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경

설날입니다. 2023년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음력으로도 시작입니다. 올해도 지난해를 강타한 ‘갓생’ 열풍이 이어질까요? 새해를 기록할 다이어리 같은 문구류는 다들 구입하셨고요? 하루를 살아도 계획과 다짐대로,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 살고자 하는 <어쩌다> 구독자 여러분들의 새해 알림 ‘리추얼(Ritual)’은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더 나은 삶’을 향한 들끓는 욕망이 ‘갓생’ 트렌드를 추동한 한편, 이 욕망의 동전 앞뒷면, 쌍생아 같은 존재가 있죠. 바로 ‘불안’입니다. 불안감을 (단기적으로) 해소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장을 구축한 운세 산업, 여전히 뜨겁습니다. Z세대는 물론 전‧후기 밀레니얼 세대, X세대와 86세대까지 아울러서요. <스프>도 운세 플랫폼 <포스텔러>와 협업해 <2023년 새해 토정비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걸요. ( ▶ 여기서 해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어쩌다>는 여러분께 2023년 본격(!)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해드리기에 앞서,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관심을 받아온 ‘운세 산업’에 대해 가볍게 읽으실 수 있는 콘텐츠로 준비했습니다.

세대를 위와 같이 나눈 기준은 이 통계를 소개해드리려 했기 때문이에요.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지난해 5월 전국 17개 시도 만 15~61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패널 조사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점이나 운세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설문에 따르면 운세 사랑이 돋보이는 세대는 오히려 Z세대보다 전후기 밀레니얼 세대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전기 밀레니얼은 1981년~1988년 출생자를, 후기 밀레니얼은 1989년~1995년 출생자로 분류했는데요. (X세대는 1970년대 출생자를, 86세대는 1960년대 출생자로 지칭했습니다.)

현재 기준 30대 중반~40대 초반인 전기 밀레니얼 세대는 약 10명 중 7명이 운세 서비스를 이용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세대 중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자료: <Z세대를 중심으로 본 점·운세 이용 실태>, 대학내일20대연구소, 2022.07.21

다만 포털사이트나 신문에서 제공하는 무료 운세 외에 전문 운세 온라인 서비스 이용률(앱, 유튜브)은 Z세대가 가장 높게(74.4%) 나타났습니다. Z세대, 전후기 밀레니얼 세대 모두 서비스 이용 목적 중 가장 많은 건 ‘단순 재미’였습니다.

이 중에서도 더 어린 Z세대는 다른 세대들에 비해 자신의 성향과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이용한다는 응답이 눈에 띄게 높았습니다.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카테고리를 찾고, 그 틀 안에서 동질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세대적 특성이 운세 서비스에서도 그대로 적용된 걸까요? 사주보다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은 ‘타로’ 서비스를 더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국내 운세 플랫폼 중 꾸준히 한 달 활성 이용자 수 기준 상위에 랭크되고 있는 <포스텔러> 데이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확실한 타깃 그룹은 20대입니다. 이용자의 40%가량을 차지합니다. 그다음이 26%인 10대입니다. 성별로는 여성이 압도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포스텔러 외에 다른 온라인 운세 플랫폼에서도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는 10-20대 여성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 귀여운 캐릭터와 일러스트를 동원한 유료 콘텐츠들을 다수 내놓고 있습니다.

무료로 제공되는 콘텐츠 이용률에선 세대별 관심사가 뚜렷하게 나뉩니다. 10대는 학업운, 20대 초반은 궁합운, 20대 중반에서는 취업운을 보다가, 애정, 결혼, 이별, 취업, 학업, 재물 등 관심사가 다채롭게 분포된 30대를 지나 40대부터는 이직운, 그리고 ‘팔자를 펼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개운’에 대한 관심이 높게 나타납니다.

물론 남성 유저의 비중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남성 유저의 비중은 무료 서비스를 포함해 전체 서비스 이용자의 22%에서 28%로 늘었는데요. 사주 운세가 종전과 달리 웹툰이나 심리테스트 같은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을 택하며 조금 더 유희적 요소들이 결합했다는 점, 대중화 장벽이 낮아졌다는 점에서 남녀 할 것 없이 젊은이들의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영향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포착됐습니다. 서비스 진성 고객, 돈을 들여 이 서비스를 무려 구매까지 하는 유료 콘텐츠 소비자들은 오히려 남성들 쪽에서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현질'이야말로 진심의 척도니까요. 사주에 진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구매자들은 종래의 상식을 깨고 남성들 쪽에서 더 늘고 있다는 겁니다.

16-24세 기준 유료 소비 비중은 여성들이 2019년 33%, 2020년 29%, 2021년 28%, 2022년 27%로 점점 떨어지고 있는데, 같은 연령대 남성 소비자들은 10%에서 15%로 늘었습니다.

1인당 평균 구매 금액, 그러니까 ‘현질’ 규모도 남성들이 42,000원으로, 여성들보다 평균 3000원 정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관심 분야요? 바로 ‘솔로운’, ‘썸/연애운’과 같은 ‘애정’ 영역입니다.

짝 찾는 데 아낌없이 돈 쓰는 고객들이 늘다 보니 업체에서도 ‘솔로운’ 유료 콘텐츠는 2018년 4개에서 2022년 62개로, ‘썸/연애운’ 유료 콘텐츠도 2개에서 29개로 메뉴를 대폭 늘렸습니다. 같은 기간 ‘직업운’은 4개에서 12개로, ‘취업운’은 2개에서 단 4개로 증가하는 데 그쳤고요.

포스텔러 김다솜 마케터는 “시장조사를 위한 심층 인터뷰나 설문 등을 수행하면 남성 소비자들은 운세 서비스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관심사로 답하는 분야도 취업, 직업운이 대부분이다”며 의아하다는 반응입니다. 그래서 “여태껏 주요 구매층인 10-30대 여성 고객들에게 소구될 수 있는 콘텐츠를 주로 개발해왔는데 최근 들어 애정운 영역에서 남성 구매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머리가 하는 일, 그리고 가슴이 하는 일은 역시 다른 걸까요? 대면 인터뷰로 진행하는 FGI에선 보통 여성들도 가장 큰 고민으로 취업과 재물, 커리어를 꼽는다고 합니다. 생존 이슈가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며 하나 같이 대답하지만 운세 사업자들을 먹여 살리는 건 역시 ‘애정운’입니다. 젊은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관심사는 여전히, 연애인가 봅니다.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라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과 욕망을 운세 산업은 그대로 흡수하고 있다는 점,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사람들의 불안을 먹고 사는 산업, 비과학 대중화의 첨병이라는 비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자칫 우리가 놓치고 있는 우리 안의 숨은 욕망을 읽어내는 코드로 운세 산업을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도 듭니다.

글: 정혜경 디자인: 강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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