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줄타기에서 끝끝내 떨어지지 않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SBS 스포츠취재부 야구조 기자들이 매주 색다른 관점으로 야구를 들여다 봅니다. 뜨거웠던 2024년 프로야구가 KIA 타이거즈의 12번째 우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1차전에서 사상 초유의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는 등 시리즈 내적으로도 참 독특했지만, 사실 이번 한국시리즈는 매치업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KBO리그 최다 우승팀 KIA와 최다 한국시리즈 진출 팀 삼성이 31년 만에 가장 높은 무대에서 만난 데다 2006년 삼성과 한화의 한국시리즈 이후 무려 18년 만에 수도권 팀이 없는, '지방 구단'끼리의 한국시리즈 매치업이 꾸려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지방 팀들 간의 한국시리즈 맞대결이 훨씬 흔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에 있는 구단이 수적으로도 더 많았고, 지역 야구 명문고를 기반으로 지방 구단들이 더 탄탄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1999년까지 17번의 한국시리즈 중, 비수도권 팀들의 맞대결이 10번에 달했고, 한국시리즈에서 수도권 팀들이 맞붙은 케이스는 1994년 LG와 태평양, 1998년 현대와 LG의 대결 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주의 쌍방울이 해체돼 인천의 SK로 재창단하며 지방 구단과 수도권 구단의 비율이 처음 반반으로 맞춰졌고, 이때부터 무언가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시리즈에 수도권 팀들은 빠지지 않는 손님이 됐고, 지방 팀끼리의 격돌은 10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이벤트가 됐습니다. 지방 팀들의 족쇄 '1차 지명'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역 팀들이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지역 연고 선수를 강제적으로 뽑게 돼 있는 1차 지명이 치명적이었습니다. 2000년에 시행된 2001년 드래프트 이후 수도권 팀은 1차 지명을 통해 팀당 평균 135의 WAR을 거둬들였지만, 지방 팀들은 평균 75의 WAR밖에 뽑아내지 못했습니다. 거의 두 배 가까운 차이가 난 겁니다. 지방 팀 가운데 수도권 팀 평균만큼의 WAR을 1차 지명으로 만들어낸 팀은 2010년대 초반 왕조를 이룩했던 삼성이 유일했습니다. 지명권 한 장당 어느 정도의 WAR을 얻었는지를 보면 차이가 더 극명한데, 수도권 구단 가운데서 수원을 포함한 경기도 일부를 연고로 한 KT가 유일하게 평균 7 WAR를 밑돌았지만, 지방 구단 중에서는 삼성을 제외한 모든 구단이 7 WAR를 넘지 못했고, 창원을 포함한 경남을 연고로 했던 NC는 1.34라는 저조한 수치를 기록해 LG나 SSG의 10분의 1 수준에 그쳤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야구에서도 서울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달리 지방의 야구 유망주들은 더 좋은 환경과 시스템을 찾아 서울과 수도권에 몰리고 있습니다. ▷ 관련 기사 <뽑히기 위해 학교를 옮겨 다녀야 하는 야구 유망주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방 구단들은 1차 지명을 앞두고 "뽑을 선수가 없다"며 골머리를 앓았고, '어쩔 수 없이 뽑은' 1차 지명 선수보다 나중에 뽑힌 2차 지명 선수가 더 많은 계약금을 받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어찌 보면 드래프트의 절반이라고 할 수 있는 첫 순번, 1차 지명에서 이렇게 손해를 보다 보니 수도권 구단과 지방 구단은 출발선이 다른 트랙에서 달리기를 했던 셈입니다. 전면 드래프트 시행 3년 차, 변화는 언제쯤? 2010년 드래프트부터 잠시 동안 1차 지명을 폐지했던 KBO리그는, 4년 만에 다시 지역 연고 지명을 부활시키며 원래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지방 팀들의 재도약 기회는 기약 없이 미뤄졌습니다. 하지만, 2022년 드래프트를 끝으로 다시 한 번 1차 지명이 폐지됐고, 우여곡절 끝에 지방 구단들은 '전면 드래프트 시대'라는 뉴노멀을 기쁜 마음으로 맞을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드래프트가 팀 성적의 전부는 아닙니다. 지역 연고 1차 지명으로 누적 WAR 8.01을 기록하는 데 그친 NC는 수준급 외국인과 효과적인 외부 수혈에 힘입어 2020년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고, 2001년 드래프트 이후 1차 지명 누적 WAR이 LG의 4분의 1 수준인 KIA도 2000년 이후 3번의 우승을 만들어내 명문팀의 저력을 뽐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방 팀 팬들에게 새로운 선수들의 면면이 기대감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화의 파이어볼러 김서현과 타이거즈의 영건 윤영철, 올해 롯데에 입단한 좌완 기대주 김태현까지, '1차 지명'의 굴레 안에서는 각 팀에서 쉽게 얻을 수 없었던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전면 드래프트로 뽑힌 선수들이 3년 차 시즌을 맞는 내년, 과연 지방 구단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속박했던 족쇄를 떨치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디자인 : 정유민
SBS 스포츠취재부 야구조 기자들이 매주 색다른 관점으로 야구를 들여다 봅니다. 지난 11일 2025년 프로에 입성할 선수들을 뽑는 KBO 신인 드래프트가 성황리에 마무리됐습니다.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키움의 선택을 받은 덕수고 좌완투수 정현우 선수를 필두로 110명의 신인 선수가 꿈에 그리던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됐습니다. 드래프트는 프로야구 생태계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구단 입장에서는 FA나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을 수급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드래프트에서 얼마나 좋은 선수를 잘 뽑는지가 십년지대계를 결정합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프로야구'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도 드래프트는 단순한 '입시' 그 이상의 존재감을 자랑합니다. 이런 중요성들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드래프트를 통해서 현재 야구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번 드래프트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었을까요? 2025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1·2순위로 지명된 정현우(좌)-정우주(우) 1. 달라진 리틀-유소년 야구 시스템의 위상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아마추어 야구의 기반은 '학교'였습니다. 학생 선수가 초등학교 야구부를 시작으로 중학교 야구부에 진학하고, 이후 고등학교와 대학교 야구부를 거쳐 프로에 입성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와 상관없이 야구를 할 수 있는 '리틀 야구' 시스템이 등장하며 이 오랜 패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엘리트'의 길을 걸어야 하는 학교 시스템과 달리 취미로 야구를 시작할 수 있고,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하는 부담마저 덜 수 있는 리틀 야구단이 초등학교 야구부를 대체하게 된 겁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야구 클럽' 형태 시스템인 유소년 야구단까지 저변을 넓힌 것 역시 결정적이었습니다. 2014년 KBO 신인 드래프트 당시 전체 드래프티(드래프트에 뽑힌 선수)의 84%가 초등학교 야구부를 통해 야구를 시작했던 것에 비해 올해는 그 비율이 42%까지 줄었습니다. 2014년 15명(13%), 2015년 9명(8%)에 불과했던 리틀 야구단 출신은 올해 56명(51%)으로 늘었고, 유소년 야구단 출신도 8명(7%)이나 뽑혀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초등학교 야구부가 그 존재 의미를 당장 잃어버린 것을 아닙니다. 2025 드래프티의 경우 리틀 야구를 통해 처음 야구를 접한 56명의 선수 중 12명이 초등학교 야구부로 전학해 본격적으로 엘리트 야구에 입문했기 때문입니다. 리틀 야구단의 '선수반'이 하는 기능 일부를 초등학교 야구부가 나눠맡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취미 야구'의 저변 확대와 저출산의 여파에까지 본격적으로 노출된 초등학교 야구부가 언제까지 현재의 존재 가치를 지속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2. 잠수함 투수의 실종 이강철부터 임창용, 박종훈과 고영표까지. KBO리그에는 항상 리그를 대표하는 '잠수함 투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 명맥이 얼마 안 가 끊어질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언더핸드와 사이드암 투수가 실종됐기 때문입니다. 올해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된 투수는 60명. 그중 잠수함 투수는 9라운드 82번으로 한화의 선택을 받은 인창고의 엄요셉 한 명뿐입니다. '잠수함 투수 실종'의 원인을 지금 판단하는 것은 다소 섣부를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는 최근 들어 눈에 띄는 사이드암, 언더핸드 투수가 고교야구판에 아예 보이질 않게 됐다며, 프로야구와 고교야구에 모두 도입된 ABS 자동판정 시스템이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한 고교 감독은 "앞으로 몇 년은 ABS 시스템이 잠수함 투수에게 주는 악영향이 있는지 면밀히 체크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제하면서도 "어린 야구 유망주들 사이에서 잠수함 투수를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생긴 건 사실"이라고 전했습니다. 3. 대졸도 없고, 4년제는 더 없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대졸 선수의 인기는 10개 구단이 처음 드래프트에 참여한 2014년 드래프트를 정점으로 빠르게 식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44.4%에 달했던 대졸 선수의 비율은 차츰 낮아져 올해 14.5%, 110명 가운데 16명으로 줄었습니다. 각 구단당 대졸 선수 한 명을 의무적으로 뽑아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10개 구단이 추가로 선택한 대졸 선수가 단 6명에 불과하다는 의미입니다. 올해 뽑힌 16명의 대졸 선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변화의 흐름이 더 극적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올해 대졸 선수 중 4년제 대학 출신은 단 6명, 2년제 대학 출신이 10명입니다. 2000년 이후 KBO 드래프트에서 2년제 선수가 4년제 선수보다 더 많이 뽑힌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거기에 대졸 선수 가운데 3명이 2학년을 마치고 '얼리 드래프트'로 뽑힌 선수라는 걸 감안하면, 단 3명의 선수만이 전통적인 의미의 4년제 대졸 선수인 셈입니다. 지난 2021년 윤석열 대통령이 예비후보로 경선을 앞두고 있던 당시 자신의 모교인 충암고 야구부를 찾아 "꼭 야구 명문 대학으로 진학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겨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명문 대학' 진학이 더 이상 고교 선수들의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몰라 생긴 해프닝이었습니다. 이미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됐지만, 현 세태가 지속된다면 '야구 명문 대학'은 역사책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유물로 변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자인 : 안준석
예년보다 짧았던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본격적인 후반기 시즌이 막을 올린 지 이제 일주일 남짓이 지났습니다. 올 시즌 프로야구는 여러 가지 볼거리들을 만들어 내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데요. 남은 절반의 시즌 동안 팬들의 눈을 사로잡을 요소들이 어떤 것이 있을지 <야구수다>에서 숫자로 정리해 봤습니다. 1위와 꼴찌의 승률 차이, 단 0.173 올해가 '역대급'으로 치열한 시즌이라는 것은 단순한 호사가들의 수사가 아닙니다. 7월 16일 현재 1위 KIA의 승률은 0.598, 10위 키움의 승률은 0.425로 그 승률 차이가 0.173에 지나지 않습니다. 프로야구 43년 역사에서 1위와 꼴찌가 이보다도 가깝게 붙어 있었던 적은 단 두 번밖에 없었고, 10개 구단 시대가 시작된 2015년 이후에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승차가 다닥다닥 붙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1위 팀이 압도적이지 않아야 하고 둘째, 꼴찌 팀이 만만치 않은 전력을 자랑해야 합니다. 팀들 간의 성적이 대체로 평준화되어 있는 올해, 이런 조건이 어느 정도 만족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 1위 팀의 승률이 6할에 못 미치고, 꼴찌 팀의 승률이 4할을 넘는 시즌은 단 1983년과 2004년 단 두 번뿐이었는데, 올해 다시 한 번 이런 기록이 세워질지도 모릅니다. 치열한 경쟁이 부른 뜨거운 흥행… 1천만 관중 가나 올해 프로야구 관중 동원은 그야말로 경이의 연속입니다. 모든 홈구장에 평균 1만 명 이상의 관중이 가득 차고 있고, 보통 관중이 넘쳐나는 주말 시리즈뿐만 아니라 주중 시리즈에도 수많은 야구팬이 몰리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 평일도 1만 관중 이상... 특이점을 넘어선 듯한 '야구 직관'의 폭증 이유는? 보통 5월에 평균 관중 수가 정점을 찍은 뒤 6월부터는 내리막길을 걷게 마련인데, 올해는 5월보다 6월에 더 많은 관중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더위와 장맛비가 본격화하는 7월에도 평균 관중 수는 크게 줄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446경기에서 649만여 명을 동원한 가운데 720경기 기준 동원 가능한 관중은 1,048만여 명. 7월 16일 하루에만 장맛비로 세 경기가 취소되는 등의 궂은 날씨 속에 얼마나 이런 페이스가 이어질지는 물론 알 수 없습니다. 과연 KBO리그는 전인미답의 1천만 관중 고지를 밟을 수 있을까요? KIA 김도영, 21세 이하 최고 시즌 만들까 올해 최고의 라이징 스타는 누가 뭐라 해도 '도너살' 김도영입니다. 4월 한 달 동안 10홈런-10도루를 달성하며 알을 깨고 나왔고, 잠시간의 슬럼프를 겪은 뒤 부활해 현재 0.343-0.412-0.613이라는 3년 차 선수라곤 믿기지 않는 슬래시 라인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시즌의 2/3도 채 치르지 않은 시점에서 김도영은 이미 역대 최고의 선배들과 어깨를 겨누게 됐습니다. 홈런에서는 역대 1위 이승엽의 기록을 가시권에 두고 있고, 도루와 WAR 부문에서도 5위권 진입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과연 김도영은 역대 최고의 21세 이하 시즌을 만들어내며 최연소 30-30, 최연소 MVP를 모두 얻어낼 수 있을까요? ERA 2.79, '트레이드 블루칩' 조상우는 어디로?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앞두고 키움의 마무리 조상우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16일 어깨 염증으로 1군에서 잠시 말소된 것을 두고도 트레이드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정도입니다. 키움이 1라운드 지명권+알파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습니다. 조상우의 서비스 타임이 1년 반 정도라는 것과 올해 150km 이상을 던지는 고교 투수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상우에 매겨진 가격은 사실 결코 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상우에 대한 인기는 왜 식을 줄 모르는 걸까요? 바로 대부분의 팀이 올 시즌 들어 불펜 운영의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두 시즌 4점대 초반에 머물렀던 리그 불펜 평균자책점은 올해 들어 5점대로 크게 치솟았습니다. 3점대, 심지어 2점대 불펜 ERA를 기록한 팀이 있었던 지난 2년에 비해 올해 가장 준수한 불펜을 갖고 있는 두산의 ERA가 겨우 3점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4점대 후반 이상의 평균자책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팀이 '우리 팀 불펜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낄 만한 조건이 만들어져 있는 셈입니다. 5위와 10위의 승차가 겨우 7경기. 모두가 가을야구를 노릴 수 있는 상황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불펜의 부족함을 채워줄 조상우는 어떤 팀에겐 억만금의 가치로 느껴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불펜의 붕괴라는 현상이 타고투저 시대의 '뉴노멀'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덥석 지른 큰 지출이 승자의 저주로 되돌아오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료 출처 : 스탯티즈, 스포츠투아이
한 손은 배트 헤드 부분을, 다른 한 손으로는 손잡이 부분을 잡고 투수가 던진 공의 힘을 죽이며 타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굴리는 것. 맞습니다. 야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작전 중 하나인 번트입니다. '기본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만큼 번트는 작전 지시가 내려왔을 때 '꼭 성공해야 하는 작전'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실제로 최근 한 감독은 기자들에게 자신이 낸 번트 작전이 연달아 실패로 돌아가자 "화가 많이 났다"며 경기 후 전원 번트 훈련을 지시했다가 수석코치의 만류로 거둬들였다는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번트의 성공률은 35% 번트는 정말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성공시킬 수 있을 만큼 기본적인 걸까요? 실제 확인해 보니 꼭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 6월 23일까지 진행된 KBO리그 380경기에서 나온 번트 시도는 모두 830차례. 그 가운데 희생번트 성공, 혹은 번트 안타로 이어지며 '성공'한 번트는 단 291번에 그쳤습니다. 성공률은 35%, 번트를 세 번 대면, 한 번 정도만 성공적인 번트로 기록되는 셈입니다. 번트를 댔지만 파울에 그치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43%),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카운트만 헌납하거나(땅볼아웃 10%, 플라이아웃 3.7%), 아예 공을 배트에 맞히지 못하는 경우(7.3%)도 허다했습니다. 물론, 이는 완벽한 코스로 대서 자신의 진루권까지 노리는 도박적인 성격의 '세이프티 번트'를 포함한 전체의 결과값입니다. 그렇다면,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의 희생번트는 훨씬 성공률이 높아질까요? 사실, 아주 큰 차이는 나지 않았습니다. 주자가 있는 경우 번트 성공률은 39.1%. 10번 중 4번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쓰리번트 파울아웃의 위험성을 감안했을 때 두 번의 시도 안에 번트에 성공할 확률은 62.9%입니다. 단순하게 말해 번트를 꼭 대야 하는 상황에서도 세 번 중 한 번은 실패한다는 얘깁니다. 주자의 배치 상황에 따라서도 번트 성공률은 꽤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주자 1루에서 시도하는 번트는 비교적 안정적이었지만, 보통 수비 측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주자 1, 2루 상황에서는 번트 시도가 아웃카운트만 헌납한 채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번트의 팀 두산과 삼성…성공률 1위는 NC 김주원 이렇게 쉽지 않은 번트를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가장 많이 대는, 대표적인 '스몰볼' 팀은 어디였을까요? 바로 두산과 삼성이었습니다. 각각 79번의 번트 시도를 기록했는데, 가장 번트 시도가 적은 키움(40번)에 비하면 거의 두 배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두 팀 모두 성공률은 30%대에 머물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가장 번트 적중률이 높은 팀은, 유일하게 시도 대비 반절 이상의 성공을 자랑하는 KT였습니다. 선수별로 보면, 두산의 조수행이 가장 많은 번트를 시도했습니다. 다만 성공률이 높지 않았습니다. 주자가 있는 경우 32번의 번트를 시도해 10번만 성공시킴으로써 31.3%의 확률을 나타냈습니다. 성공률 측면에서 봤을 때 가장 돋보이는 선수는 NC 김주원이었습니다. 김주원은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10번의 번트를 댔는데, 이 가운데 7번을 성공시켜 그야말로 완벽한 작전 수행 능력을 뽐냈습니다. 사실, 김주원을 포함해 자주 번트를 대는 선수 가운데 40% 이상의 확률, 그러니까 두 번의 시도 안에 64%의 확률로 번트를 성공시킬 수 있는 선수는 리그에 단 6명에 불과했습니다. 이쯤 되면 번트를 정말 '기본 중의 기본'으로 부를 수 있을까요? 자료 제공 : KBO, 스포츠투아이 ※ 6월 23일 기준
KBO리그를 대표하는 거포 박병호가 다시 한번 유니폼을 갈아입었습니다. 지난 2011년 LG에서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된 뒤 전성기를 맞았던 박병호는 2022년 FA 자격을 얻은 뒤 KT와 계약을 맺고 수원으로 향했습니다. 2022년 35홈런으로 여섯 번째 홈런왕에 오른 박병호는 이대로 순조롭게 마지막 팀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할 수 있을 듯했는데 다시 한번 커리어의 큰 변곡점을 맞게 됐습니다. 올 시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다 결국 팀에 트레이드 요구를 하며 반발했고, 결국 프로 커리어 처음으로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되었습니다. 박병호가 올 시즌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던 건 물론 자신의 부진의 탓이 큽니다. 44경기에 나서 타율 0.198, OPS 0.638을 올리는 데 그쳤고,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홈런도 3개밖에 때려내지 못했습니다. KT로서는 문상철(OPS 0.933)이라는 훌륭한 대체자가 있는 상황에서 38살 시즌을 맞은, 어쩌면 커리어가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을지 모르는 박병호를 쓸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어렵사리 새 유니폼을 입게 된 박병호에겐 이제 더 이상 반전의 기회가 없을까요? 그렇게 잘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너무 적었던 출전 기회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축구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이 명언은 야구에서도 유효합니다. 특히 타자에게 그렇습니다. 타격에는 이른바 '사이클'이 있고, 일시적으로 부진하다가도 일정 정도 타석이 쌓이면 평균으로 회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병호는 올 시즌 '일시적인 폼 저하'를 회복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3월 개막과 함께 대부분 선발로 경기에 나섰던 박병호는 이후 급격히 기회를 잃었습니다. 4월 팀이 치른 25경기 중에 21경기에 나섰지만, 15번이 교체 출전이었습니다. 주전으로 자리 잡은 포지션 경쟁자 문상철이 발등에 타구를 맞아 타박상을 입는 바람에 5월 들어 다시 선발 기회를 잡았지만 이것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박병호가 꾸준하게 선발 출장 기회를 잡은 건 3월 23일에서 30일까지의 7경기, 5월 1일부터 5월 9일까지의 7경기 단 두 차례뿐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컨디션을 끌어올릴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린 겁니다. 삼성으로 팀을 옮긴 첫날 선발 6번 타자로 배치된 박병호는 장외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로 펄펄 날았습니다. 어쩌면, 이 베테랑 타자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충분한 기회와 신뢰였을지도 모릅니다. 라이온즈파크와의 궁합 삼성 유니폼을 입은 박병호의 첫 타석, 첫 타구부터 박병호는 자신의 위엄을 보여줬습니다. 2회 키움 선발 헤이수스의 바깥쪽 낮은 체인지업을 그대로 받아쳐 우측 담장 워닝트랙에서 잡히는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습니다. 사실, 이전 팀의 홈구장인 수원 KT위즈파크에서라면 넉넉히 잡히는 외야플라이였겠지만 라이온즈파크에서는 달랐습니다. 라이온즈파크는 이른바 '피자 커터'형이라 불리는 다른 구장들에 비해 좌중간과 우중간이 짧은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성기 때보다 타구 속도는 다소 줄었지만, 박병호는 여전히 홈런을 노리는 전형적인 장타자 유형입니다. 국내에서 SSG 랜더스필드와 함께 '홈런 공장' TOP 2를 형성하는 라이온즈파크를 홈으로 쓰는 박병호가 올해 유독 떨어진 발사 각도 재조정에 성공만 한다면, 분명한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병호 반등의 불안 요소는 물론, 불안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살펴봤듯 38세 시즌을 맞이한 박병호는 평균 140km/h 이상의 타구를 뻥뻥 날려대던 전성기 시절에 비해 타구 속도가 줄어들었습니다. 60% 후반에서 70% 초반을 기록하던 스윙 대비 콘택트율은 올해 60% 초반으로 감소했고, 타구의 발사 각도가 뚝 떨어지며 타구의 절반 이상이 땅볼인 타자가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올해 38세 시즌을 맞은 박병호는 본인의 말처럼 "야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선수입니다. 그래서 성적도 에이징 커브의 변곡점을 지나 자연스레 하향세를 띄게 된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본인이 먼저 나서 이적 요청을 했을 만큼 '야구에 진심인' 박병호에게 삼성으로의 트레이드가 그 옛날 넥센 유니폼을 처음 입었을 때처럼 성적 향상의 트리거가 될지 모릅니다. 실제 지난 29일 경기 네 타석에서 네 차례 방망이를 냈던 박병호는 단 한 번도 헛스윙을 하지 않았습니다. 생전 처음 입는 파란 유니폼이 어색하다는 박병호, 과연 낯선 땅 대구에서 또 한번의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위 글에 사용된 데이터는 2024년 5월 29일 기준입니다. 자료 출처 : 스탯티즈, 사진 : 연합뉴스, 디자인 : 권민재
복귀와 동시에 KBO리그를 폭격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류현진은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해치울 것만 같았던 KBO 통산 100승 달성에는 7경기가 소요됐고, 이후 지난 8일 롯데전에서 5이닝 5실점으로 또 무너지며 아직도 제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2024년 5월 10일 현재 류현진의 성적은 2승 4패 평균자책점 5.65. 류현진에게 어울리는 성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37세 시즌을 맞은 류현진에게 기량 하락의 시기가 온 것일까요? 아직 시즌 극초반이기는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에 가깝습니다. 세부 지표는 '멀쩡' 앞서 <야구수다>에서는 류현진의 복귀를 앞두고 류현진의 성적을 예상해 본 바 있습니다. ▷관련기사 : 류현진, 그가 돌아왔다... 다시 KBO의 지배자가 될 수 있을까 당시 <야구수다>의 예상은 류현진이 최소한 국내 투수들 가운데서는 가장 경쟁력 있는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예상한 성적과 류현진의 현재 성적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예상보다는 볼넷을 좀 더 내주고 있지만 삼진은 더 잡아내고 있고, 피홈런은 커리어 최저급으로 억제하고 있습니다. 시즌 전 <야구수다>의 '희망적인' 예상과 거의 비슷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겁니다. 실제 류현진은 9이닝당 피홈런 허용 부문에서는 잠실을 홈으로 쓰는 두산 곽빈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고,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 FIP로 봐도 국내 투수 중 1위, 외국인 투수와 합쳐도 3위에 랭크될 만큼 훌륭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류현진은 허용하는 타구의 평균 속도도 KBO리그에서 가장 낮은 편입니다. 다른 투수들보다 강하고 빠른 타구를 적게 맞는다는 건, 일반적인 경우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쯤에서 의문점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이렇게 잘하고 있다는데 성적이 왜 그 모양이냐', '내가 볼 때마다 맞던데 잘 하긴 뭘 잘하냐' 등의 의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류현진의 '클래식 스탯'과 '세이버 스탯'의 괴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류현진이 맞는 상당수의 안타가 '실력'보다는 '운'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보는 야구 경기에서는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해 잡히거나, 빗맞은 타구가 마침 빈 곳에 떨어져 안타가 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투수는 유독 운이 좋아서 잘 맞은 타구가 모두 아웃이 될 수 있지만, 어떤 투수는 희한하게 운이 없는 바람에 안 맞아도 될 안타를 많이 맞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현재까지 나타나는 지표에 의하면 류현진은 후자의 상황을 유독 많이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BABIP은 Batting Average on Balls In Play의 준말로 홈런을 제외한 '인플레이 상황'을 만든 타구 가운데 몇 퍼센트가 안타가 되는지를 수치화한 스탯입니다. 기본적으로 투수의 경우 BABIP이 낮으면 '운이 좋다'고, BABIP이 높으면 '불운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BABIP에 따르면 류현진은 리그에서 가장 불운한 투수 중 한 명입니다. 운이 아니라 실력이 아니냐고 묻기엔 허용 타구의 평균 속도가 걸립니다. 리그에서 BABIP 가장 높은 투수들 가운데 류현진의 허용 타구 속도가 가장 낮습니다. 류현진과 거의 같은 허용 타구 속도를 기록하고 있는 삼성 원태인의 경우 류현진과 BABIP 차이가 0.126이나 나는데, 두 선수가 똑같이 10개의 인플레이 타구를 맞는다면 류현진이 안타를 하나 이상은 더 내준다는 얘기입니다. 류현진이 프로 데뷔 후 기록한 BABIP을 모두 다 훑어봐도 이번 시즌의 불운은 특히 눈에 띕니다. 올 시즌을 포함한 류현진의 KBO리그 통산 BABIP은 0.302, 부상으로 단 한 경기 등판에 그쳤던 2016년을 제외하면 류현진이 이토록 불운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화의 수비도 걸림돌? 류현진은 앞으로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37세 시즌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현재의 BABIP이 너무 높은 데다, 류현진이 리그에서 대표적으로 약한 타구를 많이 이끌어내는 투수라는 점이 감안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평균으로 회귀하게 마련입니다. 물론 불안 요소도 있습니다. 한화의 수비가 리그 정상급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점입니다.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지 않는 이상, 투수는 수비의 도움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올시즌 류현진은 한화의 수비가 무너지면 잘 던지다가도 '주화입마'에 빠지는 모습을 여러 번 연출했습니다. 과연 류현진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한화의 수비진은 에이스의 반등을 조력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위 글에 사용된 데이터는 2024년 5월 10일 기준입니다. 자료 출처 : 스탯티즈·팬그래프닷컴, 사진 : 연합뉴스, 디자인 : 권민재
시즌 초반 프로야구가 화끈한 흥행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달 초 일찌감치 100만 관중을 돌파했고, 팀당 24경기에서 27경기를 치른 현재 총 관중은 176만 명을 넘어 200만 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단 한 번도 도달한 적 없는 900만 명을 넘어 1,000만 관중 시대에 도달할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아무래도 지난 몇 년간 부진했던 KIA, 삼성, 한화 등 지방 팀들의 약진이 흥행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빠르고 강한 타구가 늘어나며 다이내믹한 경기가 자주 만들어지는 것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 지난 몇 년간 큰 변화 없이 횡보하던 리그의 평균 타구 속도는 지난해에 비해 1.5km/h 빨라져 무려 135km/h를 넘어섰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강한 타구의 증가를 이끄는 선수들은 누구일까요? 또 이에 역행하고 있는 선수들은 어떤 선수들일까요. 평균 타구 속도를 기반으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평균 148km/h 강백호, 10.8km/h 끌어올린 강승호 왼쪽부터 강백호, 강승호, 구자욱 2024년 140km/h 이상의 평균 타구 속도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13명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거의 150km/h에 가까운 평균 타구 속도를 기록하고 있는 KT 강백호입니다. 실제 지난해 부상과 부진으로 71경기에 출전해 8개의 홈런에 그쳤던 강백호는 올해 27경기 만에 8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습니다. 삼성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구자욱, 팀내 최다 홈런에 빛나는 두산 강승호 역시 타구 속도를 대폭 끌어올리며 순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타구 속도 TOP 5에 오스틴을 제외하곤 모두 국내 타자들이 자리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140km/h 이상 선수 전체로 넓혀 봐도 외국인 선수는 오스틴과 KT 로하스(6위 143.2km/h) 두 명뿐이었습니다. 타구 속도 상승 폭에서는 강승호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지난해 130km/h 초반대 타구 속도를 기록했던 것에 비해 올해는 이를 10km/h 이상 끌어올리면서 완전히 달라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실제 강승호는 지난해 127경기에서 기록한 홈런(7개)을 이미 27경기 만에 채웠고, OPS 1.046을 기록하며 KT 로하스, SSG 최정에 이은 리그 3위에 올라 '몬스터 시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앞서 타구 속도 TOP 5에 언급됐던 강백호와 구자욱 역시 큰 상승 폭을 기록한 가운데, 삼성의 핫코너를 책임지게 된 프로 3년 차 김영웅의 성장세 역시 눈에 띄었습니다. 만약 김영웅이 시즌 끝까지 이와 같은 타구 속도를 유지한다면, KIA 김도영과 함께 최정과 노시환의 뒤를 잇는 대형 3루수 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느린 타구로 살아남는 법' 김지찬과 위기의 황재균 반면 이런 타구 속도 증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리그 최단신' 삼성의 김지찬이 대표적입니다. 리그에서 유일하게 110km/h대 타구 속도를 기록하고 있는 김지찬이지만, 성적(OPS 0.709)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습니다. 리그 최하위급 장타력(IsoP 0.060, 최하 6위)을 리그 최상급 눈야구(IsoD 0.119, 7위)와 콘택트(96.4%, 1위)로 만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ABS 적용으로 작은 신장(163cm)에 맞춰 더 좁아진 스트라이크존도 큰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지찬이나 박해민처럼 원래 타구 속도가 느렸던 타자들은 사실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빠른 발과 콘택트 등 프로 생활 내내 느린 타구 속도로 살아남는 법을 익혀온 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빨랐던 타구 속도가 느려진 타자들은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KT 황재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난해에 비해 평균 타구 속도가 5.6km/h 감소한 황재균은 OPS 0.507로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최주환(OPS 0.676), 손아섭(OPS 0.665), 소크라테스(OPS 0.670) 등 타구 속도 하락 폭이 큰 타자들 다수가 타고투저의 흐름 속에서도 6할대 OPS를 기록하고 있다는 건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KBO의 공인구가 최근 몇 년 중에 가장 작고 가볍게 생산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빠른 타구'의 시대는 일정 시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남은 시즌 동안 얼마나 더 빠른 타구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될까요? ▶관련 기사 : 시작부터 '홈런 풍년'…원인은 공인구? *위 글에 사용된 데이터는 2024년 4월 23일 기준입니다. 자료 출처 : 스포츠투아이, 스탯티즈, 디자인 : 권민재
KBO리그에 '대홈런 시대'가 열린 것으로 보입니다. 시범경기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세가 엿보이던 홈런 증가세는 정규시즌 개막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KBO 공인구의 변화가 이런 변화를 이끈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기사 그런데 이런 변화에도 좀처럼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김잠실' 잠실 구장입니다. 잠실구장에서 열린 시범경기 4경기에서 홈런 4개가 터져 경기당 1개의 홈런을 기록했고(시범경기 평균 경기당 1.72개), 27일까지 정규시즌 4경기에선 홈런 4개가 터져 역시 경기당 1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정규시즌 19경기 평균 1.84개). 둘 모두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기록들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요? 잠실구장이 말 그대로 엄청나게 크기 때문입니다. 좌우측 펜스까지 100m, 중앙펜스까지 125m의 크기를 자랑하는 잠실구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야구장인 동시에, '세계구급'으로도 굉장히 드넓은 구장입니다. 메이저리그에도 잠실구장보다 중앙펜스가 더 긴 구장은 두 곳(코메리카 파크, 쿠어스 필드) 뿐이고, 120m의 깊이를 자랑하는 좌우중간은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관련 기사 그런데, 이렇게 얘기를 해도 뭔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사실, 언뜻 눈으로 보기엔, 엄청난 관중 수용 능력을 자랑하는 메이저리그 구장들이 훨씬 더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3월 20일부터 이틀간에 걸쳐 고척돔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개막전 서울시리즈에서 '김잠실'의 위용을 추측할 만한 데이터들이 처음 명시적으로 기록됐습니다. 고척돔은 국내 야구장들 가운데 잠실 다음으로 홈런을 치기 어려운 구장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중앙펜스가 122m로 길고, 펜스 높이도 4m로 높기 때문입니다. 실제 지난 2년간 홈런 파크팩터에서 고척돔은 담장을 확 높인 사직과 함께 '홈런 치기 어려운 구장' 2-3위권을 다투고 있습니다. 물론 압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잠실구장과는 제법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척돔에서조차,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거들이 뛴 실전 2경기를 포함한 6경기에서 8개, 경기당 1.33개의 홈런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메이저리그에서라면 홈런이 됐어야 할 타구가, '고척돔'에 가로막혔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타구들이 가장 홈런에 가까운 '아까운 타구'들이었는지, 메이저리그 공식 기록 사이트 베이스볼 서번트를 통해 고척돔의 위용과 그 너머에 있는 '김잠실'의 위대함을 추측해 보겠습니다. 이게 홈런이 안 된다고..? 오타니가 놓친(?) 3홈런 경기 (13/30) 21일에 열린 개막시리즈 두 번째 경기 다섯 번째 타석에 들어선 오타니는 샌디에이고 구원 투수로 등판한 대표팀 동료 마츠이 유키의 초구 스플리터를 걷어올려 우중간 깊숙이 날아가는 타구를 날렸습니다. 하지만, 타구는 담장을 넘기지는 못했고, 워닝트랙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익수 타티스의 주니어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관련 영상 시속 161km의 속도로 117m를 날아간 이 타구가 만약 오타니의 새 홈구장 다저스타디움에서 나온 것이었다면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홈런으로 연결됐을 겁니다.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오타니의 타구는 30개 구장 중 13개 구장에서 홈런이 되는 큼지막한 타구였습니다. 오타니의 불운(?)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네 번째 타석에서도 우측 깊숙한 타구를 날렸지만 안타나 홈런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는데, 만약 오타니가 우측 펜스가 짧은 양키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렀다면 이는 모두 홈런으로 연결되는 타구였습니다. 무키 베츠, 경품 못 탔으면 어쩔 뻔 (17/30) 서울시리즈 첫 홈런의 주인공에게는 경품으로 전기차 한 대가 주어졌습니다. 5회 대형 홈런으로 경품 수령의 주인공이 된 무키 베츠는 사실 이전에 홈런을 칠 수 있는 찬스를 아깝게 놓쳤습니다. 3회 세 번째 타석에서 샌디에이고 불펜 투수 코스그로브의 몸쪽 패스트볼을 받아쳐 펜스 상단을 직접 맞히는 2루타를 뽑아냈기 때문입니다. ▶관련 영상 이 타구는 베츠의 전 소속팀 보스턴의 홈구장 팬웨이 파크를 비롯해, 샌디에이고의 홈구장 펫코 파크, 샌프란시스코의 홈구장 오라클 파크 등 17개 구장에서 홈런이 되는 타구였습니다. 만약 베츠가 그다음에 홈런을 친 마차도에 밀려 경품을 타지 못했다면, 분명 이 타구를 떠올리며 아쉬워했을 것 같습니다. 내 데뷔 첫 홈런이…잭슨 메릴의 운수 나쁜 날 (23/30) 샌디에이고 팜 2위 유망주 잭슨 메릴은 서울시리즈에서 강렬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첫 경기에서 3타수 무안타에 그쳤지만, 두 번째 경기 두 번째 타석에서 데뷔 첫 안타를 신고했고, 세 번째 타석에선 거의 홈런으로 연결되는 듯했던 타구를 만들어냈습니다. ▶관련 영상 다저스 투수 카일 허트의 낮은 체인지업을 그대로 걷어올린 메릴은 고척돔 우측 펜스 최상단 철제 그물을 바로 맞혔습니다. 팀 선배 마차도는 "(홈런에) 2피트(61cm) 모자랐다"고 표현했는데,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메릴의 타구가 홈런이 되지 않는 메이저리그 구장은 단 7개뿐이었습니다. (팬웨이 파크, 쿠어스 필드, 카우프만 스타디움, 콜리세움, PNC 파크, 오라클 파크, 내셔널스 파크) 물론 시범경기 15게임에서 OPS 0.926, 홈런 2개를 기록한 메릴은 언제든지 데뷔 첫 홈런을 터뜨릴 수 있는 선수입니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 땅에서 첫 홈런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단 몇십cm 차이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료 출처 : 스탯티즈, 베이스볼 서번트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번 스토브리그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는 누가 뭐라 해도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의 복귀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18살 고졸 신인 투수의 활약상이 조금씩 전해지며 류현진의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호주와 오키나와를 거치며 6경기에서 무시무시한 활약을 선보이며 두산 팬들의 마음을 달아오르게 만든 현 시점 ‘신인왕 0순위’ 김택연 선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오늘 <야구수다>에서는 김택연 선수와 관련된 숫자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김택연은 누구이고, 또 어떤 활약이 기대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0 김택연이 3월 13일 이전에 등판한 실전 6경기에서 기록한 평균자책점입니다. 6경기 중에 KBO리그보다 한 수 위로 여겨지는 NPB 세이부와 소프트뱅크전이 포함돼 있다는 게 ‘킬포인트’라 할 수 있습니다. 퍼시픽리그 홈런왕을 세 차례 차지했고, 지난해 WBC 일본 대표팀에도 뽑혔던 소프트뱅크의 거포 야마카와 호타카는 김택연과 상대해 파울 플라이 아웃으로 물러난 뒤 “정말 18살 고졸 신인이 맞느냐”고 놀라며 되물었다고 합니다. 1 김택연의 고교시절 등번호입니다. 인천고 시절 ‘1번 김택연’의 존재감은 엄청났습니다. 고3이던 지난해 13경기에 등판해 64.1이닝 동안 피안타 33개를 맞는 동안 삼진 97개를 잡아냈습니다. 자책점은 단 8점. 평균자책점은 1.13이었습니다. 야구 명문 모교 인천고의 대통령배 준우승을 이끈 고교 시절의 추억이 깃든 만큼 1번에 대한 애착이 있을 법도 하지만, ‘두산 김택연’은 자신의 생일 6월 3일을 의미하는 63번을 새 등번호로 골랐습니다. 당분간은 바꿀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2 김택연은 2024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두산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지난 시즌 고교 최대어였던 장현석의 미국 진출이 결정되며 황준서와 김택연, 둘 중 누가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을 지에 관심이 모아졌는데, 한화가 황준서를 선택하며 김택연은 자연스럽게 두 번째 지명권을 갖고 있었던 두산의 품에 안겼습니다. 당시 두산은 김택연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미리 준비해 화제가 됐는데요, 어쩌면 지금 보여주는 것과 같은 김택연의 퍼포먼스를 어느 정도는 예상했는지도 모릅니다. 5 김택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보통 야구 선수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코스를 밟는 것을 생각하면 뒤늦은 출발이었습니다. 김택연은 <야구에 산다> 인터뷰에서 “힘든 길인 걸 알기 때문에 이걸 진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1년 동안 고민을 하다가 야구를 하기로 했다”며 “원래 중견수였는데, 중학교 때부터 시속 150km가 넘는 공을 던지는 투수들을 보고 멋있어 보여서 투수를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뒤늦은 출발을 메우고도 남았던 건 끊임없는 연구와 공부 덕분이었습니다. 김택연은 자신의 영상을 포함해 메이저리그, NPB 투수들의 영상을 보며 쉼 없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구에 산다> 인터뷰에선 ‘스펜서 스트라이더의 익스텐션’을 묻는 기습 질문에, ‘7.1피트’라고 정확히 답하며 좌중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155 오키나와에서 이미 최고 시속 152km를 기록한 김택연은 올해 안에 시속 155km를 찍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습니다. 현재 시범경기에서 기록하고 있는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아직 시속 150km에 못 미치지만, 따뜻해지는 날씨와 함께 구속은 금방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178 김택연은 사실 드래프트 되기 이전부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습니다. 18세 이하 야구 월드컵에서 불거진 혹사 논란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김택연은 조별리그 푸에르토리코 전을 시작으로 5일 연속으로 마운드에 오르며 12.1이닝 동안 178구를 뿌렸습니다. 미국과 치른 동메달 결정전에서 7이닝 2피안타 9탈삼진 완봉승을 거둔 것이 화룡점정이었습니다. 본인 스스로 아직까지 영상을 찾아본다고 말할 만큼 인상적인 호투였지만, 갓 18살이 넘은 신인에게 지나친 등판 일정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당시 등판의 여파였을까요. 김택연은 두산에 드래프트 된 이후 4개월이 지난 올해 1월에야 하프 피칭을 시작했습니다. 182 김택연의 키입니다. 김택연은 동년배 다른 투수들과 비교해 키가 크지 않은 편입니다. 좋아하는 투수가 스펜서 스트라이더(183cm)와 야마모토 요시노부(178cm)인 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크지 않은 키를 최대한 가동하기 위해 자신의 투구폼을 열심히 분석해 교정했다는 김택연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키가 야구 실력을 정하는 요소는 아니다”라며 “작은 키 때문에 고민하는, 나보다 어린 투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16/20 스프링캠프 투수 MVP로 뽑힌 김택연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은 이승엽 두산 감독은 김택연을 마무리 후보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올해는 선발보다 마무리, 혹은 셋업맨으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은 김택연은 어린 나이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선배들의 기록에 도전장을 내밀게 됐습니다. 역대 10대 선수 최다 세이브 기록은 2006년 롯데의 나승현(16세이브)이, 최다 홀드 기록은 2007년 두산의 임태훈(20홀드)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슈퍼 루키’의 자질을 이미 어느 정도 증명한 김택연은 과연 어떤 기록에 도전하게 될까요? 자료 출처 : 스포츠투아이, 스탯티즈
류현진의 KBO 복귀가 확정됐습니다. 2013년 시즌을 앞두고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은 지난 10시즌 동안 최고의 한국인 메이저리거로 활약해 왔습니다. 데뷔 시즌부터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신인왕 4위에 올랐고, 2019년과 2020년엔 연달아 사이영상 2위, 3위에 오르며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올 시즌 37살이 되는 나이와 적지 않은 부상 이력이 걸림돌이지만, KBO리그와 MLB의 ‘차이’를 감안할 때 한국에 돌아온 류현진의 활약 가능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실제 류현진은 팔꿈치 부상에서 복귀한 지난 시즌에도 11경기에 선발로 나서 3승 3패 평균자책점 3.46을 올리며 본인이 여전히 ‘메이저리그급 투수’라는 걸 스스로 증명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활약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물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류현진급’의 투수가 곧장 KBO에 진출하는 일은 매우 드물고 비교 대상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2020년 이후 KBO리그를 밟은 MLB 출신 투수 중 지난해의 류현진(선발 등판 11회) 보다 더 많이 선발투수로 뛴 선수은 단 4명뿐이었고, 류현진(52이닝)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한 투수로 범위를 넓혀봐도 딱 1명이 더 늘어날 뿐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류현진이 부상 복귀 후 겨우 절반의 시즌만 치르는 데 그쳤음에도 말입니다. 다만, 올해 류현진의 투구가 어떤 모습일지 세부적인 지표의 방향성을 짐작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2020년 이후 MLB를 거쳐 바로 다음 시즌에 KBO리그 마운드를 밟은 투수 35명 가운데 양 리그에서 최소 20이닝씩을 던진 투수 16명을 추렸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을 찾아 류현진의 올 시즌을 짐작해 봤습니다. 홈런은 줄고 땅볼은 늘어날 것 MLB를 거쳐 KBO에 입성한 투수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땅볼의 증가였습니다. 16명의 투수 전부가 땅볼의 유도 비율이 늘었고, 슐서(KT)를 제외하고는 땅볼 유도 비율에서 두 자릿수 이상의 증가폭을 보였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피홈런의 감소입니다. 대상 투수 16명 중 지난해 KIA에서 뛰었던 메디나를 제외한 모든 투수가 KBO에서는 홈런을 덜 맞았습니다. 감소폭도 큰 편이었는데, MLB시절보다 9이닝 당 홈런 개수가 50% 이상 감소한 투수가 16명 중 13명이나 됐습니다. 만약 류현진이 앞서 KBO에 온 16명의 평균 정도로만 땅볼 증가(+21.12%p)와 홈런 감소(-58.81%)를 겪게 된다면, 지난해 45.6%였던 땅볼 비율은 67.7%로, 9이닝 당 홈런 개수는 1.56개에서 0.64개로 변하게 됩니다. 이는 당연하게도 둘 모두 KBO리그 정상급 선발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더 많은 삼진과 더 적은 볼넷? 홈런과 땅볼 비율 이외에도 MLB 출신 KBO 투수들에게 드러나는 경향은 또 있었습니다. 바로 삼진의 증가와 볼넷의 감소입니다. 다만 그 경향성의 기울기는 홈런과 땅볼만큼 크지는 않았습니다. 볼넷의 경우 16명 중 13명이 감소했지만, 맥카티(SSG)와 가뇽(KIA), 메디나(KIA)처럼 오히려 증가한 경우도 소수 있었습니다. MLB 출신 KBO 투수들은 삼진도 대체로 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6명 중 11명이 메이저리그에서보다 더 많은 삼진을 잡았습니다. 다만, 라이트(NC), 슐서(KT), 샘슨(롯데) 등 5명은 KBO리그 이동 후 오히려 삼진이 줄었습니다. 만약 류현진이 앞선 16명의 평균정도로 삼진(+18.30%)과 볼넷(-23.52%)에 변화를 겪게 된다면 삼진은 7.78개로 늘고, 볼넷은 1.85개로 줄어들게 됩니다. 지난해 규정이닝을 던진 투수 가운데 9이닝당 삼진이 7.78개보다 많았던 선수는 페디(10.43), 안우진(9.80), 벤자민(8.83) 세 명뿐이었고, 9이닝 당 볼넷이 1.85개보다 적었던 선수 역시 고영표(0.98), 알칸타라(1.64), 페디(1.75) 세 명뿐이었습니다. 류현진은 다시 KBO의 지배자가 될까 2006년, 고졸 루키로서 KBO에서 첫 시즌을 시작한 류현진은 데뷔 첫해부터 리그를 초토화시키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신인왕과 MVP를 동시석권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2년까지 7시즌 동안 98승 52패, 평균자책점 2.80을 올려 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로 군림했습니다. 그리고 12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만 37살로 시즌을 맞는 류현진은 다시 돌아온 KBO에서 역시나 리그의 지배자로 우뚝 설 수 있을까요? 재미를 위해 조금 더 거친 예측으로 글을 마무리해보겠습니다. 류현진은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출국에 앞선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목표로 150이닝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만약 류현진이 150이닝을 투구하고, 앞서의 외국인 투수들처럼 성적이 향상돼 9이닝 당 1.85개의 볼넷과 7.78개의 탈삼진, 0.64개의 피홈런을 기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에 한국에서의 마지막 시즌처럼 5개 정도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게 된다는 가정을 양념으로 더하면, 류현진은 3.3~3.4 정도의 FIP를 기록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기준 3.4 이하의 FIP를 기록한 투수는 단 6명. 그중 한국인 투수는 안우진과 고영표뿐이었습니다. 디자인 : 권민재 자료 출처 : 팬그래프닷컴, 스탯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