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술집에 간다. 술 마시며 시 읽는 팟캐스트 '시시알콜' DJ 풍문으로 활동 중이며, 책 《시시콜콜 시詩알콜》, 《아무튼, 술집》, 《한눈파는 직업》을 썼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인생의 고민 중 어쩌면 가장 크게 다가올지도 모를 '연애', 이 둘이 결합했다면? '직장고민상담소-대나무슾'의 서브 코너 '비밀리'에서 연애전문가들의 발랄하고도 진지한 경험담과 조언을 들어보세요! 출근하기 싫다. 출근길에 그대로 퇴근하고 싶다. 퇴근하는 김에 퇴사하고 싶다. 물론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나는 어떻게든 출근하고 있겠지만. 직장인이란 게 원래 그렇다. 때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90년 9월 11일, 물이 상반신까지 넘실거려도 대한의 직장인들은 묵묵히 물길을 헤치며 출근했다. 하반신은 이미 물에 잠겼을지언정 꿋꿋하게 우산을 쓴 채로. 90년대라 그랬을 거라고? 글쎄, 좀비가 창궐한 판타지 세계관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이라면 좀비를 피하는 시간까지 계산해 평소보다 더 일찍 집에서 나와 어떻게든 출근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야 하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회사에 나가야 하는 직장인이니까, 먹고살아야 하니까!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직장인이지만, 직장인이라면 출근은 고통스럽다. 만족스러운 조건의 회사에 취업했거나 연봉과 직급이 높더라도 출근이 싫은 건 매한가지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과 만나기 싫어도 만나야 할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오늘도 내가 뭘 싫어하는지 새롭게 알게 되는 하루하루가 즐거울 리가 없다. 그래도 어떡해, 돈 벌어야지. 일요일 밤에는 어김없이 우울하다. 주말은 왜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까? 5일을 일했는데 고작 2일만 쉬는 게 맞는 걸까? 내일이면 다시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어째서 잠은 쉽게 오지 않는 걸까? 우울과 불안이 어둡게 내려앉는다. 직장인이라면 지나치지 못하는 월요병 증상이다. 많은 직장인이 월요병 극복을 위해 애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니, 해야 할 출근이라면 조금이나마 더 즐겁게 해 보겠다는 애환 가득한 노력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이곳저곳에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돼 있다. 한 병원은 이런 방법들을 추천했다. 아침 식사하기, 신선한 야채나 과일 먹기,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기, 스트레칭하기...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건 불변의 진리라서, 저런 행동들이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직장인들에겐 지나친 부지런을 요구하는 또 다른 과업일 뿐. 나 역시 아침 식사를 할 여유가 있다면 그 시간에 좀 더 눈 붙이기를 선택할 테다. 그렇다면 월요병은 불치병인가요? 경험한 바로는, 월요병에도 강력한 백신이 있다. 바로 사내 연애다. 어릴 때부터 아침잠이 많았던 나에게 월요병은 오래된 역사다. 등교할 때마다 제시간에 교문을 통과하기 위해 기를 썼고 그래도 늦어서 번번이 매를 맞았다. 아침마다 나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길 간절히 빌었다. 나이를 먹고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 되면 아침쯤이야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조깅을 하고, 간단하지만 건강한 아침 식사를 차려 먹은 뒤 말끔한 옷을 입고 출근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각을 일삼는 일만큼은 벌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월요병에 걸린 사람에게 시간은 약이 아니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서, 회사에 다닌 지 10년째인 지금도 여전히 십수 개에 달하는 알람에 의지함에도 헐레벌떡 뛰쳐나가기 일쑤다. 이런 나지만,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출근을 서두른 적이 있다. 그것도 평소보다 무려 2시간이나 일찍, 평소와 다르게 신경 쓴 티가 나는 얼굴로. 게다가 평생 아침이라곤 챙기지 않았으면서 베이커리에서 빵을 종류별로 사 들고 가기까지. 심지어 이런 부지런한 아침을 몇 주나 지속했으니 그야말로 기적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평생 달고 살 것 같던 월요병을 씻은 듯이 낫게 해 준 게 바로 사내 연애였다. 피곤해도 나만큼 피곤할 상대방에게 맛있는 빵을 줄 생각을 하니 피곤함도 살살 녹는 기분, 그저 상대방이 있는 회사에 한시라도 빨리 달려가고 싶은 마음! 사내 연애를 시작한 순간부터 인생의 장르가 로맨스로 바뀐다. 어차피 가야 할 회사, 애인까지 볼 수 있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회사에 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애인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마음이 가벼워진다. 출근하면 애인을 볼 수 있고, 매일 출근하면 매일 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겨운 주 5일제도 버틸 만하고, 월요일도 살 만하다. 물론 사내 연애가 아니더라도 연애는 사람에게 활력을 선사한다. 그러나 직장인의 특효약은 어쩔 수 없이 사내 연애다. 사내 연애가 아니라면 최대한 일을 서둘러 정시 퇴근을 하고서도 기나긴 퇴근길을 거쳐 약속 장소에 나가야 애인을 만날 수 있지만, 사내 연애라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깐 짬을 내 볼 수 있으니까. 사랑엔 시간도 아깝지 않겠지만,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평일에 체력이 남아나지 않는 직장인이 최대한 기력을 보존하며 사랑까지 할 수 있는 게 사내 연애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지만, 사내 연애를 하는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상대방이 아프거나 힘들다는 연락을 받으면 커피나 비타민, 약까지 건네줄 수 있다. 어디서든 잠깐만 봐도 좋다.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했던 회사가 둘만의 비밀 아지트가 되는 마법이 벌어지니까. 탕비실, 계단, 엘리베이터, 옥상, 그 어디든 둘만 있을 때면 회사가 데이트 장소로 변하는 것만 같은 짜릿함은 사내 연애를 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과도한 업무와 야근으로 시간이 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나처럼 아침잠을 쪼개서라도 출근을 서둘러 만날 수 있다는 옵션도 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겠지만, 그렇게까지 해도 힘들긴커녕 즐거운 게 사내 연애의 묘미다. 정 상황이 여의치 못해 같은 회사에 있어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회사 메신저에 그가 접속 중이라는 표시를 보기만 해도 설렌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게 사랑이니까. 그러다 헤어지면 회사에 가기 싫고 퇴사까지 하고 싶어 진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사내 연애를 하기 전에도 회사는 가기 싫었고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연애라도 해보도록 합시다. 월요병과 아침잠, 동시에 극복해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사내 연애에 대한 고민을 비밀리 커뮤니티에 남겨주세요. 사내 연애 고수들이 글을 통해 함께 고민해 드립니다.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인생의 고민 중 어쩌면 가장 크게 다가올지도 모를 '연애', 이 둘이 결합했다면? '직장고민상담소-대나무슾'의 서브 코너 '비밀리'에서 연애전문가들의 발랄하고도 진지한 경험담과 조언을 들어보세요! (글 : 김혜경 작가) 전쟁터에서 굳~이 전쟁 같은 사랑을 꿈꾼다면 회사는 전쟁터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아이는 태어나는 법. 사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어난다. 만약 사내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면, 전쟁터 같던 회사가 꽃밭으로 바뀔까? 그렇지 않다. 회사를 배경으로 한 또 다른 장르의 전쟁이 시작될 뿐이다. 끝내 퇴사까지 불사하게 된다는 사내 연애, 그래도 하고 싶나요? 착각주의보! 지위를 이용한 구애는 사랑이 아니다 우선 본격적인 전쟁터로 들어가기 전에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사내 연애를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더라도, 권력을 앞세운 구애 갑질과 일방적인 고백 공격만큼은 금물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게 고백 아니냐고? 아니다. 고백이란, 말만 하지 않았을 뿐 사귀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이일 때 마지막으로 거치는 합의에 더 가깝다는 점을 명심 또 명심하도록 하자. 옛날에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라며 적극적인 구애를 장려했으나, 잘 살아있다가 느닷없는 도끼질에 죽어가는 나무 입장도 생각해 줘야 한다. 심지어 연애는 사람과 나무가 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니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면 부담스럽지 않게 조금씩 서로의 간격을 좁히는 게 먼저다. 매너가 사람도, 사랑도 만든다.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는커녕 두 마리 다 놓치는 수가 사내 연애를 할까, 말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당신의 선택이 사내 연애를 시작하는 마지막 버튼이라는 뜻일 확률이 높다. 당신은 사내 연애의 장단점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고민 중일 것이다. 연애는 둘만의 관계를 의미하지만, 사내 연애라면 모름지기 ‘사내’에 있는 사람들까지 고려해야 하니까. 당신은 아마 연애는 연애대로, 일은 일대로 하면 되지 않겠냐는 희망을 품을 수도 있겠다. 이른바 일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겠다는 생각이다. 매력적인 외양에 이끌려 다가가면 대체 어디에 숨기고 있었는지 모를 뒷다리를 쑤욱 뽐내며 순식간에 토낀다는 점에서도, 일과 사랑은 그야말로 토끼라는 사실만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잡을 수 있는 토끼가 두 마리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잡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그러니 올해 토끼의 해를 맞아 온 힘을 다해 일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고 싶은 사람들이여! 여러분께 하나 알려드리자면, 원래 속담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친다(兩兎悉失)'란 뜻이다. 하하... 사내 연애 고수의 조언 : 사내 연애만큼은 비밀로 이유는 명확하다. 사내 연애라서다. 사내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절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바야흐로 어른들의 사회에 입문한 회사원이라면, 세상만사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절절히 깨달았으리라.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일과 사랑, 사랑과 일이다. 사내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이제껏 회사원으로서 수행하던 사회생활과는 또 다른 사회화의 영역이 펼쳐진다. 미지의 세계에 안착하기 위해 이미 사내 연애를 경험해 본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도 좋고, 인터넷을 뒤져도 좋겠다. 요즘엔 어디에나 사내 연애를 잘 해낼 수 있는 비법을 담은 조언들이 넘쳐나니까. 아무도 믿지 말 것, 휴가를 맞추지 말 것, 식성 등 연인의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는 척하지 말 것, 연인이 아파도 무시할 것, 럽스타그램은 비공개 계정으로 할 것, 회사 근처에서 단둘이 밥 먹지 말 것, 등등. 대부분 사내 연애를 한다는 사실을 티 내지 말고 비밀로 하기를 권장하는 내용이다. 연애든 사내 연애든 시작할 때는 비밀로 해야 한다는 데 백번 동의한다. 그래야 그나마 나중에 수습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려운 연애 특성상, 괜히 공공연하게 알렸다가 헤어지기라도 하면 주변의 눈총이나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업무적으로 엮여있는 동료들까지 있는 사내 연애라면 더더욱 그렇다. 내 주변인의 말에 따르면,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같이 사는 기분이란다. 사내 연애를 비밀로 하는 건 최대한 깔끔한 이별을 위한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물론 영원한 비밀은 없다.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복합기와 화분까지도 다 알게 된다는 게 사내 연애다. 일하려고 모인 회사에 지나치게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직장인인데 웃고 있다? 백 프로다. 그럼 그냥 속 편하게 공개적으로 연애하면 되지 않느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은 축복받아야 마땅할 일이지만, 일이 더 우선시 돼야 하는 회사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은근한 눈총은 물론 직장 내 뒷담화까지 감수해야 하니까. 일하다 실수라도 하면 연애에 한눈 팔렸다며 욕먹고, 상사의 눈치를 볼 일도 더 잦아진다. 학생 때 성적이 떨어지면 연애 탓을 하던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던 때와 비슷하다. 연애가 아무런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꼭 연애 탓만도 아닌 것을. 티 내고 축하받지는 못하더라도, 비밀스러운 연애이기에 더 짜릿하다는 장점도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기라도 하려면, 토끼가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위대하게’ 움직여야 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사내 연애는 줄곧 비밀을 엄수하다가 청첩장과 함께 공개하는 게 최선일까?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비밀이기에 더 잔혹한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비밀 사내 연애라 아무도 모르거든요. 그런데 애인이 바람났네요. 그것도 같은 회사 안에서, 제 후배랑.” “애인과 비밀 사내 연애 중인데, 회사에 애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아서 너무 힘드네요. 제 동료가 제 앞에서 애인에 대해 험담하는데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비밀 사내 연애 후 이별했는데, 전 애인이 청첩장을 돌립니다. 분명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폭탄을 쥔 것 같네요.” 나는 이렇게 되지 않을 것 같다고? 그렇다면 추가 참고 자료를 제시해 본다. 직장 내 뒷담화를 곁들인 사내 연애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와, 비밀 사내 연애하다 이별 후 회식 자리에서 서로 대판 싸우며 만천하에 연애 사실이 공개되는 영화 ‘연애의 온도’다.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물론, 그래도 하는 사람들은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이쯤에서 사내 연애에 질렸거나, 그럼에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류로 나뉠 것이다. 어차피 좋을 때는 아주 좋지만 싫을 땐 아주 싫은 게 연애고 또 사내 연애다. 하물며 결혼 축사에서 하루키는 이렇게 말했다지.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 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니 나도 기원할 수밖에. 사내 연애는 잔혹합니다. 당신의 상상보다 더 잔혹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기꺼이 사내 연애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그게 정말 사랑일지도 모르죠. 회사에서 사랑과 전쟁을 불사할 당신의 앞날이 은밀하게 위대하게 반짝이기를. *사내 연애에 대한 고민을 비밀리 커뮤니티에 남겨주세요. 사내 연애 고수들이 글을 통해 함께 고민해 드립니다.
스브스프리미엄은 오늘부터 '직장고민상담소-대나무슾'의 서브 코너 '비밀리'를 시작합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인생의 고민 중 어쩌면 가장 크게 다가올지도 모를 '연애', 이 둘이 결합했다면? 연애전문가들의 발랄하고도 진지한 경험담과 조언을 들어보세요! 신기루처럼 쫓게 되는 사내 연애의 꿈 직장인에게 사내 연애란 무엇일까? 한국 직장인들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대략 9시간이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낸다는 소리다. 그렇게 살다 보면 회사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서 목에 사원증 걸고 커피 맛을 즐기던 신입 사원 시절이 까마득하다. 연차가 쌓일 때마다 연봉보다 분노의 상승 폭이 더 높다. 커피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음료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사내 연애라고? 대체 어디서 사랑이 샘솟은 거야? 사내 연애는 사막 같은 회사 생활에 나타난 오아시스의 기적이나 다름없다. 그런 줄 알고 뛰어들었다가 신기루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지만. 바야흐로 연애에 미친 사회다. 연애 안 하냐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눈치 없는 친척의 명절 단골 대사나 부모님의 핀잔뿐만이 아니다. 요즘 콘텐츠를 보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연애를 원하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연애를 하는 게 한국 드라마의 특징인데, 요즘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마저 연애하느라 바쁘다. 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전 애인을 대동하고 나타나질 않나(맞아요, '환승 연애' 얘기), 누군가와 커플이 되어야만 탈출할 수 있다는 '솔로 지옥'에다, 전 국민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구애하는 '나는 솔로'까지. 반대파 : 설렘보다는 사직서를 가슴에 먼저 품어야 사내 연애도 그럴까? 신기하게도, 연애하라고 난리인 이 사회에서 유독 사내 연애만큼은 말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 말라는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회사'라는 공간이 주는 특수성 탓이다. 사랑만으로도 벅찬 '너와 나' 사이에 직급과 연차까지 끼어들면 문제는 복잡해지기 마련이니까. 일로도 엮여있는데 감정까지 엮이면 그야말로 엉망으로 꼬인 실타래가 될 확률도 높다. 심지어 그렇게 엉킬 대로 엉킨 실타래를 신나게 갖고 노는 건 주변의 동료들이다. 사생활은 알지도 못하는 연예인들의 연애가 흐릿한 사진으로 실린 디스패치만 봐도 눈에 불을 켜는 한국인들에게 주변인들의 연애란 너무나도 씹기 좋은 안줏거리나 마찬가지라서, 사내 연애를 하는 사람은 애인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 그런데 그 눈치는 주변 사람들도 본다. 공과 사 구분을 못 하는 커플들을 볼 때, 이별 후 미묘해진 둘 사이에 낀 동료가 됐을 때의 피곤함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사내 연애는 주변인들까지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만들기에, 할 거면 퇴사할 각오로 하라는 조언도 부지기수다. 연애 한 번 하겠다고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찬성파 : 사내 연애는 지옥 속에서 핀 꽃이 아닐까? 그래도 하는 사람은 다 하는 게 또 사내 연애다. 사내 연애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한결같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 남의 눈치 보지 말라는 것. 잘 되면 좋고 헤어지면 만다는, 굉장히 초연한 태도다. 사내 연애를 가로막는 장벽들을 헤쳐 나갈 구체적인 방식이나 이별 후의 대처법은 차후 문제다. 헤어지면 출근길이 지옥길이 된다고들 하지만, 연애하기 전에도 회사는 지옥이었고 솔로도 지옥이라며?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게 사내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인생관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내 연애의 대가를 하나하나 따져봤자 무용지물이다. 애초에 연애할 때 결말을 생각하며 고백하는 사람이 있을까? 결혼 역시 무작정 해피엔딩인 것도 아닌데. 잃는다고 생각하고 주식을 사는 사람이 없듯, 내 사랑은 언제나 우상향일 거라는 믿음으로 시작하는 게 연애다. 학연, 지연, 혈연, 우연까지 다 동원해도 마음에 드는 인연을 만들기 힘든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축복 아닌가! 사내 연애도 회사에서 시작된 사랑일 뿐, 마찬가지다. 모 아니면 도! 윷을 던져야 판이 시작된다 사내 연애는 모 아니면 도다. 윷 4개가 전부 뒤집어지지 않으면 모지만, 하나만 뒤집어져도 도다. 단 하나의 차이만으로도 판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게 바로 사내 연애란 뜻이다. 그래도 나는 일단 윷을 잡았으면 던져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모가 되든 도가 되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떨까? 사내 연애라는 카테고리의 글을 클릭한 것만으로도, 당신은 기꺼이 윷판에 뛰어들고 싶은 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사내 연애를 해도 될지'를 묻는다. 그런데 제가 하지 말라면 안 할 거예요?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모든 요소를 고려한 뒤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결정하면 된다. 사내 연애를 말리는 많은 사람들의 충고와 예상되는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 이외의 현실이 나머지로 느껴진다면 하는 거다. 사내 연애의 본질은 회사에서 연애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하고 싶은 사람을 회사에서 만난 것이니까. 이 글을 쓰는 나는 사내 연애를 끝낸 지 4년째다.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는 회사 동기와 4년 전에 결혼했기 때문이다. 사내 결혼이라는, 사내 연애로서는 나름의 해피엔딩을 달성했기에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금 결혼한 남편이 나의 유일한 사내 연애 대상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퇴사까지 무릅써야 한다는 사내 이별도 해봤다. 짧게 연애한 것도 아니었고, 이별의 후폭풍을 쉽게 지나치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모든 일을 겪고서도 다시 다른 사람과 사내 연애를 시작했다. 윷놀이에서 ‘도’가 나왔다고 해서 그 판이 끝나는 것이 아니듯, 사내 연애가 모가 되든 도가 되든 인생은 계속 흘러가는 거니까. 물론 내가 꼭 사내 연애를 하고 싶었다거나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거듭 말하지만, 연애하고 싶은 사람이 하필 같은 회사에 다니는 건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덕분에 사내 썸, 사내 고백, 비밀 사내 연애, 공개 사내 연애, 사내 이별, 사내 결혼까지 내 10년간의 회사 생활은 업무 외에도 아주 다채롭다. 물론 여전히 회사에 잘만 다니는 중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사내 연애에 대한 고민을 비밀리 커뮤니티에 남겨주세요. 사내 연애 고수들이 글을 통해 함께 고민해드립니다. 디자인 : 고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