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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이미지를 누르면 스팟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뮤직앤아트 컴퍼니(ⓒKyutai Shim)) 클래식계 '꼬북좌', 알고 보면 세계 휩쓴 '거장' 박찬민 아나운서► 오늘은 클래식 기타계의 BTS,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 정도로 인기가 많으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또 클래식 기타의 비르투오소. 이제 비르투오소는 클래식에서 뛰어난 기량을 가진 거장 연주자를 뜻하잖아요. 기타계의 비르투오소라고 불러도 전혀 과언이 아닌, 섬세한 테크닉과 뛰어난 곡 해석력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기타리스트 박규희 씨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박규희► 안녕하세요. 저는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박규희입니다. 박찬민 아나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기타와 클래식 기타는 좀 다른 건가요? 박규희► 흔히 한국에서 알려져 있는 기타 하면 그 세시봉의 기타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으시잖아요. 근데 그거보다 훨씬 오래 전인 르네상스 때부터 이어져 오던 악기가 하나 있어요. 그 악기가 변형이 돼서 이제 지금의 클래식 기타가 됐는데 그래서 역사가 되게 깊고 클래식 연주만 하는 악기예요.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나 오케스트라와 똑같이 바흐 음악도 하고 모차르트 시대에 같이 활동했던 작곡가의 곡들도 연주하는 전통 있는 악기입니다. 김수현 기자► 그러면 통기타하고 클래식 기타는 소리가 많이 다른가요? 박규희► 줄이 완전히 달라요. 통기타 줄은 쇠로 알고 있고요. 클래식 기타는 나일론이거든요. 나일론이나 카본이라서 소리가 좀 작지만 더 섬세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나요. 박찬민 아나운서► 그런데 수상 경력이 정말 화려하시던데요? 전 세계 콩쿠르를 다 가지신 것 같은 그런 화려한 느낌이더라고요. 김수현 기자► 그럼 이 콩쿠르 수상 경력은 내가 제일 좀 내세우고 싶다. 이런 게 있으실 까요? 박규희► 2008년에 벨기에 프렝탕 콩쿠르를 나갔는데 이게 여왕이 만든 기타 콩쿠르예요. 지금은 이제 재정 문제로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유네스코에 등록이 돼 있어서 군면제가 되는 그런 콩쿠르였어요. 지금은 없어져서 모르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때 당시에는 한 국에서 군면제가 될 정도였으니 까 기타 콩쿠르 중에서는 굉장히 권 위가 있었던 콩쿠르죠. (박규희 기타리스트는 해당 콩쿠르에서 아시 아인 최초 1위 , 여성으로서도 최초로 1위를 차지.) 박찬민 아나운서► 1등 없는 2위 이런 것도 많이 하셨던데요. 박규희► 1등 없는 2위는 일본에서 정말 많이 했고 일본에서는 한 번도 우승을 못 해봤어요. 그래서 그때는 제가 문제점이 뭘까, 도대체 왜 나는 거기 안에서는 제일 잘했는 데 1등은 아닐까 이런 계속 의문점도 들고 좀 답답하기도 했고 그게 계속 됐었어요. 계속되다가 유럽에서 마음을 바꿔서 나갔던 계기가 한번 있었어요. 저는 그동안 위축돼서 어떻게 연주하면 심사위원이 좋아할까 그것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지 말고 그냥 내가 좋은 걸 나대로 하자 이렇게 마음을 바꿔서 나갔거든요. 그러고 나서 바로 1등이 됐어요. 노력을 당연히 했고 그 노력 이외의 마음가짐을 좀 바꿨던 것 같아요. 똑같은 악기와 똑같은 상황이었거든요. 그랬는데 그 마인드 하나로 좀 달라졌단 생각이 들어요. 그때 이후로는 제 노력이 받쳐줬다면 1등을 했던 것 같아요. 1등 없는 2등은 그때 이후로는 안 나왔어요. 김수현 기자► 지금 악기를 가져오셨는데 어떤 악기인지 좀 말씀을 해 주세요. 박규희► 이 악기는 다니엘 프레드리히라는 프랑스 명인의 악기인데요. 그분이 젊은 시절에는 여러 대를 많이 만드셨었는데 점점 악기 수를 줄여 나가시면서 본인이 인정하는 기타리스트에게만 만들어주는 걸로 유명했어요. 악기를 받으셨던 대가분들 중에 저희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교수님이 제가 전에 쓰던 악기를 보시면서 항상 좀 안타까워하셨거든요. 너는 악기가 조금만 더 좋으면 너의 역량을 더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때 당시에 저는 그냥 그 말만 듣고 흘려들었어요. 근데 어느 날 선생님한테 집까지 전화가 직접 온 거예요. 프레드리히가 제 악기를 만들어주신다고요. 그 전화를 받고 돈은 누가 내지, 어떻게 내지 이거부터가 걱정이 됐는데 정말 때마침 일본에서 장학금을 받게 돼서 모든 게 다 우연으로 맞아떨어져서 그 악기를 가지러 갈 수 있게 된 거예요. 김수현 기자► 그래서 연주해보니까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박규희► 일단 많은 사람들이 이 악기는 밸런스가 굉장히 좋다고 말씀하세요. 보통의 악기들은 고음이 좋으면 저음이 좀 약하고, 저음이 좋으면 고음이 약한 편인데 이 악기는 모두 다 밸런스 좋게 소리가 나와서 연주하기가 쉽고요. 그리고 기타는 음이 좀 뚝뚝 끊어지는 면이 있거든요. 근데 이 악기는 기타 자체가 좀 노래를 불러요. 한 번 치고 바로 음이 뚝 끊어지는 게 아니라 지속력이 있어서 그게 특별하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악기 소리가 되게 영롱하고 반짝반짝거리는 느낌이 있어서 정말 너무 만족하고 너무 좋아하는 악기예요. 박찬민 아나운서► 박규희 씨는 이제 앞으로 또 어떤 음악인이 되고 싶으세요? 박규희► 저는 유명해지고 이런 거보다는 저를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이 꾸준히 그 자리에 계실 수 있도록 좋은 연주를 계속하는 게 목표고요. 조금이라도 뭔가 추억 같은 것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음악이 추억이 되잖아요. 그걸 들으면 그때 생각이 나고, 이런 힘이 있잖아요. 저는 그게 음악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힘이 되면 좋겠고, 위로나 공감 이런 것도 드릴 수 있으면 좋겠고 가늘고 길게 활동하고 싶습니다. ♬ Tarrega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Recuerdos De La Alhambra) ♬ 숲속의 꿈(Un Sueno En La Floresta) ♬ 깜짝 라이브 연주 * 2020년 6월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더 많은 대화를 듣고 싶다면? ►[커튼콜] 사람들에게 추억이 되고싶어요 | 박규희 기타리스트 진행 : 김수현 기자, 박찬민 아나운서 출연 : 박규희 기타리스트 글·편집 : 하지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스팟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카이스트 공학도, 먹고 살기 위해 '반도네온'을 들다 오늘 인사이드는 고상지 반도네온 연주가와 함께 합니다. 김연아 선수가 소치 올림픽에서 열연을 펼쳤던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Adios Nonino'처럼 유명한 탱고 음악엔 절대 빠지지 않는 악기가 있습니다. 바로 반도네온입니다. 반도네온은 탱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국민 악기로 아직 우리나라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인데요. 고상지 연주가는 그런 흔하지 않은 반도네온으로 작곡까지 겸하며 자신만의 특별한 음악 세계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하는 고상지 반도네온 연주가와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고상지 연주가의 반도네온 시연과 '출격', '마지막 만담'도 함께 들려드립니다. 이병희 아나운서► 오늘 커튼콜의 초대 손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반도네온 연주가이자 작곡가이신 고상지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고상지► 안녕하세요. 이병희 아나운서► 사실 반도네온 잘 몰랐어요. 약간 아코디언 하고는 다른 거죠? 고상지► 일단 반도네온은 아르헨티나 탱고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정말 많이 쓰고 있는데요. 사실 이 악기는 탱고를 위해서 만들어진 악기가 아니라 1800년대 중반에 독일의 한 지방의 교회에서 오르간 대용으로 쓰기 위해 반트라는 사람이 아코디언을 기초로 제작한 거예요. 그래서 원래는 교회 음악을 위해 만들었는데 이 악기가 선원들을 통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 근처에 발달된 선술집, 환락가 이런 곳에 들어오게 됐고요. 탱고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악기가 되면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에 의하여 이렇게 재탄생이 되었습니다. 이병희 아나운서► 교회 음악은 생각도 못했는데요. 고상지► 종교 음악을 하려고 만들었는데 뒷골목 세계의 음악을 하게 돼서 정말 아이러니한 역사를 지닌 악기예요. 이병희 아나운서► 예전에 카이스트를 다니다가 이렇게 음악으로 갔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셨나요? 고상지► 어느 대학교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라는 걸 하잖아요. 그때 각종 동아리에서 신입생들 데려가려고 공연을 했는데 제가 이제 헤비메탈 동아리 공연을 보고 완전히 뿅 가서 입학하자마자 거기에 들어갔어요. 그러고 굉장히 음악에만 정진을 했는데 헤비메탈뿐 아니라 다른 밴드 동아리들이 있는 곳이 한 건물 지하에 다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무슨 동아리든 상관없이 굉장히 음악적 열기가 뜨거웠고요. 김수현 기자► 예술대학을 가셨네요. 고상지► 그런데 이제 음악에 매진하다 보니 어차피 나는 음악인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음악인을 너무 동경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건반으로 또 다른 동아리의 오디션을 봤는데 이게 또 취미니까 진짜 못했어요. 저는 너무 음악이 하고 싶은데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피아노 잘 치는 사람은 너무 많고, 그 사람들이 피아노로 먹고 사는 게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음악의 삶을 꿈꾸지 못했어요. 그런데 반도네온을 손에 얻고 그냥 연주했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엄청 관심을 가져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악기라면 먹고 살 수 있겠다 해서 갑자기 돌리게 되었습니다. 김수현 기자► 보면 굉장히 실용적인 이유에서 반도네온을 하게 되셨네요. 그래도 뭔가 매력을 느낀 포인트가 있었을 거 같은데요. 고상지► 반도네온에 호감과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탱고 음악이 먼저였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게임 음악, 애니메이션 음악을 좋아했는데 거기에 나오는 어떤 특정한 코드 진행이 있어요. 전투하거나 던전을 탐험하거나 그럴 때 나오는 음악이 있는데 그때의 묘한 분위기가 피아졸라 음악에서도 느껴져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 출격 고상지► 예전에 공중파 방송에서 했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아마 보신 분이 꽤 계실 거예요. 그리고 에반게리온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공중으로 출격하는 그런 느낌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좋아했어요. 제가 아르헨티나 유학할 때 굉장히 우울했거든요. 저는 서울이나 도쿄 같은 이런 정돈된 대도시를 좋아했었나 봐요. 앤티크한 도시에 가니까 힘들더라고요. 심신이 그때 너무 힘들어서 거의 울락 말락 하고 있을 때 에반게리온 극장판이 개봉했다는 티저 영상을 보고 그리움에 젖어 바로 쓴 곡이 출격입니다. ♬ 마지막 만담 고상지► 무대 위의 만담가의 삶을 이제 저의 음악인으로서의 삶과 비유해서 쓴 곡이고요. 만담가가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서 엄청나게 괴로운 세월의 노력을 하면서 무대 위에서 웃긴 얘기를 했는데 관객이 안 웃고 싸늘해요. 그때 이제 만담가는 어떻게든 웃으면서 하는데 잘 안 돼요. 그리고 공연 끝나고 이제 인사하고 들어가서 다시 정말 쓰디쓴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그 모습이 저와 닮아 있어서, 저는 주로 그렇게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런 만담가의 삶을 빗대서 쓴 곡입니다. 고상지 반도네온 연주가와 나눈 더 깊고 진지한 대화 전체는 인사이드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 2021년 5월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더 많은 대화를 듣고 싶다면? ►음악인을 동경했던 과학도, 반도네온으로 꿈을 이루다 | 반도네온 연주가 고상지 [커튼콜] 진행 : 김수현 기자, 이병희 아나운서 출연 : 고상지 반도네온 연주가 글·편집 : 하지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스팟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한국인들이 연주 잘할까? 한예종 총장의 대답은… 오늘 인사이드는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과 함께 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손열음, 김선욱, 문지영, 박재홍, 임윤찬 등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배출한 인재의 산실입니다. 한예종 개교 30주년을 맞이한 기념으로 김대진 총장을 모시고 초기 한예종의 힘들었던 상황과 교육의 비결, 영재와 콩쿠르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이하는 김대진 총장과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이병희 아나운서► 오늘은 저희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얘기를 좀 들어보고자 이분을 모셨습니다. 총장뿐만 아니라 사실은 피아니스트와 지휘자시기도 하고, 또 우리가 아는 그 수많은 피아니스트들, 김선욱 씨부터 시작해서 손열음 씨 등 이름 대려면 굉장히 많은데요. 그분들의 스승님이시기도 한 김대진 총장님을 모셨습니다. 김대진► 안녕하세요. 이렇게 열렬히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수현 기자► 예술 전 분야에 걸쳐서 굉장히 우수한 졸업생들을 많이 배출했고, 지금도 또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가는 학교가 됐는데 처음부터 이랬나요? 김대진►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었죠. 초창기엔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를 빌려서 썼었는데 처음 출근했던 날 비가 왔었어요.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복도에 큰 양동이가 하나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저건 무엇일까 하고 봤는데 바로 그 양동이 앞에 있는 연구실이 제 연구실이었고, 그 양동이는 비가 새니까 물을 받는 양동이였어요. 그게 제 연구실 앞에 있으니까 양동이 비우는 거는 제 역할이 돼가지고 초창기에는 비가 오는 게 그렇게 싫었어요. 양동이 비워야 되니까. 또 이제 식당이 없었으니까 다 중국집에서 시켜서 먹었는데 그래서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면 모든 교수님들 앞에 철가방이 하나씩 딱 있는 광경은 참 평생 잊지 못할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었거든요. 초창기에는 대학인지 학원인지 그런 논란이 굉장히 컸었던 것 같아요. 정식 학사 학위를 주는 대학이란 걸 입증하기 위해선 결국 학생들이 잘해야 되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진짜 열심히 가르쳤어요. 근데 하나 재밌는 거는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앞으로 입상을 많이 시켜야 되겠다고 회의를 하거나 뭐 그런 적 한 번도 없어요. 그냥 각자 생각이 그렇게 든 거였죠. 그래서 이제 국내 콩쿠르도 1등을 하기 시작을 했을 쯤에 그때 국내 콩쿠르 1등 하면 거의 본인이 1등 한 거예요. 선생님들이 그 정도로 기뻐하고 이제 자축도 같이 하기도 하고 정말 가족같이 지냈었던 기억이 납니다. 김수현 기자► 그러면 지금은 사실 유학 안 가고도 콩쿠르에서 우승한 사례를 굉장히 많이 봐서 이제 한예종 출신이 또 상을 받았나 보다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과정과 노력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 어떻게 하셨길래 이렇게 됐을까요? 김대진► 사실은 외국 언론에서도 취재를 되게 많이 나왔었고 분명히 뭔가 비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취재를 나오셨겠죠. 그런데 사실은 비법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결국에 저 비법을 안 가르쳐준다 생각해서 기분이 좀 언짢게 돌아가셨던 외국 언론도 있었는데 결국에는 공연 예술이거든요. 공연 예술의 특징은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한 번의 기회를 통해서 무대에서 그것을 발산해야 되는 거죠. 그런데 한예종 설립 전까지의 교육은 어떤 연구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었다면 한예종의 이 목표는 무대를 생각을 했던 거죠. 누구든지 두 번 세 번 기회가 주어지면 다 완벽하게 연주를 하지 누가 그걸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우리들 언어로는 무대 연습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연주하기 얼마 전부터 그런 무대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렇게 큰 무대는 아니고 조그마한 연습실이라든지 합주실이라든지 해서 연주를 시키고 모든 교수님들이랑 학생들도 와서 그 연주를 들어요. 그게 무슨 코멘트를 해주기 위해서 하는 연주는 아니었고 본인 스스로 그런 무대 경험을 해주기 위해서 했던 거였거든요. 스포츠로 말하면 대표팀 평가전. 그런 개념의 작업이 굉장히 자주 있었어요. 연습실 안에서 이루어진 것과 무대로 가는 것에 그 사이의 어떤 과정을 우리가 하나 더 집어넣어 준 거죠. 그러다 보니까 이제 무대에서 그만큼 실력을 잘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게 가장 큰 어떤 우리만의 장점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김수현 기자► 근데 왜 한국인들이 이렇게 잘할까요? 김대진► 연주력이 좋아서 그런 거죠. 아까 말씀드린 대로 문제는 그날 누가 무대에 올라가서 연주를 잘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그런 면에서 연주력을 이렇게 갖춘 나라가 없을 정도로 한국 진출자들이 연주력이 아주 단단하게 지금 만들어져 있을 거예요. 일단 정신력으로 그렇게 무장된 우리나라 학생들을 따라올 수가 없을 거고요. 다들 너무 무장이 돼 있어서 걸어 나오는 거 보면 왜 저렇게 쟤는 화내고 나오니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한 집중력을 갖고 있는 것이고요. 그다음에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제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작업과 무대와의 그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그 브릿지를 제공을 많이 해줘야 되는 건데 지금 문화재단들에서 그런 연주 기회를 자꾸 주고 실전 연습을 계속 시켜주는 그런 시스템으로 준비가 되는 나라는 제 생각에는 한국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 점에서는 사실 선생의 한 사람으로 굉장히 감사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김대진 총장과 나눈 더 깊고 진지한 대화 전체는 인사이드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 2022년 11월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더 많은 대화를 듣고 싶다면? ►유명 콩쿠르 우승자 다 여기 출신? 김대진 총장에게 듣는 한예종 30년 [커튼콜] 진행 : 김수현 기자, 이병희 아나운서 출연 : 김대진 한예종 총장 글·편집 : 하지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스팟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강태욱) 최하영,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일주일 연습한 곡'으로 우승했다 오늘 인사이드는 최하영 첼리스트와 함께 합니다. 최하영 첼리스트는 2022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는 결선 진출자들을 일주일 간 격리시킨 후 지정된 현대곡 중 하나를 결선 무대에서 연주하도록 하는 특이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요. 현대곡은 난이도도 어려운 편이고 단 일주일 동안 새로운 곡을 연습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당시의 생생한 뒷이야기와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어봅니다. 이하는 최하영 첼리스트와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박재현 기자► 오늘 커튼콜의 초대 손님은 세계에서 유명한 콩쿠르 중 하나죠.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우승을 거머쥐신 첼리스트 최하영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최하영► 안녕하세요. 박재현 기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가 벨기에의 어떤 국가 행사 같은 그런 느낌인가 봐요. 최하영► 모든 세미 파이널 라운드가 다 생중계되고요.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어도 이제 tv를 틀면 계속 나오니까 알아보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혹시 루토스와프스키를 연주하신 분 맞냐고 알아보신 경우도 있고, 공항에서 알아보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래서 민낯 추리닝 사진도 되게 많이 찍혔어요. 하하하. 김수현 기자► 루토스와프스키 말씀하셨는데 그거를 이제 결선에서 연주를 하신 거잖아요. 근데 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원래 이제 다른 부문도 결선 진출자들을 일주일 동안 격리한 다음 현대곡을 주면서 그 곡을 새로 연습을 해가지고 결선에서 연주하라고 한다면서요? 일주일간의 격리 생활은 어떠셨나요? 최하영► 라인 엘리자베스 뮤직 샤펠이라고 음악 학교가 있어요. 제가 듣기로는 버스를 타고 시내를 가려고 해도 30분을 걸어야 된대요. 도착하면 일단 모든 전자기기를 압수하고요. 그래서 샤펠 안에서만 지냈어요. 그래도 건물 밖에 나가면 들판도 있었고 좋았어요. 수시로 제가 연습만 할 수는 없으니까 음악도 연구하고, 낮잠도 자고... 어떻게 보면 되게 평화로웠어요. 박재현 기자► 개인적인 경험을 좀 떠올려보면, 사실 음악 학교 연습실이 방음이 아무리 잘 돼 있다고 해도 다 들리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게 신경 쓰이진 않으셨어요? 최하영► 너무 감사하게도 제가 있었던 층 방음이 너무 잘 돼 있었어요. 옆방에서 듣고 싶어도 못 들었어요. 그리고 곡에 대해서 다들 힘들어했거든요. 걱정도 많이 하고. 그래서 친구 참가자들끼리 악보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아이디어도 교류하면서 서로 도와주기도 했어요. 김수현 기자► 재밌네요. 그런 식으로 경연을 한다는 게. 그러면 진짜 일주일 만에 악보를 다 보는 건 물론이고 이거를 다 익혀서 연주해야 되는 건데 원래 평소에도 새 곡을 할 때 그 정도면 할 수 있나요? 최하영► 그렇게 단기간 안에, 일주일 만에 해본 경험은 아마 샤펠에서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모두에게 정말 큰 도전이었어요. 김수현 기자► 그게 첼로뿐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도 그렇게 한다니까 참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가혹하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김수현 기자► 이제 루토스와프스키를 고르셨는데 아무래도 좀 현대적인 곡이잖아요. 왜 이 곡을 고르셨나 좀 궁금하긴 했어요. 최하영► 많이들 궁금해하시고 또 오케스트라 단원분들도 저한테 나중에 왜 이걸 골라서 이렇게 고생을 시켰냐고 했어요. 모든 참가자들이 원서를 냈을 때 루토스와프스키 선택한 사람은 저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분들 생각에도 설마 이 친구가 올라오진 않겠지 하고 준비를 안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세미 파이널 결과 나오고 나서 이제 급하게 한 10일간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대요. 지휘자랑 스태프 분들도 이 곡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시고, 물론 저도 콩쿠르에서 연주한 게 처음이었어요. 꼭 한번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요. 김수현 기자► 보통 콩쿠르 경연 곡을 선택할 때 내가 몇 번 연주해봐서 좀 잘 아는 곡, 자신 있는 곡을 하지 않나요? 최하영► 그렇죠. 특히 콩쿠르는 자기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통 곡을 고를 때 좀 더 콩쿠르에 맞게, 그리고 안전하게 리스크가 없는 선택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그런 요소들보다는 정말 내 개성과 강점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곡이 뭘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선택하게 됐어요. 최하영► 앞으로 정말 공부해야 될 것도 많고, 성장해야 될 것도 많다고 느껴서 계속 탐색하고 새로운 것도 많이 도전해 보고 싶어요. 여러 좋은 동료들을 만나서 앞으로 연주 활동하면서 영감도 많이 얻고 성장하고 싶습니다. 최하영 첼리스트와 나눈 더 깊고 진지한 대화 전체는 인사이드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 2023년 1월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더 많은 대화를 듣고 싶다면? ►"벨기에 사람들이 알아봐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한국인 | 첼리스트 최하영 [커튼콜] 진행 : 김수현 기자, 박재현 기자 출연 : 최하영 첼리스트 글·편집 : 하지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스팟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수천 번의 공연, 그럼에도 늘 새로운 '최정원'이라는 뮤지컬 오늘 인사이드는 최정원 뮤지컬 배우와 함께 합니다. 최정원 뮤지컬 배우는 어느덧 데뷔 35년 차를 맞은 뮤지컬 1세대로서 뮤지컬 '시카고'의 록시 하트, 벨마 켈리와 '맘마미아'의 도나,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등의 작품을 완벽히 소화하는 모습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맘마미아'의 도나 역으로만 천 회가 넘는 공연을 소화한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뮤지컬 '맘마미아'에서도 역시 도나 역을 맡게 되었는데요. 오늘 인사이드에서는 최정원 배우의 뮤지컬에 대한 열정을 들어봅니다. 이하는 최정원 뮤지컬 배우와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ABBA - 'DANCING QUEEN' 라이브 음원도 함께 들려드립니다. 장선이 기자► 뮤지컬계의 영원한 디바, 최정원 배우입니다. 김수현 기자►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최정원► 저는 이제 33년 차 돼 가고 있는 뮤지컬 배우고요. 89년도에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를 했고, 지금 정말 가슴이 뜨거워지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윌킨슨 선생님으로 출연 중에 있습니다. 뮤지컬 배우 최정원입니다. 장선이 기자► 뮤지컬 1세대시니까 지금의 후배들은 최정원 배우님을 보고 뮤지컬 배우의 꿈을 꾸곤 했을 텐데, 어릴 때부터 꿈이 뮤지컬 배우였나요? 최정원► 고등학교 2학년 때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고 뮤지컬을 알게 됐어요.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를 집에 바래다주고 키스를 하고 나오는데, 그때 그 너무 행복한 마음을 발장구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저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이게 뭘까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뮤지컬이라는 걸 알게 됐고, 원래는 연극이나 연기하는 걸 꿈꾸고 있었는데 노래도 하고 춤도 추는 뮤지컬 배우를 해야겠다는 더 큰 꿈을 갖게 됐죠. 장선이 기자► 33년 경력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몇 가지 배역을 해보셨는지 기억이 있으세요? 최정원► 당연히 다 기억나죠. 제 자식들 같은데... 그런데 저는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대략 서른 개가 좀 넘는 작품을 했는데 우선 한 작품을 오래 한 게 많아요. '사랑은 비를 타고'도 한 작품을 오래 했고, 14년 동안 '맘마미아'도 천 회 넘게 공연을 했고, '시카고'도 21년째 하고 있고, '빌리 엘리어트'도 4년 만에 다시 복귀하고 이렇게 재공연 하는 작품이 많아요. 역할로는 서른다섯 명의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장선이 기자► 서른다섯 명의 역할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거나 더 애착이 간 친구가 있나요? 최정원► 다 아프죠. 손가락인데. 그래도 꼭 꼽아야 된다면 '맘마미아'의 도나는 제가 처음으로 엄마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을 때 도나를 만나면서 조금 더 저를 찾아가게 된 계기였어요. 많은 분들이 '시카고' 얘기도 해주시는데 저는 제가 만약에 최고의 배역을 뽑는다면 도나였던 것 같아요. 아바의 초청으로 스웨덴에 가서 콘서트도 하면서 느꼈고, 그리고 그냥 누가 맘마미아 하면 최정원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끔 운전하다가 라디오에서 아바의 노래가 나오면 저는 그냥 차를 세워요. 너무 좋아서. 그리고 어머니가 음악을 자주 들으셨는데 아바를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어느 날엔 무대 위에서 그 아바의 노래를 제가 내 드라마에 맞게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소름 돋더라고요. 장선이 기자► 뮤지컬 배우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는지 궁금해요. 최정원► 모든 작품이 좋은데, 어떤 작품에서든 모든 공연에 커튼콜이 있잖아요. 커튼콜 때만 되면 가슴이 벅차올라요. 사실은 내가 커튼콜을 하기 위해서 공연을 하나 싶을 정도로요. 특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커튼콜은 '시카고'인데 전 세계 어떤 작품도 이름 불러주는 커튼콜이 없잖아요. 그런데 '시카고'는 앙상블 배우까지 다 불러주잖아요. 저는 89년도에 아가씨 6번으로 대사 한마디 없는 역할을 할 때도 커튼콜 때 조명을 받으면 울 정도로 너무 행복했어요. 또 인사할 때 박수 쳐주는 소리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시카고'를 제가 왜 이렇게 좋아할까 했더니 커튼콜 때문인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커튼콜 때 이름 불러주고 나와서 관객들한테 인사받을 때 몸 안에 나쁜 것들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최정원► 제가 마지막까지도 뮤지컬 배우로 살다가 가는 삶이 저의 꿈이고요. 그런데 저의 가장 큰 꿈은 오늘 있을 공연을 잘하는 거예요. 오늘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막공처럼 하자. 에너지가 분산될 수도 있지만 저는 공연이 두 번 있는 날이면 낮 공연도 마지막 공연처럼 해요. 그래야 저녁 공연이 더 잘 되더라고요. 오늘 잘한 공연이 쌓여서 최정원이라는 배우가 더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혹시 내일 무대에 못 서거나 내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더라도 후회 없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최정원 뮤지컬 배우와 나눈 더 깊고 진지한 대화 전체는 인사이드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 2021년 9월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더 많은 대화를 듣고 싶다면? ►꿈꾸는 대로 이루는 디바, 빌리 엘리어트로 돌아오다ㅣ뮤지컬 배우 최정원 [커튼콜] ►'시카고' 21년, 이제 등으로도 연기해요…관록의 뮤지컬 배우 최정원 [커튼콜] 진행 : 김수현 기자, 장선이 기자 출연 : 최정원 뮤지컬배우 글·편집 : 하지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스팟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손열음, "콩쿠르는 고마운 기회지만 내겐 음악회 무더기였다" 오늘 인사이드는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함께 합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죠. 연주 활동에 그치지 않고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으로 활약하며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온 손열음 피아니스트는 최근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연주회 투어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하는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손열음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조지 거슈윈의 'Summertime'도 함께 들려드립니다. 장선이 기자► 사실 설명이 필요 없는 분이신데 다 설명하려면 1박 2일이 걸릴 것 같아서 가장 최근의 근황으로만 설명드리겠습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이자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입니다. 다 아시겠지만 그래도 제가 한 번 약력을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정리해 봤는데요. 2009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준우승과 최우수 실내악 연주상, 2011년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 2위와 모차르트 협주곡 최고 연주자 상. 이 외에도 너무너무 상이 많죠. 김수현 기자► 근데 이것도 벌써 10년 전 얘기잖아요. 콩쿠르 얘기하면 이제 좀 옛날 얘기 같죠? 손열음► 시간이 좀 지나서 그때가 제일 마지막 콩쿠르였으니까 좀 아득한 느낌도 있어요. 김수현 기자► 사실 근데 콩쿠르를 빼놓을 수가 없잖아요. 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한테 콩쿠르가 되게 중요한데 이제는 좀 멀리 떨어져서 생각하니까 어떠세요? 손열음► 그때 저는 사실 재밌었어요. 제가 음악 듣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 가서 다른 사람 연주 보는 게 너무 재밌었고 배운 것도 되게 많아서 그 시간을 너무 좋게 기억하고 있어요. 장선이 기자►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게 굉장히 놀랍네요. 저는 긴장되기도 하고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요. 손열음► 제가 엄청 어렸을 때 처음 콩쿠르 나갔을 때는 워낙 상을 타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진짜 그냥 구경하는 기분으로 갔었고요. 어떤 콩쿠르들에서는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다음에 연주를 구경하고 온 게 너무 즐거웠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한꺼번에 여러 가지 레퍼토리를 하는 걸 볼 기회가 드물잖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음악회 무더기 같다는 이런 추억이 남아있어요. 장선이 기자► 예전에 관객들이 라 캄파넬라를 쳐달라고 했을 때 1년 동안 안 쳐봤다고 하시면서도 또 못내 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데요. 앵콜 공연 때 소통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손열음► 사실 클래식 음악 공연이라고 하면 연주자가 곡을 다 정해서 일방적으로 들려드리는 그런 느낌이 약간 있잖아요. 사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왔다갔다 하는 공연이면 좋을 것 같기도 해서 앵콜 때는 그렇게 했었어요. 처음에 한두 곡은 뭘 할지 정하는데 그다음부터는 이제 생각이 안 날 때도 있고, 심지어 그때는 정말로 제가 더 치고 싶긴 한데 뭘 칠지 생각이 안 나서 여쭤봤던 것 같아요. 장선이 기자► 기초적인 질문이지만 유튜브 영상에 달린 덧글 중에 공감이 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악보를 다 외우시잖아요. 굉장히 열정적이고 역동적으로 연주를 하시는데 그 순간에 몰입해서 어떤 감정을 따라가는지, 아니면 이 암기된 악보에 따라서 가는 건지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연주를 할까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저도 되게 궁금했거든요. 손열음► 답을 어떻게 드려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 순간을 딱 정말 글로 써놓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저도 사실 이해가 잘 안 가요. 연주할 때 그 순간만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다른 데로 갈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에 있기는 한데 저 멀리도 봐야 되는 그 평행을 유지하는 게 정말 어렵긴 어렵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마술 같은 밸런스가 나와야 되는 거고, 그러다 보니까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연주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렵긴 한데 그래도 그 두 개는 항상 똑같이 가야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유체이탈의 느낌? 제가 완전히 미쳐 있지만 그 순간에 또 어쨌든 저를 바라보기도 해야 되는 그런 두 느낌이 함께 있어요. 이게 어려워서 저는 연주에 대해 만족하는 경우는 잘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장선이 기자► 지금까지 이루신 것도 많고, 또 하시는 것도 많은데 앞으로의 꿈이 궁금해요. 저는 무대에 있을 때 생기랑 에너지가 넘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를 주로 보다가 이렇게 포스 있는 감독님의 모습을 보기도 하니 앞으로는 또 어떤 모습이실까 진짜 궁금하거든요. 손열음► 사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건 진짜 잘 모르겠고 그냥 피아노를 좀 잘 치고 싶다. 이런 생각은 많이 있어요. 이상향이 있잖아요. 소리라는 것도 그렇고, 음악성이나 스타일이라는 것도 그렇고. 그런데 그게 또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계속 변하니까 재밌는 것 같아요. 저는 궁극적으로는 사실 피아노만 치고 살고 싶어요.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나눈 더 깊고 진지한 대화 전체는 인사이드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 2022년 7월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더 많은 대화를 듣고 싶다면? ►콩쿠르 영재에서 예술감독까지...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마스크'ㅣ손열음 1부 [커튼콜] ►'젊은 거장' 손열음이 스스로 '둔재'라고 느낀 사연은?ㅣ손열음 2부 [커튼콜] 진행 : 김수현 기자, 장선이 기자 출연 : 손열음 피아니스트 글·편집 : 하지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스팟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엄원상, 목표는 MVP? "이번 시즌도 우승 한 번 해보겠습니다" 오늘 인사이드는 울산 현대의 엄원상 선수와 함께 합니다. 울산 현대는 작년 K리그1 시즌 우승에 이어 개막 후 6연승 중으로 뜨거운 열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MVP나 다름없는 활약을 펼치는 엄원상 선수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골라듣는 뉴스룸 축덕쑥덕'에서 이번 시즌과 아시안게임을 향한 포부를 들어봤습니다. 이하는 엄원상 선수와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주영민 기자► 출발부터 아주 뜨겁습니다. 요즘 하루하루가 즐거울 것 같은데 기분이 어때요? 엄원상► 팀이 계속해서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서 저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팀원들이 다 잘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주시은 아나운서► 올 시즌 각오가 이제 MVP라고 했는데 지금 두 경기 연속 골을 넣고 있어요. 어떠신가요? 엄원상► 우선 목표는 일단 베스트 일레븐이고요. 일단 두 경기가 이제 끝이 났지만 앞으로 남은 경기가 더 많기 때문에 앞으로 더 잘해야 또 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노력해야 될 것 같아요. 주시은 아나운서► 혹시 월드컵을 못 간 게 지금 이렇게 잘하는 부분에 있어서 더 동기부여가 됐을까요? 엄원상► 없지 않은 것 같아요. 작년에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나가고 싶었었는데 안타깝게 가지 못했었기 때문에 제가 시즌을 더 잘 준비해서 다음 월드컵은 나갈 수 있게끔 해보려고요. 아무래도 월드컵에 동기부여가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주영민 기자► 올해는 이제 아시안게임이 있습니다. 욕심이 나죠. 엄원상► 욕심이 나죠. 아시안게임도 있고 이제 대표팀의 감독님도 바뀌셨고, 스스로 목표를 세웠던 것에 있어서 아시안게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잘해야 아시안게임이라는 무대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원상► 항상 원정 경기나 홈 경기 가릴 것 없이 먼 길까지 항상 많은 팬분들이 응원을 열심히 해주셔서 저희 울산 현대가 이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올해도 저희 선수들뿐만 아니라 많은 팬분들이 2연패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신데 꼭 이제 2연패라는 목표를 갖다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이번 시즌도 우승 한번 해보겠습니다. 주영민 기자► 엄원상 선수는 U20 월드컵 때부터 쭉 매년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서 이제는 탑클래스로 올라섰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운동선수뿐 아니라 일반인들한테도 굉장히 모범이 되는 모습인 것 같고 그래서 참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간 선수가 정말 정상에서 MVP까지 딱 거머쥐고 월드컵 무대에 서는 모습까지 보고 싶습니다. 올해는 이제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따고 정말 이뤄야 될 게 참 많은 것 같은데요.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엄원상 선수와 나눈 더 깊고 진지한 대화 전체는 인사이드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 2023년 3월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더 많은 대화를 듣고 싶다면? ►클린스만 감독 입국...3년 5개월 동행 시작 (feat. 엄원상의 세리머니 공약) [축덕쑥덕] 진행 : 주영민 기자, 하성룡 기자, 주시은 아나운서, 박진형 PD 출연 : 울산 현대 엄원상 글·편집 : 하지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스팟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BBC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울려…"사실 망한 줄 알았다" 오늘 인사이드는 김기훈 바리톤과 함께 합니다. 김기훈 바리톤은 참가자 대부분을 초청해서 진행하는 콩쿠르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아리아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으며, 경연 중 심사위원을 눈물짓게 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파파게노 역을 맡아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하는 김기훈 바리톤과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김기훈► 안녕하세요. 저는 바리톤 김기훈이라고 합니다. 자칭 슈퍼바리톤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김수현 기자► 최근에 BBC 카디프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셨어요. 제가 취재하면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 콩쿠르에 우승을 하면 정말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성악가다, 그렇게 인정받는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콩쿠르를 중계도 하는데 시청률이 되게 높다고 들었어요. 김기훈► 네. 20% 이상 나가요. 리허설 끝나고 거리에서 돌아다니는데 사람들이 마스크 썼는데도 알아보더라고요. 이병희 아나운서► 그 카디프 콩쿠르가 그냥 내가 나가고 싶다고 해서 나가는 그런 콩쿠르 하고는 약간 다르다면서요. 김기훈► 네. 이거는 비하인드 스토리이긴 한데요. 사실 제가 옛날에 18년도엔가 나가고 싶어서 신청서를 냈었는데 떨어졌어요. 근데 나중에 제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랑 오페랄리아에서 입상한 다음 초청장이 온 거예요. 나와달라고. 김수현 기자► 이제 BBC에서 흥행을 위해 주요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사람들한테 와달라고 초청장을 보내나 보네요. 네. 제가 1라운드 때 김기훈 씨가 코른골트라는 작곡가가 쓴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는 걸 듣고 심사위원이 너무 감동해서 우는 장면을 봤어요. 김기훈► 저는 그 노래를 콩쿠르에서 처음 해봤거든요. 완전 처음 시도해 보는 곡이고 섬세한 아리아를 해본 게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좀 잘 보여주고 싶었는데 노래 부르는 내내 심사위원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거예요. 원래 제가 노래하면 그래도 보통 좋아해 주거든요. 그런데 너무 표정이 안 좋으니까 그때 생각했죠. 망했다. 그런데 상을 받았어요. 어안이 벙벙해가지고 숙소에 돌아갔는데 그때 같이 나갔던 박주성이라는 후배가 와서 제가 부른 영상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랬더니 심사위원이 눈물을 또르르 흘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 알았어요. 저 사람이 기분이 안 좋은 게 아니었구나. 이병희 아나운서► 콩쿠르 하실 때마다 항상 재밌거나 당황스러운 에피소드들이 생긴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특별한 에피소드들 얘기 좀 해주세요. 김기훈► 전에 오페랄리아 콩쿠르 세미 파이널에서 리허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연을 시작하니까 피아니스트가 테너키를 치는 거예요. 제가 절대음감이 아니라서 음을 정확히는 몰라요. 그래도 음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높았는데 그때 라이브 스트리밍 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또 경연이다 보니까 제가 끊기가 좀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냥 불렀죠. 김수현 기자► 그럼 음역이 얼마나 차이가 나요? 김기훈► 음역이 2키, 3키 정도 차이 나는 것 같은데 그게 얼마 차이 안 나는 것 같아 보여도 나중에 대미지가 엄청 쌓이거든요. 그래도 일단 높은 키로 불렀는데 그때 도밍고가 꽤 앞에 앉아 있었거든요. 첫 음이 나오자마자 아시고서는 이제 그만두게 하려고 그러는데 제가 그냥 계속 부르니까 너무 신기하게 쳐다보더라고요. 이병희 아나운서► 근데 성악을 늦게 시작하셨네요. 김기훈► 네. 고3 때 시작했어요. 저는 사실 꿈이 없이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고2 막바지가 됐을 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내가 가장 잘하는 걸 찾아보자고 생각을 했더니 제가 노래를 잘하더라고요. 가요를 많이 부르긴 했지만 사실 성악도 할 줄 알았거든요. 배우진 않았는데 열린음악회 같은 거 보고 따라 할 수 있었어요. 그게 개인기였죠. 제가 따라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웃기려고 한 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성가대를 할 때 어떤 음대 교수님이 오셔서 강의를 해주셨던 날이 있었어요. 그때 노래를 시키셔서 처음에는 가요 톤으로 불렀다가 다시 시키셨을 땐 장난으로 성악처럼 불렀어요. 그랬더니 눈이 휘둥그레지시면서 너 그거 어떻게 할 줄 아냐고,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셔서 배운 적 없다고 그랬더니 성악해 볼 생각 없냐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고 그분이 나중에 따로 연락을 하셔서 무조건 성악시켜야 된다, 이거는 진짜 엄청난 재능이라고 설득하셨는데 저희 부모님은 제가 음악 하는 걸 원치 않으셨어요. 담판을 좀 벌였죠. 테스트를 받으러 가서 이 친구 노래 좀 하네요 라는 소리를 들으면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 정도 가지고는 안 하겠다고 했어요. 대신 이 친구는 정말 엄청난 재능이고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자질을 가졌다. 이 정도의 말이 나오면 하기로 했어요. 아버지가 그래서 그러면 알았다고, 만약에 그 소리가 안 나오면 너는 지금이라도 다시 공부를 하는 거다라고 말씀을 하셨고 저는 테스트를 받으러 갔죠. 그랬더니 후자의 반응이 나온 거예요. 김수현 기자► 그분이 극찬을 한 게 오늘날의 김기훈 바리톤을 탄생을 시킨 거네요. 칭찬을 그냥 얌전하게 하셨으면 못했겠네요. 김기훈► 저는 바리톤 하면 그냥 대명사처럼 김기훈이라는 사람이 딱 떠오르게 되는 그런 존재이고 싶어요. 보통 소프라노 하면 조수미 선생님 많이 생각하시잖아요. 그런 것처럼 바리톤 하면 김기훈이라는 이름 석자를 떠올리게끔 하고 싶어요. 김기훈 바리톤과 나눈 더 깊고 진지한 대화 전체는 인사이드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 2021년 8월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더 많은 대화를 듣고 싶다면? ►BBC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울린 한국인 최초 우승자, "사실 망한 줄 알았어요!"ㅣ바리톤 김기훈 [커튼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노래도 애드립도 최상의 케미ㅣ'마술피리' 테너 김건우, 바리톤 김기훈 [커튼콜] 진행 : 김수현 기자, 이병희 아나운서 출연 : 김기훈 바리톤 글·편집 : 하지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스팟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출처=유니버설뮤직) 오늘 인사이드는 박혜상 소프라노와 클럽발코니 이지영 편집장과 함께 합니다. 박혜상 소프라노는 조성진 피아니스트에 이어서 두 번째로 세계 굴지의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은 아티스트입니다. 아시아 여성 성악가로는 최초입니다. 또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3일에는 뉴욕 카네기홀 잰켈홀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가졌으며 국내에서도 리사이틀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하는 박혜상 소프라노와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이지영 편집장► 어머니가 꿈은 공짜라고, 꿈을 꾸고 살라는 얘기를 해주셨다고 들었어요. 노래를 시작한 이후 어떻게 살고 싶다는 꿈이 있으실까요? 박혜상► “그냥 꿈꾸는 것은 자유고 돈이 드는 게 아니니까 마음껏 꿈꾸면서 살아라. 하지만 미래는 준비하는 자에게만 온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 이걸 정말 귀에 닳도록 들으면서 살았거든요. 그래서 꿈꾸는 건 저한테 굉장히 쉬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냥 막연하게 잘 살고 싶다. 잘 해내고 싶다가 저의 꿈이고, 어떤 특별한 목표 같은 건 계속 안 생기더라고요. 목표가 생기면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 허탈함이 오는 걸 이미 경험했어요. 그것이 주는 의미가 마치 큰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사실은 큰 의미가 아니었고, 또 나는 오늘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많이 느꼈기 때문에 어떤 확고한 꿈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많은 꿈을 가지면서 살고 있다.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이지영 편집장► 꿈을 꾸고 목표를 이룬 다음에 허탈함을 느꼈을 때가 언제예요? 박혜상► 예전에 5년 계획을 잡아봤었어요. 그때가 이제 유학 나갔을 때인데, 줄리어드 입학도 적어보고 5년 마지막 차에는 뉴욕에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선다. 이렇게 적었어요. 그런 게 이제 저한테는 오르지 못할 나무여서 그냥 생각 없이 적은 거예요. 꿈꾸는 건 자유라고 하셨으니까 그냥 아무렇게나 적어본 거거든요. 실제로 줄리어드랑 메트에 들어갔을 때 그게 정말 대단하고 멋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쁨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어요. 그 순간에 머무르기보다는 당장 또 살아나가야 하고 또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더 크게 오더라고요. 오페랄리아 컴피티션에서도 너무 기뻤어요. 상을 받았을 때 호텔에 들어가서 5분 동안 소리 지르고 정말 기뻐했거든요. 근데 그 5분이 전부였어요. 그리고 그다음에 왜 나일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럼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나에게 주어진 책임감과 무게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으로 임해야 할까? 이런 것들이 계속 따라와서 그냥 열심히 매일매일 사는 게 정답이구나. 그렇게 마음이 자꾸만 바뀌더라고요. I am enough. 'I AM HERA' 김수현 기자► 그게 아까 말씀하신 내가 어떤 모습이 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라는 말하고도 통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 그 얘기도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혜상► 동양인 오페라 싱어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을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움이 많고, 경쟁이 심하기도 하지만 찾아주는 곳이 많이 없기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됐어요. 나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남들보다 다른 모습으로 노래를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요. 한국에서도 많은 교수님들이 그렇게 저를 가르쳐 주셨어요. 서양인과 동양인 소프라노가 있는데 동양인도 노래 잘하고 서양인도 노래 잘하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내가 외국 감독이면 나 같아도 서양인을 선택할 것이다. 그럼 우리는 뭘 해야 될까? 그냥 100배, 아니 1000배 더 잘하면 된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거든요. 그래서 유학생활을 할 때 굉장히 치열하게 싸워야 되는구나라는 마음이 들어서 부담이 많이 됐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고, 그게 아닌 것까지 할 수는 없는데… 그런 데에서 혼란이 왔어요. 근데 외국에 가서 보니까 자유로워 보이더라고요. 학생이 주머니에 손 딱 끼고 교수님한테 저는 이 의견에 대해서 동감하지 않는데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되게 충격적이었고요. 그래서 저렇게 하면 나도 통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저도 주머니에 손도 넣어보고 그들처럼 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문제는 그런 게 굉장히 저한테 불편하더라고요. 그들처럼 한다고 해서 제가 그들처럼 되는 게 아니잖아요. 메트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고 웃으면서 그 순간들을 계속 모면해 나갔지만 속으로는 많이 문드러졌었어요. 그때 영어 선생님이 계셨는데, 영어 선생님은 음악 코치분도 아니시고 극장에 관계된 분이 아니셔서 제가 속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혜상, 너는 왜 항상 과거형 아니면 조건법으로만 말을 하냐, 조금 더 현재형으로 말을 할 수는 없느냐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김수현 기자► 그러니까 과거에 뭘 했어야 하는데… 이런 말을 많이 하셨나 보네요. 박혜상► 네. 내가 이렇게 했으면 조금 더 잘했을 텐데,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말이요. 그런데 저는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이제 화이트보드에 I am ( ). 이렇게 쓰시더니 아까 네가 말한 문장 그대로를 현재형으로 한번 만들어 볼래?라고 하셨어요. 그때 10분 정도 굉장히 팽팽한 분위기가 저희를 감돌았고 심장박동도 엄청 빨라졌어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것 같은데 제가 자존심 때문에 차마 말을 못 했어요. 그러니까 충격적으로 선생님이 네가 도저히 말 못 하겠으면 내가 하겠다고 하시면서 enough(충분하다)라고 쓰시더라고요. I am enough. 그래서 제가 굉장히 많이 오열을 했었고,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이대로도 충분한데 너무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했었구나. 나는 한국인이고 내가 다른 모습의 누군가가 될 순 없구나. 그러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뿌리를 잃어버리지 말자. 그래서 만약에 내가 남들보다 더 노력을 해야 되거나 불이익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래야만 한다면, 그건 나의 운명이고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다. 그럼 100배 더 연습하지 뭐, 이렇게 쉽게 되더라고요. 그전에는 인종차별도 많이 느끼기도 했었고 이들은 쉽게 되는 게 왜 나는 안 될까에 대한 슬픔, 서러움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게 편해졌어요. 나를 증명하려고 음악을 시작한 게 아니었으니까 정말 처음으로 돌아가자, 열심히 하자. 그렇게요. 그 순간이 저한테는 인생의 큰 포인트였고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데뷔 앨범도 'I AM HERA'라는 제목으로 찾아오게 됐어요. 김수현 기자► 혜상 씨가 해외에서 활동할 때 쓰시는 영어 이름이죠. 이지영 편집장► 전에 무대에서 이 얘기를 하실 때 약간 눈물을 보이셨고 그때 운 사람들이 저를 비롯해서 굉장히 많았어요. 김수현 기자► 저도 조금 울었어요. 이지영 편집장► 이게 누군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한테 다 해당될 수 있는 얘기이기 때문에 다 그런 공감을 했었던 것 같아요. 박혜상► 맞아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박혜상► 저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계약을 하는 순간 한국 곡은 무조건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는 책임감이 있었어요. 좋은 작곡가들이 많이 있고, 계속 나오고 있고요. 한국 가곡이 주는 그 감동을 정말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많아요.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혜상 소프라노와 나눈 더 깊고 진지한 대화 전체는 인사이드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 2020년 9월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더 많은 대화를 듣고 싶다면? ►[커튼콜] DG 전속 계약, 조성진만 있는 줄 알았는데? | 박혜상 소프라노 진행 : 김수현 기자 출연 : 박혜상 소프라노, 클럽발코니 이지영 편집장 글·편집 : 하지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스팟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오늘 인사이드는 LG 문성주 선수와 함께 합니다. 문성주 선수는 2018 신인 드래프트에서 100명 중 97순위로 간신히 프로 입단에 성공했지만, 이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며 '10라운드 신화', '10라운드의 기적'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WBC 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3안타를 기록하며 기대감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하는 문성주 선수와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이성훈 기자► 참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선수를 발굴한 것에 대해서 반가워하는 상황인데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사가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야구를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시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문성주► 어렸을 때 TV에서 박찬호 선배님이나 김병현 선배님 나오시는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를 많이 해주셨거든요. 저희 아버지가 야구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그걸 보시다가 저한테 야구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셔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었습니다. 이성훈 기자► 그때 그 당시에 기사를 보니까 부산공고에서 고2 때 경북고로 전학을 가셨다고 하는데요. 그때 부산공고 감독님께서 친구인 경북고 감독님께 문성주 선수를 추천하면서 '떠나보내기 싫지만 선수 개인의 미래를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제자를 떠나보냈다'라고 한 내용의 기사가 당시 영남일보에 있더라고요. 혹시 어떤 스토리인가요? 문성주► 부산공고에 있다가 경북고로 전학 갈 때 잘하는 팀에 가서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때 경북고등학교 감독님이 제가 포철중학교 있을 때 라이벌 팀이었던 구미중학교 감독님이셨는데 저를 좀 잘 봐주신 덕분에 그렇게 인연이 돼서 전학하게 된 것 같아요. 이성훈 기자► 보니까 부산공고 1, 2학년 시절의 기사들도 되게 많았어요. 부산공고에 그대로 있었으면 팀의 간판, 부산공고의 간판처럼 계속 그렇게 할 수도 있었던 건데 본인은 조금 더 좋은 팀에서 발전하고 싶다. 이런 욕심 같은 게 있었던 거군요. 정우영 캐스터► 그러니까 팀 내에서도 좀 경쟁자가 있는 팀으로 가고 싶다는 그런 의미네요. 그런데 가자마자 경복고 주장을 맡았어요. 문성주► 맡다가 그만뒀습니다. 이성훈 기자► 3학년 올라가면서 감독님이 주장을 맡기셨다고 했던데, 그러다가 3학년 때 약간 야구가 잘 안 되면서 주장직을 내려놓은 상황이 된 건가요? 문성주► 그런 것도 있고, 전학 온 상태기도 했고... 제가 주장처럼 하는 성격도 안 되고 하다 보니까 좀 힘들어서요. 이성훈 기자► 고3 때 좀 힘들었던 거는 아무래도 진학과 프로행에 대한 부담감. 이런 부분이었겠죠? 문성주► 네 맞습니다. 정우영 캐스터► 그러면서 대학은 또 이제 강릉영동대로 진학을 했어요. 굉장히 어린 시절부터 울산에서 태어나서 부산에서 학교 다니다가 다시 대구로 갔다가 강릉까지 간 거잖아요. 이런 과정들이 힘들진 않았나요. 문성주► 힘들기도 했고 제가 잘 못했기 때문에 원래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는데 저희 아버지가 2년만 더 해보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제 제가 고등학교 때 지명 안 받고 대학교 간 게 저한테는 제 인생에 좋은 포인트가 됐었던 것 같습니다. 이성훈 기자► 2018년 드래프트에서 이제 뭐 잘 알려진 것처럼 10라운드 97번에 지명이 되는데 그때 혹시 어디서 누구랑 같이 보고 계셨어요? 문성주► 학교에서 학교 후배들이랑 보고 있었거든요. 8라운드까지는 같이 보다가 이제 8라운드까지 지명이 안 됐었으니까 위에 혼자 올라와서 방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성훈 기자► 약간 혼자 있고 싶은 느낌인가요. 본인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은 직접 보신 거네요. 정우영 캐스터► 그때 느낌은 어땠습니까? 문성주► 너무, 너무 기뻤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야구를 그만두지 않고 대학교를 가서 그렇게 고생했던 게 헛되지 않았다는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고 그때 만났던 지도자분들께도 너무 감사드리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정우영 캐스터► 혹시 야구선수로서 문성주 선수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뭘까요. 문성주► 지금 LG 하면 박용택 위원이신데... 궁극적인 목표는 1000안타가 제 목표입니다. 정우영 캐스터► 지금 살짝 바꾼 것 같은데, 'LG 하면 박용택 위원인데 LG 하면 문성주가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려고 했다가 지금 살짝 바꾼 느낌이거든요. 문성주►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성훈 기자► 이제 보내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 의혹은 제가 나중에 또 여쭤보겠습니다. 후반기에도 맹활약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너무 감사합니다. 문성주 선수와 나눈 더 깊고 진지한 대화 전체는 인사이드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 2022년 7월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더 많은 대화를 듣고 싶다면? ►문성주 '10라운더 신화' [야구에산다] 진행 : 정우영 캐스터, 이성훈 기자 출연 : 문성주 글·편집 : 하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