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 독서일가 주필 - 전 중앙일보 대기자
지피지기 백전불태! 친중(親中), 반중(反中)을 넘어 극중(克中)을 위한 지식충전소! 진짜 중국을 만나러 갑니다! <고분>(孤憤)은 [한비자]에서 가장 유명한 글 중 한 편입니다. 훗날 진시황이 된 영정이 섭정을 받던 청년 진왕 시절, 한비자가 쓴 <고분>과 <오두>(五蠹) 두 편을 읽고서 "글쓴이와 교류할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고 했다는 옛이야기는 유명하죠. 이후 '한비앓이'를 하던 진왕이 한나라를 위협하며 한비자를 내놓으라고 닦달해 그를 진나라로 불러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한비자는 1년여 만에 순자 밑에서 동문수학한 이사에 의해 진나라 감옥에서 독주로 자살당하게 되죠. 어쨌든 한비자의 운명을 갈랐던 글, 청년 시절의 진시황을 격동시켰던 글 <고분>은 나 홀로 분노하면서 쓴다는 뜻으로 썩어빠진 권세가들이 어떻게 국정을 농단하는지 생생하게 기록합니다. 어째서 권세 높은 실권자들은 깡패같이 행동해도 칭송받는지, 어째서 그런 자들 주변엔 불초한 인간들만 꼬이는지... 읽다 보면 저절로 긴 한숨이 나옵니다. 이 얘기들이 옛날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겠죠. <고분>에서는 국정을 농단하고, 깡패 같은 짓을 하는 권세가들이 칭송받는 메커니즘을 먼저 밝힙니다. 현대 왕(군주)이 없는 민주주의 사회에선 '군주'의 자리에 '주권시민'을 대입해서 읽어보면 훨씬 몰입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1 요직을 차지하고 실권을 장악한 자는 국정을 농단하여 나라 안팎이 그를 위해 움직이게 하므로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군주를 장악하여 군주의 비서인 낭중조차 그를 통하지 않고는 군주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까닭에 군주 측근들도 그를 위해 잘못을 숨겨주게 된다. 학자들도 그를 통하지 않고는 봉록이 깎이고 대우가 낮아지는 까닭에 그를 위해 변호해 준다. 제후와 백관, 낭중, 학자 등 네 계층의 도움으로 사악한 신하들은 스스로를 분식할 수 있게 된다. 실권을 장악한 세도가가 실력 있는 관리들을 천거할 리 없고, 군주 역시 이들 네 계층의 도움을 얻지 않고는 사악한 신하들의 의도를 밝힐 수 없다. 군주의 눈이 더욱 가려지고 신하의 세도가 더욱 커지는 이유다. 요직을 차지한 자들이 군주의 신임과 총애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오랫동안 친숙한 사이라면 더 말할 게 없다. 군주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에 따라 비위를 맞추는 것은 원래 이들이 출세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관작이 높고 귀해지고 따르는 무리가 많으면 온 나라가 그를 칭송하게 된다. 그렇다면 청렴하고 실력 있는 사람들은 왜 요직을 차지하지 못할까요. 『한비자』에선 그들이 부패 고리 혹은 그들만의 리그에 끼어들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특성을 들어 설명합니다. #2 청렴결백하고, 자신의 합리적인 능력으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뇌물을 써서 남에게 빌붙을 수 없고, 자기 능력을 믿으므로 법을 굽혀 편의를 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권세가나 왕의 측근에 빌붙지 않고 청탁을 받아들이지도 않으므로 적대적 관계가 된다. 군주의 측근들은 백이(伯夷)가 아니다. 청탁하지 않고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청렴이나 능력은 묵살하고 헐뜯고 중상한다. 일의 성과는 측근에게 제동 걸리고 청렴결백한 행위가 비방을 들으면, 이들은 벼슬자리에서 쫓겨나고 군주의 총명이 막혀 버릴 것이다. 실제 공적으로 평가하거나 사실 조사로 죄과를 심리하지 않고 측근이나 친숙한 자의 말만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조정엔 무능한 자와 부정한 관리만 남게 될 것이다. 큰 나라의 근심거리는 중신들의 권력이 지나치게 큰 데 있고, 작은 나라의 근심거리는 측근들이 지나치게 신임받는 데 있다. #3 아부와 기만에 길든 군주의 마음을 법도에 맞는 말로 바로잡으려 하는 이는 오히려 군주의 심기를 거스른다. 군주와 소원한 자가 신임과 총애를 받는 신하와 겨루면 이길 승산이 없고, 첫 유세를 하는 이가 군주와 오래된 사이인 신하와 다투면 이길 도리가 없다. 군주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해야 하는 자가 군주의 비위를 잘 맞추는 신하와 다투면 이길 수 없고, 세력 없고 신분이 낮은 자가 존귀하고 권세 있는 신하와 다투면 이길 수 없고, 혼자만의 입으로 온 나라가 칭송하는 자와 싸우면 이길 도리가 없다. #4 지혜로운 선비는 멀리 내다보므로 허무한 죽음이 두려워 중인(세도가)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현명한 선비도 몸을 닦아서 청렴하므로 간신과 함께 그 군주를 속이는 일을 부끄러워하여 결코 중인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요직에 있는 중신의 패거리들은 어리석어서 장래의 화를 미리 알지 못하는 자가 아니면 반드시 심성이 더러워서 간악한 일을 피하지 않는 자들이다. 중신들은 어리석고 타락한 탐관오리를 끼고 위로는 이들과 함께 군주를 속이고 아래로는 이들과 함께 이익을 찾아 백성의 이익을 일삼아 침탈한다. 파당을 짜서 한 패거리가 되어 서로 말을 맞추어 군주를 현혹하고 법을 파괴한다. 그리고 백성의 생활을 어지럽혀 마침내는 나라를 위험에 빠뜨려 영토가 깎이고 군주는 치욕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판치는 세도가들은 인재를 뿌리 뽑아 나라는 망하게 해도 자신은 부유해지므로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5 신하와 군주의 이익이 서로 다르고 모순된다. 군주의 이로움은 능력이 있는 자에게 관직을 맡기는 데 있으며, 신하의 이로움은 무능한데도 자리를 차지하는 데 있다. 군주에겐 공로가 있는 자에게 작록을 주는 게 이롭고, 신하 입장에선 공로가 없어도 부귀해지는 게 이익이다. 신하들이 파당을 짜서 사리를 도모하는 이유다. 한비자는 "권세가들의 이런 농단이 계속된다면 나라가 멸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한비자의 글은 200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왜 이렇게 익숙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질까요. 정녕 인간은 변치 않는가 봅니다. 디자인 : 이희문
지피지기 백전불태! 친중(親中), 반중(反中)을 넘어 극중(克中)을 위한 지식충전소! 진짜 중국을 만나러 갑니다! "현명한 사람이 못난 사람에게 굽히는 것은 권세가 약하고 지위가 낮기 때문이며, 못난 자가 현자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권세가 무겁고 지위가 높기 때문이다. 나는 이로써 권세와 지위는 의지할 만한 것이지만, 현명하고 슬기로운 것은 부러워할 가치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고대 법가 학자인 신도가 한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군주 혹은 최고 권력자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주변에 현명한 신하나 직언하는 사람이 없다고 탓합니다. 그러면서 최고 권력자의 주변 관리나 정치인들에게 "직언을 하라"고 다그치죠. 그러나 군주에게 직언은 고사하고, 비위를 상하는 말조차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사기』를 쓴 사마천도 군주가 듣기 싫어한 말, 한마디 했다가 궁형을 당하기도 했죠. 말 한마디 잘못했다 신상의 해로움을 넘어 목숨마저 위태로워진 사례는 고래로부터 수없이 많습니다. 직언은커녕 옥덩어리 하나를 옥이라고 했다가 양발을 잘린 사람도 있습니다. 훗날 진시황의 옥새가 된 '화씨의 옥'이 세상에서 옥으로 인정받기까지 과정은 참혹했습니다. 『한비자』엔 정직함이 핍박받는 세태를 '화씨의 옥'에 비유하면서 일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초나라에서 성이 화(和) 씨인 사람이 초산(현재 호북성 형산)에서 옥을 발견해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은 옥을 다듬는 사람(옥인, 玉人)을 불러 옥을 감정하게 했다. 옥인은 말했다. "돌입니다." 왕은 화씨가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고 그의 왼쪽 발을 자르는 월(刖)형을 내렸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했다. 화 씨는 또 그 옥덩어리를 바쳤다. 무왕이 옥인에게 감정토록 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돌덩어리입니다." 왕은 또다시 속이는 짓이라고 여겨 그의 오른쪽 발을 자랐다. 무왕이 죽었다. 문왕(文王)이 즉위했다. 화 씨는 옥덩이를 끌어안고 초산 아래에서 통곡했다. 삼일 밤, 삼일 낮 동안이나. 어찌나 울었는지 눈에선 피가 흘렀다. 문왕이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 이유를 물었다. "세상에 월형을 받은 사람이 많은데 그대는 어찌 그리 슬프게 우는가?" 화 씨가 대답했다. "저는 월형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닙니다. 보옥을 돌이라 하고, 바른 사람이 거짓말쟁이로 불리는 것이 슬퍼서일 뿐입니다." 왕은 옥인을 시켜 그 덩어리를 다듬게 했더니 진짜 보옥을 얻게 됐다. 바로 '화씨지벽'이다. 각종 구슬과 옥(주옥, 珠玉)들은 군주가 탐하는 것이다. 화 씨가 비록 아름답지 않은 옥덩어리를 바쳤다 하더라도 왕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화 씨의 두 발이 잘린 뒤에야 보배로 인정받았다. 보물로 인정받는 것은 이토록 어렵다. '법이 통하는 세상'을 외쳤던 한비자는 이 사례 끝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지금 군주들이 법술(法術)을 대하는 것이 화 씨 벽을 대하듯 한다. 법술이 있어야 신하들과 선비, 백성들의 사욕과 간사함을 금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법술의 도를 깨우친 자가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은 제왕에게 그 옥덩어리를 아직 바치지 않아서이다." 『한비자』엔 한비 공자가 한나라 왕에게 올린 상주문 중, 말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구구절절하게 쓰면서 자기 말을 좀 들어달라고 청하는 <난언>편이 있습니다. 이 편에서 한비자는 말합니다. "말하는 법도가 맞다고 반드시 듣는 것은 아니며, 뜻과 이치가 타당하다고 반드시 쓰이는 것도 아니다. 왕이 믿지 않으면 작게는 말하는 자가 남을 비방하고 헐뜯는다고 오해받게 되고, 크게는 여러 가지 환란을 당하고, 심하면 목숨을 잃는 재앙으로 닥친다." 그리고 그는 왕을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례들을 늘어놓습니다. 왕 중에 성인으로 추앙받는 탕왕조차 현명한 신하의 말을 들어주는 데까지 참으로 곡절이 많았습니다. #2 옛날에 탕왕은 성인이었다. 그런데 탕왕은 지혜롭기 이를 데 없는 이윤이 70여 차례나 의견을 개진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윤은 솥과 도마를 들고 주방 일을 맡아 하면서 왕을 가까이에서 모셔 친해진 후에야 탕왕이 비로소 그의 현명함을 알고 임용하였다. 이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성인을 설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이윤과 탕왕의 사례로 알 수 있다. 하물며 어리석은 왕의 경우는 어떨까요. 한비자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지혜를 전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3 주나라 문왕이 은 왕조의 마지막 왕인 폭군 주(紂)를 설득했던 일을 떠올릴 수 있다. 주는 문왕이 설득하려 하자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주의 신하들이었던 익후는 왕에게 간하다가 산 채로 불기둥을 기어가는 포락형을 당해 불고기가 되었고, 귀후는 시신이 저며져서 말리는 형을 받았으며, 비간은 심장이 찢겼고, 매백은 소금에 절여지는 형벌을 받았다. 현자들의 고난은 이어졌다. 춘추시대 조(曺)나라 대부인 조기는 왕에게 간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아 진(陳)나라로 도망쳤으며, 진(秦)목공의 패업을 이루게 한 재상 백리해는 한때 구걸을 해야 했고, 뛰어난 병법가 손빈은 위나라에서 다리가 잘렸고, 오기는 노나라, 위나라, 초나라를 전전하다 초나라에서 사지가 찢겼다. 공숙좌는 위나라 혜왕에게 정사를 관장할 인물로 공손앙을 추천했으나 왕이 받아들이지 않자 공손앙이 진나라로 도망쳐 진을 강대한 대국으로 만들었다. 하나라의 폭군 걸에게 간했던 관봉용은 참형을 당했으며, 주나라 경왕 당시의 대부 장굉은 창자를 토막 내는 형을 받았으며, 윤자는 가시 구덩이에 던져졌고, 사마자기는 살해당해 강물에 띄워졌고, 전명·복자천·서문표·동안우·재여 등은 무고하게 죽음을 맞았고, 진 소양왕 당시의 재상인 범저는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다 공연히 의심을 받아 갈비뼈가 부러지는 폭행을 당했다. 한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리에 맞는 말은 귀에 거슬리고 마음을 엇나가게 한다. 현인과 성인의 자질이 아니라면 능히 듣지 못한다." 예로부터 신하의 직언으로 무능하거나 포악한 왕이 바로 잡힌 사례는 찾기 어렵습니다. 군주의 자질이 높아야 신하들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서글픈 단면입니다. 디자인 : 이희문
지피지기 백전불태! 친중(親中), 반중(反中)을 넘어 극중(克中)을 위한 지식충전소! 진짜 중국을 만나러 갑니다!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눈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공자님도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한탄하는 일화가 있을 정도입니다. #1 "용모로 사람을 취했더니 자우로 실수하고, 말솜씨로 사람을 취했더니 재여로 실수했다." 공자가 제자로 받아들였던 첨대자우는 용모가 모범적인 군자에게 기대되는 바로 그 자체였다. 이에 공자는 큰 기대를 걸고 그를 제자로 삼았다. 그러나 오래 함께하다 보니 그 행동이 용모에 맞지 않았다. 또 말을 하면 바로 군자가 하는 말의 정석이라 할 만큼 수려한 말솜씨를 가진 재여를 기쁘게 제자로 삼았다. 그러나 함께하다 보니 그가 언변에 비해 머리가 좋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공자가 스스로 한탄하며 사람을 보는 자신의 안목에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하였다. - 한비자 현학편 한비자는 이 사례를 들며 이렇게 말합니다. "공자의 지혜로도 진실을 잘못 보고, 사람의 언변과 용모에 속아 사람을 잘못 썼는데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중요한 관리로) 임용한다면 어찌 실수하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는가." 이렇게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공자에게도 어려운데, 우리 같은 범인들이 사람을 잘못 보는 것이야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사겠지요. 그래서 사람과 함께 일을 할 때 미연에 일의 전개를 예견하고, 혹시 모를 불상사를 예방할 줄 아는 것을 현명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이죠. #2 증종자는 도검 감정을 잘하는 사람이다. 위(衛)나라 군주가 오나라 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증종자는 "오나라 왕은 검을 좋아하고 저는 칼을 감정하는 사람이니 제가 오왕에게 칼을 감정해 주겠다고 청하여 칼을 보려고 뽑을 때 군주를 위해 그를 찔러 죽이겠습니다"고 했다. 그러자 위군은 이렇게 말하며 그를 쫓아냈다. "그대가 그렇게 하려는 것은 군신 간 의리 때문이 아니라 이익 때문이다. 오나라는 강하고 부유한데 위나라는 약하고 가난하다. 그대가 만일 간다면, 나는 그대가 오왕을 위해 나에게 그 수법을 쓰지 않을까 두렵다." 세상살이가 힘든 것은, 일은 사람이 하는데 그 '사람'을 알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애당초 사람의 겉모습과 실제가 너무 달라서 잘못 보기도 하고, 자기 욕심에 눈이 가려져서 잘못 보기로 작정을 하기도 합니다. 옛 제환공의 재상인 관중은 노이무공(勞而無功), 즉 힘을 다하고 노력해도 절대로 일을 이룰 수 없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무능력한 자와 일할 때, 불가능한 일을 시킬 때, 도리를 모르는 자에게 도리를 알려주려고 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을 제대로 하려면 유능한 사람과 함께 일하고, 불가능한 일에 매달려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도리를 모르는 무도한 자를 무시해 버리고 함께 하지 않는 건 아주 중요합니다. 문제는 무도하지만 작은 재능이 있는 사람의 쓰임입니다. 그 작은 재능에 기대어 함께 작고 큰 성취를 이루어낸다고 해도, 무도한 재능의 결말은 참으로 무도하고 참혹하다는 건 인간사의 다양한 사례들이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 알아보는 난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비자는 정치적 인간관계의 관점에서, 마음을 버리고 법을 따르면 해결된다고 합니다. 한비자의 말씀은 모두 제왕을 가르치는 정치학적인 말이니 법에 맡기라는 말은 정치적인 해결방식입니다. 이걸 보통 사람들의 사람 관계로 연결한다면 '마음에 속지 말고, 상식과 규범에 빗대어 바라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이런 말입니다. #3 정치를 하면서 마음으로 임하면 요임금도 한나라를 바르게 할 수 없다. 제도기를 버리고 어림짐작으로 그리면 전설적인 목수 해중도 수레바퀴 하나 완성할 수 없고, 자 없이 길고 짧은 차이를 가리면 뛰어난 장인 왕이도 나무를 절반으로 자를 수 없다. 하지만 평범한 군주라도 법술을 지키고, 솜씨 없는 장인도 제도기와 자로 측정하면 실패가 없다. 옛 사람들은 "마음은 알기 어렵고,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맞추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을 세우고, 이를 새겨 지켜야 한다. 상식과 상규, 법이란 바로 원을 그리는 제도기와 길이를 재는 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한비자는 "법이란 쉽고 단순해서 누구나 지킬 수 있고, 법을 지킬 때의 보상과 법을 어겼을 때의 벌이 명쾌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법치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윗사람이 법을 앞세워 사사롭게 위세를 부리거나, 세도가에게 유리하게 법을 운용하거나, 군주가 지키기 어려운 법을 만들어 지키지 못한 사람들에게 벌을 주거나, 상과 벌에 희로가 무상할 때라고 합니다. 정치에서 인간사가 복잡하게 얽힌다면 법에 문제가 없는지, 법의 운용이 잘못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인 : 이희문
지피지기 백전불태! 친중(親中), 반중(反中)을 넘어 극중(克中)을 위한 지식충전소! 진짜 중국을 만나러 갑니다! #1 혜자가 말했다. “하나라의 전설적인 명궁 예가 깍지를 끼고 한扞을 차고 활을 들어 당기면 멀리 월나라 사람들도 서로 과녁을 들어 올리겠다고 다투는데, 아이가 활을 들면 그 어머니라도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을 것이다.” 이는 곧 “확실한 실력이 있으므로 월나라 사람도 예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고, 확실하게 믿지 못하면 어머니라도 아이에게서 도망간다”는 말이다. 상대에 대한 믿음은 감성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실력에 따른다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활 쏘는 실력이 없는 아이가 활을 들고 설치면 그 아이를 아무리 사랑하는 엄마라도 도망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실용에 기반한 것이라는 말이지요. 한비자가 군주의 정치 실력을 ‘술’(術)이라는 용어로 말한다는 건 앞서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 ‘술’의 중요성 혹은 필요성을 당대 ‘절대 마부’ 중 한 명이었던 조보의 에피소드를 통해 설명합니다. #2 조보가 밭을 매다가 어떤 부자가 수레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말이 놀랐는지 가지 않았다. 그러자 그 아들이 내려서 말을 끌고 아버지도 내려서 수레를 밀었다. 그러고는 조보에게 수레 미는 것을 도와달라고 청했다. 조보는 농기구를 거둬들이고 하던 일을 멈춘 뒤 수레에 자기 농기구를 싣고 그 부자도 수레에 타도록 했다. 이내 고삐를 졸라매 잡아당기고 채찍을 들었는데 미처 그것을 쓰기도 전에 말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조보에게 말을 부리도록 하지 않았다면, 비록 힘을 다 쓰고 몸이 수고해 그를 도와 수레를 민다 해도 말을 달리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조보가 몸은 편히 하고, 또 수레에 짐을 싣고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이 있어서 말을 잘 몰 수 있어서였다. 나라는 군주의 수레와 같으며, 세는 군주의 말이다. 술이 없이 말을 부리면 몸은 비록 지쳐도 혼란을 면할 수 없다. 술을 가지고 다스리면 몸은 편안한 곳에 두고도 제왕의 공덕을 이룰 수 있다.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술에 대해선 앞쪽에 ‘칠술’을 설명하며 많은 일화를 소개했었습니다. 그중 하나로 ‘잘 듣는 기술’도 있습니다. 도저히 자기로선 판단할 수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음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례들이지요. #3 위나라 왕이 정나라 왕에게 말했다. “처음에 정나라와 위나라는 한 나라였는데, 이미 갈라졌구려. 이제 정나라를 얻어서 위나라와 합치고 싶소.” 정나라 군주는 근심하며 신하들을 불러 함께 위나라에 대한 대책을 모의했다. 정나라 공자가 군주에게 말했다. “이것은 대단히 쉽게 응대할 수 있습니다. 군주께서 위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정나라가 옛날에 위나라 땅이었다는 이유로 합병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도 역시 양의 땅을 얻어 정나라에 합병시키고 싶소.’” 위왕은 결국은 그 말을 철회했다. #4 세 나라 군대가 진나라로 들어가는 관문 함곡관에 쳐들어왔다. 진나라 왕은 누완에게 말했다. “세 나라 군대가 이렇게 깊이 들어왔소. 나는 하동 땅을 베어주고 강화하고 싶소. 어떠하오?” 이에 누완이 말했다. “하동을 베어준다는 것은 비용이 크고, 나라가 환란을 면하는 것은 큰 성과입니다. 공자 사를 불러서 물어보시지요.” 왕은 공자 사를 불러 이를 알렸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강화를 해도 후회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입니다. 왕께서 지금 강화하면 삼국은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왕께서는 ‘삼국은 원래 돌아가려고 했었다. 내가 호락호락해서 세 성만 보냈구나.’ 하고 후회하실 겁니다. 그런데 강화하지 않아 삼국이 함곡관으로 쳐들어오면, 나라는 반드시 함락될 것이고, 왕께서는 반드시 크게 후회하며 세 개의 성을 내주지 않은 걸 후회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제가 강화를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왕은 말했다. “내가 어차피 후회한다면 위험하게 한 뒤 후회하면 안 된다. 나는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나라 안에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탁견을 가진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군주의 귀가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죠. 군주가 잘 듣는 기술만 발휘해도 나라의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디자인 : 이희문
지피지기 백전불태! 친중(親中), 반중(反中)을 넘어 극중(克中)을 위한 지식충전소! 진짜 중국을 만나러 갑니다! #1 도도라는 새가 있는데 머리는 무겁고 꼬리는 굽어서 물가에서 물을 마시려고 하면 반드시 뒤집어진다. 그래서 누가 그 날개를 물어줘야 마실 수 있다. 이렇게 물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는 곁에서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 <한비자> 설림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도도라는 새는 '군주'를 의미합니다. 군주가 아무리 영민해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도와줄 '누군가'가 꼭 필요합니다. 어쩌면 군주의 성패는 보좌하는 '누군가'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겠습니다. 바로 그 '누군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군주의 필수 자질이겠지요. 제나라 환공에 대해서는 다 들어보았을 겁니다. 춘추오패의 선두 주자이죠. 그와 함께 거론되는 사람은 관중입니다. '관포지교'의 그 관중이 맞습니다. 그는 중국 재상계의 거두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제환공은 각종 기록에서 묘사되는 바에 따르면 음란하고 사치스러운 사람이죠. 그를 당대 패자로 만든 사람이 관중입니다. 그러나 관중이 죽은 후 제환공은 제멋대로 사람을 씁니다. 그 이후는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2 옛날 제나라 환공은 제후들을 모으는 회맹을 아홉 차례나 열어 천하를 바로잡고, 오패의 수장이 되었는데, 이 일은 관중을 재상으로 삼아 그를 중부(작은아버지)로 부르며 보좌하게 한 덕이었다. 관중이 늙어 일을 볼 수 없게 되면서, 그는 집 안에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 환공이 가서 그에게 물었다. "중부께서 병으로 집에만 계시는데, 만일 불행하게도 병에서 못 일어나시면 장차 정사를 누구에게 맡기면 되겠습니까?" 이에 관중은 말했다. "신하를 아는 것은 군주만 한 사람이 없다고 하였으니 주군께서 먼저 시험 삼아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을 정해보십시오." 그러자 환공이 물었다. "포숙아는 어떻겠습니까?" "안 됩니다. 포숙아는 강하고 강퍅하며 모진 데가 있습니다. 강직하면 백성들에게 거칠게 대하고, 강퍅하면 민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랫사람에게 모질게 대하면 그들을 쓸 수 없습니다. 그 마음에 두려움이 없으니 패자를 보좌하는 신하로 맞지 않습니다." "환관 조(수조)는 어떻소?" "안 됩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신을 아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왕이 여인들을 좋아하자 수조는 스스로 거세하고 내궁으로 들어갔습니다. 자기 몸도 사랑하지 않는데 왕을 어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위나라의 공자 개방은 어떻겠습니까?" "안 됩니다. 제나라와 위나라의 거리는 불과 열흘이면 갈 수 있습니다. 개방이 주군의 일을 맡아 그 뜻을 살피느라 15년이나 부모를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이는 인정이 아닙니다. 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군주를 모시겠습니까." "그럼 요리사 역아는 어떻습니까?" "안 됩니다. 역아는 주군의 입맛을 돌보며, 주군께서 '아직 맛보지 못한 게 있다면 사람 고기다'라고 하자 자기 아들의 머리를 삶아 바친 일은 주군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사람의 인정이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자식을 삶아 군주에게 바쳤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찌 군주를 안정되게 사랑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누구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습붕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중심이 단단하고 겉모습은 예의가 바르며 욕심은 적고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중심이 단단하면 모범이 되기에 족하고, 예의가 바르면 대임을 맡길 수 있습니다. 욕심이 적으면 능히 백성을 대할 수 있고, 믿음이 크면 주변국과 친교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패자를 보좌할 수 있는 재목이니 군주께서는 그를 쓰십시오." 일 년쯤 지나 관중이 죽었다. 환공은 습붕을 쓰지 않고, 수조에게 일을 맡겼다. 수조가 정사를 돌본 지 3년 만에 환공은 남쪽으로 유람을 떠났다. 이에 수조는 역아와 위공자 개방을 끌어들여 반란을 일으켰다. 환공은 남쪽의 침전에 갇혀 갈증과 굶주림 끝에 죽었다. 그리고 제환공의 시신을 석 달 동안 거두지 않아 구더기가 방 밖으로 기어나갈 지경이 됐다. 제환공의 어처구니없는 비참한 말로는 그야말로 권력자의 성패는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달려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유가의 재주 많은 유생들을 식객으로 두었지만, 그들에게 살해당한 계손이라는 대부의 이야기입니다. #3 계손은 재주 많은 선비들을 거느리는 것을 좋아해 종일 근엄한 얼굴을 하고, 거처와 의복도 항상 조정에 있을 때와 같이 하였다. 그런데 계손은 가끔씩 해이해져 상대에게 실수를 저질렀고, 예의 바른 행동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그래서 계손 집에 얹혀사는 선비들이 자기를 얕본다고 생각해 원망하면서 계손을 죽였다. 공자의 제자인 남궁경자가 안탁취에게 이렇게 물었다. "계손이 공자를 따르던 이들을 거느리고, 조복을 입고 예의를 갖췄는데, 선비들과 원수가 된 것은 왜 그런가?" 이에 안탁취가 대답했다. "옛날 주나라 성왕은 가까이에 배우와 악사를 두고 기분을 풀었지만, 정사는 군자들하고만 의논해 결정했소. 이것으로 능히 바라던 천하를 이룰 수 있었소. 그러나 계손은 공자를 따르던 무리를 거느렸으나 배우나 악사들과 함께 정사를 결단하니 이렇게 원수가 된 것이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소. 일의 성패는 함께 노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도모하는 자에게 달렸다." '술집에는 술꾼과 가고, 교회에는 성인과 함께 간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함께 술 마시고 놀아서 즐거운 사람들과는 술 마시고 노는 일을 함께 하면 됩니다. 계손처럼 그들과 나랏일을 논의해선 안 되죠. 일에는 정도와 수준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 일의 정도와 수준에 맞는 사람을 선택하고 도모해야만 탈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디자인 : 이희문
지피지기 백전불태! 친중(親中), 반중(反中)을 넘어 극중(克中)을 위한 지식충전소! 진짜 중국을 만나러 갑니다! #1 왕량과 조보는 천하에서 가장 말을 잘 모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왕량에게 왼쪽 고삐를 잡고 말을 몰도록 하고, 조보에게 오른쪽 고삐를 잡고 채찍을 쓰게 하면 말이 십 리도 갈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둘이 함께 몰았기 때문이다. 전련과 성규는 거문고를 잘 타기로는 천하에서 최고이지만 전련에게 거문고의 위를 타게 하고, 성규에게 아래를 누르게 하면 곡을 연주할 수 없다. 역시 함께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왕량과 조보의 기교로도 함께 고삐를 쥐게 하면 말을 부릴 수 없다. 그러니 군주가 권력을 신하와 함께 가지고 통치할 수 있겠는가. 전련과 성규의 기교로도 함께 거문고를 연주해 곡을 완성할 수 없는데, 군주는 또 어떻게 신하와 위세를 함께 하며 공을 이룰 수 있겠는가. 한비자는 '권력의 분산'이야말로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나라가 망하는 조짐으로 꼽습니다. 위의 예시는 군주가 신하 혹은 타자와 권력을 나눠 가진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비유합니다. 군주들의 유명한 마부였던 왕량과 조보의 사례를 조금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조보가 제왕의 수레를 끄는 일을 할 때 물을 먹이지 않는 것으로 말을 복종시켜 백일만에 길들였다. 그러고 나서 제왕에게 수레를 모는 시험을 할 수 있도록 청했다. 그러자 제왕이 "채마밭이 있는 농장 안에서 수레를 몰아보라"고 했다. 조보가 수레를 몰고 농장 안으로 들어가자 말이 연못을 보고 달려가는 바람에 조보는 통제할 수가 없었다. 조보가 말에게 물을 먹이지 않고 굴복시킨 지 오래되었는데도 이제 말이 연못을 보고 사납게 달려가니 비록 조보라 해도 다스릴 수 없었다. #3 왕량이 송나라 군주를 위해 천리를 달리는 경주를 했다. 그는 수레를 달고 손을 비비며 말고삐를 틀어쥐고는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가면 일직선으로 곧장 나가고, 끌어당겨 뒤로 물러서게 하면 자기 발자국을 그대로 밟을 정도로 신묘하게 말을 몰았다. 마침내 채찍질로 출발하였을 때 돌연 돼지가 튀어나왔다. 말이 갈팡질팡하며, 채찍질을 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말이 날뛰며 달아나니 고삐로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한비자는 이 두 개의 사례를 다음과 같은 당대의 정변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4 송나라 관리로 일하던 자한이 군주에게 말했다. "칭찬하고 상을 주는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이니 군주 스스로 거행하십시오. 사형을 하거나 벌을 내리는 것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이니 제가 맡겠습니다." 그러자 송나라 군주가 "그렇게 하라"고 승낙했다. 그래서 엄중하게 금하는 명령인 '위령'을 내리거나 대신을 벌할 때면 군주가 말했다. "자한에게 물어라." 이에 대신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그를 따랐다. 일 년 후 자한은 송나라 군주를 살해하고 정권을 빼앗았다. 자한은 갑자기 뛰어나온 돼지처럼 그 군주의 나라를 빼앗은 것이다. 제나라 간공이 군주로 있을 때 벌은 무겁고 형은 엄하게 한 데다 세금을 많이 부과하고 백성을 살상했다. 전성항은 자애를 베풀고 관대하고 친절했다. 간공은 백성을 목마른 말처럼 다루면서 백성에게 은혜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전성항은 인자하고 두터운 자애로 채마밭의 연못 구실을 한 것이다. 군주가 유일한 최고 권력자가 되지 않으면 이처럼 야심가들이 날뛰어 나라가 안정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최고 권력자의 자리는 외로운 자리입니다. 유일해야 하고, 누구하고나 멀리 높이 있어야 안전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말을 몰아 목적지에 도달하고, 혼자서 거문고를 타 곡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왕의 유일성을 지키느라 애를 썼습니다. 왕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하는 룰도 있었습니다. 피휘(避諱)라고 하죠. #5 위나라 군주가 주나라에 입조 했을 때 주나라 외교사절 담당자(행인)가 이름을 물었다. "제후 벽강이오." 위군이 대답하자 주나라 행인은 그를 물러나라고 하며 말했다. "제후가 천자와 같은 이름을 쓸 수는 없습니다." 이에 위군이 스스로 이름을 바꾸어 말했다. "제후 훼입니다." 그러고 나서야 안으로 들여보냈다. 공자가 이를 듣고 말했다. "멀리 내다보고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을 막았구나. 허명조차도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데, 하물며 실질을 빌려줘서야 되겠는가." 허명조차도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 것. 권력이란 나눠 써선 안 된다는 경구는 한비자뿐 아니라 옛 제왕을 가르치는 경서엔 절대적 원리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디자인 : 이희문
지피지기 백전불태! 친중(親中), 반중(反中)을 넘어 극중(克中)을 위한 지식충전소! 진짜 중국을 만나러 갑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모두 아실 겁니다. 춘추시대의 시작은 주나라 천자가 동쪽으로 피란하여 시작된 동주시대부터라고 대략 통일되게 나와 있으나 전국시대의 시작점은 조금 모호합니다. 대략 제나라에서 전상이 주군인 간공을 살해하고, 진(晉)나라에서는 대부들이 진나라 공실을 멸한 뒤 한(韓), 위(魏), 조(趙) 세 나라로 쪼개지던 시기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이처럼 천자가 봉분한 군주를 대부들이 죽이고 실권을 찬탈하는데도 주나라는 이를 묵인하죠. 더 이상 천자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진나라를 한위조의 대부들이 나눠 가진 이후 이들 세 나라를 일러 삼진(三晉)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삼진의 성립 과정은 남다릅니다. 아주 화려한 배신의 서사가 펼쳐집니다. 진나라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여섯 대부 가문 중 범 씨와 중행 씨가 먼저 망하고, 네 집안이 실권을 장악합니다. 그중 가장 강력했던 집안이 지백이었습니다. 지백은 말 그대로 백작가, 세 집안은 한강자, 위선자, 조양자로 지백보다 낮은 자작 가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진공실이 망한 후 지백이 가장 강력했지요. 그런데 결국 이 세 가문이 힘을 합쳐 지백을 멸망시킵니다. [한비자]에는 그 자세한 스토리가 기록돼 있습니다. #1 이것은 옛 진나라가 망하고, 여섯 귀족 가문(육경)이 싸워 조·한·위 세 나라로 갈라졌던 때의 이야기다. 당시 여섯 귀족 가문 중 최강자였던 지백이 조·한·위 세 집안과 힘을 합쳐 범 씨와 중행 씨를 멸망시켰다. 그는 돌아와 병사들을 몇 년간 쉬게 한 뒤 이번엔 한 씨에게 땅을 요구했다. 한 강자는 주고 싶지 않았지만, 가신 단규가 땅을 주라고 조언한다. “지백이라는 위인은 이익을 좋아하고 오만방자합니다. 상대가 땅을 요구했는데 주지 않으면 군대를 한 씨 쪽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주군께선 땅을 주십시오. 그러면 그자는 재미를 붙여 앞으로 다른 나라에도 요구할 것입니다. 그들 중 듣지 않으려는 나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백은 반드시 그 나라에 무력을 쓸 것입니다. 그리만 되면 한은 재난을 피하고, 이후 사태의 변화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한강자는 이에 만 호에 이르는 고을을 지백에게 바쳤다. 지백은 좋아라하며 또 위가에 사람을 보내 토지를 내놓으라고 했다. 위의 선자가 주지 않으려고 하자 신하인 조가가 말했다. “저자가 한에 땅을 내놓으라고 하자 한은 그것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위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지 않으면 지백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우리는 그 군사를 맞게 될 것입니다. 주느니만 못합니다.” 위의 선자도 일만 호에 달하는 고을을 지백에게 주었다. 지백이 조에 사람을 보내 채와 고랑 땅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의 양자는 주지 않았다. 지백은 한·위와 은밀히 맹약을 맺고 앞으로 조를 치자고 했다. 조 양자가 가신 장맹담을 불러 말했다. “지백이라는 위인은 밝은 곳에선 친한 척하고, 어두운 데로만 들어가면 거리를 두는 자요. 한과 위에는 세 번이나 사신을 보내고, 나한테는 보내지 않소. 그자가 나를 치는 건 확실하오. 이제 나는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 장맹담이 말했다. “동알우라고 선대의 재주 있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가 진양을 잘 다스렸고, 그 뒤를 이은 윤탁 역시 잘 다스려 아직 그 땅에 교화가 남아 있습니다. 군주께서는 진양을 근거지로 하십시오.” 그리하여 조양자는 진양으로 들어가 3년 간 버틸 식량을 준비하고, 성곽을 수리하고, 무기를 정비했다. 과연 세 나라 동맹군이 쳐들어왔다. 동맹군은 진양의 성벽을 공격했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러자 군대로 성을 포위한 채 진양천의 강둑을 끊어 성안으로 물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성안 백성들은 새둥지처럼 높이 집을 짓고, 솥을 매달아 밥을 지었다. 돈과 식량이 바닥났고, 병사와 관리들도 지쳤다. 조양자가 장맹담에게 말했다. “식량과 재력도 다했고, 사대부도 지쳐 병들었고, 나도 지킬 수 없을까 봐 두렵소. 항복하고 싶은데 어느 나라에 항복하는 게 좋겠소?” 장맹담은 말했다. “망할 것을 보존할 수 없거나 위험한 것은 안전하게 하지 못한다면 지혜라는 게 왜 필요하겠습니까. 주군의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은밀히 빠져나가 한과 위의 군주를 뵙겠습니다.” 그러고서 장맹담은 한·위의 군주를 만나 말했다. “저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에 대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지백은 두 군주를 끌고 와 조를 쳤습니다. 조는 곧 망할 지경입니다. 하지만 조가 망하면 두 군주는 그다음 차례입니다.” 두 군주는 말했다. “나도 그러리라 알고 있소. 그렇다 하더라도 지백이란 위인은 거칠고 막돼먹은 데다 인정이라곤 없소. 우리가 일을 도모했다 발각되면 그 화가 반드시 미칠 것인데 어찌하면 좋소?” 장맹담이 말했다. “이 모의는 두 군주의 입에서 나와 제 귀로 들어갔을 뿐, 다른 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두 군주는 장맹담과 한·위·조 세 나라 군대가 돌아서기로 약조했다. 그리고 기일을 정하고 한밤중에 다시 진양성으로 들어가 두 군주와의 반역 약속을 양자에게 보고했다. 양자는 크게 기뻐 장맹담에게 두 번 절하였다. 한강자와 위선자, 두 군주는 장맹담과 밀약한 후 지백을 보러 갔다가 지백의 친척인 대부 지과를 원문 밖에서만 났다. 지과는 그들의 안색을 이상하게 여기고, 안으로 들어가 지백을 만나 말했다. “두 군주의 얼굴을 보니 장차 변심할 듯합니다.” “어찌하여?” 지백이 묻자 지과는 대답했다. “행동이 들떠 있어 평상시와 같지 않습니다. 주군께서 먼저 손쓰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에 지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두 군주와 굳게 약속했다. 조를 깨부수면 그 땅을 셋으로 나누기로 했다. 과인이 그들을 친히 여기기로 했는데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병사들이 진양을 포위한 지 3년이다. 조만간 성이 함락되면 그 이익을 나눌 것인데 어찌 다른 마음이 들겠는가.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대는 걱정하지 말고 입 밖으로 그 말을 내지 말라.” 이튿날 두 군주는 조회하고, 나오다 다시 지과를 원문에서 만났다. 지과는 들어가 지백에게 말했다. “주군께서 어제 했던 제 말을 두 군주에게 말했습니까?” “어찌 알았는가?” “오늘 두 군주를 조회하고 나갈 때 저를 보더니 안색이 변하고 문득 자기 신하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반드시 변심한 것이니 그들을 죽이거나 더 가까이하십시오.” “어떻게 더 가까이하라는 말인가?” “위선자의 책사는 조과이고, 한강자의 책사는 단규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군주들의 계략을 바꿀 수 있습니다. 주군께서 두 군주와 약속하시기를 조나라를 쳐부수면 그 두 사람에게 각 일만 호의 고을을 봉하겠다고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두 군주의 마음을 묶어둘 수 있을 것입니다.” “조의 땅을 깨면 셋으로 나눠야 하는데, 또 두 사람한테 만 가구를 봉한다면 나는 얻는 것이 너무 없다. 안 된다.” 지과는 지백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도망쳐 나와 성을 보 씨로 바꾸었다. 한편 정한 기일의 밤이 되자 조 씨가 제방을 지키던 자를 죽이고, 강물을 지백의 군대 쪽으로 돌렸다. 지백의 군사들은 물난리를 막아보려고 하는데 한과 위가 양쪽에서 협공을 해왔다. 조양자는 전면으로 덮쳐 지백 군대를 크게 무너뜨리고, 지백을 생포했다. 지백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군대는 깨어지고, 나라는 셋으로 쪼개어져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한비자는 이 사례를 탐욕스럽고 괴팍하고 이익을 탐하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망치고 목숨을 잃는 근원이 된다는 사례로 제시합니다. 여기에 더해 이 스토리는 최강자의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아래가 합심하여 등을 돌리면 결코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디자인 : 이희문
지피지기 백전불태! 친중(親中), 반중(反中)을 넘어 극중(克中)을 위한 지식충전소! 진짜 중국을 만나러 갑니다! #1 말을 잘 보는 것으로 유명한 백락이 두 사람에게 발길질하는 말을 감정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들은 진나라 집정인 조간자의 마구간으로 가서 말을 보았다. 한 사람이 발길질을 잘할 것 같은 말을 골라냈다. 다른 한 사람은 뒤로 가서 세 번 그 엉덩이를 만졌지만 발길질을 하지 않았다. 먼저 고른 사람이 스스로 감정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감정을 잘못한 게 아닐세. 그 말은 어깨가 굽고 무릎이 부어 있었네. 말이 발길질을 하려면 뒷발을 들고 앞발이 버텨줘야 하는데, 무릎이 부었으니 버틸 수 없어서 뒷발을 들지 못한 것이네. 자네는 발길질하는 말을 골랐지만, 부은 무릎을 보지 못했을 뿐이네." 일은 반드시 귀결되는 곳이 있는데, 무릎이 부어서 버틸 수 없다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만 알아본다. 혜자(惠子)는 "원숭이도 우리에 가두면 돼지와 똑같아진다"고 했다. 그러므로 주변 형세가 좋지 않으면 재능을 발휘할 길이 없게 된다. #2 노나라 사람이 삼베 실로 신을 잘 삼고 아내는 흰 비단을 잘 짰는데, 그들은 월나라로 이주하려고 하였다. 누군가 그에게 "자네는 가난해질 것이네" 하고 말했다. 노나라 사람은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삼으로 짠 신은 신는 것인데 월나라 사람들은 맨발로 다니고, 흰 비단은 머리에 쓰는 관을 만드는 것인데 월나라 사람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다니네. 그대의 장기를 쓸 수 없는 나라에서 살면 궁해지지 않을 도리가 있겠나?" 특별한 재능이 곧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어도 제대로 꽃피워 보지도 못한 채 사그라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능을 발휘하려면 시쳇말로 '판이 깔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변 환경 혹은 정세가 재능을 발휘할 만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이치입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한비자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소맷자락이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 한다." 『한비자』에서 가장 유명한 글 중 하나인 <오두(五蠹)> 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일의 성취는 사람의 재능보다 국력이 좌우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한 말입니다. 물론 정치적 사안으로 풀이하고 있지요. 부연 설명은 이렇습니다. #3 밑천이 많아야 일하기 쉽다. 나라가 다스려지고 강하면 기획과 계책을 꾸미기 쉽고, 약하고 어지러우면 계략을 세우기 어렵다. 그러므로 진(秦)나라에 등용된 관리는 계획을 열 번 고쳐도 실패하는 일이 드물고, 연(燕)나라에 등용된 자는 한 번만 변경해도 성사되는 일이 드물다. 이는 진나라 관리가 더 지혜롭고, 연나라 관리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대개 정치가 안정되고 잘 다스려지는 나라와 어지러운 나라는 밑천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재주를 닦고 지혜를 벼리는 자들이 출세하는 나라가 아니라, 나라의 힘과 실력을 키우는 것만이 결코 망하지 않는 정치술이 될 것이다. 결론은 '국력'이다. 이 말은 외교나 정치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의 일상에도 국력은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요.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렇게 뛰어난 민족이 국력이 약해 얼마나 고생했으며 서러웠는지요. 지난 한 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소식에 때로는 전율하고, 내내 기뻤습니다. 첫 뉴스를 접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우리도 소맷자락이 긴 옷을 장만한 것일까. 이제 춤만 잘 추면 되겠다.' 남의 일이 내 일보다 기뻤던 것은, 그저 한국 소설의 존재감이 세계에 드러났다는 것, 또 비록 수상 작가의 책이긴 했지만 한국 독자들이 한국 소설을 대량으로 사들이며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한국 소설은 거대한 산과 같습니다. 항간에서 인정을 받든 아니든 제게는 늘 경이롭고, 살고 싶은 곳이지요. 한강 작가는 그 산에 있는 빼어난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그리고 그 산엔 또 다른 빼어나고, 신선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습니다. 이번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그 산이 열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빼어남을 발견하고 즐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디자인 : 이희문
지피지기 백전불태! 친중(親中), 반중(反中)을 넘어 극중(克中)을 위한 지식충전소! 진짜 중국을 만나러 갑니다! 중국 춘추시대 5패 중 한 명인 진문공(晉文公)의 일화는 앞의 회차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군주 자리를 놓고 벌어진 다툼에서 밀려 19년 동안이나 중원 각지를 방랑하며 망명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죠. 한식의 유래를 만든 개자추와의 일화도 앞에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어쨌든 문공은 진나라 군주 중에선 가장 앞줄을 차지하는 명군으로 꼽힙니다. 또 패자가 됐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말이기도 하고, 나라를 굳건히 성장시켰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비자>에는 그가 패자로 가는 길의 첫 관문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1 진문공이 호언과 묻고 답했다. "나는 달고 살찐 고기를 당상의 신하들과 두루 나누고,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온 도성 안에 골고루 나눴으며, 연간 새로 들어오는 옷감으로 병졸들의 옷을 해 입혔소. 이제 백성들을 전쟁에 내보낼 만하오?" "부족합니다." "나는 관과 시장의 세금을 줄이고, 형벌을 너그럽게 했소. 그것으로 백성을 싸우게 할 수 있겠소?" "부족합니다." "내 백성이 상을 치를 때 비용을 대주게 하고, 친히 낭중에게 일러 일을 돌봐주게 했으며, 죄가 있는 자들을 용서하고 빈궁하고 부족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소. 그것으로 백성을 싸우게 할 수 있겠소?" "부족합니다. 이 모든 것은 생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전쟁에 내보내는 것은 죽이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공을 따르는 것은 생계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공이 이를 빌미로 죽음으로 보낸다면, 이는 공을 따르게 하는 이유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전쟁에 나가도록 할 수 있겠소?" "전쟁에 나가지 않을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쟁에 나가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어떻게 말이오?" "신상필벌입니다. 전쟁에 임하도록 하는 것은 그것으로 족합니다." "형벌의 끝은 어디까지여야 하오?" "친하고 신분이 높은 자들을 피하지 말고, 아끼는 자에게 법을 집행하십시오." "알겠소." 진문공은 다음날 포륙에서 사냥을 명하며, 시간을 정오로 정하고 시간에 늦는 자는 군법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이때 문공이 총애하는 자 중에 전힐이라고 있었는데, 그가 늦어 관리가 죄를 청하자 문공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관리가 말했다. "일을 집행하도록 해주십시오." 마침내 전힐의 등을 베어서 백성들에게 돌려가며 보이면서, 법을 확실히 집행한다는 것을 믿도록 했다. 이후 백성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말했다. "군주가 전힐을 대단히 귀중하게 여겼는데 군주는 법을 집행하였다. 하물며 나에게는 어떠하겠는가." 문공은 백성들을 싸움터로 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이때에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원나라를 정벌하여 이겼다. 또 위나라를 쳐서 동서로 길을 내어 통하게 하고, 오록 땅을 취했다. 양을 공격하고, 괵을 이기고, 조를 쳤다. 남쪽으로 정나라를 포위해 성벽을 무너뜨렸고,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어 되돌아와 초나라와 정복에서 싸워 초나라가 크게 패하게 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하의 맹주가 되었다. 한번 일어나 여덟 개의 공을 세운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호언의 지모에 따르고 전힐의 등을 베었기 때문이다. 참 참혹한 일화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역사에 꽤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제갈량의 '읍참마속'도 같은 부류의 이야기입니다.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으려면 법의 기강을 서야 하고, 법의 기강을 세우는 것이 군주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들입니다. 백성들 사이에 법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걸 옛사람들도 알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법에 대한 믿음을 세우기 위해 문공이 전힐의 등을 베고, 제갈량이 마속을 참한 것입니다. '법의 공정성'이란 구호로만 끝나선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믿어야만 비로소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질서를 잡는 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최고 권력자가 법 앞에서 공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친소관계를 떠나 법은 반드시 지키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군주부터 공정성을 증명해야 사람들이 법을 신뢰하기 시작하니까요. 죽음까지 내리지 않더라도 태자의 잘못도 법대로 처리한 관리를 높이고, 태자를 망신 준 초나라 왕도 있습니다. #2 초왕이 급히 태자를 불렀다. 초나라 법에 차는 묘문 앞에 댈 수 없다고 했다. 비가 오는 날이어서 안마당에 고인 물이 많았다. 태자는 수레를 몰아 묘문 앞에 대었다. 그러자 정리가 말했다. "수레는 묘문 앞에 댈 수 없습니다. 법이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왕께서 급히 불러서 왔는데 고인 물이 마르기를 기다릴 수 없구나." 그러고 수레를 몰았다. 그러자 정리가 장비를 들고 와 말을 치고 수레를 부쉈다. 태자는 왕에게 들어가 울면서 말했다. "마당에 고인 물이 많아서 묘문에 다다라 수레를 대었는데, 정리가 법에 금한 일이라며 장비로 제 말을 때리고, 제 마차를 부쉈습니다. 왕께서 그를 반드시 죽여주십시오." 그러자 왕이 말했다. "먼저 이 늙은 군주를 위해 불법을 모른 체하지 않았고, 다음은 태자라도 아첨하지 않았으니 긍지가 있구나. 이것이 진정 내 법을 지키는 신하구나." 그러고는 곧바로 두 계급을 올려주고, 뒷문을 열어 태자를 나가게 하여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였다. 옛 군주들이 자신이 공정한 법 집행자인지 증명하기 위해 얼마나 절치부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들은 참 많이 있습니다. 디자인 : 이희문
지피지기 백전불태! 친중(親中), 반중(反中)을 넘어 극중(克中)을 위한 지식충전소! 진짜 중국을 만나러 갑니다! '말조심하라.' 누구나 평생 흔히 듣는 말일 겁니다. 실제로 일을 망치는 출발점은 '말'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특히 나랏일처럼 중차대한 일에서 '말'은 그 자체로 뇌관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라님들이 가장 조심하는 건 '누설'입니다. 어떤 일이든 누설되는 순간, 어떤 각고의 노력을 했든 얼마나 절치부심하여 세심한 준비를 했든 모두 무용지물이 됩니다. 인간사에서 말처럼 무서운 건 없습니다. 그래서 조직의 인간관계 혹은 정치적 인간관계에선 말을 염탐하고, 그것을 예리한 무기로 벼리는 일이 상수가 되어 있습니다. #1 감무가 진나라 혜왕의 재상으로 있었는데, 혜왕은 공손연을 총애하여 그와 비밀스럽게 말을 나누면서 "내가 앞으로 그대를 재상으로 삼겠소"라고 했다. 감무의 사람이 문틈에 구멍을 내서 이를 듣고는, 감무에게 고했다. 감무는 입궐해 왕을 만나서 말했다. "왕께서 현명한 재상을 얻으셨더군요. 제가 감히 재배하며 축하드립니다." 그러자 왕이 되물었다. "내가 그대에게 나라를 맡겼는데 어떻게 다시 현명한 재상을 얻었다 하십니까?" "장차 서수(공손연)를 재상으로 하신다더군요." "그대가 어떻게 그것을 들었소?" "서수가 제게 말했으니 알지요." 왕은 서수가 비밀을 누설하였다며 노하여 그를 쫓아냈다. 이 사례는 '거짓을 섞어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루는 처세의 기술'로도 상당히 유명한 사례입니다. 사람들에겐 거짓을 분별해 내는 묘한 능력이 있어서 완전한 거짓말에는 잘 속지 않습니다. 물론 특별한 관계의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속은 사람도 언젠가는 알아채죠. 또 특별한 관계에서 많은 사람을 잠시는 속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속이지는 못합니다. 그중 누군가는 거짓을 알아채는 능력을 발휘하니까요. 이런 연유로 완전한 날조와 거짓으로는 사람을 속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말을 활용하는 처세술 혹은 전술에서는 '거짓과 진실을 섞는 기술'을 강조합니다. 혹자는 대부분의 진실에 거짓을 5% 정도만 섞으면 자신이 원하는 국면으로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죠. 그 사례로 앞의 감무의 이야기가 많이 거론됩니다. 실제로 왕과 공손연이 속삭인 것은 사실이죠. 여기서 거짓은 단 하나 누구에게 들었느냐입니다. 감무는 첩자를 놓아 캐낸 정보를 공손연이 떠들고 다니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이룹니다. 군주의 말은 이처럼 이용당하고, 무기처럼 활용됩니다. 그래서 옛 왕 중엔 '누설'을 우려하여 잠꼬대까지도 단속했다는군요. #2 당계공이 소후에게 말했다. "지금 천금이 나가는 옥 술잔이 있는데 뚫려서 밑바닥이 없으면 물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소후가 말했다. "불가하지요." "유약도 바르지 않은 질그릇이 새지 않는다면 술을 담을 수 있습니까?" "가능하지요." "대체 질그릇은 천한 것이어도 새지 않으면 술을 담을 수 있습니다. 비록 천금이나 되는 옥잔은 대단히 비싸지만, 새면 물을 담을 수 없는데 누가 거기에 음료를 담으려고 하겠습니까. 지금 군주 된 사람이 신하들이 고한 말을 누설하는 것은 이처럼 바닥 없는 옥 술잔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훌륭한 지모가 있어도 그 술수를 다할 수 없는 것은 누설 때문입니다." 이에 소후는 이후에 천하의 대사를 펴고자 할 때 혼자서 잠을 자지 않은 적이 없다. 잠꼬대라도 하여 다른 사람이 그 계획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세상사에선 말 많은 사람이 지게 돼 있습니다.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칠 무기를 제공하게 되는 일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군주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더더욱 말을 참아야 한다고 하죠. 옛 법가 사상가인 신불해는 말과 관련해 이런 말을 합니다. #3 신불해(법가 사상가)가 말했다. 말하는 것을 삼가라. 그러면 사람들은 너에게 맞추려 한다. 행동을 삼가라. 사람들이 너를 따르려고 할 것이다. 네가 아는 것으로 보이면 사람들은 너에게 숨기려 할 것이고, 무지해 보이면 네 마음을 헤아려 보며 속이려 들 것이다. 네가 알면 사람들은 숨기려 하고 네가 모르면 사람들은 너를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오직 무위함으로써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무위(無爲).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제왕학에서 군주 처세술의 제일 원칙이 '무위'입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걸로 알아들어선 안 되죠. 이건 자신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똘똘한지, 얼마나 많이 아는지, 얼마나 바보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들켜선 안 됩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 역시 신불해가 답합니다. #4 군주의 총명함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준비를 하고, 총명하지 못함을 알게 되면 홀리려 든다. 그가 아는 것으로 보이면 사람들은 자신을 포장하고, 모르는 것으로 보이면 사람들은 숨기려 든다. 욕심이 없는 것으로 보이면 사람들은 그 속마음을 엿보려고 하고, 욕심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이용하려 든다. 그러므로 나는 속마음을 눈치 차이지 않고, 오직 무위로써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무위로써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군주의 역할입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음으로써 신하들이 군주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스스로 분투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런 노력의 과정을 보면서 제대로 인사하는 것. 이리하여 능력에 따라 제대로 자리를 맡겨두면, 총명한 관리들이 자기 자리에서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태평성대가 되는 비결이라는 것이죠. 디자인 : 이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