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사람의 메신저가 되고 싶은 수의사 오석헌입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어떻게 키워야 반려동물이 행복할까요?' '어떤 행동을 보면 반려동물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자해 증상이 있는 앵무새 진료를 마치는 중 보호자가 질문했습니다. 제 강연 영상을 보고 이런 고민이 들었다고 제 생각을 물었습니다. 질문 내용은 너무 반가웠지만 선뜻 대답을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자신의 행복도 정의하기 어려운데 동물의 행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할까요? 동물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자연에서처럼 본능에 따라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주면 될까요? 과연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반려동물에게 조건 없는 자유가 그들을 편하게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만든 환경 속에서 사람도 여러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반려동물에게 무한한 자유를 부여하게 되면 그들은 진정 자유로움을 느끼게 될까요?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저 또한 질문을 많이 하게 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근교에 있는 산을 오릅니다. 종종 산에서 들개를 주의하라는 푯말을 보기도 하고, 야생에 적응한 개를 직접 목격하기도 합니다. 야생에서 마음껏 돌아다니는 그들은 과연 행복할까요? 따뜻한 가정에서 사람의 보호 아래 안락하게 살고 있는 반려견이 행복할까요? 그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누가 누구를 부러워할까요? 우리가 그러듯이 본인이 갖고 있지 않은 것만을 서로 부러워하고 있을까요? 종종 자연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야생동물보다 더욱 불안과 두려움에 쩔쩔매는 반려동물을 만납니다.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보호자와 함께 편안하게 살고 있는 듯 보이는 이들은 무엇을 그렇게 필사적으로 경계하고 긴장하고 있는 걸까요? 행동 상담을 하면서 자주 접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보호자가 지나치게 반려견이 요구하는 것을 맞춰주는 경우입니다. 또한 항시 반려견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며 더 챙겨줘야 할 건 없는지 노심초사합니다. 보통 고양이 보호자를 집사라고 많이 부르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런 보호자가 더욱 집사 역할에 충실한 듯합니다. 하지만 무한한 사랑은 강한 집착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이러한 집착을 보호자는 자신에 대한 충성심으로 오해해서 더욱 심한 집착 관계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 집착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만들게 되어 불안장애나 흥분장애를 더욱 악화시키게 됩니다. 대부분의 불안장애와 흥분장애는 선천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하는데 이런 행동학적 문제를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는커녕 잘못된 관계 형성으로 더욱 악화시켜 치료가 필요한 상황까지 몰고 가게 됩니다. 반려동물의 일상을 찬찬히 지켜봤으면 좋겠습니다. 보호자와 함께 있을 때, 보호자와 떨어져 있을 때, 외부인이 집에 들어올 때, 외부의 다양한 자극에 노출되었을 때, 밥이나 간식을 먹을 때, 놀이 행동을 할 때, 산책할 때 모르는 사람이나 동물을 마주칠 때, 기분 좋을 때, 잠잘 때. 이 다양한 상황에서 반려동물이 어떤 보디랭귀지를 보이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주의 깊게 관찰해 보세요. 위에 나열한 일상생활에서 대부분 반려동물이 편안하게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러 상황에서 과도하게 흥분하고 불안해하거나 극도로 침울해진다면 아마도 그 아이는 하루 중 행복하지 못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경우에는 반려동물의 행동 상담을 통해 문제 행동을 평가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노력이 반려동물에 대한 진정한 사랑일 것입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부터 교육과 관계 형성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터득합니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에게도 사람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올바른 사랑을 통해 반려동물이 자신이 사는 환경에서 마음을 놓고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안락사를 해주세요. 해주지 않으면 돌아가는 길에 이 아이를 버릴 거예요." 무더운 여름날, 왜소한 체격의 몰티즈 한 마리가 진료실에 들어왔습니다. 불안해하며 보호자 품에 안겨 있는 노견은 눈으로 봐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상담을 이어가던 중 갑자기 보호자는 안락사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검사를 진행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 아이는 안락사 기준에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안락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으나 보호자는 반복적으로 안락사를 요구하며 급기야 오늘 안락사를 시켜주지 않으면 돌아가는 길에 버리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상담은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아이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겠다는 동의서를 받고 병원에서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보호자가 떠난 후 홀로 있는 아이의 모습은 더욱 쓸쓸해 보였지만 자신의 처치도 모르는 듯 연신 꼬리를 흔들며 병원 대기실을 오가며 노는 모습에 직원들 모두 반겨주었습니다. 사연 때문인지 뭔가 아련한 생김새의 아이에게 우리는 병원 앞 글자인 '오'와 복 많이 받으라는 의미로 '복'을 조합해서 '오복'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14살의 오복이는 종합병원 같은 검진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선과 복강 내 종양이 자라고 있었고 녹내장으로 인한 안과 질환과 급히 치료가 필요한 심장 질환이 확인되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현재 문제를 치료하고 적절한 분양처를 찾는 것이었는데 어쩌면 병원에서 계속 지내야 할 듯했습니다. 치아도 없고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오복이는 배변, 배뇨를 잘 가리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병원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직원들도 오복이를 정성스럽게 돌봐주었고 종종 집에 데려가서 함께 지내다 오기도 했습니다. 한 달여의 동거 기간이 계속되던 중, 오복이가 밤에 혼자 있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직원 한 명이 오복이를 입양해서 키우기로 하고 오복이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 두 번째 가족을 찾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가족들과의 행복한 시간도 잠시 오복이는 녹내장에 의한 안구 적출, 유선 종양, 난소 종양 적출 그리고 종양 전이에 의한 우측 앞다리 절단술 등 큰 수술들을 차례차례 감당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수술 이후 제대로 일어서기도 힘들어했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보이며 빠르게 회복해 나갔습니다. 조금은 불편해 보였지만 새로운 가족들의 보살핌으로 편안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복강 안에는 종양이 또 자라고 있었습니다. 오복이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고 2년이 되었을 무렵, 오복이가 마지막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오복이는 이제 근육이 거의 사라졌고 종양으로 배가 부어올라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했으며 남아 있던 우측 안구까지 파열이 되어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수술과 치료는 무의미해 보였고 오복이를 데려갔던 직원과 가족분들에게 편안히 보내주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주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오복이한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선물일 거라고... 그렇게 어두운 조명 아래 오복이는 가족들의 품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생명을 지닌 반려동물은 잘 키우는 것만큼 잘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반려동물은 생물학적으로 사람보다 수명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보내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함께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추억을 이야기해 주고 그동안 함께했음에 고마움을 표현하며 이별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설령 우리의 말을 언어로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 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 생명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하고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14년간 함께한 가족에게 버려지고 새로운 가족과 함께 3번의 큰 수술을 이겨내며 지냈던 오복이의 16년 견생에서 마지막 2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오복이를 따뜻하게 돌봐주는 새로운 가족과 지내며 얻은 행복 에너지로 그 큰 수술들을 견디면서도 편안한 표정과 애교를 부리며 살 수 있었던 건 아닐까요? 안락사를 위해 우리를 찾아왔던 오복이는 2년 후 16살의 나이로 따뜻한 가족들 곁에서 긴 잠을 자듯 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일상에서 동물복지라는 단어는 이제 어색하거나 생소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점점 동물권을 대변하는 시민단체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영향력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중도 동물복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점차 동물권을 존중받는 것이 옳다고 여깁니다. 과거와는 달리 동물원의 동물들을 단순히 신기하고 오락의 목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들의 환경과 삶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최소한의 삶의 질도 보장받지 못하는 동물들을 지키기 위해 불법 강아지 농장이나 식용개 농장의 비윤리적인 시설과 관리 방법에 대해 고발하고 그곳에서 학대당하고 있는 동물들을 구조해 보호시설로 이동시키기도 합니다.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사육하는 곰의 환경을 폭로하고 환경부를 압박하여 곰 사육을 금지하는 법안이 신설하였으며 남아 있는 곰들의 노후를 위한 보호소를 건립하였습니다. 동물원도 동물복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단체는 동물복지에 위배되는 동물원을 찾아가 항의하고 여론을 형성하여 동물들이 더 나은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습니다. 실제로 공립동물원에서 사육 중인 침팬지를 동남아시아의 특정 동물원으로 반출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어떤 단체는 해당 동물원이 침팬지를 자연의 생태와는 동떨어져 상업적 이용만 하는 시설인 것을 확인하고 끈질긴 항의와 동시에 대중에게 적절치 못한 일임을 알리며 침팬지의 반출을 막기도 하였습니다. 동물복지가 보편가치로 인식되는 사회적 흐름에 따라 동물복지의 사각지대가 점점 좁혀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여러 반려동물을 관찰하다 보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동물복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우리 곁에서 함께 하는 반려동물의 복지는 누가 감시하고 있을까요? 반려동물의 복지를 논하는 것은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보호자가 있는 동물에 대해서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개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동물복지의 사각지대 중 한 부분은 반려동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려동물을 때리거나 괴롭히는 학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행위는 폭력적이며 비윤리적이고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난 대다수의 반려인들은 반려동물을 가족 이상의 존재로 여기며 함께 살아갑니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며 자유롭게 키우는 것이 그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병원에서 동물 환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동물들이 두려움과 불안함에 벌벌 떠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물론 낯설고 좋지 않은 기억이 남은 장소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불안도를 낮추게 하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도 사시나무 떨듯 긴장하며 아무리 맛있는 간식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모습은 지극히 비정상적입니다. 또한 이렇게 지나친 불안, 공포를 느끼는 동물들은 일상생활 중 여러 상황에서 평온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순히 겁이 많아서 소심해서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모습이 너무 짠하게 느껴집니다. 불필요한 공포감에 휩싸여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동물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요? 반려동물 훈련을 교육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동영상을 보게 되면 종종 놀라는 장면들이 나타납니다. 무서워서 공격성을 보이는 반려견에게 신체를 압박하거나 큰 소리를 통해 당장의 상황을 억제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옆에서 잔뜩 긴장하고 무서워서 기가 죽어 있는 반려동물이 보입니다. 무서워서 생긴 문제 행동을 더 무서운 방법을 통해 교육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옳지 않습니다. 잠시 주눅 들어 훈련이 된 것처럼 보일 뿐 그들의 공포심을 더 키우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반려동물과 함께 화목하게 사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지 서커스장에서 기가 죽어 있는 동물처럼 조련을 하는 방법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려동물에게 마음의 병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무서워서 긴장하는 모습도 귀엽게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몸의 자세와 움직임으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주의 깊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반려동물의 바디랭귀지를 정확히 판단해서 주위 환경을 개선시키고 적절한 행동 교육과 치료를 통해 그들의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길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반려동물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와달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소리를 그냥 지나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