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문 기자, 공연 담당 기자. BTS도 조성진도 씁니다. 사회부, 편집부, 정치부, 국제부, SDF 기획 부서를 거쳤고, 문화부에서 가장 오래 일했습니다. 공연 관람과 수다, 피아노, 중국문화, 그리고 고양이 집사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쓴 책으로 <나도 가끔은 커튼콜을 꿈꾼다>, <천재들의 유엔 TED>가 있습니다.
사진 : 연합뉴스/NHN링크 제공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최고 권위의 연극 뮤지컬상 토니상 6관왕에 올랐다는 소식이 지난주 전해졌습니다. K팝과 영화, 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뮤지컬까지 이렇게 두각을 나타낼 줄은, 아마 토니상 수상 소식을 듣고 놀란 분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대학로에서 초연된 '어쩌면 해피엔딩' 윌 애런슨과 박천휴 (사진 : NHN링크 제공) '어쩌면 해피엔딩'은 박천휴-윌 애런슨 콤비가 2016년 대학로 300석 규모 극장에서 초연한 소극장 뮤지컬입니다. 박천휴는 한국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작사가로 활동하다가 25살에 뉴욕으로 미술 유학을 떠났고, 하버드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뮤지컬 창작을 공부하던 작곡가 윌 애런슨을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윌 애런슨은 2009년 한국의 창작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 음악을 맡으며 한국 뮤지컬 업계와 인연을 맺었고, 이후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음악을 맡을 때 박천휴를 작사가로 추천해 협업을 시작했습니다. 윌-휴 콤비 협업의 시작이 된 작품입니다. '번지점프를 하다' 다음 작품이 '어쩌면 해피엔딩'입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5년 우란문화재단에서 리딩(낭독 공연)과 트라이아웃(시범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우란문화재단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모친이며 워커힐 미술관을 설립한 박계희 여사의 호를 따서 설립된 비영리 문화재단으로, 창작진의 작품 개발을 지원합니다. 윌-휴는 이 재단 설립 후 첫 지원 대상자였습니다. 리딩과 트라이아웃을 마친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말 DCF대명문화공장에서 초연된 뒤, 재연도 이어졌습니다. 대명문화공장은 문을 닫았고, 2020년 삼연부터는 CJ ENM이 제작사로 참여해 2021년과 2024년에도 공연했습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에서 공연될 때마다 좋은 반응을 얻은 인기작이었습니다.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Maybe Happy Ending'으로 '어쩌면 해피엔딩'은 작품 개발 초기부터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영어 버전 공연도 함께 추진했습니다. 한국에서 초연되기 전인 2016년 7월 뉴욕에서 이뤄진 영어 리딩 공연에는 토니상을 8번이나 수상한 베테랑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드가 참석했습니다. 작품을 인상 깊게 본 제프리 리처드는 2017년 윌-휴와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해피엔딩' 영어 버전은 2017년 미국 예술문학 아카데미에서 매년 시상하는 리처드 로저스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상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설적인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가 기부해 제정한 상으로, 유망한 뮤지컬 신작을 지원합니다. 하지만 영어 버전 공연은 팬데믹 등 여러 상황이 겹쳐 빠르게 진행되지는 못했습니다. 2020년 애틀랜타에서 시범 공연을 시작으로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해 마침내 브로드웨이의 벨라스코 극장에서 개막했습니다. 가까운 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로봇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SF적 내용을 다룬 '어쩌면 해피엔딩'은 브로드웨이 관객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작품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보통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잘 알려진 소설이나 영화, 혹은 유명 인사의 삶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한국에서 활동하던 '무명' 창작진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봇이 주인공이라는 점도 그렇고, 등장인물이 4명에 불과하다는 점도, 보통 화려한 군무와 합창이 따르는 브로드웨이 대극장 뮤지컬로서는 이례적이었습니다. 보편적 감동 주는 스토리와 음악의 힘 사진 : 연합뉴스/NHN링크 제공 실제로 '어쩌면 해피엔딩'은 브로드웨이에서 지난해 개막 초기에는 고전했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본 관객들의 입소문이 퍼져나갔고, 반복 관람하는 관객들이 늘어나면서 '팬덤'이 형성되었습니다. 작품 중 등장하는 '반딧불이(Fireflies)'가 이 뮤지컬 팬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스토리와 음악의 힘이 그만큼 강했던 것입니다. 박천휴는 토니상 수상 이후 한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관객의 사연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뉴욕에서 먼 지역에 사는 한 관객이 뉴욕에 혼자 여행을 와서 열 편의 공연을 예약했는데, 다섯 번째였던 이 공연을 보고 집에 남은 아내가 너무 그리워져 나머지 티켓을 모두 팔고 일정을 변경해 귀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밸런타인 데이에 아내와 함께 뉴욕을 방문해 다시 이 공연을 관람하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언론과 평단의 찬사도 쏟아졌습니다. 평론가 제시 그린은 뉴욕타임스에 "공상과학의 기발함을 겉으로 내세우면서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감동을 슬그머니 숨겨놓았다"며 이 작품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LA타임스는 "실제 사건이나 기존 음악, 자료에 기반하지 않은 작품이지만, 그 무모한 독창성이 가장 큰 장점이 되었다"며 "아파트에 사는 유일한 생명체가 화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독특한 작품"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어워즈 시즌'의 대단원, 토니상까지 휩쓸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토니상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도 뉴욕 드라마 비평가 협회, 드라마 리그 어워즈, 외부 비평가 협회상,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 등에서 잇따라 작품상을 비롯한 주요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어워즈 시즌'의 대단원인 토니상에서 작품상, 연출상, 음악상(작사·작곡상), 대본상, 남우주연상, 무대디자인상 등 6관왕에 오르며 올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국어 버전과 영어 버전은 똑같은 공연은 아닙니다. 윌-휴가 공동 창작한 대본과 음악을 바탕으로 한 점은 같지만, 서울과 제주라는 배경을 유지하고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을 따르되, 문화권이 다른 만큼 영어 버전에서는 달라진 부분이 많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 새로 만든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1000석 규모 극장에서 공연되는 만큼 규모 자체가 커졌습니다. 등장인물은 세 명에서 네 명으로 늘었고, 무대도 화려해졌습니다. 대사와 뮤지컬 넘버도 문화권 차이를 고려해 수정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슬픈 발라드 감성으로 부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넘버는 한국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영어 버전에서는 좀 더 밝은 분위기의 새로운 곡으로 교체됐습니다. 미국 관객들은 이런 발라드 넘버를 과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반영된 것입니다. 당연히 연출과 무대, 의상 등 공연 전반이 달라졌습니다. 영어 버전 '어쩌면 해피엔딩'은 현지에서는 '이국적인 느낌이 있는' 미국 작품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한국인 박천휴가 윌 애런슨과 함께 썼고 한국이 배경인 작품을, 브로드웨이 프로듀서가 브로드웨이 배우와 스태프를 불러모아 제작한 뮤지컬이니까요. 남자 주인공 대런 크리스는 '글리'로 친숙한 스타 배우이고, 이번에 토니상 연출상을 받은 마이클 아덴, 무대 디자인상을 받은 데인 레프리와 조지 리브 등이 참여했습니다. 한국 공연 제작사였던 CJ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 프로덕션 크레딧을 보면 리드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드와 헌터 아놀드 아래 수많은 공동 프로듀서, 투자자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지난해까지 국내 공연 제작사였던 CJ ENM의 이름은 없습니다.'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 소식에 많은 이들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떠올렸고 '어쩌면 해피엔딩'이 뮤지컬의 '기생충'이라고 했지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 대표 프로듀서로 CJ 이미경 부회장이 소감을 발표했던 것과는 달리, 토니상에서는 한국 공연 제작사였던 CJ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CJ ENM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킹키부츠'나 '물랑루즈'에 투자했던 경험도 있기 때문에, 국내 공연 제작을 맡았던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공연에도 참여했을 법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겁니다. 확인해보니 CJ ENM은 브로드웨이 공연에 투자 제안을 받았지만, 팬데믹을 겪으며 타격이 컸고 사업 규모를 대폭 축소해 보수적으로 운영하던 중이라 신속하게 투자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CJ는 한국 공연을 통해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직접 투자하지 않은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존재가 지워져 버렸습니다. CJ로서는 굉장히 아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티켓 예매사이트인 티켓링크를 인수하고 문화산업 투자를 늘려오던 NHN그룹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그룹 내 문화콘텐츠 산업을 담당하는 NHN링크에 마침 한국 공연의 초연 프로듀서가 있었습니다. NHN링크는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 제작에 투자했고, 만기가 돌아온 한국어 버전 공연권 계약도 했습니다. NHN링크는 토니상 수상 소식에 크게 고무된 모습입니다. 대학로에서 토니상 수상을 기념해 커피 무료 제공 이벤트까지 열었다고 하죠. 브로드웨이 공연 크레딧에 표시되는 순서가 기여도(즉 투자 금액) 순서라는 점을 고려하면, NHN링크는 영어 버전 '어쩌면 해피엔딩'에 리드 프로듀서를 제외하고 세 번째로 큰 지분을 보유한 셈입니다. 영어 버전의 뉴욕 리딩 공연을 지원했던 우란문화재단의 이름도 뒤쪽이긴 하지만 표시되어 있습니다. '어햅'과 '메햅'은 같지 않다 사진 : 연합뉴스/NHN링크 제공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어햅'이라는 약칭으로 통했습니다. 그렇다면 영어 버전은 '메이비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을 줄여 '메햅'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어햅'은 올가을 한국에서 공연됩니다. 이번에는 전보다 큰 극장인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만큼 좀 더 규모가 커질 예정입니다. 이 공연은 토니상 수상 이전부터 계획되었던 공연입니다. 엄밀하게 따져보자면 토니상을 받은 건 '어햅'이 아니라 '메햅'입니다. '메햅' 역시 한국에 들어올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 혹은 브로드웨이 공연팀 내한 공연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한국 창작 뮤지컬이 토니상 6관왕에 올랐다'는 표현이 적확한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에서 초연된 이후 한국 관객들과 호흡하며 성장했으니 '메햅'은 '어햅'에 뿌리를 둔 작품이고, 한국 뮤지컬 업계에서 활동해온 박천휴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토니상 여러 부분을 수상했다는 것 자체로 기념비적인 성과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사실 '한국 창작 뮤지컬'이 무엇인지, 딱 떨어지는 결론을 내리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은 외국 작품의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과 구분하기 위한 개념입니다. 한때 한국 제작사가 해외 창작진을 기용해 외국 이야기를 갖고 만든 뮤지컬을 '한국 창작 뮤지컬'로 부를 수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웃는 남자' 같은 작품들이 그 사례인데, 관객 입장에서는 외국 작품의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과 별 차이 없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작사를 기준으로, 이런 작품들도 한국 창작 뮤지컬로 분류하는 추세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뮤지컬 제작사인 OD뮤지컬 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로 브로드웨이에서 제작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한국 창작 뮤지컬'일까요? 해외 창작진이 쓰고 연출하고, 처음부터 영어로 해외에서 공연된 작품임에도 말입니다. (요즘은 'K 뮤지컬'이라는 용어도 종종 쓰이는데요, 이는 K팝을 필두로 한국의 문화산업이 주목받는 상황이 되자, 국정홍보나 매체 보도에서 K팝 외의 분야에서도 뭔가 성과가 나면 'K'라는 접두어를 관행적으로 붙이기 시작하면서 나온 말입니다. 아직은 'K 팝'처럼 널리 통용되는 용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K팝에서도 '무엇을 기준으로 K팝을 정의하느냐'를 놓고 오랫동안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예전엔 한국인이 한국어로 해야 K팝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지만, 한국서 활동하는 K팝 그룹에 외국인 멤버는 다반사고, 한국 아이돌이 외국어로 부르는 K팝, 외국에서 외국인 멤버로만 구성된 K팝 그룹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획사가 만들면 K팝'이라는 공감대가 생긴 듯했지만, 외국 기획사가 K팝 스타일로 제작한 그룹들도 나오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한국인 K팝 기획자가 외국 기획사와 함께 만든 그룹은 K팝 그룹일까요? 무 자르듯 단순한 기준으로 이건 K팝이다, 아니다,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K팝이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일입니다. 뮤지컬 분야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K팝에 비하면 글로벌 영향력은 아직 제한적이고 공연 산업은 음악보다 훨씬 이동이 어려운 분야이지만, 요즘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창작 뮤지컬의 라이선스 수출이 한 해 수십 건에 이르고, 일본에서는 한국 IP인 '미생'이 뮤지컬로 제작되었으며, 아시아 각국의 프로듀서들이 한국 창작 IP를 공동 제작해 자국어로 공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번 토니상 수상은 이런 변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는 작가뿐 아니라 배우, 제작자, 연출가, 무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뮤지컬 인력들의 활약이 전 세계에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토니상을 받은 '어쩌면 해피엔딩' 영어 버전, 곧 '메햅' 역시 한국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이든 브로드웨이 공연팀의 내한 공연이 되든, 한국에서 시작해 해외에서 새로 쓰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어쩌면 해피엔딩'의 여정은 '한국 창작 뮤지컬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K팝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처럼, 단일한 답을 내놓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당장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이뤄지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윤곽이 드러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천휴 작가는 '어햅'을 '오리지널'이라고 했습니다. 올가을 돌아오는 오리지널 '어햅'은 물론이고, '메햅'도 꼭 보고 싶습니다. '어햅'과 '메햅'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국과 브로드웨이 관객을 모두 매료시킨 이야기의 힘과 감정의 울림을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습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피아니스트 손열음에게는 지난 10년 동안 마음에 품고 상상해 본 무대가 있었습니다. 해외 유명 콘서트홀에 서거나,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무대가 아니었습니다. 손열음이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무대는 고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전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20주기 추모 음악회였습니다. 그 무대가 지난달 23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렸습니다. 故 박성용 명예회장 20주기 추모 음악회 : 손열음 Piano (c)Kumho Cultural Foundation 열정적인 문화예술 후원 활동으로 '한국의 메디치'로 불린 故 박성용 명예회장은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거목 같은 존재였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로 경제관료로 일하기도 했고,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4년부터 금호그룹에 합류해, 1984년 부친 박인천 회장이 별세한 후 금호그룹 회장이 되었습니다. 아시아나 항공을 설립하는 등 그룹의 기반을 다진 그는 1996년 동생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직을 맡았습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그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고, 젊음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인류의 미래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에 따라 피아니스트 손열음, 김선욱, 선우예권, 바이올리니스트 고 권혁주 등 수많은 영재 연주자들을 발굴하고 육성했습니다. 1998년부터 열린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한 연주자들은 2천여 명에 이릅니다. 실내악 전문 공연장이 필요하다는 그의 뜻에 따라, 2000년 광화문 옛 금호그룹 사옥 건물 안에 금호콘서트홀이 개관했습니다. 또 금호현악4중주단을 창단해 실내악을 지원했고, 고악기를 실력 있는 연주자들에게 무상으로 빌려주는 '악기 은행'도 운영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임지영, 김봄소리 등이 악기 은행의 수혜자였죠. 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 그는 문화예술 후원에 관한 일이면 항상 적극적으로 나선 '기업 메세나의 선구자'였습니다. 1998년 예술의전당 이사장,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 초대 이사장, 2003년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습니다. 2004년 독일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받았고, 사후인 2005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습니다. 고인의 10주기 추모 음악회에서도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했던 손열음은 금호영재콘서트의 첫해부터 함께 한 1세대 음악 영재였습니다. 고인은 손열음을 마치 친손녀처럼 아꼈습니다. 고인이 지휘자 로린 마젤에게 소개한 덕분에, 손열음은 만 18살의 나이에 뉴욕 필하모닉 아시아 투어의 협연자로 발탁되었습니다. 손열음의 피아노 리사이틀로 열린 20주기 추모음악회는 표를 팔지 않고 금호문화재단과 인연 깊은 음악가들과 음악계 인사들을 초청했습니다. 프로그램은 슈만의 '아베크' 변주곡, 라벨의 '라 발스',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 등이었습니다. 연주 후 마이크를 잡은 손열음은 '회장님은 나이 어린 저를 항상 친구처럼 대해 주셨다'며, '1998년 회장님을 처음 만난 순간과 2005년 마지막으로 만난 공연에서 연주한 작품, 그리고 현재 고인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곡을 선곡했다'고 밝혔습니다. "회장님을 알고 지낸 시간보다 떠나신 다음 시간이 더 많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장님께서 남겨주신 귀중한 것들을 함께 추억해 주시고 소중하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박성용 회장님을 오래오래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손열음) 故 박성용 명예회장 20주기 추모 음악회 : 손열음 Piano (c)Kumho Cultural Foundation 공연에 앞서 상영된 영상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의명, 장유진,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이정란 등 금호문화재단과 함께 했던 수많은 음악가들이 각자의 추억을 소개하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저도 이 날 객석에서 오래전 기억을 끄집어내 고인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친분이 있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저는 1990년대 말부터 취재기자로서 금호미술관, 그리고 광화문 금호아트홀을 드나들면서 그와 인사를 나눌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재벌그룹 총수였다는데 권위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고 항상 소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공연 리허설 때도 와서 조용히 연주를 듣고 있거나 공연장에서 항상 기립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종종 봤습니다. 의례적인 박수가 아니라는 게 느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진심으로 음악가들을 아끼고 사랑하는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고인을 제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04년 11월, 고양 어울림누리에서 열린 김남윤-이경숙 듀오 연주회에서였습니다. 새로 생긴 공연장을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그는 이날도 역시 연주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연주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공연장 로비에서 마주쳐 인사했더니, 그는 당시 만삭이던 저에게 '좋은 음악 들었으니 예쁜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덕담을 해 줬습니다. 저는 그로부터 닷새 후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다음 해인 2005년 5월 23일, 그가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 만났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 생생한데 이렇게 빨리 떠나가다니 황망했습니다. 당시 영결식장이었던 광화문 금호아트홀을 찾았습니다. 영결식장에는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무척 좋아하던 곡이라 했습니다. 음악가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음악가들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했습니다. 저도 취재기자로서, 아니, 그저 한 명의 클래식 애호가로서, 그가 떠나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잊고 있었던 오래 전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같은 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내한공연에서 그를 추모하며 들려줬던 '아다지에토'도 생각났고, 구석구석 고인의 숨결이 담긴 광화문 금호아트홀이 2019년 문을 닫을 때의 기억도 스쳐 갔습니다. (광화문 금호아트홀의 마지막 공연을 보고 와서 썼던 취재파일 링크합니다.) 손열음의 마음을 담은 아름다운 추모 음악회 덕분에 저도 다시 과거를 되돌아보고 고인을 추억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가 뿌렸던 씨앗이 뿌리를 내려 키 큰 나무로 자라고 열매를 맺으면서, 한국 클래식 음악계는 눈부시게 성장했습니다.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던 연주자들만큼은 아닐지라도, 저를 포함한 관객들 역시 그가 한국의 클래식 음악 발전을 위해 했던 노력 덕분에 오늘날 이렇게 풍성한 결실을 즐기고 있는 셈입니다. 손열음의 추모 음악회 닷새 후인 지난달 28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는 한국 발레계의 스승을 추모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최태지 X 문훈숙, 커넥션'이라는 제목으로,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과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이 한국 발레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토크와 함께, 후배 무용수들이 이들에게 헌정하는 공연이 펼쳐졌는데요, 이 공연에서 마침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유리 그리가로비치 전 볼쇼이 발레단 예술감독, 그리고 문병남 M 발레단 예술감독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던 겁니다. 지난달 19일 98세를 일기로 타계한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러시아 발레의 상징이요 영웅이지만, 한국 발레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스승이자 은인이었습니다. 국립발레단은 그가 안무한 볼쇼이 발레단 버전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르', '레이몬다', '스파르타쿠스', '로미오와 줄리엣'을 레퍼토리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발레축제(conneXion, 최태지X문훈숙) : 레이몬다(김지영. 이재우) by @YOON6PHOTO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2000년대 초반부터 국립발레단에 자신의 작품들을 헌신적으로 전수해 준 것이, 오늘날 국립발레단의 위상을 만드는 데 초석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국립발레단은 우수한 레퍼토리를 갖추고 무용수 기량을 급격히 끌어올려 발레 관객을 크게 늘릴 수 있었습니다. 최태지 전 단장은 '초대 단장 임성남 선생님이 국립발레단의 아버지라면, 유리 선생님은 국립발레단을 키워준 제2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유리 선생님의 별세 즈음해 썼던 글을 링크합니다) 문병남 M발레단 예술감독은 지난 4월 9일 64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문병남 감독은 1984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주역무용수로 활약했고, 최태지 단장/예술감독 재임 시절 지도위원, 부예술감독으로 함께 국립발레단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그는 특히 창작발레 안무가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안무한 클래식 발레로 기초를 익힌 국립발레단이 야심 차게 내놓은 '왕자 호동'이 바로 그가 안무한 작품이었습니다. 대한민국발레축제(conneXion, 최태지X문훈숙) : 왕자호동(김리회. 정영재) by @YOON6PHOTO '대한민국 발레 축제'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 무대는 기쁘고 흥겨운 축제 중에도 차분하게 한국 발레의 오늘에 이바지한 거장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마련해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후배 무용수들이 최태지 전 단장과 문훈숙 단장에게 헌정한 공연 중에 두 작품은 세상을 떠난 발레 스승들을 추모하는 의미도 담게 됐습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안무한 '레이몬다'는 국립발레단 전현직 수석무용수인 김지영, 이재우가, 문병남 안무작인 '왕자 호동' 역시 국립발레단 전현직 수석 김리회, 정영재가 춤췄습니다. 모두 고인이 생전에 직접 지도했던 무용수들이라 느낌이 남달랐습니다. 두 사람을 추모하면서 저는 그 며칠 전 손열음이 들려줬던 추모의 연주도 떠올렸습니다. 이날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 한가운데 세워진 나무는 처음엔 앙상했으나 점점 자라면서 잎이 무성해졌고, 화사한 꽃을 피우고는 더욱 푸르른 신록이 되더니 어느새 황금빛 가을의 풍요로움을 발산했습니다.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나무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이 나무는 곧 한국의 발레였고, 한국의 클래식 음악이었고, 한국의 문화예술이었습니다. 사진 : 김수현 이 나무를 가꾸는 데 온 힘을 쏟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감사합니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도 있고 미래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의 노력, 잊지 않겠습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영국의 유명 발레단인 잉글리시내셔널 발레단에는 한국인 수석 무용수가 있습니다. 바로 발레리나 이상은 씨입니다. 이상은 씨는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 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발레단 수석 무용수를 거쳐, 2023년부터 잉글리시내셔널 발레단의 리드 수석 무용수(Lead Principal)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symphony in C-G.balanchine / photo by Ian Whalen 이상은 씨는 한국에서 '최장신 발레리나'로 불렸습니다. 과거 기사들을 보면 키가 181cm, 182cm로 표기돼 있는데, 본인에게 직접 물어봤더니 "183cm"라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기사나 오디션 나갈 때는 좀 줄여서 냈죠. 178cm라고 보낸 적도 있어요. 커트라인이 있으니까... 너무 커도 안 되잖아요. 실제로 보면 더 커 보여요. 사실 발레하기에는 많이 큰 편이죠." 보통 발레단에서 선호하는 발레리나의 키는 165~173cm 사이입니다. 군무에서 튀지 않고 적당한 키이고, 남자 무용수와 파트너링하기에도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키가 크면 함께 춤출 남자 무용수를 찾기 어려워집니다. 이상은 씨에게 '큰 키'는 오랫동안 고민거리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이미 170cm가 넘었다고 합니다. "중3, 고1 때는 180cm가 넘었어요. 아, 이제 발레 못하는구나. 좌절감을 많이 느꼈죠." 그래도 발레가 너무 좋았던 이상은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05년 바로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했습니다. 발레리나의 수명이 짧은 만큼 최대한 젊을 때 좋아하는 발레를 하다가, 대학은 나중에 가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해외 발레 학교를 졸업하고 10대 후반에 발레단원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대학을 먼저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주변에서 말렸지만, 이상은 씨는 용감하게 자신의 뜻을 밀어붙였습니다. "공부가 싫었다기보다는, 발레가 너무 좋았어요. 너무 하고 싶었고." Bach deut by william forsythe / photo by Baki 유니버설발레단에 들어간 이상은 씨는 곧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컨템퍼러리 발레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솔리스트로 승급도 했습니다. 해외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던 그는 2008년 여러 해외 발레단의 문을 두드렸지만, 연거푸 낙방했습니다. 키가 너무 커서 안 된다는 발레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그는 '마지막 오디션'을 보게 됩니다. 이상은 씨가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발레단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안 되면 발레를 그만둘 생각이었습니다. 이 발레단은 클래식에서 컨템퍼러리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고, 키 큰 무용수도 많아 이상은 씨가 꼭 가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이상은 씨는 2008년 유니버설발레단의 컨템퍼러리 발레 공연에서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발레단의 발레 마스터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는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드의 기념비적인 작품 '인 더 미들(In the Middle, Somewhat Elevated)'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당시 안무 지도를 위해 왔던 발레 마스터가 그를 눈여겨봤던 겁니다. 발레 마스터의 도움으로 2010년 입단 오디션을 볼 수 있었습니다. Metamorphosis by David Dawson 그런데 오디션을 보고 나서 젬퍼 오페라발레단 단장은 "네가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라는 건 알고 있지만, 우리는 솔리스트 자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상은 씨는 "군무라도 상관없다. 제발 나를 뽑아달라"고 사정해 군무 단원으로 계약하게 됩니다. 솔리스트에서 군무로 '강등'을 감수하고 해외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상은 씨는 처음엔 군무를 주로 맡았지만, 점차 주역도 맡게 되면서 솔리스트를 거쳐 2016년 수석 무용수로 승급합니다. 그는 드레스덴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큰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떨치기 어려웠는데, 드레스덴에서는 달랐다는 것입니다. "이게 쉽게 안 바뀌더라고요. 항상 조금 수그리고 다니거나 남들에게 맞추려고 하고, 저도 모르게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한국)에서는 위축까지는 아니더라도 '아, 내가 발레하기엔 너무 큰 키구나' 하면서 스스로 좀 닫혀 있었는데, 외국 나가니까 '키가 크네, 너무 좋네. 좋은데 왜 이렇게 크게 안 써? 왜 이렇게 작게 써?'라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고가 전환되는 시기가 있었어요." 이상은 씨는 큰 키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의 발레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온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긍정하면서, 전보다 더 자신 있게 춤을 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대학에 진학하면서 미뤄뒀던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됩니다. 독일에서 영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입니다. "단장님이 잉글리시내셔널 발레단으로 옮기게 됐는데, 저한테 같이 하자고 해주셔서 고민이 많이 되긴 했어요. 제가 사실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니고, 옮기기에는 좀 늦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워낙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기회가 왔을 때 도전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상은 씨는 잉글리시내셔널 발레단에서도 성공적으로 안착해, 영국 발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출연한 로열 앨버트 홀 '백조의 호수' 실황 영상을 보면, 이상은 씨가 컨템퍼러리뿐 아니라 클래식 작품에서도 빼어난 무용수라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아하고 유연하며 날렵한 백조 연기로 관객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고, 이 영상은 영화관에서도 개봉되었습니다. ▲ 이상은 씨가 출연한 잉글리시내셔널발레단 '백조의 호수' 흑조 코다 / Courtesy of English National Ballet 이상은 씨 얘기를 들으면서 지난 2월 로잔 콩쿠르에서 한국인 발레리노 최초로 우승한 박윤재 군 이야기도 떠올랐습니다. 그는 평소 굵은 다리가 불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로잔 콩쿠르에서 그는 "네 다리는 힘이 있고 에너지가 넘쳐서 멋지다"는 칭찬을 받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계속 이 몸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그냥 좋아하기로 했어요." 그는 그동안 콤플렉스로 여겼던 굵은 다리를 오히려 자신의 강점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박윤재 발레리노 / AP 연합 전설적인 발레 스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는 키 168cm로 다른 남자 무용수들에 비해 작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날렵하게, 높이 뛰며 무대를 장악했습니다. 발레를 하기에 적합한 키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최고의 발레리노로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발레는 타고난 '신체 조건'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이들은 흔히 단점으로 여겨지는 조건 때문에 위축되기보다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장점으로 드러냈습니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 영화 '백야(1985)'의 한 장면 이상은 씨는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며 여러 번 슬럼프를 겪었다고 말하지만, 결국 모두 겪어야 할 과정이었고 특별한 성공의 비결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슬럼프가) 여러 번 있었죠. 처음에는 외국에 나가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2008년 처음 나가서 오디션 봤는데 하나도 안 됐어요. 오디션 초대받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우리 발레단이랑 맞지 않는다', '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경우가 많았고. 로잔 콩쿠르는 처음 나간 국제 콩쿠르였는데 파이널에서 넘어지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지금 잘 된 거죠. 사실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좋은 경험 하고 드레스덴으로 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도 있고요. 당시에는 '나는 왜 이럴까?' 싶었고, 슬럼프였던 것 같았는데, 좀 지나고 보니 '이렇게 되려고 했나?' 싶더라고요.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냥 열심히, 꾸준히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잘 풀린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제가 잘해서 잘 됐다기보다는, 그냥 좋아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dying swan, semperoper / Ian Whalen photography "발레가 뭐가 그렇게 좋으셨어요?" "발레는 정말 어려운데, 딱 시작하면 다른 잡생각이 아무것도 안 들더라고요. 걱정 같은 것도 잊고, 그냥 발레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정말 좋았어요. 약간 명상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어렸을 때도 그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나중에 공부하면서 알았는데, 그걸 '몰입'이라고 하더라고요." 이상은 씨는 서울시발레단이 올린 신작, 요한 잉거 안무 '워킹 매드 & 블리스'에 객원 주역으로 참여하면서 오랜만에 고국 무대에 섰습니다. 한국에서 갈라 공연을 제외하면, 긴 작품을 공연한 건 2010년 이후 처음입니다. 마침 올해가 데뷔 20주년, 마치 '금의환향'처럼 느껴지는 무대였습니다. 그가 보여준 크고 시원시원한 몸짓은 아름다웠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진심을 다해 하는 것. '조건'에 갇히지 않고 자신을 긍정하는 것. '최장신 발레리나' 이상은 씨의 발레 인생에서 배운 교훈입니다. 그리고 이건, 발레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겁니다. 이상은 씨가 출연한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263회에서 더 많은 이야기 직접 확인해 보세요.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안국동 윤보선 고택을 아시나요? 아마도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한옥일 텐데요, 1870년대 지어진 전통 한옥으로, 대한민국 4대 대통령이었던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입니다. 지금도 윤보선 전 대통령의 아들이 거주하고 있는데요, 이 아름다운 한옥이 매년 봄 음악회 장소로 관객들에게 개방됩니다. 바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인 '고택 음악회'입니다. 고택 음악회 (제공: (사)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씨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서울 대표 클래식 음악축제입니다. 강동석 감독은 8살에 독주회를 연 음악 신동이었고, 1967년 13살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70년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비롯한 유명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라 입상하고 전 세계 무대를 누빈 한국 대표 연주자 중 한 명입니다. 강동석 감독은 2006년 '음악을 통한 우정'을 모토로 서울스프링실내악페스티벌을 창설하고, 20년째 이 축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솔리스트는 많아도 실내악단은 드물었던 한국은 오랫동안 '실내악 불모지'였지만, 그동안 많이 바뀌었습니다. 노부스 콰르텟, 에스메 콰르텟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실내악단이 많아졌고, 실내악 공연 관객도 많이 늘었습니다. 2013년 처음 축제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고택 음악회는 이제 매년 표 구하기 어려운 인기 공연으로 자리잡았습니다. 20번째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고택 음악회는 지난달 26일 열렸습니다. 화창한 봄날, 한옥 뜰에 앉아 나뭇잎 스치는 바람 소리, 새소리와 어우러지는 음악을 즐기는 '힐링'의 공연이었습니다. 연주자들이 눈빛만으로도 척척 호흡을 맞추며 함께 만들어내는 '실내악의 순간들'이, 오케스트라 공연이나 독주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 2020년 고택음악회 실황 영상(출처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유튜브) 실내악은 '체임버 뮤직(Chamber Music)'의 번역인데, '체임버'는 ~실, 방,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즉 궁정의 방이나 귀족의 살롱 등 '체임버'에서 연주하던 소규모 기악 합주곡이 실내악입니다. 기원은 '체임버'에 있지만, 연주 장소보다는 소규모 기악 합주곡이라는 성격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야외에서 연주한다고 실내악이 아닌 건 아니죠.) 실내악은 2명에서 10명 내외로 다양한 편성이 가능한데, 대표적인 실내악 편성으로 콰르텟, 즉 현악 4중주(피아노, 바이올린2, 비올라, 첼로)가 있습니다. 강동석 예술감독은 음악을 진짜 배우려면 실내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솔로만 해서는 균형 잡힌 음악가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는 미국에 유학한 이후에야 처음 실내악을 접했는데, 좀 더 일찍 실내악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의 연주 경력에는 세이지 오자와, 샤를 뒤투아, 쿠르트 마주어 등 거장 지휘자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한 기록이 가득하지만, 솔로보다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실내악이 훨씬 더 좋다고 했습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개막식 (제공: (사)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솔로는요, 차이콥스키나 멘델스존 같은 곡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서 연주해야 합니다. 매번 같은 영감을 유지하면서 무대에 서는 게 쉽지가 않아요. 점점 흥미도 떨어지고요. 그런데 실내악은 레퍼토리가 너무 많아서 한계가 없습니다. 새로운 곡도 많고, 같은 곡이라도 멤버가 바뀌면 전혀 다른 느낌이 되니까요. 그래서 실내악에 더 관심이 많아졌어요." 그는 오케스트라 협연은 솔리스트가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서, 그 틀 안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연주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에 비해 실내악은 해석도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고, 동료 연주자들과 직접 조율하며 만들어 가는 과정이 훨씬 즐겁다고 합니다. 실내악은 오케스트라와는 달리, 지휘자 없이 한 악기가 하나의 성부를 맡아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하모니를 만들어냅니다. 개개인의 역할이 중요한 동시에 전체적인 조화를 이뤄내야 하는 '민주적인 음악'입니다. 한 명이라도 고집을 부리면 음악은 금세 어긋납니다. 강동석 감독이 말한 '동료 연주자들과 직접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 20년째 '개근'한 비올리스트 김상진 씨는 금호현악4중주단, MIK 앙상블 등을 거친 '실내악 전도사'인데요, 그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부터 실내악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가족음악회 (제공: (사)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실내악이 거창한 게 아니라, 우리 어렸을 때 리코더 배워서 혼자 부는 게 아니라 둘이 화음을 맞추는 것부터가 실내악이거든요. 그런 식으로 남과 같이 하는,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하는 그런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하면 좋겠는데, 지금은 아예 수능에 관련 없는 음악은 배우지도 않고, 점점 더 세상이 삭막해지는 것 같아요." 실내악이 세상을 덜 삭막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실내악 교육이 왜 필요할까요? 김상진 씨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죠. "실내악은 남을 꼭 들어야 되고, 자기가 그 안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고, 그리고 기술적인 걸 봐도, 사실 솔로는 혼자 하니까 음정이 좀 높다든지 해도 크게 튀지 않는데, 실내악에서는 어떤 화성 안에 들어가야 되고, 이런 게 굉장히 귀에 공부도 되고요." 경청과 조화를 강조한 그는 실내악을 통해 음악뿐 아니라 인생을 배운다고 했습니다. "결국 대인 관계가 제일 중요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이냐,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실내악을 하다 보면, 굉장히 독단적인 사람도 있고, 양보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어쨌든 같이 연주해야 되잖아요. 연주가 잡혀 있는 거니까. 그러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최선의 결과를 낼 것인가. 정말 실내악을 통해서 세상을 많이 배웠어요. 너무 사람 좋지만 음악적으로는 부족한 사람도 있고, 리듬감이 약한 사람도 있고, 남을 잘 못 듣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럴 때 저 사람 마음 상하지 않게 이걸 잘 풀어나가는 방법, 그런 것도 실내악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잘 맞지 않더라도 서로 존중하며 대화하고 타협하며 공동의 연주를 완성하는 게 실내악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이런 실내악의 정신이 정말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동석 감독이 바로 동의하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폐막공연 (제공: (사)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맞아요! 정치인들이 진짜 실내악을 잘하면…. 자기 식으로만 하다가 다른 사람하고 하면 자기 스타일이 안 맞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그걸 고칠 수 있어야 하고,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배우는 게 실내악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팀워크'를 할 수 있는지를 익혀야 합니다. 솔로 정신만 갖고는 안 되는 게 많거든요." 정말 정치도 실내악처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각자 고집대로만 연주한다면 그 음악회는 '파투'입니다. 나와 잘 맞지 않는 남의 소리도 잘 듣고, 때로는 양보도 하고, 타협해서 합의에 도달해야 비로소 무대 위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합니다. 실내악은 공감 능력과 협상력, 갈등 관리, 협업의 예술입니다. 모두가 실내악을 직접 연주할 수는 없겠지만, 실내악의 정신은 모두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비올리스트 김상진 두 사람이 출연한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261회 풀영상에서 다른 이야기들도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처음엔 개그맨 김준현 씨의 뮤지컬 데뷔작이라고 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창작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 씨' 얘깁니다. 이 뮤지컬의 '타이틀 롤' 춘자 씨는 치매 증상이 시작된 70대 노인입니다.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뮤지컬은 흔치 않죠. 공연 시작 전 안내방송부터 김준현 씨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등 모든 전자기기의 전원을 꺼 달라'고 하니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뮤지컬은 '소, 원하는 대로 다 돼지'라는 간판을 내건 고기 뷔페에서 시작됩니다. 경쾌하고 리듬감 넘치는 첫 뮤지컬 넘버는 바로 로고송 '소, 원하는 대로 다 돼지'입니다. 백종원을 모델로 한 듯한 외식업계 대부 '백정언'이 운영하는 식당이죠. 소고기 돼지고기 양껏 먹을 수 있는 고기 뷔페다운 이름이면서, '소원하는 대로 다 된다'는 중의적인 뜻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소원 찾아 떠나는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 이 식당에 고춘자 가족이 가족 모임을 위해 찾아옵니다. 치매 증상이 막 시작된 춘자 씨의 70번째 생일, '소원하는 대로 다 돼지' 노래를 들으면서 춘자 씨는 자신의 소원을 떠올려 보려 하지만 암만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백정언 사장은 춘자 씨가 자신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진수성찬' 떡볶이 가게를 운영했다는 것을 알고 밀키트 사업을 제안합니다. 뜻밖의 제안에 가족들이 '대박의 꿈'에 부풀어 흥분하는 동안, 화장실에 간 줄 알았던 춘자 씨가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이후 뮤지컬은 춘자 씨의 시점과 춘자 씨를 찾아 나선 가족들의 시점, 그리고 환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며 진행됩니다. 춘자 씨는 횟집에서 자신의 '정신줄'에서 빠져나온 '영혼의 물고기'와 마주치고, 물고기가 건네준 '코딱지'를 먹고 70에서 0이 빠진 7살 아이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잃어버린/잊어버린 '소원'을 찾아 떠나죠. '어른들만 갈 수 있는 은빛 가루 나라'에서는 100살이 되어, 이미 세상을 떠난 춘자 씨의 남편과 엄마, 그리고 일찍 죽은 어린 딸 수정과 재회하며 위로받기도 합니다. 치매 환자의 환각, 연극적 환상의 세계로 치매 노인의 망가져 가는 뇌 속의 상상이 마치 동심이 만들어낸 동화 속 세계처럼 펼쳐집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춘자 씨의 '모험'은 사실 길을 잃고 헤매는 춘자 씨가 보는 환각이죠. 극을 쓰고 연출한 오미영 씨 이야기 직접 들어볼까요. "치매 환자들이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 환각의 정체가 뭘까, 알고 싶었고 이걸 어떻게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치매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얼마 전에 노인 요양병원에 계시는 치매 전문 의사 한 분이 공연을 보러 왔는데, 치매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쓴 작품이라고 평가해 주시고, 이 공연을 교재로 사용하고 싶다는 말씀도 해주셨어요" "치매의 본질이 뭘까요?" "많은 사람들이 치매 환자는 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이상하지 않게, 인물을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나쁜 치매' '착한 치매', 뭐 이런 이야기들 하잖아요. 그런데 그건 밖에서 보는 사람들 입장인 거고, 치매를 겪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각자 다 이유가 있는 행동들이거든요. 그걸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했다는 거죠." 웃기고 울리는 가족 이야기 현실 세계에서는 엄마를 찾아다니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춘자 씨가 일찍 죽은 딸 수정이한테 미안해하는 것처럼, 큰아들 진수는 동생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진수와 성찬은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각자의 삶에 찌들어 마음만큼 효도하지 못했다고 후회도 하고, 서로 탓하며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모두 현실에 있을 법한 가족의 모습입니다. 이 뮤지컬에는 웃음이 빵빵 터지는 장면이 많습니다. 일인다역을 맡은 배우들의 능청맞은 연기는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춘자 씨가 만나는 영혼의 물고기, 파리 떼 같은 환상 세계의 존재들은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입니다. 7살 아이로 돌아간 춘자 씨가 유치원생을 따라다니고, 깡충깡충 뛰며 노래하는 장면에선 폭소가 터집니다. 이 뮤지컬에는 눈물 나는 장면이 많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정신이 돌아온 춘자 씨가 늙는다는 것과 죽음에 대해 노래할 때 관객도 함께 눈시울을 붉힙니다. 소원을 잊어버렸다고 답답해하던 춘자 씨가 드디어 소원을 기억해 내고 십자가 앞에 108배를 하며 비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눈물샘이 터져버립니다. 뮤지컬 '빨래' 원조 서나영, 70세 7세 넘나드는 춘자 씨로 고춘자 역할을 맡은 배우 서나영 씨는 70세 노인과 7세 아이, 100세의 영혼까지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연기로 관객을 단번에 상황에 몰입하게 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치매를 오래 앓으시다가 2023년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나네요. 저희 고모도, 이모도 약간 치매가 있으시고, 그래서 많이 관찰하고, 김혜자 선생님, 나문희 선생님이 치매 연기 하신 영화나 드라마도 열심히 봤어요. 그런데 참 쉽지 않더라고요. 영화와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계속 변화해야 하고, 공연예술이다 보니 힘도 있어야 되고, 아무래도 그냥 힘 빼고 계속 있을 수가 없고 에너지가 전달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런 걸 결정할 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서나영 씨는 늙는다는 것은 인생에서 누구나 겪는 일이고, '어느 순간 이게 나의 얘기가 되고, 꼭 캐릭터의 말이 아니라 나의 말이 된다'면서, 진심이 스며든 연기의 무게를 드러냈습니다. 또 친구인 오미영 씨가 이 작품을 어떤 심정으로 얼마나 소중하게 썼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잘해야 된다는 부담도 더 컸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함께 다녔고, 졸업 작품 '빨래'에 각각 서나영과 희정 엄마 역으로 출연했던 인연이 있습니다. 지금도 사랑받는 뮤지컬 '빨래'의 주인공 서나영이 배우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캐릭터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특수효과 없이도 된다... 무대의 매력 오미영 씨는 어린아이와 노인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춘자 씨가 굉장히 도전적인 역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상한 나라를 오고 가는 판타지를 배우 한 명의 연기로 다 해결해야 한다는 게 큰 부담이었던 것 같아요. 물고기 코딱지를 먹고 7살이 되고, 파리똥을 먹고 100살이 되고, 이런 장면들이 장치적으로는 코딱지나 파리똥이 있지만, 그걸 먹고 어떻게 변화했다는 건 배우가 몸으로, 연기로 다 해결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네요. 영화였다면 뭔가 특수 효과를 썼을 수도 있는데, 그걸 순전히 다 배우의 연기로써만 표현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러고 보니 이게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요 매력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좀 전에는 70살이었던 배우가 아무런 분장이나 의상 변화 없이도 금방 7살이 되어버린다는 설정을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거잖아요. 배우의 연기에 관객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뭐든 가능한 '놀이'와도 같습니다. 개그맨 김준현, 가장 진지한 역할입니다 자신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이 작품을 택한 김준현 씨의 연기도 정말 인상적입니다. 큰아들 진수 역을 맡은 그는 노래 실력도 좋지만 삶에 찌든 중년 가장의 모습을 정말 잘 표현하더라고요. 코믹한 장면도 물론 잘 소화하지만, 그가 가족의 아픈 사연을 노래할 때 관객도 함께 진한 슬픔에 잠기게 되죠. 김준현 씨가 이 뮤지컬에 얼마나 '진심'인지 느껴져요. 저는 '유명인'인 김준현 씨가 150석 소극장의 창작 뮤지컬 신작에 기꺼이 출연하게 된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원래부터 인연이 있었을까요? 아니라고 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오미영 씨는 '개그맨 김준현이 뮤지컬에 관심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뮤지컬을 만약에 하신다면 개그맨이니까 재미있는 역할들을 제안받으시겠지만, 제가 제안드리고 싶은 역할은 저희 작품에서 가장 진지한 K-장남 역할입니다. 이렇게 연기 변신하시는 게 어떨까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는 스타 캐스팅을 할 수 있을 만한 큰 단체는 아니고, 기금 받아서 공연 준비하고 있는 극단 '오징어'일 뿐이지만, 팬으로서 대본이 닿을 수 있게 된 건 영광이니 대본이랑 음악 좀 들어봐 주세요, 이렇게 간곡히 부탁드렸죠." 김준현 씨는 대본을 다 보기도 전에 이 뮤지컬의 첫 넘버인 '소, 원하는 대로 다 돼지'에 딱 꽂혔다고 합니다. 그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하죠. 이 뮤지컬의 음악은 오미영 씨와 오래 협업해 온 작곡가 노선락 씨가 맡았습니다. 처음엔 음악에 꽂혀 이 뮤지컬에 합류한 김준현 씨는 곧 진지한 'K-장남' 진수 역할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김준현 씨는 이 공연이 끝나는 6월 1일까지, 매주 2회 계속 출연합니다. 몰랐어, 늙는다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인지 김준현 씨가 녹음한 이 뮤지컬 넘버 '몰랐어'를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원래는 고춘자가 부르는 곡인데, 그가 맡은 캐릭터인 진수의 대표곡에는 '스포일러'가 있어서 대신 이 곡을 녹음했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늙어간다는 것과 죽음에 관한 곡입니다. 공연 다 보고 나와서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가사와 멜로디였어요. 몰랐어. 늙는다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인지. 몰랐어. 늙는다는 게 이렇게 아픈 일인지. 밥보다 약이 많고 약보다 한숨이 많아. 낮에는 꾸벅꾸벅 밤에는 말똥말똥. 울 때는 눈물이 안 나고 웃을 때 눈물이 나 음식은 들어가는 것보다 끼는 게 더 많아. 겁이 나 너무 오래 살까 봐. 무서워 죽는다는 게 두려워 애들 고생할까 봐 외로워 혼자 살아남은 게. 허무해 이렇게 끝나는 것이. 지루해 매일 매일 매일이 아쉬워 마지막 달력 한 장처럼 쓸쓸해 음 소거한 TV처럼. 서나영 씨가 극 중에서 부른 '몰랐어'도 뭉클했는데, 김준현 씨 노래도 좋네요. 오미영 씨가 부모님을 보면서 일상 속에서 길어낸 대사들이 마음에 콕콕 박힙니다. 섬세한 관찰력과 언어 감각, 톡톡 튀는 유머가 탁월한 작가입니다. 이전 작품인 '식구를 찾아서' '한밤의 세레나데'에서도 그랬지만, 젊은 여성들이 주관객인 뮤지컬은 남성 배우들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미영 씨는 여자배우들이 중심 역할을 맡는 가족 이야기에 천착해 왔습니다. 이 작가의 세계에는 빌런이 없다 오미영 씨의 작품에는 '빌런'이 없는 것도 특징인데요, 때로 찌질하고 욕심도 부리지만 결코 악당은 아닌 보통 사람들이 나옵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빌런이 작가의 세계에 없는데, 굳이 쓰려고 애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요. 사실 빌런이 있어야 갈등도 있고 이야기가 더 다이내믹해지니까 노력을 안 했던 건 아닌데 잘 안되더라고요. 그런데 빌런 없어도 재미있으면 되지, 현실에도 빌런이 많은데 극장까지 와서 꼭 빌런을 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어느 날 들더라고요." 빌런이 없어도 흥미진진한 '이상한 나라의 춘자 씨'는 관객을 웃기고, 울리고, 눈물 흘리며 웃게 만들다가, 드디어 춘자 씨와 가족이 다시 만나면서 막이 내립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나서 보너스가 더 있더라고요. 무대 후면에 에필로그 영상이 펼쳐지는데, 마치 영화 엔딩 타이틀 올라가고 나서 상영되는 쿠키 영상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소, 원하는 대로 다 돼지'에서 시작된 이 뮤지컬은 '춘자 씨와 그 가족들이 소원하는 대로 다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더 열심히 사랑하자 오미영 씨는 이 작품이 치매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국 '늙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뮤지컬 주 관객층인 20-30대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관객들이 보기를 바라면서 공연을 만들었다고 했는데요, 실제로 제가 공연을 본 날 객석에는 남성과 중장년층 관객들도 꽤 많았습니다. 관객들이 어떤 메시지를 마음에 담고 돌아가기를 바라는지 물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사랑하기만 해도 모자란다. 더 열심히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죠." (서나영)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날이 올 때 너무 힘들지 않게, 당연히 힘들겠지만 그날이 오더라도 너무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하루하루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오미영) 저는 공연 보고 나와서 어머니한테 안부 전화를 했고, 돌아가신 아버지도 추억하게 되었어요. 오미영 씨 말처럼,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늙어가고 언제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죠. 그러니 그날이 왔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김준현 씨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이상한 나라의 춘자 씨'는 김준현 씨 출연 회차 아니라도 충분히 볼만합니다. 화려한 대극장 공연들에 밀려 주목받기 쉽지 않지만, 소극장 공연 중에도 이렇게 반짝거리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김준현 씨는 자신의 뮤지컬 데뷔작을 참 잘 고른 것 같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춘자 씨' 작가이며 연출가인 오미영, 배우 서나영은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출연해 제가 소개한 것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줬습니다. 극단 이름은 왜 '오징어'일까요? 1인 다역 '멀티맨'들의 역할에 숨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공연 이미 보신 분이든 보실 분이든, 직접 들어보시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겁니다. 사진.영상 제공 : 극단 오징어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매년 3월 마지막 주말엔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립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내면으로의 여행'을 주제로 3월 28일부터 4월 6일까지 진행됐습니다. 좋은 공연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상주 연주자 임윤찬의 공연에 관심이 집중됐죠. 저는 개막일 심야 버스로 통영에 갔다가 셋째 날 임윤찬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 리사이틀까지 보고 다시 새벽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가 작곡한, 건반 악기를 위한 작품으로 1741년에 처음 세상에 나왔습니다. 주제곡인 아리아에 30개의 변주곡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다시 아리아로 돌아오며 마무리되는 구조입니다. 이 작품을 처음 연주한 요한 고틀리프 골드베르크의 이름을 따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불립니다. 이 곡은 카이저링크 백작의 제안으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작은 자신의 집에 상주하던 쳄발로 주자 골드베르크에게 불면증을 달래주는 음악을 연주하게 했고, 바흐에게는 골드베르크가 칠 수 있도록 수면에 도움이 되는 음악을 써달라고 의뢰했다는 것입니다. 백작은 바흐가 써준 이 곡의 연주를 즐겨 들으면서 잠을 청했다고 하는데요,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긴 합니다만, 포르켈이 쓴 바흐의 전기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유명해지면서 이 곡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임윤찬이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은 후라면, 이 곡이 수면에 좋은 음악이라는 이야기는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저는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며 '과연 이 곡이 내가 알던 그 곡이 맞나?' 생각하며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보통은 좋아하는 곡이라도 긴 시간 쭉 듣다 보면 중간에 딴생각을 하거나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임윤찬의 연주는 그런 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바흐를 비롯해 바로크 시대 건반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는, 당시의 악기인 쳄발로의 음색을 재현하기 위해 논 레가토(non-legato, 음을 부드럽게 연결해 연주하는 레가토 주법을 사용하지 않고 음표를 살짝 끊어 치는 것. 스타카토와는 다름)로 연주하고 페달 사용을 최소화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임윤찬의 접근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마치 극적인 낭만주의 시대 곡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페달을 많이 써서 잔향에 새로운 음이 어우러지는 효과를 의도하기도 했고, 템포에 변화를 주는 루바토(rubato)를 과감하게 사용했습니다. 깜짝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연주해 새로운 효과를 낸 곡들도 있었고, 느린 단조곡인 25번 변주는 깊은 탄식 같은 처연함에 가슴이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피아노에 온몸을 내던지는 듯 강렬한 타건으로 라흐마니노프의 느낌을 주는 곡도 있었습니다. 임윤찬의 연주는 왼손 저음부의 표현이 두드러지고 주 멜로디 뒤에 숨어 있던 내성을 뽑아내는 게 특징인데, 이번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일반적으로는 오른손이 멜로디를 연주하고 왼손이 이를 뒷받침하는 반주를 맡지만, 바흐의 다성음악에서는 왼손도 오른손과 동등한 비중을 갖게 되죠. 원래도 왼손 연주가 중요한 곡이지만, 임윤찬은 이를 더욱 부각해 곡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듯 새로운 멜로디를 뽑아냈습니다. 그의 연주는 낯설면서도 매혹적이었고, '교과서적인' 연주에 익숙했던 관객도 설득할 만큼 강한 흡인력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처연한 슬픔으로 흐느끼고, 때로는 발랄한 리듬으로 춤추다가, 때로는 뜨거운 격정으로 몰아치다가, 문자 그대로 천변만화(千變萬化)였습니다. 임윤찬이 피아노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어 하는 '모험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30번 변주까지 끝내고 다시 아리아가 연주되는데, 마치 긴 여정을 마치고, 혹은 온갖 인생의 경험을 겪은 뒤 집으로 돌아온 듯했습니다.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아리아였습니다.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제공: 통영국제음악재단) 기립박수 속 커튼콜 끝에 그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앙코르곡으로 뭘 연주해 주려나 했더니, 음표 몇 개만 치고 들어갔습니다. 다름 아닌 아리아의 베이스라인 음표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출발점이었어요.'라고 일깨워주는 느낌이었죠. 여행의 출발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마침표! 천변만화 연주의 뿌리는 결국 여기에 있었던 겁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앞서, 19살 작곡가 이하느리의 신곡 '라운드 앤드 벨버티-스무드 블렌드…(Round and velvety-smooth blend…)가 먼저 연주되었습니다. 이하느리는 임윤찬이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작곡가 중 한 명'이라고 말하는 젊은 작곡가이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함께 다닌 음악적 벗입니다. 그는 지난해 저명한 작곡가 토마스 아데가 심사위원장을 맡은 버르토크 작곡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임윤찬은 이전에도 공연에서 이하느리의 곡을 연주한 적이 있고, 이번 리사이틀을 위해 직접 신곡을 위촉했습니다. 작곡가 이하느리 (제공: 목프로덕션) 이하느리는 얼음조각이 유리잔에 부딪치는 이미지로 이 작품을 설명했습니다. '얼음을 넣어 드시길 권장합니다. 얼음을 사용하실 경우에는 천천히 녹는 큰 얼음조각을 사용하는 편이 좋습니다'라고 했네요. 그는 작품명과 음악에 연관성을 두지는 않는 편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 곡은 피아노 고음부의 청아한 소리로 시작해서, 건반 위를 종횡무진하다가 폭발하고, 다시 고요해지면서 고음부와 저음부로 나뉘어져 소멸하는 듯 마무리되는 곡이었어요. 마치 오묘하게 블렌딩한 위스키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한 기분이라고 할까요. 다채로운 음향이 명멸하는 이 곡은 이어진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의 훌륭한 예고편이었습니다. 임윤찬은 이 곡의 연주를 마치고 객석에 있던 작곡가 이하느리에게 손짓해 일으켜 세우고, 무대로 불러 함께 인사했는데요. 훤칠한 키에 비니를 눌러쓴 '요즘 젊은이' 이하느리는 임윤찬이 리드하는 대로 객석 전면과 합창석을 향해 함께 인사했습니다. 무대에 함께 선 2006년생 작곡가와 2004년생 피아니스트. 연주 못지않게 인상적인 장면이었어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현대음악, 그것도 젊은 한국인 작곡가의 곡을 매칭한 것은 흔히 볼 수 없는 시도였습니다. 임윤찬은 '우리 모두의 음악적 뿌리인 바흐의 가장 위대한 작품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리고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작곡가 중 한 명인 이하느리의 곡을 연주합니다. 크게 대조되는 두 곡을 통해 음악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그 뿌리는 어떤 음악이었는지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라고 프로그램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 (제공: 통영국제음악재단) 공연 리뷰가 이미 많이 나왔는데 뭘 더 보탤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공연을 글로 설명하려 할수록 제가 온몸으로 느꼈던 그 음악의 생생함과는 오히려 멀어지는 것 같기도 했고요. 다만 이하느리의 현대음악과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라고 불리며 수많은 거장의 명연주를 낳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나란히 배치하고, 마음껏 자신만의 해석을 펼쳐낸 그 자유로움과 담대함에 대해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는 기존 해석들과 크게 달라서 보수적인 청자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치열하게 음악과 대면하고 온몸을 던져 결국 음악과 하나가 되어버리는 임윤찬의 연주에 설득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여러 번 들었다는 지인은 '처음 들었을 때도 놀라웠지만, 이후 연주할 때마다 계속 달라져서 더욱 놀랍다'고 했습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이런 자유로움과 담대함을 펼칠 수 없습니다. '곡을 씹어먹을 정도로' 만전을 기하는 연습과, 곡에 대한 철저한 탐구가 바탕이 됐을 겁니다. 임윤찬은 옛 거장들에 대한 존경과 헌신으로도 유명하죠. '옛것을 익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의 사자성어 온고지신(溫故知新)도 떠올랐습니다.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저도 한 번 더 듣고 싶지만, 국내에서는 당분간 기회가 없을 거 같습니다. 앞으로 나온다는 음반을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현장의 그 폭발할 듯한 열기, 계속 변화한다는 연주의 다채로움을 과연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요. 스튜디오 녹음이 아니라 라이브 녹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깁니다. 음반이 나오면 수면이 아니라 각성을 위한 음악으로 자주 듣게 될 것 같습니다. 통영을 떠난 임윤찬은 파리와 빈, 런던, 뉴욕 등지에서 리사이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매진된 영국 런던 위그모어 홀 리사이틀(4월 7일과 8일) 정보를 찾아보다가, 'Bach and Hanurij Lee'라고 적힌 걸 보고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임윤찬이, 이하느리가 열어젖힌 새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커버(Cover)'라는 말, 참 많이 쓰이는 영어 단어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영단어 '커버'는 덮다, 덮개, 숨기다, 엄호, 감싸다, 충당하다, 다루다, 취재하다, 포괄하다, 대신하다 등등 많은 뜻을 갖고 있죠. '커버하다'라는 말은 거의 우리말처럼 자주 쓰입니다. 음악에서 '커버'는 '리메이크'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뮤지컬에도 '커버'가 있죠. 특정 캐릭터를 맡은 배우가 사정이 생겨 공연을 못하게 될 때 이를 대신하는 배우를 뜻합니다. 사진 제공 : 에스앤코 지금 공연 중인 뮤지컬 '알라딘'의 앙상블 배우 백두산, 오석원 씨가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출연했을 때, 뮤지컬 앙상블뿐 아니라 커버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어 이 글을 쓰려 합니다. 아, '앙상블'에 대해서도 설명해야겠네요. 앙상블은 뮤지컬에서 주연과 조연 배우들 외에, 극적이고 생동감 있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합창이나 군무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발레 '백조의 호수'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오데트 공주와 지크프리트 왕자만 있고 백조들의 군무가 없는 '백조의 호수'는 상상할 수 없죠. 뮤지컬도 마찬가지입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민중의 노래'는 정말 유명한데, 이 장면에서 수많은 이름 없는 '민중'을 연기하는 앙상블 배우들이 없다면 어떨까요? 앙상블 배우들은 뮤지컬 공연을 떠받치는 '기둥' 같은 존재입니다. 백두산 씨와 오석원 씨는 오랜 앙상블 경력을 갖고 있는데요, 백두산 씨는 앙상블과 함께 조연인 경비대장 라줄 역을 맡고 있고, 오석원 씨는 앙상블이면서 조역 커버를 세 개나 하고 있습니다. 알라딘 친구 카심 역의 퍼스트 커버, 술탄과 자파 역의 세컨드 커버입니다. 오석원 씨에게 '커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습니다. "커버에도 세 가지 종류가 있어요. 얼터네이트(Alternate), 언더스터디(Understudy), 스윙(Swing)이죠. 스윙은 보통 앙상블 배우한테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신해 주는 배우들을 뜻해요. 언더스터디는 현장에서는 그냥 '커버'라고 많이 부르는데, 주조연 배우들한테 상황이 생겼을 때 대신해 주는 배우이고요. 얼터네이트는 한국에는 잘 없는데,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처럼 '원 캐스트'가 주류인 시스템에서 볼 수 있죠." 얼터네이트는 한국의 더블 캐스트(한 캐릭터를 두 명의 주연배우가 나눠 맡는 것)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보통 브로드웨이에서는 '원 캐스트'로 한 캐릭터를 한 명의 주연배우가 맡지만, 낮 공연 등 일부 회차만 얼터네이트가 소화합니다. 이를테면 100회 공연 중 90회는 '원 캐스트' 주연 배우가 맡고, 나머지 10회를 얼터네이트가 맡는 식입니다. "저는 카심의 퍼스트 커버이니까, 만약 원래 카심 역을 맡은 배우한테 사정이 생기면 제가 바로 카심 역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스윙 배우가 제가 원래 맡았던 앙상블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오석원 씨는 그래서 자신이 맡은 앙상블 외에도 카심과 술탄, 자파의 대사와 노래, 연기, 동선을 모두 숙지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상황이 생기면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말이죠. 연습 기간에 여러 역할을 모두 익혔을 뿐 아니라, 공연 개막 전 일반적인 드레스 리허설 외에, 언더스터디와 스윙 배우들이 출연하는 드레스 리허설도 따로 했습니다. "워낙 기술적인 것들이 많아서, 단순히 내가 그 역할의 동선과 대사, 가사를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스펙터클한 무대 장치라든지 조명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연결돼 있는 게 많아서, 실제 공연처럼 한 번 돌려보는 거죠." 그는 (커튼콜 출연 당시) 아직까지는 '알라딘'에서 자신이 커버(언더스터디)로 투입된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예전 다른 공연들 할 때 몇 번 있었는데, 썩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죠.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거니까. 평소에 철저하게 준비는 하고 있지만, 마음은 그런 일이 안 생기기를 바라게 되죠. 출근 시간 전인데 이른 아침에 무대 감독님한테 전화가 오면 심장이 떨려요. 무슨 상황이 발생했나 하고요.(웃음)" '알라딘' 개막 후로 몇 달이 지났고, 그가 앞으로 카심이나 자파, 술탄 커버로 출연할 일이 생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요즘도 날마다 혼자서 여러 역할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불안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낙천적으로 생각을 하면 꼭 그 원하지 않았던 일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있어야 별일이 없어요. 항상 '이게 언제 나한테 들이닥칠지 모른다' 이런 생각으로 연습하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브로드웨이에서 봤던 뮤지컬 한 편이 생각났습니다. 화제작이라고 해서 예매했는데, 그날 따라 남자 주연배우한테 사정이 생겨 커버가 나왔습니다. 그 배우의 첫 출연이라 했는데, 초반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첫 넘버에서 고음 올라갈 때 목소리가 갈라지더라고요.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좋아져서 연기와 노래 몰입도가 높아졌고, 막판에는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냈습니다. 커버 배우가 얼마나 부담감을 느꼈을지, 무대는 얼마나 무섭고도 정직한 곳인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백두산 씨는 샤롯데 시어터에서 날마다 '알라딘'이 공연되는 시각, 극장 연습실에서는 또 다른 '알라딘'이 동시에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저희 스윙들 진짜 대단해요. 한 사람이 세 명 네 명 역할을 소화해야 해요. 소품을 어디서 들고 어디서 등장하고 어떤 춤을 추고 이런 것들이 다 다른데, 스윙 배우들은 이걸 다 준비하거든요. 항상 꾸준히 연습하고 공연 시작되면 극장 5층 연습실에서 똑같이 공연해요. 사실 이 공연에는 없는 사람들이 많죠. 스윙 배우들끼리 '나 오늘은 오석원 역할 할 거야', '백두산 역할 할 거야', 이런 식으로 매일 정해서 공연하고 있어요. 감각을 놓지 않고 있어야 하니까. 그게 더 어렵죠." '알라딘'의 스윙은 모두 5명입니다. 이들이 매일 그들만의 '알라딘'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관객도 없고 객석도 무대 세트도 없고 텅 빈 연습실에서, 배역들이 듬성듬성 빠져 있어도 있는 것처럼 상상하면서 스윙 5명이 매일 하고 있다는 '알라딘' 공연을 상상해 보다가, 어쩐지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공연 초반에 1막에서 갑자기 근육을 다친 배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 스윙이 들어가서 대체했죠. 그 정도로 준비가 다 되어 있어요. 정말 대단해요" 무대를 더 풍성하게 연출하기 위해 스윙들을 특정 장면에 출연시키는 공연들도 있지만, '알라딘'의 스윙은 항상 대기하고 있다가 돌발상황이 생길 때에만 무대에 오릅니다. 그러니까 스윙은 공연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를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스윙을 아무나 할 수는 없습니다. "스윙 배우들도 모두 오디션을 해서 뽑아요. 배우 개개인의 역량을 간단하게 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스윙 배우들은 두 개 이상의 역할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사실 가장 능력이 우수한 자원을 캐스팅하는 게 맞죠. 정신적으로도 단단해야 해요. 그 긴장감을 이겨내야 하니까." '알라딘'은 디즈니 라이선스 뮤지컬로 브로드웨이 현지의 제작 시스템과 똑같이 커버 선발과 리허설 운용을 철저하게 하고 있습니다. 스윙 배우들 중에는 베테랑이 많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뮤지컬 초창기 '원 캐스트에 커버도 없어서 부상을 입고도 끝까지 공연했다'는 배우들의 무용담이 낯설지 않았지만,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이 속속 들어오면서 이런 시스템도 함께 도입된 것입니다. 커버 배우들의 이야기를 뮤지컬을 넘어 우리 사회에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보통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기둥 같은 존재들이죠. 아무도 보지 않는 공연을 날마다 하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는 스윙 배우들 같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인정해 주는 풍토가 자리 잡는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뮤지컬의 커버 배우들처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하는 게 기본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안전한 곳이 되지 않을까요? 백두산 오석원 배우가 출연한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251화 본편으로 좀 더 많은 얘기 즐겨 보셔도 좋겠습니다. 뮤지컬에서 칼날만 무디게 했을 뿐 진짜와 똑같은 칼을 쓰는 이유, 뮤지컬 '캣츠'의 고양이 꼬리 달기 의식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251회' 배우 백두산, 오석원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지난해 방영된 '스테이지 파이터'라는 무용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다면, 최호종이라는 무용수를 알게 됐을 겁니다. 이 프로그램 최종 우승자인 최호종은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국립무용단 주역으로 춤췄고, 지금은 복합예술단체 SAL(Subverted Anatomical Landscape: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 부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무용가입니다. 한국무용이 기반이지만, 어느 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고유한 춤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가 수석 무용수로 있는 STF 댄스컴퍼니 전국 투어 공연이 얼마 전 성황리에 끝났는데요, 발레를 제외하면 무용 장르는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어렵지만, STF 댄스컴퍼니의 공연은 방송으로 높아진 인지도 덕분에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습니다. 최호종은 또 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창작산실 올해의 홍보대사로, 창작산실 브랜드 영상을 직접 안무해 춤추기도 했습니다. 최호종을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초대해 그의 삶과 춤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무용을 하게 된 과정, 그리고 어떻게 더 자유롭게 춤출 수 있게 되었는지 들려준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고3 때에야 무용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무용 이전에 연극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청소년 극단에 들어가 극단 활동을 했습니다. "극단에 들어가실 때는 연극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신 거예요?" "아뇨. 지금의 저는 진취적이고 담대하고 경쟁도 즐기지만 어릴 때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무대에 서지 않았다면 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보다 무기력한 친구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열정이 없다고 해야 될까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거의 최후의 보루가 아니었나... 어머니께서 오디션을 추천해 주셔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연극을 하면서, 그는 점차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극 치료'라는 게 있잖아요. 예술의 치유적 효과를 체감한 겁니다. "무대라는 것은 그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분도 생기게 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을 더 성찰하게 되고 더 성숙해지게 되기도 하고 이런 면들이 있는데, 제가 그런 것들을 겪다 보니까 저라는 사람을 정말 그냥 더 열어서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고, 무기력하고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던 아이가 나중에는 정말 열정을 뿜어내는 그런 사람으로, 연극을 통해서 무대를 통해서 그렇게 변하게 된 것 같아요." 최호종은 자신이 공부도 꿈도 흐릿하고 무기력한 아이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많은 10대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 속에, 내가 진정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꾸역꾸역 수험 생활을 이어 나가야 하는 게 대다수 학생이 처한 현실이니까요. 그런데 최호종은 연극과 만나면서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고, 자존감을 찾고, 무대에 열정을 쏟게 되었던 겁니다. 그는 무대와 만나 자신이 변화했다면서, 이를 '첫 번째 터닝 포인트'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터닝포인트는 그에게 무대의 매력을 알려준 연극에서, 무용으로 전향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무대에서 몸 쓰는 것을 본 류미선 연출가가 무용으로 전향할 것을 강력하게 권유했습니다. '너는 연기해서 20년이면 빛을 볼 것을 무용이면 10년에 볼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하죠. 그의 인생 항로에 정말 중대한 영향을 끼친 말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믿는 분이니까, 그리고 제가 사랑한 것은 연기도 춤도 아닌 무대였기 때문에, 바로 네 알겠습니다, 하고 무용으로 전향했죠. 단기간에 배우고 정말 많이 노력해서 무용을 시작하게 됐어요" 무용을 배우고 불과 7-8개월 만에 대학 입시를 치렀습니다. 발레처럼 기본기가 중요한 장르를 짧은 기간에 익히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한국무용 전공을 택했습니다. 한국무용도 물론 기본기가 중요하지만, 창작 부문은 한국무용의 정서와 호흡을 응용하되 좀 더 유연하고 독창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한국무용 창작으로 응시했고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그는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을 익히고 입학한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늦깎이로 무용을 배운 자신의 실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걸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했지만, 열등감이 너무 심했어요. 친구들한테는 티를 안 내고 싶었지만, 너무 비교되는 상황이 자주 생기다 보니까 그걸 극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시험을 보는데 다른 친구들은 교수님이 주신 순서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면, 저는 그 순서를 외우는 것만으로도 평가를 받는, 남들과 다른 기준점에 놓여 있는 상황이 많이 힘들었어요." 그는 어떤 동작이 안된다고 지적받으면 거울 앞에서 8시간 동안 그 한 동작만 맹목적으로 반복 연습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단순 무식'하게 일을 해결했다면서, 그야말로 '집요하고 독기 그 자체였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열등감에서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습니다. "마지막 콩쿠르에 나가기 이전에, 너무 답답하고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싶고, 내가 무용을 처음 시작했던 건 이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내가 봤던 건 행복하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그런 거였는데, 왜 지금 이렇게 독기에 빠져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있지? 이건 몇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데, 앞으로 몇 년을 더 이렇게 해야 되지? 계속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정말 극에 다다랐을 때 제가 일종의 선택을 했어요." 무용수 최호종이 지난 4월 국립무용단 신작 '사자의 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가 했던 '선택'은 그냥 쉬지 않고 춤을 춰보는 것이었습니다. 낮에 춤추기 시작해 어둑어둑한 밤이 될 때까지, 6시간을 쉬지 않고 춤을 췄습니다. 완전한 즉흥춤이었습니다. "보통 즉흥춤은 5분이면 지치거든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마치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정말 정신이 나갔다가 다시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회복이 되고, 다시 어떠한 고양감으로 인해서 내가 다른 질감이나 다른 제약으로 춤을 시작하면서도 흐름이 끊기지 않다가 어느 순간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멍을 때리고 있고. 안에서 엄청난 혼란과 되게 많은 감정과 지금까지 느꼈던 춤에 대한 사유들이 혼합되더니, 결국 '아,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춤을 춰야겠구나.'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아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춤을 춰야겠구나! 6시간 무아지경 즉흥춤을 통해 그가 도달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마인드'가 바뀌고, 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를 마치 기적과도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열등감이나 괴로움에서 한순간에 벗어나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나의 춤을 추는 상태가 되니까 춤이 행복해졌다고 했습니다. 춤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치유한 것입니다. 그렇게 바뀐 마인드로 출전한 2016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았습니다. 첫 참가 때 동상, 두 번째 참가 때 은상을 받았던 콩쿠르에서 드디어 정상에 오른 것입니다. '이매망량'이라는 도깨비 수호신과 그를 창조한 절대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한 '마무-아오르다'라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콩쿠르는 남들과 겨루는 경쟁이 분명하지만, 그의 경연 영상을 보면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즐기면서 자유롭게 춤추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합니다. 최호종 스스로도 영상 속의 자신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 2016동아무용콩쿠르 "그전에는 테크닉적으로 뭐가 안 된다 이런 걱정도 하셨는데, 마인드가 바뀌니까 그것도 순조롭게 해결이 되던가요?" "춤은 결국 마음과 그 사람의 통로이기 때문에, 무언가에 압박을 받고 있으면 춤이 절대 잘 나올 리가 없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내가 어떤 자신감을 갖고 있느냐가 그 춤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것 같은데, 그때 저는 춤을 엄청나게 잘 춘다고 하기보다는, 엄청난 자신감으로, 그냥 이미 무대에서 승리하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승리의 깃발을 꽂아놓고 춤을 추는 느낌이었어요. 승패나 경쟁이나 상이나, 이런 걸 다 떠나서 그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승리의 깃발을 꽂아놓고 춤을 추는 느낌'이었다는 말이 귀에 짜릿하게 꽂혔습니다. 무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춤추는 게 아니라, 그저 무대에서 춤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며 춤추던 순간, 그는 이미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춤으로 해탈한 남자'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런 경험을 진짜 할 수가 있군요!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간절함인 것 같습니다." 그는 다음 해인 2017년 국립무용단에 최연소로 입단합니다. 고3 때 한국무용으로 진로를 정한 뒤 국립무용단의 '그대, 논개여'를 보고 '내가 갈 곳은 저기'라고 생각해 왔다고 합니다. 그는 국립무용단 소속으로 2024년까지 '더 룸' '호동' '사자의 서' 등에서 주역으로 춤췄습니다. 서울무용제 남자최고무용수상, 관객이 뽑은 베스트 상, 한국춤비평가협회 연기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이 보여주듯 최호종은 곧 무용계의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안무가로서도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2023년 국립무용단의 차세대 안무가 양성 프로젝트로 첫 번째 안무작 '야수들'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가족으로 설정된 네 명의 무용수가 보여주는 '가학적 놀이' 속에 한국 사회의 변화를 담아냈습니다. 같은 해 예술집단 SAL이 공연한 'COSMO'는 피터 쉐퍼의 희곡 '에쿠우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었죠.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선보인 그의 안무도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국립무용단은 무용수들에게는 '꿈의 직장'이지만, 그는 안무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2023년 즈음부터 퇴단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국립무용단을 떠나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창작 욕구와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갈증을 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퇴단을 준비하던 중에 '스테이지 파이터' 출연 제안을 받았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출연을 결정했고, 이는 그의 무용 인생에서 또 다른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 방송에 좋은 소재가 되어야겠다. 춤 잘 추는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라, 좋은 자세 좋은 마인드 좋은 태도로 임하는 좋은 선례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출연에 대해 확 (마음이) 열리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참가했던 스테이지파이터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는 이제 무용계를 넘어선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최호종이 참여하는 STF 댄스컴퍼니의 공연은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방불하게 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가 평소 활동하는 SAL에서의 작업은 사실 대중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두 갈래의 길이 최호종이라는 예술가 안에서 어떻게 나아가고 합쳐질지, 기대하게 됩니다. 최호종은 SAL의 작업이 '쉽고 재미있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용 공연이 '하이엔드'라고 말합니다.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는 대중을 위해 무용 공연의 장벽을 낮추는 노력을 하는 것보다는, 예술가 스스로 더 발전시키고, 더 깊은 사유를 하고, 더 진정성 있는 작업을 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무용수가 오랜 시간 뭔가 수련하고 체화하며 쌓은 그 노력의 산물인 무대 춤은 한순간에, 찰나에 소멸되고 눈앞에서 사라지잖아요. 그 안에서 얻어지는 사유가 쉽게 봄으로써 얻어질 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나오는 '모호성'이 우리의 가치를 드높여주는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모호성이라는 일종의 품격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는 자극이 넘쳐나고 쉽게 도파민을 얻을 수 있는 이 시대에, 관객이 공연장까지 찾아온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용기를 내 준 관객에게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먼 길을 오가는 그런 '용기'가 아니라, 예술가를 통해 다른 사유를 얻고 작품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 대한 '용기'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죠. 누구에게나 있을 수도 없고, 그 용기는 없다가도 갑자기 생길 수 있고, 마치 제가 무대에 오른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무대라는, 예술이라는 것이 찾아와서 내가 삶을 향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기보다는 정말 진귀하고 희귀하고 희소성 있는 그런 순간이죠." 최호종의 말처럼, 예술가를 통해 다른 사유를 얻고 작품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기꺼이 할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저도 최호종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영감을 받은 느낌입니다. 무기력하고 꿈이 없었던 소년이 담대하고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예술가로 성장하기까지, 최호종은 여러 번의 '터닝 포인트'를 거쳐왔습니다. 무대 앞에, 춤 앞에,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했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인생의 전환점, 귀중한 영감의 순간이었습니다. 최호종의 춤과 삶이 어쩌면 다른 이들의 인생에도 귀중한 영감이 되고,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골라듣는뉴스룸 252회 최호종편 풀영상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확인하셔도 좋겠습니다. ▲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252회' 무용수 최호종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로잔 콩쿠르가 유명한 콩쿠르예요?" 쉬는 일요일, 집에 있다가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니 당직 근무 중인 후배가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로잔 콩쿠르에서 한국인 발레리노가 우승했다고 했습니다. 우승자는 서울예고에 재학 중인 남학생 박윤재. 지금 막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인 발레리노 최초로 로잔 콩쿠르에서 우승한 박윤재. 사진 : AP, 연합뉴스 로잔 콩쿠르가 무용계에서는 중요한 콩쿠르가 맞고, 한국인 발레리노 우승은 처음이라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니 후배는 알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그때까지 나온 기사들을 찾아보았는데, 하나같이 눈에 띄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로잔 콩쿠르는 파리, 바르나, 모스크바, 잭슨 콩쿠르와 함께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로 꼽힌다." '세계 ○대' 또 나왔구나.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세계 ○대'는 기사 쓸 때 가장 조심하는 표현입니다.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오래전 예술의전당 비전 발표 보도자료에서 '세계 10대 아트센터가 목표'라는 말을 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럼 어떤 공연장들이 세계 10대 아트센터냐고 물었지만, 뚜렷한 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그 정도로 세계적인 위상을 갖춘 공연장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세계 ○대'와 마주쳤습니다. 세계 4대 뮤지컬, 5대 뮤지컬,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세계 5대 발레단, 세계 3대 로맨스 소설, 세계 3대 소프라노,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기사에 인용하기도 했지만, 점차 이런 말들이 대부분 굉장히 자의적으로 쓰이고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여 년 전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내한공연 때 '세계 3대 발레단'이라는 홍보 문구가 서울 시내 곳곳에 등장했습니다. 기획사에서 보낸 보도자료에도 '세계 3대 발레단'이 쓰여 있었습니다. ABT가 '세계 3대 발레단' 중 하나라면 나머지 둘은 어디일까요. 기획사에 물어봐도, 그저 ABT를 '세계 3대 발레단'이라고 언급한 과거의 기사를 보고 그렇게 썼다고 했습니다. 찾아보니 영국 로열발레단, 파리 오페라발레단과 ABT를 '세계 3대'로 칭한 글이 나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클래식 발레의 전통이 깊은 러시아 발레단들은 빠져 있습니다. 해외 기사들을 검색해 봤지만, '세계 3대 발레단'이라는 말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국내 주요 발레단의 예술감독들에게 'ABT가 세계 3대 발레단인가'를 물었습니다. 모두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ABT의 수준이 높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세계 3대 발레단'이라는 개념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세계 3대 발레단을 꼽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습니다. 이들은 '세계 3대 발레단'이라는 표현이 근거도 없고 예술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런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도 썼습니다. '세계 3대 발레단'도 그렇지만, '세계 ○대'를 내세우는 표현 대부분이 뚜렷한 근거 없이,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구미에 맞춰 자의적으로 쓰이는 마케팅용 수사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도 기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세계 ○대'를 쓰는 경우가 있고, 이런 기사들이 많아지면 어느새 '세계 ○대'라는 표현이 공인된 사실처럼 되어버립니다. ▷ 당시 취재파일 보기 <세계 3대 발레단과 3대 로맨스 소설> 그런데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는 무용계에서 통용되지 않는다는 차원을 넘어, 명백한 오류가 있는 표현입니다. 일단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로 나열된 콩쿠르 가운데 파리 콩쿠르는 현재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1998년 당시 국립발레단 소속이었던 김지영, 김용걸이 우승했던 콩쿠르로 알려져 있지만, 몇 회 지속되지 않고 폐지되었다는 게 발레 전문가들의 얘기입니다.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는 1964년 창설되어 가장 역사가 긴 콩쿠르로 2년에 한 번 열렸지만,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왔고 2018년 대회 이후로는 개최된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콩쿠르 홈페이지에는 2020년 7월 콩쿠르 개최 예정이라는 글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습니다. 모스크바 콩쿠르와 잭슨 콩쿠르(공식 명칭은 USA 국제발레콩쿠르)는 4년에 한 번 열리는 콩쿠르입니다. 발레 전공자들이 많이 참가하는 콩쿠르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들 콩쿠르에만 최고의 권위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해외 발레 전문매체를 봐도 주요 발레 콩쿠르들을 나열할 뿐, 4대, 혹은 5대 콩쿠르 같은 말은 쓰지 않습니다. △ 제53회 로잔 콩쿠르 결선 ※ 박윤재 클래식 부문 연기는 56:24부터, 현대무용 부문 연기는 1:39:38부터, 시상식은 2:16:24부터 보실 수 있습니다. 게다가 로잔 콩쿠르는 여타 콩쿠르와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1972년 스위스 로잔에서 시작된 이 콩쿠르는 매년 열리며 15세에서 18세까지의 청소년만 출전할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며칠간 직접 지도하고 평가하는 발레 클래스를 거쳐 선정된 결선 진출자들이 무대에 올라 경연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참가자들에게 심사위원들의 피드백이 주어진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결선 진출자들은 클래식 발레 레퍼토리뿐 아니라 현대 작품도 하는데, 로잔이 선발한 젊은 안무가들의 신작도 포함됩니다. 입상자들은 장학금을 받아 해외 유명 발레학교나 발레단에서 연수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53회 대회였던 올해는 42개국 225명 지원자 가운데 비디오 심사 등을 거쳐 23개국 85명이 콩쿠르에 참가했고, 결선에는 20명이 올랐습니다. 이 중 장학금을 받는 입상자를 9명 선발했고, 최우수 젊은 인재상(Best Young Talent Award), 현대무용상(Contemporary Dance Award), 관객상(Audience Favorite Award) 등 특별상도 따로 시상했습니다. 박윤재는 최우수 젊은 인재상도 받았습니다. 부산예고 재학 중인 발레리나 김보경은 8위로 입상했습니다. 시상식을 보니 장학금 9번(Scholarship Number 9), 장학금 8번, 이런 식으로 부르더라고요. 장학금을 받는 입상자들 중에 '장학금 1번' 박윤재만 메달을 받았습니다. 1985년 강수진을 시작으로, 로잔 콩쿠르에서 입상한 한국인 무용수들은 꽤 많습니다. 지금까지 장학금과 특별상을 받은 한국인 수상자들이 합치면 30명 정도 되는데, 발레리나가 대부분입니다. 이 콩쿠르는 장학금을 받는 입상자들의 순위를 매기기는 하지만, 콩쿠르 홈페이지의 과거 입상자 명단을 보면 장학금을 받았다고만 되어 있을 뿐 순위를 표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 콩쿠르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죠. 누가 제일 잘했나 등수를 가리는 게 주된 관심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로잔 콩쿠르는 10대 발레 유망주를 발굴하고, 이들이 직업 무용수로 순조롭게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둔 교육적 성격의 콩쿠르입니다. 성인 무용수들도 출전하는 다른 발레 콩쿠르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 중요성만큼은 분명합니다. 굳이 없어진 콩쿠르까지 포함시켜 '세계 ○대'라는 수사를 동원할 필요도 없습니다. 회사에 다시 전화해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라는 표현은 오류가 있으니 우리 기사에서 빼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세계 5대 발레 콩쿠르에서 16살 소년이 우승했다'며, 연일 후속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우승했으니 대단하다는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로잔은 청소년 대상 콩쿠르이니 16살에 우승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박윤재의 로잔 콩쿠르 우승은 분명 축하할 만한 성과입니다. 특히 한국인 발레리노로서 처음 우승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과는 별개로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라는 표현의 오류는 시정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어쩌면 '세계 ○대' 같은 표현 없이는 문화 기사가 주목받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공연을 보러 갔다가 예전에 '세계 3대 발레단' 기사를 쓸 때 취재했던 발레계 인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라니, 요즘 말도 안 되는 얘기가 계속 나와서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로잔 콩쿠르가 어떤 콩쿠르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기사가 나오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콩쿠르는 분명 중요하지만 이는 예술가의 커리어에서 시작 단계일 뿐이며,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점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콩쿠르 경력 없이 대성하는 예술가가 있고, 우승 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스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콩쿠르 수상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예술가들의 평소 활동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문화계 지인이 '해외 콩쿠르 없는 분야 예술가들은 속상하겠다'는 말까지 하더라고요. 해외 콩쿠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게 아니고 천차만별, 성격도 다 다른데, 요즘 해외 콩쿠르 수상에 쏟아지는 열광적인 관심은 거의 '콩쿠르 숭배'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게 그저 저만의 기우라면 좋겠습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무용수들. 이들의 춤은 한번 보면 잊을 수가 없습니다. 표정 없이 선글라스나 물안경을 낀 채로 이상하게 멋지고 복잡하고 어려운 동작을 구사한 이들은 '춤도깨비'라고 불렸습니다. 쭉 이날치와 함께한 'Feel the Rhythm of Korea' 캠페인 영상,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뮤직비디오, 구찌 광고, 이 춤도깨비들은 팬데믹 기간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이 춤꾼들의 정체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였습니다. △ 'Feel the Rhythm of Korea: SEOUL' 영상 보기 저는 2020년 당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춤꾼이자 안무가이자 예술감독인 김보람 씨를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그는 출연을 고사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고, 저는 얼마 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대표작 '바디콘서트' 15주년 기념 공연을 예술의전당에서 열 계획이라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출연을 요청했고, 이번에는 성공했습니다.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며 SBS 스튜디오에 처음 들어선 김보람 예술감독은 웃기고, 놀랍고, 진지한 이야기들을 길게 들려줬습니다. 둘도 없는 개성으로 똘똘 뭉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철학과 매력을 그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살펴봅니다. 1. 애매모호한 춤 회사, '앰비규어스'가 곧 장르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Ambiguous Dance Company)' 김보람 예술감독의 명함에는 '애매모호한 춤 회사'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앰비규어스. 애매모호. 이게 이 단체가 추구하는 춤의 특징입니다. '이런 춤 저런 춤 다 춤'이라는 얘기도 합니다. "발레도 있고 다양한 장르들의 춤이 있잖아요. 근데 저희는 거기에서 벗어나서 좀 더 본질적으로 춤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단체 같아요. 그래서 어떤 것이 춤이고. 어떤 것이 춤이 아니고, 그런 것들을 나누는 행위 자체에서 벗어나서 모두 다 춤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춤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힙합, 이런 장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춤 자체를 파고듭니다. 김보람 감독은 10대 때부터 유명 가수들의 백업댄서로 TV 무대에서 활약했고, 이후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고, 기존의 현대무용 공연들이 너무 재미없어서 직접 안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앰비규어스가 곧 장르'라고 말합니다. ▷ '콜드플레이도 반한 한국의 춤꾼들' 뉴스 영상 보기 (SBS 8뉴스 더스페셜리스트) 2. 선글라스를 끼고 얼굴을 가리는 이유 김보람 감독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자신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카메라가 돌아가면 선글라스를 쓰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글라스는 단순히 김보람 감독 개인의 스타일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작품 세계 전체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 작품들의 시그니처예요. 선글라스를 낀다거나 얼굴을 가린다거나, 그래서 최대한 얼굴을 가려 몸으로만 소통을 해보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어요." "춤에만 집중해서 볼 수 있게 하려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네. 눈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최초의 생물이 나타났을 때부터 발전해 온 어떤 역사를 다 담고 있어서, 눈이 이미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렇게 눈을 보고 춤추는 사람을 봤을 때, 이미 눈에서 저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다 이해를 해버린다는 거죠. 그래서 그걸 가리고 정말 몸의 움직임만으로 소통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눈을 가리는 선글라스나 물안경뿐 아니라 형형색색 다채로운 의상과 소품도 인상적입니다. 색동옷, 형광색 옷, 일체형 의상도 있고, 얼핏 중구난방인 것 같아 보이지만, 춤과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제가 제안하는 것 같고, 저희가 직접 찾아서 만들 때도 있고, 디자이너하고 공동 제작할 때도 있어요. 제가 일상에서는 입고 싶어도 너무 튄다거나 보는 분들 시선 때문에 못 입는 옷들이 있어요. 그럴 때 작품을 통해서 해소하는 경우가 있죠. 이걸 진짜 입고 싶었는데 이번 작품 의상으로 해보자, 그러는 거죠. '범 내려온다' 같은 경우도, '내 눈에는 전통 의상이 멋있는데 왜 아무도 모르지?' 이런 생각으로 전통 의상을 저희가 좀 새롭게 해본 거였고요." 3. '범 내려온다'는 취미생활, 너무 커져서 당황했다 이날치와 함께한 '범 내려온다' 이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와 협업했고, 구찌 광고도 찍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쏟아졌고, 폭발적인 대중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김보람 감독은 당시 당황스러움도 느꼈다고 했습니다. "살다 보니까 그런 일도 있더라고요. 사실 그렇게 뭔가 기대를 하고 했던 작업이라기보다는 그냥 이날치 장영규 음악감독님하고 작업 그전에도 몇 번 했고 그게 재미있어서 저희도 맨날 무용만 하면 너무 진지하게 하다 보니까, 조금 숨 돌리러 나가는 기분으로 취미 생활처럼 했던 협업이었는데, 너무 커져서 당황하긴 했습니다." △ 콜드플레이 - '하이어 파워' 영상 보기 그는 당시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일부러 방송을 멀리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10대 때부터 댄스 크루 '프렌즈' 소속으로 유명 가수들의 백업댄서로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 무대에 출연했던 경험도 작용했습니다. "이날치랑 협업은 저희의 본래 작업은 아니라서 그쪽으로만 가면 그게 부각되고 사람들도 그걸 기대하게 될까 봐. 사실 그거는 저희의 극히 일부분이고 실제로 하는 작업은 어떻게 보면 바디콘서트나 이런 게... 그래서 거기에 좀 더 집중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왜냐하면 이게 그렇잖아요, 사실? 방송 아시겠지만 확 떴다가 확 사라지는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원래 자리로 이렇게 잘 와서 활동하는 것 같습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최근 발매된 이날치의 새 음반 뮤직비디오에서도 함께했습니다. 이날치의 음악과 이들의 춤이 오묘하게 어울리는 매력은 여전합니다. 커튼콜 녹화 이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두 번째로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굿 필링스(Good FEELiNGS)' 영상도 공개되었습니다. 단원들은 이 필름 제작을 위해 이번에는 영국의 거리에서 춤췄는데, 지나가던 영국인들이 굉장히 박수를 많이 쳐줬다고 하네요. ▷ 이날치 '봐봐요 봐봐요' 영상 보기 ▷ 콜드플레이 '굿 필링스' 영상 보기 4. 무용 공연을 15회나? 바보라서 그래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2월 26일부터 3월 9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바디콘서트'를 공연합니다. '바디콘서트'는 15년간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대표작입니다. 이번에도 예술의전당 공연이 끝나면 바로 유럽 투어를 떠날 예정입니다. 이번엔 참여하지 못했지만, 요즘 '스테파 무용단'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김현호 씨 역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소속으로 '바디콘서트'에 오래 출연했었습니다. 출처 : 예술의전당 사실 비교적 인기 높은 발레를 제외하면, 무용 공연은 끽해 봤자 3회 정도 하는 게 현실입니다. 티켓 가격도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청소년 할인, 예술의전당 회원 할인 등 각종 할인 혜택이 있어, 최대 50%까지 싸게 살 수 있습니다.) 무용 공연을 15회나 한다니, 객석을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저까지 걱정이 됩니다. 김보람 감독은 '바디콘서트' 15주년 기념 공연이라 15회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바보라는 게 명확해진 공연 기획이죠. 사실 다 3회나 4회를 하는 이유가, 한국에서 무용 공연으로 객석을 채우는 데 그 정도가 적합하다는 건데, 저는 사실 이렇게 정해져 있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15회 해보면 되지! 왜 그렇게 스스로를 이렇게(한정) 하냐!', 이런 생각으로 합니다." ▷ '바디콘서트' 공연 티저영상 보기 5. 관객 반응이 좋으면 실패다?! '바디콘서트'는 '콘서트'라는 이름처럼 여러 음악을 다채로운 몸짓으로 보여주는 공연입니다. 정말 '이런 춤 저런 춤 다 춤'이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과 가요, 팝송, 테크노, 국악, 음악 장르도 다채롭습니다. 김보람 감독은 '저 춤은 무슨 의도로 안무했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스스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합니다. 발레 공연을 제외하면 무용 공연에서는 끝날 때까지 도중에 박수를 보내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이 공연에서는 가수들의 콘서트와 흡사하게,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박수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콘서트처럼 앙코르 무대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무용 공연에 앙코르라니, 거의 전례 없는 일이지만 안 된다는 법도 없잖아요? 그러니 '바디콘서트' 보러 가시는 분들은 앙코르를 청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김보람 감독은 '반응 좋으면 우리 오늘 실패야, 사람들이 웃으면 오늘 실패야'라고 합니다. 네? 반응이 좋은 게 실패라고요? 이건 또 무슨 뜻일까요? 그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반응이 좋으면 무용수들이 객석을 의식해 오버하게 되고, 그러면 원래 의도했던 춤으로 하는 소통이 온전히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무용수들이 선글라스나 물안경을 쓰고 몸으로만 소통하려고 노력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그는 나아가 궁극적인 목표는 '관객들이 춤에 너무 몰두해서 박수 치는 것조차 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관객이 공연을 좋아할수록 자연스럽게 박수가 나오게 되죠. 그는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걸 목표로 삼는 경향이 있다'며 웃었습니다. 6. 돈을 벌기는커녕 써가면서 무료 공연 하는 이유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무료 공연에도 진심인 단체입니다. 지난해 한강 세빛섬에 대형 무대와 객석을 설치하고 2주 동안 매일 저녁 무료 공연을 펼친 적도 있습니다. 12개의 작품을 선보인 이 무용 축제는 '99.9 페스티벌'로 작명했습니다. '99.9%는 못 보고 죽는다. 당신은 이 공연을 보는 0.1%가 될 수 있다'라는 뜻이죠. 그는 2019년 베를린에 공연하러 갔다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공연에서 연 무료 공연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몇만 명인지 모르겠어요. 저 무대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먼 데까지 사람들이 꽉 차 있는데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 관객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 소리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아, 이게 문화구나' 해서 한국에도 저는 이제 무용을 하니까 무용을 정말 그냥 원하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그런 페스티벌이나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 해서 만들어 봤습니다." 2주 동안 매일 다른 작품을 공연하느라 무용수들은 몸이 부서질 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공연은 공공 지원금을 받기는 했지만,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자체 예산도 투입했습니다. 돈을 벌기는커녕 큰돈을 써야 하는 무료 공연에 왜 이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이는 걸까요? "근데 뭐 돈이야... 사실 돈 벌려고 하고 있어요. 근데 당장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저는 뭐 당연히 문화도 중요하고 한국의 공연을 보는 문화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고, K팝, 영화 다 너무 좋은데 기초 예술 장르, 순수 예술 쪽이 그만큼까지 발전하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궁극적으로 완성은 순수 예술의 발전이다라고 생각하고 문화를 만드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굉장히 몰입해 있는 것 같고, 그게 되면 그 뒤로 먹고사는 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해서 당장 먹고사는 것보다 문화를 만드는 일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 아니라 민간단체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또 '해외 무대보다 한국의 지역 무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공연을 접하기 힘든 지역의 많은 관객들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예술계에는 해외에서 인정받은 걸 토대로 한국에서 자리 잡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 안에서 인정받은 걸 토대로 세계로 나가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7. 편한 길보다 어려운 길을 택한다 김보람 감독은 세간의 시선으로 보면 '청개구리' 같기도 합니다. 그는 남들이 맞다고 하면 오히려 마다하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제가 이게 맞다고 느끼니까 하는 경우가 많고요. 제 습성이, 남들이 '이게 맞다'고 하면 하기 싫어요. 하기 싫고 안 돼요. 네, 좀 병적인 게 있어요. 저 개인이 보는 눈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 '이게 맞다'고 하면, 오히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하고, 그게 진짜 맞는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죠. 저는 편한 길과 어려운 길이 있으면 무조건 어려운 길을 선택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편한 길은 편하고 싶어서 가는 거잖아요. 그러면 어려운 길은 어렵고 싶어서 가는 걸까요? 저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데 즐거움이 훨씬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왕이면 어려운 길이 재미있는 것도 많고 기억 남는 것도 많고, 죽을 정도로 어렵지 않으면 웬만하면 그 길을 선택하는 본능이 있어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단원들이 본격적인 연습 전에 몸풀기(웜업)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몸풀기가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1시간 반이나 지속됐습니다. 연습 시작도 전에 녹초가 될 것 같았어요. 무슨 몸풀기를 저렇게 '빡세게' 할까 궁금했습니다. "몸이라는 게, 오늘 엄청나게 힘들었던 게 내일 하면 덜 힘들어요. 원래 몸은 엄청나게 똑똑하거든요. 우리 머리보다 똑똑한 게 몸이에요. 그래서 어떻게든 쉬운 방법, 덜 힘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요.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어제랑 똑같이 했는데 어제보다 덜 힘들게 되거든요. 저희는 그걸 거부해요. 다음 날은 더 세게 하는 방법을 찾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몸풀기가 계속 힘들어지고 복잡해지는 거죠." "그렇게 신나는 춤을 추시는데, 이렇게까지 힘든 길을 선택해서 오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좋아하면 뭐... 저는 '힘듦'이라는 게 반대로 조금 더 좋은 이미지인 것 같아요. 역으로 편안함이 안 좋은 이미지예요.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지는 않고 힘듦을 조금 더 추구한 거고, 힘듦이나 고통이 제가 느낄 수 있는 혜택이라고 해야 하나. 저희가 살면서 편안함만 느끼는 건 정말... 그러니까 똑같이 느끼는 거잖아요. 편안함도 느끼는 것이고 힘듦도 느끼는 거라면, 느끼는 건 저 자신이기 때문에 둘 다 감사할 일이라는 거죠. 그런데 내가 뭘 더 좋아하는지, 어떤 게 더 재미있는지, 그리고 그게 미래에 어떤 또 좋은 가치가 있는지 이런 걸 고민하는 거지, 힘듦을 자꾸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8. 화성 로봇 춤 안무하고파... 일론 머스크 연결해 주실 분? 그에게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스페이스X가 화성 이주를 위해 노력하고 있잖아요. 저나 단원들이 화성까지 직접 가서 춤추기는 어렵고, 거기서 옵티머스라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으니까 로봇에게 가장 맞는 춤 안무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뜻이 있으면 이뤄지겠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콜드플레이랑 협업했던 '하이어 파워' 뮤직비디오도 마치 우주에서 춤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 그 이전부터 그런 꿈을 갖고 있었던 걸까요? "그전부터 있었던 것 같고, 워낙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이 작업을 하는 게 몸의 언어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몸의 언어라는 건 내가 몸 전체를 다 써야지만 할 수 있는 언어예요. 그 언어가 저는 가장 진화된 언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성에서의 그런 움직임을 만들고, 그걸 지구인 아닌 다른 세계의 생명체가 봤을 때 가장 직관적으로 빠른 소통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구하고는 중력도 다르니까 그런 것도 다 고려해야겠네요." "그건 다 수학적으로 계산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재미있게도 저는 춤을 추면 출수록 이게 다 수학과 시간에 관련된 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음악을 분석하고 했던 이후부터 모든 게 어떻게 보면 그 시간, 시간성이라는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음악을 분석하고 정확한 시간을 나누는 것이죠. 그리고 중량, 동작의 개수, 이 모든 게 숫자로 이뤄져 있어서 그런 것까지도 계산된 안무가 필요하겠죠." 그는 시종일관 진지했습니다.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아는 분 계시면 연결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9. 객석 하나라도 더 채워주고 싶다 완도에서 춤 배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상경해 춤추는 사람인 것 같아 보이면 무작정 쫓아다녔다는 얘기, 방배동에 춤 연습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간 동네가 알고 보니 대방동이었다는 사연, 고등학생 때부터 백업댄서로 활동하다 일찍 찾아온 슬럼프를 극복한 비결 등등, 김보람 감독의 모든 이야기가 흥미진진했습니다. 그와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뚜렷한 소신과 단단한 내공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춤에 쏟는 열정과 사명감에 감탄했고요. "저는 운이 좋게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어린 친구들,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도 성공이 될 수 있죠.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찾기에는 고등학교 때까지 받는 교육이 너무 부족하고, 오히려 그걸 막는 경우도 많죠. 그런 걸 좀 문을 열어주려면 어릴 때부터 순수 예술, 기초 예술과 가까이 있고 자기를 발견하는 수업도 있어야 하는데, 예술이 나를 발견하고 나와 대화하기에 가장 근접하죠. 그래서 그런 문화 만드는 걸 항상 머릿속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관심이 생기셨다면 김보람 감독이 출연한 커튼콜 250화 풀영상도 보시고, '바디콘서트' 공연을 직접 관람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저는 이 공연은 꼭 가서 보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 바보라고 했지만, 김보람 감독과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도전'은 의미가 있습니다. 객석 하나라도 더 채우면서 이 도전에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