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한국 사회에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낯선 때 부터 성인남녀 4만 4천 여 명을 상담하며 '지치지 않고 지속하는 삶'의 방법을 연구해온 상담가 겸 작가입니다.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를 거쳐 현재는 월간 마음건강 편집장으로 일상 속 마음돌봄의 정보를 큐레이션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 리추얼 : 사소한 것들의 힘' 을 썼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보는 잠깐의 '틈'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돌보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성인 4만 4천 명을 상담했던 장재열 상담가가 자신의 삶에서 소진을 겪었던 전문가를 만나 일상 속 멈춤과 쉼의 비결에 대해 묻습니다. 인터뷰어 : 장재열 (상담가 겸 작가, 월간 마음건강 편집장) 인터뷰이 : 김태술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빈틈의 위로' 저자)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지금일 수도,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어쩌면 지나가 버린 게 아닐지 씁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답변 대신 이렇게 되묻겠지요. "아니, 최고의 순간을 꼽는 기준이 뭔가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가장 큰 성취가 있었던 순간일까요? 아니면 가장 근심·걱정 없었던 시절일까요? 아직 정확하게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오늘의 초대 손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어보세요. 대화 속에서 작은 힌트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세상의 시선에서 가장 최고의 순간으로 보였던 시기에 가장 어두운 마음의 터널을 지나야 했던 사람, 전 농구 국가대표이자 지금은 방송인으로, 그리고 작가로 삶의 새로운 여정을 떠나고 있는 김태술 님을 만나봤습니다. 장재열 (이하 장)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태술 (이하 김) : 안녕하세요. 신인 작가로 데뷔한 김태술입니다. (웃음) 장 : 저는 번아웃을 연구해 온 상담가다 보니 관련 서적을 많이 읽게 되거든요. 그런데 김태술이라는 사람이 그 농구선수 김태술이라는 걸 모르고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글 잘 쓰시던데요?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에 대해 말씀하시더라고요. 김 : 감사합니다. 사실 선수 시절에 글을 써본 적은 없는데, 은퇴 이후에 블로그를 꾸준히 해 왔는데 재미있더라고요. 모든 게 저한테는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고요. 장 : 은퇴 후에도 새로운 경험을 하며 바쁘게 지내시나 봐요. 김 : 아뇨 저는 완벽하게 잘 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 : 완벽하게 잘 쉰다는 것, 어떤 의미죠? 김 : 선수 때는 아무래도 계속 1등을 해야 하고, 이겨야 하고, 상대를 누르지 않으면 내가 제압되었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삶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해야 하잖아요. 그때 생각한 게 나는 한 길을 오래 파 온 건 해보았으니, 은퇴 후에 보편적으로 가는 코스로 직행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내가 안 해본 경험이 뭐가 있을까 쭉 생각하다 보니까 '무언가를 안 하는 것'도 그 다양한 경험 중에 하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21년에 은퇴를 했으니까, 이제 3년이 되었는데요. 21년부터 세상을 새롭게 경험해 나가고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기를 포함해서 예능 출연도 해보고, 블로그 글도 써보고, 해설위원도 하면서 조금씩 '사람 김태술'을 알아가게 되고, 행복도가 높아져 가더라고요. 그래서 때로는 저는 제가 이제 3살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3살 아이는 모든 것이 궁금하고 신기하잖아요. 장 : 제가 상담을 하면서 운동선수나 연예인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오래 한 길만 걸어온 분들, 또는 은퇴한 중장년분들을 뵈면 무한정 시간이 주어졌을 때 "공포스럽다"라는 분들도 종종 계신단 말이죠. 태술 님은 그런 막막함이 없었나요? 어땠어요? 김 : 저는 오히려 선수 시절에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막막했어요. 왜냐하면 저를 포함해서 적지 않은 선수가 쉬는 방법을 모르거든요.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오전 운동 끝나고 나가서 한잔하고 다음 날은 푹 퍼져 있다가, 오후에는 다시 연습하러 나가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가 정말 쉴 수 있는 공간은 어디고, 내가 진짜 편안함을 느끼는 행위는 뭔지 알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인지 저는 어느 순간부터 은퇴 후에 이 일에서 파생되는 경험들이 아니라, 아예 완전히 다른 울타리에 가서 나를 한번 밀어 넣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어요. 장 : 그래서 지금은 어떤 울타리에 자신을 밀어 넣었나요? 김 : 울타리 대신에, 물결에 흐름을 맡겼죠. 무언가를 이루려 하지 않고 1등이 되려 하지 않는 채로 있어 보자. 왜냐하면 인생의 이전 시기까지 계속 성취 지향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래서 작위적으로 무얼 하려고 하지 않고 내 눈앞에 주어지면 그걸 최대한 즐기려고 해요.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받았을 때도 뜻밖이었지만 주어졌을 때 피하지 않고 즐겁게 하고, 오늘 같은 자리도 오면 즐겁게 그리고 솔직하게 다 이야기를 하자. 꼭 일뿐만 아니라 취미나 여가도 마찬가지고요. 장 : 무언가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는요? 김 : 진짜 아무것도 안 해요. 그냥 누워서 시간이 흘러가라. 나는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고 스스로 되뇌는 거죠. 적극적인 쉼을 한다고 할까요? 물론 저도 처음엔 너무 안 됐어요. 불안감이 엄습하니까. 또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요. 장 : 그런데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 다수는 직장을 다니시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직장인의 관점에서는 스포츠 스타의 은퇴가 정년퇴직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단 말이죠. 그러면 독자님들 입장에서 예상되는 질문이 "많이 벌었으니까 가능한 거 아니야? 우리도 저럴 수 있을까? 난 목구멍이 포도청인데"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김 : 그런데 저는 그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사실 책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많은 분이 제가 최고의 기량이던 시기에 갑자기 기량이 뚝 떨어졌다고 생각하시지만, 그 이면에 굉장히 심한 슬럼프가 있었어요. 누군가는 추락이라고도 표현하죠.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다가 그걸 달성하고, 그런데도 내가 상상하는 그 완전한 '상'과는 다르게 인생이 펼쳐지는 걸 경험하고, 추락을 하고, 그리고 다시 삶을 바라보니까요. '아, 빨리 달리는 것, 1등 하는 게 행복해지는 지름길은 아니구나. 그렇다면 반대로 빨리 달리지 않아도, 1등 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도 있겠다'라는 관점의 변화가 컸어요. 그게 저의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지탱해 주고 있는 거고요. 돈은 사실 어느 정도가 있던 불안한 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계속 줄어들고 있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그런데 청소년기에는 개인적인 결핍의 경험들 때문에 물질이 내 삶의 안전망이 되어줄 것으로 생각했고, 그걸 위해 성공이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는데요. 그건 행복이 아니잖아요? 그 순간의 기쁨인데, 그것을 행복으로 뭉뚱그려 생각하고 달렸더라고요. 지속 가능한 기쁨은 다른 데에도 있더라는 거죠. 장 : 이를테면요? 김 : 그것들을 찾아가기 위해서 다양한 경험을 시작했는데, 기타를 배웠었거든요. 굉장히 순수한 기쁨이잖아요. 그리고 카페에 가서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을 봐요. 저에게는 그것이 매우 큰 행복으로 다가오거든요.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거. 왜냐하면 그전에 바라보던 사람은 관중석에 있는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이 새로운 기쁨의 발견들이 저에게는 신생아가 하나씩 세상을 경험하는 과정처럼 느껴지거든요. 와. 이런 게 있구나. 이런 게 즐겁네. 장 : 그렇다면 이제 만 세 살이 된 김태술이 본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김 : 자존감이 높아져 가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실 선수 시절엔 "할 수 있어! 나는 잘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고 자신감이 있었지만, 자존감이 높다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나의 기쁨과 슬픔이 결정되었거든요. 그렇지만 이제는 생각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경험하면서, 어? 되네? 즐겁네? 할 수 있네?를 근거 있게 깨달아가다 보니 내면에서 '아, 나는 잘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근거 있는 자존감이 생겨나더라고요. 그러니까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도 자기 결정권이 생겨난 느낌이 들죠. 조바심 내지 않고요. 제가 최근에 새로 시작한 또 하나의 취미가 골프인데, 제가 선수 출신이잖아요. 어느새 저도 모르게 잘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쪼다가도 멈출 수 있게 됐어요. 스스로에게 말하는 거죠. "야, 너 한두 달 하고 그만둘 거야? 2년 3년 꾸준히 할 거 아니야? 그럼, 언젠가 잘하게 될 건데 왜 스트레스받아? 왜 강박을 가져?"라고요. 그러면 다시 즐기는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예요. 장 : 이건 여담인데, 오늘 이야기 나누면서 참 얼굴이 편안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기장에서 봐 오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랄까. 어라? 김태술 선수가 이렇게 생긴 분이셨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인생의 어떤 시기로 카톡을 딱 한 줄 보낼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어요? 김 : 인상의 변화는 그렇게 느끼실 수 있어요. 슬럼프를 겪던 때와 지금은 다르니까요. 그때는 그리고 그 터널이 끝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고요. 누구나 번아웃이 오고, 슬럼프가 왔을 때 인생을 핀 조명으로 그 순간에만 초점을 맞춰서 바라보면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운데 결국은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몰랐죠. 그렇기 때문에 이겨내기 위해서 극도로 제 감정을 절제하고 무시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얼른 성공해서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요. 그래서 슬럼프가 오고, 마음의 병이 와도 무시하고 아닌 척하고 알아주지 않으려 했거든요. 나약함을 무시해야 성공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 그 시절에 카톡을 보낼 수 있다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럽다고 말하고, 울고 싶으면 울고 감정에 솔직해져도 돼>라고, 꼭 말해주고 싶네요. 장 : 그럼 마지막으로 타인에게도 한마디를 건네볼게요. 태술 님이 가장 마음에 쓰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유형의 사람들일까요? 그리고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으세요? 김 :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분들이요. 저는 선수 시절에 매일매일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살았잖아요. 그 평가가 제 모든 감정을 좌지우지하던 시절도 있었고요.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마찬가지인 분들이 계실 거로 생각해요. 사람들이 날 지켜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죠. 하지만 정말 대부분의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거든요. 오히려 사람들이 날 지켜보는 시간보다 내가 날 지켜봐 줘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타인의 기준에 맞춘다고 해도 끝끝내 내가 행복해지는 게 아닌데, 그렇다면 시선의 방향을 이제는 안으로 돌려야 하는 게 아닐지 생각합니다.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쓸 거면 아주 극단까지 가는 거예요. 정말 완벽한 나, 누가 봐도 흠집 잡을 수 없는 나까지 가보는 거예요. "나 멋지게 살 거야. 그래 봐. 지켜봐. 내가 얼마나 멋진지"라고요. 근데 그 '멋지게 사는 것'의 핵심은 내가 나에게 집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멀쩡한 모습이 아니라 허겁지겁 달려와서 슬라이딩으로 무덤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거든요.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시간에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생의 마지막까지 충실히 사는 거죠. 그리고 "정말 끝내줬다!"라고 말하면서 문 닫히기 직전에 단장할 새도 없이 들어가는 거예요. 무덤에 (웃음) 그렇게 모든 순간 경험을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오프 더 레코드 : 독자 질문 코너 1.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는 경험은 아무나 못 하는 거잖아요. 자기 분야에서 미친 듯이 달려서 성공하는 경험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태술 선수님처럼 그 이후 슬럼프가 오고 소진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볼만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점을 찍기 위해 저에게 왔던 수많은 경험과 감정은 삶을 살아가는 데 많은 선물을 준 것 같아서 한번 해 볼 만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가끔 후배들에게 성공으로 가는 길에는 늘 고통과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노력, 시간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곤 했거든요. 이 과정에서 기쁨, 슬픔, 분노, 희망, 깨달음 등 여러 가지 감정과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이 감정과 경험을 인생의 또 다른 목표에 끼워 넣어 적용하기만 해도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남들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갔던 경험은 다른 목표도 이루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는 거죠. 저 역시 고통스러운 슬럼프가 힘든 시간을 주기도 했지만 결국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험도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삶을 대하는 태도는 좋은 것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부정적인 일이나 감정도 같이 받아들이려 하는 수용적인 태도로 변할 수 있었고요. 2. 능동적으로 쉰다고 말하고 진짜 쉬는 모습에서 자기 인생의 주인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명 깊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못 살지 않나 싶어서 그냥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맞아요. 저도 그렇지 못했어요. 늘 불안하고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고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하지만 능동적으로 쉰다는 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쉬는 것이 아니라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을 때 불안한 감정이 밀려와도 그 불안함 때문에 다시 벌떡 몸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그 불안함까지 받아들이면서 "그럼에도 쉬는" 연습하다 보면 분명히 잘 쉬는 방법을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3. 인터뷰 보자마자 책 사고 다 읽었어요, 저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났어요. 3살로 살아가는 새로운 인생에서 책을 쓴 경험은 어땠는지, 또 책을 내실 계획이 있으신지 없으신지, 만약 있다면 어떤 주제로 써보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책을 쓰는 사람으로 계속 살고 싶어요. 사실 저는 자기 계발서를 위주로 독서를 해 왔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다음 책을 쓴다면 저를 성공으로 가게끔 만들어 주었던 마음 1(페르소나)이 어떻게 저를 밀어붙였는지 그 방법에 대한 내용과, 그렇게 살면서도 힘들고 지칠 때 마음 2(내면 자아)가 어떻게 저를 보듬어주어 지치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했는지. 두 마음의 밸런스에 대한 자기 계발서를 한번 써 보고 싶어요, 그리고 늘 사람으로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계속하고 있는데, 언젠가 조금 더 뚜렷해진다면 그 이야기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4. 태술 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1~3위는 무엇인가요? 예전 농구선수 시절과 지금 달라졌는지도 궁금합니다. 현재는 제가 1순위입니다. 사실 예전에는 가족이 1순위다라는 얘기를 종종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스스로가 행복하고 자존감이 높아져야 가족이든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가 1순위 2순위 3순위입니다^^ 5. 가만히 있는 시간도 오래되다 보면 지루하지 않은지 궁금합니다. 지루하기보다 불안했던 것 같아요. 분명 몸은 편한데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드는 건 어떻게 조절이 안 되더라고요. 하지만 이것도 계속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연습했더니 지금은 가만히 있는 시간이 도움이 되는 것 같고, 그렇게 채워진 건강한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더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6. 저도 저에게 쉬는 시간을 줘보자!라고 생각하고 퇴사 후 쉬었는데요, 어느새 무기력해지고 다시 일을 할 생각이 들지 않아서 계속 이러는 거 아닌가 불안하고 막막한 시간을 보냈어요. 태술 작가님은 그런 마음은 없으시나요. 저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완전히 다른 필드에 저를 밀어 넣으면서 불안을 제 발로 찾아간 셈인데요. 저는 한동안 저 자신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모든 불안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났던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일이든 주어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운동 생활을 하면서 남들보다는 노력에 대한 기준이 높고, 어느 정도 올라가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을 인지했죠. 그래서 불안전한 필드로 저를 밀어 넣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불안은 늘 내 옆에 붙어있지만, 그마저도 인생이라 생각하고요. 불안하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움직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순기능도 생각이 드네요. 7.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나 인상적인 책 구절이 있다면 궁금합니다. 저에게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지게 해 준 책이 있는데 '연금술사'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연금술사는 납을 금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죠. 물론 저도 그런 능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저는 실제 납과 금 대신에, 삶에서 오는 부정적인 일이나 짜증 나는 일하기 싫은 일 등을 납이라고 생각하고 이것들을 금으로 만들 수 있는 내가 되면 훨씬 더 값지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한 일화로 제가 은퇴 후 바로 '뭉쳐야 찬다 2'에 출연했습니다. 평생 손을 쓰면 살아온 저는 축구가 굉장히 어려웠고, 필드보다는 벤치에 앉아서 응원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죠, 스트레스도 많았습니다. 방송이기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응원하는 모습도 많았죠. 그때 당시 소속사 대표님께서 제가 스트레스가 많다고 생각하셨는지 프로그램 하차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절대 하차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때 당시 상황이 저에게는 납이었고, 곧 금으로 만들 기회로 보였거든요. 1년간 비공개 계정을 만들어 훈련하는 영상을 올리며 연습했어요. 어느새 주변에서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평가가 많아졌고, MOM(Man of the Match, 일명 MVP)을 받는 경기까지 생겼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준 그 상황을 기회로 보고 노력해서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지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 시간은 제게 금이 되었기에, 저는 자칭 김태술사가 되었다고 말하곤 한답니다. 질문을 주신 분께도 긍정의 힘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8. 태술 님의 책에서는 목표지향적인 마음 1과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마음 2의 균형에 대해 들려주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마음 2의 소리를 잘 못 듣겠어요. 제 안에서는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떻게 하면 마음 2를 만날 수 있을까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면 어떤 노력을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어떤 일이든 지금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마음 2를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하신다면 '아 나는 지금 마음 2를 만나지 못하는구나, 그래도 괜찮아 곧 만나겠지'라고 이야기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인정하는 마음이 바로 마음 2라고 생각하거든요. 마음 2를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아쉬워하는 나에게 괜찮다고 의식적으로 이야기하는 연습이 필요하기도 할 것 같고요. 분명히 마음 2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해요. 조바심 내지 마세요. 곧 만나시게 될 겁니다. 아니 이미 옆에 있는데 몰라보고 있을 수도 있어요.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보는 잠깐의 '틈'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돌보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성인 4만 4천 명을 상담했던 장재열 상담가가 자신의 삶에서 소진을 겪었던 전문가를 만나 일상 속 멈춤과 쉼의 비결에 대해 묻습니다. 인터뷰어 : 장재열 (상담가 겸 작가, 월간 마음건강 편집장) 인터뷰이 : 이서현 (웹툰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 썰’ 작가, 코칭심리학자)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시나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연습이 익숙지 않은 우리들에게, 어느 날부터 동그란 캐릭터 하나가 곁에 다가왔습니다. 트위터에서부터 화제가 되어 9년째 연재되고 있는 심리학 그림일기, ‘서늘한 여름밤 심리학 썰’이죠. 아마 이름은 몰라도 한 번쯤 캐릭터는 만나보신 적 있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가감 없이 자신의 불안과 완벽주의, 그리고 상처와 회복의 과정을 담담히 꺼내어 놓는 그림일기의 작가이자 코칭 심리학자인 서밤 작가, 이서현 님을 만났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수십만 명의 ‘트친’과 ‘인친’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 솔직한 고백과 성찰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리고 그 솔직한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깨달은 것들은 무엇인지 들어봅니다. 장재열(이하 장)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서현(이하 이) : 저는 코칭 심리학을 공부하고, 마음과 관계에 대해서 그림일기를 그리는 작가, 서늘한 여름밤 서밤입니다. 블로그에서부터 시작해서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까지 꾸준히 그림일기를 연재하며 여러분을 뵙고 있네요. 장 : 심리학이나 마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작가님의 실물은 처음 보더라도 만화 속 캐릭터는 한 번쯤 다들 보셨을 것 같은데요. 이 캐릭터는 어디서 모티브를 딴 건가요? 이 : 사실 제가 미술 전공자가 아니거든요. 심리학 전공자잖아요. 그래서 그림에 익숙지 않다 보니 가장 그리기 쉬운 형태를 찾다가 이렇게 그리게 됐어요.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단순한 형태라서 더 많이들 이입하고 편안하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이서현 작가의 만화 캐릭터 장 : 그러고 보면 이 캐릭터를 처음 본 게 2010년대였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만 9년째 꾸준히 그림일기를 연재하고 계시는 데, 코칭 심리학 박사과정도 하고 계시고, 현직 코치로도 활동하고 계시고, 강연도 다니시고.... 참 바쁜 일상을 살고 계실 텐데. 이 코너명처럼 ‘오프’하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이 : 그럼요. 저는 일상 속의 멈춤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림일기 연재도 연재지만, 박사과정 연구라는 게 참 마라톤 같다고 느껴져서 잠깐씩 멈추지 않으면 오히려 지속하기 힘든 과업이라고 느끼거든요. 그래서 저는 저녁 9시 이후로는 생각 안 하기를 실천하고 있어요. 장 : 생각을 안 해야지, 한다고 바로 되나요? 이 : 물론 쉽지 않아요. 저도 생각 안 하기 훈련을 꾸준히 오래 해왔어요. 저녁 9시가 넘어도 때때로 논문 생각이나 일 생각이 나요. ‘아까 그 부분 이렇게 수정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식으로요. 그럴 때 안 해야지! 하고 멈출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대신 다른 생각으로 덮는 거예요. 업무적인 생각 위에 일상적인 생각을 덧대는 거죠. 넷플릭스 뭐 좀 볼까? 음악을 좀 들을까? 내일 아침에 뭘 차려 먹지? 같은 것들 말이에요. 가장 좋은 건 지금 느껴지는 ‘감각’을 느끼는 건데요. 누워있다면 등의 감각, 앉아 있다면 발의 감각 같은 것들요. 장 : 그림일기를 오래 봐온 독자로서 작가님이 불안도 굉장히 높으신 편이고, 생각이 정말 많은 성격인 거로 알거든요. 처음부터 이렇게 온·오프가 잘 되는 편은 아니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이 : 석사를 졸업하고 한참 심리상담센터의 대표로 제 사업을 할 때는 정말 멈추질 못했어요. 그림일기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을 때였고, 강연 요청이나 외부의 연락도 많았고 그 가운데서 나에게 쉼을 주질 못했어요. 누군가의 생존을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잠깐 쉬다가도 ‘내가 쉬어도 돼?’ ‘이러고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밤 11시, 12시까지 매일 계속 일을 했어요. 그러다 번아웃이 온 거죠. 장 : 자신의 번아웃은 어떻게 알아차리게 됐나요? 그리고 가장 먼저 어떻게 대처했나요? 이 : 저는 짜증이 엄청났어요. 정말 만사가 짜증 나(웃음). 사람들이 나에게 조금만 뭐라고 이야기해도 폭발할 것 같고, 남편한테도 정말 짜증을 많이 내고, 밖에서 꾹꾹 참다가 내 주변 사람에게 계속 폭발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나 자신에게 폭발하고 있는 거더라고요. 내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안 들고 짜증이 나더니, 어느 날은 제가 저를 거꾸로 들고 성냥에 불 붙이듯이 아스팔트에 저를 긁어버리는 상상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일차적인 신호를 느꼈죠. ‘아, 나 뭔가 이상한데’라고요. 그리고 또 한 번은 아주 아무 일 없는 보통의 날이었는데, 소파에 잠깐 누웠는데. 못 일어나겠는 거예요. 몇 시간이고 못 일어나겠는 그 느낌에서 또 한 번 ‘나 지금 뭔가 이상하다’라고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한 것은 그림일기를 계속 그리는 거였어요. 저에게는 가장 일상적인 일이고, 솔직해질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걸로 제 안의 독소를 빼는 과정이랄까요. 또 심리상담도 받았고요.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연습이 필요하구나’를 깨닫게 됐어요. 아주 일상적인 표현이지만, 실제로 행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장 : 정말 그렇네요. 익숙하지만, 막상 하고 있냐? 물어보면 주춤하게 되는 느낌이에요. 그 이유가 머리로는 알겠는데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감’이 안 와서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나에게 친절해진다는 것, 어떻게 이해하면 좀 더 잘 와닿을 수 있을까요? 이 :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떠올려보는 거예요. 그 존재가 지금 나 같은 상황이라면 아는 뭐라고 말해줄까? 그걸 나한테 해주는 거죠. 어떤 분들은 사랑하는 존재를 이야기할 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세요. 그러면 저는 반려동물도 좋다. 어떤 존재이든 좋다고 말하거든요. 장 : 그러고 보니 저도 사람보다는 우리 집 반려견 튼튼이를 제일 먼저 떠올렸네요. 이 : 그 튼튼이, 어떻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잘 먹고, 즐겁게 공놀이하고, 산책 자주 하고, 편안하게 살아가길 바라실 거예요. 대단한 걸 바라지 않거든요. 그 정도의 안녕을 나에게도 적용해 주는 거, 그게 저는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거. 아주 기초적인 안녕을 돌봐주는 거요. “밥 잘 먹고, 잘 자고, 똥만 잘 싸도 돼. 그 정도만 해도 이미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이미 잘하고 있어.”라고 나에게 관대해지고 친절해지는 건데. 이게 처음에 어려워요. 익숙지 않고, 잘 받아들여지지 않거든요. 그럴 때, 마치 약을 먹다가 잘 안 들으면 용량 올리듯이 더 자주, 빈번하게 하는 거예요. 포스트잇을 사용해서 여기저기 눈 닿는 곳에 붙여두어도 좋거든요. 저는 실제로 사업이 안 좋게 끝나고 접고 나서, 자신을 책망하고 싶었던 시간에 오히려 더 관대해지고, ‘한량’처럼 지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그냥 카페 가고, 그 순간에 뭘 하고 싶은지 욕구를 자꾸 찾으려 하고. 그러면서 생각이 점점 바뀌더라고요. ‘어차피 사업은 망했고, 미래는 알 수 없다. 잘됐다. 어차피 이제 현재만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어요. 장 : 그러다가 다시 일하는 나로 궤도에 올라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 : 정말 별것 아니었어요. 제 석사과정 동기가 항상 ‘박사는 힘드니까 우리 같이 가서 서로 의지하며 해보자’고 말하곤 했는데, 때마침 같이 가자고 연락이 온 거예요. 사업은 망하면 다른 사람의 인생에까지 피해를 줄 수 있지만, 박사과정은 중도 포기하면 나 혼자 망하는 거잖아요. 아니 망하는 것도 아니죠, 뭐. 안 맞으면 한 학기만 하고 나오자. 이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잖아,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오히려 좋았던 점 같아요. 장 : 이 많은 과정에서 그림일기를 연재하는 것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치거나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진 않았나요? 타인을 실망하게 할지 걱정도 많이 하시고,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시는 작가님의 기질을 자주 엿볼 수 있었거든요. 그런 것 치고는 꾸준히 해나가시는 동력이 궁금했어요. 이 : 세상에서 제 마음대로 되는 게 거의 없어요. 그런데 그림은 하얀 종이 위에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거든요. 결국 저는 ‘자의성’이 사람에겐 정말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자유롭게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꾸준히 할 수 있었지요. 물론 댓글에 상처받는 순간은 많아요. 하지만 제 마인드는 “너 나 싫어해? 그럼 난 네 앞에 계속 나타날 거야”거든요 (웃음). 네가 날 망하기를 바란다면 난 네 뜻대로 되어주지 않을 거야. 망하지 않고 여기 계속 있을 거야. 날 좋아하는 사람들은 계속 내 그림일기를 봐줄 거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제가 망하지 않고 계속 존재하면 언젠가 지쳐 사라지겠죠. 웹툰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 썰’ 중에서 장 : 그런데도 언젠가 지쳐서 다시금 멈추고 싶은 순간이 올지도 모르잖아요. 그때엔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생겼나요? 이 : 저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할 거야.라고, 정해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때 원하는 것을 그때도 하려고 해요. 그렇잖아요? 우리 사회는 자기를 규정하는 것에 퍽 익숙하잖아요. 나는 오렌지 주스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난 이걸 먹어야 행복해. 이게 내 답이야. 하지만 저는 진짜 행복한 사람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늘은 스무디가 먹고 싶네’, ‘오늘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당기는걸’ 그렇게 삶의 순간마다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날그날, 그 순간순간의 내 결정권을 존중하는 거죠. 지금까지는 제가 그림일기로 심리학 이야기를 하고, 코칭 심리학자로 살고 있지만 평생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만두고 싶어지면 그만두는 것.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는 게 노하우라면 노하우예요. 장 : 그런 현재를 직시하는 작가님이 ‘현재’ 코칭을 하거나 독자와 소통하면서 가장 마음이 쓰이는 분들이 있다면 어떤 분들일까요? 그리고 그런 분들께 작은 변화의 팁을 주신다면? 이 : 완벽주의를 겪는 분들이 가장 마음에 쓰여요. 사실 제 연구 주제이기도 한데요. 제가 완벽주의자여서이기도 해요.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 앞에서, ‘이미 충분해요’ 이 말을 저 자신에도 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완벽주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자비의 마음이더라고요. 자비라는 것은 결국 고통에 대한 연민인데요. 내가 내 힘듦에 대해서 알아차려 주는 거죠. 세 가지 단계로 알아차릴 수 있는데,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가 길 가다가 미아가 돼서 엉엉 우는 아이를 본다고 칩시다. 그 아이를 도우려면 첫째, 아이를 발견해야 해요. 그리고 둘째, 휴머니티가 필요해요. 아이가 우는데 ‘아이가 우네’라고만 생각하면 지나쳐버리겠죠. 아이가 무언가 힘들구나, 인지하도록 하는 게 휴머니티죠. 그리고 세 번째 실천해야 해요. 도와줘야 하는 거죠. 이게 잘 안될 수 있어요. 자기 자신에게는 혹독해지거든요. ‘고작 이 정도 한 걸 가지고 힘들어하다니’라고 생각이 빠지기 쉬워요. 그럴 땐 아까 말했듯이 나 말고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라면 내가 뭐라고 할까? “차라도 한 잔 마셔” “좀 쉬었다가 해도 돼” 그걸 나에게 적용해 보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있는데요. 사실 시간이란 건 기본적으로 낭비라는 개념이 없어요. 낭비는 소유했을 때만 할 수 있는 건데, 우리는 시간을 소유하고 있지 않거든요. 시간이 우리 소유라면 오늘은 바쁘니까 48시간을 사용하고, 내일은 10시간만 사용하고 그렇게 ‘재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만 안 되잖아요?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우리는 우연히 그것을 향유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자본주의적 관점이 시간을 자원이라고 착각하고 강요하고 있는 것뿐이죠. 그러니 애당초 낭비하고 실패하는 시간을 정해두셨으면 좋겠어요. 하루에 잠깐이라도 허송세월 보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장 : 마지막으로, 사람 이서현은 이 삶의 순간들이 쌓여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나요? 이 : 저는 흥겨운 존재. 제가 원래 흥이 정말 많거든요. 그 나다운 흥을 이어가고 싶어요. 그냥 전 맛있는 것 먹으면 신나서 남편 옆에서 혼자 춤도 추고 그러고 사는 사람이거든요. 그 나의 흥을 해치지 않고, 장단 맞춰서 살아가고 싶어요. 나답게. 그거 이상 좋은 인생이 있을까요? 오프더레코드 : 독자 참여 질의응답 1. 궁금했던 건데,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섭외 오신 적 없나요? (by. 진아킴) 앗 첫 질문부터 빵 터졌네요. 없었습니다. (웃음) 2. 요즘 행복하세요? (by. 민경) 요즘 인간인 것 치고는 행복하지 않지만, 다행히 박사생인 것 치고는 행복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행복은 ‘즐거운 경험의 빈도’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졸업 연구를 하면서 쉽지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일상 속에서 즐거운 경험을 찾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근한 이불 안에서 뒤척이는 시간, 향초를 켜놓고 음미하는 것,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만끽하는 것처럼요!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3. 그림일기 볼 때와 인터뷰로 볼 때 다른 매력이 있으신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 울지만 겉으로 명랑한 척 하잖아요. 하지만 서밤님은 명랑함과 불안한 나. 다른 나의 두 모습을 굉장히 잘 다룬다? 잘 꺼내어 쓴다? 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비결은 뭘까요? (by. he****) 그렇게 봐주시니 정말 기쁘네요 :) 누구나 명랑하면서도 불안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우울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이기도 한 것처럼요! 그림일기를 그리며 그 모든 모습이 저라는 걸 아주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 돼!” 라든가, “늘 재미있는 이야기만 하자!”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자유롭고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었답니다. 제 구독자분들은 모두 다면적인 면을 갖춘 입체적인 분들이니, 제가 어떤 모습을 보여드려도 받아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4. 연구하시면서 완벽주의자들의 공통점, 이를테면 자라온 환경이 비슷하다거나 부모의 양육 방식의 공통점이 있다거나, 대체로 맏이라거나 그런 요소들이 있나요? 제가 너무 완벽주의자인데 만약 환경적 요인이 있다면 조금 안심될 것 같아서요. 내 개인의 성격 문제 100%는 아니니까요. (by. 지으니) 당연히! 저는 완벽주의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사실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완벽주의 경향은 2000년대부터 급격히 증가했다는 연구를 봤어요. 이러한 증가는 세계 경제 위기와도 관련이 있었고요.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실수하면 안 된다’ ‘실패하면 다음 기회가 없다’라는 불안감이 증가하게 되었고, 더불어 완벽주의 경향도 증가하게 된 것 같다는 해석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성격 특성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며 강화될 수 있어요. 부모의 양육 태도도 마찬가지이고요. 실제로 완벽주의 연구에서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양육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이 완벽주의 성향을 갖기 쉽다는 견해도 많습니다. 그러니 지금 나의 모습이 모두 나의 탓이라고 자책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5. 다시 심리상담센터 등 사업을 하고 싶지는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앞으로는 작가에 전념하시는 건지도요. (by. 해린) 저는 다시 사업을 할 것입니다. 졸업 후에는 제 코칭심리센터를 본격적으로 운영할 예정이에요. 이미 ‘리다이브’라는 상호로 상표권 등록도 마쳤답니다. 심지어 사무실 보증금과 1년 치 월세도 이미 다 모아놨을 만큼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진로 고민, 완벽주의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 창작자, 초기 사업가, 대학원생분들이 믿고 찾아올 수 있는 코칭심리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6. 코칭심리학과 심리상담학의 차이를 애매하게 알듯 모르겠어요. 주변에 추천할 때 어떤 사람에게 코칭을 받아보라고 하고 어떤 사람에게 심리상담을 받으라고 하면 좋을까요? (by. rubysayruby) 저는 물리치료와 PT(퍼스널 트레이닝)의 차이라고 설명드리는 편이에요. 제가 오십견이 있어서 물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운동보다는 증상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거든요. 마찬가지로 심리적인 증상으로 힘들고 버겁게 느껴질 때는 심리상담을 우선적으로 찾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다만 오십견 증상이 완화되었다고 제가 건강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코칭은 마음 근력을 단련하기 위한 정신건강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혼자 운동해도 좋지만, 전문가와 함께 운동하면 내 몸에 맞는 효과적인 운동법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코칭도 나를 위한,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전문가와 함께 찾아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7. 흥겨움은 타고난 성격이신건가요? 저도 흥겨운 사람이 되고 싶은데 되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by. 익명) 저는 솔직히 좀 타고났습니다. 그런데 흥이라는 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외향적인 성격이라 그 흥이 밖으로 많이 표출되는 형태인데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자신의 리듬을 타는 게 흥의 표현일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자신의 장단을 찾고, 그 장단을 즐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맞는 리듬에 귀 기울여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8. 허송세월을 보내다 너무 길게 보내고 정말 삶이 무기력해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돼요. 좋다는 건 알겠는데, 지혜롭게(?) 허송세월 보내는 법 있을까요? (by. 노래하는어스름) 의식적인 휴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체적으로 휴식을 선택하고, 그 휴식을 충분히 즐겨주는 것. 그런 시간을 갖는 게 저에게는 충전하는 시간이 되어주었답니다. 솔직히 지겨울 정도로 놀고 나면 몸과 마음이 근질거려서 뭐라도 하고 싶어지잖아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동기부여가 되는 게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렇게 쉬다가 정말 무기력해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내려놓고, “뭘 하면 내가 편안할까?” “지금 어떤 걸 해야 내가 즐거울까?” “지금 쉬는 방식이 나에게 맞는 휴식 방식일까?”라는 질문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휴식해도 무기력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신건강 전문가를 만나보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