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에서 "소비문화론"과 "소비자심리학"을 가르치며, 책 <트렌드코리아> 시리즈를 공저했고, 지금은 Purdue University에서 연구 중이다.
1990년대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에서 남자 주인공 샘(패트릭 스웨이지)이 "항상 사랑했어"라고 말하자 여자 주인공 몰리(데미 무어)는 디토(ditto)라고 대답한다. "나도 사랑한다"는 뜻이다. 인기 걸그룹 뉴진스의 노래 '디토'에서도 "Oh say it ditto"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너도 날 좋아한다 말해달라"는 의미다. 이처럼 디토는 '나도' 혹은 '이하동문'이라는 의미다. 사랑 고백이 아니라 소비에서도 디토, 즉 "나도" 하는 식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사실 구매는 매우 복잡한 의사결정이다. 무엇을 구매하겠다는 '문제의 인식'에 이어, 노출-주의-지각-기억-학습 및 태도형성 등 인지 작용이 총출동하는 '정보의 탐색'이 따르고, 그렇게 골라낸 후보들에 대해 엄격한 '대안 평가'를 거쳐 구매를 실행하는, 매우 정교한 과정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복잡한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그냥 특정인을 추종해 "나도"(ditto)하고 구매하는 소비 현상이 늘고 있다. <트렌드코리아 2024>에서는 이런 소비를 '이하동문' 혹은 '나도'를 의미하는 디토를 붙여 '디토 소비'라고 명명한 바 있다. 디토 소비의 의미 요즘 소비자에게 옷을 구매하는 주된 방법을 물으면 생각보다 다양한 답변에 깜짝 놀랄 수 있다. 빈티지샵에서 구매하는 소비자,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 구매하는 소비자, 좋아하는 인플루언서 브랜드에서 구매하는 소비자, 리셀 플랫폼에서 구매하는 소비자...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아진 선택지 앞에서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매하는 소비자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트렌드코리아>에서 시행한 소비자좌담(FGD) 참석자들의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쇼핑 관련 앱은 30~50개에 이른다. 이처럼 복잡한 소비 환경 속 소비자는 조금이라도 구매 결정의 노고를 덜기 위해 특정인을 추종해 "나도"하고 구매하는 소비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디토 소비가 등장하게 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단연 복잡한 소비 환경이다. 소위 '결정 장애'에 직면한 소비자의 부담은 '포보(FOBO, Fear Of Better Options)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자신의 선택 외에 더 좋은 옵션이 있을 것을 우려해 결정을 연기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최선의 결정을 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정보 탐색과 대안 평가를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보다는 애초에 선택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경향이 커지는 경향을 지칭한다. 복잡한 소비 환경과 그 속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소비자가 대안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자신의 취향과 일치하는 사람을 찾아 '디토'하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디토하게 되는가? 디토 소비는 과거 셀러브리티나 인플루언서를 따라 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셀러브리티를 추종하는 행위는 대상이 지닌 이미지를 우상화하여, 그 대상이 제안하는 것을 선망하고 맹종하는 것이라면, 디토 소비에서 추종자(follower)와 주도자(leader)는 특정 제품이 담고 있는 의미를 함께 공유하는 커뮤니티 참여자에 가깝다. 추종자도 자신만의 관점을 통해 제품을 선별하고 제품이 갖는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도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나의 가치관과 얼마나 일치하느냐" 하는 추종자의 주체적인 '해석'이 구매 결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주도자는 많은 사람들을 꼭 끌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안목과 취향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대중을 상대로 한 광고보다, 1:1의 입소문이 디토 소비에 적합한 마케팅 전략이 되는 것이다. 디토 소비에서 주도자는 '인플루언서'라기보다 특정 영역에의 '전문가'에 가깝다. 약사, 전문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IT 전문가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전문성을 바탕으로 상품을 추천해 주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사실 오늘 어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소비자는 각종 SNS와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전문가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며, 일상 속 궁금했던 부분을 전문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디토 소비에서는 주도자가 사회적으로 역할이 부여된 전문가도 있지만, 자신의 특정 일상적 경험을 통해 축적한 역량이 있는 자라면 누구도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직원과 인플루언서의 합성어로 SNS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는 내부 직원을 의미하는 '임플로이언서'(employee+influencer)가 대표적이다. CU 직원이 매주 신상 제품을 리뷰해 주는 '산상왔씨유', 올리브영 8년 차 MD 훈디가 올리브영 직원들의 파우치를 엿보는 '파우치 습격', 현대카드 직원이 사용하는 카드 종류와 소비패턴 등을 공개하는 'ㅎㅋTV' 등 내부 직원 타이틀을 걸고 만든 콘텐츠가 부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뉴욕의 럭셔리 백화점인 Bergdorf Goodman의 여성 패션 디렉터 Linda Fargo 편집매장 케이스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그녀가 좋아하는 리빙 브랜드부터 뷰티 제품까지 그녀의 취향을 전시해 둔 편집매장이 큰 인기를 끈 것도 그녀의 취향과 안목을 디토하는 소비자들 덕분이었다. 갈수록 더 중요해지는 '진정성' 사랑은 실망과 좌절, 분노와 원망을 동반하듯, 한때 열렬히 지지하던 디토 대상을 한순간에 저버리는 경우도 있다. 2001년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뒤 부동의 '원 톱' 지위를 굳혔던 맥주 브랜드 '버드라이트'의 독주 체제가 작년에 무너졌다. 2023년 4월 제조사 앤하이저부시(AB)가 트랜스젠더 딜런 멀베이니(26)와 협업 마케팅을 펼치려다 거센 불매운동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아역 배우 출신인 멀베이니는 1,000만 명 이상의 팔로어를 거느린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다. 일부 보수 성향 소비자들은 트랜스젠더와 자신의 분신과 같은 맥주 브랜드의 조합에 강하게 반발했다. 맥주를 콸콸 버리거나 캔을 부수는 동영상을 공유하며 반감을 표시했다. 한때 주가가 폭락하면서 시가총액 수십억 달러가 증발하기도 했다. 물론 이 사건의 뒤에는 PC주의, 인구 변동이라는 요소들도 있지만, 제품이 지닌 의미가 자신과 맞지 않을 때 격렬히 반발하는 소비자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디토 소비는 동일한 취향을 중심으로 최소화된 과정의 소비 의사결정 방식을 의미한다. 즉, 예산, 구매 과정, 구매 장소, 대안 등 다양한 소비 결정 요소보다는 '자신의 의미나 취향'이라는 단일 요소로서 판단하기 때문에 의사 결정에 극단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소비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지극히 현실에 뿌리를 둔 의사결정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의 생일파티를 열 거야!” 실제로 필자가 월마트 상품 검색 창에 입력한 문구다. 입력 후 즉시 앱 화면에는 “치즈 스낵”, “축구 장식”, “탄산음료”, “축구 이미지 포크”, “그릇” 제품들이 쏟아졌다. 모든 제품을 하나씩 검색해서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편리했다. 말 그대로 ‘자연어’로 소비자 니즈(needs)를 입력만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덕분이다. 파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각해내는 부담이 없어지면서, 마치 나를 위한 쇼핑 파트너가 효율적으로 찾아준 느낌이 들었다. 2024년 1월, 전 세계 최신 기술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CES2024 기조연설에서 월마트가 자랑스럽게 소개했던 서비스가 일상에 구현된 것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챗GPT가 선보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사이트에 접속해 ”○○을 해줘“ 하는 명령어를 입력해 보며 생성되는 결과물에 놀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서비스의 진가는 우리가 각 영역에서 사용하는 기존의 다양한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과 접목된, 이른바 ’버티컬 서비스‘에서 발휘되고 있다. 유통·여행·금융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기존의 서비스는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직접 챗GPT나 구글의 ’바드‘ 같은 서비스에 직접 접속하지 않더라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앱을 사용하는 한 알게 모르게 인공지능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부터 그 면면을 살펴보자. “나 이런 제품 좋아했었네” 개인 취향에 맞춰주는 AI 미국에서 현재 가장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리테일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테무(temu)’와 ‘쉬인(shein)’이다. 2023년 전 세계 주요 시장의 이커머스 앱 다운로드 성장 순위를 살펴보면 그 둘의 성과가 눈에 띈다. ‘테무’와 ‘쉬인’은 전 세계 이커머스 앱 성장 순위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중남미, 중동 등에서 1위와 2위에 올랐다. 특히 중국의 패스트 패션 쇼핑몰 ‘쉬인’이 전년보다 3배 가까운 순이익을 지난해 벌어들였다. 뿐만 아니라, 작년 11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을 신청하며 미국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어’로 떠오르며, 자금 조달 라운드에서 60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쉬인의 급격한 성장 뒤에는 인공지능이 존재한다. 인공지능이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새로운 옷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이 옷들은 사실상 소비자 개인의 취향에 맞춰 디자인되었다. 쉬인은 온라인상 신제품에 대한 고객 반응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취합하고 자체 알고리즘으로 수요 예측을 한다. 이 과정에서 클릭률, 즐겨찾기, 판매율과 같은 소비자 반응은 물론, 날씨와 제품 기능 등의 각종 변수까지 고려해 수요 예측의 정확도를 높인다. 이렇게 예측한 수요를 실시간으로 중국 내 협력공장에 전달해 추가 생산을 하는 혁신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쉬인의 미판매 재고비율은 업계 평균(30%)과 경쟁사 자라(10%)에 비해 크게 낮은 2% 미만에 불과하고, 재고 회전일 수도 경쟁사인 H&M이 4개월인 데 반해 평균 40일에 불과하다. 트렌드 예측부터 생산까지, 매일 1000개가 넘는 신제품을 사흘 만에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 경쟁력이다. 그 결과 쉬인이 선보인 5달러짜리 티셔츠와 치마, 9달러짜리 청바지와 드레스 등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인도, 중동 지역의 10대 청소년과 젊은 여성 소비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출처: https://ecommercedb.com/insights/zara-rising-global-sales-zara-store-numbers-latest-fashion-trends/3098 쉬인의 인기는 소비자 심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나에게 맞춰진 제품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맥킨지의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71%의 소비자는 기업이 개인화된 상호작용을 제공하기를 기대한다고 응답했으며, 76%는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는 실망한다고 대답했다. 특히 ‘개인화’를 정의해 달라는 질문에, 소비자들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긍정적인 경험과 연관 짓는 소비자들이 다수였다. 많은 리테일 기업들이 인공지능을 통해 고객 최적화 제품 추천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셈이다. 24/7 가동되는 친절한 동반자(companion), AI 디즈니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인공지능을 잘 구현한 기업으로 꼽힌다. 대표적으로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딥러닝 모델을 통해 캐릭터의 특성을 보다 더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개선하면서, 콘텐츠의 태그(tag) 작업을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디즈니 플러스, ESPN, Hulu와 같은 OTT플랫폼에서도 개인 맞춤의 정도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하지만 최고의 테마파크를 운영 중인 기업답게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동반자로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심이다’. 영화, 게임, 그리고 테마파크 내 대화형 로봇과 같은 영역에도 인공지능을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가디언즈오브갤럭시(Guardians of the Galaxy)의 귀여운 캐릭터인 베이비 그루트(Baby groot) 로봇이나 스타워즈 갤럭틱 스타크루저(Star Wars: Galactic Starcruiser) 테마 호텔의 D3-09 캐빈 드로이드에 실시간으로 소비자와 대화할 수 있게 만든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디즈니는 인공지능을 몰입형 스토리텔링 경험에 통합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스타워즈 갤럭틱 스타크루저(Star Wars: Galactic Starcruiser) 테마 호텔의 D3-09 캐빈 드로이드 베이비 그루트(Baby groot) 로봇 더불어 생성형 인공지능을 챗봇으로 활용하여 점주교육, 고객 서비스 응대 효율을 높이고 있는 사례는 봇물을 이루고 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점포 어시스턴트 챗봇 ‘AI-FC’는 점주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사용자는 정해진 방식이나 절차 없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질문할 수 있으며 실수로 오타나 다소 부정확한 내용을 기재해 문의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해 최적의 답변을 제시한다. AI-FC는 ‘운영 매뉴얼’, 시스템 매뉴얼’ 등 약 700페이지에 달하는 30여 개의 문서를 학습해 사용자의 입장에서 질문의 의도를 신속하게 파악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설계됐다. 이케아 또한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고객 서비스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케아의 인공지능 챗봇 'Billie'는 지난 2년 동안 콜센터에서 47%의 고객 문의를 처리했으며, 이를 통해 Ingka 그룹은 8,500명의 콜센터 직원을 인테리어 디자인 어드바이저로 재교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Billie는 단순한 문의 처리를 넘어, 고객의 취향과 요구에 맞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며, 원격 인테리어 디자인, 디지털 리테일 판매,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AI를 잘 활용하려면? 이케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AI 등장 이후 다양한 직군에서 많은 직원들의 업무 효율이 높아지거나, 업무의 질도 높아졌다. 컴퓨터가 등장하고 나서 작업의 효율성이 혁명적으로 증대했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나서는 인간의 이동성과 커뮤니케이션에 폭발적인 변화가 있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그동안 단순하고 반복적인 단계를 거쳐야 했던 업무를 극적으로 짧은 시간에 수행할 수 있는 또 다른 업무 혁명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생성형 AI의 도입은 시간단축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선택이 되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 많은 기업들은 AI을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미 세계 전체 근로자의 75%가 직장에서 AI를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OECD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 5명 중 4명은 AI 덕분에 업무 성과가 향상되었고, 5명 중 3명은 업무의 즐거움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심지어 월마트의 경우에는 AI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고도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인 ‘My Assistant’를 본사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개방하여, 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제안받고 있다. 하지만 AI가 초래한 변화는 이 같은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AI로 발생한 다양한 위험들에 대한 우려도 나오는데, 그중 우리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노동 시장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IMF는 AI가 향후 2년 내 선진국 일자리의 60%, 전 세계 일자리의 40%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결국, ”이제 내가 인공지능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실존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가 어쩔 수 없는 필연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물론 인공지능이 초인공지능(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인간의 지식과 능력을 초월한 수준의 인동지능) 수준으로 발달한 상황에서는 인류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되겠지만, 근미래 차원에서 인공지능에 대응하여 업무 환경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관련해서 많은 연구자들은 인간의 파괴적 혁신을 주도하던 엔터프레너(Enterpreneur)에게 도전정신과 행동력이 필수였다면 자유자재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며 성취를 극대화하는 ‘AI프레너’(AI-preneur)들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인본주의적 사색능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장 인간적인 아날로그 역량이 오히려 중요해지는 것이다. ① 경계를 넘나들며 일하는 능력 ② 통찰하는 능력 ③ 올바른 접근법을 선택하는 능력 ④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 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대표적이다. 모두 인공지능이 ‘생성’할 수 없는 역량이다. ‘쓸모없는 인문학’(Useless Liberal Arts)만이 이러한 내공을 길러줄 수 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본질을 탐구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춘 자만이 진정한 AI프레너 인간인 시대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에러헌 하울(Erewhon haul)을 시작합니다!" 500만 팔로워를 가진 틱톡커 알릭스 얼(Alix Earle)이 스무디, 버팔로 카울리플라워, 치킨 페스토 샌드위치, 치킨 누들 수프를 소개한다. 해당 영상은 600만 조회수와 60만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다. 틱톡에서 에러헌 하울은 많은 이들이 업로드하는 주제다. 2024년 2월 기준 #Erewhonhaul 해시태그는 5,490만을 훌쩍 넘는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대체 에러헌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에러헌은 LA 지역 기반의 럭셔리 슈퍼마켓 체인이다. LA 인근 지역에만 매장을 두고 있으며, 미국에서 천연 및 유기농 식품을 판매한 미국 최초의 매장으로 알려져 있다. 천연, 유기농, 건강식 식품들을 취급하며, 평소에 쉽게 접하기 어려운 생소한 식물 기반 식품이나, 세계 각국의 다채로운 식료품을 구비하고 있다. 실제로 다른 슈퍼마켓과 비교하여 가격은 상당히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스틴 비버의 아내이자 인플루언서인 헤일리 비버와 함께 만든 'Strawberry Glaze Skin Smoothie' 구매 붐과 같은 현상이 더해지며, 전 세계 Z세대들을 에러헌으로 모으고 있다. 에러헌의 열풍은 제품의 차별성과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공이 크다. 하지만 달라진 럭셔리 소비자 행태 변화도 한몫한다. 혹자들이 말하는 '사치의 대중화(luxury democratization)'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명품의 의미가 이전과는 달라졌다. 특히 코로나 이후 고물가 상황에서 극대화된 새로운 형태의 럭셔리가 대두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기존의 '명품 가방'으로 대변되는 전통적 럭셔리와 새로운 럭셔리는 과연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일상의 럭셔리화 : Daily Luxury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소비 행태에 미친 영향도 상당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우리는 일상생활 그 자체의 환상성이 부각되었다. 평범한 하루를 기록하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 되기도 했다. 산책 가기, 식사 만들기 또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는 것과 같은 일상의 가치가 높아진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글로벌 공급망 및 자원 부족이 결합되어 40년 만의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었다 월별 물가 상승률(파란색)과 연간 물가 상승률(빨간색). 출처 : https://www.usinflationcalculator.com/inflation/current-inflation-rates 한편, 전통적인 관점에서 럭셔리는 기본적으로 사치재(luxury goods)다. 사치재는 필수재(essential goods)와는 상반된 개념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재화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최근 국내외적 사회경제의 변화는 이러한 기본 명제를 뒤바꿔 놓았다. 럭셔리의 특성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뉴럭셔리는 꼭 사치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필수재의 품목 중 하나인 식료품(grocery)을 예로 들어보자. 최근 들어 젊은 소비자들일수록 식료품을 과시하기 위한 지출 항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과시하기(splurge on) 위해 어떤 품목에 지출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세대마다 다르게 답변을 했는데, 이 중 가장 젊은 소비자인 MZ세대는 '식료품'을 과시를 위한 지출 품목으로 다수가 꼽았다. 이들에게 '일상의 럭셔리화'가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 Baby Boomers: Restaurants: 38%, Travel: 37% - Gen X: Restaurants: 39%, Groceries: 34% - Millennials: Groceries: 41%, Travel: 36% - Gen Z: Groceries: 38%, Beauty and personal care: 37% 출처: https://www.thestreet.com/retail/young-people-spend-more-money-on-this-essential-than-anything-else 나만의 의미가 부여된 희소성 : Epistemological Scarcity 고물가로 인해 일상의 사치성이 부각되었다면, 두 번째 특성은 심적 요소와 관련한다. 전통적 관점에서 명품 브랜드는 물리적 희소성, 즉 물질적 가치에 기반한 희소성을 내포한다. 명품 브랜드의 높은 가격에도 수요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다. 에르메스 버킨백의 공급량을 연간 12만 개로 제한하고 고객 한 명이 같은 디자인 가방을 1년에 2개까지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물질적 희소성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는 많은 연구에서 검증된 사안이다. 1975년 버지니아대 스티븐 워첼(Stephen Worchel) 교수는 두 유리병에 같은 쿠키를 10개, 2개씩 나눠 담은 후 대학생들에게 선택하도록 했더니, 2개가 담긴 유리병의 쿠키에 대한 선호도가 유의하게 높았고 지불 의향 가격도 25%나 높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실질적으로 희소성을 부각하여 소비자 수요를 자극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전통적인 접근이다. 반면에 새로운 럭셔리의 경우에는 희소성의 정도가 소비자 개인의 의미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를 인식론적 희소성(epistemological scarcity)이라고 한다. 즉, 물리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거나 경험할 수는 있지만, 소수가 제품에 자신만의 희귀한 경험이나 의미를 더해 희소성을 내면화한다. 물질적 소유보다는 개인적 의미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성향은 Z세대에게 두드러진다. Z세대에게 소비에서 중요한 가치는 '관심사'일 뿐 유명 브랜드 그 자체가 아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실시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총 1,900여 개의 브랜드 중 각 세대의 50% 이상이 알아보는 브랜드의 숫자는 Z세대의 경우 그들 부모 세대에 비해 크게 줄었다. 대중이 잘 모르는 브랜드를 발굴하여 소비하는 경향도 다른 세대보다 강한 편이다. 사회가 '좋다'고 합의한 브랜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브랜드를 직접 평가하고 선택하는 세대가 바로 이들인 것이다. 실천 혹은 노력이 덧대어진 럭셔리 : Luxury Practice 새로운 럭셔리의 세 번째 특성은 <구매 전-구매 중간 과정(보관)-구매 후 처분>까지 이어지는 소비의 전 과정에서 소비 실천(Luxury Practice)이 더해진다는 점에 있다. 희소한 제품일수록 구매에 노력이 필요해진 트렌드가 대표적이다. 경제적 지불 능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희소한 상품을 얻을 수 있는 소비자의 능력을 <트렌드코리아2023>에서는 '득템력' 트렌드로 명명한 바 있다. 값비싼 브랜드가 아니라, 갖기 어려운 아이템을 누가 얻는가가 과시와 차별화의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럭셔리는 구매 중간 과정에서도 실천적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존재한다. 맨체스터대학의 베니스터와 동료들은 새로운 럭셔리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천적 관점에서 봐야 함을 설파했다. 특히 이들은 일반적 제품도 럭셔리가 될 수 있게 만드는 소비자들의 특별한 다섯 가지 행위를 밝혀냈다. Protecting(보호하기), Displaying(전시하기), Caring(돌보기), Collecting(수집하기), Nurturing(기르기)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신발을 전시장에 컬렉션을 모으면서 즐거움을 얻는 소비자가 있다고 치자. 그 소비자에게 수집 행위는 필연적이다. 그가 수행하는 친밀한 실천적 의식이 그 물건들을 더욱 특별하고 럭셔리한 제품으로 부각시켜주기 때문이다. 처분 과정에서도 새로운 명품이 부각되기도 하는데, 'Vintage Luxury Buttons'가 대표적이다. 기성품인 명품 액세서리를 매장에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명품 브랜드 의류의 단추에 부자재를 달아 귀걸이 목걸이 등 액세서리로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구매 혹은 판매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최대의 수공예품 매매 플랫폼인 Etsy에서는 '샤넬 단추', '루이비통 단추' 등 명품 단추 매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용이 완료되어 제품을 처분하기보다, 명품 단추를 액세서리로 바꾸는 행위를 추가하여 자신만의 럭셔리로서 가치를 배가시키는 소비인 셈이다. 뉴럭셔리는 바람직한 소비인가? 소비에서 자신의 의미가 투영된 제품을 구매할 경우, 해당 제품의 구매 만족도는 일반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전술했듯 새로운 럭셔리는 개인적 소비 성향이 높은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이 전통적 명품과 새로운 럭셔리가 차별되는 또 다른 지점이다. 전통적 명품을 구매한 뒤 '불안'이나 '죄책감'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질문이 개입하게 된다. "개인이 만족하는, 새로운 럭셔리는 바람직한 소비인가?" 당연히 새로운 럭셔리도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인간은 새로움과 독특함, 다름을 추구하는 동시에 타인을 의식하는 집단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발현된 구매인지를 반추해야 한다.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한 정보 확산력이 크고 유행 변화 속도가 빠른 시대에서, 자신만의 럭셔리를 위해 추구한 의미가 현실적 가치가 있는지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는 특별한 의미에서 내린 의사결정이지만, 사회적인 수준에서는 합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비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지극히 현실에 뿌리는 둔 의사결정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대체 쟤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필자는 산업 현장에서 중간 관리자 이상의 사람들을 만날 때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이는 확실히 특정 산업, 일부 기업의 관리자가 제기하는 지엽적인 문제는 아님은 분명하다. 청년들의 업무 행태를 풍자하는 'MZ 담론'을 표현한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는 그 사실로서, 조직 내 세대 갈등이 만연함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M, 즉 밀레니얼 세대는 Y세대의 별칭으로 1980~1994년생을, Z세대는 1995~2009년생을 지칭한다. 기성세대와 구분해 젊은 층을 아우를 때 흔히 사용된다. 그러나 이미 M세대는 기성세대로 접어들고 있다. 타임지에 따르면, 47%의 M세대는 이제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되었고, 그들은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커리어 개발을 상당히 이뤄냈다. 즉, 구직 현장에서 구직자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M세대와는 다른 Z세대만의 성향을 적확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의미다. 필자는 경험적으로 Z세대를 향한 기성세대의 선입견과 편견을 느낀다. 산업 현장과 구직자들의 요구 사항 간의 괴리가 눈에 띈다. 가령 기성세대들은 Z세대들이 구직에 있어 '연봉'과 '워라밸'을 최우선적 요소로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잡코리아가 2022년 공개한 '직장인 퇴사 이유'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 직장인들이 퇴사하는 가장 많은 이유는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44%)였다. 뒤이어 '조직문화가 맞지 않아'(32%)와 '연봉에 만족하지 못해'(30%)라는 답변이 나왔다. 연봉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Z세대의 업무적 니즈를 충족하지 못하는 산업 현장의 문화 탓이 크다. Z세대가 사회에서 활동하는 시기가 본격화되었다. 이 시점에 우리는 이들의 업무적 요구에 대한 파악이 된 상태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MZ 담론에 매몰되어 새로운 세대를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분별해야 한다. 분명 M세대와 이후의 세대는 상당히 다른 성향을 지녔다. 산업 현장에서 이탈하는 청년들을 다독이고, 함께 조직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가 지닌 이들을 향한 3가지 업무적 성향의 오해를 풀어내기 위해 본 기고를 시작하게 되었다. 오해 1: "그들은 디지털 세대, 전면 재택근무를 제일 선호한다" Z세대는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것에 친숙하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화된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이 말이 곧 '이들은 로블룩스 같은 가상공간에 산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세상은 '피지털(physital)' 공간에 가깝다. Z세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상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성세대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상을 구분하여 인식했다면, 이들은 물리적 세상과 디지털에서의 경험을 차별 없이 영위하는 세대다. *피지털은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피지컬(physical)과 디지털(digital)의 합성어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경험을 확대하는 것을 지칭하는 개념어다.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세상을 인식하는 성향은 근무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재택근무에 대한 선호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들은 재택근무를 선호한다. AI 매칭 채용 콘텐츠 플랫폼 캐치가 Z세대 취준생 1,076명을 대상으로 '주 4일제 도입과 연봉 삭감'에 관해 조사한 결과, '연봉 삭감해도 괜찮다'고 답한 경우가 53%로 나타났다고 한다. 다만 '전면' 재택근무를 전 연령대의 직원들이 더욱 희망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전면 재택근무에 대한 선호도는 더욱 높아진다. 니컬러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 등이 2023년에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전면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비율은 50~64세(41%)에서 가장 높았다. 40대(33%)와 30대(29%)가 뒤를 이었고, 오히려 20대(24%)에서 전면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비율이 가장 낮았다. 기성세대는 통근의 경제적∙체력적∙시간적 비용 축소 및 자녀 교육에 필요한 시간 확보 측면에서 선호한다. Z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전면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비중이 낮다. 재택근무가 그들에게는 워라밸이나 복지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업무 환경에 대한 인식이 오프라인, 온라인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오피스에서든 Skype, Slack 등 업무툴(tool)이든 그 어디에서 일을 하든지 간에, 업무 완수에 대한 인식을 가장 개방적으로 지니고 있다. 온라인에서 '항상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이들은 '물리적으로 등장하는 것' 이상으로 온라인에서도 스스로를 업무 환경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기성세대들은 재택근무자들을 '업무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식하지만, Z세대는 그렇게 인식하는 정도가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오해 2: "그들은 워라밸을 최우선으로 따진다." 물론 Z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워라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것은 그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 현실적이고, 실리주의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조직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그때는 워라밸보다 적절한 급여를 받는 것이 더 중요 사안이 된다. 저성장, 고물가 상황에서 재정적 '생존'은 이들의 목표이자 삶의 목적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M세대와 Z세대를 가르는 큰 특징 중 하나다. Z세대는 M세대와 달리 한 번도 경제적 호황기를 누리지 못했다. 사춘기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 기저효과로 인한 2010년 6.5% 성장 외에 연 4% 이상의 경제 성장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M세대보다 Z세대는 훨씬 더 강력한 경제성장, 실업 등 재정적 위협을 마주하고 있다. 생활비 걱정, 해고에 대한 우려, 그리고 불리한 취업 시장 등은 이들 청년기의 팍팍한 현실을 대변한다. M세대과 비교했을 때, Z세대의 청년들은 미래에 부자가 될 것이라고 믿는 비율도 적다. 심지어 Twnege (2017)는 세계적 경제 호황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M세대가 자기 확신이 강한 이상주의자에 가깝다면, 불황기만을 경험한 Z세대는 보다 실용적이고 때로는 우울하기까지 한 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한 바 있다. Z세대는 현실적 '어른 아이'로 성장했다. The Center for Generational Kinetics (2016)에 따르면, 이들은(해당 보고서에서는 이들을 iGen로 지칭함) 공유 자동차 서비스를 이용할 때, 다른 모든 세대들보다 운전자의 보험 가입 여부에 신경을 쓴다고 보고했다. 심지어 부모인 X세대의 거의 두 배나 되는 11%의 Z세대는 사용자를 위해 보험을 제공하는지 확인한다. 이들의 실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자료 : 2016 National Study on Technology and the Generation After Millennials. The Center for Generational Kinetics. 오해 3: "그들은 자기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에 대해 무관심하다." Z세대가 개인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진실한 자신이 되고자 한다. 그렇기에 자신에 대한 바른 평가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실제로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설문조사(2021)에 따르면, 세대별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성과평가 방식에 대해 물어보니, 소속 팀·부서의 매출과 실적 평가를 중요시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Z세대는 개인의 매출과 실적 평가(36.0%)를 선택했다. Z세대는 개인의 매출과 실적 평가를 다른 세대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료 : 2021 세대별 워킹 트렌드 인사이트 보고서. 대학내일20대연구소. 다만 이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폐쇄주의자와는 거리가 있다. 실제로 이 부분에서 기성세대로부터 많이 오해를 받는다. Z세대가 생각하는 자신의 성향과 기성세대들이 생각하는 Z세대들의 성향을 비교분석한 한국리서치 설문조사에 따르면, '박애'와 '보편'에 대해서 Z세대는 10명 중 9명 가까이 '내 삶에서 중요하다'고 평가한 반면, 윗세대 중 'Z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한 사람은 60% 수준으로 나타나, 유의미한 세대적 의견 차이를 보였다. 즉, 기성세대들은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Z세대의 성향을 잘 모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과 주변 세계를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며, 자신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지역, 국가, 인종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에 포용적이며, 개방적이다. Mintel (2022) 연구에 따르면, Z세대는 LGBTQIA+ 커뮤니티의 일부로 자신을 규정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다(27%). LGBTQIA+ 지지자는 Z세대의 85%를 차지한다. 또한 이들은 이전 세대에서 볼 수 없었던 정도의 개방성을 보인다. 자기 자신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방법을 잘 아는 세대인 셈이다. Z세대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 정리하자면, Z세대는 유년 시절부터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나고 자란 '디지털 원주민' 세대다.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세상 속 넘쳐나는 정보를 활용하며 여러 능력을 발휘한다. 고도의 능력을 지녔음에도 그들에게 펼쳐진 환경은 척박하기만 하다. Z세대는 현실을 그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잃어버린 통제력 속에서도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자기 초월적 존재다. 이들의 성향을 인정하고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시도해 보자. 심지어 Z세대는 그들의 상사(Supervisor)를 가장 신뢰한다고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도 존재한다 (EY, 2023).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청년들이다. 무조건 소통이 어려운 세대라는 인식을 넘어, 그들이 지닌 업무적 요구 사항을 들어보자. 결국 우리가 '함께'의 가치를 실현해 내야 하는, 그저 이들보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난 어른일 뿐이기에. 자료 : Gen Z Segmentation Study. EY. 2023 디자인 : 박수민
"니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냐, 시대지." 2022년 tvN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펜싱에 꿈을 품던 주인공 나희도(김태리 분)는 IMF로 인해 폐지되는 펜싱부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당시 그의 코치가 냉소를 머금으며 내뱉은 대사다. 청춘의 싱그러움을 담아낸 드라마지만, 화두는 시대다. 엄중한 시대는 평범한 일상의 모든 것을 뒤집기도 한다. 시대 앞에서 우리는 마치 광활한 우주 속 한 톨의 먼지처럼 느껴진다. 다행히 시대는 흐름이다. 역풍을 맞닥뜨리기도 하지만, 순풍이 불어오기도 한다. 그때는 틀렸더라도 지금은 맞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흐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나만의 길'을 지속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시대의 부름을 받을 때 맹렬히 나아가면 된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도 시대는 결국 나희도의 편이 되어준다. 나희도가 국가대표가 되면서 새로운 코치는 그에게 이야기한다. "네가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왔네. 시대가 너를 돕는다." 최근 비즈니스 환경에서의 시대는 디지털 전환 - DT(digital transformation)이다. 특히 코로나 전후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서 단연 주요한 어젠다는 '아마존화(Amazonization)'이다. 온라인 커머스의 폭발적 증가 현상을 대표적인 온라인 기업 아마존의 이름을 빌려 지칭한 단어다. 오프라인 기업들이 온라인의 거침없는 발달로 비대한 공룡처럼 모두 멸종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위기론까지 엄습했다. 실제로 2017년 장난감 전문업체 토이저러스(ToysRus)를 시작으로, 2018년 백화점 시어스(Sears)가 미국 연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한국의 대형마트가 2013년부터 성장률 0~1%대의 정체기로 접어들었던 것도 매한가지다. 모두가 온라인으로 향하는 현 시점에서 '나만의 것'을 유지하며 괄목할 만한 성장을 누리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 기업이 있다. 여전히 온라인 구매가 불가능한 이곳, 바로 트레이더 조(Trader Joe's)다. 트레이더 조는 1979년 설립 이후, 2024년 현재 미국 전역에 55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판매하는 제품의 90% 이상이 PL(Private Label) 제품으로, 일반 제품에 비해 20~50% 정도 저렴하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슈퍼마켓으로 꼽히며 끈끈한 팬덤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기관마다 순위는 조금 다르지만, 트레이더 조는 꾸준히 소비자 만족도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남다른 트레이더 조는 어떤 '나만의 것'으로 미국인들의 심리를 공략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나만의 것 1: 소소하지만 확실한 제품만 판매한다. 우선 트레이더 조의 매장은 전통적인 식료품점보다 훨씬 작으며, SKU(stock keeping unit) 수도 적다. 트레이더 조는 4,500개 미만의 제품군만 판매한다. 이는 크로거(Kroger)나 월마트(Walmart) 같은 전형적인 유통기업이 보유하는 제품 수의 약 10%에 불과하다. 또 트레이더 조의 전국 평균 매장 크기는 10,000-15,000평방 피트로, 타 유통 기업의 평균 크기인 51,000평방 피트보다 훨씬 작다. 이 작은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더 조는 매장 평방 피트당 매출에서는 모든 경쟁 업체의 것을 압도한다. 즉, 제품당 소비자 선택을 받을 확률 측면에서 효율이 좋다는 의미다. 사진 출처(링크) 실제로 이러한 전략은 심리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심리학자인 시너 세티와 마크 래퍼가 식료품점에서 수행했던 연구는 이 분야에서 유명하다. 두 사람은 시식코너에 24종류의 잼과 6종류의 잼을 진열했을 때,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확인했다. 그 결과 6종류의 잼을 진열했을 땐 시식한 사람들의 30%가 잼을 구매했지만 24종류일 땐 잼을 산 사람은 3%에 불과했다. 선택의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선택이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은 일반적으로 소비자의 효용 증가를 의미한다. 하지만 선택지가 너무 많아질 경우엔 반대로 효용이 감소한다. 적은 종류의 제품군이 소비자 선택에서 유리한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만의 것 2: 'Overeducated and Underpaid'가 좋아할 만한 제품을 제공한다. 단지 제품 종류를 한정한다고 해서 소비자 선택을 받을 확률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동네 가게가 성공하지 못하듯이 말이다. 여기서 두 번째 트레이더조의 전략이 발휘된다. 바로 타깃 매칭이 높은 상품만을 잘 개발해서 좋은 품질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품을 살 만한 타깃을 명확히 설정해, 그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맞춰준다는 의미다. 트레이더 조는 '교육 수준은 높으나 소득이 다소 낮은(overeducated and underpaid)' 소비자를 조준했다. 실제로 전국 매장의 위치를 살펴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트레이더 조의 주요 매장 위치는 캘리포니아, 뉴욕, 플로리다, 워싱턴 등이다. 전형적인 매장 위치의 5마일 반경 지역의 공통적인 특성은 다음과 같다. * 250,000 가구 인구 * $91,000 가구 소득 * 학사학위 이상 성인비율 50% * 직장인 140,000명 이상 * 5년 동안의 2.8% 인구 증가율 사진 출처(링크) 이 위치 프로필은 트레이더 조가 명시적으로 목표로 하는 타깃과 꽤 잘 맞아떨어진다. 대학 학사 학위를 가진 성인의 비율은 국가 평균치(~33%)보다 훨씬 높으며, 완전 저소득은 아니면서 동시에 홀푸드(WholeFoods)와 같은 프리미엄 식료품점을 이용할 만큼은 높지 않은 사람들이다. 나만의 것 3: Push하지 않는다, Pull할 뿐. 세계적인 마케팅 구루 필립 코틀러는 <마켓 4.0>에서 소셜미디어로 대변되는 현 시점의 마케팅에서는 소비자의 '옹호'가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급자의 적절한 행동적 개입 전략은 "Push가 아니라, Pull이다"라고 첨언했다. 확실히 트레이더 조는 그의 말을 잘 듣는 기업이다. 그들은 억지로 소비자에 닿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마케팅에 돈을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광고나 할인 프로모션, 쿠폰 발행을 하지 않는다. 대신 트레이더 조의 제품에 진심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게 만든다. 실제로 소셜 미디어에서 "Trader Joe's Obsessed"와 같은 계정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트레이더 조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직접 구매해 보고 사용 방법을 알리는 계정이다. 소비자가 스스로 트레이더 조의 가치를 매기고 있는 것이다. 트레이더 조가 만들어낸 가치에 동조하고 옹호하는 소비자들이 자발적인 확성기를 자처한다. TikTok에서 트레이더 조의 냉동 김밥 열풍, 40달러의 트조 에코백이 200달러에 중고 거래되는 것도 우연이 아닌 이유다. 트레이더 조 인스타그램 트레이더 조 에코백/사진=CNN 나만의 것 4: 진정성은 '내부 마케팅'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음은 전염된다. 특히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원들의 마음은 소비자들도 바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진심으로 행복하다면, 소비자도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그게 인간의 심리다. 이러한 맥락에서 훌륭한 기업은 '내부 마케팅'을 중요하게 여긴다. 외부에서 보이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 자기 조직 구성원들이 그 브랜드의 기업의 가치를 공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걸 소비자들도 나중에는 알게 된다고 믿는다. 내부 마케팅이 기업의 진정성의 시작인 셈이다. 트레이더 조 매장에 눈에 띄는 또 다른 것은 바로 '종'이다. 땡. 종 한 번. 계산대에 고객들의 줄이 길어지니 계산대를 비운 사람은 바로 계산대로 돌아오라는 소리다. 땡땡. 종 두 번. 캐셔에게 뭔가 도움이 필요한 거다. 자기가 맡은 일로 바쁜 상황인데도 다른 동료들을 도우려고 다들 안달난 사람처럼 보인다고 한다. 사실 종뿐만 아니라, 실제로 매장을 방문해 본 이들은 하나 같이 느낄 것이다. 여기 매장의 직원들은 정말 유쾌하고 친절하다는 사실을.(필자도 느낀 적이 많다) 트레이더 조 매장에 방문한 사람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내부 마케팅에 있는 것이다. 사진=Aranami/Flickr 조국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상공인 폐업이 역대급"이라는 소식은 안타깝다. 특히 시대의 도움을 얻지 못한 이들이 버텨내고 있는 고통의 시간에 통감한다. 시대는 냉혹하다. 그러나 왕도는 없다. 트레이더 조처럼 '나만의 것'으로 옹호자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평범함을 넘어 나만의 것을 지속할 때 남다른 '아우라(aura)'가 주어진다. 독특한 아우라를 동경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남들이 하지 못한 것을 기꺼이 시도하는 용기와 수고로움의 가치다. 시대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자여, 나만의 것을 지켜내자. '아우라'를 만들자. 시대는 반드시 당신을 도울 것이다.
필자는 현재 미국에서 연구 중이다.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항 중 하나는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일이다. 새로운 계좌를 만들기 위해 방문한 은행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대출 상품이나 카드도 아닌 은행원이 들고 있던 핑크색의 텀블러였다. 사실 은행으로 향하는 길에서부터 더러 비슷한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텀블러가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은 바다 건너 한국에서부터 전해 들었다. 소셜미디어 덕분이다. 상당한 인파의 사람들이 한정판 제품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 매장으로 몰려가고, 10대 친구들이 텀블러를 선물받으면 눈물을 흘리며 행복해한다. 숏폼 플랫폼인 틱톡에서 유명했던 영상 속 장면들이다. 이들이 갈망하고 있는 이 것, 바로 ‘스탠리 텀블러’다. 정확한 제품명은 스탠리 퀜처(Stanley Quencher)다. 미국인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제품이 전자기기도, 패션제품도 아닌 컵이라니! 미국에서의 스탠리 열풍은 수치로도 알 수 있다. ‘스탠리 퀜처’는 스탠리 브랜드에서 전통 베스트 판매 (Best seller) 제품인 ‘클래식 레전더리 병(Classic Legendary Bottle)’의 판매량을 능가한 지 오래다. 스탠리 퀀처 덕분에 회사의 이익은 2019년 약 7천 3백만 달러에서 2023년에 약 7억 5천만 달러로 급증했다. 회사 설립 이후 110년이 지난 지금, 스탠리의 40온스짜리 단열 텀블러는 그 창립자가 상상조차 못 했을 인기를 얻고 있다. ‘확장하되, 한정하기’ 전략으로 타깃 소비자의 열망을 부추기다 스탠리 텀블러 유행의 기저에는 ‘확장하되, 한정하기’ 전략이 내포되어 있다. 이 모순적 전략은 과시 소비의 가장 원초적인 소비 심리와 관련한다. 소비자는 일반적인 타인과 구별되기를 바라며, 동시에 선망하는 타인을 추종하고자 한다. 특히 양가적인 이 심리는 럭셔리 제품을 강력하게 희구(希求)하게 만드는 동인이다. 명품 브랜드들이 저가 라인이나 체험 매장을 만들어서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가격 인상이나 구매 제한 등을 통해 ‘배타성’을 유지하는 이유다. 스탠리의 경우 고객 구분(segmentation)에서 이 역설적인 전술책을 활용했다. 본래 스탠리는 소비자가 ‘가끔’ 사용하는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회사였다. 캠핑이나 여행과 같이 특별한 일상에서 필요한 제품 라인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2021년 이후 스탠리 제품들도 매일 사용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매일, 하루종일 사용할 수 있는 물건으로 사용처를 확장한다. 반대로 타깃은 한정하여 고객 구분을 명확히 한다. ‘사용처를 넓힌 반면, 타깃 대상을 좁힌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주목한 대상은 누구였을까? 스탠리가 주목한 것은 최근 시장의 압도적인 화두인 세대, Z세대다. ‘확장하되, 한정하기’ 전략의 정수는 이 타깃을 대상으로 펼쳐진다. Z세대를 대상으로 타깃팅을 하면서 이들만의 선호 요소들을 제품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탠리의 디자인 측면에서 확장성을 확보했다. Z세대는 기성세대보다 구매력은 약하지만, 자신들만의 선호가 매우 확실하다. ‘내가 좋아하는 측면’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에 대한 요구가 높은 고객군이다. 스탠리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한 색상 및 마감으로 디자인된 모델을 2022년에 전면적으로 발표한다. 특히 100가지 이상의 색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덕분에 그 해 매출은 전년의 두 배 수준인 4억 2백만 달러로 폭등했다. 선택의 확장성은 단일 제품을 넘어 액세서리로도 적용됐다. ‘텀꾸(텀블러 꾸미기)’ 유행이 대표적이다. 아마존에는 ‘스탠리 액세서리’ 관련 제품(빨대 커버 캡, 측면을 장식할 수 있는 데칼, 스트랩, 파우치, 키링 홀더 등)들이 8,000개 넘게 올라온다. ‘텀꾸’와 ‘밸런타인데이 컬렉션’ 스탠리는 동시에 진입 장벽을 높인다. 명품 브랜드는 가격 인상이나 구매 제한 등을 통해 배타성을 유지한다면, 스탠리는 한정판 출시 전략으로 응수한다. 스탠리는 스타벅스와의 협업으로 ‘밸런타인데이 컬렉션’을 출시하면서, 구매 개수를 개인당 두 개로 제한했다. 한정된 제품을 ‘드롭’하면서, 스탠리와 소비자와의 거리에 장애물을 만든 것이다. 컵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아 현재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중고 시장을 뒤지는 것이라고 한다. (필자도 직접 구매해 보았으나, 무엇이 특별한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베이 경매에서 소비자들은 45달러인 컵에 대해 200달러로 입찰하며 구매한다. 결국 소비자의 ‘발견’에서 시작된다 성공적인 브랜드 바이럴 열풍은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때로는 배타성을 유지하는 것에 성패가 달려있다. 다수의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면서도 동시에 신비감을 유지하도록 강약을 저울질하는 공략법이다. 하지만 고도의 역설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스탠리 바이럴 열풍의 시초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바로 스탠리 퀀처의 제품에 대한 가치가 소비자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스탠리 퀜처는 2016년에 비교적 조용히 출시됐다. 심지어 매출이 그리 높지 않아 2019년에는 마케팅을 중단하기도 했다. 분위기 전환에는 쇼핑에 중점을 둔 인스타그램 계정인 ‘바이 가이드(Buy Guide)’가 결정적이었다. 2019년, 바이 가이드 공동창립자 애슐리 르쇼어는 당시 매출은 낮았지만, 품질이 좋았던 스탠리 퀜처를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고 팔로워들에게 추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질의 제품에 대한 영향력 있는 소비자의 호응이 출발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이후는 앞서 언급했던 이야기로 연결된다. 그렇다. 소비자의 양가적 감정을 다루는 이 저울질의 기술은 바이럴 확산에 매우 주효했다. 하지만 항상 심리적 바이럴 전략보다 품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 확보가 우선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성공적인 연애에서도 ‘밀당의 기술’보다 ‘사람의 인품’ 그 자체가 선행하듯이. 디자인 : 박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