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에서 "소비문화론"과 "소비자심리학"을 가르치며, 책 <트렌드코리아> 시리즈를 공저했고, 지금은 Purdue University에서 연구중이다.
"대체 쟤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필자는 산업 현장에서 중간 관리자 이상의 사람들을 만날 때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이는 확실히 특정 산업, 일부 기업의 관리자가 제기하는 지엽적인 문제는 아님은 분명하다. 청년들의 업무 행태를 풍자하는 'MZ 담론'을 표현한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는 그 사실로서, 조직 내 세대 갈등이 만연함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M, 즉 밀레니얼 세대는 Y세대의 별칭으로 1980~1994년생을, Z세대는 1995~2009년생을 지칭한다. 기성세대와 구분해 젊은 층을 아우를 때 흔히 사용된다. 그러나 이미 M세대는 기성세대로 접어들고 있다. 타임지에 따르면, 47%의 M세대는 이제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되었고, 그들은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커리어 개발을 상당히 이뤄냈다. 즉, 구직 현장에서 구직자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M세대와는 다른 Z세대만의 성향을 적확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의미다. 필자는 경험적으로 Z세대를 향한 기성세대의 선입견과 편견을 느낀다. 산업 현장과 구직자들의 요구 사항 간의 괴리가 눈에 띈다. 가령 기성세대들은 Z세대들이 구직에 있어 '연봉'과 '워라밸'을 최우선적 요소로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잡코리아가 2022년 공개한 '직장인 퇴사 이유'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 직장인들이 퇴사하는 가장 많은 이유는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44%)였다. 뒤이어 '조직문화가 맞지 않아'(32%)와 '연봉에 만족하지 못해'(30%)라는 답변이 나왔다. 연봉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Z세대의 업무적 니즈를 충족하지 못하는 산업 현장의 문화 탓이 크다. Z세대가 사회에서 활동하는 시기가 본격화되었다. 이 시점에 우리는 이들의 업무적 요구에 대한 파악이 된 상태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MZ 담론에 매몰되어 새로운 세대를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분별해야 한다. 분명 M세대와 이후의 세대는 상당히 다른 성향을 지녔다. 산업 현장에서 이탈하는 청년들을 다독이고, 함께 조직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가 지닌 이들을 향한 3가지 업무적 성향의 오해를 풀어내기 위해 본 기고를 시작하게 되었다. 오해 1: "그들은 디지털 세대, 전면 재택근무를 제일 선호한다" Z세대는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것에 친숙하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화된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이 말이 곧 '이들은 로블룩스 같은 가상공간에 산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세상은 '피지털(physital)' 공간에 가깝다. Z세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상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성세대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상을 구분하여 인식했다면, 이들은 물리적 세상과 디지털에서의 경험을 차별 없이 영위하는 세대다. *피지털은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피지컬(physical)과 디지털(digital)의 합성어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경험을 확대하는 것을 지칭하는 개념어다.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세상을 인식하는 성향은 근무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재택근무에 대한 선호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들은 재택근무를 선호한다. AI 매칭 채용 콘텐츠 플랫폼 캐치가 Z세대 취준생 1,076명을 대상으로 '주 4일제 도입과 연봉 삭감'에 관해 조사한 결과, '연봉 삭감해도 괜찮다'고 답한 경우가 53%로 나타났다고 한다. 다만 '전면' 재택근무를 전 연령대의 직원들이 더욱 희망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전면 재택근무에 대한 선호도는 더욱 높아진다. 니컬러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 등이 2023년에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전면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비율은 50~64세(41%)에서 가장 높았다. 40대(33%)와 30대(29%)가 뒤를 이었고, 오히려 20대(24%)에서 전면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비율이 가장 낮았다. 기성세대는 통근의 경제적∙체력적∙시간적 비용 축소 및 자녀 교육에 필요한 시간 확보 측면에서 선호한다. Z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전면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비중이 낮다. 재택근무가 그들에게는 워라밸이나 복지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업무 환경에 대한 인식이 오프라인, 온라인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오피스에서든 Skype, Slack 등 업무툴(tool)이든 그 어디에서 일을 하든지 간에, 업무 완수에 대한 인식을 가장 개방적으로 지니고 있다. 온라인에서 '항상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이들은 '물리적으로 등장하는 것' 이상으로 온라인에서도 스스로를 업무 환경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기성세대들은 재택근무자들을 '업무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식하지만, Z세대는 그렇게 인식하는 정도가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오해 2: "그들은 워라밸을 최우선으로 따진다." 물론 Z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워라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것은 그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 현실적이고, 실리주의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조직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그때는 워라밸보다 적절한 급여를 받는 것이 더 중요 사안이 된다. 저성장, 고물가 상황에서 재정적 '생존'은 이들의 목표이자 삶의 목적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M세대와 Z세대를 가르는 큰 특징 중 하나다. Z세대는 M세대와 달리 한 번도 경제적 호황기를 누리지 못했다. 사춘기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 기저효과로 인한 2010년 6.5% 성장 외에 연 4% 이상의 경제 성장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M세대보다 Z세대는 훨씬 더 강력한 경제성장, 실업 등 재정적 위협을 마주하고 있다. 생활비 걱정, 해고에 대한 우려, 그리고 불리한 취업 시장 등은 이들 청년기의 팍팍한 현실을 대변한다. M세대과 비교했을 때, Z세대의 청년들은 미래에 부자가 될 것이라고 믿는 비율도 적다. 심지어 Twnege (2017)는 세계적 경제 호황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M세대가 자기 확신이 강한 이상주의자에 가깝다면, 불황기만을 경험한 Z세대는 보다 실용적이고 때로는 우울하기까지 한 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한 바 있다. Z세대는 현실적 '어른 아이'로 성장했다. The Center for Generational Kinetics (2016)에 따르면, 이들은(해당 보고서에서는 이들을 iGen로 지칭함) 공유 자동차 서비스를 이용할 때, 다른 모든 세대들보다 운전자의 보험 가입 여부에 신경을 쓴다고 보고했다. 심지어 부모인 X세대의 거의 두 배나 되는 11%의 Z세대는 사용자를 위해 보험을 제공하는지 확인한다. 이들의 실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자료 : 2016 National Study on Technology and the Generation After Millennials. The Center for Generational Kinetics. 오해 3: "그들은 자기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에 대해 무관심하다." Z세대가 개인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진실한 자신이 되고자 한다. 그렇기에 자신에 대한 바른 평가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실제로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설문조사(2021)에 따르면, 세대별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성과평가 방식에 대해 물어보니, 소속 팀·부서의 매출과 실적 평가를 중요시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Z세대는 개인의 매출과 실적 평가(36.0%)를 선택했다. Z세대는 개인의 매출과 실적 평가를 다른 세대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료 : 2021 세대별 워킹 트렌드 인사이트 보고서. 대학내일20대연구소. 다만 이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폐쇄주의자와는 거리가 있다. 실제로 이 부분에서 기성세대로부터 많이 오해를 받는다. Z세대가 생각하는 자신의 성향과 기성세대들이 생각하는 Z세대들의 성향을 비교분석한 한국리서치 설문조사에 따르면, '박애'와 '보편'에 대해서 Z세대는 10명 중 9명 가까이 '내 삶에서 중요하다'고 평가한 반면, 윗세대 중 'Z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한 사람은 60% 수준으로 나타나, 유의미한 세대적 의견 차이를 보였다. 즉, 기성세대들은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Z세대의 성향을 잘 모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과 주변 세계를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며, 자신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지역, 국가, 인종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에 포용적이며, 개방적이다. Mintel (2022) 연구에 따르면, Z세대는 LGBTQIA+ 커뮤니티의 일부로 자신을 규정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다(27%). LGBTQIA+ 지지자는 Z세대의 85%를 차지한다. 또한 이들은 이전 세대에서 볼 수 없었던 정도의 개방성을 보인다. 자기 자신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방법을 잘 아는 세대인 셈이다. Z세대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 정리하자면, Z세대는 유년 시절부터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나고 자란 '디지털 원주민' 세대다.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세상 속 넘쳐나는 정보를 활용하며 여러 능력을 발휘한다. 고도의 능력을 지녔음에도 그들에게 펼쳐진 환경은 척박하기만 하다. Z세대는 현실을 그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잃어버린 통제력 속에서도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자기 초월적 존재다. 이들의 성향을 인정하고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시도해 보자. 심지어 Z세대는 그들의 상사(Supervisor)를 가장 신뢰한다고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도 존재한다 (EY, 2023).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청년들이다. 무조건 소통이 어려운 세대라는 인식을 넘어, 그들이 지닌 업무적 요구 사항을 들어보자. 결국 우리가 '함께'의 가치를 실현해 내야 하는, 그저 이들보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난 어른일 뿐이기에. 자료 : Gen Z Segmentation Study. EY. 2023 디자인 : 박수민
"니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냐, 시대지." 2022년 tvN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펜싱에 꿈을 품던 주인공 나희도(김태리 분)는 IMF로 인해 폐지되는 펜싱부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당시 그의 코치가 냉소를 머금으며 내뱉은 대사다. 청춘의 싱그러움을 담아낸 드라마지만, 화두는 시대다. 엄중한 시대는 평범한 일상의 모든 것을 뒤집기도 한다. 시대 앞에서 우리는 마치 광활한 우주 속 한 톨의 먼지처럼 느껴진다. 다행히 시대는 흐름이다. 역풍을 맞닥뜨리기도 하지만, 순풍이 불어오기도 한다. 그때는 틀렸더라도 지금은 맞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흐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나만의 길'을 지속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시대의 부름을 받을 때 맹렬히 나아가면 된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도 시대는 결국 나희도의 편이 되어준다. 나희도가 국가대표가 되면서 새로운 코치는 그에게 이야기한다. "네가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왔네. 시대가 너를 돕는다." 최근 비즈니스 환경에서의 시대는 디지털 전환 - DT(digital transformation)이다. 특히 코로나 전후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서 단연 주요한 어젠다는 '아마존화(Amazonization)'이다. 온라인 커머스의 폭발적 증가 현상을 대표적인 온라인 기업 아마존의 이름을 빌려 지칭한 단어다. 오프라인 기업들이 온라인의 거침없는 발달로 비대한 공룡처럼 모두 멸종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위기론까지 엄습했다. 실제로 2017년 장난감 전문업체 토이저러스(ToysRus)를 시작으로, 2018년 백화점 시어스(Sears)가 미국 연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한국의 대형마트가 2013년부터 성장률 0~1%대의 정체기로 접어들었던 것도 매한가지다. 모두가 온라인으로 향하는 현 시점에서 '나만의 것'을 유지하며 괄목할 만한 성장을 누리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 기업이 있다. 여전히 온라인 구매가 불가능한 이곳, 바로 트레이더 조(Trader Joe's)다. 트레이더 조는 1979년 설립 이후, 2024년 현재 미국 전역에 55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판매하는 제품의 90% 이상이 PL(Private Label) 제품으로, 일반 제품에 비해 20~50% 정도 저렴하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슈퍼마켓으로 꼽히며 끈끈한 팬덤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기관마다 순위는 조금 다르지만, 트레이더 조는 꾸준히 소비자 만족도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남다른 트레이더 조는 어떤 '나만의 것'으로 미국인들의 심리를 공략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나만의 것 1: 소소하지만 확실한 제품만 판매한다. 우선 트레이더 조의 매장은 전통적인 식료품점보다 훨씬 작으며, SKU(stock keeping unit) 수도 적다. 트레이더 조는 4,500개 미만의 제품군만 판매한다. 이는 크로거(Kroger)나 월마트(Walmart) 같은 전형적인 유통기업이 보유하는 제품 수의 약 10%에 불과하다. 또 트레이더 조의 전국 평균 매장 크기는 10,000-15,000평방 피트로, 타 유통 기업의 평균 크기인 51,000평방 피트보다 훨씬 작다. 이 작은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더 조는 매장 평방 피트당 매출에서는 모든 경쟁 업체의 것을 압도한다. 즉, 제품당 소비자 선택을 받을 확률 측면에서 효율이 좋다는 의미다. 사진 출처(링크) 실제로 이러한 전략은 심리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심리학자인 시너 세티와 마크 래퍼가 식료품점에서 수행했던 연구는 이 분야에서 유명하다. 두 사람은 시식코너에 24종류의 잼과 6종류의 잼을 진열했을 때,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확인했다. 그 결과 6종류의 잼을 진열했을 땐 시식한 사람들의 30%가 잼을 구매했지만 24종류일 땐 잼을 산 사람은 3%에 불과했다. 선택의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선택이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은 일반적으로 소비자의 효용 증가를 의미한다. 하지만 선택지가 너무 많아질 경우엔 반대로 효용이 감소한다. 적은 종류의 제품군이 소비자 선택에서 유리한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만의 것 2: 'Overeducated and Underpaid'가 좋아할 만한 제품을 제공한다. 단지 제품 종류를 한정한다고 해서 소비자 선택을 받을 확률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동네 가게가 성공하지 못하듯이 말이다. 여기서 두 번째 트레이더조의 전략이 발휘된다. 바로 타깃 매칭이 높은 상품만을 잘 개발해서 좋은 품질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품을 살 만한 타깃을 명확히 설정해, 그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맞춰준다는 의미다. 트레이더 조는 '교육 수준은 높으나 소득이 다소 낮은(overeducated and underpaid)' 소비자를 조준했다. 실제로 전국 매장의 위치를 살펴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트레이더 조의 주요 매장 위치는 캘리포니아, 뉴욕, 플로리다, 워싱턴 등이다. 전형적인 매장 위치의 5마일 반경 지역의 공통적인 특성은 다음과 같다. * 250,000 가구 인구 * $91,000 가구 소득 * 학사학위 이상 성인비율 50% * 직장인 140,000명 이상 * 5년 동안의 2.8% 인구 증가율 사진 출처(링크) 이 위치 프로필은 트레이더 조가 명시적으로 목표로 하는 타깃과 꽤 잘 맞아떨어진다. 대학 학사 학위를 가진 성인의 비율은 국가 평균치(~33%)보다 훨씬 높으며, 완전 저소득은 아니면서 동시에 홀푸드(WholeFoods)와 같은 프리미엄 식료품점을 이용할 만큼은 높지 않은 사람들이다. 나만의 것 3: Push하지 않는다, Pull할 뿐. 세계적인 마케팅 구루 필립 코틀러는 <마켓 4.0>에서 소셜미디어로 대변되는 현 시점의 마케팅에서는 소비자의 '옹호'가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급자의 적절한 행동적 개입 전략은 "Push가 아니라, Pull이다"라고 첨언했다. 확실히 트레이더 조는 그의 말을 잘 듣는 기업이다. 그들은 억지로 소비자에 닿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마케팅에 돈을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광고나 할인 프로모션, 쿠폰 발행을 하지 않는다. 대신 트레이더 조의 제품에 진심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게 만든다. 실제로 소셜 미디어에서 "Trader Joe's Obsessed"와 같은 계정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트레이더 조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직접 구매해 보고 사용 방법을 알리는 계정이다. 소비자가 스스로 트레이더 조의 가치를 매기고 있는 것이다. 트레이더 조가 만들어낸 가치에 동조하고 옹호하는 소비자들이 자발적인 확성기를 자처한다. TikTok에서 트레이더 조의 냉동 김밥 열풍, 40달러의 트조 에코백이 200달러에 중고 거래되는 것도 우연이 아닌 이유다. 트레이더 조 인스타그램 트레이더 조 에코백/사진=CNN 나만의 것 4: 진정성은 '내부 마케팅'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음은 전염된다. 특히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원들의 마음은 소비자들도 바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진심으로 행복하다면, 소비자도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그게 인간의 심리다. 이러한 맥락에서 훌륭한 기업은 '내부 마케팅'을 중요하게 여긴다. 외부에서 보이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 자기 조직 구성원들이 그 브랜드의 기업의 가치를 공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걸 소비자들도 나중에는 알게 된다고 믿는다. 내부 마케팅이 기업의 진정성의 시작인 셈이다. 트레이더 조 매장에 눈에 띄는 또 다른 것은 바로 '종'이다. 땡. 종 한 번. 계산대에 고객들의 줄이 길어지니 계산대를 비운 사람은 바로 계산대로 돌아오라는 소리다. 땡땡. 종 두 번. 캐셔에게 뭔가 도움이 필요한 거다. 자기가 맡은 일로 바쁜 상황인데도 다른 동료들을 도우려고 다들 안달난 사람처럼 보인다고 한다. 사실 종뿐만 아니라, 실제로 매장을 방문해 본 이들은 하나 같이 느낄 것이다. 여기 매장의 직원들은 정말 유쾌하고 친절하다는 사실을.(필자도 느낀 적이 많다) 트레이더 조 매장에 방문한 사람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내부 마케팅에 있는 것이다. 사진=Aranami/Flickr 조국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상공인 폐업이 역대급"이라는 소식은 안타깝다. 특히 시대의 도움을 얻지 못한 이들이 버텨내고 있는 고통의 시간에 통감한다. 시대는 냉혹하다. 그러나 왕도는 없다. 트레이더 조처럼 '나만의 것'으로 옹호자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평범함을 넘어 나만의 것을 지속할 때 남다른 '아우라(aura)'가 주어진다. 독특한 아우라를 동경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남들이 하지 못한 것을 기꺼이 시도하는 용기와 수고로움의 가치다. 시대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자여, 나만의 것을 지켜내자. '아우라'를 만들자. 시대는 반드시 당신을 도울 것이다.
필자는 현재 미국에서 연구 중이다.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항 중 하나는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일이다. 새로운 계좌를 만들기 위해 방문한 은행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대출 상품이나 카드도 아닌 은행원이 들고 있던 핑크색의 텀블러였다. 사실 은행으로 향하는 길에서부터 더러 비슷한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텀블러가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은 바다 건너 한국에서부터 전해 들었다. 소셜미디어 덕분이다. 상당한 인파의 사람들이 한정판 제품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 매장으로 몰려가고, 10대 친구들이 텀블러를 선물받으면 눈물을 흘리며 행복해한다. 숏폼 플랫폼인 틱톡에서 유명했던 영상 속 장면들이다. 이들이 갈망하고 있는 이 것, 바로 ‘스탠리 텀블러’다. 정확한 제품명은 스탠리 퀜처(Stanley Quencher)다. 미국인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제품이 전자기기도, 패션제품도 아닌 컵이라니! 미국에서의 스탠리 열풍은 수치로도 알 수 있다. ‘스탠리 퀜처’는 스탠리 브랜드에서 전통 베스트 판매 (Best seller) 제품인 ‘클래식 레전더리 병(Classic Legendary Bottle)’의 판매량을 능가한 지 오래다. 스탠리 퀀처 덕분에 회사의 이익은 2019년 약 7천 3백만 달러에서 2023년에 약 7억 5천만 달러로 급증했다. 회사 설립 이후 110년이 지난 지금, 스탠리의 40온스짜리 단열 텀블러는 그 창립자가 상상조차 못 했을 인기를 얻고 있다. ‘확장하되, 한정하기’ 전략으로 타깃 소비자의 열망을 부추기다 스탠리 텀블러 유행의 기저에는 ‘확장하되, 한정하기’ 전략이 내포되어 있다. 이 모순적 전략은 과시 소비의 가장 원초적인 소비 심리와 관련한다. 소비자는 일반적인 타인과 구별되기를 바라며, 동시에 선망하는 타인을 추종하고자 한다. 특히 양가적인 이 심리는 럭셔리 제품을 강력하게 희구(希求)하게 만드는 동인이다. 명품 브랜드들이 저가 라인이나 체험 매장을 만들어서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가격 인상이나 구매 제한 등을 통해 ‘배타성’을 유지하는 이유다. 스탠리의 경우 고객 구분(segmentation)에서 이 역설적인 전술책을 활용했다. 본래 스탠리는 소비자가 ‘가끔’ 사용하는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회사였다. 캠핑이나 여행과 같이 특별한 일상에서 필요한 제품 라인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2021년 이후 스탠리 제품들도 매일 사용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매일, 하루종일 사용할 수 있는 물건으로 사용처를 확장한다. 반대로 타깃은 한정하여 고객 구분을 명확히 한다. ‘사용처를 넓힌 반면, 타깃 대상을 좁힌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주목한 대상은 누구였을까? 스탠리가 주목한 것은 최근 시장의 압도적인 화두인 세대, Z세대다. ‘확장하되, 한정하기’ 전략의 정수는 이 타깃을 대상으로 펼쳐진다. Z세대를 대상으로 타깃팅을 하면서 이들만의 선호 요소들을 제품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탠리의 디자인 측면에서 확장성을 확보했다. Z세대는 기성세대보다 구매력은 약하지만, 자신들만의 선호가 매우 확실하다. ‘내가 좋아하는 측면’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에 대한 요구가 높은 고객군이다. 스탠리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한 색상 및 마감으로 디자인된 모델을 2022년에 전면적으로 발표한다. 특히 100가지 이상의 색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덕분에 그 해 매출은 전년의 두 배 수준인 4억 2백만 달러로 폭등했다. 선택의 확장성은 단일 제품을 넘어 액세서리로도 적용됐다. ‘텀꾸(텀블러 꾸미기)’ 유행이 대표적이다. 아마존에는 ‘스탠리 액세서리’ 관련 제품(빨대 커버 캡, 측면을 장식할 수 있는 데칼, 스트랩, 파우치, 키링 홀더 등)들이 8,000개 넘게 올라온다. ‘텀꾸’와 ‘밸런타인데이 컬렉션’ 스탠리는 동시에 진입 장벽을 높인다. 명품 브랜드는 가격 인상이나 구매 제한 등을 통해 배타성을 유지한다면, 스탠리는 한정판 출시 전략으로 응수한다. 스탠리는 스타벅스와의 협업으로 ‘밸런타인데이 컬렉션’을 출시하면서, 구매 개수를 개인당 두 개로 제한했다. 한정된 제품을 ‘드롭’하면서, 스탠리와 소비자와의 거리에 장애물을 만든 것이다. 컵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아 현재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중고 시장을 뒤지는 것이라고 한다. (필자도 직접 구매해 보았으나, 무엇이 특별한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베이 경매에서 소비자들은 45달러인 컵에 대해 200달러로 입찰하며 구매한다. 결국 소비자의 ‘발견’에서 시작된다 성공적인 브랜드 바이럴 열풍은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때로는 배타성을 유지하는 것에 성패가 달려있다. 다수의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면서도 동시에 신비감을 유지하도록 강약을 저울질하는 공략법이다. 하지만 고도의 역설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스탠리 바이럴 열풍의 시초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바로 스탠리 퀀처의 제품에 대한 가치가 소비자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스탠리 퀜처는 2016년에 비교적 조용히 출시됐다. 심지어 매출이 그리 높지 않아 2019년에는 마케팅을 중단하기도 했다. 분위기 전환에는 쇼핑에 중점을 둔 인스타그램 계정인 ‘바이 가이드(Buy Guide)’가 결정적이었다. 2019년, 바이 가이드 공동창립자 애슐리 르쇼어는 당시 매출은 낮았지만, 품질이 좋았던 스탠리 퀜처를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고 팔로워들에게 추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질의 제품에 대한 영향력 있는 소비자의 호응이 출발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이후는 앞서 언급했던 이야기로 연결된다. 그렇다. 소비자의 양가적 감정을 다루는 이 저울질의 기술은 바이럴 확산에 매우 주효했다. 하지만 항상 심리적 바이럴 전략보다 품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 확보가 우선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성공적인 연애에서도 ‘밀당의 기술’보다 ‘사람의 인품’ 그 자체가 선행하듯이. 디자인 : 박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