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는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전하고자 2012년 7월 미국 보스턴에서 시작했습니다. 외신 큐레이션 매체. 이효석 대표와 송인근 편집장, 유혜영 교수가 함께 시작했으며, 현재는 eyesopen님 등 여러 필진들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스브스프리미엄 출범부터 지난 2년 반 동안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해 소개하고 글의 배경과 맥락을 짚은 해설을 쓰면서 저희도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 쓰는 해설은 오늘 글이 마지막입니다. 앞으로도 뉴스페퍼민트와 "미국을 알아가는 시간 아메리카노" 팟캐스트, 그리고 뉴스레터 "프린스턴에서 온 편지"를 통해 세상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글과 칼럼, 인터뷰, 뉴스를 계속 전하겠습니다. 그동안 스프x뉴욕타임스 코너를 아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도 더 지났습니다. 첫 번째 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미국의 법과 제도, 관례를 하나하나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고 허물어뜨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그리고 트럼프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이른바 마가(MAGA) 진영의 공세에 온 미국 사회가 휘청이고 있습니다. 이전 칼럼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미국은 판례 중심의 보통법/관습법 체계를 따르기 때문에 법조문에 "무얼 하면 안 된다", "범죄다", 혹은 "불법"이라고 자세히 쓰여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법이 있더라도 기본적인 원칙을 건조하게 서술한 문장이라 해석의 여지가 매우 큽니다. 자연히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법을 피해 가거나 교묘히 어기고 무력화할 방법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미국 사회와 정치 제도, 특히 민주주의는 법을 어겼을 때 처벌 조항을 명시해 둠으로써 발휘되는 억제력보다도 제도와 원칙을 지키는 편이 더 낫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관행으로 굳어졌고, 그 관행을 누가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대부분 지켜온 덕분에 유지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한 뒤 수많은 관행을 보란 듯이 어기고 깨더니, 지난해 선거에서 승리해 백악관에 돌아오고 나서는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을 넘어 아예 "제왕"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은연중에, 때론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미국 사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를 견제하고 막아서지 못하는 건 근래 들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민주주의에 필요한 많은 원칙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트럼프의 개인적인 성향 탓도 있지만, 여전히 지난 선거에서 왜 참패했는지 원인을 두고도 내부적으로 갈팡질팡하는 힘없는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도 책임이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 15일 미국 정부 부채 한도 연장 기간이 종료돼 정부가 폐쇄(shutdown)될 위기를 앞두고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십분 반영해 짠 공화당의 예산안을 그냥 통과시켜 주자고 기존에 했던 말을 바꾸자, 당내에서 지도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의 내홍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민주당과는 명확히 다른 노선으로 트럼프와 머스크, 마가 진영의 의제에 맞서 싸우는 사람을 조명하려 합니다. 바로 버몬트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입니다. 2016년과 2020년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기도 했고, 법안을 발의하거나 투표할 땐 주로 민주당과 함께하지만, 샌더스 의원은 무소속이죠. 샌더스는 트럼프 행정부를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자본가들이 권위주의 성향의 정치인을 돈으로 매수해 결탁한 과두정으로 규정하고, 미국인들의 이익에 반하는 과두정을 끝장내야 한다며, 최근 전국을 순회하며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메간 스택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샌더스의 연설 현장을 취재한 뒤 칼럼을 썼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우리나라가 서서히 망해가서 겁나요"...미국인의 분노의 원천을 들춰내다 샌더스가 하는 말은 사실 그가 평생 해오던 주장 그대로입니다. 칼럼에도 쓰여있는 대로 전 국민 의료보험, 약제가 인하, 부자 증세, 주립대학 무상 교육, 노동조합 강화, 최저임금 인상 등 미국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 봤을 겁니다. 심지어 '몇십 년째 했던 말 토씨 하나 안 바꾸고 하는 거 지겹지도 않나?' 의문이 들 정도죠. 하지만 시류에 편승해 방점을 다른 데 찍고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과 달리 샌더스의 우직한 주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를 맞아 갑자기 사람들의 귀에 쏙쏙 꽂히기 시작합니다. 효율을 찾는다는 명목하에 멀쩡한 제도를 마구 난도질하고, 공무원들이 속절없이 해고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인들은 내 삶을 지탱해 주던 수많은 사회보장제도와 안전망도 저렇게 사라지는 거 아닐까 불안해하기 시작했고, 샌더스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와 달리) 이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소위 "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라고 할 만한 순간이 온 셈이죠. 사실 샌더스가 해온 말들이 새삼 주목받기 시작한 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시작 전, 즉 대선이 끝난 뒤부터였습니다. 샌더스는 민주당이 무얼 잘못해서 선거에서 졌는지, 참패한 마당에도 왜 자명한 원인을 외면하는지 목소리를 높였죠.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에도 나와서 비슷한 내용의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거칠게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 답변 속에 민주당을 바라보는 샌더스의 여전히 유효한 진단이 담겼습니다. 제가 하려는 말은요, 평범한 사람들이 절대 바보가 아니란 말이에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다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실제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 있는데도, 자꾸만 나빠지는 경제 상황에 다들 힘들어하는데, 거기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 이 정당은 서민들 삶에는 관심이 없구나, 우리 삶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구나 하겠죠. 그러면서 선거에서 표를 받길 바란다고요?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죠. 심지어 물가 너무 올라서 다들 힘들어하는데 거기다 대고 민주당 지도부가 뭐라고 했습니까? 바이든 행정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일자리를 몇 개 창출했다느니, 실업률이 얼마나 낮다느니, 경제는 다 잘 돌아가는데 왜 그렇게 불만이 많냐는 식으로 꾸짖었어요. 그럼, 사람들은 당연히 실망하죠. 민주당이 지난 선거에서 진 이유, 그리고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별것 아닌 일로 치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왜 이 중요한 문제를 별것 아닌 일로 치부했을까요? 저는 민주당 지도부와 워싱턴 엘리트들이 실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연구기관이나 싱크탱크에서 발표하는 지표들만 보면 다 꿰뚫어 본다고 여겼는지, 제대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민주당이 버블에 갇혀있는 사이 오히려 유권자들을 만나 불만을 경청하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려고 애를 쓴 건 공화당과 트럼프 캠프였습니다. 물론 공화당이 내놓는 해법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펴는 정책이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유권자들은 우리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부자 정당과 적어도 우리 얘기를 들어주는 정당 사이에서 어렵지 않은 선택을 한 셈입니다.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아 코르테스 의원(이하 AOC)도 결국, 사람들을 만나서 말을 듣는 데서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워싱턴DC에서 법 잘 만들고 행정부 견제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은 삶의 근간이 흔들려 불안해하는 미국인들을 만나서 안전망을 같이 지켜줄, 약탈적인 정부에 맞서 같이 싸워줄 정치인이 있다는 걸 알리고 풀뿌리 단계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독려하는 게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샌더스와 민주당 진보파 정치인들은 "과두정과의 싸움 전국 투어(Fighting Oligarchy Tour)"를 통해 유권자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무엇보다 '듣는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2025년 전 세계 정치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키워드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금 세상을 거칠게 두 진영으로 나누자면, 불평등의 원인을 제대로 들춰내고 마주하려는 쪽과 원인을 감추려 하거나 애써 다른 데로 돌려보려는 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자본주의가 기술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고 가장 발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시장 권력이 독과점 기업이나 소수 자본에 집중되는 걸 막지 못하면서 불평등이 심화한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치권력이 자본과 손을 잡거나 자본에 잠식되면서 불평등의 원인을 들춰내고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번번이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샌더스나 AOC는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과두정을 이루는 자본가들과 정반대 주장을 하지만, 전통적인 민주당의 태도는 다소 애매합니다. 결국,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은 이 문제에 관심을 끊은 채 언급도 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죠. 트럼프 대통령의 실정이 계속돼 불만이 커지면, 다음 선거에서 반사이익을 얻어 다시 정권을 되찾을 수도 있겠지만,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민주당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민주당 정권은 결국 '바이든 시즌2'에 그치고 말 겁니다. 샌더스나 AOC의 주장은 논리적인 구조나 정합성이 뛰어나 통찰력이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삶을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정확히 반영하기 때문에 뿌리가 탄탄한 겁니다. 트럼프 시대 들어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은 기본적인 존엄을 위협받고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 좌절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당한 내 몫을 지키고자,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고자 싸우고 있습니다. AOC는 "제가 좌파, 마르크스주의자라 과격한 주장을 하는 게 아닙니다. 바텐더로 일해봤기 때문에, 근근이 하루하루 사는 일이 얼마나 고달픈지 알기 때문에 당연한 것, 상식적인 요구를 하는 겁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죠. 이 상식적인 요구를 외면하고 별것 아니라고 일축하는 민주당 엘리트가 있다면, 트럼프와 마가를 넘어서지 못할 겁니다. 본분을 지키는 이들의 싸움 사실 이번 주 최대 뉴스는 단연 애틀란틱 편집장인 제프리 골드버그가 초대된 줄 모르고, 시그널(Signal)이라는 메신저앱,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단톡방"에서 군사 기밀을 논의한 J.D. 밴스 부통령과 주요 부처 장관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시그널 게이트'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골드버그가 뉴욕타임스 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한 이야기 중에 "요즘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정권이 언론을 험악하게 몰아가려 하는 때일수록 언론의 본령, 기자의 본분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원칙에 충실한 언론이 권력에 책임을 묻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트럼프가 싫어서, 심지어 트럼프를 제거해야 하는 악마로 여기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동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건 자기 본분을 지키는 사람들의 싸움입니다. 즉, 자기 본분에 충실해지려는 기자를, 노동자를, 공무원을 공격하고 축출해 내는 건 돈과 자원이 무한히 많아 보이는 일론 머스크라도 절대 쉽지 않을 겁니다. 이들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동을 당당하게 인정받기 위해 싸우는 것이죠. 반면 트럼프와 머스크를 위시한 과두정은 샌더스가 지적한 대로 끝없는 욕심에 세금 더 안 내려고, 이미 높은 이윤을 더 올리려고, 권력을 자기 손에 더 집중시키려고 이미 없는 사람들의 것을 더 빼앗기 위해 제도를 허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과두정이 꿈꾸는 "MAGA"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Great)"가 아니라 "미국을 다시 극도로 불평등한 도금시대로(Gilded-Age)"에 가까워 보입니다. 과두정과의 싸움을 독려하는 샌더스와 AOC의 전국 투어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과두정에 맞서 이미 싸우고 있는 사람이거나 싸울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싸움이 물론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서민들은 힘겹게 싸우면서 정치인 가운데 누가 내 말을 들어주고, 정치권에서 어느 세력이 바뀌는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지를 똑똑히 지켜볼 겁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를 거치면서 유권자 지형의 대전환이 올까요? 현실 정치를 예측하는 건 너무 어렵고, 특히 저는 예측에 소질이 없기도 하지만, 만약 유권자 지형이 바뀐다면 불평등을 바라보는 시선,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평가에 따라 계급, 계층별로 지지하는 정당의 양상이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샌더스의 전국 투어는 만약에 유권자 지형이 바뀐다면 어떻게 바뀔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어떻게 대응할지도 궁금하지만, 특히 민주당이 지금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을지는 특히 주목됩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오늘 뉴스를 보고 한 가지 소스를 얻고 싶으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테슬라 주식 사세요. [일론 머스크 같은] 천재가 운영하는 회사 주가가 이렇게 싸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지금 같은 저점은 매수의 적기 중 적기예요. 증시를 꼼꼼히 살펴보며 투자할 만한 종목을 추천하는 주식 관련 방송이나 유튜브 채널에서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누구나 투자에 관한 견해는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저 말은 놀랍게도 지난 19일, 폭스 저녁 뉴스에 출연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이 방송 중에 한 말입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특정 기업의 주식을 콕 집어 사라고 부추기는 장관이 있었는지 과거 사례를 한참 뒤져도 찾기 어렵지만, 어쨌든 기존의 관행과 규정에 비춰보면 당장 백악관의 정부윤리국이 러트닉 장관을 조사해 징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실언이자, (알고도 개의치 않고 한 거라면) 망언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러트닉 장관이 1989년에 제정된 "연방 공무원은 사적 이익을 위해 공직을 이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지금 백악관 정부윤리국장 자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한 뒤 계속 공석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각 부처의 업무가 정당한 절차를 지켰는지, 비위 사실은 없는지 감독하는 감찰관들도 일제히 해고해 버렸습니다. 러트닉 장관이 논란이 일 것을 알고도 저 말을 했다면, 그는 하루 앞서 자기 상사인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마찬가지로 매우 이례적인 행동에서 용기를 얻었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최근 테슬라를 향한 비판과 보이콧을 "미치광이 좌파들의 선동"이라고 규정하고, 자신이 앞장서서 테슬라를 지지한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빨간색 모델S를 백악관 앞뜰에 세워놓고 머스크와 나란히 서서 테슬라를 향해 칭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지난 주말 장외거래에서 테슬라 주가는 다시 어느 정도 최근 낙폭을 만회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러트닉 장관의 '테슬라 지킴이 쇼케이스'는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테슬라 브랜드가 특정 진영의 전유물로 완전히 엮이면서 주가가 더 떨어지는 역효과만 났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짧게는 지난 선거부터, 길게는 트위터(현 X)를 인수하면서부터 정치에 너무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고, 이것이 테슬라를 비롯해 머스크가 창업했거나 경영하고 있는 기업의 이미지뿐 아니라 실적과 미래 재무제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란 우려의 목소리는 예전부터 나왔습니다. 실제로 테슬라의 주가는 최근 들어 실적 부진에 경영자 머스크에 대한 우려가 겹쳐 계속 내림세입니다. 물론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에게 "올인"했던 머스크의 도박이 트럼프의 당선으로 성공하면서 급등했던 주가가 다시 선거 전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올해 들어 테슬라 주가는 역대 최장기간인 9주 연속 하락하면서 40% 이상 하락했고, 시가총액도 5,360억 달러나 증발했습니다. 테슬라 주주 중에는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혁신적인 비전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팬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머스크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겸하면서 정치에 깊숙이 개입해 매우 극단적으로 한쪽 편을 들며 자기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짓밟고 처단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규제 철폐를 외치며 정부 기관에서 오랫동안 일한 공무원들을 무턱대고 대량 해고했다가 부랴부랴 철회하는 어설픈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정부효율부는 아직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했고, 보수 진영 정치 행사 CPAC(보수정치행동회의)에서는 전기톱을 휘두르고, 나치식 거수경례를 하는 등 선을 넘는 일도 잇따랐습니다. 결국, 테슬라 주주 가운데 열렬한 팬층이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테슬라 주식을 팔아치우며 머스크와 "손절"한 주주들은 "회사 운영보다 정치에 더 몰두하는 CEO의 모습에 회사의 장래가 어둡다"고 판단했고, "테슬라의 브랜드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여기에 테슬라의 구조적인 문제도 곳곳에서 불거지면서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의 판매 실적 부진을 그저 CEO가 정치에 빠져 있어서 그렇다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테슬라는 최근 주행 중 차체의 외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사이버트럭 4만 6,096대를 리콜했고, 그러는 사이 중국의 경쟁사 비야디(BYD)는 5분 만에 충전을 완료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경쟁이 계속 심화하면서 테슬라가 굳건히 지켜온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최고의 전기차"라는 타이틀도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의 아이콘과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트럼프와 힘을 합쳐 규제를 철폐하겠다며 시장의 룰 자체를 자기한테 유리하게 비틀려고 무리수를 두는 머스크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려가 주가에 반영되고 있는 겁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화성 가겠다" 머스크의 꿈 '올스톱'...현실과 마주한 야망 일론 머스크가 문제를 자초하고 더 키운 건 테슬라뿐만이 아닙니다. 항공우주 분야 탐사보도 전문기자 클라이브 어빙이 쓴 칼럼을 보면, 스페이스X도 기술력과 탄탄한 개발, 공정 계획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머스크의 개인적인 카리스마에 기대 사업을 마구 확장해 왔습니다. 어빙은 이런 식으로 쌓은 모래성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합니다. 어빙의 칼럼에서도 인용한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 따르면, 스페이스X나 테슬라 등 머스크의 기업들은 정부 지원금 없이는 여기까지 성장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지금도 많은 부문에서 정부 조달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수주해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규모를 다 합하면 380억 달러에 이릅니다.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규제 당국의 손발을 마구 잘라내는 머스크의 행보는 결국, 자기한테 유리하게 시장의 규칙 자체를 뒤틀려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이해충돌 문제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거죠. 게다가 상원의 인사 검증을 거친 정식 장관도 아니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인 비호를 받으며 상왕 노릇을 하는 머스크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자신을 향한 비판을 깨부수는 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순전히 자기가 잘나고 똑똑해서 테슬라가 성공한 게 아님에도 자신의 영웅적인 혜안과 결단력이 성공의 비결이었다는 서사를 진심으로 믿게 된 머스크가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여기까지 키워준 정부를 산산조각 내려 하는 통에 시장 자체도 커다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이런 전례 없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건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비호 덕분입니다. 트럼프에겐 여전히 일론 머스크의 재정적 후원과 이미 머스크만을 위한 거대한 확성기가 된 X를 이용한 여론전이 필요합니다. 둘의 이해관계는 여전히 맞아떨어지지만, 머스크의 부의 원천인 테슬라와 스페이스X 등 기업들의 가치가 계속해서 곤두박질치면 그의 영향력도 점점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머스크가 지금과 같은 노골적인 정치적 행보에 부담을 느끼고 정치에서 손을 뗄 수도 있고, 반대로 중간선거에서 내세울 만한 정부의 실적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트럼프가 머스크와 거리를 두고 다른 참모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됐든 머스크가 이끄는 기업의 위기는 머스크가 자초한 비전과 가치관의 위기인데, 과연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아니면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도태되는 냉정한 시장 논리에 따라 '과거의 혁신'에 머물고 말지 지켜볼 일입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건국 이후 가장 큰 손해를 끼친 테러 공격을 벌였습니다. 민간인 1,200여 명을 학살했고, 200명 넘는 이스라엘 사람을 납치해 인질로 잡아갔으며, 이 가운데 많은 사람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명백한 전쟁범죄였습니다. 하마스가 테러 공격을 감행한 지 한 달여가 지났을 때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정치학자 아마니 자말 프린스턴대학교 공공정책 대학원장과 이스라엘계 미국인 정치학자 케렌 야르히밀로 컬럼비아대학교 국제정책 대학원장이 함께 쓴 칼럼을 번역하고 나서 덧붙인 해설의 제목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공통분모 찾기'"였습니다. 그 후로 1년 반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전쟁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올해 초 포로 교환을 전제로 한 휴전에 가까스로 합의했지만,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워 보이던 휴전 협정은 이번 주 이스라엘의 대규모 가자 공습으로 사실상 완전히 깨졌습니다. 약속을 어긴 쪽이 누구인지 잘잘못을 따지며 책임 공방을 벌이는 양측을 보면, 안타깝게도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입니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지만, 전쟁을 끝내지 못하게 가로막는, 바로 저 '공통분모의 실마리'도 찾기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서로 간의 신뢰가 없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불신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 하면, 아주 기본적인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시각과 이해부터 양측이 완전히 다릅니다. 전쟁이나 분쟁 지역의 많은 역사가 그렇듯 실체적 사실보다 어느 편에 유리하게 해석될 만한 사실의 조각들을 매끄럽게 추리고 짜맞춘 설명인지가 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이러다 보니, 상대방이 말하는 역사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일축하고, 결국 공통분모를 찾기 위한 대화는 물꼬도 트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활동가들이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노 아더 랜드"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서안지구(West Bank)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실 그대로 화면에 잘 담아냈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특정 세력의 정치적인 견해만 반영한 프로파간다로 실체적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 의견을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미국에서 양측의 종전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이 이 영화를 평가한 칼럼을 번역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최고의 상 수상 뒤 살해 위협...참혹한 현실에 맞선 영화 칼럼에도 언급됐듯 정치적인 견해 차이와 친이스라엘 단체들의 압력 때문에 이 영화는 미국에서 대체로 외면받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다른 영화처럼 대형 배급사가 앞다퉈 계약을 맺자고 하거나,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에 어렵잖게 입점해 상영할 법도 한데, "노 아더 랜드"는 유독 심기가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몇몇 독립 영화관에서 영화를 틀어주는데, 제가 사는 뉴저지주 프린스턴의 동네 영화관에서도 이번 주까지만 "노 아더 랜드"를 상영하길래, 저도 영화를 봤습니다. 오늘은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나눠보려 합니다. 다만 제 개인의 정치적인 견해는 최대한 빼고, 이 글과 지난 글의 제목처럼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공통분모 찾기'"라는 더 근본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이 영화가 서로를 조금도 믿지 못하는 양측이 공통분모를 찾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제 생각을 위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모르겠어...", "글쎄...", "나야 모르지..."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삶 정확히 횟수를 세보진 않았지만, 영화에서 감독이자 서사의 주인공인 바젤 아드라가 대화 중에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은 (아랍어를 영어로 번역한 자막 기준) "I don't know"였습니다. 맥락에 따라 "글쎄, 잘 모르겠네.", "나야 모르지...", "낸들 알겠어?"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바젤의 모습에선 평생 몸에 밴 일종의 무기력함이 엿보입니다. 아무리 노력해 봤자 당장 바뀌는 건 없다, 어차피 저들은 계속해서 우리 마을을 파괴하려 할 테고, 안타깝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는 태도가 보입니다. 그런 바젤의 모습은 보는 저도 괜히 힘이 빠지게 했는데, 한편으로 만약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바젤이 무턱대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담았다면 작위적으로 연출한 티가 났을 겁니다. 평생 이스라엘이 쳐놓은 유무형의 울타리 안에 갇혀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무기력함을 화면에 잘 담은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기본에 충실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억지로 희망을 말하거나 선동적인 장면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바젤은 열의에 찬 유발 아브라함을 달래며 에둘러 핀잔을 줍니다. 유발은 계속되는 이스라엘군과 정부의 차별, 정착민들의 폭력에 분노하며 자기가 더 부지런히 취재하고, 만행을 고발하는 글을 더 많이 써서 세간의 관심을 얻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자책합니다. 그러자 바젤은 이렇게 말하죠. "유발, 너를 보고 있으면 아주 열정이 넘쳐. 어쩌면 그래서 문제일지 몰라. 마치 열흘만 바짝 노력하면 이스라엘의 점령이 끝날 거라고 믿고 자기 자신을 쥐어 짜내는 것 같거든. 벌써 수십 년간 이어진 폭력이야. 아마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당장 이 상황을 바꿔낼 수 있는 마법 같은 건 없을 거야." 이 말에 유발은 자기가 그 정도로 순진하진 않다면서 되묻습니다. "뭐든 할 수 있는 건 해야 하지 않겠어? 그럼 어떡해야 하는데?" 그러자 바젤은 다시 말합니다. "나도 모르지. 그렇지만 너무 한 번에 모든 걸 쏟아붓진 말라고... 그러다 지쳐 떠나면 안 되니까. 오래 갈 싸움이고, 버티는 것도 중요해." 마치 주변 사람을 향해 "서두르지 말자, 쉬지도 말자"고 다독이며 독려하는 바젤 아드라의 모습은 무기력하기 쉽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 끈기와 용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공감의 문제 마사페르 야타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마치 게임 속 NPC(Non-Player Character, 게이머가 조종하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게임에 일종의 배경처럼 등장하는 캐릭터) 같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군과 정착민들은 마사페르 야타와 거기 사는 사람들을 걸리적거리면 철거해 버리고, 버튼 하나 눌러서 가볍게 지우면 그만인 존재처럼 대합니다. 그런데 당연히 이들은 NPC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죠. 사람이니까 당연히 삶의 터전이 눈앞에서 무너지고, 사랑하는 가족이 총에 맞고 군홧발에 밟히면 악을 쓰며 저항합니다. 영화 속 몇 안 되는 격정적인 장면은 NPC 취급받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표출한 날것의 감정을 담았습니다. 과학적 사실을 이해하고 판별하는 건 지능과 사고력의 영역입니다. 오늘날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멍청이 취급을 받을 겁니다. 코로나19 초기 "살균제를 직접 인체에 주사하면 이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아이디어 차원이지만, 한 번 검토해 보는 거 어때?"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미국 대통령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 사람의 지능 수준을 우려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은 과학적인 사실과 달리 어느 편에 서서, 즉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사안을 두고도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과학적인 사실에 비하면 옳고 그름,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기준도 더 복잡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나와 우리가 얽혀 있는 역사가 아니라, 철저히 남의 나라 역사를 제삼자로서 접할 때는 어느 한쪽에 더 많은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하며 역사를 이해하곤 합니다. 강자와 약자가 비교적 명백하게 나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강자의 논리를 떠받들고, 강자의 편을 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느 쪽 편을 드는 것이 옳고, 어느 쪽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다만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처럼 NPC 취급을 받던 게 그리 옛날 일이 아니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이러한 공감의 쏠림 현상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합니다. 이에 관해서도 영화 속에서 바젤은 인상적인 말을 합니다.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인종청소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고통을 겪은 유대인들이 왜 다른 사람들을 이토록 괴롭히는 걸지 일종의 자문자답을 하는 장면입니다. 바젤은 "(유대인이) 끔찍한 고통을 끝내 극복해 낸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야. 약자로 처절한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이 약자를 헤아려주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쨌든 이스라엘이 힘으로 우리를 제거하고 제압하려 해도 우리는 절대 이 땅을 떠나지 않을 거고, 끝내 살아남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가장 위대한 캐릭터: 유발 아브라함 사실 바젤 아드라의 행동은 보다 보면, 또 가만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무기력하기 쉬운 상황이지만, 또 자신의 공동체와 삶의 터전을 파괴하러 오는 이스라엘군, 정착민들과 매일 같이 대치하다 보면 저항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별로 없기도 합니다. 내가 바젤 아드라였다면 과연 이렇게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바젤 아드라의 삶이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발 아브라함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말한 것처럼 녹색 차량 번호판을 단 이등 시민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라, 노란색 차량 번호판을 단 일등 시민 이스라엘 사람이니까요. 유발은 자기 차를 타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는 자유로운 시민이죠. 그에게 누구도 '이등 시민'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협박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유발 아브라함은 그 어려운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대로 바젤은 이렇게 확 타올랐다가 이내 시들해지면 어쩌나 걱정해 '열정이 넘친다'고 에둘러 핀잔을 줬는데, 적어도 지금까지 몇 년을 같이 지내며 바젤과 의형제나 다름없는 사이가 된 유발은 사실 저로서는 감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나라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절대 못 했을 겁니다. 유발 아브라함의 용기는 그런 수준입니다. 이스라엘 정부와 극우 성향 인사들은 유발 아브라함 같은 사람에게 배신자, 반역자란 낙인을 찍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용기 있는 행동과 연대 덕분에 하마스에 붙잡혀 간 이스라엘 인질을 조건 없이 조속히 석방하라는 그의 외침은 다른 누구의 말보다도 울림이 큽니다. 적어도 유발 아브라함을 향해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고 NPC처럼 파괴되고 지워질 때 당신은 어디서 무얼 했냐고, 침묵도 동조라고 비판할 수 없을 테니까요. 유발은 자신을 향해 유대인의 배신자, 반역자라고 비난하는 동료 이스라엘 시민을 향해 "그렇지 않다, 나야말로 이스라엘을, 유대인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라고 맞받아칩니다. 이쯤에서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노 아더 랜드"는 공교롭게도 2023년 10월까지 촬영한 내용을 가지고 편집해 만든 영화입니다.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얼마 뒤 하마스가 테러 공격을 감행했죠. 영화에 드러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이 힘겹고 불공평하다고 해서 10월 7일 테러 공격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그런 논리를 만드는 데 엉뚱하게 쓰이면 절대 안 됩니다. 저는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는 폭력을 가하는 이들과 그들의 부당한 폭력에 맞서 저항하는 사람들 사이에 전선을 그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심지어 네타냐후 총리와 하마스는 한편이 됩니다. 그 기준을 정확히 가려내는 데 이 영화가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에 저항하는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공통분모'는 바로 참혹한 일을 겪어도 끈질기게 목숨을 부지하고,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숭고한 삶에 있습니다. 삶의 터전을 지켜내는 이들은 이를 파괴하려는 모든 움직임과 획책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런 싸움이 벌어진다면, 기꺼이 유발 아브라함이나 바젤 아드라의 편에 서서 전 세계의 양심적인 이들과 평화를 위해 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관을 나섰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을 배신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이웃과 평화롭고 안전하게 공존하는 길을 만들어 나가는 선각자에 가깝습니다. 오늘 글은 바젤 아드라와 유발 아브라함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짧게 남긴 수상 소감을 번역하며 마무리합니다. 먼저 바젤 아드라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아카데미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저희 네 명의 감독과 저희 영화를 지지해 준 모든 분에게 큰 영광입니다. 약 두 달 전에 저는 딸아이의 아빠가 됐습니다. 제 작은 희망은 우리 딸은 저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면, 저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겁니다. 제가 속한 지역사회 마사페르 야타는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정착민이 몰려와 우리가 살던 집을 마구 부수고 폭력을 휘두르며 저희를 강제 이주시킬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노 아더 랜드"는 우리가 수십 년 동안 겪어야 했던, 지금도 겪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담아낸 영화입니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이 세상에 정의롭지 못한 폭력을 멈추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인종청소를 당장 멈출 수 있도록 즉각 행동에 나서달라고 촉구합니다. 이어 유발 아브라함의 수상 소감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이 영화를 함께 만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함께할 때 더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서로 처한 상황을 똑바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자지구와 가자지구 사람들을 향한 끔찍한 파괴와 살상을 당장 멈춰야 합니다. 또한, 지난 10월 7일 테러 공격과 전쟁 범죄로 납치된 이스라엘 인질들도 당장 석방돼야 합니다. 제게 바젤은 이미 형제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같지 않죠.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민법에 따라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정권에서 살고 있습니다. 똑같은 정권이 바젤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옥죄는 군법을 적용해 전시 상황의 적군이나 포로 대하듯 합니다. 대안은 분명히 있습니다. 정치적인 해결책이 있어요. 어떤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두 나라 사람들이 모두 권리를 누리고 공존하는 방법이 있단 말입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미국의 외교 정책은 우리가 바로 그 유일하게 평화적인 대안을 추진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습니다. 왜 이래야만 하나요? 지금 이 무대에 서 있는 저희 두 사람의 운명이 얼마나 서로 얽혀있는지 보이지 않으시나요? 저희 사람,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안전은 바젤과 가족들이 진실로 자유롭고 안전하게 지낼 때만 궁극적으로 보장됩니다.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아직 늦지 않았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땅의 모든 생명과 더 나은 삶을 위한 길을 원한다면 평화적인 방법 말고 제대로 된 길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지난주 아일랜드의 미할 마틴 총리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다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영상 4분 11초부터) 이웃 나라에 대해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했다가 유예하는 등 이랬다저랬다 하는 관세 정책을 두고 일관성이 없다(inconsistent)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는 기자를 향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끊고, 기자가 속한 언론사를 향해 막말을 퍼붓더니 "당신네 같은 최악의 방송사나 일관성 없다고 하지, 그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유연한(flexibility) 거라고, 알겠어요?"라고 쏘아붙였죠. 트럼프 대통령은 평생 자신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업해 온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떤 정치인이든 자신의 성격과 특성이 정치 스타일에 반영되기 마련이지만, 트럼프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 오히려 대통령이라면 으레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규범을 보란 듯이 어기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데, 이는 미국 유권자나 야당 정치인을 대할 때는 물론이고, 외국인, 다른 나라 정상을 대할 때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상을 자기편 아니면 적, 철저한 이분법으로 바라봅니다. 특히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본인이 속한 공화당에서도 전통적인 세력과 척지고 선거를 치러 집권한 만큼 기존의 정치적 문법에 따라 나뉜 구도는 트럼프에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트럼프의 호감을 사는 이는 과거에 무얼 했든 트럼프의 친구가 돼 미국 대통령이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반대로 트럼프에게 미운털이 박히면 예전에 아무리 미국에 공을 세웠더라도 하루아침에 미국의 적으로 찍힐 수 있습니다. 기존 전문가들이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트럼프로서는 비난하기 딱 좋습니다. 가뜩이나 사사건건 자신에게 반대하는 전문가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 좋은 사례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부터 국제개발처(USAID)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보기엔 힘도 없고 미국에서 이익을 빼갈 권리는 더더욱 없으면서 한심하게 미국에 손이나 벌리는 다양한 국가, 기관, 단체, 개인과의 관계를 연이어 끊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우리와 다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저들은 틀렸다"고 규정하는 순간 논리적인 반박이나 토론의 여지는 사라집니다. 저항은 미미합니다. 적어도 당장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기제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특히 국제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별로 크지 않은 단기적인 이익과 자칫 막대할 수도 있는 장기적인 손해를 맞바꾸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국제 사회, 외교 무대에선 신뢰가 생각보다 큰 가치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내가 힘이 세고 가진 게 많으니, 아무도 나서서 내 말을 거역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점점 내가 하는 말과 약속에 신뢰가 떨어지고, 다들 나를 멀리하게 되면 그때는 결국 나의 가치도 줄어듭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도 그렇지만, 한 나라 정치 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나라의 신뢰를 높이거나 떨어뜨릴 수 있는 일입니다. 취임 후 두 달 가까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행보는 우리 속담을 예로 들어 비유하자면, 밑돌 빼서 윗돌을 괴는 행위와 같습니다. 유명한 심리학 연구에 빗대자면, 현재 78세인 트럼프 대통령은 마시멜로 테스트를 계속해서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단기적인 이익만 좇고, 나중을 위해 참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대통령 개인의 신뢰뿐 아니라, 미국이란 나라의 평판마저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날개 없이 추락하는 평판…미국이 맞닥뜨리게 될 일들" 관세를 두고 왜 정책이 오락가락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발끈하며 쏘아붙였지만, 결국 정곡을 찌른 질문에 화만 냈을 뿐 제대로 된 답은 내놓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관성 없는, 충동적인 돌발행동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의 정책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그러면서도 기자들의 질문에 굴하지 않겠다는 듯 4월 2일에는 예고한 대로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이후에 주식시장이 또 폭락하거나 경기 침체 신호가 더 짙어지면 아마도 관세를 또 유야무야할 겁니다. 아니면 물가가 오르고 경기 침체에 가까워지는 걸 또 다른 희생양의 탓으로 돌리며 정치적인 정면 돌파를 시도하겠죠. 성공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주식시장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미를 고려하면, 엄포한 대로 높은 상호 관세를 매기진 못할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신뢰와 평판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은 정확하지만, 그래서 앞으로 국제 질서가 어떻게 바뀔지 예상하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브룩스는 칼럼에서 다양한 예측을 내놓았는데, 그중에는 중국이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측이나 모든 걸 힘의 논리로 바라본다는 분석처럼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전 지구적인 문화 전쟁이 올 거라는, 저와는 생각이 좀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세상은 세계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한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에 잘 적응한 승자와 그러지 못한 패자로 나뉘었고,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우파 내지 극우 포퓰리스트들은 패자들의 불만과 분노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표를 얻고 집권했습니다. 이들이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외국인과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를 부추겨 정치적 동력을 유지하는 건 물론 잘못된 일이지만, 동시에 미국 민주당이나 서유럽의 기존 정당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키워 지금 상황을 초래한 것도 사실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진영 중에 가장 큰 경제 규모와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를 선도하던 강대국 미국에 민주주의라는 가치보다 나와 우리 편에 직접적인 이득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지도자가 선거로 뽑혔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딱히 보이지 않는 트럼프인 만큼 임기가 끝나도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려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2029년 1월 19일까지 미국의 대통령은 트럼프입니다. 그때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최근 들어 두드러진 정치적 균열, 즉 세계화, 기술 발전의 승자와 패자 사이의 균열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나 중국처럼 강대국이 자기 마음대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세상을 마다하지 않을 나라들은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커진 불확실성과 불신의 풍조가 내심 반가울 겁니다. 하지만 미국과 많은 가치를 공유하던, 그래서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자 우방으로 여기던 나라들은 갑자기 기조 자체가 돌변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보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많은 나라가 이제서야 조금씩 상황을 추스르고 사태를 파악하며,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어떤 대안이 나올지, 그 대안이 과연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미국의 평판이 땅에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신뢰하기 어려운 그 대통령은 여전히 전 세계 어떤 나라 사람들의 삶이든 지금보다 훨씬 더 팍팍하게 만들 수 있는 권력을 지녔습니다. 국내적으로 탄핵 정국이 끝나지 않는 탓에 미국의 정권이 바뀌는 중차대한 시기에 외교 역량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강제로 허송세월하는 상황이 새삼 안타깝습니다. 조속히 탄핵 정국이 끝나고 새 집권당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뒤 펴고 있는 다양한 정책을 아우르는 특징, 관통하는 철학이 있을까요? 본인이 자주 쓰는 미국 우선주의도 맞는 말이고, 주로 트럼프를 비판하는 진영에서 지적하는 권위주의 성향의 제왕적 대통령, 규제 철폐 등 기업과 자본의 이익에 우선 복무하는 리더, 국제 무대에서 도드라지는 힘의 외교, 주권주의 등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정책에서 일관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은 '관습과의 단절'입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논리의 흐름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지금 미국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문제가 심각해지도록 민주당(은 물론 전통적인 공화당) 정치인들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나는 이 위기에서 미국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구세주다. 기존 대책으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구태의연한 관습에서 벗어나 획기적인, 특별한 조처를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나의 앞길을 막거나 나를 비판하는 사람은 대책 없이 무조건 반대만 외치는 사람으로, 문제가 더 곪고 썩도록 방치할 사람이다. 결국,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데 걸림돌이며, 나아가 미국의 적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여당이던 민주당이 인기가 없던 시점에 치른 선거에서 트럼프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유권자들의 기대를 받고, 당선에 필요한 표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된 트럼프와 의회 다수당 지위를 되찾은 '트럼프의 정당' 공화당은 대책을 실행에 옮기고 검증받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관습과의 단절'을 넘어 트럼프 대통령이 돌아가고자 하는 '미국이 위대하던 시절'은 주제에 따라 다릅니다. 다만 여기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누가 자신에게, 또 미국이란 나라에 대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거나 감히 지시하려 하는 걸 매우 불편해하고, 노골적으로 싫어합니다. 대표적인 장면으로,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백악관에 불러놓고 방송 카메라를 켜놓은 채 거친 언사로 몰아붙였을 때를 되짚어 봅시다. 젤렌스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푸틴의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우크라이나 국민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며, "미국인들은 다행히 대서양이 가운데 놓여 있어서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이라고 말했을 때였습니다. 트럼프는 갑자기 젤렌스키의 말을 자르며 언성을 높였는데,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국인들이 어떻게 느낄지에 관해 당신이 함부로 재단하지 마세요! 감히 당신한테 그럴 자격도 없고, 불편하네요.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우리가 정해요! 젤렌스키가 미국인이 어떻게 느껴야 한다는 취지로 한 말이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대화의 주도권은 트럼프 대통령이 쥐고 있었기에 해명하거나 반박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렇게 일방적인 꾸지람만 들은 채 빈손으로 백악관을 떠나야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리는 이상향은 이렇게 누구도 자신에게 뭐라고 하지 못하는, 모두가 자신 앞에, 또 미국이란 나라의 힘에 굴복해 머리를 조아리는 상황에 가깝습니다. 국가 간에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고, 강대국은 군사력이나 노골적인 힘보다는 경제, 문화 등 이른바 소프트파워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던 관습도 트럼프는 과감히 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임기 들어 자주 쓰는 또 다른 단어 중 하나가 "상식(common sense)"입니다. 자신의 정책은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주장은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을 곧바로 몰상식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상식을 자기한테 유리하게 정의하고 선점함으로써 반대 세력을 지목하고 제거하며 끊임없이 희생양으로 만드는 전략인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소수자에게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도 트럼프 시대에 나타난 특징입니다. 노골적으로 표적이 된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인권운동단체, 노동조합, 국제주의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성과 포용의 원칙인 DEI를 추구하던 모든 개인과 기관이 몰상식한 비정상으로 분류되고, 졸지에 미국의 적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행정명령 가운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지만, 비슷한 전략을 공식처럼 적용한 정책이 바로 영어는 미국의 공식 언어라는 다소 뜬금없는 선언이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태양은 뜨겁다'는 법이 필요한가요? 미국에 공식 언어가 필요한가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당연히 뭔지 아는 감정이지만, 미국인을 비롯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대부분 절대로 알 수 없는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영어 스트레스', '영어 울렁증' 같은 말이 담고 있는 감정, 애환의 결이죠. 미국인 중에도 다른 나라에 살기 위해 그 나라 언어를 어렵게 배운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말문이 막힐 때면 세상은 더듬더듬 짧은 영어를 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을 보내줍니다. 반대의 경우는 매우 드물죠. 원래 세상 이치가 그렇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만약 젤렌스키 대통령이 통역을 대동해 모국어인 우크라이나어로 말했다면 애초에 백악관은 그런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물며 미국 대통령이 영어가 아닌 다른 나라 언어로 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래야 하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만요. 대표적인 소프트파워 영어 미국 부유한 집안의 백인 남성으로 태어나 평생 세상에 나를 맞출 필요 없이 세상이 알아서 내게 맞춰주고 길을 터주던 트럼프 대통령 눈에는 영어를 쓰지 않는 사람도 '비정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질 나쁜 외국인이 미국인의 피를 오염시킨다"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 사상이 담긴 문제투성이 순혈주의 발언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세계의 표준어'인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트럼프에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인 겁니다. 그래서 행정명령을 통해 굳이 자기만의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선을 그은 것일지 모릅니다. 문제는 소프트파워와 노골적인 힘의 논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 또는 통하지 않는 장벽이 있다는 점입니다. 소프트파워를 유지하고 확장하려면 소프트파워의 문법을 따라야 합니다. 즉, 힘의 논리를 앞세우면서 소프트파워도 저절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영어는 대영제국이 전 세계에 거느린 식민지를 통해 전 세계로 뻗어나가 뿌리를 내렸고, 미국이 선도하는 소프트파워를 통해 전 세계의 '공용어'이자, '표준어' 지위를 굳혔습니다. 영어를 쓰지 않는다고 벌금을 내거나 처벌을 받아서가 아니라, 영어를 잘 쓰면 그만큼 많은 기회를 누리고, 반대로 영어를 잘 못하면 기회를 놓치게 되는 시장의 생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영어를 배울 동기를 부여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멀쩡한 영어를 굳이 "미국의 공식 언어"로 못 박은 건 영어의 실질적인 지위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겁니다. 대신 자신의 지지자를 향해 "우리와 다른, 이질적인 사람들"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노리는 트럼프의 전략은 미국이란 나라의 소프트파워를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영어가 제일 편한 백인 남성에게 늘 맞춰주던 세상이 조금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즉, 트럼프가 말하는 '상식'이 오히려 '몰상식' 취급받는 세상이 반대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소프트파워의 이동, 변화는 눈에 잘 띄지 않기 마련이고, 군사력을 앞세운 전쟁처럼 극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주는 '관습과의 단절'은 실제 세상의 질서를 어디까지 바꿔놓을까요?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정말 줄어들까요? 줄어든다면 영어의 지위는 어떻게 변할까요? 아직은 이런저런 가정과 전제를 토대로 예측하는 게 다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초반의 원칙을 계속 고수한다면, 영어의 잠재적인 지위 변화는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이 가져온 가장 근본적인 변화 중 하나가 될지도 모릅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이종혁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자신이 백악관에 복귀한 뒤 새로 짜고 있는 국제 질서의 핵심적인 주장을 되풀이했습니다. '파나마 운하는 미국인의 피와 땀으로 지은 것인데 이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저 내줬다. 그런데 파나마는 이를 중국이 운영하도록 사실상 방치했다. 그래서 미국은 이를 정당히 되찾을 자격이 있고, 그렇게 할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파나마 운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역사적인 관계가 덜 얽힌 그린란드에 관해서는 처음에는 "당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존중한다"고 말하더니, 이어 "어쨌든 미국은 어떻게든 그린란드를 차지할 것(I think we're going to get it — one way or the other, we're going to get it.)"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했습니다. 이런 트럼프의 일방적인 외교관은 미국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관철하는 정책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미국의 도움을 받던 나라들에선 미국에 대한 반감이 쌓이는 등 공백을 낳습니다. 이런 공백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오르려는 강대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군용기에 이민자 실어 추방하는 트럼프...빈틈 파고드는 중국 오늘은 미국의 정책보다도 이에 맞서 중국은 트럼프 시대에 어떤 외교 전략을 펴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과 관련해 늘 동일한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을 대체하려는 생각도 없다"라는 언급으로, 방점은 미국과 대립하여 새로운 냉전 구도를 만들 의도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언뜻 의례적인 발언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시진핑과 중국 정부가 국제관계를 철저하게 현실주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진핑은 중국이 '부상하는 강대국(Rising Power)'이기에, 미국이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서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와 연계해 해석해 보면, 중국이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분명한 태도를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아직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향후 충분한 힘을 갖추게 된다면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을 중국 지도부가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중국은 다른 국가와의 교류에서 철저하게 현실주의적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무역이나 인프라 투자를 통해 상대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경제적 관점에서 외교에 접근하는 것으로, 중국이 개발도상국 단계에서 축적해 온 성장 경험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 상호 이익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상대국의 이익과 긴밀하게 연결하고, 자국의 손해가 곧 상대국의 손해로 이어지도록 설정하여, 결과적으로 상대국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중국은 중남미 지역에서 대규모 인프라 및 건설 프로젝트에 조건 없이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도로·철도·항만·에너지 시설 등 사회기반시설 분야에 막대한 투자금을 투입하며, 이를 통해 현지 정부와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원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철저히 준수한다는 점에서, 해당 국가의 정치 체제나 권력 구조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략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제공하는 지원 방식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서방 국가들은 자금을 지원할 때 투명성 확보, 반부패법 도입, 민주주의 발전 등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중국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며, 정치·제도적 개혁 요구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는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하거나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국가의 엘리트층에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외부의 간섭 없이 대규모 자본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투자금이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거나 외부의 감시와 규제가 미흡해질 경우, 부정부패가 만연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됩니다. 정치·경제적 권력층이 중국의 자본을 사적으로 활용하거나 부당 이익을 취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동시에, 중국도 자기 입맛에 맞는 식으로 자원을 확보하고, 시장에 독점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투명하지 않은 거래를 통해 마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반면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선봉으로서, 중국에 비해 정치·가치적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습니다. 미국이 오래도록 지켜온 민주주의, 국제 정의, 인권 보호 등은 외교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원칙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경제·외교적 제재를 가하더라도, 해당 국가의 정치·사회적 권리나 인권 침해 여부를 점검하는 등 가치 중심의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는 미국이 보유한 현실적인 힘에 비해 다른 나라를 강력하게 압박할 수단이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기 때문에 경제 논리에만 의존한 일방적 압박을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미국 외교가 단순한 경제적 종속과는 달리, 국제 질서를 지키고자 한다는 이미지를 쌓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결국 민주주의와 인권 보호라는 가치를 근간으로 형성된 미국의 외교 정책은 자국이 보유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국제사회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 미국의 이미지는 짧은 기간 동안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이전에는 국제사회 안에서 '미국이 옹호하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다각적 경쟁 구도가 어느 정도 작동했으나, 트럼프 이후 이러한 구도가 옅어지고 "미국과 중국 중 어느 강대국 편에 설 것인가"라는 현실주의적인 이분법적 논리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민주주의·인권 같은 정치·사회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들의 경우,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높은 리스크와 압박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이전에는 미국이 내세우는 가치와 중국의 경제적 유인 사이에서 절충할 여지가 있었지만, 트럼프 시대 이후 강대국 경쟁이 직접적이고 단순한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선택의 폭이 한층 좁아진 겁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이러한 국가들에 '현실적인 타협'을 끌어내거나 자주성을 존중하는 대안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이에 따라 많은 나라가 미국의 신뢰할 만한 장기적 정책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결국 중국의 경제력에 의존하거나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힘의 논리'와 '이분법적 선택' 구도가 가속화되는 현실은, 트럼프 시대를 기점으로 국제 질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실 중국이 노리는 바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미국을 완전히 대체할 생각이 없으며, 스스로도 미국을 대체하기에는 새로운 사상이나 전 세계적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신 중국의 목표는 미국을 자신과 대등한 지위로 끌어내리는 데 있습니다. 즉, "결국, 미국도 중국처럼 힘으로 움직이는 국가에 불과하다면, 굳이 미국 편에 서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전 세계에 진지하게 던지는 전략입니다. 강대국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각 국가는 예전처럼 미국의 '가치'를 선택하기보다 실질적인 이익을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뚜렷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이 계속해서 고압적 태도로 일관한다면, 중국 쪽으로 기우는 나라가 늘어나면서 중국이 전략적 이득을 취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5년 전 이맘때를 기억하십니까? 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마스크와 손소독제 대란이 일어났고, 종교 단체의 예배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한데 모이는 것이 감염 경로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5년 전 저는 뉴욕에 살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선 원래 마스크를 쓸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한국 가정에는 한 통씩 있는 수술용 마스크도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뉴욕에도 진단을 안 해서 확진자가 아니었을 뿐 이미 감염된 사람, 보균자들이 2월 내내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었을 거란 생각에 아찔하기도 합니다. 2월에는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을 취재한다며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 현장에 가서 수백 명이 모인 체육관에서 민주당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그 체육관 안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미국에선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 노동자들이 쓸 마스크와 방역 장비도 부족해 오히려 일반인은 마스크를 사지 말라는 권고도 나왔습니다. 손소독제도 아주 작은 들이 제품을 한 사람당 한 통씩만 팔았습니다. 한 통만 더 사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손님과 가게 직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마스크 보내주겠다는 가족한테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에서 마스크를 못 살까 싶어서 그래?"라고 큰소리쳐 놓고는 주변 편의점, 약국 등을 다 돌고도 마스크를 못 사서 2월 말에 아마존에서 주문한 마스크는 4월 중순이 다 돼서야 도착했습니다. 미국이 의료 기술이나 치료법, 신약 개발 같은 의학 연구 분야에선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일지 몰라도 병원 문턱이 높고, 건강 수명이 낮은 등 공중 보건 지표는 어디를 봐도 선진국이라고 볼 수 없는 나라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전염병에 특히나 취약할 것 같았는데, 걱정은 현실이 됐습니다. 미국에서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망한 사람이 100만 명이 넘습니다. 정확히 마지막으로 집계한 숫자는 122만 명이고, 코로나19로 병원이 마비돼 살리지 못한 환자까지 더하면 희생자 숫자는 150만 명에 이릅니다. 심지어 사망자가 한창 급증할 때 정확한 사인을 진단하지 못하고 사망 처리한 사람들 가운데 코로나19로 사망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 숫자까지 더하면 이 숫자는 훨씬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쉽게 잊힐 뿐, 미국에서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122만 명,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명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 팬데믹의 파괴력은 사망자, 감염자 숫자만 놓고 봐도 절대로 작지 않습니다. 자꾸 떠올릴수록 트라우마가 되는 기억이다 보니, 의도적으로 잊으려 하고 지워내는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면하고 잊으려 해도 이미 세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좋든 싫든 코로나19라는 21세기 들어 가장 파괴적인 전염병이 많은 걸 바꿔놓은 세상입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설마 100만 명이 죽겠어" 했는데...모두의 삶을 바꾼 경고 뉴욕타임스에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비롯해 환경과 보건에 관한 칼럼을 주로 쓰는 데이비드 월러스웰스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창궐한 지 5년을 맞아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번역한 칼럼이 첫 번째 글이고, 이어 지난 4일에는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미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분야별로 자세히 분석하는 글을 한 편 더 썼습니다. 미국 맥락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그 가운데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거나 전 세계 어느 나라나 해당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접촉하면 바이러스가 옮고 병에 걸릴 수 있으니, 자연스레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게 권장되고, 규범이 됐습니다. 이제는 코로나19가 끝나고 일상을 회복한 지 오래됐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비대면'이 자연스러워진 만큼 개인과 개인은 파편화되고 서로 더 멀어졌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온라인에서 노동과 일상에 필요한 기본적인 업무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개인은 역설적으로 더 외로워졌습니다. 개인이 느끼는 감정적인 고독은 사회적인 수준에서 총합을 측정하기 어렵지만, 사회적 고립을 측정하는 지수는 많은 나라에서 더 높아졌습니다. 온전히 코로나19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팬데믹이 이 변화에 영향을 끼친 건 분명해 보입니다. 과학에 대한 신뢰, 보건 정책을 비롯해 정부가 내놓는 정책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것도 문제입니다. 처음 접하는 유형의 바이러스를 파악하고 분석해 대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학계의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도 영향을 미쳤을 테고, 정부 지침과 정책도 특히 초반에는 일관성이 부족해 혼란을 가중한 적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언론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팩트체킹에 실패하기도 했고, 아예 사실을 제대로 검증하거나 취재하지도 않은 채 언론을 사칭하며 가짜뉴스와 왜곡된 주장을 퍼나른 '유사 언론'의 자극적인 선동이 종종 먹힌 것도 결과적으로는 재앙을 불렀습니다. 점점 더 잦아지는 전문가들의 경고 조류독감(H5N1)으로 알려진 바이러스는 원래는 자연의 새에 있던 바이러스입니다. 자연의 새들은 이미 면역이 형성돼 문제가 되지 않는 저병원성 바이러스는 보통 공장형 축사에 있는 다른 가금류 사이에서 강력한 바이러스로 변이를 일으켜 고병원성이 되고, 주변의 새들은 물론 포유류 등 다른 종으로 번져 나갑니다.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도 옮는 인수공통감염병이 되는 순간 경고등에 불이 들어옵니다. 이어 인간에서 인간으로 바이러스가 감염된다면, 그 바이러스는 머지않아 팬데믹의 창궐로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개인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참담했던 기억을 굳이 자꾸 꺼내보기 싫어서 눈을 감는 개인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다릅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지난 재난에서 교훈을 얻고 다음번에 일어날 비슷한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미국의 상황은 희망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잘 알려진 백신 회의론자입니다. 이어 식품, 의약, 의료 분야 연구를 감독하고 지원하는 정부 기구도 전문성보다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적인 코드가 맞는 인물들로 속속 채워졌습니다. 물론 팬데믹이 반드시 온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니 운이 좋게 재앙을 피해 갈 수도 있겠지만,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지 말란 법도 없는데, 그때 전문가들의 조언에 회의적인 이들이 과연 과학적인 사고와 사실을 기반으로 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미 우리는 언제 또 팬데믹이 창궐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조류독감 인체감염이 나왔습니다. 다행히 아직 사람 대 사람 감염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당장 실험실에서 연구 목적으로 배양, 실험하는 바이러스를 얼마나 안전하게 통제하고 있는지, 안전 기준이 잘 지켜지는지도 갈수록 의문입니다. 권위 있는 기관이 엄격한 규정을 정해놓고 이를 철저히 감독해야 할 텐데, 오히려 그 역할을 해야 하는 세계보건기구(WHO)는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위기는 기구에서 탈퇴하겠다는 위협을 실행에 옮긴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는 미국의 팬데믹 대처 역량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공중보건 역량을 약화시켰습니다. 바이러스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요즘처럼 사람과 재화의 이동이 잦고 서로 밀접히 연관된 세상은 당연히 전염병에 취약합니다. 전염병은 개인 차원에서 대처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공중보건 정책은 정부 역할이 중요하지만, 국경을 넘나들며 퍼지는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와 백신 개발에선 국제적인 협력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5년 전 코로나19 팬데믹이 창궐했을 때와 비교해 다시 집권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연구, 개발 부문에서 얼마나 잘 협력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번 팬데믹을 막을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대책을 준비해야 할까요? 정부는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정책을 신중하게 펼치고, 전문가들도 연구 결과를 엄밀히 분석하고 투명하게 설명해 대중을 설득해야 하며, 언론도 이를 이해하기 쉽게 잘 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개인도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사실과 거짓을 스스로 가려내는 역량을 키우고 주변 사람을 설득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막스 베버는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국가를 "물리적 강제력 혹은 폭력을 독점하는 정치 결사체"로 정의했습니다. 오늘날 국가는 대부분 폭력을 독점하는데, "강제력을 사용할 권리의 유일한 원천이 국가"가 되려면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보통 몇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군대와 경찰, 사법 기관 등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기관이나 정부 조직은 법과 규범, 관습의 제약을 받습니다. 아무리 공권력이라고 해도 무한정 허락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입니다. 군을 지휘하고 명령을 내리는 궁극적인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군대는 계급과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삼는 조직이지만, 동시에 군이 궁극적으로 '충성'해야 하는 대상은 (군 통수권자가 아닌) 국가와 그 나라의 헌법입니다. 대통령이 국가의 바탕인 헌법을 준수하는 한 군 통수권자의 명령을 따르는 게 곧 국가에 충성하는 일이 되지만, 대통령이 헌법을 무시하고 어기거나 헌법에 어긋나는 명령을 내리면 군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첫 번째 임기 마지막 해에 국방장관,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장성들과 격한 마찰을 빚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 들어 드디어 군을 향해서도 칼을 빼 들었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국방부 장관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던 피트 헥세스를 국방부 장관에 앉힌 데 이어 군 장성도 '트럼프식 인사'를 비켜 갈 수 없었습니다. 그 시작은 지난달 21일 "금요일 밤의 학살"이었습니다. "금요일 밤의 학살" 미군 합참의장(CJCS,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은 미군에서 가장 높은 자리입니다. 물론 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고, 행정부에 군을 통솔하는 국방장관이 있으며, 실제 군의 지휘 체계상 직접 명령을 내리는 건 각 군 참모총장과 전쟁사령부 사령관이지만, 합참의장은 군과 행정부의 다리 역할을 하며 대통령에게 군의 전략을 직접 조언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습니다. 별 4개인 대장 중에도 가장 높은 계급으로 간주하는 합참의장 자리는 파격 인사가 나기 어렵습니다. 내규에 따라 합참의장 후보는 육, 해, 공 참모총장이나 해병대 사령관, 또는 4성 장군인 전쟁사령부 사령관으로 한정됩니다. '승진 대상'이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달 21일 트럼프 대통령은 군 고위 장성 6명을 해고했습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느닷없는 대거 직위 해제였으며, 트럼프의 많은 인사 조처가 그렇듯 구체적인 해임 사유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해고된 장성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 바로 찰스 Q. 브라운 주니어 합참의장이었습니다. (이름과 중간 이름의 약자를 따 통칭 "CQ 브라운")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3월, 당시 공군 태평양 사령관이던 CQ 브라운 중장을 대장으로 승진시키며 공군참모총장으로 지명했습니다. 이후 6월, 상원의 승인을 거쳐 8월에 공군참모총장이 됐죠. 이어 2023년, 바이든 대통령은 신임 미군 합참의장으로 CQ 브라운 대장을 임명했습니다. 흑인 남성 최초로 공군참모총장에 오른 브라운 총장은 역시 흑인 남성 최초로 미군 합참의장이 됐습니다. 당시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남성 국방장관이었으므로, 국방장관과 군 합참의장이 둘 다 흑인인 것도 최초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CQ 브라운을 합참의장으로 임명할 수 있던 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브라운을 합참의장 후보(인 공군참모총장으)로 승진해 줬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금요일 밤의 학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5년 전 본인의 인사를 결과적으로 뒤집었습니다. 공군참모총장 후보를 백악관 집무실로 불러 지명하는 행사를 열면서까지 CQ 브라운의 업적을 치하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4년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않은 합참의장에게 '함량 미달'이란 낙인을 찍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해고 사실을 짧게 통보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프렌치는 직무를 수행할 역량이나 자질에 문제가 있기보다는 트럼프가 대통령 본인에게 충성하지 않는 군 장성들을 골라 해고해 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CQ 브라운의 경우 공군참모총장으로 지명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씨 사망 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거라고 모든 언론이 지적합니다. 백인 경찰의 과도한 폭력적 업무 집행에 무기도 소지하지 않던 흑인 민간인이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사망하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인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는데, 이때 공군참모총장 지명자 신분이던 CQ 브라운은 5분 남짓한 분량의 영상을 올렸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씨 사망 사건에 대한 의견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건 피하면서도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어야 했던 보이지 않는, 때로는 노골적이던 차별과 부조리를 담담하게 지적한, 울림이 무척 컸던 메시지였습니다.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CQ 브라운이 당시 공군참모총장으로서 메시지를 낸 것보다도 군대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가로막는 당시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에 동조하는 모든 군 장성에게 격노했다고 분석합니다.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기도 했지만, 11월 선거를 앞둔 시점이기도 했죠.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시위가 세를 불릴수록 자신의 재선 가도에 불리하다고 여긴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현장에 군대를 투입해 시위대를 제압하고 질서를 유지하려 했는데, (자신이 임명한) 마크 애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결사적으로 여기에 반대하자 이들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자비 없는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애스퍼, 밀리는 이미 해고돼 없지만,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고 백악관에 와서 보니 당시에 조지 플로이드 씨의 사망에 대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했던 군 장성이 합참의장이 돼 있으니, 트럼프로서는 CQ 브라운이 당연히 군 내에서는 '해고 1순위'였을 겁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미국을 러시아로 만들자?... 트럼프의 군 법무관 해임이 시사하는 것" CQ 브라운 합참의장과 함께 리사 프란체티 여성 최초 해군참모총장, 그리고 군 법무관들까지 대거 해임됐습니다. 헥세스 국방장관이 오랫동안 문제 삼아 온 'DEI 인사 되돌리기'를 마침내 실행에 옮겼다고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으로 정부 요직을 채울 것이며, 군도 예외가 아님을 선포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 통수권자를 국가로 동일시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논쟁이 불가피하지만, 어쨌든 트럼프는 '내가 곧 국가이므로, 군은 통수권자인 내게 충성해야 한다.'라고 선언하고, 기선 제압에 나선 셈입니다. "금요일 밤의 학살"이 정당했는지를 두고는 한동안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므로, 법적, 절차적으로는 문제 될 게 없지만, 의회는 청문회를 열어 정부에 해임 사유를 따져 물을 수 있으며, 상원은 후임자 임명을 미루거나 인준하지 않는 식으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 중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운털 박힐" 각오를 하는 사람이 몇 명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CQ 브라운의 후임 합참의장으로 지명한 댄 케인 전 공군 장교에 관해 살펴보면, 트럼프가 원하는 인사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케인은 CQ 브라운과 마찬가지로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입니다. 다만 브라운 의장과 달리 공군 중장으로 퇴역한 뒤 군수 업체 및 투자 회사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민간인 신분입니다. 앞서 합참의장에 오를 수 있는 '승진 대상'이 정해져 있다고 했는데, 내규를 어기고 이미 퇴역 장성인 케인을 합참의장으로 '특진'하려면 마찬가지로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트럼프는 또 예전부터 케인 장군을 좋아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는데, 케인 본인은 부인했지만, "이 군인이 나더러 나를 정말 좋아한다, 각하를 위해서라면 사람도 죽일 수 있다고 말하더니, 갑자기 내 앞에서 마가 모자를 쓰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군인 신분으로 마가 모자를 쓸 정도로 노골적인 정견을 드러내는 건 군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는 일이지만, 트럼프는 어쨌든 자기한테 충성하는 군인이 한없이 예뻐 보였던 겁니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후보라도 트럼프는 선거를 앞둔 경선 단계에서 '내 눈 밖에 나면 재선 가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무기를 앞세워 공화당 의원들을 단속하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케인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케인은 퇴역한 뒤 올해 초부터 트럼프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쉬너의 동생인 조슈아 쿠쉬너가 파트너로 있는 투자회사 스라이브 캐피털에 고문으로 있습니다. 쿠쉬너가 1기 때와는 달리 2기 행정부에서는 아무런 직책도 맡고 있지 않지만, 규모가 큰 방위산업을 둘러싸고 합참의장이 이해 충돌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는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논란이 일든 말든 트럼프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만 곁에 두고, 자기 뜻을 거역한 참모는 철저히 숙청하는 정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같은 논리를 이어가면, 군대도 국가가 아니라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충성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미 첫 번째 임기 때 미군을 미국 국내 문제에 투입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반대하던 국방장관이나 군복을 입고 대통령과 함께 사진에 찍혀 선거 포스터에 본의 아니게 동원될 수 있는 걸 철저히 금기시하는 만큼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공개적으로 사과한 합참의장에게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냈던 트럼프입니다. 트럼프에게 충성은 인사를 검증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사실상 유일한 요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노릴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는 또 있습니다. 정부 예산을 대폭 줄이지 않으면, 선거 중에 약속한 대규모 감세 정책을 시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데, 미국의 국방 예산은 정부 지출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단연 큰 분야 중 하나입니다. 어떤 이유를 달든 예산을 절감하는 동시에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마저 군대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면, 트럼프로서는 일석이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군의 대비 태세가 지장을 받고 전력이 약해지는 게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런 문제는 이번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가 헌법이 아니라 군 통수권자 개인에 충성하는 민병대에 가까워진다면, 이는 명백한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제도, 관례, 규범은 말할 것도 없고, 법까지 우회하고 무력화하며 자기 방식으로 통치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에 용인된 물리력과 폭력을 행사하는 가장 강력한 조직이자, 규범과 법이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는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군대의 인사에 있어서도 자기 뜻을 관철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휴전을 중재하며, "팔레스타인 일대를 중동 최고급 휴양지로 개발하겠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말로 주권주의(sovereigntism)라는 개념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주권주의는 백인, 기독교 중심의 보수적 가치관에 반하는 국제주의와 UN을 비롯한 국제기구를 경멸합니다. 세계화도 미국인의 삶에 이로울 게 없다며 싫어하는 주권주의자들은 영토의 확장을 통해 자원을 확보하는 일처럼 금전적인 이득과 직결되는 제국주의적 팽창이 아니면 다른 나라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 자체를 반기지 않습니다. 이 개념을 소개한 칼럼을 쓴 럿거스대학교 역사학과의 제니퍼 미텔슈타트 교수가 파나마 운하를 다시 소유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보고 주권주의를 떠올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대선 후보 시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장담하던 트럼프는 이달 초 기존 미국 정부가 보여준 것과 아주 다른 기조로 가득한 협상안을 제시합니다. 처음부터 3년 전 일방적으로 침략당한 뒤 막대한 희생을 감내한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와 직접 협상 테이블을 차리는 듯한 인상을 주며 국제 사회의 우려를 자아냈던 트럼프는 전쟁을 끝내는 방법과 내용 면에서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을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월요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년을 기해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규탄하며 종전을 촉구한 UN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이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따로 상정해 통과시킨 UN 안보리 결의안에서 러시아의 침공 사실을 쏙 빼놓고 공허한 평화를 촉구합니다. 20세기의 전통적인 주권주의자들이 무덤에서 나와 UN에서 활동하는 미국을 본다면 그 자체로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재무제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동맹이나 우방국도 바로 내팽개치는 모습이나 자신이 속한 나토(NATO)의 안보에 중요한 사안인 만큼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던 건데 갑자기 여기에 가격을 매겨 5천억 달러 상당의 희토류를 포함한 자원으로 미국에 꿔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트럼프의 모습은 영락없는 주권주의의 화신 같았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발의한 UN 결의안에 반대한 나라들은 러시아와 북한, 벨라루스, 니카라과 등 18개 국가에 불과한데, 이 몇 안 되는 나라 명단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오르면서 국제 질서 전반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몰아쳤습니다. 전쟁을 바라보는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가 180도 돌변했고, 이제 우크라이나는 푸틴의 주장을 마치 대리인처럼 고스란히 읊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게 생겼습니다. 미국이 지원을 끊으면 전쟁을 치를 여력이 없는 우크라이나의 사정을 고려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건 국제 사회에 간절히 호소하는 것 말고는 별로 없습니다. "(푸틴한테) 전화 한 통 걸면 전쟁 끝낼 수 있다"고 말하는 당시 대선 후보 트럼프를 향해 상대 후보 카멀라 해리스는 "트럼프가 전쟁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푸틴한테 굴복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 대통령 앞에 동맹국을 무릎 꿇리는 식으로 전쟁을 끝내겠다는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해리스의 예상이 크게 빗나가지 않은 듯합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미국이 UN에서 던진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투표"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을 규탄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사실상 공범 수준... 이건 미국이 UN서 던진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투표"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 사회와 외교 무대에서 어떤 기조로 정책을 펴는지 자세히 분석하는 건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기라도 한다면 한반도 정세가 또 한 차례 요동칠 테니, 미국의 외교 정책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나라의 정책을 분석하는 단계에서는 명백한 사실과 사실을 비틀고 왜곡하는 주장의 차이를 구분해야 합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을 두고 '실시간 역사 왜곡'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거짓 주장을 펴는 쪽은 어딘지 가려낼 줄 알아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과의 관계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푸틴 같은 독재자와도 금전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계산이 서면 얼마든지 거래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첫 번째 임기를 거치며 실제로 확인된 성향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전쟁의 역사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쓰겠다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꿔친 건 놀랍습니다. UN에서 통과된 두 결의안, 즉 전체회의에 상정돼 93개국의 찬성으로 통과된 결의안과 안전보장이사회에서 15개 이사국 가운데 10표밖에 얻지 못한 미국판 '반쪽짜리 결의안'의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당장 전쟁을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죄로 만든 푸틴의 세계관을 그대로 투영한 듯 미국의 안보리 결의안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한다"고만 쓰여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킨 게 아니라, "원래 러시아 영토인 돈바스 일대에서 러시아 민간인을 향해 테러를 일삼는 네오나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특별군사작전을 편 것"입니다. 이를 전쟁으로 부르고 여기에 반대하는 건 러시아의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서구 언론의 공작에 놀아나는 것이므로 죄가 된다고 푸틴이 말했는데, 느닷없이 트럼프가 여기에 동조한 겁니다. "사실과 허구의 구분, 참과 거짓의 구분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전체주의가 싹을 틔우는 데 가장 중요한 자양분임을 꿰뚫어 본 한나 아렌트가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언론의 자유가 극도로 제약된 러시아에 미국이 더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백악관 기자단 구성과 출입 문제를 놓고 AP통신과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사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본연의 역할을 했을 뿐인 언론사를 길들이려는 것도 민주주의 정부보다는 전체주의 정권에서 자주 있는 일입니다. 브렛 스티븐스가 칼럼에서 예로 든 바츨라프 하벨의 통찰은 '앞서가는 복종'에 관해 이야기한 티모시 스나이더 교수의 지적과도 통합니다. 스나이더 교수는 20세기에서 얻은 20가지 교훈을 책 "폭정"에서 정리했는데, 첫 번째 교훈으로 꼽은 1장의 제목이 "미리 복종하지 말 것(Do not obey in advance)"입니다. 첫 문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권위주의 정권은 보통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권력을 얻는다. 억압적인 정권이 무엇을 원할지 지레짐작한 개인들이 요구받기도 전에 알아서 순종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체제에 알아서 복종하는 시민들은 독재자에게 힘을 준다.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힘은 시민의 자유를 찍어 누르는 억압적인 폭력에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실을 외면하고 거짓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거짓으로 쌓아 올린 평행우주를 지탱하고 있다는 겁니다. 분석보다 더 어려운 대책 마련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가 발의한 결의안을 둘러싸고 진행한 UN 전체회의 투표에서는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며,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 범죄의 책임도 러시아에 있음을 명백히 밝힌 결의안이었죠. 그런데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둘러싼 투표에서는 미국이 발의한 공허한 내용의 결의안에 기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올해까지 2년 임기의 비상임이사국 중 하나인데 미국이 발의한 결의안에서 침략 주체를 러시아라고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가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투표에서 기권한 유럽 이사국(영국, 프랑스, 덴마크, 그리스, 슬로베니아)과는 결이 다른 행보를 보인 겁니다. UN이 소개한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황준국 UN 대사의 고민이 읽힙니다. 황 대사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무고한 사람이 너무 많이 희생됐다"고 안타까워하며, "이번 결의안이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노력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을 명시적으로 규탄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지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종전 협상 자체가 어그러지지 않도록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원칙적으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영국과 프랑스도 거부권을 쓰지는 않고 유럽의 비상임이사국을 모아 기권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에 의사를 전달하고, 뒤이어 협상을 이어간 것과 비슷한 결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일은 어쩌면 쉽습니다. 반대로 국제기구의 협력보다는 힘 있는 나라가 원하는 것을 나눠 먹는 세계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질서에서 강대국이라고 보기 어려운 우리나라가 대책을 마련하고 전략을 세우는 일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모종의 담판을 지으려 한다면 그 협상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에게 연습이 아닌 실전이 되는 만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5천억 달러를 노골적으로 청구한 트럼프 행정부의 제안에 "후손을 대대로 빚더미에 앉히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도 "미국이 끝까지 요구한다면 내겐 선택지가 많지 않다"며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외교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둬야 한다는 말이 나오곤 합니다. 그 자체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당연한 명제입니다. 다만 국익이라는 게 정의하기 모호한 측면이 워낙 많다 보니, 국익이란 명분이 자칫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적당히 얼버무리고 강대국의 '실시간 역사 왜곡'에 가담하는 결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전혀 낯선 장면이 아닙니다.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이번에 마련하는 대책의 기준은 국익 이전에 명백한 사실이 되어야 합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지난 토요일(22일) 늦은 오후, 미국 연방 정부 공무원들의 이메일 계정에 백악관 인사관리처(OPM, Office of Personnel Management) 명의로 메일 한 통이 도착합니다. 제목은 "이번 주에 무슨 일을 하셨나요?"였고, 주요 내용은 "이번 주에 어떤 업무를 하셨는지 5개 정도 항목으로 간략히 요약해서 당신의 상사를 참조해 답장을 보내주세요. 단 기밀 정보나 링크, 첨부 파일은 보내시면 안 됩니다"였습니다. 월요일 밤 11시 59분이 도착한 답장만 인정한다는 내용이 더 있었고, 일론 머스크는 토요일 밤 소셜미디어 X에 "답장하지 않는 인원은 사직 의사를 표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라고 썼습니다. 300만 명 가까운 연방 정부 공무원 중에는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기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업무 특성상 기밀을 포함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도 많고, 휴가 중이거나 근무 중이라 이메일을 열어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이미 정부효율부가 예산을 낭비하는 부서라며 통째로 직무를 정지시켰거나 무급 휴가를 보내놓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도 월요일 밤까지 답장을 보내지 못하면 사직 처리되는 건지, 어떻게 답해야 하는 건지 수많은 공무원이 또 한 차례 당혹스러운 주말을 보냈습니다.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습 기간(probationary)인 공무원들은 곧바로 해고하고, 수습 기간이 끝나 정직원이 돼 해고가 어려운 공무원들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더니, 목표치를 채우지 못했는지 노골적인 협박을 시작했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토요일 오전, 머스크를 향한 원성과 비판에도 "머스크는 정말 잘하고 있다. 사실 더 공격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라고 썼습니다. 머스크는 이 트윗을 언급하며, "분부대로" 하는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공무원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공무원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이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연방법에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은 본인이 원할 때만 사직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해고 사유에 해당하는 범죄나 비위를 저질렀을 때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지만, 이번 주에 무슨 일을 했는지 적어 내라는 사실상 근본도 없는 정부효율부라는 조직에서 뿌린 전체 메일에 이틀 안에 답장을 보내지 않은 것이 면직 사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불법의 소지가 다분한 걸 알면서도 머스크는 실리콘밸리에서 직원을 해고하듯 정부 조직을 마구 썰어대고 있습니다. 국제개발처를 사실상 공중분해 시키면서 머스크는 "예산을 갉아먹는 부서를 목재 절단기(wood chipper)에 넣어 갈아버렸다"고 썼습니다.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소송이 잇따라 제기됐지만, 머스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공격 목표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고, 정부효율부가 하는 일을 가로막는 판사들은 죄다 탄핵해 버리라고 공화당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트럼프와 머스크는 사실 권한이 없다... 모두가 속고 있는 말장난" 정부효율부라는 조직이 '근본 없는 조직'이라는 점을 차분히 지적한 니콜 겔리너스의 칼럼을 번역할 때만 해도 일어나지 않았던 '이번 주에 무슨 일 하셨나요 이메일 사건'이 일어나 해설의 앞부분을 새로 썼습니다. 최신 사례가 쉼 없이 새로 쌓일 만큼 정부효율부는 좌충우돌 연방 정부를 해체하고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이름 자체가 일부러 이 조직이 하는 일을 호도하기 위해 잘못 지어졌다는 겔리너스의 주장이 타당한지 따져보기 위해 정부효율부 설립을 지시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같이 보겠습니다. 취임 첫날 발효한 행정명령 중 하나인데, 제목에는 "정부효율부" 설립에 관한 행정명령이라고 쓰여 있지만, 내용을 보면 실은 이름만 부(Department)일 뿐 백악관 산하 미국 디지털 서비스(US Digital Service)의 이름을 고쳐 미국 정부효율부 서비스(US DOGE Service (USDS))라고 부른다고 쓰여 있습니다. 연방 정부 행정부의 부처를 신설하려면 정부 예산권을 쥔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처의 장인 장관은 대통령이 후보를 지명하지만, 상원의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하죠. 트럼프 대통령에겐 이 따분한 절차를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머스크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정부 일을 시작합니다. '정부 일'이라고 표현했지만, 일론 머스크와 정부효율부가 정식으로 어떤 권한을 부여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국은 보통법(common law)을 따르는 관습법 국가라는 점을 누차 얘기했는데, 정부조직법을 보더라도 대륙법 체계를 따르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그 규정이 훨씬 성깁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고, 반대로 어떻게 하면 안 된다는 규정도 없으니, '임시로 뚝딱 만든 부처라도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극단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거죠. 지금까지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집권 정당 누구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은 건 서슬 퍼런 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관습과 규범을 따랐을 뿐입니다. 법도 쉽게 무시하는 트럼프와 머스크의 조합은 관행과 규범 정도는 더 쉽게 무시하고, 무서운 속도로 공무원들을 줄줄이 해고하고 조직을 잘라내고 있습니다. 머스크의 이런 행위는 엄연히 정부를 방해하고 파괴하는 행위이므로, 여기에 '효율'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도 잘못됐다고 겔리너스는 지적합니다. 효율을 핑계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의제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몰아내겠다는 것이지, 실제 예산 절감 효과도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로 첫 달 실적을 발표하며, 정부 곳곳의 예산 낭비 관행을 적발하고 바로잡아 550억 달러를 아꼈다는 정부효율부의 자화자찬은 곧바로 주요 언론의 반박에 거짓말, 억지 주장으로 드러났습니다. 심지어 보도자료에 첨부한 근거에도 오타가 있어 실제 절감액은 100억 달러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한때 6조 달러가 넘는 전체 연방 정부 예산 가운데 2조 달러는 줄일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머스크를 떠올리면 초라한 성적표인데요, 특히 정부 예산이 허투루 쓰이거나 잘못 지급되는 사례 대부분은 연방 정부 공무원 조직이 비대해서 그런 게 아니라, 주 정부가 보험금이나 각종 지원금을 중복 지급하거나 엉뚱한 데 줘서 그렇습니다. 트럼프와 머스크가 이 사실을 모르고 정부효율부에 매진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행정부의 소중한 자원과 시간을 엉뚱한 데 쓰는 셈이고, 이 사실을 알고도 정부효율부의 업무를 계속 강행한다면 다분히 정치적인 걸림돌들을 치워버리기 위한 행위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공무원들을 향해 준 모욕, 부메랑처럼 돌아올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상당 부분 무력화시킨 채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여당인 공화당의 주축은 8년 전과 비교하면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른바 "마가 공화당원(MAGA Republicans)"으로 채워졌고, 사법부도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 3명을 포함해 대통령의 권한 확대와 면책특권에 우호적인 판사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습니다. 제도적인 견제 장치가 기능을 못 하는 지금 트럼프 대통령을 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제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을 되찾아오는 시나리오입니다. 다만 지금으로선 지난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이 리더십의 부재 속에 전열을 가다듬지 못했고, 머스크가 X(옛 트위터)를 앞세워 공론장을 효과적으로 파괴하고 장악하면서 기성 언론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해 정부효율부가 선을 넘었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는 것도 별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트럼프와 머스크는 이번에야말로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트러뜨려서 여론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겔리너스는 칼럼에서 행정부의 폭주를 견제하지 못하고 책임을 방기한 의회도 잘못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은 정부효율부의 점령군 같은 조처를 대체로 비호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나오는 비판은 정부 효율을 추구하는 취지는 좋지만, 발언의 톤을 좀 조절해 달라는 수준의 당부입니다. 공화당의 존 커티스 상원의원(유타)은 CBS에 출연해 "최소한의 연민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해고 위협을 받은) 이들은 전부 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생활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수백만 명이 모욕을 당하면, 그 모욕을 잊기엔 다음번 선거철이 생각보다 금방 다가오기도 합니다. 정부효율부의 타협 없는 정책이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아니면 커다란 역풍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됩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