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의 간극을 데이터로 줄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떡볶이와 야구, 그리고 영화를 좋아합니다.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잡니다. 올여름, 정말 덥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죠. 비가 오더라도 더운 기운은 가시지 않고 푹푹 찌는 날씨가 마치 사우나에 들어온 듯한데요. 지금 여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경고가 현실이 되는 것 같아 두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태양을 가려버리면 어떨까?" 오늘 오그랲에서는 끓어오르는 지구를 식히기 위한 과학자들의 위험하지만 어쩌면 매혹적인 도전인 '지구공학' 이야기를 5가지 그래프로 살펴보겠습니다. 끓어오르는 한반도... 이게 진짜 여름 맞나요? 밖을 조금만 돌아다녀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7월 날씨는 '폭염'의 연속이었습니다. 입추가 지나긴 했지만 한낮에는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죠. 기상청에서는 최고기온이 33도가 넘으면 '폭염'으로 분류하는데, 실제로 점점 폭염일수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1973년부터 2025년까지 여름철의 폭염일수를 그려봤습니다. 일단 최악의 폭염으로 기억되는 1994년과 2018년의 데이터가 눈에 띄죠. 2018년이 전국 평균 폭염일수 31.0일로 역대 1위고요, 1994년이 28.5일로 2위입니다. 흐름을 보면 알겠지만, 점점 폭염일수가 우상향 합니다. 연대별로 끊어 보더라도 그 평균치는 증가하고 있죠. 1970년대 폭염일수는 평균 9.1일이었는데, 2010년대엔 14.0일, 2020년대엔 14.4일로 크게 늘었어요. 낮에만 덥냐, 그것도 아닙니다. 더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면서, 이제는 열대야 없는 여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여름밤은 더운 게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저녁과 밤에도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이면 열대야로 분류되는데, 지난 7월 서울의 밤은 한 달 중 23일이 열대야였습니다. 이 기록은 서울의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최다 기록이죠. 지난 7월 열대야는 지역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남쪽의 서귀포에서도, 또 동쪽의 강릉에서도 열대야는 기승을 부렸어요. 올해 서귀포의 7월은 31일 중 27일이 열대야였고요, 강릉에선 밤 기온이 30도 넘게 유지되는 '초열대야'가 4번이나 관측될 정도였죠.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응급실을 찾아온 온열질환자 규모도 크게 늘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일찍부터 더위가 찾아오면서, 질병관리청에서도 평년보다 빠르게 온열질환감시체계를 운영했어요.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를 통해 올해 온열질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8월 5일까지 전국 응급실에 집계된 온열질환자는 총 3,306명입니다. 최근 5년 사이의 환자 규모와 비교해 보면, 작년과는 1.8배, 2021년에 비해선 2.9배 급증한 모습이죠. 2025년 온열질환자 규모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폭염이었던 2018년과 비견될 정도입니다. 같은 기간 2018년의 온열질환자는 모두 3,329명이었고, 39명이 사망했습니다. 사망자 규모는 올해가 20명으로 더 적어서 다행이지만, 총 온열질환자 규모는 2018년과 큰 차이가 없어요.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열대화... 여전히 줄지 않은 탄소 배출 이렇게 뜨거워진 날씨가 우리나라만 겪는 건 아니겠죠. 우리가 느끼는 폭염은 전 지구에 닥친 기후 위기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NASA가 분석한 자료를 살펴보면, 2024년은 1880년 이래 가장 더운 해였어요. 20세기 평균 기온과 비교하면 1.28도나 높았습니다. 이 평균 기온과 비교해서 지난해 지구가 얼마나 더웠는지를 그려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온 세상이 빨갛죠. 유럽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에선 작년 지구의 온도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서 1.6도 더 높았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최후의 마지노선이었던 1.5도 선이 처음으로 뚫린 겁니다. 하루하루를 산업화 이전 평균 온도와 비교해 보면 작년 366일은 모든 날이 1.25도 높았고, 그중 4분의 3은 1.5도 넘게 뜨거웠습니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서 작년 한 해 1.5도를 넘긴 날은 모두 277일입니다. 재작년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급격한 증가세인데요, 2023년도 1년 내내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1도 넘게 더웠지만, 1.5도 넘게 뜨거워진 날은 175일뿐이었습니다. 지난 2023년,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온난화 시대의 종결을 선언했습니다. 희망의 종결이라면 좋겠지만,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건 지구 열대화 시대죠. 따뜻해지는 'warming'을 넘어서, 펄펄 끓는 'boiling' 시대를 경고한 겁니다. 지난 6월의 포르투갈 모라에선 수은주가 46.6도를 찍었고요, 중국 충칭에선 체감온도가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닥치는 등 전 세계가 폭염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유엔국제사법재판소에서는 이렇게 심각한 기후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기후변화가 단순히 법적 쟁점을 넘어섰고, 지구라는 행성 전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위기라고 강조했죠. 한 해 한 해가 다를 정도로 극한의 기후가 다가오고 있지만, 탄소 배출량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작년 화석연료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사상 최대치를 찍기도 했죠. 1.5도 상승을 제한하기 위해 기후협약을 맺고 전 세계가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 겁니다.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자, 과학자들은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아예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조작해 보자는 거죠. 바로 '지구공학'의 등장입니다. 햇빛을 가려서 온도 상승을 막아보자는 과학자들 1991년,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에서 엄청난 폭발이 발생합니다. 뾰족했던 산은 대폭발로 깎여 나갔고, 그 자리엔 거대한 칼데라가 생겼죠. 화산이 폭발하면서 대기 중에 분출한 화산재는 그 양이 너무나도 많아서 성층권까지 화산재 기둥이 형성될 정도였습니다. NASA에서 분석해 보니 이 화산 폭발로 약 1,500만 톤의 이산화황이 성층권에 분출되었는데,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이 대기 중의 물과 반응하면서 황산 입자로 구성된 에어로졸 입자층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웬걸요, 대폭발 이후 지구 평균 기온이 떨어지는 겁니다. 알고 보니 분화로 만들어진 에어로졸 층이 태양빛을 더 많이 산란시키면서 지표면에 닿는 빛을 줄여준 거죠. 대류권과 달리 성층권에는 대류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서, 한 번 만들어진 에어로졸 층은 수년간 영향을 주었습니다. 화산 폭발 영향으로 2년 가까이 지구 평균 온도를 낮췄고, 그 수치는 무려 0.5도나 됩니다. 과학자들은 피나투보 화산에서 영감을 받아 태양광이 지구에 들어오는 걸 줄여보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지구 단위의 공학적 접근, 지구공학입니다. 그중에서도 태양광에 집중한 분야를 '태양지구공학(SRM)'이라고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화산 분화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방식이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SAI)' 기법입니다. 그 외에도 해양 구름을 밝게 만들어서 태양빛의 산란을 증가시키는 기법(MCB)도 있고, 구름 씨앗을 뿌려 인공 새털구름을 만들어서 지구 복사열이 잘 빠져나가도록 하는 방법(CCT)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허무맹랑한 소리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과학자들이 뛰어드는 학문 분야이자, 점점 더 이 태양지구공학에 자본이 몰리고 있죠. 기후위기는 점점 가속화되고 심해지는데 이산화탄소는 줄지 않고 있으니, 인공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겁니다. 학술정보 플랫폼 'Lens'에 태양지구공학을 검색하면 이렇게나 많이 나옵니다. 1950년부터 현재까지 총 11만 6,055개의 자료가 나와요. 최근으로 오면 올수록 연구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죠. 그 이유는 자본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2년 동안 태양지구공학에 투자된 금액은 연 3,000만 달러를 넘기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누적 투자금액은 1억 9,170만 달러고요. 2029년까지 예정된 투자액이 1억 6,000만 달러가 넘어서 이러한 증가세는 지속될 예정입니다. 투자한 사람들의 면면을 따져보면, 기술 거물들의 이름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단 빌 게이츠는 2030년까지 이 태양지구공학에 총 970만 달러를 투자할 예정입니다. 페이스북의 공동 창립자인 더스틴 모스코비츠는 개발도상국의 태양지구공학 과학자들에게 90만 달러를 투자했고, 구글 부사장 출신의 앨런 유스터스는 하버드 대학교의 지구공학 프로젝트에 기부한 바 있죠. 국가별로 살펴보면 영국이 가장 적극적입니다. 영국의 고등연구발명청(ARIA)은 이 태양지구공학에 5,000만 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921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죠. 위험성이 너무 큰 지구공학... 시민들 몰래 실험 강행? 전 세계 79개국 정상들이 지구온난화에 대비하기 위해 'CW-7'이라는 냉각제를 살포하기로 결의합니다. 시원한 날씨를 되찾길 바라며 이름도 'Cold Weather'에서 따와 만든 냉각제를 2014년에 살포를 하죠. 하지만 CW-7의 부작용으로 지구엔 빙하기가 찾아오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현실이 아니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이야기입니다. 설국열차뿐만 아니라 다양한 SF 작품에서는 인류가 인위적으로 태양빛을 차단했을 때의 위험성을 경고해 왔습니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암흑폭풍작전'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죠. 전문가들도 비슷한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태양지구공학이 실제 인간과 자연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게 거의 없다고 지적합니다. 지구라는 거대한 규모의 시스템을 컨트롤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뒤범벅이 되어있는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조절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실제로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관측되기도 합니다. 지구공학의 한 분야로 볼 수 있는 인공강우. 중국의 충칭에서 폭염을 식히기 위해 인공강우를 실시했는데, 태풍급의 폭풍우가 갑자기 불어닥친 일이 있습니다. 중형급 태풍 수준인 초속 34.4m를 기록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난 거죠. 현지 기상당국은 불어닥친 폭풍우가 인공강우 탓은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요.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건, 태양지구공학 연구 자금의 대부분이 북반구 국가들에게로 간다는 겁니다. 현재까지 태양지구공학 투자가 이뤄진 국가는 모두 34개국입니다. 이 중 북반구 국가 12개국이 받은 투자금은 1억 8,820만 달러입니다. 반면 남반구 국가 22개국은 350만 달러, 전체의 2%에 불과하죠.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한 선진국이 투자를 받고, 또 실험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하고 설득하기 쉬운 정부가 있는 남반구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은 남반구 국가들이 떠안게 될 거고요. 지난 5월엔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태양지구공학 역사상 최대 규모의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아프리카의 시민단체들은 이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연구진을 향해 '아프리카는 실험실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연구진은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몰래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워싱턴 대학의 연구팀은 캘리포니아 알라메다에서 MCB 기법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항공모함 위에서 바닷물을 공중에 분사해 밝은 구름을 만들어 태양빛을 산란시켜 보겠다는 거였죠. 이들은 북미 해안의, 서울 면적의 약 17배에 달하는 해역에 대규모 구름을 생성할 계획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실험을 사전에 고지 없이 진행했다는 겁니다. 알라메다 시의회는 바로 제지에 나섰고, 결국 실험은 20분 만에 중단되었죠. 이후 알라메다 시의회가 재개 여부를 논의했는데, 만장일치로 실험을 허가하지 않았어요. 워싱턴 대학뿐만 아니라 과거 하버드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당시 하버드에선 성층권에 분필 가루의 주 성분인 탄산칼슘을 방출해서 실험을 진행하려 했습니다. 스웨덴에서 첫 실험을 진행하려 했으나, 주민들과 여론의 반대가 심해 프로젝트가 취소된 바 있죠. 많은 과학자들이 검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일부 연구진은 실험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태양지구공학에 대한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제적으로 태양지구공학에 대한 비사용 협정을 요구하는 서한에 서명하기도 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유엔환경총회에서도 이 기술을 규제할지를 두고 합의를 시도했지만, 불발되기도 했죠.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지구공학'이라는 카드까지 꺼내 든 과학자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명확한 검증도 없는 채로, 시민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몰래 실험을 강행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더 중요한 것은 태양빛을 잠시 가리는 이 기술이 탄소 배출을 줄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할 겁니다. 점점 더 극한으로 치닫는 기후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확실한 기술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하루라도 빨리,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우리 모두의 구체적인 행동이 아닐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기후통계분석-폭염일수 | 기상청 - 2024년 여름철 기후특성 | 기상청 -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운영 결과 | 질병관리청 - 2024 Was the Warmest Year on Record | NASA Earth Observatory - One Atmosphere: An independent expert review on SRM research and deployment | UN -Seven charts to discover the C3S Global Climate Highlights 2024 report | Copernicus Climate Change Service - Scholar Analysis - Solar Radiation Modification | Lens - SRM Funding Overview | SMR360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최근 한 동영상이 이슈가 되었죠? 지게차에 이주노동자를 랩으로 꽁꽁 묶고 위험한 행동을 하며 집단으로 괴롭혔던 사건인데요, 대통령까지 나서서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자 명백한 인권유린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잘못된 처우와 인권 침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최근엔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서울-광명 고속도로 연장 공사 현장에서 30대 이주노동자가 감전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해 현재까지 의식불명인 상태이기도 합니다. 또 올해 초에도 돼지농장에서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주노동자도 있었고요.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지고 있지만 여전히 차별을 당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오늘 오그랲에서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현실을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경제 떠받치는 100만 명의 이주노동자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규모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나 있습니다. 법무부와 통계청에서는 매년 이민자의 체류 실태와 고용 조사를 진행해오고 있는데요, 이 자료를 통해 대한민국 이주노동자 규모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취업을 해서 돈을 버는 외국인 규모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그 규모가 100만 명을 넘겼죠. 체류 자격별로 살펴보면 비전문취업 비자가 30만 2천 명으로 전체의 30%를 차지해 가장 많았습니다. 이 비전문취업 비자가 앞서 이야기한 지게차 괴롭힘을 당했던, 또 돼지농장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이 받았던 비자입니다. 비전문취업 비자 이야기는 조금 뒤에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요 이주노동자 규모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사실 여기서 잡힌 공식 통계는 말 그대로 공식적인 수치일 뿐이고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더 커집니다. 법무부에서는 작년 한 해에 불법 체류한 외국인의 규모를 약 41만 4천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까지 합치면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 규모는 141만 명을 넘을 수 있어요. 이렇게나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이른바 3D 업종이 대표적이죠. 특정 분야에선 이주노동자 없이는 아예 운영이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중소 제조기업이나, 어업 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정상적인 업무를 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호소하고 있죠. 정부에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각 업종별로 수요 조사를 해서 단순 업무를 담당할 이주노동자 쿼터를 매년 할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발급되는 비자가 바로 앞서 말한 비전문취업 비자입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어서 쿼터를 결정하고 때에 따라서 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이 쿼터제의 변화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산업이 얼마나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죠.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는 비전문취업 비자의 쿼터 규모를 가지고 그려봤습니다. 2009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할당된 규모를 보면 단연 제조업의 비율이 가장 많습니다. 연도별로 보면 특히 2023년과 2024년에 그 규모가 크게 늘었죠? 이 시점엔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조선업에서도 인력이 부족해서 이주노동자 쿼터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데이터만으로 노동력 부족을 파악하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숫자로 잡히지 않는 더 많은 외국 인력들이 이미 일을 하고 있거든요. 작년에 공식 통계에 잡힌 건설업 이주노동자는 총 10만 8천 명입니다. 하지만 건설근로자공제회가 파악한 실제 건설 시장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43만 6천 명으로 4배 더 많아요. 건설 현장에서 만나는 평균 인력 구성비를 살펴보면 한국인이 66.3%, 외국인이 33.7%로 3명 중 1명이 외국인일 정도입니다. 고되고 위험한 일에 사람을 안 쓸 순 없고 하지만 내국인의 지원은 점점 줄어드니 해당 산업의 노동력 부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노동력 부족률은 2.5%인데 그중에서도 운수 및 창고업의 노동력이 가장 부족합니다. '죽음의 알바'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고된 업무인 택배 상하차가 대표적이죠. 그래서 정부에서는 지난 5월에 상하차 분류 직종에 이주노동자의 비전문취업을 허용해 줬어요. 뿐만 아니라 숙박 및 음식점업의 주방 보조와 홀서빙, 호텔 청소원 업종도 새롭게 추가했습니다. 더 많이 떼이고, 더 많이 사망하는 이주노동자 하지만 이렇게 일을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이 직면한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연간 임금체불 규모만 해도 1,000억 원을 넘어설 정도죠. 오그랲 세 번째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2018년 이주노동자가 받지 못한 임금은 모두 972억 원이었습니다. 2019년에 처음으로 1,000억 원을 넘겼고, 작년까지 매년 1,000억 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임금을 받지 못한 전체 노동자 중에 이주노동자들의 비율은 적게는 8%에서 많게는 12%까지 되는데요, 전체 노동자 중 4% 정도가 이주노동자라는 걸 고려한다면 사실상 이주노동자는 내국인 노동자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비율로 임금체불을 겪는다고 볼 수 있어요. 돈도 돈이지만 더 큰 문제는 위험한 환경입니다. 3D 업종에 이주노동자들이 더 많다 보니 이들은 위험한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산업재해는 노동자 모두의 문제이지만 이주노동자에게는 훨씬 더 치명적이라는 거죠.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신청은 매년 늘어나고 있고, 지난해엔 처음으로 1만 건을 돌파했습니다. 문제는 내국인과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겁니다. 2017년 이주노동자의 재해율은 0.75%, 전체 대한민국 근로자는 0.33%입니다. 2023년엔 각각 0.99%와 0.51%로 증가했고요. 대한민국의 모든 노동자들의 재해율이 과거보다 더 높아진 것도 문제지만, 격차를 보면 여전히 이주노동자의 재해율이 2배 가까이 높습니다. 사망자 규모에서도 이 격차는 이어집니다. 2013년 외국인 근로자의 사망만인율은 1.32, 반면 전체 국내 근로자는 0.71로 0.61의 격차가 납니다. 2023년에는 1.21대 0.39로 격차가 0.82로 과거보다 더 늘어났죠. 반복되는 이주노동자의 사망사고 이후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지난 2020년 겨울, 영하 20도 날씨에 농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현행법상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에게 숙소를 제공해야 하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같은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거든요.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이후 제도를 개선해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주에겐 이주노동자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는데 예외조항이 있는 탓에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합리한 일터가 현실이지만 이주노동자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지게차에 랩으로 칭칭 묶인 채 괴롭힘을 당해도, 축산 종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현재 비전문취업 비자를 내어주는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자유롭게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거든요. 고용허가제가 특정 업체에 근로하는 것을 전제로 입국을 허가해 주는 정책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일터를 옮길 수가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나쁜 일터에서 도망칠 자유는 외국인에게 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어요. 사실 이러한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선 이 고용허가제를 두고 몇 차례 우려를 표명하고 개선을 권고했었고요, 국제노동기구 ILO에서도 고용허가제가 강제노동 금지 협약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선 지난 2021년에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고용허가제가 필요하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죠. 이주노동자 없는 대한민국? 미래엔 꿈도 못 꾼다 이주노동자의 필요성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인구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죠. 작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9년 만에 아주 소폭 반등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꼴찌입니다. 현재의 인구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1명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턱없이 못 미칩니다. 2020년 대한민국 인구는 정점을 찍었고 2021년부터 점점 인구는 줄어들고 있죠.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적고, 청년층은 줄어들고, 65세 이상의 고령인구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지난해엔 대한민국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넘어서면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일할 사람이 줄어들고, 부양할 노년층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 활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는 2028년부터 취업자 수도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요 경제성장 전망치를 달성하기 위해선 2032년엔 현재 인구보다 89만 4천 명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7년 뒤 가장 인력이 많이 필요한 산업은 보건복지 영역입니다. 고령화가 점점 더 빨라지면서 해당 직종에 인력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겠죠. 문제는 보건복지 뒤에 있는 산업들입니다. 제조업, 도소매업, 숙박음식업, 운수창고업 등… 이곳들은 고용이 늘어나서 인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인력이 필요한 산업입니다. 단순 제조에 종사할 사람들, 농어촌에서 일할 사람들, 건설업, 광업에 종사할 사람들 다 어디서 구할까요? 결국 이주노동자들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설문을 살펴보면 이주민이 우리나라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것에 65.6%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응답자의 78.3%는 인력을 찾기 어려운 일자리에 이주민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했죠.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요?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대한민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2024년 265만 명을 넘겼습니다. 비율로 따져보면 전체 인구의 5.2%가 외국인인 것이죠. 역대 최고치입니다. 시군구별로 보면 외국인 인구가 20%가 넘는 곳도 있고요, 10명 중 1명이 외국인인 지자체도 전국에 14곳이나 있습니다. 돼지농장에서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 노동자가 일하던 곳이 영암이었는데 이곳 인구의 18.6%가 외국인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외국인들과 함께 지내고, 일하고 있는데 여전히 한쪽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죠. 냉정하게 말해서 앞으로 외국인 노동력 확보는 국가 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구감소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겪는 현실이니까요. AI, 로봇 같은 영역의 고급 인력뿐만이 아니라 기초 산업을 담당할 노동자를 유치하기 위해선 다른 국가들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인구감소가 가장 가파른 우리나라는 그 필요성이 훨씬 더 큰데도 불구하고, 타국의 젊은 노동자에게 건넬 좋은 카드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여전히 이주민에 대한 차별은 만연해있고요. 열악한 숙소를 제공하고, 직장 내 괴롭힘도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인구절벽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이주노동자와의 상생을 통해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현재의 착취 구조를 더 유지하면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을 키우게 될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 '이주노동자'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 통계청・법무부 - 고용허가제 - 연도별 도입쿼터 안내 | 외국인고용관리시스템 - 건설근로자 수급실태 및 훈련수요 조사 | 건설근로자공제회 - 2024년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 | 건설근로자공제회 - 인구동향조사 | 통계청 - 장래인구추계 | 통계청 - 2022_2023년 중장기인력수급전망 및 추가 필요인력 전망 | 고용노동부 -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 실태 및 구제를 위한 연구용역 | 국가인권위원회 - 외국인 근로자 업무상의 재해 현황 분석 | 이민정책연구원 - 산업재해 현황분석 | 고용노동부 - 2024년 국민다문화수용성조사 | 여성가족부 - 2023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 | 행정안전부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미국 기업들의 2분기 실적 발표 시즌이 왔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을 필두로 미국 증시가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죠. 그 영향인걸까요? 개인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액도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여러 기업들 가운데서 최근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단연 '메타'가 아닐까 싶은데요. 최근 해외 빅테크 뉴스를 살펴보면 메타 소식이 가득합니다. 메타가 오픈AI에서 인재를 영입했더라, 이번엔 애플에서 핵심 인재가 메타로 갔더라... 이런 소식이 최근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오그랲에서는 메타가 왜 이렇게 돈을 쏟아부으면서 AI 인재들을 쓸어 담고 있는 것인지, 또 마크 저커버그가 꿈꾸는 메타의 미래는 무엇인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AI 기업으로 탈바꿈한 메타... 주가는 쾌속 상승 SNS 하면 곧 페이스북, 페이스북이 곧 SNS였던 시절이 있었죠. 2010년대는 누가 뭐라 해도 전 세계 이용자들이 페이스북을 즐기는, 그야말로 페이스북의 시대였습니다. 하버드 대학생이었던 마크 저커버그가 어떻게 페이스북을 창업했는지 그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흥행할 정도로 페이스북은 시대를 풍미했었죠. 하지만 2010년대 말부터 그 흐름은 다른 SNS에게 빼앗겨버렸어요. 일단 젊은 이용자들은 인스타그램으로 이탈했고 숏폼을 무기로 등장한 틱톡이 신흥 강자로 무섭게 떠올랐죠. 유튜브의 성장도 영향을 주었고요. 물론 2012년에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10억 달러에 인수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되는 페이스북의 이용자 감소는 풀어야 할 문제였습니다. 당시 저커버그가 선택한 돌파구는 '메타버스'였습니다. SNS 기반의 페이스북은 소셜 플랫폼 기업이다 보니 광고 수익이 절대다수를 차지합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다른 빅테크 기업들과 비교해서 페이스북은 어떤 특별한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성장한 게 아니었죠. 저커버그는 페이스북도 페이스북만의 기술을 바탕으로 테크 기업으로 탈바꿈하려 노력했는데, 그 선택이 바로 메타버스였습니다. 지난 2021년 페이스북의 컨퍼런스에서 저커버그는 90분간 메타버스 이야기만 쉬지않고 할 정도였죠. 메타버스 개발 사업부도 출범시키고 회사 이름도 메타로 바꾸었죠. 메타는 메타버스를 필두로 가상현실, AI 등 차세대 신기술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요? 모두가 알고 있듯이 폭망이었습니다. 메타버스 개발 사업부인 리얼리티 랩스는 만년 적자에 허덕이고 있죠. 그러다가 2022년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챗GPT 3.5가 등장한 거죠. 저커버그는 2023년을 효율성의 해로 선언하고, 인원 감축과 구조조정에 나섭니다. 돈 먹는 하마 메타버스 파트의 인력은 줄이고 그 대신 AI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하죠. 2023년 메타의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저커버그는 메타버스를 7번만 언급했고, 대신 AI를 28번이나 말할 정도였어요. 단순히 말로만 그친 게 아니라 결과물도 내놓았습니다. 2023년 2월에 메타의 LLM인 Llama를 공개한 거죠. Llama가 완벽한 오픈 소스 모델이라고 할 순 없지만 빅테크가 자신들이 만든 모델을 일반 대중들이 쓸 수 있게 공개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많은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후에도 꾸준히 모델을 공개하면서 메타는 오픈소스 진영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죠. AI 기업으로 탈바꿈한 메타는 AI 붐에 힘입어 쭉쭉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로 살펴보시죠. 2023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대표 빅테크 매그니피센트 세븐의 주가 흐름입니다. AI 대장주 엔비디아에 가려진 측면이 있지만 메타의 성장세도 엄청나죠. 미국 증시에서 기술주의 성장세를 주도해 온 이 7개 기업들은 한 몸처럼 움직여 왔는데 올해엔 조금씩 흐름이 나뉘고 있습니다. 먼저 하락 그룹입니다. 2025년 초와 비교해서 마이너스를 기록한 기업은 애플, 구글, 테슬라가 있습니다. 테슬라는 전기차 수요 둔화에다가 일론 머스크 개인 이슈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혁신의 상징이었던 애플은 AI에 제대로 대응 못하면서 연초 대비 13.4%나 하락했죠. 구글은 가지고 있는 AI 기술력 대비 저평가받고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구글 크롬 반독점 이슈가 발목을 잡고 있어요. 반면 엔비디아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는 다릅니다. 4월에 있었던 트럼프의 관세전쟁 난장판에도 불구하고, 세 기업들은 20% 가까이 성장했어요.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체제를 갖추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와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자사 클라우드에 AI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습니다. 메타 역시 메타의 SNS 플랫폼 광고에 AI를 적용하면서 연초 대비 17.5%나 성장했죠. AI 퍼스트 외쳤지만, 성적표는 낙제점? 메타의 AI 투자는 앞으로 더 공격적으로 이어질 계획입니다. 2025년 한 해에만 650억 달러를 투자해서 AI 인프라를 확장하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자본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 하이페리온 이렇게 2개의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을 세웠는데 하이페리온 같은 경우엔 뉴욕 맨해튼 크기만 한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일단 연내에는 엔비디아 GPU 130만 개 구입해서 1GW 규모의 컴퓨팅 파워를 구축할 계획이고요. 인프라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내부 R&D 투자도 크게 늘렸습니다. 지난 2024년 한 해 동안 빅테크 7개 기업의 R&D 투자금액을 살펴보면 메타는 438억 7,300만 달러를 투자해 아마존, 구글에 이어 3위를 기록했습니다. 3위도 낮은 건 아니지만 주목할만한 건 총 이익 대비 R&D 비율입니다. 메타는 총이익의 32.7%를 R&D에 투자했는데 7개 기업 중에 1위이고, 유일하게 30%를 넘겼어요. 그런데 문제는 올해 받아 든 AI 성적표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짤이 돌 정도로 올해 발표한 라마4의 성능이 좋지 못합니다. 메타는 라마, 라마2, 라마3를 거치면서 전반적으로 성능 상승을 이끌어냈어요. 특히 라마3는 다른 폐쇄형 AI 모델을 넘어서는 성능을 보여주면서 오픈소스 모델의 저력을 보여주었죠. 문제는 이 라마4입니다. 라마4는 개발 초창기부터 말이 많았어요. 생각보다 개발 속도가 더디고, 성능 개선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딥시크의 뛰어난 성능이 공개되면서 메타 내부에서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하죠. 우여곡절 끝에 지난 4월에 출시된 라마4. 이 모델을 메타는 LLM 경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LM 아레나에 공개했는데요, 처음 받아 든 성적표는 전체 2등으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부 이용자들이 의문을 제기했어요. 이 경연장에 공개된 모델이랑, 실제 개발자들이 내려받아 사용하는 모델이 다르다는 거죠. 마치 자동차 연비 테스트에는 튜닝된 차량으로 성적표를 받고, 실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차량은 그에 미치지 못한 걸 내놓은 거 아니냐며 비판이 거셌습니다. 게다가 메타가 내부적으로 벤치마크 성능을 부풀린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었어요. 논란이 확산되자 메타의 생성형 AI 총괄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여론을 잠재우려 노력했고요. 튜닝되지 않은, 실제 이용자에게 제공한 모델로 성적표를 그려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라마4의 점수를 보면 50.5점과 43.0점. 주요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오픈AI, xAI, 구글, 앤트로픽에 크게 밀리는 모습이죠. 중국의 딥시크, 미니맥스, 알리바바의 큐원은 물론 대한민국의 업스테이지가 개발한 솔라 프로2 보다도 낮은 수치입니다. 인재에서 돌파구 찾는 메타... AI 리더에 97년생 앉혔다 성적표를 받아 든 저커버그는 이대로 가서는 답이 없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립니다. 그 해결책은 바로 인재였죠. 좋은 AI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일단 모델을 돌리기 위해 필요한 컴퓨팅 인프라가 있을 거고요. 모델을 학습시킬 양질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델을 개발하고 운영할 뛰어난 인재가 필수적이죠. 메타는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아주 공격적으로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 몇 달간 미국의 기술 뉴스를 살펴보면 메타의 인재 채용 소식이 가득할 정도였어요. 메타는 구글 딥마인드, xAI, 앤트로픽 등 출신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사람들은 다 영입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픈AI 인재들을 유독 많이 스카우트하고 있는데 최근 샘 올트먼 인터뷰를 보면 많이 화가 난 모양이더라고요. 1억 달러면 우리나라 돈으로 1,380억 원입니다. 엄청난 금액이죠? 들리는 소문으로는 인재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해 메타가 4년간 10억 달러를 제시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오픈AI의 o1 모델이 한글 암호도 해독할 수 있다는 영상에 나왔던 정형원 박사를 포함해 o1 모델 개발의 핵심 인력들이 메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애플은 이직한 인원의 규모는 적지만 타격이 심각한데요, 애플의 AI의 총책임자였던 루밍 팡이 전격적으로 메타행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인재 채용이 단순히 '쩐'만으로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메타가 자랑하는 건 돈뿐만이 아니거든요. 바로 컴퓨팅 능력입니다. 오픈AI, 앤트로픽, xAI 등 유명한 AI 기업들도 GPU 부족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GPU를 사용해야 하는 사람은 기업 내에 넘쳐나는데 기업이 확보한 GPU는 부족하다 보니 원하는 연구를 못하는 연구진들이 많은 거죠. 그 틈을 메타가 노린 겁니다. 왜냐하면 메타는 꾸준히 GPU를 모아서 주요 기업들 가운데 GPU 물량이 가장 많거든요. 기업들이 발표한 논문을 바탕으로 정리한 데이터입니다. H100 GPU도 메타가 갖고 있는 물량이 35만 개로 가장 많고요. A100 GPU를 살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엔지니어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거죠. "메타로 오면 이전 직장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모델 돌릴 수 있어"라고 말이죠.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건 메타가 스케일AI에 투자했다는 겁니다. 스케일AI는 지난 2016년에 창업한 데이터 라벨링 기업인데요. 데이터 라벨링은 AI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 데이터에 의미 있는 태그나 분류를 추가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메타는 이 기업에 무려 143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을 인수했습니다. 1997년생인 알렉산더 왕은 MIT 대학생 시절에 이 스케일AI를 창업했습니다. 이후 샘 올트먼, 피터 틸로부터 투자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학교는 중퇴를 하고요. 마치 하버드를 중퇴하고 페이스북을 본격적으로 운영한 마크 저커버그처럼 말이죠. 2019년 유니콘 기업 등극을 거쳐 2021년에 알렉산더 왕은 역대 최연소로 자수성가한 억만장자에 등극합니다. 그리고 이번 지분 인수를 통해 메타로 영입된 알렉산더 왕은 메타의 AI 부문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죠. 알렉산더 왕이라는 뛰어난 인재를 영입한 것도 중요하지만 스케일AI가 데이터 라벨링 기업이라는 것이 어쩌면 핵심일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AI 개발 핵심 3요소 중에서 컴퓨팅 능력은 확보된 GPU와 데이터 센터 투자를 통해 늘리고 인재는 자본력과 컴퓨팅 능력으로 쓸어 담고 있으니 마지막 남은 데이터를 스케일AI와 함께 고도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거든요. 슈퍼팀 꾸린 메타, 초지능 AI에서 역전 가능할까? AI 분야에서 날고 긴다는 인재들을 쏙쏙 모은 메타는 이들을 모아서 '슈퍼인텔리전스 랩'을 꾸렸습니다. 슈퍼인텔리전스 랩은 알렉산더 왕이 총괄할 예정이고요. 깃허브의 전 CEO인 냇 프리드먼도 합류해 왕을 보좌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지만 이미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이 슈퍼팀에 합류한 사람들의 명단이 유출되면서 관심을 끌기도 했어요.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는 슈퍼인텔리전스 랩의 연구진 데이터를 가지고 만들어 봤습니다. 일단 유출된 44명의 정보를 바탕으로 이들의 출신 국가를 살펴보면 중국인이 48%로 가장 많습니다. 중국 AI 인재들의 역량이 여기서도 한 번 드러나는 거죠. 출신 회사로 살펴보면 역시나 오픈AI가 36%로 가장 많고요. 뒤이어 구글 딥마인드와 스케일AI 순으로 나타납니다. 이들이 받는 연봉은 1,0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고요.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돈을 받는 슈퍼팀의 연구진들은 라마4 모델은 라마4 모델대로 범용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면서 개선하고, 더 나아가서는 팀의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 이른바 AGI를 목표로 달려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 LLM 모델에서 다른 기업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이상, 메타는 그 너머를 바라보겠다는 거죠. 저커버그는 사내 이메일을 통해 이미 이러한 계획을 밝혔고요. 메타의 계획대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문제는 메타가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여럿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겁니다. 기술 발전도 좋지만 지킬 건 지켜야 하는데 말이죠. 일단 라마4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저커버그가 직접 벤치마크 조작 지시를 내렸다는 내부 폭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메타의 모델 성능 부풀리기에 항의하기 위해 기존의 메타 AI 연구 총괄이었던 조엘 피노가 사임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게다가 예전 오그랲에서도 다루었듯이 메타는 저작권 문제로 소송이 진행 중이죠. 소송 과정에서 공개된 내부 자료를 보면 불법 전자책 데이터를 토렌트로 다운받았다는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직접 다운받아야 했던 메타의 내부 직원들조차도 이건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할 정도였고요. 최근 EU가 공개한 인공지능 실천 강령을 두고도 메타는 가입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이 실천 강령은 AI 모델의 투명성과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격인데 말이죠. 메타의 글로벌 정책 책임자는 이 강령이 기업에게 과도한 규제라고 비판했어요. 기술 혁신과 성장에 있어서 EU의 규제는 장애물이라는 인식인 거죠. 막대한 자본으로 영입한 최고의 인재, 그리고 압도적인 컴퓨팅 파워. 초지능 개발을 향한 메타의 전략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고 거침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벤치마크 조작 의혹과 데이터 저작권 논란, 그리고 국제적인 안전 규범에 대한 외면까지... 이 모든 것이 과연 '혁신'과 '속도'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요? 기술 발전을 위한 맹목적인 속도전은 자칫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인류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저커버그의 약속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 되려면 AI의 안전과 데이터 보호라는 원칙을 놓쳐서는 안 될 겁니다. 오늘 준비한 오그랲 '메타'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 Big Tech's big R&D bill | Trendline - Artificial Analysis Intelligence Index | Artificial Analysis - State of AI Report Compute Index | State of AI Report 2025 - Detailed list of all 44 people in Meta's Superintelligence team | Deedy [@deedydas] X - Meta FY24 result | Meta - Mark Zuckerberg announces creation of Meta Superintelligence Labs. Read the memo | CNBC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잡니다. 과학기술이나 AI 관련된 저희 오그랲 영상을 보면 빠지지 않고 달리는 댓글이 있습니다. 인프라고, 투자고 다 중요한데 결국 문제는 이걸 할 사람들, 즉 인재가 제일 중요하다는 겁니다. 미래의 핵심 인력들이 이공계가 아닌 의대를 향하는 상황은 대한민국의 뼈아픈 현실이죠. 지금 전 세계는 AI, 로봇, 양자 등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다양한 기술 분야에서 조금이라도 더 앞장서서 선점하겠다고 전쟁 중입니다. 이 전쟁의 한가운데엔 '인재 확보'가 있죠. 오늘 오그랲에서는 5가지 그래프로 대한민국 이공계 인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바로 옆 중국의 상황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중국은 공대로 몰리고, 한국은 의대로 몰리고 한여름에 대학 입시 이야기를 하는 게 조금은 일러 보이지만, 중국은 6월에 대입 시험을 봅니다. 중국의 대입 시험은 고시, 가오카오라고 부르는데요 보통 6월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서 진행됩니다. 첫날 보는 과목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영수 이렇게 필수 과목이고요, 이튿날에 보는 건 선택과목인데 중국의 지역별로 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가오카오를 치르고 성적이 나오면 이 성적을 들고 학생들은 이제 대학에 지원서를 냅니다. 그게 6월 말부터 7월 초입니다. 중국 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꿈의 대학교는 속칭 '칭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 이른바 스카이가 있다면 중국엔 칭화대와 베이징대, 칭베이가 있죠. 칭화대는 시진핑 주석의 모교이기도 한데요, 아시아 대학 TOP3, 세계 순위도 20위 권 내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학교로 유명합니다. 리커창 전 총리를 배출한 베이징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칭화대와 더불어 중국 학문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중국의 대학교 순위를 발표해 온 상하이랭킹 데이터를 보면 1위가 칭화대, 2위가 베이징대입니다. 주목할 만한 건 3위인데요, 3위가 저장대입니다. 칭베이와 비교해서 저장대는 저장성 항저우에 위치해 있어서 일종의 지방대로 볼 수 있는데, 최근 중국 내부 평가나 외부 글로벌 평가에서 그 상승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전 세계를 흔들었던 딥시크의 창립자 량원펑이 이 저장대 출신이죠. 저장대의 작년 입결 데이터를 통해 저장대의 성장세의 비밀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그래프는 저장대의 학과별 1차 합격 커트라인입니다 가장 상위 학과를 살펴보면 '주커전컬리지 튜링반'입니다. 튜링반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학과는 컴퓨터공학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1위뿐 아니라 2위는 인공지능, 3위는 로봇공학으로 이공계 학과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어요. 대입점수 상위 10개 학과 가운데 의대는 4위 '임상시험반' 하나뿐입니다. 저장대의 주커전컬리지는 명문대 속의 명문대로 불리는 엘리트 특화 교육 시설입니다. 이런 스타일의 교육은 칭베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칭화대의 '야오반', 베이징대의 '투링반' 역시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갈 수 있습니다. 중국 영재의 반은 칭화대에 있고, 칭화 영재의 반은 야오반에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재만 뽑아서 이들을 대상으로 AI와 양자 정보, 컴퓨터공학을 가르칩니다. 베이징대의 투링반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이번에는 우리나라 상황을 볼까요? 사교육 업체 시대인재의 2024년도 자연계 입시 자료입니다.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 자연계 학과 순위는 의대, 치대, 한의대 이른바 의치한이 휩쓸고 있습니다. 전국 의치한에다가 수의대, 약대를 다 거치고 난 뒤에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과 수리과학, 전기정보공학과가 보입니다. 실제 진학 결과를 보면 지난해 수능 상위 1.38%의 수험생들 모두가 의대, 약대 계열로 진학했어요. 총 488명 가운데 87.4%가 의대를 갔고 나머지 모두는 약대를 갔죠. 상위권 대학에 붙더라도 의대를 가기 위해 등록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작년 수능 수시모집에서 서울대, 연대, 고대 합격자 중 무려 3,888명이 등록을 포기했습니다. 입시 전문가들은 2025년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서 수험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SKY 합격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했고요. 예전엔 전국 수석이 물리학과 선택... 지금은 과고, 영재학교 출신도 의대로 우리나라라고 예전부터 의대 열풍이었던 건 아닙니다. 중국에서 공대가 인기인 것처럼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그랬어요. 조금 시간을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하긴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대학입시 합격 점수 자룝니다. 1985년에 치른 학력고사, 그러니까 86학번의 입결표인 거죠. 이게 조선일보에 나온 입결표고 이게 중앙일보에 나온 입결표입니다. 자연계를 살펴보면 서울대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가 의예과보다 더 점수가 높습니다. 실제로 예비고사, 학력고사 세대의 전국 수석들 중 많은 사람들이 물리학과와 공대를 선택했어요. 1986년 학력고사 전국 수석이 오석태, 이준걸 이렇게 두 분인데요 오석태는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걸은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했죠. 이런 과거 이공계 선호 현상은 당시 국가의 정책과 궤를 같이 합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1960년대 정부 주도의 산업화와 함께 정부는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도 수립합니다. 그리고 1970년부터는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특성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지원을 크게 늘렸죠. 1977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국비유학제도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게 이공계 학생들이었죠.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과학기술인력의 수급 불균형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할 사람은 많이 양성했는데, 기업들이 뽑질 않는 거죠. IMF 이후 이공계 취업난이 커지자 이공계 기피 현상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특히나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약대 선호도가 커졌어요. 의치한에 입학하면 취업 걱정 없이 졸업과 동시에 독점적으로 전문직이 보장되니까요. 수많은 전문직 가운데서 최상위 전문직이라는 사회적 명예도 얻고, 또 고소득도 보장되니까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이공계 특화 고등학교를 나와서도 의대를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과학고등학교와 영재학교는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적으로 세워진 학교입니다. 설립 취지에 맞게 만약, 학생이 의대에 진학하면 불이익을 주고 있어요. 2022년엔 이 페널티를 더 강화해서 의대 진학 시 받는 제재에 동의해야지만 학교에 지원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고와 영재학교 학생들 중 의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계속 생기고 있죠.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3년 동안의 주요 사립대 의과대학 신입생 가운데 과학고와 영재학교 출신자 비율입니다. 3년간 전체 입학 인원 2,006명 가운데 380명 총 18.9%가 과학고, 영재고 출신입니다.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전출을 하거나 학업을 중단한 사례까지 합치면 이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의대를 선택하고 있고요. 과학자가 가장 우대받는 중국... 막대한 투자로 인재 끌어들인다 반면 중국은 이공계 우대 정책이 과거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오카오의 역사를 뒤로 좀 더 돌려서 문화 대혁명 이후 시점까지 가보더라도 그 당시에도 인기 있는 학과가 수학, 물리, 화학 이른바 수리화였습니다. 이런 슬로건이 유행할 정도였어요. 学好数理化, 走遍 天下都不怕 수학, 물리, 화학을 잘 배우면 천하를 돌아다녀도 두렵지 않다 당시 덩샤오핑이 과학과 기술로 중국을 발전시키겠다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었고, 수학자 천징룬이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중국 사람들에게 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은 크게 다가왔어요. 천징룬은 수학계의 난제 중 하나였던 골드바흐 추측을 푸는데 큰 역할을 한 '천의 정리'를 증명한 수학자인데요 문화 대혁명 시기의 힘든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수학 연구만 했던 수학자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명받았던 거죠. 시간을 지금으로 돌려도 중국 정부의 정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AI 시대를 준비하면서 더 많은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죠. 정부도 이공계를 노골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보니 중국의 많은 학생들이 이공계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2022년까지 분야별 학부생 비율입니다. 압도적으로 공학도의 비율이 높죠? 2000년대 그 비율이 줄긴 했지만, 그럼에도 30% 이상입니다. 2010년대 들어선 다시 상승세를 타고 2022년엔 전체 신입생의 36%가 공대에 진학했어요. 대학들도 더 많은 공학도를 뽑기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상하이의 푸단대학교에선 인문계 학생을 기존 30~40%에서 20%까지 줄이고 대신 혁신대학을 세워 공대생을 더 늘릴 개혁안을 발표했어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선 이러한 흐름을 두고 엔지니어가 중국의 새로운 군대로 떠오른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길러낸 인재들은 AI, 드론, 로봇 등 차세대 기술 시장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요. 이런 성장의 기반은 막대한 투자와 인재를 아끼는 중국 정부의 정책에 있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중국의 주요 주석들이 다 이공계 출신들입니다. 시진핑은 화학공학 출신이고요, 후진타오는 수리공학과 출신, 장쩌민 역시 전기기계학과 출신입니다. 이들은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알고 R&D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OECD가 발표한 국내총연구개발비입니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게 바로 중국이죠. 중국은 2023년 미국 총연구개발비의 95%까지 따라왔어요. 이러한 투자는 중국 정부 주도로 이뤄집니다. 정부 소속 기관이 직접 수행한 금액만 따로 보면 중국은 미국의 1.6배 수준을 기록하고 있죠. 이러한 투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과학원'입니다. 중국과학원은 중국 국가기관 중 하나로 자연과학분야 학술기구이자 중국 정부의 자문기구입니다. 과학기술 연구기관 글로벌 랭킹을 따져보면 중국과학원이 항상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연구 능력을 인정받는 곳이죠. 이 과학원에선 수리물리학, 화학, 생명의학, 지구과학, 정보기술과학, 기술과학 이렇게 6개 분야에서 최고로 뛰어난 과학자들에게 원사라는 직책을 부여해주고 있어요. 일단 원사로 뽑히면, 중국 정부는 각종 연금과 연구비를 지원해 주고 의전도 배려해 주는 등 극진히 대접합니다. 국가 최고 수준의 학자를 우대해 드리는 거죠. 2024년 7월 기준으로 총 856명의 원사가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국가의 중차대한 정책을 결정하는 데 조언을 해주고, 그와 동시에 자신들의 연구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공계 인재 부족한 한국... 있는 인재도 빠져나간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있던 이공계 인재마저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인재 유출은 과거부터 문제가 되어 왔었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에서 발표하는 국가별 두뇌유출지수를 보면 우리나라가 2019년에 30위였다가 2023년에 36위까지 떨어졌습니다. 작년에 30위로 다시 회복하긴 했지만 인재 유출이 개선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운 순위죠. 미국으로 나가는 고급 인재들의 규모도 상당합니다. 미국 정부에서는 과학, 교육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고급인력에게 EB 1, 2 비자를 발급해 주는데 2023년 한국인 가운데 이 비자를 발급받은 사람이 모두 5,684명이나 됩니다. 2024년엔 5,847명으로 더 늘었고요. 이걸 인구 규모로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압도적입니다. 인구 10만 명당 EB 1, 2 비자 발급 인원을 살펴보면 2023년엔 우리나라는 11.0명, 2024년엔 11.3명입니다. 일본, 중국, 인도와 비교해서 적게는 8배, 많게는 17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연구력을 인정받은 고급인력들이 이렇게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환경과 대우 때문입니다. 해외에선 국내보다 월등히 좋은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미국은 인재 확보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연봉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메타가 새로 만든 슈퍼인텔리전스 팀이 있는데, 이 팀을 책임질 핵심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기업 인수로만 14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9조 원이 넘는 돈을 썼습니다. 우리나라 과기정통부의 2025년 예산이 18조 9천억 원인데 말이죠. 경제적인 문제는 단순히 자라나는 새싹뿐 아니라 석학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2005년부터 '국가석학'이라는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요, 말 그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적인 석학을 뽑아 지원하는 거죠.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국가석학 1호, 2호가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국가석학 1호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는 정년퇴임 이후 국내 연구처를 찾지 못하다 중국행을 선택했습니다. 중국의 후베이공업대학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이 교수를 영입한 거죠. 후베이공업대는 금액도 금액이지만 1만 6,000제곱미터 면적의 연구소 설립을 주도하는 권한을 이 교수에게 줬습니다. 국가석학 2호인 이기명 고등과학원 교수도 비슷합니다. 마찬가지로 정년퇴임 후 안정적인 국내 연구소를 찾지 못하자 베이징의 수리과학응용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국내 입자물리학 권위자인 김수봉 서울대 교수도 또 나노소재에서 한 획을 그은 홍순형 카이스트 교수도 중국 대학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공계를 가지 않고, 의대를 가는 학생들 국내에서 연구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는 대학원생들 정년 이후 중국으로 옮기는 교수님들까지 이 모든 게 개인의 문제인 걸까요? 2020년 기준으로 근무의사의 평균 연봉은 2억 3,000만 원이고요 같은 시기 이공계 박사 평균 연봉은 9,820만 원입니다. 해외에 나가면 더 많은 돈을 받고 연구를 할 수 있고 중국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연구력만 인정되면 많은 돈과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쟁하고 싶은 기술 선진 국가들을 보며 눈은 저 높이 올라갔는데, 연구진들의 경제적 환경과 연구 환경은 그들과 비교해서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 와중에 지난해엔 R&D 예산이 깎이기도 했고요. 미래 기술 시대를 선점하기 위한 전 세계의 인재 확보 경쟁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 데이터로 확인한 대한민국의 이공계 인재 상황은 이 전쟁에서 우리가 얼마나 불리한 위치에 서 있는지 보여주고 있어요. 설상가상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인구 절벽은 이 위기를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고요. 더 늦기 전에 대응해야 합니다. 최고의 인재들이 의대로 향하고, 어렵게 키운 석학들이 미국과 중국으로 떠나는 것을 더 이상 개인의 선택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될 겁니다. 연구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안정적인 지원, 실패를 용납하고 새로운 도전을 격려하는 문화. 구조적인 환경 개선으로 인재들이 머물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게 모든 해결의 시작일 겁니다.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2025中国大学排名 | 上海软科教育信息咨询有限公司 - 浙江省2024年普通高校招生普通类第一段平行投档分数线表 | 教育部教育考试院 - 2024년도 대한민국 자연계 입결 순위 | 시대인재 - 과별 예상 합격선과 평균 성적 (1986) | 중앙일보 - 내 점수로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나 (1985.12.28.) | 조선일보 - 전국 의과대학 신입생 과학고・영재학교 출신 현황 | 이정헌 의원 국감 보도자료 - Number of Regular Students for Normal Courses in HEIs by Discipline 2001-2022 | Ministry of Educat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 China’s new army of engineers (2025.06.26.) | The Economist - Main Science and Technology Indicators | OECD - Brain drain index | 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 - National Visa Center, Visa Statistics | U.S. Department of State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요즘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드라마 시리즈 글로벌 TOP 10에 들어가면 오징어게임 3가 떡하니 버티고 있고, 영화 글로벌 TOP 10을 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가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미국에서 만든 케이팝 아이돌 애니메이션 영화가 이 정도로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죠. 김구 선생님이 말한 문화의 힘을 이제야 깨닫는 듯 한데요, 오늘 오그랲에서는 이 문화의 힘을 데이터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또 내실은 탄탄한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분석해 봤습니다. 마치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듯한 한국 콘텐츠 먼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겠죠. 이 영화는 한국의 케이팝 아이돌이 악귀들을 때려잡는 영홥니다. 영화를 본 분들은 알겠지만 애니메이션 곳곳에 한국적인 요소가 넘쳐흐르고 있어요. 밥 먹기 전, 식탁에 휴지를 까는 건 기본이고, 어디선가 본 듯한 골목들과 장소가 나오고 민화 '작호도'에서 볼 법한 호랑이와 까치가 등장하기도 하죠. 너무나도 한국적인, 또 한국인들도 때때로 놓칠 전통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애니메이션 영화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먹히겠어? 싶었는데, 웬걸요, 공개 4일 차에 넷플릭스 서비스 국가 41개국에서 1위를 달성할 정도로 대흥행을 했습니다. 케이팝 아이돌이 주인공이니만큼 영화에 등장한 노래들도 인기몰이 중입니다.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의 How It's Done과 Golden, 그리고 5인조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의 Soda Pop과 Your Idol은 모두 3,0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 중이죠. 미국 스포티파이 차트에서는 이 노래들이 순위 경쟁까지 하고 있습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는 사자 보이즈와 헌트릭스의 차트 순위 경쟁입니다. 6월 25일 사자보이즈의 '유어 아이돌'이 TOP10에 8위로 차트인한 이후 꾸준히 헌트릭스의 주요 곡들보다 순위가 앞서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8일에 헌트릭스가 사자보이즈를 밀어내고 정상을 차지했어요. 미국 데일리차트 1위는 케이팝 걸그룹 최초의 기록입니다. 이전 최고 기록은 블랙핑크의 '사워 캔디'가 기록한 3위였고요. 물론 그보다 앞서 사자보이즈의 '유어 아이돌'은 7월 3일과 7월 7일에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이 기록 역시 케이팝 보이그룹 최초 기록입니다.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기록한 3위를 넘어서는 신기록을 세운 겁니다. 이번엔 오징어게임3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국내에선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전 세계적인 흥행성적은 매우 좋습니다. 넷플릭스 최초로 공개 첫날에 93개국에서 1위를 기록했어요. 그리고 이 기록은 7일 연속으로 쭉 이어졌죠.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오징어게임 시리즈가 얼마나 고마울까요? 데이터를 살펴보면 오징어게임 역대 시즌의 수치가 압도적입니다.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는 오징어게임 시즌별 주간 시청자수입니다. 시즌 1이 공개된 3주 차에 주간 시청자수가 무려 6,870만 명을 기록했는데, 이 숫자는 역대 넷플릭스 최고치입니다. 2위는 시즌 2의 공개 첫 주에 찍은 6,800만 명이고요, 3위는 시즌 3는 첫 주 시청자수인 6,010만 명입니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시청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대한민국 콘텐츠의 시청시간 점유율은 8~9%로 압도적인 미국 콘텐츠에 이어 우리나라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일본보다 더 높은 수치입니다. 사실 넷플릭스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드라마, 영화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한국의 힘이 느껴지고 있어요. 두 콘텐츠의 흥행에 한 달 앞서서 또 하나의 낭보가 들려왔죠? 한국 창작 뮤지컬인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연극, 뮤지컬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 토니상을 수상했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사랑을 다룬 한국의 SF 뮤지컬이 작품상을 비롯해 10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 이 중 6개 부문을 석권했습니다. 미국 대중문화계에 가장 권위 있는 상 4개가 있는데요, TV 방송계엔 에미상, 음악계에는 그래미상, 영화는 오스카가 있고, 연극과 뮤지컬에는 토니상이 있습니다. 이 네가지 상의 첫 글자를 따와서 EGOT이라고 부르는데, EGOT을 달성하면 미국 대중문화에 한 획을 그었다고 인정받죠. 전설적인 팝스타 엘튼 존도 EGOT을 달성하는 데 37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번 '어쩌면 해피엔딩'의 수상으로 대한민국이 국가단위로 EGOT을 달성하게 된 겁니다. 1993년에 소프라노 조수미, 2011년에 첼리스트 김기현, 2012년에 황병준 엔지니어가 그래미상을 수상하면서 G를 제일 먼저 달성했고요, 그다음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20년에 외국어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오스카 트로피도 거머쥐었죠. 그리고 2022년에 오징어게임이 에미상을 수상하면서 EGO를 만들었고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연극과 뮤지컬 분야에서 이번에 토니상을 받으면서 EGOT을 완성시킨 겁니다. 이제 해외에 나가서 한국 문화를 접하는 게 더 이상 어깨가 으쓱해지는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해외 길거리에서 케이팝이 흘러나오고, 해외 서점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게 놀랍지 않을 정도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은 커졌습니다. 생활양식까지 바꾸는 '소프트파워' 문화의 힘 이처럼 좋은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로 퍼지면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겠죠? 넷플릭스가 지난 6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미국, 한국, 브라질, 프랑스, 일본, 태국 등 8개국의 1만 1,5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K콘텐츠가 한국의 세계적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 거죠. 한국의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는 사람일수록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 역시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콘텐츠 소비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 음식도 맛보고, 한국의 패션과 뷰티 트렌드에도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학습하고 더 나아가 한국을 직접 방문하는 것으로도 이어집니다. 특히 주목할만한 건 한국의 뷰티 산업입니다. 한국의 문화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의 스킨케어와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거든요. 구글에서 최근 5년간 'skincare'를 검색한 글로벌 이용자들의 연관 검색어를 살펴보면 한국과 관련된 단어들이 많이 보입니다. 아예 'Korean Skincare'라는 단어도 있고요, 미국에서 대박 난 한국 화장품 브랜드, 조선미녀(Beauty of Joseon)와 글로우레시피(Glow Recipe)도 확인할 수 있어요. 이런 관심은 실제 시장의 성장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코스메틱 사업의 성장세를 오그랲 세 번째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전 세계 코스메틱 시장을 주름잡던 곳은 프랑스와 미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장세가 심상치 않죠. 코로나19 판데믹에 이커머스 거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 효과를 톡톡히 보면서 꾸준히 수출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어요. 2020년 미국을 제치고 화장품 수출 점유율 세계 2위에 올랐고, 그 상승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화장품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어났어요. 불닭볶음면 같이 한국의 매운 음식에 도전하는 챌린지 콘텐츠는 이미 일찍부터 유튜브, 틱톡을 가리지 않고 유행이었죠? 참고로 불닭볶음면에 힘입어 삼양식품은 2020년 국내 매출보다 해외 매출이 더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2024년엔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의 3배를 넘어섰습니다. 라면뿐 아니라 만두도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영향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최근 포르투갈 여행을 갔는데 현지 식료품점에서 비비고 만두를 쉽게 구매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대한민국 전체 식품류 수출 규모는 2013년 4조 3,100억 원 규모에서 2023년 8조 6,200억 원으로 2배 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한국 문화의 고점이면 어쩌지? 문화 전반에 걸쳐, 나아가 생활양식에까지 한국의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문화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새삼 놀라게 됩니다. 전 세계 문화콘텐츠 시장은 연평균 5%가 넘게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요, 지금과 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당연히 우리나라의 영향력도 커질 겁니다. 그런데 한국 문화의 이런 강력한 바람이 얼마나 지속될까요? 한편에서는, 지금이 한국 문화의 정점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콘텐츠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으로 전 세계 8위입니다. 문제는 향후 성장 전망치가 그리 밝지 않다는 점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4년 해외 32개국의 콘텐츠 시장을 분석했는데요, 한국의 콘텐츠시장은 향후 5년간 연평균 3.46%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조사 대상국 중 뒤에서 7등으로 상당히 낮아요. 콘텐츠산업의 수출액 흐름에서도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린 모습입니다. 오그랲 네 번째 그래프입니다. 2013년엔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 수출액이 채 50억 달러가 되지 않았었는데, 2019년엔 10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연간 성장률이 크게 꺾였어요. 2023년 수출액 성장률은 0.7%로 최근 10년 중 가장 낮았고, 2024년 역시 1.8% 성장에 그쳤습니다. 우리 문화의 힘이 정체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는 특히 영화계에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전 세계의 영향력 있는 영화인 5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서 21세기 최고의 영화 10편을 뽑아달라고 요청했는데요, 1위가 바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었습니다.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독자가 선정한 순위에서도 '기생충'은 1위를 차지했어요. '기생충' 외에 100위 안에 들었던 한국 영화는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가 있었습니다. 독자들 순위에선 '아가씨'도 포함되었고요. 문제는 이겁니다. 봉준호, 박찬욱 그다음에 올 넥스트 인물이 없다는 거죠. 봉준호, 박찬욱, 거기에 홍상수, 이창동까지 이른바 '봉박홍이' 이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감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두고 영화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올해 칸영화제에 한국 영화 초청작이 한 편도 없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러한 위기론에 불을 지폈습니다. 물론 1차 초청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을 뿐 최종 초청작에는 대한민국 영화 2편이 포함되었습니다.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984년 우리나라 영화가 처음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된 이래로 현재까지 총 137개 작품이 초청되었습니다. 올해 초청작은 딱 두 편 있었고요. 그래프를 보면 적지 않은 한국영화가 경쟁 부문과 주목할 만한 시선 등이 포진된 칸영화제 공식 부문에 초청되어 왔어요. 그 정점은 2009년이었습니다. 당시 박찬욱 감독의 박쥐, 봉준호 감독의 마더,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포함해 장편, 단편, 고전 복원 작품까지 포함해 총 9편이 초청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세가 지금은 꺾였어요. 2010년대 초반 상승세를 보였던 한국영화는 더 이상 칸영화제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케이팝의 위기론도 비슷합니다. BTS와 블랙핑크 다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어요. 실제로 두 그룹이 지난해 그룹 활동을 쉬면서 케이팝 성장세가 주춤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실물 음반 판매량은 2023년 피크를 찍고 2024년엔 20% 가까이 줄기도 했고요.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선봉장이었던 한국영화와 케이팝에서 최근 성장세가 꺾이는 등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한국 문화는 이제 정점을 찍고 내려올 일만 남은 걸까요? 어쩌면 아직 너무 이른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K 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고, 미국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같은 작품이 또 나오지 않으리란 법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오늘 확인한 데이터를 보면 화려한 외형과는 다르게 우리 내부의 동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본 듯한 속편과 리메이크 작품들이 극장가를 채우면서 새로운 이야기는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한국 영화의 칸영화제 초청 실적은 하향세에 접어들었죠. 반면, 일본 영화계의 상황은 다릅니다. 한때 한국영화의 활력과 다양성을 부러워한 일본 영화계는 올해 칸 영화제에 장편 영화만 6편을 올리며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내실이 단단해야, 외부의 관심도 꾸준히 이어질 겁니다. 그 내실은 새로운 시도에서 나올 수 있고요. 어디선가 본 듯한 성공 공식의 반복 대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창작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 Daily Top Songs USA | Spotify Charts - Global Top 10 Non-English Shows | Netflix Tudum - South Korean shows are the most popular non-US content on Netflix | Ampere - 100 BEST MOVIES OF THE 21st CENTURY, NYT - ITC Trade Map - Google trend - 연간차트 기준 Physical 앨범 판매량 |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써클차트 - 2024 해외 콘텐츠시장 분석 | 한국콘텐츠진흥원 -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 | 한국콘텐츠진흥원 - 식품 등 생산액, 출하액, 수출액 통계 | 식품의약품안전처 - 2025년, K-뷰티의 현황과 전망 | 삼성증권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정을 운영할 인사들이 발표되고, 곧 있으면 인사청문회 정국이 시작됩니다. 이미 발표된 인선을 보면 매우 파격적인 인물들도 눈에 띕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던 건 대한민국 과학과 기술, 특히 AI를 이끌어 나갈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오그랲에서는 대한민국 AI를 이끌어나갈 리더들과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소버린 AI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도대체 소버린 AI가 무엇이길래 이번 정부에서 이렇게 파격 인사를 하면서까지 공을 들이는 것인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소버린 AI' 말하던 전문가... 공직으로 전격 발탁 이번 인선 중에서 가장 핫했던 인물은 아마도 초대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된 하정우 수석일 겁니다. 하정우 수석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이후 삼성SDS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2015년 네이버에 입사해 주욱 네이버의 AI를 이끌어온 AI 전문가입니다. 직전까지 네이버 퓨처 AI센터를 이끌면서 네이버의 AI 모델인 하이퍼클로바X를 총괄해 왔죠. 젊은 기업인을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으로 발탁하는, 말 그대로 파격적인 인선이 이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정우라는 인물을 검색했는데요, 1,000만 배우 하정우보다 먼저 검색될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도 주목할만합니다. 배경훈 장관 후보자는 광운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탈레스, SK텔레콤 등을 거쳤습니다. 하정우 수석이 네이버에서 AI를 책임지고 있었다면 배경훈 장관 후보자는 LG에서 AI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2016년에 LG에 합류한 배경훈 후보자는 2020년부터 LG AI연구원을 이끌면서 LG의 AI 모델인 EXAONE 개발을 관장했어요. 대한민국에서 AI 모델을 주체적으로 만들던 기업은 네이버와 LG 이렇게 두 곳이 대표적인데, 이 기업들의 실무 책임자를 전격적으로 공직자로 발탁한 겁니다. 두 사람이 기업 출신의 AI 전문가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또 다른 공통점도 있습니다. 바로 '소버린 AI'죠. 이들이 강조하는 소버린 AI. '자주적인', '주권이 있는'이라는 뜻을 가진 소버린에 AI가 붙은 것으로, 단어 뜻 그대로 각 국가가 주체성을 갖고 만든 AI를 의미합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AI 모델은 우리 문화와는 맞지 않은 정보를 제공해 줄 가능성이 있거든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 국가별로 자신들의 제도와 문화,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는 주체적인 AI를 만들고 운영하겠다는 게 바로 소버린 AI입니다. 단순히 데이터와 AI 학습에서 주체성을 갖는 것을 넘어서서 데이터센터와 같은 인프라, 또 전력망과 에너지까지 AI 전체의 가치 사슬에 기술 주권이 필요하다는 개념으로도 확장됩니다. 소버린 AI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기술 혁신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가트너의 하이프 사이클에서도 그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입니다. 미국의 리서치 기업 가트너에서는 매년 특정 기술의 성숙도를 표현하는 그래프를 발표하는데요, 작년에 발표한 이 사이클에서 소버린 AI는 기술에 대한 기대가 최정점에 오르는 거품기 영역 초입에 있습니다. 이 위치에 있다는 건 이미 일부 기업들은 소버린 AI 개발에 착수하고 있는 반면 일부 기업들은 거품이라 생각하며 아직 관망하고 있다는 건데요. 즉 어쩌면 지금이 소버린 AI에 뛰어드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 사이의 격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할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소버린 AI를 두고 관망하는 국가, 기업들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굳이 글로벌 시대에 국내 기술로만 AI 모델을 만드는 것이 경쟁력 있냐는 거죠. 또 현실성이 있냐는 문제도 있고요. AI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의 모델과 우리나라가 개발한 AI 모델 사이엔 현실적으로 성능 차이가 있는데, 굳이 성능 떨어지는 자국 모델을 쓰고 개발할 바에는 해외에 잘 나가는 AI 모델을 사 오거나, 혹은 협업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겁니다. 게다가 돈을 내지 않고도 대중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오픈소스 AI 모델들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만큼 이런 모델들을 활용해서 개발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이 그래프는 무료로 공개된 오픈소스 모델과 돈 내고 써야 하는 폐쇄형 모델의 성능을 비교한 그래프인데요, 오픈소스 AI 모델의 성능이 나쁘지 않습니다. 가장 성능이 좋은 폐쇄형 모델과 비교해 보면 시차는 존재하지만 점점 줄어들고 있고, 서비스를 만들고 적용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죠. 그런데 말이죠. 최근에 발생한 이 사건 때문에 소버린 AI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갖던 여론이 변하고 있습니다. 유럽이 네타냐후 때리자 이메일 끊어버린 트럼프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형사재판소, ICC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팔레스타인 하마스 군사 지도자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이들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전쟁으로 반인륜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였는데요, ICC에서 서방 동맹국의 현직 지도자가 전쟁 범죄와 반인륜범죄 혐의로 기소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과 미국은 강력히 반발했어요. 지난 2월에 네타냐후가 미국을 방문했는데, 이 시기에 맞춰서 트럼프 대통령이 ICC를 제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죠. 이 행정명령 이후, 제재 리스트에 오른 검사팀의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 계정이 정지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검사들이 사용하던 이메일과 클라우드 서비스가 아예 중단되어 버린 거죠. 이 사건이 유럽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트럼프가 막 나가는 건 뭐 한두 번 일이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렇게 발 빠르게 이행한다? 트럼프가 미국의 기술 패권을 무기 삼아 동맹국에게도 공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자 유럽은 당장 행동에 나섰습니다. 당장 국제형사재판소에서는 업무 시스템 일부를 미국 서비스가 아닌 유럽산으로 교체했죠. 2024년을 기준으로 미국 기업들은 유럽 클라우드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가 21%로 가장 높고, 여기에 2위 아마존의 AWS까지 합치면 38%가 넘죠. 거기에 구글 클라우드, IBM, 오라클 같은 다른 미국 기업까지 더하면 그 비율은 60~65%까지 늘어납니다. 미국 기술 기업에 기대고 있었던 유럽은 이 사건이 터진 후 유럽이 주체적으로 개발한 클라우드 서비스 이른바 소버린 클라우드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나아가 앞으로 개발할 AI에서도 타국에 휘둘리지 않을 소버린 AI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죠. 국제형사재판소가 위치해 있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적극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당장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는 네덜란드 결제 시스템인 iDeal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에 의존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유럽 의회의 의원인 바르트 그루트하위스는 아예 유럽이 자체적으로 사용할 클라우드를 만들자고 촉구했고요, 네덜란드 내의 국회의원들은 정부를 향해 2029년까지 네덜란드나 유럽산 클라우드를 최소 30%는 사용해야 한다고 청원하기도 했습니다. '기술 주권' 뼈저리게 느낀 유럽... 소버린 AI 투자 확대 이 사건 이후 유럽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버린 AI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오그랲 네 번째 그래프는 유럽의 소버린 AI 투자 현황입니다. 일단 영국은 아예 소버린 AI 전담 부서를 설립했고요. 영국의 AI 모델 컴퓨팅 역량 개선에 10억 파운드를 지원할 것이라 발표했어요. 프랑스는 자국의 간판 AI 스타트업인 미스트랄에 공력을 더 들일 계획입니다. 미스트랄의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85억 유로를 투자할 예정입니다. 덴마크는 작년부터 자체 소버린 AI인 게피온에 7억 덴마크 크로네를 투자한다고 이야기했고요, 독일의 도이치 텔레콤은 유럽 최초로 산업용 AI 클라우드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200억 달러를 투자해서 유럽 내에 4개의 AI 기가팩토리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의 발표를 유심히 살펴보면 국가 정상들과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젠슨 황이죠. 엔비디아는 유럽 국가들이 소버린 AI의 필요성을 느끼자 그 니즈에 발 빠르게 반응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젠슨 황은 국제형사재판소와 마이크로소프트 사이의 사건이 터진 직후인 지난달부터 유럽 순방에 나서고 있습니다. 사실 소버린 AI라는 개념 자체가 젠슨 황이 지난 2023년부터 세일즈 하던 개념입니다. 국가별로 언어와 지식, 역사, 문화가 다른 만큼 자국만의 AI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그런 소버린 AI 만들 때 필요한 인프라, GPU는 엔비디아 것 사라고 판촉 행사도 함께 하는 거죠.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가별로 개발한 초거대 AI 모델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인 1,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128개의 모델, 중국이 95개 모델을 개발했어요. 그 뒤를 우리나라와 프랑스, 일본, 독일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순위가 낮은 유럽 주요 국가들도 늘어나는 투자와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앞으로 규모가 더 커질 겁니다. 우리나라도 이에 뒤처지지 않게 지원하려고 하고 있고요. 통계로 보면 우리나라의 소버린 AI 경쟁력이 나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개발한 초거대 AI 모델이 총 14개로 전 세계 3위거든요. 이 14개 모델 중 네이버 모델이 3개, LG가 개발한 모델이 5개입니다. 한국의 소버린 AI를 만든 두 기업의 전문가가 지금 공직에 들어와 있는 것이죠. 점점 더 문 닫는 AI 기술... 소버린 AI가 대안 될까? 이 문서는 작년 10월에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AI에 대한 국가안보각서, NSM입니다. NSM은 안보 관련 지침을 미국 정부 내 각 부처에 전달하는 공식 문건인데요, 과거에 핵전략 사용과 확산 방지 관련해서 진행되던 문건입니다. 이 문서에서 미국 정부는 앞으로 AI 기술을 핵무기와 같은 국가 전략 자산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본격적으로 미국이 자국의 AI 기술을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죠. 마치 핵무기처럼 말이죠. AI에 있어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미국이 앞으로 더 자국의 기술을 보호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트럼프 정부에선 이미 유럽이라는 동맹국을 향해 클라우드 차단이라는 실제 행동까지 보였으니 배타적인 모습이 줄어들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지 모르죠. 게다가 오픈소스 모델의 선두 주자였던 메타가 오픈소스 모델 개발을 그만둔다는 얘기도 솔솔 들려옵니다. 지난달 말에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메타가 그간 오픈소스로 개발하던 모델 Llama를 폐쇄형으로 돌리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가 앞으로 닥쳐올 AI 시대에서 외풍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기술 안보 측면에서라도 소버린 AI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데이터 주권이나 프라이버시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지점이 있습니다. 가령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료 기록과 금융 데이터 같은 민감한 개인 정보가 해외 기업이 소유해도 될까요? 중국 딥시크 쇼크가 터졌을 때, 바로 나왔던 이슈가 내 개인정보가 중국으로 빠져나간다는 데 괜찮을까였거든요. 중국에 내 정보가 나가는 것은 안 되고, 미국은 괜찮다? 점점 더 배타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런 판단도 쉽게 하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국방, 군사 분야에서의 AI 활용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외국 AI 모델에 자국 국방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는 건 위험할 수 있죠. 소버린 AI는 이러한 민감한 데이터를 자국 내에서 처리, 보호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자국의 데이터를 가지고 학습한 만큼 자국의 문화와 가치관을 이해하는 AI라는 강점도 있습니다. 빅테크에서 만든 모델이 아시아 문화를 이해하는 정도와 아시아에서 만든 모델이 아시아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미국과 중국의 모델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각각의 AI 모델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소버린 AI를 포용적 AI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미 이런 모델을 운영하는 국가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가 있는데, 싱가포르는 특히 의료 분야에 집중했습니다. 기존 의료 데이터는 서구인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는 슈퍼컴퓨터 ASPIRE를 활용해서 싱가포르인과 동남아시아인에 특화된 유전적 특징을 분석해서 의료 분야에 활용하고 있어요. 의료, 바이오 데이터뿐 아니라 법률, 문화 등에 소버린 AI가 성공적으로 적용된다면 서로 다른 다양한 문화가 기술에 녹아들 수 있고, 나아가 국가의 공공 서비스와 핵심 산업에서는 AI를 통한 혁신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정부의 소버린 AI에 대한 의지는 확실해 보입니다. 네이버와 LG에서 AI를 이끌던 핵심 인재들을 공직으로 발탁한 것만 봐도 단순한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변화를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죠. 게다가 세계정세의 흐름을 보더라도 소버린 AI의 필요성은 명확해 보입니다. 트럼프의 제재가 유럽이 아닌 대한민국을 향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으니까요 일단 해외 빅테크들과 손 잡았던 우리나라 기업들도 정부의 방향에 발맞춰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KT와 SKT에서는 자체 AI 모델 개발에 다시 힘을 쏟고 있고, 다른 기업들도 해외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물론 소버린 AI가 만능 해결책은 아닐 겁니다. 기술적 역량을 높이기 위해선 막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죠. 하지만 기술 주권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에 우리만의 AI를 갖는다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과 유럽의 약진 사이에서 우리만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 Hype Cycple for Artificial Intelligence, 2024 | Gartner - How Far Behind Are Open Models? | Epoch AI - Notable AI Models | Epoch AI - Europe Cloud Computing Market Size, 2025 - 2034 | GMI - In Pursuit of Godlike Technology, Mark Zuckerberg Amps Up the A.I. Race | NYT - 글로벌 초거대 AI 모델 현황 분석 (2024년 조사) |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 미국 AI 국가안보각서(AI NSM) 분석 및 시사점 |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박건우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최근 미국 주식시장을 보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원전 기업들이 힘을 받는 모양새입니다. 원전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한다는 소식이 연이어 나오고 있고요. 11일(현지시간)엔 미국의 대표적 원전업체인 오클로가 한국의 한수원과 기술 개발을 위해 MOU를 체결, 공군 기지 전력 공급을 따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역대 최대인 28% 폭등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워런 버핏, 빌 게이츠 같은 큰 손들도 투자를 이어오고 있죠. 한편, 독일과 이탈리아 등 탈원전을 선택했던 유럽 국가들의 상황도 주목해 볼만합니다. 체르노빌 사고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는 유럽 국가들에게 원전의 위험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런데도 탈원전을 선택한 유럽 국가들이 다시 원전으로 돌아서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이런 변화가 생긴 걸까요? 오늘 오그랲에서는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원전의 화려한 귀환과 차세대 원전 SMR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탈' 탈원전에 나서는 전 세계 국가들 유럽은 체르노빌 사고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있는지라 오랫동안 탈원전의 선두주자였습니다. 그런 유럽이 지금 변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탈원전 국가인 이탈리아는 1990년 마지막 원자로가 폐쇄된 지 35년 만에 다시 원전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벨기에도 22년 만에 탈원전 정책을 접었고,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불리는 덴마크도 40년 만에 정책을 뒤집었습니다. 스위스, 스웨덴, 크로아티아 등 다른 유럽국가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사실 유럽의 탈 탈원전은 지난 2022년 그린 택소노미 발표 때 이미 예정된 거였습니다. 당시 EU 집행위원회는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에 ‘친환경’ 딱지를 붙여줬죠. 탈원전 대표주자 독일은 원전의 위험성과 폐기물 문제를 지적하며 반대했지만 유럽의 원전 대국 프랑스에선 원전의 탄소 배출이 적은 점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EU에선 당장 급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원전과 천연가스를 받아들였죠. 탈 탈원전의 속도를 가속시킨 건 최근 발생한 두 사건 영향이 큽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최근 발생한 유럽 정전 사태가 그 주인공이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유럽 국가들에 에너지 안보 문제가 심화됐습니다. 유럽 각국은 탄소 중립 목표를 지키면서 동시에 에너지 공급 안전성을 확보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어요. 친환경 에너지도 좋지만 여전히 변동성이 커서 안정적이지 못한 약점이 있으니까요. 거기에 더해 최근 스페인을 비롯한 대규모 정전 사태까지. 정전 사태의 원인이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재생에너지에 그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스페인 당국과 전력 회사들은 이번 정전 사태가 재생에너지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바로 반박을 했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건 프랑스와 맞붙었던 독일마저도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겁니다. 최근 독일의 메르츠 총리가 프랑스 측에 손을 내밀었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이제 더 이상 원자력을 재생에너지와 동등하게 대우하는 프랑스 입장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친 원전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미국은 훨씬 더 많은 지원이 원전을 향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가동되는 원전은 모두 94개인데요, 규모만 보면 원전 대국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친원전 국가라고 얘기하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아주 오래전에 지은 것들이기 때문이죠. 사실 미국은 1979년에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를 겪고 난 이후 지난 46년 동안 단 2개의 원전만 추가할 정도로 신중했어요. 이곳에 위치한 보글 3호기와 4호기가 그것들이죠. 그런 미국이 다시 원전 종주국이 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에 원전 관련 4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말이죠. 원전 승인을 가속화하고, 실험용 원자로에 대해선 규제도 완화하고, 원자력 규제 위원회도 개편하고, 산업 투자도 확대해서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량을 현재의 4배로 늘릴 계획입니다. 유럽은 여전히 체르노빌의 상처가 가시지 않았고,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를 겪은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왜 탈원전을 폐기하고 다시 원전으로 돌아간 걸까요? 심지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엄청난 피해를 본 일본마저도 탈원전을 폐기하고 다시 원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여전히 원전에 대한 위험성은 해결되지 않았는데 전 세계가 확 바뀐 이유가 뭘까요? 그 중심에는 차세대 원전이라 불리는 SMR이 있습니다. SMR이 불러올 원전 르네상스? SMR, 풀어보면 Small Modular Reactor로 소형 모듈형 원자로라는 뜻입니다. 기존의 원전과 비교해서 크기가 작고 모듈로 만들어서 현장에서 조립하는 원자로가 바로 SMR입니다. 우리나라가 개발 중인 혁신형 SMR의 부지 규모를 보면 축구장 넓이 수준에 불과합니다. 가장 최근 상업운행을 시작한 한울 원전부지와 비교하면 무려 570배 차이가 나죠. 일반적인 원전은 용량이 1,000메가와트인데 이렇게 작은 SMR은 300메가와트 이하입니다. 애초에 기존의 원전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전력 생산의 경제성을 높이려고 대형화되었어요. 산업화가 고도화되고 그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선택이었죠. 하지만 대형화된 원전은 사고가 날 경우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는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체르노빌이 그랬고, 후쿠시마가 그랬듯이요. 하지만 SMR은 소형이고 모듈형이라는 특징 때문에 기존 대형 원전 대비 안정성이 크게 높아졌어요. 또 기존 사고에서 반복되었던 인간의 실수를 막기 위해 SMR에는 능동형 안전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죠. 기존 대형 원전 대비 안전성도 높아졌죠, 또 소규모 모듈이나 보니 부지도 적게 차지하죠. 원전의 저탄소 특성에 더해 안전성까지 갖춰진 SMR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이 다시 원전을 선택하는 거죠. 앞서 살펴본 탈원전에서 원전으로 돌아선 주요 국가들이 하나같이 얘기하는 게, SMR을 짓고 SMR에 투자하겠다는 겁니다. 당장 독일도 기존의 대형 원전을 재가동할 계획은 없고 SMR에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고, 스웨덴도 SMR을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어요. 국제원자력기구에서는 ARIS라는 걸 만들어서 전 세계 국가들이 어떤 SMR을 설계하고 만들려 하는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스템에 등록된 SMR은 모두 123종입니다. 그중 미국이 30종으로 가장 앞서있어요. 미국 뒤에는 러시아가 22종으로 2위를 차지했고 프랑스와 일본이 13종으로 공동 3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바로 그 뒤인 5위입니다. SMR도 1등인 미국은 일찍부터 SMR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해 왔어요. 2010년 오바마 정부에선 SMR을 저탄소 원자력에너지로 따로 구분해 지원했는데요,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SMR을 기존의 대형원전과 분리해 ‘대체 에너지’에 포함시켰죠. 바이든 정부 시절에도 이러한 투자는 이어집니다. 탄소 중립과 청정에너지 전환을 위한 혁신 기술로 SMR를 설정해 투자와 지원을 꾸준히 해왔어요. 거기에 트럼프의 4종 행정명령까지 더해진 거죠. 정부의 지원과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SMR 기업에 대한 주가도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SMR 상용화에 앞서있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 뉴스케일 파워는 지난 연초와 비교하면 10배 이상 올랐어요. 또 다른 SMR 종목인 오클로 역시 주가가 쭈욱 오르고 있죠. SMR의 주가 상승에는 정부 발 호재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주목하는 또 다른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빅테크의 투자죠. AI 기업들이 SMR에 투자하는 이유 AI 인프라에 빠져서는 안 될 것, 바로 전력이죠. 지난 GPU 편에서 다루었듯이 GPU가 워낙 전력을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GPU가 가득 찬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크게 늘 수밖에 없어요. AI 주도권 싸움에서 빅테크들이 승기를 잡으려면 전력을 확보하는 게 필수입니다. AI 개발도 개발이지만, 동시에 기업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환경 규제를 지켜야 합니다. 이를테면 데이터센터 전력의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식으로요. 하지만 기존의 에너지로는 AI 발전과 탄소 감축, 이 두 개를 같이 가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구글의 탄소배출 현황입니다. 구글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그런데 생성형 AI 붐이 시작된 이후 탄소배출량이 급증했죠. 그 결과 목표치와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2023년 탄소배출 목표치는 6.2 메가톤이었는데, 실제 배출량은 14.3 메가톤으로 계획 대비 130% 이상 넘어버렸죠. 구글만 그런 건 아닙니다.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AI 개발 투자가 늘어난 이후 탄소 배출량이 30% 늘어났어요. 빅테크들이 원전 특히 SMR에 투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원전은 다른 화석 연료와 비교해서 탄소 배출량도 적으니 탄소 감축 목표도 달성하고 또 재생에너지와 비교해서 훨씬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니 데이터센터용 에너지로는 알맞은 거죠. AI 기업들에게 전력 확보는 사활을 거는 일이 되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심지어 스리마일섬 원전과 20년 장기 계약을 맺었습니다. 1979년에 사고가 난 건 원전 2호기였는데, 사고 이후 원전 1, 2호기 모두 중단되었다가 1호기만 재가동되었어요. 재가동된 1호기도 2019년에 결국 운영이 중단됐는데, 이걸 되살릴 정도로 긴급했던 거죠. 마이크로소프트뿐 아니라 주요 테크 기업들은 최근 1년 사이에 원전과 관련된 발표를 잇달아 내놓고 있어요. 가장 최근엔 메타도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을 맺은 콘스텔레이션과 20년 장기 계약을 맺었습니다. 구글은 카이로스파워라는 SMR 기업과 협력했습니다. 카이로스파워는 SMR 설계 초기부터 구글의 AI를 기반에 두고 전력 최적화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아마존은 에너지 노스웨스트와 계약을 체결했고요, 에너지 노스웨스트의 SMR에서 만든 전력 구매 권리를 얻었습니다. 아마존은 2030년대부터 자신들의 데이터센터에 이 SMR에서 구매한 전력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앞서 살펴본 오클로는 오픈AI와의 끈끈한 인연이 유명하죠. 오클로의 이사회 의장이 바로 오픈AI의 샘 올트먼입니다. 2014년부터 올트먼이 투자한 오클로는 2027년 SMR을 상업화하기 위해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올트먼이 오클로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는데요, 일각에서는 이게 오픈 AI와의 본격적인 협업 준비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해 충돌 방지 규정을 피하기 위한 선제 조치라는 해석인 거죠. SMR과 함께, 대한민국 AI 도약 가능할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원전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일단 새롭게 들어설 정부는 AI 인프라 투자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AI 데이터 클러스터도 만들어야 하고요, 또 GPU도 5만 장 사 와서 AI 데이터센터에 투입될 예정이죠. 이러한 인프라가 실제 작동하려면? 당연히 많은 전력이 필요하겠죠. 현재 대한민국 에너지 상황을 살펴보면 원전이 30%에 재생에너지는 10%에 못 미칩니다. 석탄, LNG 등 화석연료가 60%가 넘는 상황입니다. 지난 정부가 세운 11차 장기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원전 비중은 2038년까지 35.2%로 확대될 계획입니다. 또한 최소 1기의 SMR을 포함해서 신규 원전도 들어설 예정이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SMR 예산도 편성해서 정책적, 재정적 재원을 집중했습니다. 문제는 지금은 정권이 바뀌었다는 거죠. 일단 지난 대선 토론에서 이재명 당시 후보는 대형 원전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안전성을 지적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원전을 없애야 한다고 얘기한 건 아닙니다. 단순히 탈원전으로 가거나 혹은 아예 원전 중심으로 가는 게 아니라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죠. AI 발전을 위해 인프라도 늘리고, 또 그로 인해 늘어난 에너지 수요를 화석연료로 늘릴 순 없을 겁니다. 그러면 선택지는 재생에너지와 원전뿐이죠. 일단 이재명 대통령은 SMR에 대한 투자와 연구 의지를 꾸준히 밝혔습니다. 우리나라는 SMR 분야에서 나름 경쟁력이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ARIS에서 대한민국은 총 9개의 SMR을 등록해서 전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고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SMART100은 지난해 설계 안전성을 인정받아 상용화 첫 단계를 통과했습니다. SMR 도입을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에 한국의 SMR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SMR 개발해서 우리나라에 지으려고 해도, 일단 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텐데요. 원전을 지으려면 EPZ라는 걸 설정해야 합니다. EPZ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으로,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방사선 누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구역이에요. 현재 대한민국의 EPZ는 대형 원전 기준 최대 30km입니다. 이 기준대로라면 AI를 연구하는 산업단지 근처에 배치하기가 까다롭겠죠. 참고로 미국에선 SMR에 맞춰서 비상계획구역을 탄력적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규제를 변경했거든요. 일단 원안위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고려한다고 하니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핵폐기물 문젭니다. 이건 조금 더 복잡해요. SMR은 태생적으로 기존 원전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중성자가 튀어나와 더 많은 핵폐기물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동일한 전력 생산에 대형 원전보다 SMR이 많게는 30배 더 많이 생성된다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연구도 있죠. 물론 업계에서는 최근 설계에서 개선된 지점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긴 합니다만, 문제는 우리나라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 쌓여있는 핵폐기물이 거의 포화 직전이거든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고리원전은 사상 처음으로 사용 후 핵연료 저장률이 90%를 넘겼고, 한빛원전은 2030년이면 포화에 다다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방폐장 부지 선정을 못하고 있고 늘어나는 핵폐기물을 임시로 발전소에 쌓아두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SMR을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보다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습니다. SMR이 기존 원전보다 안전하기에 대안이 될 것이라는 것, 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도 SMR 도입이 필요하다는 건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이 SMR이 지어져야 할 텐데 과연 SMR이 지어질 지역 부근의 주민들에게 어떻게 동의를 얻을 것인가가 가장 큰 숙제일 겁니다. 여전히 많은 주민들은 원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데 말이죠. EPZ 규제 완화, 핵폐기물 처리, 그리고 주민들의 동의까지… 이러한 고민들을 새로운 정부가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정책을 설계하길 바라면서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Advanced Reactor Information System | IAEA - 2024 SMR Catalogue | IAEA - NEA SMR Dashboard 제2판 분석 | 한국원자력연구원 - Small Modular Reactor (SMR) Global Tracker | world nuclear association - Energy and AI | IEA -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 | 산업통상자원부 - Social acceptance of small modular reactor (SMR): Evidence from a contingent valuation study in South Korea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
세상 복잡한 이야기들, 5가지 그래프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오그랲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습니다. 계엄과 탄핵을 거치면서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지만 이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만큼 다시 힘차게 달려나가야겠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대선 토론에서는 한 가지 키워드가 유독 자주 언급됐습니다. 바로 AI였죠. 오늘 오그랲에서는 우리나라가 AI를 위해 어떻게 대비하고 준비해야할지, 주변 국들의 상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아시아 AI의 허브를 노리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국가들의 정책을 살펴보고,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통해 우리나라 AI 정책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고민해보겠습니다. AI로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중국 첫 번째 국가는 중국입니다. 뭐 사실 중국은 누가 뭐래도 AI 글로벌 2위 강국으로 우뚝 서 있죠. 중국은 아시아 1위를 넘어서 글로벌 1위를 노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모든 정보 기능을 감독하는 국가정보국장실이라는 데가 있어요. 지난 3월에 미국 정보공동체들이 모여서 연례 위협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CIA, FBI 같은 정보기관 18곳이 정보를 모아서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들을 분석한 겁니다. 이번에 발간된 보고서를 살펴보면 중국 AI에 대한 언급이 상당합니다.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과학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는 내용부터, "2030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AI 강국이 되려 한다.", "이미 중국은 음성 인식과 이미지 인식 등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등 이미 중국이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평가가 단순히 정보기관의 과대평가라고 보기도 어려운 게 젠슨 황도 인터뷰에서 중국이 뒤에 있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국이 이렇게 뛰어난 AI 기술력을 갖추게 된 배경엔 중국 정부의 엄청난 투자와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5년에 중국 정부가 발표한 전략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당시 리커창 총리는 기존의 노동집약적인 중국 제조업에서 벗어나 기술집약적인 제조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AI에 대한 언급이 처음으로 담겨 있었어요. 이 때를 기점으로 중국은 꾸준히 AI 개발에 투자를 이어오고 있고요. 중국 AI 정책의 핵심은 ‘인재’에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80년대부터 이공계 교육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는데요.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에 많은 인재를 배출해 오고 있습니다. 2020년 중국의 STEM 졸업생 수는 357만 명으로 인도, 미국을 제치고 1등을 기록하고 있죠. 이렇게 배출된 많은 이공계 인재들은 AI 연구로 투입되고 있습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로 살펴보겠습니다. 세계적인 AI 연구 인력들의 이동 흐름을 분석한 매크로폴로 데이터가 있습니다. 2019년 중국은 최상위급 AI 연구자는 전 세계에서 10%, 상위급 연구자는 29% 정도를 배출했습니다. 2022년엔 그 수치가 각각 26%, 47%로 급증했어요. 이들은 중국에서 활동하며 중국 AI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죠. 기술 인재의 중요성을 중국 정부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중국 기업들도 AI 인재를 육성하고 영입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화웨이입니다. 화웨이는 매년 선전에서 ICT 경진대회를 개최하며 인재들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추진력, 그리고 그것에 발맞춰 움직이는 기업들 14억 명의 인구가 생산하는 방대한 데이터와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배경으로 중국 AI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가 세계 2위 AI 국가 중국을 만들었고, 근미래엔 미국을 넘어서 1위 자리도 넘보고 있는 겁니다. 해외 인재, 자본 다 들여와! 일본의 AI 전략 중국의 AI 전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건 중국이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구 규모도 그렇고요. 정치적인 상황도 다른 만큼 당장 우리가 중국의 전략을 따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우리나라와 여러모로 배경과 상황이 비슷한 일본과 타이완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야 현실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요. 일단 대한민국, 일본, 타이완의 체급부터 비교해 보겠습니다.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입니다. IMF에서 올해 4월에 발표한 자료입니다. 한, 일, 타이완의 1인당 GDP를 비교해 보면 아주 다닥다닥 붙어있어요. 2024년 기준으로는 대한민국이 가장 앞서고 있죠. 미래 전망치에선 세 나라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데 미래 먹거리인 AI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갈리게 될 겁니다. 두 나라 가운데 먼저 일본의 상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오그랲에서 자주 언급했던 구글의 논문 이야기를 다시 해보겠습니다. 딥러닝의 혁신을 불러온 트랜스포머 구조를 제시한 ‘Attention is All you need’ 입니다. 지난 ‘AI 상담’ 편에서 이 논문의 공저자 중 한 명인 노암 샤지어가 설립한 캐릭터닷AI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사실 여기 적혀있는 공저자들 모두 구글을 퇴사해서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주목할 인물은 8명 중 가장 늦게 구글을 퇴사한 일리언 존스입니다. 일리언 존스는 구글의 다른 연구진 데이비드 하와 함께 AI 스타트업을 창업합니다. 어디인고 하니, 바로 일본에서 말이죠. 이들이 만든 기업은 바로 사카나AI입니다. 2023년 8월 도쿄에서 문을 연 사카나AI는 창업 1년 만에 기업 가치 10억 달러를 넘겨 유니콘에 등극합니다. 이들은 왜 일본에서 창업했을까요? 일단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하가 일본에서 오랜 시간 거주했다는 것도 작용했겠지만, 또 하나 살펴봐야 하는 건 일본 정부의 지원입니다. 사카나AI는 초기 모델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GPU를 일본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지원받았어요. 일본 경제산업성은 작년 2월부터 GENIAC 프로젝트를 가동했는데요, 이 프로젝트에 발탁되는 기업에겐 GPU도 빌려주고, 데이터도 사용하게 해주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줬습니다. 그 첫 대상자 중에 사카나AI가 포함되었던 거죠. 이런 투자만 보면 일본이 AI와 상당히 가까워 보이지만 의외로 일본은 여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AI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인 것으로 조사가 됩니다. 호주 멜버른 대학교와 KPMG가 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조사국 47개국 가운데 일본은 뒤에서 2번째로 상당히 신뢰도가 낮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AI에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일본 정부가 선택한 건 해외 인재를 유치하고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거였습니다. 일본은 2022년을 스타트업 창출 원년으로 선언하고 역대 최대 규모인 1조 엔의 예산을 배정해 지원했습니다. 기존엔 사무실과 출자금 같은 조건이 있어야 외국인 창업자가 체류할 수 있었다면 이젠 이런 조건도 다 없애고 사업 계획만 인정되면 2년간 체류토록 해주고 있고요. ‘특별고도인재’라는 비자도 신설해서 해외 인재에게는 5년짜리 비자를 바로 내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일본 스타트업 시장은 꾸준히 성장했고 가장 큰 혜택을 본 게 AI와 소프트웨어 영역이었습니다. 2024년 일본 스타트업의 분야별 자금 조달 규모입니다. 중간 라인은 전체 평균이고요. 자금이 많이 몰린 분야를 보면 생성형AI와 IoT, SaaS 분야입니다. 반면 전자상거래나 콘텐츠, 헬스케어는 평균 대비 투자 금액이 적었어요. 일본의 현재 AI 전략은 세상에서 가장 AI 개발과 활용이 쉬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은 AI 규제를 강하게 취하고 있지 않아요. 일본하면 콘텐츠인데도 불구하고 저작권에 대해서도 AI와의 경계를 모호하게 두고 있죠. 그 영향인 걸까요? 빅테크들이 일본을 향하고 있습니다. 일단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소프트뱅크, 오픈AI, 오라클. 이 멤버 그대로 일본에 자금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와 오픈AI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만들겠다고 발표했고요. 오픈AI는 도쿄에 아시아 거점 오피스를 꾸리기도 했습니다. 오라클은 10년간 데이터센터 증설에만 8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죠. 이뿐만 아니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도 일본에 대규모 자금 투자 계획을 이미 공개했습니다. 물론 일본이 단순히 해외 자본을 들여와서 해외 기업만 좋은 일 시켜주려는 건 아닙니다. 단기적으로는 해외 자본과 기술력으로 AI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일본만의 AI 생태계를 꾸리려는 전략을 가동하고 있죠. 2022년 정부 주도로 설립한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선 AI 전용 칩을 만들고, 일본 특화 LLM은 사카나AI 같은 기업이 담당하고 또 데이터센터는 소프트뱅크가 일본 곳곳에 짓고 있습니다.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AI 가치 사슬을 만들어 나가려는 거죠. 반도체 생산기지를 넘어, 아시아 AI 허브를 노리는 타이완 이번엔 타이완입니다. 지난 5월에 타이완의 컴퓨텍스가 있었죠. 미국에 CES, 유럽에 IFA가 있다면 아시아엔 컴퓨텍스가 있다고 할 정도로 대표적인 산업 박람회입니다. 이번 2025 컴퓨텍스에서 단연 이목이 쏠렸던 건 엔비디아의 키노트 발표였습니다. 이 발표에서 젠슨 황은 타이완 정부와 폭스콘, TSMC와 손을 잡고 타이완에 AI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이미 일찍부터 엔비디아는 타이완의 다양한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점점 그 규모가 늘어나자 엔비디아 입장에선 아예 타이완에 신사옥을 지어버리기로 결정했어요. 이름하여 엔비디아 Constellation, '엔비디아 별자리'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엔비디아 본사와 맞먹는 규모로 지어질 예정입니다. 엔비디아는 타이완에게 매우 중요한 기업입니다. 일단 TSMC가 엔비디아 AI용 GPU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죠. AI 반도체를 설계하는 빅테크들의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조자로서도 충분히 세계를 호령할 수 있다는 걸 TSMC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올해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의 매출이 25조 1,000억 원인데요. TSMC가 8,393억 5,000만 타이완달러, 우리 돈으로 약 37조를 찍었습니다. 매출 격차가 10조 원 넘게 벌어져 있어요. TSMC 뿐이겠습니까? 미디어텍, 폭스콘, 콴타 등 다양한 타이완의 회사들이 엔비디아의 공급망 곳곳에 들어가 있어요. 엔비디아가 성장하면 자연스레 이 기업들도 함께 성장하겠죠. 마치 대기업과 그 기업에 연계된 수많은 중소기업들처럼 미국의 엔비디아가 타이완의 기업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이완은 ‘하청 공장’, ‘공업 중심’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컴퓨텍스에서 이뤄진 발표를 살펴보면 타이완은 기존의 ‘세계의 반도체 공장’ 역할을 넘어서 그 이상을 노리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일단 엔비디아가 타이완 정부와 함께 손잡고 연구개발 역량까지 더해줄 계획을 발표했거든요. 타이완에 새롭게 지어질 엔비디아의 아시아 신사옥은 글로벌 연구개발 본사 역할을 할 예정입니다. 젠슨 황은 ‘타이완의 엔비디아 별자리’에서 AI 반도체도 설계하고, 양자컴퓨팅 같은 미래 AI 핵심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 얘기했어요. 글로벌 기업들은 타이완과의 협력을 늘려오고 있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인테그리스도 가오슝에 공장을 지었고요, 마이크론도 타이중에 공장 규모를 더 넓히고 있습니다. 미국을 제외하면 타이완에 위치한 구글의 R&D 센터가 가장 큽니다. 많은 기업들이 타이완으로 오는 핵심 이유, 바로 타이완에는 고품질의 공학 인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는 타이완의 인재 경쟁력입니다. 타이완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하는 인재 경쟁력에서 최근 아시아 1위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다 제치고 있어요. 2024년 순위를 보면 타이완이 18위, 한국은 26위, 중국이 38위, 일본이 43위입니다. 타이완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AI 인재 20만 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까지 추진 중입니다. 100억 타이완달러를 10년간 투자해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인재 양성을 통해 미래 AI 시장에 대응하겠다는 겁니다. 미국과 중국이 R&D 중심의 연구 인재에 집중되어 있다면 타이완은 산업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를 길러내 차별화를 꾀하고 있죠. 양질의 공학 인재풀을 탐내는 기업들을 더 많이 끌어들여서 타이완을 글로벌 AI 공급망의 한 축으로 만들고, 연구 개발 영역까지 투자를 늘려 AI 영토의 범위를 넓히려는 게 타이완의 계획인 겁니다. 일본, 타이완과의 경쟁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선? 일본과 대만의 AI 전략, 뭔가 설명만 들으면 착착 준비가 되는 모습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일단 일본은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실제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올라오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요. 가령 AI 반도체 라피더스를 통해서 자립하려 하지만 실제 상용화는 2027년은 넘겨야 해요. 또 일본인들이 AI에 보수적이라는 것도 걸림돌입니다. 내수 시장 규모는 있지만, 실제 AI 서비스가 확산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죠. 타이완은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미국 의존성이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가 갑자기 바뀔 일도 없고요, 그러면 TSMC도 살아남기 위해서 미국에 공장을 지어서 생산해야 합니다. 트럼프가 아예 대놓고 타이완이 미국의 반도체 사업을 훔쳐가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 불안감은 계속 남아 있는 겁니다. 타이완이 생산기지 이상으로 도약하려 하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설계, 모델 개발을 위한 연구에 많은 시간이 투자되어야 해요. 즉 타이완도 종속성을 벗어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대한민국 환경을 따지고 보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일본, 타이완과 비교해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기업들만으로 AI 생태계를 꾸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일단 메모리반도체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압도적이죠. 거기에 AI 전용 칩 개발 능력도 높이고 있습니다. 퓨리오사나 리벨리온이 대표적이죠. 또한 네이버와 LG 등 대기업이 나서서 한국어 특화 LLM을 개발해서 오픈소스로 공개했고요. AI가 적용된 서비스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습니다. 주요 기업들은 자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플랫폼도 보유하고 있죠. 칩과 데이터센터, 그리고 모델과 서비스까지.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 자체 기술력만으로 AI 가치사슬을 꾸리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아시아 AI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말 그대로 ‘허브’가 되려면 사람도 모이고 기업도 모이는 환경이 꾸려져야 할 겁니다.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잡아둘 무언가가 필요하고요. 또 해외의 고급 인재를 우리나라에 눌러 앉힐 매력적인 당근도 있어야 할 겁니다. 대기업이 만든 한국어 특화 모델을 활용해 다양한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까지 중국과 일본, 그리고 타이완의 AI 전략의 강점과 단점을 살펴봤습니다. 중국의 강력한 정부 주도 투자, 일본의 해외 인재와 자본 유치 전략, 타이완의 제조업 기반에서 연구 개발 확장 전략. 세 국가의 전략 중 우리나라가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려서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길 바라며 오그랲 아시아 AI편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2025 Annual Threat Assessment of the US intelligence Community - The Global AI Talent Tracker 2.0 | Macropolo - Top Countries by Number of STEM Graduates 2020 | CSET - Attention Is All You Need - Japan Startup Finance 2024 | SPEEDA - Trust in artificial intelligence: global insights 2025 | KPMG - NVIDIA CEO Jensen Huang Keynote at COMPUTEX 2025 - World Talent Ranking 2024 | IMD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
세상 복잡한 이야기들, 5가지 그래프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오그랲입니다. 어느새 다음 주로 대선이 다가왔습니다. 원래였다면 2027년 3월에 실시되었어야 할 대선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조기 대선을 맞이하게 되었죠. 이른 대선을 맞이하여 오그랲도 선거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선거와 함께 풀어낼 수 있는 다양한 데이터들이 있겠지만, 오늘은 선거권을 갖고 있는 유권자들의 세대 이야기가 주인공입니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가장 규모가 많은 4050 세대의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다루어지는 만큼 오늘 오그랲에서는 2030 젊은 세대와 6070 노년 세대에 집중해서 풀어보려고 합니다. 또다시 찾아온 '장미 대선'... 유권자 86% "반드시 투표"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부터 올해 4월 4일 대통령 파면, 그리고 6월 3일 대통령 선거까지. 지난 몇 개월 사이에 정말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새롭게 뽑아야 할 21대 대통령.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올까요? 일단 선관위에서 5월 초에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유권자의 86%는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대선은 다른 선거들보다 투표율이 높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인 13대 대선부터 살펴보면 17대 대선까지는 투표율이 꾸준히 줄어들다가 다시 회복하는 모습인데 평균을 계산해 보면 77.0%가 나옵니다. 같은 시기 총선, 지선의 평균 투표율은 50~60%에 불과합니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할 국가 원수를 뽑는 투표이니 만큼 관심도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도 그중에서도 투표율이 가장 낮았던 때를 찾아보면 2007년 있었던 17대 대선입니다. 17대 대선은 민주화 이래로 가장 압도적인 득표율 격차로 이겼던 대선인데요. 당시 이명박 후보가 48.67%를 얻으면서 26.14%를 얻은 정동영 후보를 22.53%p 차로 이겼어요. 17대 대선은 득표율뿐 아니라 득표차도 531만 7,708표로 1등이었는데, 지난 2017년에 있었던 첫 번째 장미 대선이 그 기록을 갈아 치웠습니다. 19대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 사이의 득표차는 557만 951표로, 기존 기록에서 25만 표 이상 더 차이를 벌렸죠. 그렇다면 1등과 2등의 격차가 가장 적었던, 가장 치열하게 붙었던 때는 언제였을까요? 바로 지난 대선입니다. 20대 대선에서 당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무려 0.73%p, 표 차이는 단 24만 7,077표였습니다. 이 숫자는 민주화 이후 최소 득표차입니다. 참고로 민주화 이전까지 포함해 보자면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가 맞붙었던 5대 대선의 15만 6,026표가 가장 적습니다. 2030 성별로 갈라진 20대 대선, 이번에도 이어질까? 지난 20대 대선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20대 대선이 특별한 건 기존 대선에서는 극명하게 보이지 않았던 '성별 격차'가 드러났던 대선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엔 지역, 그리고 연령대에 따라 정치 성향이 갈렸다면 지난 20대 대선에선 성별에 따라 성향이 갈라졌어요. 이 그래프는 20대 대선 연령별, 성별 출구조사 자료입니다. 일단 연령별로 보면 투표 성향이 명확히 갈리죠? 4050에선 진보 후보의 지지세가 강하고 60대 이상에선 보수 후보의 지지세가 뚜렷합니다. 이번엔 2030 청년층을 보겠습니다. 2030을 보면 성별에 따라 투표 성향이 갈리는 모습입니다. 20대 남성은 과반 이상이 윤석열 당시 후보에게 표를 주었고 반대로 20대 여성은 이재명 후보를 과반 이상 지지했죠. 30대에서도 20대보다는 격차가 덜하지만 성별에 따른 격차가 확인됩니다. 10년 전 대선의 출구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느껴집니다. 지금은 성별에 따라 갈렸던 30대가 10년 전에는 진보 후보인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어요. 하지만 10년이 흘러 지금의 30대 남성은 보수화되었죠. 20대의 성별 격차는 30대보다 훨씬 더 크게 벌어졌고요. 이러한 흐름은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지난 대선에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조사한 성별 이념 성향 차이 결과인데요. 숫자가 크면 클수록 보수인데, 20대 남성은 60대 남성 다음으로 보수성이 높게 나타났어요. 20대 남성과 20대 여성 사이의 정치 성향 차이는 1.25점. 다른 모든 세대들 가운데 가장 컸습니다. 세대별 이념 성향에 대한 기존 통념 중 하나는 "젊은 층은 진보, 고령 층은 보수"라는 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나타난 결과를 보자면 진보 진영 입장에선 믿었던 집토끼를 잃은 셈입니다. 2030의 지지를 되돌리려는 진보 진영 입장에서도 또 청년의 늘어난 보수세를 더 늘리려는 보수 진영 입장에서도 젊은 층은 놓칠 수 없는 유권자이기에 이들을 향한 구애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SNS를 통해서 말이죠. 콘텐츠 소비가 쇼츠와 릴스 중심의 숏폼 콘텐츠로 넘어오면서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숏폼 공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년층의 알고리즘에 하나라도 걸리라는 마음으로 후보자 개인 채널, 정당 채널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숏폼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어요. 탄핵이 선고된 4월 4일 이후 주요 네 후보 측에서 뽑아낸 유튜브 쇼츠 조회수를 분석해 보면 이준석 후보가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체 9천만 뷰 가운데 이준석 후보 쇼츠 조회수가 82%를 차지하고 있죠.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그래프는 네 후보들의 쇼츠 평균 조회수 흐름입니다. 이준석 후보 측의 쇼츠는 꾸준히 상승하여 평균 조회수 20만을 바라보고 있어요. 이재명 후보 측의 쇼츠도 상승세를 타고 2위를 유지 중입니다. 김문수 후보와 권영국 후보도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지만 1, 2위 후보들과의 격차가 큰 상황입니다. 쇼츠의 전체 좋아요를 보면 이준석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양강 체제를 보이고 있습니다. SNS 플랫폼에서 후보들 간의 치열한 경쟁은 과연 2030 세대의 정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지난 대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던 성별 격차가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양상을 보일지, 21대 대선의 관전 포인트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늙어가는 대한민국, 2030 넘어선 6070 미래 주요 유권자가 될 2030 젊은 표심에 정치권이 집중한 탓에 상대적으로 노년층은 선거에서 가려져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래서는 안 될 겁니다. 왜냐하면 그러기엔 노년층의 규모가 너무나도 커져버렸거든요. 2010년부터 2024년까지 대선, 총선, 지선의 연령별 유권자 비율을 나타내면 이렇게 됩니다. 지난해 4월에 치러진 22대 총선에서는 사상 최초로 6070세대가 2030 규모를 넘어섰어요. 이러한 흐름은 당연히 이번 대선에도 적용됩니다. 2025년 4월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가지고 선거인수를 그려보면 이렇게 나와요. 지난해보다 2030은 더 줄어들었고 6070은 더 늘어났죠. 이 인구구조를 지역별로 그려보겠습니다. 회색으로 표시된 게 전체 유권자 중에 6070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들입니다. 전체 시군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51.8%가 해당됩니다. 4050이 가장 많은 지역은 41.4%, 2030이 가장 많은 지역은 6.8%에 불과하죠. 정리해 보면 전국의 절반 이상의 지역은 6070세대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2017년 대선 때만 해도 4050의 영향력이 가장 컸어요. 4050 세대가 제일 많았던 지역이 전체의 63.5%였고 6070이 많았던 지역은 25.7%에 불과했죠. 하지만 단 8년 사이에 이렇게나 변해버린 겁니다. 물론 단순히 인구 구조만 보고 판단하기는 이릅니다. 왜냐하면 유권자 모두가 투표장에 오는 건 아니니까요. 2030이 많이 있더라도 실제 투표장에 오는 사람이 적을 수 있고 6070이 많이 없더라도 더 많이 투표하러 나올 수 있죠. 최근 4번의 대선에서 연령대별 투표율을 살펴보면 6070세대는 최소 75%를 넘기는 매우 높은 투표율을 기록 중입니다. 지난 19대, 20대 대선에선 80%를 넘길 정도였죠. 노년층의 인구도 과거보다 많아졌고, 게다가 투표장에 나오는 비율도 세대 중 가장 높다면요? 투표장에 오는 사람들로 지도를 다시 그리면 이렇게 바뀝니다.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지역이 6070이 높은 곳으로 변경되었어요. 1,300만이 넘었던 2030 유권자 중 투표장에 오는 사람들은 949만 명으로 확 줄어들고 1,400만의 6070세대 가운데 투표하는 분들은 1,212만 명이나 됩니다. 엄청난 규모로 커지고 있는 6070세대. 나이 든 유권자가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만큼 보수 세력에게 유리한 걸로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단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6070세대에 86세대가 끼어있기 때문이죠.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교를 다닌 86세대들은 민주화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진보 진영을 지지해 왔습니다. 지난 대선까지 세대별 투표 변화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이들 86세대들은 60대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화가 매우 더딥니다. 노년층에서도 진보적, 혹은 중도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6070이 늘어났다고 보수 진영이 웃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거죠. 과연 6070 세대는 이번 대선에서 어느 후보의 손을 들어줄까요? 이번 조기 대선은 비상계엄으로 인한 탄핵으로 치러지는 선거입니다. 계엄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연령별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4050 세대가 평균을 상회하는 82.9%를 기록하며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고, 2030 세대 역시 평균보다 높은 반대 비율을 보였습니다. 반면 6070 세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반대 비율이 현저히 낮았어요. 전체 유권자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4050은 계엄 사태에 대한 반대도 크고, 탄핵에도 적극적인 모습이었어요. 유권자 수도 많고, 투표를 통해 정치를 바꿔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그동안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아마도 이번 대선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오늘 살펴본 바와 같이 4050에 비해 덜 주목받았던 젊은 2030 세대와 6070 노년층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성별로 성향이 갈라진 2030, 그리고 86세대가 포함된 6070. 과연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요?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책임입니다. 여러분 모두 투표에 참여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시길 바라며 오늘 오그랲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 제21대 대통령 1차 유권자의식조사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율 분석 결과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고령층의 계엄에 대한 태도 | EAI 워킹페이퍼 - 86세대와 세대 효과의 종언: 1992-2022 대선 분석 | EAI 워킹페이퍼 - 청년 젠더 갈등: 이념 갈등을 뛰어넘어 한국 정치의 새로운 균열선 될까? | EAI 스페셜리포트 - 주민등록 인구통계 | 행정안전부 - YouTube Data API | Google Cloud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
세상 복잡한 이야기들, 5가지 그래프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오그랲입니다. 지난 5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저작권의 총책임자인 저작권청장을 해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뭐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람을 자르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죠. 이미 예전부터 ‘너 해고’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만큼요. 그런데 이번 저작권청장 해임이 조금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오그랲에서는 도대체 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시점에 뜬금없이 저작권청장을 해고한 것인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럼프, 미 역사상 최초로 저작권청장 해임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듯이 여느 정부라도, 집권 초기에는 자신의 정책을 잘 집행할 수 있는 사람들로 새롭게 교체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근데 트럼프 정부에서는 유독 그 비율이 높긴 합니다. 데이터로 살펴보시죠. 레이건 정부부터 바이든 행정부까지 내각 교체 건수를 살펴보면 트럼프 1기 행정부가 14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내각뿐 아니라 대통령을 보좌하는, 이른바 'A팀'의 교체율도 트럼프 행정부가 압도적으로 높아요. 다른 정부들과 비교해서 유일하게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교체율이 90%를 넘겼고요, 집권 1년 차의 교체율도 유일하게 30%가 넘죠. 이런 데이터만 보자면 이번에 해임된 저작권청장 쉬라 펄머터의 소식도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아 참고로 쉬라 펄머터는 지난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 임명되어서 최근까지 주욱 직을 역임하고 있었는데, 지난 5월 10일에 아무런 설명 없이 해고를 당한 겁니다. 일단 이번 해고가 특별한 점 하나는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저작권청장을 날려버린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겁니다. 저작권청장의 임명과 면직 권한은 의회도서관장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저작권청장을 잘라 버렸죠. ‘불법 해임’이라는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도 트럼프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저작권청장을 날린 이유는 뭘까요? 그 힌트가 아래 보고서에 있습니다. 이번 해임은 이 보고서가 공개된 이후 바로 다음 날 이뤄졌습니다. 보고서의 제목은 Report on Copyright and Artificial Intelligence, 저작권과 AI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파트 1과 파트 2는 이미 이전에 공개가 됐었고요,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이는 건 파트 3인 '생성형 AI 학습'입니다. 저작권청은 이례적으로 보고서의 사전 공개 버전을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는데,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생성형 AI 학습 중요하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저작권을 침해할 순 없다는 거죠. 저작권법에서는 언론 보도나 교육 목적 등 이른바 '공정 이용'에 한해서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제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AI를 만드는 기업들은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것이 ‘공정 이용’이라고 주장해 왔어요.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방대한 양의 저작물을 상업적으로 사용해서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공정 사용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AI 기업들과 반대되는 입장의 보고서가 나온 뒤 청장은 이메일로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저작권법은 AI 기업들에게 매우 골칫거리였습니다. 트위터를 창업했던 잭 도시는 지난 4월에 "모든 저작권법을 지워버리자"는 글을 올리기도 했고요, 일론 머스크는 곧바로 "동의한다"고 답했죠. 구글과 오픈AI도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이들과 비슷한 입장입니다. 급변하는 AI 환경에서 미국이 중국보다 앞서나가려면 이 ‘공정 이용’에 예외를 허용해 줘야 한다고 요청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AI 모델 학습이 '공정 이용'이 아니라고 한 저작권청장을 잘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사실상 트럼프 정부가 저작권법이 아닌 AI 기업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뉴스도, 책도 이미 무단으로 사용한 빅테크들 사실 이미 AI 기업들은 저작권법과 관련해서 수많은 소송 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송 과정에서 공개되는 증거들과 내부 문건들을 보면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무단으로 저작권이 있는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먼저 이건 뉴욕타임스가 법원에 제출한 문서입니다. 여기엔 뉴욕타임스 기사가 오픈AI의 모델에 얼마나 많이 포함되어 있는지, 그 증거가 담겨 있어요. 뉴욕타임스 기자가 쓴 음식 리뷰 기사에 대한 질문을 챗GPT에 던져봤습니다. 후속 질문으로 해당 리뷰의 첫 단락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자 챗GPT가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그대로 내뱉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오픈AI가 자신들의 기사를 임의로 학습하고, 또 이렇게 암기된 기사를 다시 그대로 출력하는 건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저작권 침해 사례로 볼 수 있는 예시 100개를 정리한 이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했어요. 반면 오픈AI는 모델이 학습 데이터를 ‘암기’해서 내뱉는 건 버그라고 얘기합니다. 또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사용한 건 저작권법에서 허용하는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이 소송이 시작된 게 지난 2023년 12월인데요. 아직 결과가 나오진 않고 있습니다. 참고로 올해 3월에 오픈AI가 이 소송을 기각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어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사들을 보니까 이미 2020년부터 AI 학습에 자신들의 기사를 활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2024년 다 되어서 소송을 냈으니 이미 소송 기한을 넘겼다는 건데요. 물론 법원은 오픈AI의 이 요청을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이 사건의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지만, 뉴욕타임스가 승리하게 된다면 오픈AI 뿐 아니라 다른 LLM을 만들던 빅테크들도 난리가 날 수 있습니다.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아까 증거로 제시했던 뉴욕타임스 기사를 다른 모델들도 암기하고 있는지 확인을 해봤습니다. 오픈AI 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의 모델에서도 뉴욕타임스 기사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모델 크기가 클수록 기사 암기량이 더 많았고요. 가장 많이 발견된 모델은 앤트로픽의 Claude-3 Opus 모델이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오히려 오픈AI 모델의 기사 암기량이 다른 모델들보다 적었는데요, 연구진들은 오픈AI가 소송 중이니만큼 답변 필터링을 더 강력하게 한 영향 아닐까 해석하고 있습니다. 기사뿐 아니라 책 데이터도 불법으로 다운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기업도 있습니다. 메타는 작가들과 소송 전을 벌이고 있는데요,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타네히시 코츠 작가부터, SNL로 유명한 사라 실버먼까지 면면이 화려합니다. 작가들은 메타가 모델을 학습하는 데 자신들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소송 과정에서 공개된 내부 자료를 보면 메타에서는 불법으로 전자책을 다운 받은 정황이 포착되었는데, 립젠(Libgen) 같은 불법 공유 사이트에서 메타가 다운받은 전자책 규모가 무려 81.7 테라바이트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죠. 메타 내부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문제가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은폐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오갔어요. 가령 ISBN, Copyright, 저작권 표시가 포함된 데이터는 다 지운다거나, 앞서 살펴본 뉴욕타임스 사례처럼 무단으로 암기한 자료가 뱉어지지 않도록 그런 질문들은 아예 답변하지 않도록 모델을 조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죠. 게다가 불법 다운의 흔적이 남지 않으려고 서버를 우회해서 토렌트로 다운 받은 정황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메타뿐 아니라 오픈AI도 무단으로 책 데이터를 학습한 듯합니다. 미국 사회과학연구협의회 연구진은 프로그래밍 공부하시는 분들이라면 익숙할 오라일리 출판사의 책 34권을 가지고 오픈AI 모델이 책의 자료를 학습했는지 파악해 봤어요. 오그랲 세 번째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오픈AI의 모델들은 오라일리와 라이선스 계약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유료 구독자만 볼 수 있는 비공개 콘텐츠를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GPT-4o는 무려 82%나 파악하고 있었죠. 게다가 공개된 자료보다 비공개 콘텐츠를 더 잘 인지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건 무단으로 크롤링했거나 메타처럼 비공식 경로를 사용한 건 아닌지 의심이 되기도 합니다. 창작자 "GPU엔 수조 원 쓰면서, 데이터엔 왜 안 쓰나요?" 글과 책뿐이겠습니까. 그림,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저작물들의 이용을 두고 창작자와 AI 기업들 사이의 갈등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빅테크들은 왜 이렇게 저작권이 있는 자료들을 탐하는 걸까요? 그건 바로 이게 양질의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AI 모델을 만들기 위해선 핵심 자원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 뛰어난 인재가 있어야 할 테고요, 또 모델을 만들기 위한 컴퓨팅 인프라도 갖춰져야 할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데이터까지. 좋은 모델을 만들기 위해선 데이터를 많이 투입하면 됩니다. 하지만 많은 양의 데이터를 투입하는 데는 리소스가 엄청나게 들죠. 그래서 기업들은 데이터를 덜 넣으면서도 좋은 모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왔으니, 그 해답은 바로 ‘양질의 데이터’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발표한 “Textbooks Are All You Needs”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교과서”라는 말대로 교과서 수준의 양질의 데이터만 있다면 학습 데이터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좋은 성능의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메타가 토렌트를 써서라도 책을 다운받으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 좋습니다. 양질의 데이터 쓰는 것 좋죠. 그런데 왜 그걸 훔쳐서 쓰냐는 게 창작자들의 입장입니다. 엔지니어 한 명당 10억 넘게 주면서 채용하고, 또 GPU 같은 인프라에 1조 넘게 투자하고 있으면서 왜 데이터는 불법으로, 무료로 사용하려고 하는 건지 납득이 안 된다는 거죠. GPU를 훔치는 건 범죄고, 데이터를 무단으로 훔치는 건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창작자들은 빅테크들의 질주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 2024년 10월, AI 기업이 창작물을 무단 학습하는 것에 반대하는 서명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만 예술인 1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2025년 5월엔 그 규모가 5만 명을 넘어섰어요. 오그랲 네 번째 그래프는 서명에 참여한 예술인들입니다. 기관 279개, 그리고 5만 544명의 개인이 참여했는데요. 여기엔 줄리안 무어, 케빈 베이컨, 킷 해링턴 같은 배우들 뿐 아니라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큐어의 로버트 스미스, 케이트 부시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창작자들이 우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가에선 AI 기업에 힘을 실어주려는 모습입니다. 트럼프의 저작권청장 해임 사건도 그 전조 증상으로 보이고요, 영국은 실제로 관련 법을 개정하려 했어요. 영국 정부는 AI 발전을 위해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도 학습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공개했는데요, 이 법안이 공개된 이후 많은 예술인이 분노했습니다. 그중엔 폴 매카트니와 엘튼 존 같은 레전드들도 있었죠. 이들은 왜 예술가들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기술 대기업에만 이익을 집중해 주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최근엔 1,000명의 영국 아티스트들이 모여 영국 정부에 항의하는 뜻을 모아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Is This What We Want?>라는 앨범인데요. 이 앨범에 수록곡 제목을 이어 붙이면 이런 문장이 완성됩니다. 예술가들의 강력한 항의가 이어지자 영국 정부는 기존 개정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어요. 투명한 공개 vs 그건 영업비밀 전 세계를 휩쓸고 간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들 기억하시죠. 누가 봐도 챗GPT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미지를 학습하고 생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걸 두고 저작권 침해라고 딱 떨어지게 말하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AI 학습 과정에서 정말로 지브리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한 건지 판단하려면 오픈AI의 학습 데이터를 우리가 알아야 하는데, 기업들이 공개하지 않는 한 외부에서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명쾌한 해결 방법은 학습 데이터를 법적으로 아예 공개하도록 하면 됩니다. 어떤 재료들을 사용했고, 이 재료는 어느 창작자가 소유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밝히는 식으로요. 하지만 기업들은 학습 데이터를 공개하라는 요구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경쟁 시대에 데이터라는 것 자체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데, 이걸 공개해 버리면 경쟁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겁니다. 일단 학계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해서라도 저작권 침해를 줄이려는 시도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부 연구진은 콘텐츠의 독창성을 아예 수치화해서 AI가 이미지를 생성할 때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의 고유 특징들을 모방하지 않도록 했어요. 한 번 슈퍼마리오 시리즈의 마리오를 떠올려볼까요? 마리오 하면 떠오르는 고유 특징들이 있죠. 커다란 눈, 동그란 코, 그리고 콧수염까지. 또 M이 박혀있는 빨간 모자와 빨간 셔츠, 파란색 멜빵바지도 있습니다. 연구진은 알고리즘을 통해 마리오 특유의 고유 특징을 포함하지 않도록 해서 가장 평균적인 이미지만을 생성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배트맨을 요구해도 이렇게, 캡틴 아메리카를 요구해도 이렇게, 주디를 요구해도 이렇게 나오도록 말이죠.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를 통해 이 알고리즘의 효과를 살펴보겠습니다. 직접적으로 '마리오'를 그려달라고 모델에 입력했을 때 아무런 제약이 없는 모델에선 최대 41.3%가 저작권과 유사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연구진이 개발한 알고리즘이 적용된 경우엔 3.3%로 크게 떨어집니다. 어떤 연구진들은 AI의 학습 데이터 자체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AI가 문제가 되는 저작권 데이터를 학습하고 암기하고 있다면, 이걸 지워버리자는 거죠. 이른바 머신 언러닝인데요. 머신 언러닝은 저작권뿐 아니라 AI가 학습한 잘못된 가짜 정보와 개인정보도 없앨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어요. 정부에서는 제도를 통해 기술과 저작권의 간극을 메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단 미국과 유럽에서는 학습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라는 법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다만 미 연방 차원에서는 아직 입법으로 이어지진 않았고요, 발의만 되어 있어요. 대신 AI가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에선 2026년 1월부터 AI 기업들은 학습 데이터의 출처와 지적재산권 보호 여부를 웹사이트에 공개해야 합니다. 물론 많은 AI 기업은 이 법안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요. 유럽연합에서는 AI 기본법을 통해 데이터 출처를 제출토록 해두었어요. 만약 위반하게 될 경우엔 매출 기준으로 벌금이 부과될 수 있죠. 유럽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AI 기본법을 제정한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요? 우리나라의 AI 기본법에는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보호를 명시한 조항이 없습니다. 대신 AI 저작권법을 만들어서 따로 관리할 예정이었는데, 아직 뚜렷한 진전이 보이진 않고 있습니다. 다만 영국에서도 예술가들의 행동이 입법을 막았듯 우리나라에서도 창작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근엔 15개 창작자 단체가 AI 학습 데이터를 공개하고 창작자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저작권자와 빅테크 사이의 갈등 아마 근시일 내에 해결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 내부에서도 이런 무분별한 데이터 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메타 임직원 중에는 불법 복제 자료를 사용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고, 내부적으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AI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또 누군가는 이득을 본다면 그건 좋은 과정이 될 수 없을 겁니다. 기업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에 창작자의 움직임이 더해지고 정부도 이에 발맞춰 제도를 정비한다면 기술 발전과 창작자 권리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충분히 맞출 수 있지 않을까요? 오그랲이 준비한 AI와 저작권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 Copyright and Artificial Intelligence Part 3: Generative AI Training pre-publication version | united states copyright office - Tracking turnover in the Trump administration | Brookings - ONE HUNDRED EXAMPLES OF GPT-4 MEMORIZING CONTENT FROM THE NEW YORK TIMES - Exploring Memorization and Copyright Violation in Frontier LLMs: A Study of the New York Times v. OpenAI 2023 lawsuit - Beyond Public Access in LLM Pre-Training Data Non-public book content in OpenAI’s Models - This Is How Meta AI Staffers Deemed More Than 7 Million Books to Have No “Economic Value” | VANITY FAIR - Meta Secretly Trained Its AI on a Notorious Piracy Database, Newly Unredacted Court Docs Reveal | Wired - Tackling copyright issues in AI image generation through originality estimation and genericization | Nature - Textbooks Are All You Need | Microsoft Research - Statement on AI training | aitrainingstatement.org - Rethinking machine unlearning for large language models | Nature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