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 전세사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주택 가격 정보, 특히 빌라와 같은 소규모 주택 가격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주택 가격을 추정하는 시스템인 "자동평가모형(Automated Valuation Model, 이하 AVM)"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편에서는 AVM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주택시장에서 AVM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살펴본다. 1. AVM이란 무엇인가? AVM은 주택의 적정 거래 가격, 즉 시세를 자동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AVM은 주택의 면적이나 구조와 같은 특성, 입지, 그리고 현 시점의 시장 상황과 같은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 적정 가격을 추정할 수 있으며, 아직 한 번도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은 신축 빌라라도 주택의 특성과 시장 상황을 통해 만약 거래가 이루어졌다면 형성되었을 가격을 추정할 수 있다. 기존의 주택 가격 평가는 감정평가사가 개별 주택의 특성과 입지, 그리고 인근 부동산 시장의 상황과 같은 여러 요인을 감안하여 수동으로 수행하였다. 그러나 지난 2006년부터 정부에서 주택 실거래 전수 내역을 수집하고 이를 공개하면서 주택 가치 추정에 필요한 빅데이터가 구축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빅데이터를 학습하여 가격을 추정할 수 있는 기법들이 발달하면서 데이터를 통해 정교한 주택 가치 평가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미 학계에서는 다양한 부동산 시장 데이터와 고도화된 인공지능 기법을 활용하면 전문 감정평가사에 버금가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수준의 가치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이 밝혀진 바 있다. 2. AVM의 원리 AVM 시스템은 면적이나 노후도 등 주택의 여러 특성과 가격의 관계식을 학습한 통계 모형을 통해 가격을 추정한다. 간단한 예시로 [그림 1]은 2023년 서울시 아파트 매매 거래 데이터를 통해 아파트 전용면적과 가격의 관계를 확인한 것이다. 추세선을 통해 전용면적이 1제곱미터 넓어질 때마다 가격은 1,665만 원 비싸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 통계 모형은 면적 외에도 입지 특성, 부동산 시장 상황, 노후도, 층과 같은 다양한 요인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추정을 수행한다. 여기에 '인공신경망'과 같은 최근의 인공지능 기반 기법들이 도입되면서 과거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투입하고, 더 정교한 관계식을 학습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주택의 특성과 가격의 관계를 학습한 AVM 시스템에 [그림 2]와 같이 주택의 특성을 입력하면 시스템은 투입된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 거래 가격을 산출하게 된다. [그림 2] 3. AVM이 필요한 이유 AVM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거래가 빈번하지 않은 나홀로 아파트나 빌라의 시세를 파악하기 위해선 감정평가사의 가치 평가에 의존해야 했는데, 여기엔 다음과 같은 어려움이 있다. 첫째, 인력을 들여 전문적인 감정평가를 수행할 경우 시간과 비용이 든다. 한 건의 감정평가에도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전국 모든 주택에 대한 대량 평가를 매월 혹은 매주 수행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이다. 둘째는 일련의 전세사기 사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악성 임대인과 결탁한 평가사가 임대인이 희망하는 금액에 맞추어 감정평가액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거래가 자주 발생하지 않는 빌라는 실거래를 통해 형성되는 시장 가격으로 감정평가 결과를 검증해보기도 어렵다. 이러한 문제점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기반한 AVM을 도입함으로써 해결된다. 컴퓨터 모델이 거래 데이터에 기반해 가치 평가를 수행하므로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으며, 나아가 전국 모든 주택에 대한 평가를 실시간으로 수행할 수도 있다. 또한 사람이 가격 평가를 수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편향이나 이해관계 충돌, 그리고 악성 임대인과 결탁할 수 있다는 문제에서 자유롭다. 특히 여러 민간 업체에서 경쟁적으로 AVM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결과를 일반에 제공한다면 추정된 시세를 교차 비교함으로써 적절히 가격 평가가 이루어졌는지 검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AVM의 활성화를 통해 실거래만으로 시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나홀로 아파트나 빌라의 가격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4. AVM의 현재와 향후의 과제 현재 몇몇 프롭테크(PropTech) 업체에서 아파트나 빌라에 대한 AVM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감정평가사법 위반 논란 및 감정평가사 협회와의 갈등으로 인하여 관련 분야의 발전이 정체되고 있다. 따라서 주택 가격정보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정부는 관련 규제의 정비 및 이해관계의 조율을 통해 AVM 서비스의 적극적인 도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소규모 나홀로 아파트나 빌라, 단독주택과 같이 시세 추정이 어려운 주택에 대해 정교한 가치평가를 수행하기 위해선 인공지능 AVM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한 양질의 주택 특성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주택의 위치, 건축 특성, 세대수와 같은 다양한 특성 정보를 공공에서 수집, 관리하고 이를 민간에 개방한다면 고도화된 AVM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감수: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사회혁신 전공) 디자인: 권민재
이른바 '빌라왕 사건'에서 피해자 다수는 신축 빌라의 세입자들이었다. 신축 빌라는 거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시세가 명확히 형성되어 있지 않다. 전세사기범들은 이를 악용해 일부 중개인 및 감정평가사와 입을 맞추고 주택의 매매 가치가 실제보다 높은 것처럼 피해자들을 속여 깡통전세 계약을 다수 체결하였다. 대단지 아파트가 아닌 빌라나 나홀로 아파트들이 전세사기의 주요 타깃이 된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시세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1. 아파트는 규격화된 상품이다 아파트는 빌라와 달리 많은 세대가 하나의 단지를 구성하고 있는데, 한 단지 내부의 같은 면적대 주택들은 동일한 평면 구조를 가진 '규격화된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동일한 평면 구조라도 층이나 향에 따른 가격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를 일부분 보정한다면 대개 유사한 수준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아파트 매물의 시세는 동일 면적대 주택의 최근 실거래 가격을 확인함으로써 비전문가라도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으며, 특히 나홀로 아파트나 소규모 단지보다 대단지 아파트일수록 거래도 자주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세 파악이 용이하다. 또한 최근에는 '호갱노노'와 같이 국토교통부에서 제공하는 실거래 가격을 보기 쉽게 가공하여 제공하는 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상승하였다. 출처: 호갱노노 2. 거래가 자주 발생하지 않는 빌라 빌라는 주택을 구성하는 세대수가 적기 때문에 거래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동일 빌라, 동일 면적의 직전 실거래 내역을 아예 조회할 수 없어서 시장 가격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2018년부터 2024년까지의 서울시 주택 매매 실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아파트의 경우 93.5%의 거래 건이 동일 단지, 동일 면적대에서 예전 거래 내역이 존재하였으나, 빌라의 경우 예전 거래 내역이 존재하는 경우가 50.8%에 불과하였다. 빌라 거래 중 절반은 실거래를 통해 형성된 시세 없이 이루어진 최초 거래인 것이다. 또한 빌라의 경우 직전 거래가 존재하더라도 아파트에 비해 거래가 빈번하게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이전 거래와 긴 시간 간격을 두고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2018년부터 이후 서울시 매매 거래 데이터 가운데 동일 지번, 동일 면적의 직전 거래가 존재하는 거래 건을 대상으로, 직전 거래 이후 경과된 소요 기간의 중위값을 집계하였다. 그 결과 아파트는 16일, 빌라는 137일이었다. 아파트가 빌라에 비해 8배 이상 빈번하게 거래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거래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시세 파악에 불리한 점이 된다. 어떤 빌라의 직전 거래가격이 3억 원이었는데, 그 거래는 6개월 전이었고 그 사이에 시장 흐름이 크게 바뀌었다고 하면 현재도 3억 원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거래가 빈번하게 발생하지 않는 빌라에서는 인근 다른 빌라의 거래 가격을 참고하거나, 정교한 주택 가치 평가 방법론을 통해 시세를 측정해야 한다. 3. 빌라의 가치 평가가 어려운 이유와 해결 방안 빌라는 감정평가도 아파트보다 어렵다. 아파트가 규격화된 상품인 반면, 빌라는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이라도 시공사, 평면 구조 등 주택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들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정평가사를 통해 빌라의 적정 거래 가격을 산출하더라도 아파트에 비해 오차가 크고, 감정평가 결과를 일반인이 검증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전세사기범들은 이를 악용해 일부 감정평가사에게 실제 가치보다 감정평가액을 올리는 '업 감정'을 의뢰하고, 평가사는 인근의 예외적인 고가 거래만을 참조하는 등의 수법으로 악성 임대인이 희망하는 가격을 만들어주었다. (▷관련 기사) 따라서 전세사기의 주요 원인이 되는 주택 가격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해선, 모든 주택에 대한 가격 정보를 누구나 쉽게 열람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 거래가 자주 이루어지는 아파트는 실거래 정보를 정리하여 제공하는 공공과 민간의 플랫폼들을 활용할 수 있지만, 빌라와 같은 소규모 주택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단순 실거래가가 아닌 정교하게 평가된 신뢰도 높은 시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법의 발달로 '자동평가모형(Automated Valuation Model, AVM)'을 통해 빌라와 같은 소규모 주택에 대한 적정 가격을 자동으로 평가하고 이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AVM의 개념과 중요성, 그리고 AVM의 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감수: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사회혁신 전공) 디자인: 권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