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영 기자는 정치부 기자와 파리 특파원을 거쳐 국제부 유럽팀장, 뉴미디어뉴스팀장, 정책문화부장, 논설위원실 선임기자를 지냈습니다. 와인 전문가 과정인 WSET LEVEL3와 FWS(French Wine Scholar)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홍지영 기자는 '와인의 나라' 프랑스 파리 특파원을 역임했고 와인 전문가 과정인 WSET LEVEL3와 FWS(French Wine Scholar)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보르도 그랑 크뤼 2021은 어떤 맛? 보르도 그랑 크뤼 협회 와인 시음회, 65개 샤또 참가 한국 와인 전문가 1천500여 명 참가 신청 가을이 깊어지고, 와이너리가 올 한 해 할 일을 마무리 짓는 11월 중순이 되면 보르도의 와인 생산자들은 전 세계 투어에 나섭니다. 보르도 그랑 크뤼 협회원들이 올해도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올해로 벌써 20년을 넘겼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랑 크뤼 등급은 이른바 5대 샤또를 필두로 한 메독 지역의 그랑 크뤼 등급입니다. 1855년 나폴레옹 3세가 만국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와인을 알리겠다며 메독 지역의 와인 업자들에게 등급을 매기라고 한 것이 그 시초입니다. 그때 정해진 메독 지역의 와인 등급은 한 가지 예외(1973년 샤또 무똥 로쉴드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승격)를 제외하고 지금까지도 그대로입니다. 보르도의 셍테밀리옹 지역에도 그랑 크뤼 등급이 있지만 주기적으로 변합니다. 디저트 와인으로 유명한 소테른 지역도 그랑 크뤼 등급이 있고요. 물론 프랑스의 다른 지역, 부르고뉴나 샹파뉴에도 그랑 크뤼 등급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와인 등급은 무척 까다롭지만, 어쨌든 그랑 크뤼 등급은 프랑스 와인 가운데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보르도 그랑 크뤼 협회(Union Grands Crus Bordeaux)는 메독, 뽀이약, 셍테스테프, 셍 줄리앙, 마고, 그라브, 소테른, 셍테밀리용 등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보르도 지역의 가장 높은 등급 와이너리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보르도 최대의 협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한국을 찾은 보르도 그랑 크뤼 협회 샤또는 모두 65군데. 회원으로 가입한 샤또가 132개인데 그 절반이 한국에 온 것입니다.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도쿄, 서울, 타이베이, 베이징, 홍콩, 하노이, 방콕, 광저우, 상하이, 싱가포르 등을 하루나 이틀 일정으로 방문하며 시음회를 엽니다. "한국,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관심 있는 시장" 보르도 그랑 크뤼 협회장 로난 라보르드 보르도 그랑 크뤼 협회장을 5년째 역임하고 있는 로난 라보르드(1980년생) 씨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 한국과 일본을 회원국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나라라고 합니다. 중국이 가장 큰 시장일 텐데 왜 중국은 선호도가 떨어지냐고 물었더니 중국은 메독 지방의 와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져서 다른 회원들은 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중국 와인 시장의 한 가지 특징인 듯합니다. 로난 라보르드 협회장과 함께 한국의 경우, 3년 전 코로나 시기에 그랑 크뤼 와인 수입이 폭발해서 보르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2021년에는 2020년에 비해 그랑 크뤼 수입이 2배 늘었고, 여세를 몰아 2022년에는 2020년보다 3배가 늘었습니다. 2023년에는 4천만 유로(약 600억 원)를 수입하며 최고를 찍었습니다. 즉, 한국 와인 시장은 지난 3년간 계속 급상승한 겁니다. 올해 전 세계적으로는 보르도 그랑 크뤼 수입이 약간 주춤한 추세였지만 한국은 여전히 증가했다는 것이 라보르드 회장의 설명입니다. 협회원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이유가 설명이 됐습니다. 한국 전문가들도 가장 기대하는 시음회입니다. 올해도 1천500명 정도가 등록을 했다고 행사를 주관한 홉스코치 측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참석자들이 점점 몰려서 나중에는 부딪치지 않으려면 사람들을 헤치고 다녀야 할 수도 있다면서요. 보르도 그랑 크뤼 2021, 화이트 와인에 최적... 레드는? 올해 보르도 그랑 크뤼 협회가 가져온 와인들은 2021년 빈티지 와인들입니다. 2021년 빈티지 와인들은 그다음 해인 2022년 봄에 보르도에서 엉 프리메르(en primeur)로 병입 전 선물 거래를 했고, 병입 후 1년 반이 지난 2023년 가을부터 전 세계를 돌며 시음회를 했습니다. 2021년은 봄철 서리 피해와 여름 우박으로 화이트 와인과 스위트 와인 생산이 급감해 올해 스위트 와인은 하나도 시음회에 오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소테른을 시음해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재배 기간이 길었고, 포도가 천천히 부드럽게 익으면서 숙성 기간도 길어서 드라이 화이트를 만들기에는 최적의 기후였다고 라보르드 회장은 설명했습니다. 페삭 레오냥, 그라브 쪽의 묵직한 화이트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2021년 보르도 화이트를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보르도 화이트부터 시음을 시작했는데, 신선하면서도 화려한 향에 적당히 묵직한 바디감이 잘 어우러져서 좋았습니다. 레드 와인은 전체적으로는 알코올 도수가 신대륙 와인처럼 높지 않으면서도 아로마 향, 과일 향은 풍부했습니다. 탄닌도 비교적 부드러워서 굳이 장기 숙성하지 않고 바로 마셔도 좋을 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품종에 따라 차이가 좀 있어 보였습니다. 여름 내내 구름이 많이 끼는 날씨였지만 10월에 화창한 날씨를 보여 메독 지역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늦게까지 잘 있었습니다. 반면 지롱드강 우안에서 많이 재배되는 메를로는 작황이 별로 좋지 않아서 와인을 만드는 게 힘들었다고 현장에 있던 소믈리에들이 설명해 줬습니다. 때문에 블렌딩 비율에서도 카베르네 소비뇽의 비율을 높인 샤또들이 많았습니다. 2020년은 덥고 건조해 포도가 잘 익고 알코올 도수도 높고, 탄닌도 강한 풀바디 와인, 장기 숙성용 와인으로 최적의 해였다면 2021년은 날씨 때문에 좀 힘든 해였던 만큼 금방 마시기 좋은 와인에 더 좋은 빈티지로 해석됩니다. 지구 온난화, 보르도에 미치는 영향은? 보르도에서는 최근 들어 장기 숙성하지 않고 금방 마셔도 좋은 와인들을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그런 추세라고 라보르드 회장은 설명했는데요, 포도가 일찍 잘 익기 때문에 일찍 수확해서 금방 마시기 좋은 와인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기후 온난화에 대비해 양조법도 연구를 계속해서 빨리 익는 포도로부터 맛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그렇다고 숙성 잠재력이 없는 건 아니랍니다. 때문에 오히려 보르도에는 지구 온난화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추워서 와인 재배가 힘들었던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의 루와르 지역도 비슷하게 와인 만들기 좋은 환경이 됐다는 뜻입니다. 반면 지중해 쪽은 더 이상 와인용 포도 재배가 힘들어지는 곳도 나오고 있습니다. 라보르드 회장은 뽀므롤에 위치한 샤또 클리네(Clinet)를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셍테밀리옹과 마찬가지로 지롱드강 오른쪽에 자리 잡아 메를로 비중이 높은 와인을 만드는 곳입니다. 그래서 메를로는 온도가 높아지면 제대로 맛을 못 이끌어내는 게 아닌지 물었습니다. 메를로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와인 <페트뤼스(Petrus)>는 과거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겠냐고요. 그랬더니 자신 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메를로 포도도 스스로 기후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고, 자신들의 양조 기술도 기후변화를 따라잡고 있다는 겁니다. 양조 기술이 기후변화를 얼마나 따라잡을 수 있을지, 그러나 믿어보고 싶습니다.
처서가 지나도 열대야와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으면서 와인 산업도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와인용 포도 수확이 8월 초에 시작됐습니다. 이 지역의 포도 수확은 보통 9월 초나 빨라도 8월 중순쯤인데 1~2주 앞당긴 겁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포도가 이미 익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샴페인을 만드는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는 지난해 9월 초 포도 수확 작업 중 열사병으로 인부 여러 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유럽 대륙이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빨리, 가장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구대륙 와인 생산국들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은 이 때문에 와인 산업에 변화와 타격이 커지고 있습니다. 더위가 일찍 시작되면서 포도 수확철이 갈수록 앞당겨지는 것은 물론이고, 포도가 빨리 익어 당도가 높아지면서 와인의 알코올 도수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프랑스 레드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과거 11도에서 13도 정도였는데 요즘은 14, 15도짜리 와인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와인 종주국 프랑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스페인 등 와인 생산국들은 온난화에 대비해 어떻게 포도를 재배하고 수확해야 하는지 연구와 시험에 돌입했습니다. 1. 프랑스 부르고뉴 - 포도밭의 방향을 바꿔라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와인은 바로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꼽히는 로마네 콩티(Romanee-Conti) 포도밭을 비롯해, 부르고뉴 지방에서도 가장 비싼 와인이 나오는 지역은 꼬뜨 도르(cote d'or)로 불립니다. 번역하면 '황금의 언덕'인데, 강을 바라보면서 햇살이 잘 드는 경사면에 포도밭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포도밭. 출처 : 로마네 콩티 홈페이지 이 포도밭에 단풍이 들면 석양 무렵에는 포도밭 전체가 황금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 언덕에서 가장 비싼 와인들이 만들어져서 글자 그대로 '황금의 언덕'인 셈입니다. 여기서는 레드 와인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피노누아 한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어 냅니다. 한 병당 1천만 원을 훌쩍 넘는 로마네 콩티 포도밭도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죠. 한 가지 품종만으로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토양과 기후, 이른바 떼루아(terroir)가 중요한데, 이 떼루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포도밭의 위치입니다. 피노누아는 빨리 익는 조생종으로 약간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랍니다. 서늘한 기후에서 천천히 숙성되면서 산딸기, 체리, 바이올렛 같은 풍미를 발현시킬 수 있습니다. 로마네 콩티 같은 경우, 포도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가능한 늦게 수확하면서 포도의 풍미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날씨가 좀 따뜻하면 포도가 빨리 익어 당도는 갖춰지지만, 페놀을 비롯한 다른 복합적인 풍미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수확을 빨리하면 와인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네 콩티(Romanee-Conti) 와인. 출처 : GS25 제공·연합뉴스 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부르고뉴의 포도밭은 고도를 높이는 방법을 고려합니다. 좀 더 시원한 곳을 찾아,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겁니다. 너무 뜨거운 햇살이 오래 쬐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포도밭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도 고려합니다. 이렇게 되면 최고급 와인이 나오는 이른바 <그랑 크뤼> 포도밭의 위치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2. 프랑스 보르도, 스페인 리오하 - 품종을 바꿔라 부르고뉴와 함께 프랑스 와인의 양대 산맥인 보르도 지방에서는 피노누아 한 가지만으로 와인을 만드는 부르고뉴와 달리 몇 가지 품종을 블렌딩합니다. 대표적인 품종이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쁘띠 베르도, 말벡 등입니다. 이 가운데 높은 온도에 가장 민감한 품종이 바로 메를로입니다. 메를로는 보르도를 관통하는 지롱드 강의 오른쪽, 우안에서 많이 재배됩니다. 대표적인 지역이 셍테밀리옹, 포므롤 등지이고 비싼 와인으로는 페트루스(Petrus), 슈발 블랑(Cheval Blanc) 등이 꼽힙니다. 페트루스(Petrus) 와인. 출처 : 'Best of Wines' 홈페이지 특히 로마네 콩티와 함께 가장 비싼 와인으로 꼽히는 페트루스의 경우, 메를로 100%만으로 만드는 와인입니다. 메를로는 빨리 익는 품종으로 알이 크고 과즙이 많아 부드럽고 산도는 낮은 편입니다. 그 때문에 날씨가 빨리 더워지면 제대로 풍미를 살릴 겨를 없이 당도만 높아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 보르도 우안에서는 메를로 대신 카베르네 소비뇽을 시험적으로 심어 보고 있습니다. 보르도 우안에서 메를로를 많이 재배하는 이유는 토양 때문인데,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재배하는 좌안과 달리 우안은 점토질이 많은 토양입니다. 때문에 아직은 우안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이 성공적으로 재배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더위에 강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은 기후 온난화로 점점 더 당분과 탄닌이 높아지면서 강한 맛을 내고 있어서 원래 보르도 와인의 맛을 잃어간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보르도 블렌딩에서 그동안 보조적인 역할을 해왔던 카베르네 프랑이나, 쁘띠 베르도, 말벡 같은 품종들의 비율을 높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양조업자들은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지에서 재배되는 투리가 나시오날 같은 새로운 품종들도 심어져 새로운 보르도 블렌딩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3. 스페인 : 템프라니요를 대체할 품종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레드와인 품종, 템프라니요 역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품종입니다. '빨리 익는다'는 뜻의 템프라노(temprano)에서 품종 이름을 붙였다는데, 다른 품종보다 빨리 익는 만큼 더위에 취약합니다. 성숙과 개화 시기가 빨라지면서 산도를 비롯해, 안토시아닌 같은 주요 성분의 농도가 낮아져 결국 와인 품질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스페인은 특히 온난화의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 세기말까지 와인 산지의 90%가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와인전문매체 디캔터지에 따르면 몇십 년 후에는 젊은 소믈리에들이 템프라니요와 그라시아노, 마수엘로등과 함께 베네딕토, 모리벨에 대해서도 배우게 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4. 와인 종주국 바뀌나? - 독일의 피노누아, 영국의 샴페인 최근 가성비가 좋은 피노누아 와인을 마시려면 독일 와인을 찾으라는 말이 와인 애호가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독일 하면 그동안 화이트 와인 생산지로만 알려져 왔는데 말이죠.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이 온난화로 점점 기온이 올라가면서 그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독일이 피노누아 산지로 적당해졌다는 겁니다. 독일에서는 피노 누아를 슈패트부르군더(spatburgunder)라고 부르는데요. 지구 온난화가 일부 서늘한 와인 산지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충분한 햇빛을 공급하고 포도가 잘 익게 하고, 건조한 날씨 덕분에 곰팡이 피해도 줄일 수 있는 거죠. 독일을 대표하는 화이트 와인 품종 리슬링의 경우 포도가 잘 익어서 향이 좋은 데다가 수확량까지 늘어나는 효과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샴페인 산지로는 영국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영국 역시 유럽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로마시대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소빙하기를 맞으며 기후가 추워져 포도주보다는 사과주(Cider)에 주력하게 됐는데요. 사실 샴페인이 발견된 곳도 영국입니다. 프랑스에서 수입해 간 와인이 봄이 되자 영국에서 발효돼 샴페인이 됐으니까요. 현재 영국에는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에 450여 개의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5년부터 프랑스의 샴페인 메이커 테텡저(Taittinger)가 켄트(Kent)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영국이 이제는 온난화 덕분에 와인 생산에 적합한 지역이 된 겁니다. 반면 전통적인 와인 산지였던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는 온난화로 포도 수확량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부르고뉴와 보르도라는 와인의 양대 산맥을 거느린 프랑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종주국의 위치를 계속 지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찌는 듯한 더위와 불쾌지수를 한층 높이는 습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습니다. 이런 날씨엔 와인 애호가라 해도 와인 마시기가 부담스러워집니다. 자연스레 시원한 화이트 와인에 끌리게 되고요. 이런 날씨에 꼭 어울리는 산뜻한 화이트 와인을 최근 만났습니다. '지중해의 태양과 알프스가 빚어낸' 알토 아디제 와인 이탈리아 최북단, 알프스 산맥 아래 자리 잡은 알토 아디제(Alto Adige) 지역의 와인입니다. 동계 스포츠 성지인 눈 덮인 알프스 산을 배경으로 포도밭이 펼쳐져 있어서 경치를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곳입니다. 낮 동안에는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이 강하게 내려 쬐지만 알프스 산맥과 고도 탓에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추워져 일교차가 큰 곳입니다. 포도가 잘 자랄 수 있는 딱 좋은 기후이지요. ‘지중해의 태양과 알프스 풍경이 빚어낸 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 ·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언어도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가 같이 쓰입니다. 알토아디제 북쪽은 오스트리아의 티롤 지방이어서 이곳을 남쪽 티롤이라는 뜻으로 쥐트티롤(Sudtirol)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열정적인 이탈리아 문화권이라기보다는 사색적인 독일 문화권에 가깝다네요. 이 지역에 처음으로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요한 대공도 오스트리아계로 리슬링을 처음으로 심었다고 하네요. 와인에서도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이탈리아 와인보다는 절제되면서 엄격한 독일 와인의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가장 작은 포도밭, 그러나 너무 다양한 와인들 포도밭 면적은 작습니다. 5,800 헥타인데, 이탈리아 전체 와인 산지 중 차지하는 비율이 1% 미만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와인 산지입니다. 하지만 와인 품질은 좋습니다. 포도 품종과 생산 방식에 있어서 엄격한 정부 규제를 받는 DOC 등급을 받은 와인이 98%나 될 정도니까요. 양보다 질에 집중한다는 뜻이겠죠? 이탈리에서 가장 작은 와인 산지인데, 여기서 재배되는 품종은 무려 20개. 품종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와인이 생산됩니다. 포도밭들은 알프스 산지 경사면을 따라 해발 고도 2백 미터에서 1천 미터 사이에 분포돼 있습니다. 해발 고도에 따라 다양한 품종들이 재배되는 겁니다. 이 중 화이트는 65%, 레드는 35%입니다. 고도가 높은 서늘한 지역에서 화이트 와인용 품종들이 더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가파른 경사지여서 포도 재배가 쉽지 않고 대부분 수작업으로 할 수밖에 없어, 가격도 올라갑니다. 경사지를 따라 분포된 포도밭은 토양도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도가 낮은 곳은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이 잘 드는 온화한 포도밭이고, 급경사면은 거친 암석 위주로 공기가 잘 통하는 토양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떼루아’는 다양한 와인이 생산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또한 풍화암과 화산암, 퇴적암 등이 지역에 따라, 고도에 따라 다양하게 분포돼 있는데, 150개가 넘는 다양한 암석이 이들 토양을 구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알토 아디제 와인의 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생산자입니다. 협동조합 와이너리와 사유지 와이너리, 독립적인 와인 생산자 등 세 가지 형태로 와이너리가 운영되면서 각각의 개성을 살린 와인들이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포도 품종과 토양, 그리고 다양한 생산자들이 알토 아디제 지역을 이탈리아 최고의 화이트 와인 산지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첫 모금에 '와!' 하는 탄성이... 이탈리아 알토 아디제 와인협회가 최근 서울에서 마스터 클래스와 시음회를 열었습니다. 9가지 와인을 시음했는데. 6가지가 화이트, 3가지가 레드였습니다. 화이트 와인이 65%를 차지하는 만큼 화이트 와인에 힘을 준 시음회였는데, 첫 모금에 ‘와!’ 하는 탄성이 나왔습니다. 이 지역 5대 화이트 와인 품종이라고 할 수 있는 피노 그리지오, 샤도네이, 게부르츠트라미너, 피노 블랑, 소비뇽 블랑은 왜 이들이 대표 품종인 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고도 탓에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서 놀랄 만큼 신선한 산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접해본 화이트 와인 품종이 이렇게 다른 맛을 낼 수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활력소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1. 피노 그리지오 (Alto Adige DOC Pinot Grigio Giatl)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 품종이면서 알토 아디제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화이트와인 품종입니다. 잘 익은 사과, 배, 모과 같은 과일 향이 파워플하게 느껴지면서 짭조름한 맛과 미네랄리티가 입안을 둥글게 감싸는 느낌의 와인이 생산됩니다. 제가 시음한 것은 배나 열대 과일의 잘 익은 향이 강하게 올라오면서 높은 산도가 이를 더 신선하게 느끼게 하고, 미네랄리티가 묵직한 바디감까지 주는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와인이었습니다. 2. 샤르도네 (Alto Adige DOC Chardonnay Stegher) 뜨거운 햇살 탓에 잘 익은 과일 향은 기본. 그러면서도 적절한 산미, 우아한 아로마가 돋보입니다. 오크 숙성을 안 하면 파인애플, 바나나, 사과, 배 등의 과일향이, 오크 숙성을 하면 바닐라와 버터 향이 우아하게 나타나며 과일향과 어울립니다. 제가 시음한 샤르도네 역시 우아한 아로마와 바닐라 향에 균형 있는 산미, 여기에 미네랄 노트까지 느껴졌습니다. 화이트 와인 품종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이 샤르도네이지만, 그동안 마셔본 것과 전혀 다른 샤르도네였습니다. 미국 샤르도네와 다르고, 프랑스 브루고뉴의 샤르도네와도 다른 이탈리아 샤르도네의 아름다움이 느껴졌습니다. 3. 게뷔르츠트라미너 (Alto Adige DOC Gewürztraminer Vigna Kolbenhof) 대표적인 아로마 품종인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이곳 와인에서 그 정수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실제로 알토 아디제에 있는 마을 <트라민>이 바로 게뷔르츠트라미너의 본고장이라고 하네요. 트라민은 게뷔르츠트라미너의 고대 품종이름입니다. 때문에 이곳의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이 품종의 아로마는 이런 것이다’라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장미꽃과 리치 같은 열대 과일향이 풍부한데, 산도가 이 향을 더욱 부채질하는 느낌입니다. 마치 장미꽃 향수나, 머스크향이 가미된 향수를 시향 하는 느낌까지 났습니다. 높은 산도와 미네랄리티가 뒤받쳐 주는 덕분에 리치, 망고, 라벤더향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고 파워풀하게 느껴졌습니다. 4. 피노 블랑, 피노 비앙코 (Alto Adige DOC Pinot Bianco Quintessenz) 프랑스에서는 피노 블랑으로 이탈리아에서 피노 비앙코로 불리죠. 해발 8백 미터 이상 고도에서 자랍니다.사과, 배, 레몬의 우아한 아로마와 생동감 넘치는 넘치는 산미가 특징입니다. 제가 시음한 것은 피노 피앙코 품종 가운데서도 수령이 오래된 나무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것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강한 농축미로 품종의 특징이 확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시음회에서 첫 번째 와인으로 배치해, 알토 아디제 와인의 특성을 강하게 심어 주려고 의도한 것 같습니다. 녹색과 노란 과일향에 더해 허브 뉘앙스, 프랑스의 쇼비뇽 블랑처럼 부싯돌 향과 스모키한 향도 나왔습니다. 5. 소비뇽 블랑(Alto Adige DOC Sauvignon Blanc Oberberg) 프랑스가 원산지인 소비뇽 블랑은 신대륙인 뉴질랜드에서 다른 모습으로 피어났고, 이곳 알토 아디제에서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소비뇽 블랑 특유의 신선한 풀 향과 구스베리, 패션프루트 향을 지닌 와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시음한 소비뇽 블랑 역시 구스베리, 자몽, 그리고 패션프루트 같은 열대과일향이 민트, 세이지 같은 허브향과도 어울려 나왔습니다. 여기에 프랑스 소비뇽 블랑에서 느낄 수 있는 파워풀한 미네랄 여운까지 더해 바디감도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높은 산도는 이런 향들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해 줬고요.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과 다른, 프랑스 소비뇽 블랑과도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품격이 있으나 무겁지 않고, 경쾌하나 가볍지 않다 알토 아디제 화이트 와인의 공통적인 특성은 높은 산도입니다. 뜨거운 햇살 덕분에 잘 익은 과일 맛은 높은 산도로 인해 더욱 상승효과를 일으킵니다. 여기에 짭조름한 미네랄리티까지 받쳐줍니다. 신맛과 짠맛의 상승효과까지 있는 거죠. 그래서 무더운 한국의 여름, 불쾌지수를 날려주기에 딱 좋은 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품격이 있으나 무겁지 않고, 경쾌하나 가볍지 않다” 이게 바로 라이트에서 미디엄 바디로 복합적이고 깊이 있는 맛을 가진 알토 아디제 와인을 잘 표현하는 말이랍니다. 열정적이고 자유분방한 이탈리아 와인의 개성과 엄격하고 철저하게 관리된 독일 와인의 개성이 합쳐져 잘 만들어진 와인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주최 측은 이번에 한국의 여름을 맞아 화이트 와인을 제대로 홍보하려는 목적의 시음회를 마련한 듯합니다. 시음했던 와인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알프스 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포도밭으로 휴가를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눈도 시원해집니다. 알토 아디제 지역은 보르도 스타일의 레드 와인도 이탈리아 슈퍼 투스칸 못지않은 품질을 자랑하는데요. 가을쯤에는 이 지역의 레드 와인도 제대로 시음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디자인 : 안준석
WSET 레벨 3 합격하다! 와인을 제대로 공부해 보겠다면서, 자격증을 따보겠다면서 공부를 시작한 것이 지난해 8월 중순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 중순 3단계 시험을 봤고, 석 달이 좀 지나서 합격을 통보받았습니다. "Pass with Distinction"이랍니다. 100점 만점에 55점을 넘으면 합격(Pass)이고, 60점 이상이면 "Pass with Merit", 80점 이상이면 "Pass with Distinction"인데 "Distinction"을 받았습니다. 자격증이 도착하려면 한 달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네요. 배지까지 같이 옵니다! 공부를 시작하고 7개월 정도 걸렸네요. WSET 3단계, '전문가'로 인정 WSET 3단계를 통과하면 '애호가'가 아닌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명함에도 적을 수가 있답니다. WSET(Wine and Spirits Education Triust)는 영국에 본원을 두고 있는 교육기관인데, 1, 2단계가 취미, 애호가 수준이라면 3단계는 전문가 과정입니다. WSET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와인 교육기관이기도 합니다. (와인 종주국 프랑스는 뭘 하는지, 물론 언어 장벽이 가장 크긴 하겠지만.) 1단계는 와인의 기본 개념과 시음법을 배우고, 2단계는 주요 품종과 와인 생산 지역에 대해 좀 깊이 들어갑니다. 1, 2단계는 수업을 듣고 바로 자격증을 딸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관심이 많아서 스스로 책도 많이 봤고, 무엇보다 프랑스 특파원 시절, 3년 동안 장 보러 갈 때마다 와인 코너에서 라벨을 보며 무엇을 사 먹을까 연구했던 터라 1단계부터 들어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1단계부터 수업을 듣는 것이 시음 훈련을 체계적으로 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기계적으로 1차 향, 2차 향, 3차 향을 구별해 내고 그 향을 설명하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도전한 지 두 달 만에 레벨 2를 "Pass with Distinction"으로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레벨 3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배우는 심화 과정입니다. 일단 교재부터 1, 2단계와 비교가 안 됩니다. 주교재는 빽빽한 글씨로 각 지역별 와인에 대한 설명이 꽉 차 있습니다. 부교재는 전 세계 와인 산지에 대한 지도가 기본입니다. 이 지도를 놓고 지형과 토양, 기후를 공부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프랑스 와인과 프랑스 와인이 아닌 와인, 두 가지가 있다'는 말처럼, 프랑스 와인이 전체 학습 분량의 절반은 되는 듯했습니다. 저 역시 특파원을 지내면서 프랑스 와인을 가장 많이 접했던 터라 프랑스 와인이 가장 익숙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등 구대륙 와인과 함께, 미국,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칠레, 남아공 등 신대륙 와인은 지명부터, 기후, 품종까지 전부 다 외워야 했습니다. 물론 이해를 못 하면 암기가 불가능하죠. 수업은 주 2회, 한 번에 3시간씩 진행되는데, 그중 1시간은 시음 훈련에 할애됩니다. 레벨 3는 15회 수업이 기본입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저녁에 주 2회씩 수업을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시음 훈련은 시각, 후각, 미각을 총동원해야 하니까 더욱 집중력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와인 맛을 느끼기가 힘들었습니다. 시음 수업. 출처 : WineVision SNS 이론 시험은 객관식 50문제와 단답식, 서술형까지 포함해 100점 만점으로 2시간 동안 치르고, 시음 시험은 30분 동안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한 가지씩을 놓고 치릅니다. 이 와인이 어떤 와인인지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와인의 특성을 설명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와인이 좋은 와인인지, 아주 좋은 와인인지, 지금 마시는 게 좋은 건지, 더 숙성시켜 마시는 게 좋은 건지 등등을 평가합니다. 시음 테스트 시험용지 이 와인은 "왜?" 이론 시험에서 레벨 3는 단순히 와인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을 넘어서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수준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면 "샤르도네는 서늘한 기후와 온화한 기후에서 다 재배될 수 있는데, 각 지역의 사례를 들고, 그 기후가 포도와 와인의 품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라" 이런 식입니다. 또는 "샤르도네로 만들어진 와인이 부드러운 질감과 버터, 토스트, 바닐라향을 발현한다면 어떤 양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 설명하라" 하는 식입니다. 또는 샴페인을 서빙하는 데 주의할 점을 설명하라고 하면 이를 단계별로 7단계에서 10단계까지 차례로 서술해야 하는 겁니다. "우선 샴페인은 충분히 시원하게 보관해서, (온도가 올라가면 '뻥' 소리가 크게 나는데 그건 옳은 서빙 방법이 아닙니다.) 45도 정도로 기울이고, 병 입구는 사람을 향하지 않도록 하고, 철사를 푸는 순간부터 입구를 꼭 누르고 (튀어 오르지 않도록), 병마개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병을 돌려서 개봉한다" 이런 식입니다. 물론 전 세계의 스파클링 와인(샴페인, 크레망, 까바, 프로세코 등등) 특성과 양조 방법을 기본적으로 머릿속에 넣어 두어야 합니다. 각각의 양조법을 설명하고 차이점을 비교하라는 문제도 단골로 나온다고 하네요. 특정 와인 산지를 설명하고, 그런 특징이 와인의 맛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독일의 모젤은 서늘한 지역이고, 서리 위험이 있는데, 포도 재배자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포도를 재배하고, 양조하는지 설명하라는 겁니다. 특정 와인의 라벨을 보여주면서 라벨을 보고 이 와인의 특징을 설명하라는 것도 있습니다. 독일 리슬링의 경우 라벨 체계가 복잡한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묻는 거지요. 보르도 그랑 크뤼나 부르고뉴 와인의 라벨을 주고 와인의 등급, 특징, 이 와인이 왜 비싸게 팔리는지 설명하라는 문제도 단골이랍니다. 수업을 다 듣고 한 달 정도는 따로 복습을 했습니다.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색색의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쓰고, 지도에 표시도 하고, 입으로 중얼중얼 지명과 포도 품종을 암기했습니다. 막상 시험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미국 와인 <화이트 진판델>에 대해서 설명하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걸 제대로 못 썼습니다. 로제 와인의 한 종류인 <화이트 진판델>은 레벨 2에서 잠깐 지나갔는데, 시음을 하면서도 들쩍지근한 것이 '내 취향은 아니군' 하고 넘어갔는데, 미국에서는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와인입니다. 그러니 그 와인의 양조 과정을 설명하라는 문제가 나온 거죠. 프랑스 와인을 최우선으로 꼽는 사람들한테는 '이건 와인도 아닌데' 생각하고 지나치기 쉬운 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와인 전문가라는 자격증을 갖춘 사람에게는 이 와인 역시 모르고 지나쳐서는 안 될 만큼 대중적인 와인이었던 거죠. 베린저 메인 앤 바인 화이트 진판델 다음 도전은? WSET 레벨 3 자격증을 따면 레벨 4는 영국 본원의 학위 과정입니다. 영국이나 홍콩 등지로 가야 하고, 수업에만 2년이 걸리니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다음은 MW(Master of Wine)인데 전 세계적으로 400명 정도 있고, 한국인은 한 명도 아직 따지 못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과정을 좀 더 들어보려고 합니다. 구대륙 와인인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를 지역별로 좀 더 깊이 들어가는 WSG(Wine Scholar Guild) 과정이 있습니다. 여기서 프랑스 와인 부분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10시간 수업하고 시험 보고 역시 자격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프랑스로 가서 와인 수업을 들어보는 게 꿈입니다. 디자인 : 안준석
와인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와인을 마시겠다고 생각할 때 제일 첫 번째 기준은 가격일 겁니다. 본인의 예산이죠. 데일리 와인으로 반주처럼 먹을 것인지,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들과 먹을 것인지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다음은 무엇과 먹을까 겠죠. 그래서 화이트, 레드, 스파클링 중에서 결정하게 됩니다. 해산물을 먹으면 화이트, 육류를 먹으면 레드, 이 정도가 되겠죠? 저 역시 그랬던 거 같습니다. 여기에 날씨도 고려가 되죠. 더울 때는 시원한 화이트로 시작해 볼까? 흐리고 약간 서늘할 때는 묵직한 레드를 골라볼까? 이렇게 되고요. 여기에 개인적인 선호도도 추가됩니다. 부드러운 오크 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신대륙 레드를 선호하고, 진한 오크 향보다 신맛과 텁텁한 탄닌을 좋아하는 사람은 구대륙 와인을 선호하고, 그런 정도겠지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맛있는 와인과 맛없는 와인, 가성비 좋은 와인, 맛있지만 비싼 와인, 이 정도가 와인을 나누는 기준이 될 거 같습니다. 와인 시음의 목표와 기준은 와인 전문가들이 와인을 시음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 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 와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마시는 시기는 언제가 가장 좋은지 등을 평가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서 와인의 상태와 품질에 대해서 설명하고, 가격이 적정한지 등도 평가할 수가 있게 됩니다. 와인에 대해서 이렇게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려면 체계적인 기준이 필요합니다. WSET에서는 표준화된 평가 도구를 만들었는데, 이 기준을 적용해서 와인의 색깔, 향, 맛, 풍미 등을 설명하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시음용 잔도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쓰는 잔보다 작고 다리는 짧습니다. 밑은 넓고 갈수록 좁아지는 잔으로 향이 코로 집중될 수 있도록 생겼습니다. 국제표준화기구, ISO(International Standard Organization)에서 1970년에 전문적인 와인 시음을 위해 선정한 규격대로 만들어진 잔이랍니다. 이 잔에 절반이 안 되게 따라서 와인의 색을 관찰하고 향을 맡아보는데, 잔 밑 부분을 잡고 흔들기에도 적당한 크기입니다. 출처 : WineVision 홈페이지 제대로 된 "시음"을 배우다 우리는 매번 수업 시간마다 4가지에서 6가지 정도의 와인을 시음했습니다. 이걸 다 마시면 취하죠. 그래서 거의 다 뱉어냅니다. 향을 맡고, 입안에서 굴려본 뒤 뱉어내는 겁니다. 중간중간에 생수로 입을 헹구고, 물도 마십니다. 시음한 뒤에 뱉기 때문에 탈수가 올 수 있다고 하네요. 정말 목이 마른 것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와인 시음을 마치고 집에 가면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 정도로 목이 말랐습니다. 안주는 없습니다. 프랑스에서 와이너리 투어 때는 시음이 목적이 아니라 와인을 마시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 그런지, 빵이나 치즈 등을 내놓는데요. 빵과 치즈와 같이 마시면 와인이 더 맛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와인에 대한 평가는 불가능한 것 같았습니다. 시음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먼저 와인의 색과 상태를 살피는데, 이를 위해 잔을 놓기 위한 하얀 종이와 제대로 된 조명이 필요합니다. 또한 주변에서 다른 냄새가 나면 안 되기 때문에 시음 수업 때 향수나 향이 진한 화장품을 쓰고 가면 안 됩니다. 양치를 하고 난 직후에는 맛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이것도 피합니다. 와인 시음 잔 국제표준화기구(ISO) 규격 1. 외관 먼저 눈으로 와인의 상태를 관찰합니다. 하얀 종이 위에 놓인 와인을 옆에서 보고 위에서도 보고, 그리고 나서는 와인잔을 45도 정도로 기울여 와인색이 얼마나 진한지를 봅니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 노란빛이 살짝 나는 연한 레몬색이 있는가 하면 황금색에 가까운 진한 노란색, 호박색, 갈색까지도 나올 수가 있습니다. 레드 와인의 경우에는 포도 주스와 가까운 자주색부터 테두리 부분으로 가면 갈색, 주황색이 나는 경우까지 단계가 나눠지고요.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서 이 색깔이 어느 분류에 들어가는지, 머릿속에 정리가 돼 있어야 합니다. 머릿속에 '정확한 경계선'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 거죠. 색깔과 함께 와인 색의 강도를 판단해야 합니다. '연한' 또는 '깊은'으로 표시됩니다. 색과 마찬가지로 옆에서도 보지만 위에서 보거나 잔을 기울여서 봐야 구별이 가능합니다. 잔을 기울였을 때 가운데 진한 부분, 이른바 '코어'가 생기면 '깊은'으로 표현하는데, 화이트 와인의 경우는 구별이 좀 힘들었습니다. 2. 후각과 미각으로 찾아내는 '향' 후각과 미각 훈련은 정말 다양한 냄새와 맛이 있기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특히 서양에서 만들어진 기준이다 보니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과일이나 향신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냥 이 냄새나, 이 맛이 그거라고 외워야 했습니다. 젖은 돌, 숲속 바닥 등은 어렴풋이 알 듯합니다만, 딱총나무꽃, 구스베리, 블랙커런트, 페어드롭, 제비꽃, 삼나무, 정향, 회향, 육두구… 이런 것들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겁니다. 후각 연습을 위해서 아로마 키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10개 정도가 있는 아로마 키트로 연습을 했는데, 특파원 시절 프랑스에서는 50개에서 100개는 되는 정도의 다양한 아로마 키트를 갖고 수업을 듣는 와인학교 학생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겨우 10개밖에 안 되는 아로마 키트를 처음 받은 날, 수업하면서 그 향을 맞춰보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거의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 강사가 여러 가지 <보기>를 주고 이 중에서 향을 고르라고 하자 훨씬 쉬워졌습니다. 와인 시음이 바로 이런 원리라는 겁니다. 그 <보기>들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향을 맡으면서 그것과 맞는 향을 찾는 겁니다. 아로마 키트. 출처 : WineVision SNS 와인의 향과 풍미를 이야기할 때 먼저 큰 카테고리로 1차 향, 2차 향, 3차 향을 나눕니다. 1차 향은 포도 자체에서 나는 향이나 알코올 발효 과정에서 나는 향을 주로 이야기하는데, 과일 향과 기타 식물성 향이 대부분입니다. 과일 향을 표현할 때도 청포도의 경우 꽃이나 초록 과일 향부터 복숭아 같은 핵과류, 더 나아가 파인애플이나 망고 같은 열대 과일까지 포도가 재배되는 지역에 따라, 포도가 익은 정도에 따라 다른 과일 향이 발현됩니다. 적포도의 경우에는 딸기나 크랜베리 같은 붉은 과일부터 검은 자두 같은 검은 과일까지 풍미가 달라질 수 있고요. 2차 향은 포도가 발효된 뒤 나타나는데 비스킷이나 빵 냄새, 치즈 냄새와 오크 숙성에서 기인하는 바닐라 향 등을 찾아내는 겁니다. 숙성이 더 진행되면 과일 향은 견과류 향이나 말린 과일 향으로 발전하고, 여기에 병 숙성 과정까지 거치면 꿀 향기나, 가죽, 담배, 흙 냄새로까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향들을 찾아내면서 이 와인이 오크 숙성 과정을 거쳤는지, 병 숙성을 거쳤는지, 숙성이 얼마나 오래 진행됐는지 등을 평가합니다. 와인 아로마 휠. 출처 : aromaster.com 3. 미각으로 찾는 다른 것들 향 이외에 와인을 마시면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우선 '산도'가 있습니다. 신맛이 많이 난다거나 덜 난다거나 하는 거죠. 탄닌은 레드 와인에서 찾을 수 있는데 입안을 뻑뻑하게 하는 정도를 찾거나, 잇몸 부분을 혀로 더듬어보며 거칠고 뻑뻑한 정도를 탄닌의 강도로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알코올이 힘듭니다.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12도에서 15도 정도인데, 1, 2도 차이가 알코올이 '높다', '낮다', '중간이다'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목이 따끔거리는 정도를 느껴보라고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잔을 돌렸을 때, 와인이 잔을 따라 흘러내리는 속도('눈물' 혹은 '다리'라고 부릅니다)를 보면 알코올이 높은지, 낮은지도 알 수 있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높으면 점성이 높기 때문에 천천히 균일하게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을 노트에 적어 가면서 종합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합니다. 무슨 품종으로 만든 어떤 와인을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와인, 매우 좋은 와인, 지금 마시기 좋은 와인, 숙성 후 마시기 좋은 와인, 숙성 시기가 지난 와인, 이런 정도입니다. 흔히 생각하는 어떤 와인이고, 몇 년 산이고, 이런 걸 맞추려면 MW(Master of Wine) 정도가 돼야 하는데, 세계적으로 400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은 없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와인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술이 아니고, 평가 기준 역시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닌 만큼, 어릴 적부터 가까이 접하고 훈련받은 이들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소믈리에와 업계 종사자들의 수준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서,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MW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디자인 : 안준석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와인을 제대로 배워보겠다며 마음먹은 지 16년 만에, 드디어 와인 학원 강의실에 앉게 됐습니다. 저와는 달리 젊은(어린?)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와인'이라고 하면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고, 배우려 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내가 '물을 흐리는 사람'이 된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젊은 친구들이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앉아 있던 겁니다. 파리 특파원을 마친 뒤, 은퇴 후에는 프랑스의 와인 스쿨에 와서 공부해 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렀습니다. 아직 기자 생활 마무리까지는 좀 남았지만, 굳이 은퇴를 기다리지 않아도, 굳이 프랑스를 가지 않아도 먼저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고, 결국 서울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좌) 수업 장면, (우) 교재 영국에 본원을 두고 있는 세계적인 와인 인증기관(WSET: Wine & Spirit Education Trust)의 서울 분원에 등록을 하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WSET 과정 레벨 1, 2, 3을 듣기로 했습니다. 파리 특파원 시절, 와인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하면서 내가 마실 와인을 사기 위해 와인 라벨 공부도 하고, 프랑스 전역을 다니며 와인 산지도 가봤던 터라 굳이 <레벨 1>부터 수업을 들어야 하나 했는데, 이 학원은 <레벨 2>부터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업 시간마다 4가지에서 6가지 정도의 와인 시음을 하는데, 시음 테스트 훈련을 위해서 1부터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레벨 1, 2 통합 과정부터 듣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막상 시험을 보니 오히려 <레벨 1>이 더 어려웠습니다. <레벨 2>는 'Pass with Distinction: 우수 합격, A 학점'으로 통과했는데, <레벨1>은 그냥 'Pass'를 받는 데 그쳤으니까요. 레벨 2 합격증 오히려 쉽다고 생각한 레벨 1이 "시험"이라는 과정을 통과하는 것은 더 어려웠습니다. WSET 자격증은 레벨 4까지 있는데, 한국에서는 레벨 3까지 획득할 수 있고, 레벨 4는 학위 과정으로 영국 본원이나, 홍콩, 호주 등지에서 취득할 수 있습니다. 학위 과정인 만큼 최소 2년 반의 수업이 필요합니다. 영국 본원 학위 과정 졸업식. 출처 : WSET Global SNS WSET와 CMS 무엇이 다른가? 제가 와인 자격증 코스에 등록했다고 하니 지인들이 그럼 소믈리에가 되는 거냐고 묻던데요. WSET는 소믈리에가 아니라 와인 전문가 자격증을 공부하는 과정입니다. 와인업계 전반에서 일할 수 있는, 가장 널리 쓰일 수 있는 자격증이라고 합니다. 포도밭 관리, 와인 양조 등을 중점적으로 배워 이 와인이 왜 좋은 와인인지, 왜 비싸게 팔리는지 등을 공부합니다. 와인 라벨을 보고 시음을 통해, 이 와인이 어떤 와인인지, 어떤 품종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그 품종으로 만들면 어떤 맛이 나는지, 그 지역에서 만들어지면 어떤 특성이 있는지, 어떤 양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지, 그런 과정을 거치면 와인 맛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왜 비싸게 팔리는지 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 CMS(Court of Master Sommelier)는 소믈리에가 되려는 사람들이 준비합니다. 와인 서빙과 음식 페어링을 중점적으로 배우게 되는 거죠. 우리가 식당에서 만날 수 있는 소믈리에들은 음식에 맞는 와인을 권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시험 난이도는 WSET보다 더 높다고 하네요. 시험도 영어로 보기 때문에, 거의 원어민과 비슷한 정도의 영어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합니다. WSET 과정은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CMS 수료자 대회. 출처 : WineVision 홈페이지 제가 선택한 WSET 과정은 1, 2, 3단계를 다 하려면, 단계별로 시험을 보면서 수업 듣는 데만 4~5개월 정도 걸리는 거 같습니다. 수업은 1회 3시간 정도, 주 2회로 돼 있습니다. 시음 테스트와 같이 합니다. 온라인 수업도 가능합니다. 온라인의 경우 시음 키트를 배송받아서 같이 답을 맞춰 보는 형식으로 합니다. 지방에 살거나, 수업 시간에 학원에 오기 힘들 경우 유용한데, 아무래도 시음 테스트는 학원에서 같이 하면서 피드백을 받는 게 요령을 터득하는 데 좋은 것 같습니다. 시음 테스트 요령을 익힌다는 측면에서 수업도 1, 2, 3단계를 듣는 것이 좋은 거 같습니다. 제 경우에도 와인을 비교적 많이 마셨지만, (파리 특파원 시절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으니, 20년 정도 마신 셈입니다.) 와인에 대해 설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동안에는 맛있는 와인과 맛없는 와인, 나의 예산에 맞춰 가성비 좋은 와인, 이 정도가 제가 생각하는 와인 분류였으니까요. 시음 수업 장면. 출처 : WineVision 홈페이지 WSET, 무엇을 배우나? 이론 시험을 위해서는 와인 생산지의 기후와 토양, 와인 품종 등을 공부하면서 왜 이런 와인이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때문에 암기가 기본입니다. 물론 이해가 안 되면 암기도 안 되지요. 와인 산지 지도를 머릿속에 기본으로 넣고, 여기에 제대로 발음하기도 힘든 포도 품종과 지명 암기를 기계적으로 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그래도 제일 만만한 곳이 프랑스이고, 나머지 구대륙 이탈리아와 스페인 정도까지는 대략의 지도와 기후가 머릿속에 그려지긴 했지만, 신대륙인 미국, 아르헨티나, 칠레, 남아공, 호주 등은 처음 듣는 지명이 대부분이었고, 그 지역의 기후 등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해하고 암기하려고 하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는 1, 2단계 시험을 통과한 뒤, 3단계 시험을 보기 위해서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상 문제를 보고 책을 찾아가며 답안을 작성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결국은 반복 학습밖에 없지요. 학창 시절로 돌아가 암기 과목을 공부하는 것처럼 외워야 했습니다. 저는 지난해 9월쯤 수업을 듣기 시작해서, 올해 2월쯤 수업을 다 끝내고 3월 중순에 레벨 3 시험을 봤습니다. 그전에 레벨 1, 2를 통과했고요. 수업을 더 빨리 끝낼 수도 있었는데, 회사를 다니다 보니, 수업을 빠지면 보충하고 그러느라 좀 늦어졌습니다. 레벨 3 시험은 시음 테스트를 포함해, 객관식 100문제, 주관식 4문제(100점 만점)였습니다. 3시간 정도 시험을 봤습니다. 주관식이 어려웠지요. 길게 답을 써야 하니까요. 모르면 아예 쓸 수가 없는 겁니다. 연필로 답안을 작성해야 해서 연필도 사고, 답안 작성하는 연습도 해봤습니다. 학창 시절 이후 처음입니다. 컴퓨터만 쓰다가 연필로 답을 쓰려니 팔도 아프고, 컴퓨터 작업처럼 수정이 쉽지 않아서 머릿속에 잘 정리한 뒤 답을 써야 했습니다. 영국 본원으로 답안지를 보내서 채점하는데 결과가 나오는 데 석 달쯤 걸린다고 하네요. 3단계 시험을 통과하면 학위 과정인 4단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 과정까지 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일단 국내에서 할 수 없으니 쉽지 않습니다. 대신 국내에서는 지역별 전문가 과정을 따로 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저는 파리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프랑스 와인을 많이 접해본 터라, 프렌치 스콜라 과정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수업은 4회, 한 번에 3시간씩 듣고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시음 테스트 연습 과정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디자인 : 안준석
최근 우연한 기회에 남프랑스 와인을 만나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와인인데…’ 하면서 라벨을 자세히 보니, 2년 전 갔던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마을 루시용(Roussillon)에서 온 와인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하늘길이 열리자마자, 해외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어디를 갈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6월이라는 시기를 고려해, 프로방스의 보랏빛 라벤더와 니스 해변을 보자면서 떠난 길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지역일 만큼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지만, 코로나가 끝난 뒤 첫 여행이라는 해방감 덕분에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그저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았던 ‘붉은 황토 마을’ 루시용의 와인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겁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무대가 됐던 뤼브롱 산 루시용은 프로방스 알프스 꼬트 다쥐르(Provence-Alpes-Cote d’Azur) 지방의 뤼브롱(Luberon) 산맥을 끼고 있습니다. 루시용으로 가는 길에 이어지는 뤼브롱 산의 경치를 보면서 저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을 떠올렸습니다. 양치는 목동과 주인집 소녀의 순박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의 배경이 바로 뤼브롱 산입니다. “내가 뤼브롱 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이 소설은 시작되죠. 뤼브롱 산 주변에는 프랑스 정부가 정한 ‘아름다운 마을’들이 몇 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루시용’입니다. 우리 일행은 저녁 무렵에 루시용에 도착했는데, 마을의 명물인 붉은 황토 절벽이 석양을 받아 붉은색에서 황금색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 장관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절벽을 바라보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와인을 주문했습니다. 남프랑스는 별로 유명한 와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던 터라,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웨이터는 ‘이 와인을 모르냐’면서 자랑스럽게 설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영화 ‘어느 멋진 순간(A Good Year)’에 나왔던 와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말로는 ‘어느 멋진 순간’으로 번역됐지만 원제 ’A Good Year’는 와인이 잘된 해, 즉 좋은 빈티지를 뜻하는 말로 이 영화가 와인을 소재로 한 영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에 개봉됐는데, 저는 당시 특파원으로 파리에 있던 시절이라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웨이터는 러셀 크로우와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연했고, 이 마을을 배경으로 찍었다면서, 거기에 나온 와인이라는 설명을 들려줬습니다. 루시용에서 맛본 화이트 와인 6월 말인데 남프랑스는 엄청나게 더웠고, 관광을 마치고 살짝 지친 저녁 무렵에 시원한 화이트 와인이 얼마나 맛있던지요. 별로 비싸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눈앞에 보이는 붉은 절벽은 다른 안주가 필요 없을 만큼 황홀했습니다. 이 화이트 와인은 우리가 잘 아는 샤르도네도 쇼비뇽 블랑도 아닌 다른 품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남프랑스처럼 더운 곳에서는 샤르도네나 쇼비뇽 블랑이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곳에서 많이 재배되는 루산(roussanne), 마르산(marsanne), 그르나슈 블랑(grenache blanc), 그리고 프로방스 토착 품종인 클레레트(clairette) 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러 가지가 블렌딩돼 복합적인 맛이었는데, 청사과나 레몬 같은 산도가 높은 과일보다는 복숭아 같이 단향이 나 묵직하면서, 꽃향도 나는 섬세한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서 맛본 루시용의 레드 와인 그런데 한국에서 이번에는 루시용 지방의 레드 와인을 만나게 된 겁니다. 와인은 검붉은 색으로, 잘 익은 검은 과일(검은 체리, 검은 자두, 블랙베리 등) 향이 강했지만 산뜻했고, 매콤한 향신료(후추?) 향도 살짝 나는 듯했습니다. 오크 숙성은 안 했거나, 하더라도 오래된 큰 오크통에 살짝 들어갔다가 나온 듯 숙성으로 인한 향은 잘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남프랑스 레드 와인의 대표 품종을 흔히 GSM으로 부릅니다. 그르나슈(grenache), 쉬라(syrah), 무르베드르(mourvedre)의 앞 글자를 딴 건데요. 그르나슈와 쉬라가 검은 과일 풍미와 색, 탄닌을 준다면, 무르베드르는 육류 풍미와 향신료 풍미를 주는 역할을 합니다. 무르베드르는 따뜻한 곳에서만 잘 익을 수 있어서 남프랑스에서 많이 재배됩니다. 영화 ‘어느 멋진 순간’에는 남프랑스 방돌(bandol) 지방에서 만든 와인도 나옵니다. 방돌 지방은 프랑스에서 거의 유일하게, 무르베드르 한가지 품종만으로 만든 와인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영화에서 이 와인에 대해 ‘권투 선수도 한 잔 마시고 쓰러질 와인’이라고 묘사돼 있는데, 그만큼 묵직하고 강한 와인이라는 뜻일 겁니다. 남프랑스 와인들은 그동안 별로 비싸지 않아서 잘 찾으면 가성비 좋고 맛있는 와인을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마신 와인 가격을 알아봤더니, 결코 싸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스 와인 박람회에서 와인을 잘 고르려면? 최근 프랑스 르 피가로 지는 봄에 열리는 프랑스의 와인 박람회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박람회에서 좋은 와인을 사기 위한 10가지 팁을 소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와 지역을 고르라면서, 와인 박람회에서 점점 인기를 끌고 있는 지역으로 알사스, 루아르, 루시용을 꼽았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루시용은 물론이고 루아르 지방의 와인과 알자스의 화이트 와인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을 많이 수입하는 이유는 프랑스 와인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보르도나 부르고뉴 와인들 가격이 너무 올랐기 때문일 겁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와인 시장이 커지고 저변도 넓어졌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양한 와인들을 맛볼 수 있게 돼 좋은 일인데, 가격 부담도 낮아지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디자인 : 안준석
최근 레드 와인 한 종을 시음해 보고 깜짝 놀란 경험을 했습니다. 아주 짙은 색깔로, 보르도 레드는 분명히 아닌데, 힘 있고 풍성한 과일 맛에 나파밸리 와인도 아닌 것 같고, 호주 쉬라도 아니고… 하면서 말입니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말벡(malbec)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었습니다. 과거에도 아르헨티나 말벡을 종종 마셔봤지만, 이번에 마신 와인은 텁텁한 담배 냄새로 거칠다거나, 지나치게 향이 강하지 않은, ‘절제된’ 구대륙 와인의 풍미까지 느껴졌습니니다. ‘아르헨티나 말벡이 엄청 좋아졌구나’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말벡, 원산지는?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레드 와인 품종 가운데 하나가 아르헨티나의 말벡입니다. 잘 익은 검은 자두 풍미에 적당한 산미와 부드러운 탄닌, 여기에 적당히 높은 알코올 도수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레드 와인의 요소를 다 갖췄습니다. 색깔도 아주 진하고 묵직합니다. 담배향과 불에 그을린 고기 냄새까지 살짝 나 육류는 물론 한식과도 잘 어울립니다. 이 말벡은 아르헨티나의 대표 품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말벡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도 남미 아르헨티나입니다. 그런데 말벡의 원산지가 프랑스이고, 한때는 보르도 와인보다도 더 유럽 전역을 매료시킨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검은 포도주는 검은 오리고기와 먹는다 20여 년 전 파리 특파원으로 프랑스에 간 직후, 레드 와인을 샀는데, 잔에 따라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보던 레드 와인의 루비, 가넷 빛보다 훨씬 색깔이 진해 검은색에 가깝더군요. 맛도 물론 달랐고요. 부드럽다기보다는 약간 거칠기도 하고, 향신료향이 나는 듯도 했습니다. 그들에게 물어보니 카오르(cahors) 지방의 검은 포도주(vin noir, black wine)라고 했습니다. 카오르는 보르도에서 더 동남쪽 내륙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검은 포도주와 함께 송로버섯이라고 불리는 트뤼프, 그리고 거위 간 푸아그라가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3대 진미 가운데 캐비어를 제외한 두 가지가 다 만들어지는 곳이지요. 푸아그라를 만드는 곳이어서 거위, 오리 요리도 유명합니다. 거위 똥집 샐러드 프랑스인들은 그래서 “카오르의 검은 포도주는 검은색 오리고기(닭고기와 비교하면 검은빛이죠)와 먹는다”고 말합니다. 붉은색 소고기는 레드 와인과, 흰 살 생선은 화이트 와인과 먹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특파원 시절 이곳에 잠깐 여행을 갔다가 거위 근위(똥집)를 곁들인 샐러드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우리는 닭똥집을 먹는데, 이들은 거위 똥집을 먹는구나’ 하면서 식도락가 프랑스인들은 정말 못 먹는 게 없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프랑스 '장수마을'의 특산물은? 카오르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장수마을이기도 합니다. 포화지방산이 높은 거위의 지방간이 특산물인 곳이 장수 마을이라는 이유로, 포도주 덕분에 살찌지 않는다는 ‘프렌치 패러독스’의 사례로도 자주 인용됩니다. 이 장수마을 카오르의 검은 포도주가 바로 말벡으로 만들어집니다. 중세 시대만 해도 카오르의 말벡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와인 애호가들을 열광시켰습니다.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보르도에서는 보르도 와인이 다 팔리기 전까지 카오르를 비롯한 다른 지역 와인이 보르도 항구에서 선적되는 것을 금지하면서 보르도 와인 산업을 보호했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말벡은 보르도 와인의 색을 더 진하게 하고 바디감을 줘 맛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카베르네 쇼비뇽과 블렌딩하는 데도 쓰였습니다. 지금 보르도 와인 블렌딩시 메를로나 쉬라가 하는 역할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19세기말, 전 유럽을 휩쓸었던 필록세라(phylloxera)라는 곤충의 창궐로 말벡도 대부분 자취를 감췄는데, 카오르에서 그나마 프랑스의 말벡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벡은 아르헨티나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필록세라를 피해서 프랑스 농학자가 말벡을 아르헨티나로 옮겨 심었는데, 보르도나 카오르보다 일조량이 좋고 온도도 높은 아르헨티나에서 훨씬 부드럽고 풍성한 맛으로 피어난 겁니다. 일조량 좋고 서늘한 안데스 산지서 꽃 피운 말벡 아르헨티나 말벡의 대표 산지는 멘도자(Mendoza)로 안데스 산지의 높고 서늘한 구릉지대입니다. 햇볕은 뜨겁고 고도가 높은 산지라 밤에는 서늘해 말벡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입니다. 세계 5위 와인 강국으로 부상한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에서 말벡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 전체 생산량의 75%를 차지합니다. 반면 말벡의 원산지인 프랑스 카오르의 말벡은 프랑스 내에서도, 세계적으로도 그 위상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르헨티나 말벡에 자극받은 종주국 프랑스가 새로운 모습으로 카오르의 말벡을 다듬고 있어서 기대가 됩니다. 카오르의 말벡이 멘도자로 옮겨져 전혀 다른 품종처럼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회수 남쪽의 귤을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말벡은 오히려 더 좋아졌으니 이건 ‘청출어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음에는 비슷한 맥락에서 쇼비뇽 블랑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디자인 : 안준석
몇 년 전부터 겨울에 두꺼운 패딩 코트를 입은 채 아이스커피 들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졌습니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단어가 생겨났을 정도니 말이죠.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얼죽화’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화이트 와인’을 찾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레드 와인이 13도에서 18도 온도로 서빙한다면 화이트 와인은 이보다 낮은 6도에서 10도 정도로 서빙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맥주나 시원한 화이트 와인을 찾는 건 당연한데, 어째서 추운 겨울에 화이트 와인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을까요? 이건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건조한 겨울’이 그 원인인 것 같습니다. 겨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사무실이나 집에서 목이 마르기 때문에 시원한 커피를 마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겨울은 춥고 건조합니다. 거기에 실내 난방까지 잘 돼 겨울에 실내에 있으면 유난히 건조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 저녁, 난방이 잘 된 따뜻한 실내에서는 레드 와인보다 화이트 와인이 끌립니다. 순서대로 먹을 수 있다면 샴페인, 화이트, 레드 등으로 먹겠지만 그냥 한잔 정도로 그친다면 화이트 와인을 선택하게 됩니다. 반면 프랑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겨울 기온이 우리나라보다 높지만 비가 많죠.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입니다. 프랑스의 겨울은 한마디로 우울합니다. 햇볕 구경하기가 거의 힘들 뿐 아니라, 오후 4시부터 어둑어둑해지고 가끔씩 비도 뿌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입니다. 여기에 실내는 난방이 잘 안 되고, 온돌이라는 것이 없으니 실내에 들어가도 바닥에서 냉기가 그대로 올라오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집에 들어가면 몸을 녹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날씨까지 흐리거나 비가 추적추적 오면 허스키한 목소리의 샹송을 들으며 레드 와인이나, 데워서 먹는 뱅쇼(vin chaud)를 곁들이고 싶은 생각은 더 커집니다. 여기까지가 제 기억에 남아 있는 프랑스의 겨울입니다. 세계적으로도 화이트 와인 인기 급등 그런데 겨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화이트 와인과 로제 와인 소비가 늘고 있다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화이트 와인 소비는 2010년 이후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로제 와인 소비도 느리지만 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반면, 레드 와인은 2007년에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하고 있다는 겁니다. 출처: OIV(Organization of International Vine and Wine) 출처: OIV(Organization of International Vine and Wine) 소비가 늘자 생산량도 늘어났습니다. 2013년부터 화이트 와인 생산량이 레드 와인을 넘어섰고, 최근 몇 년 사이에 화이트 와인 생산량은 전체 와인 생산량의 49%까지 올라섰습니다. 나머지가 레드와 로제 와인이니, 전체 와인의 절반이 화이트 와인인 셈입니다. 여기에는 스파클링 와인의 인기도 한몫했습니다. 가성비 좋은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 덕분에 화이트 와인의 생산과 소비가 껑충 뛰어오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 독일, 영국의 스파클링 와인 시장이 화이트 와인 인기 상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은 레드뿐만이 아니라 화이트 와인도 전 세계 1위 소비국입니다. 독일은 맥주만큼이나 스파클링 와인에 대한 사랑도 각별하고, 추운 기후에서 잘 자라는 청포도 품종으로 스파클링 와인 생산도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프랑스와 오래전부터 샴페인의 원조를 놓고 다퉈왔던 영국은 최근 온난화로 인해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기에 좋은 포도 수확이 가능해졌고, 덕분에 좋은 스파클링 와인도 많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즉, 미국, 독일, 영국이 화이트 와인 생산과 소비를 끌어올린 주역들인 셈입니다. 프랑스, 레드 와인 소비 절반으로 떨어져 반면 레드 와인은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들에서 소비가 감소했는데, 감소된 소비를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나라가 없는 상황입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파리 특파원 시절, 레드 와인을 즐겨 마시는 프랑스의 겨울 풍경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특히 21세기 초부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레드 와인을 소비했던 프랑스가 이제는 레드 와인 소비량이 절반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젊은이들은 따서 마시기 편한 맥주를 즐기는 경향이 커졌습니다. 레드 와인은 시간이 많은 ‘어르신’들이나 마실 수 있는 술로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여기에, 지구 온난화로 더워진 유럽 대륙, 특히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서 화이트, 로제 와인과 맥주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레드 와인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보르도의 양조업자들은 남아도는 레드 와인을 쏟아부으며 시위를 벌이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된 겁니다. (▶ 참고 기사 : 포도밭 갈아엎고 공업용 전환하고.. 위기에 빠진 프랑스 와인) 시대적 상황에 따라, 기후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입맛은 변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후 변화는 포도 재배 환경을 바꾸고 있습니다. 신대륙 와이너리의 구대륙을 향한 추격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거 와인 종주국을 자처해 온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등 구대륙의 와인이 어떤 방향으로 살길을 모색할지 궁금해집니다. 디자인 : 박수민
송년 모임이 한창인 요즘 가장 가장 각광받는 술 가운데 하나가 샴페인일 겁니다. 병을 딸 때 나는 ‘펑’ 소리는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 주고, 플루트 모양의 가느다란 잔으로 올라오는 황금빛 기포는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입 속에서 터지는 차가운 탄산 거품은 혀를 자극하는 즐거움을 줘 그 어떤 술보다도 축제 분위기에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맛없는 와인은 있어도 맛없는 샴페인은 없다” 우리가 흔히 샴페인이라고 부르는 스파클링 와인은 사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프랑스의 샹파뉴(champagne) 지방에서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에만 붙여지는 이름입니다. 프랑스에서도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은 크레망(crement)이나 뱅 무소(vin mousseux) 등으로 불리고, 그 외 스페인의 까바(cava), 이탈리아의 프로세코(prosecco), 독일의 젝트(sekt)등도 스파클링 와인이죠. 물론 신대륙에서도 스파클링 와인들은 쏟아져 나옵니다. 다양한 스파클링 와인들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가장 비싼 건 샴페인입니다. “샴페인에 빠지면 패가망신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런가 하면 “맛없는 와인은 있어도 맛없는 샴페인은 없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샴페인이 그만큼 맛있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샴페인은 왜 그렇게 비싼 걸까요? 그 비싼 샴페인 중에서도 ‘좋은’ 샴페인은 어떤 걸까요? 좋은 샴페인의 기준은? 좋은 와인을 평가하는 기준과 좋은 샴페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거의 비슷합니다. 좋은 빛깔, 좋은 향, 여운, 알코올과 당분, 산미의 밸런스 등등. 여기에 샴페인은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스파클링 와인에만 존재하는 ‘거품’에 대한 평가입니다. 거품이 ‘공격적이다’, ‘크림 같다’, ‘섬세하다’고 표현하는데, ‘섬세한’ 거품이 최상품입니다.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에서 느껴지는 거품처럼 ‘톡’ 쏘는 거칠고 공격적이지만, 금방 없어져 버리는 거품이 있습니다. 반면 좋은 샴페인에서 느낄 수 있는 거품은 크림처럼 작은 거품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드는 느낌입니다. 좋은 샴페인일수록 좁고 긴 플루트 모양의 잔보다는 화이트 와인잔과 비슷한 좀 넓은 잔으로 마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와인 향기를 더 잘 느낄 수 있으면서도 좋은 샴페인은 거품이 오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와인잔과 샴페인 잔의 장점을 결합한 ‘튤립’ 모양 잔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샴페인 거품은 겨우내 묻어둔 동치미 국물처럼 거품 같지 않은 작은 거품이 계속 올라오는 그런 느낌입니다. 이 거품을 잘 보존하려면 온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샴페인은 화이트 와인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서빙하고, 마시는 동안에도 계속 차가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튤립잔(좌)과 플루트잔(우)/ 출처: Lehmann, crate and barrel 샴페인은 왜 비쌀까? 샴페인이 비싼 이유는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됩니다. 우선 샴페인용 포도는 수확 과정부터 다릅니다. 포도를 송이째 수확해 곧바로 압착해야 하기 때문에 기계 수확이 불가능하고 손으로 일일이 포도를 따야 합니다. 수확에 시간이 오래 걸리면 그동안 포도가 너무 익어버리기 때문에 단시간에 노동력을 집약해서 한꺼번에 수확합니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포도 수확도 더욱 빨리, 단시간에 해야 합니다. 지난해 여름, 샹파뉴 지방에서는 포도 수확하던 인부 몇 명이 일사병으로 숨지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폭염 속에서 장시간 포도 따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제조 공정도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갑니다. 블렌딩을 어떻게 하느냐는 샴페인 맛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포도 품종별, 수확 연도별, 포도밭 별로 어떻게 섞을지, 샴페인 메이커의 개성과 기술에 따라 품질이 달라집니다. 발효도 2번에 걸쳐 이뤄집니다. 와인처럼 1차 발효가 끝난 뒤 병에 넣고 2차 발효를 시키는데, 발효 후 남은 찌꺼기를 제거하는 과정에도 사람 손이 필요합니다. 샴페인 저장고에 가보면 수많은 병이 비스듬하게 꽂혀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효모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병을 수평 상태에서 점차 각도를 높여가며 천천히 세워 찌꺼기가 병 입구에 모이도록 하는 겁니다. 사람의 손으로 매일 조금씩 돌려세우는 이 과정은 길면 두 달이 걸립니다. 요즘은 기계로 며칠이면 가능한 데 사람 손만큼은 못하다는 것이 샴페인 제조사의 주장입니다. 즉, 대량 생산하는 스파클링 와인은 이 과정을 기계로 한다는 것이죠. 샴페인병을 손으로 돌리는 작업 / 출처: Canard-Duchêne 기계로 병을 돌리는 gyropalette / 출처: wikimedia 병 속에서 효모 찌꺼기를 없애려면, 냉각시켜 한꺼번에 제거하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찌꺼기를 제거한 샴페인은 기포로 인한 높은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마개를 만드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병 입구 지름의 3배 정도를 압축시켜 만든 코르크에, 철사 망까지 씌웁니다. 버섯 모양의 코르크 마개는 병 숙성 과정에서 압축돼 그렇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샴페인이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렇게 와인보다 몇 배나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설명해 줍니다. 샹파뉴 지방의 서늘한 기후와 백악질 토양이 큰 몫 여기까지가 사람의 손과 기술이 좌우하는 거라면, 샴페인 품질 평가의 중요한 요소인 ‘거품’은 좀 다릅니다. 이건 바로 샹파뉴 지방의 기후와 토양이 하는 일입니다. 샹파뉴 지방은 파리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대륙성 기후 지역입니다. 겨울에 엄청 춥고 여름은 짧고 뜨겁지만, 땅속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샹파뉴의 와인 저장고는 여름에도 서늘한데, 이런 서늘한 곳에서 만들어진 포도는 당분은 낮고 신맛은 강합니다. 샹파뉴의 와인 저장고는 단순히 저장만 하는 곳이 아니라 병 속에서 2차 발효까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그 규모가 엄청납니다. 와인 저장고에 레일을 깔아서 운반용 기차들이 다니는 정도입니다. 잘못하면 와인 저장고에서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샹파뉴 지역의 백악질 토양은 땅을 파내기가 쉽고 수분도 잘 저장할 수 있어서 온도 변화가 없이 오랜 시간에 걸쳐 와인이 발효될 수 있습니다. 와인이 땅속의 거대한 저장고에서 천천히 발효되면서 섬세한 작은 거품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마치 겨울에 땅속에 묻어둔 동치미가 작은 기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요. 출처: Moët & Chandon 지난해 5억 병 팔린 프로세코 좋은 샴페인이 비싼 이유가 이해는 되지만 연말 모임에 굳이 샴페인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과일향이 풍부하고, 탄산까지 있는 스파클링 와인들은 가벼운 음식과, 한식과 대부분 잘 어울립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5억 병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스파클링 와인 시장 규모가 해마다 커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 <샴페인 바>도 많이 생겼더군요. 이웃 나라 일본은 교자와 샴페인을 즐길 수 있는 체인점도 성업 중입니다. 굳이 샴페인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누구와 마시느냐가 더 중요하겠죠. 출처: japantimes 디자인 : 박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