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들>은 각 분야에서 연구 중인 KAIST 교수들이 특정 시점을 전제로 미래를 예측해 쓰는 가상의 에세이입니다. 그저 공상 수준이 아니라 현재 연구 성과와 미래의 실현 가능성을 정교하게 조율하기에, <예언자들>은 스프 구독자들에게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 이상 과학이 내다보는 미래를 미리 살펴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글 : 조계춘 카이스트 교수) ‘띠.띠.띠.띠.띠. 띠리릭~♪’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이 맑고 고운 소리는 우리 집의 닫혀있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다. 언제 들어도 설레는 소리이자 정감이 가는 소리. 내가 우겨서 목소리까지 울려 퍼지는 옛날식 도어록을 설치했다. 부모님은 AI시대에서 이 고물 같은 도어록이 웬 말이냐며 투덜거리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면 구식인 저 도어록을 포기할 수 없다. 갑자기 웬 도어록 이야기냐고? 도어록이 아니라 할머니 이야기다. 얼마 전에 할머니 기일이었는데, 자꾸 생각도 나고 해서 오늘은 내가 구식 도어록을 사용하게 된 할머니의 내 집 마련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한다. 벌써 50년도 넘은 이야기다. 다들 알다시피, 2020년대에는 지금처럼 쾌적하고, 안전한 지하도시가 아니었다고 한다. 지하도시라는 단어는 공상과도 같았고,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생소한 ‘반지하 단칸방’이라는 단어가 있었다고 한다. 지상에는 땅, 건물을 소유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해가 잘 들지 않고, 습하기도 하지만, 월세가 저렴한 반지하 또는 지하 단칸방에서 지내야만 했다고 한다. 홍수로 침수 피해가 많아져서 그쯤 취약계층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이 활성화되고 2024년쯤 주택 인허가 정책도 바뀌고, 건축법의 변경으로 지하의 주거생활은 퇴출되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기생충’이라는 옛날 영화를 보여줬는데, 정말 지금과는 다른 지하의 모습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이렇게 딴 세상이 된 지하도시가 신기하기만 하다. 다시 우리 할머니의 내 집 마련 프로젝트로 돌아가 보자. 2021년 서울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 쭉 올라 50%가 올랐고, 파급효과로 전국적으로 집값이 올랐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영혼을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 시작했지만, 또다시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내려가는 등 속수무책의 부동산 정책에 국민들은 좌절하고, 삶을 포기하는 자도 늘었다고 한다. 영혼을 끌어모았다는 문구가 그때의 절실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할머니도 그때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웠지만, 연예인들이 수백억 원의 건물을 사고, 수십억 원의 자가 아파트를 사는 걸 보며 당신의 덧없는 꿈이 초라해지기만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당시 카이스트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계셨는데, 가족처럼 친하신 교수님이 ‘미래 지하도시’라는 연구사업을 추진하고 있었기에 오매불망 연구가 현실이 되기만을 기대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매년 새해마다 다이어리에 적으시는 메모가 있어 여쭤봤더니 그 당시 교수님이 미래 지하도시를 실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핵심기술이라고 하셨던 내용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실현이 되어 너무 기쁘고 좋아서 늘 적어놓으신다고 했다. 일명 ‘집 열쇠’ 내 집 마련의 꿈을 풀어준 열쇠라서 항상 기억하고 싶다고 하셨다. <할머니 다이어리 메모> ERUSVill Eco 인공태양(빛, 식생) 및 스마트 에코시스템(습기, 먼지, 전파, 소음, 바이러스 제어)을 활용한 자연 친화적 생태공간 구현 Resiliency 재해(기상이변, 황사)가 없고, 재난(지진, 화재, 침수, 폭발, 테러) 대응형 회복력이 있는 안전한 공간 구축 Underground 지하 구조에 적합한 기반 시설, 가변형 구조체, 법제도 개정 방안, 대공간 굴착 기술 구현을 통한 신공간 창출 Sustainability 생활 안정성 확보를 위한 탄소중립, 공기/물 순환, 에너지 공급 등의 지속가능성 추구 Village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공시설 등이 공존하는 최소의 단위 마을 구현 「대한민국의 땅덩어리는 좁고, 내 집은 없고, 급작스런 집중호우 등 이상기온의 피해는 늘어만 가고, 미세먼지로 건강에도 악영향을 주는 지상보다 살기 좋은 지하도시의 꿈을 실현하는 데 키워드가 되는 ‘ERUSVILL’이라는 프로젝트. 단어 ‘ERUS’는 라틴어 고어로써 자체적으로 ‘집이나 가족의 주인’을 뜻함.」 사회시간에 배우고, 외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상이 되어 당연하게 생각되는 태양열과 공기의 압축 기술을 되새김하듯 빼곡히 적어 놓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과학의 기술 발전에 새삼 깊은 감동이 생겼었다. 할머니는 도어록의 버튼 하나하나를 누르며 이 기술들이 성공하고 실현됐을 때를 매번 떠올린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도 이 도어록의 잠금 해제가 풀리는 소리가 꿈 실현의 영광 같은 소리로 들린다. 할머니의 회상에는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심한 반대에 부딪혀야만 했다고 했다. 나는 상상도 안 된다. 지금 이렇게 지하 세계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그때는 실현 불가능하다며 비웃음을 받고, 물음표의 낙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할머니는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믿음이라고 했다. 교수님의 고집스러운 ‘미래 지하도시’의 실현 가능한 기술들을 믿었고, 근무 당시 연구하는 학생들의 역량을 믿었기에 지금의 지하도시를 누릴 수 있는 거라고 하셨다. 오히려 지금은 지하에서 재배한 과일과 채소들이 지상으로 공급이 되고, 지하의 교통체계로 한 시간이면 대한민국 곳곳을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며 많은 걸 감사해하셨다. 또 회상하실 땐 독백처럼 이런 말도 하셨더랬다. ‘지하도시가 반값 아파트를 제공해 준 덕에 주거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인류도 살렸단 말여. 백두산이 폭발해서 우리나라에 수십 센티미터 이상의 화산재가 쌓여 지상의 삶이 힘들어졌을 때는 정말 아찔했는데……, 우리가 그 덕에 살았지. 암만. 우주의 소행성들이 몇 번이고 지구와 충돌했을 땐, 먼지들 때문에 기온이 감소해서 미니 빙하기를 일으켰어. 근데, 끝나면 다시 지구온난화가 시작됐단말여. 이게 주기적으로 반복되니까 갑자기 더웠다가 갑자기 추워지고 홍수가 들었다가 가뭄이 들고,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내 몸이 추웠다 더웠다 한다니께. 자외선 노출이랑 극한기후 때문에 지상으로는 올라가기도 싫었는데 인류도 그렇고,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렇게 버젓이 눈 뜨고 살 수 있는 건 믿음의 결과여. 암만. 고 기술도 신통하고 지하가 내어 준 공간이 효자여. 효자.’ 역사의 산 증인이 하는 소리라 뭔가 내 맘에 짠하게 울려 퍼졌더랬다. 아 참, 그래서 할머니의 내 집 마련은 언제 이뤄졌냐면, 대망의 2040년이다. 물론 그전에 내 집을 살 수 있었지만, 할머니는 의리의 어른. 경쟁률이 어마무시한 지하 임대청약을 지원했고, 믿음의 결과였을까? 원하는 평수로 당신의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셨지만, 내 마음은 늘 따뜻해졌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의 믿음이 참 좋다. 도어록으로 시작한 할머니의 집 열쇠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너희들도 이번 기회에 현관의 도어록을 설치해 보길 바라. 꿈을 여는 것 같아, 행복해질 거야. 오늘도 바라기의 블로그에 찾아와 주신 햇님들. Thank you!!!!! 디자인 : 박수민 더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준비했어요! ▶ 함께 보면 좋은 주요 키워드 카파도키아 지하도시, 해양도시, 화성도시, 소행성 충돌, 극한기후 ▶ 함께 보면 좋은 참고자료들 카이스트 (2022). KAIST 100년의 꿈, 지식공감, 448쪽. 조계춘 (2022). [시론] ‘지상보다 더 살기 좋은 지하도시’. 한국터널지하공간학회지. 자연, 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Vol. 24, No. 4. 영화: City of Ember (2008), 백두산 (2019), Don’t look up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