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컨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에서 데이터 분석과 영상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학술적인 엄밀함을 유지하면서도 시의성과 재미를 놓치지 않는 아카데믹 저널리즘에 관심이 많다.
지난 2020년 3월 25일부터 ‘민식이법’이 시행됐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치사상 사고를 냈을 때 가중처벌하는 조항이 개정 적용된 것으로,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 가해 운전자의 처벌이 강화된 겁니다. 민식이법 이후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요, 과연 스쿨존 교통사고는 얼마나 줄었을까요? 온라인 공간에서 민식이법 관련 여론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민식이법 놀이’라고도 불리는, 차량 블랙박스 영상으로 공유되는 일부 사례들이 법안에 대한 거부감을 더욱 부추기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극적인 영상이 과연 얼마나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다소 의문입니다. 보행자 입장에서 경험하는 위협적인 차량은(사람에게는 블랙박스가 없으니) 녹화되지 않습니다. 반면 차량이 경험하는 악성 보행자는 녹화하기도 쉽고, 온라인 영상 플랫폼에서 빠르게 공유되고는 합니다. 게다가 악용 사례가 존재하는지와, 어린이 보행자 사고 감소라는 민식이법이 의도했던 목표가 달성되었는지는 별개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의 도로교통공단(TAAS) 일자별 교통사고 86만 건에서 보행자 사고 약 16.5만 건을 활용해 민식이법 도입 이후로 스쿨존의 어린이 보행자 사고가 얼마나 감소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연도별 집계를 살펴보면, 2018년 378건, 2019년 475건을 기록했던 사고 건수는 법 개정 이후인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311건과 354건으로 감소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민식이법 이후로는 사고 건수가 감소세이니 법이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체 기간 동안의 일자별 사고 건수를 살펴보면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만약 민식이법이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 감소에 충분히 영향을 주었다면, 법 개정 이전보다 이후의 사고 발생 빈도가 명확하게 감소 추세로 전환되었을 텐데요, 정작 실제 추세(trend) 데이터를 분석하자 특별히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p-value 0.542) 또 다른 굵직한 교통 관련 법 개정인 ‘도심 제한 속도 50km/h’가 도입되기 이전인 2021년 4월 17일까지로 한정해서 데이터를 살펴보아도 (p-value 0.192), 추세를 통제(control)한 이후에 정책 도입 시점의 효과만 봐도 (p-value 0.281) 마찬가지입니다. 즉, 4년 동안 민식이법과는 무관하게 매월 평균 0.006건씩 스쿨존 어린이 사고가 감소 중이었고, 법 개정 이후 사고가 줄어든 것은 실제로 법이 효과적이어서라기보다는 이러한 기존 추세의 연장선 상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일종의 대조군(control group)과 같은 개념으로 스쿨존 외부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나 성인 교통사고와 비교하면 상황이 좀 더 명확해집니다. 가령 위 그래프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성인 사고’를 분석하면, 시간에 따른 추세와 계절성(seasonality)을 감안하더라도 오히려 2020년 3월 이후의 사고 발생 빈도가 유의미하게 낮게 나타나죠. (p<.001) 특별히 성인 대상의 추가 정책이 있었던 건 아니니, 동시기에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한 교통량 감소의 효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마찬가지로 진한 푸른색 선인 스쿨존이 아닌 지역(非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사고도 2020년을 기점으로 사고 발생이 감소했습니다. (p<.001) 민식이법의 ‘간접효과’라고 해석한다 해도, 정작 정책의 직접적인 타깃이었던 스쿨존 사고(하늘색 선)보다 오히려 감소율이 크다는 사실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좀 더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민식이법 도입 이전과 이후의 사고 감소율을 연도별로 단순히 계산해도 이러한 차이는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가령 스쿨존 어린이 사고와 非스쿨존 어린이 사고, 성인 사고 각각에 대해 이를 계산하면 34.5%, 47.5%, 19.4%로, 정책의 직접적인 타깃이었던 스쿨존 어린이 사고가 가장 큰 폭의 감소율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민식이법 본연의 목적인 스쿨존에서의 어린이 보호 효과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대안이 필요할까요? 적어도 기계적인 엄벌주의 강화가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단순히 모든 스쿨존 관련 규제를 해제하는 것이 정답도 아니겠죠. 어떻게 어린이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데이터에 기반한 연구들과 정책 실험들을 거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디자인 : 안준석
20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집무실 용산 이전이 이슈화된 지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시의 여론은 매우 좋지 않았는데요, 전 국민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 용산 이전을 지지한 비율은 약 20% 밖에 되지 않았고, 아래의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 선거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후보 지지층 내에서도 명확한 지지 의견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림 1> 제 20대 대선 투표 집단별 “대통령 집무살 용산 이전” 여론 조사기간 : 2022.05.04.-2022.05.09. / 의뢰기관 : 언더스코어 / 조사기관 : 데이터스프링코리아 / 조사방법 : 온라인 조사 /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 2.5% / 조사대상 : 성별, 연령, 지역별 인구비례를 고려한 표본 만 18-69세 1,500명 청와대 개방 후 관리 문제 및 경제효과성 논란, 용산 이전 비용 및 도감청 취약성 등이 반대 이유로 제기되었고, 이전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사저에서의 출퇴근으로 인한 교통 체증 증가”까지 새로운 문제로 등장했습니다. 서초동 사저에서의 출근 경호 차량 배치 및 신호 통제로 인해 실제로 교통 체증이 심해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자 KBS는 취임 전후 약 보름 간의 데이터를 활용해 출퇴근의 교통 체증 유발 효과는 미미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죠. 이번 스프 칼럼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약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보다 많은 양의 데이터와 좀 더 엄밀한 통계적 방법을 활용해서 해당 이슈를 다시 한번 검증해 보겠습니다. 분석에 활용한 서울시 교통량 데이터는 <데이터창고>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우선, 서울시 교통정보 데이터를 활용해 대통령 사저 출근길 영향권에 있는 여섯 개 도로(한강대교, 동작대교, 반포대교, 잠수교, 한남대교, 강변북로)와 나머지 도로(133개)들의 대통령 취임 전후 10주 간(2022. 3. 11 - 2022. 7. 9)의 교통량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어떠한 정책이 도입된 이후 그 결과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에 영향받는 대상뿐만 아니라 영향받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도 모두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림 2>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전후 서울시 주요 도로 교통량 단순 비교 그 결과 위의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 출근길 영향권에 없는 도로들의 경우 특별한 차이가 없었던 반면, 우리의 관심 대상인 여섯 개 도로는 소폭 교통량이 증가한 정황이 관찰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대통령실과 서울경찰청의 주장이나 KBS의 분석 결과와는 달리 교통체증이 유발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림 3>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전후 서울시 주요 도로 교통량 단순 비교 그러나 저희는 이번 이슈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다루고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실제로 위의 <그림 3>에 나타난 바와 같이, 사저 출근길 영향권에 있는 여섯 개 도로들 (붉은 선)과 그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도로들 (푸른 선)이 이미 서초동 사저 출퇴근 실시 이전부터 꽤 명확한 차이를 보입니다. 나머지 도로들의 경우, 모든 기간에 걸쳐 특별한 교통량 변화가 없지만, 우리의 관심 대상인 여섯 개 도로들은 2022년 3월의 교통량이(5월의 사저 이전과는 무관하게) 여타 기간 대비 훨씬 낮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림 2>와 같이 출퇴근 시점 전후 비교를 했을 때 대통령 사저 출근길 영향권의 여섯 개 도로에게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저 이전 “이후”에 교통량이 증가했다기보다는 “이전”의 교통량이 기본적으로 낮았기에 발생한 착시 현상입니다. 통계적으로는 이를 이중차분(DID, Difference-in-Differences) 분석에서의 평행 추세 가정(parallel trend assumption) 위배라고 부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정책에 영향받는 도로와 영향받지 않는 도로의 교통량 추세가 정책 도입 이전부터 애초에 같지 않았다는, 즉 추세가 평행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자면, 애초에 분석의 범위를 “전후 10주”가 아닌, 보다 좁은 범위로 설정했을 경우 이러한 문제가 기본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림 4> 매칭(matching) 적용 이후 교통량 7일 이동 평균선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볼 수 있을까요? 단순히 모든 도로를 비교하는 대신, 5월의 집무실 이전 발표부터 서초동 사저 인근의 여섯 개 도로와 교통량 추세(trend)가 비슷한 도로들만을 일부 추출한 후 비교 분석하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통계적으로 이러한 기법을 ‘매칭(matching)’이라고 부릅니다. <그림 4>는 이들 여섯 개 도로와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으면서도 교통량 추세가 비슷한 10개 도로를 추출한 뒤 양쪽을 비교한 결과입니다. 동일로(의정부IC), 밤고개로(세곡동사거리), 오정로(부천시계), 통일로(고양시계), 월드컵대교, 천호대교, 증산로(디지털미디어시티역), 북부간선로, 분당수서로, 서부간선지하도로 확실히 모든 도로들을 한데 모아 시각화했을 때와 달리, 5월 이전에도 양쪽 도로들의 교통량 패턴이 훨씬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패널 회귀 모형을 통해 분석한 결과, 이번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서초동 사저 출퇴근이 특별히 인근 도로 교통량을 늘린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TWFE, p-value 0.286) <그림 5> 한남동 관저 이전 전후 서울시 주요 도로 교통량 비교 아직도 무언가 미심쩍은 기분이 든다면, 조금 다른 기간의 데이터를 활용해 우리의 질문에 다시 한번 답해볼 수도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1월 7일 자로 서초동 사저로부터 한남동 관저로 이전했습니다. 만약 서초동에서의 출근이 더 많은 교통 체증을 유발했다면, 용산 집무실과 훨씬 인접해 있는 한남동 이전 이후에는 인근 여섯 개 도로들에 한해서 교통량이 감소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림 5>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번에도 양쪽 유형의 도로 모두에서 동일한 패턴이 관찰되었고, 한남동 관저로 이전이 완료된 후 특별히 교통체증이 덜해졌다는 증거 역시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TWFE, p-value 0.630) 소셜미디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의견들, 그리고 우리의 주관적인 인상은 어떠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효과에 대해 편향(bias)을 가지기 쉽습니다. 과연 어떠한 의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실제 데이터를 통해 보다 정확하게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죠. 지난 1년 간의 서울시의 교통 데이터를 통해 살펴본 결과, 적어도 도로별 교통량 데이터를 분석했을 때에는 사저 이전이 교통 체증을 증가시켰다는 정황은 찾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디자인 : 안준석
2001년 1월 22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휠체어를 탑승한 노부부가 장애인용 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지난 22일은 사망 22주기였습니다. 22년이 흘렀지만 '장애인 이동권 보장'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하철 탑승 시위를 이어가고 있고 서울시는 전장연 시위에 시민 56%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를 내세우며 강경 대응 의지를 천명합니다.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이제까지 알려진 '여론'은 제대로 된 것일까요?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과 지식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가 함께 전장연 시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여론을 진단해 봤습니다. 전장연의 이동권 보장 시위와 관련해 그동안 많은 기사가 나왔습니다. 대부분 개별적인 사건·사고 사례들, 정치권 공방, 주최 측인 전장연의 요구 및 관련한 협상 등을 보도하는 데에 주력해 왔습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장연 시위 여론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건 많지 않았죠. 언더스코어는 전문 조사업체인 데이터스프링코리아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70세 미만의 전국 1,500명 시민들을 대상으로 지난 5월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여러 문항들을 통해 연령, 성별, 거주지, 소득 수준과 같은 기초적인 정보들은 물론 “우리 사회는 장애인 지원 정책 및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장애인 단체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정당한 권리 행사보다는 사회적 민폐에 가까웠다” 등의 질문들을 바탕으로 전장연 시위에 관한 의견을 측정해 봤습니다. 서울 안 살고 지하철 안 타는 시민들, 더 우호적이었을까? 이번 시위와 관련해 온라인에서 접하는 대표적인 의견 중 하나는 “평소에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만 지지하지, 지하철 타고 다니는 수도권 사람들이라면 솔직히 이번 시위 지지하기 어렵다”입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저희는 설문 문항에 평소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묻는 문항을 포함시켰습니다. 설문 응답자들이 전장연 시위 문항을 의식해 답변을 왜곡하지 않게끔, 시위 지지도를 측정하는 문항은 설문의 앞부분에, 교통수단을 답하는 문항은 뒷부분에, 최대한 먼 거리를 두고 배치했죠. 우선 주요 교통수단이 지하철이라고 답한 사람들은 여타 유형의 응답자들에 대비해 전장연 시위 지지도가 5점 만점에 0.21점 더 낮게 나타났습니다. 지하철 이용 여부는 시위 지지도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p<.01) 여기까지만 보면 꽤 직관적인 결과이고, 우리의 통념이 사실인 것도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과연 ‘실제 불편함’을 겪고 있는 수도권의 지하철 이용객들이 부정적인 응답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전장연 시위를 직접 경험하지 않는 비수도권의 지하철 이용객들 역시 ‘심리적인 공감’을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일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저희는 데이터를 지역별로 나누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분석 결과, 서울시민들에게는 평소 지하철 이용 여부가 시위 여론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고(p-value 0.452), 경기도민들과 비수도권 응답자들에게만 약한 수준의 영향이 나타났습니다.(p<.1) 경기도민은 서울까지 긴 통근·통학 시간을 겪는 경우가 많기에 그 피해가 응답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직접 시위에 영향을 받는 서울시민에게는 정작 그러한 경향이 전혀 없었다는 점, 또 반대로 시위 영향권에 전혀 포함되지 않는 비수도권 시민들에게 오히려 약하게나마 상관관계가 관찰된 점을 고려하면, 분명 직접적인 불편함 이외의 심리적인 무언가가 전장연 시위 여론에 영향을 주었을 것도 같습니다. 즉, 우리의 통념은 절반만 사실이었던 것이죠. 실제 경험보다는 ‘정치적 신념’ 데이터를 분석하며 발견한 흥미로운 심리적 요소는 바로 ‘정치적 신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경험함으로써 정치적 신념이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1980년대 대학생들이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알게 된 후 진보적인 성향을 갖게 될 수도 있고, 2002년 6월 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을 겪으며 90년대생들이 보수적인 안보관을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충분히 개연성 있는 상황들이죠. 그러나 반대로 특정 경험이 오히려 본인의 기존 정치 성향을 강화하게 되는 상황 역시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음 막대그래프는 제20대 대선에서 투표한 후보와 평소 지하철 이용 여부, 그리고 전장연 시위 지지도 간의 관계를 시각화한 겁니다. 각 후보 지지자마다 지하철 이용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패턴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에 투표한 응답자들은 평소 지하철 이용 여부와 전장연 시위에 대한 의견이 무관했지만, 윤석열 후보에 투표한 응답자들은 평소 지하철을 이용할수록 시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 심했습니다. (p<.0 5) 이런 경향은 위 그래프처럼 본인의 정치 성향을 ‘매우 진보(1점)’부터 ‘매우 보수(5점)’ 사이에서 응답하게 했을 때에도 일관되게 나타났습니다. (p<.01) 스스로가 매우 진보적이라고 응답한 사람들은 지하철을 이용할수록 시위에 우호적이었지만, 그래프의 오른쪽 막대들로 이동할수록, 즉 정치 성향이 보수적일수록 지하철 이용 경험이 시위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죠. 즉, 사람들은 이미 지니고 있는 각자의 정치 성향에 따라 이미 장애인 이동권이나 시위에 관한 의견을 사전에 정립해 둔 후, 지하철을 대상으로 하는 전장연 시위를 사후에 접하게 되면서 기존 신념을 각자의 방식으로 강화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득, 학력, 직업... 영향 없음, 통계적 유의미는 오직 '성별' 지금까지 심리적인 요소들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좀 더 직관적인 인구 통계적 요소들을 살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연령, 성별, 소득, 학력, 직업, 결혼 여부 중 전장연 시위 지지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연령과 성별 간의 교차효과(interaction effect)를 제외하면, 그 어떤 요인들도 전장연에 관한 의견에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까지만 교육을 받았든, 서울 4년제 대학교를 졸업했든, 월평균 소득이 높든 낮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전장연의 시위에 우호적인지, 아니면 비판적인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죠. 연령과 성별 간의 교차 효과가 의미하는 바는 위의 그래프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연령층에서는 성별에 따른 의견 차이가 없었으나,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남녀 간의 여론에 급격한 차이가 나타났죠. 20대와 30대의 청년들의 경우, 남성들 중 51.7%가 이번 시위를 정당한 권리 행사가 아닌 사회적 민폐라고 평가했지만 여성들은 그보다 훨씬 적은 38.1%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또, 위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전장연 시위가 아니라 더 광범위한 장애인 지원 정책과 예산을 소재로 질문했을 때에도 동일한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참고로 지난해 6월에 서울신문·공공의창·우리리서치가 진행한 유사한 설문조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 바 있습니다. 전장연 시위가 정치적으로 첨예한 이슈임을 감안하면, 이는 지난 몇 년간 언론에서 자주 다루어진 ‘청년 남성의 보수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분석에 대한 더 상세한 내용과 통계적인 정보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설문조사 관련 정보 - 조사기관 : 데이터스프링코리아 - 조사기간 : 2022.05.04.-2022.05.09. - 조사대상 : 성별·연령·지역별 인구비례를 고려한 표본 만 18~69세 1,500명 - 조사방법 : 온라인 조사 -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 ±2.5% 디자인 : 김성은 ►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