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수고로움을 서로 이해하고, 누구도 일터에서 소외당하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화마가 지리산을 덮쳤고, 산골짜기를 타고 부는 바람은 사방으로 불길을 뻗쳤다. 뉴스마다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는 불길 위로 짙은 연기가 하늘을 가득 채운 영상을 내보냈다. 연기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려 대피하는 영상에서 인간의 무력함만이 떠올랐다. 산불을 진화하던 노후한 진화 헬기 한 대가 높은 숙련을 자랑하는 70대 조종사의 생명을 앗아갔다. 시간의 축적이 쌓은 숙련과 그 시간 동안 낡아버린 기체 사이의 넓은 간극을 생각하며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산청 산불 진화 작업에 투입된 3명의 예방진화대원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처음에는 최전선의 진화대원에 대한 애도로 시작했던 감정이었지만, 진화와 관련한 직무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허망함이 교차했다. 가장 약한 사람이 재난 앞에서 쉽사리 목숨을 잃고 있었다. 전국의 초목을 잿더미로 만드는 이번 산불 진화에 투입된 장비와 인력은 크게 소방청 소속의 소방관과 산림청 소속의 산불진화대원, 그리고 진화 헬기다. 진화 헬기는 기계이고,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는 밤에는 운행을 할 수 없기에 동이 트면 이륙하고, 해가 지면 투입될 수 없다. 낮밤 없이 총동원되는 인력은 진화대원들과 소방관들이고, 하루 12시간 이상의 진화 작업에 투입되었다. 이들의 피로도는 여러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등짐 펌프를 메고 산에 올라갔고, 산이 가팔랐고, 나무 위에 붙은 불을 진압하는데 힘이 들었다는 인터뷰와, 탈진과 부상이 이어진다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우리나라의 산림은 울창하고 산세는 가팔라서 민간 인력이 접근하기 어려운 구간이 많다. 산불을 진화하는 전문 인력이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공중진화대와 지상진화대로 나뉜다. 공중진화대는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으로 임도가 없어서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 레펠을 타고 내려가거나, 도보로 산불의 최전선에 접근해 불을 끈다. 이들은 전문적인 직무교육(진화교육)과 체력을 갖춘 인원들이다. 개인별 휴대 장비로 수목제거용 체인톱, 호스 2동, 방염포, 물백, 헬멧, 고글 헤드 랜턴 등 20~30kg을 몸에 장착하고 불타는 산을 오른다. 그리고 주불을 진화하는 지상진화대가 있다. 이 지상진화대는 특수진화대와 산불예방진화대 둘로 나뉜다. 특수진화대는 절반의 공무원이라 불리는 공무직 신분이다.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족수당, 출장비, 위험수당을 못 받는 이들은 상당한 수준의 체력검정과 면접심사를 거쳐 채용된 뒤, 산불조심 기간 중(한국은 여름철을 제외한 봄, 가을, 겨울이 산불조심 기간이다) 산불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이다. 이번 산불에도 진압의 주요한 역할을 했다.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산을 갈퀴, 진화복, 야전삽, 낫, 수통, 손전등, 등짐펌프, 안전모, 방염텐트 등을 이고 질 체력이 필요하다. 이들의 급여 수준은 월 2,701,000원(2024년 기준)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예방진화대원은 비정규직으로 이들과 크게 다르다. 산청 산불을 진압하다가 사망한 3명의 진화대원은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이었다. 통상 6개월 이하의 단기 계약을 체결해 불안정하고, 지역 주민으로 별도의 생업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고, 평균연령은 61세로 알려져 있다. 임금 수준은 78.880원/일(2024년 기준)로 일용직인 경우도 많다. 잔불 정리와 산불 예방을 위한 인력으로 산불 진압을 위한 특별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번 산불 진압에 투입되었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산불이 세력을 넓히는 '비화' 현상과 꺼진 줄 알았던 산불이 끈질기게 세력을 유지하게 하는 '지중화' 현상 그리고 연무는 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목숨을 잃은 이들이 산불 진압에 대한 높은 숙련도를 갖추고 있었다면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놓기 어렵다. 불을 끄는 게 일인 산불진화대원 모두는 최소한 일정한 교육을 받고, 준비가 완료된 상태로 출동을 명령받았어야 한다. 일을 주는 사람은 직무와 관련한 위험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공적 책임을 지는 지자체의 장 또는 산림청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산불을 역대급으로 키운 원인이 기후위기와 식수 정책의 실패라는 진단도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늘어 초목과 토양이 메마른 것, 그리고 정유물질을 포함해 불이 잘 붙고 오래 타는 소나무 위주의 조림사업이 그 진단들이다. 이처럼 산불이 빈번할지도 모르는 시기에 사망사고가 줄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친구네 집에 흐뭇한 간장 내음이 물씬 풍겼다. 음식물 처리기에 낮에 먹은 전복 간장조림 음식물 쓰레기를 넣었다고 했다. 음식물 처리기를 처음 봤다. 음식물 쓰레기는 분리배출하는 게 당연하던 내게 음식물처리기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었다가 세상에 나타났다. 집에 돌아가 온라인 쇼핑몰을 헤맸다. 성능을 찾아보고, 메이커와 가격을 비교했다. 이걸 쓰면 음식물 쓰레기 냄새 없이, 여름철 무더위에서 새 생명의 탄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더 편할 수 있다는 욕망이 살아났다. 여태 잘 살아와서 꼭 필요하지 않았는데 견물생심이라고 보고 나니 욕심이 났다. 정치인의 발언도 욕망을 자극한다. 탄핵 정국 이후 조기 대선이 점쳐지며 정치인들은 목소리를 낸다. 최근에는 반도체특별법이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반도체 패권 경쟁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심지 굵은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 생산에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의 법안을 환영했지만, 그 이면에는 '반도체 산업 연구직에 대한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라는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놓여 있었다. 그 시작에는 민주당 당 대표 이재명이 '주 52시간 예외 적용'에 긍정적인 발언이 있었다. 그는 2025년 2월 3일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 제외 어떻게?> 토론회에서 "특정 중요 산업의 연구 개발자 중 고소득 전문가가 동의할 경우만 예외로 '그들이 좀 몰아서 일할 수 있게 해주자', '이걸 왜 안 해주냐'라고 하니까 할 말이 없더라, 거절하기가 너무 어렵더라"라고 말했다. (다만 이 글을 작성하는 2025.2.26.에는 주 52시간 예외 적용 제안을 철회한 상태이다.) 정치인의 한마디는 욕망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국민의힘과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목소리로 52시간 예외 적용을 외치기 시작했다. 최대 52시간을 일하도록 정한 근로기준법의 규제를 풀어주는 것을 한국 사회는 '유연화'라고 표현한다. 노동시간 유연화는 사장이 포기할 수 없는 욕망으로, 이윤을 극대화하는 이상적인 근무 형태다.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더라도 일의 양의 측면에서 2명의 사람이 필요한 일을 1명이 2배로 일하게 시킨다는 것이 노동시간 유연화의 골자다. 2명의 일자리에 1명을 써서 고용 창출의 기업적 책임을 외면하겠다는 결과물을 낳기도 한다. 이러한 유연화의 반대말은 경직적이라고 할 텐데, 경직적인 노동시간은 반대로 노동자를 보호한다. 죽음은 유연화된 장시간 노동의 그림자다. 과로사 판단 기준은 노동시간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다. 12주 동안 1주 평균 52시간 이상 일한 경우, 발병 직전 1주 동안 60시간을 초과하여 일한 경우 그 죽음은 과로사가 된다. 이뿐 아니라 장시간 노동은 업무 스트레스에서 비롯해서 사람을 자살로 이끌기도 한다. #사례 1 한 연구원은 8명의 인원이 투입되기로 계획했던 '창업 지원' 프로젝트를 거의 혼자서 수행하다가 프로젝트가 추가로 병행되자 과도한 업무량 속에서 우울감, 불안, 불면, 자존감 저하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고인은 사망 20분 전까지 업무 통화를 하는 등 사실상 회복의 시간 없는 무제한의 노동을 하였던 것이다. #사례 2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망인은 건설 현장에서 시스템 데이터의 에러를 확인하고 제거하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였는데, 공기 단축이라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살 전 1주일간 72시간을 넘게 일했다. 이렇게 무제한의 노동시간은 사람의 욕망이 아니다. 일하는 사람이 2천만 명이 넘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래로 1주 최대 68시간까지 허용되던 노동시간은 여러 단계를 거쳐 1주 최대 52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더 많은 시간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내기 위해 덜 일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 일하게 하려는 자본의 욕망의 다툼에서 대체로 인간의 욕망이 이겨왔다. 그러나 대통령 윤석열이 외친 주 69시간 근무제, 민주당 대표 이재명이 흘린 52시간제 예외 정책은 자본에게 다시금 잊힌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견물생심과 다르지 않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사람의 욕망에 불을 지필 정치인은 누가 될까. 사진 : 게티이미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 상담 1 새벽 4시에 출근한 노인은 5개 층 병원의 청소를 도맡아 했다.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를 다 마쳤고, 환자들이 싸놓은 매일 30봉지가 넘는 똥기저귀를 치우려 1주일에 7일 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하고 최저임금을 받았다. # 상담 2 또 다른 한 노인은 치킨집에서 하루 12시간씩 치킨을 튀기고, 서빙하고, 1주일에 7일을 일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해서 300만 원을 겨우 받았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이 안 된다). 항간에 떠도는 '노인들은 재정적으로 생산성 있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누명을 쓴 노인들은 억울하다. 나는 공짜 노동 상담을 하고 있다. 간장도 사고, 건강보험료도 내고,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도 하고, 집세에, 한 토막 남는 돈으로 노후를 위한 저축을 해야 하니, 한 푼도 안 받는다는 말은 아니다. 구청에서 노동법과 관련한 상담의 값을 적당히 쳐준다. 만족스럽지 않지만. 나는 내담자에게 돈을 받지 않으니 꼬장꼬장하게 맞는 말을 할 수 있고, 내담자는 돈을 지급하지 않고 보수적인 조언을 들을 접근성을 확보하니 꽤나 괜찮은 상부상조인 셈이다. (참고로 앞선 두 노인은 불법 행위의 피해자가 맞다.) 찾아오거나 전화를 거는 사람들 중 특히 노인이 많다. 10명 중 3-4명은 노인이다. 온라인으로 접촉하기보다, 전화를 걸거나 직접 찾아온다. 생각보다 일을 하는 노인의 수는 많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경제활동을 하는 노인의 수는 362만 명으로 전체 노인 인구의 38.3%이다. 고령에 대한 정의는 사회적 활동성이나, 신체 나이, 생애 욕구 등을 기준으로 하기보다 연령을 기준으로 하고, 여러 소득 보장과 정년 등도 연령을 문턱으로 두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역전시킬 수 없으니 다 같이 먹는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퍽 타당해 보인다. 「고용상 연령 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고령자를 만 55세 이상으로 두고 있고, 정년은 만 60세 이상으로 정하는 의무 규정을 두고 있다. 반면 「노인복지법」에는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정의하고,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비율은 19.2%이다.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이다(5천133만 명 중 973만 명). 이러다 보니 정년은 통상 만 60세이고, 고용보험 가입은 만 65세까지 가능하고, 기초노령연금, 국민연금은 만 65세부터 받게 된다. 5년의 공백이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노인이 취업한 업종을 보면 도소매·음식·숙박업이 13.5%, 서비스 및 기타가 44.2%를 차지한다. 병원과 학교 그리고 빌딩 청소를 하고, 아파트에서 경비와 감시 업무를 하고, 요양시설에서 또는 치매 노인의 집에서 돌봄을 하고(요양보호사 등), 여러 식당에서 음식을 하는 일을 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이 적은 일, 그리고 단순노무직이라 불리는 직종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상담을 하면 닮은 광경 앞에 놓인다. 하루 12시간씩, 1주일에 7일을, 어쩌면 2교대로 쉬고, 아파트 작은 휴게공간에서 쪽잠을 자고, 입주하여 치매 어르신을 모시면서도 그 값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기도 한다. 위 사례에서 '상담 1'의 노인은 5년을 넘게 청소를 하고서 어깨가 아프자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고 했다. '상담 2'의 노인은 치킨집이 문을 닫는다며 차일피일 미룬 월급이 두 달을 넘자 잘못됐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전까지 이들은 재미있게 일했었다고 말했고, 혹자는 마치 일터에서 5년을 넘게 일하다 보니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내 집처럼 가꾸었다고도 말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노인이 바다에서 허기와 소진을 겪으며 청새치와 상어를 만나고 담담하게 바다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노인은 오랫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노인은 지금껏 희망과 자신감을 버린 적이 없었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자 노인의 가슴 밑바닥에서 희망과 자신감이 다시금 솟아올랐다." 상담을 하며 아무래도 내담자의 인적 특성을 몇 가지 확인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직종과 연령대이다. 70이 넘은 한 노인은 자신감이 잔뜩 들어간 강한 목소리로 나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고, 그리고 "나 잘해요"라고 희망차게 이야기했다. 산들바람이 불어왔나 보다. 사진 : 게티이미지
12월 3일 계엄령의 충격으로 어지러운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되기 직전 저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평소에 갖고 싶었던 메이커 제품이 블랙프라이데이를 앞두고 파격 할인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TV와 노트북을 두고서 각을 재다가 둘 다 살 수 없다는 호주머니 사정을 알아차리고서 다소 상심하고 있던 차에 SNS에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농담 같은 옛날 말도 들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뉴스와 유튜브, 메신저 방이 계엄령으로 뒤덮였고, 포고령이 이어졌고, 헬기가 날아갔고, 국회 앞은 시민들과 경찰, 군인으로 가득 차 혼란스러웠습니다. 쇼핑을 마치고 싶었지만, 당장 국회 앞으로 모여야 한다는 정치인의 메시지와 계엄령이 선포되고 나면 통행이 금지된다는 뉴스와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누가 영장 없이 잡혀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다며 전화를 하라는 이야기 속에서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고, 이 소란 속에 비상식량을 챙겨야 할까? 하면서 주방에 라면이 몇 개인지 그리고 며칠이나 집에만 있을 수 있는지 계산을 했습니다. 뒤늦게 잠들고 난 다음 날 아침 출근길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았고, 왜인지 더 피곤해 보였습니다. 그날은 보육교사들이 일하는 어린이집에 방문하는 날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그랬습니다. "어젯밤 그 소동에 출근해야 하는 건지 물어볼까 했어요" 말하는 그이는 평소보다 늦게 잠들었는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한낱 소동에 그친 계엄령이 선포되고 윤석열의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우리는 출근을 했을까요? '일상이 깨지는 난동 속에서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적인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고 충성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경찰과 군인의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계엄령과 포고령이 선포된 뒤 그 세부 명령으로 정치인들을 체포하고, 시민들의 국회 진입을 제한하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하여 서버를 확보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웃음이 얼굴에 피어나는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국군방첩사령부의 요원들이 선거관리위원회로 출동하다가 위례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먹고, 주변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동네를 배회하며 시간을 끌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국회에 진입한 무장한 계엄군은 시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보좌관과 국회의원을 적극적으로 납치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소극적인 저항의 스토리도 나왔습니다. 명령의 수행을 우리는 작전 수행이라고도 하지만, 더 큰 틀에서는 지시받은 일을 해 생계와 자아실현을 하는 노동이라고 합니다. 내란 수괴의 명령이 소극적으로 저항한 군인과 경찰에게는 이렇게 들렸을지 모릅니다. 국회의원 체포가 아니라 납치, 국회 진입 제한이 아니라 무단 점거, 서버 확보가 아니라 탈취라고 말입니다. 계엄과 관련한 모든 지시들은 위법하고 부당해서 87년 6월 민주화항쟁과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굴곡진 현대사를 듣고 보고 자란 시민은 납득할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멈췄고, 망설였고, 미뤘습니다. 이런 노동자의 망설임과 멈춤은 다른 말로 태업, 파업이라고도 합니다. 하는 척을 하면서 미루는 소극적인 저항은 하루 밤 만에 계엄령을 해제시켰고, 그다음 날 아침부터 일상의 완전한 파괴를 멈출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시민들의 적극적인 저항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필경사 바틀비라는 허먼 멜빌의 소설이 있습니다. 필경사는 타자기와 워드 프로그램을 쓰기 전인 1800년대 중반 변호사의 일을 도와 서류를 필사하는 노동을 하는 직업입니다. 여기서 바틀비는 업무를 지시하는 변호사에게 소극적인 저항의 말을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말로 하지 않았지만 계엄령이 선포된 창백한 밤에 나쁜 명령을 받은 군인들의 머릿속에는 닮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 덕택에 일상이 어느 정도 지켜지게 됐습니다. *외부 컨트리뷰터의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초등학교 시절 두 명이서 책상을 같이 쓰던 때가 있었다. 책상은 길었고, 밑에는 작은 서랍이 있었다. 사물함을 사용하기 전까지 유용했다. 내 것과 네 것이 구분되어 있는 책상 밑과 달리 책상 위는 임자 없는 땅이었다. 문제는 둘이 책상을 같이 쓴다는 거다. 경계 없는 책상 위에 칼로 선을 긋고 이야기했다. "이거 넘어오면 다 내 거." 내 것이었던 펜이 네 것이 되고, 네 것이었던 지우개가 사선으로 잘려서 내 것이 됐다. 그리고 팔꿈치가 넘어오면 그것도 내 것이라고 말을 했지만 실제로 가질 수는 없었다. 침을 바른다고 내 것이 될 수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이도, 성별도, 덩치도, 부모의 재산도 그 둘 사이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둘은 티격태격하며 네 거니 내 거니 했다. 사회는 꽤나 험악해서 팔꿈치가 넘어오면 그 팔꿈치를 자를 기세로 선을 긋고 계약을 체결한다. 선을 넘지 말고 서로 네 것을 인정하자는 약속이 일터에서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양쪽이 만족하는 계약보다는 약간 기울어져 보이는, 가끔은 완전히 비틀어진 계약이 체결된다. 2020년 부산에서 한 택배기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리점과 택배기사는 일을 시작하며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택배사의 대리점은 이러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난 택배기사에게만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3개월 전에 퇴사 통보를 하고 퇴사하여 후임을 구하지 못하는 등 대리점에 손해를 끼치면 위약금 1,000만 원을 내야 한다." 몸이 아파서 그만두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당시 <택배노동자 사망 뒤엔 갑질횡포..."대리점 지점장이 왕"(김종배의 시선집중 2020.10.22.)>에서 힘들어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택배기사의 실태를 고발했고, 급기야 갑자기 아프거나 아파서 일을 못 하는 경우에조차도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해놓아야 쉴 수 있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양쪽이 서로 만족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하고 그 이행을 점검하여 책임을 묻는 상호 의존적인 약속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는, 즉 리스크가 일방에게 쏠리는 비틀어진 계약이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상품을 거래하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아서 거래를 하니 발생하는 일인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계약을 체결할 때 불리할 것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계약이 체결된다. 보통 일터에서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는 사람은 노동자다. 택배기사도 그러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평등한 상태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스스로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은 과거 한계를 보였다. 19세기 초 영국의 시민법 체계는 아이와 공장이 체결한 계약으로 잔인함을 드러냈다. 공장에 높게 설치된 굴뚝은 위로 갈수록 좁아져서 어른이 들어갈 수 없었다. 굴뚝에 낀 검댕을 치우는 일은 아이의 몫이었다. 드나들기 쉬운 작은 덩치의 아이들이 힘들어서 내려오려 하면 아래에서는 내려오지 못하도록 연기를 피웠다. 많은 아이들이 질식하거나 타서 죽었다. 이러다 보니 '과연 평등하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걸까?'란 의문에 시민법을 극복한 사회법의 원리가 설명됐고, 이를 구현하는 노동법이 제정됐다. 최소한 이 정도는 보호해야 사회가 유지된다는 생각은 사용자보다 노동자에게 무게추를 실어주는 노동법의 배경이 된 것이다. 그래서 노동법에는 택배기사와 같이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손해에 대한 배상액을 정하지 못하게 정해뒀다. [근로기준법 제20조 (위약예정의 금지)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 이런 법조문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던 것은 '노예 계약'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저임금에 허덕이며 일을 하면서도, 그만두면 또 손해를 잔뜩 보게 해서 계속 일하게 하는 것은 사용자가 이윤을 보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이제 법은 택배기사와 대리점 사이와 같이 "3개월 전에 퇴사 통보+후임자 물색 안 하면 1,000만 원"을 불법으로 정했지만 건너야 할 다리가 하나 더 있다. 제정된 지 70년 가까이 지난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택배기사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근래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잡코리아는 기존 헤드헌팅 회사들이 하던, 경력자를 알선하고 수수료를 받는 '원픽'이란 상품을 운용한다. 사용자는 원픽으로 통해 경력직을 채용하면 연봉의 7%를 원픽에 납부해야 한다. 다만 그 경력직이 3개월 이내에 퇴사할 때는 수수료의 80%를 환급받는다. 한 학원은 학원강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9개월 이내에 퇴사 시 채용 수수료를 부담한다"라고 적어 압박했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고용하겠다며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았다. 학원강사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때는 위약금(채용 수수료 부담)은 불법으로 무효이지만, 프리랜서라면 또 말이 달라진다. (물론 가짜 프리랜서일 가능성이 높다.) 70년 전에는 없던 다양한 고용 형태가 등장하는 지금, 이제는 근로기준법도 시민법을 극복한 사회법의 변화처럼 새로운 변화가 모색돼야 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근로기준법 제17조.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근로자에게 임금,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유급휴가, 취업의 장소와 종사해야 할 업무에 관한 사항, 업무의 시작과 종료시각, 휴게시간, 교대근로에 관한 사항, 임금의 결정ㆍ계산ㆍ지급 방법, 임금의 산정 기간ㆍ지급 시기 등1)을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반한 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1) 임금,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유급휴가, 취업의 장소와 종사해야 할 업무에 관한 사항, 업무의 시작과 종료시각, 휴게시간, 교대근로에 관한 사항, 임금의 결정ㆍ계산ㆍ지급 방법, 임금의 산정기간ㆍ지급시기 및 승급(昇給)에 관한 사항. 가족수당의 계산-지급 방법에 관한 사항, 퇴직에 관한 사항, 퇴직급여 및 상여에 관한 사항, 식비, 작업 용품 등의 부담에 관한 사항, 근로자를 위한 교육시설에 관한 사항, 출산전후휴가ㆍ육아휴직 등 근로자의 모성 보호 및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사항, 안전과 보건에 관한 사항, 근로자의 성별ㆍ연령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의 특성에 따른 사업장 환경의 개선에 관한 사항, 업무상과 업무 외의 재해부조(災害扶助)에 관한 사항,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 표창과 제재에 관한 사항 등 이 조항은 사장이 사람을 채용해 일을 시킬 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서 지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근로기준법의 규정이다. 근로계약서 없이 구두로 몇 시 출근해서 무슨 일을 해도 다 알아듣는다고 말하는 혹자가 있을 수 있지만, 서면으로 정해 남기는 것은 서로 이의가 없다고 확인해 가는 과정이고 명확하게 남겨 보관하는 과정이어서 또 중요하다.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계약서의 내용이 모호해서 또는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해고부터 당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을 당하는 사람은 더 취약한 처지에 있는 사회 초년생 청년들, 단시간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아니, 거의 99%의 직장에서는 입사한 뒤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첫 출근일에 작성하는 경우도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며칠 내에 계약서를 작성한다. 사장은 꼼꼼히 읽어보라고 하고 계약서를 두 부 들고 와서 서로 작성하고, 한 부를 노동자에게, 다른 한 부는 본인이 보관한다. 계약서를 입사한 뒤에 작성하다 보니 이상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 분명히 사장님이 우리 같이 일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정작 입사일이 다가오니 연락이 뜸해지다가 피하거나, 다른 사람 구했다며 나오지 말라는 말을 하는 일이다. 최근 A 씨는 ‘아몰랑’ 사장이 11월 4일부터 출근해서 일을 같이 하자고 말해서 원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새로운 입사 전에 2주는 쉬어야겠다 싶어서 퇴사일과 입사일을 맞추고 여행을 떠났다. 가끔 연락해 IT 업무에 대해 같이 논하던 사장 ‘아몰랑’은 이즈음부터 연락이 닿지 않기 시작했고, 어디로 무엇을 준비해 가야 하나 싶어 한 전화를 회피하기까지 했다. 이상하다 싶어 ‘연락이 안 닿아서 연락드려요. 입사할 때 준비할 거 뭐 따로 있나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이틀 뒤 답장이 왔다. 사장 ‘아몰랑’은 ‘지금 회사에서 여러 고민을 하고 있어서 다시 연락드리겠어요’라는 말이다. 처음 입사를 결정했을 때 계약서를 썼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보니 A 씨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거다. 부동산 계약, 물품 거래 계약 등등 수많은 계약은 먼저 작성하고 계약일에 맞춰서 대금을 치르고 물건의 양도가 이뤄지는데, 유독 나의 시간과 기회를 양도하는 근로계약은 꼭 입사를 한 다음에 작성된다. 그러다 보니 A 씨처럼 채용을 약속했다가 약속이 어그러지는 일들이 종종 발견된다. 이직을 위해서 꽤 많은 기회비용을 포기하게 된다. 전 직장을 퇴사하는 경우가 있고, 입사가 확정돼서 입사일까지 여행을 가는 경우가 있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입사의 약속은 꽤나 많은 일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입사를 약속한 사장 ‘아몰랑’은 책임질 것이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입사를 약속했을 때 A 씨와 ‘아몰랑’ 사이에는 근로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법원은 판단하고 있다. 계약서는 없지만 계약은 있는 상태로 ‘아몰랑’은 A 씨에게 입사일이 되면 일을 시키고,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 것이다. 이 상태를 채용 내정이라고 하고, 이 채용 내정의 취소는 해고와 같다. A 씨 입장에서는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쫓겨난 것이다. 해고를 당한 것인데,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해고는 사장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A 씨가 해고당할 만큼 큰 잘못을 저질렀거나 ‘아몰랑’ 사장이 정리해고 수준으로 회사가 어렵다는 점을 입증했을 때만 할 수 있다. 다른 계약은 다 계약서를 먼저 쓰고 위약금을 물리는데 근로계약은 먼저 쓰지도 않고, 위약금을 설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채용을 취소해도 별 문제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단 입사의 약속, 언제부터 어디로 출근해서 뭘 해야 하고 임금 수준은 어떻다와 같은 본 글의 첫 문단의 내용들은 문자메시지로 받든, 아니면 이메일로 받든 기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받는 게 유리하다. 전화 녹음을 하는 방법도 있다. 근로계약서는 없어도 근로계약을 했다는 채용 약속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 시작하기 전이어도 계약서가 없어도 약속은 약속이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사진 : 게티이미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말을 한 안도현 시인은 "삼겹살을 구울 때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젓가락만 들고 있는 사람은 삼겹살의 맛과 냄새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기를 불판 위에 얹고, 타지 않게 뒤집고,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더 많은 기억을 소유하게 된다"며 "제발 고기 좀 뒤집어라"라고 말했다. 좀 귀찮아도 손 한 번 더 움직이는 작은 변화가 다른 경험을 만들고, 그 생각이 다시금 작은 기억을 만들어내서 변화하는 삶, 지긋지긋한 일상에 주는 작고 소소한 감각의 태동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뭣보다 다정하다. 누군가를 먹이는 일,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하는 일, 다른 사람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는 일, 모두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의 돌봄이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은 자신을 돌보는 일과 같다. 그 이유는 돌봄이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1) 돌봄이라고 했을 때 장애인, 노인, 아동, 질환자의 일상 활동을 돕는 지원 행위로 좁게 정의하기도 하는데, 넓은 돌봄은 관계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청소, 빨래, 요리, 씻기기, 정서적 지원 등 관계와 환경을 회복시키는 모든 활동을 범주에 두고 있다. 남, 녀, 노, 소, 장애, 비장애, 질환, 비질환 등 개인적 소인에 기인해 요구하고 요구받는 돌봄을 넘어선다. 넓은 돌봄은 모든 생명이 서로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보편적인 일이다. 1) 모리무라 오사무의 『케어의 윤리』를 인용한 『돌봄의 사회학』에서 발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소진되는 일들이 있다. 한 사무실에서는 오늘도 능구렁이 같은 상사가 출근하자마자 다가와서 말을 건다. 어김없이 "그래 김 과장 어제 그 일은 잘 돼가고 있지?"라고, 이걸 듣고 "어제 5시에 시킨 일이잖아요!"라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던 일도 있다. 치킨집에서는 메뉴판에도 없는 메뉴를 시키겠다며 "반 마리만 구워주세요. 되죠?" 능글맞게 말을 던지는 데에 억지 미소를 짓고 "안 돼요"라고 말하는 일도 있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사장이냐, 나도 해주고 싶지. 근데 사장이 안 된다고!'라고 백 번은 말했다. 뒤돌아서서는 '반 마리 왜 못 팔게 하는 거야'라며 사장을, 메뉴에도 없는 걸 주문한다며 고객을 단박에 뒷담화를 하기도 한다. 시간을 들여 노동을 사장에게 주고, 그 사업체의 규칙에 따라야 하는 노동의 현장에서 자잘한 소진의 사건들이 쌓인다. 그리고 하루의 힘들었던 속마음을 털어놓는 타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일, 집중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일 역시 돌봄의 일종이다. 일감은 월급을 받기 위해 노동력을 타인의 지배하에 두고 그 월급을 받아 생활하기 위한 것으로 돈을 버는 업무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괜찮은 삶을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 수많은 일감 속에 우리는 놓여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사방팔방 널브러진 신발들이 눈에 들어오고, 화장실 거울에 맺힌 물방울 때는 당장이라도 닦아내야 할 일감으로 발견된다. 주방 화구 근처에 있는 타일에 붙은 기름때도 그렇다. 금전적인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집안일 역시 일감이고, 나의 삶과 이웃의 삶을 건전하게 재생산하는 일이 된다. 가사 노동이라 불리는 집안일은 사회와 타인과 자신, 그리고 노동력의 재생산을 돕는 환경을 조성하는 의미로서의 돌봄이기 때문이다. 사소하게 보였던 일들이 관계를 돌보는 행위가 될 때, 돌봄은 아동, 노인, 장애인, 질환자의 일상 활동을 돕는 지원 행위만이 아니라 관계를 재생산하는 모든 행위가 돌봄임을 그려낸다.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닌 사회화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은 자신을 돌보는 일과 같다. 고기 하나 굽는 일, 요리를 해서 먹이는 일, 애인이나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 청소를 하고 신발장을 정리하는 일, 모두 서로를 돌보는 일이다. 엄마와 여성에게 과중하게 부여된 돌봄의 책임을 나누는 작은 움직임은 관계 변화의 첫걸음이 되기도 한다. 성의를 조금 더하면 쉬운 요리 하나 정도 레시피를 배워서 함께 먹는 일, 가스레인지의 불을 조절하고, 재료를 다듬는 일 그리고 눈에 보이는 청소를 시작하고 관계를 챙기는 일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돌봄 노동이 엄마와 여성만의 일이 아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병원에 가라고 해도 한 번을 안 가고 버티는 가족이 있다. 집마다 한둘쯤 있는 이 '고집불통'은 "병원 가면 돈만 들지", "병원 가서 아프면 일 못하지", "병원 가면..." 입으로는 아프다면서 핑계도 많다. 아픈 구석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허리가 쑤신다며, 두통이 심하다며, 어느 날은 눈이 침침하다고 어지럽다는 말도 한다. 그러다 고열에 시달릴 때도 있고, 무릎이 시큰하다면서 "비가 오려나"라고. 애꿎은 날씨 탓을 한다. 산업재해 상담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프다면서 병원에 안 간다는 분들은 속이 답답해진다. 해고, 임금 체불, 괴롭힘, 산업재해, 노동조합 활동 등등 노동을 하며 겪는 상담에 다양한 질문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언을 청하는데, 무엇 하나 속이 터지지 않는 일이 없다. 매일 휴게시간에 뭣 모르고 1시간씩 일하고서 생각해 보니 억울해서 임금 체불 아니냐며 오는 대형 병원 약사, 회사에서 채용한다고 2024년 8월 1일부터 출근하자고 해서 푹 쉬고 있었더니 갑자기 채용 취소됐다고 억울해하며 찾아오는 30대 초반의 청년(채용 내정이라고 해서 부당한 해고일 수 있다), 의욕적으로 하는 일마다 능력 없으니 하지 말라고 딴지를 거는 사장 탓에 이젠 기가 죽어 우울증에 걸리겠다고 하는 작은 회사의 직원,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을 사장이 안 지켜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묻는 노동조합의 위원장, 그런데 그중에서도 단연 속 답답한 일은 아파서 찾아오는 분들이다. '수근관증후군, 적응장애, 요추간판탈출증, 난청, 유산·사산(조산 포함) 진단받았어요'라며 찾아온다. 병원 다녀오셨냐, 지금 몸은 괜찮으시냐고 물으면 생각과 다른 응답이 돌아오는 때가 있다. 한 번은 입주간병인 60대 여성 A 씨가 찾아왔다. 간병을 받는 어르신은 나이가 많았지만 스스로 거동도 잘하셨는데 사고는 불시에 찾아왔다. 어르신의 몸이 유독 안 좋았던 맑은 날 거동을 돕던 A 씨는 어르신을 부축해 휠체어에 앉혔다. 그리고 허리에서 "툭" 소리가 났다. A 씨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고, 겨우겨우 움직여 병원에 갔더니 요추 압박 골절이란 진단을 받았다. 60대는 노인도 아니라지만, 나이가 들면 골다공증 유병률이 급증한다. 돌봄이 필요한 90대 어르신을 돌보던 간병인은 돌봄을 받아야 하는 어르신이 됐다. 상담소에는 A 씨의 남편이 A 씨를 부축해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모습이었는데, 문득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입원 며칠 하랬다면서 왜 입원 안 하셨어요? 엄청 아프시잖아요." A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산재 된다고 하면 입원하려고요. 병원비도 나오고 월급도 준다면서요. 의사한테 안 아픈 척하고 나왔어요" 놀라서 사고는 언제 났냐고 물어보니 5일 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직 산재 신청도 하지 않았던 거다. 한국의 산업재해보험은 신청주의를 택하고 있다(노동 선진국이 택하는 직권주의가 아니라). 재해자의 신청이 있어야 산재 인정을 위한 절차가 개시된다. 그리고 신청하려면 진단서와 난해하게 생긴 신청 서류를 작성해서 사업장 주소지를 관할하는 근로복지공단에 접수하는 복잡함도 있다. 5일이나 산업재해 신청을 안 하고 아픈데도 입원을 참는 모습에서 마치 고집불통 가족이 떠올라 속이 어지러워졌다. 요즘에는 산업재해 신청이 비교적 쉽다. 과거와 달리 근로복지공단이 지정한 산재 지정 의료기관에는 산업재해 신청을 대신해 준다. A 씨와 같은 사고로 인한 질환은 신속하고, 수월하게 인정받는 편이다. 근로복지공단이 2024년 5월 1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고 재해 처리 소요 기간은 평균 17.5일(2024년 3월 기준)이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신청일로부터 7일 안에 지급 여부를 결정하라는 규정보다 긴 기간이 소요되지만, 질병은 평균 235.9일 걸린다). A 씨와 같이 사고일 때 준비해야 할 것은 사고가 난 경위와, 사고를 보거나 입증할 수 있는 증인 또는 증거 정도다. A 씨는 꽤나 만족해서 돌아갔다. 아참, A 씨에게 산재 인정은 당장 생각하지 말고 아프면 쉬거나 입원하셔야 한다는 잔소리도 잊지 않았다. 아플 때 쉬지 않고 일하면 골병이 난다. 제도는 환경과 같아서 그 안에서 적응하며 살아간다. 외국에는 상병수당이란 게 있다. 근로 능력 상실했을 때 어느 정도의 생계비를 보장받고 쉴 수 있는, 그렇게 A 씨를 병원에 보낼 제도다. 사진 : 게티이미지
포기할 게 너무 많은 "N포세대" 대학교를 졸업하며 취업을 준비할 때 '삼포세대'란 말이 유행했다. 당시 필자의 목표는 단순하고 명료했다. 평범한 중산층 월급쟁이. 특별할 일 없고, 대단할 일 없이, 하루하루 평탄하고 평이하게 살아가는 그런 삶을 그렸다. 돌이켜보면 필자가 바랐던 삶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실에서 정규직으로, 연 5천 이상의 연봉을 받고,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즐길 수 있는 취미를 한두 개 가지고, 일 년에 한두 번쯤은 해외여행을 가고, 자기 집을 가지고 은퇴 이후를 위해 투자하는 삶일 텐데, 중산층 월급쟁이라고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이면에는 풍요로운 삶을 꿈꿨던 거다. 그러면서도 '평범한 중산층 월급쟁이'라는 쉬운 말의 이면에는 '모두 이 정도는 누려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탐욕이라 말하기엔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어야 할, '당연히 이 정도는 누려야지'란 삶의 기대를 내려둔 사회 구조의 변화는 마치 청년이 직접 포기한 것마냥, 삼포세대란 말로 나타났다. 구조적 문제를 희석시키고 낙담하고, 자조하는 삼포세대는 N포세대로 진화했다. 2011년도 등장한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는 곧바로 대중에 유행했고, 포기당할 것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을 포기당하며 오포세대라는 용어가 쓰였고, 꿈과 희망까지 포기당했다며 칠포세대라고 스스로를 칭하기까지 했다. 청년 세대가 직접 포기한 적이 있었는가 싶은데, 지나고 보니 포기했다고 말해지고 있었다. 청년 일자리 불안이 청년 빈곤으로... 청년의 문제를 진단하고자 청년재단은 2024년 '청년 정책·이슈 톺아보기'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대학생, 사회진입준비생, 직장인, 신혼부부 등 대상으로 청년 이슈를 파악하고자 했고, 결과는 지난 2월 28일에 발표했다. 전국 19~39세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 조사에서 청년이 꼽은 올해 가장 주요한 이슈는 '청년 경제생활 및 환경 여건 악화'(42.1%)였고, 그다음은 청년 주거 불안(23.1%), 사회 진출 지연 청년의 재도전(21.9%)으로 나타났다. 청년 경제생활 및 환경 여건 악화는 외환위기 이후 사그라질 틈이 없이 확대된 청년 실업과 청년 일자리 불안 그리고 청년 빈곤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다. 빈곤과 사회 양극화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 청년의 빈곤에 정부는 대책으로 고용-창업 지원(고용장려금, 취업성공패키지 등), 주거 지원(중소기업취업청년 전월세자금대출, 전월세보증금대출이자 지원 사업 등), 자산 형성 지원(청년내일채움공제, 희망내일키움통장 등), 소득 금융 지원(청소년 한부모 자립 지원, 학자금대출 상환 부담 경감 등) 등의 여러 사업들을 제시하고 제안하고 있지만, 실제 청년 빈곤이 나아지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년 빈곤 실태와 자립 안전망 체계 구축 방안 연구1' 보고서에서는 만 19~34세 4,11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25~29세 1,503명의 연간 근로 및 사업 소득(평균)은 2,032만 원이었고, 30~34세 1,410명의 연간 근로 및 사업 소득(평균)은 2,847만 원이었다. 연령대별 주관적 빈곤 인식을 보면 만 25~29세의 경우 빈곤의 긍정 응답(그렇다와 매우 그렇다)은 45.9%(5점 평균 3.36점)이었고, 만 30~34세의 긍정 응답은 40.8%(5점 평균 3.30점)로 나타났다. '샘 올트먼 실험'이 뭐길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다. 젊어서 한 고생이 장래에 귀한 밑천이 될 거라는 말인데, 으리으리한 빌딩에 파견 나가서 또는 공장에 파견 나가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1년 계약하고 내년에도 일을 할지 불확실한 노동자, 되는 일 안 되는 일 가리지 않고 아파도 출근해 하루종일 일하는 자영업자, 생활비 걱정하며 공부하는 대학원생, 1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사업장과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해서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노동자 등등 현생의 고달픔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사탕발림으로 읽힐 수 있는 옛말이다. 다만 비정규직이 없어지고, 소득이 안정되면 정말로 '젊어 고생을 사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관련해 현실 속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다. 그중 소득 안정과 관련해 미국의 비영리기관 OpenResearch가 진행한 '보장 소득' 실험을 소개해 볼까 한다. 이는 OpenAI의 CEO '샘 올트먼 실험'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수급자 1,000명에게 매달 1,000달러 현금(약 140만 원)을 지급했다. 여러 결과 중 눈에 띄는 부분은 폭음이나 진통제 사용이 각각 20%와 53% 줄었고, 일하는 시간이 주당 평균 1.3시간 줄었고, 타인을 돕는 데 쓰는 돈이 매달 22달러가 늘었다. 결과 뒤에 해석의 지점이 있다. 재원이 확보되는 과정에서 부가 이전되는 경험을 하고, 삶이 안정되면 포기할 것이 줄지 않을까 하는 해석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발표 기준으로 보장 소득을 지급했을 때 25~29세의 연간 근로 및 사업 소득(평균)은 3,712만 원이 될 것이고, 30~34세의 연간 근로 및 사업 소득(평균)은 4,527만 원이 된다. 이제 포기할 것이 조금 줄지 않았을까?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한 직장에서 핸드폰 사용을 금지했다. 출근할 때 입구에 있는 사장에게 맡기고 들어가란 말이었다. 회사는 '근무 중 업무와 상관없는 스마트폰 사용 절대 금지'라고 사규에 적었고, '경고를 무시하고 사용하면 1회 적발 시 시말서 제출'이라고 경고했다.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한 콜센터의 일 때문이었다. 수년간 한 금융회사는 콜센터 직원들에게 핸드폰을 반납하라고 시켰다. 출근할 때 사무실 입구에 설치된 사물함에 넣어두고, 퇴근할 때 핸드폰을 가지고 가도록 했다. 점심시간에는 한시적으로 핸드폰을 돌려줬다. 군대에도 핸드폰이 반입되고, 성인인 대학생들이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등 온갖 통신장비를 지니고 학교 수업을 듣는 시대에, 누구 하나 스마트폰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는 시대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건 방송사 기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는 금융회사에 문의를 했다. "왜 핸드폰을 수거하시나요?" 금융회사는 답했다. "휴대전화 금지 조치는 고객정보 유출 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고객상담 업무 이외 시간이나 휴게시간에는 사용이 자유롭고, 근무시간 내에도 사무 공간에서는 필요한 휴대기기를 언제든 사용할 수 있고, 일률적으로 휴대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시간 내 근무 공간 일부에서만 제한하는 것으로, 근무시간 내에서도 영업장 외부에서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당시 친구 몇 명과 이야기를 하다가 놀랍게도 찬반이 나뉘는 걸 볼 수 있었다. "반납이 속 편해" 파와 "지금이 몇 년도야" 파는 각각 이렇게 말했다. "반납이 속 편해" 파 : 직장 그거 돈만 벌고 가면 되는 데고, 가서 딱히 다른 일 할 거 없잖아. 그리고 근무 공간 밖에 나갈 때 전화기 가지고 가면 되는 거 아냐? 기밀정보 취급하는 군시설 들어갈 때 나도 핸드폰 반납하고 들어가. 보안 받아서 노트북은 갖고 들어가도, 콜센터에서 전화기 쓸 시간도 없이 전화 쏟아지고, 성과도 채워야 하는데 굳이 그거 갖고 들어가야 되나? "지금이 몇 년도야" 파 : 요즘 핸드폰이 뭐 게임하고 드라마 보고 영화 보고 그런다고 전화기가 아니냐. 너도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다른 연락도 좀 주고받고, 하다 보면 급한 연락 올 때도 있고. 거기다가 핸드폰 없으면 불안하잖아. 거기다가 뭔 기밀이야. 개인정보 유출하려면 USB나 사진기 몰래 가지고 가서 촬영하면 되지. 이거 그냥 사람들 굴려먹으려고 하는 전형적인 못된 모습이야. 이게 몇 년도냐. 노무사 일을 하는 필자는 자연스레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 행해진 괴롭힘인가?"를 우선 따지다가 가만히 듣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속 편해 파'와 '쌍팔년도 파' 둘 다 핸드폰 수거의 옳고 그름을 따지며 찬반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했지만, 이야기는 "사장은 지시하는 사람이고, 콜센터 직원은 따르는 사람이다"라는 출발점은 같았다. 부당한 지시와 부도덕한 청탁, 비윤리적인 요청, 요구 등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이런 피로한 논란은 생기지도 않는다. 부당하고 나쁜 지시를 받았을 때 잘못됐다며 거부하는 발언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할 수 있는 핵심인데, 한국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는 직장에서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직장의 규칙에 순응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져 버리는 것이다.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 해고와 계약 만료의 권한, 근무지를 변경하는 수법, 은근하게 괴롭히는 수단 등으로 일상이 틀어지면 원상복구를 하는 데에 드는 시간과 돈은 상당히 피곤하기까지 하다. 수틀리면 거부하고 마음껏 그만두더라도 생계가 유지되는 든든한 사회안전망이든, 사내 규정을 민주적으로 정하는 든든한 노동조합이든, 사용자에게 강하게 책임을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든 있어야 직장인이 '아니요', '싫어요'라고 말하기가 쉬워진다. 위 금융회사의 핸드폰 수거 사건은 이후 인권위원회가 콜센터 직원들에 대한 차별 행위라고 판단했고, "휴대폰 소지를 제한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금융회사는 놀랍게도 "모든 부서 직원의 휴대폰 소지를 제한"하겠다고 인권위에 회신했다고 전해진다. 모두 다 사용하지 못하니 차별이 아니니 괜찮다는 논리가 기적처럼 만들어졌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휴대폰 수거 규칙은 개선됐다고 한다. 디자인 : 고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