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SBS 이호건 기자입니다.
전세사기 경매집 단기임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메일로 제보 하나가 왔습니다. 부동산업자가 임대인에게 경매집 단기임대를 맡기라고 권유하는 통화 녹취였습니다. 임대인이 통화한 업자들은 인천 부동산 3곳인데, 모두 이런 단기임대를 전문으로 하는 곳들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전세사기집들이 단기월세로 운영되고 있는 실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통화 녹취에서 드러난 실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을 넘어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대규모로 그리고 아주 조직적으로 경매집 단기월세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확보한 통화 녹취를 중심으로 그 실태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이하 부동산업자들의 통화 내용은 글씨를 굵게 처리했습니다. 18명이 수천 채 관리.."우린 이거 전문이에요" 임대인-인천 A부동산 간 통화 "B부동산이랑은 이제 협업을 하고요. 임대인은 한 7~8명 정도 돼요. 저희 부동산에서 관리하는 것만 지금 1,500 채예요. "(몇 명이서 하고 있는 거예요?) 한 18명 정도 돼요" "저 혼자만 관리하는 게 한 180채 정도 되고요. 이것만 저희 전문적으로 하고 있어요." 인천의 A 부동산은 B 부동산과 연합으로 협업해 경매집 단기월세를 놓고 있었습니다. 자신들도 협업하고 있다고 인정했고, 저희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 A 부동산 직원의 명패가 B 부동산에서도 발견됐으니 사실상 공동체라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두 부동산 합쳐서 직원 18명이 임대인 7~8명의 집들을 봐주고 있는데 그 규모가 무려 1,500채나 된다고 합니다. "(몇 백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요?)네. 1,000채도 있어요. 소위 말해 거물급 분들도 계시고. 사실 저희가 지금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 80% 70%가 다 경매예요. 낙찰이 될 물건들이 많아서 그러면 다시 또 회전을 시키죠. 저희가 다른 임대인분도 지금 컨택을 하고 있고" 전세사기를 비롯해 보증금 못 돌려줘 경매 넘어간 집들 수천 채를 단기월세로 넘기고 있다는 겁니다. 낙찰되면 그 집은 버리고 다른 경매집을 찾아 채워 넣는 방식입니다. 인천에 있는 C부동산 역시 이런 단기월세 전문인데 여기는 A, B 부동산과 협업하지 않고 홀로 하는 이른바 '혼자서도 잘해요' 부동산이었습니다. 임대인-인천 C부동산 간 통화 "장담드리는데 저희 이길 데 없을 겁니다. 저희가 7백 몇 개가 될 거예요. 세입자가 맞춰져 있는 집이요. 총 나올 집이 한 2천2백 개가 넘을 겁니다." 이곳은 직원 6명이 단기임대를 맡고 있는데 역시 앞선 A, B 부동산과 비슷하게 조직적으로 대규모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속된 네임드들 다 우리가 관리" "저희 구속된 사람도 하고 있습니다. 혹시 박00 최00 권00 아실까요? 임대인분이 아실 만한 '네임드'들은 거의 다 저희가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되고요. 감옥에 가서 이분 인감증명서랑 인감도장 받아올 수 있는 대리인이 필요합니다." "들어보셨죠? 최00 씨. 최00 씨가..원래 권00하고 박00 씨가 친척. 권00은 동네 선후배 사이고 박00은 그 처제예요, 대리인이 최00의 형입니다. 그분이 관리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분 통해 다 동의 받고 인감증명서 확인하고 위임장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이 부동산업자들은 자신들이 이른바 네임드, 유명한 전세사기범들 집들을 다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천의 권00, 화곡동의 박00, 최00, 구리의 고00까지 그들 소유 경매 빌라들을 단기임대 주고 있다고 밝혔는데, 여기에 구속된 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속된 전세사기범으로부터는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 위임장을 받은 뒤 대리인을 내세워 운영하고 있다고 이들은 실토했습니다. "무조건 50대 50입니다. 임대인 50% 드릴 거고 저희 50% 가져갑니다" 단기월세로 벌어들이는 돈은 임대인과 부동산업자가 반반씩 나눠 갖는 구조입니다. 결국 전세사기범들은 부동산업자들을 통해 감옥 안에서도 아무것도 안 하면서 큰돈을 벌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떼돈 벌면서 차명계좌로.."세금 내는 액션해야 재판에 유리" 임대인-인천 부동산업자 간 통화 "만약에 100채를 1년 굴리면 월세가 얼마 될 것 같으세요? 무시 못하는 금액이라. (어떤 임대인은) 이 소득으로 해장국집 100평짜리 차리셨고. 제 통장만 해도 하루에도 몇천만 원씩 왔다 갔다 하거든요" 이들은 보증금 없이 3개월 선납 조건으로 단기 월세를 받고 있습니다. 집 한 채면 그리 큰돈이 아니지만, 수백 채, 수천 채가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현금이 왔다 갔다 하는 건데 임대인은 물론이고 부동산업자들도 절반을 가져가다 보니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제대로 된 소득 신고를 하지 않아 세금 납부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아닌 지인 계좌, 차명 계좌로 월세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원래는 수익성이 이렇게 나오면 세금 많이 내셔야 돼요. 저희가 임대인분 통장으로 (월세를) 받지 않고 임대인분이 정말 믿을 만한 분 통장으로 돈을 받는 겁니다." "(통장을 지금 법인 통장 한 군데에다가 다 받고 있어요?)" "아니요. 좀 여러 개 있어요. 여러 개로 쪼개서" "국세청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길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내부 고발밖에 없습니다. 하루에 1~2억 왔다 갔다 해도 절대 잡을 수가 없어요." 업자들은 웬만해선 국세청에 걸일 일이 없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임대인들에게 수입의 일부는 꼭 세금을 내라고 조언했는데 알고 보니 그 이유가 참 가관입니다. "저희는 20%가량은 무조건 세금을 내시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것도 국세를 먼저 내시라고" "단기 월세라고 하더라도 임대인분도 아시겠지만 경매가 진행되는 게 빠른 게 있고 경매가 늦게 진행이 되는 게 있어요. 이거의 가장 큰 차이는 세금을 내느냐 안 내냐의 차이가 있고요. 또 중요한 게 뭐냐면 물건 개수가 많다고 하면 경찰 조사받을 수가 있고 재판받을 수 있단 말이에요. 임대인 중에 세금을 내고 있는 사람과 안 내고 있는 사람은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게 정말 재판에서 엄청나게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네, 그렇습니다. 이들은 일부 세금 내는 척하는 액션을 취함으로써 경매를 늦추고 더 나아가 나중에 문제가 돼서 경찰 조사받거나 기소돼 재판받을 때 유리한 정황을 만들 수 있다고 임대인들에게 조언하고 있는 겁니다. "재산 은닉은 완전히 불투명하게 그냥 한 푼도 세금을 안 내고 그랬을 경우에 재산 은닉이 되는 거지.. 그래서 조금씩은 세금 내면서 뭔가 상환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그런 거를 좀 액션도 취하시고" 부동산업자들이 전세사기 경매집 단기월세를 위한 구체적이고 정교한 탈세 꼼수 매뉴얼을 만들어 놓은 셈입니다. 불법이 아니다? HUG는 뭐 하고 있나 "이건 저희는 절대로 형사처벌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내더라도 소득세에 대한 세금만 내고." 상황이 이런데도 이런 꼼수 근절 못 시키는 이유는 놀랍게도 이게 불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집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경매가 낙찰되기 전까지는 소유권이 집주인, 즉 임대인에게 있습니다. 해당 집이 전세사기에 연루돼 경매에 넘어간 집이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경매 낙찰될 때까진 전세사기범에게 소유권이 남아있고 그래서 단기월세를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전세보증보험을 들었을 경우엔 주택도시보증공사 HUG가 임차인에게 대신 보증금을 돌려주고, 임대인에겐 구상권을 청구해 해당 빌라에 채권을 가지게 되는데, 그러면 채권 가지고 있는 허그는 이 집들이 이렇게 단기월세로 이용되고 있는 사실을 모를까요? 허그 측에 확인을 해보니 허그도 이런 상황들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경매 낙찰 전까진 법적으로 소유권이 임대인에게 있어 허그가 직접 바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따로 없었습니다. 물론 허그에게 전혀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2년 전쯤에 허그는 이런 경매집들에 대해 법원에 강제관리를 신청했습니다. 경매집에 대한 관리 권한을 허그가 지정하는 제3자 관리인에게 넘기도록 해 악덕 임대인들이 단기 월세를 못 들이게 하려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허그 입장에선 배보다 배꼽이 더 컸습니다. 법무사나 변호사를 제3자 관리인으로 지정하면 비용이 들고 빈집을 관리하는 데도 추가비용이 드는데, 이런 전세사기 경매집이 엄청난 규모로 쏟아져 나오자 그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불어난 겁니다. 들어가는 비용 대비 회수할 수 있는 채권이 훨씬 적게 되자 결국 허그는 이 강제관리 조치를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부동산업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임대인-인천 부동산업자 간 통화 "허그 쪽에서도 선제 조치를 한 거죠. 근데 그게 오히려 더 실이 되니까. 득이 되는 게 아니고. 그런 물건들을 관리하면 뭐 고쳐달라 뭐 고쳐달라 이게 일 자체가 안 돼요. 그 비용도 나갈뿐더러 그래서 거기서 손을 뗐어요. 허그에서도." "허그 쪽에서 법원에다가 신청해서 그게 결정이 돼서 허그 쪽에서 임대 관리를 다 하게 됐었는데 이게 건수가 너무 많아서 그쪽에는 따로 그런 주택 부서가 없잖아요. 임대 관리 부서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거기서 걔네들이 관리할 때 문제가 더 많이 나와서 허그에서는 이제 임대 관리를 안 해요." 허그는 현실적인 한계에 손을 놓았고 부동산업자들은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겁니다. 이 부동산업자들의 정체는? 과연 이 부동산업자들, 정말 우리가 아는 주변의 평범한 공인중개사들일까요? 임대인-부동산업자 간 통화 "(무갭투자를 진행했었어요?) 저희요? 그렇죠 그렇죠" 이들은 단기월세에 전문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무자본 갭투자, 즉 무갭투자를 중개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전부터 전세사기범들을 알고 있었다고도 말했습니다. 연락처도 다 알고 있어 쉽게 이들로부터 단기월세를 따낼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결국 전세사기범들의 무갭투자를 중개해 주고, 지금에 와서는 또 단기월세를 중개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단물까지 다 빨아먹었습니다. 1년 4개월 동안 조심스러워야 될 상황이 생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1년 넘게 이런 일을 해왔지만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들 문제가 없는 걸까요? 일단 앞서 말씀드렸듯이 탈세 정황이 충분합니다. 회피용 세금만 일부 내고 있을 뿐 단기월세로 버는 소득만큼 제대로 세금을 내고 있지 않고 있는 건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아직 제대로 피해 회복도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부당이득을 챙기고 세금을 탈루하는 건 누가 봐도 정당하다고 보긴 어려울 겁니다. 세무당국이 나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허그도 지금처럼 수수방관만 해서는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허그가 직접 관리 권한이 없다지만, 그렇다고 이걸 지자체가 관리하거나 다른 국가기관이 관리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닙니다. 그나마 해당 경매집들에 채권을 가지고 있는 허그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이 있어 허그만이 나설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만약 허그가 여력이 안 되면 제도보완을 통해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매집 단기임대가 일부의 일탈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전세사기 사태 광풍 이후 현재 전국적으로 음지에서 이런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으면 이 부동산업자들마저도 너무 많아서 자기들이 다 단기월세를 줄 수 없다고 말할 정돕니다. "그거 다 소화 못 해요. 너무 많아요. 몇 만채 되는 거 몇십 만 채 되는 거죠. 관리가 안 돼요. 그거는. 그건 저희가 한다고 해서 직원들이 광고 내고 이렇게 한다고 해서 안 돼요." 이 정도라면 이 문제, 계속 이렇게 그냥 눈감고 외면하는 게 과연 능사일까요? 감옥 가서도 깨지지 않는 일부 부동산업자와 전세사기범 간의 조직적 카르텔을 이제는 끊어내야 할 방안이 절실합니다.
인천 강서 전세사기 피해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수원에서도 대규모 전세사기가 터졌습니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액만 수백억 규모인데, 아직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잠재적 피해까지 감안하면 피해액이 1천억 원이 넘을 거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적지 않은 분들이 '집주인 융자 규모 보면 위험한 거 알 수 있지 않았냐', 'HUG 전세보증보험 가능 여부 알고 들어갔으면 피해 막을 수 있지 않았냐' 하며 마치 피해자의 부주의 때문에 피해가 발생한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일견 일리 있는 지적처럼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수원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미 인천 강서 전세사기 피해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슈화됐었기에 나름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고심에 고심을 더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우리가 피해자들 탓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공동담보 쪼개기 대출은 알기 쉽지 않다 공동담보라는 게 있습니다. 하나의 대출에 하나의 담보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담보물을 제공하는 것으로, 한 사람이 계약을 위반해 생긴 손해를 공동담보로 묶인 다른 사람이 공동으로 배상하는 담보입니다. 예를 들어 다세대 주택 건물에 5개의 세대가 있다면 이 5세대를 공동담보로 묶어 담보물로 제공하고 5억 원을 대출받는 식입니다. 담보물이 많으니 아무래도 대출이 더 용이하겠죠. 그런데 이 공동담보도 쪼개서 나눠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례로 5세대를 하나로 묶는 게 아니라 2세대, 3세대로 두 개로 쪼개서 각각 묶은 뒤 각각 2억, 3억씩 대출을 받는 겁니다. 대출이 5억까지 필요하지 않고 2억 정도만 있어도 된다 싶으면 2세대만 쪼개 묶은 뒤 2억만 대출받는 식이죠. 추가로 더 필요하다면 3세대를 묶어 3억을 대출받고요. 이번 수원 전세사기 의혹 당사자인 집주인 정모 씨 일가는 이런 식의 공동담보 대출을 쪼개기로 많이 받았습니다. 일가족 소유 건물 50여 채 중 40채 정도를 이 공동담보로 잡고 대출을 받은 거로 전해졌습니다. 문제는 이런 공동담보 쪼개기의 경우 세입자는 본인 세대에 묶인 공동담보의 대출만 알 수 있지, 다른 세대로 묶인 공동담보 대출은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아까 5세대를 2세대, 3세대로 쪼갠 뒤 묶어 대출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 경우 2세대에 포함된 A라는 세입자는 2세대 공동담보 대출 2억만 알 수 있지, 나머지 3세대 공동담보 대출 3억의 존재는 알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등기부등본에 해당 세대로 묶인 공동담보에 대한 대출 액수만 표기되기 때문입니다. 등기부등본 한번 볼까요? 이처럼 해당 세대와 같이 묶인 공동담보에 대한 근저당 2억만 표시되어 있지, 나머지 다른 세대로 묶인 공동담보에 대한 근저당 3억은 표시돼 있지 않습니다. 하단에 그냥 공동담보 일련번호만 기재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세입자 입장에선 등기부등본을 봐도 이 공동담보가 자기 세대 공동담보 목록을 얘기하는 건지, 다른 세대 묶인 공동담보인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그냥 액수가 표시되어 있는 2억 근저당만 인지가 가능합니다. 다른 세대 공동담보 근저당 3억을 보려면 다른 세대 등기부등본을 떼봐야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수원 전세사기 피해 상당수가 이런 식이었습니다. 일례로 이번 전세사기 피해를 본 수원 권선구 신축 빌라의 경우 모두 15세대가 있는데 집주인이 건물 내 15세대를 5세대와 10세대로 나눠 공동담보로 각각 7억 6천만 원, 14억 원씩 쪼개기 대출을 받은 겁니다. 5세대에 포함된 세입자는 근저당이 7억 6천만 원만 있는 줄 알았고, 10세대에 포함된 세입자는 근저당이 14억 원만 있는 줄 알았지, 각각 나머지 대출에 대해선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 건물에 잡힌 실제 근저당은 둘을 합쳐 총 21억여 원에 달했던 거죠. 당시 건물 시세가 40억 원 정도였다고 하니, 세입자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근저당이 적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세입자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공인중개사가 이런 사실을 알렸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도 나올 거로 예상됩니다. '그냥 HUG 전세보증보험 가능 여부를 알아보면 위험한 주택인지 알 수 있지 않나요?' 네.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일부 공인중개사들이 이 대목에서 사실상 전세사기 공범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한패가 된 일부 공인중개사 공인중개사는 전세 매물에 대한 권리 관계 전체를 충실히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판례로 이런 공동담보 대출에 대해 공인중개사가 충분히 알리지 않아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을 떼였을 경우, 공인중개사가 피해의 40%를 배상해야 한다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공인중개사들은 이런 공동담보 대출에 대한 정보를 세입자들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로 이런 위험한 거래를 하도록 세입자를 부추겼습니다. HUG 전세보증보험이 안되니 위험한 거 아니냐는 세입자 질문에, "건물이 40억 짜린데, 근저당이 7억 5천이면 굉장히 적은 거다. 집주인 사정이 있어 전세보증보험을 들 수 없지만, 그래도 집주인이 수원에서만 임대사업을 워낙 오래 해온 사람이고 건물도 수십 채인 큰손이다. 이 사람은 지난 인천 강서 전세사기 사태 당시에도 자기 세입자들 전세보증금 다 돌려줬었다. 우리랑 거래 오래 해온 믿을 만한 사람이다" 라며 세입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부동산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사회초년생들, 수중에 가진 돈이 부족해 안전하고 비싼 전셋집보다 저렴한 전셋집을 구할 수밖에 없었던 2~30대들은 이런 꾐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전세사기를 도운 공인중개사들도 있습니다. 집주인 정 씨 일가 소유 법인 직원들 중 일부는 직접 공인중개사 사무소까지 차렸습니다. 그리고 세입자들이 정 씨 일가와 전세계약을 맺도록 직접 중개를 했습니다. 깡통전세 위험성에 대한 고지는 거의 없었고, 주로 세입자들을 안심시켜서 근저당 많은 깡통주택에 전세 임차인 계약을 하게끔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인중개사들 지금은 다 문 닫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들에게 항의 전화를 한 피해자에 따르면 이 공인중개사들, 자기가 집주인 정 씨 일가 법인 직원이었던 건 맞지만, 지금은 퇴직했으니 집주인 정 씨에게 직접 연락하라 하고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공인중개사 믿고 거래했다가 발등 찍힌 셈입니다. 특약도 소용없었다 계약서에 HUG 전세보증보험 특약까지 쓰고 당한 사례도 있습니다. 워낙 전세사기가 횡행하니 일부 피해자는 공인중개사에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매물만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도 공인중개사는 이 피해자들에게 정 씨 일가의 집을 소개해줬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약서에 특약을 추가할 수 있다고 회유했습니다. 이런 내용인데, 하지만 이 특약 별로 소용이 없었습니다. 피해자가 보증보험이 안 되는 걸 알고 보증금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집주인 측이 돈을 돌려주지 않은 겁니다. 특약은 법적 효력은 있지만 민사 소송 가서 이겨야 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피해자가 집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서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수원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위험을 미리 충분히 인지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일부 공인중개사까지 가담한 의혹이 있는 상황에 '나는 저런 사기당하지 않아'라고 누구도 자신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번 전세사기 피해를 두고 피해자 탓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디자인 : 김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