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경제부 안상우 기자입니다.
이슈는 스프링이다!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이슈를 핵심만 골라 정리해드립니다. 지난 15일 드디어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국내에 출시됐습니다. 허가는 지난해 났지만, 국제적인 인기와 그에 따른 공급 물량 부족 탓에 1년 6개월 만에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입니다. 이처럼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일주일에 한 번 맞기만 하면 살이 쏙 빠지는 기적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기적에는 증인이 필요합니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바로 그 증인입니다. 위고비를 맞아서 무려 13kg이나 살을 빼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무슨 상황인데? 기적이 이뤄지고 나면 사람들이 몰립니다. 위고비는 고도비만(비만 지수 30 이상) 또는 체중 관련 질환을 가진 과체중(비만 지수 27 이상~30 미만) 환자를 대상으로 허가가 이뤄진 약입니다만, 기적을 목격한 사람 중 살 좀 빼겠다는 정상 체중의 성인들도 몰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일선 병원에서는 이처럼 기적을 바라는 정상 체중의 성인에게 위고비를 처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SBS 팩트체크 <사실은> 팀에서 직접 병원 3곳을 찾았는데, 1곳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처방해 줬습니다. 심지어 상담자는 비만 지수가 19로 저체중에 가까운 상황이었지만, 별문제가 없다며 처방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처방이 문제가 없는 걸까요? 우선, 이렇게 식약처의 허가 사항과 다르게 처방해 주는 것을 '오프라벨(off-label) 처방'이라 불립니다.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충분히 허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암과 같은 치료가 어려운 질환의 경우 오프라벨 처방을 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좀 더 설명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안전상의 위험은 어떨까요? 위고비의 가장 잘 알려진 부작용은 메스꺼움이나 구토와 같은 위장 질환입니다. 자살 충동을 유발한다는 보고도 있었지만, 미국과 유럽의 보건당국은 구체적인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난 4월 밝혔습니다.* *다만, 그 이후에 뉴욕 주커힐사이드병원 게오르기오스 쇼레차니티스 등 연구진이 WHO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위고비의 주요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를 사용했을 때 '자살 사고 보고 위험'이 유의미하게 상승한 걸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은 모두 비만이나 과체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제약사의 임상시험 등에서 보고된 것입니다. 위고비 제조사인 노보 노디스크는 정상 체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 적이 없습니다. 즉, 정상 체중의 성인이 위고비를 맞을 경우 안전한지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진 적은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제라도 안전성을 검증해 보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상 체중의 사람들에게 위고비를 맞게 하고 문제가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시험이나 연구는 연구 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합니다. 즉, 그동안 이뤄진 적 없고 앞으로도 이뤄지기 힘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그렇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심각한 부작용이 보고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정상 체중의 성인에게도 처방해 주는 것이 맞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위고비가 출시된 다른 나라의 대응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영국에서는 이달 중순쯤 언론 인터뷰를 통해 웨스 스트리팅 보건장관이 직접 미용 목적으로 단순 체중 감량을 위해 위고비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보건당국의 수장까지 나서 사용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위고비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판매되기 시작한 미국에선 지난해 말 정상 체중의 성인에게 위고비 처방을 피해야 한다는 연구 논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논문은 위고비가 거식증과 같은 섭식 장애를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위고비는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GLP-1과 유사한 성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오남용할 경우 지나친 식욕 저하를 일으킬 수 있고 먹는 것에 대한 병적인 거부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Use of glucacon-like peptide-1 receptor agonists in eating disorder populations(2023.11)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는 약물로 부작용이 나타날 경우 심의를 거쳐 나라에서 구제하기도 하는데, 애초에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경우에는 구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우리도 제약사들로부터 분담금을 걷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인과성이 인정되면 피해 구제 급여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은 제외됩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사실은> 팀은 위고비의 제조사인 '노보 노디스크'에도 정상 체중의 성인이 위고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입장을 질의했습니다. 제조사 측은 "전문의약품인 만큼 허가 외 방식으로 사용할 경우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서 "적정 용량과 용법이 아닌 방식의 사용을 보증하거나 권장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건당국도, 전문가도, 제조사도 한목소리로 위고비의 오프라벨 처방만큼은 권장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 위고비는 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치료가 필요 없는 정상 체중의 성인에게는 자칫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소년 중에 스스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조절할 수 없어 과도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해 신체적, 심리적 문제 등을 경험하고 있는 이른바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 전체의 40.1%라고 합니다. 성인이나 유아 등 다른 연령대의 스마트폰 사용자보다 2배 가까이 높은 수준입니다. 학교와 사회에서는 나름의 대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먼저 학교에서는 학칙을 개정해 스마트폰을 등교 시 일괄 수거한 다음 하교 때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스마트폰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스마트폰을 일괄 수거하는 학교는 전체의 58% 수준입니다. (중·고등학교 기준, 2023년) 지난달 국회에서는 아예 스마트폰을 교내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자거나 SNS 사용 시간도 제한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 예방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법안들도 잇따라 발의됐습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는 인권침해라는 판단을 내리고 또 유지하고 있어 논란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판단이 내려졌고, 다른 나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무슨 상황인데? 우선, 인권위는 왜 교내 스마트폰 사용 제한 조치가 인권 침해라고 본 것일까요? 시간 중에 학생들이 휴대폰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권위도 충분히 필요한 조치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수업 방해를 우려한다면 수업 시간에만 사용을 제한하면 될 일이지, 수업 외 시간인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까지 사용을 막는 건 지나치다는 겁니다. “정규수업 시간 중에만 그 사용을 제한하고 휴식시간 및 점심시간에는 사용을 허용하는 등 학생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교육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음에도, 피진정학교는 등교 시간부터 종례 시간까지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제한하고 있어 헌법이 요구하는 과잉금지 원칙에 반할 소지가 크다.” - 국가인권위원회 시정 권고 결정문 중 발췌 이런 이유로 인권위는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307건이나 개별 학교들에 시정 권고를 내렸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시정 권고를 받은 학교 3곳 중 1곳은 권고를 따르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는 걷고 다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나눠주는 방식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고 호소합니다. “급식 시간 종 울리면 밥 빨리 먹으려고 뛰어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쉬는 시간 5분 전부터 다리를 책상 밖으로 빼내고 수거함에서 스마트폰을 뺄 준비를 해요. 당연히 수업 집중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교실에서 학생들이 나가지도 않고 계속 게임만 해요. 이런 문제들 때부터 차라리 일과 시간 내내 걷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 신현중학교 교사 김지은 좀 더 설명하면 다른 나라들은 상황이 어떨까요? 놀랍게도 전 세계 국가 중 약 25% 정도가 법이나 교육 지침 등을 통해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이미 지난 2018년부터 법을 통해서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기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199개 중학교에서 등교 시 스마트폰을 수거해 하교 때 돌려주는 시범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우리는 인권침해 논란으로 제동이 걸렸는데, 프랑스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건 서로가 집중하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권위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는 가운데 사용 제한이 최소한으로 이뤄지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교육적 목적은 물론, 학생들의 건강권까지도 주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유니세프는 지나친 스마트 기기 노출이 학생들의 학습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 자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면서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교육 목적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미취학 아동과 초등생의 경우에는 지나친 스마트 기기의 노출이 성인과 달리 우울증과 수면 장애, 근시 등을 유발할 수 있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즉, 스마트폰을 비롯한 스마트기기 노출 시간 자체를 줄이는 게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 보고 프랑스 등은 수업 외 시간까지도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우리나라 학생들이 스마트폰, 태블릿 PC, 데스크톱, 랩톱 등 스마트 기기에 하루 평균 노출되는 시간은 4시간 43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미 지나친 스마트 기기 노출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법과 정책으로 교내 사용 제한을 두고 있는 프랑스와 비교하면 1시간 반 이상 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학습권 측면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생의 건강권을 비롯해 사이버 괴롭힘을 통한 학교 폭력, 딥페이크와 불법 도박 등 청소년 범죄로도 시야를 넓혀 스마트폰 사용 제한 규제를 바라봐야 함을 의미합니다. 다행히 인권위는 “앞으로는 학생의 기본권과 건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권고 방향을 살펴보겠다.”라고 SBS에 밝혔습니다. 누구보다 학생이 보호받을 수 있는 긍정적 방향으로 논의가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가수 김호중 씨의 음주 뺑소니 사고 이후, 비슷한 모방 범죄들이 잇따라 있습니다. 이른바 '술타기'라 불리는 이 범행 수법은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낼 경우 현장에서 도주해 붙잡히기 전에 추가로 술을 마셔, 사고 당시 정확한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후 국회에선 이런 술타기 수법을 차단하기 위해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습니다. 정치권과 언론에선 이 법안을 '김호중 방지법'이라 불렀는데, 이게 또 다른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가해자 혹은 법 적용 대상자의 이름을 넣을 경우, '중대한 인격 모욕' 또는 '명예훼손' 아니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내용의 항의성 댓글은 관련 발의안에 수천 개가 달렸습니다. 어긋난 팬심일 수도 있지만, 법에서 금지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 만큼 팩트체크 <사실은> 코너에서 확인해 봤습니다. 무슨 상황인데? 우선, '김호중 방지법'이라 불리는 법 발의안의 진짜 이름은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입니다. 즉 실제 법안에는 '김호중'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저 편의상 정치권과 언론에서 김호중 방지법이라 부르는 것이지 실제 법 이름에 '김호중'이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치권과 언론에서 이렇게 부르는 건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해당할까요? 우선, 형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명예훼손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거나 아니면 허위로 사실을 퍼뜨려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현직 변호사 5명에게 문의했더니, 4명은 단순히 이름을 언급한 것만으로는 명예훼손 행위가 되긴 어렵다고 봤습니다. '○○○ 방지법'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명칭 속에 누군가의 이름이 들어가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고 불쾌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거나 허위 사실을 퍼뜨려서 명예를 훼손한 걸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변호사 5명 중 1명만 법에서 금지하는 명예훼손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지만, 이마저도 공익성이 인정돼 실제 처벌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 답했습니다. 그러니까, 변호사 5명 모두 명예훼손죄란 이유로 처벌하거나 금지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또, 변호사 5명 모두 모욕죄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단순히 이름을 언급한 것만으로는 모욕적인 표현이 있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약해 보면, '김호중 방지법'이란 명칭이 가수 김호중 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심한 경우 사회적 낙인으로까지 작용할 수도 있지만, 법에서 처벌·금지 대상으로 삼고 있는 명예훼손이나 모욕 행위는 아니라는 게 법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실명법안은 미국에서 주로 사용됐고,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매스컴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김호중 방지법'처럼 특정 사건의 가해자나 아니면 법 적용 대상자의 이름을 딴 사례도 있지만, 피해자나 희생자(정인이법, 구하라법 등) 아니면 법안 발의자(김영란법 등)의 이름을 딴 사례도 있습니다. 이런 실명법안이 죄가 되지는 않지만, 2차 가해 또는 사회적 낙인 등의 우려도 분명히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법안에 대한 쉬운 이해와 공감을 도와 법안 처리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21대 국회(2020~2024)에서 일반 법안의 처리율은 35% 수준에 그쳤지만, 실명법안은 2건 중 1건꼴로 처리됐을 정도로 처리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그렇다면, 명예훼손도 아니고 법안 처리율도 높으니까 앞으로 '○○○ 방지법'과 같은 실명법안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정답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으려면 실명법안이 우리보다 앞서 등장한 미국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미국의 경우에는 재발을 막고자 하는 사건 혹은 사고의 피해자, 아니면 법안 발의자의 이름을 주로 활용합니다. 법무법인 율촌의 신동찬 미국 변호사는 실제로 미국에서 법을 만들 때 '가해자'의 이름을 사용해 이슈가 된 사례는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우리는 법안을 편의상 부를 때 이름을 활용하지만, 미국은 법안명에 피해자 혹은 법안 발의자의 이름을 직접 넣습니다. 일례로, 미국에서 1890년대에 만들어진 반독점법의 이름은 '셔먼 반독점법(The Sherman Antitrust Act)'인데, 여기서 셔먼은 바로 이 법안을 발의한 인물의 이름입니다. 또, '애덤 월시 어린이 보호법(The Adam Walsh Child Protection and Safety Act)'에서도 애덤 월시는 실종 사건 희생자의 이름입니다. 이처럼 미국에서 피해자나 법안 발의자의 이름을 주로 활용하는 건 희생을 기리고 재발 방지를 통한 피해 회복의 상징성, 법안에 대한 책임성 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가해자·법 적용 대상자의 이름을 넣는 사례가 더 많습니다. 실제로,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실명법안 16건 중 12건은 가해자나 법 적용 대상자의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미국과 달리 가해자나 법 적용 대상자의 이름을 딴 실명법안을 더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미국은 피해 회복과 책임에 방점이 찍혔다면, 우리는 실명법안을 통한 사회적 처벌에 초점이 맞춰진 걸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실명법안에 대한 반발도 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반발을 긍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긋난 팬심에서 비롯된 심각한 입법 방해 행동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교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사회적 낙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불필요한 반발과 우려는 피하면서 실명법안이 갖는 입법 효과는 계속해서 누릴 수 있는 대안적 명칭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데요. 전문가들은 'n번방 방지법'처럼 차단해야 할 범행에 초점을 맞춰 부를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지난 13일 국가대표 축구팀의 새 사령탑으로 홍명보 HD울산현대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기자회견에 나선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는 "절차대로 진행해 선임 과정에 문제는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박주호 전력강화위원의 폭로로 파문이 커졌고, 정부가 칼을 빼들었습니다.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기로 한 겁니다. 정부가 축구협회를 직접 감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협회 내부에선 즉각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정부 감사가 FIFA 제재로 이어져 월드컵 출전까지 막힐 수 있단 내용이었습니다. 무슨 상황인데? 물론, 이런 주장을 내놓은 건 익명의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입니다. 협회 측은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럼에도 감사를 앞두고 FIFA 제재를 운운하는 건 자칫 감사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일리가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대한축구협회는 매년 300억 원 넘는 지원금을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인사혁신처가 협회를 '공직 유관단체'로 지정했고, 올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자체 감사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감독 선임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축구협회를 상대로 감사를 진행하는 건 정부 고유의 권한이자 의무인 셈입니다. 한편, FIFA의 정관*에는 각 회원국 협회의 독립성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이 규정의 핵심은 정부와 같은 제3자의 부당한 영향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단 내용입니다. 그리고 FIFA는 이 조항이 위반됐다고 판단되면 즉각 회원국 자격 정지와 같은 제재를 내렸습니다. 즉, 정부의 감사 활동을 '독립성 훼손'으로 본다면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의 주장처럼 출전 정지와 같은 제재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FIFA STATUES(2024) 19조 1항 각 회원 협회는 제3자의 부당한 영향 없이 독립적으로 사무를 관리해야 한다. 좀 더 설명하면 이제 남은 쟁점은 '과연 FIFA가 우리 정부의 감사 활동을 부당한 개입으로 볼 것인가'입니다. 이에 대한 판단을 위해선 FIFA가 그동안 어떤 사례들에 대해 제재를 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쿠웨이트입니다. FIFA는 지난 2015년 10월, 쿠웨이트의 회원국 자격을 정지한 바 있습니다. 이로 인해 쿠웨이트는 2016 리우 올림픽, 2018 러시아 월드컵, 2019 아랍에미리트 아시안컵까지 모두 출전할 수 없었습니다. FIFA가 이처럼 쿠웨이트의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킨 건 당시 쿠웨이트 정부가 통과시킬 '체육법' 때문이었습니다. 체육법은 쿠웨이트 정보부 장관이 자국 내 모든 스포츠기구 및 연맹을 관장하고 인사권과 재정적 사안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FIFA는 이런 법이 시행되면 축구협회의 독립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입니다. 쿠웨이트 사례 이외에도 지난 10년 간 FIFA가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킨 사례는 6건이 더 있었는데, 자국 축구협회를 아예 해산시키거나 직접 관리 또는 협회 선거에 개입한 경우였습니다. 이처럼 FIFA는 정부가 협회 선거 또는 협회 집행부 구성에 영향을 미쳐 운영을 좌지우지하려 할 때 회원국 자격 정지라는 강도 높은 제재를 내렸습니다. 실제로, FIFA는 협회 선거나 선출기구 구성에 대한 '정부 개입(Government Interference)'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LEGAL HANDBOOK, 2023) 한 걸음 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우리 정부는 최근 논란이 된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이를 두고 협회 내부에선 FIFA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FIFA가 엄격히 금지하는 정부 개입은 협회의 선거나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집행 기구의 구성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었습니다. 즉, 감독 선임 과정과 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 자체만으로 FIFA의 제재 대상이라 단정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2005년 국회는 사상 처음으로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국정감사를 열고 본프레레 대표팀 감독 경질과 아드보카트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해 조사했지만, FIFA는 지금까지도 이를 문제 삼은 적은 없습니다. 정유성 FIFA 에이전트·변호사 정유성 변호사(FIFA 에이전트)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과거의 제재 사례들과 FIFA 정관 규정을 종합해보면, 정부 등 외부 기관이 협회의 집행기구 구성에 관여를 함으로써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칠 때 이런 경우에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FIFA가 새로운 판단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정부 감사가 제재 사례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회원 자격 정지와 같은 제재를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이번 감사가 FIFA 정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고 예정대로 감사 일정을 진행할 방침입니다.
✏️ 뉴스쉽 네 줄 요약 · 비트코인 현물 ETF의 미국 거래소 상장 승인이 이뤄지면서, 비트코인은 투자재로서 확고한 지위를 인정받게 됐습니다. · 그러나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트는 비트코인이 가치 저장 수단이 아니라 기존 금융 체계를 대체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 비트코인의 실패한 비상을 이어받아 페이스북과 nChain 등 글로벌 기업들이 디지털 화폐를 향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이런 도전이 성공한다면, 디지털 황금으로서의 비트코인의 미래 역시 180도 뒤바뀔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지난 11일 역사적인 하루를 맞았습니다. 미국 증시에서 현물 ETF로서 상장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동안 거래소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렀던 비트코인은 주식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비트코인을 소유하지 않고도 투자할 수 있게 됐습니다.*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면, 실제 비트코인에 투자한 것처럼 수익을 보거나 손실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 덕분에 이제 막대한 자본을 가진 기관투자자들이 자신들의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추가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다만, 금융당국의 조치로 국내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가 불가능합니다. 스탠다드차타드(SC)는 올해에만 최대 1,000억 달러(우리 돈 130조 원) 규모의 자금이 비트코인 현물 ETF로 유입될 걸로 내다봤습니다. 전 세계 ETF 운용자산 규모가 약 10조 달러 중 1%만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만 돼도 1,000억 달러인 것입니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하듯 상장 첫날 무려 46억 달러(우리 돈 약 6조 600억 원)의 자금이 몰렸습니다. 지난해 1월 16,000달러 수준이던 비트코인 시세는 현물 ETF 상장 승인 직전 47,0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상장 승인에 대한 기대감에 1년 만에 무려 3배 가까이 상승한 건데, 실제 승인으로 이어진 만큼 올해 안에 10만 달러 선도 거뜬히 돌파할 것이란 예상도 나옵니다. 이쯤 되니, 지난 2008년 비트코인을 처음 세상에 소개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상당히 무안해질 것도 같습니다. 그가 펴낸 백서의 제목은 ‘비트코인 : 개인 간 전자 화폐 시스템(Bitcoin :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었습니다. 즉, 종이 화폐는 물론, 기존 금융 체계를 대체할 전자 지급결제 수단을 만들어놨더니, 10여 년 만에 투자재로서 우뚝 선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승인 소식과 투자재로서 치솟는 가치와 위상은 사토시 나카모토의 꿈에 대한 종언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오늘 뉴스쉽에서는 희미해진 사토시 나카모토의 꿈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비트코인이 화폐 아닌 ‘디지털 금’으로 전락한 이유 8천7백 종이 넘는 전 세계 코인 가운데서도 비트코인은 압도적인 시가총액 1위입니다. 인기와 선호, 신뢰도 모두 업계 최고지만 어디까지나 가치저장 수단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디지털 화폐로서의 비트코인에는 늘 의문표가 뒤따릅니다. 비싸고, 느리고, 수수료도 높기 때문입니다. 코인을 지탱하는 건 ‘블록체인 기술’입니다. 기존 금융체계에서 장부는 은행과 같은 중앙화 금융기관이 갖고 있습니다. 은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제3자가 무단으로 장부에 접근해 위변조 할 수 없도록 보안 조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부[블록]가 네트워크에 분산돼 있고 거래 기록(Transaction)은 이 분산된 장부에 새겨지는데, 장부들이 서로 연결[체인]돼 있어 위변조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수 있습니다. 가령, A가 B에게 1 BTC를 준다고 해서 곧장 거래가 효력을 갖는 게 아닙니다. A가 1 BTC를 지급했다는 거래 기록을 다른 누군가(채굴자)가 장부인 블록에 추가해야 해야 합니다. 이런 ‘채굴(Mining)’ 작업을 거쳐 매 10분마다 새로운 거래 기록이 담긴 블록이 생성되고 이 블록은 네트워크에 분산돼 있던 다른 블록들과 연결됩니다. 이렇게 거래 기록이 블록에 새겨진 뒤에야 비로소 거래는 효력을 갖습니다. 채굴 작업이 없다면 비트코인은 사실상 거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채굴자에게는 채굴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초기에는 블록을 채굴할 때마다 보상으로 50 BTC를 줬는데, 이런 보상은 4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를 맞습니다. 첫 번째 반감기는 지난 2012년이었습니다. 이어서 2016년과 2020년까지 반감기가 세 차례 찾아왔습니다. 그 결과 채굴 보상은 6.25 BTC까지 줄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절반이 더 줄어든 3.125 BTC가 보상으로 주어질 예정입니다. 이처럼 반감기를 거칠 때마다 공급량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비트코인 가격은 큰 폭으로 뛰었는데, 이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가격 폭등의 배경 중 하나입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비트코인 가격 덕분에 블록을 하나만 채굴해도 약 1억 8천만 원(3.125 BTC) 상당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블록의 크기는 1MB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10분에 하나씩 생기는 블록에는 4,000건의 거래 기록밖에 담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4,000건이 훌쩍 넘는 거래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는 채굴자들이 수수료를 더 많이 내는 사람의 거래 기록부터 블록에 새겨 넣습니다. 때문에, 거래 기록이 몰릴수록 수수료는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비트코인을 통한 NFT 발행이 가능해지면서 지난해부터 블록에 새겨야 할 거래 기록이 급증했고, 이에 따라 거래 당 평균 수수료가 지난달 중순 37.4달러, 우리 돈으로 5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대표 지급결제 수단인 비자카드는 10분마다 평균 4천만 건이 넘는 거래를 거뜬히 소화합니다. 1MB짜리 블록으로 비트코인이 처리할 수 있는 거래량의 1만 배에 달합니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 기존 금융 체계를 탈바꿈하겠다며 등장한 비트코인이 날개 잃은 천사처럼 지급결제 수단으로서의 도약을 포기하고 가치 저장 수단인 ‘디지털 금’으로 전락한 이유입니다. 달러에 전쟁을 선포했던 ‘리브라’ 비트코인의 실패한 비상을 이어받은 건 페이스북(메타)였습니다. 지금은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뉴스가 코인 업계의 최대 화두지만, 불과 몇 년 전에는 다른 뉴스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지난 2019년 6월 페이스북은 ‘리브라’라는 이름의 코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는데, 이 소식에 코인판은 물론 미국 등 주요국까지도 크게 동요했습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는 마스터카드, 비자 등 2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이 함께 했다.” 페이스북은 가입자끼리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리브라’라는 이름의 코인을 만들려 했습니다. 특히, 리브라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주요국의 통화 가치에 고정된 ‘스테이블 코인’이었습니다. 덕분에 국경에 관계없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으며, 결제도 할 수 있고 환전도 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그러나 달러 패권을 송두리째 잃을 수 있었던 미국의 반대가 거셌습니다. 개인정보도 문제가 됐습니다. 가입자의 인적사항 정보를 꿰고 있는 페이스북이 가입자의 금융 정보, 즉 언제-어디서-무엇을-얼마나 구매하는지까지 쥐고 흔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리브라 프로젝트 공개 한 달 만에 미 의회는 페이스북을 상대로 청문회까지 열었습니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이름을 ‘디엠(Diem)’으로 바꾼 다음 어떻게든 미 당국과 타협하며 생명력을 이어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22년 1월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은행 실버게이트캐피털에 관련 기술을 2억 달러에 매각하기로 하고 끝내 청산됐습니다. 또 다른 전쟁의 서막 페이스북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꿈꿨던 미래에 매우 근접했었습니다. 리브라가 실현됐다면 해외여행을 갈 땐 이제 달러나 유로가 아닌 리브라를 충전하고, 페이스북이 발행하는 리브라가 미 중앙은행에서 찍어낸 달러보다 통화 정책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가 도래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문점도 남습니다. 비트코인이 실패했던 영역, 그러니까 수천만 건의 거래 기록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졌더라도 리브라는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페이스북은 지급결제 수단으로서 암호화폐가 쓰일 수 있도록 얼마만큼 기술적 진보를 이룩했을까요?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페이스북이 리브라 프로젝트 청산 나흘 만에 COPA(Crypto Open Patent Alliance)에 가입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COPA는 트위터의 창업자인 잭 도시를 중심으로 지난 2020년 설립된 단체로 코인베이스, 크라켄, 유니스왑 등 암호화폐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연합체입니다. 블록체인 기술들이 각종 특허나 지적재산으로 발목 잡히는 일 없도록 특허 개방을 추구합니다. 메타는 COPA의 이사진으로도 합류하면서 자신들의 특허를 다른 회원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메타는 디엠 매각과 함께 암호화폐 관련 기술을 이미 실버게이트캐피털에 매각한 상태였습니다. 모든 특허를 자유롭게 나누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페이스북이 합류한 이후 새롭게 개발된 기술로 COPA가 주목을 받은 사례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대신, COPA는 크레이그 라이트라는 인물에게 제기한 소송으로 더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기꾼에게 왜 소송을 제기했을까? 크레이그 라이트는 ‘사토시 호소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2015년 미국의 IT전문매체 <와이어드>와 <기즈모도>에 의해 처음 노출된 이후 스스로를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해왔지만, 그가 제시한 증거를 두고 다른 전문가들은 거짓이라며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실제로, 세계 최대 규모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창업자인 창펑자오는 그를 “사기꾼”이라 비판했고,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은 그의 주장을 “헛소리”라고 평가했습니다. “호주 출신 IT 전문가로 스스로를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 출처: craigwright.net 사기꾼으로 몰리고 있지만, 비트코인 백서의 저작권은 정작 크레이그 라이트에게 있습니다. 미국 저작권청은 지난 2019년 5월 비트코인의 오리지널 코드와 비트코인 백서에 대한 크레이그 라이트의 저작권 등록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크레이그 라이트가 정말 사토시 나카모토인지 확인 절차를 거친 것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저작권 등록자명에 사토시 나카모토와 크레이그 라이트의 이름이 함께 기재돼 있습니다. 이후 크레이그 라이트는 비트코인 백서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COPA 창립 멤버인 잭 도시의 회사 ‘블록(Block)’ 홈페이지에 백서가 올라온 것을 보고는 크레이그 라이트 측에서 저작권을 주장하는 서한을 지난 2021년 1월 보냈습니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COPA는 크레이그 라이트가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닐 경우 백서의 저작권이 그에게 있지 않음을 인정해 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고 소송전이 시작됐습니다. 페이스북이 COPA에 합류한 건 소 제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준비 서면 등 절차를 마친 크레이그 라이트와 COPA의 소송은 다음 달(2024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소송의 재판부인 영국 고등법원의 멜러(Mellor) 판사는 크레이그 라이트가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가 맞는지를 가리는 정체성 이슈가 이번 소송의 핵심이라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정체성 다툼은 시작일 뿐, 그 뒤에는 더 큰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허 부자 크레이그 라이트 사기꾼 취급받지만, 크레이그 라이트는 블록체인 관련 기술 특허를 다수 보유하는 의외(?)의 면모도 갖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포브스> 보도에 따르면, 크레이그 라이트는 2012년 가을부터 비트코인과 관련한 특허를 신청하기 시작해 현재는 블록체인 관련 특허를 800개나 갖고 있고, 3천여 개의 특허는 출원 단계에 있습니다. 이처럼 특허를 쌓아 올리는 데에는 그가 지난 2015년 공동 창업한 ‘nChain’이라는 IT 회사가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재작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블록체인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가진 기업은 소프트뱅크 그룹으로, 모두 4,001개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약 92%는 당시는 계열사였던 중국 알리바바 그룹의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중국 기업이 1위인 것입니다. 2위 평안보험과 5위 텐센트 역시 중국 기업입니다. 보유 특허 3위 기업은 IBM이고, 네 번째가 바로 nChain입니다. 이처럼 nChain은 중국과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주도하는 블록체인 기술 경쟁에서 당당히 이름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글로벌 특허정보업체 ‘렉시스넥시스(LexisNexis)’가 재작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Innovation-Momentum Report’에 nChain은 2년째 선정됐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출원하는 특허의 질적 수준을 매년 평가해 업계에서 혁신을 주도하는 100대 기업을 선정하는 건데, AI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를 비롯해 삼성과 애플, 인텔, 알파벳, 메타, ASML, CATL, 화이자 등 분야를 막론하고 시장을 이끌고 있는 기업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름도 생경한 nChain이란 회사가 업계 최고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BSV의 아버지 크레이그 라이트 사단의 이런 기술력과 특허는 BSV 개발로도 이어졌습니다. BSV는 ‘비트코인 사토시 비전(Bitcoin Satoshi Vision)’의 줄임말입니다. 시장에서는 비트코인(BTC)의 이름을 팔아 한 몫 챙겨보려는 ‘비트코인의 아류 코인’ 정도로 이해되고 있지만, BSV는 BTC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앞서, 비트코인의 블록 크기가 1MB에 불과해 높은 수수료와 느린 거래 속도 등 여러 한계를 노출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BTC 개발자 사이에서도 블록 크기를 더 키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쟁들이 이어져 왔고, 결국 업데이트를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원래 거래 기록에는 소유자의 전자 서명도 포함돼 있는데, 용량을 줄이기 위해 거래 기록과 전자 서명을 서로 분리하기로 한 것입니다. 즉, 거래 기록은 전처럼 블록에 새기고 전자 서명은 블록이 아닌 다른 곳에 보관함으로써 거래 처리량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것입니다. ‘Segregated witness(분리된 증인)’ 또는 줄여서 ‘Segwit’이라 불리는 이 업데이트는 2017년 8월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BTC 개발자 모두가 이 업데이트에 찬성을 한 건 아닙니다. 특히, 크레이그 라이트를 포함한 개발자 일부는 마치 이중장부처럼 거래 기록과 전자 서명이 분리되면서 거래의 투명성이 떨어지고 자금 세탁에 활용될 위험성은 커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이처럼 Segwit 업데이트를 받아들일 수 없는 개발자들은 따로 떨어져 나와 ‘비트코인 캐시(BCH)’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BCH 내부에서도 이견이 드러나며 2018년 11월 한 차례 더 분리가 이뤄졌고 크레이그 라이트 주도로 비트코인 사토시 비전, BSV가 탄생했습니다. BTC vs BSV 그렇다면 BSV는 BTC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우선, 생태계의 규칙 자체가 다릅니다. BTC의 경우, A가 B에게 비트코인을 지급하더라도 이 거래 기록(Transaction)이 장부 역할을 하는 블록에 새겨진 뒤에야 효력이 생깁니다. 이런 합의 때문에 A와 B는 거래 기록이 블록에 새겨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에 반해 BSV는 거래 기록(Transaction) 그 자체가 효력을 갖는다고 봅니다. 즉, 거래 기록이 블록에 새겨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A가 B에게 비트코인을 지급한 내역만 있다면 효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거래 기록에는 전자 서명도 포함돼 있어 위조나 변조 여부를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거래가 이뤄진 뒤에야 채굴자들에게 거래 기록을 전파하고, 블록에 새기는 채굴 작업은 그다음에 이뤄집니다. 이를 통해 BSV는 수수료는 낮은데 거래 속도가 빠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BSV 생태계에서도 블록은 10분마다 새롭게 생성됩니다. 그러나 블록의 최대 크기는 4.3GB입니다. BSV 진영에서는 더 커진 블록 크기 덕분에 초당 거래량도 5만 건까지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BSV 채굴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nChain의 목표는 조만간 1TB까지 블록을 키우는 것입니다. 디지털 화폐가 되기 위한 경쟁에서 더 앞서 나가기 위함인데, 크레이그 라이트는 지난 2019년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자신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반드시 돌아온다 결론적으로, 앞서 소개한 크레이그 라이트와 COPA 사이의 소송은 사토시의 정체성을 놓고 벌이는 싸움인 동시에 비트코인(BTC) 진영과 비트코인 사토시 비전(BSV) 진영이 벌이는 치열한 정통성 다툼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미래의 디지털 화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블록체인 특허 전쟁의 전초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소송 선고는 이르면 오는 3월쯤 나올 전망입니다만, 크레이그 라이트가 승소한다고 해서 곧장 BSV가 BTC를 대체하고 BTC가 휴지조각이 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BTC는 이미 현물 ETF 상장 승인 결정으로 투자재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인정받고 자본시장에 편입됐기 때문입니다. 다만, 법원이 크레이그 라이트를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로 인정한다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선, 크레이그 라이트가 “진정한 비트코인은 BSV”라고 주장하며 BTC에게서 ‘비트코인’ 이름을 박탈할 수 있습니다. 또, 비트코인 파일 형식과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BTC 운영 자체를 제한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크레이그 라이트는 재작년에 이미 BTC 진영을 상대로도 저작권 소송을 제기했고, COPA가 제기한 ‘사토시 정체성’ 소송과 합병돼 함께 심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크레이그 라이트가 패소한다고 해도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상은 멈추지 않고 전진할 것입니다. 페이스북의 실패를 바로 옆에서 보았던 페이팔도 지난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며 디지털 화폐를 위한 전쟁에 뛰어들었고, 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블록체인 특허 경쟁은 더 속도를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도전 끝에 사토시의 꿈이 마침내 실현된다면, 황금이 돼버린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미래는 어떻게 바뀔까요?! 우리가 여전히 사토시의 귀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디자인 : 최혜지
공매도 제도를 금융당국이 중단시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불법적인 무차입 공매도 관행 때문에 시작됐지만, 당국은 공매도 제도 자체를 손보려 하고 있습니다. 불법이 만연하기 때문에 제도 전반에 대해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이복현 금융감독원장, 2023년 11월)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개선돼야 공매도가 재개될 수 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질문에 금융 당국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매도가 중단되기에 앞서, 저는 공매도가 특정 종목의 주가 하락을 초래한다는 주장과 공매도가 오히려 주가 급락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각각 소개했습니다.* 이처럼 상반된 주장을 굳이 비교했던 이유는 둘 다 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 : <‘공매도와의 전쟁’이라는데…공매도는 주가 급락의 원흉? 방파제?> 당국이 답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공매도 제도가 정말 주가 하락의 주범일까? 아니면 주가 급락을 막는 방파제일까?’라는 질문은 덮어둔 채 제도 개선에 나섰기 때문에 물음표가 남는 것입니다. 이에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과 함께 공매도가 중단된 한 달 동안 주식시장에 나타난 변화들을 직접 분석해 봤습니다. 이를 통해 당국이 답하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찾아보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공매도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고민까지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의 주범일까? 우리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 비중은 코스피의 경우 55%, 코스닥의 경우 80%에 육박합니다. 미국과 일본이 20% 수준으로 추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습니다.(금융위원회, 2023년 11월) 그렇다면, 공매도를 주가 하락 주범으로 지목하는 건 개인투자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까요? 미국에서도 개인 투자자들은 자본력을 갖춘 기관들이 공매도를 통해 개인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겨주고, 그만큼 이익을 챙긴다고 의심합니다. 그런 의심에서 시작된 사건이 바로 ‘게임스탑(GameStop) 사태’입니다. ‘멜빈 캐피탈(Melvin Capital)’라는 미국 헤지펀드가 코로나가 한창이던 재작년 초 비디오 게임 소매업체인 게임스탑의 주식을 대규모 공매도하자 이에 대항해 개인 투자자들이 똘똘 뭉쳐 게임스탑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하며 주가를 끌어올렸고, 멜빈 캐피탈은 천문학적 손실을 피하지 못하고 끝내 파산했습니다. ‘게임스탑 사태’를 계기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공매도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했다. 국경을 막론하고 개인투자자들이 이처럼 공매도를 주가 하락 주범으로 지목하는 이유는 손익 구조와 관련이 깊습니다. 공매도는 앞으로 주가가 떨어질 걸로 예상되는 종목의 주식을 빌려 매도하고, 나중에 주가가 떨어졌을 때 사들여 되갚는 투자 방식입니다. 주가가 떨어져야 이익을 얻는 구조인 것입니다. 때문에, 막대한 자본과 정보력, 시장 지배력을 지닌 기관 투자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매도한 종목의 주가를 떨어뜨려 이익을 챙길 것으로 개인투자자들은 의심하고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인지 확인하기 위해 공매도와 주가의 관계를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공매도를 위해 주식을 빌려놓고 아직 갚지 않은 미상환 물량을 ‘공매도 잔고’라 하는데, 이 잔고가 늘었다는 건 시장에서 해당 종목을 공매도한 다음 주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투자자가 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잔고가 늘었을 때 1거래일 뒤에 수익률이 상승하는지 아니면 하락하는지 살펴본다면 공매도와 주가 사이의 상관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전면 중단됐던 공매도는 재작년 5월부터 코스피200-코스닥150 종목에 한해서 재개됐습니다. 때문에, 분석 대상은 이들 350개 종목입니다. 분석 기간은 지난달 공매도를 중단하기 직전 6개월(2023년 5월 2일 ~ 2023년 11월 3일)로 잡았습니다. 즉, 지난 반년 동안 350개 종목 별로 공매도 잔고와 수익률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X축은 공매도 잔고(T 거래일)이고 Y축은 주가 수익률(T+1거래일)인 그래프 위에 각 종목별로 점을 찍어보면 관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점을 다 찍고 나면 추세선을 그려볼 수 있는데, 이때 추세선의 기울기가 공매도 잔고와 수익률 사이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가령, 유한양행의 경우 추세선 기울기는 –0.28입니다. 이는 공매도 잔고가 늘면 수익률이 떨어지는 음의 관계가 나타났단 의미입니다. 반대로, ISC의 추세선 기울기는 +0.32입니다. 공매도 잔고가 늘 때 수익률이 오르는 양의 관계가 나타났단 뜻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350개 종목별로 추세선의 기울기(상관 계수)를 구해보니, 213개 종목에서 음의 관계가 나타났고 나머지 137개 종목에서 양의 관계가 나타났습니다. 모든 종목에서 공매도 잔고가 늘었을 때 주가가 하락하는 음의 관계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공매도로 주가가 크게 하락했을 걸로 의심받던 에코프로비엠은 공매도 잔고가 늘 때 오히려 수익률도 오르는 양의 관계가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가 넘는 종목에서 음의 관계가 나타났습니다. 이는 지난 반년 간 우리 주식시장에서 공매도와 주가 하락의 사이의 상관성이 확인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추가 분석 분석 기간 동안 코스피(-6.2%)와 코스닥(-8.6%) 모두 하향 곡선을 그렸습니다. 미국발 고금리 긴축 조치로 우리 주식시장이 힘을 쓰지 못하며 약세장에 머물렀기 때문에 공매도 잔고와 무관하게 수익률이 하락한 것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지수 수익률이 –5%를 기록한 날에 특정 종목의 수익률이 –4%였다면, 실질적으로 이 종목은 +1%만큼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선 분석에서는 반영되진 않았습니다. 이런 시장 상황까지 반영하기 위해서는 ‘시장조정 수익률’이란 개념을 도입하면 됩니다. 방법은 이번에도 간단합니다. 종목 수익률에서 해당 종목이 포함된 지수의 수익률을 뺀 값을 '시장조정 수익률'로 보고, 공매도 잔고(T 거래일)와 시장 조정 수익률(T+1 거래일)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분석 결과, 음의 관계가 나타난 종목은 199개로 소폭 줄었고,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난 종목은 151개로 조금 늘었습니다. 수치상의 변화는 있었지만 여전히 둘 사이에는 10%가 넘는 간극이 있을 정도로 공매도와 주가 사이에는 음의 관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추가 분석에서도 공매도와 주가 하락 사이의 상관성이 드러난 건데, 그렇다면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주범이 맞다.”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전상경 한양대학교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공매도가 주범은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다만, 우리 주식시장에선 공매도 이후 추종 매도가 강력하게 뒤따르고 있어 결과적으로 공매도가 쏟아진 종목은 주가 하락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합니다. 전상경 │ 한양대학교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 “공매도 물량이 전체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공매도만으로 주가 수익률에 영향을 주기는 어렵단 뜻입니다. 그럼에도 공매도와 주가 하락 사이의 상관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공매도 잔고의 증감을 보고 개인 투자자들이 매매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공매도 잔고가 늘어난 모습을 보고 ‘외국 및 기관 투자자의 매도세가 더 강하겠구나.’라고 생각을 해서 덩달아 추종 매도에 나서고, 공매도 잔고가 줄 때는 ‘공매도 세력이 빌린 주식을 상환하고 있어 매수세가 나타나겠구나.’라고 생각해 추종 매수에 나서면서 음의 관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공매도는 주가 급락의 방파제일까? 공매도의 순기능을 지지하는 쪽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공매도란 정보력을 갖춘 기관 투자자들이 ‘이 종목은 고평가 돼 있음이 심히 의심된다.’라며 써 보낸 경고장에 해당합니다. 덕분에 과열됐던 시장의 열기는 진정되고 거품처럼 치솟았던 주가는 적정 수준으로 회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매도 이후 주가가 떨어지는 건 정보력을 갖춘 기관 투자자들이 내린 판단이 맞았음을 뜻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공매도가 제한된다면 이런 순기능은 사라지고 시세 조종이나 과도한 투자 쏠림 현상 등에 의해 주가가 불나방처럼 치솟을 때 견제할 수단이 없어집니다. 실제로, 공매도 제외 종목인 영풍제지는 주가조작 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불과 1년 만에 20배나 가격이 폭등했다가 검찰 수사 이후 6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며 바닥을 쳤습니다. 공매도라는 방파제가 뚫리면, 시장은 위아래로 더 크게 출렁이며 혼란만 가중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공매도 제외 종목인 영풍제지의 주가는 1년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크게 출렁였다. 이런 주장이 일리가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공매도 중단 이후 시장의 변동성을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방법은 역시 간단합니다. 코스피200-코스닥150 종목 별로 공매도 중단 이전 한 달(10/6~11/3, 총 20거래일) 동안 주가의 변동성을 구합니다. 그리고 공매도 중단 이후 한 달(11/6~12/1, 총 20거래일) 동안의 변동성도 구해 둘을 비교하면 끝입니다. 각 종목의 수익률을 거래일별로 기록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첫째 날은 +4%, 둘째 날은 +2%, 셋째 날은 –1%, …….” 이렇게 기록하다 보면 수익률 평균치를 구할 수도 있고, 평균치로부터 각각의 값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표준편차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산출된 표준편차 값이 바로 변동성*에 해당합니다. 가령,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공매도 중단 후 변동성 값이 중단 전보다 더 커졌는데, 이는 변동성이 심해졌음을 뜻합니다. 공매도 중단 이후 변동성 값이 감소한 LG 화학은 변동성이 줄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나오는 변동성 값은 일별 표준편차 값을 연율화(Annualization)한 수치입니다. 분석 대상인 코스피200–코스닥 150 총 350개 종목의 변동성을 모두 비교한 결과, 공매도 중단 이후 변동성이 커진 종목은 모두 165개였고, 중단 이후 오히려 변동성이 줄어든 종목은 185개였습니다. 공매도 순기능을 지지하던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변동성이 감소한 종목의 수가 더 많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매도 순기능은 허구에 불과한 주장일까요? 전문가들은 둘 사이의 격차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공매도의 순기능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입니다. 추가 분석 공매도 중단 조치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을 집단은 직전까지 공매도가 활발하게 이뤄졌던 종목들입니다. 반대로, 공매도가 별로 이뤄지지 않았던 종목들은 공매도 중단 조치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중단 조치에 영향을 크게 받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구분한 다음 둘의 변동성 변화를 서로 비교*해본다면, 공매도 중단 조치가 변동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과 효과를 분석할 때 사용되는 이중차분법(DID, Difference In Difference). 공매도 중단에 크게 영향을 받았을 집단을 A라고 하겠습니다. A 집단에는 공매도 잔액 상위 50개 종목을 포함시켰습니다. 실제로, A 집단의 공매도 잔액은 전체 350개 종목 공매도 잔액의 74%를 차지할 정도로 공매도가 집중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따라서 공매도 중단 조치에 다른 종목들보다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매도 중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을 집단(B)에는 공매도 잔액 비중이 0.6%에 불과한 하위 50개 종목을 포함시켰습니다. 거듭 설명하지만, B 집단은 공매도 중단 조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을 종목으로 이뤄졌습니다. 반면에 A 집단은 공매도 중단 조치에 크게 영향을 받았을 종목으로 구성됐습니다. 따라서 둘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는 공매도 중단 조치로 인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공매도 중단 조치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을 B 집단부터 살펴보겠습니다. B 집단에 포함된 종목들은 공매도 중단 이후 평균적으로 3.7%만큼 변동성이 커진 걸로 나타났습니다. 공매도가 저조했던 종목들인 만큼 이 결과는 공매도 중단 조치와는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물가상승률 둔화, 긴축 마무리 시그널 등이 공교롭게도 공매도 중단 조치 후 쏟아지며 시장 전반적으로 변동성이 커졌는데, 이 영향으로 B 집단의 변동성이 확대된 걸로 풀이됩니다. 반면, 공매도가 활발하게 이뤄졌던 A 집단은 공매도 중단 조치 이후 변동성이 8.1%나 커졌습니다. A와 B, 두 집단 모두 공매도 중단 조치 이후 변동성이 확대됐지만, A 집단의 변동성이 B 집단보다 4.4% 포인트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런 증가폭 차이는 곧, 공매도 중단 결정에 따른 결과물인 것입니다. 공매도 중단 조치는 정말로 변동성을 더욱 키운 걸까요? 빈기범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고평가 된 종목의 주가 급등을 견제할 수 있는 공매도를 갑자기 중단시켜 버렸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주가 변동성이 더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빈기범 │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금융 위기나 코로나 위기처럼 금융 시장이 불안정할 때 공매도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면 안정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국은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공매도가 주가 하락 주범’이라는 일부 개인 투자자들의 극성스러운 요구를 받아들여 공매도를 중단시켰습니다. 그 결과 분석 기간 동안 주식 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커졌음이 드러났습니다. 어느 땐 급등했다가 한눈팔면 떨어질 정도로 변동성이 과도한 시장에선 개인 투자자들은 손실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됩니다. 시장과 투자자, 당국 모두에게 결코 좋은 시장은 아닌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든 기울지 않은 운동장이 필요하다 앞선 분석들은 여러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아 설계한 결과지만, 연구 논문에 준할 정도로 정교한 분석들은 아닙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변화를 직접 나서 분석한 이유는 공매도를 둘러싼 질문들에 당국이 여전히 답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무엇이며, 또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요? 첫 번째 분석에서 공매도 잔고가 늘면 주가 수익률이 하락하는 음의 관계가 나타났습니다. 개인 투자자들의 주장처럼 기관 투자자들로 구성된 이른바 공매도 카르텔 세력이 공매도로 이득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가 하락을 유도했기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해당 종목이 단순히 고평가돼 기관 투자자들의 예상대로 시장에서 조정을 거치며 주가가 적정 수준으로 내려온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공매도 잔고 변화에 따른 추종매매 경향이 유독 우리 시장에서 강하게 나타나 주가가 하락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과 관계가 어떻든 공매도가 집중된 종목은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성을 보였습니다. 인위적인 주가 하락에 공매도가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예방할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공매도를 갑자기 중단시켜 완전히 틀어막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며 일방적으로 판을 뒤집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분석에서 나타난 것처럼 공매도의 순기능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공매도 잔고가 많은 종목일수록 그렇지 않은 종목보다 공매도 중단 조치 이후 변동성 증가폭이 더 컸습니다. 고작 한 달, 20거래일 동안의 변화를 비교한 것이지만 중단 기간이 기약 없이 더 길어진다면 변동성 증가폭은 더 커질 수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장의 모든 주체들에게 돌아갑니다. 공매도의 순기능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마련돼야 하는 것입니다. 공매도가 우리 주식시장의 적인지, 아군이지 피아식별이 어려웠던 것은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매도를 적으로 몰아세우는 마녀사냥 식의 대책도, 공매도 제도가 알아서 잘 시행되기를 시장에 그저 맡겨두는 식의 대책도 아닙니다. 공매도를 둘러싼 부정적 우려와 긍정적 기대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개선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디자인 : 옥지수, 최혜지
연일 ‘홍콩 ELS’에서 내년 상반기에 수조 원대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ELS(Equity-Linked Securities)는 특정 종목이나 주가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고, 이 기초자산의 추이에 따라 수익률이 연계되는 증권입니다. 때문에 홍콩 ELS란 홍콩 주가 지수와 연계된 증권을 뜻합니다. ELS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경한 이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17년만 해도 대한민국 부자들이 재테크를 위해 가장 투자하고 싶어 하던 금융상품이었습니다.(하나금융경영연구소, 2017) 미국과 홍콩 등에서 1980년대부터 시작됐던 ELS는 우리나라엔 지난 2003년 처음 들어왔습니다. 그 이후 20년 동안 ELS는 650조 원 넘게 발행되며 대표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금융투자협회) 결국, ‘홍콩 ELS 수조 원 손실’ 뉴스의 골자는 투자 좀 해보려 했던 개인들이 조 단위 손실 위험에 처했단 이야깁니다. 아니, 어떤 상품이기에 이렇게 큰 손실이 나는 걸까요? 그런 상품에는 도대체 누가 돈을 투자하는 걸까요? 그리고 큰 손실이 날 수도 있음에도 왜 계약에 나선 것일까요? 이 뉴스가 궁금했던 모두를 위해 묻고 답하며 한 걸음씩 들어가 보려 합니다. ✏️ 뉴스쉽 네 줄 요약 홍콩 ELS 상품을 은행에서 계약했던 고객들이 수조 원대 손실 위험에 뉴스가 연일 등장하고 있는데, 내용의 핵심은 바로 불완전 판매 논란입니다. 홍콩H지수에 연계된 홍콩 ELS 상품은 홍콩 지수가 폭락할 경우 손실이 불가피한 초고위험 금융상품임에도 정기 예금이나 적금처럼 안전한 상품으로 둔갑돼 판매됐기 때문입니다. 앞서, 수천억 원의 투자 손실을 초래한 DLF 불완전 판매 사태를 계기로 <금융소비자보호법>까지 제정됐음에도 불완전 판매 논란이 반복되는 건 형식에만 치우쳐 실질적으로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번 사태의 결론에 따라 수익에 눈이 먼 은행권이 고객을 사지로 내모는 행위에 제동이 걸릴 수도, 아니면 금융자본주의가 초래하는 비극이 계속해서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홍콩 ELS, 수조 원대 손실” 이 기사는 어제 나온 것도, 지난주에 보도된 것도 아닙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6년 2월 15일(월) 머니투데이 신문 1면에 나온 기사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불과 몇 년 전에도 홍콩 지수가 급락하며 홍콩 ELS 투자자들이 수조 원대 손실 위험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ELS를 설명하기에 앞서 이 기사를 소개한 건 ELS 상품이 고위험 파생상품이란 점을 가장 먼저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ELS는 우량한 종목(테슬라, 삼성전자 등)의 주가나 홍콩H지수(HSCEI)*, S&P500 지수, EUROSTOXX50 지수 등 해외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고, 이 기초자산 움직임에 따라 손익이 결정됩니다.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홍콩 ELS’는 이 가운데 홍콩H지수를 포함한 해외 지수 3개 정도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입니다. *홍콩H지수(HSCEI) : 중국본토기업이 발행했지만 홍콩 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되고 있는 주식(H-Shares) 중 시가총액, 거래량 등의 기준에 의해 분류한 40개 종목으로 구성된 지수 상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통상 홍콩 ELS 상품의 만기는 3년입니다. 즉, 3년 뒤 만기 시점에 홍콩H지수를 포함해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중 하나라도 판매자와 투자자가 사전에 서로 합의한 수준 밑으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원금에 더해 수익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이때, 지수가 폭등한다고 해서 수익률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만기 시점에 지수가 폭락을 거듭하며 사전에 합의한 수준을 밑돌고 있다면, 하락한 만큼 원금도 손실을 입습니다. 주가 상승보다는 하락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품인 것입니다. 3년 만기가 도래하기 전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습니다. ELS 상품은 6개월마다 조기 상환 기회를 갖습니다. 이때도 방식은 똑같습니다. 조기 상환 시점에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들이 판매자와 투자자가 사전에 합의한 수준을 밑돌지 않으면 ‘원금+수익’이 보장됩니다. 단기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기에 만기를 채웠을 때보다는 수익은 줄어듭니다. 판매자와 투자자가 사전에 합의한 기준보다 지수가 높다면 원금과 수익을 보장받기 때문에, 이 기준을 ‘배리어’라고 부릅니다. 통상 6개월과 1년 뒤 조기 상환 시점에는 배리어가 90% 수준입니다. 즉, ELS 계약 시점보다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중 어느 하나도 90%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면 이 시점에 원금과 수익을 조기 상환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배리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낮아집니다. 계약 이후 1년 6개월 또는 2년이 되는 시점에는 80%까지 내려가고, 2년 6개월이 되는 시점에는 70%, 3년 만기를 다 채운 시점에는 55%까지 떨어집니다.(배리어는 상품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ELS에 투자한 시점에 경기 침체가 발생해 기초자산 지수들이 계약 당시의 60%까지 하락했더라도 지수들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3년 만기를 채우면 투자 원금과 약정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ELS 상품에 배리어를 하나 더 추가한 것이 바로 ‘Knock-in’형 ELS 상품(이하 ‘녹인형 ELS’)입니다. 이 상품에는 기존 배리어 밑에 녹인(Knock-in) 구간(통상, 계약당시 지수의 50% 수준)이 존재합니다. 1번 사례처럼 만기까지 한 번도 배리어를 넘지 못하더라도 녹인 구간에 진입하지 않았다면 원금과 약정한 수익을 모두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녹인형 ELS 상품의 특징인데, 투자자에게 항상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가 한 번이라도 계약 당시보다 50%를 밑돌아 녹인 구간에 진입했다면 원금과 수익을 받기 위해서는 2번 사례처럼 반드시 배리어를 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녹인형 ELS의 배리어는 다른 상품들보다 더 높게 형성돼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ELS는 2016년에도, 지금도 투자자들을 수조 원대 손실 위험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녹인형이든 아니든 ELS는 막연한 확률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야바위 게임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야바위는 뒤집었을 때 나오는 카드 숫자가 중요하다면, ELS는 내가 어떤 지수를 선택했고 그 지수가 얼마나 하락할지가 중요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야바위 게임에 어쩌다 투자자들이 내몰렸을까요? “한 번도 손실난 적 없습니다” 홍콩 ELS 상품을 설계하고 발행하는 주체는 증권사라면, 은행은 이 상품을 고객에게 판매하는 창구 역할을 합니다. 홍콩 ELS 상품 열에 아홉은 은행에서 계약됐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상품 계약자들은 수익률이 그나마 괜찮은 예금이나 적금 상품을 알아보려 은행을 방문했다가 ELS 상품을 권유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때마다 이들이 은행 직원으로부터 들었던 말은 “지금까지 손실난 적 없어요.”였습니다. 예금이나 적금 정도로 생각하고 가입한 투자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야바위 같은 ELS 상품을 두고 ‘손실난 적 없는 금융상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난 2015년 홍콩H지수는 14,801까지 치솟았지만 불과 6~8개월 만에 49%나 급락했습니다. 이에 따라 앞서 살펴본 신문 기사처럼 무려 10조 원에 달하는 투자 손실이 발생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만에 지수는 다시 1만 선을 회복하며 대규모 손실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물론, 이 사이에 만기가 도래해 손실을 본 투자자들도 있습니다.) 그 이후, 2017년부터 2020년 말까지 홍콩H지수는 40% 이상 급락하거나 급등하는 일 없이 횡보기를 갖습니다. 그 결과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 상품의 경우 손실 위험이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덕분에 홍콩 ELS 상품은 이제 손실난 적 없는 안전한,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금융 상품으로 둔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기간 매년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상품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대규모 손실 위험을 겪었던 2016년에는 발행금액이 5조 원에 불과했지만, 2017년에는 3배 정도 늘어 16조 원 넘게 발행됐고, 2018년에는 또 3배 늘어 50조 원 가까이 발행됐습니다. 2019년에도 상승세가 이어지며 50조 원 넘는 홍콩 ELS 상품이 발행됐습니다. 코로나 락다운 위기를 맞았던 2020년에도 홍콩 ELS 상품은 무려 19조 원 넘게 발행됐습니다. ELS의 민낯이 드러나다 안전한 금융 상품처럼 행세하던 홍콩 ELS의 실체는 지난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코로나 위기 대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