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SBS에 입사했다. 2006년부터 북한 취재를 담당해오면서 평양과 백두산, 개성과 금강산을 방북 취재했다. 2018년부터 북한전문기자로 재직 중이다. 재직 중 학업을 병행해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석사를, 경남대 북한대학원(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자주적 대북정책은 가능한가』 『갈등하는 동맹』(공저) 『빗나간 기대: 준비되지 않은 통일』이 있다.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지난 9월 29일 김정은 총비서가 압록강 일대 수해 복구 현장을 찾았습니다. 조직적으로 동원한 복구 인력들이 수해 복구에 한창이었는데, 구형 기중기와 트럭 몇 대를 제외하고는 중장비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건물을 올리는 중인데도 레미콘 차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비는 거의 없이 인력만 대규모로 투입된 북한 건설 현장의 열악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정은이 압록강 일대 수해 복구 현장을 찾은 모습 (지난 9월 29일) 하지만, 공사장에 투입된 작업자들 대부분은 안전모를 쓰고 있었습니다. 건설 현장에 안전모는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북한 건설 현장에서 안전모 쓴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10년 사이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에 안전모는 어떻게 보급되기 시작했을까? 지난달 10일 탈북 외교관 토론회에 참석했던 태영호 전 의원은 해외에서 가해진 압박이 북한에 안전모를 보급시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해외에 나가 있는 북한 인력들이 그 나라 건설장에서 안전모를 쓰지 않고 일하니, 국제적으로 비정부 단체들이 국제회의에서 '북한 인력들이 일할 때 왜 그 당국은 자기네 노동기준법에 근거해서 안전 조치를 강구하지 않느냐' 그래서 해당 나라가 북한 회사 사장들에게 요구했습니다. 이거 안전모 씌워야지 안전모 안 씌우면 우리가 욕먹는다." <태영호 전 의원, 지난달 10일 탈북 외교관 토론회> 이렇게 안전모를 쓰게 된 해외의 북한 노동자들이 북한으로 귀국할 때 안전모를 가지고 돌아가면서 북한 전역으로 안전모가 확산되게 됐다는 것입니다. "북한으로 돌아갈 때 노동자들이 그 안전모를 몽땅 가지고 갑니다. 좋으니까, 가지고 가서 공사장에서 외국 갔다 온 사람들부터 안전모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공사장에서 안전모 쓴 사람은 외국 갔다 온 사람, 안전모 없는 사람은 외국에 못 갔다 온 사람, 안전모 있는 사람은 기술이 있는 사람, (안전모) 없는 사람은 기술 없는 사람, 이게 구별이 되기 시작하면서 북한 당국도 아 안전모를 씌워야 되겠구나..." <태영호 전 의원, 지난달 10일 탈북 외교관 토론회> 국제사회의 압박이 북한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지만, 탈북 외교관들은 외부 세계의 압박에 북한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합니다. "끊임없이 압박을 하면 북한 정권은 당연히 부담감을 가집니다... 보안원들을 상대로 해서 너무 지나치게 인권 침해 행위를 하지 말라는 지시도 (내려가거든요)."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지난달 10일 탈북 외교관 토론회> 리일규 전 참사가 가져온 북한 외교전문 보니 북한이 외부 세계로부터의 인권 압박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알려주는 북한의 외교전문이 공개됐습니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가 탈북 과정에서 입수한 외교전문인데, 평양의 외무성 본부와 재외공관 간 주고받은 전문들입니다. 리 전 참사가 최근 공개한 북한 외교전문은 2016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의 12건인데, 이 전문들을 보면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권 압박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통일부가 공개한 북한 외교전문 자료 리 전 참사가 외교전문의 원문 공개는 원하지 않아 통일부가 간추린 자료만을 공개했는데,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과 관련된 결의안들이 채택될 때 김정은이 직접 이와 관련된 지시를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6년 2월 13일 북한 외무성 본부가 재외공관에 보낸 외교전문을 보면, 북한은 김정은의 지시라며 제31차 인권이사회(2016년 2/29-3/24)에서 북한인권결의를 전면 배격하는 입장을 밝힌 뒤 회의에 불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2016년 11월 2일 외무성 본부가 재외공관에 보낸 외교전문에서도, 김정은은 제71차 유엔총회(3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할 때 결의를 전면 배격하는 입장을 발표한 뒤 퇴장하도록 했다고 통일부는 밝혔습니다. 해외에서의 인권 압박이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김정은이 직접 국제사회의 인권 압박에 대응할 정도로 사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2017년 1월 11일 외무성 본부가 재외공관에 내려보낸 외교전문을 보면, 김정은은 인권 대결전이 당과 사상, 제도를 사수하기 위한 대적 투쟁의 제1선 전투장이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인권 논의에 대해 절대 긴장하지 말고 의연한 자세로 연대 세력을 넓혀 북한의 인권 문제 논의가 정례화하는 것을 막을 것과, 적들이 북한의 격한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최고 존엄을 우회적으로 노리는 악랄한 인권 모략 책동을 벌이고 있는 만큼 이를 반드시 제압할 것도 지시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응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인권 문제에 있어 수세에 몰려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2016년 2월 13일 외무성 본부가 재외공관에 내려보낸 외교전문을 보면, 북한인권결의안을 전면 배격하고 표결에 불참함으로써 무투표로 결의안이 채택되게 하는 것이 '개도국들에게는 북한인권결의 표결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열악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결의안 채택에 어느 나라도 반대하기는 부담스러운 만큼, 북한에게 가까운 나라들이 결의안 표결에 참가하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아예 무투표로 인권결의안이 채택되도록 하는 것이 낫다는 평양의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북한은 또 같은 전문에서, 적들이 그동안 북한을 지지해 오던 개도국들을 압박 회유함으로써 다수 국가들이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고, 이로 인해 양자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북한과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던 나라들로부터도 외교 역량이 축소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권결의안 무투표 채택' 용인할 수밖에 없는 현실 외교전문은 북한 당국이 해외로 내려보내는 외교 전략이 그대로 적시돼 있는 것이라 가공되지 않은 북한 대외 정책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인권 문제에 초연한 것 같지만 김정은이 직접 인권 문제 대응을 지시하고, 김정은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북한 입장에서 표결해 줄 나라가 갈수록 줄어들자 '인권결의안 무투표 채택'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통해 북러 밀착은 강화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지난달 10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는 탈북 외교관 7명이 모여 한반도 상황을 진단하는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북한을 탈출해 온 외교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전직 북한 외교관들이 7명이나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국내에 입국한 뒤 비공개로 활동하고 있는 전직 북한 외교관들도 있다고 하니, 국내에 입국한 탈북 북한 외교관들이 두 자릿수는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탈북 외교관 토론회 (10월 10일)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직 북한 외교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영환 국립통일교육원장(전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김동수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이영철 전 핀란드 주재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그리고 한진명 전 베트남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입니다. 토론회 직후 북한발 무인기 사건과 북한군 파병 등 북한 관련 대형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토론회를 소개해 드릴 여유가 없었는데, 이번 글에서는 뒤늦게나마 탈북 외교관 토론회에서 나온 북한 내부 소식들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꾸 달아나는 북한 외교관... "갈 테면 가라" 현재 북한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들은 어떤 것들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토론회에서 나온 몇 가지 것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해외에서 이어지는 탈북 행렬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국내에 입국한 탈북 외교관만 두 자리에 이르는 실정이고 해외 파견 노동자와 유학생 등에서도 탈북이 이어지고 있으니, 북한 당국으로서는 해외로 인력을 파견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외교관들의 경우 자녀 한 명은 평양에 남겨두게 하는 방식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본질적인 탈북 방지책이 되지는 못하고 있고, 외화벌이를 생각할 때 노동자 해외 파견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북한 당국이 골치 아파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디에서 누가 탈북을 했다 하면 대표부나 작업장이나 직장이나 사업소에서 세워진 규율을 철저히 지킬 데 대해 강조하고, 해당 지역들에 파견되는 보위원들 당일꾼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이중삼중의 감시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 실례를 들면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씩 현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전화해서 알아보는 것, 이런 식의 감시밖에는 할 수 없는 게 북한 정권이 참 안타까운 일이고요."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하지만, 아무리 감시를 강화해도 탈출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 그래서 북한이 선택한 최후의 방법은 '갈 테면 가라'는 식의 일종의 정신승리입니다. "북한에 어떤 얘기가 있냐면 '비겁한 자야 가려면 가라 우리는 붉은 기를 지키리라'라는 노래도 있고 그런 신념 같은 게 있습니다. ... 속으로 칼 품고 다른 생각하는 사람들 데리고 앉아 있어야 쌀밖에 축낼 거 없다. '갈 사람은 가고 남아서 당과 혁명에 충실할 사람들은 충실하면 된다' 이런 논리를 가지고밖에 대응하는 게 없습니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북한에도 종교 문제가? 북한 주민들에게 종교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사실을 검증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북한 내 종교활동 때문에 북한 당국이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는 언급이 나왔습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북한 외무성에 근무하던 시절 다음과 같은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현 상황에서 이 종교 문제에 대해서 방치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그러니까 이거 외교부(외무성)에서 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받은 게 어떤 과업인가 하면, 해외에서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설사 교인이라고 하더라도 들어오기 전에 비자를 내줄 때 절대 성경책은 가져가면 안 된다는 걸 미리 외국인들한테 공지해라."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문제는 이런 조치를 외국 외교관들에게까지 시행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외교관들의 경우 면책 특권이 있어서 공항에서 소지품 검사도 할 수 없는데, 외교관들도 성경책을 가지고 오지 못하게 하라고 하니 외무성으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북한 상주 외교관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크리스천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에 들어올 때 성경책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걸 외교부(외무성)가 무조건 집행하세요. 이런 지시가 떨어졌어요. 그래서 저희들이 그때 보위부하고 좀 한 번 충돌이 생겼는데... 아니 비엔나 협약에 의해서 외교관들의 소지품은 검사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성경책을 저희들이 뺐겠느냐... 이거 지나친 것이 아니냐, 이렇게 저희들이 주장했는데 (보위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국경에서 설사 외교관이라고 하더라도 성경책이 한 권이라도 들어오면 안 된다."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일반적인 외교 관례를 무시하면서까지 보위부가 강력하게 성경책 반입 금지를 요구한 것을 보면, 북한 당국이 느끼는 종교활동에 대한 우려가 생각보다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북한 내 종교활동의 실태를 알 수는 없지만, 북한 내에 종교활동이 있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외부 압박에 반응할까? 국제 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아무리 떠들어도 북한에 변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북한이 국제 사회의 이단아로 외부 세계와 문을 닫고 살고 있는 만큼, 국제 사회가 압박한다고 해서 과연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에 나온 전직 북한 외교관들은 한결같이 외부의 압박이 북한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습니다. "해외에서의 북한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서 김정은 이름과 결부를 시켜서 비판을 하면 알게 모르게 김정은 책상 위에 보고서가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보고서를 올리는 사람도 굉장히 불편하거든요. 왜냐하면 김정은이가 화를 내면 이건 엄청난 후과(결과)가 나오니까, 그런데 그런 보고를 또 안 해도 문제고, 그리고 김정은으로서는 (보고서가) 올라가면, '이거 시끄럽지 않게끔 어떻게 대책을 취해 봐라' 이런 게 북한 사고방식이라 (외부의 비판이 북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말씀을 드리고..." <고영환 국립통일교육원장 (전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고영환 국립통일교육원장 (전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이전에 인권 문제 관련해서 김정은을 ICC(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자는 의견들이 제기됐습니다. 물론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서 이게 안보리 직무에 맞지 않다고 해서 배제가 됐지만, 이와 관련해서도 북한 내에서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굉장히 심각하게 이 문제에 대응을 했습니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한류의 영향력, 북한 당국을 흔들다 한류의 영향이 북한 젊은 세대들의 사상을 흔들고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전직 북한 외교관들은 한류가 북한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식의 위기는 배고파 굶어 죽고 이런 물질적인 위기였다면 지금의 위기는 그때 태어난 MZ세대들, 지금 노동당보다 장마당이 더 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장마당 세대들의 사상의식이 완전히 변했고 사상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완전히 붕괴되는..." <김동수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지금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 정권의 싸움은 미국이나 우리 한국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한류와의 싸움, 쉽게 말하면 북한 청년들과의 싸움이고 문화와의 싸움입니다."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한류로 지칭되는 한국 문화가 북한의 사상을 침식하고 있다면, 경제적으로는 북한 돈이 신뢰를 잃고 외국돈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 주권을 상징하는 북한 화폐가 북한 주민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돈이 들어가서 세탁 과정을 거쳐서 (장마당 등에서) 달러나 한국 돈이 유통되고 있잖아요. ... 탈북민으로 해서 자본주의 시장이 형성되고 있어요. ... 돈 문제는 막을 수 없는 하나의 원코리아의 뱅킹의 어떤 라인이 깔려 있지 않느냐." <이영철 전 핀란드 주재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북한 주민 구원해 줄 사람은 바로 우리 엄혹한 독재 체제로 외부 세계와 문을 닫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잇따른 탈북과 국제 사회의 압박, 한류의 확산과 종교 문제 등으로 북한 내부적으로는 곤혹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 전직 북한 외교관들의 증언입니다. 전직 북한 외교관들은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외부 정보의 유입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면서, 북한 주민들을 노예의 삶에서 구원해 줄 사람들은 바로 우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정은의 발굽 밑에서 진짜 노예의 삶을 살면서 신음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우리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우리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우리가 그들을 품어 안아야지 누가 하겠습니까? 이거 할 사람이 없거든요. 중국 사람이 하겠습니까? 러시아 사람이 하겠습니까? 우리가 해야 될 일이거든요."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세계적인 안보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의 전쟁이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 안보현안으로까지 확대됐고, 남북한과 미국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향후 한반도와 유럽의 안보 지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드러난 북한군 파병 관련 사실들을 점검해 보면서, 우리가 주시해봐야 할 몇 가지 포인트들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군의 전투력은 북한군이 대거 러시아 전선에 투입된다고 하지만, 북한군의 실제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검증된 바가 없습니다. 영화 속에 그려지는 북한 특수부대원들은 무적인 것처럼 묘사되기도 하는데, 영화는 영화일 뿐 북한군이 실제 전장에서 어느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것은 이번에 파병되는 북한군들이 최정예 특수부대인 폭풍군단(11군단)의 일원들이라는 것입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파병에 앞서 지난 9월 11일과 10월 2일 특수부대원들의 훈련을 참관했는데, ‘차력 쇼’라고 할 정도의 각종 격파와 체력훈련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쇼’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강도 높은 체력단련과 군사훈련이 특수부대원들에게 행해져온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수부대원들의 전투력이 다른 부대의 군인들보다는 일반적으로 높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김정은 앞에서 훈련 중인 북한 특수부대원들 국정원은 파병된 북한군의 연령대가 주로 20대 초반이며 10대 후반도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10대 후반까지 파병됐을 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북한의 군 입대 구조에서 추론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보통 고급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군대에 가기 때문에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군인들의 경우 10대가 존재합니다. 특수부대로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군인들이 파병돼 왔다면, 10대 파병자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군대에 가는 신체검사 기준은 키 148cm, 몸무게 43kg 이상입니다. 예전 신체검사 기준은 키 150cm, 몸무게 48kg이었는데, 식량난으로 청소년들의 체격이 왜소해지자 1994년부터 신검 기준을 하향 조정했습니다. 특수부대의 경우 일반 병사들보다는 신체조건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북한 청소년들의 전반적 체격이 왜소해진 상태인 만큼 특수부대라고 해서 대단히 뛰어난 체격조건은 아닐 수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대단히 뛰어나지는 않은 신체조건에다, 나라와 가족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역만리에서 다른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은 북한 군인들의 전투의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하더라도 도대체 왜 러시아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회의감을 가진 북한 군인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보면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이 상당한 전투성과를 내게 될지, 아니면 별다른 전과 없이 목숨만 잃게 될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좀 더 시간이 흘러봐야 이번 전쟁에서 북한군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평가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만약 북한군이 이번 전쟁의 판도를 바꿀 정도의 전과를 올리고 그로 인해 러시아가 유리한 상황에서 휴전을 하게 된다면,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상당한 반대급부를 챙길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적 영향력도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파병된 북한군이 이렇다 할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사상자만 늘어가면서 추가 파병을 놓고 북한과 러시아가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으로 간다면, 국내외적으로 북한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과 함께 북러 간에도 미묘한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북한군의 작전지휘권은 파병된 북한군의 작전지휘권을 누가 갖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일정 지역의 공격이나 방어를 북한군이 통째로 맡는 식으로 북한군 지휘관이 작전을 지휘하게 된다면 북한군의 독자적인 작전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반면, 개별 병사들이 러시아군 편제에 들어가 러시아 지휘관의 명령을 받게 되면 그야말로 러시아 병사를 대체하는 용병 수준에 머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로 파견돼 러시아군 장비를 지급받는 북한군 북한 특수작전사령관 출신인 김영복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이 북한군 총책임자로 러시아에 파견됐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북한이 혹시 일정 지역에서의 독자적인 작전지휘권을 행사하는 것 아닌가 하는 관측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북한군은 러시아군 편제에 들어가 전투를 수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원은 지난 10월 29일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러시아군이 북한군에게 러시아 군사 용어 100여 개를 교육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위치로’ ‘포격’ ‘발사’와 같은 용어들을 러시아어로 교육하고 있는데 북한군이 어려워한다는 후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군인들이 북한군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한국어를 익히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북한군에게 러시아 군사용어를 교육하고 러시아군이 한국어를 익히고 있다는 것은 두 나라 군대가 혼합 편제돼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북한군이 러시아군 편제에 들어가게 되면 러시아군의 기존 전쟁수행 방식대로 북한군이 전투를 치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러시아군 사상자는 지금까지 6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군이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이 인력 소모전 방식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군이 이런 소모전에 러시아식으로 투입된다면 개별 전투력과는 상관없이 사상자가 막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군 사상자가 계속 늘어가고 추가파병이 불가피한 상황이 이어지면 북러 간 갈등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군 귀순자가 생긴다면 북한군이 탈북을 위해 국경을 넘어온 것이 아니고 조직적으로 전투에 참가하고 있는 만큼, 집단 투항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전투 과정에서 포로로 잡힐 경우, 심문 과정이나 이후 포로 수용 기간 동안 남한으로의 귀순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에 가족이 남아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북한의 젊은 세대들이 한류에 익숙한, 이른바 ‘장마당 세대’들이고 이국 땅에 팔려온 용병이라는 배신감에서 남한행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국정원은 국정감사에서, 북한군이 귀순을 요청할 경우 “국제법, 국내법적으로 당연히 우리나라가 받아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 권력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부분도 존재하기에 고민해야 하는 면도 있지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서 귀순 요청을 검토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군 귀순자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그 수가 늘어날 경우, 이는 북한 정권에게 상당한 타격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믿고 보낸 군인들마저 북한 정권을 배신한다는 것은 체제 보위의 마지막 보루마저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파병 군인들의 귀순 소식이 북한 내부로 퍼져갈 경우 체제의 취약성이 한층 더 부각될 것이고, 북한은 추가파병에도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변수가 작동할 북한의 러시아 파병 앞서 간단히 살펴본 것처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앞으로의 사태 전개에 따라 여러 방면의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안보지형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북한의 대내외 상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좋든 싫든 유럽 안보와 한반도 안보가 연계되면서 한반도 문제가 세계 속의 주요 현안으로 부각된 상황에서, 앞으로의 상황변화가 북한 체제의 안정성과 분단 체제에 어떤 영향을 불러올지 세밀히 주시해야 하는 국면입니다.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어떤 사안을 해석하는 데 있어 해석의 근거가 되는 자료가 부족하면 잘못된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관계가 누락된 상태에서 사안을 바라보게 되면 정확한 분석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난 7일 있었던 김정은 총비서의 ‘대한민국 공격 의사 없다’는 발언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저는 지난 글(윤석열 대통령에게 "상황 관리" 주문한 김정은... 수위 조절 나선 이유는)에서 김정은의 이런 발언을 ‘남북의 군비경쟁에서 오는 안보 딜레마’에 따른 부담 때문이라고 해석했는데, 북한의 러시아 파병 소식이 전해지면서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공론화되기 전후의 북한 반응을 비교해 보면서 이번 파병에 대응하는 북한의 전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공격 의사 없다’ 발언 하루 뒤 러시아 파병 시작 김정은은 지난 7일 국방종합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 공격 의사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김정은의 발언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김정은 국방종합대학 연설 | 지난 7일 “우리는 솔직히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의식하는 것조차도 소름이 끼치고 그 인간들과는 마주 서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전 시기에는 우리가 그 무슨 남녘 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 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이 없으며 두 개 국가를 선언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 나라를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김정은이 지난 7일 국방종합대학을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에게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상황 관리를 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에게 상황 관리를 주문하면서 사실은 김정은 자신이 상황 관리에 나선 셈인데, 북한군 파병 사실이 드러나고 난 뒤에 보니 그다음 날인 8일부터 북한이 러시아로 병력을 보내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18일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에 1만 2천 명가량의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기로 했고 지난 8일부터 첫 병력인 1천 5백여 명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김정은은 러시아로의 병력 이동을 하루 앞두고 일종의 평화 제스처를 취한 셈입니다. 해외로 대규모 전력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국내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이런 의도적인 발언을 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 볼 부분은 이른바 ‘남한 무인기 사건’에 대한 북한 대응입니다. 북한은 지난 11일 남한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침투했다고 주장하면서 외무성 중대 성명과 김여정 담화 등을 통해 긴장을 고조시켰습니다. 지난 13일에는 국경 부근의 포병부대들에 완전사격준비태세를 갖추도록 했다며 군사 긴장 수위를 높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15일부터 다소 미묘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신문은 15일 김정은이 '국방 및 안전 분야에 관한 협의회'를 소집했고 '강경한 정치군사적 입장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는데, 북한이 공표한 김정은 관련 보도에는 이렇다 할 내용이 없었습니다. 지난 15일 노동신문의 압권은 이른바 ‘남한 무인기 사건’에 분노하는 북한 주민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노동신문은 1면에 남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각계 반응을 실었는데, 치솟는 증오를 가지고 석탄을 증산하고 더 열심히 일을 하자는 등 다소 어이없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노동신문의 일부 기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동신문 | 지난 15일 “각 탄광 당 조직들에서 탄부들의 치솟는 증오와 보복 열기가 그대로 석탄 증산 성과로 이어지도록 집중적인 사상 공세를 드세게 들이대고 있다.” “그 어느 탄광의 막장에서나 신성한 우리 공화국의 주권을 란폭(난폭)하게 침해하고 무모한 도전 객기를 부리는 괴뢰 한국 것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심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속에 석탄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신성한 령토(영토), 수도 평양의 상공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엄중한 정치군사적 도발 행위를 감행하였다는 소식에 접한 그날 흥남 로동(노동) 계급은 노호하였다. 밤교대 작업을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던 원료직장, 발생로직장, 압축기직장을 비롯한 여러 직장 로동자(노동자)들이 작업복을 다시 갈아입고 서리발이 번득이는 눈길로 생산 현장에 들어섰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원쑤(원수)들에게 무자비한 천벌을 안기는 심정으로 한 교대라도 더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고 하면서 스스로 일손을 잡았다.” “평양의 하늘을 더럽힌 원쑤(원수)들을 단매에 쓸어버릴 결사의 각오 안고 군 일군들과 농업 근로자들, 지원자들이 화선을 지켜선 심정으로 낟알 털기 속도를 높이고 있다.” 남한에 대한 분노를 담은 각계 반응을 전한 지난 15일 자 노동신문 홈페이지 남한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석탄을 증산하고 낟알 털기의 속도를 높이자는 희한한 상황. 통일부는 “적개심이 생산 증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이례적 논리가 등장”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북한의 해외 파병이 밝혀지고 난 뒤 생각해 보면, 해외로 전투 병력을 파견하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한반도의 긴장을 마냥 높이기에는 부담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 파병 공개된 뒤 행보 달라져 이렇게 남북 긴장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수위 조절을 하는 듯했던 북한의 행보는 지난 18일 우리 정부에 의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확인된 이후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입니다. 지난 22일 발표된 김여정 담화는 무인기 사건과 대북 전단 등을 두루 언급하며 남한과 우크라이나를 싸잡아 비난했는데, 핵심은 ‘핵보유국을 상대로 까불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핵보유국이니 비핵국인 남한과 우크라이나가 섣불리 대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루 뒤인 23일에는 김정은이 전략미사일 기지를 시찰한 사실이 보도됐습니다. 전략미사일 기지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었는데, 북한은 김정은이 고체연료 ICBM인 화성-18형과 극초음속 미사일을 살펴보는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ICBM은 보통 미국을 겨냥한 압박으로 해석되는 만큼 미국 대선을 2주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을 겨냥한 메시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북한이 올해 미국 대선을 대체로 관망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미국 대선을 겨냥해 전략미사일 기지를 공개했다고 보는 것은 명쾌하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오히려 북한의 최대 현안인 러시아 파병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본다면, 해외 파병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전력은 막강하니 북한을 섣불리 건드릴 생각을 하지 말라는 시위일 수 있습니다. 대규모 특수부대의 해외 파병으로 북한의 전력 공백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핵무기가 있다는 것을 각인시키면서 북한의 안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과시한 것입니다. 북, 대규모 해외 파병으로 인한 전력 공백 가능성 민감하게 생각 북한은 러시아 파병이 발각되기 전까지는 상황 관리에 주력하다가 파병 사실이 밝혀진 뒤부터는 핵보유국임을 강조하며 북한 안보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대규모 해외 파병으로 인한 전력 공백 가능성을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북한군의 파병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날지 추가 파병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파병 상황이 길어진다면 북한 당국에 부담이 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지난 주말부터 북한이 평양 상공에 남한 무인기가 침투했다며 긴장을 한참 끌어올렸습니다. 지난 11일 외무성 중대성명에 이어, 12일부터 계속된 김여정 담화, 13일 국방성 대변인 담화 등을 통해, 곧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대남 위협 수위를 높인 것입니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서도 무인기 침범에 격분했다는 주민 반응을 전하며 대남 적대 선동에 열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이런 행동은 외부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꾀하고 불만을 잠재우려는 독재정권의 전형적인 통치술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북을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한 상태에서 대남 적대 선동을 통해 ‘두 국가 체제’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극렬히 반발하는 것을 보면 이런 목적들 외에 다른 이유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최고 존엄’ 사무실 바로 위까지 무인기 침투? 이번 사건의 실체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북한은 남한 무인기가 침투했다고 하지만, 우리 군 당국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고, 북한의 자작극 가능성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북한 주장대로 남한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침투했다는 가정하에 북한의 허술한 방공체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은 지난 11일 외무성 중대성명을 발표하면서 ‘남한 무인기와 전단’이라고 주장하는 사진들을 몇 장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한 사진의 하단 설명을 보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 상공에 출현한 적무인기’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는 김정은 총비서가 일하는 건물인데, 김정은 사무실이 있는 건물 바로 위까지 남한 무인기가 날아왔다는 주장입니다.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관련 사진 김정은 사무실이 있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 지난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가 용산 대통령실 부근까지 날아왔다고 해서 논란이 됐던 적이 있습니다. 최고의 보안 구역이어야 할 대통령실 부근까지 북한 무인기가 들어오는데 제대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북한 무인기에 위해 물질이라도 달려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걱정스러운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남한 무인기가 북한 주장대로 김정은 사무실 바로 위까지 날아갔다면, 북한이 받는 충격은 상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1인 독재체제인 북한에서 김정은은 거의 신적인 존재인데 ‘최고 존엄’인 김정은의 안위를 담보하지 못할 비상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최고 존엄’을 위해서는 목숨도 버릴 것을 교육받는 북한에서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극렬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사건일 수 있습니다. 북한의 허술한 방공망 그대로 드러나 김정은 사무실 바로 위까지 무인기가 침투했다는 것 이외에도 이번 사건이 북한에게 충격적인 것은 북한 방공망의 허술함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휴전선에서 평양까지 거리는 대략 140km 정도입니다. 북한 주장대로 남한 무인기가 김정은 사무실 바로 위에서 발견된 것이라면, 140km나 되는 거리를 남한 무인기가 날아가는 동안 북한이 알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서해나 기타 장소에서 무인기가 날아간 것이라고 해도 적어도 수십 km 비행하는 동안 파악이 안된 셈입니다. 북한 방공망에 그야말로 구멍이 숭숭 뚫렸다고밖에 볼 수 없는 대목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난 11일 외무성 중대성명을 보면, 남한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침투한 게 지난 3일과 9일, 10일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지난 7일 김정은 국방종합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남한 무인기가 평양에 침투하는 중대사건이 발생했는데, 최고지도자가 오히려 ‘대한민국 공격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히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북한이 지난 11일 발표한 외무성 중대성명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은 김정은의 7일 발언이 나올 때까지 북한이 무인기 침투를 몰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무인기 침투를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북한이 무인기의 평양 침투 사실을 알면서도 ‘대한민국 공격 의사가 없다’는 말을 했을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3일부터 발생했다는 무인기 침투를 한참이나 지난 11일부터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을 보면, 아마도 지난 9일이나 10일쯤 남한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침투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방공 감시 장비를 재점검하는 과정에서 3일 무인기의 흔적이 발견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정은 사무실 바로 위까지 무인기가 왔다 갔다 했는데, 이런 사실조차도 제때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평양 방공망의 허술함이 여실히 드러난 셈인데, 북한으로서는 이런 치명적인 실수와 약점을 덮기 위해서라도 격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인기 보고도 대응 못 한 듯 이번 사건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해 볼 점은 남한 무인기가 평양에 침투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북한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여정은 지난 15일 담화에서 ‘한국 군부가 이번 사건의 주범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물증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한 증거는 남한 무인기라고 주장하는 물체를 공개하는 것입니다. 실물을 공개하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주체가 누구인지 드러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사진으로만 남한 무인기의 침투를 주장할 뿐 실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무인기를 수거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증거를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이 어떤 대응을 할 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평양 상공에 무인기가 침투한 것을 제때 알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무인기 침투 사실을 파악하고도 무인기를 격추하거나 제지할 방법이 없어 그대로 돌려보냈다면, 북한의 방공 감시망뿐 아니라 대응 능력 또한 낙제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다시 누군가가 무인기를 보낸다 해도 북한 능력으로는 막아내기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북, 무인기 재침투 막을 능력 안 돼 김정은 사무실 바로 위까지 무인기가 침투해 전단을 뿌렸다면, 김정은은 아마 크게 화를 냈을 것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라고 불호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 군부의 능력으로는 다시 무인기가 침투한다 해도 제대로 파악하거나 막아낼 능력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인기 침투의 재발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북한이 지난 11일부터 매일 같이 담화를 쏟아내며 ‘사태 재발 시 전쟁 불사’를 외친 것은 어찌 보면 더 이상 무인기를 보내지 말라는 호소로도 들립니다. 김정은의 ‘대노’를 생각할 때 어떻게든 무인기의 재침투를 막아야 하는데, 군사적으로는 능력이 안 되니 북한이 할 수 있는 것은 ‘말로 하는 위협’ 밖에 없었을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북한 내부적으로는 자신들의 능력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법도 합니다.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대남 위협 수위가 다소 달라졌습니다. 지난 2일 특수작전부대 훈련기지 시찰 때만 해도 '핵보유국인 북한과 충돌하는 상황이 온다면 서울과 대한민국의 영존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위협하더니, 지난 7일 김정은국방종합대학 방문 때에는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밝힌 것입니다. "우리는 솔직히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의식하는 것조차도 소름이 끼치고 그 인간들과는 마주 서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전 시기에는 우리가 그 무슨 남녘 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 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이 없으며 두 개 국가를 선언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 나라를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김정은 국방종합대학 연설, 지난 7일> 김정은은 이날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상황 관리를 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에게 상황 관리를 주문하면서 사실은 김정은 자신이 상황 관리에 나선 것입니다. "현명한 정치가라면 국가와 인민의 안전을 놓고 무모한 객기를 부릴 것이 아니라 핵국가와는 대결과 대립보다는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상황 관리 쪽으로 더 힘을 넣고 고민할 것입니다. 그것이 자국의 안전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옳은 선택이고 유익한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가로서의 노련함이고 능숙한 자질과 수완입니다." <김정은 국방종합대학 연설, 지난 7일> 김정은은 그동안의 위협적 언사가 '만약'이라는 전제 하에 있었던 것이라며 애써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외부의 공격이 있을 때 북한이 대응하겠다는 것이지, 그렇지 않을 경우 북한이 무력을 쓰겠다는 것은 아니라면서 오해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그리고 일관하게 군사력 사용에 관한 우리의 입장을 천명할 때마다 《만약》이라는 전제를 달았습니다. 그 《만약》이라는 가정 하에서 우리의 헌법은 우리 군에 엄격한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김정은 국방종합대학 연설, 지난 7일> 물론, 이날 연설에서 김정은의 위협적 수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김정은은 여전히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 기도 시 핵무기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신의 보호도 대한민국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대한 공격 의사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윤 대통령에게 상황 관리를 주문한 것 등을 볼 때, 김정은이 일정 정도 수위 조절에 나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정은, 지난 1월에는 "일방적으로 전쟁하지는 않을 것" 긴장이 높아지는 듯 할 때 김정은이 수위를 조절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뒤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자, 김정은은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위기 지수를 낮추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평소 무모한 행동을 하는 듯한 김정은이 이렇게 중요한 시기마다 수위 조절에 나서는 것은 김정은도 사실은 전쟁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말로는 전쟁 불사를 외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 정권의 종말을 공언하는 한미의 대응 의지로 볼 때 김정은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선뜻 전쟁을 결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북, 핵무기 개발로 안전해지지는 않아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2022년 9월 '핵무력정책 법령'을 공표했을 때만 해도, 북한의 대외 핵 위협은 상당히 공세적이었습니다. 북한은 '핵무력정책 법령'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로 핵공격뿐 아니라 비핵공격까지 명시했고, 그러한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나 전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작전상 필요가 제기되는 경우까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자의적인 핵 사용 방침을 밝힌 것입니다. 하지만, 작용은 항상 반작용을 불러오는 법입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확실히 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북한 위협의 증가는 한미의 대응 수위 격상으로 이어졌습니다. 한미 동맹이 핵동맹 수준으로 격상됐고 미국의 전략자산이 수시로 한국에 들락거리게 된 것입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북한의 군사력 증강이 북한의 일방적인 군사적 우위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북한이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을 한미 동맹이 그냥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한미 동맹도 북한 위협에 맞춰 진화하게 마련이고, 그에 따라 북한의 안보 불안감은 계속됩니다. 북한이 외부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한 이러한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안보 딜레마'입니다. 위협적 언사를 즐겨하는 김정은이 가끔씩 수위 조절에 나서는 것은 김정은 마음속에 깔려 있는 '안보 딜레마' 때문일 것입니다. 사진 :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얼마 전 제기한 '통일하지 말자'는 주장은 '통일'과 '평화'를 대립 구도로 보고 있습니다. "통일을 버리고 평화를 선택하자", "통일을 유보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합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대표적인 주장입니다. "통일 주장은 어떤 형태로든 상대를 복속시키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갖고 있는 만큼, '통일'이라는 목표를 버리고 분단된 상태로의 '평화'를 우선 목표로 하자는 게 임 전 실장의 주장으로 보입니다. 최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실시한 '2024 통일 의식 조사'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연구원 측은 갤럽에 의뢰해 지난 7월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19살에서 74살까지의 국민 1,200명을 대상으로 통일 관련 의식을 조사했는데(표본 오차 : 95% 신뢰 수준 ±2.8%), 통일보다는 평화 공존을 우선시하는 응답이 훨씬 많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의 목표로 다음 중 무엇을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가지만 골라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질문에, '남북 통일'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14.3%에 불과했고 '남북 평화적 공존 및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63.9%나 됐습니다. 나머지 선택지에 있던 '북한의 개혁개방과 남북 경제공동체 통합'이 21.6%의 답변을, 기타 응답이 0.2%를 얻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통일'과 '평화'를 은연중에 대립 구도로 설정해놓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응답자에게 제시된 세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만을 고르도록 하고 있는데, '통일'과 '평화 공존'이 별개의 선택지로 나뉘어있는 만큼 '통일'은 '평화'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합니다. 남북이 평화 공존을 이뤄가면서 궁극적으로 통일의 길로 갈 수 있는데도, 이 질문에서는 이러한 선택지가 배제돼 있습니다. 전쟁을 통해서라도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질문의 모범답안은 '평화 공존'인 측면이 있습니다. '분단은 평화'이고 '통일은 비평화'인가 '분단은 평화'이고 '통일은 비평화'인 것처럼 은연중에 설정돼 있는 구도. 여기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마주해야 합니다. 분단된 상태에서 평화가 가능할까요? 통일로 가는 것은 비평화적인 것일까요? 분단된 상태에서 평화가 가능할까 먼저, 지금과 같은 분단 상태에서 안정적인 평화가 가능할지 살펴보겠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는 알다시피 극단적인 우상화, 신격화 체제입니다. 김일성 일가가 신처럼 떠받들어지며 '김일성 일가의 것이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우상화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체제는 중국, 베트남식의 개방이 불가능합니다. 외부 정보가 북한 주민들에게 전파되면 김일성 일가의 허구가 드러나고 김일성 왕조 체제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남한 드라마를 보고 남한 노래를 부르기만 해도 노동교화형에 처하고 조직적으로 유포시키면 최대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이른바 3대 악법(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까지 제정한 것을 보면, 북한이 외부 정보 차단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통 '북한 체제의 경직성'이라고 말합니다. 북한 체제가 이렇게 외부와 융합할 수 없는 체제이기 때문에, 김일성 일가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채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핵무기가 필수적입니다.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에 북한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면 관계의 심화 속에서 북한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 텐데, 지금의 북한 체제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권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핵무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김일성 일가가 지금의 절대적인 기득권을 내려놓고 '신'의 위치에서 '인간'의 위치로 내려갈 수 있다면 외부와의 소통이 가능해지고 한반도 구도에 변화가 가능하겠지만, 김일성 일가가 지금과 같은 절대적인 권한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면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도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유감스럽게도 독재자가 스스로 자신의 절대적인 기득권을 내려놓은 사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가끔씩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되는 시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북한이 필요에 따라 대화를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 체제의 본질적 성격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대화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고, 한반도의 근본적 평화 정착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경험해 온 남북 관계의 역사입니다. 분단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50년, 100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주기적인 대치 국면'이 계속될 뿐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비무장지대 등에서의 분쟁 가능성을 우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통일로 가는 것은 비평화적인 것인가 다음으로 통일로 가는 것이 비평화적인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통일을 원한다고 할 때 그것은 물론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의 통일을 의미합니다. 북한과 같은 체제로 통일되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은 적어도 남한 내에서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인위적으로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전쟁을 통해서라도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이라는 지향점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도달하게 될 지는 모르지만 평화적인 과정을 통해 추구되는 목표이며, 그것이 설령 조만간 실현되지 않을 것 같다고 해서 조급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이뤄야 할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통일을 상정하는 것은, 통일이 되어야 비로소 한반도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평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달성해야 하는 목표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지금의 북한 체제 있는 한, 분단된 채 평화로울 수는 없어 통일을 '갈라진 민족의 결합', '이산가족 아픔의 해소'라는 차원에서 바라보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통일이 우리 경제를 대도약시킬 것이라는 '통일편익론'의 관점 또한 젊은 세대들에게 그리 소구력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분단된 채 살아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한반도의 안보 현실을 회피하려는 시각에 불과합니다. 지금의 북한 체제가 있는 한 분단된 채 평화로울 수는 없습니다. 이제 통일이라는 명제를 민족적 '당위'의 차원이 아니라 안보 현실이라는 '현실직시'의 차원에서 냉정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가 지난해 말 탈북했습니다. 북한에서 꽤 잘나가던 외교관이었는데요.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과 북한 사회에서 더는 미래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탈북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달(9월) 초 리일규 전 참사를 서울 목동 SBS 본사로 초청해 1시간 가까이 심층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리 전 참사의 탈북 과정 등은 이미 다른 언론을 통해 공개된 상태였기 때문에, 제가 관심 있었던 부분은 북한 엘리트가 바라보는 북한 체제에 대한 진단이었습니다. 다소 거대 담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외부의 북한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과 북한 체제를 직접 겪어본 엘리트가 보는 시각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서울 목동 SBS 본사를 방문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김정은 시대', '김정일 시대'보다 나아졌나? 김정일 집권기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고난의 행군'입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뒤 경제난에 연이은 홍수가 겹치면서 북한 사회는 최악의 상황으로 굴러떨어졌습니다. 배급제도가 붕괴되면서 배급을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었고,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던 이 시기 북한에서 굶어 죽은 사람들이 수백만에 이른다는 추정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경제 상황은 그 이후에도 특별히 나아진 것은 없지만, 주민들이 이제는 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장사를 통해 스스로 먹고 살길을 찾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 중반 같은 대규모 아사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그렇다면, '김정은 시대'는 '김정일 시대'보다는 나아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리일규 전 참사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중반 같은 대규모 아사는 없을지 몰라도,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를 비교해 보면 예전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리일규ㅣ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김정은 집권 12년 동안 인민들의 삶이 나아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못해졌으면 못해졌지. 김정은 시대가 이전보다 더 못해졌다고 보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감시 통제가 훨씬 강화됐다는 점입니다. 안정식ㅣ북한전문기자 (북한 주민들에 대한) 감시 통제는 상시적으로 있던 것 아닌가요? 리일규ㅣ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상시적으로 있었는데 그게 김정은 시대에 와서 좀 더 강화가 됐죠. 김일성 시대 때는 많은 경우에 '교양 사업'과 '장악 통제 사업'이 결합이 됐는데, 그중에서 '사상 교양 사업'을 우선시했습니다. 김정일 시대에 와서는 '고난의 행군'이 들어오고 나라가 무너지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서 군대를 '선군정치' 하지 않았습니까. 군대를 강화하는 데 모든 것의 화력을 집중하고.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일단은 '우리는 외부의 군사적 공격으로 무너지지 않아' 이런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대신 '우리가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내부적인 변화 붕괴'인데, 그 내부적인 변화 붕괴를 막겠다고 하니까... 두 가지인데, 하나는 2중 3중의 감시 통제 이것을 강화하는 것이랑, 플러스 (또 하나는) 공포정치 이게 결합이 되다 보니까 지금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전례 없는 감시 강화가 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주민들에 대한 감시 통제를 강화하면서 주민들의 생계 활동에 대한 간섭도 더 심해졌다는 게 리 전 참사의 얘기입니다. 리일규ㅣ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내가 조금이라도 자체적으로 벌어먹고 살겠다고 하면 이건 '반당' 쪽이 돼서 안 된다. 이건 '비사회주의'여서 안 된다 그런 태클을 계속 거니까, 사람들은 불만이 쌓이는 것이고. 북한 내부 폭발, 임계점에 거의 도달? '김정은 시대'가 '김정일 시대'보다 못하다는 평가와 함께 리 전 참사의 언급 중에 관심을 끄는 부분은 북한 주민들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관련 공부를 하다 보면 대체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지금과 같은 북한 체제에서 내부 봉기에 의한 정권 붕괴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폭압적 통치 체제가 견고하고, 2중 3중으로 감시 체제가 작동하고 있으며, 반체제 세력의 구심점조차 찾을 수 없는 북한 체제에서 집단적인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개발국에서 정권을 붕괴시키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인 군부 쿠데타도 북한에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군대는 당의 군대로, 부대 각 단위마다 정치 사상을 담당하는 당 간부들이 파견돼 야전 군인들이 혹시라도 다른 마음을 먹지 않는지 감시합니다. 쿠데타가 가능하려면 최소한 연대나 사단 병력 등이 동원돼 정권을 공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북한 군대에서는 겹겹으로 돼 있는 감시를 피해 병력을 동원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북한 체제에서는 민중에 의한 봉기든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든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하지만, 리일규 전 참사는 북한 체제가 폭발의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억눌릴 만큼 억눌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리일규ㅣ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속담에도 아침이 밝기 전에 제일 어둡고 밧줄도 지나치게 잡아당기면 끊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얼마나 주민들이 억압받고 눌리며 살고 있습니까. 그게 한계가 다 있는 법이고, 지금 제가 볼 때는 임계점까지 거의 도달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역사를 돌이켜봐도 어느 역사의 어느 갈피에도 독재자가 영원했던 사례는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정말 집단적으로 들고 일어나는 일이 가능할까? 리일규 전 참사는 김일성, 김정일 시대 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듯이, 앞으로도 지금까지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이 이른바 '3대 악법'이라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을 만들어 북한 주민들을 극도로 옭아매고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민심이 정권으로부터 많이 돌아섰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3대 악법'은 남한 드라마 보고 노래 부르고 남한 말투를 따라 하기만 해도 노동교화형에 처할 수 있고, 조직적으로 유포하면 최대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엄청난 인권 유린법입니다. 리일규ㅣ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이 세상에 제가 보건대는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시대 3대를 이어가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김일성 시대 때 지금처럼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게까지 바뀌리라고 누구도 꿈에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김정일 시대 때) 북한이 '고난의 행군' 같은 그런 위기를 겪으리라고 누구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되고, 최근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 3대 법이 나왔잖아요. 왜 그런 법이 나왔겠습니까? 옛날에는 이게 다 당적인 통제로 가능했던 일을 이제 당적인 통제로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 섰으니까 법까지 채택하는 거잖아요. 그 정도로 사람들의 민심이 이제 많이 돌아섰고, 이게 어디서 불꽃이 튕기면 전국적 범위로 확산될 수 있는 위험이 상시 존재한다는 거죠. 북한 체제, 정말 내부에서 폭발할 수 있을까? 북한 체제가 정말 내부에서 폭발할 수 있을까? 북한 체제에 대해 공부하고 북한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온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외부 전문가의 시각과 그 체제에서 태어나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이 느끼는 시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의 몰락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체포된 범인의 얼굴에서 다양한 범죄적 요소들을 쉽게 발견하지만 체포되기 전까지는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는 어느 학자의 말처럼,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의 몰락 징후는 학자들에 의해 대개는 사후적으로 설명돼 왔습니다. 체제가 이미 무너지고 난 뒤 다시 살펴보니 몰락의 징후들이 예전부터 있었다는 것이고, 이를 이론으로 정리하면서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뒤늦은 지혜를 정립해 온 것이 지금의 역사입니다. 역사의 전개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겸허해져야 합니다.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1998년 6월 23일 노동신문 1면에는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습니다. 수백만이 굶어 죽었다는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 시기가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경제 상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을 다독이고 독려하기 위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일 노동신문 1면에 26년 전인 1998년 6월의 사설을 생각나게 하는 글이 실렸습니다. '필승의 신념을 안고 부닥치는 난관을 웃으며 헤쳐나가자'는 제목의 사설입니다. 노동신문 1면의 사설은 북한 당국의 의중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북한이 지금 이러한 사설을 실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1998년 노동신문 사설이 나오게 된 배경 1998년 6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북한에게 1990년대 중반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그야말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연이은 홍수로 북한의 주요 산업시설은 물에 잠겼고 국가 배급이 끊어지면서 배급만 바라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지금은 배급에 대한 기대가 없어 스스로 장사를 통해 먹고 사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국가 배급을 절대적으로 생각했기에 많은 수의 북한 주민들이 별다른 생존책을 찾지 못한 채 아사의 비극을 맞았습니다. 19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경제가 호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민생은 여전히 어려웠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찾기 힘들었습니다. 1998년 6월의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제목의 노동신문 사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1998년 6월 23일 노동신문 1면 북한은 당시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기에 사설에서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북한이 스스로 어렵다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역사에 유례없는 강행군을 다그치고 있다." "오늘의 강행군은 제국주의 고립압살 책동도 경제적 난관도 우리 자신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준엄한 행군이다." "우리 인민은 여러 해째 계속된 <고난의 행군> 길에서 가슴 아픈 일을 수없이 겪었다." "우리는 지난날 어려운 길을 걸어왔고 오늘도 강행군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보다 더 어려운 길을 걸어나갈 수 있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노동신문 사설 (1998년 6월)> 북한의 모든 글이 그러하듯이 결론은 최고지도자(1998년 당시에는 김정일)를 중심으로 단결해 사회주의 혁명을 계속하자는 것이지만, 그러한 혁명의 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사설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고달프지만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자는 것이 노동신문이 북한 주민들을 독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혁명은 간고하지만 그것은 기쁨과 긍지로 가득 찬 성스러운 투쟁이다." "혁명의 길에서 겪게 되는 고생을 달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혁명을 할 수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당할 자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우리 인민의 배짱이고 담력이다." "오늘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사는 것은 우리 인민의 어길 수 없는 좌우명으로 되었다." "미래를 확신하면 낙관주의자가 되고 신심을 잃으면 패배주의자가 된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노동신문 사설 (1998년 6월)> 26년 전 사설 떠올리게 하는 지난 5일 노동신문 사설 지난 5일의 노동신문 사설은 제목에서부터 26년 전 사설을 떠올리게 합니다. 1998년 사설이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며 '험난'과 '웃음'을 대비시키고 있는데, 2024년 사설도 '난관을 웃으며 헤쳐나가자'며 '난관'과 '웃음'을 대비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4년 9월 5일 노동신문 1면 북한은 지난 5일 사설에서 지금의 어려움을 인정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은 간고성과 혹독함에 있어서 지나온 연대들과 대비할 수 없는 엄혹한 시련의 연속이었다. 남들 같으면 열백 번도 주저앉았을 준엄한 나날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으려는 적대 세력들의 발악적인 책동이 가중되는 속에서도..." "우리는 지금까지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간고한 길을 걸어왔지만 사실 더 힘든 투쟁은 앞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전진을 저해하는 주객관적 요인들은 만만치 않다." <'필승의 신심을 안고 부닥치는 난관을 웃으며 헤쳐나가자', 노동신문 사설 (2024년 9월)> 2021년 제8차 노동당대회의 계획들을 순차적으로 달성해 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압록강 지역에 대규모 홍수가 났음에도 자력갱생으로 극복할 수 있다며 외부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이 실제로는 매우 힘든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북한이 이렇게 스스로 난관을 인정한 것을 보면, 주민들의 어려운 상태를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1998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민 생활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차라리 난관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주민들을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헤쳐나갈 줄 아는 사람이 진짜 혁명가이다." "혁명의 길은 모진 시련과 난관을 동반하지만 자기의 이상에 대한 자신심, 내일에 대한 낙관을 안고 역경을 순경으로, 화를 복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혁명가들의 투쟁 기질이고 배짱이다. 혁명의 승리적 전진은 혹독한 도전과 난관 속에서도 굴함 없는 억센 신념, 힘겨울수록, 어려울수록 웃음과 낭만으로 만난을 뚫고 나가는 혁명적 낙관주의를 지닌 강인하고 용감한 혁명가들의 투쟁을 떠나 생각할 수 없다." "모든 일꾼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더 밝은 내일에 대한 확신을 백배하며 웃음으로 난관을 뚫고 헤치며 사회주의 강국에로 향한 진군의 보무를 더욱 힘차게, 더욱 과감히 내짚어야 한다." "미래를 확신하면 낙관주의자가 되고 신심을 잃으면 패배주의자가 된다." <'필승의 신심을 안고 부닥치는 난관을 웃으며 헤쳐나가자', 노동신문 사설 (2024년 9월)> 북한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나 1998년과 2024년의 사설을 비교해 보면, 몇몇 핵심 문구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더 밝은 내일(내일을 위한 오늘)', '미래를 확신하면 낙관주의자, 신심을 잃으면 패배주의자'와 같은 것들입니다. 26년의 세월이 지날 동안 북한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김정은 정권이 지금처럼 고립의 길을 걷는다면 26년 뒤의 모습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북한 체제가 만약 26년 뒤에도 존재하고 있다면, 그때 노동신문에는 어떤 제목의 사설이 실리게 될까요.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최근 들어 지방에서 간부 회의를 자주 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현장들을 둘러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에서 고위 간부들과 회의를 진행하면서 각종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최고지도자가 현지에서 회의를 연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지역의 현안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반영하는 것인 만큼, 간부들에게 주는 메시지의 강도도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현지 회의를 통해 일하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선전선동의 측면에서도 김정은에게는 손해 볼 것이 없는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해 국면에 전용열차에서 비상회의 개최 이런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최근의 지방 회의는 지난 7월 29일부터 30일까지 수해 지역인 신의주에서 열렸던 노동당 제8기 제22차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였습니다. 신의주 일대에서 대규모 홍수가 나자 현지로 달려간 김정은은 수해 현장을 둘러본 뒤 전용열차 안에서 비상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수해로 많은 지역이 침수돼 별도로 회의할 공간도 없었고 현지에서 급박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열차 비상회의는 국가적 재난에 대처하는 최고지도자로서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당시 보트를 타고 수해 현장을 둘러본 것을 '애민 지도자'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이 전용열차 안에서 주재한 정치국 비상확대회의 김정은은 이 회의 말고도 지난 7월부터 세 차례의 간부 회의를 지방에서 개최했습니다. 7월 15일 함경남도 신포에서 열린 간부 회의와, 7월 16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서 열린 간부 회의, 8월 31일 함경남도에서 열린 것으로 추정되는 지방발전사업협의회입니다. 세 번의 회의 모두 하얀색의 대형 천막 안에서 회의가 개최됐는데, 이 회의들은 짚어볼 부분들이 있습니다. 먼저, 7월 15일 함경남도 신포에서 열린 관계부문 간부협의회.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함경남도 신포시 풍어동 지구를 찾아 바닷가 양식사업소 건설 부지를 돌아본 뒤 현지에서 간부 회의를 소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이날의 영상을 보면, 김정은은 전용열차를 타고 인근 역에 도착한 뒤 전용차로 갈아타고 회의 장소로 향합니다. 하얀색 대형 천막이 쳐진 회의 장소는 바닷가 앞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았는데 나무 숲 사이에 들어서 있어 햇볕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함경남도 신포에서 개최한 간부 회의 회의장 안에는 에어컨이 설치됐습니다. 7월의 더운 여름날 야외에서 열리는 회의이니 당연히 냉방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마이크와 스피커가 설치됐음은 물론 상단에는 노동당 깃발 문양에 빨간색의 배경막 등 그럴싸한 회의장 면모를 갖췄습니다. 북한은 이 회의장을 어떻게 준비했을까. 대형 천막이야 원래 만들어진 대로 설치하면 된다고 하지만, 에어컨과 마이크, 스피커가 설치됐다는 것은 어디서부터인가 전기를 끌어왔다는 얘기입니다. 주변 시설에서 전기를 끌어오면 되지 않느냐고 간단히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수도 평양의 전기 사정도 좋지 않은 곳이 북한인데 함경남도 신포의 바닷가까지 전기를 끌어오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전망 좋은 바닷가에서 회의를 하기 위해 상당한 자재와 노력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하루 뒤인 7월 16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서 열린 간부협의회. 김정은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둘러본 뒤 간부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이번에도 회의장은 하얀색의 대형 천막으로 만들어졌는데, 원산의 명사십리 바닷가 모래 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김정은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서 개최한 간부 회의 회의장은 좀 더 화려해졌습니다. 에어컨 숫자가 대폭 늘어난 것뿐만 아니라, 샹들리에 같은 고급 조명까지 등장했습니다. 탁자 위에는 건설 중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전체 조감도가 준비됐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전기를 조달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옆에서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 중인 만큼, 전기 설비가 갖춰져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날 회의에 고급 조명까지 등장한 것은 그나마 전기 사정이 좋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31일 열린 지방발전사업협의회도 바닷가 하얀 천막에서 진행됐습니다. 회의 장소가 어디인지 북한이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같은 날 김정은이 함경남도 함주군의 지방 공장 건설 현장을 현지 지도했다는 북한 매체들의 보도로 볼 때, 함경남도의 바닷가에서 회의가 열린 것으로 보입니다. 함경남도에서 열린 것으로 추정되는 지방발전사업협의회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이날의 회의 장소도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 좋은 곳이었습니다. 샹들리에 같은 화려한 조명은 없었지만 대형 에어컨이 등장했고, 마이크와 스피커도 설치됐습니다. 함경남도에서 이런 회의를 바닷가에 준비하기 위해서는 전기 조달부터 시작해 만만치 않은 노력이 들었을 것입니다. 김정은의 야외 천막 회의, 누구를 위한 회의인가 최고지도자가 현지를 직접 둘러보고 현지에서 회의를 주재한다는 것은 일부 선전 목적을 감안하더라도 좋게 평가될 수 있는 일입니다. 정책 결정자가 현장과 유리되지 않고 현장을 접하려는 노력은 권장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회의 자체가 상당한 공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되고 불필요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하는 것이라면, 회의의 효용성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김정은이 정말 현지 회의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간부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방의 허름한 건물에서라도 그냥 회의를 하면 됩니다. 지금처럼 풍광 좋은 곳을 찾아 대형 천막을 설치하고 전기를 끌어 와 에어컨을 설치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샹들리에 조명에 대형 에어컨들이 동원된 천막 회의는 김정은식 '보여주기 정치'의 단면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듯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