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을 공부한 뒤 방송작가로 활동, 드라마와 웹툰 스토리텔링, 대중문화를 비평하고 연구한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K-콘텐츠에 심취해 있는 중.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연말을 맞아 MBN과 TV조선 두 종편 채널의 맞대결로 뜨거운 격전을 치르고 있다. 이제 트로트는 한물가지 않았나라는 의견에 반박하듯 경연 방식의 변화, 방송 컨셉의 변화를 주고 새롭게 단장한 두 프로그램은 9%와 13%대를 육박하는 시청률로 출사표를 던졌다. 밤 9시가 넘은 심야 시간대에 편성됐는데도 시청률과 화제성 수치가 높다는 점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지만, 냉정하게 점검해야 할 문제들도 드러나고 있다. <현역가왕>의 '의외성' vs. <미스터트롯>의 '확장성' 대결 11월 방송으로 먼저 기선을 잡은 MBN <현역가왕 2>는 출연자들의 인지도로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5년 동안 여러 미디어와 매체에서 트로트 왕관을 썼던 우승자들이 총출동해 신선한 신인 발굴이 아닌 실력자들의 대결로 판을 짰다. 박구윤, 진해성, 김수찬, 환희 같은 프로들의 등장으로 화제성을 잡고 제3자인 심사위원 심사 방식 대신 경연자들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자체 평가전으로 30여 명의 현역 도전자들을 선발했다. 그동안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된 무대를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중고 신인이나 역량을 펼치기 힘들었던 프로들의 대결. 현역가왕의 핵심은 '의외성'이다. 발라드 가수인 환희에게 저런 감성이 있다고? 김수찬은 목소리는 더 깊이 있어졌네?! 트로트는 여러 장르를 만나 새롭게 재해석되고 부르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제 막 첫 회를 방송한 <미스터트롯>3는 대학부, 직장부, 유소년부라는 소속 포지션을 통한 신인 발굴이라는 기존의 구도를 크게 깨지 않으면서 현 포맷에 현역부 X를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하는 방식을 결합해 호기심 전략을 작동시켰다. 트로트 오디션에 <히든싱어>의 통이나 <복면가왕>의 실체를 가리는 복면처럼 거대한 블라인드 베일을 설치하고 출연자의 실루엣만으로 다음 회를 계속해서 기다리게 만드는 영민한 전략을 짠 것이다. 도전자가 누구든 간에 블라인드 베일이 벗겨지기 전까지 그의 존재를 캐내기 위해 수많은 누리꾼들은 예측을 할 것이고 이런 버즈 마케팅은 입소문과 함께 퀴즈 게임 같은 역할놀이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한다. 우리가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보며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로제 카이유아가 말한 놀이의 4대 요소인 경쟁(아곤), 행운(알레아), 현기증(일링크스), 모방(미미크리)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새로운 것에 흥미를 보이지만 너무 낯선 것에는 아예 다가설 흥미조차 생겨나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은 낯섦과 낯익음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서바이벌 포맷에서 벗어나 블라인드 평가라는 장치를 넣고 여러 방식을 융합한 <미스터트롯>의 확장성 전략은 맞대결에서 살아남기 위한 제작진의 차별화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거대 트로트 팬덤을 활용한 화제성 전략 트로트 시장은 이미 2020년 <미스터트롯> 출신 톱7인 영탁, 이찬원, 정동원이 배출되면서 거대 팬덤이 생성됐고 현재도 중년 팬덤의 충성도로 인해 K-팝의 한 주류로 트로트가 자리 잡게 됐으며 코어 팬덤으로 인해 음반 판매량과 공연 열기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미스터트롯>3 제작진은 여기에 주목해 기존 심사위원들을 국민 마스터와 선배 마스터로 나누어 19명의 심사위원을 포진시켰다. 한쪽 마스터에게 올 하트를 받아도 다른 마스터의 과반을 넘지 못하면 탈락한다는 새로운 규칙도 만들었다. 이 중 선배 마스터 심사위원은 <미스터트롯>1, 2를 통해 거대 팬덤을 탄생시킨 영탁, 정동원, 박지현 등 시즌1, 2의 인기 멤버들의 출연을 성사시켜 각각의 팬덤 층의 지지와 응원까지 흡수하는 화제성 전략을 펼치고 있다. 각각의 팬덤은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가 심사하는 방송 신청을 하거나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유도하는 등 사전 화제성에 대한 홍보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전히 건재한 톱7 출신 트롯맨들은 과거 실전에서의 경험, 긴장과 실수에 대처하는 법, 생존 전략 등 선배 참가자로서의 조언을 하면서 그 어떤 전문가의 심사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올 듯하다. <현역가왕>이 타이틀의 정체성처럼 현역의 실력을 보여주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면 <미스터트롯>은 신인들의 등용문을 향한 선배들의 관계, 즉 정서적인 교감으로 '관계성'을 스토리텔링 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점이다. 경쟁 프로그램의 종착역은 일본일까? 결국 이 두 트로트 프로그램의 종착역이 신선한 트로트 가수를 발굴하고 현역 가왕을 선발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두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방향성이 결국 일본 진출 혹은 일본과의 협업이란 점은 물음표를 던진다. <미스터트롯>은 요시모토 흥업, NTT 도코모 스튜디오&라이브와 합작 계약을 체결하며 실시간으로 미스터트롯 재팬을 볼 수 있다고 홍보한다. 두 프로그램 모두 순위권 안에 든 우승자들에게 일본 활동 및 진출을 지원한다는 점도 눈여겨 볼 일이다. <현역가왕>이 한일 가왕전과 한일 톱텐쇼를 통해 한일 예능 공동제작 및 합작에 물꼬를 트고 특정 부분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왜 트롯맨들은 일본으로 가야 됐을까? <현역가왕>일본 방송 이후 일본에서도 잊혀졌던 엔카와 K-트로트 붐이 다시 일고 있다지만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지는 냉정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내년이 한일 수교 60주년이라는 것과 그동안 냉랭했던 한일 관계가 다시 대중문화 교류를 통해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것은 분명 좋은 취지이자 신호탄임에는 확실하다. 그러나 K-트로트가 왜 갑자기 일본행에 열을 올리게 됐는지, 두 프로그램이 같은 노선을 선택했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후발 주자인 <미스터트롯>이 일본 진출이 아닌 다른 지향점을 선택했다면 훨씬 페어플레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선함 떨어지는 출연자를 위한 매력적 스토리텔링이 절실한 시점 과거 <현역가왕>1은 평균 15% 시청률을 상회했고 <미스터트롯>2 역시 <트랄라라 브라더스>나 <미스터 로또> 같은 스핀오프 프로그램을 통해 화, 목요일의 시청률을 끌어올렸지만 두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트로트 가수들의 화제성과 영향력은 <미스터트롯>1과 비교했을 때 미약하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우승자들의 화제성이 약화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경연 프로그램마다 자신의 성장과 도전을 위해 얼굴을 내미는 출연자들의 중복 출연은 프로그램 신선도를 하락시키고 실력 있는 신인을 발굴한다는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거기에 예능적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연기자, 모델, 개그맨, 다양한 장르의 출연자들의 배치는 일회성 재미를 줄 수는 있으나 본질인 노래 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주목받기 힘들다. 10위권 안에 드는 실력자로 입성했다 해도 그동안 트로트 프로그램에 노출된 그들의 모습과 예능에서 소비되는 캐릭터, 만들어지고 입혀진 이미지로 개성을 상실한 캐릭터는 어떤 새로운 모습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미 식상해진 캐릭터에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개인사 스토리텔링은 더욱더 트로트 프로그램을 향한 피로도를 누적시킨다. 호기심과 기대감에 한두 번은 채널을 고정시킬 수 있겠지만 서바이벌 음악 예능의 지속성은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라는 거대한 골조와 출연자의 진정성이 함께 녹아들 때 가능하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저울의 추가 기울면 시청자들은 과감하게 등을 돌려버린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두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실력과 그들의 서사를 경연과 어떻게 녹여낼지가 관건일 것이다. 그 많던 트로트 가수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미스터트롯>1의 임영웅의 성공은 트로트 서바이벌의 신화를 더욱 부추긴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2일간 10만 명에 가까운 인파를 운집하게 만든 임영웅은 어떤 면에서 넘사벽의 상징이 되었다. 혹자는 그를 코로나 시대를 만나 운이 좋았던 행운아라고도 평가하기도 하고 최근 SNS상의 발언으로 위기론까지 나왔지만 실력만으로 평가한다면 임영웅은 현재 자신만의 독보적인 콘텐츠로 트로트 장르 일인자로 자리 잡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미스터트롯>3와 <현역가왕>2는 실력 있고 재능 있는 트로트 신인을 왜 일본으로 보내는지 아주 근본적인 것부터 고민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제2의 임영웅 신화를 만들기 위해, 더 큰 호응과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 더욱 자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시각적 연출, 실력보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신변잡기에 가까운 예능적인 요소의 부각. 트로트 한류는 어떻게 생성되는가. 그것은 단순히 일본이라는 지리적 영토를 트로트 음악이 지배하고 유행시킨다고 해서 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정 인물이 가진 인간적 매력이나 그가 가진 사연의 스토리텔링도 한계가 있다. 그들이 가진 음악적 한계가 밑천이 드러나지 않고 영속성을 가질 때만이 가능하며 장르와 장르를 뛰어넘어 어떤 시스템 속에서도 제약을 받지 않는 나훈아와 조용필이 우리 가요사의 거장으로 자리 잡은 것을 떠올리면 시청률과 화제성에 목을 매는 방송 콘텐츠의 시스템 안에서도 빛날 수 있는 그들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어야 함을 출연자도, 제작진도 알 것이다. 급조된 스타 대신 우리에겐 긴 시간 오래 볼 수 있는 진정한 무대 위 장인을 발견해 주길 바라는 바다. 사진: MBN <현역가왕>, TV조선 <미스터트롯>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웹툰을 드라마화한 <정년이> 열기가 뜨겁다. 오랜만에 등장한 탄탄하고 밀도 있는 서사와 배우들이 원작을 넘어 재해석한 캐릭터, 여성국극이라는 콘텐츠가 60년이 지난 OTT 시대에 다시 조명받는 것이다. 닐슨코리아 제공 시청률은 4%에서 출발해 10화에서 14%까지 상승했고 출연 배우들이 보여주는 화제성 지수 CPI나 체감 지수는 연일 1위에 차지하고 있는 <정년이>와 주인공 김태리의 연기를 논하고 있으니 하반기 방송된 드라마 중 그 열기가 가장 뜨겁다고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벌써 시즌2 제작 요청을 하기도 하고 <정년이>의 종영을 아쉬워하는 반응도 많다. <미스터 선샤인> 이후 tvN이 내놓은 최고의 시대작이라는 평가와 드라마 주 시청 타깃인 2040 여성을 넘어 드라마에 등 돌린 중년의 남성 시청자들, 웹툰 정보에 민감한 10대부터 향수와 복고라는 소재 덕분에 열혈 시청자로 돌아온 50대 이후의 콘텐츠 소비층까지 사로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기작이었던 웹툰을 드라마화한다는 것은 인지도 면에서 초기진입 장벽이 낮춰질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그 역시 작가의 역할인 드라마 구성과 짜임새, 캐릭터의 매력도, 배우들의 연기, 속도감 있게 전개하는 연출의 역할이 조화롭게 진행될 때 웰메이드 드라마가 탄생한다는 점에서 <정년이>는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창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웹툰 <정년이>에 등장했지만, 드라마에서 사라진 몇몇 캐릭터와 설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콘텐츠가 장르가 바뀌며 그것을 담는 그릇이 달라질 때 내용물의 모양도 변화하게 된다. 정년이는 그것만 놓고 보자면 성공적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웹툰을 드라마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캐릭터의 집중과 몰입이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도 웹툰 원작에서 비중이 큰 캐릭터로 등장했던 진기한 변호사가 사라졌고 웹툰 마니아들은 영화를 본 뒤 김자홍의 환생을 돕는 조력자이자 주인공인 국선변호사 진기한의 진중하면서도 예리한 캐릭터가 없어진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대신 진기한은 캐릭터는 세 명의 차사인 강림, 해원맥에게 흡수되어 웹툰 속 양축이었던 자홍-진기한 vs 저승차사 3명의 구도를 자홍 vs 저승차사들의 인과 연의 스토리로 압축시켰다. 영화는 드라마와 또 다른 120분의 초절정 압축의 영상물이다 보니 등장인물이 많을수록 서사가 복잡해지고 주인공들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관객들에게 과도한 피로감이 몰려올 수 있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은 최대한 밀도 있게 압축해서 그들의 관계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서사의 전략이 필요하다. <신과 함께>는 진기한을 소멸시키는 전략을 선택했고 영화 개봉 전후로 이에 대한 불만도 영화를 본 뒤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진기한이 없어진 것은 아쉬웠지만 해원맥의 활약과 웹툰 이승 편의 강렬한 캐릭터였던 성주신 마동석이 <신과 함께 2 - 인과 연>에 등장해 원작 웹툰과의 매칭률에 대한 기대감을 채워준 것이다. 드라마 <정년이>도 마찬가지로 정년이가 매란국극단에서 만나 중요한 관계를 형성하는 부용이라는 캐릭터를 없앴다. 부용이는 목포에서 자라 천둥벌거숭이 같던 정년이와는 다르게 부잣집 딸이란 배경에 중간에 국극을 그만두고 집안에서 정해준 정략결혼을 하며 국극단을 떠나는 캐릭터로 원작 웹툰에서 정년이와 묘한 동성애적 뉘앙스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부용의 캐릭터는 드라마 속에서 부잣집 딸 영서와 정년이와 단짝이 된 주란이에게 흡수되어 표현되고 있다. 드라마는 부용뿐 아니라 선배 백도앵의 느낌도 좀 더 중성적으로 바뀌었고 정년이에게 중요한 역할인 문옥경 역할도 정년이를 직접 목포 시장에서 발견해 국극단에 데리고 오는 정신적 멘토에 가깝게 변화시켰다. 이런 웹툰 원작과의 차이점은 드라마 버전의 <정년이>를 보는데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변화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툰 정년이 마니아들에게는 사라진 캐릭터를 여전히 떠올리게 된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3년을 연습하며 드라마 속 득음의 진정성을 보여준 배우들의 노력과 오랜만에 만난 시대극에 대한 갈증을 <정년이>는 어느 정도 풀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배우들의 호흡과 날 것의 연기는 다른 배우들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장면들도 많았고 김태리, 신예은의 라이벌 연기와 중심축을 잡아준 라미란의 소복과 비중은 작았지만, 채공선 역을 맡은 문소리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3년간 연재된 원작은 130화가 훌쩍 넘고 단행본으로 1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보니 12부작에 모든 서사를 완결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드라마 속에서 매란 국극단 탈퇴와 돌아오는 것을 번복하는 정년이의 갈등이 기폭제가 없이 폭발하는 듯 아쉽고 주인공들의 갈등이 영서와 정년이의 관계에 머물렀다는 점이 아쉽다.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처럼 <정년이> 시즌 2가 가능할까? 제작진은 박수칠 때 떠나는 결론을 선택했지만, 일제강점기를 넘어 우리의 허기진 5, 60년대를 채워줬던 여성 국극단 속 왕자가 된 소녀들의 이야기를 펼치기에는 한없이 아쉬운 회차이다. <정년이>는 웹툰으로 제작된 이야기가 드라마로 바뀌며 K-웹툰이 가진 소재 확장의 또 다른 잠재력과 무한가능성을 입증시킨 사례이기도 하다. 여성 국극단의 정체성과 역사 속 의미가 희석되고 여주인공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 아쉽지만 <정년이>는 주인공 서사 몰입을 선택하고 콤팩트하고 인상 깊게 막을 내리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의 지난 역사 속에서 건져 올린 콘텐츠가 화제와 이슈를 넘어 글로벌한 소재가 되기 위해서 제2의 정년이, 성장해서 돌아올 정년이의 또 다른 스토리를 기대해 본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부산국제영화제가 스물아홉 번째 항해를 무사히 마쳤다. 서른 살을 목전에 둔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아홉이란 수는 미완의 숫자이자 완전한 0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불완전한 숫자다. 서른을 향해 달려가는 BIFF는 스물아홉 해라는 지난한 세월을 거치며 부산이 유네스코 영화 창의도시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혈기왕성했던 청년의 모습을 지나 어느덧 중후한 얼굴의 중년이 되어가고 있다. 매년 10월이 되면 축제의 도시를 강타하는 태풍도 부산을 향해 모여든 시네 키즈들과 콘텐츠 마니아들의 열기를 꺾을 순 없었다. 영화제를 방문한 인파는 예년에 비해 다소 감소했지만 매회 상영관마다 관객 점유율 85% 이상을 기록했고 4,500석 규모의 야외 상영장 오픈 시네마 관람객은 객석을 꽉꽉 채웠다. 영화제 기간 중 ID 카드를 목에 건 외국인 게스트들과 관계자들의 모습은 줄어든 대신 그 자리는 전국의 영화 마니아들과 어릴 적부터 영화를 보며 자라온 영상 MZ와 Zalpha 세대가 채웠다.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영화제가 된 느낌이랄까. 올해의 BIFF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차분하고 깊이 있게'. 피할 수 없는 OTT와의 상생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작년보다 증가한 9편의 작품을 소개했고 영화제 개막작도 넷플릭스에 공개된 작품인 <전,란>이었다. 영화제 기간 내내 주공간인 영화의 전당 맞은편 KNN 외벽에는 <전,란>과 <지옥2>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영화제에서 OTT 콘텐츠를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비단 BIFF뿐만이 아닌 글로벌 영화제들의 화두는 OTT 시대 영화제라는 플랫폼 안에서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허문 콘텐츠들의 디아스포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꿈꾸는 남자들: 청년 동호, 유쾌한 고로 상, 성찰하는 RM 올해 BIFF 상영작과 영화제의 이슈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여전히 꿈꾸는 남자들'이었다. 각자의 가슴에 담은 그 꿈은 무언가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에너지다. 내일을 위해 오늘도 꿈꾸는 행복한 세 청년을 BIFF에서 만났다. 나이와 상관없이 푸르른 꿈을 가진 남자들을... 첫 번째 만난 남자는 이노가시라 고로 상 혹은 마츠시게 유타카. 12년 만에 영화로 제작된 <고독한 미식가>의 영화 버전은 일본이 아닌 부산에서 첫 공개됐다. 마츠시게 유타카가 레드 카펫에 등장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야외 상영장 무대 인사에서는 함께 출연한 배우 유재명을 자신이 매우 좋아하는 배우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하는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의 마츠시게 유타카 한국의 식재료에서 찾은 비밀의 육수를 찾아가는 여정은 고로 상의 음식을 향한 철학과 세계관을 보여준다. 만화가 원작이고 오랜 기간 OTT로 방영된 터라 MZ 세대들에게도 익숙한 이노가시라 고로 상의 인기는 대단했다. 영화제 측은 입장객들에게 젓가락 세트를 선물로 증정하는 이벤트도 벌였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속 고로 상은 여전히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의 근원을 찾아 여행한다.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짧은 시간 내에 극적 서사가 이루어져야 하기에 좀 더 코믹하고 역동적이다. 예상치 못한 표류로 한국에 와서 처음 먹어본 황태국과 에소라는 일본의 심해어 재료를 찾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깨닫는 소소한 행복. 110분 길이의 영화로 압축되면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나 홀로 즐기는 고독한 행복이 아닌 함께 연대하고 상생하는 즐거움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로 상은 고독한 미식가가 아닌 사랑을 나눠주는 행복한 미식가일지 모른다. 죽음을 앞둔 초로의 신사가 그토록 찾아 헤매이던 궁극의 맛은 바로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던 추억의 맛이자 그 맛의 비결이 한국 식재료에 있었으니, 이쯤 되면 고로 상의 영화는 한일 양국의 미래, 음식으로 화합하는 화해의 제스처로 읽혀진다. 음식과 문화, 그것은 모든 장벽과 담을 허물고 손을 내민다. 우린 자연 앞에 다 똑같은 하나의 미물일 뿐이라고. 고로 상의 음식을 향한 호기심과 음식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미소 짓게 되고 공복의 위장을 덮는 음식처럼 힐링이 된다. 뚜벅이 영화 '청년 동호'와 성찰하는 청춘 RM 영화제 가이드북을 넘겨보다가 특별 상영에 눈길이 갔다. 올해 칸영화제에도 초대되었던 <영화 청년 동호>.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들고 15회까지 이끌었던 BIFF의 수장 김동호 위원장의 영화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2011년 영화의 전당이 완공되기 전 수영만 요트 경기장 컨테이너 박스 시절을 회상하며 걷는 팔순의 노장. 신수원 감독의 말처럼 '지치지 않는 뚜벅이' 김동호 위원장은 걷고 또 걸으며 영화의 풍랑을 헤쳐 나갔다. 스물아홉 BIFF에겐 수많은 사연이 있지만 그중에서 아마 김동호 위원장의 에피소드는 밤을 새워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영화제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그가 어느 날 배우로 등장하고, 75살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영화 청년 동호의 도전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걷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영화 청년 동호>를 보며 너무 그리운 얼굴들과 작별한 것에 대한 슬픔도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여배우 강수연, 영화제 해외 출장 중 유명을 달리한 김지석 프로그래머, 영화계의 큰 형이었던 이춘연 대표까지. 그리고 영화제는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운 사람, 이선균'으로 그를 추모했다. <사과>에서 만난 청년 이선균을 함께 나이 들어가며 서리가 내리 앉은 배우로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었는데... 떠난 이를 향한 그리움은 가을밤 달맞이꽃처럼 피어났다 수그러들었다. 마지막 청년은 BTS RM이 영상에 그린 청춘 스케치다. <알앰: 라이트 피플 롱플레이스>는 자신의 음악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을 펼친다. 꽃길만 걸어온 청춘이 아닌, 치열하게 고민하는 영상을 통해 고치를 벗고 나비가 돼가는 성장을 보여주는 청춘의 Reality Bites다. RM과 고로 상, 영화 청년 김동호 세 명의 청년 덕분에 풍성한 영화제를 즐겼다. 이제 스물아홉의 BIFF는 어떤 생각으로 서른 잔치를 준비할까. 국내 영화제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며 한때 전 세계가 부러워하던 영화제였던 BIFF가 사춘기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성장통을 겪으며 제법 단단해진 아름드리나무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30년이란 세월의 나이테를 가진 향이 나는 나무가 되어 나무를 떠났던 숲속의 동반자들을 다시 불러 모아 더 아름다운 영화의 숲이 되기를, 놀라운 풍경이 펼쳐지는 영화의 바다로 항해하는 서른 살의 BIFF를 곧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OTT 시대에 감독판 8부작으로 돌아온 19년 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양다리 걸치다 들켜 당당하게 헤어지자는 나쁜 남자 앞에서 눈물 뚝뚝 흘리다 화장실에서 판다가 되어 울던 삼순이는 요즘 MZ세대들에게는 도통 이해 안 될 이야기지만 그때는 또 왜 그렇게 내 얘기 같았을까. 인트로는 참기 힘든 신파지만 삼순이와 진헌의 사랑 이야기는 손발 오그라드는 장면을 다 걷어낸 김윤철 감독의 편집 때문인지 꽤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2024년 웨이브에서 뉴클래식 프로젝트로 선보인 첫 번째 콘텐츠는 19년이 흘러도 이름이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준 브랜드 삼순이의 귀환이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당시 5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국의 삼순이란 이름을 가진, 그리고 그 시대 모든 여성의 욕망을 대변하며 달콤한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추억의 이름이자, 여전히 유효한 레트로 열풍 속 다시보기 버튼을 작동시킨다. 삼순이가 보여준 2005년 우리의 풍경, 그땐 그랬지 20년 전 부모의 결혼 강요로 젊은 남녀의 주말은 온통 선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나 싶을 정도로 호텔에서 선을 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삼순이뿐 아니라 다른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와 결혼하기 싫은 남자. 그 남자들은 꼭 자신과 다른 환경의 여자에게 관심을 두고 서민 체험을 하며 그녀들의 세계를 신기해한다. 세기말을 넘겨 2000년대로 진입했던 당시 트렌디 드라마의 유행은 경제적 생활고를 가진 여주인공과 결핍 있는 부잣집 남자 주인공, 여기에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돈 많은 실장님, 남자 주인공이 애타게 짝사랑하는 서브 여주 4각 관계 구도를 드라마 김삼순도 초반에는 철저히 따른다. 여자는 돈이 필요하고 남자는 거래를 제안하고, 어쩔 수 없이 수락한 계약 관계를 통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사실 삼순이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노처녀도 아니고 별로 뚱뚱하지도 않다. 서른 살에 파리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자기 발전을 이룬 삼순이는 늘 남자에게 차이는 사랑을 했다는 것과 삼순이란 촌스러운 이름 말고는 기죽을 것도 없는 엄청난 고스펙 전문가이기도 하다. 2005년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화끈하고 통쾌면서도 사랑스러운 삼순이의 매력 때문이었다. 사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할 말 다 하면서도 당당했던 여주인공 김삼순은 그 당시 워킹우먼들의 꿈이었다. 90년대 신데렐라와 캔디 드라마의 2000년대 버전인 김삼순은 여주인공의 성장과 자기 발전을 그리며 끝났다는 점에서 연애와 밀당만 주야장천 보여주던 그전 드라마들과 달랐고 <파리의 연인>, <옥탑방 고양이>처럼 자기 주관 뚜렷하고 독립적 성향을 보인 여주인공을 거쳐 진일보한 여성 캐릭터였다고도 할 수 있다. 서른 살이지만 아줌마 소리를 밥 먹듯 듣는 삼순이 캐릭터는 동네 욕쟁이 할머니 같다가도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김선아의 연기는 지금 봐도 찰떡처럼 찰지고, 풋풋한 현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난다. 삼순이가 자주 쓰는 당시 유행어 미지왕(미친놈, 지가 왕잔 줄 알아)과 자주 등장하는 '얼마면 돼?' 현빈 버전 덕분에 <가을동화> 원빈 소환까지, 추억은 방울방울 솟는다. 삼순이가 바꾼 것들 : 절반의 성공을 이룬 드라마 여성 캐릭터 아니, 삼순이는 저렇게 자기 이름이 싫으면 개명하면 되지?!란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우리나라 법률상 개명 정식 허용이 이뤄진 시기가 2005년 11월이다. 드라마가 7월에 끝났으니 그 후로 4개월 뒤 개명이 가능해졌단 말인데 그전에는 이름이 맘에 안 들어도 바꾸지 못했던 시대를 살았단 얘기다. 또한 드라마 속 삼순이 아빠가 빚보증을 잘못 서 집을 날리거나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는 삼순이 언니가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순이는 여전히 혼자가 아닌 태평양을 건널 조각배를 같이 탈 동반자를 구하는 데 진심이다. 혼자 살고 말지, 아이도 낳지 않고 결혼도 선택이 된 지금 2024년의 대한민국과는 너무나 다른 결혼은 필수라는 당시의 시대상과 작가의 가치관이 부담스럽지만 극 중 삼순이는 꿋꿋하게 커리어를 쌓으며 나아간다. 아마도 삼순이는 그 후 우리가 만나게 될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 같은 진취적이고 100%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나아가는 진격의 여주인공들의 완성되기 전 성장형 캐릭터의 절반의 게이지를 채운 과도기적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오십이 된 삼순이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2024년 삼순이는 어디선가 자신의 베이커리를 내고 잘 살고 있을까? 진헌과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행복했을지 아니면 메기같이 생긴 시어머니의 구박과 등쌀에 재벌가 청담동 며느리 사표 내고 이혼한 뒤 다시 파리로 훌쩍 떠나서 파리지앵과 만나 새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란 드라마는 당시 결혼과 성공이라는 불안의 좌표를 향해 조각배를 타고 가던 모든 30대 여성이 서랍 속 넣어둔 일기장 같은 존재다. 수없이 울어 보고 아픈 사랑을 했던, 종국에는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달콤한 케이크로 셀프 위로를 했던 수많은 이 땅의 삼순이들을 위한 위로이자 응원이었기에 이 귀환이 반갑고 또 즐거운 이유다. 내 젊은 날의 김삼순을 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치열했던 30대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줘서다. 나의 김삼순, 오랜만이야 반가워.
무더운 폭염의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휴가가 허락되지 못한 소시민에게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며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가성비 최고 피서의 한 방법. 오랜만에 심야에 집 앞 극장엘 가보니 부쩍 늘어난 콘서트 실황 영화들이 눈에 띈다. 시공간 제약이 적은 OTT 콘텐츠에 맞서, 극장은 생존 전략으로 스크린에서 상영할 수 있는 팬미팅, 월드 투어, 스포츠 생중계 등 복합상영관의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콘텐츠들을 상영하기 시작했다. <슬램덩크> N차 관람으로 시작된 마니아들의 극장 N차 관람 열풍, <보헤미안 랩소디> 싱어롱관 상영을 통해 이제 극장이 더 이상 조용한 몰입의 공간이 아닌 다 같이 즐기며 흥을 발산하는 체험과 소통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티빙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마지막 회차를 변우석, 김혜윤 등 남녀 배우들과 함께 한 극장 실시간 관람 이벤트는 영화와 드라마, OTT와 극장 무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성공적인 영상 콘텐츠를 위한 쌍방향 소통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일방적 상영이 아닌 쌍방의 관계,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체험과 창작의 마케팅이 극장과 영화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스토리텔링 전문가 김공숙 교수는 극장과 소비자의 변화에 대해 스토리텔링을 지나 '스토리두잉'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7월 마지막 주 극장가는 대형 텐트폴 영화와 예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파일럿> 같은 코믹 영화 속에서 블랙핑크, 이준호, 영탁의 콘서트 실황 영화들이 예매 차트 순위를 석권하고 있었다. <탁쇼2>는 주말까지 3만 명을 동원했다. 작년 <탁쇼: The Movie>가 4만 2천 명을 동원한 스코어와 비교해 개봉 3주 차 성적으로 보면 선전하는 수치다. 더구나 개봉 2주 차부터 싱어롱 상영관을 오픈해 팬들에게 영화를 보면서 마음껏 떼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영탁의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콘서트 장면을 스크린으로 보며 노래까지 따라 부를 수 있게 배려한 싱어롱관은 개봉 2주 차 중년 팬덤을 극장으로 끌어모았고 예매율을 다시 상승하게 만든 마케팅 전략이었다. <탁쇼 2>가 개봉하자 팬들은 그의 노래 제목을 딴 '폼 미친 영탁관'을 만들어 단체관람하고 티켓을 문화 소외 계층에 기부하는 등 스토리두잉으로 화답했다. 이미 본 팬 vs 콘서트 못 본 대중 : 콘서트 영화의 타깃은 누구? 요즘 콘서트의 핵심은 콘셉트이다. 앨범에 있는 노래를 콘셉트에 따라 어떻게 핵심적으로 잘 배치하느냐가 관건이다. 영탁은 <탁쇼1>에서는 자신의 스토리에 집중했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 앞에 나선 그가 자신의 기나긴 15년간의 무명 시절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뮤지션으로서 어떤 목표와 자존감을 가지고 버텨왔는지 진솔한 인터뷰를 브리지로 넣어 <탁쇼: 더 무비>를 구성했기에 영탁의 콘서트를 보지 못했거나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뮤지션으로서 영탁을 어필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한마디로 <탁쇼1>는 스토리텔링이 잘 됐다는 얘기다. 두 번째 <탁쇼2>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갔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여행하는 콘셉트를 잡아 미국과 유럽, 남미까지 돌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영화 속에서 나라와 나라를 이동하는 무대의 소개 브리지로 영탁은 축구를 하고 삼바춤을 추며 마지막엔 한국으로 귀국하는 영탁과 입국심사대의 영탁으로 1인 2역 연기까지 보여준다. 이미 몇 편의 드라마에서 조연과 카메오로 연기를 보여준 영탁은 지금 보고 있는 영상이 영화란 사실을 상기시키며 남자 주연배우로서 짧지만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웃음을 안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은 공연 뒤 이야기인 비하인드가 쿠키 영상으로만 제공되고 120분의 러닝타임이 공연 모습으로만 채워졌다는 점이다. <탁쇼2>는 소비층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를 못 가본 일반인이라면 처음 보는 공연을 체험하는 느낌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미 그의 공연을 많이 본 팬이라면 조금은 아쉬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 영화는 2월에 있었던 탁쇼 전국 투어의 앙코르 콘서트를 담아서 보여주는 영화니 공연 모습을 담는 것에 가장 충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탁쇼를 마친 영탁의 감회가 들어간 인터뷰나 달라진 셋 리스트 소개, 앙코르 콘서트에 처음 등장한 '니 편이야' 반응에 대한 느낌, 7개 도시 15번의 공연 도시별 에피소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는 점은 음악 다큐 같은 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겐 아쉬움을 남겼다. 내년에 <탁쇼 3> 공개 뒤 제작될 영화는 실황 공개가 아닌 뮤직 다큐멘터리로 접근한다면 팬들도, 그의 공연과 음악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공연의 영상 콘텐츠화…트랜스미디어 핵심은 Something New의 재구성 지난 5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을 했던 임영웅의 공연 실황 역시 8월 말에 영화로 상영된다고 한다. 연령층이 높은 팬덤을 보유한 임영웅이 스케일로 팬들에게 서비스한다면 영탁은 다양한 장르의 변주와 뮤지션으로서 확장성을 서비스한다. 영탁은 R&B 가수로 데뷔를 했고 락, 발라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오가며 자신의 영역을 무한대로 펼쳐 보이는 뮤지션이다. 처음 영탁이라는 가수를 알게 되고 그의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가 노래를 부르는 가수(歌手)만이 아닌 노래를 만드는 프로듀서이자 자신의 음악에 대한 콘셉트가 명확한 뮤지션이라는 점이다. 그가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준우승자라는 발판을 딛고 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그동안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장르의 음악을 다양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찐이야'와 '니가 왜 거기서 나와'에서 보여준 유쾌한 리듬감과 밝은 에너지와는 또 다른 '담'에서 보여준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자전적 서사와 하드락의 결합, '신사답게'와 '폼 미쳤다'가 대중의 참여와 체험을 유도하는 즐거움의 스토리두잉 전략을 실천한 대표곡이라면 2집의 '풀리나'와 '값'은 우리 사회에 대한 유쾌한 비판이자 1집에 이어 여전히 현실 가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단다.' 이적이 영탁의 목소리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팽팽한 천을 명중시키는 강렬한 화살처럼 그의 목소리는 세상을 향해 날아가 꽂힌다. 사진 : yoonseul. tak 제공 실제로 가본 <탁쇼> 공연은 영탁 특유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앙코르곡까지 3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오롯이 자신의 곡들로 채워 셋 리스트를 완성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저작권 문제가 걸린 팝송 'Creep'과 'feeling good'이 빠지며 이어지는 장면 편집이 다소 거칠게 느껴졌지만 그 부분은 싱어롱 상영 2주 차에는 다시 재편집되어 해결되었다. 상영관에 따라 사운드와 화질의 편차도 커서 서울은 사운드, 화질의 문제가 없었지만 지방 소도시 작은 관인 경우 사운드와 일부 화면 번짐 같은 화질의 문제는 아쉽게 느껴졌다. K-POP 스타들의 세계적 인기로 공연의 영화화는 이미 일반화되었다. 공연을 영화로 트랜스미디어하는 핵심은 편집이 아닌 Something New의 재편(再編)이다. 공연 실황을 그대로 Ctrl+V 하는 대신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 재구성해 주길 팬들과 관객은 바란다. 또한 영화 홍보를 위한 짧은 무대인사보다 넉넉한 시간을 잡고 영화의 주연배우와 나누는 GV(Guest Visit) 이벤트도 한 번쯤 고려해 주면 좋겠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음악가는 담을 넘고 자신에게 던져지는 편견과 장애물을 건너뛰며 드디어 눈앞이 탁 트인 로렐라이라는 시리도록 파란 바다 앞에 멈춰 섰다. 자신의 음악과 삶을 스토리텔링하는 뮤지션의 항해가 어디서, 또 어떻게 시작될지 영탁의 세 번째 도전과 그의 음악을 기다려본다.
5월 한 달간 연예계를 달군 김호중 음주 뺑소니 사건을 계기로 트로트 팬덤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여러 논의를 보고 있자니 대중문화와 팬덤 연구자로서, 트로트 팬의 한 사람으로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20년 <미스터 트롯>이 배출한 TOP 7을 포함한 트로트 스타들은 앞서 국내외 활발한 공연을 했던 <미스 트롯>과는 다르게 코로나 장기화와 활동 시기가 맞물리며 주로 TV와 OTT 서비스로 대중에 노출됐다. 일상적인 생활이 힘든 특수 상황 속에서 '위로와 치유'라는 아젠다를 내세우며 두터운 팬덤층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했고 트로트 팬덤은 특정 대상을 향한 애착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은 미스터 트롯 멤버들은 각자 개인적 위기와 부침 속에서도 성장을 했고 그중 김호중도 예외는 아니다. 흡수와 모방, 트로트 팬덤의 정체성 팬덤 4.0 시대 속 트로트 팬덤의 핵심은 모방과 학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팬덤의 주축이 되는 40~60대 팬들은 개인차는 있겠지만 20대인 80년대에 이미 조용필, 이용, 전영록 등의 오빠 부대를 경험했고 80년대 후반 소방차, 김완선, 박남정의 댄스 가요 열풍에서 90년대 서태지로 이어지는 대중가요 발전기에 10대를 보낸 세대다. 이미자와 나훈아, 남진의 공연을 TV로 만나고 귀로 듣던 전 세대와는 다르게 공개방송, 전국 투어콘서트, 창작 가요제 등 '소통과 공감'이 시작된 대중가요의 르네상스를 겪은 세대들이다 보니 취향의 선택인 팬덤 문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아이돌 팬덤과 덕질을 경험한 자녀들은 가족 구성원인 부모에게 팬덤 유입과 티켓팅과 덕질 문화를 전파-학습-공유했다. 결국 아이돌의 팬덤 문화를 답습하게 된 트로트 팬덤은 K-POP 아이돌 팬덤이 만들어낸 응원 문화인 음원과 차트 경쟁, 음반 사재기, 후원금, 기념일 서포트 등을 모방하게 된다. 학생 또는 사회 초년생이 대부분인 아이돌 팬들과는 다르게 퇴직 후 경제적 여유가 있는 58세대에 해당하는 중년의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만큼 경제적 능력도 가지고 있다. 트로트 팬덤 현상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강한 유대감과 정서적 몰입, 자기 동일시로 해석할 수 있는데 자기 동일시 관점은 팬이 스타로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 지나치게 몰입하며 마치 가족의 일원이나 안면이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심리적 동질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OTT 시대로 접어들면서 과거 신비주의로 일관하던 스타나 셀러브리티들의 일상생활이 공개되고 자신의 일상을 실시간 공유함으로써 팬과 스타 간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고 긴밀한 애착과 유대감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적 유대를 느낀 팬들은 경험의 확대를 통해 팬미팅-공연-라이브 방송 등의 방법을 통해 팬덤의 주체로서 대상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만족감을 얻으며 더 큰 서비스를 요구하게 된다. 정의 유전자가 강한 한국인은 K-POP 팬덤을 강하게 끌어올린 양육과 돌봄의 정서로 자식 세대의 팬덤 문화를 흡수하고 모방한 중년의 트로트 팬덤을 구축했다. 그리고 행복감을 느끼는 부모를 보면서 2, 30대 자녀들은 효의 방안으로 트로트 가수들의 티켓 전쟁에 뛰어들거나 팬덤 활동을 지원한다. 이렇듯 효와 정이 트로트 팬덤의 정서이다 보니 김호중의 음주 뺑소니 사건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 대신 초기에는 옹호와 선처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비단 김호중 팬덤뿐 아니라 다른 트로트 가수들도 사회적 문제로 이슈를 일으켰을 때 가족을 내세운 팬덤이 옹호론을 펼치고 과도한 후원금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팬덤의 얼굴은 해당 스타의 얼굴이 된다. 팬덤의 품격은 그들이 좋아하고 수많은 애정을 보내는 아티스트의 품위를 대변한다. 그러니 팬덤도 행동을 조심하고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팬과 팬덤, 스타는 함께 굴러가는 세 바퀴의 마차처럼, 혹은 이인삼각 경기의 주자처럼 그 어느 하나의 균형이 깨어지면 잘 달릴 수 없고 나동그라지게 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김호중의 팬덤 역시 냉철하게 팬덤의 방향과 품격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정을 기반으로 구축된 트로트 팬덤도 객관성을 가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들이 응원하는 누군가의 재능이 묻히지 않고 다시 꽃 피우기 위해선 말을 아끼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통통 튀는 발랄한 제목처럼 <선재 업고 튀어>의 화제성이 연일 상한가다. 4% 시청률이면 나쁘지 않은 승률인데 <눈물의 여왕>에서는 살짝 아쉬웠던 멜로물의 포텐을 터뜨리며 주말에 드라마 빈지뷰잉(Binge-Viewing, 몰아보기)하던 내가 어쩌다 월요일을 기다리고 있는지, 게다가 달력을 보며 팝업 스토어 오픈 날짜까지 동그라미 치고 있으니 <선.업.튀>에게 제대로 영업당했지 싶다. 아마도 <눈물의 여왕>과 더불어 tvN 최고의 상반기 화제작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마지막 회 주연배우들과 단체관람 이벤트, 곧 오픈할 팝업 스토어까지 <선.업.튀>의 열기가 뜨겁다. 원작 웹소설 <내일의 으뜸>과 웹툰, 종이로 출판된 단행본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니, 솔이와 선재, 솔선 IP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선재 업고 튀어>의 핵심 주제는 '최애 구하기'다. 한 번쯤 찐한 덕후를 경험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가 사랑하는 최애 지키기. 존재해줘서 고맙고 태어나줘서 고맙고 그저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고마운, 내가 사랑하는 스타를 향한 팬덤의 명제가 드라마 전반을 지배한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시청자와 수용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선재 살리기'라는 강력한 초목표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들이 성취해야 할 목표를 뜻하는 초목표는 드라마의 방향성이자 원동력이다. 궁극의 목표인 초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쉴 틈을 안 주다 보니 드라마 서사에 몰입이 뛰어나고 팬덤을 구축하듯 충성도 있는 강력한 드라마 팬덤이 형성되는 것이다. 구원의 역할을 서로에게 부여하고 솔이가 과거로 가서 선재를 살리려는 게 결국 선재가 솔이를 살리는 것이 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구하고 지킨다는 스토리는 선업튀의 세계관을 만들어내며 한 번쯤이라도 덕질에 빠졌던 수용자들의 과몰입 증상을 유발한다. 영화 <아가씨> 속 대사인 '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는 종종 덕질을 하는 팬들 사이에 쓰이는 말로 나를 애타게 만드는 상대는 나의 구원자임과 동시에 나락과 극락을 오가게 만드는 대상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이렇게 MZ세대들의 열정적 지지를 얻게 된 이유는 드라마 타깃층인 MZ세대들의 추억을 제대로 복구한 데 있다. 싸이월드의 아바타와 브라운아이즈의 노래 '점점'을 통해 솔이와 선재의 심리적 거리를 표현한 부분이나 극 중 이클립스라는 밴드가 부르는 '소나기'와 드라마 속 OST가 2000년대 아련한 정서를 소환한다. 2009년 타임슬립 속 공간은 당시 시대적 배경과는 다른 시간의 오차가 발생하는데 VHS 비디오는 이미 2009년에는 거의 사라져버린 저장 매체며 자주 등장하는 김형중의 '그랬나봐'도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유행한 노래다. 동네 비디오 가게 VHS 테이프, MP3, 폴더폰, 싸이월드 도토리, 스티커 사진 등 그 시간 속 MZ세대들의 추억을 통째로 소환했고 현실 고증보다 감성적 고증이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 드라마 속 '선재'가 갖고 있는 판타지는 MZ세대를 넘어 X세대들의 판타지까지 자극한다. 밤하늘 속 떠있는 별처럼 멀고도 가까이하기 힘든 존재라고 생각했던 대상이 실은 나를 지켜줬고 미미했던 나의 존재가 그에게 첫사랑일 수도 있다는 판타지, 그리고 우리가 함께 지키지 못한 소중한 존재를 되살리기 위해 타임슬립하고픈 욕망을 채워준다. 이십대, 봄날 벚꽃잎처럼 흩날려버린 첫사랑의 복원, 그리고 팬덤 4.0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내 삶의 유일한 희망이 된, 업고 튀고 싶은 존재들에 대한 욕망의 판타지를 선물한다. 이제 딱 2회 차를 남겨놓은 이 드라마가 건네는 사회적 의미는 팬과 스타의 유기적 관계에서 나아가 바로 MZ세대의 특징이기도 한 개인주의의 실현이다. 이루지 못한 나의 꿈, 흘려보낸 첫사랑, 근과거의 회상과 복원을 통해 바라보는 추억의 재건. 2023년 이후 다시금 유행하는 청춘 판타지 타임 슬립물은 사회적 실천이나 변화 대신 자신의 강렬한 욕망의 판타지를 우선시한다. <선재 업고 튀어>는 그렇게 30년 만에 제대로 덕질에 빠진 X세대 수범이도 설레게 만든다. (지금 만나면 잘 업고 튈 수 있는데...)
판다곰 한 마리가 계속 머릿속을 뛰어다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떠나기 전 인사나 하고 올 걸. 하지만 OTT 시대 수많은 영상이 남아있으니 푸바오 없는 하늘 아래 그나마 위로가 좀 된다. 한국에서 태어나 1,354일을 보낸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는 수많은 이야기를 남긴 채 4월 3일 멸종위기동물 보호조약인 워싱턴 협약에 따라 쓰촨성 판다기지로 돌아갔다. 토실토실 목화솜 같던 한 존재의 탄생부터 성장을 지켜본 대중이 푸바오를 향해 보여주는 행동은 단순한 팬덤이라고 규정하기엔 그 내면에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이제 푸바오는 그저 단순한 통과의례를 맞은 판다라는 존재를 넘어 OTT와 팬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자 위로와 치유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고 있다. 코로나로 모든 사람들이 웃을 일 하나 없던 시기, 197g의 꼬물거리는 존재가 점점 까만 점과 하얀 털을 갖춰가며 100kg에 육박하는 뚠뚠 판다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비밀을 품은 듯 행복해했다. 5만 명의 시민이 푸바오 이름 짓기에 동참했고 '행복을 주는 보물'이란 이름 말고도 푸공주, 용인 푸 씨, 뚠빵이, 푸룽지, 푸질머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2, 30대 여성들 사이 팬클럽까지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인기 스타만이 오픈할 수 있는 팝업 스토어에선 13일간 약 10억에 가까운 아이돌 스타급 매출을 올렸다. 올가을에는 푸바오 영화까지 나온다고 하니 푸바오는 가고 없지만 푸바오를 향한 애정은 아이돌 브랜드 지수를 능가하는 폭풍 파워를 보여준다. 하지만 전 세계 1,800마리밖에 없는 판다는 태생부터 정만 주고 떠나보내야 하는, 잘 키워 멀리 보내는 자식처럼 애틋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났는지 모른다. 푸바오가 중국 쓰촨성으로 떠나는 날 에버랜드에는 6,000명의 시민들이 비를 맞으며 마지막 순간을 배웅했다. 중국으로 돌아간 뒤 계속 앞 구르기를 하는 영상이 공개되자 달라진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고 허전한 사람들의 심리를 마케팅에 이용한 판다기지 여행 패키지도 등장했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은 '푸바오 앓이'는 그렇게 퍼져나가고 있다. 거기엔 4년이란 시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보낸, 한 생명체에 대한 양육과 성장의 세계관을 가진 푸바오 덕후들의 팬덤 문화인 '공동의 책임감'이 자리 잡고 있다. 팬덤의 시대에 다가온 이 '판다 열풍'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대나무 먹방을 하는 귀여운 판다를 넘어 한국에서 태어나 특별한 개성화 과정을 획득한 푸바오가 사육사들과 보여준 신뢰의 관계성이나, 나아가 엄마 아이바오가 보여준 모성애, 아이바오의 엄마 판다 신니얼이 중국 한 박물관에 박제가 되어있다는 사실이나 아빠 러바오의 눈 주변 털이 빠진 이유가 어릴 적 동물원의 관람 스트레스와 지나친 호객 행위로 인한 눈병 감염 때문이라는 이 판다 패밀리에 대한 스토리는 한국인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작동시켰다. 그런 사연을 가진 부모와 사육사들의 지극정성 속에서 장난기 많고 애교 많은 모습을 보여주는 판다 스토리에 사람들은 연민을 느낀다. 사실에 진실이 더해진 푸바오 스토리텔링은 계속 진화한다. 여기서 한국인 특유의 DNA인 情의 정서는 타국에서 온 판다, 곧 돌려보내야 할 이별이 예정된 존재에 대한 애틋한 보살핌이 개인의 역할이 아닌 개방된 모두의 역할이 되어 돌봄의 주체로서 하나의 커다란 연대감을 느끼게 했다. 즉 푸바오는 평범한 판다 곰이 아닌, 코로나 이후 온 국민이 업어 키운, 마음으로 낳은 자식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병든 현대인의 마음을 건강하게 힐링시킨 작은 생명체가 보여준 치유의 서사는 조건 없는 사랑과 감사로 이어진다. 오늘날 팬덤의 가장 큰 특징인 양육과 감사의 서사가 푸바오 팬덤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가 되는 순간이 있다. '네가 아무리 귀여워봐라, 내가 넘어가나' 하다가도 어느 순간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들어 푸바오 패밀리의 영상을 바라보며 행복하고 '푸멍'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푸바오는 소중한 선물을 주고 떠나간 게 아닐까. 더불어 푸바오를 향한 관심이 나비 효과가 되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지키는 움직임과 행동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우리는 동물을 다스릴 권한이 아닌 모든 생명체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제인 구달의 말처럼, 푸바오를 향한 정과 돌봄의 스토리텔링이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보살필 수 있기를 바라본다.
OTT 콘텐츠 시장에 피 튀기는 복수극과 육체전환 회. 빙. 환(회귀, 빙의, 환생) 시리즈 등 고자극 판타지가 쏟아지던 어느 날... 한입 들이키면 화들짝 놀랄 캡사이신 맛이 느껴지는 맵고 얼얼한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반짝이는 워터멜론>과 <이재, 곧 죽습니다>. 두 드라마는 뭔가 뒷맛이 다르게 느껴졌다. 굵고 짧은 강렬한 이야기 전개가 대세인 시장에서 1, 2화만으로 눈길을 끌면서 화제성을 얻어야 하니 첫째는 스타 캐스팅에 기대고 둘째는 사이다 전개를 해야만 간택을 받는 상황인 OTT 드라마에서 철 지난 소재인 복고와 환생이라니... 이거 유행을 역행하는 소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내 판타지, 소통, 구원이라는 공통 서사를 발견하고 빠져들었다. 먼저 <이재, 곧 죽습니다>. 웹툰 원작답게 초반 속도감이 엄청나서 몰입감이 뛰어나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죽음이란 중간자적 존재는 자신을 우습게 안 대가로 주인공에게 열두 번의 죽음을 통해 그가 잊고 있던 것을 깨닫게 한다. 영화 <신과 함께>가 천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작의 힘도 있지만 영화라는 매체로 재매개되면서 인간사의 보편성인 효와 정의 스토리라인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재가 다른 인생으로 환생하다가 마지막에 자식을 잃은 엄마의 몸으로 살아가면서 받게 되는 고통은 형벌에 가깝지만 결국 그는 그 환생을 마지막으로 가장 되돌리고 싶었던 순간으로 돌아가, 죽음이 아닌 엄마의 전화를 받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관계와 소통에 관한 판타지 드라마다. 청각 장애인 가정에서 태어난 비장애 아이를 가리키는 말인 코다(CODA) 주인공을 통해 소리, 음악, 학창시절 소년 밴드와 청춘, 성장과 진화를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 녹여낸다. 과거 타임슬립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중요한 포인트는 과거로 간 은결이 과거사에 적극 개입하면서 자신과 부모의 미래를 바꾸게 된다는 점인데, 청각을 잃게 되는 아빠의 사고는 막을 수 없었지만 은결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해피엔딩을 만든다. 과거 타임슬립 드라마들이 보여준 비극적 결말 대신 따뜻한 카타르시스와 행복감을 선사한다. 두 드라마 속 주인공을 지켜주는 건 결국 엄마와 할아버지라는 가족의 힘이다. 복수의 칼날을 거둔 대신 착하고 따뜻해진 판타지는 결국 이솝 우화에 나오는 나그네 이야기처럼 바람과 태풍 대신 햇살의 입김으로 외투를 벗게 만드는 데 성공하고 시청자들에게도 판타지라는 마법의 순기능을 선물한다. 판타지의 기능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판타지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판타지는 현실 도피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추구하고 이룰 수 없다고 낙담하고 살았던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주는 역할도 한다.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잘못된 것을 되돌리고 바로잡고자 하는 욕망, 이재도 은결이도 잘못된 것을 돌리고자 했던 중심에 아빠와 엄마, 가족이 있었다. 우리가 괴물과 먼치킨, 이물에 탐닉하면 할수록 우리를 할퀴는 추악한 존재들로부터 상처받고 숨을 공간을 필요로 한다. 아메바처럼 자가 증식하는 그 불안과 도피, 그 공포의 그림자에서 도망쳐 와 결국은 가족이라는 존재 앞에서 가장 편안하게 숨을 거두듯 말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화끈하고 매운맛을 찾다가도 결국 심심하고 속이 편안해지는 집밥으로 속을 풀 듯이 앞으로 우리는 착한 판타지의 존재감에 더 매료될지 모른다. 슬기로운 생활 시리즈를 만든 신원호 PD 역시 피로감이 느껴지는 빌런과 선악 대결 드라마 대신 착한 사람들의 판타지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곧 공개될 OTT 드라마 두 편도 따뜻한 힐링 판타지물이다. 일본의 동화책을 원작으로 한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은 일본판 해리포터로 불릴 만큼 인기를 누린 콘텐츠로 이상한 과자점에서 살 수 있는 과자를 통해 아이들이 소원을 이룬다는 내용이고 웹툰 원작 <스피릿 핑거스>는 그림 모임에 들어간 여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환상의 공간과 그림의 세계를 통해 성장하는 폭력 없는 학원 판타지물이다. 원초적 자극 대신 보면서 엄마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한 판타지의 귀환. 한때 착하다는 것의 의미는 개성 없고 순응적이며 수동적인 것과 동의어였지만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선한 에너지로 누군가를 구원하는 인류애의 실천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 하루하루 무탈하게 살아가는 삶의 안위가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되면서 판타지는 범접하기 힘든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따뜻하게 반짝이는 사람들의 기적을 다룬, 가족과 우리에게 펼쳐지길 바라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앞으로 착한 판타지의 유행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언제 그랬냐 싶게 거리는 수많은 공연들의 플래카드가 휘날린다. 마스크 끼고 불편한 자세로 박수치며 좁은 공연장에서 미동도 없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공연을 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정말 다양한 공연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고 취향껏 고르고 골라 보게 된 지금, 3년 전 대형 공연에 가서 가수들과 눈으로 대화하며 ‘함성 대신 박수우~’를 들으며 조신하게 앉아만 있다 돌아온 기억이 무색하리만치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공연이 공연 플랫폼에 넘쳐난다. 출근길에 신호 대기하고 있는데 〈싱어게인3〉 공연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싱어게인 3〉를 보면서 느낀 건 대한민국에 정말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과 상대적으로 그들이 기회를 잡아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다는 것, 이름을 알려져 대중과 호흡한다는 건 정말 어렵고 어려운 일이라는 거다. 하루에도 수많은 가수들이 음원을 발표하고 CD를 발매하지만 그들 중 몇이나 기억될까. 그만큼 ‘다시’라는 기회를 잡았던 출연자들은 절실하고 또 절실하다. 공정한 기회의 제공인가, 이 역시 다를 바 없는 스타탄생 마케팅인가 논란은 있었지만 출연자들이 마인드 컨트롤해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고 얻어낸 결과이기에 어게인 티켓을 쥔 승자들은 적어도 그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어 보인다. 어쩌면 어게인이 주는 단어의 중압감은 기쁨을 넘어 책임감이 될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어게인 문화는 대중문화 트렌드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어게인 권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어게인을 얘기해 보자면 조금 더 일찍 우리 곁에 왔으면 좋았을 학전 어게인. 분명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학전 어게인 티켓팅을 놓쳐버렸다. 알람을 켜두었어야 하는데 잠시 방심했다가 심야 '취켓팅'마저도 놓쳐버린 나에게 170석밖에 안 되는 소극장 티켓이 양도되는 행운이 오는 건 정말이지 요원해 보인다. 학전 소극장은 19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X세대들에겐 대학로와 더불어 추억의 공간일 뿐 아니라 인터넷 통신이 활성화되기 전 ‘건축학 개론’ 세대들의 놀이터였으며 모바일 폰도 넷플릭스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 문화예술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통로였다. 학전의 탄생연도와 같은 학번을 가진 91학번과 대학로 세대들은 신촌의 매캐한 연기가 걷히자 〈대머리 여가수〉, 〈지하철 1호선〉을 보고 김광석의 노래를 듣기 위해 학전을 찾았다. 토요일 오후 대학로에서 만나 연극을 보고 막걸리와 파전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던 귀갓길, 아직도 학전의 좁은 입구에서 자리로 내려가며 삐그덕거렸던 객석의 나무계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90년대 소개팅은 강남역 아니면 대학로였다. 세기말에서 밀레니엄으로 가던 그때 우리가 사랑을 했고, 건배를 했으며, 눈물을 흘렸던 그 공간에 학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학전 키즈인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이정은 모두 지금은 한국의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았다. 출연 리스트를 보니 모두 가고 싶지만 그중에서 모든 공연을 기획한 박학기와 시인과촌장, 김현철, 한상원 밴드가 출연하는 회차가 눈에 띈다. 8,90년대 실력있는 뮤지션과 배우를 발굴했던 학전과 동아기획이라는 공통분모. 나의 20대를 위로하고 쓰다듬어 준 노래와 그들이 보인다. 그리고 밴드 루시와 김재환 같은 젊은 뮤지션을 섭외해 MZ 세대들과 함께 소통하려고 한 시도도 돋보인다. 모든 추억의 장소는 사라지지만 학전만큼은 문화창작자 김민기의 바람대로 세대를 이어주는 통로로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라본다. 이름은 바뀌어도 어게인의 의미를 가진 채... 지금 대한민국에 부는 어게인 문화. 싱어게인, 비긴어게인... 수많은 어게인이 있지만 ‘다시’라는 이름으로 굳건히 서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금’ 잘해야 한다. 그리하여 어게인의 의미가 단순히 아름다웠던 과거의 시간을 추억하는 트렌드 속에 함몰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그나저나 난 학전 어게인 티켓을 구할 수 있을까? 이 공연이야말로 어게인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