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는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전하고자 2012년 7월 미국 보스턴에서 시작했습니다. 외신 큐레이션 매체. 이효석 대표와 송인근 편집장, 유혜영 교수가 함께 시작했으며, 현재는 eyesopen님 등 여러 필진들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뒤 펴고 있는 다양한 정책을 아우르는 특징, 관통하는 철학이 있을까요? 본인이 자주 쓰는 미국 우선주의도 맞는 말이고, 주로 트럼프를 비판하는 진영에서 지적하는 권위주의 성향의 제왕적 대통령, 규제 철폐 등 기업과 자본의 이익에 우선 복무하는 리더, 국제 무대에서 도드라지는 힘의 외교, 주권주의 등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정책에서 일관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은 '관습과의 단절'입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논리의 흐름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지금 미국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문제가 심각해지도록 민주당(은 물론 전통적인 공화당) 정치인들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나는 이 위기에서 미국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구세주다. 기존 대책으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구태의연한 관습에서 벗어나 획기적인, 특별한 조처를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나의 앞길을 막거나 나를 비판하는 사람은 대책 없이 무조건 반대만 외치는 사람으로, 문제가 더 곪고 썩도록 방치할 사람이다. 결국,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데 걸림돌이며, 나아가 미국의 적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여당이던 민주당이 인기가 없던 시점에 치른 선거에서 트럼프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유권자들의 기대를 받고, 당선에 필요한 표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된 트럼프와 의회 다수당 지위를 되찾은 '트럼프의 정당' 공화당은 대책을 실행에 옮기고 검증받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관습과의 단절'을 넘어 트럼프 대통령이 돌아가고자 하는 '미국이 위대하던 시절'은 주제에 따라 다릅니다. 다만 여기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누가 자신에게, 또 미국이란 나라에 대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거나 감히 지시하려 하는 걸 매우 불편해하고, 노골적으로 싫어합니다. 대표적인 장면으로,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백악관에 불러놓고 방송 카메라를 켜놓은 채 거친 언사로 몰아붙였을 때를 되짚어 봅시다. 젤렌스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푸틴의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우크라이나 국민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며, "미국인들은 다행히 대서양이 가운데 놓여 있어서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이라고 말했을 때였습니다. 트럼프는 갑자기 젤렌스키의 말을 자르며 언성을 높였는데,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국인들이 어떻게 느낄지에 관해 당신이 함부로 재단하지 마세요! 감히 당신한테 그럴 자격도 없고, 불편하네요.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우리가 정해요! 젤렌스키가 미국인이 어떻게 느껴야 한다는 취지로 한 말이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대화의 주도권은 트럼프 대통령이 쥐고 있었기에 해명하거나 반박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렇게 일방적인 꾸지람만 들은 채 빈손으로 백악관을 떠나야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리는 이상향은 이렇게 누구도 자신에게 뭐라고 하지 못하는, 모두가 자신 앞에, 또 미국이란 나라의 힘에 굴복해 머리를 조아리는 상황에 가깝습니다. 국가 간에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고, 강대국은 군사력이나 노골적인 힘보다는 경제, 문화 등 이른바 소프트파워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던 관습도 트럼프는 과감히 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임기 들어 자주 쓰는 또 다른 단어 중 하나가 "상식(common sense)"입니다. 자신의 정책은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주장은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을 곧바로 몰상식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상식을 자기한테 유리하게 정의하고 선점함으로써 반대 세력을 지목하고 제거하며 끊임없이 희생양으로 만드는 전략인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소수자에게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도 트럼프 시대에 나타난 특징입니다. 노골적으로 표적이 된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인권운동단체, 노동조합, 국제주의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성과 포용의 원칙인 DEI를 추구하던 모든 개인과 기관이 몰상식한 비정상으로 분류되고, 졸지에 미국의 적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행정명령 가운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지만, 비슷한 전략을 공식처럼 적용한 정책이 바로 영어는 미국의 공식 언어라는 다소 뜬금없는 선언이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태양은 뜨겁다'는 법이 필요한가요? 미국에 공식 언어가 필요한가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당연히 뭔지 아는 감정이지만, 미국인을 비롯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대부분 절대로 알 수 없는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영어 스트레스', '영어 울렁증' 같은 말이 담고 있는 감정, 애환의 결이죠. 미국인 중에도 다른 나라에 살기 위해 그 나라 언어를 어렵게 배운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말문이 막힐 때면 세상은 더듬더듬 짧은 영어를 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을 보내줍니다. 반대의 경우는 매우 드물죠. 원래 세상 이치가 그렇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만약 젤렌스키 대통령이 통역을 대동해 모국어인 우크라이나어로 말했다면 애초에 백악관은 그런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물며 미국 대통령이 영어가 아닌 다른 나라 언어로 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래야 하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만요. 대표적인 소프트파워 영어 미국 부유한 집안의 백인 남성으로 태어나 평생 세상에 나를 맞출 필요 없이 세상이 알아서 내게 맞춰주고 길을 터주던 트럼프 대통령 눈에는 영어를 쓰지 않는 사람도 '비정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질 나쁜 외국인이 미국인의 피를 오염시킨다"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 사상이 담긴 문제투성이 순혈주의 발언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세계의 표준어'인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트럼프에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인 겁니다. 그래서 행정명령을 통해 굳이 자기만의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선을 그은 것일지 모릅니다. 문제는 소프트파워와 노골적인 힘의 논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 또는 통하지 않는 장벽이 있다는 점입니다. 소프트파워를 유지하고 확장하려면 소프트파워의 문법을 따라야 합니다. 즉, 힘의 논리를 앞세우면서 소프트파워도 저절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영어는 대영제국이 전 세계에 거느린 식민지를 통해 전 세계로 뻗어나가 뿌리를 내렸고, 미국이 선도하는 소프트파워를 통해 전 세계의 '공용어'이자, '표준어' 지위를 굳혔습니다. 영어를 쓰지 않는다고 벌금을 내거나 처벌을 받아서가 아니라, 영어를 잘 쓰면 그만큼 많은 기회를 누리고, 반대로 영어를 잘 못하면 기회를 놓치게 되는 시장의 생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영어를 배울 동기를 부여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멀쩡한 영어를 굳이 "미국의 공식 언어"로 못 박은 건 영어의 실질적인 지위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겁니다. 대신 자신의 지지자를 향해 "우리와 다른, 이질적인 사람들"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노리는 트럼프의 전략은 미국이란 나라의 소프트파워를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영어가 제일 편한 백인 남성에게 늘 맞춰주던 세상이 조금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즉, 트럼프가 말하는 '상식'이 오히려 '몰상식' 취급받는 세상이 반대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소프트파워의 이동, 변화는 눈에 잘 띄지 않기 마련이고, 군사력을 앞세운 전쟁처럼 극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주는 '관습과의 단절'은 실제 세상의 질서를 어디까지 바꿔놓을까요?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정말 줄어들까요? 줄어든다면 영어의 지위는 어떻게 변할까요? 아직은 이런저런 가정과 전제를 토대로 예측하는 게 다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초반의 원칙을 계속 고수한다면, 영어의 잠재적인 지위 변화는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이 가져온 가장 근본적인 변화 중 하나가 될지도 모릅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이종혁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자신이 백악관에 복귀한 뒤 새로 짜고 있는 국제 질서의 핵심적인 주장을 되풀이했습니다. '파나마 운하는 미국인의 피와 땀으로 지은 것인데 이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저 내줬다. 그런데 파나마는 이를 중국이 운영하도록 사실상 방치했다. 그래서 미국은 이를 정당히 되찾을 자격이 있고, 그렇게 할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파나마 운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역사적인 관계가 덜 얽힌 그린란드에 관해서는 처음에는 "당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존중한다"고 말하더니, 이어 "어쨌든 미국은 어떻게든 그린란드를 차지할 것(I think we're going to get it — one way or the other, we're going to get it.)"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했습니다. 이런 트럼프의 일방적인 외교관은 미국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관철하는 정책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미국의 도움을 받던 나라들에선 미국에 대한 반감이 쌓이는 등 공백을 낳습니다. 이런 공백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오르려는 강대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군용기에 이민자 실어 추방하는 트럼프...빈틈 파고드는 중국 오늘은 미국의 정책보다도 이에 맞서 중국은 트럼프 시대에 어떤 외교 전략을 펴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과 관련해 늘 동일한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을 대체하려는 생각도 없다"라는 언급으로, 방점은 미국과 대립하여 새로운 냉전 구도를 만들 의도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언뜻 의례적인 발언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시진핑과 중국 정부가 국제관계를 철저하게 현실주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진핑은 중국이 '부상하는 강대국(Rising Power)'이기에, 미국이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서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와 연계해 해석해 보면, 중국이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분명한 태도를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아직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향후 충분한 힘을 갖추게 된다면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을 중국 지도부가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중국은 다른 국가와의 교류에서 철저하게 현실주의적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무역이나 인프라 투자를 통해 상대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경제적 관점에서 외교에 접근하는 것으로, 중국이 개발도상국 단계에서 축적해 온 성장 경험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 상호 이익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상대국의 이익과 긴밀하게 연결하고, 자국의 손해가 곧 상대국의 손해로 이어지도록 설정하여, 결과적으로 상대국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중국은 중남미 지역에서 대규모 인프라 및 건설 프로젝트에 조건 없이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도로·철도·항만·에너지 시설 등 사회기반시설 분야에 막대한 투자금을 투입하며, 이를 통해 현지 정부와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원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철저히 준수한다는 점에서, 해당 국가의 정치 체제나 권력 구조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략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제공하는 지원 방식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서방 국가들은 자금을 지원할 때 투명성 확보, 반부패법 도입, 민주주의 발전 등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중국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며, 정치·제도적 개혁 요구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는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하거나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국가의 엘리트층에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외부의 간섭 없이 대규모 자본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투자금이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거나 외부의 감시와 규제가 미흡해질 경우, 부정부패가 만연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됩니다. 정치·경제적 권력층이 중국의 자본을 사적으로 활용하거나 부당 이익을 취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동시에, 중국도 자기 입맛에 맞는 식으로 자원을 확보하고, 시장에 독점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투명하지 않은 거래를 통해 마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반면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선봉으로서, 중국에 비해 정치·가치적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습니다. 미국이 오래도록 지켜온 민주주의, 국제 정의, 인권 보호 등은 외교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원칙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경제·외교적 제재를 가하더라도, 해당 국가의 정치·사회적 권리나 인권 침해 여부를 점검하는 등 가치 중심의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는 미국이 보유한 현실적인 힘에 비해 다른 나라를 강력하게 압박할 수단이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기 때문에 경제 논리에만 의존한 일방적 압박을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미국 외교가 단순한 경제적 종속과는 달리, 국제 질서를 지키고자 한다는 이미지를 쌓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결국 민주주의와 인권 보호라는 가치를 근간으로 형성된 미국의 외교 정책은 자국이 보유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국제사회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 미국의 이미지는 짧은 기간 동안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이전에는 국제사회 안에서 '미국이 옹호하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다각적 경쟁 구도가 어느 정도 작동했으나, 트럼프 이후 이러한 구도가 옅어지고 "미국과 중국 중 어느 강대국 편에 설 것인가"라는 현실주의적인 이분법적 논리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민주주의·인권 같은 정치·사회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들의 경우,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높은 리스크와 압박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이전에는 미국이 내세우는 가치와 중국의 경제적 유인 사이에서 절충할 여지가 있었지만, 트럼프 시대 이후 강대국 경쟁이 직접적이고 단순한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선택의 폭이 한층 좁아진 겁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이러한 국가들에 '현실적인 타협'을 끌어내거나 자주성을 존중하는 대안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이에 따라 많은 나라가 미국의 신뢰할 만한 장기적 정책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결국 중국의 경제력에 의존하거나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힘의 논리'와 '이분법적 선택' 구도가 가속화되는 현실은, 트럼프 시대를 기점으로 국제 질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실 중국이 노리는 바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미국을 완전히 대체할 생각이 없으며, 스스로도 미국을 대체하기에는 새로운 사상이나 전 세계적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신 중국의 목표는 미국을 자신과 대등한 지위로 끌어내리는 데 있습니다. 즉, "결국, 미국도 중국처럼 힘으로 움직이는 국가에 불과하다면, 굳이 미국 편에 서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전 세계에 진지하게 던지는 전략입니다. 강대국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각 국가는 예전처럼 미국의 '가치'를 선택하기보다 실질적인 이익을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뚜렷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이 계속해서 고압적 태도로 일관한다면, 중국 쪽으로 기우는 나라가 늘어나면서 중국이 전략적 이득을 취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5년 전 이맘때를 기억하십니까? 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마스크와 손소독제 대란이 일어났고, 종교 단체의 예배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한데 모이는 것이 감염 경로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5년 전 저는 뉴욕에 살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선 원래 마스크를 쓸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한국 가정에는 한 통씩 있는 수술용 마스크도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뉴욕에도 진단을 안 해서 확진자가 아니었을 뿐 이미 감염된 사람, 보균자들이 2월 내내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었을 거란 생각에 아찔하기도 합니다. 2월에는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을 취재한다며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 현장에 가서 수백 명이 모인 체육관에서 민주당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그 체육관 안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미국에선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 노동자들이 쓸 마스크와 방역 장비도 부족해 오히려 일반인은 마스크를 사지 말라는 권고도 나왔습니다. 손소독제도 아주 작은 들이 제품을 한 사람당 한 통씩만 팔았습니다. 한 통만 더 사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손님과 가게 직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마스크 보내주겠다는 가족한테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에서 마스크를 못 살까 싶어서 그래?"라고 큰소리쳐 놓고는 주변 편의점, 약국 등을 다 돌고도 마스크를 못 사서 2월 말에 아마존에서 주문한 마스크는 4월 중순이 다 돼서야 도착했습니다. 미국이 의료 기술이나 치료법, 신약 개발 같은 의학 연구 분야에선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일지 몰라도 병원 문턱이 높고, 건강 수명이 낮은 등 공중 보건 지표는 어디를 봐도 선진국이라고 볼 수 없는 나라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전염병에 특히나 취약할 것 같았는데, 걱정은 현실이 됐습니다. 미국에서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망한 사람이 100만 명이 넘습니다. 정확히 마지막으로 집계한 숫자는 122만 명이고, 코로나19로 병원이 마비돼 살리지 못한 환자까지 더하면 희생자 숫자는 150만 명에 이릅니다. 심지어 사망자가 한창 급증할 때 정확한 사인을 진단하지 못하고 사망 처리한 사람들 가운데 코로나19로 사망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 숫자까지 더하면 이 숫자는 훨씬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쉽게 잊힐 뿐, 미국에서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122만 명,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명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 팬데믹의 파괴력은 사망자, 감염자 숫자만 놓고 봐도 절대로 작지 않습니다. 자꾸 떠올릴수록 트라우마가 되는 기억이다 보니, 의도적으로 잊으려 하고 지워내는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면하고 잊으려 해도 이미 세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좋든 싫든 코로나19라는 21세기 들어 가장 파괴적인 전염병이 많은 걸 바꿔놓은 세상입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설마 100만 명이 죽겠어" 했는데...모두의 삶을 바꾼 경고 뉴욕타임스에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비롯해 환경과 보건에 관한 칼럼을 주로 쓰는 데이비드 월러스웰스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창궐한 지 5년을 맞아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번역한 칼럼이 첫 번째 글이고, 이어 지난 4일에는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미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분야별로 자세히 분석하는 글을 한 편 더 썼습니다. 미국 맥락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그 가운데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거나 전 세계 어느 나라나 해당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접촉하면 바이러스가 옮고 병에 걸릴 수 있으니, 자연스레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게 권장되고, 규범이 됐습니다. 이제는 코로나19가 끝나고 일상을 회복한 지 오래됐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비대면'이 자연스러워진 만큼 개인과 개인은 파편화되고 서로 더 멀어졌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온라인에서 노동과 일상에 필요한 기본적인 업무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개인은 역설적으로 더 외로워졌습니다. 개인이 느끼는 감정적인 고독은 사회적인 수준에서 총합을 측정하기 어렵지만, 사회적 고립을 측정하는 지수는 많은 나라에서 더 높아졌습니다. 온전히 코로나19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팬데믹이 이 변화에 영향을 끼친 건 분명해 보입니다. 과학에 대한 신뢰, 보건 정책을 비롯해 정부가 내놓는 정책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것도 문제입니다. 처음 접하는 유형의 바이러스를 파악하고 분석해 대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학계의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도 영향을 미쳤을 테고, 정부 지침과 정책도 특히 초반에는 일관성이 부족해 혼란을 가중한 적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언론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팩트체킹에 실패하기도 했고, 아예 사실을 제대로 검증하거나 취재하지도 않은 채 언론을 사칭하며 가짜뉴스와 왜곡된 주장을 퍼나른 '유사 언론'의 자극적인 선동이 종종 먹힌 것도 결과적으로는 재앙을 불렀습니다. 점점 더 잦아지는 전문가들의 경고 조류독감(H5N1)으로 알려진 바이러스는 원래는 자연의 새에 있던 바이러스입니다. 자연의 새들은 이미 면역이 형성돼 문제가 되지 않는 저병원성 바이러스는 보통 공장형 축사에 있는 다른 가금류 사이에서 강력한 바이러스로 변이를 일으켜 고병원성이 되고, 주변의 새들은 물론 포유류 등 다른 종으로 번져 나갑니다.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도 옮는 인수공통감염병이 되는 순간 경고등에 불이 들어옵니다. 이어 인간에서 인간으로 바이러스가 감염된다면, 그 바이러스는 머지않아 팬데믹의 창궐로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개인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참담했던 기억을 굳이 자꾸 꺼내보기 싫어서 눈을 감는 개인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다릅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지난 재난에서 교훈을 얻고 다음번에 일어날 비슷한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미국의 상황은 희망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잘 알려진 백신 회의론자입니다. 이어 식품, 의약, 의료 분야 연구를 감독하고 지원하는 정부 기구도 전문성보다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적인 코드가 맞는 인물들로 속속 채워졌습니다. 물론 팬데믹이 반드시 온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니 운이 좋게 재앙을 피해 갈 수도 있겠지만,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지 말란 법도 없는데, 그때 전문가들의 조언에 회의적인 이들이 과연 과학적인 사고와 사실을 기반으로 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미 우리는 언제 또 팬데믹이 창궐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조류독감 인체감염이 나왔습니다. 다행히 아직 사람 대 사람 감염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당장 실험실에서 연구 목적으로 배양, 실험하는 바이러스를 얼마나 안전하게 통제하고 있는지, 안전 기준이 잘 지켜지는지도 갈수록 의문입니다. 권위 있는 기관이 엄격한 규정을 정해놓고 이를 철저히 감독해야 할 텐데, 오히려 그 역할을 해야 하는 세계보건기구(WHO)는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위기는 기구에서 탈퇴하겠다는 위협을 실행에 옮긴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는 미국의 팬데믹 대처 역량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공중보건 역량을 약화시켰습니다. 바이러스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요즘처럼 사람과 재화의 이동이 잦고 서로 밀접히 연관된 세상은 당연히 전염병에 취약합니다. 전염병은 개인 차원에서 대처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공중보건 정책은 정부 역할이 중요하지만, 국경을 넘나들며 퍼지는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와 백신 개발에선 국제적인 협력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5년 전 코로나19 팬데믹이 창궐했을 때와 비교해 다시 집권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연구, 개발 부문에서 얼마나 잘 협력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번 팬데믹을 막을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대책을 준비해야 할까요? 정부는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정책을 신중하게 펼치고, 전문가들도 연구 결과를 엄밀히 분석하고 투명하게 설명해 대중을 설득해야 하며, 언론도 이를 이해하기 쉽게 잘 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개인도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사실과 거짓을 스스로 가려내는 역량을 키우고 주변 사람을 설득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막스 베버는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국가를 "물리적 강제력 혹은 폭력을 독점하는 정치 결사체"로 정의했습니다. 오늘날 국가는 대부분 폭력을 독점하는데, "강제력을 사용할 권리의 유일한 원천이 국가"가 되려면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보통 몇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군대와 경찰, 사법 기관 등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기관이나 정부 조직은 법과 규범, 관습의 제약을 받습니다. 아무리 공권력이라고 해도 무한정 허락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입니다. 군을 지휘하고 명령을 내리는 궁극적인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군대는 계급과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삼는 조직이지만, 동시에 군이 궁극적으로 '충성'해야 하는 대상은 (군 통수권자가 아닌) 국가와 그 나라의 헌법입니다. 대통령이 국가의 바탕인 헌법을 준수하는 한 군 통수권자의 명령을 따르는 게 곧 국가에 충성하는 일이 되지만, 대통령이 헌법을 무시하고 어기거나 헌법에 어긋나는 명령을 내리면 군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첫 번째 임기 마지막 해에 국방장관,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장성들과 격한 마찰을 빚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 들어 드디어 군을 향해서도 칼을 빼 들었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국방부 장관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던 피트 헥세스를 국방부 장관에 앉힌 데 이어 군 장성도 '트럼프식 인사'를 비켜 갈 수 없었습니다. 그 시작은 지난달 21일 "금요일 밤의 학살"이었습니다. "금요일 밤의 학살" 미군 합참의장(CJCS,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은 미군에서 가장 높은 자리입니다. 물론 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고, 행정부에 군을 통솔하는 국방장관이 있으며, 실제 군의 지휘 체계상 직접 명령을 내리는 건 각 군 참모총장과 전쟁사령부 사령관이지만, 합참의장은 군과 행정부의 다리 역할을 하며 대통령에게 군의 전략을 직접 조언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습니다. 별 4개인 대장 중에도 가장 높은 계급으로 간주하는 합참의장 자리는 파격 인사가 나기 어렵습니다. 내규에 따라 합참의장 후보는 육, 해, 공 참모총장이나 해병대 사령관, 또는 4성 장군인 전쟁사령부 사령관으로 한정됩니다. '승진 대상'이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달 21일 트럼프 대통령은 군 고위 장성 6명을 해고했습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느닷없는 대거 직위 해제였으며, 트럼프의 많은 인사 조처가 그렇듯 구체적인 해임 사유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해고된 장성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 바로 찰스 Q. 브라운 주니어 합참의장이었습니다. (이름과 중간 이름의 약자를 따 통칭 "CQ 브라운")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3월, 당시 공군 태평양 사령관이던 CQ 브라운 중장을 대장으로 승진시키며 공군참모총장으로 지명했습니다. 이후 6월, 상원의 승인을 거쳐 8월에 공군참모총장이 됐죠. 이어 2023년, 바이든 대통령은 신임 미군 합참의장으로 CQ 브라운 대장을 임명했습니다. 흑인 남성 최초로 공군참모총장에 오른 브라운 총장은 역시 흑인 남성 최초로 미군 합참의장이 됐습니다. 당시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남성 국방장관이었으므로, 국방장관과 군 합참의장이 둘 다 흑인인 것도 최초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CQ 브라운을 합참의장으로 임명할 수 있던 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브라운을 합참의장 후보(인 공군참모총장으)로 승진해 줬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금요일 밤의 학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5년 전 본인의 인사를 결과적으로 뒤집었습니다. 공군참모총장 후보를 백악관 집무실로 불러 지명하는 행사를 열면서까지 CQ 브라운의 업적을 치하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4년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않은 합참의장에게 '함량 미달'이란 낙인을 찍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해고 사실을 짧게 통보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프렌치는 직무를 수행할 역량이나 자질에 문제가 있기보다는 트럼프가 대통령 본인에게 충성하지 않는 군 장성들을 골라 해고해 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CQ 브라운의 경우 공군참모총장으로 지명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씨 사망 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거라고 모든 언론이 지적합니다. 백인 경찰의 과도한 폭력적 업무 집행에 무기도 소지하지 않던 흑인 민간인이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사망하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인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는데, 이때 공군참모총장 지명자 신분이던 CQ 브라운은 5분 남짓한 분량의 영상을 올렸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씨 사망 사건에 대한 의견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건 피하면서도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어야 했던 보이지 않는, 때로는 노골적이던 차별과 부조리를 담담하게 지적한, 울림이 무척 컸던 메시지였습니다.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CQ 브라운이 당시 공군참모총장으로서 메시지를 낸 것보다도 군대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가로막는 당시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에 동조하는 모든 군 장성에게 격노했다고 분석합니다.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기도 했지만, 11월 선거를 앞둔 시점이기도 했죠.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시위가 세를 불릴수록 자신의 재선 가도에 불리하다고 여긴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현장에 군대를 투입해 시위대를 제압하고 질서를 유지하려 했는데, (자신이 임명한) 마크 애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결사적으로 여기에 반대하자 이들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자비 없는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애스퍼, 밀리는 이미 해고돼 없지만,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고 백악관에 와서 보니 당시에 조지 플로이드 씨의 사망에 대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했던 군 장성이 합참의장이 돼 있으니, 트럼프로서는 CQ 브라운이 당연히 군 내에서는 '해고 1순위'였을 겁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미국을 러시아로 만들자?... 트럼프의 군 법무관 해임이 시사하는 것" CQ 브라운 합참의장과 함께 리사 프란체티 여성 최초 해군참모총장, 그리고 군 법무관들까지 대거 해임됐습니다. 헥세스 국방장관이 오랫동안 문제 삼아 온 'DEI 인사 되돌리기'를 마침내 실행에 옮겼다고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으로 정부 요직을 채울 것이며, 군도 예외가 아님을 선포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 통수권자를 국가로 동일시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논쟁이 불가피하지만, 어쨌든 트럼프는 '내가 곧 국가이므로, 군은 통수권자인 내게 충성해야 한다.'라고 선언하고, 기선 제압에 나선 셈입니다. "금요일 밤의 학살"이 정당했는지를 두고는 한동안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므로, 법적, 절차적으로는 문제 될 게 없지만, 의회는 청문회를 열어 정부에 해임 사유를 따져 물을 수 있으며, 상원은 후임자 임명을 미루거나 인준하지 않는 식으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 중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운털 박힐" 각오를 하는 사람이 몇 명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CQ 브라운의 후임 합참의장으로 지명한 댄 케인 전 공군 장교에 관해 살펴보면, 트럼프가 원하는 인사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케인은 CQ 브라운과 마찬가지로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입니다. 다만 브라운 의장과 달리 공군 중장으로 퇴역한 뒤 군수 업체 및 투자 회사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민간인 신분입니다. 앞서 합참의장에 오를 수 있는 '승진 대상'이 정해져 있다고 했는데, 내규를 어기고 이미 퇴역 장성인 케인을 합참의장으로 '특진'하려면 마찬가지로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트럼프는 또 예전부터 케인 장군을 좋아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는데, 케인 본인은 부인했지만, "이 군인이 나더러 나를 정말 좋아한다, 각하를 위해서라면 사람도 죽일 수 있다고 말하더니, 갑자기 내 앞에서 마가 모자를 쓰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군인 신분으로 마가 모자를 쓸 정도로 노골적인 정견을 드러내는 건 군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는 일이지만, 트럼프는 어쨌든 자기한테 충성하는 군인이 한없이 예뻐 보였던 겁니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후보라도 트럼프는 선거를 앞둔 경선 단계에서 '내 눈 밖에 나면 재선 가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무기를 앞세워 공화당 의원들을 단속하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케인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케인은 퇴역한 뒤 올해 초부터 트럼프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쉬너의 동생인 조슈아 쿠쉬너가 파트너로 있는 투자회사 스라이브 캐피털에 고문으로 있습니다. 쿠쉬너가 1기 때와는 달리 2기 행정부에서는 아무런 직책도 맡고 있지 않지만, 규모가 큰 방위산업을 둘러싸고 합참의장이 이해 충돌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는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논란이 일든 말든 트럼프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만 곁에 두고, 자기 뜻을 거역한 참모는 철저히 숙청하는 정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같은 논리를 이어가면, 군대도 국가가 아니라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충성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미 첫 번째 임기 때 미군을 미국 국내 문제에 투입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반대하던 국방장관이나 군복을 입고 대통령과 함께 사진에 찍혀 선거 포스터에 본의 아니게 동원될 수 있는 걸 철저히 금기시하는 만큼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공개적으로 사과한 합참의장에게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냈던 트럼프입니다. 트럼프에게 충성은 인사를 검증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사실상 유일한 요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노릴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는 또 있습니다. 정부 예산을 대폭 줄이지 않으면, 선거 중에 약속한 대규모 감세 정책을 시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데, 미국의 국방 예산은 정부 지출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단연 큰 분야 중 하나입니다. 어떤 이유를 달든 예산을 절감하는 동시에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마저 군대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면, 트럼프로서는 일석이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군의 대비 태세가 지장을 받고 전력이 약해지는 게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런 문제는 이번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가 헌법이 아니라 군 통수권자 개인에 충성하는 민병대에 가까워진다면, 이는 명백한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제도, 관례, 규범은 말할 것도 없고, 법까지 우회하고 무력화하며 자기 방식으로 통치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에 용인된 물리력과 폭력을 행사하는 가장 강력한 조직이자, 규범과 법이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는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군대의 인사에 있어서도 자기 뜻을 관철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휴전을 중재하며, "팔레스타인 일대를 중동 최고급 휴양지로 개발하겠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말로 주권주의(sovereigntism)라는 개념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주권주의는 백인, 기독교 중심의 보수적 가치관에 반하는 국제주의와 UN을 비롯한 국제기구를 경멸합니다. 세계화도 미국인의 삶에 이로울 게 없다며 싫어하는 주권주의자들은 영토의 확장을 통해 자원을 확보하는 일처럼 금전적인 이득과 직결되는 제국주의적 팽창이 아니면 다른 나라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 자체를 반기지 않습니다. 이 개념을 소개한 칼럼을 쓴 럿거스대학교 역사학과의 제니퍼 미텔슈타트 교수가 파나마 운하를 다시 소유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보고 주권주의를 떠올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대선 후보 시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장담하던 트럼프는 이달 초 기존 미국 정부가 보여준 것과 아주 다른 기조로 가득한 협상안을 제시합니다. 처음부터 3년 전 일방적으로 침략당한 뒤 막대한 희생을 감내한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와 직접 협상 테이블을 차리는 듯한 인상을 주며 국제 사회의 우려를 자아냈던 트럼프는 전쟁을 끝내는 방법과 내용 면에서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을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월요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년을 기해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규탄하며 종전을 촉구한 UN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이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따로 상정해 통과시킨 UN 안보리 결의안에서 러시아의 침공 사실을 쏙 빼놓고 공허한 평화를 촉구합니다. 20세기의 전통적인 주권주의자들이 무덤에서 나와 UN에서 활동하는 미국을 본다면 그 자체로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재무제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동맹이나 우방국도 바로 내팽개치는 모습이나 자신이 속한 나토(NATO)의 안보에 중요한 사안인 만큼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던 건데 갑자기 여기에 가격을 매겨 5천억 달러 상당의 희토류를 포함한 자원으로 미국에 꿔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트럼프의 모습은 영락없는 주권주의의 화신 같았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발의한 UN 결의안에 반대한 나라들은 러시아와 북한, 벨라루스, 니카라과 등 18개 국가에 불과한데, 이 몇 안 되는 나라 명단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오르면서 국제 질서 전반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몰아쳤습니다. 전쟁을 바라보는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가 180도 돌변했고, 이제 우크라이나는 푸틴의 주장을 마치 대리인처럼 고스란히 읊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게 생겼습니다. 미국이 지원을 끊으면 전쟁을 치를 여력이 없는 우크라이나의 사정을 고려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건 국제 사회에 간절히 호소하는 것 말고는 별로 없습니다. "(푸틴한테) 전화 한 통 걸면 전쟁 끝낼 수 있다"고 말하는 당시 대선 후보 트럼프를 향해 상대 후보 카멀라 해리스는 "트럼프가 전쟁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푸틴한테 굴복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 대통령 앞에 동맹국을 무릎 꿇리는 식으로 전쟁을 끝내겠다는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해리스의 예상이 크게 빗나가지 않은 듯합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미국이 UN에서 던진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투표"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을 규탄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사실상 공범 수준... 이건 미국이 UN서 던진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투표"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 사회와 외교 무대에서 어떤 기조로 정책을 펴는지 자세히 분석하는 건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기라도 한다면 한반도 정세가 또 한 차례 요동칠 테니, 미국의 외교 정책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나라의 정책을 분석하는 단계에서는 명백한 사실과 사실을 비틀고 왜곡하는 주장의 차이를 구분해야 합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을 두고 '실시간 역사 왜곡'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거짓 주장을 펴는 쪽은 어딘지 가려낼 줄 알아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과의 관계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푸틴 같은 독재자와도 금전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계산이 서면 얼마든지 거래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첫 번째 임기를 거치며 실제로 확인된 성향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전쟁의 역사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쓰겠다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꿔친 건 놀랍습니다. UN에서 통과된 두 결의안, 즉 전체회의에 상정돼 93개국의 찬성으로 통과된 결의안과 안전보장이사회에서 15개 이사국 가운데 10표밖에 얻지 못한 미국판 '반쪽짜리 결의안'의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당장 전쟁을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죄로 만든 푸틴의 세계관을 그대로 투영한 듯 미국의 안보리 결의안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한다"고만 쓰여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킨 게 아니라, "원래 러시아 영토인 돈바스 일대에서 러시아 민간인을 향해 테러를 일삼는 네오나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특별군사작전을 편 것"입니다. 이를 전쟁으로 부르고 여기에 반대하는 건 러시아의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서구 언론의 공작에 놀아나는 것이므로 죄가 된다고 푸틴이 말했는데, 느닷없이 트럼프가 여기에 동조한 겁니다. "사실과 허구의 구분, 참과 거짓의 구분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전체주의가 싹을 틔우는 데 가장 중요한 자양분임을 꿰뚫어 본 한나 아렌트가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언론의 자유가 극도로 제약된 러시아에 미국이 더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백악관 기자단 구성과 출입 문제를 놓고 AP통신과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사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본연의 역할을 했을 뿐인 언론사를 길들이려는 것도 민주주의 정부보다는 전체주의 정권에서 자주 있는 일입니다. 브렛 스티븐스가 칼럼에서 예로 든 바츨라프 하벨의 통찰은 '앞서가는 복종'에 관해 이야기한 티모시 스나이더 교수의 지적과도 통합니다. 스나이더 교수는 20세기에서 얻은 20가지 교훈을 책 "폭정"에서 정리했는데, 첫 번째 교훈으로 꼽은 1장의 제목이 "미리 복종하지 말 것(Do not obey in advance)"입니다. 첫 문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권위주의 정권은 보통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권력을 얻는다. 억압적인 정권이 무엇을 원할지 지레짐작한 개인들이 요구받기도 전에 알아서 순종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체제에 알아서 복종하는 시민들은 독재자에게 힘을 준다.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힘은 시민의 자유를 찍어 누르는 억압적인 폭력에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실을 외면하고 거짓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거짓으로 쌓아 올린 평행우주를 지탱하고 있다는 겁니다. 분석보다 더 어려운 대책 마련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가 발의한 결의안을 둘러싸고 진행한 UN 전체회의 투표에서는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며,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 범죄의 책임도 러시아에 있음을 명백히 밝힌 결의안이었죠. 그런데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둘러싼 투표에서는 미국이 발의한 공허한 내용의 결의안에 기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올해까지 2년 임기의 비상임이사국 중 하나인데 미국이 발의한 결의안에서 침략 주체를 러시아라고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가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투표에서 기권한 유럽 이사국(영국, 프랑스, 덴마크, 그리스, 슬로베니아)과는 결이 다른 행보를 보인 겁니다. UN이 소개한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황준국 UN 대사의 고민이 읽힙니다. 황 대사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무고한 사람이 너무 많이 희생됐다"고 안타까워하며, "이번 결의안이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노력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을 명시적으로 규탄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지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종전 협상 자체가 어그러지지 않도록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원칙적으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영국과 프랑스도 거부권을 쓰지는 않고 유럽의 비상임이사국을 모아 기권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에 의사를 전달하고, 뒤이어 협상을 이어간 것과 비슷한 결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일은 어쩌면 쉽습니다. 반대로 국제기구의 협력보다는 힘 있는 나라가 원하는 것을 나눠 먹는 세계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질서에서 강대국이라고 보기 어려운 우리나라가 대책을 마련하고 전략을 세우는 일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모종의 담판을 지으려 한다면 그 협상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에게 연습이 아닌 실전이 되는 만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5천억 달러를 노골적으로 청구한 트럼프 행정부의 제안에 "후손을 대대로 빚더미에 앉히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도 "미국이 끝까지 요구한다면 내겐 선택지가 많지 않다"며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외교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둬야 한다는 말이 나오곤 합니다. 그 자체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당연한 명제입니다. 다만 국익이라는 게 정의하기 모호한 측면이 워낙 많다 보니, 국익이란 명분이 자칫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적당히 얼버무리고 강대국의 '실시간 역사 왜곡'에 가담하는 결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전혀 낯선 장면이 아닙니다.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이번에 마련하는 대책의 기준은 국익 이전에 명백한 사실이 되어야 합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지난 토요일(22일) 늦은 오후, 미국 연방 정부 공무원들의 이메일 계정에 백악관 인사관리처(OPM, Office of Personnel Management) 명의로 메일 한 통이 도착합니다. 제목은 "이번 주에 무슨 일을 하셨나요?"였고, 주요 내용은 "이번 주에 어떤 업무를 하셨는지 5개 정도 항목으로 간략히 요약해서 당신의 상사를 참조해 답장을 보내주세요. 단 기밀 정보나 링크, 첨부 파일은 보내시면 안 됩니다"였습니다. 월요일 밤 11시 59분이 도착한 답장만 인정한다는 내용이 더 있었고, 일론 머스크는 토요일 밤 소셜미디어 X에 "답장하지 않는 인원은 사직 의사를 표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라고 썼습니다. 300만 명 가까운 연방 정부 공무원 중에는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기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업무 특성상 기밀을 포함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도 많고, 휴가 중이거나 근무 중이라 이메일을 열어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이미 정부효율부가 예산을 낭비하는 부서라며 통째로 직무를 정지시켰거나 무급 휴가를 보내놓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도 월요일 밤까지 답장을 보내지 못하면 사직 처리되는 건지, 어떻게 답해야 하는 건지 수많은 공무원이 또 한 차례 당혹스러운 주말을 보냈습니다.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습 기간(probationary)인 공무원들은 곧바로 해고하고, 수습 기간이 끝나 정직원이 돼 해고가 어려운 공무원들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더니, 목표치를 채우지 못했는지 노골적인 협박을 시작했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토요일 오전, 머스크를 향한 원성과 비판에도 "머스크는 정말 잘하고 있다. 사실 더 공격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라고 썼습니다. 머스크는 이 트윗을 언급하며, "분부대로" 하는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공무원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공무원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이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연방법에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은 본인이 원할 때만 사직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해고 사유에 해당하는 범죄나 비위를 저질렀을 때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지만, 이번 주에 무슨 일을 했는지 적어 내라는 사실상 근본도 없는 정부효율부라는 조직에서 뿌린 전체 메일에 이틀 안에 답장을 보내지 않은 것이 면직 사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불법의 소지가 다분한 걸 알면서도 머스크는 실리콘밸리에서 직원을 해고하듯 정부 조직을 마구 썰어대고 있습니다. 국제개발처를 사실상 공중분해 시키면서 머스크는 "예산을 갉아먹는 부서를 목재 절단기(wood chipper)에 넣어 갈아버렸다"고 썼습니다.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소송이 잇따라 제기됐지만, 머스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공격 목표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고, 정부효율부가 하는 일을 가로막는 판사들은 죄다 탄핵해 버리라고 공화당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트럼프와 머스크는 사실 권한이 없다... 모두가 속고 있는 말장난" 정부효율부라는 조직이 '근본 없는 조직'이라는 점을 차분히 지적한 니콜 겔리너스의 칼럼을 번역할 때만 해도 일어나지 않았던 '이번 주에 무슨 일 하셨나요 이메일 사건'이 일어나 해설의 앞부분을 새로 썼습니다. 최신 사례가 쉼 없이 새로 쌓일 만큼 정부효율부는 좌충우돌 연방 정부를 해체하고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이름 자체가 일부러 이 조직이 하는 일을 호도하기 위해 잘못 지어졌다는 겔리너스의 주장이 타당한지 따져보기 위해 정부효율부 설립을 지시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같이 보겠습니다. 취임 첫날 발효한 행정명령 중 하나인데, 제목에는 "정부효율부" 설립에 관한 행정명령이라고 쓰여 있지만, 내용을 보면 실은 이름만 부(Department)일 뿐 백악관 산하 미국 디지털 서비스(US Digital Service)의 이름을 고쳐 미국 정부효율부 서비스(US DOGE Service (USDS))라고 부른다고 쓰여 있습니다. 연방 정부 행정부의 부처를 신설하려면 정부 예산권을 쥔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처의 장인 장관은 대통령이 후보를 지명하지만, 상원의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하죠. 트럼프 대통령에겐 이 따분한 절차를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머스크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정부 일을 시작합니다. '정부 일'이라고 표현했지만, 일론 머스크와 정부효율부가 정식으로 어떤 권한을 부여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국은 보통법(common law)을 따르는 관습법 국가라는 점을 누차 얘기했는데, 정부조직법을 보더라도 대륙법 체계를 따르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그 규정이 훨씬 성깁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고, 반대로 어떻게 하면 안 된다는 규정도 없으니, '임시로 뚝딱 만든 부처라도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극단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거죠. 지금까지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집권 정당 누구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은 건 서슬 퍼런 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관습과 규범을 따랐을 뿐입니다. 법도 쉽게 무시하는 트럼프와 머스크의 조합은 관행과 규범 정도는 더 쉽게 무시하고, 무서운 속도로 공무원들을 줄줄이 해고하고 조직을 잘라내고 있습니다. 머스크의 이런 행위는 엄연히 정부를 방해하고 파괴하는 행위이므로, 여기에 '효율'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도 잘못됐다고 겔리너스는 지적합니다. 효율을 핑계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의제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몰아내겠다는 것이지, 실제 예산 절감 효과도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로 첫 달 실적을 발표하며, 정부 곳곳의 예산 낭비 관행을 적발하고 바로잡아 550억 달러를 아꼈다는 정부효율부의 자화자찬은 곧바로 주요 언론의 반박에 거짓말, 억지 주장으로 드러났습니다. 심지어 보도자료에 첨부한 근거에도 오타가 있어 실제 절감액은 100억 달러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한때 6조 달러가 넘는 전체 연방 정부 예산 가운데 2조 달러는 줄일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머스크를 떠올리면 초라한 성적표인데요, 특히 정부 예산이 허투루 쓰이거나 잘못 지급되는 사례 대부분은 연방 정부 공무원 조직이 비대해서 그런 게 아니라, 주 정부가 보험금이나 각종 지원금을 중복 지급하거나 엉뚱한 데 줘서 그렇습니다. 트럼프와 머스크가 이 사실을 모르고 정부효율부에 매진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행정부의 소중한 자원과 시간을 엉뚱한 데 쓰는 셈이고, 이 사실을 알고도 정부효율부의 업무를 계속 강행한다면 다분히 정치적인 걸림돌들을 치워버리기 위한 행위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공무원들을 향해 준 모욕, 부메랑처럼 돌아올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상당 부분 무력화시킨 채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여당인 공화당의 주축은 8년 전과 비교하면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른바 "마가 공화당원(MAGA Republicans)"으로 채워졌고, 사법부도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 3명을 포함해 대통령의 권한 확대와 면책특권에 우호적인 판사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습니다. 제도적인 견제 장치가 기능을 못 하는 지금 트럼프 대통령을 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제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을 되찾아오는 시나리오입니다. 다만 지금으로선 지난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이 리더십의 부재 속에 전열을 가다듬지 못했고, 머스크가 X(옛 트위터)를 앞세워 공론장을 효과적으로 파괴하고 장악하면서 기성 언론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해 정부효율부가 선을 넘었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는 것도 별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트럼프와 머스크는 이번에야말로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트러뜨려서 여론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겔리너스는 칼럼에서 행정부의 폭주를 견제하지 못하고 책임을 방기한 의회도 잘못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은 정부효율부의 점령군 같은 조처를 대체로 비호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나오는 비판은 정부 효율을 추구하는 취지는 좋지만, 발언의 톤을 좀 조절해 달라는 수준의 당부입니다. 공화당의 존 커티스 상원의원(유타)은 CBS에 출연해 "최소한의 연민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해고 위협을 받은) 이들은 전부 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생활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수백만 명이 모욕을 당하면, 그 모욕을 잊기엔 다음번 선거철이 생각보다 금방 다가오기도 합니다. 정부효율부의 타협 없는 정책이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아니면 커다란 역풍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됩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사람은 누구나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당장의 위협에 먼저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눈앞에 나타난 위험이나 장애물, 낯선 소리, 미심쩍은 촉감, 이상한 냄새 등을 경계하게 되는 건 본능적인 반응이죠. 반대로 보이지 않는 미래의 위협에는 자연히 경계를 덜 하게 됩니다. 이러다가는 큰일 난다는 경고를 아무리 많이 듣더라도 실제 위험이 닥칠 때까지 손 놓고 있게 되는 것도 어쩌면 본능에 충실한 반응일지 모릅니다. 여러 단계를 거쳐 어떻게 될지 생각하고 그에 맞춰 대비책을 세우는 건 아무래도 귀찮은 일이니까요. 보이지 않는 위험 요소가 실제로 문제로 이어질 확률을 실제보다 낮게 잡는 사고 구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기후위기를 향한 우리의 인식과 대응일 겁니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나중에 큰일 난다던 경고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인류는 끝내 탄소발자국을 지우거나 줄이지 못한 채 마지노선이라던 기준을 거듭 넘고 또 넘었습니다. 예전보다 기후변화로 인해 극심해진 기후 재해로 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잦아졌고, 자연히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논의도 활발해졌습니다. 그러나 기후 재해가 모두에게 고루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인지, 눈앞에 닥친 명백한 위기를 외면하고 못 본 척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일종의 공유지의 비극이 여기서도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아는 기후변화 관련 데이터에 숨겨진 부분이 더 있다면 어떨까요? 심지어 그 숨겨진 부분을 우리가 아예 몰랐던 게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도록 기준을 슬쩍 바꿔 사실을 숨겨 왔다면? 책임을 회피하고 손가락질받지 않으려는 이해관계가 통한 세력의 짬짜미가 당혹스러울 겁니다. 예일대학교 역사학과 수닐 암리스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정말 그런 일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전쟁이 기후변화에 끼치는 영향이 그렇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우주에서도 보일 정도... 이건 지구마저 파괴하는 숨은 주범" 칼럼에서 지적했듯 전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탄소발자국은 그동안 기후변화 관련 통계에서 관행적으로 제외됐습니다. 사람 목숨이 오가는 전쟁에서 탄소발자국을 계산하고 따지는 게 한가한 일처럼 보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전쟁을 주로 벌이는 강대국들이 기후변화 대책에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라는 전 세계의 질타와 독촉을 받기 싫어서 이런 관행을 바꾸지 않으려 버티기도 했을 겁니다. 어쨌든 어떤 일이 있어도 폭력은 안 된다는 대전제를 가슴에 새기고 사는 많은 이들에게 폭력의 가장 극단적이고 야만적인 형태인 전쟁은 만사를 제쳐놓고 반대하고 막아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에 반대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구나 생각했는데, 암리스 교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그저 한 가지 이유가 추가된 정도로 여길 게 아니라, 환경을 파괴하는 아주 극단적인 행위라는 이유만으로도 모든 전쟁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쟁은 기후위기를 부추기고 유독한 물질을 마구 흘려보내 삶의 터전으로 삼기엔 제한된 공간만 있는 지구의 소중한 환경을 돌이킬 수 없게 파괴합니다. 전쟁 반대의 이유, 명분 중에 최우선 순위는 아니더라도 상위권에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고 우리 곁에 남아 몇 세대에 걸쳐 끔찍한 피해를 남긴 전쟁은 사실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한국전쟁이 그랬고, 베트남전에 파병된 장병 중에는 (암리스 교수도 칼럼에서 언급한) 고엽제로 인한 피해로 평생 고통받다 돌아가신 분들도 많습니다. 전쟁이 아니라도 군사 정권이 자행한 학살과 폭력, 또 우리 군대가 제일 앞에서 싸우진 않았지만 전쟁에 군인을 보내고 동참했던 일을 떠올리면, 우리 현대사도 칼럼에서 언급한 군국주의(militarism)로 얼룩져 있습니다.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데 지구라는 터전을 함께 쓰는 다른 생명체나 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식을 찾지 못했기에 사람이 살 만한 터전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환경을 파괴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시간은 점점 더 빨리 날린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올 겁니다. 칼럼에서 예로 든 우크라이나나 가자지구의 상황도 암울합니다. 물론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가장 먼저 기려야 하겠지만, 생존자들에게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은 도저히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했습니다. 건물이나 기반시설이 파괴된 건 물론이고, 땅과 하천, 대기, 지하수까지 온통 독극물이나 다름없는 유독가스, 화학 물질, 폐수로 오염됐기 때문입니다. 힘의 논리에 맞서는 상상력 이론적으로는 전쟁에 반대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한 가지 더 확인했지만, 안타깝게도 2025년의 현실은 강대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방향, 즉 힘의 논리가 더 잘 먹히는 시대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냉전이 끝난 뒤 사실상 세계 유일의 강대국 지위에 오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던 전쟁을 자기 방식대로 끝내려 하고 있는데, 두 군데 모두 전쟁 당사자 중 힘센 쪽(러시아, 이스라엘)의 편에 서서 약자(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에게 반강제적인 협상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국제 정세가 그런 건 어쩔 수 없더라도 그 안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는 최대한 내고,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과 연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우리 편을 늘리기 위해 필요한 건 상상력입니다. 세상에 불가피한 전쟁은 없습니다. 다수가 이득을 보는 전쟁도 없습니다.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다면, 정말 숫자로는 한 줌에 불과한 몇몇 권력자들과 전쟁을 통해 금전적 이득을 챙기는 무기 업체 같은 기업들뿐일 겁니다. 심지어 승전국 국민들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싸운 이도, 소중한 가족을 잃을까 밤잠을 못 이루고 걱정하다가 실제로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는 것도 늘 평소에는 전쟁에 찬성하지 않았을 대다수 국민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냉철히 생각한다면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상식적으로 늘 사회의 다수를 이뤄야 합니다. 환경 파괴도 더는 다음 세대를 생각해서 챙겨야 하는 사안이 아닙니다. 이미 기후위기가 현실이 된 만큼 절박함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봐야 합니다. 암리스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군국주의는 윤리적, 정치적 상상력을 왜곡해서 문제입니다. 무력을 앞세워 충돌하지 않을 수 있는데, 전쟁을 피할 수 있는데도 그 길을 찾는 데 필요한 생각을 억제하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힘의 논리는 넘기 어려운 벽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상상력을 발휘해 부딪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고 연대하면, 힘의 논리에 맞설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고, 알아서 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며 전쟁의 길을 택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전쟁을 막아내는 쪽이 인류를 위해서 반드시 더 나은 길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지난 11월 22일, 미국 대선이 끝난 뒤 약 보름이 지난 시점에 백악관으로 돌아올 트럼프 대통령을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비교하며 권위주의 정치 체제의 등장을 경고한 마샤 게센의 칼럼을 소개했습니다. 그 글을 쓴 시점으로부터는 약 3개월이 지났습니다. 해가 바뀌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는 곧 한 달이 되고, 이 글을 쓰는 17일은 마침 매년 2월 셋째 주 월요일,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일을 기념하는 미국 연방 휴일 대통령의 날(President Day)입니다. 게센은 꾸준히 트럼프가 법치(rule of law) 대신 권위주의적 통치에 필요한 법(law of rule)을 만드는 '독재적 돌파구'에 관해 경고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이번에는 오르반 총리와 헝가리 대신 본인이 나고 자란 소련과 푸틴 대통령 하의 러시아를 비교하며 제왕적 대통령의 길을 가고 있는 트럼프를 향해 미국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앞서가는 복종(anticipatory obedience)"을 우려하는 글을 썼습니다. "앞서가는 복종"은 예일대학교의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가 쓴 표현인데, 맥락을 고려하면 '권력에 알아서 기는 상황'이라고 풀어 옮길 수 있습니다. 게센이 어떤 점을 우려하고 지적했는지 우선 칼럼을 번역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알아서 복종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서 펼쳐질 섬뜩한 미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일론 머스크와 정부효율부, 그리고 강성 지지층을 앞세워 수많은 관습을 바꾸고, 제도와 규범을 고쳐 쓰고 있다는 분석은 여러 차례 전해드렸습니다. 그 가운데는 선거에서 이긴 정당과 정치인이 유권자들이 투표로 위임한 권한과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했다고 볼 수 있는 것들도 있고,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할 뿐인 대통령으로서 소위 '선 넘은', 즉 월권을 행사한 것들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잘잘못을 두고는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제도 하의 공화국 시민에게는 권력자가 잘못하고 선을 넘을 때 이를 지적하고, 나아가 권력의 남용에 저항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권력이 총칼을 앞세워 법과 제도를 짓밟으려 할 때는 잘못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선을 넘으려는 시도가 노골적인 만큼 선과 악이 명확히 구분되곤 합니다. 그렇다고 저항하는 게 쉽다는 말은 물론 아니지만,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이라면 적어도 어느 편에 서야 할지는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게센이 지적한 대로, 권력이 두려워서 억지로 복종하기보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합리적인 판단 끝에 "앞서가는 복종" 대열에 동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센은 선거 전에 LA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지지 후보를 밝히던 오랜 관행을 갑자기 내다 버렸을 때, 마크 저커버그가 소셜미디어의 팩트체크 기능을 대폭 축소한다고 발표했을 때, 언론사들이 뚜렷이 잘못한 게 없는데도 정권의 겁주기용 소송에 굴해 합의에 이르렀을 때, 여러 대학과 기업들이 학생, 직원을 뽑을 때 적용하던 차별 금지 조항을 알아서 없앨 때 위기를 실감했다고 썼습니다. 게센은 알아서 복종하는 이들이 대는 '나름의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그 이유는 서로 얽혀 있거나 겹치기도 하는데, "타인에 대한 책임", "더 큰 목표", "실용주의", "내가 안 해도 결국엔 이렇게 될 거야", "시대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설명됩니다.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우리말로 풀어보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괜히 나섰다가 남들한테까지 피해주지 말라"는 조언처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통념처럼 대부분 저항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꺾는 언어들입니다. 개인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사고 끝에 내린 결정처럼 보이는 것들도 민주주의 사회를 지켜내야 할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무책임하거나 잘못된 결정일 수 있습니다. 시민들 사이에 정치적인 관점과 견해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그 다른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게 가로막고 토론을 제약하려 하는 건 그 자체로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나아가 저커버그의 메타가 팩트체킹 기능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한 뒤 쓴 글에서도 인용했던 한나 아렌트의 통찰을 한 번 더 인용하면, "전체주의 통치의 이상적인 주체는 신념에 찬 나치나 신념에 찬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구분, 참과 거짓의 구분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사실과 거짓이 토론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사실과 거짓마저 진영 논리에서 바라보려는 모든 시도도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대통령 넘어 왕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 수정헌법 22조 트럼프 대통령이 편 정책 가운데 '선을 넘은' 것들이 적지 않은데도 저항의 목소리가 미미하자, 미국 정치 제도가 정말 독재로 전락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제왕적 대통령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말 왕이 되려 한다는 지적도 물론 과장됐지만, 아주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트럼프가 미국을 오르반의 헝가리나 푸틴의 러시아처럼 비틀어놓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여러 가지 전망 가운데 오늘은 궁극적으로 4년 뒤 트럼프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할 최후의 보루로 꼽히는 수정헌법 22조에 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트럼프가 4년 뒤 두 번째 임기가 끝날 때 관행을 거스르고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한다면 어떻게 나올지 분석한 폴리티코의 기사를 참조했습니다. 우선 수정헌법 22조의 핵심은 가장 앞부분의 "누구도 두 번 이상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없다(No person shall be elected to the office of the President more than twice)"는 구절에 있습니다. 권력의 이양에 관한 미국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언급해야 하는 인물은 대통령의 날의 주인공이기도 한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입니다. 4년씩 두 번, 총 8년 임기를 마친 워싱턴 대통령은 권력을 내려놓고 초야로 돌아갔습니다. 아직 대통령의 연임 규정에 관한 법제가 정비되지 않은 신생국 미국에 최대 두 번까지만 대통령직을 맡는다는 관행을 만든 사람이 워싱턴입니다. 이후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세 번째 임기를 부여받은 대통령은 150년 가까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관행을 깬 인물이 바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입니다. 1932년에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루즈벨트는 뉴딜 정책을 펴 대공황에서 벗어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두 번째 임기가 끝나가던 1940년 유럽에서 전쟁이 났고, 미국이 언제 여기에 휘말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관습법의 나라답게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해선 안 된다는 법은 전혀 없었고, 미국 국민들은 루즈벨트를 무려 두 번이나 더 대통령으로 뽑습니다. 루즈벨트는 1945년 사망할 때까지 13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합니다. 대공황과 세계 대전이라는 위기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간 루즈벨트지만, 두 번까지만 대통령을 한다는 관행이 깨진 만큼 이제는 임기를 헌법에 명시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회가 논의 끝에 발의해 오랫동안 논의한 끝에 통과, 선포된 조항이 수정헌법 22조입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4년 뒤에도 계속 권좌에 앉을 수 있는 시나리오를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넷 다 지금 상황에선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지만, 트럼프가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가져온 변화를 고려하면 섣불리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기 어렵기도 합니다. 우선 수정헌법 22조를 폐지하고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없애는 방법이 있습니다. 헌법을 폐지하거나 다시 쓰려면 우선 상원과 하원 재적 의원의 2/3가 찬성해야 합니다. 또 전체 50개 주 가운데 3/4이 새 헌법을 비준해야 합니다. 트럼프가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그만한 지지를 확보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둘째, 누구도 두 번 이상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없다는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일종의 꼼수를 쓰는 겁니다. 대통령으로 선거에 나서 세 번째로 뽑히면 헌법 위반이지만, 부통령으로 뽑혔다가 대통령이 궐위 상태가 돼 그 자리를 물려받는 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J.D. 밴스 부통령이 2028년 대선 후보로 나서고 트럼프를 러닝메이트로 지목한 다음 당선되면 임기 첫날 바로 하야, 트럼프에게 권력을 넘기는 겁니다. 꼼수라는 비판은 거세게 일겠지만, 위헌 여부는 다퉈볼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셋째, 헌법을 무시하고 다시 대선에 도전하는 겁니다. 이건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의 최근 행동 원칙이기도 한데, 법을 대놓고 무시한 다음 어디서 가로막히는지 실제로 상황을 지켜보는 겁니다. 특히 관습법 전통을 따르는 미국은 법을 크게 어겼을 때 처벌 조항이 법조문에 보통 안 쓰여 있습니다. 판례도 없을 만큼 큰 잘못이라면 법원도 판결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가 지금처럼 인기가 높고, 야당인 민주당이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리고 트럼프가 정말 세 번째 임기를 하고 싶다면 감행해 볼만 한 도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넷째는 헌법에 저항하는 겁니다. 세 번째 시나리오와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데, 아예 선거를 막는 겁니다. 선거가 없으면 권력을 이양할 다음번 당선자도 나오지 않을 테고, 그럼 계속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선거도 헌법에 명시돼 있으니, 이를 막으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생기지 않는다면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사변이 나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선거를 미루는 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이 또한 현실성이 부족한 시나리오처럼 보이지만, 2020년 선거에서 지고도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쓸 수 있는 카드를 거의 다 썼던 트럼프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모릅니다. 이 모든 시나리오를 무력화할 수 있는 건 미국 시민들의 저항입니다. 저항이 꼭 물리적인 혹은 명시적인 반대를 뜻하는 건 아닙니다. 당장 내년에 중간선거가 있습니다. 하원 전체와 상원의 1/3이 교체됩니다. 여기서 유권자들의 표심이 지난 선거와 확연히 달라진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동력은 크게 꺾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민주당이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보다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하며 대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The Ugly American." 미 해군 출신 작가 윌리엄 레드러와 정치학자이자 소설가인 유진 버딕이 같이 쓴 정치 풍자 소설로 1958년에 발매돼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국내에도 "추악한 미국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됐지만, 지금은 절판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아시아에 파견된 미국 외교관들이 현지 문화를 얕잡아 보고 현지인을 무시하며 엘리트층하고만 교류해 반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를 날카롭게 그린 책입니다.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이 책을 감명 깊게 읽고, 국무부 직원들한테 필독을 권했다고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외교관들에게 필독을 권유한 건 그저 책이 좋아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냉전 초기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누구 편도 아닌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소위 제3세계 국가에서 미국이 신망을 잃고 미움받는 건 냉전 구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평화봉사단(Peace Corps)이 탄생한 것도 케네디 대통령 때의 일입니다. 전 세계 곳곳에 미국인을 파견해 봉사활동을 벌이는 단체로, 특이한 점은 후원 주체가 미국 정부라는 점입니다. 그저 좋은 일 하는 걸 넘어 미국의 좋은 이미지를 심는 게 목적인 단체죠. 같은 시기에 생긴 또 다른 정부 단체가 바로 미국 국제개발처(USAID)입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인도적 지원이나 자선 활동을 하는 단체인데, 특이한 점은 자금을 미국 정부가 댄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인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그저 좋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추악한 미국인"의 이미지를 "도움을 주는 좋은 친구"로 바꾼다는 목적 아래 움직이는 단체였습니다. 국제개발처는 도와주러 간 나라에 학교, 병원, 도로, 식수 시설 등 인프라를 짓고 구호 식량과 의약품을 제공하며, 현지의 경제 개발을 지원합니다. 또 보건 및 질병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늘리고, 미국과 가까운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무기와 군사력, 힘을 앞세운 '하드 파워'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마음을 얻는 '소프트 파워'를 추구하던 전략이었습니다. ('소프트 파워'라는 용어는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가 처음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국가 둘이 나머지 나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경쟁하던 냉전은 1990년대 초에 끝났습니다. 그럼, 이제 더는 약소국에 잘 보일 필요가 없어졌으니, 국제개발처도 쓸모가 없어졌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국이 분명 헤게모니를 쥔 유일한 강대국이 됐지만, 여전히 힘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었고, 소프트 파워도 계속 필요했습니다. 9.11 테러는 군사력의 총합을 따지면 미국과 대적할 수 없는, 심지어 국가도 아닌 테러단체가 미국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또한, 빈곤과 사회 기반의 붕괴가 극단주의 성향을 키워 반미 테러리즘의 자양분이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탈냉전 시대의 국제개발처는 사회적, 경제적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의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경제적 기회를 제공해 사람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일을 맡습니다. 이게 곧 새로운 방식으로 미국의 안보에도 기여하는 일이라고 정부는 믿었습니다. 최근 들어 국제개발처는 특히 보건 및 질병 예방 프로그램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출범한 긴급 에이즈 구호 계획은 에이즈 치료제를 아프리카 전역에 보급해 지금껏 수백만 명의 목숨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또한, 모기를 방역하고 치료제를 보급하며, 관련 연구를 지원하는 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도 국제개발처가 없었다면 지금 같은 효과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MAGA와 양립할 수 없는 USAID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원래 다른 나라를 돕는 일을 마뜩잖게 여겼습니다. (지난주 칼럼에선 아예 국제기구가 국제적 협력을 모두 극도로 혐오하는 보수주의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주권주의에 관해 살펴봤었죠.) 미국 정부가 왜 세금을 펑펑 써가며 지구 반대편에 미국과 큰 상관도 없는 나라 사람들을 위해 이 많은 일을 하느냐는 비판은 특히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작은 정부를 극단적으로 지향하는 티파티 운동이 본격적으로 세를 불리기 시작한 게 2010년 선거부터니까 "혈세 낭비"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본격적으로 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비판은 포퓰리즘 진영에서 나왔는데, 단순히 "세금 낭비"를 비판하기보다 미국 사람들도 힘든데, 왜 우리 세금을 엉뚱한 나라에 쏟아붓느냐는 비판이 핵심입니다. 세계화를 향한 불만, 비판과도 어떻게 보면 맥락이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소프트 파워든 자유무역이든 모두한테 다 좋다는데, 정작 그 혜택을 보고 과실을 누리는 건 일부 엘리트 계층에 한정된 것 아니냐는 비판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지난 10여 년간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득표에 상당히 도움을 줬는데, 국제개발처를 비롯한 "민주당, 리버럴, 좌파들의 해외 원조"도 비슷한 맥락에서 마가(MAGA)의 표적이 됐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국제개발처 돈줄 겨냥한 트럼프... MAGA는 미 제국을 경영할 수 있나? 로스 더우댓은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가운데 몇 안 되는 보수 논객입니다. 보수주의자들도 성향이나 의견이 다 같지는 않은데, 더우댓은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지지하는 가톨릭 신자로, 현대 서구 사회에서 종교의 쇠퇴를 우려하는 글이나 종교적 신념을 토대로 사회 문제의 해결을 주문하는 칼럼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편이지만, 트럼프를 향한 지지는 마가 진영과는 결이 다르고, 민주당의 경우 특히 문화적으로 급진적인 변화가 미국 유권자들에게서 멀어지게 했다고 주장합니다. 국제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전통적인 보수주의 시각에 가깝습니다. 작은 정부를 절대적인 선으로 보는 이들이 주장하는 "세금 낭비"가 일리 있다고 보면서도 국제개발처를 좌파 사상의 온상으로 보는 일부 포퓰리스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더우댓은 칼럼에서 명확히 자기 의견을 밝히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최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게 미국에도 득이 되는 게 많으므로, 지금 제국의 지위 혹은 최소한 여러 강대국 가운데 두드러지는 하나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게 낫고, 그러려면 국제개발처 같은 단체를 활용하는 게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고 말합니다. 힘을 앞세운 하드 파워와 함께 소프트 파워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트럼프와 MAGA의 선택이 가져올 변화 더우댓은 공석인 국제개발처장을 겸임하고 있는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생각이 자신의 견해와 비슷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칼럼 마지막 문단을 보면, 루비오 장관이 국제개발처의 기능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인도주의적 지원을 다 끊어버리지는 않을 것 같다고 예상합니다. 루비오 장관의 생각은 제가 보기에도 전통적인 공화당 보수주의자들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루비오 장관에게 어디까지 재량이 허락될지는 두고 봐야 합니다. 실제로 많아야 수십억 달러로 알려진 국제개발처의 예산은 미국 정부의 전체 예산이 7조 달러라는 걸 고려하면 큰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의 정부효율부가 정말 예산을 줄이고 싶다면 국제개발처 말고 다른 데로 공격 대상을 바꿔야 한다는 뜻입니다. 유권자들도 일단은 정부의 취지에 공감해 지지를 보내지만, 구체적인 혜택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흥미를 잃고 말 겁니다. 국제개발처가 정말 해체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디까지나 예상이지만, 미국이 손을 떼면서 생긴 선진국의 원조 공백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앞세운 중국이 메울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프트 파워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소프트 파워 싸움에서 중국이 유리한 위치에 오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전 세계 가난한 나라에 보내던 긴급 구호 식량이 끊기면, 물론 가장 큰 피해는 구호 식량에 의존해 온 전 세계 빈곤 국가의 빈민층이 받습니다. 기아와 영양실조로 지원받는 나라 국민들의 평균 수명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구호 식량을 공급하던 미국 농가들의 피해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인도주의적 위기는 아니지만, 이들 대부분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지역 출신이고, 이는 공화당의 다음번 선거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보건 위기도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국제개발처가 폐지되면 개발도상국의 에이즈나 말라리아 발병률이 급등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협박한 것처럼 미국이 세계보건기구에서 정말 탈퇴하고, 또 지난주 밝힌 계획처럼 의료 관련 연구비를 대폭 삭감한다면, 정말로 공중보건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많은 문제를 낳더라도 여전히 혈세를 미국이 아닌 데 쓰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더 많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다고 믿는다면 국제개발처는 정말 사라지거나 유명무실한 기구로 축소될 겁니다. 지금까지는 전례가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전례에 비춰 내놓는 예상이 하루가 멀다고 빗나가고 있으므로, 국제개발처의 운명도 어떻게 될지 정말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국제개발처가 정말로 사라진다면, 미국의 소프트 파워도 위축될 겁니다. 어쩌면 국제개발처 폐지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신망을 떨어뜨리고, "추악한 미국인"의 부활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중국 기업 딥시크 쇼크는 인공지능 업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파를 안겨줬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딥시크가 수많은 제약을 뚫고 보여준 성공은 테크 업계의 미래에 관한 수많은 논의를 낳았습니다. 딥시크의 성공에 급락했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는 이내 상당 부분 회복했지만, 기술 경쟁의 주도권을 중국 기업이나 딥시크처럼 훨씬 더 몸집이 작은 스타트업에 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딥시크의 성공적인 데뷔는 인상적이지만,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서 뒤처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전히 컴퓨팅 파워나 최첨단 칩 제조 기술, 성능이 뛰어난 칩에 대한 접근권, 막대한 자금 등 미국 기업들이 앞서 있다고 볼만한 이유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도 이번 일은 기술 개발을 선도한다고 자부하던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다면 딥시크는 어떻게 훨씬 더 많은 자원을 풍족하게 쓸 수 있는 업계의 거인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요? 기술적인 비결을 분석하는 일은 딥시크에서 모델을 학습하는 데 어떤 데이터와 알고리듬을 썼는지 공개하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 딥시크가 열악한 환경을 딛고 혁신을 이뤄낸 비결을 시장의 구조와 경쟁 여부에서 찾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연방거래위원장을 지낸 리나 칸입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국익'이라며 특정 기업 눈감아준다?... 그랬더니 벌어진 일들" 칸 전 위원장은 "미국 빅테크 기업을 향한 맹목적인 숭배, 이제는 멈춰야"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에서 경쟁의 싹을 자르고 스스로 '고인 물'이 돼버린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점점 혁신에 필요한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딥시크가 울린 경종을 외면하고 시장에 경쟁을 다시 도입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큰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연방거래위원장으로 재직 중에도 여러 차례 경쟁이 사라지는 시장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글을 썼던 칸 전 위원장의 논조는 이번 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이 사안도 어느 한쪽의 말이 전적으로 옳고, 다른 의견은 전부 다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빅테크 기업이 주장해 온 것들, 즉 더 많은 컴퓨팅 파워와 에너지 생성, 최첨단 칩을 계속 개발하고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보장하는 막대한 자본 투자도 실제로 중요합니다. 다만 빅테크 기업들이 이런 자원과 정부의 지원을 독점하거나 끼리끼리 나눠 갖고, 새로 시장에 뛰어들려는 경쟁자를 말려 죽이기 위해 암묵적으로 담합하고 있다면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사실상 독과점 상태에 가까운 지금 상황을 유지하려고 진입장벽을 계속 쌓는 건 기득권을 혁신에 쓰지 않고, 지대를 추구하는 데 악용하는 일입니다. 만약 빅테크 기업들이 그러면서 정작 미국 정부에 자신들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면 이는 '고인 물'이 빨리 썩는 지름길이 될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건 정부의 비호보다도 오히려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가능하게 해주는 시스템이라는 리나 칸의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중국의 내부 경쟁과 딥시크 칸 전 위원장의 논리를, 딥시크를 배출해 낸 중국 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정확한 분석은 쉽지 않겠지만, 파괴적 혁신을 통한 기술 개발과 경제 발전에 관해 근본적인 차원에서 추론은 해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아시다시피 공산당이 시장을 통제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모델을 따릅니다. 일상적인 경제 활동에선 기업이든 개인이든 당과 국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또는 당이 정해놓은 선을 넘는 순간 우리나라나 미국 시장에선 없는 제재를 받을 수도 있죠. 열심히 일하고 심지어 혁신을 이뤄도 그 과실을 내가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분배하는 건 중앙의 권력이나 당의 몫이라면 열심히 일할 이유도 사라져 혁신이 잘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이트댄스나 텐센트 등 성공한 기업들이 정부의 눈 밖에 나거나 조사를 받고는 하루아침에 핵심 기술에 대한 통제권을 잃거나 사업을 접은 일도 있습니다. 이렇게 공산당은 시장을 통제하고 때로 지나치게 개입해 혁신의 동력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중국 안에서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도록 잘 유도하기도 합니다.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딥시크는 분명 이렇게 내부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시킨 게 성공으로 이어진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딥시크의 성공이 경쟁 덕분이라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또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는 동시에 경쟁을 시킬 수 있는 건 중국 정도의 경제 규모가 아니면 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설사 공산당이 개입해 시장이 이룬 혁신의 과실을 가로채 혁신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더라도, 역설적으로 한 기업이 특정 분야에서 독점이나 과점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점은 오히려 주기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낳는다는 측면에서 좋은 일입니다. 강력한 당이 주기적으로 경기장을 다시 평평하게 고르고, 새로운 선수를 출전시켜 새 경기를 펼치게 하는 셈입니다. 반면 오늘날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시장에서 구축한 권력을 더 공고히 다지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구글은 1990년대 시작된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 소송의 결과로 지배적인 기업이 사라진 시장에서 온라인 검색 시장을 장악하며 성장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늘날에 이르렀고, 그 과정에서 놀라운 기술 혁신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오늘날 초기 구글 같은 스타트업이 나오면 어김없이 구글에 인수되고 말 겁니다. 구글이 사들이지 않는다면 아마존이나 메타, 테슬라가 가능한 한 초기에, 헐값에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사들일 겁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점점 더 혁신보다는 지대를 추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로비에 쓰는 비용도 지난 10여 년 사이 급증했습니다. 개별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문제 될 게 없지만, 시장을 감독하고 혁신이 일어날 만한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규제 당국은 이를 가벼이 여겨선 안 됩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기업들이 자신의 의제를 따라주길 바라고 있으며, 자신과 코드가 맞는 기업에는 얼마든지 특혜를 줄 수 있는 인물로 보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또 당선 이후 대기업 CEO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워지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트럼프 대통령도 기업들의 민원을 잘 들어주고 있습니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의 연방거래위원회나 법무부 반독점국이 대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법 위반 소송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기업들에 유리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칸 전 위원장은 확신에 찬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독점 기업은 혁신을 위해 노력할 유인이 없거나 부족합니다. 특히 파괴적 혁신이 기존 자신의 시장 점유율이나 이윤을 갉아먹는다면 오히려 혁신을 가로막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혁신하지 않으면 반드시 도태될 거라는 예측을 단정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또한, 인공지능 분야는 특히 컴퓨팅 파워나 고성능 칩을 사용하기 위해 자본 집약적인 투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빅테크 기업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장에선 굳이 혁신하지 않더라도, 많은 돈과 자원을 쏟아부을 수 있는 거대 기업이 결국엔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지금껏 미국에서 시장의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경쟁을 다시 촉진한 건 제도입니다. 미국은 중국처럼 정부가 시장을 직접 장악하진 않지만, 반독점 규제 당국과 사법부 판결 덕분에 독점 기업을 견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 전반과 시장, 제도까지 쥐락펴락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나 트럼프에게 잘 보이려고 파격적인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을 보면, 트럼프 임기 4년은 반독점 규제 당국이 사실상 와해되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시장을 감독하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상황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빅테크 기업들이 '고인 물'이 돼 혁신에서 멀어졌을 때 딥시크보다 더 강한 충격파가 온다면 그때 미국 시장은 이를 버텨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딥시크의 성공을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파괴적 혁신은 현실에 안주하는 이들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통념과 관행, 타성이란 상자 바깥에서 이미 진행 중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