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미국 조리사 협회 총주방장 심사위원(ACE) 및 총주방장(CEC), 2012 World Gourmand Cookbook competition Best TV celebrity chef in Korea, 올리브 TV '테이스티 로드 2', 이현우의 오감도 등 요리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뉴욕을 먹다'외 다수의 요리책을 저술하였습니다.
먹방과 레시피, 와인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스프에서 맛깔나게 정리해드립니다. 얼마 전 불닭볶음면이 너무 맵다는 이유로 덴마크에서 전량 리콜이 되었다. 문득 미국 음식 중에서도 비슷한 매운맛이 떠올랐다. 미국엔 매운 음식이 어떤 것이 있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곧바로 떠올린 음식은 다름 아닌 '내슈빌 핫치킨(Nashville Hot Chicken)'이다. 사람들은 미국의 치킨이라고 하면 모두 같다고 생각하지만, 남부식 치킨(뉴올리언스 지역)과 내슈빌 핫치킨은 분명 다르다. 남부식 치킨이라고 하면 'KFC'나 '파파이스'와 같이 치킨 덩어리가 크고, 바싹 튀겨낸 '프라이드치킨'이다. 그렇다면, 내슈빌 핫치킨이란 무엇일까? 미국 중부 테네시주에 위치한 도시 내슈빌(Nashville)의 대표 음식 아이콘이다. 핫치킨샌드위치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프라이드치킨 전체에도 해당한다. 고추소스에 튀겨낸 치킨 부위를 담갔다 뺀 후, 카옌 페퍼로 맵기를 조절한다. 소스는 카옌 페퍼(cayenne pepper), 스모크드 파프리카(smoked paprika), 설탕, 버터 등을 넣고 만든다. 이렇게 만든 고추소스는 한국 사람이 먹기에도 상당히 매운맛이다. 보통 5단계로 나뉘어 맛을 만드는데, 가장 매운 맛은 불닭볶음면의 매운맛과 버금간다. 그렇다면 왜? 내슈빌은 이렇게 매운 치킨샌드위치로 유명해졌을까? 내슈빌 핫치킨의 기원 내슈빌 핫치킨은 숀튼 프린스(Thornton Prince) 씨가 1930년대에 처음 만들었다고 증손 조카인 세모 제프리스는 밝혔다. 숀튼 프린스는 다섯 번의 결혼을 했을 정도로 꽤 인기 있는 남자였다. 어느 날이었다. 그녀의 전 여친은 숀튼 프린스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한 복수로 카옌 페퍼를 3배 이상 뿌린 아주 매운 치킨을 만들었다. "자기야 배고프지? 이제 일어나서 밥 먹어야지." 매운 치킨을 먹으며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반응과 달리, 잠에서 깬 숀튼 프린스는 너무나 맛있게 치킨을 다 먹어 버렸다. 우습게도, 복수의 화살을 겨누며 만든 핫치킨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숀튼은 여기서 아이디어에 착안해 판잣집을 열고, 핫치킨 가게를 오픈할 계획을 세운다. 그의 두 형제와 함께 내슈빌 북쪽의 제퍼슨 거리 28번가에 '바비큐 치킨 셱(BBQ Chicken Shack)'을 준비했다. 그는 평소에는 양돈 농장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했었기에 레스토랑은 양돈 농장을 마친 뒤 저녁부터 시작했다. 주말에는 자정과 새벽 4시까지 운영을 하며 사업을 키웠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내슈빌에서도 가장 가난한 흑인 거주 지역에서 운영하던 숀튼은 큰 성공에 힘입어 가게를 좀 더 확장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또한 숀튼의 조카 손녀가 사업을 이어받으면서 기존의 상호에서 'BBQ'를 제거하며 브랜드를 재정비한다. 그때 탄생한 이름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Prince's Hot Chicken Shack인 것이다. 1980년대, 내슈빌 핫치킨의 매운맛은 내슈빌 지역에서만 국한되어 있었다. 이러한 매운맛이 미국 전역으로 뻗어 나가게 된 것은 내슈빌의 음악 때문이었다. 내슈빌시는 2007년 처음 '핫치킨 페스티벌'을 시작했고, 젊은 느낌의 핫치킨 브랜드인 '해티비(Hattie B's Hot chicken)'는 2012년에 오픈했다. 그리고 2016년 KFC가 핫치킨을 메뉴에 추가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여기에 더불어 전 세계 치킨 프랜차이즈인 '버펄로 와일드 윙스'가 '내슈빌 핫'으로 신메뉴를 소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도 그 맛이 퍼져 나가게 된다. 내슈빌 핫치킨은 전통적으로 염지를 한 뒤, 카옌 페퍼로 맛을 낸 밀가루를 바르고, 라드(돼지기름)의 스토브탑에서 튀겨낸다. 그리고 난 후, 매운 카옌 페퍼와 고추기름, 오이 피클과 함께 빵 위에 올려내는데, 기존의 핫치킨 가게들에서는 '치킨 윙'을 판매하지 않았다. 하지만, 버펄로 와일드 윙 브랜드에서 '내슈빌 핫치킨 윙'을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내슈빌 핫치킨은 '버펄로 윙'과 같은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이다. 내슈빌 핫치킨을 주문하면 치킨 덩어리 하나와 두툼한 흰 식빵 한 조각, 시큼한 피클 몇 조각이 따라 나온다. 어떻게 보면 조금 성의 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치킨의 매운맛을 빵으로 최대한 보완할 수 있다. 미국에서 내슈빌 핫치킨 브랜드는 로스앤젤레스의 하울링 레이스(Howlin' Ray's), 데이브스 핫 치킨 (Dave's Hot chicken), 슬림 치킨(Slim chicken) 등이 있으며, 프랭크 레드핫(Frank's Redhot), 맥코믹(McCormick)과 같은 미국의 대형 시즈닝 회사들에서도 내슈빌 핫치킨 전용 향신료와 소스들도 출시 중이다. 내슈빌 핫치킨 레시피 마리네이드 (염지 재료) 버터밀크 2 2/3 컵, 설탕 2큰술, 소금 2큰술, 후추 2큰술, 양파 가루 2큰술, 카옌 페퍼 2큰술, 훈제 파프리카 가루 2큰술, 핫소스 1~3방울 1. 큰 볼에 재료를 모두 넣고 잘 섞어준다. 2. 닭고기를 넣고 완전히 담기도록 재운다. 3. 냉장고에서 최소 4시간 정도 숙성해 맛을 배게 한다. 튀김가루 재료 밀가루 2, 1/2컵, 양파 가루 2큰술, 소금 2작은술, 후추 2작은술, 카옌 페퍼 2큰술, 훈제 파프리카 가루 1작은술, 핫 파프리카 가루 1작은술 1. 모든 재료를 잘 섞어서 준비한다. 2. 마리네이드 한 닭고기를 튀김가루에 골고루 묻힌다. 3. 식물성 기름에서 350°F (175°C) 10분간 튀겨낸다. 4. 튀겨낸 닭고기는 키친타월 위에 올려서 기름을 빼주면 완성. 내슈빌식 핫소스 녹인 버터 3/4컵, 핫 스파이스 3큰술 (카옌 페퍼, 훈제 파프리카, 매운 향신료 믹스) 1. 녹인 버터와 핫 스파이스를 작은 볼에서 섞어서 준비. 2. 튀겨낸 닭고기에 브러시로 골고루 발라준다. 사진 : 게티이미지
먹방과 레시피, 와인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스프에서 맛깔나게 정리해드립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에드워드 리(Edward Lee)' 셰프는 프라이드치킨으로 잘 알려진 켄터키주의 루이스빌(Louisville)에서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그의 레스토랑에는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켄터키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술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는 바로 '버번 위스키(Bourbon Whiskey)다. 프라이드치킨으로만 알려진 미국의 켄터키주에는 사실 사람보다 더 많은 버번 위스키가 존재한다. 미국 켄터키주는 미국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출생한 곳이며, 컨트리뮤직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국에서 경마 레이스(Kentucky Derby)가 처음 시작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버번은 위스키의 한 종류로 미국 음식 문화에서 대중성을 가지고 있는 중요한 아이템이다. 위스키 전문가들은 버번이 스코틀랜드의 고급 위스키인 '스카치 위스키'보다 한참 낮은 등급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으나, 미국 내에서 대중성으로만 놓고 보면 미국인들의 버번 위스키 사랑은 스카치 위스키보다 더 높다. 18세기 말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증류업자들은 미국 동부에서 위스키를 만들고 있었는데, 미국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위스키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반발한 사람들이 켄터키주로 이주해 만들기 시작한 것이 버번 위스키의 시초다. 이들은 켄터키주에 널려 있던 '옥수수'를 활용하여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연방정부는 옥수수 재배를 권장했었는데,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옥수수를 재배하면서 정부의 혜택을 얻곤 했다. "옥수수를 재배하면, 400 에이커(약 50만 평)의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함." -버지니아주 옥수수 재배 및 주거권 법안 1776년 천지에 널려 있던 옥수수를 활용해 독특한 위스키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1780년도부터였다. '버번 위스키'라는 이름은 처음 버번이 만들어졌던 '버번 카운티(Bourbon County)에서 유래되었다. 사실 버번 카운티는 버지니아주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후 켄터키주로 속하게 되면서 현재 켄터키주를 대표하는 상품이 된 것이다. 흥미로운 건 현재는, 버번 카운티에서 위스키를 생산하는 증류소는 없고, 대부분이 버번 카운티 인근에서 생산된다는 점이다. 미국 내에서 술병에 버번 위스키(Bourbon Whiskey)라는 이름을 달고 싶으면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먼저 술은 미국 내 50개 주(푸에르토리코 포함)에서 생산되어야 한다. 미국 땅에서 만든 '술'만을 버번 위스키로 인정해 준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생산된 버번 위스키라고 하지만, 미국 생산량의 95% 이상은 켄터키주에서 생산되고 있어, 버번 위스키는 켄터키로 통용된다. 그다음으로 특이한 조건은 '새까맣게 그을린 참나무통에서 숙성'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단 하루라도 이 통에 넣어서 숙성을 시켜야 하는데, 옥수수에서 나오는 달콤한 맛과 참나무통의 바닐라 향이 조화를 이뤄야 버번 특유의 맛을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켄터키 버번 맛의 비밀로 이 지역의 '물'을 꼽기도 한다. 켄터키 지역의 물은 경수(硬水)라 부르는 '하드 워터(Hard Water)'인데, 이 물에는 철분이 없고 미네랄이 풍부하다. 이 때문에 켄터키주의 버번은 목 넘김이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버번 위스키는 스카치 위스키와 달리 숙성 기간이 짧은데, 4년에서 8년이면 특유의 풍미와 황금색을 얻는다. 버번 위스키의 조건 1. 미국 내에서 생산되어야 함 (푸에르토리코 포함) 2. 옥수수의 함량이 51% 이상이 되어야 함 3. 검게 태운 참나무통에서 숙성해야 함 4. 알코올 도수 80% 이하로 증류시켜야 함 5. 62.5% 이하로 참나무통에서 숙성시켜야 함 6. 40% 도수로 병입을 해야 함 2009년만 하더라도 켄터키의 버번 재고량은 460만 배럴에 불과했는데, 2023년에는 1,260만 배럴을 숙성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주정부는 버번 증류업체들에 세금 공제를 제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업체들은 대대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투자는 프리미엄 버번 또는 켄터키주에 다양한 버번 관광 산업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버번 산업은 15년 전에 비해 1천 배 나아졌다.' –'빌 사무엘스 주니어(Bill Samuels Jr.)'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 대표 켄터키주에는 다양한 버번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버번 트레일(Kentucky Bourbon Trail)이 있다. 켄터키주의 다양한 버번 증류소를 연결하는 관광 코스로, 1999년 켄터키 버번 협회에서 설립하였다. 이 트레일을 통해 여행객들은 각 증류소의 역사나 제조 과정, 시음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소규모 수제 버번 공장에서부터 대형 버번 증류소까지 모두를 만날 수 있어 켄터키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상당히 인기 있는 관광 상품이다.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버번 위스키는 지역 경제에도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켄터키주에는 현재 120개의 카운티(County) 중 인증된 증류소가 100여 곳이 넘는다. 이곳들에서 연간 16억 달러가 넘는 임금을 직원들에게 지급하고 있으며 2만 5천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또한 켄터키주의 버번 산업은 매년 9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경제에 기여하고 있으며, 버번 협회에 따르면 주정부에서 버번 위스키 관련 세금이 무려 5,000억 원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버번은 '짐 빔(Jim Beam)',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 '우드포드 리저브(Woodford Reserve)' 등을 꼽을 수 있다. 버번 위스키는 '올드패션드(Old fashioned)'나 '맨해튼(Manhattan)'과 같이 클래식한 칵테일에서부터 바비큐 소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사진 : 게티이미지
먹방과 레시피, 와인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스프에서 맛깔나게 정리해드립니다. 올해 초 2024년도를 뜨겁게 달굴 푸드 키워드 중 하나로 꼽혔던 '스위시(Swicy : 단맛(Sweet)과 매운맛(Spicy)을 합친 단어)"는 단순히 핫한 아이템을 넘어서 하나의 푸드 키워드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홀푸드 마켓은 2024년 식품 트렌드 중 '복합적인 매운맛(Complex Heat)'을 꼽기도 했다. 홀푸드뿐만 아니라 네슬레, 월마트 등 대형 식품 회사들은 매운맛이 더 유행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리고 2024년 가을이 되었다. 되돌아보면 미국 내에서 매운맛 트렌드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여전히 소비자들은 매운맛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매운맛 트렌드는 이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The spicy trend is here to stay.)" -시장 조사 기관 Circana의 고문인 샐리 라이언스 와이엇(Sally Lyons Wyatt) 음식 전문 데이터 기관인 '테이스트와이즈(Tastewise)'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달콤하고 매운맛에 대한 소셜 대화가 27.82% 증가했으며, 2023년 봄부터 여름 사이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이에 반응하듯 미국의 대형 프랜차이즈 체인 치폴레(Chipole)는 매운맛인 '치폴레 허니 치킨(Chipotle Honey chicken)'을 출시하기로 결정, 이미 소비자 테스트를 거쳤다. 치폴레 측은 스위시(Swicy), 즉 소비자들은 '달콤하고 매운맛의 조합에 대한 열정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라고 밝히며, 매운맛 소비자들에 대한 수요를 넓혀나갈 것임을 밝혔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은 매운맛은 오직 '더 매울수록 좋다'라는 기조가 있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매운맛도 맛있어야 한다'는 트렌드로 변하고 있다. 매운맛에 대한 수요는 젊은 층이 주도하며,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인 Z세대를 넘어서 알파 세대로 향하고 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월마트나 세븐 일레븐 등의 식품 매장에 들어가 보면, 스낵 코너가 점점 더 매운맛으로 가득 차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플레이밍 핫 치토스(Flamin' Hot Cheetos), 타키스 푸에고(Takis Fuego), 도리토스 플레이밍 핫 나초(Doritos Flamin' Hot Nacho)등 매운맛 과자는 10-20년 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었고, 매운맛을 사랑하는 소비자층도 확고히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과자 회사들이 매운맛 신제품을 내던 것을 넘어서, 음료와 같은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매운맛이 확산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코카콜라는 올해 2월, 신제품 '코카콜라 스파이스드(Coca-cola Spiced)'를 출시했다. 이는 3년 만에 처음으로 내놓은 새로운 영구 제품으로 코카콜라의 클래식한 맛에 라즈베리와 은은한 향신료의 맛이 섞인 것이 특징이다. 코카콜라 측은 '젊은 소비자들은 매운 음료를 시도하려는 의향이 증가하고 있으며, 식음료 전반에서 더욱 대담하고 복합적인 맛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질세라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Starbucks)에서는 4월, 새로운 한정판 레모네이드 음료 라인 3종 '스파이시 드래곤 프룻트', '스파이시 파인애플', '스파이시 스트로베리'를 선보였는데, 스타벅스 측은 "이 음료들은 달콤함과 매운맛을 창의적으로 결합한 '스위시(Swicy)' 트렌드에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젊고 다양한 미국은 더 매운맛을 선호합니다." -토드 존슨(Tod Johnson) CEO, 설카나(Circana) 식품 데이터 회사인 설카나(Circana)에 따르면, '매운맛'이라는 설명이 포함된 식음료의 매출이 전년 대비 9% 증가했다. 설카나의 자료에 따르면 25세에서 34세 사이의 소비자 중 11%가 좀 더 대담하고 예상하지 못한 맛을 즐긴다고 대답했는데, 이는 2019년 조사보다 무려 7%p나 증가한 수치다. 업계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인종적, 민족적으로 더 다양해지고 있는 결과라고 밝힌다. 기존의 전통적인 인구 구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구 통계의 변화가 더 대담한 맛의 실험을 이끄는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기존 세대의 전통적인 토마토 케첩과 마요네즈를 벗어나, 이제 젊은 세대들의 식탁 위에는 '칠리 크리스프'나 '살사 마차'는 필수적인 아이템이다.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면서 문화적으로 전 세계의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인들의 식문화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또한 미국인의 매운맛 시장에 일조했다. 팬데믹 기간동안 미국인들은 처음으로 여행을 할 수 없는 봉쇄 기간을 거치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미디어에 노출된 글로벌화된 식품들을 실제로 접하게 되면서 매운맛 카테고리는 확장되게 된 것이다. 미국 내의 매운맛 열풍 때문에 한국 식품기업들도 호재다. 2024년 삼양의 불닭볶음면은 가히 식품업계의 BTS라고 불려도 될 정도다. 불닭볶음면의 매출은 2023년 기준 6,000억 원으로 상반기에만 3,700억 원을 기록했다. 해외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78%까지 올랐다. 전통적인 라면의 강자 농심 신라면 또한 '신라면 더 레드'를 출시, 더 매운맛으로 매운맛 시장을 공략 중이다. 이처럼 독특한 맛의 매운맛이 출시되면 소셜미디어에서 급속도로 전파되며 유행을 선도한다. 과거의 마케팅 방법과는 또 다른 기회가 생겨난 것이다. 빨간 고춧가루는 늘 피자 옆에 있었지만, 이제는 사탕, 냉동식품 등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는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고 매운맛 트렌드로 인해 앞으로도 미국에서의 매운맛 시장은 더 커져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먹방과 레시피, 와인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스프에서 맛깔나게 정리해드립니다. 두툼하게 잘 구워진 스테이크와 와인 한 잔을 마시는 건 생각만 해도 군침이 흐른다. 뉴욕에 가면 뭘 먹지? 하고 생각하다 단연 떠오르는 것이 바로 '뉴욕 스테이크 New York Steak'다. 뉴요커들도 뉴욕에서 꼭 먹어야 한다고 치켜세우는 뉴욕 스테이크. 뉴욕에 여행 온 많은 분이 꼭 한 번은 먹고 간다는, 배낭여행을 와도 돈을 탈탈 털어서 무조건 먹고 간다는 그 스테이크, 대체 뭐길래 유명하다는 걸까? *뉴욕 스테이크란? 뉴욕 스테이크는 '뉴욕 스트립' 또는 '스트립 로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뉴욕에서 먼저 인기를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름이다. 뉴욕 스테이크의 역사 뉴욕 스테이크의 기원은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가 끝나고, 대규모 소고기 산업이 발전하면서 스테이크가 점차 미국 식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뉴욕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의 경제와 문화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뉴욕 스테이크도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민자들은 뉴욕 스테이크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 이민자들은 뉴욕의 식문화와 요리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유럽 중에서도 특히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은 고기 요리에 대한 풍부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스테이크와 같은 요리를 조리하는 방법과 식문화를 뉴욕에 가져왔고, 미국화된 스테이크 레시피가 탄생하게 된다. 1837년 뉴욕 맨해튼에 오픈한 델모니코(Delmonico's) 레스토랑은 뉴욕에서 스테이크를 대중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레스토랑에서 제공한 '델모니코 스테이크'는 뉴욕 스테이크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1887년에는 독일에서 건너온 이민자 피터 루거 씨가 뉴욕 브루클린 지역에 '피터 루거 스테이크 하우스(Peter Luger Steak House)'를 오픈한다. 이곳은 초기에는 단순한 식당이었지만, 품질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뉴욕 스테이크 하우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 된다. 프라임 등급의 소고기를 드라이 에이지(dry aged)한 후 구워주는데, 한국 소의 맛과는 또 다른 맛을 느껴볼 수 있다. 1950년대에는 피터 루거에서 경력을 쌓은 요리사들과 매니저들이 맨해튼으로 건너와 본인들의 스테이크 가게들을 오픈하기 시작하면서 뉴욕의 스테이크 하우스들은 좀 더 풍성해지기 시작한다. 드라이 에이징과 웻 에이징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소고기를 숙성(aged beef)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좀 더 맛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기에 요즘은 한국에서도 많이 활용한다. 소고기를 숙성하는 것만으로도 맛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숙성 방법이 있다. 소고기를 숙성하는 방법에는 드라이 에이징(dry aged)과 웻 에이징(wet aged) 두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드라이 에이징을 많이 사용한다. 드라이 에이징은 소고기를 숙성 냉장고에 걸어 놓고 몇 주 동안 기다리는 방식이다. 이 기간 영양소의 조합이 이루어져 맛과 풍미를 증가시키는데, 숙성이 끝난 고기는 양이 줄어들고 일정 부분을 제거하기 때문에 가격이 그만큼 올라가게 된다. 숙성을 거치는 과정은 꽤 까다로운데 온도와 습도 등 까다로운 컨디션을 맞춰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높은 등급의 고기만이 드라이 에이징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웻 에이징은 진공팩에 넣은 뒤 숙성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사용되는 방식이기는 하나, 드라이 에이징만큼 일반적이지는 않다. 드라이 에이징에 비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고 수분의 손실이 없다는 이점 때문에 생산자와 도매업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일반적인 웻 에이징 과정은 32°F~45°F 온도에서 4~10일 정도 소요된다. 어떻게 먹으면 가장 맛있을까? '레어(rare)', '미디엄 레어(medium rare)' 등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보았는데 뭔가 복잡하다, 그래서 그냥 미디엄 레어로 통일했다? 맞는 이야기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는 고기의 내부 온도를 꽤 정확하게 맞춰 조리해서 내어주는데, 미디엄 레어로 주문하면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다. 미디엄 레어 63도 (145°F) 미디엄 71도 (160°F) 웰던 77도 (170°F) 미국 소는 수율 등급이 있고 이에 따라 품질 등급을 나눈다. 미국 소의 품질 등급은 8가지로 나뉘지만 소비자가 주로 선택하는 건 크게 3가지다. 가장 좋은 게 프라임(Prime), 두 번째는 초이스(Choice), 세 번째는 셀럭트(Select)다. 셀렉트 등급 아래로는 커머셜(Commercial), 유틸리티(Utility) 등이 있지만, 가공-훈제 처리를 해서 사용되는 등급이라 일반 소비자들은 주로 3가지 등급을 구매하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스테이크라 하면 숯불이나 그릴 위에서 고기를 구워낸다고 생각하지만, 뉴욕식 스테이크는 엄청난 양의 버터를 함께 사용해서 구워낸다. 커다란 주물팬에서 고기를 굽다 마무리 단계에 상당한 양의 버터를 넣고 구워주는데 이 때문에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으로는 조금 느끼하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뉴욕 스테이크 하우스 - 피터 루거 스테이크 하우스 (Peter Luger Steak House) 1887년에 설립된,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스테이크 중 하나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 미국 최고의 스테이크 하우스로 선정된 바 있음. - 벤저민 스테이크 하우스 (Benzamin Steak House) 피터 루거에서 근무했던 Benjamin Prelvukaj 씨가 2006년 오픈한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 -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 (Wolfgang’s Steakhouse) 피터 루거에서 근무했던 Wolfgang Zwiener 씨가 2004년에 설립한 곳. 피터 루거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좀 더 현대적인 분위기를 표방한다. - 킨 스테이크 하우스 (Keens Steak House) 1885년에 설립된 또 다른 전통적인 스테이크 하우스로, 초기에는 남성 전용 소셜 클럽으로 시작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오래된 역사의 인테리어를 즐길 수 있으며, 천장에 있는 담배 파이프는 이곳의 상징적인 장식으로 유명하다. - 스미스 앤 울렌스키 (Smith & Wollensky) 1977년에 오픈한 이곳은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에 등장해 유명세를 탔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독특한 드라이 에이징 기술은 '쇠고기를 함께한 최고의 순간'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뉴욕 스테이크 직접 요리하기 뉴욕에서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길다면 직접 스테이크를 구워 보아도 좋다. 뉴욕의 유기농 마켓인 홀푸드 마켓에서 스테이크용 뉴욕 스트립과 맛있는 와인 한 병을 구입해도 레스토랑보다 비용이 저렴하니, 직접 요리해 보는 것도 좋은 옵션이다. 스테이크 요리 팁 1) 스테이크 고기는 굽기 전 충분한 시간을 준다. 2) 고기 위에 소금을 뿌린 뒤 적어도 30분은 시간을 두어야 고기가 차분해진다. 3) 무쇠팬을 활용한다. 무쇠팬을 최대한 달군 뒤 고기를 구워주면 되는데, 팬이 달궈지지 않으면 고기가 팬에 덕지덕지 달라붙게 된다. 4) 고기를 굽는 건 속도와의 싸움이다. 각 방향으로 4분씩 구워낸 고기에 버터 한 조각을 넣고, 녹아내리는 버터를 끼얹어 주면서 마무리한다. 팬에서 모두 구워낸다는 생각보다는 80%만을 굽는다고 생각하고 마무리해야 완벽한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5) 굽고 난 스테이크는 곧장 서빙하지 않고 최소 5분의 시간을 두어야 내부 열로 맛있게 변신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
학교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먹던, 나무젓가락에 프랑크 소시지를 꽂아 반죽 묻힌 뒤 튀겨낸 핫도그. 설탕과 케첩을 듬뿍 발라먹는 새콤달콤한 그 맛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한국식 핫도그는 당연히 미국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K푸드 열풍에 따라, 미국인들 입맛도 변하고 있다. 2023년 NBC 방송은 '미국에서 한국식 핫도그 열풍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와 같은 대도시를 넘어 미국 중서부와 남부까지 뻗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젠지(Gen Z)가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무수한 게시물을 올릴 정도로 인기였고, 이전보다 그 열기가 조금은 식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식 핫도그의 인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은 핫도그 아닌 콘도그(Corn Dog) 미국에서 한국식 핫도그는 '콘도그(Corn Dog)'라고 부르며, 콘도그는 텍사스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텍사스 지역 독일계 이민자들이 독일식 프랑크푸르트 소시지가 잘 팔리지 않자, 밀가루와 옥수수가루를 섞은 반죽을 감싸 튀겨낸 요리를 고안해 낸 것이었다. 이후 1946년 데이브 바람(Dave Barham)이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의 머슬 비치에서 '핫도그 온 어 스틱(Hot dog on a stick)'을 오픈하면서 콘도그는 미국 사회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미국식 콘도그는 해변의 놀이공원이나 카니발, 혹은 스포츠 행사의 부스에서 인기를 끌었으며, 슈퍼마켓 냉동 코너에서도 쉽게 데워먹을 수 있는 상품으로 판매하곤 한다. 미국에서 핫도그(Hot Dog)란? 미국에서 핫도그라고 하면 부드러운 롤빵에 기다란 소시지 하나를 넣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기호에 맞춰 케첩과 머스타드 소스를 뿌려주거나 다진 양파나 렐리쉬 정도를 넣어 먹곤 한다. 잘 만든 햄버거가 한 끼 식사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면, 핫도그는 여전히 쉽고 가볍게 즐기는 음식으로 통용된다. 뉴욕의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핫도그 푸드 카트는 대부분 노란색과 파란색의 파라솔을 꼽고 운영하는데 이는 뉴저지주의 사브렛(Sabrett)사가 만들어낸 소시지를 사용한다는 의미다. 과거 코카콜라가 가게의 간판을 대신 만들어 주면서 코카콜라의 상호를 간판에 넣은 것처럼, 사브렛사는 핫도그를 판매하는 카트에 파라솔을 무료로 제공하며 광고하는 것이다. 과거 뉴욕의 푸드 카트들은 나무 재질로 만들어졌었는데 이 때문에 소시지를 굽거나 훈연시키기에는 불편했었다. 이후 스테인리스 재질의 푸드 카트로 바뀌면서 소시지를 다루는 방법이 변하였다. 뜨거운 물을 넣은 통에 소시지를 담가 놓고 퉁퉁 불은 소시지를 내주기 시작하면서 푸드 카트들은 이전보다 좀 더 쉽게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이러한 형태의 푸드 카트들은 성업하게 되지만 고객들 사이에서는 '더러운 물의 핫도그(Dirty water Hot dog)'라는 애칭도 생겨나게 된다. 처음에는 푸드 카트에서 소시지를 얼마나 오랫동안 뜨거운 물에 담가 뒀는지를 모른다는 의미의 비꼬는 말투로 이런 말이 생겨났지만, 이제는 귀여운 애칭에 불과하다. 뉴욕의 핫도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네이선스 페이머스(Nathan's Famous)'다. 1916년도에 오픈한 이곳은 폴란드 이민자 핸드 워커(Nathan Handwerker) 씨가 뉴욕 코니아일랜드 근처의 핫도그 매점에서 일한 경험과 아내의 비밀 요리법을 바탕으로 시작한 곳이다. 사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는데, 이제는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된 핫도그 먹기 콘테스트 때문이다. 매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개최되고 있는 네이선스 핫도그 콘테스트는 미국 독립 기념일에 미국에 온 외국 이민자들로 구성된 참가자들을 통해 자신들의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핫도그 섭취를 통해 표현한다는 마케팅에서 비롯되었다. 핫도그 먹기 컨테스트는 미국 케이블 채널인 ESPN을 통해 생중계되는데 동시간대 무려 90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으며 대형 먹방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유명한 행사에 더욱 눈길을 가게 한 것은 한국인 우승자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소냐 토마스(Sonya Tomas, 한국명 이선경)'는 블랙 위도우(The Black Widow)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데, 미국의 각종 먹방 컨테스트에서 무수한 수상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온 그녀는 2011년 10분에 40개의 핫도그를 먹음으로써 우승하게 되며, 2012년도에는 46개로 우승, 2013년도에도 36과 3/4개를 먹으면서 36개를 먹은 줄리엣 리(Juliet lee)를 제쳐 우승을 거둔다. 뉴욕에서 또 한 곳의 핫도그 포인트는 바로 그레이스 파파야(Gray's Papaya)다. 유명 미드인 섹스인더시티에 컵케이크로 유명한 매그놀리아와 함께 소개된 이곳은 저렴한 가격 때문에 항상 인기 만족인 곳이다. 여전히 싱글 핫도그 가격이 2.95불로 저렴하며, 불경기 때는 가격을 내려받는다. 실제로 금융위기였던 2010년도에는 'Recession Special'을 출시, 핫도그 가격을 50센트(약 600원)로 내리며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의 든든한 배를 채워주기도 하였다. 뉴욕 사람들이 빵과 소시지, 머스타드, 사우어 크러스트나 양파를 얹어 먹는 반면 미시간 지역에서는 토마토 베이스의 칠리소스를 소시지 위에 얹어 내기도 한다. 시카고 지역에서는 양귀비 씨앗의 빵(Poppy Seed bun)에 피클, 셀러리 소금, 토마토, 양파를 듬뿍 넣어 먹으며, 캔자스시티에서는 스위스 치즈를 넣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들어 셰프들이 좋은 재료로 만들어내 핫도그나, 김치를 토핑으로 얹어낸 김치 핫도그도 생겨나는 등 미국에서는 더 맛있는 핫도그를 위한 진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도 캠핑 가면 맛있는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일상인 것처럼, 날씨 좋은 주말이면 미국 사람들은 언제나 고기를 굽는다. 집 앞마당에서, 공원의 바비큐장에서, 풋볼 경기가 열리는 스타디움 주차장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어디에서나 지글거리는 고기 향은 가득하다. 한국 사람들은 숯불이나 가스불을 직화 방식으로 활용해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선호한다면, 미국에는 다양한 바비큐 방법이 있다. 고기를 굽는 행위를 바비큐로 간주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바비큐는 장시간, 최대 20시간 정도까지 간접적인 열을 가하거나 뜨거운 연기를 쐬게 해 고기를 익히는 요리다. 오랫동안 천천히 고기를 익히면 육즙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데다 향신료 맛, 훈연 향까지 전부 합쳐지기 때문이다. 바비큐는 19세기 미국 남부에서 더없이 중요한 음식이었다. 남부 바비큐는 대부분 그 지역에 정착한 이민자들과 그들이 가져온 재료들에 따라 구분된다. 예를 들어 노스캐롤라이나 바비큐는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에 의해 그 맛과 모양이 완성되었고, 사우스캐롤라이나 바비큐는 독일인과 프랑스인에 의해 발전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식습관에 따라 돼지고기를 비롯해 쇠고기, 닭고기, 그리고 칠면조까지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바비큐로 조리했다. 무엇보다도 바비큐는 한 번에 많은 양을 조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러 행사나 정치 집회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 됐다. 바비큐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간 계기는 노예 해방이었다. 남부 지역에 거주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산업화 물결을 따라 서부와 북동부로 이주했다. 이 이주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바비큐 레시피를 가져왔고, 남부 음식이었던 바비큐는 곧 미국 전역에서 먹는 음식으로 변모했다. "미국의 바비큐 4대장" 캐롤라이나 – 텍사스 – 멤피스 – 캔자스시티 미국에는 저마다의 바비큐 스타일이 존재하지만, 크게 보면 '바비큐 벨트(barbecue belt)'로 알려진 지역이 네 곳 있다. 캐롤라이나, 텍사스, 테네시(멤피스), 미주리(캔자스시티)인데, 각기 다른 독특한 맛의 바비큐 전통을 자랑한다. 캐롤라이나주와 테네시주 멤피스는 돼지고기 바비큐를 즐겨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와 텍사스주에서는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기로 바비큐를 만든다. 엘비스 프레슬리, 비비킹 등을 배출한 미국 대중음악의 고향인 멤피스에서는 돼지갈비 바비큐와 바비큐 샌드위치가 유명하다. 돼지갈비 바비큐는 소스를 발라 굽는 웨트(wet)와 가루 양념을 발라 굽는 드라이(dry)로 나뉜다. 멤피스 바비큐 샌드위치는 돼지고기 어깨살에 파프리카, 마늘, 양파 가루를 섞은 시즈닝을 바른 뒤 낮은 온도에서 12시간 정도 익혀 잘게 찢은 풀드포크(pulled pork)를 빵에 싸 먹는 간단한 음식이다. 멤피스 지역의 바비큐 소스는 설탕과 케첩, 식초가 듬뿍 들어 있어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멤피스 지역에서는 과거부터 사탕수수 재배가 많이 이뤄져 설탕이 흔했고, 이를 케첩과 섞어 맛있는 바비큐 소스를 만들게 된 것이다. 캔자스시티 바비큐는 남북전쟁 이후 남부에서 건너온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의해 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남부의 각 지역에서 캔자스시티로 온 사람들은 다양한 고기를 바비큐로 조리해 소스를 곁들여 먹었는데, 이 가운데서도 1900년대 초 멤피스 출신인 헨리 페리(Henry Perry)가 캔자스시티에서 문을 연 바비큐 가게의 매콤한 바비큐 소스는 캔자스시티를 넘어 미주리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헨리 페리는 '캔자스시티 바비큐의 아버지'로 여겨지며 그의 레스토랑은 1920년대와 1930년대 캔자스시티 재즈 음악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주요 문화 거점이 되어 많은 관광객이 몰리기도 했다. 캔자스시티 바비큐는 커민과 겔러리, 소금 등 여러 종류의 향신료를 섞은 드라이 시즈닝을 고기에 바른 뒤 오크와 히커리 나무로 천천히 훈제를 한다. 이곳의 바비큐 소스에는 토마토와 설탕, 칠리파우더, 식초가 들어가 달콤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맛을 낸다. 캐롤라이나 바비큐는 돼지고기를 구워 식초 베이스의 소스를 발라주는데, 돼지고기의 느끼한 맛을 균형 있게 잡아준다. 대서양 연안 지역에서는 식초와 후추로 소스를 만드는 동부 스타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캐롤라이나의 바비큐 소스는 그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 이민자들의 입맛에 맞게 북쪽과 남쪽의 소스 맛이 명확하게 갈리게 되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홀호그(whole hog–호그 82kg 이상의 거세한 돼지)라 불리는 커다란 돼지의 모든 부위를 바비큐한 뒤 잘게 다지거나 뭉쳐서 먹는 것이 특징이다. 영국 이민자들이 거주했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식초와 토마토, 설탕을 섞어 만든 새콤한 바비큐 소스를 뿌려 먹는 반면, 프랑스와 독일 이민 인구가 많았던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머스터드 베이스의 바비큐 소스가 특징이다. 노란 머스터드에 식초, 흑설탕 등을 섞어 '캐롤라이나 골든 소스'라 불리는 노란색 바비큐 소스를 만들며, 이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노란색을 상징하기도 한다. 텍사스는 광활한 면적만큼이나 여러 가지 맛과 모양의 바비큐가 유명하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돼지갈비와 소고기 브리스킷(Brisket) 바비큐다. 소고기 양지 부위를 오랫동안 훈제해 시꺼메질 때까지 굽는 바비큐는 이제 한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인기가 있다. 주문을 하면 따끈따끈한 쇠고기를 2-3밀리미터 정도로 얇게 썬 뒤 흰 빵이나 옥수수의 거친 맛이 살아 있는 콘브래드 위에 올려내어 주는데, 이를 피클과 함께 먹는 맛은 가히 일품이다. 미국의 피클은 한국의 달콤한 피클 맛과 달리 시큼하고 짠데 바비큐 고기와 잘 어울린다. 사진 : 게티이미지
고금리-고물가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인의 자존심인 맥도날드도 인플레이션을 피해 가지 못하였는데, 올초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이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의 컴플레인을 받고, 6월 25일 맥도날드는 고물가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5달러짜리 저가 햄버거를 출시하였다. 이에 경쟁사인 버거킹은 미국 내 전 가맹점주들에게 '그들(맥도날드)이 가격을 내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겠다'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유독 햄버거 가격에는 유달리 민감한 편인데,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사람들이 자신 있게 '미국 음식'이라고 꼽는 것은 단연 '햄버거'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음식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햄버거 하나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기에, 햄버거는 미국 내에서 특별한 음식이다. 2019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대학 풋볼 챔피언에 오른 클렘슨 대학 선수단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이날 만찬에는 아주 특별한 메뉴가 선보였는데 다름 아닌 맥도날드, 버거킹, 웬디스의 햄버거와 감자튀김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패스트푸드가 잔뜩 놓인 테이블 앞에서 '위대한 미국 음식(Great American Food)'라고 하며 '이것들은 모두 미국적인 것'이라고 칭했다. 야구 경기장, 쇼핑몰, 허름한 델리 가게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햄버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쉽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고, 사람들은 햄버거를 즐긴다. 한국에서는 '프리미엄 버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미국에서는 '버거 조인트'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다양한 공간에서 항상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버거를 향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고급 식당에서도 질 좋은 소고기를 활용해 버거를 만들어 내는 한편, 뉴욕의 유명 스테이크 하우스인 피터루거에서도 점심시간에는 햄버거 메뉴를 제공한다. 햄버거(Hamburger)와 버거(Burger)의 차이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버거'는 포괄적인 의미로 빵 사이에 고기류를 넣은 것을 의미한다. 버거 안에는 소, 돼지, 치킨, 칠면조, 야채 등 다양한 종류의 재료를 넣을 수 있는 반면, '햄버거'의 경우에는 오직 '소고기 패티'만을 사용한 것을 일컫는다. 19세기 중반 미국으로 이민온 독일인들은 함부르크 항을 떠났고 도착까지 몇 달이 걸리기도 했다. 그들이 떠나온 곳에서는 고기를 잘게 썰어 패티를 만들어 요리하고, 감자와 그레이비 소스가 든 함부르크 스테이크를 먹었다. 당시 맨해튼 곳곳에서 함부르크 스테이크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음식 카트뿐만 아니라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인 '델모이코'와 같은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함부르크 스테이크가 햄버거 형태로 바뀌는 데는 30년 정도가 더 걸렸다. 고기를 빵에 싸서 먹기 시작한 시기는 1855년에서 1900년 사이로 추정되며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다. 그 가운데서도 미국 햄버거의 기원은 동부의 코네티컷 주에서 찾을 수 있다. 1900년 즈음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에 위치한 루이스 런치(Louis' Lunch)라는 곳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신사가 찾아와 급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부탁했다. 그러자 주인인 루이 라센(Louis Lassen) 씨는 순식간에 식빵 두 쪽에 갈아 놓은 고기를 구워 놓은 것을 넣어서 주었다. 일종의 햄버거 샌드위치였던 것이다. 115년이 지난 지금도 루이스 런치에서는 여전히 두 조각의 하얀 토스트 사이에 같은 버거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 최초의 햄버거로 알려져 있다. 사실 햄버거의 기원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1885년 위스콘신 주 시모어(Seymour)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찰리 나그린(Charlie Nagreen)'이 빵 사이에 미트볼을 팔았다는 설도 있고, 1880년대 텍사스 아테네에서 '햄버거 크리에이터(Hamburger creator)'라는 기원도 찾아볼 수 있다. 햄버거는 초기엔 비위생적인 음식 카트에서 공장 노동자들에게 파는 값싼 식사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1921년 빌리 잉그램(Billy Ingram)이라는 한 남자가 첫 번째 '화이트 캐슬(White castle)을 오픈하면서 햄버거는 세상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빌리 잉그램은 버거 사업에서 가능성을 보았고, 직원들에게는 깨끗한 유니폼과 흰색 종이모자를 씌웠다. 그리고 가게는 하얀 벽돌성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로 꾸몄는데 '화이트 캐슬'의 화이트는 '청결함'을 뜻했고, 이는 고객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또한 화이트캐슬은 최초로 햄버거의 빵을 통일시켰다. 기존의 햄버거 가게가 동네의 베이커리에서 빵을 받아쓰던 것에서 벗어나, 공장에서 생산된 균일한 빵을 사용함으로써 통일감을 유지했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미국에서 세계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은 햄버거에게는 기회의 시간이었다. 젊은 남자들은 전쟁에 참여하고, 배급이 부족해지면서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게 된다. 하지만 이 기간 햄버거는 기계로 만들어내는 냉동 쇠고기 패티를 비롯해, 냉동 감자튀김의 발명까지 합쳐져 오히려 더 많은 수요를 유지했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자동차 산업의 성장과 함께 햄버거 사업은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프랜차이즈 햄버거 맥도날드의 시작 멀리서 '골든아치'만 보아도 이제는 떠올릴 정도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햄버거 프랜차이즈는 맥도날드(Mcdonald's)다. 1940년대에 3명의 파트너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1955년 프랜차이즈 에이전시였던 레이 크록(Ray Kroc)이 회사를 구입, 맥도날드를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화시킨다. 1955년, 일리노이주에 첫 매장을 오픈, 5년 후 미국 전역에 200여 개의 매장으로 확장시켰다. 이후 급속하게 성장하여 현재 전 세계 120개국 3만 7천여 개의 지점(미국 내 약 1만 3,500개)을 확보 중이다. 전 세계 경제 지표 중 하나인 '빅맥 지수(Big Mac Index)'로 각 나라의 화폐 가치를 알 수 있는데, 스위스 (8.17달러)와 노르웨이(6.26달러)가 상위권이며, 이에 반해 한국은 2024년 1월 기준 4.11달러다. 빅맥 지수를 기준으로 미국 가격과 비교하여 통화가 고평가되었는지, 저평가되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맥도날드를 뒤따르는 브랜드는 버거킹(Burger King)이다. 미국 플로리다에 본사를 둔 버거킹은 미국 내 7,043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맥도날드에 '빅맥'이 있다면, 버거킹에는 '와퍼(Whopper)'가 있다고 할 정도로 경쟁 메뉴다. 버거킹 역시 전 세계에서 운영되는데, 단 한 국가 '호주'에서만큼은 '헝그리 잭(Hungry Jack's)'이라는 상호로 운영된다. 1971년 당시 호주 애들레이드에는 '버거킹'이라는 상호를 가진 곳이 있었다. '버거킹'이라는 상호를 사용할 수 없자, 고민 끝에 버거킹 본사는 버거킹의 관계사인 필스베리의 팬케익 브랜드인 'Hungry Jack'을 골랐다. 버거킹을 호주로 가지고 온 사람의 이름은 '잭 코윈'의 이름을 고려해 어퍼스트로피를 추가, 지금의 Hungry Jack's로 시작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이외에도 너무나 다양한 스타일의 햄버거를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쉐이크셱' 버거가 대표적이다. 2004년 뉴욕의 사업가 대니 마이어가 만든 쉐이크셱은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을 했을 정도로 인기 있는 브랜드다.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공원 복구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핫도그 카트를 운영하면서 시작하였는데, 이후 너무 많은 인기를 끌어서 공원 내에 가게를 설치하여 정식으로 오픈하게 된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미국 전역으로 진출하였고, 이제는 미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동부에 쉐이크셱이 있다면, 서부에는 인앤아웃(In and Out) 버거가 있다. 이 브랜드의 특징은 품질 관리를 위해 중서부 지역 이상으로는 확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버거 브랜드와 비교해 가격이 합리적이며 조리 시간이 조금 긴 것이 특징이다. 이 브랜드는 가게 내에 냉동고가 없기로 유명한데, 프렌치프라이를 만들 때 냉동 감자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생감자만을 사용한다. 메뉴도 딱 4종류로 정해 놓았는데 다른 프랜차이즈들이 분기별 신메뉴를 내어 놓는 것과 비교해 보면 특별한 운영 방식으로 판단된다. 사진 : 게티이미지
다양한 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 내는 곳이 미국이다.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멜팅팟(melting pot)이라고도 불리는데,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각지에서 미국으로 건너와서 '미국식'으로 변형된 음식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것이 '텍스멕스(Tex-Mex)다. 텍스멕스는 미국의 텍사스식 음식과 멕시코의 음식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단어로, 미국화된 멕시코 음식을 일컫는다. 텍스멕스는 '테자노 문화(Tejano Culture)'에 뿌리를 두고 있다. 테자노 문화란, 텍사스 공화국이 형성되기 전 텍사스에 살았던 스페인과 북부 멕시코 출신 이민자들에 관한 것들이다. 1500년대 초반 최초의 유럽인 정착민들이 도착하기 전, 북미 원주민들은 수천 년 동안 지금의 텍사스 지역에서 거주했다. 그 후 300년 이상 텍사스는 뉴 스페인으로 알려진 스페인 식민지의 일부였고, 텍사스와 멕시코는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된 1821년 이후에도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텍사스는 15년 뒤 독립을 쟁취했고, 1845년 미국의 일부가 되었다. 남북전쟁 이전까지는 텍사스 지역의 음식과 멕시코 북부의 음식에는 특별한 차이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카브리토(Cabrito - 새끼 염소 요리), 카르네 세카(Carne seca - 말린 소고기)와 같이, 목장에서 생겨난 음식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철도가 생기고 화물이 오고가기 시작하면서 미국에서 생산된 다양한 식재료들이 이 지역으로도 전파되었다. 가공치즈나 연유 등 미국의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된 식재료들이 유입되기 시작되며 본격적인 텍스멕스 음식들이 등장했다. 초기에 등장한 음식은 칠리 콘 카르네(Chili con carne)였다. 1880년대 텍사스주 샌안토니오(San Antonio)시의 광장에서 '칠리 퀸즈(Chili queens)'로 알려진 한 무리의 여성들이 싸고 맛있는 멕시코식 음식을 판매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칠리 콘 카르네 한 그릇과 빵, 물 한 잔이 10센트에 판매되었는데, 이 맛있는 음식은 이내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게 된다. 이후 칠리 콘 카르네는 처음 미국 주류로 진입한 텍스멕스 음식이 된다. 이 음식의 엄청난 인기는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콜롬비아 박람회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텍사스 대표단은 박람회 관람객들에게 호응을 얻기 위해 박람회장에 가판대를 만들어 '칠리 콘 카르네'를 나눠주기도 할 정도로 텍사스를 대표하는 텍스멕스 음식이 되었다. Texas-Mexican Railway 사진 출처 : https://www.american-rails.com '텍스멕스'라는 단어는 1875년 텍사스주와 멕시코를 오가던 철도 노선에서 기원되었다. 그 당시 열차 시간을 보여주던 신문에서는 철도 노선의 이름을 줄여서 표기하였는데, 텍사스와 멕시코 사이를 운행하던 열차를 Tex. Mex.라 줄여 표기하였던 것이다. 1920년대 들어 두 단어를 잇는 하이픈이 생겼고, 현재의 텍스-멕스로 사용되기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이후 텍사스에서 태어난 멕시코 교포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불리며 인종 차별적인 단어로 문제가 되기도 하였는데, 텍사스에 사는 멕시코 혈통의 사람들을 더 정확하게는 테야노스(Tejanos)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텍스멕스는 "토종 외국 음식(Native foreign Food)"다. -저널리스트 웨이벌리 루트 (Wavely Roots)- 텍스멕스와 멕시코 음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식재료다. 미국으로 건너온 멕시코 음식에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치즈나 사워크림, 가공된 콩이 추가되었다. 특히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는 노란 치즈인데, 건강 문제만 빼면 치즈는 텍스멕스라는 새로운 요리를 만들기 위해 두 문화를 융합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텍스멕스에는 커민(Cumin 향신료)의 사용이 많은데, 멕시코 현지에서는 커민을 사용하지 않는다. "텍스멕스에는 멕시코 음식보다 커민(Cumin)이나 치즈의 사용이 많다." 대표적인 텍스멕스 음식으로는 칠리 콘 까르네(Chili Con Carne), 파히타(Fajitas), 나쵸(Nachos), 브랙퍼스트 타코(Breakfast Tacos) 등이 있다. 텍스멕스 스타일의 엔칠라다는 고기, 치즈, 감자, 야채를 옥수수 또띠야 속에 넣고 칠리페퍼 소스와 함께 오븐에서 구워 낸 것이지만, 멕시코 현지의 엔칠라다는 손가락 두께의 얇은 크기에 치즈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차이점이다. 멕시코 요리에 관한 권위자 중 한 명인 영국 태생의 음식 작가 '다이애나 캐네디(Diana Kennedy)는 텍스멕스가 1960년대 후반 미국식 중국 음식인 찹수이(Chop suey)와 차우민(chow min)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게 된 텍스멕스는 미국 내에도 널리 알려진 프랜차이즈로도 성장하게 되는데, 타코벨(Taco Bell), 치폴레(Chipole), 큐도바(Qdoba) 등이다.
뉴욕의 아침과 함께 시작하는 음식은? 단연 베이글(Bagel)이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다양한 맛으로 즐길 수 있는 베이글의 고향은 이곳 뉴욕이다. 미국에서 아침 식사는 달걀 요리, 머핀, 오믈렛 등 다양하게 찾을 수 있지만, 뉴욕의 아침을 책임지는 것은 단연 베이글이다. 길에서 커다란 베이글과 커피 한 잔을 들고 걸어가는 뉴요커를 보는 건 일상적이다. 2021년 레스토랑 기고가 테잘 라오(Tejal Rao)는 뉴욕타임스에 '최고의 베이글은 캘리포니아에 있다(미안해 뉴욕)'(The Best Bagels are in California(Sorry, New York))이라는 기사를 썼다. 맨해튼에 거주했던 이가 캘리포니아 베이글을 최고로 선정했다는 사실에 뉴욕 베이글 전문가들은 곧장 분노를 표출했다. "캘리포니아가 베이글로 맞붙길 원한다면 난 준비되어 있다!" - 스콧 로실로, 브루클린 베이글 스토어 오너 "우리는 매일 우리의 베이글을 캘리포니아로 배송하고 있다." - 멜라니 프로스트, 에싸 베이글(Ess-a-Bagel) 총괄 책임자 '뉴욕 베이글 맛에는 뉴욕의 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수의 사람들은 뉴욕 베이글이 맛있는 이유를 뉴욕의 물 때문이라 주장한다. 뉴욕의 물을 활용해 만들어내는 뉴욕 피자와 맥주가 맛있는 것처럼, 베이글 또한 뉴욕의 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반유대인 법(Antisemitic laws)' 제정으로 많은 아슈케나짐(Ashkenazi Jews)이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25만 명의 유대인들이 미 동부 지역으로 이주해 정착하기 시작했고, 또한 이 시기 동유럽 유대인 이민자들도 미국으로 오면서 미국 내 유대인의 수는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현재 뉴욕시의 인구는 900만 명 정도인데, 이 중 유대인 수는 1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상당히 많다. 과거부터 먹던 베이글이 현재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도, 이처럼 유대인이 많이 거주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종교적인 제약 때문에 '코셔(Kosher)'로 만든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 이 코셔 음식은 대단히 복잡한 교리를 따르고 있는데, 식재료가 제한되고 조리 공간도 코셔 인증을 받아야 하며, 코셔 인스펙터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물과 밀가루, 소금 그리고 약간의 이스트만이 들어가는 베이글은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바쁜 아침 베이글과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면서 베이글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베이글 반죽을 만드는 데는 긴 막대기가 필요했는데, 이 막대기를 활용해 반죽을 밀고, 가운데 동그란 구멍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다 구워 낸 베이글은 이 긴 막대기에 걸어놨다. 20세기 초반 뉴욕에서는 이 긴 막대기에 베이글을 걸어서 들고 다니며 판매하던 진풍경도 있었다. 1915년도에 만들었던 베이글은 85그램 정도의 작은 컵 사이즈였는데, 현재는 170그램 정도로 두 배 이상 커졌다. 이 시기 뉴욕에는 베이글 전문가들의 조합인 '베이글 베이커 로컬 338(Bagel Baker Local 338)'이 결성되었다. 전 세계에서 건너온 이민자들 중 실력 있던 베이커들이 이 조합에 가입하였고, 반죽과 발효, 레시피 개발과 같은 연구를 하였다. 이들은 '베이글은 꼭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Handcraft)'고 주장했는데, 기계로 만든 베이글과 손으로 만든 베이글은 확연히 맛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역겹고 기괴하다" 비판받았던 '베이글 게이트' 한때 '뉴욕 베이글은 손으로 만드는 곳이 맛있다'라고 전해졌었지만, 1970년대 말 기계화가 시작되었다. 1960년대 톰슨(Tompson) 사에서 전자동 베이글 반죽 기계를 개발, 미국 전역에 베이글 공장을 세웠다. 수작업을 고수하던 맨해튼 가게들도 차츰 공장에서 만들어낸 베이글을 받아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만들어낸 베이글은 가격이 싸고 재고 관리가 수월했던 탓에 수제 베이글의 시대는 그렇게 저물게 되었다. 베이글은 물과 밀가루, 소금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며 반죽 후 도넛과 같이 가운데 동그란 모양을 잡아주는 것이 특징이다. 반죽을 물에서 익힌 뒤 오븐에서 구워내기 때문에 겉면은 매끄럽지만 속은 쫄깃한 맛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만든 베이글의 맛은 담백하지만, 미국인들 입맛에는 조금은 심심했다. 베이글이 동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미국인들은 베이글의 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버터를 듬뿍 바르기도 했고, 크림치즈를 발라서 먹기도 했다. 크림치즈 또한 플레인 맛에서 다양한 맛으로 변화되었고, 현재는 딸기, 초콜릿, 어니언 등 다양한 맛의 크림치즈를 곁들인다. 여기에 든든한 한 끼를 위해 달걀이나 훈제 연어를 넣어 주는 곳들도 생겨났다. 간단한 베이글에서 풍성한 아침 식사로 변화한 것이다. 2018년 뉴욕에서는 '베이글 게이트(Bagel gate)'로 불리는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유명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인 배우 신시아 닉슨은 뉴욕 주지사에 도전했다. 신시아 닉슨은 맨해튼 어퍼 웨스트 사이드의 유태인계 슈퍼마켓인 제이바(Zabar's)에서 시나몬 레이즌 베이글에 훈제 연어, 크림치즈, 케이퍼, 적양파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주문하였다. 이 모습을 본 뉴요커들은 '어떻게 단맛의 시나몬 레이즌 베이글과 훈제 연어의 조합이 가능한가?'라면서 '이는 정말이지 역겹고 기괴한 식성'이라며 베이글에 관한 뉴요커들의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여행 와 한인타운에서 맛있게 순두부찌개를 먹고 난 후 받아 든 계산서. 계산서를 자세히 보면, 음식 가격, 세금, 그리고 팁이 기다리고 있다. 점심에 간단하게 즐긴 순두부찌개 한 그릇의 가격은 18달러, 여기에 세금 1.5달러(뉴욕 기준 8.875%)과 팁 3.24달러(18% 기준)가 더해져, 총 22.74달러(약 2만 9,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맛있게 먹은 점심인데 왠지 무엇인가 도둑맞은 느낌이다. 미국에서 팁(tip)은 일상적인 문화이지만, 팁을 얼마를 주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최근 미국에서는 '팁플레이션(Tipflation)' 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팁플레이션'은 팁(tip)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팁의 비율이 상승했다는 걸 가리킨다. 팁은 주로 레스토랑과 같은 서비스 업종에서만 통용되었지만, 최근 대부분 사업 영역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자동 세차장, 심지어 음식을 픽업하는 'Take-out' 식당이나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매장에서도 팁을 요구한다. 미국에서는 할 수 없이 팁을 내야 하는 상황을 두고 '팁 소름(Tip Creep)', '티핑 피로(Tipping Fatigue)'과 같은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팁플레이션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비대면 결제가 확산되며 자리잡게 되었다. 과거 팁은 종업원이 들고 온 계산서에 별도로 지불하던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POS(Point of Sales) 기계나 키오스크에서 직원이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이 웃으며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노팁' 을 누르거나 '적은 양'의 팁을 내기에는 죄책감과 쫓기는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적당한 팁을 누르게 된다. "심리적 압박감과 죄책감 때문에 실제 지불 의사보다 더 많은 팁을 남기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점심에는 '15~18%', 저녁에는 '18~20%'를 팁으로 내면 된다는 공식이 깨어진 건 오래전 일이다. 이제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최소 18% 이상의 팁을 제시하는 곳이 많아졌으며, 25%~30%까지 요구하는 곳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의 팁(Tip)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팁 문화는 16세기경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귀족이 하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의미였으며, 미국에서는 노예제가 철폐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 부자들은 유럽의 귀족들을 따라하곤 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팁 문화'였다. 그 시절 미국인들은 팁을 주고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다. 팁을 주는 것이 '잘난 체'하는 것처럼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작가 '자야라만'은 그의 책 'Forked : A New Standard for American Dining'에서 '팁을 주는 것은 비열하고 비민주적이고 미국인답지 못하다'라고 쓰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팁 문화는 백인들이 흑인들을 고용하지만 금전적인 보상은 주지 않고, 팁을 비롯한 부수입에 의존해 살아가도록 변질되었다. 종업원, 파출부 등은 무조건 흑인이다. 흑인들은 당연히 팁을 받는다. 주는 쪽도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흑인이 열등하기 때문에 팁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백인 남성이 팁을 받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혹스러울 것이다. - 기자 존 스피드의 팁에 관한 기사, 1902년 이 시절의 팁 문화에는 인종 차별적인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식당, 호텔, 파출부 등 손님은 부유한 자들이, 종업원은 하층민인 업종에서 특히나 더 두드러졌다. 미국에서의 팁 문화는 이 시기를 거치며 미국 사회에 자리잡게 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게 된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중앙정부의 '연방 최저임금'과 각 주가 정해 놓은 '주별 최저임금' 중 더 높은 것을 사용하면 된다. 조지아주의 경우 시간당 최저임금은 7.25달러이지만, 팁을 받는 노동자(Tipped Minimum Wage)의 경우 2.13달러로 대단히 낮다. 팁의 유무에 따라 노동자의 권리를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단 8개 주만이 동일한 최저임금을 보장한다. 42개 주에서는 팁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더 적은 최저임금을 지불해도 되게끔 법이 제정되어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팁 노동자와 일반 노동자 모두 최저시급을 적용받으며, 최근 시카고 시 의회도 팁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제를 단계적으로 없애기로 합의했다. (미국 내에서 팁을 받는 노동자는 약 600만 명으로 추정된다.) 팁을 많이 받게 하는 것은 임금을 적게 주어도 되는 고용주와 실질 소득이 늘어나는 직원에게 모두 좋은 소식으로 들린다. 하지만 고용주들은 본인들이 내야 할 인건비의 일부를 손님들의 팁으로 채워왔고, 특히 코로나를 거치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고용주들은 '팁플레이션'을 더 애용하고 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Institute for Economic Policy)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팁을 받는 근로자는 그렇지 않은 근로자보다 더 많은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고 나타났다. 팁을 받지 않는 노동자에 비해 소득 변동성이 더 크고, 성별 및 인종에 따라 팁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연구 결과는 결국 팁을 받지 않고도 안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2019년 팁을 받는 노동자도 똑같은 최저 임금을 받게 하는 '임금인상법안(The Raise the Wage Act)'이 미국 하원을 통과했지만, 공화당의 주를 이루었던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최저임금의 상승은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와 더불어 근무시간의 단축 혹은 일자리 축소 등의 현상들이 이어지게 될 것이며 경제에 악영양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소비자들은 사상 최고의 인플레이션을 맞은 시기에 덩달아 치솟은 팁이 부담스러워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가급적 음식을 투고(to-go)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소비자들의 지갑은 더욱더 얇아지고 있다. 여기에 팁플레이션까지 더해지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들이 커져 나가고 있다. 디자인 : 박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