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입사. 사회부 경찰팀을 시작으로 문화과학부 IT 담당, 정치부 통일외교안보팀을 거쳐 도쿄특파원을 지냈습니다. 대중 문학과 음악에 관심이 많고, 야구와 러닝을 좋아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엄밀히 말해 신작은 아니다. 1980년, 신인 소설가 하루키가 문예지 '문학계'에 발표한 같은 제목의 중편이 그 원형이다. 그러나 작가 후기에 따르면, 하루키는 중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내용 면에서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책으로 내진 않았다. 그리고 하루키는 그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계속 신경이 쓰여 첫 장편 [양을 쫓는 모험](1982)을 낸 뒤 이 중편을 다시 고쳐 쓰기로 했는데, 하루키의 팬이라면 이내 알아차리겠지만, 그렇게 나온 것이 1985년에 출판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다. 마침 이번에 나온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일본어판 하드커버 마지막에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대한 소개(광고? 이제 와서?)가 있다. 아래 굵은 글씨가 단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원형으로 두고 있다. 노老과학자에 의해 의식의 핵에 어떤 사고회로가 끼워 맞춰진 〈나私〉. 그 회로에 숨겨진 비밀을 둘러싸고 활약하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벽에 둘러싸인 정적의 도시에서, 단각수의 두개골로부터 꿈을 읽으며 사는 〈나僕〉의 이야기 '세계의 끝'. 모험극과 환상 속 세계, 그 평행세계의 이야기가 약동한다. 무라카미 문학의 정점을 이루는 걸작 장편.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다시 말해 하루키의 새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부분은 통째로 삭제한 뒤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고, '세계의 끝' 분량은 기본 뼈대에 이런저런 첨삭을 가해 짜 맞춘 작품이다. '하드보일드'와 '세계의 끝' 스토리가 주인공의 '안팎'에서 평행하게 진행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는 달리,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두 세계는 비교적 단일한 시간적 수직선 상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며,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바깥'의 이야기가 전혀 '하드보일드'하지도 않다. 하루키가 남긴 작가 후기에는 최초의 중편소설에 대한 느낌과, 그 중편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1차적으로 탄생하게 된 배경과, 40년이 지나 다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으로 재탄생하게 된 이유가 이렇게 적혀 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집필은 나에게 더없이 스릴 있고 즐거운 작업이었다. 이 소설을 완성하고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이 1985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절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작가로서 경험을 쌓아가며 나이가 들면서, 그것으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는 미완성 작품에-혹은 작품의 미숙성에-적절한 결말을 냈다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도 한 가지 대응이긴 했지만, 다른 형태의 대응이 또 있어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덮어쓰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병립하는, 가능하면 상호 보완적인 작품이.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작가 후기 하루키는 '다른 형태의 대응'이라고 멋들어지게 말했지만, '우려먹기'라는 아름답지 못한 단어가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건 하루키가 새 장편을 썼고, 그게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원형'이 된 작품을 '다시 쓴' 거라는 일본 현지의 보도를 접했을 때 퍼뜩 떠오른 생각이기도 하다. 지난 6월, 특파원 시절을 보낸 도쿄를 떠난 지 1년 3개월 만에 다시 찾아간 단골 서점-메구로역을 품고 있는 상점가 5층에 있는 유린도(有隣堂)-에서, 진열대 한가운데 산처럼 쌓여 있던 일본어판을 사면서도 그런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솔직히 번역본이 나오면 그때 한 번 들춰나 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이 소설의 출발과, 그 사이 있었던 한 차례의 변용을 알고 나서 갖게 된 불온한 생각은,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작가후기를 제외하고 655페이지인 일어판이 761페이지로 늘어난, 그래서 실로 오래간만에 1주일에 걸쳐 공들여 읽고 난 뒤에 떠오른 몇 가지의 키워드에 대한 감상을 여기에 남기려 한다. 벽과 알, 형태를 바꾼 꿈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에서 주인공의 역할은 '꿈 읽는 이'다. 도시의 유일한 '도서관'에 가서 그곳에 저장된 수많은 '오래된 꿈'을 읽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도시의 '꿈'은 마치 '책'처럼 낱개로 도서관의 선반에 놓여 있는데, '사서' 역할을 하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에게 가져다주고, 그 꿈에 손을 대 온기를 느끼는 순간 '꿈'은 주인공에게 의해 '읽히게' 된다. 여기까지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같은 설정인데, 달라진 것은 그 '꿈'의 모양이다. 먼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묘사된 꿈의 모양은 이렇다. 나는 그것을 살짝 들고 오래된 꿈의 흔적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훑어봤다. 그러나 아무리 주의 깊게 둘러보아도 거기에는 무엇 하나 실마리라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동물의 두개골일 뿐이었다. 큰 동물은 아니었다. 뼈의 표면은 오랜 세월 동안 햇볕에 드러나 있었던 것처럼 바싹 말라 있었고, 색이 바래 본래의 색을 잃고 있었다. 앞으로 길게 튀어나온 턱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갑자기 얼어서 굳어버린 듯 가볍게 열린 채 고정되어 있었고, 두 개의 조그마한 눈구멍은 그 알맹이를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채 안으로 펼쳐져 있는 깊은 허무의 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p.97, 김수희 옮김, 열림원 1997 즉, '도시'의 '오래된 꿈'은 도시에 있는 단각수(위의 책에선 '일각수'로 번역)의 두개골이다. 그런데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하루키는 '꿈'의 모양을 이렇게 바꿨다. 달걀처럼 생겼는데, 크기와 색깔은 하나하나 다르다. 여러 종류의 동물이 낳고 간 알 같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달걀 모양이라고 할 수 없다. 손에 들고 자세히 보면 아래쪽 절반이 위쪽에 비해 더 불룩한 것을 알 수 있다. 무게의 균형도 맞지 않는다. 그래도 그 덕분에 앉음새가 안정되어 따로 받쳐주지 않아도 선반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은 없다. 표면은 대리석처럼 딱딱하고 매끈하게 반질거린다. 그러나 대리석 같은 묵직함은 없다. 어떤 소재로 이뤄졌는지, 어느 정도의 강도를 지녔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바닥에 떨어뜨리면 깨져버릴까? 어찌 됐건 매우 주의 깊게 다뤄야 한다. 희귀한 생물의 알을 다룰 때처럼. p.47 40여 년의 세월을 지나 하루키가 '(단각수의) 두개골'을 '알'로 바꾼 이유는 뭘까. 일개 독자인 나는 그저 그 사이에 있었던 하루키의 글들을 떠올리며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내가 퍼뜩 떠올린 단서는 '벽과 알'에 대한 하루키의 언급이다. 2009년 예루살렘상 수상 소감에 나온 유명한 문장이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적인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내가 소설을 쓸 때 늘 마음속에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종이에 써서 벽에 붙여놓지는 않았습니다만 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런 말입니다.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91, 이영미 옮김, 비채 2011 2023년의 '오래된 꿈'이 두개골이 아닌 알의 형태를 지님으로써, '도시'는 1985년의 무채색 작동 원리에서 과감하게 벗어난다. 하루키가 '오래된 꿈'의 저장 매개를 가시화한 죽음을 상징하는 '두개골'에서 생명을 잉태할 가능성을 가진 '알'로 묘사한 것은 '도시'의 존재 기반을 바꾸는 중대한 변화다. 도시 주민들의 탈색된 사념/기억을 (아마도) 짊어지고 그들을 위해 대속하는 단각수의 두개골로 묘사했던 오래된 꿈을, 이번 소설에서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알'의 형태로 바꾼 것이다. 이를 통해 하루키는 꿈이란 단순히 '저장'되고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읽는 행위' 자체를 통해 공기 중에 어떤 형태로든 '가능성'을 방출하는 것이라는, 과거에 비해 보다 적극적인 해석을 들고 온 것이 아닐까. 2009년의 수상 소감에서 하루키는 친절하게도 '알'과 함께 '벽'도 언급했다. 원주민과 이주민을 안과 밖으로 나누는 '벽'은 그 자체로 '단단한 시스템'을 상징한다. 개념으로서의 벽이 상징을 벗어나 실제로 작용하는 이스라엘이라는 공간에서 '벽과 알'을 언급한 것은 하루키의 내면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1980년과 2023년이라는 긴 시간의 무게만큼 하루키의 내면은 '벽과 알'이라는 은유를 키워 왔고, 그 변화 과정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 2009년의 저 '벽과 알'에 대한 언급이 이정표처럼 서 있는 느낌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도시를 둘러싼 벽이란 아마 선생님이라는 한 인간을 이루고 있는 의식일 겁니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의식은 빙산과 같아, 수면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건 극히 일부분입니다.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 가라앉아 감춰져 있습니다. p.651 '벽'은 '이곳'과 '저곳'의 사이에 버티고 서서 마음이 오가는 길을 가로막고(칼날 하나를 허락하지 않을 만큼 견고하며, 무시무시한 문지기가 있다), 약해지는 마음에 따라 스스로 모습을 바꾸고(지도를 만들기 어렵게 한다), 그러면서도 남쪽 웅덩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그림자는 그곳을 통해 탈출한다), 다층적인 의식의 양면을 분리하는 상징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하나의 개체로 벽에 던져진 알은 힘없이 깨지고 말지만, 도서관에 나란히 '소장'된 알은 벽에 의해 안전하게 보호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루키는 그 벽의 '불확실성'을 굳이 드러내 그런 '시스템적인 벽'이 결코 숙명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고, 벽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마음가짐-으로 '상태의 변경'을 꾀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작지만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도서관에 보관된 알은 그 자체로 안전하지만 그건 어찌 보면 '정체'이기도 하고, '꿈 읽는 이'가 손으로 받쳐 들지 않으면 그저 '정적'의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벽'의 이미지는 이미 하루키의 다른 장편소설 [태엽 감는 새 연대기](1995)에도 등장한다. 여기서 주인공 오카다 도루는 실종된 아내 구미코가 존재하는 의식(意識)의 공간으로 이동할 때 물컹한 젤리와도 같은-불확실한-벽을 통과하는 의식(儀式)을 치른다. 스스로 빛을 차단한 우물의 마른 바닥에 기대앉아, '저쪽 세계'에서도 나를 지켜 줄 야구 방망이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로 말이다. 도서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주인공은 '도시'를 자유의지로 탈출한 '그림자'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다시 '이쪽 세계'로 돌아온다. 작은 출판유통사의 직원이 되어 껍데기처럼 살던 그는 마흔다섯 살 중년이 되어 '도서관'의 이미지에 다시 강하게 사로잡힌다. '도시'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숙명-즉, 도서관에서 꿈을 읽어야 하는-이 '이쪽 세계'에서도 자석처럼 그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자기가 존재해야 할 어딘가의 도서관, 그곳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강한 암시'를 꿈을 통해 얻은 그는 '후쿠시마현 **군 Z** 마을'의 작은 도서관에 관장으로 정착하게 된다. 이렇게 소설 속에서 도서관은 '이쪽'과 '저쪽' 두 세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장소다. 하루키의 다른 소설에 도서관이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등장하는 것은 단연 [해변의 카프카](2002) 일 것이다. 내면에 어떤 '결락'을 끌어안은 주인공이 살던 도시를 떠나 먼 고장의 도서관으로 이동하게 되는 플롯은 이 작품에서 먼저 나왔다. 누군가의 '기부'와 '기여'로 만들어진 도서관의 시작, 도서관을 운영하는 소수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도서관의 분위기에 대한 묘사는 물론, '이쪽'과 '저쪽'을 잇는 통로로서의 성격까지, 두 소설 속 도서관은 서로 상당히 닮아 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곳에서 꿈이라는 암시를 통해 자신을 그곳으로 부른 전 도서관장 고야스 씨와 만난다. 그는 이미 지난해 죽은 '유령'이지만, 일상이 조용히 흘러가는 '이쪽 세계'에서조차 삶과 죽음에는 별다른 구분이 없다. 이 메시지는 아주 직설적으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데, 등장인물인 '역 앞 커피숍의 여자'가 읽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그대로 인용된다. 점심시간 조금 전에 칼라마르 촌락을 통과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매일 축제 소동을 벌였던 그 항구도 지금은 거리에 인적이 없고 완전히 쇠락했다. 흰옷을 입은 여자가 손수건을 흔들며 신호를 보내는 것이 보였다. 저토록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태워주지 않는지 페르미나 다사가 신기하게 여기고 있자, 선장이 저건 물에 빠져 죽은 여자의 망령이며, 지나가는 배를 건너편 해안의 위험한 소용돌이 쪽으로 꾀어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가 바로 여자의 옆을 지나갔으므로 페르미나 다사는 햇살을 받은 그 여자의 모습을 아주 자세하고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이 세상 것이 아님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낯익은 얼굴처럼 보였다. p. 671 옐로 서브마린 소년 소설 속 세계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존재의 양쪽 끝은 거대한 곡선을 그리며 다시 맞물려 있으며, 맞물린 지점의 경계는 마치 강이 바다로 흘러들고 바다가 강으로 거슬러 오르는 지점처럼 모호하다. 전 도서관장인 고야스 씨가 실은 '죽은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주인공은 공기처럼 형체 없이 공간을 채우는 모호함 속에서 비교적 선명하게 제시되는 것들을 눈에 담고, 귀로 들으며 모호함의 안갯속을 헤쳐나간다. 그러다가 운명적으로 한 소년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그가 이 도서관에 오게 된 궁극적인 이유다.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작은 체구에 나이는 열여섯에서 열일곱 살 정도, 초록색 요트파카에 옅은 톤의 청바지를 입고 검은색 농구화를 신고 있었다. 어느 것이나 상당히 낡았고 미묘하게 사이즈가 맞지 않는 인상이었다.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건지도 모른다. 요트카파 앞면에는 노란 잠수함이 프린트되어 있다. 비틀스의 〈옐로 서브마린〉이다. 존 레넌이 옛날에 썼던 것과 비슷한 동그란 금속테 안경이, 소년의 홀쭉한 얼굴에는 너무 큰 듯 약간 비스듬하게 얹혀 있다. 마치 1960년대에서 이곳으로 잘못 섞여 들어온 것 같다. p. 454-455 '옐로 서브마린 소년'은 주인공이 열일곱 살 시절에 '여자아이'와 함께 구상한-창조한 '도시'의 지도를 그려 준다. 그곳에 있던 시절 주인공조차 완성하지 못했던 지도다. 도시를 만들었을 때 주인공과 같은 나이, 주인공이 끝내 능숙해지지 못했던 '꿈 읽는 이'로서의 가능성, 그리고 이쪽 세계의 방대한 지식을 마이크로필름에 차곡차곡 담아 옮기는 능력(그는 이쪽 세계에서는 이른바 '서번트 증후군'을 갖고 있다)을 갖고 있는 '옐로 서브마린 소년'은 주인공이 열일곱 살 시점, 그녀와 함께 갓 만들어 놓은 도시에 남겨놓고 돌아온 또 다른 '자아'다. 그래서 이쪽 세계에서 소년의 '실종'은 저쪽 세계로의 '이주', 즉 '복귀'를 상징하며, 그것은 두 세계가 서로의 끄트머리에서-시간의 벽을 넘어-하나로 맞붙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맞붙는다고는 해도 그것이 '완결'이나, '완성'은 아니다. 그저 잘하면 틈을 거의 메울 수 있을 거라는 '위안'이다. 오른손과 왼손 손바닥을 들어 가슴 높이에서 꼭 맞잡는 것처럼. 그리고 '막다른 곳'의 풍경 어느 인터뷰에서 하루키는 자신에게 '끝'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질문자는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하루키는 '끝'이라는 테마를 '죽음'으로 이어간 뒤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죽음이란, '종말'이라기보다는 '막다른 곳'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세계의 막다른 곳'의 풍경(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내적인 광경이며 또한 신화적인 광경입니다)을 조금이라도 생생하고 극명하게 묘사해 내는 것이 내 작품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겠지요. - [잡문집] p.413-414 문예지 <꼭두서니> 인터뷰. 2005년 3월 그리고 이 소설의 시작에는 '비가 내리는 바다'가 등장한다. 앞서 인용한 인터뷰에서 하루키가 언급한 '세계의 막다른 곳의 풍경'은 이런 식으로 완성됐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속적'이라는 어휘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비 내리는 바다의 광경 정도다. 나는 바다에 비가 내리는 광경을 볼 때마다 어떤 감동을 받는다. 아마 바다가 영겁에 걸쳐-혹은 거의 영겁에 가까운 시간 동안-변화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닷물은 증발해 구름이 되고 구름은 비를 내린다. 영원한 사이클이다. 바닷물은 그렇게 조금씩 교체되어 간다. 그러나 바다라는 총체가 변화하는 일은 없다. 바다는 늘 똑같은 바다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인 동시에, 하나의 순수하고 절대적인 관념이기도 하다. 내가 바다에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느끼는 건 (아마도) 그런 종류의 엄숙함이다. p.79 '비 내리는 바다'는 소설의 마지막 단락에 다시 등장한다. 처음과 끝이 맞물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이클인 것이다. 이 사이클의 완성이 하루키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40년의 세월을 건너 길어 올려 해체한 뒤 다시 마무리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황혼에 다다른 그가, '끝'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을 것이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 몇 초 동안 수많은 정경이 차례로 뇌리에 떠올랐다. 가지각색의 정경이다. 내가 소중하게 지켜온 모든 정경이다. 그중에는 비가 쏟아지는 드넓은 바다의 광경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망설임은 없다. 아마도. p.761 하루키는 더는 새로운 소설, 아마도 장편소설은 이제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세운 가설이다. 가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나는 그리 슬퍼할 것 같지 않다. 빛나는 시간은 이미 기억 속에 있고, 그건 세상 모두가 부정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 기억은 이름조차도 필요 없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반짝이는 별에게도 그러한 것처럼. 그런 시간에는 너에게도 나에게도 이름이 없다. 열일곱 살과 열여섯 살의 여름 해 질 녘, 강가 풀밭 위의 선명한 기억-오직 그것이 있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에 하나둘 별이 반짝일 테지만, 별에도 이름은 없다. p.695 디자인 : 박수민
빅독이 준 '충격' '보스턴 다이내믹스 Boston Dynamics'라는 기업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전자공학과 컴퓨터 과학을 가르치던 마크 레이버트(Marc Raibert) 교수가 설립한 로봇 공학 기업으로, 지난 1992년에 설립됐으니 올해로 딱 30주년을 맞았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2016년 로봇 라인업 / 출처 : 보스턴다이내믹스 유튜브 기자가 이 기업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지난 2006년이었다. 당시 기자는 정보통신부를 출입하면서 IT 업계를 취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회사가 주최하는 서울디지털포럼(SDF)의 그 해 주제인 인공지능(AI)에 맞는 6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16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AI 기술은 이제 막 기지개를 켜던 시절로, 인공지능의 이론과 역사만으로는 '눈이 즐거워야 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자를 포함한 제작진은 약간의 '꼼수'를 부리기로 했다. AI를 다루되, 실제로 움직이는 로봇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기로. 그때 시야에 들어온 것이 로봇 '빅독 Big Dog'이었다. '빅독'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으로, 미국의 최첨단 공학 연구를 주도하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Di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이 자금을 대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하버드 대학 등이 개발에 동참했다. 2005년에 세상에 공개됐으니 2006년의 로봇 다큐 소재로는 딱 적당하다 싶었다. 당시 어렵게 찾아본 빅독의 구동 영상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네 발굽만으로 땅을 딛고 서서 기묘한 리듬을 타며 앞으로 이동하고 연구진이 설치한 장애물을 넘어가는 모습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건 거구의 제작진이 '으라차!' 하면서 발로 서 있는 빅독을 세게 밀어도(걷어차도) 비틀거리기만 하고 넘어지지 않는 영상이었다. 자이로 센서와 모터를 결합해 순간적인 충격을 흡수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빅독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임에 분명했지만, 걷어차인 뒤에도 다리를 교차하며 힘을 모아 다시 일어서는 빅독의 모습이 묘하게 처연하고, 묘하게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빅독'의 이런 모습이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인기를 끌면서 이 '걷어차는' 영상은 빅독을 상징하는 일종의 인터넷 밈(meme)이 됐다. 다큐로 만난 2006년 이후에도 빅독이 꾸준히도 걷어차인 걸 보면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은근히 이걸 즐긴 것 같다. 걷어차기 위해 만든 건 아니지만... / 출처 : 보스턴다이내믹스 유튜브, 2009년 빅독 개발에 돈을 댄 '전주錢主'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빅독은 개발 초기부터 군사적 용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지뢰나 부비트랩이 가득한 전장의 정찰이나 폭발물 탐지를 담당하거나, 등에 화물을 올려 이동시키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는 고성능 폭탄을 짊어지고 빗발치는 총탄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달려가 적진으로 뛰어드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후 빅독을 개량해 달리기 성능을 끌어올린 '치타 Cheetah', GPS를 장착하고 전천후 환경에서의 작전 수행능력을 시험한 '알파독 Alphadog'이 잇따라 나오며 관심을 끌었지만, 결과적으로 빅독을 '로봇 군견'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은 여러 개의 모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는 '소음' 때문이었다. 스팟이 준 '공포' 입대를 거부(?)당한 빅독은 그 후 진화를 거듭해 2016년 '스팟 SPOT'으로 발전한다. 몸무게 25kg으로 궁극의 다이어트를 거치며 전 세대보다 훨씬 날렵해진 스팟은 센서로 지형지물을 파악해 안정적으로 이동하는 빅독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일부 모델에서는 머리 부분에 팔을 부착해 인간의 일상을 돕는 방향으로 활용성을 극대화했다. 집 안을 돌아다니며 인간이 마구 벗어던진 빨랫감을 줍고, 짐을 든 인간을 위해 문을 열어주고, TV 리모컨을 가져다주는 '생활 동반자'로 돌아온 것이다. 스팟 석 대가 있으면 줄넘기를 시킬 수도 있다. / 출처 : 보스턴 다이내믹스 유튜브 지난해 미국 뉴욕 경찰은 이렇게 한층 친근해진 스팟 6대를 보스턴 다이내믹스로부터 임대해 경찰 업무에 시범적으로 투입했다. 빅독의 DNA를 살려 거리를 순찰하고 카메라와 센서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장소의 정보를 수집해 경찰관에게 알려주는 임무가 부여됐다. 그런데 맨해튼에서 벌어진 한 인질 사건에 스팟이 투입되면서 논란이 됐다. 주민들이 로봇의 실험 대상이 됐다며 공개적으로 불쾌함을 표시했고, 프라이버시 노출에 대한 거부감을 호소했다. 여기에 과거 흑인들의 폭동 진압에 맹견이 투입된 사실을 상기하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지면서 인종 갈등까지 논란의 촉매제가 됐다. 결국 비판 여론에 밀려 뉴욕 경찰은 스팟을 '경찰견'으로 활용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아마도 맨해튼 아파트의 주민들은 사건 현장에 투입된 스팟을 보면서 뭔가 기괴하면서도 음울하고 위협적인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그 감정은 사실 스팟의 할아버지 뻘인 빅독이 사람의 발길질에도 끝내 쓰러지지 않고 비틀거리며 자세를 재정비하는 오래된 영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신기한 것은 잠시 뿐, 인류에게 가장 익숙한 반려동물인 개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강인하고, 감정이 없고, 프로그램으로 정해진 목적의 달성에만 충실한 '냉혈 존재'에 대한 이질감이 공포로 나타났다고 보면 될까. 50년 동안 입 벌리고 있는 '불쾌한 골짜기' 인간이 로봇에 대해 느끼는 이런 감정은 이미 '불쾌한 골짜기 uncanny valley'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불쾌한 골짜기는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 政弘)가 1970년에 소개한 개념으로 로봇이 점점 사람의 모습과 닮아갈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갑자기 거부감이 늘어나 호감도가 뚝 떨어지고, 로봇이 여기서 더 정교해지면 다시 호감도가 상승한다는 이론이다. 호감도의 곡선이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골짜기' 모양을 보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모리 박사는 인간의 모습을 닮은 로봇을 예로 들었지만 유구한 인류의 역사 동안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한 동물에 대해서도 이 이론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바로 빅독과 스팟의 경우처럼 말이다.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의 불쾌한 골짜기 곡선 스팟의 '재취업' 흥미로운 건 뉴욕 경찰(NYPD)이 포기한 로봇개 스팟을 이번에는 뉴욕 소방(FDNY)이 채용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17일 뉴욕타임스는 FDNY가 보스턴 다이내믹스로부터 스팟 2대를 각각 7만 5천 달러(약 1억 2천만 원)에 구입해 화재와 재난 현장의 데이터 수집과 인명 수색, 구조 업무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NYPD가 스팟을 '임대'했다가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퇴출시킨 것에 비하면 훨씬 적극적인 의지를 엿볼 수 있는데, 경찰과 소방 업무의 근본적인 차이가 '불쾌한 골짜기'와도 연결되는 지점을 시사하고 있다. 로봇 스팟의 재취업 앞서 인질 사건 현장에 투입된 경찰의 스팟 로봇에 대해 주민들이 보인 거부반응을 소개했는데, 인질 사건의 경우 직접적인 사건 관계자가 아니라면 주변인들은 모두 사건의 해결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일 것이다. 이들은 사건의 빠른 해결, 즉 일상 복귀에 모든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당연한데, 이때 처음 마주하는 공공 서비스가 개의 모양을 한 로봇인 경우 사람들이 신뢰감을 갖고, 나아가 사건 해결에 대한 기대를 품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재나 붕괴처럼 생사가 극적으로 갈리는 급박한 사고 현장이라면 인명 구조로 직결되는 초기 정보 수집과 수색을 담당하는 존재가 인간이든 로봇이든 거부감을 느낄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불쾌한 골짜기'가 입을 벌릴 공간이 처음부터 제한되는 셈이다. 여기서 다시 2006년의 '로봇 다큐' 제작 당시로 잠깐 돌아가 보자. '꼼수'로 로봇을 잔뜩 보여주기로 한 제작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빅독뿐만이 아니었다. 아시모의 '한계' 당시 제작진은 일본의 자동차기업 혼다(혼다 기연공업주식회사)가 제작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아시모 Asimo'도 함께 취재했다. 2000년에 개발된 아시모는 세계 최초의 2족 보행 로봇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았다. 2005년 당시 3세대 업그레이드가 이뤄져 시속 6km 정도로 달리고(곡선 주행도 가능), 물론 프로그램에 따른 '연기'였지만 팔과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다. 키 120cm 정도의 아시모가 무대 위를 종종거리며 달리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경탄했고, 아시모는 존재 자체로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형 로봇)의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듯했다. 인간의 움직임을 재현하기는 했지만, 아시모는 외모도 색도 인간과는 확연히 달라 보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다. 아시모는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달린다. 2022년 3월 일본 도쿄 혼다 쇼룸 / 출처 : 혼다 유튜브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시모는 세계 곳곳의 수많은 전시회에서, 행사장에서, 도쿄 한복판에 차려진 화려한 쇼룸에서 무대 위를 달리고, 손을 흔들고, 악수를 하고, 성우의 목소리를 빌려 인사말을 건넸지만 '그 이상'을 이루지 못했다. 하얗고 동글동글한 외모로 로봇을 친근한 존재로 인식시키며 휴머노이드와 함께 하는 미래를 상상하게 해주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엄밀히 말해 '귀엽지만 비싼 장난감' 로봇을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 아틀라스의 '뒤집기' 아시모가 전 세계를 돌며 '무해한' 미래를 전파하고 있을 때 빅독과 스팟을 만든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이번에는 휴머노이드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틀라스 Atlas'가 공개된 것이다. 점프하는 아틀라스 / 출처 : 보스턴 다이내믹스 홈페이지 아틀라스는 2013년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펫맨 PETMAN'을 기반으로 만든 직립 2족 보행 로봇이다. 개발 초기에는 자갈밭, 장애물 지역 등 불규칙한 지면에서 넘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동하는 '보행'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상당히 빠른 시간에 이 단계를 뛰어넘었다. 2016년에 초기 모델보다 아담해진 2세대가 공개됐는데, 이때부터는 운동능력 면에서 그때까지만 해도 경쟁자였던 아시모를 저만치 뒤로 따돌리게 된다. 물구나무를 서다가 그대로 앞구르기를 하고, 공중에서 몸을 180도 회전시켜 착지하는 등 마치 체조선수와 같은 움직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틀라스의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목격한 혼다는 두 손을 들고 2018년에 아시모 개발 중단을 발표했다. 아틀라스 두 대가 동시에 공중제비를 돌고 있다. / 출처 : 보스턴 다이내믹스 유튜브 2022년 현재 아틀라스는 이른바 '파쿠르 parkour'라고 하는 장애물 넘기를 수행하고,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려 착지하는 '곡예'까지 가능한 단계로 발전했다. 이렇게 아틀라스의 운동 능력이 평범한 인간 이상으로 발전하는 것은 로봇 공학의 발전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 반대쪽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아장아장 걷고, 발을 동동 굴러 달리는 아시모는 귀엽게 봐 줄 수 있었지만, 빠른 속도로 장애물을 뛰어 넘고 공중제비를 도는 등 운동능력 면에서 평균적인 인간에 필적하거나 때론 능가하는 아틀라스는 왠지 무서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바로 불쾌한 골짜기가 입을 벌리게 된 것. 아틀라스의 개발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당연히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아틀라스 개발 초기,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구글에 인수된 상태였는데 아틀라스의 초기 모델이 공개된 뒤 인터넷에서 아틀라스에 대한 '공포' 버즈가 일자 모기업 구글이 상당한 걱정을 했다고 한다. 구글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결국 시장에 매물로 내놓은 건 분명히 경영 전략상의 판단이었겠지만, 그 이면에는 현실의 '사이버다인 시스템즈(Cyberdyne Systems,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첨단 기업)'가 되려 한다는 이미지를 피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2020년 경부터 유튜브를 통해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와 4족 보행 로봇 스팟이 친근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영상들을 여러 개 공개하고 있다. 이 영상에서는 로봇들이 익숙한 팝 음악에 맞춰 군무를 하고, 인간 노동자와 감정적인 교류를 한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로봇의 운동능력이 앞으로 인간보다 뒤처지는 방향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로봇 개발자들은 이런 식으로라도 '불쾌한 골짜기'를 메우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6월에는 BTS의 'IONIQ : I'm On It'에 맞춰 군무를 추는 스팟의 영상도 공개됐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현대자동차 그룹의 자기업 인수를 축하하는 의미라고 밝혔다. / 출처 : 보스턴 다이내믹스 유튜브 '불쾌한 골짜기'를 피할 수 있을까 원래 전통적으로 볼 때 로봇이 불러일으키는 불쾌감은 운동능력을 중심으로 개발돼 온 휴머노이드보다는 의도적으로 인간의 외모를 모방하고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하는 안드로이드(android, 인간의 행동을 하는 기계)가 차지해 왔다. 모리 마사히로의 '불쾌한 골짜기' 그래프에서 로봇에 대한 호감도가 휴머노이드를 거쳐 급격히 상승했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바로 그 지점이다. 지난 2월, 일본의 국립 연구개발법인 이화학연구소(RIKEN)이 인간처럼 표정을 만들 수 있는 안드로이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니콜라 Nikola'라는 이름의 이 로봇은 셀룰로이드 피부 아래 설치된 17개의 '표정근(표정을 만드는 근육을 모방한 장치)'의 움직임으로 눈썹을 찡그리거나 입꼬리를 올리는 동작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니콜라가 만든 표정을 심리학 연구에서 인간의 표정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인간과 동일한 패턴을 나타낸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한다. 니콜라가 만든 17개의 '표정' 가운데 6개의 기본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을 보자. 안드로이드 니콜라의 대표 표정 6가지 연구소 측은 이런 연구가 고도화하면 안드로이드가 표정을 통해 인간과 감정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향후 고령자 간호 등 다양한 사회 활동에 응용하는 방안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 니콜라의 진화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니콜라의 얼굴이 여전히 뭔가 섬찟하다고 느껴지지 않으시는지. 이시구로 히로시와 로봇 '제미노이드', 2011년 / 이시구로 랩 유튜브 캡쳐 일본 오사카대학교 지능로봇연구소 소장인 이시구로 히로시(石黒浩) 교수가 자신의 외모를 그대로 재현한 로봇 '제미노이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이시구로 교수는 본인의 트위터 계정(@hiroshiishiguro)의 프로필에도 자기 사진이 아닌 제미노이드를 올려놓은 '괴짜'인데, 제미노이드는 원격조정으로 입술과 눈동자, 얼굴 근육을 움직이고 말도 할 수 있다. 이시구로 연구실의 최신 안드로이드는 '에리카 Erica'라는 여성형 로봇인데, 에리카는 가만히 앉아 있는 자세로 실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능력을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언어를 인지하고 구사하는 AI알고리즘을 갖춰 사람의 질문을 이해하고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할 수 있다. 2018년 이시구로 연구실에서 진행된 실제 인간과 에리카의 대화 실험 모습 이시구로 교수는 조금은 장난기가 엿보인 제미노이드(이름은 본인의 이름과 안드로이드를 결합한 '이시구로이드')를 지나 여성의 모습을 모방한 에리카로 가면서, 인간이라기에는 다소 어설픈 로봇의 외모가 주는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에리카는 최대한 인간에 가깝게 가는 대신 얼굴의 각 부분을 정형화한 '잘 만든 인형'으로 외모가 굳어졌는데, 애니메이션의 전통이 강한 일본의 연구진이 선택한 합리적인 결론으로 보인다. 이시구로 교수는 지난해 6월 몇몇 기업의 투자를 받아 아바타(온라인에서 개인을 대신하는 캐릭터) 전문기업 '아비타 AVITA'를 설립한 뒤 실제 매장에서 고객과 의사소통을 하는 접객 서비스를 개발했는데, 일본의 한 편의점 업체에서 이달부터 실시되는 시범 서비스를 보면 여기서도 편의점 점원의 캐릭터가 현대인에게 익숙한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것을 알 수 있다. 물건을 파는 입장에서 고객의 '불쾌한 골짜기'를 일부러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지난 9월 말, 도쿄에서 열린 AVITA와 편의점 업체 '로손'의 기자회견. 왼쪽이 AVITA의 이시구로 CTO, 가운데가 점원 캐릭터. / 출처 : 일본 NTV 니콜라의 경우처럼 로봇이 인간이 만드는 표정에 점점 가까워지면 예의 '불쾌한 골짜기'를 뛰어넘는 로봇이 등장할 날도 성큼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시구로 박사의 아바타 서비스도 애니메이션 캐릭터 대신 실제 로봇의 모습으로 편의점에서 고객을 맞이할지 모른다. 로봇 공학의 방향은? 이렇게 현재 로봇 공학은 아틀라스처럼 운동성능에 집중한 휴머노이드와 에리카처럼 인간의 행동 모방에 중점을 둔 안드로이드 두 개의 축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는 이 두 개의 축을 각각 고도화해 나가는 단계지만, 언젠가는 이 두 축이 하나로 통합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한양대 로봇공학과 한재권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구성·편집 : 유성재 기자 콘텐츠디자인 : 옥지수
아직 조금 이르긴 하지만 2022년 올해 세계의 10대 뉴스 가운데 1, 2위를 다툴만한 건 바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일 것이다. 아직 전쟁의 향방이 오리무중인 상태로 발발 이후 반 년이 훌쩍 지나 전쟁 초기보다 세계의 관심도는 다소 떨어진 상태지만, 개전부터 지금까지 전쟁의 진행 상황을 돌이켜보면 현대를 사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저궤도 위성 통신망 '스타링크starlink'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전쟁으로 인지도 확 끌어올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러시아의 공격으로 통신 인프라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우크라이나의 부총리 겸 디지털혁신부 장관 미하일로 페도로프가 트위터를 통해 스타링크를 운영하는 스페이스엑스(Space X)의 일론 머스크에게 "스타링크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고, 머스크가 이에 즉각 호응하고 나섰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머스크는 당시 스타링크의 서비스 지역이 아니었던 우크라이나를 서비스 지역으로 바로 설정하고, 위성 신호를 잡을 수 있는 단말기도 지원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실행력이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업로드하는 전쟁의 참상이 스타링크로 복구된 인터넷 망을 타고 세계 각지로 알려졌고, 우크라이나 군도 스타링크를 러시아를 향한 반격에 유효하게 활용했다. 약 3개월이 지난 6월 7일,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통해 스타링크 단말기 1만 5천 대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며, 하루 이용자 숫자가 15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페도로프 부총리의 트윗을 참고했음에 틀림없다. 물론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스타링크 단말기의 일부는 미국의 해외 원조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이 부담하긴 했지만 이 역시 머스크의 계산 속에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단말기 비용의 상당 부분을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과 폴란드 등의 지원으로 충당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그렇다고 머스크가 스타링크 인프라를 전장이 된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사실 자체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최근 머스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스타링크 운영 비용을 미국 정부와 협상하려는 의도를 시사하며 이른바 '간'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이 예상 외로 장기화하면서 머스크도 주판알을 튕겨보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 뿐만 아니라 정부의 의도적인 차단,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인한 통신 기반 상실 등을 이유로 인터넷 인프라가 침해를 받은 지역에 스타링크를 긴급 투입하는 대안은 이제 글로벌 환경에서 일반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지난 1월 해저 화산 분화로 통신 인프라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던 통가를 시작으로 우크라이나를 거쳐, 최근 반정부 시위가 하루가 다르게 격화하고 있는 이란과 군부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며 정보 유통을 통제하고 있는 미얀마가 그렇다. 2019년 첫 스타링크 위성을 쏘아 올리고 2020년 북미 지역을 시작으로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스타링크가 2022년 올 한해를 지나면서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지도를 끌어모은 셈이다. "인터넷이 필요해? 그럼 스타링크지!" 사람들의 자유로운 연결을 막으려는 인터넷 시대의 '열린 적들'에게 머스크는 분명 껄끄러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당연히 중국이 불편한 심경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스타링크에 한해서 머스크는 일종의 '인터넷 전도사' 같은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한 것은 맞는다. 그러나 우리는 머스크가 '사업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머스크는 이윤을 좇는 사업가다. 그것도 저돌적이며 탐욕스럽고, 게다가 천재적인. 스타링크, 대체 뭔데 우선 스타링크의 개념을 정리해 보자. 스타링크는 지구 저궤도에 소형 통신위성을 촘촘히 배치해 사각지역 없이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스타링크에 따르면, 기존의 위성통신은 지상으로부터 약 3만 6천 km 상공의 정지궤도에 쏘아 올린 위성을 이용해 왕복 기준 전파는 0.2~0.3초 정도, 음성은 경우는 0.5초 정도의 통신 지연이 있었다. 이를 단축하기 위해 정지위성 궤도의 65분의 1 정도인 550km 저궤도에 위성을 띄워 지연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 스타링크의 기본 개념이다. 통신에 필요한 전파의 강도도 정지궤도 위성에 비해 4천분의 1정도면 가능해 대용량 통신이 훨씬 용이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저궤도상의 각 스타링크 위성은 주변의 가까운 위성들과 광학 신호를 통해 연결되며, 실시간으로 신호가 가장 강하게 유지되고 속도가 빠른 경로를 찾아 데이터를 전송하게 된다. 지구는 자전하므로 지상의 한 지점에서 스타링크 위성 1개와 연결되는 시간은 약 10분 정도. 최초 연결된 위성이 접속 범위에서 벗어나도 그 뒤를 따르는 다른 위성을 이용해 끊기지 않는 통신이 가능하다.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연결을 이어가며 인터넷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낮은 궤도에 위성을 띄우면 위성 하나하나가 담당하는 지상의 면적이 극단적으로 좁아지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위성을 띄워야 한다. 여기서 스페이스엑스의 팰콘 발사체가 진가를 발휘한다. 팰콘 로켓은 지구 저궤도에 화물(payload)을 '뿌리고' 다시 귀환하기 때문에 스타링크의 소형 위성을 여러 번 대량으로 '살포'하는데 적임자다. 지금까지 팰콘 발사체는 한 번 발사에 스타링크 위성 50~60개 정도를 한꺼번에 궤도에 올렸다. 지난달 5일 기준으로 스페이스엑스의 팰콘9 발사체는 모두 63회에 걸쳐 위성 3,043개를 저궤도로 운반했는데, 이 가운데 한 발사체(팰콘9 Block5 B1058)는 지금까지 14번 재사용(재발사)됐다. 현재로선 전세계에서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스타링크 사업은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가 우주 탐사비용의 절감을 목표로 개발해 온, 재활용이 가능한 팰콘 로켓만이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독점' 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계를 커버리지로 하는 스타링크 서비스를 위해 스페이스엑스는 단계적으로 1만 2천 개, 최종적으로는 무려 4만 2천 개의 스타링크 위성을 쏘아올리겠다고 미국의 통신 규제당국에 밝힌 상황이다. 2021년 타임(TIME)의 '올해의 인물', 21세기 최고의 '문제적 인물'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가 세상에 내놓은 '상품' 가운데 스타링크는 가격대가 가장 싼 축에 든다. 상품을 고르는 데 가격과 성능, 그리고 그 둘의 합리적 조합인 '가성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건 불변의 사실이지만, 일단 여기까지 읽은 독자 여러분은 스타링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간단한 투표를 마련했다. Q. 머스크의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 , 한 번 써 볼까? ① 써볼 만 하지 않나? ② 에이, 그걸 왜 써? 저궤도에 빽빽하게 뿌려질 위성은 그렇다치고, 지상에서는 이를 어떻게 이용하는가? 현재 스타링크가 상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지역은 미국, 캐나다(북극권 제외), 유럽 일부 국가와 호주(북서부 제외), 뉴질랜드와 남미 일부 국가다. 여기에 지난 10월 11일부터 가까운 일본에서도 상용 서비스가 시작됐다. 일본의 경우 가장 큰 혼슈(本州)에서 도쿄를 기준으로 북쪽, 즉 동일본 지역의 대부분이 서비스 권역이고 홋카이도(北海道)도 혼슈와 가까운 남단(하코다테 일대)은 서비스가 가능하다. 스타링크 서비스가 이미 시작된 지역에 사는 이용자들이 유튜브나 SNS에 스타링크 사용기를 올려놓고 있는데, 관심이 있던 독자라면 한 번쯤은 봤을 수도 있겠다. 기본적으로 작은 접시형(또는 장방형) 안테나를 하늘이 보이는 곳에 설치하고, 안테나 케이블을 공유기(라우터)에 연결한다. 공유기에 전원을 공급하면 안테나가 작동을 시작해 상공을 지나는 위성을 찾는다. 위성과 연결되면 공유기를 통해 와이파이 전파가 뿌려지고, 이걸로 인터넷 연결이 가능하다. 스타링크는 안테나와 이를 세울 수 있는 스탠드, 전원 공급 장치, 공유기를 묶어 '하드웨어 키트'로 이용자에게 판매하고, 매달 이용료는 별도로 받는다. 일본의 경우 스타링크 키트는 7만 3천 엔(우리돈 70만 원 정도), 월간 이용료는 만2천3백 엔(약 11만7천 원)에 책정됐다. 사전 예약한 고객에게 우선적으로 스타링크 키트를 발송하고, 가입자는 1개월 무료 체험 기간을 거쳐 유료 이용자가 된다. 기본 가입조건은 스타링크 서비스가 제공되는 지역 내의 거주자가 자신이 등록한 주소지에서만 접속이 가능한 방식(레지덴셜)인데, 여기에 월 3천 엔(약 2만 8천 원)의 옵션을 추가하면, 본인의 스타링크 기기를 주소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캠핑족이라면 트렁크에 앞서 설명한 하드웨어 키트를 담아 가면 된다. 물론 캠핑장에서 전원을 공급받을 방법은 미리 생각해 둬야 하는데, 대개는 차량 충전이 가능한 대용량 모바일 배터리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 가입자들에게 최근 배송된 스타링크 키트를 보면 북미의 신규 가입자들과는 달리 위성 접속용 안테나가 사각형이 아닌 동그란 원형으로 제공되는 걸 알 수 있다. 원형 안테나는 초기에 생산된 것들인데, 제작 단가가 높아 최근 북미에는 이보다 조금 작고 네모난 장방형 안테나를 공급하고 있다. 한국 상륙 초읽기? 가까운 일본까지 진출했으니 '그럼 우리나라에는 언제?'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 스타링크 홈페이지의 지도에는 우리나라 전역이 '곧 시작'(coming soon)으로 표시돼 있고, 예상 시점은 2023년 1분기로 나와 있다. 규제 당국, 즉 정부로부터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허가를 받으면 내년 1분기 안에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내 위성통신업계에 따르면, 스페이스엑스 관계자가 지난 7월 한국을 방문해 정부와 비밀리에 접촉한 데 이어 10월 현재 복수의 기간통신사업자와 스타링크 사업 진출을 놓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스페이스엑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법인 설립을 통해 사업에 진출하는 직접적인 방식을 선호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기간통신사업자 등록에 필요한 절차가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위성과 지상 사이 통신에 사용되는 주파수의 사용 허가, 간섭과 혼선 방지 대책 등 적정성 검토 등에 수 개월 이상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 뻔한데 아직 등록 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년 1분기 내 사업 시작이 가능하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링크가 내년 1분기 안에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하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면, 아마 일본에서처럼 현지 통신사업자를 통한 '재판매'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본에서는 현지 기간통신 2위 사업자 KDDI를 공인 리셀러로 지정해 스타링크 키트를 판매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재판매 사업자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한국에 진출한다면 기간통신사업자 신규 등록을 거칠 필요가 없어 빠른 서비스 개시가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재판매를 하더라도 스타링크라는 서비스 자체에 대해서는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스페이스엑스와 제휴하는 재판매 사업자, 즉 하드웨어 키트의 판매를 대행하고 요금 정산을 해줘야 하는 국내 사업자는 주로 서비스 이용자에 대한 보호 정책과 안정적인 공급 능력, 서비스에 대한 분쟁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스페이스엑스는 이미 한국의 일부 사업자와 위성통신 테스트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링크, 국내 영향은? 위성을 이용해 전파 음영지역 없는 인터넷 서비스를 판매한다는 이상은 위성통신 사업자들의 공통된 목표일 것이다. 통신 효율과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저궤도 위성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머스크의 스타링크는 발사체 재활용이라는 독보적 기술을 십분 활용해 위성통신업계의 다른 사업자들을 단숨에 제쳤고, 앞서 언급했듯 때마침(?) 일어난 글로벌 이벤트로 인지도를 폭발시키며 시장을 주도하는 사업자로 올라섰다. 일련의 극적 과정을 거친 스타링크는 전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의 테크 호사가들이 큰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스타링크가 그들의 계획대로 내년 1분기 안에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해도, 우리의 일상에 큰 변화가 있을까? 우선 스타링크의 속도가 관건이다. 현재 상용 서비스 지역에서 스타링크의 일반 사용자는 최대 100Mbps(초당 100메가비트 전송)의 다운로드, 20Mbps의 업로드 속도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네트워크 속도를 측정하는 앱을 운영하는 업체 Ookla가 조사한 스타링크의 속도를 보자.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다운로드만 표시했다. 지난해부터 팰콘9 로켓이 정기적으로 발사되면서 저궤도에 깔리는 스타링크 위성의 속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5G 이동통신망의 다운로드 속도는 최고 평균이 432.7Mbps다. 빨라졌다는 스타링크보다 4배 이상 빠른 셈. 영국의 시장조사업체 오픈시그널이 지난 6월 조사한 수치다. 스타링크가 위성을 더욱 촘촘하게 띄워 궁극적으로는 최대 1Gbps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비약적인 속도 증가는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이용자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인 비용. 가장 최근에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국내의 잠재적 이용자가 스타링크 서비스에 큰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워 보인다. 스타링크 키트를 구매하는 초기비용도 문제지만 월 10만 원을 훌쩍 넘는 요금이면 국내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5G 서비스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쓰고도 남는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한참 떨어지는 것. 웬만한 '얼리 어답터'가 아니라면, 또 산간 도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스타링크를 현실적인 인터넷 연결의 수단으로 선뜻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머스크는 왜? 인터넷 속도와 비용에 대한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큰, 그래서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초고속 네트워크에 집착해 온 우리나라에서 스타링크가 기존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되기는 어렵다는 분석, 스타링크 측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스타링크의 글로벌 인지도가 급상승하는 것에 비례해 글로벌 저궤도 위성 통신 시장에서 '반 스타링크' 연합을 구성해 적극적으로 대항하자는 타 사업자들의 합종연횡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링크가 내년 1분기 한국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전세계에서 스타링크의 서비스 지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큰 그림'에서 제외되는 곳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스페이스엑스의 바람이 배경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스페이스엑스의 그런 바람은 다시 머스크의 '더욱 큰 그림'의 일부이기도 하다. 독불장군이지만 이제 글로벌 테크 시장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 머스크의 '더욱 큰 그림'의 한 조각은 이미 7년 전에 출간된 첫 '공식 전기'에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이라는 표현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돼 있다. 2015년 머스크가 떠들썩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저궤도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류가 화성에 이주했을 때 필요한 광대역 인터넷의 보급이었다. 스타링크 위성의 안테나가 언젠가는 지구 궤도 밖을 향할 것이라는 거창한 계획의 시작을 알린 것이었지만, 인류의 화성 이주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다. 적어도 화성에 지구의 인터넷을 연결해야 할 필요성이 생길 때까지 머스크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얘기다. 인터넷 속도와 비용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예민한 우리에게 당장 스타링크가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머스크의 스타링크 사업은 꾸준히 '커버리지'를 확대하고, 한편으로 글로벌 이슈의 흐름에 훌쩍 올라타기도, 여차하면 가차없이 뛰어 내리기도 하면서 계속 뉴스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관심 또한 머스크에게는 훌륭한 비즈니스 소재가 아닐까.
올해도 어김없이 '그 시즌'이 돌아왔다. 매년 10월 초, 저녁이 되면 하루 한 번씩 외신기사를 인용한 '속보 푸시'가 오는 시기다. 바로 노벨상 발표의 시즌. 하루하루 각자의 삶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들에게 그깟 노벨상이 뭐가 중요하냐는 생각, 인정한다. 우리들 대다수는 생리학(의학)이니 물리학이니 화학이니 하는 노벨상의 시상 분야가 매일의 일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분야를 연구하거나, 적어도 대학 수준에서 공부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수상자의 이름을 들어도 '아, 그 사람!' 하는 반응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냥 휴대전화 화면에 뜨는 속보 한 줄, 읽고 무심하게 지워버리면 그만 아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노벨상에 대한 글이니까, 일단 올해의 발표 일정 정도는 한 번 체크해 보자. 노벨상 가운데,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나마 평화상과 문학상 정도가 아닐까. 살얼음판 위를 걷듯 아슬아슬했던 평화가 서서히 깨지는 것 같은 요즘의 불안한 국제 정세 속에서 노벨 평화상이 누구에게, 혹은 어떤 단체에게 수여되는지는 인류가 지켜야 할 '평화를 위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상기시키는 의미가 있다. 지난해에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전제 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필리핀(마리아 레사)과 러시아(드미트리 무라토프)의 언론인이 공동 수상했다. 문학상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태어나 영국에 정착한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에게 돌아갔다. 노벨 위원회는 수상 이유로 "문화와 대륙 사이의 간극에서 식민주의와 난민으로서의 운명이 끼친 영향을 단호하고 열정적으로 관통해 낸 공로"를 들었다. 구르나의 주요 작품으로는 [낙원 Paradise]이 있고 지난 5월에 번역본이 나오기는 했지만, 기자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지난해 유명 문학상은 '아프리카 열풍' 202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탄자니아 출신이다. 그런데 노벨상과 함께 이른바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묶이는 부커상과 공쿠르상의 지난해 수상자를 보면 유독 아프리카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우선 영연방 지역에서 나온 영어 소설 우수 작품에게 수여되는 부커상은 데이먼 갤거트(Damon Galgut)의 [약속 The Promise]이 받았는데, 갤거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프랑스의 공쿠르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공쿠르 문학상은 세네갈 출신의 모하메드 은부가 사르가 [인간의 가장 비밀스러운 기억]이라는 작품으로 수상했다. 아프리카에서도 종종 '오지' 취급을 받는 사하라 사막 이남 출신 작가에게는 처음으로 수여된 공쿠르상인데다, 사르가 갓 서른을 넘긴 신예 작가라는 점에서 프랑스 현지에서는 꽤나 화제를 끌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다. 세계 문학계에서도 오랜 시간 변방 취급을 받았던 아프리카 문학,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이 주목받는 최근 트렌드에 대해 큰 불만은 없지만, 그들이 상을 받으며 주목을 끌고 나야 대표작을 중심으로 '선택'되어 번역본이 출간되는 국내 출판업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조금 씁쓸한 입맛이 가시지 않는 것도 사실. 내가 아는 작가가, 내가 아는 작품으로 상을 받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뿌듯함을 느끼고 싶은 마음, 욕심이긴 해도 오랜 문학 애호가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도박사들의 예측은? 그래서 기자는 오는 6일 밤, 무라카미 하루키(이하 하루키)의 수상 여부에 관심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30년 가까이 '팬'을 자처해 오며 하루키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읽어 온 데다가, 2006년을 시작으로 10년 넘게-아마도 2011년 이후 동일본대지진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며 세계 구성원으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이후가 아닐까-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자로 오르내리고 있다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와서 '이제 탈 때가 됐다'는 인식도 꽤 확산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노벨상은 수상 후보자를 50년 동안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하루키가 노벨상 후보자인가?'라는 질문에 확실하게 답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진짜로 상을 받느냐 마느냐는 어차피 확률의 영역. 확률을 논하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도박사들은 올해도 다음과 같은 예상을 내놓았다. 실제로 누가 후보인지 아닌지도 안개 속인 상황이니 편의상 여기 나온 사람들을 '올해의 노벨문학상 후보'로 간주해도 될 것이다. 그럼 도박사들의 예측을 한 번 보자. 배당률이 조금씩 변해 수상자 발표 때까지 어느 정도의 변동은 계속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작가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이 꼽힌다. 바로 아래 케냐의 소설가 응구기 와 티옹오는 표기 문제로 중복 베팅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 다음으로 얼마 전 무슬림 청년에게 흉기 테러를 당한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가 나온다. 흉기 피습 사건이 상당히 최근인데다가, 이런 흉악한 테러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루슈디가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야 한다는 일종의 '수상 운동'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루키는 리스트에서는 여덟 번째, 공동 배당률의 후보를 감안한 순위로는 7위 정도다. 하루키, 수상권에서 멀어졌다? 노벨문학상은 앞서 소개한 이른바 '세계 3대 문학상' 가운데 유일하게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상을 받을 때 '대표작'은 언급되지만, 그 외에도 작가가 평생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떤 작품들을 발표해 왔는지, 작품들을 통해 작가가 어떤 통찰과 영향을 세계의 독자들에게 선사했는지에 주목하는 것. 따라서 개별 작품보다는 작품을 세상에 내 온 작가를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부분을 일개 '팬'인 기자가 설명하는 건 어불성설일 것 같아서 전문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국내 하루키 1호 박사로, 일본 간사이(關西)대학에서 하루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일본문학연구가 조주희 박사의 답변을 보자. Q. 작가 하루키의 매력,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비결은? A. 약간은 멋을 낸 듯한 문체도 산뜻하고, 주인공의 심리 묘사나 등장인물의 갈등도 적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훑을 수 있다. 또 주인공이 평범하고 '쿨'해서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하루키의 작품에는 다양한 '꺼리'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눈, 코, 귀, 입 요깃거리들이 즐비하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가득해 독자들이 지루해 할 틈을 주지 않는다. 스토리가 좀 늘어진다 싶으면 (비장의 무기인) 성(性) 묘사가 느닷없이 들이닥쳐서 책장을 덮으려는 독자들을 다시 불러세우곤 한다. 1995년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에는 종교도 한몫을 하는데 그것도 성과 결합된 파격적인 형태로 등장하는 탓에 오락 소설이니, 포르노 소설이니 비판을 받곤 하지만, 전 세계 독자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꽤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Q. 하루키, 지난 10여 년 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긴 했을까? A. 2006년부터 매년은 아니어도 몇 번인가는 후보에 올랐을 거라 생각한다. 노벨 문학상 선정 기준이 '이상주의적 경향이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상주의적 경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수상 여부가 결정되겠지. 하루키의 수상을 여전히 조심스럽게 점치는 이유는 적어도 하루키의 작품이-작품성은 차치하고라도-전 세계 독자들을 아우르는 힘을 가졌고, 더구나 2010년 이후에는 특히 인류애와 휴머니즘,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언설로도 작품으로도 주제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하루키가 (일본의) 역사와 기억의 문제를 표면화시키는 것은 일본 작가로서는 꽤 소신있는 행동이고, 미래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생기는 힘이라는 걸 그가 꾸준히 상기시키고 있기도 하다. Q. 올해 수상 가능성은? 시기를 놓쳤다면 가장 아쉬웠던 해는? A. 희박하지만 여전히 가능성은 있다. 다만 최대 걸림돌이 하루키가 '베스트셀러' 작가, 즉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라는 점이다. 하루키 본인도 올해 역시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면 아쉽기는 하겠지만 큰 낙담은 하지 않을 것 같다. 또 하루키가 (수상으로) 돈과 명예를 모두 거머쥔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작가들도 많을 것이다. 가장 유력했던 해는 역시 프란츠 카프카 상을 수상했던 2006년, 그 다음은 모옌이 수상했던 2012년 전후, 그리고 2019년이 아닐까. 2012년에는 2010년에 발표한 [1Q84]에 대한 평가도 있었지만, 당시 유력 후보 1위였을 만큼 그의 작품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때였고, 2019년에는 (노벨상이 일본에) 25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속설 때문에 막연하게 기대를 한 부분도 있다. 다만 2017년에 발표한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에는 점점 노벨상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Q. 그래도 수상한다면 수상 소감은 어떤 내용일까? A. 2000년대 이후 하루키의 수상 소감은 대부분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에 따른 핵무기 사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을 받은 기쁨은 아마 최소한으로 표현하겠지. 1982년 11월에 [양을 둘러싼 모험]으로 노마(野間) 문예 신인상을 수상했을 때처럼 "상은 작품이 받는 것"이라며 극도로 감정 표현을 절제하거나, 형식적인 감사에 그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장거리 주자' 체질인 하루키가 이번 수상을 통해 풀코스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을 때처럼 기쁨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하루키 하루키 본인도 곧 시작되는 '노벨상 시즌'이 되면 이런 저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상자로 발표된 적이 없으니 지금까지 나온 하루키의 반응은 "(올해도) 상을 받지 못했다"에 대한 감상이 전부. 사실 그마저도 있다 없다 한다. 어떤 반응을 내느냐는 전적으로 하루키 마음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2016년 미국의 뮤지션 밥 딜런이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 하루키는 SNS에 본인의 작품인 [노르웨이의 숲] 영문판에 나온 대사를 인용해 "동정은 질이 나쁜 놈들이나 하는 거야"라며 조금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게 '보인다'인 이유는 본인이 직접 어딘가의 인터뷰를 통해 말한 게 아닌 데다, 해당 SNS도 하루키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그가 직접 작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도 당시 SBS 취재파일로 이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다. ([취재파일] 하루키 "동정은 질이 나쁜 놈들이나 하는 거야" 바로가기) 그러나 역시 하루키도 사람인지라 몇 년째 유력 후보로 거론만 되고 수상자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했을 터. 그래서인지 2년 뒤인 2018년 [기사단장 죽이기]의 영문판 출간에 즈음해 미국 뉴욕에서 마련된 한 이벤트에서는 직접 이렇게 언급하기도 했다. 이미 낸 세금과 전 여친에 대해서는 (생각은 할 수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노벨 문학상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보면, '(노벨상을) 주든 말든 관심 없습니다'를 위트있게 돌려 말한 것이라는 해석에도 일리는 있다. 당시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의 영문판을 야심차게(?) 발표한 직후라 노벨 문학상 불발에 대한 소회를 '옛다' 하며 준 듯한 느낌이 강하지만, 한편으로 굳이 그 자리에서 꺼내지 않아도 될 '노벨 문학상'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언급했다는 건 하루키가 본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둘러싼 세간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또 그게 매년 무위로 돌아갔을 때 쏟아지는 사람들의 동정(또는 연민)이 얼마나 되는지를 꽤나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혀진다. 상이란, 특히 노벨상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지역 안배' 이론, 이번에는 혹시? 앞서 소개해드린 일본문학연구가 조주희 박사의 인터뷰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쩌면 하루키는 이미 수상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팬'으로서 마지막 희망회로를 조금만 돌려보도록 하자. 워낙에 제대로 된 후보자 명단도 없이 도박사들의 예측에 기대 발표만을 기다리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문학계에서는 그나마 '지역 안배'론이 힘을 얻고 있는 편이다. 수상자는 노벨 위원회의 발표를 기다려야 알 수 있지만, 그렇게 매년 쌓여 온 결과를 놓고 보면 어느 정도는 지역별로 돌아가는 '추세'가 보이지 않느냐는 것. 자, 그럼 한 번 볼까. 2010년부터 2021년까지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을 정리해 봤다. 아시아 지역의 마지막 수상자는 10년 전인 2012년 중국의 모옌이다. 2017년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영국으로 이주해서 영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국적 대신 출신지 기준을 사용하고 있어서 일본 태생 노벨상 수상자로 분류되지만 영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영국 작가로 보는 게 맞는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물론 하루키와 상당한 친분이 있다.) 위의 표에는 없지만, 기준을 일본으로 좁히면 1994년의 오에 겐자부로(대표작 [개인적 체험])가 마지막으로, 시간의 간격이 상당히 멀어진다. 아시아에는 10년, 일본에는 28년 동안 노벨 문학상이 주어지지 않은 데다 지난 10년 동안 미주와 유럽을 돌고 지난해 아프리카를 찍었으니 '이번에는 혹시?'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도박사들의 예상을 봐도 아시아 출신 작가로는 하루키가 유일하게 10위 안에 있는데, 만약 이번이 아시아가 수상할 차례라면 역시 하루키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받거나, 혹은 못 받거나 하루키의 노벨상 수상이 좌절(?)돼 온 지난 몇 년 동안, 그 해 수상자 발표와 동시에 기자도 주변에서 '하루키는 대체 언제 받는 거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기자가 나름 하루키의 오랜 팬임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차라리 계속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대답하곤 했다. 노벨상을 받든 말든 기자가 하루키의 작품을 계속 좋아하고 반복해서 읽을 거라는 사실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사실 전 세계의 수많은 하루키 팬들도 같은 생각일 거라고 감히 추측하고 있다. 기자는 물론 '성장하려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소설가 장강명의 저 말에 충분히 동의한다. 여기까지 꾹 참고 글을 읽어 내려오신 독자는 하루키에 대해, 그의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여부에 대해 상당한 관심(거기에 더해 '호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한 가지 재미있는 상상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니클라스 엘메헤드(Niklas Elmehed)라는 스웨덴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다. 2012년부터 노벨 위원회의 요청을 받아 매년 수상자의 초상화를 그려 주는 작가다. 노벨 위원회가 수상자의 사진 대신 초상화를 보여주는 건 사진에 걸린 저작권 때문. 아무튼 엘메헤드는 노벨 위원회 핵심 관계자 말고는 그 해 수상자의 얼굴과 이름을 남들보다 먼저 아는 극소수의 행운아(?)이기도 하다. 그의 홈페이지(niklaselmehed.com)를 방문하면 그가 검은색 아크릴 물감과 얇은 금박을 이용해 수상자의 초상화를 그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만약에, 하루키가 올해 노벨 문학상을 탄다면 하루키의 얼굴도 니클라스 엘메헤드가 그리게 될 것이다.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하지만, 역시 하루키의 얼굴은 하루키와 오랜 시간 함께 작업을 해 온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安西水丸, 1942~2014)가 제일 잘 그리지 않았을까? 혹시, 노벨상 수상자로 하루키를 소개하는 그 자리에서 안자이 미즈마루가 그린, 짙은 눈썹과 단춧구멍 같은 눈을 한 하루키를 볼 수는 없을까? 그렇다면 안 그래도 지금쯤 수상자들을 그리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쁠 니클라스 엘메헤드도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마무리로 안자이 미즈마루가 그린 하루키의 얼굴을 보여드릴 예정이었지만, 저작권 상황을 알아보니 안자이 미즈마루가 생전에 그린 '하루키 얼굴'의 경우 작가가 고인이 되어 유족으로부터 사용에 필요한 절차를 거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국내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이우일 씨가 그린 하루키의 얼굴로 대신하고자 한다. 이우일 씨가 그린 하루키 얼굴은 하루키 본인도 사용을 허가했다고. 안자이의 그림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독특한 느낌이다. 2017년 국내에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 리커버판 표지에 실렸다. (구성·편집: 유성재 기자 /콘텐츠디자인: 옥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