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를 전공했고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인류세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예언자들>은 각 분야에서 연구 중인 KAIST 교수들이 특정 시점을 전제로 미래를 예측해 쓰는 가상의 에세이입니다. 그저 공상 수준이 아니라 현재 연구 성과와 미래의 실현 가능성을 정교하게 조율하기에, <예언자들>은 스프 구독자들에게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 이상 과학이 내다보는 미래를 미리 살펴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장면 #1 1905년 12월, 안중근은 중국 상하이를 떠나 귀국했다. 국권 회복을 위한 실마리 마련을 위해 뜻있는 이를 규합하려는 그의 노력은 좌절되었고, 백 년 후의 미래를 위해 교육에 힘쓰라는 충고를 들었을 뿐이었다. 4년 뒤에 있을 거사를 예고하듯, 김훈은 소설 『하얼빈』에서 당시 그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그렸다. “상해에 돈을 가진 자들은 더러 있었으나 뜻을 가진 자는 없었다. 돈을 가진 자들은 안중근을 대문 안에 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높은 담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돈 가진 자들은 세계정세에 관심 없다는 입장을 한유한 선비의 풍류처럼 말했다. 동북아와 구미 열강의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안중근에게 허황된 사업을 도모하지 말고 조선으로 돌아가 시골에 작은 학교라도 차려서 교육으로 백 년 앞을 준비하라고 충고하는 자들도 있었다. 충고는 간곡했다. 안중근은 지금 당장 연결되지 않는 백 년 앞을 이해할 수 없었다.” - 김훈, 『하얼빈』 (문학동네, 2022), 24쪽 장면 #2 2000년 2월, 파울 크뤼천은 멕시코에서 열린 유엔 산하 국제지구권-생물권 프로그램 (International Geosphere-Biosphere Programme)의 과학위원회에서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개념을 제안했다.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시스템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기에 새로운 지질학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크뤼천의 설명에는 안중근에서 볼 수 있는 절박함과 결연함이 묻어 있었다. “지구와 대기에 영향을 주는 주요하고, 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인간의 활동들을 지구적인 규모에서 고려해볼 때, 현재의 지질학적 세(世, epoch)를 나타내기 위해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지질학과 환경학에 있어 인류의 중심적인 역할을 강조함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 거대한 화산 폭발, 예상치 못한 전염병, 대규모의 핵전쟁, 소행성 충돌, 새로운 빙하기, 아직은 원초적인 기술에 의한 지구 자원의 지속적인 약탈과 같은 큰 재앙이 없다면, 인류는 다가올 수천 년, 수백만 년 동안 주요한 지질학적 힘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인류가 초래한 문제에 맞서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이룰 수 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략을 개발하는 것은 인류의 중요한 미래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며, 이를 위해선 치열한 연구와 함께 지식사회 또는 정보사회로 잘 알려진 정신권에서 획득한 지식을 현명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 Paul J. Crutzen and Eugene F. Stoermer, “The ‘Anthropocene,’” Global Change Newsletter 41 (May 2000), pp. 17-18 크뤼천은 국제지구권-생물권 프로그램의 과학위원회 토론 중에 인류세 개념을 제안했는데, 후에 생태학자인 스토머가 이미 비슷한 맥락에서 이 용어를 써왔다는 것을 알고 공동 저자로 뉴스레터에 글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에 크뤼천이 단독으로 이 개념을 지구시스템과학의 관점에서 더 발전시켜 나갔다. 장면 #3 2019년 9월, 뉴욕에서 열린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한 16세의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안중근의 총 대신 연설로 그리고 눈빛으로 세계의 정치경제 지도자들을 저격했다. “저의 메지는 '우리가 여러분들을 지켜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저는 여기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바다 건너 학교로 돌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두는 우리 젊은이에게서 희망을 찾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감히! 여러분은 공허한 말로 내 꿈과 어린 시절을 훔쳐 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행운아 중 한 명입니다.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생태계 전체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대량 멸종이 시작되었는데, 여러분은 오로지 돈과 동화 같은 영원한 경제 성장의 이야기만 할 뿐입니다. 어떻게 감히! 지난 30년 이상 동안 과학은 명확히 지적했습니다. 아직 필요한 정치와 해결책은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감히 여러분은 그렇게 계속 외면하고 이 자리에서 와서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 “Transcript: Greta Thunberg's Speech At The U.N. Climate Action Summit.” NPR (2019. 9. 23), 저자 번역 장면 #4 2022년 10월, 툰베리는 한 인터뷰에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열리는 이집트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 “Greta Thunberg to skip ‘greenwashing’ Cop27 climate summit in Egypt,” The Guardian (2022. 10. 31) 그는 이런 국제회의가 다양한 녹색 분칠(greenwashing)의 약속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길 좋아하는 권력자들과 지도자들에게 활용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치경제 시스템의 총체적 수정이 아닌 점진적 변화를 논하기를 좋아하고 행동보다는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의 진정성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환경단체와 함께 이집트의 양심수 석방을 위한 연대를 외쳤다. 왜 환경운동가가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환경과 인권이 어떤 관련이 있을까? 기후위기의 문제는 기후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장면 #5 2022년 3월, 서울 살다 귀촌해 강원도 인제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정치학자 채효정은 「빼앗긴 들판에는 봄이 오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여기서 그는 기후위기가 어떻게 사회정의의 문제를 일으키는지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온난화로 인한 개구리의 사라짐, 이로 인한 병해충 피해손실 증가, 수입 보전을 위한 농민의 부업 활동 증가, 이에 따른 가족 구성원 특히 여성의 노동 확대, 돌봄공동체의 약화, 농사 대신 농지를 태양광이나 인삼 사업에 대여, 임대농의 일터 상실 등, 서서히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일들을 통해 누구의 삶이 파괴되고 누가 이득을 보는지 말한다. “이것이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기후정의운동은 바로 이 최일선공동체로부터 저항과 돌봄의 경로를 동시적으로, 세심하게 짜가야 한다. 농촌과 농민은 자연과 인간의 서로 돌보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근본 터전이요 가장 중요한 주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일제강점기에 나온 시지만 해방이 오고도 농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계속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농촌의 봄은 어떻게 오는가를 써달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전한다. 우리의 들판은 자본에 빼앗겨 봄조차 빼앗겨버렸다고.” - 채효정, 「빼앗긴 들판에는 봄이 오지 않는다」 『창비주간논평』 (2022. 3. 23.) 장면 #6 2100년 1월, 인류세 개념이 제안된 지 100년이 지난 시점이다. 오랜 논의 끝에 국제지질학회에서 이 개념을 공인한 지 수십 년 흘러 학생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우고 있다. 과학 교과서와 사이언스 센터의 지질시대 도표는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인류세라 표기하고 있다. 지구라는 행성은 인간 활동을 위한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으로 변하고 그 변화는 인류의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이미 상식이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국제회의, 수많은 논문출판, 수많은 기술개발에도 불구하고 온난화는 지속되고 지구는 점점 더 살기 어려운 행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는, 경제력과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선진국은 적응하며 살 수 있는 체계를 그럭저럭 마련하며 대응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는 빈번한 홍수와 가뭄에 시달리고 그로 인한 정치적·경제적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 국가 내에서도 기후위기는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을 심화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공동보안 관리로 보행자와 차량의 유입을 통제하는 이른바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에 모여 살고, 인공지능 기술로 최적화된 비대면의 수업을 받으며, 메타버스의 세계에서 사업을 하거나 여가를 즐긴다. 반면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돌봄공동체의 밖으로 밀려나 취약계층으로 분류되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근근이 살아간다. 기후종말론이 힘을 얻는다. 종교나 신화에 나오는 종말론은 권선징악적인 요소가 있었다. 여기에는 불의한 자, 권세를 부리던 자, 지식을 뽐내던 자, 이런 사람들부터 선택적으로 처벌하는 서사가 존재하는데, 기후종말론의 서사는 암울하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 재난을 피하거나 막을 수 없는 사람, 필요한 돌봄과 치유를 받을 여유가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종말이 먼저 찾아오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이고 인권의 문제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어떤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겠는가? 빼앗긴 조국에는 정의와 인권이 지켜질 수 없기에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장면 #7 – 단상 인류세는 인간사회와 지구시스템 사이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이해하는 열쇳말이다. 인권을 지키기 위해선 환경권을 강화해야 하고, 환경권을 강화하기 위해선 지구상의 모든 생물, 무생물을 포함한 비인간에 권리를 부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권 강화를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한 새로운 휴머니즘이 나와야 하고,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공식을 넘어선 새로운 삶의 방식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새로운 과학기술도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와 인권위기의 최전선에서 절박한 심정의 지혜와 행동이 필요할 때다. 과학기술이 인문사회 연구와 함께 발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디자인 : 박수민 더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준비했어요! ▶ 함께 보면 좋은 참고문헌 1. C. 엘리스, 『인류세』 (교유서가, 2021), 김용진·박범순 옮김. 2. 라투르,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신기후체제의 정치』 (이음, 2021). ▶ 함께 보면 좋은 참고 이미지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미만으로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위해 합당한 정책 개발과 실행이 필수적이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의 포스터 앞에서 기후운동가의 시위 모습. 출처: 더 가디언>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연설한 가나의 10세 기후운동가 나키야트 드라마니. 기후변화로 인해 저개발국가가 입은 손실과 피해에 대한 선진국이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처: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