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SBS에 입사했다. 2006년부터 북한 취재를 담당해오면서 평양과 백두산, 개성과 금강산을 방북 취재했다. 2018년부터 북한전문기자로 재직 중이다. 재직 중 학업을 병행해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석사를, 경남대 북한대학원(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자주적 대북정책은 가능한가』 『갈등하는 동맹』(공저) 『빗나간 기대: 준비되지 않은 통일』이 있다.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놓고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금 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국민들의 노후를 보장해야 할지 대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도 연금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북한도 사회보장 차원에서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먼저, 북한 헌법(2019) 제72조는 "공민은 무상으로 치료받을 권리를 가지며 나이가 많거나 병 또는 신체 장애로 노동 능력을 잃은 사람, 돌볼 사람이 없는 늙은이와 어린이는 물질적 방조(도움)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함으로써 사회보장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2021) 제2조에는 "사회보험이란 질병, 부상, 임신, 해산 등으로 노동 능력을 일시적으로 잃은 노동자들의 생활과 건강을 국가와 사회의 부담으로 보장하여 주는 인민적 시책이다"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연로연금 지난해 통일부가 발간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 근거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북한도 나이가 많아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국가로부터 연금을 지급받도록 돼 있습니다. 이른바 '연로연금'인데, 근속기간이 25년 이상인 사람 가운데 60세 이상의 남성과 55세 이상의 여성에게 지급됩니다. 연로연금은 주로 동사무소에서 현금과 현물의 형태로 지급되는데, 2017∼2019년 사이 매달 ▲북한돈 700∼800원 정도를 받았다거나 ▲쌀 600g과 북한돈 60원을 받았다는 탈북민 증언이 있습니다. 북한 시장에서의 쌀 가격이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개 1kg 당 4,000∼6,000원 수준인 만큼, 탈북민이 증언한 연금 수준으로는 쌀 1kg도 살 수 없습니다. 북한은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 배급제가 붕괴된 상황이라 시장에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데, 연로연금으로는 기본적인 생활도 유지하기 힘든 것입니다. 노동능력상실 연금 병 또는 신체 장애로 노동 능력을 상실한 경우, 북한도 국가가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노동법(2015) 제73조는 "국가는 노동재해, 질병, 부상으로 노동 능력을 잃은 기간이 6개월이 넘으면 국가사회보장제에 의한 노동능력상실 연금을 준다"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금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 따르면, 6개월 이상 노동 능력 상실로 판정을 받았는데도 연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다수의 탈북민 증언이 수집됐습니다. 군대에서 상급자에게 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제대한 뒤 사회보장 대상자가 되었지만 당국으로부터의 연금 지급은 없었고, 근무 중 산업재해로 팔이 절단된 경우에도 연금 지급이 없어 개인적으로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당국으로부터의 별다른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북한 주민들은 직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사회보장'을 받았다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직장을 마음대로 안 나갈 수 없고 무단결근을 할 경우 노동교양 처벌을 받는데, 노동 능력 상실이 인정이 되면 직장에 안 나가도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직장에 나갈 의무가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사회보장'을 받았다고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2023 북한인권보고서'는 북한 주민들이 사회보장 판정을 받아 직장에 나가지 않기 위해 진료소 의사와 인민병원 과장에게 뇌물을 주고 6개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진단서를 발급받았다는 증언들이 다수 수집됐다고 밝혔습니다. 유가족 연금 연금 대상자가 사망했을 경우 그 가족들에게 일정액의 연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유가족 연금'으로 부양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도 제대로 된 연금이 지급되지 않는 북한에서 유가족 연금이 제대로 지급될 리 없습니다.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 수집된 탈북민들의 증언을 몇 가지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돌격대에서 갱도를 만드는 작업을 하던 중 갱도가 무너지면서 인부 2명이 숨졌지만 유가족에 대한 별도의 보상은 없었다고 합니다. 협동농장에서 탈곡 작업을 하던 농장원이 탈곡기에 빨려 들어가면서 즉사했는데 유가족에 대한 보상은 없었고, 공장에서 작업 중 폭발 사고로 6명이 사망했지만 역시 유가족에 대한 보상금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망자가 발생한 일부 기업소나 돌격대 내부에서 돈을 모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는 증언은 수집되었다고 합니다. 통일 뒤 북한 지역 사회보장 수준은 출처 : 게티이미지 연금은 나이를 먹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국민들에게 국가가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개념인데, 한창 일할 연령대에 있는 주민들의 생계조차 책임지지 못하고 있는 북한이 연금을 제대로 지급할 리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사실상 연금이라는 제도의 존재에 대해서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남한 사회의 미래 사회보장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통일 뒤 북한 주민들의 사회보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미리 고민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모든 주민들이 동일한 사회보장을 누리는 것이 원칙적으로 당연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사회보장 수준을 일거에 남한 수준으로 올리려 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통일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경우 통일비용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사회보장성 지출로 나타났는데, 이 때문에 통일비용이 늘어나고 동독 지역의 경제 발전이 더디게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독일의 연방건설교통부가 1991년부터 2003년까지의 통일비용 내역을 산출한 결과, 사회보장성 지출 비중이 49.2%로 인프라 재건 비용(12.5%)이나 경제 활성화 지원 비용(7%)보다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초기 자금 지원이 이렇게 복지비용으로 주로 지출되면서 통일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나고 동독 지역의 경제 발전이 지체됐다는 지적입니다. 독일에서 이렇게 많은 사회보장 비용이 들어간 것은 서독의 사회보장시스템을 그대로 동독 지역에 적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독과 같은 수준의 복지를 동독 지역에 보장하려다 보니 막대한 자금 투입이 불가피했고 그만큼 경제 개발 자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투자적 지출인 인프라 재건이나 경제 활성화 지출을 우선적으로 늘렸더라면 동독 지역의 경제 발전을 앞당기고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남북의 경제 격차는 동서독의 경제 격차보다 훨씬 큰 만큼 남한의 사회보장 수준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통일 초기 막대한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고 그만큼 북한 지역 경제 개발은 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통일비용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통일 초기에는 한시적으로 남북한의 사회보장 수준을 별도로 유지한다는 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4월 15일은 김일성의 생일, 북한에서는 민족 최대의 명절로 일컬어지는 날입니다. 김일성이 1912년에 태어나 1994년에 죽었으니 태어난 지 112년, 사망한 지도 30년이 지났지만 김일성은 여전히 북한의 살아있는 '절대권위'입니다. 북한은 1997년부터 이날을 '태양절'로 부르고 있는데, 해마다 '태양절'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진행돼 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김일성 생일은 예년과는 다소 다른 것이 있습니다. 김일성의 112회 생일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진행되는 것은 비슷한데, '태양절'이라는 용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매체들은 올해 김일성 생일을 지칭하면서 '뜻깊은 4월의 명절', '민족 최대의 경사의 날'과 같이 '태양절'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듯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김일성 생일 행사에서는 '태양절'이라는 용어가 사라졌다. 물론, '태양절'이라는 용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4월 15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동상에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태양절에 즈음하여 꽃바구니 진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태양절이라는 용어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노동신문을 검색해 보니, 이 기사 전에 태양절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지난 2월 17일 기사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김일성 생일이 가까워지면서 각종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는데도 2개월 가까이 태양절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은 것입니다. 조선중앙통신의 경우에도 4월 15일 기사 전에 태양절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사례가 지난 1월 8일로 검색됩니다. 조선중앙통신은 3개월 넘게 태양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난해 4월 15일 노동신문과 올해 4월 15일 노동신문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더욱 확연히 드러납니다. 지난해와 올해 4월 15일 노동신문은 모두 1면에 김일성 생일을 경축하는 배너와 사설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배너에는 '민족 최대의 경사의 날 인류 공동의 혁명적 명절, 태양절 경축'과 같이 태양절이라는 표현을 쓴 반면, 올해 배너에는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 4.15 경축'과 같이 태양절이라는 용어가 빠졌습니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태양절이라는 용어를 배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2023년 4월 15일 노동신문(위)과 2024년 4월 15일 노동신문(아래) 1997년부터 김일성 생일 '태양절'로 지정 김일성 생일을 태양절로 지칭하는 북한의 결정은 1997년 이뤄졌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한 지 3년이 지난 1997년 7월 9일 북한은 당·정·군 공동으로 발표한 결정서에서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을 '태양절'로 지칭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일성이 우리 민족의 태양이라는 뜻을 담은 것입니다. 이와 함께 북한은 이른바 '주체' 연호를 제정했습니다.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주체 1년'으로 하는 새로운 연호를 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북한이 지금도 2024년을 '주체 113년'처럼 별도의 연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이 당시의 결정에 기인합니다. '태양절'의 제정과 '주체' 연호의 사용. 이는 한마디로 말해 북한에서 김일성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태양은 지구의 모든 것이 존재하게 하는 근원인데 김일성이 바로 그 태양이 되었고, 날짜를 삼는 기준도 김일성이 태어난 날이 기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서 북한에서는 앞으로 누구도 김일성을 대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태양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니 또 다른 태양이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김일성 권위 하향 조정 시도? 북한이 '태양절' 용어 지우기에 나선 것은 이처럼 북한 내에서 절대적인 김일성의 권위를 다소 하향 조정하려는 것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 볼 부분이 또 한 가지 있는데, 김정은이 통일과 동족 지우기에 나서면서 김일성의 업적물을 철거해 버린 것입니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을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이후, 북한 내에서 통일, 동족, 화해와 관련된 것들을 없애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삼천리금수강산, 8천만 겨레와 같은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북한 애국가에서 '삼천리'라는 단어까지 바꿔버린 것이 대표적 예입니다. 김정은은 이와 함께 평양 남쪽에 있던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하라고 지시했고 실제로 철거가 이뤄졌습니다. '조국통일3대헌장'은 7·4 남북 공동성명과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김일성의 통일 업적을 말합니다. 북한 역사에서 통일을 지우겠다는 명목으로 김일성의 업적까지 없애버린 것입니다. 김정은이 철거해 버린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 북한에서 김일성의 업적을 없애버린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북한은 그야말로 '김일성의 나라'인데, 국부인 김일성의 업적을 없애버린다는 것은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김정은 리더십' 강화 의도인가 '태양절' 용어 사용을 축소하고 김일성의 업적물까지 철거하는 이례적인 상황. 집권 10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김일성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김정은 자신의 리더십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김정은에게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주목해 볼 부분은 김정은을 '태양'으로 지칭하는 사례가 꾸준히 관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을 태양으로 지칭하는 북한 매체의 보도는 2010년대 중반부터 포착되기 시작했는데, 최근 조선중앙TV를 통해서도 관찰되고 있습니다. '주체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라는 구호가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된 것입니다. 김일성에게만 주어졌던 태양의 위치를 본인에게 가져오고 싶은 김정은의 속내가 이 같은 움직임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조선중앙TV에서 포착된 '주체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 구호들 김정은은 이번 김일성 생일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았습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곳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요 기념일에 최고지도자가 빼놓지 않고 참배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2020년 4월 15일 집권 이후 처음으로 금수산을 찾지 않더니 지난해 김일성 생일 때에도 금수산을 찾지 않는 등 참배를 고정적인 행사에서 배제시켜 가는 양상입니다. 2020년 김일성 생일 당시 금수산 미참배가 김정은의 심각한 건강 이상설로 연결된 전례를 감안할 때, 최고지도자가 고정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행사를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김일성 생일 참배를 군데군데 건너뛰고 있다는 것은 김일성의 그늘에서 점차 벗어나려는 김정은의 생각과 관련 있을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 권력의 한계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죽은 지도 30년이 지났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지도 10년이 넘었으니 김일성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하고 싶은 김정은의 생각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김정은의 이런 시도에는 중요한 걸림돌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권력자가 된 것은 순전히 김일성의 손자라는 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입니다. 김정은이 아무리 자신의 능력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할지는 모르지만, 김정은은 김일성의 손자이고 김정일의 아들이 아니었으면 최고권력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의 집권을 지지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즉, 김정은의 권력은 온전히 김일성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인데, 김정은이 김일성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권력의 기반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김정은 권력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입니다. 김정은이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적절한 수위 조절을 해 나갈지, 본인의 능력을 과신한 채 과도한 '김일성 벗어나기'를 통해 스스로 권력의 기반을 흔들게 될지, 앞으로 지켜봐야 할 중요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북한에서는 지금 '지방발전 20×10 정책'이라는 지방발전 정책이 전 사회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발기 하에 추진되고 있는 이 정책은 '매년 전국의 20개 시, 군에 현대적인 경공업 공장을 건설해 10년 안에 지방 인민들의 물질문화 생활 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킨다는 정책입니다. 2022년 강원도 김화군에 식료품, 옷, 일용품, 종이 등 생활 필수품을 만드는 공장이 건설됐는데, 김화군의 사례가 지방발전 정책의 모범으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지방공장 건설을 위해 군대까지 투입했습니다. 공장 건설 예정지 인근의 각급 군부대에서 병력을 차출해 124연대라는 임시 군부대를 20개 신설했고, 이 부대들이 각각 한 지역의 공장 건설을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연대 병력을 약 2천 명으로 가정할 경우, 동원된 군 병력만 모두 4만 명에 이를 것으로 통일부는 추산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지방공장 건설을 담당할 군부대에 깃발을 수여하고 있다. 김정은 "공장은 건설해 줄 테니 운영은 지방에서 알아서" 김정은은 지난 2월 28일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열린 첫 번째 지방공장 착공식에서 공장 건설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중앙에서 부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 군들의 지방공업공장 건설에 필요한 자금과 로력(노동력), 세멘트와 강재를 국가에서 전부 보장하며 건설자재들의 수송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도 적절히 대책하도록 하였습니다." <김정은 '성천군 지방공장 건설 착공식' 연설, 2월 28일> 하지만, 공장이 건설된 뒤에 공장을 운영하는 책임은 시, 군의 당 행정경제일꾼들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김정은은 공장이 건설됐는데도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죄악'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생산건물들을 번듯하게 건설하고 현대적인 설비들을 갖추어놓고도 원료, 자재가 부족하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공장 운영을 정상화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과 국가 앞에, 인민들과 군인건설자들 앞에 죄악으로 됩니다." <김정은 '성천군 지방공장 건설 착공식' 연설, 2월 28일> 공장은 중앙에서 건설해 주지만 운영은 지방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으로 생필품이 제대로 생산되지 않을 경우의 책임을 지방 간부들에게 떠넘긴 것인데, 각종 물자가 부족한 북한에서 어떻게 원료를 조달해 물건을 생산하라는 것인지 의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송하고 있는 관련 내용들을 보면, 북한이 지방공장들을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TV에 나온 김화군 사례 보니 북한 조선중앙TV는 최근 들어 지방공업공장 건설의 모범 사례로 지칭되고 있는 강원도 김화군의 사례를 조명한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전변된 김화군에서'라는 제목의 2부작 프로그램인데 조선중앙TV를 통해 수 차례 재방송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해 볼 부분은 1편인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김화군이 경공업 공장의 원료들을 어떻게 조달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TV가 방송한 '전변된 김화군에서' 프로그램 방송을 보면 김화군이 경공업 공장 원료들을 조달한 대표적인 방법은 이른바 '기름작물'들을 재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름작물'이란 주로 기름을 짜기 위해 심는 작물을 말하는데, 수유나무와 피마주, 역삼, 해바라기 같은 것들입니다. 수유나무의 기름은 약재, 비누 등의 원료로 쓰이고, 피마주(피마자) 기름은 피부, 머리에 바르거나 비누를 만들 때 쓰입니다. 역삼 또한 씨에서 뽑은 기름을 먹을 수도 있고 비누나 칠감(칠을 하는 재료)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고 합니다. 김화군 공장 지배인은 공장 주변에 수백 정보의 경제림 단지를 조성해 수유나무와 피마주, 역삼 등을 대대적으로 재배해 원료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합니다. 비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에는 피마주와 역삼으로 만든 '피마주 비누'와 '역삼 비누'가 자랑스럽게 등장합니다. 김화군이 공장 원료를 조달하는 또 다른 방법은 산열매를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머루와 다래, 오미자, 도토리 같은 산열매를 확보해 단물(음료수)을 생산하는 등 식료품 공장의 원료로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종이의 원료가 되는 원료림을 조성해 종이공장의 원료도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고 공장 관계자는 설명합니다. 조선중앙TV는 '자기 지방의 원료 원천에 의거한 소비품 생산'이 당의 일관한 원칙이라면서, 지방 자체적으로 원료를 조달해 인민 소비품을 만들어낼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필요한 원자재를 들여와서 생활 필수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땅에 작물을 심고 그 작물을 원료로 활용해 생필품을 생산하라는 것입니다. 조선중앙TV '전변된 김화군에서' 프로그램의 한 장면 북한 전역에 '기름작물' 심기 움직임 북한이 이 같은 방식의 원료 조달 방법을 제시하면서, 북한 전역에서는 지금 수유나무와 피마주 등 기름작물과 산열매를 재배하기 위한 부지 확보 움직임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중앙TV의 메인 뉴스인 저녁 8시 뉴스에는 올해 공장 건설에 착수한 20개 시, 군의 상황이 수시로 보도되고 있는데,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공장 주변에 기름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대규모 부지를 조성했다는 내용이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 방송은 지난달 29일, 북한이 최근 피마주와 역삼 등 기름작물을 재배하도록 하는 대중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세대별로 피마주와 역삼 종자를 나누어주고 가을에 일정 할당량의 열매를 바치도록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개인이 산비탈 등에 조성한 소토지 일부에 피마주와 역삼을 심고 있는데, 그만큼 옥수수 심을 땅이 줄어들면서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될 주민들의 불만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물로만 생산 안 되는 것들은 어떻게? 북한이 김화군 사례를 방송한 프로그램을 보면 공장 한편에 생산물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는데, 각종 과자와 빵, 간장, 고추장, 술, 음료수 등 식료품은 물론 비누와 학습장, 바가지나 양동이 같은 플라스틱 제품까지 다양한 물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 프로그램에서 김화군에서 생산하는 생필품이 46가지 종류 120여 가지에 이른다고 선전합니다. 하지만, 앞서 제시한 원료 조달 방법으로 이 모든 것들이 생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분명히 땅에 심은 작물들로만 해결이 안 되는 원료들이 있을 텐데, 북한은 여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갖가지 종류의 생필품을 만든다고 하면서 외부 원료 도입 없이 자체적으로 원료를 마련하라는 북한식 자력갱생의 발상 자체가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올해 말이 되면 지방공장 건설의 첫해 성과를 결산하게 될 텐데, 북한이 어떤 식으로 성과를 포장할지 궁금합니다.
지난달 15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참관한 가운데 북한군 '항공육전병' 부대들의 훈련이 진행됐습니다. 우리로 치자면 공수부대가 수송기에서 낙하해 적진에 침투하는 훈련입니다. 그런데, 이 훈련 도중 북한군 10여 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훈련 도중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입니다. 무슨 상황인데? 이날 상공에는 매우 센 바람이 불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북한 공수부대원들이 수송기에서 낙하하자마자 센 바람 때문에 낙하산이 거의 수평으로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센 바람에다 일부 기류가 불안정했을 테니 낙하산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던 것 같은데,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자세히 보면 낙하산들이 엉켜서 군인들이 분리되지 못한 채 떨어지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낙하산들이 제대로 펴지지 못한 채 지상으로 떨어졌다면 사망하거나 생명을 건졌더라도 큰 부상을 입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 충격적인 장면은 수송기 앞부분에 걸려있는 군인 모습입니다. 사진을 보면 공수부대원들이 낙하하는 수송기 앞부분에 사람이 걸려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낙하를 시도했던 군인이 역풍에 휘말려 비행기 앞부분에 걸렸거나 앞쪽 수송기에서 낙하한 군인이 너무 센 바람 때문에 뒤쪽 수송기에 그대로 부딪힌 것으로 보입니다.
오는 10일 남한 전역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집니다. 북한도 사실 지금이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뽑아야 되는 시기인데, 선거를 치른다는 발표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임기는 5년으로, 2019년 3월 10일 선거로 뽑힌 제14기 대의원들의 임기가 이미 끝난 상태입니다.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그야말로 거수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선거라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대의원 임기도 고무줄식이어서 북한 헌법에 임기가 5년으로 돼 있긴 하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선거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선거를 할 때까지 그 임기를 연장한다"는 규정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그때그때 사정에 맞춰 선거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선거 미뤄지는 이유, 헌법 개정과 연관됐을 수도 통일부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미뤄지고 있는 이유가 헌법 개정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헌법 개정을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이 헌법을 개정하라며 구체적으로 지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의 일부 내용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 행사 령역을 합법적으로 정확히 규정짓기 위한 법률적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령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 인민들의 정치사상생활과 정신문화생활 령역에서 《삼천리금수강산》, 《8천만 겨레》와 같이 북과 남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인 낱말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 사업을 강화한다는 것을 해당 조문에 명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밖에도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반영하여 공화국 헌법이 개정되어야 하며 다음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심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2024년 1월 15일> 통일부는 다음 최고인민회의에서 이 같은 헌법 개정과 함께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한 정치, 군사 분야의 남북 합의를 파기하는 문제가 다뤄질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또, 북한이 대남기구들을 전면 철폐하고 있는 만큼, 외무성에 대남 기능을 흡수하는 조직 개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런 안건들을 처리하기 위해 제1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미루고, 제14기 체제에서 최고인민회의를 한 번 더 개최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반대표 나올까 북한이 제14기 체제에서 최고인민회의를 한 번 더 개최해 헌법 개정 등을 처리하더라도 올해 안에는 제15기 대의원 선거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중요한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이번 선거에서도 반대표가 나올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북한 선거는 대개 투표율 99.9%에 찬성률 100%를 선전하는 형식적인 절차지만, 지난해 8월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반대 투표가 가능해졌습니다. 투표실에 '찬성'과 '반대' 글자를 붙인 서로 다른 색깔의 투표함 2개를 마련한 것입니다. '찬성' 투표함과 '반대' 투표함이 따로 있으면 반대 투표가 더 어려워진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기존 투표 시스템과 비교를 해야 이해를 할 수 있는데 간단히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북한의 기존 투표는 투표자가 선거장에서 '선거표'라는 종이를 교부받은 뒤 투표실에 들어가 투표함에 '선거표'를 넣고 나오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단일 후보자에 대한 찬성 표시이기 때문에 기표소라는 곳이 존재하지 않고 '선거표'를 그냥 투표함에 집어넣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나는 방식이었습니다. 만약, 후보자에 대한 반대를 표시하고 싶으면 투표함 위에 놓여있는 볼펜으로 '선거표'에 적혀 있는 후보자 이름에 선을 그은 뒤 투표함에 집어넣으라고 기존 선거법은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투표실에 들어가자마자 '선거표'를 집어넣고 나오는데, 후보자 이름에 선을 그어 투표함에 집어넣는 대담(?)한 사람이 있었을 리 없습니다. 투표실을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다고 규정하고는 있지만 투표실은 하나의 방인 만큼 어디서 누가 몰래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투표실에서 투표하는 투표자, 투표함 위에 볼펜(빨간 원)이 놓여져 있다. (조선중앙TV, 2015년 7월) 더구나, 탈북민들 얘기를 들어보면 선거에서 반대표를 던진다는 개념조차가 없었고 어떤 식으로 반대 의사를 표하는지 들어본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찬성률이 100%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구조였던 것입니다. 선거법 개정으로 찬반 투표함 마련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선거법 개정을 통해 투표실 안에 '찬성'과 '반대' 투표함을 마련했습니다. 이제 투표자가 투표실 안에 들어가면 반대 표시가 가능하다는 것을 적어도 시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후보자의 이름에 볼펜으로 선을 긋는 것보다는 반대 투표함에 '선거표'를 살짝 집어넣는 것이 훨씬 간편하기 때문에 반대 투표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도 낮아졌습니다. 물론 누가 몰래 지켜볼지도 모르는 투표실에서 이런 대담(?)한 행위를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말입니다. 김정은이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투표하는 모습. '찬성'과 '반대' 두 개의 투표함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중앙TV) 그런데, 지난해 11월 치러진 북한의 도(직할시), 시(구역), 군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실제로 반대표가 나온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북한 매체들의 발표에 따르면, 도(직할시)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의 경우 찬성율이 99.91% 시(구역), 군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의 경우 찬성율은 99.87%였습니다. 반대 투표를 한 비율이 각각 0.09%와 0.13%인 셈입니다. 북한 인구를 2,500만 명이라고 단순 계산하면, 도(직할시) 인민회의 선거에서는 2만 2,500명이 시(구역), 군 인민회의 선거에서는 3만 2,500명이 반대표를 던진 것입니다. 기존 북한 선거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조선중앙TV의 선거 결과 보도를 통해 반대표가 있었음을 알렸다. 북한 선거에서 반대표가 나왔다고 해서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선발될 기회가 열린 것은 아닙니다. 북한의 선거는 당이 정한 사람에 대한 찬반 투표이고, 북한에서 대의원 선거 후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 등을 바탕으로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선거에서 당선될 여지는 애초부터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거 제도의 변화는 당이 정한 범위 내에서는 북한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선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선발 제도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는 조치로 보입니다. 또, 찬반 표시가 가능한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일수록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것이기 때문에, 선발된 사람들이 더욱 열심히 일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반대표가 너무 많아질 경우입니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서는 반대표가 1% 미만이었지만 반대표가 많아져 상당 수준에 이르게 되면 정권에 대한 집단적인 불만 표출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이를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지 하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지난해 11월 선거 결과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진 만큼, 북한 주민들 머릿속에 '선거에서 반대라는 것이 가능하구나'라는 인식이 생겨났을 수 있습니다. 극도의 통제 사회인 북한에서 반대표가 급속히 늘기는 어렵겠지만, 다음에 치러질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얼마나 많은 반대표가 나올지 지켜볼 일입니다.
지난 14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세 이하(U-20) 여자축구 아시안컵 준결승전 남북 경기 결과를 보도하면서 남한을 '괴뢰한국'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중앙통신의 기사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팀이 괴뢰한국팀을 3:0으로 타승, 결승경기에 진출" - <조선중앙통신, 3월 14일> 남한을 '괴뢰한국'으로 표기한 조선중앙통신 기사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지난 22일, 북한이 남한을 '괴뢰한국'으로 부르도록 하는 정치강연자료가 하부에 내려갔다고 보도했습니다. 청년동맹(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직맹(조선직업총동맹), 농근맹(조선농업근로자동맹), 여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조직에 정치강연자료가 하달됐는데, "남조선, 한국 등으로 부르고 있는 입말을 빨리 벗어버리고 일반적인 대화에서도 괴뢰한국이라는 부름말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기사를 검색해 보니, 2월부터 '괴뢰한국'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남한을 지칭할 때 '괴뢰한국'이라는 용어를 쓰라는 지시가 전반적으로 하달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7일 조선중앙TV가 20세 이하(U-20) 여자축구 아시안컵 준결승전 남북 경기를 녹화중계할 때 남한 명칭을 '한국'으로 표기하기는 했지만 이는 스포츠경기임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북, 일반적으로 '남조선'이라고 불렀는데 북한이 그동안 남한을 부르는 일반적인 명칭은 '남조선'이었습니다. 북한의 정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쪽 지역이라는 뜻으로, 남한이 북한의 일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북한의 남한 호칭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입니다. 북한은 지난해 7월 김여정 담화에서부터 '대한민국'이라는 남한의 정식 국호를 간간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상대국의 국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대국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용어를 쓰면서도 '대한민국 졸개', '대한민국 역적'처럼 남한에 대한 비난을 계속했기 때문에 북한이 남한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쓴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을 북한이 2국가 체제를 지향하는 움직임으로 해석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북한이 남한을 아예 다른 나라처럼 취급하겠다는 의미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국호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에는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다"라고 했던 김여정 담화(2022년 8월)도 한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북한의 남한 호칭 변화에 '대한민국'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중반부터 북한은 남한을 지칭할 때 '괴뢰'라는 표현도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조선 대통령실', '남조선 정부청사' 대신 '괴뢰 대통령실', '괴뢰 정부청사'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식이었습니다. 물론 북한이 과거에도 '남조선 괴뢰', '괴뢰 역적패당'처럼 남한을 비방할 때 '괴뢰'라는 말을 안 써온 것은 아니지만, '괴뢰'라는 말이 남한을 지칭하는 일반대명사처럼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해 중반부터의 변화였습니다. '괴뢰'라는 말은 남이 부추기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라는 뜻입니다. 즉, 남한이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미국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인데, 이는 주체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북한이 한반도의 정통성 있는 정부이며 북한 주도로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급기야 북한은 지난해 10월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준준결승 남북 경기 결과를 조선중앙TV로 보도하면서 남한의 국가 명칭을 '괴뢰'로 표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스포츠경기에서는 대개 그 나라의 국호를 그대로 표기해 주는 것이 관례인데 일반적인 관례마저 무시한 것입니다. 남북 여자축구 경기 결과 보도하며 남한을 '괴뢰'로 표기한 조선중앙TV, 지난해 10월 '대한민국', '괴뢰' 표현이 거의 동시에 지난해 중반부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잦아진 '대한민국'이라는 호칭과 '괴뢰'라는 비방. 사실, 두 가지 용어는 다소 상반된 흐름을 갖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은 2국가 체제로 따로따로 살자는 흐름을, '괴뢰'라는 용어는 북한 주도로 한반도를 통일해야 한다는 흐름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움직임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놓고 다소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의 김정은 언급을 통해 이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됐습니다. 지난해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연설하는 김정은 김정은은 지난해 말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는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말은 남북이 별개의 두 국가이기는 한데 전쟁 중에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한쪽이 다른 쪽을 싸워 이겨야 하는 관계라는 뜻입니다. 즉, 남북을 별개의 두 국가로 분리하면서도 남한에 대한 적화통일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김정은이 공식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족, 화해, 8천만 겨레'와 같은 개념을 완전히 없애 남한 문화의 침투로부터 북한을 방어하면서도, 핵무력을 바탕으로 대남 적화통일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노선을 정식화한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최근 북한이 사용하고 있는 '괴뢰한국'이라는 용어는 '남북 관계는 교전국 관계'라는 김정은의 규정에 기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괴뢰한국'에서 '한국'이라는 용어는 남북이 별개의 국가라는 뜻을, '괴뢰'라는 용어는 북한 주도로 남한을 통일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 정세에 따라 북한 입장이 또 달라지겠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북한이 '괴뢰한국'의 기조하에서 남한을 대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난 16일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총비서가 전날 강동종합온실 준공식에 참석한 사실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평양 외곽에 대규모 채소 생산기지가 건설돼 김정은이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강동종합온실 준공식에 김정은이 김주애와 함께 참석했다. 김정은의 딸 김주애도 행사에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보도에서는 눈여겨볼 만한 표현이 있었습니다. 북한 매체들이 김정은과 김주애에 대해 '향도의 위대한 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향도의 위대한 분들께서 당과 정부, 군부의 간부들과 함께 강동종합온실을 돌아보시었다." - 조선중앙통신, 3월 16일 '향도'라는 말은 '길을 인도한다'는 의미로, 말하자면 북한을 이끌어간다는 뜻인데, 김주애에게까지 이런 표현을 쓴 것은 처음입니다. 통일부는 "향도라는 표현은 최고지도자나 조선노동당에만 썼던 표현"이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게만 썼던 표현을 김주애에게까지 사용하면서 김주애가 장차 북한을 이끌 지도자라는 뜻을 담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후계자로 유력시되고 있는 김주애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이는 선전선동을 한 것입니다. 조선중앙TV 보도에서 이상한 점 관찰돼 그런데, 조선중앙TV의 이날 보도에서 다소 이상한 점이 관찰됐습니다. 조선중앙TV는 16일 오전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김정은의 강동종합온실 준공식 참석 보도를 반복적으로 내보냈는데, 낮 12시까지의 보도 내용은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내용과 똑같았습니다. 다만, 이날 오전과 낮 보도는 영상 편집이 다 되지 않아서인지 리춘히 아나운서의 얼굴만으로 모든 보도 내용이 방송됐습니다. 강동종합온실 준공식 보도를 내보내는 리춘히 아나운서. 조선중앙TV는 16일 오후 3시부터 동영상으로 편집된 강동종합온실 준공식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보도 내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몇몇 문장에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내용과 다른 내용이 방송된 것입니다. 달라진 방송 내용 역시 북한의 대표적 아나운서인 리춘히가 읽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관련 보도는 단일하게 작성된 기사를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가 모두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조선중앙TV의 경우 방송 성격에 맞게 문장을 구어체로 바꾸거나 영상에 맞춰 일부 문장을 추가하거나 빼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내용이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과 달라졌다고 해서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날 조선중앙TV의 오후 3시 보도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향도'라는 표현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애초 향도가 들어있던 문장은 조선중앙TV의 오후 3시 보도에서 다음과 같이 바뀌었습니다.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관련 보도의 경우 수 차례 재방송을 하는데, 16일 오후 3시 보도 이후로는 '향도'가 빠진 김정은 관련 보도가 계속됐습니다. 조선중앙TV는 동영상 편집본을 내보내면서 '향도'라는 표현을 빼고 방송했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북한이 고의로 '향도'라는 표현을 뺐을 경우입니다. 김주애의 후계자 위상을 강조하기 위해 '향도'라는 표현을 썼지만, 아직은 너무 빠르다는 판단이 뒤늦게 들자 갑자기 '향도'라는 표현을 뺐을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이런 추론에는 많은 의문점이 남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노동신문에 '향도'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고 노동신문이 이미 주민들에게 배포된 만큼, 뒤늦게 방송에서 '향도'라는 표현을 빼는 것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조선중앙TV도 16일 오전과 낮까지는 '향도'라는 표현을 그대로 방송했기 때문에 TV에서만 '향도'를 뺐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김주애에게 '향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치밀한 선전선동 계획에 따른 조치였을 텐데, 갑자기 결정이 바뀌어 이랬다저랬다 했다는 것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수일까요? 조선중앙TV가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기사를 일부 바꾸어 방송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만큼, 이번에도 방송용으로 기사를 바꾸는 과정에서 '향도'라는 표현이 빠졌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기에도 납득이 잘 안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김주애에게 '향도'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얘기는 북한이 이번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김주애에게 '향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 있어 심혈을 기울였다는 의미인데, 조선중앙TV가 아무리 방송용으로 기사를 고친다고 해도 이처럼 중요한 표현을 빼놓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더구나, '향도'가 빠진 조선중앙TV의 기사를 살펴본 결과, '향도'가 들어간 문장 전후의 10문장 가운데 조선중앙통신과 기사가 달라진 것은 딱 그 문장 하나였습니다. 조선중앙TV가 전반적으로 기사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향도'가 빠진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는 조선중앙통신과 같은 기사를 내보내는 과정에서 유독 그 문장의 '향도'라는 말이 빠진 것입니다. 고의인가? 실수인가? 지금 상황에서 조선중앙TV가 '향도'라는 말을 빼고 편집한 보도를 수 차례나 내보낸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고의인지 실수인지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에 우리가 잘 모르는 얘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에서는 잘 이해하기 힘든 일이 북한 주민들이 모두 볼 수 있는 조선중앙TV에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21일 국회입법조사처 A 조사관 명의의 메일 한 통이 저에게 전달됐습니다. 한국의 미래 외교안보전략을 제안하는 일환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 구상과 전망'이라는 주제의 간담회를 준비 중인데, 저의 참석을 요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메일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었습니다. 간담회 날짜는 3월 21일(목) 오후 2시∼5시나 3월 23일(토) 오후 2시∼5시 가운데 하나로 하려 하는데 언제가 좋은지 알려달라고 했고, 발표 내용은 5페이지 내외로 15분 정도 발표를 하면 되는데 자료를 3월 10일까지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또, 발표비는 30만 원이라면서 비용은 국회에서 지원한다고 했습니다. 메일 하단에는 A 조사관의 명함까지 첨부돼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 가끔씩 이곳저곳에서 토론회나 세미나 참석 요청이 오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요청의 일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연구기관인 만큼 북한이나 한반도 문제 관련 간담회를 개최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메일로 바로 답신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간담회를 같이 하자는 요청인 만큼 담당자와 전화로 인사라도 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첨부된 명함에 있는 A 조사관의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A 조사관의 첫 마디는 '피싱'인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A 조사관은 자신은 메일을 보낸 적이 없다면서 과거에도 자신의 명의를 도용한 피싱 메일이 돈 적이 있는데 잠시 뜸하다가 다시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속았구나 하는 생각에 메일을 자세히 살펴보니, 명함에 있는 A 조사관 메일 주소와 발신자의 메일 주소가 영문 철자 하나가 달랐습니다. A 조사관이 u를 쓰는 부분에 발신자는 v를 사용한 것입니다. 해킹으로 의심, 출처 추적해보기로 해킹이 의심되는 상황. 누가 이런 짓을 하나 싶어 출처를 추적해보기로 했습니다. 간담회에 응하는 것처럼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회사에 보고해야 하니 간담회 계획을 간단한 문건으로 만들어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상대는 2번째로 보내온 메일에서, 간담회가 국회입법조사처 세미나실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하면서 거짓말을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태영호 의원도 간담회에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태영호 의원은 북한 출신인 만큼 태영호 의원의 이름을 끌어들여 한반도 관련 간담회의 신뢰도를 높이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한 차례 더 답신 메일을 보낸 뒤, 상대는 3번째 메일에서 첨부 파일을 보내왔습니다. 정책간담회 관련 문서를 첨부했다면서, 자료를 국회와 공유를 해야 해서 원드라이브에 업로드한 만큼 압축 파일을 다운받은 뒤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했습니다. 비밀번호로 알려준 것은 nars2024!였는데 nars는 국회입법조사처의 영문 약자입니다. 첨부 파일이 악성 해킹 파일일 것이 분명한 만큼 보안업체에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아울러 곧 연락하겠다는 추가 답신을 간단히 보냈는데 상대는 4번째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장을 가게 됐다면서, 메일 확인을 자주 못할 수 있으니 전화번호를 남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악성 파일을 열어보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게 되므로 이제 거리를 좀 두면서 제 휴대폰에 대한 2차 공격을 준비하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북한 해킹그룹 '김수키' 소행으로 드러나 보안업체가 악성 파일을 분석한 결과, 해킹을 시도한 주체는 북한 해킹그룹 '김수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안업체들은 과거 해킹 공격에 쓰였던 코드들을 누적해서 분석하고 있는데, 이번 해킹 공격에 사용된 코드들이 과거 '김수키'가 사용한 코드들과 90% 이상 일치했다는 것입니다. '김수키'는 북한의 대표적인 해킹 조직으로 우리 정부의 대북 독자제재 대상입니다. 2014년 한국수력원자력 해킹 때 이름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보안업체 설명으로는 제가 악성 파일을 실행했을 경우 해커가 제 컴퓨터를 자기 컴퓨터처럼 들여다보고 조작할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제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여러 정보와 이메일 등을 빼내가는 것은 물론, 제가 여러 사이트에 접속하면서 아이디나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그런 입력 정보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제 휴대폰까지 해킹됐을 경우입니다. 해커는 저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만약 제 전화번호로 악성 파일을 보내 도청 앱까지 설치하게 될 경우 저의 24시간 생활이 해커에게 노출됩니다. 제가 다른 사람과 통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가 휴대폰을 들고 다니면서 들리는 모든 소리가 해커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휴대폰은 보통 언제 어디나 가지고 다니고 집에 가서 충전을 하더라도 전원을 끄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청 앱이 설치되면 집에서 하는 사적인 대화까지 모두 해커에게 노출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해커가 '나는 네가 한 모든 일을 알고 있다'는 식으로 협박을 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계속 진화하고 있는 북한 해킹 방식 이번 해킹 시도 사례를 보면, 북한의 해킹 방식이 점차 세련돼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처음부터 악성 파일을 보내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에게 첨부 파일이 오면 의심을 하고 안 열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경우를 보면 처음에는 일반 메일처럼 접근해 어느 정도 신뢰를 형성한 뒤 악성 파일을 나중에 보내는 방법을 썼습니다. 즉, 확실히 미끼를 물었다고 생각되는 시점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것입니다. 보안업체 말로는 이렇게 사전작업을 거쳐가며 해킹을 시도하는 것이 요즘 북한의 추세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주목해볼 점은 남한식의 말투를 사용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 해커가 이번에 보낸 메일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담주 월욜전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함 보시고 의견이 있으시다면" "비번(nars2024!)을 입력하시면" "안 박사님 전번 남겨주신다면" 담주, 월욜 이런 말들은 표준어는 아니지만 남한에서는 문자나 대화방 등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북한 해커들은 이런 말들을 군데군데 섞어쓰며 진짜 메일처럼 보이려고 했습니다. 해킹으로 주요 정보를 빼내기 위해 계속 진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가끔씩은 아날로그적 접근 방법도 필요? 해킹을 막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백신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는 있지만 공격자도 진화하고 있어서 남한에서 잘 사용하는 백신을 우회하는 공격 기법을 계속 개발해내고 있다고 합니다. 컴퓨터는 가끔씩 포맷해주는 것이 가장 확실하기는 한데, 이건 기존 자료를 일일이 다시 옮겨야 하는 만큼 상당히 귀찮은 일이기도 합니다. 이상한 파일이다 싶으면 절대 열어보지 않는 것이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또, 이번에 제가 인사라도 하려고 전화했다가 해킹 시도를 알게 됐듯이, 가끔씩은 아날로그적인 접근 방법도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유엔의 강력한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총비서가 최근 들어 대규모 건설사업을 연이어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평안남도 성천군에서는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경공업 공장 착공식이 열렸습니다. 북한이 요즘 주력하고 있는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일환입니다. 참고로, '지방발전 20×10 정책'이란 매년 20개 시, 군에 현대적인 경공업 공장을 만들어 10년 안에 지방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키겠다는 정책입니다. 이 계획에 따르자면 올해만 하더라도 이번 공장 말고 19개 지역에서 추가적인 경공업 공장이 건설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이 평안남도 성천군 공장 착공식에 참석해 첫 삽을 뜨고 있다. 지방공장 건설은 이제 시작 단계지만 대규모 살림집 건설 공사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북한은 2021년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평양에 매년 1만 가구씩 오는 2025년까지 모두 5만 가구의 주택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는데 실제로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1년 3월 평양의 송신, 송화지구에서 착공된 1만 세대 살림집 건설 공사는 2022년 4월 완공됐고, 2022년 2월 시작된 화성지구 1단계 1만 세대 살림집 공사는 2023년 4월 완공됐습니다. 5만 세대 건설 계획 가운데 2만 세대가 완료된 셈입니다. 북한은 화성지구 1단계 1만 세대 살림집의 경우 야간에 준공식을 화려하게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2023년 4월 16일에 열린 화성지구 1단계 1만 세대 살림집 야간 준공식 여기에다 2023년 2월 화성지구 2단계 1만 가구 건설 공사가 시작됐고, 2024년 2월에는 화성지구 3단계 1만 가구 건설 착공식이 열렸습니다. 1년여 만에 1만 채씩 지어내는 속도로 보면 화성지구 2단계 1만 가구도 조만간 완공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은 또, 평양 5만 세대 건설과는 별도로 평양 서포지구에 4천여 세대의 살림집을 짓겠다며 2023년 2월 공사를 시작한 상태입니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2023년을 평가하면서 "경제 전반에서 뚜렷한 생산장성"을 가져왔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로만 보면 유엔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나름대로 발전해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북한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조선중앙TV이긴 하지만, 1만 세대 살림집 준공식에서 드러난 북한판 '뉴타운'들은 일면 그럴싸해 보이기도 합니다. 평양 중심부도 하루 평균 3시간 정도 전기 공급 하지만,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취재하는 대북 매체들의 보도를 보면, 북한 공식 매체들의 보도와 실상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북한전문매체인 '데일리NK'는 지난달 28일, 평양의 중심 구역인 중구역과 평천구역에 지난 1월 동안 하루 평균 3시간 정도의 전기가 들어왔다고 보도했습니다. 주변 구역인 강동군은 하루 평균 1시간 정도만 전기가 들어왔던 만큼, 중심 구역을 배려해준 수준이 그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데일리NK'가 1년 전, 또 2019년에 썼던 자사의 기사와 이번 기사를 비교한 부분입니다. 데일리NK는 1년 전인 2023년 3월 31일에도 평양의 전기 사정과 관련된 기사를 썼는데, 당시 기사에서 평양 소식통은 평양 중심부인 중구역에 하루 평균 4시간 정도의 전기가 들어온다고 밝혔습니다. 또, 2019년 6월 5일 '데일리NK'가 쓴 전기 관련 기사를 보면, 당시 평양 소식통은 중구역과 평천구역 등에 하루 5시간 정도 전기가 들어온다고 전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통의 말을 그때그때 전한 것이긴 하지만, 시계열적으로 보면 평양 중심부의 전기 공급 시간이 5시간에서 4시간, 3시간으로 줄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혁명의 수도라는 평양의 전기 사정도 꾸준히 나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평양이라는 위치는 여타 지역과는 다른 특수한 지역이고 더구나 중심부라면 핵심 시민들이 사는 곳인 만큼 당의 특별한 배려 대상일 텐데, 이곳에서의 전기 사정마저 꾸준히 나빠지고 있다는 것은 북한 경제가 당면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전기 사정이 안 좋다 보니 아파트 승강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고층 주민들이 물건을 나를 때는 등짐을 지거나 베란다에 도르래를 설치해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도르래로 물 양동이를 끌어올리다 통째로 쏟아져 지나가던 사람들이 물벼락을 맞고 이로 인한 민원이 제기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분단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참으로 씁쓸하기만 합니다. 탈북민 증언에서도 전력 사정 악화 확인 이 같은 대북 매체들의 보도 말고도, 김정은 시대의 경제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자료가 있습니다. 통일부가 얼마 전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는 탈북민 6,351명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의 실상을 조명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통일부가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북한 기업소의 1일 전력 공급 시간을 물었더니, 하루 1∼6시간 정도 공급됐다고 응답한 비율이 김정은 집권 이전인 2011년 이전 탈북민들의 경우 30.6%였던 반면,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 이후 탈북민들의 경우 38.6%로 조사됐습니다. 또, 하루 7∼12시간 전력이 공급됐다고 밝힌 비율은 2011년 이전 탈북민들은 33.8%였던 반면, 2012년 이후 탈북민들은 22.4%로 조사됐습니다. '하루 7∼12시간 전력 공급' 응답 비율이 줄고 '하루 1∼6시간 전력 공급' 응답 비율이 늘어났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전력 사정이 악화됐다는 뜻입니다. 탈북민들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긴 하지만, 북한의 전력 상황을 추세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기업소의 가동 시간을 물어본 질문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관찰됩니다. 기업소의 1일 실제 가동 시간을 물어본 결과, 하루 1∼6시간 정도였다고 대답한 비율이 2011년 이전 탈북민(김정은 집권 이전)의 경우 31.0%였던 반면, 2012년 이후 탈북민(김정은 집권 이후)의 경우 37.6%로 높아졌습니다. 또, 가동시간이 하루 7∼12시간 정도였다고 대답한 비율은 2011년 이전 탈북민이 34.5%, 2012년 이후 탈북민은 25.5%로 조사됐습니다. '하루 7∼12시간 가동' 응답 비율이 줄고 '하루 1∼6시간 가동' 응답 비율이 늘었다는 것인데, 전력 사정이 안좋아지면서 기업소의 가동 시간도 대체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는 2020년까지 탈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인 만큼, 최근의 북한 상황을 반영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 북한이 북중 국경을 봉쇄하면서 경제 상황이 더 안좋아졌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코로나 이후 상황이 다소 호전됐다고 해도 경제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은행의 북한 경제 성장률 추정치를 보더라도, 2017년부터 북한의 경제 성장률은 2019년(0.4%)을 제외하고 2022년까지 연속 마이너스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4년 북한의 실상은 북한이라는 나라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눈 감고 코끼리 만지기'의 영역에 속합니다. 북한의 공식 매체들을 통해 나오는 정보는 일방적인 찬양 일색이고, 대북 매체나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 파악하는 것은 표본 수 등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나 통계청 등 정부의 공식 기관들이 북한 관련 지표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지만, 이 또한 기초 자료가 되는 정보 수집에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절대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자료들을 종합해 북한이라는 코끼리의 형상을 그릴 수 밖에 없는데, 2024년 북한의 실상은 어떤 것일까요? 유엔의 강력한 대북 제재에도 김정은 정권이 그럭저럭 버텨가고 있고 눈에 보이는 건설 성과 등을 통해 발전을 포장하고 있지만, 북한의 경제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아 보입니다. 김정은이 지난해 말 당 전원회의에서 '경제 전반의 생산장성'을 언급하긴 했지만, 일부 성과가 있었을 지라도 북한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은 '힘든 현상 유지' 내지는 '완만한 침체' 기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집권 초기 시장에서의 경제활동을 묵인하고 경제 각 부문의 자율성 확대를 추진했던 김정은 총비서가 최근 들어 갈수록 보수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021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국가의 통일적인 지휘와 관리 밑에 경제를 움직이는 체계와 질서를 복원하고 강화하는 데 당적, 국가적 힘을 넣어야” 한다고 밝힌 것의 연장선입니다. "국가가 모든 양곡을 통일적으로 장악" 먼저, 경제 부문의 법령 개정을 보면 보수 회귀 기조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북한은 2021년 3월 ‘양정법’을 개정했는데 제2조와 제30조를 다음과 같이 바꾸었습니다. [제2조] ... 국가는 모든 양곡을 통일적으로 장악하고 양정체계 안에서 유통시키며 계획적으로 소비하도록 한다. [제30조] ... 국가의 양정체계 밖에서 양곡을 가공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 북한 ‘양정법’, 2021년 3월 개정 국가가 모든 양곡을 통일적으로 장악한다거나 국가 체계 밖에서 양곡 가공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데에서 보듯, 식량에 대한 통제권을 국가가 다시 가져오겠다는 의도가 명확합니다. 시장에서 국가의 통제 없이 식량을 사고파는 행위를 없애겠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장마당 북한은 개정 양정법 제45조에서 ‘양곡판매소’의 설치 근거도 마련했습니다. ‘양곡판매소’란 국가가 협동농장 등에서 식량을 사들여 주민들에게 시장가격보다 조금 싸게 판매하는 기구로, 사적인 곡물거래를 단속하고 당국이 식량에 대한 판매를 독점하려는 장치입니다. 아직 물량 확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곡물 거래는 여전히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시장에서의 곡물 거래를 금지시켰다는 대북 단체들의 전언도 나오는 등 전반적인 통제 강화 기조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국영상업망을 통해 유통" 2021년 8월에 개정된 ‘사회주의상업법’을 봐도 통제 강화 기조가 나타납니다. 개정된 법의 제6조와 제7조는 다음과 같이 바뀌었습니다. [제6조] 국가는 통일적인 상업관리체계를 세우고 ... [제7조] ... 상품유통체계를 바로 세워 생산, 수입한 상품이 국가적인 등록, 인증체계 안에서 국영상업망을 통하여 유통되도록 한다. - 북한 ‘사회주의상업법’, 2021년 8월 개정 국가의 통일적인 관리체계를 명시함으로써 당국의 지도를 강조하고, 국영상업망을 통한 유통을 강조함으로써 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시장에서의 물품 유통에 대한 단속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농장법’에서도 김정은 시대 경제개혁 조치 후퇴 뿐만 아니라, 북한은 2023년 9월 개정한 ‘농장법’에서도 ‘포전담당책임제’의 실시를 유연화하고 ‘분조관리제’를 다시 부각하며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포전담당책임제’란 북한 협동농장의 생산 단위를 2∼4명으로 줄여 생산의 인센티브를 높인 제도로 북한의 경제개혁을 상징하는 조치입니다. 북한의 협동농장 생산 단위가 10∼15명 정도인 ‘분조관리제’ 하에서는 혼자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더 많이 받아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이 떨어지는데 반해, 생산 단위를 소규모로 줄인 ‘포전담당책임제’에서는 가족 단위의 영농이 가능하게 되는 만큼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받아가자는 생산 의욕이 높아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포전담당책임제’는 자본주의적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생산량의 향상을 꾀하는 김정은 시대의 경제개혁 조치를 상징하는 것인데, 새로 개정한 ‘농장법’에서 ‘포전담당책임제’의 비중이 줄어들고 과거의 ‘분조관리제’를 다시 부각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김정은 시대의 경제개혁이 후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 부문에서도 강력한 보수 회귀 기조 북한의 보수 회귀 기조는 사회통제 부문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른바 3대 악법이라고 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12월), ‘청년교양보장법’(2021년 9월), ‘평양문화어보호법’(2023년 1월) 제정을 통해, 외부의 영상물이나 노래 등을 유포하고 외부 문화를 다른 사람에게 배워줄 경우 최대 사형까지 처하는 엄청난 단속과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면서 남북을 완전히 분리해 남한 문화가 북한에 스며들 토대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동족, 화해, 통일의 개념을 없애라고 지시했고, ‘삼천리’라는 구절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애국가의 가사까지 바꿔버렸습니다. 사상 이완이 심해지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사상을 다잡아 예전처럼 강고한 김일성 일가의 왕국을 만들겠다는 것이 김정은의 구상으로 보입니다. 주민들은 시장의 자율성에 이미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데 이 같은 보수 회귀 시도가 북한 당국의 의도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입니다. 경제 부문에서의 통제를 강화한다고 하나, 이미 시장을 통해 알아서 먹고사는 데 익숙해진 북한 주민들이 북한 당국의 통제에 순순히 응할지 의문입니다. 북한 당국이 충분한 배급을 실시할 정도의 능력이 된다면 모르겠으나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통제의 경우에도 단속과 규제를 통해 북한 당국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같은 민족으로서의 정서를 공유하는 한류의 힘을 규제와 처벌이라는 울타리로 완전히 막아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당국과 시장 간의 싸움 치열하게 전개 하지만, 북한 당국은 이 무모한 싸움에 전면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국가의 통일적인 지휘 하에 경제를 움직이게 하고, 외부 문화의 침투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것입니다. 지금 북한 내에서는 당국(통제, 구심력)과 시장(자율성, 원심력) 간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흔히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하드 파워(hard power)보다 우선한다며 문화와 자율성의 승리를 점치기도 하지만, 북한의 당국과 시장 간의 싸움에서 반드시 시장이 이길 것이라고 아직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이라는 나라는 사람의 목숨까지 마음대로 앗아갈 정도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수준의 폭압적 통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로서는 이 치열한 싸움에서 시장이 승리하기를 바라면서 시장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찾아야 할 것입니다. 자율성과 원심력, 외부로의 동경을 의미하는 시장을 지원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딱 떨어지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모든 종류의 대북 접촉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간단체의 대북 라디오 방송, 북중 국경을 통한 외부정보 유입 노력 등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 대북 교류지원 단체들이 북한 지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중국 등에서 북한 관계자들과 만나는 것도 적극 허용해야 합니다. 북한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어떠하든 한 사람이라도 북한 주민들과 더 만나고 접촉할수록 외부 공기가 북한 내부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