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문 기자, 공연 담당 기자. BTS도 조성진도 씁니다. 사회부, 편집부, 정치부, 국제부, SDF 기획 부서를 거쳤고, 문화부에서 가장 오래 일했습니다. 공연 관람과 수다, 피아노, 중국문화, 그리고 고양이 집사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쓴 책으로 <나도 가끔은 커튼콜을 꿈꾼다>, <천재들의 유엔 TED>가 있습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처음엔 개그맨 김준현 씨의 뮤지컬 데뷔작이라고 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창작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 씨' 얘깁니다. 이 뮤지컬의 '타이틀 롤' 춘자 씨는 치매 증상이 시작된 70대 노인입니다.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뮤지컬은 흔치 않죠. 공연 시작 전 안내방송부터 김준현 씨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등 모든 전자기기의 전원을 꺼 달라'고 하니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뮤지컬은 '소, 원하는 대로 다 돼지'라는 간판을 내건 고기 뷔페에서 시작됩니다. 경쾌하고 리듬감 넘치는 첫 뮤지컬 넘버는 바로 로고송 '소, 원하는 대로 다 돼지'입니다. 백종원을 모델로 한 듯한 외식업계 대부 '백정언'이 운영하는 식당이죠. 소고기 돼지고기 양껏 먹을 수 있는 고기 뷔페다운 이름이면서, '소원하는 대로 다 된다'는 중의적인 뜻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소원 찾아 떠나는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 이 식당에 고춘자 가족이 가족 모임을 위해 찾아옵니다. 치매 증상이 막 시작된 춘자 씨의 70번째 생일, '소원하는 대로 다 돼지' 노래를 들으면서 춘자 씨는 자신의 소원을 떠올려 보려 하지만 암만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백정언 사장은 춘자 씨가 자신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진수성찬' 떡볶이 가게를 운영했다는 것을 알고 밀키트 사업을 제안합니다. 뜻밖의 제안에 가족들이 '대박의 꿈'에 부풀어 흥분하는 동안, 화장실에 간 줄 알았던 춘자 씨가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이후 뮤지컬은 춘자 씨의 시점과 춘자 씨를 찾아 나선 가족들의 시점, 그리고 환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며 진행됩니다. 춘자 씨는 횟집에서 자신의 '정신줄'에서 빠져나온 '영혼의 물고기'와 마주치고, 물고기가 건네준 '코딱지'를 먹고 70에서 0이 빠진 7살 아이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잃어버린/잊어버린 '소원'을 찾아 떠나죠. '어른들만 갈 수 있는 은빛 가루 나라'에서는 100살이 되어, 이미 세상을 떠난 춘자 씨의 남편과 엄마, 그리고 일찍 죽은 어린 딸 수정과 재회하며 위로받기도 합니다. 치매 환자의 환각, 연극적 환상의 세계로 치매 노인의 망가져 가는 뇌 속의 상상이 마치 동심이 만들어낸 동화 속 세계처럼 펼쳐집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춘자 씨의 '모험'은 사실 길을 잃고 헤매는 춘자 씨가 보는 환각이죠. 극을 쓰고 연출한 오미영 씨 이야기 직접 들어볼까요. "치매 환자들이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 환각의 정체가 뭘까, 알고 싶었고 이걸 어떻게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치매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얼마 전에 노인 요양병원에 계시는 치매 전문 의사 한 분이 공연을 보러 왔는데, 치매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쓴 작품이라고 평가해 주시고, 이 공연을 교재로 사용하고 싶다는 말씀도 해주셨어요" "치매의 본질이 뭘까요?" "많은 사람들이 치매 환자는 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이상하지 않게, 인물을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나쁜 치매' '착한 치매', 뭐 이런 이야기들 하잖아요. 그런데 그건 밖에서 보는 사람들 입장인 거고, 치매를 겪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각자 다 이유가 있는 행동들이거든요. 그걸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했다는 거죠." 웃기고 울리는 가족 이야기 현실 세계에서는 엄마를 찾아다니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춘자 씨가 일찍 죽은 딸 수정이한테 미안해하는 것처럼, 큰아들 진수는 동생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진수와 성찬은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각자의 삶에 찌들어 마음만큼 효도하지 못했다고 후회도 하고, 서로 탓하며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모두 현실에 있을 법한 가족의 모습입니다. 이 뮤지컬에는 웃음이 빵빵 터지는 장면이 많습니다. 일인다역을 맡은 배우들의 능청맞은 연기는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춘자 씨가 만나는 영혼의 물고기, 파리 떼 같은 환상 세계의 존재들은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입니다. 7살 아이로 돌아간 춘자 씨가 유치원생을 따라다니고, 깡충깡충 뛰며 노래하는 장면에선 폭소가 터집니다. 이 뮤지컬에는 눈물 나는 장면이 많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정신이 돌아온 춘자 씨가 늙는다는 것과 죽음에 대해 노래할 때 관객도 함께 눈시울을 붉힙니다. 소원을 잊어버렸다고 답답해하던 춘자 씨가 드디어 소원을 기억해 내고 십자가 앞에 108배를 하며 비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눈물샘이 터져버립니다. 뮤지컬 '빨래' 원조 서나영, 70세 7세 넘나드는 춘자 씨로 고춘자 역할을 맡은 배우 서나영 씨는 70세 노인과 7세 아이, 100세의 영혼까지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연기로 관객을 단번에 상황에 몰입하게 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치매를 오래 앓으시다가 2023년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나네요. 저희 고모도, 이모도 약간 치매가 있으시고, 그래서 많이 관찰하고, 김혜자 선생님, 나문희 선생님이 치매 연기 하신 영화나 드라마도 열심히 봤어요. 그런데 참 쉽지 않더라고요. 영화와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계속 변화해야 하고, 공연예술이다 보니 힘도 있어야 되고, 아무래도 그냥 힘 빼고 계속 있을 수가 없고 에너지가 전달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런 걸 결정할 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서나영 씨는 늙는다는 것은 인생에서 누구나 겪는 일이고, '어느 순간 이게 나의 얘기가 되고, 꼭 캐릭터의 말이 아니라 나의 말이 된다'면서, 진심이 스며든 연기의 무게를 드러냈습니다. 또 친구인 오미영 씨가 이 작품을 어떤 심정으로 얼마나 소중하게 썼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잘해야 된다는 부담도 더 컸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함께 다녔고, 졸업 작품 '빨래'에 각각 서나영과 희정 엄마 역으로 출연했던 인연이 있습니다. 지금도 사랑받는 뮤지컬 '빨래'의 주인공 서나영이 배우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캐릭터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특수효과 없이도 된다... 무대의 매력 오미영 씨는 어린아이와 노인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춘자 씨가 굉장히 도전적인 역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상한 나라를 오고 가는 판타지를 배우 한 명의 연기로 다 해결해야 한다는 게 큰 부담이었던 것 같아요. 물고기 코딱지를 먹고 7살이 되고, 파리똥을 먹고 100살이 되고, 이런 장면들이 장치적으로는 코딱지나 파리똥이 있지만, 그걸 먹고 어떻게 변화했다는 건 배우가 몸으로, 연기로 다 해결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네요. 영화였다면 뭔가 특수 효과를 썼을 수도 있는데, 그걸 순전히 다 배우의 연기로써만 표현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러고 보니 이게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요 매력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좀 전에는 70살이었던 배우가 아무런 분장이나 의상 변화 없이도 금방 7살이 되어버린다는 설정을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거잖아요. 배우의 연기에 관객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뭐든 가능한 '놀이'와도 같습니다. 개그맨 김준현, 가장 진지한 역할입니다 자신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이 작품을 택한 김준현 씨의 연기도 정말 인상적입니다. 큰아들 진수 역을 맡은 그는 노래 실력도 좋지만 삶에 찌든 중년 가장의 모습을 정말 잘 표현하더라고요. 코믹한 장면도 물론 잘 소화하지만, 그가 가족의 아픈 사연을 노래할 때 관객도 함께 진한 슬픔에 잠기게 되죠. 김준현 씨가 이 뮤지컬에 얼마나 '진심'인지 느껴져요. 저는 '유명인'인 김준현 씨가 150석 소극장의 창작 뮤지컬 신작에 기꺼이 출연하게 된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원래부터 인연이 있었을까요? 아니라고 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오미영 씨는 '개그맨 김준현이 뮤지컬에 관심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뮤지컬을 만약에 하신다면 개그맨이니까 재미있는 역할들을 제안받으시겠지만, 제가 제안드리고 싶은 역할은 저희 작품에서 가장 진지한 K-장남 역할입니다. 이렇게 연기 변신하시는 게 어떨까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는 스타 캐스팅을 할 수 있을 만한 큰 단체는 아니고, 기금 받아서 공연 준비하고 있는 극단 '오징어'일 뿐이지만, 팬으로서 대본이 닿을 수 있게 된 건 영광이니 대본이랑 음악 좀 들어봐 주세요, 이렇게 간곡히 부탁드렸죠." 김준현 씨는 대본을 다 보기도 전에 이 뮤지컬의 첫 넘버인 '소, 원하는 대로 다 돼지'에 딱 꽂혔다고 합니다. 그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하죠. 이 뮤지컬의 음악은 오미영 씨와 오래 협업해 온 작곡가 노선락 씨가 맡았습니다. 처음엔 음악에 꽂혀 이 뮤지컬에 합류한 김준현 씨는 곧 진지한 'K-장남' 진수 역할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김준현 씨는 이 공연이 끝나는 6월 1일까지, 매주 2회 계속 출연합니다. 몰랐어, 늙는다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인지 김준현 씨가 녹음한 이 뮤지컬 넘버 '몰랐어'를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원래는 고춘자가 부르는 곡인데, 그가 맡은 캐릭터인 진수의 대표곡에는 '스포일러'가 있어서 대신 이 곡을 녹음했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늙어간다는 것과 죽음에 관한 곡입니다. 공연 다 보고 나와서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가사와 멜로디였어요. 몰랐어. 늙는다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인지. 몰랐어. 늙는다는 게 이렇게 아픈 일인지. 밥보다 약이 많고 약보다 한숨이 많아. 낮에는 꾸벅꾸벅 밤에는 말똥말똥. 울 때는 눈물이 안 나고 웃을 때 눈물이 나 음식은 들어가는 것보다 끼는 게 더 많아. 겁이 나 너무 오래 살까 봐. 무서워 죽는다는 게 두려워 애들 고생할까 봐 외로워 혼자 살아남은 게. 허무해 이렇게 끝나는 것이. 지루해 매일 매일 매일이 아쉬워 마지막 달력 한 장처럼 쓸쓸해 음 소거한 TV처럼. 서나영 씨가 극 중에서 부른 '몰랐어'도 뭉클했는데, 김준현 씨 노래도 좋네요. 오미영 씨가 부모님을 보면서 일상 속에서 길어낸 대사들이 마음에 콕콕 박힙니다. 섬세한 관찰력과 언어 감각, 톡톡 튀는 유머가 탁월한 작가입니다. 이전 작품인 '식구를 찾아서' '한밤의 세레나데'에서도 그랬지만, 젊은 여성들이 주관객인 뮤지컬은 남성 배우들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미영 씨는 여자배우들이 중심 역할을 맡는 가족 이야기에 천착해 왔습니다. 이 작가의 세계에는 빌런이 없다 오미영 씨의 작품에는 '빌런'이 없는 것도 특징인데요, 때로 찌질하고 욕심도 부리지만 결코 악당은 아닌 보통 사람들이 나옵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빌런이 작가의 세계에 없는데, 굳이 쓰려고 애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요. 사실 빌런이 있어야 갈등도 있고 이야기가 더 다이내믹해지니까 노력을 안 했던 건 아닌데 잘 안되더라고요. 그런데 빌런 없어도 재미있으면 되지, 현실에도 빌런이 많은데 극장까지 와서 꼭 빌런을 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어느 날 들더라고요." 빌런이 없어도 흥미진진한 '이상한 나라의 춘자 씨'는 관객을 웃기고, 울리고, 눈물 흘리며 웃게 만들다가, 드디어 춘자 씨와 가족이 다시 만나면서 막이 내립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나서 보너스가 더 있더라고요. 무대 후면에 에필로그 영상이 펼쳐지는데, 마치 영화 엔딩 타이틀 올라가고 나서 상영되는 쿠키 영상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소, 원하는 대로 다 돼지'에서 시작된 이 뮤지컬은 '춘자 씨와 그 가족들이 소원하는 대로 다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더 열심히 사랑하자 오미영 씨는 이 작품이 치매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국 '늙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뮤지컬 주 관객층인 20-30대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관객들이 보기를 바라면서 공연을 만들었다고 했는데요, 실제로 제가 공연을 본 날 객석에는 남성과 중장년층 관객들도 꽤 많았습니다. 관객들이 어떤 메시지를 마음에 담고 돌아가기를 바라는지 물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사랑하기만 해도 모자란다. 더 열심히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죠." (서나영)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날이 올 때 너무 힘들지 않게, 당연히 힘들겠지만 그날이 오더라도 너무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하루하루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오미영) 저는 공연 보고 나와서 어머니한테 안부 전화를 했고, 돌아가신 아버지도 추억하게 되었어요. 오미영 씨 말처럼,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늙어가고 언제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죠. 그러니 그날이 왔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김준현 씨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이상한 나라의 춘자 씨'는 김준현 씨 출연 회차 아니라도 충분히 볼만합니다. 화려한 대극장 공연들에 밀려 주목받기 쉽지 않지만, 소극장 공연 중에도 이렇게 반짝거리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김준현 씨는 자신의 뮤지컬 데뷔작을 참 잘 고른 것 같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춘자 씨' 작가이며 연출가인 오미영, 배우 서나영은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출연해 제가 소개한 것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줬습니다. 극단 이름은 왜 '오징어'일까요? 1인 다역 '멀티맨'들의 역할에 숨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공연 이미 보신 분이든 보실 분이든, 직접 들어보시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겁니다. 사진.영상 제공 : 극단 오징어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매년 3월 마지막 주말엔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립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내면으로의 여행'을 주제로 3월 28일부터 4월 6일까지 진행됐습니다. 좋은 공연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상주 연주자 임윤찬의 공연에 관심이 집중됐죠. 저는 개막일 심야 버스로 통영에 갔다가 셋째 날 임윤찬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 리사이틀까지 보고 다시 새벽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가 작곡한, 건반 악기를 위한 작품으로 1741년에 처음 세상에 나왔습니다. 주제곡인 아리아에 30개의 변주곡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다시 아리아로 돌아오며 마무리되는 구조입니다. 이 작품을 처음 연주한 요한 고틀리프 골드베르크의 이름을 따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불립니다. 이 곡은 카이저링크 백작의 제안으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작은 자신의 집에 상주하던 쳄발로 주자 골드베르크에게 불면증을 달래주는 음악을 연주하게 했고, 바흐에게는 골드베르크가 칠 수 있도록 수면에 도움이 되는 음악을 써달라고 의뢰했다는 것입니다. 백작은 바흐가 써준 이 곡의 연주를 즐겨 들으면서 잠을 청했다고 하는데요,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긴 합니다만, 포르켈이 쓴 바흐의 전기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유명해지면서 이 곡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임윤찬이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은 후라면, 이 곡이 수면에 좋은 음악이라는 이야기는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저는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며 '과연 이 곡이 내가 알던 그 곡이 맞나?' 생각하며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보통은 좋아하는 곡이라도 긴 시간 쭉 듣다 보면 중간에 딴생각을 하거나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임윤찬의 연주는 그런 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바흐를 비롯해 바로크 시대 건반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는, 당시의 악기인 쳄발로의 음색을 재현하기 위해 논 레가토(non-legato, 음을 부드럽게 연결해 연주하는 레가토 주법을 사용하지 않고 음표를 살짝 끊어 치는 것. 스타카토와는 다름)로 연주하고 페달 사용을 최소화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임윤찬의 접근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마치 극적인 낭만주의 시대 곡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페달을 많이 써서 잔향에 새로운 음이 어우러지는 효과를 의도하기도 했고, 템포에 변화를 주는 루바토(rubato)를 과감하게 사용했습니다. 깜짝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연주해 새로운 효과를 낸 곡들도 있었고, 느린 단조곡인 25번 변주는 깊은 탄식 같은 처연함에 가슴이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피아노에 온몸을 내던지는 듯 강렬한 타건으로 라흐마니노프의 느낌을 주는 곡도 있었습니다. 임윤찬의 연주는 왼손 저음부의 표현이 두드러지고 주 멜로디 뒤에 숨어 있던 내성을 뽑아내는 게 특징인데, 이번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일반적으로는 오른손이 멜로디를 연주하고 왼손이 이를 뒷받침하는 반주를 맡지만, 바흐의 다성음악에서는 왼손도 오른손과 동등한 비중을 갖게 되죠. 원래도 왼손 연주가 중요한 곡이지만, 임윤찬은 이를 더욱 부각해 곡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듯 새로운 멜로디를 뽑아냈습니다. 그의 연주는 낯설면서도 매혹적이었고, '교과서적인' 연주에 익숙했던 관객도 설득할 만큼 강한 흡인력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처연한 슬픔으로 흐느끼고, 때로는 발랄한 리듬으로 춤추다가, 때로는 뜨거운 격정으로 몰아치다가, 문자 그대로 천변만화(千變萬化)였습니다. 임윤찬이 피아노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어 하는 '모험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30번 변주까지 끝내고 다시 아리아가 연주되는데, 마치 긴 여정을 마치고, 혹은 온갖 인생의 경험을 겪은 뒤 집으로 돌아온 듯했습니다.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아리아였습니다.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제공: 통영국제음악재단) 기립박수 속 커튼콜 끝에 그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앙코르곡으로 뭘 연주해 주려나 했더니, 음표 몇 개만 치고 들어갔습니다. 다름 아닌 아리아의 베이스라인 음표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출발점이었어요.'라고 일깨워주는 느낌이었죠. 여행의 출발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마침표! 천변만화 연주의 뿌리는 결국 여기에 있었던 겁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앞서, 19살 작곡가 이하느리의 신곡 '라운드 앤드 벨버티-스무드 블렌드…(Round and velvety-smooth blend…)가 먼저 연주되었습니다. 이하느리는 임윤찬이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작곡가 중 한 명'이라고 말하는 젊은 작곡가이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함께 다닌 음악적 벗입니다. 그는 지난해 저명한 작곡가 토마스 아데가 심사위원장을 맡은 버르토크 작곡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임윤찬은 이전에도 공연에서 이하느리의 곡을 연주한 적이 있고, 이번 리사이틀을 위해 직접 신곡을 위촉했습니다. 작곡가 이하느리 (제공: 목프로덕션) 이하느리는 얼음조각이 유리잔에 부딪치는 이미지로 이 작품을 설명했습니다. '얼음을 넣어 드시길 권장합니다. 얼음을 사용하실 경우에는 천천히 녹는 큰 얼음조각을 사용하는 편이 좋습니다'라고 했네요. 그는 작품명과 음악에 연관성을 두지는 않는 편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 곡은 피아노 고음부의 청아한 소리로 시작해서, 건반 위를 종횡무진하다가 폭발하고, 다시 고요해지면서 고음부와 저음부로 나뉘어져 소멸하는 듯 마무리되는 곡이었어요. 마치 오묘하게 블렌딩한 위스키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한 기분이라고 할까요. 다채로운 음향이 명멸하는 이 곡은 이어진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의 훌륭한 예고편이었습니다. 임윤찬은 이 곡의 연주를 마치고 객석에 있던 작곡가 이하느리에게 손짓해 일으켜 세우고, 무대로 불러 함께 인사했는데요. 훤칠한 키에 비니를 눌러쓴 '요즘 젊은이' 이하느리는 임윤찬이 리드하는 대로 객석 전면과 합창석을 향해 함께 인사했습니다. 무대에 함께 선 2006년생 작곡가와 2004년생 피아니스트. 연주 못지않게 인상적인 장면이었어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현대음악, 그것도 젊은 한국인 작곡가의 곡을 매칭한 것은 흔히 볼 수 없는 시도였습니다. 임윤찬은 '우리 모두의 음악적 뿌리인 바흐의 가장 위대한 작품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리고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작곡가 중 한 명인 이하느리의 곡을 연주합니다. 크게 대조되는 두 곡을 통해 음악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그 뿌리는 어떤 음악이었는지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라고 프로그램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 (제공: 통영국제음악재단) 공연 리뷰가 이미 많이 나왔는데 뭘 더 보탤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공연을 글로 설명하려 할수록 제가 온몸으로 느꼈던 그 음악의 생생함과는 오히려 멀어지는 것 같기도 했고요. 다만 이하느리의 현대음악과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라고 불리며 수많은 거장의 명연주를 낳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나란히 배치하고, 마음껏 자신만의 해석을 펼쳐낸 그 자유로움과 담대함에 대해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는 기존 해석들과 크게 달라서 보수적인 청자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치열하게 음악과 대면하고 온몸을 던져 결국 음악과 하나가 되어버리는 임윤찬의 연주에 설득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여러 번 들었다는 지인은 '처음 들었을 때도 놀라웠지만, 이후 연주할 때마다 계속 달라져서 더욱 놀랍다'고 했습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이런 자유로움과 담대함을 펼칠 수 없습니다. '곡을 씹어먹을 정도로' 만전을 기하는 연습과, 곡에 대한 철저한 탐구가 바탕이 됐을 겁니다. 임윤찬은 옛 거장들에 대한 존경과 헌신으로도 유명하죠. '옛것을 익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의 사자성어 온고지신(溫故知新)도 떠올랐습니다.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저도 한 번 더 듣고 싶지만, 국내에서는 당분간 기회가 없을 거 같습니다. 앞으로 나온다는 음반을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현장의 그 폭발할 듯한 열기, 계속 변화한다는 연주의 다채로움을 과연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요. 스튜디오 녹음이 아니라 라이브 녹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깁니다. 음반이 나오면 수면이 아니라 각성을 위한 음악으로 자주 듣게 될 것 같습니다. 통영을 떠난 임윤찬은 파리와 빈, 런던, 뉴욕 등지에서 리사이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매진된 영국 런던 위그모어 홀 리사이틀(4월 7일과 8일) 정보를 찾아보다가, 'Bach and Hanurij Lee'라고 적힌 걸 보고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임윤찬이, 이하느리가 열어젖힌 새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커버(Cover)'라는 말, 참 많이 쓰이는 영어 단어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영단어 '커버'는 덮다, 덮개, 숨기다, 엄호, 감싸다, 충당하다, 다루다, 취재하다, 포괄하다, 대신하다 등등 많은 뜻을 갖고 있죠. '커버하다'라는 말은 거의 우리말처럼 자주 쓰입니다. 음악에서 '커버'는 '리메이크'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뮤지컬에도 '커버'가 있죠. 특정 캐릭터를 맡은 배우가 사정이 생겨 공연을 못하게 될 때 이를 대신하는 배우를 뜻합니다. 사진 제공 : 에스앤코 지금 공연 중인 뮤지컬 '알라딘'의 앙상블 배우 백두산, 오석원 씨가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출연했을 때, 뮤지컬 앙상블뿐 아니라 커버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어 이 글을 쓰려 합니다. 아, '앙상블'에 대해서도 설명해야겠네요. 앙상블은 뮤지컬에서 주연과 조연 배우들 외에, 극적이고 생동감 있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합창이나 군무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발레 '백조의 호수'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오데트 공주와 지크프리트 왕자만 있고 백조들의 군무가 없는 '백조의 호수'는 상상할 수 없죠. 뮤지컬도 마찬가지입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민중의 노래'는 정말 유명한데, 이 장면에서 수많은 이름 없는 '민중'을 연기하는 앙상블 배우들이 없다면 어떨까요? 앙상블 배우들은 뮤지컬 공연을 떠받치는 '기둥' 같은 존재입니다. 백두산 씨와 오석원 씨는 오랜 앙상블 경력을 갖고 있는데요, 백두산 씨는 앙상블과 함께 조연인 경비대장 라줄 역을 맡고 있고, 오석원 씨는 앙상블이면서 조역 커버를 세 개나 하고 있습니다. 알라딘 친구 카심 역의 퍼스트 커버, 술탄과 자파 역의 세컨드 커버입니다. 오석원 씨에게 '커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습니다. "커버에도 세 가지 종류가 있어요. 얼터네이트(Alternate), 언더스터디(Understudy), 스윙(Swing)이죠. 스윙은 보통 앙상블 배우한테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신해 주는 배우들을 뜻해요. 언더스터디는 현장에서는 그냥 '커버'라고 많이 부르는데, 주조연 배우들한테 상황이 생겼을 때 대신해 주는 배우이고요. 얼터네이트는 한국에는 잘 없는데,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처럼 '원 캐스트'가 주류인 시스템에서 볼 수 있죠." 얼터네이트는 한국의 더블 캐스트(한 캐릭터를 두 명의 주연배우가 나눠 맡는 것)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보통 브로드웨이에서는 '원 캐스트'로 한 캐릭터를 한 명의 주연배우가 맡지만, 낮 공연 등 일부 회차만 얼터네이트가 소화합니다. 이를테면 100회 공연 중 90회는 '원 캐스트' 주연 배우가 맡고, 나머지 10회를 얼터네이트가 맡는 식입니다. "저는 카심의 퍼스트 커버이니까, 만약 원래 카심 역을 맡은 배우한테 사정이 생기면 제가 바로 카심 역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스윙 배우가 제가 원래 맡았던 앙상블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오석원 씨는 그래서 자신이 맡은 앙상블 외에도 카심과 술탄, 자파의 대사와 노래, 연기, 동선을 모두 숙지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상황이 생기면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말이죠. 연습 기간에 여러 역할을 모두 익혔을 뿐 아니라, 공연 개막 전 일반적인 드레스 리허설 외에, 언더스터디와 스윙 배우들이 출연하는 드레스 리허설도 따로 했습니다. "워낙 기술적인 것들이 많아서, 단순히 내가 그 역할의 동선과 대사, 가사를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스펙터클한 무대 장치라든지 조명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연결돼 있는 게 많아서, 실제 공연처럼 한 번 돌려보는 거죠." 그는 (커튼콜 출연 당시) 아직까지는 '알라딘'에서 자신이 커버(언더스터디)로 투입된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예전 다른 공연들 할 때 몇 번 있었는데, 썩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죠.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거니까. 평소에 철저하게 준비는 하고 있지만, 마음은 그런 일이 안 생기기를 바라게 되죠. 출근 시간 전인데 이른 아침에 무대 감독님한테 전화가 오면 심장이 떨려요. 무슨 상황이 발생했나 하고요.(웃음)" '알라딘' 개막 후로 몇 달이 지났고, 그가 앞으로 카심이나 자파, 술탄 커버로 출연할 일이 생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요즘도 날마다 혼자서 여러 역할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불안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낙천적으로 생각을 하면 꼭 그 원하지 않았던 일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있어야 별일이 없어요. 항상 '이게 언제 나한테 들이닥칠지 모른다' 이런 생각으로 연습하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브로드웨이에서 봤던 뮤지컬 한 편이 생각났습니다. 화제작이라고 해서 예매했는데, 그날 따라 남자 주연배우한테 사정이 생겨 커버가 나왔습니다. 그 배우의 첫 출연이라 했는데, 초반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첫 넘버에서 고음 올라갈 때 목소리가 갈라지더라고요.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좋아져서 연기와 노래 몰입도가 높아졌고, 막판에는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냈습니다. 커버 배우가 얼마나 부담감을 느꼈을지, 무대는 얼마나 무섭고도 정직한 곳인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백두산 씨는 샤롯데 시어터에서 날마다 '알라딘'이 공연되는 시각, 극장 연습실에서는 또 다른 '알라딘'이 동시에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저희 스윙들 진짜 대단해요. 한 사람이 세 명 네 명 역할을 소화해야 해요. 소품을 어디서 들고 어디서 등장하고 어떤 춤을 추고 이런 것들이 다 다른데, 스윙 배우들은 이걸 다 준비하거든요. 항상 꾸준히 연습하고 공연 시작되면 극장 5층 연습실에서 똑같이 공연해요. 사실 이 공연에는 없는 사람들이 많죠. 스윙 배우들끼리 '나 오늘은 오석원 역할 할 거야', '백두산 역할 할 거야', 이런 식으로 매일 정해서 공연하고 있어요. 감각을 놓지 않고 있어야 하니까. 그게 더 어렵죠." '알라딘'의 스윙은 모두 5명입니다. 이들이 매일 그들만의 '알라딘'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관객도 없고 객석도 무대 세트도 없고 텅 빈 연습실에서, 배역들이 듬성듬성 빠져 있어도 있는 것처럼 상상하면서 스윙 5명이 매일 하고 있다는 '알라딘' 공연을 상상해 보다가, 어쩐지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공연 초반에 1막에서 갑자기 근육을 다친 배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 스윙이 들어가서 대체했죠. 그 정도로 준비가 다 되어 있어요. 정말 대단해요" 무대를 더 풍성하게 연출하기 위해 스윙들을 특정 장면에 출연시키는 공연들도 있지만, '알라딘'의 스윙은 항상 대기하고 있다가 돌발상황이 생길 때에만 무대에 오릅니다. 그러니까 스윙은 공연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를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스윙을 아무나 할 수는 없습니다. "스윙 배우들도 모두 오디션을 해서 뽑아요. 배우 개개인의 역량을 간단하게 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스윙 배우들은 두 개 이상의 역할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사실 가장 능력이 우수한 자원을 캐스팅하는 게 맞죠. 정신적으로도 단단해야 해요. 그 긴장감을 이겨내야 하니까." '알라딘'은 디즈니 라이선스 뮤지컬로 브로드웨이 현지의 제작 시스템과 똑같이 커버 선발과 리허설 운용을 철저하게 하고 있습니다. 스윙 배우들 중에는 베테랑이 많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뮤지컬 초창기 '원 캐스트에 커버도 없어서 부상을 입고도 끝까지 공연했다'는 배우들의 무용담이 낯설지 않았지만,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이 속속 들어오면서 이런 시스템도 함께 도입된 것입니다. 커버 배우들의 이야기를 뮤지컬을 넘어 우리 사회에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보통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기둥 같은 존재들이죠. 아무도 보지 않는 공연을 날마다 하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는 스윙 배우들 같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인정해 주는 풍토가 자리 잡는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뮤지컬의 커버 배우들처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하는 게 기본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안전한 곳이 되지 않을까요? 백두산 오석원 배우가 출연한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251화 본편으로 좀 더 많은 얘기 즐겨 보셔도 좋겠습니다. 뮤지컬에서 칼날만 무디게 했을 뿐 진짜와 똑같은 칼을 쓰는 이유, 뮤지컬 '캣츠'의 고양이 꼬리 달기 의식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251회' 배우 백두산, 오석원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지난해 방영된 '스테이지 파이터'라는 무용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다면, 최호종이라는 무용수를 알게 됐을 겁니다. 이 프로그램 최종 우승자인 최호종은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국립무용단 주역으로 춤췄고, 지금은 복합예술단체 SAL(Subverted Anatomical Landscape: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 부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무용가입니다. 한국무용이 기반이지만, 어느 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고유한 춤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가 수석 무용수로 있는 STF 댄스컴퍼니 전국 투어 공연이 얼마 전 성황리에 끝났는데요, 발레를 제외하면 무용 장르는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어렵지만, STF 댄스컴퍼니의 공연은 방송으로 높아진 인지도 덕분에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습니다. 최호종은 또 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창작산실 올해의 홍보대사로, 창작산실 브랜드 영상을 직접 안무해 춤추기도 했습니다. 최호종을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초대해 그의 삶과 춤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무용을 하게 된 과정, 그리고 어떻게 더 자유롭게 춤출 수 있게 되었는지 들려준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고3 때에야 무용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무용 이전에 연극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청소년 극단에 들어가 극단 활동을 했습니다. "극단에 들어가실 때는 연극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신 거예요?" "아뇨. 지금의 저는 진취적이고 담대하고 경쟁도 즐기지만 어릴 때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무대에 서지 않았다면 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보다 무기력한 친구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열정이 없다고 해야 될까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거의 최후의 보루가 아니었나... 어머니께서 오디션을 추천해 주셔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연극을 하면서, 그는 점차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극 치료'라는 게 있잖아요. 예술의 치유적 효과를 체감한 겁니다. "무대라는 것은 그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분도 생기게 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을 더 성찰하게 되고 더 성숙해지게 되기도 하고 이런 면들이 있는데, 제가 그런 것들을 겪다 보니까 저라는 사람을 정말 그냥 더 열어서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고, 무기력하고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던 아이가 나중에는 정말 열정을 뿜어내는 그런 사람으로, 연극을 통해서 무대를 통해서 그렇게 변하게 된 것 같아요." 최호종은 자신이 공부도 꿈도 흐릿하고 무기력한 아이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많은 10대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 속에, 내가 진정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꾸역꾸역 수험 생활을 이어 나가야 하는 게 대다수 학생이 처한 현실이니까요. 그런데 최호종은 연극과 만나면서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고, 자존감을 찾고, 무대에 열정을 쏟게 되었던 겁니다. 그는 무대와 만나 자신이 변화했다면서, 이를 '첫 번째 터닝 포인트'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터닝포인트는 그에게 무대의 매력을 알려준 연극에서, 무용으로 전향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무대에서 몸 쓰는 것을 본 류미선 연출가가 무용으로 전향할 것을 강력하게 권유했습니다. '너는 연기해서 20년이면 빛을 볼 것을 무용이면 10년에 볼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하죠. 그의 인생 항로에 정말 중대한 영향을 끼친 말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믿는 분이니까, 그리고 제가 사랑한 것은 연기도 춤도 아닌 무대였기 때문에, 바로 네 알겠습니다, 하고 무용으로 전향했죠. 단기간에 배우고 정말 많이 노력해서 무용을 시작하게 됐어요" 무용을 배우고 불과 7-8개월 만에 대학 입시를 치렀습니다. 발레처럼 기본기가 중요한 장르를 짧은 기간에 익히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한국무용 전공을 택했습니다. 한국무용도 물론 기본기가 중요하지만, 창작 부문은 한국무용의 정서와 호흡을 응용하되 좀 더 유연하고 독창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한국무용 창작으로 응시했고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그는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을 익히고 입학한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늦깎이로 무용을 배운 자신의 실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걸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했지만, 열등감이 너무 심했어요. 친구들한테는 티를 안 내고 싶었지만, 너무 비교되는 상황이 자주 생기다 보니까 그걸 극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시험을 보는데 다른 친구들은 교수님이 주신 순서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면, 저는 그 순서를 외우는 것만으로도 평가를 받는, 남들과 다른 기준점에 놓여 있는 상황이 많이 힘들었어요." 그는 어떤 동작이 안된다고 지적받으면 거울 앞에서 8시간 동안 그 한 동작만 맹목적으로 반복 연습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단순 무식'하게 일을 해결했다면서, 그야말로 '집요하고 독기 그 자체였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열등감에서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습니다. "마지막 콩쿠르에 나가기 이전에, 너무 답답하고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싶고, 내가 무용을 처음 시작했던 건 이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내가 봤던 건 행복하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그런 거였는데, 왜 지금 이렇게 독기에 빠져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있지? 이건 몇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데, 앞으로 몇 년을 더 이렇게 해야 되지? 계속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정말 극에 다다랐을 때 제가 일종의 선택을 했어요." 무용수 최호종이 지난 4월 국립무용단 신작 '사자의 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가 했던 '선택'은 그냥 쉬지 않고 춤을 춰보는 것이었습니다. 낮에 춤추기 시작해 어둑어둑한 밤이 될 때까지, 6시간을 쉬지 않고 춤을 췄습니다. 완전한 즉흥춤이었습니다. "보통 즉흥춤은 5분이면 지치거든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마치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정말 정신이 나갔다가 다시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회복이 되고, 다시 어떠한 고양감으로 인해서 내가 다른 질감이나 다른 제약으로 춤을 시작하면서도 흐름이 끊기지 않다가 어느 순간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멍을 때리고 있고. 안에서 엄청난 혼란과 되게 많은 감정과 지금까지 느꼈던 춤에 대한 사유들이 혼합되더니, 결국 '아,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춤을 춰야겠구나.'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아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춤을 춰야겠구나! 6시간 무아지경 즉흥춤을 통해 그가 도달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마인드'가 바뀌고, 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를 마치 기적과도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열등감이나 괴로움에서 한순간에 벗어나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나의 춤을 추는 상태가 되니까 춤이 행복해졌다고 했습니다. 춤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치유한 것입니다. 그렇게 바뀐 마인드로 출전한 2016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았습니다. 첫 참가 때 동상, 두 번째 참가 때 은상을 받았던 콩쿠르에서 드디어 정상에 오른 것입니다. '이매망량'이라는 도깨비 수호신과 그를 창조한 절대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한 '마무-아오르다'라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콩쿠르는 남들과 겨루는 경쟁이 분명하지만, 그의 경연 영상을 보면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즐기면서 자유롭게 춤추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합니다. 최호종 스스로도 영상 속의 자신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 2016동아무용콩쿠르 "그전에는 테크닉적으로 뭐가 안 된다 이런 걱정도 하셨는데, 마인드가 바뀌니까 그것도 순조롭게 해결이 되던가요?" "춤은 결국 마음과 그 사람의 통로이기 때문에, 무언가에 압박을 받고 있으면 춤이 절대 잘 나올 리가 없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내가 어떤 자신감을 갖고 있느냐가 그 춤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것 같은데, 그때 저는 춤을 엄청나게 잘 춘다고 하기보다는, 엄청난 자신감으로, 그냥 이미 무대에서 승리하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승리의 깃발을 꽂아놓고 춤을 추는 느낌이었어요. 승패나 경쟁이나 상이나, 이런 걸 다 떠나서 그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승리의 깃발을 꽂아놓고 춤을 추는 느낌'이었다는 말이 귀에 짜릿하게 꽂혔습니다. 무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춤추는 게 아니라, 그저 무대에서 춤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며 춤추던 순간, 그는 이미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춤으로 해탈한 남자'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런 경험을 진짜 할 수가 있군요!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간절함인 것 같습니다." 그는 다음 해인 2017년 국립무용단에 최연소로 입단합니다. 고3 때 한국무용으로 진로를 정한 뒤 국립무용단의 '그대, 논개여'를 보고 '내가 갈 곳은 저기'라고 생각해 왔다고 합니다. 그는 국립무용단 소속으로 2024년까지 '더 룸' '호동' '사자의 서' 등에서 주역으로 춤췄습니다. 서울무용제 남자최고무용수상, 관객이 뽑은 베스트 상, 한국춤비평가협회 연기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이 보여주듯 최호종은 곧 무용계의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안무가로서도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2023년 국립무용단의 차세대 안무가 양성 프로젝트로 첫 번째 안무작 '야수들'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가족으로 설정된 네 명의 무용수가 보여주는 '가학적 놀이' 속에 한국 사회의 변화를 담아냈습니다. 같은 해 예술집단 SAL이 공연한 'COSMO'는 피터 쉐퍼의 희곡 '에쿠우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었죠.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선보인 그의 안무도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국립무용단은 무용수들에게는 '꿈의 직장'이지만, 그는 안무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2023년 즈음부터 퇴단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국립무용단을 떠나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창작 욕구와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갈증을 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퇴단을 준비하던 중에 '스테이지 파이터' 출연 제안을 받았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출연을 결정했고, 이는 그의 무용 인생에서 또 다른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 방송에 좋은 소재가 되어야겠다. 춤 잘 추는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라, 좋은 자세 좋은 마인드 좋은 태도로 임하는 좋은 선례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출연에 대해 확 (마음이) 열리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참가했던 스테이지파이터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는 이제 무용계를 넘어선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최호종이 참여하는 STF 댄스컴퍼니의 공연은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방불하게 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가 평소 활동하는 SAL에서의 작업은 사실 대중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두 갈래의 길이 최호종이라는 예술가 안에서 어떻게 나아가고 합쳐질지, 기대하게 됩니다. 최호종은 SAL의 작업이 '쉽고 재미있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용 공연이 '하이엔드'라고 말합니다.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는 대중을 위해 무용 공연의 장벽을 낮추는 노력을 하는 것보다는, 예술가 스스로 더 발전시키고, 더 깊은 사유를 하고, 더 진정성 있는 작업을 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무용수가 오랜 시간 뭔가 수련하고 체화하며 쌓은 그 노력의 산물인 무대 춤은 한순간에, 찰나에 소멸되고 눈앞에서 사라지잖아요. 그 안에서 얻어지는 사유가 쉽게 봄으로써 얻어질 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나오는 '모호성'이 우리의 가치를 드높여주는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모호성이라는 일종의 품격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는 자극이 넘쳐나고 쉽게 도파민을 얻을 수 있는 이 시대에, 관객이 공연장까지 찾아온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용기를 내 준 관객에게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먼 길을 오가는 그런 '용기'가 아니라, 예술가를 통해 다른 사유를 얻고 작품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 대한 '용기'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죠. 누구에게나 있을 수도 없고, 그 용기는 없다가도 갑자기 생길 수 있고, 마치 제가 무대에 오른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무대라는, 예술이라는 것이 찾아와서 내가 삶을 향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기보다는 정말 진귀하고 희귀하고 희소성 있는 그런 순간이죠." 최호종의 말처럼, 예술가를 통해 다른 사유를 얻고 작품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기꺼이 할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저도 최호종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영감을 받은 느낌입니다. 무기력하고 꿈이 없었던 소년이 담대하고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예술가로 성장하기까지, 최호종은 여러 번의 '터닝 포인트'를 거쳐왔습니다. 무대 앞에, 춤 앞에,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했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인생의 전환점, 귀중한 영감의 순간이었습니다. 최호종의 춤과 삶이 어쩌면 다른 이들의 인생에도 귀중한 영감이 되고,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골라듣는뉴스룸 252회 최호종편 풀영상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확인하셔도 좋겠습니다. ▲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252회' 무용수 최호종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로잔 콩쿠르가 유명한 콩쿠르예요?" 쉬는 일요일, 집에 있다가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니 당직 근무 중인 후배가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로잔 콩쿠르에서 한국인 발레리노가 우승했다고 했습니다. 우승자는 서울예고에 재학 중인 남학생 박윤재. 지금 막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인 발레리노 최초로 로잔 콩쿠르에서 우승한 박윤재. 사진 : AP, 연합뉴스 로잔 콩쿠르가 무용계에서는 중요한 콩쿠르가 맞고, 한국인 발레리노 우승은 처음이라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니 후배는 알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그때까지 나온 기사들을 찾아보았는데, 하나같이 눈에 띄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로잔 콩쿠르는 파리, 바르나, 모스크바, 잭슨 콩쿠르와 함께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로 꼽힌다." '세계 ○대' 또 나왔구나.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세계 ○대'는 기사 쓸 때 가장 조심하는 표현입니다.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오래전 예술의전당 비전 발표 보도자료에서 '세계 10대 아트센터가 목표'라는 말을 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럼 어떤 공연장들이 세계 10대 아트센터냐고 물었지만, 뚜렷한 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그 정도로 세계적인 위상을 갖춘 공연장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세계 ○대'와 마주쳤습니다. 세계 4대 뮤지컬, 5대 뮤지컬,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세계 5대 발레단, 세계 3대 로맨스 소설, 세계 3대 소프라노,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기사에 인용하기도 했지만, 점차 이런 말들이 대부분 굉장히 자의적으로 쓰이고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여 년 전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내한공연 때 '세계 3대 발레단'이라는 홍보 문구가 서울 시내 곳곳에 등장했습니다. 기획사에서 보낸 보도자료에도 '세계 3대 발레단'이 쓰여 있었습니다. ABT가 '세계 3대 발레단' 중 하나라면 나머지 둘은 어디일까요. 기획사에 물어봐도, 그저 ABT를 '세계 3대 발레단'이라고 언급한 과거의 기사를 보고 그렇게 썼다고 했습니다. 찾아보니 영국 로열발레단, 파리 오페라발레단과 ABT를 '세계 3대'로 칭한 글이 나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클래식 발레의 전통이 깊은 러시아 발레단들은 빠져 있습니다. 해외 기사들을 검색해 봤지만, '세계 3대 발레단'이라는 말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국내 주요 발레단의 예술감독들에게 'ABT가 세계 3대 발레단인가'를 물었습니다. 모두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ABT의 수준이 높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세계 3대 발레단'이라는 개념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세계 3대 발레단을 꼽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습니다. 이들은 '세계 3대 발레단'이라는 표현이 근거도 없고 예술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런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도 썼습니다. '세계 3대 발레단'도 그렇지만, '세계 ○대'를 내세우는 표현 대부분이 뚜렷한 근거 없이,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구미에 맞춰 자의적으로 쓰이는 마케팅용 수사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도 기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세계 ○대'를 쓰는 경우가 있고, 이런 기사들이 많아지면 어느새 '세계 ○대'라는 표현이 공인된 사실처럼 되어버립니다. ▷ 당시 취재파일 보기 <세계 3대 발레단과 3대 로맨스 소설> 그런데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는 무용계에서 통용되지 않는다는 차원을 넘어, 명백한 오류가 있는 표현입니다. 일단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로 나열된 콩쿠르 가운데 파리 콩쿠르는 현재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1998년 당시 국립발레단 소속이었던 김지영, 김용걸이 우승했던 콩쿠르로 알려져 있지만, 몇 회 지속되지 않고 폐지되었다는 게 발레 전문가들의 얘기입니다.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는 1964년 창설되어 가장 역사가 긴 콩쿠르로 2년에 한 번 열렸지만,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왔고 2018년 대회 이후로는 개최된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콩쿠르 홈페이지에는 2020년 7월 콩쿠르 개최 예정이라는 글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습니다. 모스크바 콩쿠르와 잭슨 콩쿠르(공식 명칭은 USA 국제발레콩쿠르)는 4년에 한 번 열리는 콩쿠르입니다. 발레 전공자들이 많이 참가하는 콩쿠르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들 콩쿠르에만 최고의 권위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해외 발레 전문매체를 봐도 주요 발레 콩쿠르들을 나열할 뿐, 4대, 혹은 5대 콩쿠르 같은 말은 쓰지 않습니다. △ 제53회 로잔 콩쿠르 결선 ※ 박윤재 클래식 부문 연기는 56:24부터, 현대무용 부문 연기는 1:39:38부터, 시상식은 2:16:24부터 보실 수 있습니다. 게다가 로잔 콩쿠르는 여타 콩쿠르와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1972년 스위스 로잔에서 시작된 이 콩쿠르는 매년 열리며 15세에서 18세까지의 청소년만 출전할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며칠간 직접 지도하고 평가하는 발레 클래스를 거쳐 선정된 결선 진출자들이 무대에 올라 경연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참가자들에게 심사위원들의 피드백이 주어진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결선 진출자들은 클래식 발레 레퍼토리뿐 아니라 현대 작품도 하는데, 로잔이 선발한 젊은 안무가들의 신작도 포함됩니다. 입상자들은 장학금을 받아 해외 유명 발레학교나 발레단에서 연수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53회 대회였던 올해는 42개국 225명 지원자 가운데 비디오 심사 등을 거쳐 23개국 85명이 콩쿠르에 참가했고, 결선에는 20명이 올랐습니다. 이 중 장학금을 받는 입상자를 9명 선발했고, 최우수 젊은 인재상(Best Young Talent Award), 현대무용상(Contemporary Dance Award), 관객상(Audience Favorite Award) 등 특별상도 따로 시상했습니다. 박윤재는 최우수 젊은 인재상도 받았습니다. 부산예고 재학 중인 발레리나 김보경은 8위로 입상했습니다. 시상식을 보니 장학금 9번(Scholarship Number 9), 장학금 8번, 이런 식으로 부르더라고요. 장학금을 받는 입상자들 중에 '장학금 1번' 박윤재만 메달을 받았습니다. 1985년 강수진을 시작으로, 로잔 콩쿠르에서 입상한 한국인 무용수들은 꽤 많습니다. 지금까지 장학금과 특별상을 받은 한국인 수상자들이 합치면 30명 정도 되는데, 발레리나가 대부분입니다. 이 콩쿠르는 장학금을 받는 입상자들의 순위를 매기기는 하지만, 콩쿠르 홈페이지의 과거 입상자 명단을 보면 장학금을 받았다고만 되어 있을 뿐 순위를 표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 콩쿠르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죠. 누가 제일 잘했나 등수를 가리는 게 주된 관심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로잔 콩쿠르는 10대 발레 유망주를 발굴하고, 이들이 직업 무용수로 순조롭게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둔 교육적 성격의 콩쿠르입니다. 성인 무용수들도 출전하는 다른 발레 콩쿠르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 중요성만큼은 분명합니다. 굳이 없어진 콩쿠르까지 포함시켜 '세계 ○대'라는 수사를 동원할 필요도 없습니다. 회사에 다시 전화해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라는 표현은 오류가 있으니 우리 기사에서 빼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세계 5대 발레 콩쿠르에서 16살 소년이 우승했다'며, 연일 후속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우승했으니 대단하다는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로잔은 청소년 대상 콩쿠르이니 16살에 우승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박윤재의 로잔 콩쿠르 우승은 분명 축하할 만한 성과입니다. 특히 한국인 발레리노로서 처음 우승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과는 별개로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라는 표현의 오류는 시정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어쩌면 '세계 ○대' 같은 표현 없이는 문화 기사가 주목받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공연을 보러 갔다가 예전에 '세계 3대 발레단' 기사를 쓸 때 취재했던 발레계 인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세계 5대 발레 콩쿠르라니, 요즘 말도 안 되는 얘기가 계속 나와서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로잔 콩쿠르가 어떤 콩쿠르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기사가 나오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콩쿠르는 분명 중요하지만 이는 예술가의 커리어에서 시작 단계일 뿐이며,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점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콩쿠르 경력 없이 대성하는 예술가가 있고, 우승 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스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콩쿠르 수상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예술가들의 평소 활동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문화계 지인이 '해외 콩쿠르 없는 분야 예술가들은 속상하겠다'는 말까지 하더라고요. 해외 콩쿠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게 아니고 천차만별, 성격도 다 다른데, 요즘 해외 콩쿠르 수상에 쏟아지는 열광적인 관심은 거의 '콩쿠르 숭배'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게 그저 저만의 기우라면 좋겠습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무용수들. 이들의 춤은 한번 보면 잊을 수가 없습니다. 표정 없이 선글라스나 물안경을 낀 채로 이상하게 멋지고 복잡하고 어려운 동작을 구사한 이들은 '춤도깨비'라고 불렸습니다. 쭉 이날치와 함께한 'Feel the Rhythm of Korea' 캠페인 영상,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뮤직비디오, 구찌 광고, 이 춤도깨비들은 팬데믹 기간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이 춤꾼들의 정체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였습니다. △ 'Feel the Rhythm of Korea: SEOUL' 영상 보기 저는 2020년 당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춤꾼이자 안무가이자 예술감독인 김보람 씨를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그는 출연을 고사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고, 저는 얼마 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대표작 '바디콘서트' 15주년 기념 공연을 예술의전당에서 열 계획이라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출연을 요청했고, 이번에는 성공했습니다.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며 SBS 스튜디오에 처음 들어선 김보람 예술감독은 웃기고, 놀랍고, 진지한 이야기들을 길게 들려줬습니다. 둘도 없는 개성으로 똘똘 뭉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철학과 매력을 그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살펴봅니다. 1. 애매모호한 춤 회사, '앰비규어스'가 곧 장르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Ambiguous Dance Company)' 김보람 예술감독의 명함에는 '애매모호한 춤 회사'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앰비규어스. 애매모호. 이게 이 단체가 추구하는 춤의 특징입니다. '이런 춤 저런 춤 다 춤'이라는 얘기도 합니다. "발레도 있고 다양한 장르들의 춤이 있잖아요. 근데 저희는 거기에서 벗어나서 좀 더 본질적으로 춤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단체 같아요. 그래서 어떤 것이 춤이고. 어떤 것이 춤이 아니고, 그런 것들을 나누는 행위 자체에서 벗어나서 모두 다 춤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춤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힙합, 이런 장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춤 자체를 파고듭니다. 김보람 감독은 10대 때부터 유명 가수들의 백업댄서로 TV 무대에서 활약했고, 이후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고, 기존의 현대무용 공연들이 너무 재미없어서 직접 안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앰비규어스가 곧 장르'라고 말합니다. ▷ '콜드플레이도 반한 한국의 춤꾼들' 뉴스 영상 보기 (SBS 8뉴스 더스페셜리스트) 2. 선글라스를 끼고 얼굴을 가리는 이유 김보람 감독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자신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카메라가 돌아가면 선글라스를 쓰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글라스는 단순히 김보람 감독 개인의 스타일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작품 세계 전체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 작품들의 시그니처예요. 선글라스를 낀다거나 얼굴을 가린다거나, 그래서 최대한 얼굴을 가려 몸으로만 소통을 해보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어요." "춤에만 집중해서 볼 수 있게 하려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네. 눈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최초의 생물이 나타났을 때부터 발전해 온 어떤 역사를 다 담고 있어서, 눈이 이미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렇게 눈을 보고 춤추는 사람을 봤을 때, 이미 눈에서 저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다 이해를 해버린다는 거죠. 그래서 그걸 가리고 정말 몸의 움직임만으로 소통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눈을 가리는 선글라스나 물안경뿐 아니라 형형색색 다채로운 의상과 소품도 인상적입니다. 색동옷, 형광색 옷, 일체형 의상도 있고, 얼핏 중구난방인 것 같아 보이지만, 춤과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제가 제안하는 것 같고, 저희가 직접 찾아서 만들 때도 있고, 디자이너하고 공동 제작할 때도 있어요. 제가 일상에서는 입고 싶어도 너무 튄다거나 보는 분들 시선 때문에 못 입는 옷들이 있어요. 그럴 때 작품을 통해서 해소하는 경우가 있죠. 이걸 진짜 입고 싶었는데 이번 작품 의상으로 해보자, 그러는 거죠. '범 내려온다' 같은 경우도, '내 눈에는 전통 의상이 멋있는데 왜 아무도 모르지?' 이런 생각으로 전통 의상을 저희가 좀 새롭게 해본 거였고요." 3. '범 내려온다'는 취미생활, 너무 커져서 당황했다 이날치와 함께한 '범 내려온다' 이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와 협업했고, 구찌 광고도 찍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쏟아졌고, 폭발적인 대중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김보람 감독은 당시 당황스러움도 느꼈다고 했습니다. "살다 보니까 그런 일도 있더라고요. 사실 그렇게 뭔가 기대를 하고 했던 작업이라기보다는 그냥 이날치 장영규 음악감독님하고 작업 그전에도 몇 번 했고 그게 재미있어서 저희도 맨날 무용만 하면 너무 진지하게 하다 보니까, 조금 숨 돌리러 나가는 기분으로 취미 생활처럼 했던 협업이었는데, 너무 커져서 당황하긴 했습니다." △ 콜드플레이 - '하이어 파워' 영상 보기 그는 당시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일부러 방송을 멀리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10대 때부터 댄스 크루 '프렌즈' 소속으로 유명 가수들의 백업댄서로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 무대에 출연했던 경험도 작용했습니다. "이날치랑 협업은 저희의 본래 작업은 아니라서 그쪽으로만 가면 그게 부각되고 사람들도 그걸 기대하게 될까 봐. 사실 그거는 저희의 극히 일부분이고 실제로 하는 작업은 어떻게 보면 바디콘서트나 이런 게... 그래서 거기에 좀 더 집중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왜냐하면 이게 그렇잖아요, 사실? 방송 아시겠지만 확 떴다가 확 사라지는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원래 자리로 이렇게 잘 와서 활동하는 것 같습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최근 발매된 이날치의 새 음반 뮤직비디오에서도 함께했습니다. 이날치의 음악과 이들의 춤이 오묘하게 어울리는 매력은 여전합니다. 커튼콜 녹화 이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두 번째로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굿 필링스(Good FEELiNGS)' 영상도 공개되었습니다. 단원들은 이 필름 제작을 위해 이번에는 영국의 거리에서 춤췄는데, 지나가던 영국인들이 굉장히 박수를 많이 쳐줬다고 하네요. ▷ 이날치 '봐봐요 봐봐요' 영상 보기 ▷ 콜드플레이 '굿 필링스' 영상 보기 4. 무용 공연을 15회나? 바보라서 그래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2월 26일부터 3월 9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바디콘서트'를 공연합니다. '바디콘서트'는 15년간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대표작입니다. 이번에도 예술의전당 공연이 끝나면 바로 유럽 투어를 떠날 예정입니다. 이번엔 참여하지 못했지만, 요즘 '스테파 무용단'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김현호 씨 역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소속으로 '바디콘서트'에 오래 출연했었습니다. 출처 : 예술의전당 사실 비교적 인기 높은 발레를 제외하면, 무용 공연은 끽해 봤자 3회 정도 하는 게 현실입니다. 티켓 가격도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청소년 할인, 예술의전당 회원 할인 등 각종 할인 혜택이 있어, 최대 50%까지 싸게 살 수 있습니다.) 무용 공연을 15회나 한다니, 객석을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저까지 걱정이 됩니다. 김보람 감독은 '바디콘서트' 15주년 기념 공연이라 15회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바보라는 게 명확해진 공연 기획이죠. 사실 다 3회나 4회를 하는 이유가, 한국에서 무용 공연으로 객석을 채우는 데 그 정도가 적합하다는 건데, 저는 사실 이렇게 정해져 있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15회 해보면 되지! 왜 그렇게 스스로를 이렇게(한정) 하냐!', 이런 생각으로 합니다." ▷ '바디콘서트' 공연 티저영상 보기 5. 관객 반응이 좋으면 실패다?! '바디콘서트'는 '콘서트'라는 이름처럼 여러 음악을 다채로운 몸짓으로 보여주는 공연입니다. 정말 '이런 춤 저런 춤 다 춤'이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과 가요, 팝송, 테크노, 국악, 음악 장르도 다채롭습니다. 김보람 감독은 '저 춤은 무슨 의도로 안무했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스스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합니다. 발레 공연을 제외하면 무용 공연에서는 끝날 때까지 도중에 박수를 보내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이 공연에서는 가수들의 콘서트와 흡사하게,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박수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콘서트처럼 앙코르 무대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무용 공연에 앙코르라니, 거의 전례 없는 일이지만 안 된다는 법도 없잖아요? 그러니 '바디콘서트' 보러 가시는 분들은 앙코르를 청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김보람 감독은 '반응 좋으면 우리 오늘 실패야, 사람들이 웃으면 오늘 실패야'라고 합니다. 네? 반응이 좋은 게 실패라고요? 이건 또 무슨 뜻일까요? 그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반응이 좋으면 무용수들이 객석을 의식해 오버하게 되고, 그러면 원래 의도했던 춤으로 하는 소통이 온전히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무용수들이 선글라스나 물안경을 쓰고 몸으로만 소통하려고 노력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그는 나아가 궁극적인 목표는 '관객들이 춤에 너무 몰두해서 박수 치는 것조차 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관객이 공연을 좋아할수록 자연스럽게 박수가 나오게 되죠. 그는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걸 목표로 삼는 경향이 있다'며 웃었습니다. 6. 돈을 벌기는커녕 써가면서 무료 공연 하는 이유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무료 공연에도 진심인 단체입니다. 지난해 한강 세빛섬에 대형 무대와 객석을 설치하고 2주 동안 매일 저녁 무료 공연을 펼친 적도 있습니다. 12개의 작품을 선보인 이 무용 축제는 '99.9 페스티벌'로 작명했습니다. '99.9%는 못 보고 죽는다. 당신은 이 공연을 보는 0.1%가 될 수 있다'라는 뜻이죠. 그는 2019년 베를린에 공연하러 갔다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공연에서 연 무료 공연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몇만 명인지 모르겠어요. 저 무대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먼 데까지 사람들이 꽉 차 있는데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 관객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 소리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아, 이게 문화구나' 해서 한국에도 저는 이제 무용을 하니까 무용을 정말 그냥 원하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그런 페스티벌이나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 해서 만들어 봤습니다." 2주 동안 매일 다른 작품을 공연하느라 무용수들은 몸이 부서질 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공연은 공공 지원금을 받기는 했지만,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자체 예산도 투입했습니다. 돈을 벌기는커녕 큰돈을 써야 하는 무료 공연에 왜 이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이는 걸까요? "근데 뭐 돈이야... 사실 돈 벌려고 하고 있어요. 근데 당장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저는 뭐 당연히 문화도 중요하고 한국의 공연을 보는 문화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고, K팝, 영화 다 너무 좋은데 기초 예술 장르, 순수 예술 쪽이 그만큼까지 발전하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궁극적으로 완성은 순수 예술의 발전이다라고 생각하고 문화를 만드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굉장히 몰입해 있는 것 같고, 그게 되면 그 뒤로 먹고사는 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해서 당장 먹고사는 것보다 문화를 만드는 일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 아니라 민간단체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또 '해외 무대보다 한국의 지역 무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공연을 접하기 힘든 지역의 많은 관객들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예술계에는 해외에서 인정받은 걸 토대로 한국에서 자리 잡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 안에서 인정받은 걸 토대로 세계로 나가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7. 편한 길보다 어려운 길을 택한다 김보람 감독은 세간의 시선으로 보면 '청개구리' 같기도 합니다. 그는 남들이 맞다고 하면 오히려 마다하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제가 이게 맞다고 느끼니까 하는 경우가 많고요. 제 습성이, 남들이 '이게 맞다'고 하면 하기 싫어요. 하기 싫고 안 돼요. 네, 좀 병적인 게 있어요. 저 개인이 보는 눈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 '이게 맞다'고 하면, 오히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하고, 그게 진짜 맞는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죠. 저는 편한 길과 어려운 길이 있으면 무조건 어려운 길을 선택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편한 길은 편하고 싶어서 가는 거잖아요. 그러면 어려운 길은 어렵고 싶어서 가는 걸까요? 저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데 즐거움이 훨씬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왕이면 어려운 길이 재미있는 것도 많고 기억 남는 것도 많고, 죽을 정도로 어렵지 않으면 웬만하면 그 길을 선택하는 본능이 있어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단원들이 본격적인 연습 전에 몸풀기(웜업)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몸풀기가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1시간 반이나 지속됐습니다. 연습 시작도 전에 녹초가 될 것 같았어요. 무슨 몸풀기를 저렇게 '빡세게' 할까 궁금했습니다. "몸이라는 게, 오늘 엄청나게 힘들었던 게 내일 하면 덜 힘들어요. 원래 몸은 엄청나게 똑똑하거든요. 우리 머리보다 똑똑한 게 몸이에요. 그래서 어떻게든 쉬운 방법, 덜 힘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요.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어제랑 똑같이 했는데 어제보다 덜 힘들게 되거든요. 저희는 그걸 거부해요. 다음 날은 더 세게 하는 방법을 찾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몸풀기가 계속 힘들어지고 복잡해지는 거죠." "그렇게 신나는 춤을 추시는데, 이렇게까지 힘든 길을 선택해서 오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좋아하면 뭐... 저는 '힘듦'이라는 게 반대로 조금 더 좋은 이미지인 것 같아요. 역으로 편안함이 안 좋은 이미지예요.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지는 않고 힘듦을 조금 더 추구한 거고, 힘듦이나 고통이 제가 느낄 수 있는 혜택이라고 해야 하나. 저희가 살면서 편안함만 느끼는 건 정말... 그러니까 똑같이 느끼는 거잖아요. 편안함도 느끼는 것이고 힘듦도 느끼는 거라면, 느끼는 건 저 자신이기 때문에 둘 다 감사할 일이라는 거죠. 그런데 내가 뭘 더 좋아하는지, 어떤 게 더 재미있는지, 그리고 그게 미래에 어떤 또 좋은 가치가 있는지 이런 걸 고민하는 거지, 힘듦을 자꾸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8. 화성 로봇 춤 안무하고파... 일론 머스크 연결해 주실 분? 그에게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스페이스X가 화성 이주를 위해 노력하고 있잖아요. 저나 단원들이 화성까지 직접 가서 춤추기는 어렵고, 거기서 옵티머스라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으니까 로봇에게 가장 맞는 춤 안무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뜻이 있으면 이뤄지겠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콜드플레이랑 협업했던 '하이어 파워' 뮤직비디오도 마치 우주에서 춤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 그 이전부터 그런 꿈을 갖고 있었던 걸까요? "그전부터 있었던 것 같고, 워낙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이 작업을 하는 게 몸의 언어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몸의 언어라는 건 내가 몸 전체를 다 써야지만 할 수 있는 언어예요. 그 언어가 저는 가장 진화된 언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성에서의 그런 움직임을 만들고, 그걸 지구인 아닌 다른 세계의 생명체가 봤을 때 가장 직관적으로 빠른 소통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구하고는 중력도 다르니까 그런 것도 다 고려해야겠네요." "그건 다 수학적으로 계산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재미있게도 저는 춤을 추면 출수록 이게 다 수학과 시간에 관련된 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음악을 분석하고 했던 이후부터 모든 게 어떻게 보면 그 시간, 시간성이라는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음악을 분석하고 정확한 시간을 나누는 것이죠. 그리고 중량, 동작의 개수, 이 모든 게 숫자로 이뤄져 있어서 그런 것까지도 계산된 안무가 필요하겠죠." 그는 시종일관 진지했습니다.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아는 분 계시면 연결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9. 객석 하나라도 더 채워주고 싶다 완도에서 춤 배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상경해 춤추는 사람인 것 같아 보이면 무작정 쫓아다녔다는 얘기, 방배동에 춤 연습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간 동네가 알고 보니 대방동이었다는 사연, 고등학생 때부터 백업댄서로 활동하다 일찍 찾아온 슬럼프를 극복한 비결 등등, 김보람 감독의 모든 이야기가 흥미진진했습니다. 그와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뚜렷한 소신과 단단한 내공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춤에 쏟는 열정과 사명감에 감탄했고요. "저는 운이 좋게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어린 친구들,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도 성공이 될 수 있죠.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찾기에는 고등학교 때까지 받는 교육이 너무 부족하고, 오히려 그걸 막는 경우도 많죠. 그런 걸 좀 문을 열어주려면 어릴 때부터 순수 예술, 기초 예술과 가까이 있고 자기를 발견하는 수업도 있어야 하는데, 예술이 나를 발견하고 나와 대화하기에 가장 근접하죠. 그래서 그런 문화 만드는 걸 항상 머릿속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관심이 생기셨다면 김보람 감독이 출연한 커튼콜 250화 풀영상도 보시고, '바디콘서트' 공연을 직접 관람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저는 이 공연은 꼭 가서 보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 바보라고 했지만, 김보람 감독과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도전'은 의미가 있습니다. 객석 하나라도 더 채우면서 이 도전에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SBS 8뉴스에서 단독 보도로 경호처 직원들이 합창하는 '윤석열 대통령 생일 헌정곡' 기사가 나갔습니다. ▷ [단독] "하늘이 보내주신 대통령"…'윤비어천가' 선물 (25.01.16. SBS 8뉴스) 김성훈 대통령 경호처 차장은 지난해 김건희 여사의 생일을 맞아서 고급 의전차량을 이용한 이벤트를 기획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는데, 2년 전 있었던 경호처 창설 60주년 기념행사는 사실상 윤 대통령의 생일파티처럼 기획했다는 겁니다. 그 행사에서 경호처 직원들이 불렀다는 윤 대통령 헌정곡은 이랬습니다. "84만 5280분 귀한 시간들 취임 후 쉼 없이 달린 수많은 날 84만 5280분 귀한 시간들 오로지 국민만 생각한 당신~" 뉴스를 보다가 머리카락이 쭈뼛 솟았습니다. 이 좋은 노래를 이렇게 바꿔놓았다니! 친숙한 이 멜로디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 'Seasons of Love(사랑의 계절)'이었습니다. 이 곡의 원래 가사는 이렇습니다. "52만 5600분의 귀한 시간들 우리들 눈앞에 놓인 수많은 날 52만 5600분의 귀한 시간들 어떻게 재요 일년의 시간 날짜로 계절로 매일 밤 마신 커피로 만남과 이별의 시간들로 그 52만 5600분의 귀한 시간들 어떻게 재요 인생의 시간 그것은 사랑 그것은 사랑 그것은 사랑 사랑으로 느껴봐요 사랑으로" 원곡 가사의 52만 5600분은 1년을 분 단위로 환산한 겁니다. 그럼 대통령에게 헌정한 개사곡의 '84만 5280분'은 어떻게 나온 숫자일까요? 일수로 계산하면 587일, 행사 당일인 2023년 12월 18일에서 587일을 거슬러 올라간 날은 2022년 5월 10일,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날이었습니다. '오로지 국민만 생각한 당신'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 노래뿐만 아니라 가수 권진원 씨의 'Happy Birthday To You'라는 노래는 '대한민국 위해서 하늘이 보내주신 대통령이 태어나신 뜻깊은 오늘을 우리 모두가 축하해~'로 개사해 불렸습니다. 그야말로 '윤비어천가'로 만든 셈입니다. 이 행사 1주일 전쯤 서울의 한 녹음실에서 미리 섭외해 둔 음악인들을 통해 음원을 제작했고, 행사에서는 이 음원을 틀어놓고 이에 맞춰 경호처 직원들이 합창을 했다고 합니다. 권진원 씨는 뉴스를 접하고 '당혹스럽다'고 했더라고요. ▷ 권진원 'Happy Birthday to You' 원곡 당시 이 행사는 경호처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주관하고, 기획관리실장이었던 김성훈 경호처 차장이 기획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과연 'Seasons of Love'를 대통령의 취임 이후 시간을 기리는 헌정곡으로 바꿔 부르자는 아이디어는 누가 냈을까요? '52만 5600분'이라는 원가사를 들었을 때 개사할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른 자신을 얼마나 칭찬했을까요? 아, 어쩌면 이 행사의 '기획자'가 아니라 윗사람의 닥달에 못 이긴 누군가가 억지로 짜낸 아이디어였을 수도 있겠네요. 'Seasons of Love' 원곡은 어디를 봐도 대통령 찬양과 어울리는 노래가 전혀 아닙니다. 이 노래는 미국의 작곡가 조너선 라슨(1960-1996)이 대본 작사 작곡을 맡은 뮤지컬 '렌트'의 대표곡입니다. '렌트'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입니다. 라슨은 스스로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렸고, 주변 친구들이 마약과 에이즈로 고통받는 걸 지켜본 경험을 이 뮤지컬에 녹여냈습니다.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이 그려집니다. ▷ 뮤지컬 '렌트' 중 'Seasons of Love' (출처 : 신시컴퍼니) '렌트'에 심혈을 기울였던 조너선 라슨은 개막을 하루 앞두고 대동맥혈전으로 요절했고, '렌트'는 그의 사후에 토니상과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하며 '전설'이 되었습니다.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은 1999년에 처음 열렸습니다. 한국 초연 당시만 해도 동성애와 마약, 에이즈, 트랜스젠더 등 뮤지컬에선 잘 다루지 않던 내용들이 파격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후에도 조승우, 최재림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며 여러 차례 공연되었고, 이제는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클래식'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한국에서 조너선 라슨의 또다른 유작 '틱틱 붐'이 공연되고 있습니다. 현 정국과 관련한 '틱틱 붐' 얘기도 칼럼으로 쓴 적이 있습니다.) '렌트'는 집세를 뜻하죠. '렌트'의 주인공들은 살던 집의 집세를 내지 못하고, 'Everything is Rent', 즉 모든 것이 빌린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렌트'에서 주변 친구들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우정을 나눠주던 '앤젤'이라는 인물은 에이즈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주인공 로저와 여자친구 미미 역시 에이즈 환자입니다. 에이즈 환자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의 삶은 기한이 있다는 점에서 '렌트'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돼 있다는 것을 감각하면 삶의 매 순간은 더욱 소중해집니다. 'Seasons of Love'는 그 소중한 1년의 시간을 어떻게 재느냐고 묻는 노래입니다. 날짜로, 계절로, 매일 밤 마신 커피로, 만남과 이별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잴 수 있지만, 가장 잘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랑'이라고 노래합니다. 삶의 매 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그냥 '1년'이 아니라 '52만 5600분'이 되는 시간을, 내 옆의 친구와 연인, 가족을 사랑하며 채워가자는 겁니다. 이 노래는 '렌트'의 모든 출연 배우들이 무대 위 한 줄로 늘어서서 합창하는 곡입니다. 배우들은 '소울'이 충만한 이 곡을, 객석의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행복하게 노래합니다. 이 노래의 '사랑'은 극 중 캐릭터들이 하는 사랑을 넘어서서, 관객들을 향해 확장된 메시지로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런 곡이 얄팍한 개사를 거쳐 원래 의미와는 상관없는 대통령 헌정곡으로 둔갑해 행사에 '동원'되었습니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대통령의 생일파티나 다름없는 행사에 '동원'되어 '윤비어천가'를 불러야 했을 경호처 직원들이 안쓰럽습니다. '오로지 국민만 생각한 당신'이라니요. '대한민국 위해서 하늘이 보내주신 대통령'이라니요. 지난주 커튼콜+ 칼럼에서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가 대통령의 전당대회 입장곡으로 쓰였다는 내용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 [커튼콜+] 집회에서 공연된 레미제라블 '민중의 노래'... 그런데 대통령의 애창곡이라고? 왜 하필이면 이 좋은 뮤지컬 넘버들이 대통령 행사의 분위기를 잡거나 대통령을 찬양하는 데 쓰였는지, 뮤지컬 애호가 입장에서는 특히 더 어이없는 일입니다. 과연 뮤지컬 원곡이 어떤 내용인지 알기는 했을까요? 엉뚱한 곳에서 고생한 뮤지컬에 제가 미안해집니다. 저라도 대신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사과할 줄 모르는 것 같으니까요.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대통령 파면을 요구하는 집회 무대에서 뮤지컬 넘버가 울려 퍼졌습니다. 무대의 주인공은 시함뮤,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로 불리는 팀이었습니다. 시함뮤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당시 촛불집회 무대에 처음 섰던 팀입니다. 고정된 멤버로 구성된 공식 단체는 아닙니다. 뜻이 맞고 일정이 되는 뮤지컬 배우와 스태프들이 그때그때 참여합니다. 시함뮤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인 지난해 12월 21일, 동십자각에서 열린 집회 무대에 다시 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이후 8년 만에, 또다시 대통령 파면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려 공연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합니다. 시함뮤가 2016년 촛불집회 때 여러 차례 공연하면서 즐겨 불렀고, 8년 만에 다시 선 집회 무대에서도 맨 처음 부른 곡은 바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대표 뮤지컬 넘버인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였습니다.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 심장 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리네 /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노래 도입부를 선창한 배우 이아진 씨는 2016년 촛불집회 공연 때 주축이 되었던 가수 겸 배우 이정열 씨의 딸이라는 인연도 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로도 친숙한 김국희 씨를 비롯한 배우 19명과 여러 스태프들이 시함뮤의 이번 무대에 참여했습니다. 노래 도중 '너는 듣고 있는가'가 불리는 부분에서 배우들은 몸을 돌려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바로 헌법재판소가 있는 방향이었습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였으니, 헌법재판관들이 민중의 외침을 들어달라는 바람이 담긴 몸짓이었던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당시에는 청와대 쪽을 가리키는 퍼포먼스를 했었습니다. ▷ '시함뮤' 집회 공연 보기 (24년 12월 28일, SBS D리포트) '레미제라블'의 원작은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처럼, 빵을 훔친 죄로 오랜 징역 생활을 한 장발장을 비롯해, 고난 속에 사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1832년 프랑스의 '6월 항쟁'이 주인공들의 운명을 바꾸는 주된 사건으로 다뤄지는데, '민중의 노래'는 바로 이 6월 항쟁의 혁명가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 영화 레미제라블 '민중의 노래' 보기 ▷ 뮤지컬 레미제라블 한국어 초연 '민중의 노래' 보기 이 노래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며, 현실의 억압을 타파하려는 시민들의 외침을 담고 있습니다. 노래 가사 그대로 심장 박동을 요동치게 하는 감동적인 곡이죠.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우는 시위,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단골로 불리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위 현장에서 사랑받는 '민중의 노래'가 윤석열 대통령의 애창곡이기도 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사실은 지난 2023년 3월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알려졌는데요, 경기도 킨텍스 전당대회장에 대통령이 당원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입장할 때, 연주곡으로 편곡된 이 노래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2023년 3월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참석해 축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 영상 보기 (01:04:30부터 '민중의 노래' 연주곡이 울려 퍼지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입장하는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 곡을 썼을까요. '민중의 노래'를 집권당 전당대회에서 장식으로 가져다 썼다면서 모욕감을 느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이 곡이 뮤지컬에서 쓰인 맥락을 안다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입장곡으로 쓰는 게 어색하다는 생각을 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당시엔 국민의힘 소속이었던 이준석 현 개혁신당 의원은 '대통령 입장 음악으로 이걸 고른 사람은 윤리위 가야 할 듯'이라고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분노한 사람들의 노래'라는 가사의 내용과 당시 그가 주창해 온 친윤(친윤석열) 그룹을 향한 '분노 투표'를 정치적 맥락으로 연결시켜 비꼰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그러자 김행 전 비상대책위원이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실에서도 이 곡을 쓴 적이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용산 내부에 전체 비서관들과 오찬할 때 이 곡을 사용했는데 대통령님이 입장하면서 이 곡을 들으시고 '자유에 관한 곡이며 내가 좋아하는 곡'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도 이 곡이 대통령의 애창곡/애청곡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해 군을 동원하고, 포고령을 내려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언론 출판 자유도 제한하고, 반대하는 세력은 '반국가세력'으로 '처단'하겠다고 했던 대통령입니다. '민중의 노래'를 부르는 '민중'과는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사람이 이 노래를 좋아한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그는 이 곡에서 느껴지는 '영웅적인 분위기'에 취했던 것일까요? 개인의 음악적 취향으로만 보기에는 좀 찜찜합니다. 그동안 대통령 측에서 구사해 온 워딩과 용례를 보면, 그는 이상한 사전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전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수많은 국민들이 '반국가세력'이요 '종북세력'입니다. 이 사전에서 '민중'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민중의 노래'가 '자유에 관한 곡'이라고 했다는데, 과연 그가 생각하는 '자유'란 무엇일까요? 반대 세력을 척결하고 내 뜻에 맞는 사람들끼리만 누리는 자유일까요? 그의 사전에 따른 자의적인 해석으로는, 군을 동원해 계엄을 선포하고 반대 세력 처단에 나서는 자신의 모습을 '민중의 노래'를 부르는 혁명가들과 나란히 놓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평소 좋아해서 자신의 입장곡으로까지 썼다던 '민중의 노래'가 자신의 파면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이 곡을 좋아할까요? 이 곡이 집회에서 불리는 걸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극우 유튜브에 빠져서 그런 것까지 챙겨 보진 않았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지금이라도 이 노래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새겼으면 합니다. 지난 연말 집회에서 '민중의 노래'를 부른 시함뮤 팀은 아마도 다시 집회에서 공연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시함뮤의 연출가 박준영 씨와 배우 김아영 씨를 인터뷰해 기사를 썼는데요, 박준영 씨는 지난번 공연에 참여하지 못했던 배우들도 다음엔 같이 하고 싶다며 연락해 오고 있다면서, 조만간 시함뮤가 다시 집회에서 공연하게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왼쪽부터) 박준영 연출가, 김아영 배우 SNS를 보니 '시함뮤 공연은 이번이 최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아마 시함뮤 공연이 싫다는 뜻이 아니라, 시함뮤가 집회 무대에 다시 서게 된 현실이 안타까워서 이런 얘기를 했을 겁니다. 가장 바람직한 건 빨리 사태가 해결되어서 시함뮤가 다시 집회 무대에 서지 않아도 되는 것이겠지요. 집회 무대에서 불리는 '민중의 노래'도 좋지만, 모든 게 다 정상으로 돌아가고 난 다음, 축제의 자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이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며칠 전이지만 이미 '지난해'가 되어버린 2024년 12월 30일 저녁. 서울 서초구 모차르트홀의 송년 음악회인 '겨울 나그네' 공연은 피아니스트인 신수정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의 인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신수정 회장은 바리톤 박흥우 씨와 2004년부터 매 연말에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함께 공연해 왔습니다. '겨울 나그네' 20년을 회고하며 송년 인사를 건넨 신수정 회장은 피아니스트 한동일 씨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한동일 씨는 이 공연 바로 전날인 12월 29일 밤, 향년 83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두 사람은 1952년 전쟁 중 부산에서 열렸던 제1회 이화 콩쿠르에 함께 출전했던 인연이 있습니다. 나이도 동갑이고, 오랫동안 우정을 나눠온 음악 친구였습니다. 신수정 회장은 생전에 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이 사진에는 1952년 이화 콩쿠르에서 함께 입상했던 '피아노 대모' 이경숙 연세대 명예교수도 함께했습니다. 1952년 이화 콩쿠르 입상자. 왼쪽부터 이경숙, 한동일, 신수정. 사진 출처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구술총서 신수정 편 갑자기 떠나간 '겨울 나그네' "바로 그저께도 문자를 받았어요. 제 공연에 오려 했는데, 기침이 나고 감기가 심해져서 못 갈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상태가 나빠져서 응급실까지 갔다는데 그만......" '겨울 나그네'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절망한 젊은이가 눈보라 치는 겨울에 여행을 떠나 겪는 일을 그려낸 연가곡입니다. 슬프고 쓸쓸하지만 그 슬픔 속에서 영혼의 위안을 얻게 되는 곡이기도 하죠. 원래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지만, 이날 '겨울 나그네' 연주를 들으며 저는 여러 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겨울 나그네'는 이 겨울에 먼 길을 떠난 고인에게 오랜 음악 친구가 헌정한 추모의 연주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에 신수정 회장이 '한동일은 우리 시대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고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술원 회원 구술회고록에도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한동일 선생은 그 당시에 우리는 감히 쳐다보지 못할 천재 소년이었어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일찍 카네기 데뷔를 했던, 우리나라의 아주 큰, 정말 1세대 국제적인 피아니스트였어요. 레벤트리트 콩쿠르도 1등 하고, 유럽 연주 여행도 하고. 이런 거 우리는 뉴스를 접하면서 정말 부러워했어요. 물론 우리나라에 와서 연주할 때 인기도 지금의 조성진, 임윤찬 수준을 넘는 거였어요. 그 당시에는 더군다나 많지 않았기 때문에요." 저는 2005년 고인이 고국으로 돌아와 울산대 교수로 부임했을 때 울산에 가서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제가 만난 가장 인상적인 인터뷰이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이미 환갑이 지난 나이였지만 밝고 활력이 넘쳤고, 꾸밈없고 순수한 젊은이 같다고 느꼈습니다. ▷ 당시 리포트 <한동일 당시 울산대 음대 학장 인터뷰... "인생의 3악장은 고국에서"> 안 그래도 얼마 전 그가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마음이 헛헛합니다. 그래서 오래 전이지만 그의 인터뷰를 토대로 그의 삶을 돌아보려 합니다. 1악장 한국. 음악 신동 피아니스트 한동일은 194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습니다. 3살 때부터 팀파니스트였던 아버지에게서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가족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피아노가 없어 서울대 의대 자리에 있던 미 5공군 사령부 강당의 피아노로 날마다 연습했습니다. 12살이 되던 1953년, 그의 연주를 본 미 5공군 사령관 앤더슨 중장이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일본과 한국 전역의 미군기지를 다니며 공연했습니다. 미군 병사들이 철모를 돌려 1달러, 2달러씩 모은 돈이 5천 달러. 이 돈은 그의 유학 자금이 됐습니다. 1954년 6월,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앤더슨 중장의 미 군용기가 여의도 비행장에서 이륙했습니다. 13살의 소년 한동일도 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부모님은 이별이 아쉬워 눈물 흘렸지만, 어린 그는 마냥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제 풍요롭고 넓은 세상을 보게 된다! 마음껏 음악 공부를 할 수 있다!" 2악장 세계. "동양의 모차르트" 중간 경유지를 몇 군데인가 거쳐 1주일 만에 미국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전쟁과 가난으로 신음하고 있는 나라에서 온 음악 신동'이라고 대서특필했습니다. 수많은 스타들이 거쳐 간 TV 버라이어티 쇼인 '에드 설리번' 쇼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생전 처음으로 서양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회.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과 피아노 협주곡 4, 5번. 음 하나하나를 마음속에 새겼습니다. 앤더슨 중장의 주선으로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입학합니다. 프로코피에프니, 라흐마니노프니, 스크리아빈이니, 하는 작곡가 이름도 뉴욕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1956년, 카네기홀 데뷔 무대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합니다. 한국에서 온 천재 소년은 계속해서 활동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그가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마다 한국의 이름이 알려졌죠. 1962년에는 케네디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연주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한국의 유일한 클래식 '국가대표'였습니다. 그의 연주회 소식은 대한뉴스의 주요 기사이기도 했습니다. 1965년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심사위원장이었던 24회 레벤트리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습니다. 번스타인으로부터 '동양에서 온 모차르트'라는 극찬을 들었지요. 한국인이 국제적인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한국에선 온 나라가 들썩거렸습니다. 그의 도미 성공담은 가난과 피폐에 찌들었던 시절,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꿈이요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1962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 초청 백악관 연주회 화려한 성공 뒤에는 고독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헤어져 살았고, 돈을 벌어야 했기에 전 세계를 돌며 수많은 연주를 했습니다. 낯선 타국 생활의 외로움은 그를 떠나지 않았고, 계속되는 순회 연주의 스트레스는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는 유럽 순회 공연 도중 공황 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1969년 인디애나 주립대 교수가 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됩니다. 런던에서 만난 프랑스계 여성과 결혼해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여러 대학을 거쳐 1987년부터는 보스턴 음대에 재직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6월 1일. 그가 미 군용기를 타고 유학길에 오른 지 꼭 50년이 되는 날.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도미 50주년 기념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봤던 뉴욕 필 연주회 프로그램을 재현해 그날의 감동을 되살렸습니다. 그를 맨 처음 음악의 세계로 이끌었던 부친 한인환 옹이 91살의 나이에 팀파니를 연주하며 아들과 한 무대에 섰습니다. 부친은 서울시향의 창립 멤버로 오랫동안 타악기 연주자로 활동하다 은퇴한 지 오래였습니다. (한인환 옹은 그로부터 몇 년 후인 2009년 별세했습니다.) 감회 가득한 무대, 지휘를 맡은 이대욱은 오래전 한국에서 그를 가르쳤던 김성복 선생의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공연은 그의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됐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그는 이제 한국에 돌아와야 할 때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철들고 나서 거의 평생을 미국에서 살아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외국'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김치 피'로 지칭했습니다. "김치 피를 갖고 한 번 태어나면 어디 가도 그 김치 피는 변하지 않는 거예요. 잠깐 잊을 수는 있겠지만 떠나지 않고 돌아와서 날이 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이 김치 피는 강해집니다. 그게 자연인가 봐요. 조국이 그리워지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됩디다." 3악장 한국. "김치 피는 강해진다" 2004년 말, 그는 17년 넘게 재직했던 보스턴 음대에 사표를 썼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국.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고, 일자리도 주고, 50년 동안 나를 키워준 나라. 당신에게 감사한다. Thank you very much. 이제 나는 내 고향 한국으로 돌아간다." 귀국한 그는 2005년부터 울산대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당시 그의 레슨을 취재했는데, 학생을 가르치는 그의 모습에는 열정이 넘쳤습니다. 그는 조국에 돌아와 가르치는 제자들이 한 명 한 명 다 소중하고 대견하다고 했습니다. 이 학생들을 잘 가르쳐 세계 무대에 알리고 싶다고, 그리고 지금껏 자신을 성원해 준 조국에 빚을 갚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가 울산대에 간 걸 두고 왜 하필이면 지방대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역사가 짧은 지방 학교에서 더 큰 희망을 본다고 했습니다. 이미 다 갖춰져 있는 학교에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즐거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외국에서도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봤지만, 이들은 더욱 특별하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새 삶을 사는 듯한 활력을 느낀다고도 했습니다. "인생, 참 쉽지 않아요.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어요. 제일 힘든 게 외로움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와 헤어져 미국, 유럽에서 혼자 지냈죠. 상처도 없다고 말 못 해요. 이제는 평화를 찾았어요. 외롭지 않아요. 학생들을 통해 내 가정을 찾았어요. I have a family." 그는 당시 환갑이 넘은 나이에 조국에 돌아와 '인생 3악장'을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외국에서 50년을 사느라 잘 모르고 지냈던 한국의 역사와 예술, 전통문화를 이제부터라도 배워나가겠다며, '마치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신입생처럼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그는 저와 했던 인터뷰에서 '인생 3악장은 끝이 아니다. 4악장도 이어진다'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피날레. "나의 카네기홀은 이곳에" 2005년에 했던 인터뷰 이후 저는 그를 공연에서 몇 번 마주쳤지만, 최근에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울산대를 거쳐 순천대에서도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퇴임한 이후 미국에 돌아갔다가 2019년 영구 귀국했습니다. 그는 2019년 더하우스콘서트 신년음악회에서 슈만의 '어린이 정경'을 연주했는데요, 유튜브에서 그중 한 곡 '트로이메라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트로이메라이'는 '꿈'이라는 뜻이죠. 그는 오래전 한국에서 보냈던 자신의 어린 시절 꿈을 기억하며 이 곡을 연주했을까요? 그의 연주를 담은 영상에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호로비츠가 망명 60여 년 만인 1986년 귀향해 모스크바 청중 앞에서 연주했던 '트로이메라이'가 생각난다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 슈만 '트로이메라이'. 출처 : 더하우스콘서트 유튜브 같은 해 여름, 그는 부산 공연을 하면서 '나의 카네기홀은 이제 지역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음악적으로도 강대국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뛰어난 젊은 아티스트는 카네기홀 같은 세계 무대에 계속 다녀야 한다, 나는 옛날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많이 활동했지만, 78세가 된 지금은 우리나라의 지역 구석구석을 다니고 싶다'고 말이지요. 지금 봐도 울림이 큰 얘기입니다. (국제신문 2019년 6월 17일 박지현 기자 기사) 지난 2022년 그를 인터뷰한 경향신문(12월 6일 박주연 기자 기사)에서는 그가 인천 석모도의 삼상 승영중학교에 그랜드 피아노를 기증한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전교생 70여 명으로 한때 폐교 위기까지 겪었던 이 중학교의 '전교생 오케스트라'를 보고 감동해, 광화문문화포럼 회원들과 함께 이 학교에 새 피아노를 선물했다는 겁니다. 이 신문은 그가 그해 12월,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는 소식도 전했습니다. 그는 최근까지도 연주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유튜브에서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지난 12월 27일에 공개된 고인의 연주 영상을 찾았습니다. 대전의 문화공간 헤레디움에서 연주한 브람스의 '인터메조'입니다. 노대가의 연주는 담담하고 투명하고 아름답습니다. 그가 이제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낳은 '음악 신동 1호'. 국제 콩쿠르에서 처음 우승한 한국인 음악가. 후대에 의미 있는 이정표를 제시한 1세대 스타 피아니스트. 오랜 외국 생활에도 '김치 피'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온 한국인 피아니스트 한동일. 그의 연주는 끝났지만, 고인의 삶의 모든 악장들을 소중히 기억하겠습니다. 진심을 다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브람스 '인터메조'. 출처 : 렛츠클레이 클래식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올해의 마지막 달 12월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그날 밤 이후, 한국 사회 전체가 격랑에 휘말린 느낌입니다. 이 시국에도 저는 공연을 보고, 예술가들을 인터뷰하고, 관련 기사를 쓰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게 'SBS 문화전문기자'로서 제가 맡은 업무니까요. 비상계엄 사태 직후인 지난 5일, 배우 인터뷰를 위해 연극 '타인의 삶'을 보며 저는 작금의 한국 상황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에도 칼럼을 썼습니다만, 이 연극은 독일 통일 이전의 동독을 배경으로,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인 배우 크리스타, 그리고 이들의 일상을 낱낱이 도청하는 비밀경찰 비즐러의 이야기입니다. 이 연극에서 묘사되는 동독의 상황은 비상계엄 치하의 세상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드라이만은 비교적 정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작가였지만, 절친한 연출가 예르스카가 체제 비판적인 연극을 했다는 이유로 7년간 활동을 금지당한 끝에 자살하자,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예르스카의 자살을 외부 세계에 알리는 글을 발표하기로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 속에 목숨을 끊었는지 물어보면 그들은 대답 대신 당신의 이름을 국가보위부에 넘겨줄 겁니다. 그럼 국가보위부는 ... 국가 체제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국민들이 스스로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 당신을 잡아가겠죠. 1977년, 우리나라는 자살자 수 집계를 중단했습니다. '스스로 살인한 자.' 그들은 자살한 사람들을 그렇게 분류했습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범죄, 즉 살인을 저지른 죄인 숫자에 더해집니다. 그러나 자살은 모든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 집계되지 않은 사람 중엔 알베르트 예르스카라는 위대한 연출가가 있습니다. 그는 12월 4일에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드라이만이 쓴 글을 들으면서 자살에 관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예르스카가 자살한 날짜가 마침 12월 4일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습니다. 비상계엄 바로 다음 날, 제가 연극을 보기 하루 전날. 1980년대 동독의 이야기가 마치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 일처럼 확 다가오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 연극에서 드라이만 역으로 열연 중인 배우 김준한 씨는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출연해 "다른 건 다 부족하더라도, 이 시대의 아픔은 꼭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배우가 연극에 담으려 한 '시대의 아픔'은 1980년대 동독을 넘어 2024년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됐습니다. ▷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배우 김준한 편 1부 저는 12월 7일, 대통령 탄핵 소추안 1차 표결이 있었던 날에도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창작진 인터뷰를 위해 봐야 했던 이 공연은 뮤지컬 '틱틱붐(tick, tick, Boom)'이었습니다. 틱틱붐은 뮤지컬 '렌트(Rent)'의 공연 개막일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작곡가 조너선 라슨(1960~1996)의 유작입니다. 라슨은 사후에 '렌트'로 토니상과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하며 전설이 되었습니다. 라슨은 '틱틱붐'에서는 30살 생일을 앞두고 신작 낭독 공연을 준비 중인 뮤지컬 작곡가, 즉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틱틱'은 시곗바늘이 째깍째깍 돌아가는 소리, '붐'은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입니다. 작곡가는 마치 폭발을 앞둔 시한폭탄을 장착하고 사는 듯 환청에 시달리는데, 이는 그가 느끼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상징합니다. '틱틱붐'은 조너선 라슨이 생전에 모놀로그 형식으로 직접 선보였고, 그가 세상을 떠나고 6년 만인 2001년 그의 친구들이 3인극으로 다시 구성해 미국에서 정식 초연 무대에 올랐습니다. 앤드류 가필드 주연의 영화도 유명하죠. 이번 한국 공연은 3인극인 원작에 앙상블 배우 5명을 더하고, 영화 번역가로 유명한 황석희 씨의 번역으로 완전히 새로운 작품처럼 다시 탄생했습니다. 저는 이 공연을 보면서도 작금의 한국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을 만났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생계를 겨우 유지하고, '브로드웨이의 미래'가 될 새 뮤지컬에 매달리고 있지만 확신은 없는 주인공이, 자신이 사는 시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다가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을 언급하는 대목입니다. "지금은 1990년, 거지 같은 시대라고. 흥미진진한 시대도 아니고 격변의 시대도 아니야. 보수적이고 모험심도 없고 둔감하고 상상력도 없는, 재미 더럽게 없는 시대. 아, 이렇게 설명하면 좀 쉽겠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구인지 알지?" 순간 저는 12월 3일 격앙된 표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그 얼굴을, 그 이름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이 뮤지컬에서 한국 대통령 얘기를 할 리는 없지만요. 배우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사를 이어갔습니다. "역대급 꼰대 중에서도 손꼽히는 왕꼰대, 조지 부시야. 조지 부시 몰라?" 객석에선 와~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 저때 미국 대통령이 조지 부시였구나! 저도 웃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조지 부시가 '왕꼰대'였더라도 지금 이곳의 대통령처럼 계엄을 선포하지는 않았다고요. 뮤지컬을 보던 중이었지만 새삼 현 상황에 대한 답답함과 울분이 느껴졌습니다. 이 대사는 원래 대본에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듣는 느낌은 또 달랐던 겁니다. '틱틱붐'은 끝까지 주인공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는 계속 가난에 시달리고, 친구는 에이즈에 걸리고, 연인은 떠나갑니다. 신작 낭독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도 이 작품을 공연장에 올릴 제작자는 나서지 않습니다. 30살 생일이 됐지만, 이뤄놓은 것은 하나 없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불안과 고민과 두려움 속에서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의 모습이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왜 우린 불장난을 할까? 왜 우린 불꽃에 손댈까? 왜 우린 아플 걸 알면서 난로에 손을 대는 걸까? 왜 우린 위험한 밤거리에 등불을 걸지 않나? 왜 사고를 겪어야만 진실을 깨닫는 걸까? 새장과 하늘, 새는 어떤 걸 택할까? 행동으로 외쳐, 소리 높여. 두려워하지 말고. 왜 우린 최선을 다할까? 적당히 살아도 되는데. 왜 우린 상사의 억지에도 고갤 끄덕일까? 왜 우린 안전한 길을 두고서 험난한 길을 갈까? 왜 실망할까 두려워 싸움을 피하는 걸까? 새장과 하늘, 새는 어떤 걸 택할까? 행동으로 외쳐, 소리 높여. 두려워하지 말고. 불안함에 고개 숙인 마음들이 어떻게 날아오를 수 있나? 내 앞에 놓인 버거운 현실 도피하지 말고 너의 길을 가. 왜 우린 맞지 않는 사랑 곁에서 주저할까? 왜 홀로 되는 밤이 두려워 고통 속에 살까? 왜 우린 무책임한 자를 따를까? 말해줘. 폭풍을 겪어야 비로소 혁명이 시작되는 이유를. 왜 이 세상엔 아픔이 많은 걸까? 새장과 하늘, 새는 어떤 걸 택할까. 행동으로 외쳐, 소리 높여. 두려워하지 마. 틱틱붐의 뮤지컬 넘버 'Louder than Words' 가사를 곱씹어보면서 공연장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여의도 집회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케이팝 그룹 응원봉을 들고나온 젊은 여성들이 정말 많았고, 다채로운 깃발들이 휘날렸습니다. 이날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표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개표도 못하고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됐습니다. 저는 실망감에 휩싸였지만, 지친 기색 없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 젊은이들, 갖가지 색깔과 모양의 케이팝 응원봉들이 밤거리를 밝게 수놓는 모습은 큰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틱틱붐'이 보여줬던, 힘겨워도,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떠올렸습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더 많은 인파가 모여든 여의도 국회 일대는 세대를 초월하는 거대한 공연장 같았습니다.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무대가 펼쳐졌고, 로제의 APT에 윤수일의 아파트가 절묘하게 이어졌고, 케이팝 사이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렸고, 케이팝 노래 리듬에 맞춰 탄핵 구호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국회의장이 가결을 선포하던 순간 울려 퍼진 '다시 만난 세계'였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노래 제목대로 '세계를 다시 만난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집회 현장. 사진 : 연합뉴스 전해주고 싶어 슬픈 시간이 다 흩어진 후에야 들리지만 눈을 감고 느껴봐 움직이는 마음 너를 향한 내 눈빛을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 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줘 상처 입은 내 마음까지 시선 속에서 말은 필요 없어 멈춰져 버린 이 시간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공연은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오락거리이기만한 것은 아닙니다. 공연은 걱정거리에서 잠시 벗어나 위로받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힘을 주기도 하고, 공연을 통해 일상의 문제를 새롭게 직시하고 맞설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공연이 삶 속으로 들어오고, 삶이 곧 공연이 되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이 시국에 무슨 공연'이 아니라, '이런 시국일수록 공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