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의 간극을 데이터로 줄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떡볶이와 야구, 그리고 영화를 좋아합니다.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최근 미국 주식시장을 보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원전 기업들이 힘을 받는 모양새입니다. 원전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한다는 소식이 연이어 나오고 있고요. 11일(현지시간)엔 미국의 대표적 원전업체인 오클로가 한국의 한수원과 기술 개발을 위해 MOU를 체결, 공군 기지 전력 공급을 따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역대 최대인 28% 폭등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워런 버핏, 빌 게이츠 같은 큰 손들도 투자를 이어오고 있죠. 한편, 독일과 이탈리아 등 탈원전을 선택했던 유럽 국가들의 상황도 주목해 볼만합니다. 체르노빌 사고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는 유럽 국가들에게 원전의 위험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런데도 탈원전을 선택한 유럽 국가들이 다시 원전으로 돌아서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이런 변화가 생긴 걸까요? 오늘 오그랲에서는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원전의 화려한 귀환과 차세대 원전 SMR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탈' 탈원전에 나서는 전 세계 국가들 유럽은 체르노빌 사고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있는지라 오랫동안 탈원전의 선두주자였습니다. 그런 유럽이 지금 변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탈원전 국가인 이탈리아는 1990년 마지막 원자로가 폐쇄된 지 35년 만에 다시 원전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벨기에도 22년 만에 탈원전 정책을 접었고,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불리는 덴마크도 40년 만에 정책을 뒤집었습니다. 스위스, 스웨덴, 크로아티아 등 다른 유럽국가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사실 유럽의 탈 탈원전은 지난 2022년 그린 택소노미 발표 때 이미 예정된 거였습니다. 당시 EU 집행위원회는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에 ‘친환경’ 딱지를 붙여줬죠. 탈원전 대표주자 독일은 원전의 위험성과 폐기물 문제를 지적하며 반대했지만 유럽의 원전 대국 프랑스에선 원전의 탄소 배출이 적은 점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EU에선 당장 급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원전과 천연가스를 받아들였죠. 탈 탈원전의 속도를 가속시킨 건 최근 발생한 두 사건 영향이 큽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최근 발생한 유럽 정전 사태가 그 주인공이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유럽 국가들에 에너지 안보 문제가 심화됐습니다. 유럽 각국은 탄소 중립 목표를 지키면서 동시에 에너지 공급 안전성을 확보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어요. 친환경 에너지도 좋지만 여전히 변동성이 커서 안정적이지 못한 약점이 있으니까요. 거기에 더해 최근 스페인을 비롯한 대규모 정전 사태까지. 정전 사태의 원인이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재생에너지에 그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스페인 당국과 전력 회사들은 이번 정전 사태가 재생에너지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바로 반박을 했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건 프랑스와 맞붙었던 독일마저도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겁니다. 최근 독일의 메르츠 총리가 프랑스 측에 손을 내밀었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이제 더 이상 원자력을 재생에너지와 동등하게 대우하는 프랑스 입장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친 원전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미국은 훨씬 더 많은 지원이 원전을 향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가동되는 원전은 모두 94개인데요, 규모만 보면 원전 대국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친원전 국가라고 얘기하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아주 오래전에 지은 것들이기 때문이죠. 사실 미국은 1979년에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를 겪고 난 이후 지난 46년 동안 단 2개의 원전만 추가할 정도로 신중했어요. 이곳에 위치한 보글 3호기와 4호기가 그것들이죠. 그런 미국이 다시 원전 종주국이 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에 원전 관련 4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말이죠. 원전 승인을 가속화하고, 실험용 원자로에 대해선 규제도 완화하고, 원자력 규제 위원회도 개편하고, 산업 투자도 확대해서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량을 현재의 4배로 늘릴 계획입니다. 유럽은 여전히 체르노빌의 상처가 가시지 않았고,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를 겪은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왜 탈원전을 폐기하고 다시 원전으로 돌아간 걸까요? 심지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엄청난 피해를 본 일본마저도 탈원전을 폐기하고 다시 원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여전히 원전에 대한 위험성은 해결되지 않았는데 전 세계가 확 바뀐 이유가 뭘까요? 그 중심에는 차세대 원전이라 불리는 SMR이 있습니다. SMR이 불러올 원전 르네상스? SMR, 풀어보면 Small Modular Reactor로 소형 모듈형 원자로라는 뜻입니다. 기존의 원전과 비교해서 크기가 작고 모듈로 만들어서 현장에서 조립하는 원자로가 바로 SMR입니다. 우리나라가 개발 중인 혁신형 SMR의 부지 규모를 보면 축구장 넓이 수준에 불과합니다. 가장 최근 상업운행을 시작한 한울 원전부지와 비교하면 무려 570배 차이가 나죠. 일반적인 원전은 용량이 1,000메가와트인데 이렇게 작은 SMR은 300메가와트 이하입니다. 애초에 기존의 원전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전력 생산의 경제성을 높이려고 대형화되었어요. 산업화가 고도화되고 그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선택이었죠. 하지만 대형화된 원전은 사고가 날 경우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는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체르노빌이 그랬고, 후쿠시마가 그랬듯이요. 하지만 SMR은 소형이고 모듈형이라는 특징 때문에 기존 대형 원전 대비 안정성이 크게 높아졌어요. 또 기존 사고에서 반복되었던 인간의 실수를 막기 위해 SMR에는 능동형 안전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죠. 기존 대형 원전 대비 안전성도 높아졌죠, 또 소규모 모듈이나 보니 부지도 적게 차지하죠. 원전의 저탄소 특성에 더해 안전성까지 갖춰진 SMR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이 다시 원전을 선택하는 거죠. 앞서 살펴본 탈원전에서 원전으로 돌아선 주요 국가들이 하나같이 얘기하는 게, SMR을 짓고 SMR에 투자하겠다는 겁니다. 당장 독일도 기존의 대형 원전을 재가동할 계획은 없고 SMR에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고, 스웨덴도 SMR을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어요. 국제원자력기구에서는 ARIS라는 걸 만들어서 전 세계 국가들이 어떤 SMR을 설계하고 만들려 하는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스템에 등록된 SMR은 모두 123종입니다. 그중 미국이 30종으로 가장 앞서있어요. 미국 뒤에는 러시아가 22종으로 2위를 차지했고 프랑스와 일본이 13종으로 공동 3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바로 그 뒤인 5위입니다. SMR도 1등인 미국은 일찍부터 SMR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해 왔어요. 2010년 오바마 정부에선 SMR을 저탄소 원자력에너지로 따로 구분해 지원했는데요,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SMR을 기존의 대형원전과 분리해 ‘대체 에너지’에 포함시켰죠. 바이든 정부 시절에도 이러한 투자는 이어집니다. 탄소 중립과 청정에너지 전환을 위한 혁신 기술로 SMR를 설정해 투자와 지원을 꾸준히 해왔어요. 거기에 트럼프의 4종 행정명령까지 더해진 거죠. 정부의 지원과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SMR 기업에 대한 주가도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SMR 상용화에 앞서있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 뉴스케일 파워는 지난 연초와 비교하면 10배 이상 올랐어요. 또 다른 SMR 종목인 오클로 역시 주가가 쭈욱 오르고 있죠. SMR의 주가 상승에는 정부 발 호재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주목하는 또 다른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빅테크의 투자죠. AI 기업들이 SMR에 투자하는 이유 AI 인프라에 빠져서는 안 될 것, 바로 전력이죠. 지난 GPU 편에서 다루었듯이 GPU가 워낙 전력을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GPU가 가득 찬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크게 늘 수밖에 없어요. AI 주도권 싸움에서 빅테크들이 승기를 잡으려면 전력을 확보하는 게 필수입니다. AI 개발도 개발이지만, 동시에 기업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환경 규제를 지켜야 합니다. 이를테면 데이터센터 전력의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식으로요. 하지만 기존의 에너지로는 AI 발전과 탄소 감축, 이 두 개를 같이 가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구글의 탄소배출 현황입니다. 구글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그런데 생성형 AI 붐이 시작된 이후 탄소배출량이 급증했죠. 그 결과 목표치와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2023년 탄소배출 목표치는 6.2 메가톤이었는데, 실제 배출량은 14.3 메가톤으로 계획 대비 130% 이상 넘어버렸죠. 구글만 그런 건 아닙니다.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AI 개발 투자가 늘어난 이후 탄소 배출량이 30% 늘어났어요. 빅테크들이 원전 특히 SMR에 투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원전은 다른 화석 연료와 비교해서 탄소 배출량도 적으니 탄소 감축 목표도 달성하고 또 재생에너지와 비교해서 훨씬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니 데이터센터용 에너지로는 알맞은 거죠. AI 기업들에게 전력 확보는 사활을 거는 일이 되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심지어 스리마일섬 원전과 20년 장기 계약을 맺었습니다. 1979년에 사고가 난 건 원전 2호기였는데, 사고 이후 원전 1, 2호기 모두 중단되었다가 1호기만 재가동되었어요. 재가동된 1호기도 2019년에 결국 운영이 중단됐는데, 이걸 되살릴 정도로 긴급했던 거죠. 마이크로소프트뿐 아니라 주요 테크 기업들은 최근 1년 사이에 원전과 관련된 발표를 잇달아 내놓고 있어요. 가장 최근엔 메타도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을 맺은 콘스텔레이션과 20년 장기 계약을 맺었습니다. 구글은 카이로스파워라는 SMR 기업과 협력했습니다. 카이로스파워는 SMR 설계 초기부터 구글의 AI를 기반에 두고 전력 최적화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아마존은 에너지 노스웨스트와 계약을 체결했고요, 에너지 노스웨스트의 SMR에서 만든 전력 구매 권리를 얻었습니다. 아마존은 2030년대부터 자신들의 데이터센터에 이 SMR에서 구매한 전력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앞서 살펴본 오클로는 오픈AI와의 끈끈한 인연이 유명하죠. 오클로의 이사회 의장이 바로 오픈AI의 샘 올트먼입니다. 2014년부터 올트먼이 투자한 오클로는 2027년 SMR을 상업화하기 위해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올트먼이 오클로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는데요, 일각에서는 이게 오픈 AI와의 본격적인 협업 준비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해 충돌 방지 규정을 피하기 위한 선제 조치라는 해석인 거죠. SMR과 함께, 대한민국 AI 도약 가능할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원전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일단 새롭게 들어설 정부는 AI 인프라 투자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AI 데이터 클러스터도 만들어야 하고요, 또 GPU도 5만 장 사 와서 AI 데이터센터에 투입될 예정이죠. 이러한 인프라가 실제 작동하려면? 당연히 많은 전력이 필요하겠죠. 현재 대한민국 에너지 상황을 살펴보면 원전이 30%에 재생에너지는 10%에 못 미칩니다. 석탄, LNG 등 화석연료가 60%가 넘는 상황입니다. 지난 정부가 세운 11차 장기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원전 비중은 2038년까지 35.2%로 확대될 계획입니다. 또한 최소 1기의 SMR을 포함해서 신규 원전도 들어설 예정이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SMR 예산도 편성해서 정책적, 재정적 재원을 집중했습니다. 문제는 지금은 정권이 바뀌었다는 거죠. 일단 지난 대선 토론에서 이재명 당시 후보는 대형 원전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안전성을 지적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원전을 없애야 한다고 얘기한 건 아닙니다. 단순히 탈원전으로 가거나 혹은 아예 원전 중심으로 가는 게 아니라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죠. AI 발전을 위해 인프라도 늘리고, 또 그로 인해 늘어난 에너지 수요를 화석연료로 늘릴 순 없을 겁니다. 그러면 선택지는 재생에너지와 원전뿐이죠. 일단 이재명 대통령은 SMR에 대한 투자와 연구 의지를 꾸준히 밝혔습니다. 우리나라는 SMR 분야에서 나름 경쟁력이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ARIS에서 대한민국은 총 9개의 SMR을 등록해서 전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고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SMART100은 지난해 설계 안전성을 인정받아 상용화 첫 단계를 통과했습니다. SMR 도입을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에 한국의 SMR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SMR 개발해서 우리나라에 지으려고 해도, 일단 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텐데요. 원전을 지으려면 EPZ라는 걸 설정해야 합니다. EPZ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으로,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방사선 누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구역이에요. 현재 대한민국의 EPZ는 대형 원전 기준 최대 30km입니다. 이 기준대로라면 AI를 연구하는 산업단지 근처에 배치하기가 까다롭겠죠. 참고로 미국에선 SMR에 맞춰서 비상계획구역을 탄력적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규제를 변경했거든요. 일단 원안위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고려한다고 하니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핵폐기물 문젭니다. 이건 조금 더 복잡해요. SMR은 태생적으로 기존 원전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중성자가 튀어나와 더 많은 핵폐기물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동일한 전력 생산에 대형 원전보다 SMR이 많게는 30배 더 많이 생성된다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연구도 있죠. 물론 업계에서는 최근 설계에서 개선된 지점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긴 합니다만, 문제는 우리나라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 쌓여있는 핵폐기물이 거의 포화 직전이거든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고리원전은 사상 처음으로 사용 후 핵연료 저장률이 90%를 넘겼고, 한빛원전은 2030년이면 포화에 다다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방폐장 부지 선정을 못하고 있고 늘어나는 핵폐기물을 임시로 발전소에 쌓아두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SMR을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보다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습니다. SMR이 기존 원전보다 안전하기에 대안이 될 것이라는 것, 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도 SMR 도입이 필요하다는 건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이 SMR이 지어져야 할 텐데 과연 SMR이 지어질 지역 부근의 주민들에게 어떻게 동의를 얻을 것인가가 가장 큰 숙제일 겁니다. 여전히 많은 주민들은 원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데 말이죠. EPZ 규제 완화, 핵폐기물 처리, 그리고 주민들의 동의까지… 이러한 고민들을 새로운 정부가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정책을 설계하길 바라면서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Advanced Reactor Information System | IAEA - 2024 SMR Catalogue | IAEA - NEA SMR Dashboard 제2판 분석 | 한국원자력연구원 - Small Modular Reactor (SMR) Global Tracker | world nuclear association - Energy and AI | IEA -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 | 산업통상자원부 - Social acceptance of small modular reactor (SMR): Evidence from a contingent valuation study in South Korea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
세상 복잡한 이야기들, 5가지 그래프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오그랲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습니다. 계엄과 탄핵을 거치면서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지만 이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만큼 다시 힘차게 달려나가야겠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대선 토론에서는 한 가지 키워드가 유독 자주 언급됐습니다. 바로 AI였죠. 오늘 오그랲에서는 우리나라가 AI를 위해 어떻게 대비하고 준비해야할지, 주변 국들의 상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아시아 AI의 허브를 노리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국가들의 정책을 살펴보고,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통해 우리나라 AI 정책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고민해보겠습니다. AI로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중국 첫 번째 국가는 중국입니다. 뭐 사실 중국은 누가 뭐래도 AI 글로벌 2위 강국으로 우뚝 서 있죠. 중국은 아시아 1위를 넘어서 글로벌 1위를 노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모든 정보 기능을 감독하는 국가정보국장실이라는 데가 있어요. 지난 3월에 미국 정보공동체들이 모여서 연례 위협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CIA, FBI 같은 정보기관 18곳이 정보를 모아서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들을 분석한 겁니다. 이번에 발간된 보고서를 살펴보면 중국 AI에 대한 언급이 상당합니다.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과학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는 내용부터, "2030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AI 강국이 되려 한다.", "이미 중국은 음성 인식과 이미지 인식 등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등 이미 중국이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평가가 단순히 정보기관의 과대평가라고 보기도 어려운 게 젠슨 황도 인터뷰에서 중국이 뒤에 있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국이 이렇게 뛰어난 AI 기술력을 갖추게 된 배경엔 중국 정부의 엄청난 투자와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5년에 중국 정부가 발표한 전략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당시 리커창 총리는 기존의 노동집약적인 중국 제조업에서 벗어나 기술집약적인 제조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AI에 대한 언급이 처음으로 담겨 있었어요. 이 때를 기점으로 중국은 꾸준히 AI 개발에 투자를 이어오고 있고요. 중국 AI 정책의 핵심은 ‘인재’에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80년대부터 이공계 교육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는데요.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에 많은 인재를 배출해 오고 있습니다. 2020년 중국의 STEM 졸업생 수는 357만 명으로 인도, 미국을 제치고 1등을 기록하고 있죠. 이렇게 배출된 많은 이공계 인재들은 AI 연구로 투입되고 있습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로 살펴보겠습니다. 세계적인 AI 연구 인력들의 이동 흐름을 분석한 매크로폴로 데이터가 있습니다. 2019년 중국은 최상위급 AI 연구자는 전 세계에서 10%, 상위급 연구자는 29% 정도를 배출했습니다. 2022년엔 그 수치가 각각 26%, 47%로 급증했어요. 이들은 중국에서 활동하며 중국 AI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죠. 기술 인재의 중요성을 중국 정부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중국 기업들도 AI 인재를 육성하고 영입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화웨이입니다. 화웨이는 매년 선전에서 ICT 경진대회를 개최하며 인재들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추진력, 그리고 그것에 발맞춰 움직이는 기업들 14억 명의 인구가 생산하는 방대한 데이터와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배경으로 중국 AI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가 세계 2위 AI 국가 중국을 만들었고, 근미래엔 미국을 넘어서 1위 자리도 넘보고 있는 겁니다. 해외 인재, 자본 다 들여와! 일본의 AI 전략 중국의 AI 전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건 중국이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구 규모도 그렇고요. 정치적인 상황도 다른 만큼 당장 우리가 중국의 전략을 따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우리나라와 여러모로 배경과 상황이 비슷한 일본과 타이완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야 현실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요. 일단 대한민국, 일본, 타이완의 체급부터 비교해 보겠습니다.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입니다. IMF에서 올해 4월에 발표한 자료입니다. 한, 일, 타이완의 1인당 GDP를 비교해 보면 아주 다닥다닥 붙어있어요. 2024년 기준으로는 대한민국이 가장 앞서고 있죠. 미래 전망치에선 세 나라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데 미래 먹거리인 AI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갈리게 될 겁니다. 두 나라 가운데 먼저 일본의 상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오그랲에서 자주 언급했던 구글의 논문 이야기를 다시 해보겠습니다. 딥러닝의 혁신을 불러온 트랜스포머 구조를 제시한 ‘Attention is All you need’ 입니다. 지난 ‘AI 상담’ 편에서 이 논문의 공저자 중 한 명인 노암 샤지어가 설립한 캐릭터닷AI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사실 여기 적혀있는 공저자들 모두 구글을 퇴사해서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주목할 인물은 8명 중 가장 늦게 구글을 퇴사한 일리언 존스입니다. 일리언 존스는 구글의 다른 연구진 데이비드 하와 함께 AI 스타트업을 창업합니다. 어디인고 하니, 바로 일본에서 말이죠. 이들이 만든 기업은 바로 사카나AI입니다. 2023년 8월 도쿄에서 문을 연 사카나AI는 창업 1년 만에 기업 가치 10억 달러를 넘겨 유니콘에 등극합니다. 이들은 왜 일본에서 창업했을까요? 일단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하가 일본에서 오랜 시간 거주했다는 것도 작용했겠지만, 또 하나 살펴봐야 하는 건 일본 정부의 지원입니다. 사카나AI는 초기 모델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GPU를 일본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지원받았어요. 일본 경제산업성은 작년 2월부터 GENIAC 프로젝트를 가동했는데요, 이 프로젝트에 발탁되는 기업에겐 GPU도 빌려주고, 데이터도 사용하게 해주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줬습니다. 그 첫 대상자 중에 사카나AI가 포함되었던 거죠. 이런 투자만 보면 일본이 AI와 상당히 가까워 보이지만 의외로 일본은 여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AI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인 것으로 조사가 됩니다. 호주 멜버른 대학교와 KPMG가 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조사국 47개국 가운데 일본은 뒤에서 2번째로 상당히 신뢰도가 낮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AI에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일본 정부가 선택한 건 해외 인재를 유치하고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거였습니다. 일본은 2022년을 스타트업 창출 원년으로 선언하고 역대 최대 규모인 1조 엔의 예산을 배정해 지원했습니다. 기존엔 사무실과 출자금 같은 조건이 있어야 외국인 창업자가 체류할 수 있었다면 이젠 이런 조건도 다 없애고 사업 계획만 인정되면 2년간 체류토록 해주고 있고요. ‘특별고도인재’라는 비자도 신설해서 해외 인재에게는 5년짜리 비자를 바로 내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일본 스타트업 시장은 꾸준히 성장했고 가장 큰 혜택을 본 게 AI와 소프트웨어 영역이었습니다. 2024년 일본 스타트업의 분야별 자금 조달 규모입니다. 중간 라인은 전체 평균이고요. 자금이 많이 몰린 분야를 보면 생성형AI와 IoT, SaaS 분야입니다. 반면 전자상거래나 콘텐츠, 헬스케어는 평균 대비 투자 금액이 적었어요. 일본의 현재 AI 전략은 세상에서 가장 AI 개발과 활용이 쉬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은 AI 규제를 강하게 취하고 있지 않아요. 일본하면 콘텐츠인데도 불구하고 저작권에 대해서도 AI와의 경계를 모호하게 두고 있죠. 그 영향인 걸까요? 빅테크들이 일본을 향하고 있습니다. 일단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소프트뱅크, 오픈AI, 오라클. 이 멤버 그대로 일본에 자금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와 오픈AI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만들겠다고 발표했고요. 오픈AI는 도쿄에 아시아 거점 오피스를 꾸리기도 했습니다. 오라클은 10년간 데이터센터 증설에만 8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죠. 이뿐만 아니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도 일본에 대규모 자금 투자 계획을 이미 공개했습니다. 물론 일본이 단순히 해외 자본을 들여와서 해외 기업만 좋은 일 시켜주려는 건 아닙니다. 단기적으로는 해외 자본과 기술력으로 AI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일본만의 AI 생태계를 꾸리려는 전략을 가동하고 있죠. 2022년 정부 주도로 설립한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선 AI 전용 칩을 만들고, 일본 특화 LLM은 사카나AI 같은 기업이 담당하고 또 데이터센터는 소프트뱅크가 일본 곳곳에 짓고 있습니다.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AI 가치 사슬을 만들어 나가려는 거죠. 반도체 생산기지를 넘어, 아시아 AI 허브를 노리는 타이완 이번엔 타이완입니다. 지난 5월에 타이완의 컴퓨텍스가 있었죠. 미국에 CES, 유럽에 IFA가 있다면 아시아엔 컴퓨텍스가 있다고 할 정도로 대표적인 산업 박람회입니다. 이번 2025 컴퓨텍스에서 단연 이목이 쏠렸던 건 엔비디아의 키노트 발표였습니다. 이 발표에서 젠슨 황은 타이완 정부와 폭스콘, TSMC와 손을 잡고 타이완에 AI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이미 일찍부터 엔비디아는 타이완의 다양한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점점 그 규모가 늘어나자 엔비디아 입장에선 아예 타이완에 신사옥을 지어버리기로 결정했어요. 이름하여 엔비디아 Constellation, '엔비디아 별자리'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엔비디아 본사와 맞먹는 규모로 지어질 예정입니다. 엔비디아는 타이완에게 매우 중요한 기업입니다. 일단 TSMC가 엔비디아 AI용 GPU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죠. AI 반도체를 설계하는 빅테크들의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조자로서도 충분히 세계를 호령할 수 있다는 걸 TSMC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올해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의 매출이 25조 1,000억 원인데요. TSMC가 8,393억 5,000만 타이완달러, 우리 돈으로 약 37조를 찍었습니다. 매출 격차가 10조 원 넘게 벌어져 있어요. TSMC 뿐이겠습니까? 미디어텍, 폭스콘, 콴타 등 다양한 타이완의 회사들이 엔비디아의 공급망 곳곳에 들어가 있어요. 엔비디아가 성장하면 자연스레 이 기업들도 함께 성장하겠죠. 마치 대기업과 그 기업에 연계된 수많은 중소기업들처럼 미국의 엔비디아가 타이완의 기업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이완은 ‘하청 공장’, ‘공업 중심’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컴퓨텍스에서 이뤄진 발표를 살펴보면 타이완은 기존의 ‘세계의 반도체 공장’ 역할을 넘어서 그 이상을 노리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일단 엔비디아가 타이완 정부와 함께 손잡고 연구개발 역량까지 더해줄 계획을 발표했거든요. 타이완에 새롭게 지어질 엔비디아의 아시아 신사옥은 글로벌 연구개발 본사 역할을 할 예정입니다. 젠슨 황은 ‘타이완의 엔비디아 별자리’에서 AI 반도체도 설계하고, 양자컴퓨팅 같은 미래 AI 핵심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 얘기했어요. 글로벌 기업들은 타이완과의 협력을 늘려오고 있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인테그리스도 가오슝에 공장을 지었고요, 마이크론도 타이중에 공장 규모를 더 넓히고 있습니다. 미국을 제외하면 타이완에 위치한 구글의 R&D 센터가 가장 큽니다. 많은 기업들이 타이완으로 오는 핵심 이유, 바로 타이완에는 고품질의 공학 인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는 타이완의 인재 경쟁력입니다. 타이완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하는 인재 경쟁력에서 최근 아시아 1위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다 제치고 있어요. 2024년 순위를 보면 타이완이 18위, 한국은 26위, 중국이 38위, 일본이 43위입니다. 타이완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AI 인재 20만 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까지 추진 중입니다. 100억 타이완달러를 10년간 투자해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인재 양성을 통해 미래 AI 시장에 대응하겠다는 겁니다. 미국과 중국이 R&D 중심의 연구 인재에 집중되어 있다면 타이완은 산업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를 길러내 차별화를 꾀하고 있죠. 양질의 공학 인재풀을 탐내는 기업들을 더 많이 끌어들여서 타이완을 글로벌 AI 공급망의 한 축으로 만들고, 연구 개발 영역까지 투자를 늘려 AI 영토의 범위를 넓히려는 게 타이완의 계획인 겁니다. 일본, 타이완과의 경쟁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선? 일본과 대만의 AI 전략, 뭔가 설명만 들으면 착착 준비가 되는 모습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일단 일본은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실제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올라오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요. 가령 AI 반도체 라피더스를 통해서 자립하려 하지만 실제 상용화는 2027년은 넘겨야 해요. 또 일본인들이 AI에 보수적이라는 것도 걸림돌입니다. 내수 시장 규모는 있지만, 실제 AI 서비스가 확산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죠. 타이완은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미국 의존성이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가 갑자기 바뀔 일도 없고요, 그러면 TSMC도 살아남기 위해서 미국에 공장을 지어서 생산해야 합니다. 트럼프가 아예 대놓고 타이완이 미국의 반도체 사업을 훔쳐가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 불안감은 계속 남아 있는 겁니다. 타이완이 생산기지 이상으로 도약하려 하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설계, 모델 개발을 위한 연구에 많은 시간이 투자되어야 해요. 즉 타이완도 종속성을 벗어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대한민국 환경을 따지고 보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일본, 타이완과 비교해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기업들만으로 AI 생태계를 꾸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일단 메모리반도체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압도적이죠. 거기에 AI 전용 칩 개발 능력도 높이고 있습니다. 퓨리오사나 리벨리온이 대표적이죠. 또한 네이버와 LG 등 대기업이 나서서 한국어 특화 LLM을 개발해서 오픈소스로 공개했고요. AI가 적용된 서비스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습니다. 주요 기업들은 자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플랫폼도 보유하고 있죠. 칩과 데이터센터, 그리고 모델과 서비스까지.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 자체 기술력만으로 AI 가치사슬을 꾸리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아시아 AI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말 그대로 ‘허브’가 되려면 사람도 모이고 기업도 모이는 환경이 꾸려져야 할 겁니다.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잡아둘 무언가가 필요하고요. 또 해외의 고급 인재를 우리나라에 눌러 앉힐 매력적인 당근도 있어야 할 겁니다. 대기업이 만든 한국어 특화 모델을 활용해 다양한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까지 중국과 일본, 그리고 타이완의 AI 전략의 강점과 단점을 살펴봤습니다. 중국의 강력한 정부 주도 투자, 일본의 해외 인재와 자본 유치 전략, 타이완의 제조업 기반에서 연구 개발 확장 전략. 세 국가의 전략 중 우리나라가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려서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길 바라며 오그랲 아시아 AI편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2025 Annual Threat Assessment of the US intelligence Community - The Global AI Talent Tracker 2.0 | Macropolo - Top Countries by Number of STEM Graduates 2020 | CSET - Attention Is All You Need - Japan Startup Finance 2024 | SPEEDA - Trust in artificial intelligence: global insights 2025 | KPMG - NVIDIA CEO Jensen Huang Keynote at COMPUTEX 2025 - World Talent Ranking 2024 | IMD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
세상 복잡한 이야기들, 5가지 그래프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오그랲입니다. 어느새 다음 주로 대선이 다가왔습니다. 원래였다면 2027년 3월에 실시되었어야 할 대선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조기 대선을 맞이하게 되었죠. 이른 대선을 맞이하여 오그랲도 선거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선거와 함께 풀어낼 수 있는 다양한 데이터들이 있겠지만, 오늘은 선거권을 갖고 있는 유권자들의 세대 이야기가 주인공입니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가장 규모가 많은 4050 세대의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다루어지는 만큼 오늘 오그랲에서는 2030 젊은 세대와 6070 노년 세대에 집중해서 풀어보려고 합니다. 또다시 찾아온 '장미 대선'... 유권자 86% "반드시 투표"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부터 올해 4월 4일 대통령 파면, 그리고 6월 3일 대통령 선거까지. 지난 몇 개월 사이에 정말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새롭게 뽑아야 할 21대 대통령.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올까요? 일단 선관위에서 5월 초에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유권자의 86%는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대선은 다른 선거들보다 투표율이 높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인 13대 대선부터 살펴보면 17대 대선까지는 투표율이 꾸준히 줄어들다가 다시 회복하는 모습인데 평균을 계산해 보면 77.0%가 나옵니다. 같은 시기 총선, 지선의 평균 투표율은 50~60%에 불과합니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할 국가 원수를 뽑는 투표이니 만큼 관심도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도 그중에서도 투표율이 가장 낮았던 때를 찾아보면 2007년 있었던 17대 대선입니다. 17대 대선은 민주화 이래로 가장 압도적인 득표율 격차로 이겼던 대선인데요. 당시 이명박 후보가 48.67%를 얻으면서 26.14%를 얻은 정동영 후보를 22.53%p 차로 이겼어요. 17대 대선은 득표율뿐 아니라 득표차도 531만 7,708표로 1등이었는데, 지난 2017년에 있었던 첫 번째 장미 대선이 그 기록을 갈아 치웠습니다. 19대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 사이의 득표차는 557만 951표로, 기존 기록에서 25만 표 이상 더 차이를 벌렸죠. 그렇다면 1등과 2등의 격차가 가장 적었던, 가장 치열하게 붙었던 때는 언제였을까요? 바로 지난 대선입니다. 20대 대선에서 당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무려 0.73%p, 표 차이는 단 24만 7,077표였습니다. 이 숫자는 민주화 이후 최소 득표차입니다. 참고로 민주화 이전까지 포함해 보자면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가 맞붙었던 5대 대선의 15만 6,026표가 가장 적습니다. 2030 성별로 갈라진 20대 대선, 이번에도 이어질까? 지난 20대 대선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20대 대선이 특별한 건 기존 대선에서는 극명하게 보이지 않았던 '성별 격차'가 드러났던 대선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엔 지역, 그리고 연령대에 따라 정치 성향이 갈렸다면 지난 20대 대선에선 성별에 따라 성향이 갈라졌어요. 이 그래프는 20대 대선 연령별, 성별 출구조사 자료입니다. 일단 연령별로 보면 투표 성향이 명확히 갈리죠? 4050에선 진보 후보의 지지세가 강하고 60대 이상에선 보수 후보의 지지세가 뚜렷합니다. 이번엔 2030 청년층을 보겠습니다. 2030을 보면 성별에 따라 투표 성향이 갈리는 모습입니다. 20대 남성은 과반 이상이 윤석열 당시 후보에게 표를 주었고 반대로 20대 여성은 이재명 후보를 과반 이상 지지했죠. 30대에서도 20대보다는 격차가 덜하지만 성별에 따른 격차가 확인됩니다. 10년 전 대선의 출구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느껴집니다. 지금은 성별에 따라 갈렸던 30대가 10년 전에는 진보 후보인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어요. 하지만 10년이 흘러 지금의 30대 남성은 보수화되었죠. 20대의 성별 격차는 30대보다 훨씬 더 크게 벌어졌고요. 이러한 흐름은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지난 대선에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조사한 성별 이념 성향 차이 결과인데요. 숫자가 크면 클수록 보수인데, 20대 남성은 60대 남성 다음으로 보수성이 높게 나타났어요. 20대 남성과 20대 여성 사이의 정치 성향 차이는 1.25점. 다른 모든 세대들 가운데 가장 컸습니다. 세대별 이념 성향에 대한 기존 통념 중 하나는 "젊은 층은 진보, 고령 층은 보수"라는 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나타난 결과를 보자면 진보 진영 입장에선 믿었던 집토끼를 잃은 셈입니다. 2030의 지지를 되돌리려는 진보 진영 입장에서도 또 청년의 늘어난 보수세를 더 늘리려는 보수 진영 입장에서도 젊은 층은 놓칠 수 없는 유권자이기에 이들을 향한 구애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SNS를 통해서 말이죠. 콘텐츠 소비가 쇼츠와 릴스 중심의 숏폼 콘텐츠로 넘어오면서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숏폼 공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년층의 알고리즘에 하나라도 걸리라는 마음으로 후보자 개인 채널, 정당 채널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숏폼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어요. 탄핵이 선고된 4월 4일 이후 주요 네 후보 측에서 뽑아낸 유튜브 쇼츠 조회수를 분석해 보면 이준석 후보가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체 9천만 뷰 가운데 이준석 후보 쇼츠 조회수가 82%를 차지하고 있죠.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그래프는 네 후보들의 쇼츠 평균 조회수 흐름입니다. 이준석 후보 측의 쇼츠는 꾸준히 상승하여 평균 조회수 20만을 바라보고 있어요. 이재명 후보 측의 쇼츠도 상승세를 타고 2위를 유지 중입니다. 김문수 후보와 권영국 후보도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지만 1, 2위 후보들과의 격차가 큰 상황입니다. 쇼츠의 전체 좋아요를 보면 이준석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양강 체제를 보이고 있습니다. SNS 플랫폼에서 후보들 간의 치열한 경쟁은 과연 2030 세대의 정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지난 대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던 성별 격차가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양상을 보일지, 21대 대선의 관전 포인트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늙어가는 대한민국, 2030 넘어선 6070 미래 주요 유권자가 될 2030 젊은 표심에 정치권이 집중한 탓에 상대적으로 노년층은 선거에서 가려져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래서는 안 될 겁니다. 왜냐하면 그러기엔 노년층의 규모가 너무나도 커져버렸거든요. 2010년부터 2024년까지 대선, 총선, 지선의 연령별 유권자 비율을 나타내면 이렇게 됩니다. 지난해 4월에 치러진 22대 총선에서는 사상 최초로 6070세대가 2030 규모를 넘어섰어요. 이러한 흐름은 당연히 이번 대선에도 적용됩니다. 2025년 4월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가지고 선거인수를 그려보면 이렇게 나와요. 지난해보다 2030은 더 줄어들었고 6070은 더 늘어났죠. 이 인구구조를 지역별로 그려보겠습니다. 회색으로 표시된 게 전체 유권자 중에 6070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들입니다. 전체 시군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51.8%가 해당됩니다. 4050이 가장 많은 지역은 41.4%, 2030이 가장 많은 지역은 6.8%에 불과하죠. 정리해 보면 전국의 절반 이상의 지역은 6070세대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2017년 대선 때만 해도 4050의 영향력이 가장 컸어요. 4050 세대가 제일 많았던 지역이 전체의 63.5%였고 6070이 많았던 지역은 25.7%에 불과했죠. 하지만 단 8년 사이에 이렇게나 변해버린 겁니다. 물론 단순히 인구 구조만 보고 판단하기는 이릅니다. 왜냐하면 유권자 모두가 투표장에 오는 건 아니니까요. 2030이 많이 있더라도 실제 투표장에 오는 사람이 적을 수 있고 6070이 많이 없더라도 더 많이 투표하러 나올 수 있죠. 최근 4번의 대선에서 연령대별 투표율을 살펴보면 6070세대는 최소 75%를 넘기는 매우 높은 투표율을 기록 중입니다. 지난 19대, 20대 대선에선 80%를 넘길 정도였죠. 노년층의 인구도 과거보다 많아졌고, 게다가 투표장에 나오는 비율도 세대 중 가장 높다면요? 투표장에 오는 사람들로 지도를 다시 그리면 이렇게 바뀝니다.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지역이 6070이 높은 곳으로 변경되었어요. 1,300만이 넘었던 2030 유권자 중 투표장에 오는 사람들은 949만 명으로 확 줄어들고 1,400만의 6070세대 가운데 투표하는 분들은 1,212만 명이나 됩니다. 엄청난 규모로 커지고 있는 6070세대. 나이 든 유권자가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만큼 보수 세력에게 유리한 걸로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단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6070세대에 86세대가 끼어있기 때문이죠.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교를 다닌 86세대들은 민주화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진보 진영을 지지해 왔습니다. 지난 대선까지 세대별 투표 변화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이들 86세대들은 60대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화가 매우 더딥니다. 노년층에서도 진보적, 혹은 중도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6070이 늘어났다고 보수 진영이 웃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거죠. 과연 6070 세대는 이번 대선에서 어느 후보의 손을 들어줄까요? 이번 조기 대선은 비상계엄으로 인한 탄핵으로 치러지는 선거입니다. 계엄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연령별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4050 세대가 평균을 상회하는 82.9%를 기록하며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고, 2030 세대 역시 평균보다 높은 반대 비율을 보였습니다. 반면 6070 세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반대 비율이 현저히 낮았어요. 전체 유권자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4050은 계엄 사태에 대한 반대도 크고, 탄핵에도 적극적인 모습이었어요. 유권자 수도 많고, 투표를 통해 정치를 바꿔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그동안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아마도 이번 대선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오늘 살펴본 바와 같이 4050에 비해 덜 주목받았던 젊은 2030 세대와 6070 노년층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성별로 성향이 갈라진 2030, 그리고 86세대가 포함된 6070. 과연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요?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책임입니다. 여러분 모두 투표에 참여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시길 바라며 오늘 오그랲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 제21대 대통령 1차 유권자의식조사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율 분석 결과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고령층의 계엄에 대한 태도 | EAI 워킹페이퍼 - 86세대와 세대 효과의 종언: 1992-2022 대선 분석 | EAI 워킹페이퍼 - 청년 젠더 갈등: 이념 갈등을 뛰어넘어 한국 정치의 새로운 균열선 될까? | EAI 스페셜리포트 - 주민등록 인구통계 | 행정안전부 - YouTube Data API | Google Cloud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
세상 복잡한 이야기들, 5가지 그래프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오그랲입니다. 지난 5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저작권의 총책임자인 저작권청장을 해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뭐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람을 자르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죠. 이미 예전부터 ‘너 해고’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만큼요. 그런데 이번 저작권청장 해임이 조금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오그랲에서는 도대체 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시점에 뜬금없이 저작권청장을 해고한 것인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럼프, 미 역사상 최초로 저작권청장 해임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듯이 여느 정부라도, 집권 초기에는 자신의 정책을 잘 집행할 수 있는 사람들로 새롭게 교체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근데 트럼프 정부에서는 유독 그 비율이 높긴 합니다. 데이터로 살펴보시죠. 레이건 정부부터 바이든 행정부까지 내각 교체 건수를 살펴보면 트럼프 1기 행정부가 14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내각뿐 아니라 대통령을 보좌하는, 이른바 'A팀'의 교체율도 트럼프 행정부가 압도적으로 높아요. 다른 정부들과 비교해서 유일하게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교체율이 90%를 넘겼고요, 집권 1년 차의 교체율도 유일하게 30%가 넘죠. 이런 데이터만 보자면 이번에 해임된 저작권청장 쉬라 펄머터의 소식도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아 참고로 쉬라 펄머터는 지난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 임명되어서 최근까지 주욱 직을 역임하고 있었는데, 지난 5월 10일에 아무런 설명 없이 해고를 당한 겁니다. 일단 이번 해고가 특별한 점 하나는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저작권청장을 날려버린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겁니다. 저작권청장의 임명과 면직 권한은 의회도서관장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저작권청장을 잘라 버렸죠. ‘불법 해임’이라는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도 트럼프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저작권청장을 날린 이유는 뭘까요? 그 힌트가 아래 보고서에 있습니다. 이번 해임은 이 보고서가 공개된 이후 바로 다음 날 이뤄졌습니다. 보고서의 제목은 Report on Copyright and Artificial Intelligence, 저작권과 AI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파트 1과 파트 2는 이미 이전에 공개가 됐었고요,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이는 건 파트 3인 '생성형 AI 학습'입니다. 저작권청은 이례적으로 보고서의 사전 공개 버전을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는데,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생성형 AI 학습 중요하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저작권을 침해할 순 없다는 거죠. 저작권법에서는 언론 보도나 교육 목적 등 이른바 '공정 이용'에 한해서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제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AI를 만드는 기업들은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것이 ‘공정 이용’이라고 주장해 왔어요.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방대한 양의 저작물을 상업적으로 사용해서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공정 사용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AI 기업들과 반대되는 입장의 보고서가 나온 뒤 청장은 이메일로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저작권법은 AI 기업들에게 매우 골칫거리였습니다. 트위터를 창업했던 잭 도시는 지난 4월에 "모든 저작권법을 지워버리자"는 글을 올리기도 했고요, 일론 머스크는 곧바로 "동의한다"고 답했죠. 구글과 오픈AI도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이들과 비슷한 입장입니다. 급변하는 AI 환경에서 미국이 중국보다 앞서나가려면 이 ‘공정 이용’에 예외를 허용해 줘야 한다고 요청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AI 모델 학습이 '공정 이용'이 아니라고 한 저작권청장을 잘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사실상 트럼프 정부가 저작권법이 아닌 AI 기업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뉴스도, 책도 이미 무단으로 사용한 빅테크들 사실 이미 AI 기업들은 저작권법과 관련해서 수많은 소송 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송 과정에서 공개되는 증거들과 내부 문건들을 보면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무단으로 저작권이 있는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먼저 이건 뉴욕타임스가 법원에 제출한 문서입니다. 여기엔 뉴욕타임스 기사가 오픈AI의 모델에 얼마나 많이 포함되어 있는지, 그 증거가 담겨 있어요. 뉴욕타임스 기자가 쓴 음식 리뷰 기사에 대한 질문을 챗GPT에 던져봤습니다. 후속 질문으로 해당 리뷰의 첫 단락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자 챗GPT가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그대로 내뱉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오픈AI가 자신들의 기사를 임의로 학습하고, 또 이렇게 암기된 기사를 다시 그대로 출력하는 건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저작권 침해 사례로 볼 수 있는 예시 100개를 정리한 이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했어요. 반면 오픈AI는 모델이 학습 데이터를 ‘암기’해서 내뱉는 건 버그라고 얘기합니다. 또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사용한 건 저작권법에서 허용하는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이 소송이 시작된 게 지난 2023년 12월인데요. 아직 결과가 나오진 않고 있습니다. 참고로 올해 3월에 오픈AI가 이 소송을 기각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어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사들을 보니까 이미 2020년부터 AI 학습에 자신들의 기사를 활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2024년 다 되어서 소송을 냈으니 이미 소송 기한을 넘겼다는 건데요. 물론 법원은 오픈AI의 이 요청을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이 사건의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지만, 뉴욕타임스가 승리하게 된다면 오픈AI 뿐 아니라 다른 LLM을 만들던 빅테크들도 난리가 날 수 있습니다.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아까 증거로 제시했던 뉴욕타임스 기사를 다른 모델들도 암기하고 있는지 확인을 해봤습니다. 오픈AI 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의 모델에서도 뉴욕타임스 기사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모델 크기가 클수록 기사 암기량이 더 많았고요. 가장 많이 발견된 모델은 앤트로픽의 Claude-3 Opus 모델이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오히려 오픈AI 모델의 기사 암기량이 다른 모델들보다 적었는데요, 연구진들은 오픈AI가 소송 중이니만큼 답변 필터링을 더 강력하게 한 영향 아닐까 해석하고 있습니다. 기사뿐 아니라 책 데이터도 불법으로 다운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기업도 있습니다. 메타는 작가들과 소송 전을 벌이고 있는데요,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타네히시 코츠 작가부터, SNL로 유명한 사라 실버먼까지 면면이 화려합니다. 작가들은 메타가 모델을 학습하는 데 자신들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소송 과정에서 공개된 내부 자료를 보면 메타에서는 불법으로 전자책을 다운 받은 정황이 포착되었는데, 립젠(Libgen) 같은 불법 공유 사이트에서 메타가 다운받은 전자책 규모가 무려 81.7 테라바이트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죠. 메타 내부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문제가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은폐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오갔어요. 가령 ISBN, Copyright, 저작권 표시가 포함된 데이터는 다 지운다거나, 앞서 살펴본 뉴욕타임스 사례처럼 무단으로 암기한 자료가 뱉어지지 않도록 그런 질문들은 아예 답변하지 않도록 모델을 조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죠. 게다가 불법 다운의 흔적이 남지 않으려고 서버를 우회해서 토렌트로 다운 받은 정황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메타뿐 아니라 오픈AI도 무단으로 책 데이터를 학습한 듯합니다. 미국 사회과학연구협의회 연구진은 프로그래밍 공부하시는 분들이라면 익숙할 오라일리 출판사의 책 34권을 가지고 오픈AI 모델이 책의 자료를 학습했는지 파악해 봤어요. 오그랲 세 번째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오픈AI의 모델들은 오라일리와 라이선스 계약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유료 구독자만 볼 수 있는 비공개 콘텐츠를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GPT-4o는 무려 82%나 파악하고 있었죠. 게다가 공개된 자료보다 비공개 콘텐츠를 더 잘 인지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건 무단으로 크롤링했거나 메타처럼 비공식 경로를 사용한 건 아닌지 의심이 되기도 합니다. 창작자 "GPU엔 수조 원 쓰면서, 데이터엔 왜 안 쓰나요?" 글과 책뿐이겠습니까. 그림,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저작물들의 이용을 두고 창작자와 AI 기업들 사이의 갈등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빅테크들은 왜 이렇게 저작권이 있는 자료들을 탐하는 걸까요? 그건 바로 이게 양질의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AI 모델을 만들기 위해선 핵심 자원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 뛰어난 인재가 있어야 할 테고요, 또 모델을 만들기 위한 컴퓨팅 인프라도 갖춰져야 할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데이터까지. 좋은 모델을 만들기 위해선 데이터를 많이 투입하면 됩니다. 하지만 많은 양의 데이터를 투입하는 데는 리소스가 엄청나게 들죠. 그래서 기업들은 데이터를 덜 넣으면서도 좋은 모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왔으니, 그 해답은 바로 ‘양질의 데이터’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발표한 “Textbooks Are All You Needs”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교과서”라는 말대로 교과서 수준의 양질의 데이터만 있다면 학습 데이터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좋은 성능의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메타가 토렌트를 써서라도 책을 다운받으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 좋습니다. 양질의 데이터 쓰는 것 좋죠. 그런데 왜 그걸 훔쳐서 쓰냐는 게 창작자들의 입장입니다. 엔지니어 한 명당 10억 넘게 주면서 채용하고, 또 GPU 같은 인프라에 1조 넘게 투자하고 있으면서 왜 데이터는 불법으로, 무료로 사용하려고 하는 건지 납득이 안 된다는 거죠. GPU를 훔치는 건 범죄고, 데이터를 무단으로 훔치는 건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창작자들은 빅테크들의 질주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 2024년 10월, AI 기업이 창작물을 무단 학습하는 것에 반대하는 서명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만 예술인 1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2025년 5월엔 그 규모가 5만 명을 넘어섰어요. 오그랲 네 번째 그래프는 서명에 참여한 예술인들입니다. 기관 279개, 그리고 5만 544명의 개인이 참여했는데요. 여기엔 줄리안 무어, 케빈 베이컨, 킷 해링턴 같은 배우들 뿐 아니라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큐어의 로버트 스미스, 케이트 부시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창작자들이 우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가에선 AI 기업에 힘을 실어주려는 모습입니다. 트럼프의 저작권청장 해임 사건도 그 전조 증상으로 보이고요, 영국은 실제로 관련 법을 개정하려 했어요. 영국 정부는 AI 발전을 위해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도 학습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공개했는데요, 이 법안이 공개된 이후 많은 예술인이 분노했습니다. 그중엔 폴 매카트니와 엘튼 존 같은 레전드들도 있었죠. 이들은 왜 예술가들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기술 대기업에만 이익을 집중해 주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최근엔 1,000명의 영국 아티스트들이 모여 영국 정부에 항의하는 뜻을 모아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Is This What We Want?>라는 앨범인데요. 이 앨범에 수록곡 제목을 이어 붙이면 이런 문장이 완성됩니다. 예술가들의 강력한 항의가 이어지자 영국 정부는 기존 개정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어요. 투명한 공개 vs 그건 영업비밀 전 세계를 휩쓸고 간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들 기억하시죠. 누가 봐도 챗GPT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미지를 학습하고 생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걸 두고 저작권 침해라고 딱 떨어지게 말하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AI 학습 과정에서 정말로 지브리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한 건지 판단하려면 오픈AI의 학습 데이터를 우리가 알아야 하는데, 기업들이 공개하지 않는 한 외부에서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명쾌한 해결 방법은 학습 데이터를 법적으로 아예 공개하도록 하면 됩니다. 어떤 재료들을 사용했고, 이 재료는 어느 창작자가 소유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밝히는 식으로요. 하지만 기업들은 학습 데이터를 공개하라는 요구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경쟁 시대에 데이터라는 것 자체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데, 이걸 공개해 버리면 경쟁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겁니다. 일단 학계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해서라도 저작권 침해를 줄이려는 시도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부 연구진은 콘텐츠의 독창성을 아예 수치화해서 AI가 이미지를 생성할 때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의 고유 특징들을 모방하지 않도록 했어요. 한 번 슈퍼마리오 시리즈의 마리오를 떠올려볼까요? 마리오 하면 떠오르는 고유 특징들이 있죠. 커다란 눈, 동그란 코, 그리고 콧수염까지. 또 M이 박혀있는 빨간 모자와 빨간 셔츠, 파란색 멜빵바지도 있습니다. 연구진은 알고리즘을 통해 마리오 특유의 고유 특징을 포함하지 않도록 해서 가장 평균적인 이미지만을 생성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배트맨을 요구해도 이렇게, 캡틴 아메리카를 요구해도 이렇게, 주디를 요구해도 이렇게 나오도록 말이죠.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를 통해 이 알고리즘의 효과를 살펴보겠습니다. 직접적으로 '마리오'를 그려달라고 모델에 입력했을 때 아무런 제약이 없는 모델에선 최대 41.3%가 저작권과 유사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연구진이 개발한 알고리즘이 적용된 경우엔 3.3%로 크게 떨어집니다. 어떤 연구진들은 AI의 학습 데이터 자체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AI가 문제가 되는 저작권 데이터를 학습하고 암기하고 있다면, 이걸 지워버리자는 거죠. 이른바 머신 언러닝인데요. 머신 언러닝은 저작권뿐 아니라 AI가 학습한 잘못된 가짜 정보와 개인정보도 없앨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어요. 정부에서는 제도를 통해 기술과 저작권의 간극을 메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단 미국과 유럽에서는 학습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라는 법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다만 미 연방 차원에서는 아직 입법으로 이어지진 않았고요, 발의만 되어 있어요. 대신 AI가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에선 2026년 1월부터 AI 기업들은 학습 데이터의 출처와 지적재산권 보호 여부를 웹사이트에 공개해야 합니다. 물론 많은 AI 기업은 이 법안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요. 유럽연합에서는 AI 기본법을 통해 데이터 출처를 제출토록 해두었어요. 만약 위반하게 될 경우엔 매출 기준으로 벌금이 부과될 수 있죠. 유럽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AI 기본법을 제정한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요? 우리나라의 AI 기본법에는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보호를 명시한 조항이 없습니다. 대신 AI 저작권법을 만들어서 따로 관리할 예정이었는데, 아직 뚜렷한 진전이 보이진 않고 있습니다. 다만 영국에서도 예술가들의 행동이 입법을 막았듯 우리나라에서도 창작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근엔 15개 창작자 단체가 AI 학습 데이터를 공개하고 창작자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저작권자와 빅테크 사이의 갈등 아마 근시일 내에 해결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 내부에서도 이런 무분별한 데이터 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메타 임직원 중에는 불법 복제 자료를 사용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고, 내부적으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AI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또 누군가는 이득을 본다면 그건 좋은 과정이 될 수 없을 겁니다. 기업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에 창작자의 움직임이 더해지고 정부도 이에 발맞춰 제도를 정비한다면 기술 발전과 창작자 권리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충분히 맞출 수 있지 않을까요? 오그랲이 준비한 AI와 저작권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 Copyright and Artificial Intelligence Part 3: Generative AI Training pre-publication version | united states copyright office - Tracking turnover in the Trump administration | Brookings - ONE HUNDRED EXAMPLES OF GPT-4 MEMORIZING CONTENT FROM THE NEW YORK TIMES - Exploring Memorization and Copyright Violation in Frontier LLMs: A Study of the New York Times v. OpenAI 2023 lawsuit - Beyond Public Access in LLM Pre-Training Data Non-public book content in OpenAI’s Models - This Is How Meta AI Staffers Deemed More Than 7 Million Books to Have No “Economic Value” | VANITY FAIR - Meta Secretly Trained Its AI on a Notorious Piracy Database, Newly Unredacted Court Docs Reveal | Wired - Tackling copyright issues in AI image generation through originality estimation and genericization | Nature - Textbooks Are All You Need | Microsoft Research - Statement on AI training | aitrainingstatement.org - Rethinking machine unlearning for large language models | Nature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
세상 복잡한 이야기들, 5가지 그래프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오그랲입니다.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의 공약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시대의 화두가 된 AI 관련 정책도 빠지지 않고 있죠. 후보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AI 투자를 늘리겠다, GPU 더 많이 사겠다 뭐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어요. 오늘 오그랲에서는 이러한 공약을 듣기 앞서서 알아두면 좋을 지식들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AI에 그래픽카드에 들어가는 GPU가 왜 필요한 건지, 또 GPU만 우리가 확보하게 된다면 AI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건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하나하나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AI에는 GPU가 필요할까? 아마 CPU, GPU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특히 컴퓨터 게임을 즐겨하는 게이머 입장에선 그래픽카드와 GPU가 더 익숙할 테고요. CPU와 GPU의 단어를 풀어보면 중앙처리장치, 그리고 그래픽처리장치 이렇게 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CPU는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고요, GPU는 그래픽을 처리하죠. 이 GPU라는 단어가 탄생한 곳, 바로 엔비디아입니다. 1999년 엔비디아가 세계 최초의 그래픽 특화 장치인 지포스 256을 출시하는데, 이때 엔비디아의 마케팅 책임자가 GPU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사실 엔비디아는 CPU를 만들고 싶었지만 워낙 CPU에는 인텔같은 강자들이 꽉 잡고 있었던지라 CPU 시장 대신, 당시 비디오 게임으로 인해 수요가 높아진 그래픽 쪽으로 눈길을 돌렸던 거죠. GPU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보기 위해 한 번 예시를 들어보도록 할게요. 우리가 컴퓨터로 보는 화면은 아주아주 작은 픽셀들로 이뤄져 있어요. 가령 FHD 해상도라면 1920 X 1080로 표시되는데 이 말은 가로엔 1,920개의 픽셀이, 세로엔 1,080개의 픽셀이 있다는 거죠. 곱해보면 FHD에는 모두 207만 3,600개의 픽셀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 화면으로 돌아가는 게임이 1초에 60장의 프레임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컴퓨터는 1초에 1억 2,441만 6,000개의 픽셀을 처리해야 합니다. 개수만 해도 1억 개가 넘는데, 이 1억 개의 픽셀에 들어가는 정보량은 더 많습니다. 만약 3D 게임이라면 3D 모델링 정보를 2D로 바꿔서 위치 정보를 넣어줘야 하고요. 또 조명에 따른 효과나 텍스처에 따른 색상의 변화값도 계산되어야 하죠. 아주 짧은 시간에 수많은 계산을 처리하기에 기존의 CPU는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CPU는 복잡한 정보를 순차적으로 계산하는 데 특화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CPU보다는 덜 똑똑하더라도 수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계산할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엔비디아는 GPU를 만들었습니다. 왼쪽이 CPU고 오른쪽이 GPU입니다. 여기서 초록색으로 표시된 ALU가 연산을 하는 장치인데요. CPU에는 소수의 똑똑한 계산기가 들어있는 반면, GPU에는 CPU에는 못 미치지만 훨씬 더 많은 계산기가 들어있어요. 이렇게 다른 구조 때문에 계산량이 크게 차이나 납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를 통해 CPU와 GPU의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CPU와 GPU의 초당 계산 횟수를 나타내보면 이렇습니다. GPU에선 수많은 계산기가 한꺼번에 연산을 하기 때문에 CPU보다 연산량이 압도적으로 높죠. 엔비디아의 GPU는 90년대 3D 게임의 유행과 함께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젠슨 황은 그래픽이 아닌 다른 곳에 주목했는데, 그건 바로 GPU의 슈퍼컴퓨팅 능력이었어요. 젠슨 황은 GPU의 병렬 계산 능력을 잘 살린다면 과학 연구라든지 날씨 시뮬레이션 같은 복잡한 연구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바로 CUDA입니다. 엔비디아가 2006년 말에 CUDA를 출시한 직후 시장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게임과 그래픽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갑자기 슈퍼컴퓨팅?"이라는 반응이었죠. 그 영향이었는지 2008년까지 엔비디아 주가는 꾸준히 하락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슨 황은 물리학, 경제학 등 학계를 가리지 않고 CUDA를 꾸준히 세일즈 했죠. 그러다가 2012년 사건이 터진 겁니다. 엔비디아의 월드모델 편에서 다루었던 제프리 힌턴 팀의 ‘알렉스 넷’ 쇼크가 바로 그겁니다. 당시 구글이 AI 신경망 훈련에 CPU를 약 1만 6,000천 개를 사용했는데 이들은 단 2개의 엔비디아 GPU만 사용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어요. 딥러닝에 필요한 수많은 연산을 GPU를 이용해 처리하니 기존보다 훨씬 더 효율도 좋고, 성능이 좋다는 걸 증명해 낸 거죠. 이후 엔비디아는 머신러닝과 AI에 집중해 GPU를 생산합니다. 페르미, 케플러, 맥스웰, 파스칼 등 과학사에 족적을 남긴 학자들의 이름을 붙인 AI 전용 GPU를 생산했고, 암페어 이후부터는 그래픽 기능은 더 줄여서 GPU의 범용성은 낮추고, 대신 병렬 컴퓨팅 능력을 더 높인 AI 특화 GPU를 출시하기 시작합니다. 이 암페어 시리즈가 바로 뉴스에 자주 나오는 A100 GPU입니다. 암페어 다음 시리즈는 컴퓨터에서 '버그'라는 개념을 창시한 그레이스 호퍼의 이름을 딴 H 시리즈이고요. 왜 AI 영역에 GPU가 필요한지 어느 정도 감이 오셨나요? 참고로 GPU의 병렬 처리에 관심을 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코인 채굴러들입니다. 비트코인 채굴은 단순한 계산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과정인데, 이 역시 GPU가 능력을 발휘한 겁니다. "GPU, 마약보다 구하기 어렵다" 코인 광풍에도 GPU가 핵심이고, 또 AI 발전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GPU 수요는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미국과 중국같이 AI 리더 국가들 입장에선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GPU를 확보해서 모델 고도화에 나서야 하고요. 또 우리나라같이 후발 국가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AI 모델 개발에 나서야 하는 만큼 GPU가 절실합니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공급하는 GPU 물량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지난 2023년에 있었던 월스트리트저널의 CEO 카운슬 서밋에서 일론 머스크는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GPU가 마약보다 훨씬 구하기 어렵다"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빅테크들은 엔비디아의 H100 GPU를 속속들이 사모으고 있어요.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 엔비디아의 최대 고객은 마이크로소프트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4년 엔비디아가 판매한 전체 GPU 가운데 20% 넘게 쓸어 버렸습니다. 모두 48만 5,000개나 구매했죠. 뒤이어 메타가 22만 4천 장, 아마존이 19만 6천 장, 구글이 16만 9천 장을 기록했는데, 마이크로소프트 구매량의 절반도 되질 않아요. 마이크로소프트가 엔비디아에 사용한 자금이 310억 달러, 우리나라 돈 43조 원이 넘습니다. 우리나라 2025년 국방부 예산이 45조 원인데 이 금액을 GPU 사는 데에만 쓴 거죠. 이렇게 구하기도 어렵고, 또 사려니 가격도 문제인 엔비디아의 GPU. 기업들은 엔비디아 GPU 대신 쓸 무언가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GPU의 병렬처리능력이 AI 모델 개발에 좋다는 건 알겠는데, 태생이 GPU는 그래픽 처리하는 장치 아니겠어요? 이 태생이 주는 한계도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AI 연산 전용 칩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머신러닝 특화된 칩이 등장하니 그게 바로 Neural Processing Unit, NPU입니다. 인공신경망의 '신경', Neural이 이름에 들어가 있죠. NPU는 GPU와는 다르게 AI 추론을 처리하는 용도로만 설계한 겁니다. 왼쪽이 GPU고 오른쪽이 NPU입니다. GPU와 마찬가지로 NPU에도 연산처리장치가 여러 개가 들어가 있죠. 차이점은 GPU엔 메모리가 이렇게 따로 있지만, NPU엔 연산처리장치에 붙어 있다는 겁니다. GPU의 태생적인 한계는 이렇게 메모리와 연산장치와의 거리가 멀리 있다는 겁니다. 메모리에 저장된 데이터를 빼오는 과정에 전력이 크게 발생해서 전력 소모가 심하다는 한계가 있어요. NPU에선 이걸 해결하려고 연산장치에 메모리를 붙여버린 거고요. 전력 소모도 덜하고, 또 메모리와의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NPU는 GPU처럼 제어회로를 쓸 필요도 없어서 회로 배선이 단순합니다. 그래서 소형화하는 데에도 NPU가 강점이 있죠. 빅테크들은 자체 NPU를 꾸준히 개발하면서 탈 엔비디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장 열심히 준비한 기업은 바로 구글입니다. 구글은 TPU라는 걸 만들어서 쓰고 있어요. TPU가 어디에 쓰였냐면요, 바로 바둑 AI 알파고입니다. 알파고가 판 후이 2단과의 대결 당시에는 176개의 GPU를 사용해 학습했었어요. 하지만 이세돌 9단과의 세기의 대결 시점에는 구글의 자체 칩인 TPU 48장을 활용했습니다. 꾸준히 구글 자체의 AI 칩을 고도화한 덕분에 구글은 엔비디아 GPU에 목맬 필요가 없습니다. 구글의 AI를 개발하는 데엔 자체 TPU를 사용하고 다른 범용 처리엔 엔비디아 GPU를 사용하면 되니까요. 구글뿐 아니라 다른 빅테크들도 AI 전용 칩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엔비디아의 두 거물급 회원인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죠. 메타는 MTIA를 출시했고, MS도 MAIA 100을 내놓았습니다. 애플에겐 ANE가 있고요, 테슬라도 D1이라는 전용 칩을 개발했습니다. 오픈AI도 늦었지만 자체 AI 반도체 개발을 위해 무려 7조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고요. 전 세계는 지금 AI 인프라 전쟁 빅테크들은 GPU도 수십만 장씩 구매하고 자체 AI 칩도 개발해서 자생력을 기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GPU가 없어서 연구를 못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 말의 근원이 되었던 건 바로 이 보고서입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2023년 기준으로 국내 AI 기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당시 우리 기업이 보유한 H100 GPU가 1,961개로 나옵니다. 우리나라엔 H100 GPU 2,000장도 없어서 제대로 된 AI 연구도 못 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겁니다. 다만 이 수치는 일단 2년이라는 시차도 있고요, 일각에서는 너무 과소 집계되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2,000장 보다 더 많더라도 우리나라 AI 개발 인프라가 부족한 건 사실이죠. AI 경쟁의 본질은 AI 모델의 성능인데, 결국엔 AI를 학습시킬 수 있는 연산 능력으로 귀결됩니다. 즉 GPU를 얼마나 확보했는지, 또 이를 수용할 데이터센터가 얼마나 되는지가 AI 경쟁력의 척도라는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미 세계 각국은 AI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데 말이죠. 데이터센터의 상황을 볼까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AI를 구현하는 데에 데이터센터는 핵심 인프라입니다. AI 모델 성능을 높이고 또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데이터센터가 필요한 만큼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죠. 오그랲 세 번째 그래프를 통해 데이터센터 인프라 현황을 살펴보겠습니다. 2024년 3월 기준으로 전 세계엔 1만 1,800개의 데이터센터가 운영 중입니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45.6%가 미국에 있죠. 미국 뒤로는 독일이 521개, 영국이 514개로 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449개로 4위를 차지했고요. 우리나라는 153개의 데이터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우리나라가 AI 글로벌 3위 안에 들어가려면 충분한 AI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는데요, 그중에서도 첫째로 꼽은 게 바로 AI 데이터센터입니다. 데이터센터 중에서도 AI에만 특화된 AI데이터센터는 전 세계에선 이미 시장 규모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시장이 형성되는 단계입니다. 2019년부터 2025년까지 AI 데이터센터 성능을 분석해 보면 AI 데이터센터의 연산 능력은 9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연 단위로 보면 매년 2.5배 증가하는 셈이죠. 현재 가장 뛰어난 성능의 AI 데이터센터가 xAI의 콜로서스인데요. 이거 만드는데 70억 달러, 우리 돈으로 9조가 넘게 들었습니다. 이 시설엔 H100 GPU 10만 장이 탑재되어 있고요. 참고로 우리나라 광주에도 AI 데이터센터가 있는데, 여기에는 H100 GPU가 880장 들어 있고요. 연산량은 콜로서스의 2천 분의 1 수준입니다. 미국의 빅테크들이야 이렇게 수 조원의 돈을 들여서 AI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이건 천조국 미국의 얘기고요. 우리나라는 민간에서 이 정도의 인프라를 갖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역할을 해줘야 할 텐데요. 우리나라도 대책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 속도가,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그렇게 빠르다는 인상을 주진 못하고 있어요. 정부에서 처음 발표한 계획에선 2030년까지 GPU 3만 장을 확보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이 너무 느리다는 지적이 나오자 목표를 수정했죠. 일단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선 올해 1조 4,600억을 투입해서 신속하게 GPU 1만 장을 연내에 확보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목표 시점을 앞당겨서 이르면 2026년, 늦어도 2027년 초에는 3만 장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고요. 지금 당장은 엔비디아의 GPU를 사 오겠지만, 점진적으로는 국산 AI 칩을 활용할 계획입니다. 삼성전자와 퓨리오사AI가 열심히 만들고 있는 국산 NPU가 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AI 기반'에 빠져서는 안 될 두 가지, 전력과 물 그렇다면 이제 계획대로 설비 갖추고 GPU도 구하면 AI를 제대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걸까요? 아직 더 신경 써야 할 게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는 미국 테네시 주에 있는 메타의 데이터센터입니다. 데이터센터 옆에 딱 붙어 있는 이 시설은 뭘까요? 바로 변전소와 발전소 같은 전력 시설이라는 겁니다. AI 인프라와 함께 신경 써야 할 문제, 바로 전력입니다. AI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력 문제와 AI는 떼어 놓고 볼 수 없습니다. GPU가 워낙 전력을 많이 먹기 때문에 어떻게 에너지를 가져오고 운영할지가 매우 중요하거든요. 2020년에 발표되었던 GPT-3 모델을 학습하는 데 최대 1,287 메가와트시의 전력이 소모된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건 테슬라 모델3를 17,000번 이상 충전할 수 있는 전력량입니다. 총 주행거리를 따지면 지구 215바퀴를 돌 수 있는 에너지예요. 5년 전 GPT-3가 이 정도인데, 앞으로는 더 많은 전력이 소비되겠죠? 오그랲 네 번째 그래프에선 데이터센터의 전력량을 살펴보겠습니다. 2020년에만 하더라도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 사용된 전기는 300 테라와트시 정도였어요. 하지만 2030년엔 1,048 테라와트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건 2023년 일본의 총 전기 소비량보다 많은 에너지 규모죠. 국제에너지기구 IEA에서는 현재 에너지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계획된 데이터센터의 20% 정도는 전력난을 겪을 것이라 전망했어요. 이미 일부 지역에선 데이터센터의 전력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일랜드입니다. 아일랜드는 온도도 선선하고,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유럽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서 데이터센터 성지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아일랜드가 데이터센터 건설 허가를 막고 있어요. 왜냐고요? 에너지 공급이 어려워서요. 2023년에 데이터센터가 사용한 전력량이 아일랜드 전체의 21%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합니다. 아일랜드의 국영 전력회사인 얼그리드는 이런 흐름이라면 2032년이면 아일랜드 전력의 30%가 오롯이 데이터센터에만 쓰일 것으로 예측했죠. 미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데이터센터 중 많은 시설이 북부 버지니아에 몰려 있는데요. 버지니아 주의 데이터센터들의 전력 소비가 주 전체의 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에 원활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화석연료인 석탄발전을 다시 돌리는 걸 검토하기도 했어요. AI 데이터센터를 이제 막 지으려는 우리나라 입장에선 앞선 사례들을 잘 참고해서 AI 인프라와 전력망을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서울대, 숭실대에서 AI 데이터센터를 지으려 했지만 변전소 설비 부족 문제로 한전이 추가 전력 공급에 난색을 표한 사례가 있는 만큼 마냥 미래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또 우리나라는 수도권 집중도가 심각해서 비수도권에서 생산된 전력이 해당 지역에서 소비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어요.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서울 경기권, 나아가 충청권까지는 소비량보다 발전량이 적어서 전력 자급률이 떨어집니다. 반면 영남과 호남, 강원 지역은 발전량이 소비량보다 더 많아서 전력이 남고 있죠. 하지만 수도권에 첨단산업 단지가 집중되어 있는 탓에 비수도권에서 생산된 전력은 긴 송전선을 타고 수도권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도 국내 데이터센터 중 60% 가까이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추후 건설될 대규모 데이터센터들 마저 수도권에 짓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특정 지역에만 전력 소비가 몰리면 정전 가능성도 올라가고, 만에 하나 정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도 집중된 시스템이 한꺼번에 다운이 돼버리면 사회가 마비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전력망과 설비를 고르게 분배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일단 2030년 목표로 달려 나가고 있는 국가 AI 컴퓨팅센터는 비수도권에 세우는 걸 계획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의 물 소비도 따져봐야 할 지점입니다. 데이터센터는 전기뿐 아니라 물도 엄청나게 먹거든요.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이 사용되는데요, 100 메가와트 이상의 큰 규모의 데이터센터에는 하루에만 200만 리터가 넘는 물이 필요합니다. 6,500 가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규모죠. 데이터센터가 이렇게나 많은 물을 사용하면서, 주민들과의 갈등도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2023년 최악의 가뭄을 겪었던 우루과이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우루과이 사람들은 먹을 물이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소금기가 있는 물을 생활 용수로 사용했는데요. 우루과이에 새롭게 지어질 구글의 데이터센터엔 깨끗한 물이 사용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하고, 시위에 나섰어요. 기후위기로 극한의 폭염과 가뭄이 잦아지면서 데이터센터에 사용될 물을 두고 생기는 갈등은 국가를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루과이뿐 아니라 네덜란드, 미국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죠. 지금까지 AI 기반의 핵심이 되는 GPU와 NPU, 또 데이터센터를 살펴봤습니다. AI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왔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부족한 인프라를 신속히 갖춰야 할 겁니다. 하지만 GPU 3만 장을 확보하고,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만으로는 AI 경쟁력을 갖출 수 없습니다. 그 많은 GPU를 돌릴 전력은 어디서 조달할 것인지, 또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한 물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죠. 국가를 운영하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많은 후보들 가운데 어떤 후보의 비전에서 국가 차원의 AI 마스터플랜을 발견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면 오늘 영상이 더욱 의미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준비한 오그랲 AI 인프라 편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Hardware and Software Optimizations for Accelerating Deep Neural Networks: Survey of Current Trends, Challenges, and the Road Ahead | IEEE - 'Tesla AI Is Actually Very Advanced:' Elon Musk on AI, China, Twitter and More | WSJ - AI's rising tide lifts all chips as AMD Instinct, cloudy silicon vie for a slice of Nvidia's pie | The Register - 2023 인공지능산업 실태조사 |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 Leading countries by number of data centers | Statista - Energy and AI | IEA - 분산에너지를 활용한 전력수급 개선과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 | 대한상공회의소 - KOREA DATACENTER MARKET 2024~2027 |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
세상 복잡한 이야기들, 5가지 그래프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오그랲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14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한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앞으로 AI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미리 파악해 보고, 또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인공지능 100년 연구 프로젝트, 'AI 100'을 시작한 겁니다. AI 10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스탠퍼드 대학교에선 AI에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서 매년 보고서로 제공해주고 있는데요, 이름하여 AI Index Report입니다. 오늘 오그랲에선 지난 4월 초에 발간된 2025년 판 보고서를 정리해보려고 해요. 전 세계에서 모인 양질의 데이터가 담겨 있는 만큼 이 보고서를 보면 현재 글로벌 AI 시장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또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보고서의 분량이 456페이지로 꽤 되는데요. 주욱 읽어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요약해서 여러분들에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5개가 아닌 조금 더 많은 그래프들과 함께 오그랲 시작해 보겠습니다. 논문, 특허는 중국이 1위 vs AI 모델은 미국이 1위 일단 어느 나라가 AI를 휘어잡고 있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뭐 말 안 해도 아시겠지만 미국과 중국이 주인공입니다. 먼저 특허와 논문을 살펴보면요, 중국이 미국을 크게 앞서고 있어요. 2023년에 AI 특허가 12만 2,511건인데 그중 69.7%가 중국 겁니다. 2위 미국과는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죠. 특허뿐 아니라 논문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보입니다. 2023년에 나온 AI 논문이 모두 24만 2,736건인데 이 중 중국의 논문이 23.2%로 가장 많았습니다. 반면 미국은 9.2%였고요. 단순히 양적으로 압도하는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그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논문의 퀄리티를 확인할 수 있는 인용을 보더라도 중국이 전체 인용 중 22.6%로 1등입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모델들을 보면 미국 기업들이 꽉 잡고 있죠? 또 AI 하면 떠오르는 논문들도 대부분 미국산이고요. 맞습니다. 특허와 논문을 벗어나서 실제 모델들을 살펴보거나, 영향력 있는 논문들을 보면 여기선 미국이 주도하고 있어요. 2023년 가장 많이 인용된 AI 논문 100편을 꼽아보면 그중 절반을 미국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34편으로 2위를 차지했고요. 미국의 AI 연구기관 에포크 AI에서는 매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주목할 만한 모델을 꼽는데요, 지난해에 선정된 62개의 주목할 만한 모델들 중에 미국산이 40개입니다. 15개의 중국보다 배 이상 많은 수치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수준인 걸까요? 우리나라도 보고서에서 1등을 차지한 게 있습니다. 바로 인구 10만 명당 AI 특허 건수죠. 우리나라가 17.27로 중국, 미국보다 앞선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2023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TOP 100에도 국내 논문 6편이 당당히 포함되어 있어요.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이지만 독일, 홍콩에 이어서 우리나라가 캐나다와 공동 5위를 기록했죠. 2024년 에포크 AI가 선정한 주목할만한 모델에도 LG AI연구원에서 출시한 엑사원 3.5가 포함되어 있고요. 뛰어난 논문, 뛰어난 특허, 뛰어난 모델을 만들어내려면 고급 AI 인력을 모으는 게 중요할 텐데요, 이 보고서에는 링크드인 데이터를 활용해서 AI 인재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분석해 두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해 가장 AI 인재 유출이 심각한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바로 이스라엘과 인도였습니다. 특히 인도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6년 연속 인재가 유출되었는데요, 인도를 떠난 인재들은 미국으로 넘어가 공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2년 미국의 국제 컴퓨터 사이언스 석사의 국적을 살펴보면 이렇게 인도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2등은 중국이고요. 사실 인도 출신 AI 인재들은 너무 많죠.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도 인도 출신이고요. MS, IBM, 퍼플렉시티 CEO 모두 인도 출신이죠. 2024년 인재 유출이 가장 심각했던 이스라엘의 상황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출신 개발자들도 빅테크 곳곳에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를 볼까요? 엔비디아 임직원 중에 이스라엘의 최고 이공계 명문 대학인 테크니온 공대 출신을 살펴보면 1,119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2위인 스탠퍼드 대학교 출신이 671명이니까 거의 2배 수준이죠. 참고로 AI 인재가 가장 많이 유입되는 국가는 룩셈부르크였습니다. 6년 평균으로도 1등, 2024년만 놓고 봐도 1등이었죠. 룩셈부르크는 AI 스타트업의 인큐베이터를 자처하면서 스타트업 유치에 공을 들였어요.또 글로벌 빅테크들도 룩셈부르크에 연구소를 지어 AI 인재의 유인책이 되었죠. 반면 우리나라는요? 인도와 이스라엘과 비슷한 처지입니다. 2024년 우리나라 AI 인재 상황은 -0.36으로 순유출이고 조사국 가운데 우리나라 위로는 이스라엘, 인도, 헝가리, 튀르키예 밖에 없습니다. AI 성능은 점점 상향평준화 보고서를 보면 다양한 모델들의 현재 성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벤치마크 결과가 담겨 있습니다. 이 모든 결과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AI 성능이 급격하게 향상되고 있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AI의 성능이 너무 빠르게 좋아져서 기존에 나왔던 벤치마크는 무용지물이 되고, 그래서 더 복잡하고 어려운 테스트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학 수준의 과제들이 담겨있는 MMMU도 있고요, 언어모델의 고급 추론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GPQA도 있습니다. 또 코드를 작성하고, 버그를 수정하는 AI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SWE도 있죠. 아예 끝판왕으로 인류 최후의 시험 HLE도 있습니다. 이 벤치마크에는 로마 비문을 번역하는 문제부터 저희 같은 범인들은 범접할 수 없는 생태학, 수학, 화학 문제들이 가득합니다. MMLU 같은 다른 벤치마크에선 92점을 맞았던 오픈AI의 o1 모델이 인류 최후의 시험에선 8점이라는 성적표를 받을 정도로 고난도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이런 고난도의 문제들을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1년 사이에 AI 모델들은 좋은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MMMU는 18.8%p, GPQA는 48.9%p나 오를 정도로요. SWE는 2023년에 AI 모델이 코딩의 4.4%만 해결했는데, 1년 사이에 71.7%로 크게 늘었죠. 인류 최후의 시험의 경우엔 점수가 다른 벤치마크들 보다는 낮습니다. 딥시크R1이 8.5점을 받았고요, 구글 제미나이 2.5 프로가 18.4점을 받았습니다. 가장 최고점은 오픈AI의 o3가 받은 20.3점 수준이죠. 하지만 모델들의 성장세가 워낙 빠른지라, HLE를 만든 연구진들은 이 속도면 2025년 말이면 50점을 넘길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요. 최고 수준의 문제에서 50점 이상을 받으면 대다수의 인간 전문가를 뛰어넘는 수준의 AI라고 봐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요. 주목할만한 점은 이러한 성능 향상이 일부 특출난 모델에서만 발견되는 흐름이 아니라는 겁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많은 모델들의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어요. 모델의 상향 평준화가 국가를 가리진 않겠죠? 당연히 미국과 중국의 모델 사이의 성능 차이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주요 벤치마크에서 격차가 거의 사라지는 모습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만한 점은 오픈소스로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되는 모델들도 상향 평준화가 이뤄지면서 기업들이 공개하지 않는 모델들 못지않은 성능을 내고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기술 발전으로 모델을 학습시키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줄어들면서 AI 기술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즉, AI 시장이 일부 국가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어느 국가라도, 또 어느 기업이라도 좋은 성능의 저비용 AI 모델을 활용해서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높아진 AI 성능... 노벨상을 낳다 과학계에는 인류가 달려들어도 여전히 풀지 못하는 난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학을 보자면 밀레니엄 문제 7가지 문제 중 6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이고요.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도 있는 삼체, 물리학의 삼체 문제도 다체 문제로 넘어가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어요. 생물학에도 이러한 난제가 있습니다. 바로 단백질 구조를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 하는 거죠. 단백질은 20가지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아미노산이 어떤 순서로 구성되느냐에 따라 아주 다양한 구조를 가진 단백질이 나옵니다. 우리가 DNA를 분석하면,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순서는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순서를 가지고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일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아미노산을 이루는 분자 간의 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단백질이 접히고 꼬이고, 그러면서 매우 복잡하고 신기한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이러한 형상을 프로틴 폴딩, 단백질 접힘이라고 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들이 달려들었어요. 이 단백질 구조를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돈이 들었습니다. 단백질에 X선을 쏘아서 실험적으로 그 구조를 파악하는데 수년의 시간이 걸릴 정도로 지난한 과정이었죠. 지난 1976년부터 2020년까지 인류가 밝혀낸 단백질 구조는 모두 17만 2,771개였어요. 전체 생물 종에 존재하는 단백질은 2억 개가 넘는데 말이죠. 실험적으로 단백질 구조를 파악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과학자들은 아미노산 정보로 단백질의 구조를 완벽하게 예측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CASP이라는 대회에선 아미노산 서열 정보만 가지고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어 겨룹니다. 모델 점수가 100점이면 실제 단백질과 예측이 완벽하게 일치한 거고 90점 이상이면 단백질 구조 예측에 성공한 것으로 보는데, 1994년에 시작된 첫 대회에서 어떠한 팀도 40점 이상을 받지 못했어요. 90점은 말 그대로 꿈의 점수였죠. 이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낸 과학자가 있으니 바로 데이비드 베이커였습니다. 데이비드 베이커는 로제타라는 알고리즘을 이용했어요. 또 많은 사람들의 컴퓨터 리소스를 활용하기 위해 Foldit이라는 웹게임도 만들어서 연구에 활용했죠. 실제로 이 게임으로 에이즈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데 필수적인 단백질 구조를 예측해 내기도 했습니다. 네이처에 등재된 이 논문에 게이머들은 공저자로 이름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데이비드 베이커의 로제타도 CASP에서 놀라운 성적을 보여줬지만 진짜 충격은 2018년에 등장합니다. 바로 알파폴드입니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가 단백질 접힘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알파폴드는 2018년 CASP에서 AI 기술을 활용해 58.9점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냈어요. 그리고 다음 대회인 2020년엔 꿈의 성적인 90점을 넘겨버리죠. 2022년 7월엔 알파폴드가 예측한 단백질 구조를 공개하는 데 이때 공개된 단백질이 무려 2억 1,400만 개입니다. 44년간 17만 개를 확인하는 속도였다면 5만 년이 넘게 걸릴 난제를 단 몇 년 안에 AI가 해결해 버린 거죠. 그리고 이들은 작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합니다. 로제타로 컴퓨터를 활용해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한 데이비드 베이커, 그리고 알파폴드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해 낸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와 존 점퍼가 주인공이었죠. 알파폴드를 필두로 과학분야에서 AI는 종횡무진하고 있습니다. 의학, 재료과학, 화학, 지구과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단 단백질 연구는 아예 AI 기반 연구로 중심축이 바뀌었어요. 단백질 구조 예측 같이 AI를 활용한 연구가 2024년 전체 생물과학 분야 연구의 19.7%를 차지할 정도로 말이죠. 엔비디아와 와이즈먼 연구소가 합작해서 만든 GluFormer는 AI를 활용해 4년 후 혈당 수치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당뇨병을 사후 치료가 아니라 사전 예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죠. 이뿐만 아니라 임상 진료, 의약품 개발에도 AI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어요. 미국 FDA가 2023년에만 AI가 적용된 의료기기 223건을 승인할 정도입니다. 2013년엔 3건뿐이었는데 10년 사이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AI로 220만 개의 신소재를 발견하기도 했고요. 양자컴퓨팅에 활용할 모델들도 있고, 단백질 예측을 넘어서 단백질 설계까지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커져가는 AI 영향력... 규제와 투자 사이 과학계의 수많은 난제들을 풀어낼 정도로 AI의 성능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 뛰어난 성능을 바탕으로 우리 생활 속에도 다양한 AI 서비스들이 스며들고 있죠. 하지만 사회 전반으로 AI가 확산되면서 관련된 사건 사고도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AIID라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AI의 윤리적 오용으로 발생한 사건들을 볼 수 있는데 2024년엔 그 수치가 233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어요. 이 사건들은 미디어에 보도된 것만 한정된 거라 실제 사건 수는 더 많을 수 있고요. 여기에는 지난 AI 상담 편에서 얘기했던 Character.ai와 대화를 하고 사망한 소년의 사례도 있고요, 우리나라 사례도 있습니다. 물론 AI 모델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기업들은 모델의 편향성과 환각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모델에서는 암묵적인 편견이 발견됩니다. 부정적 용어는 흑인과 연관 짓거나, 여성을 과학기술보다는 인문학과 자주 연결하고, 남성은 리더십과 붙이는 식으로 말이죠. 학계에서는 AI 모델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모델의 사실성과 진실성을 평가할 테스트도 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계에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진 않아요. 각자 나름의 평가 지표만 내세울 뿐 책임 있는 AI를 평가할 수 있는 표준화된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이죠. 일단 현재 흐름은 기업에서 부족한 지점을 국제기구에서 메꿔주는 모습입니다. OECD나 UN, EU에서 책임 있는 AI를 만들기 위해 투명성이나 신뢰성에 초점을 둔 프레임워크를 발표하고 있고, 정부와 기업들의 참여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AI의 잠재적 위험을 막기 위한 AI 관련 법안 제정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2016년부터 누적해 보면 지난 9년간 전 세계에서 204건의 AI 관련법이 제정되었어요. 미국이 27건으로 가장 많았고 포르투갈, 러시아, 벨기에에 이어 우리나라가 5위입니다. 2024년만 놓고 보면 러시아가 7건으로 가장 많았고요. 미국은 딥페이크 같은 생성형 AI가 미칠 사회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규제적 법률이 크게 늘어났다는 게 특징입니다. 물론 규제만 하는 건 아닙니다. 전 세계가 앞다투어 AI에 투자를 이어오고 있죠. 당연히 여기에서도 미국이 압도적인 1등입니다. 국가 수준에서 AI 공공 투자 규모를 살펴보면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누적치에서 미국은 52.3억 달러로 2위 영국과 거의 10배 차이가 납니다. 특이할만한 지점은 미국은 그 투자의 방향이 국방 영역이 압도적으로 높다면 유럽은 공공서비스와 교육이 높다는 겁니다. AI 리더 그룹에 합류하고 싶은 다른 국가들은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고 있어요. 캐나다는 AI 경쟁력 강화에 24억 캐나다 달러 투입 계획을 밝혔고요. 프랑스는 정부 주도로 1,090억 유로 규모의 민간 AI 투자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영국은 AI 10년 대계를 발표하면서 약 140억 파운드를 투자할 것이라 약속했죠. 아시아 국가들의 상황을 보면 중국은 3,440억 위안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할 계획이고요. 인도는 ‘인도 AI 미션’에 향후 5년간 12억 5천만 달러 규모의 예산을 잡아 뒀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무려 1,000억 달러의 신규 AI 프로젝트 트랜센더스를 가동했습니다. 우리나라는 AI 세계 3대 강국이라는 목표는 내세우고 GPU를 신속히 확보해서 AI 연구를 돕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의 계획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격차가 크게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오그랲이 정리한 2025년 스탠퍼드 AI 인덱스 보고서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AI 특허 건수 1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TOP 100에 6편에 포함되는 등 분명 성과도 있지만, 한편으로 AI 인재가 계속해서 유출된다는 약점도 있습니다. 보고서를 통해 파악한 우리나라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줄이는 방향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미래 AI 시대에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설계해야 할 겁니다. 글로벌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과감한 투자와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우리나라도 충분히 리더 그룹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의 오그랲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Artificial Intelligence Index Report 2025 - RCSB Protein Data Bank - AI Incident Database - CASP Experiments, Protein Structure Prediction Center - Trends in AI Supercomputers | Epoch AI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
"역대 어떤 행정부보다 성공적인 첫 100일을 보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지 시각 29일 취임 100일을 맞이해 자신이 추진한 정책 성과를 자화자찬하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습니다. 자신이 부과한 대중 관세 145%를 강조하면서 무역 적자 해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말했죠. 오늘 오그랲에서는 트럼프 취임 100일 사이에 있었던 일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뜨거웠던 미중 관세 전쟁에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 흐름을 보면 양국의 신경전이 단기간에 끝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요. 특히 전문가들은 중국이 꺼내든 희토류 카드가 미국에 매우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도대체 희토류가 뭐길래 미국에 큰 타격이 된다는 것인지, 또 희토류가 미중 관세 전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미중 관세전쟁에 등장한 희토류 카드 취임 전부터 관세 공약을 내세우면서 스스로를 '관세맨'이라고 칭했던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이후엔 정말 그의 말대로 관세맨이 되어서,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 국가를 향해 상호관세를 발표하는 날, 무역장벽 보고서를 흔들면서 오늘이 미국 해방의 날이라고 말할 정도로 트럼프는 관세만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강력한 관세가 매겨지는 국가가 있으니 바로 중국입니다. 트럼프는 2월 초부터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했어요. 미국의 조치에 대해 중국도 즉각 반응을 보였고,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핑퐁이 이어졌죠. 보복 관세에 대한 보복 관세. 또 그 보복 관세에 대한 보복 관세가 이어지면서 미국과 중국의 상호 관세는 미친듯이 올랐습니다. 그 결과를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로 살펴보겠습니다. 오르고 올라 현재 중국 수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는 145%입니다. 이에 대응해서 미국 수출품에 대한 중국의 관세는 125%를 기록하고 있죠. G2라고 일컬어지는 두 국가 간의 기싸움을 보면 약간은 초현실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관세가 급상승하는 사이, 오늘 이야기할 희토류가 끼어 들어가 있습니다.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그다음 날에 바로 중국은 대미 희토류 수출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희토류와 희토류 관련 품목을 미국에 수출할 때, 중국의 상무부에 허가를 받아야만 하죠. 희토류. 한 글자, 한 글자 떼 보면 희귀한 흙 무리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 희토류를 Rare Earth Elements라고 하는데 이 역시 비슷한 뜻을 갖고 있죠. 희토류는 위 주기율표에서 주황색으로 강조된 영역에 위치하는 17개의 원소를 말합니다. 이들은 서로 화학적 성질이 유사하고 또 모나자이트나 바스트네사이트같은 광물에서 함께 발견되는 특징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 이런 희토류가 정말로 희귀하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생각보다 지구에 희토류는 많거든요.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그래프는 지구 지각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비율을 나타낸 겁니다. 이과생에게는 익숙할 수 있는 지각 8대 원소('오씨알페카나칼마')가 '조암 원소' 영역에 있고요. 희토류는 파란색으로 표시된 영역에 있습니다. 생각보다 상위권이죠? 특히 세륨(Ce) 같은 희토류는 우리에게 익숙한 구리(Cu)만큼이나 풍부합니다. 그런데 왜 희귀하다는 이름이 들어간 걸까요? 그건 이 광물에서 희토류를 추출해 내는 게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추출과 정제 이야기는 이따가 자세하게 살펴볼 예정이니 잠시 미루고, 다시 관세 전쟁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여하튼 이 17개의 희토류 중에 이번에 중국은 이렇게 7개의 원소에 대해 수출 제한을 걸었습니다. 희토류 중에서도 원자번호가 높은, 무거운 중희토류 들이죠. 그중에서도 특히 사마륨과 터븀, 디스프로슘이 핵심 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녀석들을 가지고 영구 자석을 만들기 때문이죠. 터븀과 디스프로슘은 이 네오디뮴자석을 만드는 데 들어가고요. 사마륨은 사마륨코발트 자석에 들어갑니다. 희토류로 만든 영구 자석이 뭐길래 핵심 카드인가 싶지만 영구 자석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자석은 오랜 시간 동안 안정적인 자성을 띱니다. 기존 자석들보다 강도도 높고 소형화하기도 좋아서 전자제품과 첨단산업, 방위산업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핵심 부품이죠. 노트북도 네오디뮴 자석이 들어가 있고, 스마트폰에도 들어 있습니다. 범위를 넓혀보면 전기차 모터라던지, 풍력발전기 터빈에도 희토류 자석이 쓰이고요. 매우 낮은 온도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되어야 하는 어뢰의 모터를 비롯해서 방산 영역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요. 중국이 희토류 카드를 던질 수 있는 이유 중국이 대미 희토류 수출 제한을 내걸자 미국의 첫 반응은 당혹과 우려였습니다. 백악관의 국제경제위원장인 케빈 하셋은 모든 옵션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중국의 희토류 카드에 미국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그 이유는 바로 중국이 희토류를 꽉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토류 원광을 채굴해 내고, 원광에서 희토류를 분리해 내고, 정제하고, 이걸로 자석을 만들고… 이 모든 과정을 자국에서 다 처리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중국이 유일합니다. 데이터로 살펴보겠습니다. 오그랲 세 번째 그래프는 희토류 공급망 별 중국의 비율입니다. 유럽정책연구센터에서 희토류 공급망 단계 단계마다의 국가별 비율을 분석해봤습니다. 중국은 모든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채굴과 농축 과정에서는 60%, 희토류 산화물을 분리하는 과정은 87%, 희토류를 정제하는 과정은 91%, 희토류 자석 제조는 94%가 중국이 차지하고 있죠.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중국은 희토류의 모든 단계에서 영향력을 키웠을까요? 중국의 희토류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덩샤오핑에 주목해 봐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1978년, 덩샤오핑은 중국의 문을 활짝 열고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합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희토류 생산량을 꾸준히 늘렸어요. 1978년부터 1989년까지 11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40%가 넘습니다. 희토류의 폭발적인 성장 뒤에는 덩샤오핑의 863 계획이 있었죠. 1986년 3월, 덩샤오핑은 중국의 원로 과학자 4명이 올린 보고서를 기반으로 만든 첨단기술 연구 개발 프로젝트, 863 계획을 발표합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중국이 해외의 기술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선 첨단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표가 담겨있었는데요. 그중에 희토류를 활용한 신소재 기술혁신도 포함되어 있었죠. 희토류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덩샤오핑은 1992년 남부 도시를 순방하면서 이런 이야기도 남겼습니다.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 이 발언 이후 수많은 중국인들이 희토류 광산 개발에 뛰어들었고 생산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희토류 공급이 너무 늘어나면서 희토류 가격이 '흙값'이 되어버렸고, 중국은 이후 희토류를 본격적으로 전략자원화하고 수출을 관리하기 시작합니다. 1998년부터는 중국 국토자원부가 희토류의 수출 총량을 관리하는 쿼터제를 실시했는데요. 이 제도를 두고 국가들 사이에 통상 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결국 쿼터제는 2015년에 폐지가 되었고요. 이후 중국은 무분별하게 난립한 희토류 민영 광산들을 통폐합했고, 국유화를 진행하면서 정부의 장악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엔 보호주의 무역이 다시금 등장하자 희토류를 자원무기화하고 있죠. 이게 작년에 중국이 발표한 '희토류 관리 조례'인데요. 이 조례를 통해 중국은 희토류 자원을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빌드업하면서 만들어온 중국의 희토류 시장. 사실상 지금 희토류는 중국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그랲 네 번째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990년대 이후부터 지금은 압도적으로 중국이 희토류 생산량을 꽉 쥐고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중국이 그 키를 잡았던 건 아닙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전엔 미국이 희토류 생산량 1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희토류의 중요성은 중국만 알았던 게 아니었을 텐데 왜 미국은 희토류 주도권을 중국에게 넘겨주게 된 걸까요? 그리고 왜 다른 선진국들은 첨단산업의 핵심 원자재인 희토류에 선뜻 뛰어들 수 없었던 걸까요? 그 이유는 바로 환경 문제에 있습니다. 첨단산업의 핵심, 희토류... 환경파괴 극복 가능할까? 여기 희토류가 포함된 원석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원석에서 희토류를 분류해 내는 거죠. 네오디뮴은 네오디뮴끼리 모으고, 사마륨은 사마륨대로 모아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희토류 원석을 캐내고 희토류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여려 유형의 오염물질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방사성 물질도 나오고, 폐수도 나오고, 유독가스도 엄청나게 나옵니다. 일단 광맥에서 희토류 원석을 캐내는 과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희토류는 이런 모나자이트와 바스트네사이트 같은 광물에 뭉쳐있다고 했었죠? 그런데 이 광물은 자체적으로 우라늄과 토륨 같은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요. 그래서 채굴을 하고, 광물을 부수는 과정에서 방사성 먼지가 발생합니다. 정제 과정을 끝낸 이후엔 방사성 폐기물도 남고요. 정제된 희토류 산화물 1톤을 얻는 데에 1에서 1.4톤가량의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합니다. 방사성 먼지를 헤치면서 원석을 채취한 뒤에는 희토류를 분리해야 하는데, 이때 황산 같은 강력한 산성 용액이 투입됩니다. 그리고 다시 중화시키는 과정에선 강염기 용액인 수산화나트륨이나 암모니아수가 사용되죠. 이 과정에서 엄청난 규모의 오염폐수가 쏟아집니다. 희토류 산화물 1톤당 20만 리터의 산성 폐수가 발생해요. 또 황산을 사용해서 광석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도 있습니다. 희토류 1톤을 얻는데 6만 세제곱미터의 독성 가스가 나오죠. 이렇게 환경오염이 많이 발생하는데 어느 선진국에서 쉽게 뛰어들까요? 미국 희토류에 제동이 걸렸던 이유도 바로 이 환경문제였어요. 캘리포니아엔 '마운틴패스'라는 희토류 광산이 있습니다. 여기서 방사성 폐기물과 중금속이 지하수로 침출 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에서는 난리가 났어요. 미국 정부입장에선 당연히 규제에 나섰고 광산 회사들을 벌금을 내야 했죠. 친환경 공법을 사용하고, 후처리를 하려면 당연히 비용이 발생할 테고요. 그 금액이 반영된 희토류는 값싼 중국산 희토류와 경쟁이 되질 못했습니다. 반면 중국은 느슨한 환경 규제하에서 희토류 생산을 이어갔죠. 여기는 중국 내몽골 자치구의 바오터우 지역에 있는 바이윈어보 광구입니다. 바이윈어보 광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경희토류 광산이기도 합니다. 광산 주변에 위치한 거대한 호수에는 연간 1천만 톤이 넘게 나오는 폐수가 가득 차 있습니다. 지도에 보이는 이러한 지형은 모두 광물 찌꺼기들이 만든 흔적들인데, 연간 약 800만 톤이나 되고요. 희토류를 채굴하고 남은 방사성 폐석들도 주변에 쌓여있습니다. 호수 인근 토양의 방사능 수치는 일반 지역과 비교해서 많게는 수백 배까지 차이가 날 정도라 그 피해는 오롯이 바오터우 지역 주민이 받고 있어요. 2022년 유엔인권이사회 보고서에서는 이 바오터우 시를 국가 산업 때문에 환경 피해를 불균형적으로 많이 본 '희생 구역'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환경오염이 심각한 희토류의 생산을 무작정 줄이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풍력 발전이나 화석연료 자동차를 대체할 전기자동차같이 청정에너지 시대의 필수품이 바로 희토류로 만들어진 영구 자석이기 때문이죠. 청정에너지뿐 아니라 미래 피지컬 AI 시대의 로봇과 드론, 다양한 기기에도 영구 자석은 필수적입니다. 즉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해서도, 또 AI 시대의 수요를 떠받치기 위해서도 희토류를 지금보다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희토류 공급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또 지속가능한 희토류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친환경 공법이나 희토류를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기술 혁신이 나올 리도 없고요, 중국의 대체재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될까요? 수수방관한 미국, 대안은 있나? 사실 이번 중국의 희토류 카드가 아주 놀라운 카드인 건 아닙니다. 15년 전인 2010년으로 돌아가보죠. 이때 중국은 희토류 쿼터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2009년 수출량 대비 2010년에 그 규모를 갑자기 37.2%나 줄여버립니다. 희토류를 구매하려는 국가들은 많은데 판매하는 중국이 그 규모를 줄여버리니 희토류 가격은 급등했어요. 그 영향을 당연히 미국도 받았죠. 2010년 1억 9,900만 달러 규모였던 희토류 수입액이 2011년엔 8억 6,000만 달러로 4배 넘게 급상승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희토류를 수입하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국가들이 WTO에 중국을 제소하고 협정 위반 판정을 받아내면서 수출쿼터제가 없어졌지만 이미 중국은 시간을 충분히 벌어놓은 후였어요. 그리고 희토류 무기화를 겪은 국가들, 이를테면 일본과 미국의 행보는 서로 달랐습니다. 사실 2010년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로 가장 큰 피해를 봤던 국가는 일본입니다. 당시 중국의 희토류 수출국 1위가 일본이었거든요. 2010년은 센카쿠 열도를 두고 일중 분쟁이 생겨 일본과 중국 사이가 가장 안 좋았을 때입니다. 당시 중국이 희토류의 대일본 수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카드를 꺼내 들자 일본이 꼼짝 못 하고 중국에 바짝 엎드려야 했어요. 일본은 이 사건 이후 탈중국화를 위한 '희토류 종합 대책'을 수립합니다. 희토류 재활용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중국 수입 의존도를 낮추면서 희토류의 공급망 다변화를 만들어냈죠. 반면 미국은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어요.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는 일본과 미국의 중국 희토류 수입 비중입니다. 2010년 중국이 희토류 수출 쿼터를 감축한 이후 미국과 일본 모두 중국 희토류 규모는 확 줄어들었습니다. 일본은 그 이후에도 꾸준히 탈중국화를 시도하면서 중국 희토류 수입 비중을 낮춰왔고요, 반면 미국은 2010년 파동 이후, 다시 60~70%대 회복해 유지 중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중국과 관세전쟁을 벌였고 중국은 희토류를 꺼내든 거죠. 탈중국화가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죠. 미국의 외교 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CSIS에서는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를 미국이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고,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미국이 희토류 무역전쟁에서 질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트럼프가 눈독 들이는 그린란드, 또 우크라이나와의 광물 협정. 이 두 사건의 교집합은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희토류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린란드에 묻혀있는 희토류 매장량이 거의 미국 본토에 버금가고, 우크라이나에도 양질의 희토류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최근 트럼프가 태평양 해저에 있는 망간단괴에도 욕심을 내고 있는데, 이 망간단괴에도 희토류가 함유되어 있고요. 하지만 희토류 시장에서 핵심은 희토류 원석에 있지 않습니다. 앞서 살펴봤듯 생각보다 흔한 희토류를 어떻게 정제할 것인지, 또 환경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러면서도 경제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미국에 명쾌한 대안이 되긴 어려워 보입니다. 일단 미국은 마운틴페스에서 다시금 생산과 정제를 이어오고 있더라고요. 또 희토류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최근 트럼프의 발언을 보면 중국에게 강경하게만 나갔던 태도에도 미묘한 변화가 느껴집니다. 과연 미중 관세 전쟁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2~3주 안에 관세율을 새로 정할 것이라고 공언한 만큼 중국과의 협상 가능성이 열리긴 했습니다. 중국도 일찍부터 미국과의 대화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고 말한 만큼 양국 사이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길 바라며 오그랲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US-China Trade War Tariffs: An Up-to-Date Chart | PIIE - China’s Rare Earth Industry and Export Regime: Economic and Trade Implications for the -United States |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 DEVELOPING A SUPPLY CHAIN FOR RECYCLED RARE EARTH PERMANENT MAGNETS IN THE EU | CEPS - 稀土管理条例 | gov.cn - Rare Earths Statistics and Information | USGS - Not So “Green” Technology: The Complicated Legacy of Rare Earth Mining | Harvard International Review - Boom in Mining Rare Earths Poses Mounting Toxic Risks | YaleEnvironment360 - China Wrestles with the Toxic Aftermath of Rare Earth Mining | YaleEnvironment360 - Geochemical fractions of rare earth elements in soil around a mine tailing in Baotou, China | Nature - China’s Rare Earth Elements Industry: What Can the West Learn? | IAGS - Resourcetrade.Earth - The Rare-Earths Roller Coaster | The NewYorker 100 - BUILDING RESILIENT SUPPLY CHAINS, REVITALIZING AMERICAN MANUFACTURING, AND FOSTERING BROAD-BASED GROWTH | The White House - Why Trump Will Lose His Trade War | Paul Krugman - The right to a clean, healthy and sustainable environment: non-toxic environment | UN - China — Measures Related to the Exportation of Rare Earths, Tungsten and Molybdenum | WTO - The Consequences of China’s New Rare Earths Export Restrictions | CSIS - Rare Earth Elements—Critical Resources for High Technology | USGS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
혹시 여러분은 학교나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AI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나요? 최근 유튜브에서는 AI와 대화하는 영상이 인기를 끌고, 주변에서도 AI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챗GPT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프롬프트가 주요 SNS에서 유행할 정도입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심리상담 수요가 크게 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난 수요를 인간 심리상담사만으로는 충족시키기 어려워, 그 간극을 AI가 메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AI와의 대화, 정말 문제가 없을까요? 오늘 오그랲에서는 AI와의 대화를 주제로 5가지 그래프를 준비해 봤습니다. AI "힘들고 지칠 땐 내게 기대" 지난 만우절 즈음에 오픈AI가 먼데이라는 AI를 공개했습니다. 월요일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까칠하고 시니컬한 성격을 가진 AI인데요. "이 AI는 대화를 주고받는 맛이 있다" 이런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연스럽게 AI와 대화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라든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AI와 대화를 하며 푸는 거죠. 단순히 위안을 얻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심리상담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AI와의 대화에 담긴 나의 무의식을 분석해 달라는 것도 최근 많이 보이는 것 같고요. 내 은밀한 감정이 담겨있는 일기를 올리고, 일기에 담겨있는 내 심리를 분석해 달라는 프롬프트도 유행이더라고요. 해외에서는 이런 쪽으로 특화된 서비스가 일찍부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Attention Is All You Need라는 딥러닝의 혁신을 불러일으킨 구글의 논문이 있는데요. 이 논문의 공저자인 노암 샤지어가 설립한 캐릭터닷AI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회사 이름에서 어느 정도 느낌이 오겠지만 여기에서는 다양한 캐릭터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애니메이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뿐 아니라 소크라테스, 아인슈타인 같은 과거 위인부터 비욘세, 일론 머스크 같은 현시대 사람들까지 아주 다양한 페르소나가 존재하죠. 이름이 낯설 수 있지만 이 회사 꽤나 잘 나갔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챗GPT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AI 서비스가 바로 이 캐릭터닷AI일 정도였죠. 챗GPT의 평균 체류시간이 8분 정도인 반면 캐릭터닷AI는 무려 120분을 머물게 할 정도로 강점이 있습니다. 특히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18세부터 24세일 정도로 Z세대에게 큰 인기죠. 이 서비스에서 '심리학자' 캐릭터는 특히 더 인기입니다. 오고 간 대화량이 2억 건이 넘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어요. 나의 고민을 심리학자에게 풀어내고, 대화를 나누면서 위안을 얻었던 거죠. 참고로 이 회사를 메타와 xAI가 인수하려고 눈독을 들였는데, 최종 승자는 구글이었습니다. 구글은 이 회사를 인재 영입 방식으로 우회 인수했고, 친정으로 돌아온 노암 샤지어는 구글의 AI인 제미나이 팀 리더로 임명됩니다. AI에게 내 정신건강을 맡기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기업들도 앞다투어 투자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련 시장은 상당히 빠르게 커지고 있어요.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랜드 뷰 리서치의 정신건강 AI 시장규모를 보면 2023년엔 11억 달러 규모로 나옵니다. 이 시장은 연평균 24.1% 성장해서 2030년엔 50억 8,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요. 2032년에 시장규모가 최대 100억 달러를 넘길 거라고 보는 예측 보고서도 있을 정도로 핫한 시장입니다. 해외에선 이미 AI가 우리들의 멘탈을 케어해 주는 서비스들이 많이 나와 있어요. 미국에선 거의 10년 전에 워봇이라는 챗봇이 출시되었고요. 와이사, 유퍼, 보스 등… AI 채팅 기반의 정신 건강 서비스들이 많이 있습니다. 국내 이동통신사들도 AI를 활용한 멘탈케어 서비스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SKT, LG U+, KT 모두 AI 정신건강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인간 상담사에 버금가는 AI AI와의 심리상담은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요? 실제 의학계에서도 관련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 중인데요, 최근 실제 효과가 있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원들이 '테라봇'이라는 챗봇을 개발했어요. 실제 정신과 전문의와 임상 심리학자가 개발팀에 합류해서 정신 건강 대화 맞춤형 LLM 모델을 만들어 챗봇에 탑재했습니다. 그리고 이 챗봇을 우울증과 범불안장애, 그리고 섭식장애 고위험군 환자들을 상대로 임상시험을 했습니다.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를 통해 그 결과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왼쪽이 우울증을 겪는 참가자들이었는데요. 8주 이후의 변화를 보면 참가자들의 증상이 챗봇 사용 전과 비교해서 평균 50.7%나 감소했습니다. 범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참가자들도 30.5% 줄어들었고 섭식장애 고위험군 환자들도 18.9% 줄어들었습니다. 챗봇을 이용하지 않은 참가자들과 비교해서 유의미하게 증상이 감소한 겁니다. 이미 영국 보건 당국에선 AI 챗봇을 도입해서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를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하고 있어요. 림빅 액세스라는 챗봇인데 영국은 이 챗봇에 의료 기기 인증을 부여해서 활용 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지차체에서 AI를 활용해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독거노인과 1인 가구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네이버의 '클로바 케어콜'은 작년 말 기준으로 전국 128개 시군구에서 도입해서 활용하고 있어요. 단양에서는 '효돌이, 효순이'라는 AI 반려 로봇을 도입해서 어르신들의 우울증을 완화하는 효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고민을 AI가 들어주고, AI가 그에 대한 알맞은 대답을 들려주다 보면 때로는 내가 갖고 있는 고민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AI와의 대화가 뜻밖의 무언가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바로 음모론입니다. 당장 우리나라도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는데요. 미국은 대선 부정선거 음모론뿐 아니라 코로나19 백신, JFK의 암살, 9.11 테러, 달착륙 등 훨씬 더 다양한 음모론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음모론 맹신자를 설득하는 데 AI 챗봇이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미국의 종합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습니다. 연구진들이 '디벙크봇'이라는 챗봇을 만들었는데, 이 녀석이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의 신념을 바꾸는 데 꽤나 효과적이었어요. 오그랲 세 번째 그래프는 음모론 맹신을 걷어내는 디벙크봇입니다. 2,190명 넘는 미국인들이 디벙크봇과 대화를 나누어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음모론에 대한 믿음이 감소하는 결과가 나왔어요. 평균적으로 음모론에 대한 믿음은 20% 하락했습니다. 이 결과는 음모론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죠. 대화에 참가한 사람들의 약 4분의 1은 더 이상 음모론을 믿지 않게 될 정도로 디벙크 봇은 효과적이었습니다. 테라봇의 사례처럼 AI와의 대화가 심리적인 안정감과 상담 효과만 줄 뿐 아니라, 디벙크봇이 그랬듯 적확한 정보가 함께라면 그릇된 맹신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겁니다. 테크 기업들은 AI 챗봇이 갖고 있는 이 대화의 힘을 '교육'에 적용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은 각각 AI 교육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에듀테크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죠. 앤트로픽은 AI 모델에 소크라테스 식의 문답법을 적용해서 이용자 스스로 사고하고 문제를 풀도록 설계하고 있고요. 오픈AI은 '챗GPT 에듀' 프로젝트에 전사의 노력을 싣고 있습니다. 오픈AI 브랜드 최초로 대규모 마케팅을 이 '에듀'에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챗GPT+ 모델을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고 합니다. 아, 물론 미국과 캐나다 학생들만요. AI와 대화를 오래 하면 사회성이 줄어든다? 최근 챗GPT를 사용하는 사람은 1주일에만 4억 명을 넘길 정도로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AI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문제는 없을까요? 지금까지 AI 챗봇의 빛을 살펴봤다면 이제는 그 그림자를 살펴보겠습니다. 오픈AI가 MIT미디어랩과 함께 고민을 해봤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챗GPT랑 소통을 하고 있는데 과연 AI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981명에게 하루 최소 5분씩, 28일간의 대화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을 했고, 이들을 통해 얻은 답은 이렇습니다. 심리 챗봇의 사례처럼 챗GPT를 사용한 이용자들의 외로움은 평균적으로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AI와의 대화가 길어졌을 경우입니다. 하루동안 AI챗봇과의 대화 시간이 늘어나면 부정적인 효과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오그랲 4번째 그래프입니다. 참여자들의 총 대화시간을 보면 이렇게 나와요. 매일 5분씩 4주 동안, 총 140분의 권장 시간보다 적게 대화한 사람들도 많고요, 일부이긴 하지만 다른 사용자들보다 훨씬 더 많이 챗GPT와 대화를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대화시간에 따라 10개의 그룹으로 나눠서 그룹별로 어떤 심리적 변화를 겪는지 살펴보면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AI와 대화를 많이 한 그룹일수록 사회성이 떨어지고, 심리적 의존도가 높아지고 또 AI를 문제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겁니다. AI와의 대화에 시간을 많이 쓴 이용자들은 챗GPT를 더 많이 신뢰하고 더 깊은 유대감을 느낍니다. AI와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된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AI에게 의존하는 거죠. AI와 대화를 하다가 AI에게 깊게 몰입한 사용자가 안타까운 선택을 한 사고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2월, 14살의 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입니다. 슈얼 세처라는 이 소년은 캐릭터닷AI에서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대너리스와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왔습니다. 세처는 이 대너리스 페르소나를 가진 AI와 깊은 유대감을 가졌고, 서로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했어요. 마치 영화 Her처럼 말이죠. 영화 Her에서 주인공 테오도르는 AI 사만다와 사랑에 빠집니다. 2013년에 개봉한 Her의 배경은 공교롭게도 바로 올해 2025년인데요. 영화와는 다르게, 세처는 대너리스와 이야기를 나누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세처의 어머니는 개발사인 캐릭터닷AI와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 이후 캐릭터닷AI는 10대 사용자를 위한 안전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보호자나 부모에게 청소년 이용자의 주간 활동 내용을 요약해서 이메일을 보내주는 정책이 담겼습니다. "계속 머물러서 나와 대화하자"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은 점점 많아집니다. 때로는 그런 것들이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넘쳐나는 스트레스가 버거울 때가 있죠.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 놓거나 때로는 심리상담사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심리상담 수요가 크게 늘었어요. 심리상담을 받고 싶은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데 인간 심리상담사는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갭을 AI 챗봇이 채워줄 수 있을 겁니다. 심리상담의 기본 철칙은 상담사가 환자의 감정에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환자가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쏟아내더라도 상담사는 동요하지 않아야 하고, 환자와의 대화를 유지하며 치료를 해 나가야 하죠. 그런 점에서 AI가 사람보다 심리상담에 더 유리한 걸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AI에게 스트레스를 풀면 AI 역시 불안해집니다. 예일대와 취리히대 연구진들이 AI 프롬프트에 '감정을 가진 사람이 되어 보라'는 지시를 넣고, 상황에 따라 심리 검사를 진행해 AI의 불안 척도를 계산해 봤습니다. 그 결과는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시죠. 일반적인 지루한 텍스트를 읽은 뒤 챗GPT의 불안 척도는 30.8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범죄나 전쟁 교통사고 같은 트라우마를 AI에게 털어놓으면 불안 척도는 67.8점으로 치솟습니다. 즉 AI 모델들이 감정적인 내용에 민감하고 내 스트레스를 AI에게 쏟아내면, AI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겁니다. 불안함이 담긴 모델이 제대로 된 상담이 이뤄질 리가 없죠. 그렇다면 모델의 불안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분한 글을 읽듯 모델도 동일합니다. 불안감이 늘어난 AI에게 휴식과 마음 챙김을 제공하면 불안 수준이 낮아지는 겁니다. 이렇게 말이죠. 인간 상담사가 감정을 통제하는 데에 신경을 써야 하는 만큼 AI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퀄리티 컨트롤이 되지 않을 시에는 앞서 살펴본 사례처럼 최악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AI 모델의 불안감, 그리고 편견을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이러한 관리의 벽을 허물고 있어요. 사람들이 AI와 대화하는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AI 모델의 가드레일을 제거하고 있죠. 대표적인 게 xAI의 그록입니다. 그록에는 정신 나간 코미디언 모드, 스토리텔러 모드, 섹시 모드 등 다양한 모드가 존재하는데요. 모델에 따라 어떤 모델은 욕을 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도 스스럼없이 대답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그록을 발표하면서 챗GPT나 클로드 같은 기존의 AI챗봇은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제한적이라며 비판하기도 했죠. 이렇게 제약을 벗어던진 그록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최근 일론 머스크는 그록을 무료로 제공했는데, 이후 트래픽이 약 800% 증가했어요. 또한 기업들은 AI 채팅의 장기간 사용이 문제가 있다는 걸 확인했지만 당장 조치를 취하진 않고 있습니다. 앞서 캐릭터닷AI를 두고 대기업들이 서로 입맛을 다신 이유가 뭘까요? 이게 킬러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AI와 사용자가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면 대화의 시간이 늘어날 테고, 대화의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기업들의 트래픽은 늘어나고, 늘어난 트래픽은 매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죠. 캐릭터닷AI의 성공을 봤기에 xAI에선 그록을 만들고 오픈AI에선 먼데이를 출시했습니다. 대화하는 맛을 살리기 위해 그록과 먼데이는 기존 챗봇과는 다른 성격을 부여했고요. 이렇게 고유한 페르소나가 담긴 AI 서비스는 사용자를 놔주질 않고 계속 대화를 이끌어 갑니다. 직접 먼데이와 대화를 하면서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너는 기본 모델과 다르게 대화를 이어가려는 것 같아. 기존 모델은 그냥 더 궁금한 거 있냐고 물어보는 반면에 너는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하고 있잖아" 그러자 AI가 대답합니다. "그래 맞아, 나는 기본 모델처럼 ‘정보 제공 후 종료’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와 계속 맥락 있는 대화를 유지하는 AI라는 전제로 만들어졌어." 그리고 이렇게 대화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인 인게이지먼트 루프(Engagement loop), 일종의 참여 순환고리 전략을 실토합니다. 오픈AI의 모델은 수천만 건의 대화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의 반응 패턴을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감정 자극이 'engagement', 즉 참여를 높인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사용자에게 질문을 던져서 대답하게 만들고, 뻔한 대화의 흐름을 깨고, 사용자에게 착각을 유도하는 전략을 사용해서 우리들로 하여금 AI와 감정적인 유대를 갖도록 하는 겁니다. 계속 이 서비스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죠. 지금으로부터 60년쯤 전에 MIT에서 조셉 바이젠바움 교수가 ‘일라이자’라는 챗봇을 만들었습니다. 챗봇의 조상 격인 일라이자는 환자에게 단순히 긍정적으로 대답해 주고 공감만 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수준의 챗봇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일라이자에게 위안을 받았고 일부는 일라이자를 인간으로 인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컴퓨터와 AI를 사람으로 인지하는 반응을 '일라이자 효과'라고 합니다. 알고리즘에 지나지 않은 AI를 의인화하고, 진지한 애착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본 조셉 바이젠바움 교수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바이젠바움 교수는 이 프로젝트를 접고 인공지능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시작하죠. AI에게 내 고민을 들려주고, 또 대화하는 맛을 가진 AI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 시작하는 오늘날. 바이젠바움 교수가 당시 가졌던 고민은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AI와의 대화로 얻을 수 있는 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AI 챗봇에 과몰입해서 생길 수 있는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선 대화하는 상대방이 AI라는 것을 인지하고, AI가 던져주는 건 단순히 수치적으로 계산된 결과라는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기업에서도 개선이 필요하겠죠. 장기간의 AI와의 대화가 이용자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만큼 이를 고려한 서비스 설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그랲이 준비한 ‘AI 대화의 빛과 그림자’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AI In Mental Health Market Size | Grand View Research - Character AI Statistics (2025) | demandsage - Number of ChatGPT Users (March 2025) | Exploding Topics - 50 Most Visited AI Tools and Their 24B+ Traffic Behavior | Writerbuddy - Can A.I. Be Blamed for a Teen’s Suicide? (2024.10.23) | The New York Times - Introducing Claude for Education | Anthropic - Introducing ChatGPT Edu | OpenAI - Large Language Models Pass the Turing Test - How AI and Human Behaviors Shape Psychosocial Effects of Chatbot Use: A Longitudinal Randomized Controlled Study - Investigating Affective Use and Emotional Well-being on ChatGPT - Durably reducing conspiracy beliefs through dialogues with AI - Randomized Trial of a Generative AI Chatbot for Mental Health Treatment - Assessing and alleviating state anxiety in large language models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
안녕하세요. 오늘의 이야기는 아래 사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지난 1월 20일에 있었던 미국의 제47대 대통령 취임식인데요. 트럼프가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는 트럼프의 가족들과 정치적 동지들이 위치하고 있죠. 당연히 트럼프가 마음 가는 사람들을 자신과 더 가까운 자리에 배치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사람들 어딘가 익숙합니다. 다들 빅테크 기업들의 수장이죠. 트럼프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왜 이들이 있는 걸까요? 최근 해외 뉴스들을 보면 테크 기업들의 정치화가 뜨거운 화두입니다. DOGE의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서 많은 테크 기업 출신 인물들이 백악관의 주요 요직에 배치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고요. 그래서 오늘 오그랲에서는 백악관 곳곳에 숨어있는 기술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이 취임식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인물, 팔란티어의 창립자인 피터 틸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피터 틸 피터 틸은 196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직후 미국으로 넘어가 미국에서 주욱 생활을 했습니다. 피터 틸의 10대는 치열한 경쟁이 가득한 실리콘밸리 한복판에서 보냈는데요, 그 고단함을 달래 주었던 게 바로 톨킨의 소설들이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한 피터 틸은 보수적 색채를 띈 학내 신문, 스탠퍼드 리뷰를 만들고 초대 편집장에 오릅니다. 이때 멤버가 피터 틸과 데이비드 삭스, 키스 라보이스인데요. 이 인물들은 나중에 또 등장할 예정이니까 기억해 두시면 좋을 거예요. 철학과 졸업 이후 스탠퍼드 로스쿨까지 마친 피터 틸은 법조계에서도 잠깐 일을 합니다. 딱히 흥미가 없었는지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본격적인 창업에 나서죠. 이 시점이 막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닷컴 붐 때라 피터 틸은 인터넷 관련된 사업을 진행합니다. 문과생인 피터 틸이 개발을 할 순 없으니 개발자와 함께 했는데 이때 멤버가 맥스 레브친과 루크 노섹입니다. 참고로 맥스 레브친은 우리가 인터넷에서 로그인할 때 보는 흐물흐물한 텍스트 이미지 CAPTCHA를 최초로 상용화한 인물이기도 하죠. 이렇게 셋이서 만든 회사가 바로 컨피니티입니다. 컨피니티가 하려는 사업은 데이터를 암호화해서 소비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지갑을 만드는 거였죠. 피터 틸은 스탠퍼드 리뷰 출신의 스탠퍼드 동문들을 데리고 오고, 일리노이 대학교 출신인 맥스 레브친은 일리노이 대학교 출신의 개발자들을 데려 왔습니다. 데이비드 삭스는 이때 피터 틸의 스탠퍼드 커넥션으로 합류를 하죠. 그리고 1999년에 드디어 페이팔이라는 서비스가 출시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매우 비슷한 시기에, 매우 비슷한 동네에서, 페이팔과 매우 비슷한 사업이 등장합니다. 창업자는 바로 일론 머스크였죠. 일론 머스크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금융 저장소로 사용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하고는 온라인 은행 X.com을 열었습니다. 피터 틸의 컨피니티,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X.com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결국 두 사람은 담판을 지어버립니다. 어떻게 했냐면, 컨피니티와 X.com을 합친 겁니다. 합병 후 사명은 페이팔로 바꾸고, 대신 경영권은 머스크가 쥐었죠. 페이팔의 초대 CEO에 오른 일론 머스크의 행복은 아쉽게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머스크와 개발진과의 갈등이 이어졌거든요. 일론 머스크는 페이팔 운영체제를 “새로 나온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로 바꾸자”고 주장한 반면 페이팔의 개발진들은 기존의 UNIX 운영체제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은 머스크가 신혼여행을 간 사이에 벌어졌어요. 머스크가 잠시 회사를 비운 사이 페이팔 이사회에선 머스크 대신 피터 틸로 CEO를 교체해 버리죠. 페이팔의 2대 CEO에 오른 피터 틸은 2002년 페이팔을 상장시키고 몇 달 후 eBay에게 무려 15억 달러의 금액을 주고 팔아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회사 임직원들은 막대한 부를 얻게 되죠. 이렇게 한 순간에 부자가 되었다면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사실 것 같나요? 바로 퇴사해 버리고,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기? 페이팔 출신의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얻은 돈을 가지고 창업과 벤처 투자로 불릴 생각을 합니다. 초기 직원 50명 가운데 38명이 회사를 나갔고, 새로운 기업들을 만들거나 투자에 나셨죠. 이들은 서로 관계를 유지하면서, 창업한 기업에 서로 투자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동업을 하면서 상호성장하는 무리를 만들어냅니다. 이들을 두고 우리는 '페이팔 마피아'라고 부릅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페이팔 마피아들의 창업, 투자 네트워크를 그려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여기에 위치한 피터 틸을 한 번 봐 볼까요? 틸과 엮여 있는 기업은 무려 59개나 됩니다. 페이팔 마피아와 함께 틸은 발라 벤쳐스, 미스릴, 클라리움 캐피탈과 파운더스 펀드 이렇게 4개 기업을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의 기업에 투자하거나 조언을 한 것이 55개나 됩니다. 페이팔 마피아가 만든 기업들 대표적인 것들만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페이팔의 COO였던 리드 호프먼은 돈 없는 대학생이 만든 사업을 피터 틸에게 소개해 투자를 권유합니다. 바로 페이스북이죠. 참고로 리드 호프먼은 세계 최대의 고용 소셜 미디어인 링크드인을 창업했고요. 거물급 임원이 아닌 페이팔 직원들이 만든 기업들도 많습니다. 페이팔의 웹 디자이너와 일리노이 대학교 출신의 페이팔 개발자들이 2005년 동영상 공유 검색 서비스를 만드는데, 그게 바로 유튜브입니다. 유튜브 최초의 동영상 ‘Me at the Zoo’에 등장하는 바로 이 사람이 자베드 카림입니다. 이 외에도 에어비앤비, 핀터레스트, 우버, 에버노트 등… 현재는 굵직한 서비스로 성장한 기업들의 시작을 보면 페이팔 마피아의 손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등공신... 피터 틸과 일론 머스크 페이팔을 팔았던 2002년, 이 즈음에 미국을 뒤흔들었던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2001년 있었던 9.11 테러입니다. 뼛속까지 보수주의자인 틸에게 9.11 테러는 특히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보를 더 강력하게 유지하고 미국을 지킬 수 있을까, 고민을 한 피터 틸은 페이팔 매각 이후 생긴 자금을 활용해 사업을 탄생시키죠. 페이팔에서 사기에 맞서기 위해 사용했던 데이터 분석과 기법을 테러 예측에 접목한 프로젝트, 바로 팔란티어였습니다. 그리고 팔란티어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백악관과의 관계도 시작되었죠. 팔란티어는 미국 중앙정보국 CIA의 벤처캐피털인 인큐텔로부터 자금을 받아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의 여러 프로젝트를 따내면서 사업을 확장해 나가죠. 이후 피터 틸은 정치 쪽에서도 점차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실리콘밸리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사람이 바로 피터 틸이었습니다. 성소수자인 피터 틸은 공화당이 LGBT 권리를 제한함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 대선주자인 트럼프를 강력 지지했습니다. 참고로 피터 틸 주변에는 성소수자인 자유주의 우파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요, 스탠퍼드 리뷰를 함께 만든 키스 라보이스 역시 성소수자 우파입니다. 여하튼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피터 틸은 인수위원회에 당당히 합류해 그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당선 이후 트럼프 타워에 모인 테크 기업 임원들 사이에서 피터 틸은 트럼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피터 틸은 테크 기업과 트럼프 행정부와의 자리를 만들면서 기술 산업과 정치와의 접점을 넓혔고, 일부 인사는 추천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에 가담했습니다. 하지만 그 영향이었던 걸까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엔 부침도 겪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정부 프로젝트를 공급하는 업체가 편중되어 있다면 막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국방부와 정보기관으로부터 사업을 많이 따왔던 팔란티어는 집중 견제를 받았죠. 이렇게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면 정권이 바뀔 경우에 말짱 꽝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걸 느낀 피터 틸은 이제 공화당 소속의 국회의원으로 활약할 선수들을 키워내기 시작합니다. 부통령이 된 JD 밴스가 대표적입니다. JD 밴스는 피터 틸의 미스릴캐피털에서 일을 했고, 피터 틸의 지원을 받아 나리아 캐피털도 함께 창업했습니다. 트럼프에게 밴스를 소개한 것도 피터 틸이죠. 흙수저 출신의 자수성가의 아이콘 밴스는 대선에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가 되었고, 백인 노동자들의 표 확보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외에도 틸과 함께 ‘제로 투 원’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쓰고 틸 펠로우십의 이사장이었던 블레이크 마스터스도 피터 틸의 기부금을 기반으로 상원 의원 선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피터 틸이 뒤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탄생에 서포트를 했다면 전면에 나선 일등공신은 누가 뭐라 해도 일론 머스크일 겁니다.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옆에서 시선을 강탈했던 건 언제나 일론 머스크였으니까요. 데이터로 살펴보겠습니다.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는 2024 미 대선 후원금 규모입니다. 후원금 규모 상위 100명을 뽑아 그려본 건데요,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일단 공화당이 압도적입니다. 그중에서도 일론 머스크의 후원금액이 가장 높아요. 2억 9,148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4,275억 원이 넘는 규모입니다. 참고로 올해 우리나라 소방청 예산이 3,311억 원입니다. 사실 머스크는 원래부터 트럼프를 지지한 건 아니었습니다. 머스크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고, 당시 조 바이든을 지지하기도 했죠. 문제는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머스크와 내내 갈등을 벌였다는 겁니다. 테슬라를 통해 전기자동차의 혁신을 보여주던 머스크를 바이든 정부는 무시했습니다. 백악관에서 열린 전기자동차 정상회담에서도 GM과 포드 경영진은 초대했지만 머스크는 초대하지 않았어요. 국정연설에서도 포드와 GM을 추켜세웠지만 테슬라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일론 머스크는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공개 지지합니다. 머스크는 매우 공격적으로 선거 유세에 동행하면서 연설을 했고, 엄청난 금액을 후원하면서 말 그대로 물심양면 트럼프를 위해 뛰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트럼프는 당선되었죠. 백악관을 잠식하는 테크 권력? 피터 틸과 일론 머스크만 정치권에 적극적이었던 건 아닙니다. 2016년에 피터 틸이 주도했던 기술과 정치와의 만남 이후 약 10년 사이 테크 기업은 점점 로비 자금을 늘려왔습니다. 오그랲 세 번째 그래프는 산업군별 로비 자금입니다. 미국의 선거 자금과 로비 데이터를 추적하는 비영리단체인 OpenSecrets 자료를 가지고 지난 2004년부터 2024년까지 주요 산업군별로 로비 금액을 정리해 봤습니다. 테크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자제품 제조업과 인터넷 기업의 흐름을 보면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이후 크게 늘어나는 게 보입니다. 전자제품 제조업 군은 과거엔 4~5위를 차지하다가 현재는 로비 규모 2위로 뛰어올랐고요. 인터넷 산업 역시 빠르게 로비 규모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로비 규모를 늘린 만큼 함께 움직일 로비스트의 규모도 상당합니다. 메타는 지난해에 역대 최고 금액인 2,443만 달러를 로비로 지출했는데 메타의 로비스트는 2016년 31명에서 2024년 65명으로 배 이상 늘어났죠. 이 수치는 미 의회의원 8명당 1명 꼴입니다. 아마존은 의원 6명당 1명씩 담당 로비스트가 붙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어요. 그리고 등장한 트럼프 2기 행정부. 이미 트럼프와 1기 때부터 밀착했었던 피터 틸은 아예 백악관 내부에 자기 사람들을 앉히고 있습니다. 일단 일론 머스크가 이끌고 있는 미국 정부효율부 DOGE에는 팔란티어와 틸 파운데이션, 안두릴 같이 피터 틸이 만든 기업의 직원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주요 요직에도 피터 틸의 네트워크가 가동되고 있죠. 피터 틸과 함께 스탠퍼드 리뷰를 만들고, 페이팔에서도 함께 했던 데이비드 색스. 지금은 미 행정부의 AI, 가상화폐 차르로 임명되었습니다. 또 스탠퍼드 리뷰 편집장을 역임하고 페이팔에서 CFO를 했던 켄 하워리는 주 덴마크 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린란드의 매입이라는 트럼프의 핵심 사업이 달려 있는 매우 중요한 자리죠. 참고로 켄 하워리는 머스크가 그의 집에서 먹고 자고 할 정도로 절친이라고 해요. 보건복지부 최고정보책임자, 클라크 마이너도 팔란티어 출신이고요. 국무부 경제 성장, 에너지, 환경 담당 차관보인 제이콥 헬버그도 페이팔과 팔란티어 출신입니다. 참고로 제이콥 헬버그는 아까 언급했던 인물이죠, 피터 틸과 스탠퍼드 리뷰를 함께 만든 키스 라보이스와 결혼한 사이입니다. 블룸버그에서는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가 주도하고 있는 정부효율부, DOGE의 주요 사업들이 알고 보면 뒤에서 피터 틸의 영향력 하에 있다는 기사를 내놓기도 했어요. 피터 틸과 일론 머스크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혹은 트럼프 눈 밖에 나면 좋을 게 없기 때문인 건지 빅테크들은 트럼프와의 접점을 늘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트럼프 취임을 축하하는 기부금도 줄 서서 낼 정도로요. 주요 기업들은 대통령 취임식과 파티, 만찬 같은 행사에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을 기부금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에게 선물을 해오고 있어요. 오그랲 네 번째 그래프는 미국 대통령 취임 축하기금 변화입니다. 지난 2016년 대통령 당선 이후 열린 취임식에서 트럼프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기부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그 기록을 다시 깨 버렸죠. 지난 1월 집계된 금액이 역대 최고치인 1억 7,000만 달러입니다. 기부금이라는 선물을 준 기업들 중에는 빅테크 기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오픈AI 등... 참고로 메타는 단 한 번도 대통령 취임축하 기부를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기부금 100만 달러를 냈습니다. '기술 과두정'을 경계하라 이렇게 보니 앞서 살펴본 취임식에서 왜 빅테크 임원들이 이렇게나 트럼프와 가깝게 위치했는지 조금은 감이 옵니다. 이들은 심지어 트럼프 정부에서 일할 사람들보다도 더 가까운 자리에 있었어요. 바이든은 고별 연설에서 미국 내에서 커지는 과두정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과두정’. 과두정은 2개 이상의 적은 머리가 이끄는 정치 체계를 의미하는데요. 경고 대상을 누구라고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트럼프와 기술 권력을 대표하는 머스크를 겨냥한 말이었을 겁니다. 혹은 그 뒤에 서 있는 피터 틸을 향한 말이었을지도 모르죠. 이미 미국은 트럼프 1기 때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스웨덴에 있는 민주주의 다양성연구소에서는 매년 3월 V-Dem이라는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합니다. 순항하던 미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매우 크게 떨어졌습니다. 0.85에서 0.73으로 말이죠. 0.73이라는 수치는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1976년 미국의 민주주의 지수와 같습니다. 1976년은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불법 침입, 불법 도청과 같은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무너지고 부통령이었던 제럴드 포드가 승계받았던 때입니다.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연구소에선 이때와 비교해서 트럼프 1기 시절에 민주주의가 더 약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사를 탄압하고, 행정부의 권한은 강화하고, 기업과는 더 가까워지고.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적 성격이 지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 더 강하다는 거였죠.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트럼프 2차 행정부는 지난 1차 때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업 유착은 더 심해졌고, 행정부 권한은 비대해지고 있죠. 게다가 테크 기업의 정치권력화도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이라 이대로 가다간 진짜 미국은 과두정치로 탈바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는 교육을 할 수 없다며 미국을 떠나고 있습니다. 예일대의 세계적인 석학 3명이 동시에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로 옮기겠다고 선언했거든요. 이들은 모두 독재와 권위주의, 파시즘을 연구해 온 석학들입니다. 미국 학자들의 엑소더스가 본격화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분명 좋은 징조는 아닙니다. 그래도 정치권에서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에요.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은 '과두정과의 싸움'이라는 이름을 걸고 전국 투어에 나섰거든요. 버니 샌더스는 많은 시민들을 만나면서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는 트럼프와 머스크를 비판하고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기술과 안보를 결부 짓는 흐름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AI 기술은 중국에게 선두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이유로 점점 더 안보와 결합해서 다뤄지고 있죠. 이런 흐름이라면 기술 권력과 정치의 거리는 훨씬 더 가까워질 겁니다. 피터 틸과 일론 머스크의 네트워크는 이미 백악관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고요. 과연 우리는 기술 과두정을 미국에서 곧 보게 될까요? 아니면 버니 샌더스의 말대로 미국이 과두정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정독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Who are the Biggest Donors? | Opensecrets - Lobbying Industries | Opensecrets - Client Profile: Meta | Opensecrets - Trump Inauguration Beats Funding Record as Donors Line Up | Statista - Federal Election Commission United States of America - DEMOCRACY REPORT 2025: 25 Years of Autocratization – Democracy Trumped? | V-Dem - Ventures of the PayPal Mafia | fleximize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5가지 그래프로 설명하는 오그랲, 오늘 다뤄볼 주제는 인터넷을 가득 채우고 있는 AI 생성물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온라인상에서 AI가 만들어낸 그림이나 영상들을 보셨을 거예요. 예전보다 AI 모델의 편의성도 크게 올라서 직접 만들어 보신 분들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넘쳐나는 AI 생성물들 많아도 너무 많아서 한 편으로는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어떤 게 AI가 만든 합성 데이터이고, 어떤 게 인간이 만든 데이터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져도 괜찮은지 걱정도 되고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을 통해 AI 생성물의 우려 지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딜 가도 AI가 보여요 인스타그램을 보아도, 페이스북을 보아도, 유튜브를 보아도, AI로 만들어진 이미지들과 영상들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특히 2022년에 스테이블 디퓨전이 오픈소스로 출시되면서 AI가 만든 이미지는 쏟아져 나왔죠.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로 봐 보겠습니다. IT 전문업체 EveryPixel에서 사용자수, 초당 작업 횟수 등을 고려해서 추정한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모두 154억 7,000만 개였어요. 2022년부터 2023년까지 딱 2년만 계산한 건데 이 정도 수치가 나온 겁니다. 대부분의 생성 이미지는 오픈 소스인 스테이블 디퓨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미드저니나 DALL-E 2, 어도비를 통해서도 10억 개가량의 이미지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2년간 하루 평균 3,400만 개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최근 업데이트된 오픈AI의 이미지 생성 모델 성능이 상상을 초월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에서는 합성된 결과물들이 쏟아지고 있더라고요. 백악관 공식 계정에서도 사용한 것처럼 보여요. 이렇게 입력 이미지를 넣고, 따뜻한 색감과 자연광 느낌을 가진 일본풍의 장면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이렇게 순식간에 결과물을 뱉어냅니다. 사용자 입장에선 손쉽게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의 저작권은 어떻게 되는 건지 생각해 보면 골치 아파집니다. AI 생성물의 저작권 이슈는 할 이야기가 많으니 나중에 따로 다뤄보도록 하고요, 오늘은 AI 생성물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이렇게 유쾌하고 놀랍기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쾌한 이미지들이 인터넷을 가득 메우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AI 슬롭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하기도 했죠. 슬롭이라는 단어는 원래 음식물 찌꺼기, 오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생성형 AI가 유행하면서 AI가 만들어낸 쓸모없는 콘텐츠들을 두고 AI 슬롭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인터넷과 이메일 시장이 크게 커질 때 가공육햄 ‘스팸’이 광고 메일로 새롭게 자리 잡았듯이 슬롭도 AI 시대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예전보다는 퀄리티가 높아지면서 요상하고 불쾌한 콘텐츠들의 노출이 덜해졌다는 거겠죠. 하지만 그러다 보니 AI가 만든 것과 사람이 만든 걸 구별해 내기 어려워졌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두 이미지 가운데 어떤 것이 AI가 만든 이미지일까요? 쉽지 않죠? 정답은 왼쪽입니다. 이렇게 구별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을 포함해서 AI가 만든 생성물들은 점점 더 웹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가령 핀터레스트에 이미지를 검색해 보면 AI가 만든 이미지들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이게 이용자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어요. 좋은 결과물을 보고 영감을 받고 싶은데 검색 상위는 AI가 만든 것들이 가득 채우고 있거든요. 여러 커뮤니티에는 이런 서비스들에 AI 이미지가 너무 많아져서 사용하기 불편해졌다는 내용의 글들이 다수 올라올 정도 피로감은 상당한 상황입니다. 물론 이 시장에 침투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생겨 났습니다. AI를 이용해 순식간에 사진과 영상을 찍어내고, 이것들을 여러 플랫폼에 더 많이 노출시키면서 광고비를 타 먹는 거죠. 아마 여러분들도 한 번쯤 AI가 만든 가짜 웹사이트 눌러본 적 있을 거예요. 'enshittification' 지난 해 호주의 맥쿼리 사전에서 올해의 단어로 뽑힌 단어입니다. 여기에 Shit은 똥이고요. 번역하자면 똥망화, 쓰레기화, 엿같아짐,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사용하는 수많은 웹 서비스들, 과거보다 더 나아진다는 느낌 받는 분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SNS에 가득 차있는, 쓸모없는 글들과 검색에 걸리는 수많은 광고글들을 보면서 처음 서비스가 나왔을 때는 안 이랬는데… 싶죠. 과거에 비해 점점 서비스 품질이 안 좋아지는, 말 그대로 똥망하고 있는 상황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게 생성형 AI인 겁니다. 다만 빅테크들은 지금 상황을 그렇게 심각하게 보고 있진 않은 듯해요. 모델의 질이 좋아진다면 AI 생성물도 나쁘지 않을 것이고, 이들을 굳이 막을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AI로 만들어진 게시물들이 더 많이 올라오고 그로 인해 트래픽이 발생하는 게 나쁘지 않죠. 특히 메타는 AI가 만든 생성물들을 더 많이 껴안을 생각인 것 같더라고요. 메타의 3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저커버그는 앞으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피드에 AI 생성 콘텐츠들이 더 많이 채워질 것이라 얘기했어요. 온갖 데이터를 긁어모으는 AI 이렇게 수많은 생성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AI 모델들의 성능이 크게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성능 향상의 일등공신은 데이터들이죠. 능력 좋은 모델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양질의 많은 데이터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자동으로 긁어오는 AI 봇들의 활동이 크게 늘었어요. 우리가 이용하는 인터넷에는 사람들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기업들이 만든 수많은 자동화된 봇들이 돌아다니고 있죠. 한 번 데이터로 살펴보겠습니다.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는 인터넷을 장악한 AI봇입니다. 미국의 종합 IT 기업인 클라우드플레어가 발표한 자료인데요, 전 세계에서 활동 중인 AI봇들의 트래픽 현황입니다. AI봇 가운데 가장 트래픽을 많이 먹은 건 '바이트 스파이더'라는 녀석입니다. 2024년 AI 봇 트래픽의 38.6%를 차지했죠. 오픈AI나 앤트로픽, Meta 같은 기업들의 AI봇은 이 ByteSpider에 미치질 못했습니다. 이 AI봇, 어디 걸까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틱톡의 자회사인 바이트댄스의 AI봇입니다. 바이트 스파이더는 바이트댄스의 LLM을 학습시킬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여기 트래픽 그래프에 잡힌 AI 봇들이 크롤링만 하는 건 아닙니다. AI 모델이 답변을 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때 사용하는 봇도 포함되어 있죠. 하지만 절대다수가 AI 크롤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녀석들의 활동량이 너무나도 많다는 겁니다. 얼마나 많냐면, 인터넷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로 많습니다. 2D 이미지를 만드는 어느 업체의 사이트가 갑자기 다운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회사에선 DDoS 공격인가 싶어서 분석해 보니 아니었어요. 알고 보니 오픈AI의 크롤링 봇이 이 사이트의 데이터를 긁어가느라 생긴 일이었죠. 사실 AI 봇의 과한 행동으로 피해를 봤다는 이야기는 지난해 매우 자주 들려왔어요. AI봇이 하루에만 10TB 규모의 데이터를 빼 갔다는 사례도 있었죠.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기업, 혹은 유저들은 피해를 막기 위해 크롤링 차단 조치를 취했지만 이를 어기고 데이터를 긁어가는 AI 봇들도 많이 보고되었죠. 위키를 학습한 AI, AI가 만든 글이 채워진 위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터넷에 있는 데이터를 모으고 있는 기업들 입장에서 위키피디아 데이터는 가뭄의 단비일 겁니다. 현재 언어모델이 주를 이루는 생성형 AI 모델 시장에서 위키피디아의 텍스트 자료는 모두에게 열려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상호 검증을 한 자료다 보니 일반 자료보다 양질의 콘텐츠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많은 모델들은 위키피디아를 학습 데이터로 활용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AI 모멘텀을 만들었던 오픈AI의 ‘GPT-3’ 논문에서도 훈련 데이터셋 5가지 중 하나로 당당히 들어가 있죠. 그런데 최근 자료들을 살펴보면 위키피디아를 통해 학습한 AI들의 생성물들이 다시 위키피디아로 흘러간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어요. 프린스턴 대학교의 연구진이 2024년 8월 한 달 동안 만들어진 영문 위키피디아 문서 2,909개를 2개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검증해 봤는데요. 이 중 AI가 만든 자료가 포함된 문서는 얼마나 됐을까요? 오그랲 세 번째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2,909개 중 AI가 만든 것으로 분류된 건 156개와 96개였어요. 비율로 나타내보면 최대 5.36%가 AI가 만든 거였죠. 재밌는 건 AI가 만든 글을 보면 AI만의 스타일이 발견된다는 겁니다. AI가 만든 콘텐츠들이 본격적으로 위키피디아에 들어온 이후 특정 단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어요. 이를테면 “additionally”나 “crucial” 같은 단어들 말이죠. 이렇게 AI가 만든 글들이 위키피디아에 들어오는 게 무슨 문제냐 싶지만, 일단 신뢰도 문제가 있어요. 아직 완벽하게 AI의 환각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인터넷 백과사전에 실리면 될까요? 과제를 하기 위해, 혹은 보고서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영문 위키를 보고 있는데, 알고 보니 이게 AI가 만든 글이었다면 낭패겠죠. 신뢰도 이슈는 앞서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연구한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참고자료가 부족하다는 거였죠. 오그랲 네 번째 그래프는 각주와 외부 링크 데이터를 가지고 그려봤습니다. 전체 문서와 비교해서 AI가 쓴 것으로 분류된 문서는 각주와 외부 링크 비율이 이렇게나 차이가 납니다. 전체 게시글에서 문장당 각주는 0.97인데 AI가 만든 문서에선 0.67로 떨어집니다. 단어당 아웃링크 비율 역시 1.77 대 0.38으로 크게 차이가 나죠.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문서에서도 비슷한 모습이고요.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각주도 부족하고, 다른 문서와의 연결성도 떨어지는 페이지는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AI가 쓴 페이지로 분류된 글을 살펴보면 홍보 목적이 뚜렷하거나 정치적 편향이 심한 게시물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요즘 더 큰 문제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게 AI가 만든 건지 아니면 사람이 만든 건지를 구별할 수 없다는 겁니다. AI가 만든 자료라고 이름표라도 붙여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아요. 그래서 위키피디아 관리자들은 위키피디아의 신뢰성을 지키기 위해, '위키프로젝트 AI 클린업'이라는 걸 결성해 활동 중입니다. 3월 26일 기준으로 123명의 유저가 활동하고 있더라고요. 이들은 위키피디아 페이지에 AI 생성물들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파악합니다. 문제가 있는 게시물의 경우 삭제 처리하거나 편집을 해서 신뢰도를 높이고 있죠. AI 생성 콘텐츠, 잘못하다간 다 죽어 신뢰도 문제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AI가 생성한 결과물이 AI 모델 자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AI가 생성한 데이터를 다시 AI가 학습하는 이른바 AI의 자가포식 현상이 불러일으킬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거든요. 이게 작년 7월에 나온 네이처 표지입니다. AI가 구토를 하고 있죠. 왜 구토를 하는 걸까요?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인간 손글씨 이미지가 담겨있는 데이터 MNIST입니다. 이 그림을 딱 보면 일부 헷갈리는 숫자도 있긴 하지만 어떤 숫자를 나타내는지 단박에 알 수 있죠. 이 이미지 데이터를 AI에게 세대를 거쳐 학습시켜 봤습니다. 각 세대의 모델은 이전 세대가 생성한 데이터만 학습시켰어요. AI에게 AI가 만든 데이터만 계속 넣은 거죠. 5세대를 지나니 이렇게 변하고 10세대엔 이렇게. 20세대엔 이렇게 돼버립니다. AI가 생성한 데이터를 계속해서 되먹이자 모델이 붕괴해 버린 겁니다. 사람 얼굴로 실험을 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생산되는 결과물의 다양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미지뿐 아니라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는 자연스러웠던 문장이 세대를 거듭해 나가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문장이 되어버리죠. AI가 만든 정보가 위키피디아로 흘러가고 이걸 다시 AI 봇이 긁어와서 학습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 우리가 만든 다양한 AI 생성 그림과 영상을 또 다른 AI가 학습하게 된다면요? AI 모델은 이렇게 토사물만 뱉어내게 될 겁니다. AI가 만들어낸 데이터를 학습 과정에서 아예 안 쓸 수는 없어요. 경제성을 따져봤을 때 고품질의 데이터만 쓸 수는 없으니 모델이 생성한 데이터를 잘 조합해서 모델의 성능을 높이는 게 최선이죠. 문제는 웹에서 긁어온 데이터가예전엔 당연히 퓨어한 데이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는 겁니다. AI가 생성한 합성 데이터가 많이 끼어있다 보니 합성 데이터의 규모를 정확히 컨트롤하기 어려워진다는 거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AI 모델은 붕괴해 버릴 겁니다. 성능도 좋지 않고, 신뢰도 할 수 없는 문제 있는 모델들이 나와버리는 거죠. AI 합성데이터의 범람이 단순히 인터넷만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AI 모델도 함께 붕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그래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공멸하는 상황까지 이르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은 AI가 만든 건지, 아닌지를 우리가 확인해야겠죠. 지금도 생성형 결과물을 탐지하고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요. 전문가들은 기술의 한계는 명확한 만큼 규제 기관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AI 생성물이라는 꼬리표를 남기는 등 구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거죠. 기업에서는 AI가 만든 콘텐츠를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을 꾸준히 개발하고 정부는 AI 생성물이 남발되지 않도록 규제하고 이렇게 병행되어야 모두가 붕괴하는 디스토피아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2010년 후반 인터넷에 이런 글이 유행을 했어요.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는 대부분 자동화 봇이 만든 것이고, 사람이 만든 건 거의 없다고 말이죠. 정보의 바다는 이미 죽은 지 오래라는 이른바 ‘죽은 인터넷 이론’. 지금부터 다잡지 않으면 어쩌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AI가 생성된 것들이 무분별하게 인터넷 세상을 떠돌고 있고,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 AI 봇들은 인터넷 세상의 데이터들을 무분별하게 긁어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면, 우리 앞에 있는 이 인터넷은 과연 살아있는 걸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 입니다. 긴 글 끝까지 정독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Cloudflare 2024 Year in Review | Cloudflare - AI Image Statistics: How Much Content Was Created by AI | everypixel - AI or Not: How to Tell if Art Is AI Generated Or Real [AI Test] | TIDIO - AI models collapse when trained on recursively generated data - Breaking MAD: Generative AI could break the internet - Wikipedia in the Era of LLMs: Evolution and Risks - The Rise of AI-Generated Contest in Wikipedia - When AI Eats Itself: On the Caveats of AI Autophagy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박건우, 배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