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환경전문기자입니다.
지난 8월 말, 전북 전주의 한 발전소 굴뚝에 올라 작업중이던 40대 남성 직원이 숨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100미터짜리 굴뚝 가운데 사고가 난 위치는 40미터 높이였습니다. 피해자는 해당 발전소가 유해 대기오염물질을 얼마나 배출하는지 측정 작업을 위해 굴뚝에 올랐는데, 무거운 측정장비를 사람 대신 이동해 주던 드론 장비가 굴뚝과 부딪히면서 파편 조각들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충돌했고, 해당 작업자가 결국 숨진 겁니다. 지난 8.28 배출 물질 측정 중 사망자 발생한 전북 전주의 모 발전소 굴뚝 이 같은 측정 방식, 즉 작업자가 직접 굴뚝에 올라 수동으로 측정하는 방식의 위험성은 사실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습니다. 대부분의 굴뚝 시설이 세워진 지 수십 년이 지난 게 대부분인 데다, 일반 작업과정에서는 올라갈 일이 없다 보니 사다리나 계단 등 시설물의 안전성이 제대로 관리 감독되지 못한 까닭입니다. 더구나 수십 종류의 오염물질 측정을 위해선 각기 다른 측정장치를 모두 수작업으로 옮겨야 하다 보니 10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장비를 두세 명이 일일이 측정구까지 옮겨야 합니다. 환경과학원이 실태 파악을 위해 수집한 현장 사진들을 보면 열악한 굴뚝 상부 작업현장의 실상이 드러납니다. 현재 대기배출사업장 굴뚝 실태를 보여주는 사진 수동 자가측정 98%, TMS 자동측정은 2%에도 못 미쳐 이처럼 위험한 수작업이 계속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 굴뚝오염물질 측정 체계가 여전히 '사람이 직접 오르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TMS라고 불리는 자동측정장치가 있긴 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측정 대상 물질의 종류에 한계가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대기오염물질 배출 사업장 전체 6만 9백여 곳 가운데 굴뚝자동측정기기(TMS)가 설치된 곳은 960여 곳으로, 전체의 1.6%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8% 넘는 곳들은 여전히 사람이 직접 굴뚝 위에 올라가 시료를 채취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굴뚝 매달리지 않고 지상에서 측정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2017년부터 '굴뚝 시료 자동채취 및 비접촉식 측정기술' 확보를 목표로 연구개발을 추진해 왔습니다. 굴뚝 벽 측정구에서 추출한 배출가스 시료를 배관을 통해 땅으로 끌어내려 분석하는 방식입니다. 관건은 기존 측정과 지상 시료채취 방식 간에 측정 결괏값을 일치시키는 기술을 확보하는 겁니다. 굴뚝 측정구와 지상측정 지점간 배출가스 압력과 온도 유지, 수분 응축 방지 등 오염물질이 변형되지 않도록 동일 조건을 구현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동안 연구를 통해 환경과학원은 가스상 측정 대상 물질 25종 가운데 질소산화물·황산화물·먼지 등 19개 물질에 대한 동일 조건을 구현하는 측정 기술을 확보했다고 최근 국정감사 과정에서 밝혔습니다. 현재 배출 허용기준이 있는 45개 물질에 대해 연간 자가측정(수동측정)이 이뤄지는 횟수는 모두 190만 건으로 집계됩니다. 1종 사업장의 굴뚝의 경우 매주 1회 이상 측정 주기 물질에 대해 연간 98만 건의 자가측정이 이뤄지는 식입니다. 이 가운데 지상 시료측정이 가능한 물질의 종류는 25종인데, 이를 모두 지상 측정으로 전환할 경우 93만여 건의 직접 수동 측정 횟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게 환경과학원 분석입니다. 48% 넘게 줄인다는 겁니다. 올 연말까지 '대기오염 공정시험 기준' 개정 이 같은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국립환경과학원은 올해 연말까지 관련 고시 개정을 추진 중입니다. 자동·비접촉식 측정기법을 '대기오염 공정시험기준'에 포함하는 개정안을 마련했으며, 현재 관계기관 검토와 업계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환경과학원은 밝혔습니다. 개정안에는 자동화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물질군, 적용 가능한 배출구 조건, 검·교정 기준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될 예정입니다. 시범사업은 2026년부터 일부 산업단지 및 대형 발전소를 중심으로 시행될 전망입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술적 타당성과 신뢰성이 확보된 만큼, 현장 적용을 서두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굴뚝 직접 측정' 대신할 '지상 시료 채취' 확산 전망은? 이번 변화의 배경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높아진 기업의 법적 책임 의식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굴뚝 측정과 같이 고위험 현장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발주기관이나 사업주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업계에서는 안전한 자동화 측정으로의 전환 요구가 커졌습니다. 다만 지상 시료채취를 위한 설비개선에 수천만 원의 비용이 필요합니다. 중소형 사업장에게는 큰 부담인만큼 설치비 보조나, 환경개선자금 융자지원 항목에 측정 설비를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업장의 유해 대기오염물질 배출 관리 제도의 개선 필요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상 시료 채취 문제보다 훨씬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업장 대기오염물질 측정·관리 체계는 대부분 '굴뚝 중심'으로만 설계돼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부와 환경과학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비산배출 저감을 위한 시설관리기준) 사업장 내 전체 오염물질 배출량 중 약 60% 이상이 굴뚝이 아닌 공정 설비, 저장시설, 이송라인, 하역시설 등에서 '비산(非散) 형태로 배출'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굴뚝에서 얼마나 많은 오염물질이 배출되나 아무리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실제 절반 이상 배출은 놓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화학·정유·철강 계열 사업장은 원료 이송 중 증기나 가스가 새어 나오거나, 저장탱크 상부의 개폐 시 유해가스가 직접 대기로 방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굴뚝 아무리 지켜봐야 60% 배출은 못 잡는다? 이에 따라 국립환경과학원은 굴뚝 배출 물질 관리를 넘어 사업장 부지 경계를 따라 '펜스라인(Fence-line) 감시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연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펜스라인 방식은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정착시킨 제도로, 사업장 외곽 경계선에 다수의 감지기를 설치해 대기 중 오염물질 농도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입니다. 이 방식은 사업장 내부 배출원이 어디에 있든, 최종적으로 외부로 유출되는 오염물질의 총량과 변동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고정식 감지기가 아닌 이동식 차량을 통해 원격으로 이 같은 비산 배출을 파악하는 스마트 감시체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환경과학원은 이미 이 같은 스마트 감시를 위해 SOF(Solar Occultation Flux)나 DIAL(Differential Absorption Lidar) 같은 원격 이동식 측정 차량을 도입했습니다. 이를 위해선 이제까지 굴뚝 위주의 대기오염물질 측정 및 관리 제도의 틀을 손봐야 한다는 과제가 있습니다. 다음 기회엔 현행 사업장 배출 관리 제도의 한계와 스마트 감시체계의 효과성을 취재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해외에서 수입해 오는 목재나 과일 등엔 많은 벌레들이 함께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이 같은 외래 해충의 반입을 막기 위해서 방역, 즉 살충 작업이 이뤄집니다. 농식품부 산하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담당합니다. 이때 쓰이는 물질이 메틸 브로마이드(MB, Methyl Bromide)라는 유독 가스입니다. 농약 관리법상 고독성 농약으로 분류될 만큼 유해성이 높은 물질입니다. 흡입 시 중추신경계를 억제하고 폐부종이나 의식 소실 등을 유발할 수 있는 급성 독성이 있는가 하면 반복 노출 시 신경계와 간, 신장은 물론 생식 독성 등 만성 독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문제는 무색무취한 특성 탓에 노출돼도 알 수가 없는 데다 공기보다 무거워 누출 시 피해를 키울 수 있습니다. 가스안전공사의 안전정보 자료에 따르면 이 가스 누출 시 피해 영향범위를 알 수 있습니다. 소규모 누출 시 740미터까지, 대규모 누출 시 1.7킬로미터까지 피해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인체 유해성뿐만 아니라 대기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로 제조 및 사용 자체가 지난 2005년부터 금지됐는데(개도국은 2015년 이후) 예외적으로 목재나 과일 등을 수출입할 경우 검역 용도도만 허용된 상황입니다. 실제로 목재를 수입할 때에는 항만 보세구역에 산같이 나무를 쌓아놓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를 씌운 뒤, 그 속에 메틸 브로마이드 가스를 주입합니다. 그리고 24시간 정도 지난 뒤 덮개를 개방하는 식으로 훈증 살충 작업이 이뤄집니다. 국회 환노위 이용우 민주당 의원실이 검역본부에 요청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메틸브로마이드 187톤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인천항이 84톤으로 사용량이 가장 많았고 군산항(37톤), 부산신항(21톤), 광양항(15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항만 보세지역에서 수입 목재 훈증 살충 작업 모습 항만 외 일반지역 100여 곳서 고농도 화학가스 쓰이는데 문제는 항만이나 공항 보세 구역뿐 아니라 일반 지역에서도 이 같은 작업이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항만 내 보세구역이 좁은 데다 목재 수입량이 많다 보니, 농림축산검역본부는 항만 외 일반지역에 있는 제재소들도 식물 검역 장소로 지정해 수입 목재에 대한 훈증 살충 작업이 이뤄지는 겁니다. 전국에 항만 공항 외 별도로 지정된 이런 식물 검역 장소가 100곳이 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실제 이 같은 작업이 이뤄지는 현장을 찍은 영상을 봤더니 문제가 많아 보였습니다. 고독성 화학가스를 사용하다 보니 작업 중 노출로 인해 인명피해가 잇따랐지만 아직도 여전히 안전 준수 사항이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훈증 살충을 마치고 덮개를 개방할 때 방독면을 착용하도록 돼 있지만 규정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3미터 떨어진 곳에 접근금지 표시줄을 설치해야 할 의무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해당 영상을 본 뒤, 제가 현장을 직접 가봤습니다. 해당 제재소는 인천 북항 인근 한 공단 지역으로부터 지하철역 인근 상업시설 지역으로 넘어가는 중간쯤에 위치했습니다. 해당 지하철 역 인근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해당 제재소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5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수입 항만이라면 이 같은 작업이 이뤄지더라도 일반인 접근이 불가능한 만큼 문제가 없겠지만 이곳 제재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유독 가스 사용 및 누출, 주민들은 '깜깜이' 제재소 출입문 앞으로는 주민들이 오가는 보행로가 있습니다. 훈증 살충 작업이 이뤄지는 장소와 불과 10여 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출입문 바로 맞은편에는 편의점과 식당이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인근 업체들의 직원들이 보행로로 오가고 있었고 편의점과 식당을 드나들며 제재소 출입문 근처를 오가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제재소에서 이 같은 위험물질을 사용하는 작업이 이뤄지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해당 방역업체 작업자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 역시 독성 화학가스 위험에 노출됐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덮개 속에 주입했던 메틸 브로마이드 가스를 별도의 회수, 정화 처리 없이 대기 중에 방출한다는 겁니다. 만 하루 정도 살충 작업을 한 뒤 덮개를 열어젖히는 식으로 가스를 처리하는 겁니다. 메틸 브로마이드의 유해성이 알려지면서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에선 훈증 작업 후 회수 정화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덮개 속에 파이프를 넣어서 가스를 흡입한 뒤 개방하는 식입니다. 뉴질랜드에서 쓰이는 메틸브로마이드 가스 회수 장치 우리는 아직 이런 규정이 전무한 상황입니다. 항만 외에 일반지역에서 작업이 이뤄질 경우 주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가 이뤄져야 합니다. 어떤 물질이 쓰이는지 알 수 있도록 표시판 등 공지의무도 강화해야 합니다. 현장에선 방역업체 작업자는 물론 가스 농도 측정을 하러 온 농림축산검역본부의 감독관마저 방독면을 착용하지 않은 채 가스 측정 등 감독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방독면을 쓰지 않은 채 메틸브로마이드 덮개 개방 후 처리하는 모습 농림축산검역본부 홍보 사진 속 방독면 쓴 작업자 모습 대기오염물질 배출 시설 예외조항이 만든 사각지대 이 같은 위험한 물질을 사용하는 작업이 이뤄지는 데도 왜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을까요?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 준비 과정에서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상 사각지대를 지적했습니다. 해당 법령에선 대기오염물질 배출 시설에 대한 규제 조항들을 갖고 있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별표3에서 규제를 적용할 대상 시설을 나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는 입자상 물질 및 가스상물질 발생 시설 중 '훈증시설'이란 항목이 있습니다. 목재나 과일 수입 시 훈증 살충 작업은 여기 해당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의 비고4에서는 구체적인 적용 업종과 관련해, 통계법 상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른 특정 항목에만 적용한다며 '운수 및 창고업'으로 한정하는 예외 규정을 뒀습니다. 이 같은 예외조항 탓에 메틸브로마이드라는 고독성 화학가스 사용 시설이 사각지대로 방치돼 온 셈입니다. 유럽선 쓰이는 '부취제' 첨가 가스, 국내는 왜 못 쓰나 또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메틸브로마이드가 심각한 건 무색무취하기 때문에 가스가 누출돼도 알아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선 '썩은 내'(부취제)를 첨가한 제품이 쓰이고 있습니다. 누출 즉시 일반인도 인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부취제가 들어간 메틸 브로마이드 농약이 수입 사용될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고독성 농약 물질의 신규 등록을 막겠다는 취지 때문입니다. 농약관리법상 부취제가 들어간 제품을 수입하려면 기존 메틸브로마이드와는 별도로 신규 등록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정부 방침상 위험한 농약 물질의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신규 등록 절차를 까다롭게 강화해서 사실상 신규 등록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겁니다. 신규 농약 물질의 등록을 강화하는 방향은 옳지만 이 같은 규제가 부취제 첨가 제품 도입을 막는 건 규제 근본취지의 본말이 전도된 겁니다. 실질적인 위험 물질의 노출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는 부취제가 포함된 메틸브로마이드 농약의 사용을 빨리 검토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메틸브로마이드 유해성 탓에 정부가 나서서 대체 물질을 개발한 바가 있습니다. 오존층 파괴로부터 자유롭고 독성도 훨씬 더 낮다는데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대체 물질 활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악의 가뭄으로 치닫고 있는 강릉 물부족 사태의 마지막 해결책으로 지목돼온 도암댐 비상방류가 마침내 해법을 찾았습니다. 강릉시는 9월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도암댐 도수관로 비상 방류수를 한시적으로 수용한다며 오는 9월 20일경 시험 방류를 할 수 있을 걸로 예측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환경부는 "도암댐 저수지 및 도수관로 속 저장수에 대한 수질 조사 결과를 강릉시에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가 수자원공사 등 전문기관과 협의한 결과 "해당 원수를 정수장에서 정상적 처리 과정을 거쳐 사용할 경우 식수 용도를 포함한 생활용수로의 활용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함께 통보됐습니다. 강릉시의 비상방류 수용 결정이 있기 닷새 전인 지난 9월 5일 SBS는 환경부의 도암댐 도수관로 수질 조사 결과를 입수해 보도한 바 있습니다. ([단독] '강릉 가뭄' 해결책 나오나…도암댐 24년 만 방류?) 도암댐 저수지 물에 대해서는 국가 수질 측정망에 따라 매달 정기적으로 수질 측정이 이뤄집니다만 도암댐에서 강릉 남대천으로 이어지는 도수관로 속 물에 대해서는 발전 방류가 중단된 지난 2001년 이후 수질 조사가 전무했습니다. 그러다 이번 가뭄이 심각해지자 비상 방류를 염두에 두고 환경부가 팔을 걷어붙인 겁니다. 도암댐 물 수질 조사했더니 여러 조사 항목 가운데 상수원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건 총유기탄소(TOC), 부유물질(SS), 총인(TP), 클로로필a 등 입니다. 환경부 조사 결과에서는 총인 항목이 1내지 2급수로 결론이 나왔고 그 외 항목들은 모두 1급수로 판정이 나왔습니다. 도수관로 말고, 도암댐 저수지의 수질은 어떨까요? 전문가 도움을 받아서 환경부의 국가 수질 측정망 자료를 확인해 봤습니다. 계절적으로 등락이 있습니다만 23~24년 2년간 평균치를 따져봤더니 한강 유역 팔당댐에 비해서는 수질이 약간 낮은 반면 낙동강(삼랑진)이나 영산강(함평) 유역의 일부 상수원 원수보다는 수질이 더 좋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쉽게 말하면 낙동강 유역의 일부 주민들이 생활용수로 쓰는 수돗물의 원수는 도암호보다 더 수질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없는 까닭은 뭘까요? 정수장에서의 각종 정수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강릉시의 비상방류 결정 보도자료 붙임 참고자료(수질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총인(TP) 등 일부 항목이 수도법상 상수원관리규칙상 원수의 수질기준(혹은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상 별표1의 환경기준)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에 대해 수자원공사 측은 해당 수질기준은 강제기준이 아니라 권고사항으로 봐야 한다며, 기준치를 초과한 인 성분의 경우 정수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제거되는 만큼 정수과정에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환경부는 도암댐 물 수질 조사 시 상층, 중층, 하층으로 나눠 측정했는데 인 성분이 초과는 주로 상층 시료에서 발생했다며, 실제 비상 방류 시에는 도암호 물 가운데 중층이나 하층 물만 선택적으로 취수할 수 있는 시설이(선택취수탑) 이미 갖춰진 만큼 수질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비상 방류 어떻게 이뤄지나 24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질 도암호 비상 방류는 어떤 식으로 이뤄질까요? 구체적인 방식은 이렇습니다. 현재 도암호 물이 강릉 방향으로 방류되는 방류구는 오봉저수지 아래 600미터 하류에서 남대천으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실제 비상 방류 시에는 남대천으로 방류하는 게 아니라 홍제 정수장으로 곧장 보내는 식입니다. 기존에 남대천에서 홍제 정수장으로 연결되는 도관 근처에 물막이를 만들어 물길을 돌려세우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김홍규 강릉시장이 가장 우려했던 남대천 오염이나 수온차로 인한 생태계 영향도 사실상 없어집니다. 도암댐 물의 경우 수심이 깊어 남대천 물보다 많게는 8~10도까지 수온이 낮습니다. 이런 물이 남대천으로 흘러들게 되면 물고기 산란 등 하천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편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도암댐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이미 대안이 만들어져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댐 저수지에 수직으로 세운 선택취수탑이란 게 있어서 원하는 높이에 맞춰 선택적으로 취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저수지 깊이에 따라 온도가 달라지는데 상층수의 경우 남대천과의 수온차를 4도 이내로 줄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도암댐에서 남대천 방류구까지 15킬로 구간에 깔린 도수관로는 지난 24년간 활용되지 못하는 바람에 비상방류를 위해선 시설개선 공사가 일부 필요합니다. 한수원은 약 2주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요. 남대천 물막이 공사 역시 비슷한 시간이 필요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강릉시의 최종 동의가 이뤄질 경우 공급 가능한 용량은 하루 1만 톤 규모입니다. 과거 도암댐이 수력 발전에 쓰였을 당시엔 하루 35만 톤씩 남대천으로 공급됐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게 대량의 물을 공급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준비하는 비상방류는 도수관로를 통해 운반되다 일부 구간에서는 좁은 우회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발전에 필요한 수차 터빈이 없는 상태라서 그렇습니다. 하루 1만 톤씩, 앞으로 얼마나 되는 양을 공급받을 것이냐는 문제가 남습니다. 일각에선 도수관로에 저장된 15만 톤의 용량만 비상 방류란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강릉시는 15만 톤뿐 아니라 수질 검사에서 문제가 없을 경우 가뭄이 해소될 때까지 계속 받겠다고 밝혔습니다. "비상 방류 허용, 발전 방류는 다른 문제" 다만 비상 방류가 아닌 발전 방류 허용 문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게 강릉시 측의 입장입니다. 지난 1991년부터 개시됐던 도암댐의 수력 발전과 함께 이뤄진 방류는 남대천에 수질 악화라는 커다란 상처를 남겼습니다. 발전 방류 중단을 촉구하는 남대천 살리기 투쟁 운동으로 번졌고, 이를 주도했던 투쟁위원장이 당시 시의원이었던 김홍규 현 강릉시장입니다. 김 시장이 지난 22년 지방선거에서 시장으로 당선된 뒤에도 도암호 방류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한사코 고수하는 데에는 이 같은 과거 이력이 한몫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번 가뭄을 계기로 24년 만에 도암댐 물이 비상방류되더라도 '발전 방류' 문제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안갯속입니다. 이와 관련 지난달 강릉을 찾았던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새로운 중재안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도암호 수질이 계절에 따라 들쭉날쭉하다면 여름철 등 수질이 나빠질 때에는 발전 방류를 중단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인근 지자체 등 관계자들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어서, 이 기구에 '발전 작업 중지 권한'을 부여하자는 겁니다. 이 같은 중재안에 대해 환경부를 비롯해 한수원, 강릉시, 정선군, 영월군 등의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회의체가 9월 9일 첫 가동됩니다.
기후위기 주범으로 꼽히는 온실가스, 2024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됐는지 잠정치가 공개됐습니다. 6억 9,158만 톤입니다. 7억 톤 아래로 떨어진 건 2010년 6억 8,980만 톤 이후 처음입니다. 2023년 잠정치 7억 500만 톤과 비교하면 2%(1,419만 톤)가 줄어든 수치입니다. 세부적으로 각 부문별로 감축 성적표를 매겨보면 어떻게 될까요? 가장 큰 문제는 산업 분야입니다. 전년 대비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0.5% 늘었습니다. 산업 분야 가운데 가장 배출이 많은 업종은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순입니다. 철강은 전년 대비 0.1% 소폭 배출량이 줄었지만 건설경기 및 수출 둔화로 조강 생산량이 4.8% 감소한 걸 감안하면 착시현상에 불과합니다. 업계 자체적으로 얼마나 탄소 감축 노력을 했는지 보여주는 온실가스 원단위, 혹은 탄소 집약도라고도 불리는 지표가 있습니다. 단위 생산량 당 배출량을 집계하는 방식입니다. 철강 업종의 온실가스 원단위는 2023년 조강 샌산 1톤당 배출량이 1.5톤이던 게 2024년에는 1.57톤으로 늘었습니다. 감축 노력을 하고 있는 건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멘트 업종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산량이 9.3% 줄어든 바람에 배출량도 9.0% 감소했습니다. 온실가스 원단위로 따져보면 2023년 시멘트 생산량 1톤당 온실가스를 1.026톤 배출했던 게 2024년에는 1.029톤으로 늘었습니다. 놀라운 건 이런데도 산업 분야 감축 목표치를 2년 연속 충족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일까요? 우리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이와 함께 우선적으로 달성해야 할 국가 목표로 2030 NDC를 결정한 바 있습니다. 오는 2030년에 지난 2018년 대비 40% 감축을 달성한다는 겁니다. 탄소중립기본법과 시행령상 못 박아놓은 숫자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연차별로 각 분야에서 얼마나 달성해야 할 지를 지난 2023년 3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확정한 바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지난해 6억 9,158만톤 잠정치와 2030 NDC 목표치는 기준이 달라서 수치도 다릅니다. 오해없길 바랍니다) 2030 NDC에 따르면 2023년 목표치는 2억 5,640만 톤이었는데 당해 배출량(잠정치)은 2억 3,870만 톤이었습니다. 지난해 목표치는 2억 5610만 톤이었는데 배출 잠정치는 2억 4270만 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애초 목표치를 짤 때 산업계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된 덕분입니다. 원래는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2030 NDC를 짤 때 산업 부문의 목표는 14.5% 였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40% NDC 목표는 번복하지 않고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윤 정부에서 연차별 세부 목표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산업 부문의 2030 목표치가 11.4%로 줄어든 겁니다. 발전, 건물, 수송, 농축수산, 폐기물 등 타 분야에서는 없었던 일입니다. 14.5%에서 11.4%로 낮추느라 갈 곳 없어진 감축량 3.1%p는 물량으로 치면 대략 8백만 톤입니다. 이 물량은 발전 분야와 국제감축 항목이 각각 절반씩 떠안는 걸로 정리됐습니다. 이같은 산업 부문에 대한 감축량 특혜와 관련해 최근 좀 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윤석열 정부 당시 산업 배출량 축소의 핵심 근거가 된 건 산업연구원이 산업부로부터 용역을 받아 수행한 '산업부문 2030 NDC 이행방안 연구'였습니다. 기후단체 플랜1.5는 이 보고서 내용과 실제 산업 부문의 배출량 통계를 비교 분석한 결과 산업연구원의 전망이 크게 빗나간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습니다. 플랜 1.5는 "산업연구원 보고서는 산업 부문이 아무리 감축해도 배출량이 4.5%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실제 배출권거래제 업종별 배출량 통계에 따르면 같은 기간 배출량은 2.7%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플랜 1.5의 권경락 활동가는 "산업연구원의 엉터리 전망이 결과적으로 다배출 기업들에 대한 배출 면죄부를 주고 산업 전환을 후퇴시킨 꼴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산업 부문 말고 다른 분야에선 어땠을까요? 수송, 폐기물, 농축수산 등은 전년 대비해서는 지난해 더 줄였지만, 연차별 목표치는 2년 연속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유일하게 건물 부문이 23년과 24년 모두 연차별 목표치를 충족한 걸로 나타납니다. 기후 온난화로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난방용 연료 사용이 줄어든 탓입니다. 하지만 정반대 효과도 있습니다. 여름철 폭염이 심해지면서 전기 사용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다만 이 냉방용 전기 사용은 건물 부문에 잡히지 않고 발전 부문에 포함됩니다. 발전 부문에 이어 두 번째로 배출량이 많은 게 산업 부문인데, 이 산업에서의 목표치가 낮게 설정된 탓일까요, 6개 전 부문을 모두 합친 총 연차별 목표치도 2연 연속 달성했습니다. 2023년 목표치가 6억 6740만 톤이었는데 당해 배출량(잠정치)이 6억 4860만 톤이었고, 2024년엔 6억 5640만 톤 목표를 밑도는 6억 3900만 톤을 기록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2030 NDC를 계산할 때와 연간 배출량 집계는 기준과 수치가 조금 다릅니다. 연간 집계에서는 2006 IPCC 지침을 쓰는 반면 2030 NDC에서는 기존 1996 IPCC 지침을 기준 삼습니다.) 23, 24년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정부에서 연차별 목표치를 설계할 때 23, 24년 등 전반부에선 소폭만 줄여도 되도록 한 반면 후반부로 갈수록 감축률이 껑충 뛰도록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전년 대비 요구되는 감축률로 따져보면 2026년까지는 1%대에 머물다 이듬해부터 높아지는 구조입니다. 2027년 2.9%, 2028년 4%, 2029년 5%로 급등하다 2030년엔 8.6%로 치솟습니다. 이 때문에 과연 2030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 온실가스 배출량 2% 줄였지만 갈 길 멀다…성적표 보니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2030 NDC에 이어 2035 NDC를 UN에 제출해야 하는 기한도 코앞까지 다가왔습니다. 환경부는 다음달까지 초안을 만들어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오는 11월 브라질 벨렘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 30) 때 제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파리협정에 따라 신규 NDC 목표는 종전 목표치보다 더 강화된 목표를 내 놓도록 돼 있죠. 더 큰 짐을 짊어져야 하는 셈입니다. 또한 지난해 8월 헌재의 결정에 따라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경로도 설정해야 하는데, 그 기한도 내년 2월로 다가옵니다. 이재명 정부 앞에 놓인 또 하나의 시험대입니다. 어떤 결정과 선택이 이뤄질지 지켜보겠습니다.
여름철 집중호우 때 대도시에 발생하는 도심 침수는 하수관에 대한 관리 부실 탓이 큽니다. 대표적인 게 도로 바닥에 설치된 맨홀과 도로변 빗물받이입니다. 쏟아진 빗물이 하수관으로 급하게 흘러들어 가면서 엄청난 압력이 발생하는 바람에 맨홀 뚜껑이 공중으로 치솟는 현상이 발생하죠. 맨홀 교체 공사 현장에 가봤더니 뚜껑 무게가 60킬로에 달해, 꿈쩍이나 할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도심 홍수 때 촬영 영상을 보면 빗물이 들어찬 하수관의 압력은 그보다 훨씬 더 힘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지난 2022년 서울 서초동에서 중년의 남매 2명이 집중호우로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나면서 시민들 불안이 커졌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곧바로 대안을 내놨습니다. 추락 방지 장치가 달린 맨홀을 설치하도록 하수관로 유지관리 기준을 그해 12월 개정한 겁니다. 추락방지 설치율, 지자체 따라 '극과 극' 3년이 지난 현재, 추락방지 장치 달린 맨홀의 보급은 얼마나 이뤄졌을까요? 결론부터 전국에 설치된 맨홀 총량은 350만 개인데, 이중 도심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을 중점관리구역으로 정하고 이 구역에 있는 맨홀 28만여 개 가운데 6만여 개에 설치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1% 정도입니다. 그런데 지역별 편차가 큽니다. 가장 많이 설치된 곳은 인천으로 73%를 기록했습니다. 제주 59%, 서울 51%, 대구 47%, 전남 36%였습니다. 반면 가장 낮은 곳은 전북으로 0.5%에 불과했습니다. 그밖에 세종 1.2%, 대전 4.6%, 경기 6.8%, 경북 8.7% 순이었습니다. 지역별로 들쭉날쭉한 데에는 무엇보다 해당 지자체의 도심 침수에 대한 안전의식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하지만 개정된 규정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22년 12월 개정된 하수관로 유지관리 기준에서는 추락방지 장치의 도입을 신규로 설치하는 맨홀로 한정했던 겁니다. 이런 미진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으로 예산을 들여 새 맨홀을 설치한 지자체도 있지만 교체율이 저조한 지자체들은 도로 공사 등 신규 맨홀 설치 때에만 적용했던 게 저조한 기록에 머무르게 된 주요인이었습니다. 또한 규정만 바꿨을 뿐 정부가 따로 예산을 보내주지 않았던 점도 한계였습니다. 지자체 형편에 따라 기존 하수도 예산을 쪼개 써야 하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지난달 해당 규정을 다시 손보기로 했습니다. 신규 맨홀 설치 때뿐만 아니라 기존 맨홀에 대해서도 추락방지 장치 달린 맨홀로 교체하도록 확대 적용하기로 한 겁니다. 중점관리구역에 나머지 22만 개를 설치하려면 총 소요비용이 1,100억 원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 비용을 정부가 대기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편성하는 방안을 놓고 환경부가 기재부와 협의 중입니다. 이 대통령 "문책을 아주 세게 하세요" 빗물받이의 경우는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서울 한강홍수통제소를 방문해 장마폭우 대비 현황을 점검하는 자리에서 이 대통령의 집중적인 문제제기가 있어 관심을 모았습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과거 지자체 단체장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빗물받이 문제에 대해 행안부와 환경부 관료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따져 물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철창 비슷하게 돼 있는 게 빗물받이가 막혀있는 경우가 진짜 많다"며 "(예산을 지원해 줬는데도) 관리 엉터리로 해 이런 사고 발생하면 나중에 문책을 아주 세게 하도록 하세요"라고 강도 높게 말했습니다. 이러자 환경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습니다. 맨홀과 마찬가지로 하수관로 유지관리 기준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수관로 유지관리계획을 수립할 때 빗물받이 관리를 외부 업체에 외주화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대부분 지자체가 공무원 1명이 다른 업무와 함께 빗물받이를 담당하는 만큼 수많은 빗물받이를 관리 점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해마다 담배꽁초 같은 오물로 꽉 막힌 빗물받이 모습이 뉴스에 연례행사처럼 비치곤 했는데, 대통령의 강한 문책 방침 발언에 따라 얼마나 개선이 이뤄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자료사진 : AP연합뉴스)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에 관심이 쏠립니다. 기후와 에너지 정책을 한 바구니에 넣어 시너지를 높이려는 기후 거버넌스 재편 작업도 한창입니다. 이와 관련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재생에너지 도입 국가이죠. 지난 10여 년간 영국에서 펼쳐진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참관한 내용을 2차례 나눠 전하고자 합니다. 1. 영국에서 본 해상풍력…'비싼 만큼 더 설치해야 한다'는 역설 2. '재생 vs 원전' 정치적 진영주의에 갇힌 에너지 논쟁, 영국은 어땠나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에 대한 강조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 정부 때의 탈원전과는 선을 긋습니다. 새로 입각한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물론이고 과거 탈원전 입장을 고수했던 김성환 환경부 장관 또한 원전 활용 필요성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정책 및 탄소중립 논의는 문재인, 윤석렬 정부 내내 '재생 대 원전'이란 대립 구도로 진행됐습니다. 논의가 정쟁화하면서, 생산적 논의의 진전보다는 진영간 정치공방의 소재로 휘말리기 급급했습니다. 우리보다 수 십 년 앞서 에너지 전환의 길을 걸어간 영국은 어땠을까요. 영국 역시 여전히 원전을 둘러싼 갈등과 우려가 남아있긴 하지만 큰 틀의 에너지 정책에서는 노동당 및 보수당 사이에 우리처럼 심각한 대립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물론 진영 간 에너지 정책 갈등이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닙니다. 우리 만큼이나 혹은 우리보다 더 큰 갈등을 겪었습니다. 가장 큰 갈등이 불거진 건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입니다. 당시 방사능 낙진이 유럽을 건너 영국 북부와 웨일즈 지역에까지 떨어지면서 양고기 등에 대한 유통 제한 조치가 발동되는 등 원전 공포가 현실이 됐습니다. 보수당과 노동당을 막론하고 신규 원전을 꺼렸고, 1980년대 추진됐던 사이즈웰B 이후 영국은 20년 가까이 단 한 건의 신규 원전도 착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블레어 정부에서 시작된 에너지 정책 변화 그러다 1997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집권했고 같은 해 12월 교토의정서가 채택돼 온실가스 감축이 국제법적 의무로 등장했습니다. 핵 안전성이란 두려움이 해소되지 못한 상황에서 온실가스라는 또다른 형태의 숙제를 떠안게 됩니다. 숙제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영국 앞바다 북해에서 시추됐던 가스 생산량이 때마침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천연가스 등 해외 수입 ㅇ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에너지 안보가 새 이슈로 빚어졌습니다. 이처럼 복잡해진 에너지 문제를 풀기 위해 2003년에 영국의 에너지 전환을 공식화한 첫 번째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보고서 <Our Energy Future – Creating a Low Carbon Economy>가 발표됩니다. 핵심은 에너지 정책을 화석연료 중심에서 저탄소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보고서는 원자력을 저탄소 옵션으로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합의와 기술적 해결책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즉 원전에 대해 약간 유보적인 스탠스를 취합니다. 지금 보기에 그렇다는 겁니다. 당시에 느꼈던 강조점은 그간 문제시됐던 원전에 대해 우호적인 접근으로 비쳤습니다. 3년 뒤 2006년 노동당 블레어 정부의 에너지 정책 보고서 <The Energy Challenge>가 발표됩니다. 여기 서문을 직접 쓴 블레어 총리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성 제고만으로는 우리가 직면한 전력 부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며 "이를 위해서 해외로부터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확보하고 노후화된 원자력 발전소를 대체할 신규 원전 건설, 그리고 석탄화력 발전소를 더 깨끗하고 효율적 기술로 교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명시합니다. 이 보고서는 영국의 에너지 전환에 있어 큰 분기점으로 평가됩니다. 이 같은 흐름은 블레어의 후임인 고든 브라운 노동당 정부에서도 계승됐고, 2008년 브라운 정부에서 힝클리포인트C 원전의 후보지가 발표됩니다. 이 원전의 본격 사업화는 뒤이어 보수당 정부인 캐머런, 메이 정권에 의해서 중국 자본 등 민간투자 기반으로 추진됩니다. 보수당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브라운의 뒤를 이었던 보수 정권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어땠을까요? 사실 2010년 캐머런 총리 취임 후 지난해 노동당 정부가 탄생하기까지 무려 14년간 보수당이 장기 집권했습니다. 2016년 테레사 메이, 2019년 보리스 존슨, 2022년 리스 트러스에 이어 같은해 리시 수낙이 이어받은 뒤 지난해까지 보수당 정권이 계속됐죠. 그런데 이 보수당 집권 기간이 영국에서 에너지 전환이 가장 왕성하게 일어난 핵심적인 시기입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건 지난 2019년 보수당 메이 총리 시절 세계 최초로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목표(Net Zero)를 법제화했다는 겁니다. 좀 더 정확히는 2008년 제정된 기후변화법(Climate Change Act)의 개정안이 통과됐는데 위와 같은 내용이 담긴 거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재생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장치로 꼽히는 게 계약차액 보전제도라고 불리는 CfD(Contracts for Difference)라는 제도입니다. 2014년 보수당 정부 때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발전 단가를 장기 고정, 보장해줘 민간 투자 리스크를 줄이는 장치죠. 이 제도를 통해 해상풍력 등 대형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급증했다는 평가입니다. 현재 영국의 해상풍력 설비 용량은 15GW 수준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는데요. 이 설비 가운데 2010년 이전에 깔린 건 1GW에 그친 반면 나머지 14GW는 모두가 보수 정권 하에서 이뤄진 사업들입니다. 지난해 출범한 스타머 노동당 정부 현재 진행중인 두 원전, 힝클리포인트 C와 사이즈웰 C에 대한 추진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앞선 힝클리포인트의 경우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회의적인 시각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결정된 원전 사업이 사이즈웰 C인데요. 2010년대 보수당 정부 때 처음 제안됐지만 아직 착공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140억 파운드, 우리 돈 26조 원을 영국 정부가 직접 지분 투자하기로 최근 결정했는데, 현 스타머 정부의 선택입니다. 힝클리포인트에선 없었던 정부 참여 모델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앞서 정쟁에 갇혀 생산적인 에너지 정책 논의가 부족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예컨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 안정화 대책으로 무탄소전원 확대, 스마트그리드, 유연성 자원 필요, 수요반응 확대 등이 매번 꼽힙니다. 더 나아가서 에너지 가격 결정을 위한 독립 위원회 설치, 한전 전기 독점 판매 구조 변화 등 산적한 과제들이 지적돼 왔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재생에너지가 급격히 늘어난 게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지난 8차 전기본이 만들어지면서부터입니다. 이후 7, 8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같은 구조적 대응책이 얼마나 추진됐고 효과를 보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재생 대 원전 어느 한쪽만을 편드는 식의 쏠림 정책이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를 손 놓게 한 건 아닐까요. 재생에너지와 원전 간의 상충점, 둘 다 경직성 에너지원으로 동시에 비중이 커질 경우 망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는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대응책을 찾으려는 연구가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에 관심이 쏠립니다. 기후와 에너지 정책을 한 바구니에 넣어 시너지를 높이려는 기후 거버넌스 재편 작업도 한창입니다. 이와 관련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재생에너지 도입 국가이죠. 지난 10여 년간 영국에서 펼쳐진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참관한 내용을 2차례 나눠 전하고자 합니다. 1.영국에서 본 해상풍력…'비싼 만큼 더 설치해야 한다'는 역설 2.'재생 vs 원전' 정치적 진영주의에 갇힌 에너지 논쟁, 영국은 어떻게 달랐나 바람 많은 영국 북동부 티사이드(Teeside) 지역, 이곳엔 해상풍력 산업의 새로운 거점으로 자리 잡은 티스웍스(Teesworks) 산업 단지가 있습니다. 해상풍력 발전을 위한 하부 구조는 물론 그린수소와 CCS에 이르기까지 영국 청정에너지 산업의 중심지의 하나로 거듭나는 곳입니다. 이곳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극심한 경기 침체에 시달렸습니다. 170여 년간 이어져 온 영국 철강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지만, 중국 인도 등과의 국제경쟁력에 밀리면서 내리막길을 걸었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레드카 지역의 SSI라는 철강 기업이 2015년 문을 닫으면서 심각한 실업률을 겪어야 했습니다. 티사이드는 영국 북해 원유와 가스 시추량이 파이프를 통해 내륙으로 들어오는 거점이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말 일 생산량 440만 배럴로 시추량 피크를 찍으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현재는 100만 배럴로 줄었습니다. 원유전 고갈과 에너지 전환의 영향이었습니다. 오는 2029년에는 66만까지 감소될 것으로 북해 전환 당국 NSTA는 예상합니다. 이 같은 북해 유전의 침체도 티사이드의 쇠락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쇠락한 철강산업 상징, 에너지전환 거점으로 지난달 25일 티사이드 윌턴 센터에서 만난 티스 밸리 지자체 관료들로부터 에너지 전환 및 산업 전환을 이루게 된 배경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티스 밸리는 티사이드를 비롯해 레드카 앤 클리브랜드 등 인근 지자체 5곳이 뭉쳐진 광역급 지자체입니다. 이중 레드카 앤 클리브랜드 카운슬의 알렉 브라운 리더 오브 카운슬(우리로 치면 군수)은 무엇보다 우수한 노동인력의 강점을 성공 비결로 꼽았습니다. "우리 가족도 대대로 철강산업의 종사자들이었습니다. 철강업이 무너지면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이 있었죠. 하지만 넷제로 산업이 들어오면서 선순환이 일어났습니다. 철강산업 당시 다져진 숙련된 노동자들이 있었고 광산도 있어서 기술 기반 인력이 많았습니다. 산업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산업혁명기 이래 영국 최대 무역항의 하나였던 항구 도시인 리버풀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리버풀의 상징 머지 강 연안에선 17세기 후반부터 조선업이 발달하기 시작해 노예무역, 면화, 담배 등 교역을 거치면서 선박 수요가 급성장했습니다. 하지만 2차대전 이후 선박 수요 감소에 이어 저비용 체제를 구축한 일본, 한국 등 아시아권 조선업체들의 등장으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리버풀은 축구와 비틀스 등을 배경으로 한 문화예술 도시로의 재건이 추진돼 왔고 이와 더불어서 재생에너지를 통한 신산업 전환도 주요한 목표가 됐습니다. 현재 리버풀 만 앞바다에는 348MW 규모의 버보 뱅크 풍력단지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아웰모어 1GW, 모건 800MW, 모나 800MW 등 엄청난 규모의 풍력단지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해상풍력뿐만이 아닙니다. 바다와 만나는 머지 강이 가진 천혜의 입지를 이용해 세계에서 가장 큰 조력발전소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우리 수자원공사도 리버풀 지방정부와 기술협력 협약을 맺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수공은 이미 인천 시화호에서 세계 최대 규모인 254메가와트급 조력발전소를 건설 운영해오고 있죠. 리버풀에 세워질 조력발전소는 시화호의 두 배 규모로 추진됩니다. 티사이드 내 티스웍스 단지에도 우리 기업 세아제강이 세운 현지법인 세아오션윈드가 입주해 있습니다. 4억 5천만 파운드, 우리 돈 약 8천3백억 원을 투자해 티스웍스 산업단지 내 36만 ㎡ 부지에 유럽 내 최초의 해상풍력 하부구조인 모노파일 전용 공장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공장 건설 공정은 90% 이상 진척됐습니다. 750명의 직접 고용 창출 간접 고용까지 1,500명 규모의 고용 효과가 예상되는 등 티사이드 지역 재생 전략의 핵심이라는 게 지자체 측의 설명입니다. 영국 해상풍력 어디까지 왔나? 이렇게 지역 곳곳에 해상풍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영국 전국적으로도 재생에너지 보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이미 전기 생산의 절반 가까이가(48%)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해상풍력만 떼어보면 18%에 이릅니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 깔린 누적 해상풍력 용량 83GW 가운데 15.9GW가 영국 몫입니다. 이 같은 자신감으로 영국은 지난해 10월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 '랫클리프 온 소어'의 영구 중단에 나서기도 했죠. 에너지전환을 통해 탄소중립 목표에 다가갈 뿐 만 아니라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게 됐다는 점이 국가적 차원에서 가장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던 2022년의 경우 영국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 겨울철 난방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에너지난에 시달렸는데요. 당시 해상풍력 발전 덕분에 수입 에너지 대체 효과가 4.5조 원대에 달했던 걸로 분석됐습니다. 화석연료와 달리 연료비가 없는 데다 연소시설 관리가 필요 없어 장기적 운영비용이 낮다는 장점 덕분입니다. 늘어난 재생 발전, 전기요금엔 어떤 영향? 특히 소비자 입장에선 대폭 늘어난 재생에너지가 전기 요금 상승을 완화하는 효자 역할도 했습니다. CFD(Contracts for Difference)라는 재생에너지 지원제도 덕분입니다. 정부가 사들이는 재생에너지 '기준가격'이란 게 있는데 시중 전기 도매가격이 이보다 낮을 땐 그 차액만큼을 정부가 보전해주기도 하고 반대로 높을 땐 재생에너지 발전사가 정부에 환급하는 구조입니다. 전쟁 당시 도매가격이 치솟자 재생 발전사들이 큰 수익을 거두게 되자 환급이 실제로 이뤄졌습니다. CFD 운영 재원은 소비자들의 전기요금 청구서에 CFD 부담금으로 포함돼 있는데, 재생 발전사들이 환급한 돈 덕분에 소비자들의 CFD 부담금을 깎아주는 구조입니다. 그런가 하면 영국 해상풍력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관련 기자재의 제조 공급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핵심 장비인 터빈과 블레이드, 타워, 하부구조까지 어디를 봐도 자체 기술보유나 영국 자국 내 기업의 참여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과거 BP 등 석유개발 기업들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상풍력 디벨로퍼로서 영역도 개척하고 있지만, 정작 영국 내 해상풍력 개발의 대부분은 덴마크 등 인근 국가 기업들이 도맡을 정도였습니다. 국내에서도 해상풍력 관련 국산화율 관련 논란이 되풀이 돼왔습니다. 바다를 외국 기업에 내준 채 국부를 유출시킨다거나 공급망을 손에 쥔 중국 등 일부 국가의 배를 불린다는 식의 논란인데요. 영국에서도 최근 이 같은 논란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풍력 개발의 흐름을 꺾진 못하는 모습입니다. 사실 국내 국부유출 등 논란은 그 자체로서의 문제라기보다 진보, 보수에 따라 에너지 이슈가 정치적 진영 논리로 귀결되면서 생긴 부작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상풍력 기자재 공급망 한국은? 왜냐하면 오히려 한국은 해상풍력과 관련해 나름대로 뛰어난 공급망을 갖춘 전 세계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장 핵심 설비인 터빈의 대형화 경쟁에서는 뒤처진 게 사실이지만 타워, 하부구조, 케이블 등 상당수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기술과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제주대 김범석 교수가 분석한 국내 준공을 마친 5개 해상풍력 단지 사례를 보면(아래 표) 외국 기업 의존 주장이 무색할 만큼 우리 기업들의 참여가 활발하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작 영국 해상풍력을 통해 우리가 참고해야 할 시사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를 통한 선순환을 일으켜 탄소중립을 앞당기고 미래 산업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핵심은 R&D 등 지속적 투자와 제도 개선을 통해 해상풍력의 발전단가(LCOE)를 끌어내리는 데 있습니다. CFD와 같은 지원책을 제공함으로써 초기 시장을 만들어 과감히 설치를 이끌어 내고 이런 과정에서 기자재의 대형화 및 효율화 그리고 인허가 제도의 구축, 인적 자원의 성숙화가 이뤄지면서 급속히 단가가 떨어지는 경로를 밟는 겁니다. 영국뿐 아니라 주요국의 해상풍력 도입과정은 하나같이 이 같은 특징을 보여줍니다. 보급 확대가 가져온 발전단가 감소 효과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영국의 해상풍력 LCOE 하락 흐름을 살펴보면 2014년 294달러에서 2016년 170달러로 42% 낮아집니다. 세계풍력에너지협회(GWEC)의 자료입니다. GWEC에 따르면 영국에서 최초 해상풍력 설치 이후 2016년까지 기간을 '1차 LCOE 하락 기간'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기간 동안 5GW의 물량이 깔립니다. 이후 2020년까지 '2차 하락 기간'을 거치면서 68달러로 또다시 60%가 줄어듭니다. 불과 5년의 기간 동안 추가 5GW의 물량이 더 깔린 겁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인플레이션 등을 거치면서 영국 내 해상풍력 LCOE가 112달러로 상승해긴 했지만 그럼에도 추가 설치 물량이 6GW에 달해 현재 15.9GW의 설비가 들어섰습니다. 이 같은 발전단가 하락 과정은 영국뿐 아니라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동일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2014년에서 2024년 10년간 변화치를 살펴보면, 독일이 291달러에서 124달러로, 네덜란드가 271달러에서 132달러로 떨어졌습니다. 정확히 10년 사이 벌어진 일입니다. '비싸기 때문에 설치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오히려 '비싸기 때문에 더 많이 설치해야 한다'는 역설을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땝니다. 우리나라 해상풍력 LCOE는 유럽 선진국들의 2~3배 수준으로 알려집니다. 한국 해상풍력 LCOE를 명시한 IRENA 2024년 자료에 따르면 영국이 59달러, 한국은 195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이 자료에선 독일 63달러, 네덜란드 61달러로 파악됩니다. 중국 역시 유럽국가들에 맞먹는 수준으로 하락해 70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영국이 10GW 설치할 때 우리는 0.3GW 우리는 어땠을까요, 준공시점을 기준으로 지난 2017년 국내 첫 해상풍력인 제주 탐라해상 30MW 준공에 이어 현재까지 설치된 총량이 0.33GW입니다. 영국이 2016년부터 5년간 5GW를 깔았던 속도에 비하면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떠올려 봅니다. 에너지공단이 펴낸 2020 신재생에너지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상풍력 에너지의 기술적 잠재량이 설비용량 기준 387GW, 연간 발전량으로 환산하면 1,176TWh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국내 연간 전력 소비량(550TWh)의 2배 수준입니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상 필요 발전량의 97%를 커버할 수 있는 양입니다. 기술적으로만 치면 해상풍력만으로도 2050년 당시에 필요한 모든 전기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산업적으로 봤을 때 향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해상풍력 시장 규모가 커질 텐데 눈앞에 이 시장을 두고 바라보기만 해서야 되겠냐는 겁니다. 탄소중립 목표와 신산업 경쟁력의 두 마리 토끼,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이 글에 담긴 영국 현지 탐방은 한국기자협회와 기후싱크탱크 넥스트의 도움으로 이뤄졌습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낮 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오르며 초여름 날씨를 보이면서 곧이어 닥칠 장마철 집중호우 걱정이 커집니다. 이런 가운데 홍수 피해 예방과 관련해 지난해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피해 예방을 위해선 무엇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예보가 필수적이겠죠. 이러한 홍수특보(홍수주의보, 경보)를 발령하는 특보 지점의 숫자가 지난해 역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겁니다. 재작년인 2023년의 경우 전국에 모두 75개 지점(국가하천 63곳, 지방하천 12곳)이었던 게 작년엔 223곳(국가 93, 지방 130)으로 확대됐습니다. 1년 만에 3배로 늘어난 겁니다. 홍수특보란 해당 하천의 계획홍수량보다 수위가 50% 초과할 것으로 예상 시에 발령하는 홍수주의보와, 70% 초과 시 발령하는 홍수경보로 나뉩니다. 국내 하천 전역에 걸쳐 특보 지점을 마냥 늘리면 좋겠지만 이땐 또 다른 어려움이 생깁니다. 현재 전국 홍수통제소에서 근무하는 홍수 예보관이 30여 명인데, 홍수 특성상 급박하게 변화하는 지점별 수위를 예측해야 하는 작업이 갑자기 3배로 늘어난 만큼 기존 인력으론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보관 홍수 예보에 30분 걸려, AI는 10분 만에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홍수 예보에 AI,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됐습니다. 일선 예보관이 홍수 진행 상황에서 새 예보를 발령하는데 한 곳당 30분 정도가 소요됐는데, AI를 도입한 뒤에는 그 시간이 10분 정도로 줄었다고 환경부는 밝혔습니다. 기존에는 강수량이나 댐 방류량, 수위, 하천유량 등의 데이터를 입력해 물리 모형을 활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홍수를 예측해 왔습니다. 반면 AI 방식은 누적된 데이터를 학습시켜 현재 상황과 가장 유사한 과거 패턴을 찾아 다음 전개될 상황을 예측한다는 게 큰 틀에서의 차이점입니다. 최종적으로는 홍수 예보관의 판단과 결정에 따르게 됩니다. 구글이 전 세계 100여 개 국가를 대상으로 'Flood Hub'라는 홍수 예측 정보를 서비스하고 있지만, 중앙정부가 홍수 예보 시스템에 AI를 본격 활용한 사례는 우리나라가 처음입니다. AI 예보 도입 첫 해, 결과는? AI 예보 도입 첫해이자 홍수특보 지점이 대폭 확대되면서 홍수 대응의 큰 변화가 있었던 지난해 여름, 특보 발령 결과는 어땠을까요? 모두 170건의 특보가 발령됐습니다. 앞서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평균 발령 건수는 연간 34건이었습니다. 즉 예년에 비해 5배로 늘어난 겁니다. 엄청난 증가세를 기록한 겁니다. 앞서 지난해 특보 지점이 3배로 늘었다고 말씀드렸는데(75 → 223곳), 이렇게 신규로 늘어난 지점에서 발령된 특보 건수가 모두 133건으로 전체의 78%를 차지했습니다. 만약 특보 지점을 늘리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난해 특보 건수가 기존지점 37건에 그쳤을 것이며, 나머지 133건에 달하는 홍수 위험 상황은 사전에 예측될 수 없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예측되지 못했더라면 그 위험은 고스란히 그 지역 주민과 재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겠죠, 물론 가정입니다만. 늘어난 홍수 특보 대부분은 지방하천에서 발령 새롭게 특보 지점으로 지정된 곳들은 어떤 곳일까요? 하천법상 우리나라 강은 규모와 관리주체에 따라서 국가하천과 지방하천으로 나뉘는데요. 지난해 특보 건수 170건 가운데 국가하천 내 지점에서 발령된 게 59건, 지방하천에서 발령된 게 111건이었습니다. 좀 더 세밀히 따져보면 국가하천 특보 발령 사례들은 기존지점에서 28건, 신규지점에서 31건을 기록했습니다. 지방하천에서는 기존지점 9건, 신규지점 102건으로 구별됩니다. 즉 신규지점에서 발령된 133건으로 좁혀서 얘기하면 이 가운데 지방하천 건수가 102건으로 77%를 차지한 겁니다. 신규지점에서의 특보 발령 대부분이 지방하천에 몰려 있다는 결론이죠.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지난 수십 년간 홍수 예방 투자의 대부분은 4대강 등 주요 국가하천 본류에 집중적으로 이뤄져 왔죠. 반면 지방하천, 소하천, 지류 등은 본류구간에 비해 대비가 부족해 홍수 등 재해에 취약성을 드러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크게 확대한 특보 지점 대부분이 지방하천에 속한 지점이었습니다. 지방하천 홍수 피해 취약성을 보완할 대비책 마련이란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환경부는 "지방하천에는 기존 대비 신규 특보 지점에 약 11배(9건 → 102건) 증가한 특보를 발령해 홍수에 취약한 지방하천 범람을 대비해 충분한 대피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라고 자평했습니다. 한강 수계 수위관측소 31km마다 한 곳 홍수특보 지점과 함께 하천에서의 핵심적인 피해 예방 장치는 수위 관측소입니다. 현장에 촘촘히 관측소가 있어야 통제소 직원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보지 않더라도 신속 정확히 현장 물 흐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수위 관측소도 재작년 690여 곳에서 지난해 933곳으로 대폭 늘어났습니다(한강 276곳, 낙동강 291곳, 금강 179곳, 영산강 187곳). 전체 하천 구간 총연장 대비 숫자를 따져보면 관측소 1곳당 감당하는 거리를 알 수 있습니다. 한강의 경우 국가·지방하천 포함 총연장이 8,555km입니다. 한강 수계에 있는 수위관측소는 총 276곳으로 평균 31km마다 한 곳씩 수위 관측이 이뤄지는 셈입니다. 낙동강(총연장 9,483km)과 금강(총연장 5,946km)은 둘 다 평균 33km마다 수위관측소가 위치합니다. 영산강(총연장 4,881km)은 4대강 가운데 가장 촘촘히 관측소가 배치돼 있습니다. 평균 26km당 1곳으로 계산됩니다. AI 예보 성적표는 어땠을까요? 지난해 총 발령된 특보 170건을 기준으로 성적을 매겨봤더니 82%의 적중률을 기록했다고 환경부는 밝혔습니다. 첫해치곤 아주 양호한 성적이라는 게 환경부 물재해대응과 박상근 연구관의 평가입니다. AI 덕분에 예보 발령 소요 시간이 1/3로 줄어든 덕분에 3배로 늘어난 특보 발령 지점을 모두 커버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지난해 AI 예보에는 지난 10년 동안 매 10분 간격으로 측정된 강수량, 댐 방류량, 하천유량, 조위 자료까지 학습이 이뤄졌습니다. 특히 이 AI 시스템의 특성은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뒤 하천 수위가 중간 또는 고수위로 올라갈 때는 상정해 정확도 초점을 맞춰 학습을 시켰습니다. 따라서 약한 비가 내리거나 강우 초기 때보다 수위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시간대에서 적중력이 두드러집니다. 실측자료 넘어 모의 자료까지 AI 학습에 활용 AI 특성상 좀 더 다양한 빅데이터를 학습시킬수록 모델의 정확도가 올라갑니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기존 자료에 더해 레이더 강우량 등도 추가 학습시킨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해당 지점의 경우 과거 데이터가 역대치 100mm 자료까지밖에 없을 경우 그 이상에 대해서는 AI가 답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실측자료뿐만 아니라 가상의 모의 자료를 만들어 학습시키는 방안이 앞으로 적중률을 끌어올리는데 핵심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지난해 여름철 이후에도 이런 보강 학습이 추가로 이뤄진 만큼 환경부는 올여름 더 높은 적중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가속화될수록 여름철 극한호우 피해도 심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기후변화를 부른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는 게 근본대책이지만 달라진 기후에 적응해야 하는게 더 시급한 문제일지 모릅니다. 홍수피해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AI 활용 및 고도화에 더욱 힘써야겠습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지난 2022년 초부터 국내에서도 본격화한 꿀벌 대량 실종 사태, 겨울철을 지나면 봉분 속 벌들의 숫자가 일부 줄어드는 게 상례였지만 유독 그 해엔 정도가 심했죠. 이같은 현상의 원인이 뭔지 정부가 조사에 나섰지만 여러 원인이 복합적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결론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여러 정황 가운데 가장 중대한 원인으로 지목된 게 응애라는 이름의 병충해였습니다. 응애는 진드기와 비슷한 해충입니다. 여왕벌이 벌방에 알을 낳으면 부화해 애벌레로 자라는데, 응애는 이 벌방에 찾아와 유충의 몸체에 붙어 기생하는 해충입니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미국, 캐나다 등 서양에선 CCD라고 불리는 꿀벌 군집 붕괴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는데요. 여기에서도 응애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습니다. 서양종 (Apis Melifera) vs 동양종 (Apis Cerana) 꿀벌, 차이는 꿀벌 애벌레에 붙어 있는 진드기의 일종인 꿀벌응애 (Varroa jacobsoni), 크기는 1~2mm 꿀벌과 관련된 여러 질병과 해충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응애가 골칫거리인 까닭은 뭘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꿀벌의 두 가지 큰 갈래, 동양종과 서양종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랫동안 토종 꿀벌을 키워왔는데요. 이게 바로 동양종입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 들어 일본을 통해 서양종 꿀벌이 유입됐습니다. 토종 꿀벌에 비하면 얼마 안 된 거죠.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선 오래 전부터 벌응애라는 해충이 있었고 수천 년 간의 공진화를 통해 동양종 토종 꿀벌들은 응애에 맞서는 방어기작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꿀벌 애벌레가 사는 벌 방에 응애가 찾아오면 벌 방을 가열시켜 온도를 높임으로써 응애의 생존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고요. 밀랍으로 봉해진 벌 방을 문을 뜯어낸 뒤 응애를 꺼내 제거하기도 하는데요. 놀라울 정도로 고도로 진화된 사회적 면역 체계가 만들어진 겁니다. 출처 : 그린피스 양봉업이 확대되면서 꿀벌들이 자생 지역을 넘어 국제적으로 이동하게 된 탓이 큽니다. 꿀벌은 크게 동양종과 서양종으로 나뉩니다. 국내에서도 동양종 토종 벌꿀을 통한 양봉이 오랫동안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전 아시아로 유입된 서양종 꿀벌들은 이같은 공진화 과정을 거치지 못했습니다. 아시아로 넘어와서 전에 없던 응애라는 병충해를 만난 겁니다.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고요. 이렇게 서양 꿀벌을 숙주로 삼기 시작했는데, 양봉에 쓰이는 벌들이 국제적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이번엔 서양 꿀벌을 따라 응애가 역으로 서양으로 번졌고, 전 세계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셈입니다. 국내에선 주로 약제를 통해서 이같은 병충해를 방제해 왔는데요. 그동안 특정 약제에 대한 의존이 심했고요. 이로 인해 내성이 생기면서 부작용이 커졌다는 게 농업진흥청의 조사 결과입니다. 20년 전 토종 꿀벌 멸절 위기, 어떻게 극복? 그런데 이미 오래 전에 국내 토종 꿀벌이 병충해 때문에 멸절 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어떻게 위기를 넘겼는지를 보면 지금 악화하고 있는 서양종 꿀벌의 대량 실종 문제에 대해서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현재 토종 꿀벌 양봉농가에서 기르는 벌은 한라벌이라는 개량종입니다. 서양 벌에 비해 작고 몸통 색이 더 진한 동양 토종벌을 개량해 만든 종입니다. 벌집을 보면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는데 애벌레방이 가득 차 있죠. 벌방의 입구를 밀랍이나 꽃가루 등으로 막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벌통 가득 애벌레가 자라나 육아방이 거의 모두 막혀있는 게 보입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무렵 '꿀벌 에이즈'라고 불렸던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벌 유충이 여기 감염되면 번데기가 되지 못한 채 부패해 폐사하는 질병입니다. 발생 이후 3년 만에 전체 사육 두수의 95%가 폐사했다는 게 양봉 농가들의 주장이었고요. 정부에서도 70% 이상 폐사한 것으로 추정할 만큼 엄청난 피해를 불렀습니다. 세계 5번째 토종 꿀벌 인공수정 기술 그랬던 토종벌의 위기는 한라벌이라는 새 토종 꿀벌 품종의 개발로 무사히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한라벌 개발에는 국립농업과학원 최용수 박사팀의 노력이 숨어있고요. 보통 15년 걸린다는 꿀벌 신품종 개발을 불과 7년 만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는데, 그 비결에 대해 최 박사는 한국인 특유의 손기술을 바탕으로 한 '인공수정 기술'이라고 답했습니다. 꿀벌 인공수정이란 수벌의 정자를 채취해 여왕벌 꽁무니에 있는 교미구에 삽입해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일으키는 기법입니다. 서양 벌에겐 이미 일반화된 기술인데, 동양종 토종벌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서양 꿀벌은 정액량이 충분해 채취하기가 쉬워 숙련된 기술을 가진 연구자들이 많은 반면 크기가 작은 동양 토종벌은 정액 채취가 어렵습니다. 또 여왕벌의 교미구 생김새도 서양종과 차이점이 있는데, 자칫하면 주입된 정액이 흘러나오기 쉽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동양 토종벌 인공수정 기술을 가진 연구진은 우리 농업과학원을 비롯해 5개 나라에 그친다는 게 최 박사 설명입니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지난 2016년 낭충봉아부패병에 저항성을 지닌 한라벌 개발에 성공했고 국내 토봉 농가에 보급됐는데, 다행히 이후에는 같은 질병에 대한 피해가 사실상 사라진 상황입니다. 응애 맞춤형 품종 개량 어디까지? 토종벌 멸절 위기를 이겨냈듯이 현재 진행 중인 서양종 꿀벌에서의 응애 병충해를 이겨낼 맞춤형 품종 개량이 성공을 거둔다면 세계적으로 획기적인 진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응애 저항성을 갖추는 건 과거 낭충봉아부패병 때와는 훨씬 더 까다로운 문제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동양종 토종벌에서의 응애 저항성이란 수천 년 세월 속에서 고도화된 사회적 면역 시스템인 만큼 특정 원인 유전자 한두 개를 찾아낸다고 해서 해결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미국에선 농무부와 루이지애나 대학 등이 20년간의 노력 끝에 꿀벌의 청소 행동을 강화한 바로아 응애 저항성 품종을 개발하는 등의 성공 사례가 소개된 바 있지만 아직 충분치 못하다는 게 최용수 박사의 설명입니다. 이런 개량 품종들의 경우 실제 실효 생존율이 기존 품종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높지 않거나 다음 세대에선 이같은 기능성이 사라지는 결함도 나타난다는 겁니다. 품종개량과는 별도로 기존 내성 생성을 뛰어넘는 치료제 등의 개발 연구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때 백신 개발의 신기원을 이뤘던 RNA 방식의 치료제 연구 등이 그렇습니다. 꿀벌이 이 치료제를 먹으면 체내 효소의 도움으로 더 작은 RNA물질로 변환되는데 벌 유충에 기생하는 응애가 이 물질을 섭취할 경우 필수 단백질의 생성을 막는 방식입니다. 인류가 먹는 전세계 100대 농작물 가운데 70종 이상이 꿀벌의 도움으로 열매가 맺는 만큼, 기후위기와 국제 공급망의 가속화는 꿀벌의 생태를 더욱 위기로 몰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대체 약제 개발이든 품종 개량이든 꿀벌 응애에 맞설 다양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때입니다. ▷ 관련기사 : 멸종 위기 '꿀벌'…인공수정 기술로 날아오를까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이번 주 들어 낮 최고기온이 25도에 육박하면서 더위가 코앞으로 다가온 느낌입니다. 해가 떠 있는 시간도 갈수록 길어집니다. 이런 날씨 속에서 우리가 매일같이 마시는, 생수가 담긴 플라스틱 페트병은 햇빛을 오래 쬐면 어떻게 될까요? 생수를 담은 채로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페트병 속 유해 물질이 용출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2013년 생수 페트병 직사광선 노출 첫 시험... 2022년엔 감사원 재시험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10년도 넘게 의심스러운 문제로 제기돼 왔습니다. 지난 2013년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먹는 샘물 미량물질 함량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를 수행하면서 시험에 나선 게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조사에서는 60℃에서 4일간 보관했더니 유해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냄새 역치값, 즉 사람이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20μg/l 이상 용출되는 게 확인돼 여름철 고온 노출을 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름철 생수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목소리가 드물게 있는데, 이 냄새 원인이 바로 아세트알데히드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 2022년 감사원이 '먹는 물 수질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생수 페트병 직사광선 노출' 문제 역시 감사 대상이 된 겁니다. 당시 감사원은 "2011년 이후 먹는 샘물 제조업체들이 페트병을 자체 제작하는 비율이 증가해, 제조 업체별 페트병의 유해 물질 용출 여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감사 배경을 밝혔습니다. 생수 6개월 유통기한, 업체 요청으로 최대 2년까지 늘어나 먼저 감사원은 생수의 유통 실태를 조사했습니다. 서울 시내 소매점과 편의점 가운데 무작위로 272곳을 점검했더니, 101개 점포(37.1%)에서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야외 직사광선 환경에 노출한 채 보관 중이라는 겁니다. 생수의 유통기간은 먹는물관리법에 따라 6개월로 돼 있고 이 기간을 연장하고자 할 경우에는 품질 변화가 없다는 걸 과학적으로 입증해 시도지사의 승인을 받게 돼 있습니다. 실제로 생수 업체들은 지자체로부터 유통기간 연장 승인을 받아 1년 내지 2년의 유통기간을 설정해 운영해 왔다고 감사원은 밝힙니다. 한발 더 나아가 감사원은 실제로 생수의 평균 유통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편의점 본사 측 제출 자료를 분석했습니다. 점포별 보관 주기 데이터를 직접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생산 이후 실제 판매까지 짧게는 1일에서 1년 이상의 기간이 걸리는 것으로 추정됐다는 게 감사원 설명입니다. 업체들의 유통기한 연장 요청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감사원 '먹는 물 수질관리 실태' 감사보고서 (2022) 감사원 감사에서는 직사광선 노출 시 안전성을 파악하기 위한 실험도 진행됐습니다.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국내 제품 3종과 수입 제품 1종) 여름철 오후 2~3시 정도의 자외선 강도와 50℃ 온도의 가혹 조건을 설정한 실험용 체임버에서 15일과 30일간 각각 노출한 뒤 생수의 수질을 검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5일 노출은 자연 상태에서 약 3.9개월에, 30일 노출은 7.8개월 정도에 해당한다고 감사원은 밝힙니다. 분석 결과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와 아세트알데히드 그리고 안티몬이 검출돼 유해물질의 용출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감사원은 밝혔습니다. 중요한 건 이 용출량이 인체에 유해한 정도인지 여부인데, 우리나라 먹는물 수질기준상 포름알데히드의 경우는 허용치를 초과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수질기준이 0.5㎎/ℓ인 반면 감사원 실험에서는 가장 가혹한 조건인 30일 노출 테스트에 있어 4개 제품 가운데 수입 제품 1종은 0.31㎎/ℓ, 나머지 국내 제품 3종 가운데 가장 높은 게 0.17㎎/ℓ이었습니다. 그밖에 국내 2종은 각각 0.12㎎/ℓ와 0.05㎎/ℓ이었습니다. 포름알데히드는 국제암연구소가 분류한 1군 발암물질로 새집증후군이나 아토피성 피부염의 원인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티몬은 유독성 중금속으로 도금, 안료 등에 사용되는데 중독됐을 경우 위장관 질환을 일으키며 발암성이 의심되는 물질이기도 합니다. 일본 및 호주 수질기준 초과 제품 발견 국내 기준은 충족했지만 먹는 물 수질기준이 엄격한 나라의 기준에 따르면 포름알데히드 허용치를 초과하기도 합니다. 가령 일본 허용치는 0.08㎎/ℓ이어서 감사원 검사대상 4개 샘플 중 3개는 일본 기준을 초과했습니다. 30일 노출 시험뿐 아니라 15일 노출에서도 수입제품 1종은 0.18㎎/ℓ이 용출돼 일본 기준을 초과했습니다. 포름알데히드와 달리 아세트알데히드나 안티몬의 경우는 국내 먹는 물 수질 기준이 없습니다. 하지만 안티몬의 경우 해외 선진국들은 허용 기준을 갖추고 있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0.006㎎/ℓ, 일본 0.015㎎/ℓ(수질관리 목표 설정 항목), 호주 0.003㎎/ℓ입니다. 호주가 가장 강화된 기준을 갖춘 셈인데, 호주 기준에 비춰보면 감사원 검사에서는 15일 노출과 30일 노출에서 모두 허용치 초과 제품이 나타났습니다. 특이한 점은 30일 노출에선 안티몬 호주 기준치 초과가 4 샘플 중 1개에 그쳤는데, 오히려 15일 노출에선 모두 3 샘플이 호주 기준을 초과했습니다. 감사원은 실험 결과에 따라 환경부에 조치 사항을 주문했습니다. 페트병에 담긴 생수의 제조공정이나 유통과정의 다양한 조건별로 유해 물질 용출 시험을 하는 등 정밀한 검토를 거쳐 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직사광선 노출을 최소화하여 생수를 유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겁니다. 생수 민간 판매 허용 30년 만에 제도 개선 이 같은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환경부가 지난 4월 24일 대책을 내놨습니다. 감사 결과가 나온 지 3년 만입니다. 특히 올해는, 국내에서 생수가 민간에서 처음 판매 허용된 1995년 이후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내 판매 생수는 전량이 지하수를 개발해 만듭니다. 지난 30년간 생수 업체들의 지하수 개발을 놓고 농민들과의 갈등이 잇따르고 지하수 고갈 논란이 제기돼왔는데, 이런 문제점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발표하는 과정에서 생수병 직사광선 노출 문제도 함께 다뤄진 겁니다. 감사원 주문에 따라 환경부도 다시 직사광선 문제에 대해 '먹는 물 유통·위생관리 방안 연구'란 제목으로 연구 용역을 지난 2022년 10월부터 1년간 벌였습니다. 실태 파악을 위해 현장 조사를 벌인 결과 소매점 97곳 가운데 30%가 야외 및 자외선 노출 장소 등 부적절한 보관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티몬 및 알데하이드류가 보관 시간에 비례해 농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지하 보관 제품보다 옥외 노출 제품에서 농도 증가가 더 높게 관찰됐습니다. 이 중 포름알데히드는 실제 일상 환경 기준으로 18개월 경과한 시점부터 먹는 물 수질감시기준 0.5㎎/ℓ의 절반이 넘는 수치까지 검출됐다고 환경부는 밝혔습니다. 환경부 시험 조건은 실험 온도 40℃, 노출 기간 60일이었는데, 이중 노출 기간 60일은 실제 일상 환경 기준으로 24개월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환경부는 이 검사가 의미하는 바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용출이 나타나긴 하지만 십수 개월의 오랜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현상인 만큼 직접적인 위해가 되긴 어렵다는 겁니다. 하지만 감사원이 추정했듯이 실제 생수 제조에서 소비까지 유통기간이 길게는 1년이 넘는 걸로 분석됐다는 점은 '십수 개월'이란 게 현실성 없는 기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정리하면 2013년 이래 3차례 정부에 의해 수행된 검사 결과 직사광선과 자외선에 오래 노출 시 생수가 담긴 페트병에서 유해 물질이 용출된다는 게 드러났다는 겁니다. 하지만 해외 선진국에 비해 먹는물 수질기준 혹은 수질 감시기준은 상대적으로 완화돼 있거나(포름알데히드), 기준 자체가 없는 것으로(안티몬)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직사광선 노출 정부 대책은 빛 가리는 차광포 환경부가 내놓은 대책은 편의점이나 소매점에 옥외 보관 시 빛을 가릴 수 있는 차광포를 씌우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그동안 적정 보관 의무를 어겼을 때 3천만 원 벌금 조항이 너무 강하다 보니 실제 적용 사례가 없었는데, 처벌 조항을 과태료 정도로 현실화해 적용하겠다는 대책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3년 전 감사원 지적에 대해 환경부는 당시 이 같은 의견을 냈습니다. "페트병 제조 공정과 보관환경에 따른 수질변화를 조사해 필요시 제조공정에 대한 관리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약속했던 제조공정 관리 강화 방안은 빠진 채 페트병을 덮을 차광포가 사실상 유일한 대책이 된 셈입니다. 또 수질(감시) 기준상 포름알데히드 허용치 강화나 안티몬 기준치 도입 등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이 직사광선에 오래 노출된 생수 제품을 피할 방법은 뭘까요. 일단 제조일자를 확인해 가급적 최근에 생산된 제품을 선택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편의점이나 소매점에 가보면 묶음할인 등 생수 제품을 소비자 눈에 띄도록 하기 위해서 노상에 진열해 둔 곳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가급적 이런 제품도 피하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 관련기사 : "무슨 냄새?" 햇빛만 쬐도 생긴다…여름철 생수병 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