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들>은 각 분야에서 연구 중인 KAIST 교수들이 특정 시점을 전제로 미래를 예측해 쓰는 가상의 에세이입니다. 그저 공상 수준이 아니라 현재 연구 성과와 미래의 실현 가능성을 정교하게 조율하기에, <예언자들>은 스프 구독자들에게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 이상 과학이 내다보는 미래를 미리 살펴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글 : 김주호 전산학부 KAIST 교수) 챗GPT로 대표되는 거대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들썩거리는 요즘, 많은 사람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분야 중 하나로 교육을 이야기한다. 온갖 설명과 요약을 척척 해내는 AI 튜터의 등장에 흥분하기도 하고, 틀린 정보를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배우는 입장에서는 AI 덕분에 더욱 편하고 쉬운 학습이 가능해져 좋기도 하면서, AI가 내가 할 일들을 너무나도 쉽게 해내는 걸 보면서 과연 뭘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강의계획, 자료, 시험문제 등을 AI의 도움으로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기존의 지식 전달 위주의 강의와 과제, 시험의 유효기간이 다했음을 직감하고 새로운 교육 방법을 고민한다. AI로 말미암아 교육의 미래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지켜보아야겠지만, 교육이 큰 변혁을 앞두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부터 10년 뒤, 2033년의 학교는, 학생은, 교실은 어떤 모습일까? 장면 1. 교실 출처 : https://publicdomainreview.org/collection/a-19th-century-vision-of-the-year-2000 이 그림은 프랑스의 화가 빌레마르(Villemard)가 1910년에 2000년의 교실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다. 2033년의 교실은 이 그림과 비슷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교사가 교재를 선택하면 학생 개개인의 학습 수준, 이해 속도, 흥미, 설명방식 선호에 맞추어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AI 튜터가 학습을 제공한다. 실시간으로 학생들의 집중도와 이해도를 파악한 AI 튜터가 설명과 예제, 문제 풀이, 활동을 알맞게 조절한다. 역사 수업에서는 AI가 만들어낸 역사 속 인물과 실제로 대화하면서 시대상과 인물의 행동 배경을 이해하고, 과학 수업에서는 AI 조교가 실시간으로 실험 진행 과정을 안내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어 안전하고 정확한 실험을 돕는다. 한편 짧은 시간 내에 가장 효율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 특화된 AI가 보편화되면서 교육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뜨겁다. 또한 직접 강의할 필요가 없어진 교사가 AI를 보조하는 수준의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학생의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활용하는 기술 도입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여전히 있다. 학교에서의 시간은 더욱 협업과 팀 활동 위주로 설계하고 지식의 단방향 전달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수십 년째 비슷하게 유지되는 입시에서 최적의 결과를 내기 위해 많은 교사, 학부모와 학생은 효율성과 최적화를 위한 선택을 한다. 장면 2. 집 / 필자가 AI를 사용해 만든 그림. 자세히 보면 이상하지만 대강의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괜찮다. 출처 : https://picsart.com 도윤 : “아빠, 나도 명품 xx 브랜드 AI 튜터 사줘.” 나 : “학교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거 있잖아. 그것도 좋은데 왜?” 도윤 : “학교에서 주는 건 너무 별로야. 그거 쓰는 애 우리 반에 몇 명 없어. 우리 반 현도는 이번에 xx 브랜드 AI 튜터 생일 선물로 받았는데 머리에 진짜 쏙쏙 들어오게 가르치고 안 지루하대. 10년 전에 엄청 유명했던 일타강사 현우진 스타일로 가르치는 모드도 있대.” 나 : “엄마 아빠가 이번 달 너 교육 때문에 AI에 쓴 돈만 얼만데 그래? 사고력 AI, 창의력 AI, 논리력 AI, 수학 AI, 사회과학 AI… 솔직히 비싼 AI 쓰면 성적 오른다고 하는 거 그거 다 상술이야. 아빠가 알아. 아빠 때는 AI 없이 혼자서 종이로 된 책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공부했어. 그래도 공부 잘만 했어. 안돼!” 도윤 : “아유, 또 옛날얘기… 언제 적이야! 그게!” 장면 3. 뉴스 / 필자가 AI를 사용해 만든 그림 출처 : https://picsart.com 뉴스 1 :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옵니다. AI 없이 학생이 혼자서 쓴 작품이 글쓰기 대회에서 입상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AI 취재팀의 조사 결과 2028년이 마지막이었다고 하는데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던 A양은 어려서부터 혼자 책을 읽고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이 취미였다고 합니다. A양은 ‘저는 AI를 잘 모르기도 하고… 제 글 보면 AI 없이 쓴 거 티 난다고 놀리던 친구들이 밉기도 했는데요. 그냥 제 속의 소리에만 집중해서 글을 썼더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뉴스 2 : “전국 고등학생 토론 대회에서 xx 고등학교 B군이 우승했습니다. 이 대회는 2030년부터 참가자와 AI가 팀을 이루어서 대결하는 형태로 바뀌었는데요. 놀랍게도 B군은 최신 AI 모델이 적용되지 않은 낙후된 2023년의 GPT-4 AI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B군에 따르면 오히려 2% 부족한 AI의 도움이 자기 능력을 더욱 끌어낸 것 같다고 합니다.” 뉴스 3 : “올해 대학입시에서 xx 대학교가 학생 선발 의사결정에 AI 감사를 제대로 통과하지 않은 사설 AI를 사용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낙방한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은 입시부정이라며 소송을 제기할 뜻을 밝혔습니다. 익명의 대학 관계자는 예산 문제로 싼값에 구매한 AI에 지역 편향이 담긴 것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며 성실히 문제 해결에 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yy 대학교는 전면 사람으로만 구성된 입시위원회를 열고 입시 의사결정에 AI를 완전히 배제할 뜻을 밝혀 또 한 번 논란이 예상됩니다.” 장면 4. 수업 / 필자가 AI를 사용해 만든 그림 출처 : https://picsart.com 2033 봄학기 KAIST 전산학부 CS374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수업 (1) 팀 프로젝트 : “쇼핑몰 웹사이트를 만들어 보세요. 3인 1조로 팀을 만들고, 협업 지원 AI는 우리 수업에서 제공하는 CS374 AI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AI는 모든 팀 미팅을 모니터링하면서 수업 시간에 다뤘던 관련 개념을 실시간으로 제시하고, 팀원 각각이 적절히 참여하도록 안내해 줄 예정입니다. AI와의 대화 로그도 다 남습니다. 코딩해 주는 기능은 여러분이 기본을 다질 기회를 주기 위해 막아놨어요. 개인 소지 AI 사용 시 적발되면 F입니다.” (2) 과제 : “AI가 주는 피드백을 반영해서 여러분이 만든 애플리케이션 UI를 수정해 보세요. 이 AI는 17년 동안 이 과목을 가르친 제 스타일로 피드백을 주도록 만들었어요.” (3) 수업 내 활동 : “이 문제의 답은 xxx입니다. 이 답을 도출하기 위해 던져야 할 적절한 질문을 세 가지 적어보세요. 이제 AI에 이 질문을 직접 던져보고, AI의 반응을 보세요. 여러분의 질문이 어떤 면에서 잘 되고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분석해서 제출하세요. 이제 개선된 질문을 다시 AI에 던지고 어떤 면에서 나아졌는지 분석해 보세요.” 글을 마치며 UC Santa Barbara의 Matt Beane 교수 연구에 따르면 로봇수술이 보편화되면서 대체되는 것은 수술하는 의사가 아니라 전공의들이라고 한다. 의사들이 직접 수술하지 않고 고가의 로봇을 조작하게 되면서, 의사를 보조하던 전공의들이 더 이상 수술실에 있을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공의들은 어깨너머로 도제식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면서 저마다의 학습 방법을 찾게 되고, 영상이나 시뮬레이션을 통한 간접적인 학습에 의존하게 되는 ‘그림자 학습’이 일어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은 기술 자체의 기능과 성능뿐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사람이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악용할 수 있는지, 사람과 기술 간에 어떤 상호작용이 발생하고 어떤 상호작용을 만들어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필자가 연구하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Human-Computer Interaction)이 바로 기술과 사람의 접점에 있는 다양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학문 분야이다. 필자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모습을 적절히 섞어서 하나의 가능한 교육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AI 기술의 혁신적 발전으로 좋든 싫든 교육은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배우는 내용도, 배움이 일어나는 공간도, 이를 설계하는 우리 사회도 모두가 큰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기술을 적극 활용하되 부작용을 미리 고민하고 이에 대처할 방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일이다. 교육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오늘부터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디자인 : 박수민 더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준비했어요! ► 함께 보면 좋은 참고 자료 1. OpenAI의 ChatGPT 2. 미국의 비영리 교육업체인 Khan Academy에서 GPT-4를 적용한 학습 가이드를 소개하는 영상 “Khan Academy announces GPT-4 powered learning guide” 3. 역사적으로 교육의 미래를 사람들이 어떻게 상상해 왔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작가 Audrey Watters의 2015년 글 “The history of the future of education” 4. 인간과 컴퓨터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TED 강연 “The rise of human-computer cooperation” 5. ‘그림자 학습’에 대해 설명하는 Matt Beane 교수의 TED 강연 영상 “How do we learn to work with intelligent machines?” 6. 인간과 AI 상호작용 중심으로 AI 기술을 설계하자고 주장하는 필자의 NeurIPS 2022 학술대회 기조강연 영상 “Interaction-Centric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