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 동안 연예기자로 일했습니다.좋은 기사는 현장에서, 좋은 이야기는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말을 믿습니다. 수많은 연예 기사들 속에서 차별화 되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존재하는 이유를 기억하겠습니다.
지난 2일 한 여성 유튜버가 성폭행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영상을 올렸다. 평소 운동과 다이어트 과정을 공유해 왔던 22세 크리에이터는 카메라 정중앙을 똑바로 바라보며,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1년 반 동안 감춰왔던 고통을 털어놓았다. 지난해 5월 22일 새벽, 술에 취한 상태로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지하주차장에서 택시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이후 병원 치료와 정신과 상담을 이어가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만큼 심각한 외상을 겪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영상은 올라온 지 하루 만에 조회수 100만 회를 넘겼고, 20여 일이 지난 현재까지 한 편의 조회수가 340만 회에 육박한다. 댓글에는 "나도 피해자지만 말하지 못했다"는 공감의 메시지들이 이어졌고, 개그우먼 강유미는 직접 슈퍼챗을 보내며 응원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연대의 목소리만 이어진 것은 아니다. 댓글에서 시작된 의심은 곧바로 유튜브 콘텐츠로 번졌다. 검색만 해도 여성 유튜버의 얼굴을 변형한 섬네일들이 수십 개씩 등장한다. 이 영상들 대부분은 여성을 특정하지 않는다면서도 "무고는 심각한 범죄다"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결론을 몰아간다. 영상 속에서는 피해자의 과거 발언, 생활 방식, 정신과 진료 이력 등이 끄집어내져 "말이 바뀐다", "믿기 어렵다"라는 의심의 단초로 사용된다. 이들이 내세우는 공통된 근거는 대체로 비슷하다. 피해 고백 이후 조회수가 늘었고, 슈퍼챗 수익이 발생했고, 광고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 여성 유튜버의 피해 고백은 수익을 발생시켰다. 전 세계 유튜브 슈퍼챗 순위를 나타내는 한 사이트에서 이 여성 유튜버의 첫번째 성폭행 피해 호소 영상 공개 이후 24일 동안 구독자가 약 2만 명 증가했고, 이후 업로드 된 영상들로 인해 조회수가 940만 회나 상승했다. 슈퍼챗은 88만 원을 기록. 조회수를 기준으로 대충 잡았을 때 2000~3000만 원 정도 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 이 여성 피해자에 대한 진정성 의심이 시작된다. 유튜브에서 공개적으로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방식이 다소 이례적이긴 하고 실제로 수익으로 이어지는 행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진위 여부를 의심할 근거가 될까. 그렇다면 이 여성 유튜버의 영상 내용을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유튜버들이 올리는 수십만 조회수의 콘텐츠들은 공익적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본지는 제3자의 제보를 통해 서울중앙지방법원 사건 기록을 직접 확인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건은 지난해 5월 22일 새벽 발생했으며, 피해자는 술에 취해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고는 택시기사로 피해자와 일면식 없는 초면이었다. 국과수 감정 결과 피고의 DNA가 검출됐고, 경찰은 준강제추행으로 송치했다가 보완수사 이후 혐의가 '준강간치상'으로 변경됐다. 기소는 2025년 9월, 불구속 상태에서 이뤄졌다. 절차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사건은 존재한다.'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라는 의심이 또 다른 공격의 근거가 됐다. 이에 대해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는 "초기 수사에서 국선 변호였고, 핵심 증거 확보가 미흡했다. 첫 조사가 3주 뒤에 잡히는 등 지체가 있었고, 준강제추행→준강간치상으로 바뀌며 수사가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유튜브는 1인 미디어 시대의 공론장이다. 누구든 의견을 낼 수 있고, 사회적 이슈가 빠르게 공유될 수 있다. 하지만 성폭력 보도만큼은 전통 미디어가 수십 년간 실수와 시행착오 끝에 쌓아온 기본 원칙들이 있다. 피해자 특정 금지, 추측 보도 금지, 외모나 태도를 근거로 신빙성을 평가하지 말 것, 2차 가해를 막을 것. 지금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사적 재판'은 이런 원칙과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재미있는 지점은 이 질문이 언제나 피해자에게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피해자다움'이라는 사회적 스테레오타입은 여전히 견고하다. 피해자는 울고, 무너지고, 경제적 활동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식의 기준이다. 당당하거나, 경제적 활동을 이어가거나, 밝은 척하는 모습이 포착되면 '진짜 피해자가 맞나?'라는 의심이 순식간에 따라붙는다. 이는 성폭력 연구에서 지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 전형성 위반'이다. A 씨가 공개한 공소장에는 피의자가 성폭행으로 신체적 상해를 입혔다는 혐의, 전자감독 부착 및 보호관찰 명령 청구 등이 기재돼 있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계속해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존재하는 공문서를 두고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의 영역이 아니다. 이번 사건의 첫 재판은 12월 5일 열린다. 피고인은 이미 사건 공개 전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반면 피해자 측은 "국참은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대신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밝힐 권리를 요구했다. 많이 익숙한 방식은 아니지만 카메라 앞에서 진술을 하는 것 역시 피해자에게 보장돼야 할 권리다. 판단은 법정에서 내려질 것이다. 피고인의 방어권도, 피해자의 진술권도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이 사건의 유·무죄 판단은 법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온라인 여론은 수사나 재판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된다.
가수 성시경이 10년 넘게 함께 일한 매니저에게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의 매니저는 과거 소속사 시절부터 함께한 오랜 동료로, 2018년 성시경이 1인 기획사 '에스케이재원'으로 이적할 때도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는 성시경의 누나 명의로 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성시경과 매니저가 함께 맡았다. 둘은 단순한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가 아니라 '형과 동생'처럼 지냈다. 성시경이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온 인간적인 성품은 익히 유튜브를 통해서 잘 알려져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콘텐츠를 촬영하다가도 성시경은 마지막에는 "이거 포장해서 집에 가서 먹어라"라며 매니저를 챙겼다. 매니저의 반려견을 자신의 반려견처럼 아꼈다. 그런 그가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당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성시경의 소속사는 "전 매니저가 재직 중 회사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정확한 피해 규모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액이 얼마인지, 구체적인 경위가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공연 스태프로 알려진 인물이 "VIP 티켓을 따로 만들어 빼돌리고, 초대권을 줄이는 방식으로 몇 억 원을 챙겼다"는 폭로 글을 남기면서 논란은 커졌다. 사실관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성시경의 매니저가 '암표 단속의 상징'처럼 불렸던 점을 생각하면 그 충격은 더욱 크다. 연예인의 그림자, '매니저'라는 직업 연예인의 매니저는 독특한 직군이다. 하루 일정을 함께하며 생활 전반을 챙기는 '로드 매니저', 홍보와 언론 대응을 맡는 '홍보 매니저', 계약과 스케줄을 관리하는 '이사급 매니저', 그리고 최근에는 팬을 직접 대면하고 관리하는 '팬 매니저'까지 생겨났다. 매니저와 연예인은 비즈니스 관계지만, 실제로는 생활이 맞닿아 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연예기획사에서는 매니저가 가족이자 친구, 때로는 비밀을 공유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연예인의 알려지지 않은 일상, 대중에 노출되어선 안 될 리스크 관리까지 모든 걸 매니저가 맡는다. 성시경의 매니저 역시 업계에서 손꼽히는 베테랑이었다. 그는 '부사장' 직함으로 사실상 회사 운영 전권을 쥐고 있었다. 성시경의 공연이 워낙 인기라 티켓 예매가 어려워 기자가 "정식 구매 방법을 알려달라"고 문의했을 때, 그는 "VIP 티켓은 따로 없습니다"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이번 폭로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만약 그가 공연 티켓을 이용해 사익을 취했다면, '암표와의 전쟁'을 선포하던 그의 말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안선영·코요태·리사… '가족 같은' 배신의 연쇄 이런 일은 성시경 사례만이 아니다. 지난 8월 방송인 안선영은 4년간 함께한 직원을 '식구처럼' 여겼다가 수억 원대의 횡령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엄마의 얼굴을 한 직원이 차명계좌 등 8가지 이상의 수법으로 돈을 빼갔다"며 "돈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식구라고 믿었기에 더 아팠다"라고 털어놨다. 안선영은 직원 50명을 둔 중소기업의 대표로서, 그는 이후 "귀찮더라도 송금은 직접 확인한다"고 했다. 신뢰의 방식을 감정에서 시스템으로 옮긴 셈이다. 그룹 코요태의 빽가 역시 매니저에게 축의금을 횡령당했다. 결혼식장 입구에서 매니저에게 건넨 봉투가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친구에게 '축의금을 왜 안 냈냐'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창피했다"고 빽가는 말했다. 같은 멤버 김종민도 "전 매니저가 출연료를 자기 통장으로 받았다"고 고백했다.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일들이었다. 배우 천정명은 16년 함께한 매니저에게 사기와 횡령을 당했고, 이후 "은퇴를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격투기 선수 추성훈은 십 년 지기 매니저에게 10억 원을 잃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블랙핑크 리사 역시 데뷔 전부터 함께한 매니저에게 수억 원의 사기 피해를 봤다. 그는 끝내 변제 약속을 받고 선처했지만, 팬들은 "리사조차 피해자가 됐다"며 충격을 받았다. 신뢰를 제도로 바꾸지 못한 업계 연예산업은 특성상 '비공식 관계' 위에서 작동한다. 오랜 정과 의리, 함께한 시간의 무게가 계약서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들은 그 신뢰의 허망함을 증명했다. '좋은 사람' '가족 같은 사이'라는 말이 보호막이 되지 못할 때,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진짜 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투명한 계약 위에서만 유지된다는 업계의 조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성시경은 과거 소속사 시절에도 계약 만료 후 몇 년을 계약서 없이 일했다. 그에게 언제나 "사람이 먼저"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그 '사람'이 때로는 가장 위험한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을 것이다. 한때 잘나갔던 연예인을 끝까지 믿고 함께 꿈을 향해 달리던 매니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라디오 스타'는, 결국 영화일 뿐이었던 것일까. 디자인 : 채지우
'코미디언'이라는 익숙한 호칭 대신 '개그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사한 희극인 전유성이 지난 25일 영면에 들었다. 그의 생전 바람대로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러졌으며, 발인 후 '개그콘서트' 녹화가 진행되는 KBS 공개홀 노제에는 정말 많은 후배와 동료들이 모였다. 이들은 상실의 슬픔 속에서도 고인의 유머와 유지를 따랐다. 김정렬은 '숭구리당당'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반세기 우정을 다져온 최양락은 눈물 속에서도 "내가 봉이야"를 외치며 유쾌하게 고인을 배웅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생각할수록 웃기고 곱씹을수록 그럴듯한 이 느릿한 한마디에 전유성의 강렬한 힘이 응축되어 있다. 전유성은 어떤 한 분야로 정의하기 어려운 천재이다. 그는 '전유성을 웃겨라' 코너가 있을 정도로 느릿한 말투였지만, 오히려 글로 사람을 웃기는 데 탁월했고, TV 스타보다는 코미디계의 '배후세력'으로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가 남긴 족적은 한국 코미디의 초석이 되었다. '개그콘서트'의 개국 공신이자 국내 최초 코미디 전용 극장을 열었으며, '코미디 시장' 극단을 운영하며 졸탄, 안상태, 신봉선, 김민경 등 수많은 후배들을 '선착순'으로 뽑아 키웠다. "오디션을 봐서 뽑으면 어차피 될 놈을 뽑는 거지, 내가 키우는 게 아니지 않느냐"라는 그의 말에는 가능성을 믿었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또한 '폭력은 딱 내 선에서만 끝내고 대물림은 하지 말자'라는 신념은 코미디계의 건전한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의 천재적인 선구안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1970년대 이문세, 주병진을 발굴했고, 가수 김현식에게 가수가 될 것을 권유했으며, 팽현숙을 코미디언 시험장으로, 배우 한채영까지 발굴하는 등 연예계의 숨은 등용문이었다. 전유성은 인재 발굴뿐 아니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심야 볼링장, 심야 극장, '신선한 공기를 캔에 담아 팔기' 등 1999년 책에 적었던 아이디어 중 상당수가 현실이 되었다. 청도 카페의 명함에 '배후세력 전유성'이라고 적는 등, 그는 평범함을 거부하는 삶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그는 개그에 국한되지 않고 지식을 대중화하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SM엔터테인먼트 설립자 이수만의 조언을 계기로 쓴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라는 베스트셀러였다. 언니네 이발관 출신 이석원 작가가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책을 꿈꿨다고 고백할 정도로, 그의 말은 누군가의 꿈의 씨앗이 되었다. 전유성이 떠난 자리가 이토록 빛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단순한 선배나 스승이 아닌, 진정한 '친구'이자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였던 김신영은 평일 라디오 생방송을 제쳐두고 임종 전 일주일 동안 고인의 곁을 지켰다. "제자를 넘어 친구라고 불러주셨던 따뜻한 마음을 평생 간직하겠다"라는 그녀에게 전유성은 스승 그 이상이었다. 공황장애 시절 "저 한물갔어요"라고 말했을 때, 교수님은 "축하한다. 한물가고 두물가고 세물가면 보물이 된다. 넌 결국 보물이 될 거다"라고 격려했다. 김신영이 추도사에서 "아무것도 모르던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분"이라며 목 놓아 운 이유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조세호는 일에 대한 고민이 앞설 때마다 "둘 중 하나야, 하든가 말든가. 그냥 해라"라는 교수님의 명쾌한 조언이 마음에 맴돈다고 했다. 김동하에게는 "왜 인사를 남들처럼 하니 너만의 언어로 색다르게 해 봐"라며 당황의 틈을 들여다보는 법을 알려줬다. 김영희가 세상에 나가는 게 힘들다고 느낄 때 "참 잘한다"고 하고, '말자할매'를 할 때는 불쑥 전화를 걸어서 "가끔 해결 못할 고민은 그냥 넘어가는 것 어때? 인간미 있잖아"라며 무심하게 응원을 건넸다. 신동엽이 데뷔 30주년에 감사함을 담아 전유성에게 "큰돈"을 보낸 일화는, 후배들이 고인에게 받은 '기회'와 '가르침'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임을 보여준 것이었다. 한 사람을 두고, 사람의 주변이 이토록 빛날 수 있을까. 전유성이 머물렀던 자리에는 저마다 새싹이 피어났고, 이제 그 새싹들이 숲을 이루어 그를 기억하고 있다. '선배'나 '스승'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지지가 필요할 때 '친구'가 되어주었던 천재 코미디언.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온기와 자유로운 정신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빛을 발할 것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UBS 아레나에서 열린 2025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 배우 패리스 힐튼이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수상작으로 로제의 'APT'를 호명하자, 숨죽였던 팬들의 환호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2021년 방탄소년단 '다이너마이트'가 같은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고, 이후 3년간 본상 후보 명단에서 K팝 아티스트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2025년 로제의 수상은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값지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로제가 들어 올린 '올해의 노래' 트로피는 '올해의 비디오', '올해의 아티스트'와 함께 MTV VMA의 대상 격으로 꼽히는 핵심 부문이다. 로제는 K팝 아티스트로는 최초, 아시아 여성으로도 최초로 이 상을 거머쥐었다. 'APT'는 발매 직후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 8위로 진입해 3위까지 올랐고, 무려 45주 연속 차트인에 성공했다. 이는 한국 아티스트 최장 기록으로, 팬덤을 넘어선 대중적 저력을 입증했다. 유튜브 글로벌 차트와 영국 오피셜 차트에서도 장기간 상위권을 유지하며 흥행을 이어갔다. 트로피를 든 로제는 "꿈을 좇던 열여섯 살의 저에게 이 상을 바친다"며 감격을 전했다. 이어 브루노 마스, 프로듀서 테디, 블랙핑크 멤버들을 차례로 언급하며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의 수상 소감은 개인의 성장 서사와 K팝이 걸어온 도전의 역사를 동시에 담아냈다. 이번 수상은 K팝이 MTV VMA에서 '베스트 그룹', '베스트 K팝' 등 인기투표 중심 부문에 머물던 한계를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전문가 심사와 대중성을 모두 반영하는 본상에서 거둔 성취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크다. 미국에는 그래미 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 빌보드 뮤직 어워즈(BBMA), MTV VMA 등 이른바 '4대 시상식'이 존재한다. 그래미가 음악적 권위를 상징한다면, AMA는 대중적 인기, BBMA는 차트 성과를 반영한다. MTV VMA는 무대와 영상, 그리고 문화적 파급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로제의 'APT'는 여러모로 파격적인 곡이었다. 과도한 자극이나 섹시 코드 대신, 브루노 마스와 함께 장난스럽게 호흡을 맞춘 무대, 한국 술자리 게임에서 착안한 "아파트 아파트"라는 가사와 중독성 있는 훅, 그리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뮤직비디오로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튜브 1위를 기록하며 단순한 인기곡을 넘어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았다. 이날 패리스 힐튼이 곡명을 '에이피티'라고 읽었지만, 해외 팬들조차 'APT'가 한국의 '아파트'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은 상징적이었다. 로제의 성장 배경도 특별한 울림을 더한다. 1997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란 그는 2012년 YG엔터테인먼트 글로벌 오디션에서 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열여섯 살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블랙핑크로 데뷔한 그는, 아이돌 시스템 안에서 길러진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뮤지션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제 시선은 내년 열릴 제68회 그래미 어워즈로 향한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구조로 한국 아티스트들이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무대지만, 로제의 'APT'는 주요 부문 후보로 거론되며 기대를 모은다. 로제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수상이 아니다. 음악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세계를 연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다. 한국 아티스트들의 도전은 더 이상 벽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로제의 MTV VMA '올해의 노래' 수상은 그 변화를 알리는 분명한 신호로 기록될 것이다. 디자인 : 채지우
K팝 아티스트들에게 '돔 입성'은 단순한 공연 이상의 의미다. 수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팬덤 파워는 물론, 2~3시간 무대를 빈틈없이 채울 음악적 완성도와 기획력까지 갖춰야만 가능한 성취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징적인 공간에, 새로운 존재가 입성했다. 지난 14일부터 3일간,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PLAVE)가 서울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첫 번째 아시아 투어의 막을 올렸다. 2023년 데뷔 후 단 2년 만에 이룬 이례적인 성과다. 현실에서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플레이브의 커리어는 여느 K팝 그룹과 다르지 않다. 미니 앨범 발매, 월드 투어, 팬송 제작, 앙코르 콘서트,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한 팬덤까지… 전통적인 K팝 그룹의 경로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말이다. 이번 투어 마지막 날에는 오는 11월 고척 스카이돔 앙코르 공연 소식까지 깜짝 발표되며 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플레이브는 2D·3D 애니메이션, AI, 모션 캡처 기술을 통해 구현된 버추얼 아이돌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의 움직임과 소통 방식은 현실 아이돌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실제 음악방송에 출연하고, 음반 차트를 점령하며, 글로벌 투어를 통해 팬덤을 확장해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일(현지시간), 세 번째 미니앨범 'Caligo Pt.1'의 타이틀곡 'Dash'는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에 195위로 진입했다. 한국 버추얼 아이돌 그룹 최초의 기록이다. 초동 판매량은 100만 장을 돌파했고, 주요 음원 차트에서는 상위권을 줄 세우며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플레이브의 인기는 기술 발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서사'가 있다. 그들은 단순히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픽'해서 팀을 결성했다는 세계관 설정부터, 각 멤버의 개성과 과거 서사, 팀 내 관계성이 실제 아이돌의 성장담처럼 자연스럽게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리더 예준이 노아와 은호를 데려오고, 그들이 다시 밤비와 하민을 합류시킨다는 플롯은 연습생 시절의 우정과 동료애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공유된 정서'는 K팝 팬덤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음악 역시 중요한 축이다. 플레이브는 실물이 없을 뿐, 음반 제작, 무대 퍼포먼스, 음악방송 출연, SNS 소통 등 K팝 아이돌의 전형적인 행보를 모두 따라가며 탄탄한 콘텐츠를 구축해 왔다. 라이브 방송, 팬들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그리고 함께 써나가는 성장 서사까지… 이들은 점점 더 '실재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1990년대 '사이버 가수 아담'을 기억하는 기성세대에겐 플레이브의 존재와 인기는 다소 낯설 수 있다. 지난 4월,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에서 DJ 김신영은 "플레이브는 우리 방송에 못 나온다. 현타 제대로 올 것 같다"는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그는 "무지를 넘어 무례했다"며 공개 사과했고, 이 사건은 가상 존재에 몰입하는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 간의 간극을 드러낸 상징적인 해프닝으로 기록됐다. 뒤늦게 플레이브의 음악과 팬덤 현상을 이해하고자 '공부'를 시작한 기자 역시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플레이브의 팬덤 '플리(PLLI)'는 Play와 Reality의 합성어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었다. '버추얼'이라는 정체성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니었고, 오히려 '특별함'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국내외 음원 시장과 공연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유튜브와 각종 플랫폼에는 이들이 팬들과 음악적으로 어떻게 소통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콘텐츠가 넘쳐났다. 이제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본질적이지 않다. 콘텐츠가 진정성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실물이라 해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반대로, 실물이 아니더라도 감정이 닿고, 이야기가 진심으로 전해진다면 그것은 충분히 '진짜'가 된다. 우리는 지금, 실물이 아닌 존재에게서도 진실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 제작사가 아닌 글로벌 공동 제작진의 손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공개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글로벌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며 ‘K팝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닌 감각의 언어’임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 6월 전 세계에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최초의 해외 제작 애니메이션이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은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에서 최고 2위까지 올랐고, 현재도 3위권을 유지 중이다.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 1위, 아이튠즈 61개국 송 차트 정상을 동시에 석권하며 ‘K팝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하위 장르를 정착시켰다. 음악과 스토리, 비주얼 모두가 ‘K팝의 미학’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하지만 그 주체는 한국이 아니다. “가장 K팝다운 콘텐츠가 한국산이 아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콘텐츠가 한국의 전통적 제작 시스템 바깥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미국, 일본, 유럽의 크리에이터들이 협업한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K팝 콘텐츠보다 ‘가장 K팝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K팝이 더 이상 한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 감각과 서사는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이 차용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문화 언어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자는 지난해 미국 서부에 체류하며 K팝의 저변을 직접 확인했다. 모국어조차 잊어버린 사춘기 조카들이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 블랙핑크의 ‘뚜두뚜두’를 정확한 의미 없이도 한국어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문법보다 리듬을, 의미보다 억양을 흡수했다. K팝은 언어보다 빠르게, 그리고 깊게 도달했다. K팝이 국적을 넘어 감각의 코드로 기능하고 있는 순간이다. 이 흐름은 중국에서도 감지된다. 여전히 ‘한한령(限韓令)’이 유지되는 가운데서도 중국 상하이와 다롄의 거리에서는 K팝 음악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한국어 가사를 번역해 부르는 Z세대 팬덤이 형성돼 있다. 콘텐츠는 이미 국경을 넘었고, 이는 단순한 인기의 차원이 아닌 문화적 지각변동에 가깝다.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가 최근 선보인 프로젝트는 이 같은 흐름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그는 2023년 경영권 분쟁 이후 회사를 떠난 뒤, 싱가포르·미국·중국 등에 글로벌 기획사 ‘A2O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첫 여성 아이돌 그룹 A2O MAY는 전원 중국인 멤버로 구성됐다. 최근 발표한 싱글 ‘BOSS’는 중국 QQ뮤직 핫송 차트 8위, 미국 미디어베이스 라디오 차트 톱40에 3주 연속 진입했다. 이수만은 “큰 스타는 큰 시장에서 나온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중국 진출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더 이상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는 그의 메시지는, 아이러니하게도 K팝이라는 브랜드가 글로벌화되는 현주소를 반영한다. 로제 역시 지난해 10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와 신탁 계약을 해지하고 미국에서 저작권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서태지 이후 22년 만의 사례다. 그는 글로벌 퍼블리셔와 손잡고 워너뮤직 산하 애틀랜틱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한국에서 관리받는 것보다 글로벌 활동에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K팝’이 아닌 ‘K’의 확장 K팝이 가진 문화적 자산은 여전히 강력하다. 한국적인 감성과 미학은 전 세계 소비자에게 참신한 콘텐츠 자극제로 기능한다. 동시에 글로벌 자본과 시스템은 K팝을 새로운 상품으로 가공·확장한다. 그 결과 ‘K’는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니며, 더욱 강력한 확산력과 함께 ‘누가 이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지금이야말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확장과 흡수, 그리고 경쟁 사이에서 한국 콘텐츠 산업은 어떤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K팝의 감각은 국경을 넘어섰지만, 그 핵심이 한국에 머무를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 사진제공 : 넷플릭스, A2O엔터테인먼트, 디자인 : 채지우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 들르기 위해 차를 세우던 중이었다. 주차관리인이 "촬영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인근 웨딩 스튜디오에서 뭔가 촬영이 있다는 말이었다. 분주히 움직이는 스태프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코요태의 멤버, 신지였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밝게 웃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직감적으로 웨딩 화보 촬영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곧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기자에게 우연은 곧 취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약 두 시간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상대가 가수 문원이라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단독] 코요태 신지, 7세 연하 연인과 결혼 준비중...오늘(23일) 웨딩 촬영> 기사에는 그의 실명을 넣지 않았다. 연예인의 결혼 소식일지라도, 상대가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면 불필요한 관심을 피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7세 연하'라고만 썼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심 어린 축하의 마음으로 기사 한 줄 한 줄을 써 내려갔다. 그러나 보도 직후 소속사를 통해 문원의 실명이 담긴 기사들이 쏟아졌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상황은 급변했다. 신지의 유튜브 채널에 문원이 등장해 "한 차례 이혼을 했고, 딸이 있다"고 고백한 것이다. 이어진 "이렇게 유명한 사람인지 몰랐다"는 문원의 발언은 의심의 씨앗이 되었다. 유튜브 댓글, 블라인드, 익명 커뮤니티 등에는 자칭 지인, 동창, 전처 측 인물들이 등장해 학폭, 양다리, 지하 아이돌 활동, 무자격 부동산 중개 등 다양한 루머를 쏟아냈다. 결정적인 불쏘시개는 한 이혼 전문으로 알려진 변호사의 유튜브 콘텐츠였다. 그는 "신지의 결혼을 반대한다"는 제목 아래, "유명한지 몰랐다는 말은 부자라는 걸 몰랐다는 뜻"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결혼 전에 부부재산약정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모든 발언은 법조인의 권위를 빌려 연예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재단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물론 기자인 나도, 누군가의 결혼이 곧 뉴스가 되는 현실에서 일하고 있다. 과거 낸시랭의 전 남편 A 씨가 사기 전과자였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고, 2019년 4월 경 그가 수배 상태로 몰래 강남 모처에 숨어 지낼 때 112에 신고해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 전청조가 성별과 정체를 숨기고 결혼을 발표했던 남현희의 사례 역시 보도한 바 있다. 대중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명확한 의혹'이 드러난 뒤였다. 지금처럼 유튜브 영상 한 편, 댓글 몇 줄로 시작된 마녀사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혹시 사기꾼이면 어쩌려고?"라는 전제를 깔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연예인의 결혼이라 해도, 당사자의 동의 없는 정보 유통은 공익이 아니라 '사생활 침해'일 뿐이다. 문원이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그가 지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지는 담담히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 1일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에 출연해, 문원의 발언은 말주변이 부족해서 생긴 오해였다고 해명했다. "유튜브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 교제할 때는 기사가 날 정도의 파급력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오는 9일에는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코요태 멤버 빽가와 문원이 출연해, 다시 한번 직접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말 대신 행동으로, 그리고 함께해온 동료들과 함께 자신이 내린 결정을 지켜나가겠다는 뜻일 것이다. 확실한 건, 신지는 결혼을 결심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 선택의 배경이 무엇이든, 책임도 신지의 몫이다. 성급한 단정보다는 차분한 관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말해줄 것이다.
2023년 10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은 예상치 못한 소란으로 가득했다. 유튜브 채널 ‘탈덕수용소’ 운영자 박 모 씨(36)가 법정에 출석했기 때문이다. 철저히 얼굴을 가린 채 카메라를 피하며 도망치는 그의 모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왜곡해 영상을 제작해 수익을 올린 혐의로 고소된 그가 두려워한 것은 구속도 벌금도 아닌 자신의 ‘신상 공개’인 것처럼 보였다. ‘탈덕수용소’는 2021년 10월부터 약 8개월간 유명 연예인 및 인플루언서 7명을 비방하는 영상 23편을 제작·게시한 혐의를 받았다. AI 음성과 해외 서버를 활용해 자신을 숨긴 박 씨는, 장원영·강다니엘·방탄소년단 뷔·정국 등 유명인의 사생활을 가공해 콘텐츠화했다. 최대 피해자 중 한명이었던 장원영의 소속사 스타쉽 엔터테인먼트가 나섰지만 ‘운영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법적 대응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해결의 열쇠는 미국이었다. 디스커버리 제도를 활용해 박 씨의 신상을 특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벌금 1,000만 원과 3,000만 원 손해배상, 총 7,600만 원에 이르는 민사 패소 판결을 받게 됐다. 이 사건이 잊히기도 전, 또 다른 사이버 레커 유튜버 ‘뻑가’도 법정에 섰다. 약 110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채널 ‘뻑가’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숨긴 채, 여성과 연예인, 유튜버에 대한 악의적 콘텐츠를 제작해왔다. 여성 유튜버 ‘과즙세연’의 민사 소송이 시작되며 또다시 디스커버리 제도가 사용됐고, 결국 ‘뻑가’가 경기도 거주 30대 박 씨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잃을 게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그는, 막상 재판을 앞두고 영상 재판 요청과 법원 서류의 외부 공개 제한을 신청하는 등 신상 노출에 불안감을 드러냈다. '탈덕수용소'와 '뻑가'의 사례는 사이버 레커들이 만들어낸 정보 생태계의 민낯을 드러냈다. 타인의 고통과 사생활을 소비하며 수익과 영향력을 키워온 이들이 '본인의 얼굴'도 드러내지 못하며 도망을 다니는 모습은, 그들이 이처럼 오랜 기간 사이버 레커를 운영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이 '익명성'이었다는 걸 확인시켜준 셈이었다. 이들이 얼굴과 신상을 가리는 목적은 사생활 보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신원을 숨기는 것은 자신이 유포한 콘텐츠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앞서 사이버 레커의 피해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왔지만 그동안 국내 법으로는 이들에 대한 제제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많은 언론학자들이 '가짜뉴스' 논쟁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기에 현재의 사법 체계에서 얼굴을 가린 사이버 레커들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즉시 조치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법은 이제 그들의 익명성 뒤에 숨은 폭력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와 같은 국제적인 법 절차가 악용된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고 있고, 유튜브 등 플랫폼 역시 무분별한 콘텐츠에 대한 모니터링과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얼굴 없는 사이버 레커’들은 더 이상 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이번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지난 5일 개그우먼 이수지(40) 씨가 2025 제6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방송 부문 여자 예능상을 수상했습니다. 3년 연속 후보에 오른 끝에 결국 트로피를 들어올린 이수지 씨에게 반론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여자 싸이, 린쟈오밍, 교포제니, 육즙수지, 슈블리맘, 제이미맘, 성형외과 실장 등 실존하는 인물들을 거의 복제 수준으로 실감 나게 모사를 하는 이수지 씨는 명실공히 예능계 '핫이슈'였기 때문입니다. 이수지 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남달랐다고 합니다. 전교에서 유난히 끼가 넘치는 그런 학생이었답니다. 수업하시던 선생님이 '수지야, 나와서 웃겨봐' 하면 다른 과목 선생님들을 성대모사해 친구들의 배꼽을 훔쳤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제가 평범하게 공부하고 대학에 가서 결혼해서 아기 낳고 살기를 바라셔서 제가 개그우먼이 되고 싶다고 하면 혼을 내셨어요. 그래도 축제 무대에 올라서 친구들을 웃길 때가 전 제일 행복하더라고요. 부모님 몰래 코미디 학과에 진학하고, 몰래 공채 시험을 보면서도 '안되면 어떡하지?'란 생각은 안 했어요. 사람들을 웃기는 게 너무 즐겁다 보니까 하다 보니 일이 술술 풀렸어요." 이수지 씨가 자신의 이름을 가장 먼저 알린 개그 캐릭터는 바로 KBS '개그콘서트' '황해'에서 선보였던 조선족 보이스피싱범 '린쟈오밍'이었죠. 당시 보이스피싱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떠들썩했을 때였는데 이를 웃음으로 풍자한 이수지 씨에게는 분명 남다른 감각이 있었습니다. 개그계 선배 신동엽이 이끄는 CP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하고 쿠팡플레이 'SNL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이수지 씨는 날개를 달았습니다. 매번 새로운 캐릭터의 옷을 입어야 하는 이수지 씨는 하루는 교포 제니로, 하루는 국민 첫사랑으로, 하루는 구수한 아주머니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이어갔습니다. "사실 'SNL코리아'로 가기 전에 1년 6개월 정도 쉬었어요. tvN '코미디빅리그'가 종영하면서 갑자기 일이 뚝 끊긴 거예요. 그때 일의 소중함을 많이 느꼈어요. 'SNL코리아'에 오디션에 가서 저희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모사해서 '건축학개론'의 수지 씨를 따라 했거든요. 합격이었어요." 공개코미디 무대가 아닌 'SNL코리아'의 화면에서 이수지 씨의 세밀한 인물 모사는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대선배 신동엽 씨를 시작으로 정성훈, 김원훈, 주현영, 지예은 씨 등 재능 넘치는 크루들 사이에서 이수지 씨의 연기력은 날로 성장을 했죠. 그런 이수지 씨가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건 유튜브 플랫폼에서였습니다. "한 시즌 동안 'SNL코리아'는 10주 분량씩 촬영을 하고 긴 휴식 시간을 가져요. 그 시간에 뭘 할까 생각하다가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캐릭터 연기를 좀 더 다양하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만든 게 '핫이슈지'에요. 4~5명의 스태프가 대본은 물론, 소품과 의상 선택까지 아주 세밀하게 준비를 해요."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캐릭터 슈블리맘과 제이미맘, 백두장군 등입니다. 슈블리맘은 소셜미디어 기반으로 공동구매 판매를 하는 인플루언서이고, 제이미맘은 남다른 교육열과 코믹스러운 허영심을 가진 열혈 엄마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나~ 공장장이랑 싸웠잖아.", "돈두댓~", "제이미 뛰지 않아요." 등 대사들이 크게 유행을 했습니다. "슈블리맘은 인터넷에서 숏츠나 틱톡 이런 걸 보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제이미맘은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니까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엄마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무속인 백두장군은 새해 초에 인터넷에 계속 무당 콘텐츠가 뜨더라고요. 그걸 보고 '아 이거다' 했어요." 이수지 씨의 '핫이슈지'는 각계각층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연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했습니다. 한동안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유튜브 콘텐츠들이 대부분 지상파와 다를 게 없는 인터뷰 포맷이거나 연예인들이 자신의 인맥이나 사생활을 공개하는 브이로그 형식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핫이슈지'의 콘텐츠는 확실히 다른 재미를 추구하는 경쟁력을 가진 내용이었습니다. 이수지 씨의 복제 수준의 연기에 세심한 현실 고증으로 탄생한 각종 캐릭터는 단숨에 큰 인기를 얻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논란을 낳기도 했습니다. 슈블리맘이나 제이미맘의 모사가 너무 세밀하다 보니, 이수지 씨가 특정 연예인들의 모습을 모사한 게 아니냐, 나아가 그들을 조롱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 겁니다. 특히 제이미맘의 콘텐츠를 본 네티즌들이 유독 많이 거론했던 배우 한가인 씨가 자신의 유튜브 콘텐츠 일부를 비공개로 바꾸면서, 이수지 씨의 모사가 한가인 씨를 저격해서 만든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 겁니다. 이수지 씨의 대답은 '절대 아니다'였습니다. "제가 캐릭터를 만들 때는 일상 속의 공감대에 중점을 두지 특정인을 따라 하려는 건 절대 없었어요. 보시는 분들이 그런 오해를 하시는 것이 있는데, 제 목표는 더 많은 분에게 웃음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오해마저도 줄이는 게 제 숙제라고 생각을 해요. 유튜브의 장점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지적을 받으면 스태프들과 열심히 그런 지적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요." 의도치 않은 오해를 받아서 속상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수지 씨는 조롱과 풍자의 그 경계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수지 씨는 '이렇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자신감의 원동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결혼 전이었다면 이렇게 과감하게 캐릭터에 도전하지 못했을 텐데 지금은 뭘 해도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있답니다. "남편은 제가 뭘 해도 예쁘고 사랑스럽대요. 그런 말을 들으니까 뭘 해도 자신감이 생겨요. 아까도 제가 인터뷰하면서 피자 한 판을 먹었다고 사진을 찍어서 보냈는데 남편이 '아이고 불쌍해. 그걸로 돼?'하면서 제 걱정을 해주더라고요. 피자 한 판을 먹었는데도 제가 배고플까 봐 걱정을 해줘요. (웃음) 그런 남편이 있으니까 배꼽 노출 의상을 입든, 어떻게 망가지든 스스로 예뻐 보일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이수지 씨가 요즘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자신을 보고 잃어버렸던 웃음을 찾았다는 사람들의 반응을 받을 때라고 합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덕분에 웃었다", "오늘 직장에서 힘든 일이 많았는데 많이 웃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이수지 씨는 스스로 누군가에게 희망을 줬다는 생각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제 장점은 계속 쉼 없이 도전하는 것 같아요. 안주하려고 하다가도 계속 새로운 캐릭터를 생각하며 새로운 웃음을 찾아보거든요. 좀 더 나이가 들어서 해보고 싶은 건 정극 연기예요. 제가 좀 배우 김해숙 선배님을 닮지 않았나요? 저도 그런 어머니의 연기를 해보는 게 소원이에요."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우리나라는 먹는 것에 민감한 편이다. 가볍게만 봐도 그렇다. 단지 취향일 뿐인데도 탕수육 소스를 부어 먹을지 찍어 먹을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서 콩국수에 소금을 넣을지 설탕을 넣어 먹을지를 놓고도 서로 다른 의견으로 부딪히기도 한다. 더본코리아의 백종원 대표는 그런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화두로 한 방송인이자 사업가로 이름을 날렸다. '요식업의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201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마이 리틀 텔레비전', '집밥 백선생' 등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인 덕이었다. 그렇게 방송에서 개그맨 유재석 못지않은 영향력을 쌓은 백종원은 지난해 가장 큰 화제의 프로그램이었던 '흑백요리사' 시즌1에서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며 엔터테이너적 인기의 최정점에 올랐다. 시청률의 '키맨'으로 통했던 백 대표는 '흑백요리사' 시즌1로 인기의 가장 높은 꼭짓점을 찍은 뒤 가파르게 아래로 떨어지는 중이다. 10년 가까이 방송가, 광고계, 각종 지자체에서 '모시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던 백 대표의 명성과 신뢰가 이렇게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는 건지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상장과 함께 시작된 '키맨 리스크' 더본코리아는 지난해 11월 개미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상장했다. 상장 직후 5만 1,40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2만 원 중반대까지 하락해 고점 대비 반토막이 난 상태다. 600만 명이 구독하지만 악성 댓글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던 유튜브 채널에는 성난 민심이 들끓고 있고, 백 대표가 방송에서 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나 영상에 포착된 각종 실수까지도 네티즌들에게 '파묘'되는 상황이다. 더본코리아 시작은 '빽햄 선물세트' 가격 논란이었다. 타사 제품에 비해 '빽햄 선물세트'의 가격이 오히려 비싸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민심은 험악해졌다. 더본코리아는 자사몰에서 해당 제품의 판매를 중단했지만 여론을 바꿀 순 없었다. '빽햄'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신포차' 낙지볶음의 일부 재료가 중국산임에도 한국산으로 표기됐다는 원산지 논란, 위생 논란, 농지법 위반 문제, 술자리 면접, 촬영 현장 갑질 의혹, 지역 특혜 논란 등 더본코리아와 백 대표를 둘러싼 부정적인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졌다. 프랜차이즈의 점포별 품질 문제, 높은 폐점률 등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문제들도 다시 수면으로 올리며 백 대표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잘될 때 인기는 '보약', 안될 때 인기는 '독약' 공식 홈페이지에 백 대표가 두 차례 사과문을 올리며, 더본코리아의 로열티 3개월 면제 등 50억 원 규모의 가맹점 지원안을 발표했지만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진 못했다. 오히려 '키맨 리스크'라는 말이 나오며 여론이 악화되자 지난 6일 백 대표는 유튜브에 출연해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진화에 나섰다. '잘될 때 인기는 보약이지만 안될 때 인기는 독약'이라는 말은 백 대표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너도나도 모시려던 백 대표의 인기와 화제성은 오히려 부정적 기사를 더 양산하는 효과를 낳았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10년 가까이 방송을 통해 백 대표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업적 혜택을 얻었다는 점은 공감한다. 개인을 향한 비난과 기업가에 대한 비판 2023년 '충남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의 성공 이후 백 대표를 모시려는 지자체들의 경쟁이 눈물겨웠지만 백 대표와 함께 각종 사업을 진행했던 지역자치단체들은 오히려 혈세 낭비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전북 군산시는 더본코리아 요구에 따라 70억 원을 들여 외식산업개발원을 사실상 전용 공간으로 조성해 특혜 논란에 휘말렸고, 강원도 인제군은 유튜브 영상 제작을 명목으로 더본코리아에 5억 5,000만 원을 지원한 사실이 알려져 질책이 이어졌다. 경남 통영시도 통영어부장터 축제 예산을 지난해에 비해 2배 늘렸는데 이 가운데 70%가량이 더본코리아에 지급하는 용역비였다는 점이 드러나 '된서리'를 맞고 있다. 백 대표가 추가적인 방송 활동 중단을 선언하긴 했지만 '흑백요리사 시즌2'를 비롯해 이미 촬영을 완료하고 방영을 준비하는 프로그램들은 비상이 걸렸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더본코리아가 가진 허약함이 그대로 노출된 건 분명하다. 회사보다 훨씬 더 유명한 대표 경영인은 약일까 독일까. 방송을 통해 사업을 키운 백 대표가 또다시 앞으로 방영될 방송을 발판 삼아 재기할 수 있을지, 사과나 쇄신 약속으로도 잠재우지 못한 부정적 여론이 반전을 맞이할지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