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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미국 항공우주국, NASA가 지난 9일(현지 시각)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초신성 사진과 함께 'A supernova glowing in the dark'라는 문구를 게시했습니다. "SN1006(1006년에 폭발한 Ia형 초신성)이 1006년 하늘에 처음 나타났을 때, 금성보다 훨씬 밝고 몇 주 동안 낮에 보였다. 바로 그 순간부터 전 세계 천문학자들의 심장을 차지했다"로 이어지는 상세 설명보다 사실 저 'A supernova glowing in the dark'라는 도입부 문구가 더 화제였죠. 정확히는 '바로 저 순간부터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의 심장을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아이브가 8일 낸 신곡 'Supernova Love'의 가사 일부였기 때문이에요. IVE, David Guetta - Supernova Love Official Music Video '설마'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NASA가 노래 제목과 함께 아이브, 그리고 이 곡에 참여한 유명 DJ 데이비드 게타를 해시태그로 붙였기 때문이에요. 이 곡은 프랑스 DJ 겸 프로듀서 데이비드 게타가 비트를 제공하고 아이브가 불렀으며 후렴구 멜로디에 사카모토 류이치의 명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차용했습니다. Ryuichi Sakamoto -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이 곡이 테마로 쓰이고 사카모토 류이치가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배우로도 직접 출연한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가 이달 20일 재개봉하기도 했습니다. 겨울이 되면, 찬바람이 불어오면 한 번씩 생각나는 멜로디, 꽁꽁 언 마음을 털실로 짠 스웨터처럼 녹여주는 선율입니다. 그러고 보니 NASA의 케이팝 사랑은 처음이 아닌데요. 앞서는 에스파의 'Supernova'의 일부 가사를 인용해 초신성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역시 한국도, 미국도 '수, 수, 수, 수퍼노바'인 걸까요. 사실 NASA의 케이팝 사랑은 올해 들어서 피어난 로맨스는 아닙니다. 2019년에는 NASA 존슨우주센터가 당시 발사 예정인 달 탐사 유인 우주선에서 우주비행사들이 BTS의 노래를 들을 것이라고 밝혔죠. 소셜미디어에 "RM의 자작곡 '문차일드', BTS의 '소우주' '134340'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겠다"라고 해 화제였어요. RM 'moonchild' Lyric Video NASA의 음악 사랑은 케이팝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팝과도 친했어요. 2008년 2월 5일. NASA는 비틀스의 1969년 명곡 'Across the Universe' 음성 파일을 431광년 떨어진 북극성을 향해 쏴 올렸죠. 이 곡이 녹음된 지 40주년, 그리고 NASA 창립 50주년과 비틀스 결성 50주년을 기념한 이벤트였습니다. 이 노래는 MP3에 담겨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거대한 안테나를 떠나 광속으로 우주를 여행하게 됐어요. 이 곡을 작곡하고 부른 존 레넌은 고인이 되고 없지만 비틀스의 생존 멤버 폴 매카트니는 NASA에 이렇게 말했답니다. "외계인들에게 나의 사랑을 전해줘요." 비틀스 팬으로 가득한 NASA에서는 이 '내부자들'의 입김이 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2005년에는 매카트니가 비틀스의 1966년 곡 'Good Day Sunshine'을 연주한 실황을 우주정거장(ISS)으로 중계했어요. ISS 승무원들의 모닝콜 송으로는 'Here Comes the Sun', 'Ticket to Ride', 'A Hard Day's Night'을 즐겨 선곡한다고 하네요. 그래도 "백만 개의 태양처럼 빛나는 끝없는 불멸의 사랑이 우주 너머로 자꾸자꾸 나를 부르네"라 노래하는 'Across the Universe'만큼 절묘한 곡은 없어 보입니다. 16년 전 쏴 올려졌으니까 이제 한 415년만 더 날아가면 북극성에 닿겠네요. Across The Universe (Remastered 2009) '보헤미안 랩소디'로 유명한 전설적 그룹 퀸. 퀸의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는 천체물리학자로도 유명하죠. 퀸 시절부터 끊임없이 독특하고 우주적인 곡을 써왔는데, 2019년에 특별한 곡을 지어서 NASA에 헌정했습니다. 미국 탐사선 뉴허라이즌스호가 태양계 밖 소행성 울티마 툴레를 지날 때 축하곡인 'New Horizons(Ultima Thule Mix)'를 만들어 바친 거죠. '탐험해야 할 새로운 지평선/누구도 보지 못한 새로운 지평선/끝이 없는 하늘에 한계 없는 경이로움'에 대해 얘기하는 노랫말은 다분히 '퀸스러운' 화음과 메이의 기타 사운드와 함께 몽환적이면서도 가슴 벅찬 감정을 선사합니다. Brian May - New Horizons (Ultima Thule Mix) NASA와 협업해 화성에서 신곡 발표회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2012년, 블랙아이드피스의 멤버이자 유명 음악 프로듀서인 윌아이앰이 당시 화성에 머물던 항공우주 탐사로봇인 큐리오시티를 통해 신곡 'Reach For The Stars'를 발표했던 거예요. 미 항공우주국은 화성에서 노래가 울려 퍼지는 순간을 홈페이지에 생중계하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는 윌아이앰의 정규앨범에도 실리는데, 처음 발표 당시 원곡에는 'Reach For The Stars (Mars Edition)'이라는 제목을 달고 40인조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편곡했죠. 당시 윌아이앰은 "누구든 감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소에 하던 전자음악 편곡 대신) 관현악 편곡을 했다"고 했어요. 저 '누구든'이 지구상의 남녀노소 외에 다른 사람들, 아니 다른 존재들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Sizzle Reel - Reach For the Stars (Mars Edition) 1977년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에는 이른바 '보이저 골든 레코드'가 부착됐습니다. 혹시나 조우할지도 모를 외계인을 위한 기록물이었죠. 그들에게 인류 문명을 설명할 갖가지 사진, 소리, 문자를 담았습니다. 음악으로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베토벤 현악사중주, 피그미족의 성년식 노래 등이 수록됐어요. 다가오는 2025년에는 또 어떤 노래가 우주에 울려 퍼질까요. 지구를 대표할 노래 중에 우리의 노래는 몇 곡이나 될까요. 차가운 입김을 내뿜으며 멀리 까만 밤하늘 위를 올려다봅니다. Claudio Abbado & the Orchestra Mozart - Bach: Brandenburg Concerto No. 1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조용필입니다. 돌아왔습니다. 별다른 수식어가 없는 이 두 문장만으로도 귀가 열리는 스토리가 됩니다. 우리나라 가요계에 오랫동안 오뚝 서 있는 아이콘, 조용필이 무려 11년 만의 정규앨범인 20집, ‘20’을 지난 22일 발표했습니다. 조용필에 대해 더 설명이 필요할까요. 1950년생(74세). 1968년 컨트리 장르의 그룹 ‘애트킨즈’를 결성하며 음악 활동에 닻을 올립니다. 이듬해인 1969년 미8군 무대에서 솔(soul) 장르의 그룹 ‘화이브 핑거스’로 데뷔하고요. 이어 김트리오, 25시, 조용필과 그림자로 활동하면서 언더그라운드 로커로 활동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1975년 발표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단숨에 스타가 됩니다. 1980년 정규 1집에서는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한오백년’ 등 여러 곡을 동시에 히트시키면서 스타를 넘어 젊은 국민 가수의 반열에 오르죠. 절창과 음악성, 스타성을 겸비한 그는 198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들어버립니다. 1981년 ‘고추잠자리’는 KBS라디오에서 24주 연속 1위를 기록했고요. 1980년부터 86년까지 각종 방송사의 연말 가요대상을 11회 수상하는 대기록을 작성합니다. ‘한류’라는 말이 없을 때 이미 한류를 개척했죠. 1983년 국내 가수 최초로 일본 NHK홀 공연을 열더니 86년에는 한국 가수 최초로 일본에서 단일 앨범 밀리언셀러(100만 장 판매)의 기록을 세웁니다. 일본인을 연중 가장 많이 TV 앞에 몰려 앉게 하는 시간이라는 NHK 연말 특집 ‘홍백가합전’에 한국 가수 최초로 나간 것도 조용필(1987년)입니다. 1988년에는 한국 가수 최초로 중국 베이징 공연을 열죠. 가는 곳마다 최초, 최다, 최고라는 족적을 찍고 다니던 조용필은 1992년,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충격 선언을 합니다. 지금처럼 SNS도, 유튜브도, 케이블 TV마저도 없던 그 시절에 ‘앞으로는 TV에 나가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음악인이 아니라 방송인, 예능인으로 끝없이 소모되는 자신에 환멸을 느꼈던 걸까요. 이후 조용필은 콘서트 활동에 집중합니다. 그러면서도 1994년 국내 최초로 음반 총 판매량 1,000만 장 돌파, 1996년 국내 대중가수 노래 최초 교과서 수록(‘친구여’), 1999년 국내 가수 최초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공연 같은 전인미답의 기록들을 쌓아나갑니다. 지난 22일 열린 20집 컴백 기자회견에서 저는 조용필에게 물었습니다. ‘그래도 돼’ ‘늦어도 돼’라며 토닥여주는 위로의 노래인 20집 타이틀곡 ‘그래도 돼’를 만약 과거의 조용필 자신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몇 년도의 어떤 조용필에게 가겠냐고요. 그는 1992년 TV 출연 중단 뒤 콘서트 관객 감소로 힘들어하던 때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때로 공연장에서 2층이 통째로 비어버린 썰렁한 객석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고요. ‘그래도 내가 조용필인데, 히트곡이 몇 개인데…’ 하면서요. 사실 이번 신곡 ‘그래도 돼’는 조용필이 혼자 스포츠 경기를 보다가 착안한 곡입니다. 우승자가 결정된 순간, 승자의 세리머니에 카메라가 클로즈업됐고, 패자는 화면 밖으로 밀려나 보이지 않았는데 그 패자의 표정, 모습, 심경이 어떨까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아득해졌다고 합니다. 조용필을 2013년 19집 ‘Hello’와 그 수록곡 ‘Bounce’부터 접한 젊은 세대도 많습니다. 2013년 당시 유치원생도 초등학생도 아이돌 음악과 ‘Bounce’를 섞어 들으면서 위화감 없이 그저 신나고 통통 튀는 팝송으로서 조용필의 노래를 소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앨범을 쭉 들으면서 바로 그 ‘Bounce’ 세대의 감상평이 가장 궁금해졌습니다. 힘찬 팝 록 ‘그래도 돼’, 빠른 템포의 ‘Timing’, 프로그레시브 록 발라드마저 연상시키는 처절한 곡 ‘왜’…. 다시 헤드폰을 끼고 정주행을 해봅니다.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꿈’ ‘그 겨울의 찻집’ ‘모나리자’ ‘여행을 떠나요’ ‘바람의 노래’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서울 서울 서울’ ‘Q’ ‘그 겨울의 찻집’을 잘 모르는 그 ‘Bounce’ 세대의 마음으로 자기 최면을 걸어봅니다. 조용필은 20집이 자신의 마지막 정규앨범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20’에는 최종적으로 7곡이 담겼죠. 10월 초까지도 다듬고 매만졌던 ‘여덟 번째 곡’이자 자작곡이 있었지만, 맘에 100% 차지 않아 수록하지 않았고 그것이 영 맘에 걸린다는 말도 했죠. 사실 조용필이 역사적인 마지막 앨범을 만들면서 56년간 사랑했던 오랜 팬들, 또 까다로운 음악 팬이나 평단까지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설계도를 짰다면 전략은 오히려 ‘초-단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옛 대표곡들의 빛바랜 감성을 적절히 ‘복붙’하고, 한국적인 멜로디를 중심에 세우며, 자연스레 세월의 나이테가 묻어나는 지친 듯한 음성으로 포크 성향의 발라드 몇 곡을 덧대는 거죠. 다수 음악 팬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이 공식이 되레 쉬웠을 거예요. 조용필의 역량을 떠올려보면 ‘어려워 보이는, 매우 쉬운 길’이었겠죠. 하지만 조용필은 이상한 길을 갑니다. 굳이 랩에 가까운 빠른 엇박자의 가창을 뱉어냅니다. 심지어 마지막 앨범의 마지막 곡을 아련한 발라드로 끝내는 대신, 꼭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어도 됐을 법한 전자 효과가 가장 빼곡한 ‘라’ 같은 일렉트로니카로 마무리합니다. 어떤 음악 팬들은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다’ ‘옛 감성이 그립다’고 하기도 하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조용필은 이런 사람입니다. 그런가 봅니다. ‘거장의 숨결’ ‘지친 노장의 독백’ 같은 뻔한 수식어 대신 젊은 세대에게는 젊은 세대의 관점에서, 기성세대는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당신은 실패했다’고 조롱받기 쉬운 길, 팝의 산기슭을 하이에나처럼 자꾸만 어슬렁거립니다. 전 세계 수백, 수천의 작곡가에게서 곡을 수급하는 ‘고퀄’의 수많은 아이돌 팝송들의 거대한 산맥에 부딪혀 깨질 것을, 오랜 세월 대한민국 엔터 산업에 몸 담근 이로써 누구보다 잘 알 것임에도…. 그의 몸부림을 보며 기억의 작은 조각이라도 복원하려는 ‘메멘토’의 남자와 반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뇌에 미로처럼 얽힌 기나긴 기억의 회로를 모조리 불태워버리려는 듯한 사람. ‘자작곡’의 오라(aura)마저 귀찮다는 듯 훌훌 벗어던진 광인. 그래서 ‘Bounce’ 세대의 마음으로 다시 한번 헤드폰을 낍니다. 아니, 이제 ‘그래도 돼’ 세대의 차례일까요. 곰곰이 생각할수록 조용필,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Coldplay - A Sky Full Of Stars (Live at River Plate)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니, 일어날 예정입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가 무려 8년 만에 내한합니다. 그것도 4회 공연으로요. ‘내년 4월 16, 18, 19, 22일. 무려 4회에 걸쳐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 무대에 섭니다’까지 썼는데, 한 회 추가해 총 5회 공연이 됐다는 소식이 26일 타전됐네요. 이렇게 칼럼을 마무리해 넘기려 했는데…. 27일 오후, 한 번을 더해서 무려 6회 공연으로 확장한다고 주최 측에서 밝혔습니다. 2017년 공연 때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2회 공연을 하긴 했습니다만, 이번엔 6회입니다. 잠깐만. 내한 공연을 한 번에 6회나 연속적으로 했던 아티스트가 있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전국 투어 말고 한 장소에서, 그것도 대형 공연장에서 6회 공연을 했던 아티스트는, 아마도 없을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Ep08vVYreg Coldplay - Fix You (Live In São Paulo) 요즘 내한 공연 시장이 말 그대로 '대박'입니다. 3년간 공연은 물론이고 사람이 삼삼오오 모이는 것마저 막았던 팬데믹의 긴 터널의 끝에서 공연 시장 자체가 폭발한 건 1, 2년 사이 충분히 확인됐습니다. 2006년 시작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엔데믹 이후 종전의 모든 기록을 매년 갈아치우며 최다 관객 동원을 이어가고 있고요. 최근의 이른바 밴드 음악 열풍도 폭발하는 공연 시장, 그리고 그 현장의 명장면들을 퍼 나르는 '직캠'과 SNS가 만들어낸 시너지에 상당 부분 기인했다고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kJNhzjIVGY 실리카겔 (Silica Gel) - 07. NO PAIN [Incheon Pentaport Rock Festival 2024] 최근 단 2주만 살펴봐도 내한 공연은 쏟아졌습니다. Z세대 대표 팝스타 올리비아 로드리고(20, 21일), 다프트 펑크도 수없이 오마주한 전설의 펑크(funk) 영웅들인 '나일 로저스 & 시크'(24일), 보컬 체스터 베닝턴의 요절 이후 무려 7년 만에 재결합한 린킨 파크(28일)까지, 쟁쟁한 아티스트들의 내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빌리 아일리시는 2018년, 2022년 두 번이나 내한 공연을 열었고 올해 서울에서 새 앨범 청음회에 직접 참석하더니 홍보차 KBS2 '더 시즌즈-지코의 아티스트'와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까지 출연했죠. 빌리 아일리시가 생각하는 아티스트 "관객 대신 얘기해 주는 사람😍" [더 시즌즈-지코의 아티스트] | KBS 240621 방송 내년 콜드플레이가 설 고양종합운동장은 얼마 전 미국 래퍼가 제대로 이른 예열을 해주고 갔죠. 바로 카녜이 웨스트입니다. 잠깐 마스크 쓰고 얼굴 비추는 음악 감상회인 줄 알았는데 '정신줄' 놓고 2시간 30분 동안 77곡을 소화하는 '깜짝'+'대박' 라이브를 하고 갔지요. 오랜 세월 동안 서브컬처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느껴졌던 일본 음악가들의 내한도 규모와 빈도 모두 최근 1, 2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오는 12월, 일본 싱어송라이터 후지이 가제는 일본 가수로선 처음으로 약 2만 명 수용 가능한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공연합니다. 같은 달, 일본 밴드 오피셜히게단디즘은 1만 명 가까이 들어가는 경기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 5홀 무대에 섭니다. 요아소비는 지난해 12월, 올해 6월, 그리고 오는 12월에 공연을 엽니다. 불과 1년 사이에 3번의 내한 무대를 펼치는 셈입니다. 일본 7인조 보이그룹 나니와단시는 내년 1월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단독 내한 공연을 엽니다. 케이팝 그룹도, 일본 인기 밴드도 아닌 일본의 아이돌 그룹이 이 정도의 대형 콘서트를 여는 것은 초유의 일입니다. YOASOBI「アイドル」(Idol) from 『YOASOBI ARENA TOUR 2023 "電光石火"』2023.6.4.@さいたまスーパーアリーナ 내한 공연의 이 대단한 물결, 어디서 온 것일까요. 일단 공연 시장 자체의 확장이 그 기반입니다. 엔데믹의 환희가 라이브 공연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진 것 못잖게 SNS를 숨 쉬듯 하는 젊은 세대의 FOMO(fear of missing out·나만 놓칠까 두려운)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공연 예매를 한번 놓치면, 내가 나의 취향에 기반해 팔로우하고 있는 수많은 계정이 공연 당일 실시간으로 현장의 사진과 영상을 쏟아낼 때 느끼는 그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소외감이 두려운 겁니다. 대부분의 팔로워가 음악계 종사자인 저도 그런 두려움, 느껴본 적 있거든요. 이런 심리, 또는 현상이 최근 거의 모든 장르의 공연장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젊은 관객층의 높은 점유율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합니다. 특히 40, 50대 이상에게 인기가 많은 아티스트의 공연장에 가도 앞줄을 점한 10, 20대 관객을 마주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팔로우하고 있는 아티스트의 소식을 재빠르게 공유하고 접하며 '피켓팅'에도 능한 전투력까지 보유한 젊은 층이 한국 공연 시장을 상당 부분 견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Fujii Kaze - "Matsuri" Live at Panasonic Stadium Suita 그렇다면, 15년 만에 재결성해 내년 영국과 아일랜드부터 순회공연에 나서는 오아시스. 결국엔 이들도 내한할까요?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왜냐하면 제겐 징크스 비슷한 게 있거든요. 콜드플레이, 폴 매카트니 모두 내한이 요원할 거라 생각해 각각 런던과 오사카에 가서 보고 와 기사까지 썼는데 결국 1, 2년 사이에 첫 내한으로 이어졌거든요. 당시 제겐 약간 맥 빠지는 일이었지만 한국의 음악 팬으로서 기쁜 일이기도 했습니다. 내년 여름, 저는 영국에 갑니다. 오아시스 보러요. 그러니까 제 '징크스'가 이어진다면 2026년이나 2027년에는 오아시스 내한 공연도 성사되지 않을까요? 혹시 아나요. 2025년에 바로 이뤄질지. 폭발하는 내한 공연 시장이 음악 팬과 아티스트, 산업 관계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갤러거 형제, 기다립니다. 곧 봐요! https://www.youtube.com/watch?v=TG8yXHy7cME Oasis - Don't Look Back In Anger (Saturday 10th August, 1996) 【Knebworth 1996】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LISA - NEW WOMAN feat. Rosalía (Official Music Video) 제가 로살리아 빌라 토베야 씨에 대해 주목한 것은 아마 2018년 무렵부터였을 겁니다. 사실 비슷한 시기에 레이더에 들어온, 미국의 빌리 오코넬 씨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보다 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로살리아 말입니다. 최근 블랙핑크 출신 리사의 신곡에 피처링한 그 로살리아 말입니다. 로살리아는 원래 플라멩코 가수였습니다. 플라멩코는 18세기 후반부터 스페인의 전통 가요로 자리 잡은 장르입니다. 정열적인 기타 연주, 춤, 노래로 유명하죠. 우리 식으로 거칠게 비교하자면, 로살리아는 젊은 트로트 가수였던 겁니다. 그런 그가 2018년 발표한 한 장의 앨범은 세계 음악 팬들을 놀라게 합니다. 저 포함해서요. 'El mal querer'라는 앨범인데, 로살리아가 음대 학사 졸업작품으로 만든 곡들을 모은 음반이에요. 스페인의 13세기 서정시 '플라멩카' 중 11개를 플라멩코 팝 11곡으로 재해석한 앨범. 우리 식으로 하면 고려가요 쌍화점을 이용해 케이팝을 만든 격이랄까요. ROSALÍA - MALAMENTE (Cap.1: Augurio) 여기 실린 바로 이 'Malamente'라는 곡은 리듬도 바이브도 엇비슷한 세계 팝 음악을 의무감에 디깅 하던 제 눈과 귀를 번쩍 뜨이게 했더랬습니다. 로살리아는 스페인 전통 장르인 플라멩코를 변형해 21세기 팝과 결합했던 거죠. 뷔욕의 프로듀서, 켄드릭 라마의 촬영감독과 일하는 로살리아의 작품에는 기이한 성녀의 이미지와 변칙 박자가 가득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단련한 높은 수준의 플라멩코 창법이 첨단 팝의 비트와 어우러지는 장면은 기암괴석과도 같더군요. 2020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스페인 가수 최초로 '최우수 신인' 후보에 오르고 시상식 무대에서 축하 공연까지 펼쳤지만 로살리아에게 글로벌 스타덤은 멀게만 보였습니다. 모든 노래를 스페인어로 부르는 그에게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미국이나 라틴 팝의 유명 래퍼들과 협업하고 일부 영어 노래를 내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결과, 로살리아는 마침내 글로벌 팝스타의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마침내 빌리와도 협업을 했지요. Billie Eilish, ROSALÍA - Lo Vas A Olvidar (Official Music Video) 그가 최근 리사와 함께 한 모습은 의미심장했습니다. 리사는 태국에서 와서 케이팝이란 플랫폼을 통해 스타덤을 형성한 뒤, 태국 로케이션과 제작 인프라를 이용한 솔로 곡 'Rockstar'를 통해 '귀국'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죠. 스페인 플라멩코에서 출발해 미국 주류 시장을 거친 로살리아가 태국의 리사와 만나는 형국은 그래서 흥미로웠어요. 저는 얼마 전 브라질 메탈밴드의 내한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세풀투라라는 그룹이에요. 1980년대 후반 데뷔 시절부터 이미 메탈리카, 슬레이어 같은 미국 스래시 메탈밴드들에 대한 남반구의 대답으로 주목을 받았죠. 아마존 밀림을 뚫고 나온 듯한 원초적 리듬과 이국적 음계가 언뜻언뜻 비칠 때 브라질적 매력이 돋보였죠. 그 정점은 1996년 6집 'Roots'였습니다. Sepultura - Roots Bloody Roots [OFFICIAL VIDEO] 이 앨범은 보컬 막스 카발레라를 비롯한 멤버들이 '아예 우리 밀림으로 들어가 보자'고 의기투합해 실제로 아마존의 샤반치 부족 마을에서 그들과 어울리며 만든 영감을 담은 음반입니다. 원초적인 리듬과 절규가 전면에 나서며 메탈의 신세계를 열어 보였죠. 로살리아가 뷔욕, 켄드릭 라마의 제작진과 협업하며 글로벌 보편 감각을 접목했듯, 세풀투라는 음반 프로듀서로 콘, 슬립낫과 작업으로 유명한 로스 로빈슨을 기용했습니다. 원초와 첨단, 로컬과 글로벌의 만남은 아티스트의 커리어에는 최정점을, 세계 음악 팬들에게는 즐거운 발견을 선물해 줬습니다. JAMBINAI 잠비나이 - TIME OF EXTINCTION 소멸의 시간 국악 전공자가 모여 헤비메탈과 포스트록 사이에 있는, 그러나 무엇으로도 정의하기 힘든 그들만의 음악을 하는 밴드 잠비나이입니다. 리더 이일우 씨는 몇 년 전 저와 인터뷰하며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어릴 때부터 메탈 키드였고, 국악 전공자로서 세풀투라의 'Roots' 앨범을 접하고 국악기를 창의적으로 이용해 메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고, 그 결과물이 결국 돌고 돌아 잠비나이인 것 같다고요. 월드뮤직이란 말이 있습니다. 영미권 팝에 지친 음악 팬들 사이에서 20세기 후반에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지의 민속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악들이 그 독특한 미감으로 사랑받았습니다. Yosi Horikawa - Live at 大中寺 Daichuji / MUSO Culture Festival 2021 최근 국악과 월드뮤직이 교차하는 두 개의 음악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전주세계소리축제(8월 14일~18일), 그리고 ACC 월드뮤직 페스티벌(이하 ACC·8월 28일~9월 1일 광주광역시)입니다. 전주에서는 고색창연한 전라감영에서 펼친 서양 바로크 리코더와 우리 정가(正歌)의 결합, 나바위성당에서 열린 폴란드의 현악 5중주단과 경기 민요의 만남이 매우 이채로웠습니다. 광주(ACC)에서는 전야제 격으로 사찰 원효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일본 앰비언트 음악가 요시 호리카와의 퍼포먼스가 어디서도 느끼지 못했던 이색 바이브(vibe)를 선사해 줬어요. 자연에서 직접 채록한 물소리, 새소리, 빗소리, 천둥소리를 힙합 비트와 섞는 그는 서라운드 스피커들을 이용해 한국 산사의 밤에 국적 불명의 소리 풍경, 그러나 매우 낯선 동시에 익숙한 감각의 향연을 가득 흩뿌렸답니다. 2024 소리축제 2일 차 축제 현장 스케치 월드뮤직은 사실 멸칭(蔑稱)입니다. 멸시하며 부르는 말이란 뜻이죠. 영미권의 이른바 선진 팝의 주변에 있는 모든 음악(사실은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의 음악)을 뭉뚱그려 일컫던 말이니까요. 월드뮤직을 대체할 만한 이름을 많은 음악 마니아, 평론가, 학자들이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명칭이 어떠하든 음악 마니아로서, 새로운 음악에 접근해 가면 갈수록 그 너머 세상의 음악이 더 궁금해집니다. 꽃과 이파리의 화려함이나 싱그러움에 혹했다가 가지가 궁금해지고 뿌리까지 살펴보게 됩니다. 마치 아마존 밀림의 전체적 위용에 반한 뒤 깊숙이,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과 같다고 할까요. 로살리아, 세풀투라, 잠비나이, 호리카와, 그리고 우리의 음악들... 이 세상 모든 음악을 언제든 내 손 안에서 재생할 수 있는 무한 스트리밍의 시대입니다. 저와 함께 탐험을 계속 이어가 보시죠.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이사 사이의 갈등이 점입가경입니다. 네. '민희진 전 대표이사' 맞습니다. 8월 27일 어도어 이사회가 김주영 어도어 사내이사(하이브 CHRO·최고인사책임자)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거든요. 이제 우리에게 친숙했던 이름을 '민희진 대표'라고 부를 수는 없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하이브는 민 대표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 '내보냄'이 단순히 대표직에서 내보냄인지, 어도어에서 내보냄인지, 아니면 궁극적으로 엔터업계 바깥으로 내보냄인지는 좀 더 두고 지켜봐야겠지만요. 이번 사태가 애당초 불거진 것은 지난 4월이었습니다. 하이브는 어도어의 지분 80%를 보유하고 있었죠. 지난 5월 어도어 임시주주총회에서 '경영권 탈취 의혹' 등을 들며 민 전 대표 해임을 추진했어요. 하지만 법원이 민 전 대표가 낸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한 발짝 물러날 수밖에 없었죠. 다음 날 민 대표가 활짝 웃는 얼굴로 모자 벗고 했던, 이른바 '2차 기자회견' 광경이 아마 기억나실 겁니다. 다만 가처분 신청 당시에 하이브가 마냥 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도어 이사회에서 민 전 대표의 측근들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하이브 측 인사인 김주영 CHRO, 이재상 CSO(최고전략책임자·당시 직책, 현 CEO), 이경준 CFO(최고재무책임자)를 채워 넣었던 거죠. 1대3의 구도. 민 전 대표가 사면초가의 위태로운 상황에 몰렸지만, 어도어의(또는 민희진의?) 뉴진스는 도쿄돔 팬미팅과 '푸른 산호초' 열풍으로 순항을 이어갔죠. 그러는 동안 하이브와 민 전 대표는 여러 건으로 서로 고소하거나 폭로전을 펼치면서 진흙탕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막장 드라마의 제3막이 열린 것이 바로 8월 27일 어도어 이사회였습니다. 어도어는 민 전 대표 해임에 대해 "제작과 경영 분리는 다른 모든 레이블에 일관되게 적용해 온 (하이브 산하) 멀티 레이블 운용 원칙이었지만, 그간 어도어만 예외적으로 대표이사(민희진)가 제작과 경영을 모두 총괄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민 전 대표가 어도어의 사내 이사직을 유지하면서 뉴진스 프로듀싱 업무는 계속 맡을 거라고 못박았죠. 민 전 대표는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8월 30일 아침, 반박 입장문을 내놓은 겁니다. 뉴진스 프로듀싱을 계속 맡도록 하는 '업무위임계약서'가 불합리하다면서 받아들일 수 없다(서명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건데요. 프로듀싱 업무를 맡아달라고 제안하는 취지로 보기에는 계약서의 내용이 일방적이고 불합리하다는 겁니다. 민 전 대표 측에 따르면 이 '프로듀싱 계약'이란 것의 기간이 민 전 대표가 해임된 8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총 두 달 하고 엿새 동안이라는 거예요. 민 전 대표는 "2개월짜리 초단기 프로듀싱 계약"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내년 월드 투어까지 준비하는 아이돌 그룹의 프로듀싱을 2개월 만에 완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놀랍다는 게 민 전 대표의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 어도어 측은 민 이사의 사내이사 계약 기간 자체가 11월 1일까지여서 '잔여 기간'의 역할에 대한 계약서를 보낸 것이며 이후 계약은 재계약과 함께 진행돼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찬 바람 부는 11월이 오면 민 대표, 아니, 민 전 대표의 거취는 어떻게 될까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법과 계약의 싸움은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앞으로의 흐름과 결과는 오리무중이지만 오랜 기간, 이 사태를 지켜보자니 한 가지는 또렷해 보입니다. 민 전 대표, 어도어, 하이브의 입장이 넉 달째 초강경 기조에서 저마다 한 발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처서 매직'과 함께 드디어 그 타이밍이 제대로 도래했나 봅니다. '뉴진스 feat. 민희진'이 아닌 '뉴진스 w/o(without) 민희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봄직한 계절 말입니다. 네 달간의 '어도어 마라톤' 가운데 몇 km 지점쯤이었던가요. 한 매체에 따르면, 뉴진스의 일부 부모님들께 당시 하이브 측 한 인사가 '뉴진스의 도쿄돔 팬미팅이 끝나면 뉴진스에게 약 1년 반 동안의 긴 휴가를 줄 것이며 그동안 그래미 수상 프로듀서를 섭외해 붙여주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래미 수상 프로듀서'라는 키워드에 꽂혀 당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요. 이름도 낯선 신예 미국 프로듀서부터 팝의 연금술사 맥스 마틴까지 다양한 이름들이 뇌리를 스치더군요. 그런데 그래미상 받은 사람이 한둘이어야지요. 추측 게임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의문은 그래미 수상자든 대종상 수상자든 민희진이 아닌 다른 사람, 250이 아닌 다른 사람이 뉴진스의 시청각 제작을 맡았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 것이냐는 거죠. '뉴진스 w/o 민희진'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림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뉴진스는 '민희진의 걸그룹'이란 간판으로 데뷔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죠. 여전히 뉴진스 제6의 멤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브랜드 파워를 나눠 갖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질적으로 제작에 끼치는 영향력일 겁니다. 여러분은 SM, YG, JYP 엔터테인먼트라는 기업들에 대해 잘 아실 겁니다. 기업명은 각각 (이)수만, 양군(양현석), 진영팍(박진영)의 약자입니다. 가수 또는 작곡가 출신인 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음악이나 영상 제작, 세계관 구축에 직접 깊숙이 참여하거나 최소한 최종 결정권을 틀어쥐고 회사의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여기서 생산된 거의 모든 콘텐츠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들의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 그들의 취향과 노하우, 상업적 감각이나 예술적 감각이 묻어 있습니다. 민희진 전 대표는 SM에서 오랫동안 시각 제작에 참여했죠. 평사원으로 출발해 주요 소속 그룹의 비주얼을 총괄하는 사내이사에 이르기까지 입지전적 스토리를 썼습니다. 일각에서는 민 전 대표의 다른 그룹에 대한 표절 주장에 대해 '뉴진스가 민희진 당신만의 창작물이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새로울 것 없는 하늘 아래의 것들을 모으고 취사선택해서 일견 새롭게 들리고 힙하게 보이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그 콘텐츠로 세상을 흔드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뉴진스라는 지적재산권에는 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의 생김새나 행동거지, 팬들에 대한 태도만큼이나 민희진 전 대표의 취향과 노하우, 상업적 감각이나 예술적 감각이 이미 듬뿍 묻어 있다는 것입니다. 전반부에 썼던 글을 여기 다시 긁어 붙입니다. 어도어는 민 전 대표 해임에 대해 "제작과 경영 분리는 다른 모든 레이블에 일관되게 적용해 온 (하이브 산하) 멀티 레이블 운용 원칙이었지만, 그간 어도어만 예외적으로 대표이사(민희진)가 제작과 경영을 모두 총괄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이브가 어도어만 예외적으로 대표이사가 제작과 경영을 모두 총괄하게 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빅히트뮤직, 플레디스, 빌리프랩의 프로듀서 또는 그래미상을 받은 적 있는 그 어떤 해외 프로듀서도 대체하지 못할 그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민 전 대표 없이 제작한 뉴진스의 다음 앨범, 다음 신곡을 상상해 봅니다. 결과물은 좋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느 정도는 좋으리라고 거의 단언합니다. 누군가 잘 만드는 사람이 만들 테니까요. 하지만 그 반응은 다음의 두 가지로 나뉠 공산이 커 보입니다. '민희진이 만들던 풍을 그대로 따라 만들었네' vs. '역시 민희진이 있을 때가 나았어' 하이브와 어도어는 제3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밤의 날씨가 선선해집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사진 : 연합뉴스
DAY6 (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M/V 7일 저녁(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전을 앞두고 한 남자가 팔레의 계단을, 두 귀에 이어폰을 낀 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한국 대표팀 박태준 선수입니다. 그는 잠시 후,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를 꺾고 이 체급 최초의 금메달을 한국의 품에 안겼지요. 다시 시간을 리와인드. 박 선수는 결승전을 앞두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바로 저 곡,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듣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싶어서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박태준, 아니 이번엔, 박태환. 한국 수영의 자존심인 이 선수는 근육질 몸매와 훈훈한 얼굴, 수영 실력만큼이나 경기 전 꼭 쓰고 나오는 헤드폰으로 유명했습니다. 많은 수영선수는 정신력 강화나 긴장 완화, 자신감 충전을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 마치 미국 프로레슬링이나 프로야구의 입장 음악과도 같은, 자신만의 사운드트랙을 재생해 앞으로 진행될 몇 분의 시간을 드라마나 영화 같은 '한 페이지의 명장면'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는 거겠지요. 이렇듯 스포츠와 음악은 밀접한 관계입니다. 개막식 음악, 경기 응원가, 시상식의 국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순간에 음악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Justice - D.A.N.C.E. (Official Video) 이번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일부 논란도 있었지만, 음악적으로는 명장면이 많았습니다. 스타디움 밖, 야외에서 펼쳐진 이례적인 행사. 센강으로 배를 타고 각국 선수단이 입장하는 동안 주로 프랑스 출신 음악가들의 대표곡들이 배경음악으로 흘렀죠. 귀 밝으신 분들이라면 1980년대 책받침 여신, 소피 마르소 주연의 '라붐'에 실렸던 블라디미르 코스마 작곡의 'Reality'부터 일렉트로닉 뮤직 듀오 저스티스의 대표곡 'D.A.N.C.E.'까지 다양한 프랑스 음악에 귀가 쫑긋쫑긋하셨으리라 믿습니다. Gojira Olympic Performance HD - Ah! Ça Ira! 프랑스 혁명의 상징적 장소인 콩시에르저리에서 펼쳐진, 프랑스 메탈 밴드 고지라의 헤비한 연주도 대단했습니다. 프랑스 유명 피아니스트 소피안 파마르와 가수 줄리엣 아르마네가 강 위에 띄운 구조물에서 존 레넌의 'Imagine'을 함께 연주한 장면도 잔상이 길게 남았어요.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명장면은 개막식 막바지, 에펠탑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셀린 디옹의 노래였습니다. 디옹은 2022년 12월 희소 질환인 '전신 근육 강직인간증후군(Stiff-Person Syndrome·SPS)'을 앓는 사실을 공개한 뒤 1년 7개월 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가수 인생이 끝난 거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에펠탑 위에서 그는 노래가 아니라 '부활'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캐나다 퀘벡주 출신인 디옹은 영어 노래 못잖게 불어권 최고의 가수로도 오랫동안 인기 얻었죠. 디옹이 에펠탑에서 부른 곡은 에디트 피아프의 '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였습니다. '찬가'니까 기쁜 노래일 것 같지만 이 곡은 그 어떤 곡보다 슬픈 노래입니다. 1949년 10월, 피아프의 연인이자 유명 권투선수였던 마르셀 세르당은 사랑하는 피아프를 보기 위해 파리에서 뉴욕행 비행기를 탑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요절하죠. 비탄에 잠긴 피아프가 한 줄 한 줄 직접 써 내려간 가사가 '사랑의 찬가'로 피어납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진다 해도 그대만 날 사랑한다면...' '온몸 굳는 희소병' 셀린 디옹, 개회식 마지막 밝힌 열창 (개막식) / SBS / 2024 파리올림픽 하지만 음악이 흐르면 환희도, 감동도 아닌 어떤 이유로 침울해지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 각 15명과 17명은 이번에 개인 중립 선수(AIN·Athlètes Individuels Neutres)라는 자격으로 참여했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평화 질서를 어겼다는 이유입니다. 벨라루스는 그 지원국이었기 때문이고요. 비슷한 예가 있었습니다. 도핑 스캔들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징계를 받은 러시아가 국가명 대신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등의 명칭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했었던 거요. 러시아 선수단은 그 당시,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도 자국 국가를 들을 수 없었는데, 국가 대신 러시아 출신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선율이 재생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았죠. AIN 선수단을 위해 IOC에서 아예 새로운 곡을 만들어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그 곡은 끝내 울려 퍼질 일이 생겼습니다. 지난 2일, 벨라루스 출신의 이반 리트비노비치가 남자 트램펄린 종목에서 우승했죠. 시상대에 오른 그 앞에 나타난 것은 벨라루스 국기가 아니라 조금은 멋대가리 없는 녹색과 흰색 바탕에 'AIN'이라 쓰인 깃발이었습니다. IOC 제공의 그 정체불명의 연주곡이 흘렀죠. 리트비노비치는 시상식 뒤 기자회견에서 "다음 올림픽 때는 우리나라의 국기, 국가와 함께 경쟁하고 싶다. 우리나라를 대표해 뛰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AIN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질문이 아닌) 도발"이라고 발끈하며 답변을 거부했지요. 8일 저녁 열린 여자 리듬체조 본선을 지켜봤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 선수들의 화려한 곤봉과 리본 연기가 눈길을 사로잡은 만큼, 저는 그들이 배경음악으로 고른 곡들 하나하나에 귀도 활짝 열렸습니다. 이를테면, 보사노바 명곡 'The Girl from Ipanema'의 선율에, 강렬한 타악기가 작렬하는 삼바 리듬을 섞어 편곡해 들고 나온 브라질 선수의 연기와 음악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어떤 잘 짜인 뮤직비디오보다도 생동감 있는, 실시간의 스포츠와 음악의 '마리아주(mariage·프랑스어로 결혼, 결합)'였습니다. 부디 선의의 경쟁과 평화만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스포츠 안에서도, 스포츠 밖에서도 말이죠. 사진 : 게티이미지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 희미한 두 사람의 실루엣이 어른거리는 사진. 어떤 사연이 담긴, 어떤 작품일까요? 그리고 그 위에 쓰인 다소 민망한 텍스트는 또 뭘까요. 몽환적인 팝이나 록 음악을 즐겨 들으시는 분들께는 익숙할 밴드, 시가렛 애프터 섹스(Cigarettes After Sex)의 새 앨범 표지입니다. 12일에 발매된 3집 'X's'입니다. 무려 5년 만의 정규앨범인데요. 드림 팝, 슈게이즈, 슬로코어 같은 꿈결 같은 장르들의 특성을 버무리되 조금 더 팝적인 감각으로, 달콤한 멜로디와 관능적인 가사를 실어 표현하는 아름다운 그룹입니다. 5억 명 이상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를 보면, 19일 기준 월간 청취자 수가 2,400만 명 이상(전체 아티스트 중 239위). 약 1,760만 명인 뉴진스(434위)보다 많으니 상당한 대중성을 갖춘 밴드이기도 합니다. Tenjano Blue - Cigarettes After Sex 리더 겸 보컬 그레그 곤살레스와 멤버들은 흑백 마니아입니다. 지금껏 발표한 거의 모든 싱글과 앨범 표지는 흑백 사진으로 돼 있습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라이브 때는 위아래로 검은 의상만 고집합니다. 음악, 아트워크, 의상까지... 사운드와 비주얼에 대한 리더 곤살레스의 집착에 가까운 성격이 엿보입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17년 1집의 분위기를 "누아르 드림팝(noir dream pop)"이란 말로 요약했습니다. NME는 "페스티벌에서 만나 반한 사람과 이들의 공연에 가라. 키스쯤은 순식간에 일어날 것이다"라고 썼죠. Apocalypse - Cigarettes After Sex 어때요. 생생한 흑백의 꿈이 깊은 밤 파도처럼 고막으로, 가슴으로 들이치나요. 저 위에 몽환적인 키스 사진, 사실 한국 작가 작품입니다. 민병헌 사진가의 누드연작 일부인 'MG 325'죠. 흐릿한 배경에 입맞춤하는 두 사람의 사진이 몽환적으로 담긴 작품. 2022년 민 작가의 개인전에 실린 사진들을 우연히 접한 밴드 리더 그레그 곤살레스가 표지에 사용할 수 있을지 문의해 왔고 지난해 2월 내한공연 때 멤버들과 작가가 직접 만나 의견을 주고받으며 작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리더 곤살레스는 사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음악가입니다. 2012년 미니앨범 표지에 예술가 만 레이(1890∼1976)의 작품을 싣기도 했죠. 아래에 보이는, '목걸이'라는 작품입니다. Nothing's Gonna Hurt You Baby - Cigarettes After Sex 곤살레스가 독특한 이미지에 집착적인 관심을 가진 배경에는 비디오테이프 유통업을 한 부친이 있습니다. 저와 인터뷰 때 "집에 비디오 가게 하나를 통째로 들여놨다 싶을 정도로 테이프가 많아서, 어려서부터 오만가지 영화를 접했다"고 했어요. 옛 영화에서 영향받은 노래들도 많습니다. "'Opera House'는 영화 '피츠카랄도'와 '버든 오브 드림스'의 영향을 받았고, 'John Wayne'은 팀 멤버의 힘든 연애를 보며 영화 주인공이 떠올라 만든 곡"이라더군요. 영화 마니아, 사진 마니아인 그의 눈에 한국 사진가의 작품이 띄고, 그렇게 해외 유명 밴드의 앨범 표지를 한국인이 장식한 사연이 독특합니다. Cigarettes After Sex, private session - live @ Paris - ARTE Concert 혹시 어디를 찍은 어떤 사진인지 아시겠습니까. 어느 머나먼 이국의 검은 강과 몽환적 불빛의 콜라주...? 실은 한강의 야경입니다. 서울 반포 쪽 한강둔치에서 한남대교 북단을 바라보고 촬영한 컷이죠. 번져서 표현된 한남대교의 불빛들 위로 솟은 검은 형체는 용산구 한남동 부촌이 자리한 언덕입니다. 안웅철 사진가가 촬영했고, 2016년 알제리 출신 재즈 베이시스트 미셸 베니타의 음반 'River Silver'의 표지로 사용됐습니다. 독일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재즈 음반사 ECM은 예술적인 앨범 표지들로도 유명한데요. 한국 사진가인 안웅철 씨는 2014년부터 30장 넘는 음반의 표지를 작업해 왔습니다. 2014년 정명훈의 피아노 소품집 표지에 경남 창녕 우포늪 풍경을 담은 것을 비롯해 국내외의 다양한 풍경이 안 작가의 손과 감각을 거쳐 ECM의 표지로 거듭났지요. Michel Benita 'Back from the Moon' 안 작가는 1994년 전문 사진가의 길로 뛰어들어 지금껏 장필순, 조동진, 어떤 날, 조동익, 민해경, 황병기, 브라운아이즈(1집)의 사진 촬영이나 표지 디자인을 맡았고 로저 워터스, 얀 가르바레크, 보비 맥퍼린을 비롯해 국내외 수백 명의 음악가를 사진기에 담아왔습니다. 이 작품 역시 한국 예술가의 솜씨입니다. 2008년, 영국의 3인조 록 밴드 킨(Keane)의 3집 'Perfect Symmetry'의 표지 제작에 한국 작가 권오상 씨가 참여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아닙니다. 실물 크기의 입체 골격을 만든 뒤 실제 킨 멤버들의 사진을 이어 붙여 만든 조각 작품. 그것을 다시 카메라로 촬영한 뒤 콜라주한 작업입니다. 권오상 작가는 대상을 클로즈업한 사진을 조각의 각 방향에 맞춰 이어 붙이는 '사진조각'으로 유명한 작가죠. 케이팝이 세계적인 붐을 일으킬지, 예전엔 몰랐습니다. 한국의 사진 예술가가 세계 팝 아티스트들과 작업할 일이 생길지도요. 한국 문화를 응원합니다. 우리의 다양한 맛과 멋이 세계인의 오감을 더 풍성하게 채워줄 수 있기를. Keane - Perfect Symmetry (Official Music Video)
테일러 스위프트는 가히 미국판 육각형 아이돌이라 불릴 만합니다. 외모, 성격, 학력, 자산, 직업, 집안이 완벽한 이들을 요즘 육각형 인간이라고 부른다지요? 외모, 노래, 영향력, 창작력, 팬덤 규모 등 다방면에서 흠집 찾기가 힘든 테일러 스위프트. 그러나 그에게도 허점은 있으니… 바로 환경 이슈 앞에서는 유독 매번 작아지는 스위프트이기 때문입니다. Taylor Swift - Fortnight (feat. Post Malone) (Official Music Video) 미국 성인의 53%가 팬이라고 답하는 가수,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 최다 수상자(4회)인 그가 작아질 일이 무엇일까요. 새 앨범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로 또 한 번 빌보드에서 '줄 세우기' 기록까지 세웠는데요. 얼마 전, 테일러 스위프트가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의 일환으로 영국을 찾았습니다. 여느 나라에서 그랬듯 역시 뜨거운 이슈의 중심에 섰습니다. 한편으론 기괴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Just Stop Oil targets Taylor Swift's jet - and fails to find it 환경단체의 비판적 행동에 직면한 것입니다. 환경단체 저스트스톱오일(JSO)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새벽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 비행장에 몰래 들어가 항공기 두 대에 주황색 물감을 분사했다가 기물 파손 등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JSO는 화석연료 퇴출을 요구하며 여러 명화나 문화유산에 물감을 끼얹는 퍼포먼스를 펼쳐 유명한 단체죠. 이번에는 스위프트의 전세기를 겨냥한 겁니다. 단체 회원들이 스위프트의 전세기가 어떤 것인지 못 찾아 무작위로 다른 두 대의 비행기에 물감을 분사했죠.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스위프트의 전세기, 그리고 그를 따라다니는 스위프티가 배출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에 대해서 음악 팬들과 환경주의자들의 반대 움직임, 반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Best of Taylor Swift at Super Bowl 58 테일러 스위프트는 일찍이 2022년 영국 마케팅 회사 '야드'가 발표한 조사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한 유명인' 1위에 오르면서 (또 다른 의미로) 주목받았습니다. 남자친구 한 번 만나러 수천, 수만km를 비행하며 탄소발자국을 길게 남긴다는 비판을 받곤 했죠. 지난 2월에도 일본 공연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비행기를 타고 바로 '슈퍼볼'이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갔죠. 스타 플레이어이자 '스위프트 남친'으로도 유명해진 트래비스 켈시와 승리의 키스를 나눈 기쁨도 누렸지만 또 한 번의 기록적 탄소발자국으로 불명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육각형 아이돌에 가까운 스위프트에게도 이렇게 환경 이슈는 늘 '아픈 손가락'입니다. 한편으론 비슷한 스타성을 뽐내면서도 요즘 친환경 행보로 주목받는 아티스트도 있습니다. 방탄소년단과 협업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해진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입니다. Coldplay - feelslikeimfallinginlove (Official Audio) 10월 4일 정규 10집 'Moon Music' 발매를 앞뒀는데요. 여기 들어갈 곡으로서 선공개 싱글 'feelslikeimfallinginlove'를 이달 21일 발표하면서 특별한 계획도 함께 내놨죠. 10집 'Moon Music'에 친환경 LP와 CD를 도입한다고 18일 밝힌 것입니다. 세계 최초로 140g 친환경 레코드 재생 페트 LP(EcoRecord rPET LP) 형태에 도전한다고요. LP 한 장당 재활용 페트(PET) 플라스틱 9병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콜드플레이 측은 "이를 통해 25톤 이상의 신생 플라스틱 생산을 방지하고, 기존 140g LP 제조 공정에 대비해 CO2 배출량을 kg당 85%를 줄일 것"이라고 설명했죠. CD 버전은 세계 최초로 소비 후 폐기물에서 얻은 재활용 폴리카보네이트 90%로 만들어진 친환경 CD(Eco CD)로 발매한다고 합니다. Coldplay - A Sky Full Of Stars (Live at River Plate) 콜드플레이는 지난 앨범인 9집 'Music Of The Spheres'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했습니다. 이 앨범에 연관된 투어에서도 이전 스타디움 투어에 대비해 이산화탄소 환산량(CO2e) 배출량을 59% 줄였다고 발표했죠. 9집에는 방탄소년단과 함께한 'My Universe'도 들어있는데요. 일본 시부야 거리에 버려진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앨범 그러고 보니 케이팝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최근 일본 도쿄의 시부야 거리에 수많은 세븐틴 신보 CD가 버려진 사진이 회자되기도 했는데요. 최근 케이팝 팬들로 구성된 환경단체 '케이팝포플래닛'을 비롯해 여러 음악 팬들이 케이팝의 반환경적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나섰고요. 대형 기획사들도 못 이긴 듯 앨범의 일부 버전을 친환경으로 내고 있긴 하지만 이는 '그린 워싱'에 불과하다는 비판 역시 끊이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랜덤 포토 카드나 사인회 응모권 삽입 등으로 팬 한 명당 여러 장의 CD를 사게 하는 판촉 전략부터 바꿔야 한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Billie Eilish - CHIHIRO (Official Music Video) 최근 새 앨범 'Hit Me Hard and Soft'를 낸 빌리 아일리시도 친환경 행보로 화제죠. 새 앨범의 CD와 LP에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고 콘서트 투어에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옵션을 대폭 도입했다고 합니다. 외모도, 노래도, 춤도, 랩도, 예능감도, 팬 서비스… 꼭짓점마다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케이팝 아이돌. 이제는 환경적으로도 완벽해지는, 진정한 다각형 아이돌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어떨까요. 쉬운 길은 분명 아닐 겁니다. 지금껏 이 시스템을 추동한 골조를 바꿔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용이 들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우린 모두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으니까요. 올여름도 참 덥다고 하네요. 여러분, 모두 시원한 나날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쇠스파라 부르겠습니다. 뉴진솜이라 부를게요. 요즘 금속성의 사운드와 이미지로 '쇠맛 아이돌'에 이어 '쇠일러문(쇠+세일러문)'이란 별칭까지 득한 에스파 말입니다. 또, 지난해 제가 '그들의 솜털 같은 강펀치에 케이팝계는 휘청댔다'고 평했던 뉴진스 이야기예요. 이제 그냥 줄여서 쇠스파, 뉴진솜이라 부르겠습니다. 요즘 주요 차트를 보면 나란합니다. 쇠스파의 'Supernova'가 1위, 뉴진솜의 'How Sweet'이 2위. 그럼 먼저 쇠스파가 왜 쇠스파인지, 그 이야기부터 한번 해볼까요? 카톡이 무색하게 뜻밖에 쇠스파의 1승입니다. 다 같이~ 에스파 (재생 버튼/액셀 페달) 밟으실 수 있죠? ㅎ 쇠스파의 쇠맛, 또는 금속성 이미지는 시각과 청각을 아우릅니다. 의상은 말할 것도 없고 곡명을 쓴 로고도 날카로운 금속 같네요. 'Savage'와 'Drama' 때도 조금씩 그랬지만 이번엔 더 노골적으로 '쇠적(-的)'입니다. 아마 다다음 앨범쯤엔 더 뾰족하고 울창해져서, 서구의 브루털 데스메탈(brutal death metal)이나 애트모스페릭 블랙메탈(atmospheric black metal) 장르의 밴드들 같은 로고까지 나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 말이에요. 데스메탈 밴드 'Abominable Putridity(가공할 부패)' 로고(왼쪽), 그리고 'Mayhem' 'Emperor' 등 블랙메탈 밴드들의 로고 모음 금속(metal)의 느낌은 음악 안에도 득실댑니다. 이번 'Supernova'에서는 음계와 화성 진행부터가 다분히 '메탈적'이거든요. 실제로 헤비메탈에서 많이 쓰는, 반음 간격의 'E-F', 두 코드를 오가는 진행이 'Supernova'의 뼈대죠. 과장 좀 보태면 메탈 팬들의 'I'm Yours'급 메가 히트곡을 아래에서 들어볼까요? 'Supernova'와 연결되는 느낌, 느껴지시나요? 두 곡 모두 으뜸음 '미(E)'를 기반으로 프리지언(Phrygian) 음계의 멜로디를 적용했습니다. 묘하게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죠. '미-파-레'의 세 음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Supernova'의 선율은 단순하지만 매우 중독적입니다. 잘 만들어진 메탈 곡처럼요. 베이스와 보컬 후크(hook)에 적용한 16분 음표 엇박의 블랙홀 매력도 뺄 수 없겠네요. 반면에 솜진스, 아니, 뉴진솜은 어떤가요. 쇠스파와는 그 청각적 재질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How Sweet'을 들을 때 비눗방울처럼 솟아나는 이 몽글몽글한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뮤직비디오의 색감? 멤버들의 음색? 데뷔곡 'Attention' 이후 거의 모든 곡이 그렇듯, '뉴진스는 뭔가 다르다' 하는 감각은 대개 몽롱한 화성 진행에서 출발합니다. '뉴진스 이후 이지 리스닝이 대세!'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코드 진행으로 치면 뉴진스 곡들은 쉬운(easy) 게 아니라 오히려 대단히 어렵(hard)답니다. 전문 용어로 하면 불협음, 긴장음이 많죠. 재즈에서나 쓸 법한 코드 진행을 프로듀서 250은 뉴진스 음악에 즐겨 사용합니다. 'How Sweet'을 볼까요. 구성 자체는 단순해요. 네 코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니까요. 하지만 코드 한번 보세요. 'E𝄬m9-D𝄬M9-D𝄬m9-BM9'(또는 'E𝄬m7-D𝄬M7-D𝄬m7-BM7'). 뭔가 좀 복잡해 보이죠? 멜로디도, 화성도 뿌옇고 모호합니다. 으뜸음이나 조성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끝없이 두둥실 부유하는 느낌을 줍니다. 글짓기로 치면, 주어나 목적어 없이 서술어만 있어서 완성되지 못한 기묘한 문장 같다고 할까요. 'Bubble Gum' 뮤직비디오에서 혜인이 '오늘은 내가 비눗방울을 만드는 법을 알려줄게. 넌 역시 짱이야. 나랑 친구 할래?' 하는 대상, 또는 상황이 누구/어떤 것인지 통 모호한 것과 비슷하네요. 코드 진행은 좀 다르지만 이런 곡을 들을 때 드는 생각, 아니 감각. 오피스텔 옥상에라도 올라가 먼 산 위 솜털 구름을 바라보며 뭔가 미지근한 밀크티(※알코올 함유 주의)라도 홀짝거리며 인생을 돌아보고 싶은 느낌 같은 거요. 이런 코드 진행 위로, 스웨덴부터 뉴질랜드까지 다양한 국적의 멜로디 메이커들이 뽑아낸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인 선율의 굴곡이 얹히죠. 조립 솜씨가 가히 천의무봉입니다. (물론, 귀엽게 통통 튀는 TR-808 드럼 머신의 복고적인 소리 같은 것들이 펑키한 브레이크비트와 어우러지는 편곡 역시나 재미나요.) 'ETA' 'Super Shy' 'Ditto'가 낙차 적은 멜로디로 중독성을 쌓았다면 이번 'How Sweet'은 거의 분산화음에 가까울 정도로 낙차 큰 선율이 매력입니다. 이런 선율은 상투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클리셰를 묘하게 피해 가네요. ('더는 안 봐'의 '솔𝄬-파-레𝄬-솔𝄬'의 무심한 듯 시크한 멜로디 좀 보세요. 봐주세요!) 자, 할 말은 많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줄일게요. 그래서, 쇠스파 vs. 뉴진솜, 결론은 뭐다? 승자는 누구다? 이 판결만큼은 여러분께 맡길게요. 댓글로 달아주셔도 좋고. 공유해서 국민참여재판으로 키워주셔도 좋아요. 아니면 그냥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정답, 그 감각, 감정, 그것들만 간직해 주셔도 좋아요. 너무도 다른 두 가지 결의 노래가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2024년 초여름이 저는 좋아요. 좋아졌어요. 모두들 'Supernova'만큼만 색다르고 'How Sweet'만큼만 달콤하시길! 안녕.
►[MV] 박종성 - 그대 내게 다시 '도-라-시𝄬-라-솔-시𝄬' 싸리비로 마음결 쓸어내듯 애잔한 음색에 가벼운 소름이 돋았습니다. 나도 몰래 '그대~ 내게~ 다시~' 하는 원곡 가사도 나지막이 따라 불렀지요. 지난달 12일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이 발표한 새 음반 '그대, 다시'의 첫 곡 '그대 내게 다시'의 첫 소절을 들으면서 말이에요. 원곡은 1992년 변진섭 5집에 실려 있었죠. 어린 시절만 해도 하모니카는 흔한 악기였습니다. 해질녘, 하늘이 붉어지면 동네 여기저기서 하모니카 소리가 정답게 담과 창 사이를 넘어 들려왔지요. 손바닥만 한 크기에 생각보다 큰 음량, 들숨과 날숨 모두 음표가 되고 선율과 화성마저 순식간에 넘나드는 이 신묘한 악기의 음향은 음악 이론을 몰라도 어린 마음을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김광석 - 이등병의 편지 단소나 리코더 같은 단선율 악기로는 뭔가 부족했습니다. 피아노는 또 너무 거대하고 어려웠죠. 소리나는 옥수수, 하모니카는 다루기 만만하면서도 음색은 풍성하고 케이스까지 있어 멋스러웠습니다. 평소엔 집안 어딘가에 소품처럼 전시했다가 '이거 사실 나 불 줄 아는데' 하며 꺼내 연주하는 '플렉스'까지 가능했죠. 그래선지 '엉아'나 동생 녀석의 보물 1호, 선물 1순위로도 꼽혔습니다. 머리가 더 커질 무렵이었을 거예요. 김광석의 하모니카를 접했어요. '이등병의 편지'를 여는 한 줄기 갈바람 같은 음표 무더기가 동네에 지던 땅거미의 색채를 불러냈죠. 과거에 대한 그리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것들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들숨 하나, 날숨 하나에 담겨 폭풍처럼 가슴에 불어왔습니다. 휘휘 섞여 폭풍 쳤습니다. 요즘엔 웬일인지 하모니카가 잘 안 보이네요. 소리도 뜸하고요. 그러고 보면 바야흐로 가상 악기 전성시대입니다. 그래도 생존했습니다. 1970년대 신시사이저의 보급 이래 시퀀서(sequencer)와 미디(MIDI)의 시대까지 지나오면서도 아날로그 악기는 살아남았지요. 특히나 기타라는 악기는 컴퓨터로 재현하기 힘든, 손맛 나는 악기의 최후 보루처럼 여겨졌어요. 현(鉉)의 간섭 효과, 특유의 노이즈와 배음(倍音) 등이 가히 복잡계 물리학처럼 얽힌 기타 사운드의 특성만큼은, 키보드 눌러 소환하기 힘든 특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년에 평론가들까지 깜빡 속인 노이즈 록(noise rock) 밴드 '파란노을'의 예에서 보듯, 가상 악기 기술은 전기기타의 굉음까지 컴퓨터로 그럴듯하게 모사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파란노을 (Parannoul) - 아름다운 세상 (Beautiful World) 내년부터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초중고교에 도입된다고 합니다. AI 교과서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까요. AI 고도화 시대에 되레 인간의 판단력과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미래의 음악 교과서는 또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집니다. 편리해지는 만큼 온기를 잃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버튼을 누르고 마우스로 클릭하는 대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불어 소리내는 악기에 대한 교육만큼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숨결과 촉감은 멜로디나 화성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기억 저장고요, 감성의 수용체라고 생각하니까요. 숨결과 촉감이 결부된 음악적 체험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겠죠. 친구나 자녀가 옥수수를 뜯어먹을 때 이런 농담이 오가는 정겨운 동네 풍경을 10년, 20년 뒤에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너, 하모니카 부는구나?' ►오빠 생각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feat. 박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