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방송작가로 활동, 경성대학교 글로컬문화학부에서 드라마와 웹툰 스토리텔링, 대중문화를 가르치고 연구한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K-콘텐츠에 심취해 있는 중.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가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명작의 귀환. 영상예술이 무대로 옮겨진 장르 전환이자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작년 가을 <라이프 오브 파이> 티켓팅이 시작됐을 때 뮤지컬이란 소개에 다소 의아했지만, 어쨌거나 라이브 온더 스테이지라는 뮤지컬로 분류되며 국내 무대에 올랐다. 2013년 국내 개봉된 영화 원작의 탄탄함 덕분인지 입소문과 함께 평일 공연도 VIP석과 전체 조망이 가능한 2층의 파노라마 석은 일치감치 매진되는 티켓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2002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캐나다 출신 작가 얀 마텔의 원작을 2012년 이안 감독이 영화로 제작해 감독상과 촬영상, 시각효과상 등 4관왕에 올랐던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할리우드 컴퓨터그래픽과 VFX가 어느 정도 수준급 완성도를 보여주던 시기였지만, 호랑이와 좁은 보트 위에서 사투를 벌이는 인간의 모습, 바다 위를 나는 날치와 다랑어 떼, 향유고래, 그리고 낮이면 미어캣으로 가득하고 밤이면 투명한 형광색으로 빛나던 식인섬이라는 환상성을 스크린에 구현하면서 극찬을 받았다. 과연 그 '환상성'을 무대에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이 공연의 핵심이다. 표류하는 바다 위 파이와 호랑이 리차드 파커의 대결에 대한 의문은 박정민과 박강현이란 두 배우와 촘촘한 재질의 근육까지 표현한 동물을 연기한 퍼펫티어들의 움직임, 디테일한 조명과 시각적 장치들이 해답을 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배우들의 노래를 듣거나 군무를 볼 수 있는 뮤지컬이 아니라, 대사와 동작으로 이뤄지는 연극에 가깝다. 노래하는 박정민 대신 맨발과 병상 위 독백 연기가 대부분이다. 이 작품의 미학이라면 초반 동물원 배경 장면에 등장하는 염소나 작은 동물이 살아 날뛰는 움직임부터 호랑이·오랑우탄·하이에나·얼룩말 등 죽음을 앞둔 동물들의 근육 하나하나까지 손과 발로 연기한 퍼펫티어들의 세심한 손동작, 파도와 바다를 표현한 프로젝션 맵핑과 조명, 주인공의 심리와 상황에 몰입할 수 있는 사운드가 어우러지며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종합예술의 최대치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동안 환상성을 표현해야 했던 판타지 뮤지컬에서 배우의 움직임이나 조명에만 의존해 아쉬웠던 부분들이 영상효과로 보완되며 영화와는 또 다른 시각적 만족을 주고, 배우들이 움직이는 가변적 무대 장치와 음악의 밸런스는 한국 뮤지컬의 수준이 한층 더 발전했음을 느끼게 한다. 박정민이 보여준 파이는 초반부 종교에 심취하는 순수하고 괴짜 같은 소년미를 발휘하고, 후반부로 가면서 실제와 환상, 진실과 사실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로서 성찰자의 모습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주로 영화에서 활동했던 그가 호흡이 긴 무대로 도전한 이번 경험은 앞으로 연기자 박정민의 깊이와 위치를 공고하게 해 줄 듯하다. 무대가 끝난 후 주연 배우 못지않은 박수를 받았던 퍼펫티어 팀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진정한 주연들이다. 세 명 혹은 네 명이 한 팀이 되어 벵갈 호랑이 리차드 파커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 것에 대한 박수를 보낸다. 퍼펫티어들이 손으로 얼굴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 보이지만 관객들은 그들의 손동작이 만들어내는 디테일한 표현만을 인지한다. 죽음을 앞둔 생명의 마지막 떨림, 신뢰하는 상대를 향한 믿음과 반가움의 반응, 고통과 공포, 환상성을 극대화시키는 고요하고 다이내믹한 움직임까지, <라이프 오브 파이>의 기나긴 여정 속에서 빛났던 수많은 생명들의 움직임을 표현했던 퍼펫티어들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처럼 완성도 있는 무대를 만들어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극 전체의 진중한 톤을 유지하기 위한 전체적인 호흡이다. 관객들은 숨죽이며 보기 바빴지만, 중간중간 숨통을 틔워줄 개그나 현지화된 대사로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몰입은 잘 됐으나 경직된 관객에게 잠시 웃을 수 있는 부분을 넣어줬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다만 이는 원작자와의 협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니 어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2019년 영국에서 초연된 뒤 코로나 시기를 거쳐 2021년 정식으로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랐던 <라이프 오브 파이>는 국내에 오리지널 투어가 아닌 한국어로 공연되는 세계 최초의 공연이다. 한국 1세대 뮤지컬 기획자로 수많은 공연을 기획해 온 설도권, 설도윤 형제가 이끌고 있는 에스앤코가 쏟아져 나오는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의 수많은 작품 중 대중적이고 흥행이 예견된 안전성 있는 작품이 아닌 다소 도전적인 이 작품을 선택한 배경에는, 이미 높은 수준으로 올라선 한국 관객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라이프 오프 파이>를 보기 며칠 전 런던 아델피 극장에서 <백투더퓨처>를 관람했는데, 이 역시 타임머신과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로 무대 위 환상성을 재현해야 하는 뮤지컬이다. 박사가 개발한 타임머신 스포츠카가 공중회전을 하는 놀라운 특수효과는 시선을 잡아끌었다. 문제는 40년 전 영화 속에 머물러 있는 시대 감성. 원작이 가진 향수를 오히려 해친, 돌아오지 못한 과거에 갇힌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장르 변환에 따른 스토리텔링 다시 쓰기의 숙제를 던져준 작품이었다고 할까. 지금 런던에서는 <이웃집 토토로>,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위키드> 등 판타지 뮤지컬이 대세고 국내에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오리지널 투어가 공연 중이다. 이 많은 판타지 뮤지컬들이 원작이 가진 아우라를 어떻게 구현하며 어떤 새로움이 가미되어 종합예술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AI가 영상미디어 콘텐츠 환경을 주도하는 지금, 우리는 극과 무대 예술 전반에서도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복합적이고 다변적인 예술의 시대를 맞고 있다. 원작의 환상성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플러스알파'를 얹어서 밥상을 차려야 까다로운 미식가들을 만족시키는 시대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그런 점에서 새로운 시도였으며, 150분간의 황홀한 여정이다. 환상성 구현의 핵심은 단순한 기술적 재현이나 복원이 아니라 연기, 무대장치, 메시지 전달이라는 복합적인 연출에 있다. 유명한 작품을 다시 소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획·제작자들의 깊이 있는 고민과 좋은 작품을 고르는 혜안, 그 안에 종합예술로서 던져야 할 메시지, 무대를 새롭게 만드는 성찰의 테크닉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한국 뮤지컬계 역시 파이의 여정처럼 새로운 시작과 여정을 잘 걸어 나가기를 바라본다. 사진 : 에스앤코
깊어가는 가을, 거리를 물들이는 낙엽과 단풍은 올가을 발라드의 선율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일렁이며 물들인다. SBS <우리들의 발라드>와 JTBC <싱어게인4> 방송이 끝나면 무명의 경연자들이 부른 발라드가 놀라운 속도로 음원 차트인을 하기도 하고 참가자들의 영상은 100만 뷰 이상의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이제 최종 파이널 전을 앞둔 <우리들의 발라드>와 우승자들의 윤곽이 잡히고 있는 <싱어게인4> 출연자들의 화제성은 코로나 직후 대중가요계를 점령한 트로트 장르 위주로 재편된 음악 예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신선한 얼굴을 찾는다는 취지가 무색해진 포화상태에 이른 트로트 경연 시장에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던, 서랍 속 잠들어있던 발라드가 다가와 우리의 어깨를 두드린다. <우리들의 발라드>가 보여준 날것의 힘, 세대를 뛰어넘은 명곡의 귀환 평균 연령 18.2세라는 참가자들의 나이는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지향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십대의 청춘이 부르는 8,90년대 발라드 명곡들. 과거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의 콘셉트와도 유사하지만 슈가맨이 얼굴 없는 가수와 시대를 풍미한 명곡을 선정해 현재 뮤지션들이 트렌디하게 편곡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세대간의 융합과 이해를 도모한 프로그램이었다면 <우리들의 발라드>는 자신의 태어나기 전 세상에 나온 부모 세대가 사랑했던 곡들을 소화하는 틴에이저들을 조명하고 그들을 집중 발굴한다. 아이돌 연습생, 트로트 신동으로 발탁되어 어린 나이에 데뷔 준비를 했던 참가자들과 다른 뼛속까지 발라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신인 발라더들의 무서운 등장, 제작진은 무조건 신선함에 승부를 걸었다. 타 오디션 프로그램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신선한 얼굴을 찾았고 알고 보니 이미 이들은 수백만 뷰 조회수를 가진 화제성과 인지도를 보유한 잠재력 있는 신인들이었다. 더 큰 무대에서 노래를 하기 위해 기타 하나 매고 서울로 상경한 제주 소녀가 보여준 날것의 힘은 발라드의 본질인 '마음을 노래하는 서정시'와 자기 고백의 메시지를 담아 발라드가 가지고 있는 근원을 다시금 전달했다. 두 번째로 주목할 점은 기존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공식을 전복시킨 제작진의 시도다. <K-POP 스타>를 연출한 정익승 PD와 <흑백 요리사>를 성공시킨 모은설 작가의 색다른 전략은 무대 세트부터 나타난다. 방청석을 무대를 바라보게 만든 후면 배치가 아닌 소라고둥의 나선형으로 제작해 어느 방면에서나 참가자를 볼 수 있는 탑백귀라는 키워드의 탄생. 몇 시간을 서서 홀로 진행하는 MC가 아닌 자연스레 탑백귀의 한 명으로 활약하는 전현무의 활용, 탑백귀 140명 방청객들이 자신이 선택한 최고의 음악을 투명 레이블에 담아 추억을 설정한 디테일한 무대 장치, 단순히 오디션 서바이벌에 그치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발라드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돌이키게 만드는 '발라드의 품격'을 보여줌으로써 그동안 수없이 탄생했다 소멸되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차별화를 꾀했다. 각 주마다 '내 인생의 첫 발라드', '이럴 땐 이 발라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발라드' 등 챕터별 키워드를 정하고 노래 이전에 그 발라드에 얽힌 탑백귀 대표단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들려주며 단순히 이 프로가 지향하는 바가 10대 발라드 꿈나무를 발굴해 내는 것이 아니라 중장년 세대가 간직한 발라드에 대한 소중한 추억과 더불어 '보는 음악'에서 벗어나 '듣는 음악으로서 리스너의 기능'까지 부여하고 결국 '느끼는 음악'의 가치를 재조명했다는 점이다. 빅데이터 형식으로 이별, 첫사랑, 짝사랑, 위로, 성장 등 키워드를 띄우고 연관 곡들을 LED로 띄우며 함께 그 시절의 추억을 향유하는 시간. 발라드 곡의 가사를 함께 음미하며 화면에 가사가 올라가는 순간 자극적인 영상에 밀렸던 텍스트, 글의 힘, 가사의 힘을 믿는 세대들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무의미한 후렴구의 반복과 공격적인 가사, 후크 송들에게 빼앗겼던 그 시절 감성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 우리들의 발라드는 그 지점을 공략한다. 텍스트의 힘을 보여주고, 퍼포먼스에 지치고 피로해진 우리의 눈과 귀를 다시 정화하고 리스너라는 역할을 되돌려준 것이다. 또 한 가지 <우리들의 발라드>가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감성적 접근이다. 9명의 전문가들은 평가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참가자들을 격려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전문가로서 평가하는 것을 넘어 부모의 입장, 가요계 선배의 입장에서 힘든 관문을 넘어 도전하는 경연자들을 위로하고 다독인다. 윤상, 정재형 등 발라드 전문가들의 따뜻한 조언과 과거 참가자들처럼 청춘의 모습을 선사했던 차태현과 박경림과 같은 이들이 이제 부모가 되어 건네는 따뜻한 위로는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평가나 감상의 모습과 근본적으로 다른 참여와 실천, 깊이 있는 '대화'의 본질을 전달한다. 차태현이 퇴장하는 출연자 뒤로 '친구 잘 사귀고 담배 피우지 말고' 이야기하는 모습이나 박경림이 이제는 돌봄의 대상이 바뀌었다고 말해주는 순간 지켜보는 관객들은 알 수 없는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풀어야 할 숙제들도 보인다. 경연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위해 사전 제작진들에 의해 조율되는 참가자들의 자율성과 연령대가 낮아진 미성년자 대상 방송의 경쟁 구도, 일부 출연자들에 대한 감성적 애정 표현이 다른 출연자들에게 느껴질 소외감도 우려된다. 그런 점을 잘 극복한다면 <우리들의 발라드>는 분명 오디션 음악 예능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 클리셰를 정통으로 부숴버리는 것, 지금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의 반갑고도 용감한 회귀다. 노래는 시간도, 세대도 뛰어넘는다. 잊고 있던 명곡은 그렇게 이 가을 우리를 위로하며 손을 내민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부모 세대를 위로하는 위대한 유산, <우리들의 발라드>가 찾아낸 따뜻한 가치다.
얼마 전 중년 팬덤을 깊이 있게 다룬 두 편의 영상이 방송됐다. EBS의 <PD로그 :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와 MBN의 <트롯공화국 보고서>. 전자가 조금은 가볍고 말랑말랑한, 마치 소녀시절 일기장을 보듯 발랄하고 통통 튀는 느낌이었다면 후자는 제목 그대로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기법에 충실하면서 한·일 트로트 팬덤을 비교분석한 이 시대 중년 팬덤에 관한 보고서였다. 이 두 개의 영상이 주목한 공통적인 소재는 코로나 19 이후 대한민국의 가장 독특한 문화현상이 된 트로트 팬덤이다. 한 종편 방송이 쏘아 올린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열풍은 트로트를 음악 콘텐츠의 새로운 장르로 급부상시켰고 수용자인 중년 팬덤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K-POP의 한 장르로서 트로트가 비중 있게 자리 잡고 주 소비층이 중장년층으로 확산되며 이들의 응원문화와 소비 형태가 중년 팬덤만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진 : EBS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는 <PD 로그>라는 프로그램 제목처럼 일상 속 이슈를 탐구하며 그중 '덕질'에 대한 인간적인 물음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대한민국의 중년 팬들은 일면식도 없는 대상에게 저렇게 무한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걸까?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입사한 지 3년이 갓 넘은 신입 PD는 특유의 호기심과 취재 본능으로 이 희한하고도 독특한 집단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PD 로그>의 미덕은 외부에서 관찰자적 탐색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직접 그들의 내부로 들어갔다는 데에 있다. 문화인류학자들이 타문화를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 참여수행자가 되는 방법을 선택한 것처럼,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주먹 쥐고 일어서'를 만나며 인디언 문화에 서서히 동화되듯이 신입 PD는 영탁 팬클럽 '영탁앤블루스'의 문화 속으로 과감하게 빠져든다. 팬클럽에 가입해 닉네임을 정하고 그다음 단계인 파란색으로 치장하는 비주얼 변신의 환영식을 거친 다음 팬들에게 나눠줄 굿즈를 직접 만드는 과정은 과거 인류학자들이 규명해 낸 자발적 증여와 대가 없는 호혜적 선물교환 이론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 신입 PD는 팬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대신 팬이 된 자신의 모습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영탁의 팬들과 공연 전날 하룻밤을 같이 자고 노래방을 가보며 떼창을 위해 응원법을 연습하고 나눔에 익숙해진 중년 팬들의 문화를 체험하며 자기 성찰의 셀프 에스노그라피(자기 민족지)를 완성한다. 팬덤 4.0 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덕질의 대상 없이 팬들끼리 즐겁게 놀 수 있는 느슨하고도 탄탄한 연대를 체험하며 중년 팬덤의 덕질 문화가 문화 충격이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모습은 진정성과 함께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다큐 내레이션의 주인공인 문 PD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을까? 한 사람을 향한 애정과 사랑의 근원은 명료했다. 나를 웃게 만드는 힘, 인생의 모진 풍파를 헤쳐 온 순례자들이 얻은 것은 결국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는 것을. 사진 : MBN 또 한 편의 다큐멘터리 <트롯공화국 보고서>는 언젠가부터 트롯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팬덤 덕질 보고서다. 대중음악과 문화 연구자들의 인터뷰를 통한 학술적 접근과 함께 다양한 트로트 팬덤의 사회적 활동을 보여준다. 노란색, 파란색, 핑크색, 각양각색의 팬덤은 각자의 특성을 유지하며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해 선한 영향력의 에너지를 순환시킨다. 중년 팬덤의 활동과 파급력은 단순히 덕질 대상을 응원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기부나 선행, 봉사를 통한 실천적 참여를 통해 꾸준한 역동성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MZ 세대의 덕질과 구분된다. 팬덤이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면 스타 역시 팬클럽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는 등 상호 작용 현상도 한국의 중년 팬덤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집단 응원이 아닌 조용한 방식의 응원 문화를 보여주는 일본의 트로트 팬덤은 반짝 응원 대신 오랜 지속성을 가진다. 엔카 가수 미소라 히바리를 향한 시니어 팬층의 잔잔하지만 절대적인 감정은 전설적 존재를 추앙하고 기억하는 일본 국민 팬덤의 정서와 애정 표현 방식을 보여준다. <트롯공화국 보고서>는 한일 트로트 팬덤의 현재를 비교해서 보여줌으로써 일본 젊은 세대들에게 뒷방 신세가 된 엔카가 다시 세대를 초월해 인기를 얻고 있는 배경에 한국의 트로트 열풍이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규명한다.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고 쓰다듬는 치유책이 음악이라는 사실은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만고불변의 진리다. 또한 한국의 트로트 중년 팬덤을 비교 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다양한 중년 팬덤의 사례를 조명한 다큐 영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중년 팬덤을 깊이 있게 다룬 영상이 많이 없었다는 점에서 두 편의 영상은 중년 팬덤의 본질을 탐구한 질적 연구의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두 편의 중년 팬덤 보고서를 본 감상문의 마지막 장은 이렇게 기록되지 않을까. 오래된 묵은지와 장맛처럼 깊고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사랑, 누군가를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그 힘이 결국 자신을 구원하리라. 그것이 바로 중년 팬덤의 사랑이라고.
우리 시대, 연민과 애정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괴물을 만든 두 감독이 부산을 찾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매기 강 감독. 두 사람 다 몬스터가 등장하는 영화로 엄청난 애정과 지지를 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등장하자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크리처물 거장의 등장에 감탄과 환호가 터져 나왔고, 수줍게 입장해 반갑게 손을 흔들고 하트를 만드는 미국계 한국인 매기 강 감독에게는 열렬한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지금 가장 핫한 두 감독의 등장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달구었고 두 사람은 GV와 포럼, 오픈 토크 등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다. 결론적으로 올해 서른 살을 맞은 BIFF(부산국제영화제)는 화제성과 내실, 둘 다 채우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 열기가 식지 않는 '케데헌'의 창작자 매기 강 감독부터 영화 마니아들을 비롯해 다크 판타지의 귀재, 국내 첫 내한인 기예르모 감독을 초대함으로써 화제성도 잡고 영화제 콘텐츠의 질도 높였기 때문이다. 기예르모 감독이 사랑한 결핍과 불완전한 존재들 먼저 <프랑켄슈타인>으로 돌아온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부터 얘기해 볼까. 멕시코 출신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올해 60세가 넘었지만 여전히 에너지 넘치게 괴수물과 판타지 장르에서 독특한 자신만의 크리처를 만들어낸 감독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ET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이제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기예르모 델 토로뿐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고 <헬보이>, <판의 미로>,<The Shape of Water>까지 시대를 초월한 괴물을 소재로 현대인의 우화 같은 판타지를 만들어냈다. 다크 판타지의 거장이라고 하지만 잔혹하고 파괴적인 괴물 대신 괴물이 가진 심연의 본성을 이끌어내는 그의 능력은 이번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프랑켄슈타인>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전작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에서도 그랬지만 그가 이물(異物), 몬스터를 바라보는 시선은 지속적으로 진화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신과 인간, 예수와 하나님. 이 모든 거대한 세계를 관통하며 기예르모 델 토로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모든 괴물이 가지고 있는 결핍과 부재의 서사,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결핍을 가진 히어로와 그에 맞서는 결핍의 몬스터 둘 뿐이라는 듯. <프랑켄슈타인>은 관계와 소통에 대한 이야기다. 신이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되지 못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 창조주에게 '왜 나를 만드셨나요' 묻고 싶었던 피조물은 빅터만을 기억하고 빅터를 외치며 그렇게 소멸되었다. 그 괴물의 강렬하고도 선한 눈빛을 창작해 낸 기예르모 델 토로. 그는 여전히 괴물을 사랑하고 괴물에 천착한다. <프랑켄슈타인> 속 빅터의 창조물이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던 엘리자베스와 흐르는 물과 낙엽을 잡으며 교감하려는 장면은 2017년 <쉐이프 오브 워터> 속 아가미로 숨 쉬던 물고기 인간이 농아 여인과 수화로 소통하고 이들이 물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연상된다. 괴물이 가진 괴수성은 우리 안의 불안과 공포가 만들어내는 것임과 동시에 괴물을 구별 짓기 하는 타자 역시 시작부터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기예르모 감독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취소된 프레스 티켓을 겨우 구해 첫 회 상영을 보러 갔는데 IMAX 영화관의 440석 관객에게 기예르모 감독은 전부 친필 사인을 해주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그 약속을 지켰다. 열정적인 한국 관객들을 향해 '비바 부산!'을 외치며 멕시칸 특유의 흥으로 감사함을 표현하고 글로벌 포럼에서는 그가 가진 깊고 푸른 그레이 칼라의 눈동자만큼 크리에이터로서의 심연의 확장을 보여주었다. 매기 강 감독의 K-몬스터를 향한 연민, 대중적 공감의 핵심 BIFF가 한창 진행 중인 일요일, 야외무대에 '헌트릭스' 루미 스타일의 땋은 머리를 하고 나타난 매기 강 감독은 시종일관 미소를 띠고 관객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며 본인도 이렇게 사랑받게 될지 몰랐다며 마음껏 한국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5살에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갔던 꼬마 여자아이는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가질 만큼 이야기를 좋아했고 <드래곤 길들이기>와 <쿵푸팬더> 등의 작업에 참여하며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나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적 흥행과 성공이 특별한 이유는 K-컬처 내부의 작업이 아닌 외부에서 이를 관찰하고 바라본 객관적인 타자에 의한 결과물이라는데 있다. 매기 강 감독 스스로가 한국어를 잊지 않고 한국인임을 끊임없이 자각했고 그녀에게 한국의 문화는 늘 독특하고 새롭고 재미있는 것들이었기에 악령을 퇴치하는 걸그룹의 이야기, 귀마와 대립하는 선한 괴물 진우 캐릭터가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두 감독의 공통점은 바로 대중에게 공감을 얻는 몬스터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수물의 고전이자, 메리 셸리가 창조한 클래식의 가치를 보여주면서도 괴물이 가진 잔혹함이 아닌, 창조자에 대한 분노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연민의 존재로 재해석했다는 것, 매기 강이 만든 '사자보이즈' 안의 진우는 자신이 가진 전생의 업보로 인한 기억에 괴로워하면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결국 자신이 누군지 깨닫게 해 준 루미를 위해 희생하는 가치를 보여준 괴물이라는 점에서 깊은 공감을 얻은 것이다. 시체 더미에서 꿰매어져 피어난 괴물이든, 비파를 연주하던 악사가 초콜릿 근육질 저승사자 아이돌이 되었든 간에 두 감독이 창작해 낸 크리처는 공통점이 있다. 연민을 자아내는 사연이 있으며, 악한 본성보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괴물들이라는 점. 두 감독이 맹자의 성선설에 영향을 받았는지 몰라도 괴물의 마음 속에는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는 선한 힘이 있다는 것. 결국 그 힘이 악에서부터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리고 모두를 구원한다라는 진리. 하나는 수없이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던 원작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뻔한 클리셰가 많았던 스토리였지만 두 작품은 감독만의 감각을 만나 새로운 크리처로 탄생했다. 고전의 가치를 재해석한 작품과 보편성과 K-문화의 특별함을 녹여낸 두 작품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이 시대, 새로운 괴물을 구현하고 계속해서 만들어나갈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일하는 작가가 해준 말이 있다. 넷플릭스의 원픽을 기대하는 한국의 스토리텔러들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 이것만 명심하길. 세상 누구나가 공감하는 소재를 한국적으로 녹여낼 것, 조선판 갓 쓴 좀비라든가, 케이팝 아이돌이 사실 퇴마사란 투잡을 뛰고 있든가.
<무빙>과 <조명가게>로 글로벌 OTT 시장에 K-판타지를 소개한 디즈니플러스가 넷플릭스와 또 다른 감성으로 K-콘텐츠 IP의 영상화에 주력하고 있다. 곧 공개될 <북극성>과 <하이퍼나이프>를 비롯, 미스터리 스릴러, 액션 판타지 등 장르물 라인업부터 최근 11부작으로 막을 내린 <파인: 촌뜨기들>(이하 <파인>)까지. 좀 더 대담하고 완성도 높은 서사로 디즈니가 선호하던 가족 위주의 판타지 스토리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특수한 배경과 문화를 담은 다양하고도 독특한 스토리에 집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디즈니 플러스 채널의 짙푸른 청록색이 주는 로고 이미지는 기존 디즈니의 밝고 알록달록 파스텔톤 색감이 아닌 한없이 어두운 해저로 빨려 들어간 것 같은 인생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디즈니의 변화를 상징하는 시도처럼 보인다. 윤태호 원작의 <파인(巴人)>은 10년 전 <미생> 연재를 마치고 차기작으로 2014년 세상에 나왔던 작품이다. <이끼>, <내부자들>, <미생>과 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윤태호 작가의 특징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펼치는 탐욕과 광기다. 그 광기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씁쓸함을 통해 잔인하고 추악한 인간을 보여준다. 마지막 말로를 알면서도 그 나락으로 떨어지는 악인들끼리 펼치는 핏빛 사투를 통해 살아남은 자의 공허함을 조명한다. 지리멸렬한 싸움 끝에 승자가 됐지만 '촌뜨기들'이란 부제가 상징하듯 결국 소득 없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간 허무한 결투는 70년대 대한민국,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파인>은 우리의 근과거에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간, 반세기 전의 대한민국 70년대가 배경이다. <파인> 시리즈가 전부 공개된 지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한 탄탄한 원작 스토리, 강윤성 감독의 검증된 연출력과 연기파 배우들의 대거 출연, 압도적 카리스마의 배우들이 펼친 캐릭터의 향연, 잘 차려진 12첩 반상 같은 진수성찬이다. 그들의 메소드 연기만으로도 매회 꽉 차는 느낌인데, 사실 이 많은 캐릭터의 사연들을 다 풀어가자니 초반 서사는 조금 지루하게 흘러가지만 각각의 사연을 풀어낸 중반부터 바다로 나간 이 고삐 풀린 무지렁이들이 벌이는 배틀은 아주 스릴 있게 전개된다. 이야기 내내 화면을 지배하는 진득하고 눅진한 밤안개 같은 공기와 다들 선수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단순 무지 과격한 촌뜨기들이 다 모여든 바다라는 공간은 이제 손을 뻗쳐 첫 희생자를 집어삼키기만을 기다린다. <파인>이 건져 올린 대한민국 70년대 흑백 史 : 아파트 개발 붐, 박치기, 한복과 밴드 속 유흥의 밤에 담긴 녹색과 황색 미장센 대한 늬우스, 박정희 대통령, 건축 첫 삽을 뜨는 여의도 아파트, TV 속 박치기를 하는 프로레슬러와 흑백 예능쇼 프로그램 인서트 화면은 <파인> 속 70년대 대한민국의 사회현상을 고증하는 중요한 자료 화면이자 <파인>의 분위기를 제대로 상승시킨다. 표면적으론 <파인>은 바닷속 보물을 캐러 온 도굴범들의 이야기지만 그릇과 도자기는 맥거핀일 뿐, 1970년대 개발 붐, 기업들의 부정축재의 수단이 된 대학교 설립과 정원외 입학, 새마을 운동, 한강의 기적 등 숨가쁘게 쌓아 올린 바벨탑을 보여준다. 흥백산업 축하연 장면에서 한복 입은 요정의 여인들, 초대 가수 현인과 밴드를 불러 여흥을 즐기는 모습은 70년대 고도성장과 현대화를 이룬 한국의 밀실 정치와 유흥 문화를 보여준다. 촌뜨기들의 그릇 건져 올리기가 주된 서사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배경으로만 부분 부분 등장한 점은 아쉽지만 미장센과 영상 미술팀의 성과로만 놓고 본다면 <파인>은 시대 고증을 통해 세트나 촬영 소품에도 꽤나 공을 들인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목포 행운다방과 흥백산업 영상 전반에 흐르는 탁한 녹색의 이미지는 녹색이 주는 푸릇했던 성장과 안식의 기운을 지나쳐 역류하고 썩어가는 조류처럼 곧 닥칠 비극의 상황을 암시한다. <파인>은 그렇게 진한 녹색과 황토색의 70년대 미장센을 통해 우리의 부서지기 직전 기억 속 매몰된 과거를 발굴해 낸다. "니 골동이 뭔지 아니? 먼저 보고 손에 쥐는 게 골동이야" 니 골동이 뭔지 아니? 먼저 보고 손에 쥐는 게 골동이야. 극 중 송사장이 남긴 명대사다. 골동은 무조건 처음 본 사람이 자기 손에 먼저 넣어야 골동이 된다는 의미다. 골동(骨董)의 한자가 가진 의미는 뼈 골에 바로잡을 동. 어쩌면 골동은 누군가에 의해 그 본체가 만들어지고 바로잡아지기도 할 수 있으니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자에겐 의미가 될 수 없다. 골동을 향한 무서운 집착과 광기가 느껴지는 <파인>의 주제가 압축된 대사가 아니었을까. 가짜인 줄 모르고 뒤 쫓아가 결국 화상을 입고 죽을 뻔한 경찰 홍기에게도 해당된다. 파국을 향해가며 건져 올린 그릇과 도자기는 맥거핀이 되어 의미를 잃어가고 <파인>의 주제는 이 진흙탕 아비규환 속에서 과연 누가 살아남는가다. 황선장이 바닷속에 뛰어든 벌구를 죽이는 장면이나 살아 올라온 전출을 해머로 내리치는 장면은 섬찟함을 넘어 인간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누구 하나 믿을 수 없고 모든 캐릭터들이 다 비열하다. 중반부에 희동과 연대하며 연민을 자아낸 전출도 알고 보니 부산에서 또 다른 처자식과 가정을 꾸렸다는 반전이 밝혀지고 양정숙의 친한 동생인 마릴린 양장점 여사장도 은신처로 도피한 정숙의 정보를 넘겨주는 모습은 돈과 권력 앞에서 누구 하나 믿을 것 없는 아사리판을 제대로 보여준다. 욕심부린 자들은 다 침몰했다 강윤성 감독은 <범죄도시>나 <카지노>를 통해 남성성이 극대화된 범죄 스릴러 속 캐릭터를 보여준 연출자다. 이런 거친 남자들 속에서 선자는 타협하지 않고 끝내 자기 꿈을 이루는 것에 성공했다. 반면 극 중 끝내 욕심을 부리고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죽었다. 멈춰야 할 타이밍을 알았던 사람들은 피해 갔지만 그러지 못한 자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식상한 권선징악 클리셰라 할지라도 <파인>이 주는 명쾌한 메시지는 확실하다. 욕심부린 자, 죽음에 이를지니. 그릇의 저주였을까? 그릇은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모든 것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는 희동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파인>의 주제를 명징하게 전달한다. 시즌2 가능한 골동과 도굴의 세계 : <파인>의 세계관, 확장 가능할까? 요즘 비극적 엔딩의 원작을 가진 OTT 콘텐츠 결말에서 많이 보이는 양상은 비극새드 엔딩이 아닌 열린 결말, 혹은 해피엔딩이다. 왜 그럴까? 너무 해피한 결말도 사람들은 식상함을 느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이 몰입했던 주인공들이 죽거나 사라지는 것에 대한 좌절과 배신감을 느낀다. 애착을 가진 존재의 소멸이 카타르시스 대신 짜증과 허무함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데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관점에서 제작진은 주인공의 죽음이란 결말을 앞두고 수없이 고민할 것이고 <파인> 역시 그 길을 택했다. 관석이 열길 낭떠러지와 불구덩이 속에서도 살아난 불사조란 점이 좀 아쉬웠지만 어쩌겠는가. 그가 주인공이고 옆 동네 마블 캐릭터 날아다니는 여기는 디즈니인 것을. 골동상 3인방 중 부표를 잡고 끈질기게 둥둥 떠 있던 김교수도 캐릭터상 부활할 확률이 백 퍼센트. 이 난리 북새통 지옥 속에서 살아 돌아온 촌뜨기들은 이제 시즌 2에서는 좀 세련되어지려나? 77년 신안 앞바다 유물 도굴사건은 한국의 수중고고학과 매장 문화재 발굴 정책에도 큰 역사적 영향을 미쳤고 50년 뒤 이렇게 OTT 콘텐츠가 되어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시즌 2는 바다가 아니라 경주에서 시작되는 것을 보여준 쿠키 영상은 <파인> 시리즈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세상은 넓고 보물을 노리는 촌뜨기들은 넘쳐날지니, <파인>은 지속 가능한 콘텐츠로서 꽤 쓸만한 이야기 보물을 발굴해내지 않았나 싶다.
영화 <좀비딸>의 기세가 무섭다. 개봉 첫날 관객 수는 43만 명. 오랜만에 가족영화를 보러 아이들과 함께 온 아빠, 엄마들로 극장은 북적이고 스산했던 멀티플렉스 공간은 활기가 넘쳤다. 현재 파죽지세인 예매 스코어는 좀비 아빠 조정석이 미션 임파서블 톰 크루즈를 눌렀다는 기사부터 오랜만에 터진 극장가 티켓 파워와 시너지 넘치는 배우들, 좀비딸 재매개 현상에 대한 분석이 쏟아진다. 7월 26일 열린 부산 센텀시티 무대인사에서는 꼬마 관객들이 좀비딸 역의 최유리 배우를 보고 손 흔들며 '언니, 너무 보고 싶었다'라는 친근감을 표현하고 밤순 할매 역을 맡은 이정은에게도 멋지다는 찬사가 쏟아질 정도로 출연 배우들의 즉석 팬 미팅 같은 현장이 펼쳐지기도 했다. 아빠 역의 조정석은 300만이 넘으면 지금 최고 유행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소다 팝 챌린지 댄스 공약을 걸기도 했는데 머지않아 곧 정석 버전의 댄스를 보게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1차 가공된 원작에 대한 인지도, 원작 내용에 최대한 충실한 각색, 원작 캐릭터와 이질감이 없는 친숙한 싱크로율, 2D인 웹툰이 3D로 영상화될 때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을 지키면서도 2차 IP로서 수많은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는 <좀비딸>의 흥행 요인은 뭘까? 첫째는 원작에 충실한 각색이다. <좀비딸>의 개그 포인트를 유지하면서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잘 재현했다는 점인데 틀니 할머니 좀비라든지 밤순 할매의 효자손 개인기 같은 기존의 웹툰 팬들이라면 재밌게 본 장면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해 원작을 연상시키는 만족도를 선사한다. 작가 이윤창은 기존 작품 '타임인 조선','오즈랜드'에서 외계인이나 잔다르크 같은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이 시공을 초월해 겪는 판타지 서사를 써왔는데 좀비딸 역시 '내 딸이 좀비가 되었다면?'이라는 매직 이프의 법칙에서 출발한다. 좀비가 되어버린 딸을 퇴치할 것인지, 길들일 것인지. 정환은 윤리적 갈림길에서 고민하지 않고 후자를 선택한다. 기존 좀비물이 집단의 공포에서 집안 내부라는 제한된 개인 공간으로 옮겨오면서 좀비딸은 밝고 명랑한 코믹물이 되고 영화는 살짝 어둡게 느껴지는 원작의 사회 비판 메시지를 걷어낸 대신 정환과 수아의 관계와 소통에 집중한다. 정환을 번역 작가가 아닌 맹수 조련사라는 직관적인 직업으로 설정해 좀비딸을 길들이는 당위성을 부여하고 원작에 등장하는 연화와 러브라인, 동배와 밤순 할매의 역할을 과감히 축소한 대신 수아가 좀비라는 야수성을 어떻게 스스로 조절하고 기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비중을 할애해서 이야기가 곁가지로 뻗어나가는 것을 차단한다. 그러다 보니 원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신의 딸을 죽인 이장이나 고양이 애용이의 활약이 영화에서 사라진 점이 아쉽다. 아마 애용이의 팬들은 이점을 굉장히 아쉬워할 듯하다. 혼자 상추쌈을 싸 먹거나 119에 전화해서 신고까지 하는 똑똑한 고양이는 영화에서 사라졌지만 쩍벌묘 고양이의 잔잔한 개인기는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애용이의 존재감을 부각한다. ※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 원작과 가장 큰 차이점은 결말에 있다. 정환이 스스로 수아에게 물려 죽음에 이른 원작의 숭고한 희생과 달리 영화는 딸도 살고 정환도 살게 되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그런 선택으로 가기 위해 공적 시스템에서 희생당하는 개인, 보호받지 못한 개인, 버림과 유기가 만연한 사회 풍조, 좀비지만 수아의 친부를 죽인 살인에 대한 정당성과 같은 원작이 제기했던 사회적 문제들은 사라지고 단순히 따뜻한 파스텔톤 좀비 동화로 마무리된 점은 아쉽지만, 영화가 결국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판타지라는 점에서 어쩌면 대중이 원했던 결말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포인트는 원작과 싱크로율 높은 배우들의 캐스팅과 연기. 이미 딸 바보로 알려진 조정석의 현실 연기와 핏줄 서는 좀비 분장을 하고 동작, 표정까지 복합적인 역할을 맡은 신예 최유리의 부녀 케미가 찰떡궁합이다. 거기에 <중증외상센터>로 터블리(터프한데 귀여운) 조연의 획을 그은 윤경호의 귀엽고도 소심한 동배 연기와 좀비를 때려잡는 강단도 있지만 허당기도 있는 조여정까지 합세해 그야말로 배우들의 코믹 연기를 보는 재미가 탄탄하니, 웹툰 원작 영상화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캐스팅은 성공적이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좀비딸>이 원작의 사회비판적 메시지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마주한 인간 군상들에 대한 성찰이 많이 희석된 점은 아쉽지만, 늘 피 튀기던 K-좀비물이 무조건 괴물이 된 타자를 낯설게 보고 퇴치하던 구별 짓기에서 벗어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품어나간다는 이야기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며 난해한 이야기에 지친 대중에게 '저런 사랑도 있을 수 있겠구나,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생각하게 만들고, 신파를 넘어 결국은 사랑의 힘이라는 보편성의 진리를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좀비딸>이 개봉 첫 주의 입소문으로 흥행하며 얼마나 뒷심을 발휘할지 더 지켜봐야겠지만, 웹툰 원작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차원에서 본다면 장르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콘텐츠 수용자들의 욕망을 잘 읽은 사례가 될 것 같다. 실제로 이 팍팍한 현실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나의 소중한 존재를 오롯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좀비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정환이 써 내려간 정답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말하고 싶었던 대답일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혼자 두지 않는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도대체 라부부가 뭐길래 난리지? 털북숭이 키링을 주렁주렁 가방에 달고 다니고 싶어도 나만 없는 라부부. '남들 다하는 건 절대 안 하지'라고 외쳤지만 좀 귀엽긴 하네. 리셀과 재테크 논리를 펼치며 죽어라 손가락으로 새빨간 앱을 새로 고침 하게 만든 피규어 시장 워너비 아이템이 된 캐릭터 라부부. 4주째 전 세계 넷플릭스 인기 TOP 10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호랑이 캐릭터 더피 역시 영상을 본 팬들이 국립중앙박물관 굿즈샵을 다 털어버릴 기세로 몰려오는 바람에 두 번의 재입고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만에 동이 나 버렸다. 7월 한 달을 뜨겁게 달군 두 개의 캐릭터, 라부부와 더피. 정체는 토끼귀를 가진 요괴와 까치 호랑이. 불티나게 팔린 캐릭터 속에는 스토리텔링이 숨어 있었고 그 스토리텔링에 마음을 빼앗긴 팬들은 캐릭터 IP 산업을 움직이는 엄청난 콘텐츠 파워를 만들어내고 있다. 라부부 캐릭터의 몬스터적 환상성과 상상력 7월 11일 이른바 카카오 대첩. 세 번의 구매 타임을 미리 공지하고 요즘 MZ세대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나에게 선물하기 작전은 대성공. 아이돌 그룹 피켓팅을 방불케 했던 구매 대란은 수천 명 대기 번호를 뚫고 들어갔어도 결제에 실패하는 난리 북새통 끝에 성공했다는 후기들이 인터넷에 올라왔고 곧바로 기존의 상품까지 적게는 3배에서 40배에 이르는 리셀가로 중고 거래 앱에 올라오기도 했다. 왜 이렇게 갑자기 라부부 캐릭터가 인기를 끌게 됐을까? 홍콩 출신 디자이너 카싱룽이 만든 라부부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 엘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캐릭터다. 요정이 가진 신비로운 매력 대신 라부부는 아홉 개의 상어 이빨, 귀염뽀짝한 손톱과 발톱, 장난기 가득한 큰 눈에 토끼 귀를 가진 몬스터다. 한마디로 정체를 규정지을 수 없는 하이브리드한 존재이자 친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지닌 캐릭터다. 귀엽지만 순둥순둥하지만은 않고 호기심 가득한 엉뚱한 매력의 존재, 괴물이지만 소원을 이루어 줄 것 같은 21세기 MZ세대들의 새로운 부적이 된 것이다. 최근 발매된 몬스터 시리즈는 '빅 인투 에너지'란 이름으로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행운이, 희망이, 충성이, 평온이... 북유럽 엘프가 변형되어 친숙한 장난꾸러기 몬스터가 되어 아시아를 사로잡고 있다. 우리에겐 어피치나 춘식이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지만 개별 캐릭터가 독자적인 세계관 안에서 지속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것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처음엔 일본과 디즈니의 라이선스 캐릭터 위주로 생산하던 팝마트가 어느 순간 꾸준히 자국과 아시아권의 젊은 아트토이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컬래버레이션하면서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시장을 개척한 것도 성공 이유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팝마트의 뉴 아이템 정도로만 취급받던 라부부가 갑자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블랙핑크 리사와 로제의 애장품인 것이 SNS를 통해 알려지고 셀럽들이 명품 가방에 착용한 사진이 퍼지면서부터다. MZ세대들을 중심으로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최근 중국에서 2억 5천만 원 경매가에 낙찰된 사실 또한 희귀성과 인지도를 올렸다. 좋아하는 대상이 선호하는 아이템을 소유함으로써 애착의 대상과 동일시되는 심리적 현상, 피규어 콜렉터들의 수집 욕구, 확장성 있는 스토리텔링을 가진 아이템으로서 소장 가치, 캐릭터가 가진 귀여움 선호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팬덤이 생겨났다. 다시 말해 라부부 신드롬이 만들어진 것인데 이러한 현상은 그들이 표방하는 세계관과 맞물려 꾸준한 덕후를 양산해 낸다. 장난기 가득한 라부부의 눈을 보고 아이러니하게도 70년대 못난이 인형 시리즈가 생각났다. 서양 문화의 동경을 담아 탄생한 일본의 아기 인형 큐피,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 미의 기준을 풍자한 한국의 못난이 인형, 그리고 베이비 붐을 지나 고소득 맞벌이 난임 부부들의 희망이었을 80년대 미국의 양배추 인형. 어쩌면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장난감들은 그 시대상과 문화를 담고 유행은 돌고 돈다. 귀여움, 가와이 문화는 영원하다?! 귀여움이 가진 본질은 나보다 그 대상이 연약하거나 보호본능을 자극함에 있다. 어린아이, 동물, 쉽게 접하지 못하는 존재 같은 귀여움의 대상을 상상해 보라. 순수하고도 무결한 존재들이 대부분이다. 귀여움 속에는 그것을 바라보는 객체를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고 덩달아 그 존재로 하여금 힐링되며 편안해지는 에너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그 내면에는 보호해야 할 존재에 대한 측은지심이 작동한다. 2024년 4월 한국을 강타했던 푸바오 열풍을 떠올려보라. 엄마 아이바오와 떨어져 본국으로 돌아간, 코로나 직후 태어나 전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털북숭이 판다곰 한 마리가 남긴 것들을. 일본은 우리보다 가와이 문화가 더 일찍 태동했고 발전했다. 지금은 중국의 팝마트에 기세를 빼앗긴 듯하지만 귀여움의 원조는 일본의 산리오다. 헬로우 키티와 마이 멜로디부터 시작해 시나모롤 등. 일본은 지자체 캐릭터인 유루카라 그랑프리 출신 쿠마몬도 귀여움을 어필한다. 일본 피규어 시장에서 반다이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메디콤 토이의 베어브릭 역시 한정판 발매와 랜덤 뽑기 방식으로 팝마트 시리즈들이 추구하는 귀여움과 희소성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귀여움을 동경하는 문화는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유효하다. 귀여움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어쩌면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자 생명을 지닌 존재들이 가진 최고의 무기가 아닐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 씬 스틸러 까치 호랑이 더피와 서씨 넷플릭스에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케이팝 걸그룹이 귀신 사냥꾼으로 활약한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애니메이션인데 웰메이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있다. 바로 한국 케이팝을 배경으로 아주 디테일한 요소들이 잘 구현됐다는 점이다. 배경부터 공연장인 한국의 남산 타워, 데이트 장면은 한국의 옛 성터, 그리고 진우와 루미를 연결해 주는 메신저로 등장하는 푸른빛의 호랑이 '더피'의 인기가 주인공 못지않게 폭발적이다. 사진 : 넷플릭스 더피는 호랑이기도 하지만 전설 속의 동물인 해태(해치)의 모습과도 닮았다. 더피는 머리 위에 까치 서씨를 얹고 다닌다. 민화 속의 호랑이와 까치는 대립적 성격이 강했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둘의 존재는 파트너십이다. 서씨는 더피의 갓을 뺏아 쓴 눈이 3개인 까치인데 재미있는 점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전통 모자인 갓에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의 갓이 이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2019년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부터다. 조선시대 좀비 드라마를 보면서 외국인들은 주인공들이 썼던 다양한 전통 모자에 관심을 가졌고 갓을 기념 굿즈로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더피는 처음 본 루미에게 다가가 고양이처럼 머리를 부비기도 하고 진우의 편지를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지만 실수로 넘어뜨린 것을 바로 세우려는 집착도 보여줘 웃음을 안긴다. 이런 귀여움의 캐릭터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디테일의 승리. 귀여운 더피와 엉뚱한 서씨의 임팩트 강렬한 출현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팬들은 한국의 호작도에서 탄생한 더피 캐릭터 인형을 만들어달라고 제작사에 요청하고 넷플릭스에서는 기념품으로 만든 굿즈를 고가에 판매하고 있다니, 요즘은 잘 만든 작품 속 캐릭터 IP가 팬덤을 양산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 됐든 한국의 까치 호랑이 민화에서 귀여운 더피와 서씨가 탄생하고 이러한 상상력이 사랑받는 캐릭터가 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애정과 애착이 탄생시킨 캐릭터는 무럭무럭 자라 새로운 콘텐츠 IP로 성장한다. 인간의 상상력과 환상성을 양식 삼아 기분 좋은 귀여움의 문화를 선사하는 이토록 친밀한 존재들, 주위를 둘러본다면 우리와 친해지고 싶은 요괴들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오빠들이 돌아왔다, 5월의 산들바람과 함께. 이 세 명의 쓰리샷이 무대 위에서 함께 노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중년의 X세대 입장에서는 눈물 나게 반가운 일이다. 윤상, 김현철, 이현우.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뮤지션 세 명이 함께 음원을 내고 전국투어를 한다니. 오 마이 갓. 만사 제치고 이건 꼭 가야 해! 미디어에서 우리는 왜 90년대를 그리워하는가에 대한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 <90년대생들이 온다>라는 책 제목처럼 직장에선 90년대생들과 MZ세대에게 치이고 집에서는 퉁퉁거리는 GenZ와 매일 북새통 속에서 사는 입장에서 이들의 귀환이 유독 반가울 수밖에. '엄마도 니들처럼 좋아했던 오빠들 있었거든, 니들이 이 환상의 트로이카를 알기나 해?' 요즘 아이들에겐 <복면가왕>에 나와 앉아 있는 라이즈 앤톤의 아빠로, 심야 라디오 디스크 쇼의 DJ로, 드라마에서 실장님 담당이던 미식가 출신 배우로 알고 있는 이 오빠들을 어찌 설명해 주랴, 지금 아이돌급 인기는 저리 가라 할 만큼 당대 최고였던 김현철, 윤상, 이현우.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OTT도 없던 그 시절, 본격적 아이돌 1세대가 등장한 90년대 중후반 이전에 이미 우리의 아이돌이었고 우리의 슈퍼스타였던 에지 있고 스타일리시했던 이들을. 교회 오빠 김현철, 화실 오빠 윤상, 그리고 미국 오빠 이현우. 이사 갈 때마다 절대 버리지 않고 싸 들고 다녔던 보물 1호 레코드판 속에서 바삭거리는 비닐을 벗기고 턴테이블에 올려본다. 이게 얼마 만이야. 예능 프로에서의 모습 말고 90년대 진짜 내 '취향저격'이었던 이들의 노래를 들으러 출격 준비. X세대가 함께 열광한 무대 : 그래, 이게 바로 90년대 '갬성'이라니까. 쇼케이스와 뮤지컬 공연이 자주 열리는 도심 한복판 1,4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그들의 무대가 펼쳐졌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5월의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길게 늘어선 중년의 팬들은 우산을 쓰고 삼삼오오 행복한 얼굴들이었다. 결혼식장 꽃길처럼 꾸며놓은 공연 배너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90년대 여학생들로 돌아간 얼굴이었다. 남자 팬들도 꽤 많이 보였는데 아내와 함께 오거나 남자 팬클럽 멤버들끼리 온 조합도 눈에 띄었다. 90년대 내가 유일하게 돈 주고 샀던 LP의 주인공이라거나, 늘어지게 들었던 테이프가 아직도 서랍 속에 있다거나, 중고 사이트에서 이들의 음반과 테이프를 어렵게 구했다는 X세대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태생적으로 덕후 DNA가 풍부한 필자 역시 90년대 20대가 된 뒤론 잠시 덕질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10대 소녀가 대학생이 되고 취직하고 IMF를 겪고 그리고 결혼하고... <응답하라 1994>의 나정이처럼 바삐 살며 잠시 접어두었던 덕질 유전자는 또 한 번의 인생 최대 위기였던 코로나를 만나며 내 안에서 터져 나왔다. 전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트로트 프로그램의 한 가수를 응원하며 삶의 평안을 되찾았고 덕질이 삶의 활력소임을 깨달았건만 이 트로트 스타의 하늘을 찌르는 아이돌급 인기에 공연 티켓팅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피켓팅을 치르다 보니 몇 년간 단련된 손가락 실력으로 어느새 1열의 포도알(R석 좌석)을 꼭 부여잡고 있었다. 하하... 1열 센터라니. 그래, 오랜만에 레전드 무대를 보러 가는데 1열 정도는 돼야지! 지근거리에서 제대로 감상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설렜다. 콘서트의 시작은 'A Breeze of Memories', 이번 콘서트를 위해 김현철과 윤상이 함께 작곡했고 이현우와 김현철이 사이좋게 작사했다. 그런데 곡 초반에 전주가 흘러나오고 윤상의 보컬을 거쳐, 이현우가 관객석을 보고 감격했는지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자신의 파트를 놓쳤고 라이브로 황급하게 부르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 또한 라이브 콘서트의 묘미인지라 관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를 두고 김현철은 이 영상을 찍으신 분이 계시면 제발 널리 퍼뜨려 달라면서 두고두고 놀렸다. 세 사람의 합은 그만큼 오래된 세월이 있기에 가능했던 장면이었다. 그 덕에 관객들도 즐거워하며 이들의 조합이 가져다주는 반가움과 신선함,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 Goodies)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이들의 공연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단순히 90년대 가요사를 추억하는 뮤지션들의 합동 무대가 아니라 현재도 이들의 음악 여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Breeze of Memory'의 가사처럼 추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작고도 큰 모든 것들이 하루하루 모여서 미래의 바람으로 우리에게 불어올 것임을 알기에. 김현철 공식 유튜브 채널 'A Breeze of Memories' 이현우의 재발견, 윤상의 나이테, 윤활유 김현철, 최고의 세션팀 자신의 순서에 나와 노래만 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김현철이 노래할 때 윤상이 건반을 연주하고 이현우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할 때는 또 연주와 코러스를 해주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함께 즐기는 모습, 그리고 가수도 뮤지션도, 아티스트로서 그들을 사랑했던 관객들과 함께 중년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 시간 속에서 팬도 가수도 그 모든 게 함께 어우러진 무대였다. 기타, 베이스, 건반과 드럼 모두 이들과 오랜 시간 공연을 해왔던 최고의 세션 팀과 뮤지션들이 함께하기에 귀가 즐겁다. 김현철은 라디오 DJ를 하면서 음악 작업을 하고 윤상 역시 후배 양성을 하면서 실험적인 음악을 해온 프로듀서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그에 비해 이현우는 배우로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까닭에 가수로서의 진가를 발견하기 힘들었다면, 이번 기회에 파워풀하고 리듬감 폭발하는 이현우의 락킹한 무대를 만나볼 수 있다. 레게풍의 'My Way'나 발라드 '비가 와요', 한대수 원곡의 '행복의 나라로' 무대는 맏형이지만 폭발적인 에너지와 무대 매너를 보여준 이현우의 재발견이었다. 이 공연의 백미는 마지막 무대. '이별의 그늘'을 불러주지 않아서 앙코르곡으로 아껴두었나 싶었는데 불이 꺼지고 음악이 흐른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윤상의 무대, 마치 구도자처럼 두 손을 꼭 모으고 경건하고도 진지하게 지금까지 걸어온 음악의 나이테를 보여주는 윤상의 무대는 그야말로 다시 못 볼 명장면이다. '달의 몰락'이나 '왜 그래'로 신나는 무대를 만들고 윤활유처럼 이 셋을 연결하는 김현철의 매끄러운 진행 속에서 마지막으로 김현철이 만들고 윤상이 피처링한 곡 '사랑하오'를 셋이 함께 부르며 마무리된 이들의 무대. 레전드는 역시 레전드로 남을 만하다. 프로듀서로서의 모습도 좋지만 이들이 노래하는 무대가 가끔은 이렇게 우리 세대를 찾아와 다독여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낡은 테이프, 레코드판에서 발견한 쪽지, 그 청춘의 기억 : 여전히 사랑하오. 이 세 명의 인연의 접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이현우의 1집을 작업한 윤상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며 서로의 존재를 알아본 김현철과 윤상. 1980년대 말 한강 이남 천재 뮤지션이 김현철이라면 강북을 주름잡은 천재 뮤지션은 윤상이란 말이 있었듯 데뷔 후 이들은 활발하게 활동하며 유학도 가고 잠시 음악을 접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색을 찾아갔다. 2000년대 초반 윤종신을 포함한 노총각 뮤지션 4인방은 '사색동화'라는 앨범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모두 결혼을 했고 약속이나 한 듯 셋 다 두 아들의 아빠가 되었다. 지금의 K-POP 아이돌처럼 뜨겁고 빠른 속도로 달구어지는 팬 문화는 아니지만, 1990년대 우리의 사랑은 서툴고 느렸지만 따뜻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금은 '아재'가 된 오빠들도 자신들만의 속도로 느긋하게, 찬찬히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걸어왔기에 지금은 음악계 수많은 후배에게 '뮤지션의 뮤지션'이라는 헌사와 존경을 받는 대선배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잠시나마 1990년대 동네 레코드 가게에 LP를 사러 가던 방송반 열일곱 살 여고생으로 타임머신을 태워준 산들바람에게 감사한다. 63빌딩에서 열렸던 콘서트와 뮤직라이프, 하이틴 잡지, MBC 정동 사옥의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 80년대가 저물며 한국의 대중문화가 활짝 꽃피던 90년대 혜성처럼 등장했던 분위기 있던 세 명의 오빠들의 보여준 세련된 음악의 클래스는 여전하다. 이들의 음악은 인스턴트와는 급이 다른 위엄이 있다. 동시대를 살았던 뮤지션과 세월을 맞으며 나이 들어간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행복했던 두 시간 반의 공연. 산들바람에 실려온 청춘, 우리 거기서 다시 만나. 그대, 여전히 사랑하오. 인생은 그렇게 흐른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AI 시대, 생성형 AI 시스템을 활용한 영화들이 다양한 경로로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다. 정교하고 리얼한 표현, 미학적 미장센을 극대화한 스케일로 뛰어난 몰입감을 주는 영화부터 아직은 표현 기법과 스토리텔링이 아쉽게 느껴지는 영화까지 AI를 활용한 영상 스토리텔링은 계속 진화 중이다. AI 영화가 이렇게 주목을 받는 시대가 되다 보니 가장 재빠르게 반응하는 것은 국내외 영화제들이다. 해외에서도 영화제 경쟁 부문에 AI 섹션을 신설하거나 아예 독립적인 AI 영화제를 출범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경기도와 부산이 일찌감치 AI 영화제에 뛰어들었다. 경기콘텐츠진흥원이 AI 영화제라는 명칭을 사용하자('대한민국AI국제영화제') 부산은 동일 명칭을 사용할 수 없기에 '부산국제인공지능영화제'를 창설했다. 올해 두 번째 개최되는 두 개의 국제인공지능영화제에서는 상상 그 너머의 이야기들이 또 어떻게 후이늠(걸리버 여행기의 네 번째 여행지인 이상향의 나라)이라는 판타지를 펼쳐놓을지 상상해 본다. 12년 전 영화 <그녀>가 알려준 기계와 인간의 감정 인간과 인공지능과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영화 속 소재로 등장한 계기는 컴퓨터 운영체계인 OS 시스템과 외로운 도시인이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사랑을 나눈다는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가 아닐까 싶다. 흥미로운 건 <그녀>의 시간적 배경이 제작 당시의 12년 뒤였던 바로 지금, 2025년이라는 사실이다. 영화처럼 2025년을 사는 우리는 <그녀>에서 그려진 인공지능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교류하는 시대를 살고 있을까. 시스템과 사랑을 속삭이는 스토리는 이제 인공지능의 고전 텍스트가 돼버렸지만 그 후 수많은 OTT 콘텐츠 속에서 tvN <욘더>처럼 인공지능을 이용해 나의 사후세계를 설계하고 영화 <원더랜드>에서 나의 장례식장에서 웃으며 조문객을 맞을 수 있는, 사자(死者)와 감성적인 연결을 할 수 있는 세상을 그린 판타지 스토리텔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CJ ENM이 제작한 AI 영화 <M호텔>은 노인, 소년, 바이킹 근육질 전사, 미소녀 등 다양한 캐릭터의 표현과 게임을 보는 듯한 몰입감으로 한층 자연스러워진 영상미와 더불어 그동안 아쉽거나 부족하게 느껴지던 극의 스토리텔링도 비교적 만족시킨 6분 30초 길이의 영화다. 우연히 주운 호텔 열쇠로 하룻밤 투숙하는 고급 호텔 방에서 자신의 전생을 모두 만나본다는 판타지 서사는 과거 표현력에만 치우쳐 완성도 면에서 떨어졌던 AI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확실히 진일보한 느낌이다. 그중 작년에 제작되어 공개된 AI 영화 중에서 눈에 띄는 건 독특한 역사 판타지 AI 영화 <걸리버 율도국 여행기>다. AI로 재탄생한 <걸리버 율도국 이야기> : 고전과 상상력의 결합 우리에게 익숙한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 대인국 이야기지만 그 후 3, 4부인 라퓨타와 후이늠은 그 당시 파격적으로 작가가 살던 영국의 현실 비판과 함께 걸리버가 당도한 환상적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걸리버가 만약 국내에 표류하게 되고 그곳이 홍길동이 세운 이상 국가 율도국이었다면? 이 내용은 이미 <걸리버 유람기>라는 소설을 발표한 김연수 작가에 의해 세상에 나온 바 있다. 그 소설 속 율도국에 표류한 '걸리버 여행기'를 재해석해 홍길동과 걸리버의 만남, 그들이 함께 이상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스토리텔링하고 AI 영화로 만든 건 고려대학교 박진호 연구교수와 학생들, 그리고 고려대학교 출신의 AIMZ Media의 소휘수 대표다. 그동안 AI 영화의 주된 소재가 SF, 디스토피아 미래와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 대부분이었지만 인문학, 응용과학 전공자들은 AI 영화의 소재와 스토리텔링을 역사 판타지로 확장해 동서양 소설 속 걸리버와 홍길동의 만남을 판타지 영화로 완성했다. 16분간의 러닝타임 동안 동서양이 바라보는 이상향 유토피아, '율도이즘'으로 대표되는 평화와 평등의 가치, 이 시대 진정한 지도자의 자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과 메시지도 들어있다. 역사 속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 듯 <걸리버 율도국 이야기> 전반부는 지는 석양처럼 전반적인 색감 자체가 따뜻하고 온화하다. 자신을 구해준 율도국 사람들을 위해 걸리버가 나무와 도르래를 사용해 서양에서 쓰는 승강기를 만들어 보답하는 장면은 21세기 도나 해러웨이가 주장한 심포이에시스(Sympoiesis), 공산(共産)의 개념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전반부 평화로운 여행자 걸리버와 지도자 홍길동의 만남에서는 문화재 디지털 복원가로서 활동했던 박진호 감독의 경험과 전문성으로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이 영상으로 재현됐다. 실제로 15~17세기에 중국, 인도와의 무역을 통해 막강한 부를 축적했던 태국의 아유타야를 금빛 왕국으로 묘사한 장면은 문화재 복원가의 실제 고증을 바탕으로 현실감 있는 환상성을 완성한다. 후반부에 들어서며 일본의 와타나베가 평화를 깨고 율도국을 침략하는 스펙터클 전투 씬은 역동성이 부족하고 아쉬운 장면도 눈에 띄지만, 꽤 긴 16분이란 러닝 타임이 끌고 간 서사의 완결성 대비 AI의 기술적 표현 부분의 부족함은 상쇄되는 느낌이다. 그 외에도 아쉬운 점은 보인다. AI가 생성한 동일 인물들은 배경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고 있어 몰입이 안 되는 몇몇 장면들도 있고 걸리버 같은 경우 조각같이 수려한 외모로 인해 조금은 인간미가 떨어지는 느낌도 든다. 전 세계 모든 잘생긴 배우의 장점만을 조합한 듯한, AI가 완성한 걸리버의 완벽한 얼굴은 일본 장수 와타나베에게도 적용된다. 개성 있는 얼굴을 창조하려면, AI에게도 선택하는 안목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런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AI 영화 <걸리버 율도국 여행기>는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걸리버가 돌아간 이후에, 홍길동이 지도자로서 그렇게 떠난 이후에 율도국은 어떻게 됐을까. 제대로 된 지도자와 함께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 율도국은 우리가 만날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이상향이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간절하게 꿈꾸는 이상향일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AI가 만들어낸 그 찬란하고 따뜻한 공간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강력하게 염원하고 있는 욕망을 담은 판타지 서사가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율도국 이야기>가 걸리버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또 홍길동의 죽음 이후에 그의 뒤를 이은 지도자가 나타났기를, <율도국 이야기> 시즌2를 기대해 본다. 판타지는 계속되어야 한다. 상상력을 이뤄주는 황금열쇠 되려면 탄탄한 스토리텔링 우선 AI 영화는 지금 시점에서 판타지, 대형 스케일의 전투, 전쟁, 천재지변 등의 장면들을 연출하는 데 비용 절감을 할 수 있는 선택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그 리얼함과 정교함 사이, 인간의 온기가 들어간 연출과의 간극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도깨비방망이가 뚝딱 만들어준 결과물이 내는 광채와 화려함에 순간 혹할 수 있지만 인간이 공들여 만든 작업물과의 괴리감과 이질감을 앞으로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지가 AI 영화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영상의 표현미는 그렇다 치고, 마지막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스토리는 식상함을 넘어서, 종국에 사람들에게 감동의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의지를 선물한다. 결국 AI 영화로 우리는 수많은 제약에서 벗어나 더 많은 판타지를 만나겠지만 그 판타지 역시 공중에 붕 뜬 불안한 비행이 아닌, 현실에 제대로 착지할 수 있는 안전함을 갖춘 탄탄한 토대의 스토리텔링 서사를 갖추고 있어야 함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발전한 AI 기술이 다양함을 제공하는 판타스틱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탄탄한 이야기와 감동을 찾는 호모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사람)의 속성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 박진호 감독, CJ ENM 제공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여기저기 <폭싹 속았수다>의 이야기가 봄날 제주 유채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스러진다. 누군가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너무 내 얘기 같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다시 그만두었던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정치적 혼란함으로 어지러운 시국에 들과 산으로 번진 불길이 할퀴고 간 상처에 끝도 없이 속이 타 내려갈 즈음 조용히 시작된 그 제주의 이야기는 그렇게 사람들 가슴 속에 번져갔다. <폭싹 속았수다>는 과연 모두를 구원한 드라마일까?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대 불문 공감의 서사를 펼친 것은 확실해 보인다. 20대들은 학씨 아저씨나 은명이처럼 인정받지 못한 설움과 인생의 페이소스에 열광했고 50대는 IMF를 겪으며 살아온 금명의 이야기에, 6,70대는 가난과 가족의 굴레 속에서 자신을 희생해야 했던 애순을 보며 몰입하고 빠져들었다. 그렇게 살면 살아졌던 시간을 버텨온 이들을 위한 이야기에 우리 모두의 봄이 노오란 유채꽃처럼 팔랑이며 너울너울 스며든다. <폭싹 속았수다>의 세계관 : 청춘의 낙서가 시집이 되었다 임상춘 작가가 새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도대체 이 세계를 창작해 낸 작가의 정체가 밑도 끝도 없이 궁금해진다. 생각할 상(想)에 넉넉할 춘(賰)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 이름처럼 그녀가 창조해 낸 세계는 늘 너울거리듯 넉넉하다. 세파에 찌든 사람들에게 마음껏 울 수 있는 물꼬를 틀어주고 뒤돌아서 '그래,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에 감사해야지'라는 훈계 대신 따뜻한 용기와 포근한 도닥임을 선사하는 의문의 크리에이터. <동백꽃 필 무렵>에서는 옹산, <쌈마이웨이>에서는 호천마을이라는 공간을 통해 특별한 로컬리티를 보여주더니 이제 제주 여인 3대의 서사를 통해 엄마와 딸, 손녀의 이야기를 이렇게 그려낼 줄이야... 가족이라는 연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딸과 엄마로 이어지는 거대한 서사는 재미교포 2세대인 이민진 작가도 <파친코>에서 깊이 다루지 못했던 부분이다. 영도와 일본, 미국이라는 공간을 부유하는 한인들의 디아스포라를 다뤘던 <파친코>와 다르게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 뿌리 내린 여인들의 삶을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 안에서 그려냈기에 더 의미 있다. 생존을 위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야 했던 여인들, 살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아이를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그렇게 "살민 살아진다"며 꾸역꾸역 살아냈던 그들에게 바치는 감사와 존경. 그렇게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 누이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관객은 공감하고 눈물을 흘린다. 성공한 영상 콘텐츠에는 보편성의 진리가 들어있다. 효와 정, 믿음과 의리.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타이밍에서 사람들은 감동한다. 매섭게 몰아친 인생이라는 폭우를 건너고 건너온 모든 이들에게 손 내미는 따뜻한 스토리. 이들이 썼던 청춘의 낙서가 일기장이 되고 다시 시집이 되어 모두의 가슴을 적시는 것, <폭싹 속았수다>의 세계관이자 미덕이다. 학씨 아저씨가 알려준 잊고 있던 울 아버지의 모습 <폭싹 속았수다>의 화제성에는 조연들의 연기도 한몫했다. <미생>과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과 임상춘 작가가 찾아낸 보석 같은 조연들의 연기는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 부산으로 야반도주한 관식과 애순이 묵던 여관 주인으로 얄미울 만큼 실감연기를 보여주던 강말금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신인상을 휩쓴 배우고, 80년대 패션과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하며 금명에게 딸의 대리시험을 제안하던 김금순도 독립영화계에선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배우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은 학씨 아저씨 부상길 역의 최대훈은 전형적인 악역이 아닌 연민을 자아내는 중년과 노년에 이르는 남자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엄마들의 옆에서 살아온 아버지의 삶은 어떠한가. 허세 가득하고 때론 모질도록 폭력을 휘두르던 그 역시 정에 목마른 인간이었음을,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할아버지가 된 남자의 슬픈 뒷모습에 담긴 부상길이란 캐릭터는 잊고 있던 내 아버지에 대한 상념에 젖게 만든다. 부상길이 황혼 이혼 후 서툴지만 조금씩 그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 영란과 자전거를 타며 바닷길을 달리는 장면이나 자식에게 선물 받은 관식의 신발을 신어보고 편하다며 달리는 모습에서 느끼게 된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찰랑이고 있는, 고여있는 우물처럼 깊은 삶의 아픔과 깊이. 부상길을 보며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던 건 왜일까. 관식이처럼 다정하고 지고지순하며 희생적인 아버지 대신 자식에게, 아내에게 다가가는 법을 몰랐던 서툴고 거칠었던 아버지가 그곳에 있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지만 철이 들면 알게 된다는 것을, 나중에 엄마가 되고 그게 아버지의 표현법이란 것을 알게 된 현숙이는 아버지는 늘 소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엄마 영란에게 들려준다. 그 장면에서 늦은 밤 소파에서 자고 있던 아버지가 떠오른 것은 과연 나뿐이랴. 어쩌면 우리에게는 애순 같은 엄마도 있었지만 상길이 같은 아버지도 있었다는 것을. 금명이가 입에 달고 있던 '짜증 나'라는 표현은 실상 '미안해, 아빠 나도 사랑해'와 동의어였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삶은 작고도 크다, 그 고귀함에 대하여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문득 루시드폴 8집의 '모든 삶은 작고 크다' 가 떠올랐다. 그 어떤 삶도 소중하지 않은 게 있으랴. 척박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딸이 지어준 '개전복'이란 시 한편을 가슴에 품고 행복해하던 광례의 삶도, 야반도주해 가출한 아들 관식이를 찾자마자 금개구리의 행방부터 묻던 계옥이도, 사위를 곤경에 빠트린 사기꾼을 찾기 위해 자존심도 팽개쳤던 부상길의 인생도, 그렇게 오늘 하루 담벼락에 피어난 패랭이꽃처럼 소중하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 작고도 큰 삶, 크고 작은 모든 삶의 여정은 위대하다고 말해주는 이야기, <폭싹 속았수다>. 그렇게 정말 수고하며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살아온 모든 이들의 시간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 드라마에 담긴 두 가지 메시지는 정(情)과 고귀함이다. 애순이가 자신의 존재를, 해녀였던 엄마 광례를,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 준 관식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애순이의 시집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기에 애순의 딸 금명이 역시 자신을 귀하게 여겨준 충섭이를 찾았고 그 충섭의 엄마에게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충섭이의 엄마가 애순에게 말린 곶감을 보내며 손편지로 썼던 글, "저는 금명이가 그렇게도 예쁩니다". 아마도 수많은 K-며느리들의 눈물샘을 터트리게 한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었을 터, 세상의 그 얼마나 많은 딸들과 며느리가 이 말을 듣고 싶어 할까. 듣고 싶지만 듣기 어렵고 하고 싶지만 쉬이 하기 힘든 말. 그 안에는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긍휼히 여기는 태도가 들어있다. 사랑과 자비를 베푼다는 것. 처음에는 '왜 금명이와 애순이는 복도 많지, 남편 복이 참 많구나' 삐딱했다가 결국엔 깨달았다. 고귀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상대방을 높이고 귀한 사람으로 대해주어야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그 고귀함을 품고 작고도 큰 삶을 살아갈 때 귀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폭싹 속았수다>. 비평의 원칙은 대상 텍스트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논하는 것이건만 오늘의 취향저격은 무언가의 뼈를 바르며 해부하는 일 대신 되뇌어 본다. <폭싹 속았수다>가 가르쳐준 우리 삶의 작고도 큰 고귀함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