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설명하면
전세 사기의 ‘중간 고리’인 바지 사장은 왜 이런 사기 범죄에 가담하는 걸까요? 제가 직접 만난 바지사장들 중 일부는 이게 범죄라는 걸 모르고 ‘집값이 계속 오르면 너도 시세 차익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설명에 넘어가 가담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자신도 사기 범죄에 이용됐다고 판단해 고소 및 고발을 준비하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업계에서는 한 채당 바지 사장에게 수백만 원의 수수료가 떨어지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세 계약 만기가 돼 절박한 세입자들에게 웃돈을 얹어서 집을 사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식으로 강요해 또 다른 범죄 수익을 노리기도 합니다. 또한, 이 바지 사장들은 다른 사기 범죄에 연루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제가 접촉한 한 20대 바지 사장들은 수차례 대출 사기 브로커가 접근해 와서 은행을 상대로 이중계약 대출 사기를 벌이자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바지 사장들이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전세사기로 발생한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결국 바지사장 자신이 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세입자는 전세금 반환 보증 보험에 가입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보증기관들은 대위변제한 금액을 바지 사장들에게 청구합니다. 이미 시세를 부풀린 신축 빌라들이라 시장에서 처분이 된다고 해도 청구 금액을 다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전세 사기 바지 사장들 역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며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최근 인천 등에서 수십 채의 빌라를 소유하고 있던 20대 바지 사장 송 모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세사기의 마지막 장에서 희생양이 되는 건 바지 사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한 걸음 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전세 사기를 예방할 수 있을까? 냉정하게 보면, 현 시점에서 제도적인 예방책은 없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바지 사장들이 전세보증금을 떠안고 집을 매입하는 ‘무자본 갭투자’ 방식이 불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인 ‘세입자114’ 소속의 류재상 변호사는 “민법 체계를 바꾸지 않는 한 무자본 갭 투자를 금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세입자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데요. 애초에 신축 빌라나 신축 소형아파트는 전세 사기 세력들의 놀이터이기 때문에 계약을 신중히 해야 하고, 신축 빌라가 아닐지라도 등기부 등본에 나오는 거래가액과 집주인이 요구하는 전세 보증금 액수가 같거나 큰 차이가 없다면 역시 계약을 서두르지 않을 필요가 있습니다.

세입자들의 유일한 출구는 전세금 반환 보증 보험뿐입니다. 보험을 가입 했다면 설령 전세 사기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빌라왕’ 김 모 씨처럼 바지사장이 숨지지 않는 한) 보증금을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계는 여전합니다. 보증 보험은 세입자가 원한다고 모든 세입자가 가입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만약 보증기관에서 단 한 번이라도 집주인 대신 보증금을 변제한 전력이 있다면 보험 가입이 불가능한데, 문제는 현행법상 이런 사실을 세입자들이 계약 전에는 알 수 없고 계약금은 물론 잔금까지 다 치러야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서둘러 법을 개정해 세입자들이 조금이나마 더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깡통 전세란? : 깡통 전세와 전세 사기는 다릅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전세 가격 하락 폭 보다 매매 가격 하락 폭이 더 크게 나타나면서 주택 담보 대출 금액과 전세금을 합한 금액이 매매가와 큰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매매가를 웃돌 경우 ‘깡통 전세(깡통 주택)’라고 부릅니다. 이런 현상은 임대인이 전세사기 의도가 없더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만, ‘깡통 주택’은 전세사기에 이용되기 쉽기 때문에 전세계약을 가급적 피해야 하고,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을 경우에는 보증보험 가입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보증보험에 가입했는데 임대인이 사망한다면? : 보증금을 보증 기관에서 대위 변제 받기 위해서는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 통보를 한 뒤에 보증기관에 이행 청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임대인이 사망한다면 해지 통보를 할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행 청구 절차도 중단됩니다. ‘빌라왕’ 김 모 씨가 숨진 뒤 보험에 가입했음에도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상속인이 나타나거나 아니면 가족 등 관계인이 모두 상속을 포기해 상속재산 관리인이 선임된다면 절차는 재개될 수 있습니다.

잇따른 보증 사고로 보증보험이 내년부터 중단된다? :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 HUG는 현재 국내 전세 보증의 90%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20년 460조 원 수준이었던 HUG의 보증 잔액은 올해 말 기준으로 596조 원까지 불어날 걸로 추정됩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HUG는 자기자본의 60배를 초과해서 보증할 수 없는데,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내년 중에 법정 보증 한도인 60배를 넘어 보증 업무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HUG는 정부로부터 추가 예산 지원을 받아 자기 자본을 확충해 보증 업무가 중단되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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