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프렌치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정말이지 위험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지난 화요일,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갑자기 계엄을 선포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한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하나인 한국에서 모든 정치 행위를 금지하고 언론을 정부의 통제 아래 두려고 한 것이다. 혼란스럽고 놀란 기색의 군은 격하게 반발하는 국회를 통제하느라 쩔쩔맸고, 국회는 즉시 계엄령 해제안을 의결했지만, 이 과정에서 이어진 믿기 어려운 장면에 이미 온 나라는 충격에 빠졌다.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 위기를 초래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계엄을 해제했다. 한국에서 극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동안 친구들, 그리고 언론계 동료들(내가 아는 가장 냉철한 사람들 포함)의 문자가 쇄도했다. 미국에서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야? 미국 대통령이나 기타 지도자가 비슷한 정치 비상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가? 짧게 답하자면 그렇지 않다. 하지만 길게 답하면,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대통령이나 주지사가 미국법의 모호성을 악용하려 든다면 말이다. 짧은 답변부터 살펴보자.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헌법적 메커니즘이 분명치 않다. 주지사는 비상시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지만 연방 헌법을 무효로 할 수는 없으며, 모든 종류의 군 통치는 위헌 심사를 받아야 한다. 미국 역사를 돌아보면, 계엄령이 선포된 적이 몇 번 있었다. 1812년 남북전쟁 당시 앤드루 잭슨 장군이 뉴올리언스에서 3개월간 계엄령을 선포했고,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하와이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역시 1862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국 내 모든 반란군과 반란군의 원조자 및 방조자, 자원입대를 방해하거나 민병대 징집에 저항하거나 미국의 권위에 반하는 반란군에 원조와 편의를 제공하는 불충한 행위를 한 모든 사람"에게 계엄령을 적용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헌법에는 한국 헌법에 있는 것과 같은 군사 통치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러나 길게 답변하자면 그다지 안심할 수 없다. 군 통치를 뒷받침하는 헌법적 메커니즘은 없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 지도자들이 때때로 헌법적 한계를 넘어 전쟁 시 권한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하와이 계엄령 선포는 방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로 억류했던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군대가 국내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으며, 내란법(Insurrection Act)이라 불리는 이 법은 조문이 너무 부실하게 작성됐기 때문에 나는 이 법을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법"이라고 부른다. 내란법의 역사는 미국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1792년에 제정된 내란법은 대통령이 질서를 유지하고 정부의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거리에 미군을 배치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런 권한이 적절하게 제한되기만 한다면, 대통령에게 이를 부여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조지 워싱턴의 두 번째 임기 때 일어난 위스키 반란에서부터 남북전쟁, 재건에 대한 남부의 저항, 1992년의 LA 폭동(내란법이 발동된 마지막 사례)에 이르기까지 정부 권위에 법을 어긴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 도전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내란법 자체는 형편없다. 첫 번째 조항은 문제가 없다. 입법부를 소집할 수 없을 때 주 의회 또는 주지사의 요청에 따라 대통령이 군대를 배치할 수 있다. 충분히 말이 되는 얘기다. 주지사가 통제력을 상실했다면, 연방군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음 두 항은 훨씬 문제가 많다. 내란법 252조는 "불법적인 방해, 결합, 집회 또는 미국의 권위에 의한 반란으로 인해 일반적인 사법 절차에 의해 어떤 주에서든 미국의 법률을 집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때마다" 대통령에게 국내에서 군대를 배치할 권한을 부여한다. 뒤이은 253조는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여 대통령에게 "반란, 국내 폭력 사태, 불법적인 결합 또는 음모"를 진압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 법의 특징은 대통령을 사실상 전적으로 믿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군대를 불러낼 수 있다. 의회의 감독도 없이, 거리에 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군을 거리로 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첫 임기 중에 반란법을 발동할 뻔했다. 2020년 여름, 트럼프는 조지 플로이드 씨가 경찰의 폭력으로 살해당한 뒤 폭발한 소요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연방군 투입을 고려했지만, 마크 에스퍼 당시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의 계획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자 결국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나 퇴임 이후 트럼프는 2020년에 군을 쓰지 않은 것을 공개적으로 후회하고 있으며, 트럼프 주변의 지지자, 참모들은 두 번째 임기에 국경을 통제하거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목적, 혹은 두 가지 사안 모두에 반란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연일 촉구하는 중이다. 국내법 집행을 위해 군대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하는, 위험할 정도로 모호하고 제약 없는 미국 법은 반란법뿐이 아니다. 대통령 외에 다른 정치 지도자들도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데, 여러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자신의 무력 사용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헌법 제1조 10항은 "실제로 침략당한 상황"이 아니면, 국가가 전쟁에 돌입하는 권한(교전권)을 부정하고 있다. 헌법 제1조 9항은 "반란 또는 침략의 경우 공공의 안전이 이를 필요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인신보호조항(수감된 사람이 석방을 청원할 수 있는 고대 법리)을 보호한다. 링컨은 명백한 반란인 남북전쟁 중 인신보호조항을 철회할 때 수정헌법 제1조 9항을 근거로 삼았다. 이 구절의 의미가 명확하고 '침략'의 정의가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나, 1950년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을 때처럼 주권 국가를 파괴하거나 점령하기 위한 폭력적 공격을 우리는 침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렉 애봇 텍사스 주지사를 비롯한 여러 공화당 우세 지역의 주지사들은 국경으로 밀려드는 이민자들의 행렬을 '침략'으로 간주한다. 텍사스주는 리오그란데강을 따라 장벽을 설치할 때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침략'의 개념을 실제로 그렇게 사용했다. 장벽 설치가 연방법에 위배되는데도 말이다. 올해 초 조지메이슨대 법학과의 일리야 소민 교수는 헌법에 명시된 '침략'의 원래 의미를 설명하는 글을 법률 전문매체 로페어(Lawfare)에 기고했다. 제임스 매디슨에 따르면 '침략'은 "전쟁 운영"을 의미하며 "침략으로부터의 보호는 곧 전쟁의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미주리대 법대 명예교수인 프랭크 보먼은 온라인 포럼 저스트 시큐리티(Just Security)에 쓴 글에서 1787년 제헌회의와 비준 논쟁을 통틀어 '침략'이 '권리 침해(invasion of rights)'에서와 같이 은유적으로 사용된 몇 가지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언제나 주 또는 국가의 영토에 대한 적대적인 무장 침입, 군사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침입을 의미한다고 썼다. 지난 7월 제5 연방 항소법원은 텍사스의 국경 장벽이 연방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지만, 이민자 급증이 헌법의 의미 안에서 '침략'에 해당하는지에 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대법관 자리가 공석이 되면 후보로 지명할 것으로 알려진 제임스 호 판사는 해당 판결을 지지하는 의견서에서 '침략'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법원의 일이 아니라고 썼다. 이는 선출된 정부 기관에서 결정해야 할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대통령이 침략이라고 하면 곧 침략이 된다. 마찬가지로 주지사가 침략이라고 하면 침략이다. 제임스 호 판사의 논리가 대법원에서 채택된다면 부도덕한 대통령과 주지사들은 전쟁, 평화, 적법 절차의 개념과 관련해 막대한 권한을 새로 부여받게 된다. 일자리를 찾아온 이민자와 망명 신청자는 적군으로 취급될 수 있다. 대통령은 수감자에게 연방법에 대한 접근권을 부여하지 않고 대규모 구금을 명령할 수도 있다. 트럼프 시대 이전, 미국 대통령의 명예와 품위가 우리 민주주의의 생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하는 미국인은 많지 않았다. 미국 헌법은 견제와 균형으로 가득 차 있지만, 모든 우발적 상황을 다루지 못하며 광범위한 법령은 대통령에게 잠재적 권한을 지나치게 많이 부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의원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 중요한 일을 했다. 선거개표법(Electoral Count Act)을 개정해 트럼프식 쿠데타 시도로부터 대통령 선거를 보호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가 입안한 법은 주로 선거를 보호하는 데만 신경을 썼지, 대통령 권한 자체를 개혁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트럼프는 군대를 소집하고 싶을 때 내란법을 사용해 군대를 소집할 수 있다. 대통령이 '침략'을 선언했을 때 법원이 반기를 들 수 있을까? 두 권한 모두 한국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권한처럼 광범위하지는 않지만, 미국 민주주의에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인들은 오랫동안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지 않을 것으로 믿어왔고, 대부분 대통령은 그런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르다. 법원과 의회가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동안 대통령을 저지해 주기를 바랄 수는 있겠지만, 미국 법은 분명 그가 정당하게 소유해야 할 권한보다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원문 : Can Martial Law Happen in America?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 제이콥 드레이어는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는 작가이자 편집자로 주로 중국 정치, 경제, 과학에 관해 글을 쓴다. 지난 9월, 공화당 소속 의원 11명이 국가정보국과 농무부 국토안보실에 서한을 보내 최근 부상하는 중국의 위협에 대해 경고했다. 중국이 대체육 생산에 있어 세계적 선도국이 되려고 한다며, 이는 "글로벌 식량 공급망을 지배하려는 구체적인 시도"로서 미국 및 동맹국의 식량 안보에 급박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이는 최근 워싱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각이다. 중국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심지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마저도 협소하고 때로는 왜곡된 국가 안보의 틀로 해석하는 일이 잦다. 중국 공산당은 전기자동차를 가져와서 휘발유를 엄청나게 먹어대는 미국의 자동차를 구식으로 만들어버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는 우리의 햄버거와 추수감사절 칠면조까지 노리고 있는 것일까? 이 서한에 담긴 내용 중에는 맞는 말도 있다. 중국은 실험실에서 만든 식물 기반의, 또 그외 다양한 대체육을 포함하는 소위 '미래 식량' 분야에 진심이다. 중국의 수요가 생겨나면서 정부는 2021년에 대체 단백질 산업 국산화를 국가 차원의 경제 개발 계획에 포함했다. 이는 식량 안보 구축을 위한 폭넓은 계획 가운데 핵심적인 일부가 되었고,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에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미국과의 지정학적 경쟁 관계는 중국에 분명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대체육 산업 육성 배경에는 미국과의 관계가 전쟁까지 갈 정도로 악화할 때를 대비해 식량 자립을 도모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고기를 생산하는 오랜 방식, 즉 온실가스를 내뿜는 가축을 떼로 키우기 위해 나무를 베고,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고기를 실어 나르는 과정은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를 해치고 있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적절한 가격에 대규모로 고기를 생산할 방법을 찾아낸다면, 이는 미래의 식량 표준이 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해답일지도 모른다. 잠재적으로 전 세계에 이익이 될 수 있는 분야에 중국이 투자하고자 한다면 미국은 이를 국가 안보를 향한 위협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 단백질 시장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보는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중국으로서는 미국과의 경쟁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엄청난 자국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나이 든 중국인들에게는 1970년대 후반 경제 개혁이 시작되기 전 경험한 대량 기근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시진핑 주석도 저녁으로 죽밖에 먹지 못한 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들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 바 있다. 시 주석은 식량 안보에 관해 "타협했다가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넘어서는 안 될 마지노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음식 수요가 다변화하는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식량 문제에 대한 중국 당국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중국에는 전 세계 인구의 20%가 살고 있지만 중국이 보유한 경작지는 전 세계 경작지의 10%도 되지 않는다. 수입육과 기타 농산품, 특히 (중국의 거대한 돼지고기 산업을 지탱하는) 미국산 콩에 대한 대외 의존은 중국 당국에 큰 부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벼르고 있고,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이 미국 육류에 대한 중국의 의존을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칭할 정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육류 및 기타 식품에 대한 중국의 수요 증가는 다른 국가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2021년 중국은 전 세계 육류 소비량의 약 27%를 차지했는데, 이는 미국의 2배에 달하는 수치이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경제 성장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더 풍부하고 다양한 식단을 즐기게 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과거에 비해 키도, 덩치도 더 커졌다. 하지만 우리는 축산업이 더 성장할 때 과연 지구가 버틸 수 있을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오늘날 축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20%를 차지하고 있고,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중국을 따라 고단백 식단으로 전환함에 따라 세계 육류 소비량은 앞으로 수십 년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식물성 육류생산업체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의 설립자 패트릭 브라운은 2020년에 "중국에서 누군가가 고기 한 조각을 먹을 때마다 아마존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고 말했는데, 이런 식의 서구 중심적 접근은 중국인들의 공분을 샀다. 중국인도 다른 모든 이들처럼 고단백 식단을 즐길 권리가 있고, 실제로 중국의 1인당 육류 섭취량은 미국보다 적다. 하지만 우리 지구는 추상적인 정의 개념에 관심이 없다. 무엇인가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중국의 목표는 육류의 성배(holy grail), 즉 실제 고기만큼 맛이 좋고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으면서도 온실가스 배출, 생산 비용, 토지 사용, 동물성 육류 공급망에 대한 리스크 없이 상업적으로 현실적인 대체재를 개발, 생산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아이디어가 지난 10년간 제조업체의 큰 기대를 받았고, 수십억 달러의 벤처캐피털 자금이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가 대량으로 재배육을 생산하는 것이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모두가 현실의 벽에 부딪힌 상태다. 국가 주도의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는 중국이 문제 해결에 있어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 국가가 나서서 어려운 문제 해결에 마음과 자원을 쏟을 때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우리는 익히 보지 않았던가! 중국은 여전히 서구에서 개발된 여러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보조금, 규제, 거대한 내수 시장을 활용해 빌려온 기술을 저렴한 제품으로 전환하는 특유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국은 2019년에 생산을 시작한 일론 머스크의 상하이 제조 공장을 승인한 후 테슬라를 면밀히 관찰했고, 자국의 자동차 제조 산업을 활용해 훨씬 저렴한 유사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이미 미국을 앞서고 있으며, 전 세계에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전기자동차를 점점 더 많이 공급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식량 안보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총력전에 돌입했다. 대체 단백질 외에도 수입 식량을 비축하고 유전자 변형 작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신장 내륙의 연어 양식장, 산업 단지 규모로 돼지를 키우고 도살하는 마천루 돼지 농장, 드론을 비롯한 자동화 장비로 작물을 심고 비료를 주고 수확하는 무인 농장 등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 중이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비동물 단백질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중국인들은 대표적인 비동물 단백질 식품인 두부를 오랫동안 먹어왔다. 중국인들이 육류를 완전히 포기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지만, 정부가 국영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설파하면, 사람들은 대개 그것을 따라가게 된다. 중국이 중국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단백질 식량을 개발해 내놓는다면 태양광 패널이나 전기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중국산 제품이 전 세계에 진출하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공화당 의원들이 보낸 서한은 미국 역시 이 중요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적시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중국의 대체육 산업 진출을 중국의 의도를 악마화하는 냉소적인 기회로 볼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상업적인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경쟁은 나쁜 것이 아니며, 새롭고 필요한 방향으로 혁신을 촉진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이 전 세계에 도움이 될 발전을 가로막고 서 있다면 미국 역시 문제의 일부가 될 뿐이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우리의 점심을 가로채거나, 오히려 그러지도 않고 스스로 밥상을 차려 먹는 길을 찾아낼 것이다. 원문 : China Is on a Quest for the Holy Grail of Meat. Let's Hope It Succeeds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 중국 전문가 크레이그 싱글턴은 워싱턴 D.C.에 있는 민주주의 수호재단의 선임연구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동안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역사적인 전환기를 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적인 압박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각종 제재와 관세를 전략적으로 섞어 쓰며 중국을 흔들어 놓았다. 트럼프 이전까지 중국의 수정주의적 야망을 수동적으로 수용해 오던 미국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이를 억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분명 전환점이었다. 뒤를 이은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짜놓은) 틀을 현명하게 유지하면서 때에 따라 필요하면 확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다. 잘하면 미국은 지금의 전략적 경쟁 상황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 중국은 현재 수많은 도전에 직면했다. 특히 좀처럼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제 탓에 트럼프가 또 한 번 공세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면 이를 버텨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만약 트럼프가 첫 번째 임기 때 보여준 거친 기조를 좀 더 엄격한 원칙을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집중해서 이어간다면, 앞으로 4년은 미국이 중국을 계속 수세로 몰아넣으면서 경쟁 구도에서도 영원한 우위를 점할 천금 같은 기회가 될 것이다. 중국은 내심 이번 미국 대선에서 해리스 후보가 당선돼 바이든 행정부의 신중한 대중 정책 기조를 이어가길 바랐을 거다. 물론 필요하면 중국을 압박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긴장 수위를 높이지 않으며 데탕트를 유지하는 대중 외교의 원칙을 유지했다. 그 덕분에 중국 시진핑 주석은 국내 문제를 처리하면서 기술, 무역, 양안 관계 등 중국의 야망을 이루는 데 핵심적인 분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단순히 중국과의 경쟁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만족할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 경쟁은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트럼프의 제로섬 접근 방식과 파격적인 전술, 여기에 대중국 강경파로 채워지는 2기 행정부 외교 라인까지, 상황은 시진핑이 절실히 바라는 예측 가능성과 여유, 여지가 없어지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자연히 시진핑은 여러 여건을 쉽게 통제하고 예측하지 못한 채 국가의 명운이 달린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거다. 지난 10년간 중국은 겉으로는 강력해 보였지만, 실은 점점 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중국을 망쳐놓은 건 시진핑 주석의 잇따른 실정과 반대 목소리를 향한 강경한 탄압, 전략적 실수였다. 지금 중국에는 막대한 부채와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 노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악재가 동시에 겹쳤다. 그런데도 시진핑 주석은 모든 경제적 의사결정의 중심에 공산당을 두는 이념적 영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기업의 신뢰는 떨어졌고, 자본 유출이 가속했으며, 외국 자본 투자도 급감했다. 한때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고도 성장 시대는 저물었다. 지금 중국 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떠올리게 한다. 경제가 동력을 상실해 오랫동안 디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에서 일본은 지금도 완전히 회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중국 젊은이들에게 "고통을 곱씹으라(吃苦)"고 말했다. 임박한 고난의 시기를 앞두고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메시지였다. 한편, 미국 경제는 탄력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첫 번째 임기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제력과 영향력을 거침없이 휘두를 태세를 갖췄다. 트럼프는 늘 중앙에서 계획한 제조업 중심의 중국식 경제 모델이 특히 미국 노동자들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주범이라며 강력히 비판해 왔다. 그는 중국산 수입품에 최대 6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약했다. 한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GDP를 2%나 깎을 수 있는 강력한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내내 발휘한 특유의 허풍과 엄포, 벼랑 끝 전술은 대만의 상황을 관리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의 목표는 현재 민주적인 제도 아래 통치되는 대만을 필요하다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중국에 복속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군사력을 동원하면 곧바로 중국산 제품에 최대 200% 관세를 매기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지난달 트럼프는 시진핑이 대만 문제로 감히 자신을 도발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시진핑 주석은 나를 존중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한다면 하는 미친놈이라는 걸 잘 아니까요." 트럼프의 귀환을 바라보는 중국의 반응에선 벌써 초조함이 감지된다. 바이든 행정부와 상대할 때 중국은 자신들을 포위하고 억제하려는 미국의 정책이 부당하다며, 종종 미국에 대적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트럼프가 선거에서 완승하자, 중국 지도부는 재빨리 꼬리를 내렸다. 지금 중국이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는 평화로운 공존과 협력의 새 시대를 기대한다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미국은 지금 상황에 만족하지 말고, 기세를 이어 미래 산업혁명의 근간이 될 첨단 기술과 동력을 둘러싼 경쟁에서 확실하게 우위를 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특히 반도체,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양자 컴퓨팅 등 핵심 기술에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 중국이 첨단 기술 경쟁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면 세계의 권력 구도가 중국에 유리하게 다시 배치될 것이고, 미국의 국가 안보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미 중국의 첨단 기술과 제조업은 미국 경제를 저해하고 혁신 동력을 떨어뜨릴 만큼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트럼프는 높은 관세, 수출 통제, 경제 제재를 부과해 중국을 견제할 계획을 내비쳤다. 트럼프는 또한, 중국의 기술 산업에 대한 미국 자본의 투자를 까다롭게 심사해 제약할 것이다. 중국이 중요한 첨단 기술을 확보하게 되면 군사력을 키울 수 있으므로, 중국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계획은 당적을 불문하고 초당적인 지지를 받는 사안이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은 여전히 국가 보조금과 제조업 중심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 모델을 바꾸지 못했다. 이 전략은 미국이 올리는 관세에 대단히 취약하다. 시진핑은 트럼프의 사업가로서의 본능적인 면을 공략해 몇몇 분야에서 미국이 원하는 걸 들어주면서 관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내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공세로 돌아설 거다. 트럼프의 정책 기조 자체를 바꾸기엔 선택적인 양보로는 부족하다. 물론 시 주석에게도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그 카드 대부분이 아주 위험하다는 데 있다. 먼저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내부적으로 경기를 진작하는 방법이 있다. 금리를 인하하고, 세금 감면 혜택을 늘리고, 수출업자에게 보조금을 더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단기적으로 반짝 효과를 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가뜩이나 GDP의 3배까지 늘어난 정부 부채를 더 늘려 경제의 근간을 약화한다. 미국이 관세를 올렸을 때 중국도 물러서지 않고 보복 관세를 매기면 무역 전쟁이 벌어진다. 그 경우 미국 소비자들도 물론 피해를 본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미 단기적으로 정치적인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략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뜻을 내비쳐 왔다. 게다가 여론조사를 봐도 다수의 미국인이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지지한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을 가로막거나 제한하는 식으로 경제적인 보복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가뜩이나 중국 경제를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첨단 기술 장비에 쓰이는 주요 광물들의 수출을 제약해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미국의 공급망 다변화, 수입 경로 다변화를 부추겨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중국이 더 손해를 보게 될 수 있다. 중국 위안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면 수출하는 제품 가격이 싸지므로, 관세로 인한 피해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자본 유출은 더 가속화하고, 다른 교역국과의 관계도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시 주석에게 남은 최후의 수단은 대만이나 남중국해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미국과 동맹국을 자극해 미군이 지역에 개입할 명분을 주는 것도 분명 중국에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현재 드러난 중국의 약점을 최대한 공략해 미국이 지속적인 우위를 확보하려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당면한 역사적인 기회를 정확히 포착해야 한다. 오늘날 국제 정세는 냉전 후기와 비슷한 면이 많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힘이 약해진 소련과 과감한 군비 경쟁을 벌였다. 가뜩이나 자본과 물자가 부족했던 소련은 어쩔 수 없이 귀한 자원을 군비 경쟁에 쓸 수밖에 없었고, 끝내 파산에 이르렀다. 미국이 중국의 정권 교체를 목표로 정책을 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중국이 어떻게 나오든 단순한 공존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중국 지도부와 인민들이 지금의 체제는 오래 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더 자유롭고 세계 질서에 덜 적대적인 길을 택할 때까지 민주주의 체제의 도덕적, 경제적 우위를 자신 있게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을 계속해서 압박하고 채근하는 것만으로는 지속적인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미국도 국내적으로 필요한 정비를 미뤄선 안 된다. 강한 군사력은 물론이고, 기업가 정신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역동적인 경제 체제도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바이든 대통령이 아시아와 유럽 전역에서 구축해 놓은 동맹국과의 연대를 십분 활용해야만 힘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원대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국 정책을 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퍼즐이 동맹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새로운 "미국 우선주의"는 동맹국끼리 부담을 공정하게 나눠서 지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걸 넘어 동맹국에 과도한 관세를 매기거나 미국에 돈을 더 주지 않으면 상호방위조약을 거둬들이겠다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는 건 역효과만 날 뿐이다. 미국과 동맹국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억지력이 약화하는 건 곧 중국에는 수세에 몰린 상황을 타개할 좋은 기회가 된다. 트럼프의 '닥공'은 심약한 이들의 눈에는 무모해 보인다. 국제적인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균형을 약점으로, 공존은 항복으로 간주한다. 그런 트럼프라도 과거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지금은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규율을 지켜야 할 때라는 정세 판단을 내릴 거다. 동맹국과 단단히 연대하는 한, 또 흔들림 없이 중국을 압박하는 기조를 견지하는 한 트럼프는 중국에 맞서, 나아가 중국을 제압하기에 딱 알맞을 만큼 "미친 사람"일지 모른다. 원문 : Trump's Way Could Win the Contest With China Once and for All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 닐 파텔은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편집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일론 머스크와 비벡 라마스와미를 정부효율부(DOGE, 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를 이끄는 공동 수장으로 임명했다. 정부효율부는 이름에 "부(Department)"가 붙었지만 정식 정부 부처는 아니고, 연방정부의 규모를 줄여 예산을 아끼는 임무를 맡은 비공식, 특별 조직이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백악관과 의회를 대상으로 비대한 조직을 줄여 예산을 아끼는 방법을 조언하게 된다. 지난 20일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가 의회의 승인을 받아 예산을 확보해 운영되던 각종 연방 기금과 프로그램 가운데 지출 승인 기한이 만료된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일에 가장 먼저 착수할 거라고 보도했다. 지출 승인 기한이 만료된 프로그램이라고 무조건 다 없어질 가능성은 매우 작다. 당장 국무부의 모든 예산과 보훈처 의료보험 예산만 해도 지출 승인 기한을 단기적으로 연장해 운영해 왔다. 이 프로그램을 전부 중단하거나 폐지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반면 예산 승인을 두고 도마 위에 오를 프로그램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대상이 있다. 바로 나사(NASA, 미국 항공우주국)다. 머스크가 우주 탐사를 위해 세운 민간 로켓기업 스페이스X(SpaceX)의 가장 큰 수입원은 지난 10년 넘는 기간 내내 나사였다. 스페이스X는 나사와 체결한 연구 용역과 각종 조달 계약 등을 통해 연구비와 개발비 수십억 달러를 지원받았다. 나사와 연방 정부의 자금 지원이 없었다면 스페이스X가 지금의 로켓 기술을 개발, 실험, 시험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사는 스페이스X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위태로운 시절부터 수억 달러를 쏟아부어 개발한 로켓이 폭발했을 때도 꾸준히 자금을 지원했다. 그 덕분에 일론 머스크는 우주 산업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선구자 반열에 올랐고, 지구 외의 다른 행성에 식민지를 개척하는 원대한 비전을 설파할 수 있었다. 머스크가 정부 효율을 높이기 위해 나사도 예외로 두지 않고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줄인다면 본인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우주 사업이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나사가 스페이스X에 지원해 준 많은 것들을 고려해 보면 더 그렇다. 머스크는 아마도 스페이스X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다른 기업들은 스페이스X가 지금껏 걸어온 비슷한 길을 걷지 못하게 진입장벽을 높이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21세기 들어 미국 정부는 나사에 우주 산업을 확장해 시장을 키우고 돈을 벌 방법을 찾아내라고 꾸준히 독려했다. 대통령이 누구든, 여당이 어디든 마찬가지였다. 그런 노력을 통해 태어난 결실이 바로 스페이스X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우주 산업 분야에 뛰어드는 스타트업들이 기대하는 목표 중 하나가 나사와의 계약이다. 계약을 맺으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의 속도나 여부를 넘어 아예 기업의 존폐가 나사와 계약에 달린 경우도 더러 있다. 지금 이 순간 업계의 리더는 누가 뭐래도 스페이스X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는 당연히 지금의 순위를 (적어도 순위표 상단은) 고정하고 싶어 할 것이다. 만약 나사가 각종 연구 용역이나 조달 사업을 통해 민간 기업을 지원하지 못하게 되거나 지원 규모를 줄여야 한다면 스페이스X의 경쟁자들과 잠재적인 도전자들이 확보할 기회와 자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 지출을 줄이는 확실한 방법의 하나가 부분적인 민영화다. 사업 부문이나 경영, 관리 책임 등 일부 절차를 민간 기업에 위탁하는 건데, 이때 계약을 따낼 수 있는 기업은 당연히 스페이스X처럼 기존에 계약 관계에 있는 기업들이다. 정부효율부의 원대한 계획이 다 이뤄진다면, 계획의 뼈대를 세우고 세부 사항까지 꼼꼼히 챙긴 설계자의 사업적 이익에 복무하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 원문 : Will Musk Be the Death of NASA?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 매튜 슈미츠는 콤팩트 매거진의 창립자이자 편집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팀을 꾸리는 가운데 월스트리트를 안심시키고자 하는 트럼프의 욕심과 관세 정책 강화로 세계화에 제동을 걸겠다는 공약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는 스스로 "관세맨(tariff man)"을 자처하고 있지만, 영향력 있는 트럼프 지지자 가운데는 그가 자신의 무역 정책을 잊어주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 일론 머스크도 최근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관세 인하 정책에 박수를 보냈다. 헤지펀드 매니저 스콧 베센트(역자: 칼럼이 나온 뒤 재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다), 상무부 장관 후보인 하워드 러트닉 등 트럼프 2기 경제팀을 이끌 인물들은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약에 지나치게 충실하다거나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충분히 지지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트럼프 본인도 선거 승리 이후 자신의 재무부 장관 지명자가 주식시장의 호조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 노동자와 미국 산업을 우선시하겠다는 오랜 경제관을 실행에 옮기려면 트럼프는 자신의 무역관을 공유하고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정부 요직에 앉혀야 할 것이다. 즉, 관세를 협상의 도구나 외교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수입을 늘리고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또한 당파적, 이념적 차이를 넘어 합의를 끌어내며 제도권 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는 미국 산업을 부흥시키고 세계 경제를 재편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지지해 온 베테랑 무역 협상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겨야 한다. (트럼프는 측근들에게 라이트하이저가 '무역 차르' 역할을 해주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트하이저는 트럼프 1기 정부에서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역임했으며, 중국산 제품에 새로운 관세를 제정하여 수십 년에 걸친 자유무역 기조를 뒤집은 바 있다. 이러한 전적도 트럼프가 두 번째 임기에 예고한 중국산 제품에 대한 60% 관세와 다른 나라 제품에 대한 최대 20%의 포괄적 관세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제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기는 하다. 이와 같은 관세 정책이 시행되면 미국 무역 정책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관세가 전략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협소하게 적용되기보다는 수입을 늘리고 국내 제조업을 촉진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적용될 것이다. 또한, 중국과의 경제적인 거리두기(economic decoupling)를 강제하는 데도 관세가 사용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곧 전 세계가 하나의 통합된 경제가 된다는 꿈이 폐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경제 정책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문제이므로, 민주적인 의사 결정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가정과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관세가 물가를 크게 올리고 국내총생산과 고용을 하락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9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등록된 유권자의 56%는 중국산 수입품에 60%의 관세와 기타 상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답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결정적인 질문은 전문가와 유권자 중 최종적으로 어느 쪽 손을 들어줄 것이냐가 될 것이다. 정책 입안자와 기업인들은 이미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 업체인 파이퍼 샌들러는 라이트하이저와의 대화를 인용해 트럼프 취임 직후 새로운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봄, 라이트하이저는 자유시장 지지 단체인 빌더버그 그룹 회의에 참석했는데, 폴리티코가 인용한 한 참석자의 말에 따르면 그의 관세 찬성 발언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에게 끔찍했다"고 한다. 올해 한 인터뷰에서 라이트하이저는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의 모델이 "어떤 것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며 비판했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997년 라이트하우저는 중국이 WTO에 가입하고 나면 "미국 내 어떤 제조업 일자리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반면 2000년에 노벨상 수상자 13명을 포함한 150여 명의 경제학자들은 중국의 WTO 가입이 중국의 자유를 증진하고 "중국과 교역국 모두의 생활 수준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서한에 서명하는 등 훨씬 더 밝은 전망을 내놓았다. 돌이켜보면 선견지명을 갖춘 건 라이트하이저인 것처럼 보인다. 중국의 산업이 부강해졌다고 해서 중국인들이 더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중국과 교역하는 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2016년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 데이비드 돈과 고든 핸슨은 1999~2011년 '차이나 쇼크'로 인해 미국 제조업 일자리 약 98만 5천 개가 사라졌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라이트하이저에게 무역 정책의 목표는 물가를 낮추거나 대외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국 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가정 경제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그가 "공동선 경제학(common good economics)"이라고 칭하는 접근방식의 일환이다. 자유무역 우파나 진보적 좌파의 시각과 다르다. 라이트하이저는 관세 및 산업 정책에 대한 지지와 더불어, 세금 인하와 불필요한 규제 철폐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라이트하이저는 공화당원이지만, 민주당 당원과도 관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2019년에는 무역대표부 직원들과 함께 존 루이스 민주당 의원을 2시간 동안 면담했는데, 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루이스 의원의 시민권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수년 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반대표를 던졌던 루이스 의원은 결국 트럼프 정부의 재협상안을 지지하게 되었다. 라이트하이저는 미국 노총 산별조합(AFL-CIO)의 리처드 트럼카, 트럭운송노조의 제임스 호파와 같은 전직 노동계 지도자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트럼프가 노동자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정책 때문만이 아니다. 전문가의 권위를 특정 계층이 다른 계층을 희생시키면서 소수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의심하는 노동 계급의 감성을 잘 활용하는 능력이 트럼프에게 분명히 있었다. 라이트하이저는 이런 노동 계급의 불신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해소한 경력이 있다. 그의 커리어는 역량이 때로는 전문성보다 중요하고 경험이 과학적인 모델보다 더 나은 지침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문: There's One Person Trump Absolutely Needs in His Administration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뉴스페퍼민트
* 마샤 게센은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미국인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에게 투표했는지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을 거다. 그런 분들에게 발린트 마자르는 꽤 일리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민주주의는 문제를 풀지는 못하면서 도덕적인 제약만 잔뜩 제공합니다. 변하는 건 없는데, 지켜야 하는 규정만 여기저기 자꾸 늘어나죠. 반면 포퓰리즘은 도덕적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문제를 푸는 데만 집중하는 약속의 집합입니다." 전제 정치, 독재를 연구하는 학자 마자르는 도널드 트럼프를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게 옳은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다. 마자르가 보기엔 트럼프 당선인이 유권자들에게 어필한 매력은 좀 더 원초적인 것이다. "트럼프는 당신에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심지어 고려할 필요조차 없는 세상'을 약속했어요."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독재자들은 이 원초적인 약속을 미끼 삼아 얻은 권력으로 온 나라를 자신의 독단적인 의지를 관철해 다스리는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과 빅토르 오르반은 남성이 사회의 주인이던 단순하고 질서 정연한 과거를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권력을 손에 쥔 뒤에는 사회적인 억제 기제를 잇달아 제거했고, 집단 안에서 불만이 쌓이는 걸 방조했다. 이어 사람들이 그 불만을 다양한 타인에게, 특히 자신을 대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집단을 향해 쏟아내도록 부추겼다. 마자르는 이를 "도덕적인 제약 없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부른다.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와 선거에서 패한 뒤 지금까지의 4년을 살펴보면, 푸틴과 오르반이 집권한 뒤 초기 행보와 닮은 부분이 많다. 마자르의 이론을 통해 이들의 행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소름 끼칠 만큼 정확히 예측해 볼 수 있다. 나는 트럼프가 재선에 출마할 거라고 확신한 지난 2021년 늦겨울, 마자르에게 전화를 걸어 이 패턴에 관해 자세히 물었다. 헝가리 사람인 마자르는 오르반의 독재 정치와 독재자 오르반의 특징을 폭넓게 연구해 왔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오르반도 앞서 2002년 선거에서 패배, 권좌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오르반 지지자들은 당시 선거가 부정 선거였다고 믿는다. 그는 8년이 지나서야 다시 총리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오르반은 헝가리 사람들을 대표하고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과 정당은 자신과 자신의 정당뿐이라며 세력을 다졌다. 이 주장은 당시 여당은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차지했고, 그런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헝가리 국민 자격이 없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2010년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직에 복귀한 오르반은 마자르가 "독재적 돌파구"라고 부른 일련의 조치를 단행한다. 우선 여러 법과 관행을 뜯어고쳐 자신이 다시는 권좌에서 쫓겨나지 않을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오르반의 정당이 의회에서 단독 과반을 차지한 덕분에 수월하게 법을 바꿀 수 있었다. 트럼프가 보인 지난 4년의 행보도 비슷하다. 트럼프는 바이든은 부정 선거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고 끊임없이 공격했으며, 미국인의 진정한 대변인은 오직 자기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선거에서 미국 유권자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을 뿐 아니라, 트럼프의 정당인 공화당에 상원과 하원 다수당 지위를 안겨줬다. 트럼프는 이제 얼마든지 자신이 바라는 대로 미국 정부를 재편할 수 있게 됐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사법부, 언론, 대학, 비영리단체, 특정 종교단체 등 시민으로서 서로 지켜야 할 책무를 규정하고 부과하려는 시민단체, 기관, 제도를 향해 어마어마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오르반이나 푸틴과 같은 독재자들이 거부하고 제거하려던 것이 바로 이러한 숙고의 과정과 절차다. 전제 정치에서는 사람들에게 그런 책무를 지울 수 있는 건 오직 독재자만 누릴 수 있는 권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오르반과 푸틴, 그리고 트럼프의 첫 임기 때 행보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돌아가자마자 자기가 보기에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해고하고, 아예 그런 일자리를 없애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각종 전문가, 규제 기관에서 일하는 여러 공무원이 두루 포함될 텐데, 예를 들어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이들을 심사하는 망명 심사관이 가장 먼저 없어질 보직, 기관 중 하나다. 정부 말고 또 다른 공격 대상은 대학이다. (마자르의 모교이기도 한) 헝가리 중앙유럽대학은 최고 수준의 연구 대학이자, 훌륭한 고등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오르반 총리는 대학교의 주요 시설, 기능을 헝가리 밖으로 쫓아냈다. 미국 공립대학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면, 플로리다주에서 일어난 일을 예고편으로 보면 된다. 론 드산티스 주지사는 주립대학교 시스템을 주정부가 하나부터 열까지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실상의 정부 기관으로 만들어버렸다. 마가(MAGA) 운동은 한술 더 떠 사립대학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는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를 문제 삼으며 의회에서 잇달아 청문회를 열어 대학교를 압박했다. 순전히 청문회 때문이라고 볼 순 없지만, 주요 대학교 총장 6명이 청문회 전후로 총장직을 내려놓거나 사실상 해고됐다. 이제 공격 목표는 사립대학이 받는 연방정부의 교육 보조금과 세제 혜택으로 옮겨갈 거다. 이런 재정적 압박은 규모가 크고 부유한 명문 대학이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을 닫는 학과나 부처가 생기면서 자연히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고, 규모가 작은 인문계 대학들은 파산해 아예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 시민사회단체도 주요 타깃이 될 것이다. 특히 이민자, 과거에 수감됐던 이들, 성소수자, 여성 및 취약계층을 보호하거나 지원하고 옹호하는 단체들이 우선 공격 대상이 된다. 그러고는 노동조합을 조준할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A.G. 설즈버거 발행인은 워싱턴포스트에 쓴 기명 칼럼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언론과의 전쟁을 어떻게 벌일지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거기에 내 예상을 보태자면, 오르반이 했듯, 또 트럼프 본인이 첫 임기 때 했던 방식을 답습하는 거다. 즉, 트럼프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언론에만 기삿거리를 제공하는 등의 특권을 주고, 반대로 자신에게 비판적인 논조를 고집하는 언론은 소유주의 다른 사업을 못살게 구는 식으로 배척할 것이다. 이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이미 트럼프가 재선되기도 전에 입증됐다. LA 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억만장자 소유주는 신문사가 대통령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관행에 따라 써놓은 칼럼의 발행을 막판에 가로막았다. (두 신문사를 소유한 패트릭 순숑과 제프 베조스는 트럼프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내린 결정이라는 비판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 물론 카멀라 해리스 캠프는 선거 내내 미국인에게 이 점을 경고하려고 애를 썼다. 아예 선거 막판에는 트럼프에게 파시스트 딱지를 붙이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마자르는 트럼프를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파시스트로 분류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폴란드의 총리를 지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는 임신 중절을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려 했다. 심지어 임신 중절 금지 정책을 고집하다간 선거에서 패해 총리직을 내려놓아야 할 거라는 점이 여론조사 결과에서 분명히 드러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다르다. 임신중절권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면 환호받을 만한 데 가면 열심히 그 얘기를 하다가도 반대로 견해가 다른 이들 앞에서 말할 때는 자신이 임신과 출산에 관한 권리를 지키는 데 앞장서 온 사람이라고 말을 바꾼다. 나는 마자르의 이런 분류에 동의할 수 없었다. 조지 오웰의 공식을 빌리자면, 정치인의 얼굴은 이데올로기란 가면에 맞춰 변하기 마련이다. 이 점이 분명히 나타나는 정치인이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한때 푸틴은 정치적 신념,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먼 냉소주의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만들어낸 (일관성은 없지만) 괴상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또한, 20세기 유럽에 등장했던 파시스트들이 일관된 이데올로기에 따라 움직였다는 주장은 사실 시간이 흐른 뒤에 꿰맞춰진 측면이 강하다. 당대의 언론과 학자들은 파시스트들의 신념이 주먹구구식이라고 표현했다.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란 책을 쓴 예일대학교의 철학자 제이슨 스탠리는 파시스트를 정치적인 신념보다 실제 정치 행위를 토대로 정의, 분류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제 정치 행위란 예를 들어 공포를 조장해 타자를 향한 증오를 부추기는 것, 우리가 저들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부각하는 행위 등이다. 이 모든 게 정확히 트럼프가 하는 일 아닌가? 나는 이 사실을 마자르에게 얘기하며 반론을 폈지만, 마자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트럼프 일가가 대통령직을 이용해 챙기려는 어마어마한 이윤과 혜택을 언급했다. 파시스트라면 그러지 않으리란 거다. "예를 들어 독일의 나치는 유대인에게서 압류한 재산을 자기 잇속을 챙기는 데 쓰지 않았어요. 모든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켰죠." (물론 나치 당원 중에는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잇속을 챙긴 이가 많았다. 그러나 개인의 부를 증식하는 건 나치가 편 국가사회주의 운동의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 반면 오르반은 엄청난 부자로 알려졌고, 푸틴도 현재 러시아 최고 부자가 됐다는 소문이 있다. 트럼프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려면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조스보다 더 많은 자본을 모아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푸틴은 자신의 지지자 가운데 부자들을 갈취했고, 정적들의 재산은 더 노골적으로 빼앗아 자기 배를 불렸다. *** 오르반은 중동에서 난민들이 유럽 대륙으로 밀려오기 시작한 2015년, 이민자와 외국인을 향한 두려움과 증오를 십분 활용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큰일이 있을 때마다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구실이 됐다. 트럼프도 첫 임기 때 비슷하게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트럼프에게 구실을 준 건 미국 남부 국경에 도착해 망명을 신청한 이들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비상사태를 해제했다. 그러나 사실 미국은 2001년 9월 14일 이후 사실 쭉 비상사태 아래 있다. 당시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사태는 이후 어떤 대통령도 해제하지 않았다. 바이든도, 오바마도 매년 이를 갱신했다. 엄밀히 따지면, 현재 미국에는 수십 가지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태다. 이 가운데는 몇십 년째 계속된 비상사태도 적지 않다. 오르반 총리는 비상사태를 빌미로 강력한 군 통수권을 손에 넣었다. 여기에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국내 문제에 동원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된다. 미국 대통령도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비슷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미국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권한은 훨씬 더 많다. 연방정부 예산을 비상사태를 해결하는 데 쓸 수 있는 권한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난민이 몰려든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나서 정부 예산을 국경 장벽을 건설하는 데 투입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또한, 전자 통신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과 (아마도 트럼프가 가장 관심 있어 할) 민간 기업을 압박할 수 있는 권한도 인정된다. 오르반은 헝가리 법에 있는 비슷한 조항에 따라 권력이 주어지자, 주요 민간 기업을 국가의 감독하에 두게 했다. 지금 헝가리에서는 오르반 총리가 곧 국가다. *** 마자르는 독재적 돌파구를 "법에 따른 통치(rule of law)에서 통치를 뒷받침하는 법(law of rule)으로의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푸틴이 2000년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내세운 구호는 "법의 독재"였다. 나는 당시 러시아 정부 인사들이 곳곳에 감시하고 있는 체첸의 한 투표소 천막에 저 문구가 붙어있던 모습을 기억한다. 푸틴은 당선된 뒤 실제로 법령과 포고령을 이용한 통치를 이어갔다. 지금 오르반의 통치 방식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통치 방식도,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트럼프가 공언한 통치 방식도 모두 똑같다. 당시 시기를 관찰하고 비판한 마자르의 글을 읽을 때마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오르반의 행위에 수반되는 일종의 분위기였다. 우리 모두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가 어땠는지 기억한다.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생긴 혼란, 존재론적 위협과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 사회를 지배했다. (그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중요한 건 독재자들이 하는 행위 자체보다도 목표한 바를 이루고자 어떻게 행동하느냐다. 아무런 사전 토론이나 예고도 없이, 때로는 자정이 지난 시각에, 혹은 휴일에 급습하듯 법을 날치기로 통과하거나 일련의 행정명령을 우르르 발표하는 식이다. 반대 의견은 철저히 묵살되고 조롱받을 뿐 통치를 뒷받침하는 법을 위시한 독재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사실 생각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마자르는 트럼프가 2020년 재선에 성공했다면, 수정헌법 22조를 폐기하려 했을 거라고 말한다. 수정헌법 22조는 대통령의 임기를 두 번으로 제한한 조항이다. 백악관에 돌아가는 트럼프는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수정헌법 22조를 바꿔 82세에 3선에 도전할 여지를 마련해 보려고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를 위한 입법 청사진은 대부분 프로젝트 2025에 상세히 정리돼 있다. 역사학자 릭 펄스타인은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에 쓴 연재 칼럼에서 프로젝트 2025에 담긴 내용들을 트럼프가 그대로 추진할 거라고 예단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프로젝트 2025는 워낙 복잡하고 방대한 문서다. 서로 다른 신념, 우선순위를 토대로 제시한 정책과 비전을 모아놓은 문서인 만큼 그 안에는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여기서 마자르의 독재 이론을 통해 이 문서를 분석해 보면, 프로젝트 2025는 이념적인 문서라기보다 그저 트럼프가 권력을 손에 넣길 바라는 사람들과 트럼프가 권력을 손에 넣으면 득을 볼 것 같은 사람들의 다양한 바람과 욕망을 뒤죽박죽 섞어놓은 것에 가깝다. 분명한 비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입법 청사진이라고 생각하면 이 문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그러나 프로젝트 2025는 여전히 청사진이긴 하다. 다만 현재 구성된 정부의 운영 방식 전반을, 제도 자체를 짓밟아 뭉개는 데 필요한 파괴의 청사진일 뿐이다. 원문 : This Is the Dark, Unspoken Promise of Trump's Return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경제학자 에밀리 오스터는 임신과 출산, 육아에 관한 책 “Expecting Better”와 “Cribsheet”의 저자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육아 컨설팅 회사 패런트 데이터의 창업자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이번 달,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공중 수돗물에서 불소를 빼도록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불소가 안전하지 못한 물질임을 시사하는 이 발언에 많은 공중보건 전문가가 즉시 반과학적인 거짓 정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불소에 대해 우려하는 모든 이를 음모론자로 몰아가는 건 위험하다. 수돗물에서 불소를 빼자는 주장이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빼서는 안 된다) 불소가 매우 복잡한 주제인 만큼 (전문가나 정부 당국이 종종 그렇듯) 그 복잡함을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가면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공중보건 당국은 시민들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주지만, 자세한 이유나, 왜 다른 데서는 정부 권고안과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잦다. 그러니 메시지를 받는 쪽에서는 다양한 사안에 대한 권고가 모두 엇비슷한 신뢰도와 시급성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중 하나가 과장되었다고 여길 때, 다른 모든 권고에 대한 신뢰도로 급락해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공중보건 분야에서 대중의 관심을 받는 세 가지 대표적인 주제, 즉 홍역 백신, 생우유, 불소 수돗물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모두 공중보건 당국의 권고와 케네디를 비롯한 회의론자 무리가 서로 매우 다른 주장을 펴는 주제다. 양쪽 메시지의 차이점은 근거의 강도와 복잡성이다. 홍역 백신은 수십 년에 걸쳐 안전성 데이터를 쌓아왔고 매일 같이 생명을 구하고 있다. 홍역 백신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일으킨다는 우려는 신뢰할 수 있는 대량의 데이터를 통해 반박된 바 있다. 홍역은 전염성이 매우 높아, 대규모 접종 없이는 영아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감염 위험에 노출되고 일부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생우유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생우유는 살균 우유보다 질병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 살균 과정을 통해 병원균을 죽이면 우유는 더욱 안전해진다. 오랜 기간에 걸쳐 수송이나 보관을 해야 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1900년대 초에는 생우유가 결핵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생 유제품이 살균 유제품에 비해 질병을 유발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발병 건수는 적다. 미국에서 생우유를 섭취하는 사람은 약 1,100만 명이지만, 2017년 추산에 따르면 생우유로 인한 질병 사례는 연평균 760건에 불과하다. 2023년과 2024년 초에는 한 농장에서 생산된 생우유가 살모넬라 식중독을 일으킨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비슷한 시기 멜론으로 인한 비슷한 식중독 발생에 비하면 건수가 적었다. 그러니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생우유가 건강에 좋다는 근거는 별로 없다. 다만 전반적인 그림을 보면 생우유에는 약간의 추가적인 위험성이 있으나, 다수, 특히 건강한 사람들이라면 생활 속에서 통상 감수하는 정도의 리스크에 불과하다. (생우유를 통해 조류독감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적이 있는데, 쥐의 경우에는 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만 인간이 생우유를 통해 조류독감에 걸린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끝으로 수돗물 불소화를 살펴보자. 불소는 여러 연구를 통해 아동의 치아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내 수돗물이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조금 부족하지만, 2014년 불소화를 종료한 이스라엘의 최근 데이터를 살펴보면 3~5세 아동의 치과 치료가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수도 불소화가 특히 임산부나 어린이에게 신경 발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널리 연구가 이루어졌다. 높은 농도의 불소는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는 물속의 불소 농도가 세계보건기구의 안전 기준보다 평균 4배까지 높은 지역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불소의 증가가 IQ 감소와 연관이 있다. 그러나 불소 농도가 미국과 비슷한 경우에 관한 연구에서는 이런 연관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불소 역시 양이 관건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수돗물 불소화에는 이득이 있고, 미국에서 사용하는 정도의 농도는 안전하다. 나는 보건 전문가들이 이런 주제로 질문을 받았을 때 최소한 위와 같은 정도로 자세히 설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백신은 좋고 생우유는 나쁘다는 식의 답변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구체적인 포인트를 놓치고 만다. 사람들이 직접 조사를 하다가 전문가가 이야기하는 생우유의 위험성이 과장되었다고 느끼면, 전문가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다. 그렇게 되면 전문가가 백신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잘 믿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정확한 정보를 더 이해하기 쉽게 제공하면 사람들이 생우유를 마시고 아이에게 백신을 맞힐 여지도 생겨난다.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맥락을 알려주면 사람들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2019년 캐나다에서 수돗물 불소화가 임산부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나오자 많은 이들이 경각심을 느꼈다. 이런 경우 사람들에게 그저 “불소는 안전하다”라고만 말해버리면, 듣는 사람은 여러 연구 결과가 서로 모순된다고 느끼고 그로 인해 신뢰는 낮아진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 결과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알려주면 사람들은 대부분의 연구가 불소의 안전성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문제가 된 캐나다 논문에 대해 부연 설명하자면, 결과가 언어성 지능과 동작성 지능은 물론 성별에 따라서도 결과가 다르게 나와 연구 전체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이 제기된 바 있다) 보건 당국의 책임 여부와 관계없이 당국은 지금까지, 특히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시민의 신뢰를 상당 부분 잃어버렸고 그 신뢰를 되찾는 일이 매우 어려워졌다. 그러는 사이 그 틈을 노리고 들어온 이들이 있었다. 이에 대한 당국의 대응은 그저 같은 말을 더 크게 외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는 소용이 없다. 보다 섬세하게 접근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보건 당국은 대중을 좀 더 신뢰해야 한다. 때로 근거가 불확실하거나 복잡하기도 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야 한다는 뜻이다. 합리적인 사람들이 주어진 사안에 있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또한, 당국은 메시지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일종의 타협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보건 전문가들이 생우유에 대해 보다 균형 잡힌 메시지를 전한다면 생우유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연히 어느 정도의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대신 홍역 백신을 맞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완벽한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보건 당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원문 : There’s a Better Way to Talk About Fluoride, Vaccines and Raw Milk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 오렌 카스는 보수 성향 경제 싱크탱크 아메리칸 컴파스의 수석경제학자로, 뉴욕타임스 오피니언에 글을 기고한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 당선인은 누구나 급작스러운 역할 변화를 겪는다. 도널드 트럼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모든 걸 바쳐야 했던 선거 캠페인은 선거 날로 끝이다. 동시에 후원자와 활동가, 로비스트들이 트럼프의 관심을 끌고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영향을 끼치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이 곧바로 시작된다. 선거 기간 유권자들이 관심을 보인 이슈는 감세 혹은 암호화폐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당선인 가까이에서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관여하려는 이들이 하는 말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이들은 일자리를 과도하게 보호하는 규정을 없애고, 사회적 안전망을 좀 느슨하게 풀어도 미국인은 괘념치 않을 거라고 말한다. 여기서 길을 잘못 들면 대통령의 임기는 시작부터 삐그덕거릴 수 있다. 새 대통령이 내게 투표한 유권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고, 자기 생각과 선호가 곧 국민이 바라는 바와 같을 거라고 예단하는 순간이 문제의 시작이다. 특히 (미국처럼) 양당제하에서 치르는 선거라면, 대통령에 당선된 건 중도 성향의 부동층 유권자의 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보통 대통령 당선인은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후원자 또는 정치인 출신이다. 당선인의 선호가 보통 유권자의 선호와 다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렇게 임기 첫 2년이 지나면, 정치 자본은 소진되고 선거에서 중요하게 다루겠다고 약속했던 의제들은 다 흐지부지되고 잊힌 지 오래다. 그런 상태에서 치르는 중간 선거는 보통 집권 여당에 참패를 안긴다. 두 번째 임기를 준비하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우선 본인이 바라는 대로, 마러라고 자택에 모여드는 강성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고 통치하는 길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격히 추락할 것이고, 금세 이루고 싶은 변화를 위해 정책을 추진할 동력도 함께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 길의 끝은 공동의 목표를 잃고 제도도 기능하지 못하는 나라다. 성공적인 대통령을 위한 공식이 될 수 없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구호와도 거리가 멀다. 다른 길도 있다. 트럼프는 구태와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리더다. 평범한 미국인들과 직접 소통하는 데 능하고, "말만 요란한" 컨설턴트를 경멸해 온 인물이다. 그는 또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연임하지 않고 두 번째 임기를 맞은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를 돌이켜 보자. 세제 개혁을 두고 씨름하다 취임 1년 만에 지지율은 36%까지 곤두박질쳤고, 대안 없이 건강보험 개혁법을 폐지하려고 애쓰다 귀한 시간을 허비한 끝에 2년 만에 찾아온 중간선거에서 하원 의석 40석 이상을 잃고 민주당에 다수당 자리를 내줬다. 선거 이튿날 아침, 사실상 승리 연설에서 트럼프는 "모든 미국인"에게 "나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 당신의 미래를 위해 싸우겠다"며, "미국의 황금기를 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 원대한 꿈을 이루려면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에게 투표한 유권자뿐 아니라, 앞으로 자신을 지지해 줄 수도 있는 사람들까지 고려해 미국인이 공유하는 가치를 존중하고, 미국인이 걱정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민을 예로 들어보자. 국경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치안을 유지하겠다는 공약은 트럼프가 오랫동안 해온 약속으로, 이제는 민주당도 국경 문제에서 점점 더 트럼프의 주장을 따라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진정 미국 유권자를 위해 봉사하는 정부가 되고자 한다면, 국경 지역의 단속을 강화해 불법 이민자의 유입을 막고, 망명도 제한해 바이든 행정부 아래서 무법지대가 된 국경에 질서를 다시 심어야 할 것이다. 최근 유입된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고, 무엇보다 기업들이 외국인을 고용한 경우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정당한 비자나 자격을 취득했는지 확인해 보고하는 전자 검증 시스템을 의무화해야 한다. 이는 미국 노동자와 법을 지키는 미국 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으로, 불법 이민자로 인해 미국인들이 받은 피해를 직접 시정하는 조치라서 유권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최근 내가 속한 싱크탱크 아메리칸 컴파스가 유거브와 함께 미국인 2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의 78%가 노동자의 취업 비자를 확인하는 전자 검증 시스템을 지지했고, 민주당 지지자 중에도 68%가 이 제도를 지지했다. 법을 지키는 기업들도 그동안 몰래 불법 이민자를 고용해 비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 온 경쟁자를 몰아낼 수 있으므로, 이 제도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방금 살펴본 사례가 바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반대 주장을 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거다. 특히 미국에서 일하고 돈을 버는 데 필요한 자격과 서류가 없는 이민자를 몰래 고용해 인건비를 줄인 덕분에 막대한 부를 쌓은, 주로 건설업과 숙박 및 요식업계, 일부 농업계 기업과 부자들, 그들이 고용한 로비스트들은 트럼프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다. 이들은 아마 국경 문제와 이민자를 향한 적대적인 수사를 앞세워 유권자들의 환심을 얻는 연극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며, 지금 필요한 건 오히려 임시 취업비자 발급을 확대하는 일이라고 트럼프의 귀에 대고 속삭일 거다. 이미 발 빠르게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토마스 매시(켄터키, 하원) 의원은 정부의 모든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자유 지상주의자로서 노동자의 비자를 확인하는 전자 검증 시스템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농무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이다. 이런 주장을 따르면, 트럼프는 마러라고의 골프 클럽을 찾는 부유한 후원자들의 찬사를 받을 거다. 대신 유권자들 사이에선 점점 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불만과 환멸이 쌓일 것이다. 미국의 산업 기반을 재건하는 일도 트럼프가 유세 중에 중요하게 여기는 의제로 내세웠지만, 이따금 트럼프 본인 스스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들리는 말을 내뱉는 의제이기도 하다. 관세를 포함한 정책들은 분명 국내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동시에 특히 중요한 기술과 산업 분야를 육성하는 일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초당적인 지지를 끌어내 통과시킨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은 핵심적인 첨단 기술인 반도체 제조 역량을 미국으로 들여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22년 법이 통과된 뒤 세계 5대 반도체 제조 기업이 모두 미국에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특정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공화당의 수구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이 문제에 관해서도 트럼프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앞서 조 로건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그 반도체법 최악이잖아요"라고 말했다. 반도체지원법을 폐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 동조하며 한 발언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참모진 가운데 적잖은 사람이 트럼프에게 정부가 나서서 특정 산업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산업 정책에서 손을 떼고 그저 세금을 충분히 깎아주면 시장은 알아서 잘 돌아갈 거라고 얘기할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지원법은 지지 정당을 불문하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오죽하면 자신의 발언이 실언이었음을 깨달은 존슨 의장이 재빨리 반도체지원법 폐지 공약을 철회해야 했다. 아메리칸 컴파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컴퓨터에 들어가는 칩을 만들거나 중요한 핵심 광물을 채굴하는 일에 국가가 나서서 자금을 지원하는 정책"에 74%가 찬성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정책이 이미 막대한 투자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그 효과를 입증했다는 점이다. 대만의 반도체 기업인 TSMC는 지난달 애리조나주에 지은 반도체 공장의 생산 수율이 대만 본토에 있는 공장보다 높다고 발표했다. 이러자 자유시장을 극단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은 산업 정책을 종합적으로 비난하는 데서 긍정적인 효과가 산업 정책 덕분은 아니라는 식으로 주장을 바꿔야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뒤 공장에 대한 실질 투자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전자 산업의 경우 2022년 이후 투자 규모가 4배 가까이 급증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는 2017년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조치가 투자를 촉진했다는 주장을 입증하려고 애를 썼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다른 연구에서도 그나마 미미한 효과가 발견됐을 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조치는 법인세를 낮췄다. 기업 CEO들은 이번에도 당연히 법인세를 낮춰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미국의 황금기는 기업의 주가가 얼마나 높은지, 그래서 CEO들이 보너스로 얼마를 챙겨가는지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실질 투자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통의 미국인들에게 변화를 체감하게 해주고 싶다면, 그의 정책은 당연히 후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와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민주당 정부가 추진한 정책이라고 해도 실질 투자를 촉진하는 데 효과가 있다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야 한다. 백악관은 모든 분야에서 이와 비슷한 갈림길 앞에 설 것이다.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는 과제는 트럼프가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가 일을 똑바로 잘하도록 하는 것과 정부 자체를 없애버리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아메리칸 컴파스가 올해 유거브와 진행한 또 다른 여론조사를 보면, 둘 사이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대체로 연방정부를 향한 시선이 아주 곱지 않다. 이는 중도 성향의 유권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유권자들에게 정부가 어땠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매번 대다수 응답자가 거의 같은 답을 내놓는다. 정부가 "빈곤층이나 장애인, 생활 보조가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 그리고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의료 보험을 제공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면,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미국인이 과도한 규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생각하는 "자유 시장"이 공화당의 일부 정치인이 선호하는 자유방임 모델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화당원 가운데만 해도 "노동자가 공정한 임금과 안전한 노동 조건을 보장받는 자유 시장"이 "자신을 향한 처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장을 떠날 수 있는 자유"보다 더 낫다고 답한 사람이 65%나 됐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의 경영진을 대거 정부로 불러와 기업의 고객 서비스를 개선하고, 민간 부문의 혁신을 촉진하는 투자를 유치한다면 그건 당연히 칭찬받을 만한 일이 될 거다. 그러나 만약 대통령이 기업인들의 요구에 휘둘려 정부 기관을 폐쇄하고 규제를 잇달아 철폐해 미국인들이 상당 부분 의지해 온 복지 제도까지 다 없애 미국 사회가 아인 랜드의 소설처럼 극도의 자유방임 상태로 바뀌어 버린다면, 당장 공화당 내의 눈치 빠른 정치인들부터 트럼프를 손절하기 시작할 거다. 암호화폐 투기를 더 쉽게 만드느냐, 아니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넉넉하고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 경로를 만드는 데 집중할 것이냐?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나 비벡 라마스와미 같은 사람이 점심을 먹다 뜬금없이 내놓을 터무니없는 아이디어에 사로잡혀 자원을 허투루 쓸 것이냐, 아니면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진지하게 제안해 온 것처럼 노동 계급이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리는 걸 지원하는 정책을 확충하는 데 신경을 쓸 것이냐? 대통령 곁에는 항상 자기 개인의 영달이나 본인에게만 중요한 이념적 의제에 몰두하는 참모들이 있기 마련이다. 많은 대통령이 참모들이 만들어 낸 거품 밖에 사는 진짜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껏 대부분 정치인이 걸어온 길과 분명 다른 길을 걸으며 자신의 정치 이력을 만들어 온 사람이다.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지금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 이력을 훌륭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원문 : Trump Is About to Face the Choice That Dooms Many Presidencies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 데이비드 브룩스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우리 정치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난 40여 년간, 우리는 정보의 시대를 살았다. 교육 수준이 높은 계층은 자신들이 후기 산업 경제의 중추이므로, 우리 같은 계층의 필요에 부합하는 사회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었고, 실제로 그에 따라 결정이 내려졌다. 교육 정책도 우리가 밟은 그 과정대로 사람들을 밀어 넣었다. 소위 '미래의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4년제 대학 교육을 받은 이들로 점점 더 제한되는 와중에 직업 훈련은 약화했다. 정치권은 고등 교육을 받은 이들이 이끄는 지식 경제에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 제조업 관련 일자리는 인건비가 싼 국가로 이전한 자유무역 정책을 수용했다. 제조업 부문의 고용이 줄어드는 동안 금융과 컨설팅 업계는 덩치를 불렸다. 지리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간주됐다. 자본과 고급 기술을 갖춘 노동력이 오스틴과 샌프란시스코, 워싱턴으로 모여들기만 한다면, 여기에 끼지 못한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민 정책으로 인해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은 저임금 노동의 덕을 봤지만, 기술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새로운 경쟁을 마주하게 됐다. 경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녹색 기술로 중점을 옮기면서 화석연료에 생계를 의존하는 제조업, 운수업 종사자들은 불리한 위치로 내몰렸다. 이번에 우리 귓가에 울려 퍼진 큰 소리는 '리스펙트', 즉 존중이 재분배되는 소리였다. 학벌의 사다리를 올라간 이들은 찬사를 받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았다. 남자아이들에게는 상황이 더욱 혹독했다. 고등학교에 가면 성적 상위 10% 학생 가운데 3분의 2가 여학생인 반면 하위 10% 가운데 3분의 2는 남학생이다. 교육 과정이 남성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짜여있지 않고, 이는 평생 개인에게, 나아가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 전체가 거대한 분리 시스템을 장착한 기계처럼 변했다. 우리 사회는 학업에 재능이 있는 이들을 나머지 모든 사람들 위로 올린다. 얼마 가지 않아 학위 소지 여부가 미국 사회에서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됐다. 고등학교만 나온 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보다 평균 수명이 9년 짧고,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으로 죽을 확률은 6배나 더 높다. 혼인율은 낮은데 이혼율이나 혼외 출산을 할 확률은 더 높다. 고졸자는 대졸자보다 비만일 확률도 높다.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고졸자 중 24%는 친한 친구가 없다고 한다. 대졸자보다 공공장소 이용률도 떨어지고, 지역사회 모임이나 스포츠 리그에 속해 있을 가능성도 작다. 사회 정의를 외칠 언어도 갖지 못한 이들에게 공적인 미덕이라 할 만한 신념을 지니는 것은 사치다. 이런 차이가 믿음과 신뢰의 상실로, 배신감으로 이어졌다. 대선을 9일 앞두고 나는 테네시주의 한 기독교 민족주의 교회를 찾았다. 예배는 진정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씁쓸함, 공격성, 배신감도 팽배한 분위기였다. 목사가 우리를 파괴하려는 성경 속 유다와 같은 배신자들에 관한 설교를 이어가는 동안 "어두운 세상"이라는 표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들은 지속적인 위협과 극단적인 불신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자기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들, 그리고 수많은 미국인은 카멀라 해리스를 비롯한 로스쿨 졸업생들이 제시하는 "기쁨과 희망의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민주당에 주어진 임무는 단 하나, 불평등과 싸우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 이토록 극심한 불평등이 보란 듯이 존재하는데, 많은 민주당 당원이 이를 보지 못했다. 다수의 좌파가 인종 불평등, 젠더 불평등, LGBTQ 불평등에 집중했다. 수십억 달러의 기부금을 받는 대학을 나와 대기업을 위한 환경 그린워싱 및 다양성 세미나를 듣는 삶을 살았다면 계급 불평등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 괴물 같은 나르시시스트이지만, 사회라는 거울을 들여보면서도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교육받은 계층도 뭔가 잘못됐다. 좌파가 정체성 행위 예술로 방향을 트는 사이 도널드 트럼프는 두 발 벗고 계급 전쟁에 뛰어들었다. 퀸즈 출신 트럼프의 맨해튼 엘리트에 대한 분노는 미국 전역의 시골 사람들이 느끼는 계급적 적개심과 마법처럼 맞아떨어졌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이 사람들은 당신을 배신했을 뿐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는 것이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한때 민주당이 만들고자 했던 것, 바로 인종을 불문하고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고루, 두루 받는 다수 연합을 만들어냈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흑인 및 히스패닉 노동자들 사이에서 급등했다. 뉴저지, 브롱크스, 시카고, 댈러스, 휴스턴과 같은 지역에서 보인 득표율 상승세는 놀라울 정도다. NBC 출구조사에 따르면 유색인종 유권자의 1/3이 트럼프를 찍었다. 트럼프는 또 무려 20년 만에 공화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전체 득표에서 50%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당이 완전히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바이든 정부는 지원금과 부양책으로 노동자 계층에 구애의 신호를 보냈지만 이른바 '존중의 위기'는 경제 정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국인들 안에 내재하는 인종 차별과 성 차별, 권위주의 때문에 트럼프가 이겼다고 주장하는 이도 좌파 쪽에서 반드시 나올 것이다. 그런 사람은 패배를 즐기고, 계속해서 지고만 싶어 하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나머지는 겸허한 마음으로 이번 선거 결과를 바라봐야 한다. 미국 유권자들이 늘 현명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는 분별력이 있고 늘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준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나 자신의 전과를 살펴봐야겠다는 것이다. 나는 민주당 후보가 중도 노선으로 나올 때가 좋은 온건파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리스가 꽤 효과적으로 중도 노선을 밟았음에도 실패했다는 점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민주당은 나 같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버니 샌더스 스타일의 격변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민주당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대졸자의 정당, 부유한 교외 지역의 정당, 힙스터 도심 지역의 정당이 정말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는 프롤레타리아의 반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친기업 정당을 가로채고 장악해서 그것을 이루어 냈다. 우리 중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트럼프는 해냈으니, 오랫동안 그를 얕잡아보고 깔보던 우리는 모두 겸허함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급류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트럼프는 파시즘이 아니라 혼돈의 씨를 뿌리는 자다. 앞으로 몇 년간 무질서의 전염병이 미국과 전 세계를 강타하여 모든 것을 뒤흔들 것이다. 양극화가 싫은가? 전 세계적인 무질서를 경험해 보면 양극화의 끝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혼란 속에는 새로운 사회, 그리고, 트럼프의 정치적, 경제적, 심리적 공격에 맞설 새로운 대응의 기회가 있다. 우리의 영혼이 시험대에 오른 시대다. 우리는 조만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진면모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원문: Voters to Elites: Do You See Me Now?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뉴스페퍼민트
* 다니엘 매카시는 "모던 에이지: 보수주의 리뷰"의 편집자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다시 입성한다. 이 사실이 트럼프에 대한 비평가들의 생각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적어도 자신을 자세히 돌아봐야 한다. 이번 선거는 트럼프가 승리한 만큼 비평가들이 완패한 선거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선거는 단순히 양대 정당이 내세운 후보 둘 사이의 대결이 아니었다. 유권자들이 받아 든 진짜 선택지는 트럼프 혹은 (트럼프를 공격하는) 나머지 모두였다. 즉, 대선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와 그가 속한 민주당뿐 아니라 리즈 체니 전 의원,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과 백악관 비서실장까지 지낸 존 켈리 장군을 포함한 공화당 인사들도 모두 트럼프를 비난했다. 정보기관 사람들도 성명을 냈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까지 연판장을 돌렸다. 이렇게 보면 이번 대통령 선거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창조적 파괴"의 좋은 예처럼 보였다. 트럼프의 반대편에 선 이들은 분명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를 완전히 파괴할 거란 생각에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의 지지자들이 보기에 트럼프에게 투표하는 것은 실패한 기득권자에게서 권력을 빼앗고 미국이란 나라와 제도를 새로운 기준에 따라 다시 꾸려 미국인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트럼프의 승리는 35년 전 냉전이 종식된 이래 미국 사회를 만든 리더와 제도 전반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신임 투표가 통과된 것과 같다. 트럼프가 상대한 이들의 이름만 봐도 상징하는 바가 크다.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부시 대통령 가문의 젭 부시 주지사를 꺾은 트럼프는 본선에서 클린턴을 만나 승리했다. 이번에도 넓게 보면 리즈 체니와 그의 아버지인 딕 체니 전 부통령의 연합을 물리쳤다. 트럼프는 워싱턴의 기존 관행을 근본적으로 거스르는 인물이다. 그는 마치 교회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무신론자 같다. 구체적인 행동보다도 권위가 의존하는 기본적인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그는 관행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부딪친다. 트럼프는 미국의 정치적인 정통성이 부패했다고 공격했다. 공공 부문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 부문까지 포함한 제도권 정치 지도자들은 전부 이 부패한 정통성에 충성을 다해왔기에 문제다. 이런 주장은 어쩌면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해리스는 바로 이렇게 문제투성이에 인기도 없는 제도권 엘리트들과 열심히 동맹을 맺고 연대하며 제 살을 깎아 먹었다. 틈만 나면 트럼프를 비판하는 이들이 오랫동안 질질 끌다가 끝내 실패한 전쟁을 이끈 장군들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면 미국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정보기관 수장들에게도 비슷한 질문들을 할 수 있다. 트럼프는 누가 보기에도 정책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바라는 건 오히려 정확히 그 반대의 모습과 역할일지 모른다. 바로 워싱턴을 주름잡는 엘리트들이 내세운 소위 전문 지식을 부숴 버릴 반(反) 전문가 말이다. 트럼프의 승리는 그를 막으려던 모든 종류의 권위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이자 응징이다.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 기존의 기업들이 소비자의 수요를 얼마나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지 여실히 드러내면 경제학에서 말하는 창조적 파괴가 일어난다. 시장 경쟁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경쟁도 이따금 비슷한 격변을 낳는다. 만약 지금 트럼프로 인한 혼란이 특별히 극적으로 보인다면, 이는 미국 정치가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경쟁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는 방증이다. 트럼프가 정치에 등장하기 전 제도권 정치의 권력은 소수의 정치적 카르텔이 나눠 갖고 있었다. 이들은 마치 애덤 스미스가 경고한 시장의 카르텔과 같아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대신 제대로 된 경쟁 상품이나 아이디어가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담합하고 외부 집단을 배제한다. 이런 카르텔이 만들어내는 비싸고 질 떨어지는 상품은 대중의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어쩌면 트럼프와 트럼프가 가져온 마가 운동도 대중의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할지 모른다. 기존의 관행을 깨는 첫 번째 기업은 보통 오래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소임은 시장에 기회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서 끝나고, 진짜 성공해서 이윤을 챙기는 기업은 보통 더 뒤에 뛰어든 기업이다. 트럼프의 부상으로 오바마 시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교착상태가 끝났다. 민주당 대통령 오바마는 외교 정책과 의료보험 개혁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1990년대 양당의 전문가들이 내린 처방과 조금씩 다른 것들을 점진적으로 바꾸려 했다. 의회의 공화당도 오바마가 내세우는 변화에 무조건 반대만 외치면서 부시든 밋 롬니든 다시 백악관에 보내 같은 의제에 대해 크게 다를 것 없는 공화당의 처방을 내리려는 생각만 했다. 트럼프의 선거 캠프에는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털시 개바드 등 기득권과 기존의 메시지에 반대하는 정치인, 일론 머스크와 같은 기업인, 조 로건과 같은 팟캐스터들이 참여했다. 트럼프는 이들 중 누구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거다. 그러나 "대안 정치"를 주창하는 수많은 사람이 기꺼이 트럼프와 함께하며 주류에 반기를 든 데는 이유가 있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트럼프가 거둔 잇단 성공은 이른바 주류 기득권이 이미 대중적 정당성을 상당 부분 잃었음을 입증한다. 트럼프의 성공에는 선거에서 잇달아 패배했지만, 그를 지지하는 연합과 세력이 무너지거나 약화하지 않은 것도 포함된다. 연방 법원, 주 법원이 트럼프를 기소했지만,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이를 트럼프를 향한 기득권의 정치 공세로 보고 무시해 버렸다. 트럼프의 적들은 트럼프의 지지자와 마찬가지로 그가 아주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킬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도, 반대자도 모두 그가 대통령으로서 무얼 하고 싶어 하고, 어떤 걸 이룩하려 하는지에 관해 다분히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전쟁이라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 때문에 임기 제한에 구애받지 않고, 대중으로부터 아주 많은 권한을 부여받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당혹스러울 만큼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곤 했다. 루스벨트든 트럼프든 대통령 집무실에 누가 앉아 있든 상관없이 헌법은 결코 약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연합이 자신이 파괴하고 대체한 것보다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자신이 끌어내린 부시, 클린턴, 체니 왕조와 마찬가지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또 한 차례 창조적 파괴의 새로운 동력이 등장할 수도 있다. 이번엔 미국 좌파 진영에서 그런 움직임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이를 방지하려면, 트럼프는 기존의 제도를 파괴하는 데 능했던 만큼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것도 잘해야 한다. 사실 첫 번째 임기 때 트럼프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선거에서 받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이에 새로운 걸 보여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때 "미국인 대학살" 같은 메시지를 내지 말고 무언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통해 새 대통령은 기득권 정치와 분명 다르다는 걸 보여줄 수 있었다. 그는 2020년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서도 기어이 선거에서 이겼다. 심지어 1월 6일 의사당 테러에 연루됐거나 책임을 져야 할 상황만 없었다면 더 강력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과거 가장 많은 변화를 끌어낸 대통령들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때로 게임의 흐름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규칙을 따르는 거다. 원문: This Is Why Trump Won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