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박재현 기자입니다.
텔레그램 추적에 성공한 나라들 “독일 연방내무부장관과 측근들이 텔레그램 측과 접촉해 영상 회의를 가졌습니다. 그 회의에 등장한 건 텔레그램 CEO(파벨 두로프)였습니다. 다들 CEO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이 놀랐었습니다.” - 맥스 호펜슈타트, 독일 슈피겔 탐사 기자 독일 정부와 수사기관도 오랜 기간 텔레그램을 찾아 헤맸습니다. 테러 모의가 텔레그램 상에서 실시간 이뤄지고 있었고 코로나19 백신 등의 잘못된 정보가 대중에게 무차별적으로 유포됐지만 정부에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사기관에서도 텔레그램 추적을 포기할 무렵, 도리어 정부와 정치인이 텔레그램을 찾아 나섰습니다. 국민들이 범죄 위협을 방치하지 말라며 이들을 압박했기 때문입니다. 독일 정부, 특히 낸시 페이저(Nancy Faeser) 독일 연방내무부장관이 어떻게 텔레그램을 찾았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난해 2월, 본인의 트위터에 “텔레그램 최고위층과 접촉했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올렸다는 사실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낸시 페이저 장관이 구글 CEO를 통해 텔레그램 측이 비밀리에 사용하는 이메일 주소를 전달받았다는 설(說)이 있지만, 구글은 SBS의 확인 요청에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텔레그램을 2년 이상 추적해 온 맥스 호펜슈타트 독일 슈피겔 기자는 “현재도 소아 성범죄, 테러 등 일부지만 독일 정부가 텔레그램의 협조를 받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분입니다. ‘텔레그램이 정부에 협조할 수 있다’는 메시지만으로도 범죄는 움츠러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것은 정부의 노력입니다. 텔레그램 사용 중지를 외친 브라질 더 나아가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3월 “브라질 내 텔레그램 사용을 중지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SBS가 입수한 판결문을 보면 “텔레그램은 범죄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는 브라질 정부와 법원의 명령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당시 마약 확산, 위조지폐 유통, 가짜뉴스 유통이 텔레그램 내에서 이뤄졌고 이는 브라질 사회에 큰 위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텔레그램과 접촉하려 부단히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했고 판결에 이르게 된 겁니다. 역설적으로 이는 텔레그램과의 접촉 통로가 됐습니다. 판결이 나자마자 텔레그램 창업자 겸 CEO 파벨 두로프는 본인의 텔레그램 채널에 글을 올렸습니다. ”텔레그램 회사 주소와 브라질 대법원 간 이메일이 오가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의사소통의 결과로 법원은 응답하지 않은 텔레그램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우리 팀을 대표해 우리의 과실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중략) 안타깝게도 법원에서 이전의 범용 이메일 주소를 사용해 연락을 시도했기 때문에 답변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중략) 신뢰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구축되면 브라질의 불법적인 채널에 대한 게시 중단 요청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CEO 개인 채널에 올린 글 두로프의 사과가 의미하는 바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텔레그램은 강경한 대응에 반응한다. 둘째, 대부분 정부가 알고 있는 텔레그램 이메일 주소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셋째, 텔레그램과 정부의 채널을 구축하면 보다 쉽게 협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과글 이후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판결의 효력을 정지했습니다. 다른 곳은 어떨까요. 인도 뉴델리 고등법원에서도 법원이 ”범죄자의 IP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을 제출하라“고 명령한 뒤 텔레그램 현지 대리인이 밀봉한 서류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텔레그램에 벌금을 부과하거나 법적인 대응을 한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11개국 이상입니다. 이 정부들은 강경한 대응이 텔레그램과의 접촉 채널을 만들어주는, 브라질과 같은 역설적인 상황을 기대한다고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프라이버시와 범죄의 중간지점 벨라루스 법원은 지난 3월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운동가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습니다. 때문에 벨라루스에서는 국민들이 시위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텔레그램을 사용합니다. 벨라루스 정부가 글쓴이를 추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텔레그램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도 주요한 정보 유통 채널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텔레그램은 일면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텔레그램 CEO 파벨 두로프의 말이 맞습니다. 범죄자들은 더 나은 플랫폼이 있다면 언제든 옮겨갈 것이고, 텔레그램 ‘코어 팀’은 다만 플랫폼을 제공할 뿐입니다. 이 플랫폼은 양면이 있어 잘 사용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주춧돌이 되고, 잘못 사용될 경우 범죄의 온상지가 될 뿐입니다. 텔레그램을 단순히 ‘악’으로 묘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 지점이 정부의 역할과 부딪치는 곳입니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고 사회 시스템의 영속이 가능하게끔 범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정부가 텔레그램에서 폭증하는 마약 거래를 ‘표현의 자유’를 지킨다며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되 중요 범죄는 막을 수 있는, 적절한 선을 찾는 것이 이제 정부에 부여된 과제입니다. 제2의 텔레그램에 대비해야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는 SNS 기업, 그리고 이 기업의 플랫폼을 통해 퍼져나가는 범죄의 형태는 우리 정부뿐만 아니라 어느 정부도 처음 접해보는 당황스러운 경험일 것은 분명합니다. 대처를 해본 선례가 없기 때문에 당장 대책을 세우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한 분명한 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텔레그램뿐만 아니라 제2, 제3의 텔레그램, 기술적으로 더 진보되고 더 음지로 들어간 최고의 보안을 갖춘 SNS의 탄생은 이미 예고돼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미 왓츠앱, 디스코드 등 텔레그램을 대체할 수 있는 충분한 SNS, 메신저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법적, 기술적인 대비가 필요합니다. 프라이버시와 정부 공권력의 개입에 대한 기준, 사회적 논의는 시작돼야 합니다. 텔레그램과 같은 익명 SNS를 대응하기 위한 국제 공조 체계도 마련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한 준비, 사회적 합의와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그보다 시급한 것은 당장의 텔레그램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노력입니다. 2020년 텔레그램을 접촉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경찰청의 한 부서 정도입니다. 독일은 장관이 찾아다녔고 브라질은 국내 사용 중지라는 초강수까지 던졌습니다. 그 정도의 노력이 없이, 정부가 텔레그램이 나타나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국내 마약의 온상인 텔레그램을, 또 급증하는 10, 20대 마약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길은 요원합니다. 인터폴도 실패한 추적을 SBS가 나선 이유, 단지 텔레그램을 찾고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텔레그램이 어떻게 운영되고 정부는 어떻게 이를 대처해야 하는지, 프라이버시와 공권력의 고민은 왜 시작돼야 하는지, 우리는 미래의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마약 판매책 드랍일 시작해보고 싶습니다.”라는 육성과 얼굴,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까지 마약공급책에 보낼 정도로 절실했던, 갓 10대를 벗어난 젊은 청년의 모습을 다시는 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디자인 : 방명환
“마약 판매책 드랍일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OO님 드랍일 하고 싶습니다.” 공급책에게 마약을 받아 전국으로 배달하는 일명 ‘드라퍼(Dropper)’가 되기 위한 영상 지원서에 나오는 말입니다. 채용 조건은 1천만 원의 월급과 주기적인 마약 공급. 드라퍼 지원자들은 마약공급책의 간택을 받기 위해 얼굴, 주민등록증, 심지어 가족관계증명서까지 영상으로 찍어 보냅니다.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 배신하지 않을 것을 증명하는 500만 원 정도의 ‘선불금’을 되레 요구하는 까다로운 공급책도 한두 명이 아닙니다. 회사 면접 과정처럼 신중하게 합을 맞춰보고 숙고 기간을 거쳐 드라퍼는 채용됩니다. 드라퍼를 채용한 공급책, 마약판매방의 문구를 바꿉니다. ‘부산X’였던 배송 가능지역 리스트는 이제 ‘부산O’로 수정됐습니다. 이 공급책은 이제 전국 20여개 지역에 마약 배송이 가능합니다. 고객은 필로폰, 코카인처럼 유명한 마약부터 브액, 떨액 같은 생소한 약물들까지 자유롭게 선택 가능합니다. 선택은 메뉴판으로, 입금은 암호화폐로, 그리고 약간의 인내만 있다면 거주지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에서 드라퍼가 숨겨놓고 간 마약을 택배 받듯 수거할 수 있습니다. 공급과 배송, 수요가 적절히 균형을 맞춰 새 인력시장이 펼쳐진 이곳, 본격적인 마약 거래 시장이 열려 있는 이곳은 바로 메신저 ‘텔레그램’입니다. 텔레그램 창업자의 열망이 불러온 '나비 효과' “이용자들 프라이버시는 (텔레그램 내에서) 나쁜 일이 일어날 거란 두려움보다 더 중요합니다. 어차피 범죄자들은 보안이 불안해지면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범죄의 한 부분을 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우리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테크크런치 인터뷰 텔레그램의 국내 온라인 마약시장 점유율은 72.8%입니다. 메신저 점유율 1% 조금 넘는 텔레그램이 국내 온라인 마약 거래의 4분의 3을 담당하는 겁니다. 하지만 숫자보다 무서운 것은 접근성입니다. 7년 전쯤부터 마약 거래의 온상으로 비판받았던 다크웹은 특정 브라우저를 이용해야 하는 데다 검색 방식도 까다로워 국내 마약 거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다릅니다. 메신저와 SNS에 익숙한 10대, 20대 투약자의 대부분은 흡사 일상생활을 하듯 쉽게 접근하고, 검색하고, 쇼핑하듯 텔레그램에서 마약을 구했습니다. 그들에게 텔레그램은 일종의 ‘인터넷 쇼핑몰’과 비슷했습니다. 텔레그램에 펼쳐진 마약 시장은 익명성에서 비롯됐습니다. 어느 정부에도 이용자의 자료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창업자의 확언은 공급자와 유통책, 소비자에게 보증수표와 같았습니다. 텔레그램을 이용하면 수사기관에 검거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겁니다. 이 믿음을 근거로 텔레그램 내의 마약 거래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모든 사태는 그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2013년입니다. 당시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CEO인 파벨 두로프, 그의 형 니콜라이 두로프와 20여 명의 핵심 그룹은 러시아에서 VK, 뷔콘탁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페이스북이라 불릴 정도로 거대기업, 하지만 이들은 러시아 정부에 의해 기업 운영권을 박탈당했다고 SNS에 글을 올린 뒤 러시아를 떠났습니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던 인사들의 정보를 내놓으라는 러시아 정부의 명령을 거부했단 이유였습니다. 이용자의 정보를 내놓지 않겠다는 신념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유럽으로 건너간 이들은 텔레그램을 선보입니다. 처음에는 독일 베를린, 그 이후에는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그룹의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본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교훈을 기반으로 새로운 운영 방식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모든 정부의 간섭에서 해방되고, 어떤 정부기관의 접촉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유령, 비밀조직’과 같은 모습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겁니다. 프라이버시, 정부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파벨 두로프의 사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대한민국의 현재입니다. 텔레그램 본사 추적에 나섰던 이유 2020년 경찰청은 텔레그램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텔레그램 n번방’, 조주빈으로 더 유명한 사건의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실패했습니다. 텔레그램 본사 주소도, 운영진에게 닿을 이메일 주소도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텔레그램 내 부적절 게시물 신고 메일 등으로 7차례 메일을 보냈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두바이 경찰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이 또한 결과물을 내지 못한 상태, 결국 다른 단서에서 실마리를 찾아 일당을 검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텔레그램의 도움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접촉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경험은 마약 수사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찰청과 대검찰청 모두 텔레그램 내 마약과 관련해 텔레그램과 접촉하거나 수사 협조를 요청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부적절한 게시물 차단을 도맡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텔레그램 마약거래방 차단 요청 건수는 올해 초부터 4월까지 단 1건에 불과합니다. SBS는 지난 4월 텔레그램 본사 추적을 결정했습니다. 폭증하는 마약 사태를 진정시킬 방법은 텔레그램의 협조, 최소한 텔레그램이 우리 정부, 언론과 접촉한다는 메시지만으로도 공급자와 유통책, 소비자가 움츠러들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마약 거래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정보 자산이 밀집한 미국 의회에서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2021년 5명이 사망한 트럼프 지지자 국회 난입 사건 발생 시 텔레그램이 주요 통로로 지적됐기 때문에, 미 의회에서 텔레그램을 추적했을 거란 추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SBS 취재팀은 2021년과 2022년, 미 의회에서 텔레그램에 보냈던 문서를 확보했습니다. 문서의 상단에는 미 의회에서 조사하고 확보한 텔레그램의 주소가 적혀 있었습니다. 현재 텔레그램 본사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장소는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였습니다. 들어간 사람이 없는 그곳, 텔레그램 두바이 사무소 결과적으로 미 의회의 조사도 틀렸습니다. 미 의회가 공문을 보냈던 ‘두바이 미디어시티 쌍둥이 빌딩’ 10층에는 이미 메신저 회사 ‘틱톡’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틱톡 직원은 텔레그램이 오래전 이곳을 떠났다는 말만 남겼습니다. 추적 시작하자마자 끝나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무렵,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던 취재진에게 틱톡 직원이 다가왔습니다. “23층을 가보세요.” 빌딩 23층에는 10개의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그중 텔레그램이 사용하는 건 3개. 문은 굳게 잠겨있고 어떠한 팻말이나 단서도 없었습니다. ‘2301호’ 팻말 위에 쌓인 먼지가 사무실의 상태를 짐작하게 해 줄 뿐이었습니다. 그 옆 사무실을 사용하는 컨설팅업체 직원, 취재진이 텔레그램을 묻자 대뜸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텔레그램을 찾아온 것은 당신들뿐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사무실을 살펴보고 내게 텔레그램을 물었습니다.” 지금껏 많은 정부, 수사기관에서 텔레그램을 추적해 왔던 겁니다. 빌딩 관리인은 그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텔레그램은 23층에 있습니다. 그런데 임대 이후 지금까지 사무실로 올라가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임대료를 내러, 계약을 갱신하러 이곳에 오지만 사무실에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 두바이 미디어시티 쌍둥이빌딩 관리인 단서는 남아있었습니다. 두바이 정부 경제부에 기업 정보가 남아있던 겁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는 없었지만 아랍어로 된 주소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그 주소를 확보한 취재진은 다시 20분 거리, 두바이 시내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주소를 본 현지인들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불가능한 주소라는 겁니다. 동시에 있을 수가 없는 두 가지의 주소가 결합된 형태, 예를 들어 ‘서울특별시 해운대구 무릉도원면’이라는 존재할 수 없는 주소라는 겁니다. 취재진은 주소를 하나씩 떼서, 해운대구와 건물 주소, 무릉도원면과 건물 주소를 연결시켜 해당 주소도 찾아가 봤습니다. 하나는 부동산 개발업체, 다른 하나는 기업등록 대행업체였습니다. 30,000개 회사의 본거지, 그리고 텔레그램 SBS 취재진은 미 의회 자료와 영국 정부 기업 개설 서류를 근거로 다시 추적에 나섰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영국 런던, 창업자 파벨 두로프가 처음으로 ‘텔레그램’ 이름으로 기업을 개설한 곳입니다. 수많은 정부 서류에 남겨진 텔레그램의 흔적, 확인된 주소만 5곳이 넘습니다. “텔레그램을 이메일로 저희가 관리했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지금껏 이곳에 실제 있었던 적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런던 셸튼가 주소지의 인물 “이 주소가 텔레그램이 맞긴 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관리하는 회사는 텔레그램을 포함해 3만 개가 넘습니다.” - 런던 그레이트 포틀랜드 주소지의 인물 영국 런던에 등록된 창업자의 주소는 거짓, 서류들에 남겨져있던 하나의 전화번호는 세무법인의 전화번호, 다른 주소들도 모두 회사등록 대행업체의 것이었습니다. 등록된 아파트 주소, 링크드인에 텔레그램 근무라고 올린 인물, 이 또한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텔레그램이 맞지만 텔레그램은 없다, 텔레그램의 모습이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갔던 모든 주소지의 인물들은 텔레그램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 실체를 알거나 목격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텔레그램이 등록한 주소지는 위장된 사무실이거나 잘못된 주소, 또 회사등록 대행업체를 통해 세탁을 거친 주소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텔레그램은 사이버 상에는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기업의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미 의회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주소는 버진 아일랜드 영국령. 이 주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파나마 페이퍼스에 다수 등장했던 곳, 즉 조세피난처로 등록된 회사의 주소였습니다. SBS는 위 주소로도 질의서를 보냈지만 “반송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안내문과 함께 다시 돌려보내졌습니다. 세계를 떠도는 텔레그램의 ‘코어 팀’ “우리는 아주 작은 팀입니다. 세계 곳곳에 집을 빌리고 봄에는 핀란드, 여름에는 프랑스로 가서 근무하기도 합니다. 몇몇은 집에서 근무하고, 디자인이나 고객 응대는 외주로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좋아하고 더 많은 것들을 보는 것을 추구합니다.” -2016년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테크크런치 인터뷰. 2020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텔레그램이 TON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만들 당시 불법으로 자금을 조달했다며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는 동시에 조사에 나섰습니다. 위원회 집행 변호사인 조지 텐레이로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와 만나 2시간의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SBS 취재팀은 이 문서를 입수했습니다. 여기서 텔레그램 조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텐레이로: 2017년에 텔레그램 그룹의 직원은 몇 명이었나요?” “두로프: 우리는 약 25~30명의 코어 팀이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수백 명의 개별 계약 직원들이 있습니다.” “텐레이로: 최근에는 어떤가요?” “두로프: 그렇게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텐레이로: 코어 팀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두로프: 프로그래밍 코드를 짜는 일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생활 기반을 두고 있지만, 직원들의 근무지는 세계 어디든 될 수 있습니다. 20~30명의 ‘코어 팀’이 함께 세계를 이동하며 근무하는 형태입니다. 재택근무도 상시 일어납니다. 텔레그램 내부고발자로 알려진 안톤 로젠버그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소수정예로 점조직화된 상태에서 수시로 근무 장소가 바뀌는 상황, 또 ‘코어 팀’ 외 다른 직원들은 이들의 행방조차 모른 채 지시를 받아 작업하고 월급을 받는 형태. 텔레그램 본사라는 개념은 애초에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디자인 : 방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