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3년 기자생활을 시작한 정하석 기자는 행정부와 국회를 오가는 정치부 취재경험이 풍부한 기자입니다.
대법원, 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 파기환송…재산 분할 원점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금 1조 3천808억 원을 줘야 한다는 2심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었습니다. 대법원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오늘(1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서 "재산 분할 청구에 관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지난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천문학적 액수의 재산분할금 1조 3천808억 원 2심 판결은 무효가 됐고,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대법원 판결 취지에 맞게 재산 분할 액수를 다시 정하게 됐습니다. 앞서 항소심에서는 SK그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향력 등으로 가치가 크게 상승했고 여기에 노 관장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고 인정해 최 회장 명의의 재산 1조 3천808억 원을 노 관장에게 줘야 한다고 봤습니다. 양측의 순자산 합계를 약 4조 원으로 산정하고 이를 기여도에 따라 최 회장 65%, 노 관장 35% 비율로 나눈 것입니다. 노 관장은 항소심 과정에서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이 SK그룹의 성장에 '종잣돈'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주장하며 약속어음과 메모 등 관련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SK그룹 성장과 최 회장의 재산이 불어나는 과정에서 자신이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항소심에선 노 관장의 이런 역할을 인정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노태우 비자금의 기여 인정하더라도 불법원인급여"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이 300억 원을 지원했다고 하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대통령 재직 시 받은 뇌물로 보인다"며 이를 '불법원인급여'라고 판단했습니다. '불법원인급여'는 민법상의 법률용어로, 요약하면 '나쁜 짓을 하기 위해 준 돈이나 물건은 다시 돌려달라고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비자금이 애초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돈이니 만큼 이를 노 관장의 재산 기여로 봐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노태우가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해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 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 영역 밖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여도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라는 노 관장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노 전 대통령의 행위가 법적 보호 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 분할에서 피고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최 회장이 한국고등교육재단과 최종현 학술원, 친인척 18명 등에게 증여한 SK주식회사 주식 329만 주 등도 재산 분할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런 증여가 앞선 재판에서 인정된 혼인관계 파탄일(2019년 12월 4일) 이전에 이뤄졌고, 이는 최 회장이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해 부부 공동재산을 유지하기 위한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재산 분할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 회장 측은 대법원 선고 직후 "SK그룹이 노태우 정권의 불법 비자금이나 지원을 통해 성장했다는 부분에 대해 대법원이 명확하게 '부부 공동재산의 기여 인정'은 잘못이라고 선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노 관장 측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재산 분할 1조 3천808억 원을 판결한 지난해 항소심 당시에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에 대한 헌법적 가치를 깊게 고민해 주신 아주 훌륭한 판결"이라는 반응을 보인 바 있습니다.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 '뇌물' 인정…이 돈은 어떻게?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SK그룹으로 흘러들어간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을 '뇌물'로 사실상 인정하면서 재산분할 산정에서 빼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30여 년간 이에 대해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불법 비자금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점도 대법원은 지적했죠. 그렇다면 부정 불법한 자금을 챙기고 이를 숨겼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한 책임 추궁은 이혼 소송에서 재산 분할이 어떻게 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번 대법원의 판단은 민사상 판단이라는 점에서 곧바로 비자금의 국고 환수나 형사 처벌로 이어지긴 어렵습니다. 약속어음 6장, 그리고 관련 메모가 나왔다고는 하나 그 돈이 어디로 갔고 어떻게 굴려져 지금 어디에 있는지 구체적인 부분은 여전히 모호한 데다 공소시효도 한참 지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정부패한 권력의 비자금이 혼인관계로 맺어진 특정 기업으로 들어간 사실을 사법부가 인정한 만큼 이 돈을 되돌리기 위해 범죄 수익 환수를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독립몰수제' 도입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독립몰수제는 유죄 판결 전이라도 범죄 수익으로 의심되는 자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현재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관련 당사자가 사망하거나 공소시효가 만료됐더라도 범죄 수익이 특정된다면 환수한다는 개념입니다. 다만 죄의 확정 없이 자산을 몰수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반론도 있어 신중하게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현재 여당 의원들 사이에 범죄수익은닉처벌법 개정을 통해 독립몰수제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입법화될지 주목됩니다. 디자인 : 정유민
3차 부동산 대책…'대출 옥죄기'와 '규제지역 확대' 이재명 정부가 세 번째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6월 27일 대출 규제와 9월 7일 공급 확대 대책에 이어 이번엔 더 강력한 대출 규제 대책입니다. 서울 인기 지역에서 집값이 뛰면 주변 지역이 따라가는 연쇄 상승의 고리를 끊어 보자는 정책 목표, 대출을 활용한 고가 주택 구입과 상급지 갈아타기 수요를 억누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6·27 대책을 통해 6억 원으로 일률 제한했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집값에 따라 달리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15억~25억 원 구간에서는 4억 원까지, 25억 원을 넘어서는 주택에 대해서는 2억 원까지 주담대 상한을 설정했습니다. 15억 원 이하 주택의 경우에는 현행 6억 원의 대출 한도가 유지됩니다. 규제지역의 주담대 스트레스 금리는 기존 1.5%에서 3%로 올라갑니다. 스트레스 금리는 미래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해 대출 한도를 더 보수적으로 산정하는 것인데 스트레스 금리가 올라가면 당장 금리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득별 대출 한도가 줄어들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연봉 800만 원 직장인이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스트레스 금리 3%가 붙어 대출 한도가 기존 4억 6천900만 원에서 4억 원으로, 6천900만 원 줄어드는 식입니다. 서민 주거 안정을 이유로 이제까지 건드리지 않았던 전세대출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1주택자 임차인이 전세대출을 받을 경우 이자 상환분이 DSR에 반영됩니다. 이런 전반적인 '대출 옥죄기'와 함께 오는 20일부터 내년 12월 31일까지 서울 25개 구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서울 용산∙서초∙강남∙송파, 이렇게 4개 지역이었는데 서울 전역과 경기 남부 인기 지역으로 확장되는 겁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주택을 살 때는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허가받기 위해선 2년간 실거주 목적임을 증명해야 하고 갭 투자 목적의 주택 거래는 허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또, 이들 지역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40%로 제한되고,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양도세도 중과됩니다. 한마디로 서울과 수도권 인기 지역에 대한 투기 목적의 거래와 현금 없이 이른바 '영끌'로 집을 사는 '패닉 바잉' 현상을 대출을 조여 막겠다는 겁니다. <3차 부동산 대책 주요 내용> ▷ 15~25억 원 주택 주담대 한도 4억 원, 25억 원 이상 주택 주담대 한도 2억 원 ▷ 주담대 스트레스 금리 기존 1.5%에서 3%로 상향 ▷ 대출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적용 ▷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2025년 10월 20일~2026년 12월 31일) -기존 허가구역(서울 서초∙강남∙송파∙용산) 포함 서울 25개 자치구 전체 -경기 12개 지역(과천, 광명, 성남 분당∙수정∙중원, 수원 영통∙장안∙팔달, 안양 동안, 용인 수지, 의왕, 하남) "부동산 불법 행위 직접 수사"…총리 소속 부동산 감독기구 신설 정부는 이와 함께 부동산 불법 행위를 전방위로 감독하는 국무총리 직속 전담 조직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은 국토부 내 부동산소비자분석기획단이 감독 역할을 맡고 있는데, 이를 확대 개편해 총리 산하 전담기구로 두고 조사·모니터 기능을 넘어 직접 수사까지 할 수 있는 강력한 기구를 만든다는 겁니다. 이런 전담 기구는 문재인 정부 때도 창설을 시도했지만 개인정보와 재산권 침해라는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습니다. 신설되는 기구는 기존 부처들의 부동산 거래 감시 업무와 유기적인 연결과 협조를 꾀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토부는 부동산 특사경을 도입하고 경찰청도 전국 경찰 841명을 편성해 '부동산 범죄 특별단속을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 담합, 신고가 거래를 신고하고 취소하는 방식의 집값 띄우기, 재건축∙재개발 비리 등이 주요 단속 대상입니다. 국세청도 적극 나서는데, 임광현 국세청장은 "30억 원 이상 초고가 주택 거래와 고가 아파트를 취득한 외국인∙연소자에 대해 전수 검증을 지속하겠다"며 "검증 과정에서 사업 소득 누락이나 법인 자금 부당 유출이 확인되면 관련 사업체까지 조사를 확대하고, '부모 찬스'로 취득한 경우 부모의 소득 원천도 들여다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부 투기 세력들이 집값으로 장난을 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 집값은 계속 오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는 현상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한계치에 이른 가계 대출과 과도한 금융 비용, 이에 따른 가처분 소득의 감소는 내수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우리 경제에 전반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아껴둔 '최후의 카드'…세제 개편 이번 부동산 대책에서 세제 개편은 빠졌습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생산적 부문으로 자금흐름 유도, 응능부담 원칙, 국민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부동산 세제 합리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부동산에 잠겨 있는 돈을 생산적인 곳으로 유도하고, 납세자의 부담 능력을 고려해 과세 수준을 결정하며, 조세 저항이 일어나지 않는 합리적인 선에서 세제 개편을 준비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책에 따른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을 살펴보면서 '최후의 카드'로 남겨놓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는 정부 대책을 비웃듯 '정부 대책에 대한 대책'을 만들어 나가는 부동산 시장과 투기 세력에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 무기를 예비해 놓겠다는 뜻과 함께 지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도 있어 보입니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최고 6%까지 인상하고 공정시장가액비율을 95%까지 높이는 등 강력한 세제 개편을 추진했지만 조세 저항과 거래 절벽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고, 임대차 3법 부작용과 LH 사태까지 겹치면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었습니다. (참고: 정부가 재산세나 종부세를 산출하기 위해 과세표준을 정하는데, 과세표준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에 적용하는 할인율이 공정시장가액비율입니다.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도입되었고, 종부세의 경우 80%로 유지되던 공정시장가액비율은 문재인 정부 들어 95%까지 올랐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60%로 대폭 낮아졌습니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세제 개편 카드는 대략 보유세 강화와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그리고 양도세∙취득세 조정 등이 있습니다. 집값 안정을 위한 정책 수단은 수요 제한과 공급 확대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주요 수요 제한 수단으로는 이번 정부 대책의 핵심인 대출 규제와 토지거래 허가, 보유세와 취득세 인상 등이 있고, 공급 확대 수단으로는 신규 주택 건설과 보유세 강화∙양도세 인하 등이 있습니다. 특히 신규 주택 건설에는 시간이 걸리니 다주택자가 보유한 여분의 주택이 합리적 가격으로 시장에 나오게 하는 방식의 공급 확대가 매우 중요하고 이 부분의 핵심적 정책 수단이 바로 세제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칫 조세 저항이나 거래 절벽, 불로소득 논란 등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으니 정부로서도 신중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집값 잡힐까?…전문가 진단은? 일단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부동산 대책이 세제 개편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빼고는 과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보다 강력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부동산 불패' 신화와 집값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는 장기적 처방은 될 수 없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단기적으로 시장 거래가 줄고 가격 상승세도 둔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의 신뢰를 줄 만한 획기적인 공급 대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점점 '약발'이 떨어질 것이라는 거죠. 현금 부자들의 상급지에서의 '그들만의 리그'도 여전할 거라고 하고요. 또,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이 규제에 대한 내성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도 경고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시간 걸리는 신규 주택 공급도 꾸준히 추진해야겠지만 당장의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선 기존 다주택자들이 여분 주택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선 보유세를 올려 다주택 보유의 부담을 늘리고 거래세를 낮춰 매매를 유도하는 방향의 부동산 세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디자인 : 정유민
난장판 속 등장한 팻말...'조요토미 희대요시' 어제(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는 충돌이 예고된 자리였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출석과 증언 여부를 놓고 여야, 그리고 대법원이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여왔죠. 회의 시작부터 고성이 오가고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국정감사장 퇴장을 허락하지 않은 채 의원 질의를 강행했습니다. 첫 질의에 나선 무소속 최혁진 의원. 조 대법원장과 대법원을 '친일 사법부'로 몰아붙였습니다. 최 의원이 제시한 조 대법원장의 '친일' 근거는 이렇습니다. 최혁진/무소속 의원 (어제 국회 법사위 대법원 국정감사) "제가 제보받은 내용입니다. 조희대 대법원장 임명을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추천한 사람이 김건희의 계부 김XX라고 합니다. 김XX는 일본 태생이고 일본 황실가와 깊은 인연이 있고 일본 통일교와도 밀접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게 사실이면 김XX를 통해 일본 입맛에 맞는 인물을 대법원장으로 추천한 것입니다." 최 의원이 조 대법원장의 추천인으로 지목한 김XX가 정말 추천인이 맞는지, 김건희 여사의 계부는 확실한지, 정말 일본 황실, 일본 통일교와 밀접한 인연이 있는지,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조 대법원장을 친일이라 불러도 될지, 최 의원은 중간 연결고리는 생략하고 바로 친일을 주장했습니다. 다만 '친일'의 증거로 두 가지 재판 사례를 들었습니다. 2023년 일본 사찰의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반환 소송에서 일본 사찰 승소 사례와 2023~2024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한 추가 소송 기각 사례입니다. 그러면서 최 의원은 질의 도중 팻말을 하나 들어 보입니다. 16세기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빗대 '조'요토미 '희대'요시라고 조롱하고 조 대법원장의 얼굴에 일본 상투를 합성했습니다. 조 대법원장에게 '친일' 프레임을 씌운 것이죠. 최 의원은 주어진 질의 시간의 대부분을 조 대법원장의 '친일'을 주장하는 데 썼습니다. 대법원에 대한 국감 질의였지만 조 대법원장이나 대법원 관계자의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은 없었습니다. 사실 '조요토미 희대요시'가 최혁진 의원의 신조어는 아닙니다. 지난 5월 1일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 나오고, 이틀이 지나 열린 규탄 집회에서 한 집회 참가자가 들고 나와 눈길을 끈 팻말에서 비롯됐습니다. 당시 이재명 후보에 대한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 조롱의 신조어가 밈처럼 번졌고, 대법원의 '친일'프레임을 뒷받침할 과거 판결도 함께 다시 부상했습니다. 민주당 주장에 따르면 어제 대법원 국정감사에서의 쟁점은 이재명 당시 후보의 유무죄 판단 이전에 이례적으로 신속했던 파기환송의 경위를 따지겠다는 것이었는데, 최 의원은 이를 '친일'로 환치한 셈이죠. 조 대법원장의 이석 여부로 난장판이 된 법사위 회의장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조 대법원장을 면전에 두고 온 국민이 지켜볼 수 있도록 전국으로 생방송되는 와중에 말입니다. 최 의원에게는 회의석상의 발언으로 처벌받지 않는 국회의원 면책특권이 있습니다. 쏟아진 비판…"천박하고 흉한 모습", "망신 프레임" 정치권 안팎에선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금태섭 전 의원은 SNS를 통해 "정치하면서 흉한 것 많이 봤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가장 천박하고 흉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습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광란의 홍위병 쇼"라고 표현했고,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대법원장을 조롱한 합성사진까지 등장한 법사위 국감장은 사법부를 희화화하며 민주주의의 품격을 무너뜨린 민주당의 난장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여당에서도 쓴소리가 나왔습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런 모습들이 방송이 됨으로써 조 대법원장을 압박하고 망신 주고 했다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겠느냐"며 "본질적인 답변을 이끌어내는 회의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다만 "최 의원은 민주당에서 제명된 무소속 의원"이라며 민주당과 분명한 선을 그었습니다. 최 의원은 오늘 새벽 SNS에 팻말을 든 자신의 사진을 올리며 "국감 첫날, 성심을 다했다"고 자평했습니다. 기본소득당 복귀 거부, 민주당 잔류 희망한 '무소속' 의원 최혁진 의원은 새진보연합(현 기본소득당) 몫으로 배정된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로, 민주당 비례대표였던 강유정 의원이 대통령실 대변인으로 들어가면서 의원 자리를 승계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의원이 된 이후에는 본래 소속 정당인 기본소득당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최 의원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는 민주당에 최 의원 제명을 요청했고, 최 의원은 민주당에서 제명돼 무소속으로 의원직을 수행하게 됐습니다. 당시 용 대표는 최 의원에 대해 "당선이 되든 되지 않든 기본소득당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며 "책임 있는 정치가로서 결코 취할 수도, 취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어제 팻말 든 모습이 방송에 공개된 뒤 최 의원의 SNS에는 "잘했다", "속이 시원하다"는 내용의 댓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민주당으로선 최 의원과 엮이는 게 부담스러울지 몰라도, 무소속 신분으로 주목받기 어려웠던 최혁진 의원으로선 '매우 적절한 한방'이었다고 자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소식 더…윤 부부, 프랑스 순방 때 '개 의전' 요구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윤석열 전 대통령 관련 사실 하나 더 전해드릴게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지난 2023년 프랑스 순방 당시 반려견에 대한 의전을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23년 프랑스 방문 당시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반려견 동반을 계획하며 프랑스 공관에 이에 맞춘 의전을 준비해 달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호텔 스위트룸에 개가 머물 공간을 요구하고 반려견 전용 차량과 반려견 담당 대사관 직원을 지정하는 등 어이없는 상황이 있었다"고 폭로했습니다. 다만 실제로 윤 전 대통령 부부의 프랑스 방문 당시 반려견 동반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에 대해 "파악을 해보니 외교부를 통하지 않고 대통령실에서 직접 주프랑스 대사관에 연락했던 것으로 나타났다"며 "철저히 조사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 부부의 반려견 사랑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외국을 방문하면서 스위트룸에 자리를 마련하려할 정도였을 줄은 미처 몰랐던 국민이 대부분일 듯합니다. 디자인 : 정유민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 시작…여야 모두 '송곳 검증' 예고 2025년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됐습니다. 오늘(13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800여 개 피감 기관들을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국정감사입니다. 원래 국정감사는 '야당의 시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정책의 숨겨진 부분을 드러내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무래도 야당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지난 6월 대선을 기점으로 거대 여야 두 정당의 위치는 바뀌었습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여'면서 '야', '야'면서 '여'의 성격을 갖고 있는 거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국정감사를 '야당의 시간'으로 보내고 싶은 두 정당은 각각 6월 이전의 정부와 이후의 정부에 대해 '송곳 검증'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감을 하루 앞두고 전 정부 부처에 "여야 구분 없이 적극 협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우리가 야당이라는 자세로 윤석열 정부의 망가진 1060일을 철저히 파헤칠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국감을 '내란 청산 국감'이라 부릅니다. 집권 여당으로서 방어하기보다는 공격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갖고 가겠다는 거죠. 그래서 박수현 대변인의 말처럼 들여다 보겠다는 기간도 윤석열 정부 전 기간입니다. 이제 여당이 되었으니 조금 더 깊은 정보에 접근하기도 쉬워질 겁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107명 의원 모두가 민생 싸움꾼이 되어 이재명 정권이 외면한 민생을 세심히 챙기겠습니다." 국민의힘은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정 혼란을 이슈화하겠다는 전략입니다. 난항을 겪고 있는 한미 관세 협상, 최근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 고문 사건에 대한 대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이후 복구 진척 상황, 심상치 않은 수도권 집값 대책 등이 검증의 주요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또 이번 국감이 탄핵과 대선 패배, 당내 혼란 등으로 어수선했던 당 분위기를 다잡고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되살릴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첫날부터 시끄러웠던 법사위 국감장…조희대 대법원장의 '침묵' 국감 첫날, 시선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 쏠렸습니다. 국감 전부터 조희대 대법원장의 출석과 증언 여부를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대법원의 입장이 엇갈렸죠. '87년 헌법 체제' 이후 대법원에 대한 국감에선 대법원장이 인사말을 한 뒤 국감장을 떠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사법권 독립과 사법부 수장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대법원장을 상대로 한 날 선 질의는 자제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여당은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신속하게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에 대해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구체적 경위를 조 대법원장에게 직접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야당은 헌법상 명기된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폭거'라고 반발했고, 대법원도 '사법권 독립'과 '재판부 합의 과정의 비공개 원칙'에 어긋난다며 조 대법원장의 증인 출석과 증언에 반대해 왔습니다. 양측의 입장이 이렇게 첨예하게 맞선 만큼 오늘 대법원 국정감사에선 예상대로 시작부터 시끄러웠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국정감사 인사말에서 "어떠한 재판을 했다는 이유로 재판 사항에 대해 법관을 증언대에 세우는 상황이 생긴다면, 법관들이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이 위축되고 심지어 외부의 눈치를 보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을 마친 뒤 이석 형태로 국감장을 퇴장하려 했으나, 민주당 소속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이석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추 위원장은 "대법원장님께서는 이번 국회 출석과 관련해 본인에게 불리한 상황에서는 관례를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하면서 정작 지난 5월1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수많은 사법부 내부 관례를 스스로 깨뜨린 바 있다"며 대법원장의 '인사말 이후 퇴장 관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 증인 채택에 대한 불출석 의견서를 제출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해 증인 선서 없이 참고인 자격으로 질의와 응답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대법원장 감금'이라며 거세게 항의했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질의는 이어졌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며 침묵으로 대응했습니다. 고성이 오가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오전 내내 이어졌고, 조 대법원장은 결국 11시 38분 정회 이후 국감장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모레 대법원 현장 국감을 단독 의결해 놓은 상태입니다. 오늘 같은 상황이 한 차례 더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또 하나의 키워드 '김현지'…증인 채택 놓고 갈등 예고 국정감사 첫날 조희대 대법원장의 국감 출석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면, 국감 마지막 날의 초점은 단연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증인 출석 여부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시민운동 시절부터 함께 해온 '오랜 측근' 김현지 실장은 '보이지 않는 핵심 실세'로 지목돼 왔습니다. 국정감사가 임박한 시점에 즈음해 국감 출석이 불가피한 총무비서관 자리에서 국감에 출석한 전례가 거의 없는 제1부속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김 실장을 보호하기 위한 인사 아니냐는 의혹이 야당으로부터 제기됐습니다. 물론 대통령실에선 "국감과는 무관한 인사"라고 해명했지만, 국민의힘에선 '애지중지 현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국회가 결정하면 김 실장은 100% 출석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출석 가능성은 아직 불투명합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민주당은 우리 당이 김 실장을 운영위를 포함한 5개 상임위에서 부르겠다고 하니 출석이 어렵다고 한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 "증인 채택은 여야 합의 사항으로, 정쟁 요소가 없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합의할 수 있다. (김 실장의 국감 출석은)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원내대표 "필요한 증인이라면 예외가 없다." 참 할 일이 많은 국정감사 같은데 시작과 끝이 증인 채택 논란이라니 어딘지 씁쓸합니다. 날카로운 정책 질의와 방만한 행정 운용에 대한 감시, 그리고 더 나은 방향을 위한 진지한 토론이 국정감사의 본질이라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 같은데, 한 건 폭로와 진영의 환호가 정치인들에겐 여전히 유리해 보입니다. 언론도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부분을 더 부각시켜 온 것이 사실이니까요. 문제는 스포츠 경기 관람하듯 국정감사를 보면서 열광하고 욕하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정치를 소비하기에는 정치에 드는 비용과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디자인 : 정유민
이재명 대통령이 제80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오늘 미국 뉴욕으로 출국했습니다. 지난 6월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적은 있지만 취임 직후 국제무대 데뷔의 성격이 강했고, 치밀한 준비 하에 이뤄지는 첫 다자 외교 무대는 이번 방미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국제 질서의 거대한 지각 변동 조짐이 감지되는 시점에서 양자나 다자 외교 모두 각 나라의 생존이 걸린 전쟁터가 돼가는 분위기입니다. 다음 달에는 우리나라 경주에서 미중 정상이 동시 참석하는 메가 이벤트, APEC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습니다. 다가오는,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격랑 앞에서 이 대통령은 어떤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을까요? 마침 오늘 이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 기사 2건이 소개됐는데 그 생각의 단초를 읽는 데 도움이 됩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3천500억 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 - 이 대통령, 지난주 로이터 통신 인터뷰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당초 발표한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490조원)를 투자하는데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공동 성명이나 서명식 같은 공식화 행사는 없었죠. 대통령실은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된 회담'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 일본이 15% 관세에 5500억 달러(764조원) 투자를 약속하고 공식 서명까지 한 것으로 알려지자, 우리는 서명 안 해도 되느냐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얻으러 간 것이 아니라 방어를 하러 간 것"이라며 "이익이 되지 않는 (합의문에) 서명을 왜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기자회견 다음날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노골적인 압박 발언이 나옵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은 합의문에 서명했다. 한국도 선택해야 한다. 서명하거나 관세를 내라"고 말했습니다.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으면 관세 폭탄을 때리겠다는 으름장입니다. 구두 합의 이후 구체화를 위한 실무협의가 난항을 겪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 대통령은 외신 인터뷰에서 일본과 한국의 외환보유액 차이를 언급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3000억 달러인데 비해 한국은 4160억 달러, 외환보유 규모에 비추어 볼 때 한국에게 투자하라는 3500억 달러는 일본의 5500억 달러보다 훨씬 가혹하고 자칫 외환 위기로까지 몰릴 수 있는 엄청난 규모라는 겁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주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선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미국의 요구에 동의했다면 탄핵 당했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혈맹 사이에 최소한의 합리성은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 "상업적 합리성을 보장하는 세부 합의를 마련하는 것이 지금의 핵심 과제이자 가장 큰 장애물" - 이 대통령, 지난주 로이터 통신 인터뷰 미국을 향해 우리가 감당 가능한 선에서 요구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아무리 오랜 동맹관계라고 해도 상대 나라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협상은 협상이 아니라는 거죠.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의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떤 이면합의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외교 협상에서 국익 추구는 어느 나라에서나 기본 중의 기본 명제입니다. 다만 협상에는 상대가 있고 협상을 지배하는 힘은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국익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세계가 두 진영으로 나뉘고 있으며, 한국은 그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다." "상황은 점점 더 어렵지만, 두 진영이 완전히 문을 닫을 수는 없으니 우리는 중간 어딘가에 자리 잡을 수 있다." - 이 대통령, 지난주 BBC 인터뷰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주의에 입각한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동맹국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투하되면서, 미국 중심 세계 질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습니다. 국제적 질서에는 나름의 기준과 원칙이 있고, 그 중심에 미국이 있어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거죠. 21세기 들어 이른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바탕으로 국력을 키우고 한반도 평화를 모색해왔던 우리에게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환경이 도래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정밀한 상황 분석력과 함께 이른바 '위치 선정'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 같습니다. 중간 어딘가에서 그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고 국익을 최대화하는 것을 우리 국민 누군들 원치 않겠습니까만, 문제는 그게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각의 굴종적 사고" - 이 대통령, 9월21일 페이스북 "북핵 동결은 '임시 응급조치'로서 실행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 - 이 대통령, 지난주 BBC 인터뷰 이 대통령은 '굴종적 사고'라는 강한 비판에 이어, "'똥별'이라는 과한 표현까지 쓰면서 국방비를 이렇게 많이 쓰는 나라에서 외국 군대가 없으면 국방을 못한다는 인식을 질타한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른다"며 돌아가신 노 대통령을 소환했습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지만, 한미안보협상이 진행 중인 시점을 감안해 다소 '로키'를 유지해왔던 사안입니다. 주한미군을 '비용' 차원에서 접근하고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를 인도 태평양 지역으로 확장하려는 복안을 갖고 있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국내 여론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한 이슈 제기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물론 지지층 결집을 위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소환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외신 인터뷰에서 북핵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당장 비핵화를 요구한다고 해서 그 말을 들을 북한이 아니니, ①북한 핵·미사일의 동결부터 시작해 ②축소와 ③비핵화로 이어지는 단계적 해법이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할 현실적 주체로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꼽았습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경험이 있어서 북한도 북미 대화에 대해선 어느 정도 열려 있다는 예측에 기반합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어설픈 반미 선동, 반트럼프 선동 말라." -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오늘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한미동맹 대체하는 자주국방은 북중러의 축배"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오늘 SNS "미국이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 인정에 기초해 평화공존 바란다면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 없어"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21일 北 최고인민회의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대한 야당들의 비판은 다소 정치적인 공세와 함께 국익에 대한 시각 차이에 기반합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정부가 정말 관세협상을 타결할 의지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며 "계속해서 반미 감정만 부추기는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정부가 관세 문제를 모두 다 기업들에게 떠넘기고 발을 빼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미감정만 부추기는 발언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장 대표는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장 대표 말대로 정부가 관세 문제에서 발을 빼려 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미국발 관세 폭탄을 불안해하는 기업들과,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시위장에 나오는 일부 지지층을 동시에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됩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한미동맹과 상호보완적인 자주국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북한 하나가 아니라 북중러 기반의 안보 위협이기 때문에 자주국방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구실이 아니라, 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토대가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중러 기반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안보 협력이 자주국방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주장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어제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북한 핵을 인정한다면 북미 대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한국에 대해선 "마주 앉을 일 없고 결단코 통일은 불필요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 메이커'로 만들기 위한 '페이스 메이커'가 되겠다고 했는데, 김 위원장이 이 대통령의 역할은 필요 없다고 걷어찬 셈입니다. 이렇게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를 통한 국익 추구 외교 정책에는 넘어야 할 장애 요소와 극복 과제들이 많습니다. 시기적으로 그렇고, 진영이 강화된 국내 정치 지형을 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결국 국내적으론 꾸준한 설득과 지지 여론 확산, 국외적으론 냉철한 상황 분석과 유연한 대응 전략 수립이 관건일 텐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 고민입니다. 사진 자료 : 연합뉴스, 디자인 : 정유민
차기 정치 지도자 누구?...'없음' '모름' '응답 거절' 59% 강성일수록 지지율↑?...조국 8%, 장동혁 7% 한국갤럽이 오늘 발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여론조사입니다. 장래 대통령감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47%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모른다'와 '응답 거절'까지 포함하면 59%에 달합니다. 국민 10명 중 6명의 눈에는 장래 대통령감이 안 보인다는 뜻이지요. 나머지 4명의 의견은 어떻게 갈렸을까요? 아래와 같습니다. 물론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100일이 갓 지났는데 벌써부터 차기를 생각한다는 건 조금 이르지 않느냐는 생각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선호도 10%가 채 되지 않는 정치인들이 고만고만하게 줄을 서있는 모습은 좋게 말하면 대한민국 정치의 '역동성', 안 좋게 말하면 대한민국 정치의 '시계 불투명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1위는 조국 조국혁신당 비대위원장의 8%입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7%),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4%),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4%) 등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오차범위가 ±3.1%p이니 앞뒤 순위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일단 진보, 보수 양 진영을 막론하고 강성 이미지를 가진 지도자들이 수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조국 비대위원장은 조국혁신당이 아닌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도 17% 지지를 얻어 정청래 민주당 대표(9%)를 앞질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부동의 압도적 1위는 '없음'과 '모름', '응답 거절'입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조사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면서도 보수 진영의 선두 주자로 떠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전당대회 전 1.5선 의원으로서 장동혁 대표의 존재감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괄목상대(刮目相對)입니다. 집권 초기 현재 권력은 강하고, 차기 대선은 멀어서 아직 미래 권력에 힘이 붙진 않고, 존재감을 보이고 두각을 나타내기엔 민심보다는 당심에 기대는 게 효과 빠르고, 지금 그런 시간들을 지나고 있지만 결국 점점 중요해지는 건 59%의 '없음', '모름', '응답 거절'일 겁니다. 이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 60%...전주 대비 2%p 상승 9월 3주차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60%를 기록했습니다. 지난주보다 2%p 상승한 수치입니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31%로 전주에 비해 3%p 하락했습니다.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법한 이번 주 주요 이슈로는 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태가 일단락되어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했고,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50억 원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코스피 지수는 3,400을 돌파했으며.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공방,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구속, 롯데카드 고객정보 해킹 피해 등이 있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초 64%로 출발해 8월 셋째 주 56%까지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올라 60% 초반 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정권의 험지라고 할 수 있는 대구 경북 지역(잘하고 있다 49%)과 부산 울산 경남 지역(잘하고 있다 53%)에서도 긍정적 평가 의견이 부정적 의견을 앞서 있습니다. 긍정 '경제 민생' '소통' '외교'...부정 '외교' '과도한 복지 민생지원금'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긍정 평가한 이유로는 '경제∙민생'이 13%로 가장 높았고, '소통'(12%), '외교', '전반적으로 잘 한다'(각 11%) 순이었습니다. 긍정 평가 이유 중 '외교'는 부정 평가의 이유로도 수위(18%)에 올랐고, '과도한 복지∙민생지원금'(10%), '전반적으로 잘 못한다'(9%)도 부정 평가의 이유로 조사됐습니다. 같은 정책과 같은 성과를 놓고도 이념과 진영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 41%, 국민의힘 24%...전주와 큰 변화 없어 9월 3주차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이 41%, 국민의힘이 24%를 기록했습니다. 전주에 비해 민주당은 1% 포인트 떨어지고 국민의힘은 변함이 없는데, 6월 대선 이후 민주당 40% 초중반 대, 국민의힘 20% 초중반 대의 지지율은 큰 움직임 없이 석 달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 드린 설문조사는 한국갤럽이 9월16~18일까지 사흘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방식으로 조사했으며,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 응답률은 11.8%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 조사기간 : 2025년 9월 16~18일 - 표본추출 : 이동통신 3사 제공 무선전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 - 응답 방식 : 전화조사원 인터뷰 - 조사 대상 :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 - 표본오차 : ±3.1%포인트(95% 신뢰수준) - 접촉률 : 44.9%(전체 투입 유효 번호 대비 통화 연결) - 응답률 : 11.8%)총 통화 8,466명 중 1,001명 응답 완료) - 한국갤럽 자체 조사 사진 자료 : 연합뉴스, 한국갤럽, 디자인 : 정유민
여, "조희대 사퇴해야...특검 수사 필요" ... 야, "정치 공작"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뜨겁습니다. 여권은 사퇴하라 압박하고, 국민의힘은 정치공작이라고 반발합니다. 시작은 그제 민주당 부승찬 의원의 국회 대정부질문이었습니다.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국회 대정부질문 9월 16일 부승찬 의원 : 헌재에서 대통령 파면 결정이 이뤄지고 3일 후인 4월 7일경에 한덕수, 정상명, 김XX, 그리고 조희대 대법원장이 만났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함께 자리했던 인물 면면도 놀랍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의 발언 내용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물론 제보 내용이긴 합니다. 그날 점심 식사 자리였는데요. 이 모임 자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무슨 얘기를 했냐.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대법원에서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 발언을 윤석열에게도 했다고 하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이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법원장 스스로가 사법부의 독립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한 것을 넘어서 내란을 옹호하고 한덕수에게 정권을 이양할 목적으로 대선 판에 뛰어든 희대의 사건입니다. 사법부의 신뢰가 무너졌다고 보여집니다. 본인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위해서라도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총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김민석 총리 : 글쎄요. 워낙 충격적인 내용이어서 사실은 저도 그랬는데요. 사실이라면 치명적인 상처 내지는 국민들의 신뢰에 상처를 주는 내용이겠죠. 그래서 글쎄요. 제가 이거 사실이라면, 이렇게 가정하기보다도 진위가 정확히 밝혀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 5월 서영교 의원 최초 제기...조희대, "대화나 만남 자체 없었다" 정청래 "떳떳하면 수사 받아야"...장동혁 "'지라시' 공작 수사해야" 사실 이 내용은 지난 5월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처음 제기했습니다. 제보를 받았다며 법사위 회의장에서 제보자의 발언 녹취를 틀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일회성으로 지나가는 듯싶더니 넉 달 만에 다시 이슈가 된 것이죠. 그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당 지도부가 전면에 나섰습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정치적 편향성과 알 수 없는 의혹 제기 때문에 사퇴 요구가 있는 만큼 조희대 대법원장이 직무를 계속 수행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며 사실상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조 대법원장이 어제 입장문을 통해 "한덕수 총리와는 물론이고 외부의 누구와도 논의한바 전혀 없으며, 거론된 나머지 사람들과도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같은 대화 또는 만남을 가진 적이 없다"고 의혹을 전면 부인하자, 정 대표는 공세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SNS를 통해 "그렇다면 특검 수사로 진실을 밝히는 수밖에 없다"며 "떳떳하다면 수사를 받으라"고 요구했습니다. "12.3 비상계엄 때 빠르고 명확한 반대 목소리를 못 냈고, 서부지법 폭동 때 강력한 메시지도 못 냈던 조 대법원장이 본인 의혹엔 참 빠른 입장을 냈다"면서 "사법부 수장으로서 자격 미달이니 그냥 조희대 변호사로 사시길 바란다"고도 말했습니다. 조국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미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준비해뒀다"며 "스스로 거취를 고민하는 것이 맞고 이를 거부한다면 국회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전형적인 정치공작'이라고 맞받았습니다. 장동혁 대표는 조 대법원장을 수사하라는 민주당 요구에 대해 "진짜 수사가 필요한 것은 '지라시' 공작"이라며 "당 차원에서 막겠다"고 밝혔습니다. "누군가 제보를 들먹이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녹취를 들이밀고, 좌표를 찍고, 여론몰이 수사가 시작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겁니다. 사실이라면 매우 부적절...사법부 신뢰 흔들려 당사자 전면 부인...의혹 제기한 측이 입증해야 사법부 수장이 탄핵당한 정부의 총리 출신으로 차기 대선 출마의 뜻을 품은 인사를 미묘한 시기에 만난다는 것, 여기에 더해 이 모임에서 대법원 판결을 통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논의가 이뤄졌다면 매우 부적절한 차원을 넘어서 사법부의 신뢰를 뿌리부터 흔드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대법원장 사퇴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고 사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를 믿고 따라온 국민들이 받을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겁니다. 이미 집권여당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국민들은 실체적 진실이 너무도 궁금합니다. 일단 조희대 대법원장은 한덕수 전 총리와의 만남 자체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민주당의 차례입니다. 의혹의 근거를 밝혀야 합니다. 지난 5월 서영교 의원은 제보자의 녹취 파일을 재생하면서 전 정부 관계자의 제보도 있었다고 밝혔지만, 당시 파장이 크지 않고 오래 가지도 않았던 것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서 의혹의 타당성을 입증할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행여나 증거를 갖고는 있지만 당사자들이 실토할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것이라면 이는 국정운영의 책임을 진 공당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내란특검, "특검법상 수사 대상인지 확인해야"...신중론 내란특검 측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민주당의 수사 요구에 대해 내란특검법상 수사 대상인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내란특검은 특검법상 내란과 외환에 관련돼서 수사 대상으로 명기된 범죄에 한해서만 수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해법은 한 가지로 좁혀집니다. 조 대법원장 관련 의혹이 구체적이고 내란과 관련 있다는 근거를 추려 민주당이 특검에 고발하는 방법입니다. 조 대법원장은 억울하다면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관련자들 휴대전화의 GPS 동선만 확인해도 모임이 있었다는 당일의 진실은 어느 정도 드러날 겁니다. 매우 간단한 해법이지만 거짓으로 드러나는 쪽이 져야 할 부담은 결코 간단치 않을 겁니다. 이를 '이전투구'로 보는 일부 유권자들의 시선도 따가울 거고요. 민주, 이례적 빠른 대법원 파기 환송에 '의심' 눈길 '사법개혁 걸림돌', '이슈 덮기' 분석도 지난 5월 1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은 2심에서 무죄가 난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습니다. 이례적으로 빠른 파기 환송 결정에 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조 대법원장의 정치적 편향성을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파기 환송 다음날인 2일에는 한덕수 전 총리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죠. 조-한 4월 만남에서 큰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라는 의심의 배경입니다. 그러나 사안이 너무나도 중대한 만큼 의심의 근거 또한 명확해야 합니다. 만에 하나 '아니면 말고', 또는 '치고 빠지는' 식의 정치적 '액션'이 들어갔다면 그건 선을 넘은 것이죠. 여의도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조희대 사퇴 논란이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 개혁의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한 위력 과시와 최근 특검법 수정안을 둘러싼 민주당 지도부의 갈등 논란을 덮기 위한 '이슈 던지기'의 성격이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정치인들을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에 비유하자면, 플레이어가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으로 공을 던져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을 뭐라 할 이유는 없겠지만, 그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아니면 고의적으로 상대 선수의 머리를 노리는 '빈볼'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심판인 국민들의 몫입니다. 사진 자료 : 연합뉴스, 디자인 : 정유민
권성동 오늘 영장실질심사...구속 기로 이르면 오늘밤 늦어도 내일 새벽 결정될 듯 오늘 이브닝브리핑이 주목하는 인물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입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되면서 구속의 기로에 섰습니다. 2022년 1월 5일 통일교의 청탁을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에게 전달하는 대가로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1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구속 여부는 오늘 밤 늦게, 또는 내일 새벽쯤 판가름 날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 회기 중에 현역 의원을 체포하고 구속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체포 동의가 필요한데요. 결국 법무부가 제출한 권성동 의원 체포동의안은 지난 11일 본회의에서 가결됐습니다. 법원은 권 의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기일을 오늘로 잡았습니다. 5선 중진이자 원조 '윤핵관'으로 위세를 떨친 권 의원의 정치 인생에서 최대 위기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검, "영장 발부 자신...혐의 입증 증거 충분" "공여자 진술 일관..다이어리, 문자메시지 등 확보" 정성호 법무장관은 권 의원의 혐의에 대해 "공여자의 일관된 진술 및 다이어리, 문자메시지, 사진 등 객관적 증거에 의해 혐의가 입증되고 사안의 중대성과 도주 또는 증거 인멸의 우려에 비춰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가 있다"고 체포동의 요청 취지 설명에서 밝혔습니다. 돈을 건넸다는 쪽의 진술이 한결 같고, 이를 입증, 또는 방증할 증거를 특검에서 확보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특검 측은 오늘 실질심사 결과 법원의 영장 발부를 자신하는 분위깁니다. 권성동, "돈 안받았다"...혐의 전면 부인 "처음 독대한 자리에서 돈 받을 만큼 어리석지 않아" 이에 반해 권 의원은 특검이 제기한 혐의들을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특검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며 "공여자가 1억 원을 전달했다는 그날은 공여자와 처음으로 독대한 자리"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누가 처음 독대한 자리에서 돈을 받겠느냐"며 검사 20년에 정치 16년 한 자신은 "문제가 될 수 있는 돈을 받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권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 모두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찬성해 달라"고도 말했습니다. 결국 국민의힘은 체포동의안 표결에 불참하기로 결정했지만 권 의원은 표결에 나서 자신을 향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민주당이 의석 과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여당 의원들이 체포동의안에 찬성하면 가결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권 의원은 권 의원 나름대로 조여 오는 특검의 수사망에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힌 셈입니다. 판사는 영장 발부 여부를 사안의 중대성과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판단합니다. 권 의원은 혐의를 전면 부인할 것이 확실해 보이는 만큼 결국 발부 여부는 특검이 내미는 증거와 진술의 구체성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종교와 결탁한 국정농단의 발단"...여파 어디까지? 영장 발부시 사용처 수사 확대...기각되면 수사 동력 약해질 듯 사실 권 의원의 구속 여부는 정치인 권성동의 개인적 문제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특검은 권 의원 체포동의 요구서에서 이번 사건을 권 의원의 개인 비리가 아닌, '종교와 결탁한 국정농단의 발단'으로 규정했습니다. "정치권력과 종교단체가 결탁해 대한민국의 국정을 농단하고 사법질서를 교란했다"는 겁니다. 통일교 관계자와 권 의원 사이에 불법 정치자금 1억 원이 실제로 오갔는지 뿐만 아니라 권성동 의원을 고리로 한 통일교의 대선 지원 의혹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돈이 오갔다는 시점은 20대 대선 두 달 전으로, 권 의원은 이때 1억 원과 함께 통일교 신도들의 조직적 투표를 통해 대선을 도와주겠다는 통일교 측 제안을 함께 받은 것으로 특검 측은 보고 있습니다. 또 한 달 뒤인 2022년 2월에는 권 의원이 통일교 한학자 총재가 기거하는 경기도 가평 천정궁을 찾아가 한 총재에게 큰 절을 하고 쇼핑백을 받아갔다는 통일교 관계자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총재가 권 의원에게 줬다는 쇼핑백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독자 여러분들 대다수의 예상과 제 예상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으로 봅니다. 만약 권 의원이 통일교로부터 돈을 받은 게 사실이라면, 그 다음 수사 방향은 당연히 그 돈의 사용처일 겁니다. 돈의 대가로 통일교 측이 받아간 것이 무엇인지도 궁금하고요.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의 어디까지 불똥이 튀고 그 여파가 얼마나 클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오늘 권 의원의 영장실질심사를 시작으로 관련 수사는 훨씬 크고 구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권 의원이 구속되면 특검이 권 의원의 여죄를 캐는데 그치지 않고 정치권과 통일교를 향해 수사망을 넓힐 것이 확실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영장이 기각되면 불체포특권을 가진 권 의원에 대한 조사가 제한적이 될 것이고 수사 동력도 그만큼 약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패스트트랙 방해 사건' 당시 지도부에 실형 구형 6년 5개월 만에 결심 공판...선고는 11월 20일 예정 특검발 태풍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에 또다른 악재가 불거졌습니다. 지난 2019년 이른바 국회 '패스트트랙' 사건, 민주당이 공수처 설치법과 선거법 개정안을 신속 처리, 즉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 하자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이 극렬 저지한 사건이었죠. 이 때 쇠 지렛대, 이른바 '빠루'를 든 나경원 의원의 모습이 언론 등을 통해 퍼지면서 나 의원에게 '나빠루'란 별명이 덧씌워진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른바 '오함마'와 '빠루'를 들고 문을 부수려한 건 민주당 관계자들이었는데, 그걸 빼앗아 들었을 뿐인 자신에게 '나빠루'라는 프레임을 씌웠다고 나 의원은 두고두고 억울해 했습니다. 어쨌든 그 사건 발생 6년 5개월 만인 어제 결심 공판이 열렸는데, 검찰은 당시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일부 의원들이 국회선진화법상 회의방해 혐의에 해당한다며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당시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의원에게 각각 징역 1년6개월과 징역 2년을 구형했습니다. 또,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징역 10개월에 벌금 2백만 원, 이만희 의원은 징역 10개월에 벌금 3백만 원, 민경욱∙이은재 전 의원에게는 징역 10개월에 벌금 5백만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국민의힘의 현역 친윤 중진의원 다수가 의원직 상실 위기에 몰린 것이죠. 선고 공판은 오는 11월 20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물론 1심 선고가 6년 반 만에 나오는 것이고 항소 가능성이 거의 100%이기 때문에 최종 확정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국회 법사위에선 오늘 민주당 의원들 주도로 나경원 의원의 법사위 간사 선임안을 표결해 부결시켰습니다. 국회법 위반으로 실형을 구형받은 나 의원이 법사위 간사를 하게 되면 이해 충돌의 소지가 있어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국민의힘은 "간사 선임을 표결에 부친 전례가 없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조여오는 특검 수사망에 버티는 야당 다가오는 야당 의원 사법리스크의 강도는? 권성동 의원의 구속을 시작으로 윤석열 정권의 국정농단 의혹 사건을 풀어가려는 김건희 특검, 추경호 의원 등을 대상으로 12.3 비상계엄 당시 계엄해제 요구안 표결 방해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는 내란특검, 또 채해병 특검에선 이른바 'VIP 격노∙수사외압설'과 관련해 임종득 의원이 수사 대상에 오르는 등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조금씩 구체화하는 분위깁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계엄해제요구안 표결,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그 결과 이뤄진 조기 대선에서의 후보 선출과 교체 파동, 전한길 씨가 쏘아 올린 전당대회 '배신자' 논란 등 중요한 고비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상황 극복의 해법으로 진영을 강화하고 아스팔트 우파와 손잡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비상계엄 시도 자체가 워낙 큰 사안이어서 외연 확장을 포기하고서라도 똘똘 뭉쳐 버티는 것 외에 딱히 해법이 없다는 주장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나옵니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정부 여당도 실수를 할 것이고 그때 반격하면 기회는 다시 온다는 겁니다. 총선도 아직 3년 가까이 남았고요. 그러나 그 이전에 현실화할 전 정부 관계자와 야당 의원들에 대한 사법리스크는 국민의힘이 반드시 거쳐야 할 허들입니다. 사진, 표 : 연합뉴스, 디자인 : 정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