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애 기자는 ‘방송’ 담당 연예기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드라마를 즐겨 봤고 예능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TV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누구나 즐겨 보는 TV처럼 쉽고 재밌게, 하지만 깊이 있는 연예뉴스를 전하고 싶습니다.
'국민 MC' 유재석이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다. 지난 23일 밤 첫선을 보인 SBS '틈만 나면,'이다. '틈만 나면,'은 '런닝맨'에서 젊은 감각과 재미를 인정받았던 최보필 PD의 신규 예능으로, 유재석은 '런닝맨'에 이어 다시 한번 최 PD와 손을 잡았다. 유재석은 그 이름값에 걸맞게 새로 들어갈 프로그램을 결정할 때 굉장히 신중하다. 해당 프로그램이 어떤 취지를 갖고 있는지,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인지, 자신이 들어가서 어떤 롤을 맡는지 등을 다각도로 따져보고 고심 끝에 출연 여부를 결정한다. '틈만 나면,' 역시 그러했다. 최 PD는 이렇게 말한다. "유재석 씨는 프로그램을 그냥 친분만으로 하는 분이 절대 아니에요. 사실 그동안 성사되지 않았을 뿐이지, 유재석 씨한테 수많은 제안을 해왔어요. (웃음) 그러다 채진아 작가와 한 이번 기획에 대해 본인도 매력을 느꼈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적임자라 생각한 거 같아요. '런닝맨'을 하면서 저도 그분의 장점을 잘 알고, 그분 또한 저의 장단점을 잘 알아요. 그런 부분에서 아무래도 저희를 좀 더 신뢰하고, '같이 해보자' 한 게 아닌가 싶어요." '틈만 나면,'은 '런닝맨'의 최보필 PD와 '사이렌: 불의 섬'의 채진아 작가가 의기투합한 예능이다.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앞서 여러 기획안을 거절했던 유재석이 선택한 것일까. '틈만 나면,' 어떤 프로인데? '틈만 나면,'은 일상 속 마주하는 잠깐의 틈새 시간 사이에 웃음과 행운을 선물하는 '틈새 공략' 버라이어티다. 유재석과 배우 유연석이 2MC로 나서고, 매회 '틈친구'라는 이름으로 게스트가 함께 한다. 이들은 '내 틈새 시간에 와 주세요'라고 사연을 신청한 시민들의 일상 공간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간단한 게임 미션을 수행한다. 미션에 성공하면 시민에게 상품을 선물하며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틈새 시간에 뭘 하는지 물으면, 휴대폰을 하거나 SNS를 하거나 그러더라고요. 저 역시 그러고요. 그 틈새 시간에 저희가 찾아가서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행운까지 선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채진아 작가) '틈만 나면,'이 주목하는 건 사람들의 이 '틈새 시간'이다. 누구나 저마다 가지고 있는 틈새 시간을 찾아가 그 시간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함께 즐겁게 보내보자는 취지다. 틈새 시간이란 게, 보통의 직장인은 점심시간 1시간 남짓으로 생각되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틈새 시간이 존재한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저희도 처음에는 직장인의 점심시간 1시간이 틈새 시간의 전부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실제로 사연을 받아보니 다양했어요. 대학생의 공강 시간도 있고, 자영업자분들은 한가한 시간이 많더라고요. 각자 직업군마다 쉬는 시간이 달랐어요. 시민들을 실제로 만나 보며, 다양한 틈새 시간이 있단 걸 알게 됐어요." (채 작가) "점심시간 외에도 틈새 시간이 많더라고요. 그게 실제 그분들의 틈새 시간이기 때문에, 그걸 리얼하게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최보필 PD) 2MC 유재석과 유연석 '런닝맨'을 함께 하며 유재석에 대해 잘 아는 최보필 PD는 '틈만 나면,'을 통해 유재석의 새로운 매력을 볼 수 있다고 예고했다. "'런닝맨'은 관계성이 오래됐다 보니까, 그게 큰 틀에서 바뀌기 쉽지 않아요. 단기적으로 그분의 새로운 모습을 보기엔, 고정된 틀인 것이 사실이죠. 그런데 '틈만 나면,'은 새 프로그램이잖아요. 유재석 씨와 유연석 씨가 둘이 진행하는 것도, 새로운 그림이죠. 매회 두 분의 MC 포지셔닝이 바뀌는 게 보여요. 유재석 씨가 프로그램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이란 걸 새삼 느꼈고, 그 부분이 시청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떨 땐 당하다가, 어떨 땐 감독도 하고, 이렇게 다이내믹한 모습이 잘 녹아들 거예요." (최 PD) 유재석과 처음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채 작가는 유재석이 왜 '대체불가 국민 MC'인지 실감했다고 전했다. "첫 번째 녹화를 하고 나서 '왜 유재석이 대체불가인지 알겠다' 생각했어요. 시민들을 만날 때, 토크를 이끌어내거나 미션을 수행할 때, 열정이나 몰입도가 굉장히 높더라고요. 또 새내기 MC 도전인 유연석 씨에 대해서도 잘 이끌어주는데, 그렇다고 본인의 것을 강요하지도 않아요. 유연석 씨와 너무 잘 어우러지는데, 전 그런 부분이 유재석 씨가 대단한 거라 생각해요." (채 작가) 유재석과 유연석은 '런닝맨', '범인은 바로 너', '핑계고' 등에서 호스트와 게스트로 만난 적은 있지만, 한 예능 프로그램의 2MC로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작진은 왜 유연석을 유재석의 파트너로 점찍었을까. "실제 시민들의 틈새 시간과 그분들의 공간을 찾아가는 거라, 애초에 MC 규모가 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유재석 옆에 어떤 분이 있어야 좋을까' 했을 때, 일단은 유재석 씨와의 관계성, 그리고 대중적인 인지도와 호감도가 중요했어요. 그런 점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유연석 씨는 본업인 배우로도 너무 유명하며 잘하고, 그리고 예능적으로 유재석 씨와 같이 한 '런닝맨'이나 '핑계고' 활약이 너무 좋았죠. 그렇게 유연석 씨로 결정이 된 후로는, 두 분 외에 다른 추가 MC가 더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두 분에 굉장히 만족해요." (최 PD) 실제 지난 23일 '틈만 나면,' 첫 방송에서는 유재석X유연석 2MC의 찰떡 호흡이 빛났다. '국민 MC'와 '새내기 MC'의 찰진 티키타카가 마치 톰과 제리 같은 재미를 선사했다. MC로서 시민과 자연스럽게 토크를 이끌고 공감대를 형성하려 노력하는 모습도 돋보였다. 제작진이 왜 유재석X유연석의 MC 케미에 만족해하는지 단숨에 느껴졌다. "두 분이 녹화 현장을 너무 재밌어해요. 녹화가 끝나고 나서 전화 통화를 하면 '너무 재밌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게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 감정이란 게 느껴져요. 시청자분들도 이분들이 진짜 즐긴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최 PD) 게스트 활약도 기대 '틈만 나면,' 첫 회에 웃음 포인트가 많았던 것은 게스트로 출연한 이광수의 활약이 컸기 때문이다. 이광수는 유재석, 유연석과 남다른 친분을 바탕으로, 특유의 예능감을 마음껏 분출했다. '런닝맨' 하차 이후 유재석과 이광수의 투샷을 그리워했던 이들에게, 이광수의 '틈만 나면,' 출연은 반갑고 그리운 재미였다. 별거 아닌 상황에 말 한마디로 웃기고, 행동 하나로 재미를 선사하는 이들의 티격태격 찐친 케미는 확실히 막강했다. 이광수로 시작한 '틈만 나면,'의 게스트 라인업은 배우 조정석, 아이브 안유진 등으로 이어간다. 각각의 개성과 매력이 확실한 게스트들이라, 이광수 못지않은 재미를 유재석X유연석과 함께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MC 두 분의 케미도 너무 좋지만, 매주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시청자분들이 계속 보실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게스트를 투입하고 있어요. 녹화를 진행해 보면, 어떤 분이 게스트로 나오셨을 때는 유재석 씨가 이랬다가, 다른 분이 나왔을 땐 유연석 씨가 반대로 그렇게 한다든지, 두 분의 관계가 바뀌는 게 재밌더라고요. 게스트를 '틈친구'라고 부르는데, 그런 부분 때문에 저희가 더욱 공들여 게스트를 섭외하고 있어요." (최 PD) 최보필 PD와 채진아 작가 '유퀴즈'의 기시감? 중요한 건 시민과의 호흡 유재석이 거리로 나가 시민을 만나고, 연예인 게스트와 가벼운 수다를 떠는 모습들 때문에, '틈만 나면,'에서 유재석의 기존 프로그램인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이나 '핑계고'의 잔상이 느껴진다는 반응도 있다. "'유퀴즈'는 길거리를 다니며 우연히 만나는 시민들과 인터뷰를 하는데, 저희는 기본적으로 사연을 신청받아서 그분들의 실제 틈새 시간을 찾아간다는 콘셉트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또, MC들이 미션을 해서 시민분들한테 선물을 주는 형식이라, MC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굉장히 커요. 그러면서 시민분들과 어떤 연대가 생긴다는 점도 다르고요. '핑계고'는 연예인들이 나와서 사적인 토크를 하는데, 저희도 게스트의 근황을 묻거나 그런 게 있긴 하지만, 중요한 건 신청자인 시민분들과의 케미예요.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MC들과 시민들 사이에 유대감이 생겨요. 미션에 실패하면 같이 슬퍼하고, 성공하면 같이 기뻐하죠. 서로 울 정도로 게임에 몰입하기도 해요. 그런 점이 저희 프로그램의 시청 포인트가 아닐까 싶어요." (채 작가) 제작진이 강조했듯, '틈만 나면,'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자신의 틈새 시간을 공개하며 사연을 신청한 시민, 일명 '틈주인'이다. 틈주인에 따라 MC 유재석X유연석이 찾아가는 시간과 공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프로그램의 배경이 수시로 바뀐다. 또 그에 따라 MC들이 진행하는 미션의 형태도 달라진다. "공식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일반인 신청을 받고 있어요. 신청을 받으며, 그분들의 실제 일과 시간에 대해 작성하게 하는데, 그걸 보며 이 틈새 시간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나, 찾아갈 공간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곳인가, 그런 요소들을 고려해 선정하고 있어요." (채 작가) '틈만 나면,' 첫 회 첫 틈주인은 "웃음을 참아야만 하는 저희에게 웃음을 나눠주세요"라는 사연을 신청한 김준섭 씨였다. MC들이 찾아간 곳은 경복궁. 틈주인 김준섭 씨는 한국문화재단 소속으로 경복궁에서 교대 의식 공연을 하는 수문장 종사관이었다. 행사 때 근엄한 표정으로 있어야 하는 틈주인의 즐거운 틈새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유재석X유연석, 그리고 이광수가 나섰다. 세 사람은 김준섭 씨의 틈새 시간에 토크를 나누며 경복궁 수문장 교대 의식이 어떤 업무인지, 어떤 애환이 있는지 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선물을 주기 위한 '구둣솔 던져서 세우기' 미션을 진행했다. 이는 평소 수문장들이 틈새 시간을 이용해 음료수 내기를 하던 게임으로, 현장에서는 익숙한 것이었다. 유재석X유연석X이광수는 구둣솔을 던지는 게임에 금방 몰입했고, 선물을 타서 김준섭 씨에게 주기 위해 투혼을 발휘했다. 구둣솔을 던져 세우는 비교적 단순한 게임인데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수행자의 책임감과, 꼭 성공했으면 하는 시청자의 바람이 한데 어우러져 순간 굉장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유재석X유연석X이광수는 2단계까지 성공해 전복 세트, 로봇청소기를 획득했으나, 틈주인의 '3 GO' 도전에 맞춰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그 결과 앞서 따낸 두 선물까지 모두 돌려주고, 결국 틈주인에게는 '틈만 나면,' 기념 벽시계와 티셔츠만이 선물로 돌아갔다. 선물 획득에 실패한 틈주인이 안타까우면서도, 어색한 공기 속 틈주인에게 미안해하는 출연진의 생생한 모습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웃픈' 포인트였다. "유재석 씨와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얘기할 때도, 출연자들이 미션에 진지하게 몰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눴어요. 보통 미션이 들어간 예능들이 출연자 본인을 위해 미션을 하는 건데, '틈만 나면,'은 일반인을 위해 미션을 하죠. 그 결과가 일반인의 상품에 영향을 미친다면, 출연자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지겠죠. 실패하면 미안해하거나, 성공하면 당당해하는 그런 감정이, 저희 프로그램에서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거라 생각했어요." (최 PD) 미션 실패로 선물 획득에 실패한다고 해서, MC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진 않는다. 애초에 제작진은 미션을 3단계로 나눠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도전하게끔 설계했고, 1단계 미션은 쉽게 성공할 난이도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선물로 주는 상품이 고급화되긴 하나, 욕심을 버리면 1단계 선물 정도는 쉽게 획득할 수 있다. 그러니 3단계에서 실패한다면, 3단계 도전을 선택한 틈주인 본인을 자책해야 하는 상황이라, MC들을 욕할 순 없다. 선물 획득을 얼마든지 가능하게 하면서도, MC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안기지 않은, 제작진의 영리한 기획이다. 첫 시즌은 8회 분량, 후속 시즌 가능할까 '틈만 나면,'은 총 8회 분량으로 제작돼 선보인다. 이후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시즌제 예능으로 거듭날 수 있다. "8회 정도가 프로그램의 성격을 보여주고, 시청자의 피드백을 받아서 유의미한 시도를 하는데 적절한 회차라고 생각해요. 저희도 이 8회 안에 모든 걸 보여주겠다는 마음이에요. 가능하다면 시즌제로 계속 가는 게 저희도 목표죠. 저 스스로 이 프로그램에 자신이 있어요. 그러니 많은 분들이 봐주시면 좋겠어요. 시즌2 제작이 확정됐다는 기사가 나오길, 저도 바라고 있어요. (웃음)" (최 PD) "전 SBS에서 프로그램을 처음 하고, 유재석 씨와도 처음 해요. 처음 '틈만 나면,' 녹화를 하고, 그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는데, 기대 이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런 포인트들이 많이 세상에 알려져서, 많은 분들이 봐주시면 좋겠어요." (채 작가) 디자인 : 박수민
인스타그램, X(구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 SNS를 통해 직접 팬들과 소통하는 스타들이 많다. 과거에는 무얼 먹는지 어딜 가는지 알 수 없어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졌던 스타들이, 지금은 SNS에 일상 사진을 올리고 근황을 담은 글을 작성하며 직접 팬들에게 소식을 전한다.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뻗어 있는 팬들은 휴대폰으로 손쉽게 스타들의 SNS를 확인하며 좀 더 가까운 느낌을 받고 더욱 애정을 키운다. 스타들 역시 SNS로 팬들의 목소리를 듣고, 편리하게 작품 홍보나 PR 활동을 한다. 이토록 장점이 많은 SNS지만, 잘못 사용하면 순식간에 '독'이 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논란을 염두에 두고 올린 글이든, 의도가 없는 실수이든, 일단 SNS에 한 번 올리면 그 파장은 돌이킬 수 없다. 특히 수백, 수천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스타에게는 그 위험성이 더 크다. 문제를 인지하고 올린 글을 재빠르게 삭제하더라도, 이미 전 세계에 있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 후이기 때문이다. 스타들이 여과 없이 SNS에 글을 올려 논란에 휩싸인 일은, 20여 년 전 싸이월드 때부터 시작해 플랫폼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SNS에 게시물을 올린 스타 본인뿐만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하며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불륜녀로 오해해 애꿎은 피해자 만든 황정음 배우 황정음은 현재 남편 이영돈 씨와 이혼 소송 중이다. 그는 SNS에 이혼의 사유가 남편의 외도임을 암시하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려 대중의 이목을 끌었고, 각종 예능에서 자신의 현 상황과 심경을 패러디로 표현하며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 많은 이들의 위로와 응원을 받았다. 하지만 황정음의 거침없었던 SNS 활동은 도를 넘어서며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지난 4일 황정음이 SNS에 남편의 상간녀로 추정되는 여성 A 씨의 얼굴과 SNS 계정이 드러나는 사진을 올려 공개적으로 저격한 것이 문제였다. 황정음은 이 글에 "제발 내 남편과 결혼해 주겠니"라며 "추녀야. 영돈이랑 제발 결혼해 줘"라는 비아냥 섞인 글까지 덧붙였다. 이후 황정음이 저격한 A 씨가 남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반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A 씨는 "황정음이 저격한 이영돈 상간녀 아니다. 이영돈이 뭐 하는 분인지도 몰랐고, 그분도 제 존재 자체를 모를 것"이라며 황당해했다. 또 A 씨의 지인도 "아무 잘못도 연관도 없는 제 친구 사진이 이미 여기저기 퍼져서 악플이 달리고 있다. 일반인도 아니고 공인이 일반인 얼굴 올리며 저격하는 게 맞는 건가. 아니라는 정정 사과 게시글 올려달라"며 황정음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법적 대응 의사를 밝혔다. 결국 황정음은 직접 사과에 나섰다. 그는 "개인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 제가 무관한 분을 남편의 불륜 상대로 오해하고 일반분의 게시글을 제 계정에 그대로 옮기고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용어들을 작성했다"라고 설명하며 "그로 인해 악플을 받고 당사자와 그 주변 분들까지 추측성 내용으로 큰 피해를 받게 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황정음의 소속사 역시 같은 날 공식 입장문을 배포하고 "황정음의 개인 SNS 게시물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책임을 통감하며 "개인 잘못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황정음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SNS에 무작정 올린 글 하나로 인해 전혀 상관 없는 누군가가 큰 피해를 봤다. 이는 명백히 황정음의 잘못이다.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받았을 상처를 걱정하며 황정음을 응원하던 이들도, 이번 신중치 못한 그의 행동에 질책을 쏟아냈다. 거듭된 해명이 '긁어 부스럼' 만든 한소희 당당한 열애 인정에서 '환승연애' 논란만 남기고 헤어진 배우 한소희와 류준열, 그리고 혜리의 사건도 잘못된 SNS 사용이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붓는 꼴이 됐다. 한소희는 지난달 15일 류준열과의 하와이 데이트가 포착되자 열애를 인정하며 당당한 행보를 보였다. 그런데 이후 류준열의 전 연인이었던 혜리가 SNS에 "재밌네"라고 글을 올리면서, 두 사람의 결별 시기를 두고 '환승연애' 의혹이 제기됐다. 한소희는 '환승연애' 의혹을 적극 해명했지만, 칼 든 강아지 사진과 "저도 재미있네요"라고 혜리를 의식한 듯한 글을 올려 논란을 키웠다. 한소희는 이후에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계속 장문의 해명 글을 올리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긁어 부스럼이었다. 혜리도 SNS에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사연을 흘렸다. 그는 "지난해 11월 (류준열과) 8년간 연애를 마친다는 기사가 났다. 직후에도 우리는 '더 이야기를 해보자'는 대화를 나눴지만, 어떠한 연락과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며 "4개월 뒤 새로운 기사(류준열-한소희 열애설)를 접하고 나서의 감정은 배우 이혜리가 아닌 이혜리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라고 마치 류준열이 자신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자 한소희는 또 의혹에 반박하는 글을 SNS에 올리며 환승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한소희는 자신의 행동이 경솔했던 것에 사과하면서도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헤어진 연인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점에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묻고 싶다. 왜 재회 목적이 아닌 문자 내용을 마치 미련이 가득한 문자 내용으로 둔갑시켜 4개월 후 이루어진 새로운 연애에 환승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놓고 아무런 말도 안 하는지"라며 혜리를 향한 가시돋친 마음을 드러냈다. SNS로 오갔던 두 사람의 설전에 류준열은 침묵했다. 이를 겨냥한 듯 한소희는 "당사자인 본인은 입 닫고, 저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데"라는 글까지 올리며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한소희와 류준열은 열애를 공개한 지 2주 만에 결별을 발표했다. 당당하고 솔직한 매력으로 MZ세대가 열광하는 톱스타였던 한소희, 하지만 뭐든 과유불급이다. SNS로 억울함을 적극적으로 해명하려 했던 한소희는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로 오히려 자신의 이미지만 갉아먹는 꼴이 됐다. 친구의 노출 사진 공개로 논란 자초한 채영 그룹 트와이스 멤버 채영과 가수 전소미는 무인 포토부스에서 속옷을 노출한 채 사진을 찍은 것이 문제가 됐다. 이는 누군가 이들을 목격하고 폭로한 게 아니다. 채영이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으로 인해 스스로 논란을 자초한 사건이다. 채영은 지난 3일 자신의 SNS에 절친 전소미와 데이트를 했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사진에는 두 사람이 편안한 복장으로 함께 한 순간들이 담겼는데, 무인 포토부스에서 찍은 사진들 중 하나가 문제였다. 두 사람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상의를 걷어 올리며 사진을 찍었는데, 전소미는 아예 속옷이 노출된 상태였던 것. 채영은 이 같은 게시물을 올린 지 20분 만에 해당 사진을 삭제했으나, 이미 사진은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간 후였다. 사진을 접한 누리꾼들은 비판을 쏟아냈다. 최근 무인으로 운영되는 포토부스에서 노출 사진을 찍는 이용자가 늘며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고 있는 가운데, 아이돌 멤버가 이런 행동을 하고 SNS에 공개까지 했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채영과 전소미는 11년간 우정을 쌓은 절친 관계다. 무인 포토부스에서 둘만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어떤 사진을 찍었든, 설령 그게 비상식적인 행동이었을지라도, 그냥 '개인 소장'만 했더라면 아무도 모르게 넘어갔을 일이다. 하지만 채영의 신중치 못했던 SNS 활동이, 자신은 물론 절친 전소미까지 욕을 먹는 논란을 만들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김새론의 '셀프 열애설' 실수(?)로 올린 SNS 게시물로 역풍을 맞은 스타는 또 있다.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후 연예계에 제대로 복귀를 못하고 있는 배우 김새론이 새벽녘 SNS에 배우 김수현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가 '빛삭'(빛의 속도로 삭제)한 일이 있었다. 지난달 24일 김새론은 자신의 SNS에 김수현과 볼을 맞대고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가 3분 만에 삭제했다. 하지만 해당 사진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이들의 열애설로 번졌다. 김수현은 현재 tvN '눈물의 여왕'의 흥행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여심을 사로잡고 있는 김수현의 열애설은 팬들은 물론 드라마에 몰입한 애청자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그런 열애설의 발단이, 김새론의 SNS였다. 김수현 측은 즉각 진화에 나섰다. 소속사 골드메달리스트 측은 "김수현의 열애설은 사실무근"이라며 "온라인상에 퍼져 있는 사진은 과거 (두 사람이) 같은 소속사였을 당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김새론의 이러한 행동의 의도는 전혀 알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소속사는 "해당 사진으로 인해 배우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이 난무하고 있는 상태다. 배우의 인격과 명예를 훼손하고 악의적인 비방과 모욕적인 게시물에 대해서는 법률대리인과 법무법인을 통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새론이 어떤 의도로 해당 사진을 SNS에 공개했는지 알 수 없다. 그는 논란 이후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김새론의 'SNS 셀프 열애설'로 인해 김수현은 사생활 유출 피해자임에도 이미지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SNS는 인생의 낭비" 신중한 자세 필요 지난 2011년 알렉스 퍼거슨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소속 선수인 웨인 루니가 트위터에서 한 팔로워와 설전을 벌인 사건을 두고 SNS를 하느니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으라며 "시간 낭비"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 퍼거슨 감독의 말은 이후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말로 정리돼 명언처럼 여겨지고 있다. 스타들의 SNS 활동에 대해 소속사도 크게 관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데뷔 초에나 개인 계정이 아닌 소속사가 직접 관리하는 SNS 계정을 이용하게 했지, 인기가 많아지고 성장한 스타에게 SNS 활동을 못 하게 막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소속사들이 소속 연예인들의 SNS 논란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하고 사후 대처만 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직접 SNS를 하는 만큼, 스타들은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게시물을 올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팬과의 소통을 SNS가 아닌, 팬 사이트를 활용해 한 번 더 정제해 글을 올리는 방식도 있다. 또 아예 SNS를 하지 않는 스타들과 그 이유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배우 공유는 소속사가 운영하는 SNS는 있지만, 개인 계정은 없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SNS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인터넷이나 SNS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믿지 않는 편"이라면서 "SNS를 통해 사생활을 공개하면 얻는 것도 있겠지만 잃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국민MC' 유재석 역시 SNS를 하지 않는다. 그는 과거 SBS '런닝맨'에서 임시 계정으로 SNS를 이용해 본 후 "SNS를 해보니까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재미를 인정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SNS를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그 이유에 대해 유재석은 "SNS를 하게 되면 그 재미에 푹 빠져서 하루종일 다른 일을 못 할 것 같아 아예 시작하지 않겠다"라고 설명했다. SNS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배우 박보영 역시 소속사와 같이 운영하는 공식 SNS 계정만 가지고 있다. 박보영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보기보다 성격이 진중치 못해서 SNS를 안 한다. 내 자신을 못 믿는다. 또 생각보다 감정적이고 욱하는 편이라 자제한다. 대신 일기를 쓴다"라고 개인 SNS를 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바 있다. 디자인 : 박수민
SBS 드라마 편성 슬롯에서는 현재 금토드라마만이 남아있다. 유일하게 드라마를 편성하는 시간대인 만큼 여기에 어떤 드라마를 넣느냐, 많은 이들의 심사숙고가 뒤따른다. 그동안 'SBS 금토드라마'로 편성돼 성공한 작품들이 많은데, 특히 '열혈사제', '모범택시' 등 정의를 구현하는 액션 히어로가 등장해 사이다 같은 통쾌한 매력을 선사한 작품들이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난 23일 종영한 '재벌X형사'는 그런 '사이다 히어로' 장르의 명맥을 잇는 작품이었다. 철부지 재벌 3세가 강력팀 형사가 되어 자신이 가진 돈, 인맥, 권력 등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해 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드라마 제목처럼 재벌이자 형사인 주인공 진이수 역할은 배우 안보현이 맡았다. '열혈사제'의 김남길, '모범택시'의 이제훈은 타이틀 롤을 여러 번 맡았던 이름값이 상당한 남배우들이다. 그에 비해 안보현은 냉정히 말해 연기 경험도 주연 경력도 짧다. 그래서 그가 이 '재벌X형사' 타이틀 롤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SBS 금토드라마의 명성이 갖는 무게감을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우려가 나왔다. 게다가 '재벌X형사'는 안보현 외에도, 주요 배역들을 신인급 배우들로 채웠다. 안보현의 진이수 캐릭터와 함께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는 극중 강하경찰서 강력1팀 멤버들이 박지현, 강상준, 김신비 등 30대 초반의 젊은 배우들이었다. 배우들의 구성이 대중적 인지도에서 약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젊음의 패기와 열정이 넘쳤던 이들은 우려의 시선 속에서 더 똘똘 뭉쳤다. '재벌X형사' 촬영장에서뿐만 아니라, 사적으로 만남의 자리를 계속 만들며 캐릭터 분석과 팀워크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유독 탄탄했던 팀워크로 촬영 중간에 모든 배우, 스태프들이 1박 2일 MT를 가기도 했다. 회식 자리 한 번 마련하기 힘들어하는 드라마 촬영장도 있는데, '재벌X형사' 팀의 유대감은 확실히 남달랐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됐던 시간들은 드라마 분위기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1회 시청률 5%대로 시작했던 '재벌X형사'는 재벌 형사 진이수와 강력1팀의 앙상블이 호응을 얻기 시작하며 시청률 상승세를 이끌었고, 결국에는 두 자릿수 시청률 돌파라는 준수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 중심에 있었던 안보현은 이제 와서 말하지만,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시즌2 제작을 강력하게 염원한다.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재벌X형사' 시즌2 꼭 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잘할 수 있을까' 압박감 컸던 주연 자리 평소 집에서 다양한 드라마를 챙겨본다는 안보현은 'SBS 금토드라마'가 가진 명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자신이 들어가 연기를 펼친다는 것에 큰 압박감을 느꼈다. "저한테 정말 높은 자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편성됐을 때부터, 거기에 제가 나온다고 생각하니 설렘보다 걱정이 더 컸어요. SBS 금토드라마에 사이다적 요소의 장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아니까. 많은 분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이게 잘못되면 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불안했죠.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수요층이 있는 금토드라마에서 제가 잘할 수 있을까란 압박감이 컸어요.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아마 티가 났을 거예요. 굉장히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안보현은 '재벌X형사'의 전개를 이끄는 주요 캐릭터들 중에 나이로도 맏형이었다. 주인공이자 가장 연장자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상당했다. "제가 컨디션이 저조하거나, 감기가 걸린다거나,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설령 아프다 해도, 그 아픔을 표현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죠. 진이수가 텐션이 높은 캐릭터라, 주변 모두가 절 도와주려 했어요. 제가 뭘 하든 스태프들이 다 같이 박수치며 환호해 줬죠. 그런 분위기니까, 제가 더 관리를 잘못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원래 걱정이 많은 편이라는 안보현은 그래서 자신에게 더 엄격하다.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로 이어진다. 그렇게 최선을 다한 덕인지, '재벌X형사'는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인정을 받았다. 이제야 안보현은 한시름 놨다고 말한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고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한 거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뿌듯한 마음보단, 한시름 놨다는 느낌이에요. 감개무량해요. 주변 지인들이 제가 나온 드라마를 다 보진 않는데, 이건 진짜 많이들 봤더라고요.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냐는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행동은 밉상, 내면은 따뜻'…한국 드라마서 본 적 없는 재벌 캐릭터 재벌은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지만, '재벌X형사'가 그리는 재벌 이야기는 다른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 재벌이 죄를 저지른 다른 재벌을 때려잡는데, 그 과정에서 재벌이라 돈의 힘을 마음껏 이용한 '플렉스(Flex) 수사'를 펼친다. 범인을 잡기 위해 헬기를 띄우고, VIP만 출입 가능한 곳에 마음껏 드나들며 악을 소탕한다. 이 만화 같은 이야기가 주는 짜릿한 쾌감이 '재벌X형사'의 묘미다. 하지만 아무리 판타지적 매력이라도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지게 느껴진다면 몰입하기 힘들다. 안보현은 이 비현실적인 재벌 형사 진이수 캐릭터에 어떻게 숨결을 불어넣으려 했을까. "대본을 읽었을 때 진이수는 호불호가 갈리는 캐릭터라 봤어요. 골 때리고 밉상스러운 행동을 해서 안 좋게 볼 수도 있는 반면, 연민이 있고 내면적으론 따뜻한 인간미가 있다고 생각했죠. 재벌 캐릭터에는 정석으로 자리 잡힌 이미지가 있어 모티브를 찾는 게 힘들었어요. 전 그 방향성을 다르게 가고 싶었거든요. 초반에는 자기의 재력을 써가면서 노는 데 진심인 진이수가 어쩔 수 없이 형사가 되고, 이후 수사에 재미를 느껴가는 과정을 드라마로 풀어내면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재벌이 형사를 한다면, 재력을 이렇게 활용하면 대박이겠다' 싶은 것들을 재미있게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았어요. 판타지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또 마냥 판타지적인 모습만은 아니었다고 봐요. 이수가 정의구현을 자기가 가진 재력으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해결하는데, 무연고 시신의 장례를 치러주고, 억울하게 죽은 미술 작가의 전시회를 열어주는 에피소드를 보면, 안에서 우러나는 연민이 있는 아이예요. 이수의 그런 좋은 면들에 다가가려 했어요." 안보현의 말대로 재벌의 재력을 이용해 시원시원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진이수만의 플렉스 수사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이를 연기로 표현해야 했던 안보현은 보다 더 실감 나는 연기를 위해 직접 요트 조종면허까지 취득했다. "이수가 요트를 모는 장면을 대역으로 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제가 직접 따겠다고 했어요. 일주일 동안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빠지지 않고 가서 교육을 받아 면허를 땄어요. 그리고 실제로 요트를 운전하는 연기를 하는데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고요. 캐릭터를 준비하며 몸을 만든다거나 머리카락을 붙인다거나, 그런 준비는 해봤지만 이런 자격증 취득은 또 다른 경험이라 재미있었어요. 앞으로 언제 또 요트를 운전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웃음)" 진이수가 되기 위한 외적 노력도 이어졌다. 노는 데 진심인 철부지 재벌 3세 진이수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고, 그 결과 올백 머리에 앞머리 두 가닥을 내린 일명 '탕후루 머리'와 요란한 진이수 패션이 탄생했다. "진이수의 외모를 봤을 때 '밉상'으로 보이게끔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며칠 동안 헤어를 올렸다 내렸다 하다가, 위로 고정하고 앞머리 두 가닥만 눈썹에 붙이는 '탕후루 머리'가 나왔어요. 의상도 거의 맞춤 제작이었는데, 여름에 하와이에서 입을 법한 화려한 옷에 허리라인이 잡힌 나팔바지 같은 걸 입었어요. 진이수는 슬림핏이 맞는 거 같아, 근력 운동을 안 하고 유산소 운동만 해서 근육을 줄이고자 했죠. 기존에 '이태원 클라쓰'나 '군검사 도베르만'에서 했던 빵빵한 수트핏이 아니라, 슬림하게 보이고자 했어요. 여태껏 TV에서 봤던 재벌 캐릭터와는 조금 다른 색깔을 주고 싶어 그런 식으로 캐릭터를 구축했어요." '탕후루 머리'를 고정하기 위해 스프레이를 하루 한 통씩 썼다고 한다. 과한 사용에는 부작용이 따르는 법. 안보현은 "많은 머리카락과 모낭을 잃었다"고 농담하며 웃어 보였다. "한 5회차 정도 찍었을 때, '이거 잘못됐다' 생각했어요. 이런 머리스타일이 이수를 겉만 봤을 때 재수 없어 보이게 할 것 같아, 여러 번의 테스트 후에 제가 고집한 머리예요. 그런데 5회차 촬영쯤 되니까 눈썹에 땜빵이 생기고, (과한 스프레이 사용 때문에) 머리는 감아도 뻑뻑하고 베개에 먼지가 묻더라고요. 린스를 세 번씩 해야 했어요. 머리카락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촬영들이 섞여 있으면, 근처 동네 미용실까지 다니며 하루에 머리를 다섯 번까지 감아봤어요. 너무 힘들었죠. 그래도 그 '탕후루 머리'가 아니었다면, 많은 분들에게 이수로서 각인되기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은 하루에 한 번만 머리를 감으며, 최대한 두피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관리하고 있어요." '재벌X형사' 시즌2를 바라며 '재벌X형사' 팀의 큰형으로서 안보현은 팀워크를 다지는 자리를 앞장서 마련했다. 특히 극 중 '강력 1팀' 팀원으로 묶인 박지현, 강상준, 김신비와는 식사도 운동도 같이 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재벌X형사'는 진이수가 강력1팀 멤버들과 사건 현장에서 함께 몸으로 부딪치며 조금씩 '원팀'으로 인정받아 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만큼 강력1팀 구성원들끼리의 연기 호흡이 중요한데, 배우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결속력을 다졌다. "저희가 다른 드라마보다 사석에서 만나는 자리가 유독 많았어요. 강상준, 김신비 배우를 저희 집에 데려와 운동시키고, 밥 먹이고, 그런 게 일상이었죠. 같이 등산도 가고, 술 한잔도 하며,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재밌었어요. 제가 나이가 많아 그 친구들이 저한테 의지한 것도 있고, 반대로 저도 그 친구들한테 큰 힘을 얻었어요. 제가 인복이 있죠. 신인인 친구들이지만, 독립영화와 연극을 오래 해서 내공이 어마어마해요. '재벌X형사'로 얼굴을 알리게 된 거 같아 제가 기뻐요. 박지현 배우는 여자 형사를 연기하며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전 지현 배우의 연기가 좋았어요. 그런 무난함 속에서 나오는 연기, 편안함에서 연민까지 느껴지는 그런 연기가 좋더라고요. 제가 많이 의지하며 기분 좋게 촬영했던, 좋은 파트너였어요." 안보현이 '재벌X형사' 팀에 애정이 큰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재벌X형사'의 홍승혁 촬영감독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그는 데뷔작이었던 영화 '히야'의 촬영감독이었던 홍 감독과 '재벌X형사'에서 재회했다. "'히야'를 촬영할 때가 제가 가장 힘들 때였어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촬영을 했는데, 촬영감독님이 그걸 아시고 저를 촬영 후 스태프들만 모이는 자리에 불러 밥을 사주고 그러셨어요. 그분들도 그땐 힘드셨을 텐데, 저를 챙겨주셨죠. 그런 슬픈 추억이 있어요. 이후 감독님은 '모범택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악귀' 등의 작품을 찍으며 어마어마한 분이 되셨죠. 그리고 '재벌X형사' 대본 리딩 때 감독님을 만났는데, 눈물이 날 거 같더라고요. 감독님이 저를 계속 응원하고 있었다며 '우리 아내가 너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하시더라고요. 촬영장에서 저한테 힘을 많이 실어 주셨고, 좋은 조언들도 많이 해주셨어요."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 안보현은 그런 촬영감독이 진두지휘하는 현장이라, 모든 스태프들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인상 찌푸리거나 언성을 높이는 사람 하나 없던 현장의 좋은 분위기가, '재벌X형사'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안보현은 '재벌X형사'의 시즌2를 꿈꾼다. 이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현장이라면, 무조건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현장에 가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 제가 처음에 작가님, 감독님한테 '끝날 때까지 스태프나 배우들 중 한 명의 교체 없이 이대로 다같이 간다면, 시즌2도 가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아마 모두가 저랑 똑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중간에 MT를 갔을 때도 다 같이 '시즌2에서 만나자'라고 장난치고 그랬어요. 모두의 스케줄을 다 맞출 수 있을지 염려되긴 하지만, 이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다시 해도 좋을 거 같아요." 어릴 적 복싱선수로 활약하다가 부상으로 그만두고, 모델 생활을 하다가 연기에 뜻을 품었다. 단역으로 시작해 2016년 영화 '히야'를 통해 정식 배우로 데뷔한 안보현은 어느덧 배우 경력이 10년 가까이 됐다. 단역, 조연, 주연 차근차근 밟아온 그는 이제 '재벌X형사'를 통해 타이틀 롤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 냈다. 항상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안보현은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올라가는 배우 인생 그래프에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전부터 '난 가지고 태어난 건 키 말고 없으니, 항상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했어요. 가지고 있는 운도 없으니 계속 움직이고 노력해야 한다면서요. 그래서 작품 하나를 하면, 쉬지 않고 뭐든 병행하려 했었죠. 그런 노력들의 결과인지 모르겠는데, 제 인생 그래프에서 크게 내려가는 것 없이 조금씩이라도 계속 올라가고 있는 거 같아 감사해요. 지금 경기가 많이 어렵다고 하는데 계속 일할 수 있음에도 감사하고요. 예전에 가족들에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니 그냥 지켜봐 달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후 가족들은 계속 무언의 응원을 보내줬죠. 그래서 더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노력했던 거 같아요. 그런 점들이 모여,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전 계속 그렇게, 노력할 거 같아요." 사진 : FN엔터테인먼트, 디자인 : 박수민
지난 10일 종영한 KBS 2TV '고려거란전쟁'은 KBS가 공영방송 50주년을 기념하며 270억 원이 넘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하사극이다.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특히 '사극 제왕' 배우 최수종이 강감찬 역을 맡아 10년 만에 대하사극으로 컴백한다는 점에서 방영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최수종이 강감찬 캐릭터를 기가 막히게 소화할 거란 건, 40년 가까운 그의 지난 연기 세월을 통해 굳이 뚜껑을 열지 않아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에 중요한 건, 최수종의 강감찬과 좋은 앙상블을 보여줘야 하는 현종 역을 어떤 배우가 맡냐는 것이었다. 19세에 왕이 된 나약한 어린 황제가 거란 침략의 대위기를 딛고 성군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최수종과 함께 '고려거란전쟁'의 한 축을 책임져야 하는 중책을 누가 맡게 될지 기대와 관심이 쏠렸다. 제작진이 선택한 그 주인공은, 당시 군대를 갓 전역한 김동준이었다. 2010년 그룹 제국의아이들 멤버로 데뷔한 후 아이돌 활동과 각종 예능에서의 활약상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였지만, 배우로서 능력치는 물음표인 그였다. 드라마 '보좌관', '경우의 수' 등에서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이긴 했으나, 김동준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이나 대표 캐릭터가 없었다. 이는 주연 배우로서의 역량을 아직 확인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총 32부나 되는 긴 호흡에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대하 사극을 그가 어떻게 이끌지, 최수종을 비롯해 베테랑 배우들이 즐비한 작품에서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각인시킬 수 있을지, 모든 게 미지수였다. 이런 기대와 우려 속에서 출발한 '고려거란전쟁'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TV 대하사극에서 보기 힘든 좋은 퀄리티라는 호평을 얻은 장면들도 있었고, "오랜만에 수신료의 가치를 했다"는 칭찬도 있었다. 반면 역사 왜곡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원작 작가가 "삼류 드라마가 됐다"며 작심하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호평과 혹평의 엇갈림 속, 양측 모두가 부정하지 못했던 한 가지는 바로, 배우들의 빈틈없는 연기력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김동준도 포함이었다. 김동준은 초반 사극에 적응하지 못한 모습으로 연기력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작품 안에서 눈에 띄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자신이 연기하는 현종 왕순처럼, 배우로서 스스로 '성장캐'가 되며 결국에는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김동준 하면, 현종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그에게 '고려거란전쟁'이란 대표작이 생겼다. "성군 현종, 내가 소개하고 싶었다" 군대를 제대할 때쯤 되면 사회에 나가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전역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고려거란전쟁' 대본을 받은 김동준도 그런 열정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그래서 걱정과 부담보단, 도전과 극복 의지가 더 뜨거웠다. "살면서 열정이 가장 최고조였을 때였어요. '고려거란전쟁' 대본을 받았을 때 먼저 감사함이 컸고, 부담은 되지만 내가 이걸 도전하지 않는다면 이 부담감을 지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그래서 선택했어요. 선배님들을 만나면서 부담을 지우기도, 다시 부담이 생기기도, 그걸 반복하며 다듬어 나갔어요. 현종이 성장하는 만큼, 저도 촬영장을 다니고 선배님들, 감독님과 소통하면서 '인간 김동준'으로서 성장한 시간이지 않았나 싶어요." 대하사극에 참여하는 배우에게는 연기할 캐릭터에 대한 공부가 필수다. 실존했던 인물인 만큼, 더 세밀하고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대중적으로 강감찬은 익숙한 위인이지만, 정작 그 시대의 왕이었던 현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이가 많다. 김동준도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현종을 접했다. 그리고 그에게 깊이 동화되며 남다른 책임감이 생겼다. "현종이란 인물을 처음 제안주셨을 때, 솔직히 그때 그 시절에 대해 제가 잘 알지 못했어요. 그리고 찾아보며, 이렇게 대단한 업적을 이룬 성군이고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을 지켜준 분인데, 이토록 몰랐다는 것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내가 감히 이런 분을 연기해도 될까, 부담도 됐고요. 최수종 선배님과 감독님을 만나며, '이분들과 함께라면 같이 그려나갈 수 있겠다', '한 번 해보자'는 힘을 얻었어요. 그리고 가장 크게 든 생각은, '내가 드라마를 통해 현종을 대중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다',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실존 인물이자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을 연기한다는 게 부담감이 컸지만, 그래도 연기하는 순간순간 그 부담감을 놓지 않으려 했어요. 그래야 더 잘 설명하고, 잘 소개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김동준은 시청자의 피드백도 꼼꼼히 확인했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모두 작품에 대한 애정이라 받아들였다. 역사에 조예가 깊은 시청자들은 현종의 업적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에 대해 풀어냈다. 김동준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 연기에 적용하기도 했다. "저도 계속 찾고 공부했지만, 그 이상의 정보들을 댓글 같은 걸로 알려주는 분들이 있었어요. 너무 감사했죠. 그중에 제가 드라마에 표현한 부분이 있어요. 귀주대첩이 끝나고 연회장에서 현종이 강감찬 장군의 손을 놓지 않아서, 장군이 한 손으로만 술잔을 들었다는 일화가 있대요. 드라마에서 연회 장면이 나오진 않았지만, 제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강감찬 장군의 손을 일부러 계속 잡고 있었어요. 그렇게라도 그런 일화가 표현되면 좋겠다 싶어서요." 김동준이 그린 현종의 '성장' 극 중 현종 왕순은 어릴 적 절로 쫓겨나 자라다가 19세의 어린 나이에 고려 황제에 즉위한다. 처음에는 연약하고 미숙한 왕이었으나 강감찬의 도움을 받으며 점차 자주적이고 강인한 군주로 성장해 나가고, 결국에는 거란을 몰아내고 내부 결속을 다지며 고려 번영의 기틀을 마련한다. 32부에 걸쳐 진행되는 현종의 이런 성장 대서사를 그리기 위해, 김동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접근했다. "왕이 되기 이전, 왕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진정한 왕의 모습을 보이기까지. 다른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초반 왕순을 연기하며 감독님과 얘기했던 게 '지금 왕이 되면 안 된다', '내 모습은 왕이 아니라, 패기 넘치는 10대일 뿐이다'라는 거였어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그 생각을 했어요. 그래야 32부작을 찍으며 변화 폭이 크게 느껴질 거라 여겼죠. 처음 절에서의 모습, 궐에 들어온 후의 불안감, 왕이라기에 미숙한 모습들, 그러다 하나하나 배워가며 나중에 진짜 왕이 되기까지, 그 변화를 잘 그려내고 싶었어요. 처음엔 신하들 앞에서 소극적이고 불안하게만 보였던 현종이 마지막에는 왕답게 명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목소리와 발성에도 변화를 줬어요." '고려거란전쟁' 방영 초반, 김동준의 연기가 최수종, 이원종(강조 역) 등 중견 베테랑 배우들의 무게감있는 연기와 어울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현종의 초반 캐릭터가 미숙한 10대의 모습이라 더 그렇게 보인 것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현대극 위주로 연기해 온 김동준이 대하 사극 스타일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김동준은 자신의 연기를 향한 이런 비판적인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흐름대로 가고자 했다. "그렇다고 뭔가 더 다르게 하거나, 일부러 바꾸려 하진 않았어요. 그때도 현장에서 촬영을 계속하고 있던 터라, 흔들리거나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신에 집중해 잘 만들어내는 게 우선이었으니까요. 변화는 극 안에서 일어나니까, 왕순의 변화에 맞춰 그 흐름대로 가고자 했어요. 다행히 시청자분들도 나중에는 '이 친구가 그래서 이랬구나' 공감해주신 거 같아요." 현종이 정전에 설 때면 문무백관 노장들이 허리를 숙이고 예를 갖춘다. 그 앞에서 현종은 정치적 이견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두려움과 절망감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린 현종이 아버지뻘 신하들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실제 김동준의 상황도 조금은 유사했다. "선배님들 앞에서 연기하는 게 처음에는 부담됐는데, 그게 왕순의 처지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갑작스럽게 왕이 돼 신하들 앞에 선 어린 왕순이 긴장하고 날이 서 있는 그런 모습들이요. 그래서 처음 정전에서 많은 선배님들과 연기할 때, 오히려 그 부담감을 이용해 왕순에게 붙여 연기하려 했어요." 결국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대선배들을 대하는 게 부담이라면 현장에서 계속 부딪치면서 편함을 찾아야 하고, 연기에 어려움이 생긴다면 이 역시 현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며 풀어가야 한다. 현장의 경험은 배우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 기회다. 그리고 그 현장에 최수종 같은 배우가 있다면, 그곳은 양질의 배움터가 된다. "교과서 같은 최수종 선배님이 계시니까, 많이 여쭙고 배워야겠단 생각이 컸어요. 최수종 선배님이 강감찬을 해주셔서 제가 현종이란 인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정말 매 신마다 여쭤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여쭌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해요. (웃음)" 아버지 같은 은인 최수종 김동준은 최수종과 만나는 신마다 자신이 준비해 온 연기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그때마다 최수종은 "이런 부분은 좋다", "이렇게 하는 게 더 왕순스러울 거 같다"며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줬다. 발성이나 발음 같은 기술적인 면에서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발성이나, 장단음에 대한 차이도 알려주셨어요. 현대물에서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지만, 대하 사극에서는 장단음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 부분을 좀 더 깨우친다면 연기를 준비하는 데 훨씬 더 편안해질 것이라 말해 주셨죠. 그래서 그 부분들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연기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배웠지만, 무엇보다 김동준은 최수종의 마음가짐과 태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최수종 선배님의 SNS에 '선한 영향력'이라 쓰여 있는데, 그걸 제가 눈으로 봤어요. 선배님은 제가 질문할 때마다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도와주고 알려주려 하셨어요. 보조출연자분들한테도 먼저 다가가 분위기를 풀어주려 하셨고요. 한 번은, 굉장히 더운 날 전쟁 장면을 촬영하느라 모두가 지쳐 있는데, 선배님이 갑자기 검차 위에 올라가 무기 하나를 달라고 하더니 모두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시더라고요. 거기서 힘을 얻어 다 같이 더 으쌰으쌰 하며 촬영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그런 선배님의 모습이 군사들을 이끌어 가는 리더 강감찬의 모습과 흡사해 보였어요. 저도 선배님의 그런 태도를 본받아 따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또 선배님은 NG가 없어요. 대사가 아무리 길어도 흐트러짐이 없으시죠. 촬영장도 항상 30분씩 일찍 오세요. 이렇게 먼저 모범을 보여주시니, 저희 후배 연기자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어요." 현종에게 강감찬은 정치적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다. 김동준은 그런 현종과 강감찬의 관계성을 최수종에게서 느꼈다며 큰 존경심을 표했다. "최수종 선배님은 저한테 정말 은인이세요. 현종의 대사 중에 강감찬에 대해 '때론 아버지 같고, 때론 승리에 미친 광인 같다'고 설명하는 게 있어요. 김동준이란 사람에게 최수종 선배님은 정말 아버지 같아요. 장난기가 엄청 많아 친구 같기도 하고, 너무 편하게 대해 주시죠. 또 연기에 미친 광인 같기도 해요.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절대 촬영장에서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어요. 연기할 때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선배님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어요." 논란도 있었지만… '고려거란전쟁'은 16부를 기점으로 외세 침략보다 내부 정쟁에 집중하며, 현종을 말 안 듣는 금쪽이처럼 그린 전개, 궐내 여인들의 신경전, 박진이란 가공의 인물이 주축이 된 반란 등에 '고려궐안전쟁', '고려박진전쟁'이라는 오명을 들으며 원작소설 작가와 역사 왜곡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또 마지막 32부에서 선보인 대망의 귀주대첩이 비와 함께 갑작스럽게 종료된 상황에 '우천취소전쟁'이라는 불명예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화제만큼 논란도 많았던 '고려거란전쟁'. 밖에서 어떤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작품에 참여한 배우는 흔들림 없이 맡은 소임을 잘 해내는 게 일이다. 김동준도 그저 현장에 집중하려 했다. "'고려거란전쟁'을 작년 5월부터 촬영을 시작해 지난주, 마지막 방송이 있는 주까지 쭉 찍었어요. 그렇게 계속 촬영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지금 이 신을 완성도있게 만들어가는 게 우선이었죠. 무언가에 흔들리고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찍는 이 신만을 바라보고, 이 신에 집중하는 거.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그게 맞는 거 아닌가요?" 작품과 대본에만 집중하고자 했던 김동준은, 현종에 푹 빠져있었다. 1년 동안 이어 온 촬영을 종료한 지 일주일밖에 안 돼 아직 현종에 대한 몰입감이 남아있을 수도 있지만, 그 옛날 현종이 왕으로서 어떤 고통을 느꼈을지, 그 아픔까지 공감하고 있었다. "현종을 연기하며, 몽진길도 떠나고, 난도 일어나고, 실질적인 공격도 받아봤는데요. 실제 현종은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지속적으로 화병이 있었을 거 같아요. 단명의 이유에 그런 부분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성군이 되기 전까지 그를 바라보는 신하들의 시선, 백성들의 원망의 눈초리. 그런 게 얼마나 이 인물에게 힘듦이 됐을까, 어떻게 이걸 버텨냈을까, 마음이 아팠어요. 그걸 극복하고 평화를 가져온 인물이잖아요. 그런 걸 느끼니, 내가 하루하루 감사히 살아야겠단 생각도 했어요." 군 전역을 앞두고 벌크업을 해서 체격이 컸었다는 김동준은 여린 왕순을 연기하기 위해 다시 살을 뺐다. 마지막 촬영 때 측정해 보니 전보다 8kg이나 감량한 상태였다는 그는 생활 전반을 '고려거란전쟁' 촬영에 맞췄다. "공진단을 열심히 챙겨 먹고, 먹는 것에 신경 쓰며 건강 관리를 했어요. 사계절을 다 겪으며 촬영하는 작품인데, 제가 감기가 걸리거나 아프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아픈 순간 촬영에 누가 되니까요. 운동도 격하게 안 했어요. 축구를 너무 좋아하는데, 혹시라도 다칠까 봐 축구도 참았어요. 주로 걷기 운동만 했죠." 현종과의 작별, 연기 변신에 대한 기대 대하 사극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효과는 확실히 나타났다. 김동준은 요즘 밖에 나가면 "폐하"라며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고, 식당에서는 계란프라이 서비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그런 현종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다. "'고려거란전쟁'은 촬영 현장이 정말 좋았어요. 사계절을 다 겪으며 오랜 기간 찍어 전우애 같은 것도 생겼고요. 종방연 날 스태프들이랑 다 같이 울며 아쉽다고 했어요. 그렇게 재밌는 현장 분위기를 만들어준 게 최수종 선배님이었어요. 현장의 모든 분들께 항상 상냥했고, 배려해 주셨죠. 선배님 덕분에 모두 행복하게 웃으면서 촬영했던 현장이었어요. 오늘 아침에 나올 때도, 문경 세트장에 촬영하러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종영 소감을 얘기하다 보니, 이제 진짜 드라마가 끝났다는 게 피부로 느껴져요. 진짜 현종이란 인물을 저한테서 떠나보내야 하는 시점이 왔네요." 김동준이 현종을 연기하며 제국의아이들이 왕을 네 명이나 배출한 아이돌 그룹이라는 농담이 나왔다. 김동준에 앞서 박형식은 '화랑', 임시완은 '왕은 사랑한다'에서 왕 역할을 연기했다. 그리고 웹예능 '네고왕'의 황광희까지 '왕'으로 계산한 농담이었다. 온라인에서 유머로 화제가 된 이 내용을 김동준도 알고 있었다. 그는 제국의아이들 멤버들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컸다. "다들 촬영을 하고 있어서 실제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통화를 자주 해요. 시완이 형이 '고려거란전쟁'을 보고 '작품 잘 선택한 거 같다', '더운데 고생 많겠다' 그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이런 얘기를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아요. 제가 17살에 서울에 와서, 거의 삶의 반을 만나고 같이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큰 고마움이 있어요. 가족들한테 얘기 못 할 일들도 편하게 나눌 수 있어요. 같은 고민을 하는 나이대이고, 상황들이 비슷해서, 좀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1년이나 사극을 촬영했으니, 당분간 사극 작품은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하자 김동준은 "아니다. 불러 주시면 할 거다"라고 힘줘 말하며 눈을 빛냈다. 과거 여러 예능에서 넘치는 '열정'으로 주목받았던 그의 모습들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작품의 크기와는 상관없어요. 절 찾아 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죠.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다른 모습이 있다면, 연기 변신을 할 수 있는 작품이 있으면 좋겠어요. 1년이란 시간 동안 현종으로 살았으니,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게 앞으로의 제 계획이기도 해요. 매번 다른 인물로서 찾아뵙는 게, 제가 연기하면서 이뤄나가야 할 목적지가 아닐까 싶어요." 사진 제공 : 메이저나인 디자인 : 박수민
“먼저 배우로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것에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최근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 속에 종영한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이하 ‘내남결’).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 강지원 캐릭터로 분해 시원한 복수극의 재미를 선사한 배우 박민영은, 드라마 종영 기념 인터뷰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사과 인사부터 건넸다. 지난 2년간 전 남자친구와 관련된 사건으로 경제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검찰 참고인 조사까지 받았던 박민영은, 드라마 인터뷰 자리에서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기자들을 마주했다. 박민영은 지난 2022년 연인으로 알려진 강모 씨의 횡령·배임 의혹 사건으로 구설에 올랐다. 강 씨가 불법, 편법적인 방법으로 모은 막대한 재산으로 박민영에게 경제적 지원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고, 강 씨의 범죄 혐의와 관련해 박민영은 검찰 참고인 조사까지 받았다. 논란이 불거진 당시 박민영 측은 강 씨와 즉각 이별했다고 밝히며 “상대방으로부터 많은 금전적 제공을 받았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박민영의 친언니가 강 씨가 소유했다고 의혹을 받는 회사에 사외이사로 등록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외이사에서 자진 사임하며 더 이상 강 씨와 엮이는 것을 경계했다. 논란 이후 박민영은 계속 결백을 주장했지만, 이미지 타격은 피할 수 없었다.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들로 인해, 그가 배우로서 다시 작품에 들어가는 건 꽤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박민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차기작 캐스팅 소식을 전했다. 그게 바로 ‘내남결’이었다. 빠른 복귀, 인터뷰 강행… 정면돌파의 이유 ‘내남결’ 성공의 기쁨만 누리고, 불편한 질문과 대답이 오갈 게 뻔한 언론 인터뷰를 굳이 진행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박민영은 자신의 의지로 ‘내남결’ 종영 인터뷰를 강행했다. “제 실수는 제가 바로 잡고 싶고, 더 많은 분들께 제 진심을 전하고 싶어 이 자리를 마련했다”라면서 정면돌파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저한테 있었던 그 불미스러운 일을, 결코 없던 일로 만들고 싶은 건 아니에요. 실수를 제대로 정확하게 인정을 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배우로서의 활약이 필요했어요. 빨리 복귀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제가 드라마를 안 했다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이런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잖아요. 어찌 보면 제가 ‘배우 박민영’을 이용했을 수도 있어요. ‘인간 박민영’이 드리고 싶은 말은, 지난 20년 동안 치열하게 노력해 온 ‘배우 박민영’의 모습을 발판 삼아, 그걸 이용해서라도,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말을 드리고 싶었어요. 전 연기할 때 제일 행복해요. 진짜 재밌고, 살아있음을 느껴요. 이렇게 바닥을 한 번 치고 나니까, 뭔가 신인이 된 느낌이고 아무것도 없는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내남결’은 제 첫 작품 같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논란이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새 작품 캐스팅 소식을 전한 박민영을 두고 “멘탈이 정말 강하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박민영은 왜 그런 소리까지 들어가며 ‘내남결’을 해야만 했는지, 당시의 속사정을 전했다. “제 멘탈은 여느 누구와도 똑같아요. 저도 그때 많이 부서지고 있었어요. 가장 달라졌던 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었어요. 자꾸 깜짝 놀라고, 모든 게 의심스러웠어요. 정신 상태가 많이 무너진 상황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제가 ‘내남결’을 붙들고 있더라고요. 사실 대본을 보고 재밌는 작품이라 너무 하고는 싶었지만, 당시에는 여력이 안 되고 용기가 안 나서, 정중하게 거절할 생각으로 제작진 미팅에 나갔어요. 휴가를 떠나 머리를 식히고 올 계획을 말하니, 감독님이 ‘휴가 가서도 차기작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작가님, CP님, 제작사 대표님 등 모든 분들이 ‘이 작품은 박민영 아니면 안 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게 계속 저한테 용기를 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그래서 멘탈을 부여잡게 됐어요. 이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적어도 이 분들한테만이라도 제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배우도 배우지만, 드라마의 성패 여부는 제작에 막대한 금전을 투자하는 제작진에게 더 치명적이다. 논란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박민영을 여주인공으로 발탁한다는 건, 제작진으로서 시작부터 리스크를 안고 가는 모험이다. 그런데도 ‘내남결’ 제작진은 ‘강지원은 박민영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섭외에 나섰다. ‘내남결’의 강지원은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고, 심지어 남편 박민환(이이경 분)과 절친 정수민(송하윤 분)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순간 그들의 손에 죽음을 맞는 비극적 인물이다. 강지원은 죽음 후 10년 전으로 회귀해 자신을 죽이고 이용한 자들에게 복수하고, 사랑과 성공을 모두 이루며 행복한 인생 2회차를 사는 캐릭터다. “제작사 DK E&M의 김동구 대표님이 ‘지금 이 타임에 박민영이 강지원을 맡으면 좋겠다’ 생각하셨대요. 강지원은 41세까지 살다가 31세로 회귀하는 인물인데 제가 그 중간쯤이라 나이대도 괜찮고, 무엇보다 제가 그동안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지내다가 큰 벽을 만나 한 번 무너진 것이 사실이잖아요? 이런 이슈들을 통해 얻은 인간적인 감정의 폭이 있어요. 그게 연기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 같아요.” “극한의 감량… 몸은 병들었지만 기쁘게 연기” 그렇게 ‘내남결’ 촬영은 지난해 상반기에 시작됐고, 시간은 흘렀다. 그러다 대중이 ‘내남결’과 박민영에 대해 다시 인지하게 된 건 지난해 11월, 드라마 공식 스틸이 처음 공개됐을 때다. 드라마 측이 처음 공개한 스틸에는 암환자 강지원을 소화하기 위해 37kg까지 감량한 박민영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앙상하게 뼈만 남고 몰라보게 야윈 박민영의 모습은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처음엔 조금만 감량할까 했는데,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 생각했어요. 강지원을 설명하는 단어들이 ‘앙상한’, ‘메마름’, ‘푸석함’, ‘영혼 없는 눈동자’ 이런 것들이었어요. 드라마에서 1부는 굉장히 중요해요. 그걸 보고 시청자는 그 작품에 이입을 할지 말지 결정해요. 강지원이 아플 때의 모습은 초반에 짧게 나오는데 왜 굳이 체중을 뺐냐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전, 강지원에 몰입이 되어야 이 작품의 출입문이 열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확하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박민영 얼굴 왜 저래?’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빼고 싶었어요.” ‘내남결’ 대본에 쓰여있는 ‘앙상한 뼈’를 완벽히 구현했을 때, 박민영은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과도한 체중감량으로 몸은 힘든데, 연기할 때 느끼는 행복이란 감정. 박민영은 유독 이번 작품에서 그런 행복감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37kg까지 감량하는 건, 절대 할 짓이 못 돼요. 일어설 때 어지러워서 벽을 딛고 서야 하고, 일상생활이 정말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그 앙상한 뼈가 드디어 화면에 잡히는 순간, 너무 기뻤어요. 제 몸은 병들어가는 느낌인데, 그 캐릭터를 구현했다는 것이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참 아이러니하죠. 그렇게 좀 이상할 정도로, 연기할 때 좋은 게 있어요. 어지러워 계속 누워있다가 연기할 때만 일어서 가는데도, 그게 행복했어요. 그리고 메말라 있던 제 감정선이 연기를 하면서는, 화도 내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아이처럼 엉엉 울어도 보고 로맨스 할 땐 웃어도 보죠. 그런 것들이, 그냥 이젠 제 삶의 일부가 된 느낌이에요.” 당연히 박민영은 그런 극한의 체중 감량은 절대 따라해서는 안된다며, 몸이 건강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극한의 체중감량은 절대 안 돼요.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는 거라 힘이 없고, 자신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또 그렇게 마른 상태에는 거울을 보면 초라해요. 절대 따라 하면 안 됩니다. 강지원은 암환자였어요. 그래서 캐릭터에 가벼이 접근하고 싶지 않았어요. 비록 연기였지만, 몸이 너무 힘들면 얼마나 괴로운지, 미약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품을 하고 나서, 환우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기부를 해야겠다는 마음도 먹게 된 거고요.(박민영은 최근 서울아산병원 암센터에 1억 원을 기부했다.) 지금 전 다시 건강해졌어요. 제가 우울증이 조금 있었는데, 운동을 하면 우울증이 개선되고 건강해지는 게 느껴져요. 운동하면서 건강한 몸으로 사는 게 행복한 거예요.” “과한 의상은 실수 인정… 이이경-송하윤 호흡 좋았다” 극 중 강지원은 10년 전으로 회귀한 후 조금씩 과거를 바꿔가며 주체적인 캐릭터로 성장해 나간다. 박민영은 인생 2회차인 강지원이 초반에는 이전 인생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점차 변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흑화 되는 과정을 나노 단위로 쪼개서 적어놨다”며 캐릭터 분석을 얼마나 세분화했는지 밝혔다. 그의 노력대로, 강지원의 감정 변화는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다만 옥에 티가 있었다. 강지원의 의상이었다. 아무리 외모와 스타일링이 이전 삶과 180도 달라진 강지원의 극적 상황을 연기한다지만, 고교 동창회에 시상식에서나 입을 법한 홀터넥 드레스를 입고 나간다거나, 회사에서 한쪽 어깨가 훤히 드러난 의상을 입은 장면들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박민영은 이런 지적에 대해 쿨하게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맞아요. 그런 룩들은 실수였죠. 드라마적 허용이라는 걸 너무 믿고 초반에 좀 과했던 게 있었어요. 사실 강지원의 오피스룩이 ‘김비서가 왜 그럴까’와 비슷해 보일까 봐 변신을 해보자 해서 준비한 건데, 확실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과하게 표현된 거 같아요. 계산 실수였죠. 그런 점들은,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내남결’이 크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악역들의 대활약이 있었다. 특히 아내의 절친과 바람을 피우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는 남편 박민환을 연기한 이이경은 미워할 수 없는 악역으로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경이는 정말 웃기고 재밌어요. 저도 예능으로만 접했던 배우고 같이 연기를 하는 건 처음이라, 박민환을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정말 ‘꼴 보기 싫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연기를 해내더라고요. 같이 연기하면, 강지원이 박민환을 대할 때의 괴롭고 싫은 표정이 저절로 나와요. 현장 스태프들도 보기 싫어할 정도예요. 그래서 ‘악역 하려면 너처럼 해야겠다’는 말도 해줬어요. 정말 잘하고, 같이 연기하면 너무 재밌어요.” 어릴 적부터 강지원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온 친구 정수민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연기해 호평받은 송하윤은 실제로 박민영과 1986년생 동갑이다. 오랫동안 같은 업계에서 버틴 동료로서 느낀 동질감은 좋은 연기 호흡으로 이어졌다. “첫 촬영에서 각자 눈을 보는데, 별다른 설명 없이도 지원이랑 수민이로 만났어요. 동갑에 데뷔 연도도 비슷하고,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서로 알고 있는 상태로 만나서 그런지, ‘너도 진짜 잘 버텨냈구나’란 생각이 눈동자에 담기면서 자연스럽게 호흡으로 이어진 거 같아요. 친구로서의 케미, 나중엔 완전한 적으로서의 케미도 서로 잘 알고 있어서, 이 일을 오래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던 합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른 86라인인 공민정(양주란 역), 보아(오유라 역) 씨도 마찬가지였어요.” ‘내남결’은 기세등등한 악역에 맞서 선한 주인공도 독해져야 하고,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에서 볼 법한 ‘마라맛’ 재미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었다. 2006년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데뷔해 20년 가까이 연기를 해온 박민영에게도 이렇게 큰 에너지가 드는 작품은 처음이었다. 박민영은 계속 사건이 터지고 반전, 복수가 오가는 강한 스토리 라인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것에 신경 썼다. “큰 에너지를 소모하며 누가 더 나쁜지 주고받는 상황들 사이에서, 강지원이라는 정체성을 계속 지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소리를 지르는 장면 같은 건 에너지만 조금 더 쓸 뿐이지 크게 다르진 않아요. 오히려 강지원이 더 이상 흔들리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운 변주가 될 것인지, 그 중심을 잡는 게 힘들었어요. 화자인 강지원의 감정선이 흔들리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줄 수 있거든요. 그걸 최대한 연기적으로 풀어내는 것에 신경 썼어요.” 박민영의 눈물, 그리고… 강지원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박민영의 노력과 진정성이 통한 걸까. ‘내남결’은 대성공을 거뒀다. 첫 회 시청률 5.2%로 출발해 자체 최고 시청률인 12.0%로 막을 내린 ‘내남결’은 역대 tvN 월화드라마 중 평균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또 여태까지 티빙에 서비스된 tvN의 모든 콘텐츠를 통틀어 유료 가입 기여자 수 1위를 달성했다. 해외 OTT 아마존프라임비디오에서도 공개됐는데, 한국 드라마 최초로 4차례에 걸쳐 글로벌 TV쇼 부문 일간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눈부신 성공을 거뒀지만, 박민영은 드라마 종영 직전까지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날로 올라가는 시청률 수치와 뜨거운 시청자 반응이 충분히 체감될 상황이었지만, 쉽게 웃을 수 없었다. “사실, 긴장을 못 놓고 있었어요. 정말 마음 졸이면서 봐서, 오히려 덤덤했어요. 잘 나온 시청률이나 좋은 반응에 대한 제 마음의 변화가 별로 없었어요. ‘이럴 때일수록 더 차분해야 한다’며, 제 자신을 더 건조하게 만들었던 거 같아요. 제대로 웃거나,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종영 일주일 남은 시점에 그제야 처음으로, 이제 좀 웃어봐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작품이 끝날 때마다 ‘시원섭섭함’을 느꼈다는 박민영은 ‘내남결’을 끝낸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내 정신과 몸을 여기에 모두 올인했다”고 자신할 만큼, 그 이상은 불가능할 정도로 정말 최선을 다한 작품이기 때문에 아쉬운 감정마저 들지 않는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며 겪은 마음고생과 반성의 의지, 또 배우로서 ‘내남결’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전한 박민영. 그는 인터뷰 말미 끝내 눈물을 보였다. “제가 이 드라마를 통해 드리고 싶었던 메시지 중 하나는, 제가 이 작품을 한 이유이기도 한데,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며 눈을 감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렇게 삶이 지친 분들한테 자극적이라도 재밌고 흥미로운 요소를 드리고 싶었어요. 저도 저 자신한테 ‘내가 강지원이다’, ‘너도 일어날 수 있어’라고 많이 되뇌었어요. 제일 중요한 건, 본인과의 약속 같아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진심으로 내뱉었을 때, 그걸 지킬 수 있는 책임감이 있다면 그게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에 연관조차 안 되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겠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되고 며칠 후, 박민영이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에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며, 전 연인 강 씨와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언론 보도가 또 나왔다. 이에 대해 박민영 측은 “임대업을 하는 가족 회사일뿐, 강 씨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박민영의 배우로서 건재함은 ‘내남결’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눈물 섞인 반성으로 진심도 보였다. 하지만 그가 모든 의혹을 떨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사진 출처 : 후크엔터테인먼트, tvN 디자인 : 박수민
‘살인자ㅇ난감’, 어떻게 읽어야 할까? ‘살인자’와 ‘난감’ 사이의 동그라미는, 한글 이응(ㅇ) 일까, 알파벳 오(O) 일까, 숫자 영(0)일까. 그에 따라 ‘살인자 이응 난감’, ‘살인자 영 난감’, ‘살인자 오 난감’, ‘살인장난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읽힌다. 제목부터 정말 ‘난감’한 작품이다. 제목은 읽기 난감하지만, ‘살인자ㅇ난감’은 극적 재미로 따져봤을 때 전혀 난감하지 않은 작품이다. 요 근래 넷플릭스가 발표한 한국 콘텐츠들에 실망감을 느낀 시청자라면, ‘살인자ㅇ난감’을 통해 오랜만에 쫄깃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넷플릭스/총 8부/19세 이상 관람가 ‘살인자ㅇ난감’은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대학생 ‘이탕’(최우식 분)과 그를 지독하게 쫓는 형사 ‘장난감’(손석구 분)의 이야기를 그리는 범죄 스릴러물이다. 지난 2010~2011년에 연재돼 큰 인기를 모았던 꼬마비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의 작가는 이 작품 제목을 ‘살인자 이응 난감’으로 읽는다는데, 드라마 연출을 맡은 이창희 감독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읽히길 바란다. “읽는 사람에 따라 살인자가 난감한 건지, 장난감 형사가 살인자가 된 건지, 살인 장난감으로 쓰이는 건지, 다르게 해석해 달라”는 것이다. 제대한 지 반년 째, 취업 준비도 하는 둥 마는 둥 워킹홀리데이나 갈까 생각하는 무기력한 대학생 이탕은 어느 날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취객과 시비가 붙고, 취객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피하려다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언제 잡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던 이탕. 그런데 자신이 죽인 남자가 12년간 지명수배된 연쇄 살인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평범하기 그지없던 이탕의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이후 이탕의 살인은 계속 이어지는데, 그가 죽이는 사람은 모두 악랄한 범죄자이고, 이탕을 용의선상에 올릴 수 있는 살인 증거들은 매번 사라진다. 마치 하늘이 이탕에게 ‘악인 감별 능력’이란 것을 내려주고, 잡히지 않게 보호하는 것처럼. 강력계 형사 장난감은 본능적으로 이탕에게 수상함을 느끼고, 기묘한 살인 사건들과 이탕의 연관성을 추적한다. 그리고 이들 앞에 의문의 전직 형사 송촌(이희준 분)이 나타나면서 사건은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장난감 형사를 연기한 손석구는 ‘살인자ㅇ난감’에 대해 “팝하고 트렌디하다”고 평했다. 이 작품을 한 줄로 정의한다면, 그 표현이 딱 적합해 보인다. 드라마로 태어난 ‘살인자ㅇ난감’은 원작의 기발하고 파격적인 스토리는 가져오면서도, 웹툰의 컷 안에 미처 담기지 못한, 상상의 영역에 남아 있던 그 부분들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표현해 냈다.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영화 ‘사라진 밤’ 등 장르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창희 감독이 ‘살인자ㅇ난감’의 편집에 상당히 신경을 쓴 것이 느껴진다. 장면 전환 하나에도 공을 들였다. 주방 인덕션의 빨간 원형 불이 빨간 신호등 불빛으로 전환되며, 주방에서 도로 위로 다음 장면이 넘어가는 식이다. 또 슬로 모션과 몽타주 편집을 적극 활용해 시각적 효과를 높였다. 이탕이 망치로 내려치는 살인 장면에 슬로 모션을 거니, 피가 막 튀는 잔혹한 장면이 아닌데도 더 생생한 느낌이 전달돼 섬뜩하다. 반대로 이탕의 연쇄 살인 장면들을 몽타주로 빠르게 넘겨 버리는 편집은 순간적인 몰입감을 높인다. ‘살인자ㅇ난감’을 세련된 범죄 스릴러로 완성해 주는 방점은 배우들의 연기다. 주조연을 망라한 배우들의 연기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최우식은 우발적 살인 후 악인 감별 능력을 각성하는 연쇄살인마 ‘이탕’ 역으로, 자신의 장점 발휘와 새로운 매력 어필을 동시에 해냈다. 초반 평범한 대학생 이탕을 연기할 땐 최우식 특유의 어리숙하고 무기력한 캐릭터 연기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러다 살인을 저지르며 변모하는 이탕의 모습을 보여줄 때의 최우식은, 또 새롭다. 그동안 선역을 주로 맡아 온 최우식에게서 볼 수 없었던 광기 어린 눈빛, 잿빛 표정이 충분히 매력적이다. 손석구는 동물적인 직감과 본능으로 살인사건을 집요하게 쫓는 형사 ‘장난감’ 역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풍선껌을 불며 무심하게 직감으로 수사하는 듯 하지만, 순간순간 번뜩이는 눈빛을 보면 그가 왜 형사 캐릭터에 제격인지 실감하게 한다. 또 후반 장난감의 분노와 슬픔이 뒤엉키는 감정신에서는 정형화되지 않은 배우 손석구만의 개성이 느껴져 좋다. 이탕의 행방을 쫓는 비틀린 신념의 전직 형사 ‘송촌’ 역을 맡은 이희준은 4부 말미에 등장해 마지막 8부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늦게 등장하지만 화면 장악력만큼은 최고다. 노년의 송촌 캐릭터를 위해 특수분장은 물론, 서있는 자세, 걸음걸이, 말투, 목소리 등 모든 것을 바꾼 이희준은 압도적인 연기로 극에 가장 강력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연기파 배우들이 가세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탕의 숨은 조력자, 사이드킥 ‘노빈’ 역의 김요한은 개성 강한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 장난감의 형사 동료로 등장하는 현봉식과 권다함, 살해당하는 악인들로 분한 정이서, 조현우, 노재원, 남진복 등의 열연도 주목할 만하다. 이탕은 “죽이고 보니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었다”며 자신의 악인 감별 능력을 받아들이고 범죄자를 죽음으로 단죄한다. 노빈은 그런 이탕을 배트맨 같은 다크히어로의 활약이라고 치켜세운다. 이렇게 악행을 저지른 범죄자들만 골라 살인을 저지르는 이탕을 통해, ‘살인자ㅇ난감’은 ‘죄와 벌’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탕은 신이 특별한 능력을 내린 다크히어로일까, 아니면 그 역시 살인을 저지른 악인일 뿐인가. 그 질문에 확신을 얻지 못해 매 순간 딜레마에 빠지는 이탕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는 것도 재미 포인트다. 총 8부작인 ‘살인자ㅇ난감’은 중간중간 늘어지는 장면들이 긴장감을 떨어뜨릴 때가 있다. 8부가 아니라 6부 정도로 완성시켰다면 좀 더 박진감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또 이탕의 살인 증거들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우연의 연속들을 극적 허용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게 말이 돼?”라는 물음표를 갖게 된다면, 드라마 자체에 몰입할 수가 없다. 생각지 못한 정치색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극에 등장하는 비리기업인 형성국 회장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묘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것. 형성국 회장의 안경, 백발 헤어스타일, 죄수번호 4421, 교도소 내에서 초밥을 먹는 장면 등이 이재명 대표를 연상케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창희 감독은 “우연의 일치를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일 뿐이라며 의혹 제기를 황당해했다. ‘살인자ㅇ난감’은 공개 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9일 첫 공개된 ‘살인자ㅇ난감’은 단숨에 국내 넷플릭스 순위 1위를 차지했고, 단 3일간의 집계량만으로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TV 부문 비영어 2위에 올랐다. 디자인 : 박수민 사진제공 : 넷플릭스
“혹시 이게 안재홍 은퇴작인가요?” 지난해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이 공개됐을 때, 극 중 주오남 캐릭터를 소화한 배우 안재홍을 두고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주오남은 현실 사회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19금 방송을 하는 여성 VJ에 집착하고 야동을 즐기는 음침한 성격의 오타쿠 캐릭터였다. 10kg를 증량한 몸으로 탈모 특수분장을 하고 “아이시떼루”를 외치며 완벽하게 주오남을 소화한 안재홍의 파격 변신은, 칭찬을 넘어 배우 은퇴(?)를 걱정하는 우려로 이어졌다.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오남 캐릭터로 분한 안재홍에게 “연기 좀 살살 해라”, “앞으로 다른 작품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라는 팬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나왔다. 그래서 최근 티빙(TVING) 오리지널 시리즈 ‘LTNS’로 돌아온 안재홍은 제작발표회에서 스스로 “이건 은퇴작이 아닌 복귀작”이라 말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복귀작이라 하기에, ‘LTNS’도 만만치 않았다. ‘LTNS’는 ‘Long Time No Sex’의 줄임말로, 제목부터 화끈한 19금 드라마다. 짠한 현실에 관계마저 소원해진 부부 우진(이솜 분)과 사무엘(안재홍 분)이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들의 뒤를 쫓아 협박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윤희에게’로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 임대형 감독과 ‘소공녀’로 잔잔한 여운을 남긴 전고운 감독, 두 젊은 감독들이 연출과 극본을 함께 맡아 유쾌한 시너지를 선사한다. ‘LTNS’에는 수위가 높은 장면들이 다수 등장하고, 성(性)과 관련한 적나라한 대사들이 핑퐁처럼 오간다. 사무엘과 우진의 뜨거웠던 연애 과정부터 섹스리스 부부의 현실까지 보여주는 안재홍과 이솜은, 보는 이들이 충분히 얼굴 빨개질 만한 과감한 연기를 펼친다. 그러다 보니 안재홍은 두 작품 연속으로 ‘은퇴설’을 듣는 우스운 상황에 빠졌다. 사실 안재홍은 현실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로 더 익숙한 배우다. ‘응답하라1988’의 엉뚱한 정봉이, ‘쌈, 마이웨이’의 다정한 김주만, ‘멜로가 체질’의 유쾌한 손범수처럼,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캐릭터를 특유의 자연스러운 연기로 실감 나게 그려냈다. 배우로서 안재홍의 특기는 이런 ‘연기인데 연기 같지 않은’ 생활연기다. ‘LTNS’는 표면적으로 자극적인 19금 드라마로 보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또 다르다. 부부 관계에서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갈등을 현실적으로 풀어내 공감을 이끌어내고, 사랑의 여러 단면과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안재홍은 가정적인 남편인 듯 보이지만 불륜 앞에서 이율배반적 모습을 지닌 사무엘 캐릭터를 특유의 생활연기로 실감나게 연기해 낸다. 따지고 보면 ‘은퇴설’을 불러온 주오남과 사무엘도, 이런 안재홍의 ‘생활연기’ 때문에 불거졌다. 실제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것처럼 실감나게 소화하니까,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안재홍 그 자체로 투영돼 보이며 은퇴설까지 언급되는 것이다. 두 작품 연속으로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배우로서도 부담되는 일이었을 텐데, 왜 안재홍은 ‘은퇴설’이란 이야기가 또 나올 것을 감내하며 ‘LTNS’를 선택한 것일까. 그에게 직접 그 이유를 들었다. "주오남 의식 안 해... 새로운 이야기에 빠졌다" 안재홍은 ‘LTNS’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마스크걸’의 주오남을 의식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LTNS’의 대본을 처음 보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미 ‘소공녀’에서 호흡을 맞춘 이솜과 전고운 감독, 대학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온 임대형 감독과 함께 재미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다. 이 작품이 지닌 자극성과 높은 수위는 크게 고려할 조건이 아니었다. “정말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처음 보는 대본이었어요. 수위는 높았지만, 감독님들이 굉장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고 하시는구나, 이걸 내가 어떻게 흥미롭고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여기에 맞는 화법은 무엇일까, 그런 걸 먼저 고민했죠. 또 이솜 배우와, 감독님 두 분과의 조합이 근사할 거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들에 대한 믿음이 강해 같이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임대형 감독은 저랑 동갑 친구예요. 대학생 때, 저희 학교 같은 학과가 아닌 다른 학교의 학생과 작업해 보면 어떨까 해서 만났던 사람이 임대형 감독이었어요. 그때 함께 작업한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데, 이런 임대형 감독님과 전고운 감독님이 협업을 한다니, 저도 너무 참여를 하고 싶었어요. 이 감독님들이라면, 새롭고 색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전고운 감독은 85년생, 임대형 감독은 86년생으로, 30대 후반의 젊은 감독들이다. 그래서일까. 부부와 불륜을 주제로 하는 ‘LTNS’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여타 작품들과 비교해 밝은 에너지와 세련된 매력이 느껴진다. 그 매력의 중심에는 평범한 듯 보이는 사무엘을 평범하지 않게 표현한 안재홍이 있다. 그는 이 캐릭터의 심연에 깔린 ‘광기’에 주목했다. “사무엘이란 캐릭터를 처음 접했을 때, 생활밀착형의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굉장히 장르적 얼굴을 띤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인물을 통해 일상적인 면부터 드라마적인 순간까지 다 담아내고, 입체적으로 그려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인물이 곧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여기서 이 인물은 이럴 거야’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의도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예를 들어, 3화에서 백호(정진영 분)에게 실컷 얻어맞은 사무엘을 보고 우진은 걱정돼 눈물을 흘리는데, 사무엘은 ‘나 왜 재밌지? 내가 살아있는 거 같아’라며 약간의 광기를 보여주죠. 그렇게 조금씩 이 인물의 낯선 모습을 보여주는 게, 굉장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치 양파 껍질처럼 다른 모습이 있는, 다 알 것 같은데 모르겠는, 그런 인물로 그리고자 했어요. 사무엘은 설렘의 감정부터 광기의 감정까지 가져갈 수 있는, 다채로운 캐릭터라 생각했거든요.” 세 번째 만난 이솜과 ‘칼싸움’ 같았던 부부 호흡 안재홍은 실제로 미혼이지만, 사무엘이 남편의 위치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우진과의 부부 일상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안재홍은 겪어 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인 결혼 생활을 이해하기 위해 주변 기혼자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다. 그러다 느낀 것은 ‘부부간의 대화가 마치 칼싸움 같다’는 것이었고, 이를 연기로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제가 아직 미혼이니까 부부의 세계는 ‘미지의 영역’이죠. 그래서 연기할 때 깊이감이나 무게감이 다를 수도 있어요. 모르는 감정들에 대해 주변 기혼자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는데, 제가 느낀 건 뭔가 칼싸움 같다는 거였어요. 대화 속에 칼이 있더라고요. 극 초반에 거실에서 우진이 아파트 집값에 대한 뉴스를 보며 ‘왜 우리가 사니까 집값이 내려가냐’라고 불평해요. 사무엘은 그 시선을 보지 못하는데, 제 생각에는 사무엘이 그 집을 사자고 했었을 거 같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시선을 안 주며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갈 거야’라고 말을 해요. 일상적인 대화 같지만, 그 안에 굉장히 층이 쌓여 있고 공격이 난무하는 대화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신 하나하나를 만들며, 일상적인 순간 같지만 굉장히 밀도가 높다는 생각을 하며 연기했어요. ‘뉘앙스’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몇 겹의 감정이 쌓인 대화, 그 디테일을 보여줄수록 많은 분들이 ‘내 얘기 같다’고 느끼실 거 같았어요.” 안재홍과 부부 연기를 펼친 우진 역 이솜과는 인연이 깊다.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에서 연인 사이를 연기한 것에 이어, 그가 연출했던 단편영화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에서는 이솜이 여주인공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LTNS’에서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안재홍은 이제야 ‘배우 이솜’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솜 배우와 친하다고 말할 순 있지만, ‘잘 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이솜 배우가 참 동물적인 연기자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이번에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기했던 거 같아요. 서로가 액션-리액션을 구분하지 않고, 정말 연기하지 않는 듯한 연기를 했어요. 이 작품이 더 큰 공감대를 살 수 있었던 건, 그렇게 이솜 배우와 유기적으로 주고받으면서 연기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친한 사이라 남녀 간의 애정신을 연기하는 게 더 어색하고 민망할 수 있다. 게다가 ‘LTNS’는 19금 드라마에 소재가 소재인지라, 수위가 높은 애정신이 다수 등장한다. 안재홍은 이솜과의 애정신을 ‘액션신’으로 이해해 달라 말했다. “이 드라마는 명백하게 액션 드라마라 생각해요. 정말 액션신 찍듯이 촬영했거든요. 액션보다 더한 액션신도 있었고, 합도 굉장히 중요했죠. 다양한 액션을 해야 했던 작품이라, 액션 드라마로 이해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이솜 배우와는 세 번째 만나는 작품이긴 하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한 작업이었어요. ‘소공녀’에서는 애틋한 연인이라는 어떻게 보면 단면적인 감정을 짙게 보여줬다면, 제가 만든 단편영화에선 헤어짐을 맞이한 연인의 한 면을 보여줬죠. 이번 작품에선 설렘부터 경멸까지, 다양한 감정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굉장히 새로웠어요.” ‘진짜 같다’는 믿음의 연기, "내가 좋아하는 배우" 되고 싶다 앞서 언급했듯 안재홍은 ‘생활연기’의 달인이다.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가상일지라도 너무 자연스러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세상 어딘가에 살아 숨 쉴 것만 같다. 안재홍은 자신이 일부러 생활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의 연기를 보는 이들이 ‘진짜 같다’고 믿으며 작품에 더 몰입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저 개인적으로 늘 품는 생각은, 작품을 보시는 관객이나 시청자분들이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정말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거 같다는 생각을 하길 바라는 거예요. 진짜 같다는 믿음이요. 그럴수록 작품이 가진 이야기, 메시지를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작품마다 고유한 화법이나 톤 앤 매너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스크걸’에선 거기에 맞는 톤 앤 매너, ‘LTNS’에선 또 다른 분위기가 필요하죠. 그래서 그 작품 안에서의 진짜 같은 무언가를 찾아내고 싶어요. ‘마스크걸’은 굉장히 다크한 장르물인데, 그 안에서의 주오남이란 캐릭터는 우리가 평소 잘 보진 못 해도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 같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장르성 짙은 이야기에서도 뭔가 진짜 같은 생생함을 담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톤 앤 매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LTNS’도 마찬가지였고요.” 2009년 단편영화 ‘구경’으로 데뷔한 안재홍은 어느덧 15년의 연기 경력을 쌓았다. 그는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2013년 개봉한 영화 ‘1999, 면회’를 꼽았다. “‘1999, 면회’가 장편 영화의 첫 주연작이라, 정확한 의미로 데뷔작이라 말할 수 있어요. 그 작품은 제가 지금까지 통틀어서 가장 많이 본 작품인데, 처음 볼 때의 벅참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그때의 감정을 잘 가지고 있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참 운명 같은 일인 거 같아요. 그래서 궁금하고 설레고 기대돼요. 제가 어떤 작품을 만나고 또 어떤 연기를 하게 된다는 건, 다 큰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안재홍에게 식상한 질문을 던졌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그러자 뻔한 듯 뻔하지 않은 대답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대중이 연기를 보고 ‘진짜’라 믿어주는 배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안재홍. 그가 왜 작품마다 ‘은퇴작’이라는 소리를 듣는지, 새삼 이해가 갔다. “얼마 전에 품게 된 생각인데, ‘난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거였어요. 이 말만큼 곧은 마음과 기준은 없는 거 같아요. 그 마음이 저한테는 굉장한 동력이 되고, 스스로의 격려가 돼요. 매 작품 ‘은퇴를 하는 거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모든 걸 다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작품이 끝나면 잘 환기시키고, 또 다음 작품을 만나면서요. 전 아직 못해본 장르나 캐릭터가 많아서 궁극적인 호기심이 있어요. 진짜 같은 연기, 진짜 같은 순간을 담고 싶어요. 그러면서 그 작품에 온전하게 존재하고 싶단 마음이 커요.” [사진제공=넷플릭스, TVING]
*이 글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제빵왕 김탁구’에서 선한 사람들의 꿈과 성장을 이야기하고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생명의 소중함과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지, 낭만이란 무엇인지를 풀어내던 강은경 작가. 따뜻한 시선으로 휴머니즘과 행복을 이야기하던 그가 1945년 어두웠던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크리처물, 즉 ‘괴물’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스토브리그’의 정동윤 감독이 연출을 맡고, 배우 박서준, 한소희가 주연으로 나선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에 관한 이야기다. ‘경성크리처’는 경성 최고의 자산가인 전당포 금옥당의 대주 장태상(박서준 분)과 10년 전 실종된 어머니를 찾는 토두꾼 윤채옥(한소희 분)이 일본군이 운영하는 옹성병원 지하에서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탄생한 괴물을 마주한 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슬픈 사투를 그린 드라마다. 일제강점기라라는 시대에 크리처를 접목시킨 ‘경성크리처’는 공개 후 호평과 혹평이 엇갈렸다. 시대가 주는 독보적인 분위기,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매력적으로 그려낸 배우들, 가슴 뜨거워지는 전개가 충분히 볼 만하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 전개가 느려 긴장감이 떨어진다거나 독립군을 가볍게 다뤘다는 지적, 캐릭터 설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혹평도 나왔다. 강 작가는 이런 엇갈린 반응을 보면서 “만드는 포인트와, 기대했던 포인트가 달랐구나”를 느꼈다며, 자신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포인트를 뒀지만, 대중은 크리처물 특유의 장르적인 재미에 좀 더 기대를 품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30년 가까이 드라마를 써온 작가에게 충분히 자존심 상하는 냉혹한 평가일 수 있는데, 강 작가는 이번 경험이 앞으로 써 나갈 자신의 작품들에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덤덤히 받아들였다. 일제강점기는 우리에게 아픈 역사이지만, 여전히 이를 부정하거나 무지하게 반응하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에,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는 작품에서 그 시대를 다룬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도전이다. 그만큼 결과물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고, 만드는 과정에서도 각오가 남달랐을 터다. 그동안 가슴 따뜻해지고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주로 해오던 강은경 작가는 왜 일제강점기, 그것도 괴물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일제강점기,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강은경 작가 “저한테 중요했던 건, 그 시대를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였어요. 장태상, 윤채옥이란 인물로 제가 키워드로 가져가려 한 ‘생존’, ‘실종’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 저변에는 ‘그 시대를 이렇게 삶으로 버텨낸 사람들이 있었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경성크리처’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1945년 경성의 봄, 어둡고도 화려한 격동의 그 시대를 살아간 다채로운 인물들이 촘촘히 관계를 형성한다. 특히 강 작가는 그 시절 ‘실종’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요하게 다루며, 각 캐릭터의 서사를 쌓는데 힘썼다. 일본 경무관의 협박에 사라진 조선인 애첩 명자를 수소문하는 장태상, 10년 전 실종된 어머니를 찾으려는 윤채옥의 이야기 외에도, 착실히 의대에 다니던 착한 아들이 갑자기 군에 끌려가 찾으려는 어머니, 사라진 동생을 찾으려 옹성병원에 위장 취업한 독립군 형의 이야기 등이 극에 등장한다. “실제 그때 자료를 보면, 이유 없이 사라진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위안부로 끌려가기도 했고, 강제징용을 당하기도 했고, 이별할 시간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이 많아요. ‘실종’이란 키워드로 그 이야기를 하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당연히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쌓을 수밖에 없었죠. 인물들의 서사를 설명하느라 속도감이 떨어진다는 반응도 있지만, 저한테는 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어요.” 젊은 사람들이 즐겨보는 OTT 작품에서 ‘속도감’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킹덤’, ‘스위트홈’ 등 K-크리처 장르물이 글로벌 OTT에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숨가쁜 전개에서 오는 박진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에서 기인했다. 그런데 ‘경성크리처’는 크리처물을 표방하지만 ‘속도감’ 부분에서 아쉽다는 평을 받는다. 강 작가는 속도감이 중요하단 걸 잘 알고 있었음에도,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정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속도감을 살리려고 기술적으로 제가 뭔가를 하진 않았어요. 저도 요즘 콘텐츠를 보면서 속도감의 중요함을 느껴요.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작품도 있겠죠.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밟아가야 하는 정서들을 밟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삼아 화려한 볼거리와 빠른 전개로 크리처 중심의 스토리를 만들었다면, 크리처물로서 더 재미있다는 반응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 작가는 ‘타기팅(Targeting)’ 조차 하지 않으며 작품에 계산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타기팅을 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봐주면 좋겠다’며 타깃층을 삼는 게 부질없다는 걸, 오래전에 알았거든요. 대중은 항상 의외의 곳에서 예상치 못한 반응을 줘요. 타깃을 잡는다고, 그대로 안 되더라고요. 다만 만드는 내내 ‘우리의 진정성, 모두의 최선, 그것만 다 하자’는 것에 집중했어요. 만드는 순간에는, 그 과정에 좀 더 집중하려 했어요.” 일제강점기 그 힘겨운 시절을 버텨낸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강 작가가 바라는 건, 그렇게 꺼낸 이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것이다. 한류스타가 출연하고, 글로벌 OTT 플랫폼으로 나가는 작품인 만큼, 해외 시청자들의 접근성이 좋다. 이를 기회로, 일제강점기가 어땠는지, 어떤 일본의 만행이 있었는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국내외 시청자가 관심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제가 막연히 바랐던 건, 이 이야기가 되도록 많은 사람들한테 보였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박서준, 한소희 같은 좋은 배우들, 잘 나가는 한류 배우들이 리스크가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흔쾌히 시놉시스 과정에서 참여하겠다고 용기 있는 결정을 해준 것에 고마워요. 또 넷플릭스의 제작 결정에도 감사해요. 한국의 시대극에 해외에서는 관심이 없을 거라는 평가가 내부적으로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가 선택을 해 준 것이니까요. 이 시대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독립군 비하도, 일본인 미화도 아니다 상처가 크고 아픈 역사인 만큼, 국내 시청자들은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들을 가볍게만 바라보지는 못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간혹 예민한 국민 정서가 극 중 캐릭터 설정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한다. ‘경성크리처’에서도 독립활동을 하는 애국단 청년들이 경솔하게 그려지거나, 권준택(위하준 분)이 일본군에 애국단원의 이름을 발설하는 등 민폐 캐릭터로 표현되는 것에 “독립군 비하 아니냐”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준택이도 애국단 청년들도, 굉장히 어리고 젊어요. 독립을 하겠다는 의욕이 앞서고 이 시대의 어둠을 끝내겠다는 의지가 강렬한 친구들인데, 그게 과연 현실과 부딪쳤을 때, 끝까지 ‘독립을 할 거야’ 그랬을까, 그 사람들은 공포도 두려움도 없었을까, 싶었어요. 물론 두려움조차 느끼지 않고 맹렬하게 달려가는 독립군도 있었겠죠. 제가 그리고 싶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였어요. 죽음에 대한 공포, 현실에 대한 막막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뚜벅뚜벅 가는 준택이와 청년들의 이야기. 그게 그들 이야기의 방점이에요. 그 시대의 인간군상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게 참 쉽지만은 않아요.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그분들이 했던 일을 현실적으로 다루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생각할 때 독립군은 무조건 무적이었을 거 같지만, 윤봉길 의사는 20대 초반, 유관순 열사는 심지어 10대였어요. 그 젊은 친구들이 느꼈을 공포, 어려움. 근데 그걸 다 버티고 그 일을 해냈구나, 거기에 도달하게끔 하고 싶었어요.” 착하게 그려진 일본인에 대해 반감을 보이는 반응들도 있다. 경무관의 지시로 장태상을 미행하는 업무를 수행하다가 인간적인 갈등에 빠져 결국에는 장태상을 돕는 일본 순사 모리(이규성 분), 조선인들이 옹성병원에서 탈출하는 것을 돕고 그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사를 방관했던 것을 사과하는 화가 사치모토(우지현 분) 등 선량하게 그려진 일본인 캐릭터에 대한 불편함이다. “’독립군’, ‘친일파’, ‘반일’, 뭐 이런 단어들로 모든 것을 이분화를 시키는데, 제가 집중하고자 했던 것은 그냥 한 사람, 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제가 굳이 나누고자 한 게 있다면, 인간에 대한 배려나 사랑, 인류애가 없는, 권력을 가진 자들과, 그 권력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에요. 그러다 보니, 화가 사치모토도, 모리라는 경찰도, 처음엔 방관자로 시작해요. 사치모토는 돈을 벌겠다고 조선에 온 화가인데, 옹성병원에서 목격한 실상에 충격을 받죠. 사치모토가 마지막에 사과하는 신을, 제가 감독님한테 넣자 빼자 말을 많이 했어요. 저는 그렇게라도 그들에게 따뜻한 사과를 받고 싶었어요.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라도요. 그냥 형식적으로 ‘그래 우리가 잘못했다 쳐’ 이런 사과가 아니라, 방관자였던 그들이 들려주는 사과요. 그건 드라마를 통해 한번은 보여주고 싶었어요.” 731부대와 생체실험… 모성애 가진 크리처의 탄생 ‘경성크리처’의 옹성병원 지하에서 일본군이 조선인을 대상으로 자행한 생체실험은 역사 속 실제 존재했던 ‘731부대’를 모티브로 한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조선인 등을 강제로 끌고 가 인체실험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부대다. “일본은 731부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금도 부인하고 있어요. 분명히 있었는데, 어디에도 명시된 곳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죠.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유명한 제약회사의 CEO도 됐다고 하는데…” 강 작가는 이번 작품을 쓰며 일본군의 생체실험 자료를 찾아봤고, 잔혹하고 끔찍한 광경들에 억장이 무너졌다. 특히 ‘모성애’를 이용한 생체실험도 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경성크리처’의 메인 크리처인, 윤채옥의 어머니 최성심(강말금 분) 크리처가 탄생하게 됐다. 크리처가 모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또 모성과 연관 짓냐”, “K-신파다”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강 작가는 모성 코드를 꼭 넣어야만 했다. “생체 실험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모성본능 실험’이란 걸 봤어요. 그게 굉장히 절 힘들게 했어요. 아이를 낳은 엄마에게 죽음의 공포와,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모성본능을 두고 실험하는 거였어요. 모든 실험 내용이 다 보기 힘들었지만, 그 모성본능 실험은 너무 참혹하고 가슴 아파서 제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걸 보고 성심크리처를 만들게 된 거예요. 크리처에 모성 코드를 넣게 된 이유죠.” 일제강점기에 크리처물을 접목시킨 큰 배경에는, 해외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 한국의 시대극에 외국인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전형적인 서사 코드로 ‘K-크리처’를 가져온 부분도 분명 있다. 이는 강 작가도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먼저 생각한 건 ‘모성’이었다. 그는 “모성본능 지점이 나한테 너무 강렬해서,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라고 말한다. 수십, 수백의 일본군을 죽이며 날뛰던 성심크리처가 윤채옥의 “어머니!”란 울부짖음에 온순해지는 장면을, 그저 신파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현대로 넘어오는 시즌2, 기억과 잔재에 대한 이야기 ‘경성크리처’에 대한 평가는 시청자의 몫이다. 하지만 호불호 반응을 떠나, 이 드라마로 인해 해외 팬들이 한국의 일제강점기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강 작가는 미국 타임지에 실린 기사 하나를 언급했다. “타임지에서 길게 기사를 써준 게 있는데,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줬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이겨낸 그 시대가 어땠는지, 그리고 그 시대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단 말까지 달아가면서요. 전 그 기사를 보면서 안심했어요. 이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를 많이 해줬구나 싶어서요.” 드라마의 파급력은 바다 건너 일본에도 전해졌다. 731부대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일본 젊은이들이 ‘경성크리처’를 보고 충격을 받아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최근에 들은 반가운 얘기는, 10대 젊은 친구들이 이 시대에 대해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특히 일본 현지 직원에게 직접 들었는데, 일본 젊은 층이 이 시대의 자료를 찾아보고 있대요. 이건 제가 생각하지 못한 효과예요. 일본에선 외면받을 줄 알았는데, 일본 넷플릭스 2위까지 올라갔다고 하고.” ‘경성크리처’가 공개되자 일부 일본 누리꾼들은 반감을 가지며 출연 배우의 SNS에 악플을 남겼다. 특히 한소희는 SNS에 ‘경성크리처’ 스틸과 안중근 의사 사진을 함께 올렸다가 악플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바라본 강 작가는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런 이야기가 충돌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어요. 근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조금 더 이슈가 됐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끌어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그렇게 많이 회자되고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잖아요? 그 저변에는 이런 이야기의 힘들이 있었던 거 같아요. 일본 젊은 친구들이 731부대 같은 걸 구글링 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이런 반응은 고무적이지 않나, 우리가 해야 했던 수많은 이야기 중에 한 연결이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경성크리처’는 시즌1 총 10부가 공개됐다. 올해 안에 공개될 시즌2는 시간을 뛰어넘어 2024년 서울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2024년 서울, 장태상과 모든 것이 닮은 호재(박서준 분)와 경성의 봄을 살아낸 윤채옥이 만나 끝나지 않은 경성의 인연과 운명, 악연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채옥이가 9부에서 ‘남은 사람이 먼저 간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기억’에 관한 대사를 해요. 그걸 멜로 코드로 보면 멜로의 이야기지만, 사실 ‘그 시절을 기억해 주겠소’란 의미도 저한테 있어요. 죽는 건 두렵지 않은데 살다 간 흔적조차 남지 않으면 그 시대를 이겨낸 사람들이 쓸쓸할 거 같다는, 어떤 중의적인 의미도 있어요. 그 기억과 맞물려 시즌2에서 현대로 오면, ‘우리는 그 시절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기억과 잔재에 대한 이야기죠.” 주말에 뭐 볼래?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 / 티빙(TVING) / 총 8부 / 19세 이상 관람가 ‘이재, 곧 죽습니다’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최이재(서인국 분)가 지옥으로 떨어지기 직전, 초월적 존재인 죽음(박소담 분)이 내린 심판에 의해 12명의 인물로 환생해 삶과 죽음을 다시 경험하는 드라마다. 이원식, 꿀찬 작가의 웹툰 ‘이제 곧 죽습니다’를 원작으로 한다. 웹툰을 원작으로 해서 그런지 전개가 신선하고 설정이 기발하다. 최이재가 각기 다른 12명의 인물의 몸속에 들어가 그로써 죽기 전까지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데, 저마다 다른 사연,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인물에 따라 드라마가 보여주는 장르가 확 바뀐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오랜 취업 실패와 믿었던 친구의 사기로 전재산을 날린 최이재가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는 과정은 청춘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듯 해 안타깝다. 하지만 이후, ‘죽음’이란 존재를 만나 ‘죽음이 찾아가기 전에 먼저 찾아온 죄’로 심판받게 되는 최이재. 죽음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진 최이재는 12번의 새로운 인생을 살고, 또 죽는다. 죽음과 반복되는 환생을 연결지은 판타지적 세계관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렇게 최이재가 새로 살게 된 인물들을 통해 다채로운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재벌 2세가 되기도,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되기도, 범죄자 때려잡는 형사가 되기도, 학교폭력을 당하는 학생이 되기도, 싸움 잘하는 복싱 유망주가 되기도, 아동학대를 당하는 말 못 하는 아기가 되기도 한다. 인물에 따라 액션, 멜로, 스릴러, 공포, 판타지, 휴먼 드라마, 코믹, 누아르, 형사물, 학원물 등으로 변주하며 복합장르의 묘미를 제대로 살렸다. 12번의 죽음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복선과 각각의 인물들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도 재미다. 최이재가 다른 사람으로 환생해 수많은 삶과 죽음을 겪으며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한 반성과 후회다. 자신을 사랑해 준 사람의 존재를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것, 남이 부러워할 만한 타인으로 산다고 해도 자신이 아니면 무의미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삶의 무게와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알게 되는 과정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12번의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최이재 캐릭터는 서인국을 비롯해 최시원, 성훈, 김강훈, 장승조, 이재욱, 이도현, 김재욱, 오정세, 김원해, 김건호, 김미경이 맡아 열연했다. 여기에 죽음 역의 박소담, 메인 빌런 김지훈, 애틋한 로맨스를 그린 고윤정을 포함해, 김성철, 려운, 유인수, 장혁진, 전승훈, 김법래, 배강희, 최우진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탄탄한 연기력으로 극에 풍성함을 더했다. 사진 출처 : 넷플릭스, 글라인 디자인 : 박수민
2023년이 이제 채 사흘도 남지 않았다.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계묘년의 연예계. 지난주 ‘주즐레’가 2023년의 영화계를 짚었다면, 이번주에는 분노하고 슬퍼할 일이 유독 많았던, 연예계 전반의 다양한 이슈들을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했다. 2024년 연예계는 2023년보다 더 행복한 소식으로 가득 차길 바라면서. 마약 혐의 털어낸 지드래곤 배우 유아인의 마약 혐의에 관한 재판은 현재진행형이고, 배우 이선균은 마약 투약 혐의로 조사받던 중 지난 27일 극단적 선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의 마약 스캔들이 한국 영화계에 큰 충격과 파장을 불러온 가운데, 가요계에서는 그룹 빅뱅 출신 가수 지드래곤이 마약 의혹에 휩싸였지만 ‘혐의 없음’으로 최종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며 불명예에서 벗어나게 됐다. 지드래곤은 강남 유흥업소 실장 A 씨의 진술로 경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 10월 25일 불구속 입건됐다. 이후 지드래곤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경찰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았고, 마약 간이 시약 검사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모발, 손톱, 발톱에 대한 정밀 감정까지 모두 ‘음성’ 반응이 나왔다. 경찰은 지드래곤에 대한 추가 혐의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지드래곤은 지난 21일 새 소속사 갤럭시코퍼레이션을 통해 이번 사태를 겪으며 느낀 바를 전했다. 마약 혐의를 벗은 그의 첫행보는,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바로, 마약 퇴치 및 중독 치료 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이었다. 지드래곤은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했던 곳을 보게 되었다. 뉴스를 보며, 한 해 평균 마약사범이 2만여 명에 달한다는 사실과 청소년 마약류 사범이 무섭게 증가했다는 사실, 이들 중 치료기관을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2만여 명 중 한 해 500명도 되지 않는다는 가슴 아픈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라며 마약 퇴치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첫 출연금으로 3억 원을 단독 기부하며 마약 근절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병역비리, 음주운전, 학폭, 사기... 사회 기사에 등장했던 연예인들 대중에게 충격을 안겨준 건 마약 관련 사건만이 아니다. 병역비리, 음주운전, 학교폭력, 사기 등 그동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대중을 실망시켰던 스타들의 범죄와 비도덕적 행동들이 올해도 이어졌다. 그룹 빅스 출신 라비와 래퍼 나플라, 배우 송덕호는 허위 뇌전증 진단을 받아 국방의 의무를 피하려 한 의혹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세 사람은 병역 브로커 구 모 씨와 공모해 가짜 뇌전증 환자 연기를 해 허위 진단서를 받고 병역 면탈을 시도한 혐의로 기소됐다. 송덕호는 5월 열린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8월 28일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라비는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나플라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라비는 1심 판결을 받아들였으나 검찰이 양형 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를 제기했고, 나플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장을 제출, 두 사람의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룹 위너 출신 가수 남태현은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음주운전을 한 혐의로 입건됐다. 대리기사를 기다리다가 주차를 위해 자신의 차량을 직접 운전했고, 차량 문을 열던 중 옆을 지나던 택시와 부딪쳤다. 출동한 경찰의 음주 측정 결과 남태현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치인 0.114%였다. 마약 혐의로 수사를 받던 상황에 음주운전 혐의까지 더해졌던 그는 도로교통법 위반에 대해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벌금 6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6월에는 배우 진예솔이 술에 취한 채 차를 몰고 올림픽대로 하남방향으로 달리다가 가드레일을 2차례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후 사고 장소를 벗어난 진예솔은 고덕동의 한 삼거리에서 기어를 주행 상태에 놓고 운전석에서 잠든 상태로 경찰에 적발됐다. 진예솔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0.08%로 면허취소 수치였다. 9월에는 가수 허각의 쌍둥이 형 허공이, 10월에는 아이돌 그룹 다크비 멤버 테오가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됐는데, 두 사람 모두 혈중 알코올농도가 면허 취소 수치였다. 허공은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자숙 중이고, 테오는 사과와 함께 팀에서 탈퇴했다. 학교폭력(학폭) 논란도 올해 연예계를 뜨겁게 달궜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소름 끼치는 악역을 연기했던 김히어라가 과거 일진 멤버였다는 학폭 논란이 불거졌다. 김히어라는 “악의적으로, 지속적으로, 계획적으로, 약자를 괴롭히지 않았고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라며 의혹을 부인했는데, 그에게 학폭 피해를 당했다는 제보자가 언론 인터뷰에 나서며 진실공방으로 번졌다. 여전히 김히어라의 학폭 의혹은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MBN '불타는 트롯맨'에 출연해 인기를 모은 황영웅은 상해 전과와 학폭, 데이트 폭력 의혹 등 사생활 논란에 휩싸이며 프로그램 결승을 앞두고 중도 하차했다. 짧은 자숙 끝에 지난 6월 가족들과 소속사를 설립하며 복귀를 알린 그는 앨범 발매, 콘서트 개최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성별을 바꿔가며 벌인 사기에 휘말린 정말 ‘쇼킹’한 사건도 있었다. 바로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가 재혼 상대라며 발표했던 전청조가 그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재벌 3세’라며 재벌가의 숨겨둔 자식으로 자신을 포장했던 전청조가 알고 보니 성별을 바꿔가며 각종 사기 행각을 벌였던 인물임이 밝혀진 것이다. 전청조는 지난달 29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사기, 공문서위조 및 위조공문서행사,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전청조는 투자 사기로 32명의 피해자들에게 37억여 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범죄 수익을 남현희와 그의 가족들에게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현희는 자신 역시 전청조에게 속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사기 공범으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다. 가수 겸 배우 임창정은 지난 4월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와 관련된 일당과 연관됐다는 의심을 받았다. 이에 임창정은 자신 역시 주가조작 세력에 30억 원을 투자했다가 50억 원 넘게 잃은 피해자일 뿐 투자를 부추긴 적이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열애-결혼에 웃고, 결별-이혼에 울고 배우 이종석과 가수 겸 배우 아이유가 1월 1일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열애 사실을 밝히며 공개 연애를 시작했고, 지난 4월 ‘더 글로리’의 배우 임지연과 이도현이 열애를 인정하며 5세 연상연하의 커플 탄생을 알렸다. 역시 5세 연상연하인 배우 엄현경과 차서원은 교제 사실이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결혼과 임신 소식을 발표해 대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배우 이장우는 조혜원과의 열애를 인정했고, 배우 이규한과 그룹 브브걸 멤버 유정은 11살 차이를 극복하고 공개 연애를 시작했다. 예쁜 사랑만 이어지면 좋겠지만, 안타까운 결별 소식을 전한 장수 커플들이 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이후 열애를 인정했던 배우 류준열과 혜리는 공개 연애 7년 만에 헤어졌고, MBC 드라마 '내 딸, 금사월'을 통해 인연을 맺은 후 연인 사이로 발전했던 배우 윤현민과 백진희도 약 7년간의 교제 끝에 결별했다. 2019년 TV조선 '연애의 맛 2'를 통해 만나 13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연인 사이가 됐던 배우 오창석과 모델 이채은은 공개 연애 4년 만에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 채널A '요즘 남자 라이프-신랑수업'을 통해 만난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 모태범과 발레리나 출신 배우 임사랑이 공개 연애 1년 만에 결별했고, SBS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만났던 배우 최윤영과 축구선수 출신 백지훈의 열애와 결별 소식이 동시에 전해지기도 했다. 또 그룹 원더걸스 출신 가수 유빈과 테니스 선수 권순우가 열애를 공개한 지 5개월 만에 결별했다. 그룹 블랙핑크 멤버 지수와 배우 안보현은 지난 8월 열애설 보도 직후 “좋은 감정으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단계”라며 열애를 인정했으나, 공개 연애 2개월 만인 지난 10월 결별 소식을 전하며 짧은 교제를 마쳤다. 열애를 넘어 결혼까지 간 스타들도 있다. 배우 송중기는 외국인 여성과의 재혼과 출산 소식으로 대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 1월 송중기는 영국 출신 배우 케이티 루이스 사운더스와의 결혼과 임신 소식을 동시에 전했다. 그리고 지난 6월 득남한 그는 현재 아내와 해외에 머물며 육아에 임하고 있다. 가수 겸 배우 이승기와 배우 이다인은 약 2년 간의 공개 열애 끝에 지난 4월 결혼식을 올렸다. 현재 이다인은 임신 상태로, 내년 2월 출산 예정이다. 또 가수 세븐과 배우 이다해는 8년 공개 열애 끝에 지난 5월 결혼이란 결실을 맺었다. 배우 다니엘 헤니는 아시안계 모델 겸 배우 루 쿠마가이와 결혼을 발표했고, 배우 김동욱은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으로 ‘소녀시대 데뷔조’로 알려진 스텔라 김과 결혼했다. 또 배우 윤박은 모델 김수빈과, 걸스데이 출신 배우 박소진은 배우 이동하와, 헬로비너스 출신 윤조는 배우 김동호와, 가수 레이디제인은 배우 임현태와, 배우 손은서는 영화 ‘범죄도시’ 제작사 BA엔터테인먼트의 장원석 대표와 결혼했다. 이밖에 그룹 하이라이트 멤버 손동운, 배우 심형탁, 그룹 라붐의 해인 등이 각각 비연예인 배우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소식만큼 파경 소식도 많았다. 먼저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박지윤, 최동석 부부가 결혼 14년 만에 파경을 맞아 충격을 줬다. 또 가족 예능에 동반 출연해 많은 사랑을 받은 브랜뉴뮤직 대표이자 래퍼 라이머와 방송인 안현모가 결혼 6년 만에 이혼했고, FT아일랜드 멤버 최민환과 라붐 출신 율희가 결혼 생활 5년 만에 이혼을 발표했다. 세 아이의 양육권은 최민환이 갖기로 했다. 개그맨 김병만은 7세 연상의 아내와 12년의 결혼 생활을 정리했고, 배우 기은세는 12세 연상의 재미교포 사업가와 결혼 11년 만에 결별했다. 최근에는 배우 강성연과 재즈 피아니스트 김가온이 결혼 11년 만에 이혼한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안겼다. 하늘의 별이 된 스타들 스타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대중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들려온 연이은 비보들은 슬픔을 배가시켰다. 알츠하이머병을 앓아오던 ‘은막의 별’ 배우 윤정희는 지난 1월 19일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 또 지난 4월 4일에는 가수 현미가 향년 8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룹 아스트로 멤버 문빈은 4월 19일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5살 어린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된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많은 동료들과 팬들이 충격을 받았다. 다음날인 4월 20일에는 개그맨 서세원이 캄보디아 병원에서 링거를 맞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영양제 주사를 맞던 중 쇼크로 사망했다는 현지 경찰의 발표와 달리, 그의 죽음은 프로포폴 투약, 의료과실 등의 여러 의혹을 낳으며, 여전히 석연치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9월 18일에는 배우 변희봉, 노영국의 사망 소식이 같은 날 전해졌다. 변희봉은 췌장암 투병을 이어오던 중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고, 노영국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75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마약 투약 혐의로 조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이 지난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공원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선균의 사망 비보에 연예계와 대중은 큰 충격에 빠졌다. 고인의 소속사 측은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라며 장례는 유가족 및 동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하게 치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SM 경영권 다툼, 피프티 피프티 분쟁으로 시끌했던 K팝→BTS 전원 '군백기'까지 가요계에서는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을 둘러싼 하이브와 카카오의 다툼이 연초를 뜨겁게 달궜다.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가 자신이 보유한 SM주식 대부분을 하이브에 매각, 하이브가 SM 인수 시도에 나섰다. 반대로 카카오는 SM 현 경영진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약 한 달간 이어진 경영권 다툼은 하이브가 SM 인수 중단을 선언하며 일단락됐는데, 이 사건의 후폭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카카오가 SM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주가 시세 조종 혐의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구속기소됐고, 김범수 창업자와 홍은택 당시 총괄 대표까지 같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올해 2월 낸 곡 '큐피드(Cupid)'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에서 최고 17위까지 오르며 데뷔 4개월 만에 ‘중소의 기적’을 이룬 그룹 피프티피프티는 소속사 어트랙트와 전속계약 분쟁으로 지난 6월 활동을 중단했다. 멤버 4인은 어트랙트가 정산 자료 제공과 멤버 건강 관리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반면, 어트랙트는 외주 용역 업체 더기버스가 멤버들을 빼가려 했다며 탬퍼링 의혹을 제기했다. 법원은 소속사 어트랙트의 손을 들어줬고, 멤버 중 키나만 어트랙트에 복귀해 피프티피프티 활동을 이어가게 됐다. 어트랙트는 나머지 멤버들과 더기버스 안성일 대표 등에게 13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일곱 멤버 모두의 군입대로 인해 ‘군백기’에 들어갔다. 지난해 6월 그룹 활동 중단을 선언한 방탄소년단은 이후 개인 활동으로 팬들과 만나왔고, 지난해 12월 맏형 진이 가장 먼저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이어 지난 4월 제이홉이 육군으로 입대했고, 9월에는 슈가가 사회복무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시작했다. 지난 11일 RM과 뷔가, 다음날인 12일 지민과 정국이 동반 입대하며 방탄소년단 멤버 전원이 군 복무를 하게 됐다. 멤버들이 모두 전역해 다시 모이는 시점은 2025년 6월 이후다. 방탄소년단은 군백기로 잠시 볼 수 없지만, K팝을 이끄는 아이돌의 글로벌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세븐틴은 올해 발매한 미니 10집 ‘FML’이 누적 판매량 628만 장으로 K팝 단일 앨범으로는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됐다. 또 최근 발매한 미니 11집 '세븐틴스 헤븐(SEVENTEENTH HEAVEN)'으로 발매 후 일주일간 음반 판매량(초동) 500만 장을 넘기며 K팝 아티스트 역대 초동 1위에 올랐다. 두 앨범 모두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도 2위에 랭크됐다. 스트레이 키즈는 4개 앨범 연속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위를 거머쥐었고, 뉴진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에이티즈도 ‘빌보드 200’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방탄소년단이 없어 불안할 줄 알았던 K팝 시장은, 후배 그룹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탄탄하게 중심을 잡고 있다. 주말에 뭐 볼래? 드라마 ‘경성크리처’ / 넷플릭스 / 파트 1 총 7부 / 15세 이상 관람가 배우 박서준, 한소희 주연의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가 지난 22일 공개됐다. ‘경성크리처’는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 봄 경성을 배경으로 한 K-크리처물이다. 경성 최고의 자산가 장태상(박서준 분)은 전당포 금옥당의 대주이자 사람이든 돈이든 물건이든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그를 거쳐야 하는 정보꾼이다. 어느 날 일본 경무국에 영문도 모른 채 잡혀간 그는 이시카와 경무관(김도현 분)에게 ‘벚꽃이 지기 전까지’ 사라진 자신의 애첩 명자(지우 분)를 찾아내지 못하면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을 빼앗겠다는 협박을 받는다. 태상은 실종된 사람을 찾아주는 전문 토두꾼 부녀 윤중원(조한철 분)-윤채옥(한소희 분)을 만난다. 채옥은 10년 전 실종된 어머니를 찾던 중 태상의 도움을 얻기 위해 그와 손을 잡고, 그들은 모든 의심이 향하는 옹성병원에 잠입한다. 일본군이 운영하는 옹성병원 지하에서 조선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태상과 채옥은 탐욕이 탄생시킨 괴물을 마주하고,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슬픈 사투가 시작된다. 시대극과 크리처물에 더해, 박서준과 한소희의 로맨스까지 그려지며 ‘경성크리처’는 여러 장르의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경성크리처’ 대본은 ‘제빵왕 김탁구’,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의 강은경 작가가 맡았다. 연출은 ‘스토브리그’의 정동윤 감독이다. 여기에 박서준, 한소희를 비롯해 김해숙, 수현, 조한철, 위하준 등 좋은 연기의 배우들이 참여했고, 시즌1, 2 제작에 700억 원의 돈을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경성크리처’는 공개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뚜껑을 연 ‘경성크리처’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나뉘고 있다. 해외 매체 CNN은 "역사, 로맨스, 미스터리, SF, 괴물을 중독성 있게 혼합했고 엄청난 히트작이 될 만큼 뛰어나다"라고 호평했고,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는 "스토리, 캐릭터, 몰입도 높은 비주얼은 우리를 끌어들여 흥미롭게 만든다"라고 했다. 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평론가 평가 신선도 지수는 86%, 관객 평가 팝콘지수는 84%다. 평가는 국내 시청자들이 더 냉혹한 편이다. “전개가 느려 긴장감이 떨어진다”, “캐릭터 설정을 이해할 수 없다”, “특수효과가 어색하다” 등의 지적들이 나온다. 하지만 시대가 주는 독보적인 분위기,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매력적으로 그려낸 배우들,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몰입도와 가슴 뜨거워지는 전개가 충분히 볼 만하고 다음 공개가 기대된다는 반응들도 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경성크리처’의 초반 성적은 좋다. 넷플릭스 톱 10 공식 순위 집계에 따르면 '경성크리처' 파트 1이 지난 18일부터 24일까지 집계된 12월 넷째 주 주간 차트 글로벌 톱 10 비영어 부문에서 공개 3일 만에 3위를 기록했다. ‘경성크리처’ 파트 1의 7부에 이어, 파트 2인 8∼10부는 내년 1월 5일 공개된다. 시즌2는 내년 중 공개될 예정이다. 디자인 : 박수민
배우 박은빈에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말 그대로 ‘인생 작품’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라는 타이틀 롤을 맡아 압도적으로 연기해 낸 박은빈은 ‘우영우 신드롬’의 거센 열풍을 이끌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미국 에미상과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등 해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다섯 살 때 아역배우로 데뷔한 이래 배우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상상도 못했던 빛나는 영광 뒤에 남는 건 ‘다음’에 대한 걱정이다. ‘우영우’의 대성공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앞으로 뭘 하든 그 ‘우영우’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는 건 마치 독이 든 성배를 마신 것과 같다. “작년은 제가 살아온 인생에 있어서 가장 스펙터클한 한해가 아니었나 싶어요. 많이 주목해 주신 만큼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겠지만, 그걸 스스로 짊어지기보단 오히려 비워내고 가벼워지고 싶었어요.” 부담 대신 비워내고자 했다는 박은빈의 그 ‘다음’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그가 새롭게 도전한 분야는 생각지도 못한 ‘노래’였다. 박은빈은 tvN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를 차기작으로 정하고, 가창력 좋은 가수로 성장하는 주인공 서목하 캐릭터를 연기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배우가 가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런 역할을 수월하게 그려내기 위해 원래 노래 실력이 좋은 뮤지컬 배우나 가수 출신 배우를 캐스팅하기도 하고, 노래 장면은 대역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박은빈이 연기로 인정받기는 했으나, ‘무인도의 디바’ 전까지 그의 노래 실력에 대해서는 대중에게 크게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노래를 월등히 잘해야 하는 디바 캐릭터를, ‘우영우’ 다음으로 굳이 선택했다는 점은 의아하게 다가왔다. 알고 보니 박은빈이 엄청난 노래 실력을 감추고 있었던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무인도의 디바’는 가수 윤란주(김효진 분)의 열혈 팬이자 가수를 꿈꾸던 10대 서목하(박은빈 분)가 무인도에 고립됐다가 15년 만에 구조된 후, 진짜 디바로 성장해 나가는 따뜻한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서목하를 비롯한 인물들의 좌절과 성장, 그 속에서 피어나는 로맨스와 가족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드라마는 한 편의 ‘뮤직드라마’이기도 하다. 서목하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디바가 되기까지, 극 전개와 분위기에 걸맞은 다양한 노래들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무인도의 디바’의 첫 1, 2회가 공개된 후, 시청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극 중 서목하가 윤란주를 대신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실제로 박은빈이 부른 노래 ‘썸데이(Someday)’가 처음 나오는데, 쭉쭉 뻗는 고음과 성량, 풍부한 감성까지 더해진 그의 노래는 웬만한 가수보다도 실력이 나았다. 이래서 박은빈이 ‘무인도의 디바’를 선택했구나, 단번에 납득이 가는 노래였다. ‘무인도의 디바’에서 서목하가 가수가 되기까지 부르는 노래는 무려 11곡인데, 박은빈은 이 모든 걸 직접 불렀다. 11곡이면 웬만한 가수의 ‘정규 앨범’에 담기는 곡 수에 버금간다. 그래서 그 11곡이 모두 담긴 ‘무인도의 디바’ OST 합본 앨범은 ‘가수 박은빈’의 앨범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하고, ‘연모’에서 남장여자 왕 캐릭터, ‘우영우’에서 자폐 스팩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를 연기하더니, ‘무인도의 디바’에서는 완벽히 가수가 되어 돌아왔다. 아무리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라도 한계 없는 소화력을 보여줬던 박은빈은 이번 가수 캐릭터 도전도 대중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무인도의 디바’는 지난 3일 종영했다. 첫 회 3%대의 다소 낮은 시청률로 시작했던 이 작품은, 꾸준히 시청률이 오르더니 최종 12회는 최고 시청률 9%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우영우’만큼의 파급력은 아니지만, 박은빈의 연기와 캐릭터 소화력에 대해서는 호평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노래하는 박은빈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는 팬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무모해 보였던 박은빈의 가수 도전은, 이번에도 보기 좋게 성공했다. ‘우영우’ 다음에 ‘무인도의 디바’를 선택한 이유 박은빈은 ‘무인도의 디바’의 서목하 캐릭터에서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이 작품을 ‘우영우’ 다음으로 선택했다. 서목하는 15년 동안 홀로 무인도에 고립돼 있었지만 긍정적이고 의연한 성격으로 버텨내고, 다시 세상에 나온 후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며 끝내 꿈을 이뤄내는 캐릭터다. “목하한테 힘을 얻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이 작품을 선택했어요. 박은빈이 할 수 없었던 것들, 어려워하는 것들을 목하라면 좋은 에너지로 타파해 줄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었어요. 목하가 15년간 무인도에 고립하며 얻은 지혜들을 저도 얻고 싶었고, 목하는 어떤 시간을 보내 지금에 이르렀는지, 과연 디바가 될 수 있을지, 된다면 어떤 디바가 될지, 그런 궁금증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어요.” 박은빈은 ‘우영우’ 때 받았던 만큼의 신드롬적 인기를 다시 얻기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작품을 고르는 데 있어 ‘우영우’와 비교하지 않고, 소신 있게 자신만의 선택을 하고 싶어 했다. “‘우영우’만큼 흥행이 될까라는 생각은 ‘무인도의 디바’를 결정할 때도 안 했고 앞으로도 하진 않을 거예요. 그냥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 제가 그 당시에 흥미가 가는 것들 중 최선을 찾아보려 하는 거죠. 그런 마음에 충실하게,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게 이 ‘무인도의 디바’였어요. 2022년의 박은빈이 가졌던 ‘2023년은 목하가 채워줬으면 좋겠다’ 하는 목표 하나만큼은, 정말 제대로 꽉 채워서 마무리하는 것 같아 만족하고 있어요.” 박은빈은 서목하가 이제는 대중에 잊힌 과거의 디바 윤란주를 응원하며 했던 따뜻한 말들을 좋아했다. 또 15년이 지나도 윤란주나 정기호(채종협 분)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주는 서목하의 단단한 마음에도 큰 위로를 받았다. 박은빈은 그런 관계성에서 대가 없이 진심으로 응원을 보내는 팬들의 사랑을 떠올렸다. “목하가 란주한테 했던 말들, ‘하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힘을 주는 말들이 저 개인적으로 많이 와닿았어요. 그래서 목하를 연기하며 저도 힘을 얻었죠. 또 마지막 회에 란주가 목하에 대해 표현했던 내레이션도 제게 위로가 됐어요. ‘나 아닌 누군가를 온전히 응원하는 건 정말 어려워. 아무 대가 없이 질투 없이 남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건 더 어렵고. 그게 목하 네가 대단한 이유야’라는 대사예요. 이게 목하가 대단한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인 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팬과 스타의 사랑의 세레나데 같다는 느낌도 받았죠. 목하가 란주를 사랑하는 만큼의 우상이 제게 실제 있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그런 사랑을 제가 팬분들한테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하며 저의 팬분들 생각이 많이 났죠. 팬들이 보내주는 그런 숭고한 마음, 제가 느끼고 배운 그 마음들을 목하를 통해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노래하는 박은빈, 어떻게 탄생했나 ‘무인도의 디바’ 제작발표회 당시 박은빈은 "100% 제 목소리로 들려드리는 게 시청자분들에게 목하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가수 데뷔에 준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오랜 시간 노래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 설명을 듣고서도, 박은빈이 극 전개에 꼭 필요한 노래 한두 곡을 공들여 준비하고, 노래보다는 인물의 성장기와 로맨스에 더 신경 썼을 줄만 알았다. 그때는 몰랐다. 박은빈이 11곡이나 되는 노래를 소화하고, 그 한 곡 한 곡을 가수 뺨치게 불러낼 줄은. “사실 이 드라마는 ‘음악드라마’였어요. 처음에 ‘음악드라마’라고 소개하면 진입장벽이 생길 거 같아서 좀 감췄죠.(웃음) 매회 제가 부른 OST가 나올 걸 아무도 예측 못 하셨을 거예요. 저희 작품이 노래가 중요하고 제 역할이 노래를 잘하는 역할이라는 걸 알고, 이를 통해 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제 노래가 시청자분들의 몰입을 깨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소박한 듯 보이지만, 매우 큰 결심이었죠.” 시청자가 ‘무인도의 디바’를 보며 ‘노래 잘하는 서목하’로 몰입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박은빈에게는 피나는 연습의 과정이 뒤따랐다. 물론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많이 힘들었죠. 그래도 다행히 제가 뭔가 이런 걸 배울 때 스스로 자기 효능감을 가지고 있는 게 ‘습득력이 좀 빠르다’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가장 빠른 길로 갈 수 있을지 알고, 빠르게 습득하는 편이죠. 하지만 음악이란 건, 단기간에 좋아지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다시 돌아가도 이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절 도와주신 음악팀도 최선을 다했고요.” 박은빈은 지난 1월 중순부터 하루 3시간씩 약 6개월 동안 레슨을 받았다. 노래 발성, 기타 연주 등을 차근차근 배워 나갔고, 7월 말부터는 녹음실에서 작곡가들과 함께 노래를 녹음하며 빠르게 실력을 쌓았다. 녹음은 짧으면 4시간, 길게는 10시간씩 진행하며 곡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썼다. 그런 특훈 속에서 ‘디바 서목하’가 탄생할 수 있었다. 노력과 공들인 시간이, 실제 가수에 버금간다. “가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 발을 들이는 영역이잖아요. 전 연기자라서 연기의 영역으로 잘 해내야 하다 보니, 어려웠어요. 실제 가수들도 이런 대단한 노력을 해서 데뷔했겠구나, 많이 느꼈어요. 고단한 과정이었지만, 하기로 했으니 제 결정에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거듭된 도전? 그저 피로감 주지 않으려 노력했을 뿐 ‘스토브리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연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번 ‘무인도의 디바’까지, 최근 몇 년간 박은빈이 주연으로 활약한 작품들은 모두 성공했는데, 하나같이 연기하기 어렵고 많은 준비가 필요한 캐릭터들을 소화했다. 박은빈이 이런 힘든 도전에 끌리는 이유는 뭘까. “도전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에요. ‘도전의 아이콘’이 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요. 근래에 도전한 것들의 결과론적인 것 때문에 ‘열심히 노력했구나’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저의 노력들을 꼭 알아주지 않아도 돼요. 배우로서 제가 지향하는 바는 ‘피로감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전 배우로서 맡은 바 소임을 잘하고 싶을 뿐이고, 시청자분들은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재밌게 소비해 주시면 저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괜찮은 보상이 되는 거 같아요. 전 도전에 취미가 있는 게 아니고, 안정적인 걸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제가 하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하지 않았고 ‘해볼 만하다’, ‘할 수 있을 거 같다’ 생각하는 것에만 출사표를 던져 왔던 거예요.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구별해서 하는 거죠.” 다섯 살에 데뷔한 박은빈은 연기 경력 27년의 베테랑 배우다. 그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과 생각은 그를 또래보다 더 어른스럽게 만들었다. ‘무인도의 디바’가 나름 호성적을 거뒀지만, ‘우영우’의 대성공과 과도하게 비교당하는 부담스러운 시선에 박은빈은 이런 혜안을 갖고 있었다. “제가 오래 산 건 아니지만, 그간의 일들을 겪으면서 보니 과도한 부담감은 저한테 독이 됐으면 됐지, 결코 나아지는 길로 이끌지는 않더라고요. 저의 책임감을 고취시키는 정도의 부담감은 갖되, 그 이상은 제가 못 버텨내요. 그렇게 제가 채울 수 없는 부분들은 남을 믿으면서 채우는 거 같아요. ‘우영우’라는 비교군이 생긴다는 건, 그만큼 ‘인생작’으로 평가해 주시는 거니 기뻐요. 하지만 제 인생은 앞으로 계속 나아갈 거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옳은 방향으로 가다 보면, 또 새로운 인생작품을 언젠가 또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이번에 목하를 하며 배웠어요.” 박은빈은 인생을 연기를 통해 배우고 있다.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캐릭터들의 성장을 연기하며, 자신도 돌아보고 같이 성장하는 과정들을 수없이 거쳐왔다. 배우라는 직업이 여러 인생을 경험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도 성장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는 인터뷰를 하다 보면 배우들에게서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런데 박은빈처럼 진정성이 느껴진 대답은 처음이었다. 박은빈은 다섯 살 때부터 정말 그렇게 살아왔고, 최근까지도 연기한 캐릭터들처럼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배우로서 다섯 살 때부터 공백 없이 해왔다는 자부심이 있는데, 지난 27년 동안 매번 다른 작품과 다른 캐릭터들을 만나면서 성장하고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게 제 인생 같아요. 이번 목하를 만났을 때도 그렇고, 수많은 작품들을 만나면서 계속해서 제가 채워지는 느낌이에요. 앞으로도 많은 작품과 역할을 만나며, 저의 어떤 부분을 채울 수 있을지 기대감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며, 절 채워나가고 싶어요. 인간 군상이 얼마나 다양해요. 아직 제가 못 보여드린 모습들이 너무 많으니, 그걸 찾아나갈 생각이에요. 배우로서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타성에 젖지 않도록, 저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모습들을 찾아 나가고 싶어요.” 주말에 뭐 볼래? 드라마 ‘스위트홈’ 시즌2 / 넷플릭스 / 8부작 / 19세 이상 관람가 K-크리처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스위트홈’이 3년 만에 시즌2로 돌아왔다. 은둔형 외톨이 고등학생 현수(송강 분)가 가족을 잃고 이사간 아파트 그린홈에서 겪는 기괴하고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다뤘던 시즌1은 지난 2020년 12월에 공개돼 4일 만에 해외 13개국 1위, 70개국 이상 TOP 10에 진입했고, 한국 시리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TOP 10에 오르면서 전 세계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특히 코로나19 시기에 모두가 겪었던 원인 모를 감염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불신 등은 ‘스위트홈’ 속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괴물로 변할 수 있다는 전개와 맞닿아 몰입감을 더했다. 시즌1의 글로벌 인기에 힘입어 넷플릭스는 ‘스위트홈’의 시즌2와 시즌3 동시 제작을 발표했고, 시즌1의 이응복 감독이 시즌2, 3 연출을 이어 맡았다. 그렇게 제작된 ‘스위트홈’ 시즌2가 지난 1일 총 8부가 모두 공개됐다. ‘스위트홈’ 시즌2는 욕망이 괴물이 되는 세상, 그린홈을 떠나 새로운 터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사투를 벌이는 현수와 상욱(이진욱 분), 이경(이시영 분), 은유(고민시 분) 등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시즌1보다 스케일도 세계관도 커졌다. 그린홈 밖으로 나온 배경은 잠실 야구장, 밤섬 등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을 활용해 보다 폭넓게 담긴다. 또 괴물화를 연구하는 밤섬 특수재난기지의 정부 관계자와 연구자들, 괴물전담부대인 까마귀부대의 군인들, 그린홈 주민이 아닌 또 다른 생존자들, 괴물화됐지만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특수감염자들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여기에 더욱 진화된 괴물들이 다채롭게 그려지며 화려해진 CG 기술을 선보인다. 캐릭터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배우들도 대거 투입됐다. 배우 진영, 유오성, 오정세, 김무열, 김시아, 김신록, 현봉식, 윤세아 등이 ‘스위트홈’의 확장된 세계관을 촘촘하게 메꾼다. 사이즈가 커진 만큼 ‘스위트홈’ 시즌2는 확실히 볼거리는 풍성하다. 시즌2는 공개 초반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TOP 10에 안착하며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 일단 성공했다. 특히 착한 괴물과 나쁜 괴물이 나오고, 괴물보다 더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며, 진짜 괴물이 누구인지, 선과 악의 구분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시청자 반응은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새로운 캐릭터가 너무 많아 이야기가 산만하고 전개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시즌2 중반부에 주인공 현수의 서사가 실종되고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만 펼쳐내는 것에 당황했다는 반응들도 나온다. 이런 시즌2의 전개에 대해 이응복 감독은 시즌3에서 완성된 결말을 그리기 위한 ‘빌드업 과정’이었다며 “시즌3가 공개되면 모든 의문이 풀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위트홈'은 시즌3의 촬영도 모두 마친 상태로, 후반 작업을 거쳐 내년 여름쯤에 공개될 예정이다. 디자인 : 박수민 사진 제공 : 나무엑터스,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