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환경전문기자입니다.
국내 신생아 산모의 모유를 수거해 검사했더니, 단 1명도 빼놓지 않고 전원한테서 1군 발암물질로 분류된 유해 화학물질인 과불화 화합물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8시 뉴스를(2024.5.6) 통해 전해드렸습니다. 과불화 화합물이란 불소와 탄소가 결합한 인공 복합 물질인데 방수, 방오염 등의 유익한 특성 덕분에 다양한 소비재 제조에 쓰입니다. 반면 생식 및 면역 독성과 내분비 교란, 대사 증후군 등 문제로 인체 유해성이 끊임없이 지적돼 왔습니다. 특히 화학적으로 강한 공유 결합 탓에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는 게 강점이자 문제점입니다. 쉽게 사라지지 않은 채 순환하며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산모의 모유에 이 같은 유해물질이 녹아있다면 엄마의 건강뿐 아니라 그 모유를 먹게 된 영유아에겐 더 큰 해를 미칠 수 있겠죠. 영유아는 환경유해인자 노출로 인한 건강피해가 성인에 비해 훨씬 클 수밖에 없습니다. 몸무게가 적기 때문에 단위 체중당 섭취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 데다 호흡기, 생식기, 중추신경계, 면역계 등이 발달하지 않아 잠재 위험이 더 높은 취약 집단 중 하나입니다. 엄마와 영유아를 위협하는 화학물질은 이밖에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프탈레이트란 겁니다. 플라스틱을 잘 휘어지도록 만드는 가소제 역할로 많이 쓰입니다. 장난감 제조공정에서 많이 쓰이는데, 국내산보다 중국산이 큰 문제입니다. 알리, 테무와 같은 중국 사이트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제품의 경우 국내 유해물질 관리의 공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밖에도 대형마트 영수증에 많이 쓰였던 비스페놀A, 화장품 등에 보존제로 많이 쓰이는 파라벤 등도 대표적인 일상 속 유해 화학 물질인데요. 이들을 통칭해 내분비계 장애물질이라고 합니다.(Endocrine Disrupters, 약칭 EDs) 생물체에 흡수되면 성장, 생식 등에 관여하는 내분비 호르몬의 정상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인데요. 정자 수 감소, 암수 변환, 암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안전 확보하는 10가지 생활 수칙 이 같은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엄마와 아이가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경희대 간호과학대 김주희 교수 연구팀은 10가지 생활 수칙을 제안합니다. (학술적으로는 '행동 중재, behavioral intervention'로 표현하지만 생활 수칙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아래와 같은 내용입니다. 1) 가능한 친환경 식품 먹기 2) 생선 섭취 줄이기 3) 기름기 많은 부분 제거하고 먹기 4) 유제품 줄이기 5) 새 가구나 새 차 피하기 6) 메이크업 제품 덜 사용하기 7) 식품용기는 유리나 스테인리스 제품 쓰기 8) 방향제나 색깔이 강한 제품 피하기 9) 자주 손 씻기 10) 땀 흘리는 활동하기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생선 섭취' 문제는 과불화 화합물 관련 8시 뉴스에서도 지적했듯이 이 물질들이 결국 하천과 바다로 흘러들어 수산물에 쌓이기 때문입니다. '기름기 많은 부분 제거'는 내분비계 장애 물질의 지방에 잘 녹는 지용성 특성 탓입니다. 구조상 지방에 용해되기 쉬워서 지방 세포에 축적된다는 겁니다. '유제품 섭취 줄이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지유나 버터와 같은 고지방 유제품일수록 지방 성분이 많아서 축적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 가구나 새 차'의 경우 페인트, 접착제, 실란트, 플라스틱 등 다양한 내장재가 쓰이는데 이런 재료에 다량의 화학물질이 들어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물질이 증발해 실내 공기로 방출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현상을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방출이라고 합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방출량이 줄어드는 특성이 있습니다. '메이크업 제품'에는 화장품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여러 화학물질이 사용됩니다. 방부제 용도로 파라벤이 널리 쓰이고 있고요. 프탈레이트는 향료의 고정제로서 쓰입니다. 자외선 차단을 위해서 옥시벤존이란 화학물질이 UV필터 용도로 쓰이기도 합니다. 10가지 생활 수칙, 효과는 얼마나? 김 교수 팀이 만든 10가지 수칙들은 세계보건기구와 미국 환경청과 식약처, 유럽 식품안전처 등의 자료와 선행 연구를 취합해 핵심 수칙을 10가지로 뽑은 겁니다. 김 교수팀은 실제로 이 수칙을 임산부들에게 적용해 효과성 여부를 검증하는 실험을 한 뒤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김주희 et al., 2021) 해당 실험은 영유아를(영유아 평균 22개월) 자녀로 둔 어머니 51명 가운데 26명을 실험군으로, 나머지 25명이 대조군으로 설정했습니다. 실험 전 대상자들의 소변을 수거해 측정했더니 소변에서 프탈레이트, 비스페놀A, 파라벤 물질이 51명 대상자 샘플 중 80~100%에서 검출됐습니다. 구체적인 기하평균값으로 따지면 MEHP라는 프탈레이트의 한 종류는 2.71μg/g, 비스페놀A는 0.84μg/g, 에틸파라벤(EP)은 50.27μg/g이 나왔습니다. 참고로 이 농도치는 2017년에 실시된 제3차 국가환경보건조사 때보다는 낮은 수준입니다. 이 가운데 연구진은 26명의 실험군에 대해서 위 10가지 생활 수칙을 준수하도록 권장했습니다. 행동 관여를 좀 더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교육 비디오, 집안의 내분비 장애물질을 찾는 게임, Q&A를 포함한 웹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험군 엄마들에게 제공했습니다. 한 달 동안 매주 SMS 및 전화를 통해 참가자의 수칙 준수를 촉진 격려했습니다. 한 달 간의 생활수칙 교육기간이 끝난 뒤(T3) 소변 내 해당 물질 농도를 다시 분석했더니, 실험군 26명의 소변 내 내분비계 장애물질의 농도가 유의미하게 감소했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교육을 받은 실험군에서는 프탈레이트(MEHP)가 교육 돌입 전(T1)에서 2.65 μg/g이었던 게 T3에서는 2.20μg/g으로 17% 줄었습니다. 비스페놀A는 교육 전 0.87μg/g에서 교육 후 0.40μg/g으로 54% 감소했습니다. 파라벤은(EP) 51.38μg/g에서 33.0μg/g으로 36% 줄었습니다. 반면 교육을 받지 않은 대조군에서는 MEHP가 3% 감소하는 데 그쳤으며, 비스페놀A가 20%, 파라벤(EP)이 15% 감소해 실험군에 비해 감소폭이 적었습니다. 다시 말해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생활 수칙을 안내하고 교육함으로써 영유아 엄마들의 체내 유해물질의 농도를 실제 낮출 수 있다는 게 실험으로 확인됐다는 겁니다. 10가지 수칙을 따르는 게 소비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대책이긴 하지만 근본 해법은 아닙니다. 정부 차원에서 해법이 강구돼야 할 텐데요. 일단은 우리 국민들의 체내에 과불화 화합물 같은 유해 환경인자가 얼마나 쌓여있는지 또 어떤 경로로 노출되고 있는지 실태를 파악하는 게 우선돼야 합니다. 특히 과불화 화합물의 경우 워낙 종류 수가 많다 보니 대표적인 몇몇을 제외하면 독성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아직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연구 가운데 드러난 또 다른 특이사항은 에틸파라벤입니다. 실험 돌입 전에 51명의 엄마들 전원에게서 검출된 평균값이 50.27μg/g으로 프탈레이트 검출량에 비해 18배나 많았고요. 비스페놀A에 비해서는 60배나 많은 양이 검출됐습니다. 연구진은 고추장과 된장, 간장 같은 장류식품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선행 연구에 따르면 국내 판매 중인 고추장과 간장에는 최대 29.7mg/kg의 에틸파라벤이 검출된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는 겁니다. 사용 까닭은 방부제 용도일 테고요. 이러한 이유로 많은 연구에서 한국인의 소변 중 에틸바라벤 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으로 지적됩니다. 연구진은 장류 식품에서 에틸파라벤을 많이 쓰는 배경에 대해 연구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참고문헌 김주희, 곽정민, 강현진. 2021. Web-based behavioral intervention to reduce exposure to phthalate metabolites, bisphenol A, triclosan, and parabens in mothers with young children: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관련 기사 : [단독] 모유에서 '과불화' 검출…증가세에도 안일
최근 SBS 8시 뉴스를 통해 화재 위험 배터리를 달고 있는 전기차 900대가 리콜 명령에 응하지 않은 채 운행 중이란 소식을 전했습니다. 현대차 코나와 GM 볼트라는 두 차종입니다. 자동차 리콜을 주관하는 국토부 산하 한국교통안전공단에 요청해 받은 리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코나 2만 5천여 대, 볼트 1만여 대가 리콜 명령 대상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지난해 3분기까지 리콜 미이행 차량 대수를 확인해 보니 코나 379대, 볼트 631대로 나타났습니다. 현대와 GM 측에 현재 시점까지 업데이트 자료를 추가 요청해 받아본 결과, 코나 330여 대와 볼트 550여 대가 2024년 4월 현재 리콜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습니다. 해당 차주들이 리콜에 응하지 않는 사유는 대체로 안전 불감증이라는 지적입니다. 당장에는 별 문제없으니 최대한 오래 끌다가 새 배터리로 교체하겠다는 겁니다. 리콜을 기회 삼아 배터리 감가상각을 최대한 늦춰 이득을 얻겠다는 뜻이겠죠. "기름 새는 내연기관차 몰고 다니는 셈" 미이행 차주들의 안이한 배터리 안전 인식, 괜찮은 걸까요? 전문가들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전기차 충전기 업체를 운영하는 최영석 차지인 대표는 리콜 대상 배터리 전기차를 몰고 다니는 걸 이렇게 비유합니다. "기름 탱크에서 휘발유가 새는 내연기관차를 그 상태로 몰고 다니는 것과 같다. 반드시 리콜을 받아야 하고 리콜을 회피하는 차주들에겐 강제 리콜을 한다거나 해당 차량 운행을 정지시키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 또 다른 배터리 전문가인 박철완 서정대 교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박 교수는 현행 자동차검사 제도의 허구성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화재 위험으로 인한 배터리 교체 리콜 같은 중대 사안이 있는 전기차종이 검사를 받으러 경우 리콜 이행 여부를 검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으로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도 정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반면 전기차 화재 위험을 언론이 실제보다 과장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죠. 내연기관 차량에서 발생하는 화재 비율보다 높지 않은데 호들갑이란 얘깁니다. 하지만 내연차 화재는 주로 도로 주행 중에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전기차 화재는 건물 내부 지하주차장에서 충전 중에 발생하는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자칫하면 건물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그 피해가 내연차 화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질 수 있습니다. 이런데도 화재 위험에 노출된 배터리 전기차가 리콜에 응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 수단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현재 자동차 리콜 법규에선 제조사가 리콜 이행률을 분기별로 정부에 보고하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현황 보고만 하도록 돼 있을 뿐 미이행에 따른 벌칙이 불가능하고요. 반대로 이행률을 끌어올릴 인센티브나 유인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배터리도 자동차검사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한편 아쉽다는 반응입니다. 전기차 화재 위험의 핵심인 배터리 안전과 성능 문제를 자동차검사 제도에 반영하는 대책이 현재 추진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국토부는 이번 달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통해, 전기차의 배터리 상태에 대한 8가지 진단 항목을 검사대상으로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이제까지는 배터리에 대한 절연상태 점검이라는 단 하나의 검사 항목이 있었지만 고장 발견 시 입력 코드조차 없어 사실상 무용지물인 상황이었습니다. 앞으로 대당 100만 원 정도 드는 검사 장비를 자동차검사소마다 구비하면 내년 초부터 실제 검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습니다. 개정된 자동차검사 항목 중 전기차 배터리 진단 사항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검사 대상은 크게는 배터리 안전 점검과 성능 점검, 두 분야로 나뉘는데요. 세부적으로는 안전 점검 분야에 고전압 부품 절연, 배터리셀 간 전압 편차, 배터리 모듈 온도 같은 진단 항목이 있고요. 성능 분야에서는 총 동작시간, 누적 충방전량, 배터리 충전량(SOC), 배터리 열화상태(SOH), 급속충전 횟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 점검에 담긴 3가지 항목으로 화재 위험을 예방 점검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그나마 8가지 항목 가운데 검사 합격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적합, 부적합으로 진단 결과가 명시되는 항목은 '고전압 부품 절연' 한 가지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진단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에 그쳐 실효가 떨어집니다. 국토부의 전기차 리콜 담당 부서에선 이제까지 배터리 리콜 미이행 차주들이나 제조사에 대한 페널티 등은 검토되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보도를 통해 지적된 배터리 교체 리콜 미이행의 문제점에 공감한다며 구체적인 검토 작업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배터리 잔존 수명 알려준다는데…믿을 수 있나 새로 도입될 전기차 정기 검사에 있어, 성능 점검 분야의 배터리 열화상태, SOH(State Of Health)는 눈에 띄는 항목입니다. 그동안 전기차 중고 거래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전기차 배터리의 상태 및 잔존 수명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SOH는 배터리 셀 가운데 정상 셀과 비정상 셀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배터리의 현재 성능이 처음 생산 당시의 성능 대비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백분율로 표시합니다. 배터리의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데이터인 셈이죠. 중고차 거래 시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지금도 OBD 단자를 연결해 스캔하면 차량 내 BMS를(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 통해 SOH 정보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미 중고 거래에서 배터리 검증을 위해 일반화된 방법인데, 문제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실측 방식이 아니라 자동차 BMS 내의 데이터를 읽어오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제3의 검사 기관이 실측하는 게 아니라 제조사 데이터에 의존하는 겁니다. 다만 자동차 정기검사가 2년마다 의무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매 2년마다의 SOH가 추적 관찰된다는 점은 중고 거래 시 일회적인 정보를 얻는 방식보다는 진전된 방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전기차 보급 확대 및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 국제적으로도 이 SOH 값에 대한 보장 조치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최근 유럽에선 자동차 배출 물질 규제인 유로7을 최종 채택했는데, 여기에도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내구성을 보장하는 방안으로 SOH 값을 규정화했습니다. 5년 사용 또는 10만km 주행 이후에도 배터리 가용 시간이 첫 출시 때의 80%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7년 사용 또는 16만km 주행 이후에도 72% 이상의 성능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캘리포니아에선 'SOH 실측정 오차 최소화' 규정 미국 캘리포니아는 유럽보다 더 빨랐습니다. 지난 2022년 8월 Advanced Clean Cars2(ACC2)이란 규정을 도입했는데, 여기에 배터리 SOH 규정이 포함돼 있습니다. 10년 또는 15만 마일 주행 차량의 경우 배터리 성능의 70%를 제조사가 보장하도록 돼 있습니다. 적용 시점은 2026년입니다. 또 캘리포니아의 경우 유럽과 달리 SOH 값을 제조사 BMS에 의존하지 않고 제3의 실측정값과 비교 검증하도록 한 점이 눈에 띕니다. ACC2에 따르면 SOH 값은 소비자가 별도 도구 없이 언제든 차량 계기판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실측정을 통해 검증받은 SOH 값과의 오차가 5% 이내여야 한다는 점도 명문화됐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 말은 제조사의 BMS 값만을 믿지 않고 실측정 방식의 법적 기준을 만들어 모든 전기차의 배터리 잔존 수명을 평가하는 잣대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현재 국내에서도 이 같은 전기차 배터리 잔존수명 평가를 위해 빠르고 간편한 방식의 검사법을 내놓는 스타트업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확성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현재 입법예고한 자동차검사 시행규칙 개정안을 넘어 화재 위험 배터리 리콜을 따르지 않는 미이행 차량에 대한 규제화 방안은 물론 배터리 잔존 수명 측정의 신뢰성을 담보할 방안이 마련돼야 합니다. 화재로부터의 안전성을 높이고 중고 거래 시 배터리 수명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방안을 보장하는 게 움츠러드는 전기차 시장을 활성화하고 수송 분야에서의 탈탄소화를 이루는 현실적인 과제입니다.
지난 주말 각종 SNS와 단톡방마다 만개한 벚꽃 사진이 도배하다시피 했죠. 특히 올해는 들쭉날쭉 개화 시기로 애태웠던 만큼 완연한 봄날씨 속에 피어난 벚꽃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벚꽃 개화 시기를 제대로 예측하느냐 마느냐는 봄 정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 지자체마다 대표 축제로 내세워 상업화하다 보니 벚꽃 명소를 찾는 관광객, 재정을 투입해 행사를 관리하는 지자체, 관련 서비스 업종 등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릴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강원도 속초 등 일부 지자체에선 정확한 벚꽃 개화 시점을 맞추지 못해 축제를 두 차례 열어야 했죠.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이상 기상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수록 벚꽃 개화 시기도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벚꽃 명소에 심은 소메이요시노종, 접붙이기로 만든 동일 유전자" 그런데 벚꽃 개화와 관련해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벚꽃 개화 시기가 어떻게 달라지느냐 이게 최근의 관심사라면, 오랫동안 벚꽃나무를 식재하고 키워온 지자체나 양묘업체들에겐 다른 고민거리가 있었습니다. 일반 개인들이 한두 그루 사다 심는 게 아니라 지자체나 특정 단체에서 벚꽃 명소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 식재를 할 경우 개별 나무 개체들의 개화 시기를 어떻게 맞출 거냐 하는 점입니다. 이런 고민의 결과로 식물학적 과학기술이 동원됐는데요. 과수나무에서 많이 쓰여온, 이른바 클론묘를 만들어 보급하는 겁니다. 클론묘란 나무의 씨앗을 받아 발아시켜 새로 키우는 게 아니라 기존의 잘 자란 나무 개체에서 그 가지나 눈을 따다 또 다른 나무 밑둥(대목)에 접붙이기를 하는 방식입니다. 씨앗으로 자라나는 실생묘는 엄마 나무와 아빠 나무의 유전자를 나눠 가지면서 유전적 다양성을 갖게 되는데요. 클론묘 방식은 아빠 나무 없이 어미목의 단일한 유전자가 복제 증식되는 방식이라서 말 그대로 '클론', 즉 복제품과 같습니다. 이렇게 유전자가 동일하기 때문에 개체가 달라도 꽃이 피는 개화 시기가 가장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벚꽃 하면 특정 가로 구역 전체에서 동시 개화한 벚꽃 군락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이렇게 일제히 한순간에 피어나는 벚꽃의 특성은 자연적인 현상일뿐만 아니라 업계의 노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여의도 봄꽃축제 마지막 날인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대 모습 진해와 경주, 여의도 등 국내 벚꽃 명소로 알려진 상당수 지역의 벚꽃나무들이 이같은 클론 증식을 통해 증식돼 거의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나무들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국내 자생 왕벚나무 보급 운동을 펼치고 있는 왕벚프로젝트2050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조사한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대의 벚나무뿐 아니라 올봄에 조사한 경주 일원의 벚나무는 거의 대부분이 일본산 소메이요시노 벚나무로 동일하다고 밝혔습니다. 올봄에 조사한 경주의 경우를 보면, 보문호 둘레길, 불국사 벚꽃단지 등 9개소에 식재된 벚나무 5,576그루를 분석했더니 이 가운데 소메이요시노가 4,956그루로 89%를 차지했다는 겁니다. 신준환 왕벚프로젝트2050 회장은 "일본산 소메이요시노는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은 채 일본 내 특정 벚나무 한두 그루에서 교잡이 이뤄진 뒤 단일한 클론형이 만들어졌으며, 이후 유성생식이 아닌 무성생식의 클론 복제 방식으로 증식돼 왔다"고 말합니다. 이 말대로라면 여의도나 경주 등지에서 자라는 소메이요시노 왕벚나무는 거의 99% 유전자가 일치하는 클론형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벚꽃 철을 맞아 한 치 오차 없이 동시에 꽃을 피울 수 있는 셈이고요. 클론 왕벚나무, 병충해 취약 수명도 짧아 이렇게 동시에 피어나는 벚꽃 군락이 상춘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지만,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유전적 다양성이 없기 때문에 특정 병충해가 발생하면 일제히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 하나고요. 둘째는 자연산 씨앗 발아 개체 혹은 자연산 잡종 개체에 비해 수명이 짧다는 겁니다. 소메이요시노의 수명은 80~100년에 그치는 걸로 보는 반면 국내 자생 왕벚나무는 수백 년까지 사는 걸로 알려집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정은주 강원대 교수 논문에 따르면 "국내외에 조성된 유명 왕벚나무 가로수는 접목 생산 때 바이러스 검사를 거치지 않아 대부분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지적된 바 있습니다(E.J. Cheong et al. 2015). 총 344그루를 조사했는데 이 중 96%가 적어도 하나 이상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고 73%는 2~6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 산림청은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해도 왕벚나무 생육과 개화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걸로 알려졌다고 해명하긴 했지만, 당장은 피해가 없을지 몰라도 감염 상태가 오래 지속될 경우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특히 2010년대부터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곰팡이 포자에 의한 빗자루병이란 게 왕벚나무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빗자루병에 감염되면 호르몬 이상을 초래해 가지가 비대해지고 작은 가지들이 많이 자라나는 대신 꽃이 거의 피지 않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문제는 이 병원균의 생태 특성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방제법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겁니다. 빗자루병 확산은 기후변화의 연관성도 점쳐지고 있는데, 습도가 높거나 건조 현상이 지속되는 극단적 기상이변이 되풀이될 경우 둘 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습도가 높을 경우 곰팡이가 더 확산하기 쉽고, 건조한 날씨가 길어질 경우에도 곰팡이 포자가 멀리 날아갈 수 있어서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또 태풍이나 홍수로 인해 나무의 상처가 많아질 수 있는데 이같은 상처 자리에 병원균이 침입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일제히 동시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특성이 사라진다면 벚꽃이 상춘객에게 주는 감흥은 훨씬 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수명이 다한 왕벚나무를 갱신할 시점이 도래할 텐데, 그 자리에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할까요? 봄꽃맞이 인파에게 감흥을 선사하기 위해 소메이요시노의 클론형을 다시 심어야 할지 아니면 심화되는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고려해 유전적 다양성을 높일 수 있도록 소메이요시노가 아닌 다른 벚나무를 섞어 심어야 할까요? 아니면 아예 벚나무가 아닌 다른 종류를 함께 심어야 할까요? 여의도 벚꽃나무를 관리하는 영등포구청은 앞으로 소메이요시노 대신 제주왕벚나무를 심겠다는 계획입니다만 이 역시 접붙이기 방식으로 증식된 개체들을 심는다면 동일 유전자 문제는 마찬가지입니다. 수령 272년으로 추정되는 왕벚나무(제주 봉개동 개오름 남동쪽 해발 607m) 기후위기 시대를 헤쳐 나갈 해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선 할 수 있는 대응책은 있습니다. 현재 양묘업체들이 왕벚나무를 증식할 때 접목 모수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점검하도록 하는 방안이 그런 겁니다. 왜냐하면 앞서 소개한 정은주 교수의 논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교잡 재배된 왕벚(소메이요시노)과 달리 제주도의 야생종 벚나무 3그루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됐는데 이 3그루의 특이점은 교잡 재배종 벚나무와 인접해 있었다는 겁니다. 이와 달리 재배종과 인접하지 않은 채 고립된 위치에 있는 10그루의 야생 벚나무에선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게 뭘 뜻하는 걸까요? 무성생식으로 증식할 때 이미 원목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면 거기서 가지나 눈을 따왔을 때 증식된 클론본 역시 감염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클론으로 복제된 나무가 아닌 인근에 있는 야생종 벚나무는 품종이 다른데도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감염력이 높다는 걸 의미합니다. 야생 조건에서 바이러스가 옮겨지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사람이 인공적으로 클론을 만들어 증식하는 과정에서 감염된 어미 나무를 써서 병원균이 옮겨지는 건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문제로 보입니다. 참고문헌 E.J. Cheong et al (2015). EVALUATION OF THE STATUS OF THE VIRUS AND VIROID INFECTION IN FLOWERING CHERRY (PRUNUS YEDOENSIS) COLLECTIONS IN KOREA AND THE U.S..Journal of Plant Pathology 97(2), 155~160.
가정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매번 가져다 버리기 귀찮다는 이유로, 일명 '음식물 처리기'라는 제품이 쓰이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지난 1995년 사용이 금지됐다가 2013년 규제가 풀려 판매가 재개됐습니다. 현재 여러 방식의 제품들이 시판되고 있습니다. 주방 싱크대에 부착해 음식 찌꺼기를 곱게 갈아 그중 일부를 하수도로 흘려보내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싱크대와 상관없이 스탠딩형으로 만들어져 음식물을 건조시키는 전자제품 방식도 있습니다. 오늘 지구력에서 말씀드리려는 제품은 하수도와 연결되는 경우입니다. 하수도법상 명칭은 '주방용 오물분쇄기'입니다. 하수도법의 관리 규제를 받는 이유는 이 제품의 특성상 음식물 쓰레기 일부가 하수도를 타고 하천으로 흘러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질 관리 등 이유로 하수도법상 분쇄기 제품의 인증 절차를 둘 만큼 관리 규제가 까다롭습니다. 이 주방용 오물분쇄기가 하천 수질 오염의 원인으로 지목돼 수년째 불법 제품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에는 오물분쇄기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규정상 분쇄기를 쓰더라도 갈아낸 음식물 찌꺼기의 20% 미만만 하수도로 배출돼야 하며 나머지 80% 이상은 회수해 음식물 종량제 봉투에 버리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이럴 거면 굳이 돈 주고 설치해 쓸 이유가 있을까요? 음식물 쓰레기 80%는 종전대로 똑같이 종량제에 넣어 버려야 하는데요. 당초 제조된 제품은 장비 속에 거름망이 설치돼 있어 갈아낸 찌꺼기가 하수도로 배출되지 않도록 돼 있습니다만 실제 가정에 설치할 때는 이 거름망을 떼내고 설치해 주는 게 태반입니다. 하수도법을 위반한 불법 제품인 셈이죠. 이같은 지적이 나올 때마다 분쇄기 제조업체들은 제품 설치 역할을 맡는 개별 대리점에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본사는 적법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대리점들이 가정에 설치해 주면서 제품에 임의로 손을 댔다는 식입니다. 서울행정법원 "제조사 인증 취소 정당" 최근 서울행정법원이 이같은 분쟁에 대해 명확한 법적 판단을 내렸습니다. 대리점이 제품에 불법으로 손을 댔더라도 본사 역시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2022년으로 거슬러 갑니다. 환경부 산하 한국물기술인증원이란 곳이 있는데, 분쇄기 제품 인증 등을 책임지는 기관입니다. 이곳에서 모니터링한 결과 A사 제품이 인증받았을 때와는 달리 불법으로 손을 댄 채 설치 판매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인증원은 법에 따라 해당 제품에 대한 인증을 취소 처분했습니다. A사는 행정소송을 냈고 그 판결이 이번 주 언론에 기사화됐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판결문에서 "분쇄기 제품의 변조 행위가 원고의 영역과 책임 내에서 이뤄졌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제품의 대외적인 거래는 판매 대리점이 아니라 본사 명의로 이뤄졌고 판매 대리점은 제품의 설치만을 담당했다"는 겁니다. 또 "대리점이 민사상 책임과 하수도법 위반에 따른 형사상 책임까지 부담하면서 원고 모르게 제품을 임의로 변형한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운 점에 비춰 본사 역시 위와 같은 위반 행위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는 겁니다. 이번 판결로 인해 앞으로 대리점에 잘못을 떠넘겨 왔던 제조업체 본사의 책임 회피 관행은 더 이상 발붙이기 어려울 겁니다. 80만 대 팔린 오물 분쇄기, 환경성은? 하지만 이 판결로 분쇄기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건 아닙니다. 인증 취소로 신규 제품 판매는 막을 수 있지만 이미 판매돼 일선 가정에서 쓰이는 불법 제품은 사용을 중지시킬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기술인증원이 추정하는 국내 오물 분쇄기 누적 판매량은 80만 대나 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영업하는 업체들이 상당수 남아있다는 게 물기술인증원의 얘깁니다. 물기술인증원은 근본적으로 분쇄 회수 방식의 오물분쇄기 시스템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결함 있는 제품으로 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현 규정상 음식 찌꺼기 80%를 회수하도록 한 건 사실상 금지나 다름없기 때문에 제품 변조가 아니면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을 수가 없는 제품이란 겁니다. 물기술인증원은 1세대 분쇄기라 할 수 있는 '분쇄 회수' 방식뿐 아니라 2세대로 볼 수 있는 '미생물액상발효 소멸' 방식의 오물분쇄기 역시 상당수 모델이 논란거리가 많은 제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생물액상발효는 단순히 분쇄뿐만 아니라 미생물을 넣어 음식물을 발효시켜 분해하는 방식으로 찌꺼기를 없애준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생물 발효로 인해 단시간 내 음식물 분해가 얼마나 가능하겠냐는 게 인증원의 얘기입니다. 현재 인증 절차가 실제 미생물 분해 기능을 제대로 검증하기에 미비하다는 점도 부작용을 키웠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같은 허술한 인증제도가 부실 제품을 양산한 셈인 겁니다. 인증원 "인증 시험법 강화로 기존 모델 퇴출 가능성" 물기술인증원 측은 미생물액상발효식 제품에 대한 제품시험방법을 현재보다 훨씬 더 강화하도록 하수도법 고시 개정이 지난해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향후에는 종전보다 인증 탈락률이 크게 올라갈 걸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지난해 국회가 오물분쇄기 인증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바람에 올해는 인증 절차가 원천 중단된 상태라고 덧붙였습니다. 오물분쇄기 논란이 지속되자 국회 차원에서 신규 제품 시장 진입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인증 예산 삭감이 이뤄진 걸로 알려졌습니다. 예산 삭감이 반복되긴 어려울 테고요. 향후 예산 배정이 재개되면 강화된 고시에 따라 인증 절차가 이뤄질 것이라는 게 인증원 측 설명입니다. 현재 오물분쇄기 인증 유효기간은 3년입니다. 따라서 현재까지 판매됐던 모델이라도 3년 뒤 재인증에서 탈락하면 신규 판매는 어렵게 됩니다. 미생물 방식의 오물분쇄기가 새로운 인증시험방법 제도 아래서 옥석이 가려지게 될지 주목됩니다. 이제까지는 음식물 분해 기능이 기준에 못 미치는데도 인증을 통과했던 제품들이 걸러지게 되면 점차적으로 시장 퇴출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가정집에 기설치된 제품에 대해서는 규제가 어려운 한계점이 있습니다. 기존 1세대 방식 분쇄 회수식 제품 역시 혼선이 쉽게 사그라들지 의문입니다. 분쇄 회수식의 쟁점은 인증 절차라기보다 실제 판매 설치될 때 눈속임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일선 가정집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단속이 쉽지 않다는 게 인증원의 하소연입니다. 하지만 단속됐을 경우 업체에 대한 처벌 기준 상향 등 해결 의지가 있었다면 10년 동안의 논란을 단축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참고로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대선 후보 시절 당시 자원순환 공약 가운데는 "신축 건물에 분쇄기 설치해 음식물 쓰레기 배출 간편화"라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하수도로 흘려버리는 게 아니라 공동주택 단지 내 퇴비화 시설 등을 갖춰 자원화하겠다는 방침인데요. 환경부가 올해부터 본격적인 시범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사업이 시작되면 실제 현장을 찾아가 실효성 여부를 점검해 보겠습니다.
쿠팡, 지마켓, 쓱 등 온라인 쇼핑과 택배 배송이 생활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았죠. 거대 유통기업이었던 대형마트를 압도할 만큼 이커머스가 커진 지 오래입니다. 작년 기준 통신판매업 등록업체 수가 132만 개, 이들이 매일 숨가쁘게 전국을 오가며 배송하는 택배 수는 36억 개가 넘습니다. 하루 평균 1천만 개나 되는 엄청난 수준입니다. 쇼핑이 편리해진 만큼 부작용도 뒤따릅니다. 대표적인 게 환경 문제입니다. 택배 포장재에서 쏟아져 나오는 폐기물이 전체 생활폐기물의 9%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쓰레기 발생 부추기는 택배 포장 문제 때문에 2년 전 환경부가 내놓은 규제가 이른바 "빈 공간 50% 이하, 포장 횟수 1회"라는 제한입니다. 위반 시 최대 3백만 원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기업들의 준비 기간 마련을 위해 2년이 경과한 뒤인 2024년 4월 30일부터 시행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준비기간 동안 환경부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확정하지 못했고, 유통기업들의 반발에 밀려 결국 또다시 2년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종이컵과 빨대 문제 등 일회용품 규제가 수년간 뒷걸음질 치면서 환경부에 대한 불신이 어느 때보다 고조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택배 포장 '빈 공간 50% 이하' 맞추려면 유통업체들의 가장 큰 걱정은 '빈 공간 50% 이하' 규제에 맞추려면 수십 종의 다양한 포장 박스를 갖춰야 한단 겁니다. 새벽배송, 로켓배송 등 매일 시간과의 싸움을 치르는 이커머스들로선 박스 수가 이렇게 늘어날 경우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포장 작업 속도에 결정적인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겁니다. 업계 현실도 이해됩니다. 특히 쿠팡 등 대형 업체들의 경우 통신판매업과 통신판매중개업을 병행하는 구조입니다. 즉 상품을 직접 사들여서 자체 물류센터에서 보관하다 고객 주문에 따라 직접 포장 발송하는 이른바 직매입 영업이 있는가 하면, 오픈마켓 플랫폼만 열어준 뒤 개벌 셀러들이 고객 주문을 받아 자체 포장 배송하는 경우가 많죠. 이럴 경우 셀러들의 규모가 천차만별인데 소규모 업체일수록 '빈 공간 50%' 규제 대응이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제품의 부피와 포장 박스 부피 비교를 통해 50% 초과 여부를 판별해야 하는데, 제품 하나만 넣는 게 아니라 다양한 체적을 가진 제품을 여러 개 담는 경우가 흔한 만큼 다양한 조합의 부피 측정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포장 박스 크기 줄이고 또 줄이기 넘쳐나는 포장 폐기물 이슈가 수년간 계속되면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도 속속 이뤄지고 있습니다. 산업통상부 R&D 사업으로 진행된 '유통 포장 최적화 및 자동 설계 프로그램'이 그런 겁니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유통물류기술센터, 로젠소프트 등이 공동 수행했으며 지난 2월 과제가 종료된 뒤 현재 부처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R&D의 핵심은 포장 박스 크기와 여기에 넣을 여러 제품들 사이의 공간 최적화라는 함수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기존 유통이나 물류업체들은 CBM(Cubic Meter)라는 간이 기준을 갖고 이 문제에 대응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제품이 갖는 체적을 물의 부피로 단순화해 표시한다고 가정해 보죠. 아래 그림처럼 3개의 상품이 있을 경우 크기에 따라 체적 1단위, 3단위, 3단위라고 특정합니다. 둘째와 셋째는 물로 치면 똑같이 부피가 3단위로 계산됐지만 실제 생김새는 다릅니다. (얼마든지 이런 경우가 생기겠죠.) 이 3가지 상품 체적을 단순 합산하면 7단위가 됩니다. 이 7단위 체적을 담으려면 박스 체적이 7단위보다 더 커야겠죠. CBM에서는 제품과 박스의 체적을 물을 부었을 때 차지하는 부피로 계산했지만 실상은 물 붓기와는 다르니까요. 반드시 자투리 빈 공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정밀하게 계산하기 어려우니 제품 크기보다 대충 더 큰 사이즈에 박스에 담게 되는 겁니다. 업계에서는 제품 합산 체적이 박스 체적의 70%를 넘으면 한 단계 더 큰 박스를 사용하거나 두 번째 박스에 제품 하나만 달랑 넣고 배송하는 식입니다. 여기서 포장재 낭비가 발생합니다. 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 완성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서는 기존 단순화된 체적 계산을 3차원 치수 정보 기반 조합 방식으로 고도화했습니다. 박스 안에 제품 담기를 물 붓기로 단순화한 게 아니라 제품이 갖는 3차원 체적 정보를 실제로 적용해 박스 안에 담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 3차원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셈입니다. 여러 다양한 형태의 제품들은 어떻게 쌓을 때 전체 부피가 최소가 될 거냐는 함수를 수학적으로 푸는 거죠. 그리고 기존 사용해 온 규격화된 박스 크기 대신에 업체별로 딱 맞는 박스의 모양과 크기를 결정해 주는 시스템입니다. 박스 포장 테트리스, 시뮬레이션으로 풀면 과거 CBM 기준과 3차원 시뮬레이션 모델에 따를 경우 각각 실제 포장 작업 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아래 사진을 보시죠. 기존 방식(자사 박스)보다 최적화된 박스(추천 박스)에 효율적인 쌓기를 했을 때 박스의 크기는 더 작아지고 박스 내 빈 공간도 더 줄었습니다. 기존 CBM 기반 적입 시(자사 박스)와 3D 시뮬레이션 통한 적입 시(추천 박스) 빈 공간 예시 탄소 및 폐기물 감축하는 테트리스 기술 박스 속 물건 담기에 테트리스를 얼마나 잘하는가가 왜 중요할까요? 첫째, 불필요한 포장재 쓰레기 발생을 줄일 수 있습니다. 둘째, 박스 크기가 최소화되면 택배 차량에 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게 되고 그만큼 효율적인 배송이 가능해지니까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건 이렇게 테트리스를 잘하는 게 해당 기업의 경비 절감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부피를 최소화해 더 많은 짐을 배송할수록 경비 절감이 가능해지니까요. 환경성을 높일수록 기업에도 득이 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인 셈입니다. 더 나아가 배송용 포장의 자동화도 이같은 문제의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CJ 대한통운의 경우 자신들이 직접 풀필먼트하는 물량에 있어 포장 자동화 시스템을 4년 전에 갖춘 바 있습니다. 3D 스캐너를 통해 물품의 체적 정보를 입력한 뒤 가장 적절한 크기의 박스를 자동으로 선택해 포장한 뒤 테이핑과 라벨링까지 끝마치는 시스템입니다. 작업 속도도 상당한 속도로 끌어올린 걸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속도는 올라갔지만 여전히 빈 공간 비율을 50% 아래로 맞추는 데는 연구개발이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목표 수준까지 다다르려면 추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걸림돌이고요. 다른 문제점은 취급 상품의 크기나 형태가 비교적 유사할 경우엔 곧바로 적용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쿠팡 같은 경우 취급하는 상품이 수백만 종에 이르다 보니 제품의 형태, 사이즈도 천차만별이라 자동화 시스템 적용에 어려움이 큰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쿠팡이나 쓱 같은 대형 이커머스들은 냉장·냉동식품 배송에 다회용 보냉백 사용을 정규화하는 등 나름의 고심과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산업계로 확대해 보면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이고요. 정부의 규제는 물론 업계의 노력도 더욱 가속화돼야 이커머스 업계의 온실가스 및 폐기물 저감이 병행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이뤄질 수 있을 겁니다. ▶관련 기사 : "큰 박스에 물건 달랑 하나"…과대포장 규제 또 유예
앞으로 전기차 배터리와 ESS(전기저장장치) 등에 사용량이 급증할 걸로 보이는 리튬인산철(LFP) 2차 전지가 최근 관심이죠. 과거엔 성능 떨어지는 중국산 저가 배터리라는 인식이 컸지만 바로 그 저렴한 가격 덕분에 자동차 메이커들이 다시 찾고 있습니다. 10여 년 간 기술 개발로 화재 안전성과 수명 등에서도 강점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습니다. 현재로선 사용 후 폐기시 재활용 방안이 없어 환경성이 극히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중국에선 대책 없이 땅 속에 묻고 있다고 알려졌는데요, 국내 상황을 취재해 보니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내로 들어온 중국산 LFP 배터리 폐기 경로를 확인한 결과, 재활용되지 못한 채 매립되고 있는 실정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번 지구력에서는 LFP 배터리의 국내 폐기 실태를 따라가 봤습니다. 중국산 LFP 전기차 보조금 차별, 역풍은? 중국산 LFP배터리를 탑재한 기아의 경차 전기차 ‘레이 EV’ / 출처 : 공식 홈페이지 최근 LFP 배터리가 이슈화된 건 환경부의 올해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 탓이었습니다. 한국이 주도해 온 NCM 등 삼원계 배터리에 혜택을 주는 반면 중국산이 대부분인 LFP에 대해선 재활용 가치와 에너지 밀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줬습니다. 이런 차별적인 보조금 정책이 과연 우리나라에 득이냐 실이냐 논란거리입니다. 하지만 미국, 유럽도 마찬가지 상황이죠. 기후위기 및 친환경 대응이란 이유로 배터리와 전기차 산업에 대한 규제 장벽을 높이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자국 산업 보호라는 또 다른 속내를 숨기긴 어렵습니다. 해가 갈수록 우리 환경부도 차별적인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데요. 유럽과 미국이 먼저 시작한 빗장 걸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대응은 한계가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수출 의존도가 가장 큰 나라인 만큼 무역장벽화가 노골화될 경우 불이익은 우리가 가장 크게 입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올바른 대응은 뭘까요? LFP 배터리의 사용 후 환경성 문제 제기에 집중하는 게 무역 갈등을 줄이면서도 국익과 환경 가치를 모두 잡는, 가장 현명한 대응이라는 생각입니다. LFP 배터리 재활용의 경제성은? LFP 배터리의 환경성이 어떤지 기존 삼원계와 비교해서 살펴보죠. 삼원계에는 리튬, 코발트, 니켈 등 고가의 금속이 쓰여서 재활용시 경제성이 충분한 반면, LFP의 경우 소량의 리튬을 제외하면 주된 양극재 활물질인 인산, 철의 경우 경제성이 낮습니다. 배터리 재활용시 원가를 따져봤을 때 1KWh 당 18달러가 소요되는데 삼원계(NCA) 양극재 내 금속의 가치는 71달러(1KWh당), LFP 양극재의 경우 45달러(1KWh당)입니다. 둘 다 원가보다 금속 가치가 더 높은 거 같지만, LFP의 경우 지난해 급등한 가격이 반영돼 있어서 그렇지, 지난 2020년만 해도 11달러에 불과했다는 게 업계의 지적입니다.(2023, 김대기 SNE리서치 부사장, '배터리 리사이클링 데이' 콘퍼런스) 재활용 원가가 18달러인데 금속 가치가 11달러이니 시장 논리로는 경제성을 갖기 어렵다는 겁니다. 따라서 시장 메커니즘 만으로는 LFP 폐배터리의 재활용 순환은 어렵습니다. 사업자에 대한 의무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동원돼야 합니다. 부쩍 늘어난 LFP 국내 사용, 어디서 쓰나? 제가 확인해 보니 중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사용 후 LFP 배터리가 이미 폐기 처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2018년 경부터 중국산 전기버스 등을 통해 LFP 배터리가 국내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밖에도 건물에서 전기를 쓸 때 정전 발생시 보조 전원 역할을 하는 UPS나 캠핑 등 야외에서 보조 전원으로 쓰는 배터리에도 LFP가 쓰입니다. 킥보드나 오토바이 등 소형 모빌리티 등도 마찬가지고요. 현재 폐기되는 LFP 배터리는 주로 캠핑용과 건물용 UPS에서 배출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용 후 LFP 재활용 실태 확인에 앞서 현재 국내의 배터리 재활용 제도를 알아보죠. 배터리는 크게 1차와 2차로 나뉩니다. 가정용 1.5볼트 건전지처럼 1회용으로 쓰고 버리는 게 1차 전지고요. 휴대폰 배터리처럼 반복 재충전하는 게 2차 전지입니다. 대부분의 1,2차 전지는 생산자책임 재활용제, EPR이라는 제도상 적용 품목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가정용 건전지나 내연기관 자동차용 납축전지 등 말입니다. 이런 품목의 경우 생산자가 법으로 정해진 분량만큼 의무적으로 재활용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재활용을 대행하는 업체에 처리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이 같은 EPR 제도에 따라 일선 지자체가 주택가 재활용망이나 자동차 정비소를 통한 수거망을 통해 폐배터리를 수거한 뒤 전지 재활용 업체로 보냅니다. 자동차 정비소를 통한 납축전지는 거의 100% 재활용 업체로 수거되지만 가정용 건전지는 수거량이 생산량 대비 30%대에 불과합니다. 리튬 삼원계, LFP 배터리... EPR 품목서 제외 하지만 2차 전지 가운데 일부는 EPR 대상 품목에 아직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급속하게 늘어난 리튬 계열과(리튬이온, 리튬폴리머) LFP가 그렇습니다. 이럴 경우 국내에서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 어떤 재활용 경로를 거쳐 폐기되는지 공식적 통계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LFP 재활용 여부는 어떨까요? 일단 환경부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산 LFP 배터리 가운데 전지 재활용 업체로 수거된 양은 약 10톤입니다. 대부분 건물용 UPS나 캠핑용으로 쓰였던 LFP 폐배터리였습니다. EPR 비적용 대상인만큼 이 업체들도 LFP 폐배터리를 취급할 이유는 없지만 마땅한 폐기 경로가 없는 만큼 해당 업체로 모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규정이 없는 만큼 재활용 업계로 수거되지 않고 폐기 처리되는 물량도 상당한 규모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그중 일부인 10톤 가량이 수거됐더라도 재활용 시스템은 없습니다. 삼원계 배터리처럼 건식, 습식 등 제련을 통한 재추출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거량 일부는 매립 처리됐고 나머지는 재활용 업체 창고에 쌓여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재활용 업체로 수거되긴 했지만 실제 재활용이 이뤄지는 건 아니고 ‘폐기’에 그치는 겁니다. “2026년 전기차 배터리 절반, LFP 차지” 앞으로 문제점은 LFP 배터리 활용량이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르면 내년 하반기에 전기차용 LFP 제품 양산을 목표로 할 뿐만 아니라 이미 지난해엔 유럽에서 LFP 기반의 가정용 ESS를 출시한 상황입니다. 삼성SDI도 2026년 ESS용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잡았고요. SK온도 지난해 국내 배터리 3사 중 처음으로 전기차용 LFP 시제품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전망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LFP 제품(망간이 추가된 LMFP 포함)이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41%를 차지하고 2026년엔 47%로 늘어날 거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유안타증권리서치, 파고들다 자료 중) 이럴 경우 수년 후부터는 쏟아져 나올 LFP 폐배터리 처리 문제가 심각한 환경문제로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부도 "LFP 배터리는 재활용성과 유가성(재활용 시 경제성)이 낮아 환경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 내년 연구용역 등을 통해 관리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지난해 연말 밝힌 바 있습니다. 기존 폐배터리와 마찬가지로 EPR 적용 등의 환경성보장제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LFP 폐배터리의 재활용 방안이 만들어진다면 전기차 보조금 재설계시 LFP 배터리 차량에 대한 불이익을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겁니다. 유럽 미국 중국 등 자동차 교역국과의 보조금 갈등도 해소할 길이 열리는 셈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존 삼원계 배터리 한쪽에만 쏠려있는 우리 2차전지 산업의 영역 확대는 물론 LFP를 쓰는 국내 보급형 전기차 업계에도 활로를 열어준다는 부대 효과도 기대됩니다.
지난번 지구력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국가배상 책임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어떤 증거들이 새롭게 드러났는지 소개 분석해 드렸었죠. 이 재판에 대한 판결이 지난 2월 6일 나왔습니다. 1심 때 국가책임이 전혀 인정되지 않았던데 비해 항소심에선 1심 결과를 뒤집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습니다.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는 말이죠. 가습기 살균제를 둘러싼 국가 책임을 묻는 여러 소송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국가 책임 인정 판결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결 당일 8시 뉴스 리포트를 통해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 참고 기사 : “같은 원료..옥시 소송ㆍ구제 기금 전환점” ) 이번 지구력에서는 판결의 핵심 내용을 좀 더 세밀하게 따져보려고 합니다. 판결 당일 재판부는 판결문 내용이 길어 언론들이 제대로 판결 내용을 숙지하기 어렵다고 봤는지, 판결 결론을 요약 정리한 보도자료를 내놓았습니다. 해당 보도자료에서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만들어 파는 과정에서 제조 수입사가 원료물질에 대한 유해성 신청 당시 환경부가 심사 및 심사결과 공표 과정에서 재량권 행사 정도를 넘어서 합리성을 잃었다는 점을 핵심 내용으로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앞으로 비슷한 가습기 살균제 국가 책임 소송과 관련해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국가가 잘못했다는 건지, 판결문의 구조와 구성 논리를 상세히 뜯어보고자 합니다. 가습기살균제 국가책임 인정, 재판부 생각은? 전체 38쪽 분량의 판결문은 크게 나눠 ‘주문’,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이유’ 등 3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중 핵심 내용인 ‘이유’ 부분은 1. 이 법원의 심판대상, 2. 기초사실, 3. 국가배상책임의 발생, 4. 국가배상책임의 범위 이렇게 4개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전체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이 법원의 심판대상 2. 기초사실 가. 당사자들의 지위 나. PHMG와 PGH에 대한 각 유해성 심사 1) PHMG에 대한 유해성 심사 2) PGH에 대한 유해성 심사 다. 원고들의 이 사건 가습기살균제 사용 및 원인 미상 폐손상 발생 라.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등 마. PHMG와 PGH에 대한 각 유해성 재심사 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의 제정 시행 및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등 3. 국가배상책임의 발생 가. 원고들의 주장 요지 나. 관련 법령 다. 판단 1) 관련 법리 2)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가) 의약외품 범위 지정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나) 신속한 역학조사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다) 안전관리 대상 품목 지정 등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라) PHMG와 PGH의 유해성심사 관련 등 주장에 대한 판단 4. 국가배상책임의 범위 가. 당사자들의 주장 나. 관련 법리 다. 인정사실 라. 판단 1) 손익상계의 대상 등 2) 구체적 판단 마. 소결론 5. 결론 국가책임 4개 쟁점 중 인정된 건 ‘유해성 심사’ 1,2 항목에서 재판부는 원,피고 양측 주장을 정리해 가습기살균제 사태의 경과를 중심으로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정리해 놨습니다. 1,2 항목은 건너뛰고요, 가장 핵심적인 항목인 3. 국가배상책임의 발생 부분으로 가보겠습니다. 3번 중에서도 2) 국가배상책임의 성립 부분의 가)~라)까지가 핵심중의 핵심입니다. 재판부는 국가 책임 관련 쟁점을 크게 4가지로 압축해서 설명합니다. 이 가운데 가), 나), 다) 3가지 항목은 원고들의 주장을 기각합니다. 피고 대한민국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이와 달리 라) 항목에 있어 원고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온 겁니다. 기각되거나 인용된 각각의 항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 국가책임 '기각'된 건? 가) 의약외품 범위 지정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나) 신속한 역학조사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다) 안전관리 대상 품목 지정 등 관련 주장에 대한 판단 - 국가책임 '인용'된 건? 라) PHMG와 PGH의 유해성심사 관련 등 주장에 대한 판단 어떻게 국가책임을 인정한 건지 따져보는 글인 만큼 라) 항목을 집중해서 뜯어보겠습니다. 이 항목은 가습기살균제 최초 제조 당시 ‘유해성 심사’ 쟁점이고요. 1,2심 내내 원,피고간 가장 핵심적인 다툼이 됐던 사안입니다. 지난번 지구력에서 설명드렸듯이 유해성 심사와 관련해서 2심 다툼 과정에서는 1심 때와 달리 원고 측의 많은 추가 증거들이 보강됐습니다. 1심 소 제기가 2014년에 이뤄졌고 기각 판결이 2016년 11월에 나왔습니다. 이때까지 국가 책임을 드러낼 상세한 자료들이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 증거가 부족했습니다. 실제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 측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대부분 보도자료나 당시 언론 기사에 그칠 뿐이라는 지적을 수차례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비해 2심 진행 도중에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에 따라 특별조사위원회란 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사참위가 조사한 결과 환경부 내부 문건과 검찰 수사 당시 관련자 진술 등이 확보되면서 국가책임을 드러낸 관련 자료들이 많이 발굴됐습니다. 이제 다시 라)로 돌아가보죠. 라) 첫 문단에서 재판부는 두 가지 항목으로(①,②) 나눠서 국가 책임을 묻습니다. ①에선 업체 측이 유해성 심사 당시 신청서에 기재한 용도(PHMG: 카펫항균제, PGH: 섬유제품, 음식물포장재, 농업 살균 제품에 첨가되는 항균제)로 사용되는 것을 전제로 심사했더라도, 그 결과를 대중에게 고시할 때에는 위와 같이 특정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조건으로 심사했음을 알 수 있는 아무런 기재 없이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만 기재하고 이를 10년간 방치했다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②에선 PHMG에 대해 추가로 판단을 내립니다. 불충분한 과학지식에 근거해 고분자 물질이라는 이유만으로 독성시험을 면제하면서 물에 잘 녹는지 여부 등도 확인하지 않은 채 용도 제한 없이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공표한 건 유해성 심사가 환경부 재량에 맡겨져 있더라도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위법하며, 소속 공무원의 과실도 인정된다는 겁니다. 조금 어려우신가요. 아래에서 좀 더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재판부는 이어서 (1)~(9)까지 번호를 달아 구체적인 판시를 하는데요. 이렇습니다. (1)항은 당시 관련 법령인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화학물질 규제는 고도로 전문적이고 기술적 내용이 많아 유해성심사 제도 전반에 환경부 장관 등에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했다고 지적합니다. 유해성 검사 신청자에게 필요한 기타 관계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명할 수 있다(제8조 제2항), 심사 마친 후 그 결과 고시하는 방법은 모두 환경부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다(제8조 3항, 제10조) 이런 게 재량권이라는 겁니다. (2)항은 한 발 더 들어가 위 법령에 따른 유해성심사 제도를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이 제도의 틀을 종합해 보면) 유해성심사 신청서에 기재된 용도로 한정하지 않고 누구든지 그 물질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전제로 유해성을 파악한 다음 이를 고려해 유해성을 판단 고시했어야 한다고 설시 합니다. 또는 현실적인 문제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최소한 심사결과를 고시할 때, 특정 용도를 전제로 유해성심사가 이뤄진 것임을 명시함으로써 다른 용도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아무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다른 용도로 제조 수입하려는 자는 추가로 유해성심사를 받도록 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PGH 유해성 심사, 재판부 판단은? (3)항은 이번 소송 대상인 세퓨 가습기살균제의 주요 원료 물질인 PGH 유해성 심사에 대해 판단을 내립니다. 당시 이 물질은 섬유제품, 음식물 포장재, 농업 용 살균제 등에 소량만이 첨가되는 걸 전제로 심사했고, 다른 용도나 최종제품에 다량 첨가되는 경우는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재판부는 밝힙니다. 그런데도 PGH가 유독물이 아니라고 일반화하여 공표함으로써, 마치 국가가 PGH 물질 자체의 안전성을 보장한 것과 같은 외관이 형성됐다고 지적합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불충분한 심사와 성급한 고시 발표 등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의 목적 등에 비춰 보면 현저히 합리성을 잃어 위법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합니다. (4)항에서 재판부는 (3)항에서 밝힌 불충분한 심사와 성급한 고시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제조사인 세퓨 대표의 진술 등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세퓨 대표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 조사시 "심사 결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와서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을 했다"라는 겁니다. 자신으로선 제품 판매시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주장인 거죠. 판결문은 "불충분한 유해성 심사결과를 고시함으로써 그 안전성을 보장한 것과 같은 오인을 유발"했다고 지적합니다. (5)항에서는 이에 대한 환경부 측 항변과 이에 대한 재판부 판단이 나옵니다. 환경부는 사용 용도를 제한해 심사결과를 고시하거나, 심사 이후 다른 용도로 사용시 신고하도록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구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유해성심사 방법, 심사결과 고시 방법 등에 대해 환경부 장관에서 상당한 재량을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해당 법에는 특정 용도하에서 사용되는 것을 전제로 판단해야 한다는 등 심사 방법에 관한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는 겁니다. 재량권에 따라 심사가 이뤄진다는 거죠. 그런데도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신청서 기재 용도를 전제로 심사할 재량이 있었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용도를 병기하는 등 심사 내용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방법으로 고시할 재량권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별도의 사례를 제시합니다. 1992년 이뤄진 또 다른 화학물질의(헥사클로로) 유해성 심사 이후 고시를 보면, '유독물에 해당 안됨. 페인트 제조용에 한해 사용할 것' 이렇게 스스로 용도를 제한하는 내용을 병기한 적도 있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또 하나의 판단도 내놓습니다. 환경부 주장대로 용도를 제한해 심사 결과를 고시할 권한이 없었다면 이에 맞춰서 심사 과정에서도 당해 화학물질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것을 전제로 자료 제출 권한을 행사하는 등의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유해성 심사시 환경부 잘못과 관련해 (5)항에서 법리적 판단에 그친 반면 (6)항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근거를 재판부가 제시합니다. (사참위 특별조사위원회가 발굴해 2심 때 제출된 증거물입니다.) 당시 법에 따라 화학물질 유해성심사를 위해 화학물질심사단을 설치했는데 이 심사단의 회의록이 증거로 제시됩니다. 1992년 심사단 8차 회의록을 보니 심사단장이 '용도상 유독물에 해당되지 않으며 용도를 제한하는 조건을 부여하며 용도가 다를 경우에는 재심의받도록 해야 함'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으며 심사단 전원이 동의했다는 겁니다. 비슷한 내용의 회의록 여러 건이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재판부는 이렇게 밝힙니다. “환경부 장관 등은 (3)항에서처럼 (불충분하게 심사해 성급히 고시할 경우) 유해 화학물질이 안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유통 사용됨으로써 국민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위험’ 양이온성 물질, 독성시험 면제? (7)항은 PHMG 물질의 유해성 심사로 넘어갑니다. 세퓨는 2008년~2010년 초까지는 PGH를 사용하다가 2010년 가을 이후에는 PGH와 PHMG를 섞어서 원료로 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사참위의 화학물질심사단 관련 문건을 통해 1심 때는 없었던 새로운 증거가 제시돼 영향을 미쳤습니다. PHMG가 유해성심사를 통과한 건 당시 시행 중이던 환경부 고시상 고분자 물질에 대해서는 독성시험 자료제출을 면제받도록 한 간이심사 제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PHMG와 PGH 모두 고분자 화합물입니다. 이 물질은 분자량이 많기 때문에 세포 내로 침투가 어렵고 물에 잘 녹지 않기 때문에 독성이 비교적 안전하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PHMG/PGH는 그냥 고분자 물질이 아닙니다. '양이온성'이라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진 고분자 화합물입니다. 이 양이온성 물질이란 건 세포막의 음이온성과 만나 결합하기 쉬운 데다 물에 잘 녹는 특성이 있어서 독성이 아주 우려되는 물질입니다. 재판부는 (7)항에서 양이온성 고분자 화합물의 위험성에 대해 예측할 수 있었다고 밝힙니다. 1993년경 화학물질심사단 논의에서 양이온성의 수용성 물질은 유독물 기준에 해당돼 심사숙고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됐다는 겁니다. 또 미국과 일본 역시 고분자물질에 대해 유해성 심사 면제시 양이온성에 대해서는 면제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당시 "환경부는 PHMG에 대한 유해성 판단을 위해 독성 평가가 필요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측할 수도 있었다고 판단된다"는 겁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판결문의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 정리해 본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내용이 길고 복잡한가요. 그럼 마지막으로 단 3가지로 최대한 축약해 보겠습니다. 이것만 보면 국가책임이 왜 인정된 건지 알 수 있도록 말이죠. “첫째,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심사 및 공표 방식에 있어 환경부의 재량권이 있었는데 이를 합리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 심사 의뢰받은 용도로만 제한해서 사용을 허가하거나, 아니면 다양한 용도를 감안해 추가로 독성시험 등을 요구했어야 했는데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둘째, 가습기 원료 물질을 최초로 심사하기 4년 전인 1992년에 또 다른 화학물질 심사시 환경부가 스스로 용도를 제한해 사용을 허가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용도를 제한해 심사할 수 없었다는 환경부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같은 92년에는 환경부 화학물질심사단에서 이런 논의도 있었다. 화학물질 심사시 용도 제한 조건을 부여해야 하며 타용도로 쓸 경우 재심사받도록 해야 한다는 데 위원 간 만장일치가 있었다. 셋째, 일반적으로 안전한 고분자 화합물과 달리 ‘양이온성’ 고분자 화합물은 위험성이 높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독성시험 면제해 준 건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심사였다.” 이렇게 해서 법원이 가습기살균제 참사 발생에 대한 국가의 잘못을 어떻게 판단 내렸는지 상세히 따져봤습니다. 이번 소송은 유해성 심사 관련 환경부의 책임을 따지는 재판입니다만 그간 드러난 정부 대응의 문제점은 비단 환경부뿐이 아니었습니다. 피해자들은 공정위와 질병청 등에 대해서도 사태 해결을 가로막은 책임이 크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화학물질로 인한 환경 재앙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국가기관의 책임을 가리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가운데 환경부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판결문을 검토한 뒤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진정한 사태 해결을 위한 올바른 환경부 대응이 무엇일지 고민과 반성이 필요합니다. 지난날의 과오와 책임 면피를 위해 피해자들의 고통 연장을 담보로 하는 결정이 내려지지 않길 바랍니다.
지난 1월 11일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형사 공판 판결에서 CMIT/MIT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의 인체 질환 인과관계가 확인되면서 옥시, SK케미칼, 애경 산업 등 참사에 연관된 주요 기업들의 책임이 어느 정도 드러났습니다. 반면 아직도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국가가 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입니다. 국가 배상 책임을 묻는 손배소 청구가 여러 건 있었습니다만, 모두 1심에서 패소 판결이 났습니다. 이와 관련 지난 25일엔 가습기살균제 세퓨 사용 피해자들이 항소한 국가배상 책임 소송의 2심 판결이 예정돼 있었는데, 판결 당일 재판부가 항소심 선고를 2월 6일로 2주 연기하는 이례적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번 지구력에서는, 1심 재판부가 국가 책임 면죄부를 줬던 배경과 2심 재판 과정에서 새로 드러난 관련 증거들을 통해 항소심 선고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취재 분석해 봤습니다. 결론적으로는 1심에서보다 월등하게 많은 증거들이 수집됐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하나 설명해 보죠. 가습기살균제 국가 책임, 1심 때는 어땠나? 먼저 1심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국가책임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원료 성분(PGH)에 대한 유해성 심사시 환경부는 이 물질의 배출 경로가 '스프레이, 에어로졸 제품 등에 첨가'라고 명시돼 제품이 분사하는 형태로 사용될 것을 알았으면서도 흡입독성 시험 실시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 2001년 옥시가 가습기당번의 원료물질을 PHMG로 변경할 때에도 새로운 용도에 따른 흡입 독성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으며, PGH 역시 최초 보존제로 허가받았으나 이후 가습기살균제용으로 사용해 허가 당시 용도와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됐음에도 이를 규제하지 않았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이밖에도 원인 미상 폐질환 발생 이후 신속한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영유아 사망을 방치했다는 점 등도 있지만, 관건은 최초 제품 출시했을 때 원인이 된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시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피해자 측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재판부의 첫째와 둘째 기각 사유는 국가 배상 책임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사유 : “원고들이 제출한 대부분 증거는 신문기사이거나 보도자료로 구체적으로 원고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 둘째 사유 : “2016.3부터 세퓨 등에 대한 수사결과를 예의주시하며 국가배상책임 관련 자료를 제출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재판 막바지까지) 국가책임에 관해 어떤 조사가 진행되는지를 알지 못해 결국 추가적인 증거조사 없이 (재판이) 종결됐다.” “주의 의무 소홀히 한 국가 과실, 인정 어려워” 쟁점이 됐던 최초 제품 출시 때 유해성 심사와 관련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시했습니다. “지난 2003년 환경부 환경과학원이 PGH에 대해 유해성 심사를 한 결과 급성경구 독성이 낮고 피부와 눈에 자극성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도 아니며 돌연변이 유발 물질도 아니어서 유독물 또는 관찰 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정을 했는데, 이는 당시 유해물질의 정의나 기준 등에 비춰 피고 대한민국이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공산품안전법에 의하면 가습기살균제는 '세정제'로 판매될 경우에는 자율안전확인대상 공산품에 해당해 그 제조업자 및 수입업자가 해당 공산품이 안전기준에 적합한 것임을 스스로 확인한 후 신고하도록 돼 있으나, '살균제'로 판매될 경우에는 자율안전확인 및 신고의무를 제조업자에게 강제할 근거가 없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공산품안전법에 따라 신고되지 않은 가습기살균제의 성분 및 그 유해성을 화인해야 할 의무나 이를 확인할 제도적 수단이 없었다.” 당시 재판부는 또 다른 피고였던 가습기살균제 세퓨 측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즉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 세퓨 제품과 관련해서 피해 발생은 업체의 책임일 뿐 정부 잘못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인 셈입니다. 세퓨뿐 아니라 여러 건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 관련 국가책임 소송에서 이 같은 논리로 국가 책임이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1심 판결이 난 게 2016년 11월이었습니다. 하지만 2년 뒤인 2018년 3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고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조사 대상이 됐죠. 3년 9개월간 각종 조사활동을 벌인 뒤 2022년 9월 ‘가습기 살균제 참사 종합 보고서’란 이름의 결과물을 내놓게 됩니다. 국가 책임 항소심에서 새로 드러난 증거는? 항소심에서 피해자들은 사참위의 조사 결과를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사참위의 주요 조사 대상도 국가 배상 책임 소송과 마찬가지로 최초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 유해성 심사 당시에 초점이 맞춰졌는데요. 당시 조사에서 어떤 사실들이 새롭게 밝혀졌을까요? 이에 앞서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 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화학 물질 가운데 분자량이 많은 고분자 물질은 분자량이 커 생체막을 잘 뚫지 못하고 물에 잘 녹지도 않습니다. 그런 만큼 인체에 해를 입힐 가능성이 적다는 말이죠. 지난 1991년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규제하는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이 첫 시행됐을 당시에는 고분자 물질을 포함한 모든 물질의 독성 자료 제출 의무가 있었지만, 이듬해 본법 아래 고시가 개정되면서 고분자 물질에 대해선 독성시험 자료 제출을 면제하고 그 대신 물성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간이심사 제도가 마련됩니다.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인 PHMG나 PGH가 바로 이런 고분자 화합물입니다. 하지만 고분자 물질이라고 해서 다 안전한 게 아니었습니다. 고분자 화합물이더라도 양전하 성질을 띄는 양이온성 화합물은 안정적인 성격의 일반 고분자 화합물과 달리 물에 잘 녹고 음이온 상태인 세포막에 쉽게 달라붙어 세포막을 무력화시키는 특성이 있고 이 때문에 위험성이 큽니다. 바로 이 같은 문제 때문에 1992년 고분자 화합물 간이심사 도입 당시에도 논란이 됐습니다. 미국 일본 사례를 검토했더니 양이온성 물질에 대해서는 유해성 심사시 독성자료 제출 면제 대상에서 예외로 한다는 겁니다. 환경부는 당시 일본 전문가를 초청해 자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바로 PHMG와 PGH가 고분자 화합물 가운데도 유독 양전하성이 강력한 대표적인 양이온성 고분자 화합물입니다. 그런데 왜 1992년 모든 고분자 물질의 독성시험을 면제해 주는 무리한 규제 완화가 이뤄졌을까요? 사회적 참사 특조위에서 진술한 환경부 공무원과 화학물질심사단 심사위원에 따르면, 미국 등 몇몇 국가들이 한국으로의 화학물질 수출시 독성시험 절차가 까다롭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항의를 해왔고 이 때문에 면제 조항이 생겼다는 겁니다. “1997년 양이온성 고분자 심사 규정 신설됐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 완화가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1997년 양이온성 고분자 화합물에 대한 별도의 심사 관리 규정이 신설돼 어류독성 등 환경생태 독성시험 성적서를 추가로 제출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됩니다. 또 1998년에는 관련 고시가 개정돼 양이온성 고분자 화합물이 "고분자 화합물로서 환경생태 독성이 우려되는 물질"로 명시됩니다. 다시 이번 소송 대상 제품인 세퓨 가습기살균제로 돌아가 보죠. 세퓨에는 애초 덴마크 기업 케톡스로부터 수입한 PGH 물질(제품명 아그로셉트)이 쓰였다가 원료 수입이 차질을 빚게 되자 국내 SK케미칼이 만든 PHMG 물질을 원료로 썼습니다. PHMG는 SK의 전신인 유공이 1996년 정부에 유해성 심사를 신청해 통과됐고, PGH는 또 다른 기업 선플러스가 2003년 유해성 심사 신청을 내 통과됐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양이온성 고분자 화합물에 대한 간이심사 도입과 변경 등과 같은 사실들은 세퓨 소송 1심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증거들입니다. 1심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밝혔듯 당시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었던 만큼 유해성 심사 과정이 드러나지 않았던 데 비해, 2018년부터 시작된 사참위의 조사를 통해 유해성 심사 과정의 전모가 드러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2003년 PGH의 유해성 심사 통과는 국가책임 방기의 가장 핵심적 증거라는 게 피해자 측 변호인단의 주장입니다. 1997년에 강화됐는데 2003년에 왜 미적용? 원고 변호인 측은 양이온성 고분자 화합물에 대한 독성 시험 자료 제출은 위에서 언급한 1997년과 1998년의 규제 강화로 인해 당연히 심사에 포함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003년 선플러스가 PGH 유해성 심사 신청시, PGH 배출 경로에 대해 “제품에 첨가(스프레이 또는 에어로졸 제품)” “세탁시 하수로 배출 등”으로 신고됐습니다. 즉 스프레이나 에어로졸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노출 경로가 흡입 독성이 우려될 개연성이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2003년 환경부 화학물질심사단은 PGH 유해성 심사 당시 환경생태 독성과 흡입독성 위험에 관한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심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화학물질심사단의 심사위원은 사참위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PGH 유해성 심사시 일반 소비자들은 이미 PGH가 처리된 제품에 노출이 되기 때문에 용도상으로 주로 노출되는 것이 아닌 것으로 판단을 했던 겁니다. 예를 들어 주로 노출이 되는 경우는 가정에서 집에서 방향제처럼 뿌리거나 얼굴에 바르면 주 노출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PGH는 제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스프레이나 에어졸 형식으로 항균 처리를 하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주 노출이라고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양이온성 물질은 ‘유독물’ 지정했는데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참위 조사에 따르면 고분자 물질 간이심사 제도가 운영됐던 기간 중에도(1992~1997년) 화학물질심사단이 다른 양이온성 고분자 물질을 심사하면서 PHMG/PGH 심사 때와는 달리 안전성 기준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유독물로 지정했던 사례도 드러났습니다. 화학물질심사단은 1993년 7월 16차 회의에서 "폐수처리시 여과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첨가되는 응집제로 사용될 고분자" 물질의 유해성을 심사하면서, 이것이 양이온성 고분자 물질이며 하천 같은 수계에 흘러 들어가면 유해할 수 있으므로 사용자가 주의를 기울여 사용해야 하는 물질이라고 판단해 유독물로 지정했다는 겁니다. 저분자량 27% 넘는 화합물인데 안정적? 이 밖에 PHMG/PGH 물질 안전성에 대한 또 다른 쟁점도 항소심에서 새롭게 부각된 사안입니다. PHMG 심사 때 유공은 당시 제조 신고서에서 해당 물질의 저분자 화합물 함량을 27.4%라고 밝혔습니다. 즉 안전성을 알 수 없는 저분자 화합물을 상당량 포함한 물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당시 유해물질 심사 기준으로 참조하던 미국에서는 분자량 1000 이하 저분자 화합물의 함량이 25%를 넘으면 위험 우려가 있는 유해성 물질로 간주해 독성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심사의 부실함이 드러난 대목이라는 게 변호인 입장입니다. 항소심 과정에서 새롭게 추가된 증거들로 인해 1심 때와는 달리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의 도입 및 유해성 심사과정에 대한 아주 상세한 정황들이 드러났다는 건 사실로 보입니다. 이렇게 드러난 사실들을 통해 국가의 법적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는 재판부가 판단할 몫입니다. 2월 6일 판결이 나오면 다시 지구력을 통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비현실적일 만큼 짙은 청록색으로 물든 하천 사진이 최근 화제가 됐죠. 경기도 화성의 관리천이란 하천인데요. 하천 오염사고가 난 건 인근의 유해 화학물질 보관 물류업체 창고 화재에서 비롯됐습니다. 불을 끄느라 소방대가 출동해 엄청난 양의 물을 뿌려 간신히 화재를 진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보관 중이던 유해 화학물질이 소방수와 합쳐지면서 인근 우수관을 타고 근처 하천인 관리천으로 흘러든 겁니다. 하천에 쏟아진 화학물질, 소방수 사용에 책임? 재발 방지 차원에서 이 사고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소방대로서는 조기에 불길을 잡기 위해 대량의 소방수를 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설명입니다. 화학물질 보관창고가 불이 난 건물 외에도 11동이나 있었기 때문에 옆동 건물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소방수를 많이 쓸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화재 확산 시 피해를 감안하면 소방수 사용을 문제로 보는 건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짚는 셈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가 처음은 아닙니다. 그래서 대형 산업단지나 공업지역의 경우 대안이 만들어졌습니다. 완충 저류시설이란 겁니다. 산업 단지 지하에 대규모 빈 공간을 만들어서 유사시 화학물질은 물론 화재 대응 시 대량의 소방수 용량까지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가둬두는 시설을 설치하는 겁니다. 우천 시 빗물 용량도 감안하고요. (물론 이마저도 제대로 시행되진 않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부터 개정된 법이 시행됐지만 전국 적용대상 152곳 중 이제까지 28곳만 저류시설이 만들어졌습니다.) 화학사고 대응 완충 저류시설, 중소 업체엔? 하지만 이번 사고가 난 화성시 화학물질 보관창고는 산업단지나 공업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완충저류시설 의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대책이 전무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저류시설처럼 큰 공간은 아니지만, 화학물질 유출을 대비한 집수정이라는 시설이 의무화돼 있긴 합니다. 해당 업체도 집수정은 설치돼 있었고요. 하지만 이 집수정의 용량은 해당 업체가 사용하는 화학물질 규모에 맞춰져 있을 뿐, 이번 사고처럼 화재로 인한 소방수 용량 같은 건 전혀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업체에도 완충 저류시설을 세우도록 강제해야 할까요? 화학물질 안전공학 전문가들에게 문의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입니다. 저류시설은 그 규모상 큰돈이 들기 때문에 여러 업체들이 모여있는 산업단지에서도 설치율이 20%에도 못 미치는 형편입니다. 이런 상황에 산단 밖 개별 업체에 완충 저류시설을 의무화한다는 건 규제를 위한 규제에 그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위험 물질을 사용하는 사업장의 입지 문제를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과연 해당 업체가 위치한 장소가 위험 물질로 인한 사고 발생 시 추가 피해를 부를 지형적 특성이 있는 곳이 아닌지 사전에 충분히 검토돼야 한다는 겁니다. 하천 옆 고지대에 왜 유해물질 업체가 들어섰나? 실제 해당업체 현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과연 이런 입지가 적당한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해당 주소지가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인데, 업체 바로 뒤에는 명봉산이라는 해발 137미터 야산이 있는 곳입니다. 산중턱을 깎아 만든 터에 보관창고가 위치한 겁니다. 따라서 보관창고 아래로 상당한 경사도를 가진 경사면이 있고, 이 경사면 제일 아래에는 관리천으로 연결되는 지천이 있습니다. 해당 창고와 지천까지 거리는 370미터 정도였습니다. 구글 어스를 통해 확인해 보니 두 지점 고도차는 30미터로 나타났습니다. 해당 업체의 해발고도가 52.25미터였고, 지천이 위치한 지점은 21.34미터로 나타났습니다. 경사도로 치면 4.6도가 넘는 정도입니다. 상당히 가파른 경사인 만큼 이번과 같은 화학 사고가 발생할 경우 소방수가 빠르게 지천으로 쏟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 지천은 관리천이라는 하천으로 연결되고, 관리천은 국가하천인 진위천으로 다시 이어집니다. 순식간에 이 지역 주요 하천을 유독 화학물질로 오염시킬 수 있는 겁니다. 한강유역환경청은 왜 인허가 내줬나 왜 이 같은 자리에 위험 화학물질 보관 업체의 인허가가 나게 됐을까요? 인허가 과정을 따져봤습니다. 우선 해당 인허가권자는 환경부 산하의 한강유역환경청입니다. 하지만 한강청 단독으로 인허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화성시와 화성 소방서 등 관련 기관에 신청 내용을 보낸 뒤 관련된 법령 등에 위반되는 게 없는지 등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협의를 요청하는 방식입니다. 인허가 신청을 받은 시점은 2018년 11월의 일입니다. 구체적인 실무는 환경부 산하 또 다른 기관인 화학물질 안전원에서 담당했습니다. 안전원은 이 가운데 '입지 적정성' 부분은 지자체인 화성시에 타법 검토를 의뢰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화성시는 협의 요청 기한이 지나도록 아무 의견을 보내지 않았다는 게 한강청의 설명입니다. 화성시는 왜 그랬을까요. 화성시에 문의했더니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당시 안전원이 보낸 협의 요청서에는 기한 내 화신이 없는 경우 관계 법령에 저촉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명시돼 있었다는 겁니다. 화성시 측은 이렇게 밝혔습니다. "사실상 해당 업체의 입주에 대해서 '동의'하는 입장이었던 만큼 굳이 협의 요청에 대한 답신을 하지 않았다. 의견이 없을 경우 '적합'으로 간주한다는 한강청의 지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한 지나도록 답신하지 않은 화성시 2019년 9월 한강청은 해당 업체에 대해 '유해화학물질 보관업' 인허가를 내줍니다. 한강청과 화성시에 문의했더니 양측 모두 서로에게 책임을 떠미는 모습입니다. 화성시는 최종 인허가권자가 한강유역환경청인 만큼 입지 적정성 판단 책임 역시 한강청에 있다는 식입니다. 반면 한강청은 부문별로 검토 당사자가 따로 있고 입지 적정성은 지자체의 몫인 만큼 한강청은 화성시의 의견을 따랐을 뿐이라는 겁니다. 실제로는 의견을 받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이에 대해 한 환경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자체들의 경우 해당 지역 내 기업 유치가 지자체장의 성과로 인식되다 보니 화학물질의 안전성 등 환경 규제 등을 무시한 채 우선 기업 끌어들이기에 급급하다." 화성시가 무슨 근거와 배경으로 해당 업체의 입지에 대해서 적합하다고 판단한 건지 그 근거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화성시가 어떤 이유로 '적합' 판단을 내렸는지 의견을 밝혀야 합니다. 저 역시 추가적으로 취재해 어떤 배경인지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문제가 이곳 한 군데에만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곳 말고도 문제적 입지에 위치한 유해 화학물질 업체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수도권 식수원에 이런 사고가 난다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 관련 기사 : 새파랗게 된 물…하천 옆 고지대에 유해물질 보관 허가?
지난 11일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 판매 업체의 전직 임원들에 대한 과실치사상 항소심 재판에서 1심 무죄가 전면적으로 뒤집혀 유죄가 나왔습니다. 가장 큰 쟁점은 CMIT/MIT란 원료 성분의 폐질환 인과관계 인정 여부인데요. 1심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았던 인과관계가 어떻게 인정된 건지, 판결문을 조목조목 뜯어보겠습니다. 판결문에 적시된 인과관계 어땠나? 항소심 판결문에는 원심(1심)이 어떤 이유로 무죄 판단을 내렸는지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했습니다. 판결문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가져와 설명드리겠습니다. 1) 해당 제품에 포함된 CMIT/MIT 분량으로는 폐질환이나 천식을 일으킬 만큼 위해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2) CMIT/MIT가 원인물질이라는 점을 인정하려면, ① CMIT/MIT가 폐질환 또는 천식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킬 수 있는 물질이어야 하고 ② 사람의 폐에 도달하는 게 확인돼야 하며 ③ 질환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킬 만큼 폐에 축적돼야 한다. 그런데, 동물 흡입독성시험에서 상기도 염증은 관찰됐지만, 말단 세기관지 부근의 폐까지 도달한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다. (→ CMIT/MIT가 후두 부근의 상기도까지만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확인됐고, 그 아래 폐 기관지 등 하기도에 영향 미친 점은 드러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출처 : BROCK의 미생물학 3) 단독 사용 피해자(옥시 제품 등 PHMG 원료물질 외에 CMIT/MIT 제품만 쓴 경우) 사례를 보면,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질환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심할 사정이 다수 있다. 4) 그밖에 각 증거들과 모든 연구결과 종합해도 인과관계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 1심이 '완전 부정'했던 인과관계, 항소심에선? 1심 재판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과관계를 부정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완전 부정했던 인과 관계를 어떻게 인정한 걸까요? 판결문을 더 따라가 보겠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인과관계 입증과 관련해 일반적 인과관계와 개별적 인과관계로 구분해 순차적으로 설명합니다. 지난해 11월 지구력에서 가습기살균제 손배소 대법 판결 사례를 소개하면서 설명을 드린 바 있는데요. (▶ 관련 기사) 담배와 같은 유해물질의 인체 유해성 입증, 쉽게 말해 폐암 유발 가능성을 입증하려면 이렇게 두 단계에 걸친 인과관계 입증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 대법원의 논증입니다. 일반적 인과관계란 담배라는 물질 자체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걸 독성 실험 등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고요. 개별적 인과관계란 특정 폐암 환자인 아무개 씨가 흡연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걸 입증하려면 흡연 외 다른 발암 요인이 없었다는 걸 추가로 증명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지난 손배소 대법 판결에선 인과관계가 입증된 것으로 봤지만, 일반적 개별적 인과관계를 나눠서 상술하지 않는 바람에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렸던 건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일반적 및 개별적 단계 인과관계 명확히 설명 하지만 이번 SK 케미컬 등 과실치사상 항소심 재판부는 2단계 인과관계 입증을 명확히 분리해서 상세히 논증을 펼칩니다. 판결문 '이유'의 7번 부분, 업무상 과실과 이 사건 폐질환 또는 천식 간 일반적 인과관계 인정 여부 단락입니다. ① CMIT/MIT는 (옥시 제품에 쓰인) PHMG/PGH와 달리 폐 축적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폐에 도달하는 양, 노출기간 등이 독성 발현의 주요한 기전으로 보이는데, ㉠ 2011년, 입자발생 시험에서 '폐에 도달할 수 있는 100 나노미터 이하 크기 범위의 입자가 안정적으로 발생했다'는 결과가 나왔으며 (→ SK케미컬 등 피고인 측 변호인들은 공기 중에서 쉽게 기화되는 CMIT/MIT 물질 특성상 가습기에서 분무되더라도 공기 중에서 사라져 버릴 뿐 인체로 유입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실험 결과 기화가 전부가 아니라 상당량이 입자로 존재하더라, 이런 말입니다. 이럴 경우 기체와 달리 폐 속으로 침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겁니다.) ㉡ 2016~2019, 진행된 독성 동물실험에서 CMIT/MIT의 폐손상 가능성이 증명됐으며 (→ 이 실험 결과들은 일부는 1심 때도 이미 증거로 제시됐으며 또 다른 일부는 2심 때 추가로 보강된 증거들입니다.) ㉢ 2020.10, 한 연구에서는 CMIT/MIT가 마그네슘염이 주성분인 에어로졸에 포함돼 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고 (→ CMIT/MIT가 그 자체로는 공기 중 증발되기 쉽지만, 가습기살균제에 포함된 마그네슘염(안정제 역할)과 뭉쳐지면 증발되지 않은 채 입자로 비산된다는 연구 결과인데, 1심 때는 전문가 의견서로 제시된 데 비해 2심 때는 연구결과로서 증거 채택됐습니다.) ㉣ 2022년, 체내거동평가연구 통해 CMIT/MIT가 기도 통해 폐로 전달되는 게 확인됐으며 (→ CMIT/MIT에 방사성 물질을 입혀 체내에 흡입시켰더니 폐로 전달된 모습이 방사성 표지에 의해 확인됐다는 경북대 연구팀의 연구결과) ② 노출재연시험 결과 2011년에는 가습기살균제 권장 사용량의 10배 조건에서만 CMIT/MIT가 검출됐지만, 2019년 시험에서는 권장사용량 1배와 5배 사용량 조건에서도 검출됐으며, 1배 사용시 위해지수 0.95, 5배 사용시 위해지수 4.22로 산출됐음. 또 다른 계수를 사용시 권장사용량에서 3.67, 5배 사용시 15.67로 나타남. ③ CMIT/MIT가 친전자성 살생물질로서 지속 반복 노출로 장기에 손상 주는 성질 고려하면, 급성에서 위해한 결과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만성 시험에서도 같은 결과 나올 거라 볼 수 없다. (→ CMIT/MIT는 아미노산의 전자를 빼앗는 방식으로 독성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이 잘 알려져 있는 만큼, 급성이든 만성이든은 중요치 않다는 의미.) 1심 재판부, 무엇을 '오해'했나? 여기까지 논증을 마친 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의 '오해'가 있었다며,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인 동물실험결과의 간접적 보충적 성격을 오해하여 그 실험결과를 해석함에 있어 해당 실험을 수행하거나 검토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과학적 의미를 간과하고, 실험실 환경과 실제 사용환경간의 차이, 실험대상이었던 쥐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종간 차이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한 채 위 각 실험의 계량적 평가수치에만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2심 증인으로 출석했던 연구자들은 재판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같은 쥐실험이라도 랫드(rat)와 마우스(mouse)가 다르다. 1심 재판부는 랫드 실험에서 폐손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실험 결과를 CMIT/MIT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삼았는데, 마우스 실험에서는 호흡기 이상이 나타났다. 우리 말로는 같은 쥐실험이라고 표현하지만 랫드와 마우스 간의 차이는 고양잇과의 고양이와 살쾡이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재판부가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마지막으로 개별적(구체적) 인과관계 인정 여부에 대해 설시 합니다. 가. 관련 사건 확정판결에서도 환경노출조사의 신빙성과 이 사건 폐손상조사위원회의 피해판정 기준에 따른 피해자 최종 판정 결과의 신빙성은 인정됐는데, 이 사건에서 그 신빙성을 달리 판단할 만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는다. (→ 2017년 옥시 과실치사상 형사 재판에서도 정부 조사위원회의 판정 결과가 증거로 인정됐듯이 이번 SK케미컬 재판에서도 마찬가지란 설명.) 나. 공소시효 완성됐지만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를 단독사용했다가 숨진 박모, 이모의 경우 조직병리, 임상소견이 뚜렷 (→ CMIT/MIT 성분 사용한 애경 제품만 쓴 사망자의 경우 폐질환이 분명히 나타났음이 드러났다는 설명.) 이렇게 보면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부정하고 검찰 측 손을 들어준 셈입니다. 재판부에 따라 이렇게 판단의 차이가 클 수 있나 싶을 정도로요. 과학의 언어 vs 형사법정의 언어 당시 증언대에 섰던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1심 재판부가 형사 법정의 언어와 과학자들의 언어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범죄 구성의 요건 단 하나라도 어긋나면 유죄 입증이 산산이 부서진다고 믿는 형사재판의 논리와 과학자들의 증언은 다르다는 설명입니다. 다양한 실험 분야 가운데 특정 부분만 담당해 실험하고 데이터를 남기는 과학자에게 해당 영역을 넘어 인과관계를 종합적으로 인정되느냐고 묻는 식이 돼선 안된다는 겁니다. SK케미컬과 애경산업 등 피고인들은 항소심 선고에 불복해 상고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또 어떨지 꼼꼼히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