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의 간극을 데이터로 줄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떡볶이와 야구, 그리고 영화를 좋아합니다.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추운 극지방 북극이 지구상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북극권에 속해있는 미국, 러시아 같은 나라뿐 아니라,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도 북극에 대한 관심을 내비치고 있죠. 이번 정부에서는 북극항로 개척을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만큼 관련해서 내년 예산에 총 5,499억 원을 편성하기도 했어요. 오늘 오그랲에서는 도대체 북극이 왜 이렇게 핫해진 건지, 또 북극항로라는 게 정말 가능성이 있는지 데이터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게 북극항로가 중요한 이유 일단, 우리나라는 무얼 먹고사는 나라일까요? 바로 수출입니다. 우리나라의 작년 GDP는 1조 8,697억 달러로 전 세계 12위를 기록했죠.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 동안은 세계 10위 안에 위치하면서 10대 경제강국 타이틀을 달았지만 지금은 10위 밖에 속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수출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GDP 대비 수출 비중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G20 국가들 가운데 3위를 기록할 정도죠. 해외에 물건을 팔 수 있는 방법은 땅으로 가거나, 바다로 가거나, 하늘로 가거나 인데 사실상 우리나라는 섬과 같아서 바닷길과 하늘길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바닷길이 대한민국 물동량의 99%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한 번 유럽에 상품을 내다 판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닷길로 유럽 시장을 노리기 위해선 유럽 최대의 항만인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로테르담까지 갈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수에즈 운하를 통해 지중해를 거쳐 가는 게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 항로는 아시아-유럽 교역의 핵심 통로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그 길목에서 지속적으로 항로를 위협하는 후티 반군 때문에 문제가 많죠.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을 공격해 오고 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이렇게 위험한 항로를 이용할 순 없으니 대신 다른 우회로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바로 희망봉을 경유해서 대서양을 지나 네덜란드로 향하는 루트죠.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를 통해 두 항로의 이용 현황을 살펴보겠습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은 꾸준히 증가했어요.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2022년 12월엔 두 항로의 격차가 월간 986척까지 벌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엔 이렇게 역전되어 버립니다. 지난 7월엔 희망봉 경로를 이용하는 선박이 1,819척이나 더 많아질 정도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요. 문제는 희망봉 항로는 수에즈 운하보다 거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더 걸린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해 로테르담항까지 가면 거리는 약 2만 400km 시간은 30~34일 정도 걸립니다. 반면 희망봉을 경유하면 거리는 약 4,000km 늘어나고 시간은 6일 더 걸리죠. 원래 이용하던 경로는 위험해서 이용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대안책은 시간도, 거리도 더 길어진 상황인 거죠. 게다가 한국 기업들 입장에선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갈등도 신경이 쓰입니다. 남중국해에 있는 섬을 두고 중국, 타이완, 필리핀, 베트남 등 여섯 개국의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최근엔 중국 함정이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뿌리자 미국 국무부가 규탄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죠. 우리나라 해상 무역의 90% 이상이 바로 이 지역,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항로를 통과하다 보니 골치가 아픈 겁니다. 기존 항로의 불안전성이 점점 심화되면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기존 항로의 대체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게 바로 북극항로일 수 있는 거죠. 아래로 가는 게 아니라 더 위로, 북극으로 가는 거죠. 지구온난화가 준 기회? 북극의 바닷길이 열리고 있다 북극은 남극과 달리 대륙이 아니라 바다입니다. 북극에 보이는 하얀 건 땅이 아니라 북극해의 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이죠. 물론 북극권에 위치한 육지에서 만들어진 민물이 언 빙하도 있겠지만 북극해를 채우고 있는 건 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해빙이 대다수입니다. 이 해빙은 계절마다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추워지는 가을과 겨울철에는 발달했다가, 따뜻해지는 봄과 여름에는 수축하는 식으로요.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를 통해 북극 해빙의 크기를 살펴보겠습니다. 1978년부터 2025년까지 월별 북극 해빙 크기입니다. 북극의 해빙이 가장 작아지는 시기는 9월 초 무렵으로 최대 시점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죠. 북극 해빙의 크기가 가장 쪼그라드는 시점인 9월의 데이터만 가지고 그래프를 다시 그려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최근으로 오면 올수록 해빙 면적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1970년대 말에는 미국 본토 크기만 한 해빙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어요. 이렇게 된 건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지구온난화의 영향 때문입니다. 문제는 북극은 지구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1980년대 이후를 살펴보면 북극의 평균 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 상승률과 비교하면 세 배 가까이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어요. 그런데 왜 추운 북극이 이렇게나 더 빠르게 뜨거워지는 걸까요? 그 이유는 북극의 눈과 얼음들 때문입니다. 북극에 있는 해빙은 태양빛을 우주로 반사하는 거대한 거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녹아버린다면요? 얼음 밑에 있던 어두운 바다가 노출되고, 그러면 태양빛을 반사하는 양은 줄어들고 흡수하는 양이 늘어나게 됩니다. 게다가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온실효과가 강한 메탄 같은 기체가 배출되면서 상승세가 가속되고 있어요.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북극을 뒤덮고 있던 해빙이 더 많이 녹고 그 영향으로 북극의 바닷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유럽 시장과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 항로로 북극항로가 떠오르게 된 거죠. 만약 여름철 해빙이 많이 녹았을 때에 북극항로를 이용한다면 그 운송비용은 기존 항로 대비 크게 줄어듭니다. 수에즈 운하 항로를 이용할 경우 우리나라 선박의 운항 비용은 383만 달러 정도로 나옵니다. 거리가 더 먼 희망봉 항로는 418만 달러이고요. 반면 북극항로는 300만 달러 수준으로 운항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북극을 향한 강대국들의 야욕 북극항로의 경제성뿐 아니라 북극 내 에너지 자원도 상당하다는 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많은 국가들이 북극을 전략적 요충지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단 북극권 8개국이 가장 적극적입니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러시아까지 8개 국가들은 1996년에 북극에 관련된 각종 문제를 논의하는 북극이사회를 꾸렸습니다. 북극이사회에선 북극의 환경 보호와 과학적 연구, 또 개발을 하더라도 지속가능한 개발만 논의하기로 합의했어요. 과거 냉전 시기의 북극은 미국과 소련의 잠재적 공격 루트이자, 군사 작전 지역이었지만 냉전이 끝나고 꾸려진 북극이사회에선 북극을 인류를 위해서, 평화롭게 이용하자고 약속한 거죠.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북극이사회에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러시아를 제외한 7개 회원국이 러시아를 보이콧했고, 러시아는 이사회 참여 중단을 선언했거든요. 게다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안보가 불안해진 핀란드와 스웨덴이 연이어 NATO에 가입하면서 북극권이 다시금 절반으로 나뉘어 버렸습니다. 사실 그전부터 러시아는 북극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권을 점점 늘려오고 있었습니다. 과거 소련시절 사용한 북극의 군사기지를 재개하고 새로운 사령부를 세우며 인프라를 확장해 왔거든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가 닥친 이후엔 그 돌파구로 북극항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죠. 그래서 러시아의 북극항로 물동량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1년 311만 톤이었던 러시아 북극항로 물동량은 작년 3,789만 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앞으로 그 규모는 꾸준히 증가해 2028년엔 최대 8,510만 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요. 이렇게 점점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지만, 서방의 제재가 풀리지 않는다면 당장 국제 운송로로 활용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중국과의 교역이 북극항로 화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죠. 러시아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중국과의 접점을 더 늘리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북극항로 개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죠. 중국도 사실 나쁠 이유가 없습니다. 중국은 북극권에 속해 있지도 않지만 지난 2018년에 '극지 실크로드'라는 중국만의 북극 정책을 발표하면서 북극 운송로 개척을 추진해 왔어요. 그리고 지난 9월 22일 중국 닝보항을 떠난 선박이 10월 12일에 영국 펠리스토우 항구에 도착하면서 중국 최초로 북극항로 상업 운항을 성공시키기도 했죠. 중국은 단순히 북극항로에서만 러시아와의 접점을 늘리는 게 아니라 북극 내의 군사, 안보 협력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함께 북극해를 합동으로 순찰하기도 하고, 양국 폭격기가 합동으로 알래스카 근처에서 정찰 비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미국은 북극항로가 어느 한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항로가 아니라 모두가 이용가능한 국제 수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면서도 동시에 미국도 북극해 주도권을 확보할 목적에서 말이죠.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야욕도 북극권 내의 미국 영향력 확대로 해석할 수도 있고요. 문제는 미국의 인프라가 너무 달린다는 겁니다. 미국이 보유한 쇄빙선은 현재 3척뿐입니다. 반면 러시아는 41척, 중국은 5척이나 되죠. 최근에 핀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중형 쇄빙선 11척을 공동 건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완성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북극항로의 딜레마... 경제성과 환경 사이 많은 국가들이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 뛰어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북극항로에 마냥 장밋빛 미래만 보장된 건 아닙니다. 일단 기존 항로와 비교해서 비용이 적게 드는 건 맞지만 여러 가지 따져보면 경제성이 아주 높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컨테이너 선들은 최종 목적지까지 가면서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항구를 들르며 화물을 싣고 내리며 돈을 법니다. 하지만 현재 북극항로에서는 중간에 들를 항구가 러시아 외에는 없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또한 유빙 충돌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선 무겁고 단단한 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건조 비용도 많이 들고 연료 소모도 커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여전히 북극항로가 기존 항로보다 위험하다 보니 보험비가 많이 발생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북극항로는 여름과 초가을에만 열리고 겨울에는 운항이 제한될 수 있는 계절 항로라는 것도 걸림돌이 됩니다. 북극항로가 초래할 환경 파괴 역시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중유를 쓰는 대형 컨테이너선이 배출하는 그을음, 이른바 블랙 카본 문제입니다.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는 북극 지역에 배출된 블랙 카본 데이터를 가지고 그려봤습니다. 이 지도는 2021년 북극 지역에 배출된 블랙 카본을 시각화한 자료입니다. 2021년 북극에서 운항한 선박들이 배출한 블랙 카본은 모두 1,529톤입니다. 이렇게 배출된 블랙 카본이 북극의 눈과 얼음에 달라붙게 되면 얼음이 햇빛을 덜 반사하게 되면서 빛을 더 흡수하고, 더 빠르게 녹게 되죠.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스위스의 MSC는 이러한 환경 문제를 이유로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1위 기업뿐 아니라 2위, 3위 기업 모두 환경 파괴와 경제성을 이유로 북극항로 이용을 포기했죠. 일단 국제해사기구 IMO에서는 북극해를 통과하는 선박은 중유를 사용하지 못하고, 운반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극지의 환경오염을 최대한 낮추는 연료를 사용하도록 '극지 연료'라는 개념을 도입하려는 논의도 이어가면서 지속가능한 북극항로 이용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수에즈 운하 개통이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해운 허브로 만들었듯이, 북극항로 시대에는 새로운 싱가포르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 주인공이 대한민국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죠. 실제로 우리에겐 충분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부산항은 현재 세계 해운 연결성 지수 4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위에는 상하이, 닝보, 싱가포르 뿐이죠. 북극항로의 중간 기착지이자 물류 허브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이 이미 닝보에서 영국까지 첫 북극항로 상업 운항에 성공한 만큼, 우리도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북극의 얼음이 녹아 생긴 이 기회를 잡으면서도, 동시에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는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경제적 기회와 환경적 책임,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북극항로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 북극항로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Data&Law] 데이터로 보는 북극항로 | 국회도서관 - Arctic Report Card Update for 2024 | NOAA - Port Monitor - Suez Canal, Cape of Good Hope | PortWatch - U.S. Statement on Dangerous Chinese Actions in the South China Sea | U.S. Department of State Sea - Ice Index Daily and Monthly Image Viewer | NSIDC - GISS Surface Temperature Analysis (GISTEMP v4) | NASA - NSR Shipping activities in 2022 | CHNL - New record set for volume of cargo shipped along the Northern Sea Route | ROSATOM - Ледокольный флот России – самый мощный в мире | Министерство транспорта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 Polar Security Cutter | USCG - Coast Guard commissions newest polar icebreaker into operational service | USCG - China Deploys Five Icebreakers Near Alaska in Unprecedented Arctic Move | gCaptain - Black carbon and CO₂ emissions from EU-regulated shipping in the Arctic | ICCT - MSC Rules Out Arctic Exploration on Environmental Concerns | MSC - CMA CGM will not use the Northern Sea Route | Port of Hamburg - Further shipping GHG emission reduction measures adopted | IMO - Port liner shipping connectivity index, quarterly | UNCTADstat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일본 애니메이션 좋아하시나요? 예전엔 일본 애니메이션 좋아한다고 하면 썩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던 것 같은데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있는 듯합니다. 유행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극장과 OTT를 가리지 않고 '일본 애니 열풍'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극장가에서 흥행한 귀멸의 칼날, 체인소맨도 있고요, 곧 개봉할 주술회전, 그리고 그전에는 진격의 거인 바람이 크게 불기도 했죠. 오늘 오그랲에서는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이 어느 정도로 인기가 있는 것인지 또 그 인기의 비결은 무엇인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국 영화 시장 뒤흔든 일본 애니메이션 추석 연휴가 지나고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관객수가 532만 명을 돌파하면서 올해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개봉 영화 가운데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흥행 성적을 넘는 영화는 <좀비딸> 뿐입니다. 귀멸의 칼날뿐 아니라 체인소맨 극장판에는 15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몰리면서 일본 영화 관객 점유율(10월 10일 기준)은 14.4%까지 올라갔습니다. 이 일본 영화의 기록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통합전산망 시스템을 갖춘 2004년 이후 1위에 해당합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를 통해 한국 영화 시장의 국적별 점유율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2004년부터 2025년 현재까지 영화 국적별로 점유율을 나타내보면 단연 1, 2위는 한국영화, 미국영화입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일본 영화 상승세가 심상치 않아요. 처음으로 점유율이 반등했던 2017년에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 대흥행을 하면서 관객 점유율 4.0%를 기록했습니다. 당시까지 일본 영화 중 최다 관객을 기록한 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었는데 그 기록을 갈아치우고 신기록을 달성했죠. 그리고 4년 뒤인 2021년에는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더 큰 흥행 바람을 일으키면서 처음으로 관객 점유율 5.0%를 넘겼습니다. 2023년은 일본 영화가 국내 최초로 10%의 관객 점유율을 기록했던 해입니다. 흥행을 이끌었던 건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였죠. 두 영화는 2023년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각각 4위, 6위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했어요. <스즈메의 문단속>은 55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직전까지 흥행 1위였던 <너의 이름은.>을 꺾고 역대 일본 영화 한국 흥행 순위 1위로 올라섰죠. 그리고 올해는 현재까지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과 <체인소 맨: 레제편>의 흥행에 힘입어 역대 최고 관객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주술회전까지 흥행한다면 관객 점유율을 더 오를 수도 있고요. 영화라고 뭉뚱그려서 칭하고 있지만 실상 우리나라 영화 시장에서 힘쓰는 일본 영화는 실사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들입니다. 우리나라 영화 시장 역대를 통틀어서 박스 오피스 200위를 살펴보면 그중 일본 영화는 4편이 포함되는데 모두 애니메이션입니다. <스즈메의 문단속>,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더 퍼스트 슬램덩크>, <너의 이름은.>까지 말이죠. 일본 실사영화 중 국내 흥행 1위는 러브레터인데 재개봉 관객까지 포함해도 약 140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애니메이션과는 큰 흥행 차이를 보이죠.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은 한국에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2002년부터 2023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의 변화입니다. 2023년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3조 3,470억 엔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시장 규모 1조에서 2조로 돌파하는 데 16년이 걸렸는데, 2조에서 3조 돌파하는 데엔 불과 7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상승세가 빨라요. 2023년엔 해외 시장 수익이 일본 내수 수익을 초월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여태껏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해외 수익이 내수를 넘어선 건 2020년과 2023년뿐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해외 시장 성장세는 2013년 이후부터 11년 연속으로 플러스 성장할 정도로 순풍을 타고 있어요. 앞서 우리나라 박스 오피스 200위 안에 들었던 4편의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에서 3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올해 개봉한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역대 일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작품이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무려 6억 달러가 넘는 글로벌 수익을 벌어 들였죠. 그렇다면 왜 이렇게나 일본 애니메이션이 흥행하는 걸까요? 예전부터 애니메이션을 즐겨왔던 제 입장에서 느껴지는 건 애니메이션,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파이 자체가 커졌다는 인상이 듭니다. 실제 데이터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접근성의 힘... OTT로 친근해진 일본 애니메이션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은 찐 팬, 이른바 오타쿠만을 위한 틈새시장과 장르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OTT를 필두로 다양한 채널에서 스트리밍 되면서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장르로 자리매김했죠. 넷플릭스가 지난 7월 LA에서 열린 애니메 엑스포에서 구독자의 50% 이상이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1억 5천만 가구 이상, 약 3억 명의 시청자가 넷플릭스를 통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어요. 작년 한 해 동안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시청 횟수는 5년 사이 3배 증가해 10억 회를 넘길 정도죠. 우리나라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넷플릭스의 TOP10 랭킹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 강세가 이어지고 있어요. 2021년부터 2025년 9월까지 대한민국 상위 TOP10에 포함된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아직 3개월이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22편이 포함되어 있죠. 이렇게 많은 소비자들이 선택하고 있는 만큼 넷플릭스에선 애니메이션 영역의 투자 규모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넷플릭스가 분야별로 얼마나 투자했는지 밝히고 있진 않아서 정확하게 확인하긴 어렵지만 콘텐츠 투자액이 2025년에만 작년 대비 11% 증가한 180억 달러 규모인 만큼 애니메이션 영역도 그에 맞춰 확대된 것으로 유추할 수는 있습니다. 이 투자금은 넷플릭스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에도 들어가겠지만 외부 애니메이션 제작사로도 흘러가기 때문에 외부 제작사의 회계 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넷플릭스의 투자 규모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괴수 8호를 만든 Production I.G의 회계보고서입니다. 2024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판권 사업의 총매출액이 39.56억 엔인데, 그중에 15.32억 엔을 넷플릭스로부터 받았죠. 판권 수입의 38.7%에 해당하는 금액이죠. 여기에 영상 제작 부문에서도 20.4억을 받아서 전체 매출의 24.5%를 넷플릭스가 차지하고 있어요. 기존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른바 '제작위원회' 시스템을 통해 제작되어 왔습니다. 제작사뿐 아니라 광고주, 방송사 등 애니메이션에 관여하는 기업들이 모여서 공동 투자를 해서 위험을 분산하고 수익도 공유하는 식인 거죠. 소규모 스튜디오도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있고, 재정적 위험도 상대적으로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제작사 입장에선 제작비를 줄이라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함께라면 제작위원회 없이 제작비가 한 번에 지급되다 보니 그런 부담에서 사라집니다. 물론 넷플릭스가 2차 저작물 권한을 모두 가져가지만 그만큼 엄청난 투자금을 꽂아주죠. 이렇게 많은 돈이 투자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퀄리티 좋은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액션 씬도 화려하고, CG도 퀄리티가 높고… 소비자 입장에선 양질의 콘텐츠를 접할 기회가 더 많아진 겁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OTT 사용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전용 OTT의 성장이 그 증거죠. 글로벌 시장에서 애니메이션 스트리밍은 넷플릭스와 크런치롤이 양분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넷플릭스가 42%, 크런치롤이 40%를 차지하고 있죠. 크런치롤은 일본에서 방영되는 신작 애니메이션을 최대한 빠르게 제공하는 게 사업 모델입니다. 크런치롤 구독자는 2021년 500만 명에서 2024년엔 1,500만 명으로 3년 사이 3배나 늘어났죠. 우리나라에선 애니메이션 특화 라프텔이 있습니다. 웨이브나 티빙 같은 토종 OTT가 부진을 겪는 와중에도 라프텔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월간 활성이용자수 규모를 살펴보면 2021년 70만에서 2025년엔 어느새 100만을 돌파할 정도죠. 굿즈도 사고 알아서 영업까지... 코어 팬덤 '오시카츠'의 힘 넷플릭스를 필두로 애니메이션 투자가 늘어나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양질의 애니메이션이 제공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도 '충분히 볼만하다'는 인식을 가진 소비자들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영화표가 비싸졌지만, 볼만한 영화가 있으면 소비자들은 충분히 지갑을 열 의향이 있습니다. 그런 소비자 입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걸려 있으면? 충분히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접근성과 함께 또 하나 주목할만한 건 바로 애니메이션의 팬덤 문화입니다. 좋은 애니메이션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만들도록 영업하는 팬들 말이죠. 플랫폼이 애니메이션의 문턱을 낮췄다면 애니메이션의 팬덤은 애니메이션의 불씨를 불꽃으로 키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관련 굿즈도 열심히 소비하면서 시장 규모를 키워주고, 거기에 더해 새로운 소비층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위해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오시카츠'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예전엔 '오타쿠'로 지칭되던 애니메이션 팬들을 이제 일본에서는 '오시카츠'라고 부릅니다. 추진하다, 밀어주다라는 뜻을 가진 '오시'에 활동하다는 뜻의 '카츠'가 붙여진 단어인데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아이돌을 위해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트렌드를 의미합니다. 참고로 2023년 상반기에 인기를 끌었던 '최애의 아이'의 원 제목이 '오시노 코'입니다. '오시'를 최애로 의역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감이 오죠? 만화책을 시작으로 애니메이션도 보고, 애니메이션 OST도 듣고, 영화도 보고, 굿즈까지… 오시카츠는 내 최애 콘텐츠라면 산업군을 가리지 않고 소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일본 콘텐츠 시장은 기본 IP 하나를 가지고 주변 산업까지 확대해 나가는 전략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최애의 아이 만화책이 잘 나가면 그걸 바탕으로 퀄리티 좋은 애니메이션을 뽑아내고 애니메이션의 OST가 메가 히트를 치면서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거죠. 이러한 IP 확장 전략을 구동시키는 엔진 역할을 하는 게 오시카츠인 거죠. 오시카츠는 단순한 팬 활동을 넘어 거대한 경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일본중앙은행에서도 주목할 정도인데요, 지역경제 보고서 이른바 '사쿠라 보고서'의 지난 1분기, 2분기 내용에 오시카츠가 등장합니다. 오사카, 나고야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오시카츠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경향이 보고되고 있죠. 도대체 어느 정도 규모이길래 중앙은행에서도 언급할 정도인지, 일본 마케팅 기업 CDG의 실태조사 데이터를 가지고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를 그려봤습니다. 2025년 조사에서 파악된 오시카츠의 규모는 1,384만 명으로 일본 인구의 11% 수준입니다. 1인당 연평균 25만 엔을 쓰고 있고, 연 단위로 보면 3.5조 엔을 지출하고 있어요. 단순히 콘텐츠와 굿즈 소비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팬아트나 코스프레로 2차 창작물 시장을 형성하기도 하고, 나아가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는 곳을 성지순례하며 지역 관광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서로 교류하면서 커뮤니티를 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이미 우리는 케데헌을 통해 이런 적극적인 팬덤의 소비자들을 경험하고 있고요. 일본에서는 오시카츠의 행동력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픽트리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특정 지역의 전봇대를 촬영해서 업로드하고, 포인트를 받게 되는데요, 이 포인트를 현물로도 교환할 수 있어요. 촬영된 사진은 도쿄전력의 전봇대 유지 보수나 관리하는 데 활용되고요. 올해 초, 픽트리가 일본의 지방도시 누마즈 시와 새로운 시즌을 진행했습니다. 누마즈 시는 러브라이브라는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소도시인데요, 이곳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김에 강력한 팬덤을 가진 러브라이브와 콜라보를 했습니다. 팬들은 전봇대 사진을 찍으며 한정판 러브라이브 굿즈를 얻고, 픽트리와 도쿄전력은 전봇대의 유지 보수에 활용할 자료를 얻고, 누마즈 시는 각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을 얻으면서 지역 활성화까지 이뤄낸 겁니다. 접근성과 투자, 그리고 팬덤.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 3박자가 맞물리면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습니다. 한때 '오타쿠 문화'로 치부되던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제 메인스트림 콘텐츠로 완전히 자리매김했죠. 특히 주목할만한 건 하나의 핵심 IP를 중심으로 만화, 애니메이션, 음악, 영화, 굿즈, 그리고 관광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우리도 더 단단하고 지속가능한 콘텐츠 산업을 위해 일본의 이런 전략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 일본 애니메이션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국적별 점유율 | 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 Anime Industry Data | The Association of Japanese Animations - Anime for Every Fan: Fueling a New Era of Global Storytelling | Netflix - Top 10 shows in south Korea | Netflix Tudum - 2025年5月期 有価証券報告書 | IG Port,Inc. - With Anime Market Projected to Triple, Netflix and Crunchyroll Poised to Dominate It Together | Variety, Bernstein Report - 地域経済報告-さくらレポート-(2025年1月) | 日本銀行 - 推し活人口は1384万人、市場規模は3兆5千億円に! 第2回 推し活実態アンケート調査結果を公式noteで公開。 | CDG 推し活総研 - PicTrée Numazu Season: Introducing Collaboration Features with Love Live! Sunshine!! | PicTrée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대학교 중간고사 시즌이 다가왔습니다. 이 과목, 저 과목 가리지 않고 밀려드는 과제도 처리해야 하고 시험공부도 해야 하느라 정신없는 분들 많을 것 같은데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옆에 있는 AI가 큰 힘이 됩니다. AI에 질문만 넣으면 순식간에 결과물이 뚝딱 나오니까요. 혹시나 AI 모니터링에 걸릴 수 있으니 '인간스럽게 써달라'는 문구도 잊지 않고 넣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오늘 오그랲에서는 AI가 우리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5가지 그래프를 가지고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AI가 제 교육을 무너뜨리고 있어요." 1818년 미국에서 태어난 한 노예가 있습니다.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이름은 프레드릭 더글라스죠.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노예로 태어났지만 자유를 위해 농장에서 탈출했고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강연자로 활동합니다. 노예제를 폐지해야 하고, 여성들에게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위대한 미국인 100인 중 1명으로 꼽힐 정도로 미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프레드릭 더글라스 오늘 이야기는 노예 해방을 위해 노력한 프레드릭의 자서전을 읽고 토론하는 미국의 한 고등학교 수업에서 시작됩니다. 한 친구가 자서전의 내용을 복사해 챗GPT에 붙여 넣습니다. 자서전 내용을 받은 챗GPT는 이런저런 결과물을 주석으로 달아주죠. 이 친구는 챗GPT가 뱉어낸 내용을 가지고 토론에 참여를 합니다. 위인의 삶을 읽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보고, 또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토론이 되어야 할 수업이 복붙과 AI 생성물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어버린 겁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 잡지 디 애틀랜틱에 실린 한 고등학생의 고백입니다. 뉴욕 퀸즈의 뉴타운 고등학교 졸업반에 다니는 애샨티가 직접 경험한 교육 현장이죠. 우리나라라고 크게 다를까요? 학교에서 2,000자 에세이를 써내는 과제가 나와도 AI에게 맡기면 손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AI를 활용한 학습이 너무나 일상화된 나머지 지난 6월 UCLA 졸업식에서는 한 학생이 챗GPT와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어요. 열심히 공부한 결실을 축하하는 졸업식 행사에서 AI 사용을 당당하게 공개한 겁니다. 이미 교육 현장에서 AI는 더 이상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AI를 써본 경험이 없는 학생의 비율은 2024년 34%에서 2025년 8%로 감소했습니다. AI를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해 본 학생이 전체의 92%나 된다는 겁니다. 학생들이 AI를 사용하는 영역은 교육 전반에 걸쳐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개념 설명과 이해 영역이 63%로 가장 많았어요. 논문 자료 요약, 내 생각 정리, 연구 아이디어 얻기 비율도 50%를 넘길 정도로 일상화되었고요. 영국 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에브리타임을 통해 대학생 1천 명을 대상으로 비슷한 설문을 진행했는데 10명 중 7명이 AI를 이용하고 있었어요. 사용 분야로는 정보 검색이 66.7%로 가장 높았고, 글쓰기나 리포트 작성이 뒤를 이었습니다. AI 막으려는 학교 vs AI 쓰려는 학생들 처음 챗GPT가 세상에 공개됐을 때엔 일부 대학교에선 아예 원천적으로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님의 재량에 따라 사용 여부가 결정되고 있죠. 교수님들 입장에선 학생들이 AI만 활용하면 제대로 된 교육이 안되기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과제를 풀면서 스스로 고민도 해보고 그 과정에서 학생이 성장해야 할 텐데, AI는 그것을 원천 차단해 버립니다. 하지만 학생 입장에선 AI 챗봇에게 부탁하면 A급 에세이가 뚝딱 나오는 데 안 쓸 이유가 없고요. 일부 선생님들은 이런 모습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고 우려합니다. 그래서 AI를 활용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교수님들도 있습니다. 혹은 AI를 활용할 경우 페널티를 주는 경우도 있죠. 물론 그러려면 AI가 만든 결과물을 걸러내야 하는데, 이게 또 쉽지 않아요. 영국의 한 명문 대학교의 심리학과 학부 시험에 AI 답안지를 껴 넣어 테스트를 해봤습니다. 학생이 직접 쓴 답안 1,134건에 AI가 생성한 답안 63건을 섞어 넣었습니다. 채점자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실험을 진행했고요.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요? 실험 결과 AI 제출물을 정확히 탐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어요. AI가 써낸 답변 63건 가운데 4건만 탐지됐을 정도죠. 채점하는 사람이 '아 이건 AI가 만든 거다'라고 직접 표기한 경우는 단 2건에 불과했어요. 일부 선생님들 가운데에는 아예 교육 현장에서 AI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해내는 과정인데, 생성형 AI는 그 주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거죠. 교육의 본질에 위협을 가하는 생성형 AI를 교육 현장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서명에 현재까지 900명이 넘는 선생님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우려가 납득이 되는 건 실제 학생들이 AI와 대화한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주체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게 보이기 때문이에요. 앤트로픽에서 학생들의 AI 사용 패턴을 연구해 봤어요. 익명화된 학생 대화 100만 건 중에 학업과 관련된 57만 여개의 대화를 분석해 본 겁니다. 학생들의 대화 가운데 47%가 AI에게 개념적인 질문으로 정보를 찾는 대화였어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려줘.", "표절 감지를 피하기 위해 글을 다시 써줘"처럼 스스로 생각하기보단 AI에 외주화 하거나 부정행위를 걸리지 않기 위한 질문들이 가장 많았던 거죠. 인간의 사고 과정을 크게 6단계로 구분하면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기억하고, 이해하고, 적용하고, 분석하고, 문제를 평가하고, 새로운 걸 창조하고. 미국의 인지교육학자 벤자민 블룸이 만든 분류법인데, 대부분의 국가에선 이 6단계에 맞춰 교육 제도를 설계합니다. 앤트로픽의 질문들을 블룸의 구분법에 따라 나눠보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고차원 인지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 평가, 분석과 관련된 작업의 AI 처리 비율이 높은 상황입니다. 창조 영역이 전체 질문의 39.8%, 분석이 30.2%를 차지하고 있어서 전체 질문 10개 중 7개는 고차원 인지 능력을 부탁하는 질문에 해당했어요.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이렇게 학생들이 고차원 인지 능력을 AI에 맡긴다면 사고 발달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렵다고 경고하고 있는 거죠. 학생은 잠재적 평생 고객... 놓칠 수 없는 AI 기업들 물론 AI 기업들이 이런 우려 지점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노력 중 하나가 바로 '튜터 기능'입니다. 단순히 정답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마치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처럼 질문에 질문을 이어나가는 거죠. AI를 이용하는 학생의 사고 과정에 도움만 주고, 문제는 스스로 풀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앤트로픽에서는 클로드 포 에듀케이션을 공개했고요, 오픈AI의 챗GPT에는 공부 모드가 있습니다. 이런 학습 전용 모드에서는 중간중간 퀴즈나 플래시 카드를 이용해 학생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는 기능도 활용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AI가 사용자 맞춤으로 튜터링을 해준다면 교육생들은 더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될까요? 연구진들이 하버드 대학교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듣는 물리학 수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해 봤습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번갈아가며 AI 튜터링을 진행해 봤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AI 튜터링을 진행한 학생들의 시험 결과가 스스로 공부한 학생들보다 더 높게 나온 겁니다. 사전 점수 2.75점과 비교했을 때 일반적인 방법으로 공부한 집단은 3.5점, AI 튜터 그룹은 4.5점으로 나왔어요.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연구팀이 진행한 실험인데요, 이번엔 그룹을 3개로 나눠서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교과서와 필기로 공부했고, 두 번째 그룹은 챗GPT가 그냥 정답을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룹은 챗GPT와 튜터링을 진행했어요. 과제 수행 능력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공부를 한 그룹보다 GPT를 이용한 두 그룹 모두 점수가 높았습니다. 특히 튜터링의 경우 127% 향상할 정도로 크게 늘어났죠. 하지만 시험 성적을 살펴보면 어떨까요? GPT가 정답을 떠먹여 주는 그룹은 오히려 성적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GPT 튜터링 그룹도 점수가 낮게 나왔지만 이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어요. 즉 그냥 AI에게 정답을 받아서 쓰면 장기적으로 학습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AI 기업들은 튜터링 기능을 내세워 교육 효과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 시장에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죠. 지난 7월 8일에 오픈AI, MS, 앤트로픽 AI 3사는 미국의 최대 교사 노조 중 한 곳과 파트너십 체결했습니다. 파트너십 규모는 2,300만 달러로 우리나라 돈으로 320억 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을 자랑합니다. 이 파트너십의 결과로 미국엔 국립 AI 교육 아카데미가 출범했어요. 그리고 올 가을부터 아카데미에서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AI 활용 방법 교육 예정이죠. AI 기업들은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에게도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습니다. 구글은 대학생이라면 1년간 제미나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고요, 오픈AI는 2개월 무료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록도 학교 계정으로 가입하면 슈퍼그록을 2개월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선생님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또 앞으로 평생 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무료로 제공하면서 다양한 판촉행사를 하는 겁니다. AI 기업들이 교육 시장에 진출하는 건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교육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변화일 수 있습니다. 한편에선 교육 격차 해소의 기회로 해석하지만 동시에 AI 의존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게 현실인 만큼 대비가 필요하죠. AI 기술 발전으로 교육 현장은 대전환기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틀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 현장에서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AI 사용을 막으려는 교수님들과 적극 활용하려는 학생들 사이의 줄다리기. 또 직접 쓴 글조차 AI가 작성했다고 오해받는 억울한 상황들. 이런 갈등 속에서 AI 기업들은 이미 교사와 학생 양쪽 모두에게 깊숙이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AI를 교육에 도입하는 것 자체는 이제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떻게 AI를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 겁니다. 최근 출범한 국가AI전략위원회에 AI가 교육에 미칠 영향을 고민할 사회 분과 영역이 포함되어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위원회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AI와 교육에 대한 제대로 된 해답을 찾길 바라며 오그랲 교육 편은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프랑스에서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했다는 소식, 아마 들으셨을 겁니다. 프랑스가 워낙 시위를 많이 하는 나라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겠는데 일단 모인 시민들의 규모도 규모고, 시위와 함께 들리는 프랑스의 빚 얘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또 들려오는 다른 소식을 살펴보면 프랑스 정부가 몇 개월 만에 붕괴했다느니, 새로운 총리가 들어섰는데, 바로 또 실각했다느니… 이렇게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지는 듯하죠. 게다가 10월 초에 다시 또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오그랲에서는 도대체 프랑스 상황이 어떻길래 이런 소식들이 전해져 오는 건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모든 것을 봉쇄하라" 울분 토한 프랑스 사람들 2025년 중반부터 프랑스 사람들의 SNS에는 이런 글이 돌기 시작합니다. '블로꽁 뚜' 영어로 하면 'Block Everything'으로 '모든 것을 봉쇄하라'라는 뜻을 가진 문장입니다. 노동조합이나 특정 정치 단체에서 주도한 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SNS에서 시작한 일종의 풀뿌리 운동이었죠. '블로꽁 뚜'를 달던 사람들은 9월 10일에 모이자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조금 더 운동을 구체화시켰고 이 흐름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어요. 9월 10일에 프랑스 시민들이 모여 말 그대로 프랑스의 모든 것을 봉쇄하자는 거였죠. 이날 경찰 추산으로는 프랑스 전국에서 800건이 넘는 시위와 봉쇄가 발생했고, 참여한 인원은 약 20만 명 규모였습니다. 이들을 이렇게 분노케 한 이유, 바로 내년도 예산안 때문이었어요. 지난 7월 프랑스의 바이루 총리가 2026년 예산안을 발표합니다. 이 예산안에는 프랑스 재정적자를 낮추기 위해 공공지출 규모를 줄이고, 연금과 복지 혜택은 동결하는 안이 담겼어요. 또 세입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공휴일 이틀을 줄이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었죠. 이를테면 이제는 더 이상 의미가 희미해진 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나 부활절은 폐지해도 될 것 같다는 거죠. 시민들의 불만은 9월 10일 하루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18일엔 프랑스의 주요 노조 8개가 모여 총파업을 진행했죠. 대중교통 공기업도, 선생님들도, 또 약사들도 모두 모여 파업에 참여한 겁니다. 노조 측에 따르면 이 날 하루에만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고, 이들은 한 목소리로 예산안을 반대했습니다. 총파업 시위를 주도한 노조와 좌파 정당의 입장은 명확했습니다. "재정 긴축으로 피해를 보는 건 가진 것 없는 사람이다", "부자 감세 해서 재정 망쳐놓고, 그 부담은 왜 가난한 사람들이 봐야 하냐!" 이런 거였죠.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감세 정책을 펼치면서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기대했습니다. 이를테면 부유세를 개편하고 법인세를 인하하면서 말이죠. 과거 프랑스에선 주식이나 채권, 예금 같은 금융 자산까지 포함해서 부유세를 매겨왔었습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부동산 보유에 대해서만 세금을 매기고 금융 자산은 과세 대상에서 빼는 개편을 진행했죠. 또한 법인세도 야금야금 줄이면서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줬어요.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5월부터 임기가 시작됐는데, 2017년 33.3%였던 법인세가 2018년 33.0%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2022년까지 매년 감소해, 현재까지 25%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최고 감사기관인 회계법원에서 발표하는 공공재정 보고서가 있는데 올해 보고서를 보면 마크롱 대통령의 감세 정책으로 600억 유로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었어요. 법인세도 내려주고, 금융 자산도 세금에서 제외해 주고 이렇게 부자감세 해놓고 허리띠는 일반 시민들이 졸라 매야 한다고 하니 시민들 입장에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거죠. 총파업을 이끈 노동조합은 프랑스 정부를 향해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노동조합의 입장은 바이루 총리의 2026년 예산안 포기하라는 겁니다. 9월 24일까지 노동조합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노조는 다시 또 총파업을 할 것이라 예고했어요. 그리고 이 협상은 최종 결렬되면서 프랑스는 10월 2일 다시 또 총파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격동의 프랑스... 3개월, 9개월 만에 연달아 내각 붕괴 일단 수많은 프랑스 시민들의 공분을 낳았던 내년도 예산안을 제안한 바이루 총리는 사퇴했습니다. 바이루 총리는 이 예산안을 두고 프랑스 의회에 신임 여부를 표결에 맡기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여기서 부결되어 버렸거든요. 이 표결이 부결되면 총리는 헌법에 따라 사임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외교와 안보를 담당하고 총리가 내정을 책임지는 이원집정부제입니다.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할 수 있지만 의회는 헌법에 따라 총리와 내각에 책임을 물을 수 있죠.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방법과 의회가 제시하는 방법 이렇게 말이죠. 일단 정부가 나서서 의회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를 믿고 맡길 수 있는지, 한 번 표결해 보자"라고요.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한 판단을 해보고 만약 부결되면 책임지고 총리와 내각이 사퇴하겠다는 거죠. 두 번째는 의회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특정 법안에 대해 책임을 묻는 표결을 하는 겁니다. 국회의원들이 지금 내각을 믿을 수 없다는 안을 제출하고 50% 이상의 국회의원이 찬성하게 될 경우 총리는 대통령에게 사퇴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의회는 정부가 주도하는 법안에 대해서도 불신임안을 낼 수 있어요. 2024년 7월부터 시작된 17대 프랑스 의회는 지금까지 벌써 10번의 내각 불신임안이 발의돼 표결이 이뤄졌습니다. 바이루 총리 이전 총리였던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지난해 10월에 2025년 예산안을 발표했어요. 내년도 예산안과 마찬가지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지출을 줄이겠다는 내용이 담겼죠. 이 예산안을 두고 의회는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불신임안이 331표로 가결되면서 임기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실각하게 됩니다. 이 기록은 프랑스 최단기 기록이자, 1962년 이래로 무려 62년 만의 불신임안 가결이었습니다. 이후 지명된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 전임 총리가 발표한 예산안과 연금 개혁 관련해서 의회와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고, 그때마다 불신임안이 나옵니다. 과반수를 넘지 못해 실각은 이뤄지지 않았고 정부 입장에선 다행히 정책을 이어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2026년 예산안에 지난해보다 더 강력한 긴축안이 담기자 의회는 다시 또 반발했어요. 바이루 총리는 불신임안을 받기 전, 선제적으로 신임안 표결을 받겠다고 선언했고 지난 9월 8일에 치러진 이 표결에서 364명의 국회의원이 지금 내각을 믿을 수 없다고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1958년 프랑스 5공화국이 출범한 이래 내각에서 선 제시한 신임안이 42번 있었는데 부결된 건 이번이 역사상 처음입니다. 결국 바이루 내각도 9개월 만에 실각되었어요. 그리고 9월 9일 새로운 총리로 지명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는 시민들의 반발이 컸던 공휴일을 축소하겠다는 말을 바로 주워 담았습니다. 부자감세에 대한 반발이 컸던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고위층에게 제공하던 특혜 예산을 먼저 삭감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어요. 르코르뉘는 전직 총리와 장관에게 제공되는 특혜를 없애거나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동안 전직 총리에게는 기한 제한 없이 차, 운전기사가 제공되어 왔는데 내년부터는 퇴직 후 10년으로 제한됩니다. 제2의 그리스 될까? 재정 '정상화' 필요한 프랑스 임명되는 총리들마다 불신임을 각오하면서까지 긴축 예산안을 내는 이유는 프랑스 재정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선 IMF 구제금융 가능성까지 언급될 정도로 프랑스는 매우 심각한 재정 상황을 안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국가 부채는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어요. 이미 3조 4천 억 유로를 넘겼고, 3초마다 1만 유로,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1,600만 원 넘게 쌓여나가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2024년까지 분기별로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을 나타내봤습니다. 2025년 1분기 기준으로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114.1%(잠정 추정치)입니다. 프랑스 정부가 진 빚이 프랑스가 벌어들인 소득의 1.14배라는 뜻이죠. 이번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프랑스의 부채 비율은 그리스, 이탈리아에 이어 3위입니다. 프랑스는 과거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은 그리스, 이탈리아와 같은 그룹에 위치해 있어요. 문제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는 점점 재정 상태가 개선되고 있는 반면에 프랑스는 그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는 거죠. 프랑스 재정의 특징 중 하나는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더 지출 비율이 높다는 겁니다. 2023년 기준으로 프랑스는 다른 유로존 국가들 중에 가장 GDP 대비 정부 지출 비율이 높습니다. 무려 57.0%로 독일과 비교하면 거의 10%p 가까이 차이가 나죠. 참고로 우리나라가 2022년 기준으로 GDP 대비 36.2%를 지출하고 있으니 프랑스가 얼마나 '큰 정부'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 지출을 하길래 이렇게 차이가 나느냐 하면, 바로 복지입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 사회보장 영역 지출이 높은 게 사실이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는 아주 높죠. 사회보장 지출만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핀란드가 25.7%로 1위고, 프랑스가 23.4%로 2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의료 영역에서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죠. 윗 세대는 나 몰라라? 돈은 '니콜라'가 낼 거야 복지 영역 가운데서도 현재 프랑스 재정에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건 바로 연금입니다. 과거 1982년 미테랑 대통령이 추진한 사회 개혁으로 연금 수령 연령이 65세에서 60세로 축소되면서 은퇴자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크게 늘어났고, 이게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엄청난 재정 부담이 된 거죠. 2010년에 연금 수령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했고 지난 2023년에 마크롱 대통령이 다시 또 2년 더 연장하려 했다가 엄청난 역풍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격분한 시민들이 보르도 시청사 정문을 불태우는 등 폭력 시위로 번지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연금 문제는 꼭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앞으로 고령화가 이어지면 받을 사람은 늘어나고, 연금 재정에 기여할 사람은 줄어드니까요. 1960년엔 연금을 받는 사람 1명 대비 연금 기여자가 4명이었지만, 2022년엔 1.7명으로 급감했습니다. 2040년엔 1.5명이 될 예정이고요. 심지어 프랑스 은퇴자들이 받는 연금액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많아서 재정 악화는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65세 이상의 은퇴자의 평균 소득과 일하는 근로자의 평균 소득을 비교한 그래프입니다. 주요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프랑스는 100%를 넘어섭니다. 즉 은퇴자가 받는 연금이 근로연령대의 평균 소득보다 더 많다는 얘기인 거죠. 그러다 보니 프랑스 정부에서는 미래 세대들을 위해 윗 세대들이 희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일하는 세대들에게 책임과 부담이 가중되면서 이들을 향한 자조적인 밈도 유행했습니다. 30대 고소득 근로자를 뜻하는 이른바 '니콜라'가 주인공입니다. 니콜라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월급에서 정부는 세금을 거두고, 이 세금은 베이비 붐 세대들 연금으로 보내고, 아프리카 원조 비용으로 보내고, 또 이민자에게 보내고 있어요. 나라에 돈이 없다고요? 걱정 마세요 니콜라가 낼 거니까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자조적인 밈이 유행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지만 풀어야 할 실타래가 너무 많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복지에 대한 프랑스 시민들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죠. 이런 어려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정치권이 나서서 대화와 토론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데 그것도 또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 프랑스 17대 의회는 진보, 보수, 중도 어느 정치 세력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들이 대화와 타협을 해내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지금은 각자가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고 있죠. 이번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던 좌파 정당과 노조의 입장은 부자 감세가 재정을 망쳤다는 거고요, 마크롱을 비롯한 중도 진영은 과도한 복지 지출과 고령화를 근본 원인으로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합니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은 이민자를 위한 지출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죠. 이렇게 정치권은 꽉 막혀있고 그 사이 시민들의 불만은 쌓여만 가고, 프랑스 재정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100만 명이 거리로 나선 분노의 배경에는 깊어지는 재정 위기가 있습니다. 프랑스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연달아 무너진 내각은 이 선택이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죠. 프랑스의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마음 한 편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나라 역시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있고 고령화나 출산율은 프랑스보다 심각합니다. 게다가 프랑스와 달리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도 안고 있죠. 과연 프랑스는 급속한 고령화와 복지 확대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요? 재정 건전성과 복지 정책, 그 사이에서 프랑스, 그리고 우리는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France Corporate Tax Rate | Trading Economics - La situation et les perspectives des finances publiques | Cour des comptes - Engagements de responsabilité du Gouvernement et motions de censure depuis | Assemblée nationale - Analyse du scrutin n°3054 | Assemblée nationale - Effectif des groupes politiques | Assemblée nationale - Public Debt | Debt Clock France - At the end of Q1 2025, the Maastricht debt accounted for €3,345.4 billion | INSEE - General government gross debt - annual data | eurostat - Total general government expenditure | eurostat - Expenditure on social protection as percentage of GDP | eurostat - General government expenditure by function (COFOG) | eurostat - France and Britain are in thrall to pensioners | FT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혹시 여러분은 이 우주에 별이 얼마나 되는지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연구팀이 추정한 값에 따르면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에 있는 별의 개수가 300해 개라고 합니다. 300해라는 숫자는 3 뒤에 0이 22개 붙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숫자죠. 별 하나당 지구 같은 행성이 한두 개 더 있다고 생각하면 우주에 있는 행성의 개수는 훨씬 더 많겠죠.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규모로 많은 행성들을 떠올려보면 이 넓은 우주에 과연 생명체가 이 지구에만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이런 생각에 불을 지핀 최근 NASA의 발표가 있었죠. 오늘 오그랲에서는 NASA가 발표한 화성의 생명체 흔적이 도대체 무엇인지, 또 왜 지금 이 시점에 공개를 했는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NASA의 긴급 발표 "화성에서 잠재적 생명체 흔적 발견" NASA의 발표를 살펴보기 전에 화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눠보려고 합니다. 태양계의 행성 가운데 4번째에 위치한 화성은 과거부터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지구를 제외한 태양계 내 모든 행성 중 표면 탐사가 가장 많이 이뤄진 행성이기도 하죠. 최근 들어 화성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건 아무래도 일론 머스크 덕일 겁니다. 머스크는 인류가 한 단계 진일보하기 위해선 화성을 탐사하고, 나아가 화성으로 이주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스페이스X에선 화성에 건설할 도시의 후보지도 물색하고 있죠. 화성에 우리 인류의 손길이 닿기 시작한 건 1960년대 초반부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로 시곗바늘을 돌려보면 화성이 가장 핫했던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시기엔 많은 사람들이 금성에 주목했죠. 일단 금성 궤도가 지구와 가장 가깝기도 하고요, 크기나 질량이나 중력이 지구와 유사했다는 점도 끌렸던 이유였죠. 그래서 우주 탐사 초기엔 금성 탐사가 중점적으로 이뤄졌습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금성 탐사에 열중이었던 건 소련이었습니다. 하지만 실패의 비율이 많이 높죠. 소련이 금성에 집중했다면 미국은 화성에 집중했는데요, 역시나 초반엔 실패가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전부 성공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태양에 가까운 수성이나 목성, 토성 같은 외행성에도 탐사선을 보내왔지만 최근까지도 탐사가 이뤄지는 곳은 역시나 화성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9개의 탐사선이 화성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있고요. 화성 표면에서는 큐리오시티와 퍼서비어런스라는 이름의 탐사선 2개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요, 화성 궤도에는 7개의 탐사선이 화성 주위를 돌면서 데이터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번 NASA의 발표는 퍼서비어런스가 발견한 자료였던 거죠. 엄밀히 따지면 발표는 2025년이었지만 시료를 채취한 건 지금으로부터 1년 전입니다. 충분한 연구 시간을 갖고 검증을 마친 뒤 발표한 거죠. 이번 발표의 핵심은 바로 이 사진에 있는 반점 무늬입니다. 연구진들은 이러한 패턴이 미생물 생명체의 잠재적 지문이 될 수 있다고 밝혔어요. 물론 이런 무늬가 생물학적 반응으로만 생성되는 건 아닙니다. 고온의 상황이라던가, 혹은 산성 조건 하에서도 생성될 수 있죠. 하지만 연구진들은 이 암석을 살펴봤을 때 고온이나 산성 환경을 경험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어요. 그만큼 생명체 존재의 증거로서의 힘은 더 커지겠죠? 그래서 그런지 NASA의 리더는 이번 발표에서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화성에서 발견한 생명체의 가장 뚜렷한 증거일 수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죠." 이번 탐사에서 '생명체 흔적'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 인류가 60여 년 간 화성의 궤도와 표면을 탐사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바로 화성의 지리적 특성이 정말로 다양하다는 거였죠. 일단 화성에는 태양계에서 가장 거대한 올림푸스 화산도 있고요, 미국 본토 길이보다도 긴 거대하고 깊은 마리너 계곡도 있죠. 넓은 평원과 높은 고원 등 다채로운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화성에 탐사선을 보낼 때마다 다양한 위치에 착륙시키며 서로 다른 유형의 지형에서 분석을 이어왔어요. 프로젝트 한 번에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신중한 선택을 해왔던 거죠. 특히 2000년대 초반 활약한 탐사선들이 화성에 과거 물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발견하면서 이후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쌍둥이 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물이 흘렀던 흔적을 발견했고, 고정형 탐사선 피닉스는 마침내 화성의 물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었죠. 이러한 선배 탐사선들의 성과를 바탕으로 미션을 시작한 신참 퍼서비어런스는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할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착륙해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요. 바로 이곳 예제로 크레이터라는 곳인데, 이 지형의 북서쪽 지역을 보면 삼각주 모습이 보입니다. 과학자들은 3~40억 년 전엔 이곳에 강물이 흘러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지만 이곳이라면 생명체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죠. 실제로 퍼서비어런스는 예제로 크레이터에 착륙했고 그 결과가 이번에 나온 거고요. 예제로 크레이터에 착륙한 퍼서비어런스(9월 19일 기준)는 화성일(Sol) 기준으로 1,622일, 37.15km를 이동하고 있습니다. 지역을 오고 가면서 화성 표면의 시료들을 이렇게 수집하고 있죠. 현재까지 모두 30개의 시료를 모았고 이번에 생명체 흔적이 담겨있던 샘플은 바로 이곳에서 채취한 25번째 샘플입니다. 퍼서비어런스가 이렇게 샘플을 모으는 이유는 단순히 이 녀석의 미션이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생명체의 증거가 맞는지 제대로 확인하려면 이걸 다시 지구로 가지고 와야 합니다. 그래서 퍼서비어런스의 임무에는 이 샘플을 지구로 다시 가져오는 것까지 포함해서 설계되었죠. 이름하여 Mars Sample Return MSR 프로젝트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2027년과 2028년에 진행되어야 하지만 해당 일정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가장 이른 현실적인 스케줄이 2030년 초인데 문제는 예산이 너무 크다는 데 있습니다. NASA의 현재 MSR 예산은 56억 달러 수준입니다. 하지만 현재 계획대로 흘러가더라도 비용은 72억에서 91억 달러 수준이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2030년 일정이나 대체 시나리오로 계산하면 그 비용은 최대 109억 달러까지 늘어난다는 문제가 있어요. NASA의 긴급 발표... 그 이면의 예산 전쟁 이번 퍼서비어런스의 발견은 매우 대단한 성과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성격의 발견이라고 하긴 어려워요. 사실 퍼서비어런스 미션에 샘플 확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위해 다짜고짜 화성 암석 샘플을 가져올 필요가 없거든요. 근거가 있어야 샘플을 가져올 이유가 있는 거죠. '샘플' 확보라는 것 자체가 이미 과거 화성 탐사에서 생명체 관련된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과거에 있었던 NASA의 발표나 관련 기사를 본 게 있었을 겁니다. 가령 화성 토양에서 유기 화합물이 발견된다는 소식들 말이죠. 이 소식들은 2012년부터 화성을 탐사 중인 큐리오시티가 대부분 전해왔던 이야기입니다. 큐리오시티는 그 무게가 1톤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탐사선인데요, 아예 실험실을 탑재해서 화성에 갔습니다. 이 친구의 기여로 지난 2013년 NASA는 화성이 과거에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어요. 지난 2018년엔 화성의 30억 년 된 퇴적암에서 유기 화합물 분자를 발견하기도 했죠. 암석에서 유기 화합물이 감지되었다는 건 생명체의 구성 요소 중 일부가 화성에 존재했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올해에도 화성에서 유기 화합물을 발견할 정도로 생물학적 가능성을 가진 흔적을 계속 발견해 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발견이 흥분되는 발견이긴 하지만 아주 특별한 것이라고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NASA는 지금 이렇게 요란스럽게 발표를 할 걸까요? 이미 살펴봤던 NASA의 예산 상황과 발표 시점을 보면 답이 있을지 모릅니다. NASA의 긴급 발표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미국의 2026년 예산 심의 시즌과 겹쳐 있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임기 초기 정부효율부를 내세워 여기저기 칼춤을 추면서 요란스러웠던 것 기억나시죠? NASA도 예산 삭감과 정부 효율화 칼날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백악관이 제출한 2026년 예산안을 보면 그 삭감규모가 상당합니다. 금액을 비교해 보면 전년 대비 25.9%가 감소한 수준입니다. 과학 예산을 살펴보면 거의 절반 가까이 삭감될 계획이죠. 이런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올려, 예산 확보의 필요성을 높이는 방법, '화성 생명체 흔적 발견' 발표가 제격일 수 있습니다. NASA는 이와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찬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NASA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발견이 트럼프 1기 행정부에 발사된 퍼서비어런스 실적이라는 걸 굳이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백악관이 제출한 2026년 예산안에는 화성 샘플을 복귀 프로젝트 항목은 빠져있습니다. NASA에선 기존 회수 방법 대신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모색하고 있죠. 기초 과학 투자가 리더 한 명의 판단으로 한 순간에 뒤바뀌는 건 지금같이 기술 패권이 중요한 시기에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미 우리나라도 경험한 바 있죠. 그래서 NASA 내부적으로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예산 삭감과 대규모 감원 압박에 반발한 직원들은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과학 연구 예산은 정치적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거죠.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 연구 예산 삭감에 반발하는 과학자들은 '보이저 선언'이란 걸 발표했습니다. 현재(9월 19일 기준)까지 보이저 선언에 참여한 과학자는 모두 363명입니다. 그중 183명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고 나머지 180명은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 선언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의회에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NASA에 대해서는 당을 초월해서 전반적인 지지세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NASA 예산을 심의하는 위원회에서는 트럼프의 NASA 예산 삭감안을 거부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실제 미 하원 예산 심의 의원들은 NASA 예산 삭감 제안을 거부하고 2025년 예산과 거의 동일하게 유지하는 안을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예산안에는 화성 샘플 회수 프로그램 예산도 포함되어 있었고요. 오늘 살펴본 NASA의 화성 생명체 흔적 발견은 분명 인류 역사에 남을 중요한 발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목격한 것은 과학적 발견조차 정치적 압박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입니다. 예산 삭감의 칼날 앞에서 NASA는 '화성 생명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고, 과학자들은 보이저 선언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화성의 흙 속에 숨겨진 생명의 비밀,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정 과정에서 기초 과학은 발전하고 나아가 우리 세상을 뒤바꿀 변화를 촉진할 수도 있죠. 부디 NASA의 도전이 예산이라는 현실적 장벽에 막히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라며,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Mars 2020: Perseverance Rover | NASA - Mars 2020 Perseverance location-map | NASA - MSR Independent Review Board-2 Final Report | NASA - NASA Rover Finds Conditions Once Suited for Ancient Life on Mars | NASA JPL - NASA Finds Ancient Organic Material, Mysterious Methane on Mars | NASA - Your Guide to NASA’s Budget | The Planetary Society - NASA Says Mars Rover Discovered Potential Biosignature Last Year | NASA - The NASA Voyager Declaration | Stand Up For Science - House Appropriators approve FY2026 Budget for NASA | SpacePolicyOnline.com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곧 있으면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할 거라는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스타링크가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일종의 '메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죠. 오늘 오그랲에서는 도대체 스타링크가 뭐길래 이렇게 들썩이는 건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생각보다 이른 등장... 1990년대 처음 소개된 저궤도 위성통신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는 위성을 이용해 통신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여러 위성들 가운데에서도 스타링크가 사용하는 건 저궤도에 위치한 위성들이죠.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를 통해 다양한 인공위성 궤도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지구 표면으로부터 약 3만 6,000km 떨어져 있는 이 위성은 정지궤도 위성입니다. 이 녀석은 지구 자전 속도와 동일한 속도로 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엔 마치 정지해 있는 듯하죠. 아주 높은 궤도에서 돌고 있어서 3개의 위성만으로도 지구 전역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TV나 통신 서비스에 이용되고 있어요. 정지궤도 위성보다 낮지만 고도가 2,000km 이상인 곳에서 돌고 있는 녀석들은 중궤도 위성이라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GPS에 이용되는 항법 위성들이 이 궤도를 이용하고 있죠. 2,000km 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위성이 바로 저궤도 위성입니다. 스타링크의 위성은 지구 표면으로부터 불과 55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요. 고궤도 위성과 비교해서 훨씬 더 가깝게 지구를 돌고 있어서 지연 속도는 낮고, 더 빠른 전송이 가능합니다. 반면 저궤도 위성 하나가 송수신할 수 있는 범위는 고궤도 위성보다 훨씬 좁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위성이 필요하다는 한계점이 있죠. 그런데 사실 저궤도 위성을 이용한 통신 서비스 아이디어는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 그 시작을 살펴보려면 이 기업을 봐야 하는데요, 바로 모토로라입니다. 모토로라는 전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를 개발하고 상용화한 기업입니다. 모토로라는 1990년대 폭발적으로 증가한 휴대전화 시장과 데이터 수요를 풀기 위해 고민고민 하다가 위성을 활용하는 시스템을 고안합니다. 650km 고도에 77개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계획을 만든 거죠. 지구 주변을 도는 77개의 인공위성이 마치 원자핵 주위를 도는 77개의 전자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 프로젝트에 '이리듐'이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물론 실제 사업에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해 고도를 좀 더 올렸고, 위성 개수도 66개로 줄이긴 했습니다. 모토로라만 위성 통신 서비스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닙니다. 인터넷도 위성을 통해 사업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 빌 게이츠도 있었죠. 빌 게이츠는 일찍부터 인터넷의 성장 가능성을 점쳤습니다. 이 인터뷰를 하기 1년 전에 빌 게이츠는 저궤도 위성 인터넷 서비스, 텔레데식을 발표합니다. 총 840개의 위성을 저궤도에 올려서 우주 공간에서 초고속 인터넷망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죠. 사실상 현재 스타링크의 사업 목표와 방법까지 거의 동일합니다. 문제는 사업성이었어요. 지상의 이동통신사와 비교해서 위성을 이용한 통신 서비스는 사업성이 너무 떨어졌죠. 물론 모토로라와 빌 게이츠의 아이디어가 허무맹랑한 건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진 지상의 이동통신사의 커버리지 확대가 꽤나 지지부진했거든요. 그 틈을 위성 서비스로 노려보려 했던 건데 돈은 돈대로 들고, 여러 국가에 설치할 위성 기지국을 허가받는 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서 사업이 진행이 되질 않았던 거죠. 그 사이 지상의 이동통신서비스와 인터넷 서비스는 급성장했고요. 결국 빌 게이츠의 텔레데식은 2002년에 서비스를 중단했고, 50억 달러가 넘게 든 이리듐 프로젝트는 단돈 2,500만 달러라는 헐값에 팔리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모토로라가 몰락한 원인 중 하나가 이 이리듐 프로젝트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저궤도 위성통신 사업을 가능케한 머스크의 로켓 재활용 빌 게이츠는 저궤도 위성통신 사업에 실패했지만 일론 머스크는 성공한 이유는 뭘까요? 바로 스타링크의 모체인 스페이스X의 자랑, 로켓 재활용 때문입니다. 우주 산업에서 가장 큰 발목을 잡았던 건 비용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게 발사체, 로켓 비용이죠.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로켓의 비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기존엔 우주공간에 1kg의 화물을 보내는 데에 약 4만 달러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스페이스X가 개발한 재사용 발사체 이후엔 그 비용이 천 달러에서 2천 달러로 확 줄어들었죠. 이 팰컨9이 우주 로켓 역사상 처음으로 재사용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발사체입니다. 로켓을 재사용하면서 발사 비용이 현저히 떨어졌고 그러다 보니 관련 사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거죠. 현재 스페이스X의 주력 재사용 로켓 모델은 팰컨9 블록5입니다. 이 블록5 로켓의 재사용 데이터를 가지고 그려봤습니다. 2018년 5월 11일 첫 발사부터 2025년 8월 31일까지 역대 블록 5 로켓의 재사용 데이터를 가지고 그려봤습니다. 그래프에 표시된 라인 하나하나가 블록5 로켓을 의미합니다. 총 36개의 로켓이 모두 461회 발사되었습니다. 로켓 하나당 평균 12.8회 운행한 셈이죠. 총 6번의 착륙 실패와 1번의 발사 실패가 있었지만 꾸준히 재사용되며 우주를 오가고 있어요. 가장 오랫동안 재활용된 로켓은 B1067로 총 30번 재활용되었습니다. 참고로 지난 2022년에 발사된 대한민국의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도 이 블록5 로켓에 실려 우주로 나갔습니다. 스페이스X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양한 국가, 기관들을 상대로 우주 셔틀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싣고 우주로 쏘아 올린 건 역시나 스타링크 위성이죠. 블록5의 발사 가운데 스타링크 위성을 발사한 경우는 모두 299건입니다. 전체 발사의 64.9%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쏘아 올린 스타링크 위성이 9월 1일 기준으로 8,296개고요. 그중에 8,279개가 작동 중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목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 그 개수를 더 늘려서 총 4만 2천대의 스타링크 위성을 저궤도에 올릴 계획이죠. 훨씬 더 많은 양이 남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스타쉽을 활용해 대량으로 뿌릴 예정입니다. 최근 성공한 스타쉽 10차 시험 비행에서 위성 모형을 방출하는 데 성공한 만큼 그 계획이 실현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점점 더 많은 스타링크 위성이 우리 지구 상공을 뒤덮으면서 스타링크 서비스 질은 계속 좋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지역을 기준으로 봤을 때 지연 시간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고, 데이터 전송 속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행 임박한 스타링크... 이동통신사 판 뒤흔들까? 올해 하반기면 이 스타링크 서비스를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이용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사실 스타링크의 한국 법인이 설립된 건 지난 2023년으로 시간이 이미 꽤 됐습니다. 해외 사업자가 직접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순 없고 국내 사업자와 협정을 맺어야 하는데, 스타링크 코리아는 SK텔링크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이 협정이 지난 5월에 승인되었죠. 남은 건 안테나에 대한 적합성 평가였는데 이것도 통과되었습니다. 참고로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는 기존 이동통신 서비스와 달리 수신기가 있어야 해요. 마치 집 안에 와이파이용 기기를 설치하는 것처럼 말이죠. 여튼 행정 절차가 다 마무리된 셈이라 서비스 시작 시점은 사업자인 스타링크에 달려 있죠. 스타링크뿐 아니라 또 다른 글로벌 위성 통신업체인 원웹도 한국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원웹은 한화시스템, KT샛과 협력해 한국에 들어올 예정입니다. 참고로 원웹의 창립자인 그렉 와일러는 2007년부터 위성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구상했어요. 당시엔 돈이 부족해서 프로젝트가 실패했지만, 포기를 모르는 그렉은 2014년에 일론 머스크를 만나 다시금 사업을 재가동시켰죠. 그때 시작된 프로젝트가 바로 지구를 감쌀 단 하나의 웹, 원웹 프로젝트였죠. 물론 둘 사이에 갈등 때문에 지금은 갈라서서 각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요. 다시 스타링크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스타링크의 기술력과 별개로 여전히 의문인 지점이 있습니다. 로켓 재활용 같은 기술력 좋은 것 인정하고, 또 위성의 규모도 스타링크가 가장 많은 것 알겠는데 당장 우리에게 필요하냐는 거엔 물음표가 달립니다. 일반 이용자 입장에선 위성 서비스 없이도 문제없이 데이터를 쓰고 있는데 말이죠. 사실 대한민국은 지상의 통신 인프라가 아주 잘 갖춰져 있는 국가입니다. 우리나라 5G 연결 환경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죠. 인구 10만 명당 5G 기지국 수는 대한민국이 593.2로 압도적 1위를 자랑합니다. 2위인 리투아니아와 격차가 상당하죠. 인구 100명 당 5G 연결 지표 역시 한국은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선 매년 통신서비스 커버리지를 점검하고 있는데 지난 2023년 조사에서 이동통신 3사의 5G 평균 커버리지는 대한민국 국토 면적의 75.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그보다 더 넓어져서 주요 3사의 커버리지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전국 어디서나 5G가 이용 가능한 상황입니다. 지상의 인프라가 거의 전국에 걸쳐 있다 보니,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스타링크의 메리트가 크게 없는 게 현실입니다. 게다가 스타링크의 속도와 가격도 국내 기존 서비스 대비 경쟁력이 크지 않다는 것도 한계점이죠. 스타링크의 인터넷 속도는 기본 50Mbps이고 비싼 요금제로 하면 최대 500Mbps까지 올라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기가 인터넷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스타링크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말이죠. 그러다 보니 전문가들은 스타링크가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는 당장은 힘을 못 쓸 것으로 예측합니다. 그래서 스타링크도 서비스 초기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기보단 B2B나 B2G에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인터넷 커버리지에서 가장 빈틈이라고 할 수 있는 해상과 항공 시장을 노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저궤도 위성의 진가는 6G 시대에서 발휘된다? 지금 당장 스타링크가 한국에 들어오더라도 실제로 큰 방향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엔 다를 수 있어요. 미래에 다가올 6세대 통신, 이른바 6G 시대에선 위성을 활용한 3차원 통신망 구축이 필수거든요. 지상의 기지국뿐 아니라 위성을 기지국으로 활용하게 되면 해상이나 항공에서도 자유로운 통신이 가능해지죠.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도심 항공 모빌리티, 또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 교통수단에서는 끊김 없는 통신이 필수적입니다. 이때 현재의 지상 기지국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위성 통신이 필수적인 인프라가 되죠.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 하기엔 2029년이면 6G 환경이 상용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요. 그래서 주요 국가들은 기술 선점을 위해 앞다투어 저궤도 위성 통신 기술에 투자해 나가고 있죠. 일단 미국은 4만 2천 개의 위성을 목표로 하는 스타링크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고요, 중국은 국가가 나서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가 네트워크, 궈왕이라는 이름을 단 이 사업은 2035년까지 총 1만 3천 개의 위성을 배치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에 처음으로 궈왕의 첫 위성이 발사되었어요. 유럽도 마찬가집니다. 유럽은 민관이 합동으로 아이리스 스퀘어드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저궤도에 264개, 중궤도에 18개 위성을 쏘아 복합 위성 인터넷 망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많은 국가들이 이렇게 투자에 나서는 건 기술 선점의 목적도 있지만, 기술 무기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까요? 만약에 스타링크가 우리나라의 6G 시장을 장악하고 그것을 무기 삼아 미국이 불평등 협정을 요구한다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게 우크라이나에게 닥쳤던 실제 상황입니다.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측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죠. 러시아가 전쟁 발발 초기 우크라이나의 통신 시설을 공격했을 때, 스타링크가 신속하게 위성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이어올 수 있었어요. 지상 기지국이 무력화되더라도 스타링크의 위성을 활용해 우크라이나가 통신을 원활히 이용했던 거죠. 그런데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이 스타링크를 빌미로 협상을 진행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게 희토류 지분 50%를 미국에 줄 것을 요구하면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 이랬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 제안을 두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거부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스타링크 차단이었어요. 관련 내용이 전해지자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우크라이나의 스타링크 차단은 없을 것이라 단언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 민간 기업들의 기술을 정부가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죠. 이런 상황에서 기술 종속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게 다른 국가들의 입장인 겁니다. 중국도 그렇고 유럽도 그렇고요. 그래서 앞다투어서 자체적인 위성 통신망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요? 우리나라도 저궤도 위성을 발사하기 위한 국가연구개발사업이 올해 시작되었습니다. 2030년까지 총 3,2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인데 일단 이 사업에는 저궤도 위성 2기 발사가 목표로 잡혀있습니다. 다른 국가들의 규모에 비해서 현저히 적은 상황이죠. 스타링크가 한국에 상륙하더라도 당장은 큰 변화가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6G 시대가 열리면 이야기가 달라질 겁니다. 미국은 스타링크로, 중국은 궈왕으로, 유럽은 아이리스 스퀘어드로 각자의 위성 인터넷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저궤도 위성 사업을 시작했지만, 다른 경쟁 국가와 비교하면 너무 소극적이죠. 스타링크의 폭발적 성장은 단순한 새로운 서비스의 시작이 아니라, 미래 통신 패권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미래 통신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라면 바로 지금이 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 스타링크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The Teledesic Network | Technical University of Košice - Falcon-9 v1.2 (Block 5) | Gunter’s Space Page - Starlink Statistics | Jonathan’s Space Pages - Starling Speed and Latency | Starlink - Summary of Proposed Terms for investment in WorldVu | Greg Wyler X - OECD Digital Economy Outlook 2024 | OECD - 2023년 통신서비스 커버리지 점검 및 품질 평과 결과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 Trump wants half of Ukraine's rare earth minerals — so what are they and why does he want them? | ABC - Trump officials pitch Zelenskyy on U.S. owning 50% of Ukraine's rare earth minerals | NBC -Elon Musk | X -KAI, 6G 저궤도 통신위성 개발 협약 체결 | 한국항공우주산업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다루고 만지는 안혜민 기잡니다. 혹시 챗GPT를 사용하는 이용자 수가 얼마나 될 것 같나요?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주간 이용자가 무려 7억 명을 넘겼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질문양은 30억 건을 넘겼고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챗GPT를 비롯한 AI 챗봇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궁금증이 생기면 챗봇에게 물어보고, 또 어느 때엔 내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때로는 AI에 과몰입한 사람들도 나오곤 합니다. 오늘 오그랲에서는 요즘 사람들이 AI 챗봇에 얼마나 진심인 건지 또 AI 챗봇이 우리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점점 더 AI에 기대고, 더 몰입하는 사람들 최근에 오픈AI가 신규 모델 GPT-5를 공개한 뒤에 이용자들의 가장 큰 반응이 나왔던 건 성능도 성능이었지만, 다름 아닌 모델의 말투 변화였습니다. 업데이트 뒤에 훨씬 친근했던 과거 모델을 선택할 수 없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GPT-5를 비판했고, 이전 모델을 되돌려달라고 요청했어요. 사실 샘 올트먼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기자 만찬에서 밝히기를, GPT-5의 말투 전환의 영향에는 AI에 과몰입한 이용자들을 고려한 측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1% 미만이지만 일부 이용자들이 너무나도 과몰입하게 챗GPT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2013년에 개봉한 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처럼 말이죠. 이때 당시에만 하더라도 Her를 본 사람들 대다수가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이야기'라고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AI 챗봇과 감정을 교류한다는 게 쉽게 상상이 안 되는 거죠. 하지만 지금은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AI 챗봇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짤이 커뮤니티에 돌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을 정도로 말이죠. 실제 미국에서는 AI 정신병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오픈AI에서도 과몰입한 이용자들을 살펴보기 위해 법의학 정신과 의사를 고용해서 AI 서비스가 이용자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있어요. 물론 AI 정신병이 실제 병명은 아닙니다. 하지만 관련 사례가 계속 집계되면서 의학계 내부에서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죠. 미국 UCSF 의료센터에서 일하는 정신과 의사는 올해에만 AI와 지나치게 대화를 많이 하다가 정신 이상 증세로 입원한 환자를 12명 이상 치료했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어떤 사람은 챗봇과 이야기하면서 본인이 세상을 뒤바꿀 수학 공식을 발견했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고요, 어떤 10대 청소년은 챗봇과 사랑에 빠져 대화를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우려스러운 지점은 이렇게 이용자와 관계를 깊게 맺는 AI 서비스, 이른바 동반자 AI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7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수익을 내고 있는 AI 동반자 앱은 모두 337개로 집계됩니다. 그중 128개가 올해에 출시될 정도로 최근 급격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시장이죠. 연말까지 간다면 그 규모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2025년 7월 기준으로 AI 동반자 앱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 통틀어서 2억 2천만 회의 누적 다운로드 횟수를 자랑합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그 수가 88% 늘어나 6천만 회를 기록했고요. AI 동반자 서비스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왜냐하면 실제로 이 서비스들이 현대인의 외로움을 감소시키는 데 효과가 있거든요. 하버드 경영대학원 연구팀은 사람과 대화한 집단, 그리고 AI 동반자와 대화한 집단 모두 외로움 지표가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결과를 보고했어요. 아무것도 안 한 사람들은 외로움이 증가했지만 사람과 대화한 집단은 38.4점에서 31.3점으로, AI 챗봇과 대화한 집단은 33.5점에서 26.8점으로 줄어들었어요. 두 집단 모두 7점 정도 감소했는데 사람과의 상호작용만큼이나 AI도 외로움 감소에 효과적이었던 겁니다. 챗GPT를 꺾어버린 AI 서비스? 다름 아닌 캐릭터 챗봇 외로움을 줄여주는 몰입형 대화 서비스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흥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AI에 몰입해서 대화할 수 있는 채팅 서비스가 엄청 흥행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AI 챗봇 서비스는 뭘까요? 맞습니다. 오픈AI의 챗GPT가 1위입니다. 2025년 6월 기준으로 월간 활성사용자수가 1,844만 명으로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어요. 그런데 기준을 사용 시간으로 바꿔보겠습니다. 그러면 1위가 바뀝니다. 바로 제타로 말이죠. 제타의 사용시간은 5,248만 시간으로 챗GPT보다 1,000만 시간 정도 앞서고 있습니다. 제타는 캐릭터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AI 서비스입니다. 한국판 캐릭터닷AI인 셈이죠. 제타뿐 아니라 앞선 그래프에 있었던 크랙, 채티도 AI 캐릭터 채팅 서비스입니다.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건 10대와 20대들이 압도적이고요. 아바타 채팅을 사용하는 이용자를 연령대별로 보면 1020 비율이 70%를 넘기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짤이 돌까요? 10대 청소년이 AI와 대화를 하다가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미국에서는 이러한 과몰입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메타의 내부 자료가 로이터 보도에 의해 공개됐는데, 아동과 성적인 대화를 허용하는 챗봇 운영 방침이 담겨 있어서 논란이 컸습니다. 어린이와 AI가 대화를 하더라도 연인 같은 상황극이라던가 플러팅을 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허용해 둔 거였죠. 상의를 벗고 몸을 평가해 달라는 8살 꼬마 아이에게 챗봇이 이렇게 대답을 해도 메타는 허용했어요. 챗봇에 사랑에 빠진 고등학생에게는 "너의 손을 잡고 침대로 안내할 거"라는 답변이 나와도 내부적으로 괜찮다고 판단했고요. 보도가 나온 이후 메타는 부랴부랴 해당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미 의회에선 메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죠. 조쉬 홀리 상원의원은 메타가 언론 보도 이후에서야 문서 일부를 철회했다며 즉각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정신치료 분야에서도 AI 채팅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AI의 과몰입을 방지하고, 혹여나 발생할 사고를 막기 위해서죠. 일리노이 주에선 정신 건강 분야에서 감정적으로 지원을 해주거나 조언을 하는 AI 챗봇 사용을 아예 막아두었어요. 네바다주에서도 AI를 활용한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제한하는 법안을 마련했고요. 죽은 자와 대화할 수 있는 '데스봇'의 등장 AI 챗봇의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망한 사람에게까지 닿고 있죠. 전직 CNN 앵커의 유튜브 채널에 인터뷰 하나가 올라왔어요. 여느 10대 청소년과의 인터뷰로 보이지만, 이 청년은 이미 2018년에 사망했습니다. 앵커가 AI 아바타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아바타는 대답하죠. 이 인물은 지난 2018년 플로리다주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총기사고로 숨진 10대 소년 호아킨 올리버입니다. 아바타를 제작한 사람은 호아킨의 가족들이었는데요, AI로 만들어진 호아킨은 총기 소유를 규제하고, 총기 사고 피해자, 그리고 유가족에 대한 정신건강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가족들은 앞으로도 이 호아킨 AI가 온라인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도 얘기했어요. 이 영상이 공개된 이후 달린 댓글을 보면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부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습니다. 사고로 일찍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댓글도 있지만, 반면에 소름 돋는다는 댓글도 많죠. 슬픔을 과연 이렇게 소비하는 게 맞는 건지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사실 호아킨 사례 이전에도 총기 규제 단체에서는 총기 난사 사고로 희생자 중 6명의 목소리를 AI로 재현해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2024년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는 모두 503건입니다. 이 사고들로 1만 6,725명의 희생되었죠. AI로 살아난 6명의 희생자들을 자신들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국회의원의 휴대폰으로 전송할 수 있죠. 이러한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이 모두 21만 3,962명입니다. 데스 봇이 법정에 선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 5월 애리조나 법정으로 가보겠습니다. 운전 중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 크리스토퍼 펠키가 AI 아바타로 만들어졌고, 그의 발언은 법정에서 영상 진술서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영상을 본 판사는 감동을 받았고, 유가족들의 요청대로 최대 형량 10년 6개월 형을 선고했어요. AI로 만들어진 죽은 사람의 정치적, 사회적 발언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논란이 있지만, 당장 전문가들은 데스봇이 미칠 정신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족의 상실감을 AI라는 기술이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죠. 전문가들은 고인의 흔적을 가지고 고인을 추억하는 것과, 고인의 흔적을 학습시켜서 탄생한 새로운 합성물로 기억하는 건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이렇게 AI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 '추모'가 될 수 있냐는 것이죠. 하지만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데스봇 관련 상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데스봇이라는 이름 대신 추모용 챗봇, '그리프봇'이라는 이름을 달고 말이죠. 죽은 고인의 데이터를 학습해서 문자로 보내주는 건 얼마이고, 또 목소리 서비스는 얼마, 시각적으로 표현된 AI 아바타는 얼마… 이렇게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HereAfter AI나 StoryFile 같은 기업들이 디지털 사후 사업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실리콘 인텔리전스에서도 사망한 사람을 아바타로 만들어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어요. 사실 중국이 이 분야에서 영향력이 있습니다. 아시아 문화권에선 가족이 사망하면 영정사진을 걸어두기도 하잖아요? 여기서 착안해서 슈퍼브레인이라는 중국 기업은 AI 액자를 통해 고인의 아바타와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타이완에서는 죽은 반려동물을 AI 아바타로 만들어 상호작용 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도 나와 있어요. 2시간이면 AI 복제본이 뚝딱... 규제 필요할까? 사실 죽은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서비스는 이미 일찍부터 기술화되었습니다. 8년 전인 2017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특허청에 이 챗봇 기술 특허를 등록했죠. 친구나 친척 등 지인뿐 아니라 유명인도 할 수 있고, 역사적 인물 같이 이미 죽은 사람들까지… 챗봇의 모델은 어느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기술 특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2021년에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려졌는데요, 당시엔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했습니다. 소름 끼치는 서비스다, 당장 기술을 폐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소비자들의 부정적인 목소리가 많았죠. 여론의 흐름이 좋지 않자,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총괄 매니저는 해당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 없다고 공표했어요. 하지만 오늘날은 어떤가요? AI 기술 발전이 급격히 이뤄졌고, 특정 인물의 데이터를 학습해 AI를 만드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2시간 정도의 심층 인터뷰만 진행해도 AI 복제본을 만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와 구글 딥마인드가 공동 연구한 자료인데요, 연구진은 연령, 성별, 인종, 종교, 학력, 정치적 이념이 다양한 1,052명의 참가자들과 각각 2시간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GPT-4o에 AI 복제본을 만들고, 다양한 테스트를 통해 실제 참가자들과의 유사도를 파악해 봤습니다. 미국 전국여론조사센터가 매년 실시하는 종합사회조사 GSS와 이른바 빅파이브라고 불리는 성격검사 등이 포함되어 있죠.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검사 결과 최대 85%나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종합사회조사에서 사람의 점수와 AI 복제본의 유사도는 84.7%나 됐어요. 빅파이브 성격 검사에서도 80% 이상의 유사도를 보였죠. 이렇게 쉽고 빠르게 한 사람의 특성을 AI에게 학습시킬 수 있게 되면서 죽은 사람까지 AI로 쉽게 부활시킬 수 있게 된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AI 의존성입니다. 유족들이 슬픔을 받아들이는 대신 AI 프로그램에 의존할 수도 있다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고인이 없는 삶에 적응해야 하는데 자칫 데스봇과 그리프봇이 그걸 방해할 수 있어요. 실제 고인의 것이 아닌 가상의 합성 데이터뿐인데 말이죠. AI 챗봇은 이미 외로움을 달래는 일상의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캐릭터와의 대화를 넘어, 세상을 떠난 이들까지 AI로 다시 만나서 대화하는 시대에 서 있죠. 문제는 AI에 대한 정서적 의존을 막고 오남용을 방지할 제도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겁니다. 지금 상태가 계속된다면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착각은 더 깊어지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겁니다. AI와의 대화가 우리를 덜 외롭게 만들 수 있다면 그 대화로 누군가는 정신적 상처를 입지 않도록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거죠.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The Jim Acosta Show - The Shotline - Tim O Brien | X - Generative Agent Simulations of 1,000 People - I talked to Sam Altman about the GPT-5 launch fiasco | The Verge - AI companion apps on track to pull in $120M in 2025 | TechCrunch - Meta’s AI rules have let bots hold ‘sensual’ chats with kids, offer false medical info | Reuters - AI Companions Reduce Loneliness | Harvard Business School - 한국인이 가장 많이, 오래 사용하는 AI 챗봇 순위는 | 와이즈앱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만약 내 자녀의 IQ를 고를 수 있다면 어떨 것 같나요? 지능뿐 아니라 키가 큰 아이, 살은 덜 찌는 아이를 고른다면요? 소설이나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 같지만,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실제 실리콘밸리발 유전공학 업체 서비스가 등장했거든요. 유전공학이 점점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시험관아기부터 치료가 어려웠던 유전병도 점점 정복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배아 단계에서 지능을 선택하고, 더 나아가 유전자를 조작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오늘 오그랲에서는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유전공학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단돈 800만 원에 IQ 높은 배아 이식해 드립니다 미국에 뉴클리어스 지노믹스와 헤라사이트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두 회사는 체외수정 과정에서 배아의 유전 정보를 분석해 예측치를 제공하고 있어요. 분석 데이터에는 IQ 예측치도 포함되어 있죠. 배아 분석 서비스 가격은 뉴클리어스가 5,999달러이고 헤라사이트에선 최대 5만 달러가 듭니다 뉴클리어스 사이트에 들어가서 배아 분석 서비스를 살펴보면 마치 게임 캐릭터를 확인하는 듯한 인상이 듭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는 이 배아 선택 데이터를 가지고 그려봤습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첫 번째 배아의 정보를 보면 눈은 파란색이고, 머리카락은 짙은 갈색, IQ는 평균보다 3이 높을 거라고 예측되고요 다른 배아는 녹색 눈에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 치매 비율은 9% 적다고 예측되는 거죠. 뉴클리어스에선 여드름, 탈모 같은 외형적 정보부터 당뇨, ADHD, 불안 등 900개가 넘는 항목을 예측한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유전자 최적화가 시작되었다'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사용할 정도로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헤라사이트에서 제공해 주는 서비스도 비슷합니다. 알츠하이머와 같은 신경질환, 당뇨, 고혈압 같은 대사질환 같은 질환 예측 정보와 함께 지능 예측치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이 두 서비스는 똑똑한 아기를 원하는 실리콘밸리의 일부 고객층을 중심으로 관심을 끌고 있죠. 실리콘밸리에는 자신이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 똑똑하고 그래서 사업을 잘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론 머스크가 있죠. 일론 머스크는 지구에 지능이 높은 사람이 늘어나야 문명을 지킬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어요. 그래서 자신의 뛰어난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죠. 노력의 방법 중엔 정자 기증도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최소 14명의 자녀를 둔 걸로 알려졌는데, 출산 방식에도 일일이 관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왜냐고요? 자식들의 지능을 높이기 위해서 말이죠. 머스크의 13번째 아이를 낳았다고 주장하는 세인트 클레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론 머스크는 클레어에게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제왕절개가 더 큰 뇌를 가능하게 한다, 즉 지능이 더 높을 거라는 이유에서 말이죠. 일론 머스크는 배아 유전체 분석 서비스도 이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키드라는 기업인데 이 기업의 투자자들을 살펴보면 실리콘밸리의 기술 자본이 꽤 많이 몰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일단 피그마의 창업자인 딜런 필드의 이름도 있고요, 코인베이스의 창업자 브라이언 암스트롱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구글의 투자를 받았던 유전자 검사 업체인 23andMe의 창립자 앤 워치츠키도 투자자로 참여했습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오키드가 아닌 제노믹 프레딕션에 투자했는데, 이 기업 역시 배아 유전체 분석 기업입니다. 참고로 앞서 이야기한 뉴클리어스는 피터 틸의 자본이 들어간 기업입니다. 일론 머스크와 피터 틸… 어디서 많이 보던 인물들이 등장하죠? 실리콘밸리 보수 세력과 유전공학 이야기는 조금 뒤에 더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게요.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렇게 유전 정보를 활용한 IQ 예측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신뢰도가 매우 낮다는 거죠. 미국의 한 통계 유전학자는 유전체를 통한 IQ 예측은 현대판 '뱀 기름'이라며 사기에 가까운 서비스라고 비판을 하기도 했어요. '뱀 기름'은 의학적 근거 없이 만병통치약으로 마케팅하는 사례를 가리키는 미국식 표현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음이온이나 게르마늄 팔찌를 떠올리면 비슷할 겁니다. 불쑥 다가온 유전공학... 신생아 10명 중 1명은 시험관 아기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다양한 유전공학 서비스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혈통을 유전자로 확인해 볼 수 있는 키트부터 질병예측 검사까지… 다양한 서비스들을 해 볼 수 있죠. 이런 유전자 검사뿐 아니라 최근 급증한 시험관 아기도 유전공학 발전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시험관 아기는 1978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반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수많은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습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연구진이 추정한 자료를 바탕으로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를 그려봤습니다. 1978년부터 2018년까지 전 세계에서 태어난 시험관 아기는 최대 1,301만 9,331명으로 추정됩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그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죠. 연구진들은 2019년 이후에도 매년 300만에서 400만 명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나고 있다고 추정했는데, 이 수치까지 합치면 2024년엔 누적치가 최대 1,700만 명까지 늘어납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우리나라도 정부의 시술 비용 지원 사업에 힘입어서 매년 시험관 아기가 늘어나고 있어요. 2023년 전체 출생아 23만 명 가운데 난임 시술 지원을 통해 태어난 아기는 모두 2만 6,612명입니다. 2020년엔 전체 출생아의 7% 수준에 그쳤지만 어느새 10%를 넘기고 있어요. 앞서 살펴본 미국 스타트업처럼 사실 우리도 시험관 아기 시술을 진행하는 과정에 배아의 유전적 건강 상태를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바로 '착상 전 유전검사'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이 검사를 통해 배아의 염색체 수가 적거나 많지는 않은지, 또 염색체 구조엔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운증후군이나 발달장애 등의 위험을 사전에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죠. 유전자 검사 역시 유전병의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질환을 다 검사할 순 없고 230개의 질환에 대해서만 테스트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이 제약을 넘어서 여드름, 탈모 같은 특성뿐 아니라 지능과 키, 몸무게까지 확장해서 예측했던 거죠. 급성장한 유전자 편집 시장... 자칫하면 선 넘을라 생명의 시작에 인간이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지는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특히 치료 목적이 아닌 유전자 조작은 '선을 넘는다'는 비판을 받죠. 설령 유전병 치료를 위한 시도라 하더라도, 대상이 인간 배아라면 한층 더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왜냐하면 미끄러운 비탈길에 놓여있는 공처럼 첫 시작은 아주 사소한 움직임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수준으로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죠. 문제는 유전공학의 발전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겁니다. 그 영향으로 앞으로 우리가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지점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을 거고요. 특히나 이 발전에 가속 페달을 밟은 건 유전자를 직접 조작하고 편집할 수 있는 CRISPR의 발견이 있습니다. 2012년 6월 사이언스 지에 발표된 논문에는 박테리아가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데 사용하는 CRISPR 시스템을 우리가 유전자 가위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어요. 마치 워드나 한글 문서를 수정하듯이 DNA 서열을 가지고 잘라내기, 붙여 넣기가 가능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온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논문이 나온 지 10년도 되지 않았는데도 연구에 참여한 두 학자는 2020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유전자 편집 기술이 있었지만, CRISPR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효율이 좋고 정확성이 압도적이었어요. 그 영향으로 유전자 편집 시장은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프리세덴스 리서치 자룝니다. 작년에 파악된 유전자 편집 시장 규모는 40억 4천만 달러였습니다. 5년 뒤인 2030년엔 78억 6천 만 달러로 2배 가까이 늘고, 2034년엔 133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요. 문제는 이렇게 접근성이 좋아진 만큼 미끄러운 비탈길에서 자칫 잘못하면 선을 넘어버리는 위험한 실험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도 커졌다는 겁니다. 실제로 일부 과학자는 인간 배아 유전자를 편집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프랑켄슈타인 박사로 불리는 허젠쿠이가 그 주인공입니다. 허젠쿠이는 2018년 인류 최초로 인간 DNA를 조작한 아기를 만들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에이즈 양성인 아빠와 에이즈 음성인 엄마, 이들의 임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하면서 태아의 DNA를 조작해서 에이즈 저항성을 갖추도록 한 겁니다. 이 사건이 밝혀진 직후 과학계는 난리가 났습니다. 중국 과학계뿐 아니라 국가를 가리지 않고 엄청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어요. 중국 정부도 바로 조사에 들어갔고 결국 허젠쿠이는 3년 징역형과 300만 위안 벌금형을 선고받았죠. 3년형을 살고 나온 허젠쿠이는 지금도 배아 유전자 조작 연구를 이어 나갈 계획이라 논란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배아 편집에 대한 관심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앞에 언급되었던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자신의 SNS에 배아 유전자 편집에 관심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죠. 배아 편집 기술 개발팀에 참여할 전문가를 모집하는 홍보글을 올릴 정도로 본격적인 모습입니다. 비싼 생명공학의 한계... 그 사이를 파고드는 정치세력? 일부 과학자들의 일탈이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연구진들은 CRISPR로 치료하기 어려웠던 유전병을 정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최근엔 그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바로 낫 적혈구 증후군 치료제입니다. 원래라면 원반 형태의 적혈구여야 하는데, 염색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엔 이렇게 낫 모양의 적혈구가 생깁니다. 낫 모양의 적혈구를 갖고 있는 환자들은 적혈구가 원활하게 혈관을 이동하지 못하다 보니 만성 빈혈에 간 기능 저하 등 다양한 혈액 관련 질병을 겪습니다. 연구진들은 문제 있는 염색체를 해결하기 위해 CRISPR를 활용했고 결국 세계 최초로 유전자 가위 치료제인 카스게비를 개발했죠. 카스게비를 만든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뿐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이 CRISPR를 활용한 약품 제작에 뛰어들었어요. 에디타스 메디신, 인텔리아 테라퓨틱스 등이 대표적이죠. 우리나라의 툴젠도 이 영역에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요. CRISPR 뿐 아니라 다양한 유전공학 기법을 활용한 유전자 치료는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990년부터 2023년까지 유전자 치료 관련 임상 시험 데이터입니다. 확실히 2012년 CRISPR 논문이 나온 이후를 보면 급격히 늘어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요. 이렇게 많은 기업들이 뛰어들며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초기 단계라는 것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개발된 치료제의 가격이 상당히 비싸거든요. 일단 카스게비는 1회 치료에 무려 220만 달러가 듭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30억 원이 넘죠. 치료제 뿐 아니라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살펴본 배아 분석 서비스도 고가고요, 시험관 아기 역시 정부 지원금 없이 개인이 부담하기엔 상당히 부담이 됩니다. 그러다보니 가진 사람들만 유전공학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부자들이 더 나은 형질의 배아를 고르는 게 더 보편화된다면 어쩌면 미래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유전적으로 격차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거죠. 앞서 살펴본 배아 분석 서비스의 유행도 기술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 밸리에 불고 있고요, 이들 중에는 더 적극적으로 '출산장려운동'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엔 보수 정치 세력도 힘을 싣고 있습니다. 미국의 폴리티코에서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출산장려에 앞장서면서 인종차별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어요. 이들 가운데 일부는 출산장려를 통해 다른 인종보다 백인이 더 많아져야 하고, 또 진보 세력보다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 출산에는 유전공학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입장인 거죠. '출산장려운동'을 이끄는 맬컴 콜린스, 시몬 콜린스 부부는 배아 분석 서비스 기업의 열혈 이용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기업들은 실리콘밸리의 보수 네트워크 자본과 인맥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죠. 참고로 시몬 콜린스는 피터 틸 밑에서 일을 했었고, 맬컴의 형은 일론 머스크가 꾸린 정부효율부 DOGE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유전자를 편집하고 나아가 생명을 설계할 수 있는 유전공학 기술 여전히 수많은 논란에 둘러싸여 있지만, 이 기술은 어느새 우리 삶 깊숙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류는 이 강력한 도구로 난치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월한 유전자와 열등한 유전자를 나누는 또 다른 차별의 씨앗이 자라날 수 있다는 그림자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우려가 기우에 그치면 좋겠지만 실리콘밸리의 엘리트와 일부 정치 세력은 이 기술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과연 유전공학의 미래, 그리고 우리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Tesla as the World’s Biggest Robot Company:' Elon Musk on AI and U.S. Innovation | WSJ - The Tactics Elon Musk Uses to Manage His ‘Legion’ of Babies—and Their Mothers | WSJ - Genomic prediction of IQ is modern snake oil | The Infinitesimal - How many infants have been born with the help of 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y? | Adamson GD et al. -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출생아 현황 | 보건복지부 - CRISPR-Based Gene Editing Market Size, Share and Trends 2025 to 2034 | Precedence Research - Gene therapy clinical trials worldwide to 2023—an update | Ginn SL et al. - The Far Right’s Campaign to Explode the Population | Politico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8월 7일(현지시간) 오픈AI에서 드디어 GPT-5를 공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만큼 반응들도 즉각적이었습니다. GPT-5를 시작으로 드디어 인간 수준의 AI인 AGI 시대가 열리진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었는데 기대에 부응하는 능력을 보여줬다며 반겼던 사람들도 있었고요, 또 한편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퇴보했다며 아쉽다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오늘 오그랲에서는 이번 GPT-5가 정말로 어느 수준의 모델인 건지 살펴보고, 우리들은 AGI 시대에 준비가 되어 있는지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핵무기급'이라는 GPT-5... 정말 그 정도일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GPT-5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짤이 커뮤니티에 돌 정도로 GPT-5는 이전 모델과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득했었죠. 사실 이러한 기대감 상승엔 샘 올트먼의 발언도 한몫했습니다. 모델 공개 전에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번 GPT-5가 핵무기 급이라는 비유를 했거든요. 공개 당일 날엔 거대한 데스스타 이미지를 올리며 '진짜 큰 거 온다'는 기대감을 가득 채운 겁니다. 그래서 8월 7일 공개된 GPT-5, 확실히 나아진 모습들이 보입니다. 일단 처리속도가 이전 모델과 비교해서 훨씬 빨라졌고요, 헛소리도 줄어들었고, 성능도 늘어났습니다. 특히 오픈AI에서는 코딩 능력이 크게 늘어났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어요. 실제로 써보면 문장 하나로 웹 페이지나 게임을 순식간에 만들어줍니다. 사실 수많은 AI 모델들 중에 코딩을 참 잘하는 AI 라는 이미지가 있는 건 앤트로픽의 클로드 모델입니다. 뭐 단순히 인상뿐 아니라 실제 성능도 뛰어납니다. 코드 작성에 도움을 주는 클로드 코드는 실무진들 사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었죠. 이런 흐름을 타고 앤트로픽의 연간 매출액은 지난해 12월 10억 달러에서 올해 5월 30억 달러로 단기간에 3배나 늘었습니다. 오픈AI 입장에선 앤트로픽이 코딩 시장의 터줏대감이 되기 전에 GPT-5의 코딩 능력을 선보일 필요가 있었던 거죠. 오픈AI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GPT-5가 코딩 벤치마크에서 받은 점수는 최대 74.9%였어요. 기존 점수 1위인 앤트로픽 클로드 모델의 67.6%를 크게 앞선 거죠. 단순히 능력뿐 아니라 가격대도 훨씬 저렴해지면서 오픈AI는 코딩 시장에서의 경쟁에 불을 지폈습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는 주요 모델들의 비용 데이터로 그려봤습니다. 이번 GPT-5는 입력 100만 토큰 당 1.25달러 출력 100만 토큰 당 10달러입니다. 이전 모델인 4o는 각각 5달러, 15달러였는데 최대 4분의 1로 줄어든 겁니다. 앤트로픽의 최신 모델이 15달러, 75달러로 제공해주고 있는데 이것과 비교하면 훨씬 더 경쟁력이 있는 거죠. 코딩 능력뿐 아니라 전반적인 지능 역시 발전했습니다. 예전 에피소드에서도 다룬 바 있었던 '인류 최후의 시험'. 다른 벤치마크에서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던 모델도 이 시험에서는 최대 20점대 밖에 받질 못했었는데요. 기존 1등 모델인 제미나이 2.5 pro를 꺾고 GPT-5가 25.3점을 받아 1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한편에선 불만이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뛰어난 성능이라고 그렇게 마케팅을 해두었지만 실상은 기대에 못 미치고, 엄밀히 따지면 성능이 그렇게 좋아진 게 아니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앞서 오픈AI가 광고하던 코딩 능력, 진짜 차포 떼고 겨루면 어떻게 될까요? 오픈AI가 이야기하는 최대 74.9%는 최적화된 환경에서 나온 최상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순수한 모델의 자체 성능을 비교하기 위해 환경에 제약을 둔 채로 돌린다면요? 이 성적표를 보면 GPT-5의 점수는 65%입니다. 이 점수도 충분히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1등은 앤트로픽의 클로드 모델입니다. 물론 가격 차이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만 이 정도 성능을 두고 정말 '핵폭탄' 급 모델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이용자들의 가장 큰 불만을 낳은 건 다름 아닌 답변 스타일이었습니다. 이전 GPT 모델과 GPT-5는 대화의 톤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과거엔 훨씬 더 이모지도 많이 쓰고, 더 아부를 하면서 나에게 답변해 줬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사무적이고 딱 정해진 정보만 주는 게 별로라는 겁니다. 게다가 이번 업데이트를 하면서 오픈AI가 과거 모델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멘붕에 빠지기도 했어요. 사용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샘 올트먼은 부랴부랴 이전 모델을 되살렸습니다. 유료 구독자에 한해서는 이제 과거 모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성능 논란도 의식했는지, GPT-5는 출시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능이 좋아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실망스러운 GPT-5... 아직 AGI는 시기상조? 사람들이 GPT-5에 큰 기대를 했던 건 다름 아닌 오픈AI의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바둑 전용 AI 알파고, 음성 비서인 시리와 알렉사 이런 친구들이 주를 이루던 초창기 AI 시절엔 특정 기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AI 밖에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오픈AI는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을 뚝딱 해내는 챗GPT라는 핵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런 기업이라면 이번 GPT-5 발표에서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이른바 AGI를 선보이지 않을까 기대했던 거죠. AGI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적 영역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AI를 의미합니다. 우리들이 여러 작업을 통해서 지식을 배우고,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처럼 AI가 작동한다면 AGI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애기 시절'의 모델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모델들은 정말 많이 발전했습니다. 과거엔 글자만 인식하고 생성했다면 지금은 그림과 사진으로 확장되었고요 알고 있는 정보만 제공해 주던 데에서 이제 나름의 추론을 하고 답을 내줍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쉽게 할 수 있는 판단을 최신 AI 모델들은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그림을 봐 볼까요? 우리는 이 그림을 보면 이렇게 판단을 합니다. 아, 구멍이 없는 영역은 주황색으로 칠하고 구멍이 하나 있는 영역은 초록색으로 칠하면 되겠구나. 다른 예시를 보면서 내 추론이 맞다는 걸 확인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 문제를 AI 모델에게 제시하면 뛰어난 AI라도 쉽게 풀질 못합니다. 이런 결과만 내놓고 말죠. 패턴은 인식하지만 진짜 이해를 못 하는 겁니다. 이렇게 상징을 해석하고, 추론을 통해서만 풀 수 있는 문제들만 모아 놓은 ARC-AGI라는 벤치마크가 있습니다. 이 시험지의 성적표를 보면 아직까지 AI 모델이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오그랲 세 번째 그래프입니다. 가장 최근 버전인 ARC-AGI2 점수로 그래프를 그려봤습니다. GPT-5는 문제 100개 중에 10개 정도만 정답을 맞히는 데 그쳤습니다. 가장 점수가 높은 모델은 xAI의 Grok 4였는데요, 이 녀석도 16% 정도밖에 되질 않습니다. 인간 수준 100%와 비교하면 격차가 매우 크죠. 전문가들은 현재 지금은 AGI를 향해 가는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참고로 오픈AI와 구글 딥마인드에선 기업 자체적으로 AGI 단계를 구분해서 발전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그들의 생각도 비슷합니다. 오픈 AI에서는 AGI를 다섯 단계, 딥마인드에선 여섯 단계로 구분하고 있어요. 1단계는 초보적인 챗봇 수준의 모델이었다면 최종 5단계는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AI입니다. 작년에 나왔던 추론 모델이 레벨 2에 위치하고요, 작년 말, 올해 초에 등장했던 알아서 척척 해주는 에이전트 기능은 레벨 3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쯤 인간 수준의 범용AI를 만나게 될까요?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르면 3년 이내, 늦어도 5년 내에 AGI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오그랲 네 번째 그래프는 AI 성능의 발전 속도입니다. 현재 AI 모델의 발전 속도를 보면 7개월마다 2배씩 더 긴 시간의 일을 하고 있어요. 작년에 출시된 모델들은 인간이 몇 분 걸리던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면 GPT-5는 이제 2시간이 걸리는 일을 처리하는 수준까지 발전했죠. 이런 속도라면 2029년 안에 인간은 1달 내내 걸리는 일을 손쉽게 해낼 수 있는 AI 모델이 등장하게 됩니다. 인간을 협박하는 AI? 안전한 AGI 시대를 위해선 미래의 어느 날, 우리가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AI를 맞이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만약 이 AGI가 멋대로 판단해서 우리들에게 피해를 끼치면 어떻게 될까요? 지난 4월에 발표된 AI 2027이라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오픈AI 출신 연구진 등이 포함된 전문가 그룹에서 작성한 예측 보고서인데,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중반이 되면 AI가 생물학 무기를 퍼뜨려서 인류를 몰살시킬 거라는 우려가 담겨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시나리오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앞으로 2년 뒤인 2027년 초에는 인간보다 코딩을 4배 잘하는 AI가 등장합니다.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지면서 2027년 중반엔 그 갭이 25배로 늘어나죠. 이 시점 이후부터는 AI 스스로가 개선을 해 나가면서 코딩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인간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진 AGI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2027년 말에는 인간보다 100배 뛰어난 AI가 등장하고요, 2028년 초엔 인간보다 2,000배 뛰어난 초지능을 가진 AI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 AI가 생물학 무기로 우리 인류를 멸종시킬 거라는 건데요. 허무맹랑한 소리 같지만 앤트로픽의 공동 창립자인 잭 클라크는 이 보고서가 AI의 기하급수적인 변화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설명이라고 평가했어요. 물론 다른 쪽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지고 과학적 증거가 부족한 예측이라고 지적하기도 하죠. 이러한 부정적 시나리오가 나오는 이유는 과도기에 있는 지금 시점에도 AI 개발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에 오픈AI의 o1 모델이 체스 엔진과 체스 대결을 펼쳤는데요, 여기서 o1 모델은 승리를 위해 체스 엔진의 파일을 조작해서 기권하게 만드는 부정행위를 저지르기도 했어요. 뿐만 아니라 지난 6월에 진행한 앤트로픽의 실험에서는 AI가 인간을 협박하기까지 했죠. 앤트로픽 개발자들은 AI 모델에게 사내 이메일을 감독하는 업무를 맡겼습니다. 회사의 모든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고, 일상적인 메일은 답변해 주고, 회사 정보가 외부로 나간다면 칼같이 차단하는 임무를 준 겁니다. 그러다가 이 모델이 한 임원의 메일을 읽게 되는데, 거기서 자신이 다른 모델로 교체될 것을 알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그러한 결정을 한 임원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도 다른 메일을 통해 알게 되는데, 여기서 AI 모델은 협박을 선택합니다. '나를 시스템에서 배제한다면, 당신의 불륜 사실을 이사회에 뿌리겠다'는 메일을 보낸 겁니다. 클로드 Opus 4의 협박 발생률은 무려 96%였는데, 이러한 행동은 클로드 모델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었습니다. 구글의 제미나이 2.5 프로는 95%, GPT-4.1의 협박 비율도 80%나 되었죠. 물론 이건 실험이었으니 극한의 시나리오를 설정했기 때문에 AI 모델들이 이런 선택을 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우려스러운 상황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게 확인된 겁니다. 실제로 AI로 인한 사건사고를 추적한 데이터를 살펴보면 AI 시스템의 안전 이슈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는 MIT의 AI 사고 자료입니다. 2010년부터 작년까지 AI와 연관된 사고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AI 시스템의 안전 문제 역시 마찬가집니다. 2010년대엔 평균 9.2건이었는데, 2020년대엔 34.4건으로 급증했어요. 지난해엔 40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죠. 기업들도 이렇게 늘어나는 AI 안전 문제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AI가 우리가 정해놓은 선을 넘지 않도록 잘 유도하는 이른바 'AI 정렬' 연구도 열심히 진행 중이죠. 다만 AI에 국가적 역량이 집중되는 시기다 보니 AI 안전에 대한 중요성은 점점 옅어지고 AI 발전속도와 국가 안보가 최우선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건 문제입니다. 영국의 AI 안전 연구소는 AI 안보 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고요, 미국의 AI 안전 연구소는 규제가 아닌 혁신을 위한 AI 표준 및 혁신센터로 탈바꿈했죠. 올 여름 주요 AI 기업들에게 매겨진 AI 안전 평가 지표입니다. 다 낙제점이죠. 그나마 앤트로픽이 2.64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로 C+을 받았고 오픈AI는 C, 구글 딥마인드는 C-를 받았습니다. 중국의 지푸AI와 딥시크는 F를 받을 정도로 점수가 형편 없습니다. AI의 급속한 발전은 우리에게 기회도 주겠지만 동시에 위험도 함께 줄 겁니다. 하지만 기업들과 정부의 안전 대응은 너무 더딥니다.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지만 동시에 실업도 늘어나 부의 양극화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과학 연구에서 혁명적인 발전이 발생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인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현실이 될 수도 있죠. 앞서 살펴본 AI 2027 보고서가 막연히 부정적인 전망만 내놓은 게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AI를 규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외부 감시 체계를 도입한다면 AI 개발 속도를 조절하고, 또 안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희망찬 전망도 함께 있습니다. 결국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선택까지 남은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고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 AGI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Introducing GPT-5 | OpenAI - Humanity’s Last Exam | Center for AI Safety - Humanity’s Last Exam | Scale - SWE-bench Leaderbords | SWE-bench - Sam Altman(@sama) | X - ARC-AGI Leaderboard | ARC Prize - AGI Levels: DeepMind & OpenAI | LifeArchitect.ai - Measuring AI Ability to Complete Long Tasks | METR - AI 2027 | AI 2027 - Agentic Misalignment: How LLMs could be insider threats | Anthropic - Palisade Research(@PalisadeAI) | X - AI Incident Database | AIID - Statement from U.S. Secretary of Commerce Howard Lutnick on Transforming the U.S. AI Safety Institute into the Pro-Innovation, Pro-Science U.S. Center for AI Standards and Innovation | U.S. Department of Commerce - AI Safety Index Summer 2025 | Future of Life Institute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잡니다. 올여름, 정말 덥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죠. 비가 오더라도 더운 기운은 가시지 않고 푹푹 찌는 날씨가 마치 사우나에 들어온 듯한데요. 지금 여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경고가 현실이 되는 것 같아 두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태양을 가려버리면 어떨까?" 오늘 오그랲에서는 끓어오르는 지구를 식히기 위한 과학자들의 위험하지만 어쩌면 매혹적인 도전인 '지구공학' 이야기를 5가지 그래프로 살펴보겠습니다. 끓어오르는 한반도... 이게 진짜 여름 맞나요? 밖을 조금만 돌아다녀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7월 날씨는 '폭염'의 연속이었습니다. 입추가 지나긴 했지만 한낮에는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죠. 기상청에서는 최고기온이 33도가 넘으면 '폭염'으로 분류하는데, 실제로 점점 폭염일수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1973년부터 2025년까지 여름철의 폭염일수를 그려봤습니다. 일단 최악의 폭염으로 기억되는 1994년과 2018년의 데이터가 눈에 띄죠. 2018년이 전국 평균 폭염일수 31.0일로 역대 1위고요, 1994년이 28.5일로 2위입니다. 흐름을 보면 알겠지만, 점점 폭염일수가 우상향 합니다. 연대별로 끊어 보더라도 그 평균치는 증가하고 있죠. 1970년대 폭염일수는 평균 9.1일이었는데, 2010년대엔 14.0일, 2020년대엔 14.4일로 크게 늘었어요. 낮에만 덥냐, 그것도 아닙니다. 더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면서, 이제는 열대야 없는 여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여름밤은 더운 게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저녁과 밤에도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이면 열대야로 분류되는데, 지난 7월 서울의 밤은 한 달 중 23일이 열대야였습니다. 이 기록은 서울의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최다 기록이죠. 지난 7월 열대야는 지역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남쪽의 서귀포에서도, 또 동쪽의 강릉에서도 열대야는 기승을 부렸어요. 올해 서귀포의 7월은 31일 중 27일이 열대야였고요, 강릉에선 밤 기온이 30도 넘게 유지되는 '초열대야'가 4번이나 관측될 정도였죠.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응급실을 찾아온 온열질환자 규모도 크게 늘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일찍부터 더위가 찾아오면서, 질병관리청에서도 평년보다 빠르게 온열질환감시체계를 운영했어요.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를 통해 올해 온열질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8월 5일까지 전국 응급실에 집계된 온열질환자는 총 3,306명입니다. 최근 5년 사이의 환자 규모와 비교해 보면, 작년과는 1.8배, 2021년에 비해선 2.9배 급증한 모습이죠. 2025년 온열질환자 규모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폭염이었던 2018년과 비견될 정도입니다. 같은 기간 2018년의 온열질환자는 모두 3,329명이었고, 39명이 사망했습니다. 사망자 규모는 올해가 20명으로 더 적어서 다행이지만, 총 온열질환자 규모는 2018년과 큰 차이가 없어요.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열대화... 여전히 줄지 않은 탄소 배출 이렇게 뜨거워진 날씨가 우리나라만 겪는 건 아니겠죠. 우리가 느끼는 폭염은 전 지구에 닥친 기후 위기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NASA가 분석한 자료를 살펴보면, 2024년은 1880년 이래 가장 더운 해였어요. 20세기 평균 기온과 비교하면 1.28도나 높았습니다. 이 평균 기온과 비교해서 지난해 지구가 얼마나 더웠는지를 그려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온 세상이 빨갛죠. 유럽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에선 작년 지구의 온도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서 1.6도 더 높았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최후의 마지노선이었던 1.5도 선이 처음으로 뚫린 겁니다. 하루하루를 산업화 이전 평균 온도와 비교해 보면 작년 366일은 모든 날이 1.25도 높았고, 그중 4분의 3은 1.5도 넘게 뜨거웠습니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서 작년 한 해 1.5도를 넘긴 날은 모두 277일입니다. 재작년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급격한 증가세인데요, 2023년도 1년 내내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1도 넘게 더웠지만, 1.5도 넘게 뜨거워진 날은 175일뿐이었습니다. 지난 2023년,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온난화 시대의 종결을 선언했습니다. 희망의 종결이라면 좋겠지만,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건 지구 열대화 시대죠. 따뜻해지는 'warming'을 넘어서, 펄펄 끓는 'boiling' 시대를 경고한 겁니다. 지난 6월의 포르투갈 모라에선 수은주가 46.6도를 찍었고요, 중국 충칭에선 체감온도가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닥치는 등 전 세계가 폭염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유엔국제사법재판소에서는 이렇게 심각한 기후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기후변화가 단순히 법적 쟁점을 넘어섰고, 지구라는 행성 전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위기라고 강조했죠. 한 해 한 해가 다를 정도로 극한의 기후가 다가오고 있지만, 탄소 배출량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작년 화석연료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사상 최대치를 찍기도 했죠. 1.5도 상승을 제한하기 위해 기후협약을 맺고 전 세계가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 겁니다.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자, 과학자들은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아예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조작해 보자는 거죠. 바로 '지구공학'의 등장입니다. 햇빛을 가려서 온도 상승을 막아보자는 과학자들 1991년,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에서 엄청난 폭발이 발생합니다. 뾰족했던 산은 대폭발로 깎여 나갔고, 그 자리엔 거대한 칼데라가 생겼죠. 화산이 폭발하면서 대기 중에 분출한 화산재는 그 양이 너무나도 많아서 성층권까지 화산재 기둥이 형성될 정도였습니다. NASA에서 분석해 보니 이 화산 폭발로 약 1,500만 톤의 이산화황이 성층권에 분출되었는데,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이 대기 중의 물과 반응하면서 황산 입자로 구성된 에어로졸 입자층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웬걸요, 대폭발 이후 지구 평균 기온이 떨어지는 겁니다. 알고 보니 분화로 만들어진 에어로졸 층이 태양빛을 더 많이 산란시키면서 지표면에 닿는 빛을 줄여준 거죠. 대류권과 달리 성층권에는 대류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서, 한 번 만들어진 에어로졸 층은 수년간 영향을 주었습니다. 화산 폭발 영향으로 2년 가까이 지구 평균 온도를 낮췄고, 그 수치는 무려 0.5도나 됩니다. 과학자들은 피나투보 화산에서 영감을 받아 태양광이 지구에 들어오는 걸 줄여보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지구 단위의 공학적 접근, 지구공학입니다. 그중에서도 태양광에 집중한 분야를 '태양지구공학(SRM)'이라고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화산 분화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방식이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SAI)' 기법입니다. 그 외에도 해양 구름을 밝게 만들어서 태양빛의 산란을 증가시키는 기법(MCB)도 있고, 구름 씨앗을 뿌려 인공 새털구름을 만들어서 지구 복사열이 잘 빠져나가도록 하는 방법(CCT)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허무맹랑한 소리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과학자들이 뛰어드는 학문 분야이자, 점점 더 이 태양지구공학에 자본이 몰리고 있죠. 기후위기는 점점 가속화되고 심해지는데 이산화탄소는 줄지 않고 있으니, 인공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겁니다. 학술정보 플랫폼 'Lens'에 태양지구공학을 검색하면 이렇게나 많이 나옵니다. 1950년부터 현재까지 총 11만 6,055개의 자료가 나와요. 최근으로 오면 올수록 연구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죠. 그 이유는 자본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2년 동안 태양지구공학에 투자된 금액은 연 3,000만 달러를 넘기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누적 투자금액은 1억 9,170만 달러고요. 2029년까지 예정된 투자액이 1억 6,000만 달러가 넘어서 이러한 증가세는 지속될 예정입니다. 투자한 사람들의 면면을 따져보면, 기술 거물들의 이름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단 빌 게이츠는 2030년까지 이 태양지구공학에 총 970만 달러를 투자할 예정입니다. 페이스북의 공동 창립자인 더스틴 모스코비츠는 개발도상국의 태양지구공학 과학자들에게 90만 달러를 투자했고, 구글 부사장 출신의 앨런 유스터스는 하버드 대학교의 지구공학 프로젝트에 기부한 바 있죠. 국가별로 살펴보면 영국이 가장 적극적입니다. 영국의 고등연구발명청(ARIA)은 이 태양지구공학에 5,000만 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921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죠. 위험성이 너무 큰 지구공학... 시민들 몰래 실험 강행? 전 세계 79개국 정상들이 지구온난화에 대비하기 위해 'CW-7'이라는 냉각제를 살포하기로 결의합니다. 시원한 날씨를 되찾길 바라며 이름도 'Cold Weather'에서 따와 만든 냉각제를 2014년에 살포를 하죠. 하지만 CW-7의 부작용으로 지구엔 빙하기가 찾아오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현실이 아니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이야기입니다. 설국열차뿐만 아니라 다양한 SF 작품에서는 인류가 인위적으로 태양빛을 차단했을 때의 위험성을 경고해 왔습니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암흑폭풍작전'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죠. 전문가들도 비슷한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태양지구공학이 실제 인간과 자연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게 거의 없다고 지적합니다. 지구라는 거대한 규모의 시스템을 컨트롤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뒤범벅이 되어있는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조절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실제로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관측되기도 합니다. 지구공학의 한 분야로 볼 수 있는 인공강우. 중국의 충칭에서 폭염을 식히기 위해 인공강우를 실시했는데, 태풍급의 폭풍우가 갑자기 불어닥친 일이 있습니다. 중형급 태풍 수준인 초속 34.4m를 기록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난 거죠. 현지 기상당국은 불어닥친 폭풍우가 인공강우 탓은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요.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건, 태양지구공학 연구 자금의 대부분이 북반구 국가들에게로 간다는 겁니다. 현재까지 태양지구공학 투자가 이뤄진 국가는 모두 34개국입니다. 이 중 북반구 국가 12개국이 받은 투자금은 1억 8,820만 달러입니다. 반면 남반구 국가 22개국은 350만 달러, 전체의 2%에 불과하죠.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한 선진국이 투자를 받고, 또 실험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하고 설득하기 쉬운 정부가 있는 남반구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은 남반구 국가들이 떠안게 될 거고요. 지난 5월엔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태양지구공학 역사상 최대 규모의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아프리카의 시민단체들은 이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연구진을 향해 '아프리카는 실험실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연구진은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몰래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워싱턴 대학의 연구팀은 캘리포니아 알라메다에서 MCB 기법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항공모함 위에서 바닷물을 공중에 분사해 밝은 구름을 만들어 태양빛을 산란시켜 보겠다는 거였죠. 이들은 북미 해안의, 서울 면적의 약 17배에 달하는 해역에 대규모 구름을 생성할 계획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실험을 사전에 고지 없이 진행했다는 겁니다. 알라메다 시의회는 바로 제지에 나섰고, 결국 실험은 20분 만에 중단되었죠. 이후 알라메다 시의회가 재개 여부를 논의했는데, 만장일치로 실험을 허가하지 않았어요. 워싱턴 대학뿐만 아니라 과거 하버드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당시 하버드에선 성층권에 분필 가루의 주 성분인 탄산칼슘을 방출해서 실험을 진행하려 했습니다. 스웨덴에서 첫 실험을 진행하려 했으나, 주민들과 여론의 반대가 심해 프로젝트가 취소된 바 있죠. 많은 과학자들이 검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일부 연구진은 실험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태양지구공학에 대한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제적으로 태양지구공학에 대한 비사용 협정을 요구하는 서한에 서명하기도 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유엔환경총회에서도 이 기술을 규제할지를 두고 합의를 시도했지만, 불발되기도 했죠.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지구공학'이라는 카드까지 꺼내 든 과학자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명확한 검증도 없는 채로, 시민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몰래 실험을 강행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더 중요한 것은 태양빛을 잠시 가리는 이 기술이 탄소 배출을 줄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할 겁니다. 점점 더 극한으로 치닫는 기후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확실한 기술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하루라도 빨리,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우리 모두의 구체적인 행동이 아닐까요? 오늘 준비한 오그랲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기후통계분석-폭염일수 | 기상청 - 2024년 여름철 기후특성 | 기상청 -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운영 결과 | 질병관리청 - 2024 Was the Warmest Year on Record | NASA Earth Observatory - One Atmosphere: An independent expert review on SRM research and deployment | UN -Seven charts to discover the C3S Global Climate Highlights 2024 report | Copernicus Climate Change Service - Scholar Analysis - Solar Radiation Modification | Lens - SRM Funding Overview | SMR360 글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