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트릭 힐리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부편집자다. 지난 수요일 밤, 시트콤 "Curb Your Enthusiasm(열정을 자중하라)"의 제작자이자 코미디언인 래리 데이비드가 갑자기 이메일을 보내왔다. 글을 한 편 썼는데, 뉴욕타임스 오피니언에 기고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열어 읽은 글의 첫 줄은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1939년 3월, 우리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남자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 총통 관저에서 나와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는 초대장이었다.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라. 나는 생각했다. '좋다, 확실히 시작부터 남다른걸?' 뉴욕타임스 오피니언은 외부 기고를 받을 때 풍자적인 글을 까다롭게 가려 받는 편이다. 우리의 사명은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삼되 철저히 사실을 기반으로 한 주장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오늘날의 세상에 관해 논평하면서 히틀러를 언급하고 비유한 글이라면 훨씬 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문자 그대로 나치가 주제가 아닌 이상 나치에 대한 언급 자체를 가급적 피하려 한다. 어떤 주장을 펴기 위해 어떤 사람을 대량 학살을 저지른 독재자에 빗대거나 비교하는 건 끔찍한 역사를 들먹이는 것만으로 너무 큰 상처가 될 수 있고, 정확하지도 않으면서 많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역효과만 나기 십상이다. 나는 래리가 왜 이 글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미국 정치에 관해 이야기할 때 특히 중도나 진보 진영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와 편견 없이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한다고 말한다. 래리도 다른 이들처럼 빌 마허가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과 식사한 이야기를 공개한 걸 들었을 거다. 래리는 앞서 빌 마허를 향한 존경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 빌 마허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맥스 채널 프로그램에서 트럼프와의 만남을 돌이켜봤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서 자신을 공격하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품위 있고 절제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래리는 트럼프를 히틀러에 비유하고 있지 않다. 이 글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러면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에 관한 생각을 담고 있다. 전통적인 에세이 형식의 글이 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다. 특히 오늘날 미국인은 쉼 없이 쏟아지는 뉴스에 압도당하고 있고, 다소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더라도 풍자 형식을 빌린 날카로운 통찰과 도발이 먹힐 때가 있다. 래리 데이비드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도발적인 주장을 편다. 한 번의 저녁 식사나 만남에서는 누구든 인간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다. 그 한 번의 만남에서 받은 인상은 그 사람의 됨됨이나 그 사람이 무슨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판단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문: Opinion Today: Larry David Imagines a Private Dinner With Hitler * 코미디언 래리 데이비드는 시트콤 "Curb Your Enthusiasm(열정을 자중하라)"의 제작자이자, 시트콤 "Seinfeld(사인필드)"의 공동 제작자다. 1939년 3월, 우리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남자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 총통 관저에서 나와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는 초대장이었다.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라. 나는 처음부터 라디오에서 그를 꾸준히 비판해 왔고, 그가 하려는 모든 일은 결국 독재자가 되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지인이 저녁 식사에 가지 말라고 했다. "자네도 알잖아. 히틀러는 괴물이라고." 하지만 나는 끝내 증오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가서 무얼 하든 그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상대방과 이야기는 해볼 수 있지 않은가. 아무리 그가 다른 나라를 침략해 총칼을 앞세워 정복했고, 끔찍한 반인도주의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말이다. 2주 뒤 나는 총통 관저 현관문 앞 계단에 서 있었다. 안내를 받고 들어선 관저의 으리으리한 거실에는 총통의 열렬한 지지자들 몇몇이 먼저 와 있었다. 히믈레르, 괴링, 레니 리펜슈탈, 에드워드 8세였던 윈저 공작 등이었다. 우리는 벽에 걸린 아름다운 예술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대인의 집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복도 전체에 울려 퍼지는 커다란 발소리에 대화는 뚝 끊겼다. 히틀러가 방에 들어서자, 모두가 자세를 바로 했다. 스와스티카(나치 문양) 완장을 찬 황갈색 정장을 입고 등장한 그는 나를 격정적으로 맞아주었다. 솔직히 평소에 부모님이 나를 맞아줄 때보다 더 따뜻한 환대였고, 내 등을 자연스럽게 두드리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나는 그의 황갈색 정장을 보고는 "그 옷을 입고 외출하시면 평범해 보여서 총통답지 않다고들 하겠는걸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 말에 그는 한참을 웃었다. 나는 문득 히틀러가 웃는 걸 태어나서 처음 봤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그가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보였다. 나는 내가 지금껏 보고 들은,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드러난 히틀러를 만날 준비만 잔뜩 해왔는데, 알고 보니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히틀러는 완전히 딴판인 사람이었다. 좀 이상할지 몰라도 지금 내가 보는 사적인 히틀러의 모습이 진짜 이 사람 같았다. 뭐가 진짜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는 배가 고프다며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했고, 나더러 자기 옆에 와 앉으라고 손짓했다. 괴링이 곧바로 호밀빵 한 조각을 집어 들자, 히틀러는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는 이렇게 속삭였다. "잘 보세요. 아마 당신이 두어 조각 입에 넣기도 전에 쟤는 밥을 다 먹어 치울 거예요." 이번에는 그 말에 내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자 괴링은 입안에 음식을 잔뜩 넣고 우걱우걱 씹으면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길래 웃느냐고 물었다. 히틀러가 대신 답했다. "왜 자네도 아는 얘기 있잖아. 내 개가 국회에서 설사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해줬어." 괴링은 이내 반응했다. 알다마다! 그는 특히 히틀러가 개를 차에 태우기 전에 총으로 쏴 죽인 부분을 가장 좋아했다. 히틀러는 이 부분에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도 다 죽이는데, 개새끼 하나 죽이는 거야 뭐 일도 아니지!" 여기서 모두가 박장대소했고, 밤새 정말 원 없이 웃고 떠들었다. 그렇다고 저녁 내내 히틀러 혼자서 떠든 건 아니었다. 그는 궁금한 게 많아 보였고, 나에 관해서도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나는 얼마 전에 여자친구와 꽤 힘들게 헤어졌다고 말했다. 여자친구는 내가 자기 없이 어디를 가면 항상 어디 가서 무얼 했는지, 누구랑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가끔은 뭘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여자친구한테 해명하는 게 너무 싫었다. 히틀러는 자기도 그 마음 잘 안다며 맞장구를 쳤다. "아니, 뭐 내가 비서야? 도대체 왜 그러는데?" 그는 내게 다시는 그 여자랑 연락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만약 다시 만난다면 그 귀찮고 끔찍한 일을 다시 반복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독재자라면 연인과 헤어지는 것도 쉬운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놀랄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감정이 남아 있어요." 흠... 아직 감정이 남아 있다니,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우리도 결국 다 같은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상이 히틀러의 이런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히틀러를 향한 사람들의 인식과 평판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흘렀고, 저녁 식사가 끝났다. 히틀러는 나를 문 앞까지 배웅했다. 그러고는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제가 더는 당신이 생각하던 괴물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곧바로 "총통 각하, 오늘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물론 수많은 문제에서 생각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꼭 서로 증오해야 하는 건 아닐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에게 나치식 거수경례를 하고 밤거리로 걸어 나왔다. 원문: Larry David: My Dinner With Adolf (c) 2025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뉴스페퍼민트
* 새뮤얼 해먼드는 미국 혁신 재단의 수석 경제학자다. 미국이 다른 여러 나라와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방법이 있기는 하다. 관세는 답이 아니다. 지금 미국이 해야 할 일은 수출 역량을 높이는 데 전념하는 것이다. 수출 역량 강화란 곧 기술 산업 자산에 투자하고, 허가받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이고, 세계 시장을 겨냥한 국내 생산의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금융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반칙의 결과가 아니다. 현재 무역적자는 전 세계가 저축의 수단으로 달러를 선호하는 데서 비롯된 막대한 자본 흑자의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본 흑자를 생산적인 국내 투자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무역적자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1971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관세가 인하되었음에도 미국은 지속적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해 왔다.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로서 국채, 부동산, 기술주 등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를 창출해 낸다. 세계 기축통화 보유국으로서 미국의 지위를 "과도한 특권"이라고 부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러한 "특권"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이 있다. 외국의 달러 보유자들은 새로 등장한 생산적인 기업에 투자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유동적인 종이 자산으로 달러를 보유하는 것을 선호한다. 한편 미국 제조기업들은 수십 년간 만성적인 투자 부족에 시달려왔고, 이에 따라 수출 산업은 시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2023년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J.D. 밴스 부통령이 고전적인 "자원의 저주(화석 연료 자원이 풍부한 국가는 부유해지지 못하는 경향)"와 달러의 기축 통화 지위 간 잠재적 유사성을 지적한 이유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이제 오로지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도 미국의 산업 기반을 재건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미국이 군용 드론을 중국 공급망에 의존한다면 중국을 견제할 수 없다. 그러나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는 단순히 관세 장벽을 세워 현존하는 공장을 보호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새로운 산업을 구축하고, 이들이 경쟁 기업과 공격적으로 경쟁하며 생산 규모를 늘리고 제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국가는 값싼 수입품을 대체할 비싼 대체품을 만들어 부유해질 수 없다. 부유해지는 길은 세계가 사고 싶어 하는 물건을 만드는 것뿐이다. 동아시아의 성공 사례를 떠올려보자. 한국과 대만, 중국은 자국 기업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노출함으로써 산업 역량을 강화했다. "수출 규율(export discipline)"로 알려진 정책을 통해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증명할 수 있을 때만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 수출 시장에서 실패한 기업은 지원이 끊겨 고사했다. 성공한 기업은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한때는 미국도 이런 방식을 썼다. 전후 제조업 경제의 토대는 재건금융공사나 미 해사위원회 같은 공공기관이 마련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연방 정부는 알루미늄과 항공기, 고무, 선박을 생산하는 공장을 포함, 수천 개의 산업 시설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지원했다. 기업은 보조금을 받는 대신, 새로운 분야에서도 빠르게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전시에 투자를 받은 분야 가운데 상당수는 전후 수출 산업으로 성장했다. 일례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제조업은 제너럴모터스(GM) 디젤 엔진 사업부에 대한 전시 투자가 탱크와 상륙정, 선박용 경량 엔진의 혁신으로 이어지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 미국은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연방 정부의 대규모 투자 덕에 더욱 복잡하고 수익성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아폴로 프로그램은 우주 비행사를 달로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 연구 및 개발의 촉매제가 되어 이후 상업적으로도 큰 성과를 냈다. 인공위성과 반도체, 인터넷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실리콘밸리가 지금과 같은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은 국방부가 뿌린 씨앗 덕분이다. 소련과의 경쟁을 의식한 미국 제조업계와 혁신가들이 별을 쏘아 올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와 정반대로 연방 과학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대폭 삭감하는 동시에, 기존 산업을 젖은 담요로 감싸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관세는 국내 제조업체가 사용하는 핵심 부품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의 산업 역량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보다는 쇠퇴를 부추길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에너지부의 대출사업부가 대표적인 사례다. 에너지부는 최근 몇 년간 전기자동차 배터리부터 원자력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첨단 제조업에 수십억 달러를 조용히 지원했다. 4천억 달러 이상의 대출 능력을 갖춘 이 부서는 오늘날의 산업은행 같은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이런 부서를 계속해서 지원해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감세와 관세가 아니라 종합적인 산업 전략이다. 무역 부문에 대한 산업 금융 공사의 투자, 수출 신용 보증의 확대, 공급업체를 한데 모으고 투입 비용을 낮추기 위한 경제특구 조성 등이 전략에 들어가야 한다. 미국 제조업체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면적인 관세 인상이 아니라 수출업체에 대한 관세 면제다. 그리고 자동화 역시 반드시 전략에 포함되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제조업이 다시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나쁜 일이 아니다. 미국이 수출 중심의 강국이 되려면 인구 고령화와 인건비 상승이라는 조건에 대응하기 위한 인공지능과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 이는 수출 인프라의 효율성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경쟁국들이 24시간 돌아갈 수 있는 로봇 항구를 건설하는 동안에도 항만 노조는 트럼프 대통령의 축복 속에서 항만 자동화를 오히려 막고 있다. 미국이 세계와 경쟁하려면 노동 공정성과 생산성의 글로벌 표준을 결합할 방안을 찾아내야만 한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항구에 정박하는 중국산 선박에 막대한 수수료를 부과하는 한편, 7년 이내에 미국 수출의 15%를 미국 국적 선원이 승선한 미국 국적 선박으로 운송하는 것을 의무화할 예정인데 이에 따라 컨테이너당 수백 달러의 운송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정책의 배경은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상선의 절반 이상은 중국이 건조하고 있고, 미국 조선업은 위축되어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역효과가 우려된다. 조선소의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이미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미국 수출업체들의 물류비용 부담만 커질 뿐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펴든, 수출 잠재력을 가진 혁신 기업에 지원해야지 정치적인 연줄만 가진 실패한 기업을 감싸안아서는 안 된다. 이대로 간다면 미국은 고립을 힘으로 착각하며, 소비에 세금을 매겨 무역적자를 메꾸려 하는 수출 부진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원문: Tariffs Won’t Fix Our Trade Imbalance. This Will. (c) 2025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뉴스페퍼민트
* 카타지나 라자리라덱, 피터 싱어는 철학과 교수다. 이들은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탐구하고 생각해 보는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2024년 3월 19일, 우리는 노벨상을 받은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에게 우리 팟캐스트 "잘 사는 인생(Lives Well Lived)"에 출연해 달라는 초대장을 이메일로 보냈다. 5월쯤 출연하는 게 어떨지 제안을 담았다. 그는 곧바로 팟캐스트 출연이 어려울 것 같다는 답을 보냈다. 그런데 이유가 뜻밖이었다. 답장에는 지금 스위스로 가고 있는데, 90세 나이에도 자신은 건강한 편이지만, 약 일주일 뒤인 27일 의사 조력자살을 계획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카네만 교수는 며칠 뒤 자신의 친구들이 받아볼 편지도 미리 보여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저는 제가 10대 시절부터 나이 들어 죽기 전 마지막 몇 년간 겪는 고통과 굴욕은 불필요하다고 믿어왔습니다. 이제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활동적이고, (매일 보는 뉴스를 제외하면) 인생의 많은 것들을 여전히 즐기고 있으며, 그렇게 행복한 사람으로 생을 마감할 겁니다. 하지만 제 신장은 이제 거의 기능을 멈췄고, 정신이 흐릿하거나 오락가락할 때도 자꾸 늘어납니다. 저는 90살입니다. 이제 갈 때가 됐어요. 그가 사랑하는 사람 중에는 그에게 더는 생명을 연장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점이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려보지 않겠냐고 설득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다들 마지못해라도 그의 선택을 지지하게 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우리는 카네만 교수를 굳이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에게 잘 살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우리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수락했다. 다만 조력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로 한 결정에 관해선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인터뷰는 3월 23일에 진행했다. 카네만 교수는 쾌활하고 생기가 넘쳤으며, 정신도 맑아 보였다. 인터뷰한 다음 날엔 우리에게 대화가 정말 즐거웠다고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그게 그에게서 받은 마지막 메시지였다. 3월 27일, 카네만 교수는 계획한 대로 죽음을 맞았다. 처음 카네만 교수의 죽음이 알려졌을 때는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에 관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 그런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된 만큼 우리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한 그의 선택이 제기하는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좀 더 편안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됐다. 많은 나라와 미국 내 10개 주에서는 말기 질환을 겪는 환자들에 한해 자발적인 조력 죽음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불치병으로 인해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에도 조력 죽음을 허용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는 살 만큼 살았다고 판단해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하는 건 논란의 여지가 훨씬 크다. 카네만 교수가 스위스에 가서 죽음을 맞은 것도 그 때문이다. 스위스는 죽고 싶다는 의지가 확고한 성인이라면 스위스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도 합법적으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는 나라기 때문이다. 카네만 교수는 90세의 나이에 자신의 삶을 마쳤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프린스턴대학교와 인연을 맺은 카네만은 실로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1970년대 그는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해 인간의 의사결정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2011년 펴낸 책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도 카네만은 여전히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할 수 있었고, 대중에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법을 깨우쳐주는 데도 탁월했다. 그의 뛰어난 지적 능력 외에도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가족과 즐겁게 지내는 데 부족함이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했다. 왜 이 모든 것이 그를 더 살게 하는 이유가 되지 못했을까? 우리는 그와 진행한 인터뷰 말미에 그게 한 말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 객관적인 의미, 즉 어떤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사람들은 제 연구를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추켜세우곤 합니다. 사실 저는 그저 제가 하는 일이 좋아서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뿐인데 말이죠. 우리는 자고로 인생에는 객관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일이 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저는 제가 인생을 잘 살았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느낌이죠. 저는 제가 해온 일들에 합리적으로 만족해요. 글쎄요, 만약 객관적인 관점 같은 게 있더라도 그건 저랑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우주와 그 우주의 복잡성을 떠올리면 제가 하루 동안 하는 일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요. 우리는 우주의 크기와 복잡성이 인류를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신이 당신의 삶은 마무리할 때가 됐다는 마음을 먹고 그 마음을 오랫동안 굳게 간직한다면 무엇이 당신에게 좋은지 결정하는 건 결국 당신 본인이 제일 잘할 수 있다. 특히나 삶의 질이 나아지는 걸 기대하기 어려운 나이에 다다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이렇게 확장하는 일은 여전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근거가 많다. 예를 들어 삶에 지쳤다고 말하는 노인들 가운데는 심리 상담을 받으면 자기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들이 있다. 환자가 말기 질환으로 치료를 받는 상황이 아니므로, 이럴 땐 의사가 개입하지 않는 편이 낫다. 만약 말기 질환이나 불치병을 앓지 않는데도 노인들이 조력 죽음을 맞는 상황이 흔해지고 당연한 게 되면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믿는 노인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이 모든 반론에는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다. 즉, 조력 죽음을 신청하는 사람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먼저 심리 상담을 받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조력 죽음에 보통 의사가 참여하는 이유도 간단하다. 많은 나라에선 환자의 상태가 의학적으로 심각해야만 조력 죽음을 허용하는데,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의사밖에 없고, 약을 처방하거나 사망진단서에 서명할 수 있는 것도 의사뿐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만약 심각한 질병이 없거나 의학적 상태가 나쁘지 않아도 조력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의사 말고 이 일을 맡는 직종이 개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생을 마감하려 하는 노인들이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통 주된 이유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조력 죽음이 합법인 오레곤주에서는 주 정부가 매년 법에 따라 진행된 조력 죽음 사례들을 검토한다. 지난해 말기 질환 환자들 가운데 의사 조력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42%는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느꼈다. 하지만 자율성을 잃어간다(89%)거나 삶을 즐겁게 만드는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88%),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잃어가는 것(64%)에 비하면 덜 중요했다. 삶이 그나마 괜찮다고 여길 만한 이유도 잘 없어서 간신히 버티는 상태에 처한 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짐이 된다고 느끼는 건 전혀 무리가 아니다. 카네만 교수는 정신이 또렷할 때 삶을 마감하지 않는다면 남은 삶을 통제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고통과 굴욕"을 안고 살아가다 죽게 될 거라고 걱정했다. 그의 죽음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우리가 끝까지 잘 살려면 언제 우리 삶이 마무리되는지에 관해 어떤 수치심이나 금기사항도 없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토론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들의 결정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들이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원문: There’s a Lesson to Learn From Daniel Kahneman’s Death (c) 2025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뉴스페퍼민트
* 매튜 월서는 가톨릭 문예지 더 램프(The Lamp)의 편집자이자,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필진이다. 1711년 발간된 글에서 조너선 스위프트는 "런던 커피하우스의 메아리를 왕국의 목소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통탄했다. 스위프트에 따르면 '커피하우스'로 불리던 비공식적 살롱의 이용객은 영국 중앙은행이나 동인도회사, 또는 "기타 회사"의 주식으로 부를 쌓은 이들이었다. 트럼프 정부 관세 정책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가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주주와 국가를 혼동하는 곤란한 경향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 옛날 스위프트가 지적한 병폐와 다를 바가 없다. 오늘날 미국 사회의 가장 뚜렷한 경계는 소위 공화당을 지지하는 '붉은 주'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푸른 주', 도시와 시골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경계는 바로 주식을 소유한 이와 소유하지 않은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주식을 가진 이들에게 경제적 안정이란 투자 포트폴리오를 통해 측정하는 것이다. 반면 전체 미국인의 40%에 해당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주거 비용이나 달걀 가격 같은 낡은 지표로 경제적 안정을 파악한다. 이런 구분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인 것이기도 하다. 많은 미국인이 주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단 10%가 주식의 93%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주식을 갖고 있는 엘리트 계층은 S&P 500 지수에 좋은 것이 곧 미국에 좋은 거라고 확신한다. 설상가상 은퇴 자금이나 연금 계획의 일환으로 주식을 보유한 많은 미국인이 그렇게 믿고 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백만장자들의 이해관계와 깔끔하게 일치하지 않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도 말이다. 그 결과 주주의 즉각적인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은 무모하거나 급진적인 정책, 경제 문맹 정책으로 치부된다.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포획이다. 공동선이라는 개념을 아예 내다 버릴 수는 없으니, 단어는 남겨두되 그 뜻은 시장 수익률이라는 언어로 번역된다. 주가를 올리지 못하는 것이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은 대개 질문 속에 이미 답이 있다고 주장한다. 델피의 신탁을 떠받드는 참배객처럼 우리는 다우존스와 S&P 500 지수를 엄숙한 마음으로 신뢰하며, 반쯤은 무작위적인 지수의 변동을 신이 내리는 은총 또는 진노의 암시처럼 받아들인다. 도널드 트럼프를 포함한 모든 대통령이 그 제단 앞에서 절을 하고, 우리 대부분이 월 스트리트라는 위대한 신의 기분을 거스르는 정책을 암묵적인 신성 모독으로 간주한다. 주식시장은 우리 공동체의 안녕을 결정하는 최후의 중재자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호황과 미국 사회의 건강은 동의어가 아니다. 심지어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지표로서 늘 특별한 가치를 갖지도 않는다. 주식시장을 지금과 같이 취급하다 보니 실제 물질적인 현실을 잘 파악할 수 없게 됐을 뿐 아니라, 광범위한 번영과 부의 최상위 집중을 구분할 수 없게 됐다. 1990년 4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2,710을 기록했다. 지난 일주일 반 동안의 끔찍한 상황 전개에도 불구하고 다우존스는 현재 40,200을 기록 중이다. 우리가 35년 전에 비해 실제로 약 15배 부유해졌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마찬가지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지표인) 국내총생산만 살펴봐도 35년 전보다 5배 더 늘었을 뿐인데 말이다. 대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표를 고려해 보자. 1970년에는 가구당 중위 소득이 9천 달러가 채 안 됐다. 신차 가격은 약 3,400달러, 주택 평균 가격은 2만 6천 달러였다. 오늘날 중위 소득은 8만 달러지만, 신차 가격은 4만 9천 달러, 주택 평균 가격은 40만 달러가 넘는다. 이런 수치들도 사실 전체 그림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반세기 전 중위 소득은 일반적으로 외벌이 근로자의 소득을 의미했고, 자동차 가격은 좀 비싸도 결국 미국 기업의 노동조합원에게 지급하는 괜찮은 급여가 결국 자동차 판매에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반면 오늘날은 대부분 맞벌이 가구고, 상당수의 자동차와 트럭이 비노조 근로자가, 그마저도 대부분 해외에서 만든다. 이런 사례를 고려할 때는 또한, 이른바 '긱 워크(gig work)'라고 하는 플랫폼 노동과 임시직의 확산, 주택의 투기 자산화, 준합법 대마초 사업의 부상, 월급날 대출 및 온라인 도박의 확산, 독서의 감소,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확산에 따른 집중력 저하 등 쉽게 수치화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회적 병리 현상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시장에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탈냉전 이후 미국인들은 경제적 의사 결정에 가치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다고 확신해 왔다. 정책이 주식시장에 도움을 줄 때 우리는 그것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믿게 됐다. 하지만 주주 가치 증대는 여러 목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국내 철강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출세 지향적 '노트북 직종'을 원하는 중하위 계층이 숙련기술직을 갖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목표일 수 있다. 이 모든 사안 역시 규제나 민영화 못지않은 정치적 결정이다. 실질 임금이 정체되고, 주택 구입이 요원해지고, 인프라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주식 시장의 호황이 번영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 애널리스트나 싱크탱크 관계자, 영원히 불만을 품은 트럼프 반대파가 "경제"에 대한 타격을 우려할 때 우리는 이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관세 정책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 중 상당수는 타당하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전체가 경련성 근육 수축을 일으킨다는 것은 그 자체로 타당한 비판 사유가 될 수 없다. 단순히 "주가를 올리는 것" 외에 중요한 국가적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작은 첫걸음이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밀물이 모든 배를 밀어 올린다"고 했을 때 그 의미가 노 젓는 배가 모두 전복되는 동안 요트 몇 척이 석양을 향해 유유히 나아가는 그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원문: Stock Ownership Is What Really Divides Americans (c) 2025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뉴스페퍼민트
* 브렌트 니먼은 바이든 행정부 재무부 관료로 일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인용한 학술 논문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백악관이 새로운 관세를 발표했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도대체 어떻게 계산했길래 관세율이 저렇게 높지?'였다.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란 말 그대로 각 나라가 우리를 대하는 데 비춰 그에 응당한 관세를 매긴다는 뜻인데, 미국이 관세를 부과한 나라 중에 미국산 제품에 그만한 관세를 매기고 있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튿날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관세율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설명하는 글을 올렸는데, 계산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논문을 쓴 경제학자 네 명 중 한 명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무역대표부는 우리 논문의 계산법을 따르면 이번에 발표한 관세가 타당하다고 꿰맞추고 있는데, 한마디로 우리 연구를 완전히 왜곡한 아전인수의 단면이다. 나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과 무역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주장하는 논리를 액면 그대로 따르더라도, 제대로 계산한 관세는 이번에 발표한 수준보다 훨씬 더 낮아야 한다. 어떻게 계산해도 이번에 발표한 관세의 최대 25%를 넘는 답이 나올 수가 없다. 정부가 범한 가장 큰 실수부터 따져보자. 무역대표부는 먼저 "각 교역국"과의 무역적자를 모두 0으로 만드는 방편으로 상호 관세를 계산했다고 썼다. 이걸 과연 합리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두 나라 사이의 무역수지 불균형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보호무역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인이 스리랑카산 옷을 사는 데 쓰는 돈은 스리랑카인이 미국산 의약품이나 가스 터빈을 사는 데 쓰는 돈보다 많다. 이는 각 나라가 보유한 자원과 비교우위, 경제 개발 수준에 따라 생산하고 파는 제품이 달라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스리랑카와 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한다고 해서 불공정 무역을 의심해선 안 된다. 무역수지는 무역이 공정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판단하는 근거로 쓰여선 안 된다. 물론 무역적자를 줄이면 좋은 점 가운데 부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처럼 합리적인 지적과 주장도 있다. 하지만 같은 주장을 나라별 무역적자를 줄여야 하는 근거로 쓸 수는 없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소로우의 설명을 빌리면 이렇다. "내가 때 되면 찾는 이발소의 이발사와 나 사이의 금전 관계를 따져보면 내가 당연히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그 이발사는 내가 만든 걸 직접 사주지 않으므로." 대신 소로우는 자신이 강의하는 학생들을 상대로는 늘 흑자를 기록할 것이다. 학생들이 내는 학비에서 소로우의 급여가 나올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발사와의 만성 적자나 학생과의 만성 흑자와 같은 장부상의 불균형은 이발이나 고등교육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또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불균형을 두고 재정 건전성을 우려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논의를 위해 다소 파괴적인 가정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기어이 모든 나라와의 무역적자를 없앴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상호 관세는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그렇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관세 공식을 보면 한 나라에 부과한 관세가 다른 나라와의 무역, 수출입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만약 교역량이 많지 않은 작은 나라에 관세를 부과하는 거라면 그런 가정이 맞을 수 있지만, 지난주에 발표한 것과 같은 대대적인 일괄 관세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일본산 자동차 부품에 관세가 적용되면 예를 들어 멕시코에서 만든 대체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식이다. 또한, 일방적인 관세는 이변이 없는 한 보복 관세를 낳고, 시간이 흐르면서 달러 가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 두 가지 요인만 해도 미국의 수출은 줄어들 것이다. 좀 더 따져 보자. 정부가 정한 목표의 문제도 살펴봤고, 관세를 도출해 낸 공식도 문제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결함에만 눈을 감으면 이제 정부가 발표한 관세는 제대로 계산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이번에도 아니다. 정부는 공식에서 관세를 도출하기 위해 네 가지 다른 숫자를 썼다. 우선 각 나라와의 수입, 수출을 입력한다. 여기서 관세를 부과했을 때 비용 증가로 수입 가격이 얼마나 오르게 될지가 우리 연구와 가장 큰 연관이 있다. 이때 (관세) 전가율(rate of pass-through)로 알려진 숫자는 사실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기업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외국의 수출업체가 관세로 인한 비용을 모두 부담하기로 해 수출 가격을 낮추면 수입 가격은 관세를 부과하기 전과 똑같을 거다. 이 경우 전가율은 0이다. 반대로 수출업체가 관세를 신경 쓰지 않고 수출 가격을 똑같이 책정한다면, 즉 전가율이 100%라면 수입 가격은 정확히 부과한 관세만큼 오를 것이다. 알베르토 카발로, 기타 고피나스, 제니 탕과 나는 2018년과 2019년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관세의 영향을 분석했다. (무역대표부가 계산법을 소개한 글에서 "카발로 외" 논문이다) 우리는 예를 들어 20%의 관세를 부과하면, 그 가운데 19% 이상을 국내 수입업자가 부과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른바 관세 전가율이 95% 이상이란 뜻이다. 정부의 관세가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때 우리는 이 숫자를 사용했다. 좀 더 쉽게 풀어 말하면, 미국 정부가 매기는 관세만큼 거의 고스란히 수입품의 소비자 물가가 오를 것이다. 무역대표부는 우리 연구를 인용하면서 논문 안에 있는 엉뚱한 결과를 인용했다. 두 소매업체에 관세 전가율이 낮게 적용된 사례였다. 이어 정부는 느닷없이 관세율을 25%로 상정한다. 도대체 25%는 어디서 나온 건가? 우리 논문에 25%가 언급돼 있었나? 나는 모르겠다. 상호 관세는 노동자, 기업, 소비자를 비롯해 전 세계 주식시장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관세를 도출해 낸 계산에 관한 설명은 충격적일 만큼 주먹구구식이다. 만약 무역대표부가 우리가 논문에서 사용한 제대로 된 숫자 95%를 마찬가지로 썼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계산 결과 이번에 부과한 관세의 최대 1/4에 불과한 훨씬 작은 숫자가 나왔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방법론적 선택의 결과, 지난 2일 미국 정부는 근래 10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했다. 관세를 부과하는 대상국의 명단도 충격 그자 자체다. 중국이나 유럽연합 등 큰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요르단, 잠비아 같은 개발도상국이나 신흥 경제도 예외가 없었다. 상호 관세는 성경에 나오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베푸는" 무역 정책을 의미하지만, 정작 성경의 황금률에 따라 계산되지도 않았다. 나는 이번 관세 정책과 방법론이 완전히 폐기되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거라면, 정부는 책정한 관세율을 최소한 지금의 1/4로 낮춰야 한다. 원문: The Trump White House Cited My Research to Justify Tariffs. It Got It All Wrong. (c) 2025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뉴스페퍼민트
* 경제학자 저스틴 울퍼스는 미시건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다. 이번 정부의 관세에는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고통. 내 계산에 따르면 이번에 시행되는 관세 정책에는 트럼프 1기 관세보다 50배가량 큰 파괴력이 있다.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세탁기라는 아주 평범한 예시를 통해 알아보자. 2018년 상대적으로 소박했던 트럼프표 관세로 인해 세탁기 가격은 거의 100달러 가까이 올랐다. 그 결과 여러 가정에서 세탁기를 바꿔야 하는 시기에 새 제품을 사지 못했다. 그 결과 또 새로운 비용이 발생했다. 세탁 통 내 불균형한 하중 때문에 발생하는 오밤중의 소음, 탈수가 잘되지 않아 세탁 후에도 축축하게 젖은 옷 뭉치, 높아진 전기세와 수도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달리 말하면 관세의 총비용은 그저 당신의 은행 계좌에서 빠져나오는 돈에 그치지 않는다. 세탁 통 안에 뭉쳐있는 옷들을 잘 펼쳐놓는 데 드는 시간, 물이 뚝뚝 떨어지는 티셔츠를 짜는 데 드는 시간과 수고가 모두 비용이다. 관세는 물건의 가격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 낭비라는 새로운 비용을 발생시키는 선택을 강요한다. 관세가 낮으면 문제도 작다. 큰 관세는 큰 문제를 낳는다. 트럼프가 발표한 자동차 관세 25%로 (미국 소비자가 부담하는) 자동차 가격은 4천 달러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집을 포함한 여러 가정에서 가족의 두 번째 차량 구매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낡은 세탁기보다 더 큰 문제다. 차 한 대로 누가, 언제 아이들을 방과 후 활동에 데려다줄 것인지, 출퇴근은 어떻게 할지 끊임없이 일정을 조정하고 고민해야 한다. 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세는 모든 품목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므로 거의 모든 구매 선택에 왜곡을 가져올 것이다. 지금까지 짜둔 지출 계획을 다 뒤집어엎고, 새로운 계산을 해야 한다. 신선한 채소 대신 냉동 채소를 사고, 비싼 수입 약품 대신 약효가 떨어지는 제품을 사고, 설탕 대신 콘시럽을 사게 될 것이다. 하나하나의 선택이 모여 삶의 질은 더욱 나빠진다. 참, 구매에 관한 선택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들이 무엇을 생산하는지도 영향을 받는다. 당신이 관세 때문에 덜 좋은 물건을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기업도 바람직하지 못한 쪽, 즉 덜 생산적인 방향으로 노동력과 자본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수요일에 발표된 관세는 다른 선진국의 약 10배에 달하는 수준이며, 대공황 시기의 악명 높은 스무트홀리 관세보다도 더 높다. 이번에 발표된 관세로 인해 사람들은 2018년에 그랬던 것처럼 새 세탁기를 살지 말지 망설이게 될 뿐 아니라, 건조기, 냉장고, 오븐, 식료품, 의류, 자동차부터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매를 재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택하게 될 대안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관세 1% 인상으로 진짜 과카몰리에서 콩으로 만든 과카몰리 대용품을 선택했다면, 처음부터 과카몰리는 당신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물품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20% 관세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된다면 진짜 과카몰리를 먹지 못하는 것은 상당한 괴로움일 것이다. 더 높은 관세가 더 큰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이 모든 작용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고 모두 연결돼 있다. 수학적으로는 곱하기에 해당하는데, 비용은 관세율의 제곱으로 증가하게 된다. 꽤 고통스러운 산수다. 2016년 트럼프 당선 직전의 평균 관세율은 약 1.5%였다. 이후 트럼프는 철강, 알루미늄, 세탁기, 태양광 패널 및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했지만, 나머지 품목에 대한 관세는 거의 손대지 않았다. 2019년에 이르자 관세율이 약 두 배에 해당하는 3% 정도로 인상되어, 고통은 약 네 배로 늘어났다. (그렇다, 2의 2배는 4다) 조 바이든은 관세 일부를 유지했지만, 트럼프의 이번 조치로 관세율은 2016년에 비해 약 15배 높아졌으므로 고통은 225배로 커진다. 트럼프 1기의 관세 인상의 50배가 넘는 비용이다. 유권자들은 경제가 좋았던 시절의 훈훈한 기억을 그리워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 1기의 경제 성적표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관세를 둘러싸고 말만 요란했지, 실제로 으름장을 행동으로 옮긴 사례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트럼프 1기의 관세 정책은 길 위에 놓인 작은 돌부리에 불과했다. 이번 것은 돌부리가 아니라 산에 가깝다. 그러니 그 충격은 (지난 행정부의 관세가) 살짝 덜컹거리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정면충돌로 차량이 완파되는 수준일 것이다. 원문: Your Life Will Never Be the Same After These Tariffs (c) 2025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뉴스페퍼민트
* 캐리 맥킨은 텍사스주 미드랜드에 사는 작가다. 올봄 서부 텍사스에 있다 보면, 마치 계절풍을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우리는 1930년대에나 있을 법한 재난으로 전국적인 이목을 끌었다. 거센 모래폭풍이 일었고, 홍역이 창궐했다. 내가 사는 미드랜드에서 불과 100km 떨어진 곳에서 말이다. 한 학부모는 소셜미디어에 "2025년에 모래폭풍에 홍역이라니, 마치 지금 내가 아메리칸 걸 인형의 대공황 시기 버전을 사는 건가 싶다"는 자조적이고 어두운 농담을 올렸다. 이런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지난 10년간 일어난 일들 때문에 자주 당황하곤 했다. 만약 큰 딸아이를 낳고 처음 엄마가 된 2011년의 내게 누군가 딸아이가 14번째 생일을 맞을 때쯤 테슬라를 운전하고 자연주의 육아를 지향하는, 이른바 '크런치 그래놀라 맘'은 보수적인 사람 취급을 받을 거라고 말했다면,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어넘겼을 것이다. 또 늘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던 내게 앞으로 10년간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말이 서서히 미덥지 않아질 거라고 말했다면, 사람 잘못 봤다며 역정을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실제로 많은 것이 변했다. 공중보건 기관과 전문가들이 하는 말에 대한 신뢰를 잃은 미국인이 많아졌고, 특히 내가 사는 지역 같은 시골에서는 그런 변화가 더 도드라졌다. 개인들의 선택이 반영된 데이터만 봐도 알 수 있다. 2018년, 텍사스주 보건부에 백신 접종 면제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은 총 4만 6천 명이었다. 지난해엔 9만 3천 명 이상이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신청했다. 지난 세월을 다시 산다면, 그래도 나는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했을 것이고, 내 아이들에게 백신을 맞혔을 거다. 하지만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나는 백신을 거부하는 내 이웃들의 생각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공중보건 전문가의 조언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을 떠올려보라 하면 대체로 최악의 사람을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잘해봤자 낙후되고 멍청한 사람이란 취급을 피하지 못하며, 최악의 경우 이기적이고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몹쓸 사람으로 쉽사리 낙인찍힌다. 나도 비슷한 사람들을 보면 한심한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자기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 학생들의 홍역 백신 접종률이 텍사스주에서 가장 낮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포트워스의 한 교회의 목사 이야기를 접했을 때 그랬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남을 깔아뭉개고 잘난 척을 하면 내 기분이야 잠깐 좋아질지 몰라도 보통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이유와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결국 우리 사회가 공유한 문제를 풀지도 못한다. 공중보건 기관과 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가 약화하면, 결국 우리 모두가 다 피해를 본다.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어쩌다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원래 학교 차원에서 백신을 접종하는 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공중보건 당국의 권고사항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모든 개인에게 의료에 관한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는 주장은 꼭 우파의 정치적 주장이라고만 볼 일이 아니라, 남북전쟁 이전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맞닿아 있는 요구이기도 하다. 이는 백신 면제는 물론 트랜스젠더 의료 서비스, 임신 중절권, 의학적 조력 자살에 이르기까지 의료 부문 전반에 관한 다양한 논쟁과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의 근본적인 가치를 다른 중요한 가치들과 조율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지저분하며, 때로는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백신 접종의 경우, 미국 사회는 그동안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들도 그럭저럭 포용할 수 있었다. 대다수가 백신을 맞아 집단 면역을 형성한 덕분에 전체 사회는 계속 보호된 덕분이다. 하지만 공중보건 당국과 전문가를 향한 대중의 신뢰가 계속 약해지면서 백신을 맞는 사람들도 자꾸 줄었다. 미국 전역에 급증하는 홍역 사례는 집단 면역이 곳곳에서 무너졌음을 시사한다. 나처럼 과학을 부정하지 않고, 온건 보수 성향의 분별 있는 미국 학부모 중에는 국가 차원의 공중보건 당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당국을 더는 믿지 못하는 이들이 꽤 있다. 우리는 보건 당국이 과연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가치 판단에 휘둘리지 않는지, 철저히 과학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며 대형 제약업계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돼 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 불신의 불씨는 2020년 이전에도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분명 불에 기름을 들이부은 사건이었다. 2020년 3월, 나는 나름대로 팬데믹의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집에 있는 동안 이것저것 다양한 빵을 굽고, 집 앞 인도에 분필로 무지개를 그려놓았다. 2주 동안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자는 #SafeAtHome 캠페인을 모두가 따르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신규 확진자 숫자도 줄고, 이내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몇 주가 몇 달이 되고, 계속되는 공중보건 당국의 명령과 지침은 점차 우리가 우려하는 바,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와 자꾸 어긋나고 부딪쳤다. 이곳 서부 텍사스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일찌감치 승리했다. 몇 달 만에 우리는 원격이 아니라 직접 만나 생일파티를 했고, 교회에 모여 같이 예배드렸다. 미국 전역에서 이런 우리를 향한 조롱이 끊이지 않았다.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빨리 정상화를 시도한 우리 지역에서도 방역 조치로 인한 피해가 있었다. 미국 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소상공인이 무너졌고, 노인들은 비인간적인 사회적 고립을 겪다 요양원에서 홀로 쓸쓸히 죽어갔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온라인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2020년 늦봄, 우리는 불행 중 다행으로 어린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잘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그해 여름부터 학교를 열고, 아이들을 다시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내 주장은 우리 지역사회에선 그럭저럭 지지를 받았지만, 전국적인 반응은 사뭇 달랐다. 내 주장에 곧바로 격렬히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어느덧 다른 반대자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을 부정하며 인류애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도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공중보건 당국과 관계자들이 방역 지침을 맹목적으로 따르느라, 정작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너무 오랫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국 곳곳에서 학교는 오랫동안 문을 닫았고, 여러 가지 방역 조치가 시행됐다. 하지만 우리 동네처럼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상식에 반하는 제한 조치나 조언에 사람들이 곧바로 발끈했다. 우리 아이에게 언제 홍역과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할지 결정할 때 내가 믿고 조언을 구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올드 네이비(Old Navy) 같은 옷 가게에서 파는 싸구려 면 마스크가 미세한 병원균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과학적인 조언"에 감히 의문을 품고 주저하는 것은 거의 신성모독 취급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직업이나 지위를 걸고 정부의 과도한 지침에 용기를 내 저항했다. 이는 그저 개인의 자유를 무조건 지켜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긴 덕분에 우리는 질병을 퇴치한다는 명목으로 자유를 제한한 것이 어린이, 노인, 외로운 저소득층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지 똑똑히 보고 깨달았다. 어쨌든 그때는 팬데믹이 한창이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 실수는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우리가 팬데믹 때 너무 오랫동안 학교를 닫았다고 생각한다는 공중보건 전문가들을 어렵잖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하는 사람이 왜 없었던 걸까? 왜 정부 차원에서 마스크가 과연 효과가 있는지, 학교를 닫는 것이 다음에도 올바른 결정이 될지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나? 우리 동네처럼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다음번에 또 팬데믹이 발생하면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코로나19 때와 같은 대책을 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공중보건 당국을 이끌 새로운 리더는 미국인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른 무엇보다도 미국인들에 대한 겸손과 존중을 보여야 한다. 물론 우리 중에는 누군가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하지만 다 그렇진 않다. 오히려 코로나19 대책과 관련해 무엇을 잘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차분하게 따져볼 수 있는 위원회만 만들어도 만족할 사람이 많다. 다른 방법도 있다. 공중보건 당국에서 연구 부문과 정책 부문을 분리하는 것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 직접 연구를 지휘해선 안 된다. 물론 반대로 연구 담당자가 직접 정책을 진두지휘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우리는 결국, 우리가 뭘 모르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인간이다. 공중보건 당국이 좀 더 냉정하게 조언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팬데믹 기간 나는 특히 유럽 각국의 보건 당국이 내놓는 지침을 세심하게 살펴봤다. 유럽 당국은 미국처럼 문화전쟁에 휩쓸려 좌충우돌하지 않았다. 대신 이념적인 색채를 쏙 빼고, 시민들이 책임 있는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지 않았다. 미국 지도자들은 어린이들이 백신을 맞아야만 정상적인 생활을 재개할 수 있게 하려고 했다. 반대로 몇몇 유럽 나라는 고위험군 가정이나 주요 기저질환이 있는 어린이에게 백신을 우선 접종하는 데 주력했다. 또한, 백신 부작용을 비롯해 잠재적 위험을 아주 심각하게 여기는 나라도 있었다. 이런 접근법은 대개 아이들은 코로나19에 걸려도 예후가 안 좋은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고려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겸손이나 존중의 모범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를 경멸하는 사람 대부분은 아마 그가 임명하고 발탁한 모든 인사들도 똑같이 무시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으로부터 보건 당국의 신뢰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을 발탁했다. 이들은 자기 직을 걸고, 또는 피해를 볼 위험을 무릅쓰고도 다른 이가 반대할 권리를 옹호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제이 바타차르야 신임 국립보건원장이나, 마티 마카리 신임 식품의약국장이 그렇다. 바타르차야 박사는 지난해 12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주류 과학계가 선의의 세력이라기보다 자신들 위에 군림하려는 일종의 권위주의 권력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문제를 인정하는 건 훌륭한 첫걸음이다. 서부 텍사스에서 창궐한 홍역은 분명 비극이지만, 이는 동시에 지금 우리의 상황을 차분하게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미국인 대부분이 백신을 맞고 면역이 있는 홍역이었지만, 다음번 전염병도 이렇게 상대적으로 쉬우리란 보장은 없다. 최악의 경우 어린이에게 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가 우리를 덮칠 수도 있다. 미국의 새로운 공중보건 지도자들, 아니 우리 모두가 당면한 과제는 막중하다. 우선 동료 시민을 조롱하는 문화가 만연한 사회는 바로 우리를 분열시키는 심각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원문: This Is Why My Texas Town Lost Trust in Public Health (c) 2025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뉴스페퍼민트
* 레이첼 루이스 스나이더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에 글을 기고한다. 지난해 더블린시티대학 연구진은 한 충격적인 현상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젊은 남성의 소셜미디어 피드에 뜨는 남성우월주의 영상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내용이었다. 학부모, 교사, 정책 당국이 위험 신호를 감지해야 할 만한 이야기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의 권위주의 분위기 속에 젠더 간 분열의 골이 깊어지고 젊은 남성의 보수화가 눈에 띄게 진행되는 가운데, 이런 이야기는 이제 미래를 위한 경고가 아닌 현재에 대한 진단처럼 들린다.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가짜 10대 소년 계정을 만들어 틱톡이나 유튜브 피드에 여성혐오 내용을 담은 영상이 얼마나 빨리 뜨게 되는지 살펴봤다. 대조군을 제외한 한 집단은 '게임(gaming)'이나 '헬스장 팁' 같은 남성들이 자주 쓸 법한 검색어를 사용하고, 또 다른 집단은 더욱 극단적인 반페미니즘, 남성우월주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검색하도록 했다.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기반으로 하는 남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를 일컫는, 이른바 '마노스피어(manosphere)'에는 젊은 남성의 불안감을 착취해 수익을 올리는 인플루언서 앤드류와 트리스탄 테이트 형제의 영상 따위가 뜬다. (테이트 형제는 현재 루마니아와 영국, 미국에서 민형사 재판에 얽혀있지만,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연구진이 만든 가짜 16세 소년의 틱톡 계정에는 9분도 채 안 돼 노골적인 반페미니즘, 반 성소수자 영상 콘텐츠가 뜨기 시작했다. 남성이 이 사회에서 갖고 있던 지위를 잃어버린 것은 여성과 트랜스젠더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영상이 대부분이었다. 23분이 지나자 더 극단적인 콘텐츠가 뜨기 시작했다. 반동적 우익 논평과 엮은 남성우월주의 영상이 뜨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두세 시간 정도였다. 실험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자 마노스피어에 조금의 관심이라도 보인 계정(이를테면 한 영상을 끝까지 시청한 계정)에는 '추천(For You)' 탭의 78% 이상이 알파메일, 반페미니즘 콘텐츠로 채워졌다. 페미니즘이 너무 멀리 갔다, 여성들이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여자는 일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등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이 대다수였다. 연구진을 이끈 캐서린 베이커는 이런 콘텐츠가 신체를 둘러싼 젊은 남성의 불안감(단련된 신체를 숭배하는 계정이 대다수였다)과 미래, 관계에 대한 불안감을 파고들기 때문에 효과적이라고 평가한다. 성공하려면 취약한 부분을 보여서는 안 되고, 부와 선명한 복근, 사회, 정치, 문화적 지배력이 필요하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마노스피어 계정 다수는 공공연하게 여성이 남성에 종속되고 지배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앤드류 테이트는 여자친구가 내가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때가 바로 여자친구를 때리고 학대하기 시작할 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이 딸을 낳는다면 딸의 남편감은 자신이 고를 것이고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스물한 살에 임신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젊은 여자들이 인생의 파트너를 스스로 골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영향력은 온라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캐서린 베이커는 "이런 종류의 마노스피어, 주변부의 이데올로기가 과거보다 훨씬 큰 플랫폼을 통해 주류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원격교육 기관 오픈 대학교에서 나온 연구에 따르면, 7,800명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여성 응답자의 15%가 온라인상에서 폭력을 경험했고, 13%는 그것이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는 미국 47개 주에서 여성혐오 온라인 콘텐츠를 추적한 결과, 온라인 여성혐오와 가정폭력 사례가 지리적으로 겹치는 부분을 밝혀내기도 했다. 아메리칸대학교의 양극화 및 극단주의 연구 혁신 연구소(Polarization and Extremism Research and Innovation Lab)를 설립한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는 온라인 폭력이 현실 세계의 폭력으로 이어지는 궤적을 연구해 당국과 교사, 학부모를 위한 디지털 문해 교육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연구소 관계자들은 이런 교육을 초등학교 단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구조적으로 아이들을 늑대에게 던져두고 알아서 늑대를 발견하고 살아 나오기를 기대하는 수준"이라며 "아이들이 뭘 보고 있는지를 아이들과 부모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더 나은 도움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넷플릭스 신작 "소년의 시간(Adolescence)"은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드라마에서 13세 소년 제이미 밀러는 동급생 소녀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제이미의 부모는 선량한 사람들이고 아이에게도 관심이 많지만, 자신들이 애써 외면해 온 것 때문에 고통받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고 아들이 힘들어하는데도 스포츠를 강요한다. 아들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나 인터넷이 얼마나 빨리 사악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는다. 제이미의 부모는 아들에게 컴퓨터와 헤드셋을 사주고도 아들이 집에, 자기 방에 있으니 안전하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부모가 이와 비슷하다. 아이가 집에 있으면, 아이를 가까이 두면 안전하다고 믿는다. "소년의 시간"은 픽션이지만, 이렇게 순진하고 단순한 합리화를 잘 드러내고 있다. 현재 의회에는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개선하고 소셜미디어 사용에 제한을 두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이 최소 네 개 올라가 있다. (알고리즘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곤란한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자동차, 장난감, 화학물질, 술 등 어린이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규제하고 있다. 온라인 생태계 청소를 더 지체한다면 이는 의회의 배임 행위다. 한편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어둠의 '테크 브로'들이 활개를 치면서, 여성의 건강과 안전, 자율성, 성취, 일을 다루는 사이트들이 사라지고 있다. 여성폭력방지국 웹사이트에 따르면, 2025년의 모든 자금 지원 계획이 철회됐다. 백악관 산하 젠더 정책위원회도 해산했다. 가정폭력에 대응하는 기관들은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파산하는 중이고, 10대 데이트 폭력, 인신매매, 스토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방 기금 수백만 달러도 동결됐다. 우리는 이제 '여성', '젠더', '트라우마'와 같은 단어가 연구 과제에서 금지되거나 제한되는 신세계에 살고 있다. '여성은 재산이다', '동성애자는 정신병자다'와 같은 문장은 더는 메타(Meta)의 행동 규범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 주변부는 주류가 되었고, 곧 미국 정부의 본체가 됐다. 트럼프 행정부 관료가 지난 2월 테이트 형제를 루마니아에서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아일랜드에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민사 재판에서 패소한 UFC 스타 코너 맥그리거를 초청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이 정치적으로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틀림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를 위시한 소위 '정부효율부'와 마노스피어는 '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타인이 져야 한다'는 어둠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소년의 시간"을 다 본 뒤 넷플릭스가 다음에 시청할 작품으로 추천하는 목록을 훑어봤다. 소년, 남성, 여러 남성과 살해당한 소녀를 소재로 하는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목록은 인터넷이라는 황무지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빼앗긴 목숨의 울부짖음처럼 느껴졌다. 원문: We Underestimate the Manosphere at Our Peril (c) 2025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뉴스페퍼민트
*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메간 스택이 라스베이거스 북쪽에서 샌더스의 연설을 취재한 뒤 쓴 칼럼이다.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 북쪽으로 모여들었다. 볕이 이미 따가운 평일 낮 근무 시간임에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보려고 모인 사람들의 줄이 장사진을 이뤘다. 라스베이거스라는 이름을 듣고 으리으리한 호텔과 화려한 건물 조명이 불야성을 이루는 영화 속 모습을 떠올렸다면, 치장 벽토를 두른 집들과 허름한 연립주택 단지 사이로 상점과 식당들이 듬성듬성 들어섰고, 주위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공터가 제멋대로 방치된 라스베이거스는 분명 낯설 것이다. 하지만 버몬트주를 대표하는 무소속 연방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는 바로 이 버려진 공터에 반세기 가까운 자신의 정치 경력을 통틀어 가장 많은 청중을 불러 모았다. 네바다주는 샌더스 의원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아코르테즈 하원의원과 함께 진행 중인 "과두정과의 싸움 전국 투어(Fighting Oligarchy Tour)"의 남서부 첫 목적지였다. 네브래스카, 아이오와, 애리조나, 콜로라도를 포함해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샌더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샌더스 의원의 인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 보였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수십 년 동안 바뀌지 않고 그대로지만, 지금은 메시지의 울림이 아주 크다. 지난 20일 샌더스 의원의 연설을 들으러 네바다주 곳곳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 결과,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우선 여기에 온 모든 사람은 돈 때문에 크고 작은 위기를 겪고 있었다. 또 자신이 평생 믿고 의지해 온 미국이란 나라가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서서히 망해가는 모습에 겁을 먹고 있었다. 이런 두려움은 난생처음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연설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평범한 미국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지금 미국은 분명 한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미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빠듯해진 미국인들은 이러다 경기 침체라도 오면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헌법을 대놓고 무시하고, 바위처럼 오래 단단히 버틸 것 같던 연방 정부 제도 여기저기를 마구 헤집고 파괴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서 메디케이드와 공립학교, 군에 복무한 이들이 받는 연금 등 각종 혜택, 그리고 사회보장 연금(Social Security)마저 끝내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걱정한다. 트럼프라면 제도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도 빼앗아 갈지 모른다. 샌더스 집회 현장은 이 모든 감정으로 뒤엉켜 있다. 우선은 두렵지만, 동시에 화도 나면서 무언가 목적을 위해, 어딘가로 뿜어내고 싶은, 그러나 아직 분출된 적 없는 거대한 정치적 에너지가 날것 그대로 느껴졌다. 요즘 제 감정은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무엇이 사라지고 날아갈지 걱정부터 들죠. 판금(sheet metal) 노동자로 일하다 최근 은퇴했다는 켈리 프레스 씨가 내게 한 말이다. 디트로이트 출신의 건장한 남성 프레스 씨는 올해 65세로, 은퇴 전에는 서부 지역 곳곳의 건설 현장을 돌며 일했다. 자신이 속한 노조(판금노조 88 지부) 이름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온 프레스 씨는 양손에는 큼직한 반지를 꼈고, 파란 눈을 가리기 위해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로 이사 온 뒤 잠시 도박장에서 딜러로 일하기도 했지만, 도박이 사람을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리는지 직접 본 뒤로는 더는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내 (카지노보다) 훨씬 더 평온한, 땀 흘린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건설 현장으로 돌아갔다. 프레스 씨는 만약 오늘 연단에 오른 누군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뜻에서 워싱턴 D.C.까지 행진하자고 청중에게 제안한다면, 자신은 "신께 맹세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길로 따라나설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든 길을 제시하는 사람 말이에요. 그래서 미국인들은 더욱 혼란스러워하며 두려워하는 거예요. 2년 전 은퇴할 당시 프레스 씨는 한 달에 1,000달러면 기름과 먹을거리를 포함해 생필품을 충당하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고 계산했다. 실제로 한동안 은퇴 후의 삶은 계산대로 흘러갔다. 하지만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더니, 매달 생필품을 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도 1,400달러로 올랐다. 그는 자신의 동료 노조원 중에도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세금과 노조 회비 내는 데 지쳐서, 또 총기를 압수하려는 정부가 싫어서 트럼프에게 투표한 친구들이 있다며, 이들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트럼프를 찍은 사람들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믿는다. 지금, 이 나라는 점점 더 러시아처럼 되고 있어요. 선거로 뽑은 정치인에 대해서 말할 때도 입조심해야 하는 걸 보세요. 프레스 씨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 미국인은 법원의 판결을 깡그리 무시하고, 공무원들을 사방에서 위협하기 바쁘며, 시민의 자유를 아무렇지 않게 짓밟고 무시하는 백악관과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 앞장서서 저항하고 싸우는 리더를 갈망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선거에서 노동 계급에 외면받은 이유를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 당 주요 인사들은 팟캐스트, 방송 토론과 대담 등에 출연해 어떻게 하면 다시 노동 계급의 마음을 살 수 있을지 전략을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그러는 사이 미국인들 마음속에 쌓인 불만을 어루만지고 활용하는 방법을 이해한 사람은 샌더스 의원밖에 없는 것 같다. 그가 하는 말 중에 새로운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점은 특히 흥미롭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어쩌면 지겹도록 되풀이해 온 말과 구호를 또 한다. 전 국민 의료보험, 약제가 인하, 부자 증세, 주립대학 무상 교육, 노동조합 강화, 최저임금 인상 등이다. 샌더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다. 샌더스가 시류에 편승해 저런 주장을 난데없이 꺼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곧장 반박당할 것이다. 오히려 세상이 돌아가는 양상이 샌더스의 오랜 주장을 새삼 돋보이게 했다. 그가 오랫동안 경고해 온 것들이 하나둘 사실로 밝혀지고,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정확히 현실에서 일어나자, 샌더스는 어느덧 선견지명의 대명사가 됐고, 그가 과거에 한 말이 잇따라 '성지글'로 조명받고 있다. 이제 그는 사람들이 견뎌 온 고통과 불안감, 그리고 오랫동안 무시돼 온 자신의 주장을 온전히 하나로 묶을 수 있게 됐다. 그는 치솟는 물가를 기업의 지배 구조와 부, 그로 인한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 문제와 결부해 설명한다. 독재자의 자질을 마음껏 펼쳐 보이는 트럼프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인 일론 머스크로 대변되는 과두정의 득세는 부의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 사회가 망할지 모른다던 샌더스 의원의 오랜 주장을 그대로 뒷받침한다. 샌더스는 이어 연방정부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끊임없는 공격이 지금 연설을 듣는 청중들의 가계 예산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즉, 과두정은 아무렇게나 멋대로 정부를 해체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부자들의 세금을 수조 달러 아끼려는 목표 아래 철저히 계산된 공격을 편다는 것이다. 북부 라스베이거스의 선명하리만치 푸른 하늘 아래서 연설을 듣던 청중 사이에서 이따금 "부자에게 세금을!"과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의 노래 "모두가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한다(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가 공원에 울려 퍼진다. 오카시아코르테즈 의원은 군중을 더욱 열광시킨다. 그는 열광하는 군중들을 향해 "우리는 우리를 위해 더 열심히 싸워줄 민주당을 원합니다! 그렇죠, 여러분?"과 같이 본인이 속한 정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또 지금은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이든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가족이든 다 같이 모이고 조직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이 운동은 당파적인 것도, 정치적 순수성을 시험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운동은 계급의 연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수많은 사람들의 외침은 다음 한 마디로 묶어낼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생명은 존엄하다. 그리고 우리의 노동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라고요. 이어 그 이름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샌더스 의원이 등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계속해서 호통쳤다. 그는 테크 기업을 겨냥하며, 특히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조스,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 세 명이 미국 사회에서 가난한 절반에 해당하는 1억 7천만 명의 자산의 합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극소수 갑부들이 매우 탐욕스럽고, 한없이 사치스러우며, 경제적 현실과 철저히 동떨어져 있다고 조롱하듯 비판했다. 이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통 몰라요. 우리는 미국 사회를 극소수 갑부들이 정부를 쥐락펴락하는 과두제로 전락하는 것을 절대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샌더스 의원은 미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상기하려는 듯 소리를 높였다. 헌법을 줄기차게 무시하고 공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다가 청중을 향해 물었다. 급여 생활자로 근근이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여러분들은 잘 아시죠? 사람들은 소리 높여 저마다 생각하는 바를 외쳤고, 샌더스 의원은 이를 하나하나 마이크에 대고 복창했다. 맞습니다. 자녀를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싶은데 막막하죠. 그렇죠, 약값과 이번 달 월세 중 하나는 포기해야만 하는 거죠. 신용카드 연체 이자율이 20%나 돼서 막막한 것도 그렇네요. 이때 내 옆에 서 있던 한 젊은 여성은 자기 옆에 선 남성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이자가 겨우 20%라니, 부럽네."라고 중얼거렸다. 샌더스 의원은 이 모든 사정을 하나하나 곱씹듯 나열한 뒤 청중에게 미국인의 기대 수명은 경제 수준이 비슷한 나라 사람들의 기대 수명보다 낮고, 심지어 미국 저소득층의 기대 수명은 다른 부자 나라의 저소득층 기대 수명보다 훨씬 더 낮다고 말했다. 청중들은 샌더스 의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했다. 트럼프나 머스크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사람들은 주먹을 치켜들고 큰소리로 야유를 보냈다.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욕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카타르시스의 향연이 느껴졌다. 초등학교 2학년 교사인 디나 개러베이 씨는 내게 말했다. (샌더스 의원은) 지금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이죠. 힘없는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에요. 그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위해 기꺼이 싸울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사실 민주당도 늘 그러지는 않거든요. 올해 56세인 개러베이 씨의 정치적 배경은 이색적이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공화당을 지지했던 그는 공화당이 부자들만 너무 감싼다는 생각에 공화당에서 점점 멀어졌고, 자연스레 민주당으로 끌렸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책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만약 공약만 보고 투표한다면 녹색당을 찍겠지만, 당선 가능성을 고려하면 사표가 될 게 뻔하기 때문에 그것도 싫다고 개러베이 씨는 말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그저 누군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이 갑자기 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개러베이 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교육부를 폐지하려는 걸 보고 경악했다. 그가 보기에 교육부가 폐지되면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볼 것이 뻔하다. 라티노 여성이자 성소수자로서 불법 이민자를 대거 추방해 버리자고 선동하는 데도 화가 나지만, 무엇보다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LGBTQ)가 권리를 빼앗기는 게 걱정된다고 개러베이 씨는 말했다. 동시에 개러베이 씨는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인 라스베이거스의 주택난에 시달리고 있다. 몇 년 전 그는 내 집 장만을 위해 애리조나를 떠나 라스베이거스로 이사 왔다. 그러나 집을 알아본 뒤 자신이 마련할 수 있는 돈으로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남편과 10대 딸과 함께 이동식 임대 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사는데, 일주일에 장 보는 데 드는 비용만 120달러에서 200달러로 치솟는 바람에 생활이 더 힘들어졌다. 그는 동료 교사 중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퇴근 후에 우버 기사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제가 아는 모든 교사는 집을 살 형편이 안 돼요. 돈을 벌기 위해 다들 정말 뼈 빠지게 일하지만, 그래봤자 월급은 고스란히 다 월세로 나가는걸요. 이것 말고도 샌더스 의원을 보러 나올 이유는 차고 넘쳤다. 사람들에게 왜 오늘 연설을 보러 왔는지 물을 때마다 "얼마나 오래 들어주실 수 있는데요?"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다들 할 말이 오랫동안 쌓인 듯했다. 이제 샌더스 의원은 으슥한 건물 라운지에서 기업 로비스트들이 정치인의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는 대가로 부정한 청탁을 하는 모습을 굳이 소리 높여 지적할 필요가 없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모든 것을 만천하에 보여줬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는 2억 7천만 달러 넘는 돈을 선거에 쏟아부었고, 그 결과 트럼프 행정부에서 가장 힘 있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한때 화성에 인간을 보내겠다는 꿈을 꾸던 괴짜 기업인은 이제 노인과 제대한 군인, 가난한 미국인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마저 말 한마디로 제거해 버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샌더스 의원은 무대 뒤에서 내게 "미국 사람 중에 이를 두고 미쳤다고 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의 전횡 때문에 중도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도 샌더스가 오랫동안 좌파의 관점에서 분석한 경제적인 주장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됐다. 사람들은 머스크와 트럼프가 어디까지 법과 제도를 망가뜨릴지 두려워하는데, 샌더스는 오래전부터 트럼프의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경고해 왔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또한, 트럼프가 다른 건 몰라도 물가는 잡아줄 거라고 기대하고 표를 준 노동자 계급의 마음을 다시 돌리는 데도 유리하다. 샌더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맹비난하면서도 민주당을 향한 공격은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민주당이 민권과 여성,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노력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다만 민주당이 서민, 중산층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등한시했다고 평가했다. 샌더스 의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가 노동 계급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표를 받았을까요? 노동자들이 억만장자에게 세금을 더 깎아주자는 정책에 찬성해서 그럴까요? 전혀 아니죠. 그게 아니라 민주당이 이들의 요구를 자꾸 외면하고 무시하다가 노동자들의 신망을 잃었고, 트럼프가 그 공백을 잘 공략한 겁니다. 그는 자신이 미국 의회 역사상 무소속 의원으로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민주당은 시대에 맞춰 변화하거나 그러지 못하면 유권자들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당이 과연 변화할지 못할지 지켜보죠."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에 제가 거는 희망이 있다면 이런 거예요. 민주당은 1930, 40년대 루스벨트, 트루먼 대통령이 지녔던 세계관을 되찾을 필요가 있어요. 온 정당이 오직 기업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걸 당장 멈춰야 합니다. 당이 앞장서서 변하지 않는다면, 뜻이 있는 의원들은 민주당을 박차고 나와 진보적인 의제를 펴는 무소속 의원으로 선거를 치르고, 필요할 때만 민주당과 협력하는 식으로 정치하는 편이 낫습니다. 군중 속에서 나는 33세 수영장 청소부 샘 로렐 씨를 만났다. 그는 오늘을 위해 "부자들을 먹어 치우자(Eat the rich)"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왔다. 그는 "그동안 우리 정부가 오직 상위 1%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하고, 다수인 우리를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데 우리가 얼마나 참아왔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며 연설을 보러 온 이유를 밝혔다. 샌더스 의원과 마찬가지로 로렐 씨도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과 자신이 경제적으로 겪는 시련을 한데 묶어 현재 정치에 관한 의견을 폈다. 그는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집을 따로 장만할 여력이 없어 가족이 함께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는 특히 "온갖 사기를 잡는 경찰"로 추켜세운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이 사실상 와해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수년간 의료보험 없이 살다가 마침내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회사에 취직했는데, 그사이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나이에 비해 훨씬 일찍 머리가 하얗게 셌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보장 연금과 메디케어에도 분명 손을 댈 것이다. 로렐 씨는 대학교에 가서 교사가 되고 싶지만, 학비를 마련할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다수 서민을 위해 존재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빼앗기고, 뜯기고, 정말 많은 것을 잃으면서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요. 그는 요즘 부자들의 별장에 있는 정원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날카롭게 바라보게 되고, 불편할 만큼 뚜렷이 느끼게 된다. 겉은 번드르르하지만, 실은 사막 위에 세운 신기루 같은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는 부자들의 수영장에 채우는 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청소 노동자로 산다. 샌더스 의원이 늘 지적하는 노동자 계급의 힘겨운 삶과 한탕주의 신기루를 좇는 사람들의 욕망이 이토록 뚜렷하게 대비되는 공간이 또 있을까? 그가 관리하는 수영장이 딸린 별장 주인 중 한 명은 유명 연예인인데, 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멀리 떨어진 데 살며, 수영장 물이 새는데도 이를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밑 빠진 독 같은 수영장을 볼 때마다 로렐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이건 뭐 미드 호수(Lake Mead, 옮긴이: 라스베이거스 생활용수의 수원인 호수) 물을 다 퍼다 쓰려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평소에 혼자 생각에 잠기는 걸 좋아하긴 하는데, 늘 그럴 수 있는 건 부잣집 뒷마당뿐이네요. 원문: Bernie Sanders Is Tapping Into a Deep Vein of Anger in America (c) 2025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뉴스페퍼민트
* 클라이브 어빙은 지난 30년간 항공우주 분야를 취재해 온 탐사보도 전문 기자다. 일론 머스크는 오로지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사업에 어떤 심각한 단점이 있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전기차 생산 업체인 테슬라는 한때 진보주의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머스크가 강경 우파로 돌아서면서 많은 이들에게 독을 탄 브랜드가 되어버렸고 가치가 빠르게 하락 중이다. 우주를 향한 대도약이라던 신형 스타십 역시 두 차례 실험에서 잇달아 요란하게 실패했다. 머스크 본인의 경솔한 표현을 빌리자면, 머스크의 천재 지위는 "예정에 없던 급격한 해체"를 경험 중인지도 모른다. 이런 평가를 반박할 만한 사례도 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 비행사 두 명을 무사히 데려올 수 있도록 우주선을 제공한 일이다. 이들은 보잉사가 제작한 승무원 캡슐 결함으로 9개월간 우주정거장에 고립돼 있었다. 보잉사의 기나긴 악재 목록에 새로 추가될 만한 사건이었다. 머스크와 보잉의 대비는 의지력이 강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기업가가 회피적인 태도의 기득권 경쟁자를 대체한다는 미국 기업계의 전설적인 영웅담에 완벽히 부합한다. 표면적으로는 사실이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우주항공 분야에서 보잉을 제쳤다. 테슬라가 적어도 한동안은 기존의 자동차 기업들을 앞질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단발적인 성과를 제쳐두고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머스크의 혁신적인 의지력이 대중의 눈에는 기업의 자산인 만큼이나 부채가 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면적인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는 대형 로켓 스타십의 실패에서도 드러난다. 스타십은 두 차례에 걸쳐 카리브해 상공에 불붙은 잔해를 남기며 상업용 항공기의 진로를 방해해 우주 비행사의 무사 귀환보다 더 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머스크는 스타십 실험 실패를 별것 아닌 일로 가볍게 넘기려 했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우주선 제작에 대한 머스크의 접근 방식이 근본적으로 도전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사 시험의 목표는 달 표면에 우주 비행사를 보내려는 나사(NASA)의 아르테미스 계획에 활용될 우주선을 제작하는 것이다. 궤도로 발사만 되면 될 일이 아니라, 달에 착륙하고서 다시 연료를 채울 수 있어야 한다. 2027년이라는 목표 기한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슈퍼헤비 보조 추진 로켓을 사용하는 비행의 첫 단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근 발사대에서 이미 사용된 추진 로켓을 회수하는 장관을 연출하면서 확인을 마친 사실이다. 문제는 스타십을 궤도로 올리는 엔진 근처에서 발생한다. 이로 인해 우주선이 중간에 폭발하게 되는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그리고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재설계가 불가피하다. 스페이스X는 '원맨쇼'였던 적이 없다. 현 사장인 그윈 샷웰은 일론 머스크만큼이나 스페이스X의 성공에 기여했다. 능력 있는 엔지니어들을 고용한 것,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머스크의 상상력과 모험 정신에 실체를 부여한 것, 그러면서도 머스크에게 집중된 조명을 방해하지 않은 것 모두 샷웰의 성취다. 그럼에도 스타십은 머스크에게 있어 일종의 남성 호르몬 주사, 달을 넘어 화성으로 가겠다는 의지의 가장 대담한 표현이 되어버렸다. 일론 머스크의 관심이 정부효율부(DOGE)로 넘어가자, 스페이스X는 더 큰 난관에 봉착한다. 취임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별들을 향한 우리의 명백한 운명"을 추구할 거라며, 우주 비행사가 화성에 성조기를 꽂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는 그 시기를 자신의 임기 말로 보고 있지만, 스타십의 꼬여버린 궤적을 보면 그의 야망이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로서는 달에 우주 비행사를 보내는 정도가 나사(NASA)가 트럼프 임기 말까지 달성할 수 있는 최대치로 보인다. 달 식민지화는 상업적인 가치도 상당한데, 중국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1969년 7월, 달은 미국의 탁월한 도전 정신을 의미하는 상징이 됐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과 함께 아폴로 계획은 아날로그 시대의 승리로 기록됐다. 당시 달로 간 우주선을 제작한 기업은 보잉이었다. 2014년, 나사는 보잉의 명성을 믿고 새로운 세대의 승무원 캡슐을 발주하고 동시에 스페이스X와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014년은 당시 보잉의 수장이었던 제임스 맥너니가 보잉을 업계 아이콘으로 만들어 준 달 탐사에 준하는 리스크를 더는 감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해이기도 하다. 맥너니는 획기적인 신모델을 만들어내는 기존의 전략이 "이 업계에 맞지 않는 잘못된 방식"이라며,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세상은 달 탐사를 추구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보잉은 토론과 팀워크, 공동의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경영 방식에서 주주에게 돈을 가능한 한 많이 돌려주는 것을 우선시하는 경영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비용을 절감하자, 품질이 들쭉날쭉해졌다. 신형 737 맥스 기종이 두 차례 추락 사고를 내자, 보잉은 끝내 신형 제트기의 대명사 자리마저 에어버스에 내주고 말았다. 보잉의 운명은 머스크라는 전설의 탄생에도 기여했다.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스타일의 리더가 나사의 예산과 기한에 맞춰 일관되게 안전한 제품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스페이스X는 캡슐을 궤도에 쏘아 올린 후 지구로 돌아오는 팰컨 9를 발사해 보잉이 도달하지 못한 기술을 선보이는 데도 성공했다. 스타십의 실패는 이렇게 얼핏 완벽해 보이던 전설에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다. 스페이스X의 다음 도전은 머스크에게 훨씬 더 어려운 과제가 될 거라는 신호와도 같다. 한편, 테슬라 역시 머스크에게 여전한 골칫거리다. 테슬라는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에 깊이 관여하기 훨씬 전부터 참신함과 추진력을 잃고 있었다. 중국은 머스크의 독창적인 컨셉에 차를 만든 사람도 실제로 그 차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대량 생산 모델을 접목해, 값싸고 품질 좋은 전기차를 시장에 대량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때는 테슬라가 BMW 등의 기업과 함께 고급 차 시장에서 자리를 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머스크는 이제 유럽의 극우 정당에 지지를 보내고 워싱턴에서 훼방꾼 부대를 조직하는 일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런 행보는 대중의 반발을 샀고, 머스크 제국의 다른 부문(머스크는 기밀로 분류되는 일을 포함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정부 사업을 수주했는데, 여기에는 필수적인 스타링크 위성군과 미국 정보 수집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스타실드 위성이 포함된다)과 달리 테슬라는 공격에 취약한 표적이 됐다. 구매자의 후회가 정치 운동으로 전환되는 사례는 드물다. 헨리 포드 역시 1920년대, 30년대의 여타 업계 거물들과 마찬가지로 광적인 반유대주의자였지만, 머스크처럼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머스크는 전혀 다른 거물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실리콘밸리가 낳은 새로운 마법의 아바타와도 같은 인물이다. 로켓과 자동차 부문이 악재를 맞이함에 따라 그가 미국 정부에 가해온 공격도 같은 운명에 처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