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으로,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묘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으로,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최근 자극적인 언론 기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기사의 내용과 무관하게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제목을 자극적으로 꾸미는 것, 이른바 '제목 낚시'는 애교 수준입니다. 언론이 이렇게 조회수의 노예가 되다시피하며서 신뢰도 잃는 게 오늘날 '저널리즘의 위기'를 초래한 하나의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언론 종사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질문들'에서도 이러한 언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다루기도 했습니다. 패널로 출연한 한국일보 김희원 기자는 현재 언론이 길을 잃은 원인을 이렇게 진단하더라고요. "20년 넘게 온라인에서 속보를 띄우고, 조회수로 영업을 해왔어요. 그게 너무 익숙해져서 저널리즘의 규범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 본연의 역할은 공공에 중요한 이슈를 발굴하고, 공론장에 필요한 사실을 알리는 일 등이 꼽힙니다. 이를 위한 규범도 있습니다. 이런 이론적인 토대가 무너지고 있는 걸 단순히 기자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구조적인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고, 이를 해결하지 않는 한 저널리즘의 본질을 되살리기는 어려울 겁니다. 조회수 저널리즘 시대가 된 건 뉴스 소비 채널이 포털로 이동하면서부터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도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독자에게 도달할 수 없는 시대가 되면서, 언론은 자체적인 편집 주도성을 잃게 된 거죠. 편집권이 있어도 조회수 올리기 좋은 기사들을 배치하는 경향도 있고요. 포털은 '언론사별'로 노출하는 형태로 바꾸기도 했지만 여전히 편집권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출처 : 네이버 이런 현상은 최근 TV와 같은 영상 매체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기 때문에,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화제가 될 만한 소재를 다루는 일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결국 알고리즘이 뉴스를 선택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언론의 위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이 겪는 이러한 위기는 온라인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이 겪는 문제와도 닮아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자체 판매 채널(자사몰)을 운영하는 것과 쿠팡이나 네이버 같은 플랫폼에 입점하는 방법인데요. 당연히 더 많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건 플랫폼 입점입니다. 플랫폼은 막대한 트래픽을 보유하고 있어, 더 많은 고객에게 상품을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플랫폼에 입점하는 순간, 해당 플랫폼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혹시 네이버에서 물건을 검색할 때 이상한 점을 느끼신 적이 있나요? 검색 결과를 보면 상품명이 이상하게 조합된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럽지 않고, 때로는 암호처럼 보이기도 하죠. 사실 이는 언론이 낚시성 제목을 다는 것과 같은 이유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플랫폼의 검색 알고리즘에 노출되려면, 최대한 많은 키워드를 제목에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품명 자체가 고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왜곡되는 것이죠. 결국 전형적인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웩더독, Wag the Dog)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고객과 만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이러한 왜곡된 방식이 고객 경험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죠.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자사몰(자체 판매 채널)을 운영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자사몰을 운영하면 알고리즘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도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것이 반복되면 곧 브랜딩 활동이 되어 버립니다. 최근에 국내 유수의 언론사들도 이런 시도들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방송이나 지면의 콘텐츠 외에 독자적인 콘텐츠를 무기로 직접 독자와 만나는 채널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SBS의 '스브스프리미엄'처럼 자체 콘텐츠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례도 있고요, 유료 구독 모델을 도입해 독자와 직접 연결되는 방식을 강화하는 언론사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중앙일보의 '더중앙플러스'는 최근 누적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죠. 물론 자체 채널만 구축한다고 플랫폼을 전혀 활용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네이버나 유튜브 같은 강력한 플랫폼 없이는 새로운 독자들을 유입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죠. 다만 절대적으로 여기에만 의존하는 것은 피해야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겁니다. 자체 채널과 외부 채널 간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대로 구독자들에게 휩쓸리는 취재와 보도를 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겁니다. 최근에 온라인 쇼핑 업계에서도 D2C(Direct to Consumer) 모델을 이처럼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성공하는 사례들이 다수 나오고 있습니다. 강력한 자사몰로 팬들을 모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적절히 외부 채널로 나가 외연 확장도 게을리 하지 않죠. 향후 언론에서도 이러한 것들을 벤치마킹하여 적용한다면 저널리즘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언론이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기묘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으로,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특히 고물가로 인해 내수 시장은 한층 더 얼어붙고 있다. 하지만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일부 기업들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다이소와 애슐리퀸즈다. 이들의 빠른 성장을 분석하는 기사들에서는 주로 '가격'이라는 요소에 주목한다. 경쟁사 대비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통해 가성비를 인정받고,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성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전부일까? 우리는 흔히 다이소에 대해 "구경하러 간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다이소는 균일가 생활용품 판매점으로, 본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물품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이소는 목적 쇼핑을 위해 방문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다이소는 서서히 변화를 꾀했다. 2010년대 들어 취미용품 등 개성을 겨냥한 상품군을 도입하며 트렌디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다이소는 10대들의 놀이터로 자리 잡으면서, 현재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다. 출처 : 유튜브 채널 옐언니 이러한 변화에 불을 붙인 건 10대 소비층이었다. 주머니는 가볍지만, 유행에 민감한 이들이 다이소를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는 '놀이터'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다이소 상품을 사서 언박싱하는 '다이소깡'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다이소가 과거처럼 단순히 저가 생활용품 전문점에 머물렀다면, 지금처럼 대중적인 영향력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애슐리퀸즈의 부활도 다이소와 비슷한 맥락을 공유한다. 얼마 전, 점심 시간에 애슐리퀸즈를 찾았다가 매장 밖까지 이어진 대기 줄을 보고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때 존폐 위기에 놓였던 애슐리퀸즈는 이제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며 빠르게 매장을 확장하고 있다. 2022년에는 59개로 줄었던 매장 수를 작년 말에는 110곳까지 늘렸고, 올해는 150호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인기를 이끈 가장 큰 요인은 물론 가성비일 것이다. 하지만 애슐리퀸즈의 가격은 다이소처럼 단순히 저렴한 수준은 아니다. 애슐리퀸즈는 퀄리티 대비 가격 경쟁력이 돋보이는 곳이다. 평일 점심 1만 9,900원, 평일 저녁 2만 5,900원, 주말·공휴일 2만 7,900원이라는 가격은 최근 외식 물가를 고려하더라도 결코 저렴한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객이 찾는 이유는 가격 외적인 요소, 특히 다양성 때문이다. 애슐리퀸즈는 시즌마다 메뉴를 바꾸면서 경험 장소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출처 : 이랜드 애슐리퀸즈는 일종의 시즌제 운영을 통해 고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주기적으로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춘 신메뉴를 선보인다. 이 전략은 애슐리퀸즈를 단순히 저렴하게 식사를 하는 장소가 아닌, 놀러 가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고객들은 새로운 테마와 메뉴를 즐기기 위해 다시 찾게 되었고, 이는 애슐리퀸즈가 더 큰 호응을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다이소와 애슐리퀸즈는 경쟁력 있는 가격을 기반으로 하되,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키는 경험을 무기로 쉽지 않은 경제 환경 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이들의 뛰어난 운영 역량이다. 사실 다양성을 충족시킨다는 건 곧 퀄리티 관리의 어려움을 의미한다. 품목이 많아지고 변화가 잦아질수록 최적화를 유지하기는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이소와 애슐리퀸즈는 이러한 난제를 뛰어난 운영과 관리 능력으로 극복하며, 단순한 가격 경쟁력을 넘어선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냈다. 다이소는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오랜 시간 협력 업체들과 함께 균일가라는 제약 안에서도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온 경험이 지금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1,500여 개의 매장과 연간 4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무기로 막강한 가격 협상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용량을 조절하거나 성분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제조사들이 균일가에 맞춰 상품을 제작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애슐리퀸즈 역시 과거부터 다져온 운영 경험을 기반으로, 조리를 간소화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특히 식자재 유통 계열사인 이랜드팜앤푸드와의 협업을 통해 원재료를 공동 구매하며 비용 절감에도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브랜드 단일화를 통한 전략적 선택이다. 애슐리퀸즈는 과거의 애슐리 클래식, 애슐리 더블유 같은 기존 매장들을 과감히 없애고, 퀸즈로 단일화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강점이었던 가격 경쟁력은 일부 희석되었지만, 고객이 충분히 가치 있다고 느낄 메뉴와 경험을 제공하며 차별화를 이뤄냈다. 다이소처럼 원칙을 고수하는 것도 훌륭한 전략이지만, 우선순위에 따라 기존 방식을 과감히 바꾸는 유연함 역시 배울 점이다. 이처럼 불경기 속에서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다이소와 애슐리퀸즈. 그러나 이들의 성공은 단순히 가격 경쟁력 때문만이 아니다. 재미와 가치를 더한 경험,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그렇기에 이들은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주춤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묘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으로,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합종연횡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중국 전국시대의 외교 전략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당시 강대국 진나라에 맞서 나머지 6개국이 힘을 합치자는 합종책과, 반대로 진나라와 각각 동맹을 맺어 개별적인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연횡책으로 나뉜다.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연횡의 승리로 끝난다. 6개국은 끝내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고, 마침내 진나라는 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했다. 최근 OTT(Over The Top) 시장을 보고 있자면, 이 합종연횡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OTT 시장의 진나라는 누가 뭐래도 넷플릭스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한때 '콘텐츠 제국'으로 불리던 디즈니마저 넷플릭스의 기세에 밀려 고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넷플릭스의 독주가 이어지자, 자연스럽게 합종 전략이 등장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국내 토종 OTT를 대표하던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설이었다. 아예 하나로 뭉쳐 넷플릭스와 경쟁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해외 서비스들 역시 직접 진출 대신 제휴를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파라마운트+는 처음엔 티빙과 손을 잡았다가 계약 종료 후 쿠팡플레이와 제휴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2021년 국내에 직접 진출했던 애플 TV+는, 파라마운트+와 결별한 티빙과 손을 잡고 프리미엄 구독자를 대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디즈니+도 콘텐츠 투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중파 방송사와 협력을 택했다. 대표작 무빙을 MBC에서 방영한 사례가 바로 그 예다. 이 모든 움직임은 서로의 부족한 체급을 보완해 넷플릭스에 맞서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네이버가 넷플릭스의 손을 잡은 건, 합종책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었다. 출처 : 네이버 하지만 역사가 말해 주듯이, 합종은 연횡보다 무력했다. 애초에 티빙과 웨이브는 단독 사업자가 아니라 여러 국내 기업이 협력해 만든 플랫폼이었다. 티빙은 CJ ENM, KT, JTBC, 네이버가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고, 웨이브는 SK텔레콤과 KBS, MBC, SBS가 지분을 나눠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균열이 발생했다. 네이버가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에 넷플릭스 광고 요금제를 포함시키며 티빙과의 협력을 약화시켰다. 심지어 내년 3월부로 티빙은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콘텐츠 혜택에서 완전히 제외될 예정이다. 지상파 3사 역시 웨이브와의 2024년 9월 콘텐츠 독점 계약 갱신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게다가 SBS와 MBC는 넷플릭스에 콘텐츠 공급을 시작했으며, 특히 SBS는 넷플릭스와 6년짜리 전략적 협약을 체결했다. 합종이 연횡에 패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합종의 대가는 불확실하지만, 연횡의 대가는 즉각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SBS가 넷플릭스와 협약을 발표한 직후 주가는 급등했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SBS 입장에선 웨이브의 성공 가능성에 기대기보단, 당장 넷플릭스와 손잡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택은 결국 넷플릭스에 종속되는 결과로 이어질까? 역사 속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OTT 시장은 다를 가능성이 있다. 방송사를 단순 플랫폼이 아닌 제작사로 본다면, 넷플릭스와의 협력은 오히려 글로벌 성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SBS는 내년부터 일부 신규 드라마를 전 세계 동시 공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시청률 하락과 제작비 상승이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거의 유일한 해법일지도 모른다. 물론 부정적인 시나리오도 있다. 국내 콘텐츠 제작 업계가 이미 넷플릭스에 종속되었다는 우려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좋은 시나리오는 가장 먼저 넷플릭스로 향한다고 할 정도다. 만약 공중파 방송사들마저 넷플릭스의 하청기지가 된다면, 대부분의 수익은 넷플릭스가 독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작의 주도권은 일부 내주더라도, IP를 활용한 추가 수익 모델을 만든다면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해진다. 출처 : GS25 그렇다면 이러한 새드 엔딩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티빙처럼 자체 OTT 플랫폼을 포기하지 않고 합종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해외 진출에 성공해야 한다. 국내에서 흑자를 기록한 라프텔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틈새시장에 집중해 성과를 냈듯, 특정 장르나 타깃층을 공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면 충분히 독자 생존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SBS처럼 연횡을 선택한 기업들은 콘텐츠 제작 주도권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IP를 상품화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 이미 넷플릭스가 인기 IP '오징어게임'을 여기저기 활용하여 추가적인 매출을 만들어 냈듯이 말이다. 콘텐츠 제작의 주도권은 일부 넷플릭스에 내주더라도, 이러한 IP 상품화를 성공해 낸다면, 적어도 하청기업이 되어 끌려다니는 건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합종과 연횡 중 어느 것도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선택보다 중요한 건 실행 방식이다. 앞으로 국내 콘텐츠 기업들이 어떤 전략을 펼치느냐에 따라 생존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기묘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으로,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같은 곳입니다. (백화점에) 접근하는 패러다임을 바꿔 서울에 오면 꼭 와야 할 장소로 설정했습니다." 지난 10월 23일 열린 글로벌 패션 포럼 기조연설에 나선 정지영 현대백화점 대표는 더현대 서울의 추진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더현대 서울은 오픈 초기부터, 이러한 방향성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느덧 고객들은 더현대 서울을 백화점을 넘어선 하나의 놀이 공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사실 유통점이 앞으로 테마파크와 경쟁할 거라는 건,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무려 8년 전인 2016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도 스타필드 하남점을 선보이며, 앞으로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거라고 선언했다. 심지어 신세계그룹은 아예 프로야구단을 인수하기도 했다. 현재는 청라에 돔구장을 포함한 새로운 스타필드 매장을 준비 중이며, 뒤이어 화성에 파라마운트 테마파크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이렇게 유통 기업들이 매장을 테마파크처럼 느끼도록 만들고, 더 나아가 실제 테마파크까지 짓는 건, 업의 본질이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삼성의 고 이건희 회장은 평소 업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걸로 유명했다. 그가 바라본 유통업의 본질은 부동산업이었다. 결국 유동인구가 많은 입지를 선점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건데, 실제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를 철저히 따른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입지는 예전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입지가 중요한 건 고객이 접근하기 편리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살 때 다양한 상품을 비교하며 사기 위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갔었다. 그리고 이왕 가는 건, 더 가깝고 가기 쉬운 곳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어디서나 편리하게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가격도 저렴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 입지가 가진 장점은 점차 희석되고 있다. 스타필드 청라는 야구장과 쇼핑몰을 결합한 새로운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출처 : DLA+ 그렇다면 고객이 매장으로 오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대신 등장한 것이 바로 차별화된 콘텐츠, 그리고 여기서 누릴 수 있는 경험이다. 가장 먼저 변화의 바람을 불러온 것은 역시나 현대백화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판교점을 오픈하면서 EATALY, 사라베스 키친 같은 해외 유명 F&B 브랜드를 입점시킨 것은 물론, 회전목마가 있는 백화점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이러한 흐름을 이어간 것이 앞서 언급하기도 한 스타필드 하남이다. 당시 분점을 내지 않기로 유명했던 의정부 평양면옥을 최초로 입점시키는 등 다양한 콘텐츠로 이름을 떨쳤다. 최근에는 사고 먹는 걸 넘어서 아예 즐기는 콘텐츠로 진화하는 것이 눈에 띈다. 이러한 흐름의 대표 주자로 주요 백화점 3사가 매년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크리스마스 팝업을 들 수 있다. 첫 시작은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파사드였는데, 이제는 크리스마스마켓 형태로 진화하여 예약을 시작하자마자 마감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에서 연말 할인행사보다 존재감이 커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단지 보는 걸 넘어서, 예약을 하고 방문하여 사진을 찍으며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특별한 팝업 상품들을 소비하며 고객들은 시간을 백화점에서 보내게 된다. 크리스마스 팝업이 보여주듯이 이제 유통점들은 고객들을 사로잡을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진심이다. 출처 : 현대백화점 이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역시나 더현대 서울의 크리스마스 팝업인데, 무려 1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고 한다. 사실 이는 과거의 기준대로라면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다. 약 1,000평 가까운 공간을 온전히 팝업 공간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준비 기간 동안은 영업은 물론 휴게 공간으로도 활용하지 못한다. 오픈 이후에도 고객 경험을 위해 입장객을 철저히 제한하기에 집객에 미치는 영향도 절대적이라 보긴 어렵다. 따라서 투자한 비용 이상의 직접 매출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더현대 서울은 단순히 판매 공간을 넘어서 하나의 경험 공간이 될 수 있다. 방문하여 이곳을 온전히 누린 이들은 물론이고, 예약에 도전하여 설사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더현대 서울은 언제고 한번 가고 싶은 장소로 인식시킨다. 그렇게 고객들은 여유가 될 때 한 번쯤 기대감을 품고 매장에 오게 된다. 이렇게 모인 인파는 결국 매출로 이어진다. 덕분에 더현대 서울은 국내 백화점 중 최단 기간 매출 1조 원을 돌파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백화점, 아니 유통점들은 이제 경험을 판다. 좋은 경험은 고객을 불러 모으고, 이들을 노리고 좋은 브랜드가 입점한다. 그리고 결국 이는 매출 성장을 만들어 낸다. 이제 이러한 성공 공식을 따르는 매장들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유통 기업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기묘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으로,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흑백요리사>를 통해 파인 다이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파인 다이닝은 철저히 고급화된 식당을 뜻하는데, 한 끼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 때문에 대중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존재였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오마카세를 필두로 파인 다이닝은 큰 인기를 얻게 됐다. 해외 여행이 막힌 상황에서 새로운 경험을 찾던 젊은 세대가 눈길을 돌린 덕분이다. 그러나 이내 파인 다이닝은 '사치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소셜미디어에서 이를 단순히 허세로 여기는 비판이 쏟아졌고, 고금리와 고물가로 인한 수요 감소는 파인 다이닝 시장을 다시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때 등장한 구원자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였다. 이 프로그램이 특별히 파인 다이닝을 변호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출연한 요리사 중 다수가 파인 다이닝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화면 속 요리사들이 요리에 쏟는 열정과 진지한 태도가 눈길을 끌었다. 그 덕에 대중은 파인 다이닝이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비싼 가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칼질 하나도 다른 것이 파인 다이닝의 경험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려준 <흑백요리사>. 출처 : 넷플릭스 이후 출연한 셰프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파인 다이닝의 현실을 전하면서, 이러한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었다. 알고 보면 한 끼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했던 파인 다이닝 식당들이 그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 유일의 미슐랭 3스타 식당이자, <흑백요리사> 심사위원인 안성재 셰프가 운영하던 '모수 서울'마저 휴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고가 논란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물론 파인 다이닝에 대한 비판이 단순히 원가 대비 비싸다는 인식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동안 한국 사회에는 사치를 죄악시하는 인식이 강했다.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소비는 부도덕하다고 여겼고, 근검한 소비가 미덕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소득 구간에 맞춰 사야 할 브랜드를 정해주는 일종의 '등급표'가 유행할 정도였다. 특히 먹는 것에 관한 비판이 더 거셌다. 편의점 라면이나 오마카세 초밥이 얼마나 다르겠냐며, 돈을 그렇게 쓰는 것이 낭비라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진정 발전하려면, 좋은 경험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괜히 파인 다이닝이 한 나라의 식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고, 그 트렌드가 대중에게 확산하듯이, 고급 문화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결국 좋은 식재료와 정교한 조리 방식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 식문화가 발달할 수 있고, 그런 안목은 경험에서 나온다. 한강 작가가 만년 적자에도 독립서점을 지킨 건 다양성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출처 : 연합뉴스 또한, '수익과 성장을 우선하지 않는 곳에서 나오는 다양성'은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모든 분야에서 고급 문화가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영화나 출판 같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는 고급화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때 파인 다이닝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독립영화나 독립출판이다. 이들은 주류에서 하지 않는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전체 생태계에 신선함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파인 다이닝처럼 본질적으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기도 하다. 한강 작가가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책들을 소개하는 데서 오는 애정으로 독립 서점 '책방 오늘'을 운영했지만, 수년간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린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그래서 창작자들은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느냐"는 말을 듣기 쉽고, 심지어 이를 소비하는 행위 자체를 허세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반이 없었다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나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같은 성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성비와 수익성만을 중시하는 문화는 결국 획일화로 이어져, 발전이 정체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비즈니스 전반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보통 성장하는 기업이나 브랜드에만 주목하고, 상장이 모든 기업의 목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사회적 역할을 하는 기업이 필요하고, 장인 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철학을 지키는 브랜드도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은 경험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쓸데없는 낭비'가 아니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야 하지 않을까?
기묘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으로,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2000년 법이 제정되어 금지되기 전까지,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셔틀버스를 경쟁적으로 운영했다. 당시 내가 살던 중소도시에도 백화점이 처음 들어서면서 셔틀버스가 도입되었고, 이에 반발한 시장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금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는 아마도 지역 사회와 유통 대기업 간의 첫 정면 대결이 아니었나 싶다. 과거 시민들이 애용하던 백화점 셔틀버스. 이들을 금지시킨 1차적인 원인은 운수업계의 반발이었지만, 지역 소상공인들의 반대 또한 격렬했었다. 출처 : 문화일보 이후에도 지역 상권, 더 나아가 지역 사회와 대형 유통업체 간의 힘겨루기는 계속되었다. 당시 대형 유통기업의 진출은 지역 상권, 특히 전통시장에 큰 위협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시장과 직접 경쟁하던 대형마트가 집중 타깃이 되었다. 2010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전통시장 인근에 대형마트의 신규 입점을 금지했고, 2년 후에는 매달 두 번의 의무 휴업 규제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커머스 시대가 열리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기존 유통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위기에 처했다. 실제로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2021년 이후로 신규 점포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폐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규제의 주요 타깃이었던 대형마트는 매년 점포 수가 줄고 있다. 2017년 423개로 정점을 찍었던 대형마트 3사의 점포 수는 지난해 400개 이하로 떨어져 397개에 그쳤다. 최근에는 백화점도 지방의 중소형 점포들을 잇따라 폐점하며 대형마트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이들이 떠난 후 지역 사회는 이로 인해 나아졌을까? 대형마트가 떠난 이유는 소비자들이 온라인 쇼핑을 선택했기 때문이지, 전통시장으로 수요가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형 유통점에서 일하던 인력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지역 경제는 타격을 받고 있다. 자주 이용하던 점포가 사라지면서 지역 주민들의 불편도 커졌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추가적인 인구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반대로 늘어난 고용도 있다. 대표적으로 쿠팡은 물류 인프라에 투자해 지방에 신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최대 1만 명을 직고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고용뿐만 아니라, 로켓배송 지역을 확대해 지방 소멸을 막겠다는 보도자료도 배포했다. 하지만 '쿠세권'(로켓배송이 가능한 지역)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아무리 이커머스가 발달하더라도 지역 사회에는 여전히 유통점이 필요하다. 유통점은 단순히 일자리와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으로만 방문하지 않는다. 가족과 나들이를 가거나 친구들과 모임을 갖기 위해서도 찾는다. 이처럼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사회가 활기를 띠게 된다. 특히 이들이 운영하는 문화센터와 같은 시설은 지역의 여가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문화센터는 지역 주민들의 여가 활동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출처 : 신세계 뉴스룸 지방 소멸은 지역이 수행해야 할 기본적인 기능을 잃으면서 시작된다고 한다. 유통점들은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최후의 보루 중 하나다. 역세권처럼 '몰세권'(대형 쇼핑몰 인근 지역)이나 '백세권'(백화점 근처 지역)이 부동산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과거 전통시장처럼 지역 유통점포들을 지원해야 할까? 이는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규제만으로는 이미 구조적으로 뒤떨어진 산업을 되살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더구나 소상공인 지원과 대기업에 혜택을 주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상생을 위한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인식은 필요하다. 지역 자치단체, 유통 기업, 그리고 지역 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역 유통점의 생존 방안을 고민해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성공적인 협력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전 롯데백화점은 로컬 브랜드 성심당과 협력해 점포의 경쟁력을 높였다. 백화점의 핵심 위치인 1층에 성심당의 빵집을 대규모로 입점시켰고, 덕분에 백화점 매출은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했다. 성심당 역시 백화점의 좋은 입지 덕분에 손해 볼 일이 없었다. 이는 로컬 브랜드의 성장과 지역 점포의 상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롯데백화점은 성심당을 파격적인 수수료와 공간 제공으로 유치하였고, 현재 이는 둘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있다. 출처 : 롯데백화점 대전점 현재는 주로 매출 규모가 큰 백화점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도가 성과를 거둔다면 대형마트로도 금방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협력 사례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유통점들은 더욱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며 그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국 지방 소멸을 늦추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기묘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으로,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지난 8월 13일, 스타벅스는 치폴레를 이끌던 브라이언 니콜을 새로운 CEO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CEO 교체는 최근 지속된 스타벅스의 경영 부진 때문으로 보인다. 지속적인 고물가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은 스타벅스를 점점 외면하기 시작했고, 중동 전쟁 이후 친이스라엘 기업으로 분류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불매 운동은 결국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초의 분기 매출 감소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스타벅스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올해 상반기 기준, 스타벅스를 운영하는 SCK컴퍼니의 매출은 전년 대비 7.5%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무려 33.2%나 증가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선, 미국 스타벅스의 부진은 기존의 장점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스타벅스는 '제3의 공간'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많은 팬을 모았던 브랜드였다. 그러나 사업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픽업과 드라이브 스루 전문 매장을 늘리면서 이러한 매력을 스스로 퇴색시켰다. 게다가, 모바일 주문이 고객 경험을 저해한다는 평가도 잇따르고 있다. 주문이 밀리면서 바리스타와 고객 간의 교감이 사라졌고, 밀린 주문은 오히려 고객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했다. 이렇게 특별함이 사라진 스타벅스에 고객들은 더 이상 더 비싼 돈을 지불하고 커피를 구매하지 않게 된 것이다. 스타벅스 더여수돌산DT점, 특화 매장들은 스타벅스의 공간 경험 브랜딩을 강화했다. 출처 : 스타벅스 그러나 한국의 스타벅스는 달랐다. 국내에서도 강남역에 픽업 전문 매장을 테스트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 확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매장'이라고 부르는 특화 매장을 늘리며, 더 나은 공간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급격히 성장한 저가형 커피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위해, 편안한 좌석, 와이파이, 콘센트 등으로 상징되는 매장 경험을 놓치지 않았다. 모바일 주문 역시, 사이렌 오더를 처음 도입한 곳답게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운영을 유지했다. 이미 과거 프리퀀시 이벤트 등으로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자가 몰릴 경우 음료 제공이 지연된다는 메시지를 송출하는 기능을 추가하고, 지연이 심해지면 아예 주문을 차단하는 알림도 도입하는 등 시스템을 꾸준히 개선해 왔다. 미국과 한국의 스타벅스 모두 특정 시간대에 몰리는 주문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출처 : 스타벅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스타벅스가 미국에서 겪은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침 등 주요 시간대에 몰리는 과도한 수요 문제는 여전하다. 더군다나 그란데 사이즈 등 대용량 음료 가격을 인상하면서, 미국처럼 가격 논란에 휩싸일 위험도 존재한다. 이에 다양한 실험을 진행 중인데, 예를 들어 별을 8개만 모으면 아메리카노나 라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리워드 프로그램 '매지컬 8 스타'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월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사이렌 오더 주문 시 50%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이는 수요 분산을 위한 테스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것이 미국에서 먼저 진행된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본사에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이 국내에서는 성공한 이유는, 앞서 말한 브랜드의 본질을 지켰기 때문이 아닐까? 신세계가 스타벅스 지분을 인수하면서, '쓱타버스'라고 불리던 국내 매장들이 오히려 하워드 슐츠가 추구하던 가치를 더 잘 지켜왔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번 경영진 교체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에서 스타벅스 주가는 무려 20%나 급등했다고 한다. 새로운 선장의 취임으로 스타벅스는 부활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스타벅스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반등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국내 스타벅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얼마 전까지 지나치게 많은 굿즈와 이벤트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결국, 아무리 스타벅스라 해도 더 나은 고객 경험이라는 대전제를 기억해야만 현재의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기묘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으로,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최근 개당 300만 원을 호가하는 디올 백의 원가가 단돈 8만 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큰 논란이 되었다. 이탈리아 검찰이 불법 강제 노동 의혹을 조사하면서 명품 브랜드들의 생산 원가가 적나라하게 공개된 것이다. 디올뿐이 아니다. 267만 원에 판매되던 조르지오 아르마니 가방은 약 14만 원, 심지어 1,200만 원을 호가하는 로로피아나 스웨터의 원가가 고작 39만 원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논란은 미국으로 건너가 에르메스까지 타깃이 되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에르메스 버킨백을 둘러싼 사회 현상을 분석하면서, 1,600만 원에 판매되는 버킨백 기본 모델의 원가가 140만 원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프랑스 공방에서 수작업을 고수한다는 에르메스조차도 원가는 판매가에 비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이러한 상황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원가 대비 너무 비싸다는 의견부터, 불법 노동 착취 의혹까지 더해지며 대중들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배울 점은 없을까? 이들이 저지른 잘못은 고치도록 의견을 내야겠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들이 높은 가격표를 붙일 수 있었던 비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쩌면 논란이 있을 정도로 높은 가격은 그들의 뛰어난 브랜딩 역량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에르메스는 장인정신을 강조하며, 그들의 가격을 정당화한다. 출처 : 에르메스 올봄 서울에는 두 명품 브랜드가 전시를 열었다. 하나는 국내 진출 27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에르메스의 팝업 전시회였고, 나머지 하나는 DDP에서 열린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전시였다. 에르메스는 '에르메스 인 더 메이킹'이라는 이름으로 팝업을 딱 9일만 진행했는데, 거대한 임시 건물을 지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에르메스 제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직접 와서 작업을 시연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시의 핵심이었는데, 관람객들은 '이러니 비쌌구나'를 연발하며 감탄했다. 까르띠에 역시 전시회를 통해 자신들의 제품을 예술품의 반열에 올리고 있다. 출처 : Yuji Ono 까르띠에의 '시간의 결정' 전시는 한 발 더 나아가 유료 전시회였다. 약 두 달간 돈을 내고 까르띠에 제품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무려 10만 명에 달했다. 에르메스가 장인정신을 드러내며 자신들의 가격을 옹호했다면, 까르띠에는 스스로의 제품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덕분에 까르띠에 주얼리는 하나의 상품이 아닌 19세기 말의 장식 변천사를 보여주는 예술품이 되었다. 사실 초창기 명품 브랜드 대부분은 일종의 혁신 제품에 가까웠다. 에르메스는 마구 용품에서 시작되었고, 루이뷔통 역시 여행가방 전문 매장에서 출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강력한 브랜드 자산, 즉 브랜드 헤리티지를 축적하며 명품의 반열에 올랐다. 우수한 기능과 독특한 디자인이 없어도 그 이름만으로도 고객의 지갑을 여는 브랜드가 된 것이다. 이들이 이러한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했던 노력들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앞서 소개한 전시 등 다양한 브랜딩 활동을 지속해 온 것은 물론, 일부 브랜드는 재고가 쌓여도 결코 할인을 하거나 아웃렛에 물건을 넘기지 않았다. 과거 명품 브랜드가 재고를 싸게 팔기보다는 차라리 태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게 그들은 초창기 명성을 만들었던 이유들을 대부분 잃었지만, 대량 생산의 시대에도 확고한 입지를 지키는 데 성공한다. 스스로의 가치를 상품에서 작품으로 격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발전 과정 역시 어쩌면 이들 브랜드가 걸어온 길과 유사하다. 초창기에는 싼 임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이윽고 우리는 기술을 배워 기능적 차별화로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품질 대비 좋은 가격, 가성비가 우리의 무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우리가 언제까지나 과거의 공식으로 성장할 수는 없다. 최근 국내 패션, 뷰티를 중심으로 브랜드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매력을 바탕으로 팬덤을 모으고,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그 지평을 넓히고 있다. 다만 이제는 힙을 넘어 클래식으로 거듭나야 한다. 단지 디올의 높은 가격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이 그렇게 팔 수 있었던 원동력을 연구하고 우리에게 적용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기묘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으로,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사과가 비싼 나라', 지난 3월, 주요 국가 가격 통계 비교 사이트 넘베오에서 한국 사과 값이 95개국 중 가장 높다는 자료가 나오면서 얻게 된 자조적인 별명이다. 넘베오는 사용자가 직접 입력하는 자료를 기반으로 통계를 내는 사이트라 100% 신뢰할 수 없다고는 한다. 그러나 실제로 유명 백화점에서 한 개에 2만 원에 달하는 사과가 등장하는 등 모두가 체감하고 있던 일이라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하곤 했다. 2024년 3월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1kg당 사과 가격은 세계에서 제일 비쌌다. 출처 : 넘베오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이렇게나 비싼 국산 사과가 미국에서는 1.29달러, 약 1,700원에 팔린다는 사진이 온라인에 퍼지며 갑작스러운 논란이 생기기도 하였다. '충주맨'으로 알려진 충주시청 김선태 주무관이 해명 영상을 올리며 일단 진화는 되었는데, 담당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물량은 사전에 100% 계약 재배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2023년 10월 평균 가격에 팔렸기 때문에 저렴하게 제공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목을 끈 것 자체는 할인 가격이었으며, 원래 정가는 2.49달러로 국내 가격과 큰 차이가 없었다. 국내에선 금사과였던 사과 가격이 태평양을 건너가자 싸졌다며 논란이 일어났다.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남는다. 미국까지의 운송 비용과, 미국의 소득 수준이 훨씬 높은 것을 고려하면 비슷한 가격에 팔리는 것 역시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우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소득으로 더 많은 식료품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식료품 가격은 선진국 평균보다 56%나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먹거리는 왜 이토록 비싼 것일까? 흔히 이 문제를 다룰 때 많은 이들이 비효율적인 유통 구조가 원인이라 지적하곤 한다. 우리도 미국 마트처럼 미리 상품을 기획했다면 더 싸게 팔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국내에서 유통 비용이 판매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5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등 다른 선진국의 80%에 비하면 낮은 수준으로, 오히려 근본적인 원인은 높은 산지 가격 자체에 있다. 이와 같이 우리 농업이 영세하여 경쟁력이 없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규모가 작다 보니 차별화 노력이 부족했고, 해외 생산자들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여러 보호 정책이 없었다면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겠지만, 정부의 우산 아래 있다 보니 끝내 골든타임을 놓치고 만다. 다시 충주 사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앞서 충주 사과의 정가는 국내와 차이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왜 할인을 하게 된 것일까? 그건 충주 사과가 경쟁하는 미국 마트의 다른 사과 가격이 1달러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유통 산업의 혁신은 분명 필요하지만, 유통의 효율화 만으로는 높은 산지 가격을 완전히 극복할 순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규제를 갑자기 없애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최소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이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 충주 사과의 사례를 보면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충주 사과가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인 마트의 고객들이 한국산 과일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계약 재배 방식을 통해 매입가를 최대한 낮췄고, 충주시와 농민들은 미국의 까다로운 수입 규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물량을 다 소진하지 못해 할인을 했지만, 이러한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었다. 우리 농업이 영세한 이유는 산지가 많은 국토 특성상 큰 규모의 생산자 육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격 경쟁으로는 절대로 승부를 볼 수 없으며, 콘텐츠, 스토리, 브랜딩이 필요하다. 이는 어려운 과제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충주 사과처럼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먹거리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기묘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으로,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지방 소멸의 시대, 하지만 역설적으로 잘 만들어진 로컬 경험의 가치는 오히려 더 올라가고 있다. 취향이 파편화됨에 따라, 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고유성을 지닌 로컬 경험에 더 큰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로컬 비즈니스를 상징하는 존재를 단 하나 꼽는다면, 역시 대전의 자랑 성심당이 아닐까? 성심당은 2023년 매출 1,000억 원을 넘기는 것은 물론 영업이익 규모가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을 모두 제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러한 성심당의 성공을 이끈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역시나 오직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희소성이었다. 그래서인지 성심당은 지금까지 여러 제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전 내 매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성심당이 때아닌 논란에 휩싸였다. 대전역 지점의 재계약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상황인데, 무엇보다 월 수수료에 대한 의견 차이가 크다고 한다. 우선 코레일유통은 26억 원에 달하는 성심당 평균 매출을 근거로 월 4억 원 수준의 임대료를 요구하였고, 이에 대해 성심당 측은 기존 1억 원이던 수준에서 4배 오른 것이 너무 과도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5월 말 기준으로 해당 위치의 임대 사업자 공모는 4번째 유찰이 되었고, 마지막 5차 입찰 때는 가격이 3억 원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이나, 계약 연장의 성사 여부는 여전히 불분명한 상황이다. 성심당 대전역점은 상징적인 점포 중 하나로, 월 매출이 26억 원에 달할 정도로 핵심적인 곳이기도 하다. 출처 : 성심당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성심당 대전역 지점은 일종의 관문 역할을 하며 본점만큼이나 상징적인 점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미 부산에서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대표적 로컬 브랜드, 삼진어묵 역시 높은 월 매출을 기반으로 한 임대료 3억 원을 요구받자 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결국 삼진어묵은 인근에 새로운 점포를 냈고, 현재 원래 삼진어묵의 자리는 본사가 서울에 있는 다른 어묵 브랜드가 차지하고 만다. 결국 부산역과 삼진어묵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로 이어지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단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 가르기' 식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옳지 않다. 코레일유통 측에서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코레일유통은 전국 모든 철도역 상업시설에 매출액 대비 17% 이상 50% 미만의 통일된 기준에 따라 운영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다. 원칙에 따르면, 그간 성심당은 오히려 과도한 특혜를 받은 것처럼 비칠 수밖에 없다. 다만 성심당 입장에서도,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처럼 높은 매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삼진어묵 역시 철수를 결정한 것이, 당시 매출이 매년 10% 정도씩 떨어지고 있어서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구조를 바꿔야만 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또 다른 로컬 콘텐츠 남원 춘향제 사례가 아닌가 싶다. 춘향제는 1931년부터 열린, 현존하는 축제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유수한 전통은 물론, 매년 200만 명 가까이 다녀가는 큰 행사였지만, 작년 엄청난 비난을 받고 만다. 다수의 관람객들이 음식값이 터무니없다며 불만 섞인 후기들을 남긴 것이다.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춘향제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에게 컨설팅을 요청한다. 백종원 대표는 오래전부터 로컬에 관심을 가지고, 특히 지역 활성화 수단 중 하나로 축제 콘텐츠에 집중해 온 전력이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기대를 표했었다. 백종원 대표는 이번 춘향제 컨설팅 과정을 아예 유튜브 콘텐츠로 다루기도 하였다. 출처 : 유튜브 채널 백종원 그리고 드디어 올해 공개된 춘향제는 많은 이들의 호평을 자아내며 환골탈태하는 데 성공한다. 백종원 대표가 로컬 특산품을 가지고 먹거리 메뉴를 개발하고 직접 사람을 뽑아 부스를 운영하며 퀄리티 높은 경험을 선사한 것이 통했던 것이다. 특히 무엇보다 핵심은 자릿세를 없앴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역 축제 바가지 논란이 나오면 흔히 해당 상인을 악마화하지만, 이들 역시 높은 자릿세를 부담하려면 결국 그 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건 간과한다. 이번 춘향제에서는 126개 부스를 직접 임대하며 관리하였고, 자릿세는 완전히 없애 부담을 줄였다. 대신에 모든 메뉴는 정찰제로 1만 원 이하로 판매하도록 유도하였고 말이다. 그 덕에 춘향제는 상인도 지자체도, 고객도 그리고 컨설팅을 수주한 백종원 대표의 더본코리아까지 모두 웃을 수 있는 행사로 남을 수 있었다. 이제 기차역이나 휴게소 등의 수수료 구조 역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지역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들리게 되는 이들은 높은 수수료로 좋지 않은 경험을 주거나, 경직된 수수료 체계로 잘되는 로컬 브랜드를 떠나게 만들고 있다. 반면에 민간 유통 기업들은 좋은 브랜드, 콘텐츠를 들여오기 위해선 마이너스 수수료까지 불사한다. 대신 이를 이용해 사람을 모으고 전체 매장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 성심당 일을 계기로, 아예 근본적인 구조에 대한 고민을 지금이라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