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평론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세계를 호령하던 축구 선수이자, SNS 팔로워 수 세계 10억 명을 돌파한 스포츠계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제는 단순히 축구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말 그대로의 '인플루언서'다. 그의 유명세만큼이나 유명했던 것이 여성 편력인데, 화려한 삶보다 더 화려한 그의 사랑 이야기는 숱한 화제를 낳았다. 최근 호날두의 삶이 국내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그 이유는 한 배우의 팬덤이 호날두를 보라며, 호날두의 개방적 연애 담론을 화두로 꺼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날두의 삶이 누군가의 비교 대상이 될 만큼 개방적이고 진취적이기만 한지, 호날두의 진짜 삶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얼리티쇼 <아이 앰 조르지나>를 통해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 앰 조르지나>는 호날두의 현 여자친구이자 동거인 조르지나 로드리게스의 삶을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얼리티쇼다. <아이 앰 조르지나>는 조르지나 일상 전반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호날두 가족 리얼리티쇼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호날두 일가의 삶과 사랑, 가족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 전반을 담고 있는 리얼리티쇼이고, 호날두의 삶을 '제대로' 몰랐던 사람들에겐 그를 좀 더 알아볼 수 있는 쇼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호날두와의 만남으로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조르지나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연히 남자친구 호날두 후광 덕분이었다. 두 남녀의 만남은 그 시작부터 큰 화제가 되었는데, 그보다 그들의 관계가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그들이 이룬 '가족의 형태' 때문이다. 호날두-조르지나 커플은 다섯 명의 아이를 직접 양육하고 있으나, 그녀가 출산한 아이는 두 명뿐이다.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은 '다른 여성'이 출산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호날두는 자신의 아이들을 '조르지나'와 함께 직접 양육하고 있으며, 그들의 생활은 여느 평범한 가족과 다를 바가 없다. 특히 일곱 가족이 휴가를 즐기거나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 등이 시즌 1, 2 모두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호날두는 잘 놀아주면서도 엄격한 아빠로 아빠로서의 역할과 의무, 권위를 모두 챙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조르지나와도 결혼을 한 사이는 아니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아이들 역시 '혼외자'일 수 있으나, 이 커플에게 그러한 명칭이나 논란은 중요치 않아 보인다. 그저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사랑하고, 그들이 함께 이루어 나가는 미래를 생각하는 호날두 커플의 모습에 어떠한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들의 슈퍼리치한 삶 정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아이 앰 조르지나>는 호날두 여자친구 정도로 인식되었던 조르지나의 일상과 일 전반을 팔로우하며, 호날두 여자친구 그 이상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집중한다. 다섯 아이의 엄마, 패션 인플루언서 등 다방면의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지만, 그녀의 일상 전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족'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호날두가 있다. 특히 시즌2의 경우, 이제는 선수 생활 2막을 준비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알 나사르 리그로 이적한 호날두 가족의 삶을 집중 조명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삶을 궁금해하는 호날두의 많은 팬들에게 특히 의미 있는 시리즈로, 시즌2에서 달라진 점은 지난 시즌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호날두 가족의 모습이다. 개방적 사고란 무엇일까? 그 형식이나 방법론이 개방적일 수는 있으나, 결과가 개방적이지는 않은 호날두의 모습에, <아이 앰 조르지나>는 '개방적 사고'의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보게 하는 리얼리티쇼다. 특히 한국에서 '날강두'로 이미지가 좋지 않은 호날두, 하지만 최소한 자기 가족에게 날강두는 아닌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호날두 가족의 진짜 모습이 궁금하다면, <아이 앰 조르지나>를 참고하자. 사진 : 넷플릭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최근 몇 년 사이 유재석이 MC를 맡은 프로그램의 시청률 굴욕 기사를 적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그가 맡은 지상파 방송의 평균 시청률은 2%대. 여전히 유느님 혹은 국민 MC로 건재한 유재석이지만, 낮은 시청률은 그에게도 부담일 것이다. 흘러가는 세월과 매체의 변화가 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하지만 어찌 보면 유재석만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OTT에 밀린 방송 예능 전체의 평균 시청률이 2-3% 선에 머물고, 아주 잘 나와도 6%의 벽을 넘지 못하는 판국에 유재석 탓만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국민 MC의 어깨는 무겁다. 그 틈바구니에서도 유재석의 체면을 세워줄 화제성 높은 프로그램이 탄생했으니, 바로 SBS <틈만나면,>이다. 배우 유연석과 지난 4월 첫선을 보였고, 재정비를 거친 후 다시 시청자들을 찾은 <틈만나면,>은 현재 시청률 상승세를 타고 있다. <틈만나면,>은 일상 속 마주하는 잠깐의 틈새 시간 사이에 행운을 선물한다는 프로그램 취지에 맞게 시민들, 시청자들을 매주 만난다. 시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채택된 분을 두 MC 유재석과 유연석이 직접 찾아가고, 그들을 위한 게임 미션에 성공하면 큰 선물을 증정하는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예능 공식으로 짜였지만, 시민 참여라는 키워드는 늘 신선하다. 유재석은 특히 시민들과의 소통에 가장 능한 MC다. 짜인 각본 없는 길거리 인터뷰가 그의 강점인데, 로드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돌발상황이 늘 발생하지만, 유재석에게 모든 것은 유려하다. 뿐만 아니라 시청자 사연을 소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도 물 만난 고기다. 지난 이서진 편에서도, <열혈사제2> 편에서도 출연자와 시민들과의 소통이 어색하지 않도록 다리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며 큰 웃음을 만들어내었다. 선물의 크기와 액수가 늘어날수록 게임 미션의 난도가 높아지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관전 포인트다. 게임에 성공해야만 사연자가 선물을 받아 갈 수 있기 때문에 출연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게임에 진심으로 참여한다. 특히 연예계 대표 투덜이 이서진의 게임 도전은 이서진 본연의 캐릭터와 배치되며 더 큰 웃음을 자아내었다. 펜싱 미션과 어린이집 미션 등에서 끊임없이 투덜대며 유재석과의 케미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게임에는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뛰는 이서진의 모습은 감동과 웃음 모두를 잡을 수 있는 치트키가 되었다. <열혈사제2> 팀 역시 드라마 홍보를 위해 출연하였기에 그 어느 팀보다 높은 팀워크를 선보였고, 열정 높은 게임 참여로 제대로 된 활약을 하였다. 또 한 가지 <틈만나면,>의 브레이크 포인트는 동네 맛집 먹방이다. 게임의 긴장감도 끊임없이 이어지면 숨 막히고 재미가 없을 텐데, '틈'이라는 프로그램명에 걸맞게 사연자들의 만남 중간에 먹방과 게스트 일상 토크가 이어지면서 숨 돌릴 틈을 준다. 이를 통해 '이하늬 서초 맛집', '지창욱 촬영지 어디?' 등 상권에 영향을 미치는 화제성까지 챙겨가고 있으니, 촘촘하게 짜인 로드 버라이어티가 반갑게 느껴진다. 물론 타 프로그램 홍보성 게스트 등 게스트 출연에 따라 시청률과 화제성의 추이가 큰 영향을 받을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다양한 게임 미션과 사연자들의 이야기, 또 게스트들과의 케미스트리 등을 생각해 볼 때 프로그램 자체의 신선도는 꽤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을 것 같다. 유재석은 SBS <틈만나면,>을 통해 재도약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에게 재도약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변화의 상황 속에서 늘 새로운 시도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을 보면 유재석의 시대는 저물 듯 저물지 않을 것 같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요리 서바이벌은 기시감이 높은 콘텐츠다. 높은 인기는 보장되지만, 그 형식은 매우 진부하다. 요리사들의 음식 대결과 이를 통해 우열을 가려내어 단 한 명의 우승자를 탄생시키는 일. 그동안 수많은 서바이벌에서 봐왔던 형식이다. 그런데 <흑백요리사>의 요리 대결은 뭔가 다르다. 요리 대결에 계급을 붙였다. 사실 사람들은 계급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금수저, 흙수저를 연상케 하는 백수저, 흑수저로 나누어진 계급은 시작부터 공평하지 못한 게임으로 비친다. 하지만 계급에 전쟁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쟁을 통해 계급을 부수고, 타파해서 목표를 쟁취하는 언더독 서사. 대중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사 중 하나이다. 현재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는 <흑백요리사-계급 전쟁>으로 뜨겁다. 9월 공개 직후 27개국 글로벌 TOP 10 비영어권 1위를 차지하며 인기와 화제성 모두를 잡았다. 해외에서는 더빙한 성우의 인지도로 우승자를 점칠 정도로 화제를 낳았고, 10월 8일 최종화 공개 직전까지 스포일러 전쟁이 선포되었다. <흑백요리사>에 처음부터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소는 바로 80인의 흑수저 셰프들과 20인의 스타 셰프의 첫 대면 장면이다. 1화의 백수저 등장신은 <흑백요리사>의 취지를 가장 잘 표현한 역대급 등장신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단상 위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흑수저들을 내려다보며 등장한 백수저 군단과 그들의 등장을 경이로움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업계의 계급 구도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흑백요리사>가 단순히 음식 대결이 아닌, 신구의 대결 혹은 실력으로 맞붙는 계급장 싸움의 의미임을 각인시켜 주었고, 이는 시청자들의 아드레날린을 제대로 자극하였다. 12부 동안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다양한 미션이 진행되었고, 초반 20명을 걸러내는 데는 '오직 맛'이라는 심사 목표가 설정되었다. 오직 맛이라는 승부수는 참가자들 중 '맛으로 최고'만을 뽑는다는 군더더기 없는 기준을 설정해 주었고, 계급 간 전쟁의 취지를 빛나게 한 심사 방식으로 평가된다. 눈을 가리고 음식을 맛보는 장면이나, "고기의 굽기가 이븐하지 않다"는 안성재 심사위원의 말까지 수많은 밈이 형성될 만큼 '오직 맛' 승부수는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크게 높였다. 하지만 후반부 미션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팀미션, 레스토랑 미션에 이어, 마지막 2인 결정전까지 '오직 맛'의 심사 방식과는 다른 석연치 않음이 일부 포착되었다. 특히 여타 팀미션은 차치하고라도, 최종 2인을 선정하는 과정은 왜인지 '이븐(일정한)'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단 1-2점 차의 승리로 먼저 결승전에 안착한 것이 2차 미션은 참여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른 7인의 요리를 압도했는가? 하는 점에서다. 사실상 무한 요리 지옥 두부 미션은 <흑백요리사>의 백미이자 프로그램의 취지까지 모두를 살린 완벽한 미션으로 평가할 수 있다. 두부라는 우리의 전통 식재료를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해 내는 미션은 한식의 세계화는 물론 한국 미식의 수준을 증명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였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 요리로 승리를 거머쥔 한국 요리사와 한식 모티브의 세계화에 모든 음식의 중점을 맞춘 재미교포 요리사의 전쟁이 결국 과정보다는 언더독의 승리라는 정해진 결말만을 향해 달려갔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어쩌면 대중들은 1회부터 흑수저의 승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에드워드 리를 응원하게 된 것은 대중들이 좋아하는 언더독 서사를 뛰어넘는 진정성이 대중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흑백요리사>는 한국의 미식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린다는 그 취지 하나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 듯하다. 또 글로벌 인기는 물론 이균의 한국적 서사가 진한 감동까지 선사하였으니 <흑백요리사>는 한국발 넷플릭스의 예능 수작이 탄생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국뽕에 취한다고 한 소리 해도 어쩌랴. 감동과 서사, 열정과 스릴 모두를 잡은 또 하나의 K-콘텐츠 대표작이 탄생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비연예인으로서는 최초로 연예대상을 받은 기안84는 여전히 핫한 방송인이다. 사실 비연예인이라는 수식어도 이제는 큰 의미가 없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타이틀롤을 맡은 프로그램까지 시리즈물로 방송하고 있으니 그가 연예인이 아니면 누가 연예인일까? 방송계에 수많은 라이징 스타가 있었지만 기안84와 같은 방송인은 예나 지금이나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첫 방송 데뷔부터 기행과 센세이션의 아이콘이었고 그 모습은 어쩐지 변함이 없다. 오죽하면 '태어난 김에 사는' 듯한 그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을까? 기안84에게 MBC 연예대상을 안긴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이하 태계일주)는 이미 시즌3을 마쳤고, 쉴 새 없이 그 스핀오프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이하 음악일주)가 방영 중이다. '태어난 김에' 시리즈가 시즌3을 이어오면서 MBC 예능의 새로운 구원투수로 자리 잡았기에 음악 여행의 인기도 보장된 듯 보였다. 하지만 음악일주의 여정도, 시청률도 뭔가 시원치가 않다. 첫 방송 시청률 3.6%,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은 더욱 떨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시즌들과 비교해도 거의 반토막 난 시청률 추이를 보인다. <음악일주>는 기안84의 음악적 영감을 찾아가는 설정이다. 출연자로 빠니보틀과 배우 유태오가 함께한다. 지난 시즌들에선 '태어난 김에 사는' 기안84의 라이프스타일에 걸맞게 그 어느 프로그램과 비교할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해외여행의 최난 코스로 분류되는 남미, 인도, 아프리카를 아무런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그대로 즐기는 기안84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특히 인도 갠지스강물에 풍덩 빠지고, 그 물맛을 보는 기안84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경악과 함께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의 기행이 거듭될수록 시청률과 화제성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음악 여행이라는 목적이 설정된 이번 여정은 왜인지 '태어난 김에'라는 수식어가 썩 어울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를 꿈꿨던 기안84가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는 소개부터도 갸우뚱한다. '태어난 김에 사는' 콘셉트치곤 꽤 구체적이고 갑작스러운 꿈의 설정,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는 것이 왜인지 기안84의 그동안 여정과는 배치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첫 여정으로 선택된 도시는 뉴욕, 많은 예술인의 꿈의 도시이다.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의 브루클린을 방문한 기안84는 길거리에서 예기치 않게(?) 사이퍼 소식을 듣게 되고, 사이퍼를 직관하며 참여한 첫날부터 브롱크스의 음악 여정은 꽤 순조롭게 흘러간다. 그가 직접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이핑(랩 대결)을 했고, 방송용 그림을 만들어낸 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대도시 뉴욕에서의 모습은 지금까지 <태계일주>가 보여준 날 것 그대로의 여행과는 어딘지 많이 달라 보인다. '음악을 찾는 여정'이라는 목적이 많은 것을 인위적으로만 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뉴욕 여정 이후 공개된 <민들레>라는 기안84의 신곡도 큰 무리 없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MBC 예능에서 꾸준히 재미를 봐왔던 예능과 음원의 컬래버레이션이고, 이 또한 예정된 수순이었기에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태어난 김에 흐르는 대로의 여행 참맛을 보여준 기안84, 그런 그의 고생 서사가 이 시리즈를 이토록 사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잠시 잊은 듯한 행보다. 음악 여행의 목적성을 억지로 입혀야 하다 보니, 여행도 그들의 경험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 4화에는 급기야 스톰 체이싱을 떠난 기안84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스톰 체이싱 중에도 '영감'을 이야기하며 음악을 생각해야 하는 기안84의 모습은 왜인지 어색하기만 하다. 화가로서 영감을 받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기안84에게 갑자기 끼어든 음악의 꿈은 시청자들까지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오죽하면 <음악일주>인데 음악 얘기가 가장 지루하다는 반응이 쏟아질까? 아직 프로그램 초반이라 그들의 '음악 여정'을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프로그램의 고유 색채가 변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사진 : MBCentertainment 유튜브, MBC 공식 홈페이지
나영석 PD표 식당 영업 예능이 다시 돌아왔다. <서진이네 2>다. <윤식당>의 스핀오프로 시작한 <서진이네>는 시즌 2를 선보이며 또 한 번 인기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나영석 PD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PD 중 한 명이다.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은 화제성이나 시청률 측면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한국 예능 판의 큰 그림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판도 많다. 지난 몇 년간 보여준 자기 복제식 예능은 '고인 물' 나영석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 식당 영업 시리즈도 그중 하나다. 여행, 농사, 영업 세 가지 종류로 크게 분류할 수 있는 그의 콘텐츠 카테고리는 “같은 형식-다른 출연자”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일까? <서진이네 2>는 론칭 전부터 제작진의 고민이 깊었다. ‘차별화’에 대한 고민과 시즌1에 있었던, 이른바 ‘귀족 영업’ 논란까지 타파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즌1이 멕시코의 더운 날씨를 고려하여 느슨한 영업을 선보였지만, 고생하지 않고 불만을 토로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논란이 일었다. 때문인지 시즌 2에서는 음식을 조리하고 서빙하는 모습도 다양하게 구성하면서도 생업과 같은 노력의 모습까지 모두 잘 담아내야 하며 아이슬란드 특유의 분위기까지 잘 살려야 하는 특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특명의 해결사로 인턴 고민시의 투입은 상술한 다양한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알바 경험이 다양한 고민시는 일머리가 뛰어났으며, 쉴 틈 없이 움직이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크게 놀랐고, 이는 첫 회부터 시청률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해당 특명을 잘 완수한 것에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새로운 논란이 이어졌다. 바로 중국인 섭외 논란이다. 사실 <서진이네 2>의 시청자들은 식당 영업이 거듭될수록 뭔가 이상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은 분명 북유럽 아이슬란드인데, ‘동양인’ 손님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테이블이 동양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국인’ 손님들이 <서진이네 2>를 점령하고 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러한 쏠림현상은 더욱 높아졌고, 급기야 중국인 섭외 논란까지 불거졌다. 논란이 지속되자 제작진은 방송을 통해 해명(?)에 나섰다. 놀라운 점은 <서진이네 2> 아이슬란드 촬영 소식이 이미 대만 방송을 통해 홍보되었고, 중화권 SNS를 통해 전파되면서 친히 아이슬란드까지 날아온 중국인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해프닝은 오히려 나영석 PD의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tvN을 나와 제작사로 자리를 옮겨 공격적으로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고, 자기 복제의 '좋은 예'를 다양하게 보여주며, 나영석 유니버스를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K 콘텐츠의 저력이자, K푸드의 전파자로 선봉에 선 나PD의 능력을 다시금 보여주는 예이다. “또 똑같은 형식의 예능, 지겹다”고 말하기엔 <서진이네 2>가 요즘 예능 시청률로는 이례적일 만큼 높은 시청률(평균 7%)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자기 복제 예능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른바 나영석 키즈로 분류되는 나영석 사단 또는 나영석을 보고 자란 많은 PD들이 이제는 새로운 예능들을 론칭하고 있다. 하지만 그 새로운 예능에서도 나영석의 색깔과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 예능을 찾기 힘들다. 최근 방영 중인 tvN <언니네 산지직송>만 보아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과 색깔, 역시 나영석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직은 한국 예능의 과거와 미래가 나영석을 통해 성장, 변화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진 : 'TVING', 인스타그램 tvn_joy
요즘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은 판타지 스릴러와 장르 융합이다. 아직도 선재 앓이 중인 팬들에게 아주 살짝 <선업튀>의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또 새롭게 웃기는 로맨틱 코미디물이 등장했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이하 <낮밤녀>)다. <낮밤녀>는 로맨틱 코미디에다 판타지 스릴러라는 장르 융합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특이점이 있다. 웹툰 원작이 없다는 점이다. 이제는 웹툰 원작이 '없는' 드라마가 오히려 특이점이 된 시대. 그만큼 만화적 설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앞뒤 개연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판타지가 요즘 드라마들의 특징이다. <낮밤녀>는 8년간 공시 준비생으로 살아가던 이미진(정은지 분)이 낯선 고양이와의 만남 이후 낮에는 50대 몸의 임순(이정은 분), 밤에는 다시 이미진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이러한 변신의 모티프는 오랜 세월 이야기 원형으로 사랑받은 소재이다. 변신은 인간의 욕망을 내재하고 있는데, 어떠한 제한도 없는 자유가 주어지는 변신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이루어낼 수 있는 욕망을 내포하고 있다. 미진은 8년간 준비한 공무원 시험에 또다시 낙방한 것도 모자라 금융 사기까지 당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그 와중에 만난 고양이가 자신을 50대의 몸으로 변신시킨다. 하지만 50대로의 변신은 오히려 이미진에게 기회로 다가온다. 50대 임순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20대 이미진이 행하지 못한 많은 것을 해낸다. 이 '변신'의 모티프는 <낮밤녀>의 코미디 강점을 가장 잘 부각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된다. 임순의 몸이 입혀졌지만 생각과 영혼은 이미진이기에 행동과 말투, 생각은 여느 96년생 MZ와 다르지 않다. 공공근로 인턴의 다른 경쟁자들과는 다른 발음과 몸짓, 외국어 능력 등은 면접장에서 빛을 발한다. 또 코딩과 엑셀의 신(神)인 50대 임순의 활약이나, 회식 자리 댄싱퀸으로도 빛나는 50대 임순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선사한다. 이는 현재의 사회 문제들과도 일맥상통한다. 연쇄 실종·살인사건으로 시작된 대호리의 불안과 펜타닐이라는 최근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마약 사건과의 연결은 강력범죄의 심각성을 부각시킨다. 특히 강력범죄들을 더 이상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 않고, 그저 조용히 묻어버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날리듯, 개인의 원한으로 말미암아 검사로서의 본업을 충실히 해내는 계지웅(최진혁 분)검사의 모습은 큰 울림을 선사한다. 또 차가운 카리스마 속에서도 따듯한 츤데레의 전형을 보여주는 계검사의 본업 모먼트는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강점을 최대한 살린다. 내 여자에게만은 따듯한 계검사의 츤데레,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자상함은 물론 서서히 빌드업되는 두 남녀의 로맨스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또한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이 드라마를 더욱 입체적으로 빛나게 한다. 검찰청의 재미를 돋보이게 하는 고원(백서후 분)과 임순의 케미, 이를 더욱 빛나게하는 수사관의 코믹 연기는 큰 웃음을 자아낸다. 또 미진의 가족과 친구들, 공공 근로 인턴들의 각자의 사연까지 입체적 캐릭터들이 재미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로맨스와 코미디, 스릴러와 판타지까지 다종 장르를 한꺼번에 보여주려다 보니 뿌려진 떡밥이 많지 않나 하는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벌써 드라마가 중반부에 들어섰지만, 마을 살인사건과 고원의 연관 관계, 임순 이모의 실종, 고양이의 행방까지 풀어야 할 숙제들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탄탄하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연결고리들이 심각한 사회 문제에 경종을 울리며 서서히 떡밥들을 회수하고 있으니,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낮밤녀>의 결말이 더욱 궁금해진다. 사진 : JTBC Drama, DRAMA Voyage 유튜브 채널
이제 콘텐츠업계에서 웹툰을 원작으로 하지 않은 드라마는 매우 드물거나, 있어도 흥행을 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오죽하면 원래 있지도 않은 웹툰 원작을 '흥행'을 위해 후반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영상 콘텐츠에서 웹툰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은 흥행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 장점은 '만화적 허용 또는 표현'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현실과는 다른 짜릿함을 선사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현실과 동떨어짐은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만화적 허용'이 개연성 또는 당위성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텐데, 이러한 현상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개연성이냐 만화적 재미냐. <더 에이트 쇼>는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더 에이트 쇼>는 박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첫 회를 보면, 단박에 <오징어게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상금 그리고 게임. 승리자에게 상금을 주는 형식의 서사는 이미 다양한 콘텐츠의 익숙한 소재이지만, 우리에겐 <오징어게임>이 하나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초반 1-2회만 지나도 단박에 <오징어게임>과는 전혀 다른 결의 드라마임을 확인할 수 있다. <더 에이트 쇼>는 돈으로 궁지에 몰린 8명의 참가자가 시간을 버티면 그에 상응하는 상금이 지급되는 어떤 '쇼'에 참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8명의 참가자들은 랜덤으로 각자 원하는 층을 뽑고, 그곳에 기거하며 상금을 쌓아간다. 상금은 층별로 차등 분배되는데, 층수가 즉 권력이자 계급이다. 층수(계급)에 따라 시급과 물가가 결정되므로 돈을 빠르게 많이 버는 높은 층수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돈의 권력을 휘두른다. 돈을 지급하는 주체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참가자들을 휘두르고, 시간 즉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참가자들을 비웃듯 시간은 제멋대로 주어진다. 특히 참가자들의 게임이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흘러갈수록 시간은 늘어만 간다. <더 에이트 쇼>는 피보나치 수열, 황금비 등 다양한 공식과 설정 그리고 이를 끊임없이 설명하는 3층 류준열의 목소리가 지배하는 드라마다.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방대하지만 막연하고 복잡하다.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날선 비판, 결국은 돈 많은 계층이 지배계층이 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쇼'라는 장치를 끌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 쇼의 전개 방식이 계급을 향한 투쟁과 부조리를 바꾸기 위한 여정 등에 집중된 것이 아닌, 그저 나쁜 8층의 횡포를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하며 잔혹한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느껴야 할 주제의식은 사라지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씁쓸한 뒷맛만 남긴다. 사실 <오징어게임>의 이른바 한국형 신파, 주인공의 '게임 머니'를 향한 여정에 서사를 부여하거나, 참가자들의 행보에 당위성을 부여한 것 등은 전 세계인이 이 드라마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무거운 주제의식일지라도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개연성을 가진 서사 구조를 활용했고,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깊이 몰입할 수 있었기에 세계적 작품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에이트 쇼>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이른바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함은 그 주제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핵심을 간파하지 못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주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가학을 넘어 드라마를 끄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게 한다. 쓴맛은 가득한데, 사이다 결말조차 없는 이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말은 도대체 무엇인가. <더 에이트 쇼>는 인내하고 봐야 하는 가학성, 잔인성, 특이성을 고루 갖추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정리가 잘 안 된 느낌이다. 그저 가진 자는 악하고 못 가진 자는 선할 수도 있다는 클리셰 아닌 클리셰로 결국은 한국 사회를 극단의 병든 사회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차라리 '쇼' 비즈니스를 위해 변질되어 가는 인간 군상을 심도 있게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원작과 감독이 원했던 '교훈'은 그것이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현재 대중문화의 주류 콘텐츠는 TV나 OTT, 유튜브 할 것 없이 관찰카메라의 형식을 띠고 있다. 관찰카메라는 예능판의 주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때문인지 시청자도 남의 일상을 훔쳐보는 것에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다. 관찰 형식과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의 OTT 브이로그까지 큰 인기를 끌면서 관찰은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비연예인(일반인)과 유명인의 경계까지 모호해지면서 이제는 연반인(연예인+일반인의 합성어), 인플루언서 등이 콘텐츠의 중심으로 급부상하였다. 특히 콘텐츠의 송출 루트가 확대될수록 연반인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공중파보다는 다양한 OTT를 통해 프로그램을 선보이다 보니, 오히려 출연료와 리스크가 높은 연예인보다 비연예인의 수요가 높아지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하고,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비연예인들의 출연을 제작자도 소비자도 반기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최근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 소재가 있다. 바로 비연예인 예능의 역습,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다. 연애 예능은 앞서 살펴본 콘텐츠의 특징들을 아우를 수 있는 최상의 선택지로 활용되고 있다. 모르는 비연예인의 궁금한 일상을 훔쳐보는 재미, 남의 연애를 훈수 놓으며 함께 보는 재미, 수위 높고 자극적인 남의 연애사도 혼자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즐기는 이들에게는 '종합 선물 세트'와 같은 프로그램이 바로 연애 예능인 것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연애 예능 춘추전국시대이다. 최근 2-3년간 송출된 연애 예능만 이미 30여 개를 훌쩍 넘었고, 그중 몇 작품은 신드롬적 인기를 구가하였다. 취향에 따라 골라볼 수 있는 종류도 다양해졌으며 특정 연령층이나 성적 취향을 고려한 콘텐츠들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환승연애 3>는 시들고, <연애남매>는 뜬다? 신드롬적 인기를 구가한 대표적인 연애 예능 <환승연애>는 지난 3년간 이른바 '환친자(<환승연애>에 미친 자)'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이다. '환승'이라는 말이 연애의 핫 키워드가 된 지금을 있게 했고, 헤어진 전 연인이 동반 출연하여 새로운 사랑을 찾는 파격적인 시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이 <환승연애> 1, 2를 이끈 이진주 PD가 JTBC로 이적하면서 새로운 연애 예능을 론칭했다. 현재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연애남매>이다. 두 인기 연애 예능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색다른 시도'이다. 사실 연애 예능은 호불호가 분명한 장르이다. 때문에 콘텐츠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강한 호기심 유발은 연애 예능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초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환승', '남매'라는 연애와는 왠지 동떨어져 보이는 키워드를 '제목'으로 설정했고, 초반부터 출연자들의 서사를 풀어내며 빠른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하지만 최근 <환승연애 3>는 이렇다 할 화제성을 모으지 못한 채 종영하였다. 서사와 감정이 제대로 담기지 않아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기나긴 러닝타임으로 욕하면서 보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하였다. 반면 <연애남매>는 <환승연애 3>의 아쉬운 빈자리를 채우며 크게 선전하였다. 특히 기존 연애 예능과는 방향성이 다른 과몰입을 유발하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 혈육의 로맨스 '연애남매' 내가 썸을 타는 듯한 일반적인 연애 예능의 '과몰입'이 아닌, 내 혈육을 향한 사랑에 과몰입하게 되는 정서라니. 남녀가 아닌 남매 간의 사랑에 깊이 공감할수록 몰입도는 더욱 올라간다. 세상에 둘 밖에 없는 초아-철현 남매나 든든한 오빠미로 9살 어린 동생을 지켰던 용우-주연 서사를 볼 때는 연애 예능이 애먼 결혼, 출산 장려의 기능까지 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또 출연자들의 어린 시절 홈캠 영상과 남매 부모님들의 등장 등 세심한 연출은 감동을 배가시키며 색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다. 연애 예능 춘추전국시대, 레드 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축전이 치열하다. 이미 검증된 콘텐츠라고 안심할 순 없다. 매너리즘에 빠진 콘텐츠는 더 이상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그 빈자리는 참신한 다른 콘텐츠가 채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진 : JTBC, TVING
사실 내용도 구성도 어느 하나 익숙하지 않은 게 없는 드라마다. 그럼에도 첫 화부터 시선을 사로잡았고, 9부 능선을 넘은 현재, 최고 시청률을 계속해서 갱신하고 있는 <눈물의 여왕>, 그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형 로맨스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고,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K-콘텐츠의 핵심이라 가히 칭하고 싶다. 때로는 신파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한국 로맨스는 특유의 소재들이 다양한 변주를 일으키며 발전하고 있다. 물론 이 '소재'들이 수많은 전통 문화원형 속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험난한 사랑과 이를 이루어가는 과정은 한국형 로맨스의 근간이 되고 있다. 박지은 작가의 전작들만 살펴보아도 외계인과 인간의 사랑을 그린 <별에서 온 그대>, 바닷속 인어와 인간의 사랑 <푸른바다의 전설>과 북한 남자와 한국 여성의 사랑 이야기 <사랑의 불시착>을 비롯한 수많은 드라마들이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의 설정을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눈물의 여왕>은 이루어지기 힘든 '다양한' 사랑 중에서도 우리 드라마 클리셰의 정수, 신데렐라형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눈물의 여왕> 속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의 설정은 단순히 클리셰로 단정짓기 힘들다. 어떠한 변주로 지겨운 클리셰 논쟁을 타파했으며, 무엇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을까? "세기의 결혼… 인 줄 알았습니다." <눈물의 여왕>은 우선 흔한 신데렐라형 사랑 이야기의 남녀 성별을 바꾸었다. 여성 주인공이 캔디나 신데렐라가 아닌 세상에서 제일 당당한 재벌 여성, 남성 또한 출신이 시골일 뿐(돈으로 계급을 나누는 현 세태를 비꼬며) 그 어느 남자보다 멋지고 인텔리한 모습을 자랑한다. 그동안 한국 로맨스의 클리셰로 비판받던 가난한 여성과 부자 남성의 사랑을 전복하여, 여성 서사를 강화하였다. 또한 여타 한국형 로맨스는 '결혼' 또는 두 사람의 '결합'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는다. 그 과정 속에는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하고, 서로를 밀어내는 순간도 있지만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눈물의 여왕>은 첫 화에서 이미 백현우(김수현 분)와 홍해인(김지원 분)은 신분을 뛰어넘고 결혼했고, 뜨겁게 사랑했던, 혹은 지금도 사랑하는 두 남녀가 헤어짐의 과정을 통해 서로를 향한 진정한 사랑을 확인해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법적으로 이혼을 했지만, 여러 상황들로 함께 살고 있는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나, '이혼'을 핑계로 스스로의 사랑을 험난하게 만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그 사랑을 응원하고 애타며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여주인공의 시한부 판정이나 재벌가 경영권 분쟁 등의 클리셰가 빈 곳을 채워준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결정적 이유는 코믹함의 기초공사 속에서 눈물을 적당히 배치했기 때문이다. 연신 눈물을 훔쳐야 할 것 같은 상황이 많지만, 절대 클리셰에 신파를 더하지는 않는다. 또 사위들이 제사상을 차리거나, 고모 범자가 사건 해결의 키(key)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 악인에게도 탄탄한 서사를 부여한다는 점 또한 다르다. 결국 신데렐라 스토리의 외관만 살짝 따왔을 뿐 표현하고 있는 그들의 사랑은 사실상 신데렐라 클리셰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시한부 같지 않은 당당함과 멋짐을 뽐내는 홍해인은 새로운 시한부 캐릭터를 만들고 있으며, 인텔리 남자 신데렐라 백현우가 퀸즈그룹의 구세주로 활약하는 모습도 신선하다. 결국 어디서 본 것 같은 것들의 집합체이지만 새로운 접근으로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내 최대 유통회사가 이렇게나 허술하게 경영권이 넘어갔다는 포인트에서 갑론을박도 있으나, 이 모든 것 또한 앞으로 행보를 위한 주요 떡밥들이 되고 있으니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클리셰를 신선하게 만드는 힘,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K-드라마의 힘이다. 사진 : tvN
OTT가 매체의 주류가 되면서 콘텐츠의 내용과 질은 크게 달라졌다. 다양화된 콘텐츠는 대중들의 볼거리 니즈를 크게 충족시켜준다. 개인 기기를 통해 콘텐츠를 혼자 시청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콘텐츠를 구독 및 비용을 지불하여 즐기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대중들의 니즈는 더욱 높아지고, 콘텐츠 소비의 개인화·개별화는 가속화되었다. 콘텐츠 소비 형태의 변화는 당연히 제작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무난한 소재로 가족과 함께 보기에 무리가 없는 콘텐츠 제작이 주류이던 시대는 끝났다. 콘텐츠 소재는 다양화·세밀화되고, 이와 동시에 자극성과 선정성, 폭력성 높은 콘텐츠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넷플릭스 시리즈 <성+인물>도 이러한 변화의 일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상 방송 콘텐츠에서는 절대 다룰 수 없었던 내용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성+인물>은 신동엽-성시경 두 MC가 각 나라의 성(性) 산업과 성적 지향을 탐방하고 당사자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성+인물> 일본 편이 첫선을 보였을 때, 국내 반응은 싸늘함을 넘어섰다. 큰 논란을 불러왔는데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성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미화였고 두 번째는 MC 신동엽의 <동물농장> 하차 요구였다. 납득이 갈 만한 논란과 전혀 그렇지 않은 논란이 동시에 일 만큼 <성+인물>의 후폭풍은 거셌고, 더 이상의 시즌은 불가능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성+인물>은 일본 편을 넘어 대만 편, 독일-네덜란드 편까지 시리즈화를 마쳤고, 어엿한 인기 콘텐츠 반열에 올라섰다. <성+인물>이 일본 편의 수많은 잡음을 딛고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역시 일본 편의 문제점을 잘 수용한 제작진의 노력에 있다. AV물, 성인 동영상이 불법인 우리나라 정서상 AV 강국 일본의 성 산업 종사자들, 특히 AV 배우들에 대한 인터뷰는 대중들에게 자극을 넘어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일본 본토의 성 문화 인식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여성 AV 배우들의 고수익에 대한 찬양 아닌 찬양이 이어지면서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논란을 직면한 제작진은 이후 시즌부터 '제도적·문화적 차이, 국가별 인식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하였다. 특히 대만 편의 경우,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것이나, 실제로 커플을 이루어 살고 있는 레즈비언 커플의 임신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부모 세대의 생각 등 다양한 사회적 논의들을 집중 인터뷰하면서, 큰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이 놀라움은 그야말로 이렇게나 다른 문화와 인식의 차이에 대한 경이로움이었고, 이는 다음 시즌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최근 선보인 독일-네덜란드 편에서도 유럽 문화권이 가진 생각의 차이를 더욱 깊이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의 혼탕 문화, 나체주의에 대한 역사와 물결 그리고 일부다처 혹은 일처다부의 사랑 방식 등 예상보다 더욱 파격적인 '차이'들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들에서 국가적 담론, 법안과 사회적 논란을 비롯, 역사적 기원과 특징 등을 다양하게 설명하면서 우리와는 '다름'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였다. 당연히 자극적이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다. 오히려 더욱 자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성(性)이라는 섹슈얼리티에 집중하지 않고 서로 다른 '문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한 것도 제작진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자극이 일상화되면서 보수적인 기존 한국 사회의 생각과 매체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인식들이 충돌하면서 수많은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충돌들 속에서도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우리의 인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인물>의 시리즈화는 개인적으로 반갑다. 이 정도의 대리 체험을 거실에 앉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또 다른 의미의 세계 여행을 한 것만 같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