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애 기자는 ‘방송’ 담당 연예기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드라마를 즐겨 봤고 예능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TV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누구나 즐겨 보는 TV처럼 쉽고 재밌게, 하지만 깊이 있는 연예뉴스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굿파트너' 등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대박을 터뜨린 드라마들이 있다. 변호사라는 직업인으로서 보여주는 치밀한 법정물 베이스 위에 인간적인 고뇌, 로맨스, 성장기까지 드라마틱하게 녹여낸 이런 류의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의 선택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최근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며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두 변호사 드라마가 있다. 지난 10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서초동'(극본 이승현, 연출 박승우)과 지난 2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JTBC 토일드라마 '에스콰이어: 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극본 박미현, 연출 김재홍/이하 '에스콰이어')이다. 두 드라마 모두 현직 변호사가 대본을 쓴 작품으로, 변호사들의 현실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 시청자의 좋은 반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서초동'은 시청률 4%대로 첫 방송을 시작해 마지막 회 7%대로 시청률 상승을 일궈냈고, '에스콰이어'는 방송 4회 만에 시청률 8%대를 기록하며 두 자릿수 진입 가능성을 보였다.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초동'과 '에스콰이어'는 결이 다른 드라마다. 두 드라마 중 하나만 본다면 어떤 걸 보는 게 좋을까, 혹은 둘 다 봐도 괜찮은 걸까. 월급쟁이 어쏘 변호사들의 성장기 '서초동' 총 12부작의 '서초동'은 매일 서초동 법조타운으로 출근하는 어쏘 변호사(Associate Lawyer, 법무법인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는 변호사) 5인방 안주형(이종석 분), 강희지(문가영 분), 조창원(강유석 분), 배문정(류혜영 분), 하상기(임성재 분)의 희로애락 성장기를 담아낸 드라마다. 보통 법정드라마에서 변호사는 정의를 수호하는 히어로나, 법을 악용해 권력을 지키는 빌런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런데 '서초동'만의 가장 큰 매력은 변호사를 법무법인에 고용돼 월급을 받는, 하나의 '직장인'으로 조명한다는 점이다. 매일 아침 한숨과 함께 출근해 주식 개장 상황을 잠깐 확인한 후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에 매달리는 변호사들. 그러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맛있는 밥을 먹으며 잠시 활기를 되찾았다가, 다시 일터로 돌아가 늦은 밤까지 일에 파묻혀 지내는 하루. 이런 월급쟁이 변호사들의 고달픈 직장 라이프는 현대인들의 동질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대표의 지시에 싫은 일도 해야만 하고, 월급 조금 더 올려주는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다거나, 임신의 기쁨보다 육아휴직에 대한 걱정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그런 직장인으로서 변호사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는 그동안 봐왔던 여느 법정물 속 멋있는 변호사의 모습보다 더 크게 공감된다. 특히 '서초동'에서는 어쏘 변호사들끼리 함께 먹는 '밥 한 끼'가 중요하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이 잠깐 숨을 고르는 휴식인 것처럼, 어쏘 변호사들에게도 이 점심시간은 귀한 시간이다. 방대한 업무량에 깔리고 사람 상대하는 일에 치이다가도, 이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한자리에 모인다. 점심메뉴로 무얼 먹을지 고민하고, 고심 끝에 고른 음식이 나오면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자신의 SNS에 공유하는 평범한 일상들. 맛있는 음식과 함께 고민거리까지 나누며 우정을 쌓는 밥 친구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웃음과 공감을 선사한다. 현실에 두 발을 디딘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서초동'에서는 등장하는 사건들도 일상적이다. 사회초년생이 겪은 월세 사기 사건, 학폭 피해자의 살인미수 사건, 떡볶이집의 레시피 도용 사건, 무지해서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사건 등 우리 주변 누군가는 겪을 법한 송사들이 등장해 몰입감을 높인다. 이런 사건들을 법률적으로 어떻게 다루나 보는 것은 흥미롭고, 이를 대하는 변호사들의 인간적인 고민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극 중 '어변저스 5인방'으로 뭉친 배우 이종석, 문가영, 강유석, 류혜영, 임성재의 탄탄한 연기 호흡은 리얼함을 배가시킨다. 또 한국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로맨스'도 극에 등장하는데, 이종석-문가영의 홍콩에서부터 시작된 로맨스는 극에 감초 역할을 한다. 이들의 로맨스는 어쏘 변호사들의 고군분투와 성장기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예쁘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현직 변호사인 이승현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매일 차가운 송사가 오가는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월급쟁이 어쏘 변호사들의 일상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서초동'. 또 하나의 장점은, 12부작 완결이 났다는 점이다. 주말이나 연휴에 몰아 보기가 얼마든지 가능한 작품이다. 사건의 이면, 사랑에 대한 탐구 '에스콰이어' '에스콰이어'는 정의롭고 당차지만 사회생활에 서툰 신입 변호사 강효민(정채연 분)이 온 세상에 냉기를 뿜어대지만 실력만큼은 최고인 파트너 변호사 윤석훈(이진욱 분)을 통해 완전한 변호사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이 작품 역시 변호사 캐릭터의 성장기가 주요하게 다뤄진다. '에스콰이어'라는 제목은 영미권에서 변호사에게 존중의 의미로 붙이는 존칭 'ESQ'에서 착안됐다. '서초동'이 작은 로펌 소속 변호사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였다면, '에스콰이어'는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들의 고군분투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로펌 내 사내정치 갈등도 보는 재미가 있다. 중심이 되는 건, 극 중 송무팀 팀장 윤석훈과 그의 밑으로 들어온 신입 강효민의 이야기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중시하는 윤석훈에게 의뢰인의 마음을 중요하게 보는 뜨거운 신입 강효민이 배정되면서 두 사람의 쉽지 않은 상생이 이어진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윤석훈과 강효민. 처음에는 강하게 부딪치지만(주로 강효민이 일방적으로 혼나지만) 여러 사건을 마주하며 점점 서로에게 동화되어 가고, '진짜 변호사'로 거듭나는 성장 서사가 그려진다. 이 드라마에는 매회 다른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법정에 서는 변호사들의 치열한 변론을 통해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택배기사의 차량에 치일 뻔한 충격으로 아이의 몸에 이상이 온 것처럼 여겨졌으나, 사실은 엄마의 육아 집착과 과잉 반응이 아이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에피소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반전의 묘미를 선사했다. 또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법과 윤리 사이에서의 딜레마를 깊이 있게 다루며 생각해 볼 거리를 던지기도 한다. 특히 이 작품이 주요하게 다루는 건, 다양한 형태의 '사랑' 이야기다. 치열한 법정 다툼에서 웬 사랑 타령인가 할 수 있지만, 연인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 타인에 대한 연민 등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는데, 그 사랑으로 인한 갈등의 끝이 곧 법정이다. 이러한 소송을 해결해 나가면서 드라마 속 변호사들은 법정에서 사랑을 고민하고 배우며 또 각자의 현실에서 사랑을 싹틔우며 그렇게 성장하고 변화해 간다. '에스콰이어'는 사랑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법정이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공간 위에 올려놓고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그 여정에서 법이 감정과 충돌할 때 어떤 모습이 되는지, 또 그 감정을 어떻게 감싸안을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이는 이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윤석훈이나, 어릴 적 쌍둥이 언니와의 헤어짐에 아픔이 있는 강효민 역시 마찬가지다. 총 12부작인 '에스콰이어'는 현재 4회까지 방송됐다. 아직 8회분의 방송이 남은 상황이라, 종영까지 약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게 작은 단점이다. 사진제공 : tvN, JTBC, 디자인 : 채지우
"기대해.. 오늘 아주 인상적인 날이 될 테니까."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끔찍한 폭탄테러를 앞두고 조용히 내뱉은 말. 상처로 찢어지고 짓눌린 얼굴의 오정세는 낡은 건물 위 난간에 위태롭게 앉아 이런 섬뜩한 말을 서늘한 미소와 함께 읊조렸다. 오정세의 얼굴에선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의 이승재도, '극한직업'의 테드창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노규태도, '스토브리그'의 권경민도,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문상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정세가 '굿보이'의 민주영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가면을 썼다. 오정세는 지난 20일 종영한 JTBC 드라마 '굿보이'(극본 이대일, 연출 심나연)에서 민주영 역을 열연했다. 민주영은 낮에는 평범한 관세청 공무원으로 활동하지만, 밤에는 밀수, 마약 등 온갖 범죄로 지하경제를 주도하고 아무렇지 않게 살인과 폭력을 자행하는 캐릭터다. 특채로 경찰이 된 5인의 국가대표 메달리스트들이 '굿보이'가 되어 범죄를 소탕할 때, 그 반대편의 '배드보이'로 끊임없이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최종 빌런'이다. 오정세는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의 매력보단, '굿보이'들이 뭉쳐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 작품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굿보이' 대본이 재미있었던 포인트는 민주영의 매력이 아니었어요. 윤동주(박보검 분)와 선수들을 모아 만든 굿보이 팀이 각자의 기술을 써서 악을 응징하는 이야기 구조가 흥미로웠고, 굿보이 팀을 응원하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품이 하고 싶었어요. 제가 맡은 건 빌런이지만, 민주영을 어떻게 그려야 이 세계에 자극제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죠." 1997년 데뷔해 어느덧 연기 경력이 30년 가까이 되며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여 온 오정세인데, 그가 만든 민주영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모습의 악인이었다. 선량한 얼굴의 빌런으로 극 초반부터 존재감을 드러낸 민주영은 무미건조한 말투와 감정 없는 표정으로 점점 더 극악무도한 악행을 일삼아 섬뜩함을 안겼다. "저한테도 새로운 숙제였어요. 보통 우리에게 익숙한 빌런은, 누가 빌런인지 헷갈리게 하다가 중간에 반전도 있고 그런 구조인데, '굿보이'는 처음부터 대놓고 민주영이 나쁜 놈이라 말하죠.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양파껍질 까듯이 까도 까도 새로운 악인의 모습이 계속 쌓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민주영을 그렸어요." 악인 민주영은 좀비처럼 계속 살아났다. 빼도 박도 못하는 범죄의 증거가 발견돼도 돈과 권력을 써서 빠져나갔고, 굿보이 윤동주에게 주먹으로 응징을 당하면 더 큰 폭력으로 대갚음했다. 평범한 공무원의 얼굴에서 점차 괴물의 얼굴이 되어가는 민주영의 변화는 철저히 오정세의 악인 설계가 바탕이 됐다. "민주영을 어떻게 설계할까 많이 고민했어요. 이게 너무 세면 드라마를 쫓아가는 시청자들도 불편함을 느낄 수 있으니, 악행의 세기와 폭력의 정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감독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잡아갔어요. 외형적인 디자인도 신경 썼는데, 민주영이 맞아서 얼굴도 찢어지고 눈도 빨개지고, 점점 얼굴이 일그러지며 마지막 16부에서는 괴물의 얼굴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평범했던 얼굴이 굿보이 팀에 의해 망가지는 게, 그들이 민주영의 가면을 벗겨준다는 의미도 담았죠. 헤어도 크게 티는 안 나지만, 민주영이 초반 관세청 직원일 땐 머리에 거의 손을 안 댔고, 정체가 드러난 이후엔 스타일링한 헤어로 작은 변화를 줬어요. 의상도 평범한 듯 보이지만 바지가 300만 원짜리라든지, 그렇게 고가의 옷을 입는 민주영을 표현했고요. 작은 변화에서 큰 차이가 보였으면 했어요." 오정세는 괴물처럼 망가져가는 민주영의 얼굴을 표현하기 위해, 상처 디자인 하나하나에도 신경 썼다. 얼굴에 어떤 상처가 올라와야 더 섬뜩하게 보일지, 여기에 어떤 의미를 담을 수는 없을지, 섬세하게 고민했다. "제가 어떤 영화 스틸컷을 봤는데, 눈썹 위에 세로로 상처 메이크업을 한 친구가 있었어요.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그걸 민주영의 상처로 가져오면 좋겠다 싶어 그런 식으로 상처를 디자인했어요. 그렇게 반영이 된 아이디어도 있고, 어떤 것들은 생각만 하고 반영이 안 된 것도 있죠. 후반부에 민주영이 얼굴에 대고 있던 핸드폰이 터지며 크게 화상을 입는데, 화상 흔적을 올림픽기나 메달 모양 같은 걸로 해서 굿보이의 흔적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그건 구현을 못 했죠." 드라마 속 악역은 때때로 시청자의 호응을 얻기도 한다.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서사가 깔리거나, 악행을 저지르지만 매력적인 캐릭터 플레이가 더해지면, 밉지 않은 악역으로 시청자의 호감을 살 때가 있다. 오정세는 이를 경계했다.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라 애정이 생길 법도 한데, 그는 철저하게 민주영이 동정표를 받는 악역으로 그려지지 않도록, 스스로도 캐릭터와 거리를 뒀다. "민주영은 저 개인적으로도 찝찝했어요. 인물에 대한 정이 없었고,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죠. 민주영이란 캐릭터에 접근하며, 서사에 집중하지 않으려 했어요. 평범하고 선량했던 사람이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그 서사가 중요하게 생각됐다면 그것에 포인트를 줬을 텐데, 민주영의 서사는 저한테 불편했어요. '굿보이'에서 민주영은 돈과 권력 때문에 괴물이 된 인물로만 존재해야지, 변명의 동정표를 받는 건 싫었어요. 그래서 이 인물을 연기하면서 희열이나 쾌감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했고, 불편하지만 제가 그려야 할 인물로만 여겼죠. 굿보이 팀을 유지하는 자극제, 또는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는 괴물들. 그런 드라마적인 상징성으로만 그리고자 했어요." '굿보이' 13회에서 경찰 지한나(김소현 분)는 민주영 앞에서 죄명을 줄줄이 읊는다. 이런 지한나의 추궁에 민주영은 싸늘한 얼굴로 "기억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오정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그가 생각하는 '괴물'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TV를 보면, 누가 봐도 범죄를 저지른 나쁜 어른인데 권력과 돈으로 빠져나가서는 '전 기억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던 기억이 났어요. 그런 게 민주영한테 보였으면 해서, 감독님과 얘기해서 그 대사 한마디를 넣었어요. 그렇게 돈과 권력에 숨어 있는 괴물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편이라 여기고 따랐던 사람이, 알고 보니 괴물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늘 안테나를 예민하게 세워놓고 있어야 해요. 그런 정서를 밑바탕에 깔고 민주영에 다가갔어요. 어떻게 보면 현실 같다고 느꼈어요. 나쁜 사람을 잡는 일이 현실에서도 쉬운 게 아니잖아요. 드라마에선 민주영을 처단하기가 너무 힘든데, 그게 전 현실과 맞닿은 느낌이었어요. '나쁜 사람을 잡는 게 이렇게 힘들다'는 걸 보여주고, 그래도 결국에는 응징하는 모습까지 그리고 싶었어요." 박보검, 김소현, 이상이, 허성태, 태원석이 악을 소탕하기 위한 굿보이 특수팀으로 함께 활약한 반면, 오정세는 빌런으로서 홀로 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래도 오정세는 웃음 넘쳤던 촬영장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후배 박보검의 태도에 감명받은 순간들을 떠올렸다. "현장이 액션 때문에 조심해야 할 것도 많고 진하게 감정 연기할 장면들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슛 들어가기 전엔 모두가 웃고 있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이 넘치는 현장이었죠. 보검 씨와의 촬영들도 즐거웠던 잔상이 진하게 남았어요. 꽤 오랜 기간, 많은 액션과 감정적으로 소모가 큰 작품이라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항상 즐겁게 촬영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하고자 하는 배우인데, 그 친구도 그렇게 즐겁게 작업하고 있는 거 같아서 보기 좋았어요. '나도 저 친구처럼 해야겠다' 하는 자극도 받았고요." 오정세는 알아주는 다작 배우다. 올해 상반기에만 영화 '하이파이브', 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 '폭싹 속았수다', '굿보이'까지, 총 네 작품을 선보였다. 하반기에도 디즈니 플러스 '북극성'의 공개가 예고된 상황이고, 현재 출연을 검토 중인 작품도 있다. 그가 이렇게 많은 작품에 출연하는 이유는 뭘까. "작업을 하는 게 즐거워요. 그래서 예전부터 기회가 되면 계속 작업을 해 왔어요. 물론 너무 작품을 많이 해서 오는 단점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안테나를 세우고 있긴 하지만, 좋은 작품의 제안이 왔을 때 작품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거절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앞으로도 저한테 좋은 작품, 캐릭터가 손을 내민다면, 얼마든지 잡을 거예요." 신기한 건, 그렇게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데 크게 실패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작품을 고르는 탁월한 눈으로 좋은 작품을 선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캐릭터를 맡든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는 오정세의 배우로서 능력이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믿고 보는 배우', '연기 잘하는 배우'로 인정받는 오정세는 자신을 향한 대중의 높은 기대치에 이렇게 답했다. "전 다음 작품도, 다다음 작품도, 계속 노력할 뿐이에요. 그러다 언젠가 시청자들이 저한테 실망하는 때가 올 수 있겠죠. 분명히 오긴 올 텐데, 그게 두려워서 스트레스받고 싶지는 않아요. 막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압박을 받으며 그걸 이기려고 뭘 더 하려 하지 않고, 그때가 오면 오는 대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요. 다만 그때가 '늦게 왔으면 좋겠다', '안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매 작품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그때가 늦게 오도록, 저 또한 노력해야죠." 매 작품마다 최선을 다해 고민한 만큼 최고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오정세인데, 연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연기는 할 때마다 어려워요. 코미디는 코미디대로 어렵고, 빌런은 빌런대로 어려워요. 매번 새로운 숙제들이 저한테 주어지는 거 같아요. 그렇다고 한 숙제를 마무리했다고 해서, 이게 제 안에 쌓이는 느낌도 아니에요. '내가 이번에 이런 감정을 잘했으니까, 다음에 다른 작품에서도 잘해야지'가 안 돼요. 오히려 '어라? 그땐 잘 됐는데, 왜 이번엔 안 되지?'가 돼요. 계속 다른 숙제만 쌓이는 거예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아마 모든 배우들이 그런 여정을 걸어가고 있지 않을까요?" 오정세는 카메라 앞에서 늘 긴장된다고 한다. 관객과 즉석에서 소통하는 연극 무대 위는 더 공포스럽다. 그는 20년 전 연극 무대에서, 눈에서 렌즈가 빠져 얼굴에 붙었는데 손으로 자연스럽게 떼어내지 못해 5분 동안 얼굴에 렌즈를 붙인 상태로 연기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연기뿐만 아니라, 남들 앞에 서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성격이다. 일례로, 지인의 결혼식에서 사회를 본 적이 있는데, 쓰인 대본대로 읽기만 하는 것도 제대로 못해 망친 에피소드도 있다. 이렇게 긴장하는 사람인데, 극도의 긴장 속에서 연기를 하는데도 그의 연기가 훌륭한 건, 그만큼 치열한 고민과 철저한 준비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만반의 준비를 해서 현장에 가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준비한 걸 과감히 다 버려야 할 때가 오더라도 유연한 연기력이 나올 수 있다. '굿보이'는 끝났지만, 오정세의 훌륭한 연기는 조만간 다시 감상할 수 있다. 오는 9월 10일 공개가 확정된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북극성'을 통해서다. "'북극성'은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보다, 전체 스토리가 재밌는 작품이에요. 감독님과 길게 호흡을 맞춰보고 싶어서 참여했는데, 현장에서 하이라이트 편집본을 봤을 땐 '우와' 감탄이 나오는 작품이었어요. 저도 어떻게 나올지 기대하고 있어요." 사진제공 : 프레인TPC, SLL, 스튜디오앤뉴,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디자인 : 채지우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매 작품을 할 때마다, 첫 촬영 전날은 도망가고 싶어요. '미지의 서울' 때는 더더욱 그랬어요. '내가 무슨 용기로, 무슨 자신감으로 이걸 할 수 있다고 했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너무 무서운 거예요." 배우 박보영은 주연을 맡은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의 첫 촬영을 앞두고 도망가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역량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힘든 배역을 덜컥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닌가' 하는 부담감과 두려움이 유독 컸다고 한다. '미지의 서울'은 얼굴 빼고 모든 게 다른 쌍둥이 자매 유미래와 유미지가 인생을 맞바꿔 살아보며 진짜 사랑과 인생을 찾아가는 로맨틱 성장 드라마다. '오월의 청춘'의 이강 작가가 대본을 쓰고, '질투의 화신',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의 박신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 작품은 미래/미지 쌍둥이 자매가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가며 겪는 좌충우돌 적응기를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를 내포한다. 어딘가 하나씩 결핍이 있는 약자들이 좌절을 딛고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성장 과정, 그런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는 자들이 전하는 소중한 응원,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내 편들의 든든한 지지, 잠시 멈추거나 도망가도 '괜찮다' 말해주는 위로까지, 많은 부분에서 따뜻함을 전하는 작품이다. 이런 '미지의 서울'의 대본을 본 박보영은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게 됐다. "이 드라마는, 너무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땐 방송사도 감독님도, 하나도 정해진 게 없었어요. 근데 이 대본을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될 거 같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다고 얼른 줄 서야 할 거 같았어요. 그래서 '세팅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원래 대본은 다 각자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남의 것이라도 내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는 없을 기회라 여겼죠. 1인 2역도 그렇고, 이 나이대의 사회초년생 역할은 시간이 지나면 또 못할 테니까요. 제가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해 배우로서 욕심이 났어요. 또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이 결핍이나 핸디캡이 있는데, 그게 거부감 없이 따뜻하게 잘 그려졌더라고요. 그리고 사람들한테 '괜찮아', '너만 그런 게 아냐', '열심히 살고 있는 거 알아' 하는 메시지를 주는 게 좋았어요. 귀한 대본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박보영은 미지와 미래, 미래인 척하는 미지, 미지인 척하는 미래까지, 따지고 보면 1인 4역을 연기했다.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두려웠다지만, 박보영의 쌍둥이 자매 연기는 훌륭했다. 미지와 미래의 차이를 섬세하게 그려내 시청자가 헷갈리지 않고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 박보영이 '미지의 서울'을 통해 보여준 연기는, 지난 20년 연기 경력의 집약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내공이 느껴졌고, '배우 박보영'의 다채로운 매력이 모두 녹아 있었다. 시청자들은 '미지의 서울'이 주는 메시지에 위로를 받았다는 반응과 함께, 중심에서 극을 이끈 박보영에 대해 "박보영의 인생 연기를 봤다", "박보영 원래 쌍둥이 아니냐", "연기대상 감이다"라는 극찬을 쏟아냈다. 입소문을 타고 드라마 시청률은 첫 회 3.6%로 시작해 마지막 회 8.4%까지, 두 배 이상 상승했다. "너무 감사하죠.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 1인 2역을 '박보영1', '박보영2'로 생각하면 어쩌나였거든요. 나중엔 미지와 미래를 잘 구분해서 봐주시는 거 같아 좋았어요." 성공적으로 끝낸 도전.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다. 10년 전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서 1인 2역을 연기한 경험이 있지만, 이번엔 그때와 달랐다. 그때는 귀신에 빙의한 1인 2역이라, 빙의의 본체였던 김슬기의 연기를 보고 말투나 행동을 따라 하면 됐는데, 이번엔 미지와 미래가 얼굴만 같은 두 명의 다른 인격체라, 각각의 캐릭터를 따로 디자인해 연기해야 했다. 박보영은 미래와 미지가 차이가 없어 보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내 안에 버튼이 있어서 누르면 미지와 미래가 각각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때 박신우 감독은 박보영에게 "너무 차이를 두려 하지 말고, 미래와 미지가 한 사람이라 생각해도 된다. 다만 거기에 조금씩 디테일만 다르게 잡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박보영의 미지와 미래는,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목소리 톤을, 미지는 밝은 에너지의 친구라서 제가 원래 잘 쓰는 톤으로 잡았어요. 반면 제가 가족들 앞에서는 조금 가라앉은 모습이 있는데, 그걸 미래한테 썼어요. 그래서 가족들은 미래한테서 저의 모습을 많이 봤다고 해요. 친구들이나, 저랑 일하는 분들은 미지한테서 절 많이 겹치게 봤고요. 제가 언니랑 대화할 때의 톤, 사회생활 할 때의 톤을 구분해 미래와 미지한테 적용했어요. 제일 고민은 미래와 미지가 서로가 서로인 척할 때였어요. 미래가 조금 더 메이크업을 잘할 거라 생각해 눈의 점막을 채우는 아이메이크업을 해서 눈을 더 또렷하게 보이게 한다거나, 미래는 귀 뒤에 머리카락이 없고 미지는 머리가 항상 남아 있다거나. 그런 작은 디테일로, 두 캐릭터를 좀 열심히 나눠보고자 했어요." 시청자의 입장에선 배우의 연기와 완벽히 구현된 CG 기술로 쌍둥이의 등장에서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실제 촬영 당시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박보영은 미래와 미지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선 두 개의 캐릭터를 오가며 여러 번 촬영을 반복했고, 상대 없이 아무도 없는 허공을 보며 감정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어요. 초반엔 단순히 미지와 미래를 구분해서 두 개를 연기한다고만 생각했어요. 두 명이 존재하는 장면을 찍으려면 대역이 필요했는데, 저와 체형이 비슷한 친구를 찾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해요. 그렇게 대역이 있어도, 저와 연기할 때 시선이 안 맞는 경우도 있고, CG 처리할 때 대역이 없는 게 더 유리할 때가 있어서, 나중에는 대역 없이 스탠드에 제 눈높이를 표시해 두고 혼자 연기했어요. 연기하며 생기는 움직임도 다 계산해야 하는데 허공을 바라보고 연기해야 하니, 그 부분이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극중 미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지만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교, 좋은 직장에 취직한 큰딸이다. 자신의 병원비 때문에 집이 빚을 졌다는 부채감이 있어, 직장 내 괴롭힘을 오랫동안 당하면서도 집안의 가장으로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다. 그렇게 곯을 대로 곯은 상처가 결국 터진 미래는, 쌍둥이 동생 미지와 삶을 바꿔 살아보기로 한다. 말수 없고 예민한 성격의 미래와 달리, 미지는 밝고 에너지 가득한 모습으로 마을에서 '유캔디'라 불린다. 타고난 건강 체질인 미지는 마을의 온갖 잡일을 하며 간간이 돈을 버는데, 남들은 '백수'라고 손가락질하지만 10년 동안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의 간호를 도맡아 온 착한 손녀다. 하지만 이런 미지도 크나큰 상처가 있다. 어릴 적 '육상 영재'라 불리며 밝은 미래를 꿈꿨지만, 부상으로 한순간에 꿈이 좌절된 후 3년간 자신의 방에서 나가지 않고 스스로를 사회와 가정에서 격리시켰다. 미지와 미래가 6대 4 비율로 실제 자신과 비슷한 거 같다는 박보영은, 더 마음이 쓰인 캐릭터도 미지라고 밝혔다. "두 캐릭터 다 마음이 쓰이는데, 제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던 건 미지였어요. 미지가 에너지가 큰 친구이긴 하지만, 전에 아픔을 겪은 시기가 있었고, 그게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음에도 괜찮은 척하죠.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장해 나가는 것들이, 저랑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전 표현이 많은 편인데, 미래를 연기할 땐 표현을 절제해야 해서 힘들었고, 미지를 할 때가 좀 더 수월했던 거 같아요. 근데 또 미래가 예민할 땐, 제가 예민할 때를 보는 거 같기도 하고. 둘 다 비슷한 면들이 있었죠." 밝고 에너지 가득한 모습으로 '유캔디'라 불리지만, 과거 자기의 방 안에만 틀어박혀 모두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던 아픔이 있는 미지. 늘 괜찮은 척 하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은 상태인 미지에게 박보영은 공감했다. "저도 개인적으론 어떤 일이 있어도, 현장에선 그렇지 않은 척해야 할 때가 많아요. 그런 부분에서 미지한테 공감을 많이 했어요. 특히 방 안에만 있던 미지가 할머니랑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공감이 크게 됐고 제게도 위로가 됐어요. 저도 실패했을 때, 다 포기하고 싶을 때, 스스로 '난 아무것도 안 될 거야'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미지 할머니가 미지에게 해주는 그런 말을 기다렸던 거 같아요. 대본을 보고 너무 울었어요." 극 중 미지 할머니(차미경 분)는 방에만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한 채 "난 아무것도 안 될 거야", "아무것도 못 하겠어", "나 너무 쓰레기 같아"라며 자존감이 바닥을 친 손녀 미지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우리 번데기, 얼마나 큰 나비가 되려고 이러나." "뭐가 그렇게 후회고 걱정이야.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아직 멀었는데." "사슴이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잡아 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미지도, 살려고 숨은 거야. 암만 모양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이 장면을 대본으로 읽을 때부터 잘 표현하고 싶었다는 박보영은, 다른 날 재촬영까지 진행하며 장면을 완성했다. 그 결과 '미지의 서울'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이 탄생했다. 박보영은 이 장면을 통해 "제가 공감하고 위로를 받은 만큼, 한 번쯤 실패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지와 미래한테 각각의 러브라인이 있는 만큼, 박보영은 배우 박진영(이호수 역), 류경수(한세진 역), 두 배우와 두 개의 로맨스를 연기했다. 이 역시 1인 2역이라 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두 개의 러브라인은 각자 다른 힐링 로맨스로,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드라마에는 메인 러브라인과 서브 라인이 있잖아요. 어느 쪽이든 한쪽은 서운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작품은 양쪽에 다 마음을 줘도 서운할 사람이 없어 행복했어요.(웃음) 진영이랑 경수랑 다른 느낌의 연애를 해서, 두 배의 감정을 느낀 거 같아요. 다른 두 가지의 사랑을 느껴봐서 좋았어요. 고마웠던 게, 미지와 미래를 서로 바꾼 상태에서 상대를 만났을 때, 그 친구들이 '느낌이 다르다'고 말해주는 게 좋았어요. 예를 들어, 호수가 미지인 줄 알고 얘기하는데 사실 미래였을 때, '너무 차갑고 기분이 이상하다. 미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는데, 상대방이 그렇게 말해주니 제가 방향을 잘 잡고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죠." 최근 박보영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조명가게' 등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작품을 연이어 선택하고 있다. '미지의 서울'도 마찬가지다. 박보영은 좀 다른 결의 차기작을 예고했다. "제가 또 뭐라고 그렇게 메시지를 드리려 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웃음) 이젠 밝은 걸 하고 싶기도 하고요. '미지의 서울'을 끝내고 지금 '골드랜드'란 작품을 촬영하고 있는데, 그건 장르도 캐릭터도 어두워요. 제가 몇 년간 차분하고 가라앉은 것만 한 거 같은데, 이다음에 선택할 땐 밝은 걸 하고 싶어요. 재미를 드릴 수 있는, 가벼운 걸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팬들과의 소통 앱 '버블'을 통해 팬들과 소통 잘하기로 유명한 박보영. 그녀는 요즘 하루를 시작하는 팬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제는 지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모른다." '미지의 서울'에서 미지가 매일 아침 주문처럼 읊조리는 대사다. 박보영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팬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해 이 문구를 써준다고 한다. 이 말 그대로,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날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힘들어하지 말고, 작은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 미지가 닫혔던 방문을 열고, 문지방을 넘는 작은 한걸음을 내디뎠던 것처럼. 사진 제공 : tvN, BH엔터테인먼트, 디자인 : 채지우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수많은 K-웹툰들이 드라마나 영화로 실사화되며 글로벌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레전드 웹툰이 드라마 시리즈로 탄생했다. '역대 가장 완성도 높은 느와르 웹툰'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두터운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네이버웹툰 '광장'이 배우 소지섭 주연의 넷플릭스 시리즈로 만들어져 지난 6일 7부 전편이 공개됐다. 드라마 '광장'은 원작의 캐릭터와 세계관은 가져오되,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먼저 '광장'의 의미부터 확장했다. 과거 서울의 주먹들이 자웅을 겨루던 국회 앞 '광장'을 뜻했던 원작의 의미와 다르게, 드라마 시리즈 속에서 '광장'은 '주운'과 '봉산'이라는 양대 조직 세계와, '상대를 건든 자는 누구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라는 규칙 자체를 의미한다. 11년 전, 남기준(소지섭)은 두 조직의 운명을 바꿔 놓은 사건 이후 다시는 광장에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끊은 채 잠적한다. 하지만 주운의 2인자였던 동생 기석(이준혁)의 석연치 않은 사망 소식을 접한 기준은, 동생의 죽음 뒤에 있는 배후를 찾아내기 위해 광장 세계에 돌아오고 자비 없는 복수를 실행해 나간다. 기준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주운과 봉산, 그리고 광장 세계의 일원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일궈낸 것을 지키기 위해 핏빛 전쟁을 시작한다. 레전드 웹툰의 실사화, 가상 캐스팅 1순위 소지섭의 현실화 '광장'은 웹툰으로는 드물게 냉혹하고 진한 폭력의 세계를 보여주는 하드보일드 장르로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동생의 복수를 위해 직진하는 기준의 서사와 강렬한 그림체, 냉혹하고 진한 폭력의 세계, 피도 눈물도 없는 광장에서 벌어지는 예측 불가한 사건들까지, 팬들을 열광하게 했던 모든 요소들이 드라마 '광장'에서 영상으로 펼쳐진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배우 소지섭의 캐스팅이다. 소지섭은 원작 웹툰 팬들 사이에서 기준 역 가상 캐스팅 1순위로 거론돼 왔던 배우다. 기준을 연기하는 소지섭, 상상만 하던 그림이 현실이 됐다. 자신이 가상 캐스팅 1순위로 언급돼 왔다는 이야기에 소지섭은 "부담스러웠다"는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면서도 "나한테 시나리오가 왔을 때, 솔직히 감사했다. 이렇게 거칠고 몸을 부딪치며 에너지가 느껴지는 느와르 장르를 좋아하는데, 내게 먼저 제안이 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너무 감사했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소지섭은 영화 '회사원' 이후 무려 13년 만에 느와르 액션 장르로 돌아왔다. 그는 말보다 눈빛과 행동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기준 캐릭터를 묵직하게 그려냈다. 서늘한 표정 속 분노로 일렁이는 눈빛,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지는 소지섭의 액션을 보고 있으면, 왜 그가 기준 역 가상 캐스팅 1순위로 손꼽혔는지가 여실히 증명된다. 명품 배우진, 핫한 추영우, 특별출연 차승원, 이준혁까지 소지섭 외에 다른 배우진의 면면도 화려하다. 연기력은 기본이고, 저마다 캐릭터가 갖고 있는 분위기를 십분 살려낸 맞춤 캐스팅이 몰입감을 더한다. 광장 세계의 두 기둥 '주운'의 수장 이주운 캐릭터는 허준호가, '봉산'의 수장 구봉산 캐릭터는 안길강이 맡아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여기에 요즘 대세로 꼽히는 젊은 배우들 추영우와 공명이 기존 이미지와는 상반된 캐릭터에 도전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추영우는 이주운의 아들이자 현직 검사인 이금손 역을 연기한다. 검사로서 평생 조직을 이끌어온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는 듯 보이지만, 마음 한편에는 광장의 판도를 뒤집으려는 야망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옥씨부인전', '중증외상센터' 등에서 선한 연기로 관심을 모은 추영우가 이중성을 지닌 이금손 캐릭터를 맡아 그동안 본 적 없는 새로운 연기로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공명은 구봉산의 아들인 '봉산'의 후계자 구준모 역으로 악역을 소화한다. 원하는 것은 다 가져야 하는 철없는 성격에 무자비한 면모를 지닌 구준모 캐릭터를, 순한 외모의 공명이 연기하는 반전 또한 이색적이다. 이범수는 광장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일들을 깔끔하게 뒤처리해 주는 '엔클린'의 대표 심성원 역을 맡았다. 오랜만에 보는 이범수 특유의 양아치 연기가 극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조한철은 이주운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충직한 오른팔 최성철 역으로 흔들리는 광장 세계의 균형을 잡으려는 냉철한 모습을 그려낸다. 특별출연 같지 않은 특별출연들 또한 '광장'의 중요 포인트다. 배우 차승원과 이준혁이 그 주인공인데, 두 사람은 특별출연 치고는 많은 분량과 존재감으로 더 풍성한 광장 세계를 완성한다. 차승원은 '주운'과 '봉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미스터리한 인물 차영도 역으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남기준이 광장으로 돌아온 이유이자 모든 사건의 도화선이 되는 남기석 역은 이준혁이 연기한다. '주운'을 기업으로 키워 2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의문의 습격으로 죽음을 맞는 기석 역을 소화하며, 이준혁은 수준급 액션 연기도 선보인다. 각자의 목표와 욕망을 좇는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부딪히는 치열한 에너지를 담아낸 '광장'. 각 캐릭터 간의 케미스트리와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배우들의 폭발적인 열연은 '광장'을 봐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오래간만에 보는 진한 느와르 액션 동생을 잃은 남기준은 오직 복수를 위해 직진한다. 그의 감정과 서사는 말보다 행동, 즉 액션으로 표현된다. 상당한 분량을 액션에 할애한 '광장'을 통해, 오랜만에 진한 느와르 액션 장르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잘 짜인 액션 시퀀스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아킬레스건을 잘라 한쪽 다리를 절뚝이는 약점을 지닌 기준이라 그의 액션이 스피디하진 않지만, 투박함 속에 강한 힘이 느껴진다. 마치 마동석이 모든 악을 때려 부수듯, 소지섭이 굽히지 않는 강인함으로 시원한 액션 연기를 펼친다. 무엇보다 '광장' 속 기준의 액션에는 '감정'이 담겼다. 거칠고 무자비해 보이는 액션이지만, 그 속에선 동생을 잃은 슬픔과 복수심으로 가득 찬 기준의 처절한 감정이 느껴진다. 이는 "기준의 액션에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기준의 행위가 잔인하게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액션 시퀀스를 만든 최성은 감독과 소지섭의 의지가 투영된 결과다. 소지섭은 "액션에도 기승전결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액션의 강도를 세세하게 구분해 마지막에는 클라이맥스를 터뜨리는 방식으로 구현했다.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는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인정받기 위해 움직이는 '광장' 속 인물들의 충돌은 진하고 깊은 느와르 액션의 정수를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기준의 복수를 공감하고 응원하며, 동시에 통쾌하고 시원한 액션으로 장르적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원작 웹툰 팬들은 '글쎄' 드라마 '광장'은 원작 웹툰을 고스란히 영상화한 작품이 아니다. 원작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이어가되 "원작을 재해석했다"라는 전제를 깔고 간다. 그래서 설정이나 스토리 부분에서 원작과 많은 부분이 다르게 각색됐다. 하지만 원작이 '레전드'라 여겨졌던 만큼, 원작 팬들은 드라마로 재탄생한 '광장'에 대해 적잖은 실망감을 보이고 있다. 원작 팬들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광장'의 의미를 드라마에서 다른 식으로 다룬 점, 남기준의 과거 서사 중 중요한 에피소드를 풀지 않은 점, 몇몇 주요 캐릭터들이 사라지거나 설정이 바뀐 점 등을 지적하며 아쉽다는 반응이다. 원작과의 비교에 대해 '광장'을 연출한 최성은 감독은 "원작의 서늘한 톤 앤 매너를 최대한 영상에 반영해 보자는 목표였다. 스토리적으로는 기준의 복수를 중심으로 한 서사는 유지하되, 원작과 차별점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분량이 긴)시리즈로 기획되다 보니 기준뿐만 아니라 그 대척점의 주운, 봉산 등 모든 인물들의 사연과 욕망이 있었으면 했다. 각 인물들의 갈등과 감정을 따라가며 시청하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하며, 원작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으로 재해석한다는 생각이었다"라고 각색 과정에서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설명했다. 원작 팬들을 100%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광장'은 원작을 보지 않은 시청자들에게는 킬링 타임용으로 꽤 괜찮은 시리즈다. 늘어지는 구간 없이 빠른 전개와 시원한 액션이 시간을 '순삭(순간 삭제)' 시킨다. '광장'은 원작과 닮아 있으면서도 다른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오랜만에 한국형 느와르 액션의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면, '광장'을 추천한다. 사진 : 넷플릭스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수두룩한 연예계에서도 '특출나게' 외모로 주목받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 '태희혜교지현'이라 불리는 미녀 배우 트로이카가 있었다면, 요즘 MZ세대 사이에서는 이 배우가 '끝판왕 비주얼'로 불린다. 바로 배우 고윤정이다. 고윤정은 각종 광고와 화보를 섭렵하고, 글로벌 명품 브랜드 앰버서더로 발탁되는 등 모두가 인정하는 빼어난 미모로 단숨에 연예계를 휘어잡았다. '남자는 차은우, 여자는 고윤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고 고윤정이 미모로만 주목받는 건 아니다. 본업인 배우로서도 제 몫을 제대로 하고 있다. tvN '환혼:빛과 그림자'에 여주인공으로 교체 투입됐을 때도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극에 설득력을 입혔고, 디즈니+ 시리즈 '무빙'에서는 초능력 여고생 장희수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며 배우로서 글로벌 입지를 다졌다. 그래서 신원호-이우정 사단이 tvN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언슬전')을 제작하고 여주인공으로 고윤정이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기대감이 상당했다. '응답하라', '슬기로운' 시리즈를 제작한 믿고 보는 제작진에, 최고의 라이징 스타 고윤정의 조합이니 당연히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언슬전'(극본 김송희, 연출 이민수)은 산부인과 전공의 1년차들의 성장 과정을 담은 메디컬 성장드라마로, 신원호-이우정 사단의 히트작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스핀오프 작품이다. 원래 '언슬전'은 지난해 5월경 방송될 예정이었지만, 생각지 못한 전공의 파업 사태가 발목을 잡았다. 의료 공백을 만든 전공의에 대한 부정적인 현실 여론은, 전공의의 고군분투 성장기를 전면에 앞세운 이 드라마에 직격탄을 날렸다. 결국 '언슬전'은 촬영을 모두 끝냈지만 편성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그렇게 1년의 표류 끝에 '언슬전'이 최근 시청자에 공개됐다. 방송 초반에는 민감한 사회 이슈와 맞물려 이 작품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했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언슬전'은 그만의 매력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돌렸다. 첫 화 3%대였던 시청률은 차근차근 상승해 마지막 12화는 8%대를 기록하며 처음 대비 두 배 이상 올랐다. 그 중심에는 고윤정이 있었다. '언슬전'에서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1년차 오이영 캐릭터를 연기한 고윤정은 이 작품에 두 번의 오디션 과정을 거쳐 합류했다. "오디션 제안을 받고 가서 현장에서 대본 리딩을 했어요. 특정 캐릭터로 오디션을 본 게 아니라 대본에서 발췌된 여러 캐릭터의 대사를 읽었는데, 그래도 반 이상은 오이영 대사였던 거 같아요. 그리고 감독, 작가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쉴 때는 뭘 하는지, MBTI는 뭔지, 그런 이야기들이요. 아무래도 저의 이야기를 듣고 이영이랑 맞을 거 같다 생각하셨던 거 같아요. 2차 오디션까지 보고, 캐스팅 연락을 받았어요. 그렇게 배우가 정해지면, 작가님들이 그 배우에 맞춰 대본을 써주셔서 저마다 싱크로율이 높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더 편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고요." '언슬전'은 신원호-이우정 사단이 만든 '슬의생' 세계관을 잇는다. 시즌2까지 제작될 정도로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은 '슬의생'의 연장선이라 부담될 수도 있지만, 고윤정은 설레는 감정이 더 컸다. "설레는 게 더 컸던 거 같아요. 대본을 받으면서 부담은 크게 안 느꼈어요. '와, 내가 이 세계관에 들어간다고?' 그런 벅찬 느낌이었어요. '슬의생'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들이 있잖아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으니, 저도 할 수 있는 한 잘해서 오이영이 시청자들에게 좋은 캐릭터로 느껴지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오이영은 5천만원의 빚을 갚고자 전공의 생활을 시작한 인물로, 심드렁한 성격에 남에게 관심도 없다. 그래서 힘든 병원 생활에 언제든 사표를 던질 각오를 하지만, 점차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의사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성장해 나간다. 동시에 사돈총각이자 전공의 선배인 구도원(정준원 분)의 듬직한 모습에 반한 오이영은 적극 구애한 끝에 그와 달달한 로맨스도 펼친다. 오이영 캐릭터에 강한 애정을 보인 고윤정은, 특히 한번 꽂히면 물불 안 가리는 오이영의 면모가 자신과 닮았다고 털어놨다. "캐릭터가 초반에는 일할 때 의욕이 없고 연애할 때는 의욕이 있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데, 이영이한텐 계기가 필요한 거 같아요. 빚을 갚겠다는 목적 하나밖에 없어서 마음을 열고 일에 올인하지 못했죠. 반면 구도원에 대해서는, 힘들 때 자신을 구제해 주고 위로해 준 멋있는 선배의 모습에 꽂혀 저돌적인 오이영의 모습이 나온 거 같아요. 저도 그런 면이 비슷해요. 하나에 꽂히면 앞뒤 안 보고 올인하는 편이거든요." '꽂히면 올인'하는 성격이라는 고윤정이 현재 꽂혀있는 건, 좋은 팀워크다. 하나의 목표를 가진 배우와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함께 어우러지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재미를 하나하나 깨닫고 있다. "제가 즐거움을 느껴야 꽂히는 거 같아요. 그걸 '무빙' 때 느꼈어요. 촬영장에서 또래 친구들이랑 학교 다니듯 즐겁게 놀다가 온 거 같은데, 결과물이 잘 나왔죠. 모두가 즐기며 즐겁게 촬영하면 이렇게 결과물도 좋을 수 있구나를 느꼈어요. 그래서 다음 현장도 기대되고, 거기에도 좋은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죠. '언슬전'에서도 그랬어요. 현장에서 친해져 서로 연기하는데 시너지를 주고, 다들 피곤하고 힘들어도 같이 즐겁게 땀 흘리며 만들어가는 매력, 거기에 꽂힌 거 같아요. 전 제 연기를 하고, 상대방은 상대방 연기를 하고, 감독님은 연출을 하고, 조명팀은 조명을 하고. 그렇게 모두 다 같이 으쌰으쌰 하면 이렇게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구나, 이게 좋은 팀워크구나 싶어요." 고윤정은 '언슬전' 촬영장에서 가족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산부인과 전공의 1년차 4인방을 연기한 신시아(표남경 역), 강유석(엄재일 역), 한예지(김사비 역)와는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저희가 다 내향인인데, 극 중 엄재일처럼 유석 오빠만 외향인이에요. 그래서 실제로 유석 오빠가 '주말에 뭐 해? 밥 먹자'고 단톡방에 제안하면, 초반에 다들 어색해서 거절했죠. 그러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때부터 극 중 4인방 친구들처럼 실제로도 친해졌어요. 그래서 그 뒤로는 서로 웃고 날아다니며 촬영했죠. 촬영 끝나고 애들이랑 더 애틋해졌어요. 서로 '보고 싶다' 연락 많이 하고 그랬어요." 4인방 중 한예지는 '언슬전'이 데뷔작이다. 고윤정도 작품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선배 배우이자 '언슬전'의 주연으로서 후배를 이끌어야 하는 위치였다. 고윤정은 자신의 신인 시절 드라마 '로스쿨'을 찍을 당시를 떠올렸다. "저 데뷔 때를 생각해 보면, 주변 선배님이나 어른들이 해주는 말씀들이 어느 정도 큰 영향을 끼쳤던 거 같아요. 그래서 예지가 뭔가를 물어봤을 때, 제가 객관적이고 정직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 자칫 잘못된 기준을 갖게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답할 때 한번 더 고민했어요. 제가 '로스쿨'을 찍을 때를 돌이켜 보면, 선배님들은 분량이 엄청 많은데도 저희를 배려해 주고 지켜주고 챙겨 주셨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느꼈는데, 그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본인들 분량이 많고 바쁜데 현장에 올 때마다 후배들을 챙기는 게 어렵다는 걸 크게 느꼈어요. 그리고 저도 그런 선배가 되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도움이 되고 싶었죠. 근데 예지가 너무 성숙하고 연기를 잘해서, 제가 특별히 할 게 없었어요.(웃음)" 고윤정은 의사 오이영 캐릭터를 준비하며, 수술 영상을 보기도, 실제 병원에 가서 교수들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실리콘으로 가짜 살을 만든 수처(봉합) 키트로 연습도 했다. 미술 전공자라 손으로 하는 걸 잘하는 편이라는 고윤정은, 수처 실력이 좋아 교수들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언슬전'을 통해 의사가 된 고윤정은 특히 산부인과에 대한 간접 경험으로 그동안 한번도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하게 됐다. "'난 나중에 자연분만을 할까, 제왕절개를 할까' 그런 고민을 해봤어요. 그게 장단점이 다르더라고요. 또 여성질환에 대해 평소에 관리를 잘해야겠다, 꾸준히 검진받고 예방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엄마한테도 매년 검사하라고 권하고요. 매 에피소드마다 중증 환자가 나오는데, 그걸 보니 체감이 되더라고요. '이게 남의 일만은 아니구나', '언제 나한테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해야겠다 싶었죠. 이번에 공부하고 배우면서 느낀 게 많아요. 다음 생애에는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한 번 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사의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극 중 오이영은 전공의 4년차 구도원에게 반해 적극 대시한다. 병원 밖에서 구도원과 오이영은 사돈 관계로, 구도원의 형과 오이영의 언니가 부부다. 결국 구도원과 오이영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며, '겹사돈'이 극 중 주요 설정으로 작용한다. 고윤정은 이 '겹사돈'에 대해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제가 남동생이 있는데, 저도 동생도 아직 시집 장가를 가지 않아서 사돈이란 게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이영이랑 도원이랑 잘 돼서 결혼까지 하면 겹사돈이지만, 헤어지면 평생 불편할 관계더라고요. 그래서 괜찮을까 싶었고, 그런 면에서 도원이의 방어적인 면이 이해가 됐어요. (적극적으로 구애한) 이영이 입장에선 '이 정도면 한번 봐줘야 하는 거 아냐?' 싶기도 했지만요. 겹사돈이 쉬운 건 아니었을 거 같아요." 극 중 구도원은 의사로서, 선배로서, 인간으로서 모든 면에서 좋은 사람이다. 고윤정은 "나 역시도 사랑에 빠졌을 거 같다"며 인간미 넘치는 구도원 캐릭터에 애정을 보였다. 이런 구도원 역으로 로맨스 케미를 맞춘 배우 정준원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오빠가 저와 8살 정도 차이 나는데, 그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을 정도로 전혀 차이를 못 느꼈어요. 저희 1년차들과 너무 잘 놀았고, 어느 면들은 '진짜 구도원 같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연기를 너무 잘하는 선배님이고, 아이디어도 많고, 연기하면 잘 받아주는 배우예요. 오빠랑 촬영할 땐 웃다가 끝나곤 했어요." 고윤정은 지난해 '언슬전' 촬영이 끝나고 5일 만에 곧바로 차기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이 되나요?' 촬영에 돌입했다. '언슬전'의 편성이 미뤄지는 와중이었지만, 차기작 촬영으로 바빠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고윤정은 차기작, 차차기작까지 예정돼 있을 만큼,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여배우다.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이 시대 미녀의 아이콘으로 대상화되는 건 어떤 기분일까. 고윤정에게 물었다. "그럴수록 긴장도가 높아지는 거 같아요. 시상식이나 제작발표회 같은 자리에서 긴장을 많이 하는데, 그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서,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서, 그런 마음들이 합쳐져 긴장도가 높아지는 거 같아요. 절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으면 너무 감사하긴 하지만, '진짜 실수하면 안 되겠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겠다', '내가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할 땐 좋은 스트레스나 나쁜 스트레스나 모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땐, 더 좋은 에너지로 돌아오는 거 같아요." 고윤정은 최근 차은우와 한 의류브랜드 모델로 발탁돼 화보와 광고 촬영을 진행했다. 두 사람의 얼굴이 한 프레임에 담긴 것만으로, 관련 콘텐츠는 큰 화제를 모았다. "너무 감사하죠. 차은우 선배님은 누가 봐도 잘생긴 아티스트잖아요. 거기에 잘 어울린다고 해주면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잖아요. 이렇게 광고 촬영으로 만나는 것도 좋은 거 같아요. 왜냐하면 작품은 한번 하면 1년 가까이 찍는데, 그 시기가 안 맞으면 같이 촬영 한 번 못해 보고 지나칠 인연들이 많죠. 이렇게 광고 촬영이라도 같이 하고 좋은 시너지를 얻으면 좋은 거 같아요." 배우의 지나치게 뛰어난 외모는, 연기하는 캐릭터로 몰입시키기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연기가 외모에 묻히는, 상대적으로 연기력이 저평가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실제로 극 중 오이영이 바쁜 병원 스케줄에 씻지도 자지도 못해 몰골이 초췌해진 상황인데, 그래도 여전히 예쁜 고윤정의 얼굴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절 예쁘게 봐주시는 의견 너무 감사드리지만, 외모를 핑계로 연기가 묻힌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건 제가 연기를 더 열심히 해야 되는 거겠죠. 그렇게 생각해요." '언슬전' 속 전공의들은 1년차 생활이 막 시작됐던 3월에는 실수하고 깨지고 좌절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성장해 나간다. 선배들에게 배우고, 동기들과 유대하고, 환자들에 공감하며, '언젠가는 슬기로울' 그날을 꿈꾼다. 배우로 데뷔한 지 6년 정도 된 고윤정은 드라마 속 전공의 1년차들 보다는 분명 일에 있어 능숙하다. 하지만 이제 막 '초짜' 티를 벗었을 뿐, 아직 갈 길이 멀다. '슬기로운 배우'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는 지금 어느 위치까지 걸어왔을까. "전공의 1년차 기간 중 11월쯤인 거 같아요. 이제 우왕좌왕하진 않고 1인분의 자기 일은 알아서 할 수 있는 정도인데, 아직도 부족해 배울 점이 많죠.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부인과, 산과 턴을 돌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를 정하는데, 지금 저도 다양한 작품들을 하면서 뭐가 재밌나 흥미를 느껴가는 과정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슬기로운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현장에서 주변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저 개인적으로는 '이 배우랑 촬영하면 재밌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배우이고 싶어요. 그런 배우가 '슬기로운 배우' 아닐까요?" 사진: MAA, tvN, 디자인: 채지우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엉뚱한 발상과 날것 그대로의 예측 불가 행동, 예능계에서 전무후무한 새로운 캐릭터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기안84. 웹툰 작가라는 본업보다 이젠 예능인으로 더 왕성하게 활약 중인 그가 넷플릭스와 손잡고 새로운 예능을 선보였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제작된 '대환장 기안장'이다. '기안장'은 기안84가 울릉도에서 운영하는 민박집의 이름이다. 그런데 '대환장'스럽다. 프로그램 제목만 보더라도,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가 짐작 가능하다. 보통의 민박집과는 비교할 수 없이, 환장할 정도의 황당한 뭔가가 있는 그런 민박집을 '사장님' 기안84와 직원들이 운영한다. 직원은 총 2명으로 단출하다. 하지만 그 면면은 화려하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맏형 진과, 'MZ 대표 연예인' 지예은이 기안장 직원으로 일을 돕는다. '대환장 기안장'은 '효리네 민박'을 통해 민박 버라이어티 장르를 개척한 제작진의 예능이다. 제작진이 동일하다고 해서 '효리네 민박'과 같은 잔잔한 힐링 콘텐츠를 기대했다면, 그 기대는 '주인장' 기안84와 만나 와장창 깨진다. 기안84가 디자인하고 설계한 기안장을 제작진은 그대로 현실에 구현해 냈다. 그것도, 울릉도 망망대해에. 기안84의 상상이 눈앞의 현실이 된 순간, '이게 된다고?'라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바지선 위에 세운 기안장은 울릉도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다. 숙박객이 주소를 물으면, 민박집 주소를 설명할 수가 없다. "현포항으로 오세요"라고 안내할 뿐이다. 그렇게 항구에 도착하면, 지예은이 보트를 운전해 바다 위 기안장으로 숙박객을 나른다. 기안장은 멀리서 보면 알록달록한 색깔이 꼭 놀이동산 같은 외형이다. 큰 기대를 안고 기안장 바지선 위에 발을 내디디면, 바로 당혹감이 찾아온다. 민박집 안에 들어갈 문이 1층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숙박객을 반기는 건 3.8m 위에 뚫린 출입문으로,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선 출입문까지 클라이밍을 해서 올라가야 한다. 매번 들어갈 때마다 암벽을 타야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반면 안에서 밖으로 나올 땐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다. 미끄럼틀 중 하나는 바다로 이어져 있어, 집 내부에서 곧장 바다로 풍덩 빠질 수 있다. 천연 워터파크인 셈이다. 밥을 먹기 위해서도 난관이 따른다. 실내 1층에 마련된 식당으로 가려면, 철로 만든 봉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기안84는 이를 '거침없이 하이킥'에 등장했던 실내 봉 구조에서 착안했다) 내려가는 건 어떻게든 간다지만, 다시 올라오는 게 지옥이다. 건장한 남자들도 웬만한 팔 힘이 없으면 힘든 봉 타기를, 주인장 기안84와 직원 진은 음식을 준비하며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한다.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잠을 잘 수 있는 개인 침실은 따로 없다. 기안장 건물 밖에 매단 침상에서 취침해야 한다.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 삼아 잠들 수 있는 자동 야외 취침이다. 그런데 새벽에 내리는 야속한 비에는 속수무책이다. 자다가 비를 맞기도 하고, 아침에 떠오른 태양의 빛이 너무 강해 강제로 기상할 수밖에 없다. 기안장에는 주인장 기안84의 라이프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례로, 예능 '나 혼자 산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서 맨손으로 밥을 먹어 시청자를 깜짝 놀라게 했던 기안84의 기행이, 기안장 안에서는 모두가 함께하는 체험 중 하나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던 것들이 점차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고, 그렇게 모두가 기안84에게 동화돼 간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르는 고생스러운 기안장 시스템에 직원들은 불만을 터뜨린다. 기안84마저 자신의 과한 상상력 때문에 숙박객들이 너무 힘들어할까 봐 "1층에 문을 만들까?" 하며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기안84를 잡아주는 사람은 진이다. 기안장에서 요리, 청소, 빨래, 보수 등 모든 분야에서 활약하는 '만능 직원' 진은 숙박객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무엇보다도 진은 주인장 기안84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무한 신뢰와 응원을 보내며 든든하게 중심을 잡는다. 길바닥에 누워 잠을 자기도, 손으로 음식을 먹기도 하며, 점점 기안84에게 동화되어 가는 진에게서 '월드스타'의 벽은 찾아볼 수 없다. 막내 지예은은 '대환장 기안장'을 위해 보트 운전면허를 따는 열정을 보였다. 그렇게 '지선장'으로 숙박객이 바다 위 기안장으로 오갈 수 있게 다리 역할을 한 지예은은 그 누구보다 밝고 친근한 매력으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구명조끼에 얼굴이 짓눌리고 사정없이 망가지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숙박객을 세심하게 챙기며 똑 부러진 막내로 활약했다. 정든 숙박객이 체크아웃할 때 뒤돌아 눈물을 훔치는 지예은의 모습에서 그의 따뜻한 마음도 엿볼 수 있다. 기안84와 진과 지예은. 기안장을 이끈 세 명은 서로 티격태격하는 '찐' 삼남매 같은 케미로 따뜻한 웃음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세 사람 모두 방식은 다르지만, 저마다 숙박객을 '진심'으로 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져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기안84는 겉으로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주인장으로서 그 누구보다 숙박객의 생활에 신경 쓰고 사연에 공감하고자 한다.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두 아이 아빠의 사연에 울컥하며 그들을 위해 가족 그림을 그려 선물하고, 죽을 위기를 넘기고 탈북에 성공한 탈북민 숙박객을 위해 고향 음식을 만들어주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와 응원의 방법을 찾는다. 투박하지만 깊은 정이 느껴지는 기안84의 작은 배려들이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대환장 기안장'의 카메라는 숙박객들의 여행 일정을 따라가기도 하는데, 울릉도가 배경인 만큼 곳곳의 관광 코스와 천혜의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즐거움이다. 화창하게 맑은 날 독도의 아름다움도 볼 수 있다. 기안84의 상상력이 최대로 발휘된 기안장은, 체력을 요하는 시설과 황당한 시스템이 고생스럽고 환장스럽지만, 평생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그 자체가 낭만이고, 오래 남을 추억이다. 이에 숙박객들은 기안장을 떠나며 이런 말을 남긴다. "낭만이라는 말이 가장 맞는 거 같아요." "'이게 청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언제 이런 경험을 해 보겠어요. 꿈에서 깨기 싫어요." "모든 게 불편했어요. 하지만 불편한 건 한 번이지만, 추억은 영원하잖아요." 5월의 황금연휴가 시작된다. 직접 가볼 수는 없지만, 눈으로라도 '대환장 기안장'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떤가. 사진 : 넷플릭스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아이유는 확실히 인간계가 아니라 본다. 보통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너무나 많은 것들을 감당하고 있는데, 그걸 또 잘 소화하고 헤쳐나가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극본 임상춘, 연출 김원석)에 출연한 배우 문소리는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아이유에 대해 "인간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기와 노래, 예능을 모두 아우르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많지만, 아이유만큼 모든 분야에서 '톱'을 찍은 스타 중의 스타는 흔치 않다. 아이유는 현존하는 한국 솔로 여가수 중 최고로 평가받는다.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고, 단독 공연으로 잠실 주경기장, 상암월드컵경기장 같은 대형 스타디움을 매진시킬 티켓 파워가 있는 유일무이한 여성 솔로 가수다. 배우로서도 드라마 '나의 아저씨', '호텔 델루나', 영화 '브로커'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 온 아이유지만, 가수로서의 업적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배우로서의 활약은 살짝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배우' 아이유의 위상은 '폭싹 속았수다' 전과 후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아이유는 '폭싹 속았수다'에서 배우로서 쏟아낼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발휘했다. 새로운 도전이었던 1인 2역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나이가 들어가는 캐릭터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몰입도 높게 표현하며, '인생 작품', '인생 캐릭터'를 새로이 썼다는 극찬을 이끌어냈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애순과 '팔불출 무쇠' 관식의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작품이다. 제주에서 함께 나고 자란 애순과 관식, 그들의 순수했던 10대 시절과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던 청년 시절, 인생이 던진 숙제와 맞부딪히며 세월을 겪어 낸 중장년 시절까지, 1960년 제주부터 2025년 서울까지 파란만장했던 그들의 70년 일생을 담았다. 청년 애순과 관식을 아이유와 박보검이, 중년 애순과 관식을 문소리와 박해준이 각각 연기했다. 여기에 아이유는 애순과 관식의 큰딸 금명 캐릭터까지 소화하며, 1인 2역을 책임졌다. 역할이 두 가지이다 보니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데, 아이유는 그 중심을 단단히 잡으며 흔들림 없이 16부를 이끌었다. 아이유는 '폭싹 속았수다'의 대본을 보고 홀딱 반해버렸다. '폭싹 속았수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다양한 캐릭터의 서사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로 유명한 임상춘 작가의 작품이다. "16부까지 전부는 아니었지만, 초반 분량을 읽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특히 전 3부를 좋아하는데, 관식이가 헤엄쳐 돌아와 애순이와 재회하는 장면이 머리에서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느낌이었어요. 둘이 힘들게 재회해서 끌어안고 한다는 얘기가 애틋한 게 아니고, 애순이는 '나 옷값 물어내야 한다'고, 관식이는 '나 돈 있다'고 하죠. 그 부분의 대본을 읽는데 충격적으로 재미있었어요. 절절했다가 유쾌했다가, 눈물 흘리게 했다가 바로 웃게 했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었죠. 그렇게 초반 대본이 너무 재밌고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느낌이라, 후반까지 쭉 재밌을 거 같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젊은 애순과 애순의 딸 금명, 똑같은 얼굴로 두 가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애순의 10대부터 30대까지, 금명의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를 표현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분명 부담되는 일이긴 했으나, 배우로서 도전 의식을 자극하기도 했다. "1인 2역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근데 딱 그 지점이 너무 욕심나는 포인트이기도 했어요. '작가님께서 절 믿고 맡겨 주신 거니 그 믿음에 내가 보답해 드리겠다', '무조건 해내겠다', 그런 마음으로 불태웠던 거 같아요. 그리고 설레는 마음도 컸어요. 1인 2역이기도 하지만, 나이대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묘사돼 있어서, 그걸 제가 연기할 수 있다는 설렘, 진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아이유는 애순과 금명을 다른 인물로 시청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김원석 감독과 상의하며 목소리 톤부터 우는 방식까지, 여러 가지를 다르게 시도했다. 임상춘 작가의 탄탄한 대본과 김원석 감독의 믿음을 바탕으로, 아이유는 애순과 금명을 완성해 나갔다. "작가님께서 그 둘을 닮았지만 명확히 다르게 너무 잘 써주셨어요. 거기에 제가 퐁당 몰입만 한다면, 이건 잘 나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물론 저도 '얼굴이 똑같은데 다르게 보일까' 불안하긴 했어요. 하지만 제가 불안해하면 사람들은 그 둘을 다르게 봐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본을 믿고, 다르다고 생각하며 연기하려 했죠. 특히 목소리에 대해 감독님과 많이 상의했는데요. 애순이의 10대부터 30대까지 연기하며, 점점 문소리 선배님과 가까워지는 말투를 쓰려 했어요. 그러데이션으로 선배님과 닮아갈 수 있도록요. 10대 땐 제가 잘 안 쓰는 발성을 썼는데,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목소리면 어쩌나' 걱정되기도 했어요. 근데 감독님이 자기를 믿으라 하시더라고요. 제가 불안이 많다는 걸 감독님은 알고 계셨고, 그럴 때마다 제게 '애순이 같아요', '금명이 같아요' 이런 말들을 해주셨어요. 저한텐 그 말이 최고의 오케이 사인이었죠." 아이유는 애순과 금명 중 실제 자신과 더 비슷한 쪽은 애순이라 여겼다. 그런데 아이유를 딸로 둔 아이유의 부친은, 금명에게서 아이유가 보인다고 했다고 한다. 아이유는 "뭐 애순이 딸이 금명이니, 둘이 닮은 구석이 있지 않겠나.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제가 둘 다 닮은 거 같기도 하다"라며 웃어 보였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과 금명의 서사는, 딸, 아내, 엄마로 이어지는 평범한 우리네 일상을 그린다. 가난에 부딪히고 시대적 환경적 제약에 시련을 겪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꿈을 품었던 어린 시절, 오로지 나만 좋아해 주는 무쇠 같은 관식을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는 청년 시절, 자녀를 키우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굳세게 나아가는 중년 시절. 애순이 겪는 이 모든 과정은 특별할 것 없지만 시끌벅적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로 공감대를 높인다. 애순과 관식의 사랑을 먹고 자란 금명의 서사 역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모-자식 간의 애틋한 사랑을 바탕으로 해 감동을 자아낸다. '폭싹 속았수다'가 많은 시청자들의 "인생 드라마"라 극찬받는 건, 공감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많이 때문이다. 그 중심에서 두 캐릭터를 연기한 아이유는 청년 관식이 박보검이라서, 중년 애순이 문소리라서, 아빠 관식이 박해준이라서 다행이었다며, 모든 공을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동료들에게 돌렸다. "보검 씨의 눈이, 절 너무 몰입하게 만들었어요. 부담이 있다가도 그 눈을 보면 까먹었어요. 그런 보검 씨의 맑고 순수한 눈이 너무 관식이로 보여서 몰입에 도움이 됐어요. 문소리 선배님과 제가 2인 1역으로 같은 역할을 연기한다는 건, 그 자체가 너무 좋으면서도 떨렸어요. '선배님의 생각의 평수만큼 제가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게 가장 떨리는 일이었는데, 처음부터 선배님께서 편하게 다가와 주셨어요. 선배님 작업실에 놀러 가서 여쭙고 싶은 거 다 여쭤봤어요. 후배 입장에서 대선배님한테 여쭙고 상의하는 게 어려운데, 그걸 다 받아주셨죠. 선배님 덕에 힌트를 얻어서 입체감 있게 한 인물을 그릴 수 있던 거 같아요. 너무 즐겁게 작업했어요." 애순과 금명으로서 모녀 연기를 할 때도, 아이유는 문소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선배님이 정말 정감 있게 대해 주시니까, 그게 애순이로 느껴졌어요. 그냥 평상시 소리 선배님이실 땐 진짜 멋있고 카리스마 있으세요. 근데 현장에서 애순이처럼 묶은 머리를 하고 꽃무늬 옷을 입으면 그냥 애순이 그 자체로 계셨어요. 그래서 제가 금명이로서 몰입하기 좋았죠. 제가 금명이와 애순이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 선배님은 좋은 교과서로서 자리하고 계셨어요. 선배님의 배려를 많이 받아 감사해요. 끝까지 애순이가 진짜 인물인 것처럼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건, 문소리 선배님의 고민과 연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제가 그 청년 시절을 연기했다는 게, 저도 덕을 본 거예요." 중년 관식과 금명이로 부녀 연기 호흡을 맞춘 박해준은 현장에서 아이유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였다. "해준 선배님은 진짜 재밌으신 분이세요. 제가 애순이와 금명이를 오가며 후반으로 갈수록 현장에서 정신이 멍해질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해준 선배님이 오셔서 장난을 쳐주셨어요. 그게 뭔가 마른 흙에 물을 졸졸 주는 거 같은 느낌이었어요. 선배님의 마음을 너무 알겠더라고요. 농담을 하지만, 그게 저한테 힘을 주려고, 기운 내라고, 재미있게 분위기를 이끌어주시는 거구나. 그게 너무 아빠 관식 같았어요. 그래서 금명이가 관식을 아빠로 대할 땐 너무 몰입이 잘 됐어요. 제겐 다시 같이 작업하고 싶은 선배님들이 많은데 그중에 저한테 1위는 해준 선배님이에요. 선배님으로서도 너무 대단하시고, 같이 현장에서 연기한 파트너로서도 늘 웃고 힘든 티를 한 번도 안내는, 그런 여유가 너무 멋있었어요." 아이유는 한 가정의 딸이자 누나로서, 같은 상황에 놓인 금명에게 크게 공감했다. 금명은 제주 가족을 떠나 홀로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는데, 수화기 너머 안부를 묻는 엄마 애순은 잔소리 끝에 매번 딸의 끼니를 걱정한다. 아빠 관식은 천안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딸 금명의 얼굴 한 번 보고자 먼 길을 달려 서울까지 오고, 딸의 기숙사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린다. 이런 부모를 향해 금명이 내뱉는 말은 "짜증 나"다. "그게 정말 짜증 나서 하는 말이 아니잖아요. '엄마 아빠는 왜 그렇게 나한테 잘해줘', '미안해, 고마워' 그런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긴 '짜증 나'이죠. 그런 경험이 저한테도 있어서 금명이의 마음을 너무 잘 알 거 같았어요. 아마 저만 그러진 않을 거예요. 물론, 지금의 저도, 그렇게 표현할 나이는 지났지만요. 금명이가 남동생 은명(강유석 분)을 대하는 것도, 실제 제 경험을 많이 녹였어요. 지금은 제가 30대이고 동생도 성인이라 그러진 않지만, 어릴 시절 동생과 투덕거렸던 경험이 몸에 배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나온 거 같아요."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되어 공감 가는 상황도 많았지만, 아이유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인생의 희로애락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폭풍우가 치던 어느 날, 애순이 이제 겨우 세 살 난 막내아들 동명을 잃고,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를 끌어안고 슬퍼하는 장면이다. '아이 엄마'를 연기하는 아이유의 모습 자체가 낯선 그림인데, 심지어 아이를 잃은 엄마의 절절함까지 연기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엄청 길게 촬영했던 장면이에요. 감독님이 그 구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날씨를 꼼꼼하게 따지셨어요. 다 준비하고도 날이 너무 맑으면 과감히 촬영을 접을 정도로요. 그래서 실제로 흐렸던 날, 진짜 태풍 같은 물벼락 기계들의 도움을 받아서 촬영이 진행됐어요. 상황이 그러다 보니 몰입이 확 됐던 거 같아요. 전 아이를 안고 있어서 상황이 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게 있었어요. 아이의 발을 주무르는데, 동명이를 연기하는 새벽 군의 발이 점점 차가워지고, 마을 주민들이 나와서 둘러싸고 있는 그 상황이 모두 진짜처럼 느껴졌어요. 그 앞에선 보검 씨가 무릎을 꿇으며 오열하고 있고. 그 장면이, 늘 울던 애순은 울지 않고,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무쇠 관식이 무너지는, 두 명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신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눈물이 나오려 하면, 감독님이 '애순이는 울지 않는다'라고 잡아주고 그러셨어요. 그렇게 섬세하게 나온 장면이에요." 아이유에게서 본 적 없었던 또 하나의 낯선 그림, 바로 '출산' 장면이다. 금명이 오랜 산고 끝에 첫 아이를 출산하는 장면에서, 아이유는 얼굴의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괴로워하고 온몸에 힘이 빠지다 못해 기절까지 하는 극심한 고통을 표현했다. "출산 연기를 앞두고는 주변 경험자들한테 많이 여쭤봤어요. 근데 다 다르고, 정해진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대본에 쓰여있는 대로 충실히 표현하고자 했어요. 금명이 '기절할 거 같아요'라는 말을 계속하는데, 그럼 기절하기 직전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올 정도겠구나, 그럼 톤이 좀 올라가겠구나. 또 얼굴의 실핏줄이 터지려면 얼굴에 힘이 얼마나 들어갔을까, 목 부분 울대 근육 이런 데에 힘을 많이 썼겠구나. 그런 것들을 충실히 표현하려 했어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인생의 사계절을 담은 '폭싹 속았수다'는 배우들의 열연, 공감과 감동이 어우러진 스토리텔링 등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넷플릭스 국내 순위 1위, 글로벌 TOP 10 시리즈 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그 중심에서 극을 이끈 아이유는 '인생 연기'를 경신했다는 호평을 듣고 있다. 배우로서의 성장을 몸소 보여줬지만, 아이유는 이 '성장'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많아 보였다. "'성장'이라는 단어가 좀 모호한 거 같아요. 이 일을 하며 '내가 성장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구간은 명확하지 않아요. 그럼 다음 작품이 결과가 안 좋으면 퇴보가 되는 건가요? 성장과 퇴보의 기준은, 이 일을 계속하면서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냥 '폭싹 속았수다'가 너무 좋았고, 제가 이 작품의 열렬한 팬으로서 열심히 표현하고자 했을 뿐이에요. 이 작품을 이루는 모든 분이 정말 대가셨기에 그분들이 부려준 마법이라 생각해요. 제가 작품 덕을 너무 많이 본 거죠. 1년 동안 작품을 찍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 사이에 진짜 성실하고 꾸준하고자 했어요. '폭싹 속았수다'가 성실함의 가치를 다루는 작품인데, 이런 작품에 출연하는 사람으로서 저도 '촬영장에 나갈 땐 매일 성실하게 준비하고 후련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하자'고 약속했어요. 적어도 그 부분에 있어선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날이 없어요. 진짜 제가 할 수 있는 열심을 다 했어요. 그런 게 만약 성장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성장이라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성장'이라는 단어로 정의 내릴 순 없어도, '폭싹 속았수다'는 아이유가 더 나은 배우가 되는 데에 있어 자양분이 된 건 확실하다. 나아가 '인간 이지은'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폭싹 속았수다'와 한 3년 정도의 시간을 같이 했어요. 제가 애순이와 금명이를 연기하고 품고 지낸 그 시간이, 제 성격 자체를 변하게 한 거 같아요. 제가 전에는, 좋게 포장하자면 약간 인생에 대해 시니컬한 부분이 있었어요. 근데 이 작품을 찍고 나선, 인생을 조금 더 좋게, 낙관하는 태도가 생긴 거 같아요. '애순이, 관식이의 정신으로'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그렇게 힘내보자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 분들은 제가 너무 과몰입했다고 말해주시기도 해요. 대본을 너무 달달 외워서 그런지, 어떤 상황에 닥치면 임상춘 작가님의 시점으로 내레이션을 막 해요. 말투도, 애순이나 금명이 말투를 쓸 때가 있고요. 그럼 다들 '너 방금 폭싹 같았어'라고 해요. 그럴 정도로, 이 작품이 제 인생에 영향을 많이 준 거 같아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저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는다. 부모를 일찍 여읜 탓에 어린 나이부터 가난에 허덕이기도 하고, 자식을 잃은 고통을 평생 가슴에 묻은 채 살기도 하고, 그런 고난의 순간을 지나 꿈꾸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을 땐 가슴에 두 손을 얻고 "너~무 좋아"라며 기뻐하기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인생의 사계절 속에서 '폭싹 속았수다'가 건네는 담백한 위로는, '살면 살아진다'는 거다. "저희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가 굉장히 많은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건, '살면 살아진다'는 거예요. 애순과 관식한테 많은 고난들이 오고, 애순이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자식에 대한 슬픈 일을 겪으며 인생이 평탄하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애순이는 그걸 외면하지 않고 충분히 슬퍼하고 느낀 다음에 극복해요. 이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일생을 다루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많은 이별을 보여주는데, 그게 시절인연으로 지나가는 사람으로서의 이별이든, 삶과 죽음의 이별이든, 헤어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다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고 이 작품이 말해주는 거 같아요. 저한테는 배우로 참여하면서도, 시청자로서도, 거기에 크게 마음의 울림이 있었어요. '살면 살아진다', 그게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제일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요.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이 그걸 몸소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폭싹 속았수다'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아이유는 일찌감치 차기작을 정했다. MBC 새 드라마 '21세기 대군 부인'에 배우 변우석과 함께 남녀주인공으로 캐스팅돼 촬영을 앞두고 있다. 그는 차기작에서는 애순, 금명과는 또 다른 모습을 예고했다. "'작품을 해야겠다', '이런 캐릭터를 해서 이런 걸 해소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들면, 신기하게 그 타이밍에 맞춰 대본이 들어와요. '폭싹 속았수다'도 그런 식이었어요. 금명이와 애순이는 둘 다 울보고 감정이 많은 캐릭터였는데, '21세기 대군 부인'에서는 울지 않는 캐릭터예요. 꼭 그런 걸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전작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알게 모르게 있었나 봐요. 이건 애순, 금명이와는 또 다른 느낌의 강인함이 있고, 또 다른 느낌의 결핍이 있고, 그러면서 이해가 되는 캐릭터예요. 그래서 출연을 결정하게 됐어요." [사진제공=넷플릭스]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폭싹 속았수다, '매우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지난 7일부터 매주 금요일 4편씩, 4주에 걸쳐 총 16부가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극본 임상춘, 연출 김원석)는 제주 방언을 이용한 제목으로 인해 이 작품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직관적으로 의미가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한 편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누구를 향해 '수고 많았다'고 말하는지, 그 인사에 내포된 메시지가 얼마나 따뜻한지.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의 일생을 사계절에 빗대어 풀어낸 작품이다. 제주에서 함께 나고 자란 요망진('똑똑하고 야무지다'는 뜻의 제주 방언) 애순과 무쇠처럼 한결같은 관식, 그들의 순수했던 10대 시절과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던 청년 시절, 인생이 던진 숙제와 맞부딪히며 세월을 겪어 낸 중장년 시절까지, 1960년 제주부터 2025년 서울까지 파란만장했던 그들의 70년 일생을 담는다. 애순과 관식의 10대부터 30대까지는 아이유와 박보검이, 40대 이후는 문소리와 박해준이 각각 연기한다. '폭싹 속았수다'는 공개 이후 단숨에 국내 넷플릭스 순위 1위를 차지하며, 전 세대의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작품이 전하는 공감 가는 인생 이야기와 따뜻한 시선에 감동했다며 '인생 드라마'라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시청자가 많다. 글로벌 순위 또한 상위권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작품이라 세계에서 통할지 의문이 들었지만, 공개 2주 차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2위에 등극했다.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 그 보편적 감성은 국경과 상관없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폭싹 속았수다'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동백꽃 필 무렵' 작가X '나의 아저씨' 감독이 그리는, 우리네 인생 '폭싹 속았수다'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쌈, 마이웨이'의 임상춘 작가가 집필하고,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를 만든 김원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작가와 감독의 전작들이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은 웰메이드 작품들이라 '폭싹 속았수다'에 대한 기대 또한 컸는데, 베일을 벗은 작품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폭싹 속았수다'는 애순과 관식의 부모 세대부터 시작해, 그들이 성장해 스스로 부모가 되고, 다시 그 자식이 커가는 오랜 세월의 흐름을 보여준다.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겪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부모, 가족이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고마움과 후회, 그들의 희로애락을 촘촘하고 섬세하게 엮어내 누구나 '내 이야기', '우리 가족의 이야기'라며 공감할 수 있다. 임상춘 작가는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우리 주변에 실존할 것처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저마다 사연을 부여해 풍성하게 이야기를 완성하는 힘이 있는 작가다. 그런 작가 특유의 개성과 매력이 '폭싹 속았수다'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사람 사는 이야기로 따스한 감동을 전하는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있으면 매회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의 끝에 느끼는 위로는 긴 여운으로 남는다. 꿈과 사랑이 시작하는 봄, 뜨거운 성장과 시련의 여름, 수확과 헌신의 계절 가을을 지나 돌아보고 정리하는 겨울까지, 인생의 사계절을 녹여낸 '폭싹 속았수다'의 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엄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 속, 방점을 찍는 부분은 '엄마'로 통하는 여성의 서사다. 광례(염혜란 분)의 딸 애순(아이유, 문소리), 다시 애순의 딸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지는 3대의 인생기가 눈물샘을 자극한다. 잠녀(해녀) 광례는 꿈 많은 딸 애순을 위해 억척같이 일하지만 일찍 세상을 떠나고, 시인을 꿈꾸던 문학소녀 애순은 지독한 가난과 시대 환경에 부딪혀 꿈을 접는다. 양배추 장사를 하며 부끄러워 "양배추 달아요" 한마디를 못하던 애순은 어느덧 좌판에서 생선을 파는 괄괄한 중년의 아줌마가 된다. 그리고 엄마 광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 또한 딸 금명이 세상에 나아갈 수 있게 뭐든 한다. 엄마의 꿈을 먹고 날아오르는 딸의 이야기. 이 작품을 보며 "우리 엄마 생각나 눈물 난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아이유X박보검의 변신…누구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배우들 '폭싹 속았수다'는 아이유와 박보검이라는 두 청춘 톱스타의 만남만으로 캐스팅 단계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두 사람은 이 작품에서 순수한데 어설픈 10대부터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20대, 자식을 키워내기 위해 헌신하는 30대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선보인다. 아이유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기죽지 않는 '요망진 반항아' 애순 역으로 지금껏 보지 못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억척스럽고 괄괄한 모습부터 자식을 잃고 무너지는 절절한 모성애까지, '엄마'가 된 아이유의 연기 변신이 새롭다. 박보검은 오로지 애순만을 바라보며 어떤 힘든 것도 군소리 없이 해내는 '팔불출 무쇠' 관식 역을 소화한다. 다정다감한 매력의 박보검이 연기하는 투박하고 우직한 관식 또한, 지금껏 보지 못한 박보검의 새로운 모습이라 시선이 간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애순과 관식은 각각 문소리와 박해준이 연기하는데, 관록의 베테랑 배우들답게 아이유와 박보검이 연기한 두 캐릭터의 결을 유지하며 이질감 없게 호흡을 이어간다. 애순과 관식의 일생을 다채롭게 채워주는 인물들을 연기한 김용림, 나문희, 염혜란, 오민애, 최대훈, 장혜진, 차미경, 이수미, 백지원, 정해균, 오정세, 엄지원 등 연기파 배우들이 선사하는 앙상블도 주목할 포인트다. 이들은 개성, 사연, 매력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를 완성하며 그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모두의 연기가 훌륭하지만, 특히 손꼽을 배우는 염혜란이다. 염혜란은 애순의 엄마 광례 역을 맡아 '폭싹 속았수다' 초반의 전개를 책임진다. 광례의 유난히 억척스러운 행동이 홀로 남을 애달픈 딸 애순을 위한 독기 어린 강인함이란 걸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또 그런 딸을 두고 먼저 눈을 감아야 하는 광례의 한과 설움까지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펼쳐낸다. 시청자가 애순이를 애정하며 그의 인생을 응원하게 만드는 힘, '폭싹 속았수다'에 빠져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시작은 초반 염혜란의 연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염혜란은 TV 밖 세상 모든 애순이를 울린다. 제주라는 장소가 주는 힐링…미술X음악의 조화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이 섬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부분의 마을 장면들은 경북 안동에 지은 세트에서 촬영됐지만 파도치는 푸른 바다, 넓게 깔린 현무 바위만 봐도 제주의 아름다움이 충분히 느껴진다. 애순과 관식의 첫 키스신 배경이 된 노란 유채꽃밭을 비롯해 김녕 해변, 제주목관아, 오라동 메밀꽃밭, 성산일출봉 등이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데, 확실히 제주라는 장소가 주는 위안과 감성이 있다. 또 '폭싹 속았수다'는 1960년대부터 2025년까지 다루는 만큼 시간의 흐름을 잘 녹여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제작진은 의상, 미술, 소품 등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 결과 시대적 배경을 반영해 현실감 넘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마치 그 시대에 들어간 듯 생생하게 구현된 배경에서 인물들의 살아 숨 쉬는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에 각 시대의 분위기를 단번에 느껴지게 하는 다양한 음악들도 활용되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폭싹 속았수다'는 총 4막 16부 중 이제 2막까지 공개됐다. 절반이라는 흐름에 맞춰 인생의 중반부, 중년의 애순과 관식, 대학생 딸 금명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절반만 맛 보았지만 작품이 전하는 매력은 이미 충분히 전해졌다. 그래서 남은 3, 4막의 공개도 기대된다.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건, 애순과 관식 인생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모두 감상한 후 이 '폭싹 속았수다'라는 말이 주는 분명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거란 거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쓰는 그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가, 기나긴 세월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어온 누군가에게 가서 닿을 때 얼마나 진한 여운으로 남을지.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 혹은 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될지. 사진: 넷플릭스, 디자인: 채지우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뭐든 처음은 쉽지 않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라 어색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배우 차주영은 달랐다. 첫 타이틀 롤, 첫 사극 도전인데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최근 종영한 tvN X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원경'에서 주인공 원경왕후 캐릭터로 분한 차주영에게선 처음의 어설픔을 찾아볼 수 없었다. '원경'은 '남편 태종 이방원과 함께 권력을 쟁취한 원경왕후. 왕과 왕비, 남편과 아내, 그 사이 감춰진 뜨거운 이야기'라는 로그라인처럼, 원경왕후를 중심으로 태종과의 부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다. 형제들을 죽이면서까지 왕이 된 남편이 왕권을 강화시키는 과정에서, 뜨겁게 사랑하고, 강하게 부딪히며, 중전으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주체적으로 산 원경왕후의 일대기를 담았다. 대중에게 차주영이라는 배우가 확실하게 각인된 건, 아마도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의 학폭 가해 무리 중 하나였던 '스튜어디스 혜정' 역일 것이다. 한없이 가벼웠던 혜정이가 중후한 원경왕후로 변신한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원경'을 보면, 차주영에게서 혜정의 얼굴은 찰나의 순간도 발견할 수 없다. 기품 있는 분위기, 힘 있는 말투, 깊은 눈빛 등에서 원경왕후의 위엄이 느껴졌다. 맡는 캐릭터에 맞게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게 배우라 하지만, 혜정과 원경의 꽤나 큰 간극을 완전히 달라진 연기로 메우는 차주영의 힘이 놀랍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유학파로, 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걷던 차주영은 지난 2016년, 26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배우로 본격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어게인 마이 라이프' 등에 출연했지만 배우로서 큰 인지도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다 '더 글로리'가 큰 성공을 거뒀고, 비로소 차주영에게도 작품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출연 제안이 들어온 많은 작품들 중 차주영이 선택한 건 '원경'이었다. 그가 '원경'에 끌린 이유는 사극 장르이면서도, 그동안 메인으로 다루지 않은 인물의 일대기를 조명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사극은 늘 제가 하고 싶은 장르라, 선택하는 데 일말의 고민도 없었어요. 사극이 몇 개 들어왔었는데, 그중에 가장 하고 싶은 게 '원경'이었어요. 퓨전이긴 하지만 정통 사극을 지향하면서 실존 인물과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그런 클래식한 사극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또 원경의 일대기를 다룬다는 것도 끌렸어요. 제 연기 인생 동안, 누군가의 일생을 담는 작품을 할 기회가 흔치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태조 이성계의 며느리, 태종 이방원의 아내, 세종 이도의 어머니인 원경은 그동안 한국 사극에서 여러 번 등장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항상 태조, 태종, 세종이 주인공인 작품의 조연에 불과했다. 드라마 '원경'은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고 새로 세워진 왕조의 중심에서 당당히 두 발을 딛고 서 있던 여인, 원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점이 차주영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여러 선배님들이 원경왕후를 너무 출중하게 연기해 주셨지만, 원경왕후를 내세워 만든 작품은 이게 최초잖아요. 그걸 제가 하고 싶었어요. 여성 서사라서가 아니라, 전 인물이 매력적이면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실제로, 저희 친할머니가 원경왕후처럼 여흥 민 씨예요. 제가 할머니 피를 물려받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더 와닿은 것도 있어요." 차주영은 '원경'을 준비하며 조선왕조실록까지 들여다봤다. 간략히 쓰인 설명만 보는 게 아니라, 원본 공부에도 도전했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을 다루는 만큼 정확한 공부와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역사는 기록한 사람들에 의해 쓰인 것이라는 걸. 당연히 큰 줄기를 건드려서는 안 되지만, 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걸. "저희 드라마가 '이게 역사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역사를 배우려면 따로 공부해야 하는 거고, 드라마는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 보는 거죠. 저희는 인간의 감정적인 부분들을 건드리며 해석해 보려 했어요." 실록을 그대로 옮긴 대하드라마가 아닌 이상,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사극 작품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다. 역사를 '다른 관점'으로 해석한 드라마라는 전제를 깔았으나, '원경'도 왜곡 논란을 피해 가지 못했다. 드라마 '원경'에서는 태종 이방원(이현욱 분)과 원경(차주영 분)이 뜨겁게 사랑한 시절은 짧게 지나가고, 이견으로 대립할 때가 더 많다. 이런 강한 갈등이 마치 원경에 대한 이방원의 자격지심과 열등감에서 기인한 것처럼 그려졌다며 역사 왜곡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왜 그런 논란이 있을까, 아쉬웠어요. 역사 왜곡을 감안하고 봐달라는 게 아니라, 저희는 '역사적 팩트를 기반으로 새로운 관점으로 다뤄보겠다'였거든요. 보면 많은 이야기가 나올 여지가 충분한 드라마라 각오는 했어요. 다만, 끝까지만 봐주신다면, 이 팀이 어떤 시도를 했는지 알아봐 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기다리는 것이 답이라고 여겼죠. 우려는 있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저희가 시도해 보고자 하려는 것들을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려의 목소리에) 많이 잠식되지 않으려 했어요. 거기에 자꾸 국한되면, 연기를 주어진 것에만 갇혀야 할 거 같더라고요. 시도해 보는 것에 의미를 두고, 버릴 건 과감하게 버리면서 접근하려 했어요." '원경' 속 태종과 원경왕후의 관계성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애증'이다. 너무 사랑해서 상대방의 배신에 분노가 크고, 그래서 나온 가시 돋은 반응에 실망도 크다. 마음 한 켠에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긴 하지만, 한 나라의 왕이고 왕비라서 여러 이해관계로 인해 겉으로 내색하지 못한다. 그래도 오랫동안 품어온 서로를 향한 진심은, 죽는 그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원경'에서 두 사람의 날 선 감정선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초반 견고하게 쌓아 올린 사랑의 시간들이 과거 회상 장면으로 짧게 스치기 때문이다. 대신 TVING에 공개한 2부작 프리퀄 드라마 '원경: 단오의 인연'으로 젊은 시절 서로에게 반해 뜨겁게 사랑했던 이방원과 원경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프리퀄 드라마까지 봐야 '원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저랑 현욱 배우도 걱정한 부분이에요. 두 사람이 너무 싸우기만 하니까, 앞서 사랑하는 모습이 조금 더 나와야 하지 않겠나, 사람들이 모르면 안 될 거 같다, 그런 걱정이요. 시청자들도 맨날 싸우는 것만 보면 얼마나 피로도가 쌓이겠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프리퀄을 기대했어요. 무거웠던 본편에선 단 한 장면도 쉽게 찍은 게 없고 치열하게 고민했는데, 프리퀄에서만큼은 모든 걸 내려놓고 촬영했어요.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어떤지 감정이 어떤지, 우리가 만드는 게 기준이 되니까요. 프리퀄에선 다른 방식으로 녹여내도 시청자가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발랄하게, 거기선 퓨전 사극에서 쓰일 법한 말투도 섞어가며, 그렇게 찍었어요." 차주영은 원경이 돋보일 수 있었던 건 이방원을 연기한 배우 이현욱의 희생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차주영이 원경을 묵직하게 그려낸 것처럼, 이현욱 또한 복잡 미묘한 이방원을 훌륭하게 연기해 냈다. 이방원 캐릭터의 극 중 설정에 있어선 의견이 갈릴 수 있으나, 두 배우의 연기 앙상블에 대해서 만큼은 누구든 엄지를 치켜세울 것이다. "저희 드라마가 한 끗으로 방향성이 너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뒀어요. 전 모든 것의 기저에 '사랑'이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이 여인이 사랑에 배신당한 걸로 비치면 안 됐고, 한 인간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다뤄야 할 게 많았죠. 그래서 현욱 오빠가 피해를 입었어요. 원경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오빠가 많이 희생해 줬죠. 방원도 원경만큼이나 애틋하고 안쓰러운 존재인데, 원경을 설명해야 해서 방원의 매력이 덜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두 사람의 노년이 그려진) 마지막 12회 전개에서 그 아쉬움이 좀 회수가 된 거 같아 다행이에요." '원경'은 TV 버전과 OTT인 TVING 버전, 두 버전으로 시청자에게 공개됐다. TV 버전은 15금, TVING 버전은 19금으로 제작돼, TVING에서 공개된 회차에서는 수위 높은 노출신이 등장했다. '원경'의 노출 장면들은 초반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모으는 데 어느 정도 일조했으나, 이야기 전개에 꼭 필요한 장면인지 의문스럽다는 지적을 받았다. 심지어 해당 노출 장면들이 배우들의 의사와 별개로 후반 대역배우 촬영과 CG로 입혀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며, 선정성 논란으로 번졌다. 이에 대해 차주영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조선시대 왕실 부부의 침실 이야기라 19금으로 다룬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너무 좋은, 과감한 시도라고 생각했죠. 다만, 그 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들이 많이 있어요. 많이 고민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모두가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극 중 원경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한 나라의 왕비였지만,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비극을 겪었다. 왕권 강화라는 절대적 명분을 앞세운 이방원이 여러 여인을 품는 걸 지켜봐야 했고, 외척 세력 견제 때문에 남동생들이 죽어 나가는 멸문지화의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차주영은 원경왕후의 내면을 섬세하고 묵직하게 연기하며, 안방극장에도 그 애통함을 고스란히 전했다. "원경의 서사는, 제가 아는 비극 중에 가장 큰 비극 같아요. 원경이 너무 안 됐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걸 제가 굳이 연기하려 하진 않았어요. 이 여인을 억지로 불쌍하게 연기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사건들이 이야기해 주니까요. 전 진심으로 연기만 하면, (원경의 마음이) 분명 전달될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정선으로 연기하자, 그런 마음이었죠." 차주영은 10대부터 노년까지 원경의 일대기를 연기했다. 촬영 후반부 흰머리 가득한 노년의 원경을 표현할 땐,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겪어온 원경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그에게도 전해져 오히려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왔다. 고된 생의 끝자락에는 지쳤을 원경처럼, 이를 연기한 차주영 또한 촬영 막바지에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 원경에 모든 걸 쏟아부었기에 그러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많았어요. 옷만 해도 다섯 겹씩 입어야 해서 화장실 한번 가기 어려웠고, '왕관의 무게'라는 게 정말 있더라고요. (가체와 머리 장식 때문에)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도 없었어요. 무거운 가체에 왁스 칠한 머리로 하루 20시간씩 있었어요. 머리를 감으려면 그걸 한참 녹인 후 두세 번씩 다시 감아야 해요. 사극 장르라 각오는 했지만, 덤벼보니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촬영 종료까지 며칠 남았지' 그런 생각들을 했어요. 물론, 그 순간에도 알았죠. 이게 끝나면, 전 분명히 이 현장을 그리워할 거라는 걸요. 머리 장식을 지탱할 힘조차 목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버텼어요." 첫 타이틀 롤 사극에 느낀 부담감과 책임감, 원경을 연기하며 감정 이입한 고통들, 사극 촬영에서 온 현실적인 어려움들까지. '원경'은 차주영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고,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이런 이야기하는 거 창피한데, 도망가고 싶었어요. 숨이 안 쉬어지고, 모든 몸의 기능들이 제 기능을 못 했던 거 같아요.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래요. 잇몸이 다 무너지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목디스크도 왔어요. 신체적으로 여러 가지가 많이 무너졌어요." 하지만 '원경'을 통해 얻은 것도 많다. "인생을 배웠죠.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몰랐던 세상 물정을 이제야 알아가는 단계인데, '원경'은 제 담력을 많이 키워줬어요. 한없이 겸손해지고, 여러 생각이 많이 들게 한 작품이에요. 연기자로서 인간으로서, 지금까지 제가 고수해 온 방식들이 있다면, 앞으로는 더 여러 가지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원경'을 본 시청자는 안다. 이 작품이 초반 19금 노출 장면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그건 이 작품의 진면목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차주영, 이현욱부터 이성계 역으로 특별출연한 이성민까지, 극을 메운 배우들의 구멍 없는 연기를 보는 재미, 원경왕후를 중심으로 남편 이방원과의 사랑과 전쟁, 궁궐 암투를 상상해 보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드라마 '원경'은 깊이 봐야 더 재밌는 드라마다. 차주영은 '원경'을 본 시청자들로부터 "애썼다", "고민 많이 했겠네"라는 감상평을 듣는 것에 울컥해했다. 그가 이 작품에 얼마나 마음을 많이 썼는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원경'을 끝낸 차주영은 "연기적으론 아쉬워도, 마음에 아쉬움은 없다. (내 모든 걸) 다 쓴 거 같다. 더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원경'을 촬영하며 모든 걸 쏟아낸 그는, 촬영이 끝난 후 한동안 일본의 한 시골 마을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며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사하라 사막까지 도달했다. 파란 하늘 아래 붉은 모래만이 광활하게 깔린 그곳에서, 차주영은 비워냈던 에너지를 다시 채워 돌아왔다. 이제, 다시 달릴 차례다. "해보고 싶은 건 너무 많죠. 느와르도 해보고 싶고, 여군 캐릭터도 해보고 싶어요. 분량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한 포인트만 있으면, 잠깐 지나가는 인물이라도 좋아요. '로비'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그게 곧 개봉할 예정이에요. 다음 작품('클라이맥스') 촬영도 곧 시작되고요." 사진: 고스트스튜디오 제공, '원경', '더 글로리' 스틸컷, 디자인: 채지우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배우가 맡았던 캐릭터 중에 연기 인생 전체를 대표한다고 평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를 '인생 캐릭터'라 부른다. 누구나 인정하는 '인생 캐릭터'가 되려면, 배우 스스로가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해 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중에게도 그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다가가 인기까지 뒤따라야 한다. 이 삼박자를 갖춘 '인생 캐릭터'를, 배우는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어떤 배우는 하는 작품마다 '인생 캐릭터'를 갈아치운다는 평가를 듣고, 누군가는 평생 연기를 해도 모두가 인정하는 '인생 캐릭터' 하나를 얻기가 힘들다. 배우 임지연은 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듯 보인다. '더 글로리'의 악역 박연진으로 전 국민의 애정 어린 미움을 받고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또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추가했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의 옥태영(구덕이)을 통해서다. "타이틀 롤이라 부담됐고, 사극이라 무서웠다" '옥씨부인전'은 악착같이 살던 노비 구덕이가 양반 아씨 옥태영의 죽음을 계기로 그녀의 신분으로 살게 되며, 새롭게 얻은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임지연은 '구덕이'이자 '옥태영'으로, 노비부터 양반 마님, 조선시대의 변호사인 외지부의 모습까지, 캐릭터의 다양한 변화를 그려냈다. 옥태영을 뜻하는 제목이 말해주듯 '옥씨부인전'의 타이틀 롤은 임지연이다.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으로 활약하긴 했지만, 송혜교, 송승헌, 김태희, 전도연 등의 선배들이 이끌면 임지연은 보조를 맞추는 정도였다. '옥씨부인전'처럼 임지연에게 완벽한 타이틀 롤이 주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타이틀 롤 경험이 이 정도는 없다 보니, 부담감이 컸어요. 처음 느껴보는 책임감이었어요. 옥태영의 삶을 그린 작품이라 보여드릴 것이 많잖아요. 신분도 다양하게 나오는데, 멜로도 있고, 외지부로서의 활약도 있고. 그런데 제가 경험이 많지 않아 선배님들이 걱정하지 않으실까, 처음에는 약간 겁을 먹은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대본 리딩날 '저 한번 믿어달라' 말하면서 저의 굳은 다짐을 전했어요. 그렇게 촬영을 시작했는데, 현장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케미가 너무 좋아서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큰 부담감에도 임지연이 '옥씨부인전'을 선택한 건 재미있는 대본, 그 안에서 구덕이/옥태영으로서 다양한 매력을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특히, '사극' 장르라는 점에서 도전 의식이 꿈틀거렸다. 임지연은 '옥씨부인전'을 통해 "나도 사극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왕 도전하는 거, 제가 제일 자신 없고 저와 안 어울릴 거 같은 사극 장르를 해보고 싶었어요. 신인 때 경험해 봐서, 사극이 얼마나 고된지,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다 탄로 나는 장르라는 걸 알아요. 한복이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사극이 무서웠어요. '내가 과연 그 안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의 여자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잘 못할 거 같은데' 그런 혼자만의 자격지심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러다 '아차' 싶더라고요. 창피했어요. '난 원래 새로운 거에 도전하고 끌리면 하는 스타일인데, 뭐가 무섭다고 잘하는 것만 하려 하나', '왜 초심을 잃었나', '왜 사극은 못 하나' 싶었어요. 연진이도 쉬워서 선택했던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보여주자', 저도 꽤나 사극과 잘 어울린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생각에 뛰어들었어요." '사극도 잘 어울리는' 임지연을 보여주고자, 그는 다방면에서 힘썼다. 한복 의상 선정에도 심혈을 기울였고, 한복을 입은 자태가 기품 있어 보이기 위해 자세 하나하나에도 노력했다. 그 결과 임지연표 '옥태영 마님'은 한 폭의 그림 같은 단아한 아름다움으로 시청자들의 칭찬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임지연 본인은 아쉬운 마음이 크다. "연기적으로 아쉬운 게 많아요. '저건 감정이 좀 더 갔어야 하는데', '저기서는 발음이 샌 거 같은데' 하는 아쉬운 장면들이 있어요. 그래도 제가 구덕이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부분들이 많이 묻어난 거 같아요. 구덕이로서, 사람들의 응원을 받을 수 있게 소화한 거 같아 다행스러워요." 사랑했던 구덕이, 닮고 싶은 옥태영 '옥씨부인전'은 지난달 26일 마지막 16회 방송을 끝으로 종영했다. 최종회는 전국 시청률 13.6%의 자체 최고 기록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높은 화제성에 시청률까지 잡으며, 타이틀 롤로서 성공적으로 '옥씨부인전'을 마친 임지연에게 소감을 물으니 울컥한 감정이 튀어나왔다. "구덕이를 너무 많이 사랑했어요. 그래서 아직 구덕이를 보내주지 못했어요. 너무 슬퍼요. 보내주기 싫고, 더 했으면 좋겠어요. 함께한 배우들을 못 본다는 생각이 슬퍼요. 2024년 저의 전부이자 모든 것이었던 구덕이랑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뭉클하고 애틋해요." 임지연의 말속에서 얼마나 이 작품을, 구덕이/옥태영 캐릭터를 사랑했는지 절실히 느껴졌다. 임지연은 이 캐릭터를 연기하며 느낀 매력들을 술술 나열하며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너무 닮고 싶었어요. 현명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그런 여성이 멋있어 보였어요. 때로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약자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는 부분들이 멋있어 닮고 싶었어요. 그런 옥태영과 저의 비슷한 부분을 찾아보자면, '노력'에 관한 거 같아요. 배우로서 제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노력이 분명 결과를 빛내줄 것이라 여기며 저만의 노력을 믿었어요. 유일하게 가장 큰 자신감이, 저의 노력과 끈기였죠. 그런 부분들이 그래도 옥태영과 겹치는 부분이지 않나, 생각해요." '옥씨부인전'은 구덕이가 옥태영의 삶을 대신하지만, 결국에는 한 인물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내용을 그린다. 노비가 양반 행세를 한 것이 질타를 받긴 하지만, 그 어떤 양반보다도 훌륭한 인품과 이타적인 행동으로 주변의 귀감이 된 구덕이는 정체가 드러난 후에도 모두의 인정을 받고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신분, 성별, 시대에 굴하지 않고 파란만장한 삶을 헤쳐나가는 한 여성의 감동 서사가 '옥씨부인전'의 핵심 줄거리다. 이런 구덕이이자 옥태영을 연기하며, 임지연은 다양한 경험을 했다. 노비로 시작해 남장도 했다가 양반 마님도 됐고, 눈 덮인 산을 넘고 불 속에서 탈출도 하고, 멍석말이도 당하고 물에 빠지기도 했다. 외지부로서 변론에 나서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기도 했고, 천승휘(추영우 분)와는 목숨 건 애절한 로맨스도 선보였다. "사극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거 같아요. (웃음) 변화도, 겪어야 할 일도 많았는데, 정말 집중을 많이 하려 했어요. '내가 그 인물이라면'도 아니고, '내가 그 인물이다'라고 생각하면서요. 그 어떤 작품보다 철저했고 치밀했고 절실했어요." 임지연이 끌고 가는 분량이 많은 데다 지방 촬영이 많은 사극 작품이다 보니, 체력적인 어려움은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구덕이를 연기할 때 노비 신분이라 못 먹어 야위고, 까맣게 칠한 분장이 잘 어울리는 느낌을 내고자 했는데, 특별히 체중 감량을 할 필요가 없었다. 워낙 체력 소모가 크다 보니 저절로 4~5kg이 빠져 자연스럽게 노비 구덕이의 모습이 나왔다. "체력적인 힘듦은 역대급이었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저한텐 몸보다 마음이 힘든 게 더 스트레스거든요. 현장에서 선배님들과 같이 연기하고 그러는 게 마음이 마냥 행복했어요. 그래서 몸이 힘든 거조차도 즐길 수 있었어요. 쓰러져 죽을 것 같아도 결국 해내니까, 진짜 대단하다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끙끙 앓으면서도 재판신 찍으려고 대본을 붙잡고 달달 외우고 있었던 제 모습이, 지금 생각해 보면 대견스러워요." 이토록 온 힘을 다해 구덕이를 완벽하게 연기해 낸 임지연을 향해 호평이 이어졌다. '옥씨부인전' 애청자들은 진심으로 구덕이의 해피엔딩을 바랐고, 임지연의 연기에는 감탄을 쏟아냈다. 연진이로 욕먹은 기억이 선명한 그에게는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절 미워하는 반응은 겪어봤는데, 이렇게 정말 진심으로 제 캐릭터를 걱정해 주는 반응은 처음이라 새로웠어요. '구덕이 어떡하냐'면서 걱정의 댓글이 많더라고요. 워낙 다사다난한 인물이라 어떤 엔딩을 맞을지 불안해하는 마음들이 느껴졌어요. 그렇게 걱정하는 마음들이, 결국엔 저희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잘 전달된 거 같아서 그런 부분들이 좋았어요." 임지연을 감동시킨 최고의 시청자 반응은, 부모님이었다. "아빠가 연기적으로 저에 대해 칭찬한 적이 별로 없어요. 극T 성격이시거든요. (웃음) 그런데 이번엔 장문의 카톡을 보내주셨어요. '내가 본 최고의 사극이고, 우리 지연이 연기 너무 잘한다'는 말을 아빠한테 처음 들었어요. 뭉클했죠. 제가 어려워했던 사극, 그런데 엄마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사극. 그걸 제가 도전해서 칭찬받았구나, 하는 마음에 뿌듯했어요." 다시, '평범한' 임지연으로 '옥씨부인전' 인기의 중심에는 옥태영과 천승휘의 로맨스가 있다. 옥태영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천승휘의 절절한 순애보를 바탕으로,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두 캐릭터의 로맨스는 잔잔한 미소를 짓게 했다. 임지연은 천승휘 역을 연기한 추영우보다 실제로 9세가 많은 누나지만, 연기할 땐 나이 차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로 나이 차를 잘 못 느껴서, 그게 작품에 잘 묻어나지 않았나 싶어요. 연기할 땐 천승휘로서 열렬히 사랑하려 노력했어요. 지금은 작품이 끝나 잔소리하는 누나가 됐지만요. (웃음) 현장에서 제가 영우보다 더 긴장하고 생각이 많았어요. 영우는 작품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능청스럽게 천승휘 연기를 잘하더라고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물을 만드는 게 타고난 거 같아요. 현장에서 감각적으로 헤쳐 나가는 게 멋있어 보였어요. 제가 오히려 도움을 받았죠. 영우가 잘 될 줄 알았어요. 이 작품 말고도,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예요." '옥씨부인전'에서 추영우와 애틋한 로맨스를 보여준 임지연의 '현실 연인'은 배우 이도현이다. '더 글로리'로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한 두 사람은 지난 2023년부터 공개 열애 중이다. 이도현은 현재 군 복무 중인데도, 여자친구의 드라마를 정성껏 모니터 해줬다. "본방 사수하면서 '잘 봤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얼마나 이 작품을 애정하는지 잘 아는 친구라,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응원 많이 해줬어요." '더 글로리' 배우들과의 친분은 여전히 두텁게 유지 중이다. 송혜교, 차주영 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연기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얻곤 한다. 그 중심에서 송혜교는 든든한 선배이자 언니로 동생들을 챙긴다. "'옥씨부인전'에 들어가기 전에 아무래도 부담이 컸어요. 제가 '나 망할 거야. 이거 왜 한다 그랬지' 하면서 자책했죠. 혜교 언니한테 위로가 듣고 싶어서 더 그랬던 거 같아요. 언니는 그런 게 있어요. 동생들한테 '넌 할 수 있어'라는 전달을 잘해줘요. 언니가 해주는 말 몇 마디에 힘이 나요. 그래서 제가 약해지고 작아질 때마다 혜교 언니를 찾게 돼요. 이제 다음 작품 준비에 들어가서 고민이 많은데, 조만간 언니를 만나 또 물어봐야겠어요. (웃음)" '더 글로리'의 박연진, '마당이 있는 집'의 추상은, '옥씨부인전'의 구덕이 등 최근 강렬한 서사에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캐릭터 위주로 연기를 해온 임지연은 배우로서 그 지점이 또 고민이다. "지금 그런 시점인 거 같아요. 연기적으로 강렬한 것만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니잖아요. 항상 모든 인물을 강렬하게 매력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죠. 평범한 인물도 해봐야 하는데, 제가 그런 걸 너무 잃지 않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치열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연기할 수 있다는 걸 느껴보고 싶어요." 임지연은 최근 tvN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 시즌2 합류를 결정했다. SBS '찐친 이상 출발, 딱 한 번 간다면'에 이어 3년 만의 예능 고정 출연이다. 그가 예능을 선택한 건, 다 내려놓고 '평범한 임지연'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진짜 다 버릴 생각이에요. 그냥 저, 임지연으로 가면 될 거 같아요. 임지연으로서 마음껏,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먹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발견하고 싶어요. 힐링하는 마음으로 출연을 결정하게 됐어요." 예능 출연과 더불어 임지연은 배우 이정재와 함께하는 새 드라마 '얄미운 사랑' 준비에 돌입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기자 역할을 맡았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니 기대도 설렘도 크다. 임지연은 '얄미운 사랑'을 통해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추가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캐릭터로 '인생 캐릭터'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예전에 연진이었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구덕이와 태영이라고 저를 불러요. '임지연'이라는 이름은 없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캐릭터 이름으로 불리면 좋겠어요." 사진 제공 : 아티스트컴퍼니, SLL, 코퍼스코리아 디자인 : 채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