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에서 영화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감독과 배우들의 '영화로운 순간'들을 전하겠습니다.
영화 '나폴레옹' / 애플 TV+ /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58분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이 명언만 들어도 누군지 단번에 떠오르는 인물,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지중해에 위치한 프랑스 변방 코르시카섬 출신의 군인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대륙을 호령했던 '전쟁의 신'이다. 나폴레옹은 혁명의 혼란으로 어지러운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뛰어난 군사전략과 정치력으로 35살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화려한 여성 편력, 조세핀과의 결혼과 이혼 등 연애사 역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전쟁 영웅의 지략과 파란만장한 연애담, 그리고 드라마틱한 몰락까지 창작의 소재로 이보다 흥미로운 인물이 있을까. 실제로 그는 여러 문학과 음악에 모티브가 됐다.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한 인물의 빈틈을 파고드는 것은 영화감독의 욕망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했다. 마틴 스콜세이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80대 거장'으로 불리는 리들리 스콧이 나폴레옹 일대기를 다룬 영화 '나폴레옹'으로 돌아왔다. 타이틀롤은 '조커'(2019)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 호아퀸 피닉스가 맡았다. 2000년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호흡을 맞추며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5관왕 신화를 쓴 두 사람의 23년 만의 재회는 할리우드 안팎에서 화제를 모았다. '나폴레옹'은 흥행 성적과 평가 면에서 좋은 결과를 남기지는 못했다. 1억 3,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3억 달러 이상이었다. 그러나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6,149만 달러, 월드 박스오피스에서는 2억 1,000만 달러를 버는 데 그쳤다. 거장은 평작도 수작이라지만 '나폴레옹'을 향한 호불호는 편차가 크다. 호평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고국인 영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나머지 유럽 국가에서의 반응은 차가웠다. 특히 나폴레옹의 나라인 프랑스에서는 '역사 왜곡 논란'까지 불거지며 영화에 대한 혹평이 쏟아졌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당신이 거기에 있었느냐. 없었는데 어떻게 아느냐"고 불쾌한 심경을 드러냈다. 역사 왜곡은 나폴레옹에 대한 묘사와 몇몇 장면에 대한 지적에서 비롯됐다. 영화 초반 나폴레옹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장면을 지켜보는 것, 이집트 원정에서 피라미드에 포를 쏘는 행위, 아내 조세핀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동 등이 영화적 상상력을 넘어 역사 왜곡 수준이라는 반응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 영국인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반프, 친영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불쾌해했다. 프랑스 전쟁 영웅의 영화를 영국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배우가 주연을 맡았으며 모든 대사를 불어가 아닌 영어로 소화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내포됐다고 볼 수 있다.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다고 해도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영화적 상상력을 관객은 수용할 수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은 동시대엔 혹평을 받았으나 재평가가 이뤄지는 경우가 적잖았다. '블레이드 러너'(1982), '킹덤 오브 헤븐'(2005)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나폴레옹'이 그 대열에 올라설지는 의문이다. 모든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메인 캐릭터에 애정을 쏟는다. 그 애정이 인물을 호의적으로 그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빛이든 그림자든 심도 깊게 다루는 총체적 연출을 하고자 노력한다. 스콧 감독 역시 예외가 아니며, 그의 대표작들은 그 점에서 있어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감독은 남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스콧은 나폴레옹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묘사는 피하려고 했다. 툴롱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 워털루 전투 등을 통해 '전쟁 영웅'의 명암을 그리는 것만큼이나 '인간 나폴레옹' 내면의 불안을 담는 데 집중했다. 특히 나폴레옹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조세핀과의 사랑과 이별에 많은 힘을 실었다. 호아퀸 피닉스는 인간의 불안과 고독, 결핍과 외로움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가진 배우다. 호아퀸 피닉스의 나폴레옹은 자신감 넘치고 늠름한 장군의 면모보다는 인간관계에 미숙하고, 사랑에 있어 무능력한 면모를 부각했다. 다만 배우의 개성이 워낙 뚜렷하다 보니 나폴레옹보다는 호아킨 피닉스가 먼저 보인다는 아쉬움은 있다. 새로운 시각과 다른 관점의 이야기가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면 성공이지만, 틀린 이야기로만 비친다면 연출자의 의도는 실패한 것이 된다. 데이비드 스카파의 각본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아우르려다 하나의 이야기도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1927년 만들어진 동명의 무성 영화가 330분이었고, 1956년 만든 '전쟁과 평화'가 208분, 2002년 프랑스와 영국이 합작해 만든 드라마는 4부작 미니시리즈였다. 나폴레옹의 방대한 인생사를 다루기에 158분은 숨찰 수밖에 없는 분량이다. 스펙터클 묘사에 남다른 능력을 지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역량을 생각한다면 1970년 작 '워털루'처럼 하나의 전투에 집중한 묘사를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폴레옹'의 전투 장면은 나폴레옹의 지략이 돋보이는 연출은 아니다. 먼 거리에서 찍은 장면과 부감이 많다 보니 스펙터클과 쾌감은 완성도과 관계없이 빠르게 휘발되는 감이 있다. 영국의 승리로 끝난 워털루 전투는 의도적으로 힘을 실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규모와 중요성에 비해 전쟁 자체를 세밀하게 그리지는 않았다. 참상과 피해 규모를 강조하며 나폴레옹은 전쟁 영웅이 아닌 전쟁광에 불과했다는 감독의 일침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됐다. '나폴레옹'은 기술적으로 잘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가'라는 물음표를 남긴다. 너무 많은 사건은 아우르려다 '하다 만 이야기'가 돼버린 가운데 실제로 존재한다는 270분짜리 감독판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자극한다. 디자인 : 박수민
영화 속 삼각 로맨스의 역사는 유구하다. 누벨 바그의 대표 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쥴 앤 짐'(1962)을 시초로 수없이 반복, 재생산돼 온 삼각관계 서사는 더 이상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다. 진부한 삼각 로맨스는 어쩔 수밖에 없이 인물의 '선택'에 집중하게 되고, 영화의 성패는 그 선택을 어떤 '방식'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갈린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챌린저스'는 흥미로운 각본과 매력적인 배우, 세련된 감각으로 무장한 연출 덕에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른바 '욕망 3부작'이라 불리는 영화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관객의 오감을 깨우는 연출을 보여줬던 구아다니노 감독은 '챌린저스'에서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에 박력까지 더해 역동적이면서도 농밀한 로맨스물을 만들어냈다. US오픈 주니어 대회를 제패하며 차세대 테니스 스타로 각광받았던 '타시'(젠데이아)는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남편 '아트'(마이크 파이스트)의 코치를 맡고 있다. 메이저 대회 출전을 앞두고 슬럼프에 빠진 남편을 위해 타시는 챌린저급 대회 참가를 제안한다. 무난한 우승으로 남편의 기를 살려줄 계획이었던 타시는 이 대회에서 남편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이자 자신의 전 연인인 '패트릭'(조쉬 오코너)를 만나게 된다. 대회 결승에서 마주한 아트와 패트릭은 양보할 수 없는 일전을 벌이고, 관중석에서 둘의 플레이를 지켜보던 타시의 묘한 표정과 함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테니스에 녹여낸 세 남녀의 삼각 서사 "테니스는 관계" "테니스는 관계야." 영화는 초반 타시의 입을 빌어 이야기의 주제를 함축한다. '챌린저스'는 스포츠 영화의 구조를 띄고 있지만 관계의 역학을 그린 로맨스 영화다. 테니스는 코트 중앙에 네트를 두고 네트를 넘어온 공이 자신의 진영에 두 번 튀기(바운드) 전에 라켓을 이용해 공을 상대 진영으로 넘기는 스포츠이다. 내가 넘긴 공을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상대를 굴복시키기도 하지만 자신이 넘긴 공이 상대에 닿지도 않은 채 선을 넘어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테니스는 노련한 기술과 강력한 피지컬, 그보다 더 강인한 멘탈을 요구하는 스포츠다. "심리전이 테니스의 모든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챌린저스'는 사랑 혹은 욕망을 테니스에 대입하고, 승리(쟁취)라는 목적을 향해 맞붙는 세 플레이어의 대결을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게 묘사한다. 타시와 패트릭, 아트의 삼각관계는 러브 게임이자 심리 게임이다. 패트릭과 아트는 주니어 시절 '불과 얼음'으로 불리며 환상의 복식조를 이뤘다. 극과 극의 속성은 서로의 빈틈을 매워주며 최고의 조합을 이뤘지만 한 여성을 동시에 사랑하며 균열이 생긴다. 패트릭과 아트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다. 패트릭은 단순하고 즉흥적이지만 아트는 스마트하고 섬세하다. 성격은 사람과의 관계 맺기는 물론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10년 사이에 달라진 그들의 위치가 그것을 증명한다. 챌린저스 결승전은 플레이어인 패트릭와 아트, 관람석에 앉아 있는 타시를 포함한 세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함축한다. 그리고 이 경기의 결과가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 모두 알고 있다. 영화는 세 사람의 13년에 걸친 연애사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플래시백의 빈번한 사용은 영화를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만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챌린저스'의 플래시백은 늘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세 사람이 펼치는 심리 게임의 근원과 향방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해소시킨다. 13년 전과 8년 전 그리고 불과 하루 전의 일이 현재의 플레이에 영향을 끼치고 때론 지배하는 상황까지 온다. 아트와 패트릭의 양보할 수 없는 결전에서 서로가 서로의 심리를 어떻게 장악하고 활용하는지가 무척이나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때 카메라는 크래시 줌(Crash Zoom: 피사체를 향해 갑작스럽고 빠르게 줌인하며 촬영하는 기법)으로 타시의 알 수 없는 표정을 반복적으로 잡는다. 세 사람의 세계에서만큼은 절대자인 인물이지만 구아다니노 감독은 그녀의 감정을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13년 전 세 사람이 호텔 방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구아다니노 감독의 '폴리아모리'(다자 연애)에 대한 판타지를 시각화한 것 같기도 하다. 여자 한 명에 남자 둘인 이 불완전한 삼각 구도가 그 순간만큼은 완성형처럼 보인다. 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주도권을 쥐고 싶은 타시의 욕망을 재미난 장난처럼 그려낸 신이지만 이 장면은 세 남녀의 역학 관계에 대한 미리보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테니스는 곧 섹스의 은유다. 챌린저컵 대회 결승전으로 시작해 승부와 함께 마무리되는 이 영화의 구조는 세 남녀가 13년에 걸쳐 만들어 온 관계의 축소판이자, 쓰리섬의 은유기도 하다. 때문에 19금 장면이 거의 없고, 경기 장면이 영화 전체 분량의 50% 이상을 차지함에도 에로틱하게 다가온다. 굳이 비유하자면 타시는 경기의 흐름을 결정짓는 서브의 귀재이며, 아트는 긴 랠리를 끌어갈 수 있는 그라운드 스트로크에 능하고, 패트릭은 결정적 한 방인 스매시 능력이 특출하다. 아트와 패트릭이 주고받는 역동적인 공격과 수비 그리고 객석에 앉아서 이 모든 경기를 조종하고 있는 듯한 타시의 삼각구도는 영화 내내 성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엔딩 역시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경기 내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두 남자가 벌이는 승부의 추에 오르락내리락하던 타시는 매치 포인트의 순간 비명을 지른다. 승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가자!"라는 타시의 외침은 무슨 의미인지 관객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욕망을 깨우는 감각적 연출…각본·촬영·음악, 모든 것이 힙하다 '챌린저스'는 스포츠 영화로서도 훌륭한 영화다. 테니스 룰을 알고 보면 더욱 재밌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승부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영화를 위해 테니스를 배운 세 주연배우들은 적어도 영화 안에서만큼은 프로처럼 보인다. 배우들의 노력은 물론 촬영과 편집이 제 역할을 했다. 경기 장면에서 보여주는 스펙터클은 놀랍다. 특히 패트릭과 아트의 승부가 듀스를 거듭하는 3세트 장면은 압권이다. 스텝 프린팅(Step Printing: 저속 촬영 후 필름의 특정한 부분을 복사해 붙이는 방법으로 피사체의 비현실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영화 기법)과 로우 앵글 샷(Low-Angle Shots: 피사체를 올려다보며 찍는 기법)을 활용해 경기의 생동감을 주고 엔딩에 이르러서는 볼과 라켓에 카메라를 단 것 같은 효과를 주는 포인트 오브 뷰 샷(Point Of View: 시점 샷)을 통해 박진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분명 두 사람의 1:1 승부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객은 아트 혹은 패트릭이 돼 경기에 참전하고 있는 느낌까지 받는다. 또한 트렌트 레즈너, 애티커스 로스가 담당한 OST는 도파민 파티를 유도하는 힙함의 결정체다. 테크노와 일렉트로니카를 기반으로 한 메인 테마곡 '챌린저스'(Challengers)는 등장 횟수로 놓고 보면 과잉에 가깝지만 인물들의 흔들리는 심리 상태와 조응하며 '혼돈의 카오스' 같은 기능을 한다. 저스틴 커리츠케스가 쓴 각본도 빼어나다. '챌린저스'는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같으면서도 전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그가 만들어온 영화와 확연히 다른 소재(테니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커리츠케스('패스트 라이브즈'를 연출한 셀링 송의 남편이다)의 필력 때문이기도 하다. 구아다니노 감독과 커리스케스의 협업은 차기작인 '퀴어'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세 배우의 매력이 영화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젠데이아의 매력을 도무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했던 관객들에게 '챌린저스'를 그 답으로 제시하고 싶다. 영화에서 한 번도 자신의 매력을 대놓고 전시한 적 없던 젠데이아는 '챌린저스'에서 두 남성의 뮤즈로서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마음껏 뽐낸다. 그 섹시함은 노출이 유발하는 관능미가 아니라, 자신감과 당당함이라는 태도의 지분이 더 크다. 영화를 위해 3개월 만에 배웠다는 테니스 실력 역시 어색함이 없다. 타시는 선수로서의 삶이 좌절되자 챔피언을 키우는 코치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자신이 선수가 되어 뛰진 못하지만 평범한 선수를 탁월한 선수로 재탄생하는 조물주의 위치에 올라 모든 것을 설계하고 조련한다. 이는 두 남자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자신의 능력이자 매력 때문이었다. 젠데이아는 생동감 넘치는 연기로 주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번 영화에서는 연기뿐만 아니라 제작에도 참여했다. 영국 드라마 '더 크라운', 이탈리아 영화 '키메라'에서 안정적인 연기력과 독특한 매력을 드러냈던 조쉬 오코너는 자유로운 영혼 패트릭을 연기하며 내재된 페로몬을 마구 분출한다. 전형적인 미남이라거나 마초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상남자 이미지는 아니지만,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아트'를 연기한 마이크 파이스트도 대표작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와는 확연히 다른 이미지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루저 마인드를 극복하고 성공했으나, 아내를 향한 의심과 친구를 향한 질투 등의 감정을 끝내 떨치지 못하는 유약한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두 남자는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하지만, 때때로 동성애적인 무드를 유발하며 또 다른 흥미를 선사한다. 이는 감독의 성향이 반영된 의도된 연출처럼 보인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영화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다. 매년 한 편씩 개봉하는 이 시리즈는 나왔다 하면 천만을 기대하는 '메가 히트작'일 뿐만 아니라 경쟁작들이 개봉을 피해가는 '생태계 포식자'로서의 위용까지 떨치고 있다. 2017년 혜성처럼 등장한 1편은 68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2편 1,269만 명, 3편 1,068만 명을 모아 '신과 함께' 이후 두 번째로 시리즈 쌍천만 흥행 신화를 만들어냈다. '범죄도시'의 쌍천만 스코어는 영화 보기의 패러다임이 극장에서 OTT로 넘어간 코로나19 시대에 이뤄낸 결과였다. '범죄도시'를 보는 관객이 내 생에 다시 없을 '인생 영화'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관객들이 이 영화에 원하는 건 명확하다. 화끈한 액션과 허를 찌르는 유머 그리고 통쾌한 범죄 소탕이다. 언제 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한다는 면에서 '범죄도시' 시리즈는 관객들의 기대감을 충족해 왔다. 오는 24일 '범죄도시'가 네 번째 이야기로 돌아온다. 하나의 브랜드가 된 '범죄도시' 시리즈는 관객에겐 '믿고 보는 오락 영화'다. 그러나 이제는 진부함과 식상함을 극복해야 한다. 아는 맛이라고? 1편의 개성이 그립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경찰들이 수사한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화를 만들어 왔다. 뼈대가 되는 하나의 사건에 비슷한 유형의 여러 사건을 버무려 '범죄도시'만의 픽션을 탄생시켰다. 1편은 차이나타운 조선족 범죄 사건, 2편은 필리핀 한인 관광객 납치 살인 사건, 3편은 일본 야쿠자의 한국 내 마약 밀반입 사건을 그렸다. 4편은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 사건을 다룬다. 필리핀 시내에서 한국인 앱 개발자가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시신은 국내로 인계되고 마석도(마동석)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쳐 달라는 피해자 모친의 부탁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다. 이 살인 사건의 이면에는 한국에서 해외까지 판을 키운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이 있다. 사건을 수사하던 마석도와 형사들은 이 조직을 움직이는 몸통이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행동 대장 '백창기'(김무열)와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이동휘)임을 알게 되고 사이버수사대, 필리핀 경찰과 공조해 본격적인 추적을 시작한다. 우선 지루하지 않다는 건 오락 영화로서 가장 큰 장점이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독보적 캐릭터인 '핵주먹' 마석도(마동석)는 건재하고, 1편과 2편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장이수(박지환)가 돌아와 활약한다. 마동석의 강력한 복싱 액션과 끊임없이 시도되는 유머, 단순하지만 속도감 있게 풀어내는 전개까지 시리즈의 특징을 그대로 계승했다.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실망스러웠던 3편에 이어 나온 4편이었기에 기대치가 높다. 그러나 4편 역시 3편에서 보여줬던 시리즈의 답습과 반복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두 편 연속 아쉬운 결과물을 접하면서 1편에서 느꼈던 개성을 그리워할 관객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1편은 범죄 느와르에 가까운 영화였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에서 벌어진 조선족의 잔혹 범죄와 조직 간 알력 다툼, 그리고 이 조직을 소탕하는 형사들의 일망타진 작전은 범죄 르포 같은 리얼리티를 보여주며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단순히 유혈이 낭자해서 공포감과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건을 반영한 범죄 묘사로 현실 공포를 조장하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물론 1편의 성공은 마동석의 독보적 캐릭터가 절대적이었지만 매력적인 빌런 장첸(윤계상)과 개성 넘치는 조연들의 앙상블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이었다. 2편은 압도적이었던 1편에 못 미치긴 했지만 나쁘지 않은 속편이었다. 액션의 비중과 강도를 높였으며, 라이징 스타 손석구가 만들어낸 잔혹한 악역으로 마동석과 균형의 추를 맞춘 전략도 주요했다. 그러나 3편부터는 이야기의 무게감과 밀도가 확 떨어졌다. 영화 초반 충격적인 사건을 등장시켜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사건의 전개와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을 단순화해 수사물로서의 현실감은 물론 재미와 박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무겁고 진중한 느낌을 확 빼 범죄 느와르에서 범죄 코미디로 방향을 선회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4편 역시 3편과 완성도와 재미를 비교한다면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3편을 재밌게 본 관객이라면 4편 역시 즐길 수 있지만, 3편에서 이미 식상함과 진부함을 느꼈던 관객이라면 4편 역시 불만스러울 수 있다. 무조건 이기는 마동석 vs. 질 예정인 빌런…'범죄도시'의 한계 '범죄도시' 시리즈는 맛있는 자극으로 점철된 영화다. 마석도의 핵펀치가 유발하는 아드레날린, 강력한 악역이 주는 도파민 자극, 선이 악을 이기는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로 귀결된다.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형사의 본분에 충실한 마석도는 시민들이 생각하는 '민중의 지팡이'의 표본과 같은 사람이다. 어떤 극악무도한 악당이 나타나도 마 형사의 빅펀치 한 방이면 나가떨어지는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해 가장 한국적인 히어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무조건 이기는 마 형사와 어쨌든 질 예정인 빌런의 대결 구도는 이제 좀 식상해진 것이 사실이다. 마동석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서 악역의 위용을 낮출 수밖에 없는 건 '범죄도시'의 한계다. 오죽하면 4편 기자간담회에서 '마석도의 빌런화'를 제안하는 질문이 나왔을까. 빌런의 존재감도 줄었다. 1편과 2편에서 선악의 구도를 꽤 균형 있게 맞추며 긴장감을 유발했던 것에 비해 3편과 4편은 긴장의 밀도가 떨어졌다. 3, 4편 모두 두 명의 빌런을 내세우는 변화를 감행했지만 '1+1=2'가 아니라 '1+1=0.5'처럼 여겨질 정도로 임팩트가 낮았다. 3편에 비하면 4편의 빌런 김무열의 존재감은 돋보이지만,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수준은 아니다. '범죄도시' 흥행 요소 중 하나인 코미디도 예전만 못하다. 센스 넘치는 유머보다는 말장난에 의존한다. 캐릭터의 낮은 지능을 활용하는 '수'가 뻔히 보이는 유머는 웃기기보단 우스울 때가 더 많다. 액션은 어떨까. 마 형사의 액션 베이스는 복싱이다. 여기에 빌런들은 각종 무술 혹은 도구(칼)로 맞서왔다. 마동석은 '범죄도시' 시리즈의 액션에 대해 "1, 2편에서는 슬러거 타입을 적용했다. 그런데 복싱인데도 복싱처럼 보이지 않아서 3편에서는 좀 더 정교한 복싱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3편은 통쾌한 느낌을 가져가되 실제 복싱 같은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고 액션 디자인의 변화를 설명했다. 2편부터는 마석도의 핵주먹에 고속 촬영과 과장된 사운드를 입혀 파워를 강조하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 이 변화는 액션의 판타지성을 부각해 오히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범죄도시'의 맨주먹 액션이 처음부터 이렇게 허무맹랑한, 판타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동석은 4편의 액션에 대해 "1, 2편에서 했던 슬러거 스타일과 3편에서 했던 복서 스타일, 그리고 인파이팅과 아웃파이팅을 합치고 경쾌한 느낌보다 묵직한 느낌을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한마디로 4편은 '복싱 액션'의 종합판이라는 설명이다. 8편까지 쭉 가는 시리즈…언제까지 '아는 맛'이 통할까 4편의 가장 큰 아쉬움은 관객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얻고 있음에도 시리즈의 진화와 확장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기조 아래 반복과 재생산에 그친듯한 결과물을 뽑아냈다. 오락 영화의 최대 미덕이 '재미'라고는 하지만 그 재미에 어떤 야심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시리즈의 퇴보를 의미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품 같은 영화의 만듦새 때문에 천만 흥행을 달성하고도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는 관객은 드물다. '범죄도시'는 예나 지금이나 마동석의 영화일 뿐이다. 마동석은 공식 석상에서 '범죄도시' 시리즈를 8편까지 기획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다. 최근 열린 4편의 언론시사회 자리에서 마동석은 "5편부터는 톤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반가운 선언이다. 누군가는 '범죄도시' 시리즈는 더 이상 만듦새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만들기만 하면 흥행하는 영화에 무슨 고민이 필요하겠냐"라는 영화인들의 비아냥 섞인 반응도 적잖다. 극장의 위기 시대에 성공적인 영화 기획은 귀하고, 흥행은 더욱 어렵다. 시리즈 세 편 도합 3,025만 명의 관객을 모은, 21세기 가장 성공한 시리즈인 '범죄도시'가 공장형 영화로 변질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길 기대한다. 디자인 : 박수민
인간의 몸은 매 초당 1,000만 개의 세포 변화와 200가지의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주무대다. 인체의 구성과 구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몸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은 알 수 있다. 몸은 노동의 근간이고, 쾌락의 통로이기도 하다. 성경에 의하면, 태초에 인간은 몸을 옷으로 가리지 않았다.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은 채로 서로의 몸을 마주했고, 인간의 몸은 자연에 있는 그대로 노출됐다.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태'(態)를 신경 쓰게 됐고, '몸 만들기'에 대한 관심도 시작됐다. 몸이 뿜어내는 근원적 아름다움과 원초적 힘은 놀랍다. 여기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게임으로 육체의 위대함을 입증해 보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 100' 시리즈다. '피지컬 100'은 완벽한 피지컬을 가졌다고 자신하는 성별·체급·인종 불문한 100명의 참가자가 상금 3억 원을 두고 겨루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이 프로그램은 2021년 MBC 소속이었던 장호기 PD가 넷플릭스에 30장짜리 기획안을 보내면서부터 시작됐다. 선정성과 폭력성 등 수위에 자유로울 수 없는 지상파 방송의 한계를 깨고자 OTT 플랫폼에 협업을 제안했고, 그의 도전은 글로벌 대박으로 이어졌다. 근육질 몸으로 무장한 100명의 도전자가 상금 3억 원을 둘러싸고 벌이는 양보 없는 육탄전, '헬스 열풍' 시대에 등장한 기발한 콘셉트의 프로그램이었다. 단련된 인간의 몸을 전시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힘의 우위, 승부의 향방을 예측하는 재미도 선사한다. 전체 퀘스트가 원초적 힘, 이른바 '인자강'('인간 자체가 강하다'의 준말)의 대결이라 할 수 있는 개인전과 팀워크에 지략까지 요하는 팀전으로 구성돼 있어 이변이 속출한다. 팀전은 개개인의 능력과 팀장의 지략을 요하고, 개인전은 힘과 체력 여기에 정신력이라는 3요소를 두루 요구한다. 각자 응원하는 참가자가 승승장구하거나, 어이없이 탈락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시청자들은 허울뿐인 '패션 근육'과 실전에 강한 '압축 근육' 간의 우위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2023년 공개된 시즌1은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TV쇼(비영어) 부문 1위를 달성하며, 82개국 TOP 10 리스트에 오르고 6주간 누적 시청 시간 1억 9,263만 시간을 기록했다. 그러나 시즌1은 방송 말미 큰 오점을 남겼다. 우승자를 가리는 마지막 퀘스트에서 재경기가 이뤄진 것이 알려지며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재미가 제1의 가치인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서바이벌'이라는 요소가 가미되면서 시청자들은 '공정성'과 '형평성'에 보다 집중했다. '조작설'로까지 확산된 논란에 제작진은 "승부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무편집본까지 공개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기계 오작동으로 인해 재경기가 이뤄진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넷플릭스 예능 분야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논란으로 큰 오점을 남긴 '피지컬 100' 제작진은 심기일전해 '피지컬: 100 시즌2 - 언더그라운드'(이하 '피지컬 100 시즌2')로 돌아왔다. 시즌1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상승한 제작비에 힘입어 일산 킨텍스에 '역대급' 규모의 세트를 마련했고, 힘은 물론 지략까지 동원해야 하는 고난도 퀘스트로 시청자들의 도파민을 자극했다. 시즌2도 글로벌 톱10 비영어 TV쇼 부문 1위를 달성하며 1편에 이어 값진 성과를 내고 있다. 또한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집트, 홍콩, 인도네시아, 대만 등 74개국 톱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시즌은 크로스핏 유튜버 아모띠(31·본명 김재홍)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화제성만큼이나 논란도 뜨거웠던 시즌1과 비교하면 시즌2는 재미와 완성도 면에서 고른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시즌1과 마찬가지로 서바이벌의 포맷과 구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아쉬움 섞인 지적은 있었다. 이를테면 신체적 차이가 뚜렷한 남성과 여성을 함께 경쟁시켜 여성을 들러리로 만들었다는 지적과 패자부활전에 대한 형평성 문제, 팀전과 개인전을 섞어 운과 이변이 속출하게 한 게임 구성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시즌1, 2를 진두지휘한 장호기 PD와 우승자 아모띠를 만나 '피지컬 100' 시즌2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Q. 시즌2의 콘셉트 변화가 인상적이었다. '지하 광산'이라는 공간이 주는 스케일과 스펙터클이 놀라웠는데? A. 시즌2가 생각보다 어렵더라. 모든 것을 다 바꿔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시즌1을 사랑해 준 시청자들도 생각해야 했다. 그 니즈를 잘 분류해서 유지할 것은 유지하고, 미흡했던 부분은 보완하기로 했다. 시즌1의 모티브가 고대 그리스였다면 시즌2는 지하 세계, 특히 지하 광산을 모티브로 했다. Q. 이번에는 올림피언의 비중(30%)도 높았고, 여성 참가자들의 비중(25%)도 높았다. 참가자 100명의 선발 과정이 궁금하다. A. 섭외 과정부터 많은 것을 염두에 두었다. '피지컬 100'을 통해 '하나의 지구'나 '작은 우주'를 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가장 완벽한 피지컬을 뽑기 위해 성별, 인종, 나이, 체급을 망라했다. 카테고리를 정해서 서치를 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어떤 경지에 오른 분들을 선택한 후, 면담을 통해 출연 적격 여부를 판단했다. 대략 최종 출연자의 10배수 정도의 사람들을 본 것 같다. 또한 국가대표나 현직 운동선수도 다수였기 때문에 첫 미팅 때부터 저희의 예상 촬영 스케줄을 이야기하고, 국가 경기 스케줄까지 체크를 했다. 국제 경기 일정과 겹쳐 출연을 할 수 없는 분들이 몇몇 계셨다. 중요한 국제 경기를 포기하신 분도 있었다. 우리 프로그램이 이만큼 중요하구나 생각이 들면서 뿌듯하기도 하고, (출연을 포기하신 분들은) 아쉽기도 했다. Q. 시즌1 때는 출연자 학폭 문제라던가 신상 이슈가 논란이 됐는데 이번에는 그런 잡음이 없었다. 이전 시즌과 비교해 다르게 적용된 기준이 있었는지? A. 출연자 선정에 있어 까다로운 검증을 할 수밖에 없다. TV 프로그램과 달리 OTT는 사후 편집 등의 대처가 어렵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닿을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검증을 했다. 또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다양한 매뉴얼과 대응책도 마련해 뒀다. Q. 시즌1 마지막 퀘스트에서 공정성 논란이 일었기 때문에 시즌2 준비에 만전을 기했을 것 같다. 어떤 안전장치를 마련했나? A. 전 시즌에서 공정성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시즌2에서 그 부분에 만전을 기했다. 승부를 판정하는 것에 있어서도 출연자, 시청자 모두 공감할 수 있게끔 약속과 같은 장치가 필요했다. 기본적으로는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반복해서 합당한 룰을 만들고, 심판 수를 시즌1보다 확대했다. 시즌1에는 심판이 카메라에 잡히는 것이 맞을까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현장에 아예 모셔서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결과 판정을 엄격하게 할 수 있도록 역할을 맡겼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즌에도 '광산 운송전 공중 짐 나르기' 경기에서 기계 멈춤으로 인한 재경기가 있었다.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이라 기록을 재는 걸로 대응했는데 시즌1의 트라우마도 있다 보니 그 순간 아찔했을 것 같다. 그때의 상황과 판단에 대해 알려달라. A. 그렇다. 이원희 팀의 레일이 멈췄을 때 세트 감독님이 현장에서 고개를 못 드시더라. 이번 시즌 들어가기 전에 '이번에는 어떤 사고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지만 사고는 예측할 수가 없다. 투수(랜디 존슨)가 던진 공에 비둘기가 맞은 경우도 있지 않은가. 끈이 걸려서 레일이 멈추는 사고가 났다. 우선 이 상황을 전체 팀에게 투명하게 공유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동의를 얻어 이원희 팀의 기록을 다시 잰 후 승부를 가렸다. 시즌1 당시를 생각해 보면, 정말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방송을 무결점으로 만들고 싶어서 더욱 신경을 썼는데 그 일(조작 논란)을 통해 시청자들은 맥 끊는 편집보다는 경기의 전체 과정을 다 알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시즌1 때 무편집본 간담회에서 한 기자분이 "예능 프로그램도 아닌데 이렇게 하시면 어떡해요?"라고 질타를 하셨다. 그때 정말 많은 걸 느꼈다. 그래서 이번 시즌을 철저하게 대비했고, 사고가 났을 때도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Q. '피지컬 100' 시리즈의 백미는 기상천외한 게임이다. 달리기, 뺏기, 밀기, 버티기 등을 기본으로 하지만 게임의 설계를 복합적으로 해서 힘뿐만 아니라 지략까지 써야 하는 경기를 만들어냈다. 경기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가? A. 시즌 콘셉트를 먼저 잡고 게임의 스토리를 짠다. 시즌1은 고대 그리스, 시즌2는 지하 세계로 정하지 않았나. 콘셉트를 잡고 나면 실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수집한다. 지하 광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를 생각해 게임에 반영했다. 게임에 관한 회의를 할 때 '게임을 위한 게임을 만들지 말자'를 거듭 강조한다. 게임 같은 현실을 바탕으로 퀘스트를 설계하고자 했다. 광산이나 지하 세계에서 실제로 사용할 법한 도구를 쓰고, 상황 전체를 설계했다. 지하 광차를 사용해 게임을 만들고 컨베이어 벨트에서 석탄이 쏟아지는 상황을 넣었다.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전체 참가자들의 수준을 고려해 '피지컬 지표'를 세운 후 게임을 디자인했다. Q. 사전 퀘스트였던 무동력 트레드밀(러닝머신) 미션도 인상적이었다. 참가자 100명이 트레드밀을 하는 모습을 부감으로 찍은 샷은 연출적으로도 근사했던 것 같다. A. 시즌2가 제작된다면 첫 퀘스트는 무조건 달리기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달리기고, 시즌1 때 사전 이벤트로 시청자분들이 참여하는 달리기를 했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시즌2에 사전 퀘스트로 무동력 트레드밀을 하는 데 현장에서도 소름이 돋더라. 100명이 한 공간에서 뛰는 모습이 너무 멋있는 거다. 이게 시청자들에게도 제대로 전달이 될까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카메라를 세팅해서 준비를 했다. 그림이 예쁘지 않다고 해서 한 번 더 뛰어달라고 할 수 없는 거니까. 특히 사운드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사운드 믹싱에만 3~4주 소요했다. 그야말로 영화를 찍는다는 마음으로 사전 퀘스트 장면을 담았다. Q. 하나의 게임을 만든 후 난도를 설정하거나 안전성을 점검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것 같다. 시뮬레이션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나? A. 게임을 만든 후 시뮬레이션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했다. 팀전 게임의 경우 10명이 하는 게임도 15명씩 참여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퀘스트를 설계할 때 도구가 무겁거나 공간이 좁거나 하는 난도를 드려서 도전자들을 난처하게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과 싸우게 하는 게 가장 좋은 퀘스트라는 걸 느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극대화된 게 마지막 라운드('토르소 들고 버티기', '무한 스쿼트', '기둥 밀기' 3게임으로 구성)였다. 그렇게 하면 특별한 장치가 없어도 이른바 '미친 장면'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결승 게임인 '기둥 밀기'의 경우 시뮬레이션을 정말 많이 했는데 우리가 했을 때는 아무리 오래 해도 5분이었다. 첫 경기에서 두 사람이 20분이나 대결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Q. 시즌1 때도 패자부활전이 있었지만 시즌2의 패자부활전 방식은 좀 달랐다. 살아남은 한 명에게 떨어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팀을 만들 기회를 줬다. 그래서 정지현 팀이 '어벤져스'로 거듭났는데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에게 어떤 페널티도 없었다. 시청자들의 불만이 나올 수 있었는데 네 번째 퀘스트인 '롤러 레이스' 미션을 팀 내부 대결로 진행해 '어벤져스' 팀에게 날벼락을 선사했다. 허를 찌르는 구성이었다. A. 시즌2 참가자들이 시즌1을 정말 꼼꼼하게 분석했더라. '이건 이렇게 할 거고, 저건 또 이렇게 할 거야'라는 예상을 모두 깨는 구성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것은 예상대로 가고, 어떤 것은 예상외로 갔다. 패자부활전 역시 마찬가지다. 달콤한 무언가를 던져놓고, 뒤에 가서 당황하게 하는 방식은 도전자들에게도 시청자들에게도 새로운 재미를 줄 거라 생각했다. 패자부활전에서 우승한 정지현 씨는 원래 팀원을 그대로 구제해 다음 라운드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선택의 순간이 오니, 냉정하게 판단을 하고 어벤져스 팀을 꾸리더라. Q. 승부의 결과도 예측할 수 없지만, 승부에 영향을 끼치는 참가자들의 선택도 예측 불가였다. 정지현이 패자부활전에서 아모띠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모띠의 우승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팀전이 유발하는 변수와 이변이 '피지컬 100'의 전체 판도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묘미 중 하나인 것 같다. A. 그렇다. 사실 패자부활전 마지막 대결에서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정지현 선수가 고등학생 레슬러 장준혁과 붙지 않았나. 라이트급과 헤비급의 대결인 데다 나이 면에서도 10대의 장준혁 선수가 훨씬 유리한 대결이었다. 그런데 작은 체구의 정지현 씨가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이겼다. 제작진도 무척 긴장하면서 본 대결이었다. 장준혁 선수가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남아, 팀을 꾸릴 베네핏이 주어졌다면 다른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Q. 남녀 대결에 대한 공정성 논란은 이번 시즌에도 나왔다. 차별이 아닌 차이가 존재하는 피지컬인데 한데 어우러져 경쟁하는 것이 공정한가에 대한 문제 제기다. 때때로 여성 도전자들이 들러리가 되고, 프로그램의 맥을 끊는 방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성판을 따로 만들 의향은 없는지? A. 지난 시즌부터 꾸준히 나온 지적이고, 제작진도 많이 고민했다. 그러나 '피지컬 100' 시리즈의 기획 의도가 '성별·체급을 불문하고 다양한 지표로 완벽한 몸을 탐구하는 프로그램'이다. 성별, 체급으로 나눠 경쟁을 펼친다면 종전에 나온 여러 프로그램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최초의 기획 의도에 맞게 '작은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최대한 안전하고 공평하게 경기를 치르는 게 우리의 지향이다. 물론 지금도 '남자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여주는 게 더 박진감 있을 거야', '여자들은 따로 하게 해줘야 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는 걸 안다. 그러나 그게 또 다른 문제와 차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프로그램에 의외로 여성 출전자들이 굉장히 많이 출연 의사를 밝혀왔다. 하나같이 하는 말은 "남자들과 구별하지 말라", "게임에 차이를 두지 말고 똑같이 해달라"다. 그런데 내가 "당신은 여성이라 여성들하고만 상대할 수 있습니다"라고 벽을 치는 건 참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Q. 그 결과 시즌1에서는 여성 팀장 장은실의 활약, 시즌2에서는 성(性)대결에서 이긴 심유리, 광차 끌기 미션에서 괴력을 발휘한 임수진의 활약이 나왔다. A. 남녀 대결에 대한 지적은 앞으로도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시즌에는 체격이 작고 왜소한 사람들 특히 여성이 육체적 힘만이 아니라 지혜와 정신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퀘스트를 설계했다. 그 과정에서 심유리 씨와 임수진 씨의 활약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Q. 시즌1의 경우 지상파 방송국(MBC, 루이웍스 미디어)이 공동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투자 및 배급을 하면서 IP(지적재산권) 문제가 큰 화두(MBC 제작진이 만들었지만 IP는 넷플릭스가 소유)였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로서, IP 문제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 방송국 소속(지난해 4월 MBC 퇴사)이 아니니 향후 신규 기획에 대해서는 본인이 결정권을 가지고 임하게 될 텐데 '피지컬 100'의 사례를 통해 얻은 방향성이 있다면? A. 'IP를 가져갔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내 기획안을 넷플릭스가 투자 및 배급을 해준 것이고, IP가 넷플릭스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프로그램을 내가 만들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피지컬 100'을 넷플릭스가 독점한다기보다는 여러 팀과 콜라보를 해서 만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새로운 프로그램이 기획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가 협업을 해준 건 내겐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물론 한국 창작자들의 지적재산권 보호는 매우 중요한 문제고 앞으로도 중요한 화두일 것이다. 나도 기여하고 싶다. '피지컬 100'도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Q. PD로서 시즌2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A. 시즌1에 이어 재도전한 홍범석(준우승자) 씨도 계시지만, 나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시즌1에 대한 아쉬움이 켰다. 그걸 잘 보완해서 진화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시즌2를 시작했다. '1'이라는 숫자는 영광스럽지만 사람들은 '2'만 되어도 하락했다 혹은 추락했다고 말한다. 걱정은 잊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에 집중했다. 시즌1 때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Q. '피지컬 100' 시즌2는 "세상에는 다양한 피지컬이 존재합니다. 가장 완벽한 피지컬을 탐구하게 모인 이곳, 피지컬에 대한 우리의 탐구는 계속될 것입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문을 닫는다. '완벽한 피지컬을 향한 탐구'라는 프로그램의 슬로건에 대한 답을 시즌1, 2를 통해 찾았는지 궁금하다. A. '완벽한 피지컬'에 대한 답은 아직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것에 대한 답이 나오는 순간 우리 프로그램은 끝난다고 생각한다. 그 질문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답보다는 화두를 계속해서 던지고 싶다. 더불어 시사교양 PD 출신('PD 수첩'과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등을 연출한 바 있다)으로서 시청자들의 건강 증진에도 기여하고 싶다.(웃음) Q, '피지컬 100' 아시아판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현실 가능성과 진행 여부는? A. 기획 초기부터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시즌2 엔딩에 아시아판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을 삽입했는데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이 기획이 긍정적으로 논의로 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또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피지컬 100'은 시청자들과 같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이 도전자가 되기도 하고, 참가자를 추천해 주시기도 한다. 또한 시즌1 때처럼 시청자들이 저희를 호되게 혼내기도 한다. 한국 피지컬의 우수함을 널리 알렸기 때문에 아시아로 확대한 피지컬을 보고 싶다. 여러 나라에서 벌써 출연 요청이 오고 있다. 새롭게 돌아올 시즌 3, 4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해달라. Q. '몸'이라는 소재로 '피지컬 100'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창조주로서 몸에 대한 얼마만큼의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자신의 몸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 운동을 하고 있는가? A. 이런 분들과 함께 서있어서 멸치 같아 보이겠지만 사실 나도 특수부대 출신이다. 헬스와 러닝 등 여러 운동을 모두 즐기고 있다. '피지컬 100' 이후 더 많은 시간을 운동에 쏟고 있다. (웃음) 우승자 아모띠 "패자부활전으로 기사회생…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 "사실 두 번째 퀘스트에서 떨어졌을 때 자포자기했었어요. 패자부활전도 자신 없는 경기가 나와 '난 안 되겠구나' 했는데 1등한 (정)지현이 형이 살려주셔서 그때부터 각성했던 것 같아요." '피지컬 100' 시즌2의 우승자인 아모띠(본명 김재홍)는 두 달간의 일정 동안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조기 탈락에 이은 극적 우승은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또한 준비된 사람은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였다. 구독자 17만 명을 보유한 운동 유튜버인 아모띠는 이번 시즌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크로스핏으로 단력된 체력과 바디 밸런스 그리고 정신력까지 갖춘, 이른바 '육각형 피지컬'의 소유자기 때문이다. 아모띠는 참가자들의 투표로 뽑는 팀장 자리에 올라 팀원을 이끌었지만 두 번째 퀘스트인 '5대 5 미로 점령전' 미션에서 전략 미스로 조기 탈락했다. 패자부활전이라는 천금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단 한 사람만 뽑는 미션에서 또 한 번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피지컬 100'의 신박한 룰은 그에게 세 번째 기회를 선사했다. 패자부활전 우승자인 정지현에게 떨어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팀을 구성할 기회를 준 것이다. 정지현은 뒤이을 팀전을 대비해 최강의 피지컬을 가진 남자 4인을 추가로 선발했다. 아모띠는 가장 먼저 선택받았다. "지현이 형이 저를 선택해 주셨을 때 기쁘면서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어요. 우리 중에 가장 체격이 작은 분이 저렇게 엄청난 힘과 투지를 발휘해 1등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이 좀 부끄러웠달까요." 패자부활전을 통해 기사회생한 아모띠는 '게임 체인저'가 됐다. 세 번째 퀘스트인 '광산 운송전'에서 맹활약해 어벤져스 팀을 네 번째 퀘스트로 이끌었다. 이후 이른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롤러 레이스'에서 우승 후보다운 면모로 어벤져스 팀원을 차례로 꺾고 최종 4인에 들었다. 아모띠는 총 3라운드('토르소 지키기', '무한 스쿼트', '기둥 밀기')로 진행된 최종 퀘스트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홍범석과 함께 TOP2에 올랐다. 우승자를 가리는 마지막 경기는 '기둥 밀기'였다. 아모띠는 힘과 체력 그리고 정신력까지 요하는 3판 2선승제 경기에서 첫 경기를 홍범석에게 내주고도 두 번째와 세 번째를 내리 이기며 우승했다. 대역전극을 이뤄낸 아모띠는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다'라고 생각했고, 살아남았습니다"라고 환희의 순간을 떠올렸다. 아모띠는 시련에 강한 피지컬과 정신력을 소유한 인물이기도 하다. 크로스핏 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2021년 1월 교통사고로 발목이 부러지며 운동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직면했다. "그때 '이제 뭐 먹고살지?'라는 생각을 하니 막막하더라고요. 내가 평생 좋아한 게 운동이니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재활을 열심히 하고 운동도 다시 시작했죠. 그 과정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유튜브 구독자도 많이 늘었어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시즌1에 왜 안 나갔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2023년 9월 '피지컬 100' 시즌2의 녹화를 모두 마치고 방송일까지는 무려 6개월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아모띠는 '내가 우승자'라는 스포일러를 어떻게 숨겼을까. "최종 결과는 엄마, 아빠께만 말씀드렸어요. 누가 물어도 '모른다'고 하라고 신신당부 드렸죠. '피지컬 100' 시즌2 한다는데 나가 보라고 하는 친구들에게도 '불러 줘야 나가지'라고 둘러댔어요.(웃음)" 대구 출신인 아모띠는 우승 상금 3억을 서울에 자가 집을 마련하는 데 보태겠다고 했다. 김동현이 소속된 본부이엔티와도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며 방송 활동에 대한 의지도 내비쳤다. '피지컬 100' 시즌2가 제시한 '완벽한 피지컬'의 4요소는 힘, 체력, 정신력 그리고 운이었다. 아모띠 역시 이 분석에 동의했다. 우승을 이끈 네 가지 요소 중 자신이 경쟁자에 비해 특출났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정신력입니다. 평소 운동할 때도 제 최고의 장점은 정신력이라고 생각했어요. 남들보다 잘 견디거든요. 정신력을 기반으로 훈련을 하다보니 육체적 강인함은 따라오더라고요. 아, 그리고 운도 절대 빼놓을 수 없죠. 운이 절 따라와 줬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 박수민
벨라(Bella)와 갓윈(Godwin). '가여운 것들'(Poor things)에서 유사 부녀 관계로 등장하는 두 사람의 이름에서 이야기를 만든 이의 의도가 읽힌다. 벨라는 이탈리아어로는 '아름답다'는 뜻이고, 라틴어로는 '전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1879) 주인공 노라가 떠오르기도 한다. '인형의 집'은 페미니즘 희곡의 시초이고, 노라는 그 요체다. 저명한 의사이자 벨라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갓윈은 창조주인 신(GOD)과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Darwin)의 합친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두 주인공의 이름을 통해 '가여운 것들'이 무엇을 말하는 영화일지를 유추해 볼 수 있고, 극장을 나설 때쯤이면 감독의 의도와 영화의 콘셉트가 절묘하게 조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지난 11일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4관왕(여우주연상, 미술상, 분장상, 의상상)에 올랐다. 작품상과 감독상은 '오펜하이머'에게 뺏겼지만 여주인공의 연기와 미장센 부문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작품은 올해 가장 빼어난 영화 중 한 편이다. 천재 과학자이자 의사인 갓윈(윌렘 데포)은 벨라(엠마 스톤)라는 젊은 여성과 함께 살고 있다. 벨라는 아름답지만 종잡을 수 없는 성격,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와 유아 수준의 언어 능력 등 일반적인 성인 여성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또한 그녀는 세상과도 단절된 채 집 안에서만 생활한다. 벨라는 갓윈의 딸이라기보다는 소유물처럼 보인다. 갓윈 박사의 제자 맥스(레미 유세프)는 스승의 부탁을 받고 벨라의 행태를 기록하는 일을 담당한다. 한집에 살면서 벨라를 관찰하던 맥스는 벨라의 '이상한 매력'에 빠져버리고 만다. 이를 눈치챈 갓윈은 맥스와 벨라를 결혼시키려고 하고 자신만의 룰이 적힌 '약혼 서약서'를 작성하고자 한다. 이 문서를 공증하기 위해 갓윈의 집을 찾아온 변호사 던컨(마크 러팔로)은 벨라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벨라 역시 던컨에게 빠져든다. 던컨은 벨라에게 바깥세상을 알려주겠다고 꼬시고, 벨라는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스코틀랜드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동명 소설(1992)을 원작으로 한 '가여운 것들'은 원작의 토대 위에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각본가 토니 맥나마라의 개성을 투영했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다. 개성 넘치는 페미니즘 영화라는 호평을 받은 동시에 남성적 시선(Male gaze)으로 가득한 반페미니즘 영화라고 공격받고 있기도 하다. 한 편의 영화에서 왜 이토록 극단적인 반응이 나온 것일까. '인형의 집'을 나선 벨라…색(色)을 입다 동명의 원작은 메리 셀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에서 영향을 받았다. 다만 '프랑켄슈타인'에서 피조물은 흉측한 외모의 남성이었으나 '가여운 것들'은 아름다운 여성이다. 또한 원작이 맥캔들리스(영화에선 맥스)의 시선으로 벨라를 묘사한 것과 달리 영화는 벨라의 시선으로 세상 보기를 시도한다. 또한 벨라의 자아 형성 과정이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갓윈은 임신한 채로 템즈강에 투신한 여성을 건져내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시켰다. 태아의 뇌를 엄마의 머리에 이식시켜, 몸은 어른이나 머리는 유아인 혼종을 창조해 낸 것이다. 이 경악스러운 실험이 윤리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실현 가능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자. 영화는 이 괴상한 실험이 빚어낸 혼돈과 파국을 상상 이상으로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영화 초반, 벨라가 보여주는 행동들은 유아기의 어린아이임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 보통의 인간은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육체와 정신의 성장이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벨라는 육체와 정신은 엇박자를 낸다. 하드웨어는 성인인데 소프트웨어는 유아 수준이다. 사회적 규범이나 예의, 일반적인 상식 등은 탑재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육체는 이미 성장해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을 뿜어내고 있다. 가장 경악스러운 장면은 벨라가 식탁 위의 사과를 '그곳'에 갖다 대는 장면이다. 사춘기 소년이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복숭아'를 사용했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것의 여성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가여운 것들'의 '과일 체험'은 꽤나 서정적으로 묘사했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와는 달리 과격함이 두드러진다. 엄마의 젖가슴을 탐닉하는 프로이트의 유아성욕론에 의거하면 유아기를 관통하고 있는 벨라의 행동은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여운 것들'의 초반 20여 분은 흑백 화면이다. 갓윈과 벨라의 수상한 관계가 베일을 벗고, 던컨이 벨라의 삶에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두 사람이 함께 대륙 여행을 떠나면서부터 영화는 색(컬러)을 입고, 벨라도 색(욕망)에 빠진다. 벨라는 던컨에 의해 육체의 욕망에 눈을 뜨며 '뜨거운 뜀박질'이라 부르는 섹스에 탐닉한다. 영화의 시각적 요소들은 볼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화면이 컬러로 전환되는 순간, 인물이 발딛는 모든 공간은 초현실주의 건축이나 그림처럼 다가온다. 가우디의 손길이 닿은 듯한 기괴한 건물, 달리의 그림과 같은 초현실적 이미지들이 어우러져 보는 재미를 더한다. 공상과학소설과 스팀펑크의 영향 아래 있는 이 공간들은 대부분 세트다. 미술, 세트, 의상, 분장 등 영화의 미장센을 완성하는 모든 요소가 비현실적 이미지들의 조합처럼 보여 이 자체가 누군가의 거대한 꿈이나 환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상 역시 남다르다. 벨라가 여행을 떠난 후 입는 옷들은 알렉산더 맥퀸의 오뜨꾸띠르 의상처럼 전위적이고 화려하다. 또한 무성하게 자란 헤어스타일도 인상적이다. 이는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벨라의 자유로움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섹스신이 의미하는 바…여성 해방인가 성적 대상화인가 '가여운 것들'은 벨라의 모험극이다. 영화는 챕터 구성이며, 벨라의 여행지가 곧 챕터의 제목이다. 영국 런던에서 출발해 포르투갈 리스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프랑스 파리를 거친 벨라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다. 벨라의 여정은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지만 그 여정을 통해 욕망에 눈을 뜨고 두뇌의 자극도 받는다. 이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과 추악함, 인간의 친절함과 가식, 성(姓)의 계급화와 빈부의 격차 등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며 빠르게 성장해 간다. 가장 논쟁적인 챕터는 '파리'다. 벨라와 던컨은 무일푼 신세가 돼 크루즈 여행에서 이탈하게 된다. 그들이 내린 곳은 유럽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로 불리는 파리다. 벨라는 우연히 사창가의 여성 포주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돈도 벌고 여러 남자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에 호기심을 느껴 매춘의 세계에 뛰어든다. 이때부터 영화는 살색의 향연이다. 벨라에게 매춘은 노동인 동시에 유희다. 소년과 노인, 장애인, 부자(父子) 등 벨라의 몸을 탐하는 여러 유형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벨라는 이 행위에서 일말의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다. 불편함을 느끼는 건 벨라를 바라보는 관객이다. 영화는 매춘이 벨라의 주체적 선택이며, 자유 의지임을 강조한다. 여성의 성적 욕망과 자기 표현을 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매춘의 행위조차 자유 의지로 해석하는 것은 분명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묘사다. 특히 벨라의 지적 성장, 사회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몸이 돈의 교환 수단이 되는 거친 사회와 맞닥뜨려졌기에 소아성애 논란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때문에 이 상황들은 꽤나 가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섹스신을 그리는 방식도 불편한 지점이 있다. 매음굴이라는 공간, 매춘이라는 행위에 걸맞은 묘사라고 볼 수 있지만 지나치게 길고 전시적인 행위들이 반복된다. 이 챕터에서 드리워진 요르코스 란티모스의 집요함과 지독함은 '남성적 시선'(Male gaze)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이 장면을 연기한 엠마 스톤은 "벨라의 여정과 성장에 꼭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촬영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고 말했다. 엠마 스톤의 연기는 숱한 '섹스신'을 수행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야말로 끝까지 간다. 일종의 차력쇼처럼 그린 섹스신보다 놀라운 것은 벨라의 성장 과정을 단계별로 묘사한 연기다. 벨라의 걸음걸이, 말투, 표정 등으로 아이의 행동 양식을 스텝업시킨 다음 정신의 진화 과정도 섬세하게 표현해 낸다. 한 사람의 열정과 욕심이 합쳐졌을 때 '야심'이라는 표현을 쓴다. 엠마 스톤은 그 마음을 품는 데 그치지 않았고, 불태워 날려버렸다. 이 대담한 연기에 박수를 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간을 향한 조소…란티모스의 우화, 불편한데 통쾌해 감독이 의도한 바는 '벨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다. 화면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고, 카메라가 망원렌즈에서 광각렌즈로 바뀌는 양식의 전환 역시 역시 벨라의 변화와 성장과 관련돼 있다. 당연하게도 '가여운 것들'은 여성의 성장을 욕망의 발화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벨라는 육체의 탐닉에서 시작해 세상과 인간을 향한 탐구로 학습의 범위를 넓혀간다. 벨라에게 세상은 호기심 덩어리였으나 곧 모순으로 가득한 불합리한 세계임을 알게 된다. 자기표현에 솔직한 벨라는 비정상과 불평등에 대해 의의를 제기를 하고, 자신의 호기심과 무지를 해소하려고 끊임없이 학습한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필터가 없다. 편견도 선입견도 없으며, 누군가를 함부로 재단하려고 하지 않는다. 벨라가 떠난 모험의 최종 목적지는 거대한 물음표이자 공란으로 가득한 '나'라는 인간이다. 그녀의 성장과 진화는 매춘 여정을 다룬 파리보다 자신의 불행한 과거와 마주하고 극복하는 런던 파트에서 극대화된다. 끝내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왔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불행했던 과거과 이별한다. 그녀의 과거는 '빅토리아'라는 이름으로 압축된다. 19세기 영국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던 빅토리아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번영했지만 여성의 권리와 자유에 무관심했던 시대다. 빅토리아는 엄격한 가부장제 아래 '나'를 지우고 남편이 만든 '틀'에 갇혀버렸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빅토리아는 결국 죽음을 택했다. 그러나 벨라의 선택은 달랐다. 영화를 연출한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벨라의 생애를 '탄생-모험-해방'에 명징한 구조로 전개하며 끝내 전복의 통쾌함까지 선사한다. 그리스 출신인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데뷔 초부터 인간을 소재로 한 우화를 만들어왔다. '송곳니'(2012)와 '더 랍스터'(2015)가 대표적이다. 그의 영화에선 비정상적 세계 혹은 이상한 질서가 제시되고 인간은 순응과 타도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한다. 이상한 세상은 현실 사회의 풍자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것이 사람 구경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인간을 자각할 능력이 없는 '개돼지'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자유의지와 행동 본능을 가진 인물로 그리기도 한다. '가여운 것들'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영화 세계의 집대성과 같은 결과물이다. 미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정서적으로 가장 불편하며, 메시지적으로 가장 명징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전작들과 미세하게 달라진 태도다. 도발적인 방식으로 인간을 향한 냉소를 보여줬던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그만의 방식으로 인간을 보듬는다. 그 변화는 엔딩에서 두드러진다. 유토피아와 지옥을 한 공간에 펼쳐놓았다. 이 역시 요르고스 란티모스스럽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는 '가여운 것들'은 누구인가. 미치광이 과학자에 의해 분해되고 재조립된 벨라일까. 영화의 제목은 복수형이다. 우매하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남성들, 나아가 통념이라는 필터를 끼고 벨라를 바라보는 스크린 밖 관객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 아닌 자는 결코 자유인이 아니다"라고. 벨라가 옳았다. 디자인 : 박수민
'듄' 시리즈는 2020년대 '반지의 제왕'이 될 수 있을까. 고전 소설 원작의 영화, 할리우드의 기술과 거장의 연출력이 만난 대작, 1편보다 뛰어난 속편 등 화제성과 완성도 면에 있어 걸작의 향기가 물씬 난다. '듄: 파트2'의 개봉 첫 주 스코어와 반응만 본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난 1일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는 3일까지 8,15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2021년 개봉한 1편의 오프닝 스코어(4,100만 달러)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성적이다. 북미를 제외한 글로벌 매출은 9,700만 달러였다. 북미와 해외 수익을 합친 월드 와이드 수익은 1억 7,850만 달러(한화 약 2,371억 원)를 기록했다. 개봉 첫 주에 손익분기점(약 5억 달러)의 1/3을 달성한 만큼 글로벌 흥행은 청신호다. 한국에서의 성적은 기대를 밑돈다. 배급사 워너브라더스는 북미보다 이틀이나 빠르게 공개할 정도로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박스오피스 1위를 찍지 못했다. 첫 주말까지 82만 명을 모으는 데 그치며 2위를 머물렀다. 개봉 11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 '파묘'의 기세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 관객에게 '듄' 시리즈의 진입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성공한 시리즈 영화는 전편의 관객층을 그대로 업고 가는 경우가 많다. 2021년 국내 개봉한 '듄'은 전국 164만 명을 모았다. '듄친자'('듄에 미친 자'의 줄임말로 '듄' 팬덤을 일컬음)를 만들어내며 화제를 모았지만 흥행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코로나19 시기기도 했지만, 마니아 외의 관객층을 확장하지 못했다. 영화의 원작인 '듄'(프랭크 허버트作, 1965년 발간)은 서양에서는 SF소설의 고전으로 손꼽히지만 국내에서는 접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여기에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과 드니 빌뇌브 감독 특유의 느린 호흡 등은 영화에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1편을 안 봤는데 2편을 본다? 쉬운 일이 아니다. '듄: 파트2'는 역대급 완성도로 '2020년대 반지의 제왕' 혹은 '제2의 스타워즈'로 칭송받고 있지만, '듄'을 관람하지 않은 관객에겐 크게 와닿지 않은 호평일 수 있다. 그러나 아예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영화가 '듄' 시리즈다. 시네마의 위기, 극장의 몰락 시대에 찾아온 선물 같은 영화를 스크린으로 확인하길 추천한다. 단언컨대, '듄알못'인 당신도 '듄친자'가 될 수 있다. '스파이스'부터 '리산 알 가입'까지…이것만 알고 보면 된다 '듄' 시리즈의 줄거리가 복잡한 것은 아니다. 1편인 '듄'은 황제와 하코넨 가문의 계략으로 몰락한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이야기를 그렸고, 2편인 '듄: 파트2'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 폴(티모시 샬라메)이 아라키스 프레멘의 전사로 거듭나고 메시아가 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렸다. 출발-입문-시련-귀환-각성-성장으로 이어지는 영웅 서사는 그리스 신화로 이미 익숙한 구성이며, 혼돈의 세상에 메시아(로 칭송받는 이)가 나타나 변화를 일으키는 플롯은 유구한 성경의 서사이기도 하다. 다만 프랭크 허버트의 방대한 SF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개념들이 있다.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설정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은 먼 미래인 10191년이다. 미래 제국의 중심은 사막 행성인 아라키스다. 여느 SF 영화에서 보던 '룩'(look)과는 완전히 다르다. 총천연색 우주의 이미지가 아니라 모노톤의 모래사막이 주요 무대다. 최첨단 우주선, 홀츠만 쉴드 등 기술력을 내세운 기계들이 등장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칼과 주먹으로 싸우기도 한다. "컴퓨터와 AI가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는 버틀레리안 지하드 운동(201 BG~108 BG)의 결과 반기계주의, 인간중심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영화의 제목인 '듄'은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모래 언덕'을 뜻한다. 영화 속 주된 배경인 행성 아라키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아라키스는 모래 괴물이 만들어내는 신성한 환각물질 스파이스 멜란지가 생산되는 유일한 곳이다. 아라키스는 행성 전체가 사막으로 되어 있고, 이곳에는 원주민인 프레멘들이 살고 있다. '스파이스 멜란지'는 우주에서 가장 비싸고 귀한 것 중 하나다. '듄2'의 오프닝은 "스파이스를 지배하면 모든 것을 지배한다"라는 글귀로 시작된다. 중동의 석유와 비유할 수 있는 스파이스는 삶의 원천이고, 권력이자 부다. 또한 초광속 성간 여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다. 스파이스 쟁탈전이 벌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재료가 지닌 특별한 특성 때문이다. 사람의 노화를 막고 수명을 수백 년 단위로 연장시켜준다. 또한 일정량 이상을 섭취할 경우 예지 능력도 가질 수 있다. 프레멘들은 일평생 스파이스를 접하며 살았기 때문에 모두 스파이스에 중독된 상태다. 그래서 대부분 눈동자가 푸른색이다. 아라키스에는 고유의 생명체인 모래 괴물이 있다. '샤이 훌루드'는 대형 모래벌레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프레멘들에게 경외의 대상이며 신의 사자로 추앙받는다. 스파이스는 모래벌레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물질이다. 모래벌레는 바람에 의한 모래 진동으로 부를 수 있으며 프레멘들은 탈것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영화 중반 폴이 샤이 훌루드를 불러 사막을 질주하는 장면은 엄청난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베네 게세리트는 여성이 주축이 된 우주의 주요 세력이자 초능력자 집단이다. 인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프레멘에게 그들을 구원하고 사막 행성을 녹색으로 바꿔줄 '리산 알 가입'(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퍼뜨린다. 목소리라는 일종의 암시 능력을 가진 베네 게세리트는 상대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잉태하는 자식의 성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베네 게세리트인 제시카(레베카 퍼거슨)는 대모 모히암(샬롯 램플링)으로부터 딸을 낳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남편인 레토(오스카 아이삭)가 아들을 원해 폴(티모시 샬라메)을 낳았다. '퀴사츠 해더락'은 남성 베네 게세리트로 시공을 초월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모히암은 레토의 딸과 하코넨의 후계자 사이에서 태어날 아들에게 퀴사츠 해더락의 운명을 부여하려고 했으나 제시카의 불복종으로 폴이 퀴사츠 해더락의 운명을 타고난다. 폴은 프레멘 부족들로부터 '우슬', '무앗딧', '리산 알 가입'으로 불린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될 리산 알 가입은 '외부 세계의 목소리'라는 뜻으로 프레멘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를 지칭한다. 폴은 우슬('뿌리'라는 뜻으로 프레멘이 붙인 이름), 무앗딥(폴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름으로 사막 쥐를 지칭하며 '길을 가리키는 자'라는 뜻도 가졌다)을 거쳐 '리산 알 가입'으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영웅은 인류에게 재앙이다" '듄' 시리즈가 그린 미래는 그리 진화한 세상이 아니다. 정치와 종교 면에서 특히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8천 년 후의 미래임에도 황제가 권력을 쥐고 있으며 그 휘하의 가문들이 행성을 영지로 두고 다스리는 봉건제다. 스파이스를 둘러싼 권력 쟁탈전은 힘의 논리로 식민지 사냥에 나섰던 20세기 초반 서구 열강의 알력 싸움과 흡사한 모습이다. 예언과 운명으로 점철된 '듄'의 세계에선 '개척'과 '타계'도 먼 이야기다. 저항과 전복의 과정이 나오지만 끝내 운명의 순응으로 점철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서사가 매력적인 것은 담고 있는 철학과 사유의 깊이 때문이다. 유한한 자원이 유발하는 전쟁, 종교와 정치의 결탁, 기계와 인간의 대립 등 예나 지금이나 논쟁적이며, 정답에 이르지 못한 질문을 던진. 무려 60년 전에 쓰인 소설 속 이야기가 지금에도 소구력 있는 이유다. 프랭크 허버트는 소설을 통해 인류의 삶과 철학, 종교의 특성과 폐해, 영웅의 딜레마와 집단 지성의 파급력을 담아내고자 했다. 영화 '듄' 시리즈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는 "영웅은 인류에게 재앙이다"라고 말한 원작자의 집필 의도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내한 기자회견에서 "원작은 강력한 리더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서 '듄2'은 한 젊은 청년이 유전적인 모습을 버리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자유를 찾고 인생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듄: 파트2'를 요약했다. 그의 말대로 '듄: 파트2'에서는 프레멘 종족의 전사이자 메시아로 거듭나는 폴의 여정과 함께 맹신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프레멘들은 베네 게세리트로부터 주입된 메시아의 등장에 경도되고 폴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다짐한다. 특히 프레멘의 근본주의자인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는 강인하고 지혜로운 수장이지만 리산 알 가입을 맹목적으로 추앙한다. 사막에서 자신들만의 생존법으로 살아남은 프레멘 종족이 낙원에 대한 신기루에 취해 맹목적인 믿음과 그릇된 신념에 빠지는 모습은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킨다. 폴은 퀴사츠 해더락의 능력으로 자신이 마주할 미래를 본다. 그 미래는 번영과 환희가 아니라 전쟁과 갈등으로 점철된 세상이다. 챠니(젠데이야)와의 사랑도 순탄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프레멘 종족의 리더가 되는 숙명을 계속해서 거부해 왔으나 끝내 받아들인다. '듄'은 한 명의 리더가 세상을 바꾸는 영웅 신화와는 거리를 두고자 한다. 이 작품은 필연적으로 실패의 서사다. '파트2'는 이를 예고하듯 프레멘 전사로 성장해 나가는 폴의 여정을 그리는 동시에 내면 속 혼란도 다룬다. 세계관의 입문에 가까웠던 1편과 달리 2편은 종교와 정치, 철학에 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확장했다. 이후 만들어질 3편은 소설 '듄'의 두 번째 이야기인 '듄의 메시아'(1969)를 바탕으로 폴과 대가문들의 전쟁 그리고 그의 몰락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프랭크 허버트의 반영웅적 메시지가 두드러지는 영화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원작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짧게 등장한 폴의 동생 알리아(안야 테일러 조이)도 본격 등장한다. 시네마는 끝났다?…극장의 존재 이유 증명한 '듄' 시리즈 '듄: 파트2'는 극장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영화다. 궁극적으로 영화라는 매체가 이야기와 시청각적 효과를 결합해 만든 '그럴듯한 거짓말'이라고 봤을 때 '듄'의 세계는 대형 스크린과 빵빵한 사운드 아래서 체험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광활한 모래 언덕 '듄'과 거대한 익충 '샤이 훌루드', 폴과 챠니의 여정은 TV 화면과 모바일 액정이 온전히 품을 수 없는 스펙터클을 일으킨다. 코로나19 이후, 수많은 영화인들은 극장에서 안방(OTT)으로 '영화 보기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듄' 시리즈는 '시네마의 건재'를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영화는 테마파크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마블의 히어로 무비와는 다른 노선의 영화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스타워즈' 시리즈와 같은 고전적인 대작의 부활이다. 방대한 이야기로 완성한 경이로운 신세계, 눈과 귀를 사로잡는 시청각 효과로 숨이 멎을 것 같은 감동을 선사한다. 우아하고 장엄하다. 우리는 이런 영화를 일찍부터 '대서사시'라 불렀다. 1편이 세계관의 세팅만으로도 관객을 열광시켰다면 '파트2'는 관객으로 하여금 세계로 발 딛고 체험하게 한다. 영화 내내 시각적 황홀경을 선사하는 황금빛 사막은 CG가 아닌 실존하는 공간이다. 아부다비의 루브알칼리 사막, 요르단의 와디럼 등에서 촬영됐다. CG 사용을 최소화한 드니 빌뇌브의 의도에 따라 장인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그레이그 프레이저의 촬영은 '듄' 스펙터클의 출발점이다. 사막을 와이드한 풀샷으로 담아 공간의 광활함을 보여주고,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아 대사와 맞먹는 위력을 보여준다. 물 한 모금 나지 않은 광활한 사막은 막막함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너른 엄마의 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에게 낯설고도 신비로운 공간인 사막이 프레이저의 촬영에 의해 '멋진 신세계'처럼 다가온다.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명암와 채도를 조절해 태양이 내리쬐는 붉은 사막, 스파이스가 흩날리는 황금빛 사막 등 때에 따라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반면 하코넨 가문의 본거지인 기에디 프라임 행성은 빛이 아예 들어오지 않는 삭막한 공간인 만큼 흑백 화면으로 연출해 기괴함을 더했다. 또 하나의 경이로움은 한스 짐머가 만든 OST에서 뿜어져 나온다. '글래디에이터', '다크나이트', '인터스텔라' 등 대작 영화의 마스터로 유명한 한스 짐머는 스페이스 오페라인 동시에 중세의 시대극 같은 '듄'의 신비함과 웅장함을 음악으로 표현해냈다. 폴과 챠니가 사막에서 키스를 나눌때 흐르는 메인 테마곡 'A time of quite between the storms'은 관객을 실존의 세계로 안내하는 느낌마저 준다. 드니 빌뇌브는 그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한 것이 없다. 심지에서 영화에서 프레멘이 쓰는 언어 차콥사(Chakobsa)를 따로 만들었다. 이는 허구적 세계에 강력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결과로 이어졌다. '왕좌의 게임' 속 도트락어를 만들었던 언어학자 데이비드 피터슨과 제시 피터슨은 프랭크 허버트가 소설에서 쓴 프레멘 어휘들을 해부해 차콥사를 제작했다. 아랍어 기반에 히브리어와 산스크리트어, 프랑스어, 그리스어, 로마어, 슬라브어를 조합해 인공어를 만들었고, 독자적인 문법 규칙을 가진 언어로까지 발전시켰다. 배우들은 이를 촬영 수 주 전부터 습득해 연기했다. 티모시 샬라메 X 젠데이야, '할리우드의 미래'로 꼽히는 두 스타의 매력 작품성과 오락성을 모두 잡은 '듄: 파트2'는 스타 탄생의 전율도 느낄 수 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촉망받는 20대 배우인 티모시 샬라메와 젠데이야가 '듄'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이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다. 스토리와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두 스타의 성장을 지켜보는 쾌감도 있다. 티모시 샬레마와 젠데이야 모두 아역으로 출발해 할리우드를 이끄는 20대 배우의 기수가 됐다. 전형적인 미남, 미녀의 배우가 아닌 두 사람은 남다른 재능과 매력으로 대세의 자리에 올랐다. 2012년 인기 미드 '홈랜드'에서 부통령의 사고뭉치 아들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은 티모시 샬라메는 2014년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로 할리우드에 신고식을 치렀고, 2018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23살의 나이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천재' 소리를 들었던 샬라메는 반짝 스타에 그치지 않았다.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 '레이니 데이 인 뉴욕', '헨리 5세', '돈 룩 업', '본즈 앤 올', '웡카' 등 장르와 배역의 크기에 상관없이 다작을 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천재 소년에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비견되는 것도 그 이유다. 큰 키에 마른 몸의 소유자인 티모시 샬라메는 외적으로 병약해 보이지만 놀라운 에너지로 작품에서 역량을 뽐내왔다. 밝고 똑똑한 엄친아의 이미지가 있으면서 우울함과 퇴폐미도 있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다. '듄' 시리즈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젊은 연기파 배우 이미지를 구축해 왔던 그에게 2억 달러에 육박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메인 롤은 도전이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거장 드니 빌뇌브와의 첫 작품인 데다 그의 야심이 투영된 대작이다. 이 작품에서 티모시 샬라메는 폴의 성장 서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배우 개인의 진화도 보여준다. '파트2' 후반부 프레멘을 결집시키는 연설은 호랑이의 포효를 연상케 한다. 13살에 디즈니 채널에서 데뷔한 젠데이야는 역시 독보적인 개성과 매력으로 할리우드의 '대세'로 빠르게 자리매김했다. 2017년 '위대한 쇼맨'에서 노래 실력과 춤 솜씨를 뽐내며 배우로서의 끼를 보여준 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의 MJ 역할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젠데이야는 팬시한 이미지를 소비하며 셀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기력을 확장하는 노선을 걸었다. 2019년 드라마 '유포리아'로 에미상 최연소 여우주연상(24살)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지 못했지만 흑백 영화 '맬컴과 마리'(2021년)에서의 연기 역시 눈부셨다. 젠데이야는 캐스팅으로 영화에 승선한 티모시 샬라메, 오스틴 버틀러와 달리 '듄'의 배역을 오디션으로 따냈다. 여전히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였지만 굴하지 않았다. 1편의 출연 분량은 5분 남짓이었지만 2편에서는 폴의 서사만큼이나 흥미로운 서사로 관객의 기대감을 높였다. '듄2'의 엔딩을 샬라메가 아닌 젠데이야가 장식한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영화는 챠니의 캐릭터를 원작보다 능동적으로 그리며 그녀의 활약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 단순히 폴의 연인이자 그의 성장을 돕는 조력자의 위치에 두지 않고 프레멘 전사로서의 용맹함도 한껏 부각했다. 원작 소설 속 챠니의 운명은 다소 가혹한 면이 있지만 드니 빌뇌브의 영화 속 챠니는 다른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엔딩에서 젠데이야의 표정은 운명에 맞서겠다는 챠니의 결의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디자인 : 박수민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은 21세기 가장 뜨거웠던 월드컵으로 회자될 만하다. 최초의 중동 개최에 최초의 겨울 월드컵으로 시작 전부터 이목을 끌었으며, 현존하는 '축구의 신'의 대관식까지 펼쳐져 전 세계 축구 팬을 열광시켰다. 개최국 카타르의 유치전부터 대회 준비 및 운영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경기 자체의 퀄리티만 보자면 그야말로 '역대급'이었다. 펠레와 마라도나 이후 가장 완벽한 축구선수로 불렸던 메시와 호날두의 (아마도) 마지막 월드컵이라는 상징성은 개최 전부터 열기에 불을 지폈다. 월드컵 무관인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피파컵을 들어 올릴 것인가, 이번에도 두 사람 모두 눈물을 흘리며 그라운드를 떠날 것인가 아니면 이들을 위협하는 강력한 신성 음바페가 또 한 번의 우승컵을 들어 올릴 것인가 등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무려 1년이나 지난 이야기다. 게다가 모든 결과를 알고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캡틴스 오브 더 월드'는 김 빠진 사이다가 아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의 숨은 1mm를 생생하게 담아 극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주장의 눈으로 바라본 월드컵'이라는 테마 아래 그라운드, 라커룸, 기자회견장, 관중석을 다채롭게 비추며 영화보다 영화 같았던 승부의 순간으로 시청자들을 안내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또 한 번 확인된 진리가 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것. 11명이 뛰는 앙상블의 스포츠인 축구는 단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축구 황제' 펠레도 일찌감치 말했다.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팀으로 싸우는 것이다. 축구는 한두 명, 또는 세 명의 스타플레이어에 관한 스포츠가 아니다" '캡틴스 오브 더 월드'는 이 진리에 관한 가장 뜨겁고도 치열한 기록이다. 32개국 라커룸에 들이댄 카메라…그곳에선 무슨 일이 EPL 최고의 명장이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인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라커룸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뽐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라커룸의 분위기를 일순간 얼음장으로 만든 뒤 선수 면전에서 불같이 화를 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를 두고 '헤어드라이어 트리트먼트'(호통을 치는 모습이 헤어드라이어에서 나오는 열기와 소음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음)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엄격한 퍼거슨 감독도 라커룸의 온도와 분위기를 그라운드로 끌고 오진 않았다. 그에겐 라커룸에 관한 철칙이 있었다. "라커룸 안에서 있었던 일은 라커룸 안에서 끝낸다" 감독이 화를 내고, 선수들끼리 다툼이 있어도 그건 경기 중 일어난 해프닝의 하나일 뿐이며 라커룸을 벗어나면 끝내야 한다는 말이다. '캡틴스 오브 더 월드'는 그 비밀의 공간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피파(FIFA)와 협력해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그라운드의 안과 밖을 총체적으로 다루면서 32개국의 라커룸에서 벌어진 일까지도 포착했다. 제작진은 각국 라커룸에 카메라를 들이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국가대표들의 절박함과 간절함 그리고 희비의 순간을 담아냈다. 출전국의 동의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카메라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알 수 없었다. 연출도, 연기도 없다. 상대팀이 떨어져야 우리 팀이 올라가는 녹아웃 스테이지에서는 무슨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예측 불가능성을 안고 출발한 이 기획은 월드컵 명승부의 '비포 앤 애프터'를 담아내는 데 성공해 스포츠 다큐멘터리로서의 특별한 가치를 획득했다. 또한 출전국을 대표하는 주장들의 일대일 인터뷰를 통해 승부의 순간을 복기한다. 그들의 회고는 생동감 넘치는 경기 몽타주 영상으로 이어지며 아드레날린을 유발한다. 드론으로 찍은 경기장 부감샷과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까지 담아낸 익스트림 클로즈업은 박진감 그 자체다. 여기에 '스포츠 해설계의 시인'으로 불리는 피터 드루리의 박력 넘치는 중계는 보는 이들을 열기 속 현장으로 단숨에 끌고 간다. 이 다큐멘터리는 총 6부작으로 완성됐다. 28일간 32개국이 참가해 치러진 월드컵을 모두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다. 그러다 보니 중요도, 화제성 위주의 구성과 편집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몇몇 국가들은 승자의 들러리로만 스치듯 지나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후자다. 캡틴 손흥민이 이끄는 대한민국의 경기와 인터뷰, 라커룸 기록은 상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먼저 마친 뒤 가나와 우루과이전 결과를 기다리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태극 전사들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대한민국은 지난 월드컵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우리는 우리가 쓴 16강 드라마에선 적어도 주인공이었다. 가장 정치적이었던 월드컵...필요한 '논란'이었다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해야 한다'는 건 원론이다. 그러나 이 보편타당한 진리는 현실과 부딪히며 여러 번 예외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21세기 스포츠는 다르다고 하지만, 가장 큰 규모의 국가 대항전인 월드컵에서 보이지 않은 정치적 대립과 논란은 불가피한 결과이기도 했다. 카타르 월드컵은 유독 정치적 이슈가 많았다. 이란은 월드컵 개최 3개월 전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로 여성 인권 문제가 불거졌고, 반정부 시위와 강경 진압으로 185명의 국민이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다. 이란 국가대표 선수들은 월드컵 첫 경기에서 이를 애도하는 뜻을 담아 애국가 제창 순서에서 침묵했다. 이 행동은 이란 내에서 받을 차별과 처벌까지 감수한 선택이었다. 이란의 주장 에산 하지사피는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차별이 없어지길 바라며 유감이라는 말을 전합니다. 이란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인정해야 하고 또 우리나라 국민도 분개하고 있습니다"라며 팀을 대표해 입장을 밝혔다. "애국가 제창 거부의 후폭풍이 염려되나요?"라는 외신의 질문에는 "카타르에 있으니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오랜 앙숙관계인 미국과 이란은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또 한 번 만났다. 미국팀 주장인 타일러 아담스도 기자회견에서 축구 외적인 질문에 직면했다. 이란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미국이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이었다. 그는 답변 과정에서 '이란'의 국가명을 잘못 발음하고 있다는 날선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한 "미국에서는 지금도 흑인 차별이 성행하고 있다. 그런 나라를 대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뼈 있는 질문도 받았다. 적대감으로 가득한 언론을 만난 아담스는 현명하면서 사려 깊은 답변을 내놓았다. "차별은 어딜 가나 존재합니다. 전 백인 가정에서 자라면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특징과 문화를 배우면서 컸습니다. 다른 두 문화 사이에서 자란 덕분에 남들보다 더 쉽게 다른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죠. 그런 포용력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기에 이해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겁니다. 교육을 통해 이해시키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방금 제가 이란 국가명을 잘못 발음한 것을 일깨워 주셨듯이 저희는 과정을 밟는 단계인 거죠. 나아지고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덴마크는 월드컵 개최 전 카타르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은 유니폼을 입는다고 발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카타르가 경기장을 짓는 과정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고, 혹사로 인해 다수의 사망자가 나온 것에 대한 문제 제기성 제스처였다. 시몬 키예르는 덴마크의 주장으로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기자회견을 떠올리며 "이런 질문들을 누구한테 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때가 있다. 선수들에게 계속 의견을 묻는 건 괜찮다. 그러나 우리들의 생각도 여러분과 같다"라고 말했다.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하지만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침묵한다면 발언의 자유를 외면하는 것이라는 소신을 드러낸 말이었다. 메시는 있고, 호날두는 없었던 것…'리더의 자격'을 묻다 카타르 월드컵은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선수들의 '라스트 댄스'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크로아티아의 루카 모드리치, 브라질의 티아구 실바, 웨일스의 가레스 베일 등 빅스타들의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이었다. 각 나라의 대표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주장 완장을 차고 그라운드에 나섰다. 에이스 이상의 의미로 팀을 이끌었으며 조국을 위해 피, 땀, 눈물을 흘렸다. 물론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선 예외 없이 희비가 엇갈렸다. 2008년 이후 발롱도르를 나눠 가지며 수년간 팬들 사이에서 '최고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메시와 호날두의 라이벌리는 이번 월드컵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메시가 마침내 피파컵을 들어 올리며 축구 커리어의 마지막 퍼즐을 채웠다. '캡틴스 오브 더 월드'를 보면 두 사람을 가른 결정적인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메시는 있고, 호날두는 없었던 것은 '리더십'이었다. 호날두는 카타르 월드컵 직전 무적 신세가 됐다.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텐 하흐 감독과 갈등 끝에 계약이 해지됐고, 언론은 그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호날두는 2016년 유로 대회 때처럼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꿈을 꿨지만 카타르 월드컵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호날두는 조별리그 동안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과 갈등을 빚었고 급기야 스위스와의 16강전에서 벤치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그는 벤치에서 자신 대신 출전한 신예 하무스가 해트트릭을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산투스 감독과 호날두는 8강전까지 날선 분위기를 이어갔다. 호날두는 "팀이 이긴다면 자신이 골을 넣지 않아도 좋다"고 했지만 과연 그가 유로 2016 때처럼 팀을 생각했는지 이 다큐는 의문을 표시한다. 팀을 하나로 모으고, 때론 팀을 위해 희생하는 주장의 모습이 아니라 월드컵 내내 감독과 논쟁을 벌이며 팀 단합에 균열을 일으켰다. 호날두는 모로코와의 8강전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후반전에야 투입된 호날두는 견고한 모코로의 수비진에 고전했고, 골운마저 없었다. 모로코에 1:0으로 패배하며 월드컵 커리어를 마감한 호날두는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피터 드루리의 말처럼 '빛나는 커리어를 장식할 명예도 영광도 없는 패배'였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중심으로 한 '원팀'(One Team)이었다. 스쿼드가 과거에 비해 좋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월드컵에선 선수 한 명 한 명의 면면보다는 팀의 앙상블이 더 중요했다. 메시는 커리어의 마지막이 될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을 염원했고, 메시의 축구를 보며 자란 '메시 키즈'들도 자신의 조국과 영웅에게 우승컵을 선사하고 싶어 했다. 아르헨티나의 카타르 월드컵 종착지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한다'라는 당위성이 '메시'라는 공통분모와 만나 완성된 결과였다. 메시는 불세출의 스타인 동시에 누구나 존경할만한 팀의 리더였다. 매 경기 드라마를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지만 그는 네 번의 월드컵을 통해 혼자서 우승을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주장 완장을 차고 그라운드에 나선 메시는 끊임없이 선수들을 독려하며 '세대 간 화합'과 '월드컵 우승'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전진해 나갔다. 네덜란드와의 4강전에서 골키퍼 마르티네즈의 페널티킥 선방으로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메시는 유일하게 골문으로 달려가 수문장을 치켜세웠다. 아르헨티나는 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프랑스와 만났고 역대 최고의 명승부를 만들어냈다. 클럽 팀 동료에서 나라의 적수로 마주한 메시와 음바페는 용호상박의 혈전을 벌이며 승부를 페널티킥까지 끌고 갔다. 엔딩은 모두가 알고 있듯, 메시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차지였다. 이 승리는 '36년 만의 월드컵 우승'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넘어 경제 불황으로 사분오열 상태에 빠진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희망과 환희라는 큰 선물을 안겼다. 해설가 피터 드루리는 우승컵을 들고 활짝 웃는 메시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로사리오의 작은 소년이 천국에 도달합니다" 동료들이 만든 헹가래에 올라탄 메시는 "디에고(마라도나), 천국에 있는 당신이 보여요"라는 가사의 노래를 합창했다. 찬란한 과거와 빛나는 현재가 만난 순간이었다. 용장과 지장 그리고 현장....우리에겐 왜 이런 감독이 없을까 성공적인 항해는 선원들만의 힘이 아니다. 배를 제 궤도로 모는 훌륭한 선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캡틴스 오브 더 월드'는 32개국 주장들의 리더십을 핵심으로 부각하지만 각 나라의 감독들의 모습도 다각도로 조명한다. 카타르 월드컵에는 도전정신과 패기로 전쟁에 임한 용장(勇將), 탁월한 전술로 무장한 지장(智將) 그리고 강력한 리더쉽과 포용력까지 갖춘 현장(賢將)도 있었다. 이는 지금 대한민국 축구팀에 가장 필요하지만 없는 것이기도 하다. 조별리그 최고의 화젯거리는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꺾은 사우디의 기적이었다. 피파랭킹 3위인 아르헨티나와 50위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대결은 C조에서 가장 싱거운 경기로 예상됐다. 그러나 사우디는 끈끈한 조직력과 놀라운 집중력으로 아르헨티나를 압박했고 2:1 승리라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변의 중심에는 에르베 르나르 감독의 영리한 전술과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있었다. 르나르 감독은 아르헨티나를 오프사이드 덫에 빠뜨리는 전략으로 메시가 이끄는 공격진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캡틴스 오브 더 월드'에는 르나르 감독의 압도력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는 라커룸 토크가 나온다. 전반전 내내 메시의 공격에 끌려다닌 수비진을 혼내고, 육두문자에 가까운 거친 언어로 쪼아대며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 결과 우승 후보를 침몰시키는 '대사건'을 만들어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훌륭한 감독이 될 수 없다는 불문율을 깬 대표적인 인물도 있었다. 프랑스 대표팀을 이끈 디디에 데샹 감독이다. 1998년,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았던 데샹은 조국에 첫 번째 우승 트로피를 안겼고, 2018년에는 감독으로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또 한 번 우승컵을 들어 올린 명장이다. 비록 이번 월드컵에선 우승컵을 품지 못했지만 그는 토너먼트 내내 뛰어난 지략과 포용의 리더십으로 프랑스팀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아프리카 최초, 아랍국가 최초로 4강에 진출하는 새 역사를 쓴 모로코는 모래알 팀이 될 수도 있었다. 선수들 대부분은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나고 자랐다. 이민 2세대들인 이들은 부모의 나라를 선택했고, '모로코'라는 이름 아래 뭉쳤다. '조국'이라는 개념이 흐릿할 수도 있었지만 모로코 국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이들이 '승리'를 갈망하게 하는 강력한 기폭제가 됐다. 또한 왈리드 레그라귀 감독의 동기부여 리더십도 4강 신화의 밑거름이 됐다. 레그라귀는 부임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신임 감독이었지만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16강 이상의 야망을 품어라"라고 목표의식을 주입하며 언더독 신화를 만들어냈다.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끈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도 이번 월드컵을 통해 명장으로 거듭났다. 그는 메시를 중심으로 팀을 하나로 묶고, '우승'이라는 뜨거운 염원과 동기를 계속해서 부여했다. 그에게 메시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크로아티아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을 때에는 "메시는 세상 그 누구보다 챔피언이 될 자격이 있어요. 그와 함께 우승컵을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모든 걸 바칠 겁니다"라며 눈물의 결의를 다졌다. 그 진심의 눈물은, 우승의 환희로 되돌아왔다. 리오넬 감독과 26명의 선수들, 아르헨티나 2억 7천만 국민의 꿈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도그맨' / 감독 뤽 베송 /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15분 영화 '도그맨'은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라는 의미심장한 글로 문을 연다. 프랑스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시구다. 제목부터 강렬한 '도그맨'은 개들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프랑스 상업 영화의 거장인 뤽 베송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인간과 개의 교감을 그린 영화는 과거에도 많았다. 대부분 종(種)을 뛰어넘은 유대와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도그맨' 역시 큰 틀은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영화는 인간과 개의 유대를 넘어 두 종이 서로를 동일시하고 거울 같은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결이다. 개를 인간이 돌봐야 하는 대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개도 인간을 돌보고 구원하는, 상호작용 측면의 '연대'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더글라스(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투견을 길러내는 아버지와 형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랐다. 특히 소년기에 아버지 몰래 개에게 먹이를 줬다는 이유로 개들이 사는 철장에 갇히고 만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자신의 상처를 핥아주는 개들이었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로 아버지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더글라스는 아버지가 쏜 총에 의해 하반신 불구가 되고 만다. 걷는 자유를 잃고서야 비로소 지옥에서 벗어난 더글라스는 보육원에서 만난 연극 교사 셀마를 통해 셰익스피어 문학과 연극에 눈을 뜨게 된다. 보육원을 나온 뒤에는 유기견을 돌보며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셀마와 다시 만날 날을 꿈꾼다. 영화는 범죄 사건에 연루된 더글라스를 정신과 의사 에블린이 상담하하고, 더글라스의 고백이 플래시백으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불행이 끝도 없이 들이닥치는 더글라스의 삶은 '불행 포르노'처럼 괴롭게 다가온다.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가혹한 전개지만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를 연출한 뤽 베송 감독은 4년간 어린아이를 철창에 가둬 키운 가족의 기사를 보고 작품을 기획했다. 불행으로 점철된 더글라스의 삶에서 100여 명의 개들은 친구이자 구원자다. 이들이 일군 삶의 터전은 문 닫고 방치된 고등학교다. 그곳에서 더글라스와 개들은 자신들만의 몸짓과 눈빛으로 소통하고, 가혹한 세상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방법을 터득한다. 개를 소재로 한 액션 영화라는 점에서 '존 윅'이 떠오르기 하고, 배우를 꿈꾸는 불안한 내면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조커'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도그맨'은 액션보다는 한 남자의 인생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세상으로부터 유기된 한 남자가 구원받는 과정이 처절한 드라마로 펼쳐진다. '겟 아웃'(2017)과 '쓰리 빌보드'(2018)의 빼어난 연기로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고 '니트람'(2021)으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타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연기는 '도그맨'의 8할이다. 특히 밤무대에서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 분장을 하고 'La poule'('군중')을 부르는 장면은 압권이다. 비록 립싱크지만 에디트 피아프의 환생같은 존스의 표정 연기와 몸짓 연기가 소름을 유발한다. 이때 카메라는 현란하게 움직이며 무대 위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 도그맨의 비상을 담아낸다. 하이라이트에는 최후의 결전이라 할 수 있는 20여분의 액션 시퀀스도 배치했다. 액션의 주 수행자는 사람이 아닌 개다. 거동이 불편한 더글라스는 자신의 수족이자 영혼의 친구인 개들을 통해 자신을 괴롭히거나 자신의 주변 사람을 괴롭힌 사람들을 척결한다. 개를 이용한 액션이지만, CG는 최대한 배제했다. 공간과 지형을 이용해 개들의 동선을 짜고, 다소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영화적 허용선에서 액션 디자인을 설계했다. 다만 CG를 배제한 작업인 탓에 개가 적들을 어떻게 무찌르는지는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쾌감과 박진감을 정점까지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액션 영화 팬들에겐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개들의 액션이라고 해서 CG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뤽 베송의 뚝심이 돋보이고, 드라마를 강조한 영화의 결에는 이 선택이 더 맞아 보인다. '도그맨'에는 총 124마리의 개가 등장한다. 3~4개월 동안 전 세계에서 캐스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숙련된 연기견은 4~5마리 남짓이다. 100여 명의 아마추어견을 훈련시켜가며 완성한 결과물은 그저 놀랍다. 영화를 연출한 뤽 베송 감독은 '그랑블루'(1988), '니키타'(1990) '레옹'(1995), '제5원소'(1997)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인이다. 프랑스 영화만의 예술성과 독창성에 상업성을 가미한 작품으로 유럽을 물론 미국, 한국 등에서도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하향세를 거듭하며 비슷비슷한 액션 영화를 찍어내거나 제작자로서의 역할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뤽 베송은 '도그맨'에 대해 "지금까지 만든 영화 20편을 압축한 이력서"라고 표현하며 “오랜 시간 준비해 모든 걸 쏟아부었다”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영화의 엔딩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전개가 아닌 이야기의 주제를 아우르는 '상징'에 가까운 묘사다. 이 거룩한 엔딩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또 다른 명곡 'Non, je ne regrette rien'('난 후회하지 않아요')이 흐른다. 가사를 음미하며 도그맨의 마지막을 보면 더욱더 인상적이다. 디자인 : 박수민
프랑스 시골 마을의 한 산장, 이층 계단에서 테니스 공 하나가 떨어진다. 카메라는 무심히 떨어지는 공을 따라간다. 이층에는 산드라(산드라 휠러)의 남편 사무엘(사무엘 타티스)과 안내견인 스눕이 있다. 이 공은 스눕이 가지고 놀다가 떨어뜨린 것일까. 남편이 일부러 던진 것일까. 잔잔한 호숫가에 파장을 일으키는 돌멩이처럼 의문을 던지며 영화는 시작된다. 일층에서는 집의 안주인이자 유명 작가인 산드라가 자신의 제자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이층에서 갑작스레 떨어진 공도 두 사람의 인터뷰를 멈추진 못한다. 공적인 이유로 이뤄진 인터뷰지만 사적인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는 대화가 이어진다. 위층에서 다락을 수리하고 있던 사무엘은 음악 볼륨을 한껏 올린다. 의도인지, 우연인지 모를 소음 공격에 인터뷰는 다음을 기약하며 중단된다. 그날 오후, 반려견과 함께 외출 후 돌아온 산드라의 아들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이 눈밭에 피투성이로 쓰러져있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이층에 있던 산드라는 아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내려와 남편의 죽음을 확인한다. 추락에 의한 사망이지만 자살인지, 살인인지 부검으로는 밝히지 못했다. 남편의 사망시각 유일하게 집에 머물렀던 산드라는 의문사의 유력한 용의자가 돼 법정에 선다. 배심원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 목격자는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과 안내견 스눕뿐이다. 의문의 추락사로 드러난 관계의 추락... 스타 작가의 '부부의 세계'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사고인지 자살인지 살인일지 모를 한 남자의 추락사를 통해 '가족의 해부' 또는 '관계의 추락'을 보여준다.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긴 쉽지 않다. 거대한 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망자와 용의자, 목격자가 모두 한 가족이라는 점이다. 남편이 죽었으며, 아내가 용의자로 지목됐고, 아들과 반려견이 유일한 목격자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로 여겨졌던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도, 곤경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이 영화가 초반부터 유발하는 가장 큰 호기심이자 긴장감이다. 의문사가 등장하는 영화는 '누구'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감독이 힘을 실는 것은 '누구'도 '어떻게'도 아닌 '왜'이다. 사고사나 자살로 보였던 이 사건은 1년간 이어진 재판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사무엘이 살해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수면 아래에 있던 부부 관계의 실체가 한 꺼풀씩 벗겨진다. 잘 나가는 작가 아내와 교수직을 관두고 작가를 준비하던 남편, 부부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삐걱거리고 있었다. 산드라의 외도와 사무엘의 재정적 위기, 가정 내 역할의 불균형 등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결정적으로 남편의 부주의로 아들이 시각장애를 가지게 되면서 부부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다는 것이 재판을 통해 밝혀진다. '추락의 해부'라는 제목은 탁월하다. 의학용어로 자주 쓰이는 말인 '해부'는 생물체의 일부나 전부를 갈라 헤쳐 그 내부 구조와 각 부분 사이의 관련 및 병인(病因), 사인(死因) 따위를 조사하는 일을 일컫는다. 이 영화에서 '해부'는 중첩적이고 중의적으로 쓰인다. 추락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추락의 인과관계를 살펴야 하고, 추락의 해부는 곧 가족 구성원 간 관계의 해부로 이어진다. 용의자로 지목된 산드라는 냉철한 이성의 장소인 법정에서 증거와 증언에 기반해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배심원들을 상대로 사투를 벌인다. 산드라가 가진 건 힘없는 정황뿐이다. 검사는 산드라의 살인을 확신하며 그녀가 쓴 소설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산드라는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로 스타가 된 작가다. 용의자가 돼 법정에 선 산드라는 자신이 쓴 소설이 픽션이 아니라 개인의 내밀한 고백으로 오해받는 상황에 처한다. 검사는 소설의 스토리와 인물의 성격을 언급하며 산드라가 남편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있었고, 이는 살인의 강력한 동기라고 주장한다. 산드라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가장 사적인 부부의 시간과 추억을 꺼내보이고, 사랑에서 환멸로 변모할 수밖에 없었던 균열의 과정에 대해 말한다. 단, 그녀가 작가라는 사실은 배심원도, 관객도 그녀의 말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허들이 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나, 아내이자 엄마로서는 성공적이지 못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 사회적 편견, 미디어의 고정관념도 보여주며 영화는 담론을 확장하기도 한다. 쥐스틴 트리에는 탁월한 각본과 연출로 법정물과 가족 드라마를 혼합했다. 진실을 공란으로 둔 채 진행되는 영화이기에 법정물로서의 밀도는 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만, 가족 드라마의 흥미로운 서사가 그 빈틈을 완벽히 메운다. 미묘한 진술과 모호한 진실을 두고 감독은 영화 내내 줄타기를 한다. 극의 온도와 인물의 심리에 따라 하이(High), 로(Low) 앵글로 잡고, 인물 얼굴 뒤에서 증언석을 잡는 사선 구도의 카메라 앵글은 인물이 처한 현실과 내면의 전투를 효과적로 보여준다. '진실'은 만들어지고, 조각되기도 한다 '추락의 해부'는 이야기가 진전되며 부부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고 나아가 한 여성에 관한 내밀한 고백으로 이어지며 한 아이의 딜레마적인 상황까지 더해진다. 3D 렌더링까지 등장하며 사무엘의 사인에 관한 여러 가설이 제시되지만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건 관계의 이면과 인물의 이면이 본격적으로 조명될 때다. 사건이 발생한 산드라의 별장과 재판이 벌어지는 재판장만을 오가는 단출한 공간 이동에도 관객이 끝까지 이야기와 인물을 따라가게 하는 높은 몰입력을 자랑한다. 감독은 '추락의 해부'보다는 '관계의 해부'에 집중하며 이 가족 사이에 일어난 균열을 다양한 방식과 관점으로 제시한다. 이 영화에서의 플래시백은 추락의 해부가 아닌 관계의 추락을 보여줄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재판 과정에서 산드라의 기억으로 재현된 플래시백 화면이 등장하고, 사무엘이 생전 남긴 녹음 파일은 아내의 주장에 반기를 드는 것처럼 사용된다. 사람의 편집된 기억과 현장을 녹음한 파일은 배치된 양상을 띠며 배심원과 관객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한다. 영화는 후반부, 관계의 목격자라 할 수 있는 다니엘에게 포커스를 맞추며 딜레마의 층위를 극대화한다. 다니엘은 엄밀히 말해 사건의 목격자가 아닌 시신의 최초 발견자다. 그는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가 하는 추락에 관한 증언은 진실이나 사실에 근접할 수 있는 근거가 약하다. 관객들은 이른 시간, 법정물로서 가진 이 영화의 한계와 마주한다. 어차피 이 사건의 '진실'은 알 수가 없다. 드러난 사실과 드러나지 않은 사실, 제한된 정보들을 조합해 진실이라 믿는 결론을 도출해내야 한다. 영화 안의 배심원도, 영화 밖의 관객도, 심지어 사건의 핵심 증인인 다니엘도 같은 조건이다. 산드라가 남편을 죽였을 수도 있다. 남편이 자살을 선택했거나, 아니면 황당하게도 그저 발을 헛디뎌 사고로 죽었을 가능성도 있다. 재판이라는 것은 유무죄를 밝혀야 하는 과정이며, 배심원은 주어진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적어도 부부의 관계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인 다니엘의 증언은 재판 말미 배심원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아쇠가 된다. 다니엘은 자신이 보지 못한 것에 관해 말해야 한다. 자신이 진실이라 믿는 것을 선택하는 고뇌의 시간을 거쳐 다니엘은 "어떻게 그랬는지 판단할 증거가 부족하면 정황을 봐야 해요"라고 말한다. 재판 과정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다니엘의 선택은 갈등과 고통과 비애의 결과물이다. 매혹적인 모호함... 스토리텔링의 강력한 힘 영화는 추락사의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반전처럼 제시할 수도 있을 사건 전후의 과정을 끝내 생략한다. 법정 스릴러로서의 완결성은 포기한 셈이다. 의도한 선택이다. 감독은 관계의 추락을 그리기 위해 추락사라는 '떡밥'을 던진 것이다. 추락의 해부로서는 미완성지만, 관계의 해부 측면에서는 완성이다. 감독이 제시한 결말은 해피엔딩일까. 이 질문에 다다랐을 때 관객이 목도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산드라의 안도감과 다니엘의 씁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결말에 이르면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범죄물, 법정극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이 영화가 다양한 층위로 다뤄낸 관계의 추락은 매혹적인 모호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 '추락의 해부'는 지난해 5월 열린 제76회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전작 '시빌'(2019)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입성했던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경쟁 부문 진출 2회 만에 황금종려상 수상을 했으며, 여성 감독 중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역대 세 번째 인물로 기록됐다. 이 작품은 프랑스 최고의 영화를 넘어 외국어 영화로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편집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쥐스틴 트리에는 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동시에 후보를 오른 유일한 여성 감독이 됐다. 디자인 : 박수민
2020년, 최동훈 감독의 신작에 관한 소문은 영화계 핫이슈였다. 배우들은 통상적으로 캐스팅 과정에서 시나리오를 건네받지만 최동훈의 신작의 경우 제작사 사무실에 가야만 시나리오를 읽을 수 있었다. 보안 때문이었다. 최동훈의 신작은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제목조차 극비인 프로젝트였다. '도대체 무슨 영화를 만들길래 이리 유난을 떨까'라는 영화계 안팎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 해 3월경 류준열, 김태리, 김우빈, 염정아, 조우진, 김의성 등 초호화 캐스팅이 꾸려졌고, '외계+인'이라는 제목이 공개됐다. 그리고 '신과 함께' 시리즈 이후 또 한 번의 1,2부 동시 제작이 이뤄졌다. 700억대의 제작비, 촬영에만 1년 이상 소요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2022년 여름 시장에 베일을 벗은 '외계+인' 1부는 평단과 관객의 혹평 속에 154만 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SF와 무협을 버무린 복합장르에 고려와 현대를 오가는 방대한 세계관, 2부를 위한 미리 보기 같은 분절된 서사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 탓이었다. 손익분기점이 700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재앙에 가까운 결과였다. 2004년 '범죄의 재구성'으로 데뷔해 '타짜', '도둑들', '암살'까지 단 한 번도 흥행에 실패한 적 없던 최동훈 감독의 유일한 실패였다. 이 영화의 부진이 뼈아픈 것은 1부의 내상이 2부로 이어질 여지가 컸기 때문이었다. 절치부심. 최동훈 감독은 이후 꼬박 1년의 시간을 2부 편집에 쏟았다. 이 과정에서 1회 차의 재촬영까지 이뤄졌다. 편집 기간 총 387일, 총 52까지의 편집 버전 중 현재의 버전을 채택했다. '외계+인' 2부는 1부의 부진을 딛고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한국판 어벤져스'의 뼈아픈 실패… 시공간과 장르의 혼종 '외계+인' 시리즈는 외계인과 도사, 신선이 현대와 고려를 오가며 신검 쟁탈전을 벌인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영화는 장르적으론 SF고, 이야기적으로는 타임 슬립물이다. 여기에 고려와 현대를 오가는 도사 무륵(류준열)의 존재는 한국형 히어로를 표방하는 듯했다. 때문에 '외계+인'은 '한국판 어벤져스'라 불리기도 했다. 2022년 개봉한 1부는 고려 말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2022년 인간의 몸속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를 쫓는 이들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영화 말미 무륵(류준열)의 몸속에 있는 이상한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며 1부의 문을 닫았다. 2부는 무륵의 비밀은 물론 1부에 흩뿌려놓았던 떡밥들이 회수된다. 고려 파트에 비해 정리가 되지 않아 난잡하게 보였던 현대 부분의 이야기와 인물들 역시 2부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역할과 기여를 한다. 또한 외계인과 도사의 신검쟁탈전을 넘어 외계물질 '하바' 폭발이라는 지구 절체정명의 위기까지 추가돼 클라이맥스의 속도감과 스펙터클을 강화했다. 시리즈물인 '외계+인' 2부는 '1부를 보지 않은 관객이 봐도 상관없을까'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1부를 본 관객이 전국 150만 명밖에 되지 않은 데다 대부분 2년 전의 어렴풋한 기억만 가지고 있다. 2부는 1부를 못 본 다수의 관객을 위한 길라잡이 구간을 마련했다. 영화 초입에 이안을 연기한 김태리의 1부 요약이 내레이션을 통해 약 5분간 펼쳐진다. 최동훈 감독은 2부 촬영본을 150번 이상 보며 52가지 버전의 편집본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2부 편집의 주안점은 몰입이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템포를 찾을까'를 내내 고민했다. 1부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가 확장되다 어느 순간 확 주둥이를 닫는 느낌이었다면, 2부를 확장이 되다가 깔때기로 좁혀 들어가는 구조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목표와 지향은 제대로 잡았다. 시리즈물에서 1편이 실패했다는 건 관객이 감독과 배우가 만든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했고, '매료'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객들은 "외계인이 자신들의 죄수를 인간에 뇌에 가뒀다"는 설정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죄수가 탈옥을 감행하면서 벌어지는 시공간의 난장에 빠져들지 못했다. 서울 도심에 나타난 외계 우주선, 고려와 현대로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신검의 이미지 역시 새롭게 여기지 않았다. SF와 무협을 결합한 한국형 히어로 무비라는 콘셉트를 내세웠지만 영화 속 이미지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홍콩 무협물의 기시감이 들게 할 뿐이었다. 1부 떡밥은 회수... 전편의 업그레이드지만 단점도 계승 2부는 1부에 뿌려놓았던 이야기의 떡밥을 회수하고 확장된 사건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1부와 비교해 진일보한 결과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된 이야기인 데다 동시 제작 시스템 안에서 애초의 흐름을 벗어난 결과물을 얻기는 쉽지 않다. 2부가 관객을 '몰입'시키고, '매료'시킨 작품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무엇보다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정신없는 전개에 늘 들떠있는 캐릭터들은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다. 고려시대 파트는 주성치의 '쿵푸허슬'이나 '서유항마전'을 보는 것처럼 코믹 터치가 전편보다 더 강화됐다. 오락적 요소를 강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도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1부를 보지 않았거나 1부를 낯설게 봤던 관객들에겐 여전히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감독과 배우들은 관객을 이야기에 태워 엔딩까지 데려가야 하지만 자신들만의 세계에 몰두해 폭주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빠른 전개로 쉴 새 없이 몰아붙여 지루할 틈은 없지만 이것은 '몰입'과는 거리가 있다. 후반부 무륵과 이안의 관계에서 밝혀지는 비밀은 엄청난 반전이지만, 극적 효과가 크지 않다. 또한 영화 후반부 민개인(이하늬)과 흑설(염정아), 청운(조우진), 무륵(류준열), 썬더(김대명)가 탈옥한 외계인들과 싸우는 장면은 2부의 하이라이트지만 예상한 만큼의 스펙터클에 도달하지 못한다. 외계인과 도사, 신선이라는 각기 따른 장기를 가진 캐릭터들의 액션 디자인도 뚜렷한 개성으로 설계됐다고 보긴 어렵다. 슬로모션의 남발도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옛날 스타일이다. '외계+인' 시리즈가 최동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돌연변이 같은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최동훈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강탈하거나 훔치는 하이스트 무비에 장기를 보여왔고, 시대가 고려일 뿐 '외계+인' 역시 외계인과 도사들이 신검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속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여기에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향연, 찰진 대사를 내세워 관객에게 쉴 틈 없이 볼거리를 선사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나 다루는 시대와 공간이 방대하고 인물들이 넘쳐나는 만큼 충분한 빌드업이 필요했다. 마블 히어로물처럼 이미 널리 알려진 프랜차이즈가 아닌 이상 방대한 세계관과 낯선 캐릭터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최동훈의 영화 중 유일하게 캐릭터가 도드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충무로 흥행의 기본 공식이 된 '멀티 캐스팅'의 시초가 최동훈이다. 스타급 배우 5~6명 내세우고, 10여 명의 넘는 조연이 한데 어우러지면서도 캐릭터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부여했던 장기가 '외계+인' 시리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무륵과 이안이 메인 캐릭터지만 청운과 흑설을 더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1부에 이어 2부에서도 나올 법하다. 말맛이 살아있던 대사발도 거의 없다. 1편에서 '설명충' 소리를 들었던 '썬더' 캐릭터가 대표적인 실패 케이스다. '외계+인' 시리즈는 2부작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압축해 욱여놓은 꼴이 되고 말았다. 1부작은 늘어놓다가 끝나버렸고, 2부작은 주워 담다가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다. 한 편을 2개로 나누면서 생긴 문제처럼 보일 정도다. 시리즈물 구성은 불가피했을지라도 소재나 이야기의 사이즈로 봤을 때 극장 영화로서의 승부가 옳은 판단이었나 하는 아쉬움은 계속해서 남는다. 물론 최동훈의 장점이 낯선 공간과 장르와 만나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재미를 선사한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워하는 관객도 있다. 다만 대다수의 관객은 감독의 야심찬 실험에 1만 5천 원을 태울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다. 고(高) 관람료 시대인 만큼 관객은 돈과 시간의 효용가치를 더 엄격하게 따지고 있다. 1부, OTT서 재평가?… 비수기에 승부 건 2부 '외계+인' 1부는 극장 개봉 약 5개월 뒤인 2022년 12월 29일 넷플릭스에 공개해 '대한민국 TOP10 영화' 부문 11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극장 개봉 당시 첫 주부터 악평에 덜미를 잡혀 힘 한 번 못 써보고 '실패작'이라는 오명을 썼던 것을 생각하면 OTT에서의 선전은 '재발견'에 가까운 결과였다. 다만, OTT에서의 1위가 상업적 성공이나 관객의 재평가로 볼 수는 없다. 편당 결제인 극장 영화와 달리 OTT는 월 정액 서비스이고, '외계+인' 관람 역시 그 안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료 콘텐츠에다 접근성이 좋은 OTT 플랫폼 덕분에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의미를 부여할 순 있다. 또한 2부에 대한 기대감 상승 및 마케팅 효과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부활을 노리는 '외계+인' 2부가 흥행 전략에서 다소 아쉬워 보이는 건 개봉 시기다. 성수기인 12월을 건너뛰고, 비수기에 가까운 1월 10일을 선택한 건 악수다. 그도 그럴 것이 1월에는 휴일이 없다. 그나마 관객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건 문화의 날(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로 관람료 50% 할인)뿐이다. 이조차도 개봉일로부터 2주가 지난 시점이다. 이때까지 1위를 지키며 상승세를 이어간다는 보장이 없다. '외계+인' 2부의 개봉 주인 1월 둘째 주 평일, 극장을 찾은 일일 관객 수는 13만 명 대(1월 10일 기준)까지 떨어졌다. 완연한 비수기다. 실제로 '외계+인' 2부는 개봉 첫 날 9만 5천여 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그쳤다. 예매율과 예매량 1위를 지키고 있어 개봉 초반 가장 많은 스크린과 상영 횟수를 보장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관객 파이가 쪼그라든 환경이 흥행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1부 흥행에 실패한 '외계+인'이 올 겨울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던 '노량:죽음의 바다'와 정면 승부를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성수기엔 2위 전략도 괜찮은 선택지지만 극장의 성수기가 코로나19 이전과 많이 다르다는 것은 지난 여름 시장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심지어 12월 성수기 시장을 정조준했던 '노량:죽음의 바다' 역시 예상치 않게 고전하며 손익분기점 돌파가 어렵게 됐다. '서울의 봄'의 천만 돌파와 두 달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장기 흥행 역시 '외계+인' 측이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2부도 1부와 마찬가지로 700억 대의 제작비를 투입해 손익분기점이 700만 명 이상이다. 1부의 실패까지 만회하려면 2부로 1400만 명 이상을 모아야 한다. 1월의 호재라면 학생들의 방학 시즌이라는 것과 문화의 날 밖에 없다. 차라리 설 연휴를 정조준해 2월 초 개봉을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모로 '외계+인' 2부의 흥행 전망이 낙관적이진 않다. 주말에 뭐 볼래? "대단히 실패하는 자는 종종 위대한 것을 성취한다"(존 F. 케네디)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위대한 실패로 점철된 삶을 산 사람이 있다. 그는 사형수로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네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세 번의 대선 낙선을 거친 '실패 전문가'였다. "임금이 되고 싶었다"는 섬소년의 막연한 꿈은 75세가 되어서야 이룰 수 있었다. 이 인물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인 김대중이다. '길위에 김대중'은 청년 사업가 출신의 김대중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1987년 대선 후보로 나서기까지의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3년 김대중추모사업회가 기획한 영화로 '노무현입니다'를 제작한 최낙용 대표가 제작에 참여하고, '노회찬 6411'의 민환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다큐멘터리적으로는 정석에 가까운 연출이다. 고인이 세상을 떠났고, 그가 남긴 기록과 지인들의 인터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에 구성과 형식의 차별화보다는 자료를 최대한 활용했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자료만으로 영화는 빛을 발한다. 영화는 김대중이 1924년 일제강점기 전남 신안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의 청년사업가로 성공하기까지의 여정, 6.25 전쟁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정치계 입문해 갖은 고초와 우여곡절을 겪은 삶을 조명한다. 특히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을 반대하다 교통사고와 납치 후 구사일생으로 귀국했으며, 신군부 세력에게 5·18 민주화운동 배후 조종의 내란음모로 사형선고를 받는 등 영화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삶을 차분히 따라간다. 특히 인상적인 미공개 영상이 있다. 전두환 정권이 김대중에게 미국 망명을 권유하고, 이 문제를 놓고 교도소에서 김대중과 부인 이희호 여사와 면담하는 영상이다. 당시 CCTV를 통해 찍힌 영상과 함께 두 사람의 육성이 나온다. 김대중으로서는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고, 반대파들에게 '도망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기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짧은 흑백 영상 안에 담긴 두 사람의 갈등과 설득, 고뇌의 순간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후 미국 망명길에 오른 김대중은 '한국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운동가로 변모한다. 전직 대통령의 삶을 다룬 영화는 '길위에 김대중'과 '노무현입니다', '문재인입니다'까지 단 세 편이다. 그중 대통령의 삶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한국 현대사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길위에 김대중'이 유일하다. '택시운전사', '1987',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 등 근·현대사 영화의 소재가 된 시대와 사건을 '길위에 김대중'은 모두 관통한다. 이는 픽션이 아닌 실화이며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다. "왜 지금 김대중 다큐를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길위에 김대중'은 한 정치인의 독재 정권 청산, 지역주의 타파, 대한민국 민주화를 향한 지난한 과정과 눈물의 광주 귀환으로 답한다. 영화의 엔딩은 1998년 '대통령 김대중'의 탄생이 아닌 1989년 약 16년 만에 광주로 돌아간 '대중의 김대중'이다. 여전히 혐오와 분열의 정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40년 전 김대중의 발자취를 훑는 것은 의미가 있다.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말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하다. 개봉을 앞두고 이어진 정치인들의 관람 행렬이 그저 보여주기식 일정이 아니길 바란다. 이 역사의 생생한 기록 앞에서 우리는 과거를 돌이켜보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디자인 : 박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