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평론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박경수 작가는 스타 작가다. 그는 자신의 인터뷰에서 (대중이) 자신을 권력, 정치드라마를 쓰는 작가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저 그리고픈 인간의 본질을 그리다 보니 결과적으로 21세기 대한민국 정치판을 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한 장이 대한민국 정치판이었다는 말이 매우 와닿는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인간 군상의 총집합이 정치판이고, 그 정치판의 가장 날것 같은 인간 군상을 보여준 대통령 선거판이 최근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봉합되지 않고 터져있는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여전히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오히려 인간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고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답답하고 숨 막히는 오늘의 현실을 리셋하고 싶은 갈망에서 시작한 작품이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돌풍>은 지금 다시금 주목해 볼만하다. 드라마 속 국무총리 박동호는 2024년 <돌풍>이 첫선을 보였을 때만 해도 판타지적 인물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이후 펼쳐진 한국의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그는 허구가 아닌 오히려 지금 한국 정치의 본질을 꿰뚫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돌풍>은 대통령의 부패를 폭로하고 그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려는 국무총리의 암투로 시작된다. 그는 권한대행의 자리에 올라 스스로를 '개혁의 상징'으로 내세우지만, 이내 또 다른 권력투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반대 진영인 경제부총리 정수진 역시 권력의 자리를 두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둘 다 정의를 말하지만, 둘 중 누구도 '절차' 위에 서 있지 않다. <돌풍>은 이렇게 절차 없이도 권력을 선점하고, 개혁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지배를 시작하는 리셋된 독점체제를 그리고 있다.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이 드라마 속 세계가 결코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의 위임보다 앞서는 권력자의 자기 확신, 민주주의의 형식은 지켜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형식을 무력화하는 권력의 기획이 작동하고 있는 모습 등이 그것이다. 박동호는 스스로 정의를 자임하지만, 그가 벌이는 정치적 '정화 작업'은 사실상 선택적 폭로와 프레임 씌우기에 불과하다. 진실을 밝히기보다 더 큰 거짓을 앞세워 정당성을 차지하는 구조. 그것이 <돌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이자, 지금 이 사회와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여론조작에 관한 부분이다. <돌풍> 속 권한대행 박동호는 대통령의 비리와 재벌의 검은 커넥션을 폭로하며 스스로를 '정의의 대변자'로 포지셔닝한다. 하지만 그는 그 진실을 선택적으로 공개하고, 그 시점을 정치적으로 계산한다. 언론은 그의 손안에서 움직이며, 여론은 폭로가 아닌 연출된 분노를 따라 흐른다. 이 장면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여론 환경의 기이한 왜곡, 사실보다 프레임이 우선하는 정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정작 중요한 건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말하느냐'로 바뀌어버린 지금, 드라마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진실조차도 하나의 전략이 된 사회에서, 여론은 더 이상 민심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연출물일 뿐이라고 말이다. <돌풍>이 2024년 공개 당시 조용한 돌풍을 일으켰던 이유는 대통령 시해, 비상계엄 모의, 헌법재판관 매수 등 현실 정치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1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다시 <돌풍>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이 극적인 요소들이 현실 정치에서도 다르지 않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돌풍>은 '설마'라고 여겼던 정치의 가능성을 현실로 끌어내는 거울이었다. 우리가 한때 허구라 믿었던 이야기들이, 지금은 뉴스 헤드라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섬뜩하다. 어쩌면 현실이 드라마를 닮아가는 게 아니라, 드라마가 현실을 먼저 그려냈던 것은 아닐까?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우리나라는 정치가 코미디'라는 우스갯소리가 이제 전혀 낯설지 않다. 지난 6개월간의 한국 정치는 혼란과 분열의 정점을 찍었고, 지금도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3년 만에 다시 한번 대선을 치르게 되었고 대선 후보 간의 경쟁도 치열한 가운데, 정치 풍자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SNL 코리아 시즌 7이 또 한 번 정치 풍자 전면에 나섰다. OTT가 주류 매체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OTT를 통해 정치 상황이 소비되고 있는데, 쿠팡플레이의 SNL 코리아도 이러한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 사실 정치 풍자가 워낙 뒷말이 많고, 정치 상황에 따라 지상파 재심의 등 채널의 명운까지 걸려있어, 최근 지상파와 방송사에서는 정치 개그나 풍자를 일체 하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SNL은 OTT라는 플랫폼의 특성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정치 풍자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SNL이 시즌 7까지 이어오며 정말 '제대로 된 정치 풍자'를 했냐는 질문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정치 풍자란 단순한 희화화나 성대모사를 넘어, 웃음을 통해 권력의 위선을 꿰뚫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SNL은 어떠했나? 풍자가 아닌 비웃음을 유발하거나, 단순 성대모사, 행동 모사를 해내는 방식으로 특정 정치인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풍자다운 풍자를 통해 정치인의 범죄, 비윤리, 비도덕, 거짓, 위선을 비판하는 대신, 그저 단순한 웃음의 소모성 개그가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재심의를 두려워하는 지상파 방송보다 더 못한 결말을 가져온 셈이다. SNL이 정치 풍자를 지속하는 이유는 차치하고,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SNL에 직접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자기 PR이다. 정치인들은 홍보라는 명목 아래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방송된 <지점장이 간다> 코너에서 모 정치인은 SNS를 통해 소비되고 있는 자신의 밈을 눈앞에 마주하며 '거울 치료' 효과를 얻은 듯한 모습도 보였다. 이미 SNS를 통해 많이 소비된 밈이었던 만큼, 시청자 반응도 뜨거웠다. 반면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이 희화화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굳이 리스크를 떠안기 싫어 출연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풍자의 성패와는 별개로 정치인의 참여를 유도하는 SNL의 실험은 정치 대중화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SNL의 정치 풍자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유권자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시즌 7, 즉 현재의 정치 생태계 이전의 프로그램 전략에 가까워 보인다. 최근 주위를 둘러보면, 20~30대는 그 어느 때보다 정치에 민감하고, SNS를 통해 정치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며 행동한다. 그들 앞에서 구태를 재현하거나 시대 감각을 놓친 풍자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지금의 SNL이 진정한 풍자를 구현하고 있는지, 아니면 시대 변화에 뒤처진 인식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분명하게 되묻고 따져보아야 할 때이다. 그럼에도 MZ 대표 예능인 지예은을 앞세워 편의점이라는 가장 친근한 공간의 알바 면접 콘셉트의 인터뷰 쇼는 참신하고 재미있다.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정치인을 마주하는 형식은 정치와 유권자의 거리를 좁혀준다. 질문과 응답, 태도와 눈빛 모두가 지금 이 시국의 정치 풍경을 반영하면서도 또 다른 형태의 풍자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 판단의 몫이지만, 웃음 속에 담긴 정치의 코드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정치 풍자를 내세운 이상, SNL은 더 이상 가벼운 흉내에 머물러선 안 된다. 날카로운 통찰과 균형 감각이 담긴 '진짜 풍자'로 나아가야 할 때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이혼'이 자극적 소재를 끌어내기 좋은 주제다 보니, 방송가의 단골 소재로 자리 잡았다. 먼저 예능에서 이혼 소재가 봇물 터지듯 터지더니, 이제는 코믹 드라마의 소재로도 이혼이 활용되고 있다.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이혼보험>은 제목부터 이혼을 전면에 내세웠다.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 딱 좋은 제목이다. <이혼보험>은 결혼과 이혼을 보험 상품이라는 독특한 시도로 풀어낸 로맨틱 코미디다. <이혼보험>은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코믹물임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세 번의 이혼을 겪은 노기준(이동욱 분), 그의 서포터이자 절친 안전만(이광수 분)까지 이름부터 코믹에 승부수를 둔 듯하다. 이혼을 하나의 잠재된 재난 상태로 분류하여 이별과 이혼의 아픔이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전제를 '보험'이라는 삶의 보장을 통해 풀어나간다는 시도가 매우 특이하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쉽게 말하지만 쉽게 결행할 수 없는 '이혼'이라는 선택 앞에서,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이혼보험>은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다. 하지만 흥미로운 설정으로 높았던 기대감은 4회 만에 반토막난 시청률로 돌아왔다. 왜일까? 드라마가 추구하는 웃음이 작위적이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웃음이 나와야 할 포인트에 웃음이 터지지 않는다면 코믹 장르는 곧바로 애매해진다. 특히 신선한 서사가 코믹 장르로 승화되려면 코믹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야 하는데, 연기자들의 연기가 "나 코믹 연기해요~"하며 튀고 있다. 또 <이혼보험>은 블랙 코미디적 성향도 띄고 있는데, 코믹한 상황을 통해 교훈과 로맨스를 같이 보여주려다 보니 내용은 더욱 산으로 간다. 특히 <이혼보험>은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이야기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주인공 이동욱의 캐릭터성과 감정선 모두가 매우 흐릿하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주요 사건을 주도해야 하는데, 시청자가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중요한 장면에서도 이 사람이 지금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불분명하고 단조롭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전 아내와의 마지막 협상 장면에서 상대가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와중에도 이동욱은 마치 클라이언트 상담을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인물의 내면 갈등이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동욱은 <도깨비> 이후 '비주얼'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지만, 액션이 가미된 로맨스 장르를 주로 맡아왔던 그에게 코믹 장르가 무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혼보험>에서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직업적 냉정함과 인간적 온기를 동시에 가져야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복합적인 성격을 구현하는 이동욱의 연기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연기의 절제와 감정의 부재는 엄연히 다른데, 이동욱은 절제된 코믹연기를 보여주려 했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감정선을 충분히 구축하지 못해 코믹이 겉도는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일까. 시청자는 코믹과 멜로와 사회 풍자적 요소가 오가는 복합장르인 <이혼보험> 속 이동욱에게 몰입이 힘들다. 그럼에도 여주인공 이주빈과의 케미는 좋다. 두 배우의 비주얼적 합이 좋아서일까. 이주빈을 자연스럽게 돕는 이동욱의 모습이 로맨스의 핵심인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는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로맨스 장르로 그 역할을 차라리 집중했다면 드라마의 색채가 뚜렷하고, 시청자들의 몰입이 좀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혼보험>은 이혼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보험의 상품화라는 드문 시도를 통해 신선함을 주었고, 이혼을 보험이라는 신선한 상징을 통해 제도적 허점과 개인의 정서적 붕괴를 동시에 조명하고 있다. 여러모로 도전적인 이 작품이 완전히 빛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지만, 더 좋은 완성도를 위한 변화도 필요해 보인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극사실주의(하이퍼 리얼리즘)는 하나의 미술 사조를 넘어, 이제는 콘텐츠 업계가 사랑하는 연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패러디 혹은 페이크 다큐로 대표되는 극사실주의 콘텐츠는 특히 개그 소재 유튜브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랄랄의 이명화 캐릭터, 피식대학, 한사랑 산악회 등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감 있는 묘사로 사람들에게 공감과 웃음을 선사하는데, 그 이면에는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풍자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최근 이 극사실주의 캐릭터로 대중문화계를 휩쓴 개그우먼이 있으니 바로 이수지다. 그동안 자신의 유튜브 <핫이슈지> 채널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완벽 묘사하며 극사실주의 캐릭터의 대가로 칭송받았는데, 최근 '대치맘' 캐릭터가 제대로 터지면서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치맘'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대한민국 전체를 들썩이게 하였으니, 극사실주의의 끝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페이크다큐 자식은 좋다> 속 '대치맘' 제이미맘은 고급 외제차·패딩·액세서리를 하고 제이미의 학원 라이딩에 나선다. 차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아직 배변 훈련도 끝나지 않은 제이미에게 제기차기 과외를 시키기 위해 선생님을 찾는다. 평소에도 자식의 '영재적 모먼트' 찾기에 바쁘다. 느릿느릿 영어를 섞어 말하고, 자식에게 존댓말로 훈육하지만 참을 수 없을 땐 참지 않는다. 사실 '대치맘'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강남 대치동 학부모를 상징하는 하나의 사회적 캐릭터를 개그 소재로 '연기'한 것이다. 현실을 직접 경험하는 이들이 공감하기도 하지만,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의 교육열을 인식하는 대중들은 대치맘 캐릭터에 공감한다. 이러한 공감의 근본에는 실재하는 사회적 문제, 이를테면 입시 경쟁과 (영유아) 사교육 광풍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집단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모두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공론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개그라는 형식을 통해, 누구나 느끼고 있지만 쉽게 말할 수 없었던 현실을 통렬하게 풍자한 것이다. 이러한 역설적 지점이 대중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원인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대중의 반향이 이 '문제'에 대한 각성이나 개선의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치맘을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이 패러디가 주목받은 이유는 입시 경쟁과 사교육 광풍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정작 논의의 초점은 특정 계층을 희화화하는 데 집중된 것이다. 언론들은 더욱 신이 났다. "몽* 패딩 실제 매물 쏟아졌나?","이제 못 입겠어요, 대치맘 발칵" 등 본질에서 벗어난 자극적인 기사들만 연일 쏟아졌다. 문제의 본질은 흐려지고, 특정 집단을 비웃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정작 논의되어야 할 교육 불평등이나 사교육 문제는 뒷전이다. 대신, '그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조롱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대중의 심리만 자극한다. 완벽한 풍자로 추앙받으며 사회와 대중에게 큰 영감을 줄 것이라 예상했던 영상은 결국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의도했던 '풍자'가 대중의 조롱으로 변질되면서, 이수지 본인도 적지 않은 곤란을 겪고 있는 듯하다. 이수지가 예상치 못한 논란에 휩싸인 것도, 그리고 한가인의 영상이 조롱받고 내려졌다는 사실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애초에 비판받아야 할 문제의 본질은 그대로 남겨진 채, 겉도는 이슈들만이 뜨겁게 소비되었다는 점이다. 서로 물고 뜯으며 논쟁을 이어가지만, 정작 논의되어야 할 핵심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대치맘 패러디'는 정말 공감의 산물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맘 놓고 조롱하고 희화화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일까? 사진 : 이수지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OTT가 사랑한 주지훈의 열일 행보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걸까? 주지훈이 원탑으로 열연한 <중증외상센터>가 공개 직후 국내 넷플릭스 시청 1위를 기록하고,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프랑스, 이탈리아, 필리핀, 일본 등 63개 나라에서 10위권 안에 진입하였으며, 급기야 <오징어게임2>를 꺾고 글로벌 1위에 올랐다. 웹툰 원작으로 상반기 기대작이었지만, 이 정도의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중증외상센터>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중증외상센터>는 아프간 등 전장에서 블랙윙즈로 활동했던 백강혁(주지훈 역)이 한국으로 돌아와 중증외상센터의 수장이 되어 환자를 치료하는 이야기다. 그동안 수많은 의학 드라마가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았지만, <중증외상센터>는 웹툰 원작답게 보다 판타지적 색채가 짙다. 사실 국내에서 중증외상센터는 곧 이국종 교수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세워져 있는데, 드라마 역시 이국종 교수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일부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헬기 조종하는 의사,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기득권과 싸우는 의사, 환자만을 생각하는 정의로운 의사의 모습 등을 극화하였다. 백강혁은 오직 환자의 목숨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어떠한 불의에도 타협하지 않는다. 직업윤리를 넘어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8부작 내내 가득한데, 그의 행보는 마치 슈퍼 히어로물의 영웅 서사를 보는 것 같다. 슈퍼 히어로의 면모에 카리스마는 물론 비주얼도 훌륭한 의사라니, 드라마의 판타지를 채우는 데 부족함도 없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백강혁의 영웅적 면모를 빛나게 해주는 조력자가 있으니, 양재원 역의 추영우와 천장미 간호사역의 하영이다. '중증외상센터'라는 원팀을 이끌어가기 위해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긴장감을 넘어 감동도 밀려온다. 이번 정부 내내 의료 개혁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각종 의학 드라마의 방영 일정도 차질을 맺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의학 드라마의 특성상 의료인의 영웅적 면모가 돋보이게 마련인데, 이것이 대중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증외상센터>는 백강혁의 히어로적 측면이 오히려 대한민국 의료계의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되며 인기의 기폭제 작용을 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의 불안한 정치 상황과 맞물려 백강혁의 리더십은 사람들에게 모종의 카타르시스도 불러일으킨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불의와 부조리를 위해 맞서 싸우는, 정의와 올바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개혁할 강한 리더를 꿈꾸는 듯하다. 백강혁의 물불 가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강한 카리스마가 위기에 빠진 중증외상센터(혹은 대한민국)를 구해내는 듯 보여 대중들은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이를 통해 대중들은 현실 같은 비현실에 비추어 현재를 되돌아보며 무엇이 진정한 '대한민국을 위한 길'인지 반추해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빠른 전개와 유머, 긴장감이 동시에 몰아치며 대중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프간행이나 죽을 고비를 맞는 백강혁의 모습 등 강펀치로만 휘몰아치는 내용 전개가 다소 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아프간에서 귀국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헬기를 몰고 가 죽음의 위기를 겪는 장면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마지막 화(8화)가 맞나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만큼 전개가 폭풍처럼 몰아치기만 하고 극의 마무리는 급작스럽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시즌2를 염두에 둔 구성임은 분명하지만, 최근 넷플릭스 작품들에서 반복되는 갑작스러운 마무리 혹은 미완성처럼 보이는 결말의 문제점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인기 여부에 따라 시즌2 제작을 결정하는 '열린 결말'의 전략은 이해되지만,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이 탄탄한 짜임새 있는 전개가 더욱 필요해 보인다. 몇 가지 아쉬움은 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킬러 콘텐츠의 탄생 조짐이 반갑다. 사진 : 넷플릭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오징어게임2>에 대한 기대와 실망 그리고 혹평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이에 대한 평론이 이제는 뒷북처럼 느껴진다. 가장 핫한 혹은 핫했던 시리즈가 겪는 숙명이겠지만, <오징어게임2>에 대한 국내외 평가는 냉혹하다. 출연 배우들의 과거사를 비롯한 구설수까지 잇따르면서 <오징어게임2>의 악재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1위, 전 세계 94개국 1위의 대기록을 세우고 있는 <오징어게임2>, 말 많고 탈 많지만 인기와 화제성은 여전하다. 평단은 물론 시청자들까지 <오징어게임2>를 혹평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서사, 그리고 연기력 논란이다. 첫 번째 문제점은 사실상 속편이 안고 가야 할 숙명이다. '오징어게임'에 참여했던, 피 묻은 돈의 주인공 성기훈이 자신의 울분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기대는 시즌2를 기다린 시간만큼 고조되었다. 그동안 시즌2의 서사 구성과 전개 방식은 모두 스포일러 전쟁과 함께 함구되었던 만큼, 내용 전개를 예상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뚜껑을 연 <오징어게임2>는 성기훈이 다시 '오징어게임'에 참여한다는 사실에서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게임에 다시 한번 참가한다고? <오징어게임>의 전 세계적인 인기의 축은 게임이 준 참신성에 있는데, 또 한 번 반복된 '오징어게임'은 그 자체로 이미 높은 기대를 실망으로 바꾸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감동 서사를 위해 끊임없이 빌드업되는 참가자 개인의 사연들도 기시감이 느껴진다. 특히 각자의 사연들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총체처럼 복잡하기만 하다. <오징어게임> 시즌1이 전 세계적인 흥행을 할 때, 업계 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역시 넷플릭스 자본의 힘이었다. 넷플릭스였기에 가능했던 서사, 몇 년째 묵혀두었던 황동혁의 서사가 빛을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 등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는 창작자 황동혁의 능력이 날개를 달 수 있는 상황과 결부되어 더욱 빛났다. 하지만 시즌1의 호평은 창작자 황동혁에서 제작자 황동혁으로 그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용은 한정적인데, 높아진 기대와 몸값에 부응하기 위해 늘여진 서사와 과도한 의미 부여 등 참신성을 갉아먹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었다. 드라마 공개 직후 진행된 감독의 언론 인터뷰는 냉혹한 평가를 더욱 악화시켰다. 황동혁 감독은 공개된 인터뷰에서 시청자들의 비판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중 일부 발언은 시청자들에게 불쾌감까지 주었다. 특히 탑의 연기력 논란을 비롯한 일련의 시청자 반응에 대해 "어차피 '물의'는 시간이 지나면 다 잊는다" 식의 발언은 감독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넘어서,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또 "똥개도 제 집에 오면 50%는 먹고 들어간다는데, (국내 반응은 아니다)" 혹은 "<오징어게임2>가 재미없으면 우울한 사람" 등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신념을 갖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신념이 시청자들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듯한 발언으로 이어지고 있어 더욱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시청자들의 비판은 작품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중요한 피드백인데 말이다. 시청자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시청자들은 내가 본 그대로 작품을 평가한다. 잘 만들어진 작품은 그 작품에 대한 부연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화제성만으로 작품성이 입증되지도 않는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인기와 팬덤의 압박 때문에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을 '잘 만들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인기와 작품성은 별개다. 오히려 작품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팬덤과 인기 뒤에 가려져 부정된다면, 더 좋은 작품은 탄생하기 힘들다. <오징어게임2>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감도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내 팬들도 이러한 점을 인정하고 있고, 이를 굳이 부정하거나 변명할 필요는 없다. 시즌2의 평가가 냉혹하다면, (이미 촬영이 끝났겠지만) 시즌3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것이니 기다려달라고 하면 될 일. <오징어게임2>의 홍보 행보가 오히려 작품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사진 : 넷플릭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세계를 호령하던 축구 선수이자, SNS 팔로워 수 세계 10억 명을 돌파한 스포츠계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제는 단순히 축구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말 그대로의 '인플루언서'다. 그의 유명세만큼이나 유명했던 것이 여성 편력인데, 화려한 삶보다 더 화려한 그의 사랑 이야기는 숱한 화제를 낳았다. 최근 호날두의 삶이 국내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그 이유는 한 배우의 팬덤이 호날두를 보라며, 호날두의 개방적 연애 담론을 화두로 꺼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날두의 삶이 누군가의 비교 대상이 될 만큼 개방적이고 진취적이기만 한지, 호날두의 진짜 삶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얼리티쇼 <아이 앰 조르지나>를 통해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 앰 조르지나>는 호날두의 현 여자친구이자 동거인 조르지나 로드리게스의 삶을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얼리티쇼다. <아이 앰 조르지나>는 조르지나 일상 전반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호날두 가족 리얼리티쇼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호날두 일가의 삶과 사랑, 가족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 전반을 담고 있는 리얼리티쇼이고, 호날두의 삶을 '제대로' 몰랐던 사람들에겐 그를 좀 더 알아볼 수 있는 쇼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호날두와의 만남으로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조르지나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연히 남자친구 호날두 후광 덕분이었다. 두 남녀의 만남은 그 시작부터 큰 화제가 되었는데, 그보다 그들의 관계가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그들이 이룬 '가족의 형태' 때문이다. 호날두-조르지나 커플은 다섯 명의 아이를 직접 양육하고 있으나, 그녀가 출산한 아이는 두 명뿐이다.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은 '다른 여성'이 출산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호날두는 자신의 아이들을 '조르지나'와 함께 직접 양육하고 있으며, 그들의 생활은 여느 평범한 가족과 다를 바가 없다. 특히 일곱 가족이 휴가를 즐기거나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 등이 시즌 1, 2 모두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호날두는 잘 놀아주면서도 엄격한 아빠로 아빠로서의 역할과 의무, 권위를 모두 챙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조르지나와도 결혼을 한 사이는 아니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아이들 역시 '혼외자'일 수 있으나, 이 커플에게 그러한 명칭이나 논란은 중요치 않아 보인다. 그저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사랑하고, 그들이 함께 이루어 나가는 미래를 생각하는 호날두 커플의 모습에 어떠한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들의 슈퍼리치한 삶 정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아이 앰 조르지나>는 호날두 여자친구 정도로 인식되었던 조르지나의 일상과 일 전반을 팔로우하며, 호날두 여자친구 그 이상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집중한다. 다섯 아이의 엄마, 패션 인플루언서 등 다방면의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지만, 그녀의 일상 전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족'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호날두가 있다. 특히 시즌2의 경우, 이제는 선수 생활 2막을 준비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알 나사르 리그로 이적한 호날두 가족의 삶을 집중 조명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삶을 궁금해하는 호날두의 많은 팬들에게 특히 의미 있는 시리즈로, 시즌2에서 달라진 점은 지난 시즌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호날두 가족의 모습이다. 개방적 사고란 무엇일까? 그 형식이나 방법론이 개방적일 수는 있으나, 결과가 개방적이지는 않은 호날두의 모습에, <아이 앰 조르지나>는 '개방적 사고'의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보게 하는 리얼리티쇼다. 특히 한국에서 '날강두'로 이미지가 좋지 않은 호날두, 하지만 최소한 자기 가족에게 날강두는 아닌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호날두 가족의 진짜 모습이 궁금하다면, <아이 앰 조르지나>를 참고하자. 사진 : 넷플릭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최근 몇 년 사이 유재석이 MC를 맡은 프로그램의 시청률 굴욕 기사를 적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그가 맡은 지상파 방송의 평균 시청률은 2%대. 여전히 유느님 혹은 국민 MC로 건재한 유재석이지만, 낮은 시청률은 그에게도 부담일 것이다. 흘러가는 세월과 매체의 변화가 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하지만 어찌 보면 유재석만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OTT에 밀린 방송 예능 전체의 평균 시청률이 2-3% 선에 머물고, 아주 잘 나와도 6%의 벽을 넘지 못하는 판국에 유재석 탓만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국민 MC의 어깨는 무겁다. 그 틈바구니에서도 유재석의 체면을 세워줄 화제성 높은 프로그램이 탄생했으니, 바로 SBS <틈만나면,>이다. 배우 유연석과 지난 4월 첫선을 보였고, 재정비를 거친 후 다시 시청자들을 찾은 <틈만나면,>은 현재 시청률 상승세를 타고 있다. <틈만나면,>은 일상 속 마주하는 잠깐의 틈새 시간 사이에 행운을 선물한다는 프로그램 취지에 맞게 시민들, 시청자들을 매주 만난다. 시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채택된 분을 두 MC 유재석과 유연석이 직접 찾아가고, 그들을 위한 게임 미션에 성공하면 큰 선물을 증정하는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예능 공식으로 짜였지만, 시민 참여라는 키워드는 늘 신선하다. 유재석은 특히 시민들과의 소통에 가장 능한 MC다. 짜인 각본 없는 길거리 인터뷰가 그의 강점인데, 로드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돌발상황이 늘 발생하지만, 유재석에게 모든 것은 유려하다. 뿐만 아니라 시청자 사연을 소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도 물 만난 고기다. 지난 이서진 편에서도, <열혈사제2> 편에서도 출연자와 시민들과의 소통이 어색하지 않도록 다리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며 큰 웃음을 만들어내었다. 선물의 크기와 액수가 늘어날수록 게임 미션의 난도가 높아지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관전 포인트다. 게임에 성공해야만 사연자가 선물을 받아 갈 수 있기 때문에 출연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게임에 진심으로 참여한다. 특히 연예계 대표 투덜이 이서진의 게임 도전은 이서진 본연의 캐릭터와 배치되며 더 큰 웃음을 자아내었다. 펜싱 미션과 어린이집 미션 등에서 끊임없이 투덜대며 유재석과의 케미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게임에는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뛰는 이서진의 모습은 감동과 웃음 모두를 잡을 수 있는 치트키가 되었다. <열혈사제2> 팀 역시 드라마 홍보를 위해 출연하였기에 그 어느 팀보다 높은 팀워크를 선보였고, 열정 높은 게임 참여로 제대로 된 활약을 하였다. 또 한 가지 <틈만나면,>의 브레이크 포인트는 동네 맛집 먹방이다. 게임의 긴장감도 끊임없이 이어지면 숨 막히고 재미가 없을 텐데, '틈'이라는 프로그램명에 걸맞게 사연자들의 만남 중간에 먹방과 게스트 일상 토크가 이어지면서 숨 돌릴 틈을 준다. 이를 통해 '이하늬 서초 맛집', '지창욱 촬영지 어디?' 등 상권에 영향을 미치는 화제성까지 챙겨가고 있으니, 촘촘하게 짜인 로드 버라이어티가 반갑게 느껴진다. 물론 타 프로그램 홍보성 게스트 등 게스트 출연에 따라 시청률과 화제성의 추이가 큰 영향을 받을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다양한 게임 미션과 사연자들의 이야기, 또 게스트들과의 케미스트리 등을 생각해 볼 때 프로그램 자체의 신선도는 꽤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을 것 같다. 유재석은 SBS <틈만나면,>을 통해 재도약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에게 재도약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변화의 상황 속에서 늘 새로운 시도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을 보면 유재석의 시대는 저물 듯 저물지 않을 것 같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요리 서바이벌은 기시감이 높은 콘텐츠다. 높은 인기는 보장되지만, 그 형식은 매우 진부하다. 요리사들의 음식 대결과 이를 통해 우열을 가려내어 단 한 명의 우승자를 탄생시키는 일. 그동안 수많은 서바이벌에서 봐왔던 형식이다. 그런데 <흑백요리사>의 요리 대결은 뭔가 다르다. 요리 대결에 계급을 붙였다. 사실 사람들은 계급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금수저, 흙수저를 연상케 하는 백수저, 흑수저로 나누어진 계급은 시작부터 공평하지 못한 게임으로 비친다. 하지만 계급에 전쟁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쟁을 통해 계급을 부수고, 타파해서 목표를 쟁취하는 언더독 서사. 대중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사 중 하나이다. 현재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는 <흑백요리사-계급 전쟁>으로 뜨겁다. 9월 공개 직후 27개국 글로벌 TOP 10 비영어권 1위를 차지하며 인기와 화제성 모두를 잡았다. 해외에서는 더빙한 성우의 인지도로 우승자를 점칠 정도로 화제를 낳았고, 10월 8일 최종화 공개 직전까지 스포일러 전쟁이 선포되었다. <흑백요리사>에 처음부터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소는 바로 80인의 흑수저 셰프들과 20인의 스타 셰프의 첫 대면 장면이다. 1화의 백수저 등장신은 <흑백요리사>의 취지를 가장 잘 표현한 역대급 등장신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단상 위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흑수저들을 내려다보며 등장한 백수저 군단과 그들의 등장을 경이로움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업계의 계급 구도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흑백요리사>가 단순히 음식 대결이 아닌, 신구의 대결 혹은 실력으로 맞붙는 계급장 싸움의 의미임을 각인시켜 주었고, 이는 시청자들의 아드레날린을 제대로 자극하였다. 12부 동안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다양한 미션이 진행되었고, 초반 20명을 걸러내는 데는 '오직 맛'이라는 심사 목표가 설정되었다. 오직 맛이라는 승부수는 참가자들 중 '맛으로 최고'만을 뽑는다는 군더더기 없는 기준을 설정해 주었고, 계급 간 전쟁의 취지를 빛나게 한 심사 방식으로 평가된다. 눈을 가리고 음식을 맛보는 장면이나, "고기의 굽기가 이븐하지 않다"는 안성재 심사위원의 말까지 수많은 밈이 형성될 만큼 '오직 맛' 승부수는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크게 높였다. 하지만 후반부 미션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팀미션, 레스토랑 미션에 이어, 마지막 2인 결정전까지 '오직 맛'의 심사 방식과는 다른 석연치 않음이 일부 포착되었다. 특히 여타 팀미션은 차치하고라도, 최종 2인을 선정하는 과정은 왜인지 '이븐(일정한)'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단 1-2점 차의 승리로 먼저 결승전에 안착한 것이 2차 미션은 참여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른 7인의 요리를 압도했는가? 하는 점에서다. 사실상 무한 요리 지옥 두부 미션은 <흑백요리사>의 백미이자 프로그램의 취지까지 모두를 살린 완벽한 미션으로 평가할 수 있다. 두부라는 우리의 전통 식재료를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해 내는 미션은 한식의 세계화는 물론 한국 미식의 수준을 증명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였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 요리로 승리를 거머쥔 한국 요리사와 한식 모티브의 세계화에 모든 음식의 중점을 맞춘 재미교포 요리사의 전쟁이 결국 과정보다는 언더독의 승리라는 정해진 결말만을 향해 달려갔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어쩌면 대중들은 1회부터 흑수저의 승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에드워드 리를 응원하게 된 것은 대중들이 좋아하는 언더독 서사를 뛰어넘는 진정성이 대중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흑백요리사>는 한국의 미식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린다는 그 취지 하나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 듯하다. 또 글로벌 인기는 물론 이균의 한국적 서사가 진한 감동까지 선사하였으니 <흑백요리사>는 한국발 넷플릭스의 예능 수작이 탄생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국뽕에 취한다고 한 소리 해도 어쩌랴. 감동과 서사, 열정과 스릴 모두를 잡은 또 하나의 K-콘텐츠 대표작이 탄생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비연예인으로서는 최초로 연예대상을 받은 기안84는 여전히 핫한 방송인이다. 사실 비연예인이라는 수식어도 이제는 큰 의미가 없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타이틀롤을 맡은 프로그램까지 시리즈물로 방송하고 있으니 그가 연예인이 아니면 누가 연예인일까? 방송계에 수많은 라이징 스타가 있었지만 기안84와 같은 방송인은 예나 지금이나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첫 방송 데뷔부터 기행과 센세이션의 아이콘이었고 그 모습은 어쩐지 변함이 없다. 오죽하면 '태어난 김에 사는' 듯한 그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을까? 기안84에게 MBC 연예대상을 안긴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이하 태계일주)는 이미 시즌3을 마쳤고, 쉴 새 없이 그 스핀오프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이하 음악일주)가 방영 중이다. '태어난 김에' 시리즈가 시즌3을 이어오면서 MBC 예능의 새로운 구원투수로 자리 잡았기에 음악 여행의 인기도 보장된 듯 보였다. 하지만 음악일주의 여정도, 시청률도 뭔가 시원치가 않다. 첫 방송 시청률 3.6%,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은 더욱 떨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시즌들과 비교해도 거의 반토막 난 시청률 추이를 보인다. <음악일주>는 기안84의 음악적 영감을 찾아가는 설정이다. 출연자로 빠니보틀과 배우 유태오가 함께한다. 지난 시즌들에선 '태어난 김에 사는' 기안84의 라이프스타일에 걸맞게 그 어느 프로그램과 비교할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해외여행의 최난 코스로 분류되는 남미, 인도, 아프리카를 아무런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그대로 즐기는 기안84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특히 인도 갠지스강물에 풍덩 빠지고, 그 물맛을 보는 기안84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경악과 함께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의 기행이 거듭될수록 시청률과 화제성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음악 여행이라는 목적이 설정된 이번 여정은 왜인지 '태어난 김에'라는 수식어가 썩 어울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를 꿈꿨던 기안84가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는 소개부터도 갸우뚱한다. '태어난 김에 사는' 콘셉트치곤 꽤 구체적이고 갑작스러운 꿈의 설정,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는 것이 왜인지 기안84의 그동안 여정과는 배치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첫 여정으로 선택된 도시는 뉴욕, 많은 예술인의 꿈의 도시이다.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의 브루클린을 방문한 기안84는 길거리에서 예기치 않게(?) 사이퍼 소식을 듣게 되고, 사이퍼를 직관하며 참여한 첫날부터 브롱크스의 음악 여정은 꽤 순조롭게 흘러간다. 그가 직접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이핑(랩 대결)을 했고, 방송용 그림을 만들어낸 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대도시 뉴욕에서의 모습은 지금까지 <태계일주>가 보여준 날 것 그대로의 여행과는 어딘지 많이 달라 보인다. '음악을 찾는 여정'이라는 목적이 많은 것을 인위적으로만 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뉴욕 여정 이후 공개된 <민들레>라는 기안84의 신곡도 큰 무리 없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MBC 예능에서 꾸준히 재미를 봐왔던 예능과 음원의 컬래버레이션이고, 이 또한 예정된 수순이었기에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태어난 김에 흐르는 대로의 여행 참맛을 보여준 기안84, 그런 그의 고생 서사가 이 시리즈를 이토록 사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잠시 잊은 듯한 행보다. 음악 여행의 목적성을 억지로 입혀야 하다 보니, 여행도 그들의 경험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 4화에는 급기야 스톰 체이싱을 떠난 기안84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스톰 체이싱 중에도 '영감'을 이야기하며 음악을 생각해야 하는 기안84의 모습은 왜인지 어색하기만 하다. 화가로서 영감을 받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기안84에게 갑자기 끼어든 음악의 꿈은 시청자들까지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오죽하면 <음악일주>인데 음악 얘기가 가장 지루하다는 반응이 쏟아질까? 아직 프로그램 초반이라 그들의 '음악 여정'을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프로그램의 고유 색채가 변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사진 : MBCentertainment 유튜브, MBC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