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전산학부장. 소프트웨어 기술로 사람을 돕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인재를 양성하고자 한다.
<예언자들>은 각 분야에서 연구 중인 KAIST 교수들이 특정 시점을 전제로 미래를 예측해 쓰는 가상의 에세이입니다. 그저 공상 수준이 아니라 현재 연구 성과와 미래의 실현 가능성을 정교하게 조율하기에, <예언자들>은 스프 구독자들에게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 이상 과학이 내다보는 미래를 미리 살펴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글 : 류석영 카이스트 교수) 여보, 안녕! 휘슬러는 여전히 스키 타기에 좋은가요? 탁 트인 시원한 설경이 그립네요. 오랜만에 임팩트 투자를 하는 제현주 대표를 만났어요. 은퇴한 남편이 열심히 일하는 부인을 두고 혼자 스키 여행 가도 되냐고 놀리면서도 매우 부러워하더군요. 급격한 기후 변화 앞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도 뚝심 있게 기후 기술에 투자해 온 제 대표의 감회가 특별했을 거예요. 제 대표와 같이 기후 기술 관련 수업을 하던 2022년만 해도, 과연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를 기술로 다룰 수 있을까, 기후변화는 주로 잘 사는 나라가 일으키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지 않은 약한 나라가 받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무기력한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기후 기술이 세상을 구원하고 있네요! 덕분에 당신은 4월에도 여전히 좋은 설질을 누리고 있으니, 제 대표에게 고마워해야겠네요. ㅋㅋ MIT 교수로 있는 우리 연구실 졸업생 기억나지요? 학부생으로 처음 만났을 때 반짝이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요즘 애들"이 어떻다고 하소연하는 이메일을 보내와서 한참 웃었어요. 소크라테스도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했다잖아요. 모교에 교수로 돌아와서, 대학생 때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들과 동료로 함께 일하면서 많이 듣던 말씀이에요. "요즘 애들은 류 교수가 학생일 때랑 달라요." 다른 것이 너무 당연하지요! 여전히 같으면 문제 아닌가요?! 다른 것을 부정적으로 보니까 문제인데, 사실 우리랑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너무 어렵잖아요. 이제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은 지금도 너무 어려워요. 역시, 사람이 제일 어려워요. 우리 학생들은 태어나자마자 디지털과 함께 생활한 세대잖아요. 우리랑 다른 종류의 인류 같아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은데, 디지털 공간에서 만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돼요. 예전에는 HCI(Human-Computer Interaction)가 중요한 연구 분야였는데, 이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이 더 어려워서 연구가 필요해 보여요. 우리 같이 나이 든 사람만 어려워하고, 학생들은 별문제 없이 잘 지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다양한 사람 사이에 서로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데에는 그만큼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것이 당연한가 봐요. 그래도 이제는 '서로가 소중한 손님'이라는 생각이 보편화되어서 다행이에요. '군사부일체'까지는 아니어도 위아래를 구분하는 문화가 지나치게 오래 있었잖아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갑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공감대를 만드는 데 수년이 걸렸는데, 이제는 나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나와 다른 모든 사람에게 서로 예의를 갖추고 배려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어요. 생각해 보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5년이 더 된 일이에요. 요즘 학생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선사시대 이야기를 하는 줄 알 거예요. 다행이에요. 지난 주말에 밴드 친구들 만나서 새로운 곡을 연습했어요. 물론, 새로운 곡 역시 우리가 어렸을 때 나온 곡이지요. ㅋㅋ 드럼을 맡은 친구가 출장 가서 AI 드럼이 대타로 뛰었더니, 별로였어요. 너무 칼박이에요! 이 친구가 돌아와야 우리 멋대로 눈빛을 맞추면서 느낌대로 연주를 할 수 있겠네요. AI 드럼이 우리 박자에 맞춰줄 수도 있는데 그건 또 왠지 흥겹지가 않더라고요. 우리가 너무 옛날 사람인가 봐요. 그래도 덕분에 새로운 곡 연습을 무사히 마쳤어요. 연습한 영상을 보니까 문득 스타워즈에서 온갖 다양한 생명체가 모여서 즐기던 장면이 생각났어요. 사실 우리 대신 AI 드럼, AI 키보드, AI 기타, AI 베이스, AI 보컬이 연주를 하면 더 완벽한 연주가 되지만, 음악이 꼭 완벽해야 하나요, 서로 부족한 대로 합을 맞추면서 하나의 곡을 만드는 과정이 더 재미있잖아요. 휘슬러에서 돌아올 때쯤에는 무대에 올리기에 부끄럽지 않은 곡으로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나만 잘하면 되는데 ㅎㅎ 집에서 내 친구 로봇이랑 열혈 연습하고 있어요. 이 아이가 일당백이거든요. 완전 재미있어요! 휘슬러에서도 당신 로봇이랑 잘 지내지요? 스키장에 있을 때와 아닐 때 당신의 성향이 너무 달라져서 그 친구가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ㅎㅎ 내가 없는 동안 둘이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어요. 참! 당신이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님이 새 책을 내셨어요. 정말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새롭게 이야기하시는지. 스타워즈는 말할 것도 없고, 김영하 님의 '작별인사', 그 이외 셀 수 없이 많은 SF 책과 영화를 보면, 작가님들이 예상하신 미래가 너무나 현재에 가깝죠. 물론, 개인적으로 영혼이 인터넷에서 영생하는 미래에는 동감하지 않지만, 사람과 로봇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시대는 이제 현실이잖아요. 그 덕분에 여전히 휘슬러에서 봄을 보내시는 분은 감회가 새롭겠네요. ㅎㅎ 다음 주에 우리 학생들이랑 '마음을 살피는 다정한 돌봄 로봇'으로 상 받으러 시애틀 간다고 이야기했지요? 뼛속까지 공대생인 우리 학생들이 사람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하려고 공부하고 연구한 그동안의 노력을 생각하면 정말 기뻐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뇌인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탐구해 온 선배님들 덕분이지요. 학회 마치면 휘슬러에서 만나요. 내가 좋아할 만한 새로운 장소를 마련해 놓으시고요. 운동하고 잘 시간이라고 내 로봇 친구가 자꾸 조르는군요. 이제 마무리해야겠어요. 휘슬러에 같이 계신 분들에게 곧 만나자고 안부 전해주세요. 사랑해요~ 디자인 : 박수민 더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준비했어요! ► 함께 보면 좋은 주요 키워드 임팩트 투자 기후 기술 HCI ► 함께 보면 좋은 참고자료들 스타워즈 작별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