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욕특파원입니다.
'전기차 다 죽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미국, 유럽, 한국 등 주요 선진국 전기차 판매가 시들해진 것이 사실이다. 테슬라 주가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실패란 없을 것 같던 테슬라가 재고 처리가 안 될 정도로 안 팔려서 미국에서는 베스트셀러인 모델Y를 7천 달러(한화 1천만 원) 넘게 할인해 주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일본 자동차 기업 토요타의 토요타 아키오 회장은 "세상이 드디어 실체를 알게 됐다"며,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이제 멈췄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전기차를 만들지 않고 있던 토요타이기에 토요타 회장의 이런 발언은 '자신감'으로까지 내비쳐졌다. 한국·미국·유럽은 전기차 판매량 뚝↓ 자동차 최대시장 미국은 전체 차량 대비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채 넘기지 못한 나라이다. 기자가 뉴욕특파원으로 지내던 당시,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연수를 했던 조지아와 같은 지역에서는 좀처럼 전기차를 보기 힘들었다. 동부야 그나마 낫지만 서부 같은 경우는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주유소조차 찾기 어려운 곳도 많다 보니 전기차는 시내 주행용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기차 비중이 높지 않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성장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인데,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2035년까지 미국 내 자동차를 100%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오히려 2023년 들어 더욱더 둔화되는 모양새였다. 유럽은 환경 보호 정책을 강하게 펼치는 국가가 많은 만큼 전기차 보급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전체 차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벌써 20%를 넘겼는데, 보급률이 높은 만큼 최근 들어서는 좀처럼 신규 구매가 크게 늘지 않고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전기차 판매에 있어서 나쁘지 않은 조건을 가진 나라이다. 이른바 '집밥' 충전은 단독주택 위주인 미국보다 불편한 감이 없지 않지만, 장거리 주행에 있어서 급속충전 등의 인프라가 꼼꼼히 잘 돼 있다 보니 전기차를 막상 타보니 내연차를 탈 때와 비교해 그리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는 운전자가 많다. 무엇보다 한국은 전기차 보조금을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지급하는 편에 속한다. 게다가 자국에 전기차를 제조하는 대기업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이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보다도 더 빨리 전기차 열기가 식어가고 있는데, 2023년엔 1%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기도 했다. 세계 전기차 시장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중국 하지만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 데이터를 뽑아보면 전혀 다른 얘기이다. 꾸준히 우상향을 그리고 있는데, 2023년 역시 한 해 전에 비해 전기차 판매량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온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전기차를 거의 복제해내듯 찍어내고 있으며, 판매량 또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늘어나고 있어서, 2023년에는 전체 판매량의 60%가 중국에서 나왔다. 중국의 엄청난 전기차 사랑, 과연 세계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환경보호 때문이라기보다는 중국의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이는 중국이 얼마 전 내놓은 전기차 보조금 정책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중국 정부는 전기차를 살 때 1만 위안, 우리 돈 190만 원가량의 보조금을 준다고 발표했다. 중국인들에게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런데 보조금 지급 대상 차량을 보면 오래된 가솔린이나 디젤 차도 있지만, 2018년 이전에 구입한 전기차도 대상으로 포함돼 있다. 전기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데에도 보조금을 준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전기차 판매를 중국 정부가 장려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전기차 구매자뿐 아니라 전기차 제조업체에도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 13년간 전기차 제조업체에 지원한 보조금이 1,7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3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서방에서는 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중국이 한 해 찍어낼 수 있는 전기차는 무려 4천만 대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한 대씩 받을 수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정작 중국에서 지난해 팔린 전기차는 이의 절반 밖에 안 되는 2천200만 대. 이러다 보니 중국 내에는 말 그대로 전기차가 남아도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은 산업 증진을 위해 전기차 생산을 멈추지 않고 있고, 이렇게 처리가 안 되고 남아도는 전기차를 전 세계에 밀어내고 있다. 말 그대로 중국 전기차의 대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 전기차의 무기는 '가격'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전기차 판매가 주춤한 이유에 대해 자동차 제조업체는 물론 전문가들은 첫째도 가격, 둘째도 가격, 셋째도 가격이라고 답을 한다. 물론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이는 주요한 원인이 아니며, 결국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장벽은 가격이라는 것이다. 전기차는 여전히 가격은 내연차보다 비싼데 내장재 등은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몇 년째 이어지는 고물가 상황에 자동차 구매는커녕 면허조차 따지 않는 20대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더 비싼 전기차를 구매한다는 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최대 장벽 '가격'을 깬 것이 바로 중국산 전기차이다. 중국은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를 자국 내에서 만든다. 최근 미국이 중국의 배터리 산업을 경계하며 배터리 생산을 미국 내에서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이다. 광물을 캐내고 정제를 하는 초기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환경오염 때문인데,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에야 환경법이나 주민 반대 등을 뚫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캐서 내가 만드는 중국은 이런 가격을 비약적으로 낮출 수 있고, 정부의 보조금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800만 원, 900만 원짜리 풀옵션 차량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15년 전 마티즈 기본형 가격인 900만 원에 풀옵션 전기차를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세계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중국 전기차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만리장성 세우는 세계 각국...우리나라는? 이런 상황에서 세계 시장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전기차를 제조하고 있는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전기차 보급률이 높은 유럽의 경우, 전체 전기차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덧 1/4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은 특히 자국의 자동차 업체들도 있다 보니 중국 전기차의 빠른 성장이 더욱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대로 두면 중국산 전기차가 5년 내에 전체 전기차의 절반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상황. 그래서 최근 EU는 중국에 실사단까지 보내며 불법 보조금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중국 정부가 제조업체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국제 무역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불공정 행위라는 것이다. 중국은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지금 분위기라면 '불법 보조금'을 빌미로 중국산 전기차에 EU차원의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를 제대로 판매하고 있지도 않은데도 가장 강력한 관세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미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자동차에 대해 25%의 추가 관세를 책정해 놓은 상태이다. 미국이 해외 자동차를 수입할 때 붙이던 2.5% 관세에, 중국산만 25%를 더 해 27.5%의 관세를 매기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바이든 대통령이 이 중국산 차에 부과하는 25% 관세를 100%로 4배나 높였다. 이제 중국에서 미국에 들어가는 차에는 무려 102.5%의 관세가 붙게 된 것이다. 중국산 전기차가 미국에 수출되는 순간, 유일한 무기인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이미 중국산 전기차를 많이 수입하고 있다. 바로 테슬라와 폴스타이다. 브랜드는 중국 브랜드가 아니지만, 제조는 중국에서 하고 있다 보니 사실상 중국 전기차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주문을 하고 몇 달을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비야디와 같은 중국산 전기차 브랜드만 수입을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중국산 전기차라고 미국이나 유럽처럼 관세를 매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중국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인 비야디는 이미 한국에 영업용 승합차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올 연말부터 승용차 분야도 본격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비야디는 사실 한 차례 전기 승용차의 한국 진출을 계획했다 포기한 일이 있다. 한국 홈페이지에도 자사의 승용차 제품을 올려놨다 삭제하기도 했었는데, 전기차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한국에서 중국산 전기차가 팔리지 않을 것이란 계산을 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던 터이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바꿔 한국 승용차 시장에 뛰어들기로 한 것인데, 중국에서 찍어내고 있는 전기차들이 세계 주요 시장의 관세장벽에 막히자 결국 한국을 택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연말이면 한국에도 중국 전기차가 쏟아져 들어올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고민에 빠진 한국 전기차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는 한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대차의 전기차 판매량이 가장 많은 곳은 유럽이다. 까다로운 유럽이지만 현대 전기차에 대한 평가도 무척 좋다. 그런데 이런 유럽 시장을 중국산 전기차가 야금야금 차지하기 시작해 벌써 25%나 점유를 하고 있다. 앞으로 관세 장벽이 세워질 가능성이 높지만, 중국은 자국 내 재고 떨이를 위해 가격을 더욱 낮출 수도 있다. 유럽이 아닌 동남아시아나 중동, 아프리카 같은 경우는 전기차 보급률이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낮지만, 그나마도 중국이 사실상 거의 차지하고 있다. 역시 가격경쟁력 때문인데, 현대차가 개발도상국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를 제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즉,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저가 중국산 전기차와의 경쟁이 더욱더 치열해지는 것이다. 미국은 사정이 다르다. 중국 전기차가 들어와 있지 않고, 앞으로도 들어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압도적 판매 1위인 토요타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회사는 전기차를 만들고 있지 않다. 또, 미국 시장에서 현대 전기차에 대한 평가도 좋다 보니 유럽산 전기차 판매량을 앞서고 있기도 하다. 아직 테슬라라는 거대한 장벽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전기차에 있어서만큼은 미국 시장에서 수입차 1위를 달성할 수 있다고 현대차는 자신한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이 2035년까지 전기차 100%를 이루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서 (현재 이 목표는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기는 하다) '전기차 의무화'라는 현 정책기조대로만 간다면 현대차가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 시장에서 드디어 일본차를 누를 수 있단 기대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엄청난 변수가 생겼다. 바로 트럼프이다. 트럼프 당선은 한국 전기차에게는 공포? 트럼프는 바이든의 정반대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바이든의 전기차 전환 정책은 트럼프가 심심하면 공격을 해 오는 단골 안줏거리이다. 트럼프는 며칠 전에도 '내가 당선이 된다면 취임 첫날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폐지하겠다'라고 공언했다. 애당초 기후위기 자체를 믿지 않는 트럼프는 이산화탄소 감축 정책에 관심이 없다. 게다가 전기차 지원은 결국 중국 배터리 업체들 배만 불리는 일이 이는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대차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에 수조 원을 들여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는 중이다. 특히 2022년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을 통과시키며 미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와 배터리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이후에는 미국 내 투자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지금은 미국에서 전기차를 구매할 때 최대 7,500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천만 원가량의 보조금(세제 혜택 방식)을 지원받고 있는데,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 보조금 제도 자체를 없애버린다면 가뜩이나 성장이 더딘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시장은 몹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미 수조 원을 들인 현대차가 받을 타격은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전기차 시장에서 수입차 1위를 굳히겠다는 현대차의 야심 찬 계획도 물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중국 저가 전기차, 내수 시장 흔들까? 해외 수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내수시장이다. 한국의 전기차 판매가 지금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이런 분위기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당장 올 연말 중국의 비와디가 한국 판매를 시작하면 알리나 테무처럼 '천억 페스타'같은 매우 공격적인 할인행사 등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과연 팔릴 것인가? 특히 한국은 자동차가 교통수단을 넘어 신분을 나타내는 명함처럼 인식되는 문화가 있다 보니 '카푸어'를 자처하는 이들도 많다. 이처럼 차의 브랜드를 중시하는 분위기에서 중국산 전기차가 아무리 싸게 판다 한들 이게 과연 팔릴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만약 중국 전기차가 상식을 뛰어넘는 선의 저가 공세를 펼친다면 간단한 자녀 라이드용이나 세컨드카 정도로는 수요가 생길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이렇게 될 경우 그렇지 않아도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을 중국 업체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산 전기차의 입지가 중국과 트럼프 사이에서 무척 고단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이러다 보니 현대차도 한국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 진작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전기차 리스 상품 확대이다. 현대차는 이미 미국에서 리스로 재미를 본 바가 있다. 미국은 전기차 보조금을 차를 살 때 찻값을 보태주는 방식이 아닌, 연말에 세금을 깎아주는 형태로 지원을 하고 있다. 원래는 현대차도 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2022년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시행되며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 미국 정부와 협상을 이어갔고, 결국 차량 구매 시에는 지원금 지급을 하지 못하지만, 현대 전기차를 리스할 때에는 지원금을 지급해 주는 선에서 정리가 됐다. 그런데 이게 신의 한 수였다. 미국 사람들이 차를 리스로도 많이 타는데, 리스의 경우 전기차 지원금은 차량 계약을 할 때 그 자리에서 7,500달러를 빼주는 형태로 지급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현대는 최근 전기차 리스 가격을 대폭 낮춘 상품을 내놓았다. 신차 가격은 낮게 책정하고, 리스가 끝난 뒤 반납을 할 때 잔존가치는 높게 책정을 해 소비자가 부담하는 금액을 대폭 낮춘 것이다. 전기차 충전요금까지 매달 지원을 하고 있는데, 향후 중국 차량과 경쟁이 시작되면 이러한 소비자 혜택이 더 커질 것인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전기차는 정말 죽었는가? 전기차 시장이 여전히 화두인 이유는 결국은 전기차 세상이 올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금은 일시적인 암흑기일 뿐 당장 내년부터 전기차 업계가 다시 활황을 띨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배터리 가격이다.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최대 장벽 비싼 가격, 그리고 그 비싼 가격의 주원인은 배터리이다. 하지만 전기차가 점점 규모의 경제를 이뤄가면서 배터리 양산 체계가 갖춰지고 있고 내년즈음이면 고급 배터리로 불리는 삼원계 배터리조차도 가격이 무천 많이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렇게 되면 전기차가 내연차와 비슷하거나, 심지어는 내연차보다도 더 싸지는 경우가 생기게 되고 수요가 다시 살아날 것이란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세계 각국의 이산화탄소 저감 정책이다. 물론 미국이야 트럼프라는 변수가 있지만, 바이든이 연임을 할 수도 있고, 설사 트럼프가 당선이 된다 해도 4년 후면 또 대통령은 바뀌게 된다. 유럽 같은 경우는 이산화탄소 제로 달성을 위한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전기차는 시장에서 소비자가 수요를 만드는 제품이 아니란 말이 있다. 정부의 보조금 정책 등이 수요를 만들어낸단 얘기인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곧 다시 크게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혹자는 영원히 대체되지 않을 것 같던 증기기관이 엔진으로 대체된 것처럼, 곧 내연기관이 전기모터로 대체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글 서두에 소개한 토요타 회장의 '전기차 시장이 멈췄다'는 주장은 그래서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얘기로 내다본다. 만약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내연기관차를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하는 때가 오면 전기차 개발을 여전히 하고 있지 않은 일본 차 회사들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더욱더 전기차를 찍어낼 것이고 더욱 더 싼 가격에 수출을 하려고 할 것이다. 일본 넘어 중국이란 말이 나오고 있는데, 전기차 주요 생산국인 한국이 앞으로 극복해 내야 하는 고개가 많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라인에 대한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는 무척 전격적이었다. 취재를 해 보니 네이버 역시 일본 정부가 이렇게까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무척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보니 며칠째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라며 향후 대책에 대해 말을 아끼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라인을 기획하고 총괄한, 라인야후 7인의 이사회 멤버 중 유일한 한국인인 신중호 대표까지 신속하게 축출해 낸 일본은 이제 지분을 몇 퍼센트나 팔 것이냐는 네이버의 고민마저도 덜어주려는 듯하다. 51:49냐, 60:40이냐 등등 주변의 예측을 일축하듯 미야카와 준이치 소프트뱅크 CEO는 기자회견에서 "지분 100%를 다 가지고 올 수도 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일본 정부의 라인 매각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속전속결이다. 해킹 빌미로 경영권 요구하는 최초의 사례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라인야후 지분 매각을 압박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고객정보 유출'이다. 지난해 11월 라인 사용자의 개인정보 51만 건이 유출된 보안 사고를 문제삼아 인프라 제공자인 네이버로부터 시스템 분리를 시키겠다는 것이다. 보안 사고를 일으킨 기업이 제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 방법이 과징금이 될 수도 있고, 과징금을 낼 돈이 없다면 주식을 처분해서 현금을 마련할 수도 있다. 아니면 정부에 현금 대신 주식으로 과징금을 납부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어떤 방식이 됐든 이는 전적으로 기업이 자체적으로 선택할 문제이다. 보안 사고를 빌미로 국가가 직접 나서 기업에 지분을 매각해라 말아라 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본 적이 없는, 유례없는 일이다. 사례가 없는 일이다 보니 네이버는 물론 우리 정부도 무척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이다. 1억 명 유출 소니 vs 51만 명 유출 네이버 사실 세계 최악의 해킹 사건 기록은 일본의 국민기업 소니가 가지고 있다. 소니의 주력 사업은 게임 사업인데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소니 계정(PSN 서비스)에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 그런데 2011년 4월 전 세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네트워크가 다운되는 일이 벌어졌다. 플레이스테이션 소비자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소니 측에 문의했지만, 소니는 '기술적 문제'라고만 둘러댈 뿐 정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주일이 흐르고, 소니는 뒤늦게 '사실은 서버가 해킹을 당했고,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이실직고를 한다. 당시 유출된 개인정보는 전 세계 50여 개국 7천700만 건. 충격적인 규모에 놀랄 틈도 없이 잇따라 2천만 명 넘는 개인정보가 추가로 유출되는 사고가 벌어지면서 소니는 두 차례에 걸쳐 전 세계 1억 명의 고객정보를 유출시키게 된다. 유출된 고객정보에는 이름, 나이, 성별, 연락처, 주소 같은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카드번호, 계좌 내역 같은 매우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신용카드를 도용당했단 신고가 줄을 잇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과 유럽 등은 소니를 질타했다. 미국 의회에서는 소니가 고의로 해킹 사건을 은폐해 수많은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며 일본에 있는 소니 회장을 미국 의회 청문회에 부르겠단 얘기까지 나왔고, 로펌들은 소비자들을 모아 소니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소니는 결국 미국에서는 1천500만 달러, 당시 환율로 150억 원의 배상금을 내고 합의를 했고, 영국에서는 25만 파운드, 우리 돈 4억 5천만 원의 과징금을 내야 했다. 당시 우리나라 소비자 역시 피해를 입었는데,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에 회원 가입이 돼 있던 약 24만 명 전원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우리 소비자들은 이 일로 발을 동동 굴렀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놀라울 정도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넘어갔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소니 측에 사건 경위에 대해 물어볼 예정이라는 기사만 나와 있을 뿐, 이후 소니 측에 어떠한 조치를 취한 것은 전혀 없다. 이쯤 되면 자국 소비자 보호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허술하게 넘어간 것이다. 반대로 이번 네이버가 유출한 라인 이용자의 개인정보에는 민감한 결제 정보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1년 소니의 해킹 사태 때보다 피해 규모가 훨씬 작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이지만 일본 정부는 아예 기업 경영권을 넘기라고 압박하고 나서고 있다. 앞서 소니 해킹 사태 때 우리 정부의 대응과 비교해 보면 더더욱 얼마나 이번 조치가 선을 넘는 조치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닛산 전 회장 카를로스 곤 사태가 소환되는 이유 이번 네이버 사태를 보며 2018년 있었던 일본 자동차 회사 닛산의 카를로스 곤 회장 구속 사건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일본 자동차 산업의 핵심이자 일본의 국민기업인 닛산은 1999년 버블경제가 꺼지며 부도 위기에 처한다. 이때 닛산은 프랑스 자동차 회사 르노에 SOS를 치게 되는데 자사 지분 37%를 넘기면서 인적, 물적 지원을 받게 된다. 합병은 아니었지만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탄생하게 되고 르노 측은 프랑스와 브라질, 레바논 3중 국적을 가진 카를로스 곤을 닛산의 회장으로 선출해 보낸다. 곤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닛산 구조조정에 착수해 2만 명을 정리해고했는데, 당시만 해도 '평생직장' 개념이던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후 제품 라인업도 재정비하면서 결국 닛산은 부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닛산이 살아나면서 르노의 매출을 뛰어넘기 시작했고, 이렇게 되자 닛산 내부에서도, 일본 사회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르노보다 차를 더 잘 팔고 있는데 르노가 사사건건 경영에 간섭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프랑스 정부가 르노의 지분 15%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프랑스가 일본의 기업 경영에 개입을 하는 모양새로 비치기까지 했다. 결정적으로 프랑스 정부가 르노와 닛산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이런 정서에 기름을 끼얹은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르노의 지분 15%를 가지고 있던 프랑스 정부는 르노의 닛산 합병을 추진했는데, 일본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합병에 반대하던 곤 회장은 이후 자신의 연임을 조건으로 합병에 찬성하게 된다. 그러다 2018년 마크롱 대통령을 만난 곤 회장은 닛산의 밴을 프랑스에서 생산하겠다는 발언을 하는데, 이 말을 하고 보름도 되지 않아 곤은 일본 수사당국에 체포가 된다. 혐의는 세금 탈루 등 개인 비리. 일본 정부는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입국한 곤 회장을 하네다공항에서 곧바로 체포하는데, 체포 작전이 극비리에 진행되다 보니 프랑스 정보당국마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일본 수사당국은 곤 회장의 체포와 구속 기간을 계속 연장하며 수사를 이어갔고, 끝내 보석으로 풀려나 가택연금 상태가 된 곤은 악기 상자에 숨어 일본을 빠져나오는 희대의 탈출국을 벌인 끝에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만다. "외국인들은 당장 일본을 떠나세요" 이후 곤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자신이 일본 사법제도의 인질이었다고 밝힌다. 일본 사법제도 특징상 수사 과정에 변호사가 함께 들어갈 수 없고, 부인을 만나는 것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 검찰의 유죄 확률은 99.4%에 달하는데 외국인의 경우는 이 수치가 더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일이 르노와 닛산의 합병 문제 때문이라는 주장을 했는데, 결과론적으로 르노와 닛산의 합병은 결국 무산됐고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또한 최근 사실상 막을 내렸다. 곤 회장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충고한다. 당장 일본을 떠나라. 목숨이 걸린 문제이다. 나한테 벌어진 일은 당신들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라인 사태를 바라보는 많은 국민들은 당시 곤의 이 말이 크게 와닿는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엄밀히 따져 보면 곤 회장 사건과 네이버 라인 사태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지점도 있다. 왜냐하면 곤 회장의 경우는 개인 비리 혐의가 확실했기 때문에 수사 그 자체가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 라인의 아버지 신중호 대표 축출 지난해 10월 출범한 라인야후의 이사회는 총 7명. 단 한 명만 한국인인데, 바로 라인을 기획하고 개발해 '라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네이버 출신의 신중호 대표이다. 신 대표를 제외하고는 6명의 이사 모두가 일본인이다. 일본 정부에게는 유일한 한국인인 신중호 대표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올 3월 신 대표는 갑자기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라인야후 스톡옵션 37.4%의 행사기간이 많이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량 포기했다. 이를 굉장히 이례적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기업의 대표가 이렇게 대량으로 스톡옵션을 내놓게 되면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행사 기간이 남은 스톡옵션을 포기하는 일은 금기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 째는 기업이 곧 문을 닫을 것 같을 때이고 두 번째는 외부의 요인이 작용했을 때이다. 신중호 대표의 경우는 후자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고, 그 외부의 요인이라는 것이 일본 정부의 압력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결국 카를로스 곤과 같이 사법적인 압박을 받는 일까지 번지지는 않았지만, 라인야후는 끝내 스톡옵션까지 포기한 신중호 대표를 경질했다. 이사회를 6명으로 축소하고 전원 일본인으로만 꾸린 것이다. 닛산 사태와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가 기업 문제에 개입을 하며 외국인 임원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사례가 이번에도 벌어진 것이다. 2. 어떤 나라가 우방국을 이렇게 대하나? 카를로스 곤 회장을 구속시킬 때, 일본은 오랜 기간 비밀리에 곤 회장의 비리 혐의에 대한 내사부터 시작했다. 체포와 구속 과정, 그리고 조사 과정에 곤 회장이 지속적으로 '불공정'과 '인권 침해'가 있었다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어쨌든 일본은 자국 내 사법 시스템 안에서 움직였다. 이번 라인 사태를 보며 많이 비교가 되는 미국의 틱톡 퇴출만 보더라도 미국은 자국 내 절차를 철저히 따랐다. 미국은 틱톡 퇴출을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상원과 하원에서 표결을 하는 절차를 거쳤고, 여기서 통과된 법안에 바이든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서명을 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사실상 적대국 대하듯 하고 있지만, 어쨌든 미국이 자국 내 국회법 등 모든 절차를 지킨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와 우방국이다. 최근에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한다며 한·일 사이 훈풍이 부는 분위기도 연출이 되고 있던 상황이다. 하지만 라인 지분 매각을 압박하는 방식은 그 어떤 법 절차도 통하지 않았다. 법적 강제력은 없다는 총무성의 행정지도 형태로 지분 매각을 압박하고 있는데,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부분이 더 애매하고 문제다. 네이버 측은 '법적 강제력이 없다면 지분을 팔지 않고 버텨도 되는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앞으로 라인을 통해 일본에서 전자 상거래 등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만약 총무성의 행정지도를 무시하고 지분을 팔지 않을 경우 일본 정부가 이런 사업을 허가해 줄 리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영상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결국 지분을 매각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네이버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현재 일본 소프트뱅크는 51:49, 60:40 이런 일각의 전망을 비웃듯 지분을 100% 매입할 수도 있다며 네이버를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절차조차 따르지 않고 오로지 힘으로 눌러 버리는 듯한 이런 모습은 도저히 우방국을 대하는 태도와 예의가 아니라고 분노한다. '캠프 데이비드' 정신, 정면으로 깨버린 일본 한·미·일 3국 정상은 지난해 8월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모여 이른바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발표한다. 삼국이 군사 안보를 넘어 AI와 반도체, 우주 분야까지 협력을 확대해 경제 안보를 이룩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이다. 이 중 중요하게 언급된 AI는 데이터가 필수이다. 데이터가 없으면 AI는 학습을 할 수가 없다. 물론 이 데이터가 고객의 개인정보를 뜻하는 건 아니지만, 이를 빌미로 우방국의 기업까지 '강탈'해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일본과 그 어떤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협력을 할 수 있을까. 일본의 이번 조치는 삼각동맹을 공고히 한다는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처사로 볼 수밖에 없다. 플랫폼 없던 일본, 강탈한 라인으로 아시아 시장 제패하나 이번 라인 사태가 심각한 또 다른 이유는 단순히 우리 자존심이 다쳐서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투자로 키운 아시아 플랫폼을 일본이 고스란히 집어삼킬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아날로그의 나라이다. 디지털 기술 발전이 더디고, 라인과 같은 채팅 플랫폼을 개발할 기술력이 불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이번에 네이버가 지분을 넘기더라도 아직 일본에는 라인을 운영할 클라우드 시스템이나 기술력이 없어서 네이버가 최소한 2년은 기술적 지원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하지만 기술이 없다고 욕심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이렇게까지 라인 경영권을 가져가려고 하는 이유 중에는 '플랫폼 강국'으로의 꿈을 이루려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현재 라인은 일본에서만 1억 명이 사용하고 있고, 타이완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1억 명이 사용을 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만 2억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대형 플랫폼인데, 이를 일본의 기업으로 만들어 아시아 플랫폼 시장을 제패하겠단 야욕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라인을 개발한 건 한국의 네이버이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라인이 아닌 카카오톡이 지배적인 플랫폼이라는 것. 현재 한국에서 카카오톡을 쓰는 사용자는 5천만 명으로, 아시아권 다른 국가 사용자까지 다 합치면 1억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라인과 카카오톡 모두 한국이 개발한 채팅 플랫폼이지만, 정작 아시아 시장 이용자는 라인이 2배 넘게 더 많은 상황인데 이 라인을 고스란히 뺏기게 된 셈이다. 아시아에서 플랫폼 사업력이 크게 약화될 우려가 커지는 이유이다. 우리 정부가 제대로 된 항의를 하지 않는 이유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저자세를 지적하고 있다. 과학기술부가 뒤늦게 '유감 표명'을 하긴 했지만 일본 정부에 공식적인 항의를 했다는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것이 네이버 측에도, 우리 국익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그렇지 않아도 라인의 국적 문제가 일본에서 공론화돼 좋을 게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공식적인 외교 문제로 끄집어 내 시끄럽게 만들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논리이다. 일견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고 넘기기에 우리 정부의 대응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도 많다. 최근 주일대사관이 일본 총무성에 '한국 내 반일 감정을 수그러뜨리기 위해 한국 특파원단에 전화로나마 '오해였다'라는 얘기를 해달라'고 부탁한 사실이 알려졌다. 항의를 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여론을 진화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적어도 일본 총무성이 공식적으로 나오고 있는 모양새이니 만큼 우리 정부도 물밑 협상에만 너무 매달리지 않고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공식 대응해야 할 문제는 공식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경화 기조를 포기하지 않는 일본이 앞으로도 또 다른 돌발행동을 할 여지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우리도 우리의 국익 극대화를 위해 대일 관계에 있어서 협력과 견제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모든 문제의 근원 '확률형 아이템', 일명 '뽑기' 엔씨소프트·넥슨으로 대표되는 K게임사가 만약 미국에서 사업을 했다면? 아마 지금쯤 모두 파산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고객을 속였다'는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받고 천문학적 배상을 했을 것이라는 거다.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버린 한국의 게임사들, 게임판을 도박판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악랄한 확률형 아이템이 여전히 문제이다. 게임 관련 이슈는 늘 듣는 이들의 간극이 매우 큰 소재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열심히 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예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게임 인구는 어느덧 63%에 달한다. 전 국민의 2/3가 게임을 어떻게든 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러다 보니 게임 산업은 거대 산업이 됐다. 게임이야말로 종합 예술 플랫폼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영상미와 음악은 물론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가 필수이고, 여기에 '게임성'까지 잘 녹아들어야 한다. 그러나, 음악, 영화, 드라마, 음식까지 전 세계에서 K문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때 이상하리만큼 한국 게임만큼은 잠잠하다. 세계적인 게임 시장은 여전히 미국과 일본, 그리고 일부 유럽 국가가 장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게임 산업 육성을 위해 많은 정책을 폈지만 한국의 게임사 스스로가 탐욕에 빠져 기회를 걷어찼다고 얘기한다. 그 이유 역시 확률형 아이템이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 시장의 절대 강자인 일본이나 미국의 게임사들 수익원은 당연하지만 주로 게임 그 자체이다. 게임을 싸게는 2~3만 원, 비싸게는 10만 원까지 받고 파는데, 책이나 음반과 비슷하게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이득이다. 게임이 유명해지면 IP파워가 생기고, 그로 인해 부가가치가 창출되기도 한다. 또 다른 수익원은 게임 안에서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이다. 단, '뽑기' 형태가 아닌 우리가 전통적으로 물건을 살 때와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원하는 아이템을 판매하는 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 게임사는 이런 수익 모델을 취하지 않는다. 몇 년씩 걸려 개발한 게임을 우선 공짜로 나눠준다. 공짜로 게임을 다운받은 사람들은 그러나 게임을 조금만 하다보면 깨닫게 된다. 돈을 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아이템을 구매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때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원하는 아이템을 바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 뽑기를 해야 한다. 마치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랜덤박스(럭키박스)'를 사듯이, 혹은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돌리듯이 돈을 내고 뽑기를 해야 하는데 그 확률이 극악한 수준이다. 0.n% 정도만 돼도 확률 높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인데, 심지어 0.00001%로 복권 당첨보다도 낮은 수준의 확률의 상품도 있다. 이러다 보니 내가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뽑기 버튼을 누르다 보면 4~500만 원 나가는 건 일도 아니게 된다. 한국 게임을 놓고 '사행성을 조장한다', '도박이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확률형 아이템의 역사 우리나라 게임은 어쩌다 확률형 아이템, 즉 뽑기가 주 수익원이 된 것일까? 그 시작은 넥슨이다. 넥슨은 2003년 출시한 공전의 히트작 메이플 스토리를 통해 전 세계 최초로 유료 뽑기 아이템을 선보였다. 넥슨은 2004년 일본에서 먼저 유료 뽑기 아이템을 시도했는데, 이때만 해도 플레이어들이 이 새로운 시도를 무척 좋아했다. 금액이 그리 비싸지도 않았고, 뽑기 확률이 극악스럽지도 않았으며, 뽑기로 뽑는 아이템이 게임의 승패를 결정하는데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말 그대로 아기자기한 재미 요소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큰 히트를 한 뽑기 시스템은 이듬해인 2005년 한국으로 넘어와 역시 대성공을 거둔다. 그렇게 여러 게임사가 유료 뽑기 아이템 모델을 차용하던 이때, 한국 게임계의 거목 엔씨소프트가 이를 극대화하기 시작한다. 엄청난 팬층을 보유하고 있던 한국 게임의 산 역사 '리니지'의 개발사였던 엔씨소프트는 2010년대 중반 이를 휴대폰용 게임으로 만들면서 유료 뽑기 시스템을 적극 채용한다. 극악의 뽑기 확률을 적용했고, 이 뽑기를 하지 않으면 게임을 아예 할 수가 없는 수준으로 만들었다. 이미 돈을 쓴 사용자들은 지금까지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계속 돈을 더 갖다 바치는, 이른바 '매몰' 상태에 이르게 되기도 했는데 이렇게 돈을 쓰는 고객들은 얼마나 많이 쓰느냐에 따라 고래와 돌고래로 불리기도 한다. 엔씨소프트는 이처럼 매몰된 사용자만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 작전은 그대로 성공했다. 엔씨가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는 걸 본 다른 한국의 게임사들은 이른바 '리니지 라이크', 즉 리니지의 수익 모델을 차용한 게임을 찍어내듯 양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돈을 쓸 준비가 된 게이머들의 호주머니를 공략하며 한때 3N이라 불리는 NC와 넥슨, 넷마블 3사의 시가총액이 60조 원을 넘기도 했다. 그야말로 '뽑기' 전성기가 온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게임사들 탐욕은 끝이 없어서일까. 한국 게임사들은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진 듯 뽑기 확률을 더욱 극악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악마의 뽑기라 불리는 된 '컴플리트 가챠'라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가챠'는 일본어로 '뽑기'를 뜻하는데, 이건 내가 원하는 아이템 그 자체를 0.n%의 확률을 뚫고 뽑아내는 것보다도 더 극악하다. 내가 원하는 아이템을 바로 가질 수는 없고, 10가지 재료를 모아 이걸 하나로 합쳐야지만 만들 수 있는데, 이 10가지 재료 모두를 0.n% 혹은 0.0n%의 확률로 뽑아야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일본에서는 이 '컴플리트 가챠' 시스템이 2016년 폐지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이런 사업 모델을 개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유저들의 불만이 하나 둘 폭발하기 시작했고, 3년 전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에서 확률 조작 사건까지 터지면서 한국 게임사들을 향한 민심은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등장한 것이 전광판을 설치한 트럭을 게임사 앞으로 몰고 가 시위를 하는 이른바 '트럭 시위'인데, 이 역시 한국이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트럭시위 국가라고 한다. 이렇게 싸늘하게 식은 게이머들의 민심은 결국 이들 게임을 조롱하는 수준에 이르게 됐고, 결국 이미 거액을 써 게임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일부 고래 유저들을 빼고는 대부분 한국 게임을 떠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와중에 2018년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는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듯한 발언을 한다. 확률형 아이템 모델이 지나치게 사행성을 자극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확률형 게임은 아이템을 가장 공정하게 사용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기술적인 장치"라는 망언에 가까운 발언을 한 것이 크게 화제가 된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단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유료 뽑기 아이템, 뭐가 나쁜가?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래서 뽑기형 아이템이 뭐가 나쁜 건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박과 비슷한 수준의 중독성을 가진 유료 뽑기형 아이템이 미성년자에게까지 퍼지는 경우를 전문가들은 경계한다. 한국게임학회 회장인 위정현 교수는 이 같은 사행성 게임을 미성년자까지도 아무 제재 없이 접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한국이 유일하다며 적어도 미성년자에게라도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던 한국의 게임산업이 완전히 몰락했다는 점도 대표적인 폐해로 꼽힌다. 정부가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해 힘을 쓴 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 원래도 게임 강국 소리를 들었었는데, 이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등에 업었다면 세계 게임계에서 인정을 받는 수준이 됐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모두에서 언급했듯 K문화가 각광받는 요즈음에도 한국 게임만큼은 여전히 세계 게임 시장에서 변방 중에 변방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시장마저도 요즘은 중국 게임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의 재미는 뒤로한 채, 유료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사업 모델' 하나만을 보며 달려온 한국 게임사 들인데, 이런 풍토에 환멸을 느낀 사용자들이 떠나가니 이제 와서 제대로 된 게임을 내놓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 틈을 오히려 게임성으로 승부를 보는 중국산 게임들이 차지하고 있다. '원신'으로 대표되는 중국 게임들 역시 유료 뽑기형 아이템을 채용하고 있지만, 그 확률이 한국 게임사만큼 극악스럽지도 않고, 게임사가 내세우는 그 확률이 실제로 구현이 되는지 검증까지 가능하다. 거기에다 무엇보다 유료 확률형 게임이 아니더라도 게임 자체가 재미있다 보니 오히려 한국 시장을 중국 게임들이 야금야금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위정현 학회장은 한국 게임 자체가 소멸돼 가고 있는데 어떻게 확률형 아이템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 소리 듣는데도 규제가 없는 대한민국 '확률형 아이템', 즉 뽑기는 말이 게임이지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 이러다 보니 유럽 일부 국가는 '확률형 아이템'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기도 한다. 영국 같은 경우는 규제까지는 아니지만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 미국은 의외로 별다른 제재 규정이 없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특히 서구권 게이머들은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페이 투 윈' 아이템을 돈을 주고 구매하는 걸 싫어한다. 특히 그것이 앞으로 얼마를 더 써야 할지 그 끝도 알 수 없는 '뽑기' 형태라면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을 당한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세계적인 게임회사인 EA사가 개발한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사례를 들 수 있다. 서양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타워즈 IP를 활용한 게임을 만들면서 한국 게임사들처럼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집어넣은 것인데, 이게 게이머들의 엄청난 분노를 불러오며 미국 의회까지 나서 EA를 비난했고,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게임이 아예 퇴출을 당하기도 했다. 서구권의 다른 게임사들도 당시 EA의 사례를 보고 지금까지도 유료 뽑기형 아이템은 웬만하면 채택하지 않고 있다. (유료 아이템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확정형 아이템은 대부분의 게임사가 도입하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가 먼저 반응하니 미국은 굳이 규제법안을 만들 이유도 없는 것이다. 중국 역시 유료 확률형 아이템이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얼마 전부터 전면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중국에 진출한 한국 게임들이 한국에선 극악의 확률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에서는 더 아이템이 잘 나오는 내수 역차별의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한국은 다르다. 유료 뽑기 아이템의 종주국이자, 선을 넘는 수익 모델을 보유한 게임들도 버젓이 장사를 한다. 그 이유는 이런 행태를 제재하려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번번이 넘지 못하고 좌초됐기 때문이다. 막강한 로비력을 가진 게임사..규제 법안 번번이 좌초 위정현 학회장은 게임사의 로비력이 상상 이상으로 막강하다고 증언한다. 국회에서 여러 차례 뽑기형 아이템에 대한 각종 제재안에 논의됐지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한 이유도 게임사 대관팀의 '공작'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에 더해 게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국회의원이 별로 없다는 것도 원인으로 꼽았는데, 예를 들어 별 대단치도 않은 최소한의 규제안조차도 국회에서 논의가 되는 순간 게임사가 '지나친 규제', '국내 게임사 역차별', '국내 게임 산업 보호' 등의 논리를 펴며 '이러다 한국 게임사 다 죽는다'라고 호소를 하면 이게 의외로 잘 먹혀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때마다 한국게임학회 등의 단체에서 이를 설득하는 작업을 하고 다니곤 하는데, 예산부터가 막대한 게임사를 상대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게임사 마법의 단어 '자율 규제' 게임사들은 그러면서 '자율 규제'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게임학회 등 단체에서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봤다. 이런 시도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고, 게임사들이 양심껏 잘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부터 시작된 게임 업계의 자율규제는 약 10년이 지난 지금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얼마를 써야 원하는 아이템을 뽑을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던 시절, 게임사들은 '자율규제' 차원에서 선심 쓰듯 뽑기 확률을 공개하겠다고 해 왔는데, 0.n%의 이 확률이 실제로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는지, 혹시 조작이라도 된 건 아닌지 게임사가 공개하는 그 자료 이외에는 검증할 방법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도 게임사가 공개하고 싶은 부분만 공개를 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데이터는 유저가 접근을 할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했고, 자료가 제한되다 보니 더더욱 확률 검증도 힘들어졌다. 그러다 결국 최근 '확률 공개 의무화' 법안이 통과됐다. 사상 처음으로 게임사의 유료 뽑기 아이템을 규제하는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은 건데, 여러 규제안중에 가장 약한 법안이라 할 수 있다. 당초 함께 발의하려던 <뽑기 금액 제한 규정>이나 <컴플리트 가챠 금지 규정>은 결국 발의되지 못했는데, 만약 이들 규정이 함께 올라갔다면 확률 공개 법안마저도 함께 폐기됐을 것이란 전망이 있을 정도이다. 이 최소한의 장치인 '확률 공개 규정'조차도 정말 힘겹게 국회 문턱을 넘었는데, 게임사들은 '확률 공개'는 영업기밀 침해라며 격렬히 반발해 왔다. 소비자인 게이머들은 '당연히 제공해야 할 정보를 '영업 기밀'이라고 감추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지만 게임사는 끝까지 이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결제 태도가 문제가 있어서 뽑기형 아이템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게임업계의 망언이 나오기도 했다. 위정현 학회장은 게임사들이 이토록 극렬히 저항한 이유는 확률 공개에 문제가 있을 경우 '대표자를 처벌' 하도록 한 규정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즉, 털어보면 지금까지 확률을 실수로든 고의로든 실제와 다르게 표시를 해 온 일들이 적지 않을 텐데, 이 경우 회사의 오너가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보니 이 법안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자수'하기 시작한 게임사들 실제로 이 법안의 효력은 대단했다. 3월 22일 드디어 첫 시행이 됐는데, 하루 전인 3월 21일 게임사들이 앞다퉈 그동안 알려진 뽑기 아이템 확률에 오류가 있었음을 자수하고 나선 것이다. 0.8%로 알려졌던 확률이 알고 보니 0.1%로 8배나 차이가 났더라는 '실수'부터, 0.2% 확률로 뽑을 수 있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처음 149번까지는 아무리 돈을 내도 아이템을 절대 뽑을 수 없고 150번째 시도부터 0.2%가 적용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실수'까지 참으로 다양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실수'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나같이 게임사에게 이익이고 소비자에게 손해인 실수만 골라서 하는 것인지, 그리고 실수를 어떻게 이렇게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위정현 학회장은 3월 22일 법이 시행되고 나서 적발이 될 경우 대표자가 책임을 져야 하다 보니 게임사들이 다급히 자수를 하고 있다고 얘기했는데, 소비자인 게이머들은 이런 '자수 릴레이'를 보며 그동안 게임사가 강조하던 '자율 규제'가 얼마나 허황된 소리였는가를 나타내는 방증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었으면 한국 게임사들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 수많은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을 팔아 수천억의 이익을 올리고 있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뽑기 확률을 거짓으로 공지하고 있었다. 이는 '실수'라기보다는 '사기'에 가까운 행태인데, 이런 일이 만약에 미국에서 벌어졌다고 가정해보자.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는 나라이다. 실제 피해액의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법안이 있다 보니 이런 일을 벌인 기업은 파산을 하는 일이 적지 않다. 미국이었다면 소비자를 상대로 이런 행각을 벌인 기업이 계속 같은 행태를 반복하며 사업을 이어나가기는 무척 힘들다. 특히 소비자의 민심이 이렇게까지 돌아선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결국 '자율 규제'란 미국처럼 강력한 처벌 규정이 있을 때에만 제대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이제서야 뒤늦게 게임사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발의됐다. 하지만 이번 국회 회기도 얼마 남지 않았고, 총선이 끝나 어수선한 상황에서 이 법안이 과연 통과 될지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대다수이다. 우리나라 게임사들, 체질 개선에 성공할까? 넥슨은 3년 전 있었던 메이플스토리 확률 조작 사건으로 최근 공정위로부터 116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넥슨이 해당 사건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5천 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에 비해 116억 원 과징금은 얼핏 적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자상거래법 관련 과징금 중 역대 최대 과징금 규모이다 보니 액수를 떠나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일단 공정위가 확률형 아이템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임과 동시에 다른 게임사들도 긴장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넥슨은 김앤장을 선임해 공정위를 상대로 법정다툼에 들어갔다. 116억 원의 과징금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공정위 김혜선 사무관은 3년간의 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가 많아 이번 법정 다툼에서 과징금 116억 원을 최대한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처럼 확률형 아이템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넥슨이지만 최근 넥슨은 사업 모델 다각화에 집중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게임성 하나만으로 승부를 본 '데이브 더 다이버' 같은 게임을 내놔 세계 게이머들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한국게임으로는 처음으로 아마존 게임 판매 1위를 기록한 '스텔라 블레이드'나, 평단의 호평을 받은 'P의 거짓'과 같이 최근 들어 한국 게임 개발사들이 뽑기형 아이템을 버리고 게임성 자체로 승부를 보는 시도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시도만이 게임 산업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최대 게임사인 엔씨소프트는 그러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료 뽑기 아이템을 뺀 게임으로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한때 100만 원이 넘었던 주가는 90% 가까이 빠져 현재 16~17만 원선에 머무르고 있다. 게이머들의 민심이 얼마나 무섭게 변했는지를 나타내는 대목이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규제 법안보다 더 무서운 건 소비자의 지갑이 닫히는 일이다. 이번에 통과된 최초의 규제안인 '확률 공개 의무화' 법안도 결국 이런 한국 게이머들의 민심을 타고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시장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만큼 한국 게임사들이 이제라도 체질 개선에 성공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건 싸도 너무 싸다 - 알리의 K 공습 한 달 전쯤 알리와 테무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다뤘었다. 이 무렵 알리가 앱 안에 'K-베뉴'라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기존 중국에서 넘어오는 물건들이 아닌, 한국 업체의 상품들만 전문으로 파는 전용 메뉴였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알리의 K-베뉴 메뉴에는 국내 기업이 제조한 음료나 휴지, 세제 등만 입점돼 있었고 과일이나 육류 같은 신선식품은 판매되고 있지 않았다. 전문가들 역시 알리가 국내 농장이나 육가공 업체에서 판매하는 신선식품을 취급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과일 가격이 70~80%씩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뉴스가 쏟아지는 이때 전격적으로 신선식품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빠른 속도였다. 심지어 딸기 한 팩 1,000원 같은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내걸면서 신규 이용자를 순식간에 17만 명이나 끌어모으는 등 그 반향도 컸다. 그러더니 급기야 아예 100만 원짜리 쿠폰을 뿌리는 등 국내 유통업체에서는 전에 보기 힘든 '돈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냐지만, 그 할인 폭이 전문가들도 놀랄 정도였다. 금, 다이아몬드, 상품권 등을 환금성 상품이라고 한다. 현금으로 바꾸기 쉬운 물건이란 뜻으로, 이들은 사실상 현금과 비슷한 취급을 받기 때문에 세일의 개념이 없다. 그런데 의외로 커피믹스와 기저귀, 쌀 등도 환금성 상품에 속한다. 환금성 상품으로 분류가 되면 구매 수량에서 제한이 생긴다. 실제로 마트에서 소매용으로 파는 커피믹스를 한 번에 100상자를 구매하고자 하더라도 불가능하다. 소매로 대규모 구매가 안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이들 환금성 상품은 할인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할인을 한다 하더라도 말만 할인이지 어디서 사나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가격 변동이 크지 않다. 그런가 하면 환금성 상품은 아니더라도 농심의 신라면 같은 스테디셀러 상품 역시 할인을 거의 하지 않는다. 특히 신라면은 농심의 대표 상품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한데, 설사 판매자가 자기가 손해를 봐가며 대폭 할인을 하고자 해도 제조사인 농심 측에서 허락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언급한 이 모든 상품들을 알리에서 대폭 할인을 진행하고 있다. CJ햇반 210g 24개들이 한 박스는 현재 알리에서 1만 9,536원에 무료 배송을 하고 있는데, 다나와 최저가 기준이 1만 9,870원+배송비 3,000원이다. 기존 최저가보다 3,300원이나 더 싸게 파는 것이다. 농심의 봉지라면 20봉 세트는 알리가 1만 4,276원으로 쿠팡이나 네이버 최저가보다 무려 2,000원 이상 더 싸고, 세일 안 하기로 유명한 동서식품의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 180포는 네이버 최저가가 2만 1,600원인데 알리가 1만 9,008원으로 역시 2,000원 넘게 싸게 팔고 있다. 쌀이나 기저귀 역시 마찬가지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들은 환금성 상품, 또는 기업의 대표 스테디셀러로 판매자가 할인을 하고 싶어도 제조사에서 반대해서 못 하던 상품들이었는데 알리는 어떻게 이렇게 유례없이 싸게 팔 수 있는 걸까? 알리가 이름 붙인 '1,000억 페스타'라는 세일 행사 이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제조사에게 정상가 혹은 오히려 더 비싸게 물건값을 쳐주고, 소비자에게는 할인을 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네 돈 1,000억을 쓰겠다는 것이다. 유통 전문가들은 할인의 액수보다도 할인 품목에 더 집중한다. 같은 1,000억 원을 쓰더라도 어디에 쓸 것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알리바바를 유통기업이 아닌 플랫폼 기업으로 규정했다. 자신들은 물류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제조사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중간 플랫폼의 역할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알리가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상품 기획자인 MD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한국 소비자의 기호를 정확히 꿰뚫겠다는 알리의 의중이 반영된 것인데, 한국유통연수원의 마종수 교수는 알리가 경쟁사의 판매 가격은 물론, 우리가 얼마를 제시했을 때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인가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분석했다. 알리가 물건을 1만 가지를 팔든 10만 가지를 팔든 어차피 소비자는 이 물건들 전부를 알 수는 없고, 결국 핵심 품목 20~30가지에 구매가 집중될 수밖에 없는데, 이 핵심 품목들의 가격만 집중적으로 흔들면 '알리는 충격적으로 싼 곳이구나'라는 인식을 단번에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알리가 이런 과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며, 그렇게 1,000억 원을 쓰기 때문에 파괴력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동서식품의 커피믹스나 농심의 신라면 등은 판매자가 싸게 할인을 해서 팔고 싶어도 제조사가 반대를 하는 품목인데 알리는 어떻게 이걸 해냈을까? 정확한 계약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통가에서는 알리가 이들에게 기존에 볼 수 없던 훨씬 더 큰 폭의 마진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중국 자본을 앞세운 알리가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해 얼마나 돈을 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소매시장 공략, 테무도 가세하나? 엄청난 자본을 앞세운 중국 기업 알리의 이러한 공세에 테무까지 가세하면 그 파괴력은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테무는 아직까지는 한국 시장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알리바바와 테무의 모기업인 핀둬둬는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테무는 2022년 9월, 미국에 한국보다 먼저 진출했다. 그리고는 천문학적인 광고비를 쏟아부으며 미국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남미와 유럽, 한국과 일본으로도 진출했지만 테무의 우선 공략 순위는 미국 시장이다. 현재 테무가 미국에서 15달러 물건을 팔 때마다 7달러 적자를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 한 해 미국에서 2조 원가량의 적자를 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아마존이 미국에서 흑자 전환을 하기까지 걸린 기간이 8년. 테무는 이를 3년 단축한 5년 안에 흑자 구조로 바꾸겠단 계획인데, 한마디로 미국에서만 5년간 최소 10조 원의 적자를 볼 각오를 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테무가 미국 시장에서 이렇게 적자를 내는 이유는 오롯이 물류비 때문이다. 테무가 미국 소비자에게 5일 이내 무료 배송을 약속하고 있는데, 중국에서 지구 반대편 미국에 이 기간 안에 물건을 배송하려면 비행기 밖에는 답이 없다. 모든 물건을 비행기로 나르려니 그 물류비가 어마어마하게 드는 것이다. 테무는 5년 내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사실 이게 이뤄질지도 현재로선 미지수이다. 이러다 보니 알리는 이 길을 택하지 않았다. 세계 5위의 이커머스 시장 한국…알리는 그 과실을 노렸다 알리는 대신 한국을 콕 꼬집어 공략하기 시작했다. 유럽과 미국이야 거리가 멀어 물류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공략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더라도, 가까운 아시아권에서는 왜 하필 일본도 동남아도 아닌 한국일까? 그건 한국이 가장 돈이 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전자상거래 규모는 2020년 4조 달러이던 것이 빠른 속도로 늘어 올해는 6.4조 달러, 우리 돈 8,6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별로 이커머스 점유율 순위를 살펴보면, 중국이 전체 소매 거래 중 52.1%를 전자상거래로 하는 것으로 조사돼 압도적으로 세계 1위를 했고, 2위는 차이가 많이 나지만 미국이 차지했다. 3위는 영국, 4위는 일본, 그리고 5위가 한국이다. 일본의 이커머스 점유율은 3%, 한국은 2.5%로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인구는 한국 5,000만 명 vs 일본 1억 3,000만 명으로, 국민 한 사람이 전자상거래에 쓰는 돈은 우리나라가 2배가 넘는다. 반면 일본은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의 2배가 넘는 데다, 물류도 생각보다 많이 발전을 못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유일 새벽배송을 하는 나라이다. 수도권 중심의 좁은 국토에 물류망이 촘촘히 깔려있다 보니 택배비 자체가 일본의 절반 가격도 안 된다. 시장 규모는 일본과 비슷한데, 물류비는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는 시장이 바로 한국인 것이다. 거기에다가 한국에서 유행한 상품이라고 하면 K팝 열풍이 뜨거운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자연스레 마케팅 효과까지 거둘 수 있으니, 한국은 동남아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즉, 알리는 물류비를 최대한 아끼면서 이윤을 최대로 뽑아낼 수 있는 시장으로 한국을 택한 것이다. 치밀하게 한국 공략을 준비한 알리…마지막 보석 맞춰질까 알리는 한국 시장 공략을 그야말로 치밀하게 준비했다. 앞서 언급한 국내 전용 MD 고용 이외에도, 알리는 중국 산둥성의 웨이하이시와 옌타이시에 3만 평 규모의 한국 전용 물류센터를 지었다. 이 두 곳은 평택항까지 컨테이너 선으로 1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한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기존에 3척이던 한국 전용 컨테이너 선을 최근에는 6척으로 2배 증선했다. 이렇게 차근차근 한국을 공략한 알리는 이제 마지막 퍼즐의 조각으로 한국 내 전용 물류센터를 지으려 하고 있다. 알리는 현재 관세가 면제되는 '보세구역' 내에 전용 물류센터를 짓기를 희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물류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알리는 4월 초에 1,000억 페스타에 이은 '뷰티 페스타'라는 할인행사를 열고 화장품을 세일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이미 화장품 관련 MD들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어 1,000억 페스타처럼 킬러 아이템들을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싼 가격에 판매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다 보니 업계에서는 알리가 화장품 판매점인 '올리브영'을 다음 타깃으로 정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올리브영뿐 아니라 저가 생활용품 판매점인 다이소의 경우도, 알리가 중국에서 곧바로 직구 형태로 우리나라에 판매하는 초초저가 공산품들로 인해 앞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불안한 전망도 나온다. 국내 시장 다 뺏기는데 우리 기업은 뭐 하나? 신세계그룹이 연일 화제이다. 유통의 왕가 신세계가 쿠팡에 밀려 유통 1위 자리를 내준 데 이어, 지난해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단 뉴스까지 나오며 신세계 위기론이 여기저기서 나오기도 한다. 정용진 회장이 취임하면서 이마트의 미래에 대해 더욱더 관심들이 쏠리고 있다. 먼저 오프라인 유통 점유율 1위의 이마트는 지난해 사실 흑자를 냈다. 하지만 문제는 신세계건설이었다. 더 큰 폭의 적자를 내며 신세계그룹 전체적으로 적자가 난 것이다. 신세계건설 대표가 경질된 배경이기도 하다. 게다가 2년 전 지마켓 인수가 뼈아프다. 쿠팡을 잡기 위해 3조 원을 쓰며 지마켓을 인수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 벌써 적자만 1,000억 원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이 당시 지마켓을 인수하며 발생한 금융 이자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지마켓은 시장 1위 쿠팡은 물론 무서운 공세를 펴고 있는 알리·테무와도 세그먼트가 정확히 겹치다 보니 반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이마트는 오프라인 시장 점유율 1위인 업체이다. 이러다 보니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오히려 신세계보다도 더 여유가 없다. 과거 마트들이 이른바 '10원 전쟁'이라는 걸 했다. 어디 한 곳에서 가격을 내리면 그거보다 딱 10원 더 가격을 내리는 걸 두고 하는 말인데, 현재 우리나라 오프라인 유통 거인들은 알리가 무엇을 노리는지 뻔히 보면서도 그 10원, 5원을 더 내릴 여력이 없다 보니 눈 뜨고 당하고 있다. 할인은커녕 이마트의 경우 기존에 전국적에서 제공하던 배달 서비스 등을 수도권으로 축소하는 등 있던 것도 줄이고 있는 형국이다. 막대한 중국 자본을 앞세운 알리와, 자금줄이 말라가는 국내 업체들. 자국 시장에서의 경쟁에서 눈 뜨고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 기업은 오는데, 우리 기업은 중국 안 가나? 과거에는 제조와 유통과 금융이 다소 분리가 돼 있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제조를 전담했다면, 이 물건들의 유통은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 국가의 대형 유통 기업, 혹은 각국의 토종 유통업체들이 담당했다. 그런데 이 유통 플랫폼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알리와 테무가 생겼고, 최근에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을 벗어나 세계의 시장까지 자처하고 나서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유통망만 장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제조 생태계마저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탈 중국을 외치며 인도나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는 기업들이 많은데, 중국이 자체 유통망을 전 세계에 심어나가면서 중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제조된 물건들은 그만큼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중국 제조업이 이처럼 전자상거래를 타고 장악력을 높여나가면서 중국산 물건들의 품질도 올라가고 있다. 화장품이 대표적인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내 화장품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메이블린이 불과 2~3년 사이 급격히 점유율 하락을 겪더니 최근 중국에서 아예 철수했다. 우리나라의 라네즈, 이니스프리 같은 화장품 업체도 한때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현재는 거의 대부분 철수했다. 그나마 중국에 남은 해외 화장품 기업은 초고가에 해당하는 샤넬이나 디올 같은 곳인데, 이들 역시 중국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왜나하면 중국 토종 화장품 기업이 중국 화장품 시장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애국소비' 열풍도 한 몫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 내에서 제조되는 중국산 제품들의 품질이 그만큼 올라간 것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제조된 상품을 중국에 팔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기존에 있던 업체들도 철수를 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알리가 한국에 진출해 한국 물건을 파는 것처럼, 쿠팡이나 이마트 같은 우리 유통 기업이 중국에 진출해 중국 물건을 팔면 어떨까? 전문가들은 이 역시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쿠팡은 지난해 설립 13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 시장에서 흑자를 냈다. 유통망을 건설하고 시스템을 갖추는 동안 계속해서 적자를 내던 것이 이제야 흑자 구조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보다도 국토 면적이 훨씬 넓다. 우리나라와 유통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는 얘기이다. 이 넓은 대륙에, 이미 알리바바와 핀둬둬(테무의 모기업), 그리고 전 세계 의류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쉬인 등 쿠팡보다 몸집이 몇 배는 더 큰 이커머스 업체들이 이미 활발히 영업을 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은 강력한 국가 통제 시스템 하에 발전한 얼굴 인식 AI 등 각종 첨단 IT 기술을 이용해 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자동 분류 물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제 겨우 흑자를 내기 시작한 쿠팡이 이런 중국에 새롭게 진출해 알리바바·핀둬둬 등과 경쟁하며 그 넓은 땅에 물류망을 갖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힘든 일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같은 기존 대기업도 마찬가지인데, 심지어 이들은 2015년 사드 사태 당시 거의 몰매를 맞듯 중국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 기업이 중국에 나가서 사업을 하는 것 역시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정부 차원의 제재 가능할까? - 관세 일각에서는 밀려들어오는 중국 유통 기업을 정부 차원에서 제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먼저 관세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국에서 들어오는 직구 물품은 200달러까지, 중국 등 그 이외 국가의 직구 물품의 경우 150달러(20만 원)까지 관세를 면제해 주고 있다. 중국은 우리보다 무관세 기준이 훨씬 후해서 5,000위안, 우리 돈 93만 원까지는 관세를 면제해 주고 있다. 중국에서는 웬만한 냉장고까지도 직구가 관세 없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이유는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직구를 권장하기 때문이다. 해외 직구를 통해 물류 등의 분야에서 고용과 경제 효과가 발생하다 보니, 관세 면제는 물론 기타 여러 가지 세금도 자국 내 물건을 판매할 때보다 더 큰 폭으로 할인해 준다. 통관 역시 크게 까다롭지 않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에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을 대상으로 관세 면제를 없앤다거나 축소하게 된다면 중국은 크게 반발할 것이 뻔하다. 국내 기업이 오히려 보복을 당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한데,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도 물건을 싸게 구매할 수 있는 통로가 막히는 일이라, 관세 면제를 축소하는 것은 국내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손해를 볼 수 있는 방법일 수밖에 없다. - KC인증 현재 직구 상품은 KC인증을 따로 받는 절차가 없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들어오는 직구 물품은 해당 국가 자체 품질 검사가 워낙 잘 돼 있다 보니 우리가 크게 걱정할 일이 없는데, 문제는 알리와 테무 등을 통해 들어오는 중국 직구 물품들이다. 중국 내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공장이 있고, 그중에는 정말 영세한 곳도 많다 보니 단순히 불량 제품뿐 아니라, 유해물질이 우리나라의 기준치를 크게 초과해 과다하게 함유된 물건 등이 배송되기도 해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마약을 숨겨 들여와도 적발이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역시도 해외에서 들어오는 물건에 대해 공식적인 인증 절차를 하지 않고 있다 보니, 우리가 중국 직구 제품만 콕 집어 KC인증을 받게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KC인증 같은 기존의 공식적은 특정 인증은 아니더라도, 중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에 대해서만큼은 '국민 안전'을 위해 별도의 품질 검사 정도는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정말 필요한 건 알리의 물류센터 통제 현재 알리가 국내 물류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보세구역 안에 물류센터를 짓기를 희망하지만 뜻대로 될지는 아직 미지수인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전문가들은 알리가 이 물류센터를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게 통제권을 주면 안 된다고 얘기한다. 마종수 교수는 중국의 경우 보세구를 이용한 해외 직구 거래인 이른바 '콰징'이라는 물류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운영하고 있는데, 그 운영만큼은 징둥닷컴이나 알리바바 같은 중국 기업들이 100% 맡아서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즉, 해외 기업이 이용을 하더라도 마음대로 물류 속도와 통관 절차 등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는 상호 호혜주의에 입각해서라도 똑같이 우리 정부나 기업이 100% 통제권을 쥐고 알리는 이를 이용만 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해외 직구 물품만 전담으로 다루는 해외 기업의 물류센터를 운영해 본 전례가 없다. 그러다 보니 법이나 제도도 전무한 상황. 문제는 알리의 물류센터 통제권 같은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논의가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한국 공략을 오랜 기간 정교하게 준비했듯, 우리도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통제할지에 대한 논의를 지금부터라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경쟁'은 좋은 것 소비자가 기업 걱정까지 해 줄 필요는 없다. 기자가 이번 아이템을 다루며 계속 우려한 것은 결국 쿠팡이나 이마트 등 특정 기업의 사업 성패가 아닌 소비자의 권익이다. 쿠팡이 흑자 전환을 하고 이마트를 누르며 치고 나올 때 알리와 테무가 국내 시장에 진출해 지각 변동을 일으키며 유통업체끼리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소비자로서는 무조건 좋은 현상이다. 이런 기업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야만 소비자도 이득을 볼 수 있는데, 문제는 막대한 자본으로 무장한 중국 이커머스 기업이 국내 유통망을 교란하며 지배적 위치에 오를 경우 소비자까지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중국의 유통 기업이 우리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직구의 이점만 취하고 의무를 저버리는 식의 경쟁을 한다면 한국 소비자들도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부와 정치권의 논의가 선의의 경쟁을 부추겨 소비자가 최대의 이익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지길 바란다.
명품을 사랑한 한국인, 이젠 아기까지 명품 열풍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모건스탠리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우리 돈 약 40만 원)로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세계 경제 최강국인 미국이 280달러, 중국은 55달러에 불과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엄청난 액수이다. 명품 사랑이 너무 커서일까, 이제는 성인뿐 아니라 아동 브랜드까지도 명품 브랜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자 일부 동네 지역 카페에는 때아닌 '명품 고민'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 비싼 명품 점퍼 하나씩은 입고 다니는데 우리 아이도 사줘야 할까 하는 고민 글이다. 아이가 중학생 정도 돼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브랜드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되면서 부모에게 사달라고 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가 아직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어려서 의류 브랜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오히려 부모가 먼저 나서서 우리 아이 '몽클레어' 한 벌 정도는 사줘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자의 경우는 '등골 브레이커'니 뭐니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후자의 경우는 언뜻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데 왜 부모가 먼저 없는 살림에 1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의류를 사서 입히려고 하는 걸까? SBS가 위치한 목동은 아이들이 많은 동네이다. 근처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이제 막 입학한 1학년, 2학년 어린 친구들이 어른들도 입기 힘들다는 몽클레어 패딩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유아 명품 브랜드의 인기는 당장 백화점 3사 매출만 봐도 알 수 있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백화점 3사의 전체 아동복 매출을 보면 롯데백화점은 1.9%, 현대 9.7%, 신세계 3.6%로 조사됐다. 성장률이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수입 명품 브랜드만 떼어놓고 보면 베이비 디올과 몽클레어 앙팡, 펜디 키즈는 20% 넘게, 버버리 칠드런은 32%에 달하는 매출 신장률을 보였다. 백화점에서 전체 아동복 성장세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다. 이러다 보니 아동 명품 브랜드가 단독 매장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일도 점점 잦아지고 있다. 명품 브랜드 톰브라운은 '톰브라운 키즈' 매장을 우리나라 백화점에 지난해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오픈을 했는데, 정작 이 브랜드의 본고장인 미국에는 키즈 매장을 이처럼 따로 떼서 운영한 경우가 없다. 최근 인기가 급상승 중이라는 베이비 디올의 경우 2020년 기준 전 세계에 25개 단독 매장이 있는데, 이 중 다섯 개는 중국에 있고, 우리나라에만 3곳이 있다. 올해 안으로 1곳이 추가 오픈을 한다고 하니 우리나라에도 곧 베이비 디올 단독 매장이 4개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에는 맨해튼에 딱 한 곳 있다. 명품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고가에 팔리는 파타고니아도 지난해 10월 전 세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키즈 매장을 단독으로 오픈했다. 참고로 미국산인 파타고니아는 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보니 미국인들이 매우 즐겨 입는 브랜드인데, 기자가 뉴욕 특파원으로 있을 때 여기저기서 파타고니아 매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키즈 매장을 따로 운영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처럼 아동 명품 브랜드 매장이 한국에 앞다퉈 단독 매장을 내고 있는 상황만 보더라도 한국이 이들 기업에 얼마나 매력적인 시장으로 보이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아동 명품 시장이 커지면서 중고로 거래하는 '리세일 시장' 역시 성장하고 있다. 아동복의 특징은 한 철 입히고 나면 끝이라는 건데, 아무래도 100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을 몇 번 입히고 버리는 게 아깝다 보니 살 때도 중고로 샀다가, 한 시즌 입히고 다시 중고로 파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중고나라 등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아동 명품 브랜드를 검색하면 거래 물건들이 수천 건씩 나오는데, 아예 중고 아동 명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전용 사이트가 생겨날 정도이다. 왜 이렇게까지 입혀야 하나? 왜 이렇게까지 해서 아이들에게 명품을 입히려는 것일까? 우선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아동복 시장은 조금씩 성장하는 추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인구의 25%가 0세에서 14세까지의 아동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만의 특징이 있다. 한국은 심각한 저출산 현상으로 어린이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나라이다. 전체 아동복 시장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명품 유아복 브랜드에게는 통하지 않는 얘기이다. 한다혜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중저가 아동복 업체 중에는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많다고 했다. 중가 유아용 평상복의 경우 신규 구매 대신 대물림이나 같이 나눠 입기를 한다거나, 아니면 아예 초저가 제품을 사주는 추세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평상복에서 아낀 예산을 특별한 날 한두 번 입을 명품 아동복을 구매하는데 쓰는 신개념 '합리적 소비'가 유행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런 분석을 드러내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장조사기업 트렌드리서치는 어른 옷을 살 때와 아동복을 살 때 구매 패턴에 대해 조사했는데, 어른 옷보다 아동복을 살 때 취향보다는 브랜드를 보고 구매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어른 옷을 살 때에는 가성비를 따진다는 응답이 높게 나왔지만, 아동복을 살 때에는 가성비를 본다는 대답이 훨씬 더 낮게 나왔다. 다른 나라도 이렇게 입히나? 미국의 경우도 명품 아동복의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일상에서 체감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기자가 뉴욕 특파원을 하는 3년 동안 뉴저지 백인 중산층이 주로 모여 사는 동네에서 생활했는데,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을 매일 학교로 태우고 다녔지만 몽클레어나 베이비디올 같은 고가의 옷을 입은 아이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다만, 미국에서도 유명 연예인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명품 브랜드를 입히는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 미국 언론은 이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명품 브랜드를 입히는 것을 사업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명품 기업과 광고 계약을 하고 사진을 올린다는 것이다. (사실 영어로 명품은 'luxury goods'로,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명품'이 아닌 '사치품'이다. 하지만 '사치품'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보니, 우리나라에 진출한 사치품 기업들은 '명품'이라는 기가 막힌 단어를 만들어내 이를 완벽히 대체했다.) 대표적인 것이 킴 카다시안의 딸 노스웨스트의 사례이다. 영향력 있는 스타 2세들이 명품을 입고 있는 모습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주 소개가 되다 보니 이를 동조해 명품 아동복을 사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늘어나는 건데, 특정 상류층 집단에서 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다 보니 명품 아동복의 성장세가 우리나라처럼 크지 않다. 일본의 경우는 아이들에게 사주는 고가의 제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란도셀'이라고 불리는 가죽 가방이다. 우리나라 뉴스에도 종종 소개가 되곤 하는데, 가격이 꽤 나가서 평균 50만 원, 비싼 것은 150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란도셀은 특정 브랜드를 보고 사는 게 아닌 데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할 때 한 번 사면 6년 내내 멘다는 점에서 한 철 입고 끝나는 한국 명품 아동복 구매 패턴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한다혜 연구위원은 일본 소비자들은 고가의 명품 브랜드를 특정 브랜드가 아닌, 정말 오래 쓸 수 있는 품질 좋은 제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사치품'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명품'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한 소비 패턴을 보이는 나라는 중국이다. 우리나라는 심각한 인구 감소 현상으로 아이가 줄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아동복 시장은 위축되고 있지만, 초고가 명품 아동복 브랜드는 그럴수록 더 잘 팔리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아이가 귀해지다 보니 아이 한 명에게 쓸 수 있는 예산이 많아지기 때문인데, 조부모부터 지인까지 아이 한 명에게 10명이 지갑을 연다고 해서 '텐포켓'이라거나, 아주 귀한 아이라는 뜻이 VIB(Very Important Baby) 같은 신조어가 나오기도 한다. 중국은 우리보다도 더 먼저 이런 '귀한 아이' 현상을 겪었다. 최근에는 경제 침체로 주춤하지만, 초고가 유아 명품 브랜드의 인기는 중국에서 먼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아 명품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 심리는 한국에서 초고가 아동복 명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바로 앞에서 설명한 '아이가 귀해지기 때문'이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심리상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비자심리학에서는 고가의 명품을 구매하는 심리적 동기를 총 4가지로 나눠서 설명한다. 1. 과시형: 남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기 싫다는 심리 2. 질시형: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무시당할 수 있다는 내면의 열등감의 심리 3. 환상형: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비롯한 심리 4. 동조형: 내가 속한 집단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공포심에서 비롯한 심리 미국에서 셀럽들이 자녀에게 명품을 입히는 걸 보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 3번 환상형이라고 한다면, 한국은 주로 4번, 동조형 심리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이 소비자심리학자들의 진단이다. 한국은 세계 주요 국가들에 비해 남과의 비교가 매우 자연스러운 나라이다. 심리학자 레온 피스팅거는 '사회비교이론'을 통해, 인간은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상대적 위안을 받는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이 비교는 주로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하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비교집단이 너무 크다는 특징이 있다. 1960~70년 급격한 경제발전을 하며 인적자원밖에 없는 한국은 일종의 인재 규격화에 나섰고, 그러다 보니 초중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들어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특정한 패턴의 삶이 일종의 '정답'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이러한 비교를 더욱 더 많이, 더 쉽게, 상시로 할 수 있게 됐는데,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전 세계 소셜미디어 이용률 2위를 기록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전 국민의 전 국민에 대한 비교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미국의 작가 마크 맨슨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는 다큐를 만들기도 했는데, '맞다, 틀리다' 논란을 차치하고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었다. 바로 한국이 우울한 이유로 유교와 자본주의의 최악의 단점만을 채택했다는 주장이었다. 유교의 '수치심'과 '타인에 대한 판단', 그리고 자본주의의 '물질주의'와 '생활비 문제'라는 단점은 극대화된 반면, 가족·지역사회와의 친밀감이라는 유교의 장점이나 자기표현·개인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장점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다 보니 내가 속한 집단, 즉 내가 나를 비교할 집단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공포심이 극대화됐고, 그게 남이 사는 명품 나도 사야 한다는 소비 심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런 '공포심'은 내 아이의 일이 되면 더욱더 극대화되다 보니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 다 입고 있는 몽클레어, 우리 아이도 하나 사줘야겠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집의 평수나 집의 가격 등을 묻는 게 굉장히 실례로 여겨지곤 하는데, 그 이유는 그런 사실을 드러내고 자랑할 거리가 아닌 나만의 프라이버시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는 상당히 다른 문화이다. 실제로 CNBC의 보도에 따르면 '부자가 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비율이 한국과 중국, 일본이 유독 다른 나라들보다 높았는데, 그중에서 1등은 단연 한국이었다. 또 '명품을 과시하는 게 좋지 않다'라고 답한 비율이 일본은 45%, 중국은 38%였는데 한국은 22%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조사 결과를 근거로 CNBC는 '한국은 부를 과시하는 것이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명품 아동복 구매가 그래서 나쁜 행위인가? 전문가들은 고물가 시대가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합리적 소비'가 그 어느 때보다 돋보이는 시기라고 얘기한다. 즉, 내가 정말 가치를 느낀다면 초고가의 제품이라도 아끼지 않고 사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것들은 아예 초저가 제품을 찾으면서 소비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갈수록 가운데 끼인 중가의 제품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아동복 시장에서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즉, 현재 명품 아동복 매출이 늘어나는 현상만 보고 국민들이 '과소비'를 하고 있다고 진단할 수는 없다. 다만, 소비라는 행위에는 '구매의 만족감'이라는 게 따라야 하는데, 명품 아동복의 경우 '내 아이만 뒤처질 수 있다'는 공포심에 기반한 소비가 많은 만큼 내 취향에 맞는 제품을, 꼼꼼한 비교를 통해 구매할 때 느끼는 만족감을 느끼기가 힘들다는 것이 문제로 제기된다. 또,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가 아동복 업체가 주로 국산 브랜드인 만큼 아동복 시장에서 국내 업체가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부터 특정 명품 브랜드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자라다 보면 성인이 돼서도 해당 브랜드만 찾게 되는 상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보니 국내 업체가 더욱더 고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글 코카콜라에 열광한 한국 한글 코카콜라가 출시된다는 뉴스가 큰 화제가 되었다. 코카콜라가 K-Wave, 한류를 주제로 한정판 제품을 판매하면서 한글로 '코카콜라'라고 쓰는 디자인을 택한 것이다. 코카콜라 창사 138년 만에 특정 언어로 디자인한 제품을 판매하는 게 처음인데, 그게 바로 한글이었기 때문에 한국이 특히 열광했다. 실제 이 제품은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 북중남미와 유럽, 호주까지 전 세계 36개국에서 동시에 출시됐고, 유튜브와 틱톡에는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한류맛'이라 이름 붙여진 코카콜라가 어떤 맛인지 리뷰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코카콜라가 이처럼 한정판 제품을 판매하는 일은 흔하다. 2022년부터는 '코카콜라 크리에이션스'라는 프로젝트로 주로 전 세계 Z세대를 겨냥한 감각적인 한정판을 내놓고 있다. 이 코카콜라 크리에이션스 프로젝트로 제1호는 우리나라에도 판매됐던 '코카콜라 스타더스트(영어명은 Star Light)'였는데, 이후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은 DJ 마시멜로와의 컬래버레이션이라든가,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인 블리치를 소제로 한 '소울 블래스트'(한국·미국에선 판매 안 됨) 등이 꽤 유명했다. 게임 'LoL(리그오브레전드)'을 주제로한 제품도 국내에선 인기가 많았는데 특히 페이커를 모델로 내세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나왔던 제품들만 보더라도 Z세대를 겨냥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코카콜라가 140년이 다 된 기업이다 보니, 계속해서 미래의 소비자인 젊은 층을 겨냥한 마케팅을 지속하고 있는데 이번에 K팝과 한글을 선택한 것이다. 서구 시장에서 한류와 한국 문화를 얼마나 젊고 새로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인데, 왜 그게 꼭 굳이 한글이어야 했는지가 궁금해서 코카콜라에 직접 연락을 해서 물어봤다. 이번 한류·한글 마케팅을 기획한 것은 미국의 코카콜라 본사이다. K팝은 전 세계에서 1천억 리스닝 수를 기록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문화 상품인데, 이 K팝 팬들의 특유의 문화에 집중했다는 것이 코카콜라의 설명이다. 바로 '커뮤니티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K팝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생일이 되면 뉴욕타임스퀘어 전광판 등에 돈을 모아 축하 메시지를 게시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이나 가수의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펼치는 일도 흔하다. 세계 경제까지도 좌우한다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도 이런 문화는 없다 보니 당연히 기업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커뮤니티 활동 중 하나가 바로 '한글 공부'였다는 부분에 주목했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다양한 언어를 쓰는 팬들이 한데 모여 봉사활동을 하며 또 한국말을 조금씩 하게 되고, 한글 가사를 외우고 하는 모든 커뮤니티 활동의 기본이 결국 '한글'이었던 것이고, 이 시장을 잡기 위해 한글 디자인을 전격 채용했다는 것이 코카콜라의 설명이다. 이쯤 되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새삼 세종대왕을 칭송하는 글들까지 공유되는 상황이다. 한글의 나라 한국에서 유독 더 비싼 한글 코카콜라 한글 코카콜라가 나왔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인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가격이다. 한글 코카콜라에 가장 열광한 한국에서 한글 코카콜라를 가장 비싸게 사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기자가 이번 아이템을 취재하며 네이버에서 한류맛 코카콜라 350ml, 이른바 '뚱캔' 24개를 19,600원에 예약구매했다. 이게 배송비 무료 상품 중 최저가인데, 이렇게 따지면 한 캔에 약 817원 정도 하는 것이다. 편의점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파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싼 가격인데, 과연 이게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싸다고 할 수 있을까? 먼저 한류맛 코카콜라는 미국에도 출시가 됐지만, 미국에서는 다른 코카콜라 제품과는 다르게 오프라인 판매는 하지 않고 온라인에서만 팔고 있다. 그것도 코카콜라 공식 쇼핑몰에서 4캔을 특수포장한 말 그대로 '스페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만 팔고 있다 보니 일반적인 다른 코카콜라 제품과 달리 가격이 비싸다. 다른 코카콜라 제품들처럼 어떤 가게에 들어가든 손쉽게 구매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온라인 전용 '스페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만 판매가 되다 보니 진입장벽이 있는 편이었고, 이런 점에서 일반 제품처럼 판매되는 우리나라와 1:1 가격비교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옆나라 일본은 어떨까? 일본에서도 이번 한류맛 코카콜라가 출시됐는데, 우리나라처럼 일반 코카콜라 제품 같이 판매되고 있다. 일본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라쿠텐에서 검색을 해 보면 500ml 48병을 6,098엔에 팔고 있는데, 한 병에 우리 돈 약 1,100원 정도 한다. 이걸 우리나라 355ml 뚱캔 가격으로 따져보면 799원인 셈이다. 온라인 최저가로 비교했을 때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싸다. 온라인 가격 / 355ml(뚱캔) 1캔 한국 817원 ㅣ 일본 799원 오프라인은 어떨까? 우리가 음료수를 가장 많이 사 먹는 유통채널은 사실 편의점이다. 우리나라는 코카콜라가 매년 가격을 올리면서, 현재 편의점 355ml 뚱캔 하나가 2천 원에 팔리고 있다. 한류맛 코카콜라 역시 이 가격에 맞춰 편의점에서는 한 캔에 2천 원이다. 태국과 네덜란드, 볼리비아 오프라인 매장에서 팔리는 한류맛 코카콜라의 가격도 일일이 찾아 비교해 봤다. 편의점 가격 / 355ml(뚱캔) 1캔 한국 2,000원 ㅣ 태국 1,100원 ㅣ 네덜란드 1,560원 ㅣ 볼리비아 600원 한정판 한류만 코카콜라가 아닌, 그냥 일반 코카콜라 가격을 비교해도 한국이 전 세계 주요 국가들보다 월등히 가격이 비싸다. 미국의 한 마케팅 업체가 매년 조사하는 전 세계 코카콜라 가격 순위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코카콜라 가격은 14위로, 46위인 일본과 51위인 미국보다도 훨씬 비싸다. 우리보다 코카콜라 가격이 비싼 나라는 1위 노르웨이, 2위 덴마크, 3위 핀란드, 4위 영국 등 주로 유럽 국가들이다. 미국과 일본의 GDP가 우리보다 더 높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코카콜라 가격이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LG생활건강의 독점 때문? 왜 우리나라는 코카콜라조차 비쌀까? 많은 사람들이 코카콜라의 제조·유통 독점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코카콜라는 전 세계에서 북한과 쿠바, 그리고 최근 전쟁으로 철수한 러시아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 들어가 있다. 아무리 다국적 기업이라도 전 세계 각국에 직접 공장을 짓고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코카콜라는 이른바 '보틀링 시스템'이라는 제조·유통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보틀링 시스템의 기원은 2차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전구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던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은 코카콜라 광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건 몰라도 전쟁에 나서는 병사들에게 코카콜라 보급만큼은 끊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아이젠하워는 코카콜라 측에 제안을 하나 하게 된다. 미군이 주둔 중인 유럽 국가에 콜라 제조 공장을 미국 정부 예산으로 지어줄 테니 원액과 기술자만 보내서 코카콜라 제조를 계속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코카콜라 측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그렇게 처음으로 현지 공장에서 생산과 유통을 하는 '보틀링 시스템'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코카콜라는 각 나라의 음료 공장과 손을 잡고 원액만 보내는 방식의 보틀링 시스템을 확립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역시 한국전쟁을 통해 이런 보틀링 시스템이 자리를 잡게 된다. 한국에 코카콜라라는 이름이 처음 알려진 건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 당시이다. 이후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에게 보급하기 위해 부산에 최초의 코카콜라 공장이 들어선다. 이렇게 '청량음료'라는 것이 한국에 조금씩 알려지자 현 롯데칠성음료의 전신인 동방청량음료라는 회사가 '스페시코라'라는 자체 콜라를 생산하며 미군에 납품을 하기 시작한다. 이게 생긴 건 코카콜라와 비슷했지만 실제 원액은 전혀 달랐기 때문에 맛이 코카콜라와는 상당히 달랐다고 한다. 그러다 미국의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가 두 차례 방한을 하면서 대중에게도 '코카콜라'라는 제품이 널리 알려지게 됐고 동방청량음료는 이런 분위기를 타고 '스페시코라'를 일반 대중에게도 판매를 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원조인 코카콜라가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1968년 드디어 코카콜라도 우리나라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본격 판매에 들어가는데, 코카콜라는 이 당시 각 지역별로 4군데 업체를 보틀링 업체로 선정한다. 수도권에 한양식품(현 두산), 대구·경북·충청에 범양식품, 호남에 호남식품, 부산·경남에 우성식품이 그들이다. 하지만 이후 1997년 코카콜라는 이 업체들과 '원액 제공 라이선스'를 연장하지 않고 모두 인수하게 된다. 이때 범양식품만은 코카콜라의 이런 방침에 반발하며 자체적으로 콜라를 생산하게 됐는데, 이게 바로 '콜라독립'을 외치며 나온 815콜라였다. 코카콜라는 이렇게 국내 보틀링 업체를 하나로 합친 뒤, 그 지분을 코카콜라 본사 직영인 호주의 보틀링업체에 넘기게 된다. 우리나라 보틀링을 코카콜라가 사실상 직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2년 국내에 웰빙열풍이 불면서 코카콜라의 매출이 뚝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2002년만 해도 356억 원 흑자를 기록하던 코카콜라는 불과 4년 만인 2006년 244억 원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 결국 코카콜라는 국내 코카콜라 보틀링 사업권을 매각하기로 하는데, 이때 이걸 사들인 게 바로 LG생활건강이다. LG생활건강이 2007년 코카콜라 보틀링을 인수하기로 할 때만 해도 이는 독이 든 잔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만 해도 탄산음료 시장의 부활이 힘들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코카콜라는 LG생활건강의 최고 효자 상품이다. 제로 음료 등이 활발히 출시되며 현재 국내 탄산음료 시장을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데, 이 시장 부동의 1위인 코카콜라를 LG생활건강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생건 연결기준 매출에서 코카콜라 음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17.6%에서 2022년 1년 만에 21.9%로 4.3%포인트나 올랐다. 영업이익으로만 보면 LG생건 연결 영업이익 7,111억 원 중 코카콜라에서만 2,067억 원이 나와 29%가 넘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21년 15.5%였던 것에 비해 1년 만에 영업이익 기여도가 13.6%포인트나 오른 것이다. 문제는 이 독점 시스템이다. 코카콜라의 생산과 유통을 LG생활건강이 독점하고 있다 보니 가격 경쟁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코카콜라를 얼마에 팔 것이냐는 본사에서 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궁금증도 나올 수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코카콜라 본사는 각 국가별로 원액을 얼마에 제공할 것인지만 결정할 뿐, 실제 코카콜라의 소비자 가격은 제조와 유통을 담당하는 보틀링 업체가 정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원액가격 이외에 인건비, 공장 운영비, 부대비용 등 다양한 가격을 고려해 우리나라 코카콜라의 가격을 직접 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매년 코카콜라 가격을 올린 것에 대해서는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보틀링이 독점이 아닌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우리보다 코카콜라 가격이 저렴한 곳이 대부분이다. 당장 옆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오키나와를 포함해 총 5곳의 보틀링 업체가 영업하고 있다. 각 업체마다 생산하는 제품라인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맛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경쟁으로 인해 우리나라보다 훨씬 싸다. 코카콜라 본사가 있는 미국은 각 주별로 지역 기업에 보틀링을 맡기고 있는데 그 수가 무려 64개나 된다. 코카콜라 소비량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미국과 다투는 멕시코 역시 보틀링 업체가 13곳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다. 반면, 우리보다 코카콜라 가격이 비싼 호주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코카콜라유로퍼시픽파트너스(CCEP)'라는 한 곳이 이 보틀링을 맡고 있다. 종합해 보면, "LG생활건강이 독점을 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는 얘기에는 반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코카콜라 가격이 비싼 나라는 보틀링 업체가 한 곳이더라"라는 명제는 성립을 하는 것이다. 사실 가격 경쟁이 콜라 가격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굳이 이렇게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2023년 1분기, 코카콜라의 영원한 라이벌 펩시에서 내놓은 펩시제로 라임이 3개월 짧은 기간이지만 코카콜라를 제치고 전체 음료시장 1위를 한 적이 있다. 강한 라임맛이 제로 콜라 특유의 맛을 가려준다는 호평도 많이 받은 데다, 1+1 판매 같은 할인행사도 큰 호응을 얻었다. 1위 자리를 뺏긴 코카콜라는 놀랐는지 코카콜라 제로를 무려 1+1로 팔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코카콜라 제로는 절대로 할인을 하지 않는 제품으로 유명했기에 더더욱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 사이에서는 경쟁이 불붙으니 할인을 하더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틀링 업체를 더 세울 수는 없나? 우리나라에도 코카콜라 보틀링 업체를 다양하게 세우면 되는 일 아닌가? 이게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코카콜라는 우리나라 보틀링 업체를 여러 곳으로 늘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코카콜라는 전 세계 보틀링 업체들과 원액 제공 라이선스 계약을 매 5년마다 갱신하고 있는데, 굉장히 이례적으로 LG생활건강과는 지난해 10년 계약을 체결했다. 일단 앞으로 10년간은 LG생건 독점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설사 코카콜라가 보틀링 업체를 여러 곳으로 늘리고자 한다 해도, 당장 우리나라 전역에 공급될 콜라를 제조하고 유통시킬만한 역량을 가진 음료 업체가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2007년 LG생건이 코카콜라를 인수하며 롯데칠성은 펩시의 보틀링을 시작했는데, 이때 우리나라 음료 시장은 사실상 LG와 롯데 양강 체제로 재편이 됐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보다는 늘 100원, 200원씩 더 싸서 비교적 저렴하다고 인식돼 있는 펩시콜라 역시 해외 가격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비교적 비싼 편에 속한다. 음료시장 양강 체제에서 오는 경쟁 둔화가 결국 소비자에게는 가격 상승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2019년 미국으로 떠나 연수와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4년 만에 회사에 돌아와 보니 목동 SBS 주변 커피 지형도가 바뀌어 있었다. 식사 후 최대한 빨리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뜻의 우스갯소리인 '식후 3보 즉사' 법칙에 의해 점심시간 자주 가던 커피숍들이 말 그대로 환골탈태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게 노란 간판의 메가커피. 이른바 저가형 커피가 회사 주변에 새로 생겼는데 출근시간, 점심시간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많았다. 그 바로 앞에는 매머드커피라는 또 다른 커피숍이 경쟁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예전부터 있던 빽다방도 여전히 장사가 잘됐다. 이 매장들은 심지어 SBS를 중심으로 원을 그려가며 여기저기 2호점, 3호점이 문을 열고 운영하고 있었다. 못 보던 커피숍들이 생겼다고 해서 SBS 1층에 있는 스타벅스가 죽은 것도 아니었다. 스타벅스는 스타벅스대로 여전히 문전성시여서 점심 시간 이후에는 주문한 음료가 나오기까지 10분가량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메가커피도 잘 되고 스타벅스도 잘 된다? 평일 서울 목동 SBS 주변 유동 인구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볼 때, 기존에 없던 '저가 커피숍'이 대여섯 개씩이나 새로 생겼는데 다 장사가 잘된다? 전통의 강자 스타벅스도 여전히 강력하다? 그러면 대체 어디서 손님이 빠졌단 말인가? 가장 대표적인 게 이디야 커피였다. 점심식사 후, 또는 그냥 평시에 이디야 커피를 가는 손님이 4년 전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비해 크게 줄어 있었다. 이디야 커피는 저가 커피의 개척자 같은 존재이다. 스타벅스 초창기, 커피 한 잔에 5,000원이면 차라리 국밥을 먹겠다며 커피값 논란까지 일던 그때 이디야는 합리적 가격으로 스타벅스와 경쟁을 벌였다. 스타벅스 옆자리만 찾아다니며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렸고 호응도 좋았다. 하지만 이후 이디야는 커피콩의 고급화를 진행하며 가격을 조금씩 올리기도 했는데, 초저가 커피인 메가커피와 매머드커피, 컴포즈커피 등의 브랜드가 생겨나면서 위치가 매우 애매해졌다.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가격은 4,500원으로, 요즘 여기저기 많이 생기고 있는 분위기 좋은 개인 카페의 커피 가격과 비교했을 때 더 이상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니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여전히 미국에서 온 고급스러운 커피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고 있다. 오죽했으면 얼마 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서민은 오지 않는 곳' 발언으로 떠들썩하기까지 했을까. 당시 때아닌 '귀족커피', '서민커피' 논쟁이 붙기는 했지만,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으로 소비자 접근성은 확대하면서도 고급 이미지는 그대로 가져간다는 것이 스타벅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득이 되는 마케팅 전략이다. 반면 저가 커피인 메가커피나 컴포즈커피 등은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1,500원이다. 싸다. 초대형 용량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3,0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다 보니, 출근길에 이거 한 잔 사서 반나절 이상 두고두고 마시는 사람들도 많다. 이디야 커피는 현재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3,200원이다.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가격이다. 반면 브랜드 이미지는 여전히 저가 커피 이미지가 강하다. 애매하다. 귀족커피도, 서민커피도 아닌 애매한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이다. 물론 이디야 커피만의 장점이 있다. 메가·컴포즈 등 저가 커피들은 앉아서 먹는 자리가 없는 곳이 많지만 이디야는 어디나 넓은 좌석이 완비돼 있다. 노트북을 펴놓고 앉아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된다는 점을 따지고 보면 이디야는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다. 이러다 보니 특히 공부할 것이 있는 학생들 위주로 이디야를 여전히 많이 찾는다는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디야 커피 스스로가 위기라고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이를 극명히 나타내 주는 게 신규 점포 출점 수이다.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이 한 해 동안 컴포즈 커피는 573개의 점포를 새로 열었다. 메가커피가 417개 점포를 신규로 출점했고, 그 다음 순위는 더벤티와 빽다방이었다. 매장을 새로 많이 오픈한 커피숍 1위부터 4위가 모두 저가 커피인 것이다. 반면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려가던 이디야는 신규 점포 218개로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이며 5위를 기록했는데, 컴포즈 커피의 반도 안 되는 수치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디야 커피의 문창기 대표는 지난달 신년사에서 '재도약'을 강조하며 뼈를 깎는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비싼 것 아니면 아주 싼 것으로 커피 얘기를 길게 했지만, 비싼 것 아니면 아주 싼 것으로 홍해 갈리듯 양분화되는 소비 패턴은 시장 전반에서 드러나고 있다. 요식 사업 분야 한 가지 예만 더 들자면 햄버거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햄버거 시장은 다른 품목에 비해 유독 쑥쑥 자라나고 있는 분야이다. 2020년 3조가 채 되지 않던 시장 규모는 매년 늘어나 2023년 5조 원에 다다랐다. 비슷한 계열인 피자나 치킨 시장의 성장세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시장이 커지면서 새로운 버거 브랜드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게 파이브가이즈와 슈퍼두퍼 같은 미국에서 물 건너온 녀석들이다. 이들의 가격은 만만치 않다. 파이브가이즈는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햄버거 브랜드이지만, 미국에서도 싸지 않은 브랜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파이브가이즈에서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까지 주문하면 가장 기본으로만 시켜도 2만 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고든램지 버거에 비하면 이 또한 애교이다. 고든램지 버거는 기본적으로 햄버거 단품이 3만 원이 넘는데 심지어 14만 원 하는 메뉴도 있다. 그런데도 화제성 때문인지 장사가 잘 된다. 프리미엄 버거와 정반대로 편의점 햄버거 역시 최근 매출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홈플러스에서는 당당버거라고 햄버거 두 개에 5,000원에 파는 상품이 나왔는데 역시 인기이다. 그렇다면 버거 시장에서의 샌드위치 끼인 신세는 누구일까? 시장 전문가들은 소위 빅5로 불리는 맥도날드, 버거킹, KFC, 롯데리아, 맘스터치가 예전만 못하다고 본다. 이들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강하지만 정작 가격은 예전만큼 싸지 않다. 공교롭게도 맥도날드와 버거킹, 맘스터치는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데 여전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음식뿐이 아니다. 2023년 LCC라고 불리는 저가 항공이 처음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승객 수를 뛰어넘었다. 2003년 국내에 저가 항공이 등장한 뒤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와 동시에 나온 또 다른 조사 결과는 비즈니스석을 예매한 승객 수가 2022년에 비해 3.5배 늘었다는 내용이다. 이 수치는 단순히 기존에 비즈니스석 타던 사람이 좀 더 많이 비행기를 탔다고만은 볼 수 없는 수치로, 신규 유입이 있었다고 해석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 저가 항공에는 비즈니스석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비즈니스석 승객이 증가했단 얘기가 된다. 이 두 가지 상반된 데이터를 놓고 얻을 수 있는 경우는 비행기 탑승 소비도 양극화됐다는 것이다. 아예 저가 항공을 이용하거나,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를 탈 거면 비즈니스를 타거나. 전 세계적 '소비 양극화', 그런데… 우리 시장에서 이처럼 분야를 막론하고 '중간계'가 살아남기 어려운 소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코로나에 이어 전쟁까지 장기화하면서 물가는 물가대로 치솟고 경기마저 어려운 스태그플레이션이 이어지면서 당연히 더 저렴한 물건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소비 양극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도드라지고 있는 현상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모든 물건을 1달러 언저리에 파는 '달러 스토어'들의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 우리로 치면 다이소와 비슷한 대형 판매점인데, 여기서는 냉동식품 같은 음식들도 대체로 1달러에 판다. 당연히 건강에 좋을 리 없는 인스턴트 냉동식품 위주이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언론들이 우려를 표할 정도로 달러 스토어에서 품질이 보장되지 않은 이 초저가 음식들을 사 먹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도 저가 아래 초저가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소비 양극화가 눈에 띄게 벌어지고 있는데, 굳이 따지자면 우리나라와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 초고가 시장의 활성화 정도이다. 사실 물가가 올랐다는 말은 매년 나오는 이야기이다.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42년 만에 최고라는 기록적인 물가 상승이다. 만약 아직 42세가 되지 않았다면 생애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물가 상승을 겪고 있는 것이고, 84세 이상인 노인들 역시 생에 겨우 두 번째 보는 엄청난 수준의 인플레이션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이제 세계 경제는 이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고, 이를 '뉴노멀'이라고 해야 한다는 경제 전문가들도 많다. 이런 고물가 시대에도 여전히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소득을 5분위로 나누었을 때, 상위에 속하는 4분위와 5분위 계층은 소득의 증가율이 현재 물가 상승률인 3.6%보다 더 많이 올랐다. 반면 2분위, 3분위는 소득 증가율이 물가 상승률에 못 미치는 3% 초반대이다. 내 소득이 3% 정도 늘었지만 물가는 그보다 더 올랐기 때문에 명목소득은 올랐을지언정 실질소득은 떨어진 것이다. 가장 가난한 계층인 1분위 그룹은 실질소득을 따질 것도 없이 명목소득 그 자체가 -0.3% 줄어버렸다. 1분위 계층에게는 최근의 물가 상승이 더욱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소득 증가율이 크게 늘어나 물가 오른 걸 잘 체감하지 못하는 고소득층이야 그렇다 쳐도, 절반 넘는 국민들은 실질소득의 감소로 인해 결국 소비의 여력 자체가 줄어들었다 할 수 있다. 'K-불황형 소비'가 뭐길래 초저가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소비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건 수긍이 가는데, 정작 우리 시장을 보면 그 못지않게 초고가 프리미엄 시장 역시 신규 유입자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게 한국 소비 양극화의 특이점이다. 어느 시대에나 물가 상승을 체감하지 못할 정도의 고소득층은 있었고 이들이 늘 초고가 프리미엄 시장의 주 고객이었는데, 이제는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있는 계층까지도 이 프리미엄 시장에 활발히 진입을 하고 있다는 소리이다. 이 점이 바로 해외 주요 국가의 소비 양극화와 조금 다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서울대학교 소비자심리연구센터 이수진 연구위원은 두 가지로 그 이유를 진단했다. 먼저 '래칫 효과'. 이는 일종의 관성의 법칙과 비슷한 것으로, 내가 쓰던 예산이나 소비를 줄이기 어려운 현상을 말한다. 특히 음식이나 웰빙 관련 제품의 경우 내가 쓰던 제품이 물가 상승으로 가격이 폭등했다 하더라도 갑자기 저가 제품으로 옮기질 못하고 비싸진 물건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 소비자 특유의 '경쟁 심리'이다. 첫 번째 이유가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론이었다면 이 두 번째 이유는 한국 소비자 한정으로 봐도 무방하다. 전 세계 모든 소비자들이 살면서 '사치'를 하곤 하는데, 한국 소비자는 그 사치의 동기가 내 주변인과의 경쟁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엔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찰나의 순간을 자랑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이게 경쟁 심리를 부추겨 한국에서 유독 프리미엄 시장 소비자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앞서 예로 들었던 비즈니스석인데,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이른바 '플렉스' 사진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비즈니스석 타고 여행을 다녀왔다는 내용이란 점에서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다고 해도 소비량 전체가 크게 바뀔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 대다수의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최근 '합리적 소비'를 하는 사람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늘었다. 이 뜻은 결국 소비자가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얘기로, 한 달 내내 편의점 도시락만 먹다가 월말에 인당 20만 원에 육박하는 호텔 뷔페에 한 번 가는 식이다. 이런 극단적 형태의 '합리적 소비'는 MZ세대로 갈수록 더 또렷해지는데, 경험을 중시하는 요즘 MZ세대는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경기 프로팀의 희귀 유니폼을 사는 데, 혹은 고척돔에서 열리는 미국 메이저리그 개막전을 보러 가는 데 수십만 원을 쓰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한 번의 '플렉스'를 위해 한 달을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중국 이커머스인 테무에서 초저가 물건들을 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게 우리 경제에 무슨 문제가 될까? 사실 '합리적 소비'를 통해 돈이 계속 돈다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도는 곳에서만 돈다는 것이 문제이다. 분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국내 시장에서 초고가 프리미엄 브랜드는 주로 미국이나 서유럽 등 해외에서 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공산품의 경우 초저가 시장은 알리와 테무 같은 중국발 이커머스가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가격이, 혹은 브랜드 이미지가 애매해서 그사이에 끼인 애매한 브랜드 국산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의류 분야만 보더라도 까르띠에라거나 빈폴 같은 국산 브랜드가 당장 예년만 못하다. 세계 시장으로 확대를 해서 봐도 유독 우리 기업들이 '끼인' 신세인 경우가 많다. 휴대폰만 하더라도 초고가 프리미엄 이미지는 애플 아이폰이, 초저가 폰 이미지는 중국 제품들이 차지하고, 삼성 갤럭시는 점점 그 중간 어딘가로 애매해져가고 있다. 미래 먹거리라는 배터리 역시, 테슬라를 필두로 전기차 제조사들이 중국산 저가 LFP(인산철) 배터리를 채용하면서 국산 배터리가 기술적 측면에서도, 가격적 측면에서도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비 양극화 현상에 두드러지면서 미국의 기업들도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생존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제품 라인업을 프리미엄 아니면 저가(Premium or Value)로 새롭게 포지셔닝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내수 시장에서도, 수출 시장에서도 유독 샌드위치 신세가 돼가고 있는 한국 기업들 역시 이러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알리·테무의 한국 시장 장악력 지난 1편에서 중국의 이커머스 테무가 미국 시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다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테무가 먼저 진출한 미국의 상황을 보면 우리 온라인 시장의 판도도 어느 정도 점쳐 볼 수 있다. 이번 콘텐츠가 올라간 이후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아 테무가 저거였구나'였다. 인터넷에만 들어가면, SNS만 접속하면, 유튜브면 열면 테무 광고가 쏟아져서 스팸인가 뭔가 궁금했는데, 이번 콘텐츠를 보고 나서야 중국의 이커머스 업체였단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례에서 얘기했듯 우리나라에서도 시장을 집어삼킬 기세로 마케팅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테무뿐이 아니다. 알리의 경우는 '메이드인차이나'로 대표되는 '저품질, 짝퉁'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마동석 배우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효과는 매우 컸다. 메이저급 배우가 광고에 나오면서 이후 알리의 사용자가 크게 증가했다.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알리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2023년 12월 국내 쇼핑앱 사용자수를 보면 1위는 여전히 2천917만 명이 이용한 쿠팡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본격 진출 1년도 안돼 3위로 껑충 뛰어 오른 알리익스프레스는 2위인 11번가를 코밑까지 바짝 추격하며 거의 다 따라잡았고, 이보다도 진출한지 더 얼마 되지 않은 테무는 벌써 4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알리익스프레스가 11번가를 뛰어넘어 2위 자리를 차지하는 건 이미 기정사실화 돼 있고, 역시 곧 3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테무와 합치게 되면 알리+테무가 쿠팡마처도 바짝 쫓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국내 업체에 수수료조차 받지 않는 알리 알리익스프레스는 이 기세를 잡아 더더욱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중국에서 오는 물건의 품질을 의심하는 소비자를 위해 아예 K베뉴라는 섹션을 앱 상에 만들어서 쿠팡과 똑같이 한국 업체들을 입점시키고 있다. 다만 기존 네이버 오픈마켓이나 쿠팡과 다른 점은 입점하는 업체들에게 한시적으로나마 수수료를 한 푼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알리에 입점하는 한국의 업체들이 쿠팡과 네이버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이다. 알리가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눈치 없이 가격을 그만큼 낮춰서 팔면 쿠팡과 네이버에게 밉보일 것을 우려해 가격은 쿠팡·네이버에 수수료를 내며 파는 것과 똑같이 받고 있다. 알리의 K베뉴 수수료 제로 정책이 소비자에게까지 아직 와닿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알리에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던 국내 업체들을 확 끌어당기는 역할은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물류센터까지 지으면... 알리나 테무에서 물건 시켜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즘은 배송기간이 많이 짧아져서 1주일 안에 물건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이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세관 통관 절차 때문이다. 직구 형식으로 구매를 하는 것이다 보니, 중국에서 배송을 빨리 해준다 하더라도 갑자기 물건이 몰리면 세관에서 이를 다 처리하는데 물리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알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예 국내에 물류창고를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잘 팔리는 물건 위주로 미리 통관절차 마치고 들여놨다가 주문 들어오면 바로 배송을 할 수 있게 된다. 알리의 여전히 큰 진입장벽인 배송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알리의 큰 그림이 모두 완성된다면 지금도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 시장 점유율이 더 빨리 올라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무관세·무인증..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 알리·테무는 직구 형식이다. 우리나라는 일반 소비자가 해외 직구를 할 경우 미국은 200달러까지, 그 이외 지역은 150달러까지 관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그런데 알리나 테무에서 파는 제품 중에 미화 150달러를 넘는 제품은 사실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러다 보니 거의 대부분의 물건이 무관세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국내 업체와의 차별 얘기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물건을 떼다가 파는 도매상들은 모두 관세를 내고 물건을 들여온다. 관세뿐 아니라, 그렇게 들어온 물건은 KC인증을 받아야 하는 절차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알리 테무의 직구는 관세는 물론 이 '인증 절차'마저도 없다. 이는 비단 우리나의 문제만이 아니다. 미국은 우리보다 무관세 폭이 더 커서 800달러까지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알리 테무 사용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워낙 초저가 물건들을 취급하다 보니 800불짜리 물건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러니 미국 역시 테무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대부분 무관세로 직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멕시코는 무관세 직구 기준이 50달러인데, 멕시코로 들어가는 알리와 테무의 물건 대부분이 49.99달러로 신고가 된다고 한다. 진짜로 가격이 그 정도밖에 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멕시코 일각에서는 더 비싼 물건도 일부러 49.99달러로 신고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세계 각국에서 중국에 대해서만큼은 무관세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미국 의회에는 이러한 법안이 올라가 있다. 배송비 없는 알리..한국 정부가 내준다? 배송비도 논란이다. 알리와 테무가 배송비를 받지 않고 있는데, 이게 전부 우리나라 정부가 대신 내주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다. 이런 얘기가 나온 것이 '만국우편연합' UPU 때문이다. 만국우편연합은 전 세계 각국이 원활하게 소통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1874년에 생긴 국제기구이다. UPU는 모든 나라가 해외에서 오는 우편물 역시도 자국 내 우편물과 같은 시스템으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는데, 문제는 돈이다. 서방 선진국이야 돈이 많고 시스템이 잘 돼 있으니 걱정이 없는데, 인프라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후발 국가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우편물을 소화하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선진국이 이런 개발도상국의 우편 배송 비용을 일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UPU는 세계 각국을 선진국, 준선진국, 개도국, 저소득국 이렇게 4등급으로 나눴는데, 높은 등급의 국가와 낮은 등급의 국가가 우편을 주고받을 때 높은 등급의 국가가 일정 부분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식이다. 미국과 서유럽이 1등급, 한국은 2등급에 속한다. 문제는 중국이다. 여전히 개도국인 3등급에 속해있다 보니 미국이나 우리나라보다 등급이 낮은데, 여기서 나타나는 우편물 보존 비용을 놓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크게 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UPU 우편 비용 보존 시스템에 따라 미국 뉴욕에서 중국 베이징으로 소포를 보낼 때에는 50달러가 드는데, 반대로 중국에서 미국으로 보내는 경우에는 4달러 밖에 들지 않았고, 이런 부분이 너무 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트럼프의 이른 주장으로 현재는 UPU가 각국이 자율 부과하도록 규정을 바꾼 상태이다. 우리나라 역시 2등급으로 중국보다 등급이 하나 높다 보니 일각에서 우리나라가 중국 업체의 배송비를 다 대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조금 잘못 알려진 것이, 알리를 이용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지만 현재 알리의 모든 물량은 CJ대한통운이 전담해서 나르고 있다. 알리 역시 우리나라에서 사업 확장을 위해 배송일을 줄여야 하다 보니 아예 택배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독점으로 운송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UPU의 우편 비용 보존 시스템은 국가 우체국끼리 거래할 때에만 적용이 되는 일이다 보니, 이렇게 택배회사에 비용을 지불하고 운송을 맡기는 경우엔 해당사안이 없다. 테무 역시 현재 한진 측과 계약을 하고 전속으로 이용하고 있다. 알리가 CJ대한통운과 계약을 체결하기 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처음 시작한 초창기에는 사업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우체국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시기에도 그리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1등급이 3등급과 우편물을 주고받을 때 보존해야 하는 비용은 무척 크지만, 2등급과 3등급 사이에는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사실상 우리 우체국이 손해 본 게 없다는 것이 우정사업본부의 공식적인 해명이다. 보안문제 우려도 테무와 알리 모두 중국 기업이다 보니, 앱 보안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테무의 모기업인 핀둬둬는 2021년 테무 출시 이전 미국에서 앱을 내놨었는데, 여기서 개인정보를 빼가는 말웨어가 발견이 돼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구글과 애플은 즉시 자사 앱스토어에서 핀둬둬를 퇴출했고, 이후 핀둬둬는 해외 사업을 겨냥한 테무를 따로 만들며 본사를 중국이 아닌 말레이시아에 세우고 이런 보안 문제를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에서는 테무를 깐 이후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괴담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말 개인정보를 빼가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지만, 적어도 알리와 테무 모두 탈퇴하기가 쉽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거기다가 한번 이 앱을 사용하면 그 이후로 미친 듯이 쏟아지는 스팸메일도 감당해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득 지금까지 테무와 알리가 국내 시장을 무서운 속도로 장악해 나가는 현상을 살펴봤다. 그리고 그 우려점 역시 취재해 봤다. 일단, 이렇게 가격경쟁이 펼쳐진다는 것 자체만 놓고 봤을 때에는 소비자에게는 무조건 좋은 일일 수밖에 없다. 쿠팡이 처음으로 흑자를 내며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알리 테무가 나타나 자칫 독점 구도로 흐를 수 있는 이커머스 시장에 긴장감을 줬다는 것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 업체들이 중국 업체들이란 점에서 국내 사업자들이 역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지 점검을 해봐야 할 부분은 있을 것이다.
초저가 시장의 탄생 뉴욕특파원으로 있을 당시 코로나 사태와 함께 물가가 치솟자 미국 언론들은 '이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세계 경제는 전혀 다른 새로운 단계로 이미 넘어왔다"라는 평을 많이 내놓았다. 한 번에 치솟은 물가가 그만큼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끝나고 시간이 꽤 흘렀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미 올라버린 물가는 고착화되고 있고, 시장도 슬슬 이에 적응하는 모습이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세그먼트의 시장인 '초저가'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이 한 예이다. 다이소에서 5천 원짜리 플리스 점퍼가 새로 발매되는 것조차 엄청난 이슈가 될 정도로 최근에는 저가보다 더 아래, '초저가' 시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지구적 현상이다. 저가와 초저가의 차이는? 물건을 구매할 때 최대한 싸게 사지만, 그래도 돈 낭비를 막기 위해 다른 이의 후기를 참고하며 비교구매를 하는 행위가 포함되면 저가. 행여 불량품을 받아도 그냥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후기조차 꼼꼼히 보지 않고 시원하게 구매버튼을 누를 수 있는 수준이면 초저가. 대충 이런 기준으로 나뉜다고들 얘기를 한다. 이들 초저가 상품은 대부분 내 삶에 필수적이지는 않은 공산품이다. 식품처럼 내 건강에 영향을 끼칠 일이 없고, 고장나면 언제든 쉽게 바꿀 수 있는 상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공산품은 전 세계 어디서 팔리든 대부분 Made in China, 중국에서 제조를 한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이런 세계적 초저가 열풍을 타고 이제 '세계의 시장'으로 진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 테무·쉬인 "미국을 접수하겠다" 해외에서도 접할 수 있는 중국의 온라인 쇼핑 3형제는 알리·테무·쉬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알리가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최근 테무가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모양새인데, 미국에서는 알리보다는 테무와 쉬인이 인기이다. 특히 '테무'는 미국에 2022년 9월 상륙을 했는데 우리나라보다 먼저 미국으로 들어간 것이다. 미국에서의 테무 성장 사례는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자는 '테무'를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며 먼저 알게 됐다. 기존에는 구글에 상품을 검색하면 거의 대부분 아마존으로 연결이 됐는데, 언젠가부터 아마존이 아닌 '테무'라는 처음 보는 사이트로 연결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 눈에 띄었던 건 같은 물건도 아마존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사기'를 의심해 처음에는 거들떠도 안 봤지만, 이게 자꾸 반복되다 보니, 거저다 싶을 정도로 싸니 부담 없이 시험삼아 시켜나 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주문에서 받은 아이들 장난감은 꽤 쓸만한 수준이었다. 특히 별도의 유료회원 같은 게 없이도 무료 배송이 가능했는데, 아마존의 경우는 이틀 만에 물건이 도착하는 무료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1년에 한화 20만 원 정도 하는 '아마존 프라임' 회원 가입을 해야 된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었다. 게다가 물건 값이 이렇게 싼 데도 반품이나 환불을 조건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단 점도 소비자가 부담 없이 구매 버튼을 클릭할 수 있게 하는 데 한몫했다. 모두 테무의 전략이다. 아마존을 밀어내고 자신들 링크로 도배를 할 정도의 공격적인 마케팅, 초저가 물건 판매, 무료 반품과 환불. 어떻게 이 가격이 가능? 아마존도 공산품은 결국 Made in China이다. 테무에서 파는 물건과 똑같은 물건이 적지 않은데 가격은 1/4, 심지어 1/5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가능 할까? 테무의 비즈니스 모델을 놓고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유통 전문가는 '미쳤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기존에 없던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해 낸 것이다. 먼저 테무의 모회사는 중국의 '핀둬둬'이다. '모여라 많이 많이'라는 뜻인데,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가 있다. 핀둬둬는 중국 내 온라인 쇼핑 1,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알리바바와 징동닷컴보다 후발 주자다. 이들과는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공동구매'이다. 게임에서 쓰는 방식을 차용했다고도 하는데, 물건을 사고 싶은 소비자가 함께 그 물건을 살 사람들을 끌어 모으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물건 가격은 떨어지고, 일정 수준 이상 목표를 달성하면 처음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 소비자에게는 아예 무료로 물건을 주기도 한다. 특히 경제력이 약한 시골 소도시를 위주로 이런 공동구매 방식의 사업을 시작했는데, 13억 인구의 중국에서 박리다매 전법으로 대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이렇게 덩치를 키운 핀둬둬는 급기야 부동의 1, 2위인 알리바바와 징동닷컴을 누르고 시총 1위로 올라서게 된다. 어마어마한 거인이 된 핀둬둬는 이름을 바꿔 해외 시장에 진출을 하는데, 그게 바로 '테무(TEMU)'이다. TEMU의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 미국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은 명실상부 '아마존'이다. 그런데 테무는 아마존과 똑같은 물건을 파는데도 어떻게 이렇게나 더 싸게 팔 수 있을까? 기자는 특파원 등 미국에서 4년을 생활하며 아마존을 숨 쉬듯 사용했다. 한국은 온라인이 오프라인보다 싸다는 인식이 자연스럽지만, 정작 미국에서 아마존 물건들을 보면 특별 할인을 하지 않는 한 오프라인보다 오히려 더 비싼 경우가 많다. 차라리 내가 차를 몰고 월마트 같은 곳에 가서 사 오는 게 더 싼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는 용역비, 즉 서비스비용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에서 집 앞까지 배송을 해주는 '서비스'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살펴보면 직매입 방식이 40%를 차지한다. 자기들이 직접 물건을 구매해서 창고에 쌓아놨다가 배송을 해 주는 방식인데, 이때 공산품은 대부분 중국의 공장에서 생산된 것을 중국의 유통업자를 통해 사들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간 유통비에 배송비까지 비용이 불어나게 된다. 나머지 60%는 FBA(Fulfillment by Amazon)이라고 부르는 '위탁판매' 방식이다. 셀러들이 아마존 창고에 수수료를 내고 자신들의 물건을 넣어놓고, 이를 포장부터 배송까지 아마존이 대신해 주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역시 모든 단계마다 수수료가 발생한다. 테무 역시 직매입 모델이다. 다만 아마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비자를 공장에 직접 연결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먼저 테무가 중국 기업이고,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란 점이다. 테무는 모기업인 핀둬둬가 중국 내수시장에서 공동구매로 판매한 물건 중 반응이 좋았던 것들을 직접 공장에 OEM방식으로 생산을 주문한다. 그리고 이 공장에서 곧바로 소비자에게 판매하도록 중간 유통망을 아예 없애버렸다. 뿐만 아니라 수수료도 0.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이런 식으로 물건을 테무에 직접 납품하는 공장들에게 '좋은 위치에 배치해 주겠다'며 '광고비'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비용을 크게 줄인 것이다. 중국 공장에서 직접 소비자에게 날아간다는 점, 그리고 이들 공장으로부터 '광고비'를 받으며 수수료를 대체했다는 점 등에서 같은 제품을 팔더라도 비용은 크게 줄일 수 있던 것이다. 참고로 알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살펴보자면, 알리는 유통업이라기보다는 플랫폼 사업에 가깝다. 물건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의 수요와, 그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공급자를 알고리즘을 이용해 서로 연결을 시켜주면서 그 사이에서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알리바바의 창업주인 마윈은 '우리는 물류센터를 짓지 않는다'라는 확고한 철학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T기술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기업임을 고집한 건데, 최근 시가총액이 테무의 모회사인 '핀둬둬'에 뒤지고 난 후 긴급회의를 소집해 '핀둬둬의 사업방식이 혁신적이다. 우리도 배워야 한다'라고 말을 바꾼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메타 먹여 살리는 건 테무'.."이런 기업은 처음" - 3개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석 달 동안 테무가 미국 시장에서 쓴 광고비는 약 5억 1,7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7천억 원이 넘는다. - 1년 2023년 한 해 동안 테무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회사인 '메타'에 광고비로 지불한 돈만 12억 달러, 우리 돈 1조 6천억 원이 넘는다. 메타를 테무가 먹여 살리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 - 10일 테무가 올 1월 중순까지 약 10일 동안 페이스북과 인스타 등 '메타' 연관 SNS 플랫폼에 쏟아 낸 광고는 벌써 9천 개에 가깝다. - 1만 명 테무는 팔로워가 300명이 넘는다 싶으면 가리지 않고 광고를 맡긴다. 지금까지 테무의 광고를 했던 미국 내 인플루언서는 1만 명이 넘는다. - 200억 미국 최고의 스포츠는 뭐니뭐니해도 풋볼, 미식축구이다. 결승전인 '슈퍼볼'은 3억 넘는 미국인구 1/3에 해당하는 1억 명이 시청을 할 정도로 미국 내 최대 행사로 꼽힌다. 이 슈퍼볼 경기에 광고를 하는 건 세계적 대기업들인데, 테무는 미국 진출 6개월 만인 2023년 2월 슈퍼볼에 광고를 내보냈다. 이때 쓴 돈은 30초 광고 2편에 1,400만 달러, 우리 돈 약 200억 원. 역대 슈퍼볼 광고 기업 중 가장 어린 기업으로 꼽히는데, 올 2월 슈퍼볼에도 광고를 준비하고 있다. 이 정도로 돈을 쏟아부으니 이제 구글에다 '레고'를 검색하면 더 이상 레고 공식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링크는 찾기가 힘들다. 대신 전부 테무로 연결이 된다. 미국의 한 기업 분석 전문가는 "이렇게 공격적이고 이렇게 대규모로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회사는 전에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유례를 찾기가 힘들 정도의 광고 폭탄인 것이다. 급성장 가격폭탄, 광고폭탄. 이 정도 되니 미국에서 테무 앱의 다운로드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애플이건 안드로이드건 전체 앱 다운로드수 1위 자리를 벌써 거의 1년 가까이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특히 2023년 2월 슈퍼볼 광고를 한 뒤 앱 다운로드 수는 거의 100% 가까이 증가를 하더니 출시 1년 차인 2023년 9월까지 누적 다운로드 수가 2억 3천5백만 건을 넘겨 아마존 앱 다운로드 수를 앞질렀다. 그런가 하면 오프라인 쇼핑몰도 앞지를 기세다. 미국의 대표 대형마트는 월마트와 타겟을 꼽는데, 테무는 미국 출시 1년 도 안 돼 타겟의 온라인 쇼핑몰 방문자 수를 앞질렀다. 미국에는 우리나라 다이소와 비슷한 '달러제네럴'이라는 오프라인 쇼핑몰이 있다. 이름처럼 매장 내 모든 물건을 1달러에 파는 곳인데 주로 세제나 생활용품 등 공산품을 다룬다. 1939년 창립돼 벌써 90년 가까이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달러제네럴은 미국에서 '저가 전문 쇼핑몰'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냈는데, 테무는 미국에 진출하자마자 1년도 안 돼 이 저가 전문 쇼핑몰이라는 카테고리에서 3위 자리까지 치고 올라왔다. 아직까지 테무는 미국 온라인 쇼핑몰 부동의 1위 아마존과 비교하면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긴장하는 건, 당장 테무가 당장 아마존 턱 밑까지 올라와서라기보다는 그 성장세가 이처럼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돈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돈이 안 된다. 테무가 미국에서 벌이는 사업은 '출혈' 그 자체이고 매출은 늘어나고 있지만 적자 폭은 커지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 시장만 봤을 때 이야기이다. 핀둬둬의 매출은 중국 내수시장에서 90%가 나오고 해외 시장은 10%밖에 되지 않는다. 핀둬둬는 세계 유통기업 중 유일하게 두 자리수 순이익을 기록하는 기업이다. 매출 대비 20%가 넘어가는 이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중국 내수시장에서만 8조 원 넘는 흑자를 내고 있다. 테무가 미국에서 보는 손실은 1조 원 남짓. 즉,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미국에서의 손해를 메꾸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총알 충분하고 맷집 든든한 테무는 장기전을 바라보는 것 같다. 지금 당장 미국에서의 손실이 치명적이지 않은 만큼, 미국 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려 언젠가 미국 유통가를 집어삼키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 같다. 실제로 역시 중국의 의류 전문 온라인 쇼핑몰인 '쉬인'은 이미 미국 시장에서 오프라인 매장으로까지 진출해 '자라'를 눌러버리며 업계 1위 자리를 넘볼 정도로 성장했다. 테무가 적어도 공산품에 있어서는 미국에서 아마존을 잡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미국의 대처는? 우리나라는? 이 정도 되니 최근 테무와 관련된 기사가 미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실제로 미 의회에서는 테무를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도 테무의 뇌관이 터지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모양새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어떤 식으로 테무를 제재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도 미국이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래서 우리나라 상황은 어떠냐일 것이다. 사실 테무가 미국에 먼저 진출하고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에 미국의 사례가 곧 우리의 선례이다. 실제로 미국에서의 성장 속도를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보이고 있는데, 우리는 이에 대한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두 가지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연재에서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신년기획으로 올린 '다이어트' 시리즈를 보고 정말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유튜브에만 1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해당 영상이 각종 커뮤니티에 캡쳐되어 퍼져나가면서 개인적으로도 수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곳 스프 앱에도 여전히 질문이 올라오고 있는데, 제가 최대한 빨리 답을 직접 달아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는 부족하겠다 싶어 본격 QnA 편을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온 질문들을 모아서 전문가들에게 답을 받아봤는데, 제 경험담과 함께 버무려 볼까 합니다. 1. 키토 식단, 건강에 괜찮을까요? 일단 지방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얘기에 건강에 괜찮을까 궁금해하시는 분 들이 많았습니다. 탄수화물을 끊고 지방 섭취를 늘리는 '키토' 식단 방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이견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탄수화물을 끊는 거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는가 하면, 지방을 얼마나 섭취하는 게 맞는가에 대한 의견도 달랐습니다. 사람들의 체질이 다 달라서 하나의 다이어트 사례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는 않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자의 사례를 토대로 전문가 의견을 구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자의 경우, 1년 반 '키토' 혹은 '저탄고지'를 유지하며 최근 받은 건강검진 결과가 무척 좋았습니다. 앞서서도 설명드렸지만 모든 수치가 성인병 수준으로 악화했던 상황에서 이게 전부 정상 수치로 돌아왔었기 때문입니다.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강재헌 교수는 기자의 건강검진 수치와 인바디 수치를 보고 무척 모범적인 다이어트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방을 얼마나 섭취했는가'를 물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커피에 버터를 넣어 먹는 일명 '방탄 커피'는 마시지 않았습니다. 다이어트에 수도 없이 실패하고 그만큼의 요요를 겪었던 저에게 이번 다이어트의 가장 핵심 기조는 '일상을 벗어나지 않는, 귀찮지 않은, 그래서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였고, 매일 아침 커피에 버터를 녹이는 일이 여간 귀찮게 여겨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또 방탄 커피에 넣는 버터도 아무 버터나 되는 게 아니고 '기 버터'라는 순수 지방으로만 이뤄진 버터를 넣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런 특정 버터를 사러 다니는 것 역시 부담스러웠습니다. 여기에 더해 '버터를 녹인 커피가 맛이 있을까?' 그 맛이 제 취향에 맞을지 좀 자신이 없었기에 '방탄 커피'는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또 저탄고지를 하는 분 들 중에 버터를 비누 크기만큼 넣고 고기를 구워 드시는 분들도 계신데, 고기를 많이 먹기는 했지만 매번 이렇게 버터를 듬뿍 넣고 튀기듯 굽는 방식을 따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름이 튀는 게 귀찮기도 했고 매번 그렇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죠. 사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오히려 지방을 찾아다니며 먹기가 더 어렵기도 합니다. 강재헌 교수는 이렇게 지방을 과다하게 섭취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는 오히려 더 괜찮은 선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2. 고지혈증 있어도 키토 가능 한가요? 다이어트 특집을 보시고 고지혈증이 있어도 키토식단이 가능한지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결론은 '오히려 좋다'입니다. 우리 건강에 좋지 않은 중성지방은 주로 탄수화물을 많이 먹었을 때 수치가 높아지는데, 오히려 탄수화물을 끊으면 이게 좋아지는 겁니다. 기자의 경우도 중성지방과 LDL 콜레스테롤이 높은 수준이었는데 키토식을 한 이후 이 둘의 수치는 많이 낮아졌고요,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이라 불리는 HDL은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기준치보다 낮다고 경고가 나왔었는데 이 수치가 2배 넘게 크게 증가했습니다. 전체적인 총 콜레스테롤 수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나쁜 콜레스테롤은 떨어지고 좋은 콜레스테롤은 높아져 있었습니다. 외과전문의인 송재현 원장은 특히 중성지방이 높은 고지혈증 환자일수록 키토식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3. 회사 다니면 술자리도 생기는데 술은 마셔도 되나요? 다이어터 입장에서 정말 다행인 것은 일단 회식 자리가 예전보다 많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미국 생활을 마치고 4년 만에 돌아와 보니 더 체감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저녁 약속 자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보니 술자리를 할 일이 생깁니다. 저는 이럴 때 술을 마십니다. 굳이 금주를 하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다이어트 측면에서 보면 술도 술이지만 안주가 상당히 중요한데요, 일단 안주는 설탕이나 밀가루, 백미 등 탄수화물로 이뤄진 것들은 절대 먹지 않습니다. 회나 수육, 삼겹살 등 고기로만 먹고, 고깃집에 갔을 경우 밥이나 냉면 같은 식사도 일체 시키지 않습니다. 다만 계란찜은 먹습니다.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쉬지 않고 먹어서 살이 찐다'는 말을 해 유명한 강북삼성병원 박용우 교수 역시 간헐적 단식을 하는 이유가 술을 마시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박교수의 경우는 14:10 간헐적 단식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술을 마시더라도 밤 10시까지만 마시고 다음날 12시 점심 식사까지는 단식을 한다고 했습니다. 또 안주 역시 회나 수육 같은 음식으로만 제한해서 먹는다고 하더군요. 다이어트하는 사람의 술안주는 결국 다 비슷하게 정리되는 듯합니다. 16:8 간헐적 단식을 하는 기자의 경우는 6시쯤 술자리를 시작하면 최대한 8시까지만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이후 이어지는 술자리는 그냥 앉아서 물이나 차 정도만 마시며 얘기만 하는 거죠. 하지만 간혹 이게 또 술이 좀 더 들어가는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다음 날 점심 식사를 그만큼 늦춰서 먹습니다. 최대한 16시간 공복을 지키려 하는 거죠. 이렇게 조절을 하신다면 식단도 단식도 깨지 않는 선에서 술자리도 얼마든지 즐기실 수 있습니다. 4. 당 떨어지면 간식이 너무 당겨요. 만약 제가 애시당초 간식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살도 찌지 않았을 겁니다. 간식을 끊지 못하는 간식 마니아로서 처음 살을 뺄 때 간식을 끊는 게 가장 관건이었습니다. 결국 완전히 100% 칼로 무베듯 딱 끊지는 못 했고요,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현재는 살을 막 빼던 그 시기보다도 더 많은 간식을 먹습니다. 단, 간식 역시도 키토 식단에 맞는 음식으로만 먹는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제가 살을 막 빼던 그 7개월 정도 되는 시기 제 간식은 거의 견과류였습니다. 아몬드와 캐슈넛, 마카다미아를 즐겨 먹었는데요, 견과류는 탄수화물 함량이 적고 지방과 단백질이 많아 키토식으로 딱입니다. 이 견과류도 종류에 따라 탄수화물 함유량이 다 다른데요, [탄수화물 양] 피칸·브라질리언 넛 < 마카다미아 < 헤이즐넛·호두·땅콩 < 잣 < 아몬드 < 피스타치오 < 캐슈넛 사실 저는 견과류 중에 캐슈넛을 가장 좋아해서 다이어트를 할 당시 캐슈넛을 큰 봉지로 사다 놓고 먹었습니다. 견과류의 특징은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다는 게 있죠. 한 줌만 먹어야지 하다가도 1/3 봉지를 한꺼번에 먹기도 했었습니다. 그때는 캐슈넛이 견과류 중 탄수화물 비중이 높은 편에 속한다는 걸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위의 표와 같더라고요. 하지만 그래도 살이 빠진 걸 보니 견과류 중에 탄수화물 함유량이 좀 높다 하더라도 그 절대적인 양이 많지 않아 괜찮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혹시라도 더 철저하게 탄수화물을 제한하고자 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위 순서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스크림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살을 빼면서 보니 아이스크림도 키토 아이스크림이 있더라고요. 인터넷에 무설탕 아이스크림을 검색해 보시면 몇 군데 유명한 회사가 나옵니다. 설탕 대신 스테비아나 에리스톨 같은 대체감미료를 넣은 제품들인데, 여기서 주의할 점! 대체 감미료 중 '말티톨' 만큼은 피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부 제품들은 '제로 설탕' 제품에 말티톨을 대체 감미료로 씁니다. 아이스크림 중에도 이 말티톨을 대체감미료로 쓰고 '설탕 제로'라고 표시한 제품들이 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말티톨은 설탕이 아닌 '당 알코올'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말티톨로 단 맛을 낸 제품들은 포장지에 '제로 설탕'이라고 강조하고 영양 표시에도 당류 0g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말티톨을 '가짜 제로 설탕'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말티톨이 인체에 흡수되면 소르비톨과 포도당으로 분해가 됩니다. 포도당. 네, 그렇습니다. 탄수화물이죠. 이러다 보니 섭취하고 나서 혈당을 얼마나 올리는지를 나타내는 혈당 지수 또한 높은 편입니다. 다이어트의 최대 적 설탕의 혈당지수가 65~68인데, 말티톨은 혈당지수가 35~53까지 나옵니다. 스테비아나 에리스톨, 알룰로스 같은 다른 대체감미료의 혈당지수가 0에 가까운 것과 크게 다르죠. 이런 다른 대체 감미료는 칼로리도 0에 가까운데 말티톨은 칼로리도 설탕의 절반 수준으로 높습니다. 제가 탄수화물을 제한하는 키토식으로만 먹을 경우에는 칼로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말티톨의 경우는 포도당으로 분해가 돼 혈당지수도 높은데 칼로리까지 높으니 표시만 '제로 설탕'으로 하는 거지 사실상 설탕을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겁니다. 따라서 대체감미료로 말티톨이 쓰였는지를 보고 키토 간식들을 고르시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드립니다. ** 꿀팁: 무설탕 그래놀라 레시피 워낙 단맛 나는 간식을 좋아했던 터라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각종 키토 간식들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설탕이 들어가지 않고 견과류로 만든 '그래놀라'를 즐겨 먹게 됐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제품이 너무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아내가 레시피를 연구해 만들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금도 가장 즐겨 먹는 간식인데, 달콤 바삭해서 맛도 좋고 먹고 나면 배도 든든한 그런 간식입니다. 그 레시피를 공개합니다. 준비물: 각종 견과류 (피칸, 호두, 아몬드, 캐슈넛, 마카다미아 등), 호박씨, 해바라기씨, 스테비아, 알룰로스, 시나몬(계피) 가루, 올리브 오일 만드는 방법: 각정 견과류와 씨앗을 큰 그릇에 담고 알룰로오스를 견과류가 골고루 코팅이 될 정도로 뿌려줍니다. 그리고 스테비아를 원하는 만큼 넣고, 시나몬 가루도 뿌려줍니다. 그리고 올리브 오일을 두 바퀴 정도 두른 후 잘 비벼줍니다. 이렇게 비벼진 견과류를 에어프라이기에 잘 펼쳐서 깝니다. 그리고 굽는데, 견과류가 이미 한 번 볶아서 나온 것들이므로, 140~150도 정도의 낮은 온도로 15분 정도를 돌려줍니다. 정말 기가 막힌 냄새가 나는데, 중간에 한 번 뒤집어 주는 게 중요합니다. 다 돌아가고 나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큰 통에 담아두고 드시면 됩니다. 만드는 과정이 비교적 간단한데 한 번 만들어 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어서 좋고요, 특히 무설탕 요거트에 뿌려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힙니다. 꼭 도전해 보세요! 다이어트 특집이 나간 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을 몇 가지 추려봤습니다. 살이 잘 안 빠지는 것 같다는 분들도 계신데, 저 역시 요요를 너무 많이 겪어서 그런지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한동안 살이 안 빠졌습니다. '그냥 한 달에 1kg이라도 뺴자'라는 심정으로 실망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살이 드디어 빠지기 시작하더라고요. 혹시 다이어트 시작했는데 살이 안 빠진다 싶으신 분들은 혹시 나도 모르게 설탕이나 밀가루 등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보시고, 꼭 운동도 계단 오르기 같은 간단한 것이라도 함께 병행하시길 추천드립니다.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저울 눈금 보는 재미가 생기기 시작할 겁니다. 요요만 10번 넘게 겪은 40 넘은 기자도 낮밤 뒤바뀐 미국 생활을 하며 성공했으니, 여러분들도 반드시 성공하실 거라 믿습니다. ※ 아래 배너를 눌러 '귀에 빡!종원' 커뮤니티에서 궁금한 점 질문해주시고, 자신의 경험담이나 노하우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