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을 공부한 뒤 방송작가로 활동, 드라마와 웹툰 스토리텔링, 대중문화를 비평하고 연구한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K- 콘텐츠에 심취해있는 중.
판다곰 한 마리가 계속 머릿속을 뛰어다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떠나기 전 인사나 하고 올 걸. 하지만 OTT 시대 수많은 영상이 남아있으니 푸바오 없는 하늘 아래 그나마 위로가 좀 된다. 한국에서 태어나 1,354일을 보낸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는 수많은 이야기를 남긴 채 4월 3일 멸종위기동물 보호조약인 워싱턴 협약에 따라 쓰촨성 판다기지로 돌아갔다. 토실토실 목화솜 같던 한 존재의 탄생부터 성장을 지켜본 대중이 푸바오를 향해 보여주는 행동은 단순한 팬덤이라고 규정하기엔 그 내면에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이제 푸바오는 그저 단순한 통과의례를 맞은 판다라는 존재를 넘어 OTT와 팬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자 위로와 치유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고 있다. 코로나로 모든 사람들이 웃을 일 하나 없던 시기, 197g의 꼬물거리는 존재가 점점 까만 점과 하얀 털을 갖춰가며 100kg에 육박하는 뚠뚠 판다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비밀을 품은 듯 행복해했다. 5만 명의 시민이 푸바오 이름 짓기에 동참했고 '행복을 주는 보물'이란 이름 말고도 푸공주, 용인 푸 씨, 뚠빵이, 푸룽지, 푸질머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2, 30대 여성들 사이 팬클럽까지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인기 스타만이 오픈할 수 있는 팝업 스토어에선 13일간 약 10억에 가까운 아이돌 스타급 매출을 올렸다. 올가을에는 푸바오 영화까지 나온다고 하니 푸바오는 가고 없지만 푸바오를 향한 애정은 아이돌 브랜드 지수를 능가하는 폭풍 파워를 보여준다. 하지만 전 세계 1,800마리밖에 없는 판다는 태생부터 정만 주고 떠나보내야 하는, 잘 키워 멀리 보내는 자식처럼 애틋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났는지 모른다. 푸바오가 중국 쓰촨성으로 떠나는 날 에버랜드에는 6,000명의 시민들이 비를 맞으며 마지막 순간을 배웅했다. 중국으로 돌아간 뒤 계속 앞 구르기를 하는 영상이 공개되자 달라진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고 허전한 사람들의 심리를 마케팅에 이용한 판다기지 여행 패키지도 등장했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은 '푸바오 앓이'는 그렇게 퍼져나가고 있다. 거기엔 4년이란 시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보낸, 한 생명체에 대한 양육과 성장의 세계관을 가진 푸바오 덕후들의 팬덤 문화인 '공동의 책임감'이 자리 잡고 있다. 팬덤의 시대에 다가온 이 '판다 열풍'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대나무 먹방을 하는 귀여운 판다를 넘어 한국에서 태어나 특별한 개성화 과정을 획득한 푸바오가 사육사들과 보여준 신뢰의 관계성이나, 나아가 엄마 아이바오가 보여준 모성애, 아이바오의 엄마 판다 신니얼이 중국 한 박물관에 박제가 되어있다는 사실이나 아빠 러바오의 눈 주변 털이 빠진 이유가 어릴 적 동물원의 관람 스트레스와 지나친 호객 행위로 인한 눈병 감염 때문이라는 이 판다 패밀리에 대한 스토리는 한국인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작동시켰다. 그런 사연을 가진 부모와 사육사들의 지극정성 속에서 장난기 많고 애교 많은 모습을 보여주는 판다 스토리에 사람들은 연민을 느낀다. 사실에 진실이 더해진 푸바오 스토리텔링은 계속 진화한다. 여기서 한국인 특유의 DNA인 情의 정서는 타국에서 온 판다, 곧 돌려보내야 할 이별이 예정된 존재에 대한 애틋한 보살핌이 개인의 역할이 아닌 개방된 모두의 역할이 되어 돌봄의 주체로서 하나의 커다란 연대감을 느끼게 했다. 즉 푸바오는 평범한 판다 곰이 아닌, 코로나 이후 온 국민이 업어 키운, 마음으로 낳은 자식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병든 현대인의 마음을 건강하게 힐링시킨 작은 생명체가 보여준 치유의 서사는 조건 없는 사랑과 감사로 이어진다. 오늘날 팬덤의 가장 큰 특징인 양육과 감사의 서사가 푸바오 팬덤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가 되는 순간이 있다. '네가 아무리 귀여워봐라, 내가 넘어가나' 하다가도 어느 순간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들어 푸바오 패밀리의 영상을 바라보며 행복하고 '푸멍'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푸바오는 소중한 선물을 주고 떠나간 게 아닐까. 더불어 푸바오를 향한 관심이 나비 효과가 되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지키는 움직임과 행동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우리는 동물을 다스릴 권한이 아닌 모든 생명체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제인 구달의 말처럼, 푸바오를 향한 정과 돌봄의 스토리텔링이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보살필 수 있기를 바라본다.
OTT 콘텐츠 시장에 피 튀기는 복수극과 육체전환 회. 빙. 환(회귀, 빙의, 환생) 시리즈 등 고자극 판타지가 쏟아지던 어느 날... 한입 들이키면 화들짝 놀랄 캡사이신 맛이 느껴지는 맵고 얼얼한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반짝이는 워터멜론>과 <이재, 곧 죽습니다>. 두 드라마는 뭔가 뒷맛이 다르게 느껴졌다. 굵고 짧은 강렬한 이야기 전개가 대세인 시장에서 1, 2화만으로 눈길을 끌면서 화제성을 얻어야 하니 첫째는 스타 캐스팅에 기대고 둘째는 사이다 전개를 해야만 간택을 받는 상황인 OTT 드라마에서 철 지난 소재인 복고와 환생이라니... 이거 유행을 역행하는 소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내 판타지, 소통, 구원이라는 공통 서사를 발견하고 빠져들었다. 먼저 <이재, 곧 죽습니다>. 웹툰 원작답게 초반 속도감이 엄청나서 몰입감이 뛰어나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죽음이란 중간자적 존재는 자신을 우습게 안 대가로 주인공에게 열두 번의 죽음을 통해 그가 잊고 있던 것을 깨닫게 한다. 영화 <신과 함께>가 천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작의 힘도 있지만 영화라는 매체로 재매개되면서 인간사의 보편성인 효와 정의 스토리라인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재가 다른 인생으로 환생하다가 마지막에 자식을 잃은 엄마의 몸으로 살아가면서 받게 되는 고통은 형벌에 가깝지만 결국 그는 그 환생을 마지막으로 가장 되돌리고 싶었던 순간으로 돌아가, 죽음이 아닌 엄마의 전화를 받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관계와 소통에 관한 판타지 드라마다. 청각 장애인 가정에서 태어난 비장애 아이를 가리키는 말인 코다(CODA) 주인공을 통해 소리, 음악, 학창시절 소년 밴드와 청춘, 성장과 진화를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 녹여낸다. 과거 타임슬립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중요한 포인트는 과거로 간 은결이 과거사에 적극 개입하면서 자신과 부모의 미래를 바꾸게 된다는 점인데, 청각을 잃게 되는 아빠의 사고는 막을 수 없었지만 은결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해피엔딩을 만든다. 과거 타임슬립 드라마들이 보여준 비극적 결말 대신 따뜻한 카타르시스와 행복감을 선사한다. 두 드라마 속 주인공을 지켜주는 건 결국 엄마와 할아버지라는 가족의 힘이다. 복수의 칼날을 거둔 대신 착하고 따뜻해진 판타지는 결국 이솝 우화에 나오는 나그네 이야기처럼 바람과 태풍 대신 햇살의 입김으로 외투를 벗게 만드는 데 성공하고 시청자들에게도 판타지라는 마법의 순기능을 선물한다. 판타지의 기능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판타지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판타지는 현실 도피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추구하고 이룰 수 없다고 낙담하고 살았던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주는 역할도 한다.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잘못된 것을 되돌리고 바로잡고자 하는 욕망, 이재도 은결이도 잘못된 것을 돌리고자 했던 중심에 아빠와 엄마, 가족이 있었다. 우리가 괴물과 먼치킨, 이물에 탐닉하면 할수록 우리를 할퀴는 추악한 존재들로부터 상처받고 숨을 공간을 필요로 한다. 아메바처럼 자가 증식하는 그 불안과 도피, 그 공포의 그림자에서 도망쳐 와 결국은 가족이라는 존재 앞에서 가장 편안하게 숨을 거두듯 말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화끈하고 매운맛을 찾다가도 결국 심심하고 속이 편안해지는 집밥으로 속을 풀 듯이 앞으로 우리는 착한 판타지의 존재감에 더 매료될지 모른다. 슬기로운 생활 시리즈를 만든 신원호 PD 역시 피로감이 느껴지는 빌런과 선악 대결 드라마 대신 착한 사람들의 판타지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곧 공개될 OTT 드라마 두 편도 따뜻한 힐링 판타지물이다. 일본의 동화책을 원작으로 한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은 일본판 해리포터로 불릴 만큼 인기를 누린 콘텐츠로 이상한 과자점에서 살 수 있는 과자를 통해 아이들이 소원을 이룬다는 내용이고 웹툰 원작 <스피릿 핑거스>는 그림 모임에 들어간 여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환상의 공간과 그림의 세계를 통해 성장하는 폭력 없는 학원 판타지물이다. 원초적 자극 대신 보면서 엄마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한 판타지의 귀환. 한때 착하다는 것의 의미는 개성 없고 순응적이며 수동적인 것과 동의어였지만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선한 에너지로 누군가를 구원하는 인류애의 실천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 하루하루 무탈하게 살아가는 삶의 안위가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되면서 판타지는 범접하기 힘든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따뜻하게 반짝이는 사람들의 기적을 다룬, 가족과 우리에게 펼쳐지길 바라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앞으로 착한 판타지의 유행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언제 그랬냐 싶게 거리는 수많은 공연들의 플래카드가 휘날린다. 마스크 끼고 불편한 자세로 박수치며 좁은 공연장에서 미동도 없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공연을 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정말 다양한 공연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고 취향껏 고르고 골라 보게 된 지금, 3년 전 대형 공연에 가서 가수들과 눈으로 대화하며 ‘함성 대신 박수우~’를 들으며 조신하게 앉아만 있다 돌아온 기억이 무색하리만치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공연이 공연 플랫폼에 넘쳐난다. 출근길에 신호 대기하고 있는데 〈싱어게인3〉 공연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싱어게인 3〉를 보면서 느낀 건 대한민국에 정말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과 상대적으로 그들이 기회를 잡아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다는 것, 이름을 알려져 대중과 호흡한다는 건 정말 어렵고 어려운 일이라는 거다. 하루에도 수많은 가수들이 음원을 발표하고 CD를 발매하지만 그들 중 몇이나 기억될까. 그만큼 ‘다시’라는 기회를 잡았던 출연자들은 절실하고 또 절실하다. 공정한 기회의 제공인가, 이 역시 다를 바 없는 스타탄생 마케팅인가 논란은 있었지만 출연자들이 마인드 컨트롤해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고 얻어낸 결과이기에 어게인 티켓을 쥔 승자들은 적어도 그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어 보인다. 어쩌면 어게인이 주는 단어의 중압감은 기쁨을 넘어 책임감이 될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어게인 문화는 대중문화 트렌드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어게인 권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어게인을 얘기해 보자면 조금 더 일찍 우리 곁에 왔으면 좋았을 학전 어게인. 분명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학전 어게인 티켓팅을 놓쳐버렸다. 알람을 켜두었어야 하는데 잠시 방심했다가 심야 '취켓팅'마저도 놓쳐버린 나에게 170석밖에 안 되는 소극장 티켓이 양도되는 행운이 오는 건 정말이지 요원해 보인다. 학전 소극장은 19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X세대들에겐 대학로와 더불어 추억의 공간일 뿐 아니라 인터넷 통신이 활성화되기 전 ‘건축학 개론’ 세대들의 놀이터였으며 모바일 폰도 넷플릭스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 문화예술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통로였다. 학전의 탄생연도와 같은 학번을 가진 91학번과 대학로 세대들은 신촌의 매캐한 연기가 걷히자 〈대머리 여가수〉, 〈지하철 1호선〉을 보고 김광석의 노래를 듣기 위해 학전을 찾았다. 토요일 오후 대학로에서 만나 연극을 보고 막걸리와 파전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던 귀갓길, 아직도 학전의 좁은 입구에서 자리로 내려가며 삐그덕거렸던 객석의 나무계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90년대 소개팅은 강남역 아니면 대학로였다. 세기말에서 밀레니엄으로 가던 그때 우리가 사랑을 했고, 건배를 했으며, 눈물을 흘렸던 그 공간에 학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학전 키즈인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이정은 모두 지금은 한국의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았다. 출연 리스트를 보니 모두 가고 싶지만 그중에서 모든 공연을 기획한 박학기와 시인과촌장, 김현철, 한상원 밴드가 출연하는 회차가 눈에 띈다. 8,90년대 실력있는 뮤지션과 배우를 발굴했던 학전과 동아기획이라는 공통분모. 나의 20대를 위로하고 쓰다듬어 준 노래와 그들이 보인다. 그리고 밴드 루시와 김재환 같은 젊은 뮤지션을 섭외해 MZ 세대들과 함께 소통하려고 한 시도도 돋보인다. 모든 추억의 장소는 사라지지만 학전만큼은 문화창작자 김민기의 바람대로 세대를 이어주는 통로로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라본다. 이름은 바뀌어도 어게인의 의미를 가진 채... 지금 대한민국에 부는 어게인 문화. 싱어게인, 비긴어게인... 수많은 어게인이 있지만 ‘다시’라는 이름으로 굳건히 서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금’ 잘해야 한다. 그리하여 어게인의 의미가 단순히 아름다웠던 과거의 시간을 추억하는 트렌드 속에 함몰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그나저나 난 학전 어게인 티켓을 구할 수 있을까? 이 공연이야말로 어게인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