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수고로움을 서로 이해하고, 누구도 일터에서 소외당하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4월 말 5월 초, 꽃이 만발하는 때 대학은 시험을 준비한다. 학업의 성취를 확인하려는 열망에 부응(?)한 대학교는 도서관을 밤늦게까지 개방한다. 평소 밤 10시면 끝이 나는 대학의 하루는 밤샘 모드로 전환해 하루 내내 사람이 떠나지 않는 공간이 된다. 하루 정도 씻지 않고 24시간을 넘기기 시작하면 꽤나 찝찝하고 씻고 싶어진다. 교실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오고 간 강의실과 화장실, 복도, 쓰레기통 곳곳에 학생들이 느꼈을 압박감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남겨진다. 플라스틱 커피잔, 온갖 종류의 과자 부스러기와 과자 포장지, 휴지와 음료수 페트병, 머리카락, 흘린 음료 자국, 바닥에 죽어있는 벌레와 음식물, 연습장과 노트 등등. 그럼 이제 청소노동자들의 시간이 시작된다. 밤을 새운 학생들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대략 새벽 6시는 대학교에 청소노동자가 출현하는 시간이다. 해가 뜨기 전 대부분 고령인 여성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학교에서 가까이 살면 걸어서, 멀리 살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가며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통상 첫 차가 운행을 시작하는 시각은 5시 30분경이다. 2023년 1월 2일 새벽 만원 버스를 탄 한덕수 총리가 '총리의 새해 선물'이라며 첫 차 시간을 15분 앞당긴 지도 어느새 1년이 더 지났다. 발단은 한 직장인이 "사무직 직원들이 나오기 전에 빌딩 청소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근무하는 빌딩까지 뛰어야 한다"며 "버스 첫 차 시간을 10~15분만 당겨주셔도 한결 낫겠다"라고 했다는 거다. '당겨달라'고 한 직장인은 청소노동자였고, 총리는 즉각 버스 시간을 15분 앞당겼다. 그런데 그의 삶이 나아졌을까? 란 질문에 한 총리는 응답할 수 없을 거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소노동자는 사무직 직원들이 나오기 전에 맡은 구역의 청소를 마쳐야 한다. 이런 일을 한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정리를 끝낼 즈음 직원들이 하나 둘 출근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젊은 사무직 노동자의 출근으로 새벽에 출근한 고령의 직장인은 사라진다. "숨겨진 직장인"이라 칭해야 할 청소노동자는 회사가 지정해 준 휴게공간으로 숨어든다.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계약은 통상 하루 8시간 일하기로 정하고, 새벽 7시에 출근해 청소를 하기로 하지만, 강의를 시작하는 9시 이후에는 강의실을 청소할 수 없다. 학생들이 한 교실에 4~50명씩 빽빽하고, 한 층에 강의실이 1~20개씩 있으면 통행하는 학생의 수만 4~500명이다. 화장실과 복도에 학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서기 전에 정리를 마치지 못하면 청소를 못 한다. 어쩔 수 없이 청소노동자들은 월급으로 받기로 정한 7시보다 일찍 와서 청소를 시작한다. 빠르면 6시, 조금 늦으면 6시 반에 이미 출근해 있다. 마침 대학교에 있던 나는 한 청소노동자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고, 그녀는 "내 일 욕심 때문에 한다"며 "삭신이 쑤시는 건 좀 힘들어도 어쩔 수 없지. 파스 붙이면 되지"라며 "아무것도 아녀"라는 풍모를 풍기면서도, 그래도 밥 먹는 때는 좀 억울하다는 내색을 표했다. 한 대학의 청소노동자는 "물가는 폭등했는데 왜 우리 식대는 5년째 12만 원인가요?"라고 물었다. 새벽부터 나와서 밖에서 하루 두 끼를 먹어야 하는데 현행 학생식당은 5,000원, 김밥 한 줄도 3,000원이 넘는다. 식대 2,700원으로 무엇을 먹으라는 말이냐며 반문했다. 식사하는 청소노동자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대가 부족하다 보니 반찬값으로 삼아서 도시락을 싸다가 휴게공간에서 식사를 한다. 지금 서울 곳곳의 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식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주된 요구는 월 식대 2만 원 인상(현행 식대: 월 12만 원)이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90원쯤의 인상 요구다. 용역업체에 올려달라고 하자 "우리는 식대를 올려 줄 수 없다"며 대학에 알아보라고 넌지시 말했다고 한다. 마침 대학교에 있던 나는 청소노동자에게 몇 년간 일했냐고 물어봤다. 2001년부터 일을 했다며 "내가 청춘을 바쳤어. 39살에 들어와서 60을 넘겼어"라고 말을 남겼다. 남들 다 자는 새벽에 청소를 바쁘게 했을 모습이 스치며 문득, 저 돈이면 밥값이 아니라 약값으로도 모자라겠단 씁쓸함이 덮쳐왔다.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점심을 먹으려 신촌의 한 순두부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고 점원과 눈이 마주쳐 짧게 목례를 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점원은 곧 말했다. "무엇을 드릴까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 역의 탕웨이가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라고 말하듯, 모국어가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어투였다. 내게 가장 익숙한 말을 조금은 다르게 하는 그에게 "들깨순두부 하나 주세요"라고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식사는 맛있었고, 사과와 대파, 공산품의 가격이 오른 만큼 인상된 찌개 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섰다. 저녁에 간 중국집에서 다른 직원이 "무엇을 드릴까요?"라고 물었고, 나는 다시 그를 돌아봤고, 요리를 주문했고, 식사하고 나왔다. 앳된 것으로 보아 유학생 같았다. 식사는 다를 거 없이 맛있었고, 흡족했다. 최근 젊은 유학생이 상담을 왔다. 하는 말은 그랬다. 일을 한 지 1년 3개월이 되던 때 사장이 가게가 어렵다고 그만 나오라고 했다는 거다. 그만두기 전 3개월 동안은 가게가 어렵다고 해서 월급도 반절만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사장과 점점 연락이 되지 않던 중 유학생은 가게에 찾아갔다. 놀라울 것도 없이 오픈 중이었다. 사장은 다른 아르바이트생과 일하고 있었다. 화가 난 유학생이 달려들어서 '내 3개월 치 월급 언제 줄 거냐'고 우격다짐으로 다투고 온 활극이었다면 속이라도 시원했을까, 싶지만 유학생은 그러지 않았다. 유학생들 사이에 괴담이 있다고 했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우선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지를 잠깐 보려 한다. 한국은 외국인 유학생(D-2 또는 D-4 비자, 학사 기준)에게 주중 20시간(최대 25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정해뒀다. 당국의 정식 허가 기준에는 여기에 직전 학기 학점 기준도 있고, 한국어 능력(토픽, KIIP)을 일정 수준 이상 인정받아야 한다. 이렇게 여러 조건을 다 충족했을 때 시간제 취업을 할 수 있다. 대략 1주 5일 일한다고 하면 하루 최대 5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하며 대학 다니는 일이 특별하지도 않고,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가 유학생이라고 값쌀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우리 문화 배우러 왔으니 기특하다며 깎아줄 만큼 한국이 녹록한 나라도 아니다. 옛날 주경야독 이야기가 지금은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하는 흙수저의 이야기로 읽힌다. 최근 식당에서 유학생이 서빙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어렵지 않은 것은 단편적인 인상이 아니다. 그만큼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대학가에는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던 시기를 지나 다시 외국인 유학생 수가 증가 추세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22년 교육기본통계 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14년 8만 4,900명에서 2022년에는 16만 6,900명으로 2배가 증가했다. 그리고 교육부는 2023년 8월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을 유치해 세계 10대 유학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유학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괴담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시간 넘겨 일해서 강제 출국당한다"이라는 거다. 유학생은 1주 20시간 조건으로 일하기 시작했지만, 방학을 지나면서 지금까지 1주 30시간씩을 일했다고 한다. 20시간 초과해서 30시간을 일하라고 제안한 사장님이야 일 시키고 돈 주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세상 장사가 내 맘대로 됐으면 모두가 백종원 되는 거다. 장사가 생각보다 안 됐고, 유학생은 어느 날 보니 10시간 치 월급을 못 받았다고 했다. 그래도 20시간 치 월급은 꼬박꼬박 준 걸 두고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이 유학생은 식당에서 더 일하기를 포기했다. 시급이 짜면 오랫동안 일할 유혹에 벗어나기 어렵다. 거기다가 젊은 사람의 체력에 주 20시간과 주 30시간이 큰 차이가 아니니 잔뜩 팽팽해진 트리거를 누가 당기느냐인데 사장님이 10시간 더 일해서 돈 벌어가라는 말을 무심히 지나칠 젊은이는 별로 없다. 그렇게 지나고 보니 30시간 치 일을 하고 있는 거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인연을 상상해 보는 청춘의 시간에, 일한 만큼 돌려받는 대가의 이치는 쉽게 무시당한다. 그렇게 유학생은 10시간 치 임금을 받기를 포기했다. 무심한 법 때문인데, "니 사정이 딱한지는 내 알 바 아니고, 네가 일한 게 문제니 앞으로 취업 제한이 걸릴 수 있다. 아 참 범칙금도 내라"기 때문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처럼 어느 나라에서 왔든 공부하겠다는 대학생에게 등록금을 싸게, 생활비를 충분히 지원했다면, 그리고 1주 20시간 초과해서 일하자는 제안을 못하게 사장을 강하게 제지했다면 이렇게까지 됐을까? 그리고 갑자기 귀에 다시 울렸다. '헤어질 결심'에서 탕웨이가 그랬는데,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라고.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아침, 뜨거운 커피 한 잔의 여유'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출근길 커피 한 잔을 포기할 수 없다. 아직 집에서 나오지 않은 내 정신을 깨우는 커피는 나도 그렇고 아침밥은 못 먹어도 거를 수 없는 필수 아이템이다. 가격대는 1,500원부터 5,000원까지 천차만별이고, 그 맛도 각양각색이다. 아침 커피 한 잔에 그 풍미까지 느끼는 사치는 못 부려도, 겨울에는 따듯하게 고소한 맛으로, 여름에는 차갑게 신맛으로. 이 정도는 맞춰 마시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커피 맛을 물어보는 가게는 원두 향이 가득하고 바리스타는 비교적 여유가 있고, 아이스인지 핫인지만 고르는 가게, 그중에서도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가게는 바리스타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회중시계를 들고 이리저리 뛰는 화이트 래빗 같이 분주한데 실속이 크지 않은 느낌이다. 치열한 증기와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오는 커피머신과 동시에 요란하게 소리 지르는 믹서기 옆에서 쉬지 않는 일자리에는 앳된 청년이 앉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서 있다. 정신없이 바쁜 가게에서 줄은 줄지 않는다. 전광판에 적힌 숫자는 101, 103, 561, 571, 572 쌓여가고, 기다리는 대기 줄도 길어진다. 그동안 카페 아르바이트생은 화장실에 갈 수 있을까? 오래 전 설문조사이긴 하지만 2018년 알바천국에서 아르바이트생을 대상으로 "아르바이트 중 화장실 잘 가시나요?"라는 물음에 응답한 1,488명 중 79.3%가 근무 중 화장실을 못 가서 곤란했다고 답을 했다. 그 중 27.2%는 근무 중 화장실에 가지 못해 생긴 질병(변비 46.3%, 방광염 45.9%)이 있다고도 답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카페 아르바이트생들은 원두를 커피로 만들어 텀블러에까지 담아주는 하나의 공정에 포함된 기계의 부속품처럼 작동하고,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가는 것은 사치처럼 보인다. 커피가 왜 빨리 안 나오냐며 불평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점심, 저녁 피크시간을 보내면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일하는 1-2시간은 순식간이다.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응답을 했다. 화장실을 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밀리는 주문과 손님(40.6%)", "혼자 일해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27.3%)"가 다수였다. 우리가 카페에서 만나는 또 다른 장면이 있다. 커피가 나왔다고 말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대부분은 젊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일자리는 차별적이기 짝이 없다. 아르바이트생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다. 1주 15시간 넘게 1주일을 만근하면 주휴수당(1주일마다 하루를 유급으로 쉬는 수당)을 받고, 1주 15시간 넘게 1달 동안 일하면 연차휴가(1달마다 하루를 유급으로 쉬는 휴가)를 보장받고, 그렇게 1년을 넘게 일하면 퇴직금(1년 동안 일하면 한 달 치 임금을 받는 임금 보전 방안)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름은 때로는 주휴수당-연차휴가-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가 돼버린다. 그 이유는 1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에겐 주휴수당-연차-퇴직금을 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주휴수당은 임금 수준보다 약 20%를 더 줘야 한다. 사장님들은 종종 아르바이트생이 불성실하고 아무 때나 퇴사하고, 무단결근을 한다고 만만하게 여기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건 그 대우가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주는 만큼 받는다고, 사장이 아르바이트생을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비용으로 보니 그 반대도 마찬가지가 된다. 사장님이 맘 편히 1주 40시간 일하는 1명을 채용하기보다, 돈 아껴보겠다고 1주 10시간씩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4명을 쓰니, 아르바이트생도, 바로 옆 가게에서 1주 15시간 넘게 하는 일자리를 찾아가는 거다. 이직하면 누가 힘든지는 사장님이 잘 알겠지만. 일하는 동안 화장실도 가기 어렵고, 일하는 시간이 적다고 차별적인 대우까지 받는 곳에서 젊은 청년들은 갈려 나간다. 그런데 아무래도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사장님이 스스로 더 챙겨주겠거니 하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어쩔 수 없다. 노사가 서로 비용으로 보는 계산적인 판단을 덜 하도록, 15시간 미만 근로자에게도 주휴수당과 연차휴가를 보장하는 제도를 구성하면 된다. 그 제도는 누가 만드냐면, 청년 스스로와 청년 자녀를 가진 부모 그리고 우리다. 총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런 이야기는 누가 하려나 모르겠다. 하여튼 "하느님이 생각하지 못하면 우리라도 해야지(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중中)"라는데, 라임을 맞춰보자. "사장님이 못 하면 우리라도 해야지."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민족 대명절 설이 지났다. 설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나누는 첫인사 중 하나가 “명절 동안 맛있는 거 먹었어요?” 아니던가. 떡국, 갈비찜, 삼색나물, 잡채, 산적에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게 동태전, 꼬치전, 깻잎전, 고추전, 동그랑땡 등등등이다. 살과 식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명절 음식과의 눈치 싸움은, 결국 늘 먹부림으로 기우는 형국이다. 이번 설에 고향집에 내려가 문을 열었다. 먼저 나를 반긴 것은 반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코를 찌르는 전 부치는 기름진 냄새였다. 손바닥만한 초라한 후드에 비해 위풍당당한 업소용 프라이팬의 기름은 전분가루를 만나 자글자글 끓어올랐고, 날이 살짝 으슬으슬해서 창문은 닫힌 채였다. 깜짝 놀라서 나는 집의 창문을 잔뜩 열었다. 조금 추워도 옷을 입자고 했다. 아는 게 힘이고 걱정거리라고, 조리흄(cooking hume)에 노출돼서 폐질환을 앓는 급식조리노동자가 떠올라서 그랬다. 폐암의 원인은 흡연으로 알려져 있어서 요리하다가 폐암에 걸린다는 말이 의아해 보일 수 있다. 남성폐암환자의 상당수는 흡연자이지만, 여성폐암환자의 80% 이상은 비흡연자로 보고돼 있는데, 이들의 폐를 공격해 암을 발생시키는 원인은 흡연이 아니라 조리매연, 즉 조리흄(cooking hume)때문이다. 무상급식 12년 차인 2023년 발표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23년 3월 학교 급식 노동자 42,077명을 대상으로 폐를 검진한 결과, 폐암 의심 노동자 수는 341명(폐암 확진자를 포함한 수치), 폐 이상 소견자는 13,653명으로 전국교육청의 조사 결과 공식 확인됐다(여성 폐암 조발생률을 비교했을 때 학교급식노동자 폐암 발생률은 최대 16.4배 높음).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던 여러 사람이 같은 질환을 가질 때 우리는 직업병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루에 재료 준비, 조리, 취사, 배식, 설거지, 청소를 하는 급식조리노동자가 옮기는 물건의 무게는 약 8톤에 육박해 근골격계질환만이 문제인 줄 알았는데, 폐암 역시 급식조리노동자의 직업병이었다. 2021년 2월 학교의 한 급식조리사의 목숨을 앗아간 폐암을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일 시키는 학교가 노동자에게 위생적인 쾌적한 노동환경을 제공하지 못했단 사실이 인정됐지만, 질병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가정과 많은 음식점에서는 조리흄의 유해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각한 발암물질인 조리흄(cooking hume)은 기름을 사용해 조리를 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입자를 말한다. 초미세먼지보다 더 작고 가늘어서 우리가 숨을 쉴 때 폐포에 깊숙하게 침투해서 상처를 내고 염증을 일으키고, 다른 발암성 물질들과 뭉쳐져서 폐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로 규정됐다. 튀김 솥에 닭고기를 넣어 올라오는 희뿌연 연기, 기름을 잔뜩 머금은 대형 프라이팬에 고기를 구울 때 튀어 오르는 하얀 연기는 절대 피해야 하는 살인 먼지였다. 이러한 탓에 학교 급식조리사는 구인난이라고 한다. 과도한 노동강도와 조리흄 등은 일하기 어려운 곳으로 급식 조리 노동을 만들고 있다. 이런 조리흄울 줄이기 위해 국소배기장치, 집진기와 환풍기를 이용해 환기를 하고, 창문을 열어서 연기가 흩어지게 해야 한다. 이번 설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창문을 연 것은 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럼 매일 튀김기에 기름을 가득 채워 치킨을 튀기는 치킨집과 대형 웍에 기름을 잔뜩 담아 고기를 볶는 중국집 요리사는 괜찮은 걸까? 아직 제대로 된 연구와 조사가 없다. 문제가 심각할 것이 뻔하다. 주변에 일하는 가족과 친지가 있으면 아무래도 환풍기, 집진기가 설치에 돈을 아끼지 말자고 가장 쉬운 제안부터 해 보자. 그리고 그다음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방과 보상, 인식개선 등의 제도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아참 그리고 집에서 튀김, 기름으로 볶음 요리를 할 때 창문 여는 것도 기억하자.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상담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를 들자 IT프로그래머 A 씨는 퇴사 압박을 받았다고 했다.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20명 정도 일하는 IT업체다. 대표가 그중 나이가 어린 7명을 한 명씩 대표실로 불렀다는 거다. 대표는 회사 직인이 찍혀있는 “권고사직서”를 보여주며 “다음 달부터 월급 주기가 어렵다.”, “지금 여기 서류에 서명해서 실업급여받자.”, “지금 바로 하고 나가라.”, “왜 고민하는 거야?” 등의 말로 채찍을 들고, 중간중간에 여러 차례 반복해서 “지금까지 일이 힘들었으니 이제 실업급여받고 해외여행도 가고 푹 쉬어”라는 능수능란하고 달콤한 말도 곁들였다. A 씨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회사 다닌 지 4년째, 성장하는 회사의 모습도 봤고,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함께 고생하고 쌓인 정은 프로젝트 기한을 맞추는 밤샘 코딩의 길이와 비례했다. 회사에 애정도 있었고, 대표와 관계도 딱히 나쁘지 않았고, 회사에서 집까지 출퇴근도 30분 거리에 월급도 이 정도면 흡족했다. 그만둘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왜 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A 씨가 고민하자 대표는 더 큰 채찍을 들었다. “월급도 못 받는데 일을 해야 되고”, “여태 잘 해왔잖아” 라며 말재간을 부리니 버텨낼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A 씨도 실업급여 한 번쯤 받아보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주에 막 끝난 프로젝트를 하느라 하루 10시간, 20시간까지 일을 했고 허리, 목, 손목, 어깨 어디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그만둘 이유는 없지만 이번 기회를 꼭 잡아야 한다는 마음 속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대표가 부추겼다. “정리해고 해야 돼. 그러면 실업급여 어려워져.”라는 대표의 말장난에 속아, “알겠어요”라고 하며 쿨한 척하고는 권고사직서에 서명을 했다. 아참 정리해고 당하면 실업급여 못 받는다는 대표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서명을 받은 대표는 권고사직서를 삼키듯이 쓰윽 챙기고는(마치 갯벌의 게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는 줄) 뒤도 안 돌아보고 A 씨를 내보냈다. 그날 오후까지 권고사직서를 제출한 직원은 A 씨를 포함해 7명이었고, 그 7명은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한 직원들이었으며, 모두들 나이 어린 직원들이었다. 그날 저녁 회사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2주간 출장 간다”는 대표의 메시지가 올라왔고, 출장을 마치고 대표가 돌아오기로 한 날은 A 씨와 동료 6명이 회사를 퇴사하기로 한 다음날이었다. 용무가 끝났으니 만나주지도 않겠단 거다. A 씨의 “몰랐는데..”라는 말은 ▲ 권고사직서에 서명을 꼭 해야 하는 게 아닌 점, ▲ 해고를 당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 ▲ 권고사직서는 회사가 인건비를 줄이려는 대표적인 수법이라는 점에 모두 해당한다. 그리고 서명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닌데... 최근 직장갑질 119가 발표한 ‘2024년 경기 및 직장 내 고용관계 변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65.5%는 올해 국내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고,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0.6%였다. 만 19세 이상 1,000명의 직장인에게 물었으니 206명의 걱정거리인 것이다. 이어 경영 악화로 해고, 권고사직, 희망퇴직을 회사가 권하면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물음에는 “수용하겠다(13.5%)”, “충분한 위로금을 받을 수 있다면 수용하겠다(63.2%).”고 답했다. A 씨가 “저 몰랐는데..”라고 할 때 몰랐던 게 하나 더 있는데 위로금의 이유가 여태 열심히 일한 데에 대한 대가이고, 실업급여는 본래 월급보다 부족하지만 평소 생활 수준을 보장해야 하니 위로금을 주는 것(재사회화 비용으로 볼 수도 있다.)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담이 A 씨만의 일은 아니다. 어떤 요양병원의 의사도, 어떤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도, 어떤 공장의 실무자도, 어떤 학원의 학원 강사도 다들 비슷하게 모르고 권고사직서에 서명했다. 돈을 매개로 일을 하고, 돈을 받는 데에는 여러 규칙이 있고,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이 그 규칙이다. 사장이 지키도록 돼 있다. 초, 중, 고교를 졸업하고 야생과 같은 사회로 나가 일을 하는데, 처음 겪는 것은 난망함이다. 직장에서는 내가 할 업무와 복지에 대한 간단한 소개 정도가 전부다. 어떤 보호를 받는지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노동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부터 ‘시민교육’ 교과에서 노동권을 배우고, 고등학교에서 “1947년 여러 총파업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노동시장 유연화가 일자리를 창출하는지, 노동자의 권리에 타격을 주는지”라는 주제를 가지고 논쟁하고,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노동운동의 역사를 고등학교에서 배우고 ‘노조를 만드는 건 기본권’이라 배운다. 독일에서는 학생에게 모의 노사관계 놀이 등을 포함한 교육을 하고, 스웨덴은 직업체험 과정에서 근로기준법의 요소들을 체험하도록 한다. “사람이 가능한 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실업자나 노인을 위해서, 무엇이 준비되어 있는가?”의 답을 고민하도록 가르친다. 해외 국가들에서 노동기본권에 대한 내용을 가르치는 것은 기본이다. 도로의 신호와 규칙을 시험 봐서 운전면허증을 주는데, 직장의 신호와 규칙도 시험이라도 봤어야 하는 정도다. 여하튼 대표는 노무사나 변호사에게 값을 치르고 배웠을 것이고, 충실하게 이행했고, 해냈다. 하지만 배운 적 없는 A 씨는 억울하다. 속았단 생각이 들어도 법은 멀기만 하다.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몽촌토성역에 지하철이 뚫려서 집값이 올랐다고 했다. 친구들과 술자리 안주로 오르내린 집값 이야기였다. 오랜만에 만나 갑질하는 상사, 지랄하는 고객 이야기를 하고 나니 가족, 건강, 날씨 이야기를 거쳐 주식, 부동산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런데 정작 몽촌토성역에 사는 친구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풍족하게 매월 월급을 받는 그이는 말했다. “돈이야 없다가도 있는 거지.” 이야기를 들은 비정규직은 할 말이 없었다. 부동산 투자는 남의 말이고, 벌이가 제로가 되는 게 걱정이었다.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잃기 쉽다. 일하는 사람의 바람은 비슷하다. 돈벌이는 평탄하길, 삶은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다. 특별한 재능을 뽐내서 잘 나가는 전문직 프리랜서는 예외이니 제쳐두고서, 방법의 차이가 있다면 정규직으로 안정적으로 일하느냐, 엇비슷한 소득 수준을 유지하면서 비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쉽게 건너뛰며 자유로우냐 그것이다. 집값부터 옥상 위에 또 천장이 있다 보니, 로또라도 맞지 않는 이상 다른 벼락같은 혜안이 나오지 않는다. 안정적인 정규직이 답인데, 현재 한국의 비정규직 유니버스는 이렇게 다채롭게 착취한다. 1. 일용직 비정규직 아침 해가 뜨기 전, 지하철 첫차가 출발 준비를 하는 새벽 5시에 인력사무소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시계가 5시를 넘기면서 인력사무소에는 하나둘씩 사람이 들어차고, 공간이 없어진다. 때탄 각반과 장갑, 안전화를 신은 잔뼈가 굵은 이들이 하나둘 빠져나갈 때 같이 현장으로 나간다. 공사현장, 공장, 청소현장에서 몸을 써서 일하고 하루를 마치며 받는 약 15만 원의 돈을 받고, 약값 파스값으로 좀 떼고, 10%는 인력사무소에 준다. 이렇게 일을 하는 사람을 두고 일용직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2. 프리랜서 비정규직 2002년의 꿈은 이루어진다는 카드섹션 뒤로 월드컵 경기장 옆. DMC에는 카메라 세례와 대중의 선망 속에 셀럽들이 연기한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뒤는 분주하다. 무대를 미술작업으로 꾸미고, 조명을 쏘고, 카메라로 촬영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음향을 입히고, 대본을 작성한다. 그리고 입봉을 기다리는 피디와 작가까지. 이 중 정규직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프리랜서가 있다. 하늘을 활강하는 자유로운 새처럼 정주하지 않는 이면에 불안을 안고 산다. 정규직으로 첫걸음을 떼지 못한 채 저임금에 다음을 기약하는 많은 사람을 두고 프리랜서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3. 간접고용 비정규직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 학생은 청춘은 사서 고생하는 거라며,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자리를 찾았다. 고3 반에서 입심은 단연 발군이었다. 그래서 콜센터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카드 상담원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하고, 상담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학생은 연봉이 높기로 유명한 ○○카드의 정규직 직원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거래하는 은행과 카드회사, 가전제품 A/S, 보험사, 배달회사, 공공기관까지 다수의 회사에서 최전선에 배치돼 맘이 급한 사람을 대응하며 욕바가지 역할을 한다. 급기야 태안의 화력발전소에서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가장 험한 일을 하다가 어두컴컴한 곳에서 24세의 고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복지도 없고 임금도 적어서 대접은 박하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에 내몰리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있다. 4. 기간제 비정규직 2년 넘게 계약을 체결하면 마음대로 자르지 못하는 정규직이 된다. 그 틈새를 비집고 1년, 6개월, 3개월 단위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아파트 경비원, 빌딩 청소미화원, 중소기업 사무직 경리 직원, 콜센터 상담사에게 사장은 한 번, 두 번 갱신하다가 “민원이 들어왔어요. 계약 종료할게요.”, “원청이랑 계약이 종료됐어요. 일 그만하세요.”라며 리스크를 직원에게 전가해 그만두게 하는 이렇게 일하는 사람을 두고 기간제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5. 비정규직 없을 바람 비정규직 유니버스에 놓였더라도 안정이란 바람은 비슷하다. 누구에게든 대놓고 너 곧 잘릴 것이라고 하면 기대하지 않는다. 언제든 그만둘 심산으로 적당히 일하고 다른 일자리를 기약한다. 그런데 ‘너도 될 거’라는 기대는 달콤한 희망의 조각이다. 인고의 터널 끝에 밝은 미래가 있다는 기대는 무리하고 애쓰게 한다. 대법원은 이런 기대를 가지고 일을 열심히 한 사람이 계속 일할 수 있는 법리를 만들어냈다. 일용직과 기간제 비정규직에게는 계약 갱신 기대권을, 프리랜서 비정규직에게는 근로자성을 인정해 정규직 전환 기대권을, 간접고용 비정규직에게는 2년 넘게 일했다면 파견법상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최근에는 위탁체가 바뀌더라도 고용 승계 기대권을 인정해 비정규직 보호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다른 직원들의 계약이 갱신되는 걸 봤거나, 시험을 통과하거나, 잘하면 더 일할 수 있단 말을 듣고 온 힘을 다한 사람들의 바람이 흩어지지 않게, 비정규직이란 질곡을 가라앉힐 바람을 안은 꽤나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이어지는 중이다.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인사과 이사님이 ‘회사가 힘드니 이제 그만하자’라고 했어요. 생각해 보고 다음 주까지 말해달래요. 어떻게 하라는 거죠?” 직장인 A 씨가 물었다. “퇴사하면 후회하겠어요? 다음 직장 구할 여유는 있고요?”라고 반문했다. 직장인 A 씨는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야 해요? 저 그만두라는 거예요?”. 직장인 A 씨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는데, 이사님은 기회를 줄 테니 “다음 주까지 고심한 끝에 퇴사를 결정해 와라”라는 말을 에둘러한 것이 분명했다. 끝까지 다 말하지 않아도 눈치 빠른 직원이니 알아들으라는 말이었다. A4용지에 사직서라고 큼지막하게 제목을 적고. 사직일은 협의, 이름은 A 씨, 깊고 진한 서명을 해서 제출하면 마지막까지 예쁘고 착한 직원으로 이사님의 기억에 남길 수 있다. 반대로 제출하고 며칠 후, 침대에 누워 이불킥을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항할 모든 수단을 포기하는 사직서는 함부로 제출하면 안 된다. “그럼 버틸 수 있어요?”라고 A 씨가 물었다. 그만하자는 연애에 질척거리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회사의 그만하자는 말에는 질척거려야 한다. 잘못이 없는 노동자를 막무가내로 내보낼 수 있는 회사는 없다(다만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해고가 마음대로 이루어진다). 그런데도 해고를 하면? 잘못된 해고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 잘못된 해고를 한 사장은 노동자를 복직시키고, 일 안 한 기간 동안의 임금도 지급한다. 회사는 이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으려고 퇴사하고 얼마간의 위로금을 받아 가라고 한다. 돈으로 받는 위로가 썩 유쾌하지는 않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날아드는 사직 제안을 두고서 “직장 그만두는 것과 헤어짐이 같은 건가요?”라고 물어본 대학생이 있었다. 엉뚱해 보였지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닮기는 했다. “그만하자”로 헤어짐이 시작된단 점에서는 같은 말이긴 하다. ‘차이면 바로 짜게 식더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가끔가다 있지만, 보통 우리는 남몰래 일상에서 그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한다. 남남이니 매일같이 안부 메시지를 보내던 습관과 시시콜콜 잡담하며 통화하는 습관은 남에게 주고, 추억이 어린 사진도, 주고받았던 손 편지와 선물에서 애인의 의미를 찾던 습관도 지워낸다. 앞으로는 주말의 데이트 계획도 짤 필요가 없다. 그렇게 일상에서 하나씩 떼어낸 습관은 도려낸 내 살을 다시 채우듯이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과 닮았다. 기회의 땅 엘도라도를 마주한 스페인 왕국의 잔인한 모험가처럼 퇴사를 기회로 생각하고 질주하는 사람이 소수 있다지만, 보통은 궤도에서 벗어나 방황한다. 돌아오는 데에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출근을 하지 않고, 업무 계획을 짜지 않고, 업무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하루의 일상 중 1/3이 사라진다. 자연스럽게 동료 및 이웃들과 소원해진다. 원치 않은 사직으로 일상은 일그러지고, 불안 속에서 미래는 불투명해진다. 새로운 취업도 녹록지 않다. 직종, 임금 수준, 직장 문화, 통근 거리, 취업 시기 어느 하나 정해진 게 없어서 불안정하다. 배운 게 비지떡이라고 업계를 떠나지 못하는데, 회사가 쓰라는 사직서 안 써서 레퍼런스 체크에 불이익을 입을까 걱정도 한다. 레퍼런스 체크가 심각하게 고민할 일은 아니다. 근거 없는 거짓 소문은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고, 왜 퇴사했냐는 질문과 전 직장과의 관계는 A 씨가 면접에서 직접 이야기하면 된다. 일상으로의 회복이 언제일지 모르니 드는 우려와 걱정은 끝이 없다. A 씨는 이어서 물었다. “‘눈치 좀, 회사가 어려워’라는데요?” 법은 노동자가 잘못하지 않았으면 해고하지 못하게 정해뒀다(근로기준법 제23조). 다만 근로기준법 제24조는 회사에 긴급한 경영상 위기가 있을 때 정리해고를 할 수는 있지만, 사전 조치를 하도록 했다. ①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② 해고 대상자를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③ 정리해고 시행 50일 전까지 근로자대표 또는 노동조합과 논의하라는 것. 잘못한 일이 없는 노동자를 내보내려면 그만큼 신중하라는 취지다. 사업에 대한 리스크는 사장이 부담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해소하려 노동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한다. 실업급여만 주겠다는 몰염치한 회사도 있다. 알려진 사실로 과거 씨티은행은 권고사직의 대가로 최고 8억 원을 줬다고 하고, 최근 일동제약은 9개월치 급여를 위로금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JTBC는 최소 6개월 급여를 준다고 했지만 노동자들이 모여 거부했다. 위로금의 수준은 회사와 노동자들의 의지에 따라 액수가 천차만별이고 위로금을 거부하는 선택지도 있다. 지금처럼 낮은 경제성장률이 지속되고, 경제위기가 심화될 때 회사는 ‘방만한 운영을 반성, 수익성 없는 사업부는 축소 또는 폐지’를 선언한다. 이어지는 희망퇴직과 권고사직 앞에서 노동자의 일상은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그럼 A 씨는 얼마를 받아야 할까? 법이 정한 액수는 없다.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기준이 그 액수가 되게 마련이다. 동료들과 교류하는 정보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기준을 살펴보자. 잡 셰어링이나, 일시적인 임금 삭감 등의 퇴사가 아닌 다른 대안을 찾기도 한다. 위로금에 회복되지 않는 일상과 인간관계 그리고 사회적 지위까지 담지 못한다. 퇴사의 값을 액수만으로 조율하기는 어렵다.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숲처럼 빼곡하게 하늘을 찌르는 높은 고층 빌딩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남자 A 씨는 지하철역을 나오며 옷깃을 세웠다. 건물 사이로 부는 바람이 송곳으로 얼음을 깨듯 귀를 빻고, 햇살 한 조각 비추는 공간을 찾지 못해 맘 둘 곳 없어서 서둘러 빌딩으로 걸어갔다. 사무실은 13층에 있다. 꽃샘추위에 걸음을 재촉하지만 맘속의 불안감은 커진다. 사무실에 내 자리가 무사할까? 육아휴직을 쓴 뒤 6개월 만의 첫 출근이다. 육아휴직 6개월간 복직 D-day가 가까워지는 만큼 점점 더 마음을 졸였다. 출근했을 때 내 자리가 그대로일까. 컴퓨터를 켜면 사내 인트라넷 접근 권한은 그대로일까, 내 부서는 기피 부서가 아니고 그대로일까, 갖은 걱정에 잠겼던 A 씨는 눈앞이 캄캄해져 꿈도 꿨다. 빌딩 13층에서 띵동 하며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화장실 앞에 책상이 하나 덩그러니 있고, “A 씨 자리”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그런 마치 어느 만화의 한 장면 같은 꿈 말이다. 1년 전의 이 결정은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의 적응을 위해서였다. 1학기와 여름방학은 배우자인 B 씨가 육아휴직을 쓰고, 2학기와 겨울방학은 A 씨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둘의 논의는 오랜 것이었지만 그 논의의 깊이는 얄팍했다. 돌아가며 휴직을 해야 한다는 결정은 이미 내렸으면서도 과연 현실적인 난관을 돌파하겠다는 결심을 하느냐의 문제였다. 결심이 어려웠던 첫 번째 문제는 생계였다. 월급쟁이 생활이 밥벌이인데 월급이 줄어드니 걱정이다. 한 달에 336만 원을 버는 A 씨는 육아휴직을 쓰는 6개월 동안 월 150만 원(OECD : 한국 2022년 기준 육아휴직 소득대체율 44.6%)밖에 받을 수가 없다. 그것도 한 번에 꽂아주는 돈이 아니다. 150만 원 중 37만 5천 원은 복직하고서 6개월이 지나서야 받게 된다. 부업도 없이 월급이 반토막 나는 꼴이라 쉬운 결심이 아니었다. 결심을 어렵게 만든 두 번째 문제는 심적 부담감이었다. 육아휴직 거기는 주변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 회사를 가족처럼 여기는 분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팔불출 같은 세계, 육아휴직 쓰는 직원에게 인사평가 몰아줄 수 없다던 상사의 거친 말이 화살이 되어 쏟아지는 세계, 나 좋자고 썼는데 순교자 취급을 당할 거 같은 세계였다. 특히 ‘가족 같은 회사의 번영이 아니라 너만 좋겠다는 거냐?’는 눈치가 A 씨에게는 어려웠다. 이러다가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4.1%에 불과한 한국에서 유리천장에 갇힌 만년 대리로 남을까 걱정됐다. *사업장 규모별 육아휴직 사용률: 300인 이상(6.0%)/ 50~299명(3.3%)/ 5~49명(2.3%)/ 4명 이하(1.3%) 결심을 어렵게 만든 세 번째 문제는 실질적 불이익이다. 휴직 신청서를 제출하자마자 신청서와 사직서를 같이 들고 오라고 하지 않을까, 육아휴직을 쓰는 대신 실업급여를 해준다고 하지는 않을까 (실업급여가 육아휴직급여보다 더 많이 주기까지 하는 마당에), 육아휴직을 왜 쓰냐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져서 동물 놈아 자식 놈아 하며 퇴사하라고 하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 A 씨가 설득당해서 휴직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그림을 그렸다. 어찌어찌 육아휴직을 쓴 동안에 상사가 전화로 업무지시를 하는 건 아닐지, 급하다며 전화를 건 클라이언트의 다급한 목소리는 어떻게 피해야 할지 이 모든 일들을 휴직이라는 이유로 잘 피해 나갈 수 있을지 모두 문제였다. 모든 문제를 품에 안고 결심했던 A 씨는 이렇게 복직 날을 맞이했다. 걱정을 안고서 꽃샘추위를 피해 사무실에 도착한 2023년 한국의 A 씨에게 책상을 빼거나, 대놓고 하찮은 업무를 주고 괴롭히는 TV에 나올 법한 끔찍한 사건은 다행히도 없었다. 그러나 놀면서 돈 받으니 좋냐는 핀잔부터 쉬면서 뭐 했냐는 질문 그리고 잡혀 사냐는 철 지난 조롱까지 겪어야 할 일들은 많이 남아 있다. 법은 대놓고 벌어진 불이익(해고, 정직, 감봉, 동의 없는 인사 발령 등)을 준 사장은 엄하게 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하지만, 육아휴직을 쓴 사람을 별나고 다르게 보는 백안시까지 손대지 못한다. 이럴 때 늘 비교하는 나라 스웨덴은 “남자가 애 보게 한다.” 아빠 육아휴직 할당제라는 제도는 90일간 육아휴직을 자연스럽게 쓰게 한다. 육아휴직 사용을 별나고 다르게 볼 일이 없다.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한 보육교사가 있다.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했다. 신고자는 어린이집의 원장이다. 아무래도 원장은 많이 바쁘다. 스트레스도 많을 것이다. 한 원에 수십 명의 아이들이 있고, 한 어린이가 인생을 즐겁게 여기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서로를 지키고 돕는 주체로 성장하는 데에는 여러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다. 부모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린이집에서 사회생활을 익히고, 유치원과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을 밟고, 이 과정은 무상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에서는 무료와 무가치를 등가로 여기는 경우가 있지만, 실은 소중하게 조성한 세금으로 모든 이에게 평등한 기회를 부여하려는 공화국의 결실이다. 공화국은 우리 서로가 주인으로 깊은 논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어른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첫걸음을 어린이집에서 딛는다. 그 아이는 첫 선생님을 만나고, 하루의 1/4을 함께하는 그 보육교사는 학부모에게도 내 아이의 첫 선생님이 된다. 거기에는 바빠도 관계를 잘 풀어야 하는 원장(사용자)도 있다. 부모에게 아이는 긴 하루를 지나 퇴근해 집으로 가면 기다리는 존재다. 아이가 배시시 던지는 미소는 하루를 가치롭게 만드는 영험함이 있다. 방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하는 사춘기부터 이 영험함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방문을 닫기는커녕 아플 때 우는 게 전부인 아기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는 하나부터 끝까지 다 보고 싶게 마련이다.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은 눈 밖에 둔 시간이다. 아이 몸에 생채기가 나면 애들끼리 그럴 수 있겠거니 하는 사람이 있고, 뉴스에서 본 보육교사의 학대부터 상상이 밀물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다. 다른 아이의 다듬지 못한 손톱에 긁힌 것일 텐데, 다른 아이한테서 물려 생긴 이 자국과 서로 밀어서 다친 찰과상에 터지는 속을 토해낼 데는 보육교사다. 우리 아이에게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았냐며 말이다. 과거 한 보육교사는 아이의 볼에 긁힌 상처를 발견한 뒤 내내 민원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했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양육자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차라리 내가 돈을 내고 믿을 만한 사람을 썼어야지”라는 차가운 말을 들었다. 최근 세종시의 한 어린이집에서도 긁힌 상처가 난 아이가 있었다. 생채기를 (예방? 방지? 방어? 회복? 하지 못했다며) 사과하러 간 보육교사에게 학부모는 똥 기저귀로 얼굴을 내리치기까지 했다. 눈 밖에 둔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보육교사에게 눈먼 분노가 되어 날아간다. 사람 마음이 화를 못 이겨 험담을 하고 트집을 잡다가도 남에 딱한 사정을 들으면 화가 풀리기도 한다. 어린이집에서 원장이 그 역할을 할 때에 분노는 조금 수그러든다. 중간에 든든한 완충막 역할을 원장이 할 수 있는 거다. 원장이 신고 부추겨... 메모 하나 때문에 해고? 그런데 경기도의 한 보육교사는 퇴사한 원장이 학부모를 부추기면서 해고를 당했다. 사건은 해고로부터 1년 전의 아동학대 신고에서부터 시작된다. 퇴사한 원장이 신고했고, 경찰이 아동학대라고 수사한 결과를 검찰에 보냈고, 검찰은 1년간의 수사 결과를 보완하라고 돌려보냈다. 퇴사한 원장이 학부모에게 CCTV를 돌려보게 하고, 부추겨 시작된 신고는 결국 해고로 이어졌다. 10년간 아동과 관련해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던 교사가 해고를 당한 과정이다. 원장은 후에 밝히길 수사한 경찰이 ‘결과는 걱정하지 말고, 보완수사는 도장 찍는 것과 다른 영상 포렌식이다’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원장은 경찰의 말에 아동학대 유죄라는 확신을 얻은 것 같다. 그런데 법원이 유죄라고 하기 전까지 우리 모두는 죄가 없는 사람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은 오간 데 없이 해고를 당한 것이다. 억울한 보육교사는 왜 해고를 당하느냐고 물었고, 그제야 원장은 ① 원아가 뒤로 뒤집어져서 우는데 방임을 했고, ② 가방을 낚아채 몸이 공중에 떴다가 바닥에 패대기 쳐졌고, ③ 60cm 높이의 단상에 올려져 불안해했고, ④ 포크를 책상 쪽으로 집어던진 후 고의로 팔을 세게 끌어당겼기 때문에 해고라고 했다. 보육교사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기에, 누가 그런 말을 했냐고 질문을 하자 원장은 “어린이집을 그만둔 학부모가 CCTV를 보고 한 메모라며 말해줬습니다.”라고 답했다. 퇴사한 원장이 부추기고, 학부모가 대답하고, 원장이 해고를 한 사건이었다. 처음 사건을 듣고 든 생각은 뉴스에나 나올 법한 범죄려니 했다. 그런데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 수 있었던,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한 혐의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사실을 어쩌다 봐온 적이 있었다(조지오웰의 말이기도 하다). 그 사실에 분노하지 않았다며 책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저런 끔찍한 사건이라면 CCTV를 보관했을 법도 한데, 지금 이 영상은 어디에도 없고 이제 와서 포렌식을 해서 살리겠다고 한다. 완충막이 되어야 할 원장이 모르쇠 하고, 급기야 학부모를 부추겨 묘사된 이 사건에 어떤 억울함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한 혐의를 뒤집어썼기에 다투는 경우는 잦고, 구글을 찾아봐도 이렇게 적나라한 아동학대 묘사가 된 뉴스는 한 컷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정도로 적나라한 사건을 경찰이 1년이나 걸려서 수사했다는 점도 의아했다.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보육교사 해고 사건의 대리인으로 나서보기로 했고, 이 사건은 다툼으로 번질 예정이다. 현재 전국의 어린이집에는 CCTV가 설치돼 있다. CCTV의 촬영 범위와 각도를 모두 아는 보육교사들은 철저하게 몸가짐을 조심하고, 아이들과 접촉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어느 날 찍힌 아이와의 정서 교류가 아동학대로 오해당해 신고되는 사례가 많아서 그렇다. 그런데 영상은 사라졌고, 영상을 본 사람이 남긴 메모 하나로 해고까지 당하면 억울하지 않을까?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우리 주위에 그런 일이 수두룩합니다. 애인, 소꿉친구, 직장 동료, 아버지, 어머니, 동생, 아들, 딸, 대학교 동기, 옆집 할머니, 그들을 보고 싶은 면만 봐왔는지도 모릅니다. 서로 만나고 싶을 때, 날짜를 잡고 시간을 조율해 어디서 만날지 장소를 정합니다. 이렇게 약속이 생기고 그날에 우리는 만나야 하는데, 서운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파투입니다. 바쁜 현대 사회에 시간을 비워 캘린더에 기록했던 약속이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핑계를 대야 합니다. 원래 이 시즌이 그렇지 않은데 갑자기 회사에 프로젝트가 밀리는 바람에, 갑자기 회사에서 상사가 일을 왕창 미루고 가는 바람에, 요 며칠 야근을 했더니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아이가 열이 많이 나는 바람에 등등 약속을 깨뜨린 미안함은 최소한 납득 가능한 핑계의 무게로 표시됩니다. 이유를 들으면 그 사람이 어찌 사는지 조금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저도 오랫동안 못 본 친구와 회동을 기약하고, 날을 잡았습니다. 약속 전날밤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입니다. “야 미안하다야. 원래 프로젝트 끝났어야 했는데 상사가 콘텐츠 늦게 넘기고서는 얼른 하라고 닦달해서 내일 도저히 안 되겠다야.” 한 달 전에 힘들게 잡은 약속이 어쩔 수 없이 취소되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회사에서 그렇다는데, 마치 지방에 있는 노모가 “이번에도 못 온다고? 회사일이 바쁜데 어쩌니, 밥 챙겨 먹고 건강 챙기면서 일하그라.”라고 아쉬움 속에 전화를 끊기 전에 다급하게 던지는 “다음 추석에는 오지?” 같은 미련. 괜히 다음 약속을 기약하는 그런 순간입니다. 그나마 “그래 다시 약속 잡자”고 하며 누군지도 모르는 회사 상사 욕이나 좀 해봐야 맘이 좀 편합니다. 회사에 목을 매며, 회사일이 바쁜데 라는 변명 한 번 안 해 본 직장인은 없습니다. 근로계약서에 9출 18퇴라고 적어둬서 6시가 가까워질 때, “오늘 일찍 퇴근해? 저녁 먹고 가자”라고 한 마디 남긴 팀장은 나 홀로 번개를 성공시키기도 합니다. 저녁 먹자는 말을 거절 못한 탓이라지만, 그 뒤에는 상사와의 친분도 스펙이니 제 밥벌이를 잘하려면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나마 건물주이거나, 주식 부자이거나, 회사의 주인이거나 아니면 할아버지가 금수저인 사람은 그 재산으로 실력을 평가받으니 제각각의 고충은 있겠지만 비교적 자유로울 겁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2 한국 부자 보고서’에는 약 2883조 원(전체 금융자산의 58.5%)의 금융자산을 국내 인구의 0.82%인 42만 4천 명이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가진 개인을 ‘부자’라고 정의했을 때 한국의 부자는 42만 4천 명으로 정말 소수라는 통계자료이기도 합니다. 부자는 적어도 시간을 팔아 생활하는 종속적인 노동을 하지 않아 인생 자유도가 높습니다. 부당한 근로계약서, 꼭 지킬 필요 없다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을 보호해야 하지만, 현행 노동법은 종속적인 관계에 있는 노동자를 보호합니다. 종속됐다는 말은 자유도가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종속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는 게 최선이지만 당장은 갈 길이 머니,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지 않고는 생활하기 어렵습니다. 일자리 구하기의 고됨, 직장 생활의 고됨은 내 마음대로 다 하지 못해서, 가끔은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에 엄습한 내적 갈등으로 고뇌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인생의 자유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유도가 떨어지는 종속상태일지언정 납득할 수 없는 지시와 약속은 따르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 자유도가 떨어지는 삶, 이 자유도의 선은 어디까지일까요? 내 시간을 가져다 쓰고 돈을 주는 회사는 내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을까요? 그 경계의 최전선에 근로계약서가 있습니다. 계약서를 작성해서 주지 않은 사업장은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사용자가 지킬 약속이 적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사장님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계약서에 서명을 시킵니다. “퇴직 90일 전에 사직서를 제출, 90일 전에 통지하지 않으면 통지일로부터 90일이 경과해야 사직 처리, 단 퇴직 90일 전이라도 내가 인정하는 경우 사직 처리”라며 3달의 유예기간을 확보하려는 사장, “업무형편에 따라 근무지 변경을 요구에 따라야 함”라며 네가 원한다고 계속 여기서 일하는 건 아니야라는 사용자, “퇴사 후 1년 간 회사 또는 그 계열사의 직원에게 퇴사를 설득 및 유도 금지”부터 퇴사 후 “사업권 지역 내에서 동종 업무 수행 금지”, “SNS에 회사에 반하는 어떤 내용도 게시 금지” 지키지 않으면 “개인정보유출, 명예훼손, 손해배상, 영업방해 등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감수”조항으로 언론의 자유를 방해하려는 사람, 포괄임금제-탄력적 근로시간제로 출퇴근시간을 유동적으로 만들고, “즉시 업무 착수하게 여유를 가지고 출근”하라는 조항도 들어갑니다. 이런 납득할 수 없는 지시까지 준수해야 하지는 않습니다. 위 7가지 조항은 어디까지 납득하실 수 있나요? 독자의 근로계약서를 같이 보진 못하지만, 적어도 위 7가지는 모두 사장님 욕심이 지나치셔서 강제로 지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참, 물론 퇴근 시간까지 일하라는 닦달도 부당합니다. 디자인 : 고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