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여 편의 영화를 번역한 뒤, 영화 이론과 예술치료를 공부했다. 영화 칼럼을 쓰고 방송을 하면서 영화 속에 깔린 심리의 지도를 찾아나가는 중이다.
지난 5월 1일부터 10일까지 개최됐던 전주영화제, 특히 동시대 젊은이들의 고뇌를 담은 영화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나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사는 동안 평생에 걸쳐 이어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삶의 궤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는 중장년에 비해 정체성이 확고하게 정해지지 않은 청년이 갖는 불안감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박정미 감독의 다큐멘터리 <담요를 입은 사람>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군인 출신인 박정미 감독은 원래 영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다큐를 만들 목적으로 촬영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이 다큐는 박정미 감독이 치열한 삶을 요구하는 사회에 회의를 느껴 세운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됐다. 프로젝트의 제목은 '1년 동안 돈 쓰지 않고 영국에서 살아남기'다. 철없어 보이는 이 프로젝트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촬영 후 편집을 거쳐 영화로 탄생하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영화가 될 가능성이나 확신이 없는 채로 단지 자신이 세운 프로젝트를 기록으로 남길 목적이었다. 세계 곳곳에 있는 공동체 네트워크의 도움으로 수많은 위기를 한 고비 넘겨내는 과정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살기 위해서는 주거할 곳과 음식은 필수다. 그것만 해결되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인다. 자전거를 기증받고, 한 달간 보트를 무료로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으면서부터 무료 여행은 시작된다. 음식점과 시장에서는 팔다 남은 멀쩡한 음식과 채소를 그대로 쓰레기 봉지에 담아 내놓기 때문에 잘만 고르면 성찬을 누릴 수도 있다. 쓰레기 봉지를 뒤지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를 필요로 한다. 혼자서는 엄두를 못 냈지만 박정미 감독은 공동체 일원의 도움을 받아 버려진 음식 챙기기에 성공한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을 견디어내는 삶은 어떤 느낌일까. 운이 나쁘면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녀는 세계 곳곳에서 자유롭고 자연 친화적인 특별한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도움으로 숙식 문제를 해결해 간다. 특히 이란에서는 찾아온 손님을 친절하게 대접하는 종교적 문화 덕분에 순탄한 여행이 되는 듯했지만 위기가 찾아온다. 히치하이킹은 여성에게 특히 위험하다. 실제로 돈다발을 내밀며 섹스를 요구하는 운전자도 있었다. 친절한 사람들의 천국처럼 느껴졌던 이란에서 오토바이를 얻어 탔다가 목숨을 위협당하는 위기를 겪는다. 목적지와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걸 보고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는데 남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알라를 외친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긴 일화를 감독은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무사히 프로젝트에 성공한 그녀는 자신감과 성취감으로 행복을 만끽했을까. 프로젝트를 마칠 무렵 그녀는 여전히 불안정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로젝트에 성공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며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미지수다. 그렇다면 그녀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큐를 보면 그 안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벽이 앞을 가로막는다고 생각됐을 때도 어딘가에 출구가 생긴다. 그러다가 곧 또 다른 벽이 나타나지만 그 느낌은 처음처럼 그렇게 막막하지는 않다. 싱가포르 출신 숀 네오 감독의 <끝없는 기다림의 날들>과 앤서니 첸 감독의 중국영화 <브레이킹 아이스>에서도 비슷한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제목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두 영화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불안하다. <끝없는 기다림의 날들>이라고 번역된 제목처럼 끝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브레이킹 아이스>에서처럼 얼음이 깨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인지, 반대로 얼음을 깨고 싶어 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주인공들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해결책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본인도 알지 못한다. <끝없는 기다림의 날들>은 숀 네오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주인공인 미쓰에는 새로운 삶을 찾아 싱가포르로 갔지만 방황 끝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음을 보여준다. 고향의 설경에 파묻힌 그녀의 모습은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안정감이 느껴진다. 숀 네오 감독은 불확실한 정체성으로 방황했던 자전적 스토리를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인생을 묘사한 듯한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자신 안에 있는 벽과 한계를 가늠할지도 모른다. 앤서니 첸 감독의 <브레이킹 아이스>에서는 세 명의 젊은이가 등장한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에서 안생역으로 친숙한 배우 주동우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두 남자와 한 여자는 우연히 여정을 함께 하게 됐는데 각자 문제를 가슴에 안고 있다. 영화는 간접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드러낸다. 여성이 지닌 우울감의 정체는 영상을 통해 짐작하게 된다. 피겨스케이터였던 여성은 부상으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우연히 만난 한 남성의 문제점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성공을 향해 질주했고 이제 연봉 높은 회사에 취직해 목표에 도달한 듯 보이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다. 여성은 처음 만난 그에게서 자신의 가슴에 뚫려 있는 구멍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여성은 자신을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던 다른 한 남성의 마음을 알면서도 새로 만난 남성과 사랑의 행위를 한다. 세 사람은 미묘한 관계가 됐지만 내색하지 않고 여정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언급한 세 영화들을 비슷한 나잇대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영원히 변치 않는 안정된 삶이란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에 인간에게 불안감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영화는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감정인 불안감을 여러 방식을 통해 늘 보여줬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행운일 수도, 불행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됐든 그들은 살아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삶은 계속 이어지게 된다는 평범함과 각자만의 특별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나이가 차면 의무처럼 결혼과 독립이 동시에 이뤄지던 시대와는 달리,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평균 결혼 연령이 올라가고 이혼율과 재혼율도 상승했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관심은 여전함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다. 오락성이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일부이지만, 자신과 미래를 함께 할 상대를 원하는 진지함도 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싱글 남녀 사이에서 발생하는 은밀한 밀당을 엿보는 관음증적 재미도 짝짓기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이다. 엠넷에서 방영됐던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 <커플팰리스>가 시즌 원을 끝내고 시즌 투를 예고했다. 각 방송사에서 진행해 왔던 짝짓기 프로그램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커플 매칭 프로그램은 1994년 MBC의 '사랑의 스튜디오'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해 왔다. 개인정보가 노출되고 공개적으로 데이트 상대를 고르기 때문에 출연자들이 가질 수 있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짝짓기 프로그램은 꾸준하게 관심을 끌어왔다. 특히 2011년부터 3년간 방송됐던 SBS의 '짝'은 새로운 방식으로 인기를 모은 프로그램이었다. 일반인들이 며칠간 숙소에서 함께 지내며 상대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방식이 그 당시 기존 프로그램과 차별을 보였다. 출처 : Mnet TV <커플팰리스>는 소수의 남녀가 출연했던 기존 프로그램들과 달리, 남녀 50명씩 총 100명의 싱글이 출연해 선택의 범위를 넓혔다. 일반적으로 나이와 이름, 직업 정도를 밝히고 시작하는 기존 프로그램과는 달리, 짝이 정해져 커플팰리스에 입성하는 순간까지 나이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대신 첫 소개 때, 자신이 상대에게 바라는 특징을 문구로 내걸면서 자신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상상하게 한다. 특히 <커플팰리스>는 목표 지점이 단순한 데이트가 아닌 결혼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시작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결혼의 현실적인 조건인 자신의 직업과 연봉, 재산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부모의 직업이나, 집안의 재산까지도 장점으로 내세우면서, 결혼하면 아버지가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줄 거라는 조건까지 당당하게 밝히고 그 조건에 마음이 흔들리는 이성의 모습도 솔직하게 보여준다. 결혼정보회사의 커플 매니저들도 합세해서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언을 주고 이상적인 결혼 상대의 순위까지 매긴다. 배우자감을 서열화하고 계산적인 느낌을 주지만, 결혼 역시 인생에서 가장 큰 비즈니스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반전의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부터 순조롭게 이뤄지고 거의 확정된 것처럼 보였던 커플들이 깨지고, 후반부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른 상대와 새롭게 매칭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결혼을 목표로 했을 때 사람의 마음을 가장 흔들리게 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도 파악하게 된다. 결혼 상대에 대한 기대감과 현실이 부딪히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이런 문제는 결혼 후에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출연자들은 최종 결정을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속으로 수십 번 자신의 결정을 번복한다. 출처 : Mnet TV 다른 프로그램과는 달리, 커플이 된 사람들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사진을 찍고 신혼여행을 온 것처럼 한 방에서 구체적으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청첩장도 쓰고 상견례까지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은 가상이지만 더 신중하고 진지한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긴장과 압박감을 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호감형의 외모를 가진 상대에게 표가 몰리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가 생긴다. 커플이 깨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최종 결정까지 이어질 거라고 믿었던 상대가 다른 이성이 보내는 신호에 마음이 흔들렸다는 사실을 눈치채면서 신뢰에 금이 가고, 커플존에 있던 커플은 다시 싱글존으로 옮기거나 커플팰리스를 떠난다. 두 번째는 자신의 경제력에 비해 상대의 기대가 너무 커서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정이 끝난 듯이 보이는 커플을 향한 방해 공작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상대만 보기보다는 여러 상대를 만남으로써 좀 더 신중한 선택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시청률 상승을 위해 긴장감과 반전을 노린 전략으로 보인다.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듯이, 결혼이 사랑의 결실에서 현실과 타협으로 변질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결혼이란 애초부터 매우 현실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경제력이 비등해지고 결혼이라는 현실에 이상적인 환상이 스며들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선택이 더 까다로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 Mnet TV 잘 어울리는 커플이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하고 행복해하는 결말의 영화나 드라마를 선호하는 것은 실현이 쉽지 않은 환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커플팰리스>에서 첫눈에 끌린 커플이 끝까지 가는 경우는 상대에 대한 안정감과 신뢰감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일단 이성적인 끌림이 먼저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운'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한다. 그리고 그다음은 신뢰와 안정감이다. 편하지만 설렘이 없거나 끌림이 있지만 상대가 확신을 주지 않는 경우에는 성사가 되지 않았다. 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의 시대가 됐다. 그리고 적절한 혼기라는 단어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결혼 시기도 다양해졌으며 <커플팰리스>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성이 남성보다 나이가 더 많거나 돌싱인 경우도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혼 역시 안정감과 구속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며 한 가지를 얻으면 다른 한 가지는 희생된다. 다른 한 가지를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결혼 의사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80회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만든 하마구치 류스케는 현재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일본 감독이다. 호평을 받았던 그의 전작들 <해피 아워>, <아사코>,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면서 감독의 색깔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관객은 그의 최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다. 이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는 대체 어떤 색깔을 지닌 감독인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영어 제목도 의도적으로 매우 강렬하게 등장시킨다. 처음에는 악이 존재한다는 것처럼 읽히게 만들다가 not이 가장 나중에 강조하듯 빨간색으로 꽂힌다. 마치 악이 존재한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태도를 바꾸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는 제목에 비해 영화는 큰 변화 없이 조용하게 진행된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류스케 감독의 기존 영화와 결이 다르다. 이전의 영화에서는 대사를 통한 언어유희를 많이 사용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연출가이면서 배우이기도 한 주인공이 연극 대사를 계속 연습하면서 마치 현실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이 느껴지게 하고, <우연과 상상>, <해피 아워>처럼 캐릭터들이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욕망을 꺼내놓기도 하고, 반대로 상대방의 말에 자극을 받아 숨겨진 욕망을 발견하기도 하는 방식이 특히 여성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받아왔던 반면 이번 신작은 그런 기대감을 배신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타쿠미는 시종일관 표정의 변화가 없다. 그런데 그 무표정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느낌이 살아있다는 것 또한 독특하다. 그의 얼굴은 무심한 자연을 닮았다. 제목이 등장할 때 '악이 존재한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로 바뀌었듯이, 영화는 감춤과 드러냄을 반복하면서 오히려 존재성을 강조한다. 건망증이 심한 타쿠미는 딸인 하나의 하교 시간을 자주 놓치기 때문에 하나는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자주 언급되는 사슴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를 인식시킨다. 예를 들면 하나를 찾아 타쿠미가 혼자서 숲길을 걸어가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찍는데, 잠시 언덕에 가려져 보이지 않다가 다시 나타날 때는 타쿠미가 하나를 업고 걸어가는 모습이 나온다. 그 사이에 타쿠미가 하나를 찾았다는 어떤 힌트도 주지 않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장면이다. 영화엔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가장 논란이 되는 장면은 타쿠미가 갑자기 기획사 직원인 타카하시의 목을 조를 때이다. 총에 맞은 새끼 사슴과 어미 사슴 앞에 서 있는 하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던 타카하시를 왜 막았으며 죽이려고까지 했을까. 타카하시는 악인이라고 할 수는 없는 평범한 사람이며 기획사를 그만두고 글램핑장의 관리자가 될 생각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성공을 위한 계획이었지, 타쿠미가 주장하는 자연과 균형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타쿠미가 '사슴이 다니는 길에 글램핑장이 생기면 사슴은 어디로 가죠'라고 물었을 때도 '어디론가 가겠죠'라는 무책임한 대답을 한다. 가장 피해가 예상되는 우동 가게에서 식사를 대접받았을 때도 주인에게 "덕분에 몸이 따듯해졌네요"라는 인사말을 한다. 그 말에 주인은 "맛에 대한 칭찬은 아니네요."라고 지적한다. 타카하시의 중심은 상대나 주변이 아닌 자신에게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악은 대단한 것이 아닌 평범한 이기적 욕구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이지만, 그 반대를 뜻할 수도 있다. 타쿠미는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하나의 운명을 자연에 맡긴 것인지, 사슴과 교류를 꿈꿨던 하나의 기대가 잘못됐음을 보여주는 것인지, 하나와 타카하시가 사망한 것인지도 영화는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타쿠미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하나를 안고서 숲 속을 향하는 장면만 보여준다. 자주 언급되는 사슴은 어떤 의미일까. 자연의 일부이면서, 영화에서는 자연을 대표하는 사슴은 인간과 교류하지 않는다. 사슴의 존재성은 총소리와 흔적으로 드러난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과 총을 맞고 죽어 뼈만 남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특히 사슴이 물을 마시는 장소는 영화에서 몇 번씩 등장하는데 여러 각도에서 매우 아름답게 잡고 있다. 사슴이 직접 물을 마시는 장면은 없지만 평화로운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타쿠미의 딸인 하나 역시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숲에 있는 수많은 나무들의 이름을 알고 있으며 자연스레 사슴의 자취를 따라간다. 아래를 향해 굽이쳐 내려가는 물줄기도 자주 등장한다. 글램핑장 건설 설명회 때,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이 마을의 어르신은 물은 아래로 흐른다는 말을 화두로 꺼내면서 이 사업의 윤리성을 문제 삼는다. 타쿠미는 집에서 함께 놀아달라는 딸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종이에 '물은 아래로 흐른다'라는 문장을 쓴다. 이 말은 악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아무리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내세워도 상층에 있는 부류는 계획을 바꿀 생각이 없다. 그들의 존재성은 자본에 있기 때문이다. 타쿠미가 자연과 상생을 주장하면서 내세운 균형이란 단어는 양보와 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화상 미팅을 통해 나누는 사장과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기획사 직원들의 대화를 보면 그런 균형은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아래쪽 부류만 희생된다.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악은 그 순간에 생성될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지닌 속뜻을 생각하게 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새 영화, <메이 디셈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의 성향을 봤을 때 당연하게 생각된다. 그는 주류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그가 소수자들을 서사화하는 방식은 비슷한 관심을 가진 다른 감독들과 차이가 있다. 사회가 비정상이라는 범주로 몰아넣은 캐릭터들을 묘사하면서, 누가 과연 비정상인지 모호하게 만든다. 토드 헤인즈는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주류 사회의 습성을 비꼰다. 그는 무엇이 정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왔다. <메이 디셈버>를 보면서 토드 헤인즈의 인기작, <캐롤>을 떠올린 이유는 매혹적인 긴장감 때문이었다. 토드 헤인즈는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세계가 어느 한순간 파괴될 것 같은 불안감을 매혹적으로 표현하는 감독이다. <메이 디셈버>는 도입부터 스릴러 느낌을 주는 배경 음악을 깔고 있다. 영화 제목인 <메이 디셈버>는 나이 차이가 큰 커플을 뜻한다. 23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24년간 결혼생활을 지속해온 그레이시(줄리안 무어)와 조(찰스 멜튼)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자녀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듯 보인다. 그들 사이에 유명 여배우,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가 끼어들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독립영화에서 그레이시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 가족과 며칠간 함께 생활하면서 인터뷰를 한다. 엘리자베스는 캐릭터의 내면을 이해해야 진실에 가까운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배우다. 하지만 영화는 진실에 접근하고 싶어하기보다는 진실의 존재 가능성을 비웃는다. 그레이시와 첫 만남을 가진 엘리자베스는 당황한다. 그레이시는 13살에 불과한 아들의 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던 과거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음과 모호함은 그녀에게 소유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 되기에 집착한다. 영화는 그레이시와 엘리자베스를 의도적으로 한 화면에 잡아 닮은 모습으로 묘사한다. 엘리자베스는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거나, 회색지대에 있어서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레이시와 조가 첫 관계를 맺었던 펫샵의 지하실을 찾아가 그 당시 그레이시의 모습을 재현하거나, 어린 시절의 조를 섹시하다고 표현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인다. 자신감과 확신으로 질서를 주장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레이시다.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우유를 억지로 먹이려 들고, 집안의 전통이라면서 딸에게는 체중계를 선물한다. 그리고 체중계가 없으면 어떤 삶이 될지 아냐고 경고한다. 체중계는 절제를 의미한다. 정작 본인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전 남편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충격을 줬는데도, 진정한 사랑이라는 틀을 만들어 정당화한다. 세상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피해를 본 쪽은 조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암시까지 한다. 주요 세 캐릭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엘리자베스의 배우로서 정체성은 그레이시를 완벽하게 연기해야 완성되기 때문에 그레이시의 내면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그레이시는 24년간 동안 유지되어온 결혼생활이 그들의 사랑을 증명해줬고 그래서 비정상에서 정상의 궤도로 넘어왔다고 믿는다. 그러나 조의 생각은 다르다. 너무 어렸을 때 했던 선택이 옳았는지 흔들린다. 현재의 조를 지지해주는 정체성은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다. 그래서 자녀의 독립은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가 빈 둥지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쌍둥이의 고교 졸업식 때 눈물을 흘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레이시의 전 남편인 톰, 그리고 현재 남편인 조와 친구면서 그레이시의 아들이기도 한 조지 역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왔음을 보여준다. 조지는 엘리자베스에게 그레이시가 친오빠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음을 시사하는 말을 하는데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레이시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내야 조지가 받은 충격이 완화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엘리자베스 역시 그 말을 듣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잡혔다고 생각해서다. 영화는 상황이 이해됐다고 믿는 순간, 그 믿음을 깨뜨리면서 여러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축적이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일까. 반대로 현재 나의 모습이 과거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그레이시와 조의 현재는 과거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재의 모습은 과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일까. 누가 누구를 속이고 있는 걸까. 실제와 연기의 경계 역시 모호하다. 엘리자베스는 섹스 장면을 찍을 때 자신이 쾌락을 연기하는지, 쾌락을 느끼지 않는 척 연기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실화가 영화로 제작됐을 때 실제 인물에 얼마나 근접하게 묘사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레이시의 마지막 대사, '내 자아는 탄탄하다'는 단호한 선언은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서사를 비튼다. 그때 혼란스러워하는 엘리자베스의 표정은 그레이시가 지탱해온 모호한 세계의 베일이 벗겨지기를 바랐던 관객의 반응이기도 하다. 토드 헤인즈가 영화를 통해 던지는 질문은 자신을 정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상이란 존재하는가. 당신의 정체성은 굳건한가.
후회가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도 쉽지 않지만, 설사 그렇게 살았다고 해도 회한이 전혀 남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실수하지 않는 인간은 없고, 미래를 미리 알 수도 없기 때문에 옳은 선택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은 채워질 수 없는 심리적 공간을 향한다. 과거를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담에서는 과거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해서 내담자의 마음에 쌓인 회한을 풀어준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거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기있는 드라마를 보면 보편적인 욕망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다. 재미가 있다고 느끼는 건 시청자의 욕망이 자극되고 충족되는 과정이 펼쳐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래 전부터 반복 돼왔던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는 같은 테마의 변주곡을 듣는 기분으로 즐긴다. 과거로부터 결코 해방될 수 없는 나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거 회귀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이어진다. tvN의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이런 욕망을 제대로 겨냥한 드라마다. 실패한 결혼과 불륜이라는 뻔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의 진행 방식은 쾌락을 연장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드라마에서 시청률이 상승하는 시기는 주인공이 온갖 핍박과 불평등을 참아내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가 드디어 복수의 칼을 꺼내는 반전이 일어나는 회차가 나올 때이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중요한 일화를 하나씩 교정해 가면서 매회 소소한 부분에서부터 짜릿한 복수의 쾌락을 선사한다. 강지원(박민영 분)은 정수민(송하윤 분)과 학창 시절부터 단짝 친구로 서로의 휴대폰에 반쪽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해 놓았을 정도다. 늘 다정하게 굴면서 너밖에 없다고 말해왔던 정수민이 사실은 뒤로 자신을 모함해 왔고 왕따를 당하게 했던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내왔던 강지원은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남편과 정수민이 불륜관계였으며 자신이 죽은 후 받게 될 거액의 보험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절규한다. 남편에게 떠밀려 머리를 부딪힌 후 사망하게 된 강지원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이 십 년 전 과거로 되돌아간 채 깨어났음을 알게 된다. 모든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과거로 돌아간 강지원은 둘을 향한 복수를 시작한다. 극 중에서 최고 명문대를 나온 것으로 설정된 강지원은 첫 생애에서 왜 늘 정수민과 남편에게 당하기만 했을까. 그 안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들어 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강지원은 과연 그 오랜 시간 동안 정말로 정수민이 자신에게 진실한 친구일 거라는 믿음에 조그마한 의혹도 없었을까. 그전까지 두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남편과 관계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의 내면에는 현재 상황이 바뀌었을 때의 두려움이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너 없인 안 돼’라는 믿음이다. 복수의 쾌락을 목표로 하는 드라마의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를 극과 극으로 나누어 선악의 경계를 선명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애증관계가 잠깐씩 나온다. 제2의 삶을 살게 된 강지원은 치를 떨면서 치밀한 복수를 시작한 후에도, 자신을 향한 정수민의 눈빛, 그리고 변한 강지원 때문에 죽을 작정을 하는 정수민의 태도에 찰나지만 흔들리는 모습이 살짝 나온다. 가스라이팅은 피해자가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점점 무력해지고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는 극단적인 심리적 학대 행위를 의미하지만, 상대에게 심리를 조종당하면서 상대의 뜻이 마치 자신의 뜻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가벼운 가스라이팅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피해자가 동조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말하자면 피해를 보면서도 그로 인해 누리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강지원의 복수는 ‘너 없이도 난 잘 살 수 있어.’라면서 가스라이팅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는 작업을 의미한다. 극에서 설정된 ‘과거로의 회귀’는 자신을 망치게 한 부정적인 생각과 습성을 바꾸려는 과감한 시도를 할 용기를 뜻하기도 한다. 나의 삶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반추하고 현재 삶을 바꾸고 싶은 욕망을 반영한 서사는 많다. 최근에 방영이 종료된 또 다른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도 비슷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낙오자로 살아가는 데 지친 주인공 서이재는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린 뒤, 빌딩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하지만 죽은 후에, 인격화된 모습으로 나타난 죽음과 만나게 되고 죽음을 모욕한 죄로 12번 다시 태어났다가 죽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서이재는 여러 조건의 삶을 만나보지만 공허하기만 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절실하게 원한 것은 원래 자신의 정체성으로 다시 한번 살아갈 기회를 갖는 것이었다. 비록 낙오자의 삶이었을지언정 자신의 삶이란 다시 살아볼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가장 매력적이다. 보는 사람의 욕망이 있기에 과거로 회귀하는 서사는 자극성이 가미된 변주를 통해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