 방문해서 체류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체류의 기준은 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 방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루 3시간이 기준이 되는 걸까요? 통계청의 2020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요 활동에 드는 최소한의 시간이 3시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에 소요되는 시간이 3시간 1분, 학습에 소요되는 시간이 3시간 29분, 여가에 소요되는 시간이 3시간 39분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관광공사의 2022년 조사에서 지역별 방문자 평균 체류 시간도 3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인구 감소 지역에 방문한 사람들의 평균 체류시간이 4시간 47분, 인구 감소 관심지역에 방문한 사람들의 경우 3시간 52분으로 집계됐습니다. (2편에 계속)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마부뉴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6136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이수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1편에서는 전 세계 비만 인구가 얼마나 늘었는지, 또 비만 치료제 시장은 얼마나 늘었는지 데이터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전 세계 80억 인구에서 8명 중 1명은 비만일 정도로 비만 인구는 크게 증가했습니다. 비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비만 치료제 시장도 급증했는데요, 2020년 32억 달러에 불과했던 시장 규모가 2023년엔 240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지금부터는 비만 치료제의 이면에 감춰져 있는 비만 불평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비만약 부작용보다 더 큰 문제는 비만 불평등? 비만 치료제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연구도 이어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위고비 같은 비만 치료제가 비만 불평등을 더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하고 있어요. 언뜻 생각하기에 비만은 개인의 노력, 운동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비만인 사람은 의지력이 떨어지고, 식욕을 억제하지 못한 사람으로 치부할 때도 있고요.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만은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유전적인 요인, 호르몬적 요소, 장내 미생물 등 우리가 컨트롤을 할 수 없는 요인들이 비만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운동이나 식사량 같은 요인이 미치는 영향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뿐만 아니라 비만을 관리하기 위해선 식단이 중요한데, 건강에 좋지 않은 식품을 소비할 가능성이 큰 저소득층들이 비만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결과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학력이 낮을수록, 소득분위가 낮을수록 비만의 위험이 높아지는 모습이 여러 국가에서 보고되고 있죠. 가장 대표적인 미국의 데이터를 가지고 살펴보도록 할게요. 혹시 독자 여러분 중에 식품 사막(Food Desert)이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 식품 사막은 건강한 채소나 과일을 먹지 못하고 그 대신 인스턴트식품이나 소다를 많이 먹는 지역을 의미합니다. 미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까 식품 유통이 부족한 시골 지역에서는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대도시 중심부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저소득층들은 채소나 과일을 먹을 순 있지만 가격 부담 때문에 저렴한 인스턴트식품을 먹는 경우가 있고요. 위의 그림은 지난 2022년 국제 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에 올라온 논문 데이터를 가지고 마부뉴스가 그려본 지도입니다. 연구진들은 116만 4,926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평균 197일 동안 총 23억 건의 음식 항목을 기록했습니다. 연구진은 지역에 따라 미국인들이 어떤 식단으로 소비하는지, 또 그 식단이 비만 상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 봤죠. 초록색 지도는 신선한 과일, 채소의 소비 정도를 나타낸 건데, 색이 진하면 진할수록 과일과 채소 식단의 비율이 높은 지역입니다. 지도에서 연한 녹색으로 표시된 곳을 주목해 볼까요? 이 지역에 속한 주는 1인당 GDP가 미국에서 가장 낮은 동네들입니다. 녹색 지도에서는 연하게 표시되었지만,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도는 색이 진하게 표시되어 있죠? 저소득층이 많은 미시시피, 켄터키 같은 주에선 다른 지역들보다 과일과 채소를 적게 먹고, 대신 패스트푸드와 탄산을 더 많이 소비하고, 비만 인구가 더 많은 상황인 겁니다. 지난 1편에서 살펴본 성인 여성 비만율 비교에서도 남태평양 지역이 가장 비만율 상승폭이 두드러졌던 것, 기억날 겁니다. 미국뿐 아니라 국가 단위로 시야를 넓혀봐도 비만은 저소득층, 저소득 지역에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비만 치료제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저소득층일 수 있지만, 현재 판매되는 위고비는 저소득층이 처방받기엔 너무 비쌉니다. 그렇게 되면 위고비를 처방받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고소득층이고, 그들은 비만 치료가 아닌 미용 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충분하죠. 실제 미국 뉴욕의 데이터를 보면, 가장 부유층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비만 치료제를 가장 많이 처방받았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고요. Trilliant Heatalh라는 의료 분석 업체가 뉴욕시 34개 동네를 대상으로 지난 2022년에 비만 치료제가 얼마나 처방되었는지를 분석해 봤습니다. 분석해 보니 가장 높은 처방률을 기록한 지역은 뉴욕에서 가장 부유하고 건강한 동네인 어퍼 이스트 사이드 지역이었죠. 당뇨병과 비만율이 뉴욕시에서 가장 낮은 지역 중 한 곳이지만 지역의 2.3%가 비만 치료제를 처방받았어요. 반면 당뇨병과 비만이 훨씬 흔한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서는 비만 치료제 처방률이 낮았습니다. 가장 처방률이 낮은 지역은 브루클린 동부 구역의 이스트 뉴욕이었는데, 처방률 1.2%로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죠. Q. 미국에서는 비만이 아니어도 비만 치료제를 구할 수 있다? 미국에선 ‘오프라벨(off-label)’ 처방을 통해서 비만이 아니어도 비만 치료제는 물론이고 당뇨병 치료제까지 구매할 수 있어요. 이때 오프라벨이란 의약품을 허가 사항 외 다른 적응증으로 처방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요. 진작에 위고비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졌던 미국에선 오프라벨 처방이 만연히 이뤄졌죠. 위고비를 대신해서 당뇨병 치료제인 '오젬픽'과 '트루리시티'에 대한 오프라벨 처방이 가능했어요. 심지어, 오젬픽은 위고비의 대체제로 널리 사용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을 겪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비만 치료제에 대한 오프라벨 처방이 가능할까요? 우리나라에서도 허가 외 처방이 불법은 아닙니다. 실제로, 소아나 희귀 질환 약제의 경우 오프라벨 처방을 하는 경우가 꽤 존재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식약처의 허가 사항과 다르게 비만 치료제를 사용할 경우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즉, 위고비의 오프라벨 처방이 사용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말이죠. 글로벌 4위 규모의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 비만의 불평등은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됩니다. 작년 3월에 연세대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인데, 연구진들은 청소년건강행태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청소년 비만 유병률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해 본 자료입니다. 분석해 보니 가구 소득이 낮거나 부모의 학력이 낮은 경우, 혹은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비만 유병률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어요. 현재 대한민국의 비만율은 40%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대한비만학회에서 발간한 비만병 팩트시트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대한민국 비만율은 38.4%야. 2021년도와 동일한 수치지만,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비만율은 쉬지 않고 계속 늘어왔죠. 물론 증가세는 멈추었지만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닙니다. 그 사이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은 글로벌 매출 4위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2019년 1,341억 원 규모였던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은 2023년까지 5년 연속 증가해 1,780억 원으로 늘어났죠. 게다가 지난 2월 말부터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하면서 비만 치료제의 비대면 처방도 급증했고요. 대면 처방보다 상대적으로 허점이 많은 비대면 처방이 확대되면서, 비만 치료제에 대한 의약품 오남용이나 불법 유통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 출석한 박정환 한양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비만을 관리하기 위해선 정부가 나서서 종합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비만을 개인의 영역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종합적으로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박 교수는 한 번에 수십만 원에 달하는 비만 치료제가 비보험 영역에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비만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가격을 낮춰야 할까요? 오늘 준비한 마부뉴스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은 비만과 비만 치료제,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불평등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과연 비만 치료제는 비만의 시대를 끝낼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비만 불평등을 가속화할까요? 독자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아래 댓글을 통해 의견을 남겨주면 제작진이 꼼꼼히 읽어보도록 할게요. 오늘도 끝까지 긴 글 읽어줘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마부뉴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6136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이수
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마부뉴스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보통 이맘때쯤이면 동네 곳곳이 단풍으로 물들기 마련인데, 올해는 아직도 나무들이 푸릇푸릇합니다. 서울 기상청에선 표준목의 잎사귀가 색이 변하기 시작해 전체의 20%가 단풍이 들면 서울의 단풍이 시작되었다고 판단하는데 아직 변한 잎사귀의 비율이 20%에도 못 미치고 있다고 하죠. 예년보다 부쩍 따뜻해진 탓에 요즘 나들이 하기는 참 좋은 날씨지만, 단풍 구경하기 어려워서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오늘 마부뉴스는 늦어지는 단풍 대신 찾아온 '이 친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10월 15일,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대한민국에 상륙했죠. 해외에서 워낙 이슈가 많이 된 약이라 국내에 출시된 이후에 관심이 상당이 높은 듯합니다.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주변에서 들어 봤을 겁니다. 가격이 50~80만 원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품절 대란이 이어지고 있다니 대단하죠. 비만을 치료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만 치료제이지만, 그 가격이 너무 비싸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소량이라도 약국에 구비해 두면 바로 동이 나는 상황인지라 정말 비만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구매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고요. 오늘 마부뉴스에선 비만과 비만 치료제, 그리고 그 이면의 불평등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당뇨병 치료제 만들던 회사, 명품 제국을 넘어서다 위고비는 덴마크의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가 만든 비만 치료제입니다. 사실 노보 노디스크는 당뇨병 치료제를 만드는 회사로 유명한데, 어떻게 비만 치료제까지 만들게 된 걸까요? 그걸 알아보기 위해선 노보 노디스크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아우구스트 크로그 박사 이야기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덴마크 출신의 아우구스트 크로그 박사는 생리학 분야에서 다양한 발견을 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어요. 그의 연구 대부분은 부인인 마리 크로그와 공동으로 진행했는데요. 부인이 당뇨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라 어떻게든 그녀를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다행히도 1922년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인슐린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아우구스트 크로그는 부인을 위해 인슐린을 덴마크로 빠르게 도입했고, 부인과 함께 인슐린을 연구하고 생산할 연구소를 만듭니다. 그 연구소의 이름이 바로 노디스크 인슐린 연구소죠. 이 연구소가 지금의 노보 노디스크가 된 거고요. 노보 노디스크는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인슐린 생산량의 52%를 차지할 정도로 당뇨병 치료제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노보 노디스크는 시장 영향력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차세대 당뇨병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등장한 게 바로 '오젬픽'이죠. 오젬픽의 핵심은 '리라글루티드'라는 성분입니다. 이 녀석은 인슐린 분비를 유발하는 호르몬과 비슷한 기능을 하면서도, 호르몬보다 더 우리 몸 안에서 오랫동안 작용을 합니다. 그런데 임상 과정 중에 오젬픽을 맞은 환자들의 대다수에서 체중이 줄어들었다는 소식이 보고된 겁니다. 연구원들은 리라글루티드 성분의 효과를 재분석했고, 알고 보니 이 녀석이 뇌에 포만감을 주고 소화 속도를 늦춰주는 일종의 부작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리라글루티드를 더 발전시켜 우리 몸에 더 오랫동안 남아있는 세미글루티드라는 성분을 개발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 녀석을 갖고 상품화한 게 이번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비만 치료제 위고비죠. 2021년 미국 FDA가 위고비를 승인해 주었고, 출시 이후 말 그대로 대박을 치면서 노보 노디스크의 기업 가치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게 됩니다. 유럽 기업들 가운데 가장 시가총액이 큰 기업은 프랑스의 LVMH였어요. LVMH는 루이뷔통, 디올, 셀린느 등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들을 소유한 명품 제국으로 유명하죠. 그런데 2023년 9월 노보 노디스크는 이 명품 제국을 꺾고 유럽 기업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하게 되죠. 전 세계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비교할 수 있는 companiesmarketcap 데이터를 가지고 그래프를 그려봤습니다. 2024년 10월 29일 기준으로 노보 노디스크의 시가총액은 5,134억 달러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710조 원이 넘죠. 2023년 덴마크의 국내총생산(GDP)이 4,042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559조 원이니 기업 하나가 한 국가의 국내총생산보다 많은 상황입니다. 노보 노디스크가 멈추면 덴마크도 멈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현재 노보 노디스크는 덴마크 경제에 막대한 포션을 차지하고 있어요. 21세기 신종 전염병 비만... 치료제가 판 흔들까? 노보 노디스크가 이렇게 폭발적인 성장세를 갖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약을 판매할 대상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비해 당뇨 환자도 늘어났고, 비만 환자도 늘어났거든요. 올해 3월 WHO에서는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 비만 인구가 10억 명을 넘겼다고 발표했어요. UN이 최근 발표한 세계 인구는 약 82억 명. 그러니까 전 세계 80억 인구 중 8명 중 1명은 비만이라는 거죠. WHO가 이번 발표에서 인용한 논문(<Worldwide trends in underweight and obesity from 1990 to 2022>) 데이터를 가지고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할게요. 데이터를 살펴보면 10억 명의 비만 인구 가운데 소아 비만이 꽤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인 비만 인구는 8억 7,900만 명, 어린이 및 청소년 비만 인구가 1억 5,900만 명으로 소아 비만이 전체의 15.3%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죠. 과거와 비교해서 소아 비만의 증가세가 더 빠르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성인 비만은 1990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지만, 어린이와 청소년 비만은 4배나 증가했거든요. 성별로 구분하면 여성 비만인이 남성보다 35% 더 많아요. 성인 여성 중 비만인 사람은 모두 5억 400만 명이고, 성인 남성은 3억 7,300만 명이죠. 비만인은 여성이 더 많지만 증가 속도는 남성이 더 빠릅니다. 1990년과 2022년을 비교해 보면, 성인 여성의 비만율은 8.8%에서 18.5%로 2배 늘어났지만 성인 남성의 비만율은 4.8%에서 14.0%로 3배 증가했어요.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성인 여성의 비만율이 어떻게 변했는지 한 번 그래프로 그려봤습니다. 체질량지수(BMI)가 25를 넘으면 비만으로 분류되는데, 1990년과 비교해서 2022년에 확실히 늘어난 게 보일 겁니다. 비만 인구의 증가세가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8~9시 영역은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 미크로네시아 소속 국가들입니다. 카리브해,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도 비만 인구 증가세가 다른 지역보다 빠른 것으로 분석됐어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급격히 늘어난 비만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WHO가 작년에 발간한 <2022 유럽 비만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의 성인 59%, 어린이의 3명 중 1명이 비만에 해당할 정도거든요. WHO는 코로나19 이후 유럽의 비만환자 증가세가 전염병과 같은 위협이 있다고 경고했어요. 사실 WHO에선 일찍부터 비만을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흡연과 더불어 21세기 신종 전염병으로 지목하기도 했고요. 2013년 미국의사협회에서도 비만을 질병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비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회, 경제적 비용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요. 비만 합병증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 비만으로 인해 생산성 손실액, 합병증으로 인한 조기 사망으로 생길 수 있는 미래 손실액 등… OECD에서는 늘어나는 비만 인구 영향으로 2020년부터 2050년까지 OECD 회원국들이 평균 3.3%의 GDP 손실을 볼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죠. 노보 노디스크는 자신들이 판매하는 비만 치료제가 비만을 정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노보 노디스크 이후 다른 제약회사도 속속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비만 치료제 시장은 급격히 커지고 있죠. 2020년 32억 달러에 불과한 시장이 2023년 240억 달러로 급증할 정도로요. 글로벌 의약품 시장조사기관인 IQVIA에서는 2028년엔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가 740억 달러까지 늘어나고, 만약 더 많은 국가에서 치료 규제를 푼다면 최대 1,310억 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바라봤어요. 다만 마냥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비만 치료제의 효과가 얼마나 갈 것인지, 또 부작용이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거든요. 참고로 오젬픽과 위고비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살과 자해 충동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EU는 지난해 7월부터 오젬픽과 위고비의 부작용 조사를 시작했는데, 올해 4월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만 치료제,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해외에 이어 국내에서도 비만 치료제 열풍이 불면서 위고비의 효과를 연구한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그중엔 동아시아인을 대상으로 위고비의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한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체질량지수(BMI)가 27kg/㎡ 이상이면서 체중 관련 질환을 두 가지 이상 갖고 있거나, BMI 35kg/㎡ 이상이면서 체중 관련 질환을 한 가지 이상 갖고 있는 한국, 일본 성인 환자 총 401명에게 위고비를 투약 후 그들의 변화를 관찰한 연구 데이터입니다. 68주 차까지 살펴본 결과, 위고비 용량 2.4mg 그룹에선 -13.2% 줄어들었고, 위고비 1.7mg 그룹에선 -9.6%의 체중 감량이 확인됐습니다. 위약 그룹에선 -2.1%의 체중 감량이 확인된 것과 비교했을 때, 위고비의 체중 감량 효과가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단순히 체중을 감량하는 걸 넘어서 복부 내장 지방 면적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어요. 위고비 2.4mg 그룹에선 복부 내장 지방 면적이 40.0%, 위고비 1.7mg 그룹에선 22.2% 감소했거든요. 하지만 위고비를 계속해서 투약할 경우 부작용과 내성이 생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중단할 경우 요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 등 성공적인 연구 결과 뒤에 가려진 이면도 존재합니다. (2편에 계속)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마부뉴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6136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이수
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마부뉴스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1편에서는 일회용품 정책이 어떻게 흘러 왔는지, 또 현재 우리나라의 일회용품 폐기물은 얼마나 많이 배출되고 있는지 그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일회용품 규제 정책이 시행하려다 말고, 또다시 시행하려다 미뤄지면서 국내 일회용품 폐기물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한 해도 줄지 않고 매년 늘어올 정도죠. 지금부터는 우리나라 플라스틱 배출량이 전 세계 국가들과 비교해 얼마나 많은 수준인 건지, 또 플라스틱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전 세계 국가들은 어떤 노력을 펼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세금까지 물려가며 규제에 나선 유럽 플라스틱 폐기물로 골머리를 앓는 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죠. 전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OECD에서 2022년에 발간한 <2060 글로벌 플라스틱 정책 시나리오>에 따르면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2019년 3억 5,300만 톤에서 2060년엔 10억 1,400만 톤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앞으로 줄여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죠. 특히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들 가운데 플라스틱 배출량이 많은 편에 속합니다. 주요 OECD 회원국들의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 데이터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호주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201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은 90.5kg에 달하고 있어요. 1등인 호주(100.1kg)와 큰 차이가 나질 않고, OECD 평균인 42.4kg과 비교하면 2배가 넘습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 우리나라의 일회용품 규제 정책은 계속해서 유예되고 있어요. 정부는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규제가 생기면 부담이 가중된다며 반대 의사를 꾸준히 내고 있죠.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여기에 일회용품 규제까지 늘어난다면 카페나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반면, 다른 나라들은 강력한 규제 정책을 통해 일회용품 줄이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폐기물에 kg당 0.8유로의 세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플라스틱세'까지 도입했어요. 물론 국가별로 플라스틱세가 적용되는 대상과 품목에 차이는 있지만 상당히 강력한 규제를 걸은 건 매한가지입니다. 2021년 7월부터는 일회용품 플라스틱 10가지 품목을 아예 유통되지 않도록 규제하기도 했습니다. 이 10가지 품목에는 플라스틱 용기, 플라스틱 빨대, 플라스틱 면봉대 등이 포함됩니다.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규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부터 적용되는 법안에 따라 비닐봉지, 일회용 식품 용기, 플라스틱 빨대 등 6가지 일회용 플라스틱 품목들이 차츰차츰 제조와 판매, 수입과 수출이 금지될 예정이죠. 2022년 12월부터는 수입과 제조가 금지되고, 2025년까지는 판매가 중지되고, 2025년부터는 수출도 막히게 됩니다. 이런 국가들의 규제들은 강력하지만 그렇다고 소상공인들을 마냥 옥죄는 건 아닙니다. 가령 프랑스는 20석 이상의 식당에만 규제가 적용되고, 독일에서는 80㎡가 넘고 종업원 수가 5명 이상인 경우에만 적용되고 있거든요. 반면 우리나라는 소상공인 보호 필요성을 이유로 정책을 계속 유예하고 있지만, 애당초 대상을 면적 33㎡ 이상인 매장 전체로 잡으면서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규제 대상에 포함되었어요. Q. 다른 나라에서 폐지류 일회용품 규제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어? 지난해 말 환경부는 일회용 종이컵의 실내 사용 규제를 철회하면서 “현재 종이컵 사용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과연 정말 그럴까요? 환경부의 설명과 달리, 프랑스, 독일 등 EU 국가는 전반적인 일회용품 사용 규제에 종이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2023년 1월부터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회용 용기 사용을 금지했는데, 여기서 언급된 일회용 용기에는 종이컵도 포함됩니다. 같은 시기에 독일에선 식음료를 일회용기에 판매하는 매장을 대상으로 소비자에게 다회용기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 시행됐고요. 네덜란드도 지난 7월부터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종이컵을 사용할 경우 0.25유로를 부과하는 등 환경세를 도입했습니다. 지자체 선택에 맡긴 대한민국... 괜찮은 걸까? 정부의 계획대로 법이 개정되면, 앞으로 지자체별로 자율적으로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시행될 겁니다. 세종과 제주에서 진행되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범사업이 현재까지 잘 정착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터라, 전국 적용이 안 되는 건 아쉬운 부분이죠.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COSMO)에서 제출받아 이용구 국회의원실에서 공개한 자료인데, 일회용 컵 회수율이 꽤 높은 수치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봐볼까요? 도입 초기인 2022년 12월에는 일회용 컵 회수율이 세종은 17.8%, 제주는 9.6%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시행 1년 만인 2023년 11월을 보면 세종은 41.9%로, 제주는 78.1%로 상승합니다. 2023년 말 피크를 찍은 제주의 일회용 컵 회수율은 이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50%대를 유지하고 있죠. 세종은 제주보다는 낮지만 40%대를 유지하고 있고요. 특히 제주에서는 지난 4월부터 일회용 컵 5개를 반납하면 종량제 봉투 10L짜리 1장을 제공하는 등 제도를 유지하고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환경단체에서는 이렇게 정책적으로 잘 운영하면 우리 생활에 잘 정착될 수 있는 사업이, 되려 지자체 자율로 하게 될 경우 후퇴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보증금제가 잘 정착되려면 컵 보증금 대상 가맹점이 확대되어야 하는데, 법적 규제 없이 가능하냐는 지적이 큽니다. 2023년 당시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실태조사를 했을 때 파악된 가맹점은 총 679개소였는데, 현재는 625개소로 이미 줄어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제주와 세종의 전체 카페 수와 비교하면 10% 정도밖에 되질 않고요. 당장 지난 6월부터 제주 스타벅스에서 다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등장했는데, 다회용 컵 관리 업체가 사업을 철수한 여파였습니다. 과연 자율적으로 잘 운영될 수 있을까요? 올해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국제플라스틱협약의 마지막 5차 회의가 대한민국 부산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번 부산 회의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뿐 아니라, 그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원료(1차 플라스틱 폴리머)를 줄이자는 논의와 선언이 계획되어 있죠. 이른바 부산으로 가는 다리(Bridge to Busan) 선언인데요, 역설적이게도 개최국인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부산으로 가는 다리 선언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오늘 준비한 마부뉴스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마부뉴스에서는 플라스틱 규제 정책과 현재 배출 상황을 데이터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법적 규제로 플라스틱 생산을 줄여야 할까요? 아니면 자율적인 참여를 통해 줄이는 방향이 맞을까요? 아래 댓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오늘도 끝까지 긴 글 읽어줘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마부뉴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6136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이수
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마부뉴스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가을비가 내리고 난 뒤라 그런지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아침에 부는 바람이 꽤나 매서워서 패딩을 꺼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요. 하지만 조금은 요란해 보일까 봐 꾹 참고 있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는 확실히 추워졌으니까 독자 여러분 모두 감기 조심하길 바랍니다. 어느새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닌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계절이 오는가 봅니다. 카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예전엔 카페 매장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꽤나 강하게 규제했었는데 요즘은 또 안 그런 곳도 있더라고요. 어느 카페에선 여전히 머그컵으로 마셔야 하지만, 또 어느 곳에선 종이컵으로 음료를 마실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 빨대도 어느 순간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고요. 오늘 마부뉴스에선 우리나라의 일회용품 규제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자주 바뀌었는지, 또 그래도 되는 것인지를 데이터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한 해에 배출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또 종이컵은 얼마나 나오는지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현재 대한민국의 일회용품 상황을 분석해 봤습니다. 규제와 유예가 반복된 일회용품 정책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8년 8월에 정부는 환경 보호를 위해 카페와 식당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했어요. 점원이 손님에게 묻지도 않고 일회용 컵을 제공하거나, 머그잔 같이 다회용 컵을 충분히 비치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했었죠. 초기에는 불편함도 많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사람들이 익숙해지자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가 닥쳤고, 전염병이 확산되는 상황에 재사용 컵을 사용해도 되는지 우려가 커지면서 결국 일회용품을 다시 한시적으로 허용했어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갈 무렵, 정부는 다시 일회용품 사용 금지 제도를 시행하려고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배달 앱이 엄청나게 성장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일회용품, 플라스틱 폐기물이 급증했잖아요. 정부는 2022년 4월 1일부터 다시 일회용품 사용 금지 조치를 시행하려고 했지만, 당시 윤석열 당선인은 이 시점을 유예하기로 결정합니다. 결국 2022년 4월이 아닌 2022년 11월 24일부터 사용 금지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죠. 그리고 1년간은 계도 기간으로 운영하면서 과태료를 부과하진 않았습니다. 계도 기간이 마무리되어 가던 2023년 11월, 정부는 또다시 계도 기간을 연장하기로 선언합니다. 플라스틱 빨대는 계도 기간을 2025년까지로 미루면서 사실상 규제에서 벗어났고요, 종이컵은 아예 일회용품 사용제한 품목에서 제외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우리는 오늘날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할 수 있고, 종이컵으로 음료를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회용품 사용 금지 정책과 함께 시행하려 했던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의 흐름도 비슷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아마 어렴풋이 기억날 겁니다. 정부는 2022년 6월부터 전국에서 일회용 컵으로 음료를 구매할 경우 보증금 300원을 내야 하는 제도를 시행하려고 했어요. 구매할 때 낸 보증금 300원은 일회용 컵을 반납하면 돌려받을 수 있었고요. 당시 환경부는 세계 최초로 자원순환보증금 제도를 실시하는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었습니다. 서로 다른 매장에서 구매하더라도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일회용 컵 표준 규격도 정할 계획이었죠. 하지만 이 제도도 바로 시행되지 못했어요. 시행을 딱 한 달 앞둔 2022년 5월, 정부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6개월 뒤에 시행하겠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시행 지역도 전국에서 제주와 세종에서만 시범 시행하는 것으로 축소했죠. 결국 2022년 12월부터는 두 지역에서만 사업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일회용품 폐기물은 쑥쑥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정책이 조금씩 뒷걸음치자 환경단체에서는 비판을 이어오고 있어요. 녹색연합은 환경부가 시행하겠다고 선언한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유예하는 건 공익을 현저히 해하고 있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기도 했죠. 공익감사를 진행한 감사원에서는 환경부 장관에게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전국에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습니다. 환경부도 당시엔 감사원 공익감사 결과를 수용하겠다고 입장을 발표했죠. 하지만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온 한 달 뒤인 2023년 9월, 환경부는 아예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안을 철회하는 결정을 내렸어요. 대신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에 맡기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었죠.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2020년 개정된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시행 주체는 정부, 즉 환경부이고 전국 의무 시행도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지자체 자율로 바꾸기 위해선 법을 바꿔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규제가 사라지면서 대한민국의 일회용품 폐기물은 쑥쑥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플라스틱 폐기물의 상황부터 살펴볼게요. 환경부에서는 자원순환정보시스템을 통해 폐기물 데이터를 공개해주고 있는데요. 가장 최근 데이터는 2022년 자료인데, 2022년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 총량은 무려 1,318만 톤을 넘겼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2010년부터 2022년까지 한 해도 줄지 않고 매년 늘어나고 있어요. 특히 2019년에 직전 해의 배출량보다 급증해서 1,000만 톤을 넘은 뒤 그 증가세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죠. 올해 플라스틱 폐기물 가운데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계 폐기물은 536만 4,600톤으로 역대 통계치 가운데 처음으로 500만 톤을 넘겼습니다. 이러한 증가세라면 2030년에는 가정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647.5만 톤 규모로 늘어나, 2010년과 비교해서 3.6배 늘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문제는 일회용품에 플라스틱만 있다는 게 아니라는 거겠죠. 플라스틱뿐 아니라 일회용 종이컵, 나무젓가락 등 더 많은 일회용품들과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기존엔 일회용품만 따로 폐기물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치가 없어서 플라스틱이 아닌 다른 일회용품의 사용량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5년마다 진행하던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서 가장 최근 조사인 6차 통계에서 처음으로 일회용품을 따로 분류해 조사하기 시작했죠. 조사 대상 품목은 일회용 컵, 나무젓가락, 비닐식탁보, 면도기 등 총 12종입니다. 2022년 기준, 대한민국 국민 한 명이 하루에 버리는 일회용품의 양은 37.32g이었습니다. 1,000명의 사람들이 1년간 버린 일회용품 폐기물은 다 합치면 13톤이 넘죠. 일회용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폐지류였습니다. 폐지류가 전체의 49.0%를 차지했고, 2등은 폐합성수지류 그러니까 폐플라스틱이 41.0%를 기록했어요. 두 개만 합쳐도 전체의 90.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율을 자랑합니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가장 많은 품목은 전체의 28.8%를 차지한 종이컵이었습니다.(2편에 계속)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마부뉴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6136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이수
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마부뉴스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마부뉴스에서는 지난 1편에 이어 안락사 논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편에서는 스위스의 ‘자살캡슐’ 논란과, 현재 안락사를 합법화하고 있는 국가들의 현황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지금부터는 안락사를 두고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이 서로 어떻게 다르게 주장하고 있는지,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보겠습니다. 입장 1. "죽음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안락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입니다. 안락사 도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선택권도 역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고통을 느끼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죽음도 충분히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안락사 관련해서 가장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국가는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한 국가 역시 네덜란드죠. 참고로 네덜란드 제46대 총리를 역임했던 드리스 판아흐르 총리는 부인과 함께 동반 안락사를 선택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위 그래프는 네덜란드 안락사검토위원회(RTE, Regionale Toetsingscommissies Euthanasie)의 자료를 가지고 만든 네덜란드의 안락사 사망 건수입니다. RTE에서는 매년 연간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 보고서에는 안락사 사망 수치가 담겨 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네덜란드 RTE에 보고된 안락사 건수는 모두 9,068건. 전체 네덜란드 사망자 수 16만 9,363명 중 5.4%에 해당합니다. 안락사 신고 건수는 70대가 3,129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는 80대(2,453건), 60대(1,662건) 순이었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2020년 이후 매년 안락사 사망 건수는 최고치를 경신 중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어요. 1967년, 당시 21살의 환자가 수술을 받다가 불가역적 코마 상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담당의사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자고 주장했고, 환자의 아버지는 의사 의견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큰 이슈가 됐죠. 이 사건을 계기로 불가역적 코마 상태에 빠진 환자가 살아 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에 대한 담론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자를 계속 치료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고요. 그러다가 1984년 네덜란드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판결이 이뤄졌습니다. 대법원은 자신의 환자에게 적극적 안락사를 시행한 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어요. 당시 환자는 6년 넘게 자신의 담당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왔는데, 죽기 전 담당의에게 적극적 안락사를 요구했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아들, 그리고 자신들의 동료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뒤 치사량의 약을 투여했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네덜란드는 안락사에 대한 범국가적 조사를 실시합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안락사 법안이 만들어졌고, 2001년 4월 10일 안락사합법화법안이 네덜란드 상원을 통과해 전 세계 최초로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형태의 안락사가 합법화됐습니다. 입법 초기에는 환자가 만 12세 이상일 경우에만 안락사가 허용됐는데, 2023년 4월엔 12세 미만 어린이까지 확대 적용하고 있습니다. 무작정 다 안락사가 이뤄지지는 않고 환자의 고통이 개선의 전망 없이 견딜 수 없는 상태여야 하고, 환자의 안락사 요청이 자발적이며,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어야 하는 등 6가지의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합니다. 네덜란드가 첫 스타트를 끊은 뒤,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서도 적극적 안락사가 합법화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점점 안락사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죠. 캐나다의 경우 늘어나는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유럽에서도 최근 환자의 죽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2021년엔 가톨릭 신자 비율이 높은 스페인에서도 안락사 합법화 법안이 통과됐고, 포르투갈 역시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법안이 통과됐어요.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안락사 합법화 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역시나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해 달라는 여론이 크죠. 영국에서는 현재 의료진이 안락사를 도울 경우 현행법상 살인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영국 하원에서 '조력사망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고 있어요. 프랑스에서도 관련 법 개정을 위한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되는 모습입니다. 입장 2. "안락사보다는 완화 의료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안락사 확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제대로 치료도 받지 않은 채 안락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신질환의 경우 이런 케이스가 경우가 많을 수 있거든요.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은 아직까지 치료가 불가능한지 여부를 충분히 예측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죽음에 대한 환자의 욕구도 일정하지 않아서, 개인의 선택권에만 방점을 둘 경우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치료를 통해서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안락사로 돌이킬 수 없게 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고통도 안락사의 범위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3년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로 사망한 9,068명의 환자 가운데 138명은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죠. 캐나다에서도 정신질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 의회가 아직 보건 체계가 준비되지 않았다며 우려를 표했어요. 왜냐하면 정신질환을 정확히 진단해서 안락사 필요 여부를 판단할 의사 수가 부족했거든요. 결국 정신질환만으로는 안락사를 불허한다는 현재의 조항을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안락사 대신 완화의료 시스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완화의료 시스템은 질병 말기 단계에 있는 환자, 혹은 가족들을 대상으로 고안된 의료 서비스인데,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관리하고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죠. 위의 그래프를 봐 볼까요? 위 그래프는 2015년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소속 분석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의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 데이터입니다. EIU에서는 주요 80개 국가들을 대상으로 죽음의 질을 평가했습니다. 죽음의 질 수치는 각 국가의 의료 서비스와 지역 커뮤니티, 정부 지원은 잘 이뤄지는지, 경제적인 여건에 따라 차이는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출했고요. 2015년 당시에도 안락사가 합법이었던 네덜란드나 스위스의 순위를 보면 그렇게 높지가 않습니다. 네덜란드는 80.9점을 차지해 8위를 기록했고, 스위스는 76.1점으로 15위였죠. 가장 죽음의 질이 높다고 평가된 건 다름 아닌 영국이었는데요. 영국은 100점 만점에 무려 93.9점을 차지했습니다. 영국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분야에서 세계적 선도 국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시한부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운동을 처음 확립한 게 1967년 영국의 의사 시슬리 손더스이기도 하고요. 영국은 이때부터 호스피스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왔습니다. 전국적으로 1,000개의 완화의료 병상이 갖춰져 있고, 약 220개의 독립적인 호스피스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22-23년에 전국적으로 30만 명 넘는 환자와 가족이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니까요. 안락사 합법화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영국의 사례처럼 완화의료 제도가 잘 갖춰진다면, 굳이 안락사를 합법화하지 않더라도 죽음의 질은 충분히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연명의료 중단제도, 벌써 38만 명 환자들이 선택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 결정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제도 시행 이후 연명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환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고요. 시행 이후 10만 명을 돌파하는 데는 2년 5개월이 걸렸는데, 20만 명 돌파에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30만 명 돌파까지는 1년 6개월 걸렸고요. 2024년 9월까지 누적된 환자 수는 37만 9,268명으로 38만 명에 육박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만 적용됩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 60대 척수염 환자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어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는 아니지만, 극도의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의사 조력을 통한 사망을 원하는데 관련 법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죠. 헌법재판소에서 지난 1월에 이 건을 본격적으로 다뤄보기로 결정한 만큼, 조력자살이나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18일부터 헌법재판관 3명의 자리가 비게 돼서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은 있어요. 정부는 연명치료결정제도뿐 아니라 호스피스와 완화의료에 대한 제도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호스피스 이용률로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2008년엔 7.3%에 불과했던 이용률은 2023년엔 25.0%를 기록할 정도죠. 호스피스 기관을 이용한 환자 가족들의 만족도도 90.0%를 넘게 기록할 정도로 높게 조사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유럽완화의료협회에서는 인구 100만 명당 최소 50개의 완화의료 병상이 있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으로 인구 100만 명당 31개에 불과하거든요.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입원 대기 중에 사망하는 환자들도 많죠. 그래서 정부는 2028년까지 호스피스 전문기관을 2023년 188개소에서 360개로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용률 역시 50%까지 끌어올리려고 하고요. 아직 우리나라의 완화의료 인프라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고, 적극적 안락사 합법화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은 지금부터라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제도가 부족한 상황에서 안락사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스위스로 떠나 조력사망을 선택하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아시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의 도움을 받아 가장 많이 사망했다고 하니 서둘러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고통으로 힘든 삶을 이어오는 환자에 대해선, 죽음 역시 환자의 선택권으로 보장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호스피스와 완화 의료 시스템을 통해 죽음이 아닌 치료로 삶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할까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아래 댓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은 안락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오늘 준비한 마부뉴스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도 끝까지 긴 글 읽어줘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마부뉴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6136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