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북극 식물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연구하는 과학자, <엄마는 북극 출장 중>, 저자, 공저 <한 눈에 보는 스발바르 식물>, <아틱노트> 등
지구상에서 가장 북쪽과 남쪽 끝 극단적인 곳에서 극한 체험하면서 연구하는 '극적인 사람들'. 보통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가기도 힘든 남극과 북극을 수시로 오가며 연구 활동을 펼치는 극지연구소 사람들과 스프의 콜라보 프로젝트! 기후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북극” 하면 단번에 하얀 눈이 덮인 얼음 위를 돌아다니는 북극곰을 떠올리실 텐데요, 북극에도 사막과 초원, 습지와 호수, 강과 바다가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은 눈 덮인 침엽수 사이로 산타할아버지가 사슴이 끄는 썰매 타고 달리는 장면을 떠올리는데, 사실은 북극에는 이렇게 키 큰 나무가 없습니다. 북극은 그런 나무가 자라지 않는 툰드라거든요. 남극도 툰드라지만 북극과 사뭇 다릅니다. 일단 남극은 대부분이 얼음에 덮여있고 식물도 다양하지 않아요. 남극엔 꽃이 피는 식물이 단 두 종류만 살고 있답니다. 북극은 남극보다 식물에 훨씬 관대해서 3,0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고 그중 2,000여 종이 꽃을 피우는 식물입니다. 이 중에는 다른 곳에는 살지 않고 고산지대나 북극에서만 사는 고유한 식물도 있어요. 그런데 기후변화로 북극 식물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답니다. 기온이 높아지다 보니 나무들이 점점 올라오고 있어요. 툰드라가 더 이상 툰드라가 아닌 거죠. 북극 툰드라 식물과 새롭게 파고드는 식물들과 경쟁하며 동시에 가파르게 올라가는 기온에 맞춰 적응해야 합니다. 여기서 적응하지 못하고 경쟁에 밀리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답니다. 북극의 끝에는 북극해만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우리나라 다산과학기지가 위치한 스발바르의 경우 200여 종의 식물 중에서 48종이 멸종위기종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다섯 종의 식물 중 하나는 이미 사라져 가고 있는 겁니다. 북극에도, 백두산에서도 살고 있는 식물들 나도수영 씨눈바위취 스발바르에 사는 식물 중에 나도수영이나 씨눈바위취, 담자리꽃나무처럼 예전부터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식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백두산이나 북부 산간지대에서 살고 있어 지금은 이들 식물을 직접 볼 수는 없어 아쉽습니다. 언젠가 다시 길이 열리면 우리나라 고산 식물과 북극 식물을 비교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아마 이들이 북극 식물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시베리아 어딘가에 살던 식물이 일부는 동남쪽으로 내려와 백두산 산자락에 터를 잡고, 일부는 서북쪽으로 올라가 스발바르까지 간 건 아닐까요? 담자리꽃나무 백두산에서도 살고 있는 담자리꽃나무는 빙하기를 꿋꿋하게 견뎌낸 관목입니다. 여덟 장의 흰색 꽃잎이 노란 수술을 감싸고 있는 담자리꽃나무는 해바라기처럼 꽃이 해를 향해 방향을 바꾸죠. 해를 바라봐서 그런지 꽃 안쪽은 식물의 다른 부위보다 온도가 살짝 높습니다. 북극황새풀 씨앗이 목화솜처럼 생긴 북극황새풀은 북극 툰드라 습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풀입니다. 스발바르뿐만 아니라 알래스카에서 캐나다 북극, 그린란드 초원까지 물이 절벅절벅하게 찬 습지라면 북극 어디서나 볼 수 있답니다. 버드나무의 사촌 격인 북극버들은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털이 보송보송 나 있어요. 북극버들이나 북극콩버들은 암그루와 수그루가 따로 자라는데, 이상하게도 수그루가 잘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약 100여 년 전부터 과학자들은 툰드라에 사는 버드나무류에서 암그루가 더 많은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죠. 버드나무의 염색체와 유전자를 분석하고 나서야 그 비밀이 풀렸습니다. 버드나무도 성염색체가 있는데 우리와 달리 버드나무는 암배우체가 ZW, 수배우체가 ZZ로 같은 모양의 염색체를 갖습니다. 그런데 열성 유전자가 만나면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하거나 싹이 나도 나무로 자라지 못한 채 일찍 죽게 만드는 치사 유전자가 Z 염색체에 있었던 것입니다. ZZ에 이 열성 유전자가 둘 다 존재하면 이 수배우체는 어릴 때 죽어버리죠. 그래서 꽃이 피기까지 자라는 식물에서는 암배우체가 많았던 것입니다. 벼랑 끝에 몰린 북극 식물들, 더 갈 곳이 없는데... 북극은 6월부터 눈이 녹기 시작하고 9월이면 다시 눈이 오기 때문에 두세 달 짧은 기간 동안 식물은 꽃을 피우고 씨를 맺습니다.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곤충이나 바람에 의해 수분이 일어나 씨를 맺을 확률이 낮아서 북극 식물은 다양한 무성생식으로 세대를 유지합니다. 씨눈바위취는 아주 작은 잎을 만들어 떨어뜨리는데 이 잎은 금세 뿌리를 내리고 자랍니다. 씨범꼬리는 꽃차례 아래쪽에 마치 씨앗처럼 보이는 살눈이 달립니다. 이 눈이 땅에 떨어지면 싹이 터서 식물로 자라죠. 그런데 북극 툰드라 식물이 점점 위기에 몰리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타이가 지역의 나무와 식물이 자꾸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죠. 툰드라의 끝은 북극해이기 때문에 툰드라 식물은 더는 갈 곳이 없답니다. 한마디로 툰드라 식물은 벼랑 끝에 서 있어요. 스발바르에는 단 50여 개체밖에 남아 있지 않은 식물도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이런 위기에 처한 북극 툰드라 식물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북극 툰드라에서 식물들이 계속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