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수고로움을 서로 이해하고, 누구도 일터에서 소외당하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초등학교 시절 두 명이서 책상을 같이 쓰던 때가 있었다. 책상은 길었고, 밑에는 작은 서랍이 있었다. 사물함을 사용하기 전까지 유용했다. 내 것과 네 것이 구분되어 있는 책상 밑과 달리 책상 위는 임자 없는 땅이었다. 문제는 둘이 책상을 같이 쓴다는 거다. 경계 없는 책상 위에 칼로 선을 긋고 이야기했다. "이거 넘어오면 다 내 거." 내 것이었던 펜이 네 것이 되고, 네 것이었던 지우개가 사선으로 잘려서 내 것이 됐다. 그리고 팔꿈치가 넘어오면 그것도 내 것이라고 말을 했지만 실제로 가질 수는 없었다. 침을 바른다고 내 것이 될 수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이도, 성별도, 덩치도, 부모의 재산도 그 둘 사이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둘은 티격태격하며 네 거니 내 거니 했다. 사회는 꽤나 험악해서 팔꿈치가 넘어오면 그 팔꿈치를 자를 기세로 선을 긋고 계약을 체결한다. 선을 넘지 말고 서로 네 것을 인정하자는 약속이 일터에서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양쪽이 만족하는 계약보다는 약간 기울어져 보이는, 가끔은 완전히 비틀어진 계약이 체결된다. 2020년 부산에서 한 택배기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리점과 택배기사는 일을 시작하며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택배사의 대리점은 이러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난 택배기사에게만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3개월 전에 퇴사 통보를 하고 퇴사하여 후임을 구하지 못하는 등 대리점에 손해를 끼치면 위약금 1,000만 원을 내야 한다." 몸이 아파서 그만두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당시 <택배노동자 사망 뒤엔 갑질횡포..."대리점 지점장이 왕"(김종배의 시선집중 2020.10.22.)>에서 힘들어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택배기사의 실태를 고발했고, 급기야 갑자기 아프거나 아파서 일을 못 하는 경우에조차도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해놓아야 쉴 수 있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양쪽이 서로 만족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하고 그 이행을 점검하여 책임을 묻는 상호 의존적인 약속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는, 즉 리스크가 일방에게 쏠리는 비틀어진 계약이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상품을 거래하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아서 거래를 하니 발생하는 일인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계약을 체결할 때 불리할 것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계약이 체결된다. 보통 일터에서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는 사람은 노동자다. 택배기사도 그러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평등한 상태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스스로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은 과거 한계를 보였다. 19세기 초 영국의 시민법 체계는 아이와 공장이 체결한 계약으로 잔인함을 드러냈다. 공장에 높게 설치된 굴뚝은 위로 갈수록 좁아져서 어른이 들어갈 수 없었다. 굴뚝에 낀 검댕을 치우는 일은 아이의 몫이었다. 드나들기 쉬운 작은 덩치의 아이들이 힘들어서 내려오려 하면 아래에서는 내려오지 못하도록 연기를 피웠다. 많은 아이들이 질식하거나 타서 죽었다. 이러다 보니 '과연 평등하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걸까?'란 의문에 시민법을 극복한 사회법의 원리가 설명됐고, 이를 구현하는 노동법이 제정됐다. 최소한 이 정도는 보호해야 사회가 유지된다는 생각은 사용자보다 노동자에게 무게추를 실어주는 노동법의 배경이 된 것이다. 그래서 노동법에는 택배기사와 같이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손해에 대한 배상액을 정하지 못하게 정해뒀다. [근로기준법 제20조 (위약예정의 금지)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 이런 법조문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던 것은 '노예 계약'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저임금에 허덕이며 일을 하면서도, 그만두면 또 손해를 잔뜩 보게 해서 계속 일하게 하는 것은 사용자가 이윤을 보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이제 법은 택배기사와 대리점 사이와 같이 "3개월 전에 퇴사 통보+후임자 물색 안 하면 1,000만 원"을 불법으로 정했지만 건너야 할 다리가 하나 더 있다. 제정된 지 70년 가까이 지난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택배기사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근래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잡코리아는 기존 헤드헌팅 회사들이 하던, 경력자를 알선하고 수수료를 받는 '원픽'이란 상품을 운용한다. 사용자는 원픽으로 통해 경력직을 채용하면 연봉의 7%를 원픽에 납부해야 한다. 다만 그 경력직이 3개월 이내에 퇴사할 때는 수수료의 80%를 환급받는다. 한 학원은 학원강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9개월 이내에 퇴사 시 채용 수수료를 부담한다"라고 적어 압박했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고용하겠다며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았다. 학원강사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때는 위약금(채용 수수료 부담)은 불법으로 무효이지만, 프리랜서라면 또 말이 달라진다. (물론 가짜 프리랜서일 가능성이 높다.) 70년 전에는 없던 다양한 고용 형태가 등장하는 지금, 이제는 근로기준법도 시민법을 극복한 사회법의 변화처럼 새로운 변화가 모색돼야 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근로기준법 제17조.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근로자에게 임금,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유급휴가, 취업의 장소와 종사해야 할 업무에 관한 사항, 업무의 시작과 종료시각, 휴게시간, 교대근로에 관한 사항, 임금의 결정ㆍ계산ㆍ지급 방법, 임금의 산정 기간ㆍ지급 시기 등1)을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반한 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1) 임금,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유급휴가, 취업의 장소와 종사해야 할 업무에 관한 사항, 업무의 시작과 종료시각, 휴게시간, 교대근로에 관한 사항, 임금의 결정ㆍ계산ㆍ지급 방법, 임금의 산정기간ㆍ지급시기 및 승급(昇給)에 관한 사항. 가족수당의 계산-지급 방법에 관한 사항, 퇴직에 관한 사항, 퇴직급여 및 상여에 관한 사항, 식비, 작업 용품 등의 부담에 관한 사항, 근로자를 위한 교육시설에 관한 사항, 출산전후휴가ㆍ육아휴직 등 근로자의 모성 보호 및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사항, 안전과 보건에 관한 사항, 근로자의 성별ㆍ연령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의 특성에 따른 사업장 환경의 개선에 관한 사항, 업무상과 업무 외의 재해부조(災害扶助)에 관한 사항,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 표창과 제재에 관한 사항 등 이 조항은 사장이 사람을 채용해 일을 시킬 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서 지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근로기준법의 규정이다. 근로계약서 없이 구두로 몇 시 출근해서 무슨 일을 해도 다 알아듣는다고 말하는 혹자가 있을 수 있지만, 서면으로 정해 남기는 것은 서로 이의가 없다고 확인해 가는 과정이고 명확하게 남겨 보관하는 과정이어서 또 중요하다.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계약서의 내용이 모호해서 또는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해고부터 당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을 당하는 사람은 더 취약한 처지에 있는 사회 초년생 청년들, 단시간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아니, 거의 99%의 직장에서는 입사한 뒤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첫 출근일에 작성하는 경우도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며칠 내에 계약서를 작성한다. 사장은 꼼꼼히 읽어보라고 하고 계약서를 두 부 들고 와서 서로 작성하고, 한 부를 노동자에게, 다른 한 부는 본인이 보관한다. 계약서를 입사한 뒤에 작성하다 보니 이상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 분명히 사장님이 우리 같이 일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정작 입사일이 다가오니 연락이 뜸해지다가 피하거나, 다른 사람 구했다며 나오지 말라는 말을 하는 일이다. 최근 A 씨는 ‘아몰랑’ 사장이 11월 4일부터 출근해서 일을 같이 하자고 말해서 원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새로운 입사 전에 2주는 쉬어야겠다 싶어서 퇴사일과 입사일을 맞추고 여행을 떠났다. 가끔 연락해 IT 업무에 대해 같이 논하던 사장 ‘아몰랑’은 이즈음부터 연락이 닿지 않기 시작했고, 어디로 무엇을 준비해 가야 하나 싶어 한 전화를 회피하기까지 했다. 이상하다 싶어 ‘연락이 안 닿아서 연락드려요. 입사할 때 준비할 거 뭐 따로 있나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이틀 뒤 답장이 왔다. 사장 ‘아몰랑’은 ‘지금 회사에서 여러 고민을 하고 있어서 다시 연락드리겠어요’라는 말이다. 처음 입사를 결정했을 때 계약서를 썼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보니 A 씨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거다. 부동산 계약, 물품 거래 계약 등등 수많은 계약은 먼저 작성하고 계약일에 맞춰서 대금을 치르고 물건의 양도가 이뤄지는데, 유독 나의 시간과 기회를 양도하는 근로계약은 꼭 입사를 한 다음에 작성된다. 그러다 보니 A 씨처럼 채용을 약속했다가 약속이 어그러지는 일들이 종종 발견된다. 이직을 위해서 꽤 많은 기회비용을 포기하게 된다. 전 직장을 퇴사하는 경우가 있고, 입사가 확정돼서 입사일까지 여행을 가는 경우가 있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입사의 약속은 꽤나 많은 일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입사를 약속한 사장 ‘아몰랑’은 책임질 것이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입사를 약속했을 때 A 씨와 ‘아몰랑’ 사이에는 근로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법원은 판단하고 있다. 계약서는 없지만 계약은 있는 상태로 ‘아몰랑’은 A 씨에게 입사일이 되면 일을 시키고,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 것이다. 이 상태를 채용 내정이라고 하고, 이 채용 내정의 취소는 해고와 같다. A 씨 입장에서는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쫓겨난 것이다. 해고를 당한 것인데,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해고는 사장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A 씨가 해고당할 만큼 큰 잘못을 저질렀거나 ‘아몰랑’ 사장이 정리해고 수준으로 회사가 어렵다는 점을 입증했을 때만 할 수 있다. 다른 계약은 다 계약서를 먼저 쓰고 위약금을 물리는데 근로계약은 먼저 쓰지도 않고, 위약금을 설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채용을 취소해도 별 문제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단 입사의 약속, 언제부터 어디로 출근해서 뭘 해야 하고 임금 수준은 어떻다와 같은 본 글의 첫 문단의 내용들은 문자메시지로 받든, 아니면 이메일로 받든 기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받는 게 유리하다. 전화 녹음을 하는 방법도 있다. 근로계약서는 없어도 근로계약을 했다는 채용 약속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 시작하기 전이어도 계약서가 없어도 약속은 약속이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사진 : 게티이미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말을 한 안도현 시인은 "삼겹살을 구울 때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젓가락만 들고 있는 사람은 삼겹살의 맛과 냄새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기를 불판 위에 얹고, 타지 않게 뒤집고,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더 많은 기억을 소유하게 된다"며 "제발 고기 좀 뒤집어라"라고 말했다. 좀 귀찮아도 손 한 번 더 움직이는 작은 변화가 다른 경험을 만들고, 그 생각이 다시금 작은 기억을 만들어내서 변화하는 삶, 지긋지긋한 일상에 주는 작고 소소한 감각의 태동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뭣보다 다정하다. 누군가를 먹이는 일,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하는 일, 다른 사람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는 일, 모두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의 돌봄이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은 자신을 돌보는 일과 같다. 그 이유는 돌봄이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1) 돌봄이라고 했을 때 장애인, 노인, 아동, 질환자의 일상 활동을 돕는 지원 행위로 좁게 정의하기도 하는데, 넓은 돌봄은 관계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청소, 빨래, 요리, 씻기기, 정서적 지원 등 관계와 환경을 회복시키는 모든 활동을 범주에 두고 있다. 남, 녀, 노, 소, 장애, 비장애, 질환, 비질환 등 개인적 소인에 기인해 요구하고 요구받는 돌봄을 넘어선다. 넓은 돌봄은 모든 생명이 서로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보편적인 일이다. 1) 모리무라 오사무의 『케어의 윤리』를 인용한 『돌봄의 사회학』에서 발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소진되는 일들이 있다. 한 사무실에서는 오늘도 능구렁이 같은 상사가 출근하자마자 다가와서 말을 건다. 어김없이 "그래 김 과장 어제 그 일은 잘 돼가고 있지?"라고, 이걸 듣고 "어제 5시에 시킨 일이잖아요!"라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던 일도 있다. 치킨집에서는 메뉴판에도 없는 메뉴를 시키겠다며 "반 마리만 구워주세요. 되죠?" 능글맞게 말을 던지는 데에 억지 미소를 짓고 "안 돼요"라고 말하는 일도 있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사장이냐, 나도 해주고 싶지. 근데 사장이 안 된다고!'라고 백 번은 말했다. 뒤돌아서서는 '반 마리 왜 못 팔게 하는 거야'라며 사장을, 메뉴에도 없는 걸 주문한다며 고객을 단박에 뒷담화를 하기도 한다. 시간을 들여 노동을 사장에게 주고, 그 사업체의 규칙에 따라야 하는 노동의 현장에서 자잘한 소진의 사건들이 쌓인다. 그리고 하루의 힘들었던 속마음을 털어놓는 타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일, 집중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일 역시 돌봄의 일종이다. 일감은 월급을 받기 위해 노동력을 타인의 지배하에 두고 그 월급을 받아 생활하기 위한 것으로 돈을 버는 업무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괜찮은 삶을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 수많은 일감 속에 우리는 놓여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사방팔방 널브러진 신발들이 눈에 들어오고, 화장실 거울에 맺힌 물방울 때는 당장이라도 닦아내야 할 일감으로 발견된다. 주방 화구 근처에 있는 타일에 붙은 기름때도 그렇다. 금전적인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집안일 역시 일감이고, 나의 삶과 이웃의 삶을 건전하게 재생산하는 일이 된다. 가사 노동이라 불리는 집안일은 사회와 타인과 자신, 그리고 노동력의 재생산을 돕는 환경을 조성하는 의미로서의 돌봄이기 때문이다. 사소하게 보였던 일들이 관계를 돌보는 행위가 될 때, 돌봄은 아동, 노인, 장애인, 질환자의 일상 활동을 돕는 지원 행위만이 아니라 관계를 재생산하는 모든 행위가 돌봄임을 그려낸다.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닌 사회화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은 자신을 돌보는 일과 같다. 고기 하나 굽는 일, 요리를 해서 먹이는 일, 애인이나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 청소를 하고 신발장을 정리하는 일, 모두 서로를 돌보는 일이다. 엄마와 여성에게 과중하게 부여된 돌봄의 책임을 나누는 작은 움직임은 관계 변화의 첫걸음이 되기도 한다. 성의를 조금 더하면 쉬운 요리 하나 정도 레시피를 배워서 함께 먹는 일, 가스레인지의 불을 조절하고, 재료를 다듬는 일 그리고 눈에 보이는 청소를 시작하고 관계를 챙기는 일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돌봄 노동이 엄마와 여성만의 일이 아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병원에 가라고 해도 한 번을 안 가고 버티는 가족이 있다. 집마다 한둘쯤 있는 이 '고집불통'은 "병원 가면 돈만 들지", "병원 가서 아프면 일 못하지", "병원 가면..." 입으로는 아프다면서 핑계도 많다. 아픈 구석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허리가 쑤신다며, 두통이 심하다며, 어느 날은 눈이 침침하다고 어지럽다는 말도 한다. 그러다 고열에 시달릴 때도 있고, 무릎이 시큰하다면서 "비가 오려나"라고. 애꿎은 날씨 탓을 한다. 산업재해 상담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프다면서 병원에 안 간다는 분들은 속이 답답해진다. 해고, 임금 체불, 괴롭힘, 산업재해, 노동조합 활동 등등 노동을 하며 겪는 상담에 다양한 질문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언을 청하는데, 무엇 하나 속이 터지지 않는 일이 없다. 매일 휴게시간에 뭣 모르고 1시간씩 일하고서 생각해 보니 억울해서 임금 체불 아니냐며 오는 대형 병원 약사, 회사에서 채용한다고 2024년 8월 1일부터 출근하자고 해서 푹 쉬고 있었더니 갑자기 채용 취소됐다고 억울해하며 찾아오는 30대 초반의 청년(채용 내정이라고 해서 부당한 해고일 수 있다), 의욕적으로 하는 일마다 능력 없으니 하지 말라고 딴지를 거는 사장 탓에 이젠 기가 죽어 우울증에 걸리겠다고 하는 작은 회사의 직원,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을 사장이 안 지켜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묻는 노동조합의 위원장, 그런데 그중에서도 단연 속 답답한 일은 아파서 찾아오는 분들이다. '수근관증후군, 적응장애, 요추간판탈출증, 난청, 유산·사산(조산 포함) 진단받았어요'라며 찾아온다. 병원 다녀오셨냐, 지금 몸은 괜찮으시냐고 물으면 생각과 다른 응답이 돌아오는 때가 있다. 한 번은 입주간병인 60대 여성 A 씨가 찾아왔다. 간병을 받는 어르신은 나이가 많았지만 스스로 거동도 잘하셨는데 사고는 불시에 찾아왔다. 어르신의 몸이 유독 안 좋았던 맑은 날 거동을 돕던 A 씨는 어르신을 부축해 휠체어에 앉혔다. 그리고 허리에서 "툭" 소리가 났다. A 씨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고, 겨우겨우 움직여 병원에 갔더니 요추 압박 골절이란 진단을 받았다. 60대는 노인도 아니라지만, 나이가 들면 골다공증 유병률이 급증한다. 돌봄이 필요한 90대 어르신을 돌보던 간병인은 돌봄을 받아야 하는 어르신이 됐다. 상담소에는 A 씨의 남편이 A 씨를 부축해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모습이었는데, 문득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입원 며칠 하랬다면서 왜 입원 안 하셨어요? 엄청 아프시잖아요." A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산재 된다고 하면 입원하려고요. 병원비도 나오고 월급도 준다면서요. 의사한테 안 아픈 척하고 나왔어요" 놀라서 사고는 언제 났냐고 물어보니 5일 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직 산재 신청도 하지 않았던 거다. 한국의 산업재해보험은 신청주의를 택하고 있다(노동 선진국이 택하는 직권주의가 아니라). 재해자의 신청이 있어야 산재 인정을 위한 절차가 개시된다. 그리고 신청하려면 진단서와 난해하게 생긴 신청 서류를 작성해서 사업장 주소지를 관할하는 근로복지공단에 접수하는 복잡함도 있다. 5일이나 산업재해 신청을 안 하고 아픈데도 입원을 참는 모습에서 마치 고집불통 가족이 떠올라 속이 어지러워졌다. 요즘에는 산업재해 신청이 비교적 쉽다. 과거와 달리 근로복지공단이 지정한 산재 지정 의료기관에는 산업재해 신청을 대신해 준다. A 씨와 같은 사고로 인한 질환은 신속하고, 수월하게 인정받는 편이다. 근로복지공단이 2024년 5월 1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고 재해 처리 소요 기간은 평균 17.5일(2024년 3월 기준)이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신청일로부터 7일 안에 지급 여부를 결정하라는 규정보다 긴 기간이 소요되지만, 질병은 평균 235.9일 걸린다). A 씨와 같이 사고일 때 준비해야 할 것은 사고가 난 경위와, 사고를 보거나 입증할 수 있는 증인 또는 증거 정도다. A 씨는 꽤나 만족해서 돌아갔다. 아참, A 씨에게 산재 인정은 당장 생각하지 말고 아프면 쉬거나 입원하셔야 한다는 잔소리도 잊지 않았다. 아플 때 쉬지 않고 일하면 골병이 난다. 제도는 환경과 같아서 그 안에서 적응하며 살아간다. 외국에는 상병수당이란 게 있다. 근로 능력 상실했을 때 어느 정도의 생계비를 보장받고 쉴 수 있는, 그렇게 A 씨를 병원에 보낼 제도다. 사진 : 게티이미지
포기할 게 너무 많은 "N포세대" 대학교를 졸업하며 취업을 준비할 때 '삼포세대'란 말이 유행했다. 당시 필자의 목표는 단순하고 명료했다. 평범한 중산층 월급쟁이. 특별할 일 없고, 대단할 일 없이, 하루하루 평탄하고 평이하게 살아가는 그런 삶을 그렸다. 돌이켜보면 필자가 바랐던 삶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실에서 정규직으로, 연 5천 이상의 연봉을 받고,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즐길 수 있는 취미를 한두 개 가지고, 일 년에 한두 번쯤은 해외여행을 가고, 자기 집을 가지고 은퇴 이후를 위해 투자하는 삶일 텐데, 중산층 월급쟁이라고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이면에는 풍요로운 삶을 꿈꿨던 거다. 그러면서도 '평범한 중산층 월급쟁이'라는 쉬운 말의 이면에는 '모두 이 정도는 누려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탐욕이라 말하기엔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어야 할, '당연히 이 정도는 누려야지'란 삶의 기대를 내려둔 사회 구조의 변화는 마치 청년이 직접 포기한 것마냥, 삼포세대란 말로 나타났다. 구조적 문제를 희석시키고 낙담하고, 자조하는 삼포세대는 N포세대로 진화했다. 2011년도 등장한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는 곧바로 대중에 유행했고, 포기당할 것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을 포기당하며 오포세대라는 용어가 쓰였고, 꿈과 희망까지 포기당했다며 칠포세대라고 스스로를 칭하기까지 했다. 청년 세대가 직접 포기한 적이 있었는가 싶은데, 지나고 보니 포기했다고 말해지고 있었다. 청년 일자리 불안이 청년 빈곤으로... 청년의 문제를 진단하고자 청년재단은 2024년 '청년 정책·이슈 톺아보기'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대학생, 사회진입준비생, 직장인, 신혼부부 등 대상으로 청년 이슈를 파악하고자 했고, 결과는 지난 2월 28일에 발표했다. 전국 19~39세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 조사에서 청년이 꼽은 올해 가장 주요한 이슈는 '청년 경제생활 및 환경 여건 악화'(42.1%)였고, 그다음은 청년 주거 불안(23.1%), 사회 진출 지연 청년의 재도전(21.9%)으로 나타났다. 청년 경제생활 및 환경 여건 악화는 외환위기 이후 사그라질 틈이 없이 확대된 청년 실업과 청년 일자리 불안 그리고 청년 빈곤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다. 빈곤과 사회 양극화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 청년의 빈곤에 정부는 대책으로 고용-창업 지원(고용장려금, 취업성공패키지 등), 주거 지원(중소기업취업청년 전월세자금대출, 전월세보증금대출이자 지원 사업 등), 자산 형성 지원(청년내일채움공제, 희망내일키움통장 등), 소득 금융 지원(청소년 한부모 자립 지원, 학자금대출 상환 부담 경감 등) 등의 여러 사업들을 제시하고 제안하고 있지만, 실제 청년 빈곤이 나아지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년 빈곤 실태와 자립 안전망 체계 구축 방안 연구1' 보고서에서는 만 19~34세 4,11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25~29세 1,503명의 연간 근로 및 사업 소득(평균)은 2,032만 원이었고, 30~34세 1,410명의 연간 근로 및 사업 소득(평균)은 2,847만 원이었다. 연령대별 주관적 빈곤 인식을 보면 만 25~29세의 경우 빈곤의 긍정 응답(그렇다와 매우 그렇다)은 45.9%(5점 평균 3.36점)이었고, 만 30~34세의 긍정 응답은 40.8%(5점 평균 3.30점)로 나타났다. '샘 올트먼 실험'이 뭐길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다. 젊어서 한 고생이 장래에 귀한 밑천이 될 거라는 말인데, 으리으리한 빌딩에 파견 나가서 또는 공장에 파견 나가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1년 계약하고 내년에도 일을 할지 불확실한 노동자, 되는 일 안 되는 일 가리지 않고 아파도 출근해 하루종일 일하는 자영업자, 생활비 걱정하며 공부하는 대학원생, 1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사업장과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해서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노동자 등등 현생의 고달픔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사탕발림으로 읽힐 수 있는 옛말이다. 다만 비정규직이 없어지고, 소득이 안정되면 정말로 '젊어 고생을 사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관련해 현실 속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다. 그중 소득 안정과 관련해 미국의 비영리기관 OpenResearch가 진행한 '보장 소득' 실험을 소개해 볼까 한다. 이는 OpenAI의 CEO '샘 올트먼 실험'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수급자 1,000명에게 매달 1,000달러 현금(약 140만 원)을 지급했다. 여러 결과 중 눈에 띄는 부분은 폭음이나 진통제 사용이 각각 20%와 53% 줄었고, 일하는 시간이 주당 평균 1.3시간 줄었고, 타인을 돕는 데 쓰는 돈이 매달 22달러가 늘었다. 결과 뒤에 해석의 지점이 있다. 재원이 확보되는 과정에서 부가 이전되는 경험을 하고, 삶이 안정되면 포기할 것이 줄지 않을까 하는 해석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발표 기준으로 보장 소득을 지급했을 때 25~29세의 연간 근로 및 사업 소득(평균)은 3,712만 원이 될 것이고, 30~34세의 연간 근로 및 사업 소득(평균)은 4,527만 원이 된다. 이제 포기할 것이 조금 줄지 않았을까?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한 직장에서 핸드폰 사용을 금지했다. 출근할 때 입구에 있는 사장에게 맡기고 들어가란 말이었다. 회사는 '근무 중 업무와 상관없는 스마트폰 사용 절대 금지'라고 사규에 적었고, '경고를 무시하고 사용하면 1회 적발 시 시말서 제출'이라고 경고했다.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한 콜센터의 일 때문이었다. 수년간 한 금융회사는 콜센터 직원들에게 핸드폰을 반납하라고 시켰다. 출근할 때 사무실 입구에 설치된 사물함에 넣어두고, 퇴근할 때 핸드폰을 가지고 가도록 했다. 점심시간에는 한시적으로 핸드폰을 돌려줬다. 군대에도 핸드폰이 반입되고, 성인인 대학생들이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등 온갖 통신장비를 지니고 학교 수업을 듣는 시대에, 누구 하나 스마트폰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는 시대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건 방송사 기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는 금융회사에 문의를 했다. "왜 핸드폰을 수거하시나요?" 금융회사는 답했다. "휴대전화 금지 조치는 고객정보 유출 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고객상담 업무 이외 시간이나 휴게시간에는 사용이 자유롭고, 근무시간 내에도 사무 공간에서는 필요한 휴대기기를 언제든 사용할 수 있고, 일률적으로 휴대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시간 내 근무 공간 일부에서만 제한하는 것으로, 근무시간 내에서도 영업장 외부에서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당시 친구 몇 명과 이야기를 하다가 놀랍게도 찬반이 나뉘는 걸 볼 수 있었다. "반납이 속 편해" 파와 "지금이 몇 년도야" 파는 각각 이렇게 말했다. "반납이 속 편해" 파 : 직장 그거 돈만 벌고 가면 되는 데고, 가서 딱히 다른 일 할 거 없잖아. 그리고 근무 공간 밖에 나갈 때 전화기 가지고 가면 되는 거 아냐? 기밀정보 취급하는 군시설 들어갈 때 나도 핸드폰 반납하고 들어가. 보안 받아서 노트북은 갖고 들어가도, 콜센터에서 전화기 쓸 시간도 없이 전화 쏟아지고, 성과도 채워야 하는데 굳이 그거 갖고 들어가야 되나? "지금이 몇 년도야" 파 : 요즘 핸드폰이 뭐 게임하고 드라마 보고 영화 보고 그런다고 전화기가 아니냐. 너도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다른 연락도 좀 주고받고, 하다 보면 급한 연락 올 때도 있고. 거기다가 핸드폰 없으면 불안하잖아. 거기다가 뭔 기밀이야. 개인정보 유출하려면 USB나 사진기 몰래 가지고 가서 촬영하면 되지. 이거 그냥 사람들 굴려먹으려고 하는 전형적인 못된 모습이야. 이게 몇 년도냐. 노무사 일을 하는 필자는 자연스레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 행해진 괴롭힘인가?"를 우선 따지다가 가만히 듣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속 편해 파'와 '쌍팔년도 파' 둘 다 핸드폰 수거의 옳고 그름을 따지며 찬반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했지만, 이야기는 "사장은 지시하는 사람이고, 콜센터 직원은 따르는 사람이다"라는 출발점은 같았다. 부당한 지시와 부도덕한 청탁, 비윤리적인 요청, 요구 등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이런 피로한 논란은 생기지도 않는다. 부당하고 나쁜 지시를 받았을 때 잘못됐다며 거부하는 발언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할 수 있는 핵심인데, 한국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는 직장에서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직장의 규칙에 순응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져 버리는 것이다.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 해고와 계약 만료의 권한, 근무지를 변경하는 수법, 은근하게 괴롭히는 수단 등으로 일상이 틀어지면 원상복구를 하는 데에 드는 시간과 돈은 상당히 피곤하기까지 하다. 수틀리면 거부하고 마음껏 그만두더라도 생계가 유지되는 든든한 사회안전망이든, 사내 규정을 민주적으로 정하는 든든한 노동조합이든, 사용자에게 강하게 책임을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든 있어야 직장인이 '아니요', '싫어요'라고 말하기가 쉬워진다. 위 금융회사의 핸드폰 수거 사건은 이후 인권위원회가 콜센터 직원들에 대한 차별 행위라고 판단했고, "휴대폰 소지를 제한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금융회사는 놀랍게도 "모든 부서 직원의 휴대폰 소지를 제한"하겠다고 인권위에 회신했다고 전해진다. 모두 다 사용하지 못하니 차별이 아니니 괜찮다는 논리가 기적처럼 만들어졌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휴대폰 수거 규칙은 개선됐다고 한다.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갑질' 경험은 드문 일일까, 아닐까. 2023년 11월, 19~69세 남녀 2천 명을 대상으로 '갑질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4명 중 1명(25.7%)이 "갑질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국무조정실의 조사였다. "갑질은 어떤 관계에서 발생하였느냐?"는 질문에는 36%가 "직장 내 상급자-하급자"라고 답했다. 다른 응답은 19.7%가 "본사-협력업체 관계", 14.7%가 "서비스업 이용자-종사자 관계" 14.5%가 "공공기관-민원인 관계"였다. 크고 작은 조직은 안팎으로 위계가 있고, 공식/비공식적으로 규정된 관계 속에서 권력이 작동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이 권력이 잘못 행사되는 전형이고, 권력을 견제하거나 제어하는 장치가 작동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2017년 7월 31일 "공관병 갑질"이 주요 검색어에 올랐다. 육군 대장과 그 아내가 군 내에서 권력을 악용해 공관병과 조리병들에게 '영창에 보내겠다는 협박', '발코니 식물을 제대로 관리 못했다며 추운 날씨에 발코니에 감금', '대장의 아들에게 전을 간식으로 챙겨주지 않았다며 전을 얼굴에 집어던지는 폭행' 등 갑질을 했다는 제보가 잇따랐고 이를 군인권센터가 폭로했다. 그러나 검찰은 직권남용이 아니고, 강요도 아니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충분히 가혹하지 않아서 '가혹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아내의 감금 혐의만 인정했다. 그럼에도 공론화의 효과가 톡톡했는지 군 내에서 노예라는 수식어가 붙던 공관병 제도를 폐지했다. 2017년 11월 언론은 성심병원 간호사들이 노출 심한 옷차림으로 체육대회에서 장기자랑을 강요당했다는 기사를 냈다.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에게 장기자랑을 시키고 야한 옷에 섹시한 표정을 지으라는 둥 제정신이 아니다"라며 "성심병원에서는 매년 체육대회를 하고 간호사들은 장기자랑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에 참여하"고, "병원의 구성원 중에서 간호사의 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성심병원에서는 각종 행사에 당연하게 간호사를 동원한다"는 용기있는 고발 글이 올라온 덕분이었다. 병원의 한 관계자는 "장기자랑이 선정적이었던 건 올해만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그간 방기와 묵인 속에서 만들어진 관행이라는 이름의 잘못된 문화가 드러났다. 이 폭로의 시작에는 직장갑질119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한림대성심병원 계열 직원분들 계십니까?"라는 질문에서 던진 문제의식과 모이자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때 권력을 견제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한림대성심병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다른 병원과 의료시설에서의 잘못된 관행이 스리슬쩍 사라진 것은 덤이다. 전 국민의 분노를 산 군 부대 갑질과 병원의 잘못된 관행이 폭로됐지만, 인식이 바뀌진 않았다. 2018년 3월 12일 대한항공 전무 조현민이 관계사 직원에게 유리잔을 던지며 계약 해지하겠다는 등의 고성을 지르는 '물벼락 갑질'을 했고, 주식이 6%가량 추락한 뒤 사과문을 올렸다. 사과문에는 "광고에 대한 애착이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넘어서면 안 됐는데 제가 제 감정을 관리 못한 큰 잘못"이라고 해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성과주의를 보여줬다. "걔가 일을 못하니까 그렇지!"라며 종종 들리는 말은 받는 돈값을 해야 하고, 그 성과를 내지 못하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응보의 잔혹함이 드러난다. 일이야 수월하게 잘 될 수도, 때를 못 만나서 안 될 수도 있고, 컨디션 난조나 집에 말 못 할 일로 집중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인간의 사정을 다 뒤로 한 채 "업무의 수행"이라는 잣대로 한 사람을 탓할 때 권력자의 갑질은 인간성을 말살하고,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 수준에 다다른다. 2018년 10월 30일 뉴스타파는 양진호 회장이 "니가 뭘 했는지 몰라서 그래, 새끼야?"라고 말하며 한 직원을 폭행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회장이라는 특권적 지위, 사업체라는 본인의 왕국, 민주적인 소통이 부재한 기업 구조 안에서 누가 감히 영상을 찍을 수 있었을까? 이 영상은 양진호가 직원에게 촬영을 지시한 것이었다. 조직의 서열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메시지라고 뉴스타파는 해석했다. 권력자의 폭행과 지시로 이루어진 영상 촬영, 사회적 살인인 해고와 징계, 계약 해지라는 막강한 권한, 만들어진 관행에 대한 방기와 묵인 등은 결국 사업체 내에서 견제되지 않는 사용자와 위계에서 비롯됐다. 입법으로 이어졌다. 2018년 12월 28일 직장갑질119 등 많은 시민단체의 요구와 갑질 잔혹사에 대한 고민과 타파에 대한 열망은 근로기준법 개정(직장내괴롭힘금지법 입법)을 만들어 냈고, 2021년에는 사용자의 갑질에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는 규정으로 보완됐다. 그러나 직장 따돌림으로 투신한 어린이집의 보육교사, 학부모 학생 교사라는 관계에서 교권 침해로 순직한 서울 서이초 교사, "너 오늘 제대로 한 게 뭐가 있어!", "(그러니까) 돈 받을 자격 없지!" 월급을 뱉어내라는 한의사 갑질 사건 등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법률적, 제도적 변화는 사람을 예우하자는 것인데 가야 할 길이 멀다.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4월 말 5월 초, 꽃이 만발하는 때 대학은 시험을 준비한다. 학업의 성취를 확인하려는 열망에 부응(?)한 대학교는 도서관을 밤늦게까지 개방한다. 평소 밤 10시면 끝이 나는 대학의 하루는 밤샘 모드로 전환해 하루 내내 사람이 떠나지 않는 공간이 된다. 하루 정도 씻지 않고 24시간을 넘기기 시작하면 꽤나 찝찝하고 씻고 싶어진다. 교실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오고 간 강의실과 화장실, 복도, 쓰레기통 곳곳에 학생들이 느꼈을 압박감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남겨진다. 플라스틱 커피잔, 온갖 종류의 과자 부스러기와 과자 포장지, 휴지와 음료수 페트병, 머리카락, 흘린 음료 자국, 바닥에 죽어있는 벌레와 음식물, 연습장과 노트 등등. 그럼 이제 청소노동자들의 시간이 시작된다. 밤을 새운 학생들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대략 새벽 6시는 대학교에 청소노동자가 출현하는 시간이다. 해가 뜨기 전 대부분 고령인 여성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학교에서 가까이 살면 걸어서, 멀리 살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가며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통상 첫 차가 운행을 시작하는 시각은 5시 30분경이다. 2023년 1월 2일 새벽 만원 버스를 탄 한덕수 총리가 '총리의 새해 선물'이라며 첫 차 시간을 15분 앞당긴 지도 어느새 1년이 더 지났다. 발단은 한 직장인이 "사무직 직원들이 나오기 전에 빌딩 청소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근무하는 빌딩까지 뛰어야 한다"며 "버스 첫 차 시간을 10~15분만 당겨주셔도 한결 낫겠다"라고 했다는 거다. '당겨달라'고 한 직장인은 청소노동자였고, 총리는 즉각 버스 시간을 15분 앞당겼다. 그런데 그의 삶이 나아졌을까? 란 질문에 한 총리는 응답할 수 없을 거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소노동자는 사무직 직원들이 나오기 전에 맡은 구역의 청소를 마쳐야 한다. 이런 일을 한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정리를 끝낼 즈음 직원들이 하나 둘 출근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젊은 사무직 노동자의 출근으로 새벽에 출근한 고령의 직장인은 사라진다. "숨겨진 직장인"이라 칭해야 할 청소노동자는 회사가 지정해 준 휴게공간으로 숨어든다.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계약은 통상 하루 8시간 일하기로 정하고, 새벽 7시에 출근해 청소를 하기로 하지만, 강의를 시작하는 9시 이후에는 강의실을 청소할 수 없다. 학생들이 한 교실에 4~50명씩 빽빽하고, 한 층에 강의실이 1~20개씩 있으면 통행하는 학생의 수만 4~500명이다. 화장실과 복도에 학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서기 전에 정리를 마치지 못하면 청소를 못 한다. 어쩔 수 없이 청소노동자들은 월급으로 받기로 정한 7시보다 일찍 와서 청소를 시작한다. 빠르면 6시, 조금 늦으면 6시 반에 이미 출근해 있다. 마침 대학교에 있던 나는 한 청소노동자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고, 그녀는 "내 일 욕심 때문에 한다"며 "삭신이 쑤시는 건 좀 힘들어도 어쩔 수 없지. 파스 붙이면 되지"라며 "아무것도 아녀"라는 풍모를 풍기면서도, 그래도 밥 먹는 때는 좀 억울하다는 내색을 표했다. 한 대학의 청소노동자는 "물가는 폭등했는데 왜 우리 식대는 5년째 12만 원인가요?"라고 물었다. 새벽부터 나와서 밖에서 하루 두 끼를 먹어야 하는데 현행 학생식당은 5,000원, 김밥 한 줄도 3,000원이 넘는다. 식대 2,700원으로 무엇을 먹으라는 말이냐며 반문했다. 식사하는 청소노동자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대가 부족하다 보니 반찬값으로 삼아서 도시락을 싸다가 휴게공간에서 식사를 한다. 지금 서울 곳곳의 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식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주된 요구는 월 식대 2만 원 인상(현행 식대: 월 12만 원)이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90원쯤의 인상 요구다. 용역업체에 올려달라고 하자 "우리는 식대를 올려 줄 수 없다"며 대학에 알아보라고 넌지시 말했다고 한다. 마침 대학교에 있던 나는 청소노동자에게 몇 년간 일했냐고 물어봤다. 2001년부터 일을 했다며 "내가 청춘을 바쳤어. 39살에 들어와서 60을 넘겼어"라고 말을 남겼다. 남들 다 자는 새벽에 청소를 바쁘게 했을 모습이 스치며 문득, 저 돈이면 밥값이 아니라 약값으로도 모자라겠단 씁쓸함이 덮쳐왔다.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점심을 먹으려 신촌의 한 순두부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고 점원과 눈이 마주쳐 짧게 목례를 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점원은 곧 말했다. "무엇을 드릴까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 역의 탕웨이가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라고 말하듯, 모국어가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어투였다. 내게 가장 익숙한 말을 조금은 다르게 하는 그에게 "들깨순두부 하나 주세요"라고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식사는 맛있었고, 사과와 대파, 공산품의 가격이 오른 만큼 인상된 찌개 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섰다. 저녁에 간 중국집에서 다른 직원이 "무엇을 드릴까요?"라고 물었고, 나는 다시 그를 돌아봤고, 요리를 주문했고, 식사하고 나왔다. 앳된 것으로 보아 유학생 같았다. 식사는 다를 거 없이 맛있었고, 흡족했다. 최근 젊은 유학생이 상담을 왔다. 하는 말은 그랬다. 일을 한 지 1년 3개월이 되던 때 사장이 가게가 어렵다고 그만 나오라고 했다는 거다. 그만두기 전 3개월 동안은 가게가 어렵다고 해서 월급도 반절만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사장과 점점 연락이 되지 않던 중 유학생은 가게에 찾아갔다. 놀라울 것도 없이 오픈 중이었다. 사장은 다른 아르바이트생과 일하고 있었다. 화가 난 유학생이 달려들어서 '내 3개월 치 월급 언제 줄 거냐'고 우격다짐으로 다투고 온 활극이었다면 속이라도 시원했을까, 싶지만 유학생은 그러지 않았다. 유학생들 사이에 괴담이 있다고 했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우선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지를 잠깐 보려 한다. 한국은 외국인 유학생(D-2 또는 D-4 비자, 학사 기준)에게 주중 20시간(최대 25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정해뒀다. 당국의 정식 허가 기준에는 여기에 직전 학기 학점 기준도 있고, 한국어 능력(토픽, KIIP)을 일정 수준 이상 인정받아야 한다. 이렇게 여러 조건을 다 충족했을 때 시간제 취업을 할 수 있다. 대략 1주 5일 일한다고 하면 하루 최대 5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하며 대학 다니는 일이 특별하지도 않고,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가 유학생이라고 값쌀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우리 문화 배우러 왔으니 기특하다며 깎아줄 만큼 한국이 녹록한 나라도 아니다. 옛날 주경야독 이야기가 지금은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하는 흙수저의 이야기로 읽힌다. 최근 식당에서 유학생이 서빙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어렵지 않은 것은 단편적인 인상이 아니다. 그만큼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대학가에는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던 시기를 지나 다시 외국인 유학생 수가 증가 추세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22년 교육기본통계 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14년 8만 4,900명에서 2022년에는 16만 6,900명으로 2배가 증가했다. 그리고 교육부는 2023년 8월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을 유치해 세계 10대 유학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유학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괴담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시간 넘겨 일해서 강제 출국당한다"이라는 거다. 유학생은 1주 20시간 조건으로 일하기 시작했지만, 방학을 지나면서 지금까지 1주 30시간씩을 일했다고 한다. 20시간 초과해서 30시간을 일하라고 제안한 사장님이야 일 시키고 돈 주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세상 장사가 내 맘대로 됐으면 모두가 백종원 되는 거다. 장사가 생각보다 안 됐고, 유학생은 어느 날 보니 10시간 치 월급을 못 받았다고 했다. 그래도 20시간 치 월급은 꼬박꼬박 준 걸 두고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이 유학생은 식당에서 더 일하기를 포기했다. 시급이 짜면 오랫동안 일할 유혹에 벗어나기 어렵다. 거기다가 젊은 사람의 체력에 주 20시간과 주 30시간이 큰 차이가 아니니 잔뜩 팽팽해진 트리거를 누가 당기느냐인데 사장님이 10시간 더 일해서 돈 벌어가라는 말을 무심히 지나칠 젊은이는 별로 없다. 그렇게 지나고 보니 30시간 치 일을 하고 있는 거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인연을 상상해 보는 청춘의 시간에, 일한 만큼 돌려받는 대가의 이치는 쉽게 무시당한다. 그렇게 유학생은 10시간 치 임금을 받기를 포기했다. 무심한 법 때문인데, "니 사정이 딱한지는 내 알 바 아니고, 네가 일한 게 문제니 앞으로 취업 제한이 걸릴 수 있다. 아 참 범칙금도 내라"기 때문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처럼 어느 나라에서 왔든 공부하겠다는 대학생에게 등록금을 싸게, 생활비를 충분히 지원했다면, 그리고 1주 20시간 초과해서 일하자는 제안을 못하게 사장을 강하게 제지했다면 이렇게까지 됐을까? 그리고 갑자기 귀에 다시 울렸다. '헤어질 결심'에서 탕웨이가 그랬는데,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라고. 디자인 : 고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아침, 뜨거운 커피 한 잔의 여유'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출근길 커피 한 잔을 포기할 수 없다. 아직 집에서 나오지 않은 내 정신을 깨우는 커피는 나도 그렇고 아침밥은 못 먹어도 거를 수 없는 필수 아이템이다. 가격대는 1,500원부터 5,000원까지 천차만별이고, 그 맛도 각양각색이다. 아침 커피 한 잔에 그 풍미까지 느끼는 사치는 못 부려도, 겨울에는 따듯하게 고소한 맛으로, 여름에는 차갑게 신맛으로. 이 정도는 맞춰 마시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커피 맛을 물어보는 가게는 원두 향이 가득하고 바리스타는 비교적 여유가 있고, 아이스인지 핫인지만 고르는 가게, 그중에서도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가게는 바리스타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회중시계를 들고 이리저리 뛰는 화이트 래빗 같이 분주한데 실속이 크지 않은 느낌이다. 치열한 증기와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오는 커피머신과 동시에 요란하게 소리 지르는 믹서기 옆에서 쉬지 않는 일자리에는 앳된 청년이 앉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서 있다. 정신없이 바쁜 가게에서 줄은 줄지 않는다. 전광판에 적힌 숫자는 101, 103, 561, 571, 572 쌓여가고, 기다리는 대기 줄도 길어진다. 그동안 카페 아르바이트생은 화장실에 갈 수 있을까? 오래 전 설문조사이긴 하지만 2018년 알바천국에서 아르바이트생을 대상으로 "아르바이트 중 화장실 잘 가시나요?"라는 물음에 응답한 1,488명 중 79.3%가 근무 중 화장실을 못 가서 곤란했다고 답을 했다. 그 중 27.2%는 근무 중 화장실에 가지 못해 생긴 질병(변비 46.3%, 방광염 45.9%)이 있다고도 답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카페 아르바이트생들은 원두를 커피로 만들어 텀블러에까지 담아주는 하나의 공정에 포함된 기계의 부속품처럼 작동하고,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가는 것은 사치처럼 보인다. 커피가 왜 빨리 안 나오냐며 불평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점심, 저녁 피크시간을 보내면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일하는 1-2시간은 순식간이다.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응답을 했다. 화장실을 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밀리는 주문과 손님(40.6%)", "혼자 일해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27.3%)"가 다수였다. 우리가 카페에서 만나는 또 다른 장면이 있다. 커피가 나왔다고 말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대부분은 젊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일자리는 차별적이기 짝이 없다. 아르바이트생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다. 1주 15시간 넘게 1주일을 만근하면 주휴수당(1주일마다 하루를 유급으로 쉬는 수당)을 받고, 1주 15시간 넘게 1달 동안 일하면 연차휴가(1달마다 하루를 유급으로 쉬는 휴가)를 보장받고, 그렇게 1년을 넘게 일하면 퇴직금(1년 동안 일하면 한 달 치 임금을 받는 임금 보전 방안)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름은 때로는 주휴수당-연차휴가-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가 돼버린다. 그 이유는 1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에겐 주휴수당-연차-퇴직금을 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주휴수당은 임금 수준보다 약 20%를 더 줘야 한다. 사장님들은 종종 아르바이트생이 불성실하고 아무 때나 퇴사하고, 무단결근을 한다고 만만하게 여기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건 그 대우가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주는 만큼 받는다고, 사장이 아르바이트생을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비용으로 보니 그 반대도 마찬가지가 된다. 사장님이 맘 편히 1주 40시간 일하는 1명을 채용하기보다, 돈 아껴보겠다고 1주 10시간씩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4명을 쓰니, 아르바이트생도, 바로 옆 가게에서 1주 15시간 넘게 하는 일자리를 찾아가는 거다. 이직하면 누가 힘든지는 사장님이 잘 알겠지만. 일하는 동안 화장실도 가기 어렵고, 일하는 시간이 적다고 차별적인 대우까지 받는 곳에서 젊은 청년들은 갈려 나간다. 그런데 아무래도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사장님이 스스로 더 챙겨주겠거니 하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어쩔 수 없다. 노사가 서로 비용으로 보는 계산적인 판단을 덜 하도록, 15시간 미만 근로자에게도 주휴수당과 연차휴가를 보장하는 제도를 구성하면 된다. 그 제도는 누가 만드냐면, 청년 스스로와 청년 자녀를 가진 부모 그리고 우리다. 총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런 이야기는 누가 하려나 모르겠다. 하여튼 "하느님이 생각하지 못하면 우리라도 해야지(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중中)"라는데, 라임을 맞춰보자. "사장님이 못 하면 우리라도 해야지." 디자인 : 고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