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과 시민단체를 오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임금 체불은 진짜 못 참습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A 씨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총 25대의 CCTV가 설치되어 있다. 입사 당시 사장은 CCTV가 모두 안전 감시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CCTV 카메라는 출입문이 아닌 직원들의 책상 모니터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고, 부사장은 업무시간 중 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CCTV를 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업무 지시를 내렸다. A 씨는 먼저 입사한 동료로부터 얼마 전 사무실 구조 변경이 있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관리자가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직원들의 책상과 모니터가 CCTV에 잡힐 만한 위치로 옮겨졌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B 씨는 복귀 후 첫 인사평가 점수를 최하로 받았다. 육아휴직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납득할 수 없었던 B 씨가 사유를 묻자 회사는 "그간 카메라로 지켜봤는데 업무 중 개인 통화를 한 것이 확인되었다"라고 답변했다. 식당에서 오전 근무를 마친 C 씨는 휴게시간에 식당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홀에는 소수의 손님이 남아 있었지만 다른 쉴 곳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 단톡방에 사장의 질책이 올라왔다. "손님이 전부 나간 것도 아닌데 그렇게 앉아 있으면 안 된다"라는 내용이었다. 사장은 CCTV로 C 씨를 계속 보고 있다는 경고를 덧붙이기도 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CCTV를 통한 노동자 감시를 금지하고 있다. 식당, 버스, 민원실 등 불특정 다수의 출입이 빈번한 '공개된 장소'에는 범죄 예방, 시설 안전 및 화재 예방 등 개인정보보호법 제25조 제1항 각호에서 정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CCTV를 설치할 수 있다. 회사 사무실 등 '비공개된 장소'에 CCTV를 설치할 때는 해당 장소에 출입하는 정보 주체, 즉 노동자 전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때 사용자는 어떤 개인정보를 어떤 목적으로 수집하는 것인지는 물론이고, 동의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과 거부 시 불이익 내용을 노동자에게 알려야 한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CCTV를 임의로 조작하거나 녹음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시설 관리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한 뒤 직원 감시용으로 사용한 위 사례는 모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법은 멀고 감시는 가깝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사용자가 명백한 증거를 남기지 않는 한, "당신을 본 것이 아니다"라는 발뺌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입사 시점 근로계약서와 서약서를 받아 든 평범한 노동자 개인이 "CCTV 위치가 설치 목적에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서명을 거부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CCTV를 활용하지 않은 전자 감시 갑질 상황은 더 암울하다. 사용자가 업무용 메신저 대화 내역을 사찰한 뒤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직원들을 모두 해고했다는 상담, 5분만 컴퓨터 작업을 하지 않으면 미접속 상태로 넘어가 관리자에게 알림이 가 괴롭다는 상담, 사장이 재택근무 시 줌 카메라를 계속 켜고 있도록 강요한다는 상담이 직장갑질119에 들어올 때마다 말문이 막힌다. 이들을 보호할 법과 제도가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와 헌법 제17조 등을 근거로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정보 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즉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이 내용만으로 메신저 사찰과 프로그램을 통한 전자 감시를 포기할 사용자는 없다. 입사 당시 관련 서약서라도 작성했다면 법적 다툼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단은 더더욱 부족해진다. 개인정보보호법이나 통신비밀보호법, 위치정보보호법 등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불평등한 관계에서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는 노동관계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노동관계 법령을 통해 사업장 내 전자 감시를 규제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술 발전 속도를 법과 제도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 감시 갑질 피해자들은 죄책감과 불안감으로 고통받고 있다. 업무용 PC를 업무용으로만 사용했다면 문제될 것이 뭐가 있겠냐는 사용자의 질문에, 업무 중 왜 가족의 전화를 받았냐는 관리자의 질책에, 손님이 있는데 어떻게 홀에 앉아 있을 수 있냐는 사장의 타박에 A 씨와 B 씨, C 씨는 어쩐지 위축된다. 최근에는 한 캠핑카 제조업체 사장이 직원 휴게실 앞에 설치된 CCTV로 직원들의 휴게실 사용 시간을 확인해 이를 근거로 임금을 삭감한 사건이 발생했다. 1분 늦게 현장에 복귀했기 때문에, 근로계약서상 휴게시간 외 10분 더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급여가 줄어든 상황에서 임금 체불을 주장하는 것은 어쩐지 망설여진다. 하지만 A 씨, B 씨, C 씨, 캠핑카 업체 직원, 그리고 우리는 모두 기계나 AI가 아닌 인간이다. 인간이 일하는 공간에는 자본이 아닌 인간을 위한 원칙과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2014년에는 진선미 의원이, 2022년에는 강은미 의원이 노동 감시 수단으로 감시 설비를 설치 운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냈지만 모두 임기 만료 폐기됐다. 22대 국회는 그 이전 국회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디자인 : 고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