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문 기자, 공연 담당 기자. BTS도 조성진도 씁니다. 사회부, 편집부, 정치부, 국제부, SDF 기획 부서를 거쳤고, 문화부에서 가장 오래 일했습니다. 공연 관람과 수다, 피아노, 중국문화, 그리고 고양이 집사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쓴 책으로 <나도 가끔은 커튼콜을 꿈꾼다>, <천재들의 유엔 TED>가 있습니다.
이슈는 스프링이다!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이슈를 핵심만 골라 정리해드립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하야보다는 탄핵 소추가 되더라도 직무 정지 상태에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의힘에서는 하야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이보다는 탄핵당한 뒤 헌법재판소에서 비상계엄의 합법성을 다퉈보겠다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하야보다는 탄핵소추를 감수하고 헌법재판소 재판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여당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조선일보 등이 보도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대국민 담화에서 자신의 임기를 포함한 향후 정국 운영을 여당에 일임하겠다고 했지만, 10일 국민의힘이 밝힌 ‘정국 수습 로드맵 초안'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정국 안정화 태스크포스(TF) 위원장 이양수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로 들어가고 있다. 무슨 상황인데? 국민의힘 ‘정국 안정화 태스크포스(TF)’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조기 퇴진 후 내년 상반기 대선 실시를 골자로 한 정국 수습 로드맵 초안을 마련해 발표했습니다. 이양수 TF 위원장은 비공개 비상 의원총회에서 '2월 퇴진 후 4월 대선'과 '3월 퇴진 후 5월 대선'이라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이 로드맵 초안은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느슨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에 대해서조차 반대 목소리가 커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 역시 한동훈 대표가 주장하는 '질서 있는 퇴진' 계획에 협조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친한동훈계인 국민의힘 김종혁 최고위원은 이와 관련해, 11일 오전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개인적으로 용산 관계자들과 접촉한 바에 따르면 어떤 경우든 (윤석열 대통령의) 하야는 없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헌법재판소 판결이 남아 있다. 그런데 지금 헌법재판관이 6명"이라며 "6명 중 1명이라도 반대하게 되면 기각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내년 4월에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재판관 2명이 바뀌는데, 그렇게 되면 더 유리하다는 정치적 계산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금 스스로 물러나면 모든 기회가 사라진다고 보고, 역전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좀 더 설명하면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180일 안에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석 달이 걸렸습니다. 대통령 탄핵은 재판관 7인 이상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해, 3분의 2 이상인 6명이 동의하면 확정됩니다. 헌법재판소는 원래 9인 체제이지만 3명이 공석으로 현재는 '6인 체제'입니다. 한 명이라도 반대한다면 탄핵이 인용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현행 '6인 체제'가 계속 유지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민주당이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3명의 선출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7일 민주당은 정계선 서울서부지방법원장과 마은혁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를, 국민의힘은 조한창 변호사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하는 내용으로 각각 추천 서류 제출을 마친 상태입니다. 민주당은 오는 23일 전후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를 진행하고, 연내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여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야당 추천 헌법재판관 후보 2인을 단독 선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재적 의원 절반(150명)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선출안이 통과됩니다. 한 걸음 더 대통령실에서는 조기 퇴진 여부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있습니다. 현재 대통령실은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된 윤 대통령을 겨냥해 수사망이 좁혀오는 만큼, 법률비서관실을 중심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걸로 전해졌습니다. 윤 대통령 측은 현재 변호사 선임을 준비하고 있는데 대검 중수부장 출신의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는 걸로 전해집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 긴급 담화에서 밝혔듯 공직자 탄핵을 남발하고 예산안을 삭감한 야당의 횡포가 전시 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였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걸로 전해졌습니다. 또 계엄을 선포하고 해제하는 과정 모두 비상 국무회의 심의를 거친 만큼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에 해당하는 만큼 법적인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법적 대응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에서는 여당 내부에선 탄핵 찬반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동훈 대표 주도로 내놓은 ‘로드맵’'에 대한 결론을 내지도 못했고, 추경호 원내 대표의 사퇴로 공석이 된 원내사령탑 자리를 두고도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현재 국민의힘 원내대표에는 국민의힘 중진 그룹이 미는 ‘친윤’ 권성동 의원, 그리고 ‘비윤’ 김태호 의원이 출마한 상태입니다. 한동훈 대표를 연일 공격하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차라리 한동훈과 레밍(나그네쥐)들은 탄핵에 찬성하고 유승민·김무성처럼 당을 나가거라”라고 썼습니다. 그는 “삼성가노(三姓家奴·‘세 개의 성씨를 가진 종'이라는 뜻으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장비가 여포를 부를 때 사용한 멸칭)들의 행태가 역겹기 그지없다. 한동훈과 레밍들은 동반 탈당해서 나가거라’고 썼습니다. 홍준표는 “용병 둘이 반목하다가 이 사태가 왔지 않느냐'며, ‘'국민은 한국 보수세력을 탄핵한 게 아니라 이 당에 잠입한 용병 둘을 탄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이들을 퇴출하고 이 당을 지켜온 사람끼리라도 뭉쳐 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고 주장했습니다. 여당 중진이 엄중한 현 상황을 ‘윤석열과 한동훈이 반목해서 일어난 일’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비상계엄 당일의 상황과 세부 계획이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전화해 정족수가 채워지기 전에 문을 부수고 들어가 회의장에서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국회의원들을 감금할 장소로 수방사 지하 벙커를 검토했고, 추가 병력 투입 계획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은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의원이 10여 명에 이른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7일 1차 탄핵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고 공개했던 안철수 김예지 의원에 이어 조경태 김상욱 의원도 어제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들 4명을 포함해 10여 명이 탄핵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어, 탄핵 가결을 위한 여당 이탈표 요건인 8명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한동훈 대표가 10일 오후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탄핵 말고는 사실 대통령 권한을 뺏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여당의 국정안정화 태스크포스가 내놓은 내년 2. 3월 하야-4.5월 대선’ 로드맵에 대한 반발이 크자 필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한 대표는 퇴진 로드맵을 거론하며 “이런 제안조차 하지 않고 정말 탄핵을 막을 수 있느냐”며 “질서 있는 퇴진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국민에게 빨리 대답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민주당은 12월 임시국회 회기 첫날인 11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본회의에 보고하고, 14일 본회의에서 표결에 나설 방침입니다. 1차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국민의힘은 투표 불참을 당론으로 정했고, 국민의힘 소속 의원 대부분이 이 당론에 따르면서 ‘투표 불성립'으로 탄핵소추안은 폐기됐습니다. 하지만 2차 탄핵소추안 표결에선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격앙된 표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대통령, 국회 정문을 봉쇄하고 시민들과 대치하는 경찰, 국회 상공에 뜬 군 헬기, 국회 안에 진입한 무장 군인, 긴박하게 이뤄진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표결…. 그 밤을 보내고 난 뒤로 일상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습니다.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언제 또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가시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보러 간 연극에서도 저는 다시 '비상계엄'의 그림자를 느꼈습니다. 제가 본 연극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되는 '타인의 삶'이라는 작품입니다. 원작은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가 감독한 독일 영화로 2007년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등 각종 영화제를 휩쓴 화제작이었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5년 전을 배경으로,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인 배우 크리스타 커플을 도청하는 비밀경찰 비즐러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당시 동독 정부는 수십만 명의 비밀경찰과 정보원을 동원해 주요 인사들을 감시했는데, 예술가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성실하고 유능한 비밀경찰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낱낱이 지켜보다가 점차 그들의 삶과 예술에 감화되어 갑니다. 드라이만은 사회주의 이념에 비교적 충실하고 반정부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절친한 선배 연출가 예르스카가 동독 정부에 의해 7년 동안 활동을 금지당하고 자살하는 것을 보고 독재 정권에 분노하고, 저항 운동에 동참하게 됩니다. 감시 대상의 행적을 낱낱이 보고해야 하는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반정부적인' 글을 쓰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거짓말까지 하며 조직을 배신하게 되죠. 배우 손상규가 직접 각색과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비즐러는 도청실에 하루종일 머무르는 사람이지만, 연극에서는 이를 비즐러가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동선을 지근거리에서 따라다니는 걸로 표현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느낌을 더욱 강화하고, 비즐러 자신도 모르게 이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는 과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무대의 활용과 소품, 배우의 동선이 상상력으로 빈 곳을 채우는 연극의 매력을 더욱 배가시킵니다. 제가 본 날 주역이었던 윤나무(비즐러), 김준한(드라이만), 최희서(크리스타)는 물론이고, 1인 다역을 한 조역들의 연기도 훌륭해서 110분이 금세 지나버렸습니다. 이 연극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따뜻한 인간애와 예술의 힘,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자유에의 의지를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는 독재정권 치하에서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도 보여줍니다. 아마 12월 3일 전에 이 연극을 봤다면, 저는 이를 먼 나라 얘기로만 여겼을 겁니다. 그런데 더 이상 이건 저와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작금의 한국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 연극에는 마침 저와 비슷한 직업을 가진 '하우저'라는 언론인도 나옵니다. 그는 항상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죠. 하우저뿐 아니라 비판적 성향을 보이는 예술가들은 활동을 금지당하거나 체포되고, 정권의 구미에 맞는 예술 작품들만 무대에 올라갈 수 있고, 시민들은 일상 대화를 할 때조차 혹시나 무슨 빌미를 잡히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권력자들은 사회주의 조국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웁니다. 그날 밤 '포고령 1호'가 그대로 시행됐다면?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하고',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 선동을 금한다' 등등의 조항이 있었습니다. 포고령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14조에 의하여 '처단'한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저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연극을 보면서 '비상계엄' 치하의 세상을 상상했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날 밤 계엄군들은 유력 정치인들의 체포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같은 여당인 한동훈 대표도 체포 대상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을 모두 '쳑결'하고 '처단'해야 할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모두 처단하는 게 자유민주주의인가요? 연극이 끝나고 공연장을 나오면서, 그날 밤 비즐러처럼 상부의 지시에 의문을 품고 거부하거나 최소한 소극적으로 임한 군인과 공무원들이 있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 앞에 모여들어 권력에 맞선 시민들이 있었기에 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도 오래전에 겪은 군사독재 시대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동화책에 10월 유신의 필요성을 동네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문방구 할아버지가 등장했고, 전두환 대통령을 찬양하는 글짓기 대회가 열렸고,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는 것도 위험한 시대였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한강 작가가 밝혔듯이,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2024년에 이 나라의 대통령이 시계를 거꾸로 돌려 이 시대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발레 공연에서 그렇게 뜨거운 함성과 박수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지난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 그리고 파리 오페라발레단 에투알('별'이라는 뜻으로 파리 오페라발레단 무용수 최고 등급) 박세은이 객원 주역으로 춤춘 무대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2010년 유니버설 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에서 함께 춤췄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 '주목받는 신인'이었던 두 사람은 이후 해외 발레단에 입단해 각각 정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까만 머리' '라 바야데르' 공연이 없는 날 시간을 내준 김기민을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초대했습니다. 박세은은 이미 커튼콜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김기민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김기민은 일찍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했고 국내 활동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발레 팬들을 제외하면 낯설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TV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등 국내에서도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죠. 마린스키 발레단은 러시아 고전 발레의 본산으로 세계 최고 발레단 중 하나로 꼽히는 단체입니다. 김기민은 19살이었던 2011년, 마린스키 발레단에 동양인 발레리노로서는 처음으로 입단했습니다. 그의 한예종 지도교수였던 러시아인 스승 블라디미르 킴의 역할이 컸습니다. 마린스키 발레단 솔리스트 출신인 블라디미르 교수는 김기민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의 공연 영상을 마린스키 측에 보냈습니다. 마린스키 발레단은 보통 부속 발레학교인 바가노바 아카데미 졸업생만을 대상으로 단원을 뽑지만, 영상을 본 마린스키 측에서는 김기민을 위한 단독 오디션을 열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기량에 감탄했지만 입단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까만 머리 발레리노'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바가노바를 졸업하고 마린스키에 입단해, 오랫동안 마린스키의 유일한 외국인 단원이었고 솔리스트로 활약했던 한국인 발레리나 유지연(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발레리나 유지연 편 보기)은 2010년 퇴단했고, 김기민 입단 당시에는 동양인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입단 두 달 만에 주역으로 데뷔 "'단장님이 인종차별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전례'가 없었으니까요.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인이 300명 있는데 외국인 1명 뽑는 건데, 한국 무용에 금발의 서양 남자가 나오는 셈이죠. 재미있는 건, 저희 발레 선생님(블라디미르 킴)도 마린스키 주역 무용수 출신인데 고려인이시거든요. 선생님이 '나도 까만 머리 아니냐?' 했더니 '너는 좀 다르다. 생김새가 약간 서구적이기도 하고. 하지만 기민이는 100% 순수 동양인이다. 피부 톤도 그렇고, 머리 색도 그렇고" 하더라고요." '까만 머리' 김기민은 오디션 사흘 만에 입단을 통보받았습니다. 전례를 깰 정도로 탁월한 기량이었던 거죠. 그리고 불과 두 달 만에 김기민은 '해적'의 주역을 맡았습니다. 파트너는 마린스키의 간판스타 중 한 명인 빅토리아 테레쉬키나. 그의 데뷔 무대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김기민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고 2015년 마린스키의 수석무용수 자리에 올랐습니다. 2016년에는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자무용수상을 받았습니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고전 발레의 남성 주역은 왕자가 많습니다. 까만 머리 김기민은 이제 '마린스키의 왕자'입니다. 마린스키 수석무용수에게만 허락되는, 무용수 개인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리사이틀'을 두 번이나 했을 정도로 스타가 됐습니다. 김기민 이후 마린스키 발레단은 외국인들에게 조금 더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최근에는 발레계에서 '천재 소년'으로 유명했던 발레리노 전민철(20)의 입단도 결정되면서 화제가 됐죠. 김기민이 후배 전민철의 영상을 마린스키에 보여주면서 추천했던 건 물론입니다. 중력을 거스르는 남자, 점프의 비결은 김기민의 춤은 '중력을 거스르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마치 김기민 혼자 와이어를 달고 춤추는 것 같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그는 날아오르듯 높이 뛰어 오래 공중에 머무르고 가볍게 착지합니다. 어려운 동작도 너무나 가뿐하고 우아하게 해냅니다. 발레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김기민의 탁월한 테크닉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 바야데르'에서 전사 솔로르 역으로 출연한 그가 조금 뛰어오르기만 해도, 객석에선 환호성과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점프 동작의 비결이 있을까요? "일단 점프는 타고나야 됩니다. 훈련해서 더 높이 뛸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발레는 그 훈련 말고도 할 게 너무 많잖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보다 높게 뛰는 사람들 많습니다. 저는 점프 연습보다는 점프 전까지의 동작이나 점프 후의 동작을 조금 더 많이 신경 썼어요. 스피드 있게 떠서 조금 더 멀리 떨어져요. 그러니까 좀 더 높이 뛰는 것처럼 보이는 이펙트를 만드는 거죠." "높이도 높이지만, 정말 가뿐하고 깔끔하게 연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하시니까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느낌이 거기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해요." "그건 선생님 영향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는 전사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다리 찢기도 하고 굉장한 테크닉을 많이 해요. 그러면 멋있어 보이거든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절대 하지 말라고 그러세요. 왜냐하면 이건 서정적인 발레라는 거죠. 작품마다 스타일에 맞는 테크닉이 있는 거고, 그 스타일을 강조하셨기 때문에 내용에 안 맞는 화려한 테크닉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발레는 종합예술... 작품 해석에 투자했다 김기민은 뛰어난 테크닉은 물론이고 등장인물의 심리와 감정을 잘 살려내는 연기로도 정평이 나 있습니다. 저는 김기민의 '라 바야데르'를 보면서 연기에 정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요, 그가 춤을 추지 않고 있을 때조차 그의 연기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습니다. 마임 동작 하나하나에도 마음을 담아서 하는 게 역력했고 캐릭터의 감정이 오롯이 전달됐습니다.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연인을 배신하는 '나쁜 남자'인데요, 김기민의 솔로르는 이 남자의 고뇌와 번민, 슬픔을 생생하게 드러냈습니다. 이건 단순히 점프 좋고 회전 잘하고 리프트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김기민은 발레는 테크닉뿐만 아니라 기본기, 감정, 해석이 모두 중요한 '종합예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게 재미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테크닉이 뛰어난 건 알고 있거든요. 사실 마린스키에서 13년 동안 공부했던 거는 테크닉도 있지만, 조금 더 발레의 해석이나 감정, 스타일, 이런 것에 투자를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한국에서 발레 배우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공연을 많이 못 본 거였거든요. 저는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마린스키 가니까 이 친구들은 매일 공연을 본 친구들이었고, 저는 1년에 서너 번밖에 보지 않았으니까요. 정말 발레의 해석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연습은 연습실 밖에서도 이뤄진다 그는 자신이 발레에 안 맞는 체형이라고 합니다. 흔히 다리는 일자로 곧게 뻗어있고, 골반은 바깥쪽으로 돌아가 있으며, 무릎은 안쪽으로 들어가 있고, 발등이 튀어나오면 발레 하기에 좋은 체형이라고 하는데, 김기민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발레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얘기도 수없이 들었던 그는 체형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독하게 연습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마린스키에서도 '연습벌레'로 유명했습니다. 김기민과 함께 춤춘 테레쉬키나는 그가 사흘이면 끝낼 동작을 한 달 동안 연습한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김기민은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테크닉보다는 발레의 해석, 감정, 스타일에 더 많이 투자한다고 한 얘기와 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건 그가 이미 테크닉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올라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연습을 연습실에서 많이 했었고요. 지금은 연습을 좀 밖에서 많이 하는 편이에요. (밖에서 어떤 식으로 하시나요?) 생각을 좀 더 많이 하는 편이에요. 지금도 연습은 많이 하는데, 그것만 계속하다 보면 약간 로봇처럼 나오는 게 있더라고요.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고 인위적으로 보이고 딱딱해 보이고. 물론 실수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좀 더 인간적인 게 좋아요."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마린스키 수석무용수의 하루 일과는 어떨까요? "아침 7시나 7시 반쯤 일어나요. 그러면 꼭 신문이든 책이든 뭐라도 읽어요. 제가 부족한 걸 알기 때문에 좀 더 채우려고, 많이 읽으려고 노력해요. 언어 공부도 꾸준히 하고요. 외국에 살고 있어도 이렇게 공부를 안 하면 실력이 내려가기 때문에. 그리고 아침에 루틴 운동을 하고 나서 강아지 산책을 30분 정도 시키죠. 그리고 발레단에 가면 오전 10시, 10시 반쯤 되죠. 그러면 클래스 하고 운동 하고 리허설 하고요." 공연이 있는 날은 하루 일과가 달라집니다. 늦게 일어나서 먹고, 유튜브도 보고, 책도 읽다가 다시 잡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공연하러 나갑니다. 이렇게 비축한 에너지를 모두 무대 위에 쏟아내고 돌아옵니다. 그도 흔들릴 때가 있다... '루틴'이 도움 김기민은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하자마자 주역으로 무대에 섰고, 입단 4년 만에 수석무용수가 됐습니다. 계속 승승장구하며 순탄한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김기민에게도 슬럼프가 있었을까요? 그는 24살~25살 무렵에 발레를 그만둘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때는 그냥 너무 힘들더라고요. 긍정적인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모든 게 다 좀 그럴 때 있잖아요. 모든 게 잘 안 되고, 부상도 되게 많고, 여자친구한테도 차이고 이럴 때 있잖아요. 그럴 때는 '슬럼프'라고 하기보다는 발레를 여기까지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슬럼프는 그냥 그만둔다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데 하기는 해야 하는 이런 상태가 길게 가는 게 슬럼프 같아요." "그럼 슬럼프는 루틴을 그냥 꾸준히 하면서 벗어나는 편이세요? 아님 뭔가 전환하는 다른 걸 만드는 편이세요?" "루틴이 도움이 많이 돼요. 제가 만든 루틴이. 그러니까 이 운동을 1시간 하면 그냥 힘이 나요. 오늘 난 절대 하기 싫어, 이럴 때도 그 루틴을 하면 그다음 할 일을 하더라고요. 발레를 좋아서 하는 거긴 하지만 저도 항상 좋지만은 않아요. 힘들 때도 있어요, 그래도 제가 발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나 지금 운동하는 거 너무 행복해! 막 근육이 찢어져! 행복해!' 이러면서 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힘들어요. (웃음)" 러시아엔 제2의 부모님, 원격 멘탈 케어는 형 담당 "그럼 발레를 그만두고 싶었던 그때는 어떻게 지나간 거예요?" 김기민은 형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에게는 같은 길을 걷는 발레리노 형 김기완이 있습니다. 김기민보다 세 살 위인 김기완은 현재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한 집안에서 발레 스타를 두 명 배출한 거죠.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발레를 배웠고 한예종 무용원도 함께 다녔습니다. 지금도 한 사람은 한국에, 한 사람은 러시아에 있으면서도 날마다 통화하는 우애 좋은 형제로 유명합니다. "형한테 직접적으로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형한테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형도 있지만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분들한테서 힘을 받았던 거 같아요. 제가 인복이 있어요. 저는 혼자서 삭히는 편이기는 한데, 은근슬쩍 얘기를 하면서 조언을 많이 들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러면서 마음을 치료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김기완이 김기민의 '원격 멘탈 케어' 담당이었던 셈이네요. 김기완은 이번에 자신의 직장이기도 한 국립발레단에서 주역으로 춤춘 동생의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고생하던 동생의 '금의환향'을 보는 느낌이었을까요. 김기민은 마린스키 발레단 내한 공연이나 갈라 공연으로 한국 무대에 선 적이 있기는 하지만, 김기완이 몸담은 국립발레단 공연의 주역이라 아마 더 특별했을 겁니다. 김기민은 마침 형이 입었던 솔로르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섰습니다. '인복 많은' 김기민에게는 그가 러시아 엄마, 아빠로 부르는 스승 블라디미르 킴과 마르가리타 쿨릭 부부도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킴 선생님'은 지금도 마린스키 발레단의 지도위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그는 러시아인이지만 고려인 3세라는 인연도 있습니다. 김기민은 현재 선생님과 함께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고 했어요. 암 투병 팬이 남긴 편지... 김기민이 발레 하는 이유는? 김기민은 최근 출연했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별한 팬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김기민의 춤을 사랑했던 팬이 유산을 남겨줬다는 얘기로 화제가 됐었는데요, 김기민은 이 팬이 재산 중 일부를 자기 앞으로 남겨줬다며, 이를 좋은 목적을 위해 기부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팬 이야기를 들려줬는데요, 바로 김기민에게 '내가 발레를 하는 이유'를 다시 성찰하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팬은 프랑스인이었는데, 김기민의 춤을 좋아해서 예전부터 편지와 선물을 보내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연락이 끊겼다 싶더니 한참 후에 그 팬의 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당신에게 남긴 장문의 편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원래 이분이 2년 전에 수명을 다하셨던 분이래요. 암에 걸렸기 때문에 2년 전에 돌아가신다고 했었는데, 제 춤을 보면서 수명을 늘리셨다는 거예요. '네가 2년 동안 나한테 가장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 줬다'고 저한테 편지를 남겨주신 거예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요. 발레에 대한 생각이 그때부터 정말 많이 달려졌던 거 같아요. 그냥 춤을 추는 게 아니라, 그냥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게 아니라, 내가 왜 연기를 하고 싶은지, 내가 무대에서 왜 박수를 받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표'를 저한테 줬던 팬이었어요." 김기민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다음 세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이렇게 자신이 춤을 추는 '이유'가 많아질수록,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더 행복하게 춤출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무대는 속일 수 없다... 선한 영향력 주고 싶어 "저는 '진실되게 할 겁니다'라고 얘기를 굳이 안 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무대 위에서는 다 드러나니까요. 무대는 절대 속일 수 없거든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 드러나요. 그런 의미에서 무대 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과 좋은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무용수가 되고 싶은 게 제 꿈이에요." '마린스키의 왕자' 김기민은 특별한 '성공 비결'을 들려주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힘들어도 하는 것. 꾸준히 하는 것.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 진실되게 하는 것. 쓰고 보니 당연해 보이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김기민은 앞으로 한국에서 더 자주 전막 발레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발레의 유명 장면들을 모아놓은 '갈라' 공연도 좋지만, 놀라운 집중력으로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내 마음을 움직이는 김기민의 무대를 제대로 즐기려면 역시 전막 발레가 좋습니다. 형 김기완과 한 무대에 서는 공연도 꼭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중력을 거스르는 남자' 김기민의 공연을 더 자주, 오래오래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240회' 발레리노 김기민 1부 ▲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241회' 발레리노 김기민 2부
이슈는 스프링이다!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이슈를 핵심만 골라 정리해드립니다. 예전에 주로 여학교 앞에서 트렌치코트만 입은 채 나체 상태로 특정 신체 부위를 보여줘 혐오감을 일으켰던 사람을 '바바리맨'으로 불렀습니다. 요즘은 이 '바바리맨'이 SNS상에 출몰하고 있습니다. 징역형까지도 선고받을 수 있는 성범죄이지만 비대면, 익명성에 기대어 SNS 바바리맨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겁니다. 무슨 상황인데? 최근 한 걸그룹 가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자기 특정 신체 부위를 찍어 보내는 분이 정말 많다"고 고충을 털어놨습니다. 한 여성 방송인은 "나한테 (남자들이) 사진을 많이 보낸다. 만나달라며 자신의 성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고, 한 여성 인플루언서도 "악플보다는 특정 부위 사진이 많이 온다"고 밝혔습니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는 현행법상 최대 징역형까지도 선고받을 수 있는 성범죄입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13조는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 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좀 더 설명하면 통신 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줄여서 '통매음'이라고 불리는 이 조항은 자신의 사진이 아니더라도, 사진이 아니라 글을 보내더라도, 상대방에게 그 내용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킨다면 모두 처벌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직접적인 표현이 담긴 글이나 사진이 아니고,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인터넷 사이트 링크만 보내더라도 혐의가 성립하는 것으로 이 조항을 넓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표현물의 음란성, 반복성, 죄질에 따라 '통매음'뿐만 아니라 법정형이 더 무거운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으로도 함께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법원은 지난달 전혀 알지 못하는 여성에게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메시지 3회와 동영상 1개를 전송한 남성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습니다. 피해자가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약 70회에 걸쳐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전송하고 성적인 문자 메시지를 10회나 보낸 남성에게는 벌금 400만 원을 선고하고, 성폭력 및 스토킹 치료 프로그램을 각각 40시간씩 이수하도록 했습니다. 한 걸음 더 SNS의 대중화로 '통매음' 발생 건수는 매년 폭증하는 추세입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통매음 발생 건수는 2015년 1,130건에서 2022년 1만 563건으로 7년 만에 9.3배가 됐습니다. 지난해는 2022년보다는 약간 줄었지만 8천 건이 넘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2022년 12월 발표한 '성폭력 안전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1만여 명 중 9.8%가 'PC, 휴대전화 등 통신 매체를 이용한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여성 응답자의 경우 피해 경로는 카카오톡, 라인, 텔레그램 등 '인스턴트 메신저'(50%)가 가장 많았고, '문자 및 전화'(39.1%),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20.9%)가 뒤를 이었습니다. 특히 가해자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사람'이 40.8%로 가장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아이폰의 무선 파일 공유 시스템인 '에어드롭'(Airdrop)과 텔레그램 등을 통한 범죄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에어드롭은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를 이용해 반경 약 9m 내에 있는 애플 기기에 익명으로 사진과 파일 등을 보낼 수 있는 기능입니다. 또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2023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사이버 괴롭힘'을 당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지원받은 피해자는 2018년 251명에서 지난해 500명으로 5년 만에 2배 늘었습니다. 피해자 중 여성이 90.2%, 연령별로는 10대~20대가 약 84%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범죄는 불법 촬영 등 다른 성범죄에 비해 가볍게 치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신고당해도 계정을 지우면 그만', '이런 걸로는 처벌 안 된다' 등의 조롱 섞인 반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전문가들은 가해자들이 음란한 사진이나 글을 전송하는 행위를 단순한 '장난' 정도로 치부하는 인식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전송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범죄가 완성되기 때문에 대부분이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메시지 발신자를 추적하기 어려운 데다, 실제 처벌 수위가 낮아서 신고해도 제대로 죗값을 묻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통매음의 검거율 자체는 낮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피해자가 채팅창 화면 캡처 등 증거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면 예전보다는 용의자 특정이 어렵지 않고 과거와 달리 플랫폼 업체들도 신원 확인 요청에 잘 응한다는 것입니다.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통매음의 발생 건수 대비 검거율은 매년 70∼80% 후반대로, 2021년을 제외하면 총 범죄 발생 건수 대비 검거율보다 높았습니다. 문제는 정작 수사 단계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경찰에 통매음으로 입건된 8,738명 중 수사 과정에서 구속된 인원은 12명에 불과했습니다. 재작년에는 1만 689명 중 4명만이 구속됐습니다. 검찰 연감에 따르더라도 통매음은 기소된 경우보다 불기소율이 훨씬 높습니다. 솜방망이 처벌을 깨고 범행 억지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재판까지 거치면 대부분이 벌금형에 그친다"며 "딥페이크 등 온라인 공간에서의 성범죄가 다각화하는 만큼, 통매음도 변형돼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어 조기에 법적 테두리를 단단히 다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슈는 스프링이다!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이슈를 핵심만 골라 정리해드립니다. 걸그룹 뉴진스 멤버가 하이브 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는 의혹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놨습니다. 고용노동부는 '하니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면서, 이 건을 조사해달라는 민원을 종결했습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은 뉴진스 팬들이 뉴진스 멤버 '팜 하니'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며 고용노동부에 제기한 민원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기 어려워 행정 종결했다'고 밝혔습니다. 무슨 상황인데? 뉴진스 하니는 지난 9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하이브 사옥 복도에서 대기하다가 지나가는 다른 연예인과 매니저에게 인사했는데, 해당 매니저가 '무시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니는 지난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이 내용을 증언하면서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하니의 증언이 나온 이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에는 뉴진스를 상대로 한 따돌림이 근로기준법에서 금지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조사해달라는 민원이 잇따라 접수됐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고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고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뜻합니다.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상사나 다수 직원이 특정한 직원과 대화하지 않거나 따돌리는 '집단 따돌림', 업무 수행 과정에서의 의도적 무시나 배제 등을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간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상시 5인 이상 노동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됩니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으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여야 하는데, 정부는 2010년 연예인을 노동자보다는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예외 대상자'라고 판단했습니다. 전속계약에 따라 기획사는 연예인의 활동을 관리하고 일정 비율의 수익을 나눕니다. 이는 기획사가 연예인의 업무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법상 위임 계약이지 고용 계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정부는 진정이 접수되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조사를 진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체 종결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서부지청은 하니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행정 종결했습니다. 즉, 하니가 실제로 소속사에서 따돌림을 받았는지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서부지청은 행정 종결의 이유를 '서로 대등한 계약 당사자의 지위에서 각자의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는 관계에 불과해 사측의 지휘·감독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일반 직원에게 적용되는 회사 취업규칙 등 사내 규범, 제도나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은 점', '일정한 근무 시간이나 근무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출퇴근 시간을 정할 수가 없는 점', '연예 활동에 필요한 비용 등을 회사와 팜 하니가 공동으로 부담한 점' 등도 제시했습니다. 아울러 '지급된 금액이 수익 배분의 성격으로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이라 보기 어려운 점', '세금을 각자 부담하고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점', '연예 활동을 통한 이윤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서부지청은 끝으로 대법원이 2019년 9월 연예인 전속계약의 성질을 민법상 위임 계약 또는 위임과 비슷한 무명 계약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판결을 언급하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재차 밝혔습니다. 한 걸음 더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무리한 스케줄에 시달리는 아이돌이 과로로 쓰러지는 노동자와 다르지 않다면서, 연예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저연차 연예인의 경우, 기획사와 사실상 '갑을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볼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아이돌 연습생이나 저연차 연예인은 회사의 일방적인 지시에 따라야 하고 수입 분배에서도 불리한 입장인 경우가 많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연예인처럼 자영업자의 성격이 있으면서 회사와 경제적 종속 관계에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한 판례가 많아진 만큼, 연예인도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본다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근로 계약이 아니라 위임 또는 도급 계약을 맺고, 근로자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직접 노무 제공을 하고, 업무 수행 과정에 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 노동자를 말합니다. 보험설계사, 학습지 방문 강사, 택배원, 대출 모집인, 신용카드 모집인, 방문판매원, 방과 후 강사, 퀵서비스 기사, 대리운전기사 등이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해당됩니다. 지난 5월 대법원은 골프 캐디로 일하던 배 모 씨가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해, 상사와 이를 방치한 회사의 불법 행위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캐디가 특수고용직으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니가 지난 10월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뒤, 정치권에서도 아티스트가 소속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노동법 사각지대를 없애고 아티스트의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여야가 큰 이견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제도가 보완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릭 쇼팽(1810~1849)의 신곡이 200년 만에 뉴욕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2주가 넘었는데, 여전히 관심이 뜨겁습니다. 피아니스트 랑랑이 이 곡의 '월드 프리미어' 음원을 공개한 데 이어,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의 연주도 나왔습니다. 쇼팽의 ‘신곡’은 뉴욕 맨해튼 소재 박물관인 ‘모건 라이브러리 앤드 뮤지엄(이후 모건 박물관으로 표기)’에서 발견됐는데요, 지난달 27일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올봄 이 박물관의 음악 담당 학예사인 로빈슨 매클렐런이 수장고에서 이 악보를 처음 발견했습니다. 출처 : The Morgan Library & Museum 쇼팽의 악보는 왜 뉴욕에서 발견되었을까 모건 박물관이 어떤 곳이기에 쇼팽의 악보가 발견된 걸까요? 이 박물관 이름의 ‘모건’은 그 유명한 금융회사 ‘J.P. 모건’의 모건입니다. 미국 굴지의 기업가이자 ‘금융왕’이었던 존 피어몬트 모건(John Piermont Morgan. 1837~1913)은 1890년 무렵부터 각종 희귀 도서와 원고, 악보 등을 전 세계에서 수집했고, 뉴욕의 사저 주변에 개인 서재 겸 박물관을 지었습니다. 존 맥킴(John McKim)이 설계해 20세기 초에 지어졌고 현재 모건 박물관의 본관으로 사용되는 ‘맥킴’ 빌딩입니다. 출처 : The Morgan Library & Museum J.P. 모건 사후에 이 박물관은 공공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이 박물관은 본관인 맥킴 빌딩 외에 J.P. 모건이 살던 집, 장남인 J.P. 모건 주니어가 살던 집을 별관으로 편입하는 등 계속 규모를 확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2006년 유명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마지막 확장 공사를 맡아 모건 박물관은 공연장과 레스토랑, 숍 등을 갖춘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모건 박물관은 건물 자체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희귀한 소장품을 볼 수 있는 관광 명소입니다. 25달러의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는데요, 대표적인 소장품으로 금속활자로 인쇄한 최초의 성경, 구텐베르크 성경이 있습니다.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성경을 180권 인쇄했는데,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건 50권 정도에 불과하고 이 중 세 권이 모건 박물관에 있습니다. J.P 모건이 설립한 박물관, 음악 자료의 보고 모건 박물관에는 음악과 관련된 희귀 자료들도 많습니다. 베토벤과 모차르트, 슈베르트, 쇼팽, 브람스, 말러, 스트라빈스키 등 수많은 작곡가들의 자필 악보나 편지, 출판 악보의 초판 등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박물관에는 전문적인 음악 지식을 갖춘 음악 담당 학예사가 있었던 겁니다. 모건 박물관의 음악 담당 학예사 로빈슨 매클렐런은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매클렐런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모건 박물관 소장 악보를 작곡가 이름에 따라 찾아볼 수 있는 온라인 아카이브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주요 업무는 음악 관련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쓰고, 새로 소장할 작품을 구입하거나, 기존 소장품을 분류 관리하는 일입니다. 그가 쇼팽의 미공개 악보를 발견한 것도 박물관의 기존 소장품을 분류 정리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가로 13센티미터, 세로 10센티미터, 인덱스카드 크기의 이 악보는 저명한 음악 교육자 아서 자츠(Arthur Satz)의 사후 이 박물관에 기증한 자료들 중에 있었습니다. 랑랑보다 먼저 쇼팽의 '신곡'을 친 사람 뉴욕타임스는 쇼팽의 미공개 악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피아니스트 랑랑의 첫 연주를 공개했지만, 매클렐런은 이 곡을 랑랑보다 앞서 직접 연주한 사람이었습니다. 최근 그는 독일의 클래식 음악 유튜버 칼 폰 무디와 인터뷰했는데, 그는 소장품들을 정리하다가 ‘쇼팽’이라고 쓰인 이 악보를 처음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출력한 악보 사본을 집에 가져와서 직접 쳐봤다고 했습니다. “저는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제 연주는 멜로디를 듣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제가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곡이라는 게 분명했죠. 제가 찾을 수 있는 쇼팽의 다른 A 단조 왈츠들을 모두 훑어봤는데, 그 어떤 곡하고도 매치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쇼팽 전문가인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제프리 칼버그에게 연락했습니다.”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이 곡을 최초로 발견해 연주해 본 매클렐런의 소감은 어땠을까요? “저는 아마도 적어도 수십 년 안에는 이 곡을 최초로 친 사람일 거예요. 흥분됐지만, 그 시점에는 이 악보가 진짜 쇼팽인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 깊은’ 흥분이었죠. 그래도 저는 그 순간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어요. 그 곡의 멜로디가 제 머릿속에 콕 박혀서, 1주일 정도는 계속 재생되는 것 같았습니다.” 몇 달간 전문가들이 종이와 잉크 재질을 분석하고 낮은음자리표를 독특하게 쓰는 쇼팽의 필적과 대조한 결과, 모건 박물관은 이 악보가 쇼팽이 20대에 쓴 미공개 왈츠 악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만 악보 위에 ‘쇼팽’이라고 쓰인 것은 다른 사람의 필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작은 악보는 쇼팽의 '선물' 출처: 연합뉴스 이 악보는 일반적인 악보들에 비해 크기가 굉장히 작은데, 쇼팽이 남긴 악보 중에는 이렇게 작은 종이에 쓴 곡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쇼팽이 이렇게 작은 악보는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곤 했다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디너 파티 초대를 받으면 와인 대신 이런 악보를 선물로 가져갔을 거라는 겁니다. '쇼팽이 와인 대신 악보를 선물로 가져오는 파티’의 참석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파티에선 즉석에서 그 곡의 연주가 펼쳐졌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곡이 진짜 쇼팽의 곡인지 아직 100% 확신할 수 없다며 의구심을 나타내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폴란드 국립 프레데릭 쇼팽 인스티튜트는 이 악보가 쇼팽 자필 악보가 갖는 전형적인 특징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하면서도, 정밀한 비교 연구를 거쳐야 한다며 최종 결론은 유보했습니다. 매클렐런은 현재 이 악보를 과거에 소유했던 컬렉터들이 누구인지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 악보는 아서 자츠 이전에는 진 위튼이라는 줄리어드 출신 플루티스트가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 위튼의 자녀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이런 식으로 과거의 컬렉터들을 확인하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이 악보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확실한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쇼팽의 작품으로 여기고,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 음원을 발표하고, 정식 공연 무대에서 이 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곡이 다른 긴 곡의 도입부라고 가정하고, 뒷부분을 쇼팽 스타일로 새롭게 작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왈츠는 없었다... 짧지만 많은 이야기 담아 출처 : Piano Street Magazine 저는 이 곡의 도입부를 처음 들었을 때 왈츠가 아니라 스케르초나 폴로네이즈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음으로 어둡고 무겁게 시작되는 이 곡은 멜로디를 반복하며 계속 커지다가, 크게 치라는 뜻의 포르테(f)가 세 개나 되는 포르테시시모(fff)로 폭발합니다. 쇼팽의 왈츠 중에 포르테시시모가 있는 경우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 드라마틱한 도입부, 왈츠로서는 이례적입니다. 이 폭발 후엔 우아하고 감상적인 멜로디가 이어지면서 전형적인 세 박자 왈츠의 느낌을 찾습니다. 도입부에선 저음 쪽에서 반음씩 내려가는 음들이 들렸었는데, 중간 부분에선 고음 쪽에서 반음계 하향 음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런 대목이 쇼팽 같다고 느껴졌어요. 우수에 찬 멜로디가 계속되다가 끝나기 직전, 제가 듣자마자 확 끌렸던 부분이 나옵니다. 조성이 잠깐 장조로 바뀌면서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듯한, 혹은 엷은 미소를 띠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목이죠. 안데르제프스키도 ‘마지막에 C장조로 바뀌는 부분은 쇼팽의 모든 것이 담긴 감동의 순간”이라고 했더라고요. 이 곡은 도돌이표로 반복하면 총 48마디, 연주 시간 1분 좀 넘는 짧은 곡이지만, 쇼팽의 다른 곡들이 그렇듯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멜로디를 반복하면서도 조금씩 변형해 강조하기도 하고, 조성 변화도 있습니다. 쇼팽의 다른 왈츠들과는 닮지 않았지만, 쇼팽의 느낌은 물씬합니다. 랑랑은 이 곡의 거친 도입부가 ‘폴란드 시골의 엄혹한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였는지 저는 A 단조로 조성도 같은 에튀드 Op. 25. No. 11 ‘겨울바람’도 연상했습니다. 이 왈츠는 쇼팽이 20대 초반이었던 1830년에서 1835년 사이에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바르샤바 음악원을 졸업하고 빈에 간 쇼팽은 1930년 조국 폴란드가 러시아에 맞서 무장봉기를 일으켰지만, 실패했다는 소식을 해외에서 듣게 됩니다. 쇼팽이 이 시기에 썼던 작품들에는 비통함과 고뇌가 묻어 나오는데요, 쇼팽 스스로 붙인 제목은 아니지만 ‘혁명’으로 알려진 에튀드 Op. 10 No. 12는 당시 그의 심경을 담은 듯한 비장한 분위기의 곡입니다. 이 왈츠의 어둡고 무거운 도입부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쇼팽의 신곡은 딱 한 페이지 "시도해 보세요" 새롭게 발견된 쇼팽의 왈츠에 대한 관심은 학계나 음악계를 넘어선 것 같습니다. 매클렐런은 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이 곡을 두고 벌어지는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쇼팽은 클래식 전문가가 아닌 대중에게도 굉장히 친숙한 작곡가입니다. “쇼팽이라는 작곡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쇼팽, 그리고 쇼팽의 음악과 개인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예를 들어 제 어머니는 직업 피아니스트가 아니지만, 쇼팽의 곡들을 연주해 왔어요. 이 곡에 개인적인 의미도 깃들게 되는 겁니다.” 매클렐런은 이 곡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많은 아마추어들에게 ‘쇼팽을 직접 연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 곡은 쇼팽의 다른 곡들에 비하면 비교적 쉽고 짧으며, 최근에 발견되었다는 화제성까지 있죠. 그는 ‘나도 한 번 쇼팽을 쳐보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단 한 페이지인 이 곡이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저도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아니지만 이 곡을 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해도, 악보를 인쇄해서 한 번 시도해 보기를 권합니다. 그냥 듣는 것만 해도 즐거울 거예요." 200년 만의 신곡, 모두에게 주어진 선물 저도 매클렐런의 이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쇼팽의 왈츠가 새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하고 랑랑의 연주를 듣자마자 ‘직접 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저는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다가 그만뒀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취미로 피아노를 쳐왔습니다. 길이가 긴 난곡이라면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만, 한 페이지짜리 악보가 빨리 쳐달라고 저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이 곡을 쳐본 사람이 아직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묘한 흥분감까지 느끼며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제 피아노 연주를 찍지 않지만, 어느 정도 곡을 손에 익히고 나니 기록을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무려 쇼팽의 ‘신곡’이잖아요. 휴대전화 녹화 기능을 켜고 제 연주를 담았습니다. 직업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취미로 피아노를 치는 아마추어들도 이 곡을 연주하고 SNS에 올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수많은 연주를 들으며, 같은 악보를 두고 이렇게 짧은 곡에서도 다 달라지는 게 새삼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악보를 처음 발견한 매클렐런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제 머릿속에선 며칠째 이 왈츠의 멜로디가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쇼팽은 이 곡을 써서 누구에게 주었을까요? 이 악보의 원 소유자가 누구였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200년 만에 세상에 나온 이 왈츠는 저를 포함해 쇼팽의 음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이니까요. 사진 : 게티이미지
이슈는 스프링이다!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이슈를 핵심만 골라 정리해드립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속옷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이란 여대생이 벽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유명 팝아티스트가 이 여대생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해 이란영사관 인근 건물 외벽에 벽화를 그린 것입니다. 히잡 착용 단속에 항의해 속옷 시위를 벌인 것으로 알려진 이 여대생은 이제 이란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로 팔롬보 인스타그램 캡처 무슨 상황인데? 이탈리아의 팝아티스트 알렉산드로 팔롬보는 현지시각 10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이란영사관 인근 건물 외벽에 그린 벽화를 공개했습니다. 벽화 속 여성은 이란 국기가 그려진 속옷 상의와 영어로 '자유(Freedom)'라는 단어가 적힌 속옷 하의를 입은 채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입니다. 팔롬보는 풍자적인 표현을 통해 사회 문화 현상을 날카롭게 꼬집는 작가로 유명합니다. 팔롬보는 지난 2일 속옷 시위 도중 체포된 이 여학생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는데요,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벽화 사진을 올리고 "자유 - 이란 학생 아후 다르야에이가 밀라노 이란영사관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걷는다. 이란 정부는 이 학생의 행위는 '비도덕적'이고 이 학생의 사진을 퍼뜨리는 건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정당하지 않다고 한다"라고 썼습니다. 그는 또 "그녀의 몸짓은 심오하고, 그녀의 희생은 파괴적"이라면서, "그녀는 자기 몸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이란 여성들의 자유와 용기의 외침을 이어가도록 우리를 초대한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공범이 되지 않도록, 무관심하지 않도록, 외면하지 말고 함께 싸워달라는 경고"라고 덧붙였습니다. 좀 더 설명하면 이름이 '아후 다르야에이'(Ahoo Daryaei)인 것으로 알려진 이 여대생은 지난 2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이슬람 아자드 대학교 이과대학 캠퍼스에서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니다가 체포됐습니다. '속옷 시위'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유포돼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 동영상에는 이 여성이 팔짱을 끼고 걸어가거나, 앉아 있는 모습뿐 아니라, 남자들이 이 여성을 붙잡아 강제로 차에 태우는 장면까지 담겼습니다. 이 여성은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폭행당하자, 학교 안에서 이뤄진 히잡 착용 단속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속옷만 입고 교내를 걸어 다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학 측은 단속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도덕경찰의 폭행은 없었다며, 오히려 학생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파리 주재 이란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이 학생이 '전문치료센터'로 이송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대사관은 이 학생은 심리적 장애가 있어서 앰뷸런스로 '전문치료센터'로 옮겨졌다고 했지만 그 센터가 어떤 곳인지 자세히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대사관은 또 이 여성은 남편과 별거 중인 두 자녀의 어머니라면서, '가족을 위해 이 학생은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영상 속에서 침착하게 걷고 있는 이 학생의 모습을 보면, 정신장애라는 이란 당국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에 기반을 두고 히잡 착용 의무 폐지 운동을 해온 마시흐 알리네자드는 이 학생의 동료들로부터 그가 '정신적으로 건강할 뿐 아니라 기쁨과 활력으로 가득 찬 활기차고 용기 있는 여성'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인권운동가들은 이란 당국이 이 여성을 정신병원에 가둘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미니 사망 이후 여러 시위 참가자들이 국가가 운영하는 정신병원에 보내져 전기충격과 구타, 화학요법 등 고문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란 당국은 히잡을 벗는 것을 치료가 필요한 정신장애와 동일시하고 있다'면서, '이 여성이 이름 없는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보도는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습니다. 한 걸음 더 '도덕경찰(지도순찰대)'은 이란 여성의 복장을 규제하는 조직입니다. 이란을 '신정일치 국가'로 만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는 건 나체로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여성의 히잡 착용을 강제했습니다. 이란에서는 외국인을 포함해 만 9세 이상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반드시 히잡을 써야 합니다.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법이 1981년 제정되었고, 무제한의 체포, 구금 권한을 갖고 히잡 착용 위반을 단속하는 도덕경찰 조직이 생겼습니다. 2022년 9월,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사흘 만에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이 진압봉으로 아미니의 머리를 때렸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2022년 9월 13일, '히잡 불량 착용'을 이유로 이란 풍속 단속 경찰에 체포돼 조사받다가 쓰러진 마흐사 아미니. 그녀는 사흘 만에 숨을 거뒀다. 이란 여성들은 분노했습니다. 이란 전역에서 "나도 아미니다"라는 절규가 쏟아졌고 많은 여성들이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를 내걸고 항의 시위에 나섰습니다. 여성들의 시위는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습니다. 시위 참가자 2만여 명이 체포됐고 7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아미니의 사망 이후 이란 당국은 도덕경찰 조직을 해체하고 히잡법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불과 몇 개월 만에 도덕경찰의 단속을 재개했습니다. 2023년 1월, 도덕경찰에 구타당한 16세 가라완드가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은 '가라완드가 객차 옆에 머리를 부딪힌 후 기절했다'고 했지만, 인권단체들은 "히잡을 쓰지 않고 열차에 탄 가라완드를 경찰이 밀쳐 넘어뜨리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의식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이란 여성들의 저항이 계속되는 가운데, 아미니 1주기였던 지난해 9월, 이란 의회는 여성들의 복장을 더욱 엄격하게 규정하고 처벌을 강화한 새로운 히잡법을 통과시켰습니다. 히잡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여성에게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히잡과 순결 문화에 대한 지원 법안'입니다. 이전에는 히잡 미착용 여성에 대한 처벌이 10일~2개월이었는데, 형량을 10년까지 대폭 늘렸고 벌금액도 커졌습니다. 이 법안은 3년 시범 적용 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됩니다. 이렇게 이란 당국의 여성에 대한 억압이 날로 심해지는 가운데, 이란 여대생의 속옷 시위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란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속옷 차림으로 사회·종교적 금기에 저항하는 모습은 전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는 체포되면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상상해 보았을까요? 그의 속옷 시위는 흥미 거리 '해외 토픽'이 아니라, 정말 많은 용기와 희생이 요구되는 거사였습니다. 이 여성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이란 당국의 공식 발표 외에는 더 이상 알려진 게 없습니다. SNS에 올라온 속옷 시위 영상, 그리고 팔롬보의 벽화 사진에는 이 여성의 용기에 대한 찬사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은 전 세계인들의 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검은색 히잡을 착용한 다른 여성들 사이에서 속옷 차림으로 침착하게 팔짱을 끼고 걷는 이란 여성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란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드라마 <정년이>의 인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여성국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관심도 커졌습니다. <정년이>는 여성들이 여성과 남성 역을 모두 맡아 했던 여성국극을 1950년대 대중예술의 총아로 그리고 있는데요, 여성국극은 1960년대부터 급격히 쇠락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한동안 대가 끊기다시피 했죠. 하지만 '정년이'의 후예들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년이> 오프닝에서 배역을 소개하는 목소리 많이 들어보셨죠?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성국극 1세대 명인인 올해 91세 조영숙 선생입니다. 조영숙 선생의 제자들인 박수빈, 황지영이 바로 '정년이'의 후예들이라 할 만한 여성국극 3세대 배우들입니다. 이들은 '여성국극제작소'라는 단체를 만들어 여성국극의 보존과 창조적 계승에 헌신해 왔습니다. 여성국극 1세대 명인 조영숙 선생 (오른쪽) 여성국극 지켜온 정년이의 후예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여성국극 '지킴이' 역할을 해온 이들은 현재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상주단체로 선정되어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