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물 수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앙꼬, 파이, 비비와 함께 살며, 그들에 대한 글을 씁니다. <개를 안다고 생각했는데>를 썼습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대부분의 사람이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을 위해 비교적 젊은 시기부터 운동, 식생활, 건강검진, 스트레스 등의 관리를 시작한다. 덕분에 2024년의 60대는 1990년대의 60대와 확실히 차이가 있어 보인다. 반려동물도 달라졌다. 2005년 인턴 수의사일 때 봤던 12살의 개와 지금의 12살은 차이가 꽤 크게 느껴진다. 요사이 병원에 내원하는 12살은 나이를 밝히지 않으면 많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활력 또한 노년의 징후를 찾아보기 힘들다. 반려동물은 어떻게 활기찬 노년을 얻게 되었을까? 우선 동물에 있어서 성공적인 노년이란 어떤 것인지부터 살펴보자. 사람의 경우를 먼저 보면, 성공적인 노화란 ‘나이가 들어 가도 신체와 정신적 기능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며, 안정적인 사회적 관계 유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경제력, 주관적 안녕감 등을 지닌 상태’라고 한다(‘상담학 사전’ , 김춘경 외 4인 참조). 반려동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조건이다. 그래서 동물에게도 성공적인 노년을 위해 식생활, 운동, 수의학적 돌봄, 스트레스 관리는 필수로 보인다. 현재 12살의 반려동물들이 예전보다 활기차고,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것도 위의 조건들이 비약적으로 좋아진 덕으로 볼 수 있다. 많은 보호자들이 원료와 등급을 따져서 사료를 선택한다. ‘휴먼 그레이드’ 등급 사료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원료로 만든 사료를 말하는데, 예전에는 몇몇 브랜드에 국한되었으나 이제는 많은 사료들이 휴먼 그레이드 등급으로 출시되고 있다. 그 외에도 사료나 간식의 성분표를 꼼꼼히 살피고, 방부제나 첨가제를 고려하여 집에서 만들어 먹이거나 수제 간식을 선호한다. 병원 치료는 이제 필수가 되었다. 지난 20년간 수의학의 돌봄의 수준은 크게 발전했고, 보호자의 인식도 달라졌다. 국가 광견병 접종 기간에만 집 밖을 나서는 바람에 병원에 와서 난리법석을 치던 개들은 이제 보기 힘들다. 산책 가는 줄 알고 좋아서 따라나섰다가 동물병원 가는 길을 알아채고 안 가려고 버틸 만큼 병원은 그들 삶에 가까워졌다. 가족들은 반려동물의 작은 변화까지 눈여겨보고 병원에 문의를 하고, 덕분에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기도 한다. 질병이 진단된 경우에도 최선의 치료를 받기 위해 위험이 크더라도 비용을 감당하고 진행하는 경우들도 많아졌다. 산책은 거의 매일 하며, 비가 오고 천둥이 쳐도 우비를 입고 산책에 나선다. 최근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경우도 상당히 많아졌다. 운동과 사회적인 관계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변화 중 하나이다. 반려동물 동반을 환영하는 카페와 식당들이 많아져서 주말에 집에 혼자 남겨지는 대신 함께 외출하고 시간을 보낸다. 쇼핑몰 식당에 앉아 있는 강아지의 모습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고, 개들도 그런 환경을 낯설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하여 여러 방법이 제시되고 있으며, 불안을 감소시켜 주는 약물의 사용 빈도 역시 늘어나고 있다. 사람의 성공적인 노화와 가장 큰 차이점을 들자면 반려동물의 노화는 유전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적으로 보호자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즉, 위의 조건들이 보호자의 적극적 도움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거의 모든 강아지들은 처음에는 사료를 맛있게 잘 먹는다. 그러다 간식을 먹게 되고, 사료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게 된다. 당연한 반응이므로 잘 교육하여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애처로운 눈빛에 마음이 약해져서 계속 그들의 요구에 응해 주게 되면, 결국에 그중 몇몇은 간식만 먹으면서 살게 되기도 한다. 그로 인하여 구토, 설사 등의 소화기 질환부터, 아토피, 췌장염, 담낭질환, 비뇨기 결석 등 다양한 질병이 발생하기도 한다. 운동 부족과 과한 섭취로 심각한 비만에 이른 개도 상당히 많고, 그로 인한 당뇨, 관절염, 척추 질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이빨을 닦인 집의 반려동물과 전혀 못 한 집의 치아 상태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서 습관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밥 잘 먹고 잘 노니까 문제가 없다고 짐작하고, 정기검진을 안 하는 경우도 문제를 키우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반려동물이 건강한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노력과 절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반려동물 스스로가 할 수 없기에, 그들을 돌보는 가족으로서 우리에게 ‘노력과 절제’에 대한 의무가 있는 것이다. 반려동물의 건강한 노년은 그냥 타고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한 결과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노화와 질병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이빨이 흔들리고 아파서 더 이상 딱딱한 사료를 못 먹게 될 수도 있고, 소화력이 떨어져서 좋아하던 고기를 먹고 난 뒤 탈이 날 수도 있다. 청력이 떨어져 가족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뒤늦게 알아채고 일어나 어리둥절해할 수도 있다. 관절이 아파서 빨리 달려 나가 반기지 못할 수도 있고, 시야가 흐릿해서 여기저기 부딪히고, 익숙하지 않은 야외 산책은 무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지기능이 떨어져 대소변 실수를 하고, 좋아하던 보호자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반려동물의 성공적인 노화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노화의 징후로 나타나는 변화들을 미리 인지하고, 불편함 없이 받아들이고 생활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는 일이다. 이는 성공적인 노후를 보내기 위한 여러 일 중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스스로 노화를 인지할 수 없는 동물들이 낯선 자신의 변화에 부드럽게 적응하도록 도와주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일은 우리의 삶에도 안정과 평화를 가져온다. 언젠가 그들을 먼저 보내야 하는 우리의 두려움과 죄책감을 덜어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려동물의 성공적인 노화에는 우리들의 안녕도 포함되어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반려동물 간병'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간병'이라는 단어를 반려동물 뒤에 붙여서 낯설 뿐, 심각한 병이 아니어도 반려동물을 아프지 않도록 돌보는 모든 일이 간병에 포함될 수 있다. 단순하게 병원에 데려가고 약을 먹이는 일에서부터, 위생적인 관리와 질병에 따른 식이 관리와 체중 관리, 운동 제한, 재활 운동까지 포함하는 꽤 넓은 영역의 일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과의 시간 한편에는 그들의 질병과 노화가 자리 잡고 있고, 필수적으로 간병의 시간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간병이 쉬운 일은 아니다. 1인 가구라면 더 어렵다. 환자가 사람인 경우 간병인을 고용할 수도 있지만 반려동물의 경우는 다른 손을 빌리기가 어렵다. 대신할 인력을 구할 수 없고, 구했다고 해도 아픈 반려동물이 낯선 손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거기에 더해 우리의 반려동물은 어디가 아픈지 말하지 못하며, 질병 관리를 위해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고, 질병에 대한 치료 의지도 크게 없어 보이며, 약을 먹이려는 우리를 피해 도망을 가고 물기도 하며, 입에 안 맞는 처방식은 냄새만 맡고 돌아서는 냉정함을 가지고 있어 우리를 속상하게 한다. 간병에 많은 영역이 있지만 가장 기본이면서도 어려운 부분이 식이와 관련된 것이다. 특정 질환을 장기적으로 관리할 때 식이는 가장 기본이다. 식이 알레르기, 췌장염, 당뇨, 비뇨기 결석 환자의 경우는 그 중요도가 더 높다. 그러나 처방식은 기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초반에는 대부분 먹기를 거부한다.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된 식습관을 단번에 바꾸는 것은 반려동물에게도 보호자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 환자처럼 맛이 없어도 몸에 좋으니 참고 먹거나 회복을 위해 억지로 한술 뜨는 일은 결단코 없다. 굶는 것보다 뭐든 스스로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원하는 것만 먹다 보면 질환이 다시 나빠진다. 그리고 맛있는 것을 조금 먹는 것보다는 회복기 동안 필요한 칼로리를 적절히 보충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두 끼 굶어서 안 먹으면 그때부터 '강제 급여'라는 방법을 선택한다. 하루 필요량을 계산하여 정하고, 그 양을 하루 동안 수차례 나누어 강제로 먹이는 것이다. 고양이는 콧줄(얇은 관을 한쪽 콧구멍으로 넣어 식도까지 넣음)을 장착하여 먹이는 경우가 흔하고, 개의 경우는 입천장에 처방 캔을 발라주거나 물과 함께 갈아서 주사기로 먹인다. 가끔 숟가락으로 먹이는 게 편하다고 하는 보호자도 있다. 예전에는 처방 캔을 물과 섞어 믹서기에 갈아서 급여해야 했는데, 요새는 칼로리가 표기된 액상 사료들이 나와서 좀 더 수월하게 먹일 수 있게 되었다. 싫어하는 건 변함없다. 사료 회사에서 처방식의 기호성을 높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지만 맛있어질 수는 없는 모양이다. 강제 급여를 시작하면 물리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더 큰 부분은 안 먹으려고 발버둥 치는 애들을 보는 일이다. 며칠 해보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도저히 못 하겠다, 그냥 먹고 싶어 하는 거 주면 안 되냐, 무슨 사는 낙이 있겠냐 호소하는 보호자가 많다. 지난번 진료 때 설명한 내용들은 사라지고 없다. 답답함을 들어주고, 처음 입원했을 때 안 좋았던 상태를 상기시키고, 조금은 안정된 수치를 보여주면 어쩔 수 없이 다시 해보겠다며 체념한 듯 돌아가신다. 왜 그 마음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이 고비만 넘으면 좀 더 나은 상황이 기다리고 있기에 단호하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 올해 초 내게도 강제 급여의 시간이 찾아왔다. 3월 말부터 앙꼬가 밥을 먹지 않았다. 4월 한 달을 콧줄을 넣은 채로 지냈다. 하루 4번 강제 급여를 했고, 하루 두 차례 몇 종류의 약을 먹였다. 피하수액도 하루 두 번 주사했다. 주말에도 꼭 필요한 외출 외에는 집에 머무르며 함께 있었다. 1인 가구여서 도와줄 다른 손이 없었다. 다행히 앙꼬가 대부분의 처치에 유순하게 응해줘서 혼자서도 가능했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급여를 하기 위해 잠을 설치는 날이 연달아 있기도 했다. 열심히 급여를 했지만 날이 갈수록 앙꼬의 등뼈는 더 도드라졌다. 급여를 하고 나면 메스꺼운지 굵은 침을 한겨울의 처마 밑 고드름처럼 턱에 매달고 곧 토할 것 같은 얼굴을 보자니 지금 하는 일이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배를 쓰다듬고, 제발 토하기 않기를 바라며 한참을 곁을 지켰다. 그사이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지만, 계속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냉정하게 바라봤을 때 호전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 뿐, 나빠지고 있지는 않았다. 빠르게 회복되기를 바라는 나의 조급함을 반성하고, 앙꼬의 고통을 함께하되 내가 먼저 약해지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퇴근하고 돌아오면 앙꼬가 있었다. 그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러다 눈빛이 약간 달라졌다고 느낀 순간 음식을 조금 먹기 시작했고, 지금은 스스로 밥을 꽤 잘 먹는다. 겪어보니 간병의 시간은 힘들었지만 특별했다. 내 생활에서 모든 것을 제치고 앙꼬가 영순위로 올라왔고 밀도 높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오롯이 나의 오랜 친구인 앙꼬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낸 것이다. 그의 눈빛을 읽고, 말을 걸고, 앙상해진 그의 몸에 머리를 기대어보고, 거칠어진 핑크색 발바닥을 만지며 그간의 세월을 더듬었다. 그런 시간들은 내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앙꼬가 회복하지 못했더라면 그 시간은 더더욱 소중하게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긴 간병의 시간을 끝내고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보호자가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은 그 말의 숨은 뜻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힘들지만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보호자와 그들의 반려동물에게 응원의 힘을 보낸다.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2006년 2년 차 수의사였던 나는 연신 하악질을 하던 노란 줄무늬의 새끼 고양이를 만났다. '앙꼬'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는 같이 보낸 시간만큼 같이 나이를 먹었다. 2024년 나는 40대 중반이 되었고, 앙꼬는 18살이 되었다. 2년 전부터 앙꼬의 노화 속도가 나를 앞서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변화들은 내게 안타까움과 당혹스러움을 안겨주었다. 2년 전만 해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현관문을 열기 전에 미리 나와서 울고 있었다. 지금은 현관문과 중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면서 "앙꼬야" 하고 불러야, 갑자기 잠에서 깬 것처럼 다급하게 야옹 소리를 내며 나온다. 다가오는 순간도 경쾌한 발걸음이 아니다. 뒷다리가 약간 벌어진 채로 어기적거리며 제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해 빠르게 오려고 애쓰지만, 속도는 빠르지 않다. 언젠가부터는 식탁에서 바닥으로 한 번에 뛰어내리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질 때 "쿵" 하던 둔탁한 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식탁으로 뛰어오르는 것도 힘든지 의자를 거쳐서 식탁으로 올라간다. 고양이가 높이 올라가지도,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그냥 걷기만 하는 모습은 꽤 서글픈 일이다. 사료는 거의 대부분 삼키고, 어쩌다 잘못 걸린 사료를 어금니로 한번 씹는다. 사료를 먹을 때 나던 '까드득' 소리는 진작에 사라졌다. 눈앞에서 깃털을 세차게 흔들어도 눈으로만 쫓거나 무관심이다. 내게 뭘 바라는 게 없는 느낌이다. 그게 많이 슬프다. 그저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쯤 와서 엎드려 자는 게 다다.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들이밀고 말을 걸고 만지면 슬며시 일어나서 베란다로 나간다. 내가 사는 집에는 개 두 마리도 있는데, 앙꼬 혼자 베란다에 있을 때면 개들이 내 주위를 차지해서 밖으로 나간 건 아닐까 싶어 더 미안해진다. 진료실에서 만난 동물들의 노화는 내게 당연한 일이었다. 보호자가 어떤 현상에 대해 왜 그런 거냐고 물으면 나이 들면 그럴 수 있다고 당연하게 얘기했다. 어떤 때는 당연한 걸 못 받아들이는 그들의 간절함을 욕심이 과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당연했던 노화가 앙꼬에게는 당연한 일이 되지 않았다. 노화라는 한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간 뱉은 말빚에 큰 이자가 붙은 모양이다. 부모님이 연세가 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부모님의 노화를 처음 직면하면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 가득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 빨리, 당연하게 익숙해진다. 저항감이 크지 않은 것이다. 반려동물의 노화는 왜 다를까? 우리에게 반려동물은 나보다 늙어가는 게 당연한 존재로 인지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어리고 젊어서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할 것 같은 내 자식, 동생의 느낌이기 때문에, 반려동물의 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나보다 어렸던 존재가 어느새 나를 앞질러 노화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전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사람에게 복잡한 감정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우리와 한 공간에 있지만, 그들이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반려동물은 명실공히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소중한 우리 가족을 위해 예방접종과 건강검진을 거르지 않고, 질 좋은 음식과 산책과 놀이 시간을 제공한다. 질병에 걸려도 최선의 치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에 반해 우리는 그 삶의 마지막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겨우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은가? 반려동물이 아플 때 얼마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지, 비용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돌봄 노동을 함께 할 이가 있는지, 연명 치료는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 안락사는 언제 선택해야 하는지 등등 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는 꽤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어떤 이는 아픈 반려동물을 돌보기 위해 휴직을 하거나 직업을 바꾸기도 했다. 반려동물 치료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사채를 사용하여 감당 못 할 빚에 힘들어하기도 했고, 충분한 고민 없이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들 때문에 떠밀리듯 안락사를 결정한 뒤 두고두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펫로스 신드롬이 특정 사람들만 겪는 일이 아닌 것은 우리가 그만큼 몰랐고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요새 앙꼬는 노화와 질병과 죽음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나는 앙꼬에게 좋은 노년을 선물해 주고 싶고, 언제일지 모르지만 때가 오면 조금은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좋은 노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고민해야 하고, 죽음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의 과정이 그들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깊은 성찰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