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눈을 감고 내가 살고 있는 집을 한번 떠올려 보자.

그 공간을, 두 카테고리로 구분해 보자. '함께하는 공간(남들에게도 쉽게 보이는 공간)'과 '혼자만의 공간(내밀한 공간)'으로 말이다.

현관문을 들어오면 거실이 있다. 옆으로는 부엌, 그리고 투 룸이라면 침실이 따로 있을 수도 있다. 마지막은 화장실일 것이다. 가장 내밀한 공간은 화장실. 혹자는 침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화장실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1인 가구든 4인 가구든 화장실 변기에 두 사람이 함께 앉는 일은 없으니까. 가장 내밀하지만 동시에 가장 소외된 공간인 화장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불교(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부른다. 우울한 기분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스무 살부터 독립해 오피스텔, 빌라, 아파트를 넘나들며 13번 이사하는 동안 만난 화장실들은 우울한 기분을 풀기는커녕 모두 조금씩은 다 우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월세집이라도 좋다! 더 이상 우울한 화장실에서 살지 않겠다고. 내 스타일로 고쳐서 살아 보겠다고.

이렇게 말하면, 분명히 "화장실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더럽지만 않으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남들이 집 살 돈으로 이곳저곳을 경험하고 떠돌아다니는 데 쓴 대가로, 조금은 다른 화장실을 본 바람에, 마음에 바람이 들고 말았다.

정말 멋진 화장실은 때로는 호텔이나 레스토랑 같은 상업 공간, 미술관이나 관광지에 있었지만, 내 마음에 가장 오랫동안 남았던 공간들은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노르웨이나 일본의 가정집 화장실이었다. 때로는 창고 같은 곳에 변기만 덩그러니 있기도 했고, 플라스틱 바닥 같기도 했고, 마룻바닥이기도 했고, 때로는 타일 대신 특색 있는 벽지로 마감이 되어 있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나라 주거 현실은(그 공간이 빌라든, 아파트든, 오피스텔이든) 그 형태나 크기의 다양성과는 별개로 화장실 도면만큼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점술가는 아니지만, 1~2인 가구의 화장실을 대충 그려볼 수 있다. 대부분은 씻는 공간(욕조, 샤워실, 세면대)과 배출 공간(변기)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바닥과 벽면은 정체 모를 타일 마감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창문이 없거나, 있더라도 철제 새시(프레임)일 것이다.

거주비용이 평균보다 저렴한 곳이라면 공간의 크기가 협소해 변기와 세면기가 빈틈없이 설치되어 마치 "변기에 앉아서 샤워를 하라는 뜻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이보다도 더 많이 저렴한 곳이라면. 세탁기까지 화장실 안에 함께 해야 할 수도 있다. '신축'자를 앞에 붙인 오피스텔이나 빌라는 사정이 조금 다를 수도 있는데, 여기서의 욕실 트렌드는 '욕조'를 없애고 유리 칸막이로 '간이 샤워 부스'를 설치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타일의 색상만 달라졌을 분, 모두 거의 비슷한 크기의 타일로 마감한 점이라던가, 여전히 변기와 세면대가 분리되지 않는 것만은 비슷할 것이다.

만약 거주 비용이 평균보다 조금 비싼 곳에 산다면, 아마도 '유리문'으로 설치된 샤워부스가 있을 수도 있고, 화장실이 두 개 중 큰 욕실에는 욕조가 남아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변기와 세면대는 붙어 있을 것이다.

정리하면, 아주 가끔씩 외국인 대상의 렌트용 주거지 또는 일본식으로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현재까지는 건식으로 따로 변기만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된 소형 평수의 공간은 별로 찾아보지 못했다. (물론 있을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그런 곳에는 살아보지 못했다.)

요약하면,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타일로 마감되고, 변기와 세면대와 샤워실이 분리되지 않은 화장실에 살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실로 아쉬운 점이다. 이렇게 천편일률적인 화장실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몇몇 전문가들은 물을 쓰는 공간을 한곳에 집중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미세하게 발생할 수 있는 수평이나, 편차를 타일 마감으로 가릴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한편 거주자 입장에서는 시원하게 물을 팍팍 끼얹으며 누수 걱정 없이 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다는 극강의 장점도 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분리식 화장실, 건식 화장실을 가진 공간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그 장점을 단지 청소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는 확신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분리형 건식 화장실의 장점은, 우선 덜 마른 욕실용 슬리퍼로 인해 예상치 못하게 양말이 젖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욕실 바닥에 물이 있는 게 정말 싫다!) 그리고 마른 바닥이 생기면, 화장실도 하나의 방이었다는 사실이 보인다. 그 공간 안에 여러 가지 오브제 등을 놓아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하나의 공간이 된다.

물론 나는 돈 없는 임차인일 뿐이니까 화장실 구조를 개조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단순한 셀프 인테리어, 예를 들어 문에 페인트칠을 한다든가, 조립식 나무 바닥을 설치하거나 샤워 커튼 설치 등으로 공간을 구분할 수는 있다.

이렇게 내 맘에 쏘옥 들게 꾸미고 살았더니,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 그 얘기를 좀 공유한다. 낡고, 좁은 집일수록 화장실을 고치는 선택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투입 비용 대비, 만족도가 높은 '가성비' 좋은 리모델링일 뿐만 아니라, 내가 혼자 매일 가장 먼저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안하는 몇 가지 팁들을 따라 해 보고, 더 나은 팁이 있다면 나에게도 꼭 알려주시길 바란다(집단 지성은 위대한 법이니까).

부디 당신의 화장실이 숨기고 싶은 우울했던 공간에서, 포근하고 아늑한 당신만의 멋진 공간으로 재창조되길!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화장실 만드는 10가지 팁

1. 가장 시급한 일, 전구를 교체한다. 따뜻한 느낌이 나는 전구색으로 바꿔보자.
- 형광등은 공부할 때나 필요하다.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하거나 책 읽는 공간이 아니라면, 전구색 불빛으로도 충분하다.

2. 타일이 마음에 안 들거나, 화장실 문에 손때가 묻어 너무 더럽다면 페인트칠 하자. 문 안쪽만 해도 좋다.
- 나는 핑크색으로 과감히 칠했다. (집주인과의 상의는 필수이다)
- 요즘 페인트는 '욕실용'이나, '타일용'으로 습기에도 강하게 나오기 때문에 걱정 말자.

3. 조립식 마룻바닥을 설치해보자. 욕실 전체를 할 필요는 없다. 양말 신고 들어가고 싶은 부분만 설치하고, 설치 시 '고무망치'로 톡톡 두들기면 편하다.
- 시중에 정말 다양한 제품이 있으므로, 취향에 맞는 색깔, 마감을 선택하면 된다.
- 나는 2번 이사할 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재설치할 정도로 만족감이 크다.
- 물 닿으면 어쩌냐는 질문에 미리 답을 하자면, 페인트 중 '무색 욕실용 마감' 페인트를 사서 코팅을 했다. 또 위에 러그를 깔고 있으므로 물이 바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나무 바닥은 가급적 직접 닿는 물청소를 하진 않는다. 주로 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하고, 밑바닥 청소를 위해 모두 분리하고 긴 주기로 물청소를 하고 말린 후 재설치한다. 현재 제품을 5년째 사용 중인데 아직 상한 곳 없이 쌩쌩히 쓰고 있다.
- 다만, 머리카락 등이 나뭇결 틈 사이로 빠질 수 있는데 나는 욕실에서 머리를 말리지는 않아 해당 고민은 크게 해 본 적이 없다.

4. 내가 좋아하는 패턴의 샤워 커튼으로 분리형 욕실을 만든다.
- 씻는 공간은 온전한 타일 바닥으로 두었기 때문에 샤워 시 물 튀김으로 인한 나무 바닥을 보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너저분한 것을 가리기에도 좋다.
- 왜인지 기술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특유의 웃풍이 들어서 추울 때가 있는데, 딱 샤워 공간만큼만 커튼을 설치하면 보온 효과도 확실히 있다.
- 어쩔 수 없이 곰팡이가 잘 생기는 제품이라 철마다 샤워 커튼 기분전환 겸 갈아주거나, 락스로 빨면 새것처럼 다시 깨끗해진다.

5. 화장실도 벽과 문으로 이루어진 '방'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내 취향대로 러그도 깔 수 있고, 화분도 액자도 둘 수 있다.
- 조립식 마루를 설치했거나, 건식 화장실이라고 전제하면 다양한 것들을 사실 놓을 수 있다.
- 나는 변기 위에 앉아 있을 때 마주 보이는 곳을 프레임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보고 싶은 것들(그림 액자나, 화분, 꽃병 등)을 놓았다.
- 화장실 문에도 좋아하는 조그마한 엽서, 액자 등으로 장식해 이 문 뒤에 화장실이 아닌, 하나의 '공간'이 있다고 생각하고 꾸며보자.
-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색과 향, 내가 좋아하는 물건(오브제)으로 둘러쌓인 '우울한 기분을 푸는 곳'으로의 기능이 극대화된다.

6. 낡고 더러워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 변기일수록 '비데'를 설치하라고 하고 싶다.
- 최근엔 비데가 보급형으로도 많이 보급되어 99,000원에 유튜브를 보면서 조금 낑낑거리면 셀프 설치도 할 수 있는 비데를 구할 수 있다.
- 낡은 집일수록 이상하게 화장실이 춥기 마련이고, 비데의 '엉따'(엉덩이가 따뜻한) 기능은 겨울 아침, 변기에 앉을 때마다 작은 행복감을 선사한다.

7. 물때가 싫은 당신, 샴푸 린스 통은 벽에 매달고 유리창 닦기를 추천한다.
- '#무타공'이라는 키워드로 찾으면 요새는 못 없이 붙여서 사용하는 제품이 많이 나온다. 이런 류의 제품들은 드라이어로 열을 조금 가해 붙이면 조금 더 짱짱하게 붙일 수 있다.
- 대용량 무거운 제품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미리 답하자면, 올바른 방식으로 붙인 경우 1,000ml 제품들도 거뜬히 잘 견디고 있다.
- 벽에 걸면, 어메니티를 놓을 공간이 없는 사람들도 쓸 수 있어 공간이 절약되고, 또한 물때가 끼지 않아 청소할 것이 줄어들어 강력 추천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에 물이 튀거나 바닥 수평이 안 맞아 물이 고이는 물때나 물곰팡이는 샤워하고 유리창 닦기로 그때마다 배수구 쪽으로 몰아서 정리해주면 더욱 뽀송뽀송한 건식 화장실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나도 귀찮아서 매일 하지는 못한다)

8. 수건은 용도로 구분해 사용하고, 다양한 고리를 이용해 걸어 말릴 수 있다.
- 나는 몸만 닦는 큰 수건(비치타올), 얼굴만 사용하는 수건, 손만 닦을 수건을 패턴, 색상 등으로 분리해 사용하고 몸만 닦는 수건은 사용 후에 베란다에 널어 햇볕에 잘 말리거나, 문에 걸어 말리는 대신 매일 빨지 않는다. 기존엔 하루에 한 장 수건을 사용했는데 이 방법을 사용한 이후 확연히 빨래 양이 줄었다.
- 수건을 개어서 놓을 장소가 없는 사람들은 화장실 문에 수건용 걸이를 사용해 걸어 놓고 사용 하면 편리하다.
- 여러 가지 수건으로 용도를 분리하는 경우 'S자 고리'를 이용해 기존 설치된 타월 걸이에 주르륵 걸면 된다.

9. 화장실 휴지통을 만지고 버리는 게 싫다면, 기술의 힘을 빌려보자. 손만 대면 자동으로 열리고, 심지어 밀봉까지 자동으로 해준다.
- 이렇게까지 호사스러운 제품을 화장실에서 써도 될까 하는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한번 써보면 앞으로 영원히 집들이 선물은 이걸로 하게 된다.
- '#자동센서', '#자동 밀봉 압축'. '#기저귀 휴지통' 등으로 검색해보면 수많은 제품이 나온다.
- 내가 쓰는 제품은 압축까지 해주는 제품과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것만 해주는 제품이 있는데, 조금 비싸도 역시 자동 밀봉까지 해주는 녀석이 편리하다.

10. 이래도 저래도 화장실 청소가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다면 아웃소싱하고 그 시간에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괜찮다."
- 요즘은 여러 '가사 도움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필요한 시간만큼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가 있다.
- 화장실만 청소를 부탁한다면 설치한 마룻바닥을 걷고, 말리는 것까지 부탁해도 2~3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 집 욕조가 이랬었나? 할 정도로 번쩍번쩍하는 욕실을 만나게 된다.

* 가사도움 서비스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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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화장실에서 살지 않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