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분신술을 배우고 싶은 대학원생입니다. 와치독을 꿈꾸며 일간지 기자가 되었다가 문학을 잊지 못해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이야기와 그림을 사랑하고 패션을 동경합니다. 장래 희망은 케이팝을 즐겨듣는 할머니입니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인어를 좋아했습니다.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풍성한 머릿결과 보석같이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꼬리를 가진 젊은 여성의 이미지가 한창 ‘디즈니 공주’에 빠져 있던 꼬마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사랑을 위해 삶을 팽개치고 뭍으로 올라왔다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리는 비극적인 동화도 그렇게 매혹적일 수 없었습니다. 인어 이야기가 안데르센의 동화나 서양 신화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나 미 대륙에서도 전해져 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을 땐 가슴이 뛰었습니다. 같은 형상을 한 존재의 전설과 목격담이 세계 곳곳에서 이렇게나 많이 기록됐는데, 어쩌면 인어의 존재는 상상이 아닐지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도 싹텄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왜 인어는 아름답고 젊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속에 에리얼의 아버지이자 아틀란티카의 왕인 ‘트라이톤’이 있긴 했지만, 그를 제외하고 남성인 인어를 상상해 보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인어가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생각해 봐도 주로 여성 인어가 인간 남성을 사랑하는 이야기가 익숙하지, 남성 인어의 상대로 인간 여성이 등장하는 것은 흔치 않습니다. 애초에 인어 사회는 성비가 굉장히 불균형한 여초 집단인 걸까요? 어쩌다 인어의 상반신은 여성이 된 걸까요? 인어공주의 조상, 세이렌 몸의 절반이 인간 여성이고 나머지 절반은 동물의 모습을 한 존재를 그린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9세기경 호메로스가 썼다고 알려진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입니다. 반인반수(半人半獸)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유혹하고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지만 이 책 어디에도 세이렌의 하반신이 어떤 동물의 모습이었는지 정확히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이렌은 오늘날 인어공주의 조상이라 받아들여지지만, 오히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도자기에 그려진 세이렌은 노래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Terracotta vase in the form of a siren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물고기 꼬리가 달린 인간의 가장 오래된 이미지는 8세기말 카롤링거 왕조 때 쓰인 한 라틴어 필사본에 등장합니다. 여기에는 성모마리아가 마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행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이 마귀의 모습이 꼬리가 달리고 머리카락이 긴 반인반어(半人半魚)입니다. 그러나 이 존재가 호메로스의 작품에 등장한 세이렌인지 또 다른 바다의 요정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반신이 물고기인 세이렌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중세 유럽의 베스트셀러였던 그리스어 우화집 『피지올로구스(Physiologus)』(2세기 경)와 9세기 영국 맘즈베리의 수도사 앨드헬름입니다. 특히 『피지올로구스』는 4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되고 이후 수 세기에 걸쳐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면서 유럽 대륙을 매혹합니다. 이 책에 등장한 세이렌의 모습은 머리에서 배꼽까지는 인간, 하체는 새의 모습을 한 채 뱃사람들을 노래로 유혹하고 잠재운 후 먹어 치우는 해로운 존재입니다. 한편 수도사 앨드헬름은 로마에서 바다 괴물 ‘스킬라’의 부조상을 본 후 이를 묘사하면서 “세이레네스처럼 처녀의 머리와 젖가슴을, 바다표범의 배와 돌고래의 꼬리를 지니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존재가 미모로 뱃사람을 유혹한다고 설명하죠. John William Waterhouse, Ulysses and the Sirens(1891)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Purchased, 1891, ©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이후 『피시올로구스』가 활발하게 개작되던 중, 앨드헬름의 이야기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면서, ‘세이렌’은 새의 하반신을 가지거나 물고기의 하반신을 한 다양한 모습으로 재창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절반은 인간이 아니지만, 상반신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인어라는 상상에 살이 붙여졌습니다. 갈수록 새의 전통은 사라지고 물고기 꼬리를 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점차 주를 이루게 됩니다. 특히 중세 기독교는 교리를 정당화하는 데 ‘세이렌’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십자가형을 연상시키듯 배 기둥에 몸을 묶은 오디세우스를 육욕으로 유혹하는 악(惡)이 여성의 상체를 가진 세이렌이었던 것입니다. 성서 속 최초의 여성 이브는 뱀의 꾐에 넘어가 남성을 타락시켰기에 이브의 자손인 여성들은 악한 존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오직 단단한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만이 원죄의 바다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교훈을 바로 인어 이야기로 상징화한 것이죠. 15세기 말경 굳어진 꼬리가 달린 세이렌의 모습은 유혹적이고 위험한 여성의 은유로 활용되었습니다. Frederic Leighton, The Fisherman and the Syren (1856) © Bristol Culture, photography by Public Catalogue Foundation/Dan Brown 하지만 잔인한 유혹자로 남을 뻔한 인어의 운명은 덴마크의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 덕에 180도 바뀌게 됩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열병을 겪던 안데르센은 북유럽 지역에서 전해져 오던 ‘물의 정령’ 모티프를 가져와 작품을 집필합니다, 그 덕에 인어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여리고 아름다운 소녀의 이미지로 탈바꿈했습니다. 이후 월트 디즈니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애니메이션화 하면서 현대인의 상상 속 인어는 ‘사랑에 지고지순하면서도 이국적인 신비로움을 가진 여성’이 된 것이지요. 박물학과 인어 인어가 여성형 상반신을 갖게 된 이유를 ‘박물학(博物學)’적으로 살펴본 연구도 있습니다. 나카마루 테이코(中丸禎子)(2016)는 근대 박물학의 성별 편향적 시각이 인어의 상반신을 여성의 모습으로 고착시켰다고 말합니다. 박물학이란 동·식물, 광물의 종류와 성질 등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박물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대로까지 이어집니다. 고대에서 중세까지의 박물학은 인어를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로 여겼습니다. 고대 로마의 박물학서인 플리니우스의 『박물지』(77)에는 ‘네레우스’와 ‘트리톤’에 관한 보고가 있습니다. 네레우스는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신 폰토스의 아들이며, 트리톤은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입니다. 모두 남성형 반인반어이지요. 이 『박물지』는 무려 18세기까지 널리 읽히며 박물학의 기초 자료로 쓰였습니다. 중세에는 종교의 영향으로 박물학이 정체됐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가 도래하면서 해외 문물이 유럽 대륙에 쏟아져 들어왔고, 목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박물학이 다시 빛을 발합니다. 지금까지는 상상만 하던 다양한 형상을 비교적 정확한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때 세계 각지에서 쓰인 보고서에는 인어를 목격했다는 기록이 넘쳐납니다. 『콜롬버스 항해지』(1492-1493)에는 “리오 데 오로를 거슬러 올라갈 때 해상 높이 3필(匹)의 인어가 날아오르는 것을 봤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심지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일본이나 중국에서 원숭이의 상반신과 대형 생선의 하반신을 이어 붙여 제작한 가짜를 ‘인어의 미라’라는 이름으로 수입해 와 거래하기도 했습니다. Mermaid(1700/1799) Photo: ©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르네상스 시기 인어에 대한 목격담에서 중요한 지점은, 기독교의 영향 아래 여성형으로 한정되었던 인어의 표상이, 마치 실제 생물처럼 ‘암수 한 쌍의 인어’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이 물고기는 비정상적으로 크고…(중략)…코가 소와 닮았다. 팔 같은 지느러미가 두 개 있다. 암컷에는 젖꼭지가 두 개 있어 새끼는 그 젖을 마시며 자란다” ─마갈량이스 『브라질지』(1576) “나일강에서 낚아, 로마 교황에게 헌상. 상반신은 인간과 비슷, 머리카락은 금발, 배에는 뼈가 있고 팔에는 관절이 없으며 하반신은 물고기. 한 필은 여성, 한 필은 남성으로 보인다” ─앙브루아즈 파레 『괴물과 위협』(1582) 17, 18세기에 해부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덴마크의 토마스 바르톨린(Thomas Bartholin, 1616-1680)과 같이 인어의 존재를 해부학적으로 증명하려는 박물학자도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인어가 고대 인어의 기록처럼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은 거짓이지만,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남성을 유혹하는 것은 진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Bartholin, Thomas (1654年) 인어의 존재에 대한 회의 그러나 ‘어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웨덴의 박물학자 페테르 아르테디(Peter Artedi, 1705-1735)는 ‘실재하는 생명체로써의 인어’에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책 『어류학 혹은 어류에 관한 전 저작』(1738)에서 ‘평미목’ 분류에 향고래, 돌고래, 매너티 등과 함께 인어(Siren)를 포함합니다. 하지만 인어가 정말로 존재하는가 하는 데는 판단을 보류합니다. “해인(Homo mariunus)은 매너티나 다른 모든 것과는 전혀 다르다. 즉, 대략 바르톨린의 인어 (Siren)과 같은 것이다. (중략) 바르톨린의 인어는, 아메리카의 마르세유 근처의 바다에서, 상인들에게 발견되어 포획되었다. 흉곽 부분의 두 개의 지느러미는 얇은 가죽으로 연결된 손가락과 비슷한 다섯 개의 뼈로 되어 있고, 이것을 사용해 헤엄친다. 옆으로 된 상태에서의 반경은 손가락의 폭으로 4개 분량일까 말까 한다. 이 동물을 검증하고, 거짓 이야기인지 진짜 물고기인지를 확인하는 진정한 어류학자가 나타나면 좋을 텐데. 본 적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부주의하게 무언가를 공언하기보다, 판단을 보류하는 편이 낫다.” 아르테디가 젊은 나이에 급사하면서, 동료이자 친구였던 칼 폰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가 그의 저작을 이어 집필합니다. 린네는 근대 식물학과 분류학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박물학자이지요. 린네는 아르테디가 만든 ‘평미목’이라는 항목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긴 하지만, 평미목에 매너티를 포함한 대신 인어는 제외합니다. 다만 ‘모순강(Paradoxa)’이라는 항목을 마련해 히드라, 사티로스, 용처럼 실재를 입증할 수 없는 동물을 분류하고 그 안에 인어를 넣습니다. “산 상태든, 죽은 상태든, 현물이 확인된 적이 없고, 또 충분, 확실, 완전하게 기술되어있지도 않은 이상 의심스럽다”라는 평가와 함께 말이죠. 수년 뒤 판을 개정하면서는 ‘모순강’ 항목 자체를 삭제합니다. 실재 생물이라 여겨지던 ‘인어’가 상상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반면 함께 평미목에 속했던 매너티는 인어와 명확하게 분리되어 포유동물로 남습니다. 매너티와 인어, 짐승과 여성 여기서 짚어볼 것은 매너티와 인어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인어의 실재 여부를 논할 때, ‘바다의 포유류인 매너티나 듀공이 수유하는 모습이 마치 사람 같아서 이들을 인어로 착각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매너티와 인간 모두 포유류이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린네가 고안한 이 ‘포유류’라는 명칭, 좀 이상하지 않나요?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것은 포유류 중 암컷뿐이고, 암컷이 젖을 먹이는 것도 포유류의 생애 중 아주 단기간에 불과합니다. ‘포유’라는 보편적이지 않은 생물학적 특징이 어쩌다 ‘털이 있고 새끼를 낳는 네 발 짐승’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을까요. 이에 관해 미국의 연구자 론다 쉬빙거(Rhonda Schibinger)는 린네의 여성관을 지적합니다. 다른 박물학자들은 인간을 포함한 이 동물의 부류에 붙일 이름으로 ‘태생동물(胎生動物)’ ‘피모동물(被毛動物)’ ‘다모동물(多毛動物)’을 제창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성에게 가정 내의 어머니 역할만을 강요했던 린네는 ‘포유류’라는 이름을 고집했습니다. 실제로 린네는 당시 만연했던 ‘유모(乳母)’ 문화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유모 제도 때문에 유아 사망률이 높다고 주장한 그는, 고래나 사자, 호랑이 등 사나운 대형 짐승의 암컷처럼 인간 여성도 ‘모유’로 ‘새끼’를 길러야만 한다고 믿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카마루 테이코는 ‘유방’을 매개로 매너티(혹은 듀공)과 인어를 연결하는 박물학적 시각에 젠더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훗날 린네의 연구를 정밀하게 조사해서 『동물계』(1817)라는 책을 쓴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1769-1832)는 매너티, 듀공, 스텔러바다소를 ‘포유강 고래목 초식속’으로 분류합니다. 아래는 매너티에 관해 퀴비에가 기술한 내용입니다. 가슴지느러미 끝에는 손톱의 흔적이 남아있어, 엎드려 나아가거나, 새끼를 운반하거나 하기 위해 교묘하게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한다. (중략) 그 생활양식 때문에 ‘소’나 ‘해우’라고도 불리고, 그 유방 때문에 ‘해녀(femme marine)’라고도 불린다. 듀공을 설명할 때는 그 별명으로 ‘세이렌(sirene)’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새끼’나 ‘유방’처럼 암컷의 생물학적 특성을 나타내는 키워드를 근거로 매너티와 듀공을 여성 인어와 연결하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봤듯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기의 박물학에서 인어는 암수 한 쌍이 모두 있는 생명체였습니다. “죽어갈 때 한탄의 노래를 부른다”와 같은 묘사로 마치 감정과 인지 능력이 있는 듯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이후의 박물학은 인어를 여성으로 한정하고 그 모델을 짐승에서 찾고 있습니다. 게다가 바다소가 “젖이 달려 있고 종종 물 밖으로 상체를 꼿꼿이 세운다”라고 했던 퀴비에의 주장과 달리, 바다소는 물 밖에서 상반신을 세운 채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 않습니다. 젖가슴이라고 부르는 것도 겨드랑이 부근에 나 있는 젖꼭지일 뿐이라고 하니 굳이 유방을 들먹이며 인어를 여성화시키는 박물학의 시선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바다소 수유 사실 동물, 식물, 광물을 채집하고 분석해 기록하는 박물학은 인간 스스로를 다른 존재들과 분리해 우월하다고 여기는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만이 가졌다고 여겨졌던 ‘지성’으로 자연 상태 그대로인(미개한) 다른 생명체들을 하나하나 파편화해 뜯어보는 작업이기 때문이지요. 박물학을 통해 인간의 분석 대상으로 전락한 ‘짐승’으로 규정지어진 매너티와 듀공, 착각할 만큼 이들 짐승과 닮아 있는 유방을 가진 여성의 몸. 대부분 상반신을 훤히 드러낸 여성형으로 굳어진 현재의 인어 형상에는 분명 찝찝한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남성 인어는 어색해 고대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면 분명 상반신이 남성인 반인반어도 존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어 표상이라 불리는 바빌로니아 신화 속 ‘다곤’은 물고기의 피부를 한 남성이거나 하반신이 물고기인 남성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나 바다의 정령 ‘네레우스’도 남성이고,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도 반인반어입니다. 스웨덴 민화 속 물의 정령 ‘넷켄’도 전신이 남성이지요.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에서 트라이톤도 트리톤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남성 인어입니다. 하지만 이들 고대 신화나 민담 속 신 외에 보편적이고 평범한(?) ‘남성 인어’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당장 인터넷에 ‘인어’를 검색해 봐도 대부분이 긴 머리를 낭만적으로 늘어뜨린 여성의 상반신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되는 인어의 표상은 거의 모두가 여성이고, 남성 인어는 ‘멸종’되다시피 한 것입니다. 여성형에 편향되어 있는 인어에 대한 인식을 고찰한 흥미로운 논문이 있습니다. Philip Hayward(2017)는 유방이 있는 상반신으로 ‘여성성’을 드러내기 쉬운 여성형 인어와 달리, 남성 인어의 ‘남성성’은 상반신만으로는 드러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남성 인어의 경우 상체가 제아무리 근육질이라 하더라도 물고기의 하반신으로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생식기가 생략된 모습이기에 강력한 성별 표시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남성형 인어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고 하더라도, 남성형 인어는 여성형 인어만큼 (성적으로) 확실한 인상을 남길 수 없고, 이것이 ‘인어’의 기본 형태를 여성의 상반신으로 고착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디즈니 <인어공주> 속 트라이톤이 들고 있는 삼지창이 근육질의 상반신만으로는 표현하기에 부족했던 남성성과 가부장적 힘을 상징하는 도구로 활용됐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Linda Ågren(2013)은 이 현상이 언어학적으로도 나타난다고 분석합니다. 옥스퍼드 사전에 ‘merman’(남성 인어)를 검색하면, “like a male mermaid(남성인 인어)”라는 용어로 정의를 내린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여성형 인어 ‘mermaid’는 별다른 성별 부연 설명이 붙지 않는 독립된 형태인데, 이는 인어의 기본형이 여성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Linda가 조사한 33개의 언어 중 18개의 언어에는 아예 남성 인어를 표현하는 단어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어가 생활하는 ‘물’의 속성에 주목한 경우도 있습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고 물고기는 다량의 알을 낳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물에 사는 인어는 자연스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원시적인 어머니, 그리고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oxford english dictionary - merman. 현재의 옥스퍼드 사전에서 'merman'을 검색한 결과. 여전히 'mermaid'의 ‘male counterpart'라고 정의되어 있다. 2023년 6월 6일 검색. 한국의 인어 지금까지 살펴본 인어의 모습은 주로 서양의 시각에서 바라본 형상입니다. 물론 동양에도 인어에 대한 기록이 존재합니다. 동아시아의 인어에 대한 기록은 중국 선진(先秦)시대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신화집·지리서 『산해경(山海經)』을 출발점으로 봅니다. 아래는 『산해경』 등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인어 묘사입니다. 다시 북동으로 이백 리를 가면 용후산이 있다.…(중략)…콸콸 흐르는 물이 나와 동쪽에서 황하로 흘러간다. 그 속에는 인어가 많은데 그 생김새는 제어(䱱魚)와 같아 발이 넷이고 그 소리는 어린아이 같다. 이를 먹으면 피곤한 증세[㿄疾]가 사라진다. ─「北次三經」, 『산해경』 저인국이 건목의 서쪽에 있는데 그들은 사람의 얼굴에 물고기의 몸을 지녔고, 발이 없다. ─「海內南經」, 『산해경』 바다의 인어(人魚)가 동해에 있는데 큰 것은 길이가 5, 6척이나 된다. 모습은 사람과 같으며. 눈썹, 눈, 코, 입, 머리가 모두 미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피부는 옥처럼 희고 비늘이 없다. 가느다란 털이 나 있는데, 오색빛이 나고 가볍고 부드러우며 길이는 1, 2촌가량이다. 머리카락은 말총 같으며 길이는 5, 6척이다. 생식기는 인간 남자, 여자의 것과 다를 바 없다. 바닷가에 사는 홀아비나 과부들이 대부분 잡아다 연못에 넣어 기른다. 교접할 때도 사람과 다르지 않으며 사람을 다치게 하지도 않는다. ─『박물지(博物志)』 (왼쪽) The ningyo (人魚) aka ryōgyo (鯪魚, 'hill-fish') 데라지마 료안(寺島良安),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 volume 80 of 81. (오른쪽) The Teijin (氐人), or the "Di people". 데라지마 료안(寺島良安),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 volume 15 of 81 명청(明淸) 시대에는 중국의 인어 이야기가 『태평광기(太平廣記)』, 『산해경(山海經)』, 『술이기(述異記)』 등을 통해 조선으로 전해집니다.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한 인어 기록이 남아있는데, 조선 후기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慈山漁譜)』에도 우리나라에 전해져 오는 다섯 종류의 인어(제어(䱱魚)와 예어(鯢魚), 역어, 교인(鮫人), 그리고 부인(婦人)이 물고기인 경우)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지금 서남해에 두 종류의 인어가 있는데 그 하나는 상광어(尙光魚)이며 모양이 사람을 닮아 두 개의 젖을 가진다. 본초(本草)에서 말하는 해돈어(海豚魚)이다. 다른 하나는 옥붕어이며 길이가 8자나 되며 몸은 보통 사람과 같고 머리는 어린아이와 같으며,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치렁치렁하게 아래로 드리워졌고, 하체는 암수의 구별이 있어 사람의 남녀와 서로 매우 닮았다. 뱃사람들은 이것을 몹시 꺼려 혹시 어망에 들어오면 불길하다 하여 버린다. 이것은 틀림없이 사도가 본 것과 같은 종류일 것이다. 한국 인어 서사를 연구한 강민경(2012)에 따르면 고려부터 조선까지 한반도에서도 인어의 한 종류인 ‘교인’에 관한 언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인어와 관련한 한시들도 수백 편 남아있는데, 인어가 은혜에 감격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름다운 구슬이 된다는 이야기에 착안해 아름다운 것을 비유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인어의 눈물’을 활용했다고 하지요. 푸른 바다 아득하여 가이없는데 구슬궁 조개궐에는 인어가 사네. 인어가 베를 짜니 만 폭 비단이요 오색 영롱하고 구름 기운 펼쳐진다. 때때로 몰래 청제사와 맺고서 비단 안고 임치 저자에 들어오네. 주인 은혜 깊어 갚을 길 없으니 두 눈에 흐르는 눈물 물처럼 맑구나. 천 줄기 옥 같은 힘줄 길게 늘어지니 번쩍번쩍 아름다운 구슬이 만들어졌네. 머뭇머뭇 머물기 어려워 돌아가려니 갈림길에서 내년에 다시 오마 약속한다네. 인어의 구슬, 직녀의 베는 청사에 전하니 잘못된 것 아니로다. 신선과 이인을 만약 구하려거든 진시황 한무제 응당 먼저 만나야겠지. ─ 성현(成俔), 「교인가(鮫人歌)」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는 인어에 관한 목격담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담령(金聃齡)이 흡곡현(翕曲縣)의 고을 원이 되어 일찍이 봄놀이를 하다가 바닷가 어부의 집에서 묵은 적이 있었다. 어부에게 무슨 고기를 잡았느냐고 물었더니, 어부가 대답했다. “제가 고기잡이를 나가서 인어(人魚) 여섯 마리를 잡았는데, 그중 둘은 창에 찔려 죽었고 나머지 넷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나가서 살펴보니 모두 네 살 난 아이만 했고, 얼굴이 아름답고 고왔으며 콧대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귓바퀴가 뚜렷했으며 수염은 누렇고 검은 머리털이 이마를 덮었다. 흑백의 눈은 빛났으나 눈동자가 노랬다. 몸뚱이의 어떤 부분은 옅은 적색이고, 어떤 부분은 온통 백색이었으며 등에 희미하게 검은 무늬가 있었다. 남녀의 음경과 음호 또한 사람과 똑같았으며, 손가락과 발가락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주름 무늬가 있었다. 이에 무릎에 껴안고 앉히자 모두 사람과 다름이 없었으며, 사람을 대하여서도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고 하얀 눈물만 비 오듯 흘렸다. 김담령이 가련하게 여겨 어부에게 놓아주라고 하자, 어부가 매우 애석해하며 말했다. “인어는 그 기름을 취하면 매우 좋아 오래되어도 상하지 않습니다. 오래되면 부패해 냄새를 풍기는 고래 기름과는 비할 바가 아니지요.” 김담령이 빼앗아 바다로 돌려보내니 마치 거북이처럼 헤엄쳐 갔다. 김담령이 무척 기이하게 여기자, 어부가 말했다. “인어 중에 커다란 것은 크기가 사람만 한데 이것들은 작은 새끼일 뿐이지요.” 일찍이 들으니 간성(杆城)에 무식한 어부가 인어 한 마리를 잡았는데 피부가 눈처럼 희어 여인 같았다. 희롱하여 음란한 짓을 하자 인어가 다정히 웃기를 마치 정이라도 있는 듯이 했다. 드디어 바다에 놓아주니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세 차례나 반복한 후에 떠나갔다고 한다. 내 일찍이 고서를 보니, “인어는 암수의 모습이 마치 사람 같아 바닷가 사람들이 암컷을 잡으면 못에 가두어 기르며 더불어 교합하는데, 마치 사람과 같다.”라고 하여 웃은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를 다시 보게 될 줄 어찌 알았으랴!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조선 시대까지 전해져 오던 ‘토종’ 인어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와는 다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명승지 곳곳에 설치된 아름다운 여성 인어상은 앞서 살펴본 서양의 인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양식의 근대를 수용했던 동양의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왼쪽) 천 장봉도 인어상 (오른쪽) 코펜하겐 인어상 근대 일본이 항구를 개방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서양의 문화 안에는 여성의 모습을 한 아름다운 인어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식민지 시기, 서구의 문물이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인어도 변화하기 시작했지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어 이야기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도 1920년대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양 인어의 유입은 한국의 인어 이야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앞서 말한 인어상과 연계된 전설들도 개화기 이후 창작되었거나, ‘잉어’ 설화가 ‘인어’ 설화로 탈바꿈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죠. 해난 사고 등 위험을 경고한다는 거문도의 인어 ‘신지끼’가 19세기 후반 영국군의 거문도 사건 등 외래적 영향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1932년에는 군산 앞바다에서 “양 가슴에는 젖이 두 개가 달려 있고 새끼는 날개로 끼고 젖을 먹인다”라는, 서양 박물학의 ‘매너티’ 묘사와 흡사한 인어 기사까지 등장합니다. (왼쪽) 신간소개, 조선일보, 1925.4.3. (오른쪽) 인어 세계적 진수 산채 잡어, 동아일보, 1932.5.13. 인어의 미래 생존 전략 분명한 것은 우리 전설과 기록 속에 있는 과거의 인어는 여성과 남성 모두 존재하고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독립적인 생명체였다는 점입니다. 반려자를 잃고 혼자 남은 인간과 정을 통하거나 결혼을 하기도 하고, 자신을 살려주면 두고두고 은혜를 갚기도 했습니다. 왜구를 물리치거나, 다친 자신을 모른 척해 준 제주도민들을 위해 용천수를 약수로 바꿔놓을 만큼 능력도 있습니다. 인어를 괴물이나 짐승, 남성을 유혹하는 악한 여성이나 지고지순하기만 한 소녀의 이미지로 한정시킨 서양의 시각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모습은 사람 얼굴과 비슷하고 흰 피부에 비늘이 없다. 머리카락은 말꼬리와 비슷하다. 둘째, 눈에서 눈물이 흐르면 진주가 된다. 셋째, 인어는 비단을 짠다. 색이 서리같이 하얗고 물에 적시거나 넣어도 젖지 않아 굉장히 비싸다. 넷째, 인어는 인간과 친밀하거나 우호적인 관계다. 비단을 짜서 인가에 머물며 팔기도 한다. 떠날 때는 진주 눈물을 흘려서 값을 치러준다. 과부와 홀아비가 교접을 할 정도로 거부감이 없다. 다섯째, 동양 인어는 인간과 같은 보통의 존재다. 바다에 사는 또 다른 종족이며, 그래서 성별이 있다. 강민경(2018)은 동아시아의 인어 이미지를 위와 같이 정리합니다. 서양 인어와는 다른 이런 특징은, 신화 속에 묻혀 사라져 가거나 단순한 이미지로 고착되어 가는 ‘인어’를 미래 콘텐츠 자산으로 부활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인어라는 상상 속의 존재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전히 소비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새로운 인어가 가진 콘텐츠 파워를 보여줍니다. 얼마 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실사화되어 개봉한 영화 <인어공주>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인어 서사는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특히 뭍으로 나가 인간 세상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인어의 이야기가 현대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다문화 사회’나 ‘이주’의 이야기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연구 등은, 수용하는 문화에 따라 인어 모티프가 얼마나 넓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이성과 합리성, 오직 인간만을 중시했던 근대의 폐허를 극복해 보고자 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인어공주’가 아닌 새로운 모습의 인어를 세상에 내보일 때가 아닐까요. 인간의 지식으로는 감히 정의할 수 없는 형상을 하고,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찾아온 ‘다른’ 존재인 인어는 성별과 세대, 인종과 국적과 같은 폐쇄적이고 인간 편향적인 가치들을 넘어설 열쇠를 기꺼이 선물해 줄지도 모릅니다. ▶ 참고 자료 빅 드 동데르(2002), 『세이렌의 노래』, 김병욱 옮김, 시공사. 中丸禎子(2016) 「博物学の人魚表象―魚、女性、哺乳類―」, 『比較文学』 58(7), 日本比較文学会. 九頭見和夫(2012) 『日本の「人魚」像―『日本書紀』からヨーロッパの「人魚」像の受容まで』, 和泉書院. Ågren, L(2013) Linguistic sexism in mermaid tales - A study of linguistic sexism involving the mermaid figure in film, Kristianstad University: School of Education and Environment. Dundes, L and Dundes, A (2000) ‘The Trident and the Fork: Disney’s “The Little Mermaid” as a Male Construction of an Electral Fantasy’, Psyshoanalytic Studies v3 n2: 117-130. Hayward, P(2017) Making a Splash: Mermaids (and Mermen) in 20th and 21st Century Audiovisual Media, New Barnet: John Libbey & Co. Jilkén, Olle(2018) A Phallus Out of Water - The construction of mer-masculinity in modern day illustrations, Shima 12(2). 강민경(2012) 「한국 인어 서사의 전승 양상과 그 의미 고찰」, 『도교문화연구』 37, 한국도교문화학회. 강민경(2020) 「포스트 휴먼 시대 동아시아 인어 서사의 스토리텔링 방향」, 『국어국문학』 193, 국어국문학회. 오정미(2015) 「건강한 다문화 사회를 위한 동화 「인어공주」의 스토리텔링의 방향」, 『스토리앤이미지텔링』 10, 건국대학교 스토리앤이미지텔링연구소. 이진오(2021) 「동아시아에서 인어에 대한 인식 층위와 인어설화의 변화」, 『문화와융합』 43(11), 한국문화융합학회. 이진오(2021) 「인어설화의 탄생과 신지끼 인어설화의 콘텐츠 활용 방안」, 『한국학연구』 76,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황리챈(2020) 「영화 속의 인어 이미지 특징 연구:모성 원형(Mother Archetype)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석사논문.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인천투어 홈페이지 익스피디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www.metmuseum.org www.weblio.jp
'요즘 시대'의 문화 코드와 트렌드를 읽는 새로운 방식, [어쩌다]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를 채워줄 수 있는 프렌즈 컨트리뷰터들의 글을 비정기적으로 게재합니다. 이번엔 전직 신문기자이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 석사수료인 손가인 작가가 이른바 '패션의 정답'으로 오랫동안 군림해 온 '프렌치 시크' 스타일에 대해 전격 해부해 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프렌치 시크'에 열광하게 만들었을까요? 패션계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바로 ‘프렌치 시크’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현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없다는 패션의 ‘이데아(idea)’라고나 할까요. 방금 일어나 침대에서 막 기어 나온 것만 같은 머리와 얼굴, 청바지에 대충 소매 걷은 셔츠만 걸쳤는데도 알 수 없는 아우라가 풍기는 것. 꾸며서 얻은 아름다움 말고 태어나길 느낌 충만하게 난 것 같은 ‘튜닝의 끝, 순정’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프렌치 시크입니다. 프렌치 시크가 어떤 스타일인가 하는 암묵적인 동의는 있는데 정작 정의해 보자면 모호하기만 합니다. 프렌치 시크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12가지 필수 아이템’ 같은 직접적인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그 옷들은 나도 가진 건데 그 느낌이 나질 않으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나른한 듯 보이면서도 자연스럽고 한편으론 생기가 넘치기도 하는 그 지적인 ‘분위기’를 어떻게 연출하는 건지 대체 공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프렌치 시크를 정복해 보려고 끝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렌치 시크를 동경하는 건 한국만의 일이 아닙니다. 프랑스에 파견된 미국인 에밀리의 시선으로 파리의 패션과 식문화, 생활 습관 모두를 대리 체험할 수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흥행한 것은 프렌치 스타일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방증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파리지앵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에밀리의 과감한 패션 시도가 진짜 ‘프렌치’들의 냉담한 반응만 불러일으킨다고 하니, 에밀리도 프렌치 시크의 벽을 넘지 못했네요. 프렌치 시크가 도대체 무엇인지 더 어려워지기만 합니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프렌치 시크’라는 단어부터 살펴볼까요. 프렌치 시크를 말 그대로 해석하면 프랑스의 멋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멋’이 그냥 ‘패션’이나 ‘스타일’이 아니라 ‘chic(시크)’라는 또 다른 개념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복식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범주로서의 ‘시크’를 연구한 오현정(1993)에 따르면 ‘시크’는 여성의 옷차림을 표현하는 단어이며 19세기 이후 프랑스에서 등장했습니다. 이는 ‘chicane(시칸느)’의 줄임말인데 ‘시칸느’는 재판을 복잡하게 만드는 기교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재판장을 어지럽게 주무르려면 세련되고 교묘한 기술이 필요한 만큼, ‘시크’라는 단어에는 섬세하고 세련되며 독창적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시크’가 세계적인 유행이 된 것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프랑스는 패션의 메카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패션과 문화에 대한 루이 14세의 적극적인 투자는 유럽의 유행을 선도하며 프랑스를 패션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시키는 시초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패션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제정 시대를 거치며 더욱 다양하고 풍부해진 동시에, 찰스 프레데릭 워스의 디자인 하우스 ‘하우스 오브 워스’의 성공 등으로 오트 쿠튀르의 기원이자 핵심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패션을 앞세운 파리의 문화적 영향력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지나면서도 꺾이지 않았고, 20세기 이후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엘리트들이 프랑스 패션에 열광하면서 지금까지도 그 고고한 명성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발간된 패션잡지 《보그》에 실린 1900년대 초의 기사들은 프랑스의 패션에 관한 미국인들의 관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파리의 여성들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고 패션 소품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소개하는 기사들이 ‘파리’라는 제목을 달고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1910년대부터 ‘프렌치’는 ‘시크’라는 단어와 동반되거나 결합한 형태로 등장하는데, 1912년 8월 1일 40호에 실린 기사 ‘The Chic in French Costumes(프랑스 의상의 시크)’에서는 ‘시크’를 프랑스 디자이너들만의 특별한 스타일(the shibboleth of the french designers)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물론 삽화까지 활용해 당대 프랑스 ‘인플루언서’의 세련된 모습을 포착하고 파리의 살롱이나 극장에 찾아가 패션 르포 기사를 쓰기도 합니다. 1911년 6월 15일 자 기사 ‘La Parisienne(파리 여성)’은 동경 어린 시선으로 프랑스 상류층 여성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기사 속 여성들은 문학을 즐기고 살롱에 모여 미술을 비판하며 소르본 대학에서 앙리 베르그송의 강의를 듣고 필기하는, 무척 지적이고 세련된 모습입니다. 그러면서도 섬세한 실루엣의 가운을 무심한 듯 툭 걸치고 푸른 벨벳으로 장식한 흰 밀짚모자를 개성 있게 소화하는 모습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프렌치 시크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기사는 이런 프랑스의 패션을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시크(indescribably chic)’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세련된 프랑스 패션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심도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1927년 9월 15일 《조선일보》에는 ‘파리 녀자의 신류행’이라는 제목의 짤막한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습니다. 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다니는 것이 현재 파리에서 유행하는데 다음엔 무엇이 유행할지 궁금하다는 내용입니다. 1934년 3월 8일에는 올봄 파리에서는 원색에 가까운 강한 빛깔이 유행할 것이라는 최신 정보에 덧붙여, 봄을 맞은 종로의 멋쟁이들이 어떤 옷을 주로 구매하는지를 조사한 ‘금년 봄의 류행! 색갈은 푸른 빗’이란 기사도 게재되었습니다. 1933년 10월 19일 자 《동아일보》에도 ‘33년 유행게 런던과 파리의 이 가을의 유행’이라는 제목으로 따끈따끈한 동시대 프랑스의 트렌드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프랑스 여성들이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인식은 1950년대 즈음의 기사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58년 12월 11일 자 《동아일보》에는 3년간 파리에서 의상 디자인을 연구하고 돌아온 디자이너 손경자 씨의 귀국담이 실립니다. 프랑스의 멋을 직접 공부했다는 그는 파리가 “생활하는 여성 생각하는 여성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어느 나라 여인들도 따를 수 없는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문화, 사상, 유행의 발상지인 파리의 여성들이 사치스러울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미국이나 영국, 이탈리아 여성들보다 사뭇 검소한 차림을 하고 다닌다는 겁니다. 의복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활동적인 옷을 즐겨 입으며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설명은 오늘날 프렌치 시크를 소개하는 패션잡지의 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1963년 7월 20일 《경향신문》에 실린 ‘파리의 여성들’이라는 기사는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유학한 후 ‘헤어스타일’ 부문 프랑스 국가시험에 합격했다는 이화순 여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사는 프랑스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지적인 매력과 연결해 설명합니다. 그들은 광범위한 독서를 하며 학교 캠퍼스나 지하철, 공원, 어디에서든지 책을 읽는다는 겁니다. 낙제를 당하지 않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던 모양입니다. 아름다운 프랑스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단발머리와 화장기 없는 피부”는 그들의 성실하고 검소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거란 게 이 여사의 진단입니다. 하지만 프랑스 여성들이 유행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없는 실용적인 몸차림을 선호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지식과 교양을 갖춘 위에 「테크닉」을 연마”하는 게 이 여사가 바라본 당시의 파리지앵이었습니다. 프랑스 현지에 다녀온 미용 전문가들의 체험담이 이렇듯 상세한 설명과 함께 신문에 게재된 것을 보면, 패션의 중심지 프랑스의 미(美)에 대한 당대 독자들의 관심도 지금 못지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프랑스의 미적 가치가 ‘프렌치 시크’라는 이름을 앞세워 한국에 본격 소개된 것은 2000년대 중반입니다. 당시 기사들은 세계적인 유행으로 떠오른 프렌치 시크라는 개념을 “프랑스인들의 몸에 밴 패션 감각”, “자연스러운 감성이 묻어나는 세련된 멋”,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듯하면서도 어딘지 개성과 멋을 느낄 수 있는 패션”, “싸구려 티셔츠와 고급 핸드백을 조화시킬 수 있는 개성”이라고 정의합니다. 물론 ‘몸에 밴’, ‘감성이 묻어나는’, ‘어딘지 멋을 느낄 수 있는’ 같은 어렵고 모호한 표현들로 말입니다. 어쨌든 20년 전만 해도 설명이 필요했던 외국어 용어가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가 하나의 관용어처럼 자리 잡았을 정도니,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프렌치 시크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어떠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겠습니다. 꾸미지 않음을 꾸미는 법 프렌치 시크를 향한 사람들의 애정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춰 많은 패션 전문가와 기업들은 프렌치 시크를 앞세운 마케팅을 하고 있고요. 프렌치 시크의 ‘바이블’을 자처하며 홍수처럼 쏟아지는 책들이 그 일환입니다. ‘파리지앵은~’ ‘프랑스 여자는~’ 같은 제목이 붙은 책들의 저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이나 패션 저널리스트, 혹은 프랑스에서 수십 년을 살며 프렌치 시크를 객관적으로 분석했다고 자부하는 유명인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프렌치 시크’해 질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해 준다고 하니 솔깃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프렌치 시크의 비밀 역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에 있습니다. “다른 나라 여성들은 너무나 완벽해지려고 해요. 하지만 프랑스 여성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죠.” 그런데 원래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건 당연한 걸까요. 프렌치 시크를 실현하려면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위해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연출하는 법부터,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듯한 피부 표현을 위해 어떤 브랜드의 무슨 화장품을 발라야 하는지, 옷장 안에 필수로 있어야 할 옷은 어떤 것이며 당장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남들이 보지 않는 손끝과 발끝까지도 완벽히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해야 할 것은 왜 이렇게 많고 또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왜 이렇게 많을까요.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멋이 프렌치 시크라고 하면서 훈요십조 같은 이 규율들은 다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지금은 꽤 유명해진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기자로 일하던 필자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랑스인 대표를 인터뷰했습니다. 대표는 대뜸 “‘프랑스 여자’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느냐”라고 물었습니다. 필자는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동안 읽어온 잡지와 책들이 가르쳐준 대로 “꾸미지 않았는데도 아름답다는 느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그것이야말로 자기가 기대했던 대답이라는 듯 손가락까지 튕겨 보이며 “그렇죠!”라고 흡족해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브랜드에서 내놓은 화장품을 단계별로 줄줄이 소개했습니다.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을 위해서 이 제품 다음엔 저 제품, 저 제품 다음엔 그 제품을 발라야 한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꾸미지 않음을 꾸며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기현상을 ‘프렌치 시크’라고 이름 붙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프렌치 시크 패션 바이블’을 표방하고 나온 또 다른 훈요십조 『You're so French!(당신 정말 프랑스인이네요!)』라는 책이 프랑스 현지에서도 1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합니다. 물론 프랑스인들은 단순한 호기심에 책을 사 봤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외부의 시선이 만든 ‘프렌치 시크’라는 용어가 되려 프랑스 사람들을 틀에 갇히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우가 든 것도 사실입니다. 이익을 얻고자 하는 패션 산업계는 주객이 전도된 이 열풍을 끝없이 부추기고 있고요.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캐롤린 드 매그레(Caroline de Maigret)가 연기한 흥미로운 유튜브 영상이 있습니다. 제목은 ‘10 Ways To Be Parisian with Caroline De Maigret’(파리지앵이 되는 10가지 방법). 식료품 쇼핑을 하던 캐롤린은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오자 “나 지금 디자이너랑 같이 백스테이지에 있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패션쇼는 보지도 않았으면서 쇼가 별로였다는 친구의 의견을 단호하게 비판하고 무시하죠. 부스스한 머리를 연출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곱게 땋고 잠들었으면서 다음 날 아침엔 연인과의 ‘뜨밤’을 보낸 양 자랑도 합니다. 영상 속 캐롤린의 모습은 그야말로 우리들의 환상 속 프렌치 시크의 현신처럼 매력적이고 한편으로 익살스럽기도 하지만, 어째 영상을 보면 볼수록 씁쓸해집니다. 이런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을 한 채 무단횡단을 일삼고 약속 시간엔 항상 늦고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면 당신도 파리지앵이 될 수 있다는 이 영상은 꽤 자조적인 동시에 ‘옜다, 너희가 상상하는 프렌치 시크!’ 하며 외부의 관찰자들을 비꼬는 듯합니다. 6천500만 가지의 프렌치 시크 한 세계적인 패션잡지에서 프렌치 시크의 비밀을 밝혀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제작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길에서 만난 시크한 프랑스 여성들에게 그들의 ‘뷰티 시크릿’이 무엇이냐 묻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러 여성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하나였습니다. “시간이 없어요!” 파티나 데이트가 있는 날처럼 특별한 상황에는 화장과 옷에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하지만 평소엔 아침에 5분이라도 더 자기 위해 화장을 하지 않고, 따로 시간 내어 운동할 수가 없어서 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걸어 다닌다고 했습니다. 해 줄 수 있는 말이 너무 없어서 다소 당황스러워하는 그들의 표정이 생생합니다. 각자 자기 삶을 치열하고 충실하게 사는 데서 배어 나오는 자연스러움과 무심함은 공부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먼 데서 찾고 있었을 뿐, 어쩌면 우리 현대인 모두가 이미 ‘시크’해 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맵시 있는 파리지앵의 모습을 찍어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parisiensinparis)이 있습니다. 여기에 업로드된 사진들은 과도하게 연출된 패션 화보와 달리 프랑스의 거리 패션을 날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거기엔 잡지와 책이 그토록 강조했던 빽빽한 규율이 없습니다. 운동화나 굽 낮은 부츠를 신은 채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를 달리고, 짐을 한가득 넣은 커다란 가방을 메고 바쁘게 이동하는 파리지앵의 모습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검정 재킷, 트렌치코트, 흰 셔츠, 꽃무늬 원피스처럼 프렌치 시크의 필수 아이템이라 배웠던 옷차림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파리지앵이 멋을 부리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과감한 색깔과 무늬의 옷을 거침없이 선택하고, 오리털 패딩 아래 격식 갖춘 옷을 차려입기도 합니다. 때로는 큼지막한 로고가 새겨진 명품 업체의 제품을 활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머리 모양도 레게부터 쇼트커트까지 그 종류를 셀 수 없습니다. 천차만별이면서도 하나같이 편안함을 놓치지 않은 그들의 패션을 보고 있자면 앞서 살펴봤던 옛 기사의 구절이 떠오릅니다. “「팻숀쇼오」에서 철마다 발표되는 「모오드」는 그곳 여성들에게는 쉽게 보급되지 않고 외국으로 더 많이 소개되고 있읍니다. 그것은 개성이 강한 파리의 젊은 여성들은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은 쉽게 모방한다거나 관심을 갖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각자의 개성과 신체와 실력에 알맞도록 의복의 모양이라든지 색갈 또는 모자 신발 액세서리가 모다 조화되고 세련된 데서 멋지고 아름답게 보일 따름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전통과 지성과 생활이 있었고 그러한 생활 속에서 빚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프랑스의 멋, 즉 프렌치 시크는 실용적인 동시에 독창적인 스타일을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프렌치 시크’ 열풍은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기보다는 마치 모범 답안이 있는 것처럼 획일적인 스타일을 강요하고 그걸 흉내 내도록 속성으로 가르치는 듯합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매력적이라고 여겼던 프랑스 사람들의 진짜 멋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면서도 각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섬세한 과정과 꾸준한 노력에 있음에도 말입니다. 인구가 약 6천500만 명인 프랑스 안에는 6천500만 가지의 서로 다른 멋이 있을 텐데 그걸 어떻게 몇 개의 키워드로 묶어 정의할 수 있을까요. ‘프렌치 시크’가 지금까지도 실체 없는 전설처럼 떠돌고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글 : 손가인 디자인 : 고결 ▶ 참고자료 - 강보라,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3, 공개와 동시에 넷플릭스 1위 탈환’, 2022.12.23. - 오기쁨,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 3·4 제작 확정’, 2022.11.07. - 오현정, 「복식미범주의 (服飾美範疇) 개념구조에 관한 연구 - 쉬크와 댄디즘을 중심으로 -」, 『한국의류학회지』 17(2), 한국의류학회, 1993. - 남혜진·하지수, 「현대 패션에 나타난 Effortless Chic에 관한 연구」, 『한국의류학회지』 41(6), 한국의류학회, 2017. - 찰스 프레데릭 워스 - Joobin Bekhrad, Why are the French so chic?, 2019.10.8. - 보그 아카이브 - 권재현, 「[책의 향기] ‘파리 여자, 서울 여자’ 펴낸 심우찬 씨」, 《동아일보》, 2004.8.20. - 김선미, 「[스타일/패션] 가을 거리... ‘검은 반란’이 시작된다」, 《동아일보》, 2005.8.19. - 김현진, 「[글로벌 위크엔드] 올가을 블랙이 돌아온다」, 《동아일보》, 2006.3.17. - 백진엽, 「“안방에서 지구촌 패션쇼핑 붐”」, 《머니투데이》, 2007.10.26. - 정윤숙, 「Parisienne Chic」, 《여성동아》, 2007.12.24. - 10 Ways To Be Parisian with Caroline De Maigret - We Went To Paris And Asked 13 Women Their Beauty Secrets | BAZAAR x Paris - Katherine J Igoe, What French Women Really Want To Wear (According To Real French Women), 2022.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