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균관대학교 심리학 학사 - 저서 ‘직장 내공’,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A. 많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강해지셔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직장은 인간적인 대접을 해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제 말씀을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강해지실 수 있습니다. 퇴사를 할 게 아니라면, 꼭 들으셔야 합니다. 비인간적인 분위기의 주범, '대상화' 그전에 '대상화'란 개념을 좀 알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대상화', 즉 'Objectification'은 '사물화'로도 해석됩니다. '사물'은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대상입니다. 끔찍한 범죄가 일어날 때 범인은 피해자를 '대상화'합니다. 자신의 욕구나,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은 떼어내고 상대를 존엄함이 없는 사물이나 도구로 보는 것이죠. 회사와 나는 '계약 관계'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상사나 동료 후배들도 모두 회사와 '계약'을 기반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계약'이라는 제도는 '대상화'와 '대상화'를 이어주는 매개체입니다. 회사는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노동자는 일을 하고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집단이 필요한 것인데 이는 서로의 목적에 의한 만남이죠. 'HR', 풀어쓰면 'Human Resource'입니다. 회사는 우리를 '자원'으로 '대상화'합니다. 우리는 그것에 동의하고 계약을 한 것입니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회사가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복리후생과 워라밸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이는 개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 생산성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에 그러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으면, '자원'들은 회사를 나가거나 인재라 불리는 '자원'들이 오지 않게 되니까요. 세상이 변하긴 했지만, 일을 하다 보면 밤이고 새벽이고, 휴일이고를 가리지 않고 업무 지시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업무시간 외에도 그렇게 업무 지시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는 '대상화'가 된 것이죠. 나는 휴일에 아이와 놀아주거나, 배우자와 사랑을 나눌 수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상사의 지시나 물음에 바로 대답해야 하는 '객체(자원)'인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요? 상사는 왜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업무 지시를 해대고, 나는 그것을 꾸역꾸역 해내고 있는 것일까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상사와 나는 회사와 계약, 즉 대상화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회사 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 보니, 직장은 '인간적인 대접'이 우선이 아니라 업무나 성과가 우선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회사에서는 이러한 부담을 줄이려 '직급'과 '직책'을 만들고 관리합니다. 지시하는 사람도 나를 한 개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팀원'으로 보는 것이고, 나도 업무 지시하는 사람을 굳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사'로 '대상화'합니다. '대상화', 활용이 필요합니다. 직장은 '인간적인 대접'을 해주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마음은 좀 더 편해집니다. 그러니까 회사는 왜 나를 인간적으로 대접을 안 해주지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인정하고 활용하는 것이죠. '대상화'를 통해 인간적인 대접을 못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느꼈겠지만, 사실 이 글을 읽는 질문자도 분명 누군가를 '대상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마음에 상처 준 일도 허다할 것입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타 부서 사람이나, 주위 동료들과 갈등이 없을 수가 있을까요? 그 갈등은 대개 '업무'나 그와 연관된 '태도'로부터 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내가 상대방을 '대상화'했는데, 그 수준으로 따라오지 못하는 데서 야기됩니다. 연애를 할 때도,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이 잦아지는 것은 초기에 상대방을 나만 바라보는 존재로 '대상화'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상사가 되고 팀장이 되었을 경우 상대를 '대상화'하여 바라봐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개인의 감정을 다 헤아리면 일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회사에 모인 사람들은 '대상화'가 되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계약한 사람들이며 그래서 '직급'과 '직책'이 있는 겁니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업무 지시에도 기분 나빠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건, 일을 하는 한 나 스스로를 '대상화'하고 그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업무를 주는 상사 또한, 나는 그 사람을 '대상화'합니다. 그는 그의 일을 하는 것일 뿐. 이처럼 '대상화'는 '감정'과 '업무'를 분리해 주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잘만 활용하면, 인간적인 대접을 못 받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에 달려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제거할 수 있는 좋은 툴이 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을 '대상화'의 시선 말고도 '개별'로 보려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동의 업무 성과가 났더라도, 그것은 개개인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입니다. '개별'적으로 칭찬을 해주거나 피드백을 주면 분위기는 좀 더 좋아집니다. '대상화'가 된 존재들이 '계약'으로 모인 삭막한 직장 생활을, 조금은 더 유연하게 해주는 것이죠. 하지만, 상대를 '대상화'할 것이냐, '개별'로 접근할 것이냐는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가장 최악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때 상대방을 '대상화'하는 것이고, '대상화'해야 할 때 감정에 휘둘리는 것입니다. 강해지셔야 합니다. '대상화'를 활용하여 스스로를 지키고, 타인을 배려해야 합니다. 슬기롭고 지혜롭게. 바로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디자인 : 고결
알람과 함께 중력을 거슬러 오늘도 출근을 해내는 직장인 여러분. 간과 쓸개는 전용 냉장고에 넣되, 직장인에게 꼭 필요한 1일 1문장은 꼭 챙겨 출근하시길. 퍽퍽한 직장 생활을 촉촉한 의미로 가득 채우시길. 그리하여 스스로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임을 알아차리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 오늘도 출근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스테르담 드림 - A. 직장인에게 꼭 필요한 1일 1문장: 직장인, 나의 슬럼프를 절대로 알리지 말라 직장인의 직업병, 슬럼프. 직장인에게 슬럼프는 지긋지긋합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좀 더 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별로였던 사람도 꽤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처럼, 슬럼프도 꽤 친근한 구석이 있다는 걸. 심리학에서 말하는, 만남을 거듭할수록 호감을 갖게 된다는 '단순 노출 효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슬럼프가 3년 단위로 온다고 하지만, 요즘은 3달, 3주, 하루에 3번, 심지어는 3시간마다 오기도 하니까요. 직장인의 삶은 그렇게 고달프면서도 다이내믹합니다. 그러니, 이쯤 되면 슬럼프는 직장인의 직업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슬럼프는 감기다 친근해서 그런지 슬럼프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바뀌게 됩니다. 밑도 끝도 없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지만, 지난날의 슬럼프를 되돌아보면 분명 무언가 의미가 있었습니다. 어느 방향인지 모르고 뛰어가던 나를 잠시 멈춰 세운 것도 슬럼프였습니다. 심한 몸살감기는 면역력을 약하다는 신호이자, 몸을 챙기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감기는 누구나 쉽게 걸리고, 나와 네가 동시에, 또는 나와 너 중 하나만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한바탕 푹 자고 일어나거나, 열병에 아파 땀을 뻘뻘 흘리며 아픈 뒤에 자신을 더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하는 게 어쩐지, 감기와 슬럼프가 서로를 닮았단 생각입니다. 내 열정에 취해 다른 사람이 아픈지도 모르고, 반대로 내가 아프면 세상 모든 열정이 사라지는 것처럼. 내가 괜찮으면 다른 사람의 슬럼프가 보이지 않고, 내가 슬럼프면 남의 열정이 과해 보이게 됩니다. 나의 슬럼프, 절대 알리지 말 것! 슬럼프는 직장인에게 감기와 같이 오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대, 내가 슬럼프라는 것을 말하지 말 것!"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겁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 슬럼프에 관심이 없고, 있다면 내 슬럼프를 즐기거나 수군대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내가 슬럼프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해 줄 것 같지만, 깊은 내면에서 진심으로 그렇게 대해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슬럼프라고 해서 나에게 와야 할 일이 오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오히려, 업무상 발생하는 부족함의 일거수일투족은 슬럼프와 연관이 되고 맙니다. "이 과장 슬럼프래. 그래서 그런가, 영 시원치가 않아. 보고서가 엉망이야, 엉망." 더불어, 그 소문은 발 없는 천리마와도 같습니다. "김 대리 잘 지내? 요즘 슬럼프라며?" 나를 경쟁자로 여기는 사람에겐 아주 좋은 떡밥이자,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의 인사는 다시 피어오르는 내 열정을 꺾어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가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 농담이든 진담이든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로 만난 사이에서 뼛속까지 깊은 공감과 위로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내가 아프면 나의 아픔을 알아줄 거란 생각은 직장 밖에서나 하는 겁니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직장엔 나의 아픔을 악용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슬럼프가 왔을 땐, 그러니 나 홀로 조용히 슬럼프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슬럼프가 오면 소중한 손님처럼, 누구도 볼 수 없는 조용한 방으로 불러 슬럼프가 떠날 때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번엔 왜 왔는지, 어떤 말을 하고 싶어서 왔는지, 내가 잊고 지나온 것들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 절대, 언제 갈 거냐고 종용하며 채근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슬럼프는, 머지않아 나에게 여러 가지 보따리를 풀어놓고 생각보다 빨리, 홀연히 사라집니다. 인사도 없이 가는 게 섭섭할 만큼 말이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적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한 건, 아군의 사기를 위해서였습니다. 나의 슬럼프를 누구에게라도 절대로 알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디자인 : 고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