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방송작가로 활동, 경성대학교 글로컬문화학부에서 드라마와 웹툰 스토리텔링, 대중문화를 가르치고 연구한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K-콘텐츠에 심취해 있는 중.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여기저기 <폭싹 속았수다>의 이야기가 봄날 제주 유채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스러진다. 누군가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너무 내 얘기 같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다시 그만두었던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정치적 혼란함으로 어지러운 시국에 들과 산으로 번진 불길이 할퀴고 간 상처에 끝도 없이 속이 타 내려갈 즈음 조용히 시작된 그 제주의 이야기는 그렇게 사람들 가슴 속에 번져갔다. <폭싹 속았수다>는 과연 모두를 구원한 드라마일까?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대 불문 공감의 서사를 펼친 것은 확실해 보인다. 20대들은 학씨 아저씨나 은명이처럼 인정받지 못한 설움과 인생의 페이소스에 열광했고 50대는 IMF를 겪으며 살아온 금명의 이야기에, 6,70대는 가난과 가족의 굴레 속에서 자신을 희생해야 했던 애순을 보며 몰입하고 빠져들었다. 그렇게 살면 살아졌던 시간을 버텨온 이들을 위한 이야기에 우리 모두의 봄이 노오란 유채꽃처럼 팔랑이며 너울너울 스며든다. <폭싹 속았수다>의 세계관 : 청춘의 낙서가 시집이 되었다 임상춘 작가가 새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도대체 이 세계를 창작해 낸 작가의 정체가 밑도 끝도 없이 궁금해진다. 생각할 상(想)에 넉넉할 춘(賰)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 이름처럼 그녀가 창조해 낸 세계는 늘 너울거리듯 넉넉하다. 세파에 찌든 사람들에게 마음껏 울 수 있는 물꼬를 틀어주고 뒤돌아서 '그래,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에 감사해야지'라는 훈계 대신 따뜻한 용기와 포근한 도닥임을 선사하는 의문의 크리에이터. <동백꽃 필 무렵>에서는 옹산, <쌈마이웨이>에서는 호천마을이라는 공간을 통해 특별한 로컬리티를 보여주더니 이제 제주 여인 3대의 서사를 통해 엄마와 딸, 손녀의 이야기를 이렇게 그려낼 줄이야... 가족이라는 연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딸과 엄마로 이어지는 거대한 서사는 재미교포 2세대인 이민진 작가도 <파친코>에서 깊이 다루지 못했던 부분이다. 영도와 일본, 미국이라는 공간을 부유하는 한인들의 디아스포라를 다뤘던 <파친코>와 다르게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 뿌리 내린 여인들의 삶을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 안에서 그려냈기에 더 의미 있다. 생존을 위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야 했던 여인들, 살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아이를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그렇게 "살민 살아진다"며 꾸역꾸역 살아냈던 그들에게 바치는 감사와 존경. 그렇게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 누이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관객은 공감하고 눈물을 흘린다. 성공한 영상 콘텐츠에는 보편성의 진리가 들어있다. 효와 정, 믿음과 의리.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타이밍에서 사람들은 감동한다. 매섭게 몰아친 인생이라는 폭우를 건너고 건너온 모든 이들에게 손 내미는 따뜻한 스토리. 이들이 썼던 청춘의 낙서가 일기장이 되고 다시 시집이 되어 모두의 가슴을 적시는 것, <폭싹 속았수다>의 세계관이자 미덕이다. 학씨 아저씨가 알려준 잊고 있던 울 아버지의 모습 <폭싹 속았수다>의 화제성에는 조연들의 연기도 한몫했다. <미생>과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과 임상춘 작가가 찾아낸 보석 같은 조연들의 연기는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 부산으로 야반도주한 관식과 애순이 묵던 여관 주인으로 얄미울 만큼 실감연기를 보여주던 강말금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신인상을 휩쓴 배우고, 80년대 패션과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하며 금명에게 딸의 대리시험을 제안하던 김금순도 독립영화계에선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배우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은 학씨 아저씨 부상길 역의 최대훈은 전형적인 악역이 아닌 연민을 자아내는 중년과 노년에 이르는 남자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엄마들의 옆에서 살아온 아버지의 삶은 어떠한가. 허세 가득하고 때론 모질도록 폭력을 휘두르던 그 역시 정에 목마른 인간이었음을,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할아버지가 된 남자의 슬픈 뒷모습에 담긴 부상길이란 캐릭터는 잊고 있던 내 아버지에 대한 상념에 젖게 만든다. 부상길이 황혼 이혼 후 서툴지만 조금씩 그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 영란과 자전거를 타며 바닷길을 달리는 장면이나 자식에게 선물 받은 관식의 신발을 신어보고 편하다며 달리는 모습에서 느끼게 된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찰랑이고 있는, 고여있는 우물처럼 깊은 삶의 아픔과 깊이. 부상길을 보며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던 건 왜일까. 관식이처럼 다정하고 지고지순하며 희생적인 아버지 대신 자식에게, 아내에게 다가가는 법을 몰랐던 서툴고 거칠었던 아버지가 그곳에 있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지만 철이 들면 알게 된다는 것을, 나중에 엄마가 되고 그게 아버지의 표현법이란 것을 알게 된 현숙이는 아버지는 늘 소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엄마 영란에게 들려준다. 그 장면에서 늦은 밤 소파에서 자고 있던 아버지가 떠오른 것은 과연 나뿐이랴. 어쩌면 우리에게는 애순 같은 엄마도 있었지만 상길이 같은 아버지도 있었다는 것을. 금명이가 입에 달고 있던 '짜증 나'라는 표현은 실상 '미안해, 아빠 나도 사랑해'와 동의어였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삶은 작고도 크다, 그 고귀함에 대하여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문득 루시드폴 8집의 '모든 삶은 작고 크다' 가 떠올랐다. 그 어떤 삶도 소중하지 않은 게 있으랴. 척박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딸이 지어준 '개전복'이란 시 한편을 가슴에 품고 행복해하던 광례의 삶도, 야반도주해 가출한 아들 관식이를 찾자마자 금개구리의 행방부터 묻던 계옥이도, 사위를 곤경에 빠트린 사기꾼을 찾기 위해 자존심도 팽개쳤던 부상길의 인생도, 그렇게 오늘 하루 담벼락에 피어난 패랭이꽃처럼 소중하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 작고도 큰 삶, 크고 작은 모든 삶의 여정은 위대하다고 말해주는 이야기, <폭싹 속았수다>. 그렇게 정말 수고하며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살아온 모든 이들의 시간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 드라마에 담긴 두 가지 메시지는 정(情)과 고귀함이다. 애순이가 자신의 존재를, 해녀였던 엄마 광례를,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 준 관식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애순이의 시집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기에 애순의 딸 금명이 역시 자신을 귀하게 여겨준 충섭이를 찾았고 그 충섭의 엄마에게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충섭이의 엄마가 애순에게 말린 곶감을 보내며 손편지로 썼던 글, "저는 금명이가 그렇게도 예쁩니다". 아마도 수많은 K-며느리들의 눈물샘을 터트리게 한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었을 터, 세상의 그 얼마나 많은 딸들과 며느리가 이 말을 듣고 싶어 할까. 듣고 싶지만 듣기 어렵고 하고 싶지만 쉬이 하기 힘든 말. 그 안에는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긍휼히 여기는 태도가 들어있다. 사랑과 자비를 베푼다는 것. 처음에는 '왜 금명이와 애순이는 복도 많지, 남편 복이 참 많구나' 삐딱했다가 결국엔 깨달았다. 고귀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상대방을 높이고 귀한 사람으로 대해주어야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그 고귀함을 품고 작고도 큰 삶을 살아갈 때 귀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폭싹 속았수다>. 비평의 원칙은 대상 텍스트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논하는 것이건만 오늘의 취향저격은 무언가의 뼈를 바르며 해부하는 일 대신 되뇌어 본다. <폭싹 속았수다>가 가르쳐준 우리 삶의 작고도 큰 고귀함에 대하여.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한 분야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레전드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여전히 건재한 가요계의 두 거장, 가황 나훈아와 가왕 조용필.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그들의 노래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으며 왕성한 에너지로 끊임없이 자신의 노래를 창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영광의 순간에 멈춰 서 있지 않고 현재 진행형인 아티스트로서 경지에 도달한 이들. 요즘 잘파(Zalpha) 세대가 선호하는 크리에이터란 직종의 핵심은 '자신만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가?'다. 정교하고 디테일하게 만든 창작품이 독보적인 세계관으로 존재할 때 그 창작자는 인정받게 된다. 2024년 나훈아는 은퇴를 선언했다. 1947년 부산 출생, 78세로 팔순을 앞둔 그가 마지막 무대에 서면서 남긴 가장 인상 깊은 한마디는 "평생 구름 위를 걸으며 살아왔으니 이제 들길도 걷고 꽃향기도 맡고 땅에서 걷고 싶다"는 말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스캔들에 기자회견을 하며 당당하게 입장 표명하던 그는 얼마 전 은퇴 공연에서 정치적 발언을 했다가 한동안 이슈 파이터가 됐지만 나훈아의 음악적 성과만을 두고 본다면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영향력을 미친, 수많은 창작을 한 걸출한 크리에이터임은 틀림없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발표곡만 1천200여 곡. 그중 90% 가까이 직접 쓰고 만들었다. '홍시', '18세 순이', '사모' 등 나훈아의 노랫말에 담긴 고향과 누이, 우리네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가슴속 그립고도 울컥한 존재를 꺼내어 쓰다듬는다. 작곡도 작곡이지만 그만의 가사를 귀담아듣고 있으면 역시 나훈아만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간 만든 노래로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으련만 나훈아의 창작열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23년 경쾌한 댄스곡 '기장갈매기'를 발표했다. 사랑에 목매지 않는 부산 상남자, B급 감성 가득한 뮤직비디오에서 부산 시골 바다를 배경으로 꽁지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영화 <보안관>에 나올 법한 동네 건달들과 맞장을 뜨며 갈매기 댄스를 추는 나훈아의 열정을 누가 이길 수 있으랴. 나훈아는 창작력 하나로도 가요계 레전드가 될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을 남긴 셈이다. 은퇴 공연에서 드론에 마이크를 실어 보내며 '사내' 가사처럼 화끈하게 이별을 선택한 나훈아의 명곡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후배 가수들에게 꾸준히 불리며 가요계 레전드로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MV | 나훈아(Na Hoon-A) - 기장갈매기 | 새벽 (SIX STORIES) 자, 그다음은 조용필. 그 역시 데뷔 후 55년 동안 20집 앨범을 내며 꾸준히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과의 작업을 통해 대중과 소통했다. 전설의 뮤지션이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조용필은 원곡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록 창법으로 부르고 개사해 자신만의 노래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항구를 통해 떠났던 1980년대 재일교포에 대한 애틋함을 형제애로 표현해 불렀다. 좋은 가사를 픽하는 안목도 뛰어나 '창밖의 여자'와 '일편단심 민들레'의 노랫말 원작자들과 협업해 실향민의 사랑, 이별의 아픔을 노래했고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꿈'을 통해 꿈을 찾아 도시를 찾아온 이방인의 희망과 좌절을 노래로 풀었다. 그가 만든 곡을 살펴보면 늘 존재에 대한 성찰이 들어있으며 시대정신을 담아 고민한 흔적이 있다. 음유시인이라 칭송받는 '고추잠자리'와 '바람의 노래'의 작사가 김순곤부터 MZ세대의 워너비 작사가 김이나까지 폭넓게 협업하며 '바운스' 같은 집단 창작곡과 '찰나'나 '그래도 돼', '라'를 통해 트렌드에 맞춰 변주하며 시대 불변 희망의 메시지와 거장의 따뜻하고도 세련된 위로를 전한다. 이렇게 그는 은퇴를 선언한 나훈아와 또 다르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나훈아와 조용필은 그렇게 창작자로 자신의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어왔기에 레전드가 되었다. 이들이 애써 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잘 걸어왔던 흔적이 그들을 레전드의 반열에 올린 것이다. 물론 그 길은 쉽지 않아 한 분야의 레전드가 되는 길은 외롭고 고독하며 고통을 수반한다. 자신만의 누에고치 속에서 실을 뽑아내며 작품을 창작하고 고독 속에 침잠하며 노래한다. 꾸준함이 쌓이고 쌓여 평판이 되고 평판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전설로 박제된다. 끊임없이 자신만의 마르지 않는 에너지를 폭발시킬 때 그들은 별로 남아 사람들의 가슴속에 전설이 된다. 마지막으로 엘비스 프레슬리. 그가 떠난 지 반세기가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프레슬리의 추앙자들은 로큰롤, 컨츄리, R&B까지 다양한 장르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로 그를 기억한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엘비스 프레슬리를 '모든 것에 리듬을 도입한 문화적 혁명'이라고까지 표현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혁신적인 크리에이터였다. 엘비스 프레슬리, 조용필과 나훈아. 이들이 레전드가 된 것은 자신이 직접 창작자로서 가슴을 울리는 공감의 음악을 대중에게 전달했다는 데에 있다. 이 셋은 '넘버원'이기도 하지만 유일무이한 '온리원'이기도 했다. 가요계의 레전드인 이들을 굳이 열거한 이유는 그들이 한 무대에 모인 듯한 공연이 바로 2월 끝자락, 지난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훈아, 조용필, 엘비스 프레슬리가 다 있던 탁쇼3 앙코르 현철과 송대관의 부고는 1980년대 트로트 시장을 주도한 1세대가 저물고 트로트 장르의 전폭적인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악, 성악, 뮤지컬 등 다양한 음악과의 융합과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로 트로트는 젊어졌고, 다양한 음악을 하던 뮤지션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도전하고 기회를 찾았다. <미스터트롯3>에 출전한 이정과 모세가 천록담과 춘길로, <현역가왕2>에 나온 국악퓨전그룹 '두 번째 달'의 김준수가 그 예다. 이처럼 숨은 실력자들의 대거 등장으로 정글 속 생존처럼 치열해진 트로트계에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지고 여유롭게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영탁. <미스터트롯> 선으로 이름을 알린 뒤 현재 그의 위치는 어떨까. 영탁 역시 R&B와 발라드 장르에서 활동했고, 영화 OST로 데뷔한 뒤 수많은 영화 주제곡을 불렀던 가수였다. 2020년 <미스터트롯> 선으로 등장해 '막걸리 한잔'과 '찐이야'로 존재감을 폭발시키고 2라운드에서 이미자의 '내 삶의 이유 있음은'으로 명확한 온도차를 보여주던 가수. 그리고 5년이 흘렀다. 그사이 영탁은 3개의 앨범을 냈고 <탁쇼>라는 세 번의 전국 투어를 했으며, 트로트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대중적이고도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좌절의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앙코르는 '다시', 그리고 '아직'이라는 뜻의 불어다. 다시 한번 더 그 감동을 전달한다는 의미, 그리고 아직도 보여줄 게 너무나 많다는 의미였을까? 영탁은 탁쇼3 앙코르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놀라운 퍼포먼스와 가창력을 선사했다. 그동안 걸어온 음악 인생을 표현한 '담'을 시작으로 포문을 연 영탁은 자신의 앙코르 공연 무대의 목표를 10자로 소개했다. '올타임 레전드 탁쇼 쓰리'. 공연의 모든 순간을 레전드로 만들겠다는 자신감과 넘치는 에너지. 지루할 틈 없이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중반부에는 오은영 박사 패러디인 오은탁 박사의 솔루션을 받고 엘비스 프레슬리로 변신, 'Can't help Falling in Love', 'Hound Dog'로 이어지는 흥겨운 로큰롤을 남진과 '카사블랑카'까지 연결하며 열정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콘서트는 크게 세 개의 콘셉트로 현재의 영탁, 과거의 영탁, 그리고 미래의 영탁을 보여주었다. 과거의 영탁에서는 안동의 한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뒤 바로 서울로 와서 오디션을 보며 끊임없이 도전했던 청년 박영탁을 소환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른 뒤 마이크를 두 손으로 모아 잡고 "스물두 살 박영탁입니다"라고 인사하는 장면은 80년대 젊은 날의 자신과 함께 노래하는 나훈아의 무대를 떠올리게 했다. 가슴 절절한 사모곡 '어매'의 나훈아와 '꿈'을 이루고자 도시를 찾은 조용필이 있었고 엘비스 프레슬리로 완벽하게 변신한 무대를 통해 자신의 근원이 록과 리듬앤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잊지 않고 보여준 것이다. 크리에이터로서 영탁의 능력 : 관찰력, 언어 감각, 메시지 영탁이 가진 재능 중 하나는 관찰력에서 비롯된 연기다. 브릿지 영상은 대부분 옷을 갈아입거나 무대 교체를 위해 준비되는 영상이 대부분인데, 아주 제대로 웃길 작정을 하고 만든 패러디 영상이 눈에 띄었다. 전국 투어에서 선보인 <흑백요리사> 속 '요리하는 돌아이'를 패러디한 '노래하는 돌아이'를 보고 있자니 영탁이 제이심포니란 듀오 시절 자신의 앨범 뒤 스페셜 땡큐에 썼던 글인 '더 또라이같이 음악할게요!!'가 생각났다. 이 '똘끼'를 어쩔까나. 이번 앙코르에 처음 등장한 오은영 박사의 금쪽이 솔루션 패러디인 오은탁 박사는 말투와 행동이 너무 비슷해서 영탁 콘서트에 온 건지, <개그콘서트>에 온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 더구나 영탁은 다른 출연자도 없이 혼자 1인 2역을 연기한다. 조만간 배우 영탁이 스크린이나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갑툭튀'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코믹 연기에 배꼽을 뺐던 시간이었다. 앞자리에 앉은 관람객의 한마디, "저렇게 웃긴다고?" 개그감 인정! 투머치 토커가 되어 관객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탁쇼의 특징. 영탁이 왜 소통의 제왕인지 팬들과 호흡하고 함께 즐기는 무대를 체험한다면 바로 알 수 있다. 영탁이 가진 대중을 사로잡는 온리원의 힘을. 또 하나, 그의 음악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영탁의 언어 감각에 주목했을 것이다. 가사를 보다 보면 늘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영탁을 볼 수 있다. 영탁은 자신만의 음악을 찾는 데 성공했을까? 그의 가사에 답이 있다. 비슷한 줄무늬, 블루케찹, 세모난 바퀴, 사막에 빙어. 세상의 모든 삐딱이와 왼손잡이들을 위한 강력한 메시지는 영탁이 추구하는 음악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깊이를 완성시킨다. TAK SHOW의 추구미 : 네 꿈을 응원해, 같이 가자 우리 영탁의 자작곡들이 주로 소개된 기존 공연과 달리 세 번째 탁쇼에서는 공연장에 처음 온 관객들도 같이 따라부를 수 있는 트로트 메들리와 대중적인 곡들이 셋리스트에 추가됐다. '벚꽃 엔딩'과 '붉은 노을', '고속도로 로망스'가 등장하자 객석은 더 신이 날 수밖에. <탁쇼>의 추구미를 한마디로 표현하다면 나훈아, 조용필,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음악계 거장인 대선배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 탁쇼만의 에너지와 즐거움을 선물했다는 데 있다. '무대 위 카리스마, 음악에 대한 열정, 유쾌한 예능감'. AI가 분석한 영탁의 매력은 앞으로 탁쇼가 추구할 추구미와도 일치하지 않을까. 영탁의 그러한 대중 친화적 성격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입증하듯 수많은 연예계 인맥들이 공연장을 방문했다. 대선배 인순이는 인스타그램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팝송을 부를 때 너무 좋았다'는 멘션을 남겼고 MC 장성규, 배우 지승현, 곽선영 등 동료들과 트로트 선후배들이 공연장을 찾아 그를 응원하고 함께 즐겼다. 영탁이 주는 긍정의 에너지, 폭발하는 도파민과 따뜻한 세로토닌. 행복의 에너지는 영탁이란 20년 차 가수의 정체성을 알리고 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내 꿈은 이랬단다, 포기하지 않고 걸어서 결국 그 꿈을 이뤘단다. 그러니까 너도 꿈꾸고 잘 걸어봐. 이제 내가 네 꿈을 응원할게.' 데뷔 20주년을 맞은 영탁, 레전드로 가는 길 콘서트 오프닝 곡이 끝나면 영탁은 늘 오늘 처음 온 관객을 체크한다. 이집트, 핀란드, 말레이시아, 일본, 타이완 등 다양한 글로벌 팬들이 탁쇼를 찾았다. 이들은 OTT로 한국 콘텐츠를 찾아보다가 영탁의 무대를 보고 팬이 되었다고 말한다. 영탁은 트로트 가수 최초로 팬과 호흡하는 노래를 만들었고 떼창 문화를 리드하고 있다. <탁쇼>를 처음 본 관객들은 가수와 팬이 박자를 딱딱 맞추며 외치는 응원법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팬들의 함성에 놀란다. 인도네시아 공연장에서 해외 팬들이 떼창 웨이브로 화답하는 것을 목도한 영탁은 2집 '폼 미쳤다'부터 본격적으로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닌 대중과 호흡하는 노래를 만들었다. 영탁 음악의 세계관은 바로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같이 가볼까, 저 너머의 너머를 향해'가 아닐까. 요즘처럼 대중의 취향이 디테일해지고 마이너한 취향도 인정받는 시대, MZ세대는 가사의 메시지보다 직관적으로 들으면 즐겁고 편안한 멜로디를 선호한다. 그러나 50, 60대 팬들은 가사와 가수의 서사에 주목한다. 중년 팬덤에게 음악의 정체성과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영탁은 영민하게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과 팬들의 니즈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영탁이 걸어갈 길. 한 사람의 놀라운 성장과 레전드로 가는 길에 함께 탑승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여행이다. 영탁이 조용필과 나훈아가 될 수 있을지, 어느 한 분야의 넘버원이 될 수 있을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넘버원은 언제든 바뀌고 탈환되며 새로이 채워진다. 넘버원이 되는 것이 아닌 가요계의 온리원이 되기를 선택한 영탁, 그의 20주년이 기대되는 이유다. [STAGE CLIP] 영탁(YOUNGTAK) 'Brighten' 2024 영탁 단독콘서트 [TAK SHOW3 - ENCORE] 사진 : 어비스컴퍼니, (주)에스이십칠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뮤지컬 <알라딘>이 방학, 명절 특수를 누리며 8개월의 장기 공연에 돌입했다. 브로드웨이 초연 10년 만에 2024년 국내 상륙한 알라딘은 티켓 오픈마다 초 단위로 매진됐고 얼마 전 2월 공연 오픈도 순식간에 매진됐다. K-팝 콘서트나 내한 공연 팝스타들의 콘서트가 아닌 라이선스 뮤지컬도 이제 피 튀기는 '피케팅' 전쟁을 벌여야 하니 알라딘과 자스민이 탄 마법의 양탄자를 보러 가는 여행길은 멀고도 쉽지 않았다. 코로나 종식 이후 공연 문화에 대한 갈증과 욕구는 뮤지컬 N차 관람으로도 이어진다. 다양하고 디테일하게 세분화된 대중의 취향은 익숙하지만 신선하고 재미와 감동이 보장된 스토리텔링을 찾아 나선다. <알라딘>은 디즈니의 독창적인 IP 자산이면서 2019년 실사영화로도 성공한 원작 콘텐츠라는 기대감을 바탕으로 한국을 배경으로 현지화된 대사 번역, 화려한 캐스팅 등 관전 포인트가 입소문 나면서 디즈니 영화를 보고 자란 MZ세대 관객들이 몰려들었고 이에 순항 중이다. 어디 한번 보러 갈까 하고 예매 사이트로 들어가 보니 그럼 그렇지, 2월 말까지 전석 매진. 다시 전략을 짜서 설 명절엔 좀 낫겠지 싶어 예매 대기를 걸어 놓은 결과 띠링~ 드디어 취소표 알람이 울렸다! 강의가 없는 방학이기도 하고 서울 구경도 할 겸 샤롯데씨어터가 있는 롯데월드행 SRT 기차를 탔다. 어쩌다 보니 유연석이 나온 <벽을 뚫는 남자> 이후 뮤지컬 공연으로 꽤나 오랜만의 관람이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방학이라 아이들과 온 가족들, 2·30대 연인들, 캐리어를 끌고 온 외국인들, 유난히 젊은 관객들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겨울왕국>을 보고 자란 디즈니 키즈고 그의 부모들은 90년대 국내 처음 들어온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를 보고 자란, 지금은 중년이 된 X세대들이 대부분인데 <알라딘>은 그들 모두의 추억과 욕구를 채워주는 검증된 이야기임엔 틀림없다. 내가 선택한 회차는 알라딘의 김준수, 지니의 정성화, 쟈스민의 이성경이 출연하는 날이었다. 허스키하고 독특한 음색의 김준수는 뮤지컬계 티켓 파워를 가진 탑 티어급 배우고 코믹과 정극을 오가며 폭풍 연기력을 보여주는 정성화의 수다스러운 지니는 생각만 해도 찰떡궁합. 쟈스민은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정년이>에서 정년이 라이벌이었던 영서의 성악가 언니로 나왔던 민경아 배우와 박열의 후미코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신예 최지혜의 자스민도 궁금했지만 사랑스럽고 도도한 자스민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성경 배우로 낙점, 티켓 파워 최강의 라인업으로 보게 됐다. 지니 쇼로 기선 잡고 몰입도 선사 : 역동적 장면 펼치는 좁은 공간의 아쉬움 막이 오르면 예상대로 지니의 원맨쇼가 펼쳐진다. 정성화는 능청스럽고 코믹한 지니로 변신해 무대를 휘어잡는 장악력을 보이며 흐름을 잘 리드해 나간다. <알라딘>의 흥행 요소 중 하나를 꼽으라면 150분간 펼쳐지는 공연 내내 지루할 틈 없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지니의 속사포 랩 같은 대사다. 지니의 대사 속에 <알라딘>의 철학이 있고 고민하는 알라딘의 선택 속에 우리들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 숨겨져 있다. 철저히 자신의 욕망을 따를 것인가? 타인의 자유를 위해 이타적 선행을 베풀 것인가?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알라딘의 여행은 결국 자신의 갈망을 누르고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갈 때 보상받는다. 대사를 듣다 보면 브로드웨이 버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닌 지금 한국 사회의 반영, 주 관객층인 MZ세대의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본 번역을 참 맛깔스럽게 했다 싶어 프로그램 북을 보니 양주인, 김수빈이란 음악감독과 번역가 두 사람이 한국어 대사와 가사 번역을 했다. 지니가 처음 만난 알라딘에게 소원 3순위를 브리핑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최신식 발코니 확장 피라미드 분양권이나 롯데타워 시그니엘에 롯데월드까지 덤으로 얹어 준다는 대사는 뮤지컬 주요 관객인 대한민국의 2·30대 MZ세대가 원하는 부의 가치를 보여준다. 부동산, 주식, 코인, 슈퍼카로 부를 획득하며 하루하루 무사안일과 말초적인 부에 올인하는 세태 풍자 뮤지컬 대사는 꽤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지니가 왕자의 소원인 풀코스 요리를 최고의 유행어인 '이븐하게' 구워준다거나 쥐가 나는 장면에서 '나 쥐나, 이거 쥐니? 지니?'라며 난리법석을 부리는 장면과 알라딘을 '맨살조끼보이', '상자 속의 남자, 상남자'로 부르는 애드리브 빵빵 터지는 유머러스한 대사에 관객석은 한껏 즐거워진다. 한국판 지니의 유머에 덩달아 유쾌해지는 동시에 지니가 나에게 나타난다면 어떤 소원을 빌지 상상하게 되는 판타스틱한 마법의 순간을 선사한다. <알라딘>의 환상성이 극에 달하는 순간은 '흙 속의 다이아몬드'였던 알라딘이 램프를 구하러 사막 속의 동굴에 들어간 장면에서 펼쳐지는 앙상블 단원들의 화려한 집단 군무다. 화려한 의상과 귀에 익숙한 넘버들이 펼쳐지고 여기서 '알라딘'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진다. 이 멋진 장면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도입부에서 좀도둑 알라딘이 시장통 세 친구들과 벌이는 추격 장면과 함께 무대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점이다. 황금 동굴 장면은 그나마 몰입도가 높아서 괜찮았지만 아그라바의 시장에서 알라딘이 무대를 가로지르며 날아다니는 시장통 장면은 배우들의 동선이 좁고 답답해 보여 보는 내내 움직임이 불안해 보였다. 유명 뮤지컬 상시 공연장인 영국 웨스트엔드나 미국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전용 극장도 실제론 아담한 규모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알라딘>은 국내 초연이고 기대치도 높았던 만큼 조금 더 극의 역동성을 활용할 수 있는 무대 공간이었다면 훨씬 멋지고 신나는, 날아다니는 알라딘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더구나 김준수는 춤선이 살아있는 파워풀 아이돌 출신 아닌가. 이 우려는 알라딘과 쟈스민이 양탄자를 타고 날아가는 장면까지 이어졌다. 가장 환상적이고 아름다워야 할 장면에서 양탄자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없었기에 어두운 밤하늘로 표현되며 거의 고정에 가깝게 정지되어 있던 부분은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맘속으로 '제발 날아라! 움직여라!! 양탄자야...' 외쳤지만 양탄자는 요지부동. 주차한 듯 멈춰 있네. 아쉽도다. 샤롯데씨어터의 1, 2, 3층 객석은 모두 1천240여 석으로 계단 단차가 크고 경사가 심한 데다 앞좌석 여유 공간이 좁고 원형으로 커브가 진 1층에 비해 2층에서 보는 시야는 일직선이라 무대가 평면적으로 보이는 단점이 있다. 3천 석의 세종문화회관이나 2천200석의 예술의전당보다는 턱없이 작은 공간에 올려지다 보니 알라딘이란 IP가 가진 환상성과 판타스틱한 연출이 제대로 살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물론 무대가 넓어지면 시각적 연출을 위해 소요되는 무대 장치 예산과 비용은 올라가고 제작비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작은 무대에서의 답답함이 해결되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부분은 7월 이후 부산 공연장인 드림씨어터에서는 좀 더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한국판 '알라딘'의 성공 : 알라딘의 재해석, 만족도 높은 관객 서비스 앞서 말했지만 <알라딘>의 흥행 요소는 볼거리 가득한 원작 IP의 뮤지컬 장르로의 장르 변환, 재매개된 스토리텔링이다. 디즈니 원작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집단 군무와 오리지널 넘버의 환상적 요소를 뮤지컬 장르에 걸맞은 집단 군무와 화려한 볼거리로 재탄생시킨 점, 귀에 익숙한 넘버 대표곡들이 주는 흥겨움, 지니와 알라딘이 보여주는 브로맨스, 똘똘하고도 선한 소년미를 보여준 알라딘과 자유를 꿈꾸며 진취적인 여성 초대 술탄이 되는 자스민의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 강력한 힘을 가진 빌런이 되기를 소망하다 자신의 욕망에 갇혀버리는 자파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와 쉴 새 없이 웃음 폭탄을 던지는 자파의 조력자로 탄생한 이아고의 케미는 윤선용과 정열이란 배우의 이름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6천 원의 유료 서비스지만 좋은 반응을 얻은 알라딘 소품 착장 네 컷 사진 부스, 다양한 굿즈 판매, 알라딘 콘셉트로 매칭시킨 코스 요리 판매, 그리고 지니에게 소원을 써내면 지니 배우의 친필 편지를 전달하는 MZ세대를 겨냥한 영민한 마케팅은 재관람과 N차 관람을 유도하며 뮤지컬 관람객들에게 기분 좋은 체험을 선사하기도 했다. 퀄리티가 있으면 관객들은 찾게 된다 : K-창작 뮤지컬의 발전을 꿈꾸며 국내 뮤지컬 시장이 5천억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라이선스 뮤지컬의 흥행에 치우쳐 있고 소규모의 작품들은 단기간에 막을 내리는 대중들의 편중된 선택과 위기론을 전문가들은 지적하기도 한다. 뮤지컬 극단들이 고군분투한 20년. CJ ENM이 창작 뮤지컬을 전략 사업화하고 창작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면서 K-뮤지컬은 많은 발전을 하고 있지만 <알라딘>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잘 짜인 이야기는 관객들이 꾸준히 찾을 거라는 믿음이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우리의 창작 스토리가 가진 힘을 원천 IP 소스로 활용하게 될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신과 함께> 뮤지컬은 지금도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얼마 전 드라마로 사랑받았던 여성국극 소재의 <정년이>도 분명 뮤지컬이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훌륭한 원천 소스다. 한국 만화와 웹툰 원작 IP들이 OTT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면서 주목받고 있는 지금, 만화 원작 <베르사유의 장미>나 록뮤지컬 <선천적 얼간이들> 같은 경우는 반길 만한 시도다. 웹툰이나 만화 원작 기반의 뮤지컬 제작은 인지도 면에서 대중의 호응을 끌어올 수 있는 긍정적인 시도가 될 수 있다. 이런 콘텐츠들이 장르 전환을 하며 양질의 뮤지컬 공연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건 관객들의 관심과 취향의 확장성을 기반으로 하기에 결국은 잘 만들고 잘 찾아보는 게 방법이란 논리에 다다른다. <알라딘>을 부러워하지만 말고 웰메이드 공연을 올린다면 관객들은 반드시 발길을 향할 것이다. 디즈니를 보고 자란 MZ세대들의 니즈를 정확히 캐치한다면 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X세대의 오랜만의 뮤지컬 관람. 대중은 좋은 퀄리티의 콘텐츠에 늘 목이 말라 있으니 말이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연말을 맞아 MBN과 TV조선 두 종편 채널의 맞대결로 뜨거운 격전을 치르고 있다. 이제 트로트는 한물가지 않았나라는 의견에 반박하듯 경연 방식의 변화, 방송 컨셉의 변화를 주고 새롭게 단장한 두 프로그램은 9%와 13%대를 육박하는 시청률로 출사표를 던졌다. 밤 9시가 넘은 심야 시간대에 편성됐는데도 시청률과 화제성 수치가 높다는 점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지만, 냉정하게 점검해야 할 문제들도 드러나고 있다. <현역가왕>의 '의외성' vs. <미스터트롯>의 '확장성' 대결 11월 방송으로 먼저 기선을 잡은 MBN <현역가왕 2>는 출연자들의 인지도로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5년 동안 여러 미디어와 매체에서 트로트 왕관을 썼던 우승자들이 총출동해 신선한 신인 발굴이 아닌 실력자들의 대결로 판을 짰다. 박구윤, 진해성, 김수찬, 환희 같은 프로들의 등장으로 화제성을 잡고 제3자인 심사위원 심사 방식 대신 경연자들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자체 평가전으로 30여 명의 현역 도전자들을 선발했다. 그동안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된 무대를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중고 신인이나 역량을 펼치기 힘들었던 프로들의 대결. 현역가왕의 핵심은 '의외성'이다. 발라드 가수인 환희에게 저런 감성이 있다고? 김수찬은 목소리는 더 깊이 있어졌네?! 트로트는 여러 장르를 만나 새롭게 재해석되고 부르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제 막 첫 회를 방송한 <미스터트롯>3는 대학부, 직장부, 유소년부라는 소속 포지션을 통한 신인 발굴이라는 기존의 구도를 크게 깨지 않으면서 현 포맷에 현역부 X를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하는 방식을 결합해 호기심 전략을 작동시켰다. 트로트 오디션에 <히든싱어>의 통이나 <복면가왕>의 실체를 가리는 복면처럼 거대한 블라인드 베일을 설치하고 출연자의 실루엣만으로 다음 회를 계속해서 기다리게 만드는 영민한 전략을 짠 것이다. 도전자가 누구든 간에 블라인드 베일이 벗겨지기 전까지 그의 존재를 캐내기 위해 수많은 누리꾼들은 예측을 할 것이고 이런 버즈 마케팅은 입소문과 함께 퀴즈 게임 같은 역할놀이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한다. 우리가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보며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로제 카이유아가 말한 놀이의 4대 요소인 경쟁(아곤), 행운(알레아), 현기증(일링크스), 모방(미미크리)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새로운 것에 흥미를 보이지만 너무 낯선 것에는 아예 다가설 흥미조차 생겨나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은 낯섦과 낯익음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서바이벌 포맷에서 벗어나 블라인드 평가라는 장치를 넣고 여러 방식을 융합한 <미스터트롯>의 확장성 전략은 맞대결에서 살아남기 위한 제작진의 차별화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거대 트로트 팬덤을 활용한 화제성 전략 트로트 시장은 이미 2020년 <미스터트롯> 출신 톱7인 영탁, 이찬원, 정동원이 배출되면서 거대 팬덤이 생성됐고 현재도 중년 팬덤의 충성도로 인해 K-팝의 한 주류로 트로트가 자리 잡게 됐으며 코어 팬덤으로 인해 음반 판매량과 공연 열기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미스터트롯>3 제작진은 여기에 주목해 기존 심사위원들을 국민 마스터와 선배 마스터로 나누어 19명의 심사위원을 포진시켰다. 한쪽 마스터에게 올 하트를 받아도 다른 마스터의 과반을 넘지 못하면 탈락한다는 새로운 규칙도 만들었다. 이 중 선배 마스터 심사위원은 <미스터트롯>1, 2를 통해 거대 팬덤을 탄생시킨 영탁, 정동원, 박지현 등 시즌1, 2의 인기 멤버들의 출연을 성사시켜 각각의 팬덤 층의 지지와 응원까지 흡수하는 화제성 전략을 펼치고 있다. 각각의 팬덤은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가 심사하는 방송 신청을 하거나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유도하는 등 사전 화제성에 대한 홍보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전히 건재한 톱7 출신 트롯맨들은 과거 실전에서의 경험, 긴장과 실수에 대처하는 법, 생존 전략 등 선배 참가자로서의 조언을 하면서 그 어떤 전문가의 심사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올 듯하다. <현역가왕>이 타이틀의 정체성처럼 현역의 실력을 보여주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면 <미스터트롯>은 신인들의 등용문을 향한 선배들의 관계, 즉 정서적인 교감으로 '관계성'을 스토리텔링 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점이다. 경쟁 프로그램의 종착역은 일본일까? 결국 이 두 트로트 프로그램의 종착역이 신선한 트로트 가수를 발굴하고 현역 가왕을 선발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두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방향성이 결국 일본 진출 혹은 일본과의 협업이란 점은 물음표를 던진다. <미스터트롯>은 요시모토 흥업, NTT 도코모 스튜디오&라이브와 합작 계약을 체결하며 실시간으로 미스터트롯 재팬을 볼 수 있다고 홍보한다. 두 프로그램 모두 순위권 안에 든 우승자들에게 일본 활동 및 진출을 지원한다는 점도 눈여겨 볼 일이다. <현역가왕>이 한일 가왕전과 한일 톱텐쇼를 통해 한일 예능 공동제작 및 합작에 물꼬를 트고 특정 부분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왜 트롯맨들은 일본으로 가야 됐을까? <현역가왕>일본 방송 이후 일본에서도 잊혀졌던 엔카와 K-트로트 붐이 다시 일고 있다지만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지는 냉정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내년이 한일 수교 60주년이라는 것과 그동안 냉랭했던 한일 관계가 다시 대중문화 교류를 통해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것은 분명 좋은 취지이자 신호탄임에는 확실하다. 그러나 K-트로트가 왜 갑자기 일본행에 열을 올리게 됐는지, 두 프로그램이 같은 노선을 선택했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후발 주자인 <미스터트롯>이 일본 진출이 아닌 다른 지향점을 선택했다면 훨씬 페어플레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선함 떨어지는 출연자를 위한 매력적 스토리텔링이 절실한 시점 과거 <현역가왕>1은 평균 15% 시청률을 상회했고 <미스터트롯>2 역시 <트랄라라 브라더스>나 <미스터 로또> 같은 스핀오프 프로그램을 통해 화, 목요일의 시청률을 끌어올렸지만 두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트로트 가수들의 화제성과 영향력은 <미스터트롯>1과 비교했을 때 미약하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우승자들의 화제성이 약화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경연 프로그램마다 자신의 성장과 도전을 위해 얼굴을 내미는 출연자들의 중복 출연은 프로그램 신선도를 하락시키고 실력 있는 신인을 발굴한다는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거기에 예능적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연기자, 모델, 개그맨, 다양한 장르의 출연자들의 배치는 일회성 재미를 줄 수는 있으나 본질인 노래 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주목받기 힘들다. 10위권 안에 드는 실력자로 입성했다 해도 그동안 트로트 프로그램에 노출된 그들의 모습과 예능에서 소비되는 캐릭터, 만들어지고 입혀진 이미지로 개성을 상실한 캐릭터는 어떤 새로운 모습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미 식상해진 캐릭터에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개인사 스토리텔링은 더욱더 트로트 프로그램을 향한 피로도를 누적시킨다. 호기심과 기대감에 한두 번은 채널을 고정시킬 수 있겠지만 서바이벌 음악 예능의 지속성은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라는 거대한 골조와 출연자의 진정성이 함께 녹아들 때 가능하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저울의 추가 기울면 시청자들은 과감하게 등을 돌려버린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두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실력과 그들의 서사를 경연과 어떻게 녹여낼지가 관건일 것이다. 그 많던 트로트 가수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미스터트롯>1의 임영웅의 성공은 트로트 서바이벌의 신화를 더욱 부추긴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2일간 10만 명에 가까운 인파를 운집하게 만든 임영웅은 어떤 면에서 넘사벽의 상징이 되었다. 혹자는 그를 코로나 시대를 만나 운이 좋았던 행운아라고도 평가하기도 하고 최근 SNS상의 발언으로 위기론까지 나왔지만 실력만으로 평가한다면 임영웅은 현재 자신만의 독보적인 콘텐츠로 트로트 장르 일인자로 자리 잡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미스터트롯>3와 <현역가왕>2는 실력 있고 재능 있는 트로트 신인을 왜 일본으로 보내는지 아주 근본적인 것부터 고민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제2의 임영웅 신화를 만들기 위해, 더 큰 호응과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 더욱 자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시각적 연출, 실력보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신변잡기에 가까운 예능적인 요소의 부각. 트로트 한류는 어떻게 생성되는가. 그것은 단순히 일본이라는 지리적 영토를 트로트 음악이 지배하고 유행시킨다고 해서 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정 인물이 가진 인간적 매력이나 그가 가진 사연의 스토리텔링도 한계가 있다. 그들이 가진 음악적 한계가 밑천이 드러나지 않고 영속성을 가질 때만이 가능하며 장르와 장르를 뛰어넘어 어떤 시스템 속에서도 제약을 받지 않는 나훈아와 조용필이 우리 가요사의 거장으로 자리 잡은 것을 떠올리면 시청률과 화제성에 목을 매는 방송 콘텐츠의 시스템 안에서도 빛날 수 있는 그들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어야 함을 출연자도, 제작진도 알 것이다. 급조된 스타 대신 우리에겐 긴 시간 오래 볼 수 있는 진정한 무대 위 장인을 발견해 주길 바라는 바다. 사진: MBN <현역가왕>, TV조선 <미스터트롯>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웹툰을 드라마화한 <정년이> 열기가 뜨겁다. 오랜만에 등장한 탄탄하고 밀도 있는 서사와 배우들이 원작을 넘어 재해석한 캐릭터, 여성국극이라는 콘텐츠가 60년이 지난 OTT 시대에 다시 조명받는 것이다. 닐슨코리아 제공 시청률은 4%에서 출발해 10화에서 14%까지 상승했고 출연 배우들이 보여주는 화제성 지수 CPI나 체감 지수는 연일 1위에 차지하고 있는 <정년이>와 주인공 김태리의 연기를 논하고 있으니 하반기 방송된 드라마 중 그 열기가 가장 뜨겁다고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벌써 시즌2 제작 요청을 하기도 하고 <정년이>의 종영을 아쉬워하는 반응도 많다. <미스터 선샤인> 이후 tvN이 내놓은 최고의 시대작이라는 평가와 드라마 주 시청 타깃인 2040 여성을 넘어 드라마에 등 돌린 중년의 남성 시청자들, 웹툰 정보에 민감한 10대부터 향수와 복고라는 소재 덕분에 열혈 시청자로 돌아온 50대 이후의 콘텐츠 소비층까지 사로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기작이었던 웹툰을 드라마화한다는 것은 인지도 면에서 초기진입 장벽이 낮춰질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그 역시 작가의 역할인 드라마 구성과 짜임새, 캐릭터의 매력도, 배우들의 연기, 속도감 있게 전개하는 연출의 역할이 조화롭게 진행될 때 웰메이드 드라마가 탄생한다는 점에서 <정년이>는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창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웹툰 <정년이>에 등장했지만, 드라마에서 사라진 몇몇 캐릭터와 설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콘텐츠가 장르가 바뀌며 그것을 담는 그릇이 달라질 때 내용물의 모양도 변화하게 된다. 정년이는 그것만 놓고 보자면 성공적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웹툰을 드라마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캐릭터의 집중과 몰입이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도 웹툰 원작에서 비중이 큰 캐릭터로 등장했던 진기한 변호사가 사라졌고 웹툰 마니아들은 영화를 본 뒤 김자홍의 환생을 돕는 조력자이자 주인공인 국선변호사 진기한의 진중하면서도 예리한 캐릭터가 없어진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대신 진기한은 캐릭터는 세 명의 차사인 강림, 해원맥에게 흡수되어 웹툰 속 양축이었던 자홍-진기한 vs 저승차사 3명의 구도를 자홍 vs 저승차사들의 인과 연의 스토리로 압축시켰다. 영화는 드라마와 또 다른 120분의 초절정 압축의 영상물이다 보니 등장인물이 많을수록 서사가 복잡해지고 주인공들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관객들에게 과도한 피로감이 몰려올 수 있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은 최대한 밀도 있게 압축해서 그들의 관계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서사의 전략이 필요하다. <신과 함께>는 진기한을 소멸시키는 전략을 선택했고 영화 개봉 전후로 이에 대한 불만도 영화를 본 뒤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진기한이 없어진 것은 아쉬웠지만 해원맥의 활약과 웹툰 이승 편의 강렬한 캐릭터였던 성주신 마동석이 <신과 함께 2 - 인과 연>에 등장해 원작 웹툰과의 매칭률에 대한 기대감을 채워준 것이다. 드라마 <정년이>도 마찬가지로 정년이가 매란국극단에서 만나 중요한 관계를 형성하는 부용이라는 캐릭터를 없앴다. 부용이는 목포에서 자라 천둥벌거숭이 같던 정년이와는 다르게 부잣집 딸이란 배경에 중간에 국극을 그만두고 집안에서 정해준 정략결혼을 하며 국극단을 떠나는 캐릭터로 원작 웹툰에서 정년이와 묘한 동성애적 뉘앙스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부용의 캐릭터는 드라마 속에서 부잣집 딸 영서와 정년이와 단짝이 된 주란이에게 흡수되어 표현되고 있다. 드라마는 부용뿐 아니라 선배 백도앵의 느낌도 좀 더 중성적으로 바뀌었고 정년이에게 중요한 역할인 문옥경 역할도 정년이를 직접 목포 시장에서 발견해 국극단에 데리고 오는 정신적 멘토에 가깝게 변화시켰다. 이런 웹툰 원작과의 차이점은 드라마 버전의 <정년이>를 보는데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변화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툰 정년이 마니아들에게는 사라진 캐릭터를 여전히 떠올리게 된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3년을 연습하며 드라마 속 득음의 진정성을 보여준 배우들의 노력과 오랜만에 만난 시대극에 대한 갈증을 <정년이>는 어느 정도 풀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배우들의 호흡과 날 것의 연기는 다른 배우들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장면들도 많았고 김태리, 신예은의 라이벌 연기와 중심축을 잡아준 라미란의 소복과 비중은 작았지만, 채공선 역을 맡은 문소리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3년간 연재된 원작은 130화가 훌쩍 넘고 단행본으로 1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보니 12부작에 모든 서사를 완결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드라마 속에서 매란 국극단 탈퇴와 돌아오는 것을 번복하는 정년이의 갈등이 기폭제가 없이 폭발하는 듯 아쉽고 주인공들의 갈등이 영서와 정년이의 관계에 머물렀다는 점이 아쉽다.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처럼 <정년이> 시즌 2가 가능할까? 제작진은 박수칠 때 떠나는 결론을 선택했지만, 일제강점기를 넘어 우리의 허기진 5, 60년대를 채워줬던 여성 국극단 속 왕자가 된 소녀들의 이야기를 펼치기에는 한없이 아쉬운 회차이다. <정년이>는 웹툰으로 제작된 이야기가 드라마로 바뀌며 K-웹툰이 가진 소재 확장의 또 다른 잠재력과 무한가능성을 입증시킨 사례이기도 하다. 여성 국극단의 정체성과 역사 속 의미가 희석되고 여주인공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 아쉽지만 <정년이>는 주인공 서사 몰입을 선택하고 콤팩트하고 인상 깊게 막을 내리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의 지난 역사 속에서 건져 올린 콘텐츠가 화제와 이슈를 넘어 글로벌한 소재가 되기 위해서 제2의 정년이, 성장해서 돌아올 정년이의 또 다른 스토리를 기대해 본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부산국제영화제가 스물아홉 번째 항해를 무사히 마쳤다. 서른 살을 목전에 둔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아홉이란 수는 미완의 숫자이자 완전한 0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불완전한 숫자다. 서른을 향해 달려가는 BIFF는 스물아홉 해라는 지난한 세월을 거치며 부산이 유네스코 영화 창의도시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혈기왕성했던 청년의 모습을 지나 어느덧 중후한 얼굴의 중년이 되어가고 있다. 매년 10월이 되면 축제의 도시를 강타하는 태풍도 부산을 향해 모여든 시네 키즈들과 콘텐츠 마니아들의 열기를 꺾을 순 없었다. 영화제를 방문한 인파는 예년에 비해 다소 감소했지만 매회 상영관마다 관객 점유율 85% 이상을 기록했고 4,500석 규모의 야외 상영장 오픈 시네마 관람객은 객석을 꽉꽉 채웠다. 영화제 기간 중 ID 카드를 목에 건 외국인 게스트들과 관계자들의 모습은 줄어든 대신 그 자리는 전국의 영화 마니아들과 어릴 적부터 영화를 보며 자라온 영상 MZ와 Zalpha 세대가 채웠다.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영화제가 된 느낌이랄까. 올해의 BIFF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차분하고 깊이 있게'. 피할 수 없는 OTT와의 상생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작년보다 증가한 9편의 작품을 소개했고 영화제 개막작도 넷플릭스에 공개된 작품인 <전,란>이었다. 영화제 기간 내내 주공간인 영화의 전당 맞은편 KNN 외벽에는 <전,란>과 <지옥2>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영화제에서 OTT 콘텐츠를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비단 BIFF뿐만이 아닌 글로벌 영화제들의 화두는 OTT 시대 영화제라는 플랫폼 안에서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허문 콘텐츠들의 디아스포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꿈꾸는 남자들: 청년 동호, 유쾌한 고로 상, 성찰하는 RM 올해 BIFF 상영작과 영화제의 이슈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여전히 꿈꾸는 남자들'이었다. 각자의 가슴에 담은 그 꿈은 무언가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에너지다. 내일을 위해 오늘도 꿈꾸는 행복한 세 청년을 BIFF에서 만났다. 나이와 상관없이 푸르른 꿈을 가진 남자들을... 첫 번째 만난 남자는 이노가시라 고로 상 혹은 마츠시게 유타카. 12년 만에 영화로 제작된 <고독한 미식가>의 영화 버전은 일본이 아닌 부산에서 첫 공개됐다. 마츠시게 유타카가 레드 카펫에 등장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야외 상영장 무대 인사에서는 함께 출연한 배우 유재명을 자신이 매우 좋아하는 배우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하는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의 마츠시게 유타카 한국의 식재료에서 찾은 비밀의 육수를 찾아가는 여정은 고로 상의 음식을 향한 철학과 세계관을 보여준다. 만화가 원작이고 오랜 기간 OTT로 방영된 터라 MZ 세대들에게도 익숙한 이노가시라 고로 상의 인기는 대단했다. 영화제 측은 입장객들에게 젓가락 세트를 선물로 증정하는 이벤트도 벌였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속 고로 상은 여전히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의 근원을 찾아 여행한다.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짧은 시간 내에 극적 서사가 이루어져야 하기에 좀 더 코믹하고 역동적이다. 예상치 못한 표류로 한국에 와서 처음 먹어본 황태국과 에소라는 일본의 심해어 재료를 찾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깨닫는 소소한 행복. 110분 길이의 영화로 압축되면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나 홀로 즐기는 고독한 행복이 아닌 함께 연대하고 상생하는 즐거움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로 상은 고독한 미식가가 아닌 사랑을 나눠주는 행복한 미식가일지 모른다. 죽음을 앞둔 초로의 신사가 그토록 찾아 헤매이던 궁극의 맛은 바로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던 추억의 맛이자 그 맛의 비결이 한국 식재료에 있었으니, 이쯤 되면 고로 상의 영화는 한일 양국의 미래, 음식으로 화합하는 화해의 제스처로 읽혀진다. 음식과 문화, 그것은 모든 장벽과 담을 허물고 손을 내민다. 우린 자연 앞에 다 똑같은 하나의 미물일 뿐이라고. 고로 상의 음식을 향한 호기심과 음식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미소 짓게 되고 공복의 위장을 덮는 음식처럼 힐링이 된다. 뚜벅이 영화 '청년 동호'와 성찰하는 청춘 RM 영화제 가이드북을 넘겨보다가 특별 상영에 눈길이 갔다. 올해 칸영화제에도 초대되었던 <영화 청년 동호>.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들고 15회까지 이끌었던 BIFF의 수장 김동호 위원장의 영화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2011년 영화의 전당이 완공되기 전 수영만 요트 경기장 컨테이너 박스 시절을 회상하며 걷는 팔순의 노장. 신수원 감독의 말처럼 '지치지 않는 뚜벅이' 김동호 위원장은 걷고 또 걸으며 영화의 풍랑을 헤쳐 나갔다. 스물아홉 BIFF에겐 수많은 사연이 있지만 그중에서 아마 김동호 위원장의 에피소드는 밤을 새워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영화제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그가 어느 날 배우로 등장하고, 75살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영화 청년 동호의 도전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걷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영화 청년 동호>를 보며 너무 그리운 얼굴들과 작별한 것에 대한 슬픔도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여배우 강수연, 영화제 해외 출장 중 유명을 달리한 김지석 프로그래머, 영화계의 큰 형이었던 이춘연 대표까지. 그리고 영화제는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운 사람, 이선균'으로 그를 추모했다. <사과>에서 만난 청년 이선균을 함께 나이 들어가며 서리가 내리 앉은 배우로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었는데... 떠난 이를 향한 그리움은 가을밤 달맞이꽃처럼 피어났다 수그러들었다. 마지막 청년은 BTS RM이 영상에 그린 청춘 스케치다. <알앰: 라이트 피플 롱플레이스>는 자신의 음악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을 펼친다. 꽃길만 걸어온 청춘이 아닌, 치열하게 고민하는 영상을 통해 고치를 벗고 나비가 돼가는 성장을 보여주는 청춘의 Reality Bites다. RM과 고로 상, 영화 청년 김동호 세 명의 청년 덕분에 풍성한 영화제를 즐겼다. 이제 스물아홉의 BIFF는 어떤 생각으로 서른 잔치를 준비할까. 국내 영화제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며 한때 전 세계가 부러워하던 영화제였던 BIFF가 사춘기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성장통을 겪으며 제법 단단해진 아름드리나무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30년이란 세월의 나이테를 가진 향이 나는 나무가 되어 나무를 떠났던 숲속의 동반자들을 다시 불러 모아 더 아름다운 영화의 숲이 되기를, 놀라운 풍경이 펼쳐지는 영화의 바다로 항해하는 서른 살의 BIFF를 곧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OTT 시대에 감독판 8부작으로 돌아온 19년 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양다리 걸치다 들켜 당당하게 헤어지자는 나쁜 남자 앞에서 눈물 뚝뚝 흘리다 화장실에서 판다가 되어 울던 삼순이는 요즘 MZ세대들에게는 도통 이해 안 될 이야기지만 그때는 또 왜 그렇게 내 얘기 같았을까. 인트로는 참기 힘든 신파지만 삼순이와 진헌의 사랑 이야기는 손발 오그라드는 장면을 다 걷어낸 김윤철 감독의 편집 때문인지 꽤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2024년 웨이브에서 뉴클래식 프로젝트로 선보인 첫 번째 콘텐츠는 19년이 흘러도 이름이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준 브랜드 삼순이의 귀환이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당시 5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국의 삼순이란 이름을 가진, 그리고 그 시대 모든 여성의 욕망을 대변하며 달콤한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추억의 이름이자, 여전히 유효한 레트로 열풍 속 다시보기 버튼을 작동시킨다. 삼순이가 보여준 2005년 우리의 풍경, 그땐 그랬지 20년 전 부모의 결혼 강요로 젊은 남녀의 주말은 온통 선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나 싶을 정도로 호텔에서 선을 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삼순이뿐 아니라 다른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와 결혼하기 싫은 남자. 그 남자들은 꼭 자신과 다른 환경의 여자에게 관심을 두고 서민 체험을 하며 그녀들의 세계를 신기해한다. 세기말을 넘겨 2000년대로 진입했던 당시 트렌디 드라마의 유행은 경제적 생활고를 가진 여주인공과 결핍 있는 부잣집 남자 주인공, 여기에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돈 많은 실장님, 남자 주인공이 애타게 짝사랑하는 서브 여주 4각 관계 구도를 드라마 김삼순도 초반에는 철저히 따른다. 여자는 돈이 필요하고 남자는 거래를 제안하고, 어쩔 수 없이 수락한 계약 관계를 통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사실 삼순이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노처녀도 아니고 별로 뚱뚱하지도 않다. 서른 살에 파리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자기 발전을 이룬 삼순이는 늘 남자에게 차이는 사랑을 했다는 것과 삼순이란 촌스러운 이름 말고는 기죽을 것도 없는 엄청난 고스펙 전문가이기도 하다. 2005년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화끈하고 통쾌면서도 사랑스러운 삼순이의 매력 때문이었다. 사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할 말 다 하면서도 당당했던 여주인공 김삼순은 그 당시 워킹우먼들의 꿈이었다. 90년대 신데렐라와 캔디 드라마의 2000년대 버전인 김삼순은 여주인공의 성장과 자기 발전을 그리며 끝났다는 점에서 연애와 밀당만 주야장천 보여주던 그전 드라마들과 달랐고 <파리의 연인>, <옥탑방 고양이>처럼 자기 주관 뚜렷하고 독립적 성향을 보인 여주인공을 거쳐 진일보한 여성 캐릭터였다고도 할 수 있다. 서른 살이지만 아줌마 소리를 밥 먹듯 듣는 삼순이 캐릭터는 동네 욕쟁이 할머니 같다가도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김선아의 연기는 지금 봐도 찰떡처럼 찰지고, 풋풋한 현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난다. 삼순이가 자주 쓰는 당시 유행어 미지왕(미친놈, 지가 왕잔 줄 알아)과 자주 등장하는 '얼마면 돼?' 현빈 버전 덕분에 <가을동화> 원빈 소환까지, 추억은 방울방울 솟는다. 삼순이가 바꾼 것들 : 절반의 성공을 이룬 드라마 여성 캐릭터 아니, 삼순이는 저렇게 자기 이름이 싫으면 개명하면 되지?!란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우리나라 법률상 개명 정식 허용이 이뤄진 시기가 2005년 11월이다. 드라마가 7월에 끝났으니 그 후로 4개월 뒤 개명이 가능해졌단 말인데 그전에는 이름이 맘에 안 들어도 바꾸지 못했던 시대를 살았단 얘기다. 또한 드라마 속 삼순이 아빠가 빚보증을 잘못 서 집을 날리거나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는 삼순이 언니가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순이는 여전히 혼자가 아닌 태평양을 건널 조각배를 같이 탈 동반자를 구하는 데 진심이다. 혼자 살고 말지, 아이도 낳지 않고 결혼도 선택이 된 지금 2024년의 대한민국과는 너무나 다른 결혼은 필수라는 당시의 시대상과 작가의 가치관이 부담스럽지만 극 중 삼순이는 꿋꿋하게 커리어를 쌓으며 나아간다. 아마도 삼순이는 그 후 우리가 만나게 될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 같은 진취적이고 100%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나아가는 진격의 여주인공들의 완성되기 전 성장형 캐릭터의 절반의 게이지를 채운 과도기적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오십이 된 삼순이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2024년 삼순이는 어디선가 자신의 베이커리를 내고 잘 살고 있을까? 진헌과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행복했을지 아니면 메기같이 생긴 시어머니의 구박과 등쌀에 재벌가 청담동 며느리 사표 내고 이혼한 뒤 다시 파리로 훌쩍 떠나서 파리지앵과 만나 새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란 드라마는 당시 결혼과 성공이라는 불안의 좌표를 향해 조각배를 타고 가던 모든 30대 여성이 서랍 속 넣어둔 일기장 같은 존재다. 수없이 울어 보고 아픈 사랑을 했던, 종국에는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달콤한 케이크로 셀프 위로를 했던 수많은 이 땅의 삼순이들을 위한 위로이자 응원이었기에 이 귀환이 반갑고 또 즐거운 이유다. 내 젊은 날의 김삼순을 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치열했던 30대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줘서다. 나의 김삼순, 오랜만이야 반가워.
무더운 폭염의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휴가가 허락되지 못한 소시민에게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며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가성비 최고 피서의 한 방법. 오랜만에 심야에 집 앞 극장엘 가보니 부쩍 늘어난 콘서트 실황 영화들이 눈에 띈다. 시공간 제약이 적은 OTT 콘텐츠에 맞서, 극장은 생존 전략으로 스크린에서 상영할 수 있는 팬미팅, 월드 투어, 스포츠 생중계 등 복합상영관의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콘텐츠들을 상영하기 시작했다. <슬램덩크> N차 관람으로 시작된 마니아들의 극장 N차 관람 열풍, <보헤미안 랩소디> 싱어롱관 상영을 통해 이제 극장이 더 이상 조용한 몰입의 공간이 아닌 다 같이 즐기며 흥을 발산하는 체험과 소통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티빙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마지막 회차를 변우석, 김혜윤 등 남녀 배우들과 함께 한 극장 실시간 관람 이벤트는 영화와 드라마, OTT와 극장 무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성공적인 영상 콘텐츠를 위한 쌍방향 소통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일방적 상영이 아닌 쌍방의 관계,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체험과 창작의 마케팅이 극장과 영화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스토리텔링 전문가 김공숙 교수는 극장과 소비자의 변화에 대해 스토리텔링을 지나 '스토리두잉'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7월 마지막 주 극장가는 대형 텐트폴 영화와 예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파일럿> 같은 코믹 영화 속에서 블랙핑크, 이준호, 영탁의 콘서트 실황 영화들이 예매 차트 순위를 석권하고 있었다. <탁쇼2>는 주말까지 3만 명을 동원했다. 작년 <탁쇼: The Movie>가 4만 2천 명을 동원한 스코어와 비교해 개봉 3주 차 성적으로 보면 선전하는 수치다. 더구나 개봉 2주 차부터 싱어롱 상영관을 오픈해 팬들에게 영화를 보면서 마음껏 떼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영탁의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콘서트 장면을 스크린으로 보며 노래까지 따라 부를 수 있게 배려한 싱어롱관은 개봉 2주 차 중년 팬덤을 극장으로 끌어모았고 예매율을 다시 상승하게 만든 마케팅 전략이었다. <탁쇼 2>가 개봉하자 팬들은 그의 노래 제목을 딴 '폼 미친 영탁관'을 만들어 단체관람하고 티켓을 문화 소외 계층에 기부하는 등 스토리두잉으로 화답했다. 이미 본 팬 vs 콘서트 못 본 대중 : 콘서트 영화의 타깃은 누구? 요즘 콘서트의 핵심은 콘셉트이다. 앨범에 있는 노래를 콘셉트에 따라 어떻게 핵심적으로 잘 배치하느냐가 관건이다. 영탁은 <탁쇼1>에서는 자신의 스토리에 집중했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 앞에 나선 그가 자신의 기나긴 15년간의 무명 시절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뮤지션으로서 어떤 목표와 자존감을 가지고 버텨왔는지 진솔한 인터뷰를 브리지로 넣어 <탁쇼: 더 무비>를 구성했기에 영탁의 콘서트를 보지 못했거나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뮤지션으로서 영탁을 어필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한마디로 <탁쇼1>는 스토리텔링이 잘 됐다는 얘기다. 두 번째 <탁쇼2>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갔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여행하는 콘셉트를 잡아 미국과 유럽, 남미까지 돌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영화 속에서 나라와 나라를 이동하는 무대의 소개 브리지로 영탁은 축구를 하고 삼바춤을 추며 마지막엔 한국으로 귀국하는 영탁과 입국심사대의 영탁으로 1인 2역 연기까지 보여준다. 이미 몇 편의 드라마에서 조연과 카메오로 연기를 보여준 영탁은 지금 보고 있는 영상이 영화란 사실을 상기시키며 남자 주연배우로서 짧지만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웃음을 안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은 공연 뒤 이야기인 비하인드가 쿠키 영상으로만 제공되고 120분의 러닝타임이 공연 모습으로만 채워졌다는 점이다. <탁쇼2>는 소비층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를 못 가본 일반인이라면 처음 보는 공연을 체험하는 느낌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미 그의 공연을 많이 본 팬이라면 조금은 아쉬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 영화는 2월에 있었던 탁쇼 전국 투어의 앙코르 콘서트를 담아서 보여주는 영화니 공연 모습을 담는 것에 가장 충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탁쇼를 마친 영탁의 감회가 들어간 인터뷰나 달라진 셋 리스트 소개, 앙코르 콘서트에 처음 등장한 '니 편이야' 반응에 대한 느낌, 7개 도시 15번의 공연 도시별 에피소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는 점은 음악 다큐 같은 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겐 아쉬움을 남겼다. 내년에 <탁쇼 3> 공개 뒤 제작될 영화는 실황 공개가 아닌 뮤직 다큐멘터리로 접근한다면 팬들도, 그의 공연과 음악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공연의 영상 콘텐츠화…트랜스미디어 핵심은 Something New의 재구성 지난 5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을 했던 임영웅의 공연 실황 역시 8월 말에 영화로 상영된다고 한다. 연령층이 높은 팬덤을 보유한 임영웅이 스케일로 팬들에게 서비스한다면 영탁은 다양한 장르의 변주와 뮤지션으로서 확장성을 서비스한다. 영탁은 R&B 가수로 데뷔를 했고 락, 발라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오가며 자신의 영역을 무한대로 펼쳐 보이는 뮤지션이다. 처음 영탁이라는 가수를 알게 되고 그의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가 노래를 부르는 가수(歌手)만이 아닌 노래를 만드는 프로듀서이자 자신의 음악에 대한 콘셉트가 명확한 뮤지션이라는 점이다. 그가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준우승자라는 발판을 딛고 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그동안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장르의 음악을 다양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찐이야'와 '니가 왜 거기서 나와'에서 보여준 유쾌한 리듬감과 밝은 에너지와는 또 다른 '담'에서 보여준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자전적 서사와 하드락의 결합, '신사답게'와 '폼 미쳤다'가 대중의 참여와 체험을 유도하는 즐거움의 스토리두잉 전략을 실천한 대표곡이라면 2집의 '풀리나'와 '값'은 우리 사회에 대한 유쾌한 비판이자 1집에 이어 여전히 현실 가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단다.' 이적이 영탁의 목소리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팽팽한 천을 명중시키는 강렬한 화살처럼 그의 목소리는 세상을 향해 날아가 꽂힌다. 사진 : yoonseul. tak 제공 실제로 가본 <탁쇼> 공연은 영탁 특유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앙코르곡까지 3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오롯이 자신의 곡들로 채워 셋 리스트를 완성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저작권 문제가 걸린 팝송 'Creep'과 'feeling good'이 빠지며 이어지는 장면 편집이 다소 거칠게 느껴졌지만 그 부분은 싱어롱 상영 2주 차에는 다시 재편집되어 해결되었다. 상영관에 따라 사운드와 화질의 편차도 커서 서울은 사운드, 화질의 문제가 없었지만 지방 소도시 작은 관인 경우 사운드와 일부 화면 번짐 같은 화질의 문제는 아쉽게 느껴졌다. K-POP 스타들의 세계적 인기로 공연의 영화화는 이미 일반화되었다. 공연을 영화로 트랜스미디어하는 핵심은 편집이 아닌 Something New의 재편(再編)이다. 공연 실황을 그대로 Ctrl+V 하는 대신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 재구성해 주길 팬들과 관객은 바란다. 또한 영화 홍보를 위한 짧은 무대인사보다 넉넉한 시간을 잡고 영화의 주연배우와 나누는 GV(Guest Visit) 이벤트도 한 번쯤 고려해 주면 좋겠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음악가는 담을 넘고 자신에게 던져지는 편견과 장애물을 건너뛰며 드디어 눈앞이 탁 트인 로렐라이라는 시리도록 파란 바다 앞에 멈춰 섰다. 자신의 음악과 삶을 스토리텔링하는 뮤지션의 항해가 어디서, 또 어떻게 시작될지 영탁의 세 번째 도전과 그의 음악을 기다려본다.
5월 한 달간 연예계를 달군 김호중 음주 뺑소니 사건을 계기로 트로트 팬덤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여러 논의를 보고 있자니 대중문화와 팬덤 연구자로서, 트로트 팬의 한 사람으로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20년 <미스터 트롯>이 배출한 TOP 7을 포함한 트로트 스타들은 앞서 국내외 활발한 공연을 했던 <미스 트롯>과는 다르게 코로나 장기화와 활동 시기가 맞물리며 주로 TV와 OTT 서비스로 대중에 노출됐다. 일상적인 생활이 힘든 특수 상황 속에서 '위로와 치유'라는 아젠다를 내세우며 두터운 팬덤층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했고 트로트 팬덤은 특정 대상을 향한 애착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은 미스터 트롯 멤버들은 각자 개인적 위기와 부침 속에서도 성장을 했고 그중 김호중도 예외는 아니다. 흡수와 모방, 트로트 팬덤의 정체성 팬덤 4.0 시대 속 트로트 팬덤의 핵심은 모방과 학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팬덤의 주축이 되는 40~60대 팬들은 개인차는 있겠지만 20대인 80년대에 이미 조용필, 이용, 전영록 등의 오빠 부대를 경험했고 80년대 후반 소방차, 김완선, 박남정의 댄스 가요 열풍에서 90년대 서태지로 이어지는 대중가요 발전기에 10대를 보낸 세대다. 이미자와 나훈아, 남진의 공연을 TV로 만나고 귀로 듣던 전 세대와는 다르게 공개방송, 전국 투어콘서트, 창작 가요제 등 '소통과 공감'이 시작된 대중가요의 르네상스를 겪은 세대들이다 보니 취향의 선택인 팬덤 문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아이돌 팬덤과 덕질을 경험한 자녀들은 가족 구성원인 부모에게 팬덤 유입과 티켓팅과 덕질 문화를 전파-학습-공유했다. 결국 아이돌의 팬덤 문화를 답습하게 된 트로트 팬덤은 K-POP 아이돌 팬덤이 만들어낸 응원 문화인 음원과 차트 경쟁, 음반 사재기, 후원금, 기념일 서포트 등을 모방하게 된다. 학생 또는 사회 초년생이 대부분인 아이돌 팬들과는 다르게 퇴직 후 경제적 여유가 있는 58세대에 해당하는 중년의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만큼 경제적 능력도 가지고 있다. 트로트 팬덤 현상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강한 유대감과 정서적 몰입, 자기 동일시로 해석할 수 있는데 자기 동일시 관점은 팬이 스타로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 지나치게 몰입하며 마치 가족의 일원이나 안면이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심리적 동질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OTT 시대로 접어들면서 과거 신비주의로 일관하던 스타나 셀러브리티들의 일상생활이 공개되고 자신의 일상을 실시간 공유함으로써 팬과 스타 간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고 긴밀한 애착과 유대감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적 유대를 느낀 팬들은 경험의 확대를 통해 팬미팅-공연-라이브 방송 등의 방법을 통해 팬덤의 주체로서 대상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만족감을 얻으며 더 큰 서비스를 요구하게 된다. 정의 유전자가 강한 한국인은 K-POP 팬덤을 강하게 끌어올린 양육과 돌봄의 정서로 자식 세대의 팬덤 문화를 흡수하고 모방한 중년의 트로트 팬덤을 구축했다. 그리고 행복감을 느끼는 부모를 보면서 2, 30대 자녀들은 효의 방안으로 트로트 가수들의 티켓 전쟁에 뛰어들거나 팬덤 활동을 지원한다. 이렇듯 효와 정이 트로트 팬덤의 정서이다 보니 김호중의 음주 뺑소니 사건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 대신 초기에는 옹호와 선처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비단 김호중 팬덤뿐 아니라 다른 트로트 가수들도 사회적 문제로 이슈를 일으켰을 때 가족을 내세운 팬덤이 옹호론을 펼치고 과도한 후원금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팬덤의 얼굴은 해당 스타의 얼굴이 된다. 팬덤의 품격은 그들이 좋아하고 수많은 애정을 보내는 아티스트의 품위를 대변한다. 그러니 팬덤도 행동을 조심하고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팬과 팬덤, 스타는 함께 굴러가는 세 바퀴의 마차처럼, 혹은 이인삼각 경기의 주자처럼 그 어느 하나의 균형이 깨어지면 잘 달릴 수 없고 나동그라지게 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김호중의 팬덤 역시 냉철하게 팬덤의 방향과 품격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정을 기반으로 구축된 트로트 팬덤도 객관성을 가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들이 응원하는 누군가의 재능이 묻히지 않고 다시 꽃 피우기 위해선 말을 아끼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통통 튀는 발랄한 제목처럼 <선재 업고 튀어>의 화제성이 연일 상한가다. 4% 시청률이면 나쁘지 않은 승률인데 <눈물의 여왕>에서는 살짝 아쉬웠던 멜로물의 포텐을 터뜨리며 주말에 드라마 빈지뷰잉(Binge-Viewing, 몰아보기)하던 내가 어쩌다 월요일을 기다리고 있는지, 게다가 달력을 보며 팝업 스토어 오픈 날짜까지 동그라미 치고 있으니 <선.업.튀>에게 제대로 영업당했지 싶다. 아마도 <눈물의 여왕>과 더불어 tvN 최고의 상반기 화제작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마지막 회 주연배우들과 단체관람 이벤트, 곧 오픈할 팝업 스토어까지 <선.업.튀>의 열기가 뜨겁다. 원작 웹소설 <내일의 으뜸>과 웹툰, 종이로 출판된 단행본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니, 솔이와 선재, 솔선 IP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선재 업고 튀어>의 핵심 주제는 '최애 구하기'다. 한 번쯤 찐한 덕후를 경험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가 사랑하는 최애 지키기. 존재해줘서 고맙고 태어나줘서 고맙고 그저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고마운, 내가 사랑하는 스타를 향한 팬덤의 명제가 드라마 전반을 지배한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시청자와 수용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선재 살리기'라는 강력한 초목표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들이 성취해야 할 목표를 뜻하는 초목표는 드라마의 방향성이자 원동력이다. 궁극의 목표인 초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쉴 틈을 안 주다 보니 드라마 서사에 몰입이 뛰어나고 팬덤을 구축하듯 충성도 있는 강력한 드라마 팬덤이 형성되는 것이다. 구원의 역할을 서로에게 부여하고 솔이가 과거로 가서 선재를 살리려는 게 결국 선재가 솔이를 살리는 것이 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구하고 지킨다는 스토리는 선업튀의 세계관을 만들어내며 한 번쯤이라도 덕질에 빠졌던 수용자들의 과몰입 증상을 유발한다. 영화 <아가씨> 속 대사인 '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는 종종 덕질을 하는 팬들 사이에 쓰이는 말로 나를 애타게 만드는 상대는 나의 구원자임과 동시에 나락과 극락을 오가게 만드는 대상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이렇게 MZ세대들의 열정적 지지를 얻게 된 이유는 드라마 타깃층인 MZ세대들의 추억을 제대로 복구한 데 있다. 싸이월드의 아바타와 브라운아이즈의 노래 '점점'을 통해 솔이와 선재의 심리적 거리를 표현한 부분이나 극 중 이클립스라는 밴드가 부르는 '소나기'와 드라마 속 OST가 2000년대 아련한 정서를 소환한다. 2009년 타임슬립 속 공간은 당시 시대적 배경과는 다른 시간의 오차가 발생하는데 VHS 비디오는 이미 2009년에는 거의 사라져버린 저장 매체며 자주 등장하는 김형중의 '그랬나봐'도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유행한 노래다. 동네 비디오 가게 VHS 테이프, MP3, 폴더폰, 싸이월드 도토리, 스티커 사진 등 그 시간 속 MZ세대들의 추억을 통째로 소환했고 현실 고증보다 감성적 고증이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 드라마 속 '선재'가 갖고 있는 판타지는 MZ세대를 넘어 X세대들의 판타지까지 자극한다. 밤하늘 속 떠있는 별처럼 멀고도 가까이하기 힘든 존재라고 생각했던 대상이 실은 나를 지켜줬고 미미했던 나의 존재가 그에게 첫사랑일 수도 있다는 판타지, 그리고 우리가 함께 지키지 못한 소중한 존재를 되살리기 위해 타임슬립하고픈 욕망을 채워준다. 이십대, 봄날 벚꽃잎처럼 흩날려버린 첫사랑의 복원, 그리고 팬덤 4.0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내 삶의 유일한 희망이 된, 업고 튀고 싶은 존재들에 대한 욕망의 판타지를 선물한다. 이제 딱 2회 차를 남겨놓은 이 드라마가 건네는 사회적 의미는 팬과 스타의 유기적 관계에서 나아가 바로 MZ세대의 특징이기도 한 개인주의의 실현이다. 이루지 못한 나의 꿈, 흘려보낸 첫사랑, 근과거의 회상과 복원을 통해 바라보는 추억의 재건. 2023년 이후 다시금 유행하는 청춘 판타지 타임 슬립물은 사회적 실천이나 변화 대신 자신의 강렬한 욕망의 판타지를 우선시한다. <선재 업고 튀어>는 그렇게 30년 만에 제대로 덕질에 빠진 X세대 수범이도 설레게 만든다. (지금 만나면 잘 업고 튈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