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동물원 수의사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얼마 전 내가 일하는 청주동물원에 독사의 독니를 제거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살모사를 전시 목적으로 사육하려는데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독이 없는 살모사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동물복지를 우선하는 우리 동물원에 들어온 요청이었기에 살모사에게 최대한 문제가 없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했다. 수의사들이 찾은 방법은 독낭의 절제나 독이 나오는 구멍의 무력화였다. 치과 치료할 때 사용되는 레진을 이용하여 독이 나오는 구멍을 막거나 정확한 독낭과 독니의 연결 부위를 확인해 잘라내는 등 다양한 방법이 논의됐다. 수술을 위해서는 일단 명확한 독낭과 관의 구조를 알아야 했다. 검사를 위해 살모사가 있는 곳을 찾았다. 독이 나오는 독니의 구멍에 조영제를 주입하여 독낭의 구조와 위치를 특정하기로 하고 마취에 들어갔다. 어리고 작은 살모사였지만 다 큰 살모사에 비해 공격성은 뒤지지 않았고 이미 독니의 기능이 갖춰진 듯해 평소보다 조금 깊게 마취가 유지됐다. 한 시간 정도 독니에 조영제를 주입해 보려 갖은 노력을 해보았지만 진전은 없었고 아직 크지 않은 살모사의 독니를 탓하며 마취에서 깨우기로 결정했다. 마취기를 끄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안전한 통 안에 살모사를 뒀다. 뱀은 마취에서 깨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 기다려도 큰 변화가 없었다. 추운 CT실보단 따듯한 사육장이 마취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살모사를 옮겨놓고 다른 일을 보기 위해 자리를 떴다. 서너 시간 후 다시 살모사를 보러 가니 아직도 그 자세 그대로 있었다. 아무리 마취에서 늦게 깬다고 하더라도 설마 서너 시간이나 걸릴까 하는 생각에 수의사들은 마취 사고로 인한 폐사가 일어난 것으로 결론지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요청을 한 수족관에 폐사 사실을 알리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하루 정도는 기다려보겠다는 기도와 같은 말을 전하고 퇴근을 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찾아본 살모사는 움직이고 있었다. 폐사하지 않고 마취에서 회복 중인 상황이었는데 처음 겪는 상황에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었다. 어쩌면 마취 사고로 인한 폐사로 마무리될 뻔한 살모사는 다행히 살아서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독낭이 더 커지고 나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2025년은 을사년, 푸른 뱀의 해다. 푸른색을 띠는 대표적인 뱀으로는 '블루 코랄'이라고 불리는 long glanded blue coral snake가 있다.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 지역에서 서식하는 블루 코랄은 몸 전체의 검푸른 비늘과 머리와 꼬리의 주황빛의 비늘이 어우러져 멋진 모습을 뽐낸다. 이로 인해 '푸른 산호(blue coral)'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붙게 되었다. 하지만 '긴 샘(long glanded)'은 다른 독사들에 비해 긴 독샘을 갖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다시 말해 매우 아름다운 모습과 매우 많은 양의 독을 가진 뱀이라는 것이다. 넓은띠큰바다뱀 (박대식 강원대 교수 제공, 연합뉴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푸른 뱀으로는 넓은띠큰바다뱀이 있다. 푸른빛을 띠는 띠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가진 이 뱀은 우리나라에선 잘 보이지 않다가 해수 온도 상승과 함께 여러 지역에서 그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 이 뱀 역시 은은한 푸른빛이 도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꽤나 무서운 독을 갖고 있다. 독이 없는 뱀과는 다르게 독사는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아름답거나 위압감이 느껴지는 모습을 갖고 있다. 신비한 느낌이 드는 비늘을 갖거나 날카로운 비늘과 어두운 색을 띠며 각진 머리와 날카로운 독니를 가진 모습은 일부 사람들에게 직접 사육해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파충류를 사육하는 사람들 중에 뱀, 그중에서도 특히 독사에 매료된 사람들은 밀수가 아닌 합법적으로 들어오고 근친으로 태어나지 않은 건강한 개체를 안전하게 사육하길 원한다. 하지만 멸종위기종이나 야생동물의 보호를 위해 마련된 법들은 독사를 수입하거나 전시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이런저런 법들을 따르며 독사를 사육하려면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개설해서 독사를 수입해 사육하거나 해당 기관에 입사하여 사육사가 되는 방법뿐이다. 법이 생기기 전에 국내에 들어온 개체들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개체들은 국내 거래와 사육을 규제하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다. 법이 느슨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씩 따져보면 관련된 법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뱀을 전시 목적이 아닌 개인의 만족을 위해 사육한다는 조건에서, 이미 시장에 풀려버린 독사의 사육은 불법이 아니다. 이런 뱀들은 유튜브 등 다양한 방송 플랫폼에 자주 출연한다. 출연할 때마다 큰 문제 제기나 이슈 없이 지나가는 걸 보면 방송 출연은 전시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출처가 불분명한 독사는 어쩌면 더욱 규제가 필요함에도 아무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무법과 불법 독사들은 SNS를 통해 암암리에 거래되면서 양지에서 합법적인 사육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음지로 들어가게 만든다. 자신이 키우고 있는 뱀이 합법적인지 명확한 판단이 어려우니, 여러 파충류 커뮤니티에서는 독사의 개인 사육이 불법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푸른 뱀의 해인 2025년에는 부디 독사 사육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길 바라본다.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평일의 동물원은 한적하다. 단체 관람객이 없는 날이면 동물들은 편하게 쉬거나 여유로운 식사를 즐기는 모습들을 종종 본다. 꽤 편안한 기분을 들게 해주는 탓에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기 위해 동물들 건강 관리를 핑계로 가벼운 산책을 하기도 한다. 자유로운 그들의 모습 중엔 사람들 앞으로 나와 지긋이 바라보는 모습들도 보인다. 기특한 마음으로 가볍게 지나쳐 왔지만 언젠가부터는 유심히 보거나 가까이 다가가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루는 토끼들 앞에 노부부가 어린아이와 같이 쪼그려 앉아 바라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이 보고 싶어 가까이 다가가 뭘 그렇게 보고 계시는가 하고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친절한 그들은 토끼가 먹을 채소들을 가지런히도 담아온 통을 보여주며 '하나 줘보실래요?'라 하며 미소 지어주셨다. 이날 이후로 동물원에서 행사나 진료가 없는 날에는 근무복이나 수술복을 잘 입지 않는다. 관람객보다 자유로운 옷을 입고 동물원을 돌면 가져온 사료를 먹이거나 사람들이 먹던 음식을 먹이는 모습들이 더 자주 눈에 띈다. 바쁠 땐 사육사들에게 알려만 주고 자리를 뜨지만 웬만하면 관람객들에게 주면 안 되는 이유에 관해서 설명하는 편이다. 직원임을 밝히고 먹이를 주면 안 된다는 안내에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나 감성적이다. 어렸을 적 추억을 얘기하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들, 아이가 얼마나 동물을 좋아하는지 얘기해 주는 부모님들, 최근에 함께 지내던 동물을 떠나보낸 사연들... 하나하나 들어보면 모두 그들이 얼마나 동물을 아끼는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동물들에게 계획되지 않은 먹이를 주는 행동이 그들의 의도에 맞게 동물들에게 좋은 결과만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간혹 동물들이 먹으면 안 되는 먹이를 주는 관람객들도 있지만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은 동물들에 맞는 먹이를 본인들이 먹을 때보다 더 좋은 것들로 더 깨끗이 손질해서 가져오는 편이다. 중요한 건 동물들에게 맞지 않는 먹이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알맞은 먹이를 주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원에서 지내는 동물들은 대체로 정해진 양의 먹이를 계획적으로 먹게 된다. 계획된 먹이는 매일 섭취량의 변화를 확인한다. 무게를 달아서 수치로 남기기도 하고, 아무리 관리가 안 되는 동물원이라고 할지라도 담당 사육사는 눈대중으로라도 체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식의 동물 관리 중에 먹이 섭취량의 변화는 수의사와 사육사에게 가장 먼저 주어지는 건강 지표가 된다. 먹이 섭취량이 떨어지면 사육사는 먹이의 품질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날씨 때문에 상하진 않았는지도 확인한다. 계절에 따라 제철 먹이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동물원에서는 기호도의 차이까지 고려해 더 다양한 먹이를 주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먹이의 문제가 아닌 건강 상태의 문제라면 수의사의 몫이다. 유독 먹이를 못 먹거나 설사나 구토를 하거나 기력이 없어 보이는 아이를 찾아내 진료하게 된다. 웬만하면 대부분의 먹이 섭취량 저하는 이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사육사나 수의사가 모르는 먹이가 공급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동물은 그저 관람객이 주는 먹이를 먹었을 뿐 평소와 달라진 건 없겠지만 직원들에겐 원인 파악이 어려운 먹이 섭취량 저하라는 문제가 주어진다. 먹이 섭취량이 줄어든 동물이 아무 증상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 체중이 줄지도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 수의사는 일반적인 검사보다 더 상위의 검사를 고려하게 된다. 사람들이 가까운 동네 병원에서 원인을 찾지 못해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고 더 많은 검사를 받으며 원인을 알기 위해 본인이 힘들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일반적인 검사에서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면 결국 힘들어지는 건 동물들이다. 더 많은 포획과 마취, 그리고 검사가 이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추워지는 날씨에 밖에서 지내는 동물들을 안타까워하는 관람객들은 겨울을 잘 나길 바라며 오늘도 먹이를 줬다. 주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지만 그들의 눈과 귀는 이미 동물들에게 가 있었다. 사진 : 게티이미지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의 개정 이후 국내 동물원에는 많은 변화들이 이뤄지고 있다. 이미 허가 기준을 갖춘 상태로 운영하던 곳들은 발 빠르게 동물원 허가를 받으려고 하고 있고 그렇지 못했던 곳들은 남은 유예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이익을 보고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거나 아직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 개정 이후 허가받지 못한 곳에서의 동물 체험은 불가능하게 됐다. 법은 동물을 만지고 올라타고 먹이주는 행위 전부와 함께 동물에게 고통, 공포 또는 스트레스를 가하는 행위를 명확하게 금지했고 동물을 활용한 교육 계획을 포함해 허가받은 곳에 한해 일부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신설되는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해당하는 조항이다. 기존에 운영하던 곳에서는 유예기간 동안 약식 서류만 작성해 제출하면 대부분 동물 체험을 할 수 있다. 유예기간은 2028년 12월 13일까지, 4년 넘게 남았다. 남은 기간에도 사람을 경계하지 않도록 훈련받은 동물들은 여전히 돈벌이에 활용될 것이다. 동물 체험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간 많은 곳에서 다뤘으니 여기서는 반대로 동물 체험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얘기를 해보려 한다. 체험의 첫번째 정의는 '자기가 몸소 겪음. 또는 그런 경험'이다. 이 정의대로면 어느 곳, 어느 동물과 어떤 상황을 체험하든 제대로 된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밥을 예로 들면 간단히 끼니만 때우는 경우 "밥 좀 제대로 먹고 다녀"라는 말을 듣는다. 왜 제대로 먹으라고 할까. 제대로 된 밥은 좋은 재료에 영양소가 두루 들어간 균형 잡힌 식사를 의미하고, 이는 단순히 'Yes or No'가 아닌, 밥을 먹는 행위의 정성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 동물 체험도 그렇다. 체험하고 말고가 아니라, 어떤 체험을 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체험의 또다른 정의를 적용해보면 기존 동물 체험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가능해지고 앞으로 어떤 체험을 하고 싶은지 정리된다. ② 체험 : 유기체가 직접 경험한 심적 과정. 경험과는 달리 지성·언어·습관에 의한 구성이 섞이지 않은 근원적인 것을 이른다. ③ 체험 :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기 전의 개인의 주관 속에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생생한 의식 과정이나 내용. 내가 동물들과 함께 체험하고 싶은 건, 강제적인 교감이 아니다. 공원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을 때 작은 새가 어깨에 올라앉거나 바닷속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다 물고기들과 눈을 마주친다거나... 모두가 자유로운 상황에서 서로의 의지로 교감이 이뤄지는 경험을 원한다. 그런 순간들에 좋은 소름이 돋는 기분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반려동물들을 대할 때도 그랬다. 서로 안겨도, 아니면 만져도 되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고 서로의 몸짓 언어를 통한 긍정의 의미를 읽고 나서 교감을 나눌 때 더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순간들도 다른 기억들보다 훨씬 명확하게 남아있다. 함께 나누고 싶은 경험은 이런 것들이다. 기억 속에 확실하게 자리잡아 언제든 다시 그 순간을 떠올려 볼 수 있는 경험들과 체험들. 그저 휘발될 기억을 위해 굳이 돈과 시간을 써서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좋지만은 않은 체험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동물 체험은 주로 만지거나 올라타거나 먹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부분 강제로 이뤄진다. 만약 갇힌 상황이 아닌, 자유로운 환경에서 동물들의 의지로 내 손길을 원하는 방식의 체험이 이뤄진다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체험해 보고 싶다.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 싶은 경험이 될 테다. 먹이 주기 체험은 동물들의 먹이가 그저 내 손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먹이다. 바닥이든 밥그릇이든 손이든 중요치 않다. 그저 허기만 가시면 되는 것이고 '저걸 먹어도 탈이 없구나'라는 축적된 경험에서 먹이를 먹는 것이다. 단순히 먹이를 주는 도구 정도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 돈이나 시간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여러 경험들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소설이나 영화 혹은 여행과 같은 경험 전에도 그런데 생명이 있는 동물들과의 경험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은 조금 더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가을은 동물 대부분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계절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지금은 동물 체험이 없어진 청주동물원을 비롯해 동물을 생각하는 동물원들을 찾아 편안하게 있는 동물들과 조금 더 괜찮은 경험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사진 : 게티이미지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동물원과 수족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은 "동물원 및 수족관의 허가와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동물원 및 수족관에 있는 야생생물 등을 보전·연구하고 그 생태와 습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며, 보유 동물의 복지 증진 및 생물 다양성 보전을 통해 생명 존중 가치를 구현하고, 야생생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환경을 조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어 동물원은 야생동물을, 수족관은 해양생물 또는 담수생물 등을 보전 증식하고 그 생태 습성을 조사 연구함으로써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며 국민에게 전시 교육을 통해 야생동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설이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이 법에서 가장 먼저 다루고 언급하는 동물의 보전과 증식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많은 수의 동물을 태어나게 하는 것만으로 동물원과 수족관은 그들의 목적에 맞는 일을 한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북부흰코뿔소와 같이 전 세계에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남아 멸종을 앞둔 동물들의 경우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새로운 세대를 증식시켜 개체 수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태어난 다음 세대를 통해 그동안 보존되어 온 생식세포나 그마저도 없다면 체세포에서 유래된 줄기세포 등의 생물 자원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멸종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금 당장 유전자 다양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번식이 요구되는 게 당연하다. 물론 기적적으로 멸종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 경우엔 이후의 보전과 증식에서 유전자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유전질환이나 세균, 바이러스 등 특정 인자에 취약한 유전자에 의한 또 다른 멸종 위기를 막아내야 할 것이다. 기적처럼 일어난 일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 과제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제외한 동물들의 보전과 증식은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 앞에서 얘기했듯 생물 자원으로서 동물을 바라볼 때 그들의 유전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생긴다. 국내 동물원, 수족관이나 야생에 방사된 동물들 중에는 너무 많이 퍼져 유전자 다양성의 확보를 위해서는 증식이 종 보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개체들도 있고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서나 다른 지역에서 넘어와 새로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동물은 그동안 고여있던 유전자 풀이 조금은 회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생물 자원이 될 수 있다. 만약 국내에서 가장 많이 퍼져있는 유전자를 보유한 개체가 다른 개체들에 비해 증식이 잘 된다는 이유만으로 지속적으로 증식해 나간다면 그 개체가 속한 종의 유전자 다양성은 그에 맞춰 떨어져 가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이해와 노력은 각각의 동물원과 수족관의 몫이다. 법에 유전자나 생물 자원의 다양성이 확보되는 보전과 증식을 언급하였다면 그나마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그렇게 쓰여 있었더라도 동물을 비싼 가격을 주고 팔려고 하는 사람들은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다양한 노력과 비겁한 성공을 거뒀을 것이지만) 그러나 현재는 빠져나갈 그물망도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생물 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생물 자원은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하여 체계적으로 보호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정도의 내용이 있다. 이를 유전자의 다양성을 고려하라는 의미로 해석해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근무하는 개인의 노력으로 이런 문제들을 막아내거나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인공증식 허가 대상 종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의 '근친교배 등으로 유전 질환이 발생할 우려가 없을 것'이라는 내용에 맞춰 일부 종에 한해 무분별한 증식을 막아낼 수 있기도 하다. 이마저도 뒤에 '다만 종 보전 차원의 번식을 위한 교배는 제외한다'라는 문장이 추가되어 그물망이 조금은 넓어지긴 했지만, 동물의 무분별한 증식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감사한 한 줄일 것이다. 청주동물원은 국내 1호 거점동물원이다. 거점동물원로서 '종 보전을 위한 종 보전 증식 프로그램 운영'이라 명시된 업무를 '종 보전을 위한 (유전자 다양성이 확보된) 종 보전 증식 프로그램 운영'이라 인식해 노력하고 있다. 동물복지 차원에서 이미 좁은 동물사에 더 많은 개체수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과 함께 근친교배나 좁은 유전자 다양성에 따른 문제의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관리가 어려운 동물들은 중성화 수술을 하여 그 생식세포를 보관해 나가거나 체내에 삽입하는 피임약을 활용하여 유전자를 고려한 최소한의 종 보전을 하는 것이다. 또 권역의 다른 동물원에도 근친교배 등 무분별한 증식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중성화 수술도 진행해 주고 있다. 종 보전이란 단순히 생각하면 더 많은 동물이 태어나게 하는 것일 수 있지만 조금만 깊게 들어가 보면 어쩌면 더 이상 증식을 못 하게 관리해 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사진 : 청주동물원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