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물 수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앙꼬, 파이, 비비와 함께 살며, 그들에 대한 글을 씁니다. <개를 안다고 생각했는데>를 썼습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자칫 반려동물의 질환은 경증만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이 앓는 병의 대부분이 개와 고양이에서 나타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동물병원 약제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약이 존재한다. 항생제, 효과가 조금씩 다른 소화기 약물, 피부과 약을 비롯하여 진통제, 고혈압 약, 심장병 약, 내분비질환에 대한 약, 항경련제, 면역억제제 등을 가지고 있다. 이들 각각에 대해서도 여러 종류의 약이 있고, 신약이 계속 출시되고 있어서 꾸준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이런 사정으로 어느 동물병원이나 약제실에는 많은 약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약이든 투약의 기본은 정해진 양을 정해진 횟수에 맞춰서 먹이는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약이 처방되기 때문에 약에 따라 먹는 방법과 횟수가 다를 수 있다. 보호자로서 처방받은 약이 어떤 종류의 약인지,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등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선 수의사의 복약 지시를 잘 들어야 한다. 약 봉투에 일반적인 지시사항이 적혀 있기도 하고, 따로 기입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약 봉투도 꼼꼼하게 챙겨봐야 한다. 그럼에도 기억이 헛갈릴 수 있다. 그럴 경우 반드시 동물병원에 확인 후 약을 먹이는 것이 좋다. 동물병원에서 처방되는 약은 하루 두 번(아침, 저녁) 복용이 일반적이다. 진통제나 피부약은 하루 한 번 복용하기도 하고, 심장약이나 신장질환 환자에게는 하루 4회 복용이 지시되기도 한다. 하루 한 번 먹어야 하는 약을 두 번 먹을 경우 약 용량이 과하여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공복에 먹어야 하는 심장약을 식사와 함께 먹일 경우 효과가 떨어질 수도 있다. 또는 식사와 함께 먹어야 하는 약을 공복에 먹일 경우는 약효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투약 시 복약 지시대로 먹여야 원하는 약효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된 투약으로 인한 문제도 예방할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약을 먹인다면 약을 먹인 후 기록해두는 일도 필요하다. 간혹 다른 가족이 먹인 걸 모르고 다시 먹여서 중복 투여되는 사례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두 번 먹었다고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로 안전역이 낮은 약은 드물지만 (항암제는 다를 수 있음) 환자의 병증에 따라 컨디션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반려동물에게 처방된 약이 약을 먹이는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분비질환 시 처방되는 특정 약은 가임기 여성이나 임산부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으므로 직접 약을 먹이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경구 항암제는 특별한 취급 주의가 필요하다. 약물을 직접 손으로 만지지 말아야 하고(파우더 프리 라텍스 장갑 착용 권장), 약을 쪼개거나 캡슐을 열면 안 된다. 미량의 항암제가 소변, 대변 또는 타액으로 배출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나이가 많은 반려동물이라면 평생 투약이 필요한 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내분비질환(갑상선, 부신 등), 심장질환, 신장질환을 들 수 있다. 하루 두 번 투여가 기본이며, 상태에 따라서 횟수가 늘어나기도 한다. 평생 투약을 해야 하는 약들은 질환의 완치보다는 질병 관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매일 꾸준히 약을 먹는 게 중요하다. 어쩌다 한 번 잊었을 때 큰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지만(중증 질환에서는 문제 될 수 있음) 반복적으로 누락되면 증상이 재발하거나 질병의 효과적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반려동물이 나이가 들면 한 곳만 아픈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안 좋은 경우가 많다. 복합 질환 환자는 각각의 질환에 대한 약을 처방받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작은 체구의 아이들이 약을 밥보다 많이 먹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한다. 질병 보조제도 많아져서 직구를 하거나 인터넷으로 구입하여 먹이기도 한다. 좋다는 보조제를 하나씩 늘이다 보면 그 수가 많아져서 이렇게 계속 먹여도 되는지, 이 중에 뭘 안 먹이는 게 나은지를 고민하다가 병원에 문의하는 보호자도 있다. 상담 후 현 상태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도가 낮은 보조제의 경우는 안 먹이도록 권하기도 한다. 여러 병원을 다닌다면 중복 처방된 약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며, 반드시 필요한 약인지를 따져서 조절하는 것이 질병 관리에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다. 다시 강조하자면, 반려동물에게 약을 먹이는 데 문제나 의문이 있을 때 항상 수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특정한 상황에 대하여 다른 대안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약을 매번 챙기는 일도 쉽지 않은데, 반려동물의 약을 매일 챙기는 일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보호자는 본인 고혈압 약은 까먹어도 강아지 약은 잊지 않고 먹인다고 자조적인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평생 투약이 필요한 경우에는 보호자의 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도 있다. 경련 증상을 보이는 개를 돌보는 한 보호자는 가족 중 본인만 약을 먹일 수 있어서 1인 가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 하루의 외박도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최근에 만난 한 보호자는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이기 위해서 퇴근 후 바로 집으로 간다고 했다. 부득이한 개인 약속은 약을 먹인 이후로 잡는다고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잘 돌보는 일은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보호자 개인 생활이 너무 축소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나 1인 가구는 반려동물 돌봄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친구나 지역 주민과의 유대를 미리 만들어두는 것도 반려동물과 오래 건강하게 함께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사진 : 게티이미지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반려동물 간병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약을 먹이는 일이다. 가벼운 위장염으로 단기간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고, 심장병 때문에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할 수도 있다. 한 번도 아프지 않아서 약을 먹일 필요가 없었다면 행운이겠지만, 앞으로 다가올 노화의 과정에서 약을 먹이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 약을 먹이는 방법을 미리 숙지한다면 유용할 수 있다. 더불어 반려동물이 사람의 손길에 어느 정도 순응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모두에게 최선인 방법은 없다. 반려동물마다 수용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본 뒤, 가장 용이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일은 누군가에게는 수월할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어려운 것이 되기도 한다. 반려동물에게 약을 먹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사료나 맛있는 간식 위에 약을 뿌려주는 것이다. 반려동물의 식욕이 좋거나 복용해야 할 약이 쓴맛이 덜하다면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약의 효과가 떨어질 수도 있는데, 식전 또는 식후라는 복용 지침에 따라 약의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복적으로 사료에 약을 뿌릴 경우 점점 사료에 대한 기호성이 떨어질 수 있고, 음식과 섞은 약을 모두 먹지 않는다면 정량의 약을 섭취하지 못하여 약효를 기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기호성이 좋은 투약 보조제들도 많지만, 식욕이 없는 경우나 반복적으로 약을 섞을 경우에는 역시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 방법의 가장 큰 단점은 식욕이 없는 편이라면 무용하다는 점이다. 그다음은 약을 가루로 만들고 소량의 물을 넣고 녹여서 주사기로 빨아들인 뒤 이를 강제로 먹이는 것이다. 윗입술을 들추고 송곳니 뒤쪽의 빈 공간으로 약을 조금씩 흘려 넣어 주거나 좀 더 깊은 입 안으로 주사기를 넣어 약을 주기도 한다. 이 방법은 개의 경우 기호에 상관없이 반복적인 투약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애들이 눈치채고 소파 밑으로 숨거나 안 삼키려고 입 밖으로 흘리거나 또는 고개를 털어서 약이 소실될 수도 있다. 또 어떤 보호자는 주사기보다 숟가락으로 먹이는 게 수월하다고 말한다. 어떤 방법이든 약의 정량을 최소한의 스트레스로 먹일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고양이의 경우는 가루약을 물에 녹여서 먹일 경우 혀로 반복적으로 밀어내어 거품을 게워낼 수 있으므로 권장하진 않는다. 물론 별 탈 없이 잘 먹는 어린 고양이도 소수 있긴 하지만, 성묘가 되면 대다수는 격렬하게 거부한다. 마지막으로 가루약을 캡슐에 담아서 알약을 입 안 깊숙이 집어넣고 손으로 주둥이를 다물게 잡은 뒤 물을 먹여 삼키게 하는 방법이다. 주로 대형견과 고양이에게 많이 쓰는 방법이다. 알약으로 투약 시 좋은 점은 약의 손실이 거의 없다는 것과 쓴 약도 거부감 없이 먹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먹일 경우 반려동물은 약을 먹었다는 사실조차 크게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장점이 아주 많지만, 가장 큰 난관이라면 반려동물 입 안에 손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끔 알약을 매우 잘 뱉는 기술을 가진 개나 고양이가 있는데 그들은 알약을 뱉기 위해 일부러 토하기도 한다. 위의 모든 경우가 소용이 없을 때도 있다. 어떤 반려동물은 가루약을 사료나 맛있는 간식과 섞어도 냄새를 맡고 먹지 않고, 알약을 간식에 숨겨도 금세 눈치채고 거부한다. 강제로 먹이려고 하면 으르렁거린다. 주사기만 들어도 입술을 들썩이는 개들도 있다. 이때 보호자들은 큰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온갖 음식들이 등장한다. 약 냄새를 감추기 위해 닭고기, 소고기, 치즈, 잼, 꿀 등등. 그 맛에 약을 곧잘 먹기도 하지만, 반복되면 다시 싫증을 내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음식을 고안해야 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가벼운 병이면 약을 안 먹어도 아프다가 저절로 회복되기도 하지만, 만성질환이거나 평생 투약이 필요한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약을 먹이기 위해 병원에 계속 입원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위급한 경우 먹는 약 대신 주사제로 대체해 보지만, 모든 먹는 약이 주사제로 나와 있지 않고, 매일 병원에 오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다. 사람 손길에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환자가 길고양이나 유기견, 또는 매우 민감한 반려동물일 때 접한 사례다. 사람을 매우 경계하는 길고양이의 경우 우리의 손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상태가 더 안 좋아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무언가를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투약도 마찬가지다.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정말 안타깝지만, 그런 경우에는 투약을 하지 않아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받아들이고, 투약 이외의 방법을 찾아보는 게 최선일 것이다. 오늘도 진료실에서 여러 보호자와 질병에 대한 이야기보다 약을 먹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길게 나누었다. 이런 날은 수의사로서 질병을 다루는 일보다, 노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들에 슬퍼하고 좌절하는 보호자를 다독여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더 큰 일인 것 같다. 진료실에서도, 이 글에서도 결론은 그래도 우리는 그들의 보호자니까 이 모든 어려움을 버텨내야 해야 한다는 뻔한 말을 할 수밖에 없지만, 이 뻔한 말이 위로가 되는 누군가가 있기를 바라본다. 사진 : 게티이미지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대부분의 사람이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을 위해 비교적 젊은 시기부터 운동, 식생활, 건강검진, 스트레스 등의 관리를 시작한다. 덕분에 2024년의 60대는 1990년대의 60대와 확실히 차이가 있어 보인다. 반려동물도 달라졌다. 2005년 인턴 수의사일 때 봤던 12살의 개와 지금의 12살은 차이가 꽤 크게 느껴진다. 요사이 병원에 내원하는 12살은 나이를 밝히지 않으면 많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활력 또한 노년의 징후를 찾아보기 힘들다. 반려동물은 어떻게 활기찬 노년을 얻게 되었을까? 우선 동물에 있어서 성공적인 노년이란 어떤 것인지부터 살펴보자. 사람의 경우를 먼저 보면, 성공적인 노화란 ‘나이가 들어 가도 신체와 정신적 기능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며, 안정적인 사회적 관계 유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경제력, 주관적 안녕감 등을 지닌 상태’라고 한다(‘상담학 사전’ , 김춘경 외 4인 참조). 반려동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조건이다. 그래서 동물에게도 성공적인 노년을 위해 식생활, 운동, 수의학적 돌봄, 스트레스 관리는 필수로 보인다. 현재 12살의 반려동물들이 예전보다 활기차고,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것도 위의 조건들이 비약적으로 좋아진 덕으로 볼 수 있다. 많은 보호자들이 원료와 등급을 따져서 사료를 선택한다. ‘휴먼 그레이드’ 등급 사료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원료로 만든 사료를 말하는데, 예전에는 몇몇 브랜드에 국한되었으나 이제는 많은 사료들이 휴먼 그레이드 등급으로 출시되고 있다. 그 외에도 사료나 간식의 성분표를 꼼꼼히 살피고, 방부제나 첨가제를 고려하여 집에서 만들어 먹이거나 수제 간식을 선호한다. 병원 치료는 이제 필수가 되었다. 지난 20년간 수의학의 돌봄의 수준은 크게 발전했고, 보호자의 인식도 달라졌다. 국가 광견병 접종 기간에만 집 밖을 나서는 바람에 병원에 와서 난리법석을 치던 개들은 이제 보기 힘들다. 산책 가는 줄 알고 좋아서 따라나섰다가 동물병원 가는 길을 알아채고 안 가려고 버틸 만큼 병원은 그들 삶에 가까워졌다. 가족들은 반려동물의 작은 변화까지 눈여겨보고 병원에 문의를 하고, 덕분에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기도 한다. 질병이 진단된 경우에도 최선의 치료를 받기 위해 위험이 크더라도 비용을 감당하고 진행하는 경우들도 많아졌다. 산책은 거의 매일 하며, 비가 오고 천둥이 쳐도 우비를 입고 산책에 나선다. 최근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경우도 상당히 많아졌다. 운동과 사회적인 관계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변화 중 하나이다. 반려동물 동반을 환영하는 카페와 식당들이 많아져서 주말에 집에 혼자 남겨지는 대신 함께 외출하고 시간을 보낸다. 쇼핑몰 식당에 앉아 있는 강아지의 모습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고, 개들도 그런 환경을 낯설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하여 여러 방법이 제시되고 있으며, 불안을 감소시켜 주는 약물의 사용 빈도 역시 늘어나고 있다. 사람의 성공적인 노화와 가장 큰 차이점을 들자면 반려동물의 노화는 유전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적으로 보호자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즉, 위의 조건들이 보호자의 적극적 도움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거의 모든 강아지들은 처음에는 사료를 맛있게 잘 먹는다. 그러다 간식을 먹게 되고, 사료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게 된다. 당연한 반응이므로 잘 교육하여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애처로운 눈빛에 마음이 약해져서 계속 그들의 요구에 응해 주게 되면, 결국에 그중 몇몇은 간식만 먹으면서 살게 되기도 한다. 그로 인하여 구토, 설사 등의 소화기 질환부터, 아토피, 췌장염, 담낭질환, 비뇨기 결석 등 다양한 질병이 발생하기도 한다. 운동 부족과 과한 섭취로 심각한 비만에 이른 개도 상당히 많고, 그로 인한 당뇨, 관절염, 척추 질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이빨을 닦인 집의 반려동물과 전혀 못 한 집의 치아 상태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서 습관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밥 잘 먹고 잘 노니까 문제가 없다고 짐작하고, 정기검진을 안 하는 경우도 문제를 키우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반려동물이 건강한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노력과 절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반려동물 스스로가 할 수 없기에, 그들을 돌보는 가족으로서 우리에게 ‘노력과 절제’에 대한 의무가 있는 것이다. 반려동물의 건강한 노년은 그냥 타고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한 결과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노화와 질병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이빨이 흔들리고 아파서 더 이상 딱딱한 사료를 못 먹게 될 수도 있고, 소화력이 떨어져서 좋아하던 고기를 먹고 난 뒤 탈이 날 수도 있다. 청력이 떨어져 가족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뒤늦게 알아채고 일어나 어리둥절해할 수도 있다. 관절이 아파서 빨리 달려 나가 반기지 못할 수도 있고, 시야가 흐릿해서 여기저기 부딪히고, 익숙하지 않은 야외 산책은 무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지기능이 떨어져 대소변 실수를 하고, 좋아하던 보호자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반려동물의 성공적인 노화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노화의 징후로 나타나는 변화들을 미리 인지하고, 불편함 없이 받아들이고 생활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는 일이다. 이는 성공적인 노후를 보내기 위한 여러 일 중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스스로 노화를 인지할 수 없는 동물들이 낯선 자신의 변화에 부드럽게 적응하도록 도와주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일은 우리의 삶에도 안정과 평화를 가져온다. 언젠가 그들을 먼저 보내야 하는 우리의 두려움과 죄책감을 덜어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려동물의 성공적인 노화에는 우리들의 안녕도 포함되어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반려동물 간병'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간병'이라는 단어를 반려동물 뒤에 붙여서 낯설 뿐, 심각한 병이 아니어도 반려동물을 아프지 않도록 돌보는 모든 일이 간병에 포함될 수 있다. 단순하게 병원에 데려가고 약을 먹이는 일에서부터, 위생적인 관리와 질병에 따른 식이 관리와 체중 관리, 운동 제한, 재활 운동까지 포함하는 꽤 넓은 영역의 일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과의 시간 한편에는 그들의 질병과 노화가 자리 잡고 있고, 필수적으로 간병의 시간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간병이 쉬운 일은 아니다. 1인 가구라면 더 어렵다. 환자가 사람인 경우 간병인을 고용할 수도 있지만 반려동물의 경우는 다른 손을 빌리기가 어렵다. 대신할 인력을 구할 수 없고, 구했다고 해도 아픈 반려동물이 낯선 손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거기에 더해 우리의 반려동물은 어디가 아픈지 말하지 못하며, 질병 관리를 위해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고, 질병에 대한 치료 의지도 크게 없어 보이며, 약을 먹이려는 우리를 피해 도망을 가고 물기도 하며, 입에 안 맞는 처방식은 냄새만 맡고 돌아서는 냉정함을 가지고 있어 우리를 속상하게 한다. 간병에 많은 영역이 있지만 가장 기본이면서도 어려운 부분이 식이와 관련된 것이다. 특정 질환을 장기적으로 관리할 때 식이는 가장 기본이다. 식이 알레르기, 췌장염, 당뇨, 비뇨기 결석 환자의 경우는 그 중요도가 더 높다. 그러나 처방식은 기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초반에는 대부분 먹기를 거부한다.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된 식습관을 단번에 바꾸는 것은 반려동물에게도 보호자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 환자처럼 맛이 없어도 몸에 좋으니 참고 먹거나 회복을 위해 억지로 한술 뜨는 일은 결단코 없다. 굶는 것보다 뭐든 스스로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원하는 것만 먹다 보면 질환이 다시 나빠진다. 그리고 맛있는 것을 조금 먹는 것보다는 회복기 동안 필요한 칼로리를 적절히 보충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두 끼 굶어서 안 먹으면 그때부터 '강제 급여'라는 방법을 선택한다. 하루 필요량을 계산하여 정하고, 그 양을 하루 동안 수차례 나누어 강제로 먹이는 것이다. 고양이는 콧줄(얇은 관을 한쪽 콧구멍으로 넣어 식도까지 넣음)을 장착하여 먹이는 경우가 흔하고, 개의 경우는 입천장에 처방 캔을 발라주거나 물과 함께 갈아서 주사기로 먹인다. 가끔 숟가락으로 먹이는 게 편하다고 하는 보호자도 있다. 예전에는 처방 캔을 물과 섞어 믹서기에 갈아서 급여해야 했는데, 요새는 칼로리가 표기된 액상 사료들이 나와서 좀 더 수월하게 먹일 수 있게 되었다. 싫어하는 건 변함없다. 사료 회사에서 처방식의 기호성을 높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지만 맛있어질 수는 없는 모양이다. 강제 급여를 시작하면 물리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더 큰 부분은 안 먹으려고 발버둥 치는 애들을 보는 일이다. 며칠 해보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도저히 못 하겠다, 그냥 먹고 싶어 하는 거 주면 안 되냐, 무슨 사는 낙이 있겠냐 호소하는 보호자가 많다. 지난번 진료 때 설명한 내용들은 사라지고 없다. 답답함을 들어주고, 처음 입원했을 때 안 좋았던 상태를 상기시키고, 조금은 안정된 수치를 보여주면 어쩔 수 없이 다시 해보겠다며 체념한 듯 돌아가신다. 왜 그 마음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이 고비만 넘으면 좀 더 나은 상황이 기다리고 있기에 단호하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 올해 초 내게도 강제 급여의 시간이 찾아왔다. 3월 말부터 앙꼬가 밥을 먹지 않았다. 4월 한 달을 콧줄을 넣은 채로 지냈다. 하루 4번 강제 급여를 했고, 하루 두 차례 몇 종류의 약을 먹였다. 피하수액도 하루 두 번 주사했다. 주말에도 꼭 필요한 외출 외에는 집에 머무르며 함께 있었다. 1인 가구여서 도와줄 다른 손이 없었다. 다행히 앙꼬가 대부분의 처치에 유순하게 응해줘서 혼자서도 가능했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급여를 하기 위해 잠을 설치는 날이 연달아 있기도 했다. 열심히 급여를 했지만 날이 갈수록 앙꼬의 등뼈는 더 도드라졌다. 급여를 하고 나면 메스꺼운지 굵은 침을 한겨울의 처마 밑 고드름처럼 턱에 매달고 곧 토할 것 같은 얼굴을 보자니 지금 하는 일이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배를 쓰다듬고, 제발 토하기 않기를 바라며 한참을 곁을 지켰다. 그사이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지만, 계속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냉정하게 바라봤을 때 호전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 뿐, 나빠지고 있지는 않았다. 빠르게 회복되기를 바라는 나의 조급함을 반성하고, 앙꼬의 고통을 함께하되 내가 먼저 약해지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퇴근하고 돌아오면 앙꼬가 있었다. 그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러다 눈빛이 약간 달라졌다고 느낀 순간 음식을 조금 먹기 시작했고, 지금은 스스로 밥을 꽤 잘 먹는다. 겪어보니 간병의 시간은 힘들었지만 특별했다. 내 생활에서 모든 것을 제치고 앙꼬가 영순위로 올라왔고 밀도 높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오롯이 나의 오랜 친구인 앙꼬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낸 것이다. 그의 눈빛을 읽고, 말을 걸고, 앙상해진 그의 몸에 머리를 기대어보고, 거칠어진 핑크색 발바닥을 만지며 그간의 세월을 더듬었다. 그런 시간들은 내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앙꼬가 회복하지 못했더라면 그 시간은 더더욱 소중하게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긴 간병의 시간을 끝내고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보호자가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은 그 말의 숨은 뜻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힘들지만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보호자와 그들의 반려동물에게 응원의 힘을 보낸다.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2006년 2년 차 수의사였던 나는 연신 하악질을 하던 노란 줄무늬의 새끼 고양이를 만났다. '앙꼬'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는 같이 보낸 시간만큼 같이 나이를 먹었다. 2024년 나는 40대 중반이 되었고, 앙꼬는 18살이 되었다. 2년 전부터 앙꼬의 노화 속도가 나를 앞서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변화들은 내게 안타까움과 당혹스러움을 안겨주었다. 2년 전만 해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현관문을 열기 전에 미리 나와서 울고 있었다. 지금은 현관문과 중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면서 "앙꼬야" 하고 불러야, 갑자기 잠에서 깬 것처럼 다급하게 야옹 소리를 내며 나온다. 다가오는 순간도 경쾌한 발걸음이 아니다. 뒷다리가 약간 벌어진 채로 어기적거리며 제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해 빠르게 오려고 애쓰지만, 속도는 빠르지 않다. 언젠가부터는 식탁에서 바닥으로 한 번에 뛰어내리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질 때 "쿵" 하던 둔탁한 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식탁으로 뛰어오르는 것도 힘든지 의자를 거쳐서 식탁으로 올라간다. 고양이가 높이 올라가지도,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그냥 걷기만 하는 모습은 꽤 서글픈 일이다. 사료는 거의 대부분 삼키고, 어쩌다 잘못 걸린 사료를 어금니로 한번 씹는다. 사료를 먹을 때 나던 '까드득' 소리는 진작에 사라졌다. 눈앞에서 깃털을 세차게 흔들어도 눈으로만 쫓거나 무관심이다. 내게 뭘 바라는 게 없는 느낌이다. 그게 많이 슬프다. 그저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쯤 와서 엎드려 자는 게 다다.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들이밀고 말을 걸고 만지면 슬며시 일어나서 베란다로 나간다. 내가 사는 집에는 개 두 마리도 있는데, 앙꼬 혼자 베란다에 있을 때면 개들이 내 주위를 차지해서 밖으로 나간 건 아닐까 싶어 더 미안해진다. 진료실에서 만난 동물들의 노화는 내게 당연한 일이었다. 보호자가 어떤 현상에 대해 왜 그런 거냐고 물으면 나이 들면 그럴 수 있다고 당연하게 얘기했다. 어떤 때는 당연한 걸 못 받아들이는 그들의 간절함을 욕심이 과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당연했던 노화가 앙꼬에게는 당연한 일이 되지 않았다. 노화라는 한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간 뱉은 말빚에 큰 이자가 붙은 모양이다. 부모님이 연세가 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부모님의 노화를 처음 직면하면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 가득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 빨리, 당연하게 익숙해진다. 저항감이 크지 않은 것이다. 반려동물의 노화는 왜 다를까? 우리에게 반려동물은 나보다 늙어가는 게 당연한 존재로 인지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어리고 젊어서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할 것 같은 내 자식, 동생의 느낌이기 때문에, 반려동물의 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나보다 어렸던 존재가 어느새 나를 앞질러 노화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전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사람에게 복잡한 감정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우리와 한 공간에 있지만, 그들이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반려동물은 명실공히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소중한 우리 가족을 위해 예방접종과 건강검진을 거르지 않고, 질 좋은 음식과 산책과 놀이 시간을 제공한다. 질병에 걸려도 최선의 치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에 반해 우리는 그 삶의 마지막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겨우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은가? 반려동물이 아플 때 얼마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지, 비용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돌봄 노동을 함께 할 이가 있는지, 연명 치료는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 안락사는 언제 선택해야 하는지 등등 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는 꽤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어떤 이는 아픈 반려동물을 돌보기 위해 휴직을 하거나 직업을 바꾸기도 했다. 반려동물 치료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사채를 사용하여 감당 못 할 빚에 힘들어하기도 했고, 충분한 고민 없이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들 때문에 떠밀리듯 안락사를 결정한 뒤 두고두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펫로스 신드롬이 특정 사람들만 겪는 일이 아닌 것은 우리가 그만큼 몰랐고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요새 앙꼬는 노화와 질병과 죽음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나는 앙꼬에게 좋은 노년을 선물해 주고 싶고, 언제일지 모르지만 때가 오면 조금은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좋은 노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고민해야 하고, 죽음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의 과정이 그들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깊은 성찰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