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싱턴, 마약 소굴이 되기까지 살면서 마약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볼 경험이 얼마나 될까요? 심지어 그런 사람이 거리마다 꽉 차서 북적이고 있다면요? 마약 통제에 가장 힘을 쏟지만 공교롭게도 이러한 풍경이 펼쳐지는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좀비 거리’로 널리 알려진 미국 최대의 마약 거래 시장, 필라델피아 켄싱턴이 바로 그러한데요. 3km 남짓한 켄싱턴 거리는 그 안에서도 범죄 유형과 위험도에 따라 다시 3개의 구역으로 나뉩니다. 통상 A존의 경우, 워낙 위험한 탓에 경찰도 잘 들어가지 않는 곳이라 하여 저희 취재진은 주로 B와 C존을 둘러봤습니다. (B존도 딜러의 총기 사용 문제로 꽤나 위험한 곳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다녔던 거리엔 온통 썩은 냄새와 쓰레기, 또 언제 어디서라도 마약을 할 준비된 중독자들이 즐비했습니다. 취재를 도와주신 현지 목사님의 말에 따르면, 켄싱턴에 있는 사람 대부분은 외지인입니다. ‘마약을 해도 잡아가지 않는다’는 소문에 미국 전역의 마약 중독자들이 모여 지내는 건데, 이들 대다수는 집 대신 텐트를 가지고 다니며 거리 곳곳 어디서든 마약을 하고 그대로 기절한 듯 잠에 취해 사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켄싱턴이 있는 펜실베이니아주는 대마조차 불법인 곳이지만, 어째선지 그와 비교할 수도 없는 중증 마약을 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습니다. 저희 동네 병원에서보다 이곳 거리에서 훨씬 더 많은 주사기를 봤었는데, 주사기 안에 들어가는 마약의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헤로인과 코카인, 펜타닐과 동물성 마취제 자일라진까지. 경찰이 옆을 지나도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서로 마약이 든 주사를 놔주고, 경찰 역시 대수롭지 않은 듯 휴대폰을 보거나 커피를 마시며 사색(?)에 잠기는 모습도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과거 미국의 번영을 함께 했던 필라델피아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요?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 역시 뒤늦게 특단의 조치에 나섰지만, 때는 너무 늦은 뒤였습니다. 지난 2016년, 당시 필라델피아 시장은 ‘마약 종식’을 선언하며 대대적인 거리 청소에 나섰습니다. 미 마약 단속국 요원들까지 파견받아 마약 유통책을 잡아들이고,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해 더러워진 거리 청소를, 새로이 병원을 설립해 중독자들 집중 치료도 이어 갔습니다. 그렇게 처음 몇 개월은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이미 수십 년 동안 곳곳에 퍼져버린 지독한 마약은 거리를 끊임없이 다시 더럽혔습니다. 중증 마약 중독환자들은 병원 대신 거리로 나서 마약을 찾았고, 깊숙이 퍼져 몸을 웅크리던 마약 유통망 역시 수요에 맞춰 다시 활발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치워도 치워도 다시 생겨나는 마약 덕에 호기롭게 시작한 마약 종식 작전도 힘이 빠져갈 무렵, 코로나19까지 겹치며 정부의 예산과 인력 지원도 자연스레 끊기며 문제는 더욱 악화해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셈입니다. 마약 문제를 해결할 ‘골든타임’을 놓친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겁니다. 처벌 대신 치료..미국 약물 법원에 가다 미국이 마약 통제에 쏟아붓는 예산만 한 해 약 50조 원 수준입니다. 반면, 마약 중독 사망자 수는 지난해 11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천하의 미국도 마약만큼은 돈으로 해결하지 못해 고군분투 중입니다. 이러한 시행착오에도 미국이 최근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마약 관련 정책이 하나 있습니다. 돈 보단 시간으로, 처벌보단 격려와 응원으로 효과를 보고 있는 ‘약물 법원’ 제도입니다. 약물 법원(drug court)을 간단히 소개해보자면, 단순 마약 사범의 재범을 막기 위해 사법부가 도입한 제도입니다. 기존 재판과 다른 점이라면,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판사까지 한 팀이 돼 마약 사범의 재활과 치료를 돕는다는 겁니다. 어떻게요? 일단 약물 법원에 참여할 대상자를 선정합니다. 폭력 범죄와 연루되지 않은, 단순 마약 투약 사범 중에서 단약의 의지가 있는 피의자들 중 선별합니다. 그리곤 약물 법원 프로그램에 참여할지 선택할 기회를 줍니다. 프로그램을 잘 따른 다면 ‘기소 유예’라는 보상을 받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중 처벌’을 받는 제재에도 과연 동의할지 의사를 묻는 겁니다. 그렇게 약물 법원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피의자들은 매주 법원으로 가 재판부를 만납니다. 만나서, 마약은 잘 참고 있는지 치료는 잘 받는지 소변 검사서와 치료 소견서를 제출합니다. 얼마 나요? 무려 1년 6개월 동안 지속합니다. 상당히 길고 지난한 시간인 만큼, 이를 끝까지 수료하는 피의자는 참여자 중 50%를 채 넘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대신, 이 프로그램을 무사히 수료한 참여자는 기존 마약사범보다 재범률이 훨씬 낮았습니다. 제가 다녀온 펜실베이니아주 몽고메리 약물 법원에 따르면, 재범률이 무려 3배는 더 낮게 나왔습니다. 약물 법원을 통해 마약의 유혹을 이겨 낼 자제력과 의지를 얻은 셈입니다. 예산 지출 측면에서도 약물 법원은 선순환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존 마약 사범을 교정 시설로 보낼 때보다, 약물 법원 프로그램을 수료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더 적기 때문입니다. 몽고메리 약물 법원의 경우, 지난 2006년 들어선 뒤 지금까지 약 280억 원의 예산을 아꼈습니다. 이러한 효능들 덕분일까요. 약물 법원은 점점 늘어 현재 미국 전역에만 4천여 곳이 운영 중입니다. 마약 통제, 한국이 성공할 경우의 수는 1973년,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엄청난 수의 마약 사범을 잡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200만 명 넘는 마약 사범을 교도소에 가뒀고 그 성과를 자축하는데 바빴습니다. 그러나 이 중 대다수는 단순 마약 투약 사범이었고, 이들은 다시 사회로 나와 더욱 심한 마약 중독에 빠져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역효과를 보였습니다. 강력한 처벌과 단속만으론 절대 마약 통제에 성공할 수 없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최근 정부의 움직임은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초창기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검찰과 경찰, 관세청 등이 참여한 특별수사본부를 설립해 수사 전담 인력을 대폭 확충하고, 재범 이상이면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할 만큼 단순 투약 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까지. 처벌도 중요하지만, 더 늦기 전에 재활과 치료 문제도 함께 들여다봤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마약 사범 치료와 재활 인프라는 절망적입니다. 국가가 지정한 마약 전문 병원이 전국 21곳이지만, 제대로 운영 중인 곳은 불과 2곳입니다. 이마저도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해 매일 환자들이 몰리고, 어렵기 용기 내 치료를 받으러 왔다 다시 굴속으로 돌아가는 마약 사범들도 적지 않습니다. 약물 법원에서 만난 판사는 저희 취재진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약 중독을 범죄보단 질병으로 보고, 온 사회가 재활과 치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대마 합법화도 모자라 마약 시장도 눈감아주는, 근데 또 재활과 치료엔 진심인 나라 미국.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비효율적인 마약 정책을 추진하는 미국보단 아직 우리나라 상황이 좀 더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미국은 늦었지만, 우리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다만 그 시간이 길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부디 한국의 마약 통제가 성공 사례로 기록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디자인 : 방명환
대마 합법화 2년, 뉴욕은 지금 뉴욕 하면 떠오른 것들이 있죠. 자유의 여신상, 브루클린 브리지, 센트럴 파크, 첼시 마켓 등. 그런데 지금 이대로라면 앞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시게 될 건 바로 '대마'가 될 겁니다. 미국 내 모든 대마를 합법화한 22개 도시 중 하나이자, 가장 큰 규모로 대마 사업을 진행 중인 뉴욕. 대마 합법화 1년 6개월 만인 지금, 거리 곳곳엔 대마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이제 뉴욕을 가시게 된다면 블록마다 간접 '대마' 흡연을 해야 할 지경인데, 나중에 뉴욕에 가실 구독자분을 위해 태어나 처음 맡아본 대마초 냄새를 묘사해 보겠습니다. 일단 아주 낡은 풍선공장이 있고, 공장 안 오래된 기계 옆엔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고무풍선이 겹겹이 쌓여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중에도 가장 밑에 깔린 고무풍선을 집어서 바람을 넣으려 처음 입을 가져다 댔을 때 날 법한 냄새랄까요. (정말 고약합니다.) 이런 대마를 이제 담배보다 더 많이 피우는 곳이 미국입니다. (지난해 미국 내 18세 이상 성인의 대마 흡연율은 16%로, 11%인 담배 흡연율을 앞섰습니다.) 대마 합법화, 얻은 것과 잃은 것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미국은 왜 대마 합법화에 나서는 걸까요? 현재 미국 내 기호용 대마 합법화를 선언한 곳은 전체 도시 중 43%에 달합니다. 많은 사람이 원해서? 그렇다고 몸에 좋지도 않은 대마를 미국이 그런 순진한 이유로 허용했을 리 없습니다. 대신 그 해답은, 대마 전면 합법화에 나선 뉴욕 캐시 호컬 주지사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요. “대마초를 합법화하는 것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에 도움이 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바로 돈이 될 거라 판단한 겁니다. 뉴욕주는 대마를 통해 매년 3억 5천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4천억 원의 추가 세수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는 대마를, 차라리 합법화해 세금도 걷고 관리도 나서겠다는 것이었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지금 상황만 놓고 본다면, 사실상 실패한 정책에 가깝습니다. 현재 뉴욕 시내엔 60여 곳의 합법 대마 판매소가 있습니다. 뉴욕 시가 내건 까다로운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켜 합법 판권을 따낸 업체들인데요. 반면, 불법 판매소는 이의 20배가 넘는 1,400여 곳에 육박합니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결국, 관리엔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현재 대마 불법 판매소에선 더욱 싼 값에 대마는 물론, 헤로인과 필로폰, '좀비 마약'이라 불리는 펜타닐까지 덩달아 유통하는 탓에 그에 따른 중독자와 사망자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뉴욕 등 미국이 허락해 준 유일한 마약은 대마였지만, 뜻밖에 다른 마약들의 빗장을 열어준 트리거가 된 셈이죠. 대마 합법화, 한국이 무슨 문제? 아직은 다소 생경한 미국의 이러한 풍경이 비단 남의 일이라 넘기기엔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뉴욕 출장기간 동안, 대마 판매소를 돌며 한국인도 많이 오는지 물었습니다. “고객 대부분이 한국 관광객과 유학생이다.” 직원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실제 이들의 태도에서도 한국인 손님을 대하는 데 어색함이나 어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대마 판매소를 낯설어하는 저에게 긴장을 풀라며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만 가져가지 마.” 이 말에 담긴 의미는 크게 2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한국인의 미국 내 대마 섭취가 불법임을 알고 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걸릴 가능성은 적으니 안심하고 구매하라는 뜻. 담배도 피워 본 적 없다는 제게 신난 얼굴로 대마 젤리·초콜릿·버터 등을 권하던 직원의 모습에선 일말의 죄책감이나 우려는 없어 보였습니다. 합법 판매소도 이런데, 불법 판매소는 오죽할까요. 대마 말고도 훨씬 위험하고 중독성이 강한 마약의 유혹으로부터 우리 한국인들이 안전할 수 있을까요? 저희 취재진이 국내서 만난 마약 중독 경험자 중 상당수는 유학생이었습니다. 이들 중 대다수는 대마를 시작으로 마약 중독의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해외에서 배운 마약이 한국에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인 셈입니다. 미국 말고도 캐나다, 영국, 동남아 국가 등 한국과 비교적 관련이 높은 국가에서도 대마 합법화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이에 따른 부정적 여파는 더욱 커지게 될 게 뻔하지만, 국내 현실은 대책은커녕 어떻게 유입이 되는 건지, 누가 주로 중독되는지 등 관련 통계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마약 청정국’ 지위는 잃었을지언정, 속수무책으로 마약에의 노출을 허락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이미 대마 합법화의 나비효과는 시작됐고, 점점 큰 태풍이 돼 한국을 향할 일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약 중독, 제때 막지 못하면 어떠한 지옥이 펼쳐지게 될지 다음 편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디자인 : 방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