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등본을 때면, 두번째 쪽부터는 주소 변동 이록이 나온다. 한 페이지에 몇 번까지가 인쇄될까? 13번 까지다. 스무살 고시원부터 시작해 1인 가구로, 때론 2인 가구로 13번 이사하며 살아왔다. 실로 달팽이 같은 삶이지만, “하루를 살더라도 나다운 공간에서 나답게 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다. 현재 등본표 20번에 위치한 집에서 3년째 살고 있다. (@like_jamie)
어느새 지구가 태양 주위를 거의 한 바퀴 돌아 마지막 코너를 달리고 있다. 며칠 후면 12월, 올해도 딱 한 달이 남았다. '오늘 하루'나 '한 해' 같은 관념은 우주의 관점에서는 기약 없는 시간의 흐름을 인간이 제멋대로 쪼개 의미를 부여한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인간이 태어나 40년쯤 살게 되면 더 이상 '무엇에 홀려 정신을 잃지 않는다(불혹. 不惑)'고 살아갈 용기를 준다거나, '연말'이나 '새해'처럼 의미가 담긴 구분이 있는 것이 좋다. 특히 처음과 끝이 있다는 점은 참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올 한 해가 나한테 어떤 의미였는지, 연초에 설정한 목표가 말도 안 되는 과욕이었는지, 야심찬 자기 선언이었는지 그 결과를 연말에 점검하고, 실패나 성공 원인을 복기하는 것은 개인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죽을 때까지 다이어트"라는 무서운 목표가 아니라, "올해 체지방 1kg 감소"라는 조금 덜(?) 무서운 목표를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아무튼, 지난해에도 밝혔듯이 나는 연말에 '소비생활 연말정산'이라는 것을 한다. 하는 방법은 작년 1월 1일에 쓴 글인 〈2022년 한 해 내가 잘 산 아이템들〉 편을 참조하시라. 작년에는 연말정산의 〈기초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소개했다. 한 해의 소비를 '잘 산 아이템', '후회되는 아이템'으로 나누어 그 목록을 정리하는 일이다. 특히, 친한 친구들끼리 송년회, 신년회 등에서 공유하면 재미있으니까 한 번도 안 해보신 분이라면, 올해 꼭 해보시라고 하고 싶다. 올해는 작년보다 한 달 빠르게 소개하는 만큼, 연말정산 〈종합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활동을 하는 목적은 같다. 내가 어떻게, 어디에 돈을 쓰는 것이 나를 더 만족시키는지 알게 하는 과정이다. "내가 2023년 한 해 동안 이러이러한 목표를 세웠었구나.", 그 결과 "이러저러한 것을 하려고 노력했구나", "그래, 이렇게 저렇게 쓴 돈은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고 생각하는구나", "아! 더 이상 이런 데는 돈을 많이 쓸 필요는 없겠다" 뭐 이런 느낌을 느껴가면서, 스스로를 탐구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누구한테 보여줄 것도 없고, 여러분들은 이 목록을 공개할 필요도 없으니 정말 그냥 솔직하게 느껴지는 감정대로 쓰면 된다. 이런 기록들이 1년, 2년 쌓이다 보면 몇 년 뒤, 그동안 내가 어떻게 변하고 있었는지 지켜보는 재미를 쏠쏠하게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자, 역시 올해도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독자들을 위해 밝힌다. 2023년 나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1. 근력 운동하기 2. 비타민 잘 챙겨 먹기 3. 링크드인이라는 것을 해보기 (이력서 업데이트) 4. 옷 안 사기! (중고로 좀 팔기), 비우는 삶! 5. 〈사까 마까〉 연재 꾸준히 쓰기 (1년 목표!) 6. 영어/프랑스어 공부하기 7. 블로그에 글을 한 편이라도 쓰기 8. 그동안 사재꼈던 책 읽기 9. 1년 적금 꾸준히 들기 10. 마음을 계속 괴롭히고 있는 일 마무리하기 이 중에 완벽히 완수해 낸 것은 5번 〈사까 마까〉 연재를 꾸준히 1년 동안 한 것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 활자 쓰레기를 더 생산해 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중간중간 들었지만, 비록 얼마 되지 않는 원고료라도 새로운 적금을 가입해 별도로 따로 모아 두는 바람에 그 재미로 계속할 수 있었다. 덕분에 9번 목표였던 '1년 적금 꾸준히 들기'도 성공한 것 같다. 목표 중 그래도 하는 시늉이라도 해본 것은 1번(근력운동), 2번(비타민), 6번(외국어), 8번(책 읽기)였다. 이들 모두 자본주의 키즈답게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었다. 근력운동을 위해 무려 30회의 PT를 끊었는데 현재까지 18회를 했다. 아니, 가기만 하면 누가 옆에서 잔소리하며 시켜주는 운동도 이렇게 하기가 힘들 일인가 싶다. '비타민 잘 먹기' 목표 역시, 비타민이 입에 안 맞아서 먹기가 힘든가 하고 '미국 비타민', '아이용 비타민', '젤리 비타민' 등을 사재끼며 비타민 유목민을 해보았지만 이 역시 완벽하게 지키기가 힘들었다. '외국어 공부'는 도저히 혼자 하면 안 할 것 같은 마음에 무조건 어디를 좀 '다녀야' 된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대사관 부속 어학원까지 다녀보았지만, '왔다 갔다'만 하고 복습을 잘하지 않아 여전히 남의 다리 긁는 수준이다. 없는 실력에 동기부여를 위해 그럼 자격증이라도 따겠다며 '단기 과외'까지 해가며 도전해 보았지만, 대개의 벼락치기의 말로가 그렇듯 수준 차이만 격하게 깨닫고 의기소침해하고 있는 중이다. '밀린 책 읽기'는 그나마 좀 쉬운 목표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내는 속도보다 추가로 책을 사대는 속도가 더 빨라 계속 쌓이기만 한다. 그럼 열심히 책을 읽으면 될 텐데 자꾸 유튜브만 보고 있는 자신을 또 한심해하면서 "그래, 시간이 없어서 그래. 들으면 좀 나을까?" 하는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그 마음에 '오디오 북'을 빌릴 수 있는 서비스를 구독했는데, 기계음이 읽어주는 책이 유튜브나 팟캐스트만큼 나의 도파민을 빠른 시간에 자극하지 못해 이 목표 역시 난항 중이다. 올해 목표 중에 아예 실패한 목표는 3번(링크드인 가입), 4번(소비 줄이기), 7번(블로그 불씨 살리기)인데 사실 놀랍지도 않다. 왜냐면 '실패한 목표'는 무조건 내년으로 자동 이월하는데, 지금 이 세 개가 지금 수년째 내 연간 목표에 자리하고 있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블로그는 만든 지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광고를 게시하면 돈을 주겠다는 솔깃한 요청이 가끔 들어오는데 타락(?)하는 마음이 들어 수락한 적은 없다. 왜 이리 글 하나 쓰기가 쉽지가 않은지, 노트북이 너무 낡았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해보지만, 〈사까마까〉는 아이패드로도 잘 연재하고 있어 핑계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옷 덜 사기' 목표는, 옷은 덜 사는 대신 온갖 수많은 '친환경' 제품들을 사재껴서, 이게 과연 비우는 삶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링크드인 만들기'는 과외라도 받아야 하나 하는 마음으로 책을 두 권 샀는데 아직 첫 장도 읽지 못했다. 독자님들은 대체 어떻게 링크드인을 만드셨고 어떻게 관리를 하시는지 정말 궁금하다. 꼭 어떻게든 내년엔 꼭 나도 링크드인 계정을 갖고 말 테다! 북유럽인가 어디에선가는 "당신은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가르친다던데, 어느새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도 멋진 일이고, 특별한 삶을 꿈꾸는 것도 멋진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더 중요한 삶의 가치는 나에게 특별히 더 큰 의미를 갖는 무엇인가(누군가)를 찾아내는 일이다. 굳이 TMI로 비칠지 모르는 개인의 목표 얘기를 한 것은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에서이다. 누구나 다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내가 되고 싶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바둥대는 것이 산다는 것일지라도 그래도 용기 있게 계속 도전하는 나를 격려하는 한 달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아직 시작도 못 한 목표가 있다면 첫발이라도 떼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목표를 달성했든 아니든 아무튼 올해도 신나게 마음 가는 대로 사서 써보고, 입어보고, 맛보고, 가보았다. 그거면 충분히 괜찮은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써재낀 2023년 돈 잘 쓴 리스트를 공개하고 1년간의 긴 연재를 마무리하려 한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즐거운 연말 보내시고, 또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2023년, 잘 쓴 돈 리스트 1. 푸렐조카쥬 발레 '백조의 호수' / R석 90,000원 올해의 공연이었다! 와, 너무나도 파격적인 안무와 무대구성과 화려한 의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만큼 강렬한 무대였다. 그동안 "발레공연"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관념을 뒤엎는 공연이었다. 발레공연에서 맨발까지는 그렇다 쳐도 DJ가 리믹스한 힙합 음악에 맞춘 군무를 볼 줄이야! 아름다우면서도 정교했다. 의상 역시, 도대체 디자이너가 누군가 싶을 정도로 모던하고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돈이 아깝지 않은 공연! 2. 서울 재즈 페스티벌 2023 / 1일권 187,000원 올해는 '미카 MIKA'와 '그레고리 포터'를 보러 갔는데 하필이면 공연 시간이 약간 겹쳐 선택을 해야 했다. 유유자적 드러누워서 하늘 보며 귀가 호강하는 공연 자체가 선물 같았다. 그레고리 포터의 성량은 "그동안 다른 가수들은 음량을 낮췄었나?" 할 정도로 대단했고, 노을빛 하늘 배경에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 아. 이걸로 됐다 싶었다. 바로 옆에서 미카의 공연을 즐겼는데, 와, 이 세상 텐션이 아닌 그의 공연을 보며 '프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야말로 돈을 좀 더 내야 하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멋진 공연이었다. 미카 만세! 3. LIFT 버티컬 마우스 로지텍 / 79,000원 와 세상 편하다. 버티컬 마우스 저렴이를 사서 쓰다가 한 4년쯤 쓰니 마우스가 자꾸 버벅거려 이번엔 고렴이로 장만했다. 너무나 부드럽고 만족스러워서 하나 더 사서 집에도 놓고 싶을 정도. 4. 라꽁비에트 프랑스 꽃소금 버터 / 35,800원 (15g, 30개) 엄마가 이거 먹어 봤냐고, 누가 하나 줬는데 엄청 맛있었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같은 버터를 최근 애정하게 된 한 인플루언서 분이 요리 영상에서 소개하는 것을 보고 넘어가 구매해 보았다. 버터가 개당 1,000원이 넘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뭐랄까 정말 고급진 맛에 스테이크를 구울 때라든가 손님이 오셨을 때 내놓는다. 다 떨어지면 주머니 사정이 극히 곤궁하지 않는 이상 다시 살 것 같긴 하다. 5. 실버스타 크리너 배수구 커버 세트 / 33,900원 늘 배수구 망은 스텐인데, 그 커버가 플라스틱인 게 맘에 별로 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내 맘을 읽은 것 같은 제품을 역시 소개받게 되어 들여 보았다. 배수구 커버와 배수구 망 모두가 스테인리스다. 안의 배수구망 역시 모서리가 둥글게 마감처리 되어서 잔여 쓰레기가 코너에 고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커버도 스테인리스라 뜨거운 물과 베이킹 소다 조합이면 번쩍번쩍 새것처럼 윤이 난다. 혁신적인 제품이다. 하지만 역시 매일 버리지 않으면 때가 끼이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너무 제품만 믿지는 말고 매일매일 음식물을 제거하도록 하자. 강추 아이템! 6. 바퀜 VAKUEN 진공 보관 용기, 마하 스타터 세트 / 169,000원 혁신적인 제품이다. 밀폐 용기 안의 공기를 빼주는 바큐머라는 기계로 잔여 공기를 밖으로 배출해 진공상태로 만든다. 우선 야채 보관을 오래 할 수 있다. 마늘이나 양파, 파의 보관기간이 압도적으로 길어진다. 물기를 완벽하게 제거해 말린 다음, (또는 씻지 않고) 키친타월과 함께 진공상태에서 보관하면 3주까지도 멀쩡한 상태의 야채를 만나게 된다. 내가 하도 구입하고 또 구입해서 주변 사람들도 영업 당해 해외에 있는 친구까지 구입했다. 단, 쓰다 보니 주의 사항이 하나 있다. 기름이 많거나 가스가 많이 차는 음식물을 대용량(4리터) 짜리에 넣었었는데, 자꾸 진공이 풀려 확인하니 바닥에 금이 가 있었다. 1년 보증기간 내라 업체에서 아주 신속하게 바꿔 주시긴 했는데, 대용량 제품은 쓸 때 패킹 부분을 항상 유의하면서 써야 한다고 하는 등 주의 사항이 많았다. 그냥 소용량으로 여러 개 사는 것을 추천한다. 이것도 올해의 아이템! 7. 로우로우 R 트렁크, 63L / 면세점 230,000원 이것도 너무 많이 그동안 소개하고 추천해서 약간 지겨우실 것 같긴 한데 협찬 하나 받은 거 없지만 트렁크 중에 미들급 가격을 생각하신다면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다. 우선 바퀴가 상당히 부드럽고, 핸들이 바 형태라 가방을 걸 수 있어서 편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다. 요즘 고가형 트렁크가 100만 원 대도 훌쩍 넘어가는 것에 비해 양심 있는 가격이다. 세일할 때 사시길 추천한다. 8. 케이스티파이 바디 스트랩 / 50,000~75,000원 한 번 써보고 나서 바디 스트랩의 노예가 되었다. 다들 왜 안 쓰지? 할 정도로 편리하다. 특히 여행 다닐 때 핸드폰으로부터 두 손이 자유로워지는 경험, 잃어버리는 공포에서도 벗어나게 된 다음부터는 나와 핸드폰과, 바디스트랩은 한 몸이 되었다. 스트랩이 로프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도 넓적한 것도 사보았는데 넓적한 것은 좀 무거웠다. 대신 더 안정적이어서 어깨끈이 아팠던 사람에게는 스트랩이 넓은 것을 추천한다. 제발 사보라고 등 떠미는 아이템. 9. Gets / Gilberto LP 월컴레코드 / 28,000원 오랫동안 찾았던 앨범인데 오리지널 프레싱은 결국 못 찾았고 작년에 나온 리이슈를 구매했다. 결국 이 앨범 안의 "The Girl From Ipanema"라는 곡을 매우 매우 좋아해서 오리지널로 가지고 싶었는데, 그냥 현실과 타협했다. 리이슈된 것이 음질이 더 좋을 거야 하는 희망을 가지면서. 사소한 것이지만 오랫동안 찾았던 것을 발견하게 되어 돈 쓰는 기쁨이 참 크다. "어서 내 돈 가져가시오!"하는 마음이랄까. 이런 작은 기쁨이 인생에 계속 있으면 좋겠다. 아주 오랫동안 계속 찾고 찾았는데, 딱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 올핸 있었다. 10. AMATERRA VILLAS BALI NUSA DUA, 침실 2개(수영장) / 1박 100만 원대 올해 코로나 때문에 취소했던 발리 여행을 드디어 다녀왔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 수영장을 사이에 두고 독립적인 빌라 2개가 마주 보고 있는 풀빌라를 빌렸다. 내 인생 첫 풀빌라였는데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그동안 어차피 밖에 수영장 있는데 풀빌라 왜 가지?"라고 생각했던 의문이 단숨에 풀렸다. 우리끼리 즐기는 수영장이 있으니 시도 때도 없이 잠시의 틈이라도 있으면 물에 들어가 어린애들처럼 놀았다. 수영장에서 수달처럼 누워 하늘을 보는데, 와 자본주의 맛이 이런 건가. 이렇게 좋을 수가 있는 건가 생각했다. 첫 유럽 여행 때 한인 민박 숙소 주인이 면세점에서 담배 한 보루를 사 오면 그걸로 숙박비를 대신해 준다는 말에 몇 푼 아끼려 담배를 사 갔던 스물몇 살의 내가 생각났다. 그때 나를 만난다면 그렇게 아등바등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너 나중에 풀빌라도 간다고 말해주고 싶다. 서비스도, 위치도, 자전거를 빌려주는 것까지도 모두 만족스러워 발리 누사두아 가시는 분께 적극 추천한다. 디자인 : 채지우
늘 다른 사람들 가방 안이랑 장바구니 속이 궁금했다. 언제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질문이다. 1년 연재를 기념하는 자축의 의미로 그간 마음에만 품었던 아이디어를 ‘친구 찬스’로 실행한 기획특집을 연재 중이다. 〈지난 기사 : 가방 안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 지금 당신의 가방 안에는 무엇이?〉 지난번 연재의 조회 수를 보고 놀랐다. 무려 11,000회가 넘는다니.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역시 나만 남의 가방 안이 궁금했던 것이 아니었어! 독자들과 새삼스러운 동지애를 느끼며 지난주 소개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이어서 진행해보려 한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입학이나 졸업, 연애와 결혼과 출산, 이직 또는 퇴사, 이사와 같이 일상을 뒤흔드는 변화들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취향이 생기기도 하고, 가치관이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각자가 인생의 크고 작은 고민의 파도를 넘는 일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 고심의 흔적이 일상을 함께 하는 소지품에서 드러난다는 가설을 세웠다. 특히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니까, 그 재미를 통해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타인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은 멋질 것 같았다. 그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그런데 막상 친구들의 소지품과 내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엮으며 불현듯 더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바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웬 엉뚱한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네가 여기에도 저기에도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단다”하는 양자역학 같이 어렵고 심오한 얘기가 아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리들의 고민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 한 명 한 명의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조차도, 편집자의 시각에서 보니 고민들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연결고리를 이어 나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친구들의 소지품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보다 먼저 똑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이 낸 답지를 훔쳐보는 마음이 되기도 했고, 나만 ‘책은 이사할 때 짐이 너무 되는군’이란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묘한 위안도 얻었다. 우리는 분명 사는 곳도, 성별도, 나이도, 취향도 다른 타인이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내가 경험한 이 이상한 연대감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1. 꼬맹이 모범생(?) 시절 만났는데, 이제는 ‘의사 선생님’이 된, Y - 그녀의 아이템: 아이패드, 노트, 수첩, 필기구, 캔디, 큐티클 오일, 핸드크림, 향수, 에코백 그녀는 의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며, 아이패드와 갤럭시 버즈 이어폰, 공책, 필기구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특히 뭐든 손으로 쓰는 걸 좋아해서 귀여운 수첩을 꼭 가지고 다닌다는데 본인만의 비밀 노트란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들이나 공상할 때 끄적거린다던지 일기를 쓴다고 한다. 또 단것을 먹고 싶을 때 먹는 캔디, 거울과 머리끈도 꼭 챙긴다고 했다. 이 소지품만 보면 아직도 학생 같은 그녀는 최근 향기에 빠졌다고 한다. ‘탬버린즈’의 카모 핸드크림과 ‘딥디크’의 탐다오 향수를 추천했다. 또 가을이 되면서 손이 자꾸 터서 큐티클 오일도 빼놓지 않고 들고 다닌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넉넉히 들어가는 수납력을 가진 다람쥐 에코백을 필수템으로 꼽았다. 최근 그녀는 소득이 늘면서 별로 필요하지도 않았는데 ‘보여주기 식’ 소비를 하기 쉬운 환경이 되었다며 남들의 좋다는 이야기만으로 분위기에 휩쓸린 소비를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놀랍게도 내 친구가 맞나 싶게,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 편”이라는 그녀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그녀는 물건을 구입할 때 이 물건이 정말 꼭 필요한 물건인 지 며칠 동안 고민한다고 한다. 특히 가격이 비싸거나 오래 쓰는 물건일수록 고민을 길게 한다고 했다. 특히, 소비할 때 중점을 두는 가치로 ‘지속성’과 ‘효율성’을 꼽았다. 그녀에겐 지출의 우선순위가 있었는데 우선 계속 몸에 닿거나 지니는 물건, 만져야 하는 물건은 최대한 좋은 걸로 사려고 한단다. 일회성인 건 가격이 저렴해도 괜찮은데 몸에 닿는 건 꼭 성분을 확인하고 산다고 했다. 성분이 좋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 평소 검색도 많이 하는 편이란다. 전반적으로 윤리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그녀는 플라스틱 랩보다는 유리 뚜껑이 있는 보관용기를 사용한다던지, 컵라면과 같이 일회용기에 담긴 음식을 먹지 않은 등 소소하지만 막상 하려면 어려운 일들에 도전하고 있었다. 2. 공공기관 이직 11년 차인 마음만 신입직원, S. - 그녀의 아이템: YETI 텀블러, 머니클립, 몰스킨 다이어리, 라미 만년필, 파우치 그녀는 우선 가방 안의 아이템 중 ‘YETI 텀블러(18oz, 532ml)’를 추천했다. 미국에 사는 언니가 공홈에서 사서 보내준 것인데 써본 결과 우선 보온/보냉 지속력이 너무 좋단다. 거의 체감상 12시간 정도 온도가 유지되는 것 같단다. 특히 텀블러를 고를 때 중요한 점으로 휴대성과 세척 용이성을 보는데 이 텀블러로 말할 것 같으면 손잡이가 있어서 가지고 다니기가 너무 좋고, 텀블러 내부에 손이 들어가서 세척하기에도 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18oz 사이즈를 추천했는데, 이 사이즈는 차량 내부 컵홀더에도 들어가고, 스타벅스 그란데 사이즈도 담긴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녀는 보테가베네타의 ‘머니클립’을 사용한다. 언젠가 나도 그녀의 지갑이 좀 특이해서 불편하지 않냐고 유심히 물어본 적이 있다. 머니클립은 보통 브랜드들이 남자 소비자를 겨냥해 제작하는 상품이다. 말 그대로, 현금(머니)을 ‘클립’으로 꽂아서 사용하는 형태다. 그녀는 오히려 여자들에게 머니클립 형식의 지갑이 더욱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보통의 여성용 지갑보다 얇아서 작은 가방에 가지고 다니기 더 용이하단다. 다만, 동전을 수납하는 공간이 따로 없어서 해외여행 갈 때는 다른 지갑을 가지고 다니거나, 따로 동전지갑을 가지고 다녀야 하지만 평소에는 굉장히 만족하면서 쓰고 있는 지갑이라고 한다. 또 S는 ‘몰스킨 다이어리’를 추천했다. 본인이 한번 써보니 속지가 얇더라도 질감이 부드러워 고급진 필기감이 느껴져 쓰는 맛이 있다고 했다. 특히 다이어리 명가답게 다이어리 내부의 공간 구성도 마음에 든단다. 함께 쓰는 제품으로는 ‘라미 만년필’이 있는데 선물을 받았단다. 주기적으로 쓰지 않으면 잉크가 굳고,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해 만년필 쓰기를 주저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핸드폰에 익숙해진 일상 속에서 손으로 직접 필기하는 빈도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손으로 직접 필기하는 내용과 시간이 나에게 더욱 소중하단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필기를 ‘좋은’ 필기구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만년필을 쓰게 되었단다. 위 몰스킨 다이어리에 만년필로 쓰면, 속지가 얇아서 뒤에 필기 내용이 조금은 비치는 감이 없지 않지만 그 맛 또한 만년필로 썼을 때의 느낌적인 느낌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잉크도 네이버에서 대량 구매하면 그렇게 비싸지 않고, 잉크 색깔도 다양해서 더욱 ‘쓰는’ 맛이 있단다. 그녀에게 언젠가 내가 애정하는 브랜드인 KBP의 파우치를 선물해 준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내부가 방수가 되어서 편하고 내구성이 좋다며 줬다는데 그 말이 맞았다며 간증의 추천사를 남겼다. 그녀에 따르면 보통 파우치는 오래 세탁해서 쓰면 천 부분이 낡거나, 지퍼가 고장 나거나, 지퍼 옆에 실밥이나 천들이 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오랫동안 세탁해서 써도 변형이 없다며 가방 안에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란다. Y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묘하게 S와 겹치는 점이 많아 그가 생각났다. 그녀는 파우치 안의 내용물도 살짝 공개했는데 대표적으로 톰 포드의 향수(블랙 오키드, 미국 공홈), 핸드크림(오사카에서 구입, ‘요지야’), 립밤(토리덴, 올리브영 구입), 립글로스(바비브라운, 헤라), 투스쿨포스쿨 콤팩트(레오제이 유튜버 컬래버레이션한 버전)가 있었다. 그 외에도 S는 멀리 떨어져 사는 친언니와 본인의 애칭을 커스터마이징한 에어팟 프로 케이스와, 신분당선 지하상가에서 샀다는 귀여운 곰돌이 디자인의 키링을 가지고 다녔는데 귀여운 데다가 가방 안에서 차키를 찾기도 쉬워 만족한단다. 그녀는 내가 아는 가장 열성적인 당근 마니아인데 뭘 사기 전에 무조건 당근부터 찾아보라고 조언하는 알뜰한 친구다. 그런 그녀에게 돈이 안 아까운 영역을 물었다. 그녀는 ‘건강’에 돈을 쓰는 것과, ‘시간을 꽉 채워주는 경험’에 진심이라고 한다. 특히 운동, 건강한 식재료, 건강기능식품, 피부 건강에 도움이 되는 화장품, 건강에 이로운 속옷 등 ‘건강템’ 위주로 소비를 하는 편이고, 건강에 좋다는 데에는 되도록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그녀는 ‘당근마켓’에서 필라테스 이용권을 구입했다. 또 동시에 그녀는 ‘캠핑’, ‘차박’, ‘여행’, ‘전시회’와 같이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경험을 하는 것에 집중한다고 한다. 최근 그녀에게 소비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있었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전에는 소비는 말 그대로, ‘써서 없어지는 것’이란 생각에 외적으로 꾸미는 것에 비싼 돈을 쓰는 행동 자체를 하지 않으려 애썼다고 한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다 보니 질이 좋은 것,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찾게 되고 그것들은 대개 비싸 돈을 쓰게 된단다. 특히, 소비에 대한 관념이 바뀌어 가고 있는 단계라며 ‘소비의 혼란기’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물건을 오래 쓰고 싶다는 소망은 비단 S만이 아니라, 대학원생 J도 있었다. 3. 가방끈을 늘리다 못해 끌리게 하고 있는 박사과정생, J - 그녀의 추천 아이템: 장바구니, 도서관 사물함 키링, 선크림+립밤+핸드크림 그녀는 최근 무급 휴직을 한지 거진 2년이 다 되어 가서 모아둔 돈이 점점 바닥나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J의 소비 철학은 단출했다. 그녀는 “좋은 것을 사서 오래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살다 보니, 꼭 ‘비싼 것’이 ‘좋은 것’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지혜를 얻었다고 했다. 그녀 가방 안의 아이템 몇 개를 소개했는데, 놀랍도록 단출했다. 우선 장바구니와 도서관 키링, 선글라스(프라다), 보조배터리, 에어팟 프로, 선크림(구달), 선물 받은 림밤과 핸드크림(논픽션)이 있었다. 항상 그녀가 모임 때마다 에코백을 메고 나타나 올해 그녀 생일에는 장바구니를 선물했었다. 그녀는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면 엄마 심부름을 할 때나, 뭘 사들고 집에 들어갈 때 참 좋다면서, “결코 내가 선물해 줘서 잇템으로 꼽는 것이 아니”라며 강력 추천했는데,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디자인이라 자주 가지고 다니게 된다고 했다. 또 이어서 그녀는 구달 ‘맑은 어성초 진정 수분 선크림’을 순하고, 바를 때 손에 끈적이면서 남지 않아 좋아 들고 다닌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향으로 유명한 ‘논픽션’ 브랜드의 립밤과 핸드크림은 명불허전이라며, 촉촉하고 향이 좋다며 추천했다. Y와 S, J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굳이 트렌드 리포트를 읽지 않아도 요새 화두를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지속가능한 소비’, ‘건강한 삶’,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에 관심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내게 결국 이런 질문이 남았다. “나는 어떤 물건을 오래 쓰고 있는 가?,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나?” J의 말대로 꼭 비싼 것이 오래 쓸 수 있는 좋은 물건은 아닐 것이다. 한편 S의 말대로 품질이 좋은 것들은 비싼 편이거나, 혹은 결코 싸지 않았다. Y의 언급처럼, 오래 쓰는 물건에 투자를 하고 싶은 것은 모두 같은 마음인 것 같다. 그렇다면 사실, 남은 문제는 내가 오랫동안 소중하게, 즐겁게 쓰고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내 옷장과 우리 집에 답이 있을 터! 심리상담에서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바로 보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보다. 나의 만족을 극대화하는 소비생활을 위해서는 스스로를, 구체적으로는 내 삶을 오랫동안 관찰해야 할 것 같다. 마침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바다를 넘는 이사를 가며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는 친구 한 명이 생각났다. 4. 없는 것이 없는 메리 포핀스의 가방! 국제학교 화학선생님, Susan - 그녀의 아이템: 커피 머그, 케이스티파이 핸드폰 케이스, 스트랩, 애플 에어택, 이솝 핸드크림, 버켄스탁 슬리퍼 인스타그램 @kimsu1102 그녀는 아이들에게 화학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알려주는 일을 한다. 그녀는 누가 선생님 아니랄까 봐 소지품과 소비 철학을 알려달라는 내 요청에 정성껏 쓴 장문의 글을 구글 드라이브로 공유해 주었다. 기한 내였음은 물론이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학교는 요즘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을 실천하는 것에 진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첫 번째 아이템으로 제자가 선물해 주었다는 〈Corkcicle 커피머그〉를 꼽았다. 학교 카페를 갈 때도 반드시 개인컵이 필요한데, 출근 전에 아이스라테를 텀블러에 담아 놓으면 점심까지 시원하다고 좋아했다. 또 다른 추천템은 Caserify Ultra Impact Case와 로프 스트랩이다. 이 케이스는 특히나 튼튼하고 몸에 맬 수 있는 로프 스트랩과 함께라면 이동이 간편해 유용하다고 추천했다. 사실 나도 이 스트랩을 쓰고 있는데, 두 손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여행 갈 때 반드시 챙겨가는 아이템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현재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제는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집 열쇠’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소싯적 집 열쇠를 잃어버릴까 봐 목에 걸고 다닌 때가 있었다. 같은 걱정이지만 지금은 테크의 시대니까 그녀는 애플의 Airtag로 분실 걱정을 덜었단다. 에어태그를 이용하면 잊어도 어디 있는지 금방 찾을 수 있으므로 안심이 된다고 했다. 특히 미국을 갈 때나, 해외여행을 할 때 부치는 수하물 안에 넣어 사용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 실험실에서 근무할 때가 많은 그녀는 끊임없이 손을 씻는데 끈적임이 없으면서도 촉촉해서 Aesop의 핸드크림을 몇 개째 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특히 향이 그윽해 아로마테라피 효과가 있어서 사용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기분이 좋아진단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덥고, 비가 자주 오는 싱가포르에 사는 사람답게 가방 안에 버켄스탁(Arizona Essentials EVA popcorn) 슬리퍼를 넣어 다닌다고 했다. 파리에선 플랫슈즈를, 싱가포르에선 슬리퍼가 아마도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최근 소비에 관한 고민을 물었다. 그녀는 물건과 너무 금방 사랑에 빠져서 번개같이 산 뒤 또 바로 질려버리는 것이 고민이라고 했다. 특히 스위스에서 한국으로 또다시 싱가포르로 몇 차례의 국제이사를 경험하다 보니 본인이 얼마나 물건을 쌓아두고 사는지 그리고 결국 버리게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비록 ‘빅백‘을 들고 다니는 처지이지만, 마음만은 늘 미니멀리스트를 동경한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녀의 가방은 정말 늘 크고 무거웠다. 다정하고 세심한 그녀답게, 그녀는 “비가 올 때를 대비해서”, “모기 물렸을 때를 대비해서” 등과 같은 (거의)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된 빅백을 들고 다녔다. 서쪽의 캐릭터로는 ’메리포핀스’의 계보를 잇고, 동쪽으로는 단연코 ‘도라에몽’의 주머니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여러 가지 걱정들을 하다 보니 늘 가방이 크고 무거워지고 만다며 언젠가는 작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출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내 짐을 좀 줄일 수 있을까?”라고 귀여운 고민을 내비쳤다. 나는 사실 짐을 늘리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줄이는 일에는 전혀 소질이 없어 그녀에게 적절한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비슷하게 고양이와 이사를 계기로 ‘노 쇼핑 챌린지’를 시작했다는 내 오래된 친구, 민재의 이야기가 그녀에게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5. 고양이를 키우며 삶의 우선순위가 많이 바뀐 10년 차 가맹거래사이자 프로 집사, 민재 - 그녀의 아이템: 갤럭시탭, 손수건 인스타그램 @lovethelife_ulive 그녀는 몇 년째 구형 핸드폰을 아무 답답함도 없이 사용하는 사람이다. 가사를 돕는 전자제품 이외에는 전자제품류에 관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의 추천 아이템으로 〈갤럭시 탭〉을 꼽아 매우 의아했다. 알고 보니, 역시 전자책 이야기다. 그녀에 따르면 책을 사서 읽고 나면 쌓여가는 책들이 이사를 다닐 때마다 짐처럼 느껴져 매번 비정기적으로 처리를 하곤 했단다.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본가에 보내기도 하고 중고로 값이 나가는 것들은 판매도 해 보았는데 일단 집으로 들어온 책을 처분하는 것은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책값이 부담되기도 했단다. 여러 책을 그날 기분에 따라 바꿔가며 읽는 편이다 보니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에도 마땅치 않았단다. 이런 와중에 전자책은 각종 도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월정액만으로도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특히 책을 살 때엔 마치 책을 읽고 난 후의 뿌듯함을 미리 결제하는 것 같은 마음이 되기도 해서 충동구매로 취향과 다른 책을 덜컥 구입할 때가 더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자책은 조금 읽다가 내 취향이 아닌 책은 과감하게 그만 볼 수도 있기 때문에, 100% 취향이 아닌 책도 가벼운 마음으로 클릭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단다. 그녀는 말하다 보니 뭔가 대단한 다독가처럼 들려 걱정된다며 아무튼 전자책을 읽어보겠다는 결심으로 ‘갤럭시 탭’을 샀고 지금은 매우 만족하고 있단다. 특히 그녀는 직업상 다른 사람들과 미팅이나 회의를 할 때가 많은데 상대방의 말을 빠르게 받아 적기에는 ‘갤럭시 탭’의 전자 펜만한 것이 없다며 강력 추천했다. 특히 종이에 쓸 때보다 훨씬 적은 힘을 들여 쓸 수 있고 지우기도 편하단다. 일하며 브랜드 로고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전에는 종이에 색이나 형태를 펜을 바꿔가면서 그리기 쉽지 않아 늘 허접한 낙서 수준의 그림을 디자이너에게 보여주며 고문을 시켰단다. 지금은 그보다는 조금 낫다며, 역시 기술의 힘이 좋다고 답했다. 그다음으로 민재가 꼽은 건 손수건이었다. 요즘 세상에 손수건이라니. 나를 두 번 놀라게 했다. 그녀는 믿을진 모르겠지만 아직 이런 사람이 여기에 있다며 백화점 1층 손수건 등 잡화를 파는 매장에서 손수건을 산단다. 추천 이유로 가지고 다니면 한 번은 쓰게 마련이란다. 원래도 비염으로 한여름을 빼고는 늘 불편하게 살던 사람이지만 고양이를 키우면서부터는 더 심해지기 시작해 고양이가 3마리째에 이르러서는 정점을 찍고 있단다. 먹는 약은 당연히 매일 먹어야 하고 그 외에 비염용 스프레이와 눈에 넣는 3종의 안약까지 늘 챙겨야 한다. 이런 약을 밖에서도 사용하다 보면 사소하게 휴지를 쓸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휴지를 쓰려니 먼지가 너무 나기도 하고 아깝기도 해서 손수건을 더 잘 챙기기 시작했단다. 또 여름에는 땀이 흐르는 느낌을 싫어하기도 해서 손수건으로 자주 닦기도 하고, 외부에서 손을 씻고 손수건으로 닦을 수도 있단다. ‘환경 지킴이’까지는 아니지만 가급적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고자 하는 점에서 손수건의 쓰임이 많단다. 그녀는 “손수건을 보기 좋게 다림질해서 가지고 다니면 좋겠지만”이라고 말하며 현실은 그저 건조기에서 꺼내 단정하게 접어둔 정도로 가지고 다닌단다. 손수건의 디자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고 100% 면이고 거슬릴 정도의 디자인이 아니면 구입한단다. 백화점에서 2~3개를 한 박스에 넣어 선물용으로 파는 것처럼 나온 것을 한번 사두면 1, 2년은 거뜬히 쓴단다.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이런 포장의 손수건을 아빠 생신 선물로 사드렸는데 이제는 내가 내 것을 사서 쓰는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되었단다. 사 줄 ‘딸내미’가 없어 ‘내돈내산’인 데다가 엄마가 곱게 다림질해 챙겨주는 손수건도 아니지만, 어느새 손수건을 챙기는 어른이 되어 있단다. 민재의 손수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왠지 나도 모르게 손수건만 보면 앞으로 민재가 생각날 것만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쓰임이 많다는 생각에, 나도 이참에 하나 장만 해야 하나 하는 영업을 당하고 만 것 같다. 그녀에게 최근의 소비철학을 물었다. 그녀는 “NO SHOPPING CHALLENGE(노쇼핑 챌린지)를 하고 있어”라고 답했다. 세상에, 그녀가 노쇼핑을 외칠 줄이야. 그런데 그날이 왔다. 그녀에 따르면 챌린지 이전의 그녀는 이랬다고 한다. “안 사서 후회하느니 사고 후회하자.” 물건을 안 사고 돌아온 날에는 물건이 눈앞을 아른거려 나중에는 안 산 그때의 나를 원망하고 후회했단다. 또 한 번 구입하면 마음에 드는 것은 10년 넘게 쓰기도 해서 물건의 양은 늘 수밖에 없었단다. 더군다나 물건이라 함은 일단 사두면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사두고 보면 언젠가는 기가 막히게 쓸 날이 온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믿고 살았단다. 이런 그녀의 믿음을 영영 잃어버리게 한 것까지는 아니자만, 쇼핑에 관한 마음가짐을 180도로 바꾸게 만든 일이 있었다고 한다. 때는 이번 여름, 다가오는 내년의 이사 일정이 떠올라 대략적으로 요즘 시세 정도나 파악하자는 마음으로 집 매물을 보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전보다 시세가 꽤나 올랐단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집 구하기는 서울을 샅샅이 뒤지다 경기도까지 넓혀가기 시작했고 하마터면 강원도까지 볼 뻔한 지경에 이르렀단다. 불안한 마음에 당장 이사 할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이 시세가 맞는지, 혹시 저렴하고 괜찮은 곳이 있으면 이른 이사도 감행할 생각으로 실제 매물을 보러 가게 되었단다. 그런데 눈으로 본 현실은 더욱 암담했다고 한다. 이전보다 유사한 조건이지만 더욱 비싸진 가격과 그사이 더욱 늘어난 짐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집이 예산 내에 많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었단다. 그녀는 지금 예산으로는 내가 살고 싶은 집의 비슷한 정도도 구하기가 힘들며, 열 가지 조건 중 반은 포기하고 나머지 반도 타협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현타가 왔다고 했다. 게다가 그녀는 혈혈단신이 아니지 않은가! 고양이 셋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그날 저녁, 집으로 와서 보니 그날 본 집들에 본인의 짐이 다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짐이 많았단다. 또 고양이들의 생활환경을 확보하려면 집에 빈 공간이 충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많이 고양이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고양이는 수직 공간만 확보되면 작은 공간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데, 그건 사실이 아니란다. 그녀는 그날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고양이) 짐을 줄일 수는 없으니 내 짐이라도 줄이거나 최소한 더는 늘려서는 안 되겠다”고. 그리고 그날부로 그녀의 쇼핑 철학은 “노 쇼핑 챌린지”가 되었단다. 그녀에 따르면 처음에는 쇼핑하지 않는 것이 정말 ‘챌린지’였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한다. 지금도 “나에게는 충분히 많은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계절이 바뀔 때 전 같으면 “올해도 입을 옷이 없다”며 추가로 옷을 사고도 남았겠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는 ‘오늘의 나’도 잘 살고 있단다. 입을 옷이 없어 벗고 다니고 있지도 않단다. 더욱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더 소중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고작 3개월 만에 얻은 변화였다. 그녀는 ‘노 쇼핑’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무엇인가를 사게 될 때에 이 물건이 차지하는 부피만큼 나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닌지 두 번, 세 번 생각해 보게 될 것이란다. 그녀는 나의 영원한 쇼핑 메이트였다. “흰색? 아님 검은색?”이라고 메신저로 대뜸 사진 몇 장을 보내며 물건을 골라달라고 하면, “너무 달라. 둘 다 사.”라고 대답하던 친구였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책임감이 있는 삶이란(민재는 고양이를 세 마리 키우고 있다), 정말 개인의 소비패턴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생명체를 키우는 친구는 민재만이 아니었다. 6. 9년 차 프리랜서 동시통역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Sarah - 그녀의 아이템: 소니 헤드셋 4세대, 로지텍 마우스, 결혼 5주년 기념 ‘다이아 반지’ 인스타그램 @91skwon 새라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씩씩하고 용감한 워킹맘이다. 아이를 낳기 바로 직전까지도 동시통역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두 달도 채 안되어 현업에 복귀했다. 그런 그녀의 가방을 털어 보았다. 그녀는 쿠팡에서 찾을 수 있었던 가장 슬림한 책가방을 찾아 ‘노트북 가방’으로 쓴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들어가는 루이뷔통 쇼퍼백을 들고 다닌단다. 그녀는 통역사라는 직업 특성상 노이즈 캔슬링이 잘 되는 헤드셋을 구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니의 헤드셋 4세대를 쓰고 있는데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소니가 단연 일등이라고 귀띔했다. 네이버 포털을 통해 가격 비교 후 해외 직구입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그녀는 평소 내게도 “아이 낳고 바로 일하려면 체력을 길러야 해, 언니, 운동해!”라고 수도 없이 조언했는데, 헬스장에서 달릴 때 더우면 헤드셋에 땀이 찬다며 헬스장 필수품으로 에어팟 프로 2세대를 꼽았다. 또 단백질 보충을 위해 ‘삶은 계란’을 들고 다니면서 먹는다며 귀여운 도시락통을 보여주었다. 화장품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비싼’ 화장품은 과분하게도 선물을 받았다며, 그중 ‘샤넬’의 르 베쥬 틴트를 보여주었다. 가끔 지름신이 강림하면 올리브영에서 삐아, 바닐라코의 립 제품을 사며 스트레스를 푼다고도 했다. 명함 지갑도 필수로 챙기는 데 ‘명함 돌리기’는 프리랜서의 기본기라며 아버지가 선물 받으신 몽블랑 명함지갑을 뺏어 왔다고 했다. 소비 철학을 물으니 항상 명확한 답을 내놓는 그녀 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소비는 결국 마케팅의 농락이라고 생각한단다. 없는 수요를 만드는 것이 ‘트렌드’가 아니겠냐며 본인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소비는 최대한 참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너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래도 ‘경험’이나, ‘먹는 것’, ‘짐으로 형태가 남지 않는 것’으로 소비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녀는 특기가 “잘 버리는 것”이라면서 일본의 정리 전문가인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추천했다. 나는 경쟁이 치열한 야생의 프리랜서 통역사의 세계에서 6년 이상 승승 장구 하고 있는 그녀에게 ‘명함 정리의 기술’을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버리기의 달인이지 않냐며, 명함은 무조건 ‘리멤버’ 어플로 스캔 한 뒤 다 버린다고 했다. 나는 심지어 예쁜 명함들은 버리기가 아까워서 다 모아둔 사람으로서, 버리는 기술이야 말로 타고나지 않으면 정말 어디서 돈을 주고 배워와야 하는 것인가 깊게 생각했다. 소비를 최대한 억제한다는 그녀에게 올해 가장 잘 산 물건을 물었다. 그녀는 결혼 5주년을 기념하여 산 ‘랩 다이아 이터니티링’을 꼽았다. 손이 반짝 거리는 것을 볼 때마다 ‘본인의 재정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내가 잘하고 있구나’라며 스스로 위안이 되는 상징이라고 했다. 후회되는 아이템 역시 물었다. 그녀는 세일한다는 이유로 신어보지도 않고 산 하얀 샌들을 꼽았다. 편한 브랜드인 줄 알고 샀으나 발등이 상처 났다며, 버리기의 달인인 본인조차도 죄책감으로 버리기를 미루고 있단다. 워킹맘 이야기가 나왔으니, 신생아 엄마의 가방 역시 궁금하다. 7. 워킹맘으로 고군분투하는 스타트업 고인물, C - 그녀의 아이템: 기저귀 가방, 펜(지브라 클립온 멀티), 바셀린, 지퍼백, 사막 돌 그녀는 출산한 지 몇 개월 채 되지 않은 신생아의 엄마다. 어떤 고민을 상담해도 늘 똑 부러지게 솔루션을 제시하는 그녀의 바뀐 삶은 그녀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궁금해 갓난아이를 키우는 아기 엄마를 재촉해 기어코 글을 받았다. 그녀는 기저귀 가방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다. 명품 백을 쓰기에는 부담스럽고, 어두운 천 가방은 우울해서 생기 발랄하면서 귀엽고 수납이 스마트한 가방을 선택했단다. 생각보다 패브릭 소재로 만들어진 크면서 견고한 가방이 드물다고 했다. 본인이 사용해 보니 아주 마음에 든다며 브랜드 사이트도 소개해 주었다. 아기 기저귀와, 손수건, 젖병, 공갈 젖꼭지 등의 아이템은 사진에서 생략한다며 가방 속 아이템을 소개해 주었다. 우선 지갑은 작고 핑크색으로 본인의 취향을 그나마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파우치가 웬 말이라며 모든 물건은 지퍼백에 수납한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크린랩 지퍼백이 싸고 적당히 도톰해서 좋단다. 이어서 극강의 가성비 템으로 ‘바셀린’을 꼽았다. 극강의 멀티유즈를 자랑한다며, 아무 데나 다 발라도 되고 립밤 이런 거 필요 없다고 한다. C 덕분에 팩트체크 겸 유튜브에서 피부과 선생님이 추천하는 ‘바셀린’ 관련 영상을 몇 개 보았다. 만지기 전에 손 잘 씻고, 면봉으로 덜어 쓰는 습관만 기르면 정말 그녀의 말대로 겨울철 저만한 멀티유즈 화장품이 없을 것 같았다. 가격도 너무나 저렴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면봉과 똑딱 핀도 소개했는데, 애기 엄마가 되니까 머리카락 마저 거추장스럽다고 똑딱 핀을 사용한다고 했다. 면봉은 눈썹 문신 한 뒤 케어용으로 가지고 다니는데 아침이 한결 편해졌단다. 예상치 못한 아이템인 펜과 책도 들고 다녔는데, 책 볼 시간이 없으니 이동 중, 대기 중에 독서를 한다고 한다. 최근 읽는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좋은 엄마 학교〉라고. 펜 쓸 일이 은근히 너무 많다며 펜을 들고 다닌다고 했다. 공부로는 끝판왕을 찍어버린 그녀라 어떤 펜을 쓰는지 궁금해 구체적으로 물었다. 그녀는 거의 20년째 동일 모델(지브라 클립 온 멀티)을 사용하고 있다며 그립감, 필기감이 압도적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엄마가 사막에서 주워온 운석을 ‘나의 부적’으로 들고 다닌다고 했다. 아이를 낳는 일은 인생에 너무 큰 변화라 시크한 그녀를 많이 변하게도 만들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그녀였다. 지퍼백이니 바셀린이니 가성비를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삼고, 시간을 쪼개서라도 베스트셀러를 찾아 읽고, 우울해진다며 꽃무늬 기저귀 가방을 기어코 찾아내는 그녀. 엄마로서의 삶도, 그녀의 삶도 모두 응원한다. 의외로 행운의 토템 아이템을 가지고 다니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8.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외 럭셔리 브랜드의 디지털 마케터, J - 그녀의 아이템: 가죽파우치, 이탈리아산 부적, 면역력 키워주는 각종 영양제 그녀는 우선 그녀와의 사연이 깊은 Furla 가죽 파우치를 소개했다. 그녀는 이 브랜드 덕분에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건너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그녀는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 수 있었고, 그 경험이 본인의 인생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들었단다. 그래서 이 파우치를 버릴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며, 그녀의 아이템 중 첫 번째로 꼽았다. 이어서 파우치 안에 있는 물건도 소개했는데 Gucci의 쿠션, 컨실러, 뷰티 밤을 보여주었다. 팩트 쿠션은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사용해 보지 않았는데, 사용해 보니 너무나 촉촉하고 지속력이 좋아 반해 버렸다고 한다. 컨실러는 신상품인데, 13시간 근무를 한 뒤에도 바르면 다크서클이 어딨냐고 할 정도로 다크서클 커버에 탁월하단다. 뷰티 밤은 얼굴, 손톱, 몸, 상처, 눈가 등 아무 데나 전천후로 바를 수 있다고 했다. 귀여운 쿠키 몬스터 거울은 ‘다이소’에서 샀다고 했다. 자랄 때 ‘새서미 스트릿’을 보고 자라 살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라고 했다. 부적에 대해서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그녀는 몇 개의 행운의 부적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로 천사와 하트 모양의 은으로 된 부적은 30대 초반, 그녀가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줬다고 했다. 이어서 코르니첼로 부적은 2015년 새해를 그녀의 이탈리아 친구의 고향인 시칠리에서 보냈을 때 친구로부터 받은 거란다. 그녀는 이 부적이 작은 산호로 만들어져서 너무 예쁘다며 분명히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늘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파워 E의 그녀지만 그녀는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고 있다. 그래서 항상 면역 체계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지금 가지고 다니는 아래 세 가지를 추천했다. 에스더 포뮬러 글루타치온 필름(Esther Formula Glutathione film), 닥터 필 프로폴리스 필름(Dr. Fill Propolis film), 마누카 헬스 캔디(Manuka Health candies with Propolis). 지난 회에 이어 이번에도 친구들의 가방 안을 훔쳐보았다. 우리들은 “텀블러랑 손수건, 장바구니 생각보다 쓸만한데”라고 생각했다. “지금 못 산건 다시 못 구해”. “지금 사두면 언젠가는 다 쓸데가 있겠지”하며 마구 사 재끼다가도, “이사 갈 때 짐이 너무 많아”, “소비는 마케팅의 농락이야”, “돈을 최대한 모을 거야”하며 과감히 물건을 버리기도, 물건 사는 것을 참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건강’, ‘오래 쓸 물건’, ‘내 몸에 남는 물건’, ‘인생의 경험’ 등에 있어서는 어떻게 소비를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 고민했다. 모두가 비슷한 결의 고민을 하기도 했고, 그 결론이 때론 같은 방향일 때에도, 전혀 다른 방향일 때도 있었다. 각자 제각각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우리들 모두 뭐가 됐든 참 열심히들 살고 있다고. 고양이를 키우고, 아이를 키우고, 공부를 또 더 해야 하고,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전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직업에 적응하려고 영양제를 입에 털어 넣다가도 우주의 기운이니 부적이니 행운에라도 살짝 기대 보는 귀여운 우리들. 모두 이렇게들 기특하게 씩씩하게 살고 있다. 꼭 안아주면서 말해줘야지, “수고했어, 오늘도!” 디자인 : 채지우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해 보았던 아이디어가 있다. 오늘은 그 아이디어를 실현한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으면 요즘은 “너 MBTI 가 뭐야?”라고 묻는 것 같다. 하지만 난 늘 다른 사람들 가방 안, 장바구니 속이 궁금하다. 그게 내 맘을 언제나 사로잡았던 질문이다. 당장 오늘 당신이 집을 나서며 가방 속에 넣었던 혹은 챙길 수밖에 없었던 그 물건들을 내게 말해 준다면. 나에게는 4글자 영어 알파벳으로 표현되는 당신의 성격보다 소지품을 통해 당신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래서 어느덧 연재를 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자축의 의미로 그동안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실제 실행에 옮겨보는 <기획 특집>을 3회에 거쳐 연재하려고 한다. 기획 특집을 연재하기 위해 친구들에게 몇 주 전 내 가방 안을 소개하는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살포했다. 프로페셔널한 내 친구는 가방 안에 뭐 들고 다니는지, 어떤 것들을 왜 샀는지 <what‘s in your bag> 프로젝트를 할 테니 가방 안에 들고 다니는 물건들을 본인의 소비 철학과 함께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간단한 익명의 자기소개와 함께 가급적 사실적인 사진도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바쁜 친구들을 현혹하기 위해 잘 되면 독립 출판을 기획할 것이며, 우선 내가 연재하는 <사까? 마까?> 칼럼에 소개한 경우 즉각적인 리워드로 이번 회차 원고료를 1/N 분배하겠다는 공약도 걸었다. 용량은 제한이 없었고, 심층적인 이해가 필요한 경우 추가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과 외국에서 대학원생, 법조인, 의료인, 언론인, 통역사, 교직, IT업계, 다국적기업, 정부 기관,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 몇몇이 답을 주었다. 인생이, 연애가, 사업이 우리 맘처럼 되질 않는다며 울고, 주식이 올랐다고, 원하던 이직에 성공했다고, 드디어 회사를 나왔다며 웃으며 정답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세상을 그래도 좌충우돌 살아가는 이 세대의 젊은이들! 그들의 오늘 가방 안을 살펴보았다.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들은 유행의 최전선에 있는 아이템이기도 했고, 모두가 좋아하는 국민템도 있었으며, 때로는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걸 들고 다니나 하는 유물템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소지품은 그들의 취향의 산물이자, 직업의 노하우이기도 했고, 개인의 신념이 담긴 하나의 이야기가 가방 안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들이 가방 속에 대충 던져 넣고 다닌다고 표현한 것들은, 또는 아무것도 안 가지고 다닌다며 소지하기를 거부한 물건들은 개인의 MBTI만큼이나 분명한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지 내 친구들의 가방에서 시작했지만, 거창하게는 오늘날의 소비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는 담론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소박하게는 그저 나와 이 글을 읽는 독자 모두에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친구들이 답한 이야기 중 몇몇은 오늘, 나머지는 차회에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처음으로 소개할 친구는 본인이 시골 ‘흙수저’ 출신이라며 이제는 월급쟁이 중에서는 꽤 버는 축에 속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학습된 가난을 가지고 있다는 직장인 Y씨에 대한 이야기다. 1. 자수성가 IT업계 직장인 Y 그의 아이템: <이북리더기> 제품명: 오닉스 리프 2 “누나가 쓴 글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프리미엄이더라 ㅠ” 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보내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본인은 여기에 기여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평소에도 가방을 비우려고, 가능하면 손에 아무것도 안 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 그렇단다. 재밌을 만한 게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하나 억지로 쓰자면 꼭 가지고 다니는 아이템은 <이북리더기>란다. 본인은 선물을 받았지만 인터넷에서 쉽게 구입이 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추천 이유는 평소 종이책의 손맛이 근본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와 나는 놀랍게도 “북클럽”에서 만났다.) 지금도 그 생각이 별로 변치 않았지만, 써보니 이북리더기만의 포기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어디 놀러 간다고 생각했을 때, 종이책은 일단 무겁기 때문에 여행지에 가져갈 책을 혼신의 힘을 다해 딱 한 권 골라 막상 여행길 기차 안, 차 안, 지하철, 비행기에서 읽었더니 재미가 없다면!? 이북리더기는 이러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고, 밤에 동행자가 자더라도 스탠드 없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한다고 했다. 단, 이북리더기를 뽑는 기준이 까다롭다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물론 그는 조건으로 알파벳 소문자 a부터 c까지를 나열했다), 요 몇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것이 많지 않다는 사족을 달았다. (a)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는 범용기일 것 (b) 넘기기를 위한 물리 버튼이 있을 것 (c) 겨울철 겉옷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크기일 것 나도 이삿짐을 싸며 몇 번이나 이북리더기로의 전환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람으로서 “손맛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라 공감이 많이 되었다. 또 도서 구입 플랫폼마다 고유의 이북리더기를 출시하고 있어 가끔 호환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내가 책을 여러 서점에서 가격이나 사은품을 좇아 사다 보니 맞지 않다고만 생각하다가 ‘범용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무튼, 가방 안에 아무것도 안 들고 다닌다는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는데 디자이너 H씨는 그의 가방은 양극단을 달린다며, 생각해서 챙기는 것이 귀찮아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거나, 아니면 지금 이렇게 이체를 위한 OTP와 쓰레기 밖에 없이 텅 비어 있다며 소지품의 양극화를 주장했다. 2. 재테크에 재능 없음을 깨닫고 몸값을 올린 N 그의 아이템: 귀걸이 한편, 자칭 미니멀리스트라고 주장하는 N씨는 가방 안에 없어서는 안 되는 아이템으로 <귀걸이>를 꼽았다. 주로 구입하는 곳은 인터넷 쇼핑몰이며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정신없이 나가느라 귀걸이를 빼먹기가 일쑤이므로 파우치에 작은 귀걸이를 꼭 챙겨 다닌다고 한다. 그녀의 파우치만 봐서는 도대체 뭐가 미니멀리스트인지 모르겠어서 (앞의 두 사람과 비교해) 그녀의 미니멀리스트 소비 철학을 물으니, “안 사면 100% 할인”이라는 개그맨 김생민스러운 대답을 했다. 어쩌면 앞의 세 사람의 공통점은 <사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여러 가지 신기한 물건을 사서 직접 써보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운 사람이라, 비우는 것의 즐거움을 그들만큼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 배운 점은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내 욕망이나 가치를 만족시키는 최적화된 아이템을 찾았다면 그 이외에는 어떤 혹하는 할인율이나 그럴듯한 광고에 현혹당하지 않는 것이다. 내 선택으로, 내가 필요한 것들만을 사겠다는 의지! 그것이 어쩌면 미니멀리스트의 삶의 철학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직도 애플 페이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올드걸이라며, 그래서 장지갑도 당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라는 말을 했다. 3.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쁜 문화부 기자, 혜연 그의 아이템: 소형 우산, 초소형 스피커, 젤리 인스타그램 @hy_moments 그녀는 신문 기자의 특성상 장시간 서서 취재하거나 현장에서 걸음을 재촉하며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백팩을 메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했다. 이런 직업적 특성 때문에 무엇이든지 아이템에 “포터블(휴대성)” 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눈길부터 한 번 주는 편이라고 본인의 취향을 밝혔다. 그녀는 요즘 같은 환절기에 필수 아이템은 <소형 우산>인데, 한 15개 즈음 잃어버리고 부러뜨리다 안착한 우산이 바로 "파라체이스"라고 했다. 대만 브랜드로 알고 있는데, 매우 휴대성이 좋으며 의외로 단단하고, 특히 핸들 부분 그립감이 좋고, 디자인 또한 예뻐 늘 백팩 옆구리에 꽂아놓고 다닌단다. 그녀가 지방에 취재 차 방문할 때에는 <Britz 초소형 포터블 스피커>를 지참한다고 한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아주 작은 스피커인데 작은 체구와는 다르게 출력이 꽤 좋단다. 볼륨을 5 정도만 해놓고 고단한 일정 끝에 숙소에서 좋아하는 경음악을 튼 채 눈 붙이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아이템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절대 빠질 수 없는 아이템으로 <히치스 젤리>를 꼽았다. 당 떨어질 때를 대비해 항상 한 봉지씩 가방에 넣고 다닌단다. 백팩을 멘 바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 친구를 빼먹고 넘어갈 수는 없다. 4. 스타트업 대표이면서 개발자인 친구 E 그의 아이템: 백팩 제품명: 인케이스 15인치 라이트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현재 제일 만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그녀는 남들은 들어가지 못해 안달인 글로벌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후 본인이 개발한 서비스를 오픈하려고 고군분투 중인 스타트업 대표이다. 그녀의 가방 안이 너무 궁금해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본인이 별로 소지품이 없다면서 고민하다가, 한 아이템을 뽑자면 <백팩>이라고 했다. 그동안 수많은 백팩을 들어봤지만 <인케이스 15인치 라이트>가 제일이란다. 지금 많이 낡았는데 다시 똑같은 것을 사고 싶을 정도라고 한다. 난 사실 여행 갈 때 외에는 백팩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왜 백팩을 선호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옆으로 메는 건 자세에 별로 좋지 않고, 개발자들의 세계에서는 백팩이 뭔가 더 프로페셔널한 느낌이라고 했다. 수트케이스를 들고 다닐 것이 아니라면 백팩이 좋은데 본인은 여성스러워 보이는 걸 정말 배제하고 싶어 백팩을 고수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많이 메고 다니는 투미 백팩에 대해서 물으니 그건 무겁고, 15인치 노트북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소비에 대해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물으니 남이 보는 건 중요하지 않고 항상 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확실히 30대가 되니 좋아하는 브랜드들이 생겼단다. 원래부터 남을 별로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냐고 물었더니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란다. 20대에는 남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들에 대한 집착은 이전 직장에서 일하며 연봉이 많아지면서 정작 많은 것을 살 수 있어지니까 집착이 줄었다고 했다. 특히 물건을 모셔야 하는 상황이 정말 싫다는 그녀는 적당히 내 스타일이면서 나에게 너무 부담되지 않는 가격의 브랜드가 좋다며 대표적으로 J crew, 산드로, 클럽 모나코, 유니클로, 무지 등의 브랜드를 꼽았다. 최근엔 어떤 소비를 할 때 행복하냐고 물었다. 최근에는 스타트업을 시작하면서 내향성 성향이 강해져서, 집에서 가볍게 혼술하며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고 한다. 또 최근에는 좋은 향기에도 관심이 생겼단다. <바이레도 바디로션>을 선물 받았는데 너무 마음에 드는 향이었단다. 하지만 도저히 같은 것을 다시 못 사겠어서 유사 저렴이 브랜드를 샀는데 같은 향이었다며 즐거워했다. 스타트업을 시작했더니 아무 생각 없이 타던 택시비도 아까워졌다고 한 그녀에게 하나도 아깝지 않은 소비를 물었다. 그녀는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하며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마시는 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고 했다. 먹고 마시는데 쓰는 돈이 아깝지 않다고 하는 얘기를 들으니, 또 다른 친구 회사원 C가 생각났다. 5. 이제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은 ‘프로이직러’ 회사원 C 그의 아이템: 치실 (오랄비 글라이드여야만 함) 그는 자타공인 이직의 왕이다. 9년간 정규직만 6개를 다녔다. 하지만 나는 사실 그의 화려한 이직 노하우보다, 그의 가방 속이 무척 궁금했다. 왜냐면 그는 센스 있고 취향이 고급져, 이를테면 내가 데이트하는 사람이랑, 종로에서 맛있는 거 먹고 뭐 좀 보러 가고 싶은데 어디 가야 해? 하면 웬만한 구르메 가이드북보다 좋은 선택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그는 본인이 정말 소비를 안 하는 사람이라서 뭔가 딱히 아이템이 없다며 가방 안에 노트북이랑 사원증 밖에 없다고 없단다. 그러면서 “책이라도 좀 넣을까?” 하며 감히 ‘주작’을 시도해 그냥 솔직하게 지금 있는 것들이나 찍어서 보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생각해 보니 빼먹지 않는 가방 속 아이템이 하나가 있다고 했다. 바로 <오랄비 글레이드 치실>이다. 그에 따르면 코스트코에서 6개 들이로 구매가 가능하단다. 본인이 어릴 때부터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 출퇴근 가방에도 치실이 있고 자동차에도 치실을 항상 구비해 둔다고 한다. 그동안 살면서 사용한 수많은 치실 중에서도 <오랄비 글라이드>를 추천하는 이유는 소재가 부드러워서 잇몸에 부담이 없고 향도 강하지 않아서 거부감이 없단다. 나는 그의 소비 철학을 물었다. 그는 미식 활동 외에는 최소한으로 쓴다고 했다. 맛있게 먹고 마시는 것이 본인에게는 행복이라고 했다. 특히 각종 음료를 좋아하는데 이게 아무래도 치아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스타트업 대표 A와 직장인 C는 유사한 소비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물품을 소유하는 즐거움보다는 경험 소비, 특히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더 컸다. 다만, 그들이 표현한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단순히 시각이나 미각의 자극만을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새로운 공간에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재료들의 독창적 사용법을 본다거나, 예상치 못했던 음식 조합의 궁합 도는 술과의 궁합(페어링)을 경험하는 일, 틀림없이 그 경험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의 즐거움도 그 행복을 더하는 요소일 것이다. 최근 소비하는 가치가 조금 변경되었다는 친구 혜원도 빼놓을 수 없다. 6. 방송기자 4년, 컨설팅회사 7년째인 재주 많은 직장인, 혜원 그의 아이템: 쿠션, 립밤, 영양제 인스타그램 @hyewonsc 그녀가 가진 매력은 너무 많아서 그녀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똑똑하고 아름다운 그녀는 직장인이라면 파우치 안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 쿠션과 립스틱 등 헬스케어 아이템들을 추천했다. 우선, <쿠션: CNP 프로폴리스 앰플 인 쿠션>이다. 피부가 건조한 편이라는 그녀는 어느 메이크업 아티스트 선생님이 이 쿠션을 추천해 주신 뒤로는 계속 이것만 쓴다고 했다. 오후에 수정 화장을 하며 자주 쓰는 편이고, 자외선 차단에 진심이어서 하루에 한 번은 꼭 쓴다고 한다. 그녀 말에 따르면 “사용감이 엄청 촉촉하고, 사용하면 다들 피부가 좋아 보인다”고 해서 매우 강추하는 아이템이라고 한다. 다음으로는 립스틱보다는 립밤을 더 자주 쓰는 것 같다는 그녀는 <샤넬 립 앤 치크 오렌지>, <라카 립밤>을 추천했다. <샤넬 립 앤 치크>는 립밤으로 쓰기도 하고 볼터치용으로도 애용한다고 한다. 오렌지 계열이 잘 어울린다는 그녀는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컬러라 손이 자주 간다고 한다. <라카 립밤>의 경우 자연스러운 입술 색을 선호하는 편이라 그런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강추라고 한다. 약간 묽은 피(?)와 같은 연출이 가능하나고 하며 웃었다. 스스로를 잘 돌보는 법을 아는 그녀가 또 빠뜨리지 않고 가방에 챙겨 넣는 것은 무려 <영양제 : 뉴트리라이트 Women's Vital Pack>였다. 매일 영양제를 잘 챙겨 먹는 편인데 간단하게 때려(?) 먹을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 영양제로 말할 것 같으면, 여성에게 필요한 종합 비타민 같은 것인데 친구한테 추천을 받아서 구입한 뒤로는 쭉 이것만 먹고 있다고 했다. 본인의 소비 철학에 대해 말해 달라고 하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주로 건강이나 경험에 대한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 같아요. 헬스, PT, 영양제, 스킨케어 제품 등에 주로 큰돈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최근 그녀는 요리에 취미를 들이기 시작했다며, 평소 여행을 가면 현지 음식을 배우는 ‘쿠킹 클래스’를 빼놓지 않고 수강하는 편인데 한국에 와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셰프가 진행하는 쿠킹 클래스가 있으면 꼭 수강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가 소비생활을 할 때는 <가성비: 가격 대비 가치>를 많이 따지는 편이라고 했다. 부동산 컨설팅을 많이 하는 그녀라서 그런가 그녀는 “감가(감가상각)을 많이 생각한다”고 했다. 감가상각이 되는 것에 비해 가치가 있는 소비인지, 아닌지를 먼저 고민을 해보고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돈을 쓴다고 했다. 예를 들어 가구 등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주로 ‘당근마켓’ 등 중고로 구입을 많이 한다고 했다. 얼마 전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 독립을 했는데 냉장고, 건조기, 소파 등 가전제품들과 가구들은 대부분 중고로 구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류를 살 때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기본이 되는 제품은 SPA브랜드보다는 브랜드 제품으로 구입한다고 한다. 특히 <Theory>, <Club Monaco>의 제품을 좋아하는데 소재가 좋은 옷들 같은 경우는 10년 이상도 충분히 입을 수 있었다고 했다. 대학생일 때 큰맘 먹고 투자한 자켓 같은 것들을 오래 입을 수 있었단다, 그녀는 오래 입으니 옷에도 추억이 묻어 있는 것 같아 좋다며 가치 있는 투자라 말했다. 친구들의 가방을 몰래 훔쳐보니 처음 기대했던 즐거움은 물론이고 깨달음의 순간들이 있었다. 자아 성찰이나 자기 계발을 위해 책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끼니를 거르는 때가 많아 혈당 보충을 위한 사탕을 챙겨야만 할 정도로 바쁜 생활인이었다. 백팩을 메고 도시를 누비면서도 미팅에서 깔끔하고 프로페셔널한 인상을 주기 위해 치실이나 귀걸이를 챙기는 그들의 소지품을 살펴보며 나는 정말이지 K-직장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녹록지 않은 현실인지를 다시금 생각했다. 오늘도 씩씩하게 현장을 누리고 있을 그들을 생각해 본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꼬옥 안아줄 테다! 우리 모두 너무 수고하며 참 기특하게 살고 있다고. 지금도 길지만, 지면 관계로 오늘 미처 모두 소개하지 못한 나머지 친구들의 재미난 이야기들은 다음 연재에서 계속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친구 중 아직 원고를 보내지 않은 친구들아,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막차를 타길 바란다.) 디자인 : 채지우