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광저우 총영사, 주중문화원장, 문체부 대변인 등 역임 - 베이징 주중대사관, 주상하이 및 주홍콩 총영사관 근무 - 현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연구활동 중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바야흐로 봄꽃의 계절이다. 꽃은 피어서,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 삶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더해준다. 꽃이 지니는 역사와 문화적인 함의는 중국에서도 매우 크다. 몇 년 전 중국을 대표하는 꽃을 조사한 결과 10위 안에 모란(牡丹), 매화(梅花), 국화(菊花), 난꽃(蘭花), 연꽃(荷花), 수선화(水仙) 등이 포함되었다. 순위에 들지는 못 했지만, 유난히 많은 스토리를 품고 있는 꽃이 있으니 복사꽃, '도화(桃花, 타오화)'이다. 활짝 핀 복사꽃, 桃花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고전 <삼국지(三國志)>에는 첫 회부터 복사꽃 배경이 등장한다. 그 유명한 '도원결의(桃園結義)' 장면이다. 장비(張飛)는 "내 장원 뒤편에 복숭아밭이 있는데, 꽃이 한창이오(吾莊後有一桃園,花開正盛)"라면서 현덕(玄德)과 운장(雲長)에게 우리 세 사람이 형제를 맺고 함께 힘과 마음을 모아 대사를 도모하자(我三人結為兄弟,協力同心,然後可圖大事)고 제안한다. 사실 '삼국지 정사(正史)'에는 도원에서의 결의와 관련된 기술이 없다. 우리가 <삼국지>라고 부르는 이야기 책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등장하는데, 실제 역사에서 세 사람의 '도원결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야기꾼들이 굳이 복숭아밭을 배경으로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줘저우(涿州)의 '도원결의 정자(结义亭)' 아마도 복사꽃이 갖는 함의와 그로 인한 극적 효과 때문일 것이다. 복사꽃은 여러 개의 꽃잎이 꽃 한 송이를 이루어 단합과 우의(友誼), 화해를 상징한다. 또, 겨울이 가고 봄이 한창일 때 화사하게 피어 시작과 희망을 의미한다. 파릇파릇한 봄빛이 올라오는 장원에서 분홍빛 선연한 복사꽃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날에 검은 소(烏牛)와 하얀 말(白馬)을 제물로 준비하여, 세 장정이 황건적(黃巾賊)을 비롯한 불의(不義)에 붉은 피로 맞설 다짐을 하며 통음(痛飮)하는 설정은 색채감이 강렬한 영화적 장면을 연상시킨다. 수백 년 전 전문 이야기꾼들이 평서(評書)라는 형식을 통해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관객들에게 소리높여 삼국지를 읽어주면서 드라마틱한 시작을 하기에 좋은 구성이라 하겠다. 도원결의가 있었다고 알려진 장소인 유주(幽州) 탁현(涿縣)은 베이징에서 멀지 않은 현재의 허베이(河北)성 줘저우(涿州)시이다. 줘저우시는 바오딩(保定)시에 속한 현급의 시로 인구 65만 명의 중소도시이다. 줘저우는 복숭아가 많이 나고 봄에는 복사꽃이 많이 핀다. 장비의 고향마을, 도원결의 장소 등을 정비하여 관광명소로 활용하고 있다. 복숭아와 복사꽃은 삼국지 훨씬 이전부터 문화 속에 등장한다. 전설 속 서왕모(西王母)는 과수원에서 신비의 납작복숭아(蟠桃)를 길러 신선들에게 나눠준다. 복숭아는 불로장생을 상징한다. <서유기(西遊記)>에서는 손오공이 서왕모의 과수원에 들어가 복숭아를 따 먹는 소동을 벌인다. 시경(詩經)에는 "복숭아나무 무성한 가지에, 복사꽃이 곱게도 활짝 피었네(桃之夭夭, 灼灼其華)"라는 유명한 시구가 등장한다. 이삼천 년 전에 지어진 시에서 원시적 활력과 찬란한 자연을 느낀다. 성당(盛唐)의 시인 최호(崔顥)는 "작년의 이즈음 이 문 안에서, 복사꽃과 함께 발갛게 빛나는 그녀를 보았지(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그 아름다운 모습은 어디를 갔을거나, 복사꽃은 예전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는데(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라고 읊었다. 복사꽃은 애잔한 아름다움과 그리움의 대상이다. 또 다른 익숙한 말로 '무릉도원(武陵桃源)'도 있다. 도연명(陶淵明)의 걸작 '도화원기(桃花源記)'에는 진(晉)나라 때 무릉(武陵) 지역의 고기잡이가 복사꽃이 핀 수풀 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격리된 마을을 발견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怡然自樂)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복사꽃은 사람을 이상향(理想鄕)으로 이끄는 안내 역할의 길상물(吉祥物)이 된다. 도연명이 이야기한 지역이 어디인지 이제는 알 수 없으나, 지형이나 지명의 유사성과 도연명과의 인연 등을 근거로 몇 군데 지역이 '무릉도원'임을 자처하고 있다. 후난(湖南) 창더(常德)의 도화원(桃花源), 후베이(湖北) 스옌(十堰)의 도화협(桃花峽) 등 십여 곳에 달한다. 사실 중국에서는 '무릉도원'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고 세상 밖의 이상향이란 의미로 '세외도원(世外桃源)'으로 부른다. 제목에 복사꽃을 내세운 최근 판타지 드라마 포스터 비슷한 정서를 읊은 작품으로 당인(唐寅)의 '도화암가(桃花庵歌)'가 있다. "복사꽃 산골에 복사꽃 암자가 있는데, 복사꽃 암자에는 복사꽃 선인이 산다, 복사꽃 선인은 복숭아나무를 심고, 복사꽃을 따서 술을 바꿔 마신다(桃花塢里桃花庵, 桃花庵下桃花仙; 桃花仙人種桃樹, 又摘桃花賣酒錢); 술이 깨면 꽃 앞에 앉아 있고, 술에 취하면 돌아와 꽃 아래서 잔다; 깬 듯 취한 듯 하루가 가고 하루가 온다, 꽃이 지고 꽃이 피고 일 년이 가고 일 년이 온다(酒醒只在花前坐, 酒醉還來花下眠; 半醒半醉日復日, 花落花開年復年); 늙어 죽더라도 꽃과 술 사이 이기만을 바라며, 권력 앞에 머리 수그리기는 원치 않는다; 차나 말이나 비싼 것은 높은 분들의 취미고, 술잔과 꽃가지는 가난한 자의 벗이다(但願老死花酒間, 不願鞠躬車馬前; 車塵馬足富者趣, 酒盞花枝貧者緣)"라고 풍자한다. 복사꽃은 신선이 되고픈 이들에게 꽃그늘을 주고 말동무가 되고 부귀에도 비굴해지지 않으며 술 바꿔 먹을 돈까지 주는 좋은 동반자가 된다. 백거이(白居易)의 <대림사 복사꽃(大林寺桃花)>도 있다. "사람 세상에는 4월이 되니 꽃내음이 다했는데, 한적한 산속 사찰에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네(人間四月芳菲盡, 山寺桃花始盛開); 봄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찾으려 해도 찾지 못했는데, 이곳에 숨어들어와 있을 줄은 몰랐네(長恨春歸無覓處, 不知轉入此中來)". 이백(李白), 두보(杜甫), 원목(袁牧), 한유(韓愈), 육유(陸游), 원진(元稹), 소식(蘇軾) 등 걸출한 시인들 중에서 복사꽃을 읊은 시 한 편이 없다면 이상할 정도이다. 린즈(林芝)의 복사꽃 풍광 복사꽃은 열매로 맺어져 복숭아를 선사하지만, 꽃 자체도 미용용으로 활용된다. 고대 의약서는 복사꽃이 기미, 잡티나 주름 제거 등 피부 미용에 효험이 있다고 적고 있다. 직접 바르기도 하지만 차나 술로도 만들어 마신다. 복사꽃같이 환한 얼굴이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듯싶다. 최근에는 우리가 봄 벚꽃놀이를 즐기듯 복사꽃 관상 여행이 중국 각 지방의 관광 상품화되고 복사꽃 재배로 수익을 올리는 일명 '도화경제(桃花經濟)'가 뜨고 있다. 티베트(西藏)의 인구 20만 명의 작은 지역인 린즈(林芝)에서는 매년 봄 복사꽃 관광제(桃花旅遊文化節)가 개최되어 올해도 23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아 흐드러진 복사꽃의 향연을 즐겼으며, 산둥(山東) 치위안(沂源)의 농촌에서는 복사꽃을 따서 가공한 후 의약과 화장품, 차의 원료로 판매하여 한화로 약 60억 원의 부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복사나무는 사람에게 복사꽃부터 복숭아 과실까지, 그리고 아름다운 감성까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가 보다. 사진: 바이두, 디자인: 정유민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애니메이션 <너자 2>의 포스터 중국 영화의 역사가 연일 새로 써지고 있다. 올해 1월 29일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너자(Nezha) 2>가 연일 중국대륙의 관객들을 끌어모으며 흥행 가도를 달리면서, 불과 개봉 열흘여 만에 중국 영화사상 최고 흥행작인 <전랑(戰狼) 2>가 세운 1억 9천만 명 관객수 기록을 깨고 사상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3월 1일 현재 통계로는 관객 수 2억 9천2백만 명, 수입액 142억 위안(약 20억 달러)을 기록하면서 중국을 넘어 전 세계 역대 영화 흥행액 순위에서도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2>와 <스파이더맨(Spider-Man : Homecoming)>을 넘어 7위를 차지했다. 현재도 상영 중으로 위쪽 순위에 랭크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저스(Avengers: Infinite War)>, <스타워즈(Star Wars: The Force Awakens)>의 흥행 기록도 넘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흥행 성적의 수치 대부분은 중국 내에서 올린 결과이기는 하나 미국에서 7백여 곳,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1백여 곳 등 중국 영화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은 해외 영화관에서 상영되었고, 글로벌 영화 정보 사이트 IMDb에서도 비교적 높은 평점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너자> 포스터 <너자 2>의 흥행은 사실 6년 전인 2019년, 1편 격인 <너자>가 처음 개봉되자마자 애니메이션 관련 상을 휩쓸고, 중국 역대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 성적 1위에 오르면서 어느 정도 예견되었었다. 영화 <너자(Nezha)>의 중국어 원명은 <哪吒之魔童降世(너자즈모통장스)>로 '너자라는 악동 마귀가 세상에 태어나다'라는 의미로, 2편은 <哪吒之魔童鬧海(너자즈모통나오하이)>로 너자가 이번에는 '바다를 뒤집어놓다'는 정도로 해석된다. <너자> 시리즈는 일반적인 중국 애니메이션 수준에 대한 선입견이나 의구심과 달리 우리에게 익숙한 디즈니나 픽사의 애니메이션에 못지않은 스토리 구성과 전개, 그래픽 수준을 보여준다. <봉신연의> 소설책과 영화 '너자'는 우리 한자 발음으로는 '나타'로, 중국 고대 전설 속 신선(神仙) 중의 하나이다. '나타'는 진(晉), 당(唐), 송(宋) 대의 서적과 서유기(西遊記)에도 등장하며, 명(明) 대에 쓰인 신마(神魔) 소설의 하나인 <봉신연의(封神演義)>을 통해 보다 널리 알려졌다. <봉신연의>는 상(商)나라의 폭군인 주왕(紂王)과 그를 물리치려는 주(周)나라 무왕(武王) 간의 싸움을 주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유명한 미녀 달기(妲己)와 강태공(姜太公)으로 알려진 태공망 강자아(姜子牙)도 등장한다. <봉신연의>는 허중림(許仲琳)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무왕벌주(武王閥紂)'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각색, 편제한 것이며, 또한 역사적 내용과 인물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들을 신선화(神仙化), 마귀화(魔鬼化) 시킨 사회풍자 소설이자 중국식 판타지 스토리라고 하겠다. 제목의 '봉신(封神)'의 의미가 상주(商周) 간 싸움에서 생명을 잃은 혼백 365명을 신(神)으로 봉(封)한다는 의미에서 나왔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봉신연의> 전체 스토리보다는 악동 나타에게 포커스를 둔다. 나타는 아버지 이정(李靖)과 은부인(殷夫人) 사이에서 태어난다. 태초에 하늘과 땅의 정기를 가진 혼원주(混元珠)가 푸른빛을 띤 선한 영주(靈珠)와 붉은빛을 띤 악한 마환(魔丸)으로 나뉘었는데, 태을진인(太乙眞人)이 지상에 실수로 영주 대신 마환을 내려보내, 은부인이 3년 만에 악동의 화신인 '나타'를 낳게 되는 것이다. 나타는 태어나자 곧 꼬마 대마왕(大魔王)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주위에 각종 악행을 저지르고 미움을 받았으며, 부모는 아이가 선한 행동을 하도록 교육하고 사랑을 준다. 영화에서는 나타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귀염성 있게 묘사한다. 특히, 나타의 눈 주위가 까만 것을 두고 야근과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다크서클이라고 묘사하면서 관련된 짤 영상이나 블로그 글이 관심을 받고 있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인물들이 캐릭터화되면서 온오프라인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사실 '너자'와 '너자 2'의 성공 배경에는 만두(餃子)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쓰촨대(四川大學) 약학대 출신 애니메이션 영화감독인 양위(楊宇)의 개인 역량이나 영화사의 투자와 자본력 등이 주효했지만, 십여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중국 고전을 발굴하여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문화산업의 IP화 하기 위한 당국의 정책도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중국 제18차 당대회 보고서는 사회주의 문화강국(文化强國) 건설과 문화 소프트파워(文化軟實力)의 증강의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2017년 19차 대회 보고에는 문명사적 전통에 근거한 '문화적 자신감(文化自信)'의 증강을 중요한 항목으로 제시했다. 문화강국 건설과 문화자신 수립, 이를 위한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은 통치 이념으로 개념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산업과 관련해서는 2005년 관련한 발전 정책을 내놓은 이래, 관련 당국에서 주요 시기마다 제도와 금융적 지원책을 발표하고 있다. 재작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장안삼만리(長安三萬里)>는 당나라 시기 시인(詩人)들 간의 스토리를 다룬 장편 역사물임에도 4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성적 2위에 랭크되었다. 지금도 공중파 TV, 라디오,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 영화 등 모든 레거시와 뉴 미디어에는 전통 소재 콘텐츠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쓰촨성 이빈시 전경 '너자(나타)'의 고전 속 형상 및 이빈시 소재 '나타 행궁' 영화 <너자>가 대흥행을 하자 중국 곳곳이 주인공 너자(나타)와의 이런저런 인연과 증거물을 내놓으며 연고를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허난(河南), 톈진(天津), 쓰촨(四川) 등의 고장들이 나섰지만,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쓰촨 이빈(宜賓)이다. '나타 행궁(哪吒行宮)' 등 건축물에는 매일 수천 명의 방문객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이빈시 남쪽 지역의 옛 이름(陳塘關)이 전설에 나오는 지명과 같고, 강이나 산세 등에 대한 묘사가 현지 지리와 부합된다고 한다. 1990년에는 타이완의 도교 주지가 꿈에서 계시를 받고 이빈 추이핑산(翠屛山)에 와서 '나타 동굴(哪吒洞)'을 발견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빈은 쓰촨성 성도인 청두(成都) 남쪽에 창강(長江)이 지나는 수려한 풍광의 역사 도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백주 '우량예(五粮液)'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너자>와 같은 애니메이션은 무궁무진한 중국 고전 신화 속에서 끌고 나온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여, 현재 세계 시장의 주류인 미국 마블코믹스 소재 애니메이션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고전 소재 애니메이션은 중국 국내적으로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 고양이라는 일차적 목적 외에, 저작권 등 문제에 자유로우면서 스토리와 기술을 바탕으로 중국 문화 콘텐츠의 세계 시장 진출 및 흥행 수입을 거둘 수 있고, 아울러 친근하게 만들어진 캐릭터를 통해 부드러운 중국의 문화외교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중국에게는 일석몇조의 효과를 가져온다. 동시에 다른 관점에서는 문화 콘텐츠 속의 중화주의와 문화 패권주의적 속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전통문화의 전승 발전이라는 차원과 세계적으로 문화안보가 이슈화되고 있는 차원에서 보면, 사실 우리에게도 역사 속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고 소중한 자료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이를 적극 발굴하고 가공하여 우리의 것이자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문화산업 IP화 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웃 나라 <너자>의 흥행을 보면서 과거 모 라디오 방송국에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들었던 정겨운 우리 가락이 유난히 아쉬운 이유이다. 사진: 바이두, 디자인: 정유민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딥시크(DeepSeek)가 몰고 오는 회오리의 기세가 거세다. 발원지인 중국을 넘어 미국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물리적인 지역을 넘어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로 그 여파가 확산하는 추세다. 중국 국내의 문학 분야에서도 얼마 전 딥시크와 관련된 소식이 전해졌다. 중국 최대 시문학 전문 뉴미디어 플랫폼인 <중국시가망(中國詩歌網, Chinese Poetry Network)>은 2월 8일 시인과 평론가들이 참여한 '중국 시 지도(中國詩歌地圖)'라는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딥시크가 개막사를 써서 사회를 보고 주요 평론가의 일원으로 참여하기까지 했다. 세미나 중 저명 문학평론가인 장더밍(張德明) 링난사범대(嶺南師範大學) 교수가 썼던 주요 시 작품들에 대한 평론 글에 대해 다시 논평을 하기도 했다. 동시에 자매 사이트인 <중시망(中詩網)>은 이날부터 딥시크(DeepSeek)가 쓰는 'AI 시평(詩評)'을 고정란으로 개설하고 중국 주요 현대 시인들의 시 작품에 대한 논평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중시망(中诗网)에 게재된 딥시크의 'AI 시평' 딥시크의 문학 평론과 관련하여 전문가들은 그 수준이 아직 60~70점 정도라고 평가하면서, 이는 딥시크가 학습한 내용이 기존 문학 평론 문장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시인의 창작품을 AI가 평가한다는 부정적인 면과 함께, 시 창작과 평론에 있어 일부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소집단화(小集團化) 등 편향성 문제가 감소하고 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중국시가망'은 중국작가협회(中國作家協會)가 운영하는 시인과 시 애호가들의 '작시(寫詩), 독시(讀詩), 청시(聽詩) - 삼위일체' 온라인 플랫폼으로, 중국 최고 권위의 시문학 잡지 '시간사(詩刊社)'를 전신으로 하며, 향후 문학계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중국시가학회(中國詩歌學會) 양커(楊克) 회장은 이와 관련해 한 매체(南方plus)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굴원(屈原) 이전의 시는 지은이가 따로 없었다. <시경(詩經)>에 수록된 시들은 여러 사람에 의해 불렸던 노래가 수집된 것으로, 앞으로 AI에 의한 작시가 일반화되면 독자 관점에서는 작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아질 수 있다. 그렇지만, 창작 관점에서 시는 시인의 영감과 창작 의지로 써진 것으로, AI가 이를 대체할 수는 없으며, 특히 작품 수준에 있어서 특정한 시점이나 장소에서 떠오른 시상(詩想)에 감정을 담아 섬세한 글로 표현한 시 작품을 AI가 흉내 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중국 문학계에서 뉴미디어와 AI 활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3년 위챗(微信) 기반의 시 전문 뉴미디어 플랫폼 <위니독시(爲你讀詩: 웨이니두스)>가 등장하여 인기를 얻으며 3천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고, 2018년 베이징사범대(北京師範大學)가 선보인 <당시별원(唐詩別苑: 탕스비에위안)>은 고전 시 분류는 물론 당나라 때 시인들 간의 교유 네트워크 맵 등 상세 분석 자료를 제공하며, <서창촉(西窓燭: 시촹주)>이라는 앱은 100만 수의 시를 작품별 주제와 절기(節氣) 등으로 분류하여 제공하기도 한다. 칭화대(淸華大學)에서 만든 <구가(九歌: 지우거)>는 80만 수의 고전 시를 학습한 AI 기술을 기반으로 키워드를 입력하면 절구(絶句)와 율시(律詩)를 바로 지어 제공한다. 검색 엔진 바이두(百度)는 얼마 전부터 별도 가입 없이 검색창에서 AI 메뉴를 활용해 이용자가 원하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시를 짓거나 그림이나 동영상을 생성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과 관련 AI 업계가 시 문학에 관심 갖는 것은 전통문화 중시 및 중화 문명 부활이라는 차원에서의 목적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자(漢字)로 된 시와 문학 작품이 AI 러닝과 발전에 중요한 거대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달 초 중국 문학계의 이러한 움직임을 중심으로 '아시아 문화와 미디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국제 학술 회의가 고려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홍콩대(香港大學) 중문대학 학장인 린페이인(林姵吟) 교수, 타이완대(臺灣大學) 문학연구소의 황메이어(黃美娥) 교수,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소장인 장동천 교수를 비롯한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지의 주요 대학에서 온 석학들이 대거 참석하여 중국 및 아시아 각국의 문학과 미디어 간의 결합 양상, 뉴미디어와 AI의 문화계에 대한 영향 등 다양한 주제로 한 연구 결과 발표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최근 반도체와 AI 분야에 있어 미중 간의 치열한 경쟁에서 보듯이 이 문제는 우리에게도 향후 산업과 경제, 문화계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중국의 AI 발전 움직임과 관련하여 광범위한 우리 학계 및 관계 기관의 관심과 함께 깊이 있는 연구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잔장시 시내와 해변 풍광 다시 딥시크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딥시크(DeepSeek)의 중국어 명칭은 '선두치우숴(深度求索)'로 불과 1년여 전인 2023년 7월 항저우(杭州)에서 설립되었다. 현재 대표자는 페이톈(裵湉), 창시자는 량원펑(梁文鋒)이다. 량원펑은 대학 재학 중부터 AI 개발에 매달렸고, 딥시크 회사 설립 후 딥시크 챗, V2, V3 등을 연이어 선보였다. 최근 선보인 AI 모델은 자신을 포함한 불과 150명 정도의 연구진을 기반으로 개발된 것으로, 챗GPT를 비롯한 선두 AI 개발업체의 연구개발 인력이 1천에서 7천 명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획기적 성과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민감 업무 정보나 개인 정보 유출 우려가 대두되면서 각국 정부 부처와 기관들은 딥시크에의 접속을 차단하고 있기도 하다. 량원펑은 저장대(浙江大學)에서 전자공정학(電子工程學)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이 위치한 항저우에 회사를 설립하였지만, 그가 태어나고 대부분의 교육을 받은 곳은 광둥(廣東)성 잔장(湛江)시이다. 잔장시의 '프랑스 공사관(法国公使署)' 유적과 레이저우 문화 유적지 '레이주츠(雷祖祠)' 잔장(湛江)은 광둥성의 가장 서남쪽이자 하이난(海南)섬을 마주 보는 레이저우(雷州) 반도에 위치하고 있다. 섬을 제외하면 중국 전체 대륙의 최남단에 자리한다. 잔장시는 인구 700만 명의 도시로 과거에는 광저우만(廣州灣)으로 불렸으며, 물이 깊고 항만 조건이 뛰어나 근세에 들어 서구 열강들이 눈독을 들였던 곳으로 1899년 프랑스에게 할양되어 1945년까지 조계 지역이기도 하였다. 1984년에는 중국 국무원에 의해 연해 개방도시로 지정되었다. 독특한 중국 남부의 해양 문화를 담은 '레이저우 문화(雷州文化)'의 본산으로 광푸(廣府), 커자(客家), 차오산(潮汕) 문화와 함께 링난(嶺南) 4대 문화를 대표한다. 민남어(閩南語)의 지류인 레이저우 방언이 있고, 소식(蘇軾), 소철(蘇轍), 진관(秦觀) 등 대문호들이 귀양살이 등으로 머물기도 하였다. 딥시크 창시자 량원펑의 고향 마을(米历岭村) 잔장시는 교육의 도시로 유명하다. 까오카오(高考)라 불리는 대입 수능에서 인구수 1억 3천만 명에 육박하는 광둥성의 지난해 문과 수석을 배출했다. 량원펑 역시 2002년 잔장시 우촨(吳川) 고등학교에서 수능 1등(壯元)의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하였다. 부모는 평범한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한다. 잔장 시민들은 1985년생인 량원펑과 함께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다이빙 3관왕의 주인공으로 2007년생인 촨홍찬(全紅嬋)까지 세계를 놀라게 한 두 명의 젊은 인재가 연이어 잔장시에서 배출되었다고 반기고 있다. 량원펑이 태어난 잔장시의 한 작은 시골 마을인 미리링촌(米歷嶺村)에는 딥시크가 유명세를 탄 이후 전국에서 온 인플루언서들이 마을 입구에서 SNS 라이브 방송을 하여 북새통을 이루고, 관광객들이 몰려 평범한 죽이나 국수가 '장원급제 죽(壯元粥)', '장원급제 국수(壯元麵)'로 이름 붙여져 등장하는 등 때아닌 관광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자식의 출세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望子成龍)'은 AI 시대의 중국 잔장 땅에서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사진: 중시망, 바이두, 디자인: 정유민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설이 지나도 엄동설한 동장군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넓은 중국 대지에서 가장 추운 도시는 어디일까? CEI 데이터(中經數據)는 중국 북동부에 위치한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성도(省都) 하얼빈(哈爾濱)시를 가장 추운 도시 1위로 꼽았다. 바이두에 의하면 올해 1월 중 대부분의 하루 최저 기온이 영하 20~29도를 기록했으며, 1970년에는 영하 38.1도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 내 추운 날씨를 보이는 대도시로는 하얼빈 외에 후허하오터(呼和浩特), 푸순(撫順) 등이 뒤를 이었고, 소도시 중에는 네이멍구의 건허(根河)나 헤이룽장의 모허(漠河) 등을 꼽기도 한다. '얼음의 도시(氷城)'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하얼빈은 중국 창강(長江)과 황하(黃河)에 이은 3대 강이자 북부 지역 최대 하천인 쑹화강(松花江)을 끼고 평원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짧은 여름과 몇 달씩 이어지는 길고 추운 겨울 기후를 보인다. 영하 20도가 넘는 한겨울에 차가운 강바람까지 맞으면 노출된 피부에 금세 동창이 걱정될 정도의 차원이 다른 추위를 느끼게 된다. 바람이 유난한 11월 최대 풍속은 초속 9.8m에 달한다. 하얼빈 '빙설 대세계'와 눈 조각 작품 하얼빈에서는 얼음의 도시라는 별칭에 걸맞게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빙등 축제(氷燈節)'가 매년 개최된다. 1963년 얼음 조각 안에 불을 밝힌 빙등에 착안하여 첫 행사가 개최된 이후, 1985년에는 기존 빙등 작품 외에 스케이트 타기, 겨울 수영, 눈 조각 전시 등 다양화한 내용의 '빙설 축제(氷雪節)'로 확대되었고, 1999년부터는 쑹화강 변에 아예 '빙설 대세계(氷雪大世界)'라는 명칭의 테마파크를 조성하여 매년 1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눈과 얼음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26회째를 맞은 '빙설 축제'는 일본 삿포로, 캐나다 퀘벡과 함께 세계 3대 겨울 축제로 발돋움하면서 1월 말 현재 관람객 200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수립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빙설 축제(氷雪節)'라는 정식 명칭보다는 오래 불린 대로 '빙등 축제-빙덩제(氷燈節)'라는 용어에 더 익숙하다. 특히 이번 빙등 축제는 모레(7일)부터 하얼빈에서 개최되는 제9회 동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아시아를 주제로 하여 눈과 얼음으로 만든 조각품과 건축물, VR 콘텐츠 등으로 설계하였다고 한다. 중국 하얼빈은 1996년의 제3회 동계 아시안게임에 이어 두 번째로 이 행사를 개최하는 도시가 된다.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포스터 금번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은 '겨울의 꿈, 아시아의 사랑(Dream of Winter, Love among Asia; 氷雪同夢, 亞洲同心)'이라는 슬로건 아래 2월 7일 개막되며, 코로나 등의 문제로 인해 미루어지다가 2017년 일본 삿포로 대회 이후 8년 만에 개최되는 것으로 우리 선수들에게도 그 의미가 깊다. 역대 최다인 34개국 1천300여 명이 참가하게 될 이번 대회에서 6개 종목에 참가하는 우리 선수와 임원진 200여 명은 지난달 24일 선수단 결단식을 개최하고 결의를 다졌다. 하얼빈 중앙대로와 성 소피아 성당 다시 하얼빈 이야기로 돌아와서 하얼빈(Harbin)이라는 명칭은 그 유래와 관련해 여러 설이 있는데, 만주(滿洲)어로는 '평평한 섬' 또는 '어망(漁網) 말리는 곳', 여진(女眞)어로는 '영예'나 '명망', 몽골(蒙古)어로는 '평지'를 뜻한다고 한다. 하얼빈은 오래전부터 여러 북방 민족 문화가 교차했었고, 근세 들어 청(淸)나라의 북방 대외 교역 중심지로 이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1932년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1945년 해방되었으며, 이보다 앞서 러시아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1896년 체결된 '중러 밀약'은 시베리아 철도의 동부노선으로 쑹화강을 가로지르는 철로를 러시아가 건설하는 데에 합의했고 그 중추 도시인 하얼빈에 러시아 기술자들과 상인 및 그 가족들이 거주하면서 커다란 러시아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에는 러시아 귀족들과 상인들이 하얼빈 사회에 추가 유입되면서 현지의 러시아 문화와 풍습을 확장하게 된다. 이는 하얼빈의 도시 건축, 음식, 음악 등 문화와 생활 각 분야에 걸쳐 현재까지도 독특한 요소들로 내재되어 있다. 하얼빈 시내에 위치한 '성 알렉세예프 성당(聖阿列克謝耶夫敎堂)', '성 소피아 성당(聖索菲亞大敎堂)' 등 러시아 양식의 건축물, '샤슬릭(俄式烤大串)'이나 러시아식 야채스프인 '홍차이탕(紅菜湯)' 등 러시아 풍미의 음식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중국 3대 맥주 중 하나로 중국인들에게 '하피'로 불리는 '하얼빈 맥주(哈爾濱啤酒)'도 1900년 러시아 상인에 의해 시작되었다. 궈바오러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요리 '궈바오러우(鍋包肉)' 역시 하얼빈이 고향이다. 이 요리의 창시자인 정싱원(鄭興文)은 하얼빈 태생 만주족으로 6살 때 부친과 함께 베이징에 가서 요리 실력을 쌓았고 1907년에는 고향의 관아에서 요리사로 일하기도 했다. 궈바오러우는 메뉴로 만들어 내놓은 초기부터 바삭하고 새콤달콤한 맛으로 러시아인들을 비롯한 서양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으며, 처음에는 고기를 튀긴다(爆)는 의미로 궈바오러우(鍋爆肉)라고 이름하였으나 현재는 와전되면서 발음은 같지만 성조가 다른 궈바오러우(鍋包肉)로 표기되고 있다. 정싱원의 자손들이 그의 요리법을 이어받아 4대째 하얼빈에서 식당을 계속하고 있으며, 중국 각 지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대중적인 중국 요리의 하나가 되었다. 2018 한중일 음악제 하얼빈은 중국에서 '음악의 도시(音樂之都)'로도 명성이 높다. 중국 내 첫 교향악단이 창설되고, 첫 음악학교가 개설된 곳도 하얼빈이다. 1961년부터 '하얼빈 여름 음악회(哈爾濱之夏音樂會, Harbin Summer Music Concert)'가 50년 넘게 개최되어 오고 있으며, 음악회가 처음 개최된 장소인 '중동 철도 클럽(中東鐵路俱樂部)' 건물은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을 모방하여 건축한 것이기도 하다. 하얼빈은 '동방의 모스크바(東方的莫斯科)'로 불리기도 하며, '하얼빈 교향악단(哈爾濱交響樂團, Harbin Symphony Orchestra)'은 1908년 창설되어 100년 넘는 역사와 명성을 자랑한다. 하얼빈은 2010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음악의 도시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2018년 우리 부산시와 함께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되어 우리 문화예술 공연을 비롯하여 한중일 3국의 다채로운 문화 교류 행사를 개최하였다. 하얼빈 시내와 하얼빈 기차역 하얼빈은 북방 교통의 요지이자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뜻깊은 곳이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배경으로 한 김훈 작가의 소설 <하얼빈>은 "북태평양과 바이칼이 하얼빈에서 연결되었고 철도는 하얼빈으로 모여서 하얼빈에서 흩어졌다. 하얼빈역에서는 옴과 감이 같았고 만남과 흩어짐이 같았다"라고 쓰고 있다. 사통팔달의 하얼빈역이 열사 안중근의 의거지이다. 역사 내에는 2014년 '안중근 의사 기념관(安重根義士紀念館)'이 개관되었고, 2019년 재개장되어 지금도 100여 년 전의 의거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뮤지컬 영화 '영웅'과 최근 개봉된 영화 '하얼빈' 역시 하얼빈시와 안중근 의사의 역사적 의거를 영상으로 담아내며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금번 동계 아시안게임과 같은 기간 개최되는 '빙등 축제'로 많은 관광객이 이국적 문화의 도시이자 교통의 요충지인 하얼빈을 찾게 될 것이다.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획득할 때마다 하얼빈 하늘에 울려 퍼지게 될 애국가와 게양되는 태극기는 우리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 선수단의 선전을 함께 응원한다. 사진 : 문화체육관광부, 바이두, 디자인 : 정유민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1월 들어 본격적인 한파가 기승을 부린다. 추운 겨울이 되면 자연스레 따뜻하고 달달한 군것질용 간식들이 떠오른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붕어빵, 군밤, 호떡, 군고구마 등등. 그중에서도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검붉은 빛이 도는 팥죽을 빼놓을 수 없다. 봄, 여름이 되면 제철에 나는 과일을 챙겨 먹듯이 '동지 팥죽'이라 하여 겨울이 되면 팥죽이 생각나곤 한다. '동지 팥죽' 먹기는 우리의 오랜 풍습으로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을 참조해 볼 때 옛날 '동지(冬至)'라는 중요한 절기에 아이들이 역병에 걸리지 않도록 붉은색의 팥으로 죽을 쑤어 그 기운으로 액운(厄運)을 쫓고 벽사(辟邪)하기 위하여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식 팥죽 중국에서도 "여름에는 녹두, 겨울에는 홍두(夏天綠豆,冬天紅豆)"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중국인들이 '붉은 콩'이라고 일컫는 홍두(紅豆, 홍더우)가 바로 팥이다. 우리도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에 가보면 팥을 적두(赤豆) 혹은 적소두(赤小豆)라고 표기하여 팻말을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붉은색을 뜻할 때 대체로 '붉을 홍(紅)'자를 주로 쓰고, 적(赤)은 홍(紅)에 비해 보다 검붉은 색상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중국의 일상생활에서 팥을 지칭할 때 통칭하여 모두 홍더우(紅豆)라고 하며, 중국식 팥죽도 '홍더우저우(紅豆粥)' 또는 '홍더우탕(紅豆湯)'이라고 부른다. 중국 사람들이 아침 식사로 즐기기도 하는 중국식 팥죽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는 팥죽보다는 좀 더 묽고 율무나 땅콩, 흑미, 백합뿌리(百合) 등을 부재료로 넣어 함께 조리하기도 한다. 홍더우(紅豆) 라고 불리는 식물은 중국 명대(明代)의 이시진(李時珍)이 지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4가지 종류나 된다. 츠샤오더우(赤小豆), 홍더우커우(紅豆蔲), 샹쓰쯔(相思子), 하이홍더우(海紅豆) 등이다. 지금도 중국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당대(唐代) 시인 왕유(王維)의 <그대를 그리며(相思)>라는 시가 있다. "홍두가 남녘에서 자라나는데, 봄이 왔으니 몇 가지 올라왔겠지요(紅豆生南國,春來發幾枝); 그대 더 많이 따주기 바래요, 그것이 가장 서로를 생각나게 하니까(願君多采擷,此物最相思)". 왕유가 시에서 그리는 대상은 여성이 아닌 친한 벗 이구년(李龜年)이다. 이구년은 그 시대 최고의 음악가였고, 당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가 꽃놀이를 즐길 때 음악가로 참여하여 시선(詩仙)인 이백(李白)이 즉흥시 세 수를 짓자 바로 곡을 붙여 연주하였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그는 남쪽으로 유랑하였고,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쓰촨(四川) 땅에서 그를 만나 시를 지어주기도 했다. 위의 시는 시인이자 화가이자 음악가이기도 했던 왕유(王維)가 서로 헤어져 남녘에 있는 친구 이구년을 그리며 쓴 시이다. 이구년은 여러 사람이 모인 연회에서 친구 왕유가 지은 이 시에 곡을 붙여 연주하였고 청중들은 음악을 듣다가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난닝에서 나는 홍더우 열매와 이로 만든 장신구 시에 등장하는 홍두는 본초강목에서 분류한 샹쓰쯔(相思子, 상사자)로 추정된다. 광둥(廣東), 광시(廣西), 윈난(雲南) 등 중국 남방과 열대지방에서 생장하는 샹쓰즈는 3-6월 꽃이 피고 9-10월에 밝은 빨간색의 딱딱한 열매가 열린다. 열매는 주로 약용으로 쓰이기도 하고, 타악기의 재료나 장식용으로 사용된다. 당대(唐代)에는 의복에 장식용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홍두의 명칭과 관련해서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한대(漢代)에 한 부부가 있어 전쟁터에 나갔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부인이 매일 마을 입구에 서서 슬피 울다 피를 토하고 죽었는데, 그 자리에서 나무가 자라나 핏빛의 빨간 열매가 맺혔고 이를 그리움(相思)의 의미를 붙여 썅쓰쯔(相思子) 또는 샹쓰더우(相思豆)라고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시인 왕유는 시를 통해 대상(紅豆)에 감정을 투사하여 본인의 친구에 대한 그리움의 정감(相思)을 표현한 것이다. 현대 중국에 와서는 엄격한 의미에서는 츠샤오더우(赤小豆)라고 구분해 불러야 할 팥까지 포함하여 모두 다 홍더우(紅豆)라고 통칭하고 있다. 즉, 일상생활에서는 굳이 식물학 도감 분류처럼 세세히 나누지 않고 빛깔이나 생김새도 모두 유사하기에 다 홍더우(紅豆)라 부르고 팥을 봐도 경우에 따라서는 친구를 그리워하고 애인과의 애정을 연상하게 되는 것이다. '겨울엔 팥이 좋고, 여름엔 녹두가 좋다'라는 말과 관련해 살펴보면, 전통 의학에서 팥은 성질이 따뜻하고(溫), 심장과 보혈에 좋으며(養心補血), 비위를 튼튼하게(健脾胃) 한다고 본다. 이에 반해 녹두는 성질이 차갑고(凉), 열을 내리고 독을 풀며(淸熱解毒), 더위를 쫓고 진액을 만든다(消暑生津)고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실제 과학적 영양 성분은 유사하며, 녹두가 여름에 수확하는 데다가 색깔이 푸른색이어서 시원함을 느끼게 하고, 팥은 붉은 계열의 색깔로 따뜻함 연상시키기 때문에 그런 말과 식습관이 형성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난닝시 전경 난닝 시내와 칭시우산 풍광 중국 남부인 광시(廣西) 지역에는 '홍더우의 고장(紅豆之故鄕)'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광시의 성도(省都)인 난닝(南寧)이다. 난닝은 소수민족인 좡족(壯族)의 자치구인 광시의 중심 도시이자 인구 900만 명의 대도시로, 당대(唐代)부터 융(邕)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경제와 산업의 센터 역할을 하며 중공업 등 산업을 발전시켰고, 현재는 아세안 각국과의 협력의 교두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여름에는 무덥지만, 일년내내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관광 명승지인 구이린(桂林, 계림)과 가까우며 시내에 위치한 칭시우산(靑秀山) 등 독특한 구릉 지형과 함께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홍더우의 고장'이라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난닝 시내 곳곳에는 홍더우를 붙인 '홍더우 광장(紅豆廣場)', '홍더우 거리(紅豆風情街)', '홍더우 공원(紅豆公園)' 등을 찾을 수 있으며, 런민공원(人民公園) 인근에는 홍더우 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다. 연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들로, 홍더우(紅豆) 열매를 끼워서 엮어 만든 목걸이, 팔찌 등 기념품을 애정의 표시로 서로 선물하기도 한다. 샹쓰(相思)를 붙인 지명도 많아 시내에 '샹쓰 호수(相思糊)'가 있으며, 저명 소설가인 둥시(東西) 등 난닝을 중심으로 성장 발전한 작가들을 중국 문학비평계에서는 '샹쓰 호수 작가군(相思湖作家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난닝시 문학예술연합회(南寧文聯)'가 1972년부터 주관하여 발행하는 잡지도 '홍더우(紅豆)'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가수 왕페이 앨범 표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화권의 인기 가수 왕페이(王菲)의 히트곡 중 하나로 <홍더우(紅豆, red bean)>가 있다. 노래 제목은 '홍두' 또는 '팥'으로 번안되는데 연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뜻한다. 왕페이는 노래한다. "아직도 당신에 대한 미련의 상처가 아물지 못했는데(還沒爲你把紅豆,熬成纏綿的傷口), 함께 나누면 그리움의 애잔함을 더 느낄 수 있겠지요(然後一起分享,會更明白相思的哀愁)..." 라고. 가뜩이나 추운 겨울에 따끈한 팥죽 한 그릇 들면서 그리움과 같은 따뜻한 정서를 한 번 느껴보면 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지 않을는지? 사진 : 바이두, 디자인 : 이희문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무협 소설 애호가들로부터 추앙받는 작가 김용(金庸, 진융) 선생이 2024년으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1924년 중국 저장성 자싱(嘉興)시에서 태어나 2018년 홍콩에서 94세를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김용은 '소오강호(笑傲江湖)', '천룡팔부(天龍八部)', '녹정기(鹿鼎記)',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신조협려(神雕俠侶)' 등 이제는 경전(經典)이 된 중문 무협 소설들을 연이어 내놓으며 중화권 마니아층을 형성하였으며, 그의 작품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판매 부수로 총 3억 부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80~90년대에는 그의 작품과 동명의 타이틀로 제작된 왕가위(王家衛) 감독의 '동사서독(東邪西毒)'을 비롯한 홍콩 무협 영화들이 임청하(林靑霞), 장국영(張國榮), 주성치(周星馳), 양조위(楊朝偉), 양가휘(梁家輝) 등 최고 출연 배우 라인업으로 홍콩과 중화권은 물론 국내에서도 절찬리에 상영되면서 당시 홍콩 무협 영화 신드롬을 일으켰다. 1986년 '영웅문(英雄門)' 등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작품들이 국내에서도 지속 출간되었다. 영화 동사서독 및 신조협려(신판) 포스터 중국 내에서 그의 소설 작품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탄생 100년을 전후한 시점에 다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작년 100만 명 이상 방문한 상하이 도서관(上海圖書館)의 경우, 대출 도서 1위를 차지한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외에 2~6위까지의 인기 대출 도서가 모두 김용 소설 작품이었다. 중국 내 대학에서도 이런 현상이 이어져 2022년 우한대학(武漢大學), 싼샤대학(三峽大學) 등의 도서관 대출 순위 상위 10위의 도서에는 김용의 무협 소설이 3~4권씩 포함되었다고 한다. 사실 그의 작품은 최근 중국에서 웹소설의 장르로 광범위한 인기를 얻고 있는 선협(仙俠), 현환(玄幻) 소설의 원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4년 11월 김용 탄생 100주년 기념 한중 학술회의가 고려대학교에서 중국 저장대학(浙江大學)과 공동 주최로 개최되었다. 세미나는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고점복 교수의 사회로, 유일하게 김용이 지도한 박사학위 수여자인 저장성 사회과학원 루둔지(盧敦基) 연구원의 '김용의 삶과 문학 세계' 관련 주제 발표,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조동매 교수의 '김용 작품을 통한 한중 문화 교류' 소개에 이어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김용이 1999년 홍콩의 통속 소설 작가라는 일부의 반대에도 저장대학의 인문대학장을 맡았었고, 고려대 김준엽 전 총장이 과거 저장대 한국연구소 설립에 기여하는 등 고려대와 저장대 간 교류의 연장선상에서 행사가 이루어졌다. 김용 선생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저장대 인문학 교수진이 직접 방한하여 참여한 외에 국내 중문학자, 김용 무협 소설의 열혈 독자층 다수가 참여하여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저장대학(좌)과 김용 탄생 100주년 한중 학술 세미나 포스터(우) 김용이 태어난 곳은 저장대학이 소재한 항저우(杭州)에서 멀지 않은 자싱(嘉興)시의 하이닝(海寧)이라는 곳이다. '하이닝'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이 첸탕강(錢塘江)을 끼고 항저우만(杭州灣)에 연접해 있어 '홍수와 해일로부터의 안녕(海洪寧靜)'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일찍이 해안가에 염전이 많고 이를 관리하는 염관을 설치하여 옌관(鹽官)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삼국시대에는 오(吳)나라의 강역이었다. 김용은 자싱시 하이닝의 600년 명문 세가인 차(査) 씨 가문의 22대손으로, 본명은 차량융(査良鏞)이며 김용(金庸, 진융)이란 필명은 본명의 마지막 글자인 용(鏞) 자를 김(金) 자와 용(庸) 자로 해체하여 지었다고 한다. '신조협려(神雕俠侶)' 등 그의 작품을 보면 '물안개 자욱한 호수 위로 오월(吳越)의 소녀들이 배를 타고 연꽃을 따는데, 어디선가 한 가락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저 멀리 하얀 수평선 위로 은은한 달빛이 천천히 다가오는데, 갑자기 바다 위 하얀 파도가 천둥소리를 내며 옥으로 만든 성처럼, 눈 뒤덮인 고갯마루처럼 하늘을 넘어 덮쳐 온다'는 표현들이 나온다. 이는 그가 어려서부터 보아온 고향 자싱시 하이닝의 강과 호수, 즉 강호(江湖)의 풍광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김용은 어려서부터 엄격한 조부와 부친의 교육 속에서 자랐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8세 때에 당시 상하이 신문에 연재되었던 구밍다오(顧明道)의 초기 무협 소설 '황강여협(荒江女俠)'을 접했고,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학습 참고서를 출판하기도 하고 지도 주임 선생님을 풍자하는 벽보를 써 붙였다가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충칭(重慶)과 상하이(上海)에서의 대학 과정을 거쳐, 상하이 '대공보(大公報)' 신문사에 입사하여 번역 기자로 일한다. 자싱시 전경 1948년 김용은 '대공보'의 홍콩 지사로 발령받게 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는데, 기자로 일하면서 무협 소설을 써서 홍콩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 무협 소설의 또 다른 대가인 양우생(梁羽生)과는 같은 신문사 같은 팀에서 일하기도 했다. 1959년에는 홍콩 '명보(明報)'를 공동 창간하였고, 소설책을 연이어 발간하면서 홍콩 내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 타이완 장징궈(蔣經國) 총통과 회담하였고, 문혁 뒤에는 덩샤오핑(鄧小平), 후야오방(胡耀邦), 장쩌민(江澤民) 등 고위 지도자들과 각각 회견하기도 하였으며, 홍콩기본법 기초위원으로 참여하였다. 베이징대학(北京大學), 중산대학(中山大學), 홍콩 중문대학(中文大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등의 명예교수를 역임하였고, 고향 바로 옆에 위치한 저장대학(浙江大學)의 요청으로 인문대학 학장이자 박사과정 지도교수를 맡아 홍콩과 항저우를 오가며 학생들을 다년간 지도했다. 중국의 대시인인 쉬즈모(徐志摩)도 같은 자싱시 하이닝 출신으로 김용과는 사촌 형제뻘 관계이며, 얼마 전 타계한 타이완의 저명 여성 소설가 경요(瓊瑤, 충야오) 역시 김용의 인척이다. 김용은 성공한 작가이자 교육자, 언론인이자 기업가, 정치 인물이기도 하다. 2018년 김용이 타계하자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고위 인사들과 본토 및 홍콩, 타이완 등 각지의 각계각층과 팬들이 그를 애도하였다. 김용의 고향인 자싱시는 인구 550만 명 규모의 도시로, 사실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1932년 4월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항일 의거가 있은 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요인들은 일제의 핍박과 위협 속에서 피난하여야 했으며, 상하이 법과대학의 추푸청(楮輔成) 학장 등의 도움으로 자싱에 임시로 머물게 된다. 그 후 당시에 적극적인 도움을 준 추푸청에게는 대한민국 훈장에 추서되었고, '김구 선생이 피신한 거처(金九避難處)'와 '임시정부 요인 숙소(大韓民國臨時政府要員住址)'는 자싱 시내 자리를 찾아 복원되었다. 지금도 김구 선생이 피신했던 건물에 가보면, 좁은 이층 거처의 내부 사면에 모두 창을 내어 수시로 외부를 경계하게 하였고, 유사시 바닥에 내어놓은 문을 통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정박한 나룻배를 타고 난후(南湖)의 물길을 따라 도망할 수 있도록 하여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직접 느끼게 된다. '김구 선생 피신처(金九避難處)'는 2005년 저장성 문화재 보호 대상(浙江省文物保護單位)으로 지정되었다. 자싱(嘉兴)과 난후(南湖) 사진 : 바이두, 고려대학교 홈페이지, 디자인 : 이희문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중국의 서남부, 베트남과 인접한 광시성(廣西省)에 허츠(河池)라는 지역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구이린(桂林, 계림)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독특한 모양의 산과 구릉, 맑고 잔잔한 강과 시내 등 구이린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한다. 이 허츠시(河池市)의 야오족(瑤族) 자치 지역인 바마현(巴馬縣)은 중국 최고 '장수의 고장(長壽村)'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 인구 센서스에서 약 23만 명의 전체 현 주민 중 80-99세 노인 인구가 1,958명, 135세의 최고령자를 포함한 100세 이상의 '장수 스타(壽星)'가 69명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100세 이상 인구가 10만 명당 30명이 넘는 수치로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이었다고 한다. 허즈시 바마현 장수촌 장수 인구가 많은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있는데, 대체로 겨울에도 온화한 기후, 적절한 세기의 햇볕과 일조량, 맑고 깨끗한 공기와 물, 유기질이 풍부한 토양과 여기서 생산되는 곡물과 채소 및 과일, 채식 위주의 식습관 등으로 조사되었다. 장수 노인들은 쌀과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여 야채와 나물, 고구마 등을 주로 먹었고 육류는 소량 섭취하여, 저염, 저당, 저지방, 저동물 단백질, 고섬유의 '4저(低)+1고(高)' 식단을 실천하고 있었다. 일본 연구진의 현지 조사 결과, 토양 중에 망간과 아연의 함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높았고, 비피더스균과 락토바실러스균도 다량 함유되었다고 한다. 특히, 노인들 머리카락의 아연 함량이 일반인에 비해 10배 이상 높으며, 대부분의 이곳 장수 노인들이 임종까지 뇌혈관이나 심혈관 질환 발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음이온, 자기장, 적외선, PH 지수 등이 원인으로 주장되었는데, 과학적 차원에서는 아직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이 바마현 중에서도 특히 경관이 좋고 장수 인구가 몰려있는 자좐진(甲篆鎭) 웨포촌(月坡村)은 평소에도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가을이 되면 중국 전역, 특히 북방 지역에서 지병 치료와 건강 요양을 위해 몇 달씩 이곳에 임시 거주하며 겨울을 나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다. 이들을 이름하여 중국어로는 '철새 거주자(候鳥人)'라고 한다. 이 마을에 등록된 상주인구 수는 8,466명인데, 매년 겨울을 지내러 오는 이들은 상주인구의 5배에 달하는 4만 명에 이른다. 단기 관광객도 매일 평균 8,000명, 1년에 2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20여 년 전부터 이 장수 마을에 대해 알려졌지만, 특히 최근 들어 건강에 대한 관심과 함께 요양 수요가 늘고, 이 지역에서 요양하며 효과를 봤다는 글과 사진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마을에는 때아닌 요양용 주택과 호텔 건축 붐이 불고 외래 인구 대상 식당과 상점도 늘어났다. 현지 지역 발전 차원에서는 좋지만, 작은 지역에 사람이 몰리고 도시화되면 장수 마을을 이루었던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바마현과 웨포촌 풍광 허츠시는 인구 335만 명 규모의 도시로 2002년에 시(市)로 독립되었다. 과거 공산혁명 시 광시농민운동이 일어났고 덩샤오핑(鄧小平)이 전투를 이끌었던 지역이다. 지금은 전국 최대 규모의 잠사(蠶絲) 산업과 실크 생산 기지로 성장했다. 전체 시 면적의 65%가 카스트 지형으로 특이한 형태의 지질공원과 자연유산이 산재해 있고, 곳곳에 동굴, 삼림, 습지도 많다. 좡족(壯族), 먀오족(苗族), 야오족(瑤族) 등 여러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아열대성 기후 지역으로 연평균 기온이 16~21도이다. 장수 지역이란 특성과 아름다운 풍광으로, 올해 10월 초 국경절 연휴 기간에 시 전체 인구 수를 넘어서는 360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했다. 인근의 성도(省都)인 난닝(南寧)을 통해 베트남 등 동남아 각국과의 교류와 교역도 활발하다. 야오족 전통복장 허츠시 남쪽에 위치한 난단현(南丹縣)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주(白酒) 저장 동굴로 유명하다. 이 동굴은 길이 4.5km로, 약 3억 500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년 내내 일정한 16-17도의 온도와 80-95%의 습도를 유지한다. 중국에서는 우수한 바이주는 '30%의 양조와 70%의 저장으로 결정된다(三分釀, 七分臟)'고들 하는데, 이 동굴은 이런 바이주 원액의 저장과 숙성에 매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동굴 안에서 제조되는 바이주 생산량은 매년 1.5톤, 현재 저장량은 약 8톤 정도로, 시가로 따지면 400억 위안(한화 약 8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단촨 바이주의 동굴 저장소 이 술의 이름은 단촨(丹泉)으로, 마오타이(茅台)와 같은 장향주(醬香酒)이다. 중국 명나라 시기 저명한 문인 서하객(徐霞客)이 자신의 여행기(徐霞客遊記)에서 '광시 서쪽의 최고 경치(桂西第一奇勝)'라고 평가했던 난단(南丹) 지역의 산수 환경에서 마오타이와 유사한 제주(制酒)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주원료로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붉은 수수(紅高粱)가 쓰이고, 펑황산(鳳凰山)의 산천수(山泉水)가 사용된다. 술 이름 단촨(丹泉)은 당나라 시인 조당(曺唐)이 지은 시에서 한무제(漢武帝)가 주최한 연회에 등장한다. 술 제조법은 2000여 년이 되었다고 하고, 실제 대량 생산은 1956년 국영 제조사가 설립 운영되면서부터이다. 같은 이름의 브랜드로 '동굴 저장 10년(洞臟10)'부터 '30년(洞臟30)' 등 다양한 제품이 생산 판매되는데, 실제 마셔보면 마오타이와 유사하지만 보다 부드럽고 담백하면서도 술 향이 진하지 않은 특징을 보인다. 허츠는 자연 풍광 외에 밤과 호두, 버섯, 배, 고구마 등 특산품과 돼지, 양, 닭 등을 사용한 현지 특색 음식을 선보이며, 소수민족 특유의 예술 형식과 문화 환경으로 중국의 전국적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사진 : 바이두, 디자인 : 이희문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업계의 성장세가 여전히 거세다. 이런 흐름은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 업체인 CATL이 주도하고 있다. 며칠 전 발표된 관련 업계의 보고서에 따르면, CATL은 금년 1~3분기에 전년 대비 26.5% 성장하여, 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의 36.7%를 차지하면서 점유율 1위를 유지했다. 2위 업체인 중국 BYD도 28% 성장하며 글로벌 점유율 16.4%를 기록했는데,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우리 배터리 3사는 선전했음에도 중국 업체들에 못 미치는 합계 점유율 20.8%에 만족해야 했다. 중국 내수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우리 배터리 3사 점유율은 절반 가까운 46%에 달했으나,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어 전문가들은 LFP 양산, 신흥국 시장 선점 등 우리 업체들의 적극적인 시장 확대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중국 업체들의 향후 전망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중국 국내 전기차 시장의 과도한 경쟁과 포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 및 신정부 출범에 따른 미중관계 및 산업정책 전환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럼 CATL은 어떤 업체이기에 중국뿐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 1위에 올라 현재까지 확장세를 유지하고 있을까? CATL의 영어 명칭은 ‘Contemporary Amperex Technology Limited’이다. 단어 중 암페렉스(Amperex)는 전기 용어인 암페어(Ampere)와 탁월하다는 의미의 엑셀런스(excellence)의 합성어라고 한다. CATL은 주로 해외에서 사용하는 명칭으로, 중국 내에서는 CATL이라는 영어명 대신 중국명인 ‘닝더 스다이(寧德時代)’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우리식 한자어 발음으로 읽으면 ‘영덕 시대’로, 중국어 전체 명칭은 ‘닝더 스다이 신에너지 과학기술 유한공사(寧德時代新能源科技有限公司)’이다. 앞의 ‘닝더(寧德)’는 다름 아닌 이 회사가 설립된 지역의 명칭으로, 중국 남부의 타이완과 마주한 푸젠성의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인구 3백만 명 규모의 도시를 가리킨다. ‘닝더 스다이(CATL)’는 닝더 출신 이학박사이자 사업가인 쩡위췬(曾毓群)에 의해 2011년 설립되었다. 닝더시와 CATL 쩡위친은 1968년 닝더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부모가 아들이 커서 대학에 입학하기만을 염원했다고 한다. 쩡위친은 학업에 정진하여 지역 내에서 가장 좋은 ‘닝더 제1 중고등학교(寧德一中)’에 입학하였고, 전교 1등으로 상하이 교통대학(上海交通大學)의 선박공정학과 입학에 성공한다. 그 후 화난이공대학(華南理工大學)에서 응용물리학 석사, 중국과학원(中國科學院)에서 배터리 연구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석박사 학위에 앞서 대학 졸업 직후, 쩡위췬은 고향 푸젠의 한 국영기업에 배치받았으나 오래 있지 못했고, 1989년 광둥 동관(東莞)에 있는 일본 TDK 계열 전기회사에 입사해 10년을 근무한 후 리튬 배터리 회사인 ATL(Amperex Technology, 新能源科技)을 홍콩에 공동 설립하여 성공을 거둔다. 이어 2011년에는 ATL의 성과를 발판으로 본인의 고향인 푸젠 닝더에 CATL을 창립하게 된다. 창립 직후 독일 BMW와 협업하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중국 위통(宇通), 창안(長安) 등 자동차 제조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 2017년 쩡위췬은 회장(董事長)직을 맡게 되었고, 삼원계 배터리 기술 노선으로 방향을 잡은 CATL은 LFP계통의 경쟁사 BYD와 차별화하면서 중국은 물론 세계 최대 자동차용 배터리 업체로 도약하게 된다. 2022년에는 미국 포드(Ford), 테슬라(Tesla), 독일 벤츠(Benz) 등 정상급 자동차 제조사에 배터리를 공급하면서, 업계 영향력을 확장했다. 쩡위췬 회장은 평소 조용한 경영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얼마 전인 11월 7일 닝더에서 개최된 ‘세계 배터리 포럼(世界蓄能大會)’에 참석하여 “배터리 업계가 혼란스러워서는 안된다. 늦어서도 안된다. 빠른 속도로 빠르게 기술 발전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쩡 회장은 현재 중국 상공연합회(工商聯) 부회장(副主席) 이자 상하이 교통대학 미래기술대학(溥淵未來技術學院) 명예원장 직도 겸임하고 있으며, 2024년 1,676억 위안(한화 약 32조 원)의 재산으로 중국 일곱 번째 갑부 순위에 올라 있기도 하다. CATL이 있는 닝더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닝더시는 푸젠 동북부 지역에 위치하여 산지와 구릉이 유난히 많다. 이곳은 옛날 민월족(閩越族)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근현대에는 공산당 혁명의 근거지 중 하나이기도 했으며, 1999년이 되어서야 시(市)로 승격되었다. 역사 이래로 위치가 편벽하고, 지세가 험난하니 거주민들의 생활이 곤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닝더는 중국 정부의 ‘빈곤 탈피(脫貧) 정책’의 주 대상이었다. ‘중국 빈곤 지원 대상 1호 지역(中國扶貧第一村)’이라고 불리는 츠시촌(赤溪村)이 닝더에 있었으며, 1984년 이 지역 1인당 연간 소득은 불과 2백 위안(당시 환율로 한화 약 2만 원) 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의 닝더시는 CATL 등 제조업체 외에 차(茶) 생산과 어업 등 산업 발전에 힘입어 푸젠성 내에서 경제성장이 가장 빠른 지역이 되었다. 닝더 풍광 닝더(寧德)는 시진핑(習近平) 주석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시 주석은 푸젠 샤먼(廈門)시 부시장을 거쳐 1988년 6월 닝더의 당서기로 부임하여, 이후 푸저우(福州)시 당서기로 영전하기까지 약 2년 가까이를 닝더에서 근무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인근 샤먼시나 푸저우시에 비해 닝더는 당시 시(市)도 아니었고 가장 큰 임무는 주민들의 빈곤 상황 극복과 산업기반의 조성이었다. 이 기간의 기층 근무 경험과 성과는 그가 약 10년 후 닝더, 샤먼, 푸저우를 총괄하는 푸젠성 성장으로 도약하는 기반이 되었다. 중앙당교(中央黨校)에서는 이를 <닝더에서의 시진핑(習近平在寧德)>이라는 단행본으로 별도 발간하며 당원 교육 등에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닝더는 백차(白茶, 바이차)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백차 제조에 사용되는 어린싹 잎 아래 면에 붙어 있는 솜털이 건조한 후에도 떨어지지 않고 하얗게 되는데 이를 백호(白毫, 바이하오)라 하며, 여기서 백차의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백차는 약하게 발효를 거친 미발효차(微醱酵茶)로, 뜨거운 불에 덖거나 세게 문지르는 가공 과정 없이 그대로 건조하거나 약한 불을 거친다. 백차를 뜨거운 물에 우려(泡) 찻잔에 따르면 황색과 녹색을 조금 띠는 아주 옅은 빛깔이 도는데 녹차나 홍차 등 다른 차에 비해 거의 색이 없이 투명하다. 성질이 차가워 한꺼번에 많이 마시지 못하며 나누어 오래 장복하게 되는데, 최근 들어 중국에서 차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백차의 수요와 인기가 높다. 닝더시 푸딩(福鼎)에서 생산되는 백차는 당나라 때 문인인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에도 등장할 정도로 백차 중에서도 오랜 역사와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 백차와 백차종류 사진 : 바이두, 디자인 : 이희문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중국 남부에 있는 큰 고개인 다위링(大庾嶺) 아래쪽에는 매화꽃에서 이름이 유래된 지역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도시 이름에 아예 매화를 넣은 광둥성 메이저우(梅州)이다. 메이저우시는 인구 500만의 도시이지만, 이보다 더 많은 약 700만 명의 이 지역 출신 객가(客家) 화교들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객가인의 수도(客都)'라고 불리는 특이한 도시이기도 하다. 메이저우에서 북서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다위링은 중국 링난(嶺南) 지역을 구분하는 다섯 개 산맥 중의 하나로, 당나라 시인 장구령(張九齡)은 이곳의 고갯길 양편에 매화나무를 심고 이를 매령(梅嶺)이라고 하였다. 이후 매화꽃이 만발하자 백거이(白居易)는 '매령에 매화가 일만 그루 나무에 피었다(梅嶺花排一萬株)'고 읊었고, 다위링의 '고개 남쪽에는 매화가 피었다 지는데, 북쪽에는 이제야 꽃이 피기 시작한다(南枝旣落,北枝始開)'는 말도 생겨났다. 이 길은 중국 중원(中原) 지역에서 남쪽(嶺南)을 잇는 교통의 요충이기도 하였는데, 송나라 때는 이 고개에 관문을 설치하고 매관(梅關)이라 하였다. 이 매령과 매관은 남쪽 지역으로 유배 가는 관리, 북으로 과거 보러 가는 유생들이 피고 지는 매화꽃 사이로 통과하는 사연 많은 관문이 되었다. 매화꽃 핀 메이저우시 전경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 쓰촨(四川), 후베이(湖北), 광둥(廣東) 일대로 알려져 있다. 매화(梅花)만큼 동아시아에서 역사적으로 문화적 함의를 갖는 꽃도 드물다. 추운 겨울 가장 먼저 꽃을 피워 꽃 중의 형(花兄)이라거나 우두머리(花魁)라고 불렸고, 일찍 피는 매화는 동매(冬梅)나 한매(寒梅), 또는 설중매(雪中梅)라 불렀다. 추위와 어려움 속에서 견디는 이미지로 군자와 선비를 상징하여 세한삼우(歲寒三友) 이자 사군자(四君子) 중 하나였으며, 신선과 은자를 상징하여 매선(梅仙), 매은(梅隱)이라는 말도 생겼다. 북송의 은일(隱逸) 시인 임포(林逋)는 매화(梅)를 아내(妻)로, 학(鶴)을 자식(子)으로 삼아 은둔하면서 인생을 유유자적하여 '매처학자(梅妻鶴子)'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소동파(蘇東坡)는 광둥에 귀양 중 매화꽃으로 유명한 뤄푸산(羅浮山)의 매화를 보고 "뤄푸산 아래 마을에 매화꽃이 피었네, 눈을 뼈로 얼음을 혼으로 하였구나(羅浮山下梅花村,玉雪爲骨氷爲魂)"라고 묘사했다. 메이저우 매화 매화꽃이 많은 이 지역이 객가(客家)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 된 데는 연유가 있다. 중국 역사는 어찌 보면 전쟁과 난리로 점철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전쟁사에 따르면 역사에 기록된 것만 약 7,800차례에 달하는 전란을 겪었으며, 기간으로 따지만 5000년에 가까운 기간 중 불과 300년간만 세상이 평안하였다고 한다. 중국 역사에서 유난히 전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피난민으로 떠돌며 고생한 이들이 있는데 바로 객가(客家) 사람들이다. 중국어 표준어로는 '커자(kejia)'라고 하고, 객가어로는 '학카(Hakka)'라고 발음한다. 객가는 혈통에 의해 형성된 민족(民族)의 개념이 아니라 제도에 의한 민계(民系)의 개념이다. 진(晉)나라 때, 호적 제도에서 자기 땅을 갖고 경작하는 지주 가구가 아닌 땅이 없는 소작농들을 객호(客戶)라고 분류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즉, 땅 주인이 주호(主戶)라면 이에 딸린 가구는 객호가 되는 것이다. 이 객호의 대상이 점차 외지인들과 소규모 상인 등으로까지 확장되었고, 전란이 나거나 하면 이들이 가장 먼저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이동하면서 집단화하고 같은 언어와 문화까지 공유하게 된 것이다. 객가 음식 문화 객가어(客家語)는 고대 중국어의 화석(化石)이라고 불리는데, '나'나 '너'와 같은 단어는 현대 중국어의 워(我), 니(你)가 아닌 오(吾), 이(爾)와 같은 고어의 음가(古音)를 사용한다. 이들이 처음 남천(南遷)한 것은 약 1,700년 전으로, 북녘의 흉노와 선비족들의 침략으로 인해 중원(中原) 지역이 오랑캐 세상이 되자 한수(漢水)와 장강(長江)을 따라 후베이(湖北), 안훼이(安徽), 장쑤(江蘇) 등으로 남하하여 정착하였고, 먼 지역으로는 메이저우(梅州)의 땅까지 이동하여 자리를 잡게 된다. 이 시기 장장 170년에 걸쳐 이동한 인구수는 1~20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당나라 안사(安史)의 난 시기, 북송에서 남송으로의 천도 시기, 만주족의 중원 입성 시기 등에 오랜 시간에 걸쳐 각각 중부 지역에서 고개를 넘어 메이저우를 중심으로 한 광둥성과 장시성, 푸젠성 등 일대에 정착한다. 객가인들은 전통을 중시하여 언어도 고대 언어를 사용하는가 하면 충효나 예절과 같은 유가 사상과 집안 교육, 가훈(家訓) 등을 중요시한다. 지금도 메이저우 인근에는 바깥세상과 떨어져 객가 가족들끼리 개간지를 일구며 살았던 웨이우(圍屋)나 투러우(土樓)라 불리는 특유의 주택과 주거 환경을 볼 수 있다. 조상을 기리기 위한 사당(祠堂)이나 궁묘(宮廟)도 지었다. 객가인들의 건축 양식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통과 교육, 수신제가(修身齊家) 사상의 훈도를 입어서인지 역사적으로 유난히 걸출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洪秀全), 신중국 혁명가 주더(朱德), 쑨원(孫文)과 그의 부인 쑹칭링(宋慶齡), 대문호 궈모뤄(郭沫若), 공산당 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李光耀), 타이완 총통 마잉주(馬英九)와 차이잉원(蔡英文), 타이완 영화감독 허우샤오시엔(侯孝賢),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張國榮), 여명(黎明), 종초홍(鐘楚紅) 등도 객가 출신이다. 광둥, 홍콩, 타이완,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중국과 동남아 및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객가 출신 인구는 약 8,000만 명에서 1억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메이저우에서 태어나고 자란 객가인으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썼던 황준헌(黃遵憲)을 들 수 있다. 1848년 출생한 황준헌은 과거를 거쳐 29세 때 청나라의 일본 주재 대사관 참사관으로 부임하였으며, 이어 변법유신(變法維新) 운동에 참여하고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 주영국대사관 참사관, 주싱가포르 총영사 등을 역임한다. 그가 조선책략을 써서 일본을 방문한 김홍집에게 건넨 것은 32세 때인 1880년의 일이다. 조선책략은 6천 자 분량의 소책자로 "지구상에 아주 큰 나라가 있으니 러시아라고 한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이어 '러시아가 튀르키예 등 유럽의 땅을 차지하려 했으나 번번이 영국과 프랑스 등이 협력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면서, '러시아가 서양을 공략할 수 없게 되자 아시아로 눈을 돌려 일본의 사할린과 중국의 흑룡강 동쪽을 얻었다. 조선의 땅은 실로 아시아의 요충이다. 러시아를 막기 위해 조선은 중국과 가까이(親中國)하고, 일본과 함께(結日本)하며, 미국과 손잡아서(聯美國) 자강(自强)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월이 지났어도 지역 정세와 관련한 그의 통찰은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매화꽃이 많이 피는 메이저우에 복원된 황준헌의 고택에는 조선책략이 전시되어 아직도 관람객들에게 읽히고 있다. 황준헌 기념관 메이저우는 장수(長壽)의 고장이기도 하다. 100세 이상 노인 수가 858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는 인구 10만 명당 15명이나 되는 수치이다. 시 정부는 100세 이상 노인들에게 매년 1,200위안(한화 약 20만 원)의 장수 축하금을 수여한다. 메이저우에서는 매년 중국이나 전 세계 객가인들이 참여하는 행사가 자주 개최되며, 2023년에는 광둥성 최초로 '동아시아 문화도시(東亞文化之都)'로 선정되어 우리나라 및 일본과 다채로운 문화 교류 행사를 개최키도 했다. 메이저우 특산 유자(柚子) 메이저우 동아시아 문화도시 포스터 사진 : 바이두, 디자인 : 이희문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지난 10월 초 중국 구이저우성(貴州省)에 있는 인구 1천 명의 한 작은 마을이 농구 열기로 전 중국 대륙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름하여 '동네판 엔비에이(NBA)', 중국어로는 '춘비에이(村BA)'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미국 프로농구 리그 NBA와 중국 프로 리그 CBA(中國職業籃球聯賽)에서 BA를 따오고 그 앞에 마을 촌(村-춘) 자를 붙인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축구(蹴球)를 족구(足球-주치우)로, 농구(籠球)를 '남구(籃球-란치우)'라고 부른다. 남구는 말 그대로 바구니인 바스(basket-籃)에 볼(ball-球) 넣는 게임이다. 관중으로 가득 찬 타이판촌의 춘비에이 야외 농구 경기장 구이저우성 타이장(台江)현 타이판(台盤)촌 야외 특설 농구 경기장에서 10월 4일 저녁 개최된 2024년 전국 '춘비에이(村BA)' 최종 결승전에서 산둥 대표팀(山東匯東)이 간쑤 대표팀(甘肅臨夏)을 101대 71로 물리치고 대망의 우승을 차지했다. 하이난(海南), 허베이(河北), 지린(吉林) 등 동서남북 각지 19개 성의 20개 팀들이 한 달여에 걸친 지역별 예선전을 치르고 타이판에서의 결선에서 맞붙은 결과이다. 열띤 춘비에이 결선 경기 장면 경기가 열린 타이판촌(台盤村)은 272가구, 인구 1,186명의 마을로 대다수인 92%의 주민이 먀오(苗)족이며, 1936년 이래 90년 가까이 매년 동네 농구대회를 개최해 온 전통이 있다. 동네 농구대회는 먀오족 등 소수민족의 전통 명절인 '츠신제(吃新節)'에 개최되는데, 이 명절날에는 중국의 전통 명절 중추절(仲秋節)과 유사하게 가을 추수 시기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새로 수확한 음식을 먹고 춤과 노래, 단체 체육행사를 하면서 즐기게 되며, 음력 7월 7일이자 먀오족의 민족 달력으로는 6월 6일(六月六)에 개최된다고 한다. 동네 축구대회 '춘차오(村超)'로 유명해진 구이저우 롱장(榕江)현과는 약 100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구이저우성 타이장현 타이판촌 전경 구이저우의 이 작은 마을 농구 경기가 유명해진 것은 수십 년 넘게 매년 한 번씩 개최되어 오던 동네판 시합이 2022년 인터넷으로 중계되면서다. 10대부터 40대까지의 시골 동네 총각과 옆집 아저씨들로 구성된 선수들의 플레이가 예상을 뛰어넘어 진솔하면서도 박진감 있게 진행되자 이것이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유명세를 타고 다음 해인 2023년 3월에는 경기 규모가 전체 성(省) 규모로 확대되어 '제1회 구이저우성 아름다운 향촌 농구 리그전(首屆貴州省美麗鄕村籃球聯賽)'이라는 명칭으로 타이장(台江)에서 개최된다. 곧이어 전국적 관심으로 중앙정부인 농업농촌부(農業農村部), 국가체육총국(國家體育總局), 중국농구협회(中國籃球協會) 등이 나서 전국 규모의 동네 농구대회 '춘비에이'를 탄생시키고, 전국 8개 지역 16개 팀, 500명의 선수들이 참여하는 예선전이 치러졌다. 결선이 개최되자 1천 명 인구의 시골 지역에 2만 명의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되자 모바일 숏폼과 라이브 전문 플랫폼인 콰이쇼우(快手)가 발 빠르게 나서 2023년부터 구이저우 안순(貴州安順), 닝샤 중웨이(寧夏中衛), 광둥 둥관(廣東東莞) 등 전국 곳곳의 동네 농구를 찾아 공동 주최하고 중계하게 되었다. 게임에 등장하는 지역별 선수들은 시골의 농민이나 학생들이고, 장소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전문 실내 농구 코트가 아닌 동네의 흙바닥이나 콘크리트 코트들이다. 인기에 힘입어 이 플랫폼에서만 라이브 중계 동시 접속자 800만 명, 누적 방문자 9억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 농구 팬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이미 동네 농구 '춘비에이(村BA)' 열기가 정식 전국 농구리그 '씨비에이(CBA)'의 인기를 능가했다는 것이다. 비결은 역시 순수성과 리얼함에 있다. 프로선수보다 기술이나 체력은 떨어지지만, 경기에 임하는 동네 아마추어 선수들의 진정성이 보는 이들을 끌어들인다. 결선 경기의 입상자들에게는 거액의 상금이 아닌 구이저우 타이판 동네에서 잡은 민물고기나 오리, 쌀, 소수민족의 은관(銀冠) 등이 상품으로 수여된다. 경기 중간 휴식 시간에는 화려한 치어리더 쇼가 아닌 전통 복장의 먀오족 공연단이 나와 관중들과 함께 춤을 추며 행진한다. 경기장 입장료는 없으나 좋은 자리를 위해 몇 시간 전 입장은 필수이고, 인산인해를 이룬 경기장 가장자리 위치에서 시합을 보기 위해서는 개인용 사다리 지참이 요구된다고 한다. 조용한 시골 동네가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면서 식당, 숙박업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다소 갑작스러운 인기에는 정부 관련 기관의 간접적 지원이나 인터넷 매체, 이커머스 업체들의 참여도 영향이 있다고 하겠다. 먀오족 응원 공연 최근 들어서는 구이저우 롱장(榕江)의 동네 축구대회 '춘차오(村超)'와 타이장(台江)의 농구대회 '춘비에이(村BA)' 이어 동네, 시골, 향촌의 의미를 담은 '춘(村-촌)'을 접두어로 한 브랜드의 배구대회 '춘파이(村排 / 하이난 원창)', 장기대회 '춘자(村甲 / 후난 상잉)', 요리대회 '춘추(村廚 / 후난 바오징)' 등으로 이어지며 '춘'자 형제 시리즈의 영역과 장소가 확장되고 있다. 그간 별 관심을 받지 못하던 지방의 작은 이벤트들이 대중화된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전국적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현지 아마추어 스포츠 경기의 인기와 함께 지역 농산물이나 특산품을 라이브 커머스로 판매하여, 문화와 관광의 결합이자 지역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있으나 동시에 바가지요금이나 오버 투어리즘 등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며칠 전인 10월 26일 자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논평을 싣고 "이번 달 초 국경일 연휴 기간 중 작년부터 동네 축구 춘차오로 유명세를 탄 구이저우 롱장현(인구 30만 명)에 전국의 50만 명 관광객이 몰렸다"면서, "각 지역이 춘(村) 자를 앞에 달고 지방별 특성을 살려 브랜드화하고 경제 사회적 효익을 창출하려면, 개별적으로 임의로 연출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 준비된 홍보와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춘비에이 기념품 홍보 포스터 사진: 바이두, 디자인: 이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