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학사, 경영학 석사, 국내 대기업 22년 차 직장인 - 오늘도 출근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스테르담 -
우리 회사 내 빌런 고발부터 직장 내 괴롭힘 상담까지! 직장생활의 모든 것, 대나무슾에 털어놔 봅시다! Q. 회사에서 나의 성과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동기 부여가 안 됩니다. 열심히 일해서 나름 성과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팀 내에서는 이런 성과나 나의 노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 의욕이 떨어지고 지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울창한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습니다. 이것은 과연 소리가 난 것일까요? 양자역학에 관해 설명하는 짐 배것의 <퀀텀 스토리>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이 책에서 '소리'를 우리 귀에 들리는 '인간의 경험'으로 정의합니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위 질문의 답은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네 직장인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직장인에게 이 말을 적용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나를 알아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거대한 직장 속에서, 나는 커다란 성과를 냈다. 내가 한 일은 과연 성과일까?' 그래서 저는 질문하신 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나 혼자 만족하면 되겠지... 하지만 어디 그런가요. 직장은 철저히 성과에 대한 인정을 받아야 먹고사니즘을 해결할 수 있는 곳입니다. 혹시 '드러내는 사람'과 '드러나는 사람'의 차이를 아시나요? 전자는 자신의 성과를 자신이 떠드는 사람이고, 후자는 다른 사람이 그 성과를 말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드러내야 할 땐 드러내고, 드러나야 할 땐 드러나야 하니까요. 예전엔 소위 말해 '광'을 파는 사람을 혐오했더랍니다. 그러나 이젠 그것 또한 실력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광'으로만 끝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어선 안 되겠지만 자신의 성과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표현해야 한다는 건 매우 중요한 직장인의 과제입니다. 어찌 보면 개인 브랜딩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누군가는 질문자님의 성과를 분명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다들 바쁘고 정신이 없거나, 자신의 성과가 크게 나지 않아 같은 걱정을 하느라 그것을 받아들여 주지 못하는 것뿐이죠. 아마 질문자님께서도 다른 이의 성과를 먼저 알아주거나 했던 적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성과는 내가 확실히 알아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력이 단단해지고 성과가 쌓이면 나는 더 이상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사람이 될 테니, 자신의 성과를 스스로 크게 칭찬해 주시고 다음 성과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드러남과 드러냄을 적절히 섞어, 성과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핵심 인재가 되길 바랍니다. 회사에도, 나 자신에게도. 항상, 응원할게요! 사진 : 게티이미지
우리 회사 내 빌런 고발부터 직장 내 괴롭힘 상담까지! 직장생활의 모든 것, 대나무슾에 털어놔 봅시다! Q. 직무 특성상 야근이 필수입니다.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는 업무라, 하루 8시간 근무로는(물론 저의 능력 부족도 있겠지만) 업무를 끝내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전에는 그냥 야근해 가며 일을 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지 않아서 야근을 하면 할수록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집니다. 그렇다고 제가 야근을 안 하면, 그만큼 팀장님과 다른 팀원들에게 업무 부담을 주는 상황이 예상됩니다. 인원 충원이 예상되지 않는 상황에서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고민과 고생이 정말 많겠습니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은 직장인 모두의 공통 고민거리일 겁니다. 시간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말이죠. 우선, 워라밸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짚고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질문자님께서 문의하신 것처럼, 우리는 '밸런스'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봐야 하니까요. 얼마 전, 워라밸로 고민이 많다는 후배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후배가 원하던 워라밸은 무엇이었을까요. 상사와 선배들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 정해진 시간에 칼같이 퇴근하고 이후 시간이나 주말에 간섭받지 않는 것.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일 겁니다. 잠깐만 같이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주 40시간 도입으로 우리네 고질적인 야근 문화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워라밸은 전적으로 회사가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노력도 분명 필요합니다. 회사가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라고 하더라도, 맡은 일을 완료하는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합니다. 근무 시간에 최대한 마무리하려 노력하되, 그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근무 외 시간에 일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유럽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자유롭게 일을 한다고 우리는 쉽게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은 근무 시간 이후에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하고 있던 겁니다. 점심도 샌드위치로 자리에서 해결했는데도 말이죠. '워라밸'은 말 그대로 균형 잡기를 의미합니다. 평균대에 올라가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양팔을 벌리고 좌우 균형을 잡는 것이죠. 상황에 따라 '일'에 무게를 더 주고, 필요하다면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워라밸'이란 말이 칼퇴근만을 의미한다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균형은 주도적으로 잡아야 합니다. 회사의 시스템이나 제도가 그것을 보장해 준다는 생각은 내려놓는 게 좋습니다. 질문자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말씀해 주신 상황과 부서 특성을 봤을 때, 균형점이 '일'에 더 맞추어져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님께서는 '밸런스'를 잘 맞추고 계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너무 큰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습니다. 다만, 결혼 후 생각이 달라졌다면 조금은 더 냉정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질문자님의 아내분께서 맞벌이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든 아내분께 부서 특성을 잘 이야기하시어 평일엔 집안일이나 육아를 많이 도울 수 없음을 '합의'해야 합니다. (미안한 마음은 주말에 집안일을 하며 만회할 수 있겠고요.) 이것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큰 차이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착각은 버려야 합니다. 저도 '경제 주체'와 '집안일·육아 주체'에 대해 제 아내와 분명하게 합의를 했고, 둘째 출산 후 경력을 포기하고 육아에 전념한 아내와 워라밸로 인한 그 어떤 갈등도 없습니다. 또 다른 방법도 있겠죠. 인원 충원이 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거나, 해당 부서보다는 데드라인 압박이 조금은 덜 한 팀으로 이동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영원히 한 부서에 있는 일은 없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회사 시스템을 활용하여) 면담을 하고 다른 기회를 찾는 결단도 내릴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퇴사할 것이 아니라면 '워라밸'은 각자의 몫입니다. 평균대 위에 양팔을 벌리고 균형을 잡아 앞으로 나아가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니까요. 사진 : 게티이미지
우리 회사 내 빌런 고발부터 직장 내 괴롭힘 상담까지! 직장생활의 모든 것, 대나무슾에 털어놔 봅시다! Q. 처음 합격했을 땐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고, 신입 교육도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실무를 시작하니 업무가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그로 인해 너무 여러 걱정과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A. 신입사원이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의 제 질문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제가 생각한 직장생활과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기대한 것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당시의 괴리감은 저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음속엔 이미 사표가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그 어려운 취업 관문을 뚫고 당당하게 입사했는데, 도대체 왜 그런 마음이 드는 걸까요? 질문자님의 질문에 그 답이 있습니다. 처음 해보는 어려운 업무. 잘 해내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불안함. 잘 알지 못하는 프로세스, 해보지 않은 사회생활. 직장생활은 이런 것일까?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더 잘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질문자님으로 하여금 불안함을 증폭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영화 올드보이에선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있잖아, 사람은 말이야. 상상해서 비겁해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하지 말아 봐. 정말 용감해질 수 있어." 맞습니다. 모든 불안과 두려움은 상상과 더해져 더 강력해집니다. 그러나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를 쓰고 세월이 흐르며 깨달은 건, 불안과 두려움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과 상상이 아닌 현실로 그것들을 대하면 오히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만 버텨보자던 신입사원은 어느새 22년 차 조직 책임자가 돼 있습니다. 돌아보면 어떻게 버텼나 싶습니다. 학생에서 직장인이 된 그 순간은, 마치 '퀀텀 점프'(번역하면 '양자 도약', 전자가 일정한 궤도를 돌지 않고 불연속적으로 도약하는 현상을 뜻하며 비약적인 변화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함-작가 주) 한 것과도 같습니다. 학생과 직장인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돈을 버는 것'입니다. 학생 때는 돈을 씁니다. 배우기 위해, 앞날에 돈을 벌기 위해 일종의 투자를 하는 것이죠. 직장인은 돈을 법니다. 먹고사니즘의 최전선에 뛰어든 겁니다. '돈을 번다는 것'은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책임질 일이 많아졌단 뜻이기도 합니다. 공부는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접으면 됩니다. 그러나 직장생활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표는 낼 수 있지만, 어찌 되었든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곳에 취업하든, 사업을 하든 해야 합니다. 불안과 두려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상상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2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걱정과 고민은 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어느새 몇 뼘 더 성장해 있고 자의든 타의든 주어진 업무에 대해 고민하며 수많은 경험을 쌓고 있다는 겁니다. 이는, 새로운 환경이나 갑작스레 주어진 업무 등의 상황 속에서 너무나 훌륭히 나를 지켜내는 핵심 역량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량은 제가 회사를 떠나 혼자만의 사업을 할 때에도 분명히 필요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업무. 밀려드는 걱정과 고민. 직장 내 그 어떤 업무도 나와 찰떡처럼 잘 맞는 건 없습니다. 직장은, '회사 체질이 아닌 사람이 모여, 하기 싫은 또는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곳'이니까요. 영원한 직장인은 없습니다. 언젠가, 회사를 더 다니고 싶어도 다니지 못할 그날이 분명히 옵니다. 그렇다면 저와 질문자님이 생각해야 할 건, 회사를 떠날 때 무엇을 얻고 나갈 것이냐에 대한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할 때, 배우고 얻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사표 대신 마음에 품으시길... 진심으로 바라고 또 응원합니다.
Q. 직장에서의 일과 관계에 있어서 감정을 꺼내지 못하고 꾹꾹 누르느라 소진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표현하고 나면 상사 그리고 동료와 어색해질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A. 저는 출근할 때, '간'과 '쓸개'를 냉장고에 넣고 출근합니다. 네?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직장인이라면 간과 쓸개를 보관할 전용 냉장고는 하나씩 있잖아요. 간과 쓸개는 인체의 해독 및 소화 기능을 담당하는 중요한 기관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주요 장기입니다. 간과 쓸개를 집에 두고 출근한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닙니다. 한의학에서는 감정을 오장육부와 연결하는데, 그중에서 분노는 '간'과 '쓸개'에 배속이 됩니다. 분노를 일삼으면 간과 쓸개가 망가진다는 겁니다. 직장에서는 분노란 감정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간과 쓸개를 집에 두고 출근한다고 말하는 것이죠. 다시, 한의학으로 돌아가 간과 쓸개는 '소설작용'과 '상승작용'에 깊이 관여한다고 합니다. 사방으로 기운을 소통시켜 주고, 소화를 도와 원기를 끌어올려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요.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기운이 응어리진다'라고 말합니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간과 쓸개가 망가져 건강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나 한국 사람은 예로부터 내려온 유교사상과 집단주의에 큰 영향을 받고 있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슴에 꾹 담아 병을 키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화병(火病)'이라고 부릅니다. 미국 정신의학회에서도 한국인에게 특화된 증후군이라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간'과 '쓸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겁니다. 첫째, 분노를 오장육부에 전달하지 않는 방법. 둘째, 감정을 잘 표현하는 방법. 첫째 방법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간'과 '쓸개'를 위한 (마음속) 전용 냉장고를 만드는 겁니다. 직장이란 오만가지 감정이 요동하는 곳이란 걸 인정하는 것이죠. 정말로 배 속에 있는 그것들을 꺼내자는 것이 아니란 걸 잘 아실 겁니다.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도 좋습니다. 분노가 일더라도, 그것이 오장육부에 닿지 않도록. 냉장고에 신선하게 보관되어 있는 간과 쓸개를 떠올리시는 겁니다. 지금 당장 속이 문드러지지 않도록 말이죠. 둘째는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게 정말 '감정'일까를 떠올리는 겁니다. 감정을 전달하면 감정이 되돌아옵니다. 우리가 전달해야 할 건 바로 '메시지'입니다.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게 어려워, 우리는 돌려 말하곤 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 큰 오해가 쌓이고, 전달되어야 하는 메시지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죠. '네가 이래서 화가 나'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공격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 감정이 이러한데, 아마도 네 말과 행동을 내가 이렇게 받아들여서인가 봐'라고 말해보세요. '너'에 대한 손가락질이 아니라,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상대방의 반발을 줄이고, 메시지는 극대화하는 것이죠. '감정 내세우지 말아. 그러면 하수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더 '하수'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감정에 대한 충고는 매우 쉽습니다. 감정을 내세우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남의 감정에 왈가왈부할 때가 아닙니다. 내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간'과 '쓸개'는 소중하니까요.
A. 질문자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믿었던 동료들로부터 크고 작은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일을 겪고 나니 저는 어떤 노하우를 습득하게 되었는데요. 그건 바로, '마음은 반만 주자'란 생각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직장에서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모두 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함으로써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들려는 무의식이 작동하는 겁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그들로부터 상처를 받게 됩니다. "아니, 나는 마음을 다 열어 주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뭐라고 말할까요? 아마 이렇게 말할 겁니다. "누가 마음을 모두 열랬어?" '애착 이론(Attachment Theroy)'은 영국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에 의해 발전된 이론으로, 유아기의 양육 환경이 사람의 기본적인 애착 스타일을 형성한다고 주장합니다. 성인이 되어도 사람 관계에 있어 애착은 형성되는데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안정과 불안정 두 가지 모두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에 존 볼비는 자신의 애착 스타일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인간관계의 패턴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의 인연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닙니다. 바로 밥그릇과 밥그릇의 만남입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월급이나 승진을 서로 양보할 사람이 있을까요? 친하다고 해서 내가 저 사람 대신 퇴사를 해줄 수 있나요? 좋을 때는 좋지만, 자신에게 위기가 오면 나만 챙길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친했던 직장 동료가 나의 '먹고사니즘'에 방해가 된다면 어떨까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직장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아예 주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반'만 주자는 겁니다. 유아기가 아닌 우리는 '애착'의 정도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존 볼비의 '애착 이론'엔, '경계 설정'이란 이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강한 경계는 자신과 타인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명확한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 그리고 감정을 보호하고 타인의 침해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게 됩니다. 각자의 먹고사니즘이 우선인 조직적 만남에서는 특히나 더 말이죠. 컵에 물이 반이 차 있는 걸 보고 어떤 이는 물이 반 밖에 없다 하고, 어떤 이는 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만큼의 마음을 보고 어떤 이는 차갑다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그 정도면 회사에서 적당한 마음이라 생각할 겁니다. 저는 후자 쪽입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러면 상처도 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업무적이든, 사적이든. 반만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이 진행되고, 그래야 일이나 사람 관계가 잘못되었을 때에도 나는 금세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제가 이에 대한 격언을 하나 말씀드리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과 함께 직장생활에서 '믿음'에 대한 곤경에 처했을 때 꼭 떠올리시며 힘을 내시면 좋겠습니다. 디자인 : 고결
A. 생각보다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직장에서 친구가 필요할까요? 많으면 좋은 걸까요? '친구보다 먼, 타인보다는 가까운...' 이때마다 저는 노래 가사 하나를 떠올립니다. '사랑과 우정 사이'란 곡 안에 있는 가사인데요.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나는 사랑이지만, 상대방은 우정으로 생각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한 노래라 마음이 좀 아프긴 합니다만 저는 이것을 직장생활에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활용하고 있냐고요? 바로 가사를 아래와 같이 바꿔보는 겁니다. '친구보다 먼, 타인보다는 가까운...' 도로 위 내 주위 차를 선택할 수 없듯이,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그렇습니다. 그중에는 좋은 사람 또는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같은 공간에 서로 함께 하기조차 싫거나 나랑 상극인 사람이 있습니다. 보다 나은 직장생활을 위해선 아무래도 전자의 사람들이 많은 게 좋겠죠. 그러나, 그렇다고 그러한 사람들과 무조건 친구가 되어야 할까요? <직장 내공>이란 책에서 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직장은 일하기 위한 곳이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곳이 아니다. (중략) 직장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딱 중간 정도가 좋다. 그게 좋다. 서로를 위해.' 직장에서 '일'은 기본 전제 '직장 인연 4분면' by 스테르담 위 '직장 인연 4분면'을 같이 보실까요. 직장에도 좋은 사람은 많습니다. 형, 누나, 오빠, 언니의 호칭도 불사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있죠. 그렇게 편한 사람이 있다는 건 직장생활의 작은 '낙'입니다. 하지만 장소가 '직장'이란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일로 엮인 사람들에게 '일'은 기본 전제여야 합니다. 아무리 호형호제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간밤의 숙취를 이른 아침 같이 푸는 의리로 엮인 사람이라 해도, 함께 일하다가 서로 실망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친하다고 하여 내 고민을 이야기했는데, 그게 타인들의 입을 통해 내게 전해져 오는 뒤통수가 얼얼한 상황도 허다합니다. 친할수록 일을 잘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친하다고 너무 믿어서도 안 됩니다. 친분을 공고히 하려면 서로 일을 잘해야 하고, 일로써 피해를 주면 안 되며, 가능하다면 고민이나 비밀은 나누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친한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은 구분해서 보는 편입니다. 여러분도 꼭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조금은 정이 없어 보이고, 차가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회사에서 친구가 적은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친구가 너무 많으면 그게 더 문제입니다. 도로 위 어떤 차들은 저에게 양보도 해주고 아주 친절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곳에서 만난 차들은 어차피 모두 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을 뿐입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신나게 일하되, 굳이 친구를 만들거나 누군가의 친구가 되기를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묵묵히 각자의 목적과 방향을 추구하며, 서로에게 피해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회사에서는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 고결
A. 많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강해지셔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직장은 인간적인 대접을 해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제 말씀을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강해지실 수 있습니다. 퇴사를 할 게 아니라면, 꼭 들으셔야 합니다. 비인간적인 분위기의 주범, '대상화' 그전에 '대상화'란 개념을 좀 알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대상화', 즉 'Objectification'은 '사물화'로도 해석됩니다. '사물'은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대상입니다. 끔찍한 범죄가 일어날 때 범인은 피해자를 '대상화'합니다. 자신의 욕구나,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은 떼어내고 상대를 존엄함이 없는 사물이나 도구로 보는 것이죠. 회사와 나는 '계약 관계'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상사나 동료 후배들도 모두 회사와 '계약'을 기반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계약'이라는 제도는 '대상화'와 '대상화'를 이어주는 매개체입니다. 회사는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노동자는 일을 하고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집단이 필요한 것인데 이는 서로의 목적에 의한 만남이죠. 'HR', 풀어쓰면 'Human Resource'입니다. 회사는 우리를 '자원'으로 '대상화'합니다. 우리는 그것에 동의하고 계약을 한 것입니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회사가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복리후생과 워라밸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이는 개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 생산성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에 그러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으면, '자원'들은 회사를 나가거나 인재라 불리는 '자원'들이 오지 않게 되니까요. 세상이 변하긴 했지만, 일을 하다 보면 밤이고 새벽이고, 휴일이고를 가리지 않고 업무 지시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업무시간 외에도 그렇게 업무 지시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는 '대상화'가 된 것이죠. 나는 휴일에 아이와 놀아주거나, 배우자와 사랑을 나눌 수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상사의 지시나 물음에 바로 대답해야 하는 '객체(자원)'인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요? 상사는 왜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업무 지시를 해대고, 나는 그것을 꾸역꾸역 해내고 있는 것일까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상사와 나는 회사와 계약, 즉 대상화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회사 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 보니, 직장은 '인간적인 대접'이 우선이 아니라 업무나 성과가 우선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회사에서는 이러한 부담을 줄이려 '직급'과 '직책'을 만들고 관리합니다. 지시하는 사람도 나를 한 개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팀원'으로 보는 것이고, 나도 업무 지시하는 사람을 굳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사'로 '대상화'합니다. '대상화', 활용이 필요합니다. 직장은 '인간적인 대접'을 해주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마음은 좀 더 편해집니다. 그러니까 회사는 왜 나를 인간적으로 대접을 안 해주지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인정하고 활용하는 것이죠. '대상화'를 통해 인간적인 대접을 못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느꼈겠지만, 사실 이 글을 읽는 질문자도 분명 누군가를 '대상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마음에 상처 준 일도 허다할 것입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타 부서 사람이나, 주위 동료들과 갈등이 없을 수가 있을까요? 그 갈등은 대개 '업무'나 그와 연관된 '태도'로부터 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내가 상대방을 '대상화'했는데, 그 수준으로 따라오지 못하는 데서 야기됩니다. 연애를 할 때도,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이 잦아지는 것은 초기에 상대방을 나만 바라보는 존재로 '대상화'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상사가 되고 팀장이 되었을 경우 상대를 '대상화'하여 바라봐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개인의 감정을 다 헤아리면 일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회사에 모인 사람들은 '대상화'가 되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계약한 사람들이며 그래서 '직급'과 '직책'이 있는 겁니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업무 지시에도 기분 나빠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건, 일을 하는 한 나 스스로를 '대상화'하고 그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업무를 주는 상사 또한, 나는 그 사람을 '대상화'합니다. 그는 그의 일을 하는 것일 뿐. 이처럼 '대상화'는 '감정'과 '업무'를 분리해 주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잘만 활용하면, 인간적인 대접을 못 받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에 달려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제거할 수 있는 좋은 툴이 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을 '대상화'의 시선 말고도 '개별'로 보려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동의 업무 성과가 났더라도, 그것은 개개인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입니다. '개별'적으로 칭찬을 해주거나 피드백을 주면 분위기는 좀 더 좋아집니다. '대상화'가 된 존재들이 '계약'으로 모인 삭막한 직장 생활을, 조금은 더 유연하게 해주는 것이죠. 하지만, 상대를 '대상화'할 것이냐, '개별'로 접근할 것이냐는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가장 최악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때 상대방을 '대상화'하는 것이고, '대상화'해야 할 때 감정에 휘둘리는 것입니다. 강해지셔야 합니다. '대상화'를 활용하여 스스로를 지키고, 타인을 배려해야 합니다. 슬기롭고 지혜롭게. 바로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디자인 : 고결
알람과 함께 중력을 거슬러 오늘도 출근을 해내는 직장인 여러분. 간과 쓸개는 전용 냉장고에 넣되, 직장인에게 꼭 필요한 1일 1문장은 꼭 챙겨 출근하시길. 퍽퍽한 직장 생활을 촉촉한 의미로 가득 채우시길. 그리하여 스스로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임을 알아차리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 오늘도 출근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스테르담 드림 - A. 직장인에게 꼭 필요한 1일 1문장: 직장인, 나의 슬럼프를 절대로 알리지 말라 직장인의 직업병, 슬럼프. 직장인에게 슬럼프는 지긋지긋합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좀 더 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별로였던 사람도 꽤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처럼, 슬럼프도 꽤 친근한 구석이 있다는 걸. 심리학에서 말하는, 만남을 거듭할수록 호감을 갖게 된다는 '단순 노출 효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슬럼프가 3년 단위로 온다고 하지만, 요즘은 3달, 3주, 하루에 3번, 심지어는 3시간마다 오기도 하니까요. 직장인의 삶은 그렇게 고달프면서도 다이내믹합니다. 그러니, 이쯤 되면 슬럼프는 직장인의 직업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슬럼프는 감기다 친근해서 그런지 슬럼프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바뀌게 됩니다. 밑도 끝도 없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지만, 지난날의 슬럼프를 되돌아보면 분명 무언가 의미가 있었습니다. 어느 방향인지 모르고 뛰어가던 나를 잠시 멈춰 세운 것도 슬럼프였습니다. 심한 몸살감기는 면역력을 약하다는 신호이자, 몸을 챙기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감기는 누구나 쉽게 걸리고, 나와 네가 동시에, 또는 나와 너 중 하나만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한바탕 푹 자고 일어나거나, 열병에 아파 땀을 뻘뻘 흘리며 아픈 뒤에 자신을 더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하는 게 어쩐지, 감기와 슬럼프가 서로를 닮았단 생각입니다. 내 열정에 취해 다른 사람이 아픈지도 모르고, 반대로 내가 아프면 세상 모든 열정이 사라지는 것처럼. 내가 괜찮으면 다른 사람의 슬럼프가 보이지 않고, 내가 슬럼프면 남의 열정이 과해 보이게 됩니다. 나의 슬럼프, 절대 알리지 말 것! 슬럼프는 직장인에게 감기와 같이 오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대, 내가 슬럼프라는 것을 말하지 말 것!"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겁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 슬럼프에 관심이 없고, 있다면 내 슬럼프를 즐기거나 수군대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내가 슬럼프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해 줄 것 같지만, 깊은 내면에서 진심으로 그렇게 대해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슬럼프라고 해서 나에게 와야 할 일이 오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오히려, 업무상 발생하는 부족함의 일거수일투족은 슬럼프와 연관이 되고 맙니다. "이 과장 슬럼프래. 그래서 그런가, 영 시원치가 않아. 보고서가 엉망이야, 엉망." 더불어, 그 소문은 발 없는 천리마와도 같습니다. "김 대리 잘 지내? 요즘 슬럼프라며?" 나를 경쟁자로 여기는 사람에겐 아주 좋은 떡밥이자,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의 인사는 다시 피어오르는 내 열정을 꺾어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가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 농담이든 진담이든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로 만난 사이에서 뼛속까지 깊은 공감과 위로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내가 아프면 나의 아픔을 알아줄 거란 생각은 직장 밖에서나 하는 겁니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직장엔 나의 아픔을 악용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슬럼프가 왔을 땐, 그러니 나 홀로 조용히 슬럼프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슬럼프가 오면 소중한 손님처럼, 누구도 볼 수 없는 조용한 방으로 불러 슬럼프가 떠날 때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번엔 왜 왔는지, 어떤 말을 하고 싶어서 왔는지, 내가 잊고 지나온 것들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 절대, 언제 갈 거냐고 종용하며 채근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슬럼프는, 머지않아 나에게 여러 가지 보따리를 풀어놓고 생각보다 빨리, 홀연히 사라집니다. 인사도 없이 가는 게 섭섭할 만큼 말이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적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한 건, 아군의 사기를 위해서였습니다. 나의 슬럼프를 누구에게라도 절대로 알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디자인 : 고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