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환경전문기자입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낮 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오르며 초여름 날씨를 보이면서 곧이어 닥칠 장마철 집중호우 걱정이 커집니다. 이런 가운데 홍수 피해 예방과 관련해 지난해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피해 예방을 위해선 무엇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예보가 필수적이겠죠. 이러한 홍수특보(홍수주의보, 경보)를 발령하는 특보 지점의 숫자가 지난해 역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겁니다. 재작년인 2023년의 경우 전국에 모두 75개 지점(국가하천 63곳, 지방하천 12곳)이었던 게 작년엔 223곳(국가 93, 지방 130)으로 확대됐습니다. 1년 만에 3배로 늘어난 겁니다. 홍수특보란 해당 하천의 계획홍수량보다 수위가 50% 초과할 것으로 예상 시에 발령하는 홍수주의보와, 70% 초과 시 발령하는 홍수경보로 나뉩니다. 국내 하천 전역에 걸쳐 특보 지점을 마냥 늘리면 좋겠지만 이땐 또 다른 어려움이 생깁니다. 현재 전국 홍수통제소에서 근무하는 홍수 예보관이 30여 명인데, 홍수 특성상 급박하게 변화하는 지점별 수위를 예측해야 하는 작업이 갑자기 3배로 늘어난 만큼 기존 인력으론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보관 홍수 예보에 30분 걸려, AI는 10분 만에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홍수 예보에 AI,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됐습니다. 일선 예보관이 홍수 진행 상황에서 새 예보를 발령하는데 한 곳당 30분 정도가 소요됐는데, AI를 도입한 뒤에는 그 시간이 10분 정도로 줄었다고 환경부는 밝혔습니다. 기존에는 강수량이나 댐 방류량, 수위, 하천유량 등의 데이터를 입력해 물리 모형을 활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홍수를 예측해 왔습니다. 반면 AI 방식은 누적된 데이터를 학습시켜 현재 상황과 가장 유사한 과거 패턴을 찾아 다음 전개될 상황을 예측한다는 게 큰 틀에서의 차이점입니다. 최종적으로는 홍수 예보관의 판단과 결정에 따르게 됩니다. 구글이 전 세계 100여 개 국가를 대상으로 'Flood Hub'라는 홍수 예측 정보를 서비스하고 있지만, 중앙정부가 홍수 예보 시스템에 AI를 본격 활용한 사례는 우리나라가 처음입니다. AI 예보 도입 첫 해, 결과는? AI 예보 도입 첫해이자 홍수특보 지점이 대폭 확대되면서 홍수 대응의 큰 변화가 있었던 지난해 여름, 특보 발령 결과는 어땠을까요? 모두 170건의 특보가 발령됐습니다. 앞서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평균 발령 건수는 연간 34건이었습니다. 즉 예년에 비해 5배로 늘어난 겁니다. 엄청난 증가세를 기록한 겁니다. 앞서 지난해 특보 지점이 3배로 늘었다고 말씀드렸는데(75 → 223곳), 이렇게 신규로 늘어난 지점에서 발령된 특보 건수가 모두 133건으로 전체의 78%를 차지했습니다. 만약 특보 지점을 늘리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난해 특보 건수가 기존지점 37건에 그쳤을 것이며, 나머지 133건에 달하는 홍수 위험 상황은 사전에 예측될 수 없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예측되지 못했더라면 그 위험은 고스란히 그 지역 주민과 재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겠죠, 물론 가정입니다만. 늘어난 홍수 특보 대부분은 지방하천에서 발령 새롭게 특보 지점으로 지정된 곳들은 어떤 곳일까요? 하천법상 우리나라 강은 규모와 관리주체에 따라서 국가하천과 지방하천으로 나뉘는데요. 지난해 특보 건수 170건 가운데 국가하천 내 지점에서 발령된 게 59건, 지방하천에서 발령된 게 111건이었습니다. 좀 더 세밀히 따져보면 국가하천 특보 발령 사례들은 기존지점에서 28건, 신규지점에서 31건을 기록했습니다. 지방하천에서는 기존지점 9건, 신규지점 102건으로 구별됩니다. 즉 신규지점에서 발령된 133건으로 좁혀서 얘기하면 이 가운데 지방하천 건수가 102건으로 77%를 차지한 겁니다. 신규지점에서의 특보 발령 대부분이 지방하천에 몰려 있다는 결론이죠.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지난 수십 년간 홍수 예방 투자의 대부분은 4대강 등 주요 국가하천 본류에 집중적으로 이뤄져 왔죠. 반면 지방하천, 소하천, 지류 등은 본류구간에 비해 대비가 부족해 홍수 등 재해에 취약성을 드러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크게 확대한 특보 지점 대부분이 지방하천에 속한 지점이었습니다. 지방하천 홍수 피해 취약성을 보완할 대비책 마련이란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환경부는 "지방하천에는 기존 대비 신규 특보 지점에 약 11배(9건 → 102건) 증가한 특보를 발령해 홍수에 취약한 지방하천 범람을 대비해 충분한 대피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라고 자평했습니다. 한강 수계 수위관측소 31km마다 한 곳 홍수특보 지점과 함께 하천에서의 핵심적인 피해 예방 장치는 수위 관측소입니다. 현장에 촘촘히 관측소가 있어야 통제소 직원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보지 않더라도 신속 정확히 현장 물 흐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수위 관측소도 재작년 690여 곳에서 지난해 933곳으로 대폭 늘어났습니다(한강 276곳, 낙동강 291곳, 금강 179곳, 영산강 187곳). 전체 하천 구간 총연장 대비 숫자를 따져보면 관측소 1곳당 감당하는 거리를 알 수 있습니다. 한강의 경우 국가·지방하천 포함 총연장이 8,555km입니다. 한강 수계에 있는 수위관측소는 총 276곳으로 평균 31km마다 한 곳씩 수위 관측이 이뤄지는 셈입니다. 낙동강(총연장 9,483km)과 금강(총연장 5,946km)은 둘 다 평균 33km마다 수위관측소가 위치합니다. 영산강(총연장 4,881km)은 4대강 가운데 가장 촘촘히 관측소가 배치돼 있습니다. 평균 26km당 1곳으로 계산됩니다. AI 예보 성적표는 어땠을까요? 지난해 총 발령된 특보 170건을 기준으로 성적을 매겨봤더니 82%의 적중률을 기록했다고 환경부는 밝혔습니다. 첫해치곤 아주 양호한 성적이라는 게 환경부 물재해대응과 박상근 연구관의 평가입니다. AI 덕분에 예보 발령 소요 시간이 1/3로 줄어든 덕분에 3배로 늘어난 특보 발령 지점을 모두 커버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지난해 AI 예보에는 지난 10년 동안 매 10분 간격으로 측정된 강수량, 댐 방류량, 하천유량, 조위 자료까지 학습이 이뤄졌습니다. 특히 이 AI 시스템의 특성은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뒤 하천 수위가 중간 또는 고수위로 올라갈 때는 상정해 정확도 초점을 맞춰 학습을 시켰습니다. 따라서 약한 비가 내리거나 강우 초기 때보다 수위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시간대에서 적중력이 두드러집니다. 실측자료 넘어 모의 자료까지 AI 학습에 활용 AI 특성상 좀 더 다양한 빅데이터를 학습시킬수록 모델의 정확도가 올라갑니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기존 자료에 더해 레이더 강우량 등도 추가 학습시킨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해당 지점의 경우 과거 데이터가 역대치 100mm 자료까지밖에 없을 경우 그 이상에 대해서는 AI가 답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실측자료뿐만 아니라 가상의 모의 자료를 만들어 학습시키는 방안이 앞으로 적중률을 끌어올리는데 핵심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지난해 여름철 이후에도 이런 보강 학습이 추가로 이뤄진 만큼 환경부는 올여름 더 높은 적중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가속화될수록 여름철 극한호우 피해도 심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기후변화를 부른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는 게 근본대책이지만 달라진 기후에 적응해야 하는게 더 시급한 문제일지 모릅니다. 홍수피해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AI 활용 및 고도화에 더욱 힘써야겠습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지난 2022년 초부터 국내에서도 본격화한 꿀벌 대량 실종 사태, 겨울철을 지나면 봉분 속 벌들의 숫자가 일부 줄어드는 게 상례였지만 유독 그 해엔 정도가 심했죠. 이같은 현상의 원인이 뭔지 정부가 조사에 나섰지만 여러 원인이 복합적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결론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여러 정황 가운데 가장 중대한 원인으로 지목된 게 응애라는 이름의 병충해였습니다. 응애는 진드기와 비슷한 해충입니다. 여왕벌이 벌방에 알을 낳으면 부화해 애벌레로 자라는데, 응애는 이 벌방에 찾아와 유충의 몸체에 붙어 기생하는 해충입니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미국, 캐나다 등 서양에선 CCD라고 불리는 꿀벌 군집 붕괴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는데요. 여기에서도 응애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습니다. 서양종 (Apis Melifera) vs 동양종 (Apis Cerana) 꿀벌, 차이는 꿀벌 애벌레에 붙어 있는 진드기의 일종인 꿀벌응애 (Varroa jacobsoni), 크기는 1~2mm 꿀벌과 관련된 여러 질병과 해충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응애가 골칫거리인 까닭은 뭘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꿀벌의 두 가지 큰 갈래, 동양종과 서양종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랫동안 토종 꿀벌을 키워왔는데요. 이게 바로 동양종입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 들어 일본을 통해 서양종 꿀벌이 유입됐습니다. 토종 꿀벌에 비하면 얼마 안 된 거죠.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선 오래 전부터 벌응애라는 해충이 있었고 수천 년 간의 공진화를 통해 동양종 토종 꿀벌들은 응애에 맞서는 방어기작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꿀벌 애벌레가 사는 벌 방에 응애가 찾아오면 벌 방을 가열시켜 온도를 높임으로써 응애의 생존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고요. 밀랍으로 봉해진 벌 방을 문을 뜯어낸 뒤 응애를 꺼내 제거하기도 하는데요. 놀라울 정도로 고도로 진화된 사회적 면역 체계가 만들어진 겁니다. 출처 : 그린피스 양봉업이 확대되면서 꿀벌들이 자생 지역을 넘어 국제적으로 이동하게 된 탓이 큽니다. 꿀벌은 크게 동양종과 서양종으로 나뉩니다. 국내에서도 동양종 토종 벌꿀을 통한 양봉이 오랫동안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전 아시아로 유입된 서양종 꿀벌들은 이같은 공진화 과정을 거치지 못했습니다. 아시아로 넘어와서 전에 없던 응애라는 병충해를 만난 겁니다.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고요. 이렇게 서양 꿀벌을 숙주로 삼기 시작했는데, 양봉에 쓰이는 벌들이 국제적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이번엔 서양 꿀벌을 따라 응애가 역으로 서양으로 번졌고, 전 세계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셈입니다. 국내에선 주로 약제를 통해서 이같은 병충해를 방제해 왔는데요. 그동안 특정 약제에 대한 의존이 심했고요. 이로 인해 내성이 생기면서 부작용이 커졌다는 게 농업진흥청의 조사 결과입니다. 20년 전 토종 꿀벌 멸절 위기, 어떻게 극복? 그런데 이미 오래 전에 국내 토종 꿀벌이 병충해 때문에 멸절 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어떻게 위기를 넘겼는지를 보면 지금 악화하고 있는 서양종 꿀벌의 대량 실종 문제에 대해서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현재 토종 꿀벌 양봉농가에서 기르는 벌은 한라벌이라는 개량종입니다. 서양 벌에 비해 작고 몸통 색이 더 진한 동양 토종벌을 개량해 만든 종입니다. 벌집을 보면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는데 애벌레방이 가득 차 있죠. 벌방의 입구를 밀랍이나 꽃가루 등으로 막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벌통 가득 애벌레가 자라나 육아방이 거의 모두 막혀있는 게 보입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무렵 '꿀벌 에이즈'라고 불렸던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벌 유충이 여기 감염되면 번데기가 되지 못한 채 부패해 폐사하는 질병입니다. 발생 이후 3년 만에 전체 사육 두수의 95%가 폐사했다는 게 양봉 농가들의 주장이었고요. 정부에서도 70% 이상 폐사한 것으로 추정할 만큼 엄청난 피해를 불렀습니다. 세계 5번째 토종 꿀벌 인공수정 기술 그랬던 토종벌의 위기는 한라벌이라는 새 토종 꿀벌 품종의 개발로 무사히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한라벌 개발에는 국립농업과학원 최용수 박사팀의 노력이 숨어있고요. 보통 15년 걸린다는 꿀벌 신품종 개발을 불과 7년 만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는데, 그 비결에 대해 최 박사는 한국인 특유의 손기술을 바탕으로 한 '인공수정 기술'이라고 답했습니다. 꿀벌 인공수정이란 수벌의 정자를 채취해 여왕벌 꽁무니에 있는 교미구에 삽입해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일으키는 기법입니다. 서양 벌에겐 이미 일반화된 기술인데, 동양종 토종벌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서양 꿀벌은 정액량이 충분해 채취하기가 쉬워 숙련된 기술을 가진 연구자들이 많은 반면 크기가 작은 동양 토종벌은 정액 채취가 어렵습니다. 또 여왕벌의 교미구 생김새도 서양종과 차이점이 있는데, 자칫하면 주입된 정액이 흘러나오기 쉽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동양 토종벌 인공수정 기술을 가진 연구진은 우리 농업과학원을 비롯해 5개 나라에 그친다는 게 최 박사 설명입니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지난 2016년 낭충봉아부패병에 저항성을 지닌 한라벌 개발에 성공했고 국내 토봉 농가에 보급됐는데, 다행히 이후에는 같은 질병에 대한 피해가 사실상 사라진 상황입니다. 응애 맞춤형 품종 개량 어디까지? 토종벌 멸절 위기를 이겨냈듯이 현재 진행 중인 서양종 꿀벌에서의 응애 병충해를 이겨낼 맞춤형 품종 개량이 성공을 거둔다면 세계적으로 획기적인 진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응애 저항성을 갖추는 건 과거 낭충봉아부패병 때와는 훨씬 더 까다로운 문제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동양종 토종벌에서의 응애 저항성이란 수천 년 세월 속에서 고도화된 사회적 면역 시스템인 만큼 특정 원인 유전자 한두 개를 찾아낸다고 해서 해결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미국에선 농무부와 루이지애나 대학 등이 20년간의 노력 끝에 꿀벌의 청소 행동을 강화한 바로아 응애 저항성 품종을 개발하는 등의 성공 사례가 소개된 바 있지만 아직 충분치 못하다는 게 최용수 박사의 설명입니다. 이런 개량 품종들의 경우 실제 실효 생존율이 기존 품종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높지 않거나 다음 세대에선 이같은 기능성이 사라지는 결함도 나타난다는 겁니다. 품종개량과는 별도로 기존 내성 생성을 뛰어넘는 치료제 등의 개발 연구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때 백신 개발의 신기원을 이뤘던 RNA 방식의 치료제 연구 등이 그렇습니다. 꿀벌이 이 치료제를 먹으면 체내 효소의 도움으로 더 작은 RNA물질로 변환되는데 벌 유충에 기생하는 응애가 이 물질을 섭취할 경우 필수 단백질의 생성을 막는 방식입니다. 인류가 먹는 전세계 100대 농작물 가운데 70종 이상이 꿀벌의 도움으로 열매가 맺는 만큼, 기후위기와 국제 공급망의 가속화는 꿀벌의 생태를 더욱 위기로 몰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대체 약제 개발이든 품종 개량이든 꿀벌 응애에 맞설 다양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때입니다. ▷ 관련기사 : 멸종 위기 '꿀벌'…인공수정 기술로 날아오를까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이번 주 들어 낮 최고기온이 25도에 육박하면서 더위가 코앞으로 다가온 느낌입니다. 해가 떠 있는 시간도 갈수록 길어집니다. 이런 날씨 속에서 우리가 매일같이 마시는, 생수가 담긴 플라스틱 페트병은 햇빛을 오래 쬐면 어떻게 될까요? 생수를 담은 채로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페트병 속 유해 물질이 용출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2013년 생수 페트병 직사광선 노출 첫 시험... 2022년엔 감사원 재시험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10년도 넘게 의심스러운 문제로 제기돼 왔습니다. 지난 2013년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먹는 샘물 미량물질 함량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를 수행하면서 시험에 나선 게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조사에서는 60℃에서 4일간 보관했더니 유해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냄새 역치값, 즉 사람이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20μg/l 이상 용출되는 게 확인돼 여름철 고온 노출을 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름철 생수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목소리가 드물게 있는데, 이 냄새 원인이 바로 아세트알데히드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 2022년 감사원이 '먹는 물 수질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생수 페트병 직사광선 노출' 문제 역시 감사 대상이 된 겁니다. 당시 감사원은 "2011년 이후 먹는 샘물 제조업체들이 페트병을 자체 제작하는 비율이 증가해, 제조 업체별 페트병의 유해 물질 용출 여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감사 배경을 밝혔습니다. 생수 6개월 유통기한, 업체 요청으로 최대 2년까지 늘어나 먼저 감사원은 생수의 유통 실태를 조사했습니다. 서울 시내 소매점과 편의점 가운데 무작위로 272곳을 점검했더니, 101개 점포(37.1%)에서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야외 직사광선 환경에 노출한 채 보관 중이라는 겁니다. 생수의 유통기간은 먹는물관리법에 따라 6개월로 돼 있고 이 기간을 연장하고자 할 경우에는 품질 변화가 없다는 걸 과학적으로 입증해 시도지사의 승인을 받게 돼 있습니다. 실제로 생수 업체들은 지자체로부터 유통기간 연장 승인을 받아 1년 내지 2년의 유통기간을 설정해 운영해 왔다고 감사원은 밝힙니다. 한발 더 나아가 감사원은 실제로 생수의 평균 유통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편의점 본사 측 제출 자료를 분석했습니다. 점포별 보관 주기 데이터를 직접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생산 이후 실제 판매까지 짧게는 1일에서 1년 이상의 기간이 걸리는 것으로 추정됐다는 게 감사원 설명입니다. 업체들의 유통기한 연장 요청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감사원 '먹는 물 수질관리 실태' 감사보고서 (2022) 감사원 감사에서는 직사광선 노출 시 안전성을 파악하기 위한 실험도 진행됐습니다.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국내 제품 3종과 수입 제품 1종) 여름철 오후 2~3시 정도의 자외선 강도와 50℃ 온도의 가혹 조건을 설정한 실험용 체임버에서 15일과 30일간 각각 노출한 뒤 생수의 수질을 검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5일 노출은 자연 상태에서 약 3.9개월에, 30일 노출은 7.8개월 정도에 해당한다고 감사원은 밝힙니다. 분석 결과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와 아세트알데히드 그리고 안티몬이 검출돼 유해물질의 용출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감사원은 밝혔습니다. 중요한 건 이 용출량이 인체에 유해한 정도인지 여부인데, 우리나라 먹는물 수질기준상 포름알데히드의 경우는 허용치를 초과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수질기준이 0.5㎎/ℓ인 반면 감사원 실험에서는 가장 가혹한 조건인 30일 노출 테스트에 있어 4개 제품 가운데 수입 제품 1종은 0.31㎎/ℓ, 나머지 국내 제품 3종 가운데 가장 높은 게 0.17㎎/ℓ이었습니다. 그밖에 국내 2종은 각각 0.12㎎/ℓ와 0.05㎎/ℓ이었습니다. 포름알데히드는 국제암연구소가 분류한 1군 발암물질로 새집증후군이나 아토피성 피부염의 원인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티몬은 유독성 중금속으로 도금, 안료 등에 사용되는데 중독됐을 경우 위장관 질환을 일으키며 발암성이 의심되는 물질이기도 합니다. 일본 및 호주 수질기준 초과 제품 발견 국내 기준은 충족했지만 먹는 물 수질기준이 엄격한 나라의 기준에 따르면 포름알데히드 허용치를 초과하기도 합니다. 가령 일본 허용치는 0.08㎎/ℓ이어서 감사원 검사대상 4개 샘플 중 3개는 일본 기준을 초과했습니다. 30일 노출 시험뿐 아니라 15일 노출에서도 수입제품 1종은 0.18㎎/ℓ이 용출돼 일본 기준을 초과했습니다. 포름알데히드와 달리 아세트알데히드나 안티몬의 경우는 국내 먹는 물 수질 기준이 없습니다. 하지만 안티몬의 경우 해외 선진국들은 허용 기준을 갖추고 있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0.006㎎/ℓ, 일본 0.015㎎/ℓ(수질관리 목표 설정 항목), 호주 0.003㎎/ℓ입니다. 호주가 가장 강화된 기준을 갖춘 셈인데, 호주 기준에 비춰보면 감사원 검사에서는 15일 노출과 30일 노출에서 모두 허용치 초과 제품이 나타났습니다. 특이한 점은 30일 노출에선 안티몬 호주 기준치 초과가 4 샘플 중 1개에 그쳤는데, 오히려 15일 노출에선 모두 3 샘플이 호주 기준을 초과했습니다. 감사원은 실험 결과에 따라 환경부에 조치 사항을 주문했습니다. 페트병에 담긴 생수의 제조공정이나 유통과정의 다양한 조건별로 유해 물질 용출 시험을 하는 등 정밀한 검토를 거쳐 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직사광선 노출을 최소화하여 생수를 유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겁니다. 생수 민간 판매 허용 30년 만에 제도 개선 이 같은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환경부가 지난 4월 24일 대책을 내놨습니다. 감사 결과가 나온 지 3년 만입니다. 특히 올해는, 국내에서 생수가 민간에서 처음 판매 허용된 1995년 이후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내 판매 생수는 전량이 지하수를 개발해 만듭니다. 지난 30년간 생수 업체들의 지하수 개발을 놓고 농민들과의 갈등이 잇따르고 지하수 고갈 논란이 제기돼왔는데, 이런 문제점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발표하는 과정에서 생수병 직사광선 노출 문제도 함께 다뤄진 겁니다. 감사원 주문에 따라 환경부도 다시 직사광선 문제에 대해 '먹는 물 유통·위생관리 방안 연구'란 제목으로 연구 용역을 지난 2022년 10월부터 1년간 벌였습니다. 실태 파악을 위해 현장 조사를 벌인 결과 소매점 97곳 가운데 30%가 야외 및 자외선 노출 장소 등 부적절한 보관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티몬 및 알데하이드류가 보관 시간에 비례해 농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지하 보관 제품보다 옥외 노출 제품에서 농도 증가가 더 높게 관찰됐습니다. 이 중 포름알데히드는 실제 일상 환경 기준으로 18개월 경과한 시점부터 먹는 물 수질감시기준 0.5㎎/ℓ의 절반이 넘는 수치까지 검출됐다고 환경부는 밝혔습니다. 환경부 시험 조건은 실험 온도 40℃, 노출 기간 60일이었는데, 이중 노출 기간 60일은 실제 일상 환경 기준으로 24개월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환경부는 이 검사가 의미하는 바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용출이 나타나긴 하지만 십수 개월의 오랜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현상인 만큼 직접적인 위해가 되긴 어렵다는 겁니다. 하지만 감사원이 추정했듯이 실제 생수 제조에서 소비까지 유통기간이 길게는 1년이 넘는 걸로 분석됐다는 점은 '십수 개월'이란 게 현실성 없는 기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정리하면 2013년 이래 3차례 정부에 의해 수행된 검사 결과 직사광선과 자외선에 오래 노출 시 생수가 담긴 페트병에서 유해 물질이 용출된다는 게 드러났다는 겁니다. 하지만 해외 선진국에 비해 먹는물 수질기준 혹은 수질 감시기준은 상대적으로 완화돼 있거나(포름알데히드), 기준 자체가 없는 것으로(안티몬)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직사광선 노출 정부 대책은 빛 가리는 차광포 환경부가 내놓은 대책은 편의점이나 소매점에 옥외 보관 시 빛을 가릴 수 있는 차광포를 씌우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그동안 적정 보관 의무를 어겼을 때 3천만 원 벌금 조항이 너무 강하다 보니 실제 적용 사례가 없었는데, 처벌 조항을 과태료 정도로 현실화해 적용하겠다는 대책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3년 전 감사원 지적에 대해 환경부는 당시 이 같은 의견을 냈습니다. "페트병 제조 공정과 보관환경에 따른 수질변화를 조사해 필요시 제조공정에 대한 관리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약속했던 제조공정 관리 강화 방안은 빠진 채 페트병을 덮을 차광포가 사실상 유일한 대책이 된 셈입니다. 또 수질(감시) 기준상 포름알데히드 허용치 강화나 안티몬 기준치 도입 등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이 직사광선에 오래 노출된 생수 제품을 피할 방법은 뭘까요. 일단 제조일자를 확인해 가급적 최근에 생산된 제품을 선택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편의점이나 소매점에 가보면 묶음할인 등 생수 제품을 소비자 눈에 띄도록 하기 위해서 노상에 진열해 둔 곳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가급적 이런 제품도 피하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 관련기사 : "무슨 냄새?" 햇빛만 쬐도 생긴다…여름철 생수병 비상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매일 마시는 물뿐만 아니라 공기 중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된 바 있습니다. 사람 몸도 다르지 않습니다. 입이나 코로 흡입된 미세먼지가 혈액을 따라 장기 곳곳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도 잇따르는 연구를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최근 미국 뉴멕시코대 연구에 따르면 숨진 사람들의 뇌 부검 샘플을 분석한 결과 의사결정 및 행동 조절과 관련된 전전두엽에서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집중적으로 나타났으며, 일반인보다 치매 환자 뇌에서 더 높은 농도가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관심은 몸속으로 들어온 미세플라스틱 입자의 인체 위해성 여부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뉴멕시코대 연구 결과처럼 일반인과 치매 환자 간 검출 차이 같은 간접적인 상관관계가 차츰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탈리아 캄파니아 루이지 반비텔리대학 연구에선 혈관 내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된 사람은 뇌졸중이나 심장병 등의 위험이 4배 이상 높다는 연구 역시 이런 간접적인 영향을 시사합니다. 저독성·저반응성 플라스틱... 100년간 잘 써왔는데 하지만 정반대로 이런 의문도 있습니다. 지난 100년간 인류가 플라스틱 물질을 사용해 오면서 이렇다 할 인체 위해성이 불거지지 않은 것은 상대적으로 플라스틱 물질의 안전성을 방증하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같은 분입니다. 이 교수는 "플라스틱은 자연환경에서 100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 플라스틱이 화학적으로 매우 반응성이 낮은 저독성 물질이기 때문"이라며 "미세플라스틱의 인체 유해성을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는 많지 않다"라고 지적합니다. 미세플라스틱의 뇌신경 손상 메커니즘 연구결과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미세플라스틱, 그중에서도 기존 미세플라스틱보다 수백분의 1 정도로 작은 나노플라스틱의 뇌신경 손상의 병리 메커니즘을 밝힌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됩니다. 간접적인 차원의 인체 위해 상관관계를 넘어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노플라스틱이 뇌세포 속 미토콘드리아에 쏠린 까닭은 해당 연구는 한국뇌연구원과 국가독성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연구진은 50나노미터 크기의 나노플라스틱을 실험용 쥐의 코로 흡입시키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 미세플라스틱에는 형광 물질이 입혀져 이동 경로가 추적 가능합니다. 실험 결과 이 가운데 폐를 거쳐 혈액을 타고 뇌혈관장벽을 넘어 뇌신경세포까지 이동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특이한 건 뇌신경세포로 이동한 나노플라스틱 입자들이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 부근에 쏠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에서 화학적 에너지 ATP를 생산하는 에너지 공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김도근 한국뇌연구원 치매연구그룹 박사는 나노플라스틱 입자가 미토콘드리아의 ATP 생산을 방해하고 이로 인해 에너지 공급이 중단돼 세포가 사멸하는 일련의 과정이 이번 연구에서 드러났다고 밝힙니다. 나노플라스틱으로 인해 신경세포에 병리현상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이 최초로 규명된 셈이라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뇌혈관장벽의 이상 및 신경 염증이 유발되는 과정도 드러났다고 설명합니다. 나노플라스틱 뇌신경 독성 발현 원인은? 결론적으로 나노플라스틱의 실험쥐 뇌에서 신경 독성을 일으키는 과정이 드러났다는 건데, 그렇다면 궁금한 건 미토콘드리아의 ATP 생산기능에 장애를 일으킨 원인이 뭘까라는 점입니다. 연구진도 아직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은 내놓지 못합니다. 다만 몇 가지 추정되는 가설을 제시하는 수준입니다. 첫 번째는 '전기화학적 간섭'입니다. 고분자 물질일 때 아주 안정적이던 플라스틱이 나노 단위로 극미세화될 경우 전자적 안정성이 깨질 수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미토콘드리아에서 ATP를 생산하는 과정도 막을 통한 이온의 이동과 전위차가 쌓여서 이뤄지는 전기화학적 메커니즘을 거친다는 점입니다. 안정성을 잃은 나노플라스틱 입자가 이 같은 전기화학적 메커니즘을 방해할 가능성을 김 박사는 추정했습니다. 두 번째는 플라스틱 입자 자체의 독성이 아니라 플라스틱 생산 과정에서 들어가는 다양한 화학 성분의 첨가제 탓이 아니냐는 겁니다. 실제로 플라스틱 생산시 물성을 유연하게 하는 가소제나 안정제, 난연재 등 다양한 화학물질이 함께 쓰입니다. 셋째는 나노플라스틱이 햇빛 속에 있는 자외선과 풍화작용에 의해 물리적 스트레스가 가해져서 미세하게 쪼개질 때 겉 표면과 모양새가 이전에는 없던 거칠고 날카로운 구조들을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표면적이 크게 늘어나는 효과도 생기고요. 이런 생김새적 특성으로 인해 몸속 생체 분자와 결합할 가능성이 커지는 게 독성 발현의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되기도 한다는 게 함께 연구했던 이규홍 국가독성연구소 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장의 설명입니다. 이번 한국뇌연구원 연구진은 나노플라스틱뿐 아니라 미세먼지에 대해서도 실험쥐 흡입 실험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미세먼지의 뇌신경 손상 메커니즘도 규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진은 초미세먼지인 PM 2.5를 실험쥐에 흡입시킨 뒤 뇌 변화를 관찰한 결과, 뇌혈관 주변에서 신경세포의 가지돌기(Dendrite) 손실과 미세아교세포(Microglia) 활성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김 박사는 이는 염증 반응의 증가와 더불어 신경 기능 저하를 시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뇌혈관 장벽의 손상으로 인해 뇌혈류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뇌 속 노폐물 배출을 담당하는 글림프 시스템에도 이상을 일으킨다는 점도 드러났습니다. 이 가운데 노폐물 배출의 핵심 역할을 하는 별아교세포(Astrocyte)란 게 있는데, 이 세포의 수족 구조(Aquaporin-4)가 줄어드는 현상이 확인된 겁니다. 이는 뇌의 해독, 정화 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세포별 유전자 피해 드러내는 신기술 한몫 미세먼지의 뇌신경 손상 메커니즘 연구결과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실험실에서 배양된 뇌혈관 내피세포를 대상으로 공간 전사체 기법의 분석도 병행됐는데, 미세물질의 뇌신경 영향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공간 전사체 분석 기술은 인체 장기 내 세포들을 위치에 따라 공간적으로 구분한 뒤, 병리현상이 나타나는 세포별 유전자 발현 변화를 세포 단위로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공간 전사체 분석 결과, 뇌 속으로 들어간 미세먼지 물질이 뇌세포의 특정 유해물질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 기전이 관찰됐습니다. 우리 뇌 속에는 자동차 배기가스 등 지용성 환경 독성물질이 침입할 경우 이를 알아채고 대응하기 위해 해독 효소를 내도록 작용하는 특정 유전자 발현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실험에 쓰인 미세먼지는 금속이온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가 합쳐져 만들어졌는데, 바로 이 PAH 탓에 해당 수용체가 활성화됐다는 게 연구진 설명입니다. PAH란 2개 이상의 벤젠 고리가 결합된 구조의 유기화합물인데 자동차 배기가스나 소각로 등 유기물의 불완전 연소시 부산물로 발생하는 유독물질입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환경 독성 물질이 혈관을 통해 뇌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가 파악됐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연구진은 설명했습니다. 동일한 미세먼지에 노출됐더라도 신경세포, 아교세포, 혈관세포 등 각기 다른 세포 유형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공간 전사체 기술 덕분입니다. 기존엔 파악하기 어려웠던 세포별 영역별 특이반응의 실체가 드러났고, 미세먼지로 인한 뇌 손상이 단일 메커니즘이 아닌 복합적이고 세포 특이적인 경로를 통해 발생할 수 있다는 근거가 제공됐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미세플라스틱과 미세먼지 같은 미세물질의 위험성을 부각하는 연구와 언론보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핵심은 인체 유해성 여부일 텐데, 불안감을 조장하거나 혹은 위협을 방관하는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다양한 연구를 통해 과학적 데이터를 쌓고 이에 따라 현실을 평가하고 대응책을 찾는 일입니다. 이번 한국뇌연구원과 국가독성과학연구소의 실험 같은 연구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 관련기사 : [단독] 몸속 나노플라스틱, '뇌신경 손상' 일으켜…국내 연구진 첫 규명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벚꽃 만개로 느껴진 봄기운도 잠시, 곧 있으면 여름철 더위를 앞두고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나 동양하루살이 같은 이른바 대발생 곤충 떼 출몰시기가 찾아옵니다. 지난 수년간 대발생 곤충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지만 정작 유입경로나 대발생 원인 그리고 방제법 등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여러 연구진들의 노력 덕분에 대발생 곤충 생태와 관련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0일 열린 '2025 서울시-생물자원관 대발생 곤충 공동대응 전략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러브버그와 동양하루살이 관련 연구 결과가 그랬습니다. 이번 지구력에서 상세히 소개해봅니다. 러브버그의 경우는 종전에 국내에 토착화되지 않았던 외래 유입종인 건 분명한데 어디서 어떻게 유입됐는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난징, 항저우 등 중국남부나 대만, 오키나와 등에서 많이 발생하는 만큼 이들 지역으로부터 제주도를 통해 북상한 게 아니냐는 추정 정도였습니다. 2025 서울시-국립생물자원관 공동대응 전략 심포지엄 발표 북한산 러브버그 어디서 왔나? 서울대 신승관 연구팀이 이 같은 러브버그 유입 경로 확인을 위한 유전체 비교 분석을 국내에서 처음 시도해 왔는데, 그 결과가 이번 심포지엄에서 발표됐습니다. 남중국과 오키나와에서 발생한 러브버그와 국내 발생 개체 간의 유전적 분화도(FST)를 조사했더니, 한국 발생 개체와 난징 개체 간에는 0.303, 한국-항저우는 0.325, 한국-오키나와는 0.729로 나타났습니다. 유전적 분화도란 두 개체군이 유전적으로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값입니다. 숫자가 작을수록 유전적으로 가깝다는 뜻입니다. 0.25 이상이면 유전적으로 크게 분화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기존에 유입 경로로 알려졌던 난징, 항저우, 오키나와는 모두 0.25 이상으로 나타나, 국내 발생 개체와의 유전적 거리가 상당한 만큼 직접적인 기원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신 교수팀의 연구 결과입니다. 2025 서울시-국립생물자원관 공동대응 전략 심포지엄 발표 반면 난징, 항저우로부터 훨씬 북쪽에 있는 칭다오 지역에서 나타난 러브버그는 국내 발생 개체와 유전적 분화도가 0.164에 그쳤습니다. 신 교수는 칭다오 혹은 인근 산둥반도 지역에서부터 국내로 선박 등을 통해 유입됐을 가능성이 큰 걸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국내에서 러브버그가 처음 등장했던 게 2015년 인천 산곡동이라는 게 신 교수 설명입니다. 따라서 서해를 오가는 선박편을 통해 산둥반도에서 인천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습니다. 남중국이나 오키나와 러브버그는 5월과 9월 두 차례 짝짓기 비행을 하며 대발생하는 반면 칭다오 개체들은 여름에 한 번 짝짓기 하는 특징이 있는데, 국내 러브버그 역시 칭다오 개체들과 같습니다. 이런 특징 역시 산둥반도를 통한 유입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아열대 지역에서 자생하던 러브버그가 산둥반도와 국내 수도권에까지 출몰한 건 큰 틀에서 기후변화와 상관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열대 지역의 모든 곤충이 북상하는 건 아닌데요. 북쪽으로 올라간 러브버그의 특성은 뭘까요? 살충제 잘 안 듣는 러브버그 왜? 신 교수팀의 또 다른 러브버그 연구 결과는 국내로 들어온 러브버그의 또 다른 특징을 알려줍니다. 국제 저널 '유전체 생물학 및 진화; Genome Biology and Evolution)' 지난해 10월호에 A Chromosome-Scale and Annotated Reference Genome Assembly of Plecia longiforceps Duda, 1934 (Diptera: Bibionidae)이란 제목으로 실렸는데요. 국내 발생 러브버그의 유전체를 분석했더니 살충제 저항성에 관련된 CYP 유전자가 128개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이는 곤충 중에서도 비교적 높은 수치라고 신 교수팀은 밝혔습니다. 이 CYP 유전자는 벌레 잡는 살충제로 많이 쓰이는 피레스로이드나 네오니코티노이드 같은 물질을 해독시키는데 영향을 미치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아열대 지방에 서식했던 러브버그가 중국 북부 지역을 거쳐 한반도까지 유입해 생존해 온 데에는 이렇게 강한 살충제 저항성이 한몫했을 걸로 추정됩니다. 또 하나는 이 같은 살충제로 방제에 나설 경우 효과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도 하겠습니다. 동양하루살이 찾아 한강 수중 잠수했더니 이번엔 동양하루살이입니다. 이 곤충의 애벌레 서식지를 확인하기 위한 김동건 삼육대 교수팀의 한강 잠수 조사도 흥미롭습니다. 하루살이는 물속 강바닥에서 1년간 유충 생활을 하다 수면으로 올라와 껍질을 벗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우화 과정을 거치면서 성충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유충 서식지는 물가 가장자리 수초들이 많은 얕은 바닥층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김 교수팀이 지난해 4월~10월까지 한강본류와 지류 등 22개 지점에 대해 물속을 직접 들여다본 결과는 기존 추정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한강의 좌안, 우안 등 하천 수변부와 수심이 깊은 강 중앙부를 나눠서 수중 조사한 결과, 예상과 달리 수심이 깊은 강 중앙부에 동양하루살이 유충들이 대거 서식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개체수가 폭증하는 8월에 좌우안 수변부와 강 중앙부를 비교했더니 유충 개체수가 10배 이상 강 중앙부에 더 많았다는 게 김 교수의 조사 결과입니다. 2025 서울시-국립생물자원관 공동대응 전략 심포지엄 발표 왜 이럴까요? 김 교수는 유충의 기관아가미에 주목합니다. 동양하루살이 성충과 달리 유충 시절에는 물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기관아가미를 통해 호흡을 합니다. 고운 퇴적토가 쌓인 가장자리 진흙층에서는 고운 모래가 기관아가미를 막아 호흡에 방해가 되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입니다. 한강 한가운데 띄운 벌레 잡는 포집기 러브버그와 동양하루살이의 생태가 새롭게 드러나면서 방제법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동양하루살이의 경우 빛을 향해 달려드는 습성을 이용해 강변에서 빛을 밝히는 포충기를 설치해 방제하는 방식이 흔하게 쓰입니다만 강변 산책로 부근에 설치하다 보니 더 많은 동양하루살이를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쪽으로 끌어들인다는 모순점도 있습니다. 김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라 새로운 조명 포집 방안이 제안됐습니다. 강 중앙에서 성충이 많이 발생하는 만큼 바지선을 강 중앙부에 띄워 한강 한가운데에서 포집을 하자는 겁니다. 지난해 시범 테스트를 거친 데 이어 올여름 한강에는 이 같은 강 중앙부 바지선을 이용한 포집 방제법이 본격화될 예정입니다. 러브버그 방제에도 새로운 시도가 이뤄집니다. 기존 미국에서의 연구결과가 새롭게 국내에 알려진 덕분인데요. 장미꽃과의 꽃잎에서 방출하는 방향 물질이 러브버그를 유인하는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이 천연 성분 물질은 페닐아세트알데하이드입니다. 러브버그 역시 꿀벌과 비슷하게 꽃가루나 꿀을 먹이로 삼는데 특히 장미꽃과 식물의 방향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2015년도 미국 연구에 따르면 이 물질을 이용해 포집기를 만들어 연구했더니 포획된 1만 2천 개 벌레 가운데 805개, 6%만이 다른 곤충이었고 나머지 모두가 러브버그였던 걸로 나타났습니다. 러브버그 유인하는 장미꽃 방향물질 현재 이 물질을 이용해 러브버그 포집기 샘플이 만들어졌고요. 이번 여름을 앞두고 북한산 지역 등 러브버그 출몰지역에 대해 시범 테스트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이 두 벌레는 사람한테 특별한 해를 끼치지 않는다지만 대발생시 보는 사람에게 주는 혐오감 등으로 처치곤란이 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연과 환경에 도움을 주는 익충으로서의 위상이 있는 만큼 화학물질로 만든 살충제를 대거 동원해 방제하는 데 반감이 큽니다. 또 주로 발생하는 한강이나 북한산 등에 유해 살충제를 대량으로 쓸 경우 주민 건강 피해를 일으킬 수도 있고요. 이 때문에 친환경 방제법에 대한 필요성이 높았습니다. 새롭게 고안된 방제 방안들이 실제로 올여름 효과가 있을지 주목됩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거세진 통상 압력과 맞물리면서 유전자 변형(LMO) 감자의 수입 승인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미국 심플로트사의 LMO 감자 'SPS-Y9' 품종에 대해 환경부와 해수부에 이어 농진청이 심사 개시 7년 만에 수입 적합 판정을 내린 사실이 SBS 보도로 확인된 이후, 소비자와 농민단체의 반발은 물론 전라남도도 적합 판정 철회를 공식적으로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해당 품종의 국내 수입 개방까지는 식약처의 최종 인체 위해성 심사만이 남은 상황입니다. ▷ "한국에 팔게 해달라" 7년 끌다 결국…심사 통과 (장세만 환경전문기자 리포트, SBS 8뉴스, 2025년 3월 19일) 콩기름 대부분 LMO 수입 콩, 성분 표시 왜 없나? 감자에 앞서 콩 옥수수 등 6개 품종의 농산물이 이미 수입 승인을 통해 국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콩입니다. 지난 한 해에만 LMO 콩 90만 톤, 7천 2백억 원어치가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이중 브라질산이 48만 톤, 미국산이 42만 톤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대형 식품업체들이 들여오는데요. 마트에 진열된 콩기름의 대부분에 LMO 수입 콩이 원료로 쓰인다는 게 식품 업계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일반 콩의 경우 급변하는 기후 등 적응 문제로 안정적인 수급에 어려움이 있다는 겁니다. 반면 LMO 콩은 제초제 저항성 등 재배 강점들 덕분에 공급량 확보에 유리한 걸로 알려집니다. 그런데 마트에 진열된 많은 브랜드의 콩기름 제품 라벨을 들여다봐도 유전자 변형 원료 사용 여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반면 원산지 표기는 잘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식품위생법상 표시 의무가 있기는 원산지뿐 아니라 유전자 변형 식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왜 차이가 날까요? 콩기름 제조 특성상 250도가량의 높은 온도와 고압의 압착 처리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DNA 유전자 물질이 모두 제거되기 때문에 일반 유전자는 물론 문제의 변형 유전자도 남아있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이럴 때는 표시 의무 예외가 적용되기 때문에 LMO 수입 콩을 썼더라도 표시 사항을 찾아볼 수 없는 겁니다. 콩기름엔 LMO 콩, 두부나 콩나물엔 일반 콩…이유는? 그렇다면 콩을 원료로 하는 두부나 콩나물은 어떨까요? 이런 식품들은 기름에 비해서 가공 정도가 훨씬 덜하기 때문에 유전자 물질이 100% 제거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식품기업들은 LMO 콩을 써서 두부나 콩나물에 유전자 변형 원료 사용을 표시하기보다 일반 콩을 쓰는 전략을 취합니다. (원산지로 따지면 국내·외산 모두 쓰이죠) 유전자 변형 원료 사용 표시로 인해 잠복해 있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지 모른다는 우려 탓입니다. 앞으로 남은 식약처의 LMO 감자 인체 위해성 심사와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게 있습니다. 사실 미국 심플로트사의 LMO 감자 인체 위해성 문제는 이미 한 차례 식약처 심사 문턱을 넘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18년 'SPS-E12'라는 품종이었습니다. 당시 식약처는 모두 8차례의 심사위를 개최해 심사를 벌였고 심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 동물실험 결과 독성이 없으며 알레르기 유발 우려도 없고, 영양성분 상으로도 기존 감자와 생물학적 차이가 없다며 "결론적으로 안전성에 문제가 없음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더 나아가서 식약처는 2018년 국정감사를 통해 이듬해 2월 수입 승인 예정이라고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LMO 감자 수입 최종 식약처 심사, 관건은?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듬해 2월 수입승인은 이뤄지지 않았고 식약처는 입장을 바꿔 2025년 3월 현재까지도 무려 9년간 심사가 계속 중이라는 입장입니다. 식약처 입장이 180도 돌변한 배경은 뭘까요? 심사를 마친 직후였던 2018년 10월 미국에서 LMO 감자의 위험성을 고백한 책의 출간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걸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책의 저자가 심플로트에서 직접 LMO 감자 개발을 지휘했던 과학자였기 때문입니다. 카이어스 로멘스라는 박사인데, 책 제목은 <판도라의 감자: 최악의 GMO(Pandora's Potatoes : The Worst GMOs)>입니다. 이런 내용을 지난해 10월 지구력 코너 <'안전성 심사만 9년째' GMO 감자…뭐가 문제길래?>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현재 국내 수입을 위해 식약처의 마지막 인체 위해성 심사가 이뤄지고 있는 SPS-E12와 SPS-Y9, 두 품종 모두 로멘스 박사가 지적한 문제점에 대한 검증이 불가피합니다. 농민 및 소비자 단체 여러 곳이 지켜보고 있는 만큼 납득할 만한 평가 결과를 내놓지 않는다면 LMO 감자 수입은 트럼프 정부와의 통상 갈등을 악화시킬 뇌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식약처가 안전성 논란의 씨앗을 남기지 않도록 명확한 검증 결과를 내놓아 소비자들의 불안이 확산하지 않길 바랍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한강에 물이 동났다." 경기연구원에서 상수원을 연구하는 조영무 박사의 말입니다. 여의도에만 나가봐도 한강에 물이 넘실대는데 무슨 말일까요? 오늘 지구력은 지난 3월 12일 환경부의 기후대응댐 후보지 확정을 계기로 한강 물 부족 얘기를 해봅니다. 한강 유역에 댐이 10개나 되지만 이 중 용수 공급 목적으로 쓰이는 댐은 충주댐과 소양강댐에 그칩니다(횡성댐도 있으나 양은 미미합니다). 이 두 곳이 보내주는 하루 1천만 톤의 물이 수도권의 식수원 및 농공 용수로 쓰입니다. 나머지 7개 댐은 주로 발전용 댐입니다. 발전댐의 물 역시 전기 생산과 동시에 하류로 방류되지만 용수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발전용 댐은 전기수급과 가격 수준에 따라 수력발전기를 가동하는 발전량이나 발전 시간이 들쭉날쭉합니다. 반면 하류에서 물을 공급받는 쪽에선 연간 단위의 안정적인 공급 계획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불규칙한 방류는 수자원으로서 의미가 없습니다. 용수 계약률, 소양강댐 96% 충주댐 92% 문제는 충주댐, 소양강댐의 용수 공급 가능량이 이미 한계에 달했다는 겁니다. 용수 계약률이 소양강댐 96%, 충주댐 92%로 나타났습니다. 자칫 큰 가뭄으로 저수량이 줄면 수도권 물 수요를 충당하기 힘든 겁니다. 2022년 만들어진 국가수도기본계획에 따르면 2035년 한강 유역 3개 댐 수원의 일평균 공급능력은 1,096만 톤이며 수요량은 1,031만 톤으로 여유분은 고작 65만 톤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향후 수도권 물 부족의 가장 큰 원인은 경기도 용인에 들어서게 될 2개의 초대형 반도체 클러스터입니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자리 잡게 될 SK하이닉스와 남사읍에 지어질 삼성전자의 세계 최대 규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입니다. 반도체 업종의 특성상 각종 정밀부품의 세정 등에 막대한 양의 초순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2022년 국가수도기본계획이 확정됐을 때는 SK하이닉스 클러스터의 잠재 용수 수요량만 반영됐을 뿐, 삼성전자가 들어설 남사읍 국가산단은 아직 발표도 안 됐던 때입니다. 두 클러스터의 물 사용량은 얼마나 될까요? 203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보면 SK하이닉스가 하루에 87만 톤, 삼성전자 80만 톤이라는 게 조 박사의 분석입니다. 합치면 167만 톤인데 현재 서울시 전체 하루 물 사용량 280만 톤의 60%에 달할 정도로 막대한 양입니다. 80년 만에 '용수 공급' 도입한 화천댐 이런 문제 때문에 지난 2023년부터 북한강 상류 화천댐이 동원됐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44년 발전용 댐으로 지어졌는데 완공 후 약 80년 만에 처음으로 용수공급 기능을 추가 도입한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발전 댐의 경우 방류가 들쭉날쭉하기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전기를 생산하면서도 고정적으로 방류가 가능한 최적 물량이 얼마나 될지 실증했더니 초당 22톤, 하루 100만 톤의 공급이 가능한 걸로 나타났습니다(하지만 이 100만 톤이 용인 클러스터 2곳의 물 이용량 167만 톤에 곧바로 적용되진 않습니다). 여기에다 심각한 수준의 가뭄이 닥쳤을 때를 가정해 환경부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한강 유역의 물 부족량이 연간 3.76억 톤(하루 103만 톤)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지난 3월 12일 기후대응댐 후보지가 확정됐던 제1차 하천유역수자원관리계획 의결 과정에서 환경부가 계산한 분석치입니다. 환경부는 지자체 간 취정수장 공조와 화천댐 다목적화 등 기존 수자원 효율화를 통해 부족분 가운데 80%에 해당하는 2.82억 톤(하루 77만 톤)을 확보할 수 있지만 나머지 20%는 신규 댐을 건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가장 큰 규모의 댐이 강원도 양구 수입천댐(연 0.52억 톤)이고 그 밖에 단양 단양천댐(0.12억 톤), 연천 아미천댐(0.09억 톤), 삼척 산기천댐(0.002억 톤)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4곳 중 가장 덩치가 큰 수입천댐과 단양천댐이 이번 기후대응댐 후보지 확정 과정에서 '보류'됐습니다. 수도권의 물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지방의 희생이 불가피한 신규 댐 건설을 추진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게 이번 기후대응댐 후보지 확정에서 드러난 겁니다. 당초 14곳 후보지 가운데 9곳만 확정됐는데 상당수는 홍수나 가뭄으로 지역민들의 피해가 가중돼 왔던 곳들입니다. 댐 건설이 현지 동의를 구하기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양구 수입천댐의 경우 반도체 클러스터 용수 공급용에 가깝다는 지적입니다. 주민 반발을 넘기 어려운 겁니다. 용수 공급용 댐 건설 논의에 앞서 기존 수도권 내 수자원 이용 효율화가 제대로 검토됐는지는 의문입니다. 환경부는 화천댐 등 기존 수자원 활용 18가지 방안과 하수 재이용 등 대체 수자원 확보 방안 25가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수 대책을 적용해 봤지만 가뭄 심각시 물 부족분을 채우긴 역부족이라는 설명입니다. 수도권 지자체 간 물 사용 효율화, 정부가 조정해야 앞서 말씀드린 대로 팔당댐 의무 방류량 하루 1천만 톤 가운데 서울시가 가져다 쓰는 물이 280만 톤입니다. 그런데 실제 사용량 말고 시설 용량으로 치면, 서울시의 하루 취수 가능 시설 용량이 616만 톤이나 됩니다. 실제로 쓰는 물의 양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셈이죠. 물이란 게 워낙 도시 기능의 중추적 역할을 하다 보니 어떤 지자체든 일단 넉넉히 확보하려는 생리가 작동합니다. 서울시도 유사시를 대비해 가능한 충분한 용수 공급 시설을 갖춘 겁니다. 이처럼 한 번 설정된 시설용량은 국가수도기본계획상 상수원 배분량을 산정할 때 큰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 된다는 게 조 박사의 설명입니다. 물 이용 효율화란 광역 단위 물 배분 시스템에서 남는 물 주고받기를 새로 짜야한다는 건데, 서울 인천 경기 3개 지자체마다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중앙 정부가 나서서 현재의 물 이용 실태를 바탕으로 조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디자인 : 안준석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플라스틱 중에서도 페트 소재의 음료병을 사용 후 다시 같은 식음료용으로 재활용하는 방식을 '보틀 투 보틀'(B2B)이라고 합니다. 기존에는 인형 솜이나 공사 현장에서의 파이프 제조 등에 쓰이는 저급 재활용이 대부분이었죠. 이런 재활용도 안 하는 것보다는 좋겠지만 한 차례 재활용에 그칠 뿐 추가 반복적인 활용은 어렵습니다. 이에 비해 '보틀 투 보틀'은 신재 페트 원료와 섞어 여러 차례 반영구적으로 되풀이해 같은 용도의 음료병으로 쓸 수 있는 만큼 훨씬 더 뛰어난 재활용 방식으로 꼽힙니다. EU는 올해까지 식품용 페트 제조 시 재생 원료 사용 비중을 25%까지 올리도록 의무화했고 2030년까지 30%로 끌어올립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식음료 페트뿐 아니라 플라스틱 포장재에 올해까지 25%, 2030년까지 50% 재생 원료를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유럽 역시 페트를 넘어 모든 플라스틱병류로 재생 원료 의무 사용을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모든 플라스틱병류에 대해 2030년까지 30% 의무 사용 예정입니다. 국내 재생 페트 3% 룰, 2년 만에 실패... 왜? 우리 정부가 지난 2023년 페트 원료 생산업체에게 재활용을 통해 확보된 재생 페트 원료를 의무적으로 섞어 쓰도록 의무화한 데에도 이같은 '보틀 투 보틀' 확대가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당시 도입한 규제는 페트 원료를 연간 1만 톤 이상 만드는 생산자에게 재생 페트를 3% 이상 섞어 쓰도록 사용 의무를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24년의 경우 환경부 집계 결과 롯데케미칼 등 의무 대상자들의 재생 원료 사용률은 0.4%에 그쳤습니다. 법정 규제의 약 1/10에 불과했던 겁니다. 원인은 뭘까요. 수요, 공급 모두 문제가 있었습니다. 재생 원료 수요 측면에서는 재생 의무 설정의 초점이 잘못 맞춰졌기 때문입니다. 재생 원료를 최종적으로 사용하는 식음료 회사를 빼놓은 채 원료 물질 생산자에게 의무를 부과한 게 잘못 됐다는 겁니다. 23년 규제 도입 때부터 이같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환경부가 원료 물질 생산자 규제를 강행한 건 원료 생산업체가 국내 몇 군데 안 되는 만큼 훨씬 실효적으로 규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따른 겁니다. 하지만 신재 페트 원료보다 50%가량 단가가 높은 재활용 재생칩을 주문하려는 식음료 기업들이 나타나지 않자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재활용 페트병을 사용한다며 일부 물량에 대해서만 보여주기식으로 쓰는 데 그친 겁니다. 재생 원료 공급 측면에서도 문제가 컸습니다. 식음료 포장재에 쓰이는 만큼 식품 포장 안전성이 주요한 관심 사항이었습니다. 이같은 고품질의 재활용 페트병을 얻기 위해서 환경부가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죠. 이른바 무색 페트 별도 분리배출이라는 겁니다. 종전에는 PE, PS 등 다양한 플라스틱류를 모두 한데 섞어 혼합 배출했는데, 여기에 추가로 수거망을 만들어 투명 페트병만 따로 모으기 시작했죠.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이 노력해 분리배출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 뒷단에서도 분리 처리할 작업 라인 등 별도 공정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지만 선별업계 형편상 그렇게 되지 못했고요. 대부분 선별업체에선 다른 재질 재활용 플라스틱과 뒤섞여 혼합 처리되는 종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저급 재활용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2024년의 경우 무색 페트 별도 수거를 통해 페트 재생 원료로 만들어진 분량이 1천728톤이라고 환경부는 밝혔습니다. (무색 페트 별도 수거량 자체는 3만 7천 톤입니다만 이 중 실제로 재생 원료로 만들어진 물량은 1천728톤이라는 의미입니다.) 연간 음료 및 생수병용으로 쓰이는 페트 물량 32만 톤에 비하면 0.5%가 '보틀 투 보틀'을 통해 재사용된 겁니다. 지난 2021년부터 시작된 '무색 페트 별도 배출'의 실상입니다. '3% 룰' 실패했는데 오히려 '10% 룰'로 껑충 강화? 이런 가운데 환경부가 단추가 잘못 꿰어진 페트 재생 원료 의무 사용 규제를 손보겠다고 나섰습니다. 2026년부터 해당 규제 적용 대상, 즉 해당 재활용지정사업자를 롯데케미칼 같은 페트 생산업자가(연간 1만 톤 이상 생산) 아니라 최종 사용자인 롯데칠성, 코카콜라 등 식음료 업체로(연간 5천 톤 이상 페트 사용) 전환하겠다는 겁니다. 또 의무 사용률도 기존 3%에서 10%로 껑충 높여 적용합니다. 아울러 2030년까지 이 비율을 30%로 높이겠다고도 밝혔습니다. ▷ 재생 페트 10% 의무화... 재활용 이번엔 성공? (장세만 환경전문기자 리포트, SBS 8뉴스, 2025년 2월 21일) 환경부가 재작년 도입한 재생 원료 의무 사용제의 사실상 실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렇듯 강도 높은 목표 설정을 한 건 왜일까요? 여기엔 지난해 바뀐 또 다른 제도가 작용했습니다. 위에서 보틀 투 보틀 활성화의 공급 측면상 걸림돌로 투명 페트 별도 배출 제도를 말씀드렸는데요. 이같은 공급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환경부가 지난해 '식품 용기 사용 재생 원료 기준'이란 걸 개정했습니다. 투명 페트로 별도 수거된 물량뿐 아니라 기존 방식대로 혼합 수거된 재활용 플라스틱 가운데 폐페트도 일정한 공정 기준을 거치면 식음료용 재생 원료로 쓰일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겁니다. 혼합 수거 폐페트도 B2B 허용... 이게 게임체인저? 재활용 업계 관계자에게 확인해 보니 현재 이런 공정을 갖췄거나 준비 중인 업체들의 공정 규모를 모두 감안하면 연간 8만 톤의 보틀 투 보틀 재생 원료가 확보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국내 연간 전체 물량 32만 톤 가운데 환경부가 내년에 내건 재생 의무량 10% 목표치는 2만 톤 규모입니다. 10% 규제는 5천 톤 이상 사용 업체로 한정하기 때문인데요. 이 제한에 따르면 연간 대상 규모는 20만 톤입니다. 내년 규제치 10%를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다는 시장 전망이 환경부로 하여금 규제 강화에 나서게 만든 배경으로 보입니다. 일단 지난해 규제 완화 이후 첫 해엔 혼합 수거를 통한 재생 페트 생산량은 113톤 수준이었다고 환경부는 밝혔습니다. 재활용 업체들의 설비 준비와 관련 허가 신청이 이뤄지는 중인 만큼 가동이 본격화되면 큰 폭으로 늘어날 거라는 게 업계 전망입니다. 시민들 애먹는 투명 페트 별도 배출, 지속 가능할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종전처럼 아파트에서 여러 플라스틱을 뒤섞어 배출하더라도 선별 및 재활용 업체 공정을 통해 식음료용 고품질 재생 페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시민들이 힘들여 투명 페트만 라벨을 떼어내고 별도로 모아 배출해야 할까요? 환경부는 당분간 이 제도를 변경할 생각은 없습니다. 투명 페트 별도 배출로 확보된 원료는 품질이 좋아 세척 등 처리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겁니다. 하지만 반론도 있습니다. 품질이 좋은 만큼 혼합 수거 물량보다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사실 이모저모 맞춰보면 별도 배출 물량의 가격상 이점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혼합 수거를 통한 보틀 투 보틀이 안정화될 경우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투명 페트 별도 배출에 대한 반발이 고개를 들게 될 걸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트 원료 물질 생산자에서 식음료 기업으로 재생 원료 사용 의무를 전환한 건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혼합 수거 물량을 식음료용으로 가능하게 한 조치도 '보틀 투 보틀'의 본격적인 확산에 도움이 될 걸로 보입니다. 디자인 : 안준석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2월과 3월, 1년 중 미세먼지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시기입니다. 2025년 올봄은 어떨까요? 환경부 대기질통합예보센터에 따르면 그래도 다행히 평년보다는 나을 거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먼지를 불러들이는 고기압성 순환의 영향을 많이 받긴 하지만 고기압의 위치가 내륙보다는 동해안 쪽으로 비켜서 있는 데다 강수량도 평소보다 많고 바람도 남풍 계열이 불 걸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2024년 한국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 15.6㎍/㎥ 사실 코로나 사태가 종료되면서 대기 과학 전문가나 환경부에겐 큰 걱정이 있었습니다. 산업 활동과 교통 이동량 감소 등으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던 혜택이 사라지고 미세먼지가 다시 고개를 쳐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환경부가 2024년 국내외 초미세먼지 실태 분석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놀랍게도 2023년보다 전국 기준 초미세먼지 연평균치가 14% 넘게 줄어들면서, 15.6㎍/㎥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2015년 정부가 초미세먼지를 관측하기 시작한 이래 10년 만입니다. 이 가운데 초미세먼지 등급 '좋음'(0~15㎍/㎥)을 기록한 게 2015년 63일에서 지난해 212일로 늘었습니다. '나쁨'(36~75㎍/㎥)은 60일에서 10일로 줄었고요. 걱정과 달리 코로나 이후에도 감소세가 두드러진 배경은 뭘까요? 환경부는 우리 정부의 정책 효과, 중국 유입 감소, 양호한 기상 여건 등 3가지 요인으로 설명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중국 유입 요인입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촉발된 중국 경기 침체에다가 중국 정부도 강력한 대기 오염 저감 정책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같은 중국 정부의 노력이 얼마나 실효를 거두고 있을까요. 국제 사회에 보여주기식 정책 홍보에 불과한 건지,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중국 정부의 노력이 코로나 이후에까지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되는 건지 따져봤습니다. ▷ "한국 요즘 미세먼지 없네?"…이유는 '중국'에 있었다 (장세만 환경전문기자 리포트, SBS 8뉴스, 2025년 2월 11일) 2024년 중국 징진지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 42.2㎍/㎥ 먼저 이번 환경부 자료에 나타난 중국 현지의 초미세먼지 관측치는 매우 고무적입니다. '징진지'는 우리로 치면 베이징과 그 인근의 텐진, 허베이 등 수도권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지난 2015년 연평균 77.0㎍/㎥까지 올랐던 징진지 초미세먼지 농도는 지난해 42.2㎍/㎥로 떨어졌습니다. 같은 기간 국내 초미세먼지 농도가 25.2㎍/㎥에서 15.6㎍/㎥으로 38.1% 줄어들었는데, 징진지는 퍼센티지로 치면 우리보다 더 가파르게 농도가 낮아진 겁니다. 징진지와 더불어 국내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또 하나의 지역이 상하이 인근 장강 삼각주 지역인데, 이곳도 2015년 53.0㎍/㎥에서 2024년 33.0㎍/㎥으로 37.7%가 떨어졌습니다. 이 데이터는 중국 생태환경부 자료인데요, 중국 국내 데이터라 의심스러운가요? 한·중 공동 연구 사례로 따져보죠. 서울대 이승묵 교수 연구팀과 중국 과학원이 공동으로 연구해 국제저널 EI(Environment International)에 지난해 8월 게재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서울대 캠퍼스와 베이징 인근의 중국 환경과학원(CRAES)에서 동일한 설비와 기준으로 측정이 이뤄졌습니다. 먼저 중국의 경우 2020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1차 공동 연구 기간)와 2021년 7월부터 이듬해 3월(2차 공동 연구 기간)까지를 비교했습니다. 그랬더니 중국의 경우 1차 때에 비해 2차 연구 기간에 PM 2.5 초미세먼지 농도가 51.9㎍/㎥에서 25.4㎍/㎥로 51% 줄어든 걸로 조사됐습니다. "중국 석탄 연소, 산업, 소각 분야 먼지 저감이 효과" 연구팀은 어떤 요인이 이같은 저감을 불렀는지 모두 9개 항목으로 따져봤습니다. 산업 활동, 석탄 연소, 소각 등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석탄 연소로 분석됐습니다. 전체 초미세먼지 농도 가운데 석탄 연소가 기여한 게 1차 기간 때 4.41㎍/㎥에서 2차 때 0.08㎍/㎥로 98%가 줄어든 걸로 분석됐습니다. 산업 부문의 기여량은 1차 때 5.6㎍/㎥에서 2차 때 1.5㎍/㎥로 73%가 줄었고요, 소각 부문도 56% 감소한 걸로 분석됐습니다. 연구팀은 이같은 효과의 원인에 대해 중국 정부가 시행한 계절관리제(SMP)가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합니다. "베이징의 경우, 산업, 석탄 연소 및 소각로 오염원에서 향상된 효과가 나타났으며, 이는 중국 정부의 계절관리제가 오염원의 기여도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지적합니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은 지난 2013년부터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그해 대기 오염 방지 행동계획을 내놓은 데 이어 2015년엔 환경보호법 개정, 2016년 대기오염예방 및 조정법 개정과 환경영향평가법 개정, 2017년 환경보호세법 도입, 2018년 남천보위전 3년 행동계획(Three-year Action Plan for Winning the Blue-Sky War) 등 줄줄이 계속됐습니다. 국내에선 가정용 난방에서 연탄 구경하기 힘들어진 지 오래지만 중국에선 최근까지도 다양한 형태의 석탄 연료가 쓰였습니다. 이런 석탄 연료를 석유나 가스로 크게 바꿨고 이게 대기질 개선의 큰 원인이 된 겁니다. 또 각지에 있는 소형 석탄 발전소들을 통·폐합해 대형 발전소로 전환시키면서 연료를 바꾸는 건 물론이고 강화된 대기질 규제를 적용하는 식으로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전기차 전환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도입도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NOx, SOx 더불어 VOCs 줄이는 게 앞으로 먼지 문제 핵심 대기 과학자들 사이에선 앞으로는 미세먼지가 문제가 아니라 오존이 진짜 문제가 될 거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합니다. 중국의 미세먼지 문제가 이제까지의 저감 경로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말이죠. 여전히 변수도 남아 있습니다. 우선 중국 경기 반등이 주요 변수로 지적됩니다. 산업 활동이 크게 늘 경우 덩달아 먼지도 치솟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변수는 2차 생성 먼지의 전구 물질들입니다. 출발부터 고체상 먼지로 시작되는 물질이 있는가 하면, 애초에는 가스상 혹은 에어로졸상의 전구 물질이었다가 화학 변화를 거쳐 먼지로 만들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질소산화물이나 황산화물들이 대표적인데요. 이제까지 원인 물질 저감 노력도 이같은 물질에 초점이 맞춰져 왔습니다. 이와 달리 휘발성 유기화합물이라는 전구 물질이 문제입니다. 흔히 유성 페인트에 첨가되는 시너 같은 물질인데요. 각종 도료는 물론 일상 주변에선 세탁소에까지 다양하게 쓰이는데, 규제하기가 까다롭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질소산화물, 황산화물들은 주로 화석 연료를 고온으로 연소시키는 과정에서 배출됩니다. 따라서 이같은 연소 시설, 예컨대 발전소나 내연기관 등을 규제하면 되는 반면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이나 중국 모두 휘발성 유기화합물로 인한 2차 먼지 생성이 취약한 반면 일본의 경우는 앞서 규제 과정을 통해 한·중 두 나라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배출량을 줄이고 있다고 지적됩니다. 일본 사례를 잘 검토해서 휘발성 유기화합물 배출을 저감시킬 실효적 방안을 찾아야겠습니다. 디자인 : 안준석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1차 원인이 조류 충돌로 추정되면서 공항마다 새 떼와의 충돌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기존 공항도 걱정이지만 앞으로 지어질 공항 예정지도 큰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현재 전국 곳곳에서 모두 8곳의 신공항 사업이 추진 중입니다. 제주 제2공항, 부산 가덕도, 군산 새만금, 신안 흑산도, 울릉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충남 서산, 경기 남부 등입니다. 올해 착공 앞둔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 큰 기러기 떼가 날아오르는 모습 이 중 대부분이 철새 도래지 및 대규모 서식지와 겹칩니다. 이는 공항이 들어서기 좋은 지역이 새들의 서식 및 휴식에도 좋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학계 연구에서도 "조류와 항공기는 비행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공항에 최적화된 입지는 조류의 최적 서식역과 겹친다"고 지적합니다. 도심과 상당한 거리를 둬야 하고 넓은 개활지가 필요하다는 특성이 공항이나 새들에게 모두 필요한 입지 조건입니다. 이렇다 보니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공항터의 조류 충돌 문제가 이슈가 된 곳들이 많습니다. 관련 기사 (장세만 기자 SBS 8뉴스 리포트) ▷ 활주로 부지서 '푸드덕'…"연 최소 3번 충돌" 대책은 (2025년 1월 26일) ▷ 3만 떼로 뭉치면 어쩌나…신공항 대책에 "되레 모으는 꼴" (2025년 1월 27일) "공항 최적 입지는 새들 최적 서식지와 겹쳐" 이미 지어진 곳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부가 새로 추진하는 신공항 건설 사업에 있어 조류 충돌의 위험성은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대책은 실효성이 있는 걸까요? 우리나라 공항 건설 사업은 공항시설법에 따라 국토부가 5년마다 공항 개발 종합계획 및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국책 사업으로 추진됩니다. 이 과정에서 신공항 예정지의 조류 충돌 위험성은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다뤄집니다. 공항 개발 사업 추진 주체인 국토부가 해당 개발 사업으로 인해 환경과 생태 등에 미칠 영향을 자체 분석 평가하고 이에 대한 대안책을 만들어 환경부와 '협의'를 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환경부는 국토부의 환경영향평가를 검토한 뒤 '동의', '부동의' 등의 협의 의견을 내주게 됩니다. 평가 마친 신공항 예정지 4곳, 조류 충돌 예측치는 위에서 언급한 8곳의 신공항 사업 가운데 환경영향평가 혹은 이에 앞선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진 곳은 모두 4곳입니다. 제주 제2공항, 가덕도, 흑산도, 새만금 신공항 사업 등입니다. 이 4곳의 환경영향평가 협의 내용에 보면 조류 충돌과 관련해 충돌 위험성을 분석한 결과가 작성돼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평가로 보이는 것은 '연간 조류 충돌 횟수' 예측치입니다. 해당 지역에 공항이 지어질 경우 특정 피해 액수 이상 규모의 충돌 사고가 1년에 몇 번이나 발생할지 여러 모델링 기법을 통해 산출하는 방식의 분석입니다. 무안공항의 경우 이 수치가 0.06회로 나타났습니다. 신공항의 경우 가장 높은 곳은 새만금 공항터였습니다. 10.5~45.9회로 분석됐습니다. 가덕도공항은 4.8~14.7회, 제주 제2공항은 4.6~14.3회, 흑산공항은 3.1~10회로 나타났습니다. 신공항터 모두가 하나같이, 17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무안공항보다 적게는 수십 배, 많게는 수백 배나 충돌 횟수가 더 많을 걸로 예측됐습니다. 국토부가 제출한 새만금 신공항 전략영향평가서 국토부는 이에 대해 무안공항과 직접 비교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환경영향평가에서 분석한 수치는 현재 입지 상황을 가정해서 산출한 수치인 만큼 실제로는 훨씬 더 충돌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설명입니다. 현재 초지 및 습지 등 자연 상태인 현지 환경이 활주로와 콘크리트 구조물로 바뀌면서 새들을 내쫓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국토부 설명대로 위험성이 줄어들 순 있을 겁니다. 문제는 위험성이 얼마나 감소할 것이며 그래서 안전한지 여부입니다. 하지만 현재 환경영향평가 시스템은 이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현장을 다녀온 흑산공항 사례로 따져보겠습니다. 흑산공항에 생길 조류 대체 서식지란 흑산도에도 2029년 개항 목표로 공항 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시베리아와 동남아시아를 오가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 공항 예정지 역시 봄·가을철마다 많은 새 떼들이 오가는 길목입니다. 이로 인해 국토부가 내놓은 조류 충돌 대안은 '조류 대체 서식지'라는 겁니다. 공항 건설로 기존 서식지가 훼손되니 새들이 옮겨가 보금자리로 삼도록 인근에 적당한 위치에 습지를 조성하고 나무 등을 심어 서식 환경을 갖춰 주겠다는 겁니다. 신공항을 만들면서 이같은 대체 서식지 아이디어를 현실에 옮기는 건 이곳이 처음입니다. 기존 서식지 등을 비롯해 모두 7곳의 대체 서식지를 만들겠다고 국토부는 환경영향평가서에서 밝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체 서식지의 위치입니다. 흑산도 섬 자체가 좁은 만큼 공항 부지 코앞에 대체 서식지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가까운 곳은 공항에서 2.3km 떨어졌고 가장 먼 곳이라고 해봐야 7km 떨어진 곳입니다. 물새들의 하루 활동 영역이 20~30km가 넘는 점을 감안하면 새들을 조류 충돌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항 인근으로 끌어들이는 셈입니다. 이런 어설픈 대책이 나오는 가장 큰 배경은 되풀이됐던 지방 공항 탄생의 내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지역민들의 숙원인 대형 인프라 사업 꿈과 선거를 앞둔 정치권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무리하게 추진된다는 게 공통점이죠. 이렇다 보니 안전성 및 경제성, 생태 피해 등은 졸속으로 만들어진 대책에 가려집니다. 환경영향평가에서 점검하는 조류 충돌은 흑산공항의 활주로가 들어서게 될 부지 흑산공항 조류 대체 서식지 사례를 좀 더 뜯어보면 또 다른 차원의 배경도 있습니다. 국토부의 신공항 건설 사업에 있어 조류 충돌 문제는 그동안 그 위험성이 간과돼 왔습니다. 사고 사례가 끊임없이 나타났지만 이번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같은 치명적 사고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렇다 보니 신공항 부지의 조류 충돌 위험성 및 저감책 등이 환경영향평가라는 제도 속에서 다뤄지는 게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 시스템의 근본 목적은 각종 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서 환경 오염 및 생태 훼손을 예방하려는 겁니다. 환경영향평가에서 조류 충돌 이슈를 점검하는 것도 비행 안전성을 따지는 게 아니라 새들을 보호하려는 취지입니다. 흑산공항의 대체 서식지 개념도 이같은 취지에 따른 겁니다. 공항이 새로 들어서면서 서식지가 훼손되고 항공기와 충돌할 위험으로부터 새들을 구할 방안을 찾다 보니 새로운 대체 서식지를 만들겠다는 발상으로 이어진 겁니다. 하지만 섬 자체가 좁다 보니 바로 코앞에 서식지를 만들게 됐고 결국은 공항으로 새들을 끌어들이는 꼴이 되는 겁니다. 흑산 대체 서식지, ICAO 권고 미준수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에서 권고하는 조류 유인 시설의 설치 제한 반경이 공항 표점으로부터 13km인데, 흑산공항의 대체 서식지 7곳은 모두 다 ICAO 기준을 위반하는 셈입니다. 국제 기준뿐 아니라 국내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국토부의 공항시설법 하위 고시인 조류 등 야생동물 충돌 위험 감소에 관한 기준은 8km 반경까지 조류 보호 구역 등의 유인 시설을 두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다만 국토부는 이 고시가 기존 공항 인근에 새로운 조류 유인 시설이 들어서지 않도록 규제하는 기준인 만큼, 신규 공항 입지 선정 시 거리 기준은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습니다. 안전 기준의 빈틈이 있는 셈입니다. 비행 안전 및 조류 보호, 두 가치 모두 중요한 지향점입니다. 앞으로 신공항 건설 사업을 추진할 때는 조류 충돌로 인한 비행 안전성을 사전 검토하는 시스템 마련이 반드시 보완돼야 합니다. 현행 환경영향평가 시스템을 유지 보완하거나 별도의 평가 시스템을 만드는 방안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우리처럼 환경영향평가 시스템의 틀 속에서 점검하되, 조류 전문가뿐 아니라 비행 안전성을 검토하는 전문기관이 평가에 참여하는 식으로 양 측면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왕립조류협회가 전자의 역할을 한다면 CSL이라는 기관이 후자 몫을 담당합니다. 대체 서식지라는 개념은 환경영향평가에서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논란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개발 현장 부지에서 각종 멸종위기 동식물이 발견될 때, 이를 옮겨 놓은 채 개발을 진행하기 위해 도입된 장치인데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앞선 조류 대체 서식지 살펴봤더니 이에 비하면 새들의 대체 서식지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기존 환경영향평가에서도 드문 사례입니다. 찾아봤더니 국내에도 기껏해야 5건 정도의 사례가 있었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흑산도 공항 건설을 위한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조사한 결과인데, 그 조사에 따르면 공항 개발을 위한 조류 대체 서식지 사례는 없었고 산업단지, 쓰레기 매립장, 댐 건설 사업 등에서 있었던 걸로 확인됩니다. 문제는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 신호산업단지 조성 사업 때입니다. 산단 조성 전에 있었던 도요새, 물떼새류, 오리류, 기러기류 등의 서식지를 대체하려는 목적이었는데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조사 결과 조류가 취식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갈대와 부들 등이 유입됐고 원래 목표했던 종과는 다른 조류 종들이 유입돼 실패했다고 평가서는 지적했습니다. 조류 충돌, 새 떼 보호냐 비행 안전성이냐 대체 서식지와 공항 간에 충분한 이격 거리를 갖추지 않으면 조류 보호와 비행 안전성 사이에 상충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과 별도로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한계점도 있습니다. 이미 여타 개발 사업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드러난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개발 사업의 추진을 심사해 승인하거나 불승인하는 권한을 가진 게 아니라 단순 협의에 그치도록 만들어 강제력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새만금 신공항 사업 추진 시 전략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국토부의 2021년 5월 첫 초안 제출 이후 이듬해 2월 본안 협의 완료 때까지 2차례의 보완 요청을 거치는 등 모두 3차례 걸친 심사를 마치고 최종적으로 '조건부 협의' 의견으로 통과시켜 주면서도 환경부는 같은 요구를 되풀이합니다. 조류 충돌 저감책을 강구하라는 겁니다. 이미 앞서 국토부는 폭음기, 공포탄, 레이더, 전담 조류 대응팀 구성, 초지 제거 등의 저감책을 내놨지만 이에 대한 실효성 검증까지는 이뤄지지 못한 채 같은 요구를 반복한 채 심사를 끝내는 식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개발 사업에 적용하듯이, 공항 사업에 맞춤형 지침을 미리 마련해서 시행자들이 이 기준을 충족하는 식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진행시키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현재 국토부가 무안공항 사고 원인과 함께 제도 개선책도 함께 준비 중인 상황입니다만, 들리는 이야기로는 환경부와의 협의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니 걱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