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코이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공식적으로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국가는 없다. 그러나 언론은 이 원칙에 아랑곳하지 않고 금, 은, 동메달을 국가별로 집계해 순위를 매길 것이다. 시청자가 관심을 보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흔히 쓰이는 메달 집계 방식에는 명백한 결함이 있다. 메달 개수를 단순히 더하는 방식은 인구가 많은 나라에 유리하다. 그렇다고 국민 1인당 메달 개수를 집계해 순위를 내면 반대로 인구가 적은 나라가 유리해진다. 뛰어난 운동선수가 있거나 어쩌다 운 좋게 메달을 딴 경우가 과도하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거둔 성적을 국가별로 집계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 1984년과 1988년 올림픽에 미국 대표 마라톤 선수로 참가한 올림피안 피트 핏징어와 나는 대학교 동창인데, 피트가 더 좋은 메달 집계 방법을 고안한 연구자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라서 그 방식에 관해 나도 알게 됐다. 그 방식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메달을 인구로 나눠서 집계하는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자. 단순히 메달을 더하는 것보다는 1인당 메달을 계산하는 것이 더 공정한 방식처럼 보인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방식은 아주 작은 나라의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로 믿을 만하지 않다. 예를 들어 지난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1인당 메달 개수로 국가별 순위를 매기면 1위는 산마리노다. 전체 인구가 3만 4천 명에 불과한 산마리노는 트랩 사격에서 2개, 레슬링에서 1개의 메달을 따냈다. 이어 버뮤다와 그레나다가 각각 한 개의 메달을 땄지만, 인구가 적어 2위, 3위를 차지했다. 통계학을 공부한 분이라면 알겠지만, 표본이 작으면 분산은 커진다. 이 기본적인 사실을 모르거나 무시하면, 상당히 왜곡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신장암 발병률이 가장 높은 카운티는 대부분 시골 지역에 몰려 있다. 그럼, 시골 지역 의료시설에 신장암 예방에 필요한 자원을 몰아 지원하는 게 당연한 해결책처럼 보인다. 그런데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신장암 발병률이 가장 낮은 카운티도 대부분 시골 지역 카운티라는 점이다. 비슷한 사례를 교육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학업성취도 평가 성적표를 봤더니, 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높은 학교는 대부분 규모가 작은 학교였다. 그러자 소규모 학교를 지원하는 정책이 속속 도입됐고, 심지어 큰 학교를 여러 개로 쪼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통계학자들은 성적표 전체를 다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시험 성적이 가장 안 좋은 학교들도 대부분 규모가 작은 학교였다. 표본이 작으면, 무엇을 측정하든 그 값이 넓게 퍼져 있기 때문에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에 관해 더 알고 싶은 분들께는 ETS(토플 등 표준화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의 수석연구자로 일했던 호워드 와이너가 아메리칸 사이언티스트에 기고한 글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앞서 소개한 더 좋은 집계 방식은 좀 더 균형 잡힌 방식으로, 큰 나라나 작은 나라를 지나치게 우대하지 않는다. 이 방법을 고안한 건 로버트 던컨과 앤드루 퍼레스라는 사람 두 명인데, 던컨은 텍사스대학교에서 은퇴한 천체물리학자고, 퍼레스는 보스턴에 있는 컨설팅 회사 찰스리버 어소시에이트의 부사장이다. 내가 두 명과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하고 나서 이들이 공정한 메달 집계 방식에 관해 쓴 "인구를 조정한 올림픽 국가 순위(Population-Adjusted National Rankings in the Olympics)"라는 제목의 논문이 스포츠 분석이라는 학술지에 게재됐다. 던컨과 퍼레스의 모델은 모든 국가의 국민 한 명당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확률이 똑같다고 가정할 때 국가별 메달 획득 가능성을 산출하고, 이를 반영해 메달 순위를 집계한다. 국가별 메달 획득 가능성은 동전을 10번 던졌을 때 계속 앞면이 나올 확률을 구할 때 쓰는 이항분포 공식을 통해 산출한다. 이 방법을 지난 도쿄 올림픽에 적용해 보면, 메달 집계 상위 10개국은 호주, 영국, 네덜란드, 뉴질랜드, 헝가리, 미국, 이탈리아, 일본, 쿠바, 자메이카 순이었다. (메달 개수를 그대로 더한 순위와 차이가 있다.) 같은 방식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적용하면, 영국, 미국, 뉴질랜드, 호주, 프랑스, 덴마크, 아제르바이잔, 자메이카, 독일, 네덜란드 순이다. 저자들은 올림픽 마라토너인 피트 핏징어에게 감사의 말을 남겼다. 핏징어가 전통적인 메달 집계 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재촉한 덕분에 새 방식을 고안할 수 있었다는 거다. 그들은 "사실 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들의 성적을 정확히 매겨 흠결 없는 완벽한 순위를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컬럼비아대학교 통계학과 교수이자, 유명한 통계 블로그를 운영하는 앤드루 겔만 교수에게 던컨과 퍼레스의 모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이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닐 거라면서도 큰 나라와 작은 나라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합리적인 방법이므로,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겔만 교수는 어떤 방식으로 집계하든 표본이 작으면 이를 해석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인구가 적은 나라가 특정 올림픽에서 놀랍게도 많은 메달을 딴다면, 4년 혹은 8년 뒤에는 그만큼 메달을 못 딸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계속해서 메달을 딸 수도 있겠지만! 올림픽과 같이 단순히 성과를 비교하고 더 공정한 순위를 매기는 게 목표라면 던컨과 퍼레스의 모델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신장암 예방을 위해 예산을 지원하는 일이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토대로 효과적인 교육 정책을 짜기 위해 정확한 측정과 진단이 필요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겔만은 이렇게 썼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땐 그 문제를 직접 공략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올림픽 메달 집계는 순위를 매기는 것이 목표지, 정확한 값을 측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26일(현지시간)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에서 각국이 나라의 규모를 감안했을 때 얼마나 메달을 많이 따고 있는지 집계를 확인하고 싶다면, 이 웹사이트를 참고하시면 된다. 원문 : Which Country Will Win the Paris Olympics? Don't Just Count Medals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 데이비드 브룩스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공화당 전당대회를 참관하고 쓴 글이다. 2016년 당시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단순한 슬로건에 지나지 않았다. 좋게 봐줘야 이민 같은 사안에 대한 분노를 본능적으로 표현한 발작 증세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난 8년간 각종 연구기관과 활동가, 정치인들은 이 슬로건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다듬어 발전시켰고, 이제 그 세계관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됐다. 오늘날 서구에서 우익 정당은 더 이상 재계 엘리트의 정당이 아니라 노동자 계층의 정당이 됐다. "마가"는 이러한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세계관이다. 앤드루 잭슨 스타일의 포퓰리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업데이트를 거쳐 좀 더 포괄적인 모습으로 거듭났다. 노동자 계층의 이해관계 가운데 하나의 버전을 대표하는 동시에 노동자 계층 유권자들에게 존중감을 주는 세계관이 된 것이다. J.D. 밴스는 이 세계관을 발전시킨 인물인 동시에, 기업의 힘이나 복잡하게 얽힌 외교 문제, 자유무역, 문화적 엘리트와 높은 이민율에 의구심을 숨김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세계관을 의인화한 존재다. 이번 주 밀워키에서 J.D. 밴스가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낙점되면서 "마가"가 레이건주의를 제치고 공화당의 제1 작동 원리로 부상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민주당이 "마가"를 상대로 승리하고 싶다면 "오렌지맨(트럼프의 피부색을 조롱하는 말)은 나쁘다"는 판에 박힌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1월 6일 의사당 테러를 끊임없이 화제로 삼는 것도 좋지 않다. 민주당이 가까운 미래에 승리를 원한다면 "마가 세계관"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유권자, 특히 노동자 계층에 예의를 갖추어 보다 나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마가", 가장 좋은 버전의 "마가"란 무엇일까? 모든 사회에는 안정과 역동 사이에 마땅한 갈등이 존재한다. 불안정한 세계에서 "마가"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바로 안전이다. 안전한 국경과 안전한 동네, 세계화와 현대 자본주의의 창의적 파괴로부터의 보호를, 당신을 얕잡아 보고 학교에서 당신의 자녀에게 특정 사상을 주입하려는 엘리트 계층으로부터의 보호, 대기업 포식자들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한다. 이들 눈에는 이번 주 콤팩트(Compact)와의 인터뷰에서 조시 할리 상원의원이 주장한 바와 같이 "기업 고위 간부들이 국내 공장을 폐쇄하고 일자리를 없애면서 미국을 내다 판 지 오래"라는 분석이 곧 현실이다. 불안정을 가져오는 거대한 세력에 삶이 뒤흔들리는 느낌을 받는 이들에게 트럼프는 극작가 애런 소킨이 쓴 대사처럼 부상 중이다. "당신들은 내가 벽을 지켜주길 원하지. 벽을 지켜주는 내가 필요해(You want me on that wall. You need me on that wall)." 이들에게 트럼프는 사람들이 삶을 살아 나갈 수 있도록 안정과 보호를 제공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마가"의 문제점, 그러니까 민주당의 돌파구는 무엇일까? 바로 전통적인 미국인의 의식과는 매우 다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미국적인 의식이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의식이 넘쳐나는 상태였다. 지속적으로 쏟아져 들어온 이민자들은 비옥한 땅과 활기 넘치는 도시로 가득한 신대륙을 발견했다. 주미 네덜란드/룩셈부르크 대사를 지낸 헨리 반다이크는 1910년 "미국의 정신(The Spirit of America)"라는 저서에서 "유럽에 널리 알려진 미국적 정신의 특성은 바로 에너지"라고 썼다. 20세기에는 루이지 바르지니라는 이탈리아인이 미국인들에게는 지속적인 자기 발전에 대한 열정, "무엇 하나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모든 것과 모든 이를 고치고 개선하려는 끊임없는 욕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외부인도, 또 우리 자신도 미국을 매우 역동적인 국가로 여겨왔다. 미국인들은 과거를 공유하지 않지만, 함께 같은 미래를 꿈꿨다. 미국인의 고향이란 혈연과 지연 중심의 민족주의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에 가까웠다. 역사 속에서 미국의 특징은 깊이나 문화보다는 전력을 다해서 살아 나가는 태도에서 비롯됐다. 반면 "마가 세계관"은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게 놓아두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다", "미국인의 피부색이 더 어두워지면 '그들'이 '우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라는 의식의 부족, 제로섬 사고에서 비롯된다. MAGA의 기반은 "엘리트들이 우리를 엿 먹이려고 한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우리를 등쳐먹고 있다", "미국의 세속주의가 미국의 기독교를 억압하고 있다"는 식의 다양한 피해자 서사다. 전통적인 미국식 '풍요로움 정신'에서 봤을 때 "마가"는 미국식 보수주의의 한 갈래라기보다 유럽식 보수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수세대에 걸쳐 러시아의 대중은 선 그 자체이지만 외부에서 온 존재로부터 위협받는다고 주장한 러시아식 쇼비니즘을 연상시킨다. 계급 투쟁이 정치의 영원한 특성이라고 주장하는 우파 마르크스주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가"는 요새 정신에 가깝지만, 사실 미국의 전통은 개척자 정신이다. "마가"는 단단한 껍질을 주지만, 높이 날아오르는 날개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당이 잘 되려면 미국의 역동적인 문화적 전통을 가져와서 이것이 21세기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사회적 역동성이라는 것이 첫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역동이란 단순히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길로 나서는 것, 거친 개인주의나 제약이 없는 자유지상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동성의 정의는 심리학자 존 보울비에게서 나온 것이다. "삶이란 안전한 기지를 떠나는 도전적인 모험의 연속이다." 민주당이 잘 되려면, 사람들에게 안전한 기지와 도전적인 모험의 비전을 둘 다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민주당이 내세워야 할 이야기는 이렇다. 세계가 불타오르고 있는데 미국이 안전할 수는 없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같은 곳에 활발하게 개입하며 푸틴 같은 늑대를 막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경 지역이 혼란스러운데 미국이 안전할 방법은 없다. 이민 정책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가에 달렸다. 한 번의 실패가 사람을 끔찍한 빈곤으로 몰아넣는다면 진정 미국인들이 안전한 것인가? 민주당이 주도해 온 사회보장제도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민주당이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도전적인 모험의 기회가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관적인 레이건 이후의 공화당이 이길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미국의 역동성은 대륙횡단 철도를 건설할 때,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학을 설립할 때, 퇴역 군인 지원법과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중서부의 제조업 기반을 부활시켰을 때 살아났다. 개인적으로 나는 민주당이 월세 통제(rent control) 같은 멍청하고 반동적인 정책에 힘을 덜 썼으면 좋겠다. 바이든 캠프가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지 느껴지는 지점이다. 대신 민주당은 데릭 탐슨이나 나의 동료 에즈라 클라인 같은 이들이 계속해서 이야기해 온 '풍요의 아젠다'에 초점을 둬야 한다. 미국에는 아직 지어야 할 것이 많다. 집도 짓고, 초음속 비행기와 고속철도도 지어야 한다. 민주당은 교사 노조를 따라 교육 분야의 역동성도 강조해야 한다. 우르르 몰려가는 쪽을 따를 것이 아니라 보호주의에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관세를 올렸다가는 그 비용을 미국 소비자들이 부담하게 될 뿐 아니라 경쟁에 노출되지 않는 분야에서 관성과 평범함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혁신을 가로막을 정도로 권한이 커졌던 규제 기관도 제어해야 한다. 공화당이 '대중 대 엘리트'라는 계급 투쟁 수사를 강화한다면, 민주당은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리는 영원한 계급 투쟁의 미래에 갇힌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이동성 높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보다 전통적인 미국인들의 열망을 건드리는 전략이다.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소속 경제학자 마이클 스트레인은 "마가"의 경제관에 대해 설득력 있는 심리적 비판을 내놓은 바 있다. "불만의 경제학은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며 번영의 기반을 부식시킨다. 메시징은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시스템이 고장 났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덜 노력하게 될 것이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면 사람들의 열망은 높아질 것이다. 경제활동에 대한 낙관적인 비전을 제시하면 사람들은 야망을 품고 더 열심히 노력하며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을 택할 것이다. 자연히 사회의 역동성도 커질 것이다." 스트레인은 열망이라는 것이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벽돌이 아니라는 점을 잘 짚어냈다. 열망은 장작을 더 지피거나 물을 뿌려 꺼버릴 수 있는 불꽃에 가깝다. 벤처 투자자인 마크 안드리센도 몇 해 전 같은 이야기를 했다. "문제는 욕망이다.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을 원해야 한다. 문제는 관성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막으려는 것보다 어떤 것을 원하는 마음이 더 강해야 한다." 밀워키에서는 애국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의 애국심이 아니라 향수의 애국심이었다. 다음 달 시카고에서 모일 민주당원들이 공략해야 할 돌파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원문 : What Democrats Need to Do Now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 매튜 코티네티는 "미국 보수 세력의 100년 전쟁(The Right: The Hundred-Year War for American Conservatism.)"을 쓴 작가다. 도널드 트럼프가 워싱턴의 기득권을 끔찍이 싫어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정치 제도와 언론, 참모들, 완곡한 수사를 비롯한 온갖 불문율에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반대하며, 할 수 있다면 이를 뒤엎으려 한다. 오하이오주 연방 상원의원 J.D.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낙점한 것도 기존의 정치적 관행을 보란 듯이 깨부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결정이다. 지금까지 부통령 후보를 고르는 기준은 분명했다. 당의 단합을 도모하거나 핵심적인 경합주에서 득표력이 있는 후보가 선택됐다. 아니면 워싱턴 정치 경험이 부족한 대통령 후보에게 정계의 길잡이 역할을 해줄 사람이 뽑히곤 했다. 밴스 의원은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트럼프 또한 전통적인 후보와 거리가 먼 사람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했을 때 그는 아마도 2024년 너머를 바라봤을 거다. 즉, 이번 결정은 2028년과 그 이후까지 공화당의 미래를 염두에 둔 선택으로 보인다. 지난번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를 뽑을 때 트럼프의 처지는 지금과 달랐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에게 맞서 트럼프는 엄연한 도전자였다. 대부분 클린턴의 승리를 점치는 선거에 도전장을 내민 트럼프를 향해 공화당 내에서도 미덥잖은 시선이 적지 않았다. 특히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이 그랬다. 트럼프는 결국, 마이크 펜스를 선택했다.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들의 두터운 지지와 신뢰를 받던 펜스는 12년간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으며, 중서부 인디애나주의 주지사였다. 트럼프가 과연 자신들의 가치를 대변할지 의심하던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우려를 잠재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트럼프가 워싱턴의 권력자들을 상대하는 데도 펜스가 도움이 될 거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트럼프와 펜스의 동맹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다가 2021년 1월 6일에 끝내 무너졌다. 며칠 전 암살 시도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트럼프는 헌법이 허락한 대통령 임기에 한 번 더 도전하면서 자신과 함께 백악관에서 일할 부통령 후보의 자질로 전임 대통령들은 그다지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들을 우선시하고 있다. 바로 자신을 향한 절대적인 충성과 정치적인 유산이다. 트럼프는 자신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던 밴스가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다 바치겠다고 변한 진화 과정을 높이 사는 것 같다. 밴스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트럼프 개인과 트럼프주의를 찬양하고 칭송한다. 그가 부통령이 되면 공화당 내에서 이민에 우호적이거나 국제 질서에서 미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부통령실을 통해 의견을 내는 길은 아예 막힐 것이다. 그는 2020년 선거에서 패한 뒤 트럼프가 한 일련의 행동을 한결같이 옹호했으며, 트럼프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 트럼프를 비판하는 자는 가차 없이 자신의 주적으로 삼고 싸워왔다. 밴스의 약력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필했을 거다. 가난한 집안 출신인 밴스는 9.11 테러가 발생한 뒤 해병대에 입대해 이라크에 다녀온 참전 군인이다. 매우 젊은 나이에 베스트셀러가 된 회고록을 썼고,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노동자계급 출신인 밴스는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에게 가장 중요한 러스트벨트 지역의 잊힌 유권자들의 표심을 붙드는 데 아주 중요하다. 밴스의 젊은 나이도 무시 못 할 장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은 젊은 남성 유권자 사이에서 선전하고 있는데, 밴스는 이들에게서 더 많은 지지를 끌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밴스는 앞날이 창창한 정치인이다. 1952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리처드 닉슨을 선택했을 때 닉슨도 39세였다. 이후 닉슨은 22년간 미국 정치의 핵심에서 이름을 날렸다. 지금 공화당은 트럼프의 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트럼프로서는 부통령 후보를 통해 당을 봉합하거나 하나로 묶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는 것은 곧 트럼프가 공화당 내의 자유무역 신봉자, 정부 재정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 또 외교 정책에서 매파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끝내 외면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11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들의 표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의 판단이 옳을 수 있다. 밴스 후보는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에 비교적 최근 뛰어든 축에 든다. 그러나 그는 올해 초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맞섰던 니키 헤일리 전 UN 대사가 주장한 외교, 경제 정책을 단호히 배격한다. 밴스를 지명한 것은 트럼프가 공화당의 전통적인 세력들을 한 번 더 몰아내고, 당을 더욱 자기 손아귀에 넣는 계기로 삼기 위한 조치일 수 있다. 즉, 트럼프는 예비선거에서 자신에게 맞선 이들을 가차 없이 비판했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경선에서 물러나라 종용했으며, 아예 당의 주요 정강을 자신의 성격과 선호도,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모든 걸 거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간결하고 애매모호하게 바꿔버렸다. 트럼프의 공화당은 레이건 대통령 때의 유산을 대부분 지워냈다. 즉 종교적 보수주의, 자유로운 시장 기반 자본주의, 국제무대에서는 강경한 매파 정책이 공화당 정책의 근간이었는데, 이제는 다르다. 정책의 기조가 달라졌다고, 당을 지지해 줄 새로운 유권자층을 발굴하는 데 실패한 건 아니다. 공화당은 더 많은 소수 집단 유권자를 포용하며 외연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사실 밴스 의원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밴스의 기반이 있는 오하이오주는 이미 공화당을 지지하는 레드 스테이트가 된 지 꽤 됐다. 지난 2016년, 2020년 오하이오주 선거에서 트럼프는 모두 8%P 가까운 격차로 넉넉히 이겼다. 공화당 전당대회 시작 전날 발표된 CBS와 유고브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는 이미 모든 경합주에서 바이든보다 앞서 있다. 여기엔 러스트벨트를 아우르는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가 모두 포함된다. 게다가 밴스 의원은 워싱턴 정가에선 엄연한 신예다. 다음 달 40살이 되는 그는 당선된다면 미국 역사상 최연소 부통령이 된다. (선출직) 정치 경력도 역대 부통령 가운데 가장 짧다. 지난 2022년 상원의원에 처음 당선돼 2023년 1월부터 2년째 상원의원으로 일한 게 밴스의 경력 전부다. 나이도 젊고 정치 경력도 많지 않다는 점에서 밴스는 선거에서 승리해 부통령이 되면 최근의 어떤 부통령보다도 현재 부통령인 카말라 해리스와 닮은 점이 많을 것이다. 트럼프는 밴스의 현명한 멘토가 될 것이고, 밴스는 트럼프의 견습생을 자처할 것이다. 트럼프는 보통 인내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다. 장기적인 계획을 짜는 데도 능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올해 법정에서 잇따라 기소된 데 이어 자신의 목숨을 노린 암살 시도까지 일어나고 나자, 트럼프가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는 자꾸 늘어났다. 게다가 비단 이번 선거에서 이기는 것뿐 아니라, 더 오래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놓아야 할 필요도 생겼다. 밴스를 지명한 건 트럼프가 공화당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밴스가 부통령이 되면, 그는 자동으로 2028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된다. (트럼프는 더는 대통령을 할 수 없으므로) 누구나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경선이 되겠지만, 트럼프는 그때도 공화당이 지금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처럼 국수주의, 포퓰리즘에 미국 우선주의를 고수하기를 바라고 있다.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J.D. 밴스는 트럼프주의를 대표하는 마가(MAGA) 세계관을 가장 조리 있게, 분명히 옹호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금융 업계와 기업의 독점, 자유무역, 국제적 개입주의, 불법 이민을 쉼 없이 비판한다. 반대로 노동조합이나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 정책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민주, 매사추세츠)과 같은 진보의 아이콘들과 함께 월가를 비판하고 견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장의 반독점 정책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는 또 올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대만에 대한 군사 지원을 골자로 하는 국가안보 추경예산에 반대표를 던졌다. 지난주 워싱턴 D.C.에서 열린 전국 보수연합 회의에 참석했을 때 밴스 의원은 스타 대접을 받았다. 그는 무겁지 않게, 동시에 아주 편한 어조로 연설했다.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해외 공약을 제안하는 것을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는 엘브릿지 콜비나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을 비판하는 오렌 카스 같은 사람의 이름을 밴스는 일일이 열거했다. 밴스 의원은 공화당 내에서 국가주의 포퓰리즘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점을 극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을 둘러싼 논쟁과 관련해 "비록 우리가 토론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당내에서 조금씩 세를 넓혀가고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부통령이 되면 백악관은 외교 무대에서 미국 정부가 목소리를 최대한 덜 내야 한다는 사람, 외교 정책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 국내에서 방위산업 기반 제조업을 다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대적인 힘을 실어줄 것이다. 밴스 의원의 말 가운데 가장 강경한 발언은 주로 이민 문제에서 나온다. 그는 지난주 보수연합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유권자들은 계속해서 이민의 문을 닫으라고 투표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이민의 문을 넓히고 활짝 여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 현시점 미국 민주주의를 향한 가장 큰 위협이다. 이민은 미국 사회를 더 가난하게 만들었고, 치안을 악화시켰으며, 발전과 번영을 가로막았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정책 철학의 근간은 "미국의 지도자라면 미국인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벌써 10년 가까이 전 세계 정치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이번에 새로운 견습생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건 트럼프의 방식과 정책, 인종 불문하고 대학 졸업장이 없는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는 매력이 앞으로 수십 년간 공화당을 지배할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원문 : Why Trump Picked J.D. Vance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조지 클루니는 배우이자, 영화감독 겸 제작자다. 나는 한평생 민주당 지지자이고, 그 점에 있어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 나는 민주당이 대표하는 가치와 의미하는 바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민주주의 참여의 일환으로, 그리고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차원에서 나는 민주당 역사에 남을 만한 대규모 모금 활동을 벌였다. 2012년에는 버락 오바마, 2016년에는 힐러리 클린턴, 2020년에는 조 바이든을 지지했다. 지난달 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민주당 후보 한 사람을 위한 모금 행사로는 가장 큰 규모의 행사를 공동 주최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내가 얼마나 민주주의 절차를 신뢰하는지, 더불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나는 조 바이든을 사랑한다. 상원의원으로서, 부통령,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조 바이든을 사랑한다. 나는 그를 친구라고 여기며 신뢰하고 있다. 그의 인성과 도덕성을 확신한다. 지난 4년간 그는 여러 차례의 전투를 마주했고, 승리했다. 하지만 그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 하나 있다면, 바로 시간과의 싸움일 것이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런 말을 하는 심정이 참담하지만, 3주 전 모금 행사에서 만난 바이든은 2010년의 '거물' 조 바이든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2020년의 조 바이든과도 달랐다. 그는 이번 토론에서 우리 모두가 본 바로 그 사람이었다. 토론이 열렸던 날 그가 피곤한 상태였을까? 사실이다. 감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나?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TV 토론을 지켜본) 5,100만 미국인에게 방금 당신이 본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억지 주장을 이만 멈춰야 한다. 우리는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모든 위험 신호를 무시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조지 스테파노풀러스의 인터뷰는 지난주에 본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민주당 당원들은 우리가 존경하는 대통령이 에어포스 원에서 내릴 때,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인터뷰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긴장해서 숨도 못 쉬거나 TV 음량을 낮추고 애써 외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지적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그렇지 않다. 이런 지적은 오로지 나이에 관한 것이지 그 이상의 문제가 아니다.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조 바이든 카드로는 다가올 11월에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 나아가 하원도, 상원도 모두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나만의 의견이 아니다. 내가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상원의원, 하원의원, 주지사 모두 생각이 같았다. 공개적으로는 다른 의견을 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속내를 털어놓았다. 우리는 공화당이 당의 모든 권력은 물론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W. H. 부시로 대표되던 당의 개성을 자신의 대통령직에 집착하는 한 사람에게 넘겨버렸다는 지적을 종종 하지만, 댐이 무너지기를 지켜보며 대책 없이 기다리는 건 지금 민주당 의원들도 다르지 않다. 문제는 댐이 이미 붕괴했다는 점이다. 모래에 머리를 박은 채 11월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진실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상황을 바꿀 새로운 정보가 생겼는데도 민주당 당원들이 이미 표로 의견을 냈고, 그것으로 대선 후보는 이미 결정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백번 양보해도 솔직하지 못한 태도다. 민주당 당원들은 트럼프가 34개 중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니, 공화당이 후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것 역시 상황을 바꿀 만한 새로운 정보다. 척 슈머, 하킴 제프리스, 낸시 펠로시 등 민주당 지도부 인사들과 상원, 하원의원, 그리고 11월 선거에서 패배를 앞둔 모든 후보자가 나서 대통령에게 자진 사퇴를 요구해야 한다. 후보를 바꾸면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식의 무서운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바이든과 해리스 후보가 모금한 돈은 새로운 대선 후보와 다른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을 위해 쓰일 가능성이 크다. 후보를 바꾸면 오하이오주 투표용지에서 새 후보의 이름이 빠진다는 우려도 사실과 다르다. 민주당의 인재풀은 매우 두텁다. 우리가 뽑으려는 것은 대통령일 뿐, 특정 인물을 종교적으로 숭배하거나 한 사람 때문에 휘둘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경쟁력 있는 후보들이 이내 도전장을 내밀고 앞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도널드 트럼프의 복수전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우려스러운 현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이야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웨스 무어와 카말라 해리스, 그레첸 윗머와 개빈 뉴섬, 앤디 베시어, J. B. 프리츠커 등 잠재적 후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남은 시간이 길지 않으니, 후보자들이 서로 공격하지 말고 앞으로 미국의 도약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집중하기로 약속하자. 그러면 다음 달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앞날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지저분한 과정이 될 거라고? 당연한 얘기다. 민주주의는 원래 그렇다. 하지만 그 과정이 우리 당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이고, 6월 TV 토론 이전부터 관심을 잃었던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선거일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건 우리에게 위험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잘된 일이다. 지나치게 길고 돈이 많이 드는 선거 시즌에 흔히 따르는 상대방에 대한 과도한 비방이나 네거티브 선거 없이 미래에 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극우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의 야심을 내려놓고 한발 물러섰던 200여 명의 프랑스 정치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민주주의에 중요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조 바이든은 2020년에 민주주의를 구한 영웅이다. 2024년에도 같은 역할을 해야만 한다. 원문 : George Clooney: I Love Joe Biden. But We Need a New Nominee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폴 크루그먼은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당신이 미국에서 국내 소비자를 위한 정원용 플라스틱 장식품 같은 상품을 만드는 작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장이라고 상상해 보자. (실제로 삼촌 중에 한 분이 이런 일을 하셨던 적이 있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정치인들이 핑크색 플라밍고나 정원을 꾸밀 때 쓰는 요정 등의 제품에 25% 이상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갑작스레 결정한다. 세금이 부과되기 시작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세금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떠넘길 것인가, 아니면 물건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인상분을 스스로 감당할 것인가? 물론 당신은 정치인들에게 처음부터 세금을 올리면 결국에 이를 감당하는 건 소비자의 몫이 될 거라고 어떻게든 알리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세금이 부과되면 제조업자의 비용이 증가하게 되고, 가격을 올리고 싶지 않더라도 기존의 마진이 세금 인상분의 타격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제 이 이야기를 조금 비틀어보자. 당신은 미국의 소기업 운영자가 아니라, 미국에 물건을 파는 중국 기업이다. 그리고 문제의 세금을 중국산 수입품에 매겨지는 관세로 바꿔 생각해 보자. 결론이 다를 이유가 있는가? 통상 우리는 결국, 관세의 부담을 지는 건 미국 소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관세를 사랑하는 도널드 트럼프는 관세를 내는 것이 외국 기업이라고 주장한다. 조지 오웰의 “1984”를 매뉴얼 삼아 리더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진실이라고 여기는 듯한 공화당 주요 인사들은 관세가, 아예 한발 더 나아가 오직 관세만이 소비자에게 타격을 주지 않고 기업에 매길 수 있는 세금이라고 주장하는 중이다. 최근 공화당 전국위원회 대변인은 “관세가 미국 소비자에게 물리는 세금이라는 인식은 아웃소싱을 하는 기업,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밀고 있는 거짓말”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관세를 부담하게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을까? 조금 전 나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들어 독자들을 설득해 보았다. 대다수 경제학자도 관세가 결국은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여긴다는 사실도 더불어 짚고 넘어가겠다. 하지만 가상의 시나리오를 아무리 상상해도 좀처럼 설득되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또 경제학자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좀 더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해야만 할까? 그것 역시 도널드 트럼프 덕분에 가능하다. 트럼프는 집권 중인 지난 2018년과 2019년에 중국에 높은 관세를 물렸다. 이는 관세의 영향을 받은 제품의 가격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볼 기회를 제공했다. 경제학자들이 자연 실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트럼프 표 관세의 효과에 대해 조심스러운 통계학적 분석이 여러 차례 이루어진 바 있으나, 빠르게 요약해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음은 현 국무부 수석 경제학자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채드 바운이 제공한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 관세, 그리고 미국산 제품에 대한 중국 관세의 최근 추이다. 2018-19년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평균 관세는 3%에서 약 21%로, 무려 18%P나 올랐다. 이것이 미국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면 중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물건 가격을 관세에 해당하는 만큼 내렸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국산 수입품의 평균 가격은 약 2%가량 떨어졌을 뿐이고, 이 또한 관세의 영향이 아니라 그저 중국 제품 수입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온 경향의 연장선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니까 관세가 18%P 오르는 동안 중국산 제품의 가격은 2% 떨어진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이 관세 인상분의 대부분을 떠안은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좋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이 결론의 맹점 한 가지를 언급하겠다. 미국은 큰 나라인 만큼 다양한 제품군에 관세를 물릴 경우 상대 국가가 미국 수출품에 대한 관세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무역 조건, 즉 수입품 대비 수출품 가격은 개선될 수 있다. (최적관세이론이라는 직관적인 이해에 그다지 도움 되지 않는 이름으로 불리는 현상이다.) 실제로 미국이 수입을 줄이면 달러의 가치가 증가하고, 따라서 우리가 수입하는 제품의 달러 가격은 내려가게 된다. 이 효과는 높은 관세를 무는 국가에서 들어오는 제품의 가격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는 결국에 (예를 들어) 독일에서 들여오는 제품의 가격도 낮추게 된다. 위의 표에는 드러나지 않는 현상이다. 그러나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면 다른 국가들도 일부는 보복 차원에서, 또는 대항 차원에서 관세를 높일 테니 의미 없는 이야기다. 결국은 소비자가 관세를 부담하게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소비자가 관세를 부담하게 될까? 높은 관세의 형식으로 세금을 높이는 동시에 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트럼프의 경제 정책이었음을 기억하자. 심지어는 소득세를 관세로 대체하자는 아이디어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있는 사람이 트럼프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이야기지만, 실제로 소득세 세수가 줄어든 만큼을 관세로 거둬들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상상해 볼 수는 있다. 피터슨 연구소의 킴벌리 클로징과 모리스 옵스트펠드에 따르면 그와 같은 정책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소득별로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관세 극대화의 결과는 미국 인구 80%에게, 특히 하위 60%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반면 상위 1%는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누리게 된다. 관세가 이처럼 역진세의 효과를 띠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저소득층은 부유층보다 소득 중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다. 생필품만 사는 데도 소득의 상당 부분을 쓴다는 뜻이다. 자연히 판매세 증가와 같은 세금 정책에 저소득층은 더 큰 타격을 받는다. 둘째, 소득세는 부유층이 주로 내고 있기 때문에 (인구의 절반가량은 급여세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세금을 내지만 소득세는 전혀 내지 않는다) 소득세 인하의 혜택은 원래 소득세를 내던 주로 최상위층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높은 확률로 부과하게 될 높은 관세는 누가 부담하게 되나? 중국이나 다른 외국 기업이 아니다. 모든 근거가 가리키는 것은 자명하다.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질 사람들은 미국 시민,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자와 빈곤층이 될 것이다. 원문 : Who Pays Tariffs? And How Do We Know?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로렌스 트라이브는 하버드대학교에서 50년간 헌법을 가르쳤다. 지난 1일 미국 대법원은 법치를 내팽개쳤다. 11월 대선 전에 미국 시민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를 사실상 알지 못하게 가로막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 미국(Trump v. United States) 판결에 관해 대법원이 심리한 질문은 간단했다. 앞서 잭 스미스 특별검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저지른 범죄 혐의로 트럼프를 기소했는데, 대통령이 재임 중에 한 일에는 면책특권을 인정해 기소를 무효로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더 자명하다. "아니오"여야 한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가로막으려 범죄를 저지른다면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지금껏 그 어떤 재판부도 대통령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형사 기소를 면제받을 수 있다고 판결한 적이 없다. 자명한 답을 따라 재판을 순리대로 진행하는 대신 판사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끝없는 재판 지연이라는 귀한 선물을 안겨줬다. 10주 가까이 심리를 질질 끈 재판부는 사건을 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고, 그마저 바로 심리에 들어가는 대신 다시 몇 차례고 절차상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예비 결정을 먼저 거치게 했다. 결국, 법원은 미국 시민들이 11월 선거를 앞두고 2021년 1월 6일 의사당 테러에 트럼프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 알 수 있으리란 희망을 꺾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가 타당하다고 기소를 인정한 건 바로 미국 시민들로 꾸려진 대배심(grand jury)이었다. 그런데 미국 유권자들은 동료 시민들이 혐의의 유죄 여부를 다퉈봐야 한다고 결정한 사안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 채 투표 부스에 들어서게 됐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그저 보수적인 판사가 다수를 이룬 법원의 잘못된 판결 가운데 하나로 보일 수 있다. 얼핏 보수 우위의 법원이 다시 균형을 되찾으면 문제가 자연히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번 판결은 개헌 또는 새로운 정부 조직을 꾸려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중대한 문제의 시초가 될 수도 있다. 대법원은 다수 의견을 통해 대통령에게 완전한 면책특권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실질적으로 앞으로 취임할 모든 대통령에게 상당한 수준의 면책특권을 줄 것이며, 당장 트럼프만 해도 계속 재판을 미룸으로써 사실상 면죄부를 받게 됐다. 트럼프도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재판에 필요한 절차를 계속해서 미뤘다. 결국, 제대로 된 재판은 일어나지 않았고, 사법 제도 전반의 허점을 역이용한 트럼프는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을 벌었다. 트럼프는 그렇게 번 시간을 이용해 세간의 이목을 분산시키고, 판결을 미뤘으며, 자기한테 유리한 주장을 끊임없이 퍼뜨려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를 무효로 만들 방법을 찾았다. 그가 기어이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그는 자신이 임명한 신임 법무장관에게 잭 스미스 특검을 당장 해고하고, 자신을 향한 모든 기소를 모두 백지화하라고 명령할 것이다. 당신이 트럼프가 재판에서 어떤 판결을 받을 거로 생각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제도를 악용해 시간을 끌어 면죄부를 얻어내는 건 정의가 지연된 것이고, 결국 정의가 부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어쩌다 우리의 사법 제도가 트럼프의 끈질긴 지연 전략에 휘말려 무너지게 된 걸까? 그리고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왜 법치에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걸까? 미국 헌법을 제정한 사람들은 대통령을 포함한 그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보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법무장관(검찰총장)과 특별검사를 포함한 정부의 검찰 조직이 대통령에게 의존하도록 구조를 짰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구조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1988년 대법원이 심리한 모리슨 대 올슨 사건에서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행정부가 특별검사를 단독으로 임명하고 재량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썼다. 이는 대법원 판례로 효력을 지니게 됐고, 결국 오늘날 특별검사는 과거 독립 검사가 누리던 자율성마저 잃게 됐다. 그 결과 잭 스미스 특검은 극도로 부패한 고위층 피의자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게 됐다. 법무장관의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메릭 갈랜드 법무장관이 이번 사건에 특검을 임명하기까지 무려 20개월이 걸렸다는 건 갈랜드 장관이 인사권자인 바이든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기 주저했다는 방증이다.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여러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집권 초기에 전임 대통령을 기소하고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했다고 한다. 정치적인 역풍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만약 법무장관이 대선 정국의 정치적인 압력에 구애받지 않고, 법리적인 사실관계만 따져 판단할 수 있었다면 당연히 곧바로 사건을 수사해 기소하도록 지시했을 것이고, 미국 유권자들은 선거 전에 유죄인지 무죄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논리에 대부분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대통령과 법무부 사이의 구조적 관계 때문에 발생하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까지 드러내고 말았다. 대법원 구두 변론에서 법무부를 대변한 유능한 변호사 마이클 드리벤은 법무장관의 인사권자가 대통령이므로, 대통령은 사실상 자신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려 하든 그에 대한 면죄부를 미리 받아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즉, 대통령은 임기 중에 자신이 하는 일은 뭐든지 정무적 판단에 따른 합법적인 일이라는 공식적인 의견을 제시해 줄 법무장관(이자 검찰총장)을 임명하기만 하면 된다. 설사 그 일이 자신이 패배한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쿠데타를 획책하는 일이라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행위와 판단에 누군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적법 절차에 관해 확립된 원칙에 따라 변호인단의 철통같은 변호를 받게 될 것이다. 사실상 모든 행위에 면책특권이 인정되는 거나 다름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게 되면 그는 첫 번째 임기 때보다 훨씬 더 큰 면책특권의 비호를 받게 될 것이다. 자신이 임명한 법무장관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면죄부를 줄 것이며, 그래서 대통령은 어떤 범죄든 저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법무부를 압박해 정적을 향한 광범위한 기소를 종용할 수도 있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오는 11월 선거에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방안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우리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는 방안을 더 늦기 전에 논의해야 한다. 트럼프주의가 일찍 무너지든 더 오래 가든 상관없다. 우리는 지금껏 미국이 "더 완벽한 연합"을 향해 전진한 건 오직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이를 기본적인 법에 어떻게든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본 때였다는 점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물론 남북전쟁과 같은 역사적 격변이 지난 뒤에 헌법을 고치기도 하지만, 특히 대통령제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충격적인 사건이 계기가 돼 개헌(미국의 경우 수정헌법 제정)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책임지지 않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심대한 문제를 고치기 위해 우리는 기존 입법, 사법, 행정에 속하지 않는 별도의 연방 정부 기관을 과감히 신설해야 한다. 새 기관은 연방 차원에서 형법을 위반한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권한을 부여받아 행사한다. 헌법을 고치고 새로 쓰는 일은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다.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이 개헌에 관여할 여지가 많지 않지만, 지금 미국의 헌법을 생각하면 개헌은 우리가 트럼프주의를 극복하고 난 뒤에만 가능한 일이다. 지금이든 나중이든 트럼프를 추종하는 세력을 단호히 배격하고 나면 그제야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정치적 에너지가 모여 지금의 헌법에 담긴 구조적인 모순이자 위험 요소를 게저하는 데 필요한 의회의 절대다수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이 대통령(행정부)으로부터 독립된 선례는 없지 않다. 다른 나라의 사례도 있지만, 굳이 멀리 갈 것 없이 미국 주 정부의 제도만 보더라도, 무려 40개 넘는 주에서 주지사가 주 법무장관(이자 검찰총장)을 독단적으로 해임할 수 없다. 이 가운데 많은 주에서 법무장관은 유권자가 직접 뽑는다. 마찬가지로 제4부의 수장이 될 연방 법무장관도 유권자가 직접 뽑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검찰총장의 임명권은 지금처럼 대통령에게 두되, 정당한 사유 없이 해임할 수 없게 안전장치를 강화해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위험은 어디에나 있다. 끝없이 다른 시민을 지배하려 하는 개인이 절대로 장악하거나 망칠 수 없는 완벽한 정부 제도란 없다. 내가 상상하는 제도에서도 만약 정의 대신 권력욕에 눈이 먼 개인이 검찰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면 이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럼 이런 사람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법원? 의회? 시민? 모든 것이 다 정답이 될 수 있다. 지난 1일 대법원의 반민주적인 판결로 인해 미국 정치 제도, 사법 제도의 권력 남용 문제는 당분간 계속해서 더 증폭될 것이다. 이때 행정부보다는 권한이 약하며, 사법부로부터는 법적 견제를 받고, 입법부에는 예산을 승인받아야 하는 식으로 견제와 균형 원칙이 적용되는 제4부를 창설한다면 우리는 권력 남용에 맞서 우리의 제도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 : The Trump Decision Reveals Deep Rot in the System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선 후보 토론을 리스본 호텔 방에서 혼자 보던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 생전 미국 대통령 선거 정국에서 이토록 마음 아픈 장면을 본 기억이 없다. 좋은 사람이자 훌륭한 대통령인 조 바이든은 두 번째 임기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 한다. 해로운 인물이자 그릇이 작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는 지금껏 배운 것이 없고 잊은 것도 없다. 늘 그랬던 것처럼 거짓말만 쏟아내고 있으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느라 여념이 없다. 21세기 미국을 이끌어갈 대통령감이라기엔 한참 부족하다. 바이든의 가족과 대선 참모들은 서둘러 회의를 소집하고 대통령과 몹시 어려운 대화를 나눠야 한다. 애정을 기반으로 한 명확하고도 단호한 대화가 필요하다. 11월에 트럼프를 꺾을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먼저 나서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 민주당 전당대회 전에 자신이 예비선거에서 확보한 대의원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양심이 한 톨이라도 남아있다면 공화당 지도부도 같은 결정을 해야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이 민주당이 먼저 나서서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타운홀, 토론, 기부자 모임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새로운 대선 후보를 세울 절차를 밟는다고 발표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8월 19일 시카고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시작될 때 상황은 매우 혼란스럽고 지저분해질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라는 분명하고 커다란 위협이 임박한 만큼 민주당 전국위원회 대의원들도 서둘러 새로운 후보를 세우고 집결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경쟁에 뛰어들기를 원한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열린 절차를 밟아 당뿐 아니라 미국 전체를 한데 뭉치게 할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을 자격이 있다. 지난 목요일 저녁 애틀랜타에서 토론을 펼친 두 남성 외에 다른 선택지를 가질 자격이 있다. 현재 세계가 처한 상황을 확실히 알고, 미국이 계속해서 세계를 이끌어가기 위해 도덕적, 경제적, 외교적으로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줄 후보가 절실하다. 작금의 상황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특수한 상황이다. 인류가 경험한 적 없는 기술적 변화와 기후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가 일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발명하고, 협력하고, 전쟁하는 방식, 범죄를 저지르는 방법과 동시에 범죄를 소탕할 방법 등 말 그대로 모든 이의 삶에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인공지능 혁명의 서막이 오르는 중이다. 내가 놓쳤는지는 몰라도 대선 토론에서 "인공 지능"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이는 아무도 없었다. 미국이 최고가 이끄는 최고의 나라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인류에게 위험과 기회가 동시에 찾아온 지금일 것이다. 젊은 바이든이라면 이 순간에 필요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겠지만, 그도 흐르는 시간을 이기지는 못했다. 목요일 토론이 드러낸 괴롭지만 직면해야 할 현실이다. 나는 9.11 테러 이후 당시 상원외교위원장이었던 바이든과 함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방문한 이후 쭉 그와 친구로 지냈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향해 이런 말을 해야 하는 내 마음도 몹시 비통하다. 하지만 나이 때문에 연임이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금 물러난다면 대통령으로서 바이든의 첫 임기이자 유일한 임기는 우리 역사상 그나마 나은 대통령을 가졌던 시기로 남을 것이다. 트럼프의 연임을 막아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바이든은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 외에도 기후변화와 기술 혁명의 시대에 필수적인 주요 법안을 통과시킨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바이든을 일단 믿어보자는 쪽이었다. 1대 1로 만났을 때는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을 여전히 갖춘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는 아니다. 가족과 참모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바이든 캠프는 여러 날 동안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모여 이 중요한 토론을 준비해 왔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나온 최선의 결과가 목요일에 보여준 바이든의 모습이라면, 그는 이번 임기를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자신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 바이든이 후보에서 사퇴한다면 미국인들은 트럼프가 절대로 하지 않을 일, 즉 자신보다 국가를 앞세운 결단을 해낸 바이든을 매일 칭송할 것이다. 반면 바이든이 대선 레이스에서 물러나지 않고 오는 11월에 트럼프에게 패배해 버린다면, 바이든과 그의 가족, 참모진과 민주당 구성원들은 모두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꼴을 당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미국도, 전 세계도 이보다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자격이 있다. 원문 : Joe Biden Is a Good Man and a Good President. He Must Bow Out of the Race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마이클 워터스는 책 "또 다른 올림피언: 파시즘, 퀴어, 그리고 현대 스포츠의 탄생"을 썼다. 1936년 5월 어느 날, 영국 플리머스에 있는 신문사 웨스턴 모닝 뉴스(The Western Morning News) 소속 한 기자가 마크 웨스턴의 집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웨스턴은 포환던지기 선수 생활을 마치고 마사지 치료사로서 은퇴 후의 삶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기자를 거실로 안내한 웨스턴은 기자에게 최근 의사의 서명을 받은 인증서 한 장을 건넸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문서는 마크 웨스턴 씨(Mr. Mark Weston)가 지금껏 여성으로 길러지고 자랐지만, 실은 남성이며, 앞으로도 남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1905년 플리머스에서 태어난 웨스턴은 생애 대부분 여자로 분류됐다. 운동선수로 보낸 경력 대부분을 여성 리그에 참가해 여성과 경쟁하며 보냈다. 그러나 1936년 초 웨스턴은 남은 생을 남자로 살아가기 위해 의사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체어링 크로스 병원에서 4월과 5월 두 차례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웨스턴은 기자에게 이에 관해 "마침내 진짜 내 모습을 찾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신문은 이날 인터뷰 내용을 추려 5월 28일 "데본 출신의 여자 운동선수, 남자가 되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오늘날 성별을 바꾸거나 두 성을 오락가락하는 운동선수를 둘러싼 논쟁은 매번 격렬한 토론을 낳지만, 당시의 기사와 후속 보도들은 웨스턴 씨에게 대체로 공감하는 논조였다. 신문은 웨스턴 씨가 받은 성전환 수술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설명하는 데 지면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나 끝내 이야기의 다른 측면도 관심을 받게 됐고, 성전환 수술을 받은 여성 운동선수 웨스턴의 이야기는 두 명의 저명한 스포츠 관계자의 귀에 들어가게 됐다. 둘은 각각 체육협회에 선수들의 의료 문제에 관해 자문하는 스포츠 전문의와 오늘날 세계육상연맹의 전신인 국제아마추어육상협회의 회원이었다. 국제아마추어육상협회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현대적인 의미의 성별 검사 정책의 초안을 마련했다. 근현대 스포츠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미 은퇴한 마크 웨스턴은 현역 선수로 복귀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여성 종목에 참여할 수 있는지 검사를 받을 일도 없었다. 그러나 협회 관계자들은 누구나 웨스턴처럼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있다면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 놓은 스포츠 종목 분류 체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때부터 국제 스포츠 협회나 단체들은 최고 수준의 대회에서는 성전환 수술을 받은 선수나 다른 성으로 산 적이 있던 운동선수의 출전을 실질적으로 제한하거나 아예 금지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아예 해당 종목에서 선수를 퇴출시키기도 했다. 다만 "여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금지나 퇴출 사유가 다분히 주관적이라서 문제였다. 웨스턴 씨를 둘러싼 역사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오늘날 스포츠를 지배하고 있는 성별 검사와 감시 체계 없이도 얼마든지 현대 스포츠가 발전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 아쉬웠다. 물론 여전히 우리에게 기회는 있다. 즉, 스포츠에서 남성과 여성이 완벽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운동선수의 인간성과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둘 수 있다는 말이다. 성별 검사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공정성을 내세운다. 즉, 여성끼리 경쟁해야 하는 종목에서 생물학적 이점을 몰래 숨기고 경쟁하는 건 반칙이다. 반칙을 방조한다면 이는 공정하지 않은 일이므로, 성별 검사 정책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들이 말하는 공정성을 위협하는 반칙 세력들은 꽤 다양하다. 성전환 수술을 받고 난 뒤에도 대부분 주요 스포츠에 참여할 수 없는 트랜스젠더 여성도 있고, 아무런 의학적 처치를 받지 않은 시스젠더 여성이나 간성(intersex) 여성 중에도 원래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보통 여성보다 높아서 현재 성별 검사 기준에 따르면 여성이 아닌 선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여성들이 완력을 비롯한 여러 신체적 수치에서 다른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거의 없다. 성별 검사를 옹호하는 이들의 또 다른 문제는 인체의 자연스러운 차이마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의 성별을 단 두 가지로 완벽히 분류할 수 있는 법은 없다. 그런데도 스포츠 협회는 그 불가능한 일에 쉼 없이 도전해 왔고, 지금 이 순간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운동선수가 여성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요즘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옷을 벗고 나체로 생식기를 확인받던 야만적인 시절도 있었다. 이어 염색체 검사, 호르몬 검사를 통해 여성 스포츠 종목에 참여할 수 있는 선수를 가려냈다. 그러나 완벽한 기준은 없었다. 매번 스포츠 협회는 여성성에 관해 매우 주관적인 정의를 내려놓고,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 선수는 여성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밀어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리아 토마스(Lia Thomas) 선수다. 토마스는 세계수영연맹 규정에 따라 올림픽 선발전에도 나서지 못한 트랜스젠더 여성 수영 선수다. 수영 종목의 최상위 스포츠 협회인 세계수영연맹은 연맹이 주관하는 대회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의 참여를 금지하고 있다. 세계육상연맹도 비슷한 결정을 여러 번 내렸다. 케냐의 달리기 선수 막시밀라 이말리(Maximila Imali)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는 이유로 대회 출전이 금지됐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캐스터 세메냐(Caster Semenya)나 부룬디의 프란시네 니욘사바(Francine Niyonsaba) 선수도 여성들이 경쟁하는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올여름 파리 올림픽에서는 과거보다 어떤 의미에선 더욱 강화된 성별 검사가 시행될 예정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대회 차원에서 전면적인 검사 규정을 일괄 적용하는 대신 올림픽에 참가하는 종목별 협회나 연맹에 성별 검사를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발표한 성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그간 줄곧 올림픽 스포츠에서의 "공정함, 포용, 차별 금지"를 기치로 내걸고, 특히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기는 스포츠를 지향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엄격한 성별 검사를 시행하려고 준비 중인 종목별 협회의 움직임을 보면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구호는 공허하게 들린다. 그동안 트랜스젠더 선수와 간성 여성 선수의 출전을 엄격히 금지해 온 국제육상연맹의 세바스티안 코 회장은 최근 성별에 따라 대회 참가를 제한하는 연맹의 방침을 재차 천명했다. 이 여성 선수들이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남성 선수와 경쟁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승산이 없는 싸움이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말수도 적은 편이던 마크 웨스턴 씨는 독특한 이력으로 유명해졌다. 선수 시절 영국 안에서는 포환던지기로 전국에 이름을 알렸지만, 국제 대회만 나가면 성적이 좋지 않았다. 국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뒤 (규모 면에서는 올림픽 못지않은) 세계여자육상대회에 두 번이나 영국 대표로 출전했다. 그러나 1926년, 1930년 두 차례 모두 입상하지 못했다. 웨스턴은 스포츠 외에는 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웨스턴 모닝 뉴스의 기사 한 편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마크 웨스턴은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고, 전 세계 언론이 앞다투어 웨스턴의 이야기를 지면에 실었다. 언론이 웨스턴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인 이유는 또 있었다. 웨스턴 말고도 같은 해에 성전환 수술을 받은 운동선수가 한 명 더 있었기 때문이다. 웨스턴과 마찬가지로 세계여자육상대회에 여자 선수로 참가한 적이 있던 체코의 즈데넥 쿠베크라는 선수가 몇 달 전 공개적으로 자신은 남은 생을 남자로 살고 싶다고 말했던 거다. 독자들은 두 선수 이야기에 열광했다. 사람들은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성별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듯했다. 모두가 이 선수들의 바람에 공감했던 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일할 예정이던 미국 출신의 체육 행정가 에이브리 브룬대지는 마크 웨스턴에 관한 기사를 읽고는 이러다 여자 스포츠 대회에 "자웅동체"가 출전하게 되는 건 아닐지 두려워졌다. 그는 국제올림픽위원장에게 편지를 써서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에 선수들의 건강 상태를 검진하는 것이 좋겠다"며, 모든 여자 선수들의 신체를 검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마크 웨스턴은 육상에서 은퇴했고, 더는 대회에 나설 뜻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브룬대지의 제안을 당시 육상 종목을 관장하던 국제아마추어육상협회에 정식으로 전달했다. 그런데 브룬대지는 이미 국제아마추어육상협회의 주요 회원이기도 했다. 1936년 8월, 협회는 여자 선수들에게 함께 경쟁한 동료 여자 선수 중에 전통적인 성별 관념에 맞지 않아 보이는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의 자격에 대해 항의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다른 선수에 의해 "여자답지 않다"고 지목된 운동선수는 의료 전문가로부터 신체 검사를 받아야 했다. 신체 검사에 어떤 사항이 포함되는지에 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협회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중요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뉴욕데일리 뉴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성별 검사 정책이 "우리 모두가 의심이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신문은 클레오파트라와 트로이의 헬레네가 1930년대를 살았다면 올림픽위원회가 이들에게도 성별 검사를 받게 했을 거라고 풍자했다. 미국의 육상 스타 테드 메레디스는 성별 검사 정책을 더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운동선수더러 베이스와 소프라노 중에 어느 음역대에 더 잘 맞는지 증명하기 위해 검사를 받으라는 상황까지 치달았다면 이건 그저 우스꽝스러운 수준을 넘어 역겨운 일이다." 몇 년 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국제아마추어육상협회의 성별 검사 정책을 받아들였고, 이후 검사 규정에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이를 어떻게 해서든 보완하기 위해 미봉책을 내놓았다. 1967년 폴란드의 단거리 선수 이와 클로부코우스카가 언론에 따르면 "염색체 하나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출전이 금지됐다. 이에 폴란드 올림픽위원장은 격분해 성별 검사를 처음 주창한 브룬대지를 포함한 국제올림픽위원회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는 "여자 선수에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성별 기준이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며,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정책이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위원회라도 그런 "자의적인 기준"으로 선수의 출전 자격을 함부로 정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그때만 해도 이미 의사들은 염색체부터 내부 장기, 생식기 등 남녀의 보편적인 차이를 단번에 구분할 수 있는 생물학적 특성이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신 성별은 일종의 스펙트럼상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스포츠 협회 관계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특징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그 기준에 관해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그들은 마치 특정 성별이 아닌데 위장한 채 대회에 참여한 부정 선수를 자기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가장 높은 수준의 기량을 두고 경쟁하는 엘리트 스포츠는 보통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이분법에 의존한다. 또한, 성별을 나눠 생각하는 우리의 인식도 이미 확고한데, 이를 유연하게 바라보는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러나 트랜스젠더 여성이나 간성 여성 선수들은 단칼에 배제되고 어떤 식으로도 경기에 참여할 수 없는 지금의 시스템은 잘못됐다. 피겨스케이팅이나 몇몇 스키 종목처럼 성별을 애써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종목도 있다. 반면에 성별에 따른 특성의 차이에 따라 분리해 경쟁하는 게 더 나은 종목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성별을 어쩔 수 없이 나눌 거라면, 통념상의 이분법적인 남녀의 구분이 완벽하지 않으며,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든 운동선수가 자신이 살아온 성별에 따라 대회에 참여해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 누구나 좋은 기록과 성적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린 선수라면 대회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모호한 이유로 출전권 자체를 박탈하는 관행은 이제 끝내야 한다. 1936년과 그 이후의 스포츠 관계자들이 웨스턴 씨와 같은 인물을 향한 언론 보도에 보였던 진정한 호기심에 따라 솔직하게 행동했다면, 우리는 태어난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살아온 운동선수를 억지로 쫓아내고 배제하는 데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거다. 원문 : At the Paris Olympics, Sex Testing Will Be in Full Force. How Did We Get Here?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비벡 H. 머시는 미국 의무총감(Surgeon General)이다. 비상상황에서는 완벽한 정보가 다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사치다. 지금 당장 손에 쥔 정보를 가지고 최선의 판단력을 발휘해 재빨리 행동에 나서야 한다. 내가 의과대학 시절 얻은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다. 지금 청소년층의 정신건강 위기는 그야말로 비상사태다.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소셜미디어다. 하루 3시간 이상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청소년은 불안증이나 우울증 증상을 경험할 위험이 2배 이상 높은데, 2023년 여름 기준 청소년층의 일일 소셜미디어 사용 시간은 평균 4.8시간에 달한다. 절반 이상의 청소년이 소셜미디어 때문에 자신의 신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제는 소셜미디어에 의무총감의 경고 문구를 의무적으로 붙여야 할 때가 왔다.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큰 타격을 준다고 알려진 플랫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의무총감의 경고 문구는 의회가 승인해 줘야 붙일 수 있는데, 실현된다면 소셜미디어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기적으로 부모와 청소년들에게 상기할 수 있다. 담배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경고 문구는 경각심을 높이고 행동을 바꿀 수 있다. 라틴계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서는 의무총감의 경고 문구가 붙으면 자녀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제한하거나 감시하겠다고 답한 응답자가 76%에 달했다. 경고 문구를 붙인다고 해서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에게 안전한 공간으로 알아서 바뀌지는 않는다. 1년 전 내가 발표한 소셜미디어와 청소년 정신건강에 대한 권고안에는 소셜미디어를 좀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정책 입안자와 소셜미디어 업체, 그리고 대중에게 건넨 구체적인 제안이 담겼다. 이미 초당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당시 권고안의 내용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여전히 먼저다.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청소년들을 온라인 괴롭힘이나 학대, 착취, 알고리듬으로 돌아가는 피드에 너무 자주 등장하는 폭력적이고 성적인 콘텐츠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청소년들로부터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게 되고, 청소년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지나친 사용을 조장하는 푸시 알림이나 자동 재생, 무한 스크롤과 같은 기능도 제한된다. 이에 더해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인 과학자 및 대중과 소셜미디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유해야 하며(현재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안전에 대한 독립적인 감사를 받게 된다.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어가고 있다고 늘 주장하지만, 대중에게는 그 말을 믿을 근거가 필요하다. 다른 사회 구성원들도 각자 역할이 있다.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에 휴대폰을 쓸 수 없게 해야 한다. 부모들도 가정에서 취침 시간이나 식사 시간, 사교 활동을 중심으로 휴대폰 금지 시간을 설정해 아이들의 수면과 오프라인 교류(정신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두 가지 요소다)가 방해받지 않게 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소셜미디어를 할 수 없게 막아야 한다. 물론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려운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족이 힘을 합쳐 공통의 규칙을 만들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한 가정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자녀가 친구들은 다 휴대폰을 마음껏 사용하는데 우리 집만 엄격하다고 불평하면 부모로서는 변명이 군색해질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도 로그오프 무브먼트(Log Off Movement)나 와이어드 휴먼(Wired Human) 같은 청소년단체를 통해 친구들과 함께 소셜미디어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안전한 온라인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온 사회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 공중보건 관계자들도 청소년을 위한 건전한 디지털 환경 조성을 요구해야 한다. 의사, 간호사 등 임상 전문가들이 앞장서서 청소년과 부모에게 소셜미디어의 문제점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고 보다 안전하게 소셜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연방정부 산하 어린이 온라인 건강 및 안전 대책위원회(Kids Online Health & Safety Task Force)는 정부 안팎의 전문가를 한데 모아 소셜미디어를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 방법을 계속해서 모색하고 추진해야 한다. 부모 입장에서 가장 끔찍한 일은 자녀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부모들이 소셜미디어 문제에 관해 호소하는 어려움도 바로 그것이다. 해로운 콘텐츠와 숨겨진 해악 앞에서 외롭고 막막한 기분이 든다고들 한다. 콜로라도에서 만난 로리라는 여성은 눈물을 삼키며 소셜미디어상에서 괴롭힘을 당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딸 이야기를 들려줬다. 로리도 부지런히 딸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살피고 휴대폰 사용을 단속했지만,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소셜미디어 문제는 안전벨트를 하고 헬멧을 쓰면, 전문가들이 연구해서 만들어 놓은 수칙을 지키면 해결되는 여느 안전 문제와 다르다. 부모와 자녀들이 각자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가장 우수한 엔지니어와 엄청난 자원을 보유한 기업을 상대해야 한다. 해결책을 간절히 바라는 것은 부모들뿐만이 아니다. 작년 가을 학생들을 만나 정신건강과 외로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늘 그렇듯, 학생들은 소셜미디어를 언급했다. 소셜미디어의 좋은 점(옛 친구들과 연락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공동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커뮤니티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티나라는 학생이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소셜미디어를 사용할 때면 그냥 기분이 좋지 않아요." 약간의 창피함이 느껴지는 작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티나의 고백으로 물꼬가 트였고,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소셜미디어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타인과의 비교 속에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 자신을 제어할 수 없고 중독된 느낌을 받는다는 이야기, 분노와 괴롭힘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진실한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는 고백이 줄을 이었다. 학생들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인식하고 있지만,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있는 듯했다. 여섯 살, 일곱 살 먹은 나의 자녀들도 이미 소셜미디어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아버지로서 나도 언제 아이들에게 계정을 만들어줘야 할지 걱정이다. 소셜미디어 사용을 숨기는 각종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나와 아내가 아이들의 온라인 활동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까? 내 아이가 해로운 콘텐츠나 위험한 인물에게 노출될 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나? 자녀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감독하려는 부모들이 큰 스트레스와 불안감, 나아가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을 바꿔야 한다. 20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매우 높아지자, 의회는 안전벨트와 에어백, 충돌 사고 테스트 등 여러 가지 안전 조치를 의무화했고, 자동차는 더욱 안전한 도구로 거듭났다. 올해 1월, 보잉 737 맥스9 항공기 운항 중 도어 플러그가 뜯겨나가는 사고가 일어나자, 연방항공국은 같은 기종 170여 대에 대해 즉각 운항 중지를 명령했다. 2월에는 리스테리아균 감염으로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유제품에 대한 대대적인 리콜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의 해악이 위험한 자동차나 비행기, 식품만큼이나 위급하고 만연한데도 왜 우리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을까?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은 개인의 의지가 부족하거나 부모들이 제 역할을 못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강력한 기술을 충분한 안전 조치나 투명성, 책임성 없이 세상에 내어놓은 결과다. 어떤 사회가 아이들을 얼마나 잘 보호하는가는 그 사회의 도덕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티나 같은 학생이나 로리 같은 어머니가 듣고 싶은 말은 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거나, 문제가 너무 복잡하다거나, 현 상황을 바꾸는 것은 원래 어렵다는 말 따위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소셜미디어를 아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 지식과 자원, 도구가 있다. 이제는 의지를 갖고 행동에 나설 때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삶이 걸린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많지 않다. 원문 : Surgeon General: Why I’m Calling for a Warning Label on Social Media Platforms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
*다비 색스비 박사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다. 현재 아빠가 되는 것이 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세 자녀를 둔 한 아빠가 최근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예전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가능하면 아이를 빨리 낳으라"고 꼭 조언해 주고 싶다는 거다. 아버지로서의 경험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아버지가 되면서 목표가 생겼다고 그는 말했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 결과도 이런 경험을 뒷받침한다. 내 연구실에서는 남자가 아빠가 될 때 뇌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최근 아버지가 되는 것이 뇌와 신체 전반에 변화를 불러온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막 아빠가 된 사람에게서 보이는 뇌와 호르몬의 변화는 남성이 처음부터 육아에 참여하도록 신경생물학적으로 설계된 존재임을 알려준다. 남성에게서도 엄마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양육 본능이 탑재된 예가 종종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빠로서 육아에 참여하는 건 장기적인 뇌 건강에도 좋으며, 결과적으로 공중보건 측면에서도 좋다. 청소년기부터 장년기에 이르는 남성의 위기가 화두인 시대다.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사회적으로 더 고립됐다고 느끼며, 일자리를 구하기도 예전만큼 쉽지 않다. 이럴 때 아버지로서 역할을 맡아 수행하면 정체성에 안정감을 주는 원천이 될 수 있다. 다만 보통 아버지가 되는 인생의 전환기가 한 사람에게 불안하고 취약한 시기일 수 있으므로, 사회는 아버지가 되는 과정 전반을 우선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2022년 발표한 연구에서 나와 동료들은 스페인 연구진과 함께 처음 아빠가 된 사람들의 뇌 사진을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에 찍어 비교해 봤다. 앞서 연구진은 엄마의 뇌 사진을 찍어 비교한 적이 있는데, 아빠들의 뇌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유명한 선행 연구들은 여성이 엄마가 되면서 뇌의 회백질 부피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회백질은 뇌의 여러 영역에 걸쳐 있는 뉴런이 풍부한 뇌 조직층으로 사회적, 정서적 처리를 담당한다. 뇌가 쪼그라든다니 안 좋은 소식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회백질이 줄어들면 뇌가 더 기민하게,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가 발달하는 10대에도 인간은 회백질의 부피를 덜어낸다. 회백질이 많이 줄어든 여성일수록 자기 아이와 더 강한 애착을 보였다. 뇌(의 특정 부위)가 쪼그라들수록 엄마와 아이의 유대 관계가 강해진다는 말이다. 아버지에 관한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남자도 아빠가 되면 여자가 엄마가 될 때처럼 회백질의 부피가 줄어드는 등 비슷한 변화가 나타난다. 다만 회백질이 줄어드는 정도는 여성에 비해 남성이 작다. 여성은 회백질이 줄어드는 정도가 워낙 커서 기계학습 알고리듬에 뇌 사진을 분석해 보라고 맡기면 회백질의 크기만 보고도 최근에 엄마가 된 사람의 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를 구분해 낼 정도다. 남성의 뇌 사진은 그 정도는 아니다. 어쩌면 아빠의 뇌에서 관찰되는 변화가 일관적이지 않은 건 똑같이 아빠가 되더라도 육아에 참여하려는 의지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한다. 후속 연구에서 실제로 그 가설을 확인해 봤다. 우선 새로 아빠가 된 남성들에게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에 아이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는지 측정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에게 강한 애착을 보이거나 아이가 태어났을 때 더 많이 일을 쉬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 아빠일수록 뇌 사진을 찍었을 때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 피질 전반의 회백질이 더 많이, 고루 쪼그라들었다. 비슷하게 아이가 태어나고 첫 3개월 동안 육아에 많이 참여하는 아빠일수록 뇌의 회백질이 많이 줄었다. 회백질이 많이 줄어든 아빠들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고 즐거우며,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백질이 줄어드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회백질이 줄어든 아빠 중에는 아이가 태어난 첫해에 수면 장애를 겪거나 우울증, 불안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도 많았다. 더 많은 표본을 토대로 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소수의 표본으로 진행한 초기 연구 결과, 아빠가 되면서 부성애를 느끼는 것과 남성의 건강 사이에 일종의 반비례 관계가 관찰된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육아는 몸도 마음도 지치는 일이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이 각종 육아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것처럼 아빠들도 육아하다가 힘들어하는 게 당연하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도 (회백질과 비슷하게) 아빠가 될 때쯤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든 남성은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동시에 산후 우울증의 위험도 커진다. 그럼에도 대부분 아빠는 아이와 유대관계를 쌓으며 엄청난 의미와 목적을 얻는다고 말한다. 오늘날 자신이 누군가의 부모라는 데서 정체성을 찾는다는 점에서만 보면 엄마와 아빠가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어 아이들이 자신의 행복에서 중요하다고 답하는 비율은 아빠가 엄마보다 더 높다.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육아는 평생 뇌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이 든 남성과 여성의 뇌 알고리듬을 측정, 분석해 봤더니, 자녀가 있는 사람들의 뇌가 더 젊게 나타났다. 결론을 요약해 보면 이렇다. 아빠가 되면서 나타나는 뇌의 변화는 일부분 취약성이 드러나더라도 대체로 좋은 일이다. 방송이나 인터넷에는 이종 격투기, 얼음 목욕, 역도, 적외선 치료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높여 남성성을 강화하라는 조언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인플루언서들은 남성의 건강에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즉, 건강한 삶이란 인생의 시기마다 변하는 수요에 맞춰 생리적으로 필요한 걸 만들어내고 조달하는 삶이라는 사실이다. 내 연구실에서는 아빠가 되는 것에 관해 100명 이상의 남성을 인터뷰했다. 아빠들은 입을 모아 "근본적인 변화"에 관해 말했다. 나는 이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했다. 부모님은 1980년대에 이혼하면서 나를 공동 양육하는 조항에 관해 합의했다. 전에는 육아에 거의 참여하지 않던 아버지가 그때부터 어머니와 격주로 나를 전담해 육아에 나섰다. 지금 아버지에게 그때 경험이 어땠는지 물어보면, 아버지는 정말 즐거웠다고 말씀하신다. 사고뭉치에 말썽꾸러기였던 나와 동생들 덕분에 아버지는 상당한 인내와 용기를 배웠다. 변화는 시간을 들여 반복적인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 온다. 건강한 사회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 자녀가 유대 관계를 쌓을 수 있으며, 부모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덜 받는 사회다. 그래서 육아 휴직을 비롯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휴가를 장려하는 직장 문화를 통해 아빠들이 육아를 우선시할 수 있게 하는 제도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정말 가족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아빠가 되는 것은 엄마가 되는 것 혹은 누구든 아이를 돌보기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하는 세상에서 "아빠 됨"은 남성들의 인간관계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튼튼한 닻이 되어줄 것이다. 원문 : Dad Brain Is Real, and It's a Good Thing (c) 2024 The New York Times Company 번역 :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