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는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전하고자 2012년 7월 미국 보스턴에서 시작했습니다. 외신 큐레이션 매체. 이효석 대표와 송인근 편집장, 유혜영 교수가 함께 시작했으며, 현재는 eyesopen님 등 여러 필진들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이내 헌법이 정한 요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윤 대통령은 내란죄 피의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7일 첫 번째 탄핵소추안 투표 자체를 무산시킨 덕에 윤 대통령은 아직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고 있고, 헌정사상 최초로 내란죄 피의자가 된 현직 대통령이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치학계에서는 최근 10~15년 사이 민주주의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보통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도자들이 야당의 당선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봉쇄하는 식의 권위주의로의 회귀 또는 민주주의의 후퇴가 대부분이지만, 최근 들어 여러 나라에서 쿠데타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으며, 이 중에는 집권한 정부 여당이 국정 운영을 잘못해 지지율이 곤두박질쳤을 때 이를 타개하고자 벌이는 친위 쿠데타도 많습니다. 한국은 최근 들어 친위 쿠데타가 일어난 국가 중에도 국민 소득으로 산정한 경제 발전 정도나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정도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지수를 보이던 나라였던 만큼 이번 쿠데타를 정치학자들도 뜻밖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미국 언론도 한국의 내란 사태에 이은 탄핵 정국을 시시각각 충실히 보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헌정 질서를 유린한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의회와 사법부, 시민사회가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계엄령이 처음 선포되고 2시간 반 만에 국회에 의해 해제됐으며, 이튿날 새벽 윤석열 대통령이 마지못해 계엄령을 거둬들인 사태 초반에는 헌법에 명백한 규정이 있음에도 한국의 제도는 왜 대통령의 폭주를 막지 못했는지 분석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미국과 한국은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제라는 점만 빼면, 유사한 점보다 차이점을 찾기가 훨씬 쉬울 만큼 정치 제도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원칙과 규범이 다릅니다. 우선 미국은 연방제 국가로 주 정부의 권한이 매우 크고, 부통령이 있으며, 대통령은 입법부(의회)와 사법부(대법원)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게 돼 있습니다. 한국은 (연방제의 반대말로써) 중앙집권화된 단일국가이며, 부통령이 없습니다. 또 미국 대통령에 비하면 '견제와 균형' 장치는 덜 정교하게 설계된 편입니다.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쓸 수 있는 카드 등을 고려하면 한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보다 더 힘이 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 제도만 놓고 보면 그런데, 오늘 생각해 볼 중요한 차이점은 법 체계의 차이입니다. 관습법(common law, 보통법 또는 상식법으로도 불린다) 전통을 따르는 미국과 대륙법(civil law, 개념법으로도 불린다) 전통을 따르는 한국에서 대통령이 법을 어기는 문제를 포함해 이른바 "선을 넘지 못하게" 억제하는 기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먼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프렌치가 계엄령 선포와 해제 사태가 있은 지 이틀 뒤에 쓴 칼럼을 번역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발전한 한국에서 계엄이라니" 놀란 미국인들, "혹시 미국에서도?" 묻는다면 프렌치의 칼럼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4년 전 이맘때 백악관 참모들 사이에서 벌어진 치열한 논쟁도 새삼 소환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는 바이든에게 백악관을 넘겨주고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죠. 공식적으로 선거 패배를 시인하지 않던 트럼프 측은 선거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소송도 수십 개를 벌였지만, 증거를 제대로 제출한 사건은 없었고, 모든 주장은 훗날 다 기각됐죠. 그런데 이때 트럼프 선거 캠프 자문 변호사였던 시드니 파월과 트럼프 행정부 첫 국가안보보좌관 출신인 마이클 플린 등 일부 참모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선거가 조작된 정황이 있는데, 부정 선거인지 아닌지 밝혀내려면 이미 민주당과 한통속인 주 정부(연방제 국가 미국은 중앙선관위가 없고 주 정부의 주무부가 선거 관리 업무를 함)가 협조하지 않을 테니, 계엄령을 선포해 일반 법령의 효력을 중지시키고 이를 조사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제안한 겁니다. 이들은 심지어 계엄군이 참관하는 가운데 선거를 다시 치르면 트럼프가 승리할 거라고 트럼프를 부추겼다고 합니다. 지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해서 아직도 2020년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을 트럼프로서는 참모들의 주장이 꽤 솔깃했을 겁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상황을 전한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회의 중에 고성이 오갈 정도로 격론이 벌어졌지만, 트럼프가 계엄령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계엄령이라는 카드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계속해서 확장해 오고 있는 트럼프가 계엄령이라는 선은 끝내 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법을 해석하는 여지가 큰 관습법 관습법 체계는 말 그대로 과거의 경험과 그를 토대로 형성된 관습, 전통을 중시하는 체계입니다. 헌법을 비롯한 법령만 보더라도 길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미국 헌법 1조가 의회에 관한 내용인데, 대한민국 헌법의 국회에 관한 내용보다 짧습니다. 미국 헌법 2조는 대통령에 관한 내용인데, 심지어 몇 줄 되지도 않을 만큼 짧습니다. 법 조문에 세세한 규정이 없는 미국에선 웬만한 일은 관습에 따라 처리하고, 법적 다툼이 발생하면 법원에서 이를 다투고 중재합니다. 일단 쓰여 있는 법만 보면 해석의 여지가 큽니다. 20세 후반부터 대통령(과 주 행정부의 수장인 주지사)들은 대통령의 권한을 조금씩 확대해 왔습니다. 법이 인정한 권한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지 말라고 금지한 것도 아닌, 즉 해석하기에 따라 대통령이 행사할 수도 있는 권한을 이것저것 행사하며 영역을 넓혀왔죠. 트럼프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 때 특히 여러 관행을 거스르며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했습니다. 의회가 협조하지 않는 사안에서 행정명령도 많이 내렸고,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지명하는 등 사법부를 꾸준히 공화당 대통령에게 협조적인 곳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관습법 체계에서 사법부에 있는 "법을 해석하는 권한"은 막강합니다. 트럼프가 관행을 무시한 분야, 선을 넘은 행위들은 대개 법에 해석의 여지가 크고, 법적 다툼이 벌어지더라도 사법부가 자기편에 서주리라 확신할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법적 다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의 결정을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 행위"라고 변호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정치적인 논란은 끊이지 않았지만, 이에 대해 "내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려는 민주당의 획책"이라고 일축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선거에서 지고 난 뒤 권력을 이양하기 싫었던 트럼프는 사실상 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다 동원합니다. 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까지 다 공개된 대표적인 사건이 조지아주 주무장관이던 브래드 라핀스버거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바이든한테 졌을 리가 없는데, 부족한 표 1만 1,780표를 찾아내든 만들어오든 내 앞에 가져와!"라고 고함을 친 사건입니다. 이 통화는 녹음됐고, 언론에 공개됐습니다. 대통령이 공정한 선거에 개입해 권력을 남용한 사례였죠. 그런데 지난해 대법원이 재임 기간 대통령의 행위는 거의 다 통치 행위로 볼 수 있으며, 면책특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한 데 이어 지난달 선거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면서 조지아주 선거 개입 사건도 판결 없이 종결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아무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던 트럼프도 차마 손대지 못한 카드가 바로 계엄령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계엄령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지, 아니면 고심 끝에 포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트럼프를 억제했던 가장 큰 기제가 바로 관습법 체계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법의 해석 여지가 크다는 게 법을 어겼을 때 처벌이 가볍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 법원이 판단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그사이에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기 좋을 수도 있지만, 기소를 취하할 수 없는 중범죄 재판도 언젠가 결론이 나게 돼 있습니다. 미국이 건국되고, 헌법이 제정된 지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통령 또는 주지사가 계엄령을 선포한 사례는 총 68번이라고 합니다. 매우 자주 있던 것처럼 보이지만, 68건 가운데 대부분이 주지사가 주 안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쟁의, 치안 유지를 위해 19세기 혹은 20세기 초에 발동한 계엄령입니다. 대통령이 내린 계엄령은 19세기 미국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전쟁을 벌일 때, 남북전쟁 이후 재건 시기에 연방 정부에 저항하는 민병대를 토벌하거나 제압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뒤 루스벨트 대통령이 하와이에 국한해 내린 계엄령이 그나마 20세기에 내린 계엄령 가운데 가장 대표적입니다. 그러니까 트럼프로서는 선거에서 진 것도 분한데 부정 선거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해 아무리 애가 타더라도 선거를 다시 치르자고 계엄령을 선포하는 건 너무 무모한 행위였습니다. 결국, 이를 모르지 않던 트럼프는 선을 넘지 않았고, 1월 6일 의사당 폭동을 방조하고 에둘러 부추기는 발언을 하는 것으로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남기고 백악관을 떠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를 훨씬 더 협조적인 의회와 사법부와 함께 시작합니다. 상원과 하원 모두 다수당인 의회에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의원들이 8년 전보다 훨씬 많고, 보수 6명, 진보 3명의 절대적인 보수 우위 대법원은 이미 광범위한 면책특권 판결로 트럼프와 코드를 맞췄습니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도 대표 공약 중 하나인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에 군대를 동원하는 데 부담을 느낍니다. 해석하기에 따라 법적인 근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관행을 어기고 무리수를 두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정황상 최근 어떤 대통령보다도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을 손에 쥘 것으로 보이는 2기 트럼프도 계엄령보다 한참 낮은 수준인 일부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일조차 버거워하는 겁니다. 법에 다 쓰여 있는 대륙법 대륙법 체계가 관습법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성문법 체계라는 점입니다. 대륙법 체계의 법령은 어떻게 해야 법을 지킬 수 있는지, 반대로 뭐를 잘못하면 법을 어떻게 어기고, 심지어 어떤 처벌을 받는지까지도 법조문에 다 쓰여 있습니다. (관습법 체계에서는 보통 판례가 이런 세칙을 대신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77조에서 계엄령의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1항만 보더라도 이번 계엄령 선포가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쟁도, 사변도,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도 없었으니까요. 이번 계엄령 선포가 얼마나 법적 근거가 부족했는지는 이미 언론에서 많이 지적됐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연방 헌법에는 계엄령에 관한 조항조차 없는 관습법 체계를 따르는 미국과 다시 한번 드러나는 차이는 대륙법 체계를 따르는 한국에선 법만 읽어보면 뭐를 어떻게 하면 위법이고 범법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이상적인 대륙법 체계에서는 명확히 쓰여 있는 법을 시민들이 다 지켜야 합니다. 처벌 규정이 무서워서라도 법을 어기는 행위가 억제돼야 합니다. 헌법에는 구체적인 처벌 규정이 따로 없지만, 대통령이 헌법을 어기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받게 돼 있습니다. (탄핵소추안은 국회가 제기하고 표결을 통해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명백한 규정은 대통령이 "선을 넘지 못하게" 그동안 잘 억제해 왔는데,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이 기제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내란죄 피의자가 된 현직 대통령으로 기록됐습니다. 그동안 미국 대통령들이 넓은 법적 해석 여지를 이용해 대통령의 권한을 야금야금 확장하던 모습을 보면서 확실한 견제 장치가 부족한 것 아닐지 우려한 적이 많습니다. 때로는 '한국처럼 법으로 확실히 하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아두면 쉽지 않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법 체계가 다르니 규범과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리곤 했습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그래서 더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멀쩡히 쓰여 있는 법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법조인 출신인 대통령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륙법 체계는 관습이 아니라 구체적인 처벌 조항을 동원해 선을 넘으려는 시민과 권력자를 멈추게 만듭니다. 민주화 이후 6공화국 체제에서 처음으로 그 억제 기제가 고장 났습니다. 이를 고치는 데 필요한 건 다음 두 가지입니다. 선을 넘지 못하게 억제하지 못했지만, 선을 넘은 권력자는 반드시 일벌백계해야 합니다.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이 앞장서서 헌법을 유린했는데, 이를 처벌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도 법을 지키라고 말할 수 없게 될 겁니다. 계엄령 선포와 이행 과정에서 있던 일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한 뒤에는 법을 다시 정비하고 제도를 다듬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왜 실패했는지 분석해서 다음엔 또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일도 (지금은 우선순위에 두기 어렵지만) 건너뛸 수 없는 과제가 될 겁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고 실제로 취임과 함께 지체 없이 부과할 계획을 공표한 관세(tariffs)는 1기 행정부 때 이미 썼던 카드입니다. 물론 산업에 따라, 분야별로 이번에는 더 강력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벼르는 점이 다르고, 1기 행정부 때는 없던 일론 머스크라는 변수가 있어서 다른 식으로 전개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관세를 놓고 줄다리기하는 상황이 재현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때 벌어진 관세 전쟁과 관련해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몇 가지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공정 무역 관행을 이유로 철강, 알루미늄, 광물과 태양광 패널 등 중국에서 수입하는 여러 가지 품목에 관세를 매겼는데, 이 가운데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기엔 수지가 맞지 않거나 생산설비가 준비되지 않은 경우, 혹은 수입 다변화가 어려운 품목들은 중국 수출 업체가 미국 시장에 파는 가격을 낮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물건을 들여오는 미국 기업들이 관세로 인해 늘어난 비용을 부담해야 했고, 기업들은 짊어진 비용의 일부를, 소비자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떠넘겼습니다. 관세가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얼마나 많은 부담을 지웠는지에 대한 분석은 연구마다 조금씩 다른데, 한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매긴 관세 때문에 미국인의 경제적 복지(economic well-being)가 3%나 감소했습니다. 수입 가격이 높아지고, 높아진 비용을 소비자가 치렀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사실은 중국의 보복 관세에 관한 것입니다. 중국은 대두, 옥수수, 밀, 돼지고기, 소고기 등 미국 최대 수출 산업인 농업 분야에 25%의 보복 관세를 매겼습니다. 그런데 제조업의 핵심 원료인 철강이나 태양광 패널에 비하면 (대부분 가축 사료로 쓰는) 농산물의 경우 다른 곳에서 수입을 늘려 미국산 농산물을 대체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 농산물을 수출하는 미국 수출 업체는 관세를 고려해 가격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용을 떠안은 미국 농업뿐 아니라 농산물 생산 지역의 운송, 창고, 비즈니스 서비스 분야의 고용까지 덩달아 줄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전쟁으로 피해를 본 업체에 부랴부랴 보조금을 줬지만, 이마저 피해를 정확히 측정해 지급하지 못해 돈을 효과적으로 쓰지 못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차원에서는 실패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관세 전쟁을 통해 "터프한" 모습을 보인 트럼프를 그리워하는 유권자가 많았으니 어느 정도 성공한 정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관세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드러나기도 합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이 전임자 트럼프의 정책 가운데 일부 유지하고 승계한 대표적인 정책이 중국에 대한 관세였던 만큼 어디까지가 관세로 인해 나타난 결과인지 단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결국, 관세로 산업에 실질적인 타격을 입힌 것으로 따져보면 중국이 미국보다 더 효과적으로 관세를 부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관세 전쟁에서 드러난 사실 가운데 원래는 미국이 중국에 식량을 수출해 왔다는 점이 놀랍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잊고 있지만, 미국은 중부에 광활한 곡창 지대가 펼쳐진 농업 국가이기도 하고,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은 나라이므로 웬만큼 생산해서는 식량 수요를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중국이 농산품에 관세를 부과해 단기적으로는 미국에 타격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지만, 실은 중국의 가장 근본적인 고민 중 하나도 바로 언제든 부족해질 수 있는 식량 문제와 연관돼 있습니다. 식량 부족은 곧 국가 안보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대체육 개발에 이토록 진심... 중국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 높은 경제 성장을 통해 많은 사람이 가난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아 식량을 자급자족하기엔 경작지가 부족합니다. 자연히 식량 일부를 수입하게 되는데, 이는 식량 안보 차원에서는 결정적인 약점이 될 수 있는 만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중국 정부의 해법은 바로 동물 단백질이 아닌 비동물 단백질 섭취를 늘려 잠재적인 식량 부족 문제와 그로 인한 식량 안보 위기를 해결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무엇보다도 실험실에서 비동물 단백질을 합성한 대체육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탄소발자국이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육식이 채식보다 얼마나 나쁜 식습관인지에 관한 논의는 이미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고기는 밥상에 오르기까지 가축을 기르기 위해 개간을 통해 파괴하게 되는 숲, 경작지, 사료의 포장, 이동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등 수많은 요인에서 채소 위주의 식단보다 지구에 훨씬 더 큰 해를 끼칩니다. 또한, 육류는 여러모로 훨씬 비싼 식재료라는 점에서도 한정된 자원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기엔 식물 단백질보다 효율이 떨어지죠. 마침, 중국 식문화에는 두부라는 콩으로 만든 식물 단백질로 만든 훌륭한 식재료가 있습니다. 물론 돼지고기나 생선 요리 등 동물 단백질을 이용한 요리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중국 식문화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영양소도 갖췄으며 맛까지 나쁘지 않은 대체육이 개발된다면 아무리 실험실에서 개발한 식품이라도 중국인들이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중국 정부가 대체육을 개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죠.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식량을 수출하는 쪽과 수입하는 쪽이 어디인지 생각한다면, 중국 정부의 대체육 개발에 고도의 계산이나 거창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안보를 튼튼히 하고 싶어 하는 건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일 겁니다. 식량 안보도 엄연한 안보의 일종이라면,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유독 중국이 식량 안보에 신경 쓰는 일에만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건 서구 중심적인 사고의 발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모든 일은 복합적인 차원에서 일어납니다. 국제 관계를 바라볼 때 특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행위자를 국가로 한정 짓는 일입니다. 즉, 국가 차원에서만 상황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 결정을 내린다고 가정하면 관계를 단순하게 환원해 바라보기엔 좋을 수 있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는 진짜 이유를 놓치기 십상입니다. 식량을 더 많이 비축하고,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식량을 줄이려는 중국의 행동을 국가 차원에서만 바라보면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다'고 의심할 만도 하지만,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모두가 굶주리지 않을 만큼의 식량을 확보하는 일에 거창한 이유가 굳이 필요할까요? 게다가 국가별로 나눠서 생각할 게 아니라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육식을 줄이는 일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도 바람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1인당 육류 소비를 따지면, 전 세계에서 가장 고기를 많이 먹고 온실가스 배출도 많이 하는 미국은 다른 나라가 식량 사정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참견할 자격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접근법은 달라도 -트럼프는 관세, 바이든은 산업 정책과 직접 투자 통한 생산시설 유치- 보호주의로 돌아선 점에선 지향점이 같습니다. 미국의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고, 기술 개발을 장려해 경쟁력을 키우고 싶다면, 농업 강국인 미국이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뛰어들어야 할 분야가 다름 아닌 대체육 개발일 겁니다. 육류 소비에 따르는 비용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값만 오르는 게 아니라 지구와 환경 전반에 끼치는 폐해를 고려하면 더 그렇습니다. 아직은 실험실에서 개발한 단백질 식품 가운데 시장에서 경쟁을 뚫고 소비자에게 인정받은 '공산품 식량'이 없지만, 맛과 값에서 모두 인정받은 제품이 등장하면 시장을 석권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이때 식문화 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라는 지속 가능한 식문화 경쟁에서 정말로 크게 뒤처질지도 모릅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이종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을 한창 준비하는 가운데 외교 무대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고 흘러갈지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나라는 역시 중국입니다. 관세를 비롯한 무역 분야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에 관해 내놓은 공약만 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1기 때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게 중국을 봉쇄하고 압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시진핑, 국가 명운 달린 상황 내몰릴 수도"... 트럼프식 '닥공'의 결말은? 워싱턴 D.C.에 있는 민주주의 수호재단의 크레이그 싱글턴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이런 트럼프식 '닥공'이 중국을 상대로 마침내 결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오늘은 정말 그럴지, 중국이 오히려 미국과의 경쟁 또는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만한 요인이나 카드는 없을지 살펴보겠습니다. 트럼프식 '닥공'에 대비한 중국 싱글턴 연구원은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 때문에 2기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큰 부담이 될 거라는 전제 위에서 논지를 전개합니다. 그러나 이 전제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중국은 트럼프의 경제적 압박과 관세 중심의 제재 전략을 충분히 예측하고 오랜 시간 대비해 왔습니다. 실제로 중국 학자, 관료들과 대화해 보면 세상 모든 것을 거래의 관점에서 인식하는 트럼프의 성향이 외교, 국제 정치 무대에서는 오히려 다루기 쉽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트럼프의 정책은 명확합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분명히 제시합니다. 그래서 공격을 받는 이도 대비하고 대응하기가 덜 어렵죠. 오히려 중국 입장에서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웠던 건 바이든 행정부였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서서히 압박하면서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전략적으로 고립시키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 첨단 기술의 수출을 규제하고, (동맹국과) 인프라 투자 협정을 강화했으며, 쿼드(Quad) 등 다자 안보 협력체를 활성화해 중국의 영향력을 계속 견제했습니다. 이런 점진적인 접근 방식은 중국으로서는 무엇을 요구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지점투성이라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국제 무대에서도 비즈니스맨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돈이면 돈, 조약이면 조약 등 협상 가능한 요소들을 명확하게 설정합니다. 선을 분명히 긋고 협상에 임하는 트럼프의 미국과 상대할 때는 중국에도 어느 정도 대응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 관세를 인상하면 어디에 얼마를 인상할 것이며, 미국에 무엇을 제공하면 관세를 덜 올리거나 다시 내려줄 수 있는지 분명히 제시하고 협상이 시작되는 식이죠. 중국으로서는 미국을 상대하는 전략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 때가 더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또한, 대중 정책을 법으로 정해 일관성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는 효력이 길지 않은 행정명령을 토대로 중국을 상대하던 트럼프식 접근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매우 신속하게 집행됐지만, 동시에 쉽게 뒤집히거나 무효가 될 가능성이 늘 있었습니다. 트럼프 시대 미국은 대중국 압박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고, 주변국은 물론 동맹국도 미국을 신뢰하기 어려웠습니다. 국제 협력의 효용을 믿지 않는 미국 정부가 독단으로, 그것도 행정명령을 기반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정책을 편들 그걸 따라갔다가 나중에 행정명령이 취소되거나 무효가 된다면 그 책임과 비용은 고스란히 그 나라가 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신설하거나 인상하는 관세 대상은 비단 중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입니다. 당연히 동맹국에도 부담이 되고, 동맹국들은 미국의 정책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심각하게 재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관세 정책과 방위비 분담금, 그리고 불안정한 북미 관계가 불안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좇는 기회와 위기의 실상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글로벌 개발/안보/문명 이니셔티브"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미국이 발을 빼면서 생긴 공백을 메우려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트럼프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으며,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에 비자 면제를 제공하며 한미일 동맹에 균열을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호주와의 무역 재개, 영국을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와의 고위급 회담 등을 통해 트럼프 2.0 시대를 불안한 시선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는 동맹국들의 처지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중국의 이러한 행보로 인해 전략적 선택을 내리기 어려워진 건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적 고립주의는 중국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동맹국조차 신뢰보다 거래의 득실을 바탕으로 대하는 트럼프의 미국이 돌아오는 상황에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중국과의 협력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이러한 정치·외교적 접근을 "인류 운명 공동체"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다극(multipolar) 체제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외교적 고립주의와 대비돼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더 많은 협력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대만 문제는 가장 큰 리스크입니다. 물론 미국이 대만을 노골적으로 포기할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만을 향한 트럼프의 공격적인 언사와 부정적인 태도는 대만 내에서 (중국에 대한) 항전 의지를 저하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즉, 대만 내부의 분열이 심화하고, 반미 친중 세력들이 대만 내에서 더 많은 발언권과 영향력을 얻게 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지금처럼 대만 반도체 산업에 더 많은 것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국방비도 GDP의 10% 이상 분담하도록 증액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하는 한 대만 사회 내의 반미 감정은 고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대만은 점점 더 중국의 군사적, 비군사적 압박에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상태로 내몰리게 됩니다. 중국 경제가 위기라는 말은 주기적으로 등장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일부는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중국 경제가 만성적인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트럼프가 부과하는 관세가 당장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는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에 의존하는 모델을 졸업한 지 오래됐습니다. 이미 전기차, 환경,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뤄 기술적으로 선도적인 위치에 오른 분야가 많고, 이런 산업 대부분에서 다른 개발도상국과 경쟁하기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중국만 배제하고 견제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와 브릭스(BRICs) 국가들에도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미국이 친 높은 관세 장벽에 부딪힌 많은 나라가 미국 대신 중국과 협력해 수출품을 다변화하고,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며 소비를 다국적으로 분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건 당연한 대응입니다. 출산율 저하, 실업률 증가, 부동산 시장 조정 등은 사실 중국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싱글턴 연구원은 칼럼에서 중국의 총부채가 GDP의 300%까지 늘어났다고 지적하지만, 일본의 부채는 GDP의 400%에 달하며, 프랑스, 캐나다, 스위스, 벨기에, 스웨덴, 한국도 GDP의 300%에 육박하는 부채가 있습니다. 중국 학자들은 오히려 중국의 총부채가 중국 국내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해외 자산과 연동된 다른 나라들보다 관리가 쉽다는 점을 강조하곤 합니다. 실제로 중국은 2000년대 초반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과도한 정부 및 기업의 부실 채권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중국 내에서 시진핑 주석의 과도한 권력 집중에 대한 비판, 청년층의 높은 실업률로 인한 불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는 문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언론 통제나 검열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만큼 이러한 반대 움직임이나 불만이 체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나아가 정권을 위협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아 보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정부와 공산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고, 언론은 당의 철저한 감독 아래 있으므로 중국의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는 아닐지언정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는 중국에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기회가 되기도 할 겁니다. 무엇을 요구하고 어디에 천착할지 예측 가능한 성향과 거래적인 특성은 중국이 대미 전략을 일관적으로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여기에 미국의 외교적 고립주의는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적잖은 리스크를 안기지만, 중국은 이를 충분히 활용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윤곽이 거의 다 드러났습니다. 상원의 인준 절차가 남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장관 후보로 지명한 인물은 대부분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인사 검증을 통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와 2기 행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많은 사람이 꼽는 특징이 바로 일론 머스크의 존재입니다. 연방선거위원회에 신고해야 하는 선거자금 내역만 봐도 머스크는 이번 선거에서 1억 달러 넘는 돈을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썼습니다. 액수만 놓고 보면 머스크만큼 기부한 갑부들이 몇 명 더 있지만, 머스크만큼 트럼프 당선을 위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갑부는 없을 겁니다. 복수도, 논공행상도 확실한 트럼프는 일등공신인 머스크에게 선거 기간 약속한 대로 정부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감독하고 시정하는 역할을 맡겼습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부터 트럼프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비벡 라마스와미와 함께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를 이끌게 됐죠. 이름에는 부(Department)가 들어있지만, 직제상 정식 부처를 신설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려면 법도 바꿔야 하고, 무엇보다 상원의 인준을 거쳐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통령 직속 태스크포스에 가까운 형태로 움직이는 조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정부효율부의 약자는 (밈 코인과 같은) 도지(DOGE)가 되기 때문에 머스크도 이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선출직도 아닌, 그렇다고 기존의 임명 절차를 거친 임명직 공무원도 아닌 "특별보좌관 머스크"는 트럼프의 최측근이 된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습니다.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기 위해 머스크에게 주어진 역할은 비용을 줄이는 일입니다.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예산만 잡아먹는 공무원 조직을 도려내" 효율을 높이는 겁니다. 일론 머스크는 자타공인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입니다. 그런 머스크가 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했듯 "정부를 경영한다면" 큰 성공을 거둘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면, 머스크가 손에 쥔 막강한 영향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특히 머스크는 트럼프를 도와 선거에 뛰어든 뒤에도 여전히 자신이 성공적으로 키워낸 기업들의 최고경영자이자 소유주로 남아 있습니다. 정부효율부의 결정이 머스크의 사업에 부당한 특혜를 주게 될 때, 즉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s) 문제가 발생할 때 이를 방지할 안전장치도 없고, 해결하는 데 참고할 만한 기준도 없습니다. 그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판단력과 결단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장악한 일론 머스크가 정부의 결정을 통해 취할 수 있는 사업상의 이익이 가장 큰 분야가 바로 우주 산업입니다. 머스크는 마침 "미래의 나사"로 불리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창업하고 경영해 온 인물입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머스크가 손에 쥔 '예산 승인' 칼자루... 나사(NASA)가 도마 위 오른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자신이 이룩한 성공의 요인을 무엇으로 꼽느냐도 있을 겁니다. 보수는 성공의 원인을 내가 잘 나고 똑똑해서, 내가 열심히 일해서, 내가 내린 결정 덕분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진보는 내가 받은 기회 덕분에, 나를 지원해 준 제도나 도와준 사람들 덕분에, 운이 좋아서 등 나보다 주변 환경과 상황에 공을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둘을 칼로 두부 자르듯 나눌 순 없지만, 스펙트럼상 놓고 보면 경향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정책을 놓고도 진보 진영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부르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결과의 평등"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일이라며 "역차별"을 지적하는 일이 생깁니다. 어느 면을 부각하고 강조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지만, 진실은 늘 그렇듯 중간 어디쯤 있을 겁니다. 순전히 자신의 힘과 능력만으로 성공한 사람도 없을 테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주변의 도움과 운만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을 수 없을 겁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도 않은 자수성가한 사업가 머스크가 대표적인 '금수저' 출신 트럼프와 강력한 동맹을 맺을 수 있던 이유가 저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이룩한 것은 내가 잘해서, 내가 잘 나서, 내가 내린 결정 덕분이라고 보는 사람은 "똑똑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하는 장치"를 귀찮아하고 성가셔하며, 궁극적으로 혐오하게 됩니다. 수많은 법과 민주주의 제도, 정부가 그런데 트럼프는 이를 '딥스테이트'라고 부르며 도려내야 한다고 합니다. 언론이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하는 역할도 비슷한데, 머스크는 그게 싫어서 아예 트위터를 사들여 자신만의 소셜미디어 세상을 만들어냈습니다. 머스크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이제 머스크에게 우리가 하고 싶은 걸 가로막는 것들의 손발을 잘라내는 일을 맡겼습니다. 어디까지, 얼마나 많은 권한이 주어질지 명확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무제한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는 자리에 머스크가 앉았습니다. 머스크가 말하는 "실력주의"의 사각지대 물론 비효율적인 관료주의는 문제입니다. 머스크는 스페이스X의 사업에 필요한 인가를 받을 때 온갖 서류 작업을 처리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고생했다며, "사무실 안 이쪽 책상에서 저쪽 책상으로 서류 하나 가는 시간에 내가 로켓을 몇 대는 만들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필요하면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일을 줄이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분명 비대해진 미국 정부에 그런 부처, 업무, 산하 기관이 없지 않을 테고, 그게 곧 정부효율부가 할 일이 될 겁니다. 그러나 정부 자체를 모든 문제의 원흉처럼 보는 것도 현실적인 접근이 될 수 없습니다. 당장 머스크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테슬라와 스페이스X가 성장한 과정만 봐도 그렇습니다. 닐 파텔이 오늘 소개한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스페이스X는 나사(NASA, 미국 항공우주국)의 지원금과 조달 사업, 연구 용역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테슬라도 초기에 정부가 싼 이자에 장기로 자금을 빌려준 덕분에 파산할 위기를 넘겼습니다. LA 타임스가 2015년에 분석한 기사에 따르면, 테슬라가 받은 지원금은 당시 이미 49억 달러나 됩니다. 머스크의 기업만 그런 게 아닙니다. 수많은 성공한 기업이 경영자의 판단과 결정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보는 건 오만입니다. 그런데 머스크는 비효율적인 관료주의가 "실력주의" 원칙을 위협한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마찬가지로 정부를 비효율적인 관료주의로 가득한 집단으로 묘사하는 건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일입니다. 정부의 역할 중에는 오히려 "실력주의"가 꽃필 수 있게 지원해 주는 역할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을 넘어 한 산업 분야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특히 초반에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투자를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있습니다. 이후에 (똑똑한 사람이 경영하는 혁신적인 기업을 포함해) 수많은 기업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교훈을 얻고 난 뒤에야 성공하는 기업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정부는 똑똑한 사람이 내리는 위대한 결단을 방해하는 조직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토대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제도입니다. 테슬라나 스페이스X가 받은 각종 지원금, 보조금 등 직접적인 혜택뿐 아니라, 교육, 의료, 사회보장제도를 비롯한 각종 안전망도 정부가 없다면 제공될 수 없습니다. 정부를 운영하고 통치하는 일을 기업 경영에 비유할 수는 있겠지만,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정부의 역할은 위에서 언급한 공공재를 제공하는 일이므로,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경영과 우선순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머스크가 만약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비효율적인 정부 조직을 대대적으로 축소"하려 한다면, 여기에는 이해충돌의 소지가 다분한 동기가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닐 파텔이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스페이스X가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자양분이 된 나사의 각종 보조금, 조달 계약을 폐지함으로써 잠재적인 경쟁자의 등장을 아예 막아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머스크의 계획을 알 수 없지만, 정말 그랬을 때 문제는 누구도 이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머스크는 지금 무소불위입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도널드 트럼프를 다시 백악관으로 보낸 건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주류 엘리트와 기득권 전반을 향한 유권자들의 실망과 분노였습니다. 여기에 트럼프라면 뭐라도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고 기대하는 마음도 보태졌을 겁니다. 실망과 분노를 이용해 4년 만의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당선인에게 통치의 시간이 쉽지 않으리란 전망은 선거 이후에 이미 짚어드렸습니다. 선거를 치를 땐 정부 여당을 향한 불만을 결집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이제 정부 여당이 된 트럼프와 공화당은 자신의 비전이 더 낫다는 사실을 결과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정책을 입안해 시행해야 하죠. 장밋빛 공약을 던져 쌓은 희망은 '어떻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금세 실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낡고 부패한 제도를 싹 갈아엎겠다는 약속을 향한 환호도 결과를 내지 못하면 이내 식어버리고 냉소로 대체될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앞에 놓인 딜레마를 살펴보려 합니다. 선거 국면에선 일단 트럼프를 당선시키고 보자는 목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는 대의 아래 뭉쳤지만, '어떻게'를 기준으로 보면 실은 꽤 다른 계획과 생각을 하던 이들이 트럼프 2기 백악관 참모진과 행정부 요직에 속속 임명 또는 지명됐습니다. 이들의 동상이몽이 어디까지 드러나고 어디까지 반목하고 부딪힐지,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리더십을 발휘해 생각의 차이를 잘 조율하고, 서로 견제하며 건전한 경쟁을 벌이는 통치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지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구성하는 세 집단의 동상이몽 두 번째 집권을 준비하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곁에 생각을 어떻게 달리하는 이들이 어떤 세력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지 뉴욕타임스 데이비드 생어 기자가 분석 기사를 썼습니다. 이들 사이의 역학 관계가 몇 가지 딜레마를 낳는데, 생어 기자는 얼핏 보면 모두 다 트럼프에게 모든 걸 바칠 준비가 된 마가의 사도들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이들은 세 집단으로 나뉜다고 설명합니다. 먼저 생어 기자가 '복수조(revenge team)'라고 부른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미국을 막후에서 조종하는 딥스테이트가 진짜로 있다고 믿고 있으며, 법무부와 국방부, 정보기관을 장악해 딥스테이트를 궤멸하고, 트럼프를 기소하거나 법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은 사람들을 철저히 응징하려는 이들입니다.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를 신념처럼 떠받드는 것도 바로 이들입니다. 두 번째 집단은 트럼프에게 돈을 댄 갑부들, 그중에도 월스트리트 출신의 부자들을 비롯해 자유로운 시장 경제가 굴러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이들입니다. 재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스콧 베센트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베센트를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으로 임명한 건 베센트가 마가의 주장을 신봉해서라기보다 주식시장의 호황을 오래도록 이끌어줄 적임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1기 때도 그랬지만, 주식시장의 호황 여부를 대통령의 경제 성적표로 인식하는 경향이 특히 강합니다) 임기가 사실상 헌법으로 보장돼 대통령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해임하기 어려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론 머스크로 대표되는 '작은 정부 만들기와 효율성에 혈안이 된'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앞의 두 집단과는 결이 좀 다르기도 하지만, 트럼프에게 선거 전후로 엄청난 돈을 후원함으로써 측근의 '자리를 샀다'는 점에서는 두 번째 집단과 비슷합니다. 앞서 말한 동상이몽은 결국,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에게 돈과 표가 모두 필요해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복수조'는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유권자 다수의 표를 대변하는 집단입니다. 선거에서 또 질 수 없던 트럼프는 당연히 표가 필요했습니다. 트럼프는 특유의 유세 실력을 발휘해 유권자들에게 직접 표를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서민들의 삶을 외면하는 엘리트, 기득권층에 지친 유권자들은 트럼프에게 희망을 걸고 표를 줬습니다. 유권자들이 지지한다고 선거에서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미국 선거에는 특히 천문학적인 돈이 듭니다. 트럼프 본인이 아무리 부자라도 자비를 털어서 선거를 치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다 '수완 좋은 사업가' 트럼프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었을 겁니다. 심지어 일반 유권자들이 많지 않은 돈을 십시일반 모아 후원하는 경쟁에서는 해리스 후보에게 크게 뒤처졌던 트럼프는 그래서 기존 공화당의 갑부 기부자들에게 선거자금을 적잖이 의존했습니다. 수백, 수천만 달러를 트럼프 캠프에 기부한 부자들의 요구 사항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트럼프는 아예 이들에게 요직을 맡겼습니다. 사람들은 트럼프에게 많은 돈을 후원하고, 정부 요직을 맡은 인물로 일론 머스크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겁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더 큰 여파를 미칠 수도 있는 상무부 장관 자리에 '월스트리트의 대표 마가 전도사'로 불리던 하워드 러트닉을 앉힌 것도 파격적인 인사였습니다. 러트닉은 트럼프에게 돈도 많이 냈고, 트럼프의 신임을 받아 공동 인수위원장을 맡기도 했지만, 산업 정책을 펴고 무역 기조를 총괄하는 상무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경험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백악관과 행정부의 주요 보직이 비전과 목표가 일치하지 않는 이들로 채워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건 공약을 '어떻게' 실천에 옮길지를 두고도 의견이 갈립니다. 정책적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는데, 당장 예상되는 시나리오가 관세입니다. 트럼프는 인정하지 않지만, 관세를 올리면 기업들은 가격을 올려 관세를 소비자에게 전가할 겁니다. 그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집니다. 연준은 금리 인하를 늦추거나 심하면 금리를 다시 올릴 수도 있고, 그럼 주식시장이 활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상품은 말할 것도 없고, 서비스와 금융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서 혜택을 봐온 월스트리트 출신 부자들이 과연 이런 결말이 뻔한데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안을 두 팔 벌려 환영할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럼 트럼프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요? 자신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과 돈을 댄 후원자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절충안이나 묘수를 찾을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문제일 겁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트럼프 정부에 꼭 필요한 한 명은 이 사람이다 보수 성향 매체 콤팩트 매거진을 만든 매튜 슈미츠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를 강력히 추천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라이트하이저는 자유무역보다 보호무역을 뚜렷이 선호하는 인물로, 지난해 펴낸 책의 제목부터 "세상에 공짜 무역은 없다(No Trade Is Free)"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자유무역보다 공정무역"의 개념을 확립한 것도 라이트하이저 전 무역대표부 대표입니다. 자유무역을 선호하는 월스트리트 출신 부자들은 대체로 라이트하이저를 탐탁지 않아 하고, 반대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지지하거나 미국 우선주의에 환호하는 일반 유권자들은 라이트하이저를 좋아하는 게 당연해 보입니다. 라이트하이저는 한쪽을 만족시키는 경제 정책은 다른 쪽을 실망하게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타개할 수 있는 카드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행정부의 주요 보직이 이미 거의 다 찼다는 데 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25일 월요일 오전 현재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인사는 거의 다 발표됐습니다. 남은 자리 가운데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자리가 가장 눈에 띄긴 하는데, 라이트하이저가 1기 때 이미 했던 무역대표부 대표를 다시 맡으려 할까요? 이에 관해서는 트럼프 측근들과 언론 사이에서도 전망이 갈립니다. 라이트하이저는 무역에 있어서 보호주의를 설파해 온 사람입니다. 무역대표부 대표 시절이나 책에서 편 주장이나, 대선 전후로 한 발언에서 일관적으로 자유무역이 초래한 잘못된 결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이 읽힙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경제 정책을 온통 월스트리트 출신에 맡기는 것보다 마가의 비전을 체화한 사람을 한 명쯤 두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주식시장의 활황이 끝나는 것도 아쉽겠지만,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지지한 (관세) 정책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는 것도 트럼프로서는 굴욕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라이트하이저에게 재무부나 상무부 장관을 맡겼다면 몰라도 이미 더 중요한 자리를 다른 인물로 채운 만큼 라이트하이저가 2기 행정부에는 적어도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제기됩니다. 무역대표부가 직제상으로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지만, 사실상 무역 정책을 총괄하는 상무부와 호흡을 맞춰야 하고, 많은 경우 상무부가 정한 기조를 따르게 됩니다. (상무부 장관의 별명 중 하나는 '무역 차르'입니다) 라이트하이저로서는 러트닉 장관과 의견이 갈려 충돌하면서까지 무역대표부 대표를 다시 맡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라이트하이저는 2017년 그랬던 것처럼 상무부 장관이 무역 정책을 잘 펴지 못해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이 빠르게 바닥날 때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권 인수인계 작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사실 미국에는 정권 인수 과정에서 재밌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당선인이 정권을 교체하는 경우 정권 인수에 필요한 돈을 새로 모금하는 겁니다. 엄청난 돈이 드는 선거에 비하면 대통령 인수위원회의 운영비는 훨씬 적습니다. 보통 기업이나 노조, 정치행동위원회에서 직접 돈을 받지 않고, 개인만 후원할 수 있으며, 후원금 액수도 최대 5천 달러로 제한하고, 누가 돈을 냈는지 내역을 공개하는 대신 의회가 승인한 연방정부 기금을 인수위 운영비에 보태 쓸 수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도 이 관행에 따라 올해 720만 달러의 보조금을 트럼프-밴스 인수위에 지급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인 측이 관행을 깨고 누가 돈을 대고 있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720만 달러를 포기하고 내역을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특히 인사와 관련해서는 사실상의 매관매직이 일어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트럼프는 이 또한, 낡고 부패한 제도와 관행을 자신이 개혁했다고 포장하고 선전할 겁니다. 다만 혹시나 트럼프가 속으로는 라이트하이저에게 무역 차르의 자리를 맡기고 싶었는데, 후원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다가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게 된 거라면, 그리고 무역 분야에서 트럼프의 공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유권자들이 실망하게 된다면 트럼프로서는 득보다 실이 많은 인사를 한 셈이 될 겁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지난 9월 트럼프와 해리스가 맞붙은 대선 후보 토론. 2020년 선거에서 패배를 몇 년째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를 비판하며, 해리스는 "세계 지도자들이 그런 트럼프를 뒤에서 비웃고 무시한다"라고 포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트럼프가 바로 반박하며 예로 든 인물이 있습니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였습니다. 트럼프가 한 말을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빅토르 오르반이라는 아주 존경받는 지도자가 있어요. 사람들이 그를 강인한 사람(strongman)이라고 부르죠. 실제로 아주 터프한 사람입니다. 똑똑하고요. 헝가리 총리죠. 그 사람이 그랬어요. '아니, 왜 3년 전에는 멀쩡하던 세상이 지금 이렇게 난장판이 됐지? 트럼프가 없어서 그렇구나!'라고요." 전형적인 트럼프식 화법이었기에 말 자체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유럽연합 회원국 내 정치 지도자 가운데 가장 극우 성향에 가까운 인물이자,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인물로 평가받는 오르반 총리가 자신을 칭찬한 걸 도리어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도 미국의 보통 정치인이라면 하지 못했을 말이니, 역시 트럼프다웠습니다. 재밌는 건 답변 중에 오르반을 묘사한 단어 "strongman"입니다. 말 그대로 옮겨서 "strong"과 "man"을 더하면, 트럼프가 생각했을 "강인한 사람"이란 뜻이 맞습니다. 하지만, 특히 정치인이나 권력자를 묘사할 때 "strongman"은 힘으로 원칙이나 사전에 한 약속을 짓밟는 독재자 혹은 권위주의 지도자를 뜻합니다. 트럼프는 이 단어의 또 다른 뜻을 몰랐을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개의치 않았을까요? 트럼프라면 충분히 '그게 뭐가 중요해? 터프한 사람한테 터프하다고 부르는 걸 가지고 다른 뜻이 있느니 없느니 얘기할 게 뭐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자기식으로, 직설적으로 표현했을지도 모릅니다. 트럼프가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제시한 해법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위협보다 중요한 것을 놓친 여당 민주당은 선거에서 졌고, 트럼프는 집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2기가 어떤 모습을 띨지 수많은 예상과 전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선거에서는 가장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어쩌면 장기적인 파급 효과는 가장 클 수도 있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트럼프가 민주주의 원칙을 어디까지 훼손하고 다시 쓸지 예상해 보는 일입니다. 트럼프가 어쩌면 그대로 답습하고 미국에서 재현하고 싶어 할 사례가 바로 오르반 총리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사례일 겁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마샤 게센이 오랫동안 오르반을 지켜본 헝가리 야당 정치인 발린트 마자르의 설명을 빌려 현재 집권 중인 권위주의 통치자들이 여기까지 온 경로를 살펴보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의 성공 비결을 얼마나, 어디까지 미국 정치에 접목할 수 있을지 예상해 봤습니다. 게센이 칼럼을 쓴 뒤 MSNBC와 인터뷰에서 한 설명까지 참고했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이미 시작됐다... 트럼프 2기에 대한 소름 끼칠 만큼 정확한 예언" 사실 게센이 우려한 권위주의 대통령 트럼프의 등장은 이번 선거를 분석하는 글에서 여러 차례 살펴본 주제이기도 합니다. 유세 현장에서, 인터뷰에서 하는 말처럼 정말 트럼프가 제왕적 대통령이 될지 살펴본 글이 그랬고, 상원에 자신의 인사를 검증받고 인준받지 않겠다는 태도가 왜 위험한지 살펴본 지난 글과 오늘 글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트럼프가 아무리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마구 휘두르려 해도 미국 민주주의 제도 곳곳에 숨어 있는 견제와 균형 원칙이 방지턱 역할을 해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지금까지 어떤 대통령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트럼프도 그러지 못할 거로 생각하는 건 안일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의 행보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20세기 유럽에서 준동한 파시즘의 역사를 곱씹어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민주주의를 말살한 파시즘도 초기에는 아이러니하게 대중이 느끼는 당장의 필요에 영합한 포퓰리즘의 탈을 쓰고 권력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트럼프는 적어도 두 번째 임기 4년 동안은 가능한 한 오래 입법부와 사법부, 주 정부를 포함한 미국 정치 제도 전반에 대통령으로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할 겁니다. 게센은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가 할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 제도를 최대한 무력화하거나 폐기한 다음 기꺼이 독재자가 되려 할 거라고 내다봅니다. 지금까지 정치 이력이 닮았다고 해서 앞으로 겪게 될 정치적 운명까지 비슷할 거라고 가정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유인과 기제가 비슷한 두 사람인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모습을 예측할 때 오르반이 2010년 다시 집권한 뒤 지금까지 내린 결정들을 참고하면, 유용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오르반이 지난 15년간 한 일 중에 마자르가 말한 독재적 돌파구에 해당하는 조치들이 무엇인지, 트럼프가 미국에서 비슷한 일을 하려 한다면, 어떤 모습을 띨 테고 이를 어떻게 감지하거나 막을 수 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마자르의 정의를 빌리면, 독재적 돌파구란 법치(rule of law)가 아니라, 권위주의적 통치에 필요한 법(law of rule)을 만드는 일입니다. 트럼프가 추진하려 할 독재적 돌파구는 뭐가 있을까요? 몇 가지 후보를 골라봤습니다. 제왕적 대통령 지난해 대법원은 대통령이 재임 중에 한 일에 대해 광범위한 면책특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중에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임명하면서 보수 우위로 기울어진 대법원이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을 법 위에 군림하는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줬다는 평가가 나오는 판결이었습니다. 이 판결만으로도 미국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에 한 발 더 다가선 셈입니다. 여기에 의회는 상원, 하원 모두 트럼프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공화당 의원(MAGA Republicans)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8년 전 첫 번째 임기를 시작할 때도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이 모두 공화당이었지만, 그때는 트럼프와는 결이 다른 전통적인 보수 공화당원이 주류를 이루던 때였습니다. 리즈 체니 같은 의원이 대표적이죠. 지금은 트럼프와 마찰을 빚던 의원들은 공화당 경선에서 대부분 축출됐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충성한 맷 게이츠 같은 의원을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는 등 화끈한 논공행상을 보여주며, 공화당 의원들을 향해서도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통령의 인사권을 검증하는 건 헌법이 보장한 권한인데, 트럼프가 이마저 무력화하려 한다면 민주주의 원칙을 또 하나 폐기하는 결정이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국가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의 가족이나 측근들에게 과도하게 허락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 때 게센이 칼럼에서 지적한 대로 비상사태에 발휘할 수 있는 특별 행정명령을 통해 평소에는 국가 기밀에 접근할 권한이 제한된 백악관 참모들과 자신의 측근들에게 각종 기밀 정보를 열람하고 취급할 수 있는 인가를 임시로 대거 발급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한다면 법치의 근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정해진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자꾸 예외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법치를 무시하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위한 법을 자기 입맛대로 고르는 일의 전형일 겁니다. 언론 탄압, 대학 폐쇄 2010년 재집권한 오르반 총리는 자신을 비판하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언론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이어 칼럼에도 소개되지만, 연구기관인 대학을 폐쇄해 나라 밖으로 쫓아내 버렸죠. 모두 다 오류가 없어야 할 권력자와 정부 여당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짓밟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어느덧 헝가리 언론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 오르반 총리나 푸틴 대통령이 한 수준의 언론 탄압이나 검열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특히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자본주의 시장에서 언론을 길들이는 법을 체득했을 겁니다. 이번 선거는 전통적인 언론을 상당수 유권자가 외면하면서 언론이 여론을 읽지 못했고, 팟캐스트나 소셜미디어 등 대안 언론이 기존의 언론을 상당 부분 대체한 선거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자신에게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하는 언론사의 사주를 괴롭히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제프 베조스나 LA 타임스의 패트릭 순숑 같은 갑부 언론사주들은 대통령에게 밉보였다가 다른 사업체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LA 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독자들의 비난, 기자나 편집국 직원들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선거 전에 신문사 논설위원실 명의로 해리스를 공개 지지하지 못하게 막은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트럼프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 대학교들도 떨고 있을 겁니다. 트럼프가 이번 선거에서 서민,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얻은 데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나 몰라라 하면서 잘난 척이나 하는 엘리트"를 향한 비판이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곳이자, 차세대 엘리트를 키워내는 산실이 바로 대학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교육부를 아예 없애버리겠다고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일단 트럼프는 교육부 장관에 2기 행정부를 준비하는 그림자 내각이란 평가를 받는 조직 미국 우선주의 정책연구소의 소장이자,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린다 맥마흔을 지명했습니다. 상원의 인준을 거치면, 맥마흔 장관에게 주어질 첫 번째 미션은 대학에 보내는 연방 정부의 교부금과 지원금을 대대적으로 삭감하거나 말 잘 듣는 대학에만 선별적으로 지급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될 겁니다. 군대의 사유화 민간이 선출해 구성된 정부가 군을 통제할 수 있느냐는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척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반대로 군의 정치적 중립성도 중요한 가치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는 헌법을 지키고 자국 영토와 국민을 수호하는 임무만 수행해야지, 대통령과 여당의 정적을 처단하는 일에 동원되면 안 됩니다. 트럼프는 이 문제에서도 아슬아슬한 발언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특히 2기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불법 이민자를 대대적으로 추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 이 작전을 수행하는 데 미군을 동원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대통령이 군대에 미국 영토 내에서 군사 작전이라고 보기 어려운 작전을 지시하는 게 헌법상 문제는 없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트럼프는 논란에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명령하면 군대는 따르는 수밖에 없을 거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 장관 자리에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이 있는지 의문스러운 폭스뉴스 진행자이자 패널인 피트 헥세스를 지명해 또 다른 논란이 한창 일고 있습니다. 수정헌법 22조 바꿀까? 위에 예로 든 세 가지는 트럼프가 충분히 할 수 있고, 이미 상당 부분 반대하든 말든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비친 적도 있는 사안입니다. 반면에 마지막으로 살펴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