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해먹을 수 있는 비건 레시피를 알려드립니다.
먹방과 레시피, 와인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스프에서 맛깔나게 정리해드립니다. 떼루아는 와인이나 커피에서 자란 환경이 맛에 영향을 주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콩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대두도 이와 비슷하게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 대두, 메주콩, 흰콩, 노란 콩, 백태 콩이라고 불리는 국내에서 재배되는 콩 말이다. 이름도 부르는 사람마다 제각각인 대두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글의 대두는 백태 콩을 뜻하며 이 글에서는 편의상 '대두'로 통일하겠다.) 채식을 시작하며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환경에도 이롭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은 것이 '국산 대두'였다. 처음 대두를 삶아서 한 입 먹었을 때의 맛을 잊지 못한다. 병아리콩보다 짙은 고소함이 있었고, 팥처럼 으스러지는 질감이 아니라 조금은 단단한 식감이었다. 그래서 씹을수록 부드러웠다. 사람들이 '콩취'가 난다고 걱정들을 많이 했지만, 나는 불편한 냄새를 느끼진 못했다. 처음 먹었던 콩은 경남 함양의 콩이었다. 그다음에는 파주의 장단콩을 구해 먹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물에 불리니 함양의 콩은 크기가 컸지만, 파주 장단콩은 불려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삶아서 먹었을 때도 단단함의 정도, 단맛, 향도 모두 달랐다. 그저 보기에는 조금 노랗고 동그란 콩일 뿐인데 물에 불린 순간부터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게 신기했다. 그럼, 전국에서 자라고 있는 콩들의 맛이 모두 다른 것일까? 그때부터 전국의 콩을 비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전국의 콩 비교하기> 드디어 올 4월, 머릿속으로만 구상하던 일들을 실행했다. 15개 지역의 콩들을 주문했다. 품종은 대원, 선풍, 대창, 풍산, 왕태가 있었고, 품종을 알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대원 품종이었다. 어떤 콩은 맵싸한 향이 났고, 어떤 콩은 초록 잎의 푸릇한 향이 났다. 어떤 콩은 삶은 계란 흰자에서 나는 단백질 냄새가 강하게 나기도 했고, 어떤 콩은 메주의 향, 어떤 콩은 특별한 향이 없거나 구수한 향이 났다. 색깔도 창백한 노란색부터 짙은 노란색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거품의 정도도 달랐다. 갈아서 먹었을 때는 마치 생크림을 퍼먹는 것 같이 부드러운 콩도 있었다. 이틀 동안 불리고, 삶고, 갈고, 먹어보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콩에도 와인이나 커피처럼 '떼루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두부나 된장에 가려져 있던 콩이라는 존재가 뚜렷해지는 순간이었다. 같은 콩이라도 지역마다 콩 맛이 다르다! 오늘 준비한 요리들은 대두를 삶는 방법과 삶은 대두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준비했다. 스프카세를 읽는 분들에게 국산 대두를 구해서 삶아서 먹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이왕이면 내가 사는 지역에 가까운 콩으로 먹는다면 더 좋겠다. 그리고 대두 1kg 한 봉지를 다 먹었을 때쯤 다른 지역의 콩으로 비교해서 먹으면 또 다른 맛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콩을 구하기 가장 좋은 이유는 11월은 콩을 수확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6월에 심었던 한 알의 콩이 주렁주렁 꼬투리를 매달고 속에 콩을 소중하게 품고 있다. 올해 열심히 다녔던 충북 괴산의 콩들도, 이 글이 올라갔을 즈음이면 수확을 마치고 누군가에게 귀중한 양식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충북 괴산 불정면에 자라고 있는 콩과 콩밭 전경> 귀중한 양식으로 변신할 콩 레시피 3가지 1. 콩 삶는 법 콩을 불리는 시간은 밤을 추천한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콩을 불려두면, 자는 동안 톡톡 소리를 내면서 콩이 깨어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삶은 콩은 식힌 후에 콩을 삶았던 물까지 함께 보관한다. 콩 삶은 물은 국 끓일 때 채수처럼 활용하면 좋다. 특히 콩나물국 끓일 때 한 컵 넣어주면 한층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 마른 대두 한 컵(약 110g), 3배의 물 *컵은 종이컵을 기준으로 했다. 콩 부피에 3배 정도 되는 물에 담가둔다. 여름철은 7시간이어도 충분하고 추운 날은 10시간 이상 불린다. 불린 다음 물을 버리고 깨끗한 물로 2~3번 세척한다. 콩은 씻어서 불리는 것보다 불린 다음 씻는 것이 크기가 커져서 편하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콩 주름 속의 먼지까지 깨끗하게 씻을 수 있다.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냄비에 콩을 넣고, 또 3배의 물을 담은 뒤 중불로 7~10분 정도 끓인다. 그리고 약불로 10분 끓인 뒤 불을 끄고 식힌다. *콩은 물에 불리면 2.5~3배 정도로 불어난다. *콩은 끓으면서 거품이 끓어오르기 때문에 냄비는 가장 큰 것을 준비하는 것이 좋고, 냄비뚜껑은 반쯤 열어둔다. *너무 오래 삶으면 주황색으로 변하고 메주콩 향이 나기 때문에 20분 정도 삶는 것이 적당하다. 2. 대두 후무스 후무스는 병아리콩과 중동의 향신료들로 만드는 소스류의 요리다. 대두로 만들면 고소하고 꾸덕한 질감의 후무스를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 먹은 대두 후무스만 해도 한 트럭은 넘을 정도로 자신 있게 추천하는 레시피다. 빵이나 채소 스틱과 먹어도 좋고, 김밥 속 재료나 카레, 샌드위치 같은 요리에도 활용할 수 있다. 향신료를 좋아한다면 듬뿍 추가해 보자. 색다른 중동의 향기까지 느낄 수 있다. - 재료: 삶은 콩 300g, 콩 삶은 물 100ml, 소금 1/2t, 마늘, 올리브유, 참깨, 레몬즙 1t 마늘은 편 썰고 올리브유에 약불로 살짝 익힌 뒤 식힌다. 참깨는 빻아 준비한다. 모든 재료를 넣고 믹서기에 넣어 여러 번에 나눠 곱게 나눠준다. 잘 갈리지 않을 때는 삶은 콩 물을 조금씩 추가한다. 3. 콩죽 콩의 필수 아미노산 구성은 동물성 단백질에 비해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 그래서 메티오닌, 류신이 많은 재료들을 함께 곁들여 먹으면 아미노산 구성이 더욱 훌륭해진다. 콩과 조합이 좋은 대표적인 것은 쌀이다! 쌀과 콩을 갈아서 만든 콩죽도 계란죽 못지않게 고소하고, 만들어서 소분해 냉동실에 얼려두면 바쁜날 아침이나 저녁으로 데워 먹기에도 좋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간장, 참기름 살짝 뿌려 먹으면 점심까지 배가 고프지 않은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 재료: 삶은 콩 100g, 밥 160g, 물 300ml - 양념: 소금, 간장, 참기름 약간 삶은 콩과 물을 넣고 믹서기에 간다. 냄비에 밥, 콩, 물을 넣고 10분 동안 약불로 끓이며 계속 저어준다. 취향에 따라 소금을 조금 넣는다. 그릇에 덜고 간장, 참기름을 살짝 뿌려 먹는다.
먹방과 레시피, 와인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스프에서 맛깔나게 정리해드립니다. 처음 그것을 발견한 건 6월이었다. 집 뒤편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있다. 경사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도심으로부터 이어져 온 길이 끝나고 왼편으로는 비탈진 산의 경계가 있으며, 비탈길을 끼고 돌아 올라가면 산으로 진입한다. 도심과 산의 경계에서 호박잎을 보았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호박과 비슷한 종이 있는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누구도 이곳에 호박을 심을 리가 없었고, 근처에 호박씨가 흘러 들어올 만한 텃밭 같은 것도 없었으며 이곳은 주거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잎의 모양새가 너무나 호박잎이어서(나는 식물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 번 먹어본 채소의 모양새는 잘 기억한다) 그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호박일까, 아닐까 생각하며 여름을 보냈다. 그렇게 10월이 왔다. 거대한 잎 사이에서 공룡같이 거대한 노란 꽃을 피우고, 그 밑에는 동그란 호박이 보였다. 아, 호박이구나. 어쩌다 이곳에 호박이... 호박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식물도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느다란 덩굴손을 사방으로 바닥과 담벼락을 더듬어가며 힘차게 전진해 간다. 인간의 속도로 보면 호박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호박의 속도로 보자면 온 힘을 다해 돌진 중이다. 공룡 같은 기세의 잎들은 햇빛과 공기 중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호박에 저장한다. 호박 하나를 키우려면 건강한 잎사귀 4장 이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서리가 내리면 호박 잎사귀는 열매로 영양분을 모조리 저장하고서는 자연으로 돌아간다. 호박은 못 먹을 것이 없다. 연한 잎을 따서 삶아 먹기도 하고, 애호박은 볶음이나 조림 구이도 해 먹고, 늙은 호박은 겨우내 보관했다가 비상식량처럼 활용한다. 게다가 호박의 씨앗도 먹는다. 호박 하나엔 온 우주가 담겨 있다. 올여름과 가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웠다. 따뜻한 기후를 좋아한다는 호박에게도 이 정도의 폭염은 원하던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수상하게 더운 날씨 때문에 호박의 꽃과 열매도 10월이 되어서야 조심스럽게 보였던 걸까? 사람도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생사를 넘나들 정도로 더웠던 올해의 폭염. 그 더위를 버틴 호박이 용맹하게 느껴졌다. 호박은 당당하고 용감하며 신비스럽고 무한한 세계를 품고 있으며, 그것들은 모두 내가 닮고 싶은 모습들이다. 부엌 한편에 조용히 자리 잡은 호박을 바라보며 야요이 쿠사마가 "호박, 호박 때문에 살아내는 것이다"라고 했던 호박에 대한 시와 작업들을 떠올렸다. 애호박은 풋 상태로 수확한 호박이다. 비닐 속에 들어있는 애호박은 개량 품종으로 비닐을 씌워서 그 모양에 맞춰 자라게 한 것이다. 늦여름과 가을에는 둥근 애호박을 먹을 수 있다. 단맛이 있고 수분이 많으며 껍질과 씨앗은 늙은 호박보다 연해서 다양한 반찬과 국으로 먹을 수 있다. 여러 종류의 호박이 있지만, 오늘 소개할 요리들은 10월에 먹으면 더욱 좋을 '둥근 호박'을 주재료로 했다. 이 요리들과 함께 호박으로부터 전쟁 같은 하루를 버틸 힘을 받아보시길 바란다. 하루를 버틸 힘을 주는 호박 레시피 1. 둥근 호박구이 둥근 호박은 수분이 많아서 볶거나 구울 때 잘 부서진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소금이다. 호박을 슬라이스한 뒤 소금을 미리 앞뒤로 뿌려두면 수분이 빠져나가고 단맛은 더욱 강해진 호박구이를 맛볼 수 있다. 발사믹 식초와 간장을 섞은 드레싱을 얹어 먹으면 고급 요리를 먹는 기분이다. 드레싱에는 발사믹 대신 사과식초를, 올리브유 대신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써도 좋다. - 재료: 둥근 호박 350g, 소금 1/2T, 올리브유 약간 - 드레싱 양념: 올리브유 1T, 발사믹 식초 1/2T, 간장 1T *1T는 밥숟가락, 1t는 찻숟가락에 평평하게 담은 것을 기준으로 했다. 호박은 1cm 두께로 슬라이스하고 앞뒤로 소금을 뿌려 10분간 둔다. 빠져나온 수분은 키친타월로 닦아낸다. 양념을 모두 섞어 드레싱을 만들어 둔다. 예열한 팬에 올리브유를 한 바퀴 두르고 호박을 약간 약한 불로 굽는다. 노릇하게 익으면 뒤집어 마저 굽고 접시에 담는다. 드레싱 양념을 뿌려주면 완성. 2. 호박 수프(2회분) 호박의 맛으로만 먹는 담백한 수프. 열량도 100kcal가 되지 않는다. 어떤 양념에도 방해받지 않은, 오로지 호박만의 향과 풍미를 살린 간단한 수프다. 한식 느낌의 호박국처럼 먹고 싶다면 올리브유 대신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이용한다. 바싹하게 구운 시큼한 사워도우 빵과 함께 먹으면 조합이 좋다. - 재료: 둥근 애호박 중간 크기 1/2개 (200g), 물 450ml, 후추 약간 - 양념: 소금 1/5t, 올리브유 1T 둥근 호박은 2cm 크기로 깍둑썰기한다. 냄비에 호박과 올리브유, 소금을 넣고 볶는다. 호박이 익어서 수분이 나올 때쯤 물을 넣고 뚜껑 덮고 13분간 푹 끓인다. 맛을 보고 소금을 모자란 간을 맞춘 뒤 그릇에 담아 올리브유, 후추를 뿌려 마무리한다. 3. 얼큰 호박탕(2~3회분) 해산물을 넣은 것처럼 감칠맛이 뛰어난 얼큰한 호박탕. 가을에 자주 먹곤 했던 호박을 넣은 꽃게탕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어 좋아하는 요리다. 감칠맛의 비법은 된장을 미리 볶는 것과 다시마 한 장을 넣는 것이다. 탕을 끓이기 전 들기름에 된장 한 스푼을 볶아주면 된장의 단백질이 기름과 열에 마이야르 현상이 생기면서 감칠맛을 끌어올릴 수 있다. 부추 대신 미나리나 파를 넣어도 좋다. - 재료: 둥근 호박 350g, 두부 1/2모, 표고버섯 2개, 팽이버섯 1/2개, 부추 약간, 된장 1T, 들기름 1T, 말린 다시마 1장, 물 600ml - 양념: 다진 마늘 1T, 고춧가루 1T, 국간장 또는 양조간장 1T, 고추장 1t 물에 다시마를 넣어 채수를 만들어 둔다. 호박은 1.5cm 두께로 슬라이스하고 깍둑썰기한다. 두부는 호박보다 작은 크기로 깍둑썰기하고, 표고버섯은 슬라이스하고 팽이버섯은 밑동을 떼어내고 반으로 자른다. 마늘은 잘게 다진 후 양념을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냄비에 들기름과 된장 한 스푼을 넣고 약불로 볶은 뒤 호박, 버섯과 양념장, 채수를 풀어 뚜껑 덮고 중불로 푹 끓인다. 7분 정도 끓인 뒤 두부를 넣고 모자란 간은 소금으로 맞춘다. 1~2분 정도 끓인 뒤 부추를 올려 마무리한다.
먹방과 레시피, 와인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스프에서 맛깔나게 정리해드립니다. 가을은 모든 과일을 통틀어 사과를 가장 좋아하는 나에게 가장 설레는 계절이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는 사과를 그다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과라는 존재를 흔하게 여겼다. 사과, 배가 함께 있으면 늘 달콤한 배를 먼저 먹고는 했었다. 그러다 사과가 특별해진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양광'이라는 품종의 사과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 양광 사과를 처음 알게 된 건 10여 년 전, 처음 독립해서 살기 시작할 때였다. 나는 처음 혼자 살게 될 곳으로 시장 바로 옆 동네를 골랐다. 주말 아침이면 상인들의 과일과 채소를 판매하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릴 정도로 시장과 인접해 있었다. 시장의 매대는 네 개의 계절보다 촘촘하게 바뀌었다. 제철에 볼 수 있는 식재료들을 맛보며 섬세한 절기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10월 초에 보았던 '양광'이라고 쓰여 있는 사과를 보았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사과 품종에 호기심이 생겨 양광 사과 5개를 사 왔다. 양광 사과의 색은 다른 품종의 사과에 비해 노란색이 빠진 푸름을 바탕으로 한 선명한 빨간색이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초록빛 흔적이 빨강을 돋보이게 한다. 사과를 깨끗하게 씻고 칼로 썰었다. 썰리는 소리가 보통의 다른 사과와 다르다. 수분의 밀도와 섬유질이 촘촘해서 경쾌한 소리가 났다. 잘라낸 과피의 단면은 노랗기보다는 창백한 흰색에 가깝다. 양광 사과의 도드라지는 특징은 아삭함이다. 바삭바삭하다고 표현해도 아쉽지 않을 만큼 아삭함이 남달랐다. 달콤한 맛이 있지만 새콤함도 함께 존재한다. 비율로 구분하자면 6:4 비율 정도인 것 같다. 산미 덕분에 오히려 달콤함이 섬세하게 느껴졌다. 아마 사과의 이상화된 존재가 있다면 아마 양광 사과가 아닐지 생각했다. 처음 먹어보는 존재감이 뚜렷한 사과를 앞에 두고 정신 차려보니 2개를 먹어 치웠다. 아쉬워서 저녁에 또 먹었고, 그 주 계속 양광 사과를 사러 다녔는데 2주가 지나니 양광 사과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청과점에 물어보니 철이 끝나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나는 그때부터 10월이 되면 아무리 바빠도 착실하게 청과 가게를 서성였다. 10월 찰나에만 먹을 수 있는 양광 사과. 이 새로운 경험은 내가 모르는 많은 품종의 과일과 채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또 단순히 맛있다, 맛없다로 구분하기보다는 품종마다 각각의 고유한 맛과 성질을 지닌다는 점을 인지하게 했다. 동시에 나의 맛의 세계를 확장해 주었다. 사과의 특별함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요즘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과일 하면 대명사로 떠올리던 국민 과일인 사과의 존재가 더욱 귀해졌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으로 가격이 두 배 이상 오른 것도 그렇고, 고령화로 사과 농가 면적이 점점 줄고 있는 데다가 기후변화로 사과 생산량도 줄어들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50년 뒤에는 한반도에서 사과나무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시나리오를 내놨다. 지금도 안정적으로 사과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은 아니라서 앞으로 먹을 사과의 맛과 형태도 바뀌어 갈 것이다. 그런 사과의 미래를 앞에 두고 있자니,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사과를 먹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십 년 뒤에는 비싸더라도 품종을 골라 가며 사과를 먹을 수 있는 지금이 그나마 호시절이었다고 떠올릴지도 모른다. 사과로 가장 자주 해 먹는 레시피들을 골라 왔다. 다른 과일로 대체할 때보다 사과가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사과를 위한 요리들이다. 가을과 잘 어울리는 요리들이니, 부디 부지런히 올해의 사과를 즐겨주시길! 올해의 사과를 즐길 수 있는 레시피 1. 사과 스무디 몸이 무거워졌을 때 찾게 되는 스무디. 수분과 식이섬유, 비타민을 듬뿍 섭취할 수 있는 아침으로 이만한 게 없다. 어떤 조합으로 만들더라도 사과는 필수다.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사과, 양배추, 셀러리. 셀러리 대신 시금치나 케일도 좋다. 꼭 들어가야 하는 것은 사과와 양배추다. 생레몬을 살짝 뿌리면 맛이 훨씬 화려해진다. - 재료 : 사과 1/2개, 양배추 1장, 셀러리 1/2대, 물 종이컵 1컵 모든 재료를 믹서기에 넣고 갈아준다. 잘 갈리지 않을 때는 물을 약간 추가한다. 스무디를 먹을 때는 견과류를 함께 먹으면 스무디를 꼭꼭 씹어먹을 수 있고 채소 과일의 비타민 흡수율을 높여주기도 한다. 2. 사과 피넛버터 토스트 사과와 피넛버터, 시나몬 조합은 마치 하나의 영혼을 공유하는 사이처럼 찰떡이다. 맛있는 사과를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비법이다.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 꼭 시도해 보시길. - 재료 : 식빵 1개, 사과 1/4개, 피넛버터 1스푼, 시나몬 가루 약간 빵은 앞뒤로 살짝 토스트 한다. 빵 위에 피넛버터를 바르고 사과는 얇게 슬라이스 해서 올린다. 시나몬 가루를 살짝 뿌려 먹는다. 3. 애플 크럼블 화려한 제빵 재료 없이도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레시피다. 이 레시피에서는 비건 버터를 사용했지만 비건 버터가 없다면 피넛 버터나 식물성 오일로 대체해도 만들 수 있다. 주말 아침 애플 크럼블과 함께 가을 햇살과 커피를 곁들이면 영혼이 채워지는 것만 같다. 한 번 만들면 혼자서 3~4번에 나눠 먹을 수 있는 양이다. - 사과 필링 재료 : 사과 1개, 설탕 3T(30g), 시나몬 가루 1t, 레몬즙 1t (생략 가능) - 파이지 & 크럼블 재료 : 오트밀 70g, 아몬드 50g, 밀가루 30g, 비건 버터 40g, 설탕 1.5T, 두유 1T *1T는 밥숟가락, 1t는 찻숟가락에 평평하게 담은 것을 기준으로 한다. *내열 기능이 있는 유리 반찬 그릇이 필요하다. (15.5x10.5x4.5cm) 사과는 8조각으로 썰어 얇게 자른 뒤 설탕을 넣고 볶다가 수분이 생기면 시나몬 가루, 레몬즙을 넣고 중불로 13분 정도 익힌 뒤 한 김 식힌다. 에어프라이어(또는 오븐)는 180도 15분 예열을 돌린다. 믹서기에 오트밀, 아몬드, 밀가루, 설탕을 넣고 곱게 갈아준 뒤 나머지 재료를 넣고 손으로 뭉쳐준다. 내열유리 바닥에 파이지 절반을 담아 평평하게 담은 뒤 사과 필링을 얹는다. 그 위에 크럼블을 올려주고 종이 호일로 한번 감싸준 뒤 에어프라이어 180도에서 15분 구워주면 완성.
먹방과 레시피, 와인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스프에서 맛깔나게 정리해드립니다. 냉장고에 채소가 똑 떨어져 텅 비었을 때, 그리고 밥을 해먹을 만한 시간이 곤궁해질 때면 나는 열무 한 단을 사 온다. 열무는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빠르고 간편하게 지친 체력을 채워주는 고마운 채소다. 게다가 한 단이면 2kg 정도 되기 때문에 다른 채소를 이것저것 고를 필요 없이 열무 하나만으로도 일주일 나기가 가능하다. 가끔은 열무와 같은 계열인 얼갈이를 찾기도 한다. 나는 열무나 얼갈이의 매력을 발견한 뒤로는 줄곧 1인 가구에 이만한 가성비 채소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현대인들에게 영양보다 부족하다는 식이섬유를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무기질과 비타민도 고루 들어있다. 보통 채소들은 일부 2~3가지의 무기질, 비타민이 많아 뾰족한 그래프를 보여준다면, 열무와 얼갈이는 다양한 영양소가 고루 풍부한 너그러운 그래프 모양을 그린다. 뼈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칼슘, 마그네슘, 비타민 K를 섭취할 수 있고,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 A, 비타민 C도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다. 하루에 필요한 무기질과 비타민들을 열무 하나로도 고루 충족할 수 있으니 천연 영양제라 생각하고 열심히 먹으면 왠지 조금은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단, 칼륨이 많은 편이라 신장 관련 질환이 있다면 적당히 섭취하는 게 안전하다. 열무는 여름이 제철이지만 8월에 파종한 열무는 9월에 수확해서 초가을까지도 먹을 수 있다. 폭염으로 요리하기가 유독 힘들었던 올여름, 살면서 열무를 이렇게 많이 먹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 덕에 열무의 매력에 빠져 9월을 맞이한 지금도 열무를 매주 사서 이렇게 저렇게 해 먹는 중이다. 가장 자주 해 먹은 메뉴는 역시 열무 비빔밥. 밥에 열무를 생으로 왕창 썰어 넣고 고추장, 참기름 넣고 비벼 먹는다. 고추장에는 매실청과 사과식초를 살짝 넣으면 새콤한 맛이 열무의 향과 잘 어울린다. 비슷한 메뉴로 열무 비빔국수도 있다. 면과 밥을 바꿔서 먹다 보면 어느새 이미 열무 반 단이 사라져 있다. 열무를 다르게 먹고 싶다면 소금물에 절여두었다가 열무 물김치를 담근다. 시판 물김치 재료를 사용하면 복잡하게 재료를 사 올 필요도 없다. 그리고 잘 익은 열무 물김치에 식초, 설탕 조금 넣어 소면을 말아서 먹는 냉열무국수까지 별미다. 열무를 넣은 바게트샌드위치 사실 생으로 먹는 케일, 양배추, 상추 같은 채소에 비하면 열무는 단맛도 덜하고, 고소함도 덜한 편이다. 대신 아삭아삭 씹히는 경쾌한 식감이 즐겁고, 줄기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수분감도 좋다. 약간 쌉싸래한 잎의 매운맛이 살짝 루콜라를 떠올리게도 한다. 잎의 모양도 와일드 루콜라와 닮아있다. 열무에서 풋내가 난다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나는 열무 고유의 향미라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열무의 매운맛을 활용해서 루콜라 대신 바게트샌드위치나 샐러드에도 넣기도 하는데, 잎채소에 다양한 식감과 향미를 열무가 돋워준다. 열무는 루콜라만큼 향이 강하지는 않더라도 기름 베이스의 소스들과 은근히 잘 어울리는 편이다. 무엇보다 열무 한 단의 장점은 역시 대용량이라는 점이다. 2kg의 두툼한 열무 한 단을 들고 집에 오는 날에는 스스로에게 ‘열무로 일주일 나기’라는 미션을 준다. 이런 종류의 미션은 늘 즐겁다. 만약 열무로 김치 말고 뭘 해 먹을 수 있냐는 생각이 든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열무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조금은 새로운 요리들을 소개한다. 가을이 깊어지기 전, 열무의 매력에 빠져보시길! 여름의 별미, 열무 요리 레시피 1. 열무 볶음 모닝글로리, 공심채 볶음을 좋아한다면 추천해 주고 싶은 열무 볶음이다. 열무와 공심채는 전혀 다른 채소이지만 공심채 볶음할 때의 소스로 볶으면 열무도 공심채 못지않은 식감과 맛을 자랑한다. 따로 데치는 과정 없이 바로 볶아야 하고, 그래야 열무만의 식감을 즐길 수 있다. - 재료: 열무 3~4개(200g), 마늘 7알, 홍고추 또는 페페론치노 약간, 식용유 1.5T - 양념: 간장 1.5T, 올리고당 2/3T, 된장 1T, 설탕 1T *1T는 밥숟가락에 평평하게 담은 것을 기준으로 했다. 마늘은 편 썰고 홍고추는 사선으로 썬다. 열무의 뿌리 부분은 잘게 다지고, 줄기 부분은 약 3cm 길이로, 잎 부분은 이등분 한다. 양념을 모두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둔다. 예열한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마늘, 홍고추, 다진 열무 뿌리를 약불로 볶는다. 마늘이 익을 때쯤 중불로 올려 열무 줄기와 양념 2/3를 넣고 3분 정도 볶는다. 열무에서 수분이 나오고 살짝 간이 배일 때쯤 잎 부분을 넣고 30초 볶고 접시에 담는다. 2. 열무 강된장 비빔밥 강된장 만들 때 열무를 잔뜩 넣는 것도 별미다. 강된장의 맛을 풍부하게 해 줄 부드러운 감자, 풍미와 식감이 좋은 표고버섯, 게다가 아삭아삭한 열무까지. 세 개의 개성 강한 재료들을 된장, 고추장의 짠맛이 조화롭게 연결해 준다. 밥에 얹어 참기름 한 바퀴 둘러 쓱쓱 비벼 먹으면 영혼까지 든든해지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 재료: 밥 1그릇, 열무 3~4개(200g), 감자 작은 것 1개, 생표고 2~3개, 마늘 4개, 고추 1개 - 양념: 된장 1T, 고추장 2/3T, 들기름 1T, 물 반 컵(45ml) *강된장은 2번 정도 나눠 먹을 분량이다. 감자는 1cm 크기로 큐브 썰고, 표고와 고추, 열무는 잘게 썬다. 예열한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표고버섯은 소금 살짝 뿌려 약불로 볶다가 버섯이 익으면 감자를 넣고 1분 정도 볶는다. 된장, 고추장을 넣고 볶다가 물, 열무, 고추를 넣고 볶는다. 7분 정도 자작하게 졸이듯이 끓이면 열무 강된장 완성. 밥 한 그릇에 강된장 절반, 생열무 조금 썰어 넣고 참기름 둘러 비벼 먹는다. 3. 생열무 김밥 생열무 비빔밥을 좋아한다면 이 요리도 좋아할 것으로 생각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김, 밥, 생열무, 단무지만 있으면 준비 끝. 깻잎 몇 장 추가하면 향도 좋아진다. 생열무 김밥의 포인트는 고추장 소스와 함께 먹기! 간단하지만 생열무의 아삭한 식감과 깻잎의 향에 반해 계속 먹게 될 것이다. - 재료: 밥 1그릇, 생열무 1~2개(100g), 김밥 김 2장, 깻잎 4장, 단무지 2개 - 양념: 고추장 1/2T, 매실청 1/2T, 식초 약간 김밥 김은 절반으로 자른다. 열무는 삼등분하고, 단무지는 이등분한다. 김밥 김을 세로로 놓고 밥을 2/3 지점까지 얇게 편다. 깻잎을 얹고 열무, 단무지를 넣고 말아준다. 꼬마 김밥 4개를 만든다. 양념을 모두 섞어 소스를 만든 뒤 김밥 위에 올려 먹는다.
채소들은 사람들의 호불호 테스트에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런 채소 목록 중에서도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게 바로 가지가 아닐까 싶다. 가지는 오이, 당근만큼이나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극명하게 나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글의 첫 문장을 읽었을 때부터 이미 가지에 대한 답변이 자동으로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가지는 가끔 독특한 영역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익힌 물컹한 가지는 싫은데 튀기거나 볶은 가지는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자칭 채소 영업인으로서 이럴 때 보면 조리법에 따라 그 어렵다는 '불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희망을 품기도 한다. 나에게 가지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이다. 그러나 단지 좋고 싫은 취향의 영역에서 논의되기에는 가지의 존재가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비건 요리를 하는 내게는 그렇다. 가지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얼마나 많은지... 나라마다 자신들의 고유한 가지 전통 요리들을 가지고 있다. 가지를 쪄서 간장과 참기름에 무치는 한국식 반찬부터, 가지를 볶고 졸여 먹는 일본식 가지 요리들. 특히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생산된 가지를 가장 많이 수입해 갈 만큼 가지 사랑이 남다르다. 또 가지와 토마토소스를 활용한 세계의 요리들은 어떤가? 가지와 토마토는 다른 식물에서 매달린 열매이지만 마치 하나의 영혼을 공유한 사이인 것처럼 요리에서 하나가 된다. 이런 비밀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나라마다 가지와 토마토 요리를 만들어냈다. 프랑스의 라따뚜이, 이탈리아의 가지 롤라티니, 그리스의 무사카, 튀르키예의 이맘 바이르디까지, 이것만 해도 가지와 토마토가 최고의 조합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가지로 만드는 요리들만 모아도 두꺼운 백과사전에 담겨도 될 만큼, 가지는 그만큼 요리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다. 가지 패티와 가지 패티 버거 이렇게 가지가 특별한 존재가 된 데에는 특별한 질감 덕분이다. 가지는 스펀지 같은 질감을 가지고 있다. 이 질감 덕분에, 세상에 없던 새로운 요리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한정된 재료로 요리를 해야 하는 비건 요리에서 더욱 환영받는다. 내가 가지로 가장 자주 해 먹는 요리는 비건 요리는 '가지 패티'다. 가지를 전자레인지에 살짝 익혀 수분을 제거하면 하나의 반죽처럼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다진 병아리콩, 마늘, 양파, 약간의 밀가루와 소금, 후추를 넣어 뭉쳐주면 식물성 패티가 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앞뒤로 지글지글 구워내면 구워진 모양새도 햄버거 속 패티 딱 그 느낌이다. 작게 만들어서 빵가루를 묻혀 구워주면 팔라펠이 되고, 기름에 튀기면 크로켓도 만들 수 있다. 그뿐인가, 가지를 슬라이스해서 굽다가 간장, 미림, 설탕을 섞어 졸여주면 흡사 장어구이 같은 초밥도 만들 수 있다. 이때부터는 가지는 가지를 넘어선 무엇이 된다. 단 한 가지, 가지 요리를 할 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색깔'이다. 가지는 보라색이 여러 겹으로 중첩된, 짙은 보랏빛의 검정으로 보인다. 보라색 영혼을 가진 검정인 것이다. 그러나 보라색 영혼은 어찌나 연약한지, 가지에 열을 가하면 금세 사라져 버린다. 보랏빛 영혼이 빠진 가지는 빛을 잃은 낙엽 같은 갈색의 존재로 남아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가지 요리는 맛있지만, 보라색이 사라진 가지 요리는 왠지 아쉬움이 있다. 그럴 땐 '식초'를 사용하면 된다. 식초로 보라색 영혼을 붙잡아둘 수 있다. 식초 물에 담갔다가 조리를 시작하거나, 볶을 때 레몬즙이나 식초를 조금 넣어주면 가지의 보랏빛이 더욱 생생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어쩐지 보랏빛 영혼을 간직한 가지 요리를 먹는다면 신비로운 효험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한의학에서 가지는 냉한 기운을 가진 채소라 한다. 무더운 여름의 열을 식혀주기 때문에 여름에 즐기기 딱 좋은 채소다. 가지는 식이섬유가 많고 칼륨이나 망간과 같은 무기질, 비타민 B2 섭취가 가능하다. 그리고 가지의 항산화 성분들은 염증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가지의 항산화 성분을 가장 손실 없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찜기에서 찌는 것이다. 몸의 안과 밖이 모두 무더운 8월. 아무리 부채질해도, 선풍기를 틀어도 더위가 가시지 않을 때 시원한 가지 여름 요리로 버텨보자. 여름에 먹기 좋은 가지 요리들을 준비했다. 시원한 가지 여름 요리 1. 보랏빛 가지찜 샐러드 선명한 가지의 보랏빛 영혼을 간직한 요리다. 식초 물에 담가 찜기에 쪄내 보라색을 살리고, 올리브유와 레몬즙으로 만든 상큼한 드레싱을 부어 먹는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먹으면 간도 잘 배고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 약간 식힌 다음 바로 먹으면 웜 샐러드로 먹어도 좋다. - 재료: 가지 200g, 양파, 파프리카, 쪽파 약간, 물 500ml와 식초 2T - 드레싱: 올리브유 1.5T, 레몬즙 1T, 간장 1/2T, 설탕 1/2T, 소금 1/2t, 후추 *1T는 밥숟가락에 평평하게 담은 것을 기준으로 합니다. 가지는 손가락 세 마디 길이로 썰고 8등분 한다. 물에 식초를 넣고 가지를 5분간 담가둔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찜기에 넣고 1분 30초 동안 찐 다음 체에 밭쳐 식힌다. (물로 씻으면 갈색으로 변하지 씻지 않는다.) 접시에 가지를 담고 드레싱을 모두 섞고 끼얹어주면 완성. 2. 가지절임과 냉 오차즈케 가지만 미리 재워두었다면 3분 안에 완성되는 초간단 요리, 게다가 몸도 3분 안에 급속 냉각되는 느낌이다. 일본의 오차즈케처럼 가루 없어도 전혀 상관없다. 어떤 차든 우려서 시원한 물과 얼음을 넣으면 된다. 보리차도 좋고, 메밀차, 우롱차도 맛있다. 팁이라면 바로 지은 따끈한 밥을 넣으면 밥의 찰기가 더욱 잘 느껴진다. 시원하게 먹으면서 미식까지 챙길 수 있는 메뉴. - 재료: 밥 1그릇, 가지 160g, 표고버섯 약간, 시원한 차 300ml, 마른 김 약간 - 양념: 진간장 2.5T, 물 3T, 맛술 1T, 식초 1/2T, 설탕 1/2T, 다시마 작은 조각 1개, 생강 약간, 페페론치노 약간 녹차나 차 종류는 따뜻한 물에 우린 후 시원한 물과 얼음을 섞어 냉장고에 보관해 둔다. 가지는 반으로 가르고 겉면에 사선으로 칼집을 내고, 표고버섯은 기둥을 떼어낸 뒤 채 썰어 예열한 팬에 노릇하게 기름 없이 굽는다. 밀폐용기에 양념을 모두 섞고 녹을 때까지 저어준 뒤, 구운 가지와 표고버섯을 넣고 3시간 이상 담아둔 다음 먹는다. 그릇에 밥을 담고 차가운 차를 부어준 뒤 가지와 표고를 올리고 김가루를 올려 밥과 함께 먹는다. 3. 가지 라자냐 라자냐 면 대신 제철의 통통한 가지를 라자냐로 사용해 보자. 열량도 줄이고 토마토소스와 만나면서 내 영혼까지 풍요로워지는 느낌이다. 다행히 라자냐는 더운 여름에 약간 고마운 요리다. 불 앞에 서 있지 않아도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가 대신해주기 때문. - 재료: 가지 1.5개 (350g), 토마토퓌레 300ml, 소금 약간 - 두부 리코타 치즈: 두부 250g, 양파 50g, 쪽파 50g, 마늘 3~4개, 소금 1/2t, 올리브유 1.5T *2인분 분량이며 라자냐를 구울 1,100ml 이상의 내열 용기를 준비한다. 가지는 1cm 두께로 슬라이스 하고 소금을 앞뒤로 뿌린 후 수분을 키친타월로 제거한다. 오븐 185도에서 15분 정도 구워 수분을 날린다. 수분을 제거한 두부에 리코타 치즈 재료를 모두 다져 넣어 섞는다. 좋아하는 향신료를 추가해도 좋다. 라자냐를 만들 용기에 구운 가지를 깔고 토마토퓌레를 바른 다음 두부 리코타 치즈를 얹는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가 마지막에는 남은 토마토퓌레를 모두 부어준다. 오븐 185도에서 30분 동안 구워주면 완성. 바질이나 파슬리 같은 허브를 얹어주면 더욱 맛있다.
나는 언젠가부터 감자로 여름을 지낸다. 감자를 살 때면 마트에서 조금씩 사지 않고, 온라인에서 산지 직송하는 감자를 3kg이나 5kg 박스로 산다. 이때부터 1인 가구의 식단에는 감자가 주식이 된다. 다년간 감자만 먹고 여름을 지내며 누군가 감자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항상 '감자구이'라고 말한다. 감자구이의 핵심은 작은 조림용 감자를 통째로 굽는 것이다. 깨끗하게 씻은 감자는 잘리지 않을 정도로 약간 깊게 십자를 낸다. 양념은 오로지 올리브유와 소금뿐이다. 올리브유 한 바퀴 반 정도 두르고 굵은 천일염을 뿌린 뒤 감자 표면에 묻을 수 있도록 고루 버무려준다. 이 상태로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180도로 30분 정도 굽는다. 젓가락으로 찔렀을 때 푹 들어가고 껍질이 노릇하게 구워졌으면 완성이다. 바로 먹어도 맛있지만 한 김 식힌 후에 통에 넣고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어도 맛있다. 게다가 냄새도 나지 않아서 도시락으로도 제격이다. 감자를 한입에 가득 넣고 먹는다. 껍질의 약간 아린 맛은 노릇하게 구워진 껍질의 풍미로 가려지고, 쫀득하게 씹히는 감자의 밀도와 구운 소금이 만나면서 감자의 풍미가 폭발한다. 씹을수록 감자의 부드러움과 단맛, 짠맛, 고소한 맛이 어우러지며 점점 더 맛이 깊어진다. 에어프라이어 감자구이(좌)와 감자샐러드(우) 5년 전에는 이 감자구이에 빠져서 거의 매일 점심을 감자구이만 먹으며 지낸 적도 있었다. 모두 점심을 먹으러 나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먹으면 감자의 맛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집중해서 감자구이를 먹다 보면 어느새 도시락으로 싸 온 감자 6개가 사라지고 도시락통은 텅 비어 있다. 금방 사라져 버린 감자가 아쉬워서 오늘도 퇴근해서 감자를 구워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감자만으로 부족할 때는 채소 스틱을 함께 싸갔다. 셀러리, 당근, 토마토 같은 것들을 감자구이에 곁들이기만 하면 도시락이 완성된다. 매일 매일의 조각 시간마저도 소중했던 직장인 시절, 감자 구이는 여유 시간을 선물해 주는 고마운 메뉴였다. 날마다 새로운 감자 요리들 감자구이 다음은 감자샐러드다. 감자샐러드는 감자구이보다 요리하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한 번에 며칠 먹을 분량을 미리 만들어 둘 수 있다. 식빵 사이에 넣고 당근 라페, 로메인을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고, 남은 감자샐러드는 내열 용기에 넣고 겉면을 포크로 긁어 무늬를 만든 후 오븐에 살짝 구워 먹는다. 그래도 감자샐러드가 남았다면 빵가루를 묻혀 기름에 구워 크로켓을 만들어 안주까지도 가능하다. 이렇게 감자 요리 한 바퀴를 돌면 감자 한 박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서 또 주문하게 된다. 이것 말고도 감자로 해 먹고 싶은 요리들은 줄을 서 있다. 밀가루 없이 감자만으로 만드는 감자전, 감자수프와 구운 사워도우, 클래식한 감자채볶음이나 왠지 한 번쯤은 먹고 싶은 간장과 올리고당으로 졸여낸 감자조림, 감자 듬뿍 넣은 카레까지. 감자만 요리해 먹다 보면 어느새 여름이 끝나있다. 그렇게 감자와 여러 해의 여름을 함께했다. 감자를 매일 먹으면 일어나는 일들 감자를 매일 먹으면서 느낀 점은 피부가 부드러워진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감자를 사흘 이상 먹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피부가 사우나에 다녀온 것처럼 부드러워진다. 흡수력이 매우 좋은 촉촉한 바디로션을 바른 것처럼 피부가 매끄럽고 피부에 수분이 가득하다. 궁금해서 감자의 효능을 찾아봤지만, 피부 미백에 좋다는 효능은 쉽게 찾을 수 있어도 촉촉해진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아마 감자에 많은 비타민 C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비타민 C가 많은 파프리카나 귤과의 과일을 많이 먹을 때는 피부에 큰 변화는 없었다. 유독 감자를 먹을 때에만 피부가 달라졌다. 아쉽게도 눈으로 봤을 때는 큰 차이가 없어서 주변 사람들은 감자를 매일 먹으면 촉촉해진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유럽의 많은 국가는 감자가 주식이다. 감자는 주식으로 먹고살아도 충분할 만큼 영양이 골고루 풍부하다. 감자만으로도 탄수화물,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까지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다. 덩이줄기인 감자는 땅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흙의 풍부한 미네랄도 담고 있고, 쌀이나 밀가루와 같은 곡류에서는 섭취할 수 없는 비타민도 채워준다. 특히 비타민 C가 많아서 감자 작은 것 2개(400g)면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 C의 절반은 충족된다.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서 재배한 작물로 감자를 선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흉년이 잦았던 조선에서도 기근이 심해지면 기근을 구하는 작물로 감자를 지정했다. '구황작물'이라는 말의 어원도 기근을 구하는 작물이라는 뜻에서 온 것이다. 또 감자의 단백질은 유청단백질의 아미노산 구성과 유사해서 근육 합성을 돕는다고 한다. 괜히 감자를 먹으면 튼튼해지는 것 같던 느낌은 사실이었다. 여름에 추천하는 감자 요리들 나는 지금도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싶은 사람들에게 감자를 추천한다. 바로 시들고 상하는 잎채소나 열매채소들보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고 영양 섭취 면에서도 효율적이다. 또 여러 나라에서 즐겨 먹는 채소이기 때문에 레시피도 많다. 나도 지금까지 만든 비건 레시피가 300개가 넘지만, 그중에서도 감자를 이용한 요리가 가장 많다는 것을 이번 주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어떤 감자 요리를 소개할지 고민이 되었지만, 여름철이니만큼 축 처진 몸에 기력과 활력을 줄 수 있는 감자 요리를 가져왔다. 입맛 돋우는 감자 요리로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무사히 생존할 수 있기를! 1. 진짜 감자탕 고기 없이 감자로 끓여낸 진짜 감자탕. 감자만 있어도 깻잎과 들깨, 양념 비율만 잘 맞춰주면 감자탕이 완성된다. 들깻가루와 깻잎, 버섯, 감자가 듬뿍 들어간 감자탕을 먹으면 기력이 보충되는 느낌이다. 실제로도 진짜 감자탕 1그릇으로 철분, 마그네슘, 인, 칼륨, 망간 등 무기질을 고루 섭취할 수 있고 뼈에 좋은 비타민 K와 칼슘, 그리고 피로 회복에 좋은 비타민 B군을 듬뿍 섭취할 수 있다. 시래기나 수제비 사리를 추가해도 좋다. - 재료: 감자 1개(200g), 느타리버섯 100g, 깻잎 15~20장, 양파 1/2, 대파 1대, 부추 약간, 물 500ml - 양념: 된장 2T, 고추장 1T, 들깻가루 2T, 고춧가루 1/2T, 다진 마늘 1/2T *1T는 밥숟가락에 평평하게 담은 것을 기준으로 했다. 감자와 양파, 대파, 깻잎은 두껍게 썰고 버섯은 손으로 뜯는다. 물 500ml에 감자, 양파, 대파를 넣고 3분 정도 중불로 끓인다. 끓는 채수 한 스푼에 양념장(들깨 한 스푼은 마지막에 넣을 들깨 한 스푼을 남기고)을 모두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둔다. 끓는 냄비에 버섯과 양념을 넣고 중불로 5분 정도 푹 끓인다. 마지막에 깻잎과 부추, 들깨를 넣어 1~2분 정도 익히면 끝. 깻잎을 좋아한다면 듬뿍 넣을수록 맛있다. 2. 감자도리탕 기운 없이 축축 처지는 날, 강렬한 맵단짠으로 도파민을 끌어 올려 보자. 매콤한 감자도리탕을 땀 흘리며 열심히 먹고 나면 개운한 느낌마저 든다. 밥도 두 그릇 먹게 되는 마법의 감자도리탕. 우동이나 떡 사리를 추가하면 안주로도 좋다. - 재료: 감자 1.5개(300g), 새송이버섯 1개(100g), 양파 1/2, 당근 약간, 물 600ml, 참깨 - 양념: 다진 마늘 2T, 고춧가루 듬뿍 2T, 고추장 1T, 간장 2T, 올리고당 1T, 식용유 1T, 설탕 1/2T, 소금 1t, 물 3T 감자는 네 등분하고, 새송이버섯과 양파, 당근도 비슷한 크기로 썬다. 냄비에 감자와 물을 넣고 7분간 중불로 끓인다. 양념을 모두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 놓고, 나머지 채소와 떡 사리, 양념장을 넣고 중불로 5분 끓인 뒤 약불로 줄여 5분간 졸이면 완성. 3. 감자 냉채 샐러드 불 앞에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지친 날에는 감자 냉채 샐러드를 추천한다. 감자를 채 썰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주기만 하면 완성되는 감자 요리. 게다가 겨자를 넣은 알싸한 양념 덕에 산뜻하게 한 끼 먹을 수 있다. 겨자 대신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쓸 수 있다. 밥반찬으로도 좋고 빵 사이에 끼워 먹어도 맛있다. - 재료: 감자 1개(200g), 당근 약간 - 양념: 비건 마요네즈 2T, 연겨자 1/2T, 식초 1T, 설탕 1T, 소금 1/2t, 후추 약간 감자와 당근은 채칼로 얇게 채 썬다. 끓는 물에 감자를 넣고 1분간 데친 후 찬물로 헹궈 수분을 짜낸다. 양념을 모두 섞어 소스를 만든 후 감자, 당근 채에 넣고 버무린다.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내가 유일하게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채소는 바로 '토마토'다. 사실 채식을 하기 전에는 토마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토마토를 생으로 먹으면 느껴지는 날카로움과 묽은 신맛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치 날것으로 먹으면 안 되는 무언가를 생으로 먹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즐겨 먹는 채소를 꼽으라면 토마토를 뽑는다. 토마토를 잔뜩 먹을 수 있는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지난달 아는 분의 토마토 농장에 방문했다. 하우스에 들어가자마자 토마토 잎의 향기로 가득하다. 토마토 잎 사이로 스치며 걸을 때마다 잎은 더욱 짙은 향기를 내뿜는다. 토마토 열매의 꼭지에서 나는 향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좀 더 상쾌하고 허브에 가깝다. 까끌까끌하고 짙은 초록의 잎에서 나는 풋풋하면서도 거친 향기가 왠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제초제와 화학비료, 농약 없이 친환경으로 재배했다는 토마토를 따서 바로 먹어보았다. 한 입 베어 물자마자 입안 가득한 토마토의 짙은 향기에 눈이 번쩍 뜨인다. 식감은 잘 익은 단감처럼 부드럽고, 짠맛 단맛 신맛이 평소에 먹어왔던 토마토의 두 배로 느껴진다. 모든 맛이 조화롭게 가득 차 있다. 이런 토마토라면 채식하기 전에도 토마토를 좋아했을 것 같다. 게다가 토마토 잎 허브향 가득한 공간에서 바로 먹는 토마토라니, 마트에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토마토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강렬하게 각인시켜 주는 경험이었다. 생토마토를 잘 먹게 된 요즘, 토마토를 가장 맛있게 먹는 나만의 방법은 바로 '소금'이다. 슬라이스한 토마토에 소금을 살짝 뿌리거나,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소금에 버무려 놓으면 토마토가 가진 맛과 향이 2배는 짙어진다. 생토마토의 날카로운 신맛도 둥글게 무뎌져서 먹기에도 편하다. 소금을 살짝 뿌린 토마토는 샐러드, 샌드위치, 오픈 토스트에 제격이다. 특히 두부 마요네즈를 살짝 버무려서 빵 사이에 끼워 먹는 토마토 상추 샌드위치도 자주 해 먹는다. (6월 스프카세 상추 편에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다.) 생으로 먹는 것뿐만 아니라 요리에 활용된 토마토는 제각각 다양하게 맛을 살려준다. 볶거나 끓인 토마토가 맛있어지는 이유는 토마토의 아미노산 때문이다. '맛의 원리(최낙언)'에 따르면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은 대체로 분자가 커서 맛으로 느끼지 못하지만, 잘 익은 토마토에는 맛으로 느낄 수 있는 분해된 아미노산인 글루탐산이 59%나 있어서 감칠맛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우유가 5%, 다른 채소가 10%인 것에 비하면 토마토는 감칠맛을 위해 존재하는 채소인 셈이다. 서양 요리의 토마토가 기본 재료가 이유인 것도 그 덕분이다. 특히 수프, 소스에 넣어 푹 끓이면 감칠맛이 증폭된다. 그래서 나는 한식 요리에도 곧잘 토마토를 활용하는데, 양념을 털어낸 김치, 양파, 토마토를 넣어 푹 끓이면 스튜 같은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고, 라볶이에 넣으면 따로 조미료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감칠맛이 도드라진다. 또 고추장과 함께 기름에 볶으면 소고기 볶음고추장 못지않은 맛있는 비건식 토마토 고추장소스를 만들 수 있다. 토마토는 요리에도 요긴하지만 영양도 뛰어나다. 눈이나 피부, 면역력에 좋은 비타민A, 비타민C를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고, 칼륨, 인, 마그네슘 같은 무기질도 섭취할 수 있다. 또 토마토를 건강 대표 격 채소로 만들어 준 항산화 성분인 리코펜이 있다. 리코펜은 기름과 함께 섭취하면 흡수율도 좋아져서 올리브유를 뿌려 먹거나 기름에 볶아 먹으면 효율적이다. 만약 하루에 한 끼라도 채식을 실천하고 싶다면 채식 입문용 채소로 토마토를 추천한다. 먹고 싶은 요리에 동물성 재료 대신 토마토를 넣어보자. 토마토의 감칠맛으로 성공 확률을 높인 요리를 만들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특히 여름에 해 먹기 좋은 토마토 요리들을 가져왔다. 올여름 토마토의 감칠맛에 푹 빠져보시길. 토마토의 숨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레시피 1. 두부 카프레제 샐러드 불을 쓰지 않고도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여름 필수 메뉴, 토마토와 두부를 함께 먹는 카프레제 샐러드다. 보통 카프레제에는 치즈가 기본이지만 두부와 함께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 포인트는 두부와 토마토 각각 소금을 뿌려 살짝 간이 배야 하고, 두부는 수분을 제거할수록 모짜렐라 치즈의 단단한 식감에 가까워진다. 여기에 향긋한 바질까지 얹어주면 더할 나위 없다. - 재료: 토마토 1~2개, 두부 2/3모, 바질, 소금 & 후추 약간 - 드레싱: 올리브유 1T, 발사믹 식초 1T *1T는 밥숟가락을 평평하게 담은 것을 기준으로 했다. 두부는 0.5cm 두께로 썰어 소금을 뿌린 뒤 키친타월에 올려 수분을 뺀다. 토마토는 슬라이스하고 가는소금을 뿌려둔다. 접시에 두부, 토마토를 번갈아 가며 올린 다음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뿌린다. 바질로 장식한다. 발사믹 식초가 없다면 오리엔탈 드레싱을 만들어 뿌려먹으면 좋다. 사과식초1T, 설탕1/2T, 올리브유 1T, 소금 2/3t, 간장4~5방울, 후추를 잘 섞으면 오리엔탈 드레싱 완성. 2. 토마토 라볶이 토마토를 넣으면 토마토의 감칠맛 덕분에 조미료, 설탕량을 줄일 수 있어서 일거양득이다. 자극적인 라볶이가 먹고 싶을 때는 토마토를 넣어보자. - 재료: 라면사리 1개, 떡볶이 떡 1줌(선택), 토마토 1~2개, 양파 1/4개, 양배추 1장, 쪽파 약간, 물 500ml - 양념: 고추장 1T, 고춧가루 1.5T, 올리브유 1/2T, 라면수프 1T, 설탕 1t, 토마토케첩 1T, 후추 취향껏 양파는 채 썰고, 토마토와 양배추는 적당한 크기의 사각으로 썬다. 쪽파(또는 대파)는 잘게 썬다.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토마토를 중불로 볶다가 수분이 나올 때쯤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 양파를 넣고 1분 내외로 타지 않게 약불로 볶는다. 소스가 잘 섞이면 물, 양배추, 라면수프를 넣고 끓인다. 국물이 끓으면 라면 사리와 떡을 넣고 2분 정도 끓인 후 케첩, 후추를 뿌려 마무리한다. 접시에 담고 쪽파를 올린다. 3. 토마토 가스파초 여름에 구하기 쉬운 토마토, 오이, 양파, 마늘, 피망을 넣고 곱게 갈아 시원하게 먹는 스페인식 냉수프 가스파초. 가스파초의 핵심은 묵은 빵 한 조각이다. 재료를 넣고 갈 때 빵을 넣어야 걸쭉한 식감이 완성되고 들어간 재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맛을 한 층 돋우는 역할을 한다. 열량도 매우 낮아서 식단 관리할 때 추천하는 메뉴다. - 재료: 토마토 1.5개, 오이 1/2개, 피망 1/3개, 양파 1/4개, 마늘 2알, 빵 1/2조각 - 양념: 올리브유 3T, 발사믹 식초 1.5T, 라임 과즙 1.5T, 소금 1/2t, 얼음 2개 - 토핑: 올리브유, 후추, 크루통 토핑으로 올릴 오이, 피망, 토마토 약간은 작은 큐브 모양으로 썬다. 토핑 재료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모두 넣고 블렌더로 곱게 갈아준다. (더욱 시원하게 먹고 싶으면 냉장고에 15분 이상 넣어둔다.) 그릇에 가스파초를 담고 토핑용 오이, 피망, 토마토를 올린 다음 취향에 따라 올리브유, 후추, 크루통을 얹는다.
마침내 깻잎이 풍성해지는 계절이 왔다. 열댓 장 들어있던 깻잎이 다섯 뭉큼으로 늘어난다. 한 끼니에 한 봉지씩은 먹어 치울 만큼 깻잎을 좋아한다. 얼마 전 깻잎 냉파스타가 다시 화제가 되며 '들깨사랑단'이라는 명칭을 얻었는데, 깻잎부터 들깨, 들기름까지 모두 즐기는 사람으로서 아주 만족스러운 이름이다. 깻잎은 냉해만 입지 않으면 냉장고에 꽤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먹기 전에 미지근한 물에 담가두면 10분 정도면 다시 쌩쌩해진다. 곱게 포개져 있는 깻잎도 좋지만, 상품성이 떨어지는 깻잎들을 봉지에 마구 눌러 담은 바라깻잎도 좋아한다. 엄청난 양이지만 깻잎나물로 먹으면 몇 끼니 먹으면 금세 사라진다. 깻잎나물을 넣어 먹은 김밥도 참 맛있다. 여러모로 깻잎을 좋아하는 인간에게 행복한 계절이 아닐 수 없다. (우) 들깻잎 / (좌) 바라깻잎 깻잎이 어디에서 왔을지 궁금해졌다. 검색해 보니 중국 남동부나 인도의 고지대가 원산지라고 한다. 한국에서만 깻잎을 먹는 줄 알았는데 인도와 중국이라니. 궁금해서 인도에서 먹는 깻잎 요리는 보니 깻잎보다는 들깨를 돌판에 갈아서 고수, 고추, 양념류를 섞어 페스토처럼 먹고 있었다. 카레에도 들깨를 넣는다고 하니 깻잎보다는 들깨 위주로 먹는 것 같았다. 중국에서는 말린 깻잎을 향신료처럼 사용하기는 하지만 한국처럼 생 깻잎을 먹는 자료는 찾기가 어려웠다. 일본에서도 들기름이 있기는 하지만 참기름이 더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깻잎부터 들깨(들깻가루), 들기름 모두를 폭넓게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는 한국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왠지 전 세계인들이 즐기지 않는 채소를 좋아한다니 들깨사랑단으로서 괜히 특별해진 느낌마저 든다. 가끔 스페인 요리 유튜버들을 보면 스페인의 올리브유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것들을 본다. 한국에서는 들기름에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들기름은 동물성, 식물성 재료를 모두 통틀어 오메가3가 가장 많은 기름이기 때문이다. 보통 오메가3의 급원은 고등어로 알려졌지만, 고등어구이 한 토막(약 200g)을 먹을 때 섭취할 수 있는 오메가3를 들기름 한 스푼(약 9g)으로 섭취할 수 있다. 오메가3는 지방 중에서도 이로운 지방으로 손꼽히는 영양이다. 들깨에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깻잎에는 칼슘, 마그네슘, 비타민K, 비타민A, 비타민C가 많아 영양적으로도 우수하다. 게다가 들깨는 어느 땅에서나 잘 자란다. 작년에 떨어져 있던 들깨가 날이 따뜻해지면 발아해서 쑥쑥 자라난다. 깻잎의 향이 워낙 강해서 고라니나 멧돼지들도 먹지 않고 대부분의 벌레도 먹지 않아 비료나 농약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깻잎의 강한 향기는 페릴라케톤이라는 정유 성분 때문이다. 깻잎이 스스로를 동물이나 벌레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화학 물질인데, 스스로 항산화 물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동물과 인간은 식물을 먹음으로써 항산화 기능을 습득한다. 페릴라케톤이라는 성분은 식중독 예방 효과가 있고, 또 깻잎에는 파이톨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는 병원성 세균을 제거하고 면역 기능을 강화한다고 한다. 깻잎은 뼈에 좋은 비타민K와 칼슘도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고, 마그네슘, 비타민A도 많다. 깻잎만 잘 챙겨 먹어도 여름철 무기질, 비타민, 식중독 없는 여름을 보낼 수 있다. 단점이 있다면 들깻가루나 들기름은 산패가 빠르게 진행된다. 영하 4도의 냉장고에 밀봉한다면 최대 두 달까지 보관할 수 있지만, 사실 1인 가정에게 한 병의 들기름이나 들깻가루 작은 한 봉지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나는 들기름은 가장 작은 사이즈를 구입하고, 들깻가루보다 통들깨를 구비해 둔다. 먹기 직전에 절구나 믹서기로 갈아서 넣으면 산패 위험 없이, 그리고 통들깨 껍질의 단백질과 영양성분도 섭취할 수 있어서 효율적인 방법이다. 한 끗 다른 미식을 즐기는 스프카세 독자들을 위해 깻잎을 활용한 조금 다른 요리들을 가져왔다. 깻잎이 풍족한 이 계절에 잘 어울리고 평소에 먹던 깻잎 반찬이 아니라 깻잎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기에 충분한 요리들이다. 깻잎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기에 충분한 레시피 1. 깻잎 냉파스타 2022년 트위터에 깻잎 냉파스타 레시피를 올린 이후로 누적 600만 조회수를 기록한 깻잎 냉파스타. 깻잎부터 들깻가루, 들기름까지 들깨의 생애가 한 접시에 담겼다. 파스타만 삶으면 돼서 무더운 여름날 간편하게 해 먹기에 좋고, 드레싱은 넉넉하게 만들어 두면 여러 번 먹을 수 있다. 단백질이 없어 보여도 깻잎, 들깨, 파스타만으로도 총 16.6g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깻잎을 두껍게 썰면 맛이 강하고 혀가 아리기 때문에 얇게 썰어야 전체적으로 조화롭다. 양파장아찌는 필수! 구운 버섯이나 삶은 감자를 함께 먹어도 맛있다. - 재료: 파스타면 80g, 깻잎 51장, 양파장아찌 - 드레싱: 들깻가루 3T, 들기름 1.5T, 간장 1T, 식초 1T, 설탕 1/2T 양념 재료를 모두 섞어 드레싱을 만든다. 파스타 면은 제품 설명에 안내되어 있는 것보다 1~2분 정도 넉넉히 익힌다. 찬물에 가볍게 헹궈 물기를 빼고 드레싱을 섞은 뒤 냉장고에 넣고 5분 이상 보관해 면을 차갑게 만든다. 깻잎은 바짝 돌돌 말아 얇게 채 썰고 뭉친 것들을 흩트려준다. 접시에 면을 담고 깻잎을 곁들인다. 2. 깻잎 돌김전 깻잎으로 전을 시도해 본 적이 없다면 바로 해 먹어보시길. 바삭한 반죽에 돌김까지 넣으면 풍미가 배가 된다! 마치 깻잎을 넣은 김말이 같달까. 전 반죽에 얼음을 넣으면 기름이 구울 때 온도 차이가 커져서 전이 훨씬 바삭해진다. - 재료: 깻잎 25장, 조미되지 않은 김 3장, 풋고추 1개, 양파 약간 - 전 반죽: 튀김가루 듬뿍 3.5T, 전분가루 듬뿍 2T, 얼음물 60ml, 소금 1꼬집 - 양념장: 간장 1/2T, 설탕 1/2T, 식초 1/2T, 물 2T 김은 잘게 잘라 물에 풀어놓는다. 깻잎은 적당한 두께로 썰고, 양파와 고추는 채 썬다. 가루류와 얼음물과 소금을 섞은 뒤 물에 풀어둔 김은 물기를 짜고 넣어 반죽을 만든다.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예열한 뒤, 반죽 한 덩어리씩 떼어 튀기듯이 굽는다. 앞뒤로 1~2분 정도 익힌 뒤 채반에 받쳐둔다. 양념장을 만들어 찍어먹는다. 3. 깻잎 볶음 김밥 깻잎 100g은 거뜬히 해치울 수 있는 메뉴. 많은 양의 깻잎이 필요하기 때문에 깻잎 순이나 봉지에 가득 들어있는 바라 깻잎을 추천한다. 재료는 심플하게 깻잎, 당근, 단무지. 단백질을 조금 추가하고 싶다면 두부 한 조각 구워 넣는다. 김밥 1줄일 뿐인데 단백질은 20.4g이나 섭취할 수 있는 고단백 김밥이다. - 재료: 밥 1그릇, 깻잎 순 한 뭉치(100g), 마늘 10알, 당근 1/3개 (30g), 단무지 1개, 두부 1조각 - 깻잎 볶음 양념: 식용유 1.5T, 간장 1.5T, 물 100ml, 들깻가루 2T 깻잎은 손가락 두 마디 길이로 썰고, 당근은 채 썬다. 마늘은 잘게 다지고, 두부는 1cm 두께로 길게 썬다. 예열한 팬에 식용유를 둘러 두부와 당근을 각각 볶은 다음 접시에 덜어둔다. 식용유를 두르고 마늘을 약불에 서서히 익힌 뒤 깻잎, 물, 간장을 넣고 중불로 뭉치는 부분이 없도록 고르게 볶는다. 깻잎 숨이 죽었을 때쯤 들깻가루를 넣고 약불로 볶아 체에 밭쳐 물기를 빼며 한 김 식힌다. 김밥 김 위에 밥을 펴고 깻잎 낱장을 깔고 깻잎나물, 단무지, 두부, 당근 순서로 올리고 깻잎으로 덮고 말아 준다. 들기름 살짝 발라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세상에 많고 많은 채소 중에 가장 친근하면서도 특별한 요소가 없는 평범한 채소를 고르라면 상추가 떠오른다. 상추는 언제나 곁들여지는 존재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없으면 섭섭한 것, 요리를 멋스럽게 담을 때 놓이거나, 샐러드 아래에 큰 부피를 차지하기 위해서, 비빔밥이나 비빔국수에서도 풍성해 보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 상추 재배 면적이 늘어난 이유가 육류 소비량 증가와 함께라는 사실을 들여다보면 상추의 위치가 어디쯤 위치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상추쌈에 대한 사랑은 강렬하다. 해외에서는 상추는 보통 샐러드에 들어가는 생채소이지만, 한국에서 소비되는 상추는 여전히 '쌈'이 대표적이다. 손바닥 위에 상추를 깔고 상추를 보자기 삼아 밥과 양념, 고기나 반찬거리를 올려 싸서 한입에 먹는다. 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먹는 과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여러 감각을 동시에 사용한 덕분에 각각의 재료들을 먹는 것보다 왠지 '쌈'으로 먹는 과정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상추의 쓴맛으로 시작해서 밥의 단맛, 양념의 짠맛, 고기나 반찬에서 오는 식감과 지방의 풍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의 맛을 순차적으로 느끼게 한다. 쌈의 시작과 끝에는 상추가 있다. 반찬이 단조롭더라도 상추만 있으면 왠지 그날의 식사는 더욱 풍요롭게 느껴진다. 상추는 국립종자원에 757개가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품종이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접하는 상추는 잎상추, 배추상추, 결구상추, 줄기상추로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잎 상추는 잎 형태로 수확되고 청색과 적색으로 나뉘어있다. 보통 시장이나 마트에서 자주 보이는 상추들이 대체로 잎 상추에 속한다. 배추상추는 로마인들이 즐겨 먹었다고 이름 붙여진 로메인이다. 잎이 둥근 숟가락 형태이고 쓴맛이 덜하며 연하고 샐러드나 샌드위치로 먹는다. 동그란 구 형태로 자라는 버터헤드, 아이스버그와 같은 상추는 결구상추에 속한다. 아스파라거스나 셀러리처럼 곧고 길게 자라는 줄기상추는 줄기까지 먹는다. 보통 궁채라고 알려진 것이 줄기상추이고 한국에서는 국산 줄기상추를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청상추, 적상추, 로메인 (왼쪽부터) 상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해서 봄에 파종하고 5~7월에 수확한다. 꽃대가 자라면 맛과 영양이 덜해지는 다른 작물과 다르게(대표적으로 지난 글의 주제였던 마늘종이 있다.) 꽃이 피어도 계속해서 수확해 먹을 수 있다. 기온이 오르면 상추의 섬유질이 질겨지고 쓴맛이 생기기 때문에 지금 같은 날씨가 가장 상추가 많고 맛있을 테다. 텃밭이나 화분에서 상추를 직접 길러 먹는 경우도 많은 작물이라 상추가 무럭무럭 자라는 6~7월에는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고마운 채소가 아닐 수 없다. 가장 친근하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상추임에도 상추가 주재료인 요리가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상추는 평범해 보이지만 이보다 접근성이 좋은 채소도 없을뿐더러, 영양적으로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95%가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어 더워지는 계절 수분 섭취에도 좋고, 비타민과 무기질도 풍부하다. 특히 눈과 피부 건강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A(베타카로틴), 뼈와 칼슘 흡수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비타민K도 많다. 특히 상추가 특별한 이유는 상추를 떼어냈을 때 나오는 하얀 즙, 락투세린, 락투신이라는 신경안정 작용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상추를 많이 먹으면 잠이 온다는 이유도 락투신 때문이다. 지금 가장 맛있는 상추로 만드는 초여름 상추 요리들을 가져왔다. 상추와 함께 경쾌한 초여름을 맞이해 보시길. 가장 맛있는 초여름 상추 레시피들 1. 상추 샌드위치 상추와 토마토만으로 만드는 상쾌한 샌드위치다. 두부로 마요네즈를 만들어서 빵에 바르고, 토마토에 조금 넣으면 다른 양념 없이도 풍부한 맛을 낸다. 상추는 100g 왕창 넣는 것이 포인트! 먹는 내내 아삭하고 건강한 샐러드를 듬뿍 먹는 것 같은 기분에 기분마저 상쾌해진다. - 재료: 식빵 2장, 상추 10장(100g), 토마토 작은 것 1개(100g), 두부 마요네즈 2T, 홀그레인 머스터드 1T - 두부 마요네즈: 두부 100g, 식물성 오일 4T, 레몬즙 1T, 설탕 1T, 소금 2/3t 두부 마요네즈를 블렌더에 넣고 곱게 갈아준다. 블렌더가 없다면 시판 소이 마요네즈를 사용해도 좋다. 상추는 식빵 길이로 반으로 잘라 겹쳐놓고, 토마토는 1cm 큐브 모양의 크기로 썰어 두부 마요네즈 1T를 넣고 섞어둔다. 식빵 한쪽 면에 두부 마요네즈를 바르고, 토마토 쪽에는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바른다. 마요네즈를 바른 빵 위에 상추, 토마토 순서로 올리고 반대편 빵으로 덮어 반으로 자른다. 2. 상추 볶음 상추를 센불에 빠르게 볶으면 넘쳐나는 상추 한 봉지도 단번에 해치울 수 있다. 매콤한 단짠 양념에 볶은 상추는 밥과 찰떡궁합이다. 상추 말고도 양상추, 쌈 채소 등 여름에 풍요로운 채소로 마음껏 활용할 수 있으니 시들어가는 잎채소가 있다면 볶아먹어 보시길. - 재료: 상추 200g - 양념: 식용유 2T, 고춧가루 1T, 다진 마늘 1T, 간장 1T, 올리고당 1T, 물 1T, 참깨 1큰술 간장, 올리고당, 물을 섞어 양념을 미리 만들어둔다. 예열한 팬에 식용유, 고춧가루, 다진 마늘을 넣고 약불에 서서히 익힌 뒤 (마늘이나 고춧가루가 타지 않도록 주의하며) 양념장과 상추를 넣은 뒤 1~2분 동안 중간 불에 빠르게 볶는다. 접시에 담고 참깨를 뿌린다. 3. 상추 비빔 쌀국수 상추 반, 쌀국수 반을 놓고 분짜식 양념을 섞어 먹는 비빔국수다. 쌀국수는 얇은 면이 좋고, 상추도 면과 어우러지도록 얇게 써는 것이 식감이 좋다. 달콤하고 새콤한 양념과 상추의 쓴맛이 잘 어우러지며 여름을 산뜻하게 만들어준다. 바싹 구운 두부나 버섯, 대체육을 곁들이는 것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 - 재료: 쌀국수 면 80g, 상추 10~12장(60g), 볶은 땅콩 한 줌, 양파 약간, 당근 약간 - 양념: 레몬 또는 라임즙 4T, 맛술 2T, 올리고당 1T, 간장 1T, 설탕 2/3T, 소금 1/3t 쌀국수 면은 물에 불리거나 끓는 물에 삶아 체에 밭쳐놓는다. 상추는 세로로 얇게 썰고, 양파와 당근도 채 썬다. 땅콩은 잘게 부숴준다. 모든 재료의 양념을 넣고 설탕이 놓을 때까지 잘 저어서 양념장을 만든다. 쌀국수 면에 양념 3스푼을 넣고 버무린 다음 접시 바닥에 상추를 깔고 면을 올리고 양파, 당근, 땅콩을 올린다. 남은 양념장을 조금씩 부어 섞어가며 먹는다. 지난 식목일에 서울식물원 씨앗도서관에서 받아온 상추 씨앗을 심었다. 올여름 상추를 잔뜩 먹을 기대와 상추를 길러 꽃을 피우고 다시 씨앗을 반납할 비장한 목표를 가지고 야심 차게 심었으나 겨우 3개의 씨앗에서만 싹이 나왔다. 그마저도 물을 주다가 흙에 한 번 쓰러지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초보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른다는 게 문제다. 초보 베란다 텃밭 농사의 길은 험했다. 더 더워지기 전에 고수 농부들이 재배한 상추를 열심히 사 먹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