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SBS 김형래 기자입니다.
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아프리카 가나 공화국, 서울에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까지 12시간,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대륙을 가로질러 수도 아크라까지 6시간을 날아가야 도착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지난 9월 기후변화가 전 세계 먹거리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취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습니다. 이번 더 스피커는 '가장 책임 없는 이들이 가장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불평등한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트코인보다 빠른 상승 폭' 기후변화에 치솟은 가격 코코아, 우리에게는 '카카오'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이 열매는 초콜릿의 원료입니다. 과육 안쪽의 씨앗을 발효시켜 볶은 뒤 높은 압력으로 갈아내면 '카카오 매스'가 되고, 여기에 우유와 설탕 등을 섞으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달콤한 초콜릿이 탄생합니다. 이 나무는 기본적으로 해발 고도 300m 이하의 적도 지방에서 자라는데, 강수량이 너무 적으면 말라버리고 반대로 너무 많으면 썩어버리는 등 까다로운 생육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때문에 코코아를 기를 수 있는 기후 조건을 갖춘 나라는 많지 않은데, 특히 서아프리카의 가나와 코트디부아르가 전 세계 생산량의 60% 이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 지역에 식물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병명은 '검은 꼬투리병(Black Pod Disease), 코코아 열매에 치명적인 검은 곰팡이가 피는 질병입니다. 감염되면 줄기와 열매가 빠르게 썩어들어가는데, 치료법이 없어 나무째 베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초엔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적도 일대에 이상 고온과 폭우가 발생하는 '엘니뇨(El Nino)' 현상이 서아프리카를 강타했습니다. 한창 열매가 성숙해야 할 시기에 비가 쏟아지면서 습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곰팡이 포자가 급속도로 번지면서 두 나라의 코코아 생산량은 최대 절반 가까이 곤두박질쳤습니다. 공급 충격은 곧바로 전 세계로 번졌습니다. 지난해 1월 톤당 2천600달러 수준이던 코코아 가격은 올해 4월엔 1만 1천 달러로 4배 넘게 치솟았습니다. 같은 무게의 구리보다 비싼 가격이고, 같은 기간 비트코인보다 빠른 가격 상승률입니다. 이렇게 가격이 올랐으니 사실상 코코아 생산을 독점하는 농부들도 이득을 보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코코아 공화국'의 눈물 가나에서 코코아는 원유와 금에 이어 3번째 수출 품목으로 국가 전체 수출액의 12%를 차지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작물이다 보니 정부 기관인 '코코아 위원회(COCOBOD)'가 판매를 독점해 실제 공급 시점보다 1년 먼저 해외 고객사들과 수출 계약을 맺습니다. 그런데 올해 작황이 워낙 부진하다 보니 계약해 둔 공급량조차 맞출 수 없을 지경이 된 겁니다. 가격이 치솟아도 시장에 내다 팔 코코아가 없으니 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가나의 코코아 수출액은 1년 사이 3억 달러 넘게 급감했습니다. 가나에선 약 80만 명이 코코아 농업에 종사하는데 대부분 한 달에 30달러, 우리 돈 4만 2천 원 이하로 생활하는 극빈층입니다. 이들은 평생 코코아를 기르지만, 그걸로 만드는 초콜릿은 먹어본 적도 없습니다. 초콜릿 가격에서 다국적 거대 기업인 제조·유통업체, 그리고 정부가 가져가는 몫을 빼면 농부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6%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검은 꼬투리병'의 확산을 막으려면 감염된 나무를 빠르게 베어내고 새 묘목을 심은 뒤 살균제를 뿌려야 하는데 이들에게 그럴 돈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결국 농부들은 그나마 소득을 내던 코코아 농사를 포기하고 금광 등 다른 산업으로 떠나게 됩니다. 조셉 아이두ㅣ가나 코코아위원회 위원장 "우리는 코코아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연간 약 5억 달러를 빌리고 있습니다. 코코아를 다시 심는 데에만 3년이 걸리고, 나무가 완전히 성숙하려면 그로부터 7년이 더 걸립니다." "많은 농부가 문맹이고, 적절한 생활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농부가 코코아 농장을 버리고 떠납니다. 이들이 떠나가면 공급망 전체에 초콜릿이 없을 것입니다." '기후 불평등'의 민낯 '초콜릿이 없어진다'는 말, 기후변화 측면에서도 과장이 아닐지 모릅니다. 앞서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지구 평균 기온이 2.1도만 올라도 2050년엔 카카오나무 자체가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카카오 농업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서아프리카 국가들에겐 사실상 사형 선고인 셈입니다. 실제로 독일의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가 지난 40년간 전 세계 1,600여 개 지역의 기온 및 강수량, 소득, 기후 예측 등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계속될 경우 기온 상승으로 인해 2049년까지 세계 경제 소득이 평균 19% 감소할 걸로 예측됐습니다. 특히 중요한 건 국가의 경제 수준에 따라 기후변화의 피해가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연구팀은 나라별 소득을 1~4분위로 구분했을 때 4분위에 해당하는 저소득 국가들은 미국 등 1분위 국가보다 피해가 61%나 더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지금까지의 탄소 배출량에 따라 구분해 봐도, 누적 배출량이 적은 저소득 국가들이 탄소를 많이 배출한 고소득 국가보다 40% 더 많은 경제적 손실을 겪을 걸로 예상됩니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건 이미 경제 발전을 이룬 고소득 국가들인데 정작 그 피해는 탄소 배출량이 적은, 그래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도 별로 없는 가난한 나라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 오늘날 기후 불평등 세계의 민낯입니다.
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지난 7월 23일, 늘 그렇듯 아침부터 몹시 더웠던 여름날 온라인 커뮤니티에 '티몬 본사 문에 내부 수리로 임시 휴업한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회사 측은 사옥 1층 카페 배수관 교체 문제로 일반 임직원 근무는 평소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보름 전부터 판매금 정산이 계속 밀린 데다 전날 티몬 측이 입점 판매자들에게 무기한 정산 중단을 선언했다는 소식이 퍼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달려간 티몬 본사는 잠겨 있었고, 안에는 분명 인기척이 있었지만 아무리 불러도 누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본사 앞을 서성이다 만난 한 이용자는 호텔 가족 식사권을 환불받으러 왔지만, 직원들이 자신을 보자마자 도망치기 바빴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굳게 잠긴 유리문을 두드리면서 '일이 커지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은 위메프 본사에서, 그다음 날은 티몬 별관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고, 그게 1조 5천억 원 넘는 피해를 낸 '큐텐 정산 지연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시점이었습니다. '1조 원+a' 지자체 지원금 약속했는데 집행률은 고작 2%? 8월 21일, 정부는 경제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피해자 지원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날 대책의 핵심은 피해 판매자 자금 지원. 티몬과 위메프로부터 정산을 받지 못한 피해 판매자들이 줄줄이 부도가 날 수 있으니 일단 정부가 저리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약 6천억 원, 제주를 제외한 1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긴급경영안정자금 1조 원 이상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총 피해 금액이 1.3조 원대였으니 그보다 더 큰 유동성을 공급하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행정안전부가 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기준 각 지자체가 실제로 집행한 대출 금액은 203억 원, 목표액의 2% 정도에 불과합니다. 지원 사업에 참여한 15개 지자체(제주는 지원 금액 없음, 울산은 지원 사업 철회) 가운데 대구, 광주, 강원, 충남의 4곳은 아예 신청자 자체가 없었습니다. 또 대전, 세종, 충북, 전남의 4곳은 신청자는 있었지만, 지원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지원금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절반 이상인 8곳의 지원 금액이 '0'인 겁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전체 피해액 1.3조 원 가운데 87%가 수도권에서 발생했는데, 정작 지자체가 준비한 전체 자금 1조 원 중 서울, 경기, 인천의 몫은 2천25억 원으로 전체의 20%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80%의 지원금이 사실상 피해자가 거의 없는 곳에 배정돼 있는 셈입니다. 지원금 액수도 문제입니다. 현재 각 지자체의 개별 지원금 한도는 1~5억 원 정도로, 소액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다수 지원하겠다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정작 금감원 집계를 보면, 전체 피해액의 88%가 숫자로 2.1%에 불과한 1억 원 이상 피해자들에게 집중돼 있습니다. 애초에 지원 제도의 방향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지원할 수 없는 돈을 피해 대책이라고 발표한 것은 국민을 속인 겁니다. 5%에 육박하는 높은 이자율을 낮추고, 하루 만에 신청이 마감된 중소기업진흥공단 대출 규모를 늘리는 등 지금이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천준호ㅣ민주당 의원(국회 정무위) "하루하루 대출 메우기 벅차... 어떻게든 올해 넘기려 노력" 8월 6일, 피해 판매자 300여 명이 처음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국회에 모였습니다. 그날 대표를 맡은 신정권 비대위원장에게 지난 두 달 동안 뭔가 나아진 게 있냐고 묻자, 쓴웃음이 돌아왔습니다. "주변에서도 그 질문을 제일 많이 하는데 거기에 답변드리는 게 제일 불편합니다. 솔직히 바뀐 게 없거든요. 다들 하루하루 대출을 메우려 버티고 있습니다. 벌써 석 달째니까 올해의 4분의 1을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는데, 남은 4분의 1을 잘 막아내야 올해가 넘어가겠죠.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는데 현금 유동성이 막힌 피해자들이 연말에 2차, 3차 도산으로 연결될까 걱정입니다." 현재 피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견딜 수 있는 유동성 지원입니다. 비대위는 "뭔가를 더 해달라고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다"라며, 앞서 정부가 약속했던 금액만이라도 제대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창구를 단일화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100일 가까운 시간 동안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비대위는 지난 출범식에서 '정확한 피해 상황 파악'과 '책임자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티몬과 위메프의 피해액은 어느 정도 정리됐지만, 큐텐 그룹 내 6개 사(큐텐, 큐익스프레스, 티몬, 위메프, AK몰, 인터파크커머스) 전체 피해 파악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입니다. 책임자 규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 "큐텐, '정산 불능' 알고도 금감원에 허위 보고·로비 시도" 10월 10일, 이 글이 출고되는 날 법원에서는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립니다. 검찰은 큐텐 경영진이 1년 전부터 이미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자들에게 정산 대금을 지급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상품권 할인 판매를 계속하도록 지시했고, 티몬 위메프 자금을 대여금 등의 형식으로 큐텐그룹 계열사로 빼돌렸다고 구속영장청구서에 명시했습니다. 구 대표가 애초부터 자금을 빼내려 자본 잠식 상태인 '티메프'를 인수했다는 겁니다. 이들은 또 금융감독원에 미정산 금액을 1/10로 축소해 보고하고 허위 계획서를 제출하는 등 여러 차례 금감원을 속인 데다, 브로커를 통해 로비를 시도하고 국회와 언론에 허위 사실을 전달하며 정산 지연 상황을 숨기려 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검찰이 집계한 이번 사태의 피해자는 33만 명, 피해액은 1조 5천950억 원에 달합니다. 과연 이 거대한 경제적 참사가 정말로 한 편의 '사기극'이었는지, 법원의 판단이 주목됩니다. 디자인 : 안준석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둔치 주차장, 트럭에 붙은 "소 한 마리당 200만 원씩 적자"라는 현수막 아래 소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치솟는 사룟값에 도저히 버틸 수가 없으니 정부에 반납하겠다며 멀리 경남에서부터 데려온 소입니다. 이날 여의도에는 주최 측 추산 1만여 곳의 한우 농가가 모였습니다. 한우 도매가격이 계속 떨어지면서 소를 키울수록 적자를 보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농민들이 '한우 반납 집회'를 연 건 지난 2012년 이후 12년 만입니다. 집회에는 소 영정사진이 등장했고, 일부 참가자들은 축사 모형에 사료 포대를 던져 무너뜨리고 경찰 방어벽 너머로 한우 모형을 반납했습니다. 이들이 왜 또다시 집회에 나섰는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소 한 마리 키워봤자 남는 게 소똥밖에 없네요" 경기 평택시의 한 한우 농가, 30년 가까이 한우를 키워온 농장주 이인세 씨는 평생 지금만큼 어려운 적이 없었다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사료값은 두 배 가까이 치솟았는데, 반대로 소 출하 가격은 폭락하면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겁니다. 올해부턴 한 마리당 200만 원 넘게 적자가 쌓이면서 아예 소를 250마리에서 200마리로 줄여야 했습니다. "소를 팔아봤자 소똥밖에 안 남습니다, 지금. 그런데 이게 생물이기 때문에, 제조업 공장 같으면 그냥 문 닫고 안 하면 되지만 소는 생물이니까 내다 버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생업으로 애지중지 길렀던 것들을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소홀하게 대할 수도 없고... 빚만 늘어 가는데도 기르고 있는 현실입니다." 물론 어느 산업이든 당연히 부침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최초 공급 가격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최종 상품 가격도 하락하면서 다시 수요가 늘어나는 형태로 조정이 이뤄집니다. 경제학의 기본 원칙인 '수요-공급 균형'입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의 한우 시장만큼은 여기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소 가격이 폭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소고기 소비자가격은 내릴 줄 모르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한우를 평생 기른 저부터도 소고기가 너무 비싸서 못 사 먹고 있는데 소비자들이 사 먹을까요? 구조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격 폭락의 원인은 '공급 과잉…그런데 소비자가격은? 한우 산지 가격이 폭락한 가장 큰 원인은 '공급 과잉'입니다. 코로나19가 심각했던 지난 2021년,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식이 어려워지면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좋은 음식을 요리해 먹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한우 수요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공급이 한정돼 있는데 수요가 크게 늘었으니 자연스레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고, 한우 가격이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자 한우 농가들은 송아지 수를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307만 8천 마리였던 사육 두수는 2022년 355만 7천 마리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합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한우는 보통 30개월 정도로, 농가가 6개월 된 송아지를 축사에 입식해 2년 동안 키운 뒤 시장에 내놓습니다. 즉, 올해는 2년 전 급증한 한우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시점입니다. 당연히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6월 한 달 동안 평균 소고기 도매가격은 1kg당 21,326원이었습니다. 반면 지난달 평균 가격은 kg당 13,481원. 3년 전과 비교해 37%나 떨어진 겁니다. 그런데 정작 소비자들은 가격 하락을 느끼지 못합니다. 같은 기간 소비자가격은 101,702원에서 84,996원으로 불과 16%만 줄었습니다. 산지 가격 하락률의 절반도 채 반영되지 않은 건데, 그나마 이것도 마트나 시장 등 소매점에서 살 때 이야기고 인건비 상승 등을 고려하면 음식점 가격은 오히려 더 올랐다고 봐야 합니다. 950만 원짜리 소가 2,300만 원으로…결국 유통 '구조'의 문제 소는 그 크기와 복잡한 신체 구조 때문에 아무나 다룰 수 없고, 도축과 정형을 위해선 설비와 전문 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즉, 이를 갖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들을 거치지 않으면 아예 팔 수 없기 때문에, 생산자인 농가보다 중간 유통업자들의 협상력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도축장, 경매장, 도매, 소매점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유통 구조 속 각자 마진을 늘려 잡으면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습니다. 농가에서 출하할 때 한 마리에 평균 950만 원이었던 한우는 도축과 정형 작업을 마치면 1,250만 원으로 뛰고, 이동과 보관 과정을 거쳐 최종 판매처인 대형마트에서는 2,300만 원, 백화점이라면 3,000만 원 넘는 가격에 팔립니다. 전체 소매 단계 평균 가격은 2,030만 원, 유통 과정에서만 가격이 두 배 넘게 뛰는 겁니다. 대체 왜 이렇게 비싸지는 걸까요? 인건비, 물류비 등 여러 부대 비용이 있지만, 특히 소고기라는 상품의 특성으로 인한 '폐기 비용'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고기는 큰 덩어리를 여러 부위별로 소분해서 파는 데다, 장기간 보관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당일에 판매되지 않은 양은 모두 폐기해야 하는데, 유통 단계에서 이 비용까지 합쳐서 이윤을 책정하니 결국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넘겨지는 겁니다. "일반 소매점에서 등심을 하루에 2kg 정도 팔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쳐요. 그럼 도매상에서 2kg만 사 올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게 살 수 없어요. 그쪽에서 정형한 7~8kg짜리 덩어리를 받아와서 이걸 소분하는 거예요. 또 일단 소분하면 유통 기간이 짧으니, 그렇게 팔다가 남은 부위는 다 버려야 하고. 그러니 현실적으로 이런 상태에서 이윤을 남기려면 일반 소매점에서 가격을 낮추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죠." - 한우 직판장 관계자 유통 단계의 이런 가격 책정과 판매 형태가 적절한지를 보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현재 서울에 유통되는 육류의 약 60% 정도를 취급하는 성동구 마장동 축산물시장에 여러 차례 취재를 요청했지만, 끝내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그 답을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일부에서는 한우 농가의 시위가 국가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판합니다. 분명 한우 산업의 계속된 추락에 농가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코로나19 시기의 반짝 호황에 공급을 지나치게 늘렸고, 그 되먹임이 지금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건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장에 구조적인 비대칭이 존재하고 또 그로 인해 정상적인 수요-공급의 법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상, 한 번쯤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디자인 : 안준석
서울 영등포역 근처의 한 골목길엔 매일 오전 11시면 긴 줄이 늘어섭니다.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을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이곳은 지난 1993년부터 생계가 어려운 홀몸노인이나 노숙인들에게 한 끼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5월 28일 토마스의 집에 찾아가 봤습니다. 이날의 점심 메뉴는 밥과 김치, 어묵탕, 제육볶음과 깻잎장아찌.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영양을 챙길 수 있는 소중한 음식입니다. 식사를 마친 뒤엔 다음 날 점심까지 끼니를 걸러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라면도 하나씩 제공합니다. 배식 차례를 기다리던 한 이용자는 "기초연금 32만 7천 원으로 한 달을 버티다 보니 하루에 한 끼 먹기도 어렵다. 여기가 아니면 수많은 사람이 꼼짝없이 굶어야 한다"며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30년 넘게 수많은 사람의 배를 채워 준 토마스의 집이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정말로 식사를 제공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갔다가 기부받은 떡으로 간신히 떡국이라도 끓일 수 있었습니다. 작은 급식소인 이곳은 정부 지원도 전혀 없고, 대형 급식소들처럼 고정 후원도 많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십시일반 모이는 식료품 후원으로 버텨 왔는데 최근 전례 없는 식재료 물가 상승에 갈수록 먹거리 후원이 줄어드는 겁니다. 29년째 토마스의 집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총무 박경옥 씨에게 최근 상황을 묻자 깊은 한숨이 돌아왔습니다. "다른 것보다 김 가격 오르는 게 가장 큰일이에요. 반찬으로 손쉽게 제공할 수 있고, 영양도 있고 해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김을 내야 하는데, 가격이 30%가 올라 버리니 부담이 어마어마하죠. 어제도 간단히 장을 봤는데 60만 원이 훌쩍 넘더라고요. 저희가 지금 유지할 수 있는 단가를 간단하게 식판 한 장당 3천 원이라고 계산해요. 그런데 요즘 3천 원으로는 도저히 한 끼를 차릴 수가 없어요. 거기에 급식소 건물 월세도 내야 하는데…" 토마스의 집이 매일 준비하는 식사는 약 300인분. 만약 이곳이 문을 닫으면 300명이 점심을 굶어야 합니다. 자고 나면 오르는 밥상 물가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 부진과 환율 상승 등의 이유로 식료품 가격은 매달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국민 반찬'인 김은 1년 새 도매가격이 60% 가까이 올라 이제 한 장에 130원에 달하고, 올리브유 가격도 30% 넘게 올랐습니다. 이제는 앞에 '금' 자가 붙는 게 당연해져 버린 사과, 앞서 총선 국면에서 논란이 됐던 대파, 양배추와 시금치까지... 사실상 가격이 안 오른 품목을 찾는 게 빠를 지경입니다.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조미료인 소금과 설탕조차 지난해보다 20% 넘게 비싸졌고, 다음 달부터 간장 가격도 9% 오를 예정입니다. 장바구니 채우기가 무섭다는 말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닙니다. 통계로 보면 더 명확합니다. 지난달 전국의 신선식품물가지수(채소나 과일 등 계절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식품을 따로 집계해 실제 '장바구니 물가'에 가깝게 조정하는 지수)는 135.14입니다. 기준년인 2020년에 10만 원이면 살 수 있었던 신선식품을 지난달에는 13만 5천 원 넘게 주고 사야 했다는 뜻입니다. 전국 17개 시도 모두 130이 넘었고, 서울은 아예 140에 육박합니다. 증가 폭도 갈수록 커지는데 올해 들어선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20%씩 오르고 있습니다. 백반 한 끼 절반에도 못 미치는 무료 급식 단가 아직도 돈이 없어 밥을 굶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는 밥상 물가는 그야말로 재난입니다. 토마스의 집 같은 사설 급식소 이외에도, 현재 우리나라는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경로식당' 사업을 통해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60세 이상 노인만 대상으로 하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55세 이상으로 확대됐습니다.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어찌 보면 현대 국가로서 당연한 복지입니다. 그런데 이 사업의 급식비 단가는 적게는 3천 원에도 못 미치고, 많아 봐야 고작 4천 원입니다. 지난달 서울의 김치찌개 백반 한 끼 평균 가격이 8,115원, 김밥 한 줄은 3,362원이었습니다. 결국 전국의 무료 급식소들은 백반값의 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 겨우 김밥 한 줄 사 먹을 정도의 돈으로 한 끼 식사를 매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단가가 적용되는 이유는 늘 그렇듯 예산과 법률 문제입니다. 현재 무료 급식 사업에는 국비가 지원되지 않아 각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재정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는 무료 급식 단가를 올리지 못하고 기껏해야 전년 수준에서 동결하는 게 고작입니다. 단가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현재 결식아동에 대한 무료 급식 단가는 평균 8천 원 선, 노인 무료 급식의 두 배가 넘습니다. 법으로 급식 단가를 물가와 연동하도록 규정해 식품 가격이 비싸지면 단가가 따라서 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로식당 지원 사업에는 이런 규정이 없습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노인 무료 급식 단가도 물가와 연동하도록 하는 노인복지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다른 수많은 '민생 법안'들과 마찬가지로 예산 문제로 계류하다 결국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습니다. 그사이 돈 없고 힘든 노인들은 여전히 곳곳이 빈 식판을 받아 들고 있습니다. 약자에게 더 가혹한 '푸드플레이션' "소득이 낮을수록 총 가계 지출액 가운데 식료품 구입비가 차지하는 비중(엥겔 지수)이 높아진다." 1850년대 독일의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이 연구한 '엥겔의 법칙', 쉽게 얘기하자면 다른 지출은 어떻게든 줄일 수 있어도 사람이 밥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소득의 대부분을 식비로 쓸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식품 물가가 오르면 빈곤층의 삶의 질은 더욱 급격히 나빠집니다. 특히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 아동이나 청소년과는 달리, 무료 급식소가 아니면 말 그대로 끼니를 유지할 수가 없는 노인들에게 '푸드플레이션(Food + Inflation)'은 생존에 대한 위협입니다. 맹자는 2천 년 전에 이미 '항산'이 있어야 '항심'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 '의식주'가 보장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식', 잘 먹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밥 먹었어요?'가 인사인 나라에서 적어도 밥을 굶는 사람들이 없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디자인 : 권민재
지난 12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사무실 복도에선 고성이 오갔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학살당한 민간인 피해자 유가족 등으로 구성된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회원들이 진실화해위에 항의하기 위해 방문한 겁니다. 회원들은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약 1시간 반 정도 복도에서 농성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왜 진실화해위에 분노했을까요? 사살자 명단에 적힌 '암살대원' 4글자의 무게 같은 날 진실화해위는 제74차 전원위원회를 열어 1950년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이하 진도 사건)' 희생자의 피해 사실 인정 여부를 논의했습니다. 진도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0월부터 석 달 동안 전남 진도군 일대 주민들이 북한 인민군에게 점령당했을 때 부역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재판도 없이 살해당한 사건입니다. 진실화해위는 가해 주체에 대해 진도경찰서, 의신지서, 금갑출장소, 고군지서, 임회지서 소속 경찰이라고 명시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희생자와 유족에 대해 공식 사과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희생자의 숫자입니다. 진실화해위는 조사 대상자 41명 가운데 35명에 대해서만 진실 규명 결정을 내리고, 나머지 6명에 대해서는 '보류'했습니다. 2명은 '증거가 불충분하다', 나머지 4명은 1969년 12월 진도경찰서가 기록한 '사살자 및 동 가족 동향 명부'에 '암살대원'이라는 4글자가 적혀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민간인을 살해한 주체가 살해당한 사람들에 대해 적은 기록의 신빙성에 대해선 글 후반부에 다시 따져보겠습니다. 저 4명은 기록에 적힌 단 4글자만으로 '부역자'가 되고, 국가의 반인권적 폭력에 의해 재판 없이 살해됐지만 피해자로 인정받지도 못했습니다. '진실 규명 뒤 임의 재조사 지시' 결국 형사 고발 9일 뒤인 지난 21일,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회원들이 이번에는 서초동 중앙지검 앞에 모였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와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등은 김광동 위원장과 이옥남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등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이들이 고발장에 적은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김 위원장이 '전남 함평 민간인 학살 사건(이하 함평 사건)'에 대해 법적 근거 없이 위법한 재조사 지시를 내렸다는 주장입니다. 함평 사건은 1949년 11월부터 1951년 3월까지 전남 함평군에서 경찰과 국군 11사단이 빨치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여섯 차례에 걸쳐 민간인 500여 명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023년 11월 28일 제67차 전체위원회에서 사건 13건에 대해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결정 이후 김 위원장이 희생자 1명에 대해 재조사를 지시했고, 조사관들이 올해 1월 24~25일 대전과 함평 등을 돌면서 이미 의결된 사건에 대한 탐문 조사를 벌였다는 겁니다. 전남 함평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에 관한 진실 규명 결정문에는 그 결정일이 2023년 11월 28일로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에는 2024년 1월 24일자 및 2024년 1월 25일자 참고인 진술 조서가 인용되어 있는 등 굉장히 이상한 형태의 진실 규명 결정문이 진실 규명 신청인들에게 배포되었습니다. 2024. 3. 21. 권태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장 앞서 김 위원장은 "해당 사건의 가해 주체 등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해 거친 절차였다"며, "생년월일과 이름, 날짜 등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최종 결재를 하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사건의 가해 주체는 당초 '적대세력'이었다가 진실화해위 조사 이후 '군경'으로 바뀌었는데 이 과정이 적절했는지 재조사하겠다는 겁니다. 사실상 전체위원회가 이미 의결한 결론을 위원장이 원점으로 돌리려 시도한 셈입니다. 이번 2기 진실화해위의 조사 기간은 지난 1월 말 기간 연장이 확정되면서 내년 5월 26일까지 1년 2개월 정도 남아 있습니다. 반면 올해 1월 9일 기준으로 진실화해위에 접수된 사건 2만 92건 가운데 처리된 사건은 1만 567건(53%)으로 절반을 조금 넘었습니다. 남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지난 3년간 처리한 사건만큼을 더 처리해야 하는 셈인데, 그 와중에 재조사까지 해야 할 필요성과 여력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국가폭력 피해자 보상이 '부정의'라고 말하는 진실화해위원장 침략자에 맞서서 전쟁 상태를 평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군인과 경찰이 초래시킨 피해에 대해서는 1인당 1억 3,200만 원의 보상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부정의'가 펼쳐지는지는 저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봤습니다. 침략자에 의해 초래된 희생은 감추고, 침략을 막는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을 '국가범죄, 국가폭력'이라는 이름으로 교육하고 1억 3,200만 원씩 보상해주고 있습니다. 2023. 6. 9.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조찬기도회 강연)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평화 상태로 만들기 위해 초래시킨 피해'라고 치부하는 것부터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부정의'라고 말하는 것까지, 국가에 의한 폭력과 인권 유린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찾아주는 게 책무인 진실화해위원회 수장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발언입니다. 김 위원장은 또 "전시에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 이성만 의원: 한국전쟁 시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을 만난 자리에서 '전시하에서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이런 발언을 했습니까? ▶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그런 취지의 발언을 명백하게 했습니다. ▷ 이성만 의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피해자로 인식할 필요가 없다, 이런 뜻입니까? ▶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적대세력에 가담해서 방화와 살인을 저지르는 가해자에 대해서는 당시 상황에서 즉결처분이 가능했다, 이 말씀입니다. 2023. 10. 13.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그렇다면 과연 김광동 위원장이 말하는 "적대세력에 가담해서 방화와 살인을 저지르는 가해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다섯 살 정립분은 정말 '암살·방화범'이었을까 한국전쟁 발발 직후, 경북 영천에서 민간인 600여 명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접경지역 근처에 살고 있어 인민군에게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군경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후 거의 30년 가까이 지난 1979년, 경북 영천경찰서는 이들의 명단을 정리한 '대공인적위해자 조사표' 처형자 명부에 경북 영천군 화산면 당지동에 살던 1941년생 정립분을 적어 넣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1기 진실화해위원회 <경북 영천 국민보도연맹사건> 조사보고서 "10.1 당시 요인 암살·방화 등 행위한 자. 50. 7. 10 처형" 10.1은 해방 직후 미 군정기였던 1946년 10월 1일과 2일 대구에서 경찰과 시민의 충돌로 시작된 민중 봉기입니다. 그 당시 정립분은 다섯 살이었습니다. 다섯 살 때 요인 암살과 방화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4년 뒤인 아홉 살에 살해당한 겁니다. 1기 진실화해위 조사관으로 경북 영천 국민보도연맹사건을 직접 조사한 현대사 연구자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재판을 받은 기록, 사형을 선고받거나 적법한 절차에 대한 기록이 없는 사람이라면 불법적으로 끌려간 사람들인데, 일단 처형해 놓고 나중에 합리화를 위해 처형 일자와 사유를 살인 방화 등의 무시무시한 범죄로 적어놨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립분의 죽음에는 다른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 4대 국회에 제출된 '양민피살자신고서'에는 정립분의 친형이 군대에서 탈영했다는 이유로 가족 전원이 적색분자로 몰려 처형됐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실제 김 교수가 현장을 조사하면서 만난 참고인들 역시 정 씨 일가는 아들의 탈영 때문에 처형됐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1기 진실화해위원회 <경북 영천 국민보도연맹사건> 조사보고서 영천 사건에서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보류 결정을 내린 6명도 다른 진술이나 자료들이 다 있어요. 근데 그런 반증들을 다 무시해버려요. 진도도 마찬가지고요. 오로지 처형자 명부에 기록이 있다고 '불능'으로 처리하려다 유족이라든가 야당 추천 의원들이 반발을 하니까 보류만 해 놓은 상태고…. 앞서 설명한 진도 사건 피해자 4명처럼 최근 진실화해위의 진실 규명 '보류' 결정 대부분의 근거는 당시 경찰 작성 자료뿐입니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가해자의 기록'은 아무리 국가가 작성한 공적 문서라고 해도 보다 면밀한 교차 검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심지어 지난 1980년 내무부 치안국 정보과도 전국 일선 경찰서에 신원 기록을 일제 정비하라고 지시하면서 "6.25 전후 혼란기에 작성된 각종 사상관계기록은 정확성이 결여된 점이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적대세력에 가담해 방화와 살인을 저지르는 가해자"를 언급했지만, 실제로 정확히 같은 혐의로 처형된 정립분은 겨우 아홉 살이었습니다. 만약 아홉 살 정립분이 살인방화범이 아니라면, 진도 사건 희생자 4명도 실제 암살대원이 맞는지 검증하려는 시도라도 하는 게 진정한 '진실 규명'의 방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며 다시 지난 12일 진실화해위 사무실 농성으로 돌아가서, 국가폭력피해자범국민연대 측은 결국 김광동 위원장과 만났지만 돌아온 건 오는 4월 2일 정식 면담을 갖자는 약속뿐이었습니다. 다음 주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인천항에서 북서쪽으로 122km 떨어진 곳에는 연평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지난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상징이 돼 버린 이 작은 섬에는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과 그들의 후손, 군인 가족 등 주민 2,085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번 '더스피커'는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될 때마다 늘 잊히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6년 만에 벌어진 남북 포사격 지난 1월 5일 금요일 오전, 북한이 서해 5도 북쪽에서 북방한계선 일대에 포탄 2백여 발을 기습적으로 쐈습니다. 포탄은 NLL 북쪽에 떨어져 한계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우리 군은 적대행위가 금지된 해상 완충구역에 북한 포탄이 떨어진 만큼 명백한 '도발'로 규정하고 지난 2018년 9.19 군사합의 이후 처음으로 4백여 발의 포 사격으로 맞대응했습니다. 연평도에는 또다시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군부대에서 해안포 사격을 하니 대피하라’는 마을 방송에 영문도 모른 채 황급히 대피소로 달려간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뉴스 속보를 들여다보며 불안에 떨었습니다. 자동차 수리나 병원 치료 등 다양한 이유로 인천에 나갔던 사람들은 연평도와 육지를 잇는 유일한 통로인 여객선이 끊기면서 가족들 걱정에 발만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이날 대피령은 약 3시간 반 만에 해제됐지만, 주민들에게는 지독히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연평도 주민 김정희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짐 챙길 시간도 없이 달려왔어요. (대피소 내부에서는 어땠나요?) 옛날에 있었던 거, 14년 전에 있었던 폭격 그 얘기들 하시는 거죠, 뭐 다들…” 14년 전의 트라우마 지난 2010년 11월 23일 오후, 북한은 개머리 해안포 기지에서 연평도의 우리 군 해안기지와 마을 중심부를 향해 포 사격을 가했습니다. 선전포고도 없이 갑작스레 쏟아진 포탄에 군인 2명(해병대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과 연평부대 관사 신축공사를 하던 민간인 2명 등 모두 4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습니다. 그 후 14년이 지났지만, 연평도 주민들은 여전히 6.25 전쟁 정전 협정 이래 처음으로 민간인 거주 구역에 떨어진 포탄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날 사실상 연평도 주민 모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들에게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 이어지는 우리 군의 대응 사격은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방아쇠입니다. 포격 사흘 뒤 연평도 경로당에서 만난 주민은 떨리는 목소리로 작은 어선을 타고 알아서 피난해야 했던 그날을 떠올렸습니다. 노창식 / 연평도 주민 그때(지난 2010년) 우리 산으로 일 갔다 왔는데 아유 벌써 그냥 불타고 타고나니까 연기가 날 거 아니야. 마을에 돌아오니까 그렇게 된 거야. 그날 저녁에 인천으로 피난 갔다 왔죠. 어선들 타고 갔다 가서 그날 왔죠. 그러다 보니 대피소 가라고 하면 벌써 이거 뭐 저기 하는 거다 하고 벌써 겁부터 먹게 되잖아. 불안하죠, 걔들이 먼저 쏘기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그 생각이 자꾸 나잖아요. 괜찮다가도 자꾸 떨린다고. 그때 워낙 혼이 났으니까… “할아버지가 아파서 못 갔어. 대피한다고 죽을 사람이 안 죽겠어?” 연평도에 대피령이 내려진 건 지난해 5월 31일 북한의 위성 발사 이후 8개월 만입니다. 잊힐 만하면 다시 울리는 사이렌 소리. 여전히 그날의 공포가 생생한데도 제대로 된 피난 매뉴얼은 찾아보기 어렵고, 주민들은 점차 지쳐갑니다. 박영자 / 연평도 주민 그때 폭탄 터질 때 우리 다 앞뒤로 뛰었거든. 이리로 뛰는데 여기서 폭탄 터져, 뒤로 뛰었는데 뒤에서 터져… 산에 나무 심으러 갔다가 그렇게 돼서 뛰어 내려왔는데 마을에 불이 났는데 우리 집이 불이 나는 것 같더라고. 이 집에 지붕 터졌는데 저 집 이 집 때리면서 이 집도 때렸어. 그러니까 불이 같이 붙었을 거 아니야 그 기름이 터져서 내려오는데 드럼통 쫙 세워놓는데 그 파편이 터지면서 탁탁탁탁 튀면서 드럼통에 기름이 탁 흘렀잖아. 그러면 이 바람이 조금만 불었으면 이 마을이 다 없어졌어. 나 (대피소) 못 갔어, 이번에 엊그저께 쏠 때 못 갔어. 할아버지가 아파서 집에 있는 바람에 그냥 집에 있었지 뭐. 겁이 나서… 모두 사람들 보면 대피소 가라 그러는데 맞는 건 똑같아. 대피소 가서 터지나 우리 집에 있다가 터지나. 안 가, 우리 마을 사람들은. 육지에서 이제 들어온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이미 다 겪었기 때문에 때리려면 때려라 이러는 거지 뭐. 할 수 없어 뭐 대피한다 그래서 뭐 죽을 사람이 안 죽겠어? 연평도에서 살아간다는 건 연평도 어민 박태원 씨는 지난달 25일 열린 ‘한반도 상황에 대한 접경지역 주민, 종교, 시민사회 기자 간담회’에 이런 글을 보냈습니다. “합동참모본부의 서해안 상설해상사격훈련 계획이 먼저인지 북의 포사격훈련이 먼저인지 저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2010년 연평도 포격 이후 또다시 서해5도(연평·백령·대청·소청·우도) 주민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았다는 겁니다.” 연평도의 인구는 2,085명. 주민들은 대부분 어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와 꽃게를 잡거나 섬에서 자영업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대피령이 떨어지면 내려놓은 통발을 챙기지도 못한 채 조업을 중단해야 하고, 손님이 전부 사라지는 등 단순히 몇 시간 고생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다고 하소연합니다. 김영식 / 연평도 주민 그날도 우리가 대피소에서 3시간 반 동안 있었거든요. 여객선도 통제가 됐고. 여객선이라는 거는 우리 교통수단이지 않습니까? 우리 발을 묶어 놓는 건데. 교통수단을 막아 놓으니까 우리가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대피소에 가 있는 동안 우리가 생활을 접고 있는데 이거는 누가 보상해 줘요? 예상하건대 앞으로 북한에서 포 사격 연습을 하면 대피소 가야 하고, 우리 군부대에서 포 사격 연습하면 대피소를 또 가야 해요. 앞으로 대피소에 갈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대피소 가서 있는 동안은 우리 생활을 접고 있는 거 아닙니까? 면적 7제곱킬로미터의 연평도에는 탄약고가 17곳 있습니다. 단순 계산으로 단위면적 0.41㎢, 가로세로 630m의 정사각형마다 탄약고가 하나씩 있다는 겁니다. 지난 2019년 국방부가 민주당 최재성 의원실에 제출한 현황 자료를 보면 이 17개 탄약고 모두가 주거시설 안전거리 기준인 반경 381m를 위반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민간인 거주가 불가능한 지역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연평도 주민들의 불안과 고통을 다룬 기사에는 어김없이 “누가 거기 살라고 시켰냐. 본인이 좋아서 사는 거 아니냐”는 댓글이 달립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누칼협’의 시대라고 해도 섬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바꾸라는 건 너무나 가혹한 요구가 아닐까요. 그보다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 사회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논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